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시모음


1.게


어기적거리는, 엉성한, 눈을 흘기는 문체로 써야겠다. 아무래도 나는 순하고 착한 노인은 못될 것 같다. 그렇다고 일부러 독 짖는 늙은이가 되겠다는 말은 아니다. 육신은 느리게 늙어가고 인생은 빨리 썩어간다. 아마 죽은 뒤에는 우울했던 해골도 이빨이 빠진 채 웃으리라. 이런 말도 아직은 혀 한 조각이 뭉쳐져 있어 하는 것이다.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에 걸려든 것 같은 일상적 삶을 게요리전문점 수족관의 게들도 경험한다. 그들도 몸을 팔려고 대도시로 왔다. 누가 내 몸을 사서 분해하거나 해체해도 그 왕성한 식욕을 원망하지 않겠소! 게들은, 왕게든 털게든 대게든, 늠름하게 최후를 맞이하겠다는 자세로 수족관 유리 밖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지금은 바퀴들이 지나간다. 구름은 흘러오고 사람들은 흘러가고. 사람 외에는 보이는 영장류가 없다. 그러나 밖으로 끌려나온 뒤에 게는 일종의 괴상한 광물덩어리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보이는 것도 없고 보는 자도 없고 도대체 뭐가 뭔지, 과거에 참으로 게였는지, 텅빈 껍데기가 현재인지, 미래는 이제 없는 건지, 이게 그 게 찌꺼기인지, 저게 그 게의 잔해인지, 모든 게 가짜인지 헛것인지 뒤죽박죽 너절하게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그래도 靈을 믿었던 게는 다리가 없어도 어기적거리고, 눈이 없어도 가야 할 길을 보며, 마침내 바다로 돌아간다고 말해야 할까.

 

2.뼈의 음악


만약 늑골들이 현이었다면, 그리고 등뼈가 활이였다면, 바람은 하나의 등뼈로 여러개의 늑골들을 긁어매며 연주를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막이라는 청중으로 꽉 찬 사막에서 뼈들의 마찰음과 울림은 죽은 늑대의 뼈나 말의 뼈와 공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적막이라는 청중의 마음을 깊이 긁어 놓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뼈의 음악은 그렇다 아무런 악보도없이 뼈로 뼈를 연주해 텅 빈 뼈들을 뒤 흔든다 청중으로는 적막이 제일이고 연주자로는 바람이 적합하다


3.모자를 쓴 태양

 

칸나꽃 수만 송이를 토해내던 태양이
여기서는 돌덩어리를 굽고 있을 뿐이다
두개골이 뜨겁다
어딘가에 바삭바삭한 미라들이 있을 것이다
큰 모자를 쓰고 올 걸 그랬다
눈이 부시다
칸나!
태양에 바치는 숫처녀의 심장처럼
붉은 칸나를 본 게 지난 해 여름이었나
정말 장미와 비교할 수 없는
크고 싱싱한 심장 같은 꽃이었다
두근거리는 대지 위의 초목들과
나비들의 향기
그러나 이 물 마른 땅엔
번쩍거리며 누워있는 모래들이 있을 뿐이다
물을 벌떡벌떡 들이킨다
태양의 모자는 녹아버린 것 같다

 

4.지평선                                                    

1
어느 날 내가 눈을 떴을 때
사방이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놀랐다
어떻게 사방에 아무것도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지평선의 충격은 그렇다
아무것도 없는데 아득한 곳에 선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직선이 아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커다란 선은 둥글었고
그 텅 빈 원 속에
원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텅 빈 원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사막의 태양
소리 없이 몰려와 지평선을 뭉개버리는 화산재 같은 구름들

2
지평선은 언제까지 지평선일까
가도 가도
원의 중심에 내가 있고
내가 가면 거대한 공허가 따라온다

3
여기가 무밭이었다면
사방이 무뿐인 어마어마한 무밭에서
내가 애벌레였다면
무잎을 갉아먹으며 나는 나비를 꿈꾸었을까
날마다 이 부에서 저 무로 꾸물꾸물 기어다니며
도대체 내가 무밭의 어느 지점에 있는 것인지
눈 먼 애벌레인 나는 끝없이 펼쳐진 무밭을
그 무의 장관을 과연 상상하기나 했을까
밤이면 무꽃들 속으로 별들이 내려오고
별밭에 무꽃들이 흔들리는 어마어마한 무밭에서
내가 애벌레가 아니라
무밭의 주인이었다면  
무재벌을 꿈꾸었을까
둘러보고 사방을 둘러봐도 무 하나 없다
배추 한 포기 없다
둥근 황무지는 울타리가 없다
가없는 곳에서 가없는 곳으로 바람 분다
서늘하다
지금은 고비의 5월

 

5.거울 


거울을 볼 때마다
점점 젊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요귀妖鬼지 사람이랴

거울공장 노동자들은
늘 남의 거울을 만들어놓고
거울 뒤편에서 주물呪物처럼 늙는다

구리거울을 만들던 어느 먼 시절의 남자를
훤히 비추던 보름달이
곰팡이도
녹도
이끼도 없이
빌딩 모서리 스모그 위로 솟고 있을 때

문득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다가
껄껄껄 웃을 만큼
낙천적인 해골은 누구인가?

* 거울이 하나의 눈이라면 그것은 눈꺼풀이 없는 눈, 눈썹이 없는 눈, 눈동자가 없는 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달마가 늘 깨어 있으려고 눈꺼풀을 잘라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아무튼 거울이 하나의 눈이라면 그 눈은 우리를 무심하게 보고 있다. 그 무심은 허공과 다르지 않다. 허공은 얼마나 큰 거울인가. 안과 밖, 앞과 뒤가 없는, 맑고 고요한 거울이 허공이다. 무수히 흘러가는 것과 절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을 명상하기 위해 인간은 거울을 만든 것이 아닐까?

 

6.흰 개

시베리안허스키는 아니었다
그날 나는 늙은 개를 따라가고 있었다
흰 털이 더러운
그 개는
북극 늑대의 혈통 같았다
며칠 굶주렸는지
쓰레기자루 앞에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다른 음식쓰레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두툼한 외투 차림에 가방을 든 사람들이
직립보행하는 대도시의 아침
스모그가 태양과 함께 중천을 향하는 소음 속에서
앙상한 몸뚱이를 네 발로 떠받친 늙은 개는
꺼칠했고
핼쑥했고
고독했다
큰길가에서 벗어나
간혹 노숙자들이 해바리기를 하는 공원 쪽으로
털레털레 걸어가는 그 떠돌이 개를 나는 따라가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까닭은 묻어두자
아무튼 그 개가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말을 해야겠다
그날 나는 천지간에 자욱한 눈보라와
아무런 발자국이 없는 설원을 보고 있었다
백야에 눈이 크게 열리는
흰 올빼미도 상상하면서

 

7.진달래꽃

 
그동안 없었던 일이다
드디어 우리 동네에도 콜걸들이 쳐들어왔다
누가 보기에도 민망한
엉덩이며 젖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광고전단지들이 골목길에 뿌려진 것이다

실낙원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아이들은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간다
한눈을 팔면
등교길 동산에는
진달래꽃이 피었다

영원한 봄이 없는 줄 알지만
싸구려 매음굴에 우글거리는 음습한 욕정들을
저 동산으로 옮겨서
진달래꽃이나 철쭉꽃으로
벌겋게 피워봤으면…… 

 

8.그림자

 
등에 펜이 꽂힌 채
글을 쓰는 것은 아닌지,
물병좌 저쪽 무변(無邊)에
물안개처럼 일어선 그림자가 구부정하게
고개 돌려 나를 굽어볼 때
등 구부리고 밤의
백지 위에
뭔가를 뿜어내던 나도
고개 돌려 그를 바라본다.
큰 밤을 초라한 어둠으로
물들이는 것은 아닌지,
앙상한 손으로
백지 위에
오늘은 이렇게 쓴다,
등에 쟁기 박힌 하늘소가
별밭을 갈아엎는다, 라고.

 

9.흔   적

 

맑은 하늘에 비행기구름 두 줄

생겨났다 이내 사라진다.

'저 흔적을 남기려고 제트비행기가 날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믄요'

'비행기구름은 오래 가지 않나 보죠?'

'그러믄요. 그림자 얹는 하늘이니까요'

잠시 하늘 보던 시인과 농부는 다시 밭일을 한다.

호미 끝에 대가리 찍힌 지렁이가

갈 생각을 않고 몸을 뒤틀고 있다.

죄 없기가 이처럼 힘들다.

콩밭의 모기들이

대낮인데 목덜미를 쏘아댄다.

敵 없기가 이렇게 힘들다.

'아무하고나 싸우면 웃음거리가 되겠지요?'

'그러믄요, 헛것과 싸워도 흔적은 남지요'

 

10.가락동 수산물 시장

상자들거대한 내장을 메꾸기 위해트럭들이 온다
밤 열시 희디흰 상자마다 시체들이다
비린내는 코를 찌른다
거대한 내장의 냄새는 이런 것일까
물고기의 썩은 내장으로 뒤덮인 하수도의 악취가이런 것일까
바다에서 트럭들이 몰려온다
장의차 같은 트럭들이썩기 전에 썩기 전에 싱싱한 시체를 팔겠다고 얼음투성이 상자들을 싣고 온다
저것은 우럭 상자저것은 오징어 상자저 톱밥 상자는게들이 잔뜩 들어 있다
어떤 도살장에도 이렇게 활발한 칼놀림은 없다밤에도 칼들이힘찬 지느러미처럼 움직인다
거대한 인간의 내장을 메꾸기 위해장어 껍질 벗기기수조에 붉은 고무통에
장어들이 국수처럼 수북하다
가죽치마를 두른 남자는 칼을 들고 장어를 한 마리씩 도마 위에 솟은 못 앞으로 데려가서 대가리를 못에 박고긴 껍질을 잡아당겨 홀딱 벗긴다
그래도 두피는 붙어 있다
벗겨진 몸은 빨개도 못에 층층이 꿰이는 대가리들은 눈을 뜬 채 검게 번들거린다
살점은 알뜰하게 도려내진다
남는 것은피 흘리는 대가리와 기다란 뼈장어의 십자가에는 오직 높이 솟은 못 하나와 대가리와 긴 뼈가 있을 뿐이다
보리새우수염이 긴 보리새우들은 꼬부랑 할아버지마냥 죽어서 좌판 위에 나란히 모로 줄을 맞춰 누워 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보리새우는 등이 굽은 채고무통 얕은 물 속에서 숨쉰다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머뭇거리는 새우의 발걸음으로 앞으로 한 발, 뒤로 두 발,혹은 제자리걸음, 지금쯤바다 밑의 보리는 누렇게 익었을까, 보리새우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쯤바다 밑의 보리들은 물결칠까,이삭이 패었을까, 멍게 멍게는 가락동이 어딘지 알기나 하는 것일까
바다 밑 단풍철에 붉게 물든 주먹처럼 주먹처럼 주먹밥처럼 멍게는 있다
멍게는 해삼보다 헐값인 존재다 존재?가락동 시장에 무슨 존재가 있단 말인가

 
11.그로테스크 : 최승호

나는 말을 한다. 있을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 어느 날 나는 지상에 나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빙하기가 지상의 피를 다 얼려버린 것이다. 만약 내가 사람이었다면 내장까지 다 얼어붙은 채 동사(凍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만은 예외였다. 얼어죽기는커녕 눈보라가 칠 때마다 살이 찌는 느낌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뚱뚱한 몸에 설편(雪片)들이 들러붙어 나를 더 뚱보로 만들고 있었다.

옥상 위 뚱보의 고독, 그렇다. 소름 끼치는 무서운 고독이 빙하기에 있었다. 내려다보면 거리는 텅 빈 백색 동굴처럼 고요했다. 마네킹이 뛰쳐나와 울부짖을 것만 같은 적막의 거리. 소음도 소란도 없었다. 사람 하나 없었고 개 한 마리 없었다. 죽었는데 나만 혼자 구경꾼처럼 남아 있어도 되는 것일까. 마치 지구의 종말에 대한 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어느 우울한 외계인처럼, 빌딩 옥상 위에서 허구헌 날 망원경도 설안경(雪眼鏡)도 없이 얼음과 눈에 파묻힌 문명의 폐허를 지겹도록 지켜보는 것, 별로 살아남고 싶지도 않았지만 산 자의 몫은 이것이다.

시간은 얼음과 더불어 굳어버린 것일까. 옥상에서 바라볼 때 적어도 인간적인 시간은 끝장이 난 것처럼 보였다. 변화를 몰고 올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과거는 얼음으로 굳어진 현재일 뿐이었다. 흘러가는 것도 없고 흘러오는 것도 없이 모든 사물들이 굳어 머무는 세상의 한 꼭대기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종말의 현장 검증에 필요한 유일한 증인으로서 계속 이렇게 소금 기둥처럼 얼어붙은 채 결빙된 선과 면과 굳어버린 각도와 구도들을 한없이 관찰해야 하는 것일까. 차라리 내가 화가였다면 이 장엄한 설경(雪景)을 거의 흰 물감만으로도 캔버스에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능 있는 화가였다해도 지금은 그림 그릴 심정도 아니고 붓 하나 없다. 물감도 없고 관객도 없고 뭐든지 없다.

사정이 그렇다. 나는 옥상에서 내려갈 수 없는 것이다. 어제는 진종일 눈보라가 쳤다. 이미 지워버린 세상을 완벽하게 뭉개버리겠다는 기세로 유리조각 같은 눈발들이 끝없이 날아왔다. 하늘도 땅도 없고 오직 눈보라만 보였다.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 왠지 불안했다. 밑이 보이지 않으니까 추락할 것 같았다. 내가 잠든 사이 빌딩이 붕괴되기를……현기증 속에서 그런 자살 같은 생각을 했다. 왜 나만 혼자 죽지도 못하고 빙하기에 불멸의 존재인 양 남아 있으란 법이 있는가. 이건 끔찍한 형벌이다. 옥상은 나의 감옥이고. 그렇지 않은가.

어쩌면 존재의 이유라는 게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감옥을 위해서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감옥이 존재한다. 이상한 논리지만, 적어도 이 논리는 어처구니없이 고독하고 암담한 나의 현존보다는 덜 이상하고 덜비논리적이다. 이론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면 이상한 이론들을 많이 만들어서 불안한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안심시켜야 한다. 물론 제멋대로 만드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존재의 이유, 그럴듯한 말이다. 똥주머니가 대가리 안에 들어 있는 문어처럼, 이유는 대가리 안에서 만들어져 문어발처럼 너희들을 움직였다. 너희들은 이제 다 얼어죽었기 때문에 존재의 이유는 나 하나만의 문제이다. 하지만 나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해도 움직일 수 없지 않은가. 소금기둥처럼 부동(不動)의 자세로 굳어 있는 나에게 사실 이유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없는 게 낫다. 생각은 그렇지만 이유가 없으면 불안해진다. 바로 이 점이 문어와 나의 차이인 듯하다. 문어는 존재의 이유를 몰라도 움직이지만 나는 움직이는 데 이유가 필요하고 그것이 없으면 되도록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움직일 수도 없는 주제에 이런 말을 하다니! 나도 두족류로 태어나볼걸 그랬다. 대가리에 발이 달려 결국 가슴이 생략된 두족류 말이다.

밤이다. 보름달이 광활한 얼음도시를 비추며 떠오른다. 텅 빈 건물마다 들어찬 어둠, 이제는 최후의 그 늙은 유령도 어디서 얼어죽은 것 같다. 날마다 교회 지붕에 항아리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모르긴 해도 아마 자살했을 것이다. 빙하기의 유령이야말로 빙판 위에서 오래 방황하지 말고 용단을 내려 제 목을 끊는 순간 얼굴을 집어 던져 거울처럼 산산조각이 나게해야 미혹에서 깨어나는 길이 열릴 것이다. 훌륭한 충고 같다. 누구에게 충고해 본 적은 없지만 기억해 둘만한 말을 모처럼 하는 것같다. 구원이 끝난 밤, 지상에는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 옥상 위에 구원받지 못한 내가 하나 남아 있지만 바라는 것이 오직 죽음이기 때문에 이 빙하기에 구원의 문제는 끝장이 났다. 들을 사람 하나 없는데 왜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일까.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이다. 봄이 와야 나는 죽을 수가 있고 말을 멈출 수가 있다. 그리하여 이렇게 밤의 옥상 위에서 고독만이 나의 뼈라고 생각하면서, 강물이 흐르고 새들이 지저귀는 먼 봄을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2.뙤약볕 : 최승호

맑은 날엔 자갈이 내 뼈이다.
흐린 날엔 내 피가
폐수인지 녹물인지 놀인지
모르게 될 것이다.

개미들이 내 발톱마냥 걷고 있다.

어느 날 몸뚱이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눈부시다.

13.대설주의보 :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14. 나는 숨을 쉰다 : 최승호

신기해라
나는 멎지도 않고 숨을 쉰다.
내가 곤히 잠잘때도
배를 들썩이며
숨은, 쉬지않고 숨을 쉰다.
숨구멍이 많은 잎사귀들과 늙은 지구 덩어리와
움직이는 은하수와 모든 별들과 함께
숨은, 쉬지 않고 숨을 쉰다.
대낮이면 황소와 태양과 날아오르는 날개들과 물방울과
장수하늘소와 함께
뭉게구름과 함께
낮달과 함께
나는 숨을 쉰다.
인간의 숨소리가 작아지는 날들속에
자라나는 쇠의 소리
관청의 스피커 소리가 점점 커지는 날들속에

답답해라
나는 숨을쉰다.
튼튼한 기관지도 없다.
폐활량도 크지 않고
가슴을 열러
갈아끼울 싱싱한 허파도 없다.
산소를 실컷 마시지 못해
허공에서 입이 커다랗게 벌어지는 물고기처럼
징역에 지친 죄수처럼
때때로 헐떡이고
연거푸 기침을 하면서
숨은 ㅡ 쉬지않고 숨을 쉰다.

그리고 움직이는 은하수의 모든 별들과 함께
죽어서도 나는 숨을 쉴것이다.

15.밤의 다리 : 최승호

그는 다리 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마치 이승도 저승도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처럼

다리 : 벅찬 고통에 지쳐 찾아온 사람들에게
행복의 얼굴로 물귀신들이 유혹하는 곳
다리 : 흰뱀 같은 수은등이 허공에 목을 늘이고
"너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속삭이면 물고기 밥이 된 시체가 떠오르는 곳

죽음에의 의지는 늘
큰형님 뻘인 삶에의 의지가 꾸짖고 달래주기 바란다
이승도 저승도 둘 다
두려움 없이 맞서고 맞이할 만큼
마음이 너그럽게 철들 때까지

16.터벅터벅 걸어갔던 길 : 최승호

누런 먼지의 회오리 일으키며
대한통운 트럭이 달려오고
비키느라 뒤뚱거리며 뛰던 닭들이
하늘을 힘차게 날고 있었다

저 길든 날짐승들이 하늘 나는 법을 되찾고
뭘 잡아 먹으려고만 날개치는 새가 아니라
더러는 드넓게 높이 나는 즐거움 누리려고 날아오르듯
나 자유로운 날

하지만 나 역시 뒤뚱거리며 뛰는 불안한 날들을 살고 있었다
사육되면서 도살의 날을 향해 다가간다고
무력감으로 우울이 뚱뚱해져 간다고
중얼대면서 터벅터벅
긴 가문 날 뙤약볕 속을 걷고 있었다

문득
주황색 대한통운 트럭 위에 덜컹대며
짐짝들처럼 코뚜레 꿴 황소들처럼 실려갔던 날들의
늙은 예비군의 비애가 스쳐가고
다시 터벅거리며 산을 돌아 산길 가면 마을 가까이

먼지 쓴 꽃들이 길섶을 따라 피어 있었다
길 한복판을 비켜서
비켜서 사는 비애로 얼룩진 여린 마음씨들과도 같이
꽃들은 길섶을 따라 피어 있었다

17. 깊은 밤 : 최승호

내가 비명을 질렀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면 방안은 어둠
들여다볼 수 없고 붙잡을 데 없는 텅 빈 칠흑의 어둠
나는 텅 빈 공간을 떠내려가는 지구인이다
대한국민이다
내가 비명을 질렀는지 모르겠다
결실이 아니라
악몽을 정리하는 밤
바람 소리가 들린다
새끼줄에 엮인 무잎들이 부스럭거린다
당신 사람이요 깻망아지요
배를 깔고 엎드린 나에게 흐린 목소리가 묻는다
몇 시나 되었을까
베개 속의 왕겨들이 부스럭거린다
칠흑의 어둠 구석 야광시계의 둥근 유리알 속에서
푸른 열두 개의 숫자들이
일그러진 애벌레들 모양 귀기 서린 빛을 뿜는다
당신 사람이요 넙치요
나는 지옥이 어딘지 모르겠다 새끼줄에 엮여
북어처럼 힘 못 쓰는 인간들이
북어 대가리처럼 입을 찢어질 듯이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질러도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는 인간들이
쇠망치에 얻어맞은 못대가리처럼
찌든 내 큰 골로는 모르겠다
새끼줄에 엮인 무잎들이 부스럭거린다
베개 속의 왕겨들이 부스럭거린다
왜 이렇게 밤은
영영 날이 새지 않을 것처럼
길게 계속되는 것일까

18. 무인칭의 죽음 : 최승호

나에게서 인간이란 이름이
떨어져 나간 지 이미 오래
이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흩어지면 여럿이고
뭉쳐져 있어 하나인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왜 날 이렇게 만들어놨어
난 널 해치지 않았는데
왜 날 이렇게 똥덩이같이
만들어놨어, 그러고도 넌 모자라
자꾸 내 몸을 휘젓고 있지
조금씩 떠밀려가는 이 느낌
이제 나는 하찮고 더럽다
흩어지는 내 조각들 보면서
끈적하게 붙어 있으려 해도
이렇게 강제로 떠밀려가는
변기의 생, 이제 나는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니다


19. 몸의 신비, 혹은 사랑 : 최승호

벌어진 손의 상처를
몸이 스스로 꿰매고 있다.
의식이 환히 깨어 있든
잠들어 있든
헛것에 싸여 꿈꾸고 있든 아랑곳없이
보름이 넘도록 꿰매고 있다.
몸은 손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몸은 손이 달려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구걸하던 손, 훔치던 손,
뾰족하게 손가락들이 자라면서
빼앗던 손, 그렇지만
빼앗기면 증오로 뭉쳐지던 주먹,
꼬부라지도록 손톱을
길게 기르며
음모와 놀던 손, 매음의 악수,

천년 묵어 썩은 괴상한 우상들 앞에
복을 빌던 손,
그 더러운 손이 달려 있는 것이
몸은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벌어진 손의 상처를
몸이 자연스럽게 꿰매고 있다.
금실도 금바늘도 안 보이지만
상처를 밤낮없이 튼튼하게 꿰매고 있는
이 몸의 신비,

혹은 사랑.

20. 자동판매기/최승호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는 게
커피가 쏟아지는 버튼을 눌러 버렸다
습관의 무서움이다

무서운 습관이 나를 끌고다닌다
최면술사 같은 습관이
몽유병자 같은 나를
습관 또 습관의 안개나라로 끌고다닌다

정신 좀 차려야지
고정관념으로 굳어 가는 머리의
자욱한 안개를 걷으며
자, 차린다. 이제 나는 뜻밖의 커피를 마시며

돈만 넣으면 눈에 불을 켜고 작동하는
자동판매기를
賣春婦라 불러도 되겠다
黃金교회라 불러도 되겠다
이 자동판매기의 돈을 긁는 포주는 누구일까 만약
그대가 돈의 權能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대는 돈만 넣으면 된다
그러면 賣淫의 자동판매기가
한 컵의 사카린 같은 쾌락을 주고
十字架를 세운 자동판매기는
神의 오렌지 주스를 줄 것인가


 21.고슴도치의 마을/최승호(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나비처럼 소풍가고 싶다
나비처럼 소풍가고 싶다
그렇게 시를 쓰는 아이와 평화로운 사람은 소풍을 가고
큰 공을 굴리는 운동회날
코방아를 찧고 다시 뛰어가는 아이에게
평화로운 사람은 박수갈채를 보낼 것이다

산사태는 왜 한밤중에
골짜기 집들을 뭉개버리는가
곰은 왜 마을을 습격하고
산불은 왜 마을 가까운 산들까지 번져 오는가
한밤중에 횃불을 드는 마을의 소리
한밤중에 웅성거리는 마을의 소리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마을에서
온몸에 가시바늘을 키운다
평화로운 사람은 문을 걸고
잠 속에서도 곰에게 쫓길 것이다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집에서
돌담을 높이 쌓는다
평화로운 사람은 한숨을 쉬고
문풍지 우는 긴 겨울밤엔 莊子를 읽으리라

 

22.세속도시의 즐거움·2 -최승호

 

상복 허리춤에 전대를 차고
곡하던 여인은 늦은 밤 손익을
계산해 본다.

시체 냉동실은 고요하다.
끌어모은 것들을 다 빼앗기고
(큰 도적에게 큰 슬픔 있으리라)
누워 있는 알거지의 빈 손,
죽어서야 짐 벗은 인간은
냉동실에 알몸거지로 누워 있는데

흑싸리를 던질지 홍싸리 껍질을 던질지
동전만한 눈알을 굴리며 고뇌하는 화투꾼들,
그들은 죽음의 밤에도 킬킬대며
잔돈 긁는 재미에 취해 있다.

외로운 시체를 위한 밤샘,
쥐들이 이빨을 가는 밤에
쭉정이 되는 추억의 이삭들과 침묵 속에서
냄새나는 이쑤시개를 들고 기웃거리는
죽음의 왕.

 

시체 냉동실은 고요하다.
홑거적 덮은 알몸의 주검이
혀에 성에 끼는 추위 속에 누워 있는 밤,
염장이가 저승의 옷을 들고 오고
이제 누구에게 죽음 뒤의 일을 물을 것인지
그의 입에 귀를 갖다댄다
죽은 몸뚱이가 내뿜는다 해도
서늘한
허(虛)

 

 23.멍게/최승호

 
멍청하게 만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멍게는 참 조용하다.
천둥벼락 같았다는 유마의 침묵도
저렇게 고요했을 것이다.

 

허물덩어리인 나를 흉보지 않고
내 인생에 대해 충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멍게는 얼마나 배려깊은 존재인가?

 

바다에서 온 지우개 같은 멍게

멍게는 나를 멍청하게 만든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멍!


소리를 내면 벌써 입안이 울림의 공간
메아리치는 텅빈 골짜기
범종 소리가 난다.

멍.

 

 24.텔레비전     최승호

하늘이라는 무한(無限) 화면에는
구름의 드라마,
늘 실시간으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네.
연출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수줍은지
전혀 얼굴을 드러내지 않네.
이번 여름의 주인공은
태풍 루사가 아니었을까.
루사는 비석과 무덤들을 넘어뜨렸고
오랜만에 뼈들은 진흙더미에서 나와
붉은 강물에 뛰어들었네
불멸을 향한 절규들,
울음 울던 말매미들이 사라지고
단풍이 높은 산봉우리에서 내려오네.
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인지
산 좋아하는 이들을 마지못해 따라나서도
개울가에서 그냥 혼자 어슬렁거리고 싶네.
누가 염치도 없이 버렸을까.
휑하니 껍데기만 남은 텔레비전이
무슨 면목없는 삐딱한 영정처럼
바위투성이 개울 한 구석에 박혀 있네.
텅 빈 텔레비전에서는
쉬임없이
서늘한 가을물이 흘러내리네.

 

 25.고비/최승호

 

만약 내가 고비였다면 나에겐 아무 두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눈도 귀도 코도 없이 나는 늘 삼매에 빠져 있었을 것이고

의 혀가 있었다 해도 침묵했을 것이다

 

모래들이 흘러 나오는 유방

붕괴된 궁둥이에서 흩어지는 돌 조각들

 

만약 내가 고비였다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죽였다고 누가 나를

비난한다 해도 나는 죄의식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양들 수

천 마리 낙타 수백 마리가 내 품 안에서 죽어가도 나는 그저 무

심, 내가 고비였다면 나는 기쁨도 슬픔도 없이 그저 무심과 무

자비로 일관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비도 아니고 돌도 아니

 

붉은 해가 훨훨 솟아오른다

마치 박제처럼 건조한 밤을 불사르듯이

사막의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바늘없는 텅 빈 시계처럼 돌아가는 사막의 하루.

 

 26.입적/최승호

 

꽃이 없으면 어찌 하느님이 피어날 수 있으며

새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님이 노래할 수 있을까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데

하나님은 나를 믿고 나무들을 믿고 물고기들을 믿는다

그렇지만 이 사막에서

하나님은 그저 입적入寂해 있을 뿐이다

거친 모래

태양에 그을은 돌들

십자가도 없다 교회도 없다 구원도 없다

예수는 아마 이런 곳에서

홀로 영혼의 고비들을 넘겼으리라

 

 27.그림자/ 최승호

 

개울에서 발을 씻는데 

잔고기들이 몰려와

발의 때를 먹으려고 덤벼든다

떠내려가던 때를 입에 물고

서로 경쟁하는 놈들도 있다

내가 잠시

더러운 거인 같다

물 아래 너펄거리는

희미한 그림자 본다

그 너덜너덜한 그림자 속에서도

잔고기들이 천연스럽게 헤엄친다

어서 딴 데로 가라고 발을 흔들어도

손으로 물을 끼얹어도 잔고기들은

물러났다가 다시 온다

 

 28.무서운 굴비/최승호 

 
 나는 왜 굴비를 두려운 존재라고 말해야 하나
석쇠 위에 구워 먹거나 찌개 끓여도
얌전히 있는
저 무력하기 짝이 없는 굴비를
 
굴비는
소금에 절여 통째로 말린 조기라 한다
혹은 건석어(乾石魚)

굴비, 나의 적(敵), 나의 반역(反逆), 나의 비굴
비굴한 삶은 통째로
굴비를 닮아간다
그물을 뒤집어 쓰고 퍼덕이다가
결국 장님에 벙어리
귀머거리가 된 굴비를
나는 왜 두려운 존재라고 말해야 하나
 
29.거울/최승호

 

거울을 볼 때마다

점점 젊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요귀妖鬼지 사람이랴

 거울공장 노동자들은

늘 남의 거울을 만들어놓고

거울 뒤편에서 주물鑄物처럼 늙는다

 구리거울을 만들던 어느 먼 시절의 남자를

훤히 비추던 보름달이

곰팡이도

녹도

이끼도 없이

빌딩 모서리 스모그 위로 솟고 있을 때

 문득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다가

껄껄껄 웃을 만큼

낙천적인 해골은 누구인가?

 

 30.담쟁이덩굴 / 최승호

 

허공이

드높은 담이었다면

담쟁이 덩굴들은 더듬더듬 기어 올라 가다가

허공을 훌쩍 넘어 갔을 것이다

 

허공 너머에

또 무슨 알 수 없는 담이 겹겹이 치솟아 있는지 모르겠으나

넘어가고 넘어간 뒤에도 무수한 덩굴손들은

끝없이 뻗어 나가고 힘차게 뻗어나가지 않았을까

 

참으로 질긴 담쟁이 덩굴이라면

담쟁이덩굴의 근성으로

허공이 바다 밑으로 주저 앉는다 해도 기어 오르고

줄기가 토막 다 해도 거대한 낙지발처럼 꿈틀꿑틀 뻗어 나갔을 것이다

 

 31.오동나무 /최승호

 

 예로부터 저쪽 한량들이
기타나 만돌린을 가지고 놀았듯이
이쪽에서도 생활에 구멍 뻥뻥 뚫려있는 축들이
거문고나 피리를 만지며 흥성거려 놀 줄 안다
피리나 대금은 속을 통과해 나오는 바람으로 소리가 나는데
그 속이란 게 그저 뻥 뚫려있는 듯해도
천태만상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허(虛)란 실(實)의 다른 이름인 법
거문고 마디마디 울혈진 가락이 하늘과 땅 사이를 진동시킬 수 있는 이치도 알고 보면
뜯는 이의 마음이 텅 비어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텅텅 비어 있는 마음에서 저며 나와 푸르게 여울져 흘러가는 소리가 바로
뜯는 이의 혼이자 거문고의 정신인 것
잘 익은 가을날 오동나무를 베어 보라
긴 줄기를 따라 虛의 정신으로 꽉 메워진
텅 빈 구멍이 나있을 것이다
잔뜩 움켜쥠보다 손을 탁 놓아 비워버림이
자유롭다는 것을 진즉 알았는지
오동은 씨앗 시절부터 그 안에 구멍을 키워 왔을 게다
마음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 놀 줄 아는 축들만이
속이 텅 비어버려 쓸모 없는 오동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법
구멍 없는 것들은
놀 줄도 놀 자유도 모른다
요새 사람들 노는 게 어디 노는 것인가

 

 32.구름들 /최승호

 

구름에 걸려서 사람들이 넘어진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덧없이 죽여 놓고
구름들이 조용히 여름 대낮을 흘러간다
보라! 큰 감자 모양의 구름
어떤 구름은 상어를 닮았다

구름은 넘어지는 법이 없다
넘어진 사람들을 넘어서
구름들이 낮과 밤을 흘러가고
남대문 시장에 북적거리던 인파가
오늘은 동대문시장에서 씨끌벅적 출렁거린다

옷,옷들,옷가게의 점원들
하나의 몸뚱이를 휘감는 천들이 있고
흘러가는 구름 아래 수많은 옷들이 있다
벌거벗지 않고 사람들은 모두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
그러나 구름을 걸친 채 누워 있는
알몸뚱이를 보았는가
이 세상 옷이 아니기 때문에
수의는 값이 비싸다
어느 여행객에게 수의를 입히고
먼길을 떠나는지 모르겠으나
느린 장의차에서는 벌써
구름 냄새가 피어오른다

 

 33.네모를 향하여/최승호


은행 계단 앞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땡볕에 지쳐 축 늘어져 있다

이 여름 도시에선 모두들

얼마나 피곤하게 살아오고 또 죽어가는지

빌딩 입구의 늙은 수위는

의무를 다하느라 침을 흘리며

눈을 뜬 채로 자면서도 빌딩을 지키고 있다


자라나는 빌딩들의

네모난 유리 속에 갇혀

네모나는 인간의 네모난 사고 방식, 그들은

네모난 관 속에 누워서야 비로소

네모를 이해하리라


---우리들은 네모 속에 던져지는 주사위였지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34.선술집 /최승호

돈 버는 일도 禪이어서
아무리 돈을 벌어도 번 돈이 없다.

본래 영원한 가난이여,
무일푼인 노을과 저녁 어스름이 찾아와도
나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이
그 아름다운 빈털터리들의 장엄 앞에서
술을 마시노니

괴로움의 증류여,
나의 선술집인 수평선이여,
뭉게 구름같은 술꾼을
너무 나무라지는 마시라.

 

 35.뼈의 음악/ 최승호


만약 늑골들이 현이었다면, 그리고 등뼈가 활이였다면, 바람은 하나의 등뼈로 여러개의 늑골들을 긁어매며 연주를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막이라는 청중으로 꽉 찬 사막에서 뼈들의 마찰음과 울림은 죽은 늑대의 뼈나 말의 뼈와 공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적막이라는 청중의 마음을 깊이 긁어 놓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뼈의 음악은 그렇다 아무런 악보도없이 뼈로 뼈를 연주해 텅 빈 뼈들을 뒤 흔든다 청중으로는 적막이 제일이고 연주자로는 바람이 적합하다


36.발효/최승호  

 

부패해가는 마음 안의 거대한 저수지를
나는 발효시키려 한다

나는 충분히 썩으면서 살아왔다
묵은 관료들은 숙변을 내게 들이부었고
나는 낮은 자로서
치욕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 땅에서 냄새나지 않는 자가 누구인가
수렁 바닥에서 멍든 얼굴이 썩고 있을 때나
흐린 물 위로 떠오를 때에도
나는 침묵했고
그 슬픔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한때 이미 죽었거나
독약 먹이는 세월에 쓸개가 병든 자로서
울부짖음 대신 쓴 거품을 내뿜었을 뿐이다
문제는 스스로 마음에 뚜껑을 덮고 오물을 거부할수록
오물들이 더 불어났다는 사실이다
뒤늦게 나는 그 뚜껑이 성긴 그물이었음을 깨닫는다


물왕저수지라는 팻말이 내 마음의 한 변두리에 꽂혀 있다
나는 그 저수지를 가본 적이 없다
물왕저수지로 가는 길가의 팻말을 얼핏 보았을 뿐이다
그 저수지에
물의 법이 물왕의 도가
아직도 순환하고 있기를 바란다
그 저수지에 왕골을 헤치며 다니는 물뱀들이
춤처럼 살아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물과 진흙의 거대한 반죽에서 흰 갈대꽃이 피고
잉어들은 쩝쩝거리고 물오리떼는 날아올라
발효하는 숨결이 힘차게 움직이고 있음을
내 마음에도 전해 주기 바란다

 

 37.쌍봉낙타 / 최승호

 

 만약 내가 야생 쌍봉낙타였다면, 그리고 수컷이었다면, 혼자 사막을 떠돌아다녀야 했을 것이다. 동서남북 어디로 가든 그게 그거인 사막에서 나는 방황이라는 말을 모르는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별로 씹을 것이 없이도 우물우물 되새김빌을 하면서 막막한 시간을 되씹어야 했을 것이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사막에서, 가장 높은 것은 나의 머리, 커다란 나의 두 눈은 투명하게 이글거리는 공기에 둘러싸여 텅 비어 있는 먼 곳을 날마다 바라보지 않았을까. 고개를 숙이면 돌, 모래, 마른 풀, 그리고 고개를 들면 광활한 無와 다름없는 풍경 속에서 나는 다시 고개를 늘어뜨리고 느릿느릿 걸어가다가 언젠가 내가 쏟아놓은 똥무더기가 바짝 말라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직도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 갑자기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울었을지도 모른다. 여름철이면 털이 빠져 너덜너덜한 내 모습은 거의 걸레나 다름없다.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나의 암갈색 털들, 그 묵은 털들은 다 바람이 데려갈 털들이다. 해마다 털갈이를 거듭하다 보면, 그리고 고독에도 익숙해져서 내가 누군지도 잊어버린 채 우물우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덧 나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많이 늙어 있다. 사막이 늙지 않는 것은 이미 죽은 땅이기 때문이다. 나의 앙상한 뼈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을 땅, 죽은 땅은 한낮이면 무척 덥다. 그 더위 속에서 오늘 나는 고개를 들고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는 늙은 쌍봉낙타를 나 역시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38.대설주위보  /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던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 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39.뭉게구름 - 최승호

 
나는 구름 숭배자는 아니다
내 가계엔 구름 숭배자가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구름 아래 방황하다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구름들의 변화 속에 뭉개졌으며 어머니는
먹구름들을 이고 힘들게 걷는 동안 늙으셨다
흰 머리칼과 들국화 위에 내리던 서리
지난해보다 더 이마를 찌는 여름이 오고
뭉쳐졌다 흩어지는 업의 덩치와 무게를 알지 못한 채
나는 뭉게구름을 보며 걸어간다
보석으로 결정되지 않는 고통의 어느 변두리에서
올해도 이슬 머금은 꽃들이 피었다 진다
매미 울음이 뚝 그치면
다시 구름 높은 가을이 오리라

 

40.비둘기 벽화/최승호

 

번쩍거리던 고드름들이 사라졌다. 그 대신, 건물 벽에는, 오래 가는 것, 잘 지워지지 않는 것이 나타났다. 그것은 점점 길쭉하게 밑으로 내려가고 있다. 끈끈하게 흘러내리다 굳어버리는 카오스 같은 것. 똥의 힘은 그렇다. 무질서하게, 자연스러운 벽화를 만들어낸다. 겨울날의 비둘기들이, 벽 틈에 웅크린 하늘거지들처럼 볕을 쬐면서, 아무 뜻도 없이 배설물로 그려나간 희멀건 벽화를, 봄날의 절벽 같은 베란다에서, 나는 바라본다. 도회지의 비둘기는 鳥類가 아니라, 시궁쥐가 속한 쥐과 동물에 가깝다. 비둘기들은 이제 숲속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길바닥의 찌꺼기를 주워먹다가, 발가락이 뭉개져도, 아스팔트에서 날개가 쓰레기로 변할지라도.

 

이것은 죽음의 목록이 아니다  / 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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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강 유역 산림생태계 조사보고서」

  (1998. 12. 산림청 임업연구원)를 읽으면서

  내가 아무르장지뱀이나

  용수염풀,

  아니면 바보여뀌나 큰도둑놈의갈고리나 괴불나무로

  혹은 더위지기로 태어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랬더라면 내 이름이 어떻든

  이름의 감옥에서 멀리 벗어나

  삶을 사랑하는 일에 삶이 바쳐졌을 것이다.

  무덤에 핀 할미꽃이거나

  내가 동굴에서 날개를 펴는

  관박쥐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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