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해궁(普海宮)

 

마음의 본심은 본래 지혜와 복덕이 원만 구족하여 부족함이 없으므로 마음 바다 속 궁전에 보장함이라 하여 보해궁이라 하여 항상 주인공이 자재하여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2, 보명심(普明心)

 

 마음 광명이 우주 공간에 두루 원만하여 어두운 곳이 없어 항상 광명을 발하여 번뇌인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하여 마음이 광명을 발하여 보배라 한다.

 

 

3, 법수해(法水海)

 

 마음 진리의 말씀인 부처님의 말씀이 바다 물처럼 천만강 물의 오염을 분별이나 싫어함이 없이 받아줌으로 바다를 일미해(一味海)라 하고, 우리가 신구의(身口意) 몸․입․뜻으로 싫어함이 없이 진리의 바른 행위(業)를 실천하는 것이 불 보살 성인의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 법수해이다.

 

4, 법왕심(法王心)

 

마음의 주인공은 부처님이시다. 부처님의 말씀(敎)과 마음(禪)의 가르침으로 배우고 실천하여, 나의 주인공을 찾아서 수처작주(受處作主) 곳마다 주인공이 되라는 것이다.

 

5, 일심해(一心海)

 

마음을 바다에 비유한 것으로 바다 같은 마음으로 사라는 것이다. 바다는 파도가 없지만 바람으로 인연하여 파도가 일어나면 바다 면에 형상을 나툴 수 없는 것 같이, 마음은 고요하여 신통 묘용이라 하지만 중생이 경계로 인하여 인식하므로 번뇌가 용솟음 친다. 파도 없는 바다처럼, 번뇌 없는 마음으로 사라는 것이다.

 

 

6, 불이성(不二性)

 

산천 초목이 나 아닌 것이 없으므로 나와 더불어 하나인 것으로 나란 생명이 무시겁으로 내려오면서 형상과 이름의 전환을 헤아릴 수 없으므로 현재의 자신도 고정적인 것이 없이 변하고 있는 것으로 긴 시간에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보면 형상으로 아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름과 형상이 없으므로 너와 내가 둘 아닌 하나인 것으로 모든 삼라만상이 분별이 없는 하나의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삼라만상이 마음을 떠나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므로, 불이성은 둘 아닌 하나인 성품으로 하나라고도 이름 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인 것이다.

 

 

7, 삼정심

 

신구의(身口意)로 몸 입 마음의 행위를 말한다. 삼업(三業)을 십선(十善)과 십악(十惡)으로 말하지만 십섭(十善)을 삼정(三)이라 하여, 바른 일은 불살생(不殺生)의 생명존엄이고, 불투도(不偸盜)는 훔치지 않는 것으로 보시를 실천하고 불사음(不邪淫)은 질서인 윤리 법도를 몸으로 바른 일을 실천하라는 것이고, 바른 말은 망어(妄語), 기어(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를 진실한 말로 실천하라는 것이고, 바른 뜻은 탐애(貪), 진에(瞋), 어리석음(癡)으로 마음을 병들게 하는 독(毒)이라 하지만 자비심으로 잘 수행하면 십선이고 번뇌를 일으키면 십악이라 하여 선악의 중도(中道)가 삼정(三)으로 바름을 스스로 실천하므로 성인의 마음으로 가피력을 성취한다.     

 

 

8, 법관심(法觀心)

 

항상 진리 마음으로 관찰하므로 부처님 마음을 잊어버리지 마라는 것이고 깬 마음으로 사라는 것이다. 순간 순간의 아는 마음이 일어나면 바로 번뇌인 것이고 아는 마음을 놓아버리고 여여심(如如心)으로 가고 오는 시비 생사가 없는 마음인 본성으로 돌아 갈 수 있는 마음이 법관심이다.

 

 

9, 견명심(見明心)

 

본심의 밝음으로 바르고, 고르고, 맑음으로 지혜와 복덕이 본래 구족한 마음을 보라는 것으로 항상 이 마음을 실천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견명심에서 보면 부처님 마음이나 중생의 본 성품은 둘 아닌 하나인 것으로 차별이 없지만, 중생이 스스로 생사심(生死心)을 일으킴으로, 이 마음을 비우기 위하여 수행하고 염불하고 참선하는 것이다.

 

 

10, 보덕심(普德心)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을 보덕심이라 하고 마음의 자비심으로 생명의 소리에 응하시는 중생의 어머님이시다. 관세음보살님은 32응신으로 근기에 따라서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부처님 몸으로도 변화하시고 심지어 나찰 귀신으로도 변화 하시여 중생을 위하시는 오직 자비 화신으로 답답한 중생이 나무 관세음보살님하고 한 마디 염불만 할 수 있다면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마침 핏덩이 아이가 어머님을 만나는 것과 같아 오로지 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11, 무진해(無盡海)

 

바다 포옹력은 다함이 없는 것이 천만 갈래의 샛강들의 물이 바다를 향하여도 바다는 다 함이 없이 싫어함이 없는 것이 마침 성인의 마음이 중생을 싫어함이 없이 구제함이라 시간의 미래가 다함이 없는 거와 같아서 중생의 원력이 다함이 없는 것이라, 다 함이 없는 무진의(無盡意)마음으로 결국은 본성을 찾아서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12, 수월심(水月心)

 

 물이나 달은 다 마음을 비유한 말로 수월심은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다. 관음은 자비심으로 체(體)을 삼아 모든 생명에 생명력이므로 물, 흙, 공기는 생명에 힘인 것으로 수월심은 자비심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13,  광명심

 

광야에 죽고 사는 수레바퀴에서 돌고 돌적에 윤회하는 원인의 욕망이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인 것을 아는 마음은 광명심인 지혜의 마음으로 탐진치심(貪嗔癡心)에서 해탈해 광명심으로 살라는 것이다.

 

 

14, 도솔천(兜率天)

 

부처님 말씀에 도솔천은 욕계(欲界) 6천(天)으로 도리천 위에 도솔천으로 부족함이 없는 하늘 나라로 도솔은 우리말로는 만족을 말하고 정토(淨土)라 한다. 정토는 살생이나 억압의 시비 선악이 없고 항상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중생들은 항상 정토에 가기를 발원하면서 자신이 살기 위하여 살생하고 욕망으로 살아가므로 잘못된 전도심으로 번민하고 정토는 중생들이 스스로 만들어야 할 자비심을 실천하여야 정토가 나타나므로 항상 도솔천의 족한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라는 것이다.

 

 

15, 일광화(日光華)

 

태양처럼 밝음을 말한다. 태양의 빛으로 생명이 살아가려면 이글거리는 태양의 강한 열은 생명이 살지 못하고 달의 찬 기온으로도 생명은 살지를 못하지 더움과 찬 기온의 만남으로 따스한 기온으로 변하면 생명은 잘 사는 것이다. 중생의 욕망이 많으면 고통의 원인이라 즐거움이라 할 수 없고 욕망을 절제하고 남에게 베푸는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마음이 즐거움이다. 일광화는 생명에 힘을 절제하여 더불어 사는 마음의 지혜로움이다.

 

 

16, 월광화(月光華)

 

일광화와 동일하다.

 

 

17, 대지화(大智華)

 

 큰 지혜는 부처님 마음으로 살라는 것으로 각자 스스로 지혜와 복덕이 원만하므로 부족함이 없지만 고통이고 부족함이라 하는 것은 스스로의 행위인 것으로 스스로가 만족하다 하면 만족한 것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한 알의 씨앗이 열 개의 씨앗보다는 부족하지만 한 씨앗일지라도 움이 트면 많은 열매가 맺게되는 것으로 만족이고 충만한 세상으로 더불어 나눔으로 정토가 실현되므로 한 씨앗이 썩는 희생은 모성애가 자비심으로 실천되는 것이다. 큰 지혜는 조그마한 한 씨앗의 섭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8, 청정심(淸淨心)

 

 청정심은 모든 지혜의 근원으로 형상과 이름으로 헤아릴 수 없이 죽고 살고 변화하면서 영원하게 지속되는 것은 생명력으로 청정을 말한다. 청정은 마음, 물, 공기, 흙에 주인공으로 주인공을 잊어버리면 생명력이 다한 것이다. 지혜를 학문에서 찾으려면 하지 마라, 학문은 지혜의 길을 인도하는 안내문이므로 집착하지 말고 마음, 공기, 물, 흙을 청정하게 할 줄을 알면 지혜는 스스로 성취되는 것이다.

 

 

19, 여래장(如來藏)

 

 중생의 마음속에 지혜와 복덕이 충만한 보배 창고로 아직 나타나지 않은 감추어진 중생심 가운데 있는 부처님의 마음을 말한다. 이 보배 창고는 다 함이 없고 사용하면 사용 할 수록 증장함으로 미묘한 것이라 중생의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20, 보리심(菩提心)

 

 깨달음의 마음으로 깬 마음이고 산 마음으로, 모든 생명들에 싫어함이 없어 스스로도 싫어함이 없고 경계 대상의 자연에도 싫어함이 없는 것이다. 나와 남이 하나인 것으로 아픔이 나와 남이 없고 중생들이 아프면 내가 아픈 것이고 중생들이 즐거워하면 내가 즐거운 것으로 한 개인이 잘 산다고 하여 잘 사는 것이 아닌 것은 마침 물이 청정하면 풀, 나무, 짐승, 사람, 등 모든 생명이 잘 사는 것이라, 보리심은 삼라만상을 깨침으로 나타나지, 뭇 생명은 생명으로 생명은 형상과 이름으로 무수히 변화 속에서 생명력인 청정으로 지속되면서 산 생명력으로 지속된다. 보리심인 깨침은 영원한 산 생명력이다.

 

 

21, 정진심(精進心)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항상 변화하는 마음으로 거듭 거듭 지속한다. 생명력의 지속성은 새봄이 오면 산천 초목이 움이 트고 땅속에서 노랑의 새싹들이 숨바꼭질을 한다. 천지의 기운이 정진력으로 겨울속에 꽁꽁 얼어버린 대지가 봄의 따스한 기운으로 겨울 벌거벗은 나목이 봄의 초롱초롱한 어린 동군(東君)의 미소로 푸른 옷을 입고 꽃피고 열매 맺고 하는 자연 현상이 다 정진심으로 항상 새로운 마음이고 순간 순간의 지속성이다.

 

 

22, 인욕심(忍辱心)

 

 참고 견디는 마음은 재앙의 화를 복덕으로 전환시키는 힘이 있다. 한 번 한 번 부처님의 생각은 자신의 운명과 팔자를 탈바꿈시키는 원동력이고 마음속에 감추어진 부처님의 마음을 발굴하게 함으로 가치관을 개발하여 물질의 욕망에서 정신의 가치관으로 전환하면서 마음으로 자연을 관찰하는 힘이 생긴다. 인욕심은 산란심을 고요하게 하므로 고요한 마음은 지혜가 나타나고 고난의 세상에는 참는 것이 제일이고 참으면 원만상이 성취된다.

 

 

23, 만덕심(萬德心)

 

 마음은 만덕에 근원이라 마음을 수행하지 않고는 잘 살 수 없다. 마음이 지혜와 복덕을 갖추고 있는 근원이므로 마음을 등지고 아무리 재물이 많다고 하여도 그림자에 불가한 것이고 아무리 학식이 높다 하여도 마음을 등지고는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마음이 부처도 되고 극락도 가고 지옥도 가는 것이지, 몸은 잠긴 쉬어 가는 쉼터인 것이라, 모든 것을 몸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으로도 욕망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스스로 수행하면 복덕과 지혜는 스스로 성취되는 것이다. 남을 부려워 할 것도 없고 남을 미워할 것도 없는 것이지만 자신의 몸에 집착하여서 시비 선악 생사하는 것이라 시비 마음을 놓아버리면 바로 그 자리가 안락하고 극락이고 죽은 후에도 정토에 가는 것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극락을 바라는 마음은 어리석음이므로 만덕심의 길은 바른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24, 보리자(菩提子)

 

 보리심을 실천하는 자는 부처님의 마음을 배우는 자이고 배워서 깨달아 실천하여야 함으로 이 모두가 보리자의 발심이다. 바름을 배우고 가르치고 실천하게 도우고 봉사하는 자들이 많을 적에 더불어 사는 정토라 할 것이다. 
부처님의 아들 딸들은 항상 깬 마음으로 바른 마음을 실천하게끔 노력하고 봉사하여야 한다.

 

 

25, 법성해(法性海)

 

 법성은 마음의 본성을 말한다. 본성의 청정심이 바다와 같아서 시비심이 없고 근기에 순응하므로 삼라만상에 주인공이시다. 본래 법의 성품은 없는 것이지만 법성이란 이름으로 형상을 나투는 것이라, 법성이란 없으면 모양도 없는 것이다. 이름과 모양이 번뇌라 하지만 이름과 형상이 없이는 발심을 할 수 없다.

 

 

26, 보타심(普陀心)

 

 보타 낙가산은 관세음보살님이 항상 계시는 곳으로,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바다 변으로 해가 뜨는 동해를 바라보면서 새벽의 해맞이를 하면 해의 기운을 체험하면서 자연의 기운을 받아서 건강하고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환희심으로 웃음으로 병 없이 건강하게 수명이 장수하는 것은 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이시다. 보타심은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으로 생각 생각이 관세음보살님하면 관세음보살님이 같이 하시므로 두려운 마음이 없고 자비심으로 항상 생명에 어머님이 된다.

 

 

27, 보문심(普門心)

 

 마음이 넓기는 무변하여 끝이 없으므로 무변 허공이라 한다. 무변 중생을 제도 할 중생의 수는 헤아릴 수 없지만, 관세음보살님의 원력문은 헤아릴 수 없으므로 대자대비라 하여 먼지 같은 항하사 모래라도 비교 할 수 없다.

 

 

28, 보현심(普賢心)

 

 보현, 문수를 복덕과 지혜을 상징하여 보현과 문수를 코끼리와 사자로 표현하고 중국 국청사의 한산 습득을 문수, 보현의 화신이라 한다. 화엄경 보현 행원품에서는 보현행자를 실천 원력보살이라 하여,  불보살님들의 마음은 신구의업(身口意業)에 싫어함이 없다고 하심으로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일을 스스로 실천함으로 성인의 가피력이 성취되는 것이다.

 

 

29, 문수행(文殊行)

 

문수보살님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님으로, 모든 불보살님의 어머님이라 대승 사상에서는 말한다.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님을 이름한 것이고 지혜를 뜻으로 보면 가치관으로서 바름이고 밝음이고 맑음을 말한다. 인연법의 마음으로 관찰하면 두두 물물이 서로서로 상통하므로 시간과 공간의 차이점으로 너나하고 시비를 하고 시간과 공간을 나열하여 보면 너와 나로 분별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여 보면 너와 내가 하나인 마음으로 돌아오므로 문수의 지혜는 산천 초목를 마음으로 하나로 보는 것이다.

 

30, 연산자(蓮山子)

 

 산 형국이 연꽃 모양이라 하여 연산(蓮山)이라 하고 화산(華山)이라 하고 또는 수미산(須彌山)으로 중국 티벳트 설산에는 만년설로 연꽃 봉우리처럼 보이지만 새벽 햇살로 빛나는 화산(華山)은 마침 광명을 발하는 한 송이 찬란한 광명의 연꽃이다. 한국은 조그마한 산들이 옹기종기 모여 연꽃처럼 곁곁이 한 잎 한 잎 연꽃이 핀 산 형국을 바라보면서 연산자는 연꽃 속에 나투신 극락세계 아미타불를 친견하는 마음이다.

 

31, 해운심(海雲心)

 

 해운은 지역의 명칭으로 바다가의 안개를 생각 할 수 있다. 바다가 해변의 새벽 햇살 속에 안개의 해운은 햇살의 각도에 따라서 안개의 모양새가 사슴 같고, 호랑이 같고, 코뿔소 같고, 학 같고, 기러기 같아서 미묘한 절경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배경을 무아(無我)지경이라 한다면 해운의 배경이 무아지경의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해운심은 무아심으로 형상과 이름에 집착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32, 금연화(金蓮華)

 

 금빛 연꽃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연꽃은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 하여 연꽃 피는 곳은 시궁창이지만 연꽃은 오염에 물들지 않으므로 부처님께서 세상의 오욕락에 물들지 않으므로 진리를 성취하셨다. 연꽃을 부처님 꽃이라 한 것도 의미가 여기에 있으므로 금연화는 세상의 욕망에 물들지 말고 연꽃처럼 사라는 것이다.

 

33, 광덕심(廣德心)

 

 넓고 큰덕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자비심을 말한다. 자비심은 다 함이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무량 무변이라, 중생의 원력이 끝이 없고 부처님의 자비심이 끝이 없어 대자대비라 하여 친소가 없으나 악을 지으면 슬픈 자비로 애민하게 생각하시고 또 선을 지으면 가피력을 주시므로 항상 우리와 같이 호흡하시므로 생명에 자비심이다. 자비심은 거울과 같아서 거울에 형상이 나타나는 것은 평등한 것이라, 자비심도 평등하여 친소가 없는 마음이라 하여 광덕심이라 한다.

 

34, 해수월(海水月)

 

 바다 물에 달은 마음으로 청정한 마음이다. 바다에 달은 파도가 없으므로 바다 수면에 보름달이 원만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청정한 마음은 마침 물그릇에 황토 물을 흔들어 놓으면 미트바닥이 보이지을 않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흙탕물은 가라 않고 맑은 물을 다른 그릇에 옮기어 놓으면 흙탕물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해수월은 청정한 마음을 말한다.

 

35, 무심화(無心華)

 

 마음이 없다는 말은 마음에 번뇌가 없다는 말이다. 번뇌가 없는 마음은 마음의 본래 바탕을 말하므로 선악이전의 마음으로 일어나지 않은 마음으로 본래 면목이라 할 것이다. 시비 생사 거래가 없는 마음으로 불생 불멸(不生不滅)한 마음으로 부처님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36, 무생화(無生華)

 

 

 태어남이 없는 마음은 무루심(無漏心)으로 다 함이 없는 마음으로 가고 옴이 없는 마음으로 가고 옴이 없는 여여심(如如心)으로 불성(佛性)을 말한다. 불성은 씨앗이 움트고 자라서 꽃피고 열매 맺는 것이 불성이라 한다. 자연의 섭리는 누구의 지배나 억압 할 수 없고 누가 훔쳐 갈 수 없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마침 생물이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아무런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자랑으로 상을 내지 않는 마음으로 함이 없는 무생심이 다.  

 

 

37, 무상화(無相華)

 

 상(相)이 없는 마음은 시비하는 마음이 없는 마음으로 봉사 정신이라 할 것이다. 무애보시(無碍布施)는 도리를 말한다. 강물에 사람이 뜨 내려가면 보상심에서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이 없이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무애 보시란 것이다. 홍수 물에 뜨 내려가는 나뭇 토막에 개미무리를 보면서 개미를 구제하여 수명이 장수하였다는 이야기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남의 생명을 구제한 공덕으로 단명한 목숨이 장수하였다는 인과 이야기 속에는 자랑 없이 남을 위한 공덕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말 없는 가운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무생심(無生心)이다.

 

 

38, 팔정도(八正道)

 

 여덟가지 바름의 부처님 말씀으로 보고 듣고 하는 것을 바르게 실천하라는 것이다. 선악은 행위로 나타난 것으로 경계를 말하는데 착한 것이라 하지만 하나가 착하다 하면 하나가 싫어하므로 착한 것이라 하여도 상대적이므로 영원한 착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선악의 바름은 선악이전의 본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고 바로 바름을 실천하면 과거의 잘못이 비워지고 현재에는 마음이 안정을 찾고 미래는 마땅히 바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바름은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로 상통하는 것이다.

 

 

39, 팔신행(八信行)

 

 통도사부산포교원 제 8기 신행학교 졸업식 5계(戒)와 불명(佛名)을 수지(受持)하면서, 8기 신행학교라 하여 팔신행(八信行)라 한 것이다. 불교에 입문하면 부처님의 아들딸이라 하여 불자(佛子)라 하지, 불자는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므로 정신적인 가치관을 다시 확립하는 삶으로 거듭 태어난 것으로 몸은 부모님의 은혜이고 마음은 부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불자의 원력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정토를 성취하고자 하는 원력이 있어야 불자인 것이다. 팔신행은 마음으로 거듭 태어난 정신의 고향을 말한다.

 

40, 무아행(無我行)

 

 내가 없다는 말은 아상(我相)이 없다는 말로, 나란 몸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라는 것이고, 또 마음이지만 형상과 이름의 집착심이 아닌 인연법으로 보면 내란 것이 모두가 자연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라, 몸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지만 죽으면 뼈와 살이 흙으로 돌아가고 물기는 물로 돌아가고 열은 불로 돌아가고 호흡은 바람으로 돌아가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원소로 돌아가면 형상과 이름이 변화하여 없는 것을 내라고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니, 이것을 알면 무아(無我)라 하여 몸이란 고정인식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자유자재하는 것이다.

 

41, 성지수(聖知水)

 

성지는 지역 이름으로 부산 서면 초읍 어린이 대공원이 성지곡(聖知谷)이라, 신라 말 최치원 선생님이 이름하였다 한다. 성지곡 백양산에 가서 산림욕을 하면 흙 냄내도 나고 숲속에 초목 향기에 심취하면 스트레스는 스스로 사라지고 성지곡 입구에 들어서면 계곡 물소리가 귀에 들리는 건지. 내 마음에서 물소리가 나는 건지, 시비를 하는 것이 스님의 마음이다. 스님들의 말씀은 내 마음에서 물소리가 나므로 듣는 것이라 하지만 무시겁으로 집착한 고정인식은 내 귀에 들리는 것이다. 무한한 숲속 터널은 사람의 마음을 유혹시키고 무한히 심취하게 하고 계곡마다 물소리가 마음에서 나고 있고 숲 속의 푸른 잎들이 하염없이 춤을 추면서 반기는 환희심은 나의 마음이 무아지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성지곡은 가면 갈수록 가고 싶은 곳으로 생명들의 정토이다. 이러한 마음이 성지수이다.

 

 

42, 서면자(西面子)

 

 서면은 부산 중심인 지역 이름으로 스님이 서면자라 하여 불교의 가르침으로 서방 정토 아미타불을 친견하는 마음으로 생각하여 서면자라 한 것이다. 아미타불 정토를 낙토라 하고, 부산 서면을 초읍(草邑)이라 하여 푸른 마을인 초목의 낙원으로 정토를 말하고 있다. 지역 이름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로 불교 사상에 접근시켜 본 것이다.

 

 

43, 가야행(伽倻行)

 

 서면자와 같이 지역 이름을 불교 사상에서 살펴본다. 가야는 인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곳으로 붓타 가야라 한다. 인도의 붓타 가야와 우리나라 부산 서면 가야 명칭의 공통점이 있는가 하는 점은 가야국 김수로왕후 허씨 부인이 인도 사람이란 것이다. 왕후는 도래인으로 인도 가야와 우리나라 가야의 명칭이 같다는 공통점이다. 가야행은 한국 부산 서면 가야의 지역 이름으로, 인도 붓타 가야의 깨달음 정신을 이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44, 불타심(佛陀心)

 

 부처님 마음으로 부처님을 따르고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여 실천하라는 것으로, 부처님 말씀은 팔만사천 법문이고, 몸짓이전의 마음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인 선(禪)이라, 몸짓이전의 마음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오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이 가섭 제자의 마음으로 전하여 이심전심으로 전하여 중국 달마 스님은 선(禪)으로 스스로의 본래 면목으로 복덕과 지혜가 원만구족한 자리를 확인하면 견성(見性)성품의 자리를 보았다하여 선지식이라 하여 스님들의 법담(法談)으로 우리 마음에 전하여지고 있다.

 

 

45, 법안자(法眼子): 법의 눈으로 진리를 말한다.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을 육안(肉眼)이라 하고, 마음으로 관(觀)하는 것을 마음으로 본다고 하여 인연의 연결 고리를 시간과 공간을 통찰하는 것으로 과거 현재 미래가 상통하는 것으로 심안(心眼)이라 하고, 법안(法眼)은 법의 가치관으로 통찰하는 것이고, 천안(천안)은 하늘의 섭리로 자연의 섭리로 통찰하는 것이고, 불안(佛眼)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보는 것으로 두두물물의 충만한 원만성을 말한다. 법안자는 법의 가치관으로 통찰하여 욕망의 가치관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46, 법인화(法印華)

 

 법의 도장이 무엇인고, 마음의 도장을 심인(心印)이라 하여 서로 서로가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법인은 법을 인가 받는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은 과거 세상 연등 부처님으로 부처님이 된다는 수기(授記)를 받으셨고 석가 부처님은 미래 용화세계에 미륵 부처님이 출현하신다고  수기하셨다. 달마스님의 선법(禪法)으로 중국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선지식이 배출되었고 스님과 스님을 연결하는 법의 도장을 법제자라 할 것이고 큰 스님께 불명(佛名)을 받고 계(戒)를 받는 것이 법인(法印)이다.

 

 

47, 법공심(法空心)

 

 공(空)은 없는 것이 아니고 유(有)와 무(無)를 연결하는 고리이고 유무자재를 한다. 법공은 마음도 비고 법도 비고 텅텅 비어 텅빈 충만으로 무소유로 우주의 주인공, 생명의 주인공은 부처님이라 할 것이다. 가진 것 없이 주인공이신 부처님은 중생의 욕망을 비워라 하시는 선지식이시고 실천 선구자이시다.

 

48, 금강심(金剛心)

 

 허물어지지 않는 것을 금강이라 하고 세상에서 제일 단단하고 견고한 것을 금강이라 하지만 아무리 물질이 단단하여도 허물어지지 않는 것은 없으므로 부처님 몸을 금강 불괴신(金剛不壞身)이라 하는 것은 육신의 몸이 아니고 법신으로 보시고 멸하지 않는 진리 세계를 말한다. 사리는 부모님의 몸으로 받은 것도 아니고 수행자가 정신으로 수행한 결정체라 할 것이고, 부처님 말씀에는 계정혜(戒定慧)의 결정체가 사리라 하셨다.

 

49, 반야장(般若藏)

 

슬기을 반야(般若)라 하고 지혜(智慧)라 하고, 반야는 불생․불멸․불구․부정․부증․불감(不生․不滅․不垢․不淨․不增․不感)생사 정추 증감인 죽고 살고 깨끗하고 추하고 더하고 덜한 것이 아니란 것은 반야의 본래 성품은 가고 옴이 없음으로 무애자재한 것으로 모양과 이름의 집착에서 벗어남으로 반야는 대 해탈이고 대 광명이고 대 생명력이다. 이러한 마음을 우리 마음속에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50, 마하심(摩訶心)

 

 큰 마음씀으로 마하는 크다는 말이다. 반야의 지혜가 큰 마음이라 마음속에 지구를 헤아릴 수 없이 담아도 공간이 남는 것이 마음이라 끝이 다 함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우리의 마음으로 살아감에 대장부가 되라는 것이다. 조그마한 일에 집착하여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서 마음에 집착하여 자신의 주인공을 잊어버리고 성내는 미음에 현혹되어 고통을 받는 것이다. 마하심은 주인공을 잊어버리지 않는 마음이다.

 

 

51, 심왕자(心王子): 마음 주인공을 말한다. 주인공을 잊어버리면 욕망심에 현혹되어 욕심으로 즐거움을 삼아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음이 눈앞에 오면 두 손들고 울고 슬펴 하지만 때는 늦으리, 힘있고 젊은 나이에 마음 공부하여 주인공을 찾으면 죽음이 눈앞에 와도 무서운 것이 아니고 마침 헌 옷을 갈아입는 격이라 아무런 두려움이나 싫어 할 것이 없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죽음에 괴로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다면 인연법을 아는 사람으로 마음으로 시비를 무애자재 할 것이다.

 

 

52, 여여심(여여심)

 

“본래모습은 그대로이다.” 충남 아산 보문사 석주스님 94회 생신을 맞이하여 보문사 회향불사에 전국 큰스님 120분의 글 모음이 “수미산 넘는 원력”이라 하여 월운스님은 불평을 하신다. 소승이 그 자리에서 본래모습 그대로가 스님 어뜨야고 하자 본래모습은 그대로이다 하신다.  본래모습 그대로에 토를 붙인 것이 ‘은’ ‘이다.’  수미산 넘는 원력은 부정하시고 본래모습 그대로는 긍정을 하신 것이다. 본모습은 여여(如如)한 자리라 가고 올 것이 없는 자리이지만 중생들이 경계의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마음을 일으킴으로 가고 옴이 있는 것이다.여여는 진여(眞如)이므로 진리 당체를 말한다. 여여(如如)한 것은 태양의 자체를 말하고, 지구에서는 낮과 밤이 있지만 태양 자체는 주야가 없는 것이다.

 

53, 진여행(眞如行)

 

 참이란 진실은 어떤 것인가? 삼라만상이 다 하나인 진실로 통하는 것이니, 시간과 공간이 다른 것 뿐이라, 우리의 입장에서 3천년전이라 한 것이고 3천년전에는 지금을 3천년 후라 하여 시간의 차이이고 극락의 정토나 세상의 정토가 차별이 없는 것은 진여(眞如)이므로 진실은 시간과 공간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54, 각해궁(覺海宮)

 

 깨침의 바다속은 복덕과 지혜가 본래 원만 구족한 자리라 중생이 잊어버리고 욕망의 탐진치(貪嗔痴)를 보배로 오인하여 항상 죽고 사는 바다에서 울고 웃고 하는 것을 즐거움이라 집착하니, 오욕락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벗어나는 길이 각해궁(覺海宮)이다.

 

 

55, 부동심(不動心)

 

 청정심은 일으키지 안는 마음이다. 탐진치심에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고 보고 듣고 형상과 이름에 움직이지 안는 마음이고 시비 선악 생사에 움직이지 안는 마음으로 태산보다도 무거운 마음이 주인공의 마음이다.

 

 

56, 관행자(觀行子)

 

 관(觀)은 마음으로 본다는 말이다. 마음으로 보면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보이는 것이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면 자유자재하여 관자재(觀自在)라 마음으로 관하면 자재한다는 말이다. 이름과 형상에 집착이 없으면 마음으로 관하는 대로 성취가 되는 것이다.

 

 

57, 염불심(念佛心)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것이니, 쉼이 없이 생각하면 삼매(三昧)라 하여 염불이나 참선이 서로 상통하는 것이다. 마음이 경계을 보면 안다고 하지만 마음이 경계에 집착하므로 마음을 잊어버리는 것이니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잊어버림으로 성내는 마음, 탐욕하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으로 주인공의 마음으로 착각하고 오욕락의 물질의 복락에 집착하여 즐거워 하다가 죽고 살고 웃고 울고 하면서 생사 윤회가 헤아릴 수 없다. 부처님 생각을 쉼 없이 하면 염불심(念佛心)이라 삼매력(三昧力)을 성취하는 것이다.

 

 

58, 무량심(無量心)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은 끝없는 마음이고 다 함 없는 불보살님의 원력으로 다 성인이 되신 마음이므로 중생의 마음은 눈앞에 즐거움만 생각하고 눈앞에 백지장의 장애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에 시비를 곧 마음에서 놓아버리라, 장애에서 벗어 날 것이다. 마음을 놓지 않고 기도를 성취 할 수 없는 것이다. 기도를 하면서 보시를 하고 방생을 하라는 것은 살생하는 마음과 욕망의 탐진치 마음을 놓아버리면 성취가 되는 것이다. 기도는 마음으로 하고 보시와 방생은 몸으로 자비행을 하면 바로 자비심을 성취하는 것이다. 죽을 생명을 방생하고 살려주는 공덕으로 죽임을 당하는 지경에서 다시 살아나는 가피력을 입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끝이 없으므로 무량심이라 한다.

 

 

59, 무진장(無盡藏)

 

무궁 무진한 보배 창고가 마음속에 있어 미래가 다하드라도 다함이 없는 것이다. 중생의 번뇌가 다 함이 없고, 불보살님의 원력이 다 함이 없는 것이니, 성인의 원력이 다 함이 없는데 하물며 중생이 원력이 없이 번뇌만 치성한가? 돈벌이에 현혹되어 즐거움을 찾다가 졸지에 죽음이란 낭떨어지를 만나서 떨어짐을 당하면 소가 도살장에 끌려감가 무엇이 다른가? 살아생전에 한 번이라도 불보살 명호를 부르면 답답하고 애달픈 길에 한 방울의 물이 될 것이니 살아 생전에 마음 공부를 하면 죽음이란 것이 생전에 호흡하는 것이라 걱정 할 것이 없고 단지 염불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라. 물질에 현혹되고 처자의 걱정에 현혹되고 자신의 몸에 현혹되지 마라 다 죽음에서 원망하는 소리만 돌아올 뿐이다. 자신을 해탈하지 못하면 선한 공덕이라 할 수 없고 자신이 해탈하면 지옥도 구제된다.

 

 

60, 만행자(萬行子)

 

 천만가지 선행을 한들 마음을 잊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음을 찾아 마음 밖을 헤메는 나그네 몸이 노쇠하고 돈 없고 힘 없는 지경에 당하여 알고 보니 내 마음속에 있는 주인공을 잊어버리고 동서남북으로 헤메인 것이 원통하고 절통하구나 임종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힘을 다하여 주인공을 찾아보니 생각 할 기력이 없으므로 원력을 발원 할 힘이 없음이라 마지막하고 싶은 유언은 “나무아미타불”이로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선행일세.

 

 

61, 용해주(龍海珠)

 

 바다 용이 구슬을 얻으면 여의주(여의주)라 뜻을 성취하는 구슬이라 성인의 가피력을 입은 것이다. 부처님 법을 옹호하는 선신으로 용을 많이 거론하고 용을 꿈에 보면 길몽이라 하여 큰 일을 성취한다는 마음 가짐으로 나타난다. 용은 부처님 법을 옹호하지만, 특히 관세음보살님의 가르침을 받아 중생을 구제하는 일이 많다. 용은 구름, 비, 물을 뜻대로 하는 힘이 있고 용과 물은 청정의 뜻으로 보면 현실적으로 이해를 할 것이다.

 

 

62, 천안심(天眼心)

 

 하늘의 눈은 천지의 섭리를 말한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나(아)는 나무의 열매를 하늘의 기운이라 하고 싶고 땅속에 뿌리를 땅의 기운으로 보고 싶다. 열매와 뿌리를 먹는 것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먹고 사는 천지의 섭리이다.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 하늘의 기운이고 곡식을 먹는 것은 땅의 기운인 것이다. 항상 천지의 기운으로 살고 감사와 은혜를 체험하면서 느끼지를 못하고 공기, 흙, 물을 오염시키면서 잘 살기를 바라면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인 어리석은 행동은 깊이 생각하면 귀가 찬다. 자연의 섭리를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이 천안심이다.

 

 

63, 무변심(無邊心)

 

 끝이 없는 마음은 불보살님의 원력이시다. 중생의 번뇌가 끝이 없고 미래가 다 함이 없는 것처럼 중생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중생의 욕망이 끝이 없지만 욕망을 원력으로 전환시키면 중생 마음이 성인의 마음으로 감추어진 자비심이 실현되는 것이니, 불보살님의 가르침인 원력을 보고 듣고 배워서 실천하므로 자신의 감추어진 자비심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바로 불보살님의 마음과 행인 실천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므로 얼마든지 개발하여야 하고 누구든지 바라는 가피력인 것이다. 가피력을 누구든지 객관적인 의타심으로 성취되기를 바라고 꿈이라도 구어서면 하는 마음이지만 잘못된 인식이고 가피력은 철저한 주관적으로 자신이 바르게 실천하므로 성취되는 것을 마음으로 관찰하지 못한 것이므로, 우리 생활이 마음의 주인공을 잊고 살아온 결과인 것이니, 마침 공기로 호흡하면서 감사와 은혜를 모르고 도리어 자연을 파괴하면서 경제적으로 잘 살기를 욕망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이기주의 짓인가 철저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64, 해연궁(海蓮宮)

 

 바다속 육지에 부처님 경전을 보장하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이것은 스스로의 마음속을 말하고 마음속에 보장한 경전을 스스로 모르고 있으므로 석가 부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스스로가 마음 가운데 경전을 찾아보는 것이니, 해연궁의 마음속에 스스로가 경전을 열람하여 보기 바란다.

 

 

65, 묘법장(묘법장)

 

 묘법(妙法)은 부처님 말씀이고 진리를 말한다. 묘법을 실천하려면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여야 하고 생각으로 마음을 들쉼 날쉼의 호흡 끝에 두고 3분 동안이라도 머물게 하는 훈련을 반복하든지 아니면 지신이 좋아하는 숫자를 정하여 반복하라, 오랜 시간으로 지속되면 삼매(三昧)라 하겠지만 처음으로 호흡을 관하는 자는 시간을 정하여 반복하는 것이 쉬운 것이라, 자주자주 반복하면 자신 속에 감추어진 묘법이 스스로 발하는 것이 마침 태양이 스스로 빛을 발하므로 만 생명이 스스로 자라는 것과 같아서 묘법은 상(相)이 없으므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66,법인심(法印心)

 

46, 법인화 참조.

 

 

67, 법도자(法度子)

 

 통도사(通度寺)는 일천 삼백여년전 자장스님께서 중국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오셔서 이곳 영축산에 모시고 통도사라 하신 것이다. 부처님 법을 모시므로 앞으로 많은 중생을 제도하여 중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통도사라 하여 지금도 부처님 법인 계(戒)을 받아서 수지 봉행(受持 奉行)하면서 실천하고 이다. 법도자는 통도사의 뜻하고 같다.

 

 

68, 정법심(正法心)

 

 바름이 법이고 진리인 것이다. 법이라 하면 세상의 문서 법이 헌법을 생각하고 진리라 하면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생각하고 있지만 법과 진리는 스스로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잊고 마음 밖에서 찾고 있는 것이니 깨닫지를 못하면 법과 진리가 멀 수 밖에 없고 찾기가 힘든 것이다. 이렇게 하나 하나 설명하여 주는 것도 정법이다.

 

 

69, 청정심(淸淨心)

 

 

 무엇이 청정인가? 스스로 마음이 청정하면 모든 것이 청정한 것이다. 요즈음 물 공기 흙인 생명의 힘이 오염으로 모든 것이 아우성인 것을 볼 적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30년전 시골 고향 거리에 반딧불이가 지천이고 샛강에는 다슬기가 지천이고 샛강에 목욕도 하였지만, 요즈음은 시골 샛강마다 접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악취 때문으로 지역의 맥인 샛강이 오염으로 죽은 것이다. 샛강이 청정으로 나타나야 정토가 실현되는 것이다.
21세기는 전 세계가 청정에 앞장서야 생명들이 살아날 것이므로 눈앞에 제시된 화두(話頭)인 것이다. 
  

 

70, 천수자(千手子)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보살님 염불하면서 마음으로 요구하는 곳이 우리의 마음이다. 손이 천개이고 눈이 천개인 관세음보살님 나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하는 마음이 일반적인 마음이다.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가지신 성인이시여 하는 마음은 가치관인 것을 알면 바로 자신의 마음에 가치관이란 것을 직관 할 수 있다. 가치관이 바르면 일천 가지 욕망을 직시에 해결 할 수 있다. 일천가지 욕망을 일시에 해결하는 것이 바로 일천가지 눈이고 손인 것이다. 손과 눈이 일천번을 보살피는 것은 번잡하지만 마음의 가치관이 바르면 일시에 해결하는 것이다. 이것이 관세음보살님의 신통이고 가피력이다.

 

 

71, 불심화(佛心華)

 

 불심(佛心)하면 일반적으로 절에서 기도하는 마음을 말한다. 부처님 마음이란 말인데 뜻으로 보면 부처님 마음이라 대단한 것으로 기도를 열심히 하면 불심이 대단하다 신심이 대단하다는 말은 신자(信子)의 마음을 부처님으로 본 것이다. 불심(佛心)은 부처님 마음이라는 말이고 신심(身心)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다. 의식주에 생각이 없이 오로지 한 마음으로 정성드리는 것을 보고 남이 무의식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칭찬을 하는 마음은 긍정하는 마음으로 보는 자의 감응으로 돌이켜 보면 기도자의 감응이라 할 것이다. 기도의 감응은 이러한 것이고 또한 불심(佛心)이라 할 것이다.

 

 

72, 관음자(觀音子)

 

 관세음보살님을 관음자라 하고 뜻으로 보면 마음으로 관(觀)하여 소리를 듣는 것이라 소리가 들이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서 소리가 남으로 모든 우주소리가 들이고 확연한 것이다. 모두가 산천이 푸르다고 하지 산천이 푸른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푸른 것이지만 마음이 푸르다 하면 노랑 것을 보아도 푸르야 하는 것이지만 마음은 형상과 이름이 없으므로 푸르고 노랑에 자재하는 것이다.

 

 

73, 지장해(地藏海)

 

 지장보살님의 원력은 지옥 문전에서 지옥 중생을 다 구제하시고 성불하시겠다는 원력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신다. 지장해, 지장해 이름을 자주자주 거듭하면 지장보살님께서 고통의 바다를 건느는 힘을 주시므로 인연있는 자를 보고 듣고 하여 망자를 위하여 지장해 지장해하면 망자들이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을 받고 받은 공덕이 다시 지장해하는 염불자에게로 돌아와 구제를 받는 것이다. 남을 구제함이 바로 자신을 구제함이니, 남이 아프면 자신이 아픈 것이고 자신이 즐거우면 남이 즐거운 것이므로 나와 남이 하나인 것이 지장의 원력 바다인 것이다.

 

 

74, 미타심(彌陀心)

 

 아미타불 원력이 미타심으로 극락정토는 고통이 없으므로 극락이라 하여 욕심이 없는 정토인 것으로 미타경에는 땅이나 산천초목이 황금으로 형성되었고 아미타불께서 아름다운 새를 만들어서 설법하신다고 하여 업(업)으로 소생하는 것이 아니라 극락세계는 아미타불의 48원력으로 성취된 세계라 하신다. 지구 인간은 누구나 극락을 사후에 갈려고 갈망하지만 마음으로 관찰하여 보면 욕심으로 갈려고 하고 마음의 욕망을 비우고 갈려는 사람이 매우 적다는 것이 욕계 중생의 특징이라 부처님제자들은 이 뜻을 명심하고 정진하면 정토는 스스로 자연적으로 가는 것이다.

 

 

75, 정토화(淨土華)

 

 정토는 죽은 후에 극락세계가 아니라 살아생전에 정토를 만들어야 사후에도 정토에 나는 것이다. 아미타불 염불하면 편안하고 욕망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남을 위하고 살생 대신 방생하고 훔치거나 속이지를 않고 보시를 하고 선한 말과 마음으로 염불을 하면 남을 부처님처럼 섬기고 자신의 마음에 주인공을 찾아서 보고 듣고 집착하지 않으므로 장애가 없으므로 자유자재한 것으로 싫어함이 없으므로 정토라 하고 사후에도 극락에 왕생하는 것이다.

 

 

76, 허심대(虛心臺)

 

 마음은 허공 같고, 허공은 본래 공(空)함이라, 마음에 번뇌가 없으면 죽고 사는 거래가 없다.
     
      심동허공계, 허공본래공, 심무번뇌염, 생사무거래.
     (心同虛空界, 虛空本來空, 心無煩惱染, 生死無去來).

 

마음에 번뇌가 없으면 시비 생사가 없다는 말이다. 허심대(虛心臺)는 마음 거울이라 거울을 보고 마음을 비우라는 것으로 업경대(業鏡臺)를 말한다. 
사람의 머리카락에 살아 생전에 행위가 유전자로 기록이 된다는 것이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속일 수가 없는 것이라, 본래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찾은 듯 하다.

 

 

77, 무염심(無染心)

 

 마음에 물듬이 없다는 것은 번뇌가 없다는 말이다. 마음은 본래 푸르고 희고 검고 붉은 것이 아니므로 경계를 보고 분별을 하므로 자재한 것이라 마음은 물듬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이 분별하여 집착하므로 안다고 하지만 아는 것이 고정인식이고 형상과 이름에 집착하여 마음에 장애를 일으킨다. 무염심(無染心)은 생사심(生死心)이 없다는 말이다.

 

 

78, 무구심(無垢心)

 

 번뇌가 없는 마음으로 천진한 동자의 마음으로 이 없는 아름다운 마음이라, 푸른 마음도 순응하고 붉은 마음도 순응함으로 고집과 편견의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으로 탐욕이나 성냄이 없이 시비 생사가 없는 마음이라 청정한 물이 모든 생명에 싫어함이 없이 순응함으로 생명력으로 모든 생명에 힘이 되는 것이다. 무구심은 천진한 어린 아이 마음처럼 세상에 걱정이 없는 환희심이다.

 

 

79, 광명화(光明華)

 

 빛은 생명에 힘으로 생명이 싫어함이 없고 빛도 생명에 순응함으로 푸른 생명력으로 빛나고 붉은 생명은 붉은 생명력으로 빛을 내고 삼라만상이 각각 스스로의 불성(佛性)으로 광명을 발하고 있다. 푸른 산천을 바라보면 푸른 물결의 우아한 동작으로 큰 몸짓으로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푸른 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태양의 빛에 감사와 은혜에 환희심으로 영원한 광명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한다.

 

 

80, 대행자(大行子)

 

 석가모니 부처님도 자비심의 대행자이시지만 보현보살은 복덕의 원력보살이시다. 양족존(兩足尊) 뜻은 부처님은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신 분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양족존에 귀의합니다 하는 중생들의 원력이다.  다시 말하면 자비심의 양족존은 지장, 관음의 대자비심이시고 보현의 복덕과 문수의 지혜를 양족존이라 할 수 있다. 실천행의 대행자는 보현보살이시라, 신구의 삼업(身口意 三業)인 몸과 말과 뜻에 싫어함이 없는 불보살님의 마음이시므로 중생들이 무한한 불보살님께 칭찬하고 찬탄 예배한다.

 

 

81, 선재자(善財子)

 

 선재와 문수동자를 생각한다. 화엄경 53선지식으로 선재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음 찾는 구도 길에 선재동자는 53선지식이시고 선지식 가운데는 백정도 있고, 거지, 고기 장사, 국왕, 대신, 보살, 불등을 친견하면서 법 문답의 만행길이 파란 만장하다. 선재동자는 어린 동자의 모습으로 우리 가까이에서 천진성을 가르치시고 항상 법을 찾는 만행자를 발심하게 인도하신다.

 

 

82, 진실행(眞實行)

 

 진실속에 살면서 진실을 모르고 사는 것은 어리석음이고 참회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자비심을 실천한다면 이것이 진실인 것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남도 속이지를 않고 남에게 속키지도 않고 자신이 속키지도 않으면 진실이라 할 것이고 친구가 술을 권한다고 자꾸 먹으면 술이 사람을 먹고 이성을 잊어 마음의 주인공은 삼만 팔천리로 도망가고 혼미한 상태에서 앞산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니 거짓이고 꿈이고 환상이고 거품이고 아지랑이인 것이라 진실이라 할 수 없다. 진실은 술을 먹고 횡설 수설하는 것이 진실이 아닌 것이다. 술을 먹지 말고 욕망도 부리지 말고 자비심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실천하면 진실이라 할 것이다.

 

 

83, 덕해궁(德海宮)

 

 마음은 덕이 싸인 보배 창고이고 바다도 천만 갈래 샛강에서 모인 가지가지 물이 한 바다의 맛으로 싫어함이 없고 더불어 사는 것으로 샛강의 밀물 고기보다도 엄청난 크기의 바다에는 고래 상어등이 상상 밖에 생명들이 사는 것으로 민물의 산천어가 바다로 가면 연어가 되어 돌아오는 탈바꿈을 한다. 우리는 마음도 중생의 욕망에서 살다가 욕망을 비우고 마음의 주인공을 찾아서 부처님과 같은 자비심을 숨기지를 말고 중생이 욕심부리듯 중생 속에 감추어진 자비심을 남에게 보시하듯 실천한다면 바로 자신이 덕해궁(德海宮)이다.

 

 

84, 정덕장(淨德藏)

 

 청정(淸淨)은 공덕장(功德藏)으로 모든 근원이라 할 것이다. 청정하면 바로 공덕의 보배 창고가 스스로 주어지는 것으로 누가 만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것 만큼 스스로가 만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것 만큼 스스로 복덕의 창고가 형성되면서 만 생명이 모여드는 것이다. 마침 땅에 잡초가 자라고 나무가 자라면 나무가 자란 만큼의 생명수가 땅속에 스스로 형성되면서 나무가 무성한 것 만큼 다시 다른 나무에 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 물의 보배 창고가 형성되는 것이라 나무 한 그루가 살면 많은 생명를 살릴 수 있는 힘이 주어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이고 이것이 정덕장(淨德藏)이고 공덕장(功德藏)이라 할 것이다.

 

 

85, 지혜장(智慧藏)

 

 지혜의 보배 창고는 마음이다. 크기는 정한 것도 아니고 이름과 모양새가 없으므로 없애거나 만들 수도 없는 것이 미묘한 것이다. 내 마음속에 이러한 희기한 창고가 있는 것이라 미래가 다하도록 보배를 사용하여도 다 함이 없는 것으로 무게도 없고 형상도 없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유무에 자재하는 것이다. 이 보배 창고는 마음으로 관(觀)하면 스스로 형성되면서 삼천대천 세계가 출입하여도 흔적이 없는 것이다.

 

 

86, 보리생(菩提生)

 

 진리를 인도 말로 “보디”라 하여 “보리”라 발음하고 뜻은 깨달음이라 한다. 부처님 말씀은 자연과 인생의 깨달음 말씀이라 과거 현재 미래가 동일한 이치를 체험한다. 진리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일 하지만 생명의 근기가 다르므로 달리 나타나는 것이 형상과 이름이 다르고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 따라서 순응하지만 형상과 이름이 다른 것은 마침 물이 풀에 순응하면 풀이라 하지 물이라 하지를 않고 물이 나무에 순응하면 나무라 하지 물이라 하지 않는 거와 같다.

 

 

87, 안락궁(安樂宮)

 

 생명이 잘 자라는 것은 편안하고 안락하기 때문으로 생명이 잘 자라는 영문을 보면 태양의 열이 강열하고 가뭄이 들면 생명들이 말라서 죽는 것이고 홍수 폭우로 물이 너무 많아도 생명은 죽는 것이다. 산천에 울창한 나무숲은 가뭄에는 머금어든 물을 내어놓아 가뭄을 해결하고 홍수로 물이 많으면 나무가 물을 흡수하여 홍수의 피해를 방지하게 하지만 양동이 폭우가 한 곳에 300mm가 오는 곳이 많고 상상 할 수 없는 폭염으로 사람과 짐승들이 굶주림으로 죽는 것은 세계가 오염으로 기온이 상승하여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어 일어나는 현상으로 지구에 나무가 무성하면 조금이나마 예방 할 수 있지만 산천이 벌거숭이라면 기후의 제앙은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생명이 잘 살고 편안하고 안락하려면 청정하여야 한다.

 

 

88, 용진화(勇進華)

 

 용기는 몸의 힘보다 마음의 기운으로 스스로 마음가짐으로 나타나는 생명력이다. 몸의 지수화풍(地水火風)이 고르지 못하면 병이 오는 것이라, 열병은 열이 많은 것이고, 추운 병은 물이 많은 것이고, 귀신 병은 바람이 많은 것이고, 기운이 쇠진한 것은 흙 병인 것이다. 기운이 쇠진하여 호흡을 하지 못하면 죽음이란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죽음이 오면 몸에서 바람 기운이 가장 먼저 사라지고, 따스한 기운이 사라지고, 물 기운이 사라지고, 흙 기운으로 차례로 사라지는 것이다. 용기는 마음 기운으로 생명을 형성하는 몸의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모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만들어 내는 생명력으로 행위라 하고 생명력의 근원이라 할 것이다.

 

 

89, 법행심(法行心)

 

 실천이 법이라,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하고 마음씀을 바르게 하는 것이 살아가는 법이라, 자신의 한 마디 말과 손발 한 번 움직이는 것이 나의 법이고 사회를 형성하는 법이고 나라가 움직이는 법이다. 지붕의 낙수 물이 바위에 구멍을 만들고 석회석 동굴에 석순이 자라는 과정을 보면 시간의 미묘함을 체험한다. 다 함이 없는 시간을 체험하면서 안절 부절하는 불안한 마음을 일어 킬 수 없다. 굳어버린 돌 부처의 생명력은 보는 자에 마음이라 할 것이다. 영원한 생명력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잠재한 생명력으로 삼매의 생명력은 말이 없고 호흡을 하여도 소리가 없고 기운의 상생은 쉼이 없이 왕성한 것이지만 함이 없는 생명력으로 영원한 것이다.

 

 

90, 보장해(寶藏海)

 

 태평양 바다를 해체하여 보면 한 방울의 물이고 한 방울의 물은 수증기로 공기로 변하면 바다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한 방울 물이 모이고 모여서 바다가 된 것이므로 보장해(寶藏海)라 한다. 보장해는 모든 생명을 살리고 죽이고 하지,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어나고 비바람으로 폭풍이 일어나면서 태풍의 근원지가 되면서 육지와 바다가 혼비백산이 되고 논밭에는 곡물이 난장판이 되고 야단법석이라 생태계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또 생태계의 변화는 샛강의 오염이나 공장의 공해를 한 번에 맑끔하게 청정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 보해장의 자재력은 누가 흉내를 낼 수가 없다.

 

 

91, 무진자(無盡子)

 

 무진자는 마음이라 다 함이 없는 미묘법이다. 마음은 다 함이 없는 보배 창고이고 이 보배는 쓰고 쓰도 다 함이 없으므로 무진자라 할 것이고 무진자는 이름 없는 이름으로 이름하여 무진자라 한 것이니, 이름과 형상을 보고 듣고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 지붕의 낙수 물이 바다로 향하면 바닷물이 바다로 향하면 바닷물이라 바다 물이 낙수 물이고 낙수 물이 바다 물이라 같은 물이다. 낙수 물이 다함이 없으면 바다 물이고 바다 물이 다 함이 없으면 낙수 물이 됨으로 다 함이 없는 무진자라 한다. 

 

 

92, 지명화(智明華)

 

 없는 이름을 지어서 부르므로 무(無)에서 유(有)라 한다. 지명화란 이름이 없어지만 이름하여 부르므로 지명화의 뜻으로 살아가면 지명화의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없든 세상이 있는 세상으로 나타난다. 새벽 동해 저변에서 용솟음치는 새벽의 햇살을 보라 분명히 마음에 용기가 용솟음 칠 것이다. 태양의 기운은 내 마음으로 느끼고 용기를 일으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없든 것이 있는 것이다. 용기라는 기운이 자연과 내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 지명화(智明華)이다.

 

 

93, 혜월심(慧月心)

 

 지혜의 달을 보려면 보름 달밤에 바다 수면이 잔잔하여 보름 달의 둥근 원만상인 본래모습 그대로 나투는 것을 보면 내 마음에 지혜의 달을 볼 수 있다. 보름 달이 바다 수면에 그대로  모습을 나투는 것은 장애가 없어야 한다. 보름 달 주위에 구름이 없어야 하고 비바람 눈이 없는 천명한 날씨를 만나야 하고 바다 수면도 바람이 없어 파도가 없어야 달의 원만상을 그대로 나투어서 내 마음에 원만상으로 느끼는 것이니 참으로 어려운 인연을 만난 것이다. 내 마음에 선정(禪定)의 달(月)은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94, 법수장(法水藏)

 

 물을 법이라 한 것이다. 법은 스스로의 행위로 보면 어려운 것이 없고 스스로의 움직임이라 할 것이다. 법(法)자는 삼점 획의 물수 변에 갈거(去)자가 법(法)자 이므로 물이 흐르는 자연의 습리가 법이란 것이다. 흐르는 물은 바위를 만나면 바위를 감싸 돌고 웅덩이를 만나면 잠간 동안 쉬어 가고 풀을 만나면 풀이 되고 나무를 만나면 나무가 되어 새싹으로 움이 트고 푸르름의 잎새가 되고 나무 열매가되어 생명들에 양식으로 더불어 사는 정토를 만드는 것이다. 물의 길은 생명의 길이다. 물이 생명에 순응하므로 나투는 모습이 천태만상으로 모습과 이름이 나열되는 것이 법수장(法水藏)이다.

 

 

95, 여의심(如意心)

 

 여의(如意)는 바름으로 말한 것이다. 아난 존자는 평생동안 부처님을 시봉하고 모시고 다였어 부처님 열반후에 경전 결집에 녹음기처럼 부처님 말씀을 암송하여지만 마음을 알지 못하여 다시 용맹정진하여 마음을 알고 깨달음을 얻었어 경전을 결집하므로 아난의 주장으로 여시(如是)라 하여 부처님의 말씀이지 아난의 말이 아니란 것으로 분명하게 밝히므로 대중들이 부처님의 말씀과 아란이 말한 것을 오해하는 일이 없었다. 지금의 경전은 부처님의 마음을 아란이 보고 듣고한 것을 말함으로 결집된 것이라 할 것이다. 다시 아란이 마음을 깨닫지 못하여서면 결집의 뜻이 무의미 한 것이다.
  깨달음으로 부처님의 마음이나 아난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고 아난의 말이 부처님의 말씀과 마음으로 다르지를 않는 것으로 여의심(如意心)이라 할 것이다.

 

 

96, 법보화(法寶華)

 

 법이 보배란 것이다. 부처님 말씀을 불법(佛法)이라 하여 법보(法寶)라 하지,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적에 말씀하신 것을 법신(法身)이라 하여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 법보이고, 요즈음 말로 선(禪)이라 마음을 말한다. 부처님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달마선(禪)이라 하고 마음이라 하고 스님들의 법담(法談)이라 하여 마음의 대화를 말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경전이라 하고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한다. 부처님의 실상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것이라 말도 없고 글자도 없고 이름이나 형상이 없으면서 멸하지 않는 것은 미묘법이라 하여 석가세존은 본래모습 그대로 있는 법을 확인하신 분으로 이 법은 지구가 형성이전에도 있었고 지구가 마멸한 후에도 있는 것이라 참으로 보배 가운데 보배가 진리의 법보인 것이다.

 

 

97, 불도화(佛度華)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마음이 불도화이다. 부처님의 49년 동안 설법하신 말씀이 불도(佛度)이시고 마음은 오직 한 사람으로 가섭에게 전하여 달마선(達摩禪)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전법이 즉심즉불(直心直佛)로 스스로의 마음속에 간직한 본래모습을 스스로가 찾는 선(禪)으로 전하여지고 있다.

 

 

98, 원만심(圓滿心)

 

 본래 원성한 마음의 주인공을 말한다. 우리가 크고 작다 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 크고 작은 것이 아닌 것은 스스로의 모양과 이름으로 주인공이란 것이고 누가 훔치거나 억압 할 수 없는 것으로 스스로의 존엄성이 원만 구족한 것으로 중생이 스스로 어리석음으로 비교를 하여 스스로 차별 법을 낸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본래로 원만 구족한 것이라 한 티끌 속에 우주가 가득한 도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99, 대각심(大覺心)

 

 부처님을 대각자라 하신다. 생명의 존엄성을 역사적으로 중생에게 보고 듣게 하신 분으로 생명의 본래 구족한 본성의 보배 창고를 적나라하게 혁파하신 분으로 하늘과 땅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시고 하늘과 지구에 스승이시고 자신을 조복 받으신 분이시고 가고 옴이 없는 시비선악에 차별이 없으신 분이시고 가장 바른 법을 보이시고 실천하신 분이시고 무소유에 주인공이신 분으로 중생이 존경하시는 분이시다.

 

 

100, 불성행(佛性行)

 

 마음의 주인공을 불성(佛性)이라 한다. 불성은 이름 할 수 없지만 이름한 것은 인연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이름이 다 불성이다. 생명이 물을 먹고 공기로 호흡하면 생명이 살아가는 것으로 빛이 생명으로 순응하고 물이 생명에 순응하고 흙이 생명에 순응하면서 나무는 자라는 것인데 사람은 자연의 은혜을 받으면서 자연을 파괴하고 경제에만 눈이 어두워져 생명을 죽이고 스스로도 병들고 죽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불성행(佛性行)은 잊어든 주인공을 찾아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 

 

 

101, 여래심(如來心)

 

 여래는 부처님 열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로 여여(如如)라 하여 여래 여거(如來 如去) 거래가 없는 여여(如如)한 자리를 진여(眞如)라 한다. 진리로 오시고 진리로 가시니 오고 감이 없으신 분으로 진실 자체인 것이다. 진리는 가고 옴이 없는 자리로 마치 해 자체는 항상 빛을 발하지만 지구에는 주야가 있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점이다. 여래는 진실로 오신 것이니, 태양 자체로 보는 것이다.

 

 

102, 무변심(無邊心): 63번 참조. 

 

 

103, 무량심(無量心): 58번 참조. 

 

104, 보문심(普門心): 27번 참조. 

 

105, 무진의(無盡意)

 

 불보살님의 원력은 중생들의 고통에 순응하시므로 다함이 없고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라 마치 허공이 텅텅 빈 것으로 만상에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마음이 색깔이 없으므로 색깔을 다 순응하는 것이고 마음이 모난 형상이 있으면 둥근 것을 싫어 할 것이고 마음이 둥근 것이면 모난 상대를 분별 할 것이다. 마음은 모나고 둥근 것이 아니므로 모나고 둥근 것을 다 순응함으로 다함이 없는 마음이라 무진의(無盡意)라 한다.

 

 

106, 보현심(普賢心): 28번 참조.

 

107, 환희장(歡喜藏)

 

 자비희사(慈悲喜捨), 자(慈)자애로움은 자씨 미륵보살과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은 항상 생명의 소리와 같이 하시고, 비(悲)는 애민심으로 지장보살님의 슬픈 중생의 소리와 같이 하시는 분이시고, 희(喜)의 기쁨 마음은 대세지보살 마음으로 중생에게 항상 환희심과 용기를 주시고 , 사(舍)의 집착심을 버림으로 지혜와 복덕을 구족하는 문수 보현보살의 마음으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 환희장(歡喜藏)이다.

 

 

108, 미타행(彌陀行): 74번 참조. 

 

 

109, 허심장(虛心藏): 76번 참조. 

 

110, 보리행(菩提行): 24번 참조. 

 

111, 원행자(원행자)

 

 불보살들은 원력을 성취하신 분이시다. 아미타불의 48원력, 지장보살님의 원력, 관세음보살님의 원력, 문수보살님의 원력, 보현보살님의 원력, 모든 불보살님의 원력이 지중하신 본들이시다. 불보살님들게서 생명의 소리에 숭응하심은 마침 물이 모든 생명에 순응하는 것과 같고, 빛, 흙, 공기가 생명에 순응하는 것과 같아서 마음으로 원행자가 되는 것이다.

 

 

112, 금강심(金剛心): 48번 참조.

 

113, 대원심(大願心)

 

 큰 원력은 깨달음이다. 부처님의 아들딸들은 사대 원력이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다 구제하기를 서원하고 다 함이 없는 번뇌를 맹사하고 끊으리라. 부처님의 말씀을 다 배우리라, 부처님의 법을 맹서하고 다 성취하리라, 사홍서원(四弘誓願)이 부처님 제자들의 대원심(大願心)이다.

 

 

114, 원력화(願力華)

 

 중생들의 원력이 있어야 한다. 부처님전에 원력으로 큰 마음으로 맹서하여야 한다. 절을 한번 하면서 염불 한 번 하면서 큰 마음을 발심하여야 한다.
부처님 당시 가난한 여인은 등불공양을 올리면서 큰 원력으로 미래세에 부처님이 되길 발심하여 조그마한 등불 공양의 정성이지만 꺼지지 않는 등불로 부처님께서 미래세에 부처님이 된다는 수기(受記)를 하신 것은 큰 원력 때문이다.

 

 

115, 불이자(不二子): 6번 참조.

 

116, 대광명(대광명)

 

천년 고찰 대웅전에 보면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 하여 법당에 모신 주불(主佛)은 청정법신 비노자나불(淸淨法身比盧遮那佛)로 상주 법신불(常住 法身佛)인 청정으로 나투신 부처님이시다. 중생의 근기에 따라 청정을 부처님의 이름과 모양으로 표현한 것으로 법신은 이름과 모양이 없는 영원한 생명력이다. 자연의 생명력을 보라 공기 물 흙의 청정력이 모든 생명력으로 나타나면서 근기에 따라 천태만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신의 대 광명이 근기에 따라 순응하는 것이니 생명력으로 항상 광명을 발하지만 중생은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안다고 하면서 진리를 망각하고 모르는 것이다. 집착심만 놓아버리면 항상 광명의 생명력을 볼 것이다.

 

 

117, 길상화(吉祥華)

 

 길상은 석가 부처님의 가슴에 32상호 중에 하나인 만(卍)자 표시는 대길상이라 하여 卍자를 동서남북에서 보면 일곱칠(七)로 4×7=28천(天)으로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으로 삼계(三界) 28천의 하늘에 주인공이신 부처님을 상징한 卍자를 대길상이라 하여 사찰 표시를 卍으로 표시하지만, 사회 철학관에서 표시한 卍자 깃발은 잘못 도용한 것이고, 독일 나라의 깃발 卍자는 거꾸로 된 卍자로 다른 것이지만, 혹자들이 간혹 부처님 卍자로 오인하여 독일을 관광하면 卍자 표시한 가방을 보면 독일 나치군대의 포악성을 생각하면서 욕을 하고 돌을 던지고 하여 오해를 하는 잘못을 한다고 한다.

 

 

118, 백연화(白蓮華)

 

 불교에서 흰 연꽃은 석가 부처님을 상징한 것이다. 처염상정(處染常淨)으로 연꽃이 피는 곳은 시궁창 진흙이지만 꽃은 오염에 물들지 않고 항상 향기를 풍기는 것처럼 석가 부처님은 오탁 악세에서 욕망에 물들지 않고 진리를 성취하신 분으로 하늘과 인간에 스승이신 분으로 중생들이 존경함으로 흰 연꽃은 석가 부처님을 상징하는 꽃이다.

 

 

119, 법성장(法性藏)

 

 마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다. 법은 본래 표현이 없는 것이지만 푸른 것이라 하면 푸른 법이 생기는 것이고 희다 하면 흰 법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거울 속에는 형상이 없지만 앞에 형상이 나타나면 거울 속에 형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마음 역시 그러한 것이다.

 

 

120, 무생심(無生心)

 

함이 없는 마음으로 상(相)이 없는 무아(無我)을 말한다. 함이 없는 마음의 소유자을 도인의 마음이라 하지, 모양을 인연 법으로 관찰하면 모든 형상과 이름은 영원하지를 못하고 항상 변화하는 과정으로 고정된 것이 없는 것을 알면 무아의 법을 아는 것이라, 집착심을 일으키지를 안는다. 모든 고통은 아(相)라는 집착으로 망상이 나열된다.

 

 

 

121, 무변화(無邊華): 63번 참조. 102번 참조.  

 

122, 청정심(淸淨心): 18번 참조.

 

123, 묘연화(妙蓮華)

 

불법(佛法)을 미묘 법이라 한다. 연꽃이 오염에 물들지 않고 청정하듯, 부처님 법이 마음에 번뇌인 오염을 씻어 주고 오욕락에 물들지 않으므로 진리를 성취하는 미묘 법이라 묘연화(妙蓮華)라 한다.

 

 

124, 선관심(선관심)

 

 마음을 관(觀)하라는 것이다. 마음을 관하면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마음으로 삼라만상을 다 볼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을 다 초월하여 과거 현재 미래가 상통하여 하나로 나타나고 성인의 마음도 나타나고 지옥 중생이나 산천 초목이 다 한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이지만 천태만상으로 나열되는 것은 마음에 집착이 있어 시간과 공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我)란 주관이 나타나면 삼라만상이 나열되고 무아(無我) 내가 없으면 삼라만상이 일어나지를 않는다. 선관심(禪觀心)은 분별심을 다스린다.

 

 

125, 묘법장(妙法藏)

 

 123번 참조. 126, 반야심(般若心): 49번 참조. 127, 만행심(萬行心): 60번 참조.

 

 

128, 정법심(正法心)

 

 바름이 정법이다. 부처님 법을 바른 법이라 하지만 본래 있는 법을 부처님께서 표현한 말씀으로 정법이라 이름한 것이다. 스스로의 마음속에 보장한 자신도 모르는 보배가 원만 구족한 것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닌 미묘한 법이라 누가 가져 갈 수 없고 억압 할 수도 없는 것이 항상 광명을 발산하고 있지만 중생들은 형상과 이름으로 안다고 하여 도리어 주인공을 잊고 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주인공의 눈과 귀가 광명을 발하는 것을 보고 듣고 하리라.

 

 

129, 도선행(道禪行)

 

 불도(佛道)라 하고 불심(佛心,禪心)은 불심이 선심이라 부처님의 마음이 부처님만의 마음이 아니고 부처님께서 깨침의 마음은 본래 있는 자연의 모습이므로 선심(禪心)이라 한다. 불도(佛道)하면 자연스로운 자연의 섭리를 말하는 것으로 부처님께서 자연의 섭리를 아시고 말씀하신 번래 모습 그대로의 법이 불도이다. 도선행(道禪行)은 본래모습 그대로의 마음이라 할 것이다.

 

 

130, 지혜심(智慧心)

 

 85번 참조. 131, 법행심(法行心): 89번 참조. 132, 혜안심(慧眼心): 45번 참조.

 

 

133, 능인화(能印華)

 

 능인은 본 모습으로 본 성품이 있고 없고 이전으로 인정하고 수기(授記) 할 것이 없는 본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부처님 법을 배우고 가르치고 실천하여 안다고 하지만 다 우리의 잠재의식으로 본래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다시 말하면 오이씨는 가르치고 배우지 않아도 오이 열매가 열리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필경에는 본 성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므로 능인화(能印華)라 한다.

 

 

134, 진여심(眞如心): 53번 참조.

 

135, 공덕행(功德行)

 

 부처님전에 시주함을 복전함(福田函)이라 하고 공덕함(功德函)이라 하여 공덕행을 실천하게 한다. 또 스님의 가사를 복전의(福田衣)라 하여 무구의 (無垢衣)라 하고 항마의(降魔衣)라고도 한다. 스님의 먹물 옷인 희색은 불괴색이라 허물어지지 않는 색이라 하여 사람의 마음을 충동이나 질투심이나 시기심, 탐욕심을 일으키지 않는 심리작용을 하면서 마음에 자극을 주지 않는 편안한 색인 수행자의 색으로 옷을 만들어 입어 수행복이라 하고 모든 색깔이 썩고 허물어지면 마지막 희색으로 돌아가므로 불괴색(不壞色)은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부처님 법으로 수행하는 일상 생활이 모두가 공덕행(功德行)이라 할 것이다.

 

 

136, 법안정(法眼定)

 

 선정(禪定)에 들면 법안(法眼)이 나타난다. 천지의 가치관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심안(心眼)처럼 마음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관찰 할 수 있다. 삼매(三昧)는 마음이 편안하고 일어나는 생각이 없으면 마음 주인공의 가치관이 나타나면서 사물을 관찰하는 통찰력이 생기므로 마침 눈앞 세수물 그릇에 얼굴이 나타나듯 한 것이다.

 

 

137, 광명심(光明心): 13번 참조.

 

138, 선혜월(禪慧月)

 

 

 선․혜․월은 마음을 말한다. 선(禪)은 마음으로 고요하면 관찰하는 힘이 생기므로 지혜라 하고 지혜는 밝음으로 고르고 평등하고 맑아서 모든 생명에 빛이고 물이 고 힘이 되면서 에너지라 할 것이다. 달(月)을 비유하여 마음이라 하고 마음 찾는 법을 달에 비유하여 달을 가르치면서 가르치는 손가락에 집착하지 마라 하지, 손 가락은 문자이므로 문자에 집착하여 문자 속에 가르치는 뜻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달밤에 강이나 바다 수면에 바람이 없고 고요하면 보름달의 원만상이 그대로 수면에 나타나는 것을 마음 달이라 하여 마음에 번뇌가 없으므로 지혜의 가치관이 나타나서 통찰력이 생기는 것이 선혜월(禪慧月)이다.
 
139, 무영월(無影月): 138번 참조.   

 

 

140, 청정화(淸淨華): 18번 69번 참조.  

 

141, 선정심(禪定心): 136번 참조.

 

142, 자재행(自在行)

 

 자재는 신통 변화로 눈앞에서 형상이 변화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가치관이 바르면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키지 않아도 자연이 순리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안다. 사람은 마음으로 집착하므로 형상과 이름으로 보고 듣고 있다고 하고 없다고 하지만 자재의 순리를 알지 못하면 시간이 아주 빠른 변화나 아주 긴 시간의 변화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산천에 봄이 되면 하루 밤만 지나서 보면 산천이 푸른 것을 순간 순간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나타난 변화만 볼 수 있는 것은 마음으로 관찰하지 못한 것이고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순간 순간의 변화를 관찰하면 보고 듣지 못한 먼 과거 세상의 일이나 미래 세상의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아는 숙명통(宿命通)의 마음 가치관의 지혜가 생기므로 자재행은 순간 순간의 마음을 관하여 지속하므로 호흡이 쉬지 않듯 하면 지혜의 자재가 성취된다.

 

143, 무량심(無量心): 58번 참조. 144, 길상화(吉祥華): 117번 참조.

 

145, 정각행(正覺行)

 

 정각은 바름을 말한다. 바름은 자연의 순리이고 형상과 이름의 변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에 상통하는 작용을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은 시간과 공간에 자유자재함으로 마음은 시간과 공간에 관계가 없기 때문에 자재한 것이다. 바름은 형상과 이름에 관계가 없으므로 삼세(三世)에 무애 자재(無碍自在)하여 바름(正)이라 한다. 

 

146, 공덕화(功德華)

 

 135번 참조. 147, 정토화(淨土華): 75번 참조.

 

148, 초발심(初發心)

 

 처음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보리심(菩提心)이라 바름의 깨침이다. 깨침이 처음 마음이라 하여 물질의 가치관보다도 정신의 가치관으로 육신으로 살면서 정신 가치관인 바름을 깨달아서 삼라만상을 관찰하는 것으로 욕망의 전도된 마음이 아닌 것으로 시간을 모르는 아득한 때부터 내려온 죽고 사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초발심은 죽고사는 곳에서 벗어나는 첫 마음이다.

 

149, 마하심(摩訶心): 50번 참조.

 

150, 지성해(池成海)

 

 연못의 물이 바다 물로 통한다. 샛강 물이 흘려서 바다 물이 된 것이니, 범부 중생의 욕망이 초발심으로 깨침의 보리심으로 진여(眞如)의 참모습이란 것이다. 지성해(池成海) 마음은 번뇌즉 보리(煩惱卽 菩提) 중생의 번뇌가 성인의 진여심인 마음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지성해 마음은 선심(禪心)을 말한다.

 

151, 연화수(蓮花樹)

 

 부처님 마음으로 연꽃이라 할 것이고 보리수(菩提樹)라 하여 정각수(正覺樹)라 하지, 정각의 깨침 마음이 중생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원동력이고, 연꽃도 오염된 물을 청정하게 하는 힘이 있다. 연화수(蓮花樹)는 마음에 청정수(淸淨樹)이다.

 

 

152, 불국화(佛國華)

 

 부처님께서 계시는 곳이 불국(佛國)으로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부처로 보는 것이다. 속담에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처럼 부처님 아들, 딸들은 모두가 부처로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이라 마음이 부처 아닌이 없으므로 두두 물물이 부처인 것이다. 두두 물물이 부처라면 석가 부처님을 존경하듯, 두두 물물을 존경하여야 할 것이라, 싫어 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153, 무량지(無量智)

 

 헤아림이 없는 지혜는 무루지(無漏智)로 다 함이 없는 지혜로 생명의 존엄성이라 할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은 불성(佛性)으로 가고 옴이 없고 시비 생사가 없는 그대로의 모습이라, 누가 흉내를 내고 억압 할 수 없는 것이 풀을 바위로 눌어서 억압하여도 연약한 풀은 고개를 들고 자라서 꽃을 피우므로 불성은 억압 할 수 없는 것이다. 씨앗에 공기가 없다면 움트지 않고 천만년을 씨앗으로 존재 할 것이고 공기가 씨앗에 접촉하면 생(生)으로 거듭 태어나서 움이 트면서 씨앗이 나무가 되는 것이 불성(佛性)이고 생명력이고 부처이다.

 

154, 허심장(虛心藏)

 

 76번 참조. 109번 참조.

 

155, 관조심(觀照心)

 

 태양이 빛을 발하여 천만강에 태양이 나타나므로 해의 그림자가 생긴 것이다. 그림자 해가 실상은 아니지만 해 모습으로 나타나려면 구름이 없어야 수면에 모습대로 나타나고, 관조심은 태양이 어떻게 생긴 것인고 하고 마음으로 관조하면 태양이 생긴 인연을 안다. 관조함으로 중생은 번뇌가 성인의 마음으로 변하여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156, 향수해(香水海)

 

 부처님 말씀에 수미산을 중심한 사방 바다가 향수해라 한다. 부처님께 항상 기도하면서 향 사루어 정성을 올리고 청정수를 올려서 감로수(甘露水)로 변화시켜서 중생의 병을 치료하기를 발원하고 꽃, 과일, 쌀, 등불, 향, 차, 공양의 6법 공양을 올려서 자연의 감사와 은혜를 체험하고 스스로가 실천하므로, 우리 마음에 불국토의 향수해가 성취되는 것이다. 향수해의 동서남북 바다에서 상서로운 구름과 향기가 진동하고 중앙에 수미산 도리천주가 부처님께 6법 공양을 올리면 모든 인간이 복덕과 지혜가 증장하여 불국토가 성취되는 것이다.

 

157, 법성화(法性華)

 

 

119번 참조.   

 

158, 지혜자(智慧子)

 

 

17번 참조. 85번 참조.  

 

159, 보리행(菩提行)

 

110번 참조.

 

160, 무애행(無碍行)

 

 무애자재 함은 번뇌가 없어야 한다. 청정함이 물 청정은 모든 생명에 힘으로 무애라 하고 자재라 할 것이다. 모양과 이름이 있으므로 장애가 나타나므로 무애자재 할 수 없고, 공기, 흙, 마음이 청정하므로 무애자재라 함은 모든 생명에 순응함으로 무애자재라 한다.

 

 

161, 본래심(本來心)

 

 청정 법신를 부처라 하여 두두물물이 부처라 하고, 석가 부처님은 이 마음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가섭에게 마음으로 전하여 서천(西天) 28대 달마스님은 동양에 선(禪)으로 견성 성불(見性成佛)인 성품을 보면 부처을 성취한다고 하시고, 동양 육조(六祖)스님은 본래 면목(本來面目)이라 본래모습 그대로라 하셨다.

 

 

162, 법보해(法寶海)

 

 법장(法藏)스님은 아미타불 전생에 스님으로 48원력을 성취하시어 극락세계 교주가 되셨다고 석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장은 법보해(法寶海)로 부처님의 마음이고 중생들의 본 성품 자리이므로 진리를 바다에 비유한 것으로 천만 샛강의 물이 바다로 향하여 한 바다이므로 법보해라 하지만 중생은 스스로가 부처의 본성을 간직하면서 잊어버리고 눈앞에 물질의 욕망에서  보배를 삼아 보이지 않는 가치관인 법보해의 보배을 잊어버리고 욕망으로 즐거워 하다가 고락이 상반되어서 고통스러워한다. 법장스님은 법보해의 진리를 성취하시어 아미타불이 되셨다.

 

 

163, 무주심(無住心)

 

 

 부처님 금강경 말씀에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已生其心) 머무는 마음이 아닌 집착심이 없는 마음을 말씀하신 뜻을 6조 스님은 출가 전에 깨침으로 6조 스님은 돈오(頓悟)사상을 주장하셨다. 머무럼이 없는 마음은 집착심이 없는 마음이고 상(相)이 없는 마음으로 형상과 이름에 장애가 없으므로 무애자재하다.
   

 

164, 삼매자(三昧子)

 

 삼매는 일념의 한 생각으로 일념만년(一念萬年)으로 한 생각이 만년이 아닌 만겁으로 지속하니 삼매자는 시간과 공간에 관계하지 않는다. 연등 부처님 시기에 법문하시는 자리에 자 벌레가 법문을 듣고 삼매에 들어 석가 부처님시기에 신족통을 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한 농부가 논 갈이를 하다가 이상한 물체를 논에서 발견하여 보니 돌도 아니고 쇠도 아니고 프라스팃도 아닌 것이 손발톱이 자란 것으로 이상한 둥근 물체를 톱으로 절단하자 펑 소리를 하면서 사람이 나타나서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한 생각의 일념으로 시간을 초월하므로 손발톱이 자라서 몸을 쌓아 공처럼 둥근 물체가 된 것으로 이것이 일념만년이라 삼매자라 할 것이다.

 

 

165, 수정심(修淨心)

 

 청정심은 수행심으로 항상 바른 마음을 실천한다. 부지런하면 물질이 모이고 부지런하게 공부하면 지식인이 된다. 지혜는 부지런하게 마음을 비우는 것으로 물질의 욕심이 아니고 물질의 이름과 모양에 집착이 아니고 집착이전의 인연법의 가치관을 관찰하는 힘이 지혜력으로 수정심은 지혜력을 증장시킨다.

 

166, 장엄화(莊嚴華)

 

 장엄은 극락세계 장엄이 무궁하다는 것이다. 아미타경 말씀은 극락세계 땅이 금이고 산천에 나무가 금으로 장엄하였다고 하고 물은 보배 약수로 병을 치료하고 생명수로 목숨이 연장되고 장수를 하고 연못에 연꽃은 큰 수레바퀴처럼 크고 청황적백은 각각 빛을 발하고 새들은 설법을 한다는 이상적인 세계이다. 인간 세상도 욕망만 없으면 정토(淨土)세상이라 해는 너무 열이 강열하여 생명이 못 살아서 지옥이고, 달은 너무 추어서 생명이 살 수 없어 지옥이고, 지구는 따스함으로 생명들이 잘 살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오염을 시키므로 병이 들고 목숨이 단축되지만 이것을 깨달아서 청정으로 변화시키면 정토(淨土)인 것이다. 천년 고찰을 찾아가면 왕궁보다 화려한 건물 단청으로 장엄한 것을 보면 금으로 건물에 장엄한 것은 왕궁외에는 할 수 없는 것으로 사찰은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왕중왕(王中王) 진리의 왕인 법왕(法王)으로 금으로 장엄한 것이다. 물, 공기, 흙, 마음이 청정하면 인간 세상은 가장 수행하기 좋은 곳으로 반은 고(苦)이고 반은 즐거움(樂)으로 조건이 형성된 곳으로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최상승 수행처로 하늘 사람도 도를 성취하려면 인간 세상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무루심(無漏心): 진리의 공덕은 다함이 없는 마음이라 형상과 이름으로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이 아니란 것이다. 불보살님의 마음은 모든 생명의 소리에 순응하시므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무루심이라 한다. 중생의 원력이 다 함이 없고 불보살님의 원력이 다 함이 없어 자비심의 생명력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168, 성불화(成佛華)

 

 진리의 깨침으로 부처의 성품에서 부처님으로 성인이라 하여 부처의 성품자리를 보면 견성(見性)이라 하여 선지식이라 하고 도를 성취하여 성도(成道)라 하고, 부처님이라 하여 성불하셨다 한다.

 

 

169, 대자행(大慈行)

 

 큰 자비심은 생명에 힘으로 청정한 공기, 물, 흙, 마음일 것이다. 청정하면 생명들은 스스로 능력에 따라 큰 것은 큰 대로 작은 것은 작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염은 모든 생명에 피해를 주지만 현실적으로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더 심각한 것이다. 경제를 개발하면서 오염을 시키므로 눈앞에 이익만 생각을 하고 자연을 오염시키면 기후가 변하고 모든 생명이 떼 죽음을 하면 야단이다. 생명에 대 자비심은 오염을 시키지 않는 것이다.

 

 

170, 미타행(彌陀行)

 

 74번, 108번 참조.

 

 

171, 법연화(法緣華)

 

 

 인연이란 말을 많이 하지만 법연(法緣)은 부처님 법의 인연으로 도반(道伴)이라 할 것이다. 석가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고 쓰고 암송하면서 오늘 절에 가는 데 같이 가자 같이 염불도 하고 설법도 듣고 하면 도반이 되는 것이다. 자주 자주 염불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의 마음으로 변하는 참으로 법연의 미묘한 법이다. 담배와 술을 피우지 않고 욕도 하지 않고 신경질도 부리지 않고 오로지 관세음보살님 하고 나무 아미타불이시다. 현재의 마음이 편하면 사후의 마음도 편안한 것이다. 
  

 

172, 길상심(吉祥心)

 

 

117번, 144번 참조.  

 

173, 연화심(蓮花心)

 

151번 참조.

 

174, 대덕화(大德華)

 

 큰 나무숲은 그늘이 시원하고 생명들이 쉬어 가는 곳으로 안식처이다. 숲 속 터널을 지나면 나무 향기가 향끗 하면서 흙 냄새를 느낄 수 있고 흙의 밟는 느낌이 도시 도로 밟는 감각하고는 대조적이고 사방에서 물소리를 듣는 것은 산의 생명소리이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한들, 한들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마음에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자연의 소리를 보고 듣고 하면서 주위의 나무 가지 잎사귀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자연히 마음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여 대덕심(大德心)이라 한다.

 

 

175, 대자행(大慈行)

 

169번 참조.

 

176, 명경심(明鏡心)

 

 명경(明鏡)은 거울을 마음에 비유한 것이고 맑은 거울에 나타나는 모양처럼 마음이 맑으면 마음에 밝은 가치관의 지혜가 나타난다. 마음이 맑지 않으면 욕망, 성냄, 질투, 시기하는 어리석음이 죽 끊듯 하므로 마음이 밝지 못하고 맑지 못하여 마음의 주인공을 잊어버리고 항상 경계를 보고 듣고 집착하므로 이름과 형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일으킴으로 마음에 주인공의 자비심인 광명을 발 할 수 없다. 맑은 거울처럼 마음이 맑으면 지혜의 가치관이 태양처럼 밝은 것이다.

 

 

177, 해연심(海蓮心): 바다 연꽃은 관세음보살님의 도량으로 보타낙가산으로 바다변이나 섬을 말한다. 우리나라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가 관음도량으로 바다를 주위한 곳으로 바다변의 안개가 새벽 햇살의 광명을 받으면 안개의 모습은 관세음보살님이 바다에서 연꽃을 타고 나타날 듯한 마음을 느낀다. 

 

 

178, 반야행(般若行)

 

 49번 참조.

 

179, 반야월(般若月)

 

 지혜는 밝은 것이고 맑은 것이고 바르고 고른 것으로 달에 비유하고 마음에 비유한다. 달의 자체는 보름달이고 그믐달이고 초생달이 없지만 지구에서는 보름달을 보려면 지구와 달의 공전이 보름이면 원만 상을 보고 그믐달은 월말이고 초생 달은 월 초순으로 음력으로 달을 월(月)이라 하고 달이 12바퀴 자전하면 해(年)가 된다. 지구가 한 바퀴를 돌면 일(日)이라 하고 지구가 30바퀴를 돌면 달(月)이라 하고 달이 12바퀴 돌면 해(年)라 하여 1년을 12개월로 365일이라 한다. 지구에서 밝은 달을 보려면 날씨가 맑아야 하고 보는 사람의 마음 기분이 좋으면 맑은 달을 보면서 시(詩) 한 수를 하기도 한다.

 

 

180, 회향심(廻向心)

 

 거듭하는 마음이 회향심으로 기도를 회향한다 하면 끝마침이 아니고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등학교를 입학하고 중등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대학원, 학사, 석사, 박사로 지속하는 마음이 회향심으로 이렇게 마침과 시작이 지속되면서 거듭하는 것을 회향이라 하고 생사 윤회도 같은 것이다. 회향심에는 항상 새로움이 나타나지, 마음의 옷이 육신이고 육신의 수명이 다하면 마음 옷을 가라 입는 것이 생사(生死)이고 몸에 옷은 빨래하고 추한 것을 씻어 입으면 깨끗한 것으로 마음이 맑고 기분이 상쾌한 것이고 마음 역시 청정하면 지혜가 항상 광명을 발하여 삼라만상에 주인공 역할을 한다.

 

 

181, 자성화(自性華)

 

 자성이 매하지 않아 항상 광명을 발함이 태양과 같음이나 스스로 매하여 무명(無明)으로 집착하여 즐거움을 삼는 것이 눈앞에 아름다운 불꽃에 타 죽는 줄을 모르고 탐하는 불나방처럼 인간의 욕망의 즐거움이 돌아서면 괴로움의 원인인 것을 알지 못하고 탐착하는 모습이 어리석음으로 스스로가 마음이 매한 까닭이라, 마음을 관하면 스스로가 항상 발하는 광명을 볼 것이다. 자성의 광명은 태양처럼 항상 광명을 발하고 있다.

 

 

182, 복덕화(福德華)

 

146번 참조.

 

 

183, 다보화(多寶華)

 

 다보탑을 경주 불국사에 가면 볼 수 있다. 부처님 도량에 설법하시는 법신으로 땅속에서 용출하는 새싹들을 보면서 땅의 기운이 하늘로 용출하는 모습이라, 우리의 마음에 용출하는 용기를 보라, 부처님의 원력과 무엇이 다르리요. 목숨에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면 진리를 내면 진리를 위한 몸인 것을 깨달으면 몸은 헌옷 갈아입는 마음일 것이다. 다보심(多寶心)은 마음의 용기이다.

 

184, 진여성(眞如性)

 

 53번 참조. 134번 참조.

 

 

185, 정덕심(淨德心)

 

 청정의 덕성은 원만함이라 지옥 중생의 구제가 자비심을 베푸는 것이고 지옥 중생도 물을 먹을 수 있고 공기를 호흡 할 수 있고 열매의 흙을 먹을 수 있어 모든 생명은 청정을 근기에 따라 생명력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이다. 지옥 중생이 생명력이 아니라면 고통스러워 할 것이 없다. 생명력은 자비심이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싫어하고 좋아하고 시비 선악하는 마음이 정덕심이다.

 

 

186, 원각행(圓覺行)

 

 원각(圓覺)속에 살면서 원각을 모르고 사는 중생이라 하신 원각경 말씀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자연을 파괴하고 불평하고 어리석음으로 경제를 탐하는 모습은 경제 산업들이 제품을 만들기 위하여 독성 화학 물질을 사용하면 사용한 폐수물은 독극물이지만 정화를 하면 생명들이 살지만 정화를 하지 읺고 방류하면 생명들이 떼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이러한 환경이 많으면 많을수록 생명들은 죽는 것이지만 경제 때문에 방치한다면 환경은 심각한 것으로 사회인과 정부를 대상으로 환경 운동가들의 궐기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187, 자운화(慈雲華)

 

 새벽 동틀 무릅 산 계곡에 안개를 보면서 저것이 자운(慈雲)이구나 생각하면서 아침 동틀 무릅과 저울 노울을 바라보면 황홀한 자연을 체험한다. 밤의 찬 기운과 새벽 햇살의 기운으로 산 기슭에 기온의 차이로 생기는 이상 기류가 자운이다. 자운의 모습은 새벽 햇살의 기온에 따라서 계곡 안개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미묘한 느낌을 받는다. 순간 순간으로 마음속에 느낌이 용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기러기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호랑이 모습 멧돼지 모습으로 가지 각색으로 나타나고 사라지고 한다. 안개 모습이 나타나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188, 실상화(實相華)

 

 상(相)이 있으면 실상이 아닌 것으로 없는 상을 실상이라 할 것이다. 금강경 말씀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명(是名) 이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라 하여 이름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방편으로 진리 라 이름한 것이다. 청정법신은 모양과 이름이 없지만 중생이 좋아함으로 청정법신불이라 이름도 하고 모양도 하는 것이다.

 

 

189, 법륜행(法輪行)

 

 진리 바퀴를 법륜이라 한다. 부처님의 32상중에 발바닥에 수레바퀴처럼 모습한 법륜 바퀴가 있다고 하신다. 지구는 현재에도 전쟁과 궁핍으로 죽는 사람이 많지만 전륜성왕은 덕상으로 국민을 다스림으로 전쟁이 없고 질병이 없고 굶주림이 없는 시절이라 하여 전쟁지역은 스스로 전륜성왕의 덕상으로 귀의하고 화합으로 한 나라로 형성되어 서로서로 도움으로 정토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은 전쟁보다도 화합을 요구하고 있고 생명존엄을 제시하고 있어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민족 한을 가슴에 안고 있는 것이니 준비 전쟁시기로 생명존엄으로 전쟁은 피하고 남북이 하나가 되자는 것이다. 만약에 전륜성왕의 덕상으로 전쟁없이 남북이 하나가 된다면 민족의 슬기이고 영광스러운 백의 민족을 세계에 자랑 할 것이고 후손들의 당당하게 자랑 할 마음이고 조상의 얼이 빛날 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인 전륜성왕의 의미이다.

 

 

190, 희견심(喜見心)

 

 기쁨과 환희심은 긍정심이고 발심의 첫 걸음으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기쁨을 수순하고 칭찬하고 예배 공양하면 이것이 봉사이고 남을 도우는 보살심의 실천으로 자연을 체험하고 감사와 은혜를 실천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흙인 먹거리와 공기, 물을 청정하게 하는 실천행이 보살심의 실천이다. 마음 청정에서 자연 청정으로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깨달아 깨달음을 실천함이 보살행이고 바라밀(波羅密)인 열반(涅槃)의 영원한 즐거움으로 정토 세상이라 할 것이다. 

 

 

191, 여의주(如意珠):

 

 95번 참조.

 

 

192, 평등심(平等心)

 

 생명존엄이 생명에게 평등성이고 모든 것이 이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고 본래 주어진 본성으로 중생이 잊고 산 것이다. 물을 관리하고 통제하여 수도 물을 사용하지만 물을 관리한다는 것이 인간의 힘이 나타나는 것이니 이것 또한 잘못이다. 사람의 힘은 홍수와 가뭄을 조절 할 수 있어 가뭄으로 물싸움을 하고 모내기철이면 행사적으로 가뭄이라 소방차가 모내기 물을 공급하고 양수기를 지원하고 가뭄 대책 위원회가 구성되고 초등학생까지 동전 모우기 운동으로 사회는 야단법석이다. 이것은 생명에 물이 필요하고 물의 평등성이 생명의 평등성인 것으로 불성(佛性) 찾는 소리이다.

 

 

193, 몽각심(夢覺心)

 

 꿈 깨는 소리는 마음이 시원하기도 하고 마음이 허전하기도 한 것이다. 꿈속에 빌딩을 헤아릴 수 없이 지어서 부자 되는 꿈을 깨고 보면 허전 할 수가 없다. 욕망의 오욕락인 마음을 깨면 깨달음이라 번뇌에서 해탈 할 수 있다. 
내 몸이 영원하리라 하고 힘이 있다고 야단법석이지만 50세가 넘고 나면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마음은 밝은데 눈은 어두워지고 있는 것이니 모든 것이 쇠퇴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니 모두가 무상하고 꿈인 것이다.

 

 

194, 무위심(無爲心)

 

 함이 없는 마음은 스님의 마음이고 도인의 마음이라 하지, 스님은 자식도 없으면서 어린이들을 보면 어린이처럼 좋아하고 , 스님은 재산도 없으면서 보는 사람마다 주는 것을 좋아하고 , 스님은 욕을 해도 웃으시면서 욕을 하고 듣는 사람도 싫어하지를 않고, 스님은 이름도 없으시면서 보는 사람마다 다 이름을 부르고 좋아하고, 스님은 욕을 들어도 성질을 부리지 않고 웃으신다. 스님은 모든 것이 함이 없이 함으로 시비가 없으시다.

 

 

195, 원각심(圓覺心)

 

 189번 참조.

 

 

196, 일미해(一味海)

 

 팔만사천 법문이 일심(一心)법문이라. 천만 갈래의 샛강 물이 바다로 향하면 한 맛으로 나타나므로 일미해(一味海)리 한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세계을 각해(覺海)라 하시고 자비심의 원력은 모든 생명력을 살리고도 모자람이 없는 것으로 자신의 주인공을 떠나서는 찾을 수 없다. 자비심을 자신 밖에서 찾으므로 허송 세월을 하고 있어 부처님의 자비심을 배우고 실천하려면 자신이 하여야 하는 것이 마치 물을 스스로 마시면 냉온을 스스로 아는 것처럼 자비행을 실천하려면 스스로가 하는 것이다.

 

 

197, 일심정(一心正)

 

 바른 마음은 어떤 것일까? 보고 듣고 하는 작용을 놓아 버려라, 보는 것을 놓아 버리면 보는 것이 해결될 것이고, 듣는 것을 놓아 버리면 듣는 것이 해결 될 것이다. 보고 듣고 안다고 하는 것이 다 장애물이므로 아는 것이 집착이고 병인 것이므로 일체 마음 밖의 경계를 놓아 버려라.  

 

 

198, 관음자(觀音子)

 

 관세음보살님을 관음자라 한다. 관음은 세상의 소리를 듣고 순응하시는 보살님이시니, 생명의 어머님으로 항상 생명을 보살피시는 분이시다. 가뭄에 관음을 칭송하면 비가 오고 홍수에 관음을 생각하면 홍수의 재난이 없어지고 팔난의 재앙을 만나도 관음을 생각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관음은 세상의 소리를 듣고 순응하시는 분이시다.

 

 

199, 무애심(無碍心)

 

 무애심은 집착이 없으므로 무애자재한 것이므로 물이 풀에 순응하면 풀이라 하고 물이라 하지 않으므로 자재한 것이고, 물이 나무에 순응하므로 나무라 하지 물이라 하지 않으므로 자재한 것이고, 빛이 나무에 순응하므로 나무라 하지 빛이라 하지 않으므로 자재한 것이지, 또한 공기, 흙이 이와 같으므로 자유자재함으로 생명력으로 자라는 것이다.

 

 

200, 법시행(法施行)

 

 법시는 진리 말씀으로 부처님의 말씀과 마음을 전하는 것이고 전법을 실천하므로 자신의 마음으로, 입으로, 몸으로 실천함이니, 부처님의 법과 자신의 실천이 둘이 아니면 정토(淨土)가 실천되는 것이다. 정토는 생명존엄으로 서로 서로가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풀의 생명력이나 사람의 생명력은 하나이므로 청정을 실천하면 차별이 없는 마음이다. 중생은 이 마음이 인색하고 탐애심으로 치중하여 즐겁게 살아가면서 조석으로 아우성이니 어리석음이라 한다.

 

 

201, 무량화(無量華)

 

 58번, 103번, 143번, 참조.

 

 

202, 정도행(正道行)

 

 바른 길은 부처님 마음은 선(禪)이고, 말씀은 교(敎)이다. 바른 법이 스스로의 마음에 잠재하여 여래장(如來藏)이라 하여 감추어진 복덕과 지혜가 본래부터 원만구족한 것이지만 스스로가 잊어버리고 구족한 줄도 모르고 항상 욕심으로 만족함을 충족하려고 하므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바른 길은 이러한 각자 스스로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다.

 

 

203, 진성월(眞性月)

 

 본래 성품은 있고 없고를 떠난 자리로 이름하여 진성(眞性)이라 한 것이다.
  진성이라 이름하여서니 아닌 것이고 이름하지 않으면 인식 할 수 없으니 없는 것을 있다고 한 것이니, 이것 또한 아닌 것이다. 무엇을 진성(眞性)이라 할 것인가? 진성이라 할 것이 없지만 이름하여 진성이라 한 것이다.

 

 

204, 무진장(無盡藏)

 

 11번, 59번, 105번 참조.

 

 

205, 해도자(海道子)

 

 해도는 관세음보살님 도량을 말한다. 해도자는 관세음보살님으로 자비의 생명력으로 항상 같이 하시는 것이다. 부모님 마음으로 자식에게 베푸는 마음이시라, 모든 생명에 자비를 베푸는 것이니, 생명력으로 에너지인 공기, 흙, 물, 유전자라 할 것이다. 요즈음 과학의 힘은 생명의 지도를 완성하여 불생 불멸(不生 不滅)의 본모습을 발견하여 본래모습 그대로를 실현시키는 유전자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음양의 생명력이 아닌 유전자를 발견하여 생명을 탄생시키는 시대로 생명력의 영원성인 유전자로 생명의 화현이라 할 것이다.

 

 

206, 경월심(鏡月心)

 

 거울에 달이 나타나면 달이라 하지만 그림자 달이고 허공에 달은 진실이지만 마음에 달은 아닌 것이니 마음에 달은 어디에 있는고! 거울과 달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마음 달을 볼 것이다. 거울과 달과 마음을 다르게 보면 마음은 진실의 본래모습이고 달은 현상의 진실을 말하고 거울은 천만강에 비치는 화신이라 할 것이다. 달을 보라 하면 보라고 한 사람의 마음이 주인공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시고, 하늘 달은 나투신 원만보신 노사나불이시고, 거울에 비친 달은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로 근기에 순응하시여 중생을 구제하시는 것이다. 청정법신, 원만보신, 천백억화신으로 법보화 삼신(法報化 三身)으로 부처님을 말한다.

 

 

207, 해탈심(解脫心)

 

 해탈심은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모든 물질은 생명력이 있지만 형상과 이름이 주어지면 고정인식으로 이름과 형상에 집착하여 있다고 인식하고 주관과 객관으로 분별이 나타나면서 천만상으로 나열되면서 시비 선악 생사에서 윤회함으로 해탈하지 못한다. 해탈심은 형상과 이름으로 고정인식의 집착심에서 벗어나는 마음으로 안다는 집착심이 있으면 벗어 날 수 없으므로 마음에서 안다는 마음을 비우므로 집착에서 벗어나므로 편안을 찾는 것이다.

 

 

208, 광명지(光明智)

 

 마음의 광명을 지혜라 하고, 부처님전에 연등 빛 공양을 마음의 지혜라 하고 전기 빛이나 촛불 빛으로 공양하므로 마음의 빛으로 마음의 어둠을 밝히는 지혜라 하여 실천을 하고 있다. 부처님전에 빛 공양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바름을 빛의 밝음으로 청정의 맑음으로 우리 스스로의 마음에 원만 구족한 빛과 청정을 부처님 전에 감사와 은혜로 체험함으로 스스로의 잊어버린 빛과 청정을 찾는 것이다.

 

 

209, 보리행(菩提行)

 

 보리는 진리를 말하고 진리는 변화하는 길이므로 인연 법으로 관찰하면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으로 관찰하면 모든 물질의 형상과 이름이전의 형상과 이름을 살펴 볼 수 있으므로 청정의 생명력은 생명에 대단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청정이 중한 것은 생명력을 왕성하게 한다는 것이고 오염은 생명을 병들게 하고 죽이는 것이므로 각자 스스로가 물질을 생산 할 적에 물질의 경제만 생산하지 말고 에너지를 오염시키지 말고 청정으로 더불어 사는 정토의 환경 경제성으로 물질을 생산하라는 것이, 우리가 원력으로 만들어야 할 중생의 정토인 것으로 보리행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공장 생산 작업에서 배수 물을 정화시켜서 배출하는 것이 진리이고 공장 공해을 굴뚝으로 배출시키지 않고 정화하여 굴뚝 없는 공장이 진리 실천이다. 아직은 청정 산업이 시범 단계로 보이는 공장마다 도시 가운데서 검은 연기를 배출하고 있는 것을 볼 적에 시민들은 청정에 대한 인지도가 미약하여 벙어리처럼 말이 없고 엉뚱한 시비만 하고 있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210, 천지안(天地眼)

 

 천지안은 하늘과 땅에 상통하는 눈으로 법안(法眼)이라 할 것이다. 하늘의 기운은 공기이고 땅의 기운은 열매이므로 생명은 하늘의 기운인 공기와 빛의 기운을 받고 땅의 기운인 흙과 물의 기운을 받고 땅과 하늘 사이에 바람과 날씨의 기운을 받으면서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것이니, 다 자연의 기운으로 사는 것이므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잘못 인식을 하고 사는 것이니, 스스로 자연을 등지고 또 본성의 주인공을 등지고 마음은 욕심으로 번뇌에 오염되고 자연을 오염시키면서 잘 살기를 바라는 아우성이  어리석음의 소리임을 아는 것이 천지안(天地眼)이다.

 

 

211, 보현행(普賢行)

 

 화엄경 보현보살 행원력은 실천행을 강조하시면서 보살의 마음은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라 하셨다. 신구의 업(身口意 業))에 싫어함이 없는 마음은 신(身)업은 살생은 방생의 생명존엄하고, 훔치는 것은 베푸는 보시를 하고, 사음행은 질서와 양심으로 몸으로 바로 일을 실천하고, 구(口)업은 나쁜 말, 속이는 말, 시비하는 말, 거짓 말을 진실한 말로 입으로는 바른 말을 실천하고, 의(意)업은 탐진치(貪嗔癡)마음을 다스려서 마음으로 바른 득을 실천하라는 것이 삼정(三淨)운동으로 보현보살의 실천 원력이시다.

 

 

212, 무량행(無量行)

 

 58번, 103번, 143번, 153번, 201번, 참조,

 

 

213, 해인심(海印心)

 

 바다 수면이 고요하면 수면에 해도 비치고 모든 형상이 나타나 그대로 보이는 것과 같이 마음도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고요하면 편안을 찾고 지혜가 나타나면서 사물의 인연 법을 알아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통찰하는 것이다.

 

 

214, 수미산(須彌山)

 

 부처님 말씀에 수미산 정상에는 도리천주(兜利天主)가 계시고 천주인 제석천왕이 인간의 수명과 복덕을 다스린다고 하여 사천왕 권속인 사자를 시켜서 사람의 선악을 명부에 기록하여 선악을 분별한다는 것이다. 인도 중국 국경인 티벳트 산맥을 불교에서는 수미산이라 하고 수미산은 아득한 설산(雪山)이라 새벽 햇살이 틀 무렵 햇살을 받아서 찬란한 빛이 비치는 것이 흰 연꽃이 찬란하게 광명을 발하는 것과 같고 눈 산에 눈이 녹아서 물이 흐르는 강을 아뇩달지 라 하여 청량지(淸涼池)라 하고 사회에서는 신근(身根)신앙이 지중하여 지구의 기운이 시작하는 곳으로 유명하여 기운을 받는다 하여 지구인들은 해마다 답사를 한다. 

 

 

215, 청량심(淸涼心)

 

 무엇을 청정심이라 하는가? 모양과 이름이 변화하면서 거듭 태어나는 생명력이 청정이다. 청정은 모양과 이름이 없지만 청정이 모양으로 나타나면 이름이 생기고 청정은 형상으로 변하여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열매는 거듭 씨앗으로 흙 속에서 움이 트고 자라면서 청정이 생명력으로 지속되는 것이다.

 

 

216, 응심화(應心華)

 

 금강경 말씀에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已生其心) 응당히 머무는 봐 없이 마음을 내라는 것이다. 응심(應心)은 상(相)이 없이 순응하는 마음으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고 불 보살의 마음이고 중생의 본 마음이라 할 것이다. 6조 혜능 스님은 출가 전에 시골 나무꾼으로 시장에서 스님의 금강경 독송하시는 염불을 듣고 응심(應心)에서 마음을 깨달아 5조 스님 회상에서 노 행자로 스님의 법을 인가 받았다. 글자도 모르는 시골 나무꾼이 마음을 안 것이니, 요즈음 말로 팔자를 고친 것이다. 지식인들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 현대인은 불가사의한 일이라 할 것이고 세상 사람이 웃을 일이고 스님들이 귀가 찰 일이고 천지가 진동 할 일이 불문(佛門)에서 생긴 것이다.

 

 

217, 진언자(眞言子): 진언은 부처님 말씀이다. 부처님 교리(敎理)에는 다라니, 주문, 진언이라 하여 인도 말을 그대로 사용한다. 진언을 암송하면 스님들은 뜻을 모르고 암송하여도 공덕이 있다고 하시고 뜻을 알면 더욱더 좋은 것이다. 염불을 하면서 뜻을 마음으로 관(觀)하면 염불도 하고 선(禪)도 하는 것으로 염불선(念佛禪)이라 할 것이다. 염불이 좋고, 주력이 좋고, 참선이 좋다고 하면서 서로가 야단이지만 염불을 마음으로 관하면 선(禪)인 것으로 염불과 참선(參禪)을 둘로 보지 않는다. 염불과 참선이 마음으로 관하지 않으면 가피력이 없고 삼매(三昧)에 들지 못하고 선정(禪定)에 들 수 없는 것이다.

 

 

218, 지초장(地草藏)

 

 흙에 풀을 잡초라 하지만 풀이 자라는 곳은 흙먼지가 흙으로 변하고 생명이 모여들고 물이 모이고 생명의 근원지가 된다. 바다 변에 잡초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모래 언덕에 잡초는 모래을 쌓이게 하여 모래 언덕으로 형성되어 해일의 파도가 피해를 주지 못한다. 잡초의 한 잎의 푸르름이 산천을 푸르게 하고 티끌 하나 하나가 지구를 형성하는 것이다.

 

 

219, 죽림월(竹林月)

 

 대밭은 항상 푸르름으로 절개를 상징하고 항상 푸른 생명력이 대단하고 하루 밤사이에 죽순은 일년을 자란 대나무처럼 보인다. 요즈음의 절개의 푸르름은 청정을 말 할 것이고 마음이 청정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편안한 것이고 공기, 물, 흙이 청정하면 생명들은 잘 사는 것이다.

 

 

220, 면목자(面目子):

 

 안면이 있다는 말처럼 서방 정토 아미타불 친견 마정 수기를 중생들은 원력을 세우고 선지식을 친견하기를 원하고 수행하여 성품 보기를 원하고, 면목자는 생사가 없는 본래면목인 본 성품을 말하므로 6조 스님께서 노 행자시기에 혜명스님이 법을 묻자, 선악이전 마음으로 돌아가면 혜명스님의 본래면목이라 하여 오도(悟道)를 하였고, 달마스님은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 성품을 보면 부처라 하여 달마선(達摩禪)으로 중국은 대 선지식들이 속출하였다. 

 

 

221, 불이성(不二性)

 

 성품은 둘이 아닌 것으로 삼라 만상이 다 마음이란 것이다. 우리가 삼라만상을 마음하고 다르게 보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점으로 아득한 긴 시간에서 보면 삼라만상이 다 자신이고 마음이고 부모님이고 형제라는 것이다.
  현재의 몸으로 자신이라 하지만 몸은 100년을 가지 못하고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자연으로 돌아가고 마음도 자연으로 돌아가면서 인연을 찾는 것이 업(業)이라 살아 있을 적에 행위가 업으로 죽은 후에도 거울에 형상처럼 나타나는 것이 분명하므로 살아 생전에 한 번 말하고 한번 움직이고 한 번 마음씀이 매우 중요한 것이므로 자신의 법이고 자신을 만드는 가피력으로 현재가 중한 것이 바로 선(禪)이고 불심(佛心)이고 본심(本心)이라 마음을 떠나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사후에 염라대왕이나 아미타불 친견은 미래의 마음으로 현재의 마음을 바로 함으로 사후에 일은 스스로가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중생들은 현재의 욕망으로 즐거움으로 살기 때문에 사후에도 아미타불의 정토왕생을 원력으로 삼아 수행하므로 수행하는 현재 마음이 바로 즉심(卽心)이고 선(禪)이란 것이다.

 

 

222, 대승행(大乘行)

 

 대승은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집착심이 없는 마음으로 도인의 마음이라 누구든지 이 마음은 있고 이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무아의 세계라 할 것이고 정토라 할 것이다. 정토(정토)는 청정이 생명력으로 모든 생명에 순응하는 마음으로 물처럼 생명에 순응함으로 물은 이름과 형상이 없지만 순응한 대상은 이름과 형상이 니타나는 마음이 대승이고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순응하므로 중생의 마음을 수순하여 하나가 됨으로 싫어 함이 없는 정토 세계라 한다.

 

 

223, 보현심(普賢心)

 

 211번 참조.

 

 

224, 대법행(大法行)

 

 부처님 마음을 마하 반야(摩訶 般若)라 한다. 큰 지혜는 부처님 마음으로 죽지 않는 법이고 살아도 집착이 없는 법이라 살아서나 죽어서나 관계하지 않으므로 자유자재한 것으로 대(大)라 한다. 우리의 해법이 마음에 있지만 마음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부처님을 찾아서 빌고, 빌고 절을 하고 소원을 말하고 내 마음에서 바라는 것이라 부처님전에 의지하여서면 부처님 마음으로 돌아가라 번뇌도 부처님에게 받치고 소원도 부처님에게 받치고 부처님 마음으로 돌아가라 사바하, 사바하 모두가 원만 성취 할 것이다.

 

 

225, 자비행(慈悲行)

 

 169번 참조. 
 

부처님 마음을 자비심이라 하여 사생자부(四生慈父)라 생태계의 태란습화(胎卵濕化) 태로 나는 생명, 알로 나는 생명, 습기에서 나는 생명, 변화하여 나는 생명을 다 구제하시는 대 자비심이시라 하여 자부(慈父)라 하시고, 사람은 자식에게 부모의 사랑이라 하여 조건이 없이 주는 마음이고, 이러한 마음이 모든 생명에 있고 생명존엄인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심은 시들어 가는 풀에 한 모금 물을 주는 마음으로 스스로가 실천 할 수 있는 생명의 소리가 자비이다.

 

 

226, 전법심(傳法心)

 

 풀에 물주는 마음이 전법심이고 내 마음에 자비심을 전하는 것으로 생명이 살아가는 길에는 자연의 혜택을 받지 않고는 생명이 살 수 없으므로 공기, 물, 흙에 감사와 은혜하는 마음으로 자연을 보호하여야 한다. 흙 속에 비닐, 병, 쇠 조각 이 들어가면 500년을 썩지 않고 오염되는 것이니, 일상생활에서 스스로가 종이류, 병, 프라스틱, 비닐등 쓰레기를 분류하는 습관이 전법심이다. 성지곡을 가면 성지 계곡 포장 도로에 휴지가 뒹구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가 휴지를 빨리 가서 주어야 할 것을 아직도 망설이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아만을 나타나고 있는 자신을 볼 적에 아직도 마음 공부가 멀어구나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성지곡 입구에 관리비를 받는 곳에 마땅히 입장료를 내고 관리 시책에 감사를 해야 하는 마음을 느낀다.

 

 

227, 미타심(彌陀心)

 

 74번, 108번, 170번, 참조.

 

 

228, 혜림화(慧林華)

 

 지혜의 숲을 사찰이라 하고 총림이라 하여 천년 고찰로 선원, 강원, 율원, 염불당, 종무원이 구비되어 수행인이 3백을 넘는 선불장(選佛場)으로 수행 도량이다. 수행도량을 찾아 산 속 숲 터널을 지나면 공기가 상쾌한 것이 정신이 맑아지고 흙 접촉이 솜 덩어리 밟는 느낌이고 숲 속의 푸른 나무 잎새들이 바람에 움직이는 모습이 공연장에서 춤추는 푸른 옷을 입은 색시처럼 보이고 헤아릴 수 없는 눈앞 잎새들의 이야기들을 보고 듣고 하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면서 물소리 바람소리가 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청정법신 부처님의 설법인 것이다.  

 

 

229, 금선자(金禪子)

 

 부처님 제자들을 존칭한 말로 처음하는 말이다. 부처님의 아들딸들로 부처님의 마음과 언행을 배우고 실천함으로 부처님 길을 가는 생명에 선지식들이고 선구자로 뜻을 모르고 한 마디 나무 관세음보살님 하여도 관세음보살님이 함께하시는 것이고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이고 언행을 실천하는 것이라 염불(念佛)하는 마음은 스스로의 마음에 진리를 실천함이니, 생명이 병들고 죽거나 불안 할 적에 관세음보살하면 편안을 얻는 것이고 스스로 시기, 질투, 미운 마음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니 뜻을 모르고 하는 염불이라도 공덕이 있는 것이다. 마침 아침 이슬 길을 다니면 옷을 적시는 것과 같다.

 

 

230, 무심행(無心行)

 

 함이 없는 마음으로 상(相)에 머무는 마음이 아닌 마음은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오로지 일심으로 화두나 염불 주력을 하는 것으로 도(道)을 성취하겠다는 마음이 없이 지속적으로 정진이 여일하면 바로 공부인이라 할 것이고 도(道)을 성취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상(相)에 집착하므로 공부가 순일하지 못한 것이다. 극락 가겠다고 애를 쓰고 욕심을 부린들 극락을 가지 못하는 것이고 앞면이 있다 하여 극락을 가는 것도 아니고 극락을 가려면 마음이 청정하고 언행이 청정하면 누가 오고 가라 하지 않아도 가는 아주 평등한 곳이다.

 

 

231, 불심행(佛心行)

 

 71번 참조.

 

 

232, 관조(觀照)

 

 방안에 빛살이 들어오면 미세한 먼지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마음이 고요하면 먼 과거의 생각을 관조 할 수 있으므로 마치 고요한 달밤에 숲 속 옹달샘 속에 보름달이 나타나고 주위 풀밭에 귀뚜라미 소리가 청명하게 들리면 깊은 사색을 하면서 달을 바라보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의 무리 하늘 다리인 은하수는 칠석날 오작교의 전설을 추억한다. 이러한 관조력은 마음의 힘으로 사물의 이치를 관찰하는 심리가 나타나고 심리 작용은 언행을 관파하여 정사(正邪)의 이치가 확연하게 나타나는 것이 고요한 수면에 보름달을 보는 듯 하다.

 

 

233, 무염심(無染心)

 

 77번 참조.

 

 

234, 보명심(普明心)

 

 넓고 밝은 마음으로 허공이 크다지만 마음에 비교하면 태평양 바다에 조각배와 같다는 것이고, 스스로의 마음이 얼마나 큰지 짐작 할 만 하다. 마음을 깨달으면 밝기는 태양보다 밝음이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태양보다도 깨달음의 광명은 비교 할 수가 없는 것이라 마음의 넓고 밝음은 헤아릴 수 없다.

 

 

235, 무애심(無碍心)

 

 160번, 199번 참조.

 

 

236, 자성월(自性月)

 

 자성(自性)은 스스로의 마음 주인공을 말한다. 스스로가 주인공아 하면 대답을 하고 아버지하면 주인공이 대답을 하고 아들아 하면 주인공이 대답을 하고 손자야 하면 주인공이 대답을 한다. 대답하는 주인공은 아버지, 아들, 손자가 아니면서 주인공이 대답을 하는 것이다. 마치 물이 생명에 순응하면 물이라 하지 않고 생명의 모양이 주어지고 이름이 주어지면서 아무개 하는 것이고 물이라 하지 않는 것으로 주인공은 말이 없지만 모양이나 이름으로 나타나면 보고 듣는 사람이 부르기도 하고 답하기도 하는 것이다.

 

 

237, 향산월(香山月)

 

 향산은 원력을 말한다. 원력은 중생의 가능성이고 새로움의 창조력으로 무한한 잠재력 개발이고 관심(觀心)하면 새로움이 나타나는 것이다.한 사람의 창의력을 인터넷이나 글을 써어 전달하면 바람으로 빛으로 언어로 전달되고 TV나 라디오의 빛으로 소리로 전하면 보고 듣는 사람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면서 전 세계로 전달됨은 순간적으로 전 인류에 가치관의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기존의 시스템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경제력이 문제인 것이다. 물을 연료로 하는 자동차가 나오면 기름 자동차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모든 시스템이 바꿔고 공장들은 전업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야단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항상 도전과 창의력이 새로움으로 살길인 것이다.

 

 

238, 보광명(普光明)

 

 부처님의 광명이 삼천대천 세계에 두루함이니 생명에 환희요, 빛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빛은 전무 후무한 힘이고, 태양의 빛으로도 생명들은 잘 자라고 빛의 생명력은 절대적이고, 전기의 발명은 인간 생활에 얼마나 큰 힘인가? 성냥불의 힘도 대단하지, 마음의 빛은 모든 빛보다도 비교할 수 없고 미래의 에너지 개발은 바다 파도의 힘이나 밀물 썰물의 힘이나 번개의 힘, 태양의 힘, 지구의 힘, 달의 힘으로 자연의 힘을 사용하면 공해가 없는 에너지를 사용하면 공해가 없을 것이다.

 

 

239, 무량심(無量心)

 

 58번, 103번, 153번, 201번, 212번, 참조.

 

 

240, 무생인(無生印)

 

 무쟁삼매(無諍三昧)는 다툼이 없는 마음으로 아라한과(阿羅漢果) 소승의 최상승 마음의 경지로 두두물물이 마음 아님이 없는 것을 인연법으로 관찰하면 시간과 공간의 차이점으로 하나임을 알고 스스로 호흡의 생명이 자연의 은혜을 입고 사는 것을 체험하면서 감사할 줄 아는 것이고 모르면 어리석음으로 중생의 번뇌인 것으로 생명력은 공기의 호흡이고 빛의 생명력이고 흙의 먹거리인 것이니 생명력이 없으면 죽은 것이라 스스로의 생명력은 자연으로 바로 자신인 것이니 싫어함이 없는 무쟁삼매의 무생인이다.

 

 

241, 여실행(如實行)

 

 실다움은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집착심이 아닌 것이다. 몸의 육안(肉眼)으로 보면 형상과 이름으로 보고 듣고 알고 하지만 심안(心眼)은 마음으로 관하면 형상과 이름을 초월하여 집착하지 않고 가치관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상통하는 것으로 더 나아가서 천안(天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이 있다.

 

 

242, 법보화(法寶華)

 

 스스로의 행위가 법이고 진리인 것이다. 스스로의 행위가 나타나 바람으로 전하고 빛으로 전하고 입으로 전하고 몸짓으로 전하고 삼라만상으로 전하는 것이다. 나무 잎새의 움은 봄이고 가랑잎은 가을이고 단풍잎으로 겨울이 오는 것을 알고, 바닷물은 짠맛이고, 산 넘어 연기를 보면 산불이 난 것을 알고, 혹자는 화(嗔)가 눈에 보이느냐? 하여 눈에 보인다고 하자 어떻게 보이느냐? 하여 너의 얼굴이 화가 나면 붉게 변하고 눈이 충혈 되고 머리에 열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지 이것이 화가 보이는 것이다.

 

 

243, 법통행(法通行): 움직임이 법이다. 손으로 물건을 잡고 움직이면 물건이 자리를 옮기므로 역할이 바뀌어지므로 생각도 다르게 된다. 흙 속에 금맥은 금이지만 사용할 수 없고 발굴하여 흙, 돌, 금으로 분류하여 금으로 제련하면 마음대로 물건을 만들어 사용하여 신통묘용의 법통행이다.

 

 

244, 자장심(慈藏心)

 

 부처님의 자비심이 청정법신의 사리로 자비심을 나투어 보이신 적멸보궁으로 자비의 보배 창고를 중생에게 보이신 것으로 자장심은 자장스님의 마음이라 할 것이다. 신라 자장스님은 통도사와 같이 5대 보궁을 개설하시고, 백제 땅에는 자장가의 백제 향가는 작자가 없이 백제 동서 도솔천(東西 兜率天)인 현재 천안(天安)인 백제 목천민들이 광덕사 신도들이라 자장스님께서 당나라에서 귀국 길에 백제 땅인 현 천안 광덕사에 안주하시다가 신라로 가시자 자장스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자장스님을 노래한 것이 자장가(慈藏歌)로 백제 향가(鄕歌)라 할 것이다. 자장가는 백제 향가로 입으로 구전되어서 있지만 역사성이 빈약하여 더욱더 연구가 요망된다. 특히 사리 탑파 문화는 자장스님께서 신라에 성행시켜 시었고, 나당에 멸한 백제시기 향가인 자장가는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나라를 기리는 슬픔과 자장스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시대를 노래한 자장가는 목천민들은 나라의 변천을 마음으로 표현한 노래라 할 것이고 작자가 없이 입으로 전하여 민심으로 내려오면서 일정한 가사나 곡조가 없이 시절의 애환이나 심정을 서민들이 표현하면서 사찰의 스님인 부처님의 자비심에서 자장스님을 기리는  일반인으로 대중화되면서 서민의 마음으로 입으로 스스로의 리듬으로 마음의 노래인 것으로 전쟁간 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애환으로 부인이 자식을 보면서 마음으로 노래한 것이고 홀어머니가 시간을 기다리는 서민의 마음으로 전한 것이 자장가(慈藏歌)이므로, 이름만 있으면서 백제 지역에서는 애환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풍습이 말없이 전하여 오고 있고, 신라에는 사리 문화로 신라인의 정신을 바르게 한 것이고 자장가의 향가는 백제가 멸하면서 자장스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노래한 것으로 자장가는 백제 향가라 할 것이고, 지금도 백제 땅인 충남 천안 광덕사 대웅전 입구에는 통일신라시기에 조성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해치(해태)상이 존재하고 있다. “해치는 중국 진나라시기에 선정(善政)을 바라는 뜻에서 짐승의 장점을 모아서 동물 형상을 만들어 황제 앞에서 요즈음의 거짓말 탐지기 역할을 한 것으로 본래는 해치를 우리나라 조선말 대원군이 해태 라 하여 현재 소방인들의 심불 마크이고 해태 제과의 상표이기도 한 것이다.
                

                               (천안 소방학교장 제공).        
  
해태상을 모신 곳은 재앙을 막아 준다는 이미지가 있어 풍수 지리적으로 화혈(火穴)터로 불이 잘 나는 곳으로 불의 재앙을 막는 뜻으로 대원군이 경복궁이 3번이나 불이 나서 경복궁 앞에 해태 한 쌍을 모시고 난 후부터 불이 나지 않았고, 지금도 대한민국을 재앙에서 지키고 남북이 전쟁 없이 하나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자장스님께서 중국 유학하시고 귀국 길에 백제 땅 현재 천안 광덕사에서 머물러 계시다가 신라로 가시자 불자들이 자장스님을 생각하여 자장 자장하여 백제 신라 당나라의 관계를 예시하고 있는 것이고, 결국은 신라가 당나라와 유대하여 백제가 멸하고 통일신라가 생긴 것이니, 자장가와 해태상은 통일신라의 탄생을 말한 서민들의 마음에 표출이므로 백제의 향가인 자장가와 해태상은 그 시대의 위기를 말한 것으로 광덕사가 자장가의 근원지란 것을 말하고 있다.

 

 

245, 문수자(文殊子)

 

 문수 보살님은 지혜를 상징하시고 대승사상에서는 모든 불보살님의 어머니라 하고 모든 불보살님들이 지혜에서 탄생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중국 국청사에 한 거지가 절 앞 음식 찌꺼기 모우는 꾸중물통에 음식 찌꺼기를 건져서 죽을 끊어서 먹으면서 살았다. 자주 나타나 마을을 다니면서 제사 집이나 결혼 잔치 집에 다니면서 음식을 얻어 먹으면서 살아가는데 거지가 결혼하는 부부를 보니 신부가 전생에 신랑의 어머니인 것을 모르고 부부 결혼을 하니 거지가 박장대소를 하다가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꾸중을 듣곤 한다. 또 한 번은 제사 집에 가서 구걸을 하는데 제사 상에 돼지 머리가 제사 집에 아들의 아버지가 전생에 그 집 돼지로 태어난 것을 모르고 아버지 제사상에 전생 아버지인 돼지를 잡아서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 얼마나 웃으운가 박장대소를 하니 제사 집에서 미친 거지가 왔다면서 부정스럽다 하고 물를 뿌리면서 몽뚱이로 문전 박대를 한다. 한 번은 목장을 지나는데 황소 무리를 보니 전생에 절에 율사스님으로 수행을 하였는데 황소가 된 것이니, 거지가 율사 이름을 부려니 으음하면서 대답을 하고 또 다른 스님 이름을 부려니 으음하고 답을 한다. 하루는 국청사에서 보살대계(菩薩大戒)를 한다고 전국 큰 스님들이 비단 가사를 입으시고 법당으로 가시는데 거지가 앞에서 얼정거리자 스님이 청정한 법회에 추한 거지가 앞을 막는다고 나무라시자 거지는 성안내는 것이 계(戒)라 한다, 거지가 대승계(大乘戒)를 설한 것이다. 하루는 풍간이란 스님이 고을을 지나면서 정자나무 아래에 쉬고 있는데 큰 대궐 집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집을 찾아가 영문을 물어보자 고을원의 집으로 무남독녀가 병이 나서 죽게 되었다 한다, 찾아간 스님에게 고을원은 병을 고쳐달라는 것이다, 스님은 정수 한 그릇을 가져오라 하여 청정수를 뿌리고 염불하시고 돌아가시자 고을원이 스님은 어디에 계시는 스님이냐고 묻자 국청사에 가면 한산 습득이란 문수 보현이 있는데 모든 사람이 미친 거지라 한다고 하면서 거지한데 물으면 알 것이라 한다. 고을원은 국청사를 찾아가 보니 마침 거지가 있는데 풍간이란 스님 말씀을 들었기에 거지에게 큰절을 땅에 하니 거지가 박장대소를 하면서 고을원을 도덕놈이라 하고 도망을 하니 사찰 스님들은 고을원님이 찾아온 것을 반기면서 인사를 하고 주의를 하면서 안절부절이시고 고을원은 도망가는 거지를 따라 가니 풍간이가 헛뜬 소리를 하여구나 하면서 풍간은 아미타불 화신이라 하고 풍간스님은 거지를 한산 습득으로 문수 보현이라 하여 문수 보현의 화신인 것을 안 것이니, 원님은 도망간 거지가 바위굴로 들어간 것을 보고 가서나 사라지고 친견을 못하여 사찰에 돌아와 그 분의 행적을 스님들에게 물어보니 항상 미친 사람처럼 마을을 웃고 다니면서 바위나 벽에 글을 써놓는다는 것이다. 원님이 마을을 다니면서 글을 수습하니 360여수의 지금에 현존하는 한산시집(寒山詩集)의 내용이다. 국청사는 천태지자가 생명존엄을 실천한 도량이지만 천태종의 종주라 할 것이고 부처님의 생명존엄 사상이 다시 일어난 방생의식으로 현존하는 염불 방생의식으로 성형되였고, 고려에서는 교종(敎宗)이 강화되어 과거 제도로 국사 왕사가 생긴 것이고 서민이 국정에 참여하는 제도가 일어나 새로운 국력이 되었고, 조선에 선교 양종(禪敎 兩宗)사상으로 조선 영조시기 벽파스님의 살활구가 일어나고, 조선 말기 초의(草衣)스님은 선다일미(禪茶一味)의 생활선(禪)을 주장하셨다. 지금의 대승사상인 삼정(三淨)에서 보면 부처님의 10계(戒)나 미래의 미륵불의 10선(善)사상이 우리의 신구의 삽업(身口意 三業)으로 몸과 입과 마음의 행위인 것이니, 스스로가 마음으로 바른 뜻을 실천하고, 입으로 바른 말을 하고, 몸으로 바른 일을 실천하면, 스스로가 가피력을 성취하는 것이니, 바로 청정본심인 것이다. 삼정(三淨)은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일로 스스로의 행위인 것이라 스스로의 법이고 삼라만상의 법이다. 문수의 지혜는 모든 성인의 어머님이시므로 지혜가 인연으로 나타나면 이름과 형상이고 빛이고 물이고 흙이라 할 것이다.

 

 

246, 보현심(普賢心)

 

 28번, 106번, 211번, 223번, 참조.

 

 

247, 삼보장(三寶藏)

 

 

 불, 법, 승(佛法僧), 부처님, 법, 제자를 삼보(三寶)라 하여 세 가지 보배라 한다. 해(佛)와 햇빛(法)으로 모든 생명력(僧)을 얻어 살아가는 생명 세상을 말한다. 스스로의 마음의 불(佛)인 본성(本性)을 말하고 본성이 형상과 이름(法)으로 나타나서 마음(意)으로 분별을 하고, 말(口)을 하고, 행동(身)의 삼업(三業)으로 실천(僧)하는 것이다. 
  

 

248, 무불심(無佛心)

 

 부처가 없다는 것이고 본성이 없다는 것이다. 금강경 말씀에 시명(是名) 이름이 반야(般若) 지혜 라 한 것이지 지혜라 할 것이 없다. 여여(如如)는 여래여거(如來如去) 여여이 오시고 여여이 가심으로 왕래가 없는 자리를 여여 라 한 것이다. 부처의 본성은 거래가 없어 허공에 충만한 것이고 부처라 할 것이 못됨으로 이름하여 방편으로 부처 라 한다.

 

 

249, 면목자(面目子)

 

 

 220번 참조.  

 

 

250, 정토궁(淨土宮)

 

 

 75번, 147번, 참조.  

 

 

251, 법행심(法行心)

 

 

 89번, 131번, 참조.  

 

 

252, 무변심(無邊心)

 

 

 63번, 102번 참조.  

 

 

253, 공덕장(功德藏)

 

 

 135번, 146번 참조.  

 

 

254, 자광심(自光心)

 

 13번, 15번, 79번 116번, 126번, 137번, 208번, 참조.

 

 

255, 법향심(法香心)

 

 법의 향기는 봄철이면 산천에는 꽃의 향기가 진동하지만 나비와 벌이 없다는 것이니 자연 오염으로 무골충이 살지 못하는 것으로 도시가 오염되었다는 것이다. 도시 거리 자동차의 매연으로 거리 꽃에는 벌 나비가 없고 누애 애벌레를 거리 뽕나무 잎에 두면 하루를 못 가서 죽어 가고 시골 농사철에 농약을 사용하여 땅심이 산성화되어서 곡물 맛이 쓰고, 메뚜기, 올챙이, 소금쟁이, 미꾸라지, 반딧불이, 다슬기, 잠자리, 벌, 나비, 개구리, 물뱀 등의 먹이 사슬이 사라진 것이다. 에너지가 오염되면서 법향(法香)은 사라진 것이고 오염이 청정으로 변한다면 인체에 암이란 불치병등 난치병을 반 이상 청정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256, 여래성(如來性)

 

 여래성은 부처님 마음으로 중생의 본성을 말한다. 두두물물이 생명존엄이 평등하여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면 생명은 죽는 것이므로 공기가 없으면 씨앗이 싹이 트지 않고, 도 공기는 물질을 썩게 하여 생명에 영양분으로 생명을 영양분으로 생명을 자라게 한다. 사람이 먹고 배설한 물질은 썩고 부식되고 냄새가 나지만 오염이 아닌 것은 식물이 먹으면 영양분이 되고 지런이가 기름 찌꺼기 오염물을 먹고 배설한 부토는 식물에 영양토로 곡물이 매우 잘 자란다. 법을 배우고 수행하여 실천하는 자로 항상 생명에 선지식으로 생명존엄을 찾아서 서로서로 상생하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면 경제적 이익이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공기를 맑게 하고 홍수와 가뭄을 조절하고 열매는 생명들에 양식이고 나무 잎은 다시 낙엽 되어 썩어서 영양분으로 공급되는 것이니 얼마나 생명에 봉사하는가? 불자의 귀의자는 나무 같은 마음으로 사회의 오염을 청정으로 환원시키는 선구자가 된다면 선지식이라 할 것이다.

 

 

258, 장엄화(莊嚴華)

 

 장엄은 극락장엄이 수승하고, 아름다운 것을 말하므로, 산천에 꽃이 피어서 아름답고, 도시의 밤거리가 아름답다는 것은 불빛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가을 밤 하늘의 은하수가 아름답고, 옛적에는 시골 밤거리 반딧불이가 하늘 은하수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하고, 요즈음은 청정 운동으로 겨울철 철새가 무리로 찾아오는 무리 춤을 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259, 감로자(甘露子)

 

 감로자는 하늘 이슬이라 하여 성수(聖水)를 말한다. 관세음보살님이 약병을 드시고 중생을 병고를 보살피시는 분으로 감로수는 하늘 이슬로 생명수이므로 생명이 물을 먹으면 잘 사는 것처럼 중생이 감로수를 마시면 번뇌가 사라지고 병은 치료되고 죽을 생명은 희생하는 것이니, 중생에게는 다함 없는 약수인 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을 열심히 부르고 삼매에 들면 관세음보살님이 감로수도 주시지, 경기도 양평 수입리 천은사는 30년 된 쓰레트 집으로 지금은 불에 타서 사라지고 자신이 살면서 모신 키 한 질 되는 청동 아미타 좌불을 모셨는데 마을 사람들이 시간만 있으면 부처님전에 절을 하고 기도를 하는데 하루는 마을 신도가 찾아와 관세음보살 영험 이야기를 하신다.
  자신은 평상시 다리가 아프고 쑤시는 고통이 심하여 저녁이면 손자들이 항상 다리를 만져야 하는데 하루는 부인 따라 절에 가서 법당 벽화에 흰 모습을 한 관세음보살님에게 절을 열심히 하였는데 그 날밤 꿈에 흰 보살님이 나타나시어 다리가 아프지 다리를 보자고 하시드니 팔뚝 길이 만한 금침으로 다리에 놓아 관통을 하여 두렵고 신기하기도 하여 감사하다고 하니 걱정하지 마라 하시고 방을 나가시는데 꿈에서 깨어 보니 이상도 하고 너무나 생생하여 부인에게 이야기 하니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한 것이라 하여 그 후로는 다리가 너무나 신기하게 치료 되었어 스님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260, 진언자(眞言子)

 

 진언은 부처님 말씀으로 인도 문자대로 사용하면서 긴 것은 다라니 라 하고 짧은 것은 주문, 진언이라 한다. 스님이 꿈속에서 신묘장구 대다라니 삼매 이야기를 하고자한다. 어느 날 꿈에 아득한 산중 계곡속으로 지나가는데 산 전체가 암반으로 돌이끼가 무성한데 자세히 이끼속을 살펴보니 산 전체가 섬세한 조각 탑으로 형성되어 있고 안개속 협곡을 지나서 산 아래 부분은 보이지를 않고 절은 산 정상으로 입구를 칡 넝굴을 잡고 지나면서 절에 도착하여 보니 법당마다 기도 손님이라 대웅전을 참배하고 나오면서 기둥 위에 중 도리에 그림 단청이 용 그림인데  용 몸통 부분에 구멍이 있어 구멍이 생겼다 하고 손 가락으로 누르자 도리 용 그림이 움직이는 용으로 변하여 나에게 달여드는 것이라 뒤로 물려서면서 피하는데 자꾸 달려드는 것이라 순간에 신묘장구 대다라니 주문을 일심으로 하니 용이 물려가면서 기둥 위에 도리로 돌아가는 꿈이라 깨고 보니 이상도 하고 참으로 기이한  꿈이로구나 스님이 꿈에 다라니 삼매에 들어서 번뇌를 조복 받는 성취 꿈으로 그 후에 천안 광덕사 주지 임명을 받아 백제 천년 고찰 자장스님의 도량이었다.

 

 

261, 묘법행(妙法行)

 

 부처님 법을 미묘법이라 한다. 마음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라, 있다 하면 있고 없다 하면 없는 것이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마음이란 것이다. 마음으로 있다고 믿으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믿으면 없는 것이지, 마음은 푸르고 흰 것이 아니지만 푸르고 흰 것을 보면 푸르고 희다고 하므로 마음이 푸르고 흰 것이 아니므로 푸르고 희다하는 것이므로 푸른 것도 마음이고 흰 것도 마음으로 푸르고 희다 한 것이니, 유무(有無)에 자유자재 한 것이다.

 

 

일법자(一法子)

 

 마음 법을 일법(一法)이라 하고 일미(一味)라 한다. 의상스님 법성게(法性偈)에 일미진중함시방(一味塵中含十方) 한 맛 중에 우주가 있다는 것이다.
  바다의 한 맛은 짠 맛으로 바다를 알 수 있고, 산천은 푸른 한 잎으로 푸른 산천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장미하면 부산에서는 사랑이라 하지, 부산에서 난초하면 서울에서는 청정이라 한다. 부산에서 손 바닥을 보이면 서울에서는 주먹을 보이지, 부산에서 손을 잡으면 서울에서는 손을 뿌리친다. 음양이 다르듯 하지만 음양의 도리가 생명력인 것이다.

 

 

263, 인욕행(忍辱行): 참는 것은 지혜와 복덕이 증장된다. 진심(嗔心)이 일어나도 참고 시간이 지나면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재앙이 복이 된다. 재앙과 복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고 재앙을 참고 견디면 복이 되는 것은 한 번 참으면 이해하고 두 번 참으면 용서하고 세 번 참으면 자비심을 실천 할 수 있는 것으로 한 번 두 번 깊이 생각을 하면 마음으로 관찰하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264, 선정심(禪定心)

 

 

 바다 수면이 잠잠하여 수면에 해도 나타나고 달도 나타나 수면에 모든 것이 나타나듯 선정심은 마음에 번뇌의 파도가 없기 때문에 마음의 가치관으로 관찰 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것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고 넓히기도 하여 자유자재하는 힘이 생기는 것으로 지혜라 한다. 
  

 

265, 지혜심(智慧心)

 

 거울에 때가 없이 청정하면 모든 형상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처럼 지혜는 스스로의 마음에 때가 없으면 현상의 모양과 이름의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과 공간으로 일어나는 형상과 이름까지도 다 나타나는 인연법을 아는 것이니, 지혜의 눈은 몸의 눈이 아니고 마음의 눈으로 형상과 이름에 집착하지 안는 것이다.

 

 

266, 법륜행(法輪行)

 

 부처님 법 전하는 것을 수레바퀴가 굴리는 것처럼 쉼이 없이 굴리는 것을 말한다. 수레바퀴가 정지하고 움직이지를 안으면 수레바퀴의 역할을 못하는 것으로 법은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하늘과 땅의 냉온의 기온이 쉴 사이가 없이 생명력으로 나타나고 용광로 쇠물도 생명력으로 열의 기운이 최상승으로 올려면 단단한 쇠가 물처럼 움직이는 것이라 마음대로 모양새를 만드는 것이다.

 

 

267, 관조심(觀照心)

 

 232번 참조.

 

 

268, 법진행(法眞行): 법의 성품이 본래 모습으로 청정의 생명력이라 할 것이다. 생명력은 무수한 모양과 이름으로 변화하면서 지속되는 것으로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고 모양과 이름에 순응하므로 물이 모양과 이름에 순응하듯 싫어함이 없는 것으로 모양과 이름이 주어지면 이름과 모양에 주인공이지만 집착하지 않으므로 마치 물과 빛, 흙의 에너지는 불성(佛性)이므로 주인공이지만 모양과 이름에 항상 순응하는 것이니, 집착이 없으므로 싫어함이 없는 불보살의 마음이고 우리 생명력으로 자유자재하고 영원한 것이다.

 

 

269, 일심행(一心行)

 

 

 262번 참조. 
  

 

270, 일념심(一念心)

 

 5번, 197번, 262번 참조. 
 

한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으로 우주 공간을 초월하는 것으로 우주 공간에 마음이 가득하여 틈이 없는 것으로 불심충만허공(佛心充滿虛空) 부처님 마음이 허공에 충만하다는 말처럼 마음이 허공에 가득하여 지구 반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움직이지를 않고 직시에 한국에서 TV나 라디오를 보고 듣고 아는 것이다. 소리와 빛이 허공에 가득하여 가고 올 것이 없는 것으로 여여(如如)라 한다.

 

 

271, 직심자(直心子)

 

 바른 마음이라 곧 바로 현재 마음으로 부처님 마음을 실천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인 것이다. 호흡지간에 번뇌, 진리, 모든 생각을 놓아 버리고 곧 바로 부처님 마음을 실천한다면 부처님 마음이라, 자성불(自性佛)을 체험하는 때이라 직심(直心)이 곧 선심(禪心)인 것이다.

 

 

272, 견성자(見性子):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성품을 본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고 듣고 하는 것이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소리와 형상을 관찰하면 소리와 형상의 시절 인연을 알 수 있고 시비 선악의 원인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성품을 본다는 것은 청정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273, 일해장(日海藏)

 

 해와 바다는 해는 빛의 생명력을 발산하고 바다는 모든 오염을 받아 드려서 청정을 만드는 근원지이다. 해, 달, 지구의 관계가 바다의 밀물, 썰물이 나타나고 지구의 중력은 해와 달의 관계로 물질을 단단하게 하는 기운의 작용으로 당기는 힘이 발산되고 공기의 보호막으로 대기권으로 생명이 지구에 생존하고 땅에서 다니는 것은 지구의 중력 때문이다. 지구가 둥근 것이라 허공에 둥둥 자전을 하는 것으로 지구 공기의 압력이 없으면 허공으로 다 추락하고 말 것이다. 지구의 공기는 생명력으로 생명에서 발산되어 생기는 것이고 나무가 많으면 많을수록 공기가 청정한 것으로 나무 숲이 공기를 청정하게 하는 공장인 것이다.

 

 

274, 삼매심(三昧心)

 

 탐진치(貪嗔癡) 삼독심이 일어나지 않으면 삼매심이라 할 것이다.삼독심은 마음을 병들게 하고 마음을 죽이는 독약으로 삼독심이라 한 것이고, 6적(賊)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눈․귀․코․혀․몸․뜻이 마음을 병들게 한다 하여 6가지 도적이라 한 것이다. 이 도적을 조복하면 주인공을 찾는 삼매력인 것이다.

 

 

275, 일행자(一行子)

 

 생사 업장(生死 業障)으로 윤회하지 않는 자를 일행자 라 한다. 마음을 깨달으면 업장(業障)에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고 저승의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염라대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며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닌 것이다. 중생을 구제하고자 방편으로 화신으로 오시는 것이고 지장보살님처럼 지옥 고통을 구제하고자 지옥을 선택한 것이고 사바 세상의 고통을 구제하고자 세상에 천백억 화신으로 오신 부처님이시다. 일행자(一行子)는 중생을 위하여 청정법신(淸淨法身)으로 오시는 것이지 생사업(生死業)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아미타경(阿彌陀經)에는 극락 세계에 아름다운 소리를 하는 새들은 업보 소생이 아니라 아미타불께서 설법하고자 만든 생명이란 하셨다.

 

 

276, 법계성(法界性)

 

 청정법신(淸淨法身)을 찾는 것이니 청정법신은 이름과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청정법신불이라한 것은 중생을 위한 방편이라 할 것이다. 청정법신이라 할 것이 없는 것이지만 이름하여 청정법신이라 할 것이다. 청정은 물처럼 사물에 순응하면 물이 사물에 순응하면 물이 사물의 형상과 이름으로 나타나면서 형상과 이름으로 부르지 물이라 하지 않는 것처럼 청정법신을 문자나 언어에 집착하면 당처를 알지 못한 것이다.

 

 

277, 무진행(無盡行)

 

 불보살님의 원력이 다함이 없고 중생의 원력이 다함이 없는 것이 미래가 다함이 없는 것이니 중생이 다함이 없고 세계가 다함이 없는 것이 중중무진( 重重無盡)이라 삼라만상이 마음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은 마음을 항상 긍정심을 하면 긍정의 세계가 나타나고 부정하면 부정한 세계가 나타나는 것으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든 것이 마음이란 것이다. 

 

 

278, 보해궁(普海宮)

 

 부처님 말씀이 말세에는 바다속 용궁에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라 하고 대승 보살인 용수보살님은 용궁에서 경전을 가지고 왔다는 말씀이다. 보해궁은 불 보살님의 다함 없는 원력이시고 중생의 다함 없는 원력을 말한다.

 

 

279, 해운심(海雲心)

 

 중생의 원력을 해운심이라 할 것이다.
  보디 사드바는 인도 말인데 보살(菩薩)이라 깨달은 중생이라 하여 각유정(覺有情) 깨닫기는 하여서나 중생을 위하여 생사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부처님께서 말씀한 것이고 스스로가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생의 원력이다.

280, 지성해(池成海): 150번 참조.

281, 연산자(蓮山子): 연산은 정토를 말하고 사찰 주위의 산 형국이 연꽃처럼 겹겹이 둘려 싼 산새를 보면 참으로 기이한 마음이 일어난다.
  부처님께서 오탁 악세에 물들지 않으시고 진리를 깨달으신 것으로 흰 연꽃에 비유하고, 미타경에는 극락에는 사람이 연꽃 속에서 화생 한다고 하여 연꽃은 처염 상정(處染 常淨)으로 진흙 속에서 항상 피는 연꽃은 오염에 물들지 않고 청정한 것으로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고 부처님을 뜻한다.

282, 황연심(黃蓮心): 부산 연산동 황령산(黃嶺山)으로 시청에서 말한 것을 동고 큰스님은 황연산(黃蓮山)이고 연산동(連山洞)이름도 연산동(蓮山洞)이라 할 것이고 스님은 금연산(金蓮山)이라 하셨고 금연산에 광안리 군법당을 군에서 건립하여 금연사(金蓮寺)라 스님은 칭명 하셨다.
  금연산은 황연산으로 부산 바다를 맞이하면서 산 둘레에는 해운대, 광안동, 연산동, 부전동, 문현동으로 부산 중심의 산으로 산 형국이 연꽃처럼 겹겹이 둘러싼 산새를 보면 참으로 기이한 마음이 일어난다.
  부산에 전동차가 거리 중간으로 댕댕 소리하면서 다니던 때가 30년전이라 그 시기는 거제리, 연산동, 동래지역이 다 미나리, 연밭이었다.
  마하사는 옛 사람들이 큰절이라 하고 다였고, 역사가 아득한 아도(阿道)스님의 삼국시대 초기 불교 전래자가 창건한 사찰로 연꽃속 금연대(金蓮臺)에 화생하시는 생명의 정토를 말하고 있다.

283, 마하심(摩訶心): 50번, 149번, 참조.
  마하는 크다는 말이다.
큰 마음은 부처님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고 다 함이 없는 마음이고 중생들의 본성으로 생명존엄을 배우고 실천하는 중생의 원력으로 다함이 없는 영원한 생명력으로 스스로의 마음에 자리한 마하심을 찾는 것이다.

284, 성지심(聖知心): 성인의 마음을 말한 것으로 중생들이 본심으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성지심은 성지곡(聖知谷) 지역 이름으로 부산 초읍 성지곡을 성지심이라 한 것으로 물처럼 바람처럼 수목처럼 푸르고 맑게 살아가자는 것이다.
  성지곡은 시민의 안식처로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 대공원에 출입을 한다.

285, 반야행(般若行): 49번, 126번, 178번, 179번, 참조.
286, 진여심(眞如心): 53번, 134번, 184번, 참조.

287, 여시행(如是行): 여시(如是)는 부처님 말씀을 결집하면서 부처님 제자 아난이 여시(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하면서 자신의 말이 아니고 부처님 말씀이란 것이므로 아난이 부처님 말씀을 똑 같이 하므로 듣는 사람이 오해를 할까봐 여시(如是)라 한 것이 경전마다 첫 머리에 나타난다.
  여시행(如是行)은 부처님 가르침을 스스로가 부처님 말씀, 부처님 행, 부처님 마음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불제자의 원력인 것이다.
 
288, 불이심(不二心)

 

 6번, 155번, 참조.

 

 

289, 불성장(佛性藏)

 

 부처님께서 본 성품의 마음을 열반경(열반경)에는 불성(불성)이라 하고 불성은 꽃피고 열매 맺는 것처럼 마음에 본래 지혜와 복덕이 원만구족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마음이 푸르고 흰 것이 아니므로 푸르고 흰 것을 보면 푸르고 희다 하는 것이니 자유자재한 것이라 모양과 이름이전의 물, 공기, 흙의 생명 힘이 생명에 순응하면 모양과 이름으로 나타나면서 물, 공기, 흙이라 하지 않는 것처럼 마음의 본성도 같은 것이라 순응함으로 자유자재한 것이고 싫어함이 없는 불성장의 마음이다.

 

 

290, 자비심(자비심)

 

 169번, 225번, 참조.

 

 

291, 선심장(禪心藏)

 

 불심, 선심, 시심, 다심, 직심(불심․禪心․詩心․茶心․直心) 불심은 본 성품의 마음이고, 선심은 마음을 관(觀)하는 마음이고, 시심은 시인의 자연스러운 마음이고 다심은 차 마시는 순응하는 마음이고, 직심은 새로운 마음이라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생명심(生命心)으로 영원한 것이다. 선방(禪房)을 선불장(選佛藏)이라 하여 부처를 만드는 장소를 말한다. 선심장(禪心藏)은 항상 생명의 리듬으로 맥박소리가 영원한 산 소리로 본성(本性)의 소식을 말한다.

 

 

292, 해탈자(解脫子)

 

 몸에서 해탈한 자가 누구일까? 청정법신(淸淨法身)이라 청정법신은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는다. 청정법신은 불생․불멸․불구․부정․부증․불감(不生․不滅․不垢․不淨․不增․不減) 생사도 없고, 정추도 없고, 증감도 없는 것으로 청정은 형상과 이름에 관계하지 않으므로 자유자재함으로 해탈이라 한다.

293, 법정행(法淨行): 법은 바른 것이고 맑은 것이고 밝은 것이고 고른 것이므로 법이라 하고 청정이라 할 것이다. 청정을 빛이라 하고 물이라 하고 공기라 하고 흙이라 하고 싶다. 생명의 힘이 청정하지 않으면 모든 생명이 스스로 병들고 죽는 것이고 청정하면 생명력이 서로서로 상생하므로 정토(淨土)라 하여 억압, 강압, 탄압, 시기, 질투, 테러, 전쟁의 남의 힘에 의해 죽거나 다치지는 않는다.

 

 

294, 원만심(圓滿心)

 

 허공은 빈 것으로 원만성(圓滿性)을 찾는다. 허공은 빈 것으로 두두물물에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 흰 것이 오면 흰 것으로 순응하므로 희다고 할 것이고 검은 것이 오면 검은 것에 순응하므로 검다고 할 것이므로 원만심이라 한다. 마음에 번뇌가 빈 것으로 텅빈충만이라 할 것이고 빈 그릇은 무엇이든지 뜻대로 담을 수 있지만 그릇에 물을 비우지 않고는 물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릇은 자주자주 비우므로 그릇의 존엄성을 찾고 원만심은   곳에서 찾는 것이다.

 

 

295, 진여심(眞如心)

 

 대승 기신론에는 마음의 본성을 진여(眞如)라 하여 죽고 살고 싫어하고 좋아하고 청정하고 오염의 번뇌에 관계하지 않으므로 진여(眞如)라 한다. 진여는 텅빈충만으로 없는 것으로 있는 것을 말하고 허공은 빈 것으로 허공이라 하지만 에너지가 충만한 것이므로 있는 것이라 중생은 모양과 이름으로 있다하므로 모양과 이름이 없으면 없다고 하고 성인은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에너지의 공기 기운처럼 모양과 이름이 없지만 생명의 힘인 에너지 보고가 허공인 것이므로 모양이 없지만 성인은 있다고 하는 것이다.

 

 

296, 대지화(大智華)

 

 대지화는 깨달음을 말한다. 부처님 당시는 부처님 말씀이 진리이고 불법(佛法)인 것이라 문답(문답)으로 제자들이 깨달음을 얻었지만 달마스님은 선(선)이라 하여 스스로가 성품을 보면 견성(견성)이라 하여 많은 선지식들이 탄생하시고 옛적에는 왕의 말씀이 법이라 왕이 마음대로 백성을 살리고 죽이고 한 것이다. 한글의 문자를 만들어 국민을 가르치고 배우고 알아서 스스로가 광명의 빛을 마음에서 찾아서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 지혜의 빛으로 대지화(大智華) 인 것이다.

 

 

297, 대행심(大行心)

 

 큰 원행은 깨달음이다. 석가 부처님은 중생을 다 깨닫는 자로 보고 관세음보살님은 중생을 다 자식으로 보고 지장보살님은 중생을 다 즐겁게 상기를 바라면서 마음으로 대자대비로 항상 다함이 없는 마음이시다. 문수보살님의 대 지혜와 보현보살님의 대 원력과 대세지보살님의 정진력과 관음 지장 미륵보살님의 자비심이 각자 스스로 본래 원만 성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 스스로가 실천하는 것이다.

 

 

298, 화엄장(華嚴藏)

 

 화엄은 중중무진의 장엄세계를 말한다. 생명력에서 보면 에너지의 보배를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생명은 누구나 공기를 호흡하면서 공기의 은혜를 모르고 빛을 받으면서 은혜를 모르고 흙의 영양력을 받으면서 은혜를 모르고 사는 것이 중생인 것이다. 화엄장은 중중무진(重重無盡) 화엄세계의 공덕 속에서 공덕의 은혜와 감시를 체험하고 깨닫는 것이다.

 

 

299, 대승심(大乘心)

 

 대승심은 자연 그대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이다. 거짓이 오면 거짓에 순응하므로 거짓이 바르게 되고 진실이 오면 진실에 순응하므로 진실이 더욱더 바르게 되는 것이다. 푸른 것은 푸르게 순응하므로 푸른 것이고 붉은 것은 붉은 대로 순응하므로 붉은 것으로써 아름다운 것이다. 자연의 힘이 생명에 순응하듯, 불보살님의 마음은 중생의 마음에 순응하므로 중생을 싫어함이 없이 구제하시는 대자비심이 대승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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