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꽃 / 애련설 (주돈이)

내가 오직 연꽃을 사랑함은 진흙속에서 났지만

거기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오염하지 않고

속이 비어서 사심이 없다

가지가 뻗지 않아 흔들림이 없고 그윽한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그의 높은 품격은 누구도 업신여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라 한다

 

봄꽃 / 강신갑

초록빛 대지에 지천으로 핀다.

흐드러진 물결 훤한 밤

사모하는 이여

그대에게 봄꽃이고 싶다.

봄꽃 / 조철형

바다로 가는 해도

발걸음을 멈추고 싶은 날 상큼한 제 향기에

화들짝 깨어나

스치는 찬 바람도 미워하지 않고

벌거벗은 몸

꽃망울이고 봄빛으로 오는 임을 맞이하는가.

봄꽃들의 수다 / 박상휘

봄꽃들의 수다에 가슴이 녹는다. 얼 만큼 웃다가 또 떠날 걸

그토록 가녀린 웃음으로

너는 바람을 휘젓는 구나 사랑이 날리고

눈물이 날리고 너로하여

어둠이 걷히어져

산 너머로 가겠지

봄꽃을 보니 / 김시천

봄꽃을 보니

그리운 사람 더욱 그립습니다

이 봄엔 나도

내 마음 무거운

빗장을 풀고

봄꽃처럼 그리운

가슴 맑게 씻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고 싶습니다

조금은 수줍은 듯

어색한 미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피었다 지고 싶습니다

봄꽃 / 이승복

흰 벚꽃 고운 꽃잎

님의 속살처럼

하얗다 하얗다

밤에 더 곱더라

진달래 분홍 꽃잎

님의 입술처럼

붉다 붉다

정열로 안기더라

개나리 노란 꽃잎

님의 마음처럼

노랗다 노랗다

그 속을 알 수 없어라.

봄 꽃을 보니 / 김시천

그리운 사람 더욱 그립습니다

이 봄엔 나도

내 마음 무거운 빗장을 폴고

봄 꽃처럼 그리운 가슴 맑게 씻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고 싶습니다

조금은 수즙은 듯 어색한 미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피다 지고 싶습니다

다 당신입니다 / 김용택

개나리꽃이 피면

개나리꽃 피는대로

살구꽃이 피면은

살구꽃이 피는대로

비오면 비오는 대로

그리워요 보고 싶어요

손잡고 싶어요

봄을 위하여 / 천상병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화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겨울리 오면

봄이 멀지 안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저무는 꽃잎 / 도종환

가장 화려하게 피었을때

그리하여 이제는 저무는 일만 남았을때

추하지 않게 지는 일을

준비하는 꽃은 오히려 고요하다

화려한 빛깔과 향기를

다만 며칠이라도 더 붙들어두기 위해

조바심이 나서

머리채를 흔드는 꽃들도 많지만

아름다움 조금씩 저무는 날들이

생에 있어서는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아름다운 날에 대한 욕심 접는 만큼

꽃맺이 한치씩 커오른다는 걸

아는 꽃들의 자태는

세월 앞에 오히려 담백하다

떨어진 꽃잎 하나

가만히 볼에 대어보는

봄날 오후..

창 포 / 신동엽

축축한 찬비는 주룩주룩 나리는데

찬 유리창에 이마를 기대이고

남색 외로운 창포만 바라본다.

빗줄기 속에 떠올랐다간 조용히 숨어 버리는

못 견디게 그리운 모습

혈맥을 타고 치밀어오는 애수 고독 적막

눈물이 조용히 뺨을 흘러나린다.

찢기운 이 마음 우수 짙은 빗줄기 속을 방황하는데

한결 저 꽃에서만 설레이는 이 가슴에

정다운 속삭임이

아아, 마구 뛰어나가 꽃잎이 이즈러지도록

입술에 부벼 보고 싶고나

미칠 듯이 넘치는 가슴에

힘껏 눌러보고 싶고나.

채송화/- 강남옥-

좀 알은 체해 주면 어때서 나여기 살아 이토록 쓸쓸히

눈부시잖냐고 낮은 뜨락 환하게 꽃등 심지 돋우어도

키 큰 나무 잎사귀에 누워 거드름만 피우고,

내민 입술에 싱거운 바람만 얹어놓는 햇살이여.

그리운 눈길로 쫓아가면 마알간 물 수제비 하나 톡 떠 주고.

유월 지친 짝사랑에 눈 한번 맞추이면 화들짝 까무러치며

나는 꽃이 되곤 했지요.

강산이 세 번씩 옮겨 앉도록 곁눈질 못 배운 어리석음

부디 오셔서 오래오래 비웃어 주지 않으시련지.

키 작은 내 주소에 이름 매겨 주시면 열 손톱 아래 먹물로

문패 새겨 두렸더니, 벼랑 되짚어 오는 꿈길엔 별들만 차례로지워 지더군요.

, 나도 한번쯤 일어서고 싶지만 너무 오래 꿇어앉아 있었나봅니다.

이제 남은 기다림에 저린 발을 뻗고 눈곱만한 연분으로야물겠습니다.

그리고 목발은 문밖에 내다놓겠습니다.

비록 앉은뱅이의 짝사랑이었지만 당찬 내 눈빛 허물어질까두려우니.

민들레 / 류시화

민들레 풀씨처럼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게

그렇게 세상의 강을 건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슬픔은 왜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슬프지 않은 것일까

민들레 풀씨처럼

얼마만큼의 거리를 갖고

그렇게 세상 위를 떠다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

멍텅구리 꽃 / 이수복

꽃이 피어나는 것은 당신에게보이기 위함이요,

그 꽃이 지는 것은 당신에게 잠시 잊혀지기 위해서예요.

우리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파도의 금빛,

우리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파도의 은빛 같은 것이예요.

사람살이라는 건 꽃이 피는 아름다움이고 꽃이 지는

아름다움 속에 출렁이는 꽃상여, 그 흩어짐이에요.

우리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금빛의 파도,

우리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은빛의 파도 같은 것이에요.

다만 지금 나의 마음 가득히 봄눈 같은 별꽃 별꽃 별꽃이

밤마다 살풀이로 밀려오고 있음을 당신은 알고 계시나요?

별꽃 보고 사랑하면 무얼해, 멍텅구니!

물망초 / 김남조

기억해 주어요

부디 날 기억해 주어요

나야 이대로 못 잊는 연보라의 물망초지만

혹시는 날 잊으려 바라시면은

유순히 편안스레 잊어라도 주어요

나야 언제나 못 잊는 꽃이름의 물망초지만

깜깜한 밤에 속 이파리 피어나는

나무들의 기쁨

당신 그늘에 등불 없이 서 있어도

달밤 같은 위로 사랑과 꽃이

영혼의 길을 트고 살았을 적엔

미소와 도취만이 큰배 같던 것

당신이 간 후

바람곁에 내버린 꽃빛 연보라는

못 잊어 넋을 우는 물망초지만

기억해 주어요

지금은 눈도 먼 물망초지만.

물망초 / 김춘수

부르면 대답할 듯한

손을 흔들면 내려올 듯도 한

그러면서 아득히 먼

그대의 모습,

- 하늘의 별일까요?

꽃피고 바람 잔 우리들의 그 날,

- 나를 잊지 마셔요.

그 음성 오늘 따라

더욱 가까이에 들리네

들리네

아카시아에게 /서금자

지난밤 깊은 악몽에

모진바람 너를 때렸는데

순결한 눈망울 멍들었을까?

밤을 새워 기도하였다

어둠의 건너편으로 비바람 사라지고

햇살 또한 눈부신데...

! 너의 모습 그대로인채

작은 가슴 떨고 있구나

가려진 꽃잎속에 숨겨진

삶에의 큰사랑

향기로 깊어지고

바람은 가만가만

오월을 흩어놓는다

찔 레 /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가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만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리 늘 말을 잃어 갔다.

패랭이꽃 / 류시화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잊혀지지 않는게 두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

꽃의 이유 / 마종기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 소리.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 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들꽃 언덕에서 / 유한지

들꽃언덕에서 알았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나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그래서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

언제나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도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봄꽃을 위한 론도 / 김선광-

꽃에게

어떤 아픔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적지 않은 아픔이 있어서

저리 눈부신 기쁨으로

함께 피어 나는가.

꽃에게

어떤 기쁨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적지 않은 기쁨이 있어서

저리 눈부신 아픔으로

함께 지는가.

가시나무도 꽃을 피운다 / 정지완

내가 나를 받아들인 자리에서

열매가 열린다.

수만 개의 창을 빳빳이 세우는

나의 하루

최초에 나를 만든

당신의 목적을 몰라

내가 나를 찌르려 할 때

꽃 핀다 눈동자만하게

내 가시를 헤집고

날아오는 이의 몸집만하게

꽃 핀다 힘겹게 힘겹게

그리고, 꽃 진 자리에

불록볼록 배짱 좋게

튀어나오는 노란 열매들

나를 다스려낸 자리,

나는 향기로 안을 수 있다

꽃으로 잎으로 / 유안진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뭐니뭐니 해도 사랑은 아름답다고

돌아온 꽃들

낯 붉히며 소근소근

잎새들도

까닥까닥 맞장구 치는 봄날

속눈썹 끄트머리

아지랑이 얼굴이며

귓바퀴에 들리는 듯

그리운 목소리며

아직도 아직도 사랑합니다.

꽃지면 잎이 돋듯

사랑진 그 자리에 우정을 키우며

이 세상 한 울타리 안에

이 하늘 한 지붕 밑에

먼 듯 가까운 듯

꽃으로 잎으로 우리는

결국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비꽃 곁에서 / 김선광

나의 사랑은

들꽃과 같았으면 좋겠다.

자주자주

새로운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면서

곱게 지는 법을 아는

풀꽃이었으면 좋겠다.

긴 사랑의 끝이

오히려 남루할 때가 있나니

키 낮은 풀꽃 뒤에

숨길 수 없는 큰 몸을 하고

파란 입술의 제비꽃아.

나는 얼마를 더

부끄러워하면 되겠느냐.

내 탐욕의 발목을

주저앉히는 바람이 일어

깊이 허리 눕히는 풀잎 곁에서

내 쓰러졌다가

허심의 몸으로 일어서야겠다.

풀꽃들의 행복 / 이해인

커다란 잎사귀가

팔을 벌려 안기운

플라타나스 가로수 아래

풀꽃들의 흩날림은

더욱 더 푸르렀다.

크로버 꽃들 속에

행운 지닌 웃음

시계 꽃 같은 행복한 몸짓.

구름무게 지나간 흔적 어딘가

세상의 힘겨움을 다 씻어간

풀꽃 웃음들은

행복한 얼굴로

빛 푸른 하늘만큼

산소를 뿌려 놓았다.

/ 정호승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마음속에 박힌 말뚝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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