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시 모음

 

오월이 돌아오면 ㅡ신석정ㅡ

 

오월이 돌아오면

내게서는 제법 식물 내음새가 난다

그대로 흙에다 내버리면

푸른 싹이 사지에서 금시 돋을 법도 하구나

오월이 돌아오면

제발 식물성으로 변질을 하여라

아무리 그늘이 음산하여도

모가지서부터 푸른 싹은 밝은 방향으로 햇볕을 찾으리라

오월이 돌아오면

혈맥은 그대로 푸른 엽맥(葉脈)이 되어라

심장에는 흥건한 엽록소(葉綠素)를 지니고

하늘을 우러러 한 그루 푸른 나무로 하고 살자

 

오월의 신록 ㅡ천상병ㅡ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 살 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5월 ㅡ 김태인 ㅡ

 

, 귀여운 햇살 보세요

애교떠는 강아지처럼

나뭇잎 핥고있네요

, 엉뚱한 햇살 보세요

신명난 개구쟁이처럼

강물에서 미끄럼 타고있네요

, 능청스런 햇살 보세요

토닥이며 잠재우는 엄마처럼

아이에게 자장가 불러주네요

, 사랑스런 햇살 보세요

속살거리는 내 친구처럼

내 가슴에 불지르네요

 

5월이 오거든 ㅡ 홍해리 ㅡ

 

날선 비수 한 자루 가슴에 품어라

미처 날숨 못 토하는 산것 있거든

명줄 틔워 일어나 하늘 밝히게

무딘 칼이라도 하나 가슴에 품어라.

 

5월 ㅡ 김상현 ㅡ

 

나와 봐

어서 나와 봐

찔레꽃에 볼 부벼대는 햇살 좀 봐

햇볕 속에는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려고

멧새들도 부리를 씻어

들어 봐

청보리밭에서 노는 어린 바람 소리

한번 들어 봐

우리를 부르는 것만 같애

자꾸만 부르는 것만 같애

 

5월의 초대 ㅡ 임영준 ㅡ

 

입석밖에 없지만

자리를 드릴게요

지나가던 분홍바람에

치마가 벌어지고

방싯거리는 햇살에

볼 붉힌답니다

성찬까지 차려졌으니

사양 말고 오셔서

실컷 즐기시지요

 

5월의 그대여 / 임영준

 

그대여

눈부신 햇살이 저 들판에

우르르 쏟아지고

계곡마다 초록선율 넘쳐흐르는데

아직도 그리움에 목말라

웅크리고만 있는가

때는 바야흐로

소박한 아카시아도 불붙는 날들인데

가시를 두른 장미도 별이 되는 날들인데

어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 건가

 

5월 ㅡ 최금녀 ㅡ

 

여기 저기

언덕 기슭

흰 찔레꽃

 

거울 같은 무논에

드리운

산 그림자

 

산빛

들빛 속에

가라앉고 싶은

5.

 

五月 ㅡ 김동리 ㅡ

 

5월의 나무들 날 보고

멀리서부터 우쭐대며 다가온다

 

언덕 위 키 큰 소나무 몇 그루

흰구름 한두 오락씩 목에 걸은 채

신나게 신나게 달려온다

 

학들은 하늘 높이 구름 위를 날고

햇살은 강물 위에 금가루를 뿌리고

 

땅 위에 가득 찬 5월은 내 것

부귀도 仙鄕도 부럽지 않으이.

 

5월의 노래 ㅡ 황금찬 ㅡ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심산 숲내를 풍기며

5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꽃잎 진 빈 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날고 있는 제비가

작년의 그놈일까?

 

저 언덕에 작은 무덤은

누구의 무덤일까?

 

5월은 4월보다

정다운 달

 

병풍에 그려 있던 난초가

꽃피는 달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

5월이다.

 

감나무 있는 동네 ㅡ 이오덕 ㅡ

 

어머니,

오월이 왔어요

집마다 감나무 서 있는

고향 같은 동네에서

살아갑시다

 

연둣빛 잎사귀

눈부신 뜰마다

햇빛이 샘물처럼

고여 넘치면

 

철쭉꽃 지는 언덕

진종일 뻐꾸기 소리

들려오고

 

마을 한쪽 조그만 초가

먼 하늘 바라뵈는 우리 집

뜰에 앉아

 

어디서 풍겨 오는

찔레꽃 향기 마시며

어머니는 나물을 다듬고

나는 앞밭에서 김을 매다가

돌아와 흰 염소의 젖을

짜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짙푸른 그늘에서 땀을 닦고

싱싱한 열매를 쳐다보며 살아갈

세월이 우리를 기다리고,

 

가지마다 주홍빛으로 물든 감들이

들려줄 먼 날의 이야기와

단풍 든 잎을 주우며, 그 아름다운 잎을 주우며

불러야 할 노래가 저 푸른 하늘에

남아 있을 것을

어머니, 아직은 잊어버려도 즐겁습니다

 

오월이 왔어요

집마다 감나무 서 있는

고향 같은 동네에서

살아갑시다, 어머니!

 

5월 ㅡ 오세영 ㅡ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

진한 향기로 숨막히는데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아아, 살아있는 것도 죄스러운

푸르디푸른 이 봄날,

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

 

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자꾸만 손짓을 하고

 

오월 찬가 ㅡ 오순화 ㅡ

 

연둣빛 물감을 타서 찍었더니

한들한들 숲이 춤춘다.

 

아침안개 햇살 동무하고

산허리에 내려앉으며 하는 말

오월처럼만 싱그러워라

오월처럼만 사랑스러워라

오월처럼만 숭고해져라

 

오월 숲은 푸르른 벨벳 치맛자락

엄마 얼굴인 냥 마구마구 부비고 싶다.

 

오월 숲은 움찬 몸짓으로 부르는 사랑의 찬가

너 없으면 안 된다고

너 아니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고

네가 있어 내가 산다.

 

오월 숲에 물빛 미소가 내린다.

소곤소곤 속삭이듯

날마다 태어나는 신록의 다정한 몸짓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사랑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

 

오월처럼만

풋풋한 사랑으로 마주하며 살고 싶다.

 

5월 ㅡ 안재동 ㅡ

 

5월엔, 왠지 집 대문 열리듯

뭔가가 확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곳으로

희망이랄까 생명의 기운이랄까

아무튼 느낌 좋은 그 뭔가가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기분이 든다

 

5월엔, 하늘도 왕창 열려

겨울 함박눈처럼

만복이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 든다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5월엔, 아기 손처럼 귀엽고 보드라운,

막 자라나는 메타세쿼이아의 잎을

가만히 바라보거나 만져보노라면

오랫동안 마음속에 응결되어 있던

피멍 하나 터져

그곳에서 새순이라도 쑤욱 돋아나는

느낌이 든다

 

5월엔,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여전히 그때의 그 싱그러운

당신의 얼굴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다

언제나

 

5월엔, 천지를 가득 채우는

따사로운 햇살에

오랫동안 잠겨있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집먼지진드기 같은 잡념을 태워보자

어디에선가 꼭꼭 숨어

유서라도 준비할 것만 같은

그런 사람아

 

5월을 드립니다 ㅡ 오광수 ㅡ

 

당신 가슴에

빨간 장미가 만발한

5월을 드립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생길 겁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느낌이 자꾸 듭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많이 많이 생겨나서

예쁘고 고른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얼굴 가득히 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당신 모습을 자주 보고 싶습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기분이 자꾸 듭니다

 

당신 가슴에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5월을 가득 드립니다

 

5월의 아침 ㅡ 윤준경 ㅡ

 

모두들 가고 있구나

5월 나뭇잎의 오케스트라를 들으며

초록의 터널을 지나

저마다 한 뭉치의 희망

넘치는 꾸러미 한아름 안고

사과씨 뿌려진 아스팔트 위를

나도 가고 있구나

삶은 이런 것이려니

늘 스치고 지나는 일도

문득 뜨겁게 다가서는 것

어둠의 황량한 거리 초록불 켜지면

저 당당한 어깨 한 치의 오차 없는

발맞춤을 보라

사과씨는 움이 트고 다시 태양은 뜨리니

저려오는 다리 아린 팔뚝도 잊고

5월의 새 아침, 가로수 아래

빛나는 이마

참 아름답구나

 

5월의 시 ㅡ 이문희 ㅡ

 

토끼풀꽃 하얗게 핀

저수지 둑에 앉아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나는 한 덩이 하얀 구름이 되고 싶다.

저수지 물 속에 들어가

빛 바랜 유년의 기억을 닦고 싶다.

그리고 가끔

나는 바람이 되고 싶다.

저수지 물위에 드리워진

아카시아꽃 향기를 가져다가

닦아낸 유년의 기억에다

향기를 골고루 묻혀

손수건을 접듯 다시 내 품안에 넣어두고 싶다.

5월의 나무들과

풀잎들과 물새들이 저수지 물위로

깝족깝족 제 모습을 자랑할 때

나는 두 눈을 감고

유년의 기억을 한 면씩 펴면서

구름처럼 바람처럼 거닐고 싶다.

하루종일 저수지 둑길을 맴돌고 싶다.

 

5월의 시 ㅡ 이해인 ㅡ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색 서정시를 쓰는 5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말을 아낀

지혜 속에 접어 둔 기도가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5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

 

은총을 향해

깨어 있는 지고한 믿음과

 

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

우리네 가슴속에 물 흐르게 하십시오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내는 5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뜨는

빛의 자녀 되게 하십시오

 

5월이 오면 ㅡ김용호ㅡ

 

무언가 속을 흐르는 게 있다.

가느다란 여울이 되어

흐르는 것.

 

이윽고 그것은 흐름을 멈추고 모인다.

이내 호수가 된다.

아담하고 정답고 부드러운 호수가 된다.

푸르름의 그늘이 진다.

잔 무늬가 물살에 아롱거린다.

 

드디어 너, 아리따운

모습이 그 속에 비친다.

오월이 오면

호수가 되는 가슴.

 

그 속에 언제나 너는

한 송이 꽃이 되어 방긋 피어난다.

 

오월의 숲에 들면 ㅡ 김금용ㅡ

 

어지러워라

자유로워라

신기가 넘쳐 눈과 귀가 시끄러운

오월의 숲엘 들어서면

 

까치발로 뛰어다니는 딱따구리 아기 새들

까르르 뒤로 넘어지는 여린 버드나무 잎새들

얕은 바람결에도 어지러운 듯

어깨로 목덜미로 쓰러지는 산딸나무 꽃잎들

 

수다스러워라

짓궂어라

한데 어울려 사는 법을

막 터득한 오월의 숲엘 들어서면

 

물기 떨어지는 햇살의 발장단에 맞춰

막 씻은 하얀 발뒤꿈치로 자박자박 내려가는 냇물

산사람들이 알아챌까봐

시침떼고 도넛처럼 꽈리를 튼 도롱뇽 알더미들

도롱뇽 알더미를 덮어주려 합세하여 누운

하얀 아카시 찔레 조팝과 이팝꽃 무더기들

홀로 무너져 내리는 무덤들조차

오랑캐꽃과 아기똥풀 꽃더미에 쌓여

푸르게 제 그림자 키워가는 오월의 숲

 

몽롱하여라

여울져라

구름밭을 뒹굴다

둥근 얼굴이 되는

오월의 숲엘 들어서면

 

오월 ㅡ 피천득ㅡ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창 밖은 오월인데 ㅡ피천득ㅡ

 

창 밖은 오월인데

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에도 아까운 순간

라일락 향기 짙어가는데

너는 아직 모르나 보다

잎사귀 모양이 심장인 것을

크리스탈 같은 미라 하지만

정열보다 높은 기쁨이라 하지만

수학은 아무래도 수녀원장

가시에도 장미 피어나는데

컴퓨터'는 미소가 없다

마리도 너도 고행의 딸.

 

5월의 느티나무 ㅡ복효근ㅡ

 

어느 비밀한 세상의 소식을 누설하는 중인가

더듬더듬 이 세상 첫 소감을 발음하는

연초록 저 연초록 입술들

아마도 지상의 빛깔은 아니어서

저 빛깔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초록의 그늘 아래

그 빛깔에 취해선 순한 짐승처럼 설레는 것을

어떻게 다 설명한다냐

바람은 살랑 일어서

햇살에 부신 푸른 발음기호들을

그리움으로 읽지 않는다면

내 아득히 스물로 돌아가

옆에 앉은 여자의 손을 은근히 쥐어보고 싶은

이 푸르른 두근거림을 무엇이라고 한다냐

정녕 이승의 빛깔은 아니게 피어나는

5월의 느티나무 초록에 젖어

어느 먼 시절의 가갸거겨를 다시 배우느니

어느새

중년의 아내도 새로 새로워져서

오늘은 첫날이겠네 첫날밤이겠네

 

논물 드는 5월에 ㅡ 안도현 ㅡ

 

그 어디서 얼마만큼 참았다가 이제서야 저리 콸콸 오는가

마른 목에 칠성사이다 붓듯 오는가

 

저기 물길 좀 봐라

논으로 물이 들어가네

물의 새끼, 물의 손자들을 올망졸망 거느리고

해방군같이 거침없이

총칼도 깃발도 없이 저 논을 다 점령하네

논은 엎드려 물을 받네

 

물을 받는, 저 논의 기쁨은 애써 영광의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

출렁이며 까불지 않는 것

태연히 엎드려 제 등허리를 쓰다듬어주는 물의 손길을 서늘히 느끼는 것

 

부안 가는 직행버스 안에서 나도 좋아라

金萬傾 너른 들에 물이 든다고

누구한테 말해주어야 하나, 논이 물을 먹었다고

논물은 하늘한테도 구름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논둑한테도 경운기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방금 경운기 시동을 끄고 내린 그림자한테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저것 좀 보라고, 나는 몰라라

 

논물 드는 5월에

내 몸이 저 물 위에 뜨니, 나 또한 물방개 아닌가

소금쟁이 아닌가

 

5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ㅡ이채ㅡ

 

당신이 빨간 장미라면

나는 하얀 안개꽃이 되고 싶어요

나 혼자만으로는 아름다울 수 없고

나 혼자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고

당신 없이는 온전한 풍경이 될 수 없는 꽃

 

당신의 향긋한 꽃내음에 취해

하얗게 나를 비워도 좋을 꽃

그 잔잔한 꽃잎마다

방울방울 맺힌 그리움으로

당신만의 고요한 배경이 되고 싶어요

 

가끔 당신의 빛깔이 지칠 때나

가시 돋친 당신의 가슴이 아플 때면

당신을 위해 하얀 노래를 부르겠어요

눈 내리는 어느 날, 한 마리 겨울새가 불렀던

그 순백의 노래를

 

제발 내 곁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알알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애원하듯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꽃

당신의 어깨에 기대어

이대로 하얗게 잠들었으면

 

당신 곁에 있으면 작아서 더 예쁜 꽃

여린 꽃 숨결이 멈출 때까지

소망의 은방울 종소리를 울리며

당신과 단둘이

사랑의 꽃병에 영원히 갇히고 싶어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ㅡ 하이네 ㅡ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계절의 여왕 5월에게 ㅡ 정연복 ㅡ

 

5월이여

빛나는 5월이여

그대를 계절의

여왕으로 만드는 것은

꽃들이 아니라

연둣빛 이파리들입니다.

꽃은 피고

또 덧없이 지지만

이파리들은

그리 변덕을 떨지 않습니다.

세상에 새 삶의 희망을

선물하는 연둣빛으로

해마다 우리 곁에 찾아오는

5월이여

영원 무궁토록

우리를 기억하소서.

 

5월의 다짐 ㅡ 정연복 ㅡ

 

초록 이파리들의

저 싱그러운 빛

이 맘속

가득 채워

회색 빛 우울(憂鬱)

말끔히 지우리.

살아 있음은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

살아 있음은

생명을 꽃피우기 위함이라는 것

살아 있는 날 동안에는

삶의 기쁨을 노래해야 한다는 것.

초록 이파리들이 전하는

이 희망의 메시지

귀담아 듣고

가슴 깊이 새기리.

 

5월의 산 ㅡ 정연복 ㅡ

 

5월의 산에 들면

기분이 참 상쾌하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연둣빛 이파리들

보고 또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오르막길 산행을 하면서

숨이 가빠오다가도

그 이파리들

한번 눈에 담으면

가슴이 뻥 뚫리고

피로감이 싹 가신다.

 

5월의 그대 - 생일 축시 ㅡ 정연복 ㅡ

 

하늘 푸르고 햇살 밝은

5월에 태어난 그대

자연과 벗하기 좋아하는

순하고 깨끗한 영혼 한결같아

지금껏 지상에서 쉰 일곱 해

긴 여행을 하고서도

연초록 이파리

5월의 나무들처럼 싱그럽고

한 송이 꽃같이 장미같이

여전히 눈부시게 아리땁구나.

동심(童心) 살아 숨쉬는

그대 마음속엔

세 개의 불멸의 보석

믿음과 소망과 사랑도 함께 있어

그대의 발길 닿는 곳마다

기쁨과 평화의 꽃이 피는구나.

아름다운 5월을 지으신

은총 많으신 그분의 귀한 딸

!

5월의 그대여.

 

5월의 기도 ㅡ 정연복 ㅡ

 

짙어지는 신록(新綠) 따라

나의 사랑도 깊어가게 하소서

길어지는 낮 시간 따라

내 맘속 그늘 옅어지게 하소서

 

오월, 비 내리다 ㅡ 박주현 ㅡ

 

오월을 흔드는 느닷없는 뇌성

바람 한 점 허공에 안겨

숨 크게 내려놓으며

메마른 손으로

기어이 비를 불러낸다

콰르릉거리는 허공의 분노

번쩍이는 성난 눈빛

쏟아지는 빗줄기는

아직 잠들지 못하는

오월의 아픔이다

오월 광주의 아카시아꽃은

빗줄기에 휘청이며

코끝 찌르는 알싸함으로

아직도 악몽을 꾼다

초록이 빗물 속으로 스며든다

 

오월의 노래(1) / 괴테

 

오오 눈부시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뭇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진는

이 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

아침 구름과 같은 금빛 아름다움.

그 크나큰 은혜는

신선한 들에

꽃 위에 그리고

한가로운 땅에 넘친다

소녀여 소녀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오 반짝이는 네 눈동자

나는 너를 사랑한다.

종달새가 노래와

산들바람을 사랑하고

아침에 핀 꽃이

향긋한 공기를 사랑하듯이

뜨거운 피 가슴치나니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게 청춘과

기쁨과 용기를 부어라.

새로운 노래로 그리고 춤으로 나를 몰고 가나니

그대여 영원히 행복하여라

나를 향한 사랑과 더불어..

5월의 노래(2) / 괴테

 

밀밭과 옥수수밭 사이로,

가시나무 울타리 사이로,

수풀 사이로,

나의 사랑은 어딜 가시나요?

말해줘요!

사랑하는 소녀

집에서 찾지 못해

그러면 밖에 나간 게 틀림없네

아름답고 사랑스런

꽃이 피는 5월에

사랑하는 소녀 마음 들떠있네

자유와 기쁨으로

시냇가 바위 옆에서

그 소녀는 첫키스를 하였네

풀밭 위에서 내게

뭔가 보인다!

그 소녀일까?

 

5월 아침의 노래 / 밀턴

 

마침 낮의 사자, 눈부신 햇볕이

동쪽에서 춤을 추며 나타나

꽃같은 5월을 이끌면

그녀는 푸른 무릎에서 노란 구륜초와

여린 빛 앵초를 집어 던진다.

환희와 젊음과 따스한 모정을 북돋우는

풍요한 5월이여, 환호하라

숲과 잔풀은 그대의 옷으로 단장했고

언덕과 골짜기는 그대의 은덕을 자랑했나니

그래서 우리는 아침 노래로 그대를 맞아

환대하며 오래 머물러 주길 기원하노라.

 

산과들.

 

, 오월 / 김영무

 

파란불이 켜졌다

꽃무늬 실크 미니스커트에 선글라스 끼고

횡단보도 흑백 건반 탕탕 퉁기며

오월이 종종 걸음으로 건너오면..

, 천지사방 출렁이는

금빛 노래 초록 물결

누에들 뽕잎 먹는 소낙비 소리

또 다른 고향 강변에 잉어가 뛴다.

 

고귀한 자연 / 벤존슨(1572-1637) 영국

 

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나무가 크게만 자라는 것과 다르다

참나무가 3백 년 동안이나 오래 서있다가

결국 잎도 못 피우고 마른 통나무로 쓰러지기 보다

하루만 피었다 지는

5월의 백합이 훨씬 더 아름답다.

비록 밤새 시들어 죽는다 해도

그것은 빛의 화초요, 꽃이었으니

작으면 작은대로의 아르마움을 보고

삶을 짧게 나눠보면 완벽할 수 있는 것을..

그해 오월의 짧은 그림자 / 진수미

 

사랑을 했던가 마음의 때,

그 자국 지우지 못해 거리를 헤맸던가

구두 뒤축이 헐거워질 때까지

낡은 바람을 쏘다녔던가

그래 하기는 했던가

온 내장을 다해 엎어졌던가

날 선 계단 발 헛디뎠던가

하이힐 뒤굽이 비끗했던가

국화분 위 와르르 무너졌던가

그래, 국화 닢닢은 망그러지든가

짓이겨져 착착 무르팍에 엉겨붙던가

물씬 흙 냄새 당기든가

혹 조화는 아니었는가

비칠 몸 일으킬 만한던가

누군가 갸웃 고개 돌려주던가

달려오던가

아야야, 손 내밀던가

그래, 그 계단 밑,

아픈 복사뼈, 퉁퉁 붓고, 화끈 화끈 그게

사랑이라며

탈골하며 환하게 바람 스미던가 그래

사랑이던가 그 누군가는 혹.

 

5/ 권경업

 

물오른 보릿대궁

하늘대는 밭고랑 끝에

산자락은

버선발을 살며시 올려놓고

짙푸른 짧은 치마

수줍다고 얼굴 가리네

재넘어 영마루에

뭉게 구름 피어오르고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 속에

칡 캐는 아이들의 마음은

짖궂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물결치며

푸르른 오리나무 숲으로 가네.

 

5월 ㅡ김영랑ㅡ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

바람은 넘실 천이랑 만이랑

이랑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숫놈이라 쫓을 뿐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버리련?

 

5月 恨 / 김영랑

 

모란이 피는 오월달

월계月桂도 피는 오월 달

온갖 재앙이 다 벌어졌어도

내 품에 남는 다순 김 있어

마음 실 튀기는 오월이러라.

무슨 대견한 옛날였으랴

그래서 못 잊는 오월이랴

청산을 거닐면 하루 한 치씩

뻗어 오르는 풀숲 사이를

보람만 달리던 오월이어라.

아무리 두견이 애닯아해도

황금 꾀꼬리 아양을 펴도

싫고 좋고 그렇기보다는

풍기는 내음에 지늘꼈건만

어느새 다 해-진 오월이러라.

 

푸른 5/ 노천명

 

靑磁빛 하늘이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당 창포잎에 ㅡ

여인네 행주치마에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같이 앉은 정오

계절의 여왕 5월의 푸른 여신 앞에

네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 밀려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어

눈은 먼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진 길을 걸으면

생각은 무지개로 핀다.

풀냄새가 물큰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순이 뻗어나던 길섶

어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가잎나물 젓갈나물

참나물 고사리를 찾던 ㅡ

잃어버린 날이 그립구나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아니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이 모양 내 맘은

하늘 높이 솟는다

5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파꽃 / 김영준

 

빈 집임을 알면서도

전화를 넣어보았다

울림은 울림으로 되돌아 올 뿐

아무런 말도 하다

5월은 또 그렇게 시작되고

그냥 그 눈물마저 그리우므로

그립다는 말 한 마디 하고 싶었다

그립다아아아

오월 / 조연호

 

비내리던 오월이 그쳤다 숲이 가난한 자들의 빈 그릇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모서리에 몰려서서 심장이 저울질 당하는 소리를 들었다. 부드러운 비에 꽂혀 하늘이 아프게 하수구까지 걸어온다. 쥐들의 지붕타는 소리가 엄마의 재봉틀타는 소리보다 크다. (뜻도 없이 문이 밀쳐지고 한번쯤 분노해야 할 일이 없을까. 나는 그리다만 그림에 붉은 명암을 넣었다.) 어쩌면 세상은 평안하고, 이렇게 될 줄 예감하면서 주일이면 동네 확성기에서 찬송이 쏟아졌을 것이다. 죽은 꽃과 죽은 바람을 차마 볼 수 없어 을 켜지 않았다.

 

오늘은 늦은 식사로부터 와서 늦은 식사로 떠난다. 붉고 지친 꽃잎 위로 지하 방직공장 실먼지가 희미하게 올라온다. 늦은 식사. 우는 엄마들, 햇복숭아를 사들고 칠팔월로 훌적 가버리는 오월. 분수대에 손을 넣고 바람의 패총을 줍는다. 덜 마른 기억의 껍질들이 손가락 사이로 뚝뚝 떨어진다. 앙천의 눈매 되뜨는, 이 짙은 오월, 한번쯤 분노해야 할 일은 없는가. 비 갠 하늘빛을 따라 느린 삶을 옮기는 달팽이와 그의 늙은 집과 그의 집이 옮겨가며 뒤에 반짝이는 것들이 함께 모두 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오월 / 이은채

 

언덕은 멀리 귀를 모으고 숲은 고요했네

핀들핀들 몸을 흔들던 풀꽃방망이들 내 물컹한 종아릴 툭툭 치는 짓궂게 웃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몸을 옮기며 저 새들 힘차게 깃을 터는 숨 고르는

구름을 뚫고 내려온 햇살 어린 잎새에 내려앉는 조심스레 스며드는

꽃다지 냉이꽃 가늘가늘 목을 젖히며 웃는 몹시도 까불대는

 

내가 이 언덕, 귀가 확 트이면 알 수 있을까

앞섶 들추어 몰래 젖을 물렸을 저 샛강 낭창한 허리가 내 팔에 안겼다 스르르 풀려나가는 소리와

그 젖을 먹고 자란 아이가 저물녘 강둑에 나앉아 듣고 있을 물이끼 자라는 소리 같은 거

지금 막 그대 이마를 스을쩍 문지르고 가는 햇살의 소리

그 햇살 꼴깍꼴깍 받아 마시고 있는 잎새의 푸른 목젖 소리 같은 거

언덕은 멀리 귀를 모으고 숲은 고요했네

 

오월 / 고창환

 

바람이 지날 때마다 눈이 부시다 잎이 넓은 나무들 세상의 그늘을 가려주지 못하고 나지막이 엎드린 가난 위에서도 반짝거리는 나뭇잎 착한 이웃들의 웃음처럼 환한 잇몸을 드러내며 햇살이 쏟아진다 사람의 흔적이 자목련 향기처럼 아름답다 숲을 떠난 꽃씨들이 큰 길까지 날리고 나른한 향수에 풀린 마을을 내다본다 골목길을 따라 풍선마냥 가벼운 마음들이 들락거린다 자꾸 꺾이는 바람도 세상살이가 조금씩 눈에 보일 쯤이면 바로 펼 수 있을까 마주치는 세상의 모퉁이마다 큰 바퀴가 지나고 마른 돌가루가 날릴지라도 손바닥을 펴서 햇살을 받는다. 사는 날까진 기다릴 것이 남아 있는가 오랜 희망을 다시 짚어보듯 푸른 소리를 실어나르는 송전탑을 향해 귀를 세운다.

 

오월의 잠 / 김은실

 

황사를 빠져나오자 나의 행방은 나무들의 습성을 닮아간다

뒤를 돌아보면 오롯이 되살아나는 잎새들의 발자국

기린처럼 도시를 넘겨보거나 하루의 마지막 햇살들을

꿈인듯 곱씹어간다

사막이 될 사랑과 목마름 하나로 건너야 할 기억의 행방을

찾아내는 것

나무들의 소문이 심상치 않다

뿌리째 뒤적여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해묵은 반란들,

나이테들의 구석에 처박혀 잠이 들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불면의 등성이들을 오르내린다

숨이 가빠지고 발목이 푸르러진다

누군가 적어놓은 유서들의 단서를 찾는 동안

문맹의 슬픔이 불어온다

심장의 한 켠에 푸른 병조각이 들어차고

이 도시에선 어떤 나무이든 술의 날들을 깨뜨리지 않으면

조금씩의 간격도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

황사를 빠져나오자 나의 의문들은 나무들의 틈바구니에 묶인다

어제의 위치와 잎들의 수런거림이 나를 가둔 채

숲 저쪽으로 사라진다

오후의 통화와 몇개의 망각이 푸른 위궤양을 앓는다

기린처럼 목을 늘려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오월의 잠들,

계단을 타고 오르는 몇개의 잎새들을 상상하면서

나는 누군가 녹이다 만 박하사탕같은 사랑을 되짚어간다

 

오월의 폐염전 / 김해빈

 

청갈대가 묵은대 밀어 올리는 한낮

불덩이로 이글거리는 함초 소금밭을 차지했다

한때는 볕에 끓던 하루하루가 얼마나 들썩거렸을까

소금창고 네 귀퉁이에 잠든 소리 깨우고 낡은 수차에 절룩이던

바람 숨가쁘게 뛰어내려 오월을 마중하면

등졌던 바다 까치발로 걸어 들어와 메마른 고랑마다 핏줄로 잇는다

힘차게 흐른다 소금꽃도 피운다

바람아 수차를 돌려라 하얀 바다가 저기 돌아온다

 

봄날, 나에게 / 윤준경

 

, 이 때 쯤 죽으려므나

꽃피고 새 울 때

5월 어느날

한 닷새 비 안올 때 죽으려므나

허리 굽지않고

속옷 정갈히 빨아입다가

외로움 힘겹기 전, 어느 봄 날

한 사날 앓다가 죽어져

샛녹 풀 꽃잎 위에 뿌려지려므나

살가죽 뼈마디 다 흙에 놓고

혼이나 살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가보지 못한

먼 곳까지

훠어이 훠어이 날으려므나

 

모란꽃과 고추장 항아리 / 김금용

 

오월 햇살에 고추장 항아리 배부르다

열 남매 키운 기사식당 아줌마

저처럼 배부른 항아리 씻다가

붉은 입술 삐죽이며 함박웃음 짓는

장독대 옆 모란 꽃더미에 놀라

엉덩방아 찧으며 주저앉는다

눈치 빠른 봄바람

쓸쓸한 그녀 젖무덤 파고들며

주름 깊은 눈자위 군살 붙은

목덜미로 햇살을 부른다

장마와 가뭄을 이기고 오십 년

묵은 장맛으로 단맛 키운 항아리

오월 아침 모란꽃이 눈부셔도

굽은 허리 일으키는 산등성 너머로

우르르 몰려드는 꿀벌떼는

항아리 언저리에만 붙어 날개 비빈다

암술 올라타며 입술 부비다 말고

문 좀 열어라

배불뚝이 항아리를 두들긴다

 

라일락 /강은령

이 두터운 외투 속에 움츠리고만 있던 그 오월

줄 수 있었던 아름다움은 오직 그것 뿐이었을 때의,

눈감고 업은 내 아이와 오래도록 서있던

친정으로 가는 샛길 어귀 라일락 나무

구겨진 마음 풀어내 햇살 풀먹여 푸우우 품어내던 향분

옥양목 같은 생()의 강 가 사금처럼 반짝이는

 

밥 정/ 정휘립

-만횡청류蔓橫淸流를 위한 따라지 산조散調· 4

 

딸넴아, 지발 아무나 허고 밥 같이 먹지 말거라, ?

이 에미도 읍내 장날 품 팔러 나갔다가 그냥 그리 된겨, 거시기 학상學生들 데모대에 매급시 떠밀려 쫓기는디, 어치케 늬 아빠 용케 만나 아는 체 하고 밥 한 끼 얻어먹다 그냥 저냥 함께 살게 된 겨,

중에 젤 무서운 게 바로 밥 정인 것여.

 

늬 아빠, 자전거 타고 동사무소 심부름 다닐 때,

허줄근한 방위병 복장으로 그냥 쓰러지게 생긴 데다, 내 하필 최루탄에 눈물콧물 질질 흘리며 오도가도 못 허는디, 불쌍하게 주춤주춤 다가와 밥이나 그냥 한 번 먹자 혀서, 매급시 밥 한 끼 얻어 처먹다 그냥 저냥 늬가 톡, 생긴겨, (그리서 늬 이름이 오월인겨)

늬아빠 시원한 입 속에 그냥 홀딱 반한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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