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숙녀시모음 15

 

1건강한 인연 / 천숙녀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인연은 건강합니다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인연은 아름답습니다

누군가에게 꿈을 갖게 하는 인연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누군가에게 성장이 되게 하는 인연은 행복합니다

당신은 내게 건강한 인연입니다

한 치 혹은 두 치씩 성장이 되게 하는

행복한 인연입니다

갈증을 목 축이는 한 방울 이슬 같은 인연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쏟아집니다.

 

2/ 천숙녀

 

살아서 꿈틀거리던 푸른 핏줄서는 손등

겨운 세상 갈아엎을 용기가 내게 있나

뿔뿔이

몸을 숨기며

엎드려 포복匍匐이다

내 몸은 엎드렸지만 뿌리를 다쳐선 안 돼

부딪혀 지친 세속 바랑에 걸머메고

장엄한

푸른 들판에

숨긴 씨앗 여물이고

혼절한 아픔들은 내일이면 지 나 간 다

삶의 질곡 휘청 이던 한 끼는 건너 왔다

헐거운

마음자리에

한 생애를 펼치는 길

 

3꽃씨 / 천숙녀

 

꽃씨는

향기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멀리 더 멀리 날아가고 싶은 것이다

윙윙 울어대며

한사코 옷깃 속을 파고드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푸른 그늘을 움틔우려는

꽃씨들의 울음이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나도 그대에게 날아가는 꽃씨가 되고 싶다

 

4당신의 당신이기에 / 천숙녀

 

당신은 누구시기에

이 가슴 한 구석을 비집고 들어와

지상의 나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십니까

당신은 누구시기에

손길과 동공의 주시와 포옹까지도

함께이게 하십니까

당신은 누구시기에

하얀 속살 드러내 보이며 함께 먼 곳을 향해

준비하게 하십니까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삶과 죽음까지도

함께하라 하신 말씀

기억하며 실행하는

하나뿐인 부부라고 얘기할래요

 

5동반 / 천숙녀

 

춤을 출 때는 같이 나울거리고

땡볕에서는 같이 땀 흘리고

바람이 불 때에는 함께 시원한 것을

 

6들꽃 / 천숙녀

 

들꽃이고 싶습니다

비바람 천둥 몰아치는 들녘이지만

다소곳이 피어

그대 달려오면 안길 수 있게

오직

그대 위해 미소짓는

오직

그대 위해 하늘거리는

우리강산

고운 들꽃이고 싶습니다

 

7등불 / 천숙녀

 

산 둘러 병풍 치고

논 밭 두렁 거닐면서

고향집 앞마당에

남은 가을 풀고 싶다

속엣 것

다 비워놓고

달빛 당겨 앉히고 싶어

설핏 지는 해 걸음

고향집에 등불 걸고

밭고랑을 매면서

새벽 별도 만나고 싶다

콩나물

북어 국 끓여

시린 속도 달래가며

 

8싶습니다 / 천숙녀

 

목을 길게 늘이고

발돋움을 높이 하고

앞산 안개자락 걷어찬

바람이고 싶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는 활짝 열어

옆 산 구름뭉치 씻어 내린

물소리고 싶습니다

이성은 차거웁게

가슴은 뜨거웁게

이 시대를 걸으면서

얼음덩이 녹이는

눈물이고 싶습니다

 

9좋은 길 / 천숙녀

 

사람의 만남은 등산길이지요

정성으로

성심껏 만나다 보면 길

생기겠지만

만남의 노력에 수고를

더하고 곱하지 않으면

이미 잡풀이 돋아나

걸어온 길마저 덮이겠지요

 

10지워질까 / 천숙녀

 

가파른 삶 오르면서 아침 오기 기다릴 때

눈 가득 고인 눈물 한 밤을 지새우며

잠이든 폐포肺胞를 깨워 밀봉된 편지를 뜯는다

창문으로 맑은 바람 조심스레 불어들고

조간신문 잉크 냄새가 녹슨 어제를 닦으면

햇볕도 지하 방 벙커에 깊숙이 따라왔다

스무 계단 내려서면 머무는 곳 지하 방

달도 별도 아득하여 숨죽여 흐르는 강

고단한 생의 흔적이 언제쯤 지워질까

싱싱하게 물오른 새벽 강을 기다렸다

가슴에 불 지펴주는 푸른 영혼의 피뢰침

어둠이 길을 내주며 세상 아침 열어주는

 

11편지 / 천숙녀

 

초록 잎 사이 차분차분 비 내리면

촉촉한 가슴 풀어

그대 마음 적시렵니다

낙엽 뒹굴어 좋으면

내 육신 타는 불 소리 모아

그대 귓전에 띄우지요

찬바람 윙윙거리면

가슴 다숩게 뎁혀 줄 온기가 되어

그리운 그대 곁에 지피렵니다

팔베개 베고 누워 하늘 바라보면

깜박이는 별 하나

그대 눈빛입니다

장마를 걷어내는

바람입니다

빛입니다

 

12푸른 강 / 천숙녀

 

조용히 강이 하나 흐르고 있습니다

깊고 푸르게

푸르고도 깊게

햇빛도 머물다 가고

달빛도 쉬어 갑니다

잠시 인 것 같아도 영원

영원인 것 같아도 순간으로

바람이랑 구름

더러는 고요마저

눈을 떴다 갑니다

눈을 감고 갑니다

나도 같이 왔습니다

나도 같이 갈 겁니다

깊고 푸른 강

푸르고도 깊은 강

 

13풍경 / 천숙녀

 

바람이 소리 없이 불고 있어

잎 새 몰래 남 몰래 흔들리는 한낮

햇살 살갗에 쨍강거리며 부서졌지

보였어

기어다니며 나르는

물 위 그림자처럼 흔들리고 있는 나를

재잘거리는 저 풀들 좀 봐

나란히 어깨 두른 산이

화폭에 들어앉네

잎 새 몰래 남 몰래 흔들며

 

14함께 가는 길 / 천숙녀

 

얼마를 흘러야 저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벌써 닿아 하늘과 땅

그 어디에고 동행이지 않습니까

스스로 일어나 스스로 눕는 풀잎을 쓸며

짓누르는 물결

그 아래, 아래 깊고 고요한

기쁨과 슬픔까지도 같이 호흡하며

낮과 밤이 갈리는 시각

우리는 서로 돌아서지만

불길로 다가오는 그대 눈빛

창가에 매달고

밤마다 밤마다

어둠을 태웁니다

함께 가는 길

 

15휴식 / 천숙녀

 

잊어라!’하지 않아도 잊어야 했다

별로 뜨고 이끼로 덮여

해묵은 기억들까지……

당신인 듯 잊지 못하게 하는 것들

세상의 인연조각들

한 장씩 걷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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