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 진다는 것> - 헤르만 헷세 -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깊은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안개> - 헤르만 헤세 -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덩굴과 돌들 모두 외롭고,
이 나무는 저 나무를 보지 못하니
모두가 다 혼자로구나!
나의 삶이 밝았던 때에는
세상엔 친구들로 가득했건만
이제 여기 자욱한 안개 내리니
아무도 더는 볼 수 없어라.
회피할 수도 없고 소리도 없는
모든 것에서 그를 갈라놓는
이 어두움을 모르는 이는
정녕 현명하다고는 볼 수 없으리.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
누구도 다른 사람 알지 못하고
모두는 다 혼자인 것을!


<기도> - 헤르만헤세 -


하느님이시여, 저를 절망케 해 주소서
당신에게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미혹의 모든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온갖 모욕을 겪도록 하여 주시옵고
내가 스스로 지탱해 나감을 돕지 마시고
내가 발전하는 것도 돕지 마소서
그러나 나의 자아가 송두리째 부서지거든
그 때에는 나에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낳아 주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으려고 하나
나는 오직 당신의 품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어머님께> -헤르만헤세-

 

이야기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는 멀리 객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나를 이해해 준 분은
어느 때나 당신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당신에게 드리려는
나의 최초의 선물을
수줍은 어린아이 손에 쥔, 지금
당산은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읽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나의 슬픔을 잊는 듯합니다.
말할 수 없이 너그러운 당신이, 천가닥의 실로
나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이에게> -헤르만헤세-

 

어찌할 바를 몰라
슬픔에 젖어 이곳에 서 있다.
고향을 멀리 떠나
나는 헤매이며 왔다.
내가 알고 있던 꼿이여
푸른 높은 산이여
인간이여, 들판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을 모른다.
다만, 너의 입에서만
엿날의 소리를 듣고
다정한 동화의 말처럼
옛날의 소식을 듣는다.
멀지 않아 착한 원정인 죽음이
부모가 기다리는 저녁 노을 속으로
그의 정원으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 -헤르만헤세-

 

언제나 같은 꿈이다.
빨간 꽃이 피어 있는 마로니에
여름 꽃이 만발한 뜰
그앞에 외로이 서 있는 옛집
저 고요한 뜰에서
어머니가 어린 나를 잠재워 주셨다.
아마도, 이제는 오랜 옛날에
집도 뜰도 나무도 없어졌을 것이다.
지금은 그 위로 초원의 길이 지나고
쟁기가 가래가 지나 갈 것이다.
고향의 뜰과 집과 나무를
이제는 꿈에서만 남을 것이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떠올리는
무수한 낯모르는 얼굴들....
서서희 하나,
불빛이 흐려간다.
그 여린 빛이 회색이 되고


<어린 시절부터> -헤르만 헤세-

 

지난날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행복을 약속한
하나의 음향이 나에게로 다가 온다.
만일 이것이 없으면 살기가 너무나 괴로울 것이다.
이 마력의 음향이 울리지 않는다면
나는 빛없이 서서
주위에 불안과 암흑만을 볼 것이다.
그러나 슬픔과 죄에 다치지 않는 소리가
행복에 찬 달콤한 음향이 울린다.
슬픔과 죄악에도 파멸되지 않는 그 음향이.
너 자랑스런 목소리여
내 집의 불빛이여 다시는 꺼지지 말고
그 푸른 눈을 감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부드러운 빛을 모두 잃고
크고 작은 별들이 차례로 떨어져
나만 홀로 남게 될 것이다.

<내 젊음의 초상> -헤르만 헤세-

 

지금은 벌써 전설이 된 먼 과거로부터
내 청춘의 초상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지난날 태양의 밝음으로부터
무엇이 반짝이고 무엇이 타고 있는가를 !
그때 내 앞에 비추어진 길은
나에게 많은 번민의 밤과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다.
그 길을 나는 이제 다시는 걷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길을 성실하게 걸었고
추억은 보배로운 것이었다.
잘못도 실대도 많앗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혼 자> 헤르만 헤세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다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

<마을의 저녁 무렵> 헤르만 헤세

 

양떼를 몰고 목동이
조용한 오솔길을 가고 있다.
집들은 잠이 오는 듯
벌써 깜박이고 있다.
나는 이 마을에서, 지금
단 하나의 이방인
슬픔으로 하여 나의 마음은
그리움의 잔을 남김없이 비운다.
길을 따라 어디로 가든
벽난로에는 따뜻한 불이 타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고향과 조국을 느껴보지 못했다.


<멀어져 가는 젊음> 헤르만 헤세

 

피곤한 여름이 마침내 고개를 숙이고
호수에 비친 그의 마지막 모습을들여다본다.
일상에 지친 나는 먼지에 싸여
가로수 그늘을 방황하고 있다.
포플러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그러면 내 뒤로 황혼이 금빛으로 타오르고
앞에는 밤의 불안이 죽음과 함께 온다.
먼지에 싸인 채 지친 걸음을 옮겨 놓는다.
그러나 젊음은 머뭇거리듯 뒤로 밀려나며
고운 모습을 감춘 채
나와 함께 앞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그는 어둠 속을 걸었다> -헤르만 헤세

 

검은 수목들의 그림자가 꿈을 식히는
어둠 속을 그는 즐겨 걸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는 빛에서 빛으로
타오르는 욕망에 갇혀 괴로움을 다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 은빛으로 맑은 별이 가득 찬
하늘이 있음을, 그는 몰랐다.


<젊음의 고개를 넘으며> 헤르만 헤세

전나무 아래서 쉬고 있노라면 지난날이 생각난다.
익은 숲의 냄새가
최초로 소년의 슬픔을 잉태했던 그날이.
바로 이곳이었다. 내가 이끼위에 누워
수줍은 소년의 열정이
가냘픈 금발 소녀의 모습을 꿈꾸었다.
환한 속에 처음 핀 장미를 꺾어 넣고.
세월은 흐르고 꿈은 늙어지고
멀어져서 다른 꿈이 왔다.
그것도 작별한 지 이미 오랜 일이다.
최초의 꿈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나는 늘 괴로워했다.
그래, 누구였을까. 잊혀지지 않는 것은 ?
다만, 그녀가 상냥하고 가냘픈 금발이라는 것 뿐이다.


<노을 속의 백장미> -헤르만 헤세-

 

슬픈 듯 너는 얼굴을 잎새에 묻는다.
때로는 죽음에 몸을 맡기고
유령과 같은 빛을 숨쉬며
창백한 꿈을 꽃피운다.
그러나 너의 맑은 향기는
아직도 밤이 지나도록 방에서
최후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
한 가닥 은은한 선율처럼 마음을 적신다.
너의 어린 영환은
불안하게 이름 없는 것에 손을 편다.
그리고 내 누이인 장미여, 너의 영혼은 미소를 머금고
내 가슴에 안겨 임종의 숨을 거둔다.

<방랑의 길에서>(크눌프의 추억) -헤르만 헤세-

 

슬퍼하지 말아라, 곧 밤이 오리라.
그러면 우리들은 파리해진 산 위에서
몰래 웃음짓는 것 같은 시원스러운 달을 보리라.
그러면 손을 잡고 쉬자.
슬퍼하지 말아라, 곧 때가 오리라.
그러면 우리는 쉬리라, 우리들의 십자가가
밝은 길가에 나란히 설 것이다.
그리고 비가 내리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 것이다.


<둘 다 같다> -헤르만 헤세-

 

젊은 날에는 하루같이 쾌락을 쫓아 다녔다.
그 후에는 우수에 싸여
괴로움과 쓰라림에 잠겨 있었다.
지금 나에게는 기쁨과 쓰라림이
형제처럼 스며 있다.
기쁜 듯 슬픔 듯
둘은 하나로 되어 있다.
신이 나를 지옥으로
탱양의 하늘로 인도한다면
나에게는 둘 다 같은 곳이다.
신의 손길을 느끼고 있는 한.


<편 지> 헤르만 헤세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온다.
보리수가 깊은 신음소리를 내고
달빛은 나뭇가지 사이로
내 방을 엿본다.
나를 버린 그리운 사람에게 긴 편지를 썼다.
달빛이 종이 위로 흐른다.
글위를 흐르는 고요한 달빛에 나는 슬픔에 젖어
잠도, 달도, 밤 기도도 모두 잊는다.


<한 장의 그림> 헤르만 헤세

 

가을의 찬 바람이 시든 갈대밭을 스잔히 불어간다.
갈대잎은 밤 사이에 회색이 되었다.
까마귀는 버드나무를 떠나 육지로 날아간다.
호수에서는 한 노인이 외로이 서서 쉬고 있다.
머리에 바람과 밤과 다가오는눈을 느끼고
그늘진 호수에서 밝은 하늘을 바라본다.
거기 구름과 호수 사이에
한 줄기 물가의 육지가 햇빛 속에서 따뜻하게 빛나고 있다.
꿈과 시처럼 행복에 찬 금빛 호수가.
노인은 빛나는 이 풍경을 똑똑히 눈 속에 간직하고
고향을, 지난 행복한 세월을 생각한다.
그리고 황금빛 태양이 흐려지고 사라지는 것을 보자
머리를 돌려 버드나무에서 떠나
천천히 육지로 걸어간다.

 

<순례자> 헤르만 헤세

 

나는 항상 방랑의 길에 있었다.
순례자였다.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쁨도 슬픔도 흘러갔다.
나는 방랑의 의미도, 목적도 알지 못한다.
몇 천 번을 쓰러지고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다.

,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성스럽고 멀리 높은 하늘에 걸려 있었던 사랑의 별이었다.
그러나 그 별을 안 지금은
목적을 알지 못하던 동안에는
마음 편히 걸어 갔고
기쁨과 행복을 가질 수 있었다.
이미 늦었다.
별은 돌아서 버리고
아침에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그렇게도 사랑하던
화려한 세상과 작별을 해야 한다.
나는 목표를 잃어버렸으나
그래도 가야 할 나그네의 길이 있었다

<어둠과 나와> 헤르만 헤세

나는 촛불을 꺼버렸다.
열린 창문으로 밤이 밀려와
살며시 나를 안고, 나를 벗으로
형제로 삼는다.
우리들은 같은 향수에 젖어 있다.
불안한 꿈을 밖으로 내쫓고
소곤소곤 아버지 집에서 살던
지난 날을 이야기한다.


<가을날> 헤르만 헤세

 

숲이 금빛으로 타고 있다.
상냥한 그이와, 여러 번
나란히 걷던 이 길을
나는 혼자서 걸어 간다.
이런 화창한 날에 오랜 동안 품고 있던
행복과 고로움이, 향기 속으로
먼 풍경으로 녹아 들어간다.
풀을 태우는 연기 속에서
농부의 아이들이 껑충거린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노래를 시작한다.

 

내가 만든 꽃다발 -삐에르 드 롱사르-

 

활짝 핀 꽃을 꺾어서 꽃다발을 바칩니다

이 저녁 꺾지 않으면

내일이면 시들 이 꽃들을

그대는 이걸 보고 느끼겠지요

아름다움은 머지않아 모두 시들고

꽃과 같이 순간에 죽으리라고

그대여 세월은 갑니다

세월은 갑니다

아니 세월이 아니라 우리가 갑니다

그리고 곧 묘비 아래 눕습니다

우리 속삭이는 사랑도

죽은 뒤에는 아무 것도 아니랍니다

나에게 사랑을 주세요

그대 살아 있는 아름다운 동안에

 

볕 권덕하

 

물속 바닦까지 볕이 든 날이 있다

가던 물고기 멈추고 제 그림자 보는 날

하산 길 섬돌에 앉은 그대 등허리도

반쯤 물든 나뭇잎 같아

신발 끄는 소리에 볕 드는 날

물속 가지 휘어 놓고

나를 들여다 보는

저 고요의 눈

 

멀리서 빈다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이사 박 찬 중

 

이사를 해보면 알지

오랜 세월, 참 많은

필요치 않은 것들을 끌고다닌

허접한 잡동사는를 보게 되지

그럼에도 또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찾고, 그를 위해

애를 태우기도 하지

언제쯤일까

이 모든 것 버리고 떠나는 날

아주 멀리 이사하는 날

쓸쓸히 나뒹굴 허망한 욕망의 껍데기들



동백 -선운사에서- 김명원

 

지고 말면 그뿐

흔적이 살아 있던 자리에

바람조차 성글 터인데

그랬으면 좋겠다

내 사랑 어디에도 있었다

속죄하지 않아도 되는

불현듯 피었다 지는

선운사 동백처럼

지고 나면 그뿐

아무란 자취 찾을 수 없어 눈 머는

깨끗한 허무였으면 좋겠다


사랑의 비 최은주

 

비가 내립니다.
당신은 비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슴에는
사랑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메마른 입술에
내 사랑을 쏟아붓고 싶습니다.
당신의 비어있는 마음을
내 사랑으로 채우고만싶습니다.
당신이 맞고 싶다는 비가
나였으면좋겠습니다.
비가 되어
당신의 온몸을 적시고 싶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비가 내립니다.

백자부(白磁賦) 김상옥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白鶴)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附椽) 끝에 풍경(風磬)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 틈에 불로초 돋아나고

채운(彩雲) 비켜 날고 시내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드노다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하도다.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은 당신 박 현 희

 

고요히 잠자던 내 마음의 호수에

그리움으로 파문을 일으키며

내 영혼의 주인이 된 당신

사랑이 깊어가면 갈수록

지독한 외로움과 사투를 벌여도

온몸을 가눌 수 없이 짖누르는 고독의 무게에

난 언제나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리운 당신을 지척에 두고도

이렇듯 혼자일 수밖에 없는 서글픈 운명에

시퍼렇게 멍든 가슴은

검게 타 하얗게 재만 남았습니다

당신을 향한 사랑의 깊이만큼

외로움의 골 또한 깊디깊어

그리움으로 까만 밤을하얗게 꼬박 지새워도

함께 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주체 못할 그리움만 차곡차곡 쌓아두고

지친 외로움에 이 몸은 야위어만 갑니다

하지만 그리움을 간직한 채

한 생을 살아간다 해도 충분히 행복하기에

고운연정 아끼고 아껴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은 당신입니다


사랑 조병화

사랑은 언제나 좀 서운함이어라
내가 찾을 때 네가 없고
네가 찾을 때 내가 없음이여
후회는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
일어나는 바람이려니
그리움은 더욱 더 사라진 뒤에
오는 빈 세월이려니
사랑은 좀 더 서운함이려니
그리움은 아프게 더 더 긴 세월이려니
,인생이 이러함이려니
사람이 사랑하는 곳은 더 더 이러함이려니
,사랑아.


가을의 기도 김 현 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그대 마음을 만져보고 싶을 때 김 주 수


1. 하늘빛을 만져보고 싶을 땐
연못가에 가서 물 속에 앉은 하늘을 만져봅니다.
내 안에 있는 그대 같아서,

그대가 내게 준
끝없는 마음 같아서.

2. 햇살을 만져보고 싶을 땐
강물가에 가서
물 속에 드리운 햇살을 만져봅니다.
내 안을 흐르는 그대 같아서,
그대가 내게 준
꺼지지 않는 생의 불빛 같아서.

3. 나뭇잎의 그늘을 만져보고 싶을 땐
연못 아래로 드리운 나무 그늘을 만져봅니다.
내 안에 있는 그대 영혼 같아서,
내 영혼의 가지에 드리운
길이 마르지 않을 값없는 그늘 같아서.

술에 취한 바다 이성진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가을비 도종환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옆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 가겠지요.


겨울 들녘에 서서 - 오세영 -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빈 공간의 충만.



아낌없이 주는 자의 기쁨이



거기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낟알 몇 개.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지상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의 안식이


거기 있다.


먼 별을 우러르는


둠벙의 눈빛.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너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킨다는 것,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이 거기 있다

.

빈 들을 쓸쓸히 지키는 논둑의

 

저 허수아비.



산에 언덕에 - 신동엽 -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나의 연인에게 김승기

곱디 고운 당신,


마음과 성품과 인격모두가,,


아름다운 당신,


내 당신께 편지를 드립니다.


나의 가시밭같은 마음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나의


영혼을 당신은 기쁨으로


받아 줄 수 있는지요.


그대와 내가 만나는 날을


기대 하면서,,



가을 /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고은의<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정현종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안도현의<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적이 있었느냐?'

 

유치환의<낙엽>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정지용의<호수>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하니 눈 감을 수밖에'

 

낙엽 한 장/오광수

나릿물 떠내려온 잎 하나 눈에 띄어
살가운 마음으로 살며시 건졌더니
멀리 본 늦가을 산이 손안에서 고와라.


서시/이정록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後記 /천양희

시는 내 自作나무 네가 내 全集이다. 그러니 시여,제발 날 좀 덮어다오

**시멘트 /유용주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자신이 가루가 될 때 까지 철저하게
부서져본 사람만이 그걸 안다.

*서시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도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곽재구

모든 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머리칼을 지녔는지
난 알고 있다네
그 머리칼에 한번 영혼을 스친 사람이
어떤 노래를 부르게 되는지도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황지우


긴 외다리로 서 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황인숙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첫사랑 /이윤학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 까지 들여다 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 까지

*사랑 /정호승

무너지는
폭포 속에 탑 하나 서 있네
그 여자
치마를 걷어 올리고
폭포 속으로 걸어 들어가
탑이 되어 무너지네

*사랑 /김명수

바다는 섬을 낳아 제 곁에 두고 파도와 바람에 맡겨 키우네

*눈물 /정희성

초식동물 같이 착한 눈을 가진
아침 풀섶 이슬 같은 그녀
눈가에 언뜻 비친

*不倫 /윤금초

가을날 몰래 핀 두어 송이 장미
그래도 꽃들은 감옥에 가지 않는다
위험한
이데올로기
저 반역의
開花

*자화상 /신현림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낚는다.

*/조은

오래 울어본 사람은
체념할 때 터져 나오는
저 슬픔과도 닿을 수 있다.

*水墨 정원
_暮色(모색)

장석남

귀똘이들이
별의 운행을 맡아가지고는
수고로운 저녁입니다.가끔 단추처럼 핑글
떨어지는 별도 있습니다


하늘냄새 -박희준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보일 때가 있다.

그 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냄새를 맡는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산에서 본 꽃


산에 오르다 꽃 한 송이를 보았네

나를 보고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

산에서 내려오다 다시 그 꽃을 보았네

하늘을 보고 피어있는 누님 닮은 꽃

 

봄볕


꽃가루 날림에 방문을 닫았더니

환한데도 더 환하게 한 줄 빛이 들어오네

앉거라 권하지도 않았지만은

동그마니 자리 잡음이 너무 익숙해

손가락으로 살짝 밀쳐내 보니

눈웃음 따뜻하게 손등을 쓰다듬네!


가을햇살


등 뒤에서 살짝 안는 이 누구 신가요?

설레는 마음에 뒤돌아보니

산모퉁이 돌아온 가을 햇살이

아슴아슴 남아있는 그 사람 되어

단풍 조막손 내밀며 걷자 합니다

홍시(紅枾) 두 알


하얀 쟁반에 담아 내온 홍시 두 알.

무슨 수줍음이 저리도 짙고 짙어서

보는 나로 하여금 이리도 미안케 하는지

가슴을 열면서 가만히 속살을 보이는데
마음이 얼마만큼 곱고 고우면 저리될까?

권함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낙엽 한 장


나릿물 떠내려온 잎 하나 눈에 띄어

살가운 마음으로 살며시 건졌더니

멀리 본 늦가을 산이 손안에서 고와라.


홍류폭포


수정 눈망울 살금 돌 틈에다 감추고

잠깐 햇살에 또르르 한줌물 손에담고

언제였나 오색 무지개가 꿈인듯하여

바람도 피하는 간월산 늙은 억새사이로

가을 지나간 하얀 계곡을 내려다봅니다.

 

가을에는


가을에는 나이 듬이 곱고도 서러워

초저녁 햇살을 등 뒤에 숨기고

갈대 사이로 돌아보는

지나온 먼 길

놓아야 하는 아쉬운 가슴

그 빈자리마다

추하지 않게 점을 찍으며

나만 아는 단풍으로 꽃을 피운다


비 오는 밤


기다린 님의 발걸음 소리런가

멀리도 아닌 곳에서 이리 오시는데

밖은 더 캄캄하여

모습 모이지 않고

불나간 방에 켜둔 촛불 하나만

살랑살랑 고개를 내젓고 있다

 

첫사랑 류근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

내 삶은 방금 첫 꽃송이를 터뜨린

목련나무 같은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아도 음악이 되는

황금의 시냇물 같은 것이었다

푸른 나비처럼 겁먹고

은사시나무 잎사귀 사이에 눈을 파묻었을 때

내 안에 이미 당도해 있는

새벽안개 같은 음성을

나는 들었다

그 안개 속으로

섬세한 악기처럼 떨며

내 삶의 비늘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곧 날이 저물었다

처음 세상에 온 별 하나가

그날 밤 가득 내 눈썹 한끝에

어린 꽃나무들을 데려다주었다

날마다 그 꽃나무들 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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