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鋒에 관한 小攷

義石 洪愚基


Ⅰ 서언(序言)


20세기 한국의 서예는 공모전을 위한 준비와 그 결과로 얻어지는 초대작가라는 명예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시기이다. 공모전에 당선되기 위하여 작가들은, 개성적인 글씨보다 영향력있는 몇몇 작가의 글씨풍을 선호하였고, 공모전에 유리하다는 이유때문에 몇몇 서체와 몇몇 비첩만이 서예교육의 중심에 있었다. 출품자들은 다른 작품보다 더 드러나게 보이기 위하여 변화가 풍부한 가늘고 작은 글씨보다는 힘이 있어 보이는 굵고 큰 글씨를 선호하였고, 모험적인 면보다는 정해진 틀에서 안전하게 작품을 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붓도 세필보다는 큰 붓을 주로 사용하였고 작품의 규격도 너무나 커서 실용의 범위를 벗어나 단지 전시용으로만 사용되었다. 작가들의 생각이 여기에 묶여있는 동안 우리 한국의 서예는, 그 근본이 되는 서예이론이나 서예사, 우리 한국의 서예 등에 관하여는 너무나도 소홀하게 다뤄졌음으로, 늦은 감이 없지는 않으나, 이제부터라도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에서부터 심각하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예는 대체로 붓에 먹물을 찍어 점획을 긋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기 때문에, 글씨의 서사과정에 붓의 역할은 대부분의 과정을 차지한다. 이렇게 중요한 붓을 다루는 데에 서예인들이 금과옥조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중봉이다. 그러므로 서예를 시작하는 사람에서 깊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까지 모두가 이 중봉을 중요시하고 소홀히 여기는 사람이 없으나, 막상 작품에 임하여서는 그렇지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작품은 그 기초적인 틀에 속박되어 있는 것 같고, 어떤 작품은 필법을 멋대로 벗어나 붓을 마구 휘두른 것 같기 때문이다. 이는 서법을 잘못 생각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중봉은 구속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 편리할뿐더러,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어느 경지로 인도하는 안내자와 같은 것이다. 자전거를 배울 때, 처음에는 이리저리 쓰러져 불안하지만, 중심을 잡을 줄 알고, 이리저리 방향을 틀을 수 있으며, 브레이크를 잡고 타고 내릴 수만 있다면, 편리하게 즐기면서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붓의 다양한 성능을 분명하게 알고, 붓이 꼿꼿이 서서 쓰러지지 않아 그를 자신의 수족처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면, 주경(遒勁)하고 아름다운 필획을 구사할 수가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고는 그동안 많은 서예인들이 생각하여 왔던 중봉에 대한 대강의 견해를 살펴보고 그 중봉으로 나타나는 효과를 살펴보는 것으로 중봉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Ⅱ 중봉용필(中鋒用筆)


1. 필성(筆性)


“군자의 성(性)은 중인(衆人)들과 다르지 않다. 배워서 사물의 능력을 잘 빌릴 뿐이다”1)라는 말처럼, 사람의 능력은 사물에 대한 이해와 운용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사람이 만약 자동차를 능숙하게 운전할 수 있다면 필요한대로 자동차를 다양하게 운용할 수 있으나, 운전을 하지 못하면 고철덩이에 불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붓이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안다면 우리는 그 붓의 성질을 이용하여 마음대로 붓을 다룰 수 있다. 다음은 먼저 붓의 특성을 대략 다섯 가지로 분석해본 것이다.

첫째, 붓은 부드러우면서 탄성이 있다. 요즘의 펜은 사용법을 따로 익힐 필요도 없이 바로 글씨를 쓸 수 있지만, 붓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루기가 어려워, 이를 마음대로 다루려면 많은 세월의 고된 연습이 필요하다. 경필(硬筆)은 누구나가 쉽게 다룰 수 있는 대신 일정한 선만을 그을 수밖에 없지만, 부드러운 붓으로는 그 탄력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

둘째, 많은 털을 모아 만들었기 때문에 붓끝을 모으거나 펴서 획의 굵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또한, 많은 털은 먹물을 저장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한번 먹물을 찍어 많은 글자를 단번에 쓸 수도 있게 한다. 붓에 먹물이 많을 때에는 푹 번지는 획을 그을 수 있고, 먹물이 적을 때에는 비백(飛白)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붓에 같은 먹물이 있어도 붓을 눌러주고 들어주며 지속완급을 조절하는 것으로도 이러한 효과들을 얻을 수 있다.

셋째, 붓털이 길기 때문에 새끼줄처럼 꼬이게 할 수도 있고 곧게 펴서 운필할 수도 있다. 붓털을 가지런하게 하면 먹은 편하게 붓끝으로 흘러내려 행필이 또한 포만(飽滿)하고 후실(厚實)해진다. 반대로 붓털이 굽거나 꼬이면 먹물이 편안하게 아래로 내려오지 못해 다양한 비백효과를 만들어 낸다. 마치 강에 굴곡이 심하면 그 유속이 느려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붓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운필의 빠르고 느림과 붓털을 꼬고 펴며 누르고 들어주는 것을 이용하여 다양한 선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넷째, 끝이 뾰족한 많은 털을 묶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끝을 모으면 봉이 뾰족하여 옆에서 보면 어느 쪽으로 보아도 둥근 송곳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를 이용하여 붓을 들어주거나 눌러주면서 굵기를 조절할 수도 있으며, 필봉의 중심을 중간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고, 필획의 가장자리로 향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性을 이용하지 못하면 필호가 꺾여 드러눕게 되고, 지면에 작용하는 힘도 일치하지 않아, 점획이 추하고 기괴해진다. 필호에는 주부(主副)가 있어, 주호(主毫)는 골을 세우고 근육으로 싸는 역할을 하고, 부호(副毫)는 선의 고움을 얻는 역할을 한다.

다섯째, 그 절면(切面)을 보면, 서양의 그림붓은 평면적인데 반하여, 서사에 사용하는 동양의 붓은 원형이다. 서양의 붓은 넓적하기 때문에 몇 가지 효과밖에 기대할 수가 없어 주로 면에 색을 칠하기 위한 것으로 활용하지만, 동양의 붓은 절면이 원이기에 작용력과 반작용력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고 팔면으로 출봉하며 다양한 선질효과를 낼 수가 있다.2) 이는 굳이 붓을 돌리지 않아도 어느 방향으로든 여러 가지 효과를 만들어 낼 수가 있음을 의미한다.


2. 중봉(中鋒)


1) 수봉(竪鋒)․조봉(調鋒)

수봉은 필봉을 바르게 들어 지면의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수직으로 세우는 것으로, 이것은 중봉용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글씨를 쓰기 전에는 주호(主毫)와 부호(副毫)가 고르게 서서 엉기거나 굽는 현상이 없으나, 붓이 일단 종이에 닿으면 종이위에 눕게 된다. 하지만 붓이 누워서 끌려가고 끌려온다면 필획은 단조로워지고, 붓끝에도 힘이 이르지 않아 편박한 필획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필봉을 똑바로 세우면[수봉(竪鋒)] 중봉으로 유도되어 중함(中含)하는 효과와 원적(圓的)인 입체감을 주기 때문에, 역대로 서가들은 수봉을 매우 중시하였다. 물체에 작용하는 힘은 힘을 주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수직에서 작용력이 가장 크게 나타나고, 수직과 각도가 크면 클수록 그에 대한 작용력은 더욱 작아진다. 45도 방향에서 힘을 가하면 직각방향에서 똑같은 힘을 주었을 경우에 비해 절반의 작용력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일정한 힘을 주어 그만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만큼 힘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붓을 수직으로 세워서 전체의 역량을 종이에 집중시키는 수봉은, 중앙으로 필봉을 유도할 뿐 아니라, 역감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힘을 강하게 준다고 역감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지만 붓을 똑바로 세웠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필획은 상당히 달라진다.

모든 필획에는 반드시 중심이 있고 외계가 있다. 중심은 주봉에서 나오고 외계는 부호에서 나온다. 필봉에 처음․중간․마지막을 모두 실하게 해야 하고, 호(毫)는 상하좌우를 모두 가지런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글씨를 쓰다보면 제안(提按)을 거듭하고 전후좌우로 방향을 바꿔가며 운필하여야 하니 필봉이 항상 중심에만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좋은 필획은 조정과 전환을 그치지 않는 데에서 나타나는데, 이러한 운필방법을 조봉(調鋒)이라고 한다. 조봉의 기본수단에는 제안돈좌(提按頓挫)가 있으며, 제안에 관해서는 역사상 두 가지의 견해가 나타난다. 첫째는, 필봉을 누르는 것을 안필(按筆)로 사용하고, 필봉을 들어주는 것을 제필(提筆)로 사용하여 필획의 굵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둘째는, 필봉을 모으는 것[斂心]을 제필(提筆)로 보고 필봉을 펴는 것[展筆]을 안필(按筆)로 여겨서 필획의 굵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어느 방법을 사용하건 제와 안은 붓을 모아주고 펴서 필획의 굵기를 조절하며 다양한 필획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진역증(1333-1340)은 “성근 곳에서는 풍성하게[날만(捺滿)] 하고, 빽빽한 곳에서는 수척하게[제비(提飛)] 하며, 평이한 곳에서는 풍성하게 하고, 험절한 곳에서는 수척하게 하라. 날만은 살찐 것이요, 제비는 수척한 것이다”3)라 하였다. 이는 용필이 무거운 곳에서는 제비(提飛)해야 하고, 용필이 가벼운 곳에서는 바로 실안(實按)을 해야, 너무 무거워 축처지거나 너무 가벼워 표령하는 단점을 벗어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안필(按筆)은 반드시 제(提)의 기초위에서 눌러가고, 제필은 곧 안(按)을 한다는 전제에서 제기(提起)한다. 이러한 이유로 제(提)를 빼놓고 안(按)을 말하거나 안(按)을 빼놓고 제(提)를 말하는 것은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있을 수가 없다. 조봉은 동시에 환향(換向)과 조정작업(調整作業)을 계속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환향은 붓의 사용면을 바꾸는 것이지 필심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 유희재(1813-1881)는 「예개」에서 “필심(筆心)은 장수요 부호(副毫)는 병졸이다. 병졸은 바꾸어 대신할 수도 있지만 장수는 대신할 수가 없다. 논자(論者)가 매번 필심(筆心)을 바꾼다고 말하나 사실은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2) 포호(鋪毫)․과봉(裹鋒)

오육(吳育)은 포호설의 시조로, 그는 포호와 이양빙의 전서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양빙의 전서를 보면 필획이 가늘고 꼿꼿하여 부호가 종이에 닿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포호에는 사포(斜鋪)와 평포(平鋪)가 있다. 사포는 편봉이나 측봉을 의미하고, 평포는 중봉을 의미한다. 평포는 붓끝을 가지런히 벌려 그 벌어진 길이가 곧 획의 넓이가 되는 방법이다. 포(鋪)라는 것은 포호중봉으로 행필할 때에 진력(盡力)으로 필호를 벌려 필봉을 평포하는 것이다. 필봉이 치우치지 않으면 만호가 일력(一力)이 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필력이 고르게 유지될 수가 있고, 빼어나면서 맑고 아름다운 필획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4) 이는 모든 호망(毫芒)이 지면에 접촉할 때에 서로 같은 작용을 일으키고, 글씨를 쓰는 사람의 손을 통해 전달하는 힘이 고르게 점획속에 주입하게 되면 어떻게든 치우침이 있을 수가 없음을 설명한 것이다.

포세신(1775-1855)은 필첨을 곧바르게 내리고[필첨직하(筆尖直下)], 장봉으로 내전(內轉)할 것[장봉내전(藏鋒內轉)]을 강조하였다. 필첨을 바르게 내리는 것은 필봉을 바로 세워 종이위에서 행필하기 위함이다. 필봉이 종이위에 똑바로 서서 움직이면, 필봉의 자유운동과 수시조정을 보증할 수가 있어서 엉키지 않는다. 오육은 “붓으로 필봉을 펴서 종이위에 평포(平鋪)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러야한다”고 했다. 종이위에 평포하는 것은 필봉을 똑바로 내린 결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상에 평포할 때에 장봉을 따로 하지 않고 내전(內轉)을 하는 것이다.

중봉용필에서 매우 중요한 또 하나는 과봉(裹鋒)이다. 포세신에 의하면 “과봉은 저수량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며 서호(703-782)나 안진경(708-784, 一作709-785)이 사용하였고, 소동파(1036-1101) 등이 능하였다”5)라고 말하고 있으나, 포호와 과봉의 분별은 청대의 서가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용필의 제안(提按)을 나누어 포호를 안(按)으로 과봉을 제(提)라고 하였다. “과봉은 서사할 때에 전체의 필봉이 원추모양을 유지하는 용필방법으로 평포(平鋪)와 상대되는 말이다. 봉을 모아 안으로 집결하면 붓은 획의 중심으로 움직이고 선조는 전체가 간명하게 모여 주경감(遒勁感)과 탄력감(彈力感)을 준다.”6) 필봉이 원추모양을 유지하니 어느 방향으로 붓이 움직이더라도 중봉이 되기 때문에 운필에 자유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며, 부드러워지고 서로 호응하는 필획을 구사할 수 있다. 붓이 자유롭게 움직이니 필호에는 자연스런 변화가 나타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경하고 다양한 필획이 나타나게 된다. 포과(鋪裹)는 상대적이면서도 보완적인 관계에 있어 서가들은 이를 이용하여 아름답고 역감이 있는 필획을 만들어 낸다.


3) 측봉(側鋒)․편봉(偏鋒)

일반적으로 “전서를 쓰는 데는 중봉을 많이 사용하고 예서를 쓰는 데는 측봉을 겸용하며 전법은 원필이고 예법은 방필이다. 이는 측봉용필이 실질상으로는 예법에 기원한다는 것을 초보적으로 제출한다.”7) 전서에서 예서로의 발전은 중봉필획에서 측봉(側鋒)이 가미된 자유로운 필획으로 변화한 것이다. 곡선을 위주로 하는 전서에서 직선을 위주로 하는 예서로의 변화는, 문자를 간단하게하고 서사속도를 빨리 하여, 문자가 실용과 대중속으로 파고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대중이 문자를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예술미가 가미된 것은 결국 화려한 한자예술의 꽃을 피우는 기반이 되었다. 다시 그것은 해서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초서가 탄생하는 길을 열어 주었으므로, 중봉에서 측봉으로의 변화는 결국 중국서예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주화갱은 「임지심해」에서 “정봉에서는 굳셈을 취하고 측봉은 연미함을 취한다. 왕희지(321-379, 一作303-361, 一作307-365)의 글씨인 「난정서」는 연미함을 표현할 때에 때로 측봉을 사용하였다. 나는 매가 토끼를 잡을 때에 먼저 공중에서 빙빙 돌다가 그런 후에 날개를 옆으로 하여 스쳐지나가면서 내려와 움켜쥐는 것을 매번 보았다”8)라고 했다. 글씨를 쓰는 것도 이와 같아서 붓을 잡아 곧바로 아래로 내리는데 필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점과 획을 서사할 때마다 따로 역입을 하고 회봉을 하면서 장봉과 중봉을 도모한다면, 그로해서 나타나는 결과가 튼실하고 주경한 느낌은 있으나 필맥이 끊어지고 절주감을 잃을 것이다. 마치 박자를 놓치고 음정이 맞지 않는 노래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는 것처럼 글씨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횡획은 필봉을 세로로 입필하고 수획은 필봉을 가로로 입필한다”9) 이러한 논리는 필세의 왕래를 편리하게 하였고, 전법에 비하여 기필을 빠르고 간편하게 하였다. 측봉은 중봉과 편봉사이에 끼어있는 용필방식이다. 고인(古人)이 점법(點法)을 측법이라 한 것도 점이 측봉으로 세를 취한다는 의미가 있다. 편봉용필은 필호에 긴장감이 없어 그 필획에 부박(浮薄)한 느낌이 들지만, 측봉용필이나 중봉용필은 필호에 긴장감이 있어서 필획에 입체감이 드러난다. 중봉운필은 필호를 지상에 평포하고 측봉운필은 필호를 지상에 사포한다. 필모가 지상에 사포하면, 조봉을 통해 필모를 지상에 평포하도록 한다.

이른바 편봉은 운필할 때에 붓대가 기울어져 필봉이 획의 한쪽 변에 있고 필신(筆身)은 획의 다른 한쪽 변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쪽 면은 매끄러우나 다른 면은 톱니와 같이 고르지 못하게 되고, 먹이 종이에 스며들지 않아 필획은 편평(扁平)하며 종이위에 떠있는[부로(浮露)] 느낌을 주게 된다. 편봉은 필모가 종이위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요, 측봉은 누웠으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봉과 측봉은 서로 비슷하기는 하나 근본적으로는 다르다.


3. 중봉(中鋒)에 관한 제설(諸說)


왕세정(1526-1590)은 “정봉이나 편봉이란 말이 고본에는 없었으나 근래에 축윤명(1460- 1526)을 공격하기 위하여 이를 말했을 따름이다”10)라고 하였다. 이처럼 중봉론11)이 심각하게 논의되었던 것은 명말에서 청에 이르는 시기였으니, 이로 미루어 보면 중봉이나 편봉 등에 대하여 그전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중봉설의 연원은 채옹(133-192, 一作132-192)의 「구세」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세」에서 “장두(藏頭)는 원필로 종이에 대어 필심을 항상 점획의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것이다12)”라 하였다. 후에 이세민(597-649)은 「필법결」에서 이르기를 “대저 완(腕)이 수직이면 봉(鋒)이 바르고 봉이 바르면 사면의 세가 온전해진다”13)라 하였다. 이 두 가지 설은 후세 중봉관의 근원이 되었다. 사실 중봉설의 전신은 정봉설(正鋒說)이다. 정봉이란 말은 강기(1155- 1235, 一作1163-1203)의 「속서보」에서 “안진경(708-784, 一作709-785)과 유공권(778-865)에 이르러 비로소 정봉을 사용했으며, 정봉에는 표일한 기운이 없다”14)라고 한 것이 처음이다. 당대(唐代)의 풍방은 「서결」에서 “고인(古人)이 전서․팔분․해서․행서․초서를 썼지만, 용필은 다르지 않았고 반드시 정봉을 위주로 했으며 간간히 측봉을 사용하여 고운 자태를 취했다”15)라고 했다. 여기서 정봉과 대립적인 것이 측봉과 편봉이다. 이로부터 많은 이들이 중봉에 대하여 말했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중봉에 대한 역대의 이론은 대체로 다음 세 종류의 중봉관(中鋒觀)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 중봉관은, 필첨이 시작에서 끝까지 점획의 중간에 있어야 비로소 중봉․정봉이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편봉․측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송대의 진유(陳槱)는 “이양빙(李陽氷)은 홀로 그 묘함이 뛰어나서 항상 진적(眞跡)을 보면 그 자획이 시작하고 멈추는 곳에 모두 약간의 봉망(鋒芒)이 드러났다. 햇빛에 이를 비춰보면 중심에 있는 한 줄의 선에 먹이 배로 짙었으며 그 용필은 힘이 있고 곧게 내려 치우치지 않았으므로 봉은 항상 필획의 가운데에 있었다(惟陽氷獨擅其妙 常見眞跡 其字畫起止處 皆微露鋒鍔 映日觀之 中心一縷之墨倍濃 蓋其用筆有力且直下不欹 故鋒常在畫中)”16)고 했고, 서현의 전서에 대하여도 이와 유사한 기록이 있다. 이는 필봉이 항상 필획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주봉과 부호에서 연출되는 작용에 의해 중앙과 양변의 먹색이 달라짐으로 해서 입체감을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또한 양변은 보드랍고 중실하며 공제효과(控制效果)와 역감(力感)이 있음으로 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필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봉을 완전하게 운용하려면 전서를 제외한 다른 서체에서는 가능하지가 않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학설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중봉관은, 예․해․행․초서의 하필(下筆)과 전절처(轉折處)에서 필봉을 정중앙으로 유지할 수없다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중봉용필은 마땅히 행필할 때에 부단히 필봉을 조정하여 측봉으로부터 중봉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세」의 “필심을 항상 점획의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令筆心常在點畫中行)”는 말에서 ‘令’의 의미를 부각시킨 것이다. 필첨을 항상 중심으로 유지할 수가 없기에 끊임없는 제어를 통해 필봉을 점획의 중심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봉과 정봉은 개념을 달리한다.

세번째 중봉관은, 구양수(1007-1072)로부터 시작하였으며, 소동파는 「동파제발」에서 “그 운필은 전후좌우로 기울어지고 치우침을 면할 수가 없으나, 그 안정됨은 상하로 줄을 끄는 것과 같다. 이것을 필정(筆正)이라 한다17)”고 기록하였다. 상술한 두 번째의 중봉관과 모양이 비슷한 곳은 중봉용필이 정봉이나 측봉으로부터 상호보완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요, 서로 다른 점은 단지 점획전절처(點畫關節處)18)에서 필봉을 상하로 줄을 끄는 것과 같이 해서 정봉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청대의 왕주(1668-1743)는 “중봉은 필획의 가운데에서 봉을 움직이는 것이니 평측언앙(平側偃仰)을 뜻에 따라 구사하는 것이다. 필봉이 이미 안정되면 단정하기가 마치 줄을 끄는 것과 같으니[단약인승(端若引繩)], 이러면 필봉이 위나 아래로 치우치지 않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아 팔면으로 출봉하게 된다. 붓을 팔면으로 출봉하게 되면 마땅하지 않는 것이 없다”19)라고 했다. 왕주가 여기서 말한 ‘단약인승(端若引繩)’이란 글자의 필획이 단정하기가 뽑아놓은 묵선과 같이 곧은 것을 가리킨다. 단(端)은 단정한 것이고 인(引)은 뽑아내는 것이다. 용필에서 비록 중봉이 위주가 되는데, 필필정봉이 되면 변화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변화를 추구하려면 마땅히 정용․측용․중용․편용․역용․순용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필할 때에는 필봉이 마땅히 획의 가운데로 돌아와야 하고 점획의 안으로 감춰져야 팔면으로 출봉할 수가 있을 것이다. 왕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중봉의 핵심은 환필(換筆)에 있다. 환필을 할 수 있으면 행필에 중봉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환필의 환(換)은 곧 채옹의 「구세」에 있는 ‘영(令)’을 구체화한 것이다. 팔면출봉(八面出鋒)은 곧 이세민의 「필법결」의 사면세전(四面勢全)이며, 본질상으로 말하자면 중봉관 또한 「구세」와 「필법결」의 본의에 위배되지 않는다.20)

이와 같은 관점에서 첫 번째의 중봉관을 논하지 않는다면, 곧 중봉은 측봉과 편봉의 대립면이 아니며, 또한 정봉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또한 필필중봉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확실하게 용필의 핵심임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정확한 중봉관은 필봉의 정측의 사용을 폐하지 않고, 환필(換筆)로 수단을 삼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정봉과 측봉은 상제상성(相濟相成)하며 그로써 수준높은 선질의 점획을 서사할 수가 있다.



Ⅳ 중봉효과(中鋒效果)


1. 입체감(立體感)


중봉용필을 통해서 얻어지는 효과는 입체감(立體感)의 표현이다. 미불(1051-1107)은 “득필(得筆)하면 비록 가늘어 수염과 같아도 발(發)하면 또한 둥글고, 득필하지 못하면 두터워 서까래와 같아도 또한 납작하게 된다”21)고 하였다. 중봉운용을 하면 서법중에서 골력이 있게 되고, 점획중에 골력(骨力)이 있으면 자체(字體)는 자연히 웅건해진다. 중봉용필의 골력과 입체감은 깊고 두터움으로 나타나고 여기서 표현되는 정발(挺拔)하면서 중함(中含)한 필획들에 대하여 고인들은 추획사(錐畫沙)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추획사는 송곳으로 마른 모래에 긋는 것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에 대하여 異見을 가지고 있다. 마른 모래에 글씨를 쓰면 전서(篆書)를 연상하듯이, 획의 들어가고 나간 자취가 없이 필획이 둔중하고 획의 양면이 보드라우나 삽기(澁氣)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젖은 모래에 글씨를 쓰면 예서나 해서를 쓰는 것처럼, 획에 삽기가 넘친다. 안진경은 「술장장사필법십이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후에 저수량에게 물으니 말하기를 “용필은 마땅히 인인니(印印泥)와 같아야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생각하여도 깨닫지를 못하다가, 후에 강도(江島)에 모래가 평평한 곳[사평지정(沙平地靜)]을 보고 글을 쓰고 싶어져 날카로운 끝으로 그어가며 글을 쓰니 그 험경한 모양이 분명하고 아름다웠다. 이로부터 용필은 추획사와 같이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장봉(藏鋒)으로 하면 획이 침착해진다. 그 용필이 항상 지배(紙背)를 투과(透過)하도록 하면 이는 공(功)을 이룸이 지극한 것이다.22)


강의 섬에서 모래가 평평한 곳이라면, 인간이나 비바람과 새와 같은 등등의 외적(外的)인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 시간을 요한다. 물이 지나갔으나 어느 정도 오랜 기간이 지나지 않아 약간은 젖어있는 상태이다. 그곳에 썼던 필획에서 경험(勁險)한 모양이 있었다는 것이나, 인인니(印印泥)를 연상하여 추획사(錐畫沙)를 생각한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는 도장을 찍듯이 막대기를 곧바로 세우고 눌러가며 글을 썼을 것이다. 도장은 비스듬하게 하면 찍을 수가 없다. 직각으로 곧바르게 눌러야 도장이 바로 찍힌다. 힘있게 누르든 힘이 없이 약간을 누르든 곧바르게 눌러야 한다. 이는 붓끝을 곧바로 아래로 내리는 필첨직하(筆尖直下)를 의미이며, 행필부분을 정봉(正鋒)으로 했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마른 모래에서는 송곳을 비스듬히 그어도 똑바로 세우고 그은 것과 다르지 않은 느낌을 얻으며, 지배를 투과하는 느낌으로 막대기를 눌러 그어도 모래가 다시 덮여 획의 변화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젖은 모래에서는 도장을 찍듯이 막대기를 곧게 세워 글을 쓰면 측봉으로 글을 쓸 때와 많은 차이가 보이며, 힘을 주어 획을 그어도 사뭇 다른 필획을 얻을 수 있다. 측봉으로 글씨를 쓰게 되면, 그어진 획속으로 모래가 다시 덮여 탁하고 연약한 필획이 만들어진다. 더구나 이글에서 등장하는 저수량․장욱․안진경 등이 활약한 시기에는 전서가 아닌, 해서와 행초서가 유행하였던 시기라고 보여지고 있어 이러한 사실을 더욱 뒷받침 해주고 있다. 장욱이 인인니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생각하고 고민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했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마른 모래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을 비추어 볼 때 당시의 모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른 모래보다는 젖어있는 모래일 가능성이 많다.


2. 생동감(生動感)


중봉은 옥루흔(屋漏痕)으로도 비유를 한다. 옥루흔은 벽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린 흔적으로, 구불구불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물줄기를 연상하게 한다. 물줄기는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다. 비어있는 공간을 반드시 채우고 지나간다. 전진하는 방향과 같지 않더라도 주변에 낮은 곳이 있으면 그곳을 채우고 다시 흐름을 지속한다. 우리에겐 매끄러운 면으로 보여지는 곳도 물줄기는 직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옥루흔에서는 바로 이러한 ‘생기(生氣)’ ‘생동감(生動感)’을 강조한 것이다. “생기가 있다는 것은 획이 살아있다는 말이다. 획이 매끄럽지 않아야하며 거칠어서도 안된다. 획은 윤기가 있으면서도 까칠까칠해야한다. 대체로 미끄러운 획보다는 다소 거친 편이 낫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이다.”23) 여기서 살아 있다는 것은 절주감(節奏感)이 있고 역동감(力動感)이 있으며 다양한 획질을 의미한다. 획이 주변상황에 따라 알맞고 자유롭게 대응하여 사람들에게 꿈틀대거나 질주하는 역감(力感)을 준다. 이러한 현상은 또한 “자형(字形)에 생명력을 갖추게 하면 생명의 미를 드러내지만, 필력이 없으면 병든 환자처럼 창백하고 생기가 없게 된다.”24) 생명력은 붓에서 필획으로 힘을 관주하는 데에서 비롯되며, 어느 글자든지 전체작품에서 웅건한 힘이 넘치게 한다. 만약 병든 사람의 피부라면 창백한 색깔을 나타내고, 죽은 사람의 피부라면 그것은 단지 곱거나 활발한 느낌이 없는 삐쩍마른 느낌이다. 당연히 획에는 건강미가 넘쳐야 한다. 당의 서예가 서호(703-782)가 「논서」에서 말한 다음의 비유는 마치 정곡을 찌르는 듯하다.


무릇 매는 채색이 부족하나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골이 굳세고 기(氣)가 용맹하다. 훨훨 나는 꿩이 색을 갖추었으나 날아가는 것이 백발자국밖에 되지 않는 것은 살이 쪄서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25)


이는 중봉용필을 매에 비유하고 편봉용필을 꿩에 비유하여, 중봉용필은 매처럼 아름다운 색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근골이 뛰어나고 살이 적으며 생동감이 있음을 말한 것이고, 편봉용필은 꿩과 같이 아름다우나 살이 많아 백발자국도 날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3. 지졸감(至拙感)


중봉으로 운필을 하다보면 필획에서 지졸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 지졸미는 질박하고 소박한 자연미를 뜻한다. 질박이나 소박에서 사용하는 글자를 살펴보면, 질(質)은 꾸미지 않은 본연 그대로의 성질인 본바탕을 뜻하고, 소(素)는 물들이기 전의 흰 비단이며, 박(朴)은 박(樸)과 통하는 글자로 가공하지 않은 통나무를 뜻한다. 그러므로 질박하거나 소박하다는 것은 물들이거나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다. 고인들은 시각적으로 끌리는 연미함보다는 못난 듯하면서 어눌한 拙을 강조하였다. 뾰족한 것보다는 원만한 것, 가벼운 것 보다는 무거운 것, 원색적인 것보다는 은근한 것, 얇은 것보다는 두터운 것, 인공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것 등을 선호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후자를 중요시 여긴 것이라기보다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말이 대변하듯 대부분의 글씨가 후자쪽이 부족하므로 후자를 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서예 역시 이러한 면을 중시하고 있고 중봉은 바로 이러한 미를 체현하기 위한 필법이다. 서예는 양강(陽剛)의 아름다움이나 음유(陰柔)의 아름다움으로 나누어 설명은 하고 있으나, 결코 전적으로 강한 것이나 전적으로 부드러운 것을 추구하거나 고집하지는 않는다. 서예는 강하고 부드러운 것을 서로 조화를 시키면서 골과 육이 알맞게 조화된 중화의 미를 추구한다.

졸(拙)에는 자연소박미가 있고, 교(巧)에는 인공수식미가 있으며, 교하면 달콤하면서 연미하고, 졸하면 새롭고 기이하다. 사람들은 졸할망정 교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데, 반드시 어렵고 힘든 예술구상과 반복되는 고된 훈련을 거쳐야 졸한 모습이 나타난다. 이러한 졸은 일종의 대교지졸(大巧至美)한 것으로 자유의 산물이다. 일단 마음에서 얻고 손에서 응하면 대미지졸(大美至拙)한 경계에 이를 수가 있을 것이다. 교는 경박하지 않으면서 민첩하게 하고 졸은 혼탁하지 않으면서 혼고(渾古)하게 해야 한다. 대자연의 교와 졸의 통일은 필묵의 교졸이 이루어지고 천법(天法)에 맞아야 교졸이 합일된다.



Ⅴ 결어(結語)


어느 날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다 문득 이를 닮은 필획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언제나 평온을 유지하는 고인 물은 세상만물을 담아내고 있을지는 모르나, 흐르는 물에서는 리듬감이 있고 생명력이 있고 입체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움직임에는 고요한 움직임도 있고 격동하는 움직임도 있다. 물이 흘러가는 것은 결국 변화를 의미하며, 흐름의 모양도, 깊이와 넓이도, 흐름의 중심도 역시 꾸준히 변화하고 있다. 물줄기가 휘돌아 나갈 때에는 중심이 바깥으로 향하고 바위에 부딪쳐 방향이 바뀔 때에는 중심이 바위에 닿는다. 개울물처럼 넓은 면을 흐를 때에는 물의 깊이와 힘을 느끼지 못하지만, 넓은 면으로 바위를 부딪치면서 떨어지는 폭포에서는 강렬한 飛白의 역감을 받았다. 많은 양의 물이 좁은 공간을 지날 때의 빠름과 강물처럼 느리지만 도도하게 흐르는 웅장한 기세에서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느낌을 필획으로 담아내고 싶었고 중봉의 의미에 담아내보고 싶었다.

서법은 선(線)으로 인품과 형식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선이란 어떤 것인가? 자연의 모습을 닮은 것이다. 평면적이기 보다는 입체적이며, 죽어서 고정된 것이 아닌 살아서 꿈틀대고 변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선이다. 어떻게 필획이 평면적인 종이위에 입체적으로 나타나는가? 그 필봉을 곧바로 내려 넘어지지 않기에 봉이 항상 획의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먹색이 중심으로부터 양변으로 침투하여 만들어진 농담(濃淡)의 변화는 필획에 사주포만(四周飽滿)을 얻게 하고 입체감(立體感)과 생명감 그리고 대미지졸(大美至拙)한 필획을 바탕으로 충실한 역도를 드러낸다. 서예가의 우열은 그 관건이 중봉을 사용할 수 없느냐, 중봉을 사용할 수 있느냐이다. 중봉을 사용할 수 있으면 둥글고 윤택하며 풍성하고 아름다운 필획을 그을 수 있고 둔(鈍)한 붓이라고 하더라도 예리하게 할 수 있고 붓이 예리한 것이라도 둔하게 할 수가 있다. 중봉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은 비록 일생의 힘을 다하더라도 좋은 글씨를 써내기 어려울 것이다.

끝으로, 본논문의 주제와 약간 벗어나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다음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한국의 서예인들에게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하고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중국의 역대서론들을 비롯하여 우리 선인들과 중국․일본 등지에서 그동안 연구되었던 많은 서예관련 논문들을 번역하여 체계를 세우는 작업이다. 그러한 작업이 선행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도 서예에 관련한 다양한 서적이나 연구논문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서예비평도 다양하게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승이 써준 체본만을 보고, 오랜 세월 손에 익숙해지기만을 기다리는 서예에서 벗어나, 알고 쓰고, 이해하면서 감상하는 차원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또한 서예를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예를 감상하는 층에 대한 다양한 각도에서의 배려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는 어느 몇몇 사람들의 손에 의해 단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범서예인적인 차원이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21세기에는 서파를 나누고 수많은 공모전을 통해 입상자를 나누는 차원에서 벗어나, 서예이론을 정립하고 비평문화가 더욱 활성화된다면 21세기 한국의 서예문화도 한 차원 승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

1) 荀子,『荀子․勸學篇』(卷1),『漢文大系』(15), 東京: 富山房, 明治43年, pp.4-5: 君子生非異也 善假於物也.

2) 白鶴,「筆性論」,『書法硏究』, 上海: 上海書局, 1992, 총49집, pp.111 -112에서 內容參照.

3) 陳繹曾, 「翰林要訣」,『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483: 疎處捺滿 密處提飛 平處捺滿 險處提飛 捺滿卽肥 提飛則瘦.

4) 白鶴,「運筆十四勢論」,『書法硏究』, 上海: 上海書局, 1989. 총38집. pp.27-28: 所謂鋪就是平鋪中鋒 其中包含兩層含義一是指在行筆時 要盡力開張平鋪毫鋒 不偏不倚萬毫一力 這樣才能達到筆力勻稱 挺秀明麗之目的.

5) 陶明君,『中國書論辭典』, 長沙: 湖南美術出版社, 2001, p.137: 包世臣《藝舟雙楫》: “河南始于履險之處裹鋒取致, 下至徐顔, 益事用逆, 用逆而筆駛, 則裹鋒側入, 姿韻生動, ……後世能者, 多宗二家, 東坡尤爲上座, 坡老書多爛漫, 時時斂鋒以凝散緩之氣, 裹鋒之尙, 自此而盛.” 又云: “二王眞行草俱存, 用筆之變備矣, 然未嘗出裹鋒也.”

6) 陶明君, 上揭書 p.137: 指書寫時整个筆鋒保持圓錐狀的用筆方法 與平鋪對言 因裹鋒集結內斂 筆行畫中 故線條渾融凝練 富于遒勁感和彈力感.

7) 劉小晴,「側鋒初探」,『書法硏究』, 上海: 上海書局, 1982, pp.91-92: 篆法多用中鋒 隸法兼用側鋒 篆法圓隸法方 這就初步提出側鋒用筆實質上起源于隸法.

8) 劉小晴, 「側鋒初探」,上揭書 p.94에서 再引用.

9) 無名氏, 「書法三昧」: 橫畫須直入筆鋒 竪畫須橫入筆鋒. 劉小晴, 上揭書, p.93에서 再引用.

10) 王世貞《藝苑卮言》: “正鋒偏鋒之說古本無之, 近來專欲攻祝京兆故借此爲談耳.”

11) 중봉은, 명의 왕불이 「서화전습록 ․ 논서」에서 “당나라 때의 서예가들은 글자에 중봉을 취하여 규범의 실마리를 분명하게 드러냈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것이 그 시초가 아닌가 한다.

12) 蔡邕, 「九勢」『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7 : 藏頭圓筆屬紙令筆心常在點畫中行.

13) 李世民, 「筆法訣」『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118: 大抵腕竪則鋒正 鋒正則四面勢全.

14) 姜夔,「續書譜」『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385: 至顔柳始正鋒爲之 正鋒則無飄逸之氣.

15) 豊坊 「書訣」 『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506: 古人作篆分眞行草書 用筆無二 必以正鋒爲主 間用側鋒取姸.

16) 陳槱,「負暄野錄 ․ 篆法總論」,『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376.

17) 蘇軾, 『東坡題跋』 上海: 上海遠東出版社 1996. p.308: 方其運也 左右前後却不免欹側. 及其定也 上下如引蠅. 此之謂筆正.

18) 轉折處나 收筆處와 같은 곳을 말한다.

19) 王澍, 「論書剩語」: 所謂中鋒者謂運鋒在筆畫之中 平側偃仰 惟意所使及其旣定也 端若引繩 如此則筆鋒不倚上下 不偏左右 乃能八面出鋒 筆至八面出鋒 斯無往不當矣. 劉小晴, 『中國書學技法評注』, 上海: 上海書畵出版社, 2002, p.39에서 再引用.

20) 許洪流, 『技與道』, 浙江人民美術出版社, 2001. pp.156-159에서 內容參照.

21) 朱大熙,「竪鋒 鋪毫 換向」,『書法硏究』, 上海: 上海書局, 1989, 1期, p.124: 米南宮的所謂得筆 雖細如髭發亦圓 不得筆 雖粗如椽亦扁.

22) 『書畫篆刻實用辭典』, 中國: 上海書畵出版社, 1988, p.55: 後問于楮河南 曰‘用筆當須如印印泥’ 思而不悟 後于江島 遇見沙平地靜 令人意欲悅書 乃遇以利鋒畫而書之 其勁險之狀 明利媚好 自玆乃悟用筆如錐畫沙 使其藏鋒畫乃沈着 當其用筆 常欲使其透過紙背 此功成之極矣.

23) 宣柱善,『書藝通論』, 益山: 圓光大學校出版局, 1998, p.69.

24) 金開誠 王岳川,『中國書法文化大觀』, 北京: 北京大學出版社, 1996, p.140: 又使字形具有生命力 顯示生命的美 無筆力者則病態蒼白 了無生氣.

25) 徐浩,「論書」,『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276: 夫鷹隼乏彩 而翰飛戾天 骨勁而氣猛也 翬翟備色 而翶翔百步 肉豊而力沈也.


<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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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4년 10월 16일 구로학술발표회 발표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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