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한수감상
풍교야박(楓橋夜泊)-장계(張繼)
풍교에서 밤을 지새며
月落烏啼霜滿天(월락오제상만천) : 달 지자 까마귀 울고 하늘에는 서리가 가득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 강가의 단풍 숲, 어화는 나의 근심스런 잠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 : 고소성 밖 한산사
夜半鍾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 깊은밤 종소리 나그네탄 배에 은은히 들려온다.
<감상1>-오세주
작자 장교는 이 작품 한편으로, 작품적 수준에 있어서 당시의 최고 시인인 이백과 두보와 동류라는 평을 받았다. 한시의 역사에서 이 작품과 작가인 장계의 이름은 결코 빠뜨릴수가 없는 것이다. 그 누가 중국의 한시의 역사를 논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 시는 집 떠난 나그네가 배위에서 한 밤을 보낸 드문 경험과 그 때 느껴지는 나그네의 심사를 작품화 한 것이다. 작자는 작자가 처한 주변 환경과 환경에 따른 작자의 심리적 변화를 한번 읽기만 해도 눈에 그려지는 풍경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이제 그 구체적인 것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1구를 보자
“月落烏啼霜滿天(달 지자 까마귀 울고 하늘엔 서리 가득하고)”
1구는 3개의 어구로 구분할 수 있다.
곧,月落(달이 진다),烏啼(까마귀 운다), 그리고霜滿天(서리가 하늘에 가득하다)
먼저 <달이 진다>는 사실에서 시간적 배경이 조성된다. 달이 지는 때는 <새벽과 가까워지는 시간>인 것이다. 달은 사람에게 <낮과 밤을 가르는 경계선>의 이미지다. <달이 뜬다>는 사실은 <지금부터 밤이 시작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달이 떠 있는 밤은 완전히 인간의 활동할 수 있는 낮 시간과 단절된 <캄캄한 밤>과는 다른 밤이다. 달의 빛이 있으므로, 활동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부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밤>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달이 지는 때>인 것이다. <달>이 조성하는 약간의 밝은 시간이 지속되다가 이제 <해>에 의한 왕성한 활동이 시작되는 낮이 시작되는 시간인 것이다. 따라서 달이 지는 새벽은 <달이 지배하는 시간의 끝>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때가 가장 차가운 기온일 것이다. 이 시간 모든 동물과 사람은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가장 깊은 잠을 즐기고 있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어둠의 새 까마귀는 그것이 비록 새라도, 밖에서 너무 추운 날씨일 때는 울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달이 지자 <까마귀가 운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추위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이 <霜滿天>이다. 곧, 서리가 하늘에 가득하다고 묘사한다. 이는 작가가 배에서 밤을 지내면서 자신이 느낀 추위를 구체적으로는 서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희미한 달빛 아래에 보이는 흰 빛의 서리는 달빛으로 인하여 달에서부터 자신이 있는 배에까지 수직으로 죽 뻗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즉 사방이 서리로 꽉 차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는 또한 작가가 집을 떠나 강의 배 위에서 한 밤을 지내면서 느끼는 심리적 추위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장치를 통해 작가는 <삭막하고 쓸쓸한 강변의 가을밤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단 7개의 글자로 말이다.
이제 2구를 보자
"江楓漁火對愁眠(강가의 단풍 숲 사이 어화를 보니 근심에 겨운 잠)"
작자는 사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온갖 생각과 너무도 생소한 늦가을 강가 배 위에서의 밤에 잠을 못 이룬 것이다. 사실 작자는 너무 지쳐있는 것이다. 체력적 한계점에 온 것이다. 그런데 강의 단풍나무(江楓) 사이에 고기잡이배가 있고, 그 곳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춥고 어두운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불빛은 하나의 반가운 구원의 빛인 것이다. 그 빛과 그 빛이 주는 따뜻한 느낌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불빛은 계속 깜박이는 것이다.
깜박이는 불빛은 우리 인간에게 특별한 심리적 효과를 가져다준다. 우리는 어둠을 배경으로 깜박이는 불빛을 보면 시간과 공간을 일시에 초월하여 상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경험을 갖는다. 이는 아마도 먼 옛날 넓은 벌판에서 집단으로 동물을 사냥하여 배불리 먹으며 축제를 벌였던 건강한 원시의 생활에 대한 선험적 경험이 우리의 피 속에 숨쉬고 있는 것에서 일 것이다.
작자는 여러 가지 걱정과 불편함으로 선잠을 자는 상태에서 이 불빛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껌벅이는 불빛은 잠자지 못하는 자신의 의식 상태와 같은 것이다. 즉, <고기잡이배의 깜박이는 불(漁火)>은 <수심으로 선잠(愁眠) 자는 나그네인 작가 자신>인 것이다. 이 둘은 대응 되는 것이다.
여기서, 대(對)는 <본다>는 뜻과 <대응되어 있다>는 뜻이 함께 있는 것이다. 특히, 對의 뜻이 <대응되어 있다>는 뜻으로 사용될 때, 작자의 심리적인 면까자 시각화하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3, 4구를 보자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 밖 한산사에선)
夜半鍾聲到客船(밤 깊어 종소리 은은히 나그네 탄 배까지 들린다.)“
이렇게 선잠 상태에 머물고 있는 작가의 귀에 어디선가에서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것이아닌가. 모두가 잠든 정적 속에서 분명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그곳은 바로 유명한 절인 한산사였다.
여기서 우리는 밤이 주는 완전한 정적을 작가 장계가 지은 이 시를 통해서 경험하는 것이다. 이때 들리는 그 소리는 어떠한 느낌이 들었을까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종소리는 스님들의 잠을 깨우는 종소리다. 수도자인 스님들에게 하루 수행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인 것이다. 결국 작자는 하루 온 밤을 잠자지 못한 것이다. 늦가을 강가 배위에서 라는 달라진 환경과 집 떠난 나그네의 외롭고 근심스런 심사에서 인간은 결코 편안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시는 작가의 뛰어난 시적 기교로 <어느 늦가을, 강가 배위에서의 한 밤>이라는 일반인이 체험하기 어려운 경험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작가의 특별한 경험과 느낌을 우리 모두에게 시대를 초월하여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는 명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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