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에 관한 시모음



단풍 3 /김경철



알람 소리에

덜 깬

눈으로 일어나

창문 밖을 바라보니



따사로운 햇살에

자랑하듯

단아한 모습을

선보이던

푸른 얼굴들



불어오는 삭풍에

심하게 멍들었나

여기저기서

붉은 피멍들 보이고



그 모습에 놀라

일부는

심한

똥내 풍기며

노랗게 변해간다



싸늘해진 가을바람에

가늘게 흔들리던

붉은 얼굴

노란 얼굴

갈색 얼굴들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하얀 나비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바싹 말라가는구나





단풍연가 /유한나

살아 온 날보다
남아 있는 시간을
더 사랑해요

지나 온 나날
눈물겨워도
비장한 사랑으로
불타올라요

무성한 근심 위로
가을이앉아
다독여 주는 군요
적막한 외로움 곁에
찬바람이 불어와
어깨를 껴안는 군요

사랑하자구요
가을엔 물들자구요
노랗게 빨갛게 새빨갛게
빛고운 색깔로 짓이겨져
한 잎의 단풍이 되어요

벚나무 잎새로
은행나무 잎새로
갈참나무 잎새로
알록달록 물들어 떨어져서
정신없이 굴러가며
세상의모든 가을이 다할 때까지
사랑해요.





단풍을 보다가 /임문혁

설악산 한계령을 넘다가
입을 벌리고 단풍을 본다
바람은,
어떤 기막힌 영혼을 품었기에
푸른 산허리에 닿아
저렇게 흐드러지게 꿈이 풀리고
줄에 닿으면 소리가 되고
물에서는 은빛 춤이 되는가
나는 도대체
얼만큼 맑고 고운 영혼을 품어야
그대의 가슴을 만나
단풍처럼 피어날까
언제쯤이나 나의 아픔은
그대의 마음 줄을 울리는 소리가 되고
은빛 춤이 될까
저렇게 기막힌 영혼이 될 수 있을까





단풍 /천선자



고독마저 뚝뚝 부러트리는 상수리나무 밑동

베레모를 눌러 쓴 가을이 캠퍼스를 펼치고 있다.

찬바람이 불쑥 찾아와 서성거리는 언덕 위

대문이 없는 집들이 햇발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다.

경계를 따라 쌓아 놓은 크고 작은 돌들이

층을 이루며 작은 돌이 큰 돌에 안겨 있고

큰 돌이 작은 돌을 품고 있는 돌담에

듬성듬성하게 박힌 흰 돌의 말간 웃음 길로

메아리를 부르고 산새들을 부르고 청솔모를 부르고

꽃을 피운 여름 산이 실수로 쏟아버린 붉은 물감,

푸른 능선을 징그럽게 물들인다.





단풍 /김승동



오 실수로 쏟아진 물감

계곡을 접어 내는

오색의 데칼코마니





단풍이 드는 것은 /장진순



단풍이 드는 것은

바람 탓이거니 했지

바람이 돌변하여 포악해진 것이라고

그런데 그 바람이 쫓겨 가는 것을 보았어,

수풀을 헤치고 들길을 지나

남쪽으로 다라나 는 것을

-

결실기를 맞은 숲이

홍등 걸어놓고

감사제를 드리는 행사일까

헌데, 서릿발 같은 바람을 보았어,

바람은 다 한 통속이거니 했지

형체도 없는 것이

무슨 경계가 있겠나싶었어,

-

그런 게 아니었어,

북에서 몰아닥친 매서운 바람은

칼을 품었나봐!





낙엽 된 단풍 /이재환



곱고 예쁘게 물든 나뭇잎

꽃보다 아름답게 피우더니



바람 부니 힘없이 땅에 떨어져

여기저기 뒹굴고 다니네



이쁘고 잘 나갈 때 잘하지

낙엽 된 처량한 모습 애처롭구나





무릉계곡 단풍 /심지향



내가 언제

그대 흉을 보았다고

그토록 빨갛게

얼굴을 붉히는가.

내가 잠시라도

다른 것을 사랑했다고

그렇게 샛노란

질투를 내는가.

내가 깜박

그대를 잊은 적 있다고

서러운 갈잎을

마구 뿌리더니

이제 마음 다 해

그대를 사랑하는 걸 알았다고

곱디고운 치장으로

날 반기고 있는가





가을바람의 붉은 시, 단풍 /정해란



새벽 여명부터 노을빛까지

몇 번을 꿈꾸어야

이 빛깔로 흔들릴까



유록빛 봄부터 향 짙은 녹음까지

몇 번을 모아야만

이 향으로 반짝일까



온몸으로 울음 삼킨

꼭두서니 눈물 빛에 먼저 기대어 우는 가을바람

이별 예감에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며 단풍잎에 쓰는 시



떠나가는 작은 생명 붙잡아주려

햇볕이 쓴 시 마지막 연을 마무리 짓고 있는

가을바람의 붉은 시, 단풍





불타는 단풍 /김소엽

당신이 원하시면 여름날 자랑스러웠던 오만의
푸르른 색깔과 무성했던 허욕의 이파리들도
이제는 버리게 하소서

혈육이 가지를 떠나빈 몸으로
당신 발 아래 엎드려 허망의 추억까지도
당신께 드리오리니 당신의 피로 물들여 주소서

바람이 건듯 불면 당신의 음향으로
내 젖은 영혼이 떨게 하시고 노을이 찾아들면
육신은 더욱 고운 당신빛으로
황홀한 색채를 띠게 하소서

푸르른 나는 가 버리고 내 안에 당신이
뜨겁게 살아서
죽어도 영원히 살아있게 하시고
머언 훗날 어느 순결한 신부의
일기장 속에 연서로 남아 당신의 사랑으로
물드는 한 장 불타는 단풍이게 하소서.





단풍 /곽병술

그리움을 주체할 수 없어

고운 잎새마다 초록빛

소망을 담은 잎새들
아롱지며 단풍드는
지순한 사랑.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수줍어 떠는 가슴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타오르는 불씨여!





석남사 단풍 /최갑수

단풍만 보다 왔습니다
당신은 없고요, 나는
석남사 뒤뜰
바람에 쓸리는 단풍잎만 바라보다
하아, 저것들이 꼭 내 마음만 같아야
어찌할 줄 모르는 내 마음만 같아야
저물 무렵까지 나는 석남사 뒤뜰에 고인 늦가을처럼
아무 말도 못 한 채 얼굴만 붉히다
단풍만 사랑하다
돌아왔을 따름입니다

당신은 없고요





단풍2 /김영환

마지막 한시절 세상을 덥히고는
이름 없는 계곡에 몸을 누인다
서늘한 바람이 그들을 덮는 것은 참 어울리는 일이다





마지막 단풍 /정심 김덕성



가을이 깊어 가는 날

그대는 내 가슴에

불꽃같은 붉은 사랑을 심어 주었고



내 가슴에는

멍이 든 것처럼

불타는 것처럼 불이 붓고 있었지



햇살인들 내 마음을 알까마는

그대 정열을 보며

청풍에 깨끗이 내 영혼을 씻고

홀로 남은 사랑의 불꽃에

내 마음을 포개었지



그대가 떠난 오솔길

지금은 붉은 카펫으로 깔려 있어

그 길을 나는 걷고 있어

내 사랑이여





단풍나무 4 /정연복



아파트 현관문 바로 앞

단풍나무 한 그루



모레가 추석인데도

아직까지도 눈부신 초록빛



봄과 여름의 빛깔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영원한 청춘인 양

푸름을 뽐내고 있지만



두어 달 지나면

이윽고 빨강 단풍물이 들고



또 얼마쯤 뒤에는

쓸쓸히 낙엽 되어 지겠지.





단풍 2 /정승렬

이 세상을
등지고 떠나는 발걸음이야 오죽하랴

마을을 감돌아
고개위로 사라지는 길

그 고개 끝에 잠시 멈춰 서서
석양처럼
모질었던 마음을 붉게 토해내고 나면

팔랑 팔랑
육신일랑 바람처럼 좀 가벼워질까.

고개 마루 빈 가지에 걸리는 그믐달처럼
가지 끝에 매달리는 쓰린 기억을
명주 색실로 풀어서 날리고 나면

둥 둥
육신일랑 구름처럼 흘러갈 수 있을까





단풍 /공석진



피멍이 들어

욱신거리도록

모진 그리움

방치되었다



아프다

하지 않았니

제발 나를

흔들지 말아줘



남루한 사랑

고독한 바람에

진저리치다

이내 죽었다





단 풍 /윤주영



하늘 틈새로 밀려온 바람에

나뭇잎은 서로 부비며

온갖 아름다운 음률로

사랑을 이야기 하다가



긴 긴 여름동안

사랑은 석류 알처럼 영글어

어쩔 줄 몰라 하던

불붙은 가슴을



끝내는

가슴을 풀어 헤치고

가을 산에 대굴 대굴 굴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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