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시 모음 41편

《1》 12월

강성은

씹던 바람을 벽에 붙여놓고
돌아서자 겨울이다
이른 눈이 내리자
취한 구름이 엉덩이를 내놓고 다녔다
잠들 때마다 아홉 가지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날 버린 애인들을 하나씩 요리했다
그런 날이면 변기 위에서 오래 양치질을 했다
아침마다 가위로 잘라내도
상처 없이 머리카락은 바닥까지 자라나 있었다
휴일에는 검은 안경을 쓴 남자가 검은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동네 영화관에서 잠들었다
지루한 눈물이 반성도 없이 자꾸만 태어났다
종종 지붕 위에서 길을 잃었다
텅 빈 테라스에서 달과 체스를 두었다
흑백이었다 무성영화였다
다시 눈이 내렸다
턴테이블 위에 걸어둔 무의식이 입 안에 독을 품고
벽장에서 뛰쳐나온 앨범이 칼을 들고
그래도 얼어붙었다
숨죽이고 있던 어둠이 미끄러져내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음악이
남극의 해처럼 게으르게 얼음을 녹이려 애썼다
달력을 떼어 죽은 숫자들을 말아 피웠다
뿌연 햇빛이 자욱하게 피어올랐지만
아무 것도 녹진 않았다 

《2》 12월

강연호

그 해 12월 너로 인한 그리움 쪽에서 눈 내렸다
마른 삭정이 긁어 모아 군불 지피며
잊으리라 매운 다짐도 함께 쓸어 넣었지만
불티 무시로 설마 설마 소리치며 튀어올랐다
동구 향한 봉창으로 유난히 풍설 심한 듯
소식 갑갑한 시선 흐려지기 몇 번
너에게 가는 길 진작 끊어지고 말았는데
애꿎은 아궁지만 들쑤시며 인편 기다렸다
내 저어한 젊은 날의 사랑
눈 내리면 어둠도 서두르고 추억도 마찬가지
멀리 지친 산빛깔에 겨워 자불음 청하는
불빛 자락 흔들리며 술기운 오르던 허구한 날
잊어라 잊어라 이 숙맥아, 쥐어박듯이
그해 12월 너로 인한 그리움 쪽에서 눈 내렸다  

《3》 내 영혼에 쌓이는 12월

고은영

봉숭아 대궁에 몰래 심던
연녹색 사랑도 떠나가고
지금은 돌아와 내 앞에 선
황혼의 나루터

이별은 들숨으로 와
내 속 사람에
까무러치는 울혈로 부각되었다

황혼도 아름다운 해거름
고백하는 정적은 침묵으로 눈감고
자연은 사무친 눈 속에 날 오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가난해야 하리니
철저하게 낮아져야 하리니

일제히 함성 하는 저
동짓달 긴 밤이 뱉는 절망 위에
꽁꽁 언 채 미끄러지는 의식 밑바닥
살아야 하는 절망을
나는 오히려 희망이라 말하리

툭툭,
노송에 앉은 눈 떨어지는 소리
영혼 갈피 갈피에
12월이 쌓이기 시작했다  

《4》 12월

곽춘진

너 올 때 슬그머니
내게 왔듯
뗘나야 하는 지금 이달
그러고 보니
나 또한 혼자서 너를 만나
지내 온 열 두 달의 끝달, 12월
이제 가야하는 마지막의
인사로
너를 혼자 보낼려는데
그런데
그사이 아마도 내가 너를
사랑했었나 보다
이렇게 미련 남는 것 보니
그래도 이젠 가야할 시간, 열두 달
붙잡을 새 없이 붙잡을 수 없이
가야한다니
내 이제 서러운 마음으로
너를 보낸다.  

《5》 섣달 그믐

김사인

또 한 잔을 부어넣는다
술은 혀와 입안과 목젖을 어루만지며
몸 안의 제 길을 따라 흘러간다
저도 이젠 옛날의
순진하던 저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뜨겁고 쓰다

윗목에 웅크린 주모는
벌써 고향 가는 꿈을 꾸나본데
다시 한 잔을 털어넣으며
가만히 내 속에 대고 말한다

수다사水多寺 높은 문턱만 다는 아니다
싸구려 유곽의 어둑한 잠 속에도 길은 있다 

《6》 12월

김수미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
그 속에 일 년의 모든 것이 갈무리됩니다.

햇살이 따뜻했던 봄.
파도 출렁이던 바닷가의 여름.
노랗게 붉게 물들던 가을.

이제
그 모든 빛을
하나로 감싸 안을 겨울이
우리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뒤돌아보면 걸어왔던 발자국들이
기쁨과 슬픔의 흔적을 만들며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기쁜 순간의 찬란함은
내게 벅찬 가슴을 선물했고
슬픈 기억의 하얀 눈물은
아픈 상처를 어루만졌습니다.

이제
그 모든 순간들을
차곡차곡 접어서 내 기억 속에 간직하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의 밝은 태양을 품으렵니다.
우리에겐
내일이란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7》 12월을 맞으며

김영국

다 타고만 붉은 단풍이
한 줌의 재로 남은 가을이 진다
홀연히 길떠나는 11월
그리움만 남겨둔 채 떠나보내고
하얀 눈 꽃송이 날리는 12월을 맞이하련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아름다운 추억들
접어 두었던 이상의 꿈들을
12월을 맞이하여
마음속에 평안과 행복
결실의 알곡으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성탄의 축복이 깃든 12월
새로운 마음으로 각오를 다지고
새해를 준비하는 희망으로
마음속의 묵은 때 말끔히 씻어 버리고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겸허하게 12월을 품에 안으련다. 

《8》 12월이 가기 전에

김용호

겨울 햇살은 오늘 한때 내 작업실
유리창에 잠시 머물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지나
빠알간 벽돌집 저편으로 사라 지려합니다.

그림자에 미끄러져 비스듬히 누운 많은 아쉬움도
이제 12월과 떠나려 합니다.

지나간 날들
돌이켜보면 얽혀서 지네 오던 세연 들에게
얼굴 가득 미소가 펴지도록
정다운 존재가 되어 주지 못함이 죄로 여겨집니다.

12월이 가기 전에
세연 들과
뜻 있음의 좋은 결과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깊이 생각해보니
내세울 내 자랑거리가 없어 부끄럽습니다.

《9》 12월의 무언극

김종제

새들이 숲을 버리고 일제히 비상한다
나무들도 거친 옷을 벗어버리고 뒤를 좇아 비상한다
깃든 자리를 흩으리지 않은 채 둥지속에 꽃 한 송이씩 물고
하늘의 어딘가로 푸드득 날아간다
몇몇 꽃들은 이미 세상의 절벽 끝까지 기어 올라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고 몇몇 나무의 가지들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발 디딘 곳으로부터 나를 풀쩍 뛰어 날아 오르는 것들
나무에게 있어서 푸르렀던 것들
꽃에게 있어서 희거나 검거나 붉거나 노랗거나
숲에게 있어서 날개를 펼쳐 보이며 날아가는 것들
세상이라는 무대에 몸을 펼쳐 보이는 짓이다
말 없이 행하는 저 고요한 면벽의 저것들을 소리 없는 언어라고 하자
저것들을 살아있는 말이라고 하자
이제 봄이 될 때까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두텁게 얼어붙은 언어가, 말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고
그 위로 고대에 사라진 상형문자들이
들불처럼 번져나갈 것이니
12월의 저 몸으로 쓰여진 글을 해석하라 

《10》 12월

노현숙

낡은 베란다의 문은 닫혀 있다
닫힌 문 안에서
다시 활짝 열어 젖히며
서로의 옷을 벗어 부칠 때
침묵으로 감아버리고 싶은
섣달 그믐날
나즈막한 지붕 아래
달빛이 내려앉고 있다 

《11》 12월에 꿈꾸는 사랑

도지현

하얗게 피어나는 기다림이 있다
천사의 미소 머금고
꿈 나래 펼치듯
아름다운 사랑이 오길 꿈꾼다

조그만 가슴에 품은 꽃씨 하나
하얀 그리움으로 피어나
애오라지 나만이 소유할 수 있는
숙성 된 와인 맛 같은 사랑이고 싶은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과 대지에서
황홀하리 만치 아름다운
하얀색 주단을 깔아 놓은
순백의 영혼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싶다

그대와 나 그리고 우리라는 굴레 속에
영원이라는 단어 아로새기고
가슴, 가슴마다 에는
순백의 순수한 사랑을 꽃 피우고 싶다

《12》 12월의 기도

도지현

하얗게 내린 눈 위로
누군가 지나간 발자국
그 위로 또 눈이 쌓이더라도
다시 찍는 자국은
사랑의 흔적이게 하소서

차가운 바람
코를 베에 물고 가더라도
가슴은 봄 뜨락의
따사로운 햇볕이게 하소서

빈한한 가슴에
허기까지 겹쳤다 하더라도
신이시여
그들의 곳간은 풍요롭게 하소서

파리한 영혼 삭막하더라도
여름 숲 속의 윤기 나는 푸름
가을 들녘의 넉넉함이
가슴을 가득 채워
차가운 겨울밤 따스하게 지핀 온기,
신이시여
모든 이들에게 밝음을 주는
별보다 찬란한 등불을 주소서 

《13》 12월 끝자락에서

목필균

한줄기 바람으로 흐른다.
멈출 수없이 날아다닌 시공의
긴 터널 속에 박쥐처럼 드나들던
어둠과 빛이 뼈에 박히고
돌부리에 채여 멍든 엄지발톱이
이제쯤 깎여 나가 잊혀질만한 아픔도
연륜 속에 상처로 묻혀진다.

한 줄기 강으로 흐른다.
언제나 낯선 허공 속을 퍼덕거리며
미숙하게 날갯짓하는 작은 새가
내일이라는 반투명 공간을 향해
접었던 날개 다시 펼친다.  

《14》 12월의 연가

문현우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볼을 스친다
헐벗고 선 나목들

오늘따라 그대가 이렇게 생각남은
어인 연유인가
창 밖 회빛 하늘을 이고
저 멀리 아스라히 떠오르는
당신의 얼굴

보고픈 사람의 온기가
스며있을 것 같은
사진 속의 미소짓는 모습
부서져 내리는
숱한 의미와 사념의 부스러기들
성긴 응고체

잿빛 하늘 아래
몸을 움츠리며
떠오르는 형상 하나,
눈을 들어 허공을 보며
그리움을 띄워보낸다. 

《15》 12월

박재삼

욕심을 털어 버리고
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1할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 벗고 눈에 젖는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
포근한 12월을

친구여! 어디서나 당하는 그
추위보다 더한 손해를

너는 저 설목雪木처럼 견디고
그리고 이불을 덮은 심사로
네 자리를 덥히며 살거라 

《16》 12월의 노래

박종학

마침내 달랑 한 장
그렇지만 마지막은 싫어요
처음 시작이라 불러 주세요
차가운 손길
하지만 마음만은 아니랍니다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입니다

나를 보면 행복해 합니다
나를 보면 추억으로 여깁니다
나를 보면 삶을 느낍니다
나는 행복입니다
나는 추억입니다
그래서 나는 12월입니다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소년 소녀 가장과 함께
외로운 무의탁 노인들과 함께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한해를 뒤돌아보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기쁨의 합창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마지막이 아닙니다
나는 희망이고
기쁨이고
사랑이고 싶습니다
나는 12월입니다  

《17》 12월 저녁의 편지

안도현

12월 저녁에는
마른 콩대궁을 만지자

콩알이 머물다 떠난 자리 잊지 않으려고
콩깍지는 콩알의 크기만한 방을 서넛 청소해두었구나

여기다 무엇을 더 채우겠느냐

12월 저녁에는
콩깍지만 남아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늙은 어머니의 손목뼈 같은 콩대궁을 만지자   

《18》 12월이라는 종착역

안성란

정신 없이 달려 왔다
넘어지고 다치고 눈물 흘리면서
달려간 길에 12월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니

지나간 시간이 발목을 잡아놓고
돌아보는 맑은 눈동자를
1년이라는 상자에
소담스럽게 담아 놓았다

생각할 틈도 없이
여유를 간직할 틈도 없이
정신 없이 또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남겨버린다

지치지도 않고
주춤거리지도 않고
시간은 또 흘러 마음에 담는 일기장을
한쪽 두 쪽 펼쳐 보게된다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하는
인생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잃어버리는 삶이라지만

무엇을 얻었냐 보다
무엇을 잃어 버렸는가를 먼저 생각하며
인생을 그려놓는 일기장에
버려야 하는것을 기록하려고 한다

살아야 한다 것
살아 있다는 것
두가지 모두 중요하겠지만

둘중 하나를 간직해야 한다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소중히 여기고 싶다

많은 시간을 잊고 살았지만
분명한 것은 버려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싶다

하나 둘 생각해 본
다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하여
나는 12월을 보내면서
무엇을 버려야 할까. 

《19》 십이월

양전형

행인들이 이따금 어깨를 움츠린다
언뜻, 가야 할 때임을 알아챈 은행잎들
말없이 욕망의 손 내리더니
무리 지어 허정허정 먼 길 나섰다
아아 해마다 이맘때 도지는 지병
내 안에서 세상을 앓던 수많은 단풍잎들
줄줄이 떨어지는 병
뼈끝까지 시려 온다 또다시 가야겠다

그렁그렁한 눈물 탈탈 털어내며
사람아 사람아
가슴이 벌겋게 아린 사람아
내 안에 들어와
함께 별을 헤아리던 사람아
어차피 세상살이는 눈물로 시작되는 것

들찬 어깨에 동동 매달리며
한사코 가지 않겠다던
가랑잎의 허튼 맹세는 들먹이지 말자
꽃잎이 늘 바람을 용서하여 왔듯
우리도 한때는
향기 그윽한 어느 꽃들이었듯
쓸쓸한 세상 마냥 품고
뒹굴며 뒹굴며 먼 길 가자  

《20》 세모

엄원태

한 해가 저문다
파도 같은 날들이 철썩이며 지나갔다
지금, 또 누가
남은 하루마저 밀어내고 있다
가고픈 곳 가지 못했고
보고픈 사람 끝내 만나지 못했다
생활이란 게 그렇다
다만, 밥물처럼 끓어 넘치는 그리움 있다
막 돋아난 초저녁별에 묻는다
왜 평화가 상처와 고통을 거쳐서야
이윽고 오는지를……
지금은 세상 바람이 별에 가 닿는 시간
초승달이 먼저 눈 떠, 그걸 가만히 지켜본다 

《21》 12월의 독백

오광수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 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22》 12월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23》 12월의 연가

오순화

추억이 고운 계절
아름드리 흐벅지던 단풍잎도
제 품에 안겼다.

가을은 성큼성큼 걷다
앞서오는 초겨울 찬바람에
손사래치며 뛰어간다.

옛사랑 인사만 했는데 
아쉬운 것은 아쉬운 데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데로 
못다 부른 노래도 이제 그만.

새하얀 첫눈이
소복소복 보듬어 주리라.

12월에는
사랑과 욕망, 미움
품었던 꿈과 소망까지도
모두 사랑이란 이름으로 보내야한다.

그래야 채울 수 있기에 


《24》 12월

유강희

12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왕겨부비는 소리가 난다
빈집에 오래 갇혀 있던 맷돌이 눈을 뜬다 외출하고 싶은 기미를 들킨다

먼 하늘에서 흰 귀때기들이 소의 눈망울을 핥듯 서나서나 내려온다
지팡이도 없이 12월의 나무들은
마을 옆에 지팡이처럼 서 있다

가난한 새들은 너무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퍼런 별이 된다

12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왕겨 타는 소리가 나고
누구에게나 오래된 슬픔의 빈 솥 하나 있음을 안다

《25》 12월

이외수

떠도는 그대 영혼 더욱
쓸쓸하라고
눈이 내린다

닫혀 있는 거리
아직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고
종말처럼 날이 저문다

가난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그대 더욱 목메이라고
길이 막힌다

흑백 사진처럼 정지해 있는 시간
누군가 흐느끼고 있다
회개하라 회개라하 회개하라
폭석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이 한 해의 마지막 언덕길
지워지고 있다 

《26》 12월의 노래

이해인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말을 많이 했던
빈 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27》 12월의 시

이해인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시간을 아껴 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 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하는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 날이여~
나를 키우는 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28》 12월의 엽서

이해인

소매끝에 묻어나는 바람냄새가
겨울이란 계절이 더 깊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정신없이 숨차게 지내온 시간속에
종종걸음으로 바삐 움직였던 내 조급함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이 해는 떠날 준비를 합니다.

새날에 부푼기대도
깨알같이 적었던 지키기위한 맹세도
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끝 마쳐야 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붉게 물들어 숨어버리는 찬란했던 태양을
깊은한숨으로 바라다 봅니다.
그저...침묵속에 마른 웃음이 나옵니다.

누구보다 강한 내가 되고 싶어서
잔인하게 벼랑으로 자신을 내던지며
무언가 이루기를 소망했는데....
상처투성이의 심장은 멈추지 않는데....
세상은 또 한번에 허물을 벗습니다.

마음에 병이 났습니다.
삶에 지치고...
지친 나와는 상관없이 갈곳을 가는 냉정한 날들때문에
멍하니.. 침묵으로 볼수밖에는...
그저 끝자락을 붙잡고..조금만 천천히 떠나주기를...

그렇다고 아무것도 변할것도 없는데..
떼라도 쓰고 싶어집니다..
멀리서라도 지금을 기억하고 싶으니
조금만 조금만...더디 떠나주기를....
어리석은 나는 그렇게 또 부질없는 바램을 합니다.

또 한해가 가 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남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합니다.

같은 잘못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엔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29》 12월의 노래

이효녕

한해 마무리해 보내는 겨울
12월이 다시 돌아오네

인생은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나뭇가지에서 놀던 참새는
어디론가 날아간 그 자리

나이테를 하나 더 만들어
겨울안개 뒤에 서있네

북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을 안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섣달눈은

가장 가벼운데도
달력 맨 끝에 서있다가
허공의 허파에서 계속 숨쉬네

차가워진 가슴과 들녘에 앉은
하얀 눈 사이로 다른 세상을 향하여

언제나 따스하게 안아주려는
또 한 세월을 향하여
그 숱한 생각들의 깊이를 향하여

한 해를 마무리해 보내는
겨울12월이 다시 돌아오네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숨겨진 향기가 겨울안개 뒤에 서서
떠도는 바람이 가슴을 두드리네

오가는 세월을 안고
오 지워지는 세월을 안고.  

《30》 12월 우리는

임영준

돌아보지도 않고
숨 가쁘게 달려왔는데
갈등으로 파국으로
뒷걸음쳐 다시 제 자리구나
정월에 심었던 기둥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처참히 누웠구나
갈 길은 멀고 식솔은 각각이고
고난의 변경이 멀지 않았구나
환골탈태하는 인걸이 없어
또 비감한 겨울을 지내야 하는구나

언제나 우리는
개운하고 찬란한 12월을 만나게 될까
과연 우리에게
개운한 12월이 있기나 한 것일까 

《31》 12월

임은숙

무수히 쌓여있는
낙엽들을
밀어내며 묻어버리며
긴 팔을 뻗어
뭔가 숨기려하는

12월은
그렇게 온다

털어내는
바람사이로
언뜻 스치는 기억 한 조각에
애써 태연한 척

바람 끝자락에 달라붙는
차가운 적막

아쉬운 듯 슬픈 듯
하얀 한숨을 흘리며

12월은
그렇게 온다 

《32》 12월의 일기

전진옥

한 장 남은 달력, 12월이군요
어느덧 겨울이 온 모양입니다
길 풀섶 작은 풀꽃마저도
제 미소 잃고 꽃향기마저 사르니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허공 하늘에 바람 소리
휑하니 쓸쓸하지만
여름내 흘린 땀방울이
바람 소리 그립게 하듯
겨울 여백도 아름답습니다

떠나보내야 함은
언제나 아쉬움이 가득하고
오고 가는 계절의 순환 앞에
또 새로운 무언의 희망이 열리니
처음처럼 새로이 태어나는 마음

온몸으로 솟구쳐 꿈을 펼쳐내는 태양처럼
내 삶의 이유가 아름답다면
올 한해도 나눔을 주신 고마운 분들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33》 12월

장석주

해진 뒤 너른 벌판,
하늘엔 기러기 몇 점.
처마 밑
알록달록한 거미에게
먼 지방에 간 사람의 안부를 묻다

《34》 행복한 12월

정용철

나는 12월입니다
열한달 뒤에서 머무르다가
앞으로 나오니
친구들은 다 떠나고
나만 홀로 남았네요

돌아설 수도
더 갈 곳도 없는 끝자락에서
나는 지금
많이 외롭고 쓸쓸합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
나는 지금
나의 외로움으로 희망을 만들고
나의 슬픔으로 기쁨을 만들며

나의 아픔으로
사랑과 평화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이제부터 나를
행복한 12월이라 불러 주세요 

《35》 12월의 다짐

조미하

지난 시간 아쉬움보다
아직 남은 한 달에
감사하며 지내겠습니다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반성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겠습니다

나만을 생각했던 이기심에서
우리를 생각할 수 있는 가슴을
활짝 열겠습니다

버릴 것에 미련 두지 않고
비움으로써 자유로워지는걸
느끼겠습니다

보내는 마음과
맞이하는 기쁨이 교차하는 12월을
기꺼이 두 팔 벌려 반기겠습니다 

《36》 성탄전야

최영철

맛난 것 먹고 빵빵해진 일가족 오색 풍선 따라
땡그랑 땡그랑 배고프다 노래하는 자선냄비 따라
행복 몇 스푼 눈발로 내리고 있었대요
더운 국물이나 마셔 두려는 가난한 식탁에
저 멀리 하늘에서 뭉텅뭉텅 수제비 알로 오시다가
하얀 쌀 소록소록 눈발로 오시다가
그만 내려앉을 곳 잃고
성탄 폭죽 선물 꾸러미 어깨 위로 내리고 있었대요
하얀 쌀 수제비 빈 장독에 닿기를 기다리다
네 살 두 살 아이 재워주고 어마는 술집 나가고
아빠는 인형 뽑으러 가셨대요
인형 다 뽑으면 시름 다 가고 꿈 같은 새날 온다며
아이들 깰까봐 살금살금 문 잠그고 가셨대요
꿈결 아이들 구름 타고 다니며
하얀 쌀 수제비 받아 붕어빵 빚고 산새로 날리고
불살라 언 손발 쬐며 다 녹여버리고
엄마 아빠 오시면 야단 맞을까봐
그 불길 따라 하늘로 하늘로 올라 갔었대요
소방차 오고 아빠는 눈이 커다란
눈사람 인형 한 아름 뽑아 오셨대요
아이들 훨훨 날개를 단 줄 모르고
엄마는 실비주점 더러워진 접시를 닦으며
내년 봄 유아원 보낼 생각에
유행가 한 자락 흥얼거리고 있었대요 

《37》 한 해의 종착역 12월

최한식

어느덧 이 한해도 다 지나가고
이제 쓸쓸한 겨울 찬바람 많이
내 곁을 스치는구나,

좋은날 굿은 날 그 풍파 이겨내고
이 해의 마지막 종착역에 다달아 왔구나
아파하던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고,

좋았던 날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그러나 이제는 한 해를 정리해야 하는
내 마음에 석양이 물들어오니,

이해의 마지막 끝자락
오늘도 분주히 하나하나
정리를 해 본다.  

《38》 12월 시

최홍윤

바람이 부네
살아 있음이 고마워 살아야겠네!

나이가 들어 할 일은 많은데
짧은 해로 초조해지다 보니
긴긴 밤에 회한도 깊네

나목은 다 버리며
겨울의 하얀 눈을 기다리고

늘 푸른 솔은 계절을 잊고
한결같이 바람을 맞는데

살아 움직이는 것만
숨죽이며 종종걸음치네

세월 헤집고
바람에 타다

버릴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데
시간은 언제나 내 마음의 여백

세월이여, 나에게
한결같은 삶이게 해 주소서

《39》 12월 시

최홍윤

바람이 부네
살아 있음이 고마워 살아야겠네!

나이가 들어 할 일은 많은데
짧은 해로 초조해지다 보니
긴긴 밤에 회한도 깊네

나목은 다 버리며
겨울의 하얀 눈을 기다리고

늘 푸른 솔은 계절을 잊고
한결같이 바람을 맞는데

살아 움직이는 것만
숨죽이며 종종걸음치네

세월 헤집고
바람에 타다

버릴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데
시간은 언제나 내 마음의 여백

세월이여, 나에게
한결같은 삶이게 해 주소서

《40》 12월 1일

홍윤숙

한 시대 지나간 계절은
모두 안개와 바람
한 발의 총성처럼 사라져간
생애의 다리 건너
지금은 일년 중 가장 어두운 저녁
추억과 북풍으로 빗장 찌르고
안으로 못을 박는 결별의 시간
이따금 하늘엔
성자의 유언 같은 눈발 날리고
늦은 날 눈발 속을
걸어와 후득후득 문 두드리는
두드리며 사시나무 가지 끝에 바람 윙윙 우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영혼 돌아오는 소리  

《41》 12월

황지우

12월의 저녁 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의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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