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십경(密陽十景)   

 
우령(牛嶺)의 한가로운 구름
 
 牛嶺迢迢揷層碧 :  우령이 멀리 겹겹 청강석을 꽂아 논 듯해라
 嶺南佳麗天下獨 :  영남의 아름다운 경치가 천하에 으뜸일세
 瓊樓畫棟金鼇頭 :  화려한 누각 용마루는 금오 머리에 우뚝한데
 閑雲繚繞長五色 :  한가로운 구름 얽히어 마냥 오색이 찬란하네
 誰言雲是無心物 :  구름을 무심한 물건이라 누가 말했던고 
 澤潤生靈元有術 :  생령을 윤택게 하는 술법이 원래 있는걸
 何曾蔽日漫遮天 :  어찌 공연히 태양과 하늘을 가리기만 하랴
 大旱成霖應不日 :  큰 가뭄엔 응당 불일간에 장맛비를 내리리
 
 
삽포(鈒浦)의 고기잡이 등불
 
鈒浦朝來新水生  :  삽포의 아침에 새로운 물이 불어나더니
碧空涵水秋夜淸  :  하늘 그림자 물에 잠겨라 가을밤이 맑구려
疎林葉盡江無風  :  성긴 숲에 잎 다 져서 강바람 아니 불자
漁燈耿耿排明星  :  고기잡이 등불이 별처럼 널려 반짝거리네
野老相喚喜欲顚  :  야로들이 서로 불러 미칠 듯 기뻐하여라
今年魚足休論錢  :  금년엔 고기가 풍족해 돈 걱정 할 것 없다고
白酒黃螯復相慰  :  막걸리에 게 다리 안주로 다시 위로하면서
孤舟夜泊蘆花邊  :  외로운 배가 갈대꽃 곁에서 밤을 새누나
 
 
율도(栗島)의 가을 연기
 
누각 앞의 앵무주 백사장 십 리 거리에 / 樓前十里鸚鵡洲
눈송이 같은 밤꽃 향기 물씬물씬 풍기더니 / 栗花如雪香浮浮
주렁주렁 달린 밤송이 수많은 별 같아라 / 纍纍結子如繁星
가을이면 만곡의 황금 같은 밤알을 거두네 / 秋來萬斛黃金收
나무 끝에 희게 비낀 건 연기 아닌 연기요 / 樹杪拖白煙非煙
만가의 밥 짓는 연기는 멀리 서로 이어졌네 / 萬家煙火遙相連
태평 시대의 기상을 그릴 사람 없어라 / 大平氣象無人畫
용면의 훌륭한 솜씨를 빌리고만 싶구나 / 妙手我欲煩龍眠
 
 
영봉(瑩峯)의 아침 해
 
금계가 울어 대고 동방에 새 아침이 오매 / 金鷄啁哳扶桑晨
육룡이 아침 해 바퀴를 떠받들고 나오니 / 六龍扶出初日輪
짙붉은 햇살 이글이글 산호 빛이 찬란해라 / 蒸紅鬧熱珊瑚光
큰 물결 만 이랑에 황금빛이 반짝거리네 / 洪濤萬頃金鱗鱗
잠깐 새에 만 길 산봉우리를 날아올라라 / 須臾飛上萬丈岡
아득히 푸른 하늘을 하루 한 바퀴씩 도누나 / 一日一周天蒼茫
나는 곧장 긴 밧줄로 구오를 꽁꽁 묶어서 / 我欲長繩繫九烏
만고토록 하늘 한가운데 달아 놓고 싶어라 / 萬古懸在天中央
 
 
나현(羅峴)에 쌓인 눈
 
뿌연 구름이 먹물을 뿌려 놓은 듯 캄캄하더니 / 紅雲黯黯濃潑墨
자리보다 큼직한 눈송이가 펄펄 날리어라 / 雪片飛飛大於席
하늘땅의 중간이 온통 맑은 기운뿐이요 / 天地中間一淸氣
한 조각 구름 안개의 가리움도 전혀 없네 / 無有一片纖靄隔
예로부터 삼백은 풍년의 상서라 하는데 / 由來三白瑞豐年
가가호호의 천 이랑 전토가 백옥 같구려 / 家家白玉千頃田
누리가 이미 천척 땅속으로 들었을 테니 / 遺蝗入地已千尺
명년에는 응당 백 전의 벼를 거두겠구나 / 明年應取禾百廛
 
 
서교(西郊)에서 계를 치르다
 
봄날이 옥처럼 다사로워 맘에 꼭 맞아라 / 春日可人溫似玉
서쪽 교의의 방초는 베실보다 섬세하구려 / 西郊芳草細於織
교외 가득 붉은 꽃잎은 어지러이 날리고 / 滿郊花雨紅紛紛
봄 물결을 콸콸 흘려 유수곡을 울리는데 / 春波粼粼流水曲
마을에선 계를 치르려 구름처럼 모여서 / 鄕隣修禊簇如雲
술잔을 급히 돌려 모두가 거나히 취했네 / 飛觴轉急皆醺醺
풍류는 영화 연간의 봄보다 못지않건만 / 風流不減永和春
취해 쓴 글은 그 누가 왕 우군만 할는지
 / 醉札誰似王右軍
 
 
남포(南浦)에서 손을 보내다
 
아침에 온 작은 비는 기름처럼 윤택하고 / 朝來小雨潤如膏
관도의 푸른 버들은 명주실보다 섬세한데 / 官街碧柳細於繰
동복 하나 말 한 필에 술병 둘을 가지고 / 單童匹馬雙白甁
손님 전송하러 곧장 남포의 다리를 지나네 / 送客直過南浦橋
인생의 만나고 헤어짐은 뜬구름 같은 거라 / 人生聚散如浮雲
부별이나 빈별이 다 마음을 상하누나 / 富別貧別皆傷神
여구가 한 곡조 노래는 이미 한창인데 / 驪駒一曲歌而闌
하늘 넓고 물은 멀어 사람을 시름케 하네 / 天長水遠愁殺人
 
 
마산(馬山)에 날리는 소낙비
 
동풍에 열두 난간의 주렴이 다 걷히매 / 東風簾捲十二欄
한번 바라보니 동남쪽 시야가 탁 트이네 / 一望眼界東南寬
긴 숲 새로 희미해라 포구는 포구와 막히고 / 長林隱映浦隔浦
마산 한 봉우리는 여인의 검은 머리 같은데 / 馬山一點靑鴉鬟
갑자기 칠흑 같은 강 구름이 일어나서 / 忽有江雲黑如漆
은 살대 같은 소낙비를 마구 날려 대더니 / 白雨飛飛銀箭瞥
거센 바람이 불어와 강을 한번 쓸고 가니 / 長風吹掃過江去
푸른 산 한쪽이 붉은 석양을 머금었구나 / 半邊靑山銜落日
 
 
응천(凝川)의 고기잡이 배
 
응천이 멀리 은하수로부터 흘러 내려와 / 凝川遠從銀漢來
누각 앞을 파란 포도주 빛으로 물들였는데 / 樓前綠染蒲萄醅
어젯밤 작은 비에 물이 상앗대 반쯤 불어 / 昨夜小雨漲半篙
고깃배가 제 맘대로 물을 따라 내려가누나 / 漁舠隨意沿流廻
잔잔한 도화수 물결에 쏘가리가 살져라 / 桃花細浪鱖魚肥
쟁반에 회를 치니 눈송이가 날린 듯하네 / 盤心鱠縷紛雪飛
반쯤 취해 다리 두드리며 창랑가를 부르니 / 半酣鼓脚歌滄浪
인대며 황각일랑 도무지 알 바 아니로다 / 麟臺黃閣都不知
 
 
용두산(龍頭山) 절벽의 봄꽃
 
용두산 꼭대기에 봄이 한창 아름다워라 / 龍頭山上春正好
산 가득 철쭉꽃에 봄기운이 한창일세 / 躑躅滿山春意鬧
하룻밤 내린 좋은 비가 흡사 진국술 같아 / 一夜好雨如酒醇
온 산 꽃이 만발하여 타는 듯이 붉은데 / 花開已遍紅似燒
그 뉘 집 젊은이는 금장니를 장식하고 / 誰家少年錦障泥
술병 차고 동서남북을 쏘다니며 노는고 / 携壺遊賞東復西
날 저물어 돌아오니 춘색은 얼굴 가득고 / 日暮歸來春滿面
무수히 날린 꽃잎은 말발굽에 엉기었네 / 無數飛花襯馬蹄
[주-D001] 구름을 …… 말했던고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구름은 무심히 산봉우리에서 나오고, 새는 날다가 지쳐 돌아올 줄을 아네.[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용면(龍眠) : 송대(宋代)의 명화가(名畫家)로 호가 용면산인(龍眠山人)인 이공린(李公麟)을 가리킨다
[주-D003] 금계(金鷄) : 본디 천상에 산다는 금계성(金鷄星)의 닭을 가리키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 닭이 천상에서 새벽을 알리면 지상의 모든 닭이 그 소리에 응하여 다 같이 울어 댄다고 한다.
[주-D004] 육룡(六龍)이 …… 나오니 : 육룡이란 본디 천자의 어가(御駕)에 채우는 육마(六馬)를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여기서는 태양의 운행을 천자의 행차에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5] 구오(九烏) : 태양의 별칭이다
.[주-D006] 삼백(三白) : 동지 이후 세 번째 술일(戌日)에 지내는 제사를 납제(臘祭)라 하는데, 삼백은 납제 이전에 눈이 세 차례 내리는 것을 말한다. 농가의 말에 납제를 지내기 전까지 세 차례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하였다. 이것을 흔히 납전삼백(臘前三白)이라고 한다.
[주-D007] 누리가 …… 테니 : 누리는 메뚜기 비슷한 것으로 떼를 지어 날아다니면서 벼에 큰 해를 끼치는 곤충인데, 눈이 많이 오면 이 곤충이 땅속 깊이 들어가서 나오지 못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소식(蘇軾)의 〈설후서북대벽(雪後書北臺壁)〉 시에 “누리가 응당 천척의 땅속으로 들어가리니, 하늘 닿게 자란 보리 몇 집이나 풍년을 맞을꼬.[遺蝗入地應千尺 宿麥連雲有幾家]”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12》
[주-D008] 명년에는 …… 거두겠구나 : 백 전(廛)의 벼란, 《시경(詩經)》 〈위풍(魏風) 벌단(伐檀)〉에 “심지 않고 수확하지 않으면, 어떻게 삼백 전의 벼를 수확하랴.[不稼不穡 胡取禾三百廛兮]”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집주(集註)에 전(廛)은 곧 한 가구의 주택이라고 하였다.
[주-D009] 유수곡(流水曲) : 본래는 옛날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고사에서 연유된 금곡(琴曲)의 이름인데, 여기서는 단지 흐르는 물소리를 형용한 것일 뿐이다.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백아는 거문고를 잘 타고 그의 친구 종자기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는데, 백아가 일찍이 ‘높은 산[高山]’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듣고 말하기를 “좋다, 높다란 것이 마치 태산과 같구나.[善哉 峨峨兮若泰山]”라고 하였고, 또 백아가 ‘흐르는 물[流水]’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또 말하기를 “좋다, 광대한 것이 마치 강하와 같구나.[善哉 洋洋兮若江河]”라고 하여, 백아가 생각한 것은 종자기가 반드시 다 알아들었다. 종자기가 죽은 뒤로는 백아가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 하여 마침내 거문고를 부숴 버리고 종신토록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列子 湯問》
[주-D010] 풍류(風流)는 …… 할는지 : 영화(永和)는 진 목제(晉穆帝)의 연호이고, 왕 우군은 곧 우군 장군(右軍將軍)을 지낸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킨다. 진 목제 영화 9년(353) 삼월 삼짇날, 즉 상사일(上巳日)에 왕희지, 사안(謝安), 손작(孫綽) 등 당대의 명사(名士) 40여 인이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 모여서 계사(禊事)를 행하고, 이어 ‘곡수에 술잔을 띄우고[流觴曲水]’ 시를 읊으면서 성대한 풍류놀이를 했다. 이때 〈난정기(蘭亭記)〉를 왕희지가 직접 짓고 쓰고 하여 명문 명필(名文名筆)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주-D011] 부별(富別)이나 빈별(貧別) : 부별은 부자의 이별을 말하고, 빈별은 빈자의 이별을 말한다. 맹교(孟郊)의 〈장안유별이관한유인헌장서주(長安留別李觀韓愈因獻張徐州)〉 시에 “부자의 이별은 시름이 낯에 있거니와, 빈자의 이별엔 시름이 뼈를 녹인다오.[富別愁在顔 貧別愁銷骨]”라고 하였다.
[주-D012] 여구가(驪駒歌) : 〈여구〉는 일시(逸詩)의 편명으로, 이는 송별할 때에 부르는 노래인데, 전하여 이별가의 뜻으로 쓰인다. 그 가사에 “검은 망아지가 문에 있으니, 마부가 다 함께 있도다. 검은 망아지가 길에 있으니, 마부가 멍에를 다스리도다.[驢駒在門 僕夫具存 驢駒在路 僕夫整駕]”라고 하였다.
[주-D013] 인대(麟臺)며 황각(黃閣) : 인대는 한 선제(漢宣帝)가 곽광(霍光), 장안세(張安世), 소무(蘇武) 등 공신 11인의 초상을 그려서 걸게 했던 전각, 즉 기린각(麒麟閣)을 말한 것으로, 이는 곧 국가에 공훈을 세워 공신에 책록되는 것을 말하고, 황각은 바로 재상이 집무하는 전각을 말한다. 전하여 인대와 황각은 부귀공명을 의미한다
[주-D014] 금장니(錦障泥) : 비단으로 장식한 말다래를 말한다. 말다래는 말을 탄 사람의 옷에 진흙이 튀지 않게 하기 위해, 가죽 같은 것으로 만들어 안장 양쪽에 늘어뜨리는 물건을 이른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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