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시모음


3/ 오세영

 

흐르는 계곡 물에

귀기울이면

3월은

겨울옷을 빨래하는 여인네의

방망이질 소리로 오는 것 같다.

 

만발한 진달래 꽃숲에

귀기울이면

3월은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오는 것 같다.

 

새순을 움 틔우는 대지에

귀기울이면

3월은

아가의 젖 빠는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아아, 눈부신 태양을 향해

연녹색 잎들이 손짓하는 달, 3월은

그날, 아우내 장터에서 외치던

만세 소리로 오는 것 같다.

 

3, 들풀처럼 / 김지헌


초록의 계엄령

봄의 군단이 질주하고 있다

이제 무차별 폭격이 시작되리라

 

어깨동무하고 일제히

함성 내지르는 풀잎 시위대

 

무참히 꺾이는 한 시대의 반역자

강철 군단에도 봄은 온다

 

만 겹 철문 열어제치고

초록 들불 번진다

 

3월을 기다리며 / 나명욱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풀고

따뜻한 공기와 맑은 햇살을

가슴 아름 품을 수 있는 아름다운 3

 

3월의 첫 날에는

창문의 겨울 커튼도 밀어내고

구석구석 쌓여있던 먼지들도 털고

창살마다 하얀 페인트를 다시 칠하리라

 

베란다의 그 동안 버려두었던

파랑 빨강 하얀 화분들도 깨끗이 닦고

베고니아 피튜니아 꽃도 심을 준비를 하리라

3월이면 거리에도 꽃들의 향기로 가득할 것이다

 

3월에는 / 최영희

 

어디고 떠나야겠다

 

제주에 유채꽃 향기

늘어진 마음 흔들어 놓으면

얕은 산자락 노란 산수유

봄을 재촉이고

들녘은 이랑마다

초록 눈,

갯가에 버들개지 살이 오르는

삼월에는

어디고 나서야겠다

 

봄볕 성화에 견딜 수 없다.

 

3/ 임영준

 

다소곳한 햇살이 눈부시다

긴 잠에서 깨어났더니

담장이 조금 낮아졌구나

귀기울이면 모두 가까이 있는 것을,

대문을 활짝 열고

주단이라도 깔아야 할 것 같은

간지러운 나날이다

 

삼월 / 임영조

 

밖에는 지금

누가 오고 있느냐

흙먼지 자욱한 꽃샘바람

먼 산이 꿈틀거린다

 

나른한 햇볕 아래

선잠 깬 나무들이 기지개켜듯

하늘을 힘껏 밀어올리자

조르르 구르는 푸른 물소리

문득 귀가 맑게 트인다

 

누가 또 내 말 하는지

떠도는 소문처럼 바람이 불고

턱없이 가슴 뛰는 기대로

입술이 트듯 꽃망울이 부푼다

 

오늘은 무슨 기별 없을까

온종일 궁금한 삼월

그 미완의 화폭 위에

그리운 이름들을 써놓고

찬연한 부활을 기다려본다.

 

3/ 문인귀

 

나의 키만큼

삼월을 보태면

삼월은 나의 키만큼

발돋움한다

 

삼월 속의 태양은

연두색 종이를 오리며

한뼘만한 나의 뒤뜰에

바둑돌을 퉁긴다

 

나는 문을 열고

나의 키만한 겨울을 집어내면

나의 이마 높이로

태양이 내려온다.

 

3/ 박금숙

 

거친 눈발이 몰아치거나

느닷없는 천둥이 치거나

폭우가 쏟아지거나 하는 것은

참을성 없는 계절의

상투적인 난폭 운전이다

 

3월은

은근히 다림질한 햇살이

연둣빛 새순 보듬어주고

벚나무 젖빛 눈망울

가지를 뚫고 나와

연한 살내 풍기는

부드러움이다

 

꽃샘추위 시샘을 부려도

서둘러 앞지르지 않고

먼 길 돌아온

도랑물 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일 줄 아는

너그러움이다

 

3월은

가을에 떠난 사람

다시 돌아와

추웠던 이야기 녹이며

씨앗 한 줌 나누는

포근함이다

 

3/ 김태인


아지랑이 밟으며

들로 산으로 뛰놀던 개구쟁이 녀석

때 구정물 뒤집어쓰고 코 풍선 불며

탱자나무 둔덕 잔디에 누워 깜빡 잠들고

가시에 찔려 꼼짝 못하고

탱자나무에 걸려 있는 봄볕

가시 하나 뽑아

부풀려진 풍선에 심술

지나던 하늬바람

숨어 있던 풍선 속 겨울을

북쪽으로, 북쪽으로

 

3월이 오면 / 이길원·

 

산으로 오르겠습니다

봄눈 질척이는 등산로 따라

이제 막 눈뜬 시냇물 소리에

가슴 헹구고

남쪽 바다 거스른 바람으론

얼굴 단장하겠습니다

옅은 새소리에 가슴 헤치면

겨울 나뭇가지 물오르는 소리.

 

산골 어디쯤 숨어 있는 암자 찾아

넙죽 절하고

두 손 모아 마음 접으면

선인(仙人) 사는 곳 따로 있을까

석양 등진 길손의 헤진 마음

어느 바람인들 못 헹굴까

 

칼바람에 웅크린 꽃잎

숨기던 화냥기 못 참아

입술 내밀어 보내는 교태에

가쁜 숨 몰아 쉬는

하늘 걸린 산

산으로 오르겠습니다.

 

3/ 홍일표

 

수암사 오르는 길은

갈참나무, 병꽃나무, 오리나무가

모두 입 다물고 묵상 중이었다

가장 먼저

산수유 노랗게 허공에 떠 있었다

쉬임없이 소곤소곤 종알대고 있었으나

골짜기의 물들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하산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좁은 산길 울퉁불퉁 박혀 있는 돌들이

툭툭 발목을 잡았다

줄레줄레 따라오던 잡념들은

그만 슬그머니 나를 놓아버리고,

수암사 가까이 다가갈수록

깊어지는 고요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비로소 맑게 빛나는

바람소리, 새소리

고요 속에서 뭉클 내가 만져지는 순간

꿩 한 마리 푸드득 날아올랐다

 

3월의 마음 / 이풍호

 

꿈속에서

어딘가를 아득히 오고가다

깨어난 새벽

 

마시면 기침할 것 같은

솔내음

 

바람에 스며들어

잎새를 돋운다.

 

촉촉이 젖어오는 땅위를

쉬지 않고 맨발로 밟으면

이 아침에는

생각들이 넉넉해진다.

 

오직 사랑하므로

살아있음이여

 

그리움은

그립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가슴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온다.

 

3/ 이생진

남쪽 공단에 마이크를 들이댄다

올봄에 계획이라도 있으면?

저는요 올봄에 적금 타는 게 있거든요

그것으로 아버지 경운기 사드릴래요.

가냘픈 소녀의 목소리

얼굴을 숨겨놓은 검은 스피커 상자

그것만 봐도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아버지에게 경운기 사 드릴래요

농촌에선 그게 필요하거든요.

 

마이크는 꺼지고

봄소식 전하는 노래가 들려온다

남쪽엔 고운 마음씨 때문에

고운 봄이 오겠다

 

3/ 조은길

 

벚나무 검은 껍질을 뚫고

갓 태어난 젖빛 꽃망울들 따뜻하다

햇살에 안겨 배냇잠 자는 모습 보면

나는 문득 대중 목욕탕이 그리워진다

뽀오얀 수증기 속에

스스럼없이 발가벗은 여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서로서로 등도 밀어주고 요구르트도 나누어 마시며

볼록하거나 이미 홀쭉해진 젖가슴이거나

엉덩이거나 검은 음모에 덮여 있는

그 위대한 생산의 집들이 보고 싶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마을 시장 구석자리에서 날마다 생선을 파는

생선 비린내보다

니코틴 내가 더 지독한 늙은 여자의

물간 생선을 떨이해 주고 싶다

나무껍질 같은 손으로 툭툭 좌판을 털면 울컥

일어나는 젖비린내 아--

어머니

어두운 마루에 허겁지겁 행상 보따리를 내려놓고

퉁퉁 불어 푸릇푸릇 핏줄이 불거진

젖을 물리시던 어머니

 

3월 구석구석마다 젖내가...... 어머니

그립다

 

3월은 말이 없고 / 황금찬

 

얼음이 풀린 논둑길에

소리쟁이가 두 치나 솟아올랐다.

이런 봄

어머님은 소녀였던 내 누님을 데리고

냉이랑 꽃다지

그리고 소리쟁이를 캐며

봄 이야기를 하셨다.

 

논갈이의 물이 오른 이웃집

건아 애비는

산골 물소리보다도 더 맑은 음성으로

메나리를 부르고

산수유가 꽃잎 여는 양지 자락엔

산꿩이

3월을 줍고 있었다.

 

흰 연기를 뿜어 울리며 방금

서울행 기차가 지나가고

대문 앞에서 서성이며

도시에서 올 편지를 기다리는

정순이의 마음은

3월 아지랑이처럼 타고 있었다.

 

3월이

두고온 고향에도

찾아왔을까

천 년 잠이 드신 어머님의 뜰에도

이제 곧 고향 3월을

뜸북새가 울겠구나.

 

고향을 잃어버리면

봄도 잊고 마느니

우리들 마음의 봄을 더 잃기 전

고향 3월로 돌아가리라.

고향의 봄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1.  가는 봄 3/ 김소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짇


강남 제비도 안 잊고 왔는데,

아무렴은요

설게 이 때는 못 잊게, 그리워. 

잊으시기야, 했으랴, 하마 어느새,

님 부르는 꾀꼬리 소리.

울고 싶은 바람은 점도록 부는데

설리도 이때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짇   

          

2.  경칩 / 박성우  

봇물 드는 도랑에

갯버들이 간들간들 피어

외진 산골짝 흙집에 들었다

새까만 무쇠솥단지에

물을 서너 동이나 들붓고

저녁 아궁이에 군불 지폈다

정지문도 솥뚜껑도

따로 닫지 않아, 허연 김이

그을음 낀 벽을 타고 흘렀다

대추나무 마당에는

돌확이 놓여 있어 경칩 밤

오는 비를 가늠하고 있었다

긴 잠에서 나온 개구락지들

덜 트인 목청을 빗물로 씻었다

황토방 식지 않은 아침

갈퀴손 갈큇발 쭉 뻗은

암수 개구락지 다섯 마리가

솥단지에 둥둥 떠 굳어 있었다

아직 알을 낳지 못한

암컷의 배가 퉁퉁 불어

대추나무 마당가에 무덤이 생겼다

 

3.  맑은 봄날 / 전영애

 

아직은 차가운 3

눈부신 청명

흙밑에 엉겨 있는

생명들의 연록빛 꼬물거림이

다 어려 비칠 것 같다

 

그 청명을

내다본다

헐레벌떡 집 한 채를

겨우 짓고

혹은 그나마 못 짓고 죽을 내가

 

4.  3 / 김광섭

 

3월은 바람쟁이

가끔 겨울과 어울려

대폿집에 들어가 거나해서는

아가씨들 창을 두드리고

할아버지랑 문풍지를 뜯고

나들이 털옷을 벗긴다

애들을 깨워서는

막힌 골목을 뚫고

봄을 마당에서 키운다

수양버들 허우적이며

실가지가 하늘거린다

대지는 회상

씨앗을 안고 부풀며

겨울에 꾸부러진 나무 허리를 펴 주고

새들의 방울소리 고목에서 흩어지니

여우도 굴 속에서 나온다

3월 바람 4월비 5월꽃

이렇게 콤비가 되면

겨울 왕조를 무너뜨려

여긴가 저긴가

그리운 것을 찾아

헤매는 이방인

 

5.  3/ 김명희

 

3월은 느티나무 우듬지로 온다

얇은 햇살도 가지 끝으로 기대어 선다

아직은 잔설이 남아 발이 시리다

나는 가끔 발이 시려 잠을 설치곤 한다

발 아래 식구들 모여 살았던 곳

잔뿌리로 길을 내며 살을 비비고

온 몸으로 물을 나르는, 사이사이

유난히 싱그럽게 깨어나는 가지가 있다

그러나, 아직은 뿌리에 물을 모으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서둘러 몸만 빠져 나간다고 해서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보다

숨 가쁜 시간이 지나가고

흔들어 깨우는 바람이 몇 차례

지나가고 난 후, 가까스로 눈을 뜨는 나는

시린 두 손 합장하며 안도의 숨을 쉰다

작은 벌레 한 마리

점자로 가만가만

뿌리의 숫자를 더듬는다

 

6.  3/ 나태주

 

어차피 어차피

3월은 오는구나

오고야 마는구나

2월을 이기고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

돌아와 우리 앞에

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

새들은 우리더러

무슨 소리든 내보라 내보라고

조르는구나

시냇물 소리도 우리더러

지껄이라 그러는구나

, 젊은 아이들은

다시 한번 새옷을 갈아입고

새 가방을 들고

새 배지를 달고

우리 앞을 물결쳐

스쳐가겠지

그러나 3월에도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

 

7.  3/ 문인수

 

아직은 바람이 차다 하면서

누가 밤중에 깜깜한, 찬 부엌으로 내려갔다

군불 한 소끔 더 때고 들어왔다

잉걸 화롯불도 새로 들여온 것 같았다

나도 선잠을 걷고 화롯불 앞에 쪼그려 앉고 싶었던 것처럼

방금 자리 뜬 저 아이들처럼

이글이글 올라온 이 한 무더기 동백꽃 쬐보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은 또 먼 땅 속에서 두런두런거리는 것 같다

아직은 때때로 바람이 차다

 

8.  3/ 에밀리 디킨슨

 

3월이네요, 어서 들어오세요!

오셔서 얼마나 기쁜지요

일전에 한참 찾았거든요

모자는 내려놓으시지요

아마 걸어 오셨나보군요

그렇게 숨이 차신 걸 보니

그래서 3, 잘 지내셨나요?

다른 분들은요?

자연은 잘 두고 오셨나요?

, 3월 바로 저랑 이층으로 가요

말씀드릴 게 얼마나 많은지요

 

9.  3/ 임영조

 

밖에는 지금

누가 오고 있느냐

흙먼지 자욱한 꽃샘 바람

먼 산이 꿈틀거린다

 

나른한 햇볕 아래

선잠 깬 나무들이 기지개 켜듯

하늘을 힘껏 밀어올리자

조르르 구르는 푸른 물소리

문득 귀가 말게 트인다

 

누가 또 내 말을 하는지

떠도는 소문처럼 바람이 불고

턱없이 가슴 뛰는 기대로

입술이 트듯 꽃망울이 부푼다

 

오늘은 무슨 기별 없을가

온종일 궁금한 삼월

그 미완의 화폭 위에

그리운 이름들을 써놓고

찬연한 부활을 기다려 본다

 

10.   3/ 장석주

 

얼음을 깨고 나아가는 쇄빙선 같이

치욕보다 더 생생한 슬픔이

내게로 온다

슬픔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모자가 얹혀지지 않은 머리처럼

그것은 인생이 천진스럽지 못하다는 징표

영양분 가득한 지 3월 햇빛에서는

왜 비릿한 젖 냄새가 나는가

산수유나무는 햇빛을 정신없이 빨아들이고

검은 가지마다 온통 애기 젖꼭지만한 노란 꽃눈을 틔운다

3월의 햇빛 속에서

누군가 뼈만 앙상한 제 다리의 깊어진 궤양을 바라보며

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3월에 슬퍼할 겨를조차 없는 이들은

부끄러워하자

그 부끄러움을 뭉쳐

제 슬픔 하나라도 집어낼 일이다

11.  3/ 헤세

 

초록빛 새싹으로 덮힌 기슭에

벌써 제비꽃 푸름이 울려 퍼졌다

오직 검은 숲을 따라서만

아직 눈이 삐죽삐죽 혀처럼 놓여 있다

그러나 방울방울 녹아내리고 있다

목마른 대지에 흡인되어

그리고 저 위 창백한 하늘가에는

양떼구름이 빛 반짝이는 떼를 이뤄 흘러가고 있다

사랑에 빠진 피리새 울음은 나무 덤불 속에서 녹는다

사람들아, 너희도 노래하고 서로 사랑하라

 

12. 3월과 4월 사이 / 안도현

 

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 꽃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 꽃 핀 다음에는

산서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제비꽃 피고

 

13.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 박목월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

해외로 나간 친구의

체온이 느껴진다

참으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골목길에는

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

다 이루어질 것만 같다

, , ,북으로

틔어 있는 골목마다

수국색 공기가 술렁거리고

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를

다음 골목에서

만날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약간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어제 오늘

어디서나

분홍빛 발을 아장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만나게 된다

ㅡ무슨 일을 하고 싶다

ㅡ엄청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

ㅡ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 속에는

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오고

나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

희고도 큼직한 날개가

양 겨드랑이에 한 개씩 돋아난다

 

14. 3월 삼질날 정지용

 

, 중 때때 중,

우리 애기 까까 머리

삼월 삼질 날,

질나라비, 훨 훨

제비 새끼, 훨 훨

쑥 뜯어다가

개피 떡 만들어

, 호 잠들여 놓고

, , 잘도 먹었다

, , 때때 중

우리 애기 상제로 사갑소

 

15. 3월에 / 이해인

 

단발머리 소녀가

웃으며 건네준

한 장의 꽃봉투

새봄의 봉투를 열면

그애의 눈빛처럼

가슴으로 쏟아져오는

소망의 씨앗들

가을에 만날

한 송이 꽃과의 약속을 위해

따뜻한 두 손으로

흙을 만지는 3

나는 누군가를 흔드는

새벽 바람이고 싶다

시들지 않는 언어를

그의 가슴에 꽂는

연두색 바람이고 싶다

 

16. 3월에 오는 눈 / 나태주

 

눈이라도 3월에 오는 눈은

오면서 물이 되는 눈이다

어린 가지에

어린 뿌리에

눈물이 젖어 젖는 눈이다

이제 늬들 차례야

잘 자라거라 잘 자라거라

물이 되며 속삭이는 눈이다

 

17. 3월의 바람 속에 / 이해인

 

어디선지 몰래 숨어들어 온

근심, 걱정 때문에

겨우내 몸살이 심했습니다

흰 눈이 채 녹지 않은

내 마음의 산기슭에도

꽃 한송이 피워 내려고

바람은 이토록 오래 부는 것입니까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

아직은 시린 햇볕으로

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 ...

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살아 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 있는 세상

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

당신이 계시기에

나는 먼데서도

잠들 수 없는 3월의 바람

어둠의 벼랑 끝에서도

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

 

18. 3월의 시 / 워즈워드

 

수탉은 꼬기오

시냇물은 졸졸

작은 새들은 짹짹

호수는 번쩍번쩍

푸른 들판은 햇볕에 졸고

늙은이와 어린 아이

힘센 자와 같이 일을 하네

소들은 풀을 뜯으며

고개 한 번 쳐들지 않네

마흔 마리가 한 마리같이!

패한 군사들처럼

흰눈은 물러가고

헐벗은 언덕 위에서 쩔쩔매네

소년농부ㅡ 이따금 ㅡ

환호성을 울리고

산에는 기쁨이

샘물에는 숨결이

조각구름은 떠가고

푸른 하늘은 끝도 없어라

비는 그치고 간데 없네!

 

19. 3, 플라타너스 / 마경덕

 

도로변 플라타너스기둥

일렬로 서있다

지나가던 봄이 죽었나 살았나 귀를 갖다댄다

얼룩버짐 온몸에 퍼져있다

도심을 가로지른 전선 아래

버스가 줄지어 달려가고

몸통만 남은 플라타너스

머리 위 전선을 비집고

막무가내 뭉특한 모가지를 디민다

퍽퍽, 맨몸으로 허공을 들이받는

, , 가지 끝

짐승 냄새가 난다

나무는 지금

터진 살을 꿰매는 중.

길을 가다가

성난 뿔을 보았다

허공에 쩌억 금이 가는 소릴 들었다

 

20. 3월 해 / 헤세

 

이른 더위에 취해

노랑나비 하나 비틀거리고 있다

창가에 앉은 채 끄덕끄덕

노인 하나 졸며 쉬고 있다

봄잎을 뚫고 노래하며

한때 나비는 집을 떠났었다

그 많은 거리의 먼지가

그 털 위에 내렸다

꽃 피는 나무와

나비들이 그 노란빛을

아직은 늙히지 않았어도

오늘까지만은 같은 것인 듯 보여도

하지만 색깔과 향기는

열어졌고 비워졌다

빛은 서늘해지고 공기는

숨 쉬기 더 힘들고 어렵게 되었다

봄은 나직이 윙윙거린다

그 노래, 아리따운 노래를

하늘이 푸르고 희게 흘러간다

나비가 황금빛 퍼덕임으로 날아간다

 

21.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22. 處容 斷章 김춘수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3월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23. 춘분 / 권 천학

 

봄이면 눈이 없어도

눈 뜰 줄 아는 나무처럼

땅심 깊숙이 물관부를 열고

투명한 물길을 여는 나무처럼

초록 잎새 끝까지 밝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나무처럼

눈감고 있으면서

속눈 틔우는 나무처럼

실버들 가지 연두 빛으로

몸 트기 시작하는 춘분 때쯤

환절기의 몸살감기를 앓는

내 삶의 낮과 밤

일교차 심한 봄추위 속에서

어느새 새 촉을 뽑아 올리며

푸릇푸릇 몸을 튼다

 

24. 춘분 / 노천명(1912 1957)

 

한고방 재어놨던 석탄이 퀭하니 나간 자리

숨었던 봄은 드러났다

"얼래 시골은? 나왔갔늬이"

남쪽 기집아이는 제 집이 생각났고

나는 고양이처럼 노곤하다

 

25. 춘분 / 원재훈

당신과 나의 그리움이

꼭 오늘만 같아서

더도 덜도 말고, 하루 종일 밤과 낮이

낮과 밤이 잘 빚어진

떡 반죽처럼 만지면 기분 좋을 때,

내 슬픔, 내 기쁨, 꼭 오늘처럼 당신이 그리워서

보름달처럼 떠오르고 싶어라

당신의 눈물로 나의 손을 씻고

가끔씩 나의 창문을 두드리는 허전한 나뭇잎의 마음을

잡고 싶어라

새순은 돋아나는데

아장아장 봄볕이 걸어오는데

당신이 그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살고 싶어라

 

26. 춘분 / 이성교

 

해야 해야 나오너라

구름 타고

물 건너고

복짓개 들고

나오너라

구름다리 넘으면

목 마른다는데

그때 한 입 뿜어

짚신 신고 나오너라

꽃은 바람에

펄펄 날려도

사랑은 한결같이

높기만 하여

흙탕물 먼 곳에

질펀히 번져 가누나

춘분은

해와 달이

입맞추는 날

내사

강릉 색시를

잊을 길 없어

봄볕에 나폴대는

긴 갑사댕기를

어느 뉘 가슴에 묻어주랴

 

27. 춘분 / 장승진(1974 - ) 전남 장흥

 

낮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겨울 동안 방치됐던 묵정밭에서

잔돌멩이들이 눈을 뜹니다

볕 좋은 하루가 노릇노릇 익어갑니다

너무 익은 부분을 바람이 식혀줍니다

그 가운데 당신이 놓아둔 삽 한 자루

햇볕을 받아 눈부시게 빛납니다

돌아온 시력을 다시 끌어당깁니다

참새가 밭두둑에 앉아 목을 빼더니

무리를 찾아 떠나갑니다

바람이 참새를 힘껏 밀어줍니다

기억의 저편, 우두커니 선 나무에

초록 기운이 감도는 것 같습니다

잎이 자라는 대로

운명의 손금도 알 수 있겠지요

당신이 지펴 논 봄기운이

초록 불꽃으로 타올라 세상을 달굽니다

내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이 불꽃의 일렁임 때문이겠지요

이제 바람과 불꽃에

음습한 나를 말려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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