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ㅡ헤르만 헤세ㅡ

 

숲 가의 가지들 금빛에 타오를 때

나는 홀로 길을 갑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몇 번이나 둘이서 걸었습니다

 
이 좋은 날에

오랫 동안 마음에 지니고 있던

행복도 슬픔도 나에게서

이제 먼 향기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잔디풀 태우는 연기 속에서

농부의 아이들이 뛰어 놉니다

거기 나도 끼어들어 어린이와 더불어

가락 맞춰 노래 합니다

 

 

★내가 만든 꽃다발

-삐에르 드 롱사르-

 

활짝 핀 꽃을 꺾어서 꽃다발을 바칩니다

이 저녁 꺾지 않으면

내일이면 시들 이 꽃들을

그대는 이걸 보고 느끼겠지요

아름다움은 머지않아 모두 시들고

꽃과 같이 순간에 죽으리라고

그대여 세월은 갑니다

세월은 갑니다

아니 세월이 아니라 우리가 갑니다

그리고 곧 묘비 아래 눕습니다

우리 속삭이는 사랑도

죽은 뒤에는 아무 것도 아니랍니다

나에게 사랑을 주세요

그대 살아 있는 아름다운 동안에

 

★볕

ㅡ권덕하ㅡ

 

물속 바닦까지 볕이 든 날이 있다

가던 물고기 멈추고 제 그림자 보는 날

하산 길 섬돌에 앉은 그대 등허리도

반쯤 물든 나뭇잎 같아

신발 끄는 소리에 볕 드는 날

물속 가지 휘어 놓고

나를 들여다 보는

저 고요의 눈

 

★멀리서 빈다

ㅡ나태주ㅡ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이사

ㅡ박 찬 중ㅡ

 

이사를 해보면 알지

오랜 세월, 참 많은

필요치 않은 것들을 끌고다닌

허접한 잡동사는를 보게 되지

그럼에도 또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찾고, 그를 위해

애를 태우기도 하지

언제쯤일까

이 모든 것 버리고 떠나는 날

아주 멀리 이사하는 날

쓸쓸히 나뒹굴 허망한 욕망의 껍데기들

 

★사랑의 비

ㅡ최은주ㅡ

 

비가 내립니다.

당신은 비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슴에는

사랑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메마른 입술에

내 사랑을 쏟아붓고 싶습니다.

당신의 비어있는 마음을

내 사랑으로 채우고만싶습니다.

당신이 맞고 싶다는 비가

나였으면좋겠습니다.

비가 되어

당신의 온몸을 적시고 싶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비가 내립니다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은 당신

ㅡ박 현 희ㅡ

 

고요히 잠자던 내 마음의 호수에

그리움으로 파문을 일으키며

내 영혼의 주인이 된 당신

사랑이 깊어가면 갈수록

지독한 외로움과 사투를 벌여도

온몸을 가눌 수 없이 짖누르는 고독의 무게에

난 언제나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리운 당신을 지척에 두고도

이렇듯 혼자일 수밖에 없는 서글픈 운명에

시퍼렇게 멍든 가슴은

검게 타 하얗게 재만 남았습니다

당신을 향한 사랑의 깊이만큼

외로움의 골 또한 깊디깊어

그리움으로 까만 밤을하얗게 꼬박 지새워도

함께 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주체 못할 그리움만 차곡차곡 쌓아두고

지친 외로움에 이 몸은 야위어만 갑니다

하지만 그리움을 간직한 채

한 생을 살아간다 해도 충분히 행복하기에

고운연정 아끼고 아껴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은 당신입니다

 

★사랑

ㅡ조병화 ㅡ

 

사랑은 언제나 좀 서운함이어라

내가 찾을 때 네가 없고

네가 찾을 때 내가 없음이여

후회는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

일어나는 바람이려니

그리움은 더욱 더 사라진 뒤에

오는 빈 세월이려니

사랑은 좀 더 서운함이려니

그리움은 아프게 더 더 긴 세월이려니

아,인생이 이러함이려니

사람이 사랑하는 곳은 더 더 이러함이려니

오,사랑아.

 

★그대 마음을 만져보고 싶을 때

ㅡ김 주 수ㅡ

 

1. 하늘빛을 만져보고 싶을 땐

연못가에 가서 물 속에 앉은 하늘을 만져봅니다.

내 안에 있는 그대 같아서,

 

그대가 내게 준

끝없는 마음 같아서.

 

2. 햇살을 만져보고 싶을 땐

강물가에 가서

물 속에 드리운 햇살을 만져봅니다.

내 안을 흐르는 그대 같아서,

그대가 내게 준

꺼지지 않는 생의 불빛 같아서.

 

3. 나뭇잎의 그늘을 만져보고 싶을 땐

연못 아래로 드리운 나무 그늘을 만져봅니다.

내 안에 있는 그대 영혼 같아서,

내 영혼의 가지에 드리운

길이 마르지 않을 값없는 그늘 같아서.

 

★ 술에 취한 바다

ㅡ이성진ㅡ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가을비

ㅡ도종환ㅡ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옆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 가겠지요.

 

★겨울 들녘에 서서

- 오세영 -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빈 공간의 충만.

아낌없이 주는 자의 기쁨이

거기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겨울 들녘에 서서

     - 오세영 -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빈 공간의 충만.

아낌없이 주는 자의 기쁨이

거기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낟알 몇 개.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지상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의 안식이

거기 있다.

먼 별을 우러르는

둠벙의 눈빛.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너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킨다는 것,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이 거기 있다

빈 들을 쓸쓸히 지키는 논둑의

저 허수아비.

 

★산에 언덕에

      - 신동엽 -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가을의 기도

    ㅡ김현승ㅡ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나의 연인에게

          ㅡ 김승기ㅡ

 

곱디 고운 당신,

마음과 성품과 인격모두가,,

아름다운 당신,

내 당신께 편지를 드립니다.

나의 가시밭같은 마음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나의

영혼을 당신은 기쁨으로

받아 줄 수 있는지요.

그대와 내가 만나는 날을

기대 하면서,,

 

 

 

★가을 /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고은의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정현종의   <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적이 있었느냐?'

 

 ★유치환의   <낙엽>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정지용    <호수>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하니 눈 감을 수밖에'

 

 ★낙엽 한 장/오광수

 

나릿물 떠내려온 잎 하나 눈에 띄어

살가운 마음으로 살며시 건졌더니

멀리 본 늦가을 산이 손안에서 고와라.

 

★서시/이정록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내 몸이 너무 성하다.

 

★後記 /천양희

 

시는 내 自作나무 네가 내 全集이다. 그러니 시여,제발 날 좀 덮어다오

 

★시멘트 /유용주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자신이 가루가 될 때 까지 철저하게

부서져본 사람만이 그걸 안다.

 

★서시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도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별 /곽재구

 

모든 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머리칼을 지녔는지

난 알고 있다네

그 머리칼에 한번 영혼을 스친 사람이

어떤 노래를 부르게 되는지도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황지우

 

 긴 외다리로 서 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꿈 /황인숙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첫사랑 /이윤학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 까지 들여다 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 까지

 

*사랑 /정호승

 

무너지는

폭포 속에 탑 하나 서 있네

그 여자

치마를 걷어 올리고

폭포 속으로 걸어 들어가

탑이 되어 무너지네

 

*사랑 /김명수

 

바다는 섬을 낳아 제 곁에 두고 파도와 바람에 맡겨 키우네

 

*눈물 /정희성

 

초식동물 같이 착한 눈을 가진

아침 풀섶 이슬 같은 그녀

눈가에 언뜻 비친

 

*不倫 /윤금초

 

가을날 몰래 핀 두어 송이 장미

그래도 꽃들은 감옥에 가지 않는다

위험한

이데올로기

저 반역의

開花

 

*자화상 /신현림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낚는다.

 

*꽃 /조은

 

오래 울어본 사람은

체념할 때 터져 나오는

저 슬픔과도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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