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관한 시모음



봄의 유혹      /신진식



내 어릴적에는 겨울이 좋았다

눈 밭을 뒹굴고

소나무 다듬어 철사줄 얽어맨

스케이트를 타고 깔깔대며 놀았다

이젠 싫다

마음도 시린데 너까지 추우니



30대 초반에는 여름이 좋았다

이글대는 태양이 좋았고

달 그늘 아래

밤 새는줄 모르고 한없이 나누며

부딪치는 우정이 좋았다

이젠 싫다

끈적거려 싫고

쭉쭉 빠진 여인네의

관능미를 보노라면

시샘이 나서 싫다



50대초반에는 가을이 좋았다

현란한 다풍이 좋았고

몽실몽실한 열매 들이 좋았다

이젠 싫다

떨어지는 낙엽을 붙잡을수 없으니

늦가을 앙상한 가지들은 더욱 싫다



희끗희끗한 반백이 되니 봄이 좋다

비집고 용트림하는 새싹이 좋고

딱딱한 껍질을 박차고 나오는

숨 막히게 다가오는

잎새의 향기 때문에



뛰어가 나누고 싶은

봄의 유혹



그래서 봄이 좋다





봄의 소리        /(宵火)고은영



흰 눈이 듬성듬성 얼어 있던

유년의 산자락에

삶을 위해 사랑을 위해

환희와 행복을 위해

고고하게 피어있던 노오란 수선화

그 짙은 향기로 여울지던 기억도

추억의 한 장으로 남은

빛바랜 조각이다



이 어둠의 꼬치에서

빛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면

겨울은 세월의 바깥으로 소멸하고

냉기를 앓던 내 가슴에도

부어오른 심장에도 설렘의 밀물로

야금야금 물오르는 소리 소리





봄 따라온 님     /김종덕



말없이 가을 등에 업혀

기약 없이 가신님



노란 손수건 보면 올 새라

산수유 언덕에 올라 봅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들이

토라진 님의 얼굴과 닮아 있었는데

산수유 꽃술 속에 님 모습 아련합니다



말없이 떠남은

돌아온다는 뜻이었겠지요



산동에는

모두 님 잃은 님들이

님 찾으러 온 것 같습니다



모두

꽃잎에 입 맞추는 눈물 빛이

너무도 고와 보입니다



눈에도 세월이 흘러

님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님께서

내 곁에 와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가 있어 행복합니다



* 산동 :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산수유 마을.





봄이 오면        /김기원



십이 열차 과함 소리 시끄러운 부산쇠마당

해 뜨기 전에 자갈치 아지매는

게기 사라고 달 잡는 목소리 깨깨 지르고

꼬부내이 골목집을 이리 저리 너무시 본다



그마 늦잠이 깬다 이 이 그 년 이년아

쇠이기 아퍼 아침 나잘에 잠 좀 자뻐잘라 했는데

미천 년아 네년은 잠도 자뻐저 아니자나

새벽 나잘부터 죽는 지상을 하고 개부알 앓는 소리

내 좀 근디리지 마라

입이 꼴려 모독티리 잡아 먹고 싶다



부산 영도 갯가 메려치 뱃고동만 불면

가시나 년은 얼굴 판때기에 분칠 좀하고

궁대만 짤랑거리고

머슴아 새끼는 기가 빠져 말라져 지리 죽겠다

오새 봄날에 머슴아 놈 간 다 녹히고 빼인다



자갈치 아재매야 게기 판때기 몽땅 내다 버리라

누구 먹이 살릴라고 날도 안샌는데 패악을 치노

야, 이년아 가레이 꼬장주 벌릉거리면 호양년 되에

별놈이 인나 쫓방아 잘 징우면 붙어 사는 거라





봄날은 간다      /김행숙



오른손에 있는 것을 왼손에 옮길 수 있지

우리는 그렇게 흔들흔들 바구니를 손에 들고 산책을 해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들로만 채우고 싶어

오늘은 4월의 금빛 햇살이 넘실거리네

달걀 껍질 같은 것

막 구운 빵 냄새 같은 것

실오라기가 남아 있는 단추 같은 것, 눈동자 같은 것,

그것은 누구의 가슴을 여미다가 터졌을까

누구의 가슴이든 실금 같은 진동이 있지

오늘 저녁에는 네 가슴에 머리를 얹어봐야지

신기해, 왼손에 있는 것을 오른손에 옮길 수 있다는 것

내 손에 있는 것을 네 손에 옮길 수 있다는 것

바구니는 넘치는데 우리는 점점 더 가벼워지네

바구니가 우리를 들고 둥둥 떠가는 것 같네





봄의 연가        /박선옥



햇살 가득 품고

연초록빛으로 담쟁이 꽃

하늘 끝까지 간다아닙니꺼



꽃바람에 화르르

떨고 있는 가냘픈 새순

길 가는 나그네 발길 잡으며



수줍은 새악시 마냥

낭군을 애타게 기다리며

아픈 사연 고운 사연



그리움으로 물들어

여울처럼 번지는 봄볕

지나치는 가슴마다

각시처럼 고운 미소

아름드리 피어났다 아입니꺼





봄날의 그리움      /세영 박광호



지난밤엔 비바람 몰아치더니

눈부신 한낮,

밉던 먹구름도

창공에 목화송이를 피우고

연초록 살아나는 머~언 산엔

봄꽃들로 얼룩이 더욱 지네...



목련꽃 벚꽃이 펼쳐놓은

꽃잎의 카펫위로

따스한 봄볕이 내려앉는 정원,

긴 삼동의 풍상에도 굴하지 않고

희망을 피어낸 꽃들과 새싹들



그러기에

품겨나는 향기도 짙은 봄날이

아련한 그리움 보듬는가?



오늘은 그 임이 더욱 그립다.





더디게 오는 봄      /박인걸



당신은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지 않고

여러 번 망설이다.

아주 더디게 다가왔지.



어떤 때는 토라지고

차갑게 냉소 짓다

어느 날은 환한 미소로

내 마음을 흔들었지.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일부러 차갑게 대할 때

한 없이 야속했지만



천천히 마음 문을 열고

애태우며 다가온 당신이

결코 얄밉지 않은 건

너무나 아름다워서입니다.





그리운 봄     /정태중



누가 그러더라 봄엔 물푸레 가지 흔들거리면

떠난 기억들 다시 온다고



꽃이 피는 이유를 묻거든

어떤 나절의 고통을 나누려는 것이라는데

그러게 말이야

광대나물꽃에 날아든 벌이며 나비며

저들의 날갯짓 조곤히 보면

한평생 광대로 산 내 모습 같아야



솔개 한 마리 높이 날고

종달새 쪼로롱 청보리밭 기웃기웃

그러게 말이야

그리운 봄은 그리움에 갇혀

다시 오지 않아야



누가 그러더라 봄엔 물푸레 가지 흔들거리면

떠난 기억들 봄비로 돌아온다고.





봄이 오는 길    /임숙현

따사로운 햇살에
시련을 견디며
피워내는 꽃망울

고통스러웠기에
느낌으로 만나는
사랑하는 마음에

이슬처럼 맑은
사랑의 속삭임
그리움 품고

기쁨이고저
세월의 다리를 건너
한마음 닿으려 하니

마음에서 오는 생각
기쁨으로 이어져
사랑으로 아름다울 수 있기에

초록빛 싹 틔우는 가슴
마음 적셔오는 따뜻함에
조용히 미소 집니다





봄의 위치           /박유동



개울가 언덕 밑으로 걸어가니

어제같이 눈이 두텁게 덮이었었는데

오늘은 가뭇없이 흔적도 없네

눈석임물 기름진 풀밭에

언제 풀잎이 파랗게 올라왔을까

더러는 한 뼘이나 쑥쑥 자랗네



봄은 훈훈한 남풍에 밀려오고

먼 산비탈에 아지랑이 아물아물

봄 아가시 진달래꽃 들고 온다는데

어찌 눈석임물 금방 녹은 얼었던 땅에

봄의 새싹이 저렇게 두둑이 돋았느냐

봄의 싱그러운 향기가 물씬 풍기네



누가 봄은 아직 남도 끝에 머문 다더냐

겨우내 대지를 덮었던 눈 이불 재끼고

바로 땅 속에서 봄이 떠들고 나왔잖으냐

원래 봄도 눈 덮인 땅 속에 품고 있었나보네

바라보면 비바람 설한풍 모진 세월 속에서도

사랑하는 님은 언제자 내 가슴 속에 있었듯.....





봄처녀        /장진순



해산의 진통이

숲으로 번져가고

어둠을 사르는

취기 오른 진달래

창가 아가씨의 가슴에 불 지른다

-

어느새 그녀는

화사한 차림으로

꽃비 맞으며 공원을 맴돌고

따라오는 이도 없는데

자꾸만 뒤 돌아본다

-

도심에 불 켜지고

제과점, 커피 잔 마주앉아

음악에 젖어드는 아가씨

-

허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핸드백을 침대에 던져놓고

옆에 쓰러져 눕는다.

초점 없이 한곳을 바라보다가

누가 부른 것처럼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려다본다.

-

TV를 켰다가

셀 폰을 들었다가

베개를 끌어안고

이유 없이 흐느끼다가

어느새 꿈속을 거니는 ...





봄빛 창가에서     /김인숙



따스한 봄빛 내린

창가에서

당신을 생각합니다



싹틔우고 꽃피운

고운 자리마다

어제 내린 비로

그리움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겨울부터

설레는 봄빛을

품으신 그대

내 가슴속 봄 길로

걸어오시는지



숨 쉴 때마다

그대의 향기 나는 온기가

쓸쓸한 심장 속에

붉은 꽃망울을

톡 톡 터트립니다





봄감기     /이외수

겨울에 얼어 죽은 가래나무 빈 가지에
겨울에 얼어 죽은 가래나무 새 한 마리
날아와 울 때까지
봄밤에도 몇 번이나 눈이 내리고
더러는 언 빨래들 살을 부비며
새도록 잠을 설치는 소리

황사바람이 불고 흐린 산들이 떠내려가고
다음 날 이마 가득 금줄무늬로 햇빛 어리어
문득 그리운 이름 하나 떠올리면
살아 죄없을 사람들은 이미 죽어서 풀잎이 되고
봄감기 어지러운 머리맡
어느 빈 터에선가
사람들 집짓는 소리
집짓는 소리





봄을 듣는다      /윤무중

지난 밤 만났던 연인이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매서운 적막을 날리더니
마음 활짝 열어 미소를 던진다

대지는 촉촉한 기운을 품고
온기가 나무에 스며들며
서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얼굴 마주하며 눈빛 건넨다

오늘도 산새 한 마리 봄 찾아
둥지 속에 햇살을 가두고
여기저기 움트는 초록빛으로
내 곁에 다소곳한 봄을 듣는다





추운 봄      /나호열  

소리없이 진군한 소문은
곳곳에 봄을 퍼뜨려놓고
철없는 아이들처럼
개나리로 피어 있다
소문을 믿고
내의를 벗은 우민들은
무더기로 모여 떨고
정부는 서둘러 독감주의보를 발표했다
수상한 공기를 조심하시오
군중들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시오
덧난 상처들이 부스럼꽃으로
피어 있는 동안
사람들은 몸 속에 머리를 처박고
거북이처럼
터널을 지나갔다
추운 봄이었다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호열 시 모음  (1) 2023.06.04
신년시 모음  (3) 2023.01.06
송년 시모음  (1) 2023.01.06
단풍시 모음  (0) 2022.12.13
수선화 시모음  (0) 2022.10.2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