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머문 그대 향기  

최영애

하늘 덮은 마음 자락
전할 길 없는데
바람도
먼 길을 떠나려는지

낙엽 떨어진 자리엔
상처 난 옹이 하나 남기고
잘 있거라 또 보자며
미소짓고 뒹군다

나뭇잎 더듬는
바람의 소리도 들었지만
가난한 연인들의 속삭임 같아
모른 척 하려니
내 가슴에도 그리움 머문다


가슴에 핀 꽃송이

최영애

황무지 같던 마음 밭에
여우비가 내렸습니다
꿀맛 같던 그리움도
곧 빗물에 젖었으니

당신 때문에 지치고
당신 때문에 아프고
당신 때문에 외로워도
당신으로 인해 늘 행복합니다

낯선 그리움이 찾아들어도
햇살 사이로 사랑별이 되어
당신을 향해
반짝일 것입니다

사랑 받기 충분한 날
당신 가슴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기에

가을 수채화

최영애

넓은 종이 위에 점하나를 찍어 구름 만들고
색깔 옷 곱게 입혀 하늘 그리네
장대 끝 고추 잠자리가 맴을 돌면
우리집 강아지는 동네 한바퀴

가녀린 나뭇가지 감이 빨간 얼굴 살찌우고
기러기떼 한가로이 날아오르면
노을빛 물결 따라 설레는 마음
나뭇가지 사이로 빛나는 달빛에
하얗게 익는 박이 도화지에 앉는다

가을 하늘에 수놓는 마음

최영애

길을 걷다 주운 것은
벌레 먹은 낙엽뿐인데

내 가슴은
당신을 불러 세워요

당신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아
새싹처럼 올라오는 마음

당신에게 전하는 마음 한 잔으로
청량한 가을 하늘을 수놓아요

갈대와 늙음

최영애

딱딱한 빵을 오래 씹으면
단 맛이 느껴지듯
그 날
갈대를 오래 바라보면
이 생에서 느낄 수 없었던
맛이 있을 것 같아
맞은 편 벤취에 앉았습니다
심장에 흐르는 물기조차 말린 채
함께 서걱거리며 바라보다가
갈대와 푸른 하늘이 닿는 즈음에서
황홀한 늙음을 보았습니다
물기 빠져 눈 끝 처져도
저리 늙어가고 싶었습니다
하얀 머리 바람에 날리며
저런 몸짓으로
느릿느릿 늙어가고 싶었습니다

중심 잃지 않고
흔들리는 저 하얀 소요를
습자지 위에 올려
그대로 옮겼다가
훗날 떨리는 손으로
우체통에서 꺼내어
내 늙음 위에 베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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