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모음

 

바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구붓하고: 몸이 구부정한

모래톱: 넓은 모래 벌판, 모래사장

지중지중: 아주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모습, 의태어

개지꽃: 나팔꽃

쇠리쇠리하야: 눈이 부셔, 눈이 시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건만 나는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다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아서라 세상사'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따디기: 한낮의 뜨거운 햇빛 아래 흙이 풀려 푸석푸석한 저녁 무렵

누굿하니: 여유있는

살틀하든: 너무나 다정스러우며 허물없이 위해주고 보살펴 주던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엽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잠풍: 잔잔하게 부는 바람

달재: 달째, 달강어, 쑥지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진장: 진간장, 오래 묵어서 진하게 된 간장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헛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없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단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쥔을 붙이었다: 주인집에 세 들었다

딜옹배기: 아주 작은 자배기

붇덕불: 짚북더기를 태운 불

굴기도 하면서: 구르기도 하면서

나줏손: 저녁 무렵

바우섶: 바위 옆 갈매나부: 키가 2m쯤 자라는 낙엽 활엽 교목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긋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서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도연명''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바람벽: 집안의 안벽

때글은: 오래도록 땀과 때에 전

쉬이고: 잠시 머무르게 하고, 쉬게 하고

앞대: 평안도를 벗어난 남쪽지방. 멀리 해변가

개포: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이즈막하야: 시간이 그리 많이 흐르지 않은, 이슥한 시간이 되어서

 

여승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 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떨어진 날이 있었다

 

가지취: 참취나물

금덤판: 금을 캐거나 파는 산골의 장소로 간이 식료품 등 잡품을 파는 곳

섶벌: 울타리 옆에 놓아 치는 꿀벌, 재래종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탸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마가리: 오막살이

고조곤히: 고요히, 소리없이

 

통영2

 

구마산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 객주 집의 어린 딸은 난이라는 이 같고

난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든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고당: 고장

갓갓기도: 가깝기도

아개미: 아가미

호루기: 쭈꾸미와 비슷하게 생긴 해산물

황화장사: 온갖 잡살뱅이 물건을 지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파는 사람

오구작작: 여러 사람이 뒤섞여 떠드는 수선스런 모양

 

여우난골족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 고무,

고무의 딸 이녀,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 고무, 고무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 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 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

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

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오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 깨돌

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 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

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육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 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국수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구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홍성홍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룻밤 뽀오햔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어느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재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 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굳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멕이고: 활발히 움직이고

김치가재미: 김치독 묻어두는 곳

은댕이: 언저리

예대가리밭: 산의 맨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비탈밭

산멍에: 산몽아, 전설상의 커다란 뱀, 이무기

분틀: 국수를 짜는 분틀

들쿠레한: 좀 달고 구수하고 시원한

사리워: 담겨져서

집등색이: 짚등석, 짚이나 칡덩굴로 짜서 만든 자리

댕추가루: 고춧가루

탄수: 식초

아르굳: 아랫목

고담하고: 속되지 않고 아취가 있는

 

정주성(定州城)

 

()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 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던 무너진 성()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이 한울빛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주막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길들은 팔모알상이 그 상 우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 한 잔이 뵈었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을 따라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았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팔원(八院) 서행시초(西行詩抄) 3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 리 묘향산 백오십 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내임: 배웅

 

흰 밤

 

옛 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어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고향(故鄕)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ㄹ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노루 / 백석

 

()골에서는 집터를 츠고 달궤를 닦고

보름달 아래서 노루고기를 먹었다


노루/백석(白石) 함주시초(咸州詩抄) 2

 

장진(長津) 땅이 지붕넘어 넘석하는 거리다

자구나무 같은 것도 있다

기장감주에 기장차떡이 흔한데다

이 거리에 산골사람이 노루새끼를 다리고 왔다

산골사람은 막베 등거리 막베 잠방등에를 입고

노루새끼를 닮었다

노루새끼 등을 쓸며

터 앞에 당콩순을 다 먹었다 하고

서른닷냥 값을 부른다

노루새끼는 다문다문 흰 점이 백이고 배안의 털을 너

슬너슬 벗고

산골사람을 닮었다

산골사람의 손을 핥으며

약자에 쓴다는 흥정소리를 듣는 듯이

새까만 눈에 하이얀 것이 가랑가랑하다

 

):넘석하는 : 목을 길게 빼고 자꾸 넘겨다보는.

자구나무 : 자귀나무. 함수초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의 작은 교목.

기장 : 벼과의 일년초로 식용작물. 인도가 원산으로 1.2~1.5m 정도 자라며 잎이 가늘고 이삭은 가을에 익음. 열매는 당황색이며 좁쌀보다 낟알이 굵음.

막배등거리 : 거칠 게 배로 만든 덧저고리.

막베잠당둥에 : 막베로 만든 잠방이 형식의 아래 속옷.

당콩순 : 강남콩순.

다문다문 : 드문드문, 뛰엄뛰엄.

약자 : 약재료.

가랑가랑한다 ; 그렁그렁한다. 물이 거의 찰 듯한 상태

 

수라(修羅) /백석(白石)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 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수라(修羅) : 싸움을 일삼는 귀신.

싹기도 : 흥분이 가라 앉기도.

가제 : 방금, .

 

모닥불 /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짖도 개털억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수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한 이도 뭉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 개니빠디 : 개의 이빨.

* 너울쪽 : 널빤지쪽.

* : .

* 개터럭 : 개의 털.

* 재당 : 재종(再從). 육촌.

* 문장 : 한 문중에서 항렬과 나이가 제일 위인 사람.

* 몽둥발이 : 딸려 붙었던 것이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 남은 물건.

 

청시(靑枾) / 백석

 

별 많은 밤

하누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즞는다

쓸쓸한 길 / 백석

 

거적장사 하나 산()뒷 옆비탈을 오른다

- 따르는 사람도 없이 쓸쓸한 쓸쓸한 길이다

() 가마귀만 울며 날고

도적갠가 개 하나 어정어정 떠러간다

이스라치전이 드나 머루전이 드나

수리취 땅버들의 하이얀 복이 서러웁다

뚜물같이 흐린 날 동풍(東風)이 설렌다

자류( ) / 백석

 

남방토(南方土) 풀 안 돋은 양지귀가 본이다

햇비 멎은 저녁의 노을 먹고 산다

태고(太古)에 나서

선인도(仙人圖)가 꿈이다

고산정토(高山淨土)에 산약(山藥) 캐다 오다

달빛은 이향(異鄕)

눈은 정기 속에 어우러진 싸움

배꾼과 새 세 마리

 

어느 때 어느 곳에 배꾼 하나 살았네,

하루는 난바다에 고기잡이 나갔더니

센 바람에 돛 꺾이고 큰 물결에 노를 앗겨

바람 따라 물결 따라 밤낮 없이 떠흘렀네.

배고프고 목마르고 비 맞아 몸은 얼고

가엾은 이 배꾼은 거의거의 죽어갔네.

그러자 난데없는 새 세 마리 날아왔네.

한 새는 고물 밀고 한 새는 이물 끌고

또 한 새는 뱃전 밀어 어느 한 섬 다달았네.

섬에 오른 이 배꾼 목숨 건져 고마우나

앉아 걱정 서서 걱정 자꾸만 걱정했네.

그러자 새 한 마리 배꾼 보고 물었네

(배꾼 아저씨 배꾼 아저씨 무슨 걱정 그리 해요?)

이 말 들은 배꾼이 대답하는 말

(돛대 없어 걱정이다 노가 없어 걱정이다.)

이때에 새 한 마리 얼른 하는 말

(그런 걱정 아예 마오 돛대 삿대 내 만들게.)

이때부터 톱새는 하루종일 톱질했네, 삐꿍삐꿍 톱질했네,

돛대감 노감을 자르노라고,

돛대 없어 노대 없어 걱정하던 이 배꾼 돛대 얻어 노대 얻어

걱정도 없으련만 그러나 웬일인지 자나 깨나 걱정이네.

그러자 새 한 마리 배꾼 보고 물었네.

(배꾼 아저씨 배꾼 아저씨 무슨 걱정 그리 해요?)

이 말 들은 배꾼이 대답하는 말

(들물 몰라 걱정이다 썰물 몰라 걱정이다.)

이때에 새 한 마리 얼른 하는 말

(그런 걱정 아에 마오 들물 썰물 내 알릴게.)

이때부터 또요새는 물때마다 외쳐댔네 또요 또요 외쳐댔네,

밀물이 또 미는 걸 알리노라고

들물 몰라 썰물 몰라 걱정하던 이 배꾼 들물 알아 썰물 알아

걱정도 없으련만 그러나 웬일인지 자나깨나 걱정이네.

그러자 새 한 마리 배꾼 보고 물었네

(배꾼 아저씨, 배꾼 아저씨 무슨 걱정 그리 해요?)

이 말 들은 배꾼이 대답하는 말

(무채 없어 걱정이다 외채 없어 걱정이다.)

이때에 새 한 마리 얼른 하는 말

(그런 걱정 아예 마오 무채 외채 내 썰을게.)

이때부터 쑥쑥새는 저녁이면 채 썰었네

쑥쑥 쑥쑥 채 썰었네, 무나물 외나물을 무치노라고

그러자 이 배꾼은 걱정 근심 하나 없이

들물 따라 썰물 따라 그물질을 나갔다네,

도요새가 알리는 소리 듣고

그러자 이 배꾼은 걱정 근심 하나 없이 돛을 달고 노를 저어

먼 바다에 배질했네 톱새가 잘라놓은 돛대와 노로

그러자 이 배꾼은 걱정 근심 하나 없이 무채나물 외채나물

저녁 찬도 맛있었네, 쑥쑥새가 썰어 무친 채나물로

 

개구리네 한솥 밥

 

옛날 어느 곳에 개구리 하나 살았네, 가난하나 마음 착한 개구리 하나 살았네

하루는 이 개구리 쌀 한 말을 얻어 오려 벌 건너 형을 찾아 길을 나섰네.

개구리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가 보도랑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도랑으로 가 보니 소시랑게 한 마리 엉엉 우네.

소시랑게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소시랑게야 너 왜 우니?)

소시랑게 울다 말고 대답하였네

(발을 다쳐 아파서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소시랑게 다친 발 고쳐주었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아래 논두렁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논두렁에 가 보니 방아다리 한 마리 엉엉 우네.

방아다리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방아다리야 너 왜 우니?)

방아다리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길을 잃고 갈 곳 몰라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길 잃은 방아다리 길 가리켜주었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복판 땅구멍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땅구멍에 가 보니 소똥굴이 한 마리 엉엉 우네.

소똥구리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소똥굴이야 너 왜 우니?)

소똥굴이 울다 말고 대답하느 말

(구멍에 빠져 못 나와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구멍에 빠진 소똥굴이 끌어내 줬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섶 풀숲에서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풀숲으로 가 보니 하늘소 한 마리 엉엉 우네.

하늘소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보았네

(하늘소야, 너 왜 우니?)

하늘소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풀대에 걸려 가지 못해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었네.

개구리 또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 아래 웅덩이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물웅덩이 가 보니 개똥벌레 한 마리 엉엉 우네.

개똥벌레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 뿌구국 물어 보았네

(개똥벌레야 너 왜 우니?)

개똥벌레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물에 빠져 나오지 못해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주었네.

 

발 다친 소시랑게 고쳐주고, 길 잃은 방아다리 길 기리켜주고,

구멍에 빠진 소똥굴이 끌어내 주고, 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내 주고……

 

착한 일 하노라고 길이 늦은 개구리, 형네 집에 왔을 때는 날이 저물고,

쌀 대신에 벼 한 말 얻어서 지고 형네 집을 나왔을 땐 저문 날이 어두워,

어둔 길에 무겁게 짐을 진 개구리, 디퍽디퍽 걷다가는 앞으로 쓰러지고

디퍽디퍽 걷다가는 뒤로 넘어졌네.

밤은 깊고 길을 멀고 눈앞은 캄캄하여 개구리 할 수 없이 길가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개똥벌레 윙하니 날아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 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어두운 길 갈 수 없어 걱정한다.)

그랬더니 개똥벌레 등불 받고 앞장서, 어둡던 길 밝아졌네.

어둡던 길 밝아져 개구리 가기 좋으나

등에 진 짐 무거워 등은 달고 다리 떨렸네.

개구리 할 수 없이 길가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하늘소 씽하니 날아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 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무거운 짐 지고 못 가 걱정한다.)

그랬더니 하늘소 무거운 짐 받아 지고 개구리 뒤따랐네.

무겁던 짐 벗어놓아 개구리 가기 좋으나, 길 복판에 소똥 쌍여

넘자면 굴어나고 돌자면 길 없었네.

개구리 할 수 없이 길가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소똥굴이 휭하니 굴러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걱정하니?)

개구리는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소똥 쌓여 못 가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소똥굴이 소똥 더미 다 굴리어, 막혔던 길 열리었네.

막혔던 길 열리어 개구리 잘도 왔으나,

얻어 온 벼 한 말을 방아 없이 어찌 찧나? 방아 없이 어찌 쓸나?

개구리 할 수 없이 마당가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방아다리 껑충 뛰어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방아 없어 벼 못 찧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방아다리 이 다리 찌꿍 저 다리 찌꿍 벼 한 말을 다 찧었네.

방아 없이 쌀을 찧어 개구리는 기뻤으나 불을 땔 장작 없어

쓸은 쌀을 어찌하나, 무엇으로 밥을 짓나!

개구리 할 수 없이 문턱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이리저리 걱정하였네.

그러자 웬일인가 소시랑게 비르륵 기어오더니 가쁜 숨 허덕허덕 말 물었네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 하니?)

개구리 이 말에 뿌구국 대답했네

(장작 없어 밥 못 짓고 걱정한다.)

그랬더니 소시랑게 풀룩풀룩 거품 지어 흰 밥 한솥 잦히었네.

장작 없이 밥을 지은 개구리는 좋아라고 뜰악에 멍석 깔고 모두들 앉히었네.

불을 받아준 개똥벌레, 짐을 져다준 하늘소, 길을 치워준 소똥굴이,

방아 찧어준 방아다리, 밥을 지어준 소시랑게,

모두모두 둘러앉아 한 솥 밥을 먹었네.

 

집게네 네형제

 

어느 바다가

물웅덩이에

깊지도 얕지도 않은

물웅덩이에

집게 네 형제가

살고 있었네

 

막내 동생 하나를

내어놓은

집게네 세 형제

그 누구나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웠네

 

남들 같이

굳은 껍질쓰고

남들 같이

고운 껍질 쓰고

뽐내며 사는 것이

부러웠네

 

그래서

맏형은

굳고 굳은

강달소라 껍질 쓰고

강달소라 꼴을 하고

강달소라 짓을 했네

 

그래서

둘째 동생은

곱고 고운

배꼽조개 껍질 쓰고

배꼽조개 꼴을 하고

배꼽조개 짓을 했네

 

그래서

셋째 동생은

곱고도 굳은

우렁이 껍질 쓰고

우렁이 꼴을 하고

우렁이 짓을 했네

 

그러나

막내동생은

아무것도 아니 쓰고

아무 꼴도 아니 하고

아무 짓도 아니 하고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워 아니 했네

 

그런데

어느 하루

밀물이 많이 밀어

물웅덩이 밀물에

잡겨버렸네

 

이때에 그만이야

강달소라 먹고 사는

이빨 센 오뎅이가

밀물 다라

떠들어 와

강달소라 보더니만

우두둑 우두둑

깨물었네

 

강달소라 껍질 쓰고

강달소라 꼴을 하고

강달소라 짓을 하던

맏형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런데

어느 하루

난데없는 낚시질꾼

주춤주춤 오더니

물웅더이 기웃했네

 

이때에 그만이야

망둥이 미끼하는

배꼽조개 보더니만

낚시질꾼

얼른 주워

돌에 놓고 돌로 쳐서

오지끈 오지끈

부서졌네

 

배꼽조개 껍질 쓰고

배꼽조개 꼴을 하고

배꼽조개 짓을 하던

둘째 동생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런데

어느 하루

부리 굳은 황새가

진창 묻은 발 씻으러

물웅덩이 찾아왔네

 

이때에 그만이야

황새가 좋아하는

우렁이 하나

기어가자

황새는 굳은 부리

우렁이 등에 쿡 박고

오싹 바싹

쪼박냈네

 

우렁이 껍질 쓰고

우렁이 꼴을 하고

우렁이 짓을 하던

셋째 동생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러나

막내동생

아무것도 아니 쓰고

아무 꼴도 아니 하고

아무 짓도 아니 해서

오뎅이가 떠와도

겁 안 나고

낚시질꾼 기웃해도

겁 안 나고

항새가 찾아와도

겁 안 났네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워 아니하는

막내동생 집게는

평안하게 잘살았네

 

오리

 

오리야 네가 좋은 청명(淸明) 밑께 밤은

옆에서 누가 뺨을 쳐도 모르게 어둡다누나

오리야 이때는 따디기가 되어 어둡단다

 

아무리 밤이 좋은들 오리야

해변벌에선 얼마나 너이들이 욱자지껄하며 멕이기에

해변땅에 나들이 갔든 할머니는

오리새끼들은 장뫃이나 하듯이 떠들썩하니 시끄럽기도 하드란 숭인가

 

그래도 오리야 호젓한 밤길을 가다

가까운 논배미 들에서

까알까알 하는 너이들의 즐거운 말소리가 나면

나는 내 마을 그 아는 사람들의 지껄지껄하는 말소리같이 반가웁고나

오리야 너이들의 이야기판에 나도 들어

밤을 같이 밝히고 싶고나

 

오리야 나는 네가 좋구나 네가 좋아서

벌논의 눞 옆에 쭈구렁 벼알 달린 짚검불을 널어놓고

닭이짗 올코에 새끼달은치를 묻어놓고

동둑넘에 숨어서

하로진일 너를 기다린다

 

오리야 고운 오리야 가만히 안겼거라

너를 팔어 술을 먹는 노()장에 영감은

홀아비 소의연 침을 놓는 영감인데

나는 너를 백동전 하나 주고 사오누나

 

나를 생가하든 그 무당의 딸은 내 어린 누이에게

오리야 너를 한쌍 주드니

어린 누이는 없고 저는 시집을 갔다건만

오리야 너는 한쌍이 날어가누나

 

따디기 : 한낮의 뜨거운 햇빛 아래 흙이 풀려 푸석푸석한 저녁 무렵.

멕이기에 :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다'는 뜻의 평북 방언. '쏘다니다'의 뜻으로도 쓰임

장뫃이 : 장날이 되어 장터에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 붐비는 것.

:

논배미 : 논의 한 구역으로 논과 논 사이를 구분한 것.

: 진흙탕. .

집검불 : 벼알이 엉성하게 달려 있는 벼의 여러 가닥이 어지럽게 뒤섞여 뭉쳐있는 것 또는 볕짚 찌그러기의 뭉터기.

닭이짗 올코 : 닭의 깃털을 붙여서 만든 올가미.

새끼달은치 : 새끼다랑치. 새끼줄을 엮어서 만든 끈이 달린 바구니.

동둑 : 못에 쌓는 큰 둑. 동둑. 방죽.

하로진일 : 하루종일.

소의연 : 소의 병을 침술로 낫게 해주던 사람.

 

촌에서 온 아이

 

촌에서 온 아이여

촌에서 어젯밤에 승합자동차를 타고 온 아이여

이렇게 추운데 웃동에 무슨 두룽이 같은 것을 하나 걸치고

아랫도리는 쪽 발가벗은 아이여

뽈다구에는 징기징기 앙광이를 그리고 머리칼이 놀한 아이여

너는 오늘 아침 무엇에 놀라서 우느구나

분명코 무슨 거짓되고 쓸데없는 것에 놀라서

그것이 네 맑고 참된 마음에 분해서 우는구나

이 집에 있는 다른 많은 아이들이

모도들 욕심 사납게 지게굳게 일부러 청을 돋혀서

어린아이들 치고는 너무나 큰소리로 너무나 튀겁많은 소리로 울어대는데

너만은 타고난 그 외마디 소리로 스스로웁게 삼가면서 우는구나

네 소리는 조금 썩심하니 쉬인 듯도 하다

네 소리에 내 마음은 반끗히 밝어오고

또 호끈히 더워오고 그리고 즐거워 온다

나는 너를 껴안어 올려서 네 머리를 쓰다듬고 힘껏

네 작은 손을 쥐고 흔들고 싶다

네 소리에 나는 촌 농사집의 저녁을 짓는 때

나주볕이 가득 들이운 밝은 방안에 혼자 앉어서

실 감기며 버선짝을 가지고 쓰렁쓰렁 노는 아이를 생각한다

또 여름날 낮 기운 때 어른들이 모두 벌에 나가고 텅 비인 집 토방에서

햇강아지의 쌀랑대는 성화를 받어가며 닭의 똥을 주어먹는 아이를 생각한다

촌에서 와서 오늘 아침 무엇이 분해서 우는 아이여

너는 분명히 하늘이 사랑하는 詩人이나 농사꾼이 될 것이로다

 

웃동 : 윗도리.

두룽이 : 도롱이. 재래식 우장의 한 가지. 짚이나 띠 같은 풀로 안을 엮고 겉은 줄기를 드리워 끝이 너덜너덜함.

징기징기 : 세수를 안해서 볼어 더러운 자국이 드문드문 있는 얼룩.

앙광이 : 얼굴에 검정이나 먹 따위로 함부로 칠해 놓은 것.

지게굳게 : 타일러도 듣지 않고 고집스럽게.

튀겁 : (: 겁낼겁)

스스로웁게 : 자연스럽게.

썩심하니 : 목이 쉰 소리를 내는.

반끗히 : 살짝.

호끈히 : '후끈히'의 작은 말.

나주볕 : 저녁 햇빛.

쓰렁쓰렁 : 남이 모르게 비밀리 하는 모양. 일을 건성으로 하는 모양.

 

두보(杜甫)나 이백(李白) 같이

 

오늘은 정월(正月)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 로다

옛날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 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 먹고

일가 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였만

나는 오늘 때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이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고향 사람의 조그마한

가업 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고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옛날로부터 대대로 이 날엔 으레히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 날은 그 어느 한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飯館)을 찾어 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든 본대로 원소(元宵)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옛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을

외로이 타관에 나서도 이 원소를 먹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득하니 슬펐을 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득하니 슬플 것이로다

, 이 정월(正月) 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胡弓)소리 삘삘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엔 자꾸 이 나라의 옛 시인들이

그들의 쓸쓸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나 이백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무려나 이것은 옛투의 쓸쓸한 마음이다

 

객고 : 객지에서 당하는 고생.

억병 : 술을 매우 많이 마시는 모양

맛스러운 : 맛이 없는

반관(飯館) : 음식점.

원소 : 원소절에 먹는 떡.

느꾸어 : 느꺼워. 그 무엇에 대한 느낌이 가슴에 사무쳐서 마음에 겨운

오독독 : 화약을 재어 점화하면 터지는 소리를 자꾸 내면서 불꽃과 함께 떨어지게 만든 것.

호궁 : 중국 전통 현악기의 한가지. 모양은 바이얼린과 비슷하며, 대나무로 만들어 뱀껍질을 입혔음.

 

선 우 사 ( 膳 友 辭 )

 

낡은 나조반에 힌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힌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무슨이야기라도 다할것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긴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소리를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소리 배우며 다람쥐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히여젔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하나 손아귀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않다

힌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나조반 : 나조쟁반. 갈대를 한 자쯤 잘라 묶어 기름을 붓고 붉은 종이로 둘러싸서 초처럼 불을 켜는 나조대를 밑에서 받치는 쟁반

해정한 : 맑고 깨끗한

모래톱 : 넓은 모래벌판, 모래사장

하구긴날 : 하루의 긴 시간

물닭이 : 비오리의 오리과에 속하는 물새

소리개소리 : 솔개소리. 솔개는 무서운 매의 일종.

세괏은 : 매우 기세가 당당하고 또는 억세고 날카로운.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퉁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 안으로 가면 뒤울 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구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당구신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오력 : 오금, 무릎의 구부리는 안 쪽.

디운귀신 : 지운귀신, 땅의 운수를 맡아본다는 민간의 속신.

조앙님 : 조왕님, 부엌을 맡은 신, 부엌에 있으며 모든 길흉을 판단함.

데석님 : 제석신, 무당이 받드는 가신제의 대상인 열두 신, 한 집안 사람들의 수명, 곡물, 의류, 화복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본다 함.

굴통 : 굴뚝.

굴대장군 : 굴때장군, 키가 크고 몸이 남달리 굵은 사람. 살빛이 검거나 옷이 시퍼렇게 된 사람.

얼혼이 나서 : 정신이 나가 멍해져서.

곱새녕 : 초가의 용마루나 토담 위를 덮는 짚으로, 지네 모양으로 엮은 이엉.

털능귀신 : 철륜대감. 대추나무에 있다는 귀신.

연자간 ; 연자맷간. 연자매를 차려 놓고 곡식을 찧거나 빻는 큰 매가 있는 장소.

연자당귀신 : 연자간을 맡아 다스리는 신.

회리서리 : 마음 놓고 팔과 다리를 휘젓듯이 흔들면서.

 

북방에서 _ 정현웅에게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扶餘)를 숙신(肅愼)을 발해(勃海)를 여진(女眞)을 요

()를 금()

흥안령(興安嶺)을 음산(陰山)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무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잦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

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야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하늘로 땅으로 - 나의 태반(胎盤)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

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 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흥안령(興安嶺) : 중국 동북지방의 대흥안령과 소흥안령을 아울러 일컬음. 서쪽을 북동 방향으로 달리는 연장 120Km의 대흥안령 산계와 북부에서 남동 방향으로 옮겨 흑룡강을 따라 달리는 연장 400Km의 소흥안령 산계로 나뉨.

음산 : 음지산맥 부근의 지역.

아무우르(Amur) : 흑룡강 주변의 지역.

숭가리(Sungari) : 송화강. 중국 만주에 있는 큰강.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북으로 흘러 눈강(嫩江)과 합류하여 흑룡강으로 빠짐.

장풍 : 창포. 뿌리는 한약재로 쓰임.

오로촌 : 만주의 유목민족. 매우 예절 바른 부족으로 한국인과 유사함.

멧돌 : 멧돼지.

쏠론(Solon) : 남방 퉁구스족의 일파. 아무르강의 남방에 분포함.

돌비 : 돌로된 비석

미치고 : 몹시 불고

보래구름 : 많이 흩어져 날리고 있는 작은 구름덩이

 

'호박꽃 초롱' 서시

      

한울은

울파주 가에 우는 병아리를 사랑한다

우물돌 아래 우는 돌우레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버드나무 밑 당나귀 소리를 임내내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풀 그늘 밑에 삿갓 쓰고 사는 버섯을 사랑한다

모래속에 문잠그고 사는 조개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두툼한 초가지붕 밑에 호박꽃 초롱혀고 사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공중에 떠도는 흰 구름을 사랑한다

골짜구니로 숨어 흐르는 개울물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아늑하고 고요한 시골거리에서 쟁글쟁글 햇볕만 바래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이러한 시인이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데

이러한 시인이 누구인 것을 세상은 몰라도 좋으나

그러나

그 이름이 강소천(姜小泉) 인 것을 송아지와 꿀벌은 알을것이다

 

울파주 : , 수수깡, 갈대, 싸리 등을 엮어 세워 놓은 울타리.

돌우래 : 말똥 벌레나 땅강아지와 비슷하나 크기는 조금 더 크다. 땅을 파고 다니며 '오르오르' 소리를 낸다. 곡식을 못 살게 굴며 특히 콩밭에 들어가서 땅을 판다.

임내내는 : 흉내내는

 

허 준 ( 許 俊 )

 

그 맑고 거룩한 눈물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여

그 따사하고 살틀한 볕살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여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에서 당신은

이 세상에 나들이를 온 것이다

쓸쓸한 나들이를 단기려 온 것이다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 사람이여

당신이 그 긴 허리를 굽히고 뒷짐을 지고 지치운 다리로

싸움과 흥정으로 왁자지껄하는 거리를 지날 때든가

추운 겨울밤 병들어 누운 가난한 동무의 머리맡에 앉어

말없이 무릎 우 어린 고양이의 등만 쓰다듬는 때든가

당신의 그 고요한 가슴안에 온순한 눈가에

당신네 나라의 맑은 하늘이 떠오를 것이고

당신의 그 푸른 이마에 삐여진 어깨쭉지에

당신네 나라의 따사한 바람결이 스치고 갈 것이다

 

높은 산도 높은 꼭다기에 있는 듯한

아니면 깊은 물도 깊은 밑바닥에 있는 듯한 당신네 나라의

하늘은 얼마나 맑고 높을 것인가

바람은 얼마나 따사하고 향기로울 것인가

그리고 이 하늘 아래 바람결 속에 퍼진

그 풍속은 인정은 그리고 그 말은 얼마나 좋고 아름다울 것인가

 

다만 한 사람 목이 긴 시인(詩人)은 안다

'도스또이엡흐스키''조이스'며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일등

가는 소설도 쓰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어드근한 방안에 굴어 게으르는 것을

좋아하는 그 풍속을

사랑하는 어린 것에게 엿 한 가락을 아끼고 위하는 아내에겐

해진 옷을 입히면서도

마음이 가난한 낯설은 사람에게 수백량 돈을 거저 주는 그 인정을

그리고 또 그 말을

마람은 모든것을 다 잃어버리고 넋 하나를 얻는다는 크나큰

그 말을

그 멀은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에서

이 세상에 나들이를 온 사람이여

이 목이 긴 시인이 또 게사니처럼 떠곤다고

당신은 쓸쓸히 웃으며 바둑판을 당기는구려

 

허준 : 1910.2.27 ~ ? . 이효석, 이태준, 최명익 등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당대최고의 소설가. 조선일보 기자와 만주 신경 생활을 거쳐 북한에서 김일성 대학 영문학과 교수를 역임. 작품에는'탁류','습작실에서','속습작실에서','평대저울','잔등' 등이 있고 심리적이고 의식적인 소설가 제 1인자로 내면의 묘사를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하여 일경지를 이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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