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 시조모음

옛 시조 모음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 이순신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한산섬 달이 밝은 밤에 망루에 혼자 앉아서

큰 칼 옆에 차고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며 깊은 근심에 잠겨 있는데

어디서 들려오는 한 가락 피리소리에 애간장이 다 끊어 지는구나

 

[철령 높은 봉에] - 이항복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를 비 삼아 뛰워다가

임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철령 높은 봉우리를 쉬어서 넘어가는 저 구름아

귀양가는 외로운 신하의 억울한 눈물을 비처럼 띄어가지고 가서

임금님 계신 깊은 궁궐에 뿌려서 나의 충성심을 알려 드리려무나

 

[세상 사람들이] - 인평대군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성하여서

제 허물 전혀 잊고 남의 흉 보는 괴야

남의 흉 보거라 말고 제 허물을 고치고저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살아서

자기의 잘못은 다 잊어버리고 남의 흉을 보는구나

남의 흉을 보기 전에 자기의 잘못을 먼저 고쳤으면 좋겠구나

 

[심산에 밤이 드니] - 박인로

 

심산에 밤이 드니 북풍이 더욱 차다

옥루고처에도 이 바람 부는 게오

긴밤에 치우신가 북두 비겨 바래로다

 

깊은 산 속에 밤이 깊어가니 북쪽에서 불어오는 겨울 바람이 더욱 차다

임금님 계시는 궁궐에도 이 찬 바람이 불고 있을까

긴긴 겨울 밤에 춥지는 않으신지 임금님을 북두성 별에 견주어 바라본다

 

[동창이 밝았느냐] - 남구만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동쪽 창문이 벌써 밝았느냐 종달새가 우지짖고 있다

소를 먹이는 아이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느냐

고개 너머에 있는 이랑이 긴 밭을 언제 갈려고 하느냐

 

[오늘도 다 새거다] - 정 철

 

오늘도 다 새거다 호미 메고 가자스라

내 논 다 매어든 네 논 좀 매어주마

올 길에 뽕 따다가 누에 먹여 보자스라

 

오늘도 날이 다 밝았다 호미를 메고 들로 나가자꾸나

내 논을 다 맨 뒤에는 네 논도 좀 매어 주겠다

돌아오는 길에는 뽕잎을 따서 누에를 먹여 보자꾸나

 

[이고 진 저 늙은이] - 정 철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머리에 이고 등에 짐을 진 저 늙은이 짐을 풀어서 나에게 주시오

나는 젊었으니 돌덩이인들 무겁겠소

늙은 것도 서러운데 무거운 짐까지 지셔야 되겠소

 

[지당에 비 뿌리고] - 조 헌

 

지당에 비 뿌리고 양류에 내 끼인 제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매었는고

석양에 짝 잃은 갈매기만 오락가락 하노라

 

연못에는 비가 내리고 버드나무 가지에는 안개가 끼었는데

강가에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매어 있는가

저녁놀 속에 외로운 갈매기만 오락가락 날아다니는구나

 

[동지달 기나 긴 밤을] - 황진이

 

동지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남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동지달 긴긴 밤의 시간 한가운데를 베어 내어

봄바람 따뜻한 이불 아래 서리서리 뭉치어 넣어 두었다가

사랑하는 임이 오시는 날 밤에 굽이굽이 펼쳐서 긴긴 시간으로 이으리라

 

[청산리 벽계수야] -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푸른 산 속을 흐르는 맑은 냇물이여 빨리 흘러간다고 자랑하지 말라

한 번 바다로 흘러가 버리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것이다

밝은 달이 빈 산에 가득 비치고 있으니 놀다가 가는 것이 어떠한가

 

[청산은 어찌하여] - 이 황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지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지 말고 만고상청하리라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오랜 세월에 걸쳐 푸르르며

흐르는 물은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하는가

우리사람들도 그치지 말고 영원히 푸르게 살아야 하리라

 

[고인도 날 못 보고] - 이 황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뵈

고인을 못봐도 예던 길 앞에 있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쩔꼬

 

옛날 훌륭한 사람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예사람을 못 보는데

옛사람은 못 보아도 그들이 행하던 훌륭한 길이 가르침으로 남아 있네

옛적의 훌륭한 길이 앞에 있는데 올바른 도리를 따르지 않고 어쩌리

 

[청초 우거진 골에] - 임 제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꽰어 하노라

 

푸른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 잠을 자느냐 누워 있느냐

아름다운 얼굴은 어디 두고 흰 뼈만 묻혀 있느냐

술잔을 잡고 권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슬퍼 하노라

 

[고산 구곡담을] - 이 이

 

고산 구곡담을 사람이 모르더니

주모복거하니 벗님네 다 오신다

어즈버 무이를 상상하고 학주자를 하리라

 

고산에 있는 아홉 굽이 계곡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모르더니

내가 조그만 집을 짓고 지내니 벗들이 다 모여든다

아아 중국에 있는 무이산을 상상하며 주자[중국 최대의 학자]를 배우리라

 

[어버이 살아신 제] - 정 철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어버이가 살아 계실 때 섬기는 일을 잘 하여라

돌아가신 후에 슬퍼한들 무엇하리

평생에 다시 못할 일이 부모 섬기는 일이라 생각하노라

 

[마을 사람들아] - 정 철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스라

사람이 되어 나서 옳지 곧 못하면

마소를 갓 고깔 씌어 밥 먹이나 다르랴

 

마을 사람들이여 옳은 일을 하자꾸나

사람으로 태어나서 옳은 일을 하지 못하면

말과 소에 갓이나 고깔을 씌어 밥을 먹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마음이 어린 후이니] - 서경덕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그인가 하노라

 

마음이 어리석으니 하는 일이 모두 어리석구나

구름이 첩첩한 깊은 산속에 어느 임이 찾아 올 것인가마는

낙엽이 지고 바람 부는 소리에 행여나 임이 왔는가 싶구나

 

[장검을 빠혀 들고] - 남 이

 

장검을 빠혀 들고 백두산에 올라 보니

대명천지에 성진이 잠겼에라

언제나 남북풍진을 헤쳐 볼까 하노라

 

큰 칼을 빼어 들고 백두산에 올라 보니

밝고 맑은 천지에 전쟁의 기운이 덮혀 있구나

언제 전쟁을 없애고 평화로운 세상 만들 수 있을까

 

[삼동에 베옷 입고] - 조 식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

구름 낀 ?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 지다 하니 눈물 겨워 하노라

 

추운 겨울에 베옷을 입고 바윗굴 속에서 눈비를 맞고 살면서

구름 낀 햇빛[임금의 은총]을 쬔 적이 없지만

서산에 해가 진다[임금의 죽음] 하니 눈물이 나는구나

 

[풍상이 섯거 친 날에] - 송 순

 

풍상이 섯거 친 날에 갓 피온 황국화를

금분에 가득 담아 옥당에 보내오니

도리야 꽃이온 양 마라 임의 뜻을 알괘라

 

바람 불고 서리가 내린 날에 막 피어난 노란 국화꽃을

[명종 임금께서] 좋은 화분에 담아 홍문관에 보내 주시니

복숭아 오얏꽃은 꽃인 체도 하지 마라 국화를 보내신 임금의 뜻을 알겠구나

 

[오리의 짧은 다리] - 김 구

 

오리의 짧은 다리 학의 다리 되도록애

검은 가마귀 해오라비 되도록

항복무강하사 억만세를 누리소서

 

오리의 짧은 다리가 학이 다리처럼 길어질 때까지

검은 까마귀가 백로처럼 희게 될 때가지

끝없이 복을 누리시고 길이길이 사시옵소서

 

[태산이 높다 하되] - 양사언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태산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하늘 아래에 있는 산이로다

마음을 먹어서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가 없겠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오르지 않고 산만 높다고 말하는구나

 

 

[이런들 어떠하며] - 이 황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료

초야우생이 이러타 어떠하료

하물며 천석고황을 고쳐 무엇하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선비가 이렇게 산들 어떠하리

더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고쳐서 무엇하리

 

[가마귀 눈비 맞아] - 박팽년

 

가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이야 밤인들 어두우랴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까마귀가 눈비를 맞아 흰 듯하지만 속은 검구나

야광주 명월주 구슬은 밤이 되어도 어둡지 않고 빛난다

단종 임금을 향한 충성심을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초당에 일어 없어] - 유성원

 

초당에 일어 없어 거문고를 베고 누어

태평성대를 꿈에나 보려터니

문전에 수성어적이 잠든 나를 깨워라

 

조용한 집에 한가하게 있다가 거문고를 베고 누워

훌륭한 임금이 다스리는 태평한 세상을 꿈 속에서 보려 하였는데

문 앞에서 고기잡이들이 부는 피리소리가 잠든 나를 깨우는구나

 

[詠笠 (영립)] (삿갓을 읊은 시) - 김삿갓 (김병연金炳淵)

 

浮浮我笠等虛舟하야(부부아립등허주)

나의 삿갓은 빈배와 같이 가볍고 가벼워서

一着平生四十秋(일착평생사십추)

한 번 쓰자 어느듯 사십 평생이 흘렀구려

牧竪行裝隨野犢이요(목수행장수야독)

목동의 신세는 들에서 소를 따라 다니는 것이고

漁翁身勢伴江鷗(어옹신세반강구)

늙은 어부의 신세는 강가의 갈매기와 벗하고 지낼뿐이네

閑來脫掛看花樹(한래탈괘간화수)

한가로우면 삿갓을 벗어 나무에 걸어놓고 꽃구경을 하기도 하고

興到携登翫月樓(흥도휴등완월루)

흥이나면 삿갓을 벗어들고 달구경하러 누각에 오른다

俗子衣冠皆虛飾이지만(속자의관개허식)

속인들의 의관은 겉치레 뿐이지만

滿天風雨獨無愁로다(만천풍우독무수)

온 세상의 가득한 비바람에도 실속있는 삿갓 쓴 나만은 걱정이 없네

 

[천만리 머나먼 길에] - 왕방연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여 울어 밤길 예놋다

 

천만 리 머나먼 길[강원도 영월]에서 고운 임[단종]을 이별하고

내 마음을 둘 데가 없어서 시냇가에 앉아 있으니

저 물도 내 마음과 같아서 울면서 밤길을 흘러 가는구나

 

[간밤에 불던 바람 ] - 유응부

 

간밤에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

낙락장송 다 기울어 지단 말가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지난 밤에 불던 바람에 눈과 서리까지 몰아쳤단 말인가

우뚝 솟은 큰 소나무[단종 따르는 충신들]가 다 쓰러져 가는구나

하물며 아직 못다 핀 꽃[이름 없는 선비들]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추강에 밤이 드니] - 월산대군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저어 오노라

 

가을의 강물에 밤이 깊어가니 물결이 차구나

낚시를 드리워도 고기가 물지 않는구나

욕심도 잡념도 없는 달빛만 배에 가득 싣고 돌아온다

 

[짚 방석 내지 마라] - 한 호

 

짚 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 온다

아희야 박주산챌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짚으로 만든 방석을 내지 마라 낙엽 위에 못 앉겠는가

관솔 불을 켜지 마라 어제 진 달이 다시 환하게 돋아온다

아이야 막걸리와 산나물이라도 좋으니 푸짐하게 차려 오너라

 

[강호에 봄이 드니] - 맹사성

 

강호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

탁료계변에 금린어 안주 삼고

이 몸이 한가하옴도 역 군은이샷다

 

아름다운 자연에 봄이 돌아오니 미칠 듯한 흥이 절로 일어난다

시냇가에서 탁주를 마시는데 싱싱한 물고기를 안주로 삼아

이 몸이 이렇게 한가하게 지낸는 것도 또한 임금님의 은혜이시도다

 

[강호에 봄이 드니] - 황 희

 

강호에 봄이 드니 이 몸이 일이 하다

나는 그물 깁고 아희는 밭을 가니

뒷 메헤 엄기난 약을 언제 캐랴 하나니

 

아름다운 자연에 봄이 오니 이 몸이 할 일이 많다

나는 그물을 깁고 아이는 밭을 갈고 있는데

뒷산에 많이 핀 약초를 언제 다 깰 것인가

 

[대추 볼 붉은 골에] - 황 희

 

대추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듣드리며

벼 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내리는고

술 익자 체 장수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대추가 빨갛게 익은 골짜기에 밤이 뚝뚝 떨어지며

벼를 베어낸 그루에는 게가 기어 내려가는구나

술이 다 익자 체를 파는 장사가 오니 새 술을 걸러서 먹어야 겠구나

 

[삭풍은 나무 끝에] - 김종서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 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 파람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에라

 

찬 겨울 바람은 나뭇가지에 스치고 밝은 달은 눈 속에서 싸늘한데

서울에서 머나먼 변방의 성루에 큰 칼을 짚고 서서

긴 휘파람과 큰 고함 소리에 감히 거칠 것이 없구나

 

[장백산에 기를 꽂고] - 김종서

 

장백산에 기를 꽂고 두만강에 말 씻기니

썩은 저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이야

어떻다 인각화상을 누가 먼저 하리오

 

백두산에 깃발을 꽂고 두만강 물에 말을 씻기니

쓸모없는 선비들아 우리가 바로 대장부가 아니냐

공이 큰 신하의 그림이 걸리는 누각에 누구의 얼굴 그림이 먼저 걸리겠느가

 

[이 몸이 죽어 가서] - 성삼문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이 몸이 죽은 뒤에 무엇이 될 것인고 하니

봉래산[서울 남산] 높은 봉우리에 우똑 솟은 큰 소나무가 되어서

흰 눈이 온 세상에 가득 찰 때 홀로 푸르고 푸르리라

 

[수양산 바라보며] - 성삼문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진정 채미도 하는 것가

아무리 푸새엣 것인들 그 뉘 땅에 났더니

 

수양산 바라보며 옛날 중국(은나라)의 절개의 선비 백이와 숙제를 한탄한다

절개를 지키려면 굶주려 죽을 것이지 고사리는 왜 캐어 먹었는가

비록 풀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누구(주나라)의 땅에 났던 것이냐

 

[이런들 어떠하며] - 이방원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렇게 지내면 어떻고 저렇게 살아가면 어떻겠는가

만수산에 자란 칡넝굴이 얽힌 것처럼 살아가도 어떻겠는가

우리도 이처럼 어울려서 오래오래 살아가자꾸나

 

[이 몸이 죽고 죽어] -정몽주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몸이 죽고 또 죽어 백 번이나 다시 죽어서

백골이 썩은 흙이 되어 혼백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임금[공양왕]을 향한 변함 없는 충성심이야 변할 리가 있겠는가

 

[오백년 도읍지를] - 길 재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 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 오백 년의 서울이었던 개성에 혼자 말을 타고 돌아오니

자연은 옛날과 변함 없으나 훌륭한 옛사람들은 간 곳이 없구나

아아 고려의 태평성대가 허무한 꿈이라 여겨 지는구나

 

[백설이 잦아진 골에] - 이 색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흰 눈이 자욱한 골짜기에 구름[이성계 무리]이 험하게 일어나는구나

반가운 매화[우국지사]는 어느 곳에 피어 있는가

석양[망해 가는 고려 왕조]에 홀로 서서 갈 곳을 몰라 하는구나

 

[원천석 흥망이 유수하니] - 원천석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 겨워 하노라

 

흥하고 망함에 운수가 있어 궁궐터인 만월대에는 가을 풀이 쓸쓸하구나

오백 년 고려 왕조의 업적이 목동의 피리 소리에 깃들어 있을 뿐이니

해질 무렵 지나가는 손이 슬퍼 눈물 겨워 하노라.

 

[눈 맞아 휘어진 대를] - 원천석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 턴고

굽을 절이면 눈 속에 푸르르랴

아마도 세한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

 

눈을 맞아서 휘어진 대나무를 누가 굽었다고 말하는가

쉽게 휘어질 절개일 것 같으면 눈 속에서도 푸르겠는가

아마도 추의을 꿋꿋이 견디는 절개는 너뿐인 것 같구나

 

[내해 좋다 하고] - 변계랑

 

내해 좋다 하고 남 싫은 일 하지 말며

남이 한다 하고 의 아녀든 좇지 마라

우리는 천성을 지키어 생긴대로 하리라

 

나에게 좋다고 해서 남에게 싫은 일 하지 말고

남이 한다고 해도 올바른 일이 아니면 따라 하지 말라

우리는 천성을 지켜서 타고난 본성대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

 

[가마귀 검다 하고] - 이 직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까마귀의 색깔이 검다고 해서 백로야 비웃지 말라

겉이 검다고 해서 속까지 검을 것 같으냐

겉은 희면서 속이 검은 것은 백로 너뿐인 것 같구나

 

서산대사

 

踏雪野中去하야 (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이라(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이라 (수작후인정)

 

눈이 많이 내린 산야를 처음 걷는사람이여

절대로 비틀걸음을 걷지 말고 바른걸음으로 걸으소서

오늘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인생의 이 발걸음은

반드시 뒤에 따라오는 사람의 인생여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춘산에 눈 녹인 바람] - 우 탁

 

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 데 없다

저근듯 빌어다가 머리 우에 불리고자

귀밑의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

 

봄이 된 산에 눈을 녹인 봄바람이 잠깐 불고 간 데가 없다.

잠깐동안 봄바람을 빌려서 머리 위에 불게 하여

귀 밑의 오래된 서리(흰 머리카락)를 녹여 보고 싶구나

 

[이화에 월백하고] - 이조년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데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배꽃에 달이 환히 비치고 은하수 흐르는 시간이 자정인데

한 가닥 봄날의 애뜻한 마음을 소쩍새가 알겠는가마는

정이 많은 것도 병인 것 같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겠구나

 

[녹이 상제 살찌게 먹여] - 최 영

 

녹이 상제 살찌게 먹여 시냇물에 씻겨 타고

용천 설악 들게 갈아 두러 메고

장부의 위국충절을 세워 볼까 하노라

 

날래고 훌륭한 말을 살찌게 먹여 시냇물에 깨끗이 씻겨서 타고

좋은 칼을 잘 들게 갈아서 둘러 메고

대장부의 나라 위한 충성된 절개를 세워 볼까 하노라

 

[가마귀 싸우는 골에]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가마귀 힌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까마귀[간신]가 싸우는 골짜기에 백로[충신]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가 백로의 횐 빛을 시기하여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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