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藝

붓 잡는 법을 알기 전에, 중봉(中鋒)과 만호제착(萬毫齊着)을 알기 전에 먼저 서예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서예는 점과 선·()의 태세(太細장단(長短), 필압(筆壓)의 강약(强弱경중(輕重), 운필의 지속(遲速)과 먹의 농담(濃淡),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미묘한 조형미가 이루어진다.

 

서예의 특징

 

먼저 글자를 쓰는 것으로써 서예술이 성립된다. 점과 선의 구성과 비례 균형에 따라 공간미(空間美)가 이루어진다. 필순(筆順),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성된다. 필순에 따른 운필의 강약 등으로 율동미가 전개된다. 자연의 구체적인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글자라는 추상적인 것을 소재로 한다. 먹은 옛날부터 오채(五彩)를 겸하였다고 하며 검정색이지만 농담(濃淡윤갈(潤渴선염(渲染비백(飛白) 등이 운필에 따라 여러 색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영묘(靈妙)한 결과를 낳는다.

다른 예술 분야들이 밖으로 향하는 힘의 방향을 지니고 있다면 서예는 안으로의 끝없는 세계로 파고드는 예술이다. 따라서 다른 예술 분야는 낭만파 고전파 등의 시대사조들이 패러다임 교체의 방법으로 격렬히 변해온 반면, 서예는 수천년의 역사를 두고 매우 완만하게 혁명적 변화 없이 발전해 왔다.

서예는 주변적인 수많은 요소들의 영향을 받으며 그 요소들과 분리시켜 생각하기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주변적인 요소란 작자의 상황이나 인격, 쏟아 부은 노력 등을 들 수 있다. 인격과 분리된 서품은 아무리 그것이 뛰어나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사람이 지니는 연륜이나 인생 경험 따위가 '경력'보다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서예의 미적 요소에는 다른 예술에는 없는 중요한 한 가지 요소가 추가되는데 그것이 바로 서예 작품에 쓰인 문자의 뜻이다. 석고문에서 낚시하는 내용이 나올 텐데 이 부분에서의 주요 포인트는 '물 수()'자이다. 전서의 상형자는 대부분 그렇듯이 써 놓은 그 자체가 물이 흐르는 느낌을 주게끔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의 분위기는 전체가 물 흐르는듯한 느낌을 주게 써야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만주 벌판을 정벌하던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것을 쫀쫀한 전서로 썼다고 하면 어떨까. 따라서 광개토대왕비는 호방한 글씨로 되어 있다.

지금까지 말한 서예의 특징을 알고 그 후에 글씨를 쓰는 법을 베우는 것이 순서라 할 수 있겠다.

 

서예를 배움의 자세

글씨를 배움에 있어서 어떻게 하여야만 심도 있는 흥취를 배양할 수 있는 것인가?

 

먼저 글씨를 배우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서예란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것만을 추구해서는 안될 것이다. 서예는 일종의 유익한 활동이며, 개인의 사상과 덕행에 대한 수양이며, 예술수양이며, 문화수양이다. 그러므로 서예를 통하여 침착함과 인내심을 길러 심신의 건강과 우아한 흥취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이 방면에 대한 상식을 넓혀야 한다. 예를 들면, 전시회를 통하여 많은 작품을 보아야 하며, 서예이론에 대한 많은 참고서와 지식을 쌓아야 하며, 명산대천과 각지에 흩어져 있는 비석과 묵적(墨迹), 편액(篇額)들을 감상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항상 서예의 대가와 기초가 잘 닦여진 동호인과의 교류를 통하여 서예의 흥취를 높이고, 명작들을 감상하여 안목을 길러야 한다.

이정도가 되면 서예에 대한 흥취는 초보적 완성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서예를 배우려면 그것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있어야 하며, 항심을 가지고 나아가야만 비로소 그 성취를 이룰 수 있다.

 

구생법(九生法)

 

글씨는 주변환경이나 쓸 당시의 정신 상태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어수선한 환경이나 맑지 못한 정신으로서는 좋은 글씨를 쓸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주변 상황도 그렇지만 서()의 직접적인 매개체가 되는 문구나 용품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해 갖추고 지켜야 할 사항에 대해 논한 것으로서 구생법(九生法)이라는 것이 있다. () 이라고 하는 것은 "새롭다, 혹은 새로운 것"이라는 뜻으로 곧 썩거나 묵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갖추어야 할 아홉가 지 생()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생필(生筆)이다. 글씨를 쓰고나서 붓을 빨지 않아 먹이 굳은 채로 있는 것을 다시 사용해서는 온전한 글씨가 될 수 없 다. 깨끗이 빨아 호()도 가지런히 정돈된 붓이 바로 생필(生筆)이다.

 

두번째는 생지(生紙)이다. 화선지를 바람이 부는 곳에 놓아 두거나 하면 조직이 팽창해서 글씨를 쓸 경우 먹발이 좋지 않을 뿐 만 아니라 붓이 지면에 닿기 바쁘게 번지게 된다. 오랫동안 바람을 쏘이거나 햇빛에 직접 노출된 화선지는 적합치 않다.

 

세번째는 생연(生硯)이다. 먼지나 때가 묻지 않은 벼루를 말한다. 벼루에는 사용할 때만 물을 붓고 쓰고 난 후에는 반드시 먹을 깨끗이 닦아서 말려두지 않으면 안된다. 갈아 놓은 먹을 그대로 놓아두면 찌꺼기가 응고되어 좋은 먹물을 얻을 수 없다.

 

네번째로 생수(生水)이다. 먹을 갈 물은 새로 푼 물이라야 한다는 뜻에서 생수라고 한다.

 

다섯번째로 생묵(生墨)이다. 먹물은 필요한 만큼만 갈아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겨둔 먹물이 너무 오래되면 광택이 없어지 고 좋은 먹빛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나 즉시 간 먹을 바로 쓰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먹을 간 뒤 30분 정도의 여유를 두어 먹 과 물이 충분히 용해된 후에 글씨를 쓰는 것이 좋다.

 

여섯번째로 생수(生手)이다. 글씨는 손으로 쓰는 것이므로 손의 상태가 좋을 때 쓰는 것이 이상적이다. 손이 피곤하면 역시 좋 은 글씨를 쓸 수 없다.

 

일곱번째로 생신(生神)이라는 것이다. ()이란 정신을 말한다. 글씨를 쓸 때는 고요한 생각, 자기의 정신을 한 곳에 모아 그 야말로 정신을 통일시켜 잡념없는 생생한 기분으로 쓰지 않으면 안된다.

 

여덟번째로 생안(生眼)이다. 눈의 상태가 나쁘면 글씨를 쓰는데 많은 장애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생경(生景)이다. 이것은 글씨를 쓸 당시의 주위 환경을 말한다. 날씨도 맑고 주위도 깨끗이 정리된 상태에서 글씨도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철저하게 지켜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실제적으로 이 아홉가지를 모두 갖춘 뒤 글씨를 쓴다는 것은 다소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해 이 아홉가지를 마음에 새기고 노력한다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서예는 어떠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가?

글씨를 배우려면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방법과 단계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전쟁을 함에 있어 만약 세부적인 계획이 없다면 승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문제는 초학자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글씨를 배울 때는 어떻게 시작하여 어떤 경로를 거쳐야 하느냐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있어야만 한다. 만일 이러한 개념이 없다면 힘만 들고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헛수고를 면할 수 없다.

글씨를 배울 때의 첫 단계는 붓을 움직이기 전에 준비 작업이 있어야 한다. 먼저 글씨를 쓰는 목적을 분명히 한 다음 서예에 관한 기초적인 책들을 읽어야 한다. 그런다음 비첩(碑帖)을 써야 하며, 어떤 글자들을 익혀야 하며, 어떤 붓을 써야 하며, 붓은 어떻게 잡아야 하며, 올바른 자세와 글씨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문제들을 알아야 한다. 붓을 움직이기 전에 이러한 문제들을 먼저 알아야만 헛수고를 줄일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로는 곧 붓을 움직이는 초급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글씨를 배울 때 먼저 글씨체를 받아서 쓰면서 알맞은 비첩을 선택하여 임모(臨摹)를 하여야만 직접적으로 초학자들의 모방실력을 배양할 수 있다. 만약 시작하기가 좀 곤란하다면 먼저 기본필획에서 시작할 수 있다.예컨데 점. 횡획. .() .. () 등등을 익혀서 어떻게 붓을 대어 진행시켜 나가며 어떻게 붓을 거두는 가를 체득한다.

그러면 어떠한 서체에서부터 시작하여야만 옳은 길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서예계에서는 아직까지 이설이 분분하다.전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이도 있으나 아무래도 해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고 수월하다고 생각된다.그리고 해서를 시작할 때 당해(唐楷)나 위비(魏碑)를 선택하는 것이 좋은데 이는 개인의 상황에 근거를 두어 결정하는 것이 좋다.

세 번째 단계로는 해서의 기초가 비교적 착실하다고 느껴졌을 때 행서로 들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주의할 점은 처음 해서를 배운 사람의 것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안진경의 해서를 썼으면 행서도 그의 것을 쓰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만일 글씨의 조화를 이루려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처음 배운 비첩과 같은 계열의 것을 쓰는 것이다. 현격하게 다른 것을 쓴다면 그 만큼 글씨의 진보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행서는 일반적으로 왕희지(王羲之)의 성교서(聖敎序)나 난정서(蘭亭序) 혹은 이북해(李北海)의 이사훈비(李思訓碑)라든지 안진경(顔眞卿) 미불() 황정견(黃庭堅)의 행서를 쓸 수 있다.

네 번째 단계는 행서가 이미 숙달된 상태에서 예서(隸書)나 전서(篆書)를 쓰는 과정이다. 예서는 한나라의 비를 쓰는 것이 좋은데, 예를 든다면 사신비 ,장천비,예기비,을영비, 조전비, 등이 있다. 전서를 배우려면 먼저 소전을 배운뒤에 대전을 배우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소전의 가로획이 가지런하고 세로획은 곧바르고, 둥근 획과 꺾어지는 획들이 손에 어우러지고, 짜임새를 쉽게 익힐수 있고, 붓을 자유스럽게 움직일수 있기 때문이다. 소전은 이사(李斯.이양빙(李陽氷) 등석여(鄧石如) 등의 서가의 전서를 공부한 뒤에 석고(石鼓) 갑골(甲骨) 등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다섯 번째의 단계는 이상의 여러 체를 골고루 습득한 후에 초서(草書)로 들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초서는 반드시 장초(章草)를 먼저 써야 한다.왜냐하면 장초는 용필이 응련침웅(凝煉沈雄)하고 초법(草法)도 비교적 규범적이어서 초서의 필법과 초결(草訣)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상을 종합하여 말하면 글씨를 배우는 단계가 바로 초학자의 열쇠이며, 좋은 글시를 쓰느냐 못쓰느냐의 관건인 것이니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것을 무시한다면 성공의 길로 가기에는 무척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기본이란 무엇인가?

ㅡ 인재 손인식 (서예가)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는 기본이 있습니다. 아주 다양한 것이 기본입니다. 사람들은 그 기본을 필요로 하여 익히고 적용하며 또 활용합니다.

서예에도 특유의 기본이 있습니다. 먹을 갈고 붓을 움직여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곳곳에 그 나름 데로의 기본이 있습니다.

그 기본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기본의 쓰임은 항상 다릅니다. 가로긋기와 내려긋기가 다르고 한문서예와 한글서예의 기본이 다릅니다.

 

한문과 한글의 각 서체 또한 다 다릅니다. 기본이 다르니 결과가 달라야 하는 것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이 이치를 어기지 않는 것도 기본입니다.

 

기본은 처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간에도 있고 마지막에도 있습니다. 하나의 선에도 있고 한글자의 구성이나 전체의 장법에도 있습니다. 첫 머리 표현기능을 좀 익혔다고 기본이 다 된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서예의 기본 닦기는 매우 어려울까요?. 그렇습니다. 잘못 접근하면 매우 어렵습니다.

 

여기 저기 각 서체를 좇아가서 공식 외우듯 기본을 닦으려 하면 정작 기본은 저 멀리 달아나고 말 것입니다. 바른 기본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기술좀 익히다가 지치는 경우가 이래서 생깁니다. 기능이 완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고 자꾸만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면, 기본은 처음부터 완성까지 펄펄 살아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본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열려 있습니다. 기본을 열린 곳에서 열린 마음으로 찾으면 쉽지만 막힌 곳에서 닫힌 곳에서 고정된 생각으로 찾으면 평생을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당나라의 해서에서, 왕희지의 난정서에서, 조선의 궁체에서 기본을 찾으려 하면 원하는 기본을 다 찾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완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은 완성을 지향합니다. 기본은 포괄적인 이해를 요구합니다. 기본을 아는 것이 기본이지만 진정한 기본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을 행하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진정한 기본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기본은 하나이기도 하고 여럿이기도 합니다.

 

서예의 참다운 기본은 자기의 작품을 할 줄 아는 것입니다. 자기의 느낌을 붓글씨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기작품에 자기의 느낌은 없고 다른 사람의 방법과 느낌이 가득 차있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표현기술만 있지 자기기본은 없는 것입니다.

 

기본이란 먹물이 모자랄 때 먹물을 찍을 줄 알고 갈필이 필요할 때 갈필을 내는 것입니다. 붓이 갈라지면 다스려야하고 반듯한 붓을 으깰 줄도 아는 것이 기본입니다. 중봉과 편봉의 특성을 아는 것이 기본이고 진한 먹과 흐린 먹의 특성을 아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를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안다면 진정으로 기본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예의 기본은 실기와 이론을 함께 갖추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실기에서 표현기능의 정복이 더디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론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또 이론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기수련과정이 맹목적이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심도가 있는 반복실험이 없이는 심오한 이론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 이제 진정한 기본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야말로 기본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분명히 밝히건대 위에서 밝힌 '기본에 대한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 책을 그만 덮어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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