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모음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 U. 샤퍼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아무도 그대가 준 만큼의 자유를
내게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대 앞에 서면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될 수 있는 까닭입니다.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대 아닌 누구에게서도 그토록 나 자신을 깊이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귓전에 속삭이는 은빛 비둘기였으면 - 김숙경
바라보고 싶은 곳에 늘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허무한 삶의 향기 때문에
큰 숨을 내어 쉴 때 그대는 가슴 꼭 끌어안아
평온을 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손 내밀어도 닿지 않는 허전함을 지우고
내 작은 손 잡아주는 따뜻한 나의 믿음이었으면 좋겠다.
바람으로 날아와
내 귓전에 속삭이는 은빛 비둘기였으면 좋겠다.
★그대 힘들고 지칠 때 - 박종구
그대 사는 일이 힘들고 지칠 때
자신의 무거운 일과표 그 시름 짐을 잊고
잠시 날개를 접어놓으시구려 그대의 가슴 벗 술 한잔 여겨지면
소주와 사이좋게 둘이 어울리되그 힘을 이용해
자신의 눈물을 도려내시구려 그대가 걸어야 할 길이 아직
멀고 험준하다 해도 이미 그 길 다 걸었다고
마음속 깊이 약속을 하시구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와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 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난 알았습니다 - 하이네
그대가 날 사랑한다는 건
오래 전부터 알았지만
그대가 사랑을 고백했을 때
난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혼자서 산에 올라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불렀습니다
해질 무렵 바닷가에서
울기도 했습니다
이제 내 가슴
태양처럼 타올라
사랑의 바다 속에 잠깁니다
장엄하고 아름답게
★느낌이 좋은 사람이 다가올 때 - 이용채
느낌이 좋은 사람과 만나고 싶다
그의 느낌 깨끗하여
스치는 순간 이 사람이다 말하고 싶어지는 이와
어디선가 우연의 가슴에 설레이며
바람처럼 스치고 싶다
느낌이 좋은 사람과 마주 앉고 싶다
겉모습을 기대하지 않아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지 않아도
잠깐씩 마주치는 눈빛으로
느낌이 다르다고 말하여질 수 있는 이라면
촛불의 카페에서 마주 보는 떨림의 눈맞춤으로
첫 느낌이 맑은 그와 특별한 만남 이루고 싶다
한 번의 만남으로도 알아질 수 있는
아름다운 느낌의 사람과 만났으면 좋겠다
잊혀지지 않을 눈을 가진 사람이
눈빛만으로도 가슴에 크게 남으려 하고
눈을 감으면 더 아름다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바람의 뒷모습처럼 그 느낌 지워지는 날
그 사람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서슴치 않고 말하여 질 수 있는
하얀 느낌의 사람과
나도 모르게 만나지면 좋겠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모래 시계 - 정우경
그대가 가버려도 떠나갔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돌아간다 하겠습니다 그대 내 성에서 머물던 시간이
아무리 길고 깊다 하여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만 할 그대임을
이미 예감하고 있기에 먼 훗날 그대 다시 내게 오면
돌아왔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찾아왔다 하겠습니다
그대 내 성에 잠시 머무는 손님이라 하겠습니다.
★바람부는 날에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 황청원
바람부는 날에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잔잔히 반짝이는 물결의 비늘을 헤치며
우울한 너의 영혼을 껴 안으러 수면 위에 내려 앉은
흐린 물안개에 젖어도 좋으니 피리 소리처럼 흘러서 흘러서
너의 집 문 밖 늦가을 빛 단풍나뭇잎이 지면
거기 함께 흙이 되더라도
너에게 밟히는 그런 흙이 되더라도
★벼랑끝 - 조정권
그대 보고 싶은 마음 죽이려고 산골로 찾아갔더니, 때아닌
단풍 같은 눈만 한없이 내려 마음 속 캄캄한 자물쇠로
점점 더 벼랑끝만 느꼈습니다
벼랑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가다가 꽃을 만나면
마음은 꽃망울 속으로 가라앉아
재와 함께 섞이고 벼랑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보고 싶은 친구에게 - 신재순
친구야, 해가 저물고 있다.
어두운 불투명의 고요가 찾아오면 난 버릇처럼 너를 그린다.
너의 모습, 네가 떠난 설움처럼 그리움으로 밀려온다.
보고 싶다.
내 마음 저 깊은 곳의 미완성 작품처럼 자꾸만 보고 싶은 너.
우리가 이 다음에 만날 때는 어떤 연인보다도
아름답고 다정한 미소를 나누자.
나는 너에게 꼭 필요한 친구,없어선 안 되는 친구가 되고 싶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야!
해가 저물고 있다. 이렇게 너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가고 있다.
★사랑은 – 김남주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 보며
★사랑 - 플라토닌
백 명이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 중 한 사람은 저입니다.
열 명이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 중 한 사람은 저입니다.
단 한 사람이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건 바로 저입니다.
아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건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담는 그릇 - 조성호
사랑을 담는 그릇은 항상 텅 비어있어야만 한다.
가득 차 있을 때 사랑은 더 이상 고이지 않는다.
이미 가득 찬 사랑은 조금만 더 채워져도 이내 흘러넘치고 마는 것
하얀 종이에 쓴 편지에 간절한 심정으로 우표를 붙이는 것처럼
오직 사랑은 스스로 몸을 낮추면서 자신을 비울 때 찾아온다.
★소중한 것은 떠난 뒤에 남는다 - 서주홍
소중한 것은 떠난 뒤에 남는 것
떠나고 남은 자리의 크기를
내 삶의 곳간에 정성들여 쌓아두고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은밀한 사랑으로
너를 지키며내 바라던 따스한 봄볕 내릴 때
닫힌 내 삶의 한 곳간을 활짝 열어젖히면
내 일상(日常) 은하얀 깃털 되어
파아란 하늘 향해 나래짓을 하리니
★속마음 - 이경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슴까지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위기가 늘 잔잔하다고 하여 마음이 항상 평화로운 것은 아닙니다.
주저없이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아주 많은 예습과 복습을 하며
끊임없이 사랑을 닮으려는 노력으로
내 밖으로 내가 나올 짬이 없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 M. 쉴러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이별을 눈물로 대신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곁에 있던 사람이 먼길을 떠나는 순간,
사랑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진다 할지라도
그대 가슴속에 남겨진 그 사랑을 간직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늘 - 윤상규
비어 있는 하늘에 그리운 이의 얼굴을 새겨 넣는다
눈을 새겨 넣는다
여지껏 아무도 돌보지 않고 뒤란에 버려뒀던 하늘
그리운 이 앞에 펼쳐 널고 그 빛나는 얼굴을 새겨 넣는다.
★하늘의 융단 - W.B. 예이츠
금빛과 은빛으로 무늬를 놓은
아름다운 하늘의 융단이 내게 있다면,
밤과 낮 어스름의 푸른 융단,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 밑에 깔아 드리련만
내 가난하여 가진 것 오직 꿈뿐이라 그대 발 밑에 내 꿈 깔았으니
사뿐히 걸으소서,내 꿈 밟고 가시는 이여.
★흐르는 강물 - 김영미
우표도 붙이지 않은 편지를병 속에 넣어
강물에 띄운다.가슴이 잿빛으로 물들도록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그대를 기다리면서
눈물이 흘러서강물이 더욱 불어나면
이 편지는 더 빨리 그대에게 가 닿을까오늘도 나는 그대에게
돌아오지 않는편지를 보낸다.
★하늘 -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사랑의 슬픔 - K. A 무뜨란
사랑의 순결한 슬픔이여 온통 사로잡힌 마음이여
그 고통 불 같으나 달콤하고 그 슬픔 평온 속에 냉정하니
한때의 상처 서글프나 내 그것을 계속하여 간직코자 하네
내 영혼 치유되었건만 나 갈구하네,
마음은 항상 그대로이길
그 아픔 정녕 싫지 않았던 것이기에
★사랑의 빛 - 바바하리 다스
태양이 스스로 빛을 드러내듯사랑도 스스로 빛을 보인다
깨달은 존재의 마음속에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고
어렴풋하게나마 진리를 느끼게 된다
삶이라는 거대한 보고서에아주 작아 보이는 사랑의 실체가
세상의 지붕을 이루고 있다사랑은
그 자체로 진리이며 구원이다
★아침의 향기 / 이해인
아침마다 소나무 향기에 잠이 깨고 창문을 열고 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도 솔잎처럼 예리한 지혜와 푸른 향기로 나의 사랑이 변함없기를
찬물에 세수하다 말고 비누 향기 속에 풀리는 나의 아침에게 인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온유하게 녹아서 누군가에게 향기를 묻히는
정다운 벗이기를 평화의 노래이기를
★꽃 몸살 / 청하 허석주
노랑 나비 채신 없이 가들 가들 대며 철 없는 계집 아이 쫓아 가던날
기다림에 조바심이 난산수유 가지 끝에 노오란 시샘 몽울이 피었습니다
지나간 긴 겨울 동안 젖 몸살에 아파 하던 소녀의 작은 가슴에도
사랑의 조리질로 기쁨의 아픔 이겨낸이쁜 연분홍 꽃몽오리가 피었습니다
★나를 키우는 말 /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 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 정호승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 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 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 눈 내리는 보리밭 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청춘 / 황경신
내 잔에 넘쳐 흐르던 시간은 언제나 절망과 비례했지
거짓과 쉽게 사랑에 빠지고 마음은 늘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어
이제 겨우 내 모습이 바로 보이는데 너는 웃으며 안녕이라고 말한다
가려거든 인사도 말고 가야지 잡는다고 잡힐 것도 아니면서
슬픔으로 가득 찬 이름이라 해도 세월은 너를 추억하고 경배하리니
너는 또 어디로 흘러가서 누구의 눈을 멀게 할 것인가
★나 하나 꽃피어 /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산이 달라 지겠느냐고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해인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걸음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이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막걸리 / 천상병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쌀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막걸리찬가
우리민중 애환담긴 막걸리를 먹어보세
돈없는놈 가난한놈 한잔이면 그만이지
일할때도 막걸리고 밥먹을때 막걸리라
우리곡식 곱게담가 다독다독 막걸리고,
힘든농사 결실맺힌 우리농산 곡주니라.
연인이랑 막걸리로 걸죽한정 이어보세.
친구들과 한잔두잔 따스한정 막걸리라
영양많고 맛도좋은 막걸리를 먹고먹어,
스태미나 정력부족 막걸리로 해결하세.
이어가는 손끝마다 막걸리향 정이돈다.
쌀막걸리 사랑하고 가짜들은 멀리하세.
진짜곡주 약이되고 화학주는 병이된다.
신토불이 신토불이 막걸리를 사랑하세
★2월에는 / 이향아 시인
마른 풀섶에 귀를 대고 소식을 듣고 싶다
빈 들판 질러서 마중을 가고 싶다
해는 쉬엄쉬엄 은빛 비늘을 털고
강물 소리는 아직 칼끝처럼 시리다 맘 붙일 곳은 없고
이별만 잦아 이마에 입춘대길
써 붙이고서 놋쇠 징 두드리며
떠돌고 싶다 봄이여, 아직 어려 걷지 못하나
백리 밖에 휘장 치고 엿보고 있나
양지바른 미나리꽝 낮은 하늘에
가오리연 띄워서 기다리고 싶다
아지랑이처럼 나도 떠서 흐르고 싶다
★새해의 작은 소망 / 정연복
억만금(億萬金) 보석보다
소중한 하루
그 눈부신 은총의 날을
하늘은 올해도 삼 백 예순 다섯 개나
선물로 주셨다
나, 아직은 많이 서툰
인생의 화가이지만
그 하루하루의 매 순간을
사랑과 기쁨과 행복의
곱고 순수한 색깔로
예쁘게 보람있게
채색하고 싶다
★꽃밭 / 이경자
싱그런 아침 햇살이 포근히 내려앉은
작은 꽃밭에 꽃보다 먼저 내 마음을 꽃피웁니다
꽃들이 꽃잎을 흔들어
서로 서로 안부를 물으면 나도 따라 님의 안부를 묻습니다
살아가는 일이 고단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꽃밭에 서면
님이 내게와 꽃이 되어 주고 나 또한 님의 꽃이 되어
살아가는 일 모두 꽃 같아서 꽃밭 가득 환합니다
꽃밭에서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가 꽃입니다
★삶의 이력서를 써보자 / 삼강 안 윤 주
한 해를 보내며
내 곁에 자랑하고픈 친구가 있는지
날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몇이나 있는지
나를 떠나간 친구는 없는지
떠났다면 왜, 그가 떠나 갔는지
거짓 없는 삶의 이력서를 써보자
새해에는
무엇을 향해 달릴 것인지
무엇을 얻기 위해 땀을 흘릴 것인지
꾸밈없는 속내를 떨어내어
알찬 새해 계획을 세워보자.
건강을 위하여
나의 키가 줄었는지 자랐는지
몸무게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바지사이즈가 줄었는지 늘었는지
흰 머리가 많은지 검은 머리가 많은지
따져보는 건강의 이력서를 써보자
냉정한 잣대로 존재가치의 지수를 점검해 보자
눈물이 나도 포기하지 말고
웃음이 나도 자만하지 말자
죽는 날까지 노력을 즐겨야 한다는 말
삶의 이력서 끝자리에 꼭 붙여놓고 살자.
★아침 / 신혜림·시인, 서울 출생
새벽이
하얀 모습으로 문 두드리면
햇살의 입맞춤으로
잠에서 깨어난 대지는 부산스럽기만 하다
나들이를 꿈꾸며
이슬로 세수하는 꽃들
밤을 새운 개울물 지치지도 않는다
배부른 바람
안개를 거둬들이며
눈부시게
하루의 문을 연다
★아침 / 이해인·수녀 시인, 1945-
사랑하는 친구에게 처음 받은
시집의 첫 장을 열듯
오늘도 아침을 엽니다.
나에겐 오늘이 새날이듯
당신도 언제나 새사람이고
당신을 느끼는 내 마음도
언제나 새마음입니다
처음으로 당신을 만났던 날의
설레임으로
나의 하루는 눈을 뜨고
나는 당신을 향해
출렁이는 안타까운 강입니다.
★새날 아침에 / 문태준·시인
새날이 왔습니다.
아침 햇살을 따사롭게 입습니다.
햇살은 사랑의 음악처럼 부드럽습니다.
아침은 늘 긍정적입니다.
아침은 고개를 잘 끄덕이며 수긍하는,
배려심 많은 사람을 닮았습니다.
어제의 우울과 슬픔은
구름처럼 지나가버렸습니다.
어제의 곤란을 기억해내야 할 의무도,
필요도 없습니다.
간단하게 어제의 그것을
이 아침에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면 됩니다.
우리에겐 새로운 하루가 앞에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우리는 다시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침 언어 / 이기철·시인
저렇게 빨간 말을 토하려고
꽃들은 얼마나 지난밤을 참고 지냈을까
뿌리들은 또 얼마나 이파리들을 재촉했을까
그 빛깔에 닿기만 해도 얼굴이 빨갛게 물드는
저 뜨거운 꽃들의 언어
하루는 언제나 어린 아침을 데리고 온다
그 곁에서 풀잎이 깨어나고
밤은 별의 잠옷을 벗는다
아침만큼 자신만만한 얼굴은 없다
모든 신생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초록이 몸 속으로 스며드는 아침 곁에서
사람을 기다려 보면 즐거우리라
내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꽃의 언어를 주고 싶지만
그러나 꽃의 언어는 번역되지 않는다
나무에서 길어낸 그 말은
나무처럼 신선할 것이다
초록에서 길어낸 그 말은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모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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