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강]
창조를 위한 모방 법
이근모(시인)
나는 시를 막 쓰기 시작하는 시인 지망생들로 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시인님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무한의 상상력으로 좋은시를 많이 읽고 그 시들을 필사를 해보십시오"
"그러면 어느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시에대한 모든 이론을 구태여 공부하지않아도 터득하게되고 시를 쓰는 방법과 그 시에서 노래해야할 가락도 자연스럽게 쓰여집니다" 하고.
"누에도 뽕잎을 먹으면 비단실을 토하듯 당신이 바로 누예라면 좋은시가 뽕잎이고 비단실은 당신이 쓴 시랍니다" 이렇게 답을 한다.
내가 젊은 시절 서예를 배우기 위해 서예학원을 3년정도 다닌적이 있었다.
그때 서예 선생님께서 서체의 원본을 주고 그 원본대로 베껴 쓰라는 것이다. 즉 서예를 하는 첫걸음으로 서체를 베껴써서 필력을 키우고 서체도 익힌다는 것이다.
이렇듯 서체를 베끼는 것을 모사(模寫)라 하는데 이 모사의 관문을 통해야 비로소 창의적으로 붓을 놀릴자격이 주어지기에 이 자격을 얻기위한 필수 요건이 바로 모사(模寫)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본뜨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무엇을 본보기로 삼아 그와 같게 하거나 흉내 내어 그대로 따라 한다는 뜻이다.
떠야 할 본(本)을 문자나 행동으로 따라 하는 일을 모방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사 역시 모방의 한 범주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시를 쓸 때 좋은시를 읽고 필사를 하는 것도 일종의 모방을 하는것으로 봐야한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사람은 모방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까?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의 연속성 위에 놓인 극이 행동의 모방이라고 했다. 이 모방론은 문학의 기원과 발생을 설명하는 일에서부터 창작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에까지 두루 활용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지라르>는 “인간의 욕망 자체에는 전염병 같은 본질적 모방 경향이 내재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모방본능은 동질성의 본능과 통한다고 하였다. “자기가 지향하는 존재를 발견할 때마다 그 추종자는 타인이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을 욕망함으로써 그 존재에 도달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뛰어나거나 잘난 상대방과 유사해지려는 욕망은 본능적으로 언어 표현이나 행동을 통해 나타나게 마련이다.
좋은 글을 모방 한다 하면 이는 표절이 된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3류는 표절하고
2류는 모방하고
1류는 모방해서 똥을 싸서 그 모방된 글을 깜쪽같이 자기의 독창적인 것으로 풀어먹고 에헴하면서 헛기침을 한다고 했다.
이는 모방을 하되 변화를 추구하여 자기만의 법도로 창작해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모방을 통한 자기만의 법도란 무엇일까? 안도현 시인은 이에 대한 답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첫째, 모방을 위한 모방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죽은 시체를 쌓아놓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억지로 모방을 해서는 안 된다. 누에가 뽕잎을 먹되 토해내는 것은 비단실이지 뽕잎이 아니다.
셋째, 모방을 융화시켜 매끄럽게 해야 한다. 물속에 소금을 넣어 그 물을 마셔봐야 비로소 짠맛을 알게 되는 것 같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
현대에 와서도 시 창작에 대한 고민은 모방에 대한 고민과 궤를 같이한다. 모방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가령 모방을 한다면 어디까지 모방하고, 무엇을 모방하며, 언제까지 모방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하다.
안도현 시인의 모방에 관한 시론을 보면 무작정 모방만 하는 3류가 되지말고 모방을 배우면서 모방을 괴로워할 줄 아는 창조자가 되라는 것이다.
모방의 단물 쓴물까지 다 빨아들인 뒤에, 자신의 목소리를 가까스로 낼 수 있을 때, 그때 가서 모방의 괴로움을 벗어던지고 즐거운 창조자가 되면 일류 시인으로 거듭난다고 본다.
모든 앞선 문장과 모든 스승과 모든 선배는 습작을 하고 있는 바로 우리가 밟고 가라고 저만큼 앞에 서 있는 것이니 우리는 그들을 징검돌 삼아 무참히 밟고가면 어느 순간 일류 시인의 반열에 올라와 있을것이다.
찔레꽃 Ⅲ / 이근모
-백석의 여승을 읽고-
돋아난 가시 오롯이 홀로 서서
한 서린 삭풍처럼 봄 햇살을 찌르는데
찌르는 가시, 가시 한 많은 설움이다.
찔레꽃 향기에서 어머니의 냄새가 났다.
봄 빛 아지랑이는 나를 유년으로 데려갔다.
추억은 샘물처럼 서러움을 퍼냈다.
오월 어느 날
나는 미역국을 대신한 된장 푼 보릿잎국을 마셨다.
찔레꽃 잎은 하얀 이밥이 되었다.
어머니는 훌쩍이는 아들을 보듬고
찔레꽃 가시 꺾어 따갑게 울었다.
산나물 캐러간 어머니는 큰 바윗덩어리 하나를 가져왔다.
허파를 갉아 자리 튼 바위
어머니는 찔레꽃이 좋아 찔레꽃 동산으로 갔다.
보리밭 이랑에서 종달새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었다.
어머니 저고리가 지붕위에서 찔레꽃처럼 하얗게 피고 있는 날이었다.
찔레꽃 피는 5월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