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맞이하는 새해에 관한 시모음<2> [새해 시]
신년시(新年詩) / 조병화
흰 구름 뜨고
바람 부는
맑은 겨울 찬 하늘
그 無限을 우러러보며
서 있는
大地의 나무들처럼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꿈으로 가득하여라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영원한 日月의 영원한
이 回轉 속에서
너와 나, 우리는
約束된 旅路를 동행하는
有限한 生命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사랑으로 더욱더
가까이 이어져라
새해 아침 / 송수권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
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져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새해 소망 / 박소향
새해가 되면
가슴 가득 소망을 품게 하소서
그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열심히 땀 흘려 정진하게 하소서
결과에 상관 없이
내가 노력한만큼 감사하게 하시고
받은것 보다는 베푼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겸손을 갖게 하소서
높은 곳 보다 낮은 곳을 볼 줄 아는 눈을 갖게 하시고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다스릴줄 아는 지혜를 갖게 하소서
절망과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올지라도
원망하며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겸손한 가슴을 갖게 하시고
먼저 화해를 청하는 용서의 손도 갖게 하소서
사람이 사랑으로, 세상이 사랑으로
사랑으로 모든 어려움과 허물이 덮혀지는
그 사랑을 내가 먼저 실천하고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축복은 간절히 바라는 자에게 먼저 당도한다는
믿음으로 늘 준비하는 내가 되게 하소서
닭이 울어 해는 뜬다 / 안도현
당신의 어깨 너머 해가 뜬다
우리 맨 처음 입맞출 때의
그 가슴 두근거림으로, 그 떨림으로
당신의 어깨 너머
첫닭이 운다
해가 떠서 닭이 우는 것이 아니다
닭이 울어서 해는 뜨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처음 눈 뜬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울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울었기 때문에
세계가 눈을 뜬 것이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하고 나하고는
이 아침에 맨 먼저 일어나
더도 덜도 말고 냉수 한 사발 마시자
저 먼 동해 수평선이 아니라 일출봉이 아니라
냉수 사발 속에 뜨는 해를 보자
첫닭이 우는 소리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세상의 끝으로
울음소리 한번 내질러보자
새해 / 피천득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너 나무들 가지를 펴며
하늘로 향하여 서다
봄비 꽃을 적시고
불을 뿜는 팔월의 태양
거센 한 해의 풍우를 이겨
또 하나의 연륜이 늘리라
하늘을 향한 나무들
뿌리는 땅 깊이 박고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신년송(新年頌) / 이해인
사랑아
언제나 제일 먼저 나는 네가 보고 싶다.
늘 함께 있으며 처음인 듯 새롭게 네가 보고 싶다.
너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싶고
너와 함께 가장 정직한 시를 쓰고 싶고
너와 함께 가장 뜨거운 기도를 바치고 싶다.
내가 어둠이어도 빛으로 오는 사랑아 말은 필요없어
내 손목을 잡고 가는 눈부신 사랑아 겨울에도 돋아나는
네 가슴속 푸른 잔디 위에 노란 민들레 한 송이로 네가 앉아 웃고 있다.
세상에 너 없이는 희망도 없다.
새해도 없다.
내 영혼 나비처럼 네 안에서 접힐 때 나의 새해는 비로소
색동의 설빔을 차려 입는다.
묵은 날도 새 연두 저고리에 자줏빛 옷고름을 단다.
새해에는 / 윤보영
새해에는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고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미소를 건네며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도움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그 행복을 나누는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내 주위에서 기쁜 소식을 더 많이 듣고
그 소식에, 내 기쁨이
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미소 짓는 모습을 꺼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 하나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꽃이 주는 향기보다, 꽃이 가진
생각을 먼저 읽을 수 있는 지혜를 얻고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내 안에도, 내 밖에도
1년 내내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들게
내 삶에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새날 새아침 / 최균희
새해 새날이
눈부신 빛으로 찾아와
겨레의 염원으로
고이 키워온
아이의 작은 몸에
파고 든다.
밝은 해는
솟는다.
마음 공부하는
이른 새벽
문열면 하늘이 있고
하늘 위에 붉은 해는
오직 하나.
참과 생과 희망 뿐으로
충만한 아침
팽이로 지구를 돌리고
연으로 창공을 나른다.
우리들은
새해 새 아침을
가슴에 안고
평생을 내다보는
기원의 옷깃을
여민다.
그래 무엇이 되자.
무엇이 되지 않을지라도
한 마음 한 뜻이
지닌 의미를
새날 새 아침이
꼭 아니어도 되겠지만
어디서 오는 힘인가
온 몸을 뿌듯하게
한아름 가득 채워주는 힘
정녕 길을 열어주는 듯
계시가 오는 듯
가슴을 열어주는 햇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고속도로를 놓고
하늘차를 띄우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
우리의 꿈을
온누리에 펼치자.
새해 바람 / 김필규
새해에도 바람이 분다
그 많은 쓰레기 하나도 걷어가지 못한 바람
새해에도 바람이 분다
서울에도 불고
부산에도 불고
전국 곳곳에 분다
아승기 전세상부터 살아온 묵은해인데
사람들은 공연히 새해라 하고
아승기 전세상부터 불던 바람인데
사람들은 새바람이 불기를 바란다
새해도 묵은해이고
새바람도 묵은 바람일 뿐이어서
세월과 바람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
다만 오고 가는 것은 인간뿐이어서
사람들이 공연히
새해 묵은해를 따진다
새해 소망 / 오애숙
새해엔 바른생활의
교과서 되기 보다는
융통성 있는 삶으로
밝게 웃으며 살아가
근시안적 사고에서
망원렌즈적 사관의
생각으로 여유롭게
가슴 넓히어 가고파
더 늙기 전 맘도 비워
내가 먼저 다가 서서
봄햇살의 포근함으로
말 한마디 건네 주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랑의 양념 버무려
만끽하는 행복으로
감사꽃 피우고파라
새해 소망 / 주응규
오라오라 희망이여 오라
가라가라 절망이여 가라
대망에 가슴 벅찬 새해야
말갛게 솟구쳐 올라
세상의 그늘진 곳곳에
고루고루 축복을 내리어라
감당키 어려운 시련일랑은
한마음으로 나눠서 짊어지어
슬기롭게 극복하고
즐거움일랑 여럿이 더하여
함께 누리어라
서로서로 배려하고 위하며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저마다의 가슴에 흘러라
두루두루 무사태평을
빌고 비나니
행복한 웃음꽃이
온 누리에 만발하여라.
새해 인사 / 김현승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뛰듯
널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 사이를
발굴러라 발굴러라.
춤추어라 춤추어라.
무지개 빛깔의 새해 엽서 / 이해인
빨강 ― 그 눈부신 열정의 빛깔로
새해에는
나의 가족, 친지, 이웃들을
더욱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느님과 자연과 주변의 사물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습니다
결점이 많아 마음에 안 드는 나 자신을
올바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렵니다
주황 ― 그 타오르는 환희의 빛깔로
새해에는
내게 오는 시간들을 성실하게 관리하고
내가 맡은 일들에는
인내와 정성과 책임을 다해
알찬 열매 맺도록 힘쓰겠습니다
노랑 ― 그 부드러운 평화의 빛깔로
새해에는
누구에게나 밝고 따스한 말씨
친절하고 온유한 말씨를 씀으로써
듣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지혜로운 매일을 가꾸어가겠습니다
초록 ― 그 싱그러운 생명의 빛깔로
새해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힘들게 하더라도
절망의 늪으로 빠지지 않고
초록빛 물감을 풀어 희망을 짜는
희망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파랑 ― 그 열려 있는 바다빛으로
새해에는
더욱 푸른 꿈과 소망을 키우고
이상을 넓혀가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삶의 바다를 힘차게 항해하는
부지런한 순례자가 되겠습니다
남색 ― 그 마르지 않는 잉크빛으로
새해에는
가슴 깊이 묻어둔 사랑의 말을 꺼내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색의 뜰을 풍요롭게 가꾸는
창조적인 기쁨을 누리겠습니다
보라 ― 그 은은한 신비의 빛깔로
새해에는
잃어버렸던 기도의 말을 다시 찾아
고운 설빔으로 차려입고
하루의 일과를 깊이 반성할 줄 알며
감사로 마무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 거듭 강요하기보다는
조용한 실천으로 먼저 깨어 있는
침묵의 사람이 되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무지개 빛깔로
새로운 결심을 꽃피우며
또 한 해의 길을
우리 함께 떠나기로 해요
새해엔 산 같은 마음으로(신년 1) / 이해인
언제 보아도 새롭게 살아 오는
고향 산의 얼굴을 대하듯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또 한 번의 새해
새해엔 우리 모두
산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리
산처럼 깊고 어질게
서로를 품어 주고 용서하며
집집마다 거리마다
사랑과 평화의 나무들을 무성하게 키우는
또 하나의 산이 되어야 하리
분단의 비극으로
정든 산천, 가족과도 헤어져 사는
우리의 상처받은 그리움마저
산처럼 묵묵히 참고 견디어 내며
희망이란 큰 바위를 치솟게 해야 하리
어제의 한과 슬픔을
흐르는 강물에 띄워 보내며
우리도 산처럼 의연하게
우뚝 서 있어야 하리
우리네 가슴에 쾅쾅 못질을 하는
폭력, 전쟁, 살인, 미움, 원망, 불신이여 물러가라
삶의 흰 빛을 더럽히는
분노, 질투, 탐욕, 교만, 허영, 이기심이여 사라져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디선가 흰 새 한 마리 날아와
새해 인사를 건넬 것만 같은 아침
찬란한 태양빛에 마음을 적시며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하리
남을 나무라기 전에
자신의 잘못부터 살펴보고
이것 저것 불평하기 전에
고마운 것부터 헤아려 보고
사랑에 대해 쉽게 말하기보다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날마다 새롭게 깨어 있어야 하리
그리하여 잃었던 신뢰를 되찾은 우리
삼백 예순 다섯 날 매일을
축제의 기쁨으로 꽃피워야 하리
색동의 설빔을 차려 입은 어린이처럼
티없이 순한 눈빛으로
이웃의 복을 빌어 주는 새해 아침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대하듯
언제 보아도 새롭고 정다운
고향 산을 바라보며 맞이하는 또 한 번의 새해
새해엔 우리 모두
산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리
언제나 서로를 마주 보며
변함없이 사랑하고 인내하는
또 하나의 산이 되어야 하리
새해 기도 / 도종환
새해 첫 아침 햇살은
창문을 열고 기지개를 켜는 아이의
밝은 얼굴 위에
제일 먼저 비치게 하소서.
숲의 나뭇가지 하나하나에
햇빛이 골고루 내려앉듯
이 땅의 모든 아이들 빛나는 눈동자 위에
맑게 출렁이는 가슴 위에
빠짐없이 내리게 하소서.
골짜기 깊은 곳에도
손잡을 곳 하나 없는 바위 벼랑에도
늪가의 젖은 풀 위에도
아침 햇살이 환하게 번져 가듯
그늘지고 가파르고 습한 곳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도 새날의 햇볕이
따뜻한 걸음으로 찾아가게 하소서.
산과 개울과 숲 어디에나 내리는 햇빛이지만
산은 산대로
개울과 나무는 개울과 나무대로
저마다 저를 위해 햇빛이 와 있다고 믿듯
아이들도 늘 저를 위해 준비된
사랑이 따스하게 떠오르고 있다고
믿게 하소서.
그 사랑과 따뜻함으로
아이들 몸에서 푸른 잎이 돋아나고
때가 되면 열매가 자라고
꽃이 피어나게 하소서.
그렇게 자란 튼튼한 뿌리로
무너지는 언덕을 지키고
그렇게 크는 싱그러운 힘으로
막힌 물줄기를 열어가게 하소서
새해엔 새 마음의 눈으로 / 이정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새해 새 아침에
우리는 그 길을 새로이 가리라.
세상에 뜻 아닌 것이 없고,
새롭게 보면
새 소식이 아닌 게 없으리라.
세상에 새 것만이 있는 게 아니라
새 눈으로 보면
낡은 것도 새 것이 되리라.
새해엔 새 눈으로
천사처럼 착하고 아름답게
새 마음의 눈으로 다시 보리라.
새 마음 새 뜻으로
너와 내가 소통하리니,
우린 서로에게 새 소식이 되리라.
새해에 새 길을 나서며
새롭고 뜻 있는 사람이 되리니,
새해에는 더욱 서로 사랑하리라.
연하카드 / 황인숙
알지 못할 내가
내 마음이 아니라 행동거지를
수전증 환자처럼 제어할 수 없이
그대 앞에서 구겨뜨리네
그것은, 나의 한 시절이 커튼을 내린 증표
시절은 한꺼번에 가버리지 않네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물, 한 사물
어떤 부분은 조금 일찍
어떤 부분은 조금 늦게
우리 삶의 수많은 커튼
사람들마다의 커튼
내 얼굴의 커튼들
오, 언제고 만나지는 사물과 사람과
오, 언제고 아름다울 수 있다면
나는 중얼거리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신부님이나 택시 운전수에게 하듯
그대에게
축, 1월!
새해에는 이런 사람이 / 이해인
평범하지만
가슴엔 별을 지닌 따뜻함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신뢰와 용기로써 나아가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해 주십시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월의 보름달만큼만 환하고
둥근마음 나날이 새로 지어 먹으며
밝고 맑게 살아가는
[희망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너무 튀지 않는 빛깔로
누구에게나 친구로 다가서는 이웃
그러면서도 말보다는
행동이 뜨거운 진실로 앞서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오랜 기다림과 아픔의 열매인
마음의 평화를 소중히 여기며
화해와 용서를 먼저 실천하는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날이 그날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새롭게 이어지는 고마움이 기도가 되고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아 지루함을 모르는
[기쁨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새해엔 / 최계락
무거운 얼음장 밑을
그래도
냇물은
맑게 흐른다.
그렇다
찬바람을
가슴으로 받고 서서
오히려
소나무는
정정한 것을.
새해엔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어둡고 답답한
땅 속
깊은 곳에서도
지금쯤
새 봄의 기쁨을 위해
제 손으로 목숨을 가꾸고 있을
꽃씨.
그렇다
언젠가
이른 아침을
뜨락에 쏟아지던
그
눈부신
햇살처럼
나도
새해엔
그렇게 살아야지.
희망하는 기쁨 / 홍수희
침묵하는
겨울 산에
새 해가 떠오르는 건
차디찬
바다 위에
새 해가 떠오르는 건
하필이면
더 이상은 꽃이 피지 않을 때
흰 눈 나풀거리는 동토凍土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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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해가 떠오르는 건
가장 어두운 좌절 깊숙이
희망을 심으라는 것
지금 선 그 자리에서
숨어있는 평화를 찾으라는 것
희망하는 기쁨,
새해 첫날이 주는 선물입니다
작은 지붕 위에 / 전봉건
작은 지붕 위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창틀 속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장독대에 내리는 것도 눈이고
눈 눈 눈 하얀 눈
눈은 작은 나뭇가지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오솔길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징검다리에도 내리고
새해 새날의 눈은
하늘 가득히 내리고
세상 가득히 내리고
나는 뭔가 할 말이 있을 것만 같고
어디론가 가야 할 곳이 있을 것만 같고
한 사람 만날 사람이 있을 것만 같고
장갑을 벗고 꼭 꼭 마주 잡아야 하는
그 손이 있을 것만 같고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 / 이해인
첫눈, 첫사랑, 첫걸음
첫 약속, 첫 여행, 첫무대
처음의 것은
늘 신선하고 아름답습니다.
순결한 설 레임의 기쁨이
숨어있습니다.
새해 첫날
첫 기도가 아름답듯이
우리의 모든 아침은
초인종을 누르며
새로이 찾아오는 고운 첫 손님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의
나팔꽃 같은 얼굴에도
사랑의 무거운 책임을 지고
현관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기침소리에도
가족들의 신발을 가지런히 하는
어머니의 겸허한 이마에도
아침은 환히 빛나고 있습니다
새 아침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밤새 괴로움의 눈물 흘렸던
기다림의 그 시간들도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
듣는 것은 씨 뿌리는 것
실천하는 것은 열매 맺는 것' 이라는
성 아오스딩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가 너무 많이 들어서
걷돌기만 했던 좋은 말들
이제는 삶 속에 뿌리내리고 열매맺는
은총의 한해가 되게 하십시오
사랑과 용서와 기도의 일을
조금씩 미루는 동안
세월은 저만치 비켜가고
어느새 죽음이 성큼 다가옴을
항시 기억하게 하십시오
게으름과 타성의 늪에 빠질 때마다
한없이 뜨겁고 순수했던
우리의 첫 열정을 새롭히며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
다시 살게 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하는 일
정을 나누는 일에도
정성이 부족하여
외로움의 병을 앓고 있는 우리
가까운 가족끼리도 낯설게 느껴질 만큼
바쁘게 쫓기며 살아가는 우리
잘못해서 부끄러운 일 많더라도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말고
밝은 태양 속에 바로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길 위의 푸른 신호등처럼
희망이 우리를 손짓하고
성당의 종소리처럼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는 새해아침
아침의 사람으로 먼길을 가야할 우리 모두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
다시 살게 하십시오
새해 새 아침 / 이해인
새해의 시작도
새 하루부터 시작됩니다
시작을 잘 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겸손히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아침이여
어서
희망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사철 내내 변치 않는
소나무빛 옷을 입고
기다리면서 기다리면서
우리를 키워온 희망
힘들어도 웃으라고
잊을 것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희망은 자꾸만 우리를 재촉하네요
어서
기쁨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오늘은 배추밭에 앉아
차곡차곡 시간을 포개는 기쁨
흙냄새 가득한
싱싱한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네요
땅에 충실해야 기쁨이 온다고
기쁨으로 만들 숨은 싹을 찾아서
잘 키워야만 좋은 열매 맺는다고
조용조용 일러주네요
어서
사랑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언제나
하얀 소금밭에 엎드려
가끔은 울면서
불을 쪼이는 사랑
사랑에 대해
말만 무성했던 날들이 부끄러워
울고 싶은 우리에게
소금들이 통통 튀며 말하네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여기저기 팽개쳐진 상처들을
하얀 붕대로 싸매주라고
새롭게 주어진 시간
만나는 사람들을
한결같은 따뜻함으로 대하면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
눈부신 소금꽃이 말을 하네요
시작을 잘 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설레이는 첫 감사로 문을 여는 아침
천년의 기다림이 비로소 시작되는
하늘빛 은총의 아침
서로가 복을 빌어주는 동안에도
이미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새해 새 아침이여
새해엔 / 최계락
무거운 얼음장 밑을
그래도
냇물은
맑게 흐른다.
그렇다
찬바람을
가슴으로 받고 서서
오히려
소나무는
정정한 것을.
새해엔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어둡고 답답한
땅 속
깊은 곳에서도
지금쯤
새 봄의 기쁨을 위해
제 손으로 목숨을 가꾸고 있을
꽃씨.
그렇다
언젠가
이른 아침을
뜨락에 쏟아지던
그
눈부신
햇살처럼
나도
새해엔
그렇게 살아야지.
새해 아침에 / 이해인
창문을 열고
밤새 내린 흰 눈을 바라볼 때의
그 순결한 설레임으로
사랑아,
새해 아침에도
나는 제일 먼저
네가 보고 싶다
늘 함께 있으면서도
새로이 샘솟는 그리움으로
네가 보고 싶다
새해에도 너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가장 정직한 시를 쓰고
가장 뜨거운 기도를 바치겠다
내가 어둠이어도
빛으로 오는 사랑아,
말은 필요 없어
내 손목을 잡고 가는 눈부신 사랑아,
겨울에도 돋아나는
내 가슴 속 푸른 잔디 위에
노란 민들레 한 송이로
네가 앉아 웃고 있다
날마다 나의 깊은 잠을
꿈으로 깨우는 아름다운 사랑아
세상에 너 없이는
희망도 없다
새해도 없다
내 영혼 나비처럼
네 안에서 접힐 때
나의 새해는 비로소
색동의 설빔을 차려입는다
내 묵은 날들의 슬픔도
새 연두 저고리에
자주빛 끝동을 단다
새해 새아침은 / 이하
새해 새아침은
깊고 푸른 소금의 나라에서 온다.
천년 그리고 한 천년
바다 너머 깊은 바다 속에서
절여둔 아침 해는
한 해 하나씩 새해 새날에만 내민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갈매기보다 수선한 그물에 담고
바닷가에 온 도회 사람은
바다보다 네모난 액자에 건다.
거긴 소금처럼 하얀
순수가 있고
거긴 내내, 새날 새아침 해에게 받은
맑고도 환한 꿈이 출렁인다.
때로 삶이 생활보다 지칠 때
푸른 소금의 나라에서 보내 준
싱싱한 꿈이 말갛게 파도에 씻긴 채 반긴다.
새해 새아침은
맑고 푸른 숲의 나라에서 온다.
산 너머 너머 구름보다 높은 산 숲 속에서
천년 쯤 그리고 또 한 천년 동안은
이슬만 먹고 자란 아침 해는
한 해 하나씩 새해 새날에만 나온다.
들녘에 사는 사람들은
산까치보다 수선한 지게에 담고
새벽 산정에 오른 도회 사람은
산마루보다 첩첩한 사진첩에 넣어둔다.
거긴 숲을 닮은 순결이 있고
그래도 거긴, 늘
새날 새아침 해에게 빌어둔
퍼덕이는 소망이 일렁인다.
때로 어둠이 힘겨운 가로등 아래
피곤한 등을 기댈 때
푸른 숲의 나라에서 보내 준
퍼덕이는 소망 하나
몇 무리의 솔숲을 지나온 바람을 타고
낮아만 가는 어깨를 다독인다.
새해 새날 아침, 붉은 해는
사람마다 하나씩 푸르게 뜬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산동네 바다동네에서도
이 날만은 꼭 푸르게 떠오른다.
새해를 향하여 / 임영조
다시 받는다
서설처럼 차고 빛부신
희망의 백지 한 장
누구나 공평하게 새로 받는다
이 순백의 반듯한 여백 위에
무엇이든 시작하면 잘될 것 같아
가슴 설레는 시험지 한 장
절대로 여벌은 없다
나는 또 무엇부터 적을까?
소학교 운동회날 억지로
스타트 라인에 선 아이처럼
도무지 난감하고 두렵다
이번만은 기필코.....
인생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건강에 대하여
몇 번씩 고쳐 쓰는 답안지
그러나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재수인가? 삼수인가?
아니면 영원한 未知修인가?
문득 내 나이가 무겁다
창문 밖 늙은 감나무 위엔
새 조끼를 입고 온 까치 한 쌍
까작까작 안부를 묻는다, 내내
소식 없던 친구의 연하장처럼
근하 신년! 해피 뉴 이어!
신년시 / 김영환
새해에는 흐르는 강 흐르게 하고요
우리들 고개 들어 먼 산 바라 봐야죠
햇살 따사로운 들녁
침묵의 걸음걸이로 다가가
떼굴떼굴 이슬처럼 풀잎 위에
누우면 어때요
새해에는 날리는 바람 날리게 두고요
우리들 야윈 손 꼭 잡으면 어때요
우리들 힘찬 발걸음 모으면 어때요
어머니가 계시기에(신년 2) / 이해인
새해 첫날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면
한 마리의 학이
소나무 위에 내려앉듯
우리 마음의 나뭇가지에도
희망이란 흰 새가 내려와
날개를 접습니다
새로운 한 해에도
새로운 마음으로
당신과 함께
먼 길을 가야겠지요?
어머니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신 당신과 함께
순명의 길을
침묵 속에 숨어 사신 당신과 함께
겸손의 길을
우리도 끝까지 가게 해 주십시오
숨차고 고달픈 삶의 여정에도
어머니가 계시기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계시기에
우리는 아직도 넘어지지 않고
길을 갑니다
예수의 십자가 아래서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는 어머니
마음에 가득 낀
욕심의 먼지부터 닦아내야
주님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겠지요?
죄없이 맑은 눈빛으로
세상과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어린이처럼 되어야만
하늘이 잘 보임을
새로이 깨우치는 새해 아침
당신의 사랑 안에
우리 모두 새로이 태어나게 하십시오
사랑 안에서가 아니면
그 누구도 새로워질 수 없음을
조용히 일러주시는 어머니
어머니가 계시기에
우리는 오늘도
희망이란 새를 날리며
또 한 해의 길을 갑니다
새해 아침에 / 위영남
삼백예순다섯 개의
해를 숨겨 놓고
그 속에
우리들의 꿈도 묻어 놓고,
'새해엔 당신의 소망을
이루어 보셔요.'
조용히 속삭여 주는
삼백예순다섯 개의
까만 꽃씨들.
새해 달력 앞에 서면
파도처럼 일렁이는 가슴은
희망이 꿈틀거리는
아침 바다.
우리들 마음 속 꽃밭에도
삼백예순다섯 개의
꽃씨를 심고
둥근 해가 떠오를 때마다
곱게 곱게 피어날
우리들의 새해 꿈.
해님도 껍질을 벗는다 / 이국재
해님도
날마다 껍질을 벗는다.
아침마다
검푸른 동해바다에
두둥실 두리둥실
떠오르는 해님은
어제의 해님이 아니다.
너른 바다에
반짝반짝 수없이 부서지는
고깃비늘 같은
눈부신 해님의 껍질들을 보라.
초록빛 잎사귀마다
반짝반짝 수없이 부서지는
은빛가루 같은
찬란한 해님의 껍질들을 보라.
새해 아침엔
새 해님이 솟아오른다.
새 기쁨, 새 희망을 안고
수천 수만 개의 해님들이
일제히 치솟아 오른다.
새해맞이 해님 / 김진향
섣달 그믐밤
까만 어둠 속에서
달그락 달그락
햇살을 짠다.
지난해 반성하며
미운 마음
한 줌 걷어내고
베풀어
즐겁던 마음
황금빛으로 짜 넣고
다음 해로 미룬 일
오색실로 무늬 새겨
붉고 둥근 수레에
실어 두었다가
새해 아침
환하게
내다 걸려고
깜깜한 그믐밤에
햇살을 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