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시 모음 70편

《1》찔레꽃

강금중

한라산 바람
망월동 푸른 벌판에
찔레꽃 두고 왔다

수의를 찢긴 가슴
섧은 꽃
무덤을 감싼 찔레꽃


사안
사람이
우리의 말 전할 수 없음
안다

아직
한라 혼백은
시들은 찔레꽃

바당 속 누이들
앙가슴
섧다

《2》찔레꽃

고은영


보아주는 이 없는
깊은 산,
그래서
물빛 서러움일레라

하이얀 미소
순결의 서약으로 떠도는
슬픈 입맞춤
외로운 몸짓일레라

우수수
소리도 없이 떨어지는
깊은 언어의 침묵
아, 고독한 사랑일레라

천년을 기다려도
만날 수 없는 임을 그리다
이는 바람에 포물선 그리는
너의 하얀 비망록

《3》찔레꽃

공재동

찔레꽃은
서러운 꽃
눈물나는 꽃

배고픈 설움을
뻐꾸기는 알아

학교 갔다
돌아오는
십리 산길에

누나가 따서 먹던
하얀 찔레꽃.

배고파
따서 먹던
눈물의 꽃
찔레꽃.

《4》하얀 찔레꽃 향기 따라서

공재룡

무너진 산비탈 황톳길 돌아서
해맑은 방울방울 하얀 찔레꽃
향기 가득히 고운 미소짓는다.

어릴 적 오빠 등에 잠들었던
철부지 누이가 고운 여인 되어
소꿉친구 돌이네! 시집을 갔다.

구름 머무는 찔레꽃 숲길 돌아
떠날 때 울던 누이가 오려는가.
종일 앞산에 까치만 울어댄다.

《5》찔레꽃

권도중

못 보고 살아도
가시처럼 닿았다

내 구원이
절절했던
귀한 사람아

찔레꽃
절면서 마을 밖
저 끝을 가고 있다

새순 쭉쭉 꿈을 누르고
간절함이 울며 온다

받아줄 데 없는 마음
쪽지 쪽지로 하얗다

순정은 갈 곳 없어서
진 꽃잎 모아
가슴 덮는다

《6》찔레꽃

권경업

그 날, 처음으로
처음으로 내가 본 것은
한없이 투명한 가을하늘
가을하늘에 핀 찔레꽃이었습니다

아니 아니, 지금 피어서 어떻게
어떻게 겨울을 나려고
깔딱고개로 깔딱고개로
무서리는 넘어 와

아픔 몇 없다면 어찌 세상일일까

보시오, 땅 위는 다 아픔이라오
도선사 대웅전 부연 끝
뎅그렁, 풍경(風磬)을 울리며
가을하늘 날아오는 물고기 한 마리

아! 윤회(輪廻)의 이 봄날
내 안에, 내 안에 가득한 만다라
하얀 찔레꽃 덤불

《7》그대 내 마음에 찔레꽃 향기 같이

한휘준

그대 사랑은
먼 산 속에 있을지라도
내 마음에 찔레꽃향기같이
살풋 살풋 나래 쳐 온다.

그대 사랑의 체취는
파아란 하늘 그득
내 가슴에 은은히 아려온다.

그대 사랑은 깊은 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처럼
잠들지 못하는 향 짙은 그리움이다.

찔레꽃 깊은 밤 소리 없이
진한향수 흩뿌리고 다가서는
하얀 달빛의 미소 띤 순백의 사랑이다.

그대 사랑은
깊어 갈수록 피 흘려야 하는
가슴앓이 가시 상처가 있는
숨어 울음 우는 사랑이다.

영롱한 이슬 같은
고독이 밤을 지새우다 못해
풀잎마다 송알송알 맺히도록
잠들지 못하는 향 짙은 그리움이다.

그대 사랑은
먼 산속에 있을지라도
내 마음에 찔레꽃 진한 향기같이
하얗게 울려온다.

그대 사랑은
접동 접동 접동새 울음이 되어
밤새 목이 메이도록
깊은 산속을 메아리 치는
피울음 삼키우 듯 애달픈 그리움이다.

《8》찔레꽃

김경렬

오매불망 그리움에
달빛도 녹아들고

가시가 가슴을
깊게 파고들어도

님 향한 일념에
빨간 염낭을 키운다

《9》찔레꽃

김귀녀

찔레꽃 피는 오월
낙산사 가는 길
날 건드리지 마세요. 가시 도친 말
나를 부른 건가요?

오월 고개를 넘는 찔레꽃 향기
하얗게 피우는 봄밤에
나도 당신에게 가시 도친 말

당신에게 서운하게 한 말
날 건드리지 마세요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슬픔 툭툭 흘리며
달빛 받으며

미안타
미안타

《10》찔레꽃

김근이

황토 언덕에
기다림도 바램도 없는
시간에 밀려와
여기, 가난을 자리한
소박한 화심

황혼의 애걸에
호소로 뭍일듯

어느 눈밭 길에서 줏어온
무뉘도 아닌
소복 단장한 옷 매무새에
여미는 저녁 바람이 차
움추린 송이송이

그리움에 지친 얼굴로
돌아와 마주서면
단정히 옷깃을 여미며
송이송이
눈물로 보내주는 꽃 잎파리 

《11》찔레꽃 연가

김근이

찬바람 몰아치던 들판에서
가시 넝쿨 위로
그리움으로 태운
빨간 열매 매달고
서리 맞고 눈비 맞으며
오직 이 날을 기다려
그리움으로 피운 내 꽃이여

오월을 건너온
작은 바람결에도
수줍어 움 추리며
애띈 소녀의 미소 같은 모습으로
짧은 기간 내 마음을 사로잡아준
그 정 아쉬움으로 맺어놓은
푸른 열매 매달고
유월 한 달음을 힘겹게
달려가는 내 사랑아

들판에서 산비탈에서
계곡에서 외로움 도사려 안고
푸른 태양을 이고
오직 순정으로만 자라 그라
여름가고
가을 서리에
네 사랑이 붉게 익어 가는 날
비로써 나는 네 사랑을
온 몸으로 감사 안으리

《12》하얀 찔레꽃

김길자

가난의 눈물인가
삶을 딛고 돋아난 아픔인가
허공에 하소연하는 향기에
서슬 퍼런 가시로도 지킬 수 없는
푸른달* 며칠
뻐꾸기소리 산울림 구비돌 때
아침 햇살이 달콤하여
가슴 뭉클하도록 평화롭게 피어
끈적끈적 떠나지 않는 벌 같은 사랑
꾸밈없는 그 다솜*
내 안에 가시로 박혀
나는 기억 속에 잠시 맴돌다
언젠가, 나에게도 오월이 오면
비에 흠뻑 젖은 여인을 찾아
흰모시적삼 앞섶에 피어나리라

《13》찔레꽃 사랑

김덕성

그것이 네 마음이요
네가 아닌가

수줍어
숲 속에 깊숙이 숨은
하얀 찔레꽃

비록 여리지만
햇살에 곱게 빛나는 하얀 얼굴
내 마음을 비추는구나.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네 진심을
모를 리 있겠는가

사랑을 지닌
눈부신 하얀 순결
내 마음 가득 담아 기억하고 싶어

이제는
네게 향한
내 사랑을 알아주겠지? 

《14》찔레꽃

김선옥

오솔길 옆에 하얗게 핀 찔레꽃
진한 향기는 없어도
그윽한 눈길로 길손의 발길을
멈추게 하네
연한 가시로 온몸을 감싸고
님 그려 지키는 정절이
한없이 고와 보이네
꽃그늘 밑에 누워 쳐다보는
파아란 하늘은
온통 그리운 님의 얼굴로
가득히 다가오네
연한 새순을 꺾어 입에 씹으며
배가 고파 찔레순을 꺾어 먹든
옛날을 회억하네
희디흰 찔레꽃이 뭉텅이로 핀
그 오솔길
봄바람에 실려 오는 그윽한 향기가
온 가슴을 그리움으로 물들이네

《15》찔레꽃

김신오

곱디곱게
꽃으로 피어나
내 밥 먹고
열심히 살아도

따라다니며
병신이라 놀리는
저 아이들

너희들 무서워 산골로 간다
서러운 마음
나 홀로 웃으러 간다

《16》찔레꽃

김윤자

겨울 강을 건너온
어머니
파르르 시린 입술로
고뇌의 가시덤불
보듬어 안고
버선발 질긴 목심으로
피워내는
하얀 모시 꽃등
그 빛으로
강산은 밝아오고
조국은 여물어 간다.

《17》하얀 찔레꽃의 미소

도지현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햇살 조각들이 오늘 따라 찬란하다
찬란한 햇살과 대비해서
“가까이 오지 마세요”
가시로 무장하고 손사래 치는
아리따운 아가씨의
파리한 얼굴이
마음 한 귀퉁이를 싸하게 만드는데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가시로 무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시 속에 갇혀
모든 가시를 가슴에 꽂고 있다
진한 고통을 승화시킨
하얗게 미소 진 그녀의 모습에서
고독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데
그 미소 뒤에 숨은 진실은 무엇일까

《18》찔레꽃

류종호

이 땅의 외지고 외진
산비탈 돌틈을 비집고
하얀 소복차림으로
눈익어 오는 것들

벌 나비 짝해 데불고
달디단 입맞춤으로 젖으며
보잘것없는 사랑의 시대
맑게 깨우치는 것들

세상엔 아직도
한 무리의 사랑이 저렇게 펄펄 살아서
짬도 없이 허리 굽힌 하루를
선들바람으로 토닥이는구나

사람아
사랑은 이렇게 가난한 자의 땅에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오나니
내 사랑을 익히지 않고는
저렇게 펄펄 살아보지 않고는
떠나지 못하겠구나, 죽지 못하겠구나.

《19》찔레꽃

박계희

여기
풀섶을 돌고 돌아
그리로만 피어나던 슬픔이
점점이 선을 그으며
개구리 울음보다
더욱 붉게 벗기어 놓은
달빛을
절름거리며 절름거리며
베어먹는 예감으로
있네
서 있네

《20》찔레꽃 바라보며

박광호

어느 누구 보살핌 없이
초록 숲에 자리하고
순결로 피어나
초여름 햇살에 평화를 만끽하는
순백의 사랑,

너의 순정을 실려 보낸 실바람에선
유년의 고향을 불러오는 향내가 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우리 곁에 늘 같이한
정절의 꽃이여!

너를 주제로한 노래도 많아
정겹게만 느껴지는 그 이름 찔레꽃,
바라보는 내 마음도
왜 이리 편안한가.

《21》찔레꽃 연가

박광호

이른 봄 너의 사랑 맛보여주던
찔레 순,
그리고는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주는
5월의 찔레꽃,
너를 바라보니 왜 그리
유년이 그리워지는가?

찔레 순 입에 물고
눈웃음치던 영희 그리고 철민이……

아득한 그 세월에
소식 없이 늙어진 그 모습들 떠올리니
그리워 눈물 고여지고
한 숨 절로 난다

찔레꽃,
순수하고 정갈한 네 모습
바라 볼 때면
언제나 그리워지는 유년의 세월.

《22》찔레꽃

박상희

초여름 아침 햇살이 하얗게 웃는다.
유년 시절
싸 근한 꽃잎 따 먹으며 등교하던 그 길에
찔레꽃 하얗게 웃는다
보자기 둘둘 말아 동여맨 책 보따리
순박했던 마음
그때도 찔레꽃 하얗게 웃었다
크고 작은 돌멩이 걷어차며
긴 개울 따라 올라
돌 뒤지면
물방개, 가재 놀라 웅크리던 하교 길
그때도 찔레꽃 하얗게 웃었다

마음은 그때 그대로인데
세월은 나를 이만큼 데려다 놓고
노란색 어린이 등교 버스가 지나가고
이름 모를 바쁜 차들이 지나가고
초여름 아침 저 외진 언덕에
찔레꽃 하얗게 웃는다.

《23》찔레꽃 이야기

박이도

찔레꽃을 아느냐
찔레꽃은 몰라도
찔레꽃 냄새는 알지요

시집간 아낙네들의
얼굴은 잊었지만
그들이 풍겨주던 찔레꽃 냄새
살 냄새는 알지요

유월, 감자바위 골짜기의
찔레꽃을 보러 가요
저마다의 옛이야기
찔레꽃 童話를 들려줘요

《24》비얀리 찔레꽃

박이현

어찌 하시다가
하늘로 오르지 못한 선녀님
장광을 걷다가
검불에 보드라운 발을 찔리셨다.

기우뚱 넘어지실라
달님이 아슬아슬
지켜보신다.

몸의 문고리 꼭 잡으신 선녀님
눕지 않으시고
바위틈에 기대이신다

지켜보는 이 있어
달밤은 고적하지 않다 

《25》고향 찔레꽃

박종영

별처럼 서러운 꽃
언제나 고향 언덕배기에서 핀다

청보리 배를 불리는 오월
알싸한 향기는 절망의 벽을 넘어
골고루 후미진 들녘에 퍼진다

달빛 부서지는 외로운 밤
떠나간 이별 하얀 웃음으로 달래는 향기,
그 향기 가슴에 담아보면
순이도 보이고,
철수도 보이고,

어느새,
은빛 왕관으로 치장하는 흘러간 청춘이
높고 푸른 허공에 쏘아 올리는 세월,
그리움이다.

《26》찔레꽃 필 무렵

박현태

한밤
가슴이 아픈 소리를 내면서
몇 개의 뼈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제 몸 속에서 튀어나온
비명 소리를 잡기 위하여
마음이 손을 휘저었다
그리움이 벌떼처럼 사방에서 몰려
하얗게 핀 찔레꽃에 앉는다
순간 아찔한 가시에 찔리며
아야야 하고
다시 그 봄 속에 나른하게 눕는다.

《27》찔레꽃

백우선

꽃사과빛이 잠든
반도의 산하
포복의 숨가쁜
6월의 산하에서

나는 또
짐승
꽃사과를 입에 깨문
무서운 짐승이 된다.

꽃이 피면서
수많은
소복(素服)
찔레꽃이 피면서

피어나 시들지 못할
칼의

피어나 나부끼면서.

《28》찔레꽃

백원기

담장 너머로 내민 얼굴
찔레꽃 하얀 얼굴
내가 태어난 오월의 꽃
찔레꽃이 피면 엄마 생각이나요
장 보고 돌아오실 때 뛰어나가면
바람결에 풍겨오던 찔레향
산책길에 스며드는 엄마 냄새
그리운 냄새 고운 냄새
오월이면 생각나는
찔레꽃 엄마 냄새
그리워 코 벌름거리며
찔레 향을 맡아봅니다
생각이 나네요, 오월이 오면
순이와 손잡고 뛰놀다
낮에 한 약속 지키고 싶어
어스름 달밤 호랑 바위에 앉아
포르스름 어색한 얼굴 바라볼 때
괴괴한 밤 공기 타고 흘러들던
찔레꽃 감미로운 냄새가

《29》찔레꽃

변형규

앙탈도 귀엽던 단발머리 가시내
팔목이 가늘어 호미자루 무겁다더니
돈 많고 잘산다는 서울로 팔려 가서
몸도 마음도 오지리 뺏기고
앙칼지게 가시만 달고 와서는
봄날, 논두렁에 퍼질고 앉아 운다.
해도 기운데 들어가지 않고
오빠 미안해요 퍼질고 운다.
오월 한 달을 하얗게 운다.

《30》찔레꽃

변형규

앙탈도 귀엽던 단발머리 가시내
팔목이 가늘어 호미자루 무겁다더니
돈 많고 잘산다는 서울로 팔려 가서
몸도 마음도 오지리 뺏기고
앙칼지게 가시만 달고 와서는
봄날, 논두렁에 퍼질고 앉아 운다.
해도 기운데 들어가지 않고
오빠 미안해요 퍼질고 운다.
오월 한 달을 하얗게 운다. 

《31》찔레꽃 타령

서지월

임아,
백 고무신 벗어두고 간 임아
하얀 찔레꽃 수북이 피어서
오늘같이 서러운 날이면
온 몸에 찔레가시 바르고
나도야 남풍따라 가서는
돌아오지 않을까부다.

아아,
장독간에 숨겨둔 얼레빗 마저 꺼내
머리 빗고서
그 더운 머리털 날리는 구름 따라
나도야 정처 없이 떠날까부다.

《32》찔레꽃 그녀

성백군

봄볕 모여드는
돌담 밑 길가 찔레
햇살 불러와 세상 바라기에 설레는 마음을
꽃봉에 연서로 적더니
꽃잎 벌어지는 날 마침표를 찍고
바람 불 때 바람 편에 부쳤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급하게 서둘다 보니
주소도 못 적고 수취인도 잊었다고
아무 데나 마구 꽃 내를 흘립니다
나비도 오고 벌도 오지만
개미도 오고 진드기도 모이네요
누가 내 님인지 사랑 고백하기도 전에
화냥년 소리를 들어야 하느냐고 찔레꽃
갓길에 나와 팔자타령 합니다

어찌합니까
아비 모르는 새끼도
제 뱃속으로 낳았으니 자식인 것을
제 새끼 예쁘다고 들여다보면
방긋 웃으며 향내를 풍기다가도
꺾으려 들면 가시를 세우며
설레설레 고개를 흔듭니다

조심하세요. 길가 꽃이라고
함부로 대하다가는
상처 입고 몸 상하고 패가망신합니다.

《33》찔레꽃

성진명

나날이 푸르러 가는 산골짝마다
붕붕, 나폴 나폴, 쑥쑥, 꿩꿩……. 빛나는 함성은
새 생명 원소를 실어 나르는
사랑의 세레나데이던가?

구렁이 기어간 듯
구부렁구부렁 산골짝 다랑논에는
못줄도 뛴 듯 만 듯, 공일 맞은
식구들 옹기종기 모내기한다.

콩자반 가죽무침 간고등어 비린
무시지짐에
보리밥 배불리 점심을 채우고
새참엔 국시에 막걸리도 댓 사발 먹었다.

저문 해 비끄러맬 수 없어
초가둥지 찾아 돌아오던 길가에
흐드러진 찔레꽃,
하얗게 웃을 땐 제법 곱더구나.

《34》찔레꽃

송기원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어질머리 흔들리는 봄날 저녁이면
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그런 지경에서
꿈결같이 사람 냄새를 맡곤 하였습니다.
한 번 돌고, 두 번 돌고, 또다시 도는
그런 산모롱이 아래 아늑한 곳에서는
개 짖는 소리, 된장국 냄새, 밥 짓는 연기 속에서
마을의 불빛들 하나 둘 밝게 켜지고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갈 길도 돌아설 길도 모두 어둠 속에 묻혀버릴 때
그대 대신에 느닷없는 수천 수만 찔레꽃 송이들
무언(無言), 무언으로 피어올랐습니다.
그렇게 그대 대신에 피어올라서
돌아설 한 가닥 외길 비추어주었습니다.

《35》찔레꽃

송정운

눈물 많은 꽃 하얀 찔레꽃
아픈 상처로 가시는 펄펄 살아
하얀 눈물 향기 되었다네
보고픈 하늘아래 하얀 얼굴
하얀 마음 밤 벌레 소리
가도 가도 끝 없는 길 하얀 찔레꽃 향기

《36》찔레꽃

신경림

아카샤 꽃냄새가 진한 과수원 샛길을
처녀애들이 기운없이 걷고 있었다
먼지가 켜로 앉은 이파리 사이로
멀리 실공장이 보이고 행진곡이 들리고
기름과 오물로 더럽혀진 냇물에서
아이들이 병든 고기를 잡고 있었다
나는 한 그루 찔레꽃을 찾고 있었다
가라앉은 어둠 번지는 종소리
보리 팬 언덕 그 소녀를 찾고 있었다
보도는 불을 뿜고 가뭄은 목을 태워
마주치면 사람들은 눈길을 피했다
겨울은 아직 멀다지만 죽음은 다가오고
플라타나스도 미루나무도 누렇게 썩었다
늙은이들은 잘린 느티나무에 붙어앉아
깊고 지친 기침들을 하는데
오직 한 그루 찔레꽃이 피어 있었다
냇가 허물어진 방죽 아래 숨어 서서
다가오는 죽음의 발자국을 울고 있었다

《37》찔레꽃

신종범

한시도 잊지 못한 극성스런 치정을
말갛게 꽃대에 올려 불 환히 밝힙니다.
그 마음
흰 나비 되어
까마득히 오릅니다.

당신은 가시 솟는 아픔을 아는가요?
어젯밤 서몽에서 무지개가 일길래
오늘은
혹시나 하고
동구 밖을 봅니다.

기다림은 칼바람에 솔래솔래 씻겨가고
마음에 눈 내려 얼어붙어 가는데
주홍빛
돋을 양지에서
붉은 망울 아립니다.

《38》찔레꽃 연가

심의표

짙푸른 송림사이 달리는 화심
게으른 뻐꾸기 울어 시샘해도
수줍은 듯 뽀얀 얼굴
내 고향 뒷동산 한 자락 깔고 누워
낮 익은 길손 마음 설레게 한다.
활짝 핀 그리움 하나
연녹색 풀섶에 살며시 묻고 서서
뿌옇게 떠오르는 달빛 맞으며
정든 임 기다리는 열아홉 순정
순애보 같은 사랑을 안고
꽃향기 풀어 순수의 눈빛 열어간다.

《39》찔레꽃 미소

안국훈

한 시절 죽도록 사랑하던 이름
안타깝게 잊혀만 가는데
꽃피는 봄날 맞아
누구라고 감히 잠들 수 있으랴

신비로운 우주는 오늘도
기다리던 저 둥근 달빛 아래
연분홍빛 구름을 산자락에 멈춰놓고
경이로운 기적을 잉태 중이다

밤새워 뒤척이던 그리움에
먹 갈며 글 쓰노라면
밤하늘 눈부시게 별빛 반짝이고
시린 눈물방울 끝에 연초록 봄빛 번진다

가시덤불 속 수줍게 핀 그녀 미소
한 줄기 바람에 하이얀 설레임 전하면
만나고 싶은 마음에 억겁의 세월을 돌아온
그리도 꿈꾸던 내 사랑 아니더냐

《40》찔레꽃

안수동

슬픔이 점령군이 되어
나를 허물기에 그냥 뒷길에 웅크렸네
굳이 말하라 하면
아픔 없는 사랑은 없다는데
나를 용서 못함도
가시를 숨기지 못함도 모두가
사소한 일에 상처 입는 사랑 때문인데
너 보내고 내가 핀들 그게 무슨 꽃이리
너를 사랑하지 않고는
나는 살 수가 없네
이유 하나 제대로 있는 눈물
꽃향기인 양 흘리고 싶어
찔레꽃은
봄 내내 하얗게 울지 않느냐.

《41》찔레꽃 향기는

안행덕

외진 산길 아무데서나
하얗게 웃는 찔레꽃
알싸한 향기는 애틋해서
소리 없는 울음이네
하얗게 피는 꽃 찔레꽃은
애달픈 전설 가슴이 찡해서
서럽도록 좋아라
그리움에 야위어 가시만 남은 꽃대에
하얀 꽃잎은 잎마다 눈물 고여서
나를 울리네
애절한 그리움으로 향기 만들어
나 여기 있다오
지나가는 바람, 옷깃에 매달려
향기만 전하고
저만치 달아나 숨어서 우네

《42》찔레꽃

안희선

하이얀 착각
미안하다
너를 꽃으로 보았구나
눈물 아롱진
독백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야기는
꽃잎 속을 닮았지
문득, 현기증 같은
그리움
엄마의 따스한 품에
아련히 잠긴

《43》찔레꽃 사랑

양전형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못한다
풀과 나무는 물론 세상 무엇이든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으면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 넘치고 넘쳐 마침내
찢어진 가슴 열며 상처투성이 꽃
왈칵왈칵 구구절절이 피워내는 것
그리고 아픔이 큰 꽃일수록
고웁고 향기 더 나는 것

사랑은 아프게 해야 한다
꽃이 아프게 피어나듯
가슴이 찢기도록 해야 한다
상처는 정녕코 아름다운 것이므로

아, 저 하늬 길목 갯도랑 찔레꽃
한겨울을 얼마나 아파했을까
온몸 가시에 뚫리는 고통 견디며
누굴 저리 활활 사랑했을까

《44》찔레꽃

양현근

이제 쉬었다 가요
나무 작대기도 거기 내려놓으시구요
당신이 좋아하시는 찔레꽃도 환하게 피어났어요
찔레꽃가뭄 들면 하늘만 바라보던
섬진강 웃대꿀 열댓마지기 논배미는
평생을 지고도 다 못진 당신의 등지게였다지요
경운기도 못 다니는 비좁은 논둑길을
등판이 휘도록 혼자 짊어지고 다녔다지요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괜찮다 괜찮다 하며 어깨의 통증
밤새도록 돌아눕곤 했다지요
당신의 헛기침이 다져놓은 신작로를
말표고무신이 까까중 머시마들을 데리고 다녀요
벌써 마을은 지워지고 모판 한 짐이 참방거려요
이제 내려놓으시라고 달빛은 졸졸 따라다녀요
무논자락에선 개구리 울음소리가
밤새도록 들판을 감았다 풀었다 하네요
허기진 하루 돌아설 때
당신이 내려놓은 무거운 등지게는
이제 내가 지고가요
흙냄새 맡아 새파래지는 아랫대꿀 지나
미루나무 한 소절 낭창낭창 휘어져가요

《45》찔레꽃에게

양해선

갈수록
꿈틀거리는
가슴
다독일수록
더더욱
버둥댄다
가만두어도
아프다
자그마치
찔러라

《46》찔레꽃

오세영

더럽히고 싶다.
한 방울의 피를
순결은 육신의 감옥,
수인(囚人)으로 남기보다는 차라리
창녀로 살고 싶다.
아름다움은 왜 항상 갇혀 있어야만
하는가,
아름다움의 밖이 기쁨이라면
그 안은 슬픔이다.
서슬 푸른 가시로도 지킬 수 없는
하늘,
사랑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는 것을
일컬음이다.

아아, 나는 이제 밝은 햇빛을 보아 버렸다.
사내와 눈 맞아 가출을 기도하는
소녀처럼
울타리를 타고 넘어 허공으로, 허공으로
내닫는
찔레꽃.

《47》찔레꽃 내 고향

유응교

멀고 먼 나라로
고향을 떠나
살아 보신 적이 있나요

가난하게 살아도 고향이 좋고
지위가 낮아도 내 부모가 좋고
남루한 옷을 입어도 내 형제가 좋아요.
고향을 떠나 살아본 사람만이
제 심정을 아실 거 에요.

그러나
그리운 고향에 찾아 왔건만
부모 형제 이미 떠나시고
형제는 찾아 볼 수도 없이
고향집이 잡초에 묻혀 있다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겠어요.

고향산천 골짜기마다 개울가마다
제가 소복을 입고 외롭게
울고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아셨죠
부모 형제 애타게 그리며
목놓아 부르는 제 외침이
애잔한 향기로
바람결에 산천을 헤매는 까닭을
이제야 아셨죠

고향은
외로운 마음의 안식처라고 하지만
흙먼지 속에 엎드려 울고 있는
저를 안아 주세요
전 지금 너무 외로워요.
부디 고향에 오시거든

《48》하얀 찔레꽃

유인숙

가만히 눈감으면
그 옛날
5월 푸른 하늘 우러러
배고프면 하나, 둘 따먹었다던
내 언니 부르던 하얀 찔레꽃

슬픈 향기 싸하게
온 가슴 후비고
애달픈 곡조에 묻어 나온 그리움
아, 그리움이
너무도 희어 섧다

그것 참, 가난도 희었더구나
창백한 얼굴에 번지던
몹쓸 버짐처럼
성난 가시 곧추세운 나무마다
처량하게 피어오른 백색의 꽃 무리

세월이 흐른다고 잊혀지더냐
눈감으면 떠오르던
지난 추억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던
내 언니 부르던 하얀 찔레꽃

《49》찔레꽃

윤갑수

길섶에 별빛모아 하얀 꽃 섬 만드니
파란하늘 꼭대기 두둥실 떠가는
조각구름처럼 널브러지게 하늘거린다.

살랑 이는 바람 결에 저물어가는 햇살
찔레꽃 향기에 취했는가?
묽게 수놓은 내 눈가에
사랑하는 아내의 고운 입술을 포갠 듯
내려앉은 빠알간 햇살
흐드러지게 핀 어두운 과거의 봄을
그리워한다.

저 하늘 끝 그리움을 매달아
뒤돌아본 추억속의 청춘의 봄처럼
넘실거리는 추억들
찔레꽃 잎들이 하나둘 꽃비가 되어
눈가에 흩날리운다.

밤새 달려온 계절의 뒤안길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새 꽃잎들이
우수수 땅에 눕는다.
하얗게 내리는 비가 봄날을 데려간다.

《50》찔레꽃 향기

이경옥

가까운듯 멀리 있어도
너의 향기는 언제나 내 마음속을 헤집어드네
문득 네 향기가 그리워 고개를 들면
진하게 밀려 오는 그리움

눈 감아 아른거리는
너의 모습에 휘청거리는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어느새 너의 곁으로 달려 가고 있네

《51》찔레꽃

이외수

마음으로만은
사랑할 수 없어
밤마다 편지를 썼었지
서랍을 열면
우울한 스무살 가슴앓이
사어들만 수북히 쌓여 있었지

입대하기 전날 아무도 몰래
편지를 모두 잘게 찢어
그대집 담벼락에 깊이 묻고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으리
나는 바삐 걸었네

《52》찔레꽃의 노을

이원문

작년 그 작년
네 하얀 찔레꽃
네 하얀 꽃에
바람 불던 날
다음을 기약 하며
오늘을 기다렸다

하얀 꽃송이
가냘픈 너의 꽃
네 하얀 꽃에
이슬 앉던 날
그 약속 기다리며
오늘 너를 찾았다

《53》산천에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이은경

선배,
오늘은 약통을 책장에 들어 옮기다가
스텝이 꼬여 넘어질뻔 했어.
간신히 살아났지만 눈물이 치솟더라
이렇게까지 살려고 애쓰야되나 싶어지더라.
서러워서 울었다.
산천에 하얀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할머니가 나타나서
나 대신 식구들에게 말을 전해 주는 거야.
대신에 흰 머리칼 하나 얻고 그래도 서럽다.
내 서러움에는 정체가 없다.
산천에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54》찔레꽃

이재봉

오월의 숲길을 거닐다
한 무더기 꽃을 보았네
멀리서 보니 아카시아 같고
가까이서 보니 들장미 같네
순백한 냄새에 취해 코를 댔더니
슬프도록 하얀 꽃송이가 툭 떨어지네
찔레꽃 그늘에 앉아 숨어 울던
옛 누이의 눈물처럼

《55》찔레꽃

이해인

아프다 아프다 하고
아무리 외쳐도

괜찮다 괜찮다 하며
마구 꺾으려는 손길 때문에

나의 상처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남모르게
내가 쏟은
하얀 피
하얀 눈물
한데 모여
향기가 되었다고

사랑은 원래
아픈 것이라고
당신이 내게 말하는 순간

나의 삶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축복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56》찔레꽃

이현우

부활하는 넋인가 보다.
흙먼지 자욱한 포연(砲煙) 속에서
운명처럼 만났던 가시와 향기
멍울져 돌아앉은 산과 들마다
유월이면 네 모습 소복이었다.
낭자한 꽃싸움 풀숲에 묻고
홀연히 떠나버린 봄의 끝 자락
축배도 영화도 아랑곳 없이
오롯이 피어 오른 무명의 향불이여.
가난한 사람들은 사람들끼리
외로운 사람들은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사는 길 너무 멀어라.
끓던 여름 타는 가을 다 보내고
재 되어 물이 되어 겨울 강에 닿으면
하얗게, 하얗게, 더욱 아프게
쌓여가는 어둠 속 눈이 오리니
계절마저 잊었나 갈은리(葛隱里) 하늘
활짝 열고 부활하는 넋인가 보다. 

《57》찔레꽃 피는 계절

이효녕

창문 두드려 돌아온 계절
너의 따뜻한 마음의 문 활짝 열어
모든 꽃잎이 흩어져 떨어진
산비탈 언덕 위에 하얀 찔레꽃 향기
너의 가슴에 듬뿍 넣어주고 싶다

풀잎 사이 튼튼하게 뿌리 뻗은
팔 없는 팔로 너를 껴안고 맴도는 나비
피어나는 꽃의 마음을 아는 사람
따가운 가시 잎사귀 사이 감추던 시간마다
한 무더기 하얀 별 쏟아 놓고
별똥별 밤새 바라보고 나서
어린 나뭇가지들에 달린 바람 털며
하얀 향기에 눈을 감고
아주 오래도록 너와 같이하고 싶다

창문 활짝 열어 별을 노래하는 동안
뾰족한 가시에 찔린 상처
밤이면 밤마다 이슬에 젖는 날이 많았다

오늘은 그 아픔의 상처마다
꽃잎 속에 활짝 펼쳐놓고
향기를 내어주는 이 시간
고요한 향기로 너의 곁을 항상 맴도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어딘가 날고 싶다

《58》찔레꽃

장사익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노래하며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59》찔레꽃

전병조

보리향기 푸르른 오 월이 오면
산으로 강으로 들길로
찔레꽃 개구쟁이들 봄나들이를 가겠지

팔 걷고 도랑 치며 가재 잡다
배 고프면 따 먹었던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한 입에 노오란 하늘이
찔레꽃 두 입에 서울 간 누이의 얼굴이
눈물겹게 그리워지던 찔레꽃 그 언덕

배 고픈 아이들은 종일토록
찔레꽃 덤불을 찾아서 헤매곤 하였지

어쩌면 남 몰래 훔쳐 본
<지아>의 속살과도 같았던 새하얀 찔레꽃
그 꽃잎 베어 물고 하늘을 바라보면

남몰래 <지아>와 입 맞추다 푸드득 산꿩에 놀라버린
지독히도 무안했던 어느 봄날, <지아>도 떠났고
산꿩의 소리는 여전히 골마다 우렁찬데

땅거미 밟으며 홀로이 길을 걷는 동구 밖
서산에 걸린 노을이 시리도록 아팠다

이제 나 떠나고 없어도
고향의 찔레꽃 여전히 화려한 자태를 뽐낼 테고
개구쟁이 악동들 여전히 떼를 지어
봄나들이 산꿩과 숨바꼭질 즐기겠지

《60》찔레꽃

정민호

청 밀밭 햇살 머금고
산새 한 마리 날아 와
하얗게 흩어진 꽃들의 미소를
하나씩, 하나씩 골라내고 있다.

오솔길 따라 나서면
구름은 새털처럼 피어오르고
멀리보이는 보리밭 언덕에도
환한 얼굴로 도론, 도론 핀다.

살짝 불어오는 푸른 바람결에
흩어지는 부끄러운 꽃내음,
곱게 뻗어 나간 덩굴 속에서
누나의 뒷모습으로 머리 숙어 앉는다.

청자 빛 하늘 자락이 내리고 있는
비탈 밭 언저리엔 지금
맑은 산울림으로 나는 산 꿩 한 마리,
새하얀 찔레꽃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61》싸리재에 찔레꽃이 필 때부터

정세일

사랑하는 나의 당신이여
당신의 그리움 속으로 다시 걸어간 날입니다
싸리재 고개위에
별들이 숨겨놓은 그리움의 보물찻기
솔가지에도
풀잎 사이에도
싸리나무들의 종아리에도
비가 소리없이 이슬비로 내린날
그래서 당신의 어린날
그 산 중턱에서
혹이라도 까치들이 울면
그리운 임이 올까봐
산까치 노래를 혼자서 중얼거려봅니다
산에서만 살고있는
말하는 까치들의
가을 말하기
가을책 읽기
수필처럼 청아하게
그리움 낭송하기
그래서 뒷문 밖에는 도토리들의
노래들이 들려올것 같습니다
네가 울면 우리 임이 오신다는데
너마져 울다 서산너머
그래서 이 애태움 하나만으로도
이슬비가 되어버린
당신의 그리움속으로 걸어간 날입니다
사랑하는 당신이여
긴 긴 여름날부터 하얀 교복을 입고
싸리재에 찔레꽃이 필때부터
그 향기로움으로 기다리고 있는
당신이 숨겨놓은 이 그리움은
별들이 숨겨놓은
보물찻기를 하려고 저 고개를 넘어서
이미 갔습니다
산까치처럼 임을 기다리는날에 말에요

《62》찔레꽃

정연화

단아하고 깔끔한 모습이
내 어릴적 낭자머리에
비녀꽂은 우리 엄마같다

하얗게 피어서
향기마저 은은한
저 찔레꽃이
옥양목 저고리를
풀먹여서 다려입은
정갈한 우리 엄마같다

부드러운 찔레순
꺾어서 먹었던 어린시절

하얀 찔레꽃 앞에서
젊었을적 우리 엄마와
고향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한다

《63》찔레꽃

차성우

동산에 오르면
찔레꽃 향기
꽃잎마다
미소짓는 그대의 얼굴
행여나 오실까
뒤돌아보면
보리밭 종달새만
노래부르고
어느 세상
아득한 동리
그대 사는가,
꽃잎만 하얗게
짙어가누나.    

《64》찔레꽃의 전설

최영희

봄이면 산과 들에
하얗게 피어나는 찔레꽃
고려시대 몽고족에
공녀로 끌려간
찔레라는 소녀가 있었다네
십 여년 만에 고향 찾은 찔레 소녀
흩어진 가족을 찾아
산이며 들이며 헤매다
죽고 말았다네
그 자리에 피어난 하얀 꽃
그리움은 가시가 되고
마음은 하얀 꽃잎, 눈물은 빨간 열매
그리고 애타던 음성은
향기가 되었네
내 고향 산천 곳곳에 피어나는
슬프도록 하얀 꽃
지금도 봄이면
가시덤불 속
우리의 언니 같은 찔레의 넋은
꽃으로 피네.

《65》찔레꽃

최제형

찔레꽃 피어
오월이 오지
떡갈나무 새닢 돋는 산비탈에서

초생달 아련히 봄바람 맞는 저녁
처량한 개구리 울음은
무리져 고향 떠난 이들
서럽게 토하던 가슴 한 조각

찔레꽃 지면
오월이 가지
함박눈같이 흰 꽃닢 날리며

꾀꼬리 종일 울던 연둣빛 산골
차마 못 잊어 소주 한 잔 기울이면
수줍게 떠오르는 예쁜 순이 얼굴

달밤에만 피어
하얗게 쏟아놓는 그리운 편린 뒤로
어느새 슬그머니 유월이 오지.

《66》찔레꽃

최창화

5월이면 찔레꽃 핀다
내 어머니 가시던 날 고이 신으셨던
버선발같이 하얀 그 꽃이
해마다 이맘때면 잊지도 아니하고
양지쪽 함초롬 또다시 핀다

내 어머니 계실 적 늘 하시던 말씀
거스르지 말거라 누누이 일러주셨건만
그 말씀 거역하고
날마다 쿵쿵 가슴에다 박았던
그 많은 못 중에
끝내 단 한 개도 뽑지 못하시고

그 말씀 잊지 말라며
해마다 이맘때면 잊지도 아니하고
가시 달린 하얀 꽃 되어
또다시 핀다.

《67》찔레꽃 향기에 쌓인 그리움

하영순

모퉁이 돌아돌아
산길 어귀
찔레꽃 향기 초여름 햇살 젖어든 오월

세상에 태어나서
탯줄 떨어진 자리
채 마르기도 전에

하얀 꽃가마 타고 가신 님
그때는
서러움도 그리움도 미처 몰랐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찔레꽃 향기 가슴을 적시면

심장에서 치미는 그리움
목젖을 막아도
그립다. 말못하고
찔레순 꺾어 씹어 삼키며 참아온 세월

서산에 산 까치 지저귀는데
찔레꽃향기 고개를 넘어
아카시아 꽃잎으로 피리를 봅니다

그리워 그리워서
피리를 붑니다

찔레꽃 하얀 계절에!

《68》그대도 찔레꽃보고 있을까

허정자

라일락 향기 실바람타고
하늘하늘 날아서
그대 있는 곳까지
가려나?
실록이 무루 익어
가지마다 푸르럼이
그대 있는 곳에도
울창하게 섰는가?
임이여
밭둑 밑에 앙증맞은
찔레꽃도
하얗게
피였습니까?
임 그리워 밤새
하얀 불 밝히는
찔레꽃 말입니다
떠날 줄 모르고
행여나 오실님 기다리는
찔레꽃
아예 오실 때 까지 기다리려고
밭둑밑에 퍼질러 앉아 있는
찔레꽃 말입니다

《69》찔레꽃

허호석

옛생각
잊을까봐 꽃 피우고
잊으라 꽃 지우는가

찔레꽃
향기로 물들었던 연정
언제까지 피고 질 이야기를
나눠가진 우리는 누구였나

생각나는 사람
하나 있으면 행복인 걸
꽃은 져도
봄은지지 않는 것을

《70》찔레꽃

홍해리

장미꽃 어질머리 사이
찔레꽃 한 그루
옥양목 속적삼으로 피어 있다.

돈도 칼도 다 소용없다고
사랑도 복수도 부질없다고
지나고 나서야 하릴없이 고개 끄덕이는
천릿길 유배와 하늘보고 서 있는 선비.

왜 슬픔은 가시처럼 자꾸 배어 나오는지
무장무장 물결표로 이어지고 끊어지는 그리움으로
세상 가득 흰 물이 드는구나.

밤이면 사기등잔 심지 돋워 밝혀 놓고
치마폭 다소곳이 여미지도 못하고 가는
달빛 잣아 젖은 사연 올올 엮는데,

바람도 눈감고 서서 잠시 쉴 때면
생기짚어 피지 않았어도
찔레꽃 마악 몸 씻은 듯 풋풋하여
선비는 귀가 푸르게 시리다.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 시 모음  (0) 2020.04.13
친구에 대한 시 모음   (0) 2020.04.01
12월의 시모음  (0) 2020.03.22
11월의 시모음  (0) 2020.03.22
10월의 시모음  (0) 2020.03.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