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시모음

 

1. 6월의 숲에는 / 이해인

 

초록의 희망을 이고

숲으로 들어가면

뻐꾹새

새 모습은 아니 보이고

노래 먼저 들려오네

아카시아꽃

꽃 모습은 아니 보이고

향기 먼저 날아오네

나의 사랑도 그렇게

모습은 아니 보이고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네

눈부신 초록의

노래처럼

향기처럼

나도

새로이 태어나네

6월의 숲에 서면

더 멀리 나를 보내기 위해

더 가까이 나를 부르는 당신

 

2. 6/ 이창호

 

​​지난 달력 한 장을 찢어 손바닥에 접어 올리니

손바닥 위에서 지난 5월이 너무나 작고 가벼워집니다

유리창에 물방울처럼 톡톡 웃음을 퉁기는 아침

알맞게 물이 오른 6월의 현관문이 열리자

펼쳐둔 종이의 여백을 열고 여름 나무들이 들어가 앉습니다.

한 잎 두 잎 그리움의 잎사귀가 늘어갈수록

종이 위에서 사연들이 더욱 푸르르 갑니다

당신, 지난 5월에는 달력 한 장의 무게만큼

편히 지내셨는지요? 여기 6월의 첫날 아침을

그려보냅니다

색다른 배경으로 깊어지는 창 밖 세상이

숲 속처럼 맑아지는 거리에서는 온갖 사물들이

밝은 조명을 단 아침 하늘 아래 주렁주렁

저마다의 녹음을 매달고 걸어다닙니다.

 

3. 6월의 달력 / 목필균

 

한 해 허리가 접힌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중년의 반도 접힌다.

마음도 굵게 접힌다.

동행 길에도 접히는 마음이 있는 걸,

헤어짐의 길목마다 피어나던 하얀 꽃.

따가운 햇살이 등에 꽂힌다.

 

4. 6/ 김용택

 

하루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 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5. 6/ 이외수

 

​​바람부는 날 은백양나무 숲으로 가면

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 주름살이 깊어가는 지천명(知天命)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중입니다

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 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그러나 주소를 몰라

보낼 수 없습니다

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6. 6월의 시 / 김남조

 

어쩌면 미소짓는 물여울처럼

부는 바람일까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언저리에

고마운 햇빛은 기름인양 하고

깊은 화평의 숨 쉬면서

저만치 트인 청청한 하늘이

성그런 물줄기 되어

마음에 빗발쳐 온다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또 보리밭은

미움이 서로 없는 사랑의 고을이라

바람도 미소하며 부는 것일까

잔 물결 큰 물결의

출렁이는 바단가도 싶고

은 물결 금 물결의

강물인가도 싶어

보리가 익어가는 푸른 밭 밭머리에서

유월과 바람과 풋보리의 시를 쓰자

맑고 푸르른 노래를 적자

 

7. 6월의 녹음 / 진의하

 

6월의 녹음은

고공을 꿈꾸는

새였다.

한사코 파닥이는 날개 짓

제 어둠의 그림자를

새까맣게 털어놓고 있었다.

우우

하늘을 우러러

어제보다 한 치씩

웃자란 목을 빼고

싱그러운 물빛 번쩍이며

새롭게 거듭나고 있었다.

 

8. 6/ 황금찬

 

6월은

녹색 분말을 뿌리며

하늘 날개를 타고 왔느니.

맑은 아침

뜰 앞에 날아와 앉은

산새 한 마리

낭랑한 목청이

신록에 젖었다.

허공으로

날개 치듯 뿜어 올리는 분수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서도

6월의 하늘을 본다.

신록은

꽃보다 아름다워라.

마음에 하늘을 담고

푸름의 파도를 걷는다.

창을 열면

6월은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벽 저만한 위치에

바람 없이 걸려 있다.

지금 이 하늘에

6월에 가져온

한 폭의 풍경화를

나는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9. 6월의 꿈 / 임영준

 

깨물어볼까

퐁당

빠져버릴까

초록 주단

넘실대고

싱그러운 추억

깔깔거리는데

훨훨

날아보아도 될까

 

10. 6월의 장미 / 이해인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 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6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11. 유월이 오면 / 도종환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꽃만 피어납니다.

이곳에 오면 수만 마디의 말들은 모두 사라지고

사랑한다는 오직 그 한 마디만

깃발처럼 나를 흔듭니다.

세상에 서로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정녕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입니다.

남북산천을 따라 밀이삭 마늘잎새를 말리며

흔들릴 때마다 하나씩 되살아나는

바람의 그리움입니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모두 쓸데없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저녁 노을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사는 동안 온갖 것 다 이룩된다 해도

그것은 반쪼가리일 뿐입니다.

살아가며 내가 받는 웃음과 느꺼움도

가슴 반쪽은 늘 비워둔 반평생의 것일 뿐입니다

그 반쪽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빗줄기를 보내 감자순을 아름다운 꽃으로 닦아내는

그리운 당신 눈물의 몫입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지 않고는

내 삶은 완성되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꼭 당신을 만나야만 합니다.

 

12. 유월의 언덕 / 노천명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하늘은

사뭇 곱기만 한데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고 안으로 안으로만 들다

이 인파 속에서 고독이

곧 얼음모양 꼿꼿이 얼어들어옴은

어쩐 까닭이뇨

보리밭엔 양귀비꽃이 으스러지게 고운데

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해볼 사람은 없어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어가지고 안으로만 들다

장미가 말을 배우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사슴이 말을 하지 않는 연유도 알아듣겠다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언덕은

곱기만 한데

 

13. 유월 / 이바라기 노리코

어딘가에 아름다운 마을은 없는가

하루의 일과 끝에는 한 잔의 흑맥주

괭이를 세우고 바구니를 내려놓고

남자나 여자나 커다란 조끼를 기울이는

어딘가에 아름다운 거리는 없는가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단 가로수가

어디까지나 잇달았고 제비꽃 빛깔의 석양녘은

젊은이들의 다정한 속삼임이 충만한

어딘가에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들의

힘은 없는가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친숙함과 우스꽝스러움과 노여움이

날카로운 힘이 되어 솟아오르는.

 

14. 6/ 오세영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

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체취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꽃잎의 길이고

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저렇게

푸른 울음 우는 밤,

나는 들녘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말씀에

그만 정신이 황홀해졌기 때문입니다.

숲은 숲더러 길이라 하고

들은 들더러 길이라는데

눈먼 나는 아아,

어디로 가야 하나요.

녹음도 지치면 타오르는 불길인 것을,

숨막힐 듯, 숨막힐 듯 푸른 연기 헤치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강물은 강물로 흐르는데

바람은 바람으로 흐르는데.

 

15. 금낭화 / 안도현

 

6,

어머니는 장독대 옆에 틀니 빼놓고

시집을 가고 싶은가 보다

장독 항아리 표면에 돋은 주근깨처럼

자잘한 미련도 없이

어머니는 차랑차랑 흔들리는 고름으로

신방에 들고 싶은가 보다

 

16. 6월의 童謠 /고재종

 

6월은 모내는 달, 모를 다 내면

개구리 떼가 대지를 장악해버려

함부로는 들 건너지 못한다네

 

정글도록 땀방울 떨구어서는

청천하늘에 별톨밭 일군 사람만

그 빛살로 길 밝혀 건넌다네

 

심어논 어린 모들의 박수 받으며

치자꽃의 향그런 갈채 받으며

사람 귀한 마을로 돌아간다네

 

17. 6/ 이정화

 

사방이 풋비린내로 젖어 있다

가까운 어느 산자락에선가 꿩이 울어

반짝 깨어지는

거울, 한낮

초록 덩굴 뒤덮인 돌각담 모퉁이로

스르르 미끄러져 가는

독배암

등줄기의 무지개

너의 빳빳한 고독과

독조차

마냥 고웁다

이 대명천지 햇볕 아래서는

 

18. 6월에 쓰는 편지 / 허후남

 

내 아이의 손바닥만큼 자란

6월의 진초록 감나무 잎사귀에

잎맥처럼 세세한 사연들 낱낱이 적어

그대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도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지독하고도 쓸쓸한 이 그리움은

일찍이

저녁 무렵이면

어김없이 잘도 피어나던 분꽃

그 까만 씨앗처럼 박힌

그대의 주소 때문입니다

 

짧은 여름밤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초저녁별의

이야기와

갈참나무 숲에서 떠도는 바람의 잔기침과

지루한 한낮의 들꽃 이야기들일랑

부디 새벽의 이슬처럼 읽어 주십시오

 

절반의 계절을 담아

밑도 끝도 없는 사연 보내느니

아직도 그대

변함없이 그곳에 계시는지요

 

19. 유월의 햇살 / 신석종·

 

지금, 밖을 보고 있나요?

햇살이 투명하고 눈부십니다

누군가 내게 준 행복입니다

 

지옥의 문을 들어서는 공간에

당신과, 하늘에는 햇살이 닿아 있고

땅으로는 지열이 닿아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천만다행입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손 잡고, 길을 걷지는 못하겠지만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당신은 내게 그런 존재랍니다

 

삼월에 새싹 돋고

유월에 곧은 햇살 쪽쪽 내리꽂히는

이 세상은, 그래서 나에게는

화사하고 눈부신 낙원입니다

 

당신이 오로지 내게만, 문 열어 준

그 낙원에서, 나 살고 있습니다

 

20. 6월 기집애 / 나태주

 

너는 지금쯤 어느 골목

어느 낯선 지붕 밑에 서서 울고 있느냐

세상은 또다시 6월이 와서

감꽃이 피고 쥐똥나무 흰꽃이 일어

벌을 꼬이는데

      

감나무 새 잎새에 6월 비단햇빛이 흐르고

길섶의 양달개비

파란 혼불꽃은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나는데

      

너는 지금쯤 어느 하늘

어느 강물을 혼자 건너가며 울고 있느냐

내가 조금만 더 잘해주었던들

너는 그리 쉬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가진 것을 조금만 더 나누어주었던들

너는 내 곁에서 더 오래 숨쉬고 있었을 텐데

      

온다간다 말도 없이 떠나간 아이야

울면서 울면서 쑥굴헝의 고개 고개를

넘어만 가고 있는 쬐꼬만 이 6월 기집애야

돌아오려무나 돌아오려무나

       

감꽃이 다 떨어지기 전에

쥐똥나무 흰꽃이 다 지기 전에

돌아오려무나

 

돌아와 양달개비 파란 혼불꽃 옆에서

우리도 양달개비 파란 꽃 되어

두 손을 마주 잡자꾸나

다시는 나뉘어지지 말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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