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書藝의 定義와 3大要素
서예는 문자를 표현한 독특한 예술이다. 특히 모필을 사용하여 문자를 표현하기 때
문에 애초부터 문자를 기록한다는 서사적 기능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러나 서예는
실용가치 뿐 아니라 예술적 행위로서의 가치를 동시에 지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글
씨 쓰기 행위와 다르며, 문자디자인과도 구별된다.

 

반드시 모필을 사용하여야 하고, 글자간의 구도와 행간의 구도인 章法을 강구해야하며 먹을 다루는 법(墨法)을 제대로 사용하였을 때 비로소 서예라 할 수 있다.

 

서예는 3대 요소인 筆法, 筆勢, 筆意의 예술적 기교를 포괄하여야 한다.
筆法은, 글자의 점과 획을 쓸 때 붓을 움직이는 법을 총칭한 것이다. 필법은 크게 붓
을 잡는 집필과 붓을 움직이는 用筆로 나뉘는데, 좁은 의미의 필법은 용필을 의미한
다. 집필법은 손가락을 사용하는 指法과 팔을 사용하는 腕法으로 나뉘며, 용필은 起
筆, 收筆, 圓筆, 方筆, 中鋒, 側鋒, 露鋒, 臧鋒, 提按, 轉折 등이 있다. 글씨를 쓰는 사
람과 서체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되며, 그 미감도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필력은 획을 긋는 내재적인 힘을 말한다. 점획과 점획 사이, 글자와 글자 사이, 그리
고 행과 행 사이의 상호 호응관계를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붓이 가지 않
은 곳이라 할지라도 기세가 끊어져서는 안되며, 점과 획의 모양이 각각 다르다 할지
라도 그 필세는 항상 혼연일치 되어야한다.

 

필의는 글씨 속에 표현된 작가의 감정과 취향을 가리킨다. 글씨 속에 글자의 자연적
인 정취와 우미한 기운, 그리고 글씨를 쓰는 사람의 고상한 인품이 함께 표현될 때
필의가 나타난다.

 

필법과 필세는 서예의 技巧에 해당하고, 필의는 서예의 根本에 해당한다.
서예의 구조는 문자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법칙과 글씨를 쓰는 사람의 심미적 정취
가 하나로 만나 표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장법은 글자와 글자, 행과 행 사이
의 전체적인 관계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강구하는 법칙이다.

묵법은 붓과 먹 그리고 종이의 상호변화와 효과를 추구하는 법이다. 농묵, 담묵, 간
묵, 갈묵, 습묵, 고묵, 창묵 등이 있다. 이것은 글씨를 쓰는 사람과 서체 및 용도에 따
라서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각각의 적용에 따라서 무궁무진한 미감을 표현할
수 있다.

2. 書體의 種類와 美學的 特徵

중국 서예의 서체는 篆書, 隸書, 草書, 楷書, 行書로 나뉜다. 각 서체의 형성은 다른
서체와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각 서체마다 독특한 형체와 특징
을 가지고 있으며, 예술적 표현 역시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전서는, 商나라 때의 갑골문과 周나라 때의 金文, 戰國시대의 篆書, 秦나라 때의 小
篆을 포괄한다. 이들 서체는 서사도구가 각기 달라 미감 역시 다르게 나타난다. 갑골
문은 딱딱한 거북이 껍질과 동물의 뼈 위에 칼로 새긴 것이므로 가늘면서도 딱딱하
면서, 모가 나 있고 직선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금문은 청동기를 주조할
때 새긴 것으로, 갑골문에 비하여 유창하고 자형이 단정하다.

 

예서는 佐書, 史書라고도 한다. 소전을 계승하여 통행되었던 서체인데, 晉나라의 관
리들이 산적한 행정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기존의 소전을 흘려 쓰면서부
터 생겨났다고 한다. 따라서 이 서체는 전국시대에 진나라 때 생겨나 한나라 때 정체
로 정해져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서에 없던 파책이 생겼으며, 글자가 매우 간
략해졌다. 또한 상형적인 모양이 사라지고 곡선이 직선화되었으며 정방형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해서는, 正書 또는 眞書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해서의 본의는 법칙을 준수하여 모범
이 될 수 있는 표준체를 말한다. 따라서 해서는 자체가 단정해야 한다. 해서는 漢나
라 때에 이미 초보적인 형태가 등장하였고, 예서가 변형되어 생긴 것이다. 이 서체
는 魏晉南北朝에 발전하기 시작하여 당나라 때에 최고 성행하였다. 왕희지, 왕헌지,
우세남, 구양순, 저수량, 안진경 등 중국의 서예대가들은 모두 해서에 능하였다.

 

초서는, 아주 일찍이 등장하였다. 글자를 간편하게 흘려 쓰는 습관은 전서시대에도
이미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서가 독립적인 서체로 발전한 것은 한나라 때이
다. 초서는 章草, 今草, 狂草 3단계로 발전하였다. 장초는 예서처럼 파책이 있는 것
을 말하는데, 예서가 한창 유행하전 한나라 때에 생겨났다.

 

금초는 小草라고도 하는데, 해서가 나온 뒤에 나타났으며, 장초의 기초위에 해서의 필세와 필의가 가미되어 발생하였다. 장초의 파책을 없애고 붓의 움직임을 더욱 빠르게 하였다. 광초는 大草라고도 하는데 금초보다 더 빠르고 활달하게 붓을 놀려서 쓰는 것을 말하며, 당나라 때 시작되었다.

행서는 行押書라고도 하는데 해서와 초서사이에 끼어있는 서체로서 간결하면서도
유창하다. 행서는 한나라 때 생겨나 위진남북조시대에 성행하였다. 행서의 발전은
해서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해서를 간략하게 쓰면서 획과 획 사이를 물 흐르
듯이 다닌다고 해서 ‘행서’라고 하였다. 왕희지의 <蘭亭集序>를 천하제일 행서로 평
가한다.

3. 그림과 글씨의 관계, 글씨와 글의 관계

먼저 그림과 글씨의 관계를 알아보자.
중국 사람들은 ‘글과 그림은 근원이 같다(書畵同源)’라는 말을 자주 쓴다. 즉 서예와
회화는 시작이 같다는 말이다. 중국의 글자인 한자는 상형문자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림과 같은 장식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갑골문과 금문, 그리고 전서, 예서 등은 도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또한 실용적 필요성에 의해 서사기능을 감당하던 ‘書’가, 漢末 이후에 등장한 草書 단계에 오면, 그림과 같은 예술적 선묘감과 율동미를 갖추게 된다.

 

양자 관계가 이처럼 하나로 인식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국의 그림과 글
씨가 모두 붓이라는 동일한 도구를 사용하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붓은 짐승
의 가는 철로 만들기 때문에 ‘모필’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붓은, 끝이 평평한 서양화
붓과 달리 중심이 뾰족하게 모이도록 만든다. 뾰족한 붓끝을 中鋒이라 한다.

 

중국의 그림이나 글씨에서는 붓끝이 선의 중심을 지나가도록 하는 中鋒筆法을 주로 쓴다. 따라서 글씨와 그림에 있어서 선의 질감이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장르가 분화된 근대 이후, 水墨畵나 文人畵가 여전히 서예 영역에 속해있는 것도 중국 그림의 이런 전통과 관련이 있다. 또한 중국 그림이 면보다는 선을 중요시 하는 것도 이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면 글씨(서예)와 글(문학)은 어떤 관계인가? 글씨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혼합되
어 있기 때문에 공간적이며 시간적이다. 반면에 글은 시간적이다. 왕희지의 글씨를
통하여 그 관계를 알아보자.

옆 페이지 상단의 글은 왕희지가 晉 穆帝 서기 353년 3월 삼짇날 당시의 42명의 명사
들과 절강성 소흥 난저(蘭渚)에 있던 정자에 모여 곡수연(曲水宴)을 베풀고, 여기서
지은 시를 모아 만든 시집의 서문을 쓴 것이다. 먼저 작가는 연회의 시간, 장소, 이
유, 참석자의 면모를 밝혔고, 이어서 연회장소와 풍광을 서술하였다.

 

또 참석한 사람들이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한잔 술에 시 한수를 읊조리며 마음속 깊은 곳에 담긴 그윽한 정을 풀어내는 모습(暢敍幽情)을 그렸다. 그러므로 이 글은, 수미가 일관하도록 감정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서술되어 있다.

그 행간에는 인생과 자연을 대하는 시인들의 감흥과 상상력이 나타나 있다. 인간의
自足과 悲哀가 교착하고 있어, 현실 속을 살고 있으면서도 정신세계로 초원하려고
한다. 조물주가 만든 영원한 시간, 그 속에 사는 인간의 유한한 삶에서 오는 슬픔이
대비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유한한 삶이지만 인간의 감회로 빚어낸 문학
은 영원할 것이라며 작가는 끝을 맺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영원한 것을 동경하는 인간의 애절한 소망, 유한한 인생에 대
한 애상, 그러면서도 유한한 삶을 영원한 세계에 담아보려는(世殊事異, 所以興懷,
其致一也.) 중용적 사유가 잘 나타나 있다. 이 글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
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속에 작자의 감정과 정서가 녹아 있다.

그러면 왕희지는 이러한 정감과 사상을 공간적으로 어떻게 표현하였는가? 글자는
크고 작은 것, 길고 짧은 것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고, 물 흐르듯이 내려가고 가로열
을 맞추지 않아 딱딱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점과 획이 서로 어울려 다양하면서도 변
화된 글자의 구조를 이루고 있어 글자마다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어떤 필획은 평온하고, 어떤 것은 험준하며, 어떤 것은 편안히 쭉 편 듯 하고, 어떤 것은 안으로 수축하고 있다. 해서처럼 반듯하면서도 초서처럼 유려하다. 붓을 마음껏 휘둘러 한글자도 구속됨이 없으면서도, 필획의 시작과 끝이 적당하고 중봉이 필획을 관통하는 법도가 매우 정확하다. 공간적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적 미학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즉, 왕희지가 추구하려고 했던 시간의 중용적 세계를 공간의 중용적 미학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이처럼 서예는 글자를 형상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공간적이지만, 일을 시간적 흐
름에 따라 기술한다는 점에서 시간적이다. 이 두 차원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
로 서예이다. 따라서 서예예술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

4. 書藝의 美學的 世界

서예의 미학적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書論에 대한 천착이 우선되어야 한다. 중
국에는 위진시대에 처음 서론이 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서론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채옹의 <九勢>를 인용하여 보자.

서예는 자연에서 시작된다. 자연의 법칙이 이미 생겨있으니, 음양이 생기고, 음양이
이미생기니 형세가 나타난다.
夫書肇于自然, 自然旣立, 陰陽生焉. 陰陽旣生, 形勢出矣.

서예가 자연의 법칙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자연을 모방한다는 점에서 그
림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음양이 생겨난다는 것은, 서예가 자연의 외형만을 모방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변화도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그림이 각 물상의 기계적인 조립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체의 유기적 만남을 묘사하듯이, 서예 역시 점과 획의 動靜, 剛柔, 虛實 등 상호 유기적인 관계와 변화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그림처럼 서예 역시 자연 이미지로서의 예술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왕승건(426-485)은 <서부(西賦)>에서 서예의 미학을 ‘택운생황(托韻笙簧)’으로 표
현하였다. 이는 서예가 표현한 글자의 형상이 음악적 운율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운’은 사혁이 회화에서 제시한 ‘기운생동(氣韻生動)’과 일맥상통한다
고 할 수 있다. 기운생동은 대상의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내재미를 추구한다.

 

때문에 비록 화려한 색채나 수려한 수사가 없어도 대상 속에 작가의 개성적 특징이 저절로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운생동’은 수식과 기교의 외부적 장치 속에 들어있는 본질을 파악하는 미학이다. 서예도 이와 같은 예술적 경지라고 할 수 있
다. 따라서 그는 “서예의 오묘한 도는 심미적 정신을 최상으로 하고, 외형미는 그 다
음이다.(書之妙道, 神彩爲上, 形質次之)”라고 말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서예는 문자기록에 그치거나 단순히 먹물을 바르는 행위
가 아니라, 그림의 선과 면처럼 점과 획 사이의 미묘한 변화와 율동을 통하여 균형
의 미와 더 나아가 심미적 정신을 표현하는 예술적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출처: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다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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