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138

이시영시인의 짧은 시 모음

이시영시인의 짧은 시 모음 ​* 무늬 ​나뭇잎들이 포도 위에 다소곳이 내린다 저 잎새 그늘을 따라 가겠다는 사람이 옛날에 있었다 ​* 어느 석양 ​동백꽃 꽃숲에 참새들이 떼지어 앉아 무어라 무어라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동백꽃 송이들이 알았다 알았다 알았다고 하면서 무더기로 져내리고 있었습니다 ​* 빛 ​내 마음의 초록 숲이 굽이치며 달려가는 곳 거기에 아슬히 바다는 있어라 뜀뛰는 가슴의 너는 있어라 ​* 봄눈 ​마른논에 우쭐우쭐 아직 찬 봇물 들어가는 소리 앗 뜨거라! 실은 논이 진저리치며 제 은빛 등 타닥타닥 뒤집는 소리 ​ * 가을 ​​우주의 어떤 빛이 창앞에 충만하니 뜨락의 시린 귀또리들 흙빛에 몸을대고 기뻐 날뛰겠다 ​* 노래 ​깊은 산 골짜기에 막 얼어붙은 폭포의 숨결 내년 봄이 올 때까지 거기 ..

좋은 시 2024.07.20

봄시 모음

봄에 관한 시모음 봄의 유혹 /신진식 내 어릴적에는 겨울이 좋았다 눈 밭을 뒹굴고 소나무 다듬어 철사줄 얽어맨 스케이트를 타고 깔깔대며 놀았다 이젠 싫다 마음도 시린데 너까지 추우니 30대 초반에는 여름이 좋았다 이글대는 태양이 좋았고 달 그늘 아래 밤 새는줄 모르고 한없이 나누며 부딪치는 우정이 좋았다 이젠 싫다 끈적거려 싫고 쭉쭉 빠진 여인네의 관능미를 보노라면 시샘이 나서 싫다 50대초반에는 가을이 좋았다 현란한 다풍이 좋았고 몽실몽실한 열매 들이 좋았다 이젠 싫다 떨어지는 낙엽을 붙잡을수 없으니 늦가을 앙상한 가지들은 더욱 싫다 희끗희끗한 반백이 되니 봄이 좋다 비집고 용트림하는 새싹이 좋고 딱딱한 껍질을 박차고 나오는 숨 막히게 다가오는 잎새의 향기 때문에 뛰어가 나누고 싶은 봄의 유혹 그래서 ..

좋은 시 2023.06.04

나호열 시 모음

♡봄비 / 나호열 ​ 알몸으로 오는 이여 맨발로 달려오는 이여 굳게 닫힌 문고리를 가만 만져보고 돌아가는 이여 돌아가기 아쉬워 영영 돌아가지 않는 이여 발자국 소리 따라 하염없이 걸어가면 문득 뒤돌아 초록 웃음을 보여주는 이여 ♡토마스가 토마스에게 / 나호열 ​ 사랑해 이 짧은 시를 쓰기 위해 너무 많은 말을 배웠다 ♡사랑의 온도 / 나호열 사랑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무리 뜨거워도 물 한 그릇 데울 수 없는 저 노을 한 점 온 세상을 헤아리며 다가가도 아무도 붙잡지 않는 한 자락 바람 그러나 사랑은 겨울의 벌판 같은 세상을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화원으로 만들고 가난하고 남루한 모든 눈물을 쏘아 올려 밤하늘에 맑은 눈빛을 닮은 별들에게 혼자 부르는 이름표를 달아준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좋은 시 2023.06.04

신년시 모음

한해를 맞이하는 새해에 관한 시모음 [새해 시] 신년시(新年詩) / 조병화 흰 구름 뜨고 바람 부는 맑은 겨울 찬 하늘 그 無限을 우러러보며 서 있는 大地의 나무들처럼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꿈으로 가득하여라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영원한 日月의 영원한 이 回轉 속에서 너와 나, 우리는 約束된 旅路를 동행하는 有限한 生命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사랑으로 더욱더 가까이 이어져라 새해 아침 / 송수권 ​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좋은 시 2023.01.06

송년 시모음

한해를 보내는 송년 시모음 [송년 시] [년말 시] 한해의 끝자락에서 / 박외도 제법 쌀쌀해진 겨울밤 마음 아프고 쓰린 사람들의 쏟아놓는 고달픈 이야기들로 밤새워 뒤척이며 잠 못 이루고 겨울 긴긴밤을 하얗게 새운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지난 일들은 가슴 깊이 묻고 새로운 아침의 창을 열면 목련 나뭇가지에 작은 새 한 마리 날아와 새로운 희망을 노래한다. 남은 시간 어떻게 마무리할까 생각에 잠기는 나에게 짧은 인생 촌음을 아껴 그들에게 나의 어깨를 내주어 기대게 하고 가슴을 열어 토닥거려 주라고 일깨워준다. 작은 새의 짹짹거리는 아침 인사에 나는 웃으며 한해의 마지막을 가벼운 마음으로 마무리해 간다. 한 해의 끝에 / 서현숙 황혼은 곱게 물들어 노을 만들고 저무는 하루 어둠이 사방에 내려앉길 시작하는데 총총..

좋은 시 2023.01.06

단풍시 모음

단풍에 관한 시모음 단풍 3 /김경철 알람 소리에 덜 깬 눈으로 일어나 창문 밖을 바라보니 따사로운 햇살에 자랑하듯 단아한 모습을 선보이던 푸른 얼굴들 불어오는 삭풍에 심하게 멍들었나 여기저기서 붉은 피멍들 보이고 그 모습에 놀라 일부는 심한 똥내 풍기며 노랗게 변해간다 싸늘해진 가을바람에 가늘게 흔들리던 붉은 얼굴 노란 얼굴 갈색 얼굴들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하얀 나비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바싹 말라가는구나 단풍연가 /유한나 살아 온 날보다 남아 있는 시간을 더 사랑해요 지나 온 나날 눈물겨워도 비장한 사랑으로 불타올라요 무성한 근심 위로 가을이앉아 다독여 주는 군요 적막한 외로움 곁에 찬바람이 불어와 어깨를 껴안는 군요 사랑하자구요 가을엔 물들자구요 노랗게 빨갛게 새빨갛게 빛고운 색깔로 짓이겨져 한 ..

좋은 시 2022.12.13

수선화 시모음

1.수선화 초록빛 스커트에 노오란 블라우스가 어울리는 조용한 목소리의 언니 같은 꽃 해가 뜨면 가슴에 종(鐘)을 달고 두 손 모으네 향기도 웃음도 헤프지 않아 다가서기 어려워도 맑은 눈빛으로 나를 부르는 꽃 헤어지고 돌아서도 어느새 샘물 같은 그리움으로 나를 적시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2.수선화, 그 환한 자리 거기 뜨락 전체가 문득 네 서늘한 긴장 위에 놓인다 아직 맵찬 바람이 하르르 멎고 거기 시간이 잠깐 정지한다 저토록 파리한 줄기 사이로 저토록 환한 꽃을 밀어올리다니! 거기 문득 네가 오롯함으로 세상 하나가 엄정해지는 시간 네 서늘한 기운을 느낀 죄로 나는 조금만 더 높아야겠다 (고재종·시인, 1959-) 3. 수선화·1 자존심이란 그런 건가 소슬바람에도 서릿발같은 사랑 노란 향기로..

좋은 시 2022.10.28

가람이병기 시조 모음

가람 시조 대표작 모음 / 이병기(1891.3.5 ~ 1968.11.29) 고향으로 돌아가자 방과 곶간들이 모두 잿더미 되고 장독대마다 질그릇 쪼각만 남았으니 게다가 움이라도 묻고 다시 살아봅시다 대성암 고개 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마는 풀섶 바위서리 빨간 딸기 파랭이꽃 가다가 다가도 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묵은 기와쪽이 발 끝에 부딪치고 성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나고 성긋이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 그리운 옛날 자취 물어도 알 이 없고 벌건 뫼 검은 바위 파란 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 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깊은 바위굴에 솟아나는 맑은 샘을 위로 뚫린 구멍 내려오던 공양미를 이제도 의상을 더불어 신라시절 말한다 별이 쨍쨍하고 하늘도 말갛더니 설레는 바람끝에 구름은 서들대고 거뭇한 먼산..

좋은 시 2022.10.14

가을시 모음

가을 / 김용택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 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가을 / 김현승(1913-1975) 호 茶兄 .광주.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좋은 시 2022.10.03

가을시 모음

가을에 관한 시모음 가을은 /眞如 홍은자 바다같이 넓게 열린 가슴 유리알처럼 투명해진 마음으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마주친 낯선 사람에게도 따스한 미소 건네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스며든 한 점 바람에도 가슴이 휑하니 비어 가고 괜스레 눈물이 그렁거려 접어 두었던 옛사랑의 기억이 단풍처럼 타오르고 그 흔들림에 가슴이 부서져 내리면 가을이고, 하얗게 잠 못 드는 밤 쓸쓸한 귀뚜라미 울음이 그리움의 송가처럼 가슴에 와 닿고 이유 없는 한숨이 새어나와 절로 읊조린 싯귀 한 구절에 가슴이 시려오면 가을이다 . 가을이라는 두 글자에 그리움을 섞어 태우면 붉은 빛 낙엽 타는 냄새가 난다 떠나갈 가을도, 돌아올 가을도 그리 오래 머물지도 못하면서 가을은, 가을 속에서 만 가을을 탄다. 가을 길목 /박인걸 이글이글 타..

좋은 시 2022.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