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 ♧
-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해야 뜻을 밝게 가질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원대한 포부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은 제갈량(諸葛亮)이 '계자서(戒子書)'에 인용한 글로 유명하다.
'계자서'는 제갈량이 전장에서 죽기 직전, 8세 된 아들 제갈첨(諸葛瞻)에게 남긴 유언과 같은 글이다.
한자로는 총 86자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이나, 그 안에는 아비의 절절한 정과 함께 그가 평생 지켜온 인생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부군자지행, 정이수신, 검이양덕)
무릇 군자의 행동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
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비담박무이명지, 비녕정무이치원)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펼칠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도달할 수 없다.
夫學須靜也, 才須學也.
(부학수정야, 재수학야)
무릇 배움은 고요해야 하며, 재능은 모름지기 배워야 얻을 수 있다.
非學無以廣才, 非靜無以成學.
(비학무이광재, 비정무이성학)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넓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
慆慢則不能硏精, 險躁則不能理性.
(도만즉불능연정, 험조즉불능리성)
오만하면 세밀히 연구할 수 없고, 위태롭고 조급하면 본성을 다스릴 수 없다.
年與時馳, 志與歲去, 遂成枯落, 多不接世, 悲嘆窮廬, 將復何及也.
(년여시치, 지여세거, 수성고락, 다불접세, 비탄궁려, 장복하급야)
나이는 시간과 함께 내달리고, 뜻은 세월과 함께 떠나가, 마침내 낙엽처럼 떨어져 세상에서 버려지니, 궁한 오두막집에서 탄식해본들 장차 무슨 수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제갈량의 마음에 공감할 것이다. 특히 나이든 사람이라면 '궁한 오두막집에서 탄식한다'는 '궁려(窮廬)의 탄식'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흰 머리만 늘어나는 자신을 볼 때면 더욱 그럴 것이다. 누구는 '그럭저럭 지내다 보니 반생이 어그러졌다'고 탄식할 것이고, 누군가는 '고식적인 안일만 꾀하다가 허송세월 했다'고 탄식할 것이다.
제갈량은 17세에 혼인을 했는데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부득이 동생의 아들 제갈교를 양자로 들였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47세에 아들 제갈첨이 태어났다.
그 귀한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보내준 편지가 바로 ‘계자서(誡子書)’이다. 나중에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諸葛瞻)은 유비의 아들인 2대 황제 유선(劉禪)의 행군호위장군(行軍護衛將軍)으로 중용되었다.
훗날 제갈첨(諸葛瞻)은 위나라 등애(鄧艾)와 싸울 때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전략을 세우지 못해 패했지만, 우국의 굳센 뜻은 버리지 않고 장렬히 전사했으니 부친의 유훈을 절반은 지킨 셈이다.
제갈량은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고, 병법에도 정통한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어째서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으로 아들을 가르쳤을까?
사실 제갈량은 아들 제갈첨이 담박하기를, 즉 욕심이 없기를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담박하게, 즉 목표도 없고 이룬 바도 없이 속세를 떠나 산에 은거하여 무위도식 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또한 아들이 '영정(寧靜)', 즉 평온하고 안일하게 세월을 보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제갈량은 아들이 '담박명지(澹泊明志)' 하여 마음에 잡념이 없기를 바랐다.
욕심이 없어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더욱 명확하고 강한 야망이 생길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냉정하고 합리적인 상태라면 명성과 관심에 얽매이지 않고, 세간의 화려한 유혹에 잠식당하지 않을 수 있다.
담박(淡泊)의 기운은 물이 세차게 흘러 생기는 안개처럼 부드러우며, 비바람이 몰아쳐도 변함없이 꼿꼿이 서 있는 소나무나 잣나무처럼 의연하다.
이와 함께 제갈량은 아들에게, 영정치원(寧靜致遠), 즉 '마음이 안녕하고 평정해야 멀리 다다를 수 있다'는 훈계를 했다. 선량한 마음을 간직하고 경솔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음이 평정해야 높디높은 하늘처럼 넓고 깊을 수 있다. '담박'의 기운으로 사람의 뜻은 더욱 확고해 질 것이며, '영정(寧靜)'의 마음으로 사람은 지혜를 더해 만물을 통찰하고 당황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어떤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궁할 때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세상을 얻었을 때는 비로소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람이 눈앞의 득실을 따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세상을 아우르는 지혜와 통찰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마음이 뿌옇게 흐려져 있고 욕심의 찌꺼기가 많은 사람은 올바른 뜻을 명확하게 세우기가 힘들다.
또한 마음이 불안하게 요동치는데 멀리 바라보는 안목이 생길 리가 없다. 담박함과 고요함이 위인들만을 위한 미덕은 아니다. 그것은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유용한 덕목이다.
그런데 그것은 한순간의 생각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평소 마음의 수양을 통해 서서히 길러지는 것이다. 조용한 곳에서 차분한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누구나 느끼듯이 자기 자식 가르치기가 제일 어렵다. 부모로서 몇 마디 좋은 말이라도 해줘야 할 텐데 이게 참 어렵다. 그래서 옛 글에서 지혜를 빌려 보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인들이 신기묘산(神機妙算)이라고 칭송하고,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지혜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제갈량의 사례는 참고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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