서예의 力感에 관한 硏究
Ⅱ. 力感의 生成
1. 筆 과 力感
서예는 用筆과 結字를 통해 이루어지는 예술이다.
서예는 이미 정형화된 문자를 소재로 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보다는 모양뒤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필획에 중심을 두게 된다.
따라서 붓을 어떻게 움직여 어떠한 필획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필획의 질감이 어떠한가에 의해 작품의 수준이 평가된다.
또한 서예의 필획은 길고 둥근 원추형의 붓으로 찰나간에 완성하는 것이기에,
붓의 성질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붓을 자신의 수족처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야, 다양하고 아름다운 필획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다.
서예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입체감과 생명력이 느껴지는 필획과,
자연미가 감도는 건강하고 신선하며 아름다운 작품을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지는 바로 알 수도 없고, 알고 있더라도 短時間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세월의 노력을 통해 겨우 그 끝자락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나,
알고 서사하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더욱 올바른 서법으로 나아가는데 유리하며, 많은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역감에 대하여 논하는 과정으로, 처음에는 대강의 용필법을 통해 역감이 생성되는 면을 주로 다루었고,
나중에는 필획·결구·장법 등을 통해 느껴지는 역감의 표현효과를 주로 다루었다.
먼저 筆 은 무엇이며, 붓은 어떠한 성질이 있으며, 力感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본다.
1) 筆
동양의 필획은 억센 솔과 같은 짧은 붓으로 물감을 찍어서 두꺼운 종이에 여러 번 칠하는 서양의 것과는 다르다.
길고 유연한 붓으로 얇은 화선지에 단번에 긋는 것으로 모든 것을 완성하기 때문에,
동양의 붓은 도구로서의 기능을 뛰어넘어 작가의 신경과 감각이 연장된 것처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서양의 예술은 面과 外的인 표현에 의미를 두고 있지만
, 동양의 예술은 함축적인 선과 內的인 곳에 의미를 두고 있다.
" 동양예술은, 급박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것에 대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그 존재의 전반을 관조하는 '老의 境地'를 요구한다.
이것은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민족과 儒佛仙을 비롯한 제자백가의 다양한 사상, 광활한 아름다운 대자연속에서 자연을 경외하면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킴바라세이고가 『동양의 마음과 그림』에서한 다음의 말은 매우 의미있는 표현이다.
동양의 아름다움은 老境의 美이고 서양의 아름다움은 若境의 美이다.
원래 서예는 글자를 쓰고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이는 漢의 許愼이
『說文解字 敍』에서 竹帛에 드러난 것을 書라고 한다.
書란 같은 것이다라 했고, 『易·繫辭上』에서는
書는 말을 다하지 않은 것이고 말은 意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으며,
『釋名 釋書契』에서 書는 많은 것이다.
庶物을 기록한 것이며 또한 말을 나타낸 것이다.
簡紙에 나타내서 길이 잊혀지지 않게 한 것이다라고 한 것에서,
우리는 書의 역할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갑골문이나 금문도 예술적인 표현보다는 자연스런 표현에 의해 아름다운 글씨체가 만들어졌던 것 같다.
이와같이 서예는 오랜 세월 붓으로 서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심미추구를 거쳐 발전을 거듭하여 지극히 고아한 예술로 발전한 것이다.
선진시대에는 갑골문과 금문이 있었고,
秦·漢을 거치면서 각종 碑文·竹簡·木簡·帛書 등에 다양한 글씨체가 쓰여졌다.
위진남북조를 지나오면서 많은 저명한 서가들이 출현하며 아름다운 저작과 서론들을 남겼으니,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예술철학이 있고 부단한 노력이 있음으로 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古今에 뛰어난 예술가들은 그들의 독자적인 예술관이 있었다.
그들은 인생·사회·자연에서 그들의 예술에 대한 이념을 自得하기에 苦心하였으니, 예술가에게 이러한 깨달음이 없다면 그것은 한갓 技藝에 종사하는 工人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서예에 관한 故事들을 살펴보면,
혹은 땅이나 이불위에 선을 그어대고 주야로 사색하고 탐구하였으며,
혹은 神授에 의탁하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연못물을 온통 먹으로 새카맣게 물들였고,
어떤 이는 파초 수만그루를 심어놓고도 그 잎이 모자랄 정도로 글씨를 썼다.
어떤 이는 안타까워 피멍이 들 정도로 가슴을 치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남의 묘를 도굴하여 비결을 얻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소중한 필법과 書跡들을 남겨놓았고
, 기존의 서체를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서체를 만들어냈다. Herbert Read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술가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독특한 문화적 전통의 한계안에서 예술작품을 창조한다.
그러나 역사를 통하여 그가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偉大性과 天才性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그의 예술적 창조물을 통하여 기존의 문화적 전통을 초월하고 변경시키기 때문이다.
書史를 통해 보면 귀족 일부만이 향유했던 서예가, 진한으로 넘어오면서 대중들이 함께 느끼는 서예로 발전되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또한 서사하는 재료가 달라짐에 따라 서체나 서풍도 달리하고 있다. 즉 甲骨·金屬·碑碣·竹帛·종이 등에 따라, 그런 서사재료들을 십분활용하여 그에 맞는 아름다운 서체를 창조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書寫速度·便利性·美的感覺 등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를 통해 서예는 다양하고 차원높게 발전하였던 것이다.
2) 筆性
대체로 글씨는 우선 붓에 먹물을 찍어 종이에 대는 것으로 시작하며, 글씨의 서사과정에 붓의 역할은 대부분의 과정을 차지한다. 따라서 붓의 의미를 알고 붓의 성질을 안다면 서예를 올바르게 敎學하는데 보다 유리할 것이다.
우선 『說文解字』를 통해 筆과 力感에 관한 의미부터 살펴본다. 甲骨文과 金文에는 筆字가 보이지 않는다.『說文解字』에서 "筆은 秦地方에서 筆이라고 한다. 聿과 竹은 모두 意味部分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聿字는 본래 손으로 붓을 잡고 있는 모습을 그린 象形字이고,(圖3) 筆字는 붓대가 대나무인 점을 고려하여, 聿에 竹字를 더하여 筆(圖4)이라는 筆記道具를 좀더 分明하게 나타낸 글자라고 하겠다. 『說文解字·聿部』를 보면 "聿은 이것을 가지고 쓰는 것 즉 붓을 뜻한다. 楚地方에서는 聿이라고 하고, 吳地方에서는 不聿이라고 하며, 燕地方에서는 弗이라고 한다"고 했다. 筆字는 이후로 붓을 뜻하는 말 이외에 글씨를 쓰다, 筆跡, 筆才 등을 가리키게 되었다.
『荀子』에서는 "군자의 生(性)은 衆人들과 다르지 않다. 배워서 사물의 능력을 잘 빌릴 뿐이다"라고 했으니, 곧 사람의 능력은 사물에 대한 理解·熟悉·掌握과 運用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붓을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붓이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붓을 잘 다룰 수 있고, 붓을 어떻게 다루는가는 얼마나 글씨를 잘 쓰는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다음에 붓의 特性을 분석해보고 이를 기초로 하여 붓을 운용하는 歷代의 說에 대하여 언급해보고자 한다.
붓의 특성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붓은 짐승의 털로 만든 것이라 부드러우면서 탄성이 있다. 붓의 부드러운 탄성은 딱딱한 펜에 비하여 다양하고 아름다우며 생명력이 넘치는 필획을 표현해낼 수 있게 한다. 부드러운 특성으로 인해 붓을 눌러 굵게 할 수도 있고 붓을 들어 가늘게 할 수도 있다. 硬筆은 선의 효과를 내는데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지만 부드러운 붓으로 글씨를 쓰려면 붓끝에 힘을 부여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붓을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 필획의 효과가 달라진다.
둘째, 많은 짐승의 털을 모아 만들었기 때문에 붓끝을 모으거나 펴서 획의 굵기를 조절할 수도 있고, 붓을 누르거나 들어서 획의 굵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붓털을 새끼줄처럼 꼬이게 할 수도 있고 곧게 펴서 운필할 수도 있다. 필봉의 중심을 중간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고 필봉의 중심을 필획의 가장자리로 향하게 할 수도 있으며, 아예 붓을 뉘어 편박한 획을 그을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중봉의 의미를 결정하는데 다양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다양한 필획을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셋째, 붓은 어느 쪽으로 보아도 圓錐의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筆鋒이 있고 副毫가 있다. 펜이나 연필은 선의 굵기가 어느 정도 一定하지만 붓은 필호가 누울 수도 있고 갈라지거나 꼬일 수도 있어서, 지면에 전달되는 힘이 일정하지 못하여 힘이 있는 필획을 얻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필봉을 잘 운용하는 것은 글씨의 성패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中鋒·偏鋒·折鋒·正鋒·側鋒·藏鋒·露鋒· 鋒·出鋒·絞鋒 등 많은 서예용어에 鋒이 들어가는 것도 이 봉의 功能이 많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넷째, 그 切面을 보면, 서양의 그림붓은 평면적인데 반하여, 서사에 사용하는 동양의 붓은 正圓이다. 서양의 붓은 넓적하기 때문에 몇가지 효과밖에 기대할 수가 없어 주로 면에 색을 칠하기 위한 것으로 활용하지만, 동양의 붓은 절면이 원이기에 作用力과 反作用力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고 八面으로 出鋒하며 다양한 선질효과를 낼 수가 있다.
다섯째, 붓은 많은 수의 털로 만든 것이라 모든 부분이 먹물을 저장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한번 먹물을 찍어 많은 수의 글자를 쓸 수도 있으며 먹물이 많을 때와 먹물이 적을 때의 필획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털이 가지런하면 먹물이 쉽게 흘러내리기 때문에 가지런한 붓으로 쓴 필획은 飽滿하고 厚實해지나, 털이 꼬여있거나 구부러져 있으면 먹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일정하지 않아 마르고 힘이 없으며 평면적인 획이 될 수도 있다.
3) 力感
『說文·力部』에 "力은 筋이다. 사람의 근육의 형상이다.(圖5) 治功을 力이라 하는데 大災를 制御할 수가 있다"라고 했고 『段注』에서는 "筋이라는 것은 그 體이며 力이라는 것은 그 用이다"라고 했다. 이 力字는 후에 運動·活動·機能 등을 가능케하는 힘이나, 어떤 작용의 효험, 혹은 물체가 서로 작용하여 그 속도에 변화를 일으키는 물체상호간의 작용, 힘쓰다, 있는 힘을 다하다라는 등의 의미를 나타내게 되었다. 禹임금이 13년간의 고심끝에 치수사업에 성공을 하였다는 기록이나, 외세의 잦은 침입에 대비하는 등 큰 재앙을 극복하려면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힘으로 인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었고 생활의 편리를 가져올 수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힘이 있는 것을 좋아하고 찬미했다. 인류는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항상 자기가 지극히 작은 것을 느끼면서 이 힘을 숭배하였으니, 좋다·낫다·훌륭하다는 말에 勝을 사용하고, 씩씩하고 용맹하다는 의미의 勇이나, 굳세고 예리하다는 의미의 勁 등과 같이 찬미하는 의미의 글자에 力이 들어가는 한자를 사용하고, 못나고 부족하고 능력이 없는 것을 劣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力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했음을 짐작케 한다.
感字는 甲骨文과 西周金文에 보이지가 않는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의 금문과 小篆의 자형은 모두 心과 咸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있다.(圖6) 『說文解字』에서는 "感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뜻이다. 心은 의미부분이고 咸은 발음부분이다"라고 하였다. 곧 사물을 대했을 때 어떤 情이 일어나는 것이나 마음에 깊이 느껴 감동하는 것이다.
力感은 筆力·骨力·筋骨·力度·筆力感 등으로도 칭한다. 서예의 미는 모두가 반드시 역감을 바탕으로 해서 서예의 아름다움이 표현된다. 역감이 없으면 모든 글자는 피곤한 듯 늘어지고 筆毫에는 생기가 없다.
力感中의 力은 서법을 시각으로 감상할 때에 일종의 감수이며, 이것은 관념중의 힘이며 심리학의 범주에 속한다.
사람들은 붉은 색을 보면서 사람들은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불을 연상하고 달구어진 쇠를 연상하고 붉은 태양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파란색을 보면 시원하거나 차가운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은 푸른색을 보면서 차가운 물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색채가 사람들에게 冷溫感을 주는 것이 분명하지만 모두가 심리상의 느낌일 뿐 물리상의 온도와는 전혀 무관하다. 역감도 이처럼 심리상의 느낌일 뿐이라는 것이다.
3. 中鋒·側鋒
중봉은 蔡邕의 「九勢」중에 "필심이 항상 점획속에서 지나도록 해야한다(令筆心常在點 中行)"라는 말에 始原을 두고 있다. 여기서 中은 정가운데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內와 같은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렇다면 필봉이 꼭 정가운데로 가야만 중봉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가령 중앙선이 그어진 곳을 달려야만 자동차가 도로중에 있는 것은 아니다. 도로의 중앙이나 삼차선을 달려도 자동차는 분명 道路中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 생각하면 필심이 정중앙으로 가는 正鋒은 물론이지만 조금 옆으로 비껴가는 측봉도 중봉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좁은 의미로 말하면 중봉은 정봉으로 측봉과는 엄격하게 다르다. 이때 측봉은 편봉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편봉중에서 입체감이 느껴지는 필획으로 다시 편봉과는 개념을 달리한다.
1) 立體感·生命力
중봉용필을 통해서 얻어지는 효과는 立體感의 표현이다. "得筆하면 비록 가늘어 수염과 같아도 發하면 또한 둥글고, 득필하지 못하면 두터워 서까래와 같아도 또한 넓적하게 된다." 중봉운용을 하면 서법중에서 골력이 있게 되고, 점획중에 骨力이 있으면 字體는 자연히 웅건해진다. 중봉용필의 골력과 입체감은 다음과 같이 錐 沙로 설명된다.
古人은 '錐 沙'로 그것을 형용하였으니 확실히 매우 심각한 것이다. 錐를 세울 수 있으면 평평한 모래의 홈중에 반영되어 나오는 것은 바로 그것의 深度와 厚度이다. 挺拔하면서 中含하니 사람에게 圓的인 입체감을 준다.
錐 沙에 대해서는, "젖은 모래에 글씨를 써보면서 중봉을 느낀 것인가", 아니면 "마른 모래에 글씨를 써보고 중봉필법을 느낀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마른 모래에 글씨를 쓰면 篆書를 연상하듯이, 획의 들어가고 나간 자취가 없이 필획이 둔중하고 획의 양면이 보드라우나 澁氣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젖은 모래에 글씨를 쓰면 예서나 해서를 쓰는 것처럼, 획에 澁氣가 넘치며 획의 들어가고 나간 흔적이 드러나 보인다. 안진경은 「述張長史筆法十二意」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후에 저수량에게 물으니 말하기를 "용필은 마땅히 印印泥와 같아야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생각하여도 깨닫지를 못하다가, 후에 江島에 모래가 평평한 곳(沙平地靜)을 보고 글을 쓰고 싶어져 날카로운 끝으로 그어가며 글을 쓰니 그 험경한 모양이 분명하고 아름다웠다. 이로부터 용필은 추획사와 같이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藏鋒으로 하면 획이 침착해진다. 그 용필이 항상 紙背를 透過하도록 하면 이는 功을 이룸이 지극한 것이다.
江島의 沙平地靜한 곳이라면, 人間이나 風雨 鳥類 등의 外的인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 시간을 요한다. 그러므로 물이 지나갔으나 어느 정도 오랜 기간이 지나지 않아 약간은 젖어있는 상태를 생각하게 한다. 그곳에 썼던 필획에서 勁險한 모양이 있었다는 것이나, 印印泥를 연상하여 錐 沙를 생각한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는 도장을 찍듯이 막대기를 곧바로 세우고 눌러가며 글을 썼을 것이다. 도장은 비스듬하게 찍지를 않는다. 직각으로 곧바르게 눌러야 도장이 바로 찍힌다. 힘있게 누르든 힘이 없이 약간을 누르든 곧바르게 눌러야 한다. 이는 기필과 수필부분을 장봉으로 했고 행필부분을 正鋒으로 했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더구나 이 시대는 해서와 행초서 등이 유행한 시절이고 보면, 그 당시 강도의 모래위에 쓰여졌던 글씨가 전서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마른 모래에서는 어떻게 그었든 장봉과 노봉의 구별이 그리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지배를 투과하는 느낌으로 막대기를 눌러 그어도 모래가 다시 덮여 획의 변화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젖은 모래에서는 도장을 찍듯이 막대기를 곧게 세워 글을 쓰면 노봉으로 글을 쓸 때와 많은 차이가 보이며 힘을 주어 획을 그어도 사뭇 다른 필획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면을 생각하여 볼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른 모래보다는 젖어있는 모래일 가능성이 많다.
中鋒은 錐 沙외에도 印印泥나 屋漏痕으로 비유를 한다. 印印泥는 위에서 잠깐 언급을 한 것처럼 곧게 도장을 내리 누른다는 뜻으로 竪鋒을 통한 中鋒의 의미하고, 屋漏痕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구불구불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물줄기와, 벽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단면에서 보여지는 圓的인 입체감을 의미한다.
그것이 젖어있든 말라있든, 모래위에서는 입체감이 분명하게 드러나나 평평한 종이위에 그어진 묵적에서는 어떻게 입체감이 드러나는가? 이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다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李陽氷은 홀로 그 묘함이 뛰어나서 항상 그 眞跡을 보면 그 字 의 起止處에 모두 약간의 鋒芒이 드러났다. 햇빛에 비춰보면 中心의 一線에 먹이 배로 짙었으며 그 用筆은 힘이 있고 곧게 내려 치우치지 않았으므로 鋒은 항상 그 가운데에 있었다
이와 비슷한 고사는 南唐의 徐鉉(916-991)에게서도 전해진다. 곧 먹색이 중심으로부터 양변으로 침투하여 생겨진 濃淡의 변화는, 필획에 飽滿感이 느껴지고 立體感이 있어야 충실한 역감을 드러낸다. 唐代 서예가 徐浩(703-782)가 「論書」에서 말한 다음의 비유는 마치 정곡을 찌르는 듯하다.
무릇 매는 채색이 부족하나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골이 굳세고 氣가 용맹하다. 훨훨 나는 꿩이 색을 갖추었으나 날아가는 것이 百步밖에 되지 않는 것은 살이 쪄서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이는 중봉용필을 매에 비유하고 편봉용필을 꿩에 비유하여, 중봉용필은 매처럼 아름다운 색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筋骨이 뛰어나고 살이 적으며 생동감이 있음을 말한 것이고, 편봉용필은 꿩과 같이 아름다우나 肉이 많아 百步도 날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편봉용필은 운필이 신속하나 점획이 뜨고 얇아(浮薄) 먹색이 紙背에 깊이 스며들지 못하여 역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나 힘을 얻어 立體感이 표현될 수 있으면 側鋒이 된다. 편봉은 붓대와 필호가 지면으로부터 수직이 되지 않고 많이 기울어져 힘을 발휘할 수가 없고, 측봉은 수직에 가까워 지면에서 힘을 발휘할 수가 있다. 힘은 직각으로 작용할 때에 최대한의 효과를 얻고 기울어지는 각도가 클수록 그 효과를 잃는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필호가 紙面으로부터 수직의 관계를 유지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중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굳센 골력이고, 측봉을 통해 얻어지는 필획은 姸媚함이다."
중봉운필을 통해 얻어지는 또 하나는 生氣이다. 생기에 대하여『書藝通論』에서는 다음과같이 설명한다.
획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生氣이다. 생기가 있다는 것은 획이 살아있다는 말이다. 획이 매끄럽지 않아야하며 거칠어서도 안된다. 획은 潤氣가 있으면서도 까칠까칠해야한다. 대체로 미끄러운 획보다는 다소 거친 편이 낫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여기서 살아 있다는 것은 역동감이 있으면서 획질이 다양함을 의미한다. 동적인 느낌은 사람들에게 꿈틀대거나 질주하는 역감을 준다. 이러한 현상은 또한 "字形에 生命力을 갖추게 하면 생명의 미를 드러내지만, 필력이 없으면 병든 환자처럼 창백하고 생기가 없게 된다." 생명력은 붓에서 필획으로 힘을 貫注하는 데에서 비롯되며, 어느 글자든지 전체작품에서 웅건한 힘이 넘치게 한다. 만약 병든 사람의 피부라면 蒼白한 색깔을 나타내고, 죽은 사람의 피부라면 그것은 단지 곱거나 활발한 느낌이 없는 삐쩍마른 색채이다. 그러므로 획에는 건강미가 넘쳐야 한다. 이것은 곧
書가 사람과 같이 필력이 있으면 骨이 풍부하고 살이 고르게 있으며, 이미 필력을 얻었으면 생기가 활발한 것과 같은 것이다. 왕성한 생명력은 肌膚에서 사람을 感動시키는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서법은 점획 글자 布局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마치 사람의 신체와 같이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생명력이 있다. 한획한획 떨어져 있는 필획이란 어색하기 짝이 없으며, 죽은 필획이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側과 勒에 관한 다음의 설명은 얼마나 생생한 느낌이 드는가?
衛夫人이 『筆陣圖』에서 말한 점은 높은 봉우리에서 떨어지는 돌과 같이 돌이 부딪치는데 실로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니, 이 얼마나 돌이 깨어지고 하늘이 놀라는 力量이 아닌가! 하나의 횡획도 橫이라 말하지 않고 勒이라 칭했으니 그 勢를 말한 것인데,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춰 세워 紙上에서 踊躍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곧 세이고 힘이며 곧 虎虎가 生氣가 있는 節奏이다.
이러한 표현을 마음으로 느끼면, 우리는 글을 쓰면서 생동감있는 장면을 분명하게 연상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하려고 노력을 할 것이며, 생명력이 있는 글씨를 마침내는 얻게 될 것이다. 생명력은 지속적으로 역감을 발휘한다. 한번으로 끝나는 역감이 아니라 약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발휘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강한 것이다. 생명력이 있으니 그 형태가 변화무쌍하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정취가 풍겨 나올 것이다.
2) 竪鋒·鋪
중봉이 되려면, 우선 竪鋒이 되야 하는데, 수봉은 필봉을 바르게 들어 지면의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수직으로 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중봉용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붓을 먹물에 담궈 글씨를 쓰기 전에는 主毫와 副毫가 고르게 서서 엉기거나 굽는 現象이 없다.
그러나 붓이 일단 종이에 닿으면 外界의 壓力을 받아 부드러운 필호가 자연스레 섰다가 紙上에 눕게 되는데(倒向) 만약 이때에 順勢로 운필하면 평이하게 붓이 끌려다니게 되고, 곧바로만 행필하면 얇으면서 단조로운 필획만이 표현될 것이다.
즉 書寫를 할 때에 붓이 눕는 것은 그 常性이지만 그렇게 누워서 끌려가고 끌려오기만 하면 單調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붓끝에도 힘이 이르지 않아 이렇게 해서 나온 필획은 扁薄한 모양이 된다. 그러나 필봉을 바로 세우면 筆心이 언제나 가운데에 있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니, 역대로 서가들은 이 竪鋒을 매우 중시하였다.
중봉용필에서 매우 중요한 또 하나는 鋒과 鋪毫이다.
과봉은 서사할 때에 전체의 필봉이 원추모양을 유지하는 용필방법이다. 平鋪와 상대되는 말이다. 봉을 모아 안으로 집결하면 붓은 획의 중심으로 움직이고 선조는 전체가 간명하게 모여 勁感과 彈力感을 준다.
鋒은 筆中鋒으로 하필한 후에 運筆使轉을 거치는 것으로 毫鋒을 모아서 盡力으로 운필하는 것이다. 마른 곳에 이르면 왕왕 양변에 먹이 묻지 않은 부분이 보이고(墨虛) 중간에는 묵흔이 있어(墨實) 사람들에게 일종의 바깥으로 돌출하는 圓柱體의 형상을 준다.
『中國書論辭典』이나「運筆十四勢論」에서는 과봉에 대해 위와 같이 언급을 하고 있다. 필봉이 원추모양을 유지하니 어느 방향으로든 붓이 움직이더라도 중봉이 될 것이고 운필에 자유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며, 필획이 부드러워지고 서로 호응할 것이다. 붓이 자유롭게 움직이니 필호에는 자연스런 변화가 나타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양한 필획이 나타나게 된다.
과봉은 鋪毫와 상대적인 개념이다. 포호에는 斜鋪와 平鋪가 있는데 사포는 편봉이나 측봉을 의미하고, 평포는 중봉을 의미한다. 平鋪에 대하여 『書藝通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붓의 끝이 가지런히 펴져, 그 펴진 길이가 곧 획의 넓이가 되는 방법이다.
鋪라는 것은 鋪毫中鋒으로 행필할 때에 盡力으로 필호를 벌려 필봉을 平鋪하는 것이다. 필봉이 치우치지 않으며 萬毫가 一力이 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필력이 均稱한 데로 이를 수 있고 挺秀明麗한 目的에 이를 수 있다. 모든 운필하는 과정중에 鋪 는 상대적이면서도 相生하여 역감이 있는 필획을 만들어 낸다.
중봉용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가 萬毫齊力이다. 만호제력은 모든 터럭의 끝에 가지런히 힘을 준다는 것으로, 蔣和(1736-1795)가 『書法正宗』에서 한 다음의 말과 같은 것이다.
글자에는 一筆이라도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없고 一法이라도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牽絲使轉을 해도 또한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힘이 筆尖에 주입되면 화평하게 출봉하니, 붓을 잘 놀리는 사람은 정신이 筆頭로 주입되며 槍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힘이 창끝에 있다.
즉 一筆이나 一法이라도 힘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그것은 書法線條美感에서 가장 중요한 元素이며 마땅히 제일로 중시를 해야한다. 그러나 너무 지나친 힘을 주는 것은 삼가야 하니, 절제하지 않은 거칠고 뻣뻣한 蠻力은 一顧의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필호는 유연한데 힘을 鋒端에 이르게 하고 또한 鋒端自體에서 힘을 發하게 하며, 發力을 끊지 않아야하니 실제로 쉬운 일은 아니다. 萬毫齊力은 이렇게 선조에 역감이 있도록 하고 中實한 선조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어떤 力度나 어떤 速度와 어떤 濃度로든지 반드시 모필을 펴서 每一根의 모필에 모두 최대의 가능한한 힘을 傳導시킬 수 있도록 한다. 가장 훌륭한 鋒端의 瞬間着力狀態는 四面鋪毫·八面出鋒이다. 이것이 전형적인 가장 훌륭한 萬毫齊力이다. 다만 功力이 深厚精熟한 때라야 비로소 이 法을 얻을 수가 있다.
종이에 작용하는 筆毫의 힘에는 大小가 있다. 厚實勁挺한 역감은 종이에 작용하는 필력의 총량을 크게 하며, 연약하고 무력한 감각을 내는 필선은 필호가 종이에서 주동력을 내지 못했던 것에 근거한다. 大凡한 필획은 緊張된 힘으로 종이위에 필선을 긋는 것으로부터 얻어지며, 逆行이나 勒行으로 行筆하면 큰 힘이 표현되고 順鋒順行하면 작은 힘이 표현된다.
3) 側鋒用筆
一般的으로 말하면 篆法은 중봉을 많이 사용하고 隸法은 측봉을 겸용하며 전법은 圓이고 예법은 方이다. 이는 측봉용필이 실질상으로는 예법에 기원한다는 것을 초보적으로 제출한다. 전서에서 예서로의 변화는 中鋒一邊倒에서 側鋒이 가미된 자유로운 필획으로 변화한 것이다. 곡선에서 직선으로의 변화는 문자를 簡易하게 하고 서사속도를 빨리 하여, 문자가 실용과 대중속으로 파고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예서의 발전은 일부 귀족계층에만 머무는 글씨가 아니라 실용과 대중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예술미가 가미되어 화려한 한자예술의 꽃을 피우는 기반이 되었다. 그것은 해서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초서가 탄생하는 길을 열어 주었으므로, 중국서예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篆書에서는 중봉용필을 주로 사용하지만 隸楷行草 등 모든 서체에서는 측봉용필을 겸용한다. 前人들도 용필할 때에는 결코 측봉을 廢하지 않았으니, 중국의 가장 걸출한 서가인 二王父子를 포함한다. 倪蘇門은 「書法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왕희지와 왕헌지가 글을 쓸 때에도 모두가 중봉은 아니었다. 古人은 살펴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서가는 붓을 잡아 지극히 활발하고 지극히 圓的이며 四面八方으로 筆意가 이르게 하니 어찌 중봉에 구속되어 일정한 법에 이를 수가 있겠는가?
다양한 필획을 구사하려면 곧 단일한 중봉운필에 구속될 수는 없다. 또한 무엇이 측봉인가를 알려면 무엇이 중봉이고 무엇이 편봉인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른바 偏鋒은 운필할 때에 붓대가 기울어져 필봉이 획의 한쪽 변에 있고 筆身은 획의 다른 한쪽 변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쪽 면은 매끄럽고 다른 面은 톱니와 같이 고르지 못하게 되고, 먹이 종이에 스며들지 않아 필획은 扁平하며 종이위에 떠있는(浮露) 느낌을 주므로, 서예교학과정에서 가장 꺼리는 것이다.
측봉은 중봉과 편봉사이에 끼어있는 용필방식이다. 우리들이 알기로 古人이 點法을 側法이라 한 것은 側이 側鋒으로 세를 취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횡획은 필봉을 직입하고 竪 은 필봉을 橫入한다"면, 한편으로는 필세의 왕래가 더욱 유리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篆法起筆에 비하여 빠르고 간편해진다. 그러나 落筆하여 成點할 때 중봉이 아닌 편봉의 모양이 종종 형성된다. 그때에 필모는 지상에 斜鋪하는데, 運筆調鋒을 하면서 필모를 지상에 平鋪하도록 하는 것이다. 편봉용필은 필모가 종이위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요, 측봉용필은 누웠으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봉과 측봉은 서로 비슷하기는 하나 근본적으로는 다르다. 중봉운필은 필호를 지상에 平鋪하고 측봉운필은 필호를 지상에 斜鋪한다. 편봉용필은 필호에 긴장감이 없으나 측봉용필이나 중봉용필은 필호에 긴장감이 유지되는 것이다.
요컨대, 서예는 천변만화하는 선을 사용해서 작자의 사상과 감정을 발하여 작자가 창조하는 意境을 표현한다. 이러한 선을 긋기 위한 관건은 좋은 필법을 숙달하는 데에 있다. 필법은 서법예술의 열쇠이다. 그리고 필법을 통해 얻으려는 것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필력이다. 고인들은 이 뛰어난 필력을 얻기 위해, 고민하고 토론하며 많은 작품과 논문들을 남겼다.
필력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蔡邕·衛夫人으로부터 전해지는 전신역도설과 唐의 廬肇로부터 시작되는 기교필력설이다. 이중에 어느 방법으로 표현했든 書跡에서 나타나는 역감을 書跡筆力이라고 한다. 이러한 역감은 중봉을 통해서 얻어지고 생명력을 느끼게 하며 立體感·多樣性·力透紙背·中實感 등으로 표현된다.
生命力은 힘이 있고 살아있는 아름다운 피부와 같아야 하고 죽은 피부처럼 枯槁한 색채를 드러내서는 안된다. 중봉용필은 骨力과 입체감을 표현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며, 점획중에 골력과 입체감이 있으면 字體는 자연히 웅건해진다. 또한 공을 잘 던지는 투수는 공끝이 살아있어야 하는 것처럼 붓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붓끝이 살아있어야 한다. 즉 붓끝에 힘이 있어 긴장된 상태가 되어야 하며, 그 긴장된 필봉은 變化莫測한 필획을 만들어낸다. 또한 力透紙背한 中實感이 붓이 닿지 않는 곳까지라도 전달될 수 있어야 하고, 作書貴一氣貫注라는 말이 의미하듯, 필력이 시종 서로 연결되고 심지어는 먹이 이르지 않는 곳에도 마땅히 필력이 미쳐야 한다.
2. 點畵
骨氣는, 陽的으로 드러나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고, 陰的이며 약하여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은은하게 나타나는 것이 있다. 역감이 강렬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서법작품을 陽剛類라 칭하고 역감이 약하여 內蘊한 것을 陰柔類라고 칭한다. 세상에는 결코 絶對無力한 형상이 없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힘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힘의 유무를 말하는 것은 그것에 비하여 힘이 강하다 약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아래에 모든 필획에서 나타나는 역감의 강약을 다 살펴볼 수 없어, 다음에 몇 가지의 상대적인 면을 설정해놓고 그에 대하여 비교하면서 기술하여 본다.
1) 方圓·曲直
방필에서는 方正雄峻한 아름다움이 보이고 원필에서는 圓轉渾穆한 아름다움이 보인다. 필력의 剛柔面에서 본다면, 角이 있는 것이 각이 없는 원에 비하여 힘이 있다. 米 (1051-1107)은 이에 대해 "세상사람들이 대부분 큰 글자를 쓸 때에, 힘을 써서 붓을 잡으면 글자는 더욱 筋骨神氣가 없어지고, 원필로 쓰면 머리가 마치 쪄놓은 떡과 같아 매우 우습다"고 하였다. 그러나 강하게 보인다고 직선과 방필만을 구사한다면 글씨는 뻣뻣해지고 마른 장작을 쌓아놓은 것 같아서 雅趣가 없어진다. 부드럽고 약하게 보이는 圓도 약간의 방필이 가미되면 방필보다도 강하게 보인다. 方과 圓은 마땅히 병용하여야 한다. 方도 아니면서 圓도 아니고, 圓이면서 또한 方이며, 혹은 방을 體로 하여 원을 사용하고, 혹은 원을 體로 하면서도 방을 사용한다. 혹은 방필을 사용하면서 장법에 圓을 사용하면 神明해질 것이다. 明의 項穆은 「書法雅言」에서 원이면서 방이고 방이면서 원이면 바로 기이함을 간직할 수 있으며 기이하나 바름을 잃지 않으면 中和와 합치될 수가 있으니 아름답다할 것이다라고 했다. 方에는 頓筆을 사용하고 圓에는 提筆을 사용하는데, 제필은 中含하고 돈필은 外拓한다. 중함의 필획을 사용하면 글씨가 渾勁해지고 외탁의 필획을 사용하면 글씨가 웅강해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필획을 함께 사용할 수 있으면 역감이 있는 필획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劉熙載(1813-1881)는 「書槪」에서 곡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서예에는 曲이면서 直體가 있어야 하고 直이면서 곡선의 운치가 있어야한다. 만약 느슨하면서도 엄하지 않고 빠르면서 머물지 않으면 그는 곡직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즉 곡선이면서 강직한 맛이 없으면 늘어진 느낌을 피할 수 없고 직선이면서 부드러움이 없으면 뻣뻣해져서 마른 장작과 같을 것이니 운치가 없다. 오래된 등나무의 줄기를 보면 줄기가 휘었으나 곧은 나무 가지에서 느껴지는 力度보다 오히려 강해 보인다. 뒤틀리면서 올라간 선을 보면 역동하는 당당한 기세를 느끼게 하며, 축 늘어진 것 같으나 오히려 긴장된 선을 보면 오히려 곧게 뻗은 선보다도 더욱 역감을 느끼게 한다.
李世民은 『王羲之傳』에서 "무력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글씨를 보고 겨우 글을 이루었을 뿐 장부의 기세가 없다. 행마다 봄 지렁이가 얽혀있는 것 같고, 글자마다 가을 뱀이 얽혀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봄 지렁이가 얽혀있는 것이나 가을 뱀이 얽혀있는 것은 모두가 무력한 곡선으로 글씨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글자를 쓸 때에는 정신이 있음을 귀하게 생각하고 점획은 挺拔을 귀히 여긴다. 정발은 생동감이 없이 뻣뻣한 것이 아니고 곡세중에 평직의 彈性美가 풍부하게 보이는 것을 가리킨다.
林散之의 「辛苦詩」를 보면 그도 이에 대해 얼마나 고심을 하였는지를 알 수가 있다.
수고로운 찬 燈아래 70년을 살면서
먹을 갈다 간 먹에서 느낀 마음 깊어라.
붓은 曲處를 따르나 다시 直線을 구하고
마음은 圓滿하나 다시 方正함을 깨닫누나.
2) 輕重·粗細
輕은 사람에게 초월한 마음이 들게 하고, 重은 사람에게 침착통쾌한 느낌을 준다. 경은 필획이 섬세하고, 중은 필획이 풍유하다. 필획이 섬세한데 풍유함을 겸하면 자연스럽게 세를 얻을 수가 있으며, 경중을 겸하여 운필하면 무한하고 풍부한 韻律을 형성하여 무한한 변화가 나타난다. 王僧虔은 「筆意贊」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굵다고 무거운 것이 아니며 가늘다고 가벼운 것이 아니다.
철근이나 쇠추를 들면 가늘고 작으나 몹시 무겁고 스폰지나 스치로폴을 들면 비록 굵고 부피가 크나 가볍다. 필획도 마찬가지로 가늘고 작지만 무겁고 힘이 있는 필획이 있고, 길고 굵지만 가볍고 약해보이는 필획이 있다. 용필법이 너무 가벼우면 浮滑하고 너무 무거우면 지체된다. 따라서 마음에서 경중을 얻고 손에서 調應하여야, 경중이 한바탕 잘 어우러진 다양한 필획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경중과 비수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붓으로 서사할 때에 경중을 드러내고 肥瘦가 알맞은 곳에 이르면, 살이 쪄도 살이 쪘다고 느끼지 못하고 수척하나 수척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운필을 가볍게 하지 않을 수 없으나 가벼워도 섬약하거나 경망스럽지 않아야 한다. 운필은 또한 重感이 있는 것이 비교적 좋다. 그러나 무겁더라도 반드시 沈厚해야지 凝滯해서는 안된다. 淸의 朱履貞은 「書學捷要」에서 "침착통쾌한 것이 글씨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무릇 글씨는 살찐 것을 귀히 여기니 그 실은 침후한 것이지 살찐 것은 아니다. 아리땁게만 쓰는 것도 좋지 않지만 경망하게 쓰는 것은 큰 병이다. 書는 마르면서 굳센 것을 귀히 여기니 맑으면서 빼어난 것이지 마르면서 굳센 것이 아니다. 마르면서 潤筆이 없는 것을 枯骨이라 하고 斷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살찐 글자에는 骨이 있어야 하고 마른 글자에는 살이 있어야 한다.
용필은 터럭같이 가는 곳에서도 또한 반드시 全力을 사용해야 하며, 細處에 힘을 사용하는 것은 가장 어렵다. 전력을 사용하는 것은, 온힘을 다하여 붓을 잡고 찍어누르는 것이 아니라 전신의 힘이 느껴지도록 필획을 구사하는 것이다. 가는 필획속에 강한 힘을 느끼게 하려면 고도의 기교가 필요하다. 고도의 기교는 어려우나 이러한 곳에 서예의 묘미가 있다. 淸의 梁 은 『平書帖』에서 "歐陽詢의 글씨는 가로획이 약간 가볍고, 顔眞卿의 글씨는 가로획이 모두 가벼우며, 柳公權(778-865)의 글씨는 가로획이 무거우면서 곧다"고 하였으니, 여기서 말한 중경은 조세로 드러나는 것이다. 粗는 무겁고 重은 力强하며 細는 가볍고 輕은 힘이 약하다.
3) 藏露·進退
장봉은 필획이 점획의 중간에 감추어져 있어 필봉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운필법이다. 장봉으로 이루어진 획은 노봉에 비하여, 기운이 內含하고 필획이 厚重하다. 蔡邕은 「九勢」에서 "장봉은 점획출입의 자취로 좌측으로 가고자하면 먼저 우측으로 가고 좌측에 이르러서도 또한 우측으로 회봉하는 것이다. 藏頭는 원필로 종이에 낙필을 하는데 필심이 항상 점획속을 지나도록 해야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종종 중봉의 의미로도 인용되며, 장봉을 하려면 역입과 회봉을 해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노봉은 붓끝이 드러나는 운필로, 행초서에서 많이 나타나며, 다양한 모양과 아리따운 느낌을 준다. 너무 살이 찌면 형체가 그리워지고, 너무 수척하면 형체가 비쩍 마르게 되니 살찌나 살이 남지 않고 수척하나 골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肉이 많은 것은 骨이 많은 것만 못하고 노봉이 많은 것은 장봉이 많은 것만 못하다. 노봉만을 사용하는 것도 장봉만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노봉을 적절히 사용하여 연미함을 드러내고 장봉을 적절히 사용하여 후중한 느낌을 드러내게 하여 이 두가지 법을 어우러지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 필법일 것이다.
필획의 방향도 역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필획과 뒤로 물러나는 듯한 필획에서는, 나아가는 느낌의 필획이 더욱 힘이 있어 보인다.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라든가 밖으로 나오는 필획은 안으로 들어가는 필획보다 더욱 힘을 느낀다. 사람들은 화선지의 좌우를 좌우라 여겨서 左 右捺이라 말하고 지면을 앞이라 하고 지배를 뒤라고 여기니, 이 때문에 큰 것, 굵은 것, 긴 것, 진한 필획은 모두 앞으로 나아오는 느낌이 들고, 작은 것, 가는 것, 짧은 것, 흐린 필획은 모두가 물러나는 느낌을 준다. 또한 사람들은 대부분 좌측을 앞이라고 생각하고 우측을 뒤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음의 예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자기의 의도를 숨기고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한편으로 전진하는 깃발을 그리게 하였더니 그 결과 매사람은 모두가 깃대를 좌측으로 향했고 기면은 우측으로 펄럭이게 하였다. 다시 그들에게 하나의 측면인물을 그리게 하였더니 그 결과 매사람은 이러한 인물의 얼굴을 좌변을 향하도록 그렸다.
그 원인은 당연히 우리들이 오른 손으로 붓을 잡는 것과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종종 앞으로 향하는 것이나 진보적인 것을 좌파 좌익이라 하고, 뒤로 향하는 것이나 물러나는 것을 우파우익이라 하는데,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4. 其他
여기서는 점획과 결구외에 역감을 느끼게 하는 다른 것을 실어 보았다. 종이 위에서 필묵의 속도가 역감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양강하고 음유한 필획들이 主賓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生熟이나 平險을 거친 후에, 다시 한단계를 뛰어넘은 생이나 평정에서 느껴지는 천진난만한 자연스러움을 다루었다. 이 또한 서예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을 망라한 것이 아니라, 몇가지 예를 들어 그 대강을 짚어본 것이다.
1) 速度·紙墨
필력은 속도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운필이 너무 느리면 鈍滯함을 드러내며, 한결같이 신속하면 또한 浮滑해지게 된다. 이렇게 속도가 느리고 신속함으로 해서 드러나는 鈍滯와 浮滑의 상대적인 것이 침착통쾌라할 수 있다. 침착이라는 것은 용필이 飄浮하지 않고 붓은 攝墨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비록 매우 작은 일점일획이라도 정기를 결집하고 墨光이 浮溢하게 해야하며, 경솔하게 미끌어지지 않아야 한다. 통쾌라 하는 것은 필세가 유창하고 점획이 飛動하고 표정이 활기차며 기세가 도약하고 凝滯하는 세가 없어 사람들에게 상쾌하고 淋?한 예술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沈着·痛快라는 두 가지는 動과 靜의 결합이므로 窮年累月의 공력이 없다면 이러한 境地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
疾澁은 붓의 운행이 빠르고 느린 면에서 침착통쾌라는 관점과 비슷하나 遲速을 거듭하는 운행중에 그 추구하는 것이 약간 다르다. 疾澁의 작용에 대해 鄭祥玉은 "疾筆로 행필하면 필획은 險勁하여지고 澁筆로 행필하면 필획은 重厚하여진다"라고 하였다. 蔡邕은 「九勢」에서 "澁勢는 緊 戰行의 法에 있다"라고 했다. 여기서 緊은 긴박한 의미이며, 은 곧 短促 疾勢를 나타내고, 戰行은 相爭·對抗·摩擦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緊 戰行은 곧 운필할 때에 역세를 취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점차적으로 頓挫하며 필의에 약간 돌아보는 것이 있으며 경솔하고 매끄럽게 지나가서는 안된다. 澁勢는 난도가 매우 높은 운필법이며 또한 점획의 형질미를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이다. 疾澁의 필세를 얻으면 書妙를 다하였다고 할 수가 있으며, 疾中에 澁이 있고 澁中에 疾이 있어야 한다.
질삽의 문제는 문방사우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글은 비록 사람이 쓰지만, 서법을 연구하고, 書法規律을 창신하고, 필기구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활용하는가하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붓을 잡은 힘을 毫端으로 보내면, 붓이 종이에 닿아 작용하면서 먹물을 흘러내리고, 먹물과 붓이 종이에 붙으려는 장력이 작용한다. 이때 필호자체가 종이에서 힘을 발하게 하면 역감이 살고, 필호가 종이의 힘에 끌리면 곧 역감이 죽는다. 그러므로
下筆을 하면 마땅히 着實하게 하고 脈動(跳得起)하게 해야하며 필이 지상에서 죽도록 해서는 안된다.
혹시 붓이 누웠더라도 바로 일으킬 수 있으면 획에는 자연히 힘이 있게 된다. 필을 提起할 수 있는 것이 곧 힘이지만 결정코 힘을 사용하여 붓을 필근까지 내리누르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무지막지하게 힘만을 사용하는 것을 死力이라고 한다. 용필이 착실한 곳에서는 按을 사용하고 자유분방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곳에서는 提를 사용한다. 一提一按하여 붓이 누울 때 바로 일으키면 저절로 뻣뻣해지고 눕는 폐단이 없어진다.
먹의 운용은 붓에 따라 이루어진다. 곧 붓이 가는 곳에는 항상 먹이 따르고, 붓의 운용에 따라 먹에는 다양한 변화가 생겨난다. 먹은 짙으면서 또한 濕하거나 乾燥할 수가 있고 淡墨이면서 또한 乾燥하거나 濕할 수가 있다. 먹이 진하면서 또한 건조하면 붓이 정체되고 쉽게 破毫되지 않아 종종 筋이 없이 骨을 드러낸다. 淡墨은 비록 가볍고 경쾌하며 유창하고 淡雅한 意境을 표현하나 먹이 지나치게 묽으면 蓄留가 어렵고 필력을 표현하고 변화있는 필획을 구사하기 어려우며 운필이 輕浮해지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글씨를 쓰면 항상 유약하고 신채가 없다. 일반적으로 말해 小字는 짙은 것이 적당하고 大字에는 墨韻이 渗化되는 먹농도가 비교적 낮은 것을 요구한다. 먹물이 너무 진하거나 먹의 운용을 잘못하여 오직 역감만을 드러내고 기부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골만 있고 살이 없는 사나운 느낌을 드러낸다. 백지위에 먹색이 진해질수록 刺의 필력은 더욱 强해지며, 묽을수록 刺의 필력은 더욱 弱해진다.
姜夔는 「續書譜」에서 먹물이 진하면 행필이 막히고 건조하면 필획이 삐쩍 마르게 된다고 하였고, 元代의 陳繹曾은 「翰林要訣」에서 먹이 너무 진하면 肉이 凝滯되고 너무 흐리면 肉이 輕薄해진다고 하였다. 먹색이 너무 진하면 또한 먹물이 잘 흘러내리지 못해 행필이 막히고 필선이 고르지 못하며 필획이 엉겨붙게 된다. 먹물이 흐리다고 약해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흐리면 멍청해 보여 俗書를 면하지 못한다. 따라서 적당한 정도의 먹색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2) 陽剛·陰柔
강한 것이란 무엇인가? 『莊子』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紀 子라는 者가 임금을 위하여 싸움닭을 기르는데 열흘만에 임금이 묻기를 "싸울만한 닭이 되었는가"하니 기성자는 대답하기를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 건성으로 사나운 척하며 제 기운만 믿고 있습니다"하였다. 열흘이 지나 또 물으니 "아직 멀었습니다. 다른 닭의 소리만 듣거나 모양만 보아도 덤비려고 합니다"고 하였다. 열흘만에 또 물으니 "아직 안되었습니다. 다른 닭을 보고 눈을 흘기고 기운을 뽐내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열흘이 지나 또 물으니 "인제는 거의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울며 덤벼도 조금도 태도를 변치 않습니다.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깎아 만든 닭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닭의 덕이 온전해져서 다른 닭이 감히 덤비지도 못하고 반대로 달아나 버립니다"라고 하였다.
논어에는 "군자는 태연하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나 태연하지 못하다"는 글이 있다. 姚孟起 또한 「字學憶參」에서 "백번 정련한 쇠로 '繞指柔'라는 검을 만드니, 柔란 약한 것이 아니라 강한 것이 지극하여 부드러워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덕이 있는 사람은 언제보아도 겸손하고 태연하나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어 머리가 숙여진다. 반대로 덕이 없는 이가 세를 얻으면, 억지로 남을 누르려고만 하는 등 허세를 부린다. 허세가 있는 약한 자들은, 강한 것을 의식해서 강한 체하기 때문에 혹시 세가 있으면 교만해지고 세가 없으면 곧바로 비굴해진다. 특히 생존경쟁이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현상이 더욱 극명하다. 진정으로 강한 기운이 안에 가득하여 상대가 없고 두려울 것이 없으면 오히려 편안한 모습이 된다. 정말로 강한 鬪鷄이기에 싸우려고 달려드는 싸움닭 앞에서도 나무로 깎아만든 닭과 같이 여유가 있는 것이며, 강하기에 조그만 위협을 보고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도 있다. 부드럽고 약한 나무뿌리가 바위틈을 헤집고 들어가 나중에는 그렇게 단단하고 육중한 바위를 조각내는 모습이나, 대포알처럼 힘차게 날아가던 축구공이 부드러운 그물에 걸리면 그대로 맥없이 그 자리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된다. 동양철학에서 木生火·火生土·土生金·金生水·水生木·木剋土·土剋水·水剋火·火剋金·金剋木로 순환하는 상생상극의 관계도 세상의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강하거나 절대적으로 약한 것이 없음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水가 火를 이겨도 水의 勢가 火보다 弱하면 火를 꺾지 못한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剛은 강철같이 굳센 것이고, 柔는 버들가지처럼 부드러운 것이다. 그러나 陽剛이나 陰柔한 한 쪽만을 사용하여 글씨를 쓴다면 너무 강하거나 너무 늘어져 자연스런 운치가 없다. 王澍(1668-1743)는 「論書 語」에서 "拙을 사용할 수 있어야 巧를 얻고 부드러움을 利用할 수 있어야 剛을 얻는다"고 하였다. 진정으로 강해보이는 것은 부드러운 필획이 곁들여야 그 강한 필획이 살아나는 것이요, 부드러운 필획 역시 강한 틈에 있어야 부드러운 효과를 최대한 발휘할 수가 있다. 劉熙載는 「書槪」에서 구양순과 우세남의 글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歐虞를 竝稱하나 그들의 글씨에는 方圓剛柔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虞世南을 잘 배운 사람은 和하면서 흐르지 않고, 歐陽詢을 잘 배운 사람은 위엄이 있으나 사납지 않다.
이와 같이 剛中에 柔가 있어야 하고 柔中에 剛이 있어야 한다. 剛柔는 互含互用하며 互濟互成해야 좋은 필획을 얻을 수 있다.
3) 生熟·自然
金元龍은 「韓國美의 探究」에서 동서양의 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다.
전통적인 예술관의 입장에서 볼 때 동서가 추구한 미에 대한 견해는 사뭇 대조적이다. 인간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본 서양인과는 달리 동양인은 인간을 자연의 소생으로 보았으며 또한 곡식을 주로 상식함으로써 육식을 주로 하고 성욕과 생명력을 본성으로 여겨 인간의 나신에 美의 根源을 두고있는 서양인에 비해 미의 근본을 自然에서 찾으려했다. 그러므로 서양인의 창작적인 예술미에 대해 동양인은 수용적인 자연미를 중시하게 되었다.
이처럼 동양의 예술은 수용적인 자연미를 중시한다. 힘에서 자연스러움을 얻으려면 含蓄蘊藉함을 표현하여야한다. 또한 필력이 充盈하다는 전제하에서 화평함을 표현하니 이것은 가볍고 느슨한 자연의 힘이다. 힘이 있다는 것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젖먹던 힘까지 다 사용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추호도 사람에게 긴장하거나 주저함이 없는 자연스러움이 배어있어야 한다. 王虛舟는 『論書 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山을 뽑아내고 솥을 드는 힘으로 舞女에게 꽃을 꽂아주는 것은, 바로 和字를 터득함을 말한다.
和에는 用力이 함축되어 있으며 潛伏하여 드러내지 않은 의미가 있다. 마치 어느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자신이 가진 음량의 70-80%만을 사용하면 여유로움이 숨어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필력은 다만 沈勁入骨하는 공부가 있어야 비로소 和平한 필획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역감이 있는 글씨는 강한 획만을 열거해놓는 것이 아니다. 강하기만 하고 여유로움이 없는 다듬어지지 않은 힘을 蠻力이라 하며, 이러한 만력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절대 아름답게 보여지지 않는다. 역감이 있는 글씨는 안에 축적된 힘이 많아 늘 여유롭고, 준비된 것이 많아 화평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글씨이다. 그것은 생각해가면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니, 변화를 의식해서 다른 모양의 글자를 만드는 수준으로는 숭고한 경지에 이를 수가 없다.
글자의 결구에는 生과 熟의 문제가 있다. 한 점을 잘못 찍으면 미인의 한쪽 눈이 없는 것과 같다고 했으니 이것이 비록 間架·結構의 위치를 가리켜 한 말이나 또한 한 글자중의 敗筆을 들어 비유할 수도 있다. 처음으로 서예를 하면, 집필과 운필에 生疎함을 느끼는데 이 生은 서법실천을 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거나 혹은 매우 적은 서사실천에서 출현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거치면 生에서 熟의 단계에 이른다. 획이 熟에 이르는 단계에서 만약 停滯되어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어느 정도의 尊古守舊하는 모습이 생겨나는데, 이것을 예술상의 淘汰라고 한다. 生에서 熟의 단계에 이르면 또 生을 구하여야 한다. 뒤의 생은 生動하는 필선이나 천진난만한 자연스런 필획을 의미한다. 그것은 많은 기간의 서사실천을 거쳐야하고 또한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해야만 비로소 이를 수 있는 단계이다. 처음의 生은 學力이 미치지 못한 것으로 心手가 서로 어긋난 것이고, 熟을 거친 뒤의 生은 世俗을 따르지 않고 新意가 때로 나오며 붓이 化工과 함께한 것이다. 이것은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에 대하여 억지로 하는 것이 없는 천연그대로의 생과 함께하는 것이다. 다음은 蘇東坡의 말이다.
입은 반드시 소리를 잊은 다음에라야 능히 말을 할 수 있으며 손은 반드시 붓을 잊은 다음에라야 능히 글씨를 쓸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아는 바다. 입이 소리를 잊지 못하는 단계에서는 문장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손이 잡은 붓을 능히 잊지 못하면 자획이 고르지 못할 것이다. 그 서로 잊음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서야만이 心靈을 形容하고 萬物의 變化를 수작하면서도 홀연히 자신이 그것을 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입이 소리를 잊은 다음에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처럼, 손이 붓을 잊은 다음에라야 달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고, 神技에 가까운 글씨를 쓸 수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과 부합된 것이다. 마음과 손과 붓이 모두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좋은 글씨가 나온다는 것을 蘇東坡는 여기서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力에는 强勁한 힘과 柔和한 힘이 있다. 이 두 가지는 筆 ·結構·章法 등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어떻게 적절하게 변화하며 구성되는가에 따라 작품의 우열이 드러난다. 여기서 말하는 역감은 진정 文質彬彬한 군자의 모습이지, 힘과 용기만이 있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蠻力이 아니다. 사실 서예는 근골이 너무 강한 것을 가장 꺼린다. 따라서 힘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死力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虛中有實 實中有虛'한 경중이 서로 겸하고 강유가 서로 보완하는 필획을 구사하는 것이다. 역감이 있는 글씨는 침착통쾌한 필획으로 사람들에게 일종의 상쾌하고 淋?한 예술감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필력감은 글자와 글자의 사이, 行과 行의 사이, 작품전체에서 감지된다. 필력감은 서법작품의 필획·결구·포국의 세 방면의 느낌에 있을 수가 있는데, 글씨를 쓸 때에는 一氣로 관주해야 한다. 상하로 기맥이 이어지고 좌우로 호응이 있어야 아름다운 작품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骨力에는 또한 挺拔의 의미도 있다. 挺拔은 판에 박힌 뻣뻣한 平直이 아니며 일종의 弧度가 있는 힘이고, 曲勢로써 直을 취하는 것이고, 不平중에 平을 求하고 不直中에서 直을 求하는 挺拔이다. 그것은 체형이 건장하고 아름다우며 균형있는 체조선수와 같이 곡선적 형체미가 풍부한 선과 같은 것이다.
Ⅰ. 序 論
중국인들이 쓰는 글자에는 예술품을 만들 수 있는 두 가지 주요한 요소가 있는데, 첫 번째가 중국글자의 시원인 象形이고, 두 번째가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毛筆이다. 이는 한자가 그림에 가까운 象形文字이기에 다양한 아름다움을 표현해 낼 수가 있었음을 밝힌 것이며, 또한 모필을 사용하여 다양한 선을 구사해 낼 수가 있었기 때문에, 심오한 서예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글씨는 단순히 기록을 위해 존재했었으나, 필획을 통하여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하게 되면서부터 서법예술로 거듭 태어났다. 오랜 역사의 흐름과 함께 무수한 名家들이 生滅을 거듭하면서, 세상에는 절묘한 고전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후에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은 法書를 배우기 위하여 臨摹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는데, 그것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書藝敎學의 필수과정이 되고 있다.
그러나 王羲之(321-379, 一說 303-361, 又一說 307-365)가 아무리 글씨를 잘쓰고 歐陽詢(557-641)과 顔眞卿(708-784, 一說709-785)의 글씨가 좋아도, 그것을 臨摹하는 데에만 머문다면 그는 훌륭한 서예가가 아니다. 서예뿐 아니라 모든 예술은 저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다르며, 그들의 개성 또한 모두 다르기에, 억지로 똑같게 하려면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왕희지나 안진경도 자신이 쓴 〈蘭亭敍〉(圖1)나 〈爭座位〉(圖2)를 다시 그만한 수준으로 쓸 수가 없었으니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는가? 그러므로,
예술의 대상은 그대로 복사하는 再現(Representation)이 아니라 주관에 의해 다시 구성하는 表現(Expression!)이다.
즉 예술은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하나 창작을 근본으로 한다. 옛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재현을 하더라도 그것은 창작을 위한 단계이지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서예에서는 재현의 과정이 많이 존재한다. 그것은 법첩을 臨摹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선생이 임모를 해놓은 것을 보고 임모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이 대체적인 현서단의 실정이다. 이것은 직접 의자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의자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속에 나타난 의자를 보고 의자를 단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의자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너머의 이데아(Idea)도 연상할 수도 있어야한다. 법첩을 임모할 때에도 그 모양만을 본뜨려고 하기보다는 원래 작자의 의도까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작자가 글씨를 쓰다 실수한 것이나 잘못된 것까지도 그대로 본받으며 그것이 마치 잘한 것인 양 생각해서도 안된다. 법첩을 바라보되 우리는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근본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에 필요한 것이 서예를 올바로 보는 시각이요, 그 시각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 서예이론이며, 서예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중심적인 시각이 바로 역감이다. 역감은 입체감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필획을 통해 書跡에서 얼마나 힘이 느껴지는가를 근본으로 한다. 아무리 결구가 좋고 모양이 좋다고 하더라도 그 글씨에서 역감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좋은 글씨가 아니다. 그러므로 王僧虔(426-485)은 「論書」에서 "張芝(?-約192)·韋誕(179-253)·鍾會(225-264)·索靖(239-303)·二衛는 모두 前代에 이름이 있던 사람들로, 古今의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거의 우열을 가릴 수 없으나 다만 그들의 필력만은 놀라울 뿐이다"라고 했다. 즉 좋은 서예작품은 비록 書風이 각기 달라도 모두 필력을 갖추고 있기에 좋은 것이요, 필획에 기운이 생동하는 생명력을 갖추었기에, 보고 또 봐도 그 맛이 무궁하다는 뜻이다. 필력은 서예의 우열을 판단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으며, 그것은 하나의 점획에서 한 글자로 이어지고 다시 전체의 작품으로 이어져 生氣있는 여러 가지 작용을 하고 있다. 선질이나 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예를 한다는 것은 모호한 환상에 불과하다.
이 글은 서예를 비롯한 동양회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필획을 통해, 예로부터 작품을 품평하는 중요한 작용을 하는 서예의 力感에 관하여 연구함으로서, 그를 바탕으로 고전을 좀더 분명하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창작의 길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뜻이다. 물론 필력을 논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筆性論을 비롯한 執筆과 用筆部分이다. 그 중에 용필은 서론의 가장 핵심부분으로, 너무나 미묘하며 갖가지 많은 설들이 존재한다. 이를 다루는 것은 너무나 조심스럽고 많은 분량을 차지함으로, 좀더 연구를 하여 학위청구논문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필력에 관하여 논하되 집필과 용필부분을 많이 줄여 書跡에 나타난 역감을 중심으로 기술하였음을 밝혀둔다.
2. 力感에 關한 三種說
필력은 정확한 執筆·運腕·書寫姿勢에서 만들어지며, 필력에 작용하는 힘으로는 腕力·臂力·腰力·全身之力이 있다. 작은 글자를 쓸 때에는 일반적으로 腕力을 사용하지만, 一寸以上의 큰 글자나 行草를 쓸 때에는 懸腕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懸腕은 팔을 붙이고 쓰는 것에 비하여 힘을 발휘하기 쉬우며, 서서 쓰는 것이 앉아서 쓰는 것보다 더욱 역감이 있다. 전신의 힘은 어깨·팔·손가락을 거쳐 筆尖으로 전달되는데, 눈을 감고 귀로만 느끼듯이 생각을 집중하고 臂와 腕을 운용하여 마음대로 마음속의 점획을 써내야 한다. 執筆은 運筆을 위해서 존재하며, 운필을 하는 妙處는 필력을 획득하는 데에 있다. 집필과 운필을 정확하게 하면 먹물을 灌注하는 데에 유리하여, 생동감있고 정신이 느껴지게 하는 墨跡을 얻게 된다. 필력의 생산은 결코 하나의 가볍고 쉬운 일이 아니고 반드시 장기간의 훈련을 거쳐야만 한다. 만약 숙련된 필묵기교와 오랜 세월을 거쳐 쌓여진 공부가 없다면 경절한 필력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점획에서 역감이 넘쳐흐르게 할 수가 있는가? 力과 力感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은 全身力到說·技巧筆力說·書跡筆力說로 요약된다.
1) 全身力到
전신역도설은, 蔡邕(133-192, 一說 132-192)·衛夫人(272-349)·王羲之로부터 전해지는 것으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글자를 쓸 때에 用力이 크면 효과가 더욱 좋아지고, 역감이 더욱 넘치게 된다는 설이다. 虞和(南朝宋의 서가)는 『論書表』에서 말하길 "왕희지가 회계에 있었을 때에 왕헌지(344-386)는 칠팔세의 나이에 글을 배우고 있었다. 희지가 뒤에서 그 붓을 당겼으나 빼앗기지 않자 감탄하면서 말하길 이 아이의 글은 후에 마땅히 대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 고사는 항상 사람들에게 紙上의 경절한 필력을 얻으려면 이렇게 해야한다는 본보기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衛夫人이 「筆陣圖」중에서
點 波 屈曲을 그을 때에는 모두다 일신의 힘을 다하여 송필한다.
고 한데에 그 근원을 둔다. 東漢의 蔡邕은 下筆하는데 힘을 사용하면 필획의 肌膚가 아름다워진다라고 하였으며, 宋의 蔡君謨(1012-1067)는 急流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氣力을 다 사용하여 故處를 떠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南宋의 姜夔(1155?-1235?, 一說1163-1203)도 집필은 긴밀하게 하여야하고 운필은 활달하게 해야한다. 손가락으로 운필하지 말고 완으로 운필하라고 했다. 이 전신역도설은 서예사에 지극히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 말하는 전신역도는 指實을 뜻하는 것으로, 지실은 전신의 힘이 필획에 실리는 느낌을 주는 것이지 지나친 힘을 필관에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指實을 너무 지나치게 힘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여, 손가락에 힘을 많이 주면 필획에 더 많은 힘이 주입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으니,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康有爲(1858-1927)였다. 그는 전신역도설을 주장하였던 包世臣(1775-1855)에 대해, "잡는 것이 너무 긴밀하면 힘이 필관에 머무를 뿐 붓끝으로 전달이 되지 못하며, 그 글씨는 반드시 근육을 포기하고 골을 드러내며 마르고 또한 약하게 한다"고 했다. 이렇게 전신역도의 방법으로 글씨를 썼을 때 굳세고 강한 필획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骨이 없는 딱딱하고 거친 필획이 나온다고 생각한 몇몇 사람들은 다음의 기교필력설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2) 技巧筆力
기교필력설은 唐代의 서예가 盧肇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역감이 강한 필획은 힘주어 붓을 잡는 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힘을 사용하면 필획이 죽는다"는 설을 제기 하였다. 그는 서법의 우열과 역감의 강약이 용필의 기교에서 결정되며 맹목적으로 기운을 쓰는 데에 있지않다는 점을 역설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었다.
서예는 닭을 잡을 만한 힘도 없는 文人이 하는 것이다. 이는 歐陽詢·顔眞卿 등도 힘이 넘치는 젊은 시절이 아닌 고희가 넘은 衰境의 나이에 글씨가 오히려 최고봉에 이르렀으며 역감도 매우 充沛했던 것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운동선수나 무술을 하는 사람들의 글씨를 보면 글씨에서 많은 기가 느껴질 것 같은데 실제로 붓글씨를 쓰게 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글씨는 힘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技巧筆力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설을 살펴보면, 唐의 張旭은 "미묘함은 집필에 있다. 집필을 圓暢하게 해야하며 구속되도록 해서는 안된다"라 했고, 唐의 韓方明은 "집필은 편안한 데에 있다"고 했다. 또한 唐의 虞世南도 "서도의 현묘함은 반드시 정신을 바탕으로 하지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한다"고 하였으며, 蘇東坡(1036-1101) 역시 "집필에는 정해진 법이 없으나 다만 비면서 너그럽게 해야한다"고 했고, 또한 "붓을 잡는 것을 굳게 하는데 있지 않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보면 필력의 생산과 書寫者의 臂力의 대소관계는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全身之力을 사용하여 提筆하고 按筆할 때에 소용되는 힘은 모두 어떤 곳으로 가는가? 대부분은 무의식적 대치중에 毫에서 소모된다.
역감은 점획의 형태로 말미암아 체현되는 것으로 점획의 형태는 용필의 조형의 수준에서 결정된다. 전신역도설의 착오는 곧 심리상의 역감을 물리상의 체력과 혼동함에서 야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점획의 형태만을 가지고 역감의 유무를 판단할 수가 없다. 가령 곡선이나 원필보다는 직선이나 방필이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획에는 등나무 줄기같이 힘찬 곡선이 있고 가는 나뭇가지와 같은 여린 직선이 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굵은 선이 가는 선보다 강하다는 의미는, 쇠줄같이 가늘지만 무겁고 강한 선이 있는 반면에, 스티로폴과 같이 크고 굵어도 가볍고 약한 선이 있음을 도외시할 수가 없다. 또한 力感은 점획의 형태와 질감에서 느껴지기도 하지만, 치밀한 결구와 一氣貫注하는 章法등을 통해서도 강하고 다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3) 書跡筆力
書跡筆力說은 위의 두 설과는 달리 이미 완성된 서예작품을 보는 중에서 力度美를 느낀다는 설이다. 趙一新은 「論筆力」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서자의 체력이 어떠한가와 집필에 얼마나한 힘을 사용하는 여부에 상관하지 않고 단지 작품중의 글자에서 사람들에게 힘이 있는 감각을 주어야만 이것이 곧 필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붓으로 표현되는 서예에서의 역감에 한정하였으므로 여기서는 그 외의 것을 논하지 않겠다. 서적필력에서 우리가 전제해야할 것은 사람의 손을 거쳐서 완성한 서예작품으로, 전신역도나 기교필력의 방법을 통해 나타난 서예작품에서 역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 이 전신역도와 기교필력중에 어느 방법으로 서사하는 것이 더욱 역감있는 서적필력으로 나타나는가하는 문제가 생긴다. "터럭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어도, 그것이 오래되고 멀어지면 천리만큼의 거리가 생길 수도 있다"고 孫過庭은 역설하였다. 이는 곧 처음이 비록 그리 차이가 나진 않지만 신중을 기해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전신역도설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전신의 힘을 다하여 필획을 그어도 전신의 힘이 그대로 필획에 관주되지는 않는다. 왕희지나 왕헌지가 글씨를 쓴 것은 대부분이 작은 글씨이지 큰 글씨가 아니다. 그들이 그러한 작은 글씨를 쓸 때에 온몸의 힘을 다 사용해가며 한획한획을 그었을까? 그리고 왕희지가 술에 취해 난정서를 쓰면서 온몸의 힘을 종이에 실어가며 그렇게 썼을까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는 하나하나의 필획에 온몸의 힘이 실리듯이 그어진 튼튼한 필획을 강조한 것이라 여겨진다. 지나치게 힘있게 붓을 잡으면(握之太緊) 필획이 굳어지고 결구도 자연스럽지 못해 아름다운 서예작품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해이한 정신력으로 느슨하게 붓을 잡아 글씨를 쓰면 획이나 결구에 긴장감이 없게된다. 느슨하게 늘어진 획에서는 또렷한 정신력이 느껴지지 않고 골력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고 근육으로 단련된 운동선수의 몸매와 같은 挺拔한 필획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적당한 힘을 주어 붓을 잡아야 정발한 필획을 얻을 수가 있다. 이처럼 선인들이 정확한 집필에 많은 연구를 하였던 것은, 정확한 운필을 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한 운필은 다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중봉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니, 중봉필획에는 다음과 같이 많은 장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Ⅲ. 力感의 表現效果
1. 力感과 誤解
物에는 근본과 끝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나중이 있으니 그 먼저 해야할 것과 나중에 해야할 것을 안다면 곧 도에 가깝다고 한다. 어느 것이 그 행위를 하는 목적이고, 어느 것이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형식인가를 알고, 그 선후를 정하여 순서대로 해나간다면 그릇되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禮를 행하는데 서로 경애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인사를 어떻게 하고 말씨는 어떻게 하고 옷매무새는 어떻게 하는가와 같은 형식적인 것에만 힘쓴다면 처음에는 바른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중에는 행위 뒤에 숨어있는 속마음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절차를 모르더라도 상대방을 敬愛하는 마음이 있다면 설령 오해가 있더라도 풀어지고 언행도 저절로 법도에 맞게 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글씨도 겉으로는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근본은 필획속에서 건강미로 표현되는 역감이다. 다음에는 이러한 역감이 전래의 법첩을 통하여 어떻게 표현되고 있으며, 역감에 대한 전래의 오해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봄으로써 역감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1) 學書의 根本
李世民(597-649)은 「論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근래 나는 고인의 글을 임서함에 다만 그 형세를 배우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골력을 구하는데 마음을 두고있으니, 형세는 저절로 생겨날 뿐이다.
서예 역시 본말을 생각하고 근본에 치중해야함을 역설한 것이니, 學書者들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말이다. 너무 형태에 매달리다보면 오히려 모든 것이 뒤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근본인 筋骨에 마음을 두고 있으면 처음에 조금은 헝클어졌더라도 나중에는 그리 어긋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잘된 글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점획과 결구가 각기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으나 서로 어울리며 각자각자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수준이 낮은 글씨를 들여다보면 각자의 점획이 서로 같으나 어우러지지 못한다. 『논어』에 "군자는 서로 화목하면서도 분명한 자신의 개성을 가져서 똑같이 하지는 않고, 소인은 자신의 모든 개성까지도 무너뜨린채 똑같이 하기는 하나 화목하지는 못한다"는 의미가 글씨를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참고해야할 말인 것 같다. 張彦遠의 「歷代名畵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옛날의 그림은 형사를 버리고 骨氣를 숭상하여 形似밖에서 그림을 추구하였으니 이는 속인들과 더불어 말하기는 난처하다. 요사이 그림은 설령 形似를 얻었다고 하나 기운이 생겨나지 아니한다.
이와 같이 骨氣를 중요시하여 그림을 그리다 보면, 形似를 중요시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더욱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가 있으며, 또한 기운이 생동하기 때문에 더욱 격이 높은 그림을 얻을 수가 있다. 글씨를 쓰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먼저 骨力 즉 역감을 추구하는데 역점을 두면 아름답고 다양한 필획을 얻을 수가 있고, 필호에 탄력을 얻으면 자유롭게 필획을 구사할 수가 있어 보다 격조높은 글씨를 쓸 수가 있을 것이다.
2) 力感의 比較
원작대로 임모를 하고 똑같이 勁한 필획을 긋는 것을 전제로, 한 사람이 한번은 唐 遂良의 〈雁塔聖敎序〉(圖7)를 임모하고, 다시 한번은 北魏의 〈始平公造像記〉(圖8)를 임모해 보면, 비록 한사람이 썼어도 〈시평공조상기〉를 임모한 것에서 더욱 역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호랑이를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 토끼를 그린다면, 같은 사람이 그렸더라도 호랑이를 그린 그림에서 더욱 힘을 느끼게 된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호랑이를 그릴 때엔 百獸를 제압하는 듯한 강렬한 눈빛,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튼튼하고 날쌘 모습 등을 그리려 하고, 토끼를 그릴 때엔 토끼의 순한 모습을 연상하여 귀를 쫑긋 세우며 경계하는 모습 등을 그리려 하기 때문이다. 관람자의 입장에서도 호랑이 그림을 보면 실제의 호랑이를 연상하여 무섭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토끼를 보면 실제의 토끼를 연상하여 순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서예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역감이 많이 느껴지는 서풍의 글씨와 그보다 역감이 덜 느껴지는 서풍의 글씨가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안탑성교서〉가 그렇게 약한 필획은 아니나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시평공조상기〉와 비교하면 역감이 비교적 작다고 느끼게 된다. 또한, 임모를 하면서도 〈시평공조상기〉를 임모하는 편에 훨씬 더 많은 힘을 들일 것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기교와 힘은 붓대와 筆毫를 거쳐 글자의 일점일획상에서 표현되는데, 같은 사람의 같은 필력으로도 서사공구가 같지 않고 기교변화가 같지않음으로 인해 각각 다른 점획형태를 만들어낸다. 다른 사람의 다른 力度와 다른 서풍으로 인해 만들어진 글씨는 다른 모양의 글씨를 만들어 낸다. 동일한 필기구를 사용해도 기교활동이 다름으로 인해 書跡筆力의 강약정도가 달라진다. 古人이 이르기를 "一橫은 천리에 구름이 늘어선 것(千里陣雲)과 같이하고, 一點은 높은 봉우리에서 바위가 떨어지는 것(高峰墜石)과 같이하고, 一 은 무소뿔이나 상아를 잘라놓은 것(陸斷犀象)과 같이하고, 一鉤는 백균의 쇠뇌를 쏘는 것(百鈞弩發)과 같이하고, 一竪는 만년 묵은 마른 등나무(萬歲枯藤)와 같이한다"는 등등은 모두가 사람들에게 점획의 형태자체를 통하여 그들의 '筆力'을 體會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필력은 필세중에서 생산되며 세가 있어야 비로소 힘이 있다. 한폭의 작품에 필세가 유창하고 근맥이 서로 연결되어 一氣로 貫注되면 모든 글자에 기세가 가득하여(磅 ) 사람들에게 일종의 생명력이 풍부한 역감을 느끼게 한다. 勢와 力은 相補相成하여 相得益彰하는 것이다. 세는 당연히 力의 기초이며, 力은 당연히 勢에 근거한다. 서로가 배합 협조하여야 勢와 力이 비로소 더욱 완미함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3) 力感의 誤解
서예를 실천하거나 감상하는 것을 두고, 지금 사람들이나 옛 선현들도 역감에 대하여 잘못 이해한 부분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나, 서사과정에 오해가 없도록 다음에 다섯 가지정도로 정리하여 밝혀본다.
첫째, 점획의 節이 드러나거나 혹은 方折하고 稜角을 이룬 것을 보고 骨이 있고 역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골법용필을 오해한 가장 보편적인 관념이다. 張懷瓘은 이를 비평하여 "稜角이라는 것은 書의 弊薄한 것이다"라고 했으니, 그를 바로잡는 방법은 세를 우선으로 하고 斂墨入毫하여 圭角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둘째, 밖으로만 강하게 보이고 안으로는 삐쩍마른 것을 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세인들은 단지 弩張한 것을 근골이라 생각하는데 弩張하지 않은 것이 骨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外强中乾' 한 것은 劍拔弩張하여, 오히려 연약하게 보인다. 또한 필묵이 紙面에 떠있으면 골이 있다고 할 수가 없다.
셋째, 집필이 긴밀할수록 더욱 筋骨力量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李世民의 指實說에 대하여 곡해한 것인데 豊坊이 이르기를 指가 實하면 골체가 堅定하여 약하지 않다 하였으니 이것은 그릇되지 않으나 분명하게 분석해 보아야한다. 實指와 死力을 사용하여 붓을 提筆하는 것은 다르다. 前者는 全身之力을 운용하여 필첨에 이르게 하기에 편하고, 後者는 全身關節의 뻣뻣함을 사용한 것이니 오히려 골력이 있는 점획을 구사하지 못한다.
넷째, 骨과 韻을 대립하여, 骨이 있으면 韻이 없다고 생각하고 韻이 있으면 骨이 없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방절을 骨이라 생각하는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상관된 것이니, 그들은 韻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北書는 骨이 勝하고 南書는 韻이 勝하나 北은 스스로 北의 韻이 있고 南은 스스로 南의 骨이 있다"고한 劉熙載는 骨과 韻에 대하여 확실히 알았던 것이다.
다섯째, 사람의 인격을 점획의 골이 되는 결정인소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書에는 骨이 있어야 하나 골이 있는 글씨는 반드시 인격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골력이 붓을 사용하는 사람과 많은 관련이 있으나, 그것은 주로 중봉운필을 통해서 생산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楊賓은 『大瓢偶筆』에서 "鍾紹京·蔡京·趙松雪등과 같은 글씨가 일찍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으나 骨은 곧 미약하다"라고 하였으니, 골이 미약한데 어찌 서가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들의 서는 골이 부족한 것이고 아름다운 글씨이기보다는 연미한 글씨이다.
상술한 갖가지 오해는 역감에 대한 인식이 모호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이러한 면들을 분명하게 교정해 나가면서, 學書에 임한다면 역감있는 글씨를 쓸 수가 있을 것이다.
3. 結構·章法
역감은 점획속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력에서 더 많이 느껴진다. 가령 한사람 한사람의 힘은 미약할지라도 질서있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군대의 행렬을 바라보면 더욱 강한 힘을 느끼게 된다.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하나하나의 필획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전체속에서 유기체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때, 거기서 감지되는 역감은 개별적인 필획에서 느껴지는 역감보다 더욱 강렬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주로, 결구와 장법을 통해 드러나는 필력을 다루었으나, 그것이 각자의 필획에서 느껴지는 것과 연관되어, 분명하게 선을 그을 수가 없었음을 밝혀둔다.
1) 大小·疏密
크기가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큰 것에서 역감을 느낀다. 작품크기가 같은 공모전에 출품하는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이 큰 글씨로 출품한다. 왜냐하면 작고 많은 글씨보다 크고 적은 글씨가 더욱 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작은 글씨를 쓰다보면 움츠러들기 쉽다. 작게 쓰려는 마음이 勢마저도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작게 쓰면서도 기세가 당당하면 큰 글자를 보는 것처럼 툭터진 느낌을 갖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큰 글자는 작은 글자처럼 작은 글자는 큰 글자처럼 써야한다.
곧 좋은 글씨란 작으면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가늘면서도 당당한 필획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다.
소밀을 얻으면 바야흐로 좋은 작품이 될 수가 있다. 소밀은 結字할 때에 寬疎와 緊密을 가리킨다. 疎를 잘 사용하면 신운이 감돌며, 密을 잘 사용하면 노련해진다. 그러나 성글게 할 때 성글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냉혹한 분위기가 감돌고 密해야할 때 密하지 않으면 반드시 엉성한 작품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동양의 예술은 공간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점획과의 간격이나 글자와 글자와의 간격 등도 모두 중요하다. 작품전체에서 강약을 만들고 소밀을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수준은 큰 차이를 보인다. 鄧石如(1743-1805, 一說1739-1805)의 다음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자획의 성글은 부분에서는 말을 달릴 수도 있게 하고, 긴밀한 곳에서는 공기도 통과하지 못하게 하니, 항상 공간을 계산하여 필획을 그으면 奇妙한 정취가 나타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