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가는 길/조오현(曺五鉉)
비슬산 구비 길을 누가 돌아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만 첩첩 두루 적막(寂寞) 비워 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
●초파일 밤 / 김 지하
꽃같네요
꽃밭 같네요
물기어린 눈에는 이승 같질 않네요
갈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저기 저 꽃밭
살아 못 간다면 살아 못간다면
황천길에만은 꽃구경 할 수 있을까요
삼도천을 건너면 저기에 이를까요
벽 돌담 너머는 사월 초파일
인왕산 밤 연등, 연등, 연등
오색영롱한 꽃밭을 두고
돌아섭니다
쇠창살 등에 지고
침침한 감방 향해 돌아섭니다
굳은 시멘트 벽 속에
저벅거리는 교도관의 발자욱 울림 속에
캄캄한 내 가슴의 옥죄임 속에도
부처님은 오실까
연등은 켜질까요
고개가로저어
더 깊숙이 감방속으로 발을 옮기며
두 눈 질끈 감으면
더욱 영롱히 떠오르는 사월 초파일
인왕산 밤 연등, 연등, 연등
아아 참말 꽃 같네요
참말 꽃 같네요
●풍경 달다/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十一面觀音菩薩(십일면관음보살)/박종화(朴鍾和)
1
千年(천년) 大佛(대불)을
聖處女(성처녀)로 모시우다.
胡蘆(호로) 한병으로
東海(동해) 물을 불리시다.
웃는듯 자브름하신가 하면
조는듯이 웃으셨네
담은듯 열으신듯 어여쁜 입술
귀 귀울여 들으면
향기로운 말씀
도란도란 구으는듯 하구나.
2
圓光寶冠(원광보관)이 모두 다 거룩하다.
부드러운 두 볼
날씬한 두 어깨
春山峨眉(춘산아미)가 의젓이 열리셨네
결곡하게 드리우신 코
어여쁘다 방울조차 없구나.
3
고운지고 보살의 손
돌이면서 白魚(백어)같다
新羅(신라) 옛美人(미인)이
저렇듯이 거룩하오?
무릎 꿇어 우러러 만지면
薰香(훈향)내 높은 나렷한 살 기운
당장 곧 따스할듯 하구나.
●고사(古寺) 1 / 조지훈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西域萬里) 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서산마애삼존불 /오세영
돌에서 깨어나
인간으로 지금막 환생해서
걸어나오는 미륵이여,
이세상 첫걸음에
알듯 모를듯 입가에 흘리는
그대 미소는
진정무엇을 말하려 함인가
한송이 연꽃에도 우주가 있다는데
그대를 막잠에서 깨운
암벽의 진달래
너무도 아름다워 그런것인가.
돌도 佛性받아
인간될 수 있음을
한낱 미소로 깨닫게 해준
서산(瑞山)운산면(雲山面)
마애존불
●공양/안도현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 울음 서른 되
●오체투지/이수익
몸을 풀어서
누에는 아름다운 비단을 짓고
몸을 풀어서
거미는 하늘 벼랑에 그물을 친다.
몸을 풀어서,
몸을 풀어서,
나는 세상에 무얼 남기나.
오늘도 나를 자빠뜨리고 달아난 해는
서해바다 물결치는 수평선 끝에
넋 놓고 붉은 피로 지고 있는데.
●관세음의 노래 /서정주
그리움으로 여기 섰노라
호수와 같은 그리움으로,
이 싸늘한 돌과 돌 사이
얼크러지는 칡넝쿨 밑에
푸른 숨결은 내 것이로다.
세월이 아주 나를 못 쓰는 티끌로서
허공에, 허공에, 돌리기까지는
부풀어오르는 가슴속에 파도와
이 사랑은 내 것이로다.
오고 가는 바람 속에 지새는 나달이여
땅속에 파묻힌 찬란한 서라벌.
땅속에 파묻힌 꽃 같은 남녀들이여.
오 생겨났으면, 생겨났으면,
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는 이
천년을,천년을, 사랑하는 이
새로 햇볕에 생겨났으면
새로 햇볕에 생겨나와서
어둠 속에 날 가게 했으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이 한 마디 말 님께 아뢰고, 나도,
이제는 바다에 돌아갔으면!
허나 나는 여기 섰노라.
앉아 계시는 석가의 곁에
허리에 쬐그만 향낭을 차고
이 싸늘한 바위 속에서
날이 날마다 들이쉬고 내쉬이는
푸른 숨결은
아, 아직은 내 것이로다.
●탑을 돌며/서정윤
진흙이 물을 담고
옹기가 되어 서 있다
모든 끝나는 곳에서 시작하는
침묵을 보고 있으면
세상은 찬란하게 빛난다
아름다움 속에 죽음이 숨어 있다
삶의 흰 이빨이 보인다
●미소론/유안진
국보 제78호
삼국시대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한장 사진만으로도
새 정토(淨土)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아름다운 극치
극치의 신비 신비로운 절대
이 미소 이상은 모두가 게거품질이고
이 미소 이하는 모두가 딸꾹질이다
안면근육경련이다.
●합장(合掌)/김소월
나들이. 단 두 몸이라. 밤 빛은 배여와라.
아, 이거 봐, 우거진 나무 아래로 달 들어라.
우리는 말하며 걸었어라, 바람은 부는 대로.
등(燈)불 빛에 거리는 헤적여라, 희미(稀微)한 하느편(便)에
고이 밝은 그림자 아득이고
퍽도 가까힌, 풀밭에서 이슬이 번쩍여라.
밤은 막 깊어, 사방(四方)은 고요한데,
이마즉, 말도 안하고, 더 안가고,
길가에 우뚝하니. 눈감고 마주서서.
먼먼 산(山). 산(山)절의 절 종(鍾)소리. 달빛은 지새어라.
●해인사/조병화
큰 절이나
작은 절이나
믿음은 하나
큰 집에 사나
작은 집에 사나
인간은 하나
●송광사에 와서/ 이근배
아직도 흐르고 있느냐
조계산이 온 몸으로 끌어 안던
밤이 살 냄새를 다 씻지못하고
물소리는 저데로 치닫고만 있느냐
피가 비칠세랴
뼈가 드러날세랴
사랑은 숨죽여 안개속에 묻히더니
그 입덧은 자꾸 기어나와
국사전 뒷뜰에 부스럼같은
상사화로 피어 있구나
눈에 보이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름이야 열번 백번
바뀐들 어떠랴
산에 오면 나도
산이 되어야 할텐데
감로탑 앞에 서면 나도
머리깍은 돌이 되어야 할텐데
왜 내겐 물소리 뿐이지
저 삐죽삐죽한 상사화들이
내 잃어버린 사랑으로 보이지
왜 나는 물소리가 되지 못하지
헛것들에 갇혀서
돌아오는 길을 잃고 있지
●백담사 /이성선
저녁 공양를 마친 스님이
절 마당은 쓴다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산에 걸린 달도
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아나고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석굴암대불/유치환
목놓아 터뜨리고 싶은 통곡을 견디고
내 여기 한개 돌로 눈감고 앉았노니
천년을 차거운 살결 아래 더욱
아련한 핏줄, 흐르는 숨결을 보라
먼솔바람
부풀으는 동해 연잎
소요로운 까막까치의 우짖음과
뜻없이 지새는 흰달도 이마에 느끼노니
뉘라 알랴!
하마도 터지려는 통곡을 못내 견디고
내 여기 한개 돌로
적적히 눈감고 가부좌하였노니.
●돌아가는 길/문정희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 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우담바라 / 임영조
청계사 극락보전 삼신불 앞에
낯선 새떼들 왁자지껄 붐빈다
네가 곧 부처다
네 마음이 절이다
아무리 일어줘도 못 알아들으니
답답하신 부처는 문뜩 우담봐라!
스스로 이마 찢고 꽃을 피웠다
앞뜰 냉이 꽃다지도 덩달아 피고
저 아래 마을에선 입이 싼
풀잠자리 웃음소리 자지러지고
오늘도 무사히 봄날은 간다.
●불국사(佛國寺)/박목월
흰달빛
자하문(紫霞門)
달안개
물소리
대웅전(大雄殿)
큰보살
바람소리
솔소리
범영루(泛影樓)
뜬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달빛
자하문
바람소리 물소리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석굴암(石窟庵) /김상옥
오줏이 연좌(蓮坐)우에 발돋움하고 서서
속눈섶 조으는듯 동해를 굽어 보고
그 무슨 연유(緣由) 깊은 일 하마 말씀 하실까
몸짓만 사리어도 흔들리는 구슬소리
옷자락 겹친 속에 살ㅅ결이 꾀비치고
도도록 내민 젖가슴 숨도 고이 쉬도다
●연등 / 염경희
비비고 비벼 주름잡아 곱게 포갠 마음
두둥실 오색구름 하늘 높이 걸어 놓은
그 모습
큰 가르침 부처님 오신 날을
앞장서서 알리네
●부처님 오신 날 봉축시 /홍사성
순정한 이 마음
두 손으로 감싸 모웁니다
두 손 모아서
연꽃 한 송이 피웁니다
막 피어난 청신한 꽃
당신께 바칩니다
당신은 하늘 아래 땅 위에서
가장 소중한 분
무릎 꿇고 올리는 이 꽃
받아주소서
연꽃 같은 내 마음
받아주소서
●부처님 /유자효
기다리지 마
다음이란 없어
탁발 스님을 보았을 때 시주를 하고
걸인을 만났을 때 동전 하나라도 던져야 해
부처님은 다시는 오지 않아
오직 한 번
네 앞에 모습을 나타내신
그때를 놓치지 마다
음이란 없는 게야
다음이란
●초파일 /민영
진달래꽃 피었다 지고
유채꽃이 피었습니다.
유채꽃이 피었다 지고
함박꽃이 피었습니다.
함박꽃이 피었다 지면
제비붓꽃 피어날까요?
하늘과 땅에
청노새빛 햇살 퍼지고
바다 건너 西天에서
아기 부처님 목소리 들려옵니다.
●돌부처의 미소 /목필균
-용화사 미륵존불
부안 바다에 정박했던 바람이
미륵골 대숲에서 수런거리며
천수경을 읊는다
아들 점지해주던 영험도
입으로 지은 허물 닦아주던
진언도 생매장되어
안으로만 내공을 쌓았는지
코가 떨어져 나가도
귓불이 잘려 나가도
기척도 없다
땅 속에 묻히고도
다시 세상 빛을 봐도
묵언수행
오가는 사람 덧없어
……. …….
천이백 년 고행 길
안으로 삼켜지는 목탁소리
풍화되지 않은
돌부처의 미소만이
한겨울 눈부신 햇살로 돋아난다
●부처바위 /손택수
경주 남산 스님 한 분 바위 속에 갇혀 있다.
반야나무 망고나무 잎 아래 결가부좌 튼 채 안으로
금이 가고 금길 따라 빗물이 흘러드는 소리를 엿듣고 있다.
죽어서 바위는 모래알을 남기고 고승은 사리알을 남긴다는데……
천년 비바람에 가사 옷주름이 지워지고
얼굴선이 희미해지면서 둘은 이제 어지간히 닮아도 보인다.
그러나 바위가 사리알이 되기까지,
스님이 모래알이 되기까지 크낙한 저 침묵은 또 천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선정에 든 바위에서 흐르는 눈물, 모래 쓸리는 소리가 아릿하다.
●부처꽃 /김내식
성전암으로 올라가는
옥같이 푸른 물에
사월 초파일 煙燈에 타오르는 촛불처럼
부처꽃이 조롱조롱 매달려
바람에 하늘거린다
참새가 날아가며 머리에 똥을 싸도
천년을 빙그레 미소만 짖는
觀音菩薩의 인자한 미소처럼 편안하고 소박하게
매미들 우는 소리 들으며
참선하는 스님인가 붉
은 꽃대를 다소곳 숙여
조용히 합장한다
산을 오르는 자는 무엇을 채우려 올라가는지
무엇을 비우고 떠나는지 알 필요 없이
늘 제 자리에 만족하며
때 되면 꽃 피우다 씨 뿌리고 스러져
물 같은 삶을 제시해주는
살아있는 부처이다
●갓바위 부처님 /여한경
그까짓 이름이야
아무라면 어떠냐.
팔공산 관봉(冠峯) 정수리에
높이 홀로 앉아서도
눈시울 내리깔고는
아래로만 내려보는 부처님
구름처럼
벌떼처럼
하늘마당에 모인 사람들
촛불 연등 밝혀놓고
축원 염불 밤낮으로 시끄럽지만
모두를 굽어보며
모두를 헤아리며
광명(光明)으로 이끄시는 부처님
하늘보다
드높아만 보이시네.
●난쟁이 부처 /김영천
앉은키가 겨우 한 자나 될까 하는
돌부처
歷史나 이승의 업이 내내 돌의 무게로
누른다 하더라도
지금은 어느 세상을 꿈꾸는가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무표정으로
참 오랜 설법을 한다
불쑥 세상을 털고 일어서면
그 키가 하늘을 닿을라
잔설께를 비추던 암벽의 그림자가
한 자나 멀리 비킨다
나도 서둘러 마음을 비킨다.
●바람 /조평구
바람이 억새밭을 스치며
"우리도 일천배 올리자!"
바람이 낙엽을 굴리며
"우리도 탑돌이 하자!"
바람이 개울물 스치며
"우리도 찬불가 부르자!"
바람이 부처님 되고 싶어
대웅전 쪽으로 몰려갑니다.
●냄비가 부처 같다 /임영석
펄펄 끓는 물을 보니
냄비가 부처 같다
펄펄 끓는 물을 안고
움직이지 않는 저 힘,
부처가 연꽃에 앉아
번뇌하는 기도 같다
●둥근 길 /이태수
경주 남산 돌부처는 눈이 없다
귀도 코도 입도 없다
천년 바람에 껍데기 다 내주고
천년을 거슬러 되돌아가고 있다
안 보고 안 듣고 안 맡으려 하거나
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천년의 알맹이 안으로 쟁여 가기 위해
다시 천년의 새 길을 보듬어 오기 위해
느릿느릿 돌로 되돌아가고 있다
돌 속의 둥근 길을 가고 있다
새 천 년을 새롭게 열기 위해
둥글게 돌 속의 길을 가고 있다
●부처 /오규원
남산의 한중턱에 돌부처가 서 있다
나무들은 모두 부처와 거리를 두고 서 있고
햇빛은 거리 없이 부처의 몸에 붙어 있다
코는 누가 떼어갔어도 코 대신 빛을 담고
빛이 담기지 않는 자리에는 빛 대신 그늘을 담고
언제나 웃고 있다
곁에는 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고
지나가던 새 한 마리 부처의 머리에 와 앉는다
깃을 다듬으며 쉬다가 돌아앉아
부처의 한쪽 눈에 똥을 눠놓고 간다
새는 사라지고
부처는 웃는 눈에 붙은 똥을 말리고 있다
●반가사유상 /김환식
천년을 사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긋이 눈을 감은 채
턱을 괴고 앉은 손가락 사이로
천년의 바람도
고스란히 사유하고 갔을 것이다
담담한 미소는
천년을 사유하고도
그 끝을 풀어 볼 수 없는
한 생의 수수께끼
삶이란
우문현답을 사유하는 것이다
●눈물 부처 /서정춘·
비 내리네 이 저녁을
빈 깡통 두드리며
우리집 단칸방에 깡통 거지 앉아 있네
빗물소리 한없이 받아주는
눈물 거지 앉아 있네
●연꽃 /이문조
연잎에 맺힌 이슬방울 또르르 또르르
세상 오욕에 물들지 않는 굳은 의지
썩은 물 먹고서도 어쩜 저리 맑을까
길게 뻗은 꽃대궁에 부처님의 환한 미소
혼탁한 세상 어두운 세상 불 밝힐 이
자비의 은은한 미소 연꽃 너밖에 없어라.
●합장 /목필균
대웅전 문턱을 넘어서도
모르는 척 미동 없이
연꽃잎만 헤아리는 부처님
지은 죄업의 손과
죄업을 사하는 손이
마주한다
묻지도 답하지도 않는
금빛 침묵
오면 간다던가
가면 온다던가
어둠을 비워내는
촛불이 흔들린다
구정물로 빠져나가는
모진 세상살이
찰나의 평온함이
가슴에 피어난다
● 예수와 부처가 만나무척 반가워하면
안 될까 / 정연복
기독교와 불교가 다정히 손잡으면 안 될까
크리스천과 불교도가 뜨겁게 포옹하면 안 될까
교회당과 법당이 나란히 서 있으면 안 될까
하느님 나라와 극락정토가함께 있으면 안 될까
구원과 열반이동시에 이루어지면 안 될까
묵주와 목탁이같이 놓여 있으면 안 될까
십자가 둘레를 연꽃으로수놓으면 안 될까
●부처 /김진경
치자꽃 향기가 좋아 코를 댔더니
그 큰 꽃송이가 툭 떨어지다
귀한 꽃 다친 게 미안해서
손바닥 모아 꽃송일 감추었더니
합장 인산 줄 알았던가?
보는 이마다 합장한 채 고개를 숙이고 간다
어허, 여기선 치자꽃이 부처일세!
●회향 /박노해
부처가 위대한 건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고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부처가 부처인 것은
회향(廻向)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크게 되돌려
세상을 바꿔냈기 때문이다
자기 시대 자기 나라 먹고 사는
민중의 생활 속으로
급변하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거부할 수 없는 봄기운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욕망 뒤얽힌 이 시장 속에서
온몸으로 현실과 부딪치면서
관계마다 새롭게 피워내는
저 눈물나는 꽃들 꽃들 꽃들
그대 오늘은 오늘의 연꽃을 보여다오
●연못가에서 /박종대
넓죽한 잎 펼쳐 놓고
어서 오게하시는데
연꽃 말씀 받아 오실
그런 분 안 계신가
저 위에 사뿐 올라 앉을
이슬 방울 같은 사람
●부처를 찾지 마라 /김종제
산중 절에 가서 쇠의 몸에 번쩍 번쩍 금옷 입힌 부처를 찾지 마라 길가 교회에 가서 흙으로 빚고 돌로 조각해 놓은 예수를 찾지 마라 살과 피와 뼈 만들어 주고 숨쉬게 해준 네 아버지 어머니가 부처다 무덥고 추운 세상 두 어깨를 펼치고 이파리 무성하게 드리워 그늘 짙게 만든 느티나무 같은 장작이 되어 뜨겁게 불타오른 아버지가 부처다 예수다 연약한 장미꽃 한 송이로 피어 일편단심 붉은 마음 던지며 쓰레기같이 더러운 세상 향기 나게 만드신 어머니가 보살이다 마리아다 이 땅에서 미륵을 찾지 마라 저 하늘에서 천사를 찾지 마라 너의 아버지와 너의 어머니로부터 낳은 네가 낳은 너의 아들과 딸이 장차 이 세상을 구원할 미륵이다 악마와 싸워 이길 천사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로부터 부처를 찾아라 예수를 찾아라 세상의 모든 자식으로부터 미륵을 찾아라 천사를 찾아라
●무위사 돌부처 /김경윤
어머니, 오늘 하루는 좀 쉬세요 헤진 옷 주름진 얼굴이지만 여기 와서 뵈니 참 보기 좋네요 낮이면 산바람도 쐬고 밤이면 월출산 달구경도 하세요 지친 어머니 얼굴 여기서 다시 뵈니 눈물보다 먼저 반가움이 앞서네요 가부좌로 앉아 계신 우리 어머니 사십년 행상길에 갈라진 발바닥 바셀린 바르고 비닐로 동여매어 양말도 제대로 못 신고 늘 누비보선에 절뚝이시던 어머니, 오늘 하루는 좀 쉬세요 말씀 없으셔도 어머니 살아온 세월 흰머리 주름진 얼굴에 가득하네요 금난가사 입지 않고 후광이 없어도 어머니 모습 참 거룩하네요
●소년 부처 /정호승
경주박물관 앞마당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 있는 화단가목 잘린 돌부처들 나란히 앉아햇살에 눈부시다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자기 머리를 얹어본다소년 부처다누구나 일생에 한번씩은부처가 되어보라고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부처꽃 /최영희
몇 겁의 연緣을 살다 탈속하고 부처,,, 꽃 청 빛, 하늘가 연못가 아니하고 덤불 속 편안도 하시구나 칠 선녀 고이 보내 연못 위 선(善)으로 앉히시고 무지렁이처럼 아무렇게나 자란 풀숲 눈에도 잘 뵈지 않는 밥풀 만한 보랏빛 꽃, 부처라 한다 바람이 마구 흔들어 댄다역시 탈속일까 부처의 미소 참 평안도 하시다.
●자기답게 사는 길 /법정스님
사람은 누구에겐가 의존하려는 버릇이 있다.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타인,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 자신답게 사는 길이다.그러므로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나 자신이 부처가 되는 자기 실현의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할 것은 부처님이 아니라 나 자신과 진리뿐이라는 것.불교는 이와 같이 자기 탐구의 종교다. 자기 탐구의 과정에서 끝없는 이웃(衆生)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 대승 불교이다.초기 불교가 자기 자신을 강조한 것은 자기에게서 시작하려는 뜻에서이다. 자기에게서 시작해 이웃과 세상을 도달하라는 것.자기 자신에게만 갇혀 있다면 그건 종교일 수 없다. 인간에게 있어 진실한 지혜란 이웃의 존재를 보는 지혜다. 자기라는 표현이 때로는 만인 공통의 "마음"으로 바뀐다.
●산산조각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산산조각이 나얼른 허리를 굽히고무릎을 꿇고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불쌍한 내 머리를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부처님이 말씀하셨다산산조각이 나면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산산조각이 나면산산조각으로 살아 갈 수 있지
●초파일 /동호 조남명
연꽃이 물속에서 나와 대웅전 천정에도 앞마당에도 부처님의 지혜가 일렁인다어둠을 걷어내 지혜로 세상을 밝히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마음이다혼자 우는 풍경 그 속 깊은 아픔은 부처님이 알고 검버섯 수놓은 구릿빛 범종의 텁텁한 소리는 경내를 먹는다북적거리는 두 손 모은 행렬에 나뭇잎도 일천 배를 한다중문 활짝 열고 앉으신 한번 안아보고 싶은 듬직한 부처님 만일이 오늘 같았으면 하며 지긋이 실눈 뜨고 만족해 하신다
●달마 /김시천
달마는 달을 보지 않았으나 스스로 밝았다 그 마음에 달떴음이라 제 마음에 달 있는 줄 모르는 자 바람 부는 날 솔숲에나 가 보아라 가서 오지 마라 제 마음에 뜨는 달 보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