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화 詩 모음  




1.[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2.<나의 침실로>
"가장 아름답고 오__랜 것은 오직 꿈 속에만 있어라"
__'내말'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 가련도다
아,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도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두운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____뭇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욱____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얄푸른 연기로 꺼지려는 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 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____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이도 없으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___
내 몸에 파란 피____ 가슴의 샘이, 말라 버리듯, 마음과 목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_____
내 침실이 부활의 동굴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두운 밤 물결도
잦아 지려는 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3.-병적 계절(病的季節)-


기러기 제비가 서로 엇갈림이 보기에 이리도 설은가.
귀뚜리 떨어진 나뭇잎을 부여잡고 긴 밤을 새네.
가을은 애달픈 목숨이 나누어질까 울 시절인가 보다.


가없는 생각 짬 모를 꿈이 그만 하나 둘 잦아지려는가.
홀아비같이 헤매는 바람떼가 한 배 가득 구비치네.
가을은 구슬픈 마음이 앓다 못해 날뛸 시절인가 보다.


하늘을 보아라 야윈 구름이 떠돌아다니네.
땅 위를 보아라 젊은 조선이 떠돌아다니네.




4.-통곡(痛哭)-


하늘을 우러러
울기는 하여도
하늘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다.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닯아
하늘을 흘기니
울음이 터진다
해야 웃지 마라
달도 뜨지 마라




#[작가소개]
이상화(李相和, 1900~1943) 호는 상화(尙火). 대구출생.
경성중학 3년 수료하고(1917),그해강원도 일대를 방랑했다.
이상화의 작품활동은 그가 동향 친구인 현진건의 소개로 가담한
<백조>창간호에 <말세의 회탄>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작품 활동은 대략 초기에는 <백조>그룹 등과 함께
하면서 <나의 침실로>롸 같은 탐미적 경향의 시를 썼으나,
1924년 경을 고비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식민지하의 민족현실을 바탕으로 한 저항 정신과 향토적 세계를
노래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역사를 바로 꿰뚫어보는
가운데 치열한 시대 정신과 따뜻한 휴머니즘 정신을 아름다운
예술혼으로 상승시킨 암흑기의 민족 시인이자 민중시인, 저항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리운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에 관련된 혐의로
여러차례 감옥 생활을 하였다.
백기만이 엮은 <상화(尙火)와 고월(古月)>에 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대표작에는 1926년 6월,<개벽>70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가상(街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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