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시모음


1. 8월의 종소리 천상병 




저 소리는 무슨 소리일까?

땅의 소리인가?

하늘 소리인가?

 

한참 생각하니, 종소리

멀리 멀리서 들리는 소리

 

저 소리는 어디까지 갈까?

우주 끝까지 갈지도 모른다

땅 속까지 스밀 것이고

천국에도 들릴 것인가

 


2. 8월의 바다  / 이채


8월의 바다
그 바다에서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만나고
그리고 헤어졌을까


넘실대는 파도에 하얗게 이는 물보라
그 물보라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밀려오고
그리고 쓸려 갔을까


그래서
겨울바다는
늘 쓸쓸한가 보다


8월의 바다
그 바다 저편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숲으로 떠 있는 외로운 섬 하나


하얀 갈매기 날으고
구름도 쉬어가는 그곳
그곳에 혹시
보고픈 연인이라도 머물고 있지나 않을까


그래서
그 섬은
늘 그리운가보다


3. 8월의 시  / 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4.  8월의 소망   /  오광수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반가운 8월엔
소나기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얼굴이 되고
만나면 시원한 대화에 흠뻑 젖어버리는
우리의 모습이면 얼마나 좋으랴?

푸름이 하늘까지 차고 넘치는 8월에
호젓이 붉은 나무 백일홍 밑에 누우면


바람이 와서 나를 간지럽게 하는가
아님 꽃잎으로 다가온 여인의 향기인가
붉은 입술의 키스는 얼마나 달콤하랴?

8월엔 꿈이어도 좋다.
아리온의 하프소리를 듣고 찾아온 돌고래같이


그리워 부르는 노래를 듣고
보고픈 그 님이 백조를 타고
먼먼 밤하늘을 가로질러 찾아왔으면,



5. 8월에 꿈꾸는 사랑  /  이채

여름 하늘은 알 수 없어라

지나는 소나기를 피할 길 없어

거리의 비가 되었을 때

그 하나의 우산이 간절할 때가 있지

여름 해는 길이도 길어라

종일 걸어도

저녁이 멀기만 할 때

그 하나의 그늘이 그리울 때가 있지

날은 덥고

이 하루가 버거울 때

이미 강을 건너

산처럼 사는 사람이 부러울 때도 있지

그렇다 해도

울지 않는다

결코 눈물 흘리지 않는다

오늘은 고달파도

웃을 수 있는 건

내일의 열매를 기억하기 때문이지

6. ​8월   /  이외수

여름이 문을 닫을 때까지

나는 바다에 가지 못했다

흐린 날에는 홀로 목로주점에 앉아

비를 기다리며 술을 마셨다

막상 바다로 간다 해도

나는 아직 바다의 잠언을 알아듣지 못한다

바다는 허무의 무덤이다

진실은 아름답지만

왜 언제나 해명되지 않은 채로

상처를 남기는지

바다는 말해주지 않는다

빌어먹을 낭만이여

한 잔의 술이 한 잔의 하늘이 되는 줄을

나는 몰랐다

젊은 날에는

가끔씩 술잔 속에 파도가 일어서고

나는 어두운 골목

똥물까지 토한 채 잠이 들었다

소문으로만 출렁거리는 바다 곁에서

이따금 술에 취하면

담벼락에 어른거린 던 나무들의 그림자

나무들의 그림자를 부여잡고

나는 울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리석다

사랑은 바다에 가도 만날 수 없고

거리를 방황해도 만날 수 없다

단지 고개를 돌리면

아우성치며 달려드는 시간의 발굽 소리

나는 왜 아직도

세속을 떠나지 못했을까

흐린 날에는 목로주점에 앉아

비를 기다리며 술을 마셨다

인생은 비어 있으므로

더욱 아름다워지는 줄도 모르면서

​7. 8월의 시   /  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 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 오는 것

풀 섭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 번쯤은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8. 중년의 가슴에 8월이 오면   /  이채

한 줄기 바람도 없이

걸어가는 나그네가 어디 있으랴

한 방울 눈물도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여름 소나기처럼

인생에도 소나기가 있고

태풍이 불고 해일이 일 듯

삶에도 그런 날이 있겠지만

인생이 짧든 길든

하늘은 다시 푸르고

구름은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여,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물소리에서

흘러간 세월이 느껴지고

바람소리에서

삶의 고뇌가 묻어나는

중년의 가슴에 8월이 오면

녹음처럼 그 깊어감이 아름답노라

​9. 바다  /  윤동주


실어다 뿌리는

바람조차 시원타.

솔나무 가지마다 새촘히

고개를 돌리어 뻐들어지고,

밀치고

밀치운다.

이랑을 넘는 물결은

폭포처럼 피어오른다.

해변(海邊)에 아이들이 모인다

찰찰 손을 씻고 구보로.

바다는 자꾸 설워진다.

갈매기의 노래에.....

돌아다보고 돌아다보고

돌아가는 오늘의 바다여!

​10. 소낙비   /  윤동주

번개, 뇌성, 왁자지끈 뚜드려

머언 도회지(都會地)에 낙뢰가 있어만 싶다.

벼룻짱 엎어 논 하늘로

살 같은 비가 살처럼 쏟아진다.

손바닥만한 나의 정원(庭園)이

마음같이 흐린 호수(湖水) 되기 일쑤다.

바람이 팽이처럼 돈다.

나무가 머리를 이루 잡지 못한다.

내 경건(敬虔) 한마음을 모셔 드려

노아 때 하늘을 한 모금 마시다.

11. ​해바라기   /  윤곤강

벗아! 어서 나와

해바라기 앞에 서라.

해바라기 꽃 앞에 서서

해바라기 꽃과 해를 견주어 보라.

끓는 해는 못 되어도,

가슴엔 해의 넋을 지녀

해바라기의 꿈은 붉게 탄다.

햇살이 불처럼 뜨거워,

불볕에 눈이 흐리어,

보이지 않아도, 우리 굳이

해바라기 앞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해를 보고 살지니,

벗아! 어서 나와

해바라기 꽃 앞에 서라.

​12. 목백일홍  / 김종길

나무로 치면 고목이 되어버린 나도
이 8월의 폭염 아래 그처럼
열렬히 꽃을 피우고 불붙을 수는 없을까


13.  8월 담쟁이  / 김종길

동그랗게 꿈을 말아 안으로 접을래
빠알간 흙벽 속으로 자꾸 말아 넣을래
다져서 쌓은 꿈들이 사방으로 터져도 


14. 8月 소나기  /  김명배

더럭더럭 운다,
8月 소나기.

늙은 부처가 낮잠을 깬다.

숲속 어디에
빤짝이는 것이 있다.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틀림없다. 


15. 8월의 시  / 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16. 8월  /  목필균·

누구의 입김이 저리 뜨거울까

불면의 열대야를
아파트촌 암내난 고양이가
한 자락씩 끊어내며 울고

만삭의 몸을 푸는 달빛에
베란다 겹동백 무성한 잎새가
가지마다 꽃눈을 품는다

17.  8월의 나무에게   /  최영희

한줄기
소낙비 지나고
나무가
예전에 나처럼
생각에 잠겨있다

8월의
나무야
하늘이 참 맑구나

철들지,
철들지 마라

그대로,
그대로 푸르러 있어라

내 모르겠다

매미소리는
왜, 저리도
애처롭노.

18.  8월  /  안재동

너만큼 기나긴 시간 뜨거운 존재 없느니.
뉜들 그 뜨거움 함부로 삭힐 수 있으리.
사랑은 뜨거워야 좋다는데
뜨거워서 오히려 미움받는 천더기.

너로 인해 사람들 몸부림치고 도망 다니고
하루빨리 사라지라 짜증이지.
그래도 야속타 않고 어머니처럼 묵묵히
삼라森羅 생물체들 품속에 다정히 끌어안고
익힐 건 제대로 익혀내고
삭힐 건 철저히 삭혀내는 전능의 손길.

언젠가는 홀연히 가고 없을 너를 느끼며
내 깊은 곳 깃든, 갖은 찌끼조차
네 속에서 흔적 없이 삭혀버리고 싶다.
때 되면 깊고 긴 어둠 속으로 스스로 사라질,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

19.  8월의 소망   /  오광수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반가운 8월엔
소나기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얼굴이 되고
만나면 시원한 대화에 흠뻑 젖어버리는
우리의 모습이면 얼마나 좋으랴?

푸름이 하늘까지 차고 넘치는 8월에
호젓이 붉은 나무 백일홍 밑에 누우면
바람이 와서 나를 간지럽게 하는가
아님 꽃잎으로 다가온 여인의 향기인가
붉은 입술의 키스는 얼마나 달콤하랴?

8월엔 꿈이어도 좋다.
아리온의 하프소리를 듣고 찾아온 돌고래같이
그리워 부르는 노래를 듣고
보고픈 그 님이 백조를 타고
먼먼 밤하늘을 가로질러 찾아왔으면,

20.  8월   /  반기룡

오동나무에 매달린
말매미 고성방가하며
대낮을 뜨겁게 달구고

방아깨비 풀숲에서
온종일 방아 찧으며
곤충채집 나온 눈길 피하느라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푸르렀던 오동잎
엽록체의 반란으로
자분자분 색깔을 달리하고

무더위는 가을로 배턴 넘겨줄
예행연습에 한시름 놓지 못하고

태극기는 광복의 기쁨 영접하느라
더욱 펄럭이고 있는데

21.  8월 한낮   /  홍석하

밭두렁에 호박잎
축 늘어져 있는데

사철 맨발인 아내가
발바닥 움츠려 가며
김장밭을 맨다

느티나무 가지에 앉아
애가 타서 울어대는
청개구리

강물에 담긴 산에서
시원스럽게 우는
참매미

구경하던
파아란 하늘도
하얀 구름도
강물 속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22. 8월의 기도  /  임영준

이글거리는 태양이
꼭 필요한 곳에만 닿게 하소서

가끔씩 소나기로 찾아와
목마른 이들에게 감로수가 되게 하소서

옹골차게 여물어
온 세상을 풍요롭게 하소서

보다 더 후끈하고 푸르러
추위와 어둠을 조금이라도 덜게 하소서

갈등과 영욕에 일그러진 초상들을
싱그러운 산과 바다로 다잡아
다시 시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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