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시모음
★4월의 시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4월 비빔밥 /박남수
햇살 한 줌 주세요
새순도 몇 잎 넣어주세요
바람 잔잔한 오후 한 큰 술에
산목련 향은 두 방울만
새들의 합창을 실은 아기병아리
걸음은 열 걸음이 좋겠어요
수줍은 아랫마을 순이 생각을 듬뿍 넣을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고명으로 얹어주세요
★4월 /문인수
절을 에워싼 산빛이 수상하다.
잡목 사이로 여기저기 펄럭 걸린 진달래.
단청 엎질린 것 같다.
등산로를 따라 한 무리
어린 여자들이 내려와서 마을 쪽으로 사라진다.
조용하라, 조용히 하라 마음이여
절을 에워싼 산빛이 비릿하다.
★4월 – 햇살 /김태인
어머니, 어머니여
자애로운 어머니여
가지마다 새싹 돋게 하였듯
콘크리트 벽에 갇혀
핏기 잃은 가여운 생명에게도
당신의 젖꼭지 물려주오
★4월 / 한승수
여기저기 봄꽃들 피었다.
가로수 왕벚꽃 화려한 왕관을 쓴 채
임대아파트 울타리에 매달린 어린 개나리를 내려다보고
철없는 목련은 하얀 알몸으로
부잣집 정원에서 일광욕을 한다.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다.
화려함이 다르고, 눈높이가 다르고
사는 동네가 다르지만
그것으로 서로를 무시하지 않는다.
빛깔이 다르지만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다.
어우러져서 참 아름다운 세상.
★4월의 편지 / 오순화
꽃이 울면 하늘도 울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꽃이 아프면 꽃을 품고 있는
흙도 아프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꽃이 웃으면 하늘도 웃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꽃이 피는 날 꽃을 품고 있는
흙도 헤죽헤죽 웃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맑고 착한 바람에
고운 향기 실어 보내는 하늘이 품은 사랑
그대에게 띄우며
하늘이 울면 꽃이 따라 울고
하늘이 웃으면 꽃도 함께 웃는 봄날
그대의 눈물 속에 내가 있고
내 웃음 속에 그대가 있음을
사랑합니다
★4월 / 반기룡
바람의 힘으로
눈 뜬 새싹이 나풀거리고
동안거 끝낸 새잎이 파르르
목단꽃 같은 웃음 사분사분 보낸다
미호천 미루나무는
양손 흔들며 환호하고
조치원 농원에 옹기종기 박힌
복숭아나무는 복사꽃 활짝 피우며
파안대소로 벌들을 유혹하고
산수유 개나리 목련화는
사천왕처럼 눈망울 치켜뜨고
약동의 소리에 귓바퀴 굴린다
동구 밖 들판에는
달래 냉이 쑥 씀바귀가
아장아장 걸어나와
미각 돋우라 추파 던지고
둑방길에는 밥알 같은
조팝나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다
★4월 / 윤용기
잔인한 잔치
시작되었네.
처소 곳곳에
퉁퉁 불어 있던
몸 동아리
터져 나오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 나오듯
하늘 향해 천지를 개벽시키네.
날카로운 칼바람
견디어 온
환희의 기쁨 숨어 있었네.
★4월에 내리는 눈 / 안도현
눈이 온다
4월에도
교사 뒤뜰 매화나무 한 그루가
열심히 꽃을 피워 내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을 맞는다
엉거주춤 담벼락에 오줌 누다 들킨 녀석처럼
매실주 마실 생각 하다가
나도 찬 눈을 맞는다
★4월에 / 박종숙
숨죽인 빈 空間을 차고
새가 난다.
물오른 나무들의 귀가
쏟아지는 빛 속으로
솟아오르고
목숨의 눈부신 四月은
유채꽃 향기로 가득하다.
아름다워라
침묵만큼이나
안으로 충동질하며
온 피 걸러
生命의 진액으로 타는
四月의 하늘이여.
다만 살아있음이
눈물겨워
★4월에는 / 목필균
축축해진 내 마음에
아주 작은 씨앗 하나
떨구렵니다
새벽마다 출렁대는
그리움 하나
연둣빛 새잎으로
돋아나라고
여린 보라 꽃으로
피어나라고
양지쪽으로 가슴을 열어
떡잎 하나 곱게 가꾸렵니다.
★4월 / 오세영
언제 우레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월.
눈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
★4월의 바람 / 홍경임
모짜르트가 흐르는 거실에서
홀가분한 마음 되어
커피 한 잔 말없이 마시니
잠에 취했던 나의 영혼 기지개를 켠다
맑은 기분으로 4월의 햇살을 받으며
돌산 밑 작은 동네를 지날 때면
골목 파란 대문집 라일락 꽃잎은
내 볼을 어루만지는데
4월의 바람 오늘은 더욱
여며진 내 가슴을 헤집으며
어제와는 다른 몸짓으로 하여
나를 반긴다.
★할머니의 4월 / 전숙영
시장 한 귀퉁이
변변한 돋보기 없이도
따스한 봄볕
할머니의 눈이 되어주고 있다
땟물 든 전대 든든히 배를 감싸고
한 올 한 올 대바늘 지나간 자리마다
품이 넓어지는 스웨터
할머니의 웃음 옴실옴실 커져만 간다
함지박 속 산나물이 줄지 않아도
헝클어진 백발 귀밑이 간지러워도
여전히 볕이 있는 한
바람도 할머니에게는 고마운 선물이다
흙 위에 누운 산나물 돌아앉아 소망이 되니
꿈을 쪼개 새 빛을 짜는 실타래
함지박엔 토실토실 보름달이 내려앉고
별무리로 살아난 눈망울 동구밖 길 밝혀준다
★4월 / 박인걸
사월이 오면
옛 생각에 어지럽다.
성황당 뒷골에
진달래 얼굴 붉히면
연분홍 살구꽃은
앞산 고갯길을 밝히고
나물 캐는 처녀들
분홍치마 휘날리면
마을 숫총각들 가슴은
온종일 애가 끓고
두견새는 짝을 찾고
나비들 꽃잎에 노닐고
뭉게구름은 졸고
동심은 막연히 설레고
半白 긴 세월에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 시절
앞마당에 핀 진달래
그때처럼 붉다.
★4월이 떠나고 나면 / 목필균
꽃들아, 4월의 아름다운 꽃들아.
지거라, 한 잎 남김없이 다 지거라,
가슴에 만발했던 시름들
너와 함께 다 떠나버리게
지다보면
다시 피어날 날이 가까이 오고
피다보면 질 날이 더 가까워지는 것
새순 돋아 무성해질 푸르름
네가 간다 한들 설움뿐이겠느냐
4월이 그렇게 떠나고 나면
눈부신 5월이 아카시아 향기로
다가오고
바람에 스러진 네 모습
이른 아침, 맑은 이슬로 피어날 것을
★4월의 노래 / 노천명
사월이 오면은,
사월이 오면은
향기로운 라일락이 우거지리
회색빛 우울을 걷어 버리고
가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저 라일락 아래로
라일락 아래로
푸른물 다담뿍 안고 사월이 오면
가냘푼 맥박에도 피가 더하리니
나의 사람아 눈물을 걷자
청춘의 노래를 사월의 정령을
드높이 기운차게 불려 보지 않으려나
앙상한 얼골이 구름을 벗기고
사월의 태양을 맞기 위해
다시 거문고의 줄을 골라
내 노래에 맞추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사월의 시 / 이해인
꽃 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양 활짝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새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맘이고,
고운 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적이며,
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느끼며
두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볼랍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4월이 문을 엽니다.
★4월의 만남 / 김덕성
함께 사는 세상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정이건 애정이건 만남은
정이 오가면서
믿음이 생기게 되어
비로소 사랑의 꽃 피게 되나니
4월의 만남으로
미덥지 않는 선거용 악수가 아닌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진실한 믿음으로
나누는 사랑의 악수가 되고
신중한 한 표 한 표
깨끗한 선거로 뿌리를 내리는 4월
4월의 만남은
우리에게 행복이요 축복이어라
★4월에 내리는 봄비 / 나상국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삼동추위 떠나가는 자리
봄 언제 올까, 기다리는데
꽃샘추위가 시샘을 부리더니
며칠째 몸져누운 파리한
온기마져도 사라진
텅 빈 허허로운 벌판 같은 방안으로
우울이 한 웅큼씩 찾아들더니
저렇게 봄비가 내린다
★4월에 / 정희성
보이지 않는 것은 죽음만이 아니다.
굳이 돌에 새긴 피
그 시절의 무덤을 홀로
지키고 있는 것은 석탑(石塔) 뿐
이 땅의 정처 없는 넋이
다만 풀 가운데 누워
풀로서 자라게 한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룬 것은 없고
죽은 자가 또다시 무엇을 이루겠느냐
봄이 오면 속절없이 찾는 자 하나를
젖은 눈물에 다시 젖게 하려느냐
4월이여
★4월의 사랑은 / 이재민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
잔 거품 오르는 생맥주가 앞에 있다
그리움 한 모금을 삼킨다
이른 아침 산을 오르며
가슴속 그리움을 물갈이 하는 여인은
같은 시간
물을 차며 수영을 하듯
내 그리움을 가른다
별빛 같은 아파트 저녁 불빛 속에
사랑의 등대를 찾아
항로를 바꾼 여인은
자신만의 선착장에
그리움의 배를 대고 안식하고 싶어 한다
그곳엔 폭풍우도
세상을 가를듯한 천둥번개도 없기를
간절한 기도로 소망한다
사랑의 동산에
4월의 향기 짙은 개나리꽃도 피어주고
진달래꽃도 함께 피어주기 바란다
다가올
7월의 뜨거운 햇살처럼
★4월과 아침 / 오규원
나무에서 생년월일이 같은 잎들이
와르르 태어나
잠시 서로 어리둥절하네
밤새 젖은 풀 사이에 서 있다가
몸이 축축해진 바람이 풀밭에서 나와
나무 위로 올라가 있네
어제 밤하늘에 가서 별이 되어 반짝이다가
슬그머니 제 자리로 돌아온 돌들이
늦은 아침 잠에 단단하게 들어있네
★봄이여, 4월이여 / 조 병화
하늘로 하늘로 당겨오르는 가슴
이걸 생명이라고 할까자유라고 할까
해방이라고 할까
4월은 이러한 힘으로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을
밖으로, 밖으로, 인생 밖으로
한없이, 한없이 끌어내어
하늘에 가득히 풀어놓는다
멀리 가물거리는 것은 유혹인가
그리움인가
사랑이라는 아지랑인가
잊었던 꿈이 다시 살아난다
오, 봄이여, 4월이여
이 어지러움을 어찌하리
★사월에 걸려 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 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가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4월에 꿈꾸는 사랑 / 이채
4월엔 그대와 나
알록달록 꽃으로 피어요
빨강 꽃도 좋고요
노랑 꽃도 좋아요
빛깔도 향기도 다르지만
꽃 가슴 가슴끼리 함께 피어요
홀로 피는 꽃은 쓸쓸하고요
함게 피는 꽃은 아름다워요
인연이 깊다 한들
출렁임이 없을까요
인연이 곱다 한들
미움이 없을까요
나누는 정
베푸는 사랑으로
생각의 잡초가 자라지 않게
불만의 먼지가 쌓이지 않게
햇살에 피는 꽃은
바람에 흔들려도
기쁨의 향기로 고요를 다스려요
꽃잎 속에 맑은 이슬은 기도가 되지요
4월엔 그대와 나
알록달록 꽃으로 피어요
진달래도 좋고요
개나리도 좋아요
★사월 / 조성심
사월, 사월
사월을 입 속에서 되뇌이다보면
파아란 잎사귀가 돋아난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사월에 어찌 자리를 묵힐 수 있으랴
그냥 길을 보라
발을 내디딜 때마다
눈 속에 들어오는 건
어제와 또 다른 숨막히는
사월의 드라마
그냥 빈 마음만 준비해도
사월 내내 누구나
초대받은 손님이 된다.
★4월 나무 / 최연창
움직임이 없다는 것
소리가 없다는 것
그것은 생명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움직임도 없이
소리도 없이
4월의 나무는
생명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움을 틔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연록의 잎들을
가득 품고
푸른 봄을 이루었습니다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커다란 몸부림이었고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침묵의 노래였습니다
★4월이 오면 / 권영상
4월이 오면
마른 들판을
파랗게 색칠하는 보리처럼
나도 좀 달라져야지.
솜사탕처럼 벙그는
살구꽃같이
나도 좀 꿈에 젖어
부풀어 봐야지.
봄비 내린 뒷날
개울을 마구 달리는
힘찬 개울물처럼
나도 좀 앞을 향해 달려 봐야지.
오, 4월이 오면
좀 산뜻해져야지.
참나무 가지에 새로 돋는 속잎같이.
★4월의 거리에 서면 / 노태웅
벗이여
체념의 행렬 깨우던 이 거리에
4월이 오거든
마음에서 멀어진 그날의 함성
우리 모두의 바램 다시 한번 기억해다오
창 밖 향나무
당신을 위해
몸을 태워 향기 날릴 때
항거했던 아픈 가슴
영원한 울림 그날을 기억해다오
벗이여
웃음으로 가득한 이 거리
다시 4월이 오거든
그때 많은 꿈 묻어둔 거리를 거닐며
어제의 함성에 귀 기울여다오
4월의 거리에 서면.
★4월 / 정연복
악의 없는 거짓말이
너그럽게 용납되고도 남는
만우절로 시작되는 4월은
통이 무척 큰 달이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걷잡을 수 없이
지천으로 피는 꽃들 때문이다.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과 벚꽃뿐이랴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초록 풀들과 민들레 앞에서
거짓과 기만의 세상은
한풀 꺾이고 만다
★4월의 노래 / 정호승
사월이 오면
저 산을 뽑으리라
산새도 살지 않는
사람들도 쫓겨간
저 붉은 산을 뽑아
바다에 던지리라
개꽃이 피고
개꽃잎이 흩어져도
저 붉은 산을 뽑아
바다에 던지고
자유의 무덤 앞을
떠나가리라
★아, 4월 / 이시영
감자 대를 뜯다가도 나는 너를 기다렸다
오늘도 동냥 나가 나는 너를 기다렸다.
강 건너 버들잎 날리면
보리밭 둑을 타고 너는 오리라
뒷산에 진달래 붉게 울면
목발을 짚고 너는 오리라
땀에 젖은 얼굴 빛나는 함성
그날의 총탄 속을 뚫고
너는 다시 오리라
거친 땅이 낳은 아들 문둥이 아들
누더기 속에 간 오히려 깨끗한 사랑
두 팔에 덥석 안을 날은 오리라
아아 몇몇 해던가
먹구름을 몰아내면 또 같은 먹구름
소나기를 피하면 더 거센 소나기
너는 오지 않고 쉽사리 오지 않고
종살이에 지친 누이들
칡꽃이 희게 울 때 또 다른 주인 찾아 몸 팔러 갔네
종달이 빈 밭에 날 때
힘깨나 쓰는 동생들 서울 가 떠돌이가 되었네
애비 같은 비렁뱅이 되었네
아아 몇몇 해던가 기다림의 나날
한번은 박차고 나아가 맞이해야 할 날
가난하지만 자랑스럽게 우리가 우리 차지해야 할 날
크나큰 슬픔의 날 별빛 해방의 날 오리라
바로 너는 오리라 꽃수레 타고
가랑잎만 굴러도 나는 너를 기다렸다.
다리 밑 움막 열고 나와 나는 너를 기다렸다.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 정해종
우수 경칩 다 지나고
거리엔 꽃을 든 여인들 분주하고
살아 있는 것들 모두 살아 있으니
말을 걸어 달라고 종알대고
마음속으론 황사바람만 몰려오는데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나서
마침내 바람이 되고 싶다
바람이 되어도 거센 바람이 되어서
모래와 먼지들을 데리고 멀리 가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나라
어느 하늘 한족을 자욱이 물들이고 싶다
일렁이고 싶다
★4월 엽서 / 정일근
가슴으로 읽는 시] 사월 비
막차가 끝나기 전에 돌아가려 합니다
그곳에는 하마 분분한 낙화 끝나고 지는 꽃잎 꽃잎 사이
착하고 여린 새 잎들 눈뜨고 있겠지요
바다가 보이는 교정 4월 나무에 기대어
낮은 휘파람 불며 그리움의 시편들을
날려 보내던 추억의 그림자가 그곳에 남아있습니다
작은 바람 한 줌에도 온몸으로 대답하던
새 잎들처럼 나는 참으로 푸르게
시의 길을 걸어 그대 마을로 가고 싶었습니다
날이 저물면 바다로 향해 난 길 걸어
돌아가던 옛집 진해에는 따뜻한 저녁 불빛
돋아나고 옛친구들은 잘 익은 술내음으로 남아있겠지요
4월입니다.
막차가 끝나기 전에
길이 끝나기 전에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사월 비 / 이제하
보소, 보이소로 오시는 사월 가랑비
헤어진 여자 같은 사월 가랑비
잔치도 끝나고 술도 깨고 피도 삭고 꿈도 걷히고
주머니마저 텅텅빈 이른 새벽에
가신 이들 보이는 건널목 저편
사랑한다, 한다 횡설수설하면서
어디까지 따라오는 사월 가랑비
★봄, 사월에 / 이재무
꽃이 피는 속도를 그대 아는가
시속 40Km
남에서 북으로 나는 달리며
숨이 가쁘다네
저 사랑의 속도
뒤따르며 내 쉽게 지치는 것은
몸이 지친 탓만이 아니라네
꽃으로 살지 않고
함부로 꽃 사랑하고 노래한 죄
저리 커서 달아나는 님
길의 고비마다 불쑥 얼굴 내미는
돌팍과 자갈의 충고
그걸 알고 부르튼 마음의 맨발바닥
꽃이 피는 속도에 숨이 가빠서
나는 슬프네 나는 기쁘네
★4월 / 장석주
금치산자 같은 4월이 왔다간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시시하지?
하는 얼굴을 하고
방부 처리되지 않은 추억들이
질척거리는 침출수를
삶의 빈 틈으로 조금씩 흘러보낸다
개척자는 아니지만 무능이
뼈에 사무치는 것은
일품요리 같은 여자와의 연애가
곧 끝나고 말리라는 예감 때문이다
무능과 게으름은
내 삶에 붙은 이면옵션이다
나쁜 패를 잡고 전전긍긍하는 노름꾼에게도
4월이 오고 내게도
사지를 절단한 편지가 도착하고
끔찍한 날들이 이어진다
머리 없는 남자가
낚시터로 가는 길을 묻는다
★4월에는 / 이명희
4월의 하늘은 친절하고 햇살은 상냥 합니다
담장에 기대인 목련의 성근가지에도 하얀 꽃이 피고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그리운 소식들이
한꺼번에 들려 올 것 같습니다
쌀쌀한 마음을 거두고 포근한 무릎을 내민
그대의 살 내음에 취하고 싶은 날
내 맘의 위안이고 희망인 그대를 만나기 위해
땅을 일궈야 하겠습니다
잡초를 뽑아내고 꽃씨를 뿌려
꽃을 피워야 하겠습니다
인연으로 시작하는 사람들과
다시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설렘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희망의 밭을 기름지게 일궈야 하겠습니다.
★사월의 꽃 / 김경숙
전국은 비상사태다
봄바람에 꽃들이
참았던 웃음 보내느라
하루해가 짧다고
노을 붙잡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밤이면 달빛 끌어안더니,
밤낮 가리지 않고
함박웃음 터뜨려 유혹하더니,
향기에 취한 사월
흔들리며 걸어간다
꽃바람 따라 어디든
★4월의 만남 / 김덕성
함께 사는 세상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정이건 애정이건 만남은
정이 오가면서
믿음이 생기게 되어
비로소 사랑의 꽃 피게 되나니
4월의 만남으로
미덥지 않는 선거용 악수가 아닌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진실한 믿음으로
나누는 사랑의 악수가 되고
신중한 한 표 한 표
깨끗한 선거로 뿌리를 내리는 4월
4월의 만남은
우리에게 행복이요 축복이어라
★4월에 내리는 봄비 / 나상국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삼동추위 떠나가는 자리
봄 언제 올까, 기다리는데
꽃샘추위가 시샘을 부리더니
며칠째 몸져누운 파리한
온기마져도 사라진
텅 빈 허허로운 벌판 같은 방안으로
우울이 한 웅큼씩 찾아들더니
저렇게 봄비가 내린다
★중년의 가슴에 4월이 오면 / 이채
꽃이 예쁘기로
앞서고 뒤서지 아니하니
4월의 꽃이여!
중년의 꽃이라고 꽃마저 중년이랴
내 꽃의 빛깔이 바래지 않는 것은
한때의 청춘이 그리운 까닭이요
내 꽃의 향기가 시들지 않는 것은
한때의 사랑을 못 잊는 까닭이다
구름은 흘러도 흔적이 없고
바람은 불어도 자취가 없건만
구름 같고 바람 같은 인생아!
왜,
사람의 주름은 늘어만 가는가
꽃이 예쁘기로
피었다 아니 질 수 없으니
4월의 꽃이여!
그대, 젊음을 낭비하지 마오
지나고 보니
반 백년 세월도 짧기만 하더이다
★4월의 환희 / 이해인
깊은 동굴 속에 엎디어 있던
내 무의식의 기도가
해와 바람에 씻겨
얼굴을 드는 4월
산기슭마다 쏟아 놓은
진달래꽃
웃음소리
설레이는 가슴은
바다로 뛴다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랑을 향해
바위 끝에 부서지는
그리움의 파도
못자국 선연한
당신의 손을 볼 제
남루했던 내 믿음은
새 옷을 갈아입고
이웃을 불러 모아
일제히 춤을 추는
풀잎들의 무도회
나는
어디서나 당신을 본다
우주를 환희로 이은
아름다운 상흔을
눈 비비며 들여다본다
하찮은 일로 몸살하며
늪으로 침몰했던
초조한 기다림이
이제는 행복한
별이 되어
승천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부활하신 당신 앞에
숙명처럼 돌아와
진달래 꽃빛 짙은
사랑을 고백한다
★4월, 진해만 / 정일근
바다는 푸른 접시에 담겨
신의 아침 식탁 위에 놓여 있다
신은 아페리티프를 주문해 놓고
노래하듯 시를 읽거나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듣는다
세일러복을 입은 갈매기들이
거수경례를 하며 지나간다
향커피 한 잔이 뜨거워지는 사이
바다의 표정은 세룰리언블루에서
색스블루(saxe blue)로 변해가고
사월 바람에 꽃잎 몇 장 날아와
접시 속의 가벼운 섬으로 앉는다
후, 하고 꽃잎들을 불어본다
자욱한 꽃향기 바다를 덮는다
★사월 / 김현승
플라타너스의 순들도 아직 어린 염소의 뿔처럼
돋아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시는 그들 첨탑 안에 든 예언의 종을 울려
지금 파종의 시간을 아뢰어 준다.
깊은 상처에 잠겼던 골짜기들도
이제 그 낡고 허연 붕대를 풀어버린 지 오래이다.
시간은 다시 황금의 빛을 얻고,
의혹의 안개는 한동안 우리들의 불안한 거리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검은 연돌(煙突)들은 떼어다 망각의 창고 속에
넣어 버리고,
유순한 남풍을 불러다 밤새도록
어린 수선(水仙)들의 쳐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개구리의 숨통도 지금쯤은 어느 땅 밑에서 불룩거릴 게다.
추억도 절반, 희망도 절반이어
사월은 언제나 어설프지만,
먼 북녘에까지 해동(解凍)의 기적이 울리이면
또다시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 달은 어딘가 미신(迷信)의 달……
★사월의 시 / 이해인
꽃 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양 활짝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새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맘이고,
고운 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적이며,
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느끼며
두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볼랍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4월이 문을 엽니다.
★4월의 불꽃 / 장수남
그가 돌아왔다
뜨거운 미소로 창을 두드리며
나를 흔들어 깨웠다.
419민주의거
영원한 민주의 불꽃
4월 진달래 삼천리 흐드러지게
붉게 꽃피우리라.
★4월 / 오세영
언제 우레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월.
눈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
★4월에 / 채호기
겨울이 다 가도
봄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깡깡한 얼음덩어리 속에서
불쑥 몸을 돌려
꽃으로 변신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끔 깨어져 날카롭게 일어서는
동지들의 아름다움이
심장을 쩡쩡 울린다.
잎 트고 어지러이 봄꽃들 피어나도
얼음은 얼음
영하 20도의
차갑고 분명한 정신으로
오월을 맞는다.
★4월과 5월 / 박정만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봄빛보다 찬란하게 사라져간 너를 그린다
그린 듯이 그린 듯이
너는 라일락 꽃잎 속에 숨어서
라일락 꽃잎 같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너는 나를 그리며 더 큰 웃음을 웃고 있지만
네가 던진 함성도 돌멩이도 꿈 밖에 지고
모호한 안개, 모호한 슬픔 속으로
저 첫새벽의 단꿈도 사라지는 것을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사라진다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세월의 앙금처럼 가라앉아
그것이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되고
그 뿌리 속에 묻어 둔 불씨가 되는 너를 그린다
그린 듯이 그린 듯이
너는 라일락 꽃잎 속에 숨어서
라일락 꽃잎 같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파아란 보랏빛 얼굴로 웃고 있지만
★내 4월의 향기를 / 윤보영
내 4월은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3월의 피었던 꽃향기와
4월에 피게 될 꽃향기
고스란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
눈빛가지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향기를 나누며
향기를 즐기며
아름다운 4월로 만들고
싱그러운 5월을 맞을 수 있게
마음을 열어 두어야겠어요
4월에는
한달 내내 향기속의 나처럼
당신에게도 향기가 났으면 더 좋겠습니다
마주보며 웃을 수 있게
그 웃음이 내 행복이 될 수 있기에..
★4월 / 안재동
사회의 엘리트 그룹에 진입하는 지름길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수천 편의 응모작품들 중 단 한 사람의
작품만이 행운의 여신에 의해 선택되는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다.
해외유학 길에 올라 상처받지 않고
버젓하게 박사학위를 따오는 일도
돈도 있어야 하고 실력도 있어야 하는,
참 어려운 일이고
수십 내지 수백, 아니 수천 명이나 되는
종업원의 밥줄이 걸린, 크고 작은
사업체 하나 망하지 않게 운영하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다.
먹고 살기 위해 무더위나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일 년 내내 막노동판에서
등짐을 져다 나르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고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 없어
세월아 네월아 하고 빈둥거리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다.
고통스러운 기나긴 겨울 동안 묵묵히,
바야흐로 세상 모든 나무들이
다시 푸른 싹을 틔우며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자태를 갖추는데
세상 모든 꽃들이
오래전 잃어버린 얼굴을 찾기나 한 듯
감동처럼 느껴지는 새 얼굴과
짙은 향기를 세상에 들이미는데
긴 시간, 내 속의 살았으되 죽은 영혼,
저 나무와 꽃들처럼 참 어려웠던 듯
쉬운 듯
이제 소생했으면 하는, 4월.
★4월의 노래 / 정연복
꽃들
지천으로 피는데
마음 약해지지 말자
나쁜 생각은 하지 말자.
진달래 개나리의
웃음소리 크게 들리고
벚꽃과 목련의
환한 빛으로 온 세상 밝은
4월에는 그냥
좋은 생각만 하며 살자.
한철을 살다 가는 꽃들
저리도 해맑게 웃는데
한세상 살다 가는 나도
웃자 환하게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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