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해궁(普海宮)

 

마음의 본심은 본래 지혜와 복덕이 원만 구족하여 부족함이 없으므로 마음 바다 속 궁전에 보장함이라 하여 보해궁이라 하여 항상 주인공이 자재하여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2, 보명심(普明心)

 

 마음 광명이 우주 공간에 두루 원만하여 어두운 곳이 없어 항상 광명을 발하여 번뇌인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하여 마음이 광명을 발하여 보배라 한다.

 

 

3, 법수해(法水海)

 

 마음 진리의 말씀인 부처님의 말씀이 바다 물처럼 천만강 물의 오염을 분별이나 싫어함이 없이 받아줌으로 바다를 일미해(一味海)라 하고, 우리가 신구의(身口意) 몸․입․뜻으로 싫어함이 없이 진리의 바른 행위(業)를 실천하는 것이 불 보살 성인의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 법수해이다.

 

4, 법왕심(法王心)

 

마음의 주인공은 부처님이시다. 부처님의 말씀(敎)과 마음(禪)의 가르침으로 배우고 실천하여, 나의 주인공을 찾아서 수처작주(受處作主) 곳마다 주인공이 되라는 것이다.

 

5, 일심해(一心海)

 

마음을 바다에 비유한 것으로 바다 같은 마음으로 사라는 것이다. 바다는 파도가 없지만 바람으로 인연하여 파도가 일어나면 바다 면에 형상을 나툴 수 없는 것 같이, 마음은 고요하여 신통 묘용이라 하지만 중생이 경계로 인하여 인식하므로 번뇌가 용솟음 친다. 파도 없는 바다처럼, 번뇌 없는 마음으로 사라는 것이다.

 

 

6, 불이성(不二性)

 

산천 초목이 나 아닌 것이 없으므로 나와 더불어 하나인 것으로 나란 생명이 무시겁으로 내려오면서 형상과 이름의 전환을 헤아릴 수 없으므로 현재의 자신도 고정적인 것이 없이 변하고 있는 것으로 긴 시간에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보면 형상으로 아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름과 형상이 없으므로 너와 내가 둘 아닌 하나인 것으로 모든 삼라만상이 분별이 없는 하나의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삼라만상이 마음을 떠나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므로, 불이성은 둘 아닌 하나인 성품으로 하나라고도 이름 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인 것이다.

 

 

7, 삼정심

 

신구의(身口意)로 몸 입 마음의 행위를 말한다. 삼업(三業)을 십선(十善)과 십악(十惡)으로 말하지만 십섭(十善)을 삼정(三)이라 하여, 바른 일은 불살생(不殺生)의 생명존엄이고, 불투도(不偸盜)는 훔치지 않는 것으로 보시를 실천하고 불사음(不邪淫)은 질서인 윤리 법도를 몸으로 바른 일을 실천하라는 것이고, 바른 말은 망어(妄語), 기어(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를 진실한 말로 실천하라는 것이고, 바른 뜻은 탐애(貪), 진에(瞋), 어리석음(癡)으로 마음을 병들게 하는 독(毒)이라 하지만 자비심으로 잘 수행하면 십선이고 번뇌를 일으키면 십악이라 하여 선악의 중도(中道)가 삼정(三)으로 바름을 스스로 실천하므로 성인의 마음으로 가피력을 성취한다.     

 

 

8, 법관심(法觀心)

 

항상 진리 마음으로 관찰하므로 부처님 마음을 잊어버리지 마라는 것이고 깬 마음으로 사라는 것이다. 순간 순간의 아는 마음이 일어나면 바로 번뇌인 것이고 아는 마음을 놓아버리고 여여심(如如心)으로 가고 오는 시비 생사가 없는 마음인 본성으로 돌아 갈 수 있는 마음이 법관심이다.

 

 

9, 견명심(見明心)

 

본심의 밝음으로 바르고, 고르고, 맑음으로 지혜와 복덕이 본래 구족한 마음을 보라는 것으로 항상 이 마음을 실천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견명심에서 보면 부처님 마음이나 중생의 본 성품은 둘 아닌 하나인 것으로 차별이 없지만, 중생이 스스로 생사심(生死心)을 일으킴으로, 이 마음을 비우기 위하여 수행하고 염불하고 참선하는 것이다.

 

 

10, 보덕심(普德心)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을 보덕심이라 하고 마음의 자비심으로 생명의 소리에 응하시는 중생의 어머님이시다. 관세음보살님은 32응신으로 근기에 따라서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부처님 몸으로도 변화하시고 심지어 나찰 귀신으로도 변화 하시여 중생을 위하시는 오직 자비 화신으로 답답한 중생이 나무 관세음보살님하고 한 마디 염불만 할 수 있다면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마침 핏덩이 아이가 어머님을 만나는 것과 같아 오로지 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11, 무진해(無盡海)

 

바다 포옹력은 다함이 없는 것이 천만 갈래의 샛강들의 물이 바다를 향하여도 바다는 다 함이 없이 싫어함이 없는 것이 마침 성인의 마음이 중생을 싫어함이 없이 구제함이라 시간의 미래가 다함이 없는 거와 같아서 중생의 원력이 다함이 없는 것이라, 다 함이 없는 무진의(無盡意)마음으로 결국은 본성을 찾아서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12, 수월심(水月心)

 

 물이나 달은 다 마음을 비유한 말로 수월심은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다. 관음은 자비심으로 체(體)을 삼아 모든 생명에 생명력이므로 물, 흙, 공기는 생명에 힘인 것으로 수월심은 자비심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13,  광명심

 

광야에 죽고 사는 수레바퀴에서 돌고 돌적에 윤회하는 원인의 욕망이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인 것을 아는 마음은 광명심인 지혜의 마음으로 탐진치심(貪嗔癡心)에서 해탈해 광명심으로 살라는 것이다.

 

 

14, 도솔천(兜率天)

 

부처님 말씀에 도솔천은 욕계(欲界) 6천(天)으로 도리천 위에 도솔천으로 부족함이 없는 하늘 나라로 도솔은 우리말로는 만족을 말하고 정토(淨土)라 한다. 정토는 살생이나 억압의 시비 선악이 없고 항상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중생들은 항상 정토에 가기를 발원하면서 자신이 살기 위하여 살생하고 욕망으로 살아가므로 잘못된 전도심으로 번민하고 정토는 중생들이 스스로 만들어야 할 자비심을 실천하여야 정토가 나타나므로 항상 도솔천의 족한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라는 것이다.

 

 

15, 일광화(日光華)

 

태양처럼 밝음을 말한다. 태양의 빛으로 생명이 살아가려면 이글거리는 태양의 강한 열은 생명이 살지 못하고 달의 찬 기온으로도 생명은 살지를 못하지 더움과 찬 기온의 만남으로 따스한 기온으로 변하면 생명은 잘 사는 것이다. 중생의 욕망이 많으면 고통의 원인이라 즐거움이라 할 수 없고 욕망을 절제하고 남에게 베푸는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마음이 즐거움이다. 일광화는 생명에 힘을 절제하여 더불어 사는 마음의 지혜로움이다.

 

 

16, 월광화(月光華)

 

일광화와 동일하다.

 

 

17, 대지화(大智華)

 

 큰 지혜는 부처님 마음으로 살라는 것으로 각자 스스로 지혜와 복덕이 원만하므로 부족함이 없지만 고통이고 부족함이라 하는 것은 스스로의 행위인 것으로 스스로가 만족하다 하면 만족한 것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한 알의 씨앗이 열 개의 씨앗보다는 부족하지만 한 씨앗일지라도 움이 트면 많은 열매가 맺게되는 것으로 만족이고 충만한 세상으로 더불어 나눔으로 정토가 실현되므로 한 씨앗이 썩는 희생은 모성애가 자비심으로 실천되는 것이다. 큰 지혜는 조그마한 한 씨앗의 섭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8, 청정심(淸淨心)

 

 청정심은 모든 지혜의 근원으로 형상과 이름으로 헤아릴 수 없이 죽고 살고 변화하면서 영원하게 지속되는 것은 생명력으로 청정을 말한다. 청정은 마음, 물, 공기, 흙에 주인공으로 주인공을 잊어버리면 생명력이 다한 것이다. 지혜를 학문에서 찾으려면 하지 마라, 학문은 지혜의 길을 인도하는 안내문이므로 집착하지 말고 마음, 공기, 물, 흙을 청정하게 할 줄을 알면 지혜는 스스로 성취되는 것이다.

 

 

19, 여래장(如來藏)

 

 중생의 마음속에 지혜와 복덕이 충만한 보배 창고로 아직 나타나지 않은 감추어진 중생심 가운데 있는 부처님의 마음을 말한다. 이 보배 창고는 다 함이 없고 사용하면 사용 할 수록 증장함으로 미묘한 것이라 중생의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20, 보리심(菩提心)

 

 깨달음의 마음으로 깬 마음이고 산 마음으로, 모든 생명들에 싫어함이 없어 스스로도 싫어함이 없고 경계 대상의 자연에도 싫어함이 없는 것이다. 나와 남이 하나인 것으로 아픔이 나와 남이 없고 중생들이 아프면 내가 아픈 것이고 중생들이 즐거워하면 내가 즐거운 것으로 한 개인이 잘 산다고 하여 잘 사는 것이 아닌 것은 마침 물이 청정하면 풀, 나무, 짐승, 사람, 등 모든 생명이 잘 사는 것이라, 보리심은 삼라만상을 깨침으로 나타나지, 뭇 생명은 생명으로 생명은 형상과 이름으로 무수히 변화 속에서 생명력인 청정으로 지속되면서 산 생명력으로 지속된다. 보리심인 깨침은 영원한 산 생명력이다.

 

 

21, 정진심(精進心)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항상 변화하는 마음으로 거듭 거듭 지속한다. 생명력의 지속성은 새봄이 오면 산천 초목이 움이 트고 땅속에서 노랑의 새싹들이 숨바꼭질을 한다. 천지의 기운이 정진력으로 겨울속에 꽁꽁 얼어버린 대지가 봄의 따스한 기운으로 겨울 벌거벗은 나목이 봄의 초롱초롱한 어린 동군(東君)의 미소로 푸른 옷을 입고 꽃피고 열매 맺고 하는 자연 현상이 다 정진심으로 항상 새로운 마음이고 순간 순간의 지속성이다.

 

 

22, 인욕심(忍辱心)

 

 참고 견디는 마음은 재앙의 화를 복덕으로 전환시키는 힘이 있다. 한 번 한 번 부처님의 생각은 자신의 운명과 팔자를 탈바꿈시키는 원동력이고 마음속에 감추어진 부처님의 마음을 발굴하게 함으로 가치관을 개발하여 물질의 욕망에서 정신의 가치관으로 전환하면서 마음으로 자연을 관찰하는 힘이 생긴다. 인욕심은 산란심을 고요하게 하므로 고요한 마음은 지혜가 나타나고 고난의 세상에는 참는 것이 제일이고 참으면 원만상이 성취된다.

 

 

23, 만덕심(萬德心)

 

 마음은 만덕에 근원이라 마음을 수행하지 않고는 잘 살 수 없다. 마음이 지혜와 복덕을 갖추고 있는 근원이므로 마음을 등지고 아무리 재물이 많다고 하여도 그림자에 불가한 것이고 아무리 학식이 높다 하여도 마음을 등지고는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마음이 부처도 되고 극락도 가고 지옥도 가는 것이지, 몸은 잠긴 쉬어 가는 쉼터인 것이라, 모든 것을 몸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으로도 욕망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스스로 수행하면 복덕과 지혜는 스스로 성취되는 것이다. 남을 부려워 할 것도 없고 남을 미워할 것도 없는 것이지만 자신의 몸에 집착하여서 시비 선악 생사하는 것이라 시비 마음을 놓아버리면 바로 그 자리가 안락하고 극락이고 죽은 후에도 정토에 가는 것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극락을 바라는 마음은 어리석음이므로 만덕심의 길은 바른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24, 보리자(菩提子)

 

 보리심을 실천하는 자는 부처님의 마음을 배우는 자이고 배워서 깨달아 실천하여야 함으로 이 모두가 보리자의 발심이다. 바름을 배우고 가르치고 실천하게 도우고 봉사하는 자들이 많을 적에 더불어 사는 정토라 할 것이다. 
부처님의 아들 딸들은 항상 깬 마음으로 바른 마음을 실천하게끔 노력하고 봉사하여야 한다.

 

 

25, 법성해(法性海)

 

 법성은 마음의 본성을 말한다. 본성의 청정심이 바다와 같아서 시비심이 없고 근기에 순응하므로 삼라만상에 주인공이시다. 본래 법의 성품은 없는 것이지만 법성이란 이름으로 형상을 나투는 것이라, 법성이란 없으면 모양도 없는 것이다. 이름과 모양이 번뇌라 하지만 이름과 형상이 없이는 발심을 할 수 없다.

 

 

26, 보타심(普陀心)

 

 보타 낙가산은 관세음보살님이 항상 계시는 곳으로,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바다 변으로 해가 뜨는 동해를 바라보면서 새벽의 해맞이를 하면 해의 기운을 체험하면서 자연의 기운을 받아서 건강하고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환희심으로 웃음으로 병 없이 건강하게 수명이 장수하는 것은 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이시다. 보타심은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으로 생각 생각이 관세음보살님하면 관세음보살님이 같이 하시므로 두려운 마음이 없고 자비심으로 항상 생명에 어머님이 된다.

 

 

27, 보문심(普門心)

 

 마음이 넓기는 무변하여 끝이 없으므로 무변 허공이라 한다. 무변 중생을 제도 할 중생의 수는 헤아릴 수 없지만, 관세음보살님의 원력문은 헤아릴 수 없으므로 대자대비라 하여 먼지 같은 항하사 모래라도 비교 할 수 없다.

 

 

28, 보현심(普賢心)

 

 보현, 문수를 복덕과 지혜을 상징하여 보현과 문수를 코끼리와 사자로 표현하고 중국 국청사의 한산 습득을 문수, 보현의 화신이라 한다. 화엄경 보현 행원품에서는 보현행자를 실천 원력보살이라 하여,  불보살님들의 마음은 신구의업(身口意業)에 싫어함이 없다고 하심으로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일을 스스로 실천함으로 성인의 가피력이 성취되는 것이다.

 

 

29, 문수행(文殊行)

 

문수보살님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님으로, 모든 불보살님의 어머님이라 대승 사상에서는 말한다.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님을 이름한 것이고 지혜를 뜻으로 보면 가치관으로서 바름이고 밝음이고 맑음을 말한다. 인연법의 마음으로 관찰하면 두두 물물이 서로서로 상통하므로 시간과 공간의 차이점으로 너나하고 시비를 하고 시간과 공간을 나열하여 보면 너와 나로 분별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여 보면 너와 내가 하나인 마음으로 돌아오므로 문수의 지혜는 산천 초목를 마음으로 하나로 보는 것이다.

 

30, 연산자(蓮山子)

 

 산 형국이 연꽃 모양이라 하여 연산(蓮山)이라 하고 화산(華山)이라 하고 또는 수미산(須彌山)으로 중국 티벳트 설산에는 만년설로 연꽃 봉우리처럼 보이지만 새벽 햇살로 빛나는 화산(華山)은 마침 광명을 발하는 한 송이 찬란한 광명의 연꽃이다. 한국은 조그마한 산들이 옹기종기 모여 연꽃처럼 곁곁이 한 잎 한 잎 연꽃이 핀 산 형국을 바라보면서 연산자는 연꽃 속에 나투신 극락세계 아미타불를 친견하는 마음이다.

 

31, 해운심(海雲心)

 

 해운은 지역의 명칭으로 바다가의 안개를 생각 할 수 있다. 바다가 해변의 새벽 햇살 속에 안개의 해운은 햇살의 각도에 따라서 안개의 모양새가 사슴 같고, 호랑이 같고, 코뿔소 같고, 학 같고, 기러기 같아서 미묘한 절경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배경을 무아(無我)지경이라 한다면 해운의 배경이 무아지경의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해운심은 무아심으로 형상과 이름에 집착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32, 금연화(金蓮華)

 

 금빛 연꽃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연꽃은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 하여 연꽃 피는 곳은 시궁창이지만 연꽃은 오염에 물들지 않으므로 부처님께서 세상의 오욕락에 물들지 않으므로 진리를 성취하셨다. 연꽃을 부처님 꽃이라 한 것도 의미가 여기에 있으므로 금연화는 세상의 욕망에 물들지 말고 연꽃처럼 사라는 것이다.

 

33, 광덕심(廣德心)

 

 넓고 큰덕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자비심을 말한다. 자비심은 다 함이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무량 무변이라, 중생의 원력이 끝이 없고 부처님의 자비심이 끝이 없어 대자대비라 하여 친소가 없으나 악을 지으면 슬픈 자비로 애민하게 생각하시고 또 선을 지으면 가피력을 주시므로 항상 우리와 같이 호흡하시므로 생명에 자비심이다. 자비심은 거울과 같아서 거울에 형상이 나타나는 것은 평등한 것이라, 자비심도 평등하여 친소가 없는 마음이라 하여 광덕심이라 한다.

 

34, 해수월(海水月)

 

 바다 물에 달은 마음으로 청정한 마음이다. 바다에 달은 파도가 없으므로 바다 수면에 보름달이 원만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청정한 마음은 마침 물그릇에 황토 물을 흔들어 놓으면 미트바닥이 보이지을 않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흙탕물은 가라 않고 맑은 물을 다른 그릇에 옮기어 놓으면 흙탕물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해수월은 청정한 마음을 말한다.

 

35, 무심화(無心華)

 

 마음이 없다는 말은 마음에 번뇌가 없다는 말이다. 번뇌가 없는 마음은 마음의 본래 바탕을 말하므로 선악이전의 마음으로 일어나지 않은 마음으로 본래 면목이라 할 것이다. 시비 생사 거래가 없는 마음으로 불생 불멸(不生不滅)한 마음으로 부처님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36, 무생화(無生華)

 

 

 태어남이 없는 마음은 무루심(無漏心)으로 다 함이 없는 마음으로 가고 옴이 없는 마음으로 가고 옴이 없는 여여심(如如心)으로 불성(佛性)을 말한다. 불성은 씨앗이 움트고 자라서 꽃피고 열매 맺는 것이 불성이라 한다. 자연의 섭리는 누구의 지배나 억압 할 수 없고 누가 훔쳐 갈 수 없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마침 생물이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아무런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자랑으로 상을 내지 않는 마음으로 함이 없는 무생심이 다.  

 

 

37, 무상화(無相華)

 

 상(相)이 없는 마음은 시비하는 마음이 없는 마음으로 봉사 정신이라 할 것이다. 무애보시(無碍布施)는 도리를 말한다. 강물에 사람이 뜨 내려가면 보상심에서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이 없이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무애 보시란 것이다. 홍수 물에 뜨 내려가는 나뭇 토막에 개미무리를 보면서 개미를 구제하여 수명이 장수하였다는 이야기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남의 생명을 구제한 공덕으로 단명한 목숨이 장수하였다는 인과 이야기 속에는 자랑 없이 남을 위한 공덕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말 없는 가운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무생심(無生心)이다.

 

 

38, 팔정도(八正道)

 

 여덟가지 바름의 부처님 말씀으로 보고 듣고 하는 것을 바르게 실천하라는 것이다. 선악은 행위로 나타난 것으로 경계를 말하는데 착한 것이라 하지만 하나가 착하다 하면 하나가 싫어하므로 착한 것이라 하여도 상대적이므로 영원한 착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선악의 바름은 선악이전의 본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고 바로 바름을 실천하면 과거의 잘못이 비워지고 현재에는 마음이 안정을 찾고 미래는 마땅히 바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바름은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로 상통하는 것이다.

 

 

39, 팔신행(八信行)

 

 통도사부산포교원 제 8기 신행학교 졸업식 5계(戒)와 불명(佛名)을 수지(受持)하면서, 8기 신행학교라 하여 팔신행(八信行)라 한 것이다. 불교에 입문하면 부처님의 아들딸이라 하여 불자(佛子)라 하지, 불자는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므로 정신적인 가치관을 다시 확립하는 삶으로 거듭 태어난 것으로 몸은 부모님의 은혜이고 마음은 부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불자의 원력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정토를 성취하고자 하는 원력이 있어야 불자인 것이다. 팔신행은 마음으로 거듭 태어난 정신의 고향을 말한다.

 

40, 무아행(無我行)

 

 내가 없다는 말은 아상(我相)이 없다는 말로, 나란 몸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라는 것이고, 또 마음이지만 형상과 이름의 집착심이 아닌 인연법으로 보면 내란 것이 모두가 자연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라, 몸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지만 죽으면 뼈와 살이 흙으로 돌아가고 물기는 물로 돌아가고 열은 불로 돌아가고 호흡은 바람으로 돌아가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원소로 돌아가면 형상과 이름이 변화하여 없는 것을 내라고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니, 이것을 알면 무아(無我)라 하여 몸이란 고정인식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자유자재하는 것이다.

 

41, 성지수(聖知水)

 

성지는 지역 이름으로 부산 서면 초읍 어린이 대공원이 성지곡(聖知谷)이라, 신라 말 최치원 선생님이 이름하였다 한다. 성지곡 백양산에 가서 산림욕을 하면 흙 냄내도 나고 숲속에 초목 향기에 심취하면 스트레스는 스스로 사라지고 성지곡 입구에 들어서면 계곡 물소리가 귀에 들리는 건지. 내 마음에서 물소리가 나는 건지, 시비를 하는 것이 스님의 마음이다. 스님들의 말씀은 내 마음에서 물소리가 나므로 듣는 것이라 하지만 무시겁으로 집착한 고정인식은 내 귀에 들리는 것이다. 무한한 숲속 터널은 사람의 마음을 유혹시키고 무한히 심취하게 하고 계곡마다 물소리가 마음에서 나고 있고 숲 속의 푸른 잎들이 하염없이 춤을 추면서 반기는 환희심은 나의 마음이 무아지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성지곡은 가면 갈수록 가고 싶은 곳으로 생명들의 정토이다. 이러한 마음이 성지수이다.

 

 

42, 서면자(西面子)

 

 서면은 부산 중심인 지역 이름으로 스님이 서면자라 하여 불교의 가르침으로 서방 정토 아미타불을 친견하는 마음으로 생각하여 서면자라 한 것이다. 아미타불 정토를 낙토라 하고, 부산 서면을 초읍(草邑)이라 하여 푸른 마을인 초목의 낙원으로 정토를 말하고 있다. 지역 이름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로 불교 사상에 접근시켜 본 것이다.

 

 

43, 가야행(伽倻行)

 

 서면자와 같이 지역 이름을 불교 사상에서 살펴본다. 가야는 인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곳으로 붓타 가야라 한다. 인도의 붓타 가야와 우리나라 부산 서면 가야 명칭의 공통점이 있는가 하는 점은 가야국 김수로왕후 허씨 부인이 인도 사람이란 것이다. 왕후는 도래인으로 인도 가야와 우리나라 가야의 명칭이 같다는 공통점이다. 가야행은 한국 부산 서면 가야의 지역 이름으로, 인도 붓타 가야의 깨달음 정신을 이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44, 불타심(佛陀心)

 

 부처님 마음으로 부처님을 따르고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여 실천하라는 것으로, 부처님 말씀은 팔만사천 법문이고, 몸짓이전의 마음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인 선(禪)이라, 몸짓이전의 마음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오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이 가섭 제자의 마음으로 전하여 이심전심으로 전하여 중국 달마 스님은 선(禪)으로 스스로의 본래 면목으로 복덕과 지혜가 원만구족한 자리를 확인하면 견성(見性)성품의 자리를 보았다하여 선지식이라 하여 스님들의 법담(法談)으로 우리 마음에 전하여지고 있다.

 

 

45, 법안자(法眼子): 법의 눈으로 진리를 말한다.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을 육안(肉眼)이라 하고, 마음으로 관(觀)하는 것을 마음으로 본다고 하여 인연의 연결 고리를 시간과 공간을 통찰하는 것으로 과거 현재 미래가 상통하는 것으로 심안(心眼)이라 하고, 법안(法眼)은 법의 가치관으로 통찰하는 것이고, 천안(천안)은 하늘의 섭리로 자연의 섭리로 통찰하는 것이고, 불안(佛眼)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보는 것으로 두두물물의 충만한 원만성을 말한다. 법안자는 법의 가치관으로 통찰하여 욕망의 가치관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46, 법인화(法印華)

 

 법의 도장이 무엇인고, 마음의 도장을 심인(心印)이라 하여 서로 서로가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법인은 법을 인가 받는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은 과거 세상 연등 부처님으로 부처님이 된다는 수기(授記)를 받으셨고 석가 부처님은 미래 용화세계에 미륵 부처님이 출현하신다고  수기하셨다. 달마스님의 선법(禪法)으로 중국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선지식이 배출되었고 스님과 스님을 연결하는 법의 도장을 법제자라 할 것이고 큰 스님께 불명(佛名)을 받고 계(戒)를 받는 것이 법인(法印)이다.

 

 

47, 법공심(法空心)

 

 공(空)은 없는 것이 아니고 유(有)와 무(無)를 연결하는 고리이고 유무자재를 한다. 법공은 마음도 비고 법도 비고 텅텅 비어 텅빈 충만으로 무소유로 우주의 주인공, 생명의 주인공은 부처님이라 할 것이다. 가진 것 없이 주인공이신 부처님은 중생의 욕망을 비워라 하시는 선지식이시고 실천 선구자이시다.

 

48, 금강심(金剛心)

 

 허물어지지 않는 것을 금강이라 하고 세상에서 제일 단단하고 견고한 것을 금강이라 하지만 아무리 물질이 단단하여도 허물어지지 않는 것은 없으므로 부처님 몸을 금강 불괴신(金剛不壞身)이라 하는 것은 육신의 몸이 아니고 법신으로 보시고 멸하지 않는 진리 세계를 말한다. 사리는 부모님의 몸으로 받은 것도 아니고 수행자가 정신으로 수행한 결정체라 할 것이고, 부처님 말씀에는 계정혜(戒定慧)의 결정체가 사리라 하셨다.

 

49, 반야장(般若藏)

 

슬기을 반야(般若)라 하고 지혜(智慧)라 하고, 반야는 불생․불멸․불구․부정․부증․불감(不生․不滅․不垢․不淨․不增․不感)생사 정추 증감인 죽고 살고 깨끗하고 추하고 더하고 덜한 것이 아니란 것은 반야의 본래 성품은 가고 옴이 없음으로 무애자재한 것으로 모양과 이름의 집착에서 벗어남으로 반야는 대 해탈이고 대 광명이고 대 생명력이다. 이러한 마음을 우리 마음속에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50, 마하심(摩訶心)

 

 큰 마음씀으로 마하는 크다는 말이다. 반야의 지혜가 큰 마음이라 마음속에 지구를 헤아릴 수 없이 담아도 공간이 남는 것이 마음이라 끝이 다 함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우리의 마음으로 살아감에 대장부가 되라는 것이다. 조그마한 일에 집착하여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서 마음에 집착하여 자신의 주인공을 잊어버리고 성내는 미음에 현혹되어 고통을 받는 것이다. 마하심은 주인공을 잊어버리지 않는 마음이다.

 

 

51, 심왕자(心王子): 마음 주인공을 말한다. 주인공을 잊어버리면 욕망심에 현혹되어 욕심으로 즐거움을 삼아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음이 눈앞에 오면 두 손들고 울고 슬펴 하지만 때는 늦으리, 힘있고 젊은 나이에 마음 공부하여 주인공을 찾으면 죽음이 눈앞에 와도 무서운 것이 아니고 마침 헌 옷을 갈아입는 격이라 아무런 두려움이나 싫어 할 것이 없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죽음에 괴로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다면 인연법을 아는 사람으로 마음으로 시비를 무애자재 할 것이다.

 

 

52, 여여심(여여심)

 

“본래모습은 그대로이다.” 충남 아산 보문사 석주스님 94회 생신을 맞이하여 보문사 회향불사에 전국 큰스님 120분의 글 모음이 “수미산 넘는 원력”이라 하여 월운스님은 불평을 하신다. 소승이 그 자리에서 본래모습 그대로가 스님 어뜨야고 하자 본래모습은 그대로이다 하신다.  본래모습 그대로에 토를 붙인 것이 ‘은’ ‘이다.’  수미산 넘는 원력은 부정하시고 본래모습 그대로는 긍정을 하신 것이다. 본모습은 여여(如如)한 자리라 가고 올 것이 없는 자리이지만 중생들이 경계의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마음을 일으킴으로 가고 옴이 있는 것이다.여여는 진여(眞如)이므로 진리 당체를 말한다. 여여(如如)한 것은 태양의 자체를 말하고, 지구에서는 낮과 밤이 있지만 태양 자체는 주야가 없는 것이다.

 

53, 진여행(眞如行)

 

 참이란 진실은 어떤 것인가? 삼라만상이 다 하나인 진실로 통하는 것이니, 시간과 공간이 다른 것 뿐이라, 우리의 입장에서 3천년전이라 한 것이고 3천년전에는 지금을 3천년 후라 하여 시간의 차이이고 극락의 정토나 세상의 정토가 차별이 없는 것은 진여(眞如)이므로 진실은 시간과 공간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54, 각해궁(覺海宮)

 

 깨침의 바다속은 복덕과 지혜가 본래 원만 구족한 자리라 중생이 잊어버리고 욕망의 탐진치(貪嗔痴)를 보배로 오인하여 항상 죽고 사는 바다에서 울고 웃고 하는 것을 즐거움이라 집착하니, 오욕락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벗어나는 길이 각해궁(覺海宮)이다.

 

 

55, 부동심(不動心)

 

 청정심은 일으키지 안는 마음이다. 탐진치심에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고 보고 듣고 형상과 이름에 움직이지 안는 마음이고 시비 선악 생사에 움직이지 안는 마음으로 태산보다도 무거운 마음이 주인공의 마음이다.

 

 

56, 관행자(觀行子)

 

 관(觀)은 마음으로 본다는 말이다. 마음으로 보면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보이는 것이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면 자유자재하여 관자재(觀自在)라 마음으로 관하면 자재한다는 말이다. 이름과 형상에 집착이 없으면 마음으로 관하는 대로 성취가 되는 것이다.

 

 

57, 염불심(念佛心)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것이니, 쉼이 없이 생각하면 삼매(三昧)라 하여 염불이나 참선이 서로 상통하는 것이다. 마음이 경계을 보면 안다고 하지만 마음이 경계에 집착하므로 마음을 잊어버리는 것이니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잊어버림으로 성내는 마음, 탐욕하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으로 주인공의 마음으로 착각하고 오욕락의 물질의 복락에 집착하여 즐거워 하다가 죽고 살고 웃고 울고 하면서 생사 윤회가 헤아릴 수 없다. 부처님 생각을 쉼 없이 하면 염불심(念佛心)이라 삼매력(三昧力)을 성취하는 것이다.

 

 

58, 무량심(無量心)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은 끝없는 마음이고 다 함 없는 불보살님의 원력으로 다 성인이 되신 마음이므로 중생의 마음은 눈앞에 즐거움만 생각하고 눈앞에 백지장의 장애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에 시비를 곧 마음에서 놓아버리라, 장애에서 벗어 날 것이다. 마음을 놓지 않고 기도를 성취 할 수 없는 것이다. 기도를 하면서 보시를 하고 방생을 하라는 것은 살생하는 마음과 욕망의 탐진치 마음을 놓아버리면 성취가 되는 것이다. 기도는 마음으로 하고 보시와 방생은 몸으로 자비행을 하면 바로 자비심을 성취하는 것이다. 죽을 생명을 방생하고 살려주는 공덕으로 죽임을 당하는 지경에서 다시 살아나는 가피력을 입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끝이 없으므로 무량심이라 한다.

 

 

59, 무진장(無盡藏)

 

무궁 무진한 보배 창고가 마음속에 있어 미래가 다하드라도 다함이 없는 것이다. 중생의 번뇌가 다 함이 없고, 불보살님의 원력이 다 함이 없는 것이니, 성인의 원력이 다 함이 없는데 하물며 중생이 원력이 없이 번뇌만 치성한가? 돈벌이에 현혹되어 즐거움을 찾다가 졸지에 죽음이란 낭떨어지를 만나서 떨어짐을 당하면 소가 도살장에 끌려감가 무엇이 다른가? 살아생전에 한 번이라도 불보살 명호를 부르면 답답하고 애달픈 길에 한 방울의 물이 될 것이니 살아 생전에 마음 공부를 하면 죽음이란 것이 생전에 호흡하는 것이라 걱정 할 것이 없고 단지 염불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라. 물질에 현혹되고 처자의 걱정에 현혹되고 자신의 몸에 현혹되지 마라 다 죽음에서 원망하는 소리만 돌아올 뿐이다. 자신을 해탈하지 못하면 선한 공덕이라 할 수 없고 자신이 해탈하면 지옥도 구제된다.

 

 

60, 만행자(萬行子)

 

 천만가지 선행을 한들 마음을 잊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음을 찾아 마음 밖을 헤메는 나그네 몸이 노쇠하고 돈 없고 힘 없는 지경에 당하여 알고 보니 내 마음속에 있는 주인공을 잊어버리고 동서남북으로 헤메인 것이 원통하고 절통하구나 임종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힘을 다하여 주인공을 찾아보니 생각 할 기력이 없으므로 원력을 발원 할 힘이 없음이라 마지막하고 싶은 유언은 “나무아미타불”이로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선행일세.

 

 

61, 용해주(龍海珠)

 

 바다 용이 구슬을 얻으면 여의주(여의주)라 뜻을 성취하는 구슬이라 성인의 가피력을 입은 것이다. 부처님 법을 옹호하는 선신으로 용을 많이 거론하고 용을 꿈에 보면 길몽이라 하여 큰 일을 성취한다는 마음 가짐으로 나타난다. 용은 부처님 법을 옹호하지만, 특히 관세음보살님의 가르침을 받아 중생을 구제하는 일이 많다. 용은 구름, 비, 물을 뜻대로 하는 힘이 있고 용과 물은 청정의 뜻으로 보면 현실적으로 이해를 할 것이다.

 

 

62, 천안심(天眼心)

 

 하늘의 눈은 천지의 섭리를 말한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나(아)는 나무의 열매를 하늘의 기운이라 하고 싶고 땅속에 뿌리를 땅의 기운으로 보고 싶다. 열매와 뿌리를 먹는 것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먹고 사는 천지의 섭리이다.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 하늘의 기운이고 곡식을 먹는 것은 땅의 기운인 것이다. 항상 천지의 기운으로 살고 감사와 은혜를 체험하면서 느끼지를 못하고 공기, 흙, 물을 오염시키면서 잘 살기를 바라면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인 어리석은 행동은 깊이 생각하면 귀가 찬다. 자연의 섭리를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이 천안심이다.

 

 

63, 무변심(無邊心)

 

 끝이 없는 마음은 불보살님의 원력이시다. 중생의 번뇌가 끝이 없고 미래가 다 함이 없는 것처럼 중생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중생의 욕망이 끝이 없지만 욕망을 원력으로 전환시키면 중생 마음이 성인의 마음으로 감추어진 자비심이 실현되는 것이니, 불보살님의 가르침인 원력을 보고 듣고 배워서 실천하므로 자신의 감추어진 자비심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바로 불보살님의 마음과 행인 실천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므로 얼마든지 개발하여야 하고 누구든지 바라는 가피력인 것이다. 가피력을 누구든지 객관적인 의타심으로 성취되기를 바라고 꿈이라도 구어서면 하는 마음이지만 잘못된 인식이고 가피력은 철저한 주관적으로 자신이 바르게 실천하므로 성취되는 것을 마음으로 관찰하지 못한 것이므로, 우리 생활이 마음의 주인공을 잊고 살아온 결과인 것이니, 마침 공기로 호흡하면서 감사와 은혜를 모르고 도리어 자연을 파괴하면서 경제적으로 잘 살기를 욕망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이기주의 짓인가 철저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64, 해연궁(海蓮宮)

 

 바다속 육지에 부처님 경전을 보장하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이것은 스스로의 마음속을 말하고 마음속에 보장한 경전을 스스로 모르고 있으므로 석가 부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스스로가 마음 가운데 경전을 찾아보는 것이니, 해연궁의 마음속에 스스로가 경전을 열람하여 보기 바란다.

 

 

65, 묘법장(묘법장)

 

 묘법(妙法)은 부처님 말씀이고 진리를 말한다. 묘법을 실천하려면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여야 하고 생각으로 마음을 들쉼 날쉼의 호흡 끝에 두고 3분 동안이라도 머물게 하는 훈련을 반복하든지 아니면 지신이 좋아하는 숫자를 정하여 반복하라, 오랜 시간으로 지속되면 삼매(三昧)라 하겠지만 처음으로 호흡을 관하는 자는 시간을 정하여 반복하는 것이 쉬운 것이라, 자주자주 반복하면 자신 속에 감추어진 묘법이 스스로 발하는 것이 마침 태양이 스스로 빛을 발하므로 만 생명이 스스로 자라는 것과 같아서 묘법은 상(相)이 없으므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66,법인심(法印心)

 

46, 법인화 참조.

 

 

67, 법도자(法度子)

 

 통도사(通度寺)는 일천 삼백여년전 자장스님께서 중국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오셔서 이곳 영축산에 모시고 통도사라 하신 것이다. 부처님 법을 모시므로 앞으로 많은 중생을 제도하여 중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통도사라 하여 지금도 부처님 법인 계(戒)을 받아서 수지 봉행(受持 奉行)하면서 실천하고 이다. 법도자는 통도사의 뜻하고 같다.

 

 

68, 정법심(正法心)

 

 바름이 법이고 진리인 것이다. 법이라 하면 세상의 문서 법이 헌법을 생각하고 진리라 하면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생각하고 있지만 법과 진리는 스스로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잊고 마음 밖에서 찾고 있는 것이니 깨닫지를 못하면 법과 진리가 멀 수 밖에 없고 찾기가 힘든 것이다. 이렇게 하나 하나 설명하여 주는 것도 정법이다.

 

 

69, 청정심(淸淨心)

 

 

 무엇이 청정인가? 스스로 마음이 청정하면 모든 것이 청정한 것이다. 요즈음 물 공기 흙인 생명의 힘이 오염으로 모든 것이 아우성인 것을 볼 적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30년전 시골 고향 거리에 반딧불이가 지천이고 샛강에는 다슬기가 지천이고 샛강에 목욕도 하였지만, 요즈음은 시골 샛강마다 접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악취 때문으로 지역의 맥인 샛강이 오염으로 죽은 것이다. 샛강이 청정으로 나타나야 정토가 실현되는 것이다.
21세기는 전 세계가 청정에 앞장서야 생명들이 살아날 것이므로 눈앞에 제시된 화두(話頭)인 것이다. 
  

 

70, 천수자(千手子)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보살님 염불하면서 마음으로 요구하는 곳이 우리의 마음이다. 손이 천개이고 눈이 천개인 관세음보살님 나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하는 마음이 일반적인 마음이다.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가지신 성인이시여 하는 마음은 가치관인 것을 알면 바로 자신의 마음에 가치관이란 것을 직관 할 수 있다. 가치관이 바르면 일천 가지 욕망을 직시에 해결 할 수 있다. 일천가지 욕망을 일시에 해결하는 것이 바로 일천가지 눈이고 손인 것이다. 손과 눈이 일천번을 보살피는 것은 번잡하지만 마음의 가치관이 바르면 일시에 해결하는 것이다. 이것이 관세음보살님의 신통이고 가피력이다.

 

 

71, 불심화(佛心華)

 

 불심(佛心)하면 일반적으로 절에서 기도하는 마음을 말한다. 부처님 마음이란 말인데 뜻으로 보면 부처님 마음이라 대단한 것으로 기도를 열심히 하면 불심이 대단하다 신심이 대단하다는 말은 신자(信子)의 마음을 부처님으로 본 것이다. 불심(佛心)은 부처님 마음이라는 말이고 신심(身心)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다. 의식주에 생각이 없이 오로지 한 마음으로 정성드리는 것을 보고 남이 무의식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칭찬을 하는 마음은 긍정하는 마음으로 보는 자의 감응으로 돌이켜 보면 기도자의 감응이라 할 것이다. 기도의 감응은 이러한 것이고 또한 불심(佛心)이라 할 것이다.

 

 

72, 관음자(觀音子)

 

 관세음보살님을 관음자라 하고 뜻으로 보면 마음으로 관(觀)하여 소리를 듣는 것이라 소리가 들이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서 소리가 남으로 모든 우주소리가 들이고 확연한 것이다. 모두가 산천이 푸르다고 하지 산천이 푸른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푸른 것이지만 마음이 푸르다 하면 노랑 것을 보아도 푸르야 하는 것이지만 마음은 형상과 이름이 없으므로 푸르고 노랑에 자재하는 것이다.

 

 

73, 지장해(地藏海)

 

 지장보살님의 원력은 지옥 문전에서 지옥 중생을 다 구제하시고 성불하시겠다는 원력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신다. 지장해, 지장해 이름을 자주자주 거듭하면 지장보살님께서 고통의 바다를 건느는 힘을 주시므로 인연있는 자를 보고 듣고 하여 망자를 위하여 지장해 지장해하면 망자들이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을 받고 받은 공덕이 다시 지장해하는 염불자에게로 돌아와 구제를 받는 것이다. 남을 구제함이 바로 자신을 구제함이니, 남이 아프면 자신이 아픈 것이고 자신이 즐거우면 남이 즐거운 것이므로 나와 남이 하나인 것이 지장의 원력 바다인 것이다.

 

 

74, 미타심(彌陀心)

 

 아미타불 원력이 미타심으로 극락정토는 고통이 없으므로 극락이라 하여 욕심이 없는 정토인 것으로 미타경에는 땅이나 산천초목이 황금으로 형성되었고 아미타불께서 아름다운 새를 만들어서 설법하신다고 하여 업(업)으로 소생하는 것이 아니라 극락세계는 아미타불의 48원력으로 성취된 세계라 하신다. 지구 인간은 누구나 극락을 사후에 갈려고 갈망하지만 마음으로 관찰하여 보면 욕심으로 갈려고 하고 마음의 욕망을 비우고 갈려는 사람이 매우 적다는 것이 욕계 중생의 특징이라 부처님제자들은 이 뜻을 명심하고 정진하면 정토는 스스로 자연적으로 가는 것이다.

 

 

75, 정토화(淨土華)

 

 정토는 죽은 후에 극락세계가 아니라 살아생전에 정토를 만들어야 사후에도 정토에 나는 것이다. 아미타불 염불하면 편안하고 욕망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남을 위하고 살생 대신 방생하고 훔치거나 속이지를 않고 보시를 하고 선한 말과 마음으로 염불을 하면 남을 부처님처럼 섬기고 자신의 마음에 주인공을 찾아서 보고 듣고 집착하지 않으므로 장애가 없으므로 자유자재한 것으로 싫어함이 없으므로 정토라 하고 사후에도 극락에 왕생하는 것이다.

 

 

76, 허심대(虛心臺)

 

 마음은 허공 같고, 허공은 본래 공(空)함이라, 마음에 번뇌가 없으면 죽고 사는 거래가 없다.
     
      심동허공계, 허공본래공, 심무번뇌염, 생사무거래.
     (心同虛空界, 虛空本來空, 心無煩惱染, 生死無去來).

 

마음에 번뇌가 없으면 시비 생사가 없다는 말이다. 허심대(虛心臺)는 마음 거울이라 거울을 보고 마음을 비우라는 것으로 업경대(業鏡臺)를 말한다. 
사람의 머리카락에 살아 생전에 행위가 유전자로 기록이 된다는 것이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속일 수가 없는 것이라, 본래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찾은 듯 하다.

 

 

77, 무염심(無染心)

 

 마음에 물듬이 없다는 것은 번뇌가 없다는 말이다. 마음은 본래 푸르고 희고 검고 붉은 것이 아니므로 경계를 보고 분별을 하므로 자재한 것이라 마음은 물듬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이 분별하여 집착하므로 안다고 하지만 아는 것이 고정인식이고 형상과 이름에 집착하여 마음에 장애를 일으킨다. 무염심(無染心)은 생사심(生死心)이 없다는 말이다.

 

 

78, 무구심(無垢心)

 

 번뇌가 없는 마음으로 천진한 동자의 마음으로 이 없는 아름다운 마음이라, 푸른 마음도 순응하고 붉은 마음도 순응함으로 고집과 편견의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으로 탐욕이나 성냄이 없이 시비 생사가 없는 마음이라 청정한 물이 모든 생명에 싫어함이 없이 순응함으로 생명력으로 모든 생명에 힘이 되는 것이다. 무구심은 천진한 어린 아이 마음처럼 세상에 걱정이 없는 환희심이다.

 

 

79, 광명화(光明華)

 

 빛은 생명에 힘으로 생명이 싫어함이 없고 빛도 생명에 순응함으로 푸른 생명력으로 빛나고 붉은 생명은 붉은 생명력으로 빛을 내고 삼라만상이 각각 스스로의 불성(佛性)으로 광명을 발하고 있다. 푸른 산천을 바라보면 푸른 물결의 우아한 동작으로 큰 몸짓으로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푸른 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태양의 빛에 감사와 은혜에 환희심으로 영원한 광명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한다.

 

 

80, 대행자(大行子)

 

 석가모니 부처님도 자비심의 대행자이시지만 보현보살은 복덕의 원력보살이시다. 양족존(兩足尊) 뜻은 부처님은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신 분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양족존에 귀의합니다 하는 중생들의 원력이다.  다시 말하면 자비심의 양족존은 지장, 관음의 대자비심이시고 보현의 복덕과 문수의 지혜를 양족존이라 할 수 있다. 실천행의 대행자는 보현보살이시라, 신구의 삼업(身口意 三業)인 몸과 말과 뜻에 싫어함이 없는 불보살님의 마음이시므로 중생들이 무한한 불보살님께 칭찬하고 찬탄 예배한다.

 

 

81, 선재자(善財子)

 

 선재와 문수동자를 생각한다. 화엄경 53선지식으로 선재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음 찾는 구도 길에 선재동자는 53선지식이시고 선지식 가운데는 백정도 있고, 거지, 고기 장사, 국왕, 대신, 보살, 불등을 친견하면서 법 문답의 만행길이 파란 만장하다. 선재동자는 어린 동자의 모습으로 우리 가까이에서 천진성을 가르치시고 항상 법을 찾는 만행자를 발심하게 인도하신다.

 

 

82, 진실행(眞實行)

 

 진실속에 살면서 진실을 모르고 사는 것은 어리석음이고 참회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자비심을 실천한다면 이것이 진실인 것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남도 속이지를 않고 남에게 속키지도 않고 자신이 속키지도 않으면 진실이라 할 것이고 친구가 술을 권한다고 자꾸 먹으면 술이 사람을 먹고 이성을 잊어 마음의 주인공은 삼만 팔천리로 도망가고 혼미한 상태에서 앞산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니 거짓이고 꿈이고 환상이고 거품이고 아지랑이인 것이라 진실이라 할 수 없다. 진실은 술을 먹고 횡설 수설하는 것이 진실이 아닌 것이다. 술을 먹지 말고 욕망도 부리지 말고 자비심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실천하면 진실이라 할 것이다.

 

 

83, 덕해궁(德海宮)

 

 마음은 덕이 싸인 보배 창고이고 바다도 천만 갈래 샛강에서 모인 가지가지 물이 한 바다의 맛으로 싫어함이 없고 더불어 사는 것으로 샛강의 밀물 고기보다도 엄청난 크기의 바다에는 고래 상어등이 상상 밖에 생명들이 사는 것으로 민물의 산천어가 바다로 가면 연어가 되어 돌아오는 탈바꿈을 한다. 우리는 마음도 중생의 욕망에서 살다가 욕망을 비우고 마음의 주인공을 찾아서 부처님과 같은 자비심을 숨기지를 말고 중생이 욕심부리듯 중생 속에 감추어진 자비심을 남에게 보시하듯 실천한다면 바로 자신이 덕해궁(德海宮)이다.

 

 

84, 정덕장(淨德藏)

 

 청정(淸淨)은 공덕장(功德藏)으로 모든 근원이라 할 것이다. 청정하면 바로 공덕의 보배 창고가 스스로 주어지는 것으로 누가 만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것 만큼 스스로가 만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것 만큼 스스로 복덕의 창고가 형성되면서 만 생명이 모여드는 것이다. 마침 땅에 잡초가 자라고 나무가 자라면 나무가 자란 만큼의 생명수가 땅속에 스스로 형성되면서 나무가 무성한 것 만큼 다시 다른 나무에 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 물의 보배 창고가 형성되는 것이라 나무 한 그루가 살면 많은 생명를 살릴 수 있는 힘이 주어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이고 이것이 정덕장(淨德藏)이고 공덕장(功德藏)이라 할 것이다.

 

 

85, 지혜장(智慧藏)

 

 지혜의 보배 창고는 마음이다. 크기는 정한 것도 아니고 이름과 모양새가 없으므로 없애거나 만들 수도 없는 것이 미묘한 것이다. 내 마음속에 이러한 희기한 창고가 있는 것이라 미래가 다하도록 보배를 사용하여도 다 함이 없는 것으로 무게도 없고 형상도 없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유무에 자재하는 것이다. 이 보배 창고는 마음으로 관(觀)하면 스스로 형성되면서 삼천대천 세계가 출입하여도 흔적이 없는 것이다.

 

 

86, 보리생(菩提生)

 

 진리를 인도 말로 “보디”라 하여 “보리”라 발음하고 뜻은 깨달음이라 한다. 부처님 말씀은 자연과 인생의 깨달음 말씀이라 과거 현재 미래가 동일한 이치를 체험한다. 진리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일 하지만 생명의 근기가 다르므로 달리 나타나는 것이 형상과 이름이 다르고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 따라서 순응하지만 형상과 이름이 다른 것은 마침 물이 풀에 순응하면 풀이라 하지 물이라 하지를 않고 물이 나무에 순응하면 나무라 하지 물이라 하지 않는 거와 같다.

 

 

87, 안락궁(安樂宮)

 

 생명이 잘 자라는 것은 편안하고 안락하기 때문으로 생명이 잘 자라는 영문을 보면 태양의 열이 강열하고 가뭄이 들면 생명들이 말라서 죽는 것이고 홍수 폭우로 물이 너무 많아도 생명은 죽는 것이다. 산천에 울창한 나무숲은 가뭄에는 머금어든 물을 내어놓아 가뭄을 해결하고 홍수로 물이 많으면 나무가 물을 흡수하여 홍수의 피해를 방지하게 하지만 양동이 폭우가 한 곳에 300mm가 오는 곳이 많고 상상 할 수 없는 폭염으로 사람과 짐승들이 굶주림으로 죽는 것은 세계가 오염으로 기온이 상승하여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어 일어나는 현상으로 지구에 나무가 무성하면 조금이나마 예방 할 수 있지만 산천이 벌거숭이라면 기후의 제앙은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생명이 잘 살고 편안하고 안락하려면 청정하여야 한다.

 

 

88, 용진화(勇進華)

 

 용기는 몸의 힘보다 마음의 기운으로 스스로 마음가짐으로 나타나는 생명력이다. 몸의 지수화풍(地水火風)이 고르지 못하면 병이 오는 것이라, 열병은 열이 많은 것이고, 추운 병은 물이 많은 것이고, 귀신 병은 바람이 많은 것이고, 기운이 쇠진한 것은 흙 병인 것이다. 기운이 쇠진하여 호흡을 하지 못하면 죽음이란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죽음이 오면 몸에서 바람 기운이 가장 먼저 사라지고, 따스한 기운이 사라지고, 물 기운이 사라지고, 흙 기운으로 차례로 사라지는 것이다. 용기는 마음 기운으로 생명을 형성하는 몸의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모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만들어 내는 생명력으로 행위라 하고 생명력의 근원이라 할 것이다.

 

 

89, 법행심(法行心)

 

 실천이 법이라,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하고 마음씀을 바르게 하는 것이 살아가는 법이라, 자신의 한 마디 말과 손발 한 번 움직이는 것이 나의 법이고 사회를 형성하는 법이고 나라가 움직이는 법이다. 지붕의 낙수 물이 바위에 구멍을 만들고 석회석 동굴에 석순이 자라는 과정을 보면 시간의 미묘함을 체험한다. 다 함이 없는 시간을 체험하면서 안절 부절하는 불안한 마음을 일어 킬 수 없다. 굳어버린 돌 부처의 생명력은 보는 자에 마음이라 할 것이다. 영원한 생명력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잠재한 생명력으로 삼매의 생명력은 말이 없고 호흡을 하여도 소리가 없고 기운의 상생은 쉼이 없이 왕성한 것이지만 함이 없는 생명력으로 영원한 것이다.

 

 

90, 보장해(寶藏海)

 

 태평양 바다를 해체하여 보면 한 방울의 물이고 한 방울의 물은 수증기로 공기로 변하면 바다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한 방울 물이 모이고 모여서 바다가 된 것이므로 보장해(寶藏海)라 한다. 보장해는 모든 생명을 살리고 죽이고 하지,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어나고 비바람으로 폭풍이 일어나면서 태풍의 근원지가 되면서 육지와 바다가 혼비백산이 되고 논밭에는 곡물이 난장판이 되고 야단법석이라 생태계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또 생태계의 변화는 샛강의 오염이나 공장의 공해를 한 번에 맑끔하게 청정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 보해장의 자재력은 누가 흉내를 낼 수가 없다.

 

 

91, 무진자(無盡子)

 

 무진자는 마음이라 다 함이 없는 미묘법이다. 마음은 다 함이 없는 보배 창고이고 이 보배는 쓰고 쓰도 다 함이 없으므로 무진자라 할 것이고 무진자는 이름 없는 이름으로 이름하여 무진자라 한 것이니, 이름과 형상을 보고 듣고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 지붕의 낙수 물이 바다로 향하면 바닷물이 바다로 향하면 바닷물이라 바다 물이 낙수 물이고 낙수 물이 바다 물이라 같은 물이다. 낙수 물이 다함이 없으면 바다 물이고 바다 물이 다 함이 없으면 낙수 물이 됨으로 다 함이 없는 무진자라 한다. 

 

 

92, 지명화(智明華)

 

 없는 이름을 지어서 부르므로 무(無)에서 유(有)라 한다. 지명화란 이름이 없어지만 이름하여 부르므로 지명화의 뜻으로 살아가면 지명화의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없든 세상이 있는 세상으로 나타난다. 새벽 동해 저변에서 용솟음치는 새벽의 햇살을 보라 분명히 마음에 용기가 용솟음 칠 것이다. 태양의 기운은 내 마음으로 느끼고 용기를 일으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없든 것이 있는 것이다. 용기라는 기운이 자연과 내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 지명화(智明華)이다.

 

 

93, 혜월심(慧月心)

 

 지혜의 달을 보려면 보름 달밤에 바다 수면이 잔잔하여 보름 달의 둥근 원만상인 본래모습 그대로 나투는 것을 보면 내 마음에 지혜의 달을 볼 수 있다. 보름 달이 바다 수면에 그대로  모습을 나투는 것은 장애가 없어야 한다. 보름 달 주위에 구름이 없어야 하고 비바람 눈이 없는 천명한 날씨를 만나야 하고 바다 수면도 바람이 없어 파도가 없어야 달의 원만상을 그대로 나투어서 내 마음에 원만상으로 느끼는 것이니 참으로 어려운 인연을 만난 것이다. 내 마음에 선정(禪定)의 달(月)은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94, 법수장(法水藏)

 

 물을 법이라 한 것이다. 법은 스스로의 행위로 보면 어려운 것이 없고 스스로의 움직임이라 할 것이다. 법(法)자는 삼점 획의 물수 변에 갈거(去)자가 법(法)자 이므로 물이 흐르는 자연의 습리가 법이란 것이다. 흐르는 물은 바위를 만나면 바위를 감싸 돌고 웅덩이를 만나면 잠간 동안 쉬어 가고 풀을 만나면 풀이 되고 나무를 만나면 나무가 되어 새싹으로 움이 트고 푸르름의 잎새가 되고 나무 열매가되어 생명들에 양식으로 더불어 사는 정토를 만드는 것이다. 물의 길은 생명의 길이다. 물이 생명에 순응하므로 나투는 모습이 천태만상으로 모습과 이름이 나열되는 것이 법수장(法水藏)이다.

 

 

95, 여의심(如意心)

 

 여의(如意)는 바름으로 말한 것이다. 아난 존자는 평생동안 부처님을 시봉하고 모시고 다였어 부처님 열반후에 경전 결집에 녹음기처럼 부처님 말씀을 암송하여지만 마음을 알지 못하여 다시 용맹정진하여 마음을 알고 깨달음을 얻었어 경전을 결집하므로 아난의 주장으로 여시(如是)라 하여 부처님의 말씀이지 아난의 말이 아니란 것으로 분명하게 밝히므로 대중들이 부처님의 말씀과 아란이 말한 것을 오해하는 일이 없었다. 지금의 경전은 부처님의 마음을 아란이 보고 듣고한 것을 말함으로 결집된 것이라 할 것이다. 다시 아란이 마음을 깨닫지 못하여서면 결집의 뜻이 무의미 한 것이다.
  깨달음으로 부처님의 마음이나 아난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고 아난의 말이 부처님의 말씀과 마음으로 다르지를 않는 것으로 여의심(如意心)이라 할 것이다.

 

 

96, 법보화(法寶華)

 

 법이 보배란 것이다. 부처님 말씀을 불법(佛法)이라 하여 법보(法寶)라 하지,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적에 말씀하신 것을 법신(法身)이라 하여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 법보이고, 요즈음 말로 선(禪)이라 마음을 말한다. 부처님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달마선(禪)이라 하고 마음이라 하고 스님들의 법담(法談)이라 하여 마음의 대화를 말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경전이라 하고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한다. 부처님의 실상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것이라 말도 없고 글자도 없고 이름이나 형상이 없으면서 멸하지 않는 것은 미묘법이라 하여 석가세존은 본래모습 그대로 있는 법을 확인하신 분으로 이 법은 지구가 형성이전에도 있었고 지구가 마멸한 후에도 있는 것이라 참으로 보배 가운데 보배가 진리의 법보인 것이다.

 

 

97, 불도화(佛度華)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마음이 불도화이다. 부처님의 49년 동안 설법하신 말씀이 불도(佛度)이시고 마음은 오직 한 사람으로 가섭에게 전하여 달마선(達摩禪)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전법이 즉심즉불(直心直佛)로 스스로의 마음속에 간직한 본래모습을 스스로가 찾는 선(禪)으로 전하여지고 있다.

 

 

98, 원만심(圓滿心)

 

 본래 원성한 마음의 주인공을 말한다. 우리가 크고 작다 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 크고 작은 것이 아닌 것은 스스로의 모양과 이름으로 주인공이란 것이고 누가 훔치거나 억압 할 수 없는 것으로 스스로의 존엄성이 원만 구족한 것으로 중생이 스스로 어리석음으로 비교를 하여 스스로 차별 법을 낸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본래로 원만 구족한 것이라 한 티끌 속에 우주가 가득한 도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99, 대각심(大覺心)

 

 부처님을 대각자라 하신다. 생명의 존엄성을 역사적으로 중생에게 보고 듣게 하신 분으로 생명의 본래 구족한 본성의 보배 창고를 적나라하게 혁파하신 분으로 하늘과 땅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시고 하늘과 지구에 스승이시고 자신을 조복 받으신 분이시고 가고 옴이 없는 시비선악에 차별이 없으신 분이시고 가장 바른 법을 보이시고 실천하신 분이시고 무소유에 주인공이신 분으로 중생이 존경하시는 분이시다.

 

 

100, 불성행(佛性行)

 

 마음의 주인공을 불성(佛性)이라 한다. 불성은 이름 할 수 없지만 이름한 것은 인연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이름이 다 불성이다. 생명이 물을 먹고 공기로 호흡하면 생명이 살아가는 것으로 빛이 생명으로 순응하고 물이 생명에 순응하고 흙이 생명에 순응하면서 나무는 자라는 것인데 사람은 자연의 은혜을 받으면서 자연을 파괴하고 경제에만 눈이 어두워져 생명을 죽이고 스스로도 병들고 죽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불성행(佛性行)은 잊어든 주인공을 찾아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 

 

 

101, 여래심(如來心)

 

 여래는 부처님 열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로 여여(如如)라 하여 여래 여거(如來 如去) 거래가 없는 여여(如如)한 자리를 진여(眞如)라 한다. 진리로 오시고 진리로 가시니 오고 감이 없으신 분으로 진실 자체인 것이다. 진리는 가고 옴이 없는 자리로 마치 해 자체는 항상 빛을 발하지만 지구에는 주야가 있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점이다. 여래는 진실로 오신 것이니, 태양 자체로 보는 것이다.

 

 

102, 무변심(無邊心): 63번 참조. 

 

 

103, 무량심(無量心): 58번 참조. 

 

104, 보문심(普門心): 27번 참조. 

 

105, 무진의(無盡意)

 

 불보살님의 원력은 중생들의 고통에 순응하시므로 다함이 없고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라 마치 허공이 텅텅 빈 것으로 만상에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마음이 색깔이 없으므로 색깔을 다 순응하는 것이고 마음이 모난 형상이 있으면 둥근 것을 싫어 할 것이고 마음이 둥근 것이면 모난 상대를 분별 할 것이다. 마음은 모나고 둥근 것이 아니므로 모나고 둥근 것을 다 순응함으로 다함이 없는 마음이라 무진의(無盡意)라 한다.

 

 

106, 보현심(普賢心): 28번 참조.

 

107, 환희장(歡喜藏)

 

 자비희사(慈悲喜捨), 자(慈)자애로움은 자씨 미륵보살과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은 항상 생명의 소리와 같이 하시고, 비(悲)는 애민심으로 지장보살님의 슬픈 중생의 소리와 같이 하시는 분이시고, 희(喜)의 기쁨 마음은 대세지보살 마음으로 중생에게 항상 환희심과 용기를 주시고 , 사(舍)의 집착심을 버림으로 지혜와 복덕을 구족하는 문수 보현보살의 마음으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 환희장(歡喜藏)이다.

 

 

108, 미타행(彌陀行): 74번 참조. 

 

 

109, 허심장(虛心藏): 76번 참조. 

 

110, 보리행(菩提行): 24번 참조. 

 

111, 원행자(원행자)

 

 불보살들은 원력을 성취하신 분이시다. 아미타불의 48원력, 지장보살님의 원력, 관세음보살님의 원력, 문수보살님의 원력, 보현보살님의 원력, 모든 불보살님의 원력이 지중하신 본들이시다. 불보살님들게서 생명의 소리에 숭응하심은 마침 물이 모든 생명에 순응하는 것과 같고, 빛, 흙, 공기가 생명에 순응하는 것과 같아서 마음으로 원행자가 되는 것이다.

 

 

112, 금강심(金剛心): 48번 참조.

 

113, 대원심(大願心)

 

 큰 원력은 깨달음이다. 부처님의 아들딸들은 사대 원력이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다 구제하기를 서원하고 다 함이 없는 번뇌를 맹사하고 끊으리라. 부처님의 말씀을 다 배우리라, 부처님의 법을 맹서하고 다 성취하리라, 사홍서원(四弘誓願)이 부처님 제자들의 대원심(大願心)이다.

 

 

114, 원력화(願力華)

 

 중생들의 원력이 있어야 한다. 부처님전에 원력으로 큰 마음으로 맹서하여야 한다. 절을 한번 하면서 염불 한 번 하면서 큰 마음을 발심하여야 한다.
부처님 당시 가난한 여인은 등불공양을 올리면서 큰 원력으로 미래세에 부처님이 되길 발심하여 조그마한 등불 공양의 정성이지만 꺼지지 않는 등불로 부처님께서 미래세에 부처님이 된다는 수기(受記)를 하신 것은 큰 원력 때문이다.

 

 

115, 불이자(不二子): 6번 참조.

 

116, 대광명(대광명)

 

천년 고찰 대웅전에 보면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 하여 법당에 모신 주불(主佛)은 청정법신 비노자나불(淸淨法身比盧遮那佛)로 상주 법신불(常住 法身佛)인 청정으로 나투신 부처님이시다. 중생의 근기에 따라 청정을 부처님의 이름과 모양으로 표현한 것으로 법신은 이름과 모양이 없는 영원한 생명력이다. 자연의 생명력을 보라 공기 물 흙의 청정력이 모든 생명력으로 나타나면서 근기에 따라 천태만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신의 대 광명이 근기에 따라 순응하는 것이니 생명력으로 항상 광명을 발하지만 중생은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안다고 하면서 진리를 망각하고 모르는 것이다. 집착심만 놓아버리면 항상 광명의 생명력을 볼 것이다.

 

 

117, 길상화(吉祥華)

 

 길상은 석가 부처님의 가슴에 32상호 중에 하나인 만(卍)자 표시는 대길상이라 하여 卍자를 동서남북에서 보면 일곱칠(七)로 4×7=28천(天)으로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으로 삼계(三界) 28천의 하늘에 주인공이신 부처님을 상징한 卍자를 대길상이라 하여 사찰 표시를 卍으로 표시하지만, 사회 철학관에서 표시한 卍자 깃발은 잘못 도용한 것이고, 독일 나라의 깃발 卍자는 거꾸로 된 卍자로 다른 것이지만, 혹자들이 간혹 부처님 卍자로 오인하여 독일을 관광하면 卍자 표시한 가방을 보면 독일 나치군대의 포악성을 생각하면서 욕을 하고 돌을 던지고 하여 오해를 하는 잘못을 한다고 한다.

 

 

118, 백연화(白蓮華)

 

 불교에서 흰 연꽃은 석가 부처님을 상징한 것이다. 처염상정(處染常淨)으로 연꽃이 피는 곳은 시궁창 진흙이지만 꽃은 오염에 물들지 않고 항상 향기를 풍기는 것처럼 석가 부처님은 오탁 악세에서 욕망에 물들지 않고 진리를 성취하신 분으로 하늘과 인간에 스승이신 분으로 중생들이 존경함으로 흰 연꽃은 석가 부처님을 상징하는 꽃이다.

 

 

119, 법성장(法性藏)

 

 마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다. 법은 본래 표현이 없는 것이지만 푸른 것이라 하면 푸른 법이 생기는 것이고 희다 하면 흰 법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거울 속에는 형상이 없지만 앞에 형상이 나타나면 거울 속에 형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마음 역시 그러한 것이다.

 

 

120, 무생심(無生心)

 

함이 없는 마음으로 상(相)이 없는 무아(無我)을 말한다. 함이 없는 마음의 소유자을 도인의 마음이라 하지, 모양을 인연 법으로 관찰하면 모든 형상과 이름은 영원하지를 못하고 항상 변화하는 과정으로 고정된 것이 없는 것을 알면 무아의 법을 아는 것이라, 집착심을 일으키지를 안는다. 모든 고통은 아(相)라는 집착으로 망상이 나열된다.

 

 

 

121, 무변화(無邊華): 63번 참조. 102번 참조.  

 

122, 청정심(淸淨心): 18번 참조.

 

123, 묘연화(妙蓮華)

 

불법(佛法)을 미묘 법이라 한다. 연꽃이 오염에 물들지 않고 청정하듯, 부처님 법이 마음에 번뇌인 오염을 씻어 주고 오욕락에 물들지 않으므로 진리를 성취하는 미묘 법이라 묘연화(妙蓮華)라 한다.

 

 

124, 선관심(선관심)

 

 마음을 관(觀)하라는 것이다. 마음을 관하면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마음으로 삼라만상을 다 볼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을 다 초월하여 과거 현재 미래가 상통하여 하나로 나타나고 성인의 마음도 나타나고 지옥 중생이나 산천 초목이 다 한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이지만 천태만상으로 나열되는 것은 마음에 집착이 있어 시간과 공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我)란 주관이 나타나면 삼라만상이 나열되고 무아(無我) 내가 없으면 삼라만상이 일어나지를 않는다. 선관심(禪觀心)은 분별심을 다스린다.

 

 

125, 묘법장(妙法藏)

 

 123번 참조. 126, 반야심(般若心): 49번 참조. 127, 만행심(萬行心): 60번 참조.

 

 

128, 정법심(正法心)

 

 바름이 정법이다. 부처님 법을 바른 법이라 하지만 본래 있는 법을 부처님께서 표현한 말씀으로 정법이라 이름한 것이다. 스스로의 마음속에 보장한 자신도 모르는 보배가 원만 구족한 것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닌 미묘한 법이라 누가 가져 갈 수 없고 억압 할 수도 없는 것이 항상 광명을 발산하고 있지만 중생들은 형상과 이름으로 안다고 하여 도리어 주인공을 잊고 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주인공의 눈과 귀가 광명을 발하는 것을 보고 듣고 하리라.

 

 

129, 도선행(道禪行)

 

 불도(佛道)라 하고 불심(佛心,禪心)은 불심이 선심이라 부처님의 마음이 부처님만의 마음이 아니고 부처님께서 깨침의 마음은 본래 있는 자연의 모습이므로 선심(禪心)이라 한다. 불도(佛道)하면 자연스로운 자연의 섭리를 말하는 것으로 부처님께서 자연의 섭리를 아시고 말씀하신 번래 모습 그대로의 법이 불도이다. 도선행(道禪行)은 본래모습 그대로의 마음이라 할 것이다.

 

 

130, 지혜심(智慧心)

 

 85번 참조. 131, 법행심(法行心): 89번 참조. 132, 혜안심(慧眼心): 45번 참조.

 

 

133, 능인화(能印華)

 

 능인은 본 모습으로 본 성품이 있고 없고 이전으로 인정하고 수기(授記) 할 것이 없는 본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부처님 법을 배우고 가르치고 실천하여 안다고 하지만 다 우리의 잠재의식으로 본래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다시 말하면 오이씨는 가르치고 배우지 않아도 오이 열매가 열리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필경에는 본 성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므로 능인화(能印華)라 한다.

 

 

134, 진여심(眞如心): 53번 참조.

 

135, 공덕행(功德行)

 

 부처님전에 시주함을 복전함(福田函)이라 하고 공덕함(功德函)이라 하여 공덕행을 실천하게 한다. 또 스님의 가사를 복전의(福田衣)라 하여 무구의 (無垢衣)라 하고 항마의(降魔衣)라고도 한다. 스님의 먹물 옷인 희색은 불괴색이라 허물어지지 않는 색이라 하여 사람의 마음을 충동이나 질투심이나 시기심, 탐욕심을 일으키지 않는 심리작용을 하면서 마음에 자극을 주지 않는 편안한 색인 수행자의 색으로 옷을 만들어 입어 수행복이라 하고 모든 색깔이 썩고 허물어지면 마지막 희색으로 돌아가므로 불괴색(不壞色)은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부처님 법으로 수행하는 일상 생활이 모두가 공덕행(功德行)이라 할 것이다.

 

 

136, 법안정(法眼定)

 

 선정(禪定)에 들면 법안(法眼)이 나타난다. 천지의 가치관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심안(心眼)처럼 마음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관찰 할 수 있다. 삼매(三昧)는 마음이 편안하고 일어나는 생각이 없으면 마음 주인공의 가치관이 나타나면서 사물을 관찰하는 통찰력이 생기므로 마침 눈앞 세수물 그릇에 얼굴이 나타나듯 한 것이다.

 

 

137, 광명심(光明心): 13번 참조.

 

138, 선혜월(禪慧月)

 

 

 선․혜․월은 마음을 말한다. 선(禪)은 마음으로 고요하면 관찰하는 힘이 생기므로 지혜라 하고 지혜는 밝음으로 고르고 평등하고 맑아서 모든 생명에 빛이고 물이 고 힘이 되면서 에너지라 할 것이다. 달(月)을 비유하여 마음이라 하고 마음 찾는 법을 달에 비유하여 달을 가르치면서 가르치는 손가락에 집착하지 마라 하지, 손 가락은 문자이므로 문자에 집착하여 문자 속에 가르치는 뜻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달밤에 강이나 바다 수면에 바람이 없고 고요하면 보름달의 원만상이 그대로 수면에 나타나는 것을 마음 달이라 하여 마음에 번뇌가 없으므로 지혜의 가치관이 나타나서 통찰력이 생기는 것이 선혜월(禪慧月)이다.
 
139, 무영월(無影月): 138번 참조.   

 

 

140, 청정화(淸淨華): 18번 69번 참조.  

 

141, 선정심(禪定心): 136번 참조.

 

142, 자재행(自在行)

 

 자재는 신통 변화로 눈앞에서 형상이 변화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가치관이 바르면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키지 않아도 자연이 순리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안다. 사람은 마음으로 집착하므로 형상과 이름으로 보고 듣고 있다고 하고 없다고 하지만 자재의 순리를 알지 못하면 시간이 아주 빠른 변화나 아주 긴 시간의 변화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산천에 봄이 되면 하루 밤만 지나서 보면 산천이 푸른 것을 순간 순간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나타난 변화만 볼 수 있는 것은 마음으로 관찰하지 못한 것이고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순간 순간의 변화를 관찰하면 보고 듣지 못한 먼 과거 세상의 일이나 미래 세상의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아는 숙명통(宿命通)의 마음 가치관의 지혜가 생기므로 자재행은 순간 순간의 마음을 관하여 지속하므로 호흡이 쉬지 않듯 하면 지혜의 자재가 성취된다.

 

143, 무량심(無量心): 58번 참조. 144, 길상화(吉祥華): 117번 참조.

 

145, 정각행(正覺行)

 

 정각은 바름을 말한다. 바름은 자연의 순리이고 형상과 이름의 변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에 상통하는 작용을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은 시간과 공간에 자유자재함으로 마음은 시간과 공간에 관계가 없기 때문에 자재한 것이다. 바름은 형상과 이름에 관계가 없으므로 삼세(三世)에 무애 자재(無碍自在)하여 바름(正)이라 한다. 

 

146, 공덕화(功德華)

 

 135번 참조. 147, 정토화(淨土華): 75번 참조.

 

148, 초발심(初發心)

 

 처음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보리심(菩提心)이라 바름의 깨침이다. 깨침이 처음 마음이라 하여 물질의 가치관보다도 정신의 가치관으로 육신으로 살면서 정신 가치관인 바름을 깨달아서 삼라만상을 관찰하는 것으로 욕망의 전도된 마음이 아닌 것으로 시간을 모르는 아득한 때부터 내려온 죽고 사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초발심은 죽고사는 곳에서 벗어나는 첫 마음이다.

 

149, 마하심(摩訶心): 50번 참조.

 

150, 지성해(池成海)

 

 연못의 물이 바다 물로 통한다. 샛강 물이 흘려서 바다 물이 된 것이니, 범부 중생의 욕망이 초발심으로 깨침의 보리심으로 진여(眞如)의 참모습이란 것이다. 지성해(池成海) 마음은 번뇌즉 보리(煩惱卽 菩提) 중생의 번뇌가 성인의 진여심인 마음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지성해 마음은 선심(禪心)을 말한다.

 

151, 연화수(蓮花樹)

 

 부처님 마음으로 연꽃이라 할 것이고 보리수(菩提樹)라 하여 정각수(正覺樹)라 하지, 정각의 깨침 마음이 중생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원동력이고, 연꽃도 오염된 물을 청정하게 하는 힘이 있다. 연화수(蓮花樹)는 마음에 청정수(淸淨樹)이다.

 

 

152, 불국화(佛國華)

 

 부처님께서 계시는 곳이 불국(佛國)으로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부처로 보는 것이다. 속담에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처럼 부처님 아들, 딸들은 모두가 부처로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이라 마음이 부처 아닌이 없으므로 두두 물물이 부처인 것이다. 두두 물물이 부처라면 석가 부처님을 존경하듯, 두두 물물을 존경하여야 할 것이라, 싫어 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153, 무량지(無量智)

 

 헤아림이 없는 지혜는 무루지(無漏智)로 다 함이 없는 지혜로 생명의 존엄성이라 할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은 불성(佛性)으로 가고 옴이 없고 시비 생사가 없는 그대로의 모습이라, 누가 흉내를 내고 억압 할 수 없는 것이 풀을 바위로 눌어서 억압하여도 연약한 풀은 고개를 들고 자라서 꽃을 피우므로 불성은 억압 할 수 없는 것이다. 씨앗에 공기가 없다면 움트지 않고 천만년을 씨앗으로 존재 할 것이고 공기가 씨앗에 접촉하면 생(生)으로 거듭 태어나서 움이 트면서 씨앗이 나무가 되는 것이 불성(佛性)이고 생명력이고 부처이다.

 

154, 허심장(虛心藏)

 

 76번 참조. 109번 참조.

 

155, 관조심(觀照心)

 

 태양이 빛을 발하여 천만강에 태양이 나타나므로 해의 그림자가 생긴 것이다. 그림자 해가 실상은 아니지만 해 모습으로 나타나려면 구름이 없어야 수면에 모습대로 나타나고, 관조심은 태양이 어떻게 생긴 것인고 하고 마음으로 관조하면 태양이 생긴 인연을 안다. 관조함으로 중생은 번뇌가 성인의 마음으로 변하여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156, 향수해(香水海)

 

 부처님 말씀에 수미산을 중심한 사방 바다가 향수해라 한다. 부처님께 항상 기도하면서 향 사루어 정성을 올리고 청정수를 올려서 감로수(甘露水)로 변화시켜서 중생의 병을 치료하기를 발원하고 꽃, 과일, 쌀, 등불, 향, 차, 공양의 6법 공양을 올려서 자연의 감사와 은혜를 체험하고 스스로가 실천하므로, 우리 마음에 불국토의 향수해가 성취되는 것이다. 향수해의 동서남북 바다에서 상서로운 구름과 향기가 진동하고 중앙에 수미산 도리천주가 부처님께 6법 공양을 올리면 모든 인간이 복덕과 지혜가 증장하여 불국토가 성취되는 것이다.

 

157, 법성화(法性華)

 

 

119번 참조.   

 

158, 지혜자(智慧子)

 

 

17번 참조. 85번 참조.  

 

159, 보리행(菩提行)

 

110번 참조.

 

160, 무애행(無碍行)

 

 무애자재 함은 번뇌가 없어야 한다. 청정함이 물 청정은 모든 생명에 힘으로 무애라 하고 자재라 할 것이다. 모양과 이름이 있으므로 장애가 나타나므로 무애자재 할 수 없고, 공기, 흙, 마음이 청정하므로 무애자재라 함은 모든 생명에 순응함으로 무애자재라 한다.

 

 

161, 본래심(本來心)

 

 청정 법신를 부처라 하여 두두물물이 부처라 하고, 석가 부처님은 이 마음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가섭에게 마음으로 전하여 서천(西天) 28대 달마스님은 동양에 선(禪)으로 견성 성불(見性成佛)인 성품을 보면 부처을 성취한다고 하시고, 동양 육조(六祖)스님은 본래 면목(本來面目)이라 본래모습 그대로라 하셨다.

 

 

162, 법보해(法寶海)

 

 법장(法藏)스님은 아미타불 전생에 스님으로 48원력을 성취하시어 극락세계 교주가 되셨다고 석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장은 법보해(法寶海)로 부처님의 마음이고 중생들의 본 성품 자리이므로 진리를 바다에 비유한 것으로 천만 샛강의 물이 바다로 향하여 한 바다이므로 법보해라 하지만 중생은 스스로가 부처의 본성을 간직하면서 잊어버리고 눈앞에 물질의 욕망에서  보배를 삼아 보이지 않는 가치관인 법보해의 보배을 잊어버리고 욕망으로 즐거워 하다가 고락이 상반되어서 고통스러워한다. 법장스님은 법보해의 진리를 성취하시어 아미타불이 되셨다.

 

 

163, 무주심(無住心)

 

 

 부처님 금강경 말씀에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已生其心) 머무는 마음이 아닌 집착심이 없는 마음을 말씀하신 뜻을 6조 스님은 출가 전에 깨침으로 6조 스님은 돈오(頓悟)사상을 주장하셨다. 머무럼이 없는 마음은 집착심이 없는 마음이고 상(相)이 없는 마음으로 형상과 이름에 장애가 없으므로 무애자재하다.
   

 

164, 삼매자(三昧子)

 

 삼매는 일념의 한 생각으로 일념만년(一念萬年)으로 한 생각이 만년이 아닌 만겁으로 지속하니 삼매자는 시간과 공간에 관계하지 않는다. 연등 부처님 시기에 법문하시는 자리에 자 벌레가 법문을 듣고 삼매에 들어 석가 부처님시기에 신족통을 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한 농부가 논 갈이를 하다가 이상한 물체를 논에서 발견하여 보니 돌도 아니고 쇠도 아니고 프라스팃도 아닌 것이 손발톱이 자란 것으로 이상한 둥근 물체를 톱으로 절단하자 펑 소리를 하면서 사람이 나타나서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한 생각의 일념으로 시간을 초월하므로 손발톱이 자라서 몸을 쌓아 공처럼 둥근 물체가 된 것으로 이것이 일념만년이라 삼매자라 할 것이다.

 

 

165, 수정심(修淨心)

 

 청정심은 수행심으로 항상 바른 마음을 실천한다. 부지런하면 물질이 모이고 부지런하게 공부하면 지식인이 된다. 지혜는 부지런하게 마음을 비우는 것으로 물질의 욕심이 아니고 물질의 이름과 모양에 집착이 아니고 집착이전의 인연법의 가치관을 관찰하는 힘이 지혜력으로 수정심은 지혜력을 증장시킨다.

 

166, 장엄화(莊嚴華)

 

 장엄은 극락세계 장엄이 무궁하다는 것이다. 아미타경 말씀은 극락세계 땅이 금이고 산천에 나무가 금으로 장엄하였다고 하고 물은 보배 약수로 병을 치료하고 생명수로 목숨이 연장되고 장수를 하고 연못에 연꽃은 큰 수레바퀴처럼 크고 청황적백은 각각 빛을 발하고 새들은 설법을 한다는 이상적인 세계이다. 인간 세상도 욕망만 없으면 정토(淨土)세상이라 해는 너무 열이 강열하여 생명이 못 살아서 지옥이고, 달은 너무 추어서 생명이 살 수 없어 지옥이고, 지구는 따스함으로 생명들이 잘 살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오염을 시키므로 병이 들고 목숨이 단축되지만 이것을 깨달아서 청정으로 변화시키면 정토(淨土)인 것이다. 천년 고찰을 찾아가면 왕궁보다 화려한 건물 단청으로 장엄한 것을 보면 금으로 건물에 장엄한 것은 왕궁외에는 할 수 없는 것으로 사찰은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왕중왕(王中王) 진리의 왕인 법왕(法王)으로 금으로 장엄한 것이다. 물, 공기, 흙, 마음이 청정하면 인간 세상은 가장 수행하기 좋은 곳으로 반은 고(苦)이고 반은 즐거움(樂)으로 조건이 형성된 곳으로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최상승 수행처로 하늘 사람도 도를 성취하려면 인간 세상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무루심(無漏心): 진리의 공덕은 다함이 없는 마음이라 형상과 이름으로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이 아니란 것이다. 불보살님의 마음은 모든 생명의 소리에 순응하시므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무루심이라 한다. 중생의 원력이 다 함이 없고 불보살님의 원력이 다 함이 없어 자비심의 생명력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168, 성불화(成佛華)

 

 진리의 깨침으로 부처의 성품에서 부처님으로 성인이라 하여 부처의 성품자리를 보면 견성(見性)이라 하여 선지식이라 하고 도를 성취하여 성도(成道)라 하고, 부처님이라 하여 성불하셨다 한다.

 

 

169, 대자행(大慈行)

 

 큰 자비심은 생명에 힘으로 청정한 공기, 물, 흙, 마음일 것이다. 청정하면 생명들은 스스로 능력에 따라 큰 것은 큰 대로 작은 것은 작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염은 모든 생명에 피해를 주지만 현실적으로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더 심각한 것이다. 경제를 개발하면서 오염을 시키므로 눈앞에 이익만 생각을 하고 자연을 오염시키면 기후가 변하고 모든 생명이 떼 죽음을 하면 야단이다. 생명에 대 자비심은 오염을 시키지 않는 것이다.

 

 

170, 미타행(彌陀行)

 

 74번, 108번 참조.

 

 

171, 법연화(法緣華)

 

 

 인연이란 말을 많이 하지만 법연(法緣)은 부처님 법의 인연으로 도반(道伴)이라 할 것이다. 석가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고 쓰고 암송하면서 오늘 절에 가는 데 같이 가자 같이 염불도 하고 설법도 듣고 하면 도반이 되는 것이다. 자주 자주 염불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의 마음으로 변하는 참으로 법연의 미묘한 법이다. 담배와 술을 피우지 않고 욕도 하지 않고 신경질도 부리지 않고 오로지 관세음보살님 하고 나무 아미타불이시다. 현재의 마음이 편하면 사후의 마음도 편안한 것이다. 
  

 

172, 길상심(吉祥心)

 

 

117번, 144번 참조.  

 

173, 연화심(蓮花心)

 

151번 참조.

 

174, 대덕화(大德華)

 

 큰 나무숲은 그늘이 시원하고 생명들이 쉬어 가는 곳으로 안식처이다. 숲 속 터널을 지나면 나무 향기가 향끗 하면서 흙 냄새를 느낄 수 있고 흙의 밟는 느낌이 도시 도로 밟는 감각하고는 대조적이고 사방에서 물소리를 듣는 것은 산의 생명소리이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한들, 한들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마음에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자연의 소리를 보고 듣고 하면서 주위의 나무 가지 잎사귀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자연히 마음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여 대덕심(大德心)이라 한다.

 

 

175, 대자행(大慈行)

 

169번 참조.

 

176, 명경심(明鏡心)

 

 명경(明鏡)은 거울을 마음에 비유한 것이고 맑은 거울에 나타나는 모양처럼 마음이 맑으면 마음에 밝은 가치관의 지혜가 나타난다. 마음이 맑지 않으면 욕망, 성냄, 질투, 시기하는 어리석음이 죽 끊듯 하므로 마음이 밝지 못하고 맑지 못하여 마음의 주인공을 잊어버리고 항상 경계를 보고 듣고 집착하므로 이름과 형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일으킴으로 마음에 주인공의 자비심인 광명을 발 할 수 없다. 맑은 거울처럼 마음이 맑으면 지혜의 가치관이 태양처럼 밝은 것이다.

 

 

177, 해연심(海蓮心): 바다 연꽃은 관세음보살님의 도량으로 보타낙가산으로 바다변이나 섬을 말한다. 우리나라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가 관음도량으로 바다를 주위한 곳으로 바다변의 안개가 새벽 햇살의 광명을 받으면 안개의 모습은 관세음보살님이 바다에서 연꽃을 타고 나타날 듯한 마음을 느낀다. 

 

 

178, 반야행(般若行)

 

 49번 참조.

 

179, 반야월(般若月)

 

 지혜는 밝은 것이고 맑은 것이고 바르고 고른 것으로 달에 비유하고 마음에 비유한다. 달의 자체는 보름달이고 그믐달이고 초생달이 없지만 지구에서는 보름달을 보려면 지구와 달의 공전이 보름이면 원만 상을 보고 그믐달은 월말이고 초생 달은 월 초순으로 음력으로 달을 월(月)이라 하고 달이 12바퀴 자전하면 해(年)가 된다. 지구가 한 바퀴를 돌면 일(日)이라 하고 지구가 30바퀴를 돌면 달(月)이라 하고 달이 12바퀴 돌면 해(年)라 하여 1년을 12개월로 365일이라 한다. 지구에서 밝은 달을 보려면 날씨가 맑아야 하고 보는 사람의 마음 기분이 좋으면 맑은 달을 보면서 시(詩) 한 수를 하기도 한다.

 

 

180, 회향심(廻向心)

 

 거듭하는 마음이 회향심으로 기도를 회향한다 하면 끝마침이 아니고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등학교를 입학하고 중등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대학원, 학사, 석사, 박사로 지속하는 마음이 회향심으로 이렇게 마침과 시작이 지속되면서 거듭하는 것을 회향이라 하고 생사 윤회도 같은 것이다. 회향심에는 항상 새로움이 나타나지, 마음의 옷이 육신이고 육신의 수명이 다하면 마음 옷을 가라 입는 것이 생사(生死)이고 몸에 옷은 빨래하고 추한 것을 씻어 입으면 깨끗한 것으로 마음이 맑고 기분이 상쾌한 것이고 마음 역시 청정하면 지혜가 항상 광명을 발하여 삼라만상에 주인공 역할을 한다.

 

 

181, 자성화(自性華)

 

 자성이 매하지 않아 항상 광명을 발함이 태양과 같음이나 스스로 매하여 무명(無明)으로 집착하여 즐거움을 삼는 것이 눈앞에 아름다운 불꽃에 타 죽는 줄을 모르고 탐하는 불나방처럼 인간의 욕망의 즐거움이 돌아서면 괴로움의 원인인 것을 알지 못하고 탐착하는 모습이 어리석음으로 스스로가 마음이 매한 까닭이라, 마음을 관하면 스스로가 항상 발하는 광명을 볼 것이다. 자성의 광명은 태양처럼 항상 광명을 발하고 있다.

 

 

182, 복덕화(福德華)

 

146번 참조.

 

 

183, 다보화(多寶華)

 

 다보탑을 경주 불국사에 가면 볼 수 있다. 부처님 도량에 설법하시는 법신으로 땅속에서 용출하는 새싹들을 보면서 땅의 기운이 하늘로 용출하는 모습이라, 우리의 마음에 용출하는 용기를 보라, 부처님의 원력과 무엇이 다르리요. 목숨에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면 진리를 내면 진리를 위한 몸인 것을 깨달으면 몸은 헌옷 갈아입는 마음일 것이다. 다보심(多寶心)은 마음의 용기이다.

 

184, 진여성(眞如性)

 

 53번 참조. 134번 참조.

 

 

185, 정덕심(淨德心)

 

 청정의 덕성은 원만함이라 지옥 중생의 구제가 자비심을 베푸는 것이고 지옥 중생도 물을 먹을 수 있고 공기를 호흡 할 수 있고 열매의 흙을 먹을 수 있어 모든 생명은 청정을 근기에 따라 생명력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이다. 지옥 중생이 생명력이 아니라면 고통스러워 할 것이 없다. 생명력은 자비심이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싫어하고 좋아하고 시비 선악하는 마음이 정덕심이다.

 

 

186, 원각행(圓覺行)

 

 원각(圓覺)속에 살면서 원각을 모르고 사는 중생이라 하신 원각경 말씀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자연을 파괴하고 불평하고 어리석음으로 경제를 탐하는 모습은 경제 산업들이 제품을 만들기 위하여 독성 화학 물질을 사용하면 사용한 폐수물은 독극물이지만 정화를 하면 생명들이 살지만 정화를 하지 읺고 방류하면 생명들이 떼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이러한 환경이 많으면 많을수록 생명들은 죽는 것이지만 경제 때문에 방치한다면 환경은 심각한 것으로 사회인과 정부를 대상으로 환경 운동가들의 궐기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187, 자운화(慈雲華)

 

 새벽 동틀 무릅 산 계곡에 안개를 보면서 저것이 자운(慈雲)이구나 생각하면서 아침 동틀 무릅과 저울 노울을 바라보면 황홀한 자연을 체험한다. 밤의 찬 기운과 새벽 햇살의 기운으로 산 기슭에 기온의 차이로 생기는 이상 기류가 자운이다. 자운의 모습은 새벽 햇살의 기온에 따라서 계곡 안개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미묘한 느낌을 받는다. 순간 순간으로 마음속에 느낌이 용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기러기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호랑이 모습 멧돼지 모습으로 가지 각색으로 나타나고 사라지고 한다. 안개 모습이 나타나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188, 실상화(實相華)

 

 상(相)이 있으면 실상이 아닌 것으로 없는 상을 실상이라 할 것이다. 금강경 말씀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명(是名) 이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라 하여 이름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방편으로 진리 라 이름한 것이다. 청정법신은 모양과 이름이 없지만 중생이 좋아함으로 청정법신불이라 이름도 하고 모양도 하는 것이다.

 

 

189, 법륜행(法輪行)

 

 진리 바퀴를 법륜이라 한다. 부처님의 32상중에 발바닥에 수레바퀴처럼 모습한 법륜 바퀴가 있다고 하신다. 지구는 현재에도 전쟁과 궁핍으로 죽는 사람이 많지만 전륜성왕은 덕상으로 국민을 다스림으로 전쟁이 없고 질병이 없고 굶주림이 없는 시절이라 하여 전쟁지역은 스스로 전륜성왕의 덕상으로 귀의하고 화합으로 한 나라로 형성되어 서로서로 도움으로 정토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은 전쟁보다도 화합을 요구하고 있고 생명존엄을 제시하고 있어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민족 한을 가슴에 안고 있는 것이니 준비 전쟁시기로 생명존엄으로 전쟁은 피하고 남북이 하나가 되자는 것이다. 만약에 전륜성왕의 덕상으로 전쟁없이 남북이 하나가 된다면 민족의 슬기이고 영광스러운 백의 민족을 세계에 자랑 할 것이고 후손들의 당당하게 자랑 할 마음이고 조상의 얼이 빛날 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인 전륜성왕의 의미이다.

 

 

190, 희견심(喜見心)

 

 기쁨과 환희심은 긍정심이고 발심의 첫 걸음으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기쁨을 수순하고 칭찬하고 예배 공양하면 이것이 봉사이고 남을 도우는 보살심의 실천으로 자연을 체험하고 감사와 은혜를 실천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흙인 먹거리와 공기, 물을 청정하게 하는 실천행이 보살심의 실천이다. 마음 청정에서 자연 청정으로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깨달아 깨달음을 실천함이 보살행이고 바라밀(波羅密)인 열반(涅槃)의 영원한 즐거움으로 정토 세상이라 할 것이다. 

 

 

191, 여의주(如意珠):

 

 95번 참조.

 

 

192, 평등심(平等心)

 

 생명존엄이 생명에게 평등성이고 모든 것이 이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고 본래 주어진 본성으로 중생이 잊고 산 것이다. 물을 관리하고 통제하여 수도 물을 사용하지만 물을 관리한다는 것이 인간의 힘이 나타나는 것이니 이것 또한 잘못이다. 사람의 힘은 홍수와 가뭄을 조절 할 수 있어 가뭄으로 물싸움을 하고 모내기철이면 행사적으로 가뭄이라 소방차가 모내기 물을 공급하고 양수기를 지원하고 가뭄 대책 위원회가 구성되고 초등학생까지 동전 모우기 운동으로 사회는 야단법석이다. 이것은 생명에 물이 필요하고 물의 평등성이 생명의 평등성인 것으로 불성(佛性) 찾는 소리이다.

 

 

193, 몽각심(夢覺心)

 

 꿈 깨는 소리는 마음이 시원하기도 하고 마음이 허전하기도 한 것이다. 꿈속에 빌딩을 헤아릴 수 없이 지어서 부자 되는 꿈을 깨고 보면 허전 할 수가 없다. 욕망의 오욕락인 마음을 깨면 깨달음이라 번뇌에서 해탈 할 수 있다. 
내 몸이 영원하리라 하고 힘이 있다고 야단법석이지만 50세가 넘고 나면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마음은 밝은데 눈은 어두워지고 있는 것이니 모든 것이 쇠퇴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니 모두가 무상하고 꿈인 것이다.

 

 

194, 무위심(無爲心)

 

 함이 없는 마음은 스님의 마음이고 도인의 마음이라 하지, 스님은 자식도 없으면서 어린이들을 보면 어린이처럼 좋아하고 , 스님은 재산도 없으면서 보는 사람마다 주는 것을 좋아하고 , 스님은 욕을 해도 웃으시면서 욕을 하고 듣는 사람도 싫어하지를 않고, 스님은 이름도 없으시면서 보는 사람마다 다 이름을 부르고 좋아하고, 스님은 욕을 들어도 성질을 부리지 않고 웃으신다. 스님은 모든 것이 함이 없이 함으로 시비가 없으시다.

 

 

195, 원각심(圓覺心)

 

 189번 참조.

 

 

196, 일미해(一味海)

 

 팔만사천 법문이 일심(一心)법문이라. 천만 갈래의 샛강 물이 바다로 향하면 한 맛으로 나타나므로 일미해(一味海)리 한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세계을 각해(覺海)라 하시고 자비심의 원력은 모든 생명력을 살리고도 모자람이 없는 것으로 자신의 주인공을 떠나서는 찾을 수 없다. 자비심을 자신 밖에서 찾으므로 허송 세월을 하고 있어 부처님의 자비심을 배우고 실천하려면 자신이 하여야 하는 것이 마치 물을 스스로 마시면 냉온을 스스로 아는 것처럼 자비행을 실천하려면 스스로가 하는 것이다.

 

 

197, 일심정(一心正)

 

 바른 마음은 어떤 것일까? 보고 듣고 하는 작용을 놓아 버려라, 보는 것을 놓아 버리면 보는 것이 해결될 것이고, 듣는 것을 놓아 버리면 듣는 것이 해결 될 것이다. 보고 듣고 안다고 하는 것이 다 장애물이므로 아는 것이 집착이고 병인 것이므로 일체 마음 밖의 경계를 놓아 버려라.  

 

 

198, 관음자(觀音子)

 

 관세음보살님을 관음자라 한다. 관음은 세상의 소리를 듣고 순응하시는 보살님이시니, 생명의 어머님으로 항상 생명을 보살피시는 분이시다. 가뭄에 관음을 칭송하면 비가 오고 홍수에 관음을 생각하면 홍수의 재난이 없어지고 팔난의 재앙을 만나도 관음을 생각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관음은 세상의 소리를 듣고 순응하시는 분이시다.

 

 

199, 무애심(無碍心)

 

 무애심은 집착이 없으므로 무애자재한 것이므로 물이 풀에 순응하면 풀이라 하고 물이라 하지 않으므로 자재한 것이고, 물이 나무에 순응하므로 나무라 하지 물이라 하지 않으므로 자재한 것이고, 빛이 나무에 순응하므로 나무라 하지 빛이라 하지 않으므로 자재한 것이지, 또한 공기, 흙이 이와 같으므로 자유자재함으로 생명력으로 자라는 것이다.

 

 

200, 법시행(法施行)

 

 법시는 진리 말씀으로 부처님의 말씀과 마음을 전하는 것이고 전법을 실천하므로 자신의 마음으로, 입으로, 몸으로 실천함이니, 부처님의 법과 자신의 실천이 둘이 아니면 정토(淨土)가 실천되는 것이다. 정토는 생명존엄으로 서로 서로가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풀의 생명력이나 사람의 생명력은 하나이므로 청정을 실천하면 차별이 없는 마음이다. 중생은 이 마음이 인색하고 탐애심으로 치중하여 즐겁게 살아가면서 조석으로 아우성이니 어리석음이라 한다.

 

 

201, 무량화(無量華)

 

 58번, 103번, 143번, 참조.

 

 

202, 정도행(正道行)

 

 바른 길은 부처님 마음은 선(禪)이고, 말씀은 교(敎)이다. 바른 법이 스스로의 마음에 잠재하여 여래장(如來藏)이라 하여 감추어진 복덕과 지혜가 본래부터 원만구족한 것이지만 스스로가 잊어버리고 구족한 줄도 모르고 항상 욕심으로 만족함을 충족하려고 하므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바른 길은 이러한 각자 스스로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다.

 

 

203, 진성월(眞性月)

 

 본래 성품은 있고 없고를 떠난 자리로 이름하여 진성(眞性)이라 한 것이다.
  진성이라 이름하여서니 아닌 것이고 이름하지 않으면 인식 할 수 없으니 없는 것을 있다고 한 것이니, 이것 또한 아닌 것이다. 무엇을 진성(眞性)이라 할 것인가? 진성이라 할 것이 없지만 이름하여 진성이라 한 것이다.

 

 

204, 무진장(無盡藏)

 

 11번, 59번, 105번 참조.

 

 

205, 해도자(海道子)

 

 해도는 관세음보살님 도량을 말한다. 해도자는 관세음보살님으로 자비의 생명력으로 항상 같이 하시는 것이다. 부모님 마음으로 자식에게 베푸는 마음이시라, 모든 생명에 자비를 베푸는 것이니, 생명력으로 에너지인 공기, 흙, 물, 유전자라 할 것이다. 요즈음 과학의 힘은 생명의 지도를 완성하여 불생 불멸(不生 不滅)의 본모습을 발견하여 본래모습 그대로를 실현시키는 유전자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음양의 생명력이 아닌 유전자를 발견하여 생명을 탄생시키는 시대로 생명력의 영원성인 유전자로 생명의 화현이라 할 것이다.

 

 

206, 경월심(鏡月心)

 

 거울에 달이 나타나면 달이라 하지만 그림자 달이고 허공에 달은 진실이지만 마음에 달은 아닌 것이니 마음에 달은 어디에 있는고! 거울과 달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마음 달을 볼 것이다. 거울과 달과 마음을 다르게 보면 마음은 진실의 본래모습이고 달은 현상의 진실을 말하고 거울은 천만강에 비치는 화신이라 할 것이다. 달을 보라 하면 보라고 한 사람의 마음이 주인공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시고, 하늘 달은 나투신 원만보신 노사나불이시고, 거울에 비친 달은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로 근기에 순응하시여 중생을 구제하시는 것이다. 청정법신, 원만보신, 천백억화신으로 법보화 삼신(法報化 三身)으로 부처님을 말한다.

 

 

207, 해탈심(解脫心)

 

 해탈심은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모든 물질은 생명력이 있지만 형상과 이름이 주어지면 고정인식으로 이름과 형상에 집착하여 있다고 인식하고 주관과 객관으로 분별이 나타나면서 천만상으로 나열되면서 시비 선악 생사에서 윤회함으로 해탈하지 못한다. 해탈심은 형상과 이름으로 고정인식의 집착심에서 벗어나는 마음으로 안다는 집착심이 있으면 벗어 날 수 없으므로 마음에서 안다는 마음을 비우므로 집착에서 벗어나므로 편안을 찾는 것이다.

 

 

208, 광명지(光明智)

 

 마음의 광명을 지혜라 하고, 부처님전에 연등 빛 공양을 마음의 지혜라 하고 전기 빛이나 촛불 빛으로 공양하므로 마음의 빛으로 마음의 어둠을 밝히는 지혜라 하여 실천을 하고 있다. 부처님전에 빛 공양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바름을 빛의 밝음으로 청정의 맑음으로 우리 스스로의 마음에 원만 구족한 빛과 청정을 부처님 전에 감사와 은혜로 체험함으로 스스로의 잊어버린 빛과 청정을 찾는 것이다.

 

 

209, 보리행(菩提行)

 

 보리는 진리를 말하고 진리는 변화하는 길이므로 인연 법으로 관찰하면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으로 관찰하면 모든 물질의 형상과 이름이전의 형상과 이름을 살펴 볼 수 있으므로 청정의 생명력은 생명에 대단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청정이 중한 것은 생명력을 왕성하게 한다는 것이고 오염은 생명을 병들게 하고 죽이는 것이므로 각자 스스로가 물질을 생산 할 적에 물질의 경제만 생산하지 말고 에너지를 오염시키지 말고 청정으로 더불어 사는 정토의 환경 경제성으로 물질을 생산하라는 것이, 우리가 원력으로 만들어야 할 중생의 정토인 것으로 보리행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공장 생산 작업에서 배수 물을 정화시켜서 배출하는 것이 진리이고 공장 공해을 굴뚝으로 배출시키지 않고 정화하여 굴뚝 없는 공장이 진리 실천이다. 아직은 청정 산업이 시범 단계로 보이는 공장마다 도시 가운데서 검은 연기를 배출하고 있는 것을 볼 적에 시민들은 청정에 대한 인지도가 미약하여 벙어리처럼 말이 없고 엉뚱한 시비만 하고 있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210, 천지안(天地眼)

 

 천지안은 하늘과 땅에 상통하는 눈으로 법안(法眼)이라 할 것이다. 하늘의 기운은 공기이고 땅의 기운은 열매이므로 생명은 하늘의 기운인 공기와 빛의 기운을 받고 땅의 기운인 흙과 물의 기운을 받고 땅과 하늘 사이에 바람과 날씨의 기운을 받으면서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것이니, 다 자연의 기운으로 사는 것이므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잘못 인식을 하고 사는 것이니, 스스로 자연을 등지고 또 본성의 주인공을 등지고 마음은 욕심으로 번뇌에 오염되고 자연을 오염시키면서 잘 살기를 바라는 아우성이  어리석음의 소리임을 아는 것이 천지안(天地眼)이다.

 

 

211, 보현행(普賢行)

 

 화엄경 보현보살 행원력은 실천행을 강조하시면서 보살의 마음은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라 하셨다. 신구의 업(身口意 業))에 싫어함이 없는 마음은 신(身)업은 살생은 방생의 생명존엄하고, 훔치는 것은 베푸는 보시를 하고, 사음행은 질서와 양심으로 몸으로 바로 일을 실천하고, 구(口)업은 나쁜 말, 속이는 말, 시비하는 말, 거짓 말을 진실한 말로 입으로는 바른 말을 실천하고, 의(意)업은 탐진치(貪嗔癡)마음을 다스려서 마음으로 바른 득을 실천하라는 것이 삼정(三淨)운동으로 보현보살의 실천 원력이시다.

 

 

212, 무량행(無量行)

 

 58번, 103번, 143번, 153번, 201번, 참조,

 

 

213, 해인심(海印心)

 

 바다 수면이 고요하면 수면에 해도 비치고 모든 형상이 나타나 그대로 보이는 것과 같이 마음도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고요하면 편안을 찾고 지혜가 나타나면서 사물의 인연 법을 알아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통찰하는 것이다.

 

 

214, 수미산(須彌山)

 

 부처님 말씀에 수미산 정상에는 도리천주(兜利天主)가 계시고 천주인 제석천왕이 인간의 수명과 복덕을 다스린다고 하여 사천왕 권속인 사자를 시켜서 사람의 선악을 명부에 기록하여 선악을 분별한다는 것이다. 인도 중국 국경인 티벳트 산맥을 불교에서는 수미산이라 하고 수미산은 아득한 설산(雪山)이라 새벽 햇살이 틀 무렵 햇살을 받아서 찬란한 빛이 비치는 것이 흰 연꽃이 찬란하게 광명을 발하는 것과 같고 눈 산에 눈이 녹아서 물이 흐르는 강을 아뇩달지 라 하여 청량지(淸涼池)라 하고 사회에서는 신근(身根)신앙이 지중하여 지구의 기운이 시작하는 곳으로 유명하여 기운을 받는다 하여 지구인들은 해마다 답사를 한다. 

 

 

215, 청량심(淸涼心)

 

 무엇을 청정심이라 하는가? 모양과 이름이 변화하면서 거듭 태어나는 생명력이 청정이다. 청정은 모양과 이름이 없지만 청정이 모양으로 나타나면 이름이 생기고 청정은 형상으로 변하여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열매는 거듭 씨앗으로 흙 속에서 움이 트고 자라면서 청정이 생명력으로 지속되는 것이다.

 

 

216, 응심화(應心華)

 

 금강경 말씀에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已生其心) 응당히 머무는 봐 없이 마음을 내라는 것이다. 응심(應心)은 상(相)이 없이 순응하는 마음으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고 불 보살의 마음이고 중생의 본 마음이라 할 것이다. 6조 혜능 스님은 출가 전에 시골 나무꾼으로 시장에서 스님의 금강경 독송하시는 염불을 듣고 응심(應心)에서 마음을 깨달아 5조 스님 회상에서 노 행자로 스님의 법을 인가 받았다. 글자도 모르는 시골 나무꾼이 마음을 안 것이니, 요즈음 말로 팔자를 고친 것이다. 지식인들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 현대인은 불가사의한 일이라 할 것이고 세상 사람이 웃을 일이고 스님들이 귀가 찰 일이고 천지가 진동 할 일이 불문(佛門)에서 생긴 것이다.

 

 

217, 진언자(眞言子): 진언은 부처님 말씀이다. 부처님 교리(敎理)에는 다라니, 주문, 진언이라 하여 인도 말을 그대로 사용한다. 진언을 암송하면 스님들은 뜻을 모르고 암송하여도 공덕이 있다고 하시고 뜻을 알면 더욱더 좋은 것이다. 염불을 하면서 뜻을 마음으로 관(觀)하면 염불도 하고 선(禪)도 하는 것으로 염불선(念佛禪)이라 할 것이다. 염불이 좋고, 주력이 좋고, 참선이 좋다고 하면서 서로가 야단이지만 염불을 마음으로 관하면 선(禪)인 것으로 염불과 참선(參禪)을 둘로 보지 않는다. 염불과 참선이 마음으로 관하지 않으면 가피력이 없고 삼매(三昧)에 들지 못하고 선정(禪定)에 들 수 없는 것이다.

 

 

218, 지초장(地草藏)

 

 흙에 풀을 잡초라 하지만 풀이 자라는 곳은 흙먼지가 흙으로 변하고 생명이 모여들고 물이 모이고 생명의 근원지가 된다. 바다 변에 잡초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모래 언덕에 잡초는 모래을 쌓이게 하여 모래 언덕으로 형성되어 해일의 파도가 피해를 주지 못한다. 잡초의 한 잎의 푸르름이 산천을 푸르게 하고 티끌 하나 하나가 지구를 형성하는 것이다.

 

 

219, 죽림월(竹林月)

 

 대밭은 항상 푸르름으로 절개를 상징하고 항상 푸른 생명력이 대단하고 하루 밤사이에 죽순은 일년을 자란 대나무처럼 보인다. 요즈음의 절개의 푸르름은 청정을 말 할 것이고 마음이 청정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편안한 것이고 공기, 물, 흙이 청정하면 생명들은 잘 사는 것이다.

 

 

220, 면목자(面目子):

 

 안면이 있다는 말처럼 서방 정토 아미타불 친견 마정 수기를 중생들은 원력을 세우고 선지식을 친견하기를 원하고 수행하여 성품 보기를 원하고, 면목자는 생사가 없는 본래면목인 본 성품을 말하므로 6조 스님께서 노 행자시기에 혜명스님이 법을 묻자, 선악이전 마음으로 돌아가면 혜명스님의 본래면목이라 하여 오도(悟道)를 하였고, 달마스님은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 성품을 보면 부처라 하여 달마선(達摩禪)으로 중국은 대 선지식들이 속출하였다. 

 

 

221, 불이성(不二性)

 

 성품은 둘이 아닌 것으로 삼라 만상이 다 마음이란 것이다. 우리가 삼라만상을 마음하고 다르게 보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점으로 아득한 긴 시간에서 보면 삼라만상이 다 자신이고 마음이고 부모님이고 형제라는 것이다.
  현재의 몸으로 자신이라 하지만 몸은 100년을 가지 못하고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자연으로 돌아가고 마음도 자연으로 돌아가면서 인연을 찾는 것이 업(業)이라 살아 있을 적에 행위가 업으로 죽은 후에도 거울에 형상처럼 나타나는 것이 분명하므로 살아 생전에 한 번 말하고 한번 움직이고 한 번 마음씀이 매우 중요한 것이므로 자신의 법이고 자신을 만드는 가피력으로 현재가 중한 것이 바로 선(禪)이고 불심(佛心)이고 본심(本心)이라 마음을 떠나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사후에 염라대왕이나 아미타불 친견은 미래의 마음으로 현재의 마음을 바로 함으로 사후에 일은 스스로가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중생들은 현재의 욕망으로 즐거움으로 살기 때문에 사후에도 아미타불의 정토왕생을 원력으로 삼아 수행하므로 수행하는 현재 마음이 바로 즉심(卽心)이고 선(禪)이란 것이다.

 

 

222, 대승행(大乘行)

 

 대승은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집착심이 없는 마음으로 도인의 마음이라 누구든지 이 마음은 있고 이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무아의 세계라 할 것이고 정토라 할 것이다. 정토(정토)는 청정이 생명력으로 모든 생명에 순응하는 마음으로 물처럼 생명에 순응함으로 물은 이름과 형상이 없지만 순응한 대상은 이름과 형상이 니타나는 마음이 대승이고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순응하므로 중생의 마음을 수순하여 하나가 됨으로 싫어 함이 없는 정토 세계라 한다.

 

 

223, 보현심(普賢心)

 

 211번 참조.

 

 

224, 대법행(大法行)

 

 부처님 마음을 마하 반야(摩訶 般若)라 한다. 큰 지혜는 부처님 마음으로 죽지 않는 법이고 살아도 집착이 없는 법이라 살아서나 죽어서나 관계하지 않으므로 자유자재한 것으로 대(大)라 한다. 우리의 해법이 마음에 있지만 마음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부처님을 찾아서 빌고, 빌고 절을 하고 소원을 말하고 내 마음에서 바라는 것이라 부처님전에 의지하여서면 부처님 마음으로 돌아가라 번뇌도 부처님에게 받치고 소원도 부처님에게 받치고 부처님 마음으로 돌아가라 사바하, 사바하 모두가 원만 성취 할 것이다.

 

 

225, 자비행(慈悲行)

 

 169번 참조. 
 

부처님 마음을 자비심이라 하여 사생자부(四生慈父)라 생태계의 태란습화(胎卵濕化) 태로 나는 생명, 알로 나는 생명, 습기에서 나는 생명, 변화하여 나는 생명을 다 구제하시는 대 자비심이시라 하여 자부(慈父)라 하시고, 사람은 자식에게 부모의 사랑이라 하여 조건이 없이 주는 마음이고, 이러한 마음이 모든 생명에 있고 생명존엄인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심은 시들어 가는 풀에 한 모금 물을 주는 마음으로 스스로가 실천 할 수 있는 생명의 소리가 자비이다.

 

 

226, 전법심(傳法心)

 

 풀에 물주는 마음이 전법심이고 내 마음에 자비심을 전하는 것으로 생명이 살아가는 길에는 자연의 혜택을 받지 않고는 생명이 살 수 없으므로 공기, 물, 흙에 감사와 은혜하는 마음으로 자연을 보호하여야 한다. 흙 속에 비닐, 병, 쇠 조각 이 들어가면 500년을 썩지 않고 오염되는 것이니, 일상생활에서 스스로가 종이류, 병, 프라스틱, 비닐등 쓰레기를 분류하는 습관이 전법심이다. 성지곡을 가면 성지 계곡 포장 도로에 휴지가 뒹구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가 휴지를 빨리 가서 주어야 할 것을 아직도 망설이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아만을 나타나고 있는 자신을 볼 적에 아직도 마음 공부가 멀어구나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성지곡 입구에 관리비를 받는 곳에 마땅히 입장료를 내고 관리 시책에 감사를 해야 하는 마음을 느낀다.

 

 

227, 미타심(彌陀心)

 

 74번, 108번, 170번, 참조.

 

 

228, 혜림화(慧林華)

 

 지혜의 숲을 사찰이라 하고 총림이라 하여 천년 고찰로 선원, 강원, 율원, 염불당, 종무원이 구비되어 수행인이 3백을 넘는 선불장(選佛場)으로 수행 도량이다. 수행도량을 찾아 산 속 숲 터널을 지나면 공기가 상쾌한 것이 정신이 맑아지고 흙 접촉이 솜 덩어리 밟는 느낌이고 숲 속의 푸른 나무 잎새들이 바람에 움직이는 모습이 공연장에서 춤추는 푸른 옷을 입은 색시처럼 보이고 헤아릴 수 없는 눈앞 잎새들의 이야기들을 보고 듣고 하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면서 물소리 바람소리가 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청정법신 부처님의 설법인 것이다.  

 

 

229, 금선자(金禪子)

 

 부처님 제자들을 존칭한 말로 처음하는 말이다. 부처님의 아들딸들로 부처님의 마음과 언행을 배우고 실천함으로 부처님 길을 가는 생명에 선지식들이고 선구자로 뜻을 모르고 한 마디 나무 관세음보살님 하여도 관세음보살님이 함께하시는 것이고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이고 언행을 실천하는 것이라 염불(念佛)하는 마음은 스스로의 마음에 진리를 실천함이니, 생명이 병들고 죽거나 불안 할 적에 관세음보살하면 편안을 얻는 것이고 스스로 시기, 질투, 미운 마음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니 뜻을 모르고 하는 염불이라도 공덕이 있는 것이다. 마침 아침 이슬 길을 다니면 옷을 적시는 것과 같다.

 

 

230, 무심행(無心行)

 

 함이 없는 마음으로 상(相)에 머무는 마음이 아닌 마음은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오로지 일심으로 화두나 염불 주력을 하는 것으로 도(道)을 성취하겠다는 마음이 없이 지속적으로 정진이 여일하면 바로 공부인이라 할 것이고 도(道)을 성취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상(相)에 집착하므로 공부가 순일하지 못한 것이다. 극락 가겠다고 애를 쓰고 욕심을 부린들 극락을 가지 못하는 것이고 앞면이 있다 하여 극락을 가는 것도 아니고 극락을 가려면 마음이 청정하고 언행이 청정하면 누가 오고 가라 하지 않아도 가는 아주 평등한 곳이다.

 

 

231, 불심행(佛心行)

 

 71번 참조.

 

 

232, 관조(觀照)

 

 방안에 빛살이 들어오면 미세한 먼지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마음이 고요하면 먼 과거의 생각을 관조 할 수 있으므로 마치 고요한 달밤에 숲 속 옹달샘 속에 보름달이 나타나고 주위 풀밭에 귀뚜라미 소리가 청명하게 들리면 깊은 사색을 하면서 달을 바라보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의 무리 하늘 다리인 은하수는 칠석날 오작교의 전설을 추억한다. 이러한 관조력은 마음의 힘으로 사물의 이치를 관찰하는 심리가 나타나고 심리 작용은 언행을 관파하여 정사(正邪)의 이치가 확연하게 나타나는 것이 고요한 수면에 보름달을 보는 듯 하다.

 

 

233, 무염심(無染心)

 

 77번 참조.

 

 

234, 보명심(普明心)

 

 넓고 밝은 마음으로 허공이 크다지만 마음에 비교하면 태평양 바다에 조각배와 같다는 것이고, 스스로의 마음이 얼마나 큰지 짐작 할 만 하다. 마음을 깨달으면 밝기는 태양보다 밝음이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태양보다도 깨달음의 광명은 비교 할 수가 없는 것이라 마음의 넓고 밝음은 헤아릴 수 없다.

 

 

235, 무애심(無碍心)

 

 160번, 199번 참조.

 

 

236, 자성월(自性月)

 

 자성(自性)은 스스로의 마음 주인공을 말한다. 스스로가 주인공아 하면 대답을 하고 아버지하면 주인공이 대답을 하고 아들아 하면 주인공이 대답을 하고 손자야 하면 주인공이 대답을 한다. 대답하는 주인공은 아버지, 아들, 손자가 아니면서 주인공이 대답을 하는 것이다. 마치 물이 생명에 순응하면 물이라 하지 않고 생명의 모양이 주어지고 이름이 주어지면서 아무개 하는 것이고 물이라 하지 않는 것으로 주인공은 말이 없지만 모양이나 이름으로 나타나면 보고 듣는 사람이 부르기도 하고 답하기도 하는 것이다.

 

 

237, 향산월(香山月)

 

 향산은 원력을 말한다. 원력은 중생의 가능성이고 새로움의 창조력으로 무한한 잠재력 개발이고 관심(觀心)하면 새로움이 나타나는 것이다.한 사람의 창의력을 인터넷이나 글을 써어 전달하면 바람으로 빛으로 언어로 전달되고 TV나 라디오의 빛으로 소리로 전하면 보고 듣는 사람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면서 전 세계로 전달됨은 순간적으로 전 인류에 가치관의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기존의 시스템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경제력이 문제인 것이다. 물을 연료로 하는 자동차가 나오면 기름 자동차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모든 시스템이 바꿔고 공장들은 전업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야단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항상 도전과 창의력이 새로움으로 살길인 것이다.

 

 

238, 보광명(普光明)

 

 부처님의 광명이 삼천대천 세계에 두루함이니 생명에 환희요, 빛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빛은 전무 후무한 힘이고, 태양의 빛으로도 생명들은 잘 자라고 빛의 생명력은 절대적이고, 전기의 발명은 인간 생활에 얼마나 큰 힘인가? 성냥불의 힘도 대단하지, 마음의 빛은 모든 빛보다도 비교할 수 없고 미래의 에너지 개발은 바다 파도의 힘이나 밀물 썰물의 힘이나 번개의 힘, 태양의 힘, 지구의 힘, 달의 힘으로 자연의 힘을 사용하면 공해가 없는 에너지를 사용하면 공해가 없을 것이다.

 

 

239, 무량심(無量心)

 

 58번, 103번, 153번, 201번, 212번, 참조.

 

 

240, 무생인(無生印)

 

 무쟁삼매(無諍三昧)는 다툼이 없는 마음으로 아라한과(阿羅漢果) 소승의 최상승 마음의 경지로 두두물물이 마음 아님이 없는 것을 인연법으로 관찰하면 시간과 공간의 차이점으로 하나임을 알고 스스로 호흡의 생명이 자연의 은혜을 입고 사는 것을 체험하면서 감사할 줄 아는 것이고 모르면 어리석음으로 중생의 번뇌인 것으로 생명력은 공기의 호흡이고 빛의 생명력이고 흙의 먹거리인 것이니 생명력이 없으면 죽은 것이라 스스로의 생명력은 자연으로 바로 자신인 것이니 싫어함이 없는 무쟁삼매의 무생인이다.

 

 

241, 여실행(如實行)

 

 실다움은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집착심이 아닌 것이다. 몸의 육안(肉眼)으로 보면 형상과 이름으로 보고 듣고 알고 하지만 심안(心眼)은 마음으로 관하면 형상과 이름을 초월하여 집착하지 않고 가치관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상통하는 것으로 더 나아가서 천안(天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이 있다.

 

 

242, 법보화(法寶華)

 

 스스로의 행위가 법이고 진리인 것이다. 스스로의 행위가 나타나 바람으로 전하고 빛으로 전하고 입으로 전하고 몸짓으로 전하고 삼라만상으로 전하는 것이다. 나무 잎새의 움은 봄이고 가랑잎은 가을이고 단풍잎으로 겨울이 오는 것을 알고, 바닷물은 짠맛이고, 산 넘어 연기를 보면 산불이 난 것을 알고, 혹자는 화(嗔)가 눈에 보이느냐? 하여 눈에 보인다고 하자 어떻게 보이느냐? 하여 너의 얼굴이 화가 나면 붉게 변하고 눈이 충혈 되고 머리에 열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지 이것이 화가 보이는 것이다.

 

 

243, 법통행(法通行): 움직임이 법이다. 손으로 물건을 잡고 움직이면 물건이 자리를 옮기므로 역할이 바뀌어지므로 생각도 다르게 된다. 흙 속에 금맥은 금이지만 사용할 수 없고 발굴하여 흙, 돌, 금으로 분류하여 금으로 제련하면 마음대로 물건을 만들어 사용하여 신통묘용의 법통행이다.

 

 

244, 자장심(慈藏心)

 

 부처님의 자비심이 청정법신의 사리로 자비심을 나투어 보이신 적멸보궁으로 자비의 보배 창고를 중생에게 보이신 것으로 자장심은 자장스님의 마음이라 할 것이다. 신라 자장스님은 통도사와 같이 5대 보궁을 개설하시고, 백제 땅에는 자장가의 백제 향가는 작자가 없이 백제 동서 도솔천(東西 兜率天)인 현재 천안(天安)인 백제 목천민들이 광덕사 신도들이라 자장스님께서 당나라에서 귀국 길에 백제 땅인 현 천안 광덕사에 안주하시다가 신라로 가시자 자장스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자장스님을 노래한 것이 자장가(慈藏歌)로 백제 향가(鄕歌)라 할 것이다. 자장가는 백제 향가로 입으로 구전되어서 있지만 역사성이 빈약하여 더욱더 연구가 요망된다. 특히 사리 탑파 문화는 자장스님께서 신라에 성행시켜 시었고, 나당에 멸한 백제시기 향가인 자장가는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나라를 기리는 슬픔과 자장스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시대를 노래한 자장가는 목천민들은 나라의 변천을 마음으로 표현한 노래라 할 것이고 작자가 없이 입으로 전하여 민심으로 내려오면서 일정한 가사나 곡조가 없이 시절의 애환이나 심정을 서민들이 표현하면서 사찰의 스님인 부처님의 자비심에서 자장스님을 기리는  일반인으로 대중화되면서 서민의 마음으로 입으로 스스로의 리듬으로 마음의 노래인 것으로 전쟁간 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애환으로 부인이 자식을 보면서 마음으로 노래한 것이고 홀어머니가 시간을 기다리는 서민의 마음으로 전한 것이 자장가(慈藏歌)이므로, 이름만 있으면서 백제 지역에서는 애환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풍습이 말없이 전하여 오고 있고, 신라에는 사리 문화로 신라인의 정신을 바르게 한 것이고 자장가의 향가는 백제가 멸하면서 자장스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노래한 것으로 자장가는 백제 향가라 할 것이고, 지금도 백제 땅인 충남 천안 광덕사 대웅전 입구에는 통일신라시기에 조성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해치(해태)상이 존재하고 있다. “해치는 중국 진나라시기에 선정(善政)을 바라는 뜻에서 짐승의 장점을 모아서 동물 형상을 만들어 황제 앞에서 요즈음의 거짓말 탐지기 역할을 한 것으로 본래는 해치를 우리나라 조선말 대원군이 해태 라 하여 현재 소방인들의 심불 마크이고 해태 제과의 상표이기도 한 것이다.
                

                               (천안 소방학교장 제공).        
  
해태상을 모신 곳은 재앙을 막아 준다는 이미지가 있어 풍수 지리적으로 화혈(火穴)터로 불이 잘 나는 곳으로 불의 재앙을 막는 뜻으로 대원군이 경복궁이 3번이나 불이 나서 경복궁 앞에 해태 한 쌍을 모시고 난 후부터 불이 나지 않았고, 지금도 대한민국을 재앙에서 지키고 남북이 전쟁 없이 하나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자장스님께서 중국 유학하시고 귀국 길에 백제 땅 현재 천안 광덕사에서 머물러 계시다가 신라로 가시자 불자들이 자장스님을 생각하여 자장 자장하여 백제 신라 당나라의 관계를 예시하고 있는 것이고, 결국은 신라가 당나라와 유대하여 백제가 멸하고 통일신라가 생긴 것이니, 자장가와 해태상은 통일신라의 탄생을 말한 서민들의 마음에 표출이므로 백제의 향가인 자장가와 해태상은 그 시대의 위기를 말한 것으로 광덕사가 자장가의 근원지란 것을 말하고 있다.

 

 

245, 문수자(文殊子)

 

 문수 보살님은 지혜를 상징하시고 대승사상에서는 모든 불보살님의 어머니라 하고 모든 불보살님들이 지혜에서 탄생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중국 국청사에 한 거지가 절 앞 음식 찌꺼기 모우는 꾸중물통에 음식 찌꺼기를 건져서 죽을 끊어서 먹으면서 살았다. 자주 나타나 마을을 다니면서 제사 집이나 결혼 잔치 집에 다니면서 음식을 얻어 먹으면서 살아가는데 거지가 결혼하는 부부를 보니 신부가 전생에 신랑의 어머니인 것을 모르고 부부 결혼을 하니 거지가 박장대소를 하다가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꾸중을 듣곤 한다. 또 한 번은 제사 집에 가서 구걸을 하는데 제사 상에 돼지 머리가 제사 집에 아들의 아버지가 전생에 그 집 돼지로 태어난 것을 모르고 아버지 제사상에 전생 아버지인 돼지를 잡아서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 얼마나 웃으운가 박장대소를 하니 제사 집에서 미친 거지가 왔다면서 부정스럽다 하고 물를 뿌리면서 몽뚱이로 문전 박대를 한다. 한 번은 목장을 지나는데 황소 무리를 보니 전생에 절에 율사스님으로 수행을 하였는데 황소가 된 것이니, 거지가 율사 이름을 부려니 으음하면서 대답을 하고 또 다른 스님 이름을 부려니 으음하고 답을 한다. 하루는 국청사에서 보살대계(菩薩大戒)를 한다고 전국 큰 스님들이 비단 가사를 입으시고 법당으로 가시는데 거지가 앞에서 얼정거리자 스님이 청정한 법회에 추한 거지가 앞을 막는다고 나무라시자 거지는 성안내는 것이 계(戒)라 한다, 거지가 대승계(大乘戒)를 설한 것이다. 하루는 풍간이란 스님이 고을을 지나면서 정자나무 아래에 쉬고 있는데 큰 대궐 집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집을 찾아가 영문을 물어보자 고을원의 집으로 무남독녀가 병이 나서 죽게 되었다 한다, 찾아간 스님에게 고을원은 병을 고쳐달라는 것이다, 스님은 정수 한 그릇을 가져오라 하여 청정수를 뿌리고 염불하시고 돌아가시자 고을원이 스님은 어디에 계시는 스님이냐고 묻자 국청사에 가면 한산 습득이란 문수 보현이 있는데 모든 사람이 미친 거지라 한다고 하면서 거지한데 물으면 알 것이라 한다. 고을원은 국청사를 찾아가 보니 마침 거지가 있는데 풍간이란 스님 말씀을 들었기에 거지에게 큰절을 땅에 하니 거지가 박장대소를 하면서 고을원을 도덕놈이라 하고 도망을 하니 사찰 스님들은 고을원님이 찾아온 것을 반기면서 인사를 하고 주의를 하면서 안절부절이시고 고을원은 도망가는 거지를 따라 가니 풍간이가 헛뜬 소리를 하여구나 하면서 풍간은 아미타불 화신이라 하고 풍간스님은 거지를 한산 습득으로 문수 보현이라 하여 문수 보현의 화신인 것을 안 것이니, 원님은 도망간 거지가 바위굴로 들어간 것을 보고 가서나 사라지고 친견을 못하여 사찰에 돌아와 그 분의 행적을 스님들에게 물어보니 항상 미친 사람처럼 마을을 웃고 다니면서 바위나 벽에 글을 써놓는다는 것이다. 원님이 마을을 다니면서 글을 수습하니 360여수의 지금에 현존하는 한산시집(寒山詩集)의 내용이다. 국청사는 천태지자가 생명존엄을 실천한 도량이지만 천태종의 종주라 할 것이고 부처님의 생명존엄 사상이 다시 일어난 방생의식으로 현존하는 염불 방생의식으로 성형되였고, 고려에서는 교종(敎宗)이 강화되어 과거 제도로 국사 왕사가 생긴 것이고 서민이 국정에 참여하는 제도가 일어나 새로운 국력이 되었고, 조선에 선교 양종(禪敎 兩宗)사상으로 조선 영조시기 벽파스님의 살활구가 일어나고, 조선 말기 초의(草衣)스님은 선다일미(禪茶一味)의 생활선(禪)을 주장하셨다. 지금의 대승사상인 삼정(三淨)에서 보면 부처님의 10계(戒)나 미래의 미륵불의 10선(善)사상이 우리의 신구의 삽업(身口意 三業)으로 몸과 입과 마음의 행위인 것이니, 스스로가 마음으로 바른 뜻을 실천하고, 입으로 바른 말을 하고, 몸으로 바른 일을 실천하면, 스스로가 가피력을 성취하는 것이니, 바로 청정본심인 것이다. 삼정(三淨)은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일로 스스로의 행위인 것이라 스스로의 법이고 삼라만상의 법이다. 문수의 지혜는 모든 성인의 어머님이시므로 지혜가 인연으로 나타나면 이름과 형상이고 빛이고 물이고 흙이라 할 것이다.

 

 

246, 보현심(普賢心)

 

 28번, 106번, 211번, 223번, 참조.

 

 

247, 삼보장(三寶藏)

 

 

 불, 법, 승(佛法僧), 부처님, 법, 제자를 삼보(三寶)라 하여 세 가지 보배라 한다. 해(佛)와 햇빛(法)으로 모든 생명력(僧)을 얻어 살아가는 생명 세상을 말한다. 스스로의 마음의 불(佛)인 본성(本性)을 말하고 본성이 형상과 이름(法)으로 나타나서 마음(意)으로 분별을 하고, 말(口)을 하고, 행동(身)의 삼업(三業)으로 실천(僧)하는 것이다. 
  

 

248, 무불심(無佛心)

 

 부처가 없다는 것이고 본성이 없다는 것이다. 금강경 말씀에 시명(是名) 이름이 반야(般若) 지혜 라 한 것이지 지혜라 할 것이 없다. 여여(如如)는 여래여거(如來如去) 여여이 오시고 여여이 가심으로 왕래가 없는 자리를 여여 라 한 것이다. 부처의 본성은 거래가 없어 허공에 충만한 것이고 부처라 할 것이 못됨으로 이름하여 방편으로 부처 라 한다.

 

 

249, 면목자(面目子)

 

 

 220번 참조.  

 

 

250, 정토궁(淨土宮)

 

 

 75번, 147번, 참조.  

 

 

251, 법행심(法行心)

 

 

 89번, 131번, 참조.  

 

 

252, 무변심(無邊心)

 

 

 63번, 102번 참조.  

 

 

253, 공덕장(功德藏)

 

 

 135번, 146번 참조.  

 

 

254, 자광심(自光心)

 

 13번, 15번, 79번 116번, 126번, 137번, 208번, 참조.

 

 

255, 법향심(法香心)

 

 법의 향기는 봄철이면 산천에는 꽃의 향기가 진동하지만 나비와 벌이 없다는 것이니 자연 오염으로 무골충이 살지 못하는 것으로 도시가 오염되었다는 것이다. 도시 거리 자동차의 매연으로 거리 꽃에는 벌 나비가 없고 누애 애벌레를 거리 뽕나무 잎에 두면 하루를 못 가서 죽어 가고 시골 농사철에 농약을 사용하여 땅심이 산성화되어서 곡물 맛이 쓰고, 메뚜기, 올챙이, 소금쟁이, 미꾸라지, 반딧불이, 다슬기, 잠자리, 벌, 나비, 개구리, 물뱀 등의 먹이 사슬이 사라진 것이다. 에너지가 오염되면서 법향(法香)은 사라진 것이고 오염이 청정으로 변한다면 인체에 암이란 불치병등 난치병을 반 이상 청정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256, 여래성(如來性)

 

 여래성은 부처님 마음으로 중생의 본성을 말한다. 두두물물이 생명존엄이 평등하여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면 생명은 죽는 것이므로 공기가 없으면 씨앗이 싹이 트지 않고, 도 공기는 물질을 썩게 하여 생명에 영양분으로 생명을 영양분으로 생명을 자라게 한다. 사람이 먹고 배설한 물질은 썩고 부식되고 냄새가 나지만 오염이 아닌 것은 식물이 먹으면 영양분이 되고 지런이가 기름 찌꺼기 오염물을 먹고 배설한 부토는 식물에 영양토로 곡물이 매우 잘 자란다. 법을 배우고 수행하여 실천하는 자로 항상 생명에 선지식으로 생명존엄을 찾아서 서로서로 상생하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면 경제적 이익이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공기를 맑게 하고 홍수와 가뭄을 조절하고 열매는 생명들에 양식이고 나무 잎은 다시 낙엽 되어 썩어서 영양분으로 공급되는 것이니 얼마나 생명에 봉사하는가? 불자의 귀의자는 나무 같은 마음으로 사회의 오염을 청정으로 환원시키는 선구자가 된다면 선지식이라 할 것이다.

 

 

258, 장엄화(莊嚴華)

 

 장엄은 극락장엄이 수승하고, 아름다운 것을 말하므로, 산천에 꽃이 피어서 아름답고, 도시의 밤거리가 아름답다는 것은 불빛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가을 밤 하늘의 은하수가 아름답고, 옛적에는 시골 밤거리 반딧불이가 하늘 은하수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하고, 요즈음은 청정 운동으로 겨울철 철새가 무리로 찾아오는 무리 춤을 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259, 감로자(甘露子)

 

 감로자는 하늘 이슬이라 하여 성수(聖水)를 말한다. 관세음보살님이 약병을 드시고 중생을 병고를 보살피시는 분으로 감로수는 하늘 이슬로 생명수이므로 생명이 물을 먹으면 잘 사는 것처럼 중생이 감로수를 마시면 번뇌가 사라지고 병은 치료되고 죽을 생명은 희생하는 것이니, 중생에게는 다함 없는 약수인 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을 열심히 부르고 삼매에 들면 관세음보살님이 감로수도 주시지, 경기도 양평 수입리 천은사는 30년 된 쓰레트 집으로 지금은 불에 타서 사라지고 자신이 살면서 모신 키 한 질 되는 청동 아미타 좌불을 모셨는데 마을 사람들이 시간만 있으면 부처님전에 절을 하고 기도를 하는데 하루는 마을 신도가 찾아와 관세음보살 영험 이야기를 하신다.
  자신은 평상시 다리가 아프고 쑤시는 고통이 심하여 저녁이면 손자들이 항상 다리를 만져야 하는데 하루는 부인 따라 절에 가서 법당 벽화에 흰 모습을 한 관세음보살님에게 절을 열심히 하였는데 그 날밤 꿈에 흰 보살님이 나타나시어 다리가 아프지 다리를 보자고 하시드니 팔뚝 길이 만한 금침으로 다리에 놓아 관통을 하여 두렵고 신기하기도 하여 감사하다고 하니 걱정하지 마라 하시고 방을 나가시는데 꿈에서 깨어 보니 이상도 하고 너무나 생생하여 부인에게 이야기 하니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한 것이라 하여 그 후로는 다리가 너무나 신기하게 치료 되었어 스님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260, 진언자(眞言子)

 

 진언은 부처님 말씀으로 인도 문자대로 사용하면서 긴 것은 다라니 라 하고 짧은 것은 주문, 진언이라 한다. 스님이 꿈속에서 신묘장구 대다라니 삼매 이야기를 하고자한다. 어느 날 꿈에 아득한 산중 계곡속으로 지나가는데 산 전체가 암반으로 돌이끼가 무성한데 자세히 이끼속을 살펴보니 산 전체가 섬세한 조각 탑으로 형성되어 있고 안개속 협곡을 지나서 산 아래 부분은 보이지를 않고 절은 산 정상으로 입구를 칡 넝굴을 잡고 지나면서 절에 도착하여 보니 법당마다 기도 손님이라 대웅전을 참배하고 나오면서 기둥 위에 중 도리에 그림 단청이 용 그림인데  용 몸통 부분에 구멍이 있어 구멍이 생겼다 하고 손 가락으로 누르자 도리 용 그림이 움직이는 용으로 변하여 나에게 달여드는 것이라 뒤로 물려서면서 피하는데 자꾸 달려드는 것이라 순간에 신묘장구 대다라니 주문을 일심으로 하니 용이 물려가면서 기둥 위에 도리로 돌아가는 꿈이라 깨고 보니 이상도 하고 참으로 기이한  꿈이로구나 스님이 꿈에 다라니 삼매에 들어서 번뇌를 조복 받는 성취 꿈으로 그 후에 천안 광덕사 주지 임명을 받아 백제 천년 고찰 자장스님의 도량이었다.

 

 

261, 묘법행(妙法行)

 

 부처님 법을 미묘법이라 한다. 마음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라, 있다 하면 있고 없다 하면 없는 것이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마음이란 것이다. 마음으로 있다고 믿으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믿으면 없는 것이지, 마음은 푸르고 흰 것이 아니지만 푸르고 흰 것을 보면 푸르고 희다고 하므로 마음이 푸르고 흰 것이 아니므로 푸르고 희다하는 것이므로 푸른 것도 마음이고 흰 것도 마음으로 푸르고 희다 한 것이니, 유무(有無)에 자유자재 한 것이다.

 

 

일법자(一法子)

 

 마음 법을 일법(一法)이라 하고 일미(一味)라 한다. 의상스님 법성게(法性偈)에 일미진중함시방(一味塵中含十方) 한 맛 중에 우주가 있다는 것이다.
  바다의 한 맛은 짠 맛으로 바다를 알 수 있고, 산천은 푸른 한 잎으로 푸른 산천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장미하면 부산에서는 사랑이라 하지, 부산에서 난초하면 서울에서는 청정이라 한다. 부산에서 손 바닥을 보이면 서울에서는 주먹을 보이지, 부산에서 손을 잡으면 서울에서는 손을 뿌리친다. 음양이 다르듯 하지만 음양의 도리가 생명력인 것이다.

 

 

263, 인욕행(忍辱行): 참는 것은 지혜와 복덕이 증장된다. 진심(嗔心)이 일어나도 참고 시간이 지나면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재앙이 복이 된다. 재앙과 복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고 재앙을 참고 견디면 복이 되는 것은 한 번 참으면 이해하고 두 번 참으면 용서하고 세 번 참으면 자비심을 실천 할 수 있는 것으로 한 번 두 번 깊이 생각을 하면 마음으로 관찰하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264, 선정심(禪定心)

 

 

 바다 수면이 잠잠하여 수면에 해도 나타나고 달도 나타나 수면에 모든 것이 나타나듯 선정심은 마음에 번뇌의 파도가 없기 때문에 마음의 가치관으로 관찰 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것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고 넓히기도 하여 자유자재하는 힘이 생기는 것으로 지혜라 한다. 
  

 

265, 지혜심(智慧心)

 

 거울에 때가 없이 청정하면 모든 형상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처럼 지혜는 스스로의 마음에 때가 없으면 현상의 모양과 이름의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과 공간으로 일어나는 형상과 이름까지도 다 나타나는 인연법을 아는 것이니, 지혜의 눈은 몸의 눈이 아니고 마음의 눈으로 형상과 이름에 집착하지 안는 것이다.

 

 

266, 법륜행(法輪行)

 

 부처님 법 전하는 것을 수레바퀴가 굴리는 것처럼 쉼이 없이 굴리는 것을 말한다. 수레바퀴가 정지하고 움직이지를 안으면 수레바퀴의 역할을 못하는 것으로 법은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하늘과 땅의 냉온의 기온이 쉴 사이가 없이 생명력으로 나타나고 용광로 쇠물도 생명력으로 열의 기운이 최상승으로 올려면 단단한 쇠가 물처럼 움직이는 것이라 마음대로 모양새를 만드는 것이다.

 

 

267, 관조심(觀照心)

 

 232번 참조.

 

 

268, 법진행(法眞行): 법의 성품이 본래 모습으로 청정의 생명력이라 할 것이다. 생명력은 무수한 모양과 이름으로 변화하면서 지속되는 것으로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고 모양과 이름에 순응하므로 물이 모양과 이름에 순응하듯 싫어함이 없는 것으로 모양과 이름이 주어지면 이름과 모양에 주인공이지만 집착하지 않으므로 마치 물과 빛, 흙의 에너지는 불성(佛性)이므로 주인공이지만 모양과 이름에 항상 순응하는 것이니, 집착이 없으므로 싫어함이 없는 불보살의 마음이고 우리 생명력으로 자유자재하고 영원한 것이다.

 

 

269, 일심행(一心行)

 

 

 262번 참조. 
  

 

270, 일념심(一念心)

 

 5번, 197번, 262번 참조. 
 

한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으로 우주 공간을 초월하는 것으로 우주 공간에 마음이 가득하여 틈이 없는 것으로 불심충만허공(佛心充滿虛空) 부처님 마음이 허공에 충만하다는 말처럼 마음이 허공에 가득하여 지구 반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움직이지를 않고 직시에 한국에서 TV나 라디오를 보고 듣고 아는 것이다. 소리와 빛이 허공에 가득하여 가고 올 것이 없는 것으로 여여(如如)라 한다.

 

 

271, 직심자(直心子)

 

 바른 마음이라 곧 바로 현재 마음으로 부처님 마음을 실천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인 것이다. 호흡지간에 번뇌, 진리, 모든 생각을 놓아 버리고 곧 바로 부처님 마음을 실천한다면 부처님 마음이라, 자성불(自性佛)을 체험하는 때이라 직심(直心)이 곧 선심(禪心)인 것이다.

 

 

272, 견성자(見性子):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성품을 본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고 듣고 하는 것이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소리와 형상을 관찰하면 소리와 형상의 시절 인연을 알 수 있고 시비 선악의 원인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성품을 본다는 것은 청정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273, 일해장(日海藏)

 

 해와 바다는 해는 빛의 생명력을 발산하고 바다는 모든 오염을 받아 드려서 청정을 만드는 근원지이다. 해, 달, 지구의 관계가 바다의 밀물, 썰물이 나타나고 지구의 중력은 해와 달의 관계로 물질을 단단하게 하는 기운의 작용으로 당기는 힘이 발산되고 공기의 보호막으로 대기권으로 생명이 지구에 생존하고 땅에서 다니는 것은 지구의 중력 때문이다. 지구가 둥근 것이라 허공에 둥둥 자전을 하는 것으로 지구 공기의 압력이 없으면 허공으로 다 추락하고 말 것이다. 지구의 공기는 생명력으로 생명에서 발산되어 생기는 것이고 나무가 많으면 많을수록 공기가 청정한 것으로 나무 숲이 공기를 청정하게 하는 공장인 것이다.

 

 

274, 삼매심(三昧心)

 

 탐진치(貪嗔癡) 삼독심이 일어나지 않으면 삼매심이라 할 것이다.삼독심은 마음을 병들게 하고 마음을 죽이는 독약으로 삼독심이라 한 것이고, 6적(賊)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눈․귀․코․혀․몸․뜻이 마음을 병들게 한다 하여 6가지 도적이라 한 것이다. 이 도적을 조복하면 주인공을 찾는 삼매력인 것이다.

 

 

275, 일행자(一行子)

 

 생사 업장(生死 業障)으로 윤회하지 않는 자를 일행자 라 한다. 마음을 깨달으면 업장(業障)에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고 저승의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염라대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며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닌 것이다. 중생을 구제하고자 방편으로 화신으로 오시는 것이고 지장보살님처럼 지옥 고통을 구제하고자 지옥을 선택한 것이고 사바 세상의 고통을 구제하고자 세상에 천백억 화신으로 오신 부처님이시다. 일행자(一行子)는 중생을 위하여 청정법신(淸淨法身)으로 오시는 것이지 생사업(生死業)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아미타경(阿彌陀經)에는 극락 세계에 아름다운 소리를 하는 새들은 업보 소생이 아니라 아미타불께서 설법하고자 만든 생명이란 하셨다.

 

 

276, 법계성(法界性)

 

 청정법신(淸淨法身)을 찾는 것이니 청정법신은 이름과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청정법신불이라한 것은 중생을 위한 방편이라 할 것이다. 청정법신이라 할 것이 없는 것이지만 이름하여 청정법신이라 할 것이다. 청정은 물처럼 사물에 순응하면 물이 사물에 순응하면 물이 사물의 형상과 이름으로 나타나면서 형상과 이름으로 부르지 물이라 하지 않는 것처럼 청정법신을 문자나 언어에 집착하면 당처를 알지 못한 것이다.

 

 

277, 무진행(無盡行)

 

 불보살님의 원력이 다함이 없고 중생의 원력이 다함이 없는 것이 미래가 다함이 없는 것이니 중생이 다함이 없고 세계가 다함이 없는 것이 중중무진( 重重無盡)이라 삼라만상이 마음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은 마음을 항상 긍정심을 하면 긍정의 세계가 나타나고 부정하면 부정한 세계가 나타나는 것으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든 것이 마음이란 것이다. 

 

 

278, 보해궁(普海宮)

 

 부처님 말씀이 말세에는 바다속 용궁에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라 하고 대승 보살인 용수보살님은 용궁에서 경전을 가지고 왔다는 말씀이다. 보해궁은 불 보살님의 다함 없는 원력이시고 중생의 다함 없는 원력을 말한다.

 

 

279, 해운심(海雲心)

 

 중생의 원력을 해운심이라 할 것이다.
  보디 사드바는 인도 말인데 보살(菩薩)이라 깨달은 중생이라 하여 각유정(覺有情) 깨닫기는 하여서나 중생을 위하여 생사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부처님께서 말씀한 것이고 스스로가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생의 원력이다.

280, 지성해(池成海): 150번 참조.

281, 연산자(蓮山子): 연산은 정토를 말하고 사찰 주위의 산 형국이 연꽃처럼 겹겹이 둘려 싼 산새를 보면 참으로 기이한 마음이 일어난다.
  부처님께서 오탁 악세에 물들지 않으시고 진리를 깨달으신 것으로 흰 연꽃에 비유하고, 미타경에는 극락에는 사람이 연꽃 속에서 화생 한다고 하여 연꽃은 처염 상정(處染 常淨)으로 진흙 속에서 항상 피는 연꽃은 오염에 물들지 않고 청정한 것으로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고 부처님을 뜻한다.

282, 황연심(黃蓮心): 부산 연산동 황령산(黃嶺山)으로 시청에서 말한 것을 동고 큰스님은 황연산(黃蓮山)이고 연산동(連山洞)이름도 연산동(蓮山洞)이라 할 것이고 스님은 금연산(金蓮山)이라 하셨고 금연산에 광안리 군법당을 군에서 건립하여 금연사(金蓮寺)라 스님은 칭명 하셨다.
  금연산은 황연산으로 부산 바다를 맞이하면서 산 둘레에는 해운대, 광안동, 연산동, 부전동, 문현동으로 부산 중심의 산으로 산 형국이 연꽃처럼 겹겹이 둘러싼 산새를 보면 참으로 기이한 마음이 일어난다.
  부산에 전동차가 거리 중간으로 댕댕 소리하면서 다니던 때가 30년전이라 그 시기는 거제리, 연산동, 동래지역이 다 미나리, 연밭이었다.
  마하사는 옛 사람들이 큰절이라 하고 다였고, 역사가 아득한 아도(阿道)스님의 삼국시대 초기 불교 전래자가 창건한 사찰로 연꽃속 금연대(金蓮臺)에 화생하시는 생명의 정토를 말하고 있다.

283, 마하심(摩訶心): 50번, 149번, 참조.
  마하는 크다는 말이다.
큰 마음은 부처님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고 다 함이 없는 마음이고 중생들의 본성으로 생명존엄을 배우고 실천하는 중생의 원력으로 다함이 없는 영원한 생명력으로 스스로의 마음에 자리한 마하심을 찾는 것이다.

284, 성지심(聖知心): 성인의 마음을 말한 것으로 중생들이 본심으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성지심은 성지곡(聖知谷) 지역 이름으로 부산 초읍 성지곡을 성지심이라 한 것으로 물처럼 바람처럼 수목처럼 푸르고 맑게 살아가자는 것이다.
  성지곡은 시민의 안식처로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 대공원에 출입을 한다.

285, 반야행(般若行): 49번, 126번, 178번, 179번, 참조.
286, 진여심(眞如心): 53번, 134번, 184번, 참조.

287, 여시행(如是行): 여시(如是)는 부처님 말씀을 결집하면서 부처님 제자 아난이 여시(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하면서 자신의 말이 아니고 부처님 말씀이란 것이므로 아난이 부처님 말씀을 똑 같이 하므로 듣는 사람이 오해를 할까봐 여시(如是)라 한 것이 경전마다 첫 머리에 나타난다.
  여시행(如是行)은 부처님 가르침을 스스로가 부처님 말씀, 부처님 행, 부처님 마음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불제자의 원력인 것이다.
 
288, 불이심(不二心)

 

 6번, 155번, 참조.

 

 

289, 불성장(佛性藏)

 

 부처님께서 본 성품의 마음을 열반경(열반경)에는 불성(불성)이라 하고 불성은 꽃피고 열매 맺는 것처럼 마음에 본래 지혜와 복덕이 원만구족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마음이 푸르고 흰 것이 아니므로 푸르고 흰 것을 보면 푸르고 희다 하는 것이니 자유자재한 것이라 모양과 이름이전의 물, 공기, 흙의 생명 힘이 생명에 순응하면 모양과 이름으로 나타나면서 물, 공기, 흙이라 하지 않는 것처럼 마음의 본성도 같은 것이라 순응함으로 자유자재한 것이고 싫어함이 없는 불성장의 마음이다.

 

 

290, 자비심(자비심)

 

 169번, 225번, 참조.

 

 

291, 선심장(禪心藏)

 

 불심, 선심, 시심, 다심, 직심(불심․禪心․詩心․茶心․直心) 불심은 본 성품의 마음이고, 선심은 마음을 관(觀)하는 마음이고, 시심은 시인의 자연스러운 마음이고 다심은 차 마시는 순응하는 마음이고, 직심은 새로운 마음이라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생명심(生命心)으로 영원한 것이다. 선방(禪房)을 선불장(選佛藏)이라 하여 부처를 만드는 장소를 말한다. 선심장(禪心藏)은 항상 생명의 리듬으로 맥박소리가 영원한 산 소리로 본성(本性)의 소식을 말한다.

 

 

292, 해탈자(解脫子)

 

 몸에서 해탈한 자가 누구일까? 청정법신(淸淨法身)이라 청정법신은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는다. 청정법신은 불생․불멸․불구․부정․부증․불감(不生․不滅․不垢․不淨․不增․不減) 생사도 없고, 정추도 없고, 증감도 없는 것으로 청정은 형상과 이름에 관계하지 않으므로 자유자재함으로 해탈이라 한다.

293, 법정행(法淨行): 법은 바른 것이고 맑은 것이고 밝은 것이고 고른 것이므로 법이라 하고 청정이라 할 것이다. 청정을 빛이라 하고 물이라 하고 공기라 하고 흙이라 하고 싶다. 생명의 힘이 청정하지 않으면 모든 생명이 스스로 병들고 죽는 것이고 청정하면 생명력이 서로서로 상생하므로 정토(淨土)라 하여 억압, 강압, 탄압, 시기, 질투, 테러, 전쟁의 남의 힘에 의해 죽거나 다치지는 않는다.

 

 

294, 원만심(圓滿心)

 

 허공은 빈 것으로 원만성(圓滿性)을 찾는다. 허공은 빈 것으로 두두물물에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 흰 것이 오면 흰 것으로 순응하므로 희다고 할 것이고 검은 것이 오면 검은 것에 순응하므로 검다고 할 것이므로 원만심이라 한다. 마음에 번뇌가 빈 것으로 텅빈충만이라 할 것이고 빈 그릇은 무엇이든지 뜻대로 담을 수 있지만 그릇에 물을 비우지 않고는 물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릇은 자주자주 비우므로 그릇의 존엄성을 찾고 원만심은   곳에서 찾는 것이다.

 

 

295, 진여심(眞如心)

 

 대승 기신론에는 마음의 본성을 진여(眞如)라 하여 죽고 살고 싫어하고 좋아하고 청정하고 오염의 번뇌에 관계하지 않으므로 진여(眞如)라 한다. 진여는 텅빈충만으로 없는 것으로 있는 것을 말하고 허공은 빈 것으로 허공이라 하지만 에너지가 충만한 것이므로 있는 것이라 중생은 모양과 이름으로 있다하므로 모양과 이름이 없으면 없다고 하고 성인은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에너지의 공기 기운처럼 모양과 이름이 없지만 생명의 힘인 에너지 보고가 허공인 것이므로 모양이 없지만 성인은 있다고 하는 것이다.

 

 

296, 대지화(大智華)

 

 대지화는 깨달음을 말한다. 부처님 당시는 부처님 말씀이 진리이고 불법(佛法)인 것이라 문답(문답)으로 제자들이 깨달음을 얻었지만 달마스님은 선(선)이라 하여 스스로가 성품을 보면 견성(견성)이라 하여 많은 선지식들이 탄생하시고 옛적에는 왕의 말씀이 법이라 왕이 마음대로 백성을 살리고 죽이고 한 것이다. 한글의 문자를 만들어 국민을 가르치고 배우고 알아서 스스로가 광명의 빛을 마음에서 찾아서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 지혜의 빛으로 대지화(大智華) 인 것이다.

 

 

297, 대행심(大行心)

 

 큰 원행은 깨달음이다. 석가 부처님은 중생을 다 깨닫는 자로 보고 관세음보살님은 중생을 다 자식으로 보고 지장보살님은 중생을 다 즐겁게 상기를 바라면서 마음으로 대자대비로 항상 다함이 없는 마음이시다. 문수보살님의 대 지혜와 보현보살님의 대 원력과 대세지보살님의 정진력과 관음 지장 미륵보살님의 자비심이 각자 스스로 본래 원만 성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 스스로가 실천하는 것이다.

 

 

298, 화엄장(華嚴藏)

 

 화엄은 중중무진의 장엄세계를 말한다. 생명력에서 보면 에너지의 보배를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생명은 누구나 공기를 호흡하면서 공기의 은혜를 모르고 빛을 받으면서 은혜를 모르고 흙의 영양력을 받으면서 은혜를 모르고 사는 것이 중생인 것이다. 화엄장은 중중무진(重重無盡) 화엄세계의 공덕 속에서 공덕의 은혜와 감시를 체험하고 깨닫는 것이다.

 

 

299, 대승심(大乘心)

 

 대승심은 자연 그대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다. 거짓이 오면 거짓에 순응하므로 거짓이 바르게 되고 진실이 오면 진실에 순응하므로 진실이 더욱더 바르게 되는 것이다. 푸른 것은 푸르게 순응하므로 푸른 것이고 붉은 것은 붉은 대로 순응하므로 붉은 것으로써 아름다운 것이다. 자연의 힘이 생명에 순응하듯, 불보살님의 마음은 중생의 마음에 순응하므로 중생을 싫어함이 없이 구제하시는 대자비심이 대승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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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지장심(地藏心)

 

 지장심은 보시하는 마음으로 주는 마음이다. 지장보살님은 전생에 줄 것이 없어서 속옷까지 벗어 주고 추운 겨울에 땅속에 몸을 감추었다고 하여 지장(地藏)이라 한다고 지장보살님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지장보살님은 지옥문전에서 스님 모습을 하시고 항상 주장자를 드시고 지옥 중생을 구원하고자 눈물로 지내시는 분으로 슬픈 붐야 중생을 구제하시고 눈물의 애민심으로 우리 마음에 나투어 화현하시는 분이시다.

 

 

301, 보덕심(普德心)

 

 보덕심은 보덕각시로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이시다. 불교 영험설에는 고통이 많은 마을 중생을 구제하고자 미모의 처녀로 화현하시여 험한 청년들을 제도하시는 모습을 방편으로 보이시는 것으로 미모 처녀에게 장가를 가고자 동네 청년들이 야단법석이라 차례로 금강경, 법화경등을 암송하게 하여 한 청년하고 결혼을 하여 첫 날밤에 갑자기 처녀가 생을 달리함으로 슬프하다가 어느 날 어떤 스님이 오시여 무덤으로 인도하여 무덤속에서 관세음보살상이 나타나므로 마랑 부인이 아니고 관세음보살님이 중생을 제도하고자 보덕각시로 화현한 것을 확인시켜서 마씨 아들인 마랑을 발심시킨 것으로 자기 집을 절로 만들어 평생 수행함으로 동네에 악한이 없이 부처님 신행으로 발심을 한 동네 청년들이었다.

 

 

302, 불정심(佛頂心)

 

 법화경 말씀에 보면 “부처님께서 이마로 광명을 놓아 광명이 3갈래로 나누어 삼천대천 세계에 비치니, 한 갈래는 천상세계이고, 한 갈래는 인간세계이고, 한 갈래는 지옥세계로 광명이 비추어 부처님 회상에서 대중들이 두렵고 환희심이 서로 교차 하드라”. 하셨다. 불정심(佛頂心)은 광명으로 밝고, 맑게, 생명에 빛으로 살라는 것이다.

 

 

303, 월인심(月印心)

 

 304, 해인심(海印心), 305, 법인심(法印心)

 

 월인심․해인심․법인심은 이름은 다르지만 뜻은 같은 것이다. 달이 천만강에 인(印) 비치는 것이니, 마음에 법으로 인(印) 인정하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함이니, 물이 삼라만상에 순응하므로 생명력으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인(印)은 도장으로 서류에 도장을 찧어서 전하고 인정함으로 실권이 넣어 가는 것으로 인(印)은 인도의 문화라 할 것이고 불타(佛陀)의 깨달음을 전하는 것을 말한다.

 

 

306, 수행심(修行心): 중생의 원력심(願力心)이 수행심이다. 불보살님 마다 원력이 있으시고 중생도 원력심이 있지만 눈앞에 물질의 욕망으로 즐거움을 찾아서 집착하여 목숨을 걸고 몸덩이 사랑에 눈이 멀어서 목숨을 걸어서 참으로 목숨을 받쳐서 찾아야 할 마음의 주인공은 잊어버리고 생사(生死)의 고해(苦海)에서 윤회하는 것이다. 수행심은 마음에 주인공을 목숨 받쳐 찾는 마음이다.

 

 

307, 평등심(平等心)

 

 빛은 평등하지만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장애로 그림자가 나타나므로 어두운 것처럼, 마음도  본성은 빛나고 평등하지만 경계의 모양과 이름에 집착한 마음 작용으로 번뇌의 그림자로 어두운 고통을 받는 것이다. 평등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본래면목이고 수행심이다.

 

 

308, 일미행(一味行)

 

 법계(法界)의 일미는 각해(覺海)의 마음이다. 깨달음 바다 한 맛은 중생을 다 제도하고도 남고, 미래가 다함이 없고, 중생의 원력심이 다함이 없고, 불보살님의 원력이 다 함이 없으므로 각해의 일미행은 다함이 없는 마음이다.

 

 

309, 무심행(無心行)

 

 무심을 무아심(無我心)으로 바꾸고 싶고 무아심은 공심(空心)이므로 유(有) 있다는 모양과 이름이 아니고, 무(無) 모양과 이름이 아닌 진리의 에너지도 아닌 것이 유무에 자재한 것으로 인연의 연결 고리인 것으로 무아심이라 마음으로 관하지 않으면 나타나지를 않는 마음이다. 무아심을 얻으면 무쟁삼매(無諍三昧)라 하여 아라한(阿羅漢)의 성인이라 한다.

 

 

310, 공덕해(功德海)

 

 공덕의 바다를 마음이라 한 것이다. 마음의 본성은 본래부터 지혜와 복덕이 원만 구족한 자리라, 부처님의 마음이나 중생의 본성이 동일한 것이지만 중생은 번뇌의 욕망으로 보배로 삼았고, 부처님은 진리로 보배로 삼는 것이라, 삼라만상이 청정하면 공덕해(功德海)라 할 것이다.

 

 

311, 성취자(成就子)

 

 성취를 인도 말로는 “사바하”이다. 부처님을 원만 성취자라 한다. 지구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 중에 석가 부처님은 가장 수승한 32상 80종호를 갖추시고 지혜도 6신통를 하셨다. 인간의 잠재력을 증명하신 것으로 인간의 무한한 마음의 힘을 보이신 것이다. 사람뿐만이 아니고 모든 생명존엄을 강조하시면서 평등을 강조하신 것이다. 남을 자신으로 관찰하므로 스스로가 존엄함을 깨달아서 실천하므로 서로서로 인연 관계로 더불어 사는 우리의 인연 고리인 것이다. 스스로가 미워하면 미운 세상이 나타나고 즐거워하면 즐거운 세상이 나타나는 것은 스스로의 힘이라 할 것이다.

 

 

312, 대각심(大覺心)

 

 큰 깨침을 석가 부처님의 깨침이고, 깨침은 바름을 실천하는 것이다.
  지식인들은 바름을 알지만 실천하기가 힘든 것이다. 재물이 없고 권력이 없어도 바름을 실천 할 수 있고 바름을 실천하는 것을 크게 보지 마라. 조그마한 일이라도 양심에 가책이 있으면 바름으로 거듭 생각하여야 한다. 조그마한 일이라고 하여 눈감으면 한 번 두 번 습성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므로 잘못을 깨닫지를 못하고 나아가 권력과 재물이 합세하여 큰 잘못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도리 킬 수 있는 자를 깨침이라 할 것이다.

 

 

313, 선지자(善知子)

 

 선지자는 선지식을 말한다. 화엄경에 선재동자가 구법 길에 53선지식을 찾는 만행 길에는 보살․스님․음여․고기장수․도살쟁이, 세상살이하는 모든 사람을 선지식으로 친견하면서 각각 스스로의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다. 돌은 견고한 것을 가르쳐 주고 대나무는 곧은 것을 가르쳐 주고 물은 부드러운 것을 가르쳐 주고 두두물물이 다 스승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식을 배우고 하지만 자연의 습리를 보고 듣고 깨치는   것이니 모든 것이 선지식인 것이다.

 

 

314, 찰해주(刹海主)

 

 나라의 왕이니, 현재 말로는 대통령이라 할 것이다. 사바교주 석가모니불․극락세계 아미타불․도솔천주․도리천주인 제석천왕․사천왕천 천주, 부처님께서는 욕계․색계․무색계의 28천주가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찰해주가 많다. 조그마한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라도 스스로의 주인으로 찰해 주인공인 것이다. 찰해의 다스리는 방법은 청정불성(淸淨佛性)을 찾는 것이다. 

 

 

315, 향운심(香雲心)

 

 향기가 구름처럼 자욱한 봄철은 겨울 엄동 설한에 흙 속에 움추린 생명들이 따스한 기운으로 흙 속에서 숨바꼭질하는 모습은 누가 힘으로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자연의 습리로 모든 생명에 대자유일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귀로 소리에 얽어 매이고 눈으로 모양에 얽어 매이는 것이니 귀와 눈의 집착을 놓아 버리고 마음으로 보고 듣고 하라. 마음으로 보고 듣고 하면 소리와 모양에 집착하지 않고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자재 하느니라.

 

 

316, 자비행(慈悲行)

 

 생명의 소리가 자비행이다. 사냥꾼이라도 토끼가 상처를 입고 자신에게로 찾아오는 토끼를 총으로 죽이지는 않는 것이다. 가정집에 산 노루가 대문 안으로 들어온 것을 죽이지는 않는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으로 자비심이라 할 것이다. 죽일 수도 있지만 대개가 죽이지를 않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뒷 동산에서 개미굴을 파 해치고 개미를 못 살게 하는 어린 아이들을 볼 수 있지, 이 아이는 자라면 난폭한 행동에 물들기가 쉬운 것이다. 세수 물그릇에 하루살이가 빠져 허우적 거리면 물에서 건져 풀잎에 놓아주면 다시 날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우리로서는 아무런 힘든 일이 아닐 지라도 하루살이에게는 생사 문제인 것이다. 자비심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317, 무주심(無住心)

 

 머무는 마음이 없는 마음으로 6조 혜능스님은 금강경에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已生其心) 응당히 머무는 봐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것은 집착심이 없는 마음을 말한다. 6조 스님은 이 말씀에서 부처님 법에 인연이 된 것이니, 글자도 모르는 나무꾼으로 속가 말로 출세를 한 것이고 부처님 법을 계승한 6조 스님으로 돈오(頓悟)사상을 말씀하신 것이다.

 

 

318, 미타심(彌陀心)

 

 서방 정토 아미타불의 가르침을 말씀하신 것이다. 아미타불 전생에 법장스님으로 48대 원력을 성취하신 분으로 극락세계를 건립하시고 주인공이신 분이다. 아미타불 원력에 십념 왕생원(十念 往生願)이 있어 지극한 마음으로 열 번만 아미타불 하면 극락에 간다는 아주 쉬운 아미타 부처님의 말씀이 누구든지 극락 발원을 하게 한다. 극악 무도한 사람도 십념왕생원을 하면 극락을 가는 것이니 얼마나 좋은 것인가? 거짓말이라면 아미타불이 되시지 못했을 것이다. 아미타 부처님은 악한 사람도 이러한 방편으로 구제하시는 것이다.

 

 

319, 정례심(頂禮心)

 

 이마로 절하는 마음은 마음과 몸으로 몸숨 바쳐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으로 진리를 성취하게 다는 일심으로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 몸숨을 바치는 마음으로 성자가 되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몸을 위하는 편이고 심지어는 국가 대사라 할지라도 몸을 의하는 것이다. 수행자의 마음이면 몸보다 마음편으로 마음을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정례심은 바름 얼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는 마음의 맹세인 것이다.

 

 

320, 광명화(光明華)

 

 깨침의 광명은 마음의 광명으로 지혜라 하고 자연의 광명은 태양의 빛으로 생명에 에너지인 것이다. 마음의 광명인 지혜가 없으면 가치관이 없으므로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고통스러워하고 고통에서 벗어 날 줄을 모르고 항상 원망만 하는 것이다. 지혜가 있으면 번뇌를 관찰하므로 번뇌가 바로 진리 당체임을 아는 것이 마침 어두운 방에 불빛이 들어오면 순간적으로 방이 밝은 것처럼 마음에 지혜가 생기면 번뇌의 그림자는 사라지는 것이다. 

 

 

321, 금강자(金剛子)

 

 견고한 것을 금강이라 하여 허물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금강자는 삿된 것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므로 불법을 옹호하는 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부처님께서 지장보살님께 주신 육환장은 지옥문을 열 수 있는 금강자 라 할 것이고 스님의 법상에 법장도 금강자 라 할 것이다. 금강자는 번뇌를 조복 받고 마군을 조복 받고 바름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322, 향수해(香水海)

 

 도리천주인 제석천왕이 계시는 수미천으로 중심하여 사방으로 향수해 라 한다. 하늘의 이슬을 감로수 라 하여 관세음보살님이 중생을 병을 치료하시는 약수로 알고 있는 것이 우리의 관음 신앙이다. 지구에 향수는 청정수 라 물이 청정하면 병도 치료하고 죽을 생명도 살아나고 만물이 청정수를 먹으면 생명이 살아나는 힘이 있다.

 

 

323, 천화대(千華臺)

 

 많은 꽃으로 장엄한 부처님의 도량인 사찰을 말하고 법회 의식으로 6법 공양으로 등, 꽃․향․차․과일․쌀등 자연의 열매를 공양함으로 자연의 은혜와 감사를 체험하는 것으로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다. 천화대는 부처님의 장엄 도량을 말한다.

 

 

324, 대덕심(大德心)

 

 부처님 말씀에 장로 수보리 야 하신 장로를 대덕이라 할 것이다. 산중 대덕스님 하면 산중 어른으로 산중의 어른 말씀이 법이고 질서이고 대중을 이끌어 가는 길이다. 수행도량은 문서의 법보다도 유동성이 있는 자유자재한 마음의 법으로 자비희사가 수시로 적용되는 것으로 일정한 규칙보다도 시기에 따라서 살활 자재하는 법이 장로법인 것이니 대덕심은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다.

 

 

325, 금색심(金色心)

 

 부처님 몸을 금색신이라 하고 금색심은 부처님 마음을 말한다. 보배 중에 금이 천만년을 지나도 금빛은 변하지를 않고 처음처럼 항상 빛을 발하고 또 삿 된 기운이 범하지 못하는 것이 부처님의 바른 말씀에는 삿 된 것이 범하지를 못하는 것이므로 금색심이라 한다.

 

 

326, 은색심(銀色心)

 

 은색은 수행의 색깔이다. 스님들의 옷은 희색으로 은색을 상징하는 것이 희색은 불괴색이라 하여 허물어지지를 않는 것이 모든 색은 희색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항상 수행심으로 호화로운 색깔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므로 빨강색은 정열적이고 공격적이고 위험이고 주의하여야 하고 죽음의 색이고 푸란색은 생명색으로 생명에 기운을 일으키고 움직이는 힘을 주고 피로하지 않고 기분이 상쾌하고 편안함을 주는 것이 서로 서로가 좋아하는 것이다. 희색은 사색하는 색으로 은색심은 수행자의 마음이다.

 

 

327, 법기행(法起行)

 

 전법하는 자을 법기행자 라 할 것이다. 신행학교를 하면 2백명, 3백명이 입학을 하는데 부처님 법을 모르고 몸에 위한 욕심으로 살아가다가 목숨이 다하면 울고 야단 법석이지, 권력과 재물, 자식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하는 것이니, 세속적으로 생각하여도 쓸쓸한 것이다. 마음의 공부를 하면 죽어도 앉아 죽을 수 있고 서서 죽을 수 있고 웃으면서 죽을 수 있고 죽음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것이 죽음이란 것이 다시 거듭 나는 시작이므로 얼마나 기쁜 일 인가? 마음은 생사가 없고 시비선악에 관계하지 않고 항상 자재한 것이니 우리가 마음을 찾아보는 것이 자신을 아는 것이므로 생사에 두려움이 없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328, 대희심(大喜心)

 

 하늘보고 박장대소를 하는 웃음을 대희심이라 할 것이다. 분별심이 없는 도인의 마음이라 하고 함이 없는 마음이라 할 것이고 모양과 이름에 집착심이 없는 마음이다. 하루에 웃을 일이 많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누구나 바라는 마음이지만 몸의 행위가 실천이 안 되는 것은 수행심이 약하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관하는 일을 반복하면 몸의 악습이 자연히 사라지고 무의식으로 반복한 행위가 나타나는 것이 자신의 새로운 행위인 것이다. 이것을 대희심이라 할 것이다. 

 

 

329, 대해심(大海心)

 

 태평양 바다가 대해 라 하지만 대해는 우리 마음이다. 마음에 태평양을 비교하면 태평 가운데 한 조각배가 태평양이란 것이니,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인가? 마음은 모양과 이름 할 수 없으므로 크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모양과 이름이 있으면 상대적인 큰 것이기 때문에 마음은 상대가 없이 큰 것이므로 마하심(摩訶心)이라 한다. 이러한 마음이 각자 스스로가 간직하고 있으니, 지구는 하나만 있어도 크다고 야단인데 두두물물이 비교 할 수 없는 큼을 간직하고 있으니 헤아릴 수 없는 미묘한 법이다.

 

 

330, 서정주(西淨主)

 

 아미타불의 다른 이름으로 서방 정토 주인공을 나는 서정주 라 한다. 서정주의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니, 몸으로 서정주의 행을 실천하고, 입으로 서정주의 말씀을 하고, 마음으로 서정주의 마음씀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서정주의 가르침을 받고 실천하는 것이 결국은 스스로가 실천하여야 되는 것이다. 다만 남이 시켜서 실천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가 강제적인 힘에 의하여 억지로 실천하지만 결국은 스스로가 실천하는 것이니, 세상에는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이치적으로 스스로의 행위인 결론이다.

 

 

331, 대원심(大願心)

 

 대원심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마음은 크다 하면 크고 작다 하면 작은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크고 작다는 말은 맞지가 안고 자신이 크다 작다고 인식 할 뿐이다. 마음은 우주법계보다도 크고 작기는 개자씨 보다도 작은 것으로 비교 할 수 없는 것이므로 모양과 이름 할 수 없다. 이러한 마음이 대원심으로 주인공이 바로 자신인 것이니, 비교 할 수 없는 존재 라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생명존엄성이다.

 

 

332, 위덕자(威德子)

 

 부처님을 위덕왕이라 한다. 위의의 덕을 갖추신 분으로 중생들이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명호을 들으면 무슨 인연이라도 환희심이 나는 분이시다. 부처님을 살해하려는 생각을 일으켜도 부처님을 보면 따르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많은 생으로 선한 공덕을 수행함으로써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위덕인 것이다. 이러한 위덕은 생명을 죽이는 것보다도 자신의 몸을 다른 생명을 위하여 보시하는 공덕을 많은 생으로 수행한 공덕인 것이다.

 

 

333, 견명심(見明心)

 

 밝음을 보는 것은 맑음을 보는 것이므로 빛이 밝고 물이 맑고 흙이 청정하여 기름진 것이다. 생명이 살아가는 것은 밝음과 어둠이 고르므로 잘 사는 것이고 기후가 냉온이 고르므로 생명이 잘 사는 것이다. 지수화풍(地水火風)이 고르면 명당이라 하고 생명이 모여드는 곳이라 생명이 잘 사는 것이라 이것이 견명심인 것이다.

 

 

334, 안심궁(安心宮)

 

 생명이 편안한 곳이 안심궁으로 정토(淨土)라 할 것이다. 정토는 서로서로 더불어 사는 생명 세계를 말하므로 환경운동을 말하고 환경 경제는 물질의 욕심으로 자연 환경을 파괴시키는 것이 아니고 자연을 보호하므로 자연이 사람을 보호하는 것으로 나무가 자라서 공기를 청정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한 씨앗이 자라면서 무수한 생명을 구제하는 것이 정토인 것이다. 정토의 근본은 청정이므로 청정은 무수한 생명을 잘 살게 하는 것이고, 오염은 생명을 더불어 죽이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335, 무상심(無相心): 상이 없는 마음은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무아심(無我心)을 말한다. 내가 없는 마음은 아상(我相)이 없는 마음으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불보살님의 마음이라 신구의(身口意) 삼업에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우리가 몸으로 바른 일을 실천하고, 입으로 바른 말을 실천하고, 마음으로 바른 뜻을 스스로 실천하면 싫어함이 없는 것이라, 무아심은 바름을 실천함으로 성취되는 마음가짐이다.

 

 

336, 무위심(無爲心): 함이 없는 마음은 도인의 마음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 마음이 선악에서 무수히 헐덕이는 마음을 다스리고 희비애락에 본심을 잊어버리고 경계의 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일으킴으로 본래 청정한 마음을 망각하고 욕심내고 진심 내고 어리석음으로 즐거움을 삼아 살아가는 것이니, 무위심으로 살아가면 희비애락의 집착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편안한 마음이 되고 가치관이 확연하여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337, 본심월(本心月): 본래 원만 구족한 마음으로 청정법신(淸淨法身)의 자연모습 그대로가 부처인 것이다. 빛이 부처이고 생명이라 빛이 있는 곳은 생명체가 있고, 물이 있는 곳은 생명체가 있고, 흙이 있는 곳은 생명체가 있고, 기후의 냉온이 고르면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사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몸의 형상과 이름에 집착하여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빛, 물, 공기, 흙, 기온의 에너지가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자연의 감사와 은혜를 망각하고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고 오히려 배반하고 오염시키면서 도리어 욕망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이익을 추구하니 생명을 죽이면서 자신이 잘 살기을 바라는 것이니, 인간의 어리석음이라 할 것이다. 이 본심월을 알면 본래 모습을 찾는 것이다.

 

 

338, 정심행(正心行)

 

 바른 마음은 직심이다. 직심은 과거심도 아니고 미래심도 아닌 것이다. 참회하는 마음은 과거심으로 과거의 행위를 반성하고 돌이켜 보는 것으로 현재의 바른 마음이고, 희망은 미래심으로 계획하고 무엇을 해야 하겠다는 결정심을 현재에 하고 있는 것이 직심이다. 바른 마음은 부처님 마음이고, 우리의 본심이고, 두두물물의 본성자리인 평등심이다.

 

 

339, 정언심(正言心)

 

 바른 말은 진실한 말로 본심에서 참된 말을 하라는 것이다. 경계의 대상을 보고 듣고 분별하면 바른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상의 모양과 이름으로 나타난 현상을 보고 듣고 하기 때문에 본성의 진실을 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언을 하려면 모든 보고 듣고 한 집착을 버리고 오직 마음으로 관찰하라, 모든 형상과 이름의 연결 고리가 나타나는 것이니, 모두가 하나인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고 마음에서 멸하는 것이다.

 

 

340, 금강심(金剛心)

 

 세상에서 견고한 것을 금강이라 한다. 모든 물질은 금강이 될 수가 없다.
물질은 변화하는 것이지, 견고한 것이 없는 것이다. 마음이 제일 견고한 것이라, 모양이 없으므로 견고한 것이라 할 것이다. 부처님 말씀인 금강경은 공심(空心)으로 금강을 삼은 것이다. 공심은 유무에 자재한 것이다. 있다고 하면 없고, 없다고 하면 있는 도리가 공심이다.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하여 텅빈충만이라 할 것이다. 무소유로 주인공인 것이다.

 

 

341, 묘법심(妙法心)

 

 

 묘법은 모양과 이름이 변하는 것을 관찰하면 천태만상으로 나열되는 시간과 공간을 축소 할 수 있고 늘릴 수 있는 자라면 묘법을 볼 수가 있다. 물이 평범하게 강물로만 보이지만 물이 나무에 순응하면 나무가 되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것이 물과 빛과 흙의 자연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지 나무 홀로 자라는 것이 아닌 것이니, 이 도리를 알면 묘법이라 하고 부처님 가르침인 깨달음을 묘법이라 한다.        
                  

 

342, 기타림(祇陀林)

 

 기타림(Jetavana) 승림(勝林)이라 번역, 중인도 사위성(舍衛城) 남쪽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의 원림(園林). 수달장자가 이 땅을 태자에게 사어 절을 지어 부처님께 바치니 이것이 바로 기원정사(祇園精舍)인 불교의 최초 사원이고 금강경을 설하셨다.

 

 

343, 삼정심(三淨心)

 

 삼정심은 바른 뜻․바른 일․바른 말로 부처님의 십계명이고, 미래 용화세계의 미륵불의 십선(十善) 사상으로, 우리의 신․구․의, 삼업(身․口․意, 三業)인 몸으로 살생보다 생명 문제을 실천하고, 도적질보다 경제 문제을 실천하고, 음행보다 성 문제를 실천하여 바른 일을 수행하고, 입으로는 망어․기어․양설․악구등은 진실한 말인 언어 문제를 바른 말을 수행하고, 마음으로는 욕망․성냄․어리석음을 지혜로 바른 뜻을 수행하면 십선(十善)이라 하여 극락도 가고 성인도 되고, 저지르면 지옥․아귀․축생, 악도에 윤회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악이 분명한 것이니, 우리의 말 한 마디와 행동 하나가 진리이고 법인 것이다.

 

 

344, 여여심(如如心)

 

 여여심을 진여심(眞如心)이라 하고 여여(如如)는 여거여래(如去如來) 거래가 없어 여여한 자리라 가고 옴이 없는 것이라, 불성이 허공에 충만하니 거래가 없이 여실한 것이다. 빛이 부처이니 빛이 충만한 것이니, 왕래가 없는 것이다.

 

 

345, 선재심(善財心)

 

 선재 선재(善哉)라 하신 부처님의 말씀은 수보리 야 너의 말이 맞다 하시고 선재 선재라 착하고 착하다하신 것은 수보리에게 수기한 것이므로 나의 말과 같다는 것이니, 수보리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이란 것이다. 또 화엄경에는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제방으로 친견하시고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친견하여 발심하는 것이니, 불보살님들의 마음은 신구의(身口意) 삼업에 싫어함이 없어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와 같이 수행행자가 되어야 한다. 

 

 

346, 응공자(應供子): 응공을 부처님이라 하고, 보살님이라 하고, 스님이라 한다. 응공자는 바른 법을 실천하는 자를 말한다. 세상에는 마음이 스승이고 바름이 법이라, 한 스님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스승님이 누구입니까? 묻자, 삼성하반월(三星下半月)이지, 마음심(心)자를 파자로 말한 것이 이성계가 국사 스님을 모실려고 유생들을 전국에 순방하게 하여 오대산 바위 위에 검푸른 얼굴에 스님에게 세상에 제일 가는 스승을 찾자 삼성하반월이라 하자 절을 3번하고 모신 스님이 바로 조선 태조의 왕사인 무학스님이시다. 마음이 스승이라 바른 마음이 응공자인 것이다. 

 

 

347, 불자행(佛子行)

 

 부처님의 제자는 부처님의 상호를 보고 거역하지 않고 생각하면 불자인 것이고,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칭명하면 불자인 것이고, 나아가 삼귀의 계와 5계를 받아 불명(佛名)을 받아 수지하면 불자인 것이다. 불자는 마음을 알아야 한다, 마음은 생사가 없고 시비선악에 관계하지 않으므로 자유자재한 것이지만, 우리는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시비하고 있는 것이다. 불자는 마음의 주인공을 찾아야 불자행이다.

 

 

348, 무생심(無生心)

 

 태어남이 없는 것은 번뇌가 없어 생사가 없다는 것이다. 마음이 일어나면 태어난 것이고 마음이 사라지면 죽은 것이라, 허공에 뜬 구름이 일어나면 태어난 것이고 사라지면 죽은 것이라 호흡을 들어 쉬면 산 것이고 날 쉼은 죽은 것이다. 우리가 마음으로 보고 듣고 헤아릴 수 없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생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무생심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집착이 없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已生其心)의 도리이다.

 

 

349, 법도행(法度行)

 

 법도는 통도(通度)를 말한다. 부처님 법을 통달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통도사는 자장스님께서 부처님의 정골 사리를 모시어 말세 중생을 교화하라는 수기를 꿈에서 받으시고 우리나라에 5대 보궁을 개설하여 지금도 청정법신인 사리 친견으로 불자들의 마음을 항상 새롭게 하시는 인연의 원인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니, 공덕이 헤아릴 수가 없다.

 

 

350, 무량행(無量行)

 

 무량행은 다함이 없는 마음이고,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이고, 끝없는 마음이고, 싫어 한이 없는 마음이고,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 사람의 생각으로 미치지을 못하는 것이다. 모양과 이름으로는 변화하는 과정을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라, 변화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없이 지속 할 뿐이라, 영원이라 한다.

 

 

351, 복혜심(福慧心)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신 분이 부처님이라 하여 양족존(兩足尊)이라 하신다. 양족은 부처님의 두발이 아니고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신 분을 말한다.
  중생들도 양족이라 본 성품 자리는 본래부터 양족한 것이니, 다른 말로 구족이라 한다. 중생 스스로가 보고 듣고 욕망으로 마음의 보배를 삼아 스스로가 윤회하는 것이다. 물질 욕망의 보배가 보배가 아니고 고뇌의 원인인 것을 깨달으면 마음의 본성을 찾아 스스로가 항상 빛을 발하여 뭇 생명을 구제하는 것이 양족(兩足)인 것이다.

 

 

352, 여실행(如實行)

 

 여여심은 진실심이고 참된 마음이라 스스로가 진실한 마음을 발심하여야 한다. 접촉의 감각으로 즐거움으로 살아가다가 슬펴하고 시비의 안팎에서 살다가 마음의 진실을 알고 부터는 스스로가 진실의 주인공으로 진실을 실천하니, 스스로가 편안하고 인연 법으로 진실이 고리 고리 연결되는 미묘 법을 아는 것이다.

 

 

353, 보살행(菩薩行)

 

 보살의 정신 지위는 자리이타(自利利他)자타를 다 구제하는 힘이 있다. 대승의 보살정신은 남을 구제하므로 자신을 구제하는 힘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일터라고 하는 것이다. 지장보살님은 지옥 중생을 다 구제하고 부처님이 되신다는 것이 지장보살님의 마은이고, 관음보살님은 자비심으로 중생을 다 구제하신다는 원력 보살님들이시다. 보살의 원력은 물이 모든 생명에 순응하므로 싫어함이 없이 생명을 구제하는 보살님이시다.

 

 

354, 무착심(無着心)

 

 무착심하면 마음을 비우는 마음이다. 진심이 일어나는 것은 보고 듣고 모양과 이름에 집착심이 일어난 것이다. 보고 듣고 하여도 집착심이 없으면 잘못이라 하여 성질 부릴 것이 아니고 잘못을 관찰하여 잘 되게 하는 것이고, 잘 된 것은  남의 가르침으로 배우고 훈습하면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것이다. 보고 듣고 집착하여 소리대로 마음을 일으키면 마음의 뜻을 알 수 없는 것이다.

 

 

355, 응심자(應心子)

 

 응심이란 그윽한 마음으로 듯듯한 마음이고 항상심이라 평상심이라 할 것이다. 허덕이는 마음이 아니라 고요한 마음으로 항상 맑고 청명하여 명경지수처럼 고요한 바다 수면은 천태만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마음이 고요하면 삼라만상이 나타나는 모습에 집착함이 없이 순응함이라 그리치는 법이 없는 것이므로 불 보살님 마음이라 하여 물, 공기, 흙이 생명에 순응하므로 생명에 기운이라 생명력이라 한다.

 

 

356, 지혜장(智慧藏)

 

 마음의 본성을 지혜장이라 하여 공덕과 지혜의 창고인 것이다. 이 보배 창고는 사용하면 할수록 더욱더 증장되는 것이므로 미묘한 법이라 묘법장이라 한다. 지혜장은 부처님도 탄생시키고 보살님도 탄생시키고 지옥도 구제하고 축생도 구제하고 아귀도 구제하는 것이니 삼라만상을 만드는 보배 창고인 것이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 얼마나 행복한 자신인가?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확인하지 못하고 믿으려 하지도 않고 오히려 반대하고 살생하고 잘못으로 가는 어리석음을 범하니, 발심하여 지혜장을 발견하고 이 보배를 사용하여도 누가 조건을 달지 않는 것이니, 서로서로 확인하여 부처님도 되고 보살님도 되는 것이 불제자들의 길이다.

 

 

357, 복덕장(福德藏)

 

 

 복덕장은 마음이라 마음에는 무궁 무진한 보배가 충만하여 사용하면 할수록 복덕장에는 복덕이 증장되는 것이라, 마음에 모양과 이름을 비우면 모든 모양과 이름에 순응하지만 마음에 모양과 이름이 가득하면 다른 모양과 이름에 순응할 수 없는 것이다. 물이 청정하면 생명마다 힘의 생명력이 되지만 물이 오염되면 오염물을 접하는 생명마다 죽는 것이다. 복덕장은 생명력이다.    
  

 

358, 오성자(悟性子)

 

 성품을 깨친자가 오성자이다. 나라법의 법이 평등한 것은 판결된 법은 전 국민에 혜택을 주는 것이 법이고 진리도 조그마한 법이 한 개인에게 나타나면 모든 생명에 평등하므로 혜택을 받는 것이지, 빛을 생명이 보면 잘 자라는 것이고 꽃피고 열매 맺으면 벌, 나비, 새,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니, 대승사상에서는 도리어 사람들이 자연에서 구제를 받는 것이다.

 

 

359, 도명심(道明心)

 

 도명심은 성품을 본 마음이다. 두두물물이 다 성품이 있고 성불의 원인이 되지,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불상보다도 자연적인 바위의 생김새가 부처님을 닮았다면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 10여년전 경남 양산 어느 암자 바위에는 하늘의 뇌성이 3번이나 쳐서 바위가 부처님 모습이 나타나서 전국에서 친견하는 야단법석이 일어나고, 통도사 월하스님은 천광(天光)약사여래불이라 하셨다. 바위에 하늘의 벼락이 3번이나 한 곳에 쳐서 바위 모습이 누구나 보면 부처님이라 하니, 이름도 천광 약사 여래불이라 칭명하고 불제자들은 누구든지 절을 하고 원력을 세워므로 바위가 성품이란 것이다. 바위이지만 자신의 마음속에 잠재한 부처님의 성품을 확인시키는 것이니, 도명심이라 할 것이다.

 

 

360, 법미심(法味心)

 

 일미(一味)는 바닷물이 짠맛으로 일미인 것이다. 고추가 작지만 매운맛으로 세상에서 제일이라 이것이 일미이고 법미인 것이다. 한 티끌 속에 우주가 함축되어 있고 한 티끌로 지구가 형성되는 것이고 한 씨앗으로 산천이 푸른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삼라만상이 마음이라 하시면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셨다. 삼라만상의 주인공은 마음이란 것이니, 내 마음으로 꽃밭에 꽃 씨앗을 뿌리고 물주고 가꾸면 꽃피고 벌 나비 오고 열매 맺어 새들이 오면 노래하는 꽃 정원이 되는 것이 내 마음에서 성취되는 것이니, 지옥 극락도 마음이 주인공인 것이다.

 

 

361, 정토궁(淨土宮): 정토는 서방 극락정토인 아미타불 세계가 있고, 사바세계 정토는 더불어 사는 생명정토인 것이다. 환경 정토는 물, 공기, 흙, 에너지의 자연 환경을 청정하게 하면 생명 고리가 더불어 잘 사는 것이다. 나는 미생물이 살 수 있는 물은 청정수라 한다. 미생물이 살아 갈 수 있다면 먹이 사설이 형성되면서 환경 정토가 형성되는 것이다. 샛강마다 반딧불이가 지천이고 잠자리가 춤을 추면서 매미소리가 숲 속에서 노래 할 적에 정토인 것이다.

 

 

362, 칠보궁(七寶宮)

 

 금은 칠보가 보배가 안이고 몇 백년 된 고서가 보물인 것을 보고, 지금까지 생각한 보배의 가치관이 바꾸어진 것이다. 보배는 물질이 아닌 정신 가치관으로 인간들이 물질에만 보배라 하여 인식되어서 정신의 가치관을 쓰레기처럼 방치하고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지역마다 조상 얼이 무궁 무진한 것이지만 정신 가치관을 발굴하려들지 않고 잊어버리고 산다. 자신의 마음가짐이 얼이고 보배인 것을 모르고 평상시 아무 생각이 없이 말을 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모든 것이 스스로의 행위에서 일어나는 법으로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세계를 만들고,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이므로, 바른 마음가짐은 모든 문제에 원인이 되는 것이다. 

 

 

363, 법공(法空):

 

 부처님 법도 경전으로 문자 법으로 생각을 할 수가 있고, 특히 문자 속에 뜻을 선(禪)의 마음이라 하시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부처님 마음이 전하여지고 있는 것이 바로 선(禪)인 것이다. 법공(法空)은 문자보다 마음으로 전하는 선(禪)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문자 속에 문자을 여인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364, 무위(無爲)

 

 내가 몸이 있는데 몸이 없는 역할을 하려면 일반적으로는 바보 천치라 하고 고상하게 말하면 도인 마음이라 하고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 하지, 무아(無我)사상은 내가 없다는 마음가짐을 말하므로 장애가 없는 것이다. 모든 고통은 내가 있어 내 라는 모양과 이름이 나타나므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내가 없으면 일어나지 안는 것이다. 자연인으로 사라는 것은 공기처럼 만물에 순응하면서 싫어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365, 정덕(淨德)

 

 청정이 복덕인 것은 물이 청정하면 생명이 잘 자라고 병은 없어지고 치료되고 생명력이 증장 되면서 열매가 더욱 증식되는 것은 청정의 생명력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청정하면 지혜의 가치관이 확연하여 사리가 분명하고 판단력이 빠르고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366, 덕산(德山)

 

 

 공덕림은 사찰을 말하고 사찰을 총림이라 하여 숲의 나무처럼 많은 스님들이 수행하시는 도량인 것이다. 총림(叢林)에는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 행정원등 대중이 300명 이상 운집하여 수행하는 곳이 총림이라 하여 항상 대중의 뜻을 존중하면서 숲의 나무처럼 서로 탁마 의지하면서 수행하신다. 덕산은 마음의 덕을 숲처럼 자라게 하여 남을 구제하라는 것이다.  

 

 

367, 시명(是名)

 

 진리는 모양과 이름으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으로 우리가 알 수 있게 표현하여 마음(心)이라 하고, 진리라 하고, 법성(法性)이라 하고,, 법장(法藏)이라 하여, 마음을 다른 이름으로 인연에 따라 표현한 것이다. 우리의 이름도 본래는 없는 것을 내가 태어나니 이름을 지은 것이다. 시명(是名)은 그림자를 말한 것으로 이름과 모양이전의 이치를 보고 듣고 하라는 말이다.

 

 

368, 적멸(寂滅): 부처님의 사리탑을 적멸궁이라 한다. 부처님은 돌아가시지를 않고 적멸하셨다 하고 사리의 법신으로 항상 청정으로 자비 설법을 하시지만 중생들이 모양과 이름으로 보고 듣고 하므로 진리를 보고 듣지를 못하는 것이다. 자연이 청정을 가르치고 내 마음에 원만 구족한 청정을 깨달으면 이것이 본래 원만 구족한 청정 법신인 것이고 내 밖에 법을 찾지 마라 수고로울 뿐이다.

 

 

369, 명심화(明心華)

 

 마음을 밝은 구슬이라 하여 명주(明珠)라 한다. 명주는 여의주(如意珠)라 하여 관세음보살님이 용두 관음으로 구름 속에서 용을 타시고 용의 여의주를 가지고 계시므로 관자재보살이라 하고, 우리가 마음을 관하면 자재 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의 밝은 마음의 명주를 찾는 것이다.

 

 

370, 정법행(正法行)

 

 바른 법은 바른 마음이고 바른 행이고 바른 일이다. 부처님 언행을 배우고 수행하면 바름을 실천하는 것으로 중생은 모양과 이름으로 집착하여 살아가므로 항상 즐겁다 하다가 슬펴 울고 희비애락이 죽 끊듯 한다. 바른 것이 부처님의 법이지만 결국은 스스로가 마음의 바름을 깨달아야 바름을 실천 할 수 있는 것이다.

 

 

371, 선법화(禪法華)

 

 선(禪)은 부처님 마음이고 중생들의 본심이므로 두두물물에 생명존엄성이 있는 것으로 자비심의 생명력을 말한다. 개미도 움직이는 불성이 있는 것이 생명력으로 자비심인 것이 우리의 본심가 같고 부처님의 마음인 것이다. 부처님은 이 마음을 아시고 개미를 자비심으로 잘 살게 하시고, 우리는 이 마음을 인식하지만 개미를 미물이라 하여 없이 여기면서 죽이는 짖을 밥먹듯 하는 것이고, 개미는 움직이면서 움직이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 차별인 것이다. 개미의 미물에도 선심(善心)은 있지만 모를 뿐이다.

 

 

372, 일해성(日海性): 태양이 마음 성품이란 것이다. 태양은 항상 빛을 발하지만 생명의 근기에 따라 살아가므로 장단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빛을 항상 발하지만 본성을 망각하고 경계의 모양과 이름으로 보고 듣고 인식하여 분별하므로 번뇌에서 윤회하는 것이다. 경계의 반연을 놓아 버리고 텅텅 빈 마음으로 삼라만상을 바라보면 누구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흰 것이 오면 희고 붉은 것이 오면 붉은 것으로 자재한 것이 마음인 것이다. 

 

 

373, 자성화(自性華)

 

 자성 청정으로 사라는 것이다. 본성이 청정하여 모양과 이름으로 표현할 수 없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 누가 간섭 할 수 없고 혼자 분명하여 따라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 본성은 각자 스스로가 주인공이라 다른이는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374, 혜명심(慧明心)

 

 혜명은 나타난 지혜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부처님 마음이 계승하여 온다는 것이 혜명이다. 혜명의 적자 설도 있고 본래 혜명의 청정심을 스스로가 찾는 것으로 경계를 방하착하면 마음속에 본래 원만 구족한 자리를 발견하면 바로 청정으로 이 청정이 자연에도 있고 마음에도 있어 각자 스스로가 찾는 것이다. 마침 글자를 만들어 가르치고 배워서 스스로가 자신을 알아서 실천하므로 구제가 되는 것이니, 지금까지는 구제라 하면 남의 의해서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구제하는 방법을 배우고 가르쳐서 스스로를 구제하면 천하를 구제하는 것이다.

 

 

375, 불외자(不畏子): 두려움이 없는 자는 생사의 두려움이 없는 자를 말한다. 생사의 두려움이 없는 마음은 몸의 모양과 이름으로 보고 듣고 하면 두려움을 극복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생사가 둘이 아닌 것은 마음으로 보면 생사가 둘이 아닌 것이다. 마음은 생사시비선악에 관계하지를 안는 것은 마음이 청정하면 성취되는 것이다. 청정하다는 것은 마음이 텅빈 마음으로도 말 할 수 있다. 내라는 모양이 없으므로 남에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불외자라 한다.

 

 

376, 정행자(正行子)

 

 부처님을 정행자 라 할 것이다. 바른 일, 바른 말, 바른 뜻을 실천하신 자는 부처님이시다. 부처님 제자는 이러한 마음을 배우고 수행하므로 본성 청정을 실천하여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물질의 욕락이나 애욕의 쾌락은 일시적인 즐거움이라 돌아서면 괴로운 것으로 즐거움이 영원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377, 무염자(無厭子)

 

 싫어함이 없는 자는 불 보살님의 마음으로 불제자들의 길이다. 화엄경 보현품에는 보살심의 실천 원력을 세우신 보현행자는 불 보살님들의 마음은 신․구․의․업(身․口․意業)에 싫어함이 없다 하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행위가 바로 몸, 말, 마음으로 행위를 하는 것이니, 이 행위에 순응하므로 자재하고 싫어함이 없다는 것이다.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중생의 마음에 순응하므로 구제하는 것이니, 중생이 불만이 없는 것이다. 물이 모든 생명에 순응하므로 생명력이라 하는 것이다.

 

 

378, 무주심(無住心)

 

 머무는 마음이 없는 마음이 집착 없는 마음으로 내란 모양과 이름이 없는 마음으로 내가 없는 무아상(無我相)이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는 것이니, 항상 광명을 발하는 태양 자체인 것이다. 태양은 항상 빛을 발하지만 인연에 따라 빛을 보는 것도 있고 못 보는 것도 있는 것이다. 태양은 공간과 시간에 구애 없는 것인데 만상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를 받는 것이 다른 것이다.

 

 

379, 여실행(如實行)

 

 부처님 같이 하라는 것이 여실행이다. 실다움은 본래 없는 것이지만 이름하여 실다움이라 한 것이지, 영리한 준마는 주인의 마음을 알아서 목적지에 가고 영리하지 못한 말은 가다가 풀도 뜨어 먹고 이산 저산 구경도 하고 가다가 주인에게 혼이 나기도 하고 깔끔하지 못하고 분잡한 것이니, 주인이 싫어하는 것이다. 여실행은 준마처럼 진실하고 여여하여 그대로 진리이고 법이고 실천인 것이다.

 

 

380. 무각심(無覺心)

 

 부처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시지만 무각심은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중생의 본심이 본래 성불이라 깨칠 것이 없다는 대승 법문인 것이다. 두두물물이 본래 성불인데 석가 황면 노자가 잠잠한 마음 바다에 파도를 일으키게 한 것이니, 방망이를 맞아도 한참을 맞을 것이니, 걱정이로다. 
 불명 이해 원고가 삭제된 것을 다시 켐퓨터 작업을 한 것이다.

 

 

(03년 8월 30일. 오전 7시. 통도사부산포교원. 법사 실에서.) 

 

 

 

381, 봉정심(鳳頂心)

 

 봉정암에는 금강산에서 아름다운 바위 대회를 하자 전국 바위들이 금강산을 가다가 시간이 늦어서 설악산에 쉬어 지금의 바위들이 잘 생긴 바위들이라는 전설이다. 봉정은 아름다운 바위들로 부처님 같기도 하고, 봉황새 머리 같기도 하고, 스님 같기도 하고, 신선 같기도 하여 보는 자들에 마음이 신비롭고 물, 바람, 구름, 바위들의 조화로 극락세계의 하늘 나라에 온 기분으로 세상의 어지러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청정하게 하여 산다고 잊어버린 본심을 찾게 하는 곳이라 여가가 있어 자주 가면 마음에 힘을 얻는다.

 

 

382, 감로자(甘露子)

 

 감로수는 부처님전에 청수를 올리고 기도하기를 감로수로 변하여 중생의 약수가 되게 하여 달라는 중생들의 지극심을 볼 수 있고, 어릴 적에 스님께서 사찰에 간장독에 아금청정수 변위감로장 봉헌삼보전 원수애납수(我今淸淨水 變爲甘露漿 奉獻三寶前 願受哀納水) 장독에 글귀를 볼 수 있었다.
  감로미는 몇 일을 먹지 않고 배가 고프면 한 방울의 물이라도 감로미로 달고 맛이 있고, 배가 부려면 아무리 성찬이라도 맛이 없는 것이라 감로미는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383, 예경심(禮敬心)

 

 부처님전에 예경하는 수행은 부처님 닮게다는 마음이고,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수행으로 자신을 하심하고 대상을 존경하는 수행으로 인사하는 마음이고, 부처님전에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는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받쳐 절합니다 는 마음의 맹세인 것이다.

 

 

384, 명주심(明珠心)

 

 밝은 구슬이 마음이라, 밝음 구슬 속에 대상의 마음 그림자도 나타나는 것이라 삼라만상이 나타나므로 명주심이라 한다. 여의주(如意珠) 뜻대로 성취되는 구슬이라 밝은 마음을 말한다. 마음이 청정하면 만물이 나타나는 것이 청정수가 모든 생명에 순응하는 것과 같다. 불 보살님은 상이 없이 순응하므로 성취를 시키시는 것이다.

 

 

385, 법공심(法空心)

 

 진리를 법이라 하지만 법은 문서로 나타나지만 진리는 문자나 언어로 나타나면 진리라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진리라 한 것은 인식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방법론 속에 진리가 있는 것이지만 문자에 집착하면 동쪽을 가려고 하지만 서쪽으로 가는 것이다.

 

 

386, 무불심(無佛心)

 

 부처님은 마음의 주인공이라 하지만 주인공이라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부처라 이름 할 것이 없는 것이니, 부처가 있으면 부처의 종 놀이를 하여야 하고 있다 없다 시비를 하지만 주인공이 없으니 시비가 없는 세상이다. 무불심은 시비 없는 세상으로 모양과 이름이 끊어진 것이고 언어 도단으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이다.

 

 

387, 무색심(無色心)

 

 물질을 여인 마음을 말하고, 공심(空心)의 정신세계를 말한다. 색공불이(色空不二) 물질과 정신이 둘이 아닌 세계는 물질을 보고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마음이고, 마음이 일어나므로 물질이 생기는 것이라. 물질의 근본은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라, 물질의 원소는 물질이 아닌 에너지 구성원이다.

 

 

388, 법왕심(法王心)

 

 법왕을 부처님이라 하지만, 심왕(心王)을 말한다. 심왕은 마음이 삼라만상을 만들고 형성하는 것이라, 마음의 청정본심에서 원만 구족한 지혜와 복덕을 실천한다면 경계의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처음 발심하기가 힘든 것은 인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욕망의 애욕을 즐거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욕망은 생명존엄이 결여된 생각에 치우쳐서 일시적이고 순간적으로 즐거움에 만족하는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참아서 견디어 성취하는 일들을 잊어버리고 생각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니, 지혜가 없는 지식 세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심왕(心王)은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389, 삼매자(三昧子)

 

 삼매심은 하나되는 것으로 바위와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고 시간과 공간에서 관계가 없는 것이다. 바위를 보고 저 바위를 쪼개어서 집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 실천하는 것이니, 바위가 내 마음이란 것이다. 억겁을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고 널리고 하는 심통 자재한 것이니, 지금 생각이 만년 전을 생각 할 수가 있고, 만년 미래를 생각 할 수 있는 것이니, 신통이 아니고 심통인 것이라 할 것이고 신통은 만년전 자신을 생각하면서 현재 형성하면 생각과 행동, 말을 하므로 형성이 되는 것이니 신통인 것이다.

 

 

390, 묘법장(妙法藏)

 

 마음의 도리는 깊고 깊은 미묘한 법이라 있다고 하면 없고 없다고 하면 있는 것이 마음이라 마음은 있다 없다에 자재한 것이다. 물이 온도에 따라서 변화하는 모양을 관찰하면 냉하면 얼음, 구름, 비, 이슬, 안개, 눈으로 형성되고 온도가 높으면 공기, 수증기로 형성되면서 생명에 순응하면 생명의 모양과 이름으로 나타나는 것이 미묘한 묘법장이라 마음 작용하고 같은 것이다.

 

 

391, 일미심(一味心)

 

 한 맛이 일미 라 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일미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으로 형성되는 것이라 일미 라 할 것이다. 집이 마음이란 것은 집을 설계하고 지으면 집이 형성되는 것이므로 마음가짐이라 일미심인 것이다.

 

 

392, 대승심(大乘心)

 

 분별심이 없는 큰마음을 대승심이라 하고 자연스러움을 대승이라 한다. 빛이 생명에 순응하고, 물이 생명에 순응하고, 공기가 생명에 순응하고, 흙이 생명에 순응하는 것이 자연이라 하고, 대승심으로 살아가는 진리인 것이다. 

 

393, 공유심(空有心)

 

 공(空)은 정신을 말하고, 유(有)는 물질을 말하는 것으로 정신과 물질을 겸비한 것으로 육신과 정신이 산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산 사람의 정신은 공유정신으로 청정 법신은 생사가 없는 정신으로 항상 청정으로 살면 공유 정신이라 할 것이다.

 

 

394, 원융심(圓融心)

 

 원융 무애심을 말한다. 둥근 원을 그리면 시작 점이 마지막 점의 만남으로 둥근 원이 형성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회향심(廻向心)으로 회향은 마지막이 아닌 것으로 다시 시작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등학교를 입학하고 거듭 거듭 하는 것으로 생(生)과 사(死)가 반복이 되는 것이 윤회라 윤회를 고통으로 보지만 본 마음을 찾으면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원융 무애 라 할 것이다.

 

 

395, 본각심(本覺心)

 

 근본심을 깨닫는 것으로 원래 원만 구족한 지혜와 복덕의 마음을 깨달아 스스로의 본심을 확인하면 견성(見性)으로 성품을 본 것으로 번뇌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이다. 중생의 본심이 부처님의 마음과 동일하지만 중생 스스로가 마음 밖에서 마음을 찾아 수고로움만 더 할 뿐이라 바로 마음속에서 마음을 찾아야 본각심(本覺心)이라 할 것이다.

 

 

396, 타파심(打破心)

 

 마음으로 화두를 타파하면 깨달음이라 한다. 화두를 타파하는 것은 마음을 비우므로 성취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한 문제를 관찰하면 형상과 이름 이전의 형성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 인연 법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 할 수 있는 마음의 가치관이 나타나는 것이다. 가치관이 나타나면 이름과 형상의 집착심이 타파되고 마음의 가치관이 확립되는 것이다.

 

 

397, 해탈자(解脫子)

 

육신의 생사는 인연 법으로 거듭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형성되고 마음은 선악업(善惡業)으로 거듭하지만 선악에서 해탈하여야 본성을 본다고 하여 깨달음이라 한다. 마음에 무아(無我)정신은 몸은 지수화풍으로 형성되고 소멸되는 인연 법이라 몸이 자연으로 오고 가고 하는 인연 법을 관찰하면 몸의 이름과 모양이 변화하는 과정을 깨달아서 집착심이 없으므로 고뇌가 없으므로 무아 라 하고 해탈자 라 할 것이다.

 

 

398, 불국화(佛國華)

 

 불국토는 극락세계이고 불국 정토를 말한다. 사철을 불국 정토라 할 것이다. 사찰은 부처님의 집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다. 부처가 되는 것은 마음 청정을 말하고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여지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이 불성 청정이 본래 있어서 잊어버리고 사는 것을 깨닫게 하여 고통이 없는 정토로 더불어 사는 것이다. 요즈음 환경운동이 생명존엄 운동으로 깨달음 운동이므로 불교인들은 목숨을 걸고 실천하게다는 원력이 발심(發心)인 것이다.

 

 

399, 불퇴심(不退心)

 

 바름 마음에서 물러서지 않는 마음으로 바름의 양심을 저버리고 욕망으로 자신의 몸에 집착하여 양심을 팔고 나라를 팔고 의리를 팔고 생명존엄을 저버리고 이익을 취득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바름에서 항상 정진하면 현실은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흐르면 지혜가 생기고 복덕이 생기고 거짓은 시간이 가면 재앙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중생의 복덕과 지혜는 바름에서 불퇴심인 것이다.

 

 

400, 수선행(修禪行)

 

 선(禪)은 부처님 마음이고 수행자의 본심으로 청정심을 말한다. 항상 청정심으로 사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고 청정심은 바른 마음이므로 바름의 얼을 잊어버리면 선심(禪心)이 아닌 것이다. 수선행은 바른 마음의 지속심인 것으로 실천을 말한다.

 

 

401, 항복심(降伏心)

 

자신의 번뇌 마음을 조복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으로 탐진치 삼독심을 다스릴 수 있으면 불 보살님의 마음으로 바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라, 물이 생명에 순응함과 같은 것으로 청정수가 바로 부처님인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이름과 모양으로 불 보살님의 가르침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불 보살님에게 예배하면서 돌아서면 물, 공기, 흙을 오염시키므로, 불 보살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이름과 모양으로 부처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 금강경에는 부처는 모양과 이름에 집착심이 없어야 부처을 찾는다 하셨다.

 

 

402, 초심자(初心子)

 

 초심은 진리의 발심을 말한다. 바름의 길을 입문하는 것은 성인의 마음으로 모양과 이름에 집착심이 아니고 싫어함이 없는 순응하는 마음이라 할 것이다. 바름은 청정이고 맑음이고 밝음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바름의 깨달음이다. 우리는 바름을 마음에서만 찾으려 하니 힘든 것이고, 자연의 청정을 찾으면 바름을 싶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깨침은 삼라만상을 보고 듣고 하므로 청정을 깨닫고, 바위를 보고 깨칠 수 있고, 폭포 물소리 듣고 깨칠 수 있고, 솔 나무 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깨칠 수 있고, 겨울 낙엽 떨어지는 것을 보고 깨칠 수 있고, 두두물물이 스승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초심자의 마음은 삼라만상의 바름을 볼 줄 아는 마음이다.

 

 

403, 원각심(圓覺心)

 

 삼라만상이 부처의 본성이 있어 본래 원만 구족한 존재라는 것이다. 개체마다 본성이 있어 스스로가 주인공으로 스스로의 세계가 완성되어 있는 것이라 부처님의 마음과 동일함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누가 가르치고 지배를 할 수 없고 억압 할 수 없는 존엄성이 완성되어 있어 원각심이라 한다.

 

 

404, 지혜월(智慧月)

 

 지혜은 관찰하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가치관으로 달이나 거울, 바다에 많이 비유하는 것이다. 마음을 관찰하면 인연 법으로 나타나는 형상 이전의 과거와 형상 이후의 미래가 연결되는 고리가 현재심이라 할 것이다. 현재의 마음을 관찰하면 미래를 알 수 있고 현재의 마음씀을 관찰하면 미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니, 과거 현재 미래가 바로 직심의 실천에 있는 것이니, 바른 일, 바른 말, 바른 뜻의 실천은 지혜의 보배 창고인 것이다.

 

 

405, 대명주(大明主)

 

 밝음 마음이 주인공이다. 마음의 본성은 청정 법신이라 자연 그대로이고, 마음의 본 성품이 부처님의 마음 같아 부족한 점이 티끌만큼도 없는 것이다. 중생은 바름을 망각하고 욕망의 꿈속에서 순간의 즐거움을 찾아 헤메는 착각 속에서 영원하기를 바라고 있어 순간 순간의 생각이 지속하지를 못하고 분별하므로 지옥과 극락을 순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니, 마음에 밝은 주인공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한 생각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호흡, 보고 듣고 하는 마음을 코끝으로 집중시켜 시간과 공간을 축소시켜 보라, 내 마음속 주인공의 대명주를 볼 것이다. 

 

 

406, 발심자(發心子)

 

 청정심으로 발심하면 선악심을 분별 할 수 있는 마음에 가치관이 확립되는 것이므로 악심을 일으키지 않고 선심으로 수행 할 수 있는 것이라 남을 구제 할 줄 알고 지옥 중생을 위하여 애민심으로 자비심이 발로하여 남에게 바른 길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가치관이 나타나는 것이다.

 

 

407, 상도심(常道心)

 

 스님들은 평상심이 도라 한다. 항상 바른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 도라 순간으로 일어나는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고 욕망, 성냄, 어리석음, 시기, 질투, 고르지 못한 말, 살생, 훔침, 삿된 행위를 하지 않는 수행심이 바름으로 항상심으로 수행하면 평상심이 도란 것이다. 호흡을 하지 못하면 죽는 것이지 호흡하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하지만 어려운 것은 공기가 청정하여야 하고 힘이 있어야 호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평상시는 호흡하는 것이 아무런 생각이 없지만 죽음의 문에는 호흡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가를 직각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평상시는 모르고 사는 것이니 도(道)심을 잊고 사는 것이므로 공기의 감사와 은혜를 망각하고 오히려 공기를 오염시키면서 욕망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니, 인간 욕심의 어리석음이라 할 것이다.

 

 

408, 적묵심(寂黙心)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바른 마음이다. 시비하는 마음이 아니라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상대의 잘못을 보아도 상대의 마음을 도리어 편안하게 하는 마음으로 자신과 남을 이익되게 하는 마음이니 불보살의 마음이라 할 것이고 항상 스스로가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발심자라 할 것이다.

 

 

409, 일진심(一眞心)

 

 한번 참된 마음을 발심하면 부처가 되는 인연이라 마음에 부처의 종자가 있다는 마음을 발심하면 씨앗이 움트는 것은 자연의 힘을 입어야 하는 것이니, 숙세의 선한 인연이라 하고 선한 공덕이 없으면 장애가 많고 잘되는 일도 갑자기 실패하는 길로 가는 것이니, 항상 남을 위하고 스스로가 수행을 하여야 잘 되는 것이므로, 자연 보호는 남을 위하는 보살행이라 할 것이다.

 

 

410, 근수행(勤修行)

 

 쉼이 없이 보살행을 수행하는 마음이라 스님이라 하면 마음을 바르게 하고 고르게 하고 남에게도 이 마음으로 가르치고 수행하게 하는 것이 스님의 마음이라 할 것이다. 사회 생활을 보면 살기 위해 생명을 죽이는 생활을 하고,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 갈 수 없는 생활에 물들어 잘못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사람이 많으면 사회는 어지려운 것이고 오염된 사회라 청정하게 하려면 벌을 받고 언론에서 야단법석이지, 최소한 정토가 되려면 생명존엄으로 상대을 위하는 생명 경제가 되면 너와 나를 속이지는 안는다.

 

 

411, 선심자(禪心子)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중생의 본심인 것이라 항상 바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마음의 본심은 바른 마음이라 부처님은 바름을 실천하신 분이시고, 중생의 본심은 바름이나 실천을 하지 못한 차별이 있는 것이다. 중생이라도 바름을 실천하는 수행자도 있고, 마음으로는 바름을 알지만 실천을 하지 않는 자도 있고, 바름을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고, 악심으로 남을 괴롭게 하는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고통이 너무 많아 고통인 줄을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어 사람의 마음은 천태만상인 것이다.

 

 

 

412, 광명장(光明藏): 마음은 광명의 보배 창고인 것이다. 아무리 사용하여도 부족함이 없는 보배 창고 인 것으로 사용하면 사용 할 수록 창고는 더욱 가득한 것이라, 다함이 없는 보배 창고인 것이다. 이러한 보배 창고가 자신에게 있는 줄도 모르고 중생들은 살면서 남의 보배만 욕심을 내는 것이 어리석음이라 할 것이다. 마음을 찾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마음은 망각하고 마음 밖에서 마음을 찾는 수고로움만 더 할 뿐이다. 
  

 

413, 법계성(法界性)

 

 마음이 우주 공간에 가득한 것이라 빈틈이 없는 것이니, 남이 배고프면 내가 배고픈 것이고, 남이 배부르면 내가 배부른 것이다. 물질 세상에는 말이 안 되는 말이지만, 마음으로는 말이 되는 세상이다. 극락에는 팔이 길면 길수록 좋고 지옥은 팔이 길면 길수록 안 좋은 것은 마음 때문이다. 극락에는 남을 먼저 생각하므로 팔이 길면 자신보다 남에게 밥을 먼저 먹이므로 좋은 것이고, 지옥은 반대로 욕심이 많아 먼저 자신이 먹을려고 함으로 팔이 길면 고생이고 먹지를 못하는 것이다. 마침 여우란 놈이 영리하다고 하지만 항아리 속에 먹이를 먹지 못하는 것은 욕심이 많아 항아리 속에 먹이를 지고 놓지 안아 먹지 못하는 것이고, 또 여우가 먹이를 물고 다리를 건너다가 물 속에 먹이를 물고 있는 여우 그림자를 보고 욕심을 내어 먹을려고 입을 열어 물고 있는 먹이를 놓쳐 버리는 욕심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414, 본래심(本來心)

 

 청정이 지혜라 물이 청정하면 모든 생명들이 잘 자라고 병든 생명도 살아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고요하고 편안한 것이지만 귀로 소리를 듣고 눈으로 모양을 보고 집착하여 인식하므로 대상에 마음을 일으키므로 자신의 본심을 망각하고 착각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보고 듣고 한 것을 놓아버리고 본심에서 살아가면 자신의 주인공을 찾는 것이다.

 

 

415, 법관심(法觀心)

 

 마음을 관찰하면 보이지 않는 모양과 이름이 나열되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지혜가 나타난다. 관법은 인연 법으로 모양과 이름의 온 곳으로 돌아가면 모양과 이름이 사라지는 것이니, 모양과 이름에 집착 할 것이 없으므로 무아(無我)라 하여 자유자재한 마음으로 무쟁삼매(無諍三昧)라 하여 아라한(阿羅漢)이라 한다.

 

 

416, 환희심(歡喜心)

 

 기쁜 마음은 극락 가는 첫 걸음이고 성인이 되는 첫 길이다. 우리는 기쁜 것이 좋은 줄은 알지만 순간적으로 화를 내고 스스로가 재앙을 받아 고통스러워한다. 경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화낸 일이 없는 것이고, 우리들은 남의 말에 현혹되어 대개 마음을 써는 것으로 본심의 바른 마음을 잊고 사는 것이라 남을 말을 잘 믿는 습관이 있다. 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본심의 바름에서 살아가면 항상 환희심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417, 수순행(隨順行)

 

 불 보살님의 마음은 수순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원만 성취시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마음에 수순하시므로 중생을 인도하시고, 물, 공기, 흙의 에너지는 생명들에 수순하므로 원만 성취하는 것이다. 수순하면 모양과 이름이 없으므로 자유자재함을 성취하는 것으로 중생에게는 수순하는 마음을 잊어버리면 성취되는 것이 없는 것이다.

 

 

418, 원통심(圓通心)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이 원통심이다. 자비의 권화신인 관세음보살님은 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하고 소리내어 부르면 관세음보살님께서 소리에 순응하시므로 원만성취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에는 자비심이 있어 항상 스스로가 보살피는 것으로, 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으면 종자 번식을 새가 열매를 먹고 먼 곳으로 가서 배설하므로 씨앗이 움트고 종자 번식을 하는 것이므로 나무 열매는  새의 먹이로 새를 구제하고 새는 먹고사는 은혜에 감사하므로 열매의 씨앗을 산 넘어 날아가서 배설하므로 종자 번식을 하는 것이니, 서로 서로 의지하여 살아가는 방법이 생명의 진리인 것이다.

 

 

419, 일면불(日面佛)

 

 일면불, 월면불 화두 공안이 있지만 지금도 공안중이다. 일면불은 서산 백제 미소 3존 마애불을 보면 아침에 마애불의 얼굴 표정은 용기를 주는 미소를 하시는데 아침 햇살의 비추는 방향에 따라 마애불의 얼굴 표정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저녁 노울 햇빛에 마애불 표정은 편안한 표정을 느끼게 하여 백제 마애불의 미소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이다. 도올 김 용옥은 서울 승가사 마애불을 야밤에 친견하면 학창시절 애인의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릴 15세 행자시절 부산 마하사에서 탁자 밑 양초 쓰레기 초통에서 연기가 나고 불이 나는 것을 보고 방석으로 불을 끄고 나서 지장보살님 얼굴을 보니 얼마나 무서운지, 나는 이불 속에 숨고 말았다. 이러한 것은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내 마음에 일면불이라 할 것이다. 

 

 

420, 월면불(月面佛)

 

 마음을 달에 비유를 많이 하는 것은 밝고 맑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삼라만상을 나투는 것이 마침 밝은 달이 천만 강에 비추면 천만 강에 달이 나타나는 것이 화신으로 달 그림자라 하고 원숭이는 물밑에 있는 달을 나무 열매인 줄 알고 물 속에 달을 따려고 밤새도록 물에 들어가지만 달은 하늘에 있는 것이라 해가 뜨면 달은 사라지고 없는 것인 줄을 모르는 것이 원숭이의 어리석음이라 하지만, 달을 마음에 비유한 것은 맑고 밝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421, 수산자(水山子)

 

 물과 산은 바로 청정법신 부처님이시다.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고향으로 지옥과 극락을 사후 문제로 말하지만 결국은 현실의 오염과 청정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미래의 지옥과 극락인 것이다. 오염은 죽음이고 청정은 산 것이라, 죽어서도 청정하면 청정법신이라 영원한 것이다. 마음이라 이름하면 인간 중심을 말하는 듯하지만 마음의 근본은 청정으로 자연 청정 마음 청정을 말한다.

 

 

422, 평상심(平常心)

 

 일상적인 마음이고 듯듯한 마음으로 남이라도 허물이 없는 마음일 것이고 영원심이라 할 것이다. 고락심은 순간, 순간 지속이 돼지을 않고 순간, 순간 마음이 간단이 많고 굴곡이 많아 고통이라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처음 소리가 울음이라 왜 웃음을 짖지 않고 울음소리를 먼저 하는 것일까? 처음 소리는 우주의 원음이기 때문이다. 불교 교리에 “옴”소리를 청정법신으로 우주의 원음이라 하지, 태아의 첫 소리가 “앵” 하는 소리는 소우주에서 대우주로 탈바꿈하면서 태어나는 생명의 첫 소리인 것이지, 울음소리가 안인 것인데 우리가 웃음소리로 인식하고 있는 고정심이다.

 

 

423, 각성자(覺性子)

 

마음 성품을 깨달으면 견성(見性)이라 하여 마음 공부를 하는 자는 선지식이라 하여 친견을 하는 것이다. 삼라만상을 물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마음의 본심은 유무을 초월하고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자유자재한 것이라 초조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없는 것이고 죽음이 눈앞에 와도 두려움이 없는 마음이라 저승사자는 모시고 염라대왕은 인사를 하고 아미타 부처님은 영접을 하시니 마침 귀한 손님이라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인 것이다.

 

 

424, 본연심(本然心)

 

근본 인연으로 자연의 도리인 것이고 생명의 소리인 것이다. 우리는 고통이 많다고 하나 생명들은 생노병사가 다 있는 것이 살아가는 방법인 것이다. 고통스럽다 하지말고 고통을 즐겁게 생각하고 삶의 밥법으로 생각하면 스스로가 즐거운 것이다. 다만 욕망으로 살아간다면 고통스러운 것이다. 

 

 

425, 돈각심(頓覺心)

 

 깨침은 직심(直心)이고 선(禪)으로 배우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번뇌가 많아 머리가 두통이 날 지경이라도 바른 마음만 가지면 일시에 해결되는 것이다. 번뇌가 많은 것은 잘못을 숨기고 속이고 하기 때문에 번뇌가 치성한 것이다. 바른 생각만 하면 바른 행이 나타나고 바른 말을 실천하는 것이다. 

 

 

426, 안정심(安靜心)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선정심이라 할 것이다. 선정심에 들면 지혜가 나타나므로 가치관이 확립되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 미래와 과거를 아는 마음으로 과거 현재 미래에 관계가 없는 상통하는 것으로 번뇌의 허덕이는 시기 질투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다. 물건을 보면 갖고 싫은 마음이 일어나므로 자신의 마음을 억제 할 줄 모르고 남의 좋은 일을 보면 시기하고 싸움을 하는 마음이 일어나므로 자신이 통제가 아니 되는 것은 선정심이 없기 때문이다.

 

 

427, 무외자(無畏子)

 

 

 관음경에 보면 관세음보살님을 두려움이 없는자라 하시고 조건 없이 중생을 구제하시는 분이라 무외대비심(無畏大悲心)이라 한다. 대자대비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생명에 순응함으로 무연대비(無緣大悲)로 구제하시는 것이다.
   

 

428, 일지엽(一枝葉)

 

 한 가지 줄기에 한 잎사귀는 연잎으로 다른 나무나 풀잎하고는 특이한 것이다. 연잎은 물방울이 착하지 못하는 것이 오염되지 않는 연꽃처럼 보인다.

 

 

429, 일지화(一枝花)

 

 한 줄기에 한 숭이 꽃은 연꽃으로 시궁창에서 피지만 오염에 물들지 않고 청정으로 오염물을 청정하게 하고 불교 꽃이라 하고 부처님을 연꽃에 비유하는 것은 오욕락에 물들지 않고 청정의 진리를 성취하신 분으로 천인사(天人師)라 한다.

 

 

430, 원명심(圓明心)

 

 밝음은 시종이 없는 것이라 처음과 끝을 말 할 수가 없다. 마음을 둥근 원상으로 표현하고 일원상(一圓相)이라 하여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둥근 원을 그리려면 처음점이 끝점으로 만나면 원의 그림이 형성되면서 진리라 표현한다. 시종이 만나면서 둥근 원이 되는 것은 시종의 지속으로 시종이 없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한함을 말하는 것이다.

 

 

431, 자연성(自然性): 자연성은 순수함을 말하는 것으로 진리의 성품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대상의 힘이나 억압이나 강제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고 바위처럼 아득한 옛적부터 생긴 것으로 자연의 비바람으로 마멸되어 과정을 자연성이라 할 것이다. 우리 마음의 성품도 번뇌의 고락의 강약이나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고 성품은 시종이 없는 아득한 그윽한 모습이다.

 

 

432, 수성심(水性心)

 

 물은 습한 것이 성품이라 물이 냉온에 따라서 얼음․수증기․구름․비․눈․안개․이슬․물로 형성되면 중생은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여 말하고 진리인 것은 모든가 물이란 것이지만 물이라 이름해도 맞지를 않는 것이다. 두두물물이 마음이라 하여 이름과 모양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말하지만 마음이라 하면 잘 모르고 진리로 마음이라 하면 이해가 되지만 중생 세계는 분명한 것을 말하므로 두두물물이 마음이라 하면 모른다.

 

 

433, 자광심(慈光心)

 

 자비 광명은 부처님의 마음인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수행하면 부처님의 마음이 자신의 본성임을 아는 것으로 귀로 소리에 집착하고 눈으로 모양에 집착하여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상대의 경계를 비우고 방하착하면 본심의 청정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싫어함이 없는 것이다. 즐겁고 싫어함이 나타나는 것은 마음의 번뇌인 것이다.

 

 

434, 대적심(大寂心)

 

 사찰에 가면 대적광전(大寂光殿)에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곳으로 엄격하게 말하면 청정 법신은 모양과 이름이 없는 것으로 자연의 진리이고 마음의 본 성품 자리를 말하지만 방편으로 이름과 모양으로 나타내어 법당에 모신 것이다.

 

 

435, 만공심(滿空心)

 

 텅빈 충만을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하여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 정신이 바로 물질이고, 물질이 바로 정신인 것으로 무소유(無所有)정신을 말한다. 무소유 정신을 공무정신으로 공무원들의 공유(空有)정신인 것이다. 시민 공원을 공유지라 하고 국유지라 하고, 요즈음은 지방 자치제로 세금도 지역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436, 삼보심(三寶心)

 

 세상에서 3가지 보배를 삼보(三寶)라 할 것이다. 삼보는 부처님, 법, 청정 대중인 승가를 삼보라 하여 항상 진리로 수행하고 실천하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바르고, 고르고, 맑고, 밝은 본심의 청정으로 살라는 것이다.

 

 

437, 법왕궁(法王宮)

 

부처님을 법왕이라 하신다. 법왕심은 우리의 본심으로 항상 같이 하는 것이므로 긍정심을 가지고 항상 쾌활하게 살면 재앙이나 삿 된 것은 스스로 물려 가는 것으로 바르게 살면 바르지 못한 것은 서서히 바르게 되고, 맑지 못한 것은 서서히 맑아지는 것은 바름의 힘인 것이다. 바름의 힘은 서서히 개인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으로 우리라는 대중성이 있는 것으로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면서 더불어 사는 정토가 형성되는 것이다.

 

 

438, 법성심(法性心)

 

 법의 성품은 삼라만상의 동일성이다. 모든 생명이 물․공기․흙․빛의 자연의 은혜를 받으면서 자라면서 나무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열매는 모든 생명에 먹거리로 생명을 구제하는 것이니, 은혜와 감사를 서로 서로 하는 자연의 도리가 법성심이다. 사람도 법성심만 찾으면 부처님도 될 수 있고, 극락 지옥에 가는 주인공은 바로 자신의 행위인 것으로 바른 뜻․바른 말․바른 일이 근본이 되는 것이다.

 

 

439, 위덕심(威德心)

 

 위엄과 자비 덕상을 갖추신 분으로 엄하고 인자한 아버지 상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32상 80종호를 갖추신 부처님을 친견하면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따르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니,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나타나는 분위기는 다생으로 수행하신 결과라 할 것이다. 인연이 있는 자는 만나면 더욱 만나고 싶고 부부라도 얼굴을 보면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는 원인은 전생에 살생한 인연으로 부부가 되어도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440, 호법심(護法心)

 

 바름 마음을 일으키면 호법신들이 옹호하는 것이라. 바른 법을 수행하면 호법 선신들이 옹호하시고  바른 마음을 가지면 도우는 사람이 생기고 주위 분위기가 좋고 따르는 무리가 많은 것이다. 재물 보시도 복덕이 많지만 바른 가치관은 복덕이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441, 우경심(牛耕心)

 

 밭가는 소는 마음 닦는 수행자를 말한다. 심우도(尋牛圖)는 소 찾는 그림으로 마음 닦는 과정을 그린 그림으로 소를 마음으로 표현하여 서서히 흰 소가 되어 결국은 소도 없고 찾는 수행자도 없고 텅텅빈 허공만 나타나는 것이 자연 그대로의 본래모습인 것이다. 찾는 차례가 다 망상으로 부질없는 일인 것을 깨달음으로 본래 본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442, 향화심(香花心)

 

 부처님께 꽃과 향으로 공양을 올리면 자연의 모습에 감사와 은혜하는 것이다. 부처님께 육법 공양이라 하여 자연의 꽃, 향, 등불, 과일, 쌀, 청정수의 차를 올리는 것은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자연의 청정인 생명존엄을 체험하면서 감사와 은혜하는 것으로 오염시키지 않으므로 은혜하는 것이고 마음에 번뇌를 일으키지 안으므로 청정 본심을 찾는 것이다.

 

 

443, 정주심(淨主心)

 

 맑은 마음으로 사려는 청정심을 말한다. 마음이 청정하면 욕심이 없고 지옥도 가지 않지만, 오염은 자신의 생명도 죽고 다른 생명을 죽이고 지옥을 스스로 가는 것으로 중생들은 살아생전에 욕심으로 살다가 지옥 고통을 받으면 도리어 원망하는 어리석음이 욕망인 것이다.

 

 

444, 법의주(法意主)

 

 진실은 바름을 빛나게 하고 거짓을 바르게 하고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천진성을 말한다. 밤손님이 어린 갓난아이에게 칼로 위협을 하자 어린 아이는 웃고 마는 것이라 천진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라 밤손님이 도리어 질겁을 한 것이다. 진실하면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고 거짓에는 목숨을 받치는 정의감으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나타나면 분명하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마음의 힘이라 지혜 스러운 법의주가 되는 것이다.

 

 

445, 도명심(道明心)

 

 이치에 밝고 분명한 자로 지식과 지혜는 다른 것이다. 영어나 한자를 많이 알면 지식이라 하지만 지혜는 영어나 한자를 몰라도 지혜는 있는 것이다. 
 지혜는 모양과 이름에 집착이 아닌 가치관을 말한다.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려면 사물의 모양이나 이름이전으로 생각이 들어가야 과거와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마음으로 종힁무진하면 자유자재한 마음으로 모양이나 이름에 장애를 받지 않는 것이다.

 

 

446, 홍법심(弘法心)

 

 법을 전하는 전법자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려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열반으로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문자로 결집하면서 부처님 마음을 전해 받은 가섭존자가 아난이 부처님의 시봉을 하면서 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요즈음 녹음기처럼 아는 것이지만 결집하는 자리에 가섭존자가 참가를 못하게 한 것은 마음을 알지 못한 자로 아난은 다시 용맹정진하여 마음을 알고 결집에 참가한 것을 보면 부처님 마음을 전하는 자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447, 서원심(誓願心): 불 보살님들의 서원이 다 함이 없고, 중생들의 서원이 다 함이 없고, 미래가 다 함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각이란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진리 성취가 아득한 시간이라 생각하지 말고 직시에 앞뒤를 생각하지 말고 곧 바름을 실천하라, 몸으로 바른 일을 실천하기를 서원력으로 삼고,  입으로 바른 말 하기로 서원력으로 삼고, 마음으로 바른 뜻을 실천하기로 서원력을 삼고,  바른 일, 바른 말, 바른 뜻의 삼정심(三淨心)을 서원력으로 삼고 실천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자신의 본성심을 실천하는 것이다.

 

 

448, 장엄화(莊嚴華): 장엄은 극락세계 장엄이 수승 할 것이다. 아미타경에는 극락 세계는 사방 흙이 금이고 산천 나무풀이 금이라 재물에 욕심이 없고 생각만 하면 물질이 생각대로 성취됨으로 욕심이 없는 세계이고 남녀 관계가 없이 생각만 하면 화생으로 연꽃 속에서 태어나는 과정이 마침 유전자 뿌리세포의 생명 탄생을 생각하게 한다. 남녀 관계가 없으므로 시기 질투 음행 삿된 마음이 없는 것이고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구조상 상상 근기의 복락이라 할 것이다.

 

 

449, 평등심(平等心): 평등심을 우리는 인식하지를 못한다. 평등심은 자연으로 산소가 공기이고 물이고 생명인 것이다. 호흡하는 공기의 은혜를 모르고 사는 우리는 5분만 질식하면 사망인 것이지만, 평상심은 공기의 은혜를 모르므로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도리어 욕심으로 공기를 오염시키면서 물질의 욕망으로 생명을 돈으로 죽이고 힘으로 죽이고 먹기 위해 죽이고 자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죽이고 장사하면서 죽이고 가축을 기리면서 사고 팔고 죽이는 것이니, 이것이 업으로 나타나지만 잘 모르는 것이니, 평등심을 모르는 것이다.

 

 

450, 관찰심(觀察心)

 

 마음을 관찰하면 선(禪)이라 하여 부처님 마음으로 통 할 수 있고, 자신의 본성을 찾는 길이다. 마음으로 보고 듣고 실천하지 않으면 보고 듣고 하는 것이 경계에 집착하여 천태만상으로 분별하지만 보고 듣고를 마음으로 관찰하면 하나가 됨이라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

 

 

451, 안주심(安住心)

 

 편안을 찾는 마음은 집착심이 없는 마음이고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불 보살님의 마음이고 우리의 본성인 것이라, 두두물물이 다 본성이 있으므로 낱낱이 두려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누가 흉내를 낼 수 없는 자리인 것이다.
  바다 변에 조약돌을 보라 모양새가 각각으로 같은 것이 없는 것이 자연으로 생긴 것이 인위적인 시간과 공간에 구애을 받지 안는다.

 

 

452, 적정심(寂淨心)

 

 물그릇에 황토 물을 요동시키면 흙물이 되면 물 속이 보이지를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맑은 물이 되고 흙물이 고요하면 적정(寂靜)이라 할 것이다. 마음으로 경계를 보고 듣고 집착하여 고정인식으로 고집한다면 고뇌일 것이다. 그러나 경계의 모습과 이름을 마음에서 비우고 반연하는 것이 고요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과거의 생각이 기억나고, 또 미래를 깊이 생각 할 수 있는 것이다.

 

 

453, 성덕(聖德)

 

 넓고 큰 것을 자비심이라 하고 성인의 덕성으로 마하 반야 라 하여 큰 지혜는 큰마음으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마음은 미워도 싫어함이 없는 자비심이고 부모 마음으로 부모가 자식을 꾸중하는 것은 미워서 그려한 것이 아니고 자식이 미래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미래심인 것이다. 큰마음은 과거를 뉘우치는 현재심이 과거심이고, 미래의 희망을 원력으로 설계하고 기획하는 마음의 미래심을 현재심으로 실천하므로 과거․현재․미래가 동일 한 것이 큰마음의 성덕심이다.

 

 

454, 조복심(調伏心)

 

 흙 물그릇 물을 맑게 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수행하는 마음을 조복심이라 하고 번뇌의 삿된 마음을 스스로가 조복 할 수 있어야 청정심이라 할 것이다. 경계의 모양과 이름을 보고 듣고 마음을 일으키면 마음을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마음을 비우고, 본심의 원만 구족한 지혜와 복덕으로 바름을 실천하면 번뇌 마음을 조복 할 수 있는 것이다. 

 

 

455, 신행자(信行子)

 

 부처님 가르침을 수행하는 자로 불제자라 하고 불법승(佛法僧)삼보에 귀의하는 것이고 나아가 자신의 불법승인 불성(佛性)을 찾는 선(禪)을 한다. 
선(禪)은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바름을 실천하는 마음이다.

 

 

456, 흥운심(興雲心)

 

 비행기를 따고 하늘을 날면 구름이 산천에 자욱한 것을 보면 구름을 따고 싶은 어린 동심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 자세가 일어난다. 등산을 하면 산마루를 따고 가면 하늘을 걸어가고 있는 마음을 하고 있고 시인이 되어 시 한 수를 지어보곤 하여 자신의 깊숙한 마음 세계를 체험하는 것이다. 흥운심은 항상 마음을 즐겁게 하고 미래 상상력의 원력심을 증장시키는 희망심이다.

 

 

457, 이구자(離垢子)

 

 번뇌을 해탈한자로 부처님을 말하지만 중생의 본심을 말하므로 자리 이타행의 보살심으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을 말한다. 자비심의 실천자 요즈음 말로는 봉사자를 말한다.

 

 

458, 공덕해(功德海

 

 바다를 공덕 바다라 하는 것은 싫어함이 없이 천만 갈래의 샛강 오염물을 받아 들여 청정으로 거듭나는 것이니, 생명의 원천인 것이다. 마음의 본심을 말하는 것이다.

 

 

459, 자인심(慈忍心)

 

 참는 마음에서 자비심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머니 마음을 자비심이라 하지, 어머니하고 부르면 아들의 허물을 시비하지 않고 가슴으로 포응하면서 자식의 잘못을 어머니 가슴으로 감싸주시면서 자식의 허물이 부모님의 허물로 변하는 관계가 일어나면서 부모님 마음은 불 보살님의 마음으로 나타나 시비을 초월하는 자비심이 자신의 본심이라 할 것이다. 본심에서는 시비 선악이 없는 청정법신의 자리이다.

 

 

460, 대희자(大喜子)

 

 대희 대사 대세지 보살님은 우리들은 잘 모르고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자비심의 화신으로 생명의 소리에 순응하시는  분으로만 대세지보살님은 생명력 자체이므로 자비심을 화현 보다도 살아가는 자체를 말한다. 아미타불의 좌우보처는 관음, 대세지보살이지만 우리는 지장보살님만 찾는다.

 

 

461, 수승행(殊勝行)

 

 수승한 수행력은 정진력으로 생명력인 것으로 만리 장천을 날려는 기러기의 생명력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피로하지 않은 힘의 근원을 유전자 연구에서 발견하여 약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피로한 것은 병으로 치료 할 수 있는 것이다. 잠을 자는 것을 사람의 생리 작용으로 보고 사람으로 태어나면 맞당히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지만 잠을 자지 않고 살 수 있는 수행자도 있다. 잠을 자는 것은 몸의 집착심으로 집착심이 마음에서 비워지면 의식 세계에서 무의식 세계로 마음은 잠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462, 원일화(圓一華)

 

 대각심(大覺心)이고, 원각심(圓覺心)으로 청정심의 본심을 말한다. 청정의 본성은 사람 마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연의 근본인 것이다. 청정이 불성(佛性)으로 부처 라 하여 빛이라 한다.

 

 

463, 비로심(毘盧心)

 

 청정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마음으로 자연을 청정 법신이라 하여 자연 자체을 부처로 보는 것으로 법신은 생사로 보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력인 것이다. 씨앗이 자라는 힘은 영원한 것이라, 한 씨앗이 썩고 모양과 이름을 거듭하는 것은 모양과 이름은 다르지만 씨앗의 생명력은 다른 생명력의 새싹으로 거듭 나는 것이니, 씨앗의 물질이 생명력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공(空)의 정신으로 정신인 생명력이 거듭 물질의 새싹으로 나타나는 것은 영원한 생명력인 것이다. 영원한 생명력을 법신(法身)이라 할 것이다.

 

 

464, 무생심(無生心)

 

 남이 없는 것은 번뇌가 없는 불 보살님을 말한다. 부처님 법을 물으면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 하신다.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莫存知解) 이 문에 들면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는 절 입구나 선방 입구에 있는 말씀을 자주 보는 것이다. 중생이 안다는 것이 장애인 것이라 보고 듣고 하는 것이 마음 본성에 장애를 하는 것이니, 보고 듣고 한 경계를 방하착하고 자신의 본성에서 보고 듣고 하라는 것이다.

 

 

465, 수승주(殊勝珠)

 

 마음의 주인공은 밝은 구슬과 같아서 붉은 것이 오면 붉은 것이 나타나고 흰 것이 오면 흰 것이 나타나는 것이 마침 마음과 같아 수승주는 마음의 본성으로 주인공이고 달이고 해의 실상을 말한다.

 

 

466, 무용심(無用心)

 

 씀이 없는 마음이라 보고 듣고 하는 마음은 씀이 있지만 형상과 이름에 집착한 것이라 장애가 일어나므로 유무 자재를 하지 못한다. 씀이 없다는 것은 형상이 있다는 마음을 타파하므로 형상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도리어 씀이 있는 것이다. 

 

 

467, 자성심(自性心)

 

자신의 본심을 자성심이라 하고 중생과 부처가 다 자성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살아가는 것이 다 자신이 만드는 행위인 것으로 몸으로 바른 일을 실천하고, 입으로 바른 말을 실천하고, 마음으로 바른 뜻을 실천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자성으로 통하는 것이다. 과거를 원망하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오로지 바로 바름을 실천하면 자성심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최상의 길이다.

 

 

468, 경심대(鏡心臺)

 

 마음은 거울 같아서 경심대(鏡心臺)라 하고, 저 세상에는 업경대(業鏡臺)라 하여 염라대왕의 선악 분별하는 마음의 거울 틀이고, 스님은 허심대(虛心臺)라 하여 허공 같은 마음이라 한다. 경심대는 현재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청정심이라 할 것이다.           

 

 

469, 멸진정(滅盡定)

 

 번뇌가 다함이 없지만 번뇌가 다하면 마음이 고요하여 지혜가 생기는 것이라, 마치 거울이 맑음으로 나타나는 형상은 잘 보이는 것이고, 바다가 바람의 번뇌가 불면 파도가 산처럼 일어나므로 바다 수면에 형상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멸진정은 지혜를 말한다.

 

 

470, 법만심(法滿心)

 

 텅빈 충만은 진리를 말한다. 이름과 모양의 물질 세계는 텅빈 것이고 이름과 모양이 아닌 진리 세계는 충만한 것이라 텅빈 충만이라 하고,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진공은 정신이나 정신에 집착이 아닌 것이고, 묘유는 물질이나 물질의 집착이 아닌 것이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이라 무소유(無所有)의 공무(空無)정신으로 공무원의 공심(空心)이라 국민을 위한 공무원은 현재의 불 보살님의 마음으로 실천하고 있는 미래의 불 보살님들의 마음으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다. 

 

 

471, 해공자(解空子)

 

 부처님 제자 수보리를 해공 제일 제자라 하여 금강경 말씀에 수보리를 선재 선재라 하신 부처님은 수보리의 말이 맞다고 인정하시는 말씀이다. 마음을 비우고 집착심이 없는 제자는 수보리가 으뜸이란 것이다. 금강경 말씀은 마음을 공(空)이라 하시고, 금강이라 하시고, 텅빈충만이라 하시고, 시종이 하나인 공심의 무소유 정신인 것이다.

 

 

472, 무명자(無名子), 473, 무상심(無相心)

 

 이름과 모양이 없다는 말은 이름과 모양에 집착심이 없는 자로 싫어함이 없는 자라 고정인식으로 고뇌하지 않는 자이다. 자신의 몸을 자신이라 하여 이름과 모양으로 집착하여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하여 생전에는 천하에서 자신이 제일로 생각하고 남을 억압하고 살다가 목숨이 다하면 두렵고 울고 슬펴서 안절부절이라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름의 집찹이 원인인 것이다. 이름과 모양에 집착만 마음에서 놓아 버리면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474, 불매자(不昧子)

 

 전 백장 후 백장 스님 이야기는 대도인도 인과에 떨러집니까? 안 떨러집니까? 하니 불락인과(不落因果)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여 5백생으로 여우 몸을 받아 고생을 하는데 하루는 스님 설법회에서 다시 같은 질문을 하자 불매인과(不昧因果) 인과에 어둡지 않다는 답을 듣고 여우 몸을 벗었다. 전 백장은 도인은 인과에 장애가 없다 하였고 후 백장은 도인도 인과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도인(道人)일지라도 인과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475, 공적심(空寂心)

 

 모양과 이름의 분별심은 생사심이지만 공적심은 우리의 본심으로 지혜와 복덕이 원만구족한 마음으로 바름의 지혜라 할 것이다. 바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없는 것으로 모양과 이름의 분별심도 아닌 것으로 허공에 가득하면서도 모양으로 보이지를 않고 소리로 들이지도 아는 것이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는 것이다. 공적심은 본래 마음으로 중생이 귀의할 곳이다.

 

 

476, 부동심(不動心)

 

 본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 마음으로 태산 같은 마음이고 왕래가 없는 마음으로 생사가 없는 마음으로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는 마음으로 항상 머물러도 머무는 마음이 없으므로 가고 옴에 자유자재하는 것이다.

 

 

477, 상주심(常住心)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마라 부처님을 모양과 이름으로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아니므로 소리와 모양을 떠난 자리에서 보고 듣고 하는 것이므로 상주법신(常住法身)이라 하여 청정을 말하므로 청정은 항상 생명력으로 공기․물․흙으로 항상 같이 하지만 중생이 자신의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자신으로 생각하므로 상주설법을 보고 듣고 하면서 모르는 것이다.

 

 

478, 삼계주(三界主)

 

 부처님을 삼계도사(三界導師)이시므로 삼계 스승이시고 주인공이시다. 삼계는 욕계․색계․무색계로 부처님께서 하늘, 인간을 귀신 지옥등 모든 세계을 28천으로 나누어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무소유의 주인공이시므로 물질의 주인공이 아니고 정신의 주인공이시다.

 

 

479, 여시자(如是子)

 

 부처님 경전 첫머리에는 항상 이와 같이 들었다라고 하신다. 부처님 제자 아난이 부처님과 같이 설법을 하므로 아난은 항상 이와 같이 여시(如是)라 하여 부처님 말씀을 한 것이다. 여시자는 아난을 말하므로 부처님의 말씀은 아난이고, 부처님 마음은 가섭이라 할 것이다. 부처님 당시는 부처님 말씀이 법인 것이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부처님의 모든 것이 청정법신으로 영원한 생명력으로 지금까지 중생의 마음에 상주설법을 하시는 것이다. 

 

 

480, 심우자(尋牛子)

 

 심우도(尋牛圖)는 사찰 벽화로 많이 알려져 있다. 수행자가 소를 찾는 그림으로 마음 수행 차례를 표현한 것이다. 소를 마음으로 그림으로 표현하여 수행자가 소를 찾아 깊은 산중으로 다니면서 누른 소가 흰소로 변하고 소의 그림자도 없어지고 수행자와 소도 없어지고 자연의 본래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심우자는 다르게 목우자(牧牛子)라 하여 고려시대 보조국사를 말한다.

 

 

481, 지족심(知足心)

 

 부처님의 경제관은 지족심으로 족할 줄 아는 마음으로 무소유를 말한다. 금강경에는 지구에 가득한 금은 보배보다도 부처님의 말씀 한 게송을 알면 공덕이 더 수승하다고 하신 것이다.

 

 

482, 백의자(白衣子)

 

 백의자는 관세음보살님이시다. 흰옷 차림에 약병을 가지신 분이 관세음보살님으로 중생의 병고를 항상 자신의 병고로 생각하시고 중생의 어머님이시다. 관음경 말씀은 마음으로 관세음보살하면 소리에 순응하시는 분으로 싫어함이 없으신 분이시다.

 

 

483, 해탈심(解脫心)

 

생사 해탈은 몸으로는 할 수 없는 것으로 마음으로 물질의 모양과 이름에 집착심이 없으므로 물질에 장애를 받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왕래가 없으면 생사가 없는 것이라,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번뇌가 없고 생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마음이 자유로우면 몸도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484, 무위심(無爲心)

 

 함이 없는 마음은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자연에서는 도인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불보살 마음이라 하고, 씀이 없는 마음으로 대용(大用)이라 상대에 관계하지 않는 마음으로 모양과 이름에 집착심이 아닌 것이다. 무위심은 장단에도 관계하지 않고 시비 선악에도 싫어하지 않고 생사에 장애가 없는 마음으로 자유자재한 마음이다.

 

 

485, 환희장(歡喜藏)

 

무의식의 환희심으로 조건에 관계하지 않고  마음의 잠재력인 마음의 본래 모습은 지혜와 복덕의 보배 창고인 여래장(如來藏)인 것이다.

 

 

486, 사홍심(四弘心)

 

 부처님의 네 가지 큰 발원심으로 스스로의 원력으로 중생을 다 구제하고, 번뇌를 다 끊고, 법문을 다 배우고, 불도를 다 배우리라 하신 스스로의 마음은 부처님의 마음이시고 각자 스스로의 마음으로 본 성품으로 돌아가자는 원력인 것이다.

 

 

487, 연기행(緣起行)

 

 서로 서로 관계의 고리인 것이다. 과거․현재․미래를 말 할 수 없는 것으로 연기 법으로 보면 과거가 현재이고 현재가 미래인 것으로 찰나, 찰나 모습과 이름이 변천하므로 고정인식으로 모양을 보고 소리를 듣고 이름과 모습을 말하면 고정인식의 거짓이라 실상을 보지 못한 것이다.

 

 

488, 정도행(正道行)

 

 바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없는 것이다. 깨침을 바름이라 하고 맑음․밝음으로 평등, 자유란 표현를 하는 것이다. 과거의 참희심에 관계하지 말고, 미래의 희망를 바라지 말고,  현재심으로도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대용심(大用心)으로 목숨을 다해 실천하면 무의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고양이가 쥐잡듯이 하고 외 아들를 천길 우물 속에서 구하는 마음의 간절한 마음으로 목숨을 다해 살아가라. 이 마음을 지속한다면 정도행이라 할 것이다.

 

 

489, 무진행(無盡行)

 

다함이 없는 행으로 보현보살의 마음으로 실천행 보살심을 말하고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불 보살님의 마음이고 우리의 본래 모습인 것이다. 불 보살님의 마음은 자비심으로 중생의 모양과 소리에 싫어함이 없이 순응하시는 분이시고, 자비심은 중생의 본래 모습이라  원력심으로 다 함이 없는 마음인 미래심이라 할 것이다.

 

 

490, 황면자(黃面子)

 

 누른 얼굴은 황금색으로 부처님 얼굴을 말한다. 황면노자(黃面老子)로 부처님의 다른 존칭으로 부처님의 몸에서 빛이 발하는 것을 볼 수 있어 얼굴만 보아도 환희심을 발심하고 삿 된 마음이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니, 얼마나 수승한 공덕인가? 질투, 시기 억압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으로 환희심을 발하게 하는 것이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가피력이다. 선지식을 친견하면 삿된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에 바름의 가피력을 입는 것이므로 선지식을 친견하는 법회를 하는 것이다.

 

 

491, 진실행(眞實行)

 

 봄이 오면 산천초목이 움트는 자연의 이치를 진실이라 하면 거짓말은 아닌 것이다. 움트는 기운은 누가 억압․시기․질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자연의 따스한 기운으로 산천초목의 본래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빛의 진실성, 물의 진실성, 흙의 진실성은 싫어함이 없이 삼라만상에 순응하여 모양과 이름의 본래 모습을 원만 성취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피력인 것이니,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이시다. 

 

 

492, 묘음심(妙音心)

 

 음성 세계는 고통의 소리에 순응하시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이 지중한 것이다. 소리 성품을 묘음성(妙音聲)여래불이라 하여 소리로 아는 부처님을 말한다. 눈, 귀, 모든 것이 구조와 작용은 각각이지만 귀의 작용으로 소리를 듣고 아는 것을 묘음성 부처님이라 하는 것은 소리가 귀로 통하여 마음으로 하나가 된 것을 묘음성 부처님이라 한다.

 

 

493, 향적심(香積心)

 

 코의 작용으로 향기를 느끼는 것이니, 향적  여래불(香積 如來佛)이라 한다. 부처님은 한 국토의 주인공이시므로 향기의 상서러운 장엄의 세계는 극락 세계가 제일이지만, 향기로 말하고 행동하고 마음가짐으로 사는 세계에는 향적 여래불께서 주인공이시다.

 

 

494, 법희심(法喜心)

 

 법희 여래는 혀로 맛을 아는 것은 혀의 맛이 마음으로 상통하면 아는 마음으로 청정심의 여래장인 본심으로 하나가 됨이라 진여심이 법계에 두루하여 자연으로 더불어 하나가 본성하고 둘이 아니므로 법희 여래불이라 한다.
 맛 세계의 주인공은 법희 여래불이시다.

 

 

495, 지승심(智勝心)

 

 몸으로 접촉하여 마음으로 상통하여 아는 것으로 하나가 됨으로 지승 여래불이라 한다. 몸은 지수화풍으로 물질의 원소로 삼라만상을 형성하고 삼라만상은 지수화풍으로 돌아가 항상 청정법신으로 금강 불괴신으로 영원한 것이므로 지승 여래불이라 한다.

 

 

496, 법명심(法明心)

 

 뜻으로 분별 사량하는 마음이 부처님의 팔만사천의 법문이라, 일 찰나에 9백 생멸심으로 법진 번뇌가 다하면 여래장의 묘진여심(妙眞如心)이라 법명여래(法明如來)라 한다.

 

 

497, 천진심(天眞心)

 

 천진심은 어린 아이의 순진한 미소의 마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너와 나의 분별이 없고 상대의 시비에도 반응이 없는 희비애락에도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으로 두려움도 없고 시기․질투․원망․증오가 없는 마음으로 청정 무구심(淸淨無垢心)을 말한다.

 

 

498, 무구심(無垢心)

 

 청정한 마음이 무엇인가? 소리가 경계에 있는가?  내 마음에 있는가? 소리는 내 마음도 아니고, 경계도 아니고, 귀도 아닌 것이지만 경계와 소리와 귀와 마음으로 상통하면 소리로 인식하는 것이다. 경계로 인식하지만 소리를 아는 것은 내 마음인 것이므로 소리가 경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이 내 마음밖에 경계라 하겠지만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일반 상식으로 자연은 마음밖에 일로 생각하지만 오해인 것으로 마음의 문제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자연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면 무구심이라 할 것이다.

 

 

499, 멸진자(滅盡子)

 

 번뇌가 없는 자는 부처님으로 다른 명칭으로 금인(金人)이라 한다. 금은 항상 빛을 발하여 밝음을 말하고 어둠과 삿 된 것을 스스로 다스리는 힘이 있는 것이다. 바름의 공덕은 삿 됨이 스스로 해결되는 가피력이 있는 것으로 바름을 실천하면 옹호자들이 스스로가 마음을 일으켜서 보호하고 수호하는 것이 선신의 의무와 권리인 것이다.

 

 

500, 정인심(正印心)

 

 바름의 도장은 깨침인 것이다. 중생심은 정인심이 있는 것이지만 간직한 것을 망각하고 눈으로 모양에 본심을 망각하고 안다고 하고, 귀로 소리에 본심을 망각하고 안다고 오인하여 마음으로 분별심을 일으켜서 고통 서러워하는 것이다. 아는 마음만 놓아 버리면 자유자재한 마음의 본심을 볼 것이다.

 

 

501, 일모혜(一毛慧)

 

 한 티끌이 우주를 형성하는 것으로 한 개를 떠난 우주가 없는 것이다. 바름은 이웃하지 않는 것이고 두려한 것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분별하지 마라.
  오로지 일심으로 정진하는 것이 바름의 실천이고 바름을 상대성으로 보지말고 바름을 경계에 비교하지 말고 본래모습의 원만구족의 성품에서 보라. 
무간 지옥의 고통이라도 한 생각만 있으면 무간 지옥을 벗어 날 수 있는 것이다. 무간옥에서 부처님을 한번 생각 할 수 있는 힘은 마음의 힘으로 가피력이라 할 것이다.

 

 

502, 자아심(自我心)

 

 스스로의 마음은 너나의 마음이 아니고 우주 전후의 마음도 아니고 소소 령령한 뚜려한 것이 시작도 없고 끝이 없는 것으로 헤아릴 수 없고 싫어함이 없고 적나나하고 탕탕하여 무애 자재함이라 누구의 간섭이나 억압을 할 수 없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닌 것이 자연 그대로인 것이다.

 

 

503, 돈발심(頓發心)

 

 몰록 발심을 할 때가 많다. 보통 사람들은 불성(佛性)인 부처님 마음이 스스로가 본래 구족한 것이라 하면 의심하고 믿지 않으려 하는 것은 중생의 보고 듣고 하는 고정인식으로는 당연한 인식으로 이 고정인식을 타파하여 발심하게 함이 돈발심이라 한다.

 

 

504, 일념지(一念智)

 

 한 생각 잘하면 극락이 나타나고, 한 생각 잘못하면 지옥이 나타나는 것이니, 한 생각이 우주를 형성시키고 마멸시키는 것이다. 개울에 둥근 돌은 물도 잘 흐르지만 모난 돌은 물도 모나게 흐르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 둥근 모양이면 화합하는 생각이 잘 일어나고 험상찍한 얼굴은 인상부터 써는 것이라, 지혜인은 얼굴에 여연하지 않고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라 모양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한 생각이 모양과 이름을 만드는 것이니,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505, 연등심(燃燈心)

 

 부처님께 등 공양은 마음의 빛으로 지혜를 말하고, 부처님 마음을 빛으로 생각하고 맑음․밝음․고름․바름이 평등이고 자유라 한다. 부처님 오심을 연등으로 감사하는 것은 생명에 빛으로 오심으로 거듭 태어남을 뜻하는 것이다.몸의 탄생은 부모님이고 마음의 탄생은 부처님이시다.

 

 

506, 선다심(禪茶心)

 

 선(禪)은 부처님 마음이고 중생의 본성인 것으로 다심(茶心)이 선심(禪心)과 다르지 않아 차 마시는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란 것이다. 조선 말기 초의(草衣)스님은 선심 다심(禪心 茶心)을 말씀하시면서 선심의 마음을 일반 생활선(生活禪)으로 대중화시킴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자연에서 찾을 수 있게 한 것은 본래심으로 잊어든 마음을 찾은 것으로 자연과 선심(禪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507, 선미심(禪味心)

 

 맛의 공양은 쌀, 과일, 꽃을 부처님께 공양하면 부처님 마음으로 자연의 감사와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다. 열매의 결실을 맺는 것은 빛․물․공기․흙․자연의 은혜를 받은 것이고, 열매는 자연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거듭 생명을 구제함은  양식으로 자연의 은혜를 갚는 것이다. 자연의 감사와 은혜를 깨달음으로 스스로가 배반하지 않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환희심에서 웃는 마음으로 발심하여 모든 행위에 싫어함이 없는 불 보살심의 실천이 발보리심(發菩提心)이다.  

 

 

508, 선과심(禪果心)

 

 자연의 열매 결실을 부처님께 공양함은 자연의 감사와 은혜를 체험함으로 열매의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사고 팔고 하는 것이지만 중생은 경제의 돈으로만 생각하고 돈을 많이 받으면 기뻐하고 작으면 싫어함이니, 선과심(禪果心)은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연이 자신의 목숨이므로 물, 공기, 흙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509, 무루심(無漏心)

 

 다함이 없는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말한다. 중생의 원력은 무한한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고 중생의 능력이고 생명력이다. 우리가 나약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생명력으로 보면 무한한 능력이 잠재하고 있는 것으로 무엇이든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생명력은 공기, 물, 빛, 흙이 1차 생명력이라면, 2차 생명력은 이름과 모양으로 나타나는 생명체들이다. 무루심은 무의식을 개발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고정인식을 바꾸어 놓는다.

 

 

510, 대덕심(大德心)

 

 복덕이 많은자를 대덕이라 하지만 경제보다도 마음의 진리 가치관을 말하는 것이다. 수행자를 대덕이라 한 것은 마음이 청정하면 모든 생명들은 생명력을 얻는 것처럼 비가 오면 생명들이 스스로가 자라는 것이고 빛을 보면 스스로가 자라는 것이므로 대덕이라 할 것이다.

 

 

511, 화엄장(華嚴藏)

 

 화엄은 원만한 것으로 부족함이 없는 성취를 말하므로 꽃이 피면 원만성은 향기가 진동하는 것이므로 분명한 것은 결실의 열매를 맺는 것으로 화엄이라 할 것이다. 태양이 빛을 발하므로 생명들이 생명력을 얻는 것을 불가사의한 것이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512, 무쟁심(無諍心)

 

 다툼이 없는 마음을 얻으면 아라한(阿羅漢)의 성인이라 한다. 권력과 재산을 차지하려는 마음은 중생심으로 욕망으로 중생세계는 본능이라 하지만 잘못된 인식이다. 번뇌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마음으로 투쟁을 하면 힘으로 대상을 억압하고 시기 질투 테러 전쟁으로 남의 목숨을 강제로 항복시켜서 이익을 차지하고 자유 평등을 구속시켜서 생명력의 무한한 능력을 강탈하므로 반대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자유를 찾아 목숨을 버리는 희생이 반복되는 것이므로 욕망을 본능이라 하여 사람의 가치관을 물질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본능이란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513, 관음자(觀音子)

 

 관세음보살님을 관음자 라 한다. 소리를 관하면 관하는 자와 관할 것이 서로 상통하여 하나가 됨으로 진리라는 가치관의 지혜가 나타나는 것이다. 대상을 보면서 마음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아는 것은 또 하나의 나를 만드는 것이다. 관음자가 한 분이 더 탄생하는 것이다.

 

 

514,수기심(授記心)

 

 부처님께 수기를 받는 것은 미래세에 부처님이 된다는 예언인 것이고 부처님 당시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마음을 깨달은 자가 부처님의 제자이시고, 요즈음은 5계 10계를 받고 삼귀의계를 실천하면 불자(佛子)라 한다. 계를 받고 부처님 명호를 받는 것은 불자가 되는 인연으로 미래세에 부처님이 되라는 원인의 인연이 되는 수기인 것이다.

 

 

515, 호법자(護法子)

 

 부처님의 법을 바름이라 하고 바름은 삿 된 번뇌가 스스로 물려나고, 바름을 옹호하는 선신들을 불교에서는 국왕 대신들을 외호신이라 한다.

 

 

516, 안국심(安國心)

 

 극락세계를 안국이라 하고 정토라 하여 더불어 사는 세계로 나 자신보다도 먼저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아상(我相)이 있으면 성취 할 수 없는 세계라 할 것이고 집착심이 없으므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라 할 것이다.

 

 

517, 관찰심(觀察心)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눈으로 모양을 보고 귀로 이름을 듣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고 듣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고 듣고 하면 시간과 공간을 자재 할 수 있는 것이라 마음은 모양과 이름에 관계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고 듣고 하면 과거 현재 미래에 상통하는 것이다.

 

 

518, 길상화(吉祥華)

 

 봄이 오면 산천에 초목이 움이 트고 옹기종기 땅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모습이 길상이고 꽃피고 향기 진동하는 모습이 길상으로 생명마다 결실로 열매가 산천에 지천이니, 생명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는 모습이 아름답고 참으로 길상이다. 청정하면 더욱더 길상인 것은 공기가 청정하면 전염병이 없고 모든 열매가 충실하고 풍년이 들고, 물이 또한 그러하므로 사람의 마음이 청정하면 대상의 경계에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싫어함이 없는 것이니 참으로 길상인 것이다.

 

 

519, 무량수(無量壽)

 

 무량은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아미타불을 무량수 무량광(無量壽 無量光)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부처님을  말한다. 무량은 다함이 없는 것으로 부처님의 원력이 다 함이 없고, 중생의 원력이 다 함이 없고, 시간의 미래가 다함이 없고, 생명이 다 함이 없는 것이다. 석가부처님은 중생이 다 정각을 성취하길 원력이시고, 아미타불은 극락 정토에 다 태어나기을 원력이시고, 지장보살님은 중생이 다 고통을 여이기를 원력이시고, 관음보살님은 생명의 소리에 싫어함이 없이 순응하시는 것이 원력이시다. 생명은 모두가 생명력이 있고 자비심이 본래 원만 구족하여지만 몸에 집착하여 살기 때문에 장애가 일어나는 것이다. 집착심만 타파하면 본성 자리가 나타나는 것이 무량심인 것이다.

 

 

520, 법음성(梵音性)

 

 하늘의 음성은 성인의 마음이고 중생의 본성인 것이다. 하늘의 음성을 들을려고 하지말고 자신의 본성를 관찰하고 항상 호흡하는 것처럼 놓치지를 말라. 마음을 호흡 끝에서 관하기를 놓아버리면 자신의 마음을 놓아버림으로 죽은 사람이라 항상 남의 시비만 하는 것이니, 고통이라 할 것이다. 자신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라 생명력이 없는 것이다.

 

 

521, 화안심(和安心)

 

 미소 얼굴은 석가불과 가섭의 염화 미소(拈花微笑)을 생각한다. 편안한 마음은 누구든지 바라는 마음이지만 바라는 마음이 욕망으로 바라는 것이니, 마음과 육신의 행위가 같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음과 육신이 행위가 같으므로 가장 편안한 것이고 너와 나의 마음이 같으므로 하나가 되는 것이라 우리라 한다.

 

 

522, 등명화(燈明華)

 

 연등 공양은 부처님께 가난한 여인이 등불 공양을 하여 미래세에 부처님이 된다는 수기를 받은 것으로 공양을 정성으로 하므로 국왕 대신의 등 공양보다도 먼저 수기를 받은 것은 전생에 수행을 많이 하였으므로 현재에 수기를 받은 것이라 하셨다.

 

 

523, 해운심(海雲心)

 

 해운은 길상이라 하여 새로운 것으로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작은 즐거움이 큰 괴로움보다도 좋은 것이다. 욕망의 큰 즐거움보다도 작은 마음의 즐거움이 행복한 것이다. 길상은 상서러운 일은 다 함이 없는 마음으로 원력이 다함이 없고 미래가 다함이 없고 시간과 공간이 다 함이 없는 것이다. 길상은 다함이 없는 마음의 무의식 세계를 발굴하는 것이다.

 

 

524, 덕명심(德明心)

 

 밝고 맑은 청정심을 말하므로 깨침의 마음으로 본래 원만심을 말하는 것이다. 야생화가 스스로 자라서 꽃피고 열매 맺어서 번식하는 것이지만 자연의 혜택을 받고 자라는 것이므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은 자연의 혜택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므로 자연을 깨달아야 은혜와 감사하는 마음을 찾는 것이므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감사와 은혜로 일을 하는 마음의 길이 나타나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지만 평상시에는 불편하고 불만 원망으로 살아가는 것이니 괴롭다고 한다. 

 

 

525, 금강대(金剛臺)

 

 금강대는 부처님의 연화대 라 할 것이고 밝음과 맑음은 본래 원만심으로 잊어버리거나 오염을 시키는 것이라 중생은 욕망에서 본래심을 잊어버리거나 오염을 시키는 것이다. 운석인 혜성이 별똥으로 지구에 떨어지면서 공기의 마찰로 마멸되고 남은 운석을 주어 절단하면 쇠덩이로 된 것을 보면서 바로 저것이 금강(金剛)이로구나 생각을 하기도 한다. 부처님 경전 중에 반야경을 금강이라 한다.

 

 

526, 법륜월(法輪月)

 

 부처님 법을 전하는 것을 법륜이라 하고 달월(月)자를 불명(佛名)에 사용하는 것은 밤에는 달이 빛을 발하고 생명의 힘을 주는 것이니, 달․해․마음이 생명세계에 주인공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람 마음의 가치관을 지혜라 하여 어둠의 욕망을 해결하는 지혜라 하여 번뇌를 해결하는 것이다.

 

 

527, 염화심(拈花心)

 

 부처님과 가섭존자의 마음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이 마음에서 저 마음으로 전하는 정법의 바름 마음을 인가한 것이니, 염화심은 이심전심을 말하지만 불명(佛名)으로 염화심은 불명일 뿐이고 염화심의 마음 자세로 남을 인정하는 마음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마음의 길인 것이다.

 

 

528, 보리수(菩提樹)

 

 보리수 나무을 정각수(正覺樹)라 하기도 한다. 불타께서 이 나무 아래에서 정각을 성취하신 것으로 정각수라 하고 보리수 나무라 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보리수 열매를 연마하여 염주를 만들어서 염불 할적에 손에 들고 염불의 회수를 세고 절을 하면서 절의 회수를 세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보리수는 정각수이지만 염불수(念佛樹)라 할 수 있다.

 

 

529, 길상자(吉祥子)

 

 불타께서 고행하실 적에 부드러운 풀을 주는 아이를 길상동자라 하고 풀을 갈고 앉으시니 길상초(吉祥草)라 하셨다. 길상이란 말은 구체적으로 부처님의 가슴에 상서러운 표시를 길상이라 하여 만(卍) 형상의 표시를 길상이라 하고 절을 표시하고 부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늘과 인간에 스승이신 분으로 길상이라 하지만, 요즈음은 사회 철학관 표시를 대나무 깃발에 만(卍)자 표시를 하여 길상이라 하고 승리를 뜻하지만 뜻하고는 다른 뜻으로 전달되고 있어나 헌법적으로 저지하지 못하여 타 종교에서는 불교라 하여 이미지가 다르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 안타 갑다.

 

 

530, 수미주(須彌主)

 

 수미산주는 도리천주로 인간의 수복을 권장하시는 천주이시므로 불법을 항상 옹호하시는 선신으로 중생을 불법의 대해로 이끌어 준다. 하늘의 수복이 수승하지만 도를 깨친 수복에 비교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수미주의 수복은 다 함이 있어도 도(道)의 수복은 다 함이 없는 것으로 항상 마음의 본성을 찾게 하고 잊어버린 본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531, 일법심(一法心)

 

 바른 법으로 깨침을 말한다. 마음 가운데에 문자도 형상도 없는 본래 법이 있는데 시간과 공간에 장애 함이 없어 순수하고 청정하여 누가 보고 듣고 한 것이 아니라 항상 홀로 광명을 발하여 삼라만상을 장양하고도 다 함이 없는 법이 두두물물이 이 마음을 원만 구족한 것이다. 한 법이란 한 개의 법이 아니고 청정으로 하나를 말하므로 개개 스스로가 본래 원만을 찾으면 하나가 되는 것이다.

 

 

532, 여산심(如山心)

 

 산 같은 마음은 부동심으로 본래심의 청정심을 말하고 항상심으로 듯듯한 마음으로 다 함이 없는 마음이고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이고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불보살님의 마음이고 우리의 본래심이다.

 

 

533, 무생심(無生心)

 

 생(生)이 없는 마음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으로 생사심으로 허덕이지는 않는 것이다. 목숨이 다한 사람이 안 죽을려고 발부둥하면 할수록 역 경계가 나타나는 것으로 헛소리를 하고 환상이 나타나고 사자가 보이고 고함을 치고 고통이 말 할 수가 없는 것이라, 10명중 9명은 이러한 지경으로 이 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나(相)라는 모양과 이름에 집착한 마음으로 욕망으로 몸에 집착심이 문제인 것이라, 집착심만 버리면 죽는 것은 여름에 무성한 나무 잎이 가을 단풍으로 변하여 털어지는 것이 생사심인 것을 알면 죽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인연 법으로 온 곳으로 돌아가는 이치인 것을 알면 편안한 마음으로 옷을 갈아 있는 것이라 깨끗한 마음이라 듯듯한 마음이고 본심이라 할 것이다.

 

 

534, 무념심(無念心)

 

 

 생각이 없다는 말은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는 것이다. 마음을 일으켜서 시비한다면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것이지만 말을 하는 것은 습관이라 하고 행위인 것이지만, 스스로가 참지를 못하고 마음을 일으키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니, 참은 수행을 연마하여야 하는 것이다.

 

 

535, 염불심(念佛心)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염불심이라 하고 염불은 마음으로 부처님의 형상을 관하는 것도 염불이고 선(禪)이라, 염불선(念佛禪)이라 할 것이다. 염불은 불보살님의 명호를 소리내어 칭송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하여 마음으로 관하는 마음이 초심에는 없는 것이 사실이라, 형상과 이름에 집착하여 도리어 욕망심으로 바라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라, 마음의 가치관을 등지고 마음을 마음 밖에서 찾는 격이라 할 것이다. 염불은 부처님의 명호를 소리로 염불하면서 대상의 경계를 자신의 마음으로 관하므로 하나로 통하는 것이니, 부처님 마음이라 할 것이고 자신의 본심이라 할 것이다. 바로 눈으로 경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봄으로 아는 것이라 경계와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536, 여해심(如海心)

 

 넓고 큰 자비심으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바다 같은 마음으로 오염의 자연을 싫어함이 없이 받아줌으로 청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본성인 자비심은 모든 생명에 있는 마음이지만 있는 줄도 모르는 마음도 있고, 있는 것을 알면서 욕망으로 사려는 사람도 있고, 자비심을 실천하려고 정진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청정 본심은 꽃 나무에 물주는 마음도 자비심이고,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마음도 자비심이고, 물을 청정하게 하는 마음도 자비심이고, 청소하는 마음도 자비심이고, 염불하는 마음도 자비심이고, 참선하는 마음도 자비심이지, 수행하는 마음은 뜻으로 보면 다양한 마음인 것이다.

 

 

537, 지성해(池成海)

 

 못이 바다가 되는 것은 물을 보고 말 한 것이다. 물은 냉온에 따라 모양과 이름이 달라지는 것으로 찬 기온이면 얼음이 되고 눈, 구름이 되지만, 더운 열을 만나면 공기 수증기가 되고, 물이 나무를 만나면 나무가 되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이 되고 짐승을 만나면 짐승이 되는 것처럼, 사람도 같은 것이다.

 

 

538, 무위심(無爲心)

 

 함이 없는 마음으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불보살님의 마음이고 우리의 청정본심으로 모양과 이름의 집착심이 아닌 고정인식을 타파한 자리라 할 것이고 빈 마음으로 삼라만상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리로 빈 그릇처럼 그릇에 마음대로 담을 수 있는 것으로 자유자재라 할 것이다.   

 

 

539, 관법심(觀法心)

 

 마음으로 산 계곡 물소리를 관하면 물소리가 마음에서 나는 소리가 들린다. 물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이다. 물소리를 관하면 물이 나무가 되고 사람이 되고 산천초목이 되고 구름도 되고 비도 되고 안개도 되고 이슬도 되고 두두물물이 물이 아니것이 없는 것이다. 
관법심은 물이 마음이고 마음이 물인 것으로 하나인 것이다.

 

 

540, 만공심(滿空心)

 

 만(滿)은 물질의 유(有)를 말하고, 공(空)은 정신의 무(無)을 말하는 것으로 만공은 유무의 물질과 정신을 말하므로 텅빈충만이라 할 것이다.

 

 

541, 일행자(一行子)

 

 염불 한 마디에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이 자신의 본성이란 것을 알아서 한 마디 염불이나 한 번 마음으로 관하면 깨달음의 씨앗이 되어서 인연 따라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니, 부처님의 종자를 심어서 깨달음의 열매를 성취하는 것이다. 한 번 발심이 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542, 정혜심(定慧心)

 

 마음이 고요하면 지혜가 나타나는 것은 하늘에 구름이 없으면 태양이 빛을 스스로 발하는 것이라 마음도 번뇌의 구름이 없으면 지혜가 스스로 나타나는 것이라 그릇 물이 흙물이 가득하면 물에 그림자가 나타나지를 못하고 그릇 물에 흙물이 가라않고 맑은 물이 되면 형상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이라 마음도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고요하고 맑으면 지혜의 가치관이 스스로 나타나는 것이다. 

 

 

543, 무유심(無有心)

 

 상이 없는 마음으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고 다 함이 없는 마음으로 물이 나무에 순응하면 물이라 하지 않고 나무라 하고, 물이 잡초에 순응하면 물이라 하지 않고 잡초라 하므로 물이 순응하므로 싫어하는 마음이 없는 것으로 상대의 근기에 따라서 이름과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물의 순응하는 마음이 불 보살님의 마음이고 모습과 이름은 근기에 따라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지만 지혜자는 이름과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물의 이치를 관하는 것이다.

 

 

544, 무명심(無名心)

 

 형상과 이름이 없다는 것은 집착심이 없다는 말이다. 물, 공기, 흙의 에너지는 생명력으로 나타나서 모든 생명에 힘으로 순응 할 뿐이고 자랑이나 상이 없는 것으로 무명심이라 할 것이다.

 

 

545, 시명심(是名心)

 

 이름하여 마음이라 한 것이지 마음이라 이름 할 수 없는 것은 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 것이 마음이란 것이다. 마음이 보고 아는 것이지 모양과 이름을 보고 듣고 아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진리라는 말과 글은 표현한 것이지 글에 집착을 하면 어릴 아이는 모르는 것이고 목마르고 배고프면 우는 것이라 우는 소리에 엄마는 젖을 먹이는 것이니, 우는 소리가 배고프다는 소리인 것이다.

 

 

546, 무행자(無行子)

 

 행위를 일으키지 마라. 불법(佛法)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
  이것이 불법인 것이다. 무행자는 바른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547, 파경자(破鏡子)

 

 깨진 거울은 모양의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마음을 타파하면 마음에 그림자인 번뇌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거울을 깨끗이 하라 하니 본래는 거울이 없는 것이라 하여 본래 마음은 거울이 아니란 것이다. 본래 한 물건도 없지만 청황적백으로 나타나는 것이 마음이라 하여 미묘한 법이라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한다. 청정수는 모양과 이름이 없으므로 생명력으로 삼라만상에 순응 할 뿐이다.

 

 

548, 무성자(無聲子)

 

 소리 없는 자의 소리 없는 말은 소리로 소리 없는 자라 인식을 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란 것이다.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문수동자가 말 없는 말을 하고 남순 동자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듣는 구나, 나는 성지곡 백양산을 3시간씩 등산을 하면 계곡의 힘찬 물소리를 듣고 아! 저수지도 없는데 주야 장천으로 깊은 산 속에서 많은 물이 지속적으로 흐르는 것은 나무숲의 소리 없는 생명력인 것이다. 물이 산 기운이고 나무 기운으로 나무는 가뭄으로 물이 없으면 물을 주고 비가 많이 왔어 홍수가 지면 나무는 물을 흡수하여 홍수를 방지하는 것이다. 나무가 저수지 역할을 하는 것이니 말 없는 말을 하는 것이다.

 

 

549, 응공자(應供子)

 

 부처님도 응공이라 하고, 아라한도 응공이라 하고, 스님도 응공이라 하는 것이니, 바름을 실천하시는 분으로 중생에 고통을 싫어함이 없이 수순하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똥오줌을 싫어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으로 응공자인 것이고, 자식이 조상에게 응공자인 것은 부모 자식의 관계는 천하에 하나뿐이고 가장 소중한 인연으로 자신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550, 응관자(應觀子)

 

 응관 법계성(應觀 法界性)묵묵히 법계성을 마음으로 보라는 것은 법의 성품을 말하는 것으로, 호흡을 하면서 콧구멍을 손으로 막으면 질식을 하는 것은 공기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라, 3․4분 정도라도 질식을 하면 죽음이란 지경이 나타나지만 평상시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공기를 오염시키면서 욕심으로 잘 살기를 바라고 자연을 파괴시키는 것은 자연의 재앙을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마음으로 관찰하면 자연의 재앙이 일어나는 인연처를 아는 것이다.

 

 

551, 정행심(正行心)

 

 바른 행위란 바른 일, 바른 말, 바른뜻을 실천하므로 부처님의 전법이고 자신의 본래 면목인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인 선(禪)을 수행하고 부처님의 말씀인 교(敎)을 수행하는 것이 불제자인 것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바른 가치관을 일깨어 주는 것이다.

 

 

552, 근행심(勤行心)

 

 용맹심으로 바른 일에 목숨을 걸 수 있는 자라야 대장부라 할 것이다. 생사 일에 여연하지 않고 바른 행위를 실천하므로 어물거리는 시비 선악을 결단하여 가치관이 분명하지 못한 생명을 구제하는 것이다. 용맹심은 지혜인의 실천행인 것이다.

 

 

553, 수정심(修定心)

 

 선정을 닦는 마음을 수정심이라 할 것이다. 축구 선수가 공을 차는 것은 골인이 목적이지만 반대 선수는 골인을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고 반대로 골인하는 것이지만 골인하기 위하여 무수한 단련을 연마하는 것이 수행이고 용맹정진인 것이다.

 

 

554, 각해성(覺海性)

 

 깨달음의 바다 성품은 자신들의 마음속으로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모양과 이름이 있는 것은 상(相)이라 집착심이 일어나는 것이라, 무상심(無相心)으로 모양에 집착심이 없는 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555, 일허심(一虛心)

 

 괌섬에서 발생한 태풍 14호 매미는 03년 9월 11일 추석 다음날에 우리나라 부산 경남 바다변을 해일로 초토화시켜서 천지 개벽을 일으켜 나라에서는 특별 수해 지역으로 선포하고 복구에 힘을 쓰고 있다. 마음을 비우는 수행은 참으로 노력과 시간이 요구된다.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마음을 한 번 비우고 관세음보살 한 번하면 욕망의 마음이 비워지고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심이 일깨어지는 것이라, 자신의 본심을 일깨우는 작업이 수행심이라, 관세음보살님을 한 번 친견하는 것이다. 

 

 

556, 고불심(古佛心)

 

 옛 부처님도 모르는 것을 가섭이 알 수 없는 것이지, 부처님이라 이름한 것이니 진리가 아닌 것이지만 말 없는 말을 하여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란 글자로 부처님이라 하지만 글자로 보면 부처님을 알 수도 없고 부처님이 아닌 것이니, 자기 모순이라 문자의 맹점인 집착이라 문자을 떠난 문자 속에 뜻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고불심은 시작도 끝도 없는 마음이다.

 

 

557, 선심자(禪心子)

 

 선심(禪心)은 부처님 마음이고 중생의 본래 마음이고 생명들의 생명력이라, 생명력은 공기, 물, 흙의 자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자연은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지 않고 사물에 순응하므로 이름과 모양이 나타나는 것으로 중생은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여 실상을 알려고 하고 성인은 모양과 이름속에 생명력으로 실상을 여기는 것이다.

 

 

558, 전심자(傳心子)

 

 너나 마음이 상통하는 마음을 전심(傳心)이라 하고 모두가 하나되는 마음으로 물이 생명에 순응하는 것이고, 공기가 생명에 순응하는 것이고, 흙이 생명에 순응하므로 생명력으로 변하여 각각 스스로가 원만 성취하는 것이다.

 

 

559, 보적심(寶積心)

 

 청정이 지혜이고 보배인 것은 마음 청정이면 마음의 번뇌를 다스릴 수 있어 고해의 생사문제를 해결 할 수 있고, 물, 흙, 공기가 청정하면 생명들은 잘 사는 정토가 되는 것이다. 보배는 물질이 아닌 청정을 말하는 것이다.

 

 

560, 춘초심(春草心)

 

 봄이 오면 산천 초목이 움이 트는 것은 천지의 기운인 것으로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천지에서 생기의 기운이 용솟음치는 것이라 봄은 생명의 계절인 것이다.  
 

 

561, 성상심(性相心)

 

 성(性)은 마음이고 상(相)은 몸으로 성상심은 마음과 몸의 하나를 말하는 것이다.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됨으로 원만 성취되는 것으로 스스로가 마음으로 물건을 하나 들면 움직이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 것으로 생명이 없는 물건이 생명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562, 용장심(龍藏心)

 

  용궁의 부처님 말씀을 용장이라 하면 진리 말씀이 바다 속으로 감추어진다는 것은 마음속에 진리를 말하는 가 것이다. 중생의 마음속에 용장은 여래장(如來藏)이라 하여 나타나지 않은 마음으로 본래 있는 마음으로 중생이 마음 밖에서 마음을 찾고 보배를 진리을 등지고 물질의 욕망으로 보배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다.

 

 

563, 서래심(西來心)

 

 서천축의 뜻은 서쪽의 바람 기운으로 부처님의 지혜의 기운이 동쪽으로 오는 것은 생명력이 태양을 중심하여 지구 동쪽으로 기운이 용솟음치는 것이 새벽의 기운이 생명력으로 생명을 자라게 하고 오후의 햇빛은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것이라, 같은 빛이지만 새벽의 빛은 생명에 힘으로 자라게 하고 저녁의 빛은 피로를 편안을 주는 것이다.

 

 

564, 대오성(大悟性): 크게 깨달음은 성품을 아는 것이다. 부모님께 효도(孝道)하라 하면 잘 모르지만 호흡하는 콧구멍을 잡고 있으면 눈에 충혈이 나타나고 당장 호흡을 못하여 죽을 지경인 것이다. 이것은 공기의 고마움을 아는 것으로 은혜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행위인 것이다. 자연에 은혜 할 줄 알면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것은 쉬운 일이고 이것이 효도 인 것이다. 공부를 가르치면 스스로가 마음이 밝고 맑고 스스로가 아는 것으로 깨달음으로 시비를 스스로가 판단 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 지혜인 것이다.

 

 

65, 고인심(古人心)

 

역사는 항상 시간이 흐르면 시비가 판단되는 것으로 가치관을 말한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일시적인 기록으로 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역적이란 기록은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것이다. 역사의 기록은 이긴자의 기록으로 내려오고 있지만 사라진 역사를 찾아보면 멸망한 역사 속에 바른 가치관을 많이 발굴되는 것은 스스로가 수행을 하고 마음속에 자신을 개발하고 있는 정신이 고인심으로 나타나는 현실이다.

 

 

566, 심상심(尋常心)

 

 평상심을 찾는 마음은 코끝에 호흡을 관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마음으로 살면 본심을 잊어버리는 마음은 없는 것으로 생명에 물 같은 마음으로 생명력으로 사는 것이다. 생명에 빛․물․흙의 기운으로 살면 항상 평상심으로 생명력인 것이다. 평상심이 없으면 생명은 죽은 것으로 자비심이 없는 생명인 것이다.

 

 

567, 정음자(淨音子)

 

 청정의 소리는 생명의 소리이고, 관음의 소리이고, 정토의 소리이고, 서로 서로의 생명 관계의 인연 법인 것이다. 농사을 짖는 자가 있으므로 밥을 먹는 것으로 농부에 은혜와 감사로 사는 것이고, 옷을 입으므로 옷 만드는 사람에 감사와 은혜로 사는 것이므로 서로 서로의 관계 고리인 것으로 모두가 부모님 같고 스승님 같고 자신보다도 존중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남을 없이 여기고 억압하고 시기 질투하는 것은 잘못 된 고정인식으로 타파시켜야 할 문제이다.

 

 

568, 대장심(大藏心)

 

 대장경은 부처님 말씀으로 팔만사천 마음의 길이라 하여 팔만사천 대장경이라 한다. 중생의 번뇌가 팔만사천이란 것이니, 헤아릴 수 없는 뜻으로 말한 것이지 팔만사천 뿐이겠는가? 대장경은 문답식으로 중생이 질문하면 부처님께서 해답하신 것으로 부처님 계실 적에 보고, 들은 것을 후래에 기록한 것으로 마음에 길이라 하여 경(經)이라 한다.

 

 

569, 홍원심(弘願心)

 

 큰 원력으로 지장 보살님처럼 지옥을 다 구하고 성불하신다는 원력이시고, 관세음 보살님은 자비심으로 중생의 본심인 자비심을 다 일깨워주신다는 것이고, 문수 보살님은 중생을 다 지혜를 성취시켜주신다는 것이고, 보현 보살님은 중생의 복덕을 다 성취시켜 주신다는 것이니, 보살님은 다 함이 없는 마음으로 홍원심이다.

 

 

570, 불기심(不起心)

 

 불법(佛法)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 하셨다. 마음의 본성은 지혜와 복덕이 충만하여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지만, 우리가 경계의 대상에 집착하여 탐․진․치의 마음을 일으킴으로 이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는 것이다. 본심은 고요함으로 만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571, 불위심(不爲心)

 

 함이 없는 마음으로 모양과 이름에 집착심이 없는 마음으로 무아심(無我心)은 상(相)이 없는 마음으로 인연법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 저것의 인연 고리가 마음으로 삼라만상이 연결되는 것이지만 마음인 줄 모르는 것은 나(我)라는 모양과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572, 일편심(一片心)

 

한 조각의 마음이 일어나면 삼라만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늘에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고,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면 한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라, 내 마음에 한 생각이 일어나면 산 것이고, 한 생각이 사라지면 죽는 것이다.

 

 

573, 은공심(恩供心)

 

 은혜하고 감사하는 마음은 자연의 공기․물․ 흙의 기운을 체험하는 것이 살아가는 것으로 살면서 자연의 은혜을 통감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인 것으로 실천 행에는 부처님께 6법(法)공양을 볼 수가 있는데 자연에서 생긴 열매를 가꾸고 추수하여 자연의 은혜와 사람의 정성으로 이루어진 곡물을 부처님 전에 공양함으로 우리의 노력 정진심이 마음으로 승화되면서 자연과 마음의 정성이 부처님 마음으로 상통하는 것으로 하나되는 것이다.

 

 

574, 일적수(一滴水)

 

 한 방울의 물이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미묘한 법으로 부처님의 아들, 딸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의 각해(覺海)에 무애 자재하는 것은 무아(無我)의 인연 법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상(相)이 없는 마음은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너나가 하나되는 것으로 우리(不二)의 마음을 말한다.
  한 방울의 물이 법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575, 대견심(大堅心)

 

 금강 불괴신은 영원한 마음으로 청정법신의 자연을 말한다. 부처님을 청정법신이라 하고 스님을 열반이라 하여 청정법신으로 사리를 친견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리는 부모님의 몸도 아니고 스스로가 수행하여 정신으로 생긴 살아 생전에 뼈 속에 영시려운 뼈가 생긴 것으로 광명으로 방광도 하는 불가사의한 법신으로 생사를 초월한 힘을 가진 것이다. 사리는 청정법신으로 금강 불괴신으로 영원한 몸인 것이니, 중생의 귀의처가 되고 복전이라 한다.

 

 

576, 보은심(報恩心)

 

 살아간다는 것이 은혜 속에 살면서 욕망으로 마음이 병이 생긴 것으로 원망 만하고 은혜 하는 마음 자세를 망각하고 사는 것이 중생이라 항상 못 살겠다고 불편 하는 것이니, 어리석음이라 한다. 병이 들면 병이 없고 건강한 몸을 생각하면서 비교 할 수 없는 은혜 속에 행복이란 것을 느끼는 것이다.

 

 

577, 일념자(一念子)

 

 한 생각이 부처도 되고 지옥도 가고 극락도 가고 하는 것으로 부처와 마군은 한 생각에서 생기는 것이다. 한 생각이 일어나면 지옥이고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극락인 것이다. 중생은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욕망이라 고통의 원인이란 것을 모르고 잘 살기를 바라고 잊어버린 본래 마음을 찾을려고 하지를 않는다. 본래 모습을 찾으면 자연스럽고 너와 내가 싫어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578, 정안심(正眼心)

 

 부처님의 불안(佛眼)이 있고, 법안(法眼)이 있고, 천안(天眼)이 있고, 심안(心眼)이 있고, 정안(正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안이 있으면 심안도 통하고, 법안도 통하고, 천안도 통하고, 나아가서 본래모습인 불안도 통하는 것이다.

 

 

579, 정로심(正路心)

 

 정로문(正路門)은 마음의 문으로 출입하는 문이 없는 것이고 형상이나 이름도 없는 것으로 무애자재한 것으로 누구나 출입 할 수 있는 것으로 분별심이 없고 시비 선악심이 아닌 것이다.

 

 

580, 자경심(自警心)

 

 스스로가 경책하고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천방지축이라 방향 감각이 없는 것으로 어린 아이가 물 속으로 기어가는 격이라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퇴계 선생은 어린 아이가 물 속으로 가면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선(善)이라 하셨다.

 

 

581, 삼학심(三學心)

 

 부처님의 마음과 말씀을 계․정․혜, 삼학(戒․定․慧, 三學)이라 하고 신․구․의, 삼업(身․口․意, 三業)을 나는 삼정(三淨)이라 하여 바른 일, 바른 말, 바른 뜻을 실천하면 부처님 마음이고 말씀이고 우리의 본성 자리로 실천 한 것 만큼 성인의 가피력을 입는 것이라 한다.

 

 

582, 영산자(靈山子)

 

 영산회상은 부처님의 설법하신 곳으로 하늘 천신들이 춤을 추고 법계 중생들이 한 자리에서 설법을 들은 광경을 춤으로 추는 승무가 현재에 있어 영산재라 하여 사찰의 개산재를 하는 곳이 많은 것이다. 사찰은 부처님의 마음과 말씀을 배우고 익혀서 부처님 나라를 만드는 것으로 사찰은 천상 세계를 지상에 건설한 것이고, 극락 세계를 지상에 건설한 것이라, 사성 육범(四聖六凡)의 시방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583, 덕명심(德明心)

 

 

 복덕과 지혜가 원만 구족한 자리라 본심의 불성(佛性)을 말하므로 청정심을 말하는 것으로 청정은 만덕상으로 생명에 물이고 빛이고 공기이고 흙인 생명에 힘으로 생명력인 자비심을 말하는 것이라 부모님의 모성애이고 부처님의 마음이고 중생의 본심인 것이므로 항상 청정한 덕명심으로 수행하므로 수행하라는 것이다.  

 

 

584, 보광월(普光月)

 

 어둠에 달빛이 온누리에 빛나므로 마음에 번뇌가 사라지고 본심이 청정하여 항상 광명을 발하므로 마음의 공덕장은 헤아릴 수 없으므로 무진장이라 진리의 공덕은 마침 씨앗이 거듭 나면 많은 열매을 맺고 열매가 씨앗으로 거듭하므로 말로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보광월인 마음의 빛이다.

 

 

585, 선지심(禪智心)

 

 선정에 들면 지혜는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것이므로 마침 그릇에 물이 고요하면 그림자 형체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으로, 마음이 고요하면 지혜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므로 마음에 지혜를 바라지말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 생각을 사색 할 수 있는 것으로 소리와 모양에 집착하여 마음을 일으키면 번뇌라 하고 마음으로 집착심을 놓아버리고 관찰하면 인연 법이 나타나는 것이다.

 

 

586, 대명심(大明心)

 

 대명심은 깨달음이라 마음이 청정하면 항상 태양 자체의 광명처럼 어둠이 없는 것이지만 중생이 몸에 집착하여 자신이라 함으로 모양과 이름이 나타나므로 고통의 시비 선악의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라 집착심만 놓아 버리면 바로 지혜라 할 것이다.

 

 

587, 정명심(淨明心)

 

 청정하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밝음이라 청소를 깨끗하게 하면 병도 예방되고 악취도 없고 파리 모기 벌레가 생기지를 않는 것이라 파리 모기를 죽이는 업을 짖지 않아도 청소를 청정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파리 모기가 생기지를 않는 것이다. 정명심은 마음을 청정하게 하면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588, 무초심(無初心), 589, 무종심(無終心)

 

 무시 무종이라 시작과 끝이 없는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이라 마음은 이름 할 수 없고 모양으로 나타날 수 없는 것이라 할 것이고, 마음이라 한 것은 할 수 없이 이름하여 마음이라 한 것이지 집착심이 아닌 것으로 마음은 모양과 이름에 따라 순응하므로 자재한 것이다. 무시 무종은 함이 없는 마음을 말한다.

 

 

590, 무행심(無行心)

 

 함이 없는 무위심으로 도인의 마음으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집착심이 아닌 것으로 모양과 이름의 고정인식에 서 벗어남으로, 우리 마음이 경계에 따라 순응하는 것으로 살아가지만, 욕망으로 재물에 집착하고 사람에 집착하므로 고통이 일어나 괴로워하는 것이다. 무행심은 모든 것을 방하착하라는 것이므로 자재하는 것이다.

 

 

591, 불광심(佛光心)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온 누리에 생명력의 자비심으로 나타나므로, 물이 부처이고, 공기가 부처이고, 빛이 부처이고, 모든 것이 생명이고 부처인 것이다. 용광로 쇠물에도 생명이 있고 살아가는 것으로 뜨거운 기운이 생명인 것이고 돌맹이에도 생명이 잇는 것으로 냉온의 차이가 생명의 기운인 것이다. 부처님을 모양과 이름으로 찾으면 찾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이 금강경 말씀으로 이름하여 부처님이라 한 것이지, 부처님 이름이 있다 하면 집착심이 일어나는 것이라 부처님 이름을 방하착하므로 두두물물이 부처라 하는 것이다.

 

 

592, 법초(法草)

 

 봄이 오면 세상 천지가 푸른 것은 한 잎의 소식이다. 단풍 한 잎을 보고 가을을 알고 낙엽 한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겨울을 안다. 손가락 끝에 짠물으로 바닷물을 알고 법의 소식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성냥불이 온 천지를 태우는 것처럼 마음에 소식은 조그마한 틈에서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 마침 저수지 댐이 개미굴에서 무너지는 것이다. 법초는 바다변 조그마한 잡초라 바다도 육지도 되는 자재한 힘이 있는 것이다.

 

 

593, 화엄(華嚴)

 

 부처님의 불가사의 한 도리를 화엄이라 하고 화엄은 언어 문자 이전으로 모양과 이름을 초월하는 것이라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는 것이라 이름하여 마음이라 하고 화엄이라 한 것이므로 만상에 집착이 없으므로 삼라만상을 화엄이라 하고 장엄의 아름다움은 극락 세계 화엄 장엄이 가장 수승한 것이라 할 것이지만 마음의 화장세계 장엄은 미래가 다하도록 헤아릴 수 없고 원력이 다함이 없는 중중 무진한 법계의 미묘 법인 것이다.

 

 

594, 법궁장(法宮藏)

 

 부처님 집으로 진리의 전당이 법당이라 할 것이고, 진리의 보배가 자신의 마음 속에 감추어진 여래장(如來藏)이라 할 것이다. 마음 속에 복덕과 지혜가 본래 원만 구족한 자리라 티끌만큼도 부족함이 없는 본성을 가진 자들이다.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인이 일어나는 것으로 항상 성품 길인 부처님 마음으로 살아가면 법궁장이라 할 것이다.

 

 

595, 법수해(法水海)

 

 진리의 바다는 부처님의 세상이고 마음이고 말씀이므로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므로 바른 뜻을 생각하고, 바른 말을 하고, 바른 행동을 실천하므로 원만 성취되는 것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이라, 한 톨의 씨앗도 나누고 심으면 많은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라, 많은 세계가 한 티끌로 인하여 형성되는 것이니, 한 마음의 법이 지옥도 가고, 극락도 가고, 부처님도 되고, 중생도 되고, 삼라만상이 형성되는 것이므로 마음이 청정하면 법에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596, 무진심(無盡心)

 

 다함이 없는 원력이 불 보살님의 원력으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라 생명력으로 순응함으로 물이 생명에 순응함과 같고, 빛이 생명에 순응함과 같고, 흙이 생명에 순응함으로 자유자재한 것이라 무진심은 다함이 없는 마음으로 청정심을 말하는 것이므로 생명력으로 중생에 순응함으로 자유자재함이라 한다.

 

 

597, 금연대(金蓮臺)

 

 부처님의 연화대를 말한다. 금빛 찬란한 연꽃은 청정한 마음으로  정토를 말하므로 마음이 청정하면 자연도 청정한 것이다. 저승과 이승이 둘이 아니고 몸으로 보면 둘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하나인 것으로 청정한 마음은 부처님이나 자신의 본성은 동일한 것이라, 빛나고 찬란한 광명의 지혜를 실천하라는 말이다.

 

 

598, 정행심(正行心)

 

 바른 행위는 스스로의 마음, 말, 행동으로 자신의 본심에서 보고 듣고 실천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 밖에서 보고 듣고 실천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 밖에서 보고 듣고 인식하므로 집착이라 번뇌하는 것이다.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므로 마음을 모양과 이름에서 일으키는 것으로 자신의 본성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라, 바름을 모르면 부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따르면 되는 것이다.

 

 

599, 안양심(安養心)

 

 국락세계를 안양국(安養國)이라 한다. 극락세계의 주인공은 아미타불로 전생에 법장스님으로 48대원(大願)의 원력으로 성취된 세계로 바른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10번만 불려도 왕생극락(往生極樂)한다는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부처님 제자라면 모두가 찾는 세계이다. 아미타불은 무량광 무량수(無量光 無量壽)라 하여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이 바름을 실천하면 시간과 공간에 관계가 없는 것을 말한다.

 

 

600, 평상심(平常心)

 

 조주스님은 평상심이 도라 하셨다. 우리의 마음은 바른 뜻을 실천하고, 입으로 바른 말을 하고, 몸으로 바른 일을 하는 것이 평상심이고 진리이고 진리 속에 항상 살아가는 것이지만, 진리를 알지 못하고 본심을 등지고 눈으로 모양에 집착하고, 귀로 소리로 몸에 집착하여 마음을 일으킴으로 항상 고뇌하는 것이다. 집착만 놓아버리면 고뇌가 바로 진리인 것이다.

 

 

601, 무진행(無盡行)

 

 성인의 마음이고 중생의 원력인 것이다. 중생의 원력은 다함이 없는 것으로 희망이고 밝음이고 맑음이고 고름이고 진리의 발심을 말한다. 발심(發心)의 시작은 다함이 없는 공덕의 문이라 할 것이다. 이 문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 숫자로 는 말할 수 없다.

 

 

602, 무착(無着)

 

 육조스님은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基心)의 금강경 말씀에 마음이란 것을 아시었다. 마음을 집착이 없이 하라는 것이다. 눈과 귀로 이름에 집착하면 장애가 일러남이라, 주객이 일어나고, 시비가 일어나고, 선악이 일어나고, 생사가 일어나고, 팔만사천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다. 집착을 놓아 버려라.

 

603, 법광심(法光心)

 

 빛은 생명에 힘이라 하고, 공기, 물이 다 생명에 힘이고 자연의 도움으로 생명이 살아가는 것이지만 중생은 은혜를 모르고 욕심으로 반대로 도리어 오염시킴으로 자연이 파괴되고 생명이 떼죽음을 하는 것이다. 공기와 물을 오염시키는 것이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자도 있고, 생명을 사고 팔고 하는 것이 생활이고 살아가는 방법이라 하고 오염을 시키면서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 하지 않지만 엄연한 생명을 죽이는 것이고 종교에서도 짐승이나 자연을 선물로 생각하므로 생명의 죄 의식이 없는 종교도 있다. 자연인 물, 공기, 흙의 먹거리를 오염시키면 생명이 다 죽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604, 대안심(大安心)

 

 신라 원효스님을 발심시킨 스님이 대안스님이라 한다. 하루는 서라벌에 소문이 대안스님이 계(戒)를 파괴하여 아이를 낳아 마을을 다니면서 젖동냥을 한다는 것이다. 소문이 일파만파로 나자 원효 스님이 듣고는 대안스님을 친견하려 갔는데, 그 날도 바위 굴 안에서 아들아 하면서 젖을 먹이는 것이라, 스님  스님 원효가 왔습니다. 하니, 바위 굴 밖으로 나오시는 것이라 아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자 너구리 새끼들이라 내가 바위굴을 토굴로 정하여 공부를 하려고 하니 굴에는 너구리 새끼들이 있고 너구리 어미가 밖에서 변을 당한 것이라 오지를 않아서 내가 마을에 가서 젖동냥을 하여 먹이는 것이라, 사람도 먹을 것이 없는데 너구리 먹을 젖동냥을 하면 누가 줄 것인가 그래서 내 아들이라 하면서 젖을 구걸하여 기려는 것이지 하시므로 원효 스님은 그 때에 자비심을 발심 한 것이라 한다. 원효 스님에게 대승심을 발심하게 한 보살이라 할 것이고 스승님이신 것이다.

 

 

605, 대광심(大光心)

 

 부처님의 마음이고 지혜를 말한다. 모든 것을 만족하게 갖춘 것을 화엄(華嚴)이라 한다. 화엄이 대광이라, 부처님의 마음이고 중생심의 본성인 것이다. 광명은 중생의 생명력인 것이다. 생명력은 자비심이고 지혜라 할 것이다. 자비심은 생명력이라, 물, 공기, 빛을 말한다. 이 자비심은 거래와 이유가 없는 것이라 무연 자비심(無緣 慈悲心)인 것이다. 아무런 이유와 조건이 없는 대 자비심인 것이다.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자가 와도 아무런 생각이 없이 생명을 주는 것이다. 또 아무리 생명이 사용하여도 다함이 없는 것이라 싫어함이 없는 것이다.

 

 

606, 화엄궁(華嚴宮)

 

 화엄궁은 부처님의 마음을 말한 것이고 중생의 본성을 말한 것이다. 해인사에 가면 팔만사천 장경각이 있다. 이것을 화엄궁이라 할 것이다. 화엄궁은 여래장인 것이다. 중생심 가운데 원래 원만 구족한 보배 창고인 것을 중생이 오욕의 즐거움에 집착하여 지혜와 복덕을 갖춘 보배를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것을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인도하시는 선각자이므로 중생의 인도자이고 빛이고 물이고 공기이고 바름이고 맑음이고 밝음이라 할 것이다.

 

 

607, 덕운심(德雲心)

 

 상서러운 기운을 말한다. 하늘에 서기 방광하는 가피력을 상서러운 기운이라 할 것이다. 봄이 오면 산천에 새싹이 돕는 것을 본다. 중생은 천지 기운이 용솟음치는 상서러운 봅의 소식은 듣지 못하고 남의 시비만 하는 구나? 천지에서 꿈틀거리는 흙 속의 속삭이는 생명의 소리를 들으면 눈으로 모양에 집착하지 않고, 귀로 소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608, 초실심(初實心)

 

 생명에서 처음 열매를 말한다. 충남 천안 광덕사(廣德寺)는 우리나라 호도 시배지라 천연 기념물 398호로 국가에서 지정하여 지역 정신 문화를 새롭게 한 것이 산 승이다. 고구마, 감자. 시배지도 있고, 거창의 목화 시배지는 국가에서 관광지로 개발하였다. 불교에서 첫 열매라 하면 발 보리심인 발심(發心)이 첫 열매라 할 것이다. 깨달음의 열매는 보리수(菩提樹) 나무라 하여 염주(念珠)로 만들어 수행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염주는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의 구슬로 원력심으로 승화시키면 원력이 성취되는 것이다.

 

 

609, 만행자(萬行子)

 

 만행을 하면 삼라만상이 다 스승님으로 보인다. 분별심이 사라지는 것이므로 아상(我相)이란 마음이 사라지고, 인상(인상)이란 마음이 사라지므로, 집착심을 버리는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아상이 있으면 만행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물이 아상이 있으면 생명에 순응 할 수 없는 것이라, 생명에 힘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물은 아상이 없는 것이다. 오직 생명에 순응 할 뿐이다. 만행자는 물처럼, 공기처럼, 흙처럼, 사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의 마음 역시 이러한 것이므로 대자대비라 조건이 없는 것이라 상대가 없는 것이다.

 

 

610, 자성화(自性華)

 

 우리의 마음은 본래 지혜와 복덕이 부처님과 똑 같다는 것이므로 자성이라 한다. 우리가 잊어버린 것이다. 중생들은 즐거워하는 것이 전도된 마음이라, 몸이란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자신이라 하고 분별하므로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천차만별로 나열되면서 시비선악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분별심을 자성이라 하지 않고 분별심은 진리의 당처로 돌아가야 자성이라 한다.

 

 

611, 청정해(淸淨海)

 

 청정해는 마음을 말한다. 마음의 본성은 마침 거울과 같아서 앞에 나타나는 모양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거울 자체는 모양이 없는 것으로 거울 속은 빈 것이므로 모양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도 청정하다는 것은 맑고 맑아서 오염이 없으므로 모양과 이름이 없는 것이지만 인연에 따라서 나타나는 것이다.

 

 

612, 마하심(摩訶心)

 

 마하는 인도말로 크다는 말이다. 너와 나를 주객으로 말하면 분별하는 시비가 일어나지만, 너와 내가 우리라는 것은 대승심이라 할 것이다. 대승심(大乘心)은 자연스러운 것을 말한다. 큰마음은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물․공기․흙의 자연스러운 것이고, 물이 생명력으로 생명에 싫어함이 없이 순응하는 것이고, 물이 나무에 순응하면 물이라 하지 않고 나무라 하고, 물이 잡초에 순응하면 물이라 하지 않고 잡초라 한다. 물이 생명력으로 생명에 순응하므로 자유자재한 것이므로, 물이 생명력이라 대승심이라 하고 마하심이라 할 것이다.

 

 

613, 반야(般若)

 

 슬기를 말한다. 지혜의 밝음․맑음․빛․아름다움을 말한다. 꽃이 반야가 있는가? 꽃이 향기 나고 열매 맺는 것이 불성(佛性)이고 지혜이고 마음이라 할 것이다. 삼라만상을 반야로 본다면 두두물물이 다 부처인 것이다. 청정을 부처라 하고 오염을 중생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청정과 오염으로 보면 우리의 행위가 분명한 것이다. 부처를 이름과 모양으로 보지 않고 청정법신(淸淨法身)으로 보면 시비선악 생사가 둘이 아닌 것을 안다. 절에서 기도를 하면서 집에 가면 물, 공기, 흙의 먹거리를 오염시키면 생명력을 죽이는 것이라 기도가 아닌 것이다.

 

 

614, 청정화(淸淨華)

 

 청정은 법신(法身)을 말한다. 도시 복잡한 소음 공해로 스트레스가 마음에서 일어나면 산 계곡 물소리를 생각하면 마음에 용기가 나고 미소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깊은 산 계곡 흐르는 물을 손으로 한 오금 마셔도 산천의 모습을 보고들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즈음 전국 샛강을 보면서 악취 나고 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 어린 시절 시골 고향 마을 앞에 개똥벌레의 반딧불이 모습을 기억한다. 요즈음 생각하면 반딧불이 동네는 하늘 아래 제일 청정한 동네라 할 것이다. 반딧불이 동네는 하늘 아래 제일 청정한 동네라 할 것이다. 반딧불이가 은하수처럼 살 수 있는 동네는 정토인 것이라,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고향이라 청정이라 할 것이다.

615, 수월경(水月鏡): 달이 물을 거울이라 함이니, 하늘 달은 하나인데 일천 강에 달이 나타남이라, 강의 청정함을 노래함이니, 청정 국토를 말한 것이다. 마음이 본래 청정하지만 경계에 다라서 모양과 이름으로 나타남이나 본성은 물들이 없는 것이다. 수경월은 청정을 말한 것이다.

 

 

616, 반야월(般若月)

 

 반야는 지혜를 말하고 달에 비유한 것이다. 캄캄한 밤에 달빛이 얼마나 빛나는가? 밤에는 달이 빛을 발하는 하늘인 것이다. 캄캄한 밤에 달이 주인공이라 어릴 적에는 옥토기가 절구통을 찧으면서 하늘에 양식을 만들어 주어 복을 주는 것이라, 달님에게 기도하면서 복덕과 지혜를 구하는 순박한 마음이 토끼처럼 순박하고 청정하게 살기를 희망한 것이다.

 

 

617, 무상화(無相華)

 

 상(相)이 없는 마음은 집착이 없는 마음을 말한다. 집착심이 없으면 장애가 없는 마음이라, 자유 자재하는 마음이 나타나는 것이다. 빛이 모양과 이름이 없으므로 허공에 가득한 것이고, 물이 모양과 이름이 없으므로 삼라만상에 순응하는 것이다. 삼라만상은 고정된 것이 없는 것이다. 영원한 상이 없으므로 무상(無相)이라 한 것이다.

 

 

618, 안심장(安心藏)

 

 편안한 마음이고 아름다운 마음이라 할 것이다. 항아리에 흙물을 저으면 혼탁하여 바닥이 보이지를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흙물은 갈아 않고 맑은 물이 나타남으로 물위에 비치는 사물의 모습이 잘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도 번뇌가 번잡하면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여 지혜가 나타나지를 않는 것이므로 가치관이 확립되지 못하여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므로 욕망이나 애욕에 시비 선악하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하면 가치관이 나타나므로 지혜라 하고, 마침 방에 전기 불을 만나는 것과 같다.

 

 

619, 월면심(月面心)

 

 달을 마음에 비유하여 말을 한다. 달빛이 청명한 보름달을 바라보는 마음은 온통 한 마음으로 달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늘은 온통 칠흑 같은 밤에 유난히 빛나는 달을 바라보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다. 바라보는 마음은 온통 한 마음으로 달뿐인 것이다. 하늘의 달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면 월면심(月面心)이라 할 것이다. 달은 자연과 내 마음이 하나되는 청정법신의 원래 구족한 본심이라 생사, 시비, 선악이 없는 마음이라 할 것이다.

 

 

620, 서웅심(西雄心)

 

 

 서방 정토의 주인공은 아미타불이시다. 아미타불을 무량광 무량수(無量光 無量壽)라 하여 빛을 부처라 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부처님이 아미타불이시다. 빛을 부처라 하고, 맑음, 밝음, 고름이 청정법신이라 생사가 없고 집착이 없다. 죽음을 죽음으로 보지만 죽음은 삶의 시작이란 것을 알면 죽음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 회향(廻向)이라 할 것이다. 회향심은 거듭하므로 생명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621, 관조심(觀照心)

 

 마음을 한 곳에 멈추고 관찰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마음의 힘이 일어남으로 지혜라 한다. 지혜는 가치간으로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고 기운이나 섭리로 상통하므로 모양과 이름에 관계하지 않으므로 장애가 없는 것이다.

 

 

622, 월광화(月光華)

 

 월광은 달빛이라 삼라만상에 음양의 기운으로 음의 기운이라 숨은 빛으로 천지의 움직임으로 나타나므로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명력이다. 부처님의 말씀으로는 여래장(如來藏)이라 할 것이다. 여래장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중생의 본심이라, 중생은 아직 빛을 보지 못한 것이라 감추어진 진실이라 할 것이고 아직은 모르는 것이고, 본래 구족한 원만성은 있으나 잊어버린 것이라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인연이 도래하면 나타나는 진리라 아직은 지도하고 의지하려고 하는 미완성된 힘이라 할 것이다.

 

 

623, 여실행(如實行)

 

 열매를 말한다. 열매는 결과이고 성공이고 생명 자체가 진리를 성취한 것이다. 생명에 꽃향기가 나는 시기는 그 생명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고 힘이 왕성한 시기이고 뭇 생명이 찾아오고 서로가 기운이 상통하는 시기이므로 생명을 자랑하고 소문이 나는 것이라 다른 생명을 부려는 것으로 음의 기운은 양의 기운을 찾거나 찾아오는 것으로 음양이 만남으로 또 하나의 생명은 열매로 탄생하고 열매는 차차 성분을 완성시킴으로 다시 거듭 태어날 수 있는 힘을 저장함으로 씨앗이란 종자가 되어, 흙 속에서 씨앗의 몸을 썩이면 썩는 생명력은 새 생명력으로 새싹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열매의 생명력이고 진실성이라, 불교에서는 불성(佛性)인 주인공의 본성이라 마음이라 한 것이다.

 

 

624, 지명화(智明華)

 

 밝은 지혜는 항상 빛을 발하지만 인연 따라 생명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빛이 생명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빛을 멀리하는 것이다. 빛은 원근이 없고 시비 선악의 분별이 없는 것이다. 빛은 움직임이 없고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여여(如如)한 것이다. 중생이 스스로 모르는 것이고, 본래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것인 욕망으로 밝음을 찾는 것이라 지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625, 청량심(淸凉心)

 

 청량심은 아름다운 마음이고, 봄철에 새싹이 움트는 기운이고, 삼복 더위에 시원한 바람의 기운이고, 엄동 설한에 따스한 기운이라 할 것이다. 음 기운은 양의 기운을 서로가 찾는 것이 생명력이고 생태계의 움직임이라 할 것이다. 생명력은 가장 아름다운 청량심이라 할 것이다.

 

 

626, 선정심(禪定心)

 

 선(禪)은 마음을 말하고 마음이 고요하면 지혜가 일어나는 것이라, 가치관이 확립되는 것으로 사물을 볼 적에 사리 분별을 분명하게 함으로 거짓과 진실을 알 수 잇는 것으로 스스로가 아는 것이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귀와 눈으로 보고 듣고 알려고 하지만 이것은 분별하는 마음이고 지혜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오이 씨앗은 가르치고 배우지 않아도 오이 열매를 잘도 맺는 것이고 빨강 꽃의 씨앗은 다시 빨강의 꽃을 맺는 것이 진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말로는 유전자의 길이 본래 원만성인 꽃의 씨앗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다.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것은 청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을 성취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움직이는 대로 성취되는 것이다. 오염으로 움직이도 성취는 되지만 악(惡)의 길이 성취되는 것이고, 청정으로 움직이면 선(善)의 길이 성취되는 것이다.

 

 

627, 여의심(如意心)

 

 중생도 여의심은 있지만 혼자 성취하려는 마음으로 경제의 힘을 성취하려고 하고, 성인의 여의심은 물, 공기, 흙의 먹거리가 청정하기를 바라는 것이 여의심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국법에 도전하여 승소를 하였다면 전 국민이 이 법으로 다스려지는 것이므로 법이라 하는 것이다. 진리가 사람에게만 상통하고 잡초의 생명에는 상통하지 못하면 진리라 할 수 없는 것이고 생명력이라 할 것이다.

 

 

628, 광명심(光明心)

 

 캄캄한 방에 전기 불을 켜면 빛이 나타나므로 방안에 물건이 있는 대로 보이는 것은 내 마음이 밝기 때문이다. 빛이 없으면 방안에 있는 물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두운 방에 손으로 전기 불을 켜면 이것이 밝은 마음인 것이다. 중생의 마음에 지혜와 복덕이 원만 구족하여 있지만 마음이 어둠으로 보고 듣지 못하고 인식도 못하는 것이라 마음 밖에서 복덕과 지혜를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라, 상대를 귀와 눈으로 인식함으로 마음으로 관찰하려고 하지 않고 눈으로 보았다 하고, 귀로 들었다 하는 것이 어리석은 소리인 것이다.

 

 

629, 옥광심(玉光心)

 

 옥은 돌이지만 기운을 많이 발생시키는 것이다. 옥의 기운은 생명에 의로운 힘을 발산하는 에너지원이다. 생명에 장애되는 힘을 억제하고 의로운 힘을 증장시키는 힘이 있다. 옥은 오염된 힘을 청정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고 삿 된 기운을 맑은 기운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더운 열을 따스하게 하고 찬 기운을 따스하게 하는 힘이 있다. 성격이 강한 사람은 옥을 가까이 하면 성격이 부드러운 성격으로 변한다.

 

 

630, 수월심(水月心)

 

맑은 물에 달은 분명하고 두려한 것으로 마음을 물이나 달에 많이 비유를 하는 것이다. 시인들이 자연을 좋아하는 이유는 마음이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청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움, 본래모습 그대로, 아름다움 모습 그대로, 산천 모습 그대로, 공기말고, 물 맑은 그대로, 흙의 먹거리가 청정하다면, 바로 수월심인 것이다. 고요한 그믐날 밤 달빛 아래 강물 속에 달을 보면 달의 마음이 온통 가득하여 다른 생각이 없다. 이것을 일심이라 할 것이고 수월 청정심(水月 淸淨心)이라 할 것이다.

 

 

631, 법연화(法蓮華)

 

 부처님을 상징하는 꽃이 연꽃이라 불연화(佛蓮華)라 하고, 법연화라 할 것이다. 연꽃은 청정을 뜻한다. 연꽃의 특징은 한 줄기에 한 잎사귀가 피고, 한 줄기에 한 봉우리 연꽃이 피는 것으로, 저습지에서 자라면서 물을 청정하게 하는 작용을 하는 성분이 있으므로, 부처님은 오욕에 물들지 않고 진리를 성취하셨다고 연꽃에 비유하는 것이므로, 불교 꽃이 연꽃이라 사찰 건물이나 조각 작품에는 온통 연꽃 무늬인 것이다.

 

 

632, 선행자(善行子)

 

 선행자는 선지식을 말한다. 마음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으로 깨달음의 선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중생의 원력심은 끝이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무궁무진한 마음으로 중생의 자부심이라 할 것이다. 마음을 바로 보면 삼라만상이 다 스승인 것이다, 스스로가 마음이 선하면 악한 것도 선한 것으로 나타나고 마음이 악하면 선한 것도 악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선한 일을 악한 사람이 하면 악이 되고, 악한 일이라도 선한 사람이 일을 하면 선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633, 복혜궁(福慧宮)

 

 부처님의 집을 법당(法堂)이라 하고 마음의 집이라 하고 진리의 전당이라 하고 대웅전(大雄殿)이라 하여 천상 인간에 스승님이신 분을 말하고, 중생의 본심인 불성(佛性) 자리를 복혜궁(福慧宮)이라 할 것이다. 복혜궁은 복덕과 지혜가 본래 원만 구족한 중생의 여래장(如來藏)인 보배 창고를 말한다.

 

 

634, 원만성(圓滿性)

 

 본래 구족한 복덕과 지혜를 원만성이라 할 것이다. 성품이 원만한 것이라 푸른 것으로 원만한 것이고, 빨간 것은 빨강으로 원만한 것이다. 일미진중함시방(一味塵中含十方) 한 맛 가운데 법계가 있다는 말은 섭리를 말한 것이다. 한 잎사귀의 푸른 것을 보면 천지에 봄이 온 것을 아는 것이다. 닭 한 마리가 조류독감으로 나타나면 전 세계의 닭들이 비상이 걸리는 것이다. 조류독감은 청정으로 답을 찾을 것이다. 오염과 청정의 화두인 것이다.

 

 

635, 효심자(孝心子)

 

 효는 생명존엄에서 보아야 하는 갓이다. 옛적에는 부모의 원수를 자식이 대신함으로 효자라 하기도 하지만 원수는 원수로 갚을 수 없는 것이다. 생명효(生命孝)에서 보아야 되는 것이다. 원수라는 마음을 마음에서 비우므로 영원한 원수를 갚은 것이다. 효는 철저한 자비심을 바탕하여야 진실한 효인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존엄하면 남의 생명도 존엄한 것이다. 스스로가 자연을 오염시키면서 잘 살기를 바라고 욕망, 질투, 시기심으로 잘 살기를 바라면 어리석음이라 할 것이다. 자신은 청정수를 마시고 청정을 바라면서 스스로의 행위는 오염을 시킨다면 자연을 죽이는 일이고 스스로가 죽는 일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636, 수행자(修行子)

 

 특정인만 수행자가 아닌 것은 각자 스스로가 책임질 행위가 있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 살자는 것이다. 흙의 먹거리와 물의 에너지 공급을 박으면서 생명은 성장하는 것이지만, 인간은 욕망인 어리석음으로 진리를 배반하고 도리어 자연을 많이 파괴함으로 경제를 성취하는 것이라면 미래는 실패의 길이고 생명이 더불어 공멸(共滅)하는 시기가 오는 것이라, 각자 스스로가 책임이라 할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자연의 체험이고 감사와 은혜인이라 할 것이다.

 

 

637, 본성월(本性月)

 

 성품의 근본은 공(空)하여 불생 불멸(不生 不滅)이라, 생사의 모양과 이름에 관계가 없는 것이라, 항상 청정으로 영원한 생명력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소리를 들었다 하면 소리에 집착이고 모양을 보았다 하면 모양에 집착인 것이다. 소리와 집착이 없는 마음을 본성월이라 할 것이다.

 

 

638, 보현행(普賢行)

 

 화엄경 부처님의 말씀에 보현행자(普賢行者)는 몸과 말과 뜻에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라 마침 빛이 생명에 순응하는 것이고, 물이 생명에 순응하는 것이고, 공기가 생명에 순응하는 것이, 불 보살님의 마음과 같음이라 할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는 마음을 이렇게 하라는 것이다.

 

 

639, 선혜월(禪慧月)

 

선(禪)을 마음이라 하고 마음이 고요하면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마음을 관찰하면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으면 시공에 초월하고 장애가 없는 것이라 무애자재하는 것이다. 마음은 모양과 이름이 아니므로 모양과 이름에 장애가 없는 것으로 허공처럼 삼라만상에 주인공이라 할 것이다.

 

 

640, 길상자(吉祥子)

 

 길상이란 상서러운 일이라, 서기 방광하는 것이고 희고 검은 오색으로 순간적으로 변하는 것이라, 무쇠가 방광을 하고 죽은 나무가 방광을 하는 것이 길상자인 것이다. 죽은 사람에서 사리가 나오고 방광하는 모습은 범부에게는 상서러운 것이고 불가사의한 일이다. 사람의 마음은 아름다운 지혜가 있어 유무에 자재한 것이고 신통변화가 불가사의한 것이다.

 

 

641, 대심행(大心行)

 

 큰마음을 마하심(摩訶心)이라 하고 대승심(大乘心)이라 한다. 대승심은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주객이 하나인 마음을 말한다. 사람의 몸이 눈, 귀, 코, 각각이지만 하나 하나가 자신을 말한다. 눈병이 났어 눈을 미워하고 눈을 없애 버리면 눈이 없는 장애자가 되는 것이고 눈병이 나도 약으로 치료하면서 눈을 자랑하고 사랑하고 보살피면 눈병이 나아서 눈병자라 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대승심이고, 마하심이고, 대심행이라, 대자대비심으로 중생의 어버이 마음이라 할 것이다.

 

 

642, 여산(如山)

 

 산은 오온산(五蘊山)을 말한다. 오온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색은 몸이고, 수상행식은 마음을 말한다. 몸과 마음이 태산처럼 높으면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 오온이 공(空)한 것을 알아야 고뇌를 초월하는 것이다. 오온이 공한 것은 무아(無我)사상인 것이다. 본래 내가 없다는 것을 인연 법으로 관찰하면 온대로 가기 때문에 모양과 이름이 없는 것을 알고 오온의 상이 다 인연 법으로 온 것이므로 본래 공한 것이라 집착 할 오온이 없는 것이라 자유자재한 것이다.

 

 

643, 현수(賢修)

 

 어진 것은 현인으로 덕망이 잇다는 말로 재물을 보시하여 병을 구제하고 남의 목숨을 구제하고 자신의 고통도 참는 마음으로 견디면 덕망이 되고 복덕이 되는 것이다. 한 마디 말을 하고, 한 번 행동을 하고, 한 번 마음을 써는 것은 다 자신의 법이고, 사회의 법인 것으로 마음으로 관찰하는 마음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644, 일응(一應)

 

 일응은 마땅히 공양하는 자세이다. 응공이라 하여 아라한(아라한)이라 하고 스님이라 한다. 스님의 정신 지위가 하늘 사람이 공양을 바치고 삿된 일이 스스로 물려가고 장애가 없어지고 심리작용으로 시기 질투가 없어지고 질병이 없어지고 슬펴하고 병으로 죽는 사람이 없고 자살하는 억압의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서로 서로가 이해하고 용서하고 자비심으로 기뻐하는 것으로 무쟁삼매(無諍三昧)라 한다. 

 

 

645, 성공(性空)

 

 성품은 공한 것으로 항상 실체가 없는 것이다. 유(有)라 하면 무(無)이고, 무(無)라 하면 유(有)인 것이다. 물질이 있다고 하나 마음으로 관찰하면 실상이 없는 것이고, 마음이 없다고 하나 경계를 보고 듣고 하면 있는 것이라, 유는 무이고, 무는 유인 것이다. 무엇을 있다고 할 것이며, 무엇을 없다고 할 것인가? 성공(性空)은 텅빈 충만인 것으로 물질의 유는 텅빈 것이고 정신의 무는 충만한 것이 무소유(無所有)인 것이다.

 

 

646, 대각(大覺)

 

 석가 부처님을 대각 세존이라 하신다. 지혜의 완성을 대각이라 하고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다. 인간으로 대각을 성취하신 분으로 복덕과 지혜의 본래모습 그대로를 보이신 분으로 인간 능력의 가능성을 보이신 분으로 인간의 잠재력을 확인하여 보이신 것이다.

 

 

647, 관공(觀空)

 

 

 마음을 관하면 마음을 본다고 하여 공(空)의 도리를 아는 것으로, 인연 법을 말하는 것이다. 인연 법으로 보면 독립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모든 생명체는 물, 공기, 흙, 빛으로 자연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므로 자연을 체험하고 감사와 은혜의 마음으로 살아가면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 주어진 그대로가 복을 받은 것이고 원만구족된 세계라 아름다운 것이다.    
         

 

648, 원각(圓覺)

 

 원각 속에 살면서 원각을 모른다는 말이다. 공기를 호흡하면서 공기의 감사를 모르고 사는 것을 말한다. 물을 마시면서 물의 은혜를 모르고 사는 것이고, 빛을 받아 살면서 빛의 고마움을 모르고 사는 것이 어리석음이고 도리어 물, 공기를 오염시키고 사는 것이다. 물, 공기, 흙, 빛의 감사와 은혜로 사는 것이 기도인 것이고 원각을 아는 것이다.

 

 

649, 무등(無等)

 

 비교 할 수 없는 마음을 무등이라 한다. 가장 신비하고 성서러운 힘이라 불가사의한 것이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다함이 없는 원력을 말한다. 불 보살님의 원력이 다함이 없고 중생의 원력도 다 함이 없는 것이라, 중생의 생각이 다함이 없고, 생명이 다 함이 없는 것이고, 미래가 다함이 없는 것이다.

 

 

650, 일조(一照)

 

 태양이 뜨는 것을 일조라 하고 하루라 하면, 부처님의 탄생을 일조라 하고 싶다. 입으로 한 번 불 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일조라 하고 싶고, 관세음보살님 하고 한 번 관하면 대천 세계의 생명력이 성숙하여 천지 만물이 움이 트는 것이다. 일조(一照)의 공덕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651, 일광(一光)

 

 부처님께서는 해와 달이 헤아릴 수 없고 대천세계라 하셨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지구의 해와 달만 볼 수 있는 것이다. 파리의 미충이 해와 달을 볼 수 있는 것일까? 미충은 정추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고, 성인이 인간을 경계하는 것은 탐욕을 보배로 삼기 때문이다. 악도에 가는 원인은 탐욕으로 가는 것이다. 인간은 탐욕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이므로 생사의 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마음의 지혜가 일광이라 한 번 마음이 밝은 것은 미충이나 악도를 한 번 면하는 것이다.

 

 

652, 대장심(大藏心)

 

 부처님 말씀을 팔만사천 대장경이라 하시고, 이 말씀의 마음이 우리 마음 속에 보장되어 있는 것을 대장심이라 한다. 대장심은 아무리 사용하여도 다함이 없는 것이고, 아무리 원수라도 싫어함이 없는 것이 마침 공기, 물, 흙, 빛이 생명에 순응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653, 여시행(如是行): 부처님 말씀인 경전 머리마다 여시(如是)라는 말씀은 부처님 말씀이란 것이다. 여시행은 부처님의 말씀과 마음처럼 스스로가 실천하라는 말이다. 바른 뜻․바른 말․바른 일이라 할 것이다. 바로 전후 좌우를 놓아 버리고 바름을 실천하면 선(禪)이고, 바름이 밝음의 지혜 종자가 되는 것이다. 비름을 바로 실천하면 과거의 악행이 선의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미래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선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654, 무진보(無盡寶)

 

 다함이 없는 보배는 마음이고 허공이라 할 것이다. 마음과 허공은 모양으로 찾으면 없는 것이고 이름도 없는 것인데 이름한 것이다. 마음은 공(空)으로 주인공이라 하고, 허공도 공(空)으로 삼라만상에 주인공이라 한다. 모양과 이름이 없지만 삼라만상에 순응하고 삼라만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없는 것으로 있는 것아 허공이고 마음인 것이다.

 

 

655, 법계심(法界心)

 

 마음의 공간을 법계라 한다. 마음은 지구를 천만개를 담아도 부족한 것이다. 마음은 형상과 이름으로 헤아릴 수 없는 거이므로, 나의 마음이 법계에 가득하지만, 너의 마음도 법계에 가득한 것이라, 마침 한 방에 불빛이 여러개라도 아무런 장애가 없는 거와 같다.

 

 

656, 일다심(一多心)

 

 마음이 법계(法界)라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다. 봄철 나무에 한 잎 푸른은 천지가 푸른 것을 알고, 한 잎 낙엽으로 천지에 가을을 안다. 길가에 조그마한 야생초에 꽃을 보면서 아름다운 마음을 알고, 천지의 생명력을 느낀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조그마한 야생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만 중요하고 상대를 남이라 하고 분별하고 싫어한다면 바로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 된다. 길가에 민들레꽃이 피었는데 길가는 나그네는 아무런 마음 없이 짓밟아버리지만 민들레의 생명력은 거듭 거듭 새롭게 살아나는 생명력이 있다. 민들레의 생명력이 바로 자신의 생명력인 것이다.

 

 

657, 초발심(初發心)

 

 바른 마음이 첫 마음이다. d;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고 항상한다면 시비 선악심은 그림자인 것이다. 아무리 두려운 생사심(生死心)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바른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두려울 것이 없고 싫어하는 분별심이 없는 것이다. 마음에서 욕망을 비우지 못하면 항상 두렵고 싫어하는 마음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므로, 원인은 욕망을 버리고 바름을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면 스스로가 편안을 찾는 것이고 과거의 모든 허물이 스스로 좋아지고 미래의 일을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것이다. 초발심은 바로 바름을 말한다.

 

 

658, 대행심(大行心)

 

 

 큰 움직임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마음이 일어나면 삼라만상이 일어나는 것이고, 마음이 사라지면 삼라만상이 사라지는 것이다. 스스로 일으키는 마음이 천지를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여야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한 생각을 일으키면 나타나는 일도 아무런 생각이 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현드폰 카메라, 인터넷 빛의 정신 문화가 아무런 생각 없이 호기심에서 생명존엄성을 억압하고 기밀을 누설한다면 생명을 억압하는 시스템이 되는 것이고 살상 무기가 되는 것이다. 생명력이 없는 시스템이 생명력을 억압하는 것은 사람의 욕망이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라 사람의 마음이 개입함으로 말없는 시스템이 생명력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사람의 욕망이나 호기심이 기계의 통제를 받는 골이 되는 것이다. 기계가 감정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 따라 나타나는 무한한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시시로 인성을 확인하고 항상 호흡하는 것처럼 수행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실명제 하자는 말이 바로 인터넷 사용자의 책임제를 말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고발하고는 제공자는 주소를 삭제하고 공개한 내용은 우주 공간에 미아가 되어 허공 속에 돌아다니는 것이므로 생명에 심리작용을 일으키는 것이고, 나쁜 정신문화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실명제를 말하는 것이다. 
      

 

659, 중도심(中道心)

 

 중도심은 시비 선악심이 아닌 바른 마음을 말하고 부처님의 말씀이고, 유교에서는 마음이 악하다는 악성설(惡性說)이 있고, 선하다는 선성설(善性說)도 있지만 다 마음을 근본하는 말이라, 바름이란 근본으로 찾아가면 악도 마음이고 선도 마음에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마음씀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마음씀은 철저한 수행의 실천이라 할 것이다.

 

 

660, 명위심(名爲心)

 

 이름이 마음이라 한 것이지, 마음은 이름과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자유자재한 것이다. 마음이란 말은 방법론이라 할 것이다. 이것이 마음이다. 할 것이 없는 것이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있는 곳이 없이 눈이 가면 마음도 가고, 귀가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소리에 가는 것이다. 소리도 마음이고 보는 형상도 마음인 것이다. 삼라만상이 마음인 것이고 생명인 것이다. 생명은 공기, 물, 흙, 빛이 생명이고 마음인 것이다.

 

 

661, 겁외심(劫外心)

 

 겁외심은 마음 밖에 일이다. 마음이 삼라만상인데 마음 밖에 일이라면 삼라만상을 떠난 일이다. 마음을 떠난 또 하나의 마음이 있다는 말이다. 자신 속에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몸을 자신이라 하지만 몸 안에 참나가 있다는 것이다. 참 생명을 말한 것이다. 영원한 생명력을 말한 것이다. 생사의 죽고 사는 마음이 아닌 영원한 생명력을 말한 것이다.

 

 

662, 불자심(佛子心)

 

 부처님의 제자 마음을 말한다. 부처님의 아들 딸들은 부처님 마음을 배우고, 말씀을 배우고, 행동을 배우고, 닮아 가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을 진언(眞言)이라 하시고 참된 말씀으로 진리라 하는 것이므로 중생은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므로 진리는 고금 동서의 차이가 없는 것이고 사람만 위하고 길거리 잡초는 싫어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불자심은 산천초목의 생명력인 자비심으로 한 가족으로 생각하고 나아가 산천초목이 자신가 다르지 않은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663, 몽각심(夢覺心)

 

 번뇌를 깨달아서 진리를 성취하는 것이 꿈을 깨는 것이다. 우리가 욕망의 오욕으로 즐거움으로 살아간다면 시비 선악이 헤아릴 수 없고 생사의 굴레에서 해탈 할 수 없는 것이다. 몸의 집착으로 자신 중심으로 살아가다가 자신이 죽으면 원망하고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라,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만큼 고통이 오는 것이다. 평상시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없는 것으로 미래의 편안을 찾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집착하여 여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꿈인 것을 깨닫는 것이 몽각심이다.

 

 

664, 회향심(廻向心)

 

 시종일여(始終一如)가 회향심이다. 나무의 열매가 끝이 아니고 흙 속의 씨앗이 처음이 아닌 것이라, 열매와 씨앗은 동일한 것이다. 끝과 시작이 아닌 것이다. 탄생과 죽음을 시작과 끝으로 보지 말고 탄생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고, 죽음은 태어나는 길인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등학교를 입학하는 것이 회향심이다, 회향심은 항상 새로운 설(元旦)이다.

 

 

665, 동광심(東光心)

 

 하늘의 별인 은하수가 계절 따라 위치가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지구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옛 사람은 동쪽에 해가 뜨는 것이라 하고, 지구는 끝이 있어 바다로 나아가면 지구 끝에 떨어져 죽는 것이라 하여 땅 끝이라 하지만, 남극의 지구 끝에 도착하면 반대쪽인 북극도 있는 것이라 끝에서 끝을 찾아가면 지구가 둥근 것을 아는 것이다. 서울은 부산에서 보면 북쪽이 지만 서울을 평양에서 보면 남쪽인 것이다. 서울은 움직이지를 안지만 사람이 위치를 정하여 말을 하는 것이라, 본래 동서남북이 없는 것이다.

 

 

666, 원효심(元曉心)

 

 새벽에 동트는 햇살을 보면 마음에 기운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낀다. 새로운 마음이라 할 것이다. 정월 보름날 새벽에 부산 해운대 동백섬 모래사장에 가면 새벽 기도하는 인파가 인산인해인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새벽의 기운을 체험하면 온 종일 기분이 좋고 동트는 정월 대보름 달을 보면 새로운 마음이 용솟음치고 일년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667, 원력심(願力心)

 

 중생의 원력심은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부 처가 될 수 있는 마음이다. 원력심은 본래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있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불 보살님의 원력심이 불 보살님을 성취시킨 것이라, 중생들이 원력심도 불 보살님의 마음을 발심시키는 것이다. 중생이 원력심이 없이는 불 보살님이 될 수 없는 것이다.

 

 

668, 정광심(頂光心)

 

 부처님께서 법화경 말씀에 이마로 세 갈래 광명을 놓으시니, 대천 세계가 손바닥 보는 것처럼 밝아서 하늘 나라와 인간 세상, 지옥세계가 나타남으로 모인 대중은 환희심으로 부처님전에 귀의하였다. 능엄경에는 이마의 백호광명을 놓으시어 다라니 주문을 문수보살에게 부촉하여 아난을 구하여 오라 하셨다. 정광심은 마음 광명의 지혜인 것이다.

 

 

669, 자타심(自他心)

 

너와 내가 우리라는 것은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말이다. 마음으로 관하면 모양과 이름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음을 관하면 무아(無我)의 공(空)도리를 아는 것이라, 자타(自他)가 하나인 것이다.

 

 

670, 상생자(相生子)

 

 서로 의지하는 인연 법으로 상의상존(相依常存)하는 마음이다. 공기, 빛이 생명에 에너지가 되고 생명은 서로 먹거리로 나눔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상생의 정토인 것이다. 서로가 살려고 잡아먹는 것이 아니고 씨앗이 자라려면 공기․물․빛․흙의 자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자란 씨앗은 꽃피고 열매를 맺어서 많은 열매를 나눔으로 생명에 양식이 되는 것으로 상생하는 것이다. 농부가 곡식을 추수하여 먹거리를 만들어 나눔으로 생명의 양식이 되고, 베 짜는 사람은 사람들의 추위를 막아 주고 더위를 막아 주는 것으로 서로서로 상생하는 것이다.

 

 

671, 허공장(虛空藏)

 

 허공은 빈 것으로 삼라만상에 주인공이라 하고 에너지가 충만한 보배 창고인 것이다. 공기와 빛이 없으면 모든 생명을 지속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을 허공처럼 하라는 것은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마라는 것이다. 집착하므로 장애가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을 허공처럼 하면 무애자재하는 것이다.

 

 

672, 양족심(兩足心)

 

양족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복덕과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복덕과 지혜를 원만 구족하신 분으로 중생들에게 마음 본성의 본래 모습은 복덕과 지혜가 원만구족한 것이라 하신 것이다. 중생의 본심을 잊어버리고 욕망으로 즐거움을 삼아서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라 진리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이다.

 

 

673, 칠보궁(七寶宮)

 

극락세계는 칠보궁으로 산천초목이 바로 금은 보배로 형성되어서, 마침 우리 지구의 흙처럼 형성되어, 마음만 먹으면 물질의 복은 마음대로 성취되는 것이라, 욕망이 없는 것이다. 천안들은 지구의 물을 보배라 하듯, 생명에는 빛, 흙이 보배인 것인데 중생들이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음이고 자연의 감사와 은혜를 모르고 도리어 오염으로 서로 생명을 죽이면서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중생이 자연의 은혜를 알면 극락세계의 정토라 할 것이다.

 

 

674, 견면심(見面心), 675, 견불심(見佛心)

 

 인사를 하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다. 사람이 불상인 부처님의 얼굴을 바라보면 부처님의 얼을 생각하므로 스스로가 부처님의 마음이나 말씀을 생각하고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한 마디의 욕설이나 성냄으로 재앙이 일어나고, 한 마디의 부처님 염불로 부처님을 갊아 가는 것이다. 착한 것은 잘 보이지를 않지만 악한 것은 눈앞에 바로 보이는 것이다. 나무가 물이 없어 죽어 가는 것은 잘 보이지만, 평상시에 푸른 나무는 잘 살아가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은 자비심인 자연의 생명력으로 바로 물․공기․흙․빛의 생명력을 깨달으면 견면심이고, 견불심이다.

 

 

676, 정예심(頂禮心)

 

 불자들은 조석으로 부처님 전에 목숨 받쳐 이마로 큰절을 하는 것이다. 지극 정성으로 목숨을 받쳐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라, 다르게 말을 하면 한 생각의 일념으로 오로지 부처님 생각하라는 것은 망상을 하지 마라는 것이다.

 

 

677, 인로자(引露子)

 

 바른 길을 인도하는 자을 선지식이라 한다. 선지식은 마음을 바르게 인도하시는 안내자를 말한다. 지옥의 보살님인 지장보살님은 지옥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시고, 불 보살님들은 중생의 욕망의 고통을 벗어나 영원한 즐거움의 세계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678, 봉불심(奉佛心)

 

 마음에 부처를 성취시키는 것은 바름을 실천하는 것이다. 바름을 실천하면 바로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다. 절에서 염불을 하면서 집에 가서 공기, 물, 흙의 자연을 오염시키면 기도한 것이 못되고, 염불하는 자의 마음 자세가 아닌 것이다. 가피력이 없다는 것은 염불을 하면서 마음은 마음대로 하고, 몸은 몸대로 하면 가피력이 없는 것이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는 것이다.

 

 

679, 세심행(洗心行)

 

 마음을 씻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한 번 관세음보살하면 자비심이 한 번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 자세는 관세음보살하면서 마음으로 바라는 소원이 있는 것은 잘 못 기도하는 마음 자세이다. 원력으로 참회하는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번뇌의 마음을 텅텅 비우면 빈 허공처럼 삼라만상에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680, 일승자(一乘子)

 

 부처님을 일승(一乘)이라 한다. 삼승(三乘)은 성문, 연각, 보살(聲聞, 緣覺, 菩薩)로 성문은 사성제(四聖啼) 법문을 듣고 깨달은 자고, 연각은 12인연 법문으로 깨달은 분이고, 보살은 6바라밀행을 실천하시는 분이라, 보살은 깨달음 중생이라 태어나는 생사가 있어 중생을 제도함으로 다음 생은 부처님이 되시는 미륵 보살이나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님을 말한다.

 

 

681, 피안자(彼岸子)

 

 저 언덕은 열반의 언덕이라 고해의 바다를 건너서 극락세계를 말한다. 고해를 건너는 방법은 6바라밀의 보살의 길이 있다. 보시, 지계, 정진, 인욕, 선정, 지혜를 말한다.

 

 

682, 향화심(香花心)

 

 꽃피고 향기가 진동하면 뭇 생명의 축복이라, 반드시 열매의 결실이 나타나는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은 아무리 조그마한 생명이라도 죽이면 싫어하는 생명력이 잇다. 하물며 생명의 에너지인 공기, 물, 흙을 오염시키고 자신은 잘 살기를 바라는 일이 어리석음이라 할 것이다. 향화심은 자연의 체험이고 감사와 은혜의 공덕인 것이므로 열매는 은혜를 회향함으로 뭇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 행이다.

 

 

683, 귀명자(歸命子)

 

 불자는 오계(五戒)를 받아 목숨이 다하는 때까지 잘 수행함으로 진리를 성취하고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오계인 다섯 가지(살생, 훔침, 간음, 거짓, 술)을 금함으로 자비, 복덕, 청정, 진실, 바름의 보살행이 나타나는 것이다. 몸의 욕망을 수행함으로 본심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684, 보살심(菩薩心)

 

 보살은 깨달음 중생이라 하여 생사로 윤회하면서 중생을 제도하시는 성인이시다. 성인은 모양이나 이름보다도 마음의 가치관으로 보기 때문에 모양은 사람보다도 못하여도 마음은 사람보다 나은 것이 많다. 인간은 모양과 이름으로 마음을 일으킴으로 마음의 작용을 잘 모르는 것이 많아 자유자재하지 못하는 것이다.

 

 

685, 불매자(不昧子)

 

선지식도 인과를 받습니까? 하자 불락인과(不落因果)라 하여 5백 생에 여우의 몸으로 살았지만, 한 번 선지식을 만나 불매인과(不昧因果)란 말을 듣고 여우의 몸을 해탈하였다는 백장스님의 이야기이다.

 

 

686, 돈오심(頓悟心)

 

 청정심이고 바름을 말한다. 깨달음은 실천이지만 청정과 비름의 가치관으로 보면 중생들의 본래모습을 잊어버린 것이고 환상의 즐거움에 집착하여 시비 선악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본래모습을 중생들에게 보이신 것이다.

 

 

687, 상주심(常住心)

 

 상주심은 자비심이고 생명력인 것이다. 길거리에 민들레꽃이 피어 보는 자가 아름다운 마음이 일어나면 이것이 자비 법문이라 말을 하지 않고 자비 설법을 하는 것으로 상주 설법이라 하여 청정법신(淸淨法身)이라, 자연을 떠나지 않고 산천초목 자체가 부처님이시고, 바람소리, 물소리가 자연의 설법이란 것이고 생명의 소리인 것이다. 생명의 소리를 떠난 설법은 거짓이고 죽은 소리인 남의 말을 하는 그림자인 것이다.

 

 

688, 자광심(自光心)

 

 자비의 지혜 광명은 생명존엄인 것이다. 청정을 떠난 남의 말을 하는 것은 거짓이라 할 것이다. 마침 오염을 시키면서 청정을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혜는 실천인 것이다. 실천을 하면 집착의 고정인식을 벗어날 수 있다.

689, 화엄장(華嚴藏): 화엄은 삼라만상을 말하는 것이고 마음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깨치심을 그대로 말씀하신 것을 화엄이라 하고 화엄은 복덕과 지혜의 보배 창고인 것으로 부처님의 묘법장(妙法藏)이시고 중생 본심의 보배 창고인 것이다.

 

 

690, 공덕주(功德主)

 

 공덕주는 부처님이시고 나아가 자신이 바로공덕주인 것이다. 움직이는 주체자가 되는 것은 공덕과 지혜의 보배 창고인 것이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장이고 새로움의 불가사의한 공덕주인 것이다. 다른 말로 창조주라 할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음이 공덕주인 것이다.

 

 

691, 정토주(淨土主)

 

극락세계를 정토라 하고 낙토라 하기도 한다. 정토의 주인공은 아미타불이시다. 아미타불의 전생은 법장스님의 원력으로 극락세계를 만들어 주인공이 되시고 극락의 모든 것은 아미타불의 생명이란 것이다. 사바 세계의 인간들의 원력으로 정토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원력이 있어 정토는 원력으로 정토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오염을 청정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지혜가 있지만 눈앞에 물질의 즐거움에 집착한 것이라, 청정은 항상 그림자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고통이 많은 이유이다. 바로 청정을 실천하면 자신이 정토주가 되는 것이다.

 

 

692, 선다심(禪茶心)

 

 조주스님은 누구든지 차 한 잔 마시라 하셨다. 이것이 스님의 법이고 도(道)라 하신다. 차 마시는 마음이 선다심(禪茶心)이다. 높은 산 계곡 구름 속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면 걱정 밖의 소식인 것이다. 욕망이란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693, 무애심(無碍心)

 

 무애심은 마음으로 관찰하면 모양과 이름에서 벗어나는 것이므로 무애자재라 하는 것이다. 바람이 무애자재하는 것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모양이 일어나면 이름이 생기고 이름과 모양이 나타나면 집착이 생기고 장애가 나타나는 것이다. 바람이 산천에 푸른 잎사귀 춤을 추면 산천의 무애 자재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694, 수림화(樹林華)

 

 산천의 숲은 생명의 보배 창고인 것이다. 오염을 청정으로 변화시키는 자연의 힘의 원천인 것이다. 그 나라의 산천을 보면 국력을 볼 수 있는 것이고 국민의 살아가는 힘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무가 일어면 짐승이 있고 새와 무골충들의 생명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695, 평등심(平等心)

 

 평등심을 모양과 이름으로 찾으려면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물이 생명에 순응하는 것을 평등심이라 하고 싶은 것은 물은 생명을 차별하지 않고 싫어함이 없는 것이다. 생명에 순응하는 것이므로 흙, 공기, 빛이 생명에 순응하는 것이므로 평등한 것이라 한다. 우리의 생명존엄도 생명이 살아가는데 대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696, 해탈심(解脫心)

 

 마음에 모양과 이름을 아무리 담아도 채우지를 못하는 것이고, 살아생전에 선악의 행위를 마음에 담아도 채워지지를 않는 것이다. 마음이 모양과 이름이 있다면 한 사람이라도 허공에 차고도 남는 것이고 모자라는 것이다. 마침 방안에 여러 개의 불빛이 장애 없이 빛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자애가 일어나고 마음을 비우면 자유자재한 마음이라 해탈심이라 할 것이다.

 

 

697, 무차심(無遮心)

 

무차 법회라 하면 차별이 없는 것을 말한다. 남녀노소 분별이 없이 누구나 법문을 경청 할 수 있는 야단법석을 말한다. 간혹 법회에 참석하면 미리 연락을 하여 참석 자리를 마련한 모임을 많이 보는데 법회라면 분별이 있으면 법회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무차 법회는 누구나 모임에 동참하여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698, 발로심(發露心)

 

 아침 이슬길이라면 첫발 걸음을 말한다. 밤사이에 마당에 자욱하게 내린 눈길을 혼자 발자국을 만들면서 걸어보면 천지에서 마음의 환희심을 체험하는 것이다. 순순한 마음이 일어나는 일이라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길을 가다가 꽃을 보면 아름다운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이 마음이 발로심이다.

 

 

699, 인연자(因緣子)

 

 우리의 삶이 인연의 고리이다. 무수한 고리로 형성된 고리의 관계인 것이다. 잘 사는 것은 인연의 고리를 얼마나 아름답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미소하는 마음으로 서로가 연결 고리를 만들면 화목하다고 하는 것이고, 울음으로 서로가 마음 아픈 고리를 만들면 악한 인연이라 하고 원망, 원수, 고통의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신의 한 가지 행위가 바로 자신의 나아 갈 길인 것이다.

 

 

700, 금색심(金色心)

 

 부처님 마음을 금색심이라 하면 금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영원한 진리를 말한다. 영원한 진리는 생명력으로 무수한 모양과 이름의 변화 속에 지속되는 모양과 이름으로 보이지 않는 생명력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명력이 움직이면 살았다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죽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면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701, 대원경(大圓鏡)

 

 마음을 대원경이라 한다. 마음 거울을 대원경이라 하고 요즈음 말로는 유전자로 나타나는 정보인 것이다. 거울을 마음으로 부처님은 말씀 하셨고 과학은 유전자라 한다. 머리 가락 속에 그 생명의 움직임이 그대로 기록이 된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명부의 저승 염라왕은 업경대의 마음 거울을 사용하여 죽은 자의 선악을 구별하고 판단한다는 말씀이다. 우리들은 염라 왕의 거울을 무서워하면서 생전에 자신의 행위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원인을 모르고 결과를 알려고 하는 어리석은 자의 수고러운 짓이다.

 

 

702, 무수자(無壽子)

 

 아미타불의 다른 이름이라 할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목숨을 말한다. 아미타불을 빛이라 하여 시공을 초월한 자리를 말한다. 빛으로 와 빛으로 가는 것이 청정법신 자리인 것이다. 청정법신은 생사․시비․선악․시공(生死․是非․善惡․時空)에 관계하지 않고 무애자재한 것이다.

 

 

703, 자금광(紫金光)

 

 붉은 금빛 광명은 찬란한 빛을 말한다. 아미타경에는 청 빛은 청 빛의 광명을 놓고, 흰 빛은 흰 빛 광명을 놓고, 황 색은 누른 빛으로 광명을 놓아, 청황적백(靑黃赤白)의 자연의 모습을 말하고 인간의 과학이 칼라시대인 것이다.

 

 

704, 무변심(無邊心)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말한다. 시간이 다함이 없고 미래가 다함이 없고, 중생의 원력이 다함이 없고, 불 보살님의 원력이 다함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잠재의식을 개발하라, 유전자 생명력을 개발하라 무궁무진한 미래 세계가 나타날 것이다.

 

 

705, 적멸궁(寂滅宮)

 

 적멸궁은 부처님 사리를 모신 곳이 오대보궁(五大寶宮)이 있고, 그 중 통도사는 불찰(佛刹)이라 부처님의 정골 사리를 모신 곳으로, 불국토를 말하는 것이다. 사리를 청정법신이라 하여 열반(涅槃)의 정신세계로 생사가 둘이 아닌 것을 말한다. 

 

 

706, 강월심(江月心)

 

 달을 마음에 비유한다. 달이 강에 나타나는 것은 그림자 달이라 하여 어리석음의 중생심을 말하고, 하늘의 달을 가르치는데 중생들이 가르치는 손가락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경전의 말씀을 듣고 보고하면서 문자에 집착하여 마음을 일으킴으로 장애가 있어나고 고뇌하는 것이다. 강월심(江月心)은 고요한 밤중에 강물의 달을 바라보면 아무런 생각이 일어나지를 않고 오직 일심으로 깊은 생각에 들 수 있는 것이다.

 

 

707, 성월심(性月心)

 

 마음을 달에 비유하기도 하고 성월심은 성품이라 하기도 한다. 성품의 본바탕을 말하면 바름이고, 맑음이고, 밝음이라 할 것이다. 일체 생명은 존엄이 있고 존엄은 지혜와 복덕이 본래 원만 구족한 자리이다. 생명존엄이 나타나면 흙․빛․공기․물이 서로가 스스로가 도우고 생명존엄이 자라고 꽃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708, 연지심(蓮池心)

 

연지심은 연못으로 연꽃을 생각한다. 연꽃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 시궁창의 오염에서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한 꽃을 피우고 물을 청정하게 하는 기능이 있는 것이다. 연꽃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꽃이다.

 

 

709, 일경심(一境心)

 

한 경계는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다. 깨달음을 경계로 보고 생명들이 도전을 하는 것이다. 일경심은 복덕과 지혜가 본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중생심이 일어나면 싫어하고 시비 선악하는 것이지, 성인은 부족한 것을 충족시키면서 항상 생명이 자유를 찾게 하고 보살펴 주시면서 생명이 서로 더불어 사게 하는 자연스럽게 순응하는 힘이 가피력이다.

 

위의 불명 이해 709번까지는 뜻풀이를 하였지만, 그 후는 풀이를 하지 않는다. 반복하여 불명 이해를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불명의 뜻을 알게 되어 있다. 불명 풀이는 마음의 본성 자리에 계합하려고 노력하여 본 것이고, 반복, 반복 읽어보면 마음의 가치관이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속 주인공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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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字經

伯厚 深寧居士 王應麟(12231296)南宋 小學紺珠 玉海

 

1

人之初 사람으로 비롯하여 사람  처음

性本善 성품의 바탕은 착해 성품  착할

性相近 성품은 서로 가까우나 성품 서로 가까울

習相遠 익힘은 서로 멀다 익힐 서로 

苟不教 진실로 가르치지 않아 진실로 아니 가르칠

性乃遷 성품이 이에 옮겨진다 성품 이에 옮길

教之道 가르치는 바른길은 가르칠  

貴以專 오로지함을 높이 친다 귀할  오로지

2

昔孟母 옛날 맹자의 어머니는   어미

擇鄰處 이웃을 가려 살았다 가릴 이웃 

子不學 아들이 배우지 않아 아들 아니 배울

斷機杼 베틀의 북 실을 끊었다 끊을  

竇燕山 두연산은 구멍 제비  五代 竇禹鈞

有義方 옳은 방법이 있었으니 있을 옳을 

教五子 다섯 아들을 가르쳐 가르칠 다섯 아들

名俱揚 이름을 함께 떨쳤다 이름 함께 오를

3

養不教 길러서 가르치지 않으면 기를 아니 가르칠

父之過 아버지의 허물이요 아비  지날

教不嚴 가르쳐 다그치지 않으면 가르칠 아니 엄할

師之惰 스승의 게으름이다 스승  게으를

子不學 자식이 배우지 않으면 아들 아니 배울

非所宜 마땅한 바가 아니다 아닐  마땅할

幼不學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어릴 아니 배울

老何爲 늙어서 어찌 하리오 늙을 어찌 

4

玉不琢 옥돌은 다듬지 않으면  아니 

不成器 그릇을 만들지 못하고 아니 이룰 그릇

人不學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사람 아니 배울

不知義 옳음을 알지 못한다 아니  

爲人子 사람의 자식이 되어서  사람 아들

方少時 바야흐로 젊을 때는  적을 

親師友 스승과 벗을 가까이하고 친할 스승 

習禮儀 예의를 익혀야 한다 익힐 예도 거동

5

香九齡 황향은 아홉 살에 향기 아홉 나이 後漢

能溫席 자리를 데울 수 있었다 능할 따뜻할 자리 體溫

孝於親 어버이께 효도함은 효도 어조사 친할

所當執 마땅히 지닐 바다  당할 잡을

融四歲 공융은 네 살에 녹일   

能讓梨 배를 양보할 수 있었다 능할 사양할 배나무

弟于長 어른께 공손함은 아우 어조사 어른

宜先知 마땅히 먼저 알아야 한다 마땅할 먼저 

6

首孝弟 효도와 공손함을 머리로 해 머리 효도 아우 

次見聞 보고 들음을 다음으로 하여 버금  들을

知某數 여러 셈법을 깨치고  아무 

識某文 여러 글을 안다  아무 글월

一而十 하나가 모여 열이 되고  말이을 

十而百 열이 모여 백이 되고  말이을 일백

百而千 백이 모여 천이 되고 일백 말이을 일천

千而萬 천이 모여 만이 된다 일천 말이을 일만

7

三才者 삼재라는 것은  재주 

天地人 하늘 땅 사람이다 하늘  사람

三光者 삼광이라는 것은   

日月星 해 달 별이다   

三綱者 삼강이라는 것은  벼리 

君臣義 임금과 신하는 옳음이 있고 임금 신하 옳을

父子親 부모와 자식은 가까움이 있고 아비 아들 친항

夫婦順 남편과 아내는 따름이 있다 지아비 며느리 좇을

8

曰春夏 일러 봄 여름이라 가로  여름

曰秋冬 일러 가을 겨울이라 가로 가을 겨울

此四時 이것이 사철인데   

運不窮 돌아서 끝이 없다  아니 다할

曰南北 일러 남쪽 북쪽이라 가로 남녘 북녘

曰西東 일러 서쪽 동쪽이라 가로 서녘 동녘

此四方 이것이 사방인데   

應乎中 가운데서 맞선다 응할 어조사 가운데

9

曰水火 일러 물 불이라 가로  

木金土 일러 나무 쇠 흙이라 나무  

此五行 이것이 오행인데  다섯 

本乎數 헤아림에 뿌리를 둔다  어조사 

十干者 십간이라는 것은  방패 

甲至癸 갑에서 계까지며 천간이름 이를 천간이름

十二支 십이지라는 것은   가를

子至亥 자에서 해까지다 아들 이를 돼지

10

曰黃道 일러 황도라 가로 누를 

日所躔 해가 도는 길이다   궤도

曰赤道 일러 적도라 가로 붉을 

當中權 가운데 자리를 맡는다 당할 가운데 저울추

赤道下 적도 아래라면 붉을  아래

溫暖極 따뜻함의 끝이다 따뜻할 따뜻할 다할

我中華 우리 중화는  가운데 

在東北 동북쪽에 있다 있을 동녘 북녘

11

曰江河 일러 강 하라 가로  강이름 양자강 황하

曰淮濟 일러 회 제라 가로 강이름 건널

此四瀆 이것이 사독인데   도랑

水之紀 물의 벼리다   벼리

曰岱華 일러 대산 화산과 가로 태산  泰山

嵩恆衡 숭산 항산 형산이라 높을 반달 저울대 恒山

此五岳 이것이 오악인데  다섯 큰산

山之名 산의 명칭이다   이름

12

曰士農 일러 선비 농부라 가로 선비 농사

曰工商 일러 장인 상인이라 가로 장인 헤아릴

此四民 이것이 사민인데   백성

國之良 나라의 어진 백성이다 나라  좋을 善良

曰仁義 일러 인 의와 가로 어질 옳을

禮智信 예 지 신이라 예도 슬기 믿을

此五常 이것이 오상인데  다섯 항상

不容紊 어지럽힘을 담지 않는다 아니 얼굴 어지러울

13

地所生 땅에 자라는 것은   

有草木 풀과 나무가 있으니 있을  나무

此植物 이것이 식물인데  심을 만물

遍水陸 물과 뭍에 두루 있다 두루  

有蟲魚 곤충과 물고기가 있고 있을 벌레 고기

有鳥獸 새와 짐승이 있어 있을  짐승

此動物 이것이 동물인데  움직일 만물

能飛走 날고 달릴 수 있다 능할  달릴

14

稻粱菽 쌀 수수 콩  기장  

麥黍稷 보리 메기장 찰기장 보리 기장 기장

此六穀 이것이 육곡인데  여섯 곡식

人所食 사람이 먹는 것이다 사람  먹을

馬牛羊 말 소 양   

雞犬豕 닭 개 돼지   돼지

此六畜 이것이 육축인데  여섯 쌓을

人所飼 사람이 먹이는 것이다 사람  먹일

15

曰喜怒 일러 기쁨 성냄이라 가로 기쁠 성낼

曰哀懼 일러 슬픔 두려움과 가로 슬플 두려워할

愛惡慾 사랑 미움 욕심이라 사랑 미워할 욕심

七情具 칠정을 갖추고 있다 일곱  갖출

靑赤黃 푸름 붉음 누름 푸를 붉을 누를

及黑白 그리고 검정 하양으로 미칠 검을 

此五色 이것이 오색인데  다섯 

目所視 눈에 보이는 것이다   

16

酸苦甘 시고 쓰고 달고   

及辛鹹 그리고 맵고 짬 미칠 매울 

此五味 이것이 오미인데  다섯 

口所含 입에 머금어 맛봄이다   머금을

羶焦香 누리고 타고 향기롭고 누린내 그을릴 향기

及腥朽 그리고 비리고 썩음 미칠 비릴 썩을

此五臭 이것이 오취인데  다섯 냄새

鼻所嗅 코로 냄새 맡음이다   맡을

17

匏土革 박 흙 가죽   가죽

木石金 나무 돌 쇠 나무  

絲與竹 실과 대나무는   

乃八音 곧 팔음이다 이에 여덟 소리

曰平上 일러 평성 상성이라 가로 평평할 

曰去入 일러 거성 입성이라 가로  

此四聲 이것이 사성인데   소리

宜調協 마땅히 고르고 합한다 마땅할 고를 맞을

18

高曾祖 고조 증조 할아버지 높을 일찍 할아비

父而身 아버지 그리고 나 아비 말이을 

身而子 나 그리고 아들  말이을 아들

子而孫 아들 그리고 손자 아들 말이을 손자

自子孫 아들 손자로부터 스스로 아들 손자

至玄曾 현손 증손까지 이를 검을 일찍

乃九族 곧 구족인데 이에 아홉 겨레

人之倫 사람의 인륜이다 사람  인륜

19

父子恩 부모와 자식은 은혜롭고 아비 아들 은혜

夫婦從 남편과 아내는 좇아 따르고 지아비 며느리 좇을

兄則友 형은 곧 우애롭고   

弟則恭 아우는 곧 공손하고 아우  공손할

長幼序 어른과 아이는 차례가 있고 어른 어릴 차례

友與朋 벗들은 함께 어울려야 하고   

君則敬 임금은 곧 공경 하고 임금  공경할

臣則忠 신하는 곧 충성 한다 신하  충성

20

此十義 이것이 십의인데   옳을

人所同 사람은 한가지로 사람  한가지

當順敘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하니 당할 순할 차례

勿違背 어기고 거스르지 마라  어길 

斬齊衰 참최와 재최  가지런할 상복 참최는 3년 재최는 1

大小功 대공과 소공  작을  대공은 9개월 소공은 5개월

至緦麻 시마복에 이르러 이를 시마복  시마복은 3개월

五服終 상복 다섯의 마지막이다 다섯  끝날

21

禮樂射 예도 음악 궁술 예도 풍류 궁술

御書數 말 타기 서법 수학 어거할  

古六藝 이것이 육예인데  여섯 심을

今不具 이제는 갖추지 않고 이제 아니 갖출

惟書學 오직 서법만을 생각할  배울

人共遵 사람들이 함께 좇는다 사람 함께 좇을

旣識字 이미 글자를 알아서 이미  글자

講說文 글월을 익혀 말한다 익힐 말씀 글월

22

有古文 고문이 있고 있을  글월

大小篆 대전 소전에  작을 전자

隸草繼 예서 초서가 이어져 붙을  이을

不可亂 어지러울 수가 없다 아니 옳을 어지러울

若廣學 만일 널리 배워 같을 넓을 배울

懼其繁 그 뒤섞임을 두려워해 두려워할  많을

但略說 다만 간략하게 말해 다만 다스릴 말씀

能知原 근원은 알 수 있다 능할  근원

23

凡訓蒙 무릇 어린이를 가르쳐 무릇 가르칠 입을

須講究 모름지기 익혀서 파고 모름지기 익힐 궁구할

詳訓詁 샅샅이 주를 붙이고 자세할 가르칠 주낼

明句讀 읽힘을 밝힌다 밝을 글귀 구절

爲學者 배우려는 이는  배울 

必有初 반드시 처음이 있으니 반드시 있을 처음

小學終 소학을 마치고 작을 배울 끝날

至四書 사서에 이른다 이를  

24

論語者 논어라는 책은 말할 말씀 

二十篇 이십 편인데   

群弟子 여러 제자들이 무리 아우 아들

記善言 훌륭한 말씀을 적었다 적을 착할 말씀

孟子者 맹자라는 책은  아들 

七篇止 칠 편인데 일곱  그칠

講道德 도덕을 풀이하고 익힐  

說仁義 인의를 말했다 말씀 어질 옳을

25

作中庸 중용을 지음은 지을 가운데 

子孔伋 공급이란 사람인데 아들 구멍 속일 子思

中不偏 중은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 아니 치우칠

庸不易 용은 바뀌지 않음이다  아니 바꿀

作大學 대학을 지음은 지을  배울

乃曾子 곧 증자이다 이에 일찍 아들

自修齊 수신제가로부터 스스로 닦을 가지런할

至平治 치국평천하에 이른다 이를 평평할 다스릴

26

孝經通 효경에 뚫리고 효도  통할

四書熟 사서에 익으면   익을

如六經 육경 같은 책을 같을 여섯 

始可讀 비로소 읽을 수 있다 처음 옳을 읽을

詩書易 시경 서경 역경과   바꿀

禮春秋 주례 예기 춘추를 예도  가을 樂經 代置 周禮

號六經 육경이라 부르는데 부르짖을 여섯 

當講求 마땅히 익혀 찾는다 당할 익힐 구할

27

有連山 연산이 있고 있을 이을 

有歸藏 귀장이 있으며 있을 돌아갈 감출

有周易 주역이 있는데 있을 두루 바꿀

三易詳 세 역서가 상세하다  바꿀 자세할

有典謨 전과 모가 있고 있을  

有訓誥 훈과 고가 있으며 있을 가르칠 주낼

有誓命 서와 명이 있는데 있을 맹세할 목숨

書之奧 서경의 깊숙함이다   

28

我周公 우리 주공은  두루 공변될

作周禮 주례를 짓고 지을 두루 예도

著六官 육관을 드러내어 분명할 여섯 벼슬

存治體 통치체제를 가졌다 있을 다스릴 

大小戴 대대와 소대는  작을 

註禮記 예기를 주해하고 주낼 예도 적을

述聖言 성인 말씀을 펴고 지을 성스러울 말씀

禮樂備 예악을 갖추었다 예도 풍류 갖출

29

曰國風 일러 국풍이라 가로 나라 바람 國風

曰雅頌 일러 아송이라 가로 우아할 기릴 大雅 小雅 頌

號四詩 사시라 불렀는데 부르짖을  

當諷詠 마땅히 외어 읊었다 당할  읊을

詩既亡 시는 이미 없어지고  이미 망할

春秋作 춘추가 지어졌다  가을 지을

寓褒貶 기림 떨춤을 붙여서 머무를 기릴 떨어뜨릴

別善惡 선악을 나누었다 나눌 착할 악할

30

三傳者 세 개의 전에는  전할 

有公羊 춘추공양전이 있고 있을 공변될  公羊高

有左氏 춘추좌씨전이 있고 있을  각시 左丘明

有穀梁 춘추곡량전이 있다 있을 곡식 들보 穀梁赤

經既明 경서에 이미 밝으면  이미 밝을

方讀子 마침내 제자서를 읽어  읽을 아들

撮其要 그 요점을 취하고 취할  구할

記其事 그 일을 기억한다 적을  

31

五子者 오자라고 함은 다섯 아들 

有荀揚 순자 양자가 있고 있을 풀이름 오를 荀卿 揚雄

文中子 문중자와 글월 가운데 아들 王通

及老莊 그리고 노자 장자라 미칠 늙을 풀성할 李耳 莊周

經子通 경서 제자서를 꿰면  아들 통할

讀諸史 여러 사서를 읽어 읽을 모든 역사

考世系 역대 계보를 살펴 상고할  이을

知終始 끝남과 비롯함을 안다  끝날 처음

32

自羲農 복희씨 신농씨로부터 스스로  농사

至黃帝 황제에 이르기 까지 이를 누를 임금

號三皇 삼황이라 부르는데 부르짖을  임금

居上世 상고시대에 살았다 있을  

唐有虞 도당씨와 유우씨는 당나라 있을 헤아릴 堯舜

號二帝 이제라 부르는데 부르짖을  임금

相揖遜 서로 읍하고 겸손하여 서로  겸손할

稱盛世 태평성세라 일컬었다 일켤을 담을 

33

夏有禹 하나라 우왕이 있고 여름 있을 하우씨

商有湯 상나라 탕왕이 있고 헤아릴 있을 넘어질

周文武 주나라 문왕 무왕을 두루 글월 굳셀

稱三王 삼왕이라 일컫는데 일컬을  임금

夏傳子 하나라는 아들에게 물려 여름 전할 아들

家天下 천하를 한 집으로 해  하늘 아래

四百載 사백년을 다스리다가  일백 실을

遷夏社 하나라 종사가 옮겨갔다 옮길 여름 토지의신

34

湯伐夏 탕임금은 하나라를 쳐서 넘어질  여름

國號商 나라를 상나라라 했고 나라 부르짖을 헤아릴

六百載 육백년이 지나 여섯 일백 실을

至紂亡 주임금에 이르러 이를 껑거리끈 망할

周武王 주나라 무왕이 두루 굳셀 임금

始誅紂 주왕을 베고서 처음  껑거리끈

八百載 팔백년이 갔으니 여덟 일백 실을

最長久 가장 오래간 왕조이다 가장  오랠

35

周轍東 주나라가 동쪽으로 옮겨 두루 바퀴자국 동녘

王綱墜 왕의 기강이 떨어지고 임금 벼리 떨어질

逞干戈 전쟁을 함부로 일으켜 굳셀 방패 

尙遊說 유세가를 높여 주었다 오히려  달랠 蘇秦 張儀

始春秋 춘추시대를 비롯하여 처음  가을

終戰國 전국시대로 끝맺었다 끝날 싸울 나라

五霸強 다섯 패자가 굳세었고 다섯 으뜸 굳셀

七雄出 일곱 나라가 드러났다 일곱 수컷 

36

嬴秦氏 영씨의 진나라가  벼이름 각시

始兼併 비로소 아울러 합하니 처음 겸할 아우를

傳二世 이대를 물렸다 전할  

楚漢爭 초나라 한나라가 다퉈 가시나무 한수 다툴

高祖興 한고조가 일어나서 높을 할아비 

漢業建 한나라의 왕업을 세워 한수  세울

至孝平 효평 년간에 이르러 이를 효도 평평할

王莽篡 왕망이 나라를 빼앗았다 임금 우거질 빼앗을

37

光武興 광무제가 일어나  굳셀 

爲東漢 동한이라 하여  동녘 한수

四百年 사백년을 가서  일백 

終於獻 헌제에 이르러 마쳤다 끝날 어조사 바칠

魏蜀吳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가 나라이름 나라이름 나라이름

爭漢鼎 한나라에 셋으로 다투니 다툴 한수 

號三國 삼국시대라 부르고 부르짖을  나라

迄兩晉 두 진나라에 이르렀다 이를  나아갈

38

宋齊繼 송나라 제나라가 잇고 송나라 가지런할 이을

梁陳承 양나라 진나라가 이어 들보 늘어놓을 받들

爲南朝 남조라 하고  남녘 아침

都金陵 금릉에 도읍했다 도읍  큰언덕

北元魏 북조의 원위는 북녘 으뜸 나라이름

分東西 동서로 나누어져 나눌 동녘 서녘

宇文周 우문씨의 주나라와  글월 두루

與高齊 더불어 고씨의 제나라다  높을 가지런할

39

迨至隋 수나라에 이르러서 미칠 이를 수나라

一土宇 한 땅의 집으로 되나   

不再傳 거듭해 전하지 못하고 아니  전할

失統緒 왕통을 잃었다 잃을 큰줄기 실마리

唐高祖 당나라 고조가 당나라 높을 할아비

起義師 의로운 군사를 일으켜 일어날 옳을 스승

除隋亂 수나라 난리를 없애고 섬돌 수나라 어지러울

創國基 나라의 터를 열었다 비롯할 나라 

40

二十傳 스무 번을 전하고   전할

三百載 삼백년이 지나  일백 실을

梁滅之 양나라가 이를 없애니 들보 멸망할 

國乃改 나라가 이에 바뀌었다 나라 이에 고칠

梁唐晉 양나라 당나라 진나라와 들보 당나라 나아갈

及漢周 그리고 한나라 주나라를 미칠 한수 두루

稱五代 일컬어 오대라 하니 일컬을 다섯 번갈

皆有由 다 그런 이유가 있다  있을 말미암을

41

炎宋興 송나라를 일으켜 불탐 송나라 

受周禪 주나라의 선위를 받아 받을 두루 봉선

十八傳 십팔 대를 물려  여덟 전할

南北混 남북으로 어지러웠다 남녘 북녘 섞을

遼與金 요나라와 금나라는   

皆稱帝 다 황제라 일컬었고  일컬을 임금

元滅金 원나라가 금나라를 없애고 으뜸 멸망할 

絶宋世 송나라의 대도 끊겼다 끊을 송나라 

42

輿圖廣 원나라의 꾀함이 넓어 수레 그림 넓을

超前代 앞 시대를 넘어서나 넘을  번갈

九十年 구십년이 지나 아홉  

國祚廢 나라의 운이 그쳤다 나라  폐할

太祖興 태조 주원장이 일어나  할아비 

國大明 나라를 대명이라 하고 나라  밝을

號洪武 연호를 홍무라 하며 부르짖을 큰물 굳셀

都金陵 도읍을 금릉으로 했다 도읍  큰언덕

43

迨成祖 성조에 이르러 미칠 이룰 할아비

遷燕京 연경으로 천도하여 옮길 제비 서울

十六世 십육대가 지나  여섯 

至崇禎 숭정 임금에 이르러 이를 높을 상서

權閹肆 환관이 멋대로 설쳐 저울추 내시 방자할

寇如林 도둑이 숲처럼 많아져 도둑 같을 

李闖出 이틈이 나타나 이자성 오얏 말나오는모양 

神器焚 임금 자리가 불탔다 귀신 그릇 불사를

44

淸世祖 청나라 세조가 맑을  할아비

應景命 커다란 부름에 응해 응할  목숨

靖四方 사방을 다스려 편안할  

克大定 이겨 크게 안정시켰다 이길  정할

由康雍 강희제 옹정제로부터 말미암을 편안할 누그러질

歷乾嘉 건륭제 가경제를 거쳐 지낼 하늘 아름다울

民安富 백성이 안정되고 부유해져 백성 편안할 가멸

治績誇 다스려 쌓임을 자랑했다 다스릴 실낳을 자랑할

45

道咸間 도광제 함풍제 때   사이

變亂起 변란이 일어나 태평천국난 변할 어지러울 일어날

始英法 비로소 영국 프랑스로 처음 꽃부리 

擾都鄙 나라가 어지러워져 어지러울 도읍 다라울

同光後 동치제 광서제 뒤에 같을  

宣統弱 선통제 때 약해졌다 베풀 큰줄기 약할 부의

傳九帝 아홉 임금을 물려 전할 아홉 임금

滿業歿 만주의 왕업이 끝났다   죽을

46

革命興 혁명이 일어나 가죽 목숨 

廢帝制 군주제를 그만두고 폐할 임금 마를

立憲法 헌법을 세우고   

建民國 민주국가를 세웠다 세울 백성 나라

古今史 예나 이제나 역사에  이제 역사

全在玆 모든 것이 여기 있는데 온전할 있을 

載治亂 다스림 어지러움을 실어 실을 다스릴 어지러울

知興衰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   쇠할

47

史雖繁 역사가 비록 많으나 역사 비록 많을

讀有次 읽을 때 차례가 있으니 읽을 있을 버금

史記一 사기가 첫 번째이고 역사 적을 

漢書二 한서가 두 번째이고 한수  

後漢三 후한서가 세 번째이고  한수 

國志四 삼국지가 네 번째이고 나라  

兼證經 아울러 경서로 밝히고 겸할 증거 

參通鑑 통감을 참고한다 간여할 통할 거울

48

讀史者 역사를 읽는다함은 읽을 역사 

考實錄 실록을 참고하여 상고할 열매 기록할

通古今 고금을 꿰뚫어 통할  이제

若親目 몸소 보는 것 같다 같을 친할 

口而誦 입으로 외우면서  말이을 

心而惟 마음으로 생각하니 마음 말이 생각할

朝於斯 아침에도 여기 있고 아침 어조사 

夕於斯 저녁에도 여기 있다 저녁 어조사 

49

昔仲尼 옛날 중니는  버금  공자

師項橐 항탁을 스승 삼고 스승  전대

古聖賢 옛날의 성현을  성인 어질

尙勤學 높혀 부지런히 배웠다 오히려 부지런할 배울

趙中令 조중령은 나라 가운데  趙普

讀魯論 노론을 읽었고 읽을 노둔할 말할 論語

彼既仕 저렇게 이미 벼슬해도  이미 벼슬할

學且勤 배움에 또한 부지런했다 배울  부지런할

50

披蒲編 부들을 엮어 헤쳐 보며 나눌 부들 엮을 路溫舒

削竹簡 대 깎아 죽간을 만드니 깎을  대쪽 公孫弘

彼無書 저들은 책이 없어도  없을 

且知勉 또한 힘쓸 줄 알았다   힘쓸

頭懸樑 머리칼을 들보에 매달고 머리 매달 들보 孫敬

錐刺股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 송곳 찌를 넓적다리 蘇秦

彼不教 저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아니 가르칠

自勤苦 스스로 견뎌 부지런했다 스스로 부지런할 

51

如囊螢 반딧불을 주머니에 넣고 같을 주머니 개똥벌레 車胤

如映雪 눈에 비추기도 하니 같을 비출  孫康

家雖貧 집이 비록 가난해도  비록 가난할

學不綴 배우기에 그치지 않았다 배울 아니 그칠

如負薪 땔나무를 지고 팔고 같을  섶나무 朱買臣

如掛角 뿔에 책 걸고 소를 몰며 같을   李密

身雖勞 몸이 비록 지쳐도  비록 일할

猶苦卓 외려 어려워도 뛰어났다 오히려  높을

52

蘇老全 소로전은 蘇洵 차조기 늙을 온전할

二十七 스물일곱 살에   일곱

始奮發 비로소 떨쳐나서 처음 떨칠 

讀書籍 서적을 읽었는데 읽을  서적

彼既老 저렇게 이미 늙었다  이미 늙을

猶悔遲 오히려 늦음을 뉘우쳤다 오히려 뉘우칠 늦을

爾小生 너희 어린이들은  작을 

宜早思 마땅히 일찍 생각해라 마땅할 일찍 생각할

53

若梁灝 양호 같은 이는 後宋 같을 들보 넓을

八十二 여든 두 살이 되어 여덟  

對大廷 대정에서 대책문으로 마주할  조정

魁多士 많은 선비의 으뜸을 했다 으뜸 많을 선비

彼既成 저렇게 이미 이룸에도  이미 이룰

衆稱異 뭇사람이 다르다 일컬으니 무리 일컬을 다를

爾小生 너희 어린이들은  작을 

宜立志 마땅히 뜻을 세워라 마땅할  

54

瑩八歲 영은 여덟 살에 祖瑩 밝을 여덟 

能詠詩 시를 읊을 수 있었고 능할 읊을 

泌七歲 필은 일곱 살에 李泌 샘물흐르는모양 일곱 

能賦棋 바둑 글을 쓸 수 있었다 능할 구실 바둑

彼穎悟 저들은 빼나게 똑똑해서  이삭 깨달을

人稱奇 남들이 뛰어나다 일컬었다 사람 일컬을 기이할

爾幼學 너희 어린이들은  어릴 배울

當效之 마땅히 이를 본 받아라 당할 본받을 

55

蔡文姬 채문희는 거북 글월 

能辨琴 거문고 소리를 가릴 수 있고 능할 분별할 거문고

謝道韞 사도온은 사례할  감출

能詠吟 시를 읊을 수 있었다 능할 읊을 읊을

彼女子 저들은 여자이면서  계집 아들

且聰敏 또한 총명 영민했다  귀밝을 재빠를

爾男子 너희 남자들은  사내 아들

當自警 마땅히 스스로 경계하라 당할 스스로 경계할

56

唐劉晏 당나라의 유안은 당나라 죽일 늦을

方七歲 바야흐로 일곱 살에  일곱 

擧神童 신동으로 뽑혀  귀신 아이

作正字 한림원 정자가 되니 지을 바를 글자

彼雖幼 저렇게 비록 어렸지만  비록 어릴

身已仕 몸은 이미 벼슬을 했다  이미 벼슬할

有爲者 함이 있다는 것은 있을  

亦若是 또한 이와 같다  같을 옳을

57

犬守夜 개는 밤에 지키고  지킬 

雞司晨 닭은 새벽을 알린다  맡을 새벽

苟不學 진실로 배우지 않으면 진실로 아니 배울

曷爲人 어찌 사람이 되리오 어찌  사람

蠶吐絲 누에는 실을 내뱉고 누에 토할 

蜂釀蜜 벌은 꿀을 빚는다  빚을 

人不學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사람 아니 배울

不如物 미물만 같지 못하다 아니 같을 만물

58

幼而學 어려서 배우고 어릴 말이을 배울

壯而行 어른이 되어서 행하며 씩씩할 말이을 

上致君 위로는 임금께 힘쓰고  보낼 임금

下澤民 아래로 백성에게 베풀어 아래  백성

揚名聲 명성을 날리고 오를 이름 소리

顯父母 부모를 드러내야 나타날 아비 어미

光于前 앞으로 빛이 나고  어조사 

裕於後 뒤로도 넉넉하다 넉넉할 어조사 

59

人遺子 남들은 자식에게 남길 사람 끼칠 아들

金滿籝 금이 바구니 가득해도   바구니

我教子 나는 아들을 가르칠  가르칠 아들

惟一經 오직 한권의 경서가 있다 생각할  

勤有功 부지런하면 이룸이 있고 부지런할 있을 

戲無益 놀면 유익함이 없다  없을 더할

戒之哉 이를 삼가 살펴라 경계할  어조사

宜勉力 마땅히 힘써 노력하라 마땅할 힘쓸 

 

三字經 終

[출처] 삼자경 왕응린|작성자 johaser

1장 대구 (상대적구절)

1. 모든 것을 마음은 다스리고,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나쁜 마음 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하면 괴로움이 따르리니, 마치 소와 말 걸음에 수레바퀴가 따르듯 하리.

2. 모든 것을 마음은 다스리고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진다.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하면 즐거움이 따르리니, 마치 그림자가 꼴을 따르듯하리.

3. ‘나를 욕했다. 나를 때렸다. 나를 이겼다. 내것을 훔쳤다.' 이러한 생각을 품은 이에겐 원한이 가라앉지 않으리라.

4. ‘나를 욕했다. 나를 때렸다. 나를 이겼다. 내것을 훔쳤다.' 이러한 생각을 품지 않은 이에겐, 원한이 가라앉으리라.

5. 이 세상에서 [품은] 원한은 원한[으로 갚는다고] 풀어지지 않으리니 원한을 버릴 때에만 풀리리라. ,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여!

6.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죽어야 할 존재다.] 고 깨닫지 못하는 이가 있다. 사람이 만일 이것을 깨달으면 모든 싸움이 사라지리라.

7. [더러운 것을] 깨끗하다고 보면서 살며, 오관의 욕구를 삭이지 못하고, 음식 을 절제하지 못하고, 게으른데다 근면치 못한 사람은, 마치 바람이 약한 나무 를 넘어뜨리듯, 악마가 쉽게 정복한다.

8. [더러운 것을] 더럽게 보면서 살며 오관의 욕구를 잘 삭이면서 음식을 절제하 고, 굳은 신념을 지니고, 근면 정진하는 이는 마치 바람이 바위 산을 정복할 수 없듯이, 악마도 정복할 수 없다.

9. 더러운 것을 버리지 못하면 가사(수도승의 옷)를 입으려 할지라도, 절제와 진실이 없기 때문에 가사를 입을 가치가 없으리라.

10. 더러운 것을 버리고 온갖 계명을 지키고 절제와 진실을 지닌 사람은 참으로 가사를 입을 자격이 있다.

11. 만물의 본질이 아닌 것을 본질이라 생각하고, 만물의 본질을 본질 아닌 것으로 보는 사람은, 그릇된 생각에 서서 본질에 이르지 못하리라.

12. 만물의 본질이 본질인줄 알고, 본질 아닌 것을 본질 아닌 줄 아는 사람은, 바른 생각에 서서 본질에 이르리라.

13. 마치 허술하게 지붕을 이은 집에 비가 새듯이, 수양을 쌓지 않은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든다.

14. 마치 지붕이 잘 덮인 집에 비가 새지 않듯이, 수양을 쌓은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들지 못한다.

15. 몹쓸짓을 한 사람은 이세상에서 슬퍼하고 저세상에서 슬퍼하고 두곳에서 슬퍼한다. 자기의 더러운 행실을 보고, 그는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16.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이세상에서 기뻐하고 저세상에서도 기뻐하고 두 곳에서 기뻐한다. 자기의 깨끗한 행실을 보고, 그이는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17. 몹쓸짓을 한사람은, 이 세상에서 괴로워 하고, 내세에서도 괴로워하고, 두곳에서 괴로워 한다. ‘몹쓸 짓을 했다'하며 괴로워 하고, 지옥에 떨어져 다시 괴로워한다.

18.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이세상에서 기뻐하고 내세에서도 기뻐하고 두곳에서 기뻐한다. '착한일을 했다'하고 기뻐하고, 하늘나라 가서도 더욱 기뻐한다.

19. 가령 많은 경전을 외울지라도 방종하여 실천하지 않는 자는, 남의 소만 세고 있는 목자일 뿐 [참된]수도자가 되지 못한다.

20. 가령 적은 경전을 외울지라도 법을 따르고, 탐욕, 노여움, 헤매임을 버리고, 바른 지혜가 있고 마음의 자유를 얻고, 이 세상과 저 세상에 얽매이지 않은 이는 참된 수도자에 끼게 된다.

2장 근면하라

21.게으르지 않음은 영원히 사는 길이요, 게으름은 죽음의 길이다.게으르지 않은 이는 죽지 않겠지만, 게으른 이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22. 이 이치를 분명히 알고 거스르지 않는 달인은 게으르지 않음을 기뻐하고, 성인의 경지를 즐기리라.

23. 생각을 깊이 하고 참을성 있고 항상 힘써 애쓰는 어진 이는, 가장 높은 자유와 행복이 있는 열반을 얻으리라.

24. 애쓰고 깊이 생각하고, 행실이 깨끗하고 신중하게 행하고 스스로 억누르고 법에 따라 사는 근면한 사람은, 그 영광이 더욱 빛나리라.

25.애쓰고 부지런하고, 깊은 자제로써, 꾹 억누름으로 지혜가 있는 이는, 홍수 (번뇌)도 밀어낼 수 없는 섬을 쌓아야 하리.

26. 어리석어 슬기 없는 이는 게으름에 빠지고, 슬기가 있는 이는 귀중한 재산을 지키듯 부지런함을 지킨다.

27. 게으르지 말라. 쾌락을 가까이 말라. 정욕에 가까이 말라. 게으르지 않고 깊은 생각을 하는 이만 큰 안락을 얻으리라.

28. 어진이가 부지런하여 게으름을 물리칠때 지혜의 높은 탑에 오르고, 근심을 떠나 근심하는 어리석은 뭄리응 내려다 본다. 마치 산에 오른이가 땅에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듯.

29. 게으른 무리 가운데서 부지런하고 잠자는 무리 사이에 깨어 있는 어진 이는, 빠른 말이 느린 말을 앞질러 달리듯이 나아간다.

30. [마가반(제석천)]신은 부지런 함으로써 모든 신의 으뜸이 되었다. 부지런함은 찬미를 받고, 게으름은 언제나 비난을 받는다.

31. 부지런함을 즐기고 게으름을 두려워 하는 수도자(비구), 크고 작은 모든 속박을 불같이 태우면서 전진한다.

32. 부지런함을 즐기고 게으름을 두려워 하는 수도자는 열반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3장 마 음

33.마음은 불안하여 흔들리고, 지키기 어렵고, 억제하기 어렵다.어진이는 마음을 곧게 지키기를 마치 활쟁이가 화살을 [곧게 만들듯이] 곧게 한다.

34. 물속 제 고장에서 물밖으로 던져진 물고기 처럼, 이 마음은 마왕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파닥거린다.

35. 잡기 어렵고 경솔하고 욕정따라 헤매는 마음을 억제하기란 즐거운 일이다. 억제된 마음은 안락을 가져다 주리라.

36.몹시 알아보기 어렵고 또 아주 섬세하고, 욕정에 따라 헤매는 마음을 슬기로운 이는 지켜야 하리라. 잘 지켜진 마음은 안락을 가져다 주리라.

37.멀리 홀로 가며, 꼴도 없이 마음속에 숨은 생각을 억제하는 동안에는 마귀의 굴레에서 벗어나리라.

38. 마음이 불안하고 바른법을 모르며, 신념이 흔들리는 사람의 지혜는, 완성을 이루지 못하리라.

39. 마음에 번뇌가 없고, 생각이 흔들리지 않고, 또 선악을 초월하고, 깨어있는 사람에겐 두려움이 없으리라.

40. 이 몸은 물항아리처럼 [깨지기 쉬운 줄] 알고, 이 마음을 성곽처럼 굳건히 하고서, 지혜를 무기로 가지고 악미와 싸우라. 싸워 얻은 것은 지키고 앞으 로 전진하라.

41. 아아, 이몸은 곧 땅위에 누우리라. 의식도 없이 쓸모도 없는 나무토막처럼 버림을 받으리.

42.적이 적을 대하고 원수가 원수를 향하여,어떠한 []을할지라도, 몹쓸 악을 향한 마음은 더욱 큰악을 사람에게 하리라.

43. 어머니와 아버지, 어느 친척이 주는 선 보다도, 바른 도를 향한 마음은, 우리에게 더 큰 선을 주리.

4장 꽃

44. 누가 이세상과 염라계와 천상계를 정복할 것인가? 누가 훌륭하게 설법된 진 리의 말씀을 모을 것인가? 마치 솜씨 좋은 이가 예쁜 꽃을 찾아 꾸미듯 할 것인가?

45. [불교의] 수도자는 이세상과 염라계와 천상계를 정복할 수 있다. 그 수도자 는 훌륭하게 설법된 진리의 말씀을 모을 수 있다. 마치 솜씨 좋은 사람이 예 쁜 꽃을 찾아 꾸미듯 하리.

46.이 몸은 늘 거품 같고, 아지랑이 같은줄 깨달은 이는, 악마의 꽃화살(유혹)을 끊어 버리고,[지옥의] 염라왕과 만나지 않는 [세계에] 이르리라.

47. (쾌락)을 꺾는 일에만 마음이 쏠려, 애욕에 묻힌 사람은 죽음의 신이 앗아 간다. 마치 잠자는 마을을 홍수가 휩쓸어 가듯.

48. 꽃 만을 꺾고 마음에 집착을 가지며 애욕에 지칠 줄 모르는 이는, 죽음의 마 귀가 정복하리라.

49. 벌이 꽃과 향내와 빛깔을 다치지 않고, 단 꿀을 따가듯이, 성자(무니)는 마 을에서 탁발을 해야 한다.

50.남의 잘못을 보지 말라. 남이 한 일, 하지 않은 일을 보지 말라. 내가 저지 른 것(과실)과 하지 않은 것(게으름)만을보라.

51. 사랑스럽고 색깔이 아름다울 지라도 향기가 없는 꽃처럼 실천이 따르지 않는 훌륭한 말은 효과가 없으리라.

52. 사랑스럽고 색깔이 아름답고 향기 짙은 꽃처럼, 실천이 따른 훌륭한 말은 효 과가 있으리라.

52. 쌓아 올린 꽃 무더기에서 꽃 다발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사람으로 태어났 다면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하리라.

54. 꽃 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한다. 찬다라,타가라,발리카의 향도 마찬 가 지다. 그러나 착한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흘러가고 바른 사람은 모든 방향에 향기를 뿌리리라.

55. 찬다라,타가라,푸른연꽃,밧시키이 따위 많은 향이 있을지라도 계의 향이 가 장 뛰어난 것이다.

56. 타가라나,찬다나의 향기는 미미한 것이다. 계를 지키는 이의 향기는 더할 나 위 없는 것으로써 신들에게 까지도 번지어 간다.

57. 계를 다 지키고, 부지런하고, 바른 지혜로 해탈한 사람은 마왕도 가까이 할 수 없다.

58. 큰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의 산더미 속에서도 향기 짙은 아름다운 연꽃이 피 어오르듯.

59. 쓰레기처럼 눈먼 중생 가운데 있으면서 바로 깨친이의 제자는 예지로서 찬란 하게 빛나리라.

5장 바 보

60. 잠 못 이루는 이에게 밤은 길고, 지쳐있는 자에겐 지척도 천리다. 바른 진리 를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에게 윤회는 길다.

61. 자기보다 훌륭하거나 비슷한 이를 만나 길을 갈 수 없거든 차라리 혼가서 길 을 가라. 어리석은 자와는 길벗이 되지 말라.

62. 어리석은 사람은 이아이는 내 아들이다또는 내게는 재산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번민한다. 벌써 자신조차 제것이 못되는데, 어찌 아들이나 재산 을 제 것이라 할 것인가!

63.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 어리석은 줄 알고 있다면 그 만큼은 어진 이인 것이 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 슬기롭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정말 어리 석은 사람이다.

64. 어리석은자가 한평생 어진 이를 섬기더라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마 치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는 것] 같으리.

65. 지혜있는 이는 한 순간이나마 어진 이를 섬긴다면 곧 진리를 깨닫기를, 마 치 혀가 국맛을 [알듯이] 깨달으리.

66.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를 원수처럼 대하여 행동한다. 괴로운 결과를 부를 몹쓸 행실을 하면서.

67. 행동한 뒤에 뉘우치거나, 눈물을 흘려 울면서 그 대가를 받는다. 이런 행실 은 훌륭하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다.

68. 행위한 뒤에 뉘우치지도 않고 즐거워하고 반갑게 그 대가를 받게되는 행실 은, 훌륭하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69. 어리석은 자는 악도 그 과보가 생기기 전엔 그것을 꿀같이 달콤하게 생각한 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악의과보가 생기면 그 때에야 괴로움을 맛본다.

70. 어리석은 사람은 가령 몇달을 [쿠사]풀을 놓아 [적은]음식을 먹는 고행을 하더라도, 진리를 생각하는 사람의 16분의1 만큼도 값어치가 없다.

71. 나쁜행실을 해도 새로 짠 우유처럼 곧 굳어지지 않는다. 재로 덮인 불씨처럼 타면서 어리석은 자를 따른다.

72. 어리석은 자에게 지혜가 생겨도 마침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지혜는] 도리어 그의 머리를 부수면서 그의 행운을 좀먹는다.

73. 어리석은 사람은 헛된 명성을 바란다. 수도자들 가운델는 웃자리를, 승단안 에서는 다스리는 권력을, 다른집에 있어서는 공양을 [바란다.]

74.[집에 있는이나 집떠난이나 이것을 한 것은 나라고 생각하라.그들은 해야 할 일이든 하지 말아야 할 일이든 무었이나 내마음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생각이요, 욕심과 교만은 점점커만 가리라.

75. 하나는 이익으로 인도하는 길이요. 하나는 열반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부처님의 제자인 수도승은 이치를 깨닫고 남의 존경을 기뻐하지 말라 외로운 길 걷기에 한결 같으라.

6장 어진 이

76. 잘못과 죄를 가르쳐 주고 꾸짖는 슬기로운 이를 만났으면 그와 사귀어라. 마 치 감추어진 보배를 가르쳐주는 이를 대하듯하라. 그와 사귀면 이익이 있을 뿐 손해는 없으리니

77. 계를 지켜라, 가르쳐라. 그리고 부당한것을 피하라. 이런이를 선한 이는 사 랑하고, 악한 이는 미워하리라.

78. 나쁜 친구와 사귀지 말라. 저속한 사람과도 사귀지 말라. 착한 벗과 사귀고, 가장 훌륭한 사람과 사귀어라.

79.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맑은 마음으로 잘자리라. 어진이는 언제나 성인들이 말씀한 진리를 즐긴다.

80. 운하의 기사는 물을 끌어들이고, 활쟁이는 화살을 곧게 만든다. 목수는 나무를 곧게 다듬고 어진이는 자신을 제어한다.

81. 굳은 바위가 바람에 끄떡 않는 것처럼, 어진이는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흔 들리지 않는다.

82. 깊은 못이 고요하고 맑은 것처럼, 어진이는 진리를 듣고 마음이 깨끗해진다.

83.착한 사람들은 모든것에서 [욕망을] 버리고, 쾌락을 구하여 헛수고를 않는다.어진이는 즐거움을 만나나 괴로움을 만나나 흔들리는 기색이없다.

84. 나를 위하거나 남을 위해서 아들이나 재산이나 토지를 원하지 말라. 계명을 가지고 지혜를 가지고 바른 사람이 되라.

85. 사람들 가운데서 피안에 이른 이는 아주적다. 거의 이편강가에서 서성거릴 뿐이다.

86.진리가 바로 전해졌을 때 그 이치를 따라간 사람은 피안에 이르리라. [] 사의 세계는 몹시 넘기 어려운 것이다.

87. 어진이는 악을 버리ㅣ고 선을 닦아야 하리. 집을 [나와] 집떠나고 외롭고 쾌 락이 없는 곳으로.

88. 묘방의 약을을 구하라. 어진이는 욕망을 버리고 한푼도 가지지 말아라. 마음의 더러움을 씻고 자신을 깨끗이 하라.

89.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마음을 바르게 수양하고 집착을 끊은 다음, 소유욕을 버리고 기뻐하며 번뇌를 다 없애어 빛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열반에 들어간 것이다.

7장 성인

90. [속세의] 나그넷길을 마치고 근심을 떠나 모든 면에서 자유를 얻어, 모든 속박을 끊은 사람에겐 고뇌가 없다.

91. [바르게]생각하는 사람은 집 떠나고, 쉴 집도 반기지 않는다. 호수를 더나는 백조처럼 그들은 저마다 집을 떠난다.

92. 저축도 없고, 알맞게 먹고, 공과, 무상과, 자유를 얻은 이의 길은, 마치 하 늘을 나는 새의 [길에] 자취가 없듯이 정녕 따르기 힘들다.

93. 모든 번뇌를 다 끊어버리고, 먹을 것에 구애를 않고 공과 무상과 자유를 얻 은 사람들의 발 자취는, 하늘을 나는 새의 발자취처럼 따르기 힘들다.

94. 잘 길들인 말 처럼, 모든 감각이 잔잔하고, 교만이나 번뇌를 끊어버린 사람 은 신들 조차 부러워 한다.

95. 경건한 [인격]자는 대지와 같이 거스르지 않고, 또 문지방 같이 깨끗한데, 흙탕이 없는 호수와 같다. 이런이에게 벌써 윤회가 없다.

96. 바로 깨닫고 자유를 얻어 고요함을 얻은 사람은, 마음은 고요에 돌아가고 말과 행동은 조용하다.

97. 망령된 믿음 없이 절대를 깨닫고 윤회의 끈을 끊어버리고 유혹을 물리치고 욕망마져 버린 사람은, 참으로 뛰어난 사람이다.

98. 마을이거나 숲속이거나, 푹 패인 땅이거나 또 평지이거나, 예배할만한 이(아라한)가 사는 곳이면 어딜지라도 즐거웁다.

99. 숲속은 즐겁다. 세상사람들이 즐기지 않는 곳에서 탐욕을 떠난 이들은 즐거 우리라. 그들은 감각의 쾌락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8장 천

100. 가령 쓸없는 말을 모아 천마디를 만들어도 들을 때 마음이 가라앉는 유익한 한마디 쪽이 뛰어난 말이니라.

101. 가령 쓸모 없는 귀절을 모아 천편의 시를 짓기보다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 는 한 귀절의 시가 뛰어난 것이다.

102. 쓸모 없는 귀절로 된 백편의 시를 읊기보다,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는 한편 의 싯귀가 뛰어난 것이다.

103. 싸움터에서 백만인을 이기기 보다, 자기 하나를 이기는 이가 가장 뛰어난 승리자다.

104. 자기를 이기는 일은 남을 이기는 일보다 뛰어난 것이다, 자신을 억제하고 항상 절제하는 사람의 [승리]

105. 신도 귀신(건달바)도 마왕도 또한 범천도 이런이의 승리만은 꺾을 수 없다.

106. 달마다 천금을 들여 백년동안 희생을 바치기보다, 단 한 순간이나마 잘 수양한 이를 공양하는 편이 뛰어난 것이다.

107. 숲속에서 백년 동안 화신에게 제사 지내기 보다, 단 한 순간이라도 잘 수양한 사람에게 공양하는 편이 뛰어난 것이다.

108. 이 세상에서 복을 얻기 위하여 한 해 동안 희생을 바치고 제사를 드려도, 그 모든 것은, 자신을 잘 수양한 사람을 공경하는 것보다 반의 반도 못하리라.

109. 잘 공경하고 윗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에게는, 이 네가지 복이 더 는다. 곧 나이, 아름다움, 행운, 힘이다.

110. 비록 백년을 살더라도 계명을 깨뜨리고 마음의 고요를 잃는다면 바로 행하 며, 마음의 고요를 가진이가 하루 사는 편이 뛰어난 것이다.

111.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지혜가 없고 마음의 고요를 잃는다면 지혜가 있고, 마음의 고요를 가진 사람이 단 하루를 사는 편이 뛰어난 것이다.

112.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사는 하루가 낫다.

113.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낳고 죽는 이치를 모른다면, 낳고 죽는 [이치]를 아 는 이의 하루 사는 편이 뛰어난 것이다.

114.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죽음이 없는 도를 모른다면 죽음이 없는 도(열반)를 아는 이가 하루를 사는 편이 더 뛰어난 것이다.

115.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가장 높은 진리를 모른다면 가장 높은 진리를 아는 이가 하루를 사는 편이 더 뛰어난 것이다.

9장 악

116. 선한 일은 서둘러 행하고, 악한 일에서는 마음을 멀리하라. 선한일을 하는 데 게으르면 그의 마음은 악을 즐긴다.

117. 사람이 만일 악을 했다면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라. 그 일을 즐겁게 여기 지 말라. 악이 쌓는 것은 괴로움이다.

118. 사람이 만일 선한 일을 했다면 늘 그것을 되풀이 하라. 그일을 즐겁게 여기 라. 선이 쌓는 것은 즐거움이다.

119. 악한자도 그 악의 열매가 맴ㅈ기 전에는 행복을 맛본다. 그러나 악행의 열 매가 생겼을 때, 악한자는 재앙을 맛본다.

120. 선한자도 선의 열매가 맺기 전에는 몹쓸 괴로움을 맛본다.그러나 선해의 열 매가 생겼을 때, 선한자는 행복을 얻는다.

121. ‘내게 업보가 오지 않으리라'하고 악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물방울이 고여 서 항아리를 채운다. 어리석은 자는 조금씩 쌓여서 악으로 가득 차리라.

122.‘내게 업보가오지 않으리라'고선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물방울이 고여서 항아리를 채운다.슬기로운 이는 조금씩 쌓여서 선으로 가득차리라.

123. 동행이 적고 재물 많은 상인이, 위험한 길을 [피하]듯이, 모든 악행은 피해 야 한다.

124. 손에 상처가 없다면 독을 만질 수 있으리라. 상처 없는 자에게 독은 해를 주지 못한다. 악을 않는 이에게 악은 없다.

125. 순진하고 때 없는 이를 해치고, 깨끘하고 더럽지 않은 이를 (해친다면) 악 은 오히려 어리석은 자에게 떨어진다. 마치 맞바람에 던진 먼지가 되 날아 오듯이.

126. 어떤이는 모태안에 들어가고, 악인은 지옥으로 [떨어지고] 선인은 하늘나라 로 올라간다.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이는 열반에 들어가고.

127. 하늘이나 바다나 산속 동굴에 들어가도 악업의 갚음에서 벗어날 세계는 없으리라.

128. 하늘이나 바다나 산속 동굴에 들어가도 거기 머물러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세계는 없으리라.

10장 채 찍

129. 모두 <채찍>을 두려워 하고 모두 죽음을 두려워 한다. 제몸에 견주어서 [남을] 죽이지 말라. 죽이게 하지 말라.

130. 모두 채찍을 두려워 하고 모두 삶을 사랑한다. 제몸에 견주어서 남을 죽이 지 말라. 죽이게 하지 말라.

131. 복락을 바라는 중생에게 [채찍]으로 해치는 자느 자기복락을 구하여 죽은 다음 복락을 얻지 못하리.

132. 복락을 바라는 중생에게 <채찍>으로 해치지 않느 사람은 복락을 구하여 죽 은 다음 행복을 얻으리.

133. 거칠은 말을 하지 말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성난 말은 고통이다. <채찍>은 오히려 내게 돌아오리.

134. 깨진 징처럼 묵묵히 있는 사람은 벌써 열반을 얻은 것이다. 네겐 노여움이 없기 때문에.

135. 소치는 사람이 <채찍>으로 소를 목장으로 몰고 가듯, 늙음과 죽음은 중생의 목숨을 몰고 간다.

136. 어리석은 자는 악을 하고도 깨닫지 못하고, 불속에서 타듯 제 행실로써 괴로워 하리.

137. 죄없는 순진한 사람에게 <채찍>으로 해치는 자는 다음 열가지 중에서 한가 지 갚음을 만나리라.

138. 곧 심한 고통, 노쇠, 육체의 상처, 중병, 정신착란.

139. 또는 왕이 내리는 재앙, 지독한 중상, 친척의 멸망, 재산의 파멸.

140. 또 불이 그의 집을 태우니, [열 가지 다]. 어리성은 자는 죽은 다음 지옥 에 지옥으로 떨어지리.

141. 나체의 고행, 소라처럼 짠 상투도, 몸에 재를 바름도, 또 고요히 앉음 [따 위 갖가지 고행도] 의심을 끊지 못한 중생을 깨끗이 할 수 없다.

142. 몸을 화려하게 꾸몄더라도 냉정하고 고요한 마음을 지니고 제어하고, 자제 하고 음욕을 끊고, 모든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 이야말로 바라문이며, 수도 자이며 수도승이다.

143. 훌륭한 말이 <채찍>을 피하듯이 누가 겸손으로 자기 자신을 억제 하겠는가?

144. 채찍을 맞은 훌륭한 말처럼, 부지런히 도를 닦으라 믿음과 계행과 정진으로, 정신통일과 진리의 식별로, 밝은 지혜와 옳은 행동을 아울러 갖추고, 묵상을 다하여 커다란 고통을 없이 하리라.

155. 운하의 기사는 물을 끌어들이고, 활쟁이는 화살을 곧게 만들고, 목수는 나무를 깎아 다듬고 덕있는 이는 자신을 제어한다.

11장 늙 음

146. 무엇을 기뻐하고 있는가? 무엇을 즐기고 있는가? [이세상은] 항상 불타고 있는데. 당신들은 암흙에 쌓여 있다.왜 빛을 구하지 않는가?

147. 보라, 이 꾸며놓은 형체, [이 몸은] 합성된 상처 덩어리요. 언제나 앓고, 욕심이 많고, 견고하지도, 영원하지도 않다.

148. 이 육신은 늙어 시들고, 병고의 주머니요, 깨지기 쉽다. 썩은 육체는 흩어 지고, 삶은 반드시 죽음으로 끝난다.

149. 가을에 버려진 표주박처럼, 이 흰 뼈다귀를 보고 무슨 기쁨인들 있으랴!

150. 뼈로 성곽을 이루고, 살과 피로 칠하여 졌다. 그속에 늙음과 죽음과 거짓이 도사리고 있다.

151. 찬란하게 꾸민 임금의 수레도 닳아 없어지고, 육신도 또한 늙는다. 하지만 착한이의 교법은 시들지 않으니, 착한이는 서로 교법을 말한다.

152. 보고 들은게 적은 사람은 황소처럼 늙는다. 살은 찌지만 지혜는 자라지 않는다.

153. 나는 이집(육체)을 지은 자를 구하여 찾지 못 한채 여러생을 보냈으나 생존은 다 고통이었다.

154. 집을 지은 이여! 이제 당신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다시 집을 짓지 않으리라. 기둥은 부러지고 서까래는 내려 앉았다. 마음은 만물을 떠나, 애욕을 다 면할 수 있었다.

155. 젊었을 때 도를 닦지 않고 재산을 모으지 못한 사람은 고기 없는 못에 사는 늙은 백로처럼 죽어가리라.

156. 젊었을 때 도를 닦지 않고 재산을 모으지 못한 사람은 부러진 화살처럼 지난 일을 뉘우치며, 한숨 지으리라.

12장 자기(제몸)

157.자기를 사랑해야 할 줄 안다면 자기를 잘 지켜야 한다. 지혜있는 이는 밤의 세 때(청년, 장년, 노년의 세 때)중 한번쯤은 깨어 있어야한다.

158. 먼저 자기를 바로 갖추고 남을 가르치라. 그러면 현명한 이는 괴로워하지 않으리라.

 

159. 남을 가르치듯 스스로 행하면 그 자신을 잘 억제할 수도 있고,또 남도 잘 억제할 수 있게될 것이다.

160. 자기만이 자기의 주인, 어떤 주인이 따로 있으랴? 자기만 잘 제어 할 때 얻 기 힘든 주인을 얻은 것이다.

161. 자기가 한 악은 자기에게서 생겼고, 자기에게서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마치 금강석이 굳은 마니구슬을 [부숴 버리듯이] 어리석은 자를 부숴버린다.

162. 파계가 심한 자는 칡넝쿨이 '샤알라' 나무를 휘어잡아 [말라 죽기를 기다리 듯], 원수가 바라듯, 스스로 [파멸] 한다.

163. 몹쓸 짓과 제게 해되는 행실은 하기 쉽다. 이롭고 선한 일은 행하기 어렵다.

164. 거룩하고 바르게 살아 예배하기에 합당한 이(아라한)의 가르침을 몹쓸 견해 로 비방하는 바보들은, 열매가 여물면 저절로 말라죽는 '캇디카' 갈대처럼 스스로 파멸한다.

165. 스스로 악을 하면 스스로 더러워지고, 스스로 악을 하지 않으면 깨끗해 진다. 깨끗함과 더러움은 자신에 달려있다. 아무도 남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다.

166. 아무리 큰일이더라도 남을 위한다는 핑계로 자신의 의무를 등한시 하지 말라. 자기 의무를 알고 그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13장 세속

167. 비열한 짓을 하지 말라. 그릇된 견해에 따르지 말라. 세속에 속한 무리가 되지 말라.

168. 힘차게 일어나라. 게으르지 말라. 바른 행실을 하라. 바르게 사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세상에서나 안락하게 잠잔다.

169. 바른 행실을 하라. 나쁜 행실을 하지 말라. 바르게 행하는 이는 이세상에서 나 저세상에서나 안락하게 잠잔다.

170. 물거품처럼, 아지랑이처럼, 이세상을 보는 사람은 죽음의 왕을 보지 않으리라.

171. 와서보라 임금의 수레처럼 잘 꾸민 이세계를, 어리석은 자는 그속에 빠지고, 지혜로운이는 집착 하지 않는다.

172. 전에는 게으렀으나 나중에는 게으르지 않는다면 그사람은 구름에서 벗어난 달처럼 이세상을 비추리라.

173. 몹쓸 행실을 하였을 지라도 착한 행실로 덮어버리면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 세상을 비추리라.

174. 이세상은 암흙이다. 그속에서 잘 통찰하는 사람은 드물다. 마치 그물에서 벗어난 새와 같이 하늘에 오르는 이는 적다.

175. 백조는 태양의 길을 가고 신통의 힘으로 하늘을 난다. 현명한 이는 악마와 그 무리들을 쳐 부수고 이 세상을 벗어난다.

176. 단 하나인 법을 어기고, 거짓말을 하고 내세를 믿지 않는 사람은 몹쓸 악이라도 서슴치 않는다.

177. 진실로 욕심이 많은 삶은 하늘 나라에 가지 못한다. 어리석은 자는 보시를 찬양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명한 이는 보시를 기뻐함으로 저 세상에서 복락을 누린다.

188. 온 땅의 왕이 되기 보다도 혹은 하늘에 올라가기 보다도 온세상을 다스리기 보다도 열반에 들어가는 첫걸음(예류과)은 훌륭하다.

14장 부처님

179. 그 승리는 결코 잃지 않고, 그 승리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따를 수 없다. 행동범위는 한없고, 발자취도 없는 부처를 어떠한 도로서 꾀거나 인도 할 수 있겠는가?

180. 그물처럼 뒤 엉킨 욕망조차 어디에든 유혹할 수 없다. 행동범위는 한없고 발자취 없는 부처를, 어떠한 도로 꾀어 이끌 수 있겠는가?

181. 정신 통일에 잠기고 슬기롭고 집떠난 생활의 고요를 기뻐하고, 깨다름을 얻 고 깊이 생각하는 이는 신들 조차 부러워 한다.

182.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살아가기도 어렵고, 바른 가르침을 듣기도 어렵 다. <깨달은 사람들(여러 부처)>이 나타나기 어렵다.

183. 모든 악을 하지 않고 선을 행하고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한다. 이것이 <깨달 은 이들>의 가르침이다.

184. 참고 견딤은 가장 높은 고행이요, 열반은 가장 뛰어난 것, 이라 <깨달은 이 들>이 외친다. 참으로 남을 해치는 집떠난 이는 없고 남을 괴롭히는 수도자 는 없다.

185. 욕하지 않고, 해치지 않고. 계율을 지키고, 음식을 절제하고, 홀로 살면서 앉아 있고, 위없는 사색에 전념한다. 이것이 '깨달은 사람들'의 가르 침이다.

186. 가령 금이 소니기처럼 쏟아질 지라도 욕망을 채울 수는 없으리라. '욕망에 는 짧은 쾌락과 많은 고통이 있다'고 알고서 현자는

187. 천상의 쾌락에도 기뻐하지 않는다. <바르게 깨달은 이>의 제자는 이 욕망이 다 없어짐을 기뻐한다.

188. 공포에 쫒긴 사람들은 산과 수풀과 동산과 나무와 사당에 갖가지로 의지할 곳을 구한다.

189. 그러나 그곳은 안전한 의지 할 곳은 못되고 가장 좋은 곳도 아니다. 그런곳 을 얻은 후에도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190. 부처와 교법과 교단에 의지할 곳을 찾은 사람은, 바름 지혜로서 네가지 거룩한 진리(사제)를 본다.

191. 괴로움과 괴로움이 일어난 원인, 괴로움을 없앰과 괴로움을 없애기에 이르 는 여덟가지 바른길(팔정도)이 있다.

192. 그것만이 안전하고 뛰어난 의지할 곳이다. 이런 의지할 곳을 얻은 후에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

193. 거룩한 이는 얻기 어렵다. 아무데서나 태어나지 않는다.이런 현명한 사람이 태어난 가문은 안락하며 번영하리라.

194. 깨달음 이의 탄생은 즐겁고, 단결 속에 살고 있는 자들의 수도도 즐겁다.

195. 공양할만한, 허망을 벗어나 근심 고민을 초월 한 부처, 혹은 부처의 제자를 공야하는 것.

196. 마음의 자유를 누리고 공포로부터 벗어난 사람을 공양하는 공덕은 아무도 헤아릴 수 없으리라.

15장 행 복

197. 원한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 원한을 버리고 크게 즐기며 살자. 원한을 가 진 사람들 가운데 있으니, 원한에서 벗어나 살자.

198.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있으나 고민에서 벗어나 크게 즐기며 살자. 고민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 있으니 고민에서 벗어나 살자.

199. 탐욕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탐욕에서 벗어나 크게 즐기며 살자. 탐 욕이 있는 사람들과 살면서 탐욕에서 벗어나 살자.

200.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크게 즐기며 살자. 우리는 광음천의 신들처럼 즐거움을 먹으며 살자.

201. 승리는 원한을 낳고, 패자는 괴로워 쓰러지리라. 마음의 고요를 얻은 사람 은 승리나 패배를 버리고, 즐겁게 산다.

202. 탐욕과 같은 불은 없고, 노여움과 같은 죄는 없고, 육체적 존재보다 더한 괴로움은 없고, 나음의 고요보다 더한 안락은 없다.

203. 굶주림은 가장 큰 병이요. 만물은 가장 큰 괴로움이다. 이것을 참으로 안다 면 위없는 안락의 열반이 있다.

204. 건강은 가장 큰 이익이고, 만족은 가장 큰 재산이다. 믿고 의지함은 가장 귀한 친척이고, 열반은 가장 높은 복락이다.

205. 고독의 맛과 고요의 맛을 본 사람은, 진리의 기쁜 맛을 맛보면서, 공포나 악으로부터 벗어난다.

206. 성인을 만남은 좋은 일이다. 함께 살면 언제나 즐겁다. 어리석은 자를 만나 지 않으면 늘 편안 하고 즐겁다.

207. 바보와 함께 걷는 자는 오래 괴로워 한다. 바보와 함께 사는 것은 원수와 함께 사는 것처럼 언제니 고통이다. 현명한 사람과 함께 살면 친척들의 모 임처럼 즐겁다.

208.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으리라.

마치 달이 천체의 괴도를 따르듯이 현명하고 지혜 있고 널리 배우고 잘 견 디고 믿음이 있고 거룩한 사람, 이러한 선인, 선지식을 따르라.

16 장 쾌 락

209. 잡념을 일삼고 명상에 전념하지 못하고, 뜻있는 일을 버리고 좋아하는 것을 따르는 자는, [오히려] 명상에 깊이 잠긴 이를 부러워 한다.

210.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날라. 미워하는 사람과도 만나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음은 괴로움이다. 미워하는 사람과 만남도 괴로움이다.

211.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음도 재앙이니 까. 사랑과 미움이 없는 사람은 집칙이 없으리.

212. 사랑에서 근심이 생기고 사랑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에서 벗어난 이는 근심이 없는에, 어찌 두려움이 있으랴!

215. 애욕에서 근심이 생기고, 애욕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애욕에서 벗어난 이에 겐 근심이 없으니 어찌 두려움이 있으랴.

216. 욕망에서 근심이 생기고, 욕망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욕망에서 벗어난 이에 겐 근심이 없으니 어찌 두려움이 있으랴.

217. 계행과 통찰력을 갖추고 바르게 행하고, 진실을 말하고, 자기 의무를 다하 는 자는 이웃의 사랑을 받으리라.

218. 밝혀 말할 수 없는 경지(열반)에 이르기를 바라고, 생각이 깊으며, 갖가지 욕망에서 벗어난 이를 [생사의]<물결을 거슬러 가는 사람>이라 부른다.

219. 오랜 세월 타향을 헤내다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을 친척이나 친 구들이 반겨 맞이 하리.

220. 이러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서 돌아올 때 친척 들이 환영하듯 좋 은 과보로서 환영 받는다.

17장 노여움

221. 노여움을 버려라, 거만을 버리라. 세속적인 속박을 뛰어 넘으라. 마음과 사 물에 집착하지 않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괴로움에 쫒기지 않 느리라.

222. 흔들리는 마차를 제어하듯 일어나는 노여움을 삭이는 이를 나는 진짜 마부 '라고 부르겠다.다른 사람들은 고삐만을 쥐고 있을 뿐인데.

223. 온화함으로 노여움을 이기라. 선행으로 악행을 이기라. 베품으로써 인색함 이기라. 진실로써 거짓을 [이기라].

224. 진실을 말해라. 노여워하지 말라. 비록 아주 적은 것을 바라더라도 주라 이 세가지 덕행으로 신들의 곁으로 가리.

225. 죽이지 않고 항상육신을 억제하는 성자들은 불멸의 자리(열반)에 이른다. 거기에 이르면 근심하지 않는다.

226. 항상 꺠어있고, 밤낮 공부하고, 열반을 추구하는 이의 번뇌는, 마침내 없어 진다.

227. 아툴라(신자의 이름), 이것은 예전부터 그러하며, 지음 시작된게 아니다. ‘침묵을 지켜도 욕을 하고, 말을 많이해도 욕을 하고,적당히 말해도 욕을 먹는다'고 이세상에는 누구나 다 욕을 먹는다.

229. 성자가 날마다 살펴 '행실에 흠이 없고 총명하여 지혜와 계행을 갖추었다' 고 칭찬하는 이가 있다면

230. ‘잠부강에서 나는 좋은 금으로 만든 금화'와 같이, 누가 그를 비방하겠가? 도리어 신들도 칭찬하고, 범천도 칭찬하리라.

231. 육신의 노여움을 막고, 육신을 억제하라. 육신의 악행을 버리고 육신으로써 선행을 하라.

232. 말의 노여움을 막고, 말을 억제하라. 말의 악행을 버리고, 말로서 선행을 하라.

233. 마음의 노여움을 막고 마음을 억제하라. 마음의 악행으 버리고 마음으로 써 선행을 하라.

234. 현자는 육신을 억제하고 또 말을 억제하고, 마음을 억제한다. 현자란 참으 로 잘 억제한 이들.

18장 더러움

235. 넌 이제 시든 낙엽이다. 염라대왕의 사자는 이미 네 곁에 와 있다. 너는 죽 음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그런데 네겐 노자마져 없구나.

236. 스스로 피난처를 만들라. 서둘러라,현명하라, 더러움을 털고 죄에서 벗어나 면, 하늘[나라] 거룩한 땅으로 올라가리라.

237. 이제 죽을 때가 가까왔고 염라대왕 앞에 가까에 와 있다. 도중에는 쉴 집도 없는데,노자마저 없구나.

238. 스스로 피난처를 만들라. 서둘러라, 현명하라, 더러움을 털고 죄로부터 벗 어나면, 다시 삶괴 늙음이 없으리라.

239. 마치 대장장이가 은의 [불순물을 제거하듯] 슬기로운 이는 차례로 서서히 자기 더러움을 제거해야 하리라.

240. 쇠에서 생긴녹이 쇠에서 생겨 쇠를 먹어 들어가듯, 방종한 자는 자기 행위 때문에 지옥으로 끌려간다.

241. 경을 읽지 않음은 성전의 더러움이요, 수리하지 않음은 집의 더러움이요, 게으름은 아름다움의 더러움이요, 방종은 계를 지키는 자의 더러움이다.

242. 부정한 행위는 부인의 더러움이요, 인색한 것은 보시자의 더러움이요, 참으 로 악덕은 이세상과 저세상의 더러움이다.

243. 그러나 이런 더러움 가운데서도 가장큰 더러움은 무명(진리에 대한 무지)이 다. 수도승들이여, 이 더러움을 씻어 버림으로써 더러움이 없는 이가 되라.

244. 수치를 모르고, 낯 두껍고, 뻔뻔 스럽고, 미욱하고, 무모하며 더러운 사람 에게는 인생은 살기 쉽다.

245. 수치를 알고 언제나 깨끗함을 구하고, 겸손하고,조초롭게 사는 식견이 있는 이에겐 인생은 살기 힘들다.

246. 산것을 죽이고, 거짓을 말하고, 이생에서 주어지지도 않는 것을 취하고, 남 의 아내를 범하고.

247. 스라술 메라야술에 빠져버린 사람은, 바로 이세상에서 자신의 뿌리를 파고 있는 셈.

248. 오 사람들이여! 이와 같이 알아두라. '자제가 없음은 악덕이다'. 탐욕과 불법으로 길이 고통을 받지 말라.

249. 사람은 믿는 바를 따르고 좋아하는 것을 따라 보시한다. 남이 얻은 음식에 불만을 품으면 밤낮으로 안정을 얻지 못한다.

250. 만일 이것을 끊고 뿌리채 없앤 사람은 밤낮 마음의 안정을 누린다.

251. 탐욕처럼 심한 불길은 없고, 노여움처럼 심한 포수도 없고, 미망에 비할 그 물도 없고, 욕망과 같은 거센 물결도 없다.

252. 남의 허물은 들보 같아 눈에 띄지만 자기 [허물은] 티끌같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남의 허물은 겨처럼 까부러 흩어버리지만 자기 허물은 마치 도박군 이 이롭지 않은 패를 감추듯 감춘다.

253. 남의 허물을 찾아내어 항상 나무라는 생각을 품은 사람은, 그 번뇌가 자란 다. 없애기는 고사하고 불어가기만 한다.

254. 허공에는 길이 없고 불교 아닌 외도에는 수도자가 없다. 대중은 허망을 즐 거워 하지만 진리를 터득한 부처님에게는 허망이 없다.

255. 허공에는 길이 없고, 불교 외에 외도에는 수도자가 없다. 현상계에는 영원 한 것이 없으며, 깨달은 사람(여러 부처)에겐 동요가 없다.

19장 진리에 산다

256. [가령 조흔 것이라도] 강제로 나른다면 진리에 사는 사람일 수 없다. 맞느 냐 맞지 않느냐를 잘 분별하여 현명하게.

257. 강제가 아니고 정의와 평등으로 남을 인도하고 정의를 지키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진리에 사는 이라고 부른다.

258. 말을 많이 한다고 슬기로운 사람이 아니다. 고요하고 미움과 두려움에세 벗 어난 사람을 <어진이>라 부른다.

259. 많은 말을 한다고 교법을 전하는 호법자가 아니다. 듣는것은 적더라도 몸 으로써 보고, 교법을 무시하지 않는 이가 [교법을 가진 이].

260. 머리카락이 희다고 장로가 아니다. 그의 나이 헛되이 늙었으니, [텅빈 늙은 이라]한다.

261. 진실과 진리와 주이지 않음과 절제와 자제에 살고, 더러움을 벗어난 이를 장로라 한다.

262. 말 잘하거나, 용모가 아름답다고 해도 질투와 인색과 간사에 찬사람은 훌륭 한 인물이 아니다.

263. [질투나 인색이나 간사를 ] 뿌리채 뽑고 없애버리고 노여움을 여읜 사람을 <훌륭한 인물>이라 한다.

264. 마음에 기약이 없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머리를 깍더라도 수도자가 아니다. 욕망과 탐애에 차 있는 자가 어떻게 수도자가 될 수 있으랴?

265. 작건크건 악을 가라앉힌 사람은, 모든 악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수도자라 부 를 수 있다.

266.다만 걸식 한다는 것만으로 수도승이라고 할 수 없다. 모든 법을 살천하 기에 수도승이 되는 것이니.[걸식을 했다고]수도승이라 하지않는다.

267. 이세상에서 선과 악을 버리고 순결을 지키고 심중하게 처세하는 사람을 [수도승]이라고 할 수 있다.

268. 침묵을 지키더라도 어리석고 무식하다면 성자가 아니다.. 그러나 어진이가 저울을 가지고 달듯 좋은 것만 취하고 [악행을 피한다면] 현명한 이는.

269. 악을 물리친다면 그이는 성자다.. 그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성자가 된다. 이 세상에서 선과 악 두가지를 알면 그것으로 성자라 부른다.

270. 중생을 해치면 성인이 아니다. 중생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성인이라 한 다.

271. 덕행과 서원과 박식 때문만이 아니요, 혹은 정신통일을 얻었기 때문도 아니 요. 더욱 자기 때문이 아니라.

272. 나는 평범한 사람이 누릴 수 없는 집떠난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 수도 승이여! 번뇌를 다 끊기 까지는 방심하지 말라.

20장 길

273. 모든길 가운데서 여덟가지 바른길이 가장 뛰어 났다. 모든 진리 가운데서 네가지 거룩한 진리가 가장 뛰어났고 노든 덕목 가운데서 해탈이 기장 뛰어 났고, 모든 사람 가운데서 참으로 눈밝은 이(부처)가 가장 뛰어났다.

274. 이것이 길이다.지견을 맑게하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이 길을 따르 라. 이것은 악마를 어지럽히리.

275. 이길을 가면 괴로움을 없앨 수 있을 수 있으리라. 나는 [고로움의] 화살을 빼 줄을 알고서, 이 길을 가리ㅣ킨 것이다.

276.해야 할 일은 노력이다. 진리를 터득 한 여래는 길을 가리키는 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 길을] 실천하는 자는 마왕의 사슬에서 벗어나리라.

277. ‘만물은 덧없다' 예지로 예지로 이 이치를 깨달은 이는 괴로움을 지겨워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것은ㄴ 깨끗함에 이르는 길이다.

278. ‘만물은 다 괴로움이다' 예지로 이 이치를 깨달은 이는 괴로움을 지겨워하 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것은 깨끗함에 이르는 길이다.

279. ‘모든 것은 다 실체가 없다' 예지로 이 이치를 깨달은 이는 괴로움을 지겨 워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ㅣ것은 깨끗함에 이르는 길.

280.일어날 때 일어나지 않고, 젊고 힘 있는데 게으름에 빠지고, 의지나 생각 이 나약하고 무었에나 게으른 사람은 예지로서 길을 찾지 못한다.

281. 말을 조심하고 마음을 자제하고 몸으로 악을 짓지 말아야 한다. 이세가지 덕행을 깨끗이 하자. [그러면] 옛성자가 설법한 도에 이르리라.

282. 명상에서 지혜는 솟아나고 , 명상이 없으면 지혜도 멸한다. 두길을 알고 지혜가 늘도록 자신을 확립하라.

283. 욕망의 숲을 짜르라. 나무는 짜르는데 그치지 말라. 욕망의 숲에서 두려움 이 생긴다. 수도승 들이여, 욕망의 숲과 애역의 초목을 짜르고, 욕망의 숲 이 없는 몸이 되라.

284. 여자에 대한 남자의 욕정은 아무리 작더라도 끊어지기 전에는 그사람의 마 음을 매어 놓는디. 마치 송아지가 어미 젖에 매달리듯이.

285. 자애를 끊되 가을에 백합을 손으로 꺽듯이 하라. 고요함에 이를 길을 구 하라. 열반[의 길은] 크게 복 받은이가 가르쳐 주셨다.

286. 장마철에는 여기서 살고, 겨울과 여름에는 여기서 [살자]고 어리석은 자는 생각하지만, 죽음이 [가까운줄] 깨닫지 못한다.

287. 어린이나 가축에만 마음을 빼았기고 그것에 마음이 집착한자는 죽음이 휩쓸 어 간다. 마치 큰 홍수가 잠든 마을을 [휩쓸어] 가듯이.

288. 아들도 구할 수 없고, 아버지나 친척도 [구할 수 없다]. 친척이라도 죽음 의 신에 잡힌자를 구할 수 없다

289. 이 이치를 깨닫고서 어진이는 계명을 지키고, 열반에 이르는 길을 빨리 깨 끗이 해야 하리라.

21장 여러가지 일

290. 만일 조그만 즐거움을 버리므로써 큰 즐거움을 볼 수 있다면, 어진 이는 적 은 즐거움을 버리고 보다 큰 즐거움을 구할 것이다.

291. 남에게 고통을 주고 자신의 즐거움을 바란다. 이처럼 원한의 사슬에 얽매 이면 원한에서 벗어날 수 없다.

292. 해야할 일을 등한히 여기고, 해서는 안될일을 한다. 교만하고 방종에 빠진 사람에겐 번뇌가 늘어간다.

293. 언제나 몸을 생각하고 [그 덧없음을 잘 알고], 해서 안될 일을 하지 않으 며, 해야 할일만 꾸즌히 하고, 생각이 깊고, 조심성이 있는 사람에게 번뇌 가 다 사라진다.

294. 아버지(아집)와 어머니(욕망)를 이고, 무사 계급의 두 임금(단멸론,상주론) [죽이고], 왕국(안이비설신의,색성향미촉법)를 죽이고 <보라문>은 괴로 운 병 없이 나아간다.

295.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고 두 바라문 계급의 두임금을 죽이고, 호랑이(탐 욕,노여움,우울,바람끼,의심)를 다섯째로 하는 것을 죽이고 바라문은 괴로 운 병환 없이 나아간다.

296.<고오타마>의 제자들은언제나 깨어있고,밤낮으로부처님을 생각한다.

297.<고오타마>의 제자들은 언제나 깨어있고, 밤낮으로 부처님의 교법을 생각한다.

298.<고오타마>의 제자들은 언제나 깨어있고, 밤낮으로 부처님 교단을 생각한다.

299.<고오타마>의 제자들은 언제나 깨어있고,밤낮으로 육신을 생각한다.

230. <고오타마>의 제자들은 언제나 깨어있고, 밤낮으로 중생을 해하지 않음으로 마음이 즐겁다.

231. <고오타마>의 제자들은 언제나 깨어있고, 밤낮으로 수양하니 마음이 즐겁 다.

302. 집떠난이의 생활은 힘들고, 즐거움도 얻기 어렵다., 또 집에 있는 이의 생 활은 힘들고 괴롭다. 성미 안맞는 무리와 함께 사는 것은 고통이다. [윤회] 의 나그네는 고통에 빠진다. 그러므로 나그네가 되지 말라. 그러면 고통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303. 믿음이 있고, 계명을 따르고 명예와 재산이 있는 사람은, 어디 가거나 어디 서나 존경받으리라.

304. 훌륭한 사람은 <히말라야>산 처럼 멀리 있어도 빛난다. 몹쓸 사람은 밤에 쏜 화살처럼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305. 홀로 앉고, 홀로 자고, 홀로 행동하여 지치지 않고, 홀로 자신을 억제하 고 숲가에 살머, 즐기는 사람이 되라.

22장 지 옥

306. 거짓말을 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스스로) 하고서도 '나는 하지 않 았다'고 말하는 자도 [지옥에 떨어진다]. 이런 몹쓸 짓을 한 사람은, 둘이 다 죽은 후에 저 세상(에서) 꼭 같으리라.

307. 가사를 목에 걸치더라도 행실이 나쁘고 자제력이 없다. 이같은 몹쓸 사람은 악행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다.

308. 계를 지키지 않고 절제하지 않은채 나리의 은혜를 먹고 살기보다는, 차 라리 불에 단 쇳덩이를 삼키는 것이 낫다.

309. 방종하여 남의 아내를 꾀는 자는 네가지 일과 만나리라.. 첫째 죄업을 쌓 는일, 둘째 안식이 없어지는 일, 세째 비난, 네째 지옥이다.

310. 죄업을 얻고, 또 악한 세계에 [빠지고], 더욱 두려워하는 남자와 여자의 즐거움이란 적다. 임금도 또한 무거운 벌을 내린다. 그러므로 남의 아내를 가까이 하지 말라.

311. 구사풀도 잘못 잡으면 손을 베는 것처럼, 잘못 행한 고행자의 길은 사람을 지옥으로 떨어뜨린다.

312. 행실을 함부로 하고, 맹세를 더럽히고, 마지 못해 하는 수도, 이런자에게 큰 갚음이 없다.

313. 해야할 일이 있다면 단호하게 그것을 다하라. 집떠나고 게으르면 오히려 더 러운 먼지를 뿌린다.

314. 해서는 안될 일은 하지 않는게 상책, 악행은 나중에야 뉘우치게 된다. 해야 할 선행은 하는게 상책, 선행은 나중에도 뉘우치지 안으리니.

315. 변방의 성을 안팎으로 잘 지키듯 재산을 지켜라.한 순간이라도 놓지지 말 라. 기회를 놓지면 지옥에 떨어져서 한숨 지으리라.

316. 수치가 아닌 것을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런 일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그 릇된 소견을 가진 자들은 악한곳(지옥)으로 들어간다.

317. 두려울 것이 없는데 두려워 하고, 두려움이 있는데 두려워 하지 않는다..그 릇된 소견을 가지고 악한 곳으로 들어간다.

318. 죄가 없는데 죄가 있다고 생각하고, 죄가 있는데 죄가 없다고 본다. 그릇된 견해를 가진 사람은 악한 곳으로 떨어진다.

319. 죄가 있으니 죄가 있다고 알고, 죄가 없다고 안다.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 들은 좋은 곳(하늘나라)에 들어간다.

23장 코끼리

320. 싸룸터에서 화살을 맞고도 참고 견디는 코끼리처럼, 나도 비난을 견디리라. 많은 사람들은 파계하는 자들이니.

321.길들인 [코끼리]를 싸움터로 끌고 가고, 임금도 길들인 [코끼리]를 탄다.비난을 참고 견디는 알에 단련된 자는 사람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

322. 길들인 당나귀도 좋다. 인다스산의 좋은 말도 좋다. 전쟁용 큰 코끼도 또 좋다. 그러나 자신을 제어하는 사람은 더 좋다.

323. 훈련된 [탈것]을 타고 아직 밟지 않은 땅(렬반)으로 가는 것처럼, 아와 같 은 동물을 타고서는 그곳에 이를 수 없다.

324. <다나파알라카>라는 코끼리는 발정기가 되면 [관자노리]에서 쓴 액체를 분 비하고, 도루기 힘들고 잡히면 전혀 먹이를 먹지 않는다. 코끼리는 숲속의 동료를 생각하는 것이다.

325. 빈둥빈둥 먹기만 하고, 잠만 탐내고 딩굴기만 하고 곡식으로 살찐 큰 돼지 와 같다면, [이런] 게으름뱅이는 몇번이고 태안에 들어가 [윤회를 되풀이 한].

326. 이 마음은 예전에는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즐거운 따라 헤매었다. 이제 나도 이것은 완전히 억제 하겠다. 마치 갈퀴를 쥔 코끼리 조련사가 코끼리 를 다루듯 하리라.

327. 방종하지 않음을 즐기라. 자기 마음을 꼭 지키라. 어려운 곳에서 자기를 구하라 감탕에 뺘진 코끼리처럼.

328. 총명하고 바로 행하는, 어진 반려가 될 친구를 얻었다면, 온갖 위험을 이 기고 깊은 생각을 다하며 기꺼이 함께 가도록 하라.

329. 총명하고 바로 행하는 어진 반려가 될 친구를 얻지 못하였거든 홀로 가라. 마치 정복한 나라를 버린 임금처럼, 또은 숲속에 홀로 다니는 코끼리처럼.

330. 홀로 살아감은 뛰어난 것 '어리석은 자를 벗하지 말라'. 몹쓸 짓을 하지 말 라. 숲속의 코끼리처럼, 욕심없이 홀로 걸어라.

331. 일이 생겼을 때, 벗이 있음은 즐겁고, 만족은 어떤 경우에나 즐겁다. 선을[쌓은 것은],죽는 시간에 즐겁고, 모든고통을 버리는것은 즐겁다.

332. 이세상에서 어머니를 공경함은 즐겁고, 아버지를 공경함오 즐겁다. 참된 수 도자가 됨도 즐겁고, 참된 바라문이 됨도 즐겁다.

333. 늙을 때까지, 계를 지키는 것도 즐겁고, 신앙이 뿌리깊게 굳굳히 서 있음도 즐겁고, 악을 벗어남도 즐겁다.

24장 욕 망

334. 방종한자의 갈망은 칡넝쿨 처럼 자란다. 마치 숲속에서 열내를 찾아다니는 원숭이처럼,. 그들은 생존에서 생존으로 헤매인다.

335. 이세상에서 이 천한 집념, 강한 욕망에게 정복된 사람에게는 마치 비맞아 무성한 <비라나>풀처럼, 근심이 자란다.

336. 이세상에서 천하고도 누르기 어려운 욕망을 억제한 사람은, 모든 근심을 여읠 것이다. 마치 물방울이 연꽃 잎에서 떨어 지듯이.

337. 여기 모인 여러분께 알리겠소. '<우사라>뿌리(비라나 풀의 뿌리)를 찾기 위하여 <바로노 풀울 파내는 것처럼 요강의 뿌리를 뽑으시오. 그리고 강물 이 갈대를 꺽는 것처럼 악마가 당신을 꺽지 못하게 하시오.'

338. 나무가 잘려도 뿌리 깊이 박혀있다면 다시 자라나듯, 욕망의 숨은 함을 뿌 리 뽑지 않으면, [ 생사의] 고통은 자꾸만 되풀이 된다.

339. 감각의 쾌락으로 치달리는 , 설흔여섯개(안팍 각각 18가지의 욕망)의 거센 물줄기를 가진, 그릇된 견해를 가진 사람은, 탐욕에 덮인 야망의 빠른 물살 에 휩쓸려 가리라.

340. 모든 [욕망의] 흐름은 사방으로 흘러가고,[욕망의] 칡넝쿨은 뻗어 가기만 한다. 칡넝쿨이 뻗어가는 줄 알았다면 지혜로서 그 뿌리를 잘라 버려라.

341. 사람의 기쁨은 지나치기 쉽고, 더러워져 있다. 환락에 빠지어 다른 쾌락을 구한다. 이런 사람들은 삶과 늙음을 받는다.

342. 욕망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잡혀온 들토끼처럼, 뱅뱅 돈다. 속박과 집착 에 얽매어, 오랫동안 고통을 받는다.

343. 갈망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잡혀온 들토끼처럼, 뱅뱅 돈다. 그러므로 수 도승은 욕망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욕망을 털어 버려라.

344. [욕망의] 숲에서 나와서 다시 [욕망의] 숲으로 마음을 기우리고, [욕망의] 숲에서 벗어나 [욕망의] 숲으로만 달리는 사람을 보라. 그는 속박에서 벗어 나, 다시 속박으로 되돌아 달려 간다.

345. 현명한 이는 쇠붙이나 나무나 섬유로 만든 사슬(속박)이 강하다고 하지 않 는다. 보석으로 만든 귀거리, 사랑하는 아들이나 아내에 대한 애착이 강 하다고 한다.

346. 현명한 이는 이 무겁고 풀기 힘든 이 속박이 강하다고 한다. 사슬을 끊고나 서 연연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애욕의 쾌락을 버리고, 수도의 길을 찾 아간다.

347. 탐욕의 종이 된 자는, [갈망의] 흐름을 따라간다. 마치 거미가 스스로 만 든 거미줄을 따라가듯이 [따라간다]. 현명한 이는, 탐욕을 끊고 애착을 버리고, 모든 괴로움을 버리고 떠난다.

348. 생존의 저 언덕을 찾아서 가는 자는, (과거)나 앞(미래)이나 가운데 (현재)를 떠나야 한다. 마음이 완전히 떠났으면 다시 생과 늙음을 받지 않으리.

349. 의혹으로 마음이 흩어지고, 강한 탐욕에 차 있고, 더러움을 깨끗하게 보는 사람이 가진 욕망은, 더 자란다. 속박을 굳에 한다.

350. 의혹이 없어짐을 기뻐하고, 애써 더러운 것을 더럽게 보고, 항상 깊이 생 각하면, 참으로 마왕을 없이하고, 그굴레를 끊을 것이다.

351. 완성의 자리에 이르러 두려움이 없고, 욕망도 죄도 없는 이는, 생존의 가시 를 꺾었다. 이것으로 그의 몸은 마지막이 된다.(곧 다시 윤회하지 않는다.)

352. 욕망을 떠나고 집착도 없고, 성전의 말과 그뜻을 얼른 이해하고, 문자의 결 합과 그 순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참으로 마지막 몸을 가진이요, 위대한 성인 혹은 위대한 인물이라 부른다.

353. 나는 모든 것을 이겼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모를 것으로 해서 더 러워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버리고 욕마을 없애고 자유를 얻었다. 나 스스 로 깨달았으니 누굴 [스승이라] 부를 것인가?

354. 교법의 보시는 모든 보시보디 았고, 교법의 맛은 모든 맛보다 났다. 교법의 즐거움은 모든 즐거움을 능가하고, 욕망의 소멸은 모든 괴로움을 이긴다.

355. 재산은 어리석은 자를 멸망하게 하지만, 저언덕을 구하는 이르를 [멸망 케]할 수는 없다.

356. 잡초는 논밭을 버리게 하고, 미안은 이세상 사람을 버리게 한다. 그러기에 탐욕에서 벗어난 이에게 바치는 보시는, 큰 갚음을 가져온다.

357. 잡초는 논밭을 버리게 하고, 노여움은 세상 사람을 버리게 한다. 그러기에 노여움에서 벗어난 이에게 바치는 보시는 큰 갚음을 가져온다.

358. 잡초는 논밭을 버리게 하고, 미망은 이세상 사람을 버리게 한다. 그러기에 미망에서 벗어난 잉에게 바치는 보시는, 큰 갚음을 가져온다.

359. 잡초는 논밭을 버리게 하고, 욕망은 세상 사람을 버리게 한다. 그러기에 욕 망에서 벗어난 ㅇ이에게 바치는 보시는, 큰 갚음을 가져온다.

25장 수도승

360.눈을 자제하고 귀를 자제하고 코와혀를 자제함은[참으로] 훌륭한 일.

361. 육신을 자제하고 말을 자제하고 마음을 자제하고 모든 것을 자제함은 [참으 로] 훌륭한 일. 모든 것을 자제하는 수도승은, 모든 괴로움을 벗어난다.

362. 손을 삼가하고, 발을 삼가하고, 말을 삼가하고, 극진히 삼가하고,또 안으로 기뻐하고, 마음이 안정되고, 홀로 만족한 사람, 글를 <수도승>이라 부른다.

363. 혀를 삼가하고,현명하게 말하고,난체하지 않고, 인생의 목적과 진리를 밝히 는 탁발승의 설교는 달고 아름답다..

364. 법을 즐기고 법을 기뻐하고, 법에따라 명상하고, 법을 따르는 수도승은 옳 은 법에서 타락하지 않는다.

365. 제자 얻은 것을 지나치게 평가마라.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마라.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수도승은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다.

366. 비록 적게 얻더라도 얻은 것을 지나치게 평가않는 수도승을 신들은 칭찬한 다. 그의 인생은 깨끗하고 게으르지 않으리니.

367. 몸과 마음에 있어 내것이란 생각이 없고, 그게 없어진다고 근심하지 않는 사람, 그를 수도승이라고 부른다.

368. 자비로 살고 부처님의 교리를 믿는 수도승은 고요를 얻고 바퀴돌림이 멎은 안락경에 이르리라.

369. 수도승이여 배안에 [새어든] 물을 퍼내라. 비면 배는 가볍게 달리리라. 이 와 꼭같이, 탐욕과 노여움을 끊어버리면, 열반에 이르리라.

370. 다섯가지 [집착]을 끊어버리라. 다섯가지 집착을 제거하라. 또 다시 다섯 가지 [집착]을 정복하라. 다섯가지 집착을 넘어선 수도승은 '홍수를 넘어선 사람'이라 한다.

371. ! 수도승여,명상하라, 방종하지 말라. 마음을 감각적 욕정에 휩쓸리지 말라. 방종하여 [지옥에 떨어져] 뜨거운 쇠붙이를 삼키지 말라. [지옥불에 데면서 '아 괴롭다' 고함치지 말라.

372. 예지가 없는 자에게 정신통일이 없고, 정신통일이 없는 자에게 예지는 없 다. 예지와 정신통일을 갖춘이는, 열반에 가까이 있는 것이다.

373. 고요한 마음으로 빈집에 들어가 마음을 가라않히고, 바로 진리를 관찰하는 수도승은, 인간계에 없는 기쁨을 얻으리라.

374. 육체 구성요소의 생멸을 생각하면 할수록, 지자는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얻 으리라.

375. 그런데 현명한 수도승이 처음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오관을 억제하고 만족하고, 계를 지키고 절제하고 또 고상하면서 깨끗하고 부지런한 친구와 사귀라.

376. [그리고] 착한 친구로서 우애를 다하라. 그러면 기쁨이 넘쳐 흘러 괴로움 을 없앨 수 있으리라.

377. 수도승이여, <밧시키아><자스민>이 시든 꽃을 털어버리듯, 탐욕과 노여움 을 털어 버려라.

378. 육신이 가라앉고 말이 가라앉고다 가라앉아서 마음이 잘 안정되고, 세속의 재산을 버린 수도자는, <마음이 가라앉은 이>라고 부른다.

379. 스스로 자신을 일으키라. 스스로 자신을 살펴보라. 자신을 지키고, 자신을 반성하면 수도승이여! 당신은 행복하게 살리라.

380. 나야말로 내 주인이고, 나야말로 내 의지처다. 그러므로 장사치가 훌륭한 말을 다루듯이 자신을 다루라.

381.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수도승은 고요하며, 자연적 생존의 흐름이 멎은 평 화로운 상태와 행복한 자리에 이를 것이다.

382. 비록 젊다고 해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전념하는 수도승은, 이 세상을 밝게 비추리라.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26장 바라문(성직자)

383. ! 보로문이여, 용감하게 [흐름을] 끊어라. 그리고 욕망을 버리라. 바라문 이여 모든 지어진 것이 다 멸함을 안다면 절대(열반)에 이르리라.

384. 바라문이 두기지 법으로 피안에 이르렀을 때, 이 슬기로운 이는 온갖 구속 을 다 면하리라.

385. 저언덕(피안)도 없고 이 언덕(차안)도 없고 공포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을,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386. 마음이 안정되고, 깨끗함에 편히 살고, 할일을 다하고 번뇌가 없고, 지극 히 높은 목적에 도달한 이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387. 태양은 낮에 빛나고 달은 밤에 비추고, 무사계급은 갑옷에서 빛나고 바라 문은 정신통일에 빛난다. 그러나 부처는 그의 위엄있는 광명으로 빛난다.

388.악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바라문이라 하고, 행위가 고용하기 때문에 수도자 (사문)라 한다.자기 더러움을 털어버렸기 때문에 집떠난이라한다.

389. 바라문을 때리지 말아야 한다. 바라문은 [맞아도] 기억하지 않으리니. 바 라문을 때림은 유감이요. 거역하는 일은 더 유감.

390. 바라문이 만일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누른다면, 큰 은덕이 있다. 말 을 해치려는 마음이 적어질수록 고통도 가라앉으리라.

391. 육체나 말이나 마음으로 악을 하지 않고, 이 세가지를 자제하는 이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392.바르게 깨친 이(부처님)께서 설법한 교법을, 어더한 사람에게 배웠을 지라 도, 그사람을 공손히 존경하라. 마치 바라문이 제화를 [공경]하듯.

393. 어리의 꾸밈새나 가문이나 계급 때문에 바라문이 되지 않는다. 진리와 진실 을 가진자 그는 바라문이요. 그는 안락하며, 그를 또한 바라문이라 부른다.

394. 슬기가 없는 자여! 머리의 구밈새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염소 가죽 옷을 입고 어찌할 셈인가? 어리석은 자여, 그대의 속은 [더러운] 밀림이요, 겉 만 깨끗이 꾸미고 있구나.

395. 누더기를 입고 야위어서 힘줄이 들어나 있고, 홀로 숲속에 정신통일에 잠겨 있는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396. (부처)[바라문 여인의] 태에서 태어나고 [라문]의 어머니에게서 태어 난 이를 바라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는 [내에] '자네라고 부르는 이' , 그는 참 가진 것에 매어있다. 한푼없이 집착을 벗어난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397. 모든 속박을 끊어버리고, 두려워하지 않고, 집착을 넘어선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398. (노여움)이나 밧줄(욕망)이나 쇠사슬(잘못된 견해)을 끊고 말안장(인내라 고 하는)과 함께 끊엉버리고, 장애물(근본무지)을 없애 깨달은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00. 노여워하지 않고 의무를 다하고, 계를 지키고 욕망을 떠나 스스로 자제하고, 마지막 몸에 이른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01. 연잎의 물방울이나 바늘 끝의 겨자씨처럼, 온갖 욕정에 얽매이지 않는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02. 이 세상에서 그의 고통을 다 끝난줄 알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초연한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03. 지혜가 깊고, 슬기롭고 바른길과 그른 길을 분별하고, 위없는 목적에 오이 른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04. 집에 있는 이든 집 떠난 이든 아무와도 사귀지 않고, 집없이 돌아다니며 욕 심이 적은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05. 악한 것이건, 강한 것이건, 모든 산것에 [채찍]을 쓰지 않고, 죽이지 않 는이 ,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06. 적대하는 무리들 가운데 있으면서 적대하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무리들 가운데서 평화로운 사람, 집착된 무리 가운데서 집착되지 않는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08.거칠거나 야하지 않고, 면석한 참말을 하고, 그 말로 사람의 감정을 상하 지 않도록 분명히 이해시키는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09. 이 세상에서 길건 짧건, 작건 크건, 깨끗하건 더럽건 주지 않는 것을 취하 지 않는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10. 이 세상이나 저세상에서 바라는 게 없고, 기대도 없고, 사로잡힘도 없는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11. 아무런 집착도 없고 다 깨닫고, 의심을 벗어나고, 영원(열반)한 깊이에 이 른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12. 이세상에서 선악응ㄹ 다[버리고], 집착을 초월하여 근심이 없고 깨끗한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고 부른다.

413. 달처럼 깨끗하고, 맑고 흐리지 않고, 기쁨도 일어나지 않게 다 없앤 이, 그 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14. 험하고 힘든 길 윤회, 미망을 넘고 건너가서 저언덕에 이르고, 마음이 안정 되고, 욕망이 없고, 의심도 없고, 집착도 버리고, 마음이 고요한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15. 이세상에서 모든 욕정을 버리고, 집을 떠나 수도생활을 하고, 생기는 욕정 을 다 끊은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16. 이 세상에서 모든 욕망을 버리고 집을 떠나 수도생활을 하고, 생기는 모든 욕망을 끊은 이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17. 인간적인 모든 연줄을 끊고, 천상계의 연줄도 넘어서고, 온갖 연줄에서 벗 어난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18. 즐거운 일이나 즐겁지 않은 일을 다 버리고, 싱싱하게 번뇌가 없고, 모든 이세상을 이긴 영웅,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19. 중생의 삶과 죽음을 다 알고, 집착이 없고 크게 행복한 이, 깨달은 이, 그 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20. 신들도 귀신(건달바)도 사람들도, 그가 간 자취를 모르고, 번뇌를 다 없앤 절받기에 합당한 이<아라한>,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21. (과거)에도 뒤(미래)에도 중간(현재)에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한푼 없이 집착이 없는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22. 황소 같이 싱싱하고, 고상하고 영웅적이고, 큰 선인이요, 승리한 이요, 욕 심이 없고 [더러움]을 씻어 버린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23. 전생을 알고, 또 천국과 지옥을 보고, 거듭 낳는 일은 다 없어지고, 지혜가 완성된 성자(무니), 다 이루고 이룬 이,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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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불교 용어

1. 불교도들이 서로 인사할 때 하는 말이 있습니까?

"성불하십시요'하고 인사합니다. 成佛이란 말은 부처님처럼 진리를 깨달아 거룩한

성인이 되라는 뜻이 있으며, 또는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라는 뜻이 있습니다.

2. 법우(法友)란 무슨 뜻입니까?

법우란 같은 불법을 배우는 친구라는 뜻입니다.

3. 불자란 어떤 뜻입니까?

부처님의 제자란 뜻으로, 부처님을 믿는 사람은 앞으로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뜻

입니다.

4. "부처님"이란 뜻은 무엇입니까?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진리를 밝게 깨달아 온갖 복과

덕을 모두 갖추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5. 염불이란?

거룩하신 부처님을 고요한 마음으로 간절히 생각하며, 부처님의 크신 공덕을 기리며,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6. 기도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부처님께 간절히 비는 믿음이며, 참되고 올바른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려는 스스로의 다짐입니다.

7. 독경이란?

불경을 외우거나 읽는 것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리는 것입니다.

8. 공양이란?

깨끗한 마음으로 음식과 꽃, , 촛불, , 물 등을 부처님께 올리는 것이며 또한 우리

이웃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어떤 물건이나 참다운 가르침을 베풀어 주는 것을 말

합니다.

9. 참회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탓으로 지은 잘못을 자신이 뉘우치는 것으로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는 마음의 다짐입니다.

10. 발원

부처님께 올리는 서원으로 나쁜 마음을 모두 버리고 부처님처럼 크고, 넓고, 맑은 마

음으로 살아가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11. 불교의 명절(음력)

1) 4월 초파일(부처님 오신 날)

2) 28(출가재일)

3) 128(성도재일)

4) 215(열반재일)

5) 715(우란분재일, 백중재일)

12. '스님'이란 뜻은

스승님의 준말로 제자가 자기 스승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스승이

아니라도 출가하여 수도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13. 삼보(三寶)

불교의 三寶라 함은 우리의 참 생명과 행복을 지켜주는 것으로써 부처님(佛寶),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부처님의 제자(僧寶)를 뜻하며 모든 불교도가 한결같이 몸과

마음을 다해 받들어 의지해야 할 것이다.

14. 불교기의 유래와 의미

각종 행사 때마다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불교기 입니다. 그런데 태극기를 많이 보

면서도 태극기의 내용을 잘 모르는 것처럼 불교기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 모르는 분

이 많기에 간단하게 정리해 봅니다. 먼저 불교기의 모양부터 보시죠.

<불교기의 유래와 의미>

불교기는 1950년에 실론(스리랑카)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정식 승인하여,

연재 모든 불교국가와 불교단체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는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3:2이며, 바탕은 다섯 가지의 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의 색깔은 부처님의 상호를 나 타내는데, 옆으로 그은 선은 부처님의 가르

침을, 아래로 내려 그은 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영원히 변함없다는 뜻을 각각 나타내

고 있습니다.

파랑은 마음을 흐트리지 않고 부처님의 법을 구하는 정근을 상징합니다.

노랑은 찬란한 부처님 몸의 빛과 같이 변하지 않는 굳은 마음을 상징합니다.

빨강은 항상 쉬지 않고 수행에 힘쓰는 정진을 상징합니다.

하양은 깨끗한 마음으로 온갖 번뇌를 밝히는 청정을 상징합니다.

주황은 수치스러움과 그릇된 길로의 꾀임에서 잘 견디어 이기는 인욕을 상징합니다.

15. 백팔번뇌란

, , , , , 의 이 여섯가지 감각 기관으로 색, , , , , , 이 여섯가지

경계를 각각 접하게 되니 6 * 6 = 36 가지의 번뇌가 일어나게 되는데...

36가지 번뇌가 과거, 현재, 미래,를 합하니(36*3=108) 백팔번뇌라 한답니다. 여기서 주의 할것은 과거 현재 미래라 해서 그 옛날 과거가 아니고, 아득한 미래가 아니라...

방금 지나간 시간 과거와 잠시후의 미래가 포함된다는 것을 염두해 두시면 이해하기가

쉬울겁니다. 그러니까 5분전과 5분후...

16. 대승[大乘] 과 소승[小乘]

대승은 범어 mahayna의 번역으로 마하연나[摩訶衍那]. 마하연[摩訶衍]이라 음역하며

상연[上衍]. 상승[上乘]이라고도 한다. 소승은 hinayana의 번역이다. []은 수레를

의미하며 미혹의 차안에서 깨달음의 피안에 이르는 교법을 가리킨다.

대승. 소승이란 말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후 그의 언행의 전승을 중심으로 전개되

는 상좌부 불교가 주석적인 연구의 불교로 발전하여 대중들로부터 유리되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살도를 설하는 불교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때 보살도를 추구하는 무리들

이 자신들이 받들고 있는 교리를 높여 대승이라 부르고 기존의 불교를 소승이라 폄하

한 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기존의 불교도는 소승불교란 말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상좌부 불교라 했다.

따라서 상좌부 불교의 입장에선 보살도 불교 즉 대승불교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반론도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상사적으로는 소승이 대승불교의 교학적 기초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소승은

자신의 해탈만을 목적으로 하는 자조자도[自調自度: 調는 번뇌를 제도하여 없애는 것,

 

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의 성문. 연각의 수행도며, 대승은 열반의 적극적인 의미를

인정하고 자리와 이타의 양면을 모두 갖춘 보살의 수행도를 의미한다.

소승의 대표적 경론은 아함부 경전을 비롯하여<사분율> <오분율> <비바사론>

<발지론> <구사론> <성실론> 등이 있고, 대승에는 <반야경> <법화경> <중론>

<섭대승론> <대승기신론> 등이 있다.

인도의 대승에는 중관. 유식. 여래장. 밀교 등이 있고, 중국의 대승에는 삼론. 열반.

정토. . 천태. 화엄 등이 있어 각 종파의 우월한 점을 내세우려 노력했다. 우리나라

를 비롯 중국. 일본. 몽골. 서장불교는 대승 불교로 분류되며,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등의 불교는 소승불교로 분류된다

. 초기 대승불교운된의 순수한 종교적 정신이 사라지면서 중기 대승불교 이후는 소승

과 대승의 구별이 관념화되었다.

17. 소임과 별칭

스님들에게는 각기 절에서 맡은 바 직책이 있다. 그 절의 모든 운영을 책임한 주지(住持)

스님, 모든 대중들의 수행과 위의와 법도를 지도하시는 조실(祖室) 스님.방장(方丈)

스님, 법문을 설하여 주시는 법사(法師) 스님, 경을 가르치시는 강사(講師) 스님, 또 주

지 스님 아래서 일을 보는 총무 스님, 교무 스님, 재무 스님, 절 살림을 맡아 하는 원주

스님, 법당에서 부처님을 받들며 공양을 올리는 부존 스님 등 각기 스님에게 부여된 직

책이 있다. 이때에는 법호가 있다 하여도 직책을 붙여서 조실 스님, 주지 스님, 부존 스

님 등으로 부르게 된다.

큰스님의 법명을 부르지 않고 법호나 당호로 불러야 하지만 법호를 함부로 부르는 것도

송구하기 때문에 따로 호칭(呼稱)하는 것이 더 좋은 예의(禮義).

예를 들면 큰스님이 계신 곳의 이름을 붙여 ○○산 큰스님, ○○() 큰스님 등 산 이

름이나 절 이름으로 대신하기도 하고 또 그 스님이 계신 건물의 이름을 따라서 ○○

스님, ○○당 스님, 별당(別堂) 스님 등으로 호칭하기도 한다. 방장 스님이나 조실 스님

○○ 큰스님이라 하며 나이 많으신 원로 스님들께는 꼭 노()자를 붙여 ○○ 노스님

이라 하는 것이 예의이다.

18. 연꽃(蓮花.蓮華)

연꽃은 진흙 못에서 피어난다. 물이 더럽고 지저분하여도 그 속에서 청정하고 아름답

고 귀한 꽃을 피워내는 모습이 사바세계에 존재하는 부처님 가르침(佛法)에 비유되어

불교의 꽃으로 상징되고 있다.

또 무명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성취되는 진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처염상정(處染常淨)

이라는 말은 연꽃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항상 맑은 본

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청정하거나 지혜로운 사람을 곧잘 연꽃에 비유했다. 연꽃을 일러 만

다라화(曼茶羅華)라고도 한다. 삼라만상을 상징하는 오묘한 법칙이 연꽃에 드러나 있

기 때문이다. 유명한 염화시중의 미소에서 부처님이 들어 보인 꽃이 바로 연꽃이다.

또 부처님이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있을 때 땅에서 연

꽃이 솟아올라 태자를 떠 받들었다고 경전은 적고 있다. 인도에서는 연꽃을 진귀한 꽃

으로 여겼으며, ...백련화 등으로 나누었다.

그 중에서 백련화는 번뇌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무구의 불법성에 비유되었다. 연꽃에는

각 부분마다 불교의 원리를 말하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활짝 핀 연꽃잎은 우주 그 자

 

체를 상징하고, 줄기는 우주의 축을 의미한다.

연합에는 9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는 9품을 말하며 3개의 연뿌리는 불..승 삼보를 뜻

한다. 연꽃의 씨는 천 년이 지나도 심으면 꽃을 피운다 하여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상

징한다.

또 꽃이 피면서 열매가 생기는 것은 인과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연꽃은 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인 보살을 상징하기도 한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아름다

운 꽃을 피우듯, 불자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여 이룩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

어 있다. 많은 불교예술품들은 연꽃을 형상화하여 그 깊고 오묘한 뜻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불보살의 좌대는 모두가 연꽃이다. 예술작품뿐 아니라 <묘법연화경> <화엄경>등 경전

의 제목도 연꽃과 관련돼 있다.

19. 5대 보궁(五大寶宮)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전각을 적멸보궁이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 사리와 정골을 나눠서 봉안한 5대 적멸보궁

이 있다. 양산 통도사, 강원도 오대산 중대에 있는 상원사 보궁, 설악산 봉정암, 태백

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이 바로 성지로 꼽히는 5대 보궁이다.

보궁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한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에서 비롯됐다. 그 후 보궁은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함으로써 부처님이 항

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게 됐다. 그래서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안치하지 않는다.

대신 보궁의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들기도 한다. 통도사는 대형

금강계단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안치해 계율근본도량불보종찰이 됐다.

금강계단을 받들어 기도하고 예불을 올리는 대웅전(보물 144)에는 전면에 '적멸보궁'

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오대산 중대의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문수진성의 주처'라는 생각에서 부처님 사리를

모신 성지로, 4방불 신앙의 중심인 비로자나 법신불로 상징되고 있다.

이 보궁의 불사리는 어디에 안치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보궁 뒤에 1m 높이의 판석

에 석탑을 모각한 마애불탑이 상징적으로 서 있을 뿐이다.

설악산 봉정암은 해발 1224m의 고지대에 있는 적멸보궁이다. 이 절 역시 자장율사가 창

건하고 5층 석탑에 불사리를 안치했다. 강원도 정선의 정암사도 통도사처럼 법당에 불상

을 두지 않은 보궁이다.

자장율사가 꿈에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아 지었는데 보궁과 함께 수마노탑(보물 410)

천의봉 중턱에 서 있다. 보궁 뒤에는 진신사리가 안치된 보탑이 서 있고 그 옆에 자장율

사가 도를 닦았다는 토굴이 있다.

20. 심우도

불교의 禪宗에서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禪畵.선의 수행단계를 소와 동자에 비유하여 도해한 그림으로서 수행단계를 10단계로

하고 있어 十牛圖라고도 한다.

송나라때 만들어진 보명(普明)의 심우도와 곽암(廓庵)의 심우도등 두 종류가 우리나라에

전래 되었는데 최근에는 곽암의 것을 많이 그리고 있으며 주로 사찰의 법당벽화로 많이

 

묘사되고 있다. 이 심우도의 대체적인 내용은 처음 선을 닦게 된 동자가 본성이 라는 소를 찾기 위해서 산중을 헤메다가 마침내 도를 깨닫게 되고 최후에는 선종의 최고 이상향에 이르게 됨을나타내고 있다.

첫번째 尋牛는 사람에게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圓性인 마음의 소를 잃어버린 뒤 그것

을 찾으러 나 선 것을,

두번째 見跡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心牛의 자취를 보기 시작했 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세번째 見牛聞法修學의 공에 의해 마음의 소를 발견한 것을,

네 번째인 得牛는 이제 본성을 찾았지만 아직 번뇌가 완전히 없 어지지 않았으므로 더욱 열심히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다섯번째인 牧牛는 소에 고삐를 물리고 돌아오는 모습으로 깨달음 뒤에 오는 방심을 더

욱 조심 해야 함을 비유했다.

여섯번째 騎牛歸家는 길들여진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돌아눈 모습으로 모든 망상에서

벗어나 본성의 자리에 들었음을 그렸다.

일 곱번째 忘牛存人은 집에 돌아왔지만 소는 없고 오직 자기혼자만 남아 있는 것을 그

린 것으로 쉬지 않고 수련해야 함을,

여덟번째 人牛俱忘은 소도 자신도 잊었다는 텅빈 원만 그린 것으로 을 잊고 세상의

을 버려 에 이르렀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아홉번째 返本還源은 본심은 본래 청정하여 아무 번뇌가 없어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보게 되며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얻었음을 비유한 것이며,

마지막 입전수수는 중생을 위해 자루 를 들고 자비의 손을 내밀며 중생있는 곳으로 향

하는 모습을 그렸다. 利 他行의 경지에 들어 중생제도에 나선 것을 비유한 것이다.

21. 만자(卍字)

범어 Srivatsalksana (수리밧살크사나), 万字, 萬字, 卍字 라고도 한다. 吉祥海雲(길상해운), 吉祥喜旋(길상희선) 이라고도 쓴다. 吉祥(길상)과 행운의 표시이다.

삼십이상(三十二相)의 하나로 불타의 가르침에 德相(덕상)이 있고 또 불타의 手足, 頭髮

(두발)과 허리에도 있다고 한다. 이에 상당한 범어는 네 가지가 있지만 Srivatsa(슈리밧사)

란 말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 말은 모발이 말리어 겹치고 합해져 海雲같은 모양이란

뜻이다. 따라서 卍字吉祥萬德(길상만덕)이 모이는 곳을 뜻한다.

또한 卍字는 십자와 마찬가지로 예로부터 세계 각지에서 사용되었는데, 그 기원에 관해

서는 여러 설이 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불교나 절을 나타내는 기호나 표시로 쓰이

고 있다. 모양은 중심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우만자(右卍字)와 왼쪽으로 도는 좌만자(左卍字)로 크게 나누어진다. 그런데 이 자를 입체적으로 형상화시켜서 세워 놓고 볼 때 앞에서 보면 모양이 되지만 뒤쪽에서 보면 右卍자 모양으로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의 옛 조각에는 右卍자가 많으나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굳이 구별하지는 않는다.

22. 자비의 의미

자비란 자기 이외의 사람들을 고뇌에서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란 적극

적으로 상대방에게 이익과 안락을 보태주는 것이고, ()란 고통받는 사람의 불이익과

괴로움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23. 삼보사찰

불보사찰 :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경남 양산 통도사

법보사찰 : 팔만대장경을 모신 합천 해인사

승보사찰 : 16국사를 배출한 전남 승주 송광사

24. 총림이란 경전을 배우는 강원, 선을 닦는 선원, 율을 배우는 율원이 다 갖추어진 사찰을 말하는데 5개의 총림이 있다.

영축총림 : 양산 통도사

해인총림 : 합천 해인사

조계총림 : 전남 송광사

덕숭총림 : 예산 수덕사

고불총림 : 전남 백양사

25. 스님이 되는 과정(조계종 기준)

처음 출가를 하게 되면 2년정도 행자생활을 한다. 절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승려가 될 자

격이 있는 가를 테스트 받고 나면 사미계(사미니)를 받고 사미, 치문, 사집, 사교를 거치

고 나면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고 포교 활동을 하든가 아니면 선방에서 선을 닦게 된다.

26. 불교에서 부르는 호칭

남자스님 : 비구스님

여자스님 : 비구니스님

사미계를 받은 예비남자스님 : 사미(행자)

사미니계를 받은 예비 여자스님 : 사미니

남자신도 : 거사, 처사 . 우바새

여자신도 : 보살. 우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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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륜스님 즉문즉설 -

▒ 문
저는 20대 후반에 절에 들어가서 행자생활을 좀 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불안하고 할 때는 부처님 생각도 나고 해서
한 10cm쯤 되는 부처님을 하나 별도로 방에다 모시고, 아침 저녁으로 인사도 드리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좀 편안하기는 한데, 초하루 보름으로 밥은 별도로 지을 수가 없어서
정수된 쌀을 한 그릇씩 놓고, 과일이 생기면 과일도 놓고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옆에 조상님 사진도 같이 모셔 놓고 있는데
그렇게 하면 불안하던 마음도 많이 편안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디 가 물어보니 부처님을 개인 집에다 모시면 안 된다고 하는데
정말 안 되는 건지요?

▒ 답
해도 됩니다.
(점집에 가 물어보니까 안좋다고 하던데..)
점집보다 법륜스님이 더 못해요? 스님이 괜찮다잖아요? (대중들 웃음)
왜 괜찮은가 하면, 믿음이라는 것은 자유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바다를 믿기도 하고, 땅을 믿기도 하고, 산을 믿기도 하고
그래서 바다에는 해신, 땅에는 지신, 산에는 산신이..
하늘에는 천신이, 별에는 칠성신이, 부엌에는 조왕신이 있다고 생각했잖습니까?
이렇게 모든 사물에 신이 있다는 건, 그만큼 조심하고, 함부로 안 하고, 공경한다는 말입니다.

산에 가도 조심하는 게 사고 안 나요? 함부로 하는 게 사고 안 나요?
조심하는 게 사고 안 나죠? 그래서 산에 들어갈 때 '들어갑니다' 인사하고
무사히 나올 때 '고맙습니다' 인사한다.. 그러면 산에 뭐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조심하는 마음으로 산을 대하면 그만큼 산에 가서 사고날 확률이 적어진다..
그러니까 실제로 산에 신(神)이 있느냐? 없느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믿음은 내 마음에 있는 것이지 산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비록 돌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경건하게 가지면
무슨 역할을 한다? 부처의 역할을 하는 거고..
설령 부처님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면
부처가 없는 거예요. 모든 것은 다 나한테 달렸어..
그래서 내가 불상을 모시고 경건한 마음을 내면
그만큼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걸 모셔야 된다, 안 된다.. 이런 게 아니고
인간의 믿음은 그 종류가 다양한데, 어느 게 옳으냐 그르냐.. 논쟁을 할 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런 것은 개인의 믿음의 영역에 속하는 거니까
그런 걸 가지고 옳으니 그르니 하지 말라..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거기다가 밥을 놓고 절을 하든, 과일을 놓고 절을 하든 그건 개인의 문제이고
그냥 절하기가 서운해서 내가 밥을 올려 놓고 절을 한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나쁘다고 하는 것은 누구를 때리거나 죽이거나, 누구 물건을 훔치거나 뺏거나
누굴 성폭행을 하거나 성추행을 하거나, 누굴 속이거나 욕하거나..
이런 것은 나쁜 행위니까 이런 건 하지 말라.. 그러는 것이지만
내가 뭐.. 돌 앞에 밥을 해 놓든, 나무 앞에 밥을 해 놓든
그건 남을 해치는 게 아니니까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사를 재내든 부처님 앞에 밥을 올리든.. 그 밥을 먹는 거 봤어요? 안 먹어요..
누가 먹어요? 내가 먹어요.. ㅎㅎ
그러니까 그건 정성이예요.
정성을 쏟으면 누가 좋다? 내가 좋아요.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럼 여기서.. 누가 '꼭 해야 됩니까?' 라고 물으면 스님이 뭐라고 그럴까?
'안 하면 안 됩니까?' 그러면 뭐라고 그럴까? 안 해도 된다.. ㅎㅎ
'하면 안 됩니까?' 그러면 뭐라고 그럴까? 해도 된다..
'그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뭡니까?' 그러면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된다..
세상살이에는 하고 싶어도 안 해야 되는 게 있고
안 하고 싶어도 해야 되는 게 있는데
이런 것은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고
정성을 쏟으면 자기가 편안하고.. 그런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내 맘이 편안하다 하면, 그렇게 하십시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 왜 그런 걸 하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올까?
집에 불상을 모시면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조선시대에 500년 동안 불교가 탄압을 받았습니다.
절도 없애 버리고, 스님도 없애 버리고..
남은 스님은 천민으로 대우해 버리고.. 이렇게 불교를 못 믿게 했어요..
불교 믿는 사람을 나쁘게 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불교신자는 엄청나게 많았는데, 거의가 다 불교신자였는데
권력으로 억지로 못 믿게 하니까.. 절도 없어지고, 절에 가도 탄압받고 이러니까
사람들이 몰래 자기 혼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불상 조그만 거 방에 갖다 놓고 혼자서..
그러니까 그것도 못 하게 하려고
집에 불상을 모시면 안 된다.. 재앙이 온다..
이렇게 해서 집에 불상을 못 모시게 한 거예요.
그러니까 모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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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불자들은 좀 더 지식화 돼야 한다."

 

 출판사(민족사) 대표. 윤창화님.

(불교신문.. 윤창화의 프리즘) 

 

‘불자 지식화 운동’이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불자 지식화 운동’이란 간단하게 정의한다면,
현재 우리 불교도들이 지금보다는 좀 더 불교에 대한 지식,
지적인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자로서 출가자(스님), 재가자(신도)를 불문하고,
현재보다는 더 불교적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신앙하고 있는 종교
즉 불교에 대하여 기본적인 교리 정도는 알아야 하고,
다음은 최소한 타인에게 자신이 신앙하고 있는 종교=불교에 대하여
어느 정도 설명은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자 지식화 운동이란..
출재가자 불문하고 지금보다 더 불교지식과
지적소양 갖추는 것.
 
 
그런데 우리 일반 불자들을 본다면
20년 이상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절에 다녔다고 하면서,
정작 간단한 교리도 설명하지 못하는 불자들이 수두룩하다.
 
이것은 불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신도교육의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불자로서 기본적인 지식도 갖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쳇말로
“친구 따라 강남이나 왔다 갔다 하는 것”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필자는 우리 불교도들이 승속을 막론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현재보다는
더 불교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님은 박사학위 이상의 실력을,
일반 불자들은 대학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사회인들의 교육 수준이 대학 정도로
평준화되고 있기도 하지만,
 
불자로서 불교적 지식조차 일반 사회인들을 능가하지 못한다면,
별로 내세울 것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추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말 그대로 불교에 대한 교양 정도의 지식이다.
 
불자들이 갖추어야할 교양 정도의 지식이란
입문 정도로서, 초기불교의 교리인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육근, 육경, 육식, 연기, 오온, 무상,
고(苦), 무아, 열반, 해탈, 중도
그리고 대승불교의 교리인 공(空), 불성사상 정도이다.
 
 이 정도는 제대로 된 불교교양대학에서
6개월만 마음먹고 공부한다면 거뜬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시간적으로 대학과정과 비교하면 8분의 1 정도이다.
그것이 좀 무리라면 1년이면 넉넉하고도 남는다.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인류정신사 새 발견인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아..
 
 
필자는 이것을 ‘불자들이 갖추어야할 불교적 지식’,
‘불교에 대한 교양적 수준의 지식’이라고 구분하며,
 
불자라면 누구든 최소한 이 정도의 지식은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초점이다.
 
그 정도도 자신이 없다면 불자라는 간판을 내리고,
차라리 교회에 가서 박수나 열나게 치고 영생을 부르짖으면서,
하느님이나 믿는 것이 행복할 것이다.
 
소위 불자로서 불교에 대한 기본적 교양도 갖추지 않는다면,
대화의 모멘트가 형성될 수 없고,
기복 외에는 설명할 것이 없게 된다.
 
그렇다고 기복적 신앙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종교는 모두 다 기복성을 갖고 있다.
 
나는 기복을 추구하는 것도 기왕이라면 좀 알고 신앙하는 것이
훨씬 더 기복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이고
공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불교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면,
어떤 몽매한 분은
“아는 것이 많으면 알음알이가 생겨서 깨닫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참으로 무지(無知)의 소산으로서,
부처님께서 가장 힘주어 척결하고자 했던
탐(貪), 진(瞋), 치(癡) 삼독 가운데 치(癡)이다.
 
‘치(癡)’란 어리석음, 무지(無知)로서
바꾸어 말하면
‘명석하지 못함’, ‘현명하지 못함’, ‘지혜가 없음’이다.
 
이제 곧 여름철이다.
여름철엔 모두 산으로 강으로 바캉스를 떠난다.
바캉스도 길을 알아야 재미있고, 고생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지(無知)와 어리석음으로
인류 정신사의 새로운 발견인 그 위대한 깨달음을 이룬다는 것은
도저히 어불성설이다.
 
깨달음이란 다름 아닌
탐, 진, 치 삼독을 제거하고
밝은 지혜, 현명함, 명석함을 바탕으로
번뇌와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작업인데,
어떻게 무지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이것은 결국 붓다의 가르침을 왜곡시키는
육사외도의 일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사회는 때론 일시적인 후퇴도 있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점점 발전하고 정돈되어 가게 된다.
 
변혁의 사회에서는 때론 무식이 통하고 무지가 통하기도 하지만,
정돈된 사회에서는 지식이 통한다.
 
즉, 지적(知的)인 것이 바탕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성과 지식이 바탕 되지 않고는
포교도 설득력을 얻지 못하게 되고,
또 사람들이 신뢰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회발전 또는 역사발전의 정상적인 궤도이다.
사회가 정돈되면 그와 함께 지적 수준도 점점 보편화 되게 된다.
이런 점은 이미 방송매체의 보급으로 평준화가 되어 가고 있다.
 
 
불교교리 이해도 높이고 교리와 사회현상 접목해
생활에서 응용 가능한 현장 교육 시스템 필요..
 
 
과거의 종교 신앙은 무작정 믿는 형태였다.
그리고 아직 우리나라만은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종교 장사가 잘 되어서 대기업을 능가하는 흥행을 하고 있지만,
이런 것도 서구 유럽의 예를 본다면 점점 사라질 것이다.
 
앞으로는 지식수준의 평준화에 따라
종교도 지적(知的), 지성적으로 갈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불교는 어떻게 불자 개개인을 교육하고
사회적 전범(典範)으로 길러낼 것인가?
 
한마디로 ‘불자 지식화 운동’을 통하여,
불자 개개인이 보다 지적이어야 하고,
지식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자 교육의 방향도 고답적인 방법,
조금은 일방적 교리 전달 방법에서 벗어나
양방 통행적인 방법(토론)이어야 한다.
 
토론과 지적인 교육을 통하여
불자 모두가 자기 능력을 길러야 하고,
중도, 연기, 열반 등 대표적인 용어에 대한 개념 및
교리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또한 신도 교육을 교리 해석과 병행하여
사회현상에 응용할 수 있는
현장 교육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종교사회에서, 특히 이교도들의 비이성적 태클을
거침없이 물리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신문 2638호 / 7월10일자 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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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


부자가 되기를 빌고

건강해지기를 빌고

행복해지기를 빌고

자식이 잘 되기를 빌고

병이 낫기를 빌고

오래 살기를 빌고

극락에 가기를 빌고


이렇게 비는 사람들을

기복이라고 해서

지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어떤 게 참다운 종교냐?

고,


가슴이 휭 뚫리는

현명한 대안이 있으면 듣고 싶다.  

 

+++

 

세상에 기복적인 요소가  없는 종교가 어디에 있으며 기복에 자유로울 수 있는 중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복이 기복으로서 끝나지 않고 자기 발전과 정신적 성숙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문제라고 봅니다. 더욱이 기복이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나 공양의 범위를 벗어나서 매불로 전락 한다면 이를 경계해야 하지 않겠는지요?

 

스님께서도 이곳에 와 보셨겠지만 여기 불교도 기복이 있습니다. 특히 하안거가 끝나면 "마하피릿"이라는 큰 행사를 사찰마다 하며 불자들의 오른 팔에 실을 묶어 줍니다. 이러한 피릿이라는 의식은 불교가 이나라에 들어 오면서 민속신앙을 포용한 결과 입니다. 사업 잘되고 건강하고 돈 많이 벌고 원하는 것 모두다 이루어 진다고 불자들은 믿으면서 피릿이라는 행사에 참석 합니다.

 

여기서 길게 피릿이라는 의식을 설명 드릴 공간은 아니지만,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매불은 안 합니다. 아니 매불을 하기 보다는 붓다의 가르침을 더욱더 가슴에 새기는 행사 입니다. 보통 초저녁에 시작한 염불행사는 수행승과 불자들이 길게 실을 늘어 트려서 그것을 붙잡고  그 다음날 아침까지 염불을 하니까  12시간 정도를 밤새 도록 염불을 합니다. 그리고 그 실을 수행승이 일일이 잘라서 피릿이라는 행사에 참여한 불자들의 팔에 감아 주며 축복을 해 줍니다.

 

제가 늘 주장하는 것이지만.. 남방불교에서도 기복은 있습니다. 수억의 인구가 불교 믿고 있습니다. 그럼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불교속에서 기복을 이끌어 가나 정도는 공부해 보고 알아야 된다고 생각 합니다.

 

한국의 많은 분들은 무조건 기복하면 원론적인 이야기만 합니다. 기복을 비난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하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진실을 호도하고 두손으로 하늘을 가릴려고 합니다. 교리니 불법 훼손이니 그런것은 둘째치고라도 일단 기복=매불이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자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청정한 마음을 되찾아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에 살다보니 이곳 불교를 늘 접하며 삽니다. 저도 기복 엄청 합니다. 늘 장사 잘되게 해 달라고 손발이 닳도록 빕니다. 오죽했으면 힌두사원에도 갑니다. 하지만 그런것은 내 개인의 문제일 뿐 불교나 수행승이 앞장서서 기복을 행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미신적이고 힌두교적인 행사도 사찰에서는 없습니다.

 

더더욱 돈을 주고 받는 행위는 꿈도 못 꿉니다. 불교가 기복하지 않고도 이곳은 잘 돌아 갑니다. 기복은 사찰 밖에서 개인이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순수한 중생 그 자신의 문제일뿐이지 그걸 불교가 포용하거나 끌어안고 갈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겠지요.  

 
붓다앞에서 빌고 보리수 나무 보고 빌고 그 나무 끝에 수많은 소원을 헝겊에 적어서 보리수 나무에 매달아도  그냥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일 뿐 입니다. 그걸 수행승이 돈받고 이래라 저래라 또는 재 지내고 염불하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자비관 정도는 염불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이기적인 기복만 할것이 아니라 다른사람 복도 빌어라라고 웃으면서 말해 줍니다. 저도 절에가서 복 빕니다. 하지만 수행승 몰래 몰래 등불켜고 죽어라고 붓다 앞에서 오체투지 합니다. 수행승에게 돈 갖다 주면서 복 달라고 제사 지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복을 해도 늘 모든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빌뿐이지 제 자신의 가족만 잘 되게 해달라고 나만 돈벌게 해 달라고 빌지 않습니다.  

 
연기의 존재인 우리는 어차피 너와 내가 얽혀 있습니다. 나만 홀로 존재하는게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은 없다고 봅니다. 여기에 있는 상당수의 한국불자들도 이제는 기복을 해도 .. 늘 이렇게 빕니다. 부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모든 사람들이 잘되게 해 주세요 ... 저는 늘 주장 합니다. 제발 한국 불자들도 다른나라 불교좀 공부해라.. 우물안 개구리처럼 있지 말고.. 남들이 어떻게 하는줄 봐야 무엇이 틀렸는지 옳은지도 분간하고 자신을 되돌아 보게도 되겠지요.  

 

또한 이곳은 사찰에 돈 주고 싶으면 그냥 공개적으로 보시하면 됩니다. 사찰에는 수많은 불사도 있고 돈 쓸곳도 많습니다. 복짓고 싶으면 대중공양 하면 됩니다. 모든 스님들 모셔놓고 공양 올리면 됩니다. 나혼자 살짝 몰래 .. 그런것 없습니다. 

 

이곳에서 10년을 넘게 공부하시고 박사학위를 받으신 후 빠알리어 경전 번역에 온 힘을 쏟으시는  분이 늘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한국 불교와 스리랑카 불교가 다른게 딱 두가지가 있다.

 

1) 청정한 스님이 청정하지 않은 스님보다 많다.

2) 모든 사람들이 불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곳 스님들은 잘못을 저지르면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확한 붓다의 가르침을 모르니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다.

 

밀린다 왕문경에는 알면서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 중에서 어느것이 무거운 악업이냐는 물음에 나가세나 스님은 모르고 짓는게 더 무거운 악업이라고 대답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회통념적인 생각과는 전혀 반대의 말을 한 것 입니다. 즉 알고 지으면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으니 참회도 하고 그 잘못을 고칠 기회도 있지만 모르고 있으면 옳은지 그른지 모르니 평생 고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명 쉽게 말하면 공부 안하는 무식함 이라는게 불교에서는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 합니다,

 

자등명 법등명이며 복을주는 절대자도 없고 그리고 신과 중생을 중간에서 매개해 주는 신관도 필요 없습니다. 사찰에서 힌두교적인 재 문화를 하면 안된다는 것은 상식 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기에 수행승은 사찰에서 기복에 앞장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출가한 수행승도 아닌 세간사를 사는 중생들은 수행승처럼 그렇게 마음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일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매달리게 됩니다.

 

그래서 절에가서 기도하고 보리수 나무한테 죽어라고 매달립니다. 하지만 사찰과 수행승들은 그런 중생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지켜 볼 뿐 입니다. 기회가 닿으면 늘상 마음 편안하게 법문도 해 줍니다.

 

회사 새로 만들고 집 옮기고 아이 낳고 아프거나 사람이 죽거나 .. 온갖 세간사에 스님들이 옵니다.축복도 해주고 염불도 해 줍니다. 사람이 죽으면 밤새도록 염불 해 줍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 염불해 주는게 아닙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인생무상과 윤회의 가르침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자비경과 보배경을 암송하며 회사 오픈한 것 축하해 주고 새로 이사간 집에 잡귀신 없도로 쫓아 줍니다. 아이들 축복도 해 줍니다. 결혼식에도 참석해서 축하해 줍니다. 하지만 한국과 무엇이 다른지 아십니까? 이곳 수행승들은 중생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수행승이 와서 축하하고 축복해 주길 바라는 그러한 중생의 미혹한 마음을 달래 주기 위해서 옵니다. 그리고 법문을 하지요. 붓다의 말씀을 길게 늘어 놓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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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비우면 비운 만큼 차고 넘칩니다 마음이든, 물건이든 남에게 주어 나를 비우면 그 비운 만큼 반드시 채워집니다. 남에게 좋은 것을 주면 준 만큼 더 좋은 것이 나에게 채워집니다. 좋은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좋은 말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을 쓰면 쓸수록 그만큼 더 좋은 글이 나옵니다. 그러나 눈앞의 아쉬움 때문에 그냥 쌓아 두었다가는 상하거나 쓸 시기를 놓쳐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좋은 말이 있어도 쓰지 않으면 그 말은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더 이상 좋은 말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중에 할 말이 없어 질까 두려워 말을 아끼고 참으면 점점 벙어리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샘물과 같아서 퍼내면 퍼낸 만큼 고이게 마련입니다. 나쁜 것을 퍼서 남에게 주면 더 나쁜 것이 쌓이고, 좋은 것을 퍼서 남에게 주면 더 좋은 것이 쌓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그냥 쌓이는 게 아니라 샘솟듯 솟아 나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니 말입니다. 가난이 두렵다고 과도한 재물을 탐하지 말 것이며, 부자의 있음을 비방하여 자신의 무능을 비호하지 말아야 합니다. 차고 넘치면,비우십시요 비우면, 가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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