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고은 시 모음 71편
《1》가슴에 머무는 사랑
박고은
머물지 못하는 세월에
오랫동안 깊은 사랑으로 와서
내 안에 여울져 머무는 사람,
골짝 깊은 쓸쓸한 외로움 속
메아리 보내 힘이 되는 사람
무한대 하늘로 커가는 사랑이
이리도 흐뭇할 줄이야!
노상 섧은 나를 위하여
진실로 뜨겁게 울어주는
날로 불심지로 돋아나는 사랑,
오롯이 애틋한 그에게
잔 가득 부은 정 건네주고
가진 것 다 주고라도
마음꽃 한 송이 준비하여,
영원을 더듬어 가는 그를 쫓아
내 영혼도 순순히 닮고 싶다.
《2》가슴이 아리거든
박고은
서러운 이여
하늘이 무너지는 눈물방울
시린 손 마디마디 떨어지는
무슨 사연이 있거들랑
청산에 올라 잠시만 쉬어 오자
버릴수록 맑아지는 마음 길 따라
돌탑을 쌓아 올리며
'아직도 살아 있구나' 감사하자
붉은 낙조에 가슴 문질러
푸른 멍울 지우며
많이 아프고 지치어도
희망을 지피는 심정으로
다시금 웃으시라 환하게!
그래도 그대여 가슴이 아리거든
도도히 흐르는 강물 위에
종이배 하나 띄워
끝없는 해원으로 노 저어가자
《3》가을 들녘
박고은
뮤즈가 깔렸다
갈바람 한 점
싸하니ㅡ 지나가는 들판
익은 가을을 짊어진
농부의 뒷모습에
숨 가쁜 노을이 따라가고
노을 자락 끝에 매달려 있는
애수 어린 小曲 하나
가을이 불을 지른다
들판이 온통 불이 탄다
금빛으로 타는 가을 들판
타다 남은 잔재 위로
어디서 날아왔는지
빨간 고추잠자리 두 마리
가냘픈 날개 위에
졸음 겨운 눈을 스르르 감고
꿈꾸기에 여념이 없다
지천으로 무성히 피어
갈대 숲을 이룬 가을 들판에서
《4》가을 앓이
박고은
해마다 이맘때면
자질자질 몸이 아프다
후끈한 열기와
짜릿한 바람기가 남긴
여름날의 상흔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만추의 늪에 빠진
카랑한 기러기 울음은
센치멘탈, 나를 또 울리고
스산한 바람 기류에
뒹구는 풍엽들
발걸음 자국마다
심장 앓는 가을
그저 저리기만 하다
《5》가을 정사
박고은
한 송이 꽃은 햇살 한 줌 입고
그리움을 쓰고 있을 게다
밤을 헤아리던 갈증으로
그대 이름을 부르며
아침을 맞이할 때
또……
나는
산을 그린다
우뚝 선 암릉들
감히 그 길을 들어서기에는 벅찬 가슴
뜨거운 열기처럼 부푼 욕심은 다시 손길이 간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암릉 가슴팍이 뜨겁다.
한 편으로는 잔잔한 호수 마음 같고
때로는 거친 파도처럼 밀쳐 낸다.
섬세한 손길
발끝의 감각이 비밀 문을 연다.
오르다
오르다
결국은 정상을 정복하고서야 긴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나를 허락하고 안아 준 거대한 암릉 가슴이 포근하다.
《6》가을이 깊어지면
박고은
온통 추상에 젖은 산천
가을이 갈빛으로 깊어지면
바람은 또 얼마나 꿈꾸며 가는가
무수히 계절을 밟고 왔을 바람은
텅 비워서 가득찬 풍요
올 맑은 사유의 눈을 떠서
온 누리 더불어 여물고 싶음이여
시떫은 젊음은 결 삭고
비린 욕망은 단물이 들어
한 알 홍시로 무르익고 싶다
여기저기서 우수수 지는 것들
나이만큼 가슴속에 지는 소리
섧게 지는 낙과를 주워
그 의미를 만져 보고
천심 묻은 영원의 뜰에 두고 싶다
끝내 모든 것이 떠나고 잃는대도
카랑한 정신과 내 안에 사랑만은 남겨
연륜의 강기슭 갈대를 흔들고 싶다
《7》가을처럼 우리 사랑하자
박고은
가을은 그대 그리움으로
물들어
내 마음에 흐르고
코발트 빛 청명한 하늘같이
내 안에 자리한 그대
넓디넓은 들녘같이, 바다같이
깊고 풍량한 마음을 지니고
가을처럼 우리 사랑하자.
아름답게 펼쳐진 감빛처럼
곱게 번져오는 따스한 손길같이
서로 마음을, 가슴을, 사랑을 잡아주자.
그댄 내가 되고,
나는 그대가 되어, 가을에는
더 아름답고 예쁘게 사랑하자 우리..
첫 만남의 설레임처럼
풋풋하고 싱그러움 닮은 느낌으로
달콤한 첫 입맞춤처럼
눈 뜰 수 없는 수줍음 같은 사랑으로
가을처럼 우리 사랑하자.
모든 것이 풍성하고
알알이 꽉 찬 농익은 과실처럼
단맛과 포만감이 주는 느낌처럼
그대와 내가 서로 마음이며 눈빛 하나에도
늘 부자인 것같이 사랑하자 우리
이름만 부르고 읊조리기만 하여도 좋은 사람,
사랑한다 말만 입가에 흘러도 눈물이 나는 사람,
그대가 계셔서 좋은 이 계절
가을처럼 우리 사랑하자
사랑하는 나의 사랑아
《8》강가에 서서
박고은
깊은 속살 드러내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
그대 사랑아
살며시 눈감고
귀담아 들어 보아라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에
증오와 회한 실어 보내고
옹이진 마음도 풀어 버리고
하얀 음률로
심연 두드리는 물소리
가만 들어 보아라
온갖 시름 잊어버리고
그대도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 가보아라
푸른 대양에 닿아보아라
《9》계절의 우수
박고은
그래 삶이란 구름무늬
한갖 덧없는 일장춘몽,
부귀영화란 것도
한 줄기 바람일지 몰라
지금은 가을, 인생의 가을
바람에 낙엽은 뒹굴고
빛 바랜 추억이 맴도는…….
머잖아 추운 계절이 온대도
마음 시리지 않기로,
다행히 여윈 손 잡아주고
빈 가슴 쓸어줄 이 있으니
올겨울 쓸쓸하지는 않으리
인업의 껍질을 벗고
뭇 사연은 사루어
찬 이슬에 묻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
가을이 진다 그만 돌아서자
《10》그 사랑
박고은
그대 눈동자에 내가 있어서
그 입가에 예쁜 미소 번질 때
수줍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대 눈동자 어둠이 깃들어
내 마음에 슬픔이 잠겨올 때
차라리 그대, 잊으려 했습니다
별이 지는 가슴에 그대 그림자
숨죽여 흐느끼며 어려올 때
그 사랑 다시 힘껏 품었습니다
《11》그대 사랑입니다
박고은
꽃이 지나간다
꽃이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로 남는 발자국이 향기롭다.
그대 그리움이 지나갈 때처럼……
시간이 지나간다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더 깊이 더 많이 쌓이는 사랑이 곱다.
그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마음 빛으로 ……
바람 불고
해의 비늘이 내리는 언덕 넘어
그 어느 집 아궁이에서 불씨로 남아
꺼질 줄 모르는 열정은 늘 그대 편으로 서 있다.
어둡고 추운 날 길 잃어 방황할 때도
따뜻한 불씨 한 점 품은
가슴으로 사는 불새처럼 뜨겁다.
그대 사랑은……
때로는 허기진 그리움이어도
담벼락에 기대선 절룩이는 기다림이어도
눈멀고 귀 먹어도 보고 듣는 희망이요.
밝은 미래요 달디 단 미래의 선물
그대 사랑입니다!
《12》그대 하나의 사랑으로
박고은
그대 하나의 사랑으로
그대
마음속에 담긴
사랑에 기록을 읽으면서
늘
그대 사랑에서 자라는
한 송이 꽃을 봅니다
붉게 물든
잎새 닮은 바람 소리가 발자국 그림자를 잃고
휘어진 길목으로 접어들면
낮별 하나 낯설다 한다.
잠시 허공을 베어내고서야
하얀 이름을 써 내려갈 때 빛을 기억하고
숲에서 빠져 나온다.
두 손을 움켜잡으면
따뜻한 체온
포근한 가슴이 미소로 번지고
막 피어난 꽃 눈빛처럼 향기롭고 예쁘다.
진즉, 놓을 수 없는 기억이다.
움켜쥔 사랑이다.
어둠이 겹겹으로 쌓여도
깜깜한 밤이어도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사랑이다.
그대가 피어 놓은 사랑 꽃
돌에서도 향기가 난다
그대 하나의 사랑으로……
나의 사랑아!
《13》그대 향한 소망은
박고은
내 청순한 소망은
마음 색색이 뽑은 비단실로
그대 고운 눈빛 짜는 것
쓸쓸한 그대 영혼에
이슬 송송, 꽃 한 송이
피워 올리는 일
그대와 나 두 가슴에
쌍무지개 걸어
아름다이 이어가는 정
그대 향한 내 소망은
진정 이것이라네
《14》그대에게 가는 길은
박고은
그대에게 가는 길은
늘
아리도록 눈부셔 온다
긴 밤을 껴안고도 밤을 잃어버리는 날
한 줌 빛은 별이 되고
뚝뚝 떨어지는 시간의 기억들이
물비늘처럼 꿈틀거리면서 일어서서는
당신께로 갈 때
나는 이미 그리움을 입고 있다
창가 달빛은 기웃기웃 얼굴을 붉혀가며
눈만 깜박이고 진작 창을 열면 저만치
수줍은 듯 고개 떨구는 것이
꼭 나를 닮았다 내가 그랬으니,
그대 들어 오라 마음을 열면 노을 빛처럼
붉어진 가슴은 봉숭아물들이고 말지
하루하루 깊이 뿌리내린 지금은
그대 부름 없이도 길을 잃지 않는다
이렇듯 지금
그대에게 가는 길은
늘
아리도록 눈부셔 온다
《15》그리운 추억
박고은
흙 냄새 너른 들녘
씨 뿌리고 땀 흘려
푸지게 가꿔 살던 곳
치맛자락 적시며
돌방구 뒤져 다슬기 줍던 강
올 여름도 멱 감는 애들이 있을까
저녁밥 짓는 연기가 자욱하면
꼴망태 등에 지고
소 몰고 돌아오던 아이들
매캐한 모깃불 피워놓고
대자로 평상에 누워
밤하늘 은하수 마시며
푸른 꿈 키우던 시절
그리운 고 모습
다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채워지지 않는 이 허기는
또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16》그리움이 밀려오는 바다
박고은
그리움이 잔잔히 밀물져 오면
가뭇이 열리는 바다
갈매기로 날고픈 바램이여
잠재워도 설레는 물결
끝 모를 그리움의 출렁임에
가슴은 깃을 펼쳐 날으고
쪽빛으로 물이 드는 마음
진종일 몸부림치는 파도에
아린 상흔을 씻고
안타까움마저 훌훌 떨치면
숨 가삐 달려오는 포말 끝
절규하는 절정의 정념이여
짙푸른 물 다 삭히고도
몸서리치게 살아나는 물결따라
후드륵 나래치는 그리움
밤 찧는 등댓불과 지새운다
《17》기다림
박고은
기약 없이 길 떠난 사람아
강남 제비 돌아오듯
잊지 못해 다시 오거들랑
기껏 머리칼 날리는
꽃바람으로 오지 말고
봄빛 귓불에 닿아서
영혼의 깊은 골짝을
꽃물로 찰박찰박 적시는
감미론 향기로 오라
꽃샘바람 잘라먹고
화알짝 웃는 한 떨기 꽃송이
더없이 섧도록 살고 지고픈
진정 고운 사랑으로 오라
《18》꽃 같은 사랑아 그대보고 있으면
박고은
그대 보고 있으면
나는 그대 눈속에 있고,
그대는
내 가슴속에 꽃으로 피어 향기로 번져오고
최초의 울림처럼 느껴지는 꽃 태동에
나는 그만 눈 멀고 귀 멀고 맙니다.
허공을 베어내면 빛으로 터져 부서지듯
그대 그리움 베어내면 빠알간 꽃잎 같은
사랑이 이슬 머금어 빛나고
내 가슴은 이미 꽃물 들어
그대 손길을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너무도 눈부신 그대 사랑은
나에게 보석이요, 보물이기에
소중하고 고귀하여
마음속이고 가슴속 깊이깊이 숨기고 싶어
낮이고 밤이고
두 눈을 닫지 못합니다.
하늘을 보면
눈처럼 비처럼 음악처럼 내리는
그대 음성 한 마디라도 흘리지 않으려
두 손 모두 벌려 껴안습니다.
꽃 같은 사랑아
《19》꽃 빛 그리움
박고은
날 선 어둠 밤
별들이 주인공이듯
하나인 마음 밭
내 사랑
그대가 주인이 됩니다.
긴긴 기다림의 날
먼먼 그리움의 날
겹겹으로 쌓이고 쌓인 밤이어도
그대 사랑 하나이면
휘어진 길도 낯설지 않는
꽃길이요, 봄날
꽃잎에 창을 내어
하늘을 담고
호수를 담을 때,
물풀처럼 떠오르고 피어나는 것은
늘 그랬듯
그대 꽃 빛 그리움!
사랑이라고 부르고
사랑 앞에 그대 이름 넣으면
어느새 다가와 피는 꽃
매화 향기입니다.
《20》꽃잎 피는 꿈자리
박고은
그대 그립고 그리워
詩 한 줄잡아도
풀리지 않는 그리움
먹빛 드리운 창가에
견우직녀의 애틋한 전설
빛 한 자락 걸어놓고
그대 그려 깁는 고운 꿈
뚜벅뚜벅
그대 오는 꿈길마다
사랑 꽃불 환히 켜지고
일제히 일렁이는 꽃물결 소리
손끝에 묻어나는 꽃향기
둘이서 속살 태워 피워내는
붉디붉은 열꽃으로
더운 가슴 휘감도는 향취에
영혼 갈피갈피 고이는 미소,
그대와 꽃 피우는 꿈자리
밤새 사랑 꽃빛이 뜨겁다
《21》꿈을 사랑하는 사람아
박고은
사랑하는 사람아
네 꿈은 한밤에 돋는
별처럼 곱구나
고와서 노래되고
바람이 되어
티 없이 맑은 하늘
걷힐 것도 없어라
가만히 눈을 맞추면
반짝 웃는 별빛
은근한 네 속삭임에
나는 넋이 젖어
그립다는 생각뿐
너를 두고서 달리 뉘라서
속울음 울어 껴안겠나
가슴에 초록별 지면
삶마저 어두운데
《22》나 그대와 하나이고 싶습니다
박고은
멀리서 한밤
별이 되게하시는 나의 사랑이시여!
그대 뜰에 뜨고 질 때 그리움 꽃이 됩니다.
뚝뚝 떨어지는 이슬방울 소리
그대 마음속으로 투신하고 하나 되어
정갈히 담기는 사랑
나 그대와 하나이고 싶습니다.
멀리서 그림자로 번져와 꽃 자리를 펴
불 밝혀 놓고 오시는 길,
담벼락에 기대인 한 줌 바람은 옷깃을 나부껴
하얀 손 내밀고 허리 굽혀 정중히
그대 사랑을 안을 때
꿈을 꾸는 듯 두 눈을 감고 맙니다.
보고 싶다는 말, 그립다는 말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한 가슴속에 묻어둔 날은
더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단단한 호두 껍질처럼 마음속에 품고 안고 산
그대 사랑, 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꽉 찬 열매로 단 맛이 깃들고 성숙한 나이를 먹고
더욱이 든든한 큰 나무로 서 계십니다.
때로는 하늘로
넓고 깊은 바다의 가슴으로 품고
넓은 대지처럼 안은 마음이기에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나의 사랑아!
《23》나는 갈대랍니다
박고은
갈대로 섭니다
술에 취한 듯
이리저리
춤을 추는
은발을 뒤 쓴 갈대
갈대로 섭니다
떠도는
백광부 넋인 양
꺼이 꺼이
울부짖는 갈대
나는 가을 갈대입니다
《24》내 사랑에게
박고은
참 좋은 내 사랑 당신
내 생명의 의미여
그대를 진정 사랑합니다
깊은 속 울음마저
맡겨 놓은 나에게
사랑은 풀꽃처럼
시드는 계절은 없습니다
이제는 아픔도 없을 겁니다
행여 요동치기를 멈추지 않는
태풍 속 바다의 멀미에
하얗게 엎질러 쓰러져도
사랑의 계절은 갯바위 운명처럼
오늘도 내일도 다함이 없습니다
끝내 잊지 못할 그대
영영 사랑할 겁니다
설령 그대 가고 없어도
내게 없어도
《25》내 안의 그대라는 한 사람
박고은
날마다 벗어 놓은 자리
벌겋게 달구어진 발자국마다
그리움으로 데이고, 꽃잎 지는 아픔보다
내 안의 그대 기다림은
천 년같이 멀어도 단맛이 있다
허기를 삼키는 벼랑 끝에는
한 사람 사랑이 고요히
두레박줄을 내려놓은 손길,
햇살 짜듯 섬세하고 포근한 눈빛은
그대 내 사랑
눈먼 비둘기처럼
낮과 밤을 그리듯 꿈꾸는 세상
그대 붓질 하나로 펼쳐진 세상이 아름답다
내 안의 그대라는 한 사람
이슬로 오는 갓 태어난 아침 햇살
《26》눈
박고은
순한 눈빛으로 맞이하는
감동의 파노라마
숨이 멎는 무한경
사락 사르락 활강하는
흰 나비, 나비 떼
온 우주를 채워서
비로소 텅 비는 고요
소복소복 내리는
저 눈발 속으로
나를 묻으며 숨지고 싶다
백일환몽을 꿈꾸며
마냥 잠들고 싶다
《27》눈이 내리면
박고은
펑펑 눈이 내려
산천은 온통 적막의 韻운
그 누구의 연서인가
쓸쓸한 겨울 풍경에
소복이 눈이 쌓이면
이 몸은 날뛰는 꽃사슴
치렁치렁 그리움 매달고
소식 뜸한 벗에게 달려가
보고픈 마음 전하리
'잘 가라' 작별의 잔 데운
님의 입술이라도
시린 영혼에 담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리
한 세상 고적하기만 했던
깡마른 씨앗 한 알
가슴에 떨구어
향기로운 꽃 피워 보리
《28》다시 사랑한다면
박고은
또다시 사랑한다면
그늘진 영혼에게 희망 주는
제야에 울리는 종처럼
첫 마음으로 돌아갈 거야
때로 풀썩 주저앉고 싶도록
걷는 길이 외롭고 지칠 때
선뜻 손잡아 주는 사랑
짙푸른 향나무 향같이
누군가의 가슴속에
오래 머무는 사랑을 할거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마음 접히지 않도록
늘 웃음으로 다림질해
포근한 안식처가 되는
사랑을 할거야
물살에 닳은 조약돌처럼
등 뒤 그림자로 묵묵히 따르는
그런 사랑을 할거야
《29》단풍잎
박고은
그대 느끼시나요
허공을 팽그르르 돌다
시린 어깨 위에
똑! 떨어져 앉는 단풍잎 하나,
그것은 숨 가쁜 내 떨림임을요.
행여 그대 아시나요
해 질 녘 그대 발밑에
허리 잘린 채 신음하는 단풍잎
붉디붉은 선혈의 내 생채기임을요.
하마 짐작이나 하실까요
두 눈 짓무르도록
그리움에 젖고 젖어
온 가슴 단풍으로 불타고 있음을
어쩜 생각이나 하실까요.
정녕
내가 사랑하는 그대는
《30》당신 바라기
박고은
나 당신 바라기,
큐피드 화살에 꽂힌 나
당신이 무지 좋아
그저 바라만 봐도 좋고
바보야 바보야 부르면
수줍게 볼 붉어지는 당신이
진짜 얼마나 좋으냐고?
내 팔을 뻗어도 내뻗어도
닿을 수 없는 하늘 키만큼이나
좋아 죽겠다!
내 마음 다 주고도
더 있음 주고 싶을 만치
좋아 죽겠다!
온 세상 다 가진 듯,
사랑스런 당신이 있어
정말이지 좋아 죽겠다!
《31》당신은 누구십니까
박고은
한 철 불새로 날아와
내 가슴에 둥지를 튼
당신은 누구십니까
화가의 붓놀림에
높아지는 그 하늘처럼
내 손짓에 따라
즐거이 움직이는 당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매일 세상 가시넝쿨에
온몸이 찔려 피 흘려도
내 앞에 서기만 하면
너털웃음 함박 짓는,
피에로 같은 사람
해바라기 같은 사람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32》동반자
박고은
불의 담금질 속에도
변치 않는 천동 같은 마음
수천 번 휘저은 칼로도
감히 쪼갤 수 없는
부부로 맺은 사랑
세상 어디에도
당신 만한 사람은 없어
천정배필 운명의 사랑
만천하 사랑 본이 될
청홍 빛 원앙 한 쌍
《33》동백꽃 사랑
박고은
눈보라 칠수록 솟구치는
설원의 붉은 순정
절정의 순간 목숨 다한대도
희열로 벙그는 향취의 입술
독장 같이 찬바람 먹고
쌍코피 쏟으며
뚝뚝 질 운명일지언정
고운 동백꽃아!
너 홀로 사랑이구나
시린 겨울을 지우며
보조개 수놓을 봄이구나
《34》동행
박고은
달 보며 지새는 밤은
아름다운 동행
님 따라 내가 가나
뒤따라 님이 오나
서로 짝이 꼭 맞아
어디를 향해도
동심으로 타는 가슴
함께하는 길이기에
사랑이 잠시 눈 돌려도
그 서운함
눈빛 속에 감춘 채
미덥게 가리라
빈 손 안에
물기만 남을 인생
두 손잡고 가노라면
슬픈 것만은 아닌 삶
《35》등대
박고은
어둠을 사루는 자비
등대 불은 사랑의 눈짓이다
거친 풍랑 속 나침판은 제멋대로
엔진마저 고장 나 방향을 잃을 때
등대는 길잡이 손짓이다
지금 그대는 길 잃은 배
나 한줄기 등대 불로
믿음의 키 잃고
심해를 헤매는 그대 이끄네
한 치 앞 뵈지 않는 이 밤도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지 않기를
너울이 덮쳐도 표류치 않고
나래 쳐 나가기를
거칠고 험한 삶의 길
고비마다 풍파를 넘으며
안식의 돛을 내려 함께함이
참 행복이나니
오늘 밤 그대 가슴은
길 잃은 배
등대불로 밝혀 주마
사랑의 눈짓을 쏘아 주마
《36》만남
박고은
그 날 웃음이 참 좋았습니다
그건
봄을 알리는 시작이었습니다
지그시 응시하던
당신의 까만 눈망울은
밤하늘 샛별을 담고 있었고
말없이 다독이던 손동작은
편안함이 있어 좋았습니다.
그 날 이후 가슴에 품은 이름은
차마 토하지 못한 채
단단한 꽃씨로 박혀 버렸기에
이제 나는 당신으로 인해 피는 꽃이요
당신은 내 어깨에 머무는 햇살
불러주길 기다리는 노래
내 혼에 빛으로 내린 아침입니다
《37》매화
박고은
매운 눈서리 맞으며
인고로 홀로 견딘
매화의 고귀한 멋
연연한 정 맺혀
속속 깊이 붉어진 혼
暗香이 발아하여
송, 송이 터지는 순간
우주는 귀가 열리고
차마 숨죽인 가슴은
화음으로 가득 차
절조의 기품 맵시
화사한 그 미소에
결빙의 언 가슴은
사르르 녹아 집니다
《38》못 견디게 외로운 날
박고은
못 견디게
외로운 날은
와인 한 잔으로
짙 붉은 헛 꿈을 켜보네
외로움은
바람빛깔
고립된 가슴속에
청승 풀어 바람에
한 움큼 띄우고
못 견디게
정녕 외로운 날은
하늘 보며
머리 세워 갈망하는
살무사 눈빛 닮아 가네
《39》무지개로 뜨는 사랑
박고은
그대가 하늘이면
그대 품에 무지개로 뜨리라
화심 띠로 빚어낸
빨주노초파남보
빨간색 띠에 뜨거운 열정
주황색 띠에 눈부신 환희
노란색 띠에 고요한 평화
초록색 띠에 싱그런 순수
파란색 띠에 밝은 희망
남색 띠에 굳센 믿음
보라색 띠에 고운 사랑
겹 지른 아름다운 조화
신비의 비경
내게서 솟아난 무지개
그대 품에 걸리거든
영혼의 피리를 불어라
온 세상 다 퍼지도록
행복의 메아리 울려라
《40》바램
박고은
애틋이 사랑을 품었기에
줄 것 하나 없어
섭섭한 마음인데,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때로 돌아서서
되거퍼 슬퍼지는 일이 없도록
율 고운 현이 울리듯이,
상호 감응하는 가슴에
마음의 줄을 튕기면
오롯이 진심 우러나는
청징한 소리만 한결로
가슴에 울리기를……
티 없이 진정 사랑하기에
고운 눈빛만 주고받는
순한 바램을 가져요.
《41》바위처럼
박고은
차라리 세상만사 입 다문
바위처럼 살고파
가슴 깊숙이 품은 뜻
말로는 다 할 수 없어
묵묵히 침묵으로 견디는
비오면 빗물 머금고
눈이 오면 눈에 덮여
풍화작용에 무늬 지는 바위
세월이 준 상흔
빛살에 헹궈 잠재우고
때론 밤중에 깨어나
달을 안는 바위
애당초 잃음도 얻음도 없는
무명의 바위처럼 살고파
《42》봄바람아 불어라
박고은
살랑 봄바람이 불어
마른 가지마다 잎눈 뜨게 하고
잔설 덮인 산자락 매화도 피웠네
시냇가 버들가지 타며, 술래 도는
봄바람 웃음 속에 꽃구름 일고
살가운 사랑을 배어
연인 얼굴에 분홍빛 꽃 피우는데
떠난 벗도 돌아오는 아홉 굽이 사랑길
불어라 봄바람아 신나게 불어라
뜨겁게 불어서 정열의 꽃피우고
모질고 무딘 마음 흔들어
푸른 꿈을 빚어야지
봄바람 난 詩人의 가슴도
훗훗한 감성 뜨락 쓸어내고
누리 곳곳 훈김이 돌아
고운 노래 여울져 흘러야지
《43》봄이 오는 길목에 서서
박고은
겨우내 탕약처럼 달인 가슴
불러 보아, 봄이 어디만큼 왔나
강바람 타고 산 넘어오고 있는지
응달비알 선 나무 타고 오는지
우리들이 바라고 좋아하는 계절
해묵은 마음을 풀고
응어리진 가슴 해토할
봄이여 하느적 오렴
고적한 넋이 뛰놀고 하늘을 날
싱그러운 봄아 어서 오렴
증오도 애정처럼 쏟아 볼
자연도 사람도 길할
봄 그 속에 즐겨 살고파
《44》봄이 오지 않는 가슴
박고은
등걸같이 메마른 가슴
생 봄빛 채우면
활짝 꽃이 필까
먼 산하 타고 와
들녘을 밟는 봄내음
치마폭에 살풋 담으면
열아홉 순정마냥 설렐까
오라오라 봄이여
어디서 무얼 하는가
읊조리는 이 가슴은
지금은 한겨울 속
새움 트는 가지마다
봄바람 속삭이는데
어이해 내 마음의 담은
못 넘어오는 건가
야속타 봄이여
진정 봄은 어디로
누구를 위해 오는 건가
《45》사랑 속에 사는 이여
박고은
마음이 간절하면
한겨울에도 꽃을 피우는가
추위에도 개의치 않고
겨울 강변에 핀
코스모스의 고운 미소
붉게 타는 단풍나무의 열정
사랑이여, 우리도 저와 같이
매섭고 차가운 세상
고달픔이 밀물쳐도
한파가 몰아쳐도 마다치 않고
강인한 생명력을 불 밝혀요
가난한 마음 뜰에
한 그루 나무 뿌리 깊이 박고
평화의 하늘 우러러
묵묵한 사랑 올올이 새겨 보아요
참사랑의 소중함을 곱씹으며
가 없는 무량심으로
알찬 소망의 열매 맺어 보아요
《46》사랑이 그랬습니다
박고은
비 내리는 날
담벼락에 기대인 풀잎이 흔들릴 때
비에 젖은 그리움이 다가와
울컥!
그대 생각으로 눈물이 납니다.
유리창으로 제 몸 던져 전하는 빗방울은
투명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속울음까지 뜨겁게 흘리면서
"그립다!". "보고 싶다!"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은 내 마음도 뜨거워집니다.
비 오는 날 사랑이 그랬습니다.
이제 막 깊이 익어 가는 어둠 속까지
흠뻑 적시는 빗물에서 맨발로 뚜벅뚜벅 걸어
그대가 오고 가는 길목에 서성이며
행여 그대를 그리는 그리움이 젖을까
빨간 꽃을 펼쳐 놓습니다.
비 내리는 날은
커피 한잔을 타 놓고
커피 잔에 그리운 사람에 얼굴을 띄워
살포시 입 맞춥니다.
그대 향기를 마시고 싶어서입니다.
커피 잔에서 시간이 자라고 어둠이 일렁이고
잠들지 못한 생각들이 몸을 뒤척이고,
홑이불처럼 서걱이는 소리 따라 길을 나설 때
혹시나 그리운 사람을 만날까 두 눈을 감습니다 .
아름다운 사람이여,
이때
오십시오.
나의 사랑아!
《47》사랑해 말 한마디
박고은
"사랑해"
다정히 주고받는
말 한마디
시린 속을 뎁혀주고
화알짝 꽃피우는 마음
동공 속 채색되는 화색
가슴은 꽃물이 들어
번지는 삶의 향,
더 깊어진 존재의미
진심 우리들 소망은
지극정성 맺은 마음,
붉디붉은 사랑의 열매로
연연히 영글기를
《48》서로 사랑하고 싶다는 것은
박고은
그대는
나의 계절이다.
꽃이 피고 비 내리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릴 때, 가슴이 시리잖아
키 작은 하늘에서
울먹울먹 어깨를 들썩일 때
먹물 번지는 구름의 반란……
수억의 비 화살이 쏟아지고
날개 접은 그리움이 젖어 흔들릴 때,
기다림은 허공에 기대고 두 눈을 감지
풍경에 갇힌 모습을 보면서……
그래서 때로는
서로 좋아한다는 것은
꽃 마음 닮고 싶다는 것이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전설 속의 비익조가 되는 것이다.
그대가 그렇고
내가 그렇듯이……
좋아한다는 것은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아픔과 시린 가슴일 수 있기에
그 모든 것을 견디어야하기에 소중한지 몰라.
진주조개처럼 불같은 칼날 앞에 맨살을 내어 주고
아픔과 고통을 견디어 낼 때,
비로소 하나의 진주를 잉태하듯
그대와 나의 사랑이 그래.
나의 아름다운 사랑아!
《49》서시
박고은
내 꿈은 감성이 흐르는 강
첫새벽 물안개 피는 그리움의 강
손수건 한 장 띄워 보내는
속 깊은 여심이고 싶다.
길손이 오가는 언덕, 수줍음 숨긴 채
안으로 여민 인종으로 맑은 향 피우는
들국화 연정을 품고 싶다.
순간, 바람에 내몰려 일제히 날아 오르는
철새 떼 움직임의 피날레
그 준열한 미학,
눈시울 뜨거운 감동을 갖고 싶다.
일깨우는 갈바람 속
흰머리 풀어 춤추는 갈대꽃의 포에지
떨리는 목소리로 읊는
한 편의 서정시를 쓰고 싶다.
《50》선홍빛 그리움
박고은
눈보라 속, 칼바람 속
붉디붉은 산수유
함께 붉고 싶은 마음
오로지 인고이어라
가지마다 조롱조롱
선홍빛 영근 그리움
목숨 뜨겁게 타는 사랑
하얀 고독으로 익는
내 사랑도 산수유 같아라
《51》세월이 힘겨워도
박고은
힘겹게 보낸 세월, 한 뼘 봄만 얻어도
사는 낙이 즐거울 텐데
어둡고 흉흉한 계절에
목매는 열원, 얼마를 더 불러야
영혼마저 해갈될 봄은 올까.
암울하고 답답한 가슴
가만히 앉아서 푸념만 할 수 없는
분명한 진실 하나,
부끄럽지 않은 이름을 위하여
고뇌하는 시대를 지고 매고
갈라진 맨발로 걷다가 쓰러질지언정
맨땅이라도 쳐보는 패기를 갖고
한겨울 몹쓸 추위와 대결을 해야 하리.
저 하늘이 지친다 해도 잠들 수 없는 몸
철통 같은 기막힌 성을 허물고,
무성한 잡초를 불태우고
창공을 누비며 우리는 날아야 하리.
아픈 쓴 가슴 헤집고 새살 찾아줄
진정 따스한 봄을 위하여
어둠 사뤄 마시고 미명 속을 나는 새같이
입술을 꽉 깨물고 우리는 날아야 하리.
《52》아름다운 계절
박고은
글썽이는 눈으로 가을들을 보라
수정구슬 부딪치듯 쏟아지는
저 햇살을 받으라
잎잎이 물들어 비단같이 빛나는
단풍 타는 소리를 들어보라
가을은 호두처럼 여물어가고
가을은 홍옥처럼 익어가고
가을은 달빛같이 가득 차오르고
가을은 아기잠처럼 깊어가고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
한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을
수채화 같은 세상
젖어드는 가을을 가슴에 안고
여기 나도 섰노라
《53》아름다운 포옹
박고은
그대와 나,
힘껏 껴안은 가슴은 바다
콩닥콩닥 하얀 숨결 소리
파도치는 황홀한 사랑
부드럽게 눈빛 마주 하고
감미롭게 혀끝을 핥으며
장미보다 더 붉은 입맞춤 하네
분홍빛 젖가슴 짜내듯
와랑 와랑 전신을 떨면서
아득히 동공 속으로 빨려들고
아득히 영혼 속으로 빨려가고
후끈 불끈 달아오른
두 몸은 한 몸이 되어
불 타들어 가는 불나방 한 쌍
살포시 가슴이 녹아버리고
살포시 마음이 녹아버리고
《54》애인
박고은
단 한 번의 키스로
앙다문 입술
열어버린 그대여
떨리는 전율로
귓불 비비며
情바다를 핥는
달디단 육체
고혹스런 날갯짓에
까무러쳐 죽고 싶은
사랑의 절정이여
춤추는 촛불처럼
사르르 녹아 피는 그대는
깊은 내 안에 뜬
황홀한 무지개
《55》얄밉도록 보고픈 사랑아
박고은
얄밉도록 보고픈 사랑아
우리가 줄곧 가진 건
지칠 줄 모르는 눈빛 하나
오늘 밤음 우리 둘이
미치도록 행복하자
혼이 화닥화닥 불 달아
꽃술 하얀 숨결
거칠게 토해내는 사랑
바위가 피 돌아 솟구치듯
몸서리칠 사랑
온 삭신의 결마다
열정의 전율이 요동쳐
가슴 짜릿한 고통 빨아올릴
몸 젖는 사랑 해보자
기찬 사랑 한 번 하자
《56》연가
박고은
봄 깊어 한창인 저 장미꽃도
님이 있어 아름다운 것을
더 향기로운 것을
한 송이 고이 꺾어
님에게 보내면
나를 보듯 반가워 웃으실까
어쩌면 우실까
송이송이 꽃망울 터지는 소리
눈물 핑 도는 그리움
왈칵 솟는 보고품!
《57》온 가슴으로 당신 사랑을 안겠습니다
박고은
그리움은 하늘에 두고
기다림은 땅에 두어도
끝끝내는
하나로 만나는 그 날을 위해
꽃가지에 등불을 밝혀두자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
나를 버리고
그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한 곳에 영혼을 내려놓는 것이다.
외롭고 고독스러워도
그 사람을 위해 한 송이 꽃이 되는 것!
때로는 저녁노을이 황홀할 때
가슴 적셔 그 사람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자
사랑이고 사랑이라고……
그리운 사람이 사랑의 편지를 읽고 말없이
별로 떠 창가에 비출 때 눈물 흘리지 않게...
그리움은 하늘에 두고
기다림은 땅에 두어도
끝끝내는 하나 된 사랑일테니……
그 사람이 주는 그리움, 기다림
사랑의 비단실로 한 올 한 올 수놓아
사랑 꽃 피워 하나 될 사랑,
온 가슴으로 당신 사랑 꼭 안을 것입니다.
내 생애 단 한 번이 될
오직 단 하나의 사랑아!
《58》우리 사랑해요
박고은
계절은 쉼 없이 바람 불고
현실은 노상 고달파도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는
당신이 있어 행복해요
세상살이 굽이굽이
죽을 만치 괴롭고 아플 때
용기와 위안을 주는 당신
오로지 순금 빛 마음으로
세상 저편까지, 그대
그림자 되어 함께 갈래요
나의 천사, 내 마음의 보배
진정 당신을 사랑해요
우리 언제나 한결같이
서로 함께 사랑해요
《59》우리 차 한 잔 해요
박고은
함께 마주 앉아 주고받는
그윽한 향이 모락모락 피는
따끈한 한 잔의 차를 들면
채우지 못한 여백의 삶,
고된 세상살이, 이슬 녹듯 감치고
마음 따뜻이 피어나는 꽃,
일상의 여유란 차 한 잔의 깊이뿐
다정히 마주 앉은 자리
두 손으로 오롯이 건네는 찻 잔에
메마름 축여가며 고이는 사랑,
눈으로 오가는 정
잔 속에 우러나는 훈훈한 이야기는
진정으로 피우는 사랑의 맛,멋
서로의 가슴 뎁히며 나누는 마음
맞잡은 손에 전해지는 따스한 체온
가난해도 풍성하고 미소 밝은 얼굴빛,
가실 줄 모르는 심향은
은근히 깊고도 넉넉하나니
우리 차 한 잔 꼭 함께해요.
《60》이런 당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고은
내게도
훤히 밖이 보이는 찻집에서
마주 보며 커피 한 잔
미소 한 모금, 나누고 싶은
당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바람불어 시린 날
입술 델까 봐 호호 불어
버섯 찌게 떠먹여 주는 배려 깊은
당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빗방울 방울 가슴을 적실 때
혹시라도 내가 울까 봐
장미 한 송이로 마음 보담아 주는
홀로 주말을 보내는 날
조수석에 날 태우고,
둘이 노래 흥얼거리며
무작정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당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내게도
사랑의 손 잡아주고
행복을 느끼게해 주는 연인같은
당신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61》인연
박고은
아무리 안아도 한 아름이 못될 삶
혼자서 다독여도 다 못 이루는 정
나는 여기서, 너는 거기서
질긴 인연의 끈을
서로 맞당기고 끌려가는 우리
온 세상 비추고도 남은 빛으로
사람 맘속에 스미는 달같이
얼어붙은 별빛이 비수 날로 잘리고
마른 강물이 여울져 넘치는
깊고 도타운 정
굽이굽이 흐르는 강 언덕에
인연의 모둠 줄이 찬바람 사이 떨며
애젓이 낙엽을 떨굴지라도
차마 등 돌리고 선 긋는 일 없게
나의 친구여, 연인이여
우리가 쌓은 연연한 정은
대낮에도 속 눈 뜨는 별에게 전하고
이끼 핀 바위에도 꼭꼭 새겨 두련다
《62》잡을 수도 보낼 수도 없는 사랑
박고은
어쩌자고 사랑을 했을까
사랑할수록
온몸의 세포는 그리움에 물들고
허수아비처럼 외로움은 쌓여만 가는데
이토록 아픈 게 사랑일 줄이야
대체 어쩌자고, 어쩌자고 했을까
차라리 물빛 감은 인어처럼
물거품으로 점점이 흩어질 것을
얼음에 응고된 촉수처럼
박제된 채 영원히 잠들 것을
《63》저녁 놀 물 드는 창가에 서서
박고은
저무는 창가에 서면
조용히 눈 감지 않아도
선뜻 곁에 머무는 듯
떠오르는 슬픈 영상
아슴이 타는 저녁 놀
애잔한 눈빛이 닿아
이슬 맺히는 하늘가
외롭고 쓸쓸한 그 심정
한 자욱 또 한 자욱
오늘에 선 지금도, 어제처럼
먼 옛일을 헤아리는 눈,
낮에는 꽃으로 달래고
밤에는 뭇별로 말벗 삼고
고르지 못한 숨결을
행여라도 들킬까 봐
가만가만 창가에 다가와
바람인 양 흐르는 얼굴,
그 누가 아니래도
믿음이 아파옴은 왜일까....
《64》존재의 의미
박고은
때가 되면 모과 열매가
여태껏 키워 준 나무에게
감사하며 떨어지듯
이듬해 결실을 위해
미련 없이 떨어지는 비장미
자연 본성은 거스를 수 없는 것
누구나 적멸로 가야 하는 길
무변한 허허로움과
설움이 골을 이루어도
묵묵히 자신을 비우며
불안마저 초극하고 나면
평화의 안식이 기다릴 것을
시시로 버는 고독감
허울 죄다 털어버리고
무명시인에의 족한 영위,
하늘에 귀의하는 그 날 향해
어정 세월을 눕히며
절정의 잎 하나 떨군다
《65》중년의 고독
박고은
허심한 발걸음 옮기는 오늘은
세상이 어찌 이다지도 쓸쓸한지
홀로 허허 벌판에 내버려진 듯
파편진 가슴으로 토하는 읊조림은
차가운 바람벽에 흔들릴 뿐
심연한 고독으로 하여
첩으로 쌓여가는 이 적막함
세상은 날이 갈수록 낯설기만 하고
저물어 가는 육신과 묻혀 가는 존재감
비탈진 시린 가슴속에
이제는 무슨 불을 지펴야 할지
무슨 연유의 꿈을 엮어야 할지
여태 버티어 온 삶이 서럽고
무변한 쓸쓸함 달랠 길이 없다
《66》지는 가을
박고은
눈동자에 지는 빛
가을이 진다
우수수 낙엽이 진다
한 잎 두 잎 나래치는
노오란 은행잎의 贇舞윤무
그 애처러운 몸짓에
볼 비벼 울고 싶나니
긴 회랑 속 회한 때리는
추억의 가락이여
계절의 흐름에
무심함을 어쩌리
미워한들 무엇하리
괴로워한들 무엇하리
허물일랑 벗고서
지는 잎 겹겹이 덥고 가자
서럽게 지는 가을일랑
발부리에 묻고 가자
《67》창에 머무는 그리움
박고은
지척이 아니기에 더욱 보고파
창을 열면 미소 머금은 네 모습
꽃 이울던 하늘 종일 꼬나보던 날은
치솟는 그리움으로 얼마나 기다렸나
늘 반기던 창에서 서로 보지 못해
만남이 어긋나버린, 동혈보다
깊고 추운 겨울날 닫힌 창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덜컹덜컹 창을 휘감는 바람 소리뿐
그 언제쯤 마주할거나
다정히 속삭이던 네 눈빛
꿈결처럼 감미론 자장가 소리를
《68》촛불 한 자루 켜는 마음
박고은
1
하늘 우러러
두 손 모우는 마음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촛불 하나 켭니다
떨리는 숨결로
타오르는 눈물 속의 향연
귀하게 소중하게 쌓은
선업마저 남김없이 사루는
목숨의 혼불이여
홀로 새긴 묵약이듯
지조 지켜 불타는 가슴에
뜨거운 사랑마저
성스러운 기도이게 하소서
영원의 불을 지피는
경외로운 신앙이게 하소서
2
숱한 세월 피맺힌 생채기
넘칠 대로 애끓는 회한은
은빛 고인 눈물 속에
말갛게 녹여주시고
무심코 가지 흔드는 바람결에
힘겨워 오열하는 심장도
잠재워 주시고
잘라내도 또다시 돋아나는
욕망의 잔뿌릴랑은
소지 사루 듯 불태워
학무리로 승천하게 하소서
《69》코스모스
박고은
내 그리움도 이맘때면
가을들녘
코스모스 넋쯤 필까
울먹인 눈동자
이슬 젖은 소녀 같이
웬지 눈물겨우면서도 해맑은
사랑 닮은 꽃
가만한 바람에도
꽃잎을 곧잘 흔드는
자조의 몸짓 코스모스야
가을 이맘때면
내 그리움도
속앓이로 피고 지는
코스모스의 넋쯤 필까
《70》허공에 이름 하나 수놓는 날
박고은
허공에 이름하나 수놓는 날
한 줌 바람은
그대
그리움으로 내리고
그리움은 별이 됩니다.
속을 비워낸
빈 소라처럼 바람, 파도
가을 빗소리를 담으면서
귀에 익은 발자국소리를 기억하듯
그대 오늘도 그러하셨지요.
홀로 그림자마저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눈뚝을 넘은 빗줄기는 뜨거웠으리라……
뚝뚝 꺾기는 관절처럼 굴절된 하루,
벌겋게 녹슨 시간을 닦는 수고와 발품 팔아
풍경을 사고 군중 속에서 나를 버리는 발걸음이
밝은 내일을 기억했으면 했습니다.
홀로 있다는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한 송이 꽃이 필 때 그 순간처럼
작은 진통과 같은 지도 모릅니다.
향기를 품고 까맣게 익은 씨앗 한 톨을 잉태하는
산고의 아픔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대를 보고 있으면 향기가 나고
꽃의 언어로 말씀하실 때 그랬으니까요.
하여, 꿈속에서도
그 향기 그립고 그리운
나의 아름다운 사랑아!
《71》호수
박고은
맑은 물결이
흐르는 듯,머무는 듯
둥근 거울 속
무심히 던진 돌팔매에
산산조각 깨진 얼굴
침잠해버린 한 가슴
박고은 시 모음
2020. 4. 13. 1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