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정의(1)

欽定四庫全書總目 周易正義十卷

魏王弼晉韓康伯注하고 唐孔穎達疏

나라 王弼나라 韓康伯를 내고, 나라 孔穎達를 냈다.

本卜筮之書

은 본래 卜筮하던 책이다.

末派寖流於讖緯하니 王弼乘其極敝而攻之하여 遂能排擊漢儒하고 自標新學이라

그러므로 末流가 점점 讖緯說(圖讖說)로 흘렀는데, 王弼이 그 지극한 병폐를 틈타 공격하여 마침내 나라 학자들을 배격하고 스스로 새로운 학문을 표출해내었다.

이나 隋書經籍志載晉揚州刺史顧夷等有周易難王輔嗣義一卷하고

그러나 隋書》 〈經籍志나라 揚州刺史 顧夷 등이 지은 周易難王輔嗣義1권이 있다고 기재하였고,

冊府元龜又載顧悅之-案悅之卽顧夷之字-難王弼易義四十餘條한대 京口()[]康之 又申王難顧하니

冊府元龜에는 또 顧悅之-살펴보건대 悅之는 바로 顧夷이다. -王弼易義를 힐난한 40여 조항이 있는데, 京口關康之는 또 王弼을 해명하고 顧悅之를 힐난했다고 기재하였으니,

是在當日已有異同이라

이는 당시에 이미 異同이 있었던 것이다.

王儉顔延年以後此揚彼抑하여 互詰不休라가 至穎達等奉詔作疏하여 始專崇王注하여 而衆說皆廢

王儉顔延年(顔延之) 이후로 이것을 드날리고 저것을 억제해서 서로 힐난하여 그치지 않다가, 孔穎達 등이 詔勅을 받들어 를 지으면서 처음으로 오로지 王弼만을 높임으로 인해 여러 학설이 모두 폐지되었다.

故隋志易類稱鄭學寖微하여 今殆絶矣라하니 蓋長孫無忌等作志之時 在正義旣行之後也

이 때문에 隋書》 〈經籍志易類鄭玄이 점점 쇠미해져서 지금에는 거의 끊겼다.”고 말하였으니, 長孫無忌 등이 隋書》 〈經籍志를 지은 시기는 正義가 이미 통행된 뒤에 있었던 것이다.

今觀其書하면 如復彖七日來復王偶用六日七分之說하니 則推明鄭義之善하고

지금 이 책을 보면, 復卦 彖傳七日來復에 대하여 王輔嗣(王弼)가 우연히 67을 따랐는데 여기에서는 鄭玄의 뜻이 좋음을 미루어 밝혔고,

乾九二利見大人王不用利見九五之說하니 則駁詰鄭義之非

乾卦 九二 爻辭利見大人에 대하여 王輔嗣九五를 보는 것이 이롭다는 을 따르지 않았는데 여기에서는 鄭玄의 뜻이 잘못됨을 논박하여 힐난하였다.

於見龍在田時舍也則曰經但云時舍어늘 注曰 必以時之通舍者則輔嗣以通解舍하니 舍是通義也라하고

“‘나타난 이 밭에 있음은 때가 통함이다.[見龍在田 時舍也]”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에는 오직 時舍라고 말하였는데 必以時之通舍라고 말한 것은 王輔嗣으로 를 해석한 것이니, 가 바로 의 뜻이다.”

而不疏舍之何以訓通하며

하고는 가 어찌하여 의 뜻이 되는지는 를 내지 않았으며,

於天玄而地黃則曰恐莊氏之言非王本意今所不取라하고 而不言莊說之何以未允하니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莊氏의 말은 王輔嗣의 본뜻이 아닐 듯하므로 이제 취하지 않는다.” 하고는 莊氏이 어찌하여 합당하지 않은지는 말하지 않았으니,

如斯之類皆顯然偏袒이라

이와 같은 따위는 모두 드러나게 한쪽만을 주장한 것이다.

至說卦傳之分陰分陽하여는 韓注二四爲陰이요 三五爲陽이라한대

說卦傳分陰分陽에 이르러서는 韓康伯이 되고 이 된다.” 하였는데,

則曰 輔嗣以爲初上無陰陽定位라하니 此注用王之說이라하고

에 이르기를 王輔嗣陰陽定位가 없다.’고 하였으니, 王輔嗣을 따른 것이다.” 하였으며,

帝出乎震韓氏無注어늘 則曰 益卦六二王用享于帝吉이라한대

帝出乎震에 대하여 韓氏가 없는데, 에서 또이르기를 益卦六二上帝에게 제향하면 길하다.’ 하였는데,

輔嗣注云 帝者生物之主興益之宗이니 出震而齊巽者也라하니

王輔嗣는 물건을 낳는 주체이고 유익함을 일으키는 宗主이니, 에서 나와 에서 가지런히 한 자이다.’ 하였으니,

則輔嗣之意以此帝爲天帝也라하니라

王輔嗣의 뜻은 이 天帝로 여긴 것이다.” 하였다.

是雖弼所未注者亦委曲旁引以就之

이것은 비록 王弼를 달지 않은 것이나 또한 곡진히 넓게 인용하여 완성한 것이다.

然疏家之體主於詮解注文하여 不欲有所出入이라

그러나 疏家의 본체는 의 글을 해석하는 것을 위주로 하여 출입하는 바가 있고자 하지 않는다.

皇侃禮疏 或乖鄭義한대 穎達至斥爲狐不首丘하고 葉不歸根이라하니 其墨守專門固通例然也

그러므로 皇侃禮記義疏가 간혹 鄭玄의 뜻에 어긋나자, 孔穎達여우가 머리를 언덕에 두지 않고 잎이 뿌리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배척하기까지 하였으니, 하나의 專門을 굳게 지키는 것은 진실로 通例가 그러한 것이다.

至於詮釋文句하여는 多用空言하여 不能如諸經正義根據典籍하여 源委粲然하니 則由王注하여 掃棄舊文하여 無古義之可引하니 亦非考證之疏矣

文句를 해석함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공허한 말을 사용하여, 다른 여러 正義典籍에 근거하여 本末이 찬란한 것만 못하니, 이는 王輔嗣만을 따르고 옛글을 쓸어버려서 인용할 만한 옛 뜻이 없어진 것이니, 또한 고증한 가 아니다.

此書初名義贊이러니 後詔改正義

이 책이 처음에는 義贊이라고 이름하였는데 뒤에는 조칙에 따라 正義라고 고쳤다.

이나 卷端又題曰兼義라하니 未喩其故

그러나 책머리에는 또 兼義라고 썼으니, 그 연고를 알 수 없다.

序稱十四卷이로되 唐志作十八卷하고 書錄解題作十三卷이어늘 此本十卷이니 乃與王韓注本同하니 殆後人從注本合倂歟

孔穎達序文에는 14권이라고 칭하였으나, 唐書》 〈經籍志에는 18권이라 하였고, 直齋書錄解題에는 13권이라 하였는데, 板本10권으로 王輔嗣韓康伯注本과 같으니, 아마도 後人注本을 따라 합병한 것인 듯하다.

周易正義序

國子祭酒上護軍曲阜縣開國子 臣孔穎達奉勅撰定이라

國子祭酒上護軍曲阜縣開國子 臣 孔穎達勅令을 받들어 撰定하다.

夫易者象也爻者效也

이고 (나타냄)이다.

聖人有以仰觀俯察하여 象天地而育群品하고 雲行雨施하여 效四時以生萬物하시니 若用之以順이면 則兩儀序而百物和하고 若行之以逆이면 則六位傾而五行亂이라

聖人天文을 우러러 관찰하고 地理를 굽어 살펴서 天地를 형상하여 여러 물건을 기르고, 구름이 흘러가고 비가 내리듯 하여 四時를 본받아 만물을 낳으시니, 만약 이것을 순히 따르면 兩儀가 차례대로 운행하여 온갖 물건이 하고, 만약 거슬러 행하면 六位가 기울고 五行이 혼란해진다.

王者動必則天地之道하여 不使一物失其性하고 行必協陰陽之宜하여 不使一物受其害

그러므로 王者는 동할 적에 반드시 天地를 본받아서 한 물건이라도 본성을 잃지 않게 하고, 행할 적에 반드시 陰陽의 마땅함에 화합하게 하여 한 물건이라도 폐해를 받지 않게 하였다.

能彌綸宇宙하고 酬酢神明하여 宗社所以无窮이요 風聲所以不朽非夫道極玄妙孰能與於此乎

그러므로 宇宙彌綸(두루 다스림)하고 神明酬酌할 수 있어서, 종묘와 사직이 이 때문에 무궁하고 風敎가 이 때문에 없어지지 않는 것이니, 가 지극히 현묘한 자가 아니면 누가 여기에 능히 참여하겠는가.

斯乃乾坤之大造生靈之所益也

이것은 바로 乾坤의 큰 조화요 백성의 유익한 바이다.

若夫龍出於河則八卦宣其象하고 麟傷於澤이면 則十翼彰其用하여 業資凡聖하고 時歷三古

龍馬黃河에서 나옴에 八卦가 그 을 펴고, 麒麟이 늪에서 부상을 당함에 十翼이 그 을 드러내서, 사업은 凡人聖人이 모두 이용하고 때는 三古를 지났다.

及秦亡金鏡이나 未墜斯文하고 漢理珠囊하여 重興儒雅

나라에 이르러 金鏡(밝은 )을 잃었으나 斯文이 실추되지는 않았고, 나라가 珠囊을 다스려서 儒雅(儒學)를 중흥시켰다.

其傳易者西都則有丁, , , 하고 東都則有荀, , , 하니 大體更相祖述이요 非有絶倫이라

周易을 전한 자로는 西都에는 丁寬, 孟喜, 京房, 田王孫이 있었고, 東都에는 荀爽, 劉表, 馬融, 鄭玄이 있었으니, 대체로 번갈아 서로 祖述한 것이요, 뛰어난 자는 없었다.

唯魏世王輔嗣之注獨冠古今하니 所以江左諸儒 竝傳其學이요 河北學者 罕能及之

오직 나라 王輔嗣(王弼)는 유독 古今에 으뜸이니, 이 때문에 江左(江東)의 여러 학자들이 모두 그의 학문을 전하였고, 河北 지방의 학자 중에 그에게 미칠 수 있는 자가 적었던 것이다.

其江南義疏十有餘家皆辭尙虛玄하고 義多浮誕이라

江南 지방에서 만든 義疏10가 있는데, 모두 내용은 玄虛를 숭상하고 뜻은 浮誕한 것이 많다.

原夫易理難窮하여 雖復玄之又玄이나 至於垂範作則하여는 便是有而敎有

근원을 따져보면, 周易의 이치는 다 알기가 어려워서 비록 玄妙하고 또 玄妙하나, 규범을 남기고 법칙을 만듦에 이르러서는 바로 를 가지고 를 가르친 것이다.

若論住內住外之空就能就所之說斯乃義涉於釋氏非爲敎於孔門也旣背其本이요 又違於注

內空外空에 머무름을 논한 것과 에 나아간 로 말하면, 바로 뜻이 釋氏(佛敎)와 관련된 것이요 孔門(儒學)에서 가르친 것이 아니니, 이미 근본을 위배한 것이며 와도 어긋난다.

至若復卦云七日來復하여는 竝解云 七日當爲七月이니 謂陽氣從五月建午而消하여 至十一月建子始復이니

復卦七日來復이라고 한 것에 있어서는 모두 해석하기를 七日은 마땅히 七月이 되어야 하니, 陽氣建午月5로부터 사라져서 建子月11에 이르러 처음 회복되는 것이다.

所歷七辰이라 云七月이라하니라

지나간 것이 일곱 地支이기 때문에 七月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今案 輔嗣注云 陽氣始剝盡이라가 至來復時 凡七日이라하니 則是陽氣剝盡之後凡經七日始復이라

이제 살펴보건대 王輔嗣에는 陽氣가 처음 깎여[] 다하였다가 와서 회복하는 때[]까지가 모두 七日이다.” 하였으니, 이는 陽氣가 깎여 다한 뒤에 무릇 七日을 지나 처음으로 회복된 것이다.

但陽氣雖建午始消至建戌之月하여도 陽氣猶在하니 何得稱七月來復이리오

다만 陽氣가 비록 建午月에 처음 사라지나 建戌月에 이르러도 陽氣가 아직 남아 있으니, 어떻게 七月에 와서 회복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鄭康成引易緯之說하여 建戌之月以陽氣旣盡이요 建亥之月純陰用事至建子之月하여 陽氣始生하니 隔此純陰一卦卦主六日七分이어늘 擧其成數言之하여 而云七日來復이라하니라

그러므로 鄭康成(鄭玄)易緯을 인용하여 建戌月陽氣가 이미 다하였고 建亥月純陰用事하며 建子月에 이르러 陽氣가 처음 생겨나니, 純陰 (十月坤卦)와 떨어져 있는데 67을 주관하므로 그 成數를 들어 말하여 七日來復이라 한 것이다.” 하였다.

仲尼之緯分明하고 輔嗣之注若此하고 康成之說遺跡可尋이라

仲尼緯書에 분명히 밝혔고 王輔嗣가 이와 같으며 鄭康成에서는 남은 자취를 찾을 수 있다.

輔嗣注之於前이어늘 諸儒背之於後하니 考其義理하면 其可通乎

王輔嗣가 앞에서 를 냈는데 여러 학자들이 뒤에서 이를 위배하니, 義理를 고찰해보면 어찌 통할 수 있겠는가.

又蠱卦云 先甲三日이요 後甲三日이라한대 輔嗣注云 甲者創制之令이라하니 又若漢世之時甲令乙令也

蠱卦 卦辭先甲三日이요 後甲三日이다.” 하였는데, 王輔嗣은 처음으로 만든 명령이다.” 하였으니, 나라 때의 甲令, 乙令과 같다.

輔嗣又云 令洽乃誅

王輔嗣는 또 말하기를 명령이 충분히 젖어들어야 처벌할 수 있다.

後之三日이라하니라

그러므로 3일 뒤에 한 것이다.” 하였다.

又巽卦云 先庚三日이요 後庚三日이라한대 輔嗣注云 申命令謂之庚이라하고 輔嗣又云 甲庚皆申命之謂也라하니라

巽卦 九五 爻辭先庚三日이요 後庚三日이다.” 하였는데, 王輔嗣거듭 명령함을 이라 이른다.” 하였고, 王輔嗣가 또 말하기를 은 모두 거듭 명령하는 것을 이른다.” 하였다.

諸儒同於鄭氏之說하여 以爲甲者宣令之日이니 先之三日而用辛也欲取改新之義後之三日而用丁也取其丁寧之義라하니

그런데 여러 학자들은 鄭康成의 설에 附和雷同하여 말하기를 은 명령을 선포하는 날이니, 3일 전에 을 쓰는 것은 改新의 뜻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요, 3일 뒤에 을 쓰는 것은 丁寧의 뜻을 취한 것이다.” 하였다.

王氏注意本不如此어늘 而又不顧其注하고 妄作異端하니라

王氏를 낸 뜻은 본래 이와 같지 않은데, 또 그 를 돌아보지 않고 함부로 異端의 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今旣奉勅刪定하여 考察其事必以仲尼爲宗이요 義理可詮先以輔嗣爲本하니 去其華而取其實하여 欲使信而有徵이라

이제 이미 勅命을 받들어 刪定하면서, 일을 고찰함은 반드시 仲尼宗主로 삼고 義理를 밝힘은 먼저 王輔嗣를 근본으로 삼았으니, 이는 화려함을 제거하고 실제를 취해서 진실하여 증거를 갖추고자 해서이다.

其文簡하고 其理約하니 寡而制衆이요 變而能通이라

문장이 간략하고 이치가 요약되니, 적으면서도 많은 것을 制裁하고, 변하여 능히 통할 수 있을 것이다.

仍恐鄙才短見하여 意未周盡이라

다만 나의 재주가 비루하고 식견이 짧아서 뜻을 두루 다하지 못할까 염려되었다.

謹與朝散大夫行大學博士臣馬嘉運守大學助敎臣趙乾叶等으로 對共參議하여 詳其可否하고 至十六年하여 又奉勅하여 與前修疏人及給事郞守四門博士上騎都尉臣蘇德融等으로 對勅使趙弘智하여 覆更詳審하여 爲之正義하니 凡十有四卷이라

그리하여 朝散大夫 行大學博士 臣 馬嘉運守大學助敎 臣 趙乾叶 등과 마주 대하여 함께 의논해서 可否를 자세히 살폈으며, 貞觀 16(642)에 이르러 또다시 勅命을 받들어서 예전에 를 만들었던 사람과 給事郞 守四門博士 上騎都尉 臣 蘇德融 등과 함께 勅使趙弘智를 마주 대하여 다시 자세히 살펴서 正義를 만드니, 모두 14권이다.

庶望上裨聖道하고 下益將來

행여라도 위로 聖人를 돕고 아래로 장래에 유익하기를 바란다.

序其大略하여 附之卷首爾로라

그러므로 그 대략을 서술하여 책머리에 붙이는 바이다.

周易正義 卷第一(卷首) 第一 論易之三名 1 의 세 가지 이름을 논함

正義曰 夫易者變化之總名이요 改換之殊稱이니 自天地開闢하여 陰陽運行으로 寒暑迭來하고 日月更出하여 孚萌庶類하고 亭毒群品하여 新新不停하여 生生相續莫非資變化之力, 換代之功이라

正義曰:은 변화의 총체적인 이름이고 바뀜의 다른 명칭이니, 天地開闢하여 이 운행함으로부터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오고 해와 달이 번갈아 나와서 여러 종류를 싹트게 하고 여러 물건을 亭毒(化育)하여 새롭고 새로워 멈추지 않아서 낳고 낳아 서로 이어가는 것이 변화의 힘과 바뀜의 에 의뢰하지 않음이 없다.

이나 變化運行在陰陽二氣

그러나 변화가 운행함은 두 기운에 달려 있다.

聖人初畫八卦하여 設剛柔兩畫象二氣也布以三位象三才也謂之爲易取變化之義

그러므로 聖人이 처음 八卦를 그어서 두 획을 만든 것은 두 기운을 형상한 것이요, 세 자리를 나열함은 三才(, , )를 형상한 것이요, 이라고 부른 것은 변화의 뜻을 취한 것이다.

旣義摠變化로되 而獨以易爲名者易緯乾鑿度云 易一名而含三義하니 所謂易也, 變易也, 不易也라하고

이미 의미상 변화의 뜻을 모두 취하였는데 유독 이라고 이름한 것은, 緯書乾鑿度에 이르기를 은 한 이름에 세 가지 뜻을 포함하였으니, 이른바 變易不易이다.” 하였다.

又云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易者其德也光明四通하고 簡易立節하여 天以爛明하고 日月星辰布設張列하며 通精無門하고 藏神無穴하여 不煩不擾하여 澹泊不失하니 此其易也

(簡易)란 그 이니, 光明하여 사방으로 통하고 簡易하게 절도를 세워서 하늘이 이로써 찬란하여 밝고 해와 달과 별이 하늘에 펼쳐져 있으며, 을 통함에 일정한 이 없고 을 감춤에 일정한 구멍이 없어서 번거롭지 않고 소요하지 않아서 담박하여 잃지 않으니, 이것이 이다.

變易者其氣也天地不變하여 不能通氣하면 五行迭終하고 四時更廢하며 君臣取象變節相移하여 能消者息하고 必專者敗하니 此其變易也

變易이란 그 기운이니, 하늘과 땅이 변화하지 않아서 기운을 통하지 못하면 五行이 차례로 끝나고 四時가 번갈아 폐해지며, 君臣을 취한 것이 시절이 변하여 서로 바뀌어서 능히 사라지는 것은 자라나고 반드시 專斷하는 자는 패하니, 이것이 바로 變易이다.

不易者其位也天在上하고 地在下하며 君南面하고 臣北面하며 父坐子伏하니 此其不易也라하니라

不易이란 그 자리(위치)이니,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며 人君南向을 하고 신하는 北向을 하며 아비는 앉아 있고 자식은 엎드려 있으니, 이것이 바로 不易이다.”

鄭玄依此義하여 作易贊及易論云

鄭玄이 이 뜻을 따라 易贊易論을 지으면서 말하였다.

一名而含三義하니 易簡一也變易二也不易三也

은 한 이름에 세 가지 뜻을 포함하였으니, 易簡이 첫 번째이고, 變易이 두 번째이고, 不易이 세 번째이다.

繫辭云 乾坤其易之蘊邪인저하고 又云 易之門戶邪인저하고

그러므로 繫辭傳에 이르기를 , 의 심오한 내용일 것이다.’ 하였고,

又云 夫乾確然하여 示人易矣夫坤隤然하여 示人簡矣易則易知簡則易從이라하니

또 말하기를 門戶일 것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은 굳세어 사람들에게 쉬움[]을 보여주고 은 순하여 사람들에게 간략함[]을 보여주니, 쉬우면 알기 쉽고 간략하면 따르기 쉽다.’ 하였으니,

此言其易簡之法則也

이는 易簡의 법칙을 말한 것이다.

又云 爲道也屢遷하니 變動不居하여 周流六虛하여

繫辭傳에 이르기를 가 자주 바뀌니, 변동하여 한 곳에머물지 않아서 여섯 자리에 두루 흐른다.

上下無常하고 剛柔相易하여 不可爲典要唯變所適이라하니 言順時變易하여 出入移動者也

그리하여 오르내림이 無常하고 가 서로 바뀌어서 典要(일정한 법칙)로 삼을 수 없고, 오직 변화하여 나간다.’ 하였으니, 이는 때에 따라 變易하여 출입하고 이동함을 말한 것이다.

又云 天尊地卑하니 乾坤定矣卑高以陳하니 貴賤位矣動靜有常하니 剛柔斷矣라하니 言其張設布列하여 不易者也라하니라

繫辭傳에 이르기를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이 정해졌고, 낮음과 높음이 진열되니 이 자리하고, 이 일정함이 있으니 가 결단되었다.’ 하였으니, 이는 자리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어서 바뀌지 않음[不易]을 말한 것이다.”

崔覲, 劉貞簡等竝用此義하여

崔覲劉貞簡 등은 모두 이 뜻을 따라 말하기를

易者謂生生之德有易簡之義

는 낳고 낳는 易簡의 뜻이 있음을 말한 것이요,

不易者言天地定位하여 不可相易이요

不易은 하늘과 땅이 자리를 정해서 서로 뒤바뀔 수 없음을 말한 것이요,

變易者謂生生之道 變而相續이라하니

變易은 낳고 낳는 가 변하여 서로 이어짐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皆以緯稱不煩不擾하여 澹泊不失하니 明是易簡之義無爲之道

이는 모두 緯書(建鑿度)에서 번거롭지 않고 소요하지 않아서 담박하여 잃지 않는다.”고 한 것을 쓴 것이니, 이는 분명히 易簡의 뜻이요 無爲이다.

易者易也作難易之音이로되

그러므로 는 쉬움이니, 難易으로 읽는다.

而周簡子云 易者-音亦-不易者變易也易者易代之名이라

그런데 周簡子(周弘正)는 말하기를 은 바뀜-이다. -이니, 不易變易하는 것이요 은 바꾸어 교대하는 것을 이르는 명칭이다.

凡有無相代하고 彼此相易皆是易義

무릇 가 서로 교대하고 가 서로 바뀌는 것이 모두 의 뜻이다.

不易者常體之名이니 有常有體하고 無常無體是不易之義

不易이란 常體의 이름이니, 떳떳함[]이 있고 가 있으며 떳떳함이 없고 가 없음은 바로 不易의 뜻이다.

變易者相變改之名이니 兩有相變此爲變易이라하니라

變易이란 서로 변하여 바뀌는 것을 이르는 명칭이니, 가 서로 변하는 것, 이것이 變易이 된다.” 하였다.

張氏, 何氏竝用此義하여 云 易者換代之名이요 待奪之義라하니라

張氏(張譏)何氏(何妥)는 모두 이 뜻을 따라 말하기를 은 교대하는 것을 이르는 명칭이요, 상대를 기다려 빼앗는 뜻이다.” 하였다.

因於乾鑿度云 易者其德也라한대

이로 인하여 乾鑿度란 그 이다.” 한 것을

或沒而不論하고 或云 德者得也萬法相形하여 皆得相易이라하여 不顧緯文不煩不擾之言하니

혹자는 묻어두고 논하지 않고, 혹자는 은 얻음이니, 萬法이 서로 나타나서 모두 얻어 서로 바뀌는 것이다.”라고 하여, 緯書번거롭지 않고 소요하지 않는다.”는 말을 돌아보지 않았으니,

所謂用其文而背其義

이른바 그 글은 따르면서 그 뜻은 배반한다는 것이다.

何不思之甚

깊이 생각하지 않음이 어찌 이리도 심한가.

今之所用同鄭康成等易者易也音爲難易之音이요 義爲簡易之義得緯文之本實也

그러므로 지금 따른 것은 鄭康成 등의 란 쉬움이니, 難易이 되고 뜻은 簡易의 뜻이 된다.’고 한 해석인바, 이것이 緯書의 본래 실재를 얻은 것이다.

蓋易之三義唯在於有

의 세 뜻은 오직 에 달려 있다.

이나 有從无出하니 理則包无

그러나 에서 나왔으니 이치는 를 포함한다.

乾鑿度云 夫有形者生於无形하니 則乾坤安從而生이리오

그러므로 乾鑿度에 이르기를 형체가 있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에서 생겼으니, 이 어디로부터 생겼겠는가.

故有太易하고 有太初하고 有太始하고 有太素하니 太易者未見氣也太初者氣之始也太始者形之始也太素者質之始也

그러므로 太易이 있고 太初가 있고 太始가 있고 太素가 있으니, 太易은 아직 기운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요, 太初는 기운의 시작이요, 太始는 형체의 시작이요, 太素의 시작이다.

, , 質具而未相離謂之渾沌이니 渾沌者言萬物相渾沌而未相離也

기운과 형체와 이 모두 갖추어져서 서로 떠나지 않음을 渾沌이라 이르니, 渾沌이란 萬物이 서로 뒤섞여 있어서 서로 떠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視之不見하고 聽之不聞하고 循之不得이라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좇아도 얻을 수가 없다.

故曰易也라하니라 是知易理備包有无

그러므로 이라고 말한 것이다.” 하였으니, 이로써 의 이치가 를 골고루 포괄함을 알 수 있다.

而易象唯在於有者蓋以聖人作易本以垂敎敎之所備本備於有

그러나 易象이 오직 에 있는 까닭은, 聖人을 지은 것은 본래 후세에 가르침을 남기기 위한 것이요, 가르침이 갖추어진 것은 본래 에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繫辭云 形而上者謂之道라하니 道卽无也形而下者謂之器라하니 器卽有也

그러므로 繫辭傳에 이르기를 形而上인 것을 라 이른다.” 하였으니, 란 바로 이고, “形而下인 것을 라 이른다.” 하였으니, 는 바로 이다.

以无言之하면 存乎道體하고 以有言之하면 存乎器用하고 以變化言之하면 存乎其神하고 以生成言之하면 存乎其易하고 以眞言之하면 存乎其性하고 以邪言之하면 存乎其情하고 以氣言之하면 存乎陰陽하고 以質言之하면 存乎爻象하고 以敎言之하면 存乎精義하고 以人言之하면 存乎景行하니 此等是也

그러므로 를 가지고 말하면 道體에 보존되어 있고, 를 가지고 말하면 器用에 보존되어 있으며, 변화를 가지고 말하면 에 보존되어 있고, 생성을 가지고 말하면 에 보존되어 있으며, 진실을 가지고 말하면 에 보존되어 있고, 간사함을 가지고 말하면 에 보존되어 있으며, 를 가지고 말하면 陰陽에 보존되어 있고, 을 가지고 말하면 爻象에 보존되어 있으며, 가르침을 가지고 말하면 精義에 보존되어 있고, 사람을 가지고 말하면 景行(훌륭한 행실)에 보존되어 있으니, 이런 것들이 바로 를 포괄한 것이다.

且易者象也物无不可象也

이라는 것은 이니, 물건은 형상할 수 없는 것이 없다.

作易所以垂敎者卽乾鑿度云

을 지은 것은 후세에 가르침을 남기기 위한 것이니, 바로 乾鑿度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孔子曰

孔子가 말씀하였다.

上古之時人民無別하고 群物未殊하여 未有衣食器用之利러니 伏犧乃仰觀象於天하고 俯觀法於地하고 中觀萬物之宜하여 於是始作八卦하여 以通神明之德하고 以類萬物之情이라

上古 시대에는 人民이 구별 없고 여러 물건이 다르지 않아서 의복과 음식과 器用의 편리함이 있지 않았는데, 伏羲氏가 마침내 우러러 하늘에서 을 보고 굽어 땅에서 을 보고 중간으로 萬物의 마땅함을 살펴보아서, 이에 처음으로 八卦를 만들어 神明을 통하고 萬物을 분류하였다.

故易者所以斷天地하고 理人倫而明王道

그러므로 이란 天地를 결단하고 人倫을 다스리고 王道를 밝힌 것이다.

是以畫八卦하고 建五氣하여 以立五常之行하며 象法乾坤하고 順陰陽하여 以正君臣, 父子, 夫婦之義하며 度時制宜하여 作爲罔罟하여 以佃以漁하여 以贍民用이라

이 때문에 八卦를 긋고 五行의 기운을 세워서 五常의 행실을 세우며, 乾坤을 법받고 陰陽을 순히 하여 君臣父子夫婦의 의리를 바루며, 때를 헤아려 마땅하게 만들어서 그물을 만들어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아 백성들의 쓰임을 풍족하게 하였다.

於是人民乃治하여 君親以尊하고 臣子以順하여 群生和洽하여 各安其性이라하니

이에 人民이 마침내 다스려져서 君主와 어버이가 높아지고 신하와 자식이 순해져서 여러 생명이 화합하여 각기 자신의 을 편안히 했다.’”

此其作易垂敎之本意也

이것이 바로 을 지어 후세에 가르침을 남긴 本意이다.

 

주역정의(1)

周易正義序

國子祭酒上護軍曲阜縣開國子 臣孔穎達奉勅撰定이라

國子祭酒上護軍曲阜縣開國子 臣 孔穎達勅令을 받들어 撰定하다.

夫易者象也爻者效也

이고 (나타냄)이다.

聖人有以仰觀俯察하여 象天地而育群品하고 雲行雨施하여 效四時以生萬物하시니 若用之以順이면 則兩儀序而百物和하고 若行之以逆이면 則六位傾而五行亂이라

聖人天文을 우러러 관찰하고 地理를 굽어 살펴서 天地를 형상하여 여러 물건을 기르고, 구름이 흘러가고 비가 내리듯 하여 四時를 본받아 만물을 낳으시니, 만약 이것을 순히 따르면 兩儀가 차례대로 운행하여 온갖 물건이 하고, 만약 거슬러 행하면 六位가 기울고 五行이 혼란해진다.

王者動必則天地之道하여 不使一物失其性하고 行必協陰陽之宜하여 不使一物受其害

그러므로 王者는 동할 적에 반드시 天地를 본받아서 한 물건이라도 본성을 잃지 않게 하고, 행할 적에 반드시 陰陽의 마땅함에 화합하게 하여 한 물건이라도 폐해를 받지 않게 하였다.

能彌綸宇宙하고 酬酢神明하여 宗社所以无窮이요 風聲所以不朽非夫道極玄妙孰能與於此乎

그러므로 宇宙彌綸(두루 다스림)하고 神明酬酌할 수 있어서, 종묘와 사직이 이 때문에 무궁하고 風敎가 이 때문에 없어지지 않는 것이니, 가 지극히 현묘한 자가 아니면 누가 여기에 능히 참여하겠는가.

斯乃乾坤之大造生靈之所益也

이것은 바로 乾坤의 큰 조화요 백성의 유익한 바이다.

若夫龍出於河則八卦宣其象하고 麟傷於澤이면 則十翼彰其用하여 業資凡聖하고 時歷三古

龍馬黃河에서 나옴에 八卦가 그 을 펴고, 麒麟이 늪에서 부상을 당함에 十翼이 그 을 드러내서, 사업은 凡人聖人이 모두 이용하고 때는 三古를 지났다.

及秦亡金鏡이나 未墜斯文하고 漢理珠囊하여 重興儒雅

나라에 이르러 金鏡(밝은 )을 잃었으나 斯文이 실추되지는 않았고, 나라가 珠囊을 다스려서 儒雅(儒學)를 중흥시켰다.

其傳易者西都則有丁, , , 하고 東都則有荀, , , 하니 大體更相祖述이요 非有絶倫이라

周易을 전한 자로는 西都에는 丁寬, 孟喜, 京房, 田王孫이 있었고, 東都에는 荀爽, 劉表, 馬融, 鄭玄이 있었으니, 대체로 번갈아 서로 祖述한 것이요, 뛰어난 자는 없었다.

唯魏世王輔嗣之注獨冠古今하니 所以江左諸儒 竝傳其學이요 河北學者 罕能及之

오직 나라 王輔嗣(王弼)는 유독 古今에 으뜸이니, 이 때문에 江左(江東)의 여러 학자들이 모두 그의 학문을 전하였고, 河北 지방의 학자 중에 그에게 미칠 수 있는 자가 적었던 것이다.

其江南義疏十有餘家皆辭尙虛玄하고 義多浮誕이라

江南 지방에서 만든 義疏10가 있는데, 모두 내용은 玄虛를 숭상하고 뜻은 浮誕한 것이 많다.

原夫易理難窮하여 雖復玄之又玄이나 至於垂範作則하여는 便是有而敎有

근원을 따져보면, 周易의 이치는 다 알기가 어려워서 비록 玄妙하고 또 玄妙하나, 규범을 남기고 법칙을 만듦에 이르러서는 바로 를 가지고 를 가르친 것이다.

若論住內住外之空就能就所之說斯乃義涉於釋氏非爲敎於孔門也旣背其本이요 又違於注

內空外空에 머무름을 논한 것과 에 나아간 로 말하면, 바로 뜻이 釋氏(佛敎)와 관련된 것이요 孔門(儒學)에서 가르친 것이 아니니, 이미 근본을 위배한 것이며 와도 어긋난다.

至若復卦云七日來復하여는 竝解云 七日當爲七月이니 謂陽氣從五月建午而消하여 至十一月建子始復이니

復卦七日來復이라고 한 것에 있어서는 모두 해석하기를 七日은 마땅히 七月이 되어야 하니, 陽氣建午月5로부터 사라져서 建子月11에 이르러 처음 회복되는 것이다.

所歷七辰이라 云七月이라하니라

지나간 것이 일곱 地支이기 때문에 七月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今案 輔嗣注云 陽氣始剝盡이라가 至來復時 凡七日이라하니 則是陽氣剝盡之後凡經七日始復이라

이제 살펴보건대 王輔嗣에는 陽氣가 처음 깎여[] 다하였다가 와서 회복하는 때[]까지가 모두 七日이다.” 하였으니, 이는 陽氣가 깎여 다한 뒤에 무릇 七日을 지나 처음으로 회복된 것이다.

但陽氣雖建午始消至建戌之月하여도 陽氣猶在하니 何得稱七月來復이리오

다만 陽氣가 비록 建午月에 처음 사라지나 建戌月에 이르러도 陽氣가 아직 남아 있으니, 어떻게 七月에 와서 회복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鄭康成引易緯之說하여 建戌之月以陽氣旣盡이요 建亥之月純陰用事至建子之月하여 陽氣始生하니 隔此純陰一卦卦主六日七分이어늘 擧其成數言之하여 而云七日來復이라하니라

그러므로 鄭康成(鄭玄)易緯을 인용하여 建戌月陽氣가 이미 다하였고 建亥月純陰用事하며 建子月에 이르러 陽氣가 처음 생겨나니, 純陰 (十月坤卦)와 떨어져 있는데 67을 주관하므로 그 成數를 들어 말하여 七日來復이라 한 것이다.” 하였다.

仲尼之緯分明하고 輔嗣之注若此하고 康成之說遺跡可尋이라

仲尼緯書에 분명히 밝혔고 王輔嗣가 이와 같으며 鄭康成에서는 남은 자취를 찾을 수 있다.

輔嗣注之於前이어늘 諸儒背之於後하니 考其義理하면 其可通乎

王輔嗣가 앞에서 를 냈는데 여러 학자들이 뒤에서 이를 위배하니, 義理를 고찰해보면 어찌 통할 수 있겠는가.

又蠱卦云 先甲三日이요 後甲三日이라한대 輔嗣注云 甲者創制之令이라하니 又若漢世之時甲令乙令也

蠱卦 卦辭先甲三日이요 後甲三日이다.” 하였는데, 王輔嗣은 처음으로 만든 명령이다.” 하였으니, 나라 때의 甲令, 乙令과 같다.

輔嗣又云 令洽乃誅

王輔嗣는 또 말하기를 명령이 충분히 젖어들어야 처벌할 수 있다.

後之三日이라하니라

그러므로 3일 뒤에 한 것이다.” 하였다.

又巽卦云 先庚三日이요 後庚三日이라한대 輔嗣注云 申命令謂之庚이라하고 輔嗣又云 甲庚皆申命之謂也라하니라

巽卦 九五 爻辭先庚三日이요 後庚三日이다.” 하였는데, 王輔嗣거듭 명령함을 이라 이른다.” 하였고, 王輔嗣가 또 말하기를 은 모두 거듭 명령하는 것을 이른다.” 하였다.

諸儒同於鄭氏之說하여 以爲甲者宣令之日이니 先之三日而用辛也欲取改新之義後之三日而用丁也取其丁寧之義라하니

그런데 여러 학자들은 鄭康成의 설에 附和雷同하여 말하기를 은 명령을 선포하는 날이니, 3일 전에 을 쓰는 것은 改新의 뜻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요, 3일 뒤에 을 쓰는 것은 丁寧의 뜻을 취한 것이다.” 하였다.

王氏注意本不如此어늘 而又不顧其注하고 妄作異端하니라

王氏를 낸 뜻은 본래 이와 같지 않은데, 또 그 를 돌아보지 않고 함부로 異端의 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今旣奉勅刪定하여 考察其事必以仲尼爲宗이요 義理可詮先以輔嗣爲本하니 去其華而取其實하여 欲使信而有徵이라

이제 이미 勅命을 받들어 刪定하면서, 일을 고찰함은 반드시 仲尼宗主로 삼고 義理를 밝힘은 먼저 王輔嗣를 근본으로 삼았으니, 이는 화려함을 제거하고 실제를 취해서 진실하여 증거를 갖추고자 해서이다.

其文簡하고 其理約하니 寡而制衆이요 變而能通이라

문장이 간략하고 이치가 요약되니, 적으면서도 많은 것을 制裁하고, 변하여 능히 통할 수 있을 것이다.

仍恐鄙才短見하여 意未周盡이라

다만 나의 재주가 비루하고 식견이 짧아서 뜻을 두루 다하지 못할까 염려되었다.

謹與朝散大夫行大學博士臣馬嘉運守大學助敎臣趙乾叶等으로 對共參議하여 詳其可否하고 至十六年하여 又奉勅하여 與前修疏人及給事郞守四門博士上騎都尉臣蘇德融等으로 對勅使趙弘智하여 覆更詳審하여 爲之正義하니 凡十有四卷이라

그리하여 朝散大夫 行大學博士 臣 馬嘉運守大學助敎 臣 趙乾叶 등과 마주 대하여 함께 의논해서 可否를 자세히 살폈으며, 貞觀 16(642)에 이르러 또다시 勅命을 받들어서 예전에 를 만들었던 사람과 給事郞 守四門博士 上騎都尉 臣 蘇德融 등과 함께 勅使趙弘智를 마주 대하여 다시 자세히 살펴서 正義를 만드니, 모두 14권이다.

庶望上裨聖道하고 下益將來

행여라도 위로 聖人를 돕고 아래로 장래에 유익하기를 바란다.

序其大略하여 附之卷首爾로라

그러므로 그 대략을 서술하여 책머리에 붙이는 바이다.

周易正義 卷第一(卷首) 第一 論易之三名 1 의 세 가지 이름을 논함

正義曰 夫易者變化之總名이요 改換之殊稱이니 自天地開闢하여 陰陽運行으로 寒暑迭來하고 日月更出하여 孚萌庶類하고 亭毒群品하여 新新不停하여 生生相續莫非資變化之力, 換代之功이라

正義曰:은 변화의 총체적인 이름이고 바뀜의 다른 명칭이니, 天地開闢하여 이 운행함으로부터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오고 해와 달이 번갈아 나와서 여러 종류를 싹트게 하고 여러 물건을 亭毒(化育)하여 새롭고 새로워 멈추지 않아서 낳고 낳아 서로 이어가는 것이 변화의 힘과 바뀜의 에 의뢰하지 않음이 없다.

이나 變化運行在陰陽二氣

그러나 변화가 운행함은 두 기운에 달려 있다.

聖人初畫八卦하여 設剛柔兩畫象二氣也布以三位象三才也謂之爲易取變化之義

그러므로 聖人이 처음 八卦를 그어서 두 획을 만든 것은 두 기운을 형상한 것이요, 세 자리를 나열함은 三才(, , )를 형상한 것이요, 이라고 부른 것은 변화의 뜻을 취한 것이다.

旣義摠變化로되 而獨以易爲名者易緯乾鑿度云 易一名而含三義하니 所謂易也, 變易也, 不易也라하고

이미 의미상 변화의 뜻을 모두 취하였는데 유독 이라고 이름한 것은, 緯書乾鑿度에 이르기를 은 한 이름에 세 가지 뜻을 포함하였으니, 이른바 變易不易이다.” 하였다.

又云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易者其德也光明四通하고 簡易立節하여 天以爛明하고 日月星辰布設張列하며 通精無門하고 藏神無穴하여 不煩不擾하여 澹泊不失하니 此其易也

(簡易)란 그 이니, 光明하여 사방으로 통하고 簡易하게 절도를 세워서 하늘이 이로써 찬란하여 밝고 해와 달과 별이 하늘에 펼쳐져 있으며, 을 통함에 일정한 이 없고 을 감춤에 일정한 구멍이 없어서 번거롭지 않고 소요하지 않아서 담박하여 잃지 않으니, 이것이 이다.

變易者其氣也天地不變하여 不能通氣하면 五行迭終하고 四時更廢하며 君臣取象變節相移하여 能消者息하고 必專者敗하니 此其變易也

變易이란 그 기운이니, 하늘과 땅이 변화하지 않아서 기운을 통하지 못하면 五行이 차례로 끝나고 四時가 번갈아 폐해지며, 君臣을 취한 것이 시절이 변하여 서로 바뀌어서 능히 사라지는 것은 자라나고 반드시 專斷하는 자는 패하니, 이것이 바로 變易이다.

不易者其位也天在上하고 地在下하며 君南面하고 臣北面하며 父坐子伏하니 此其不易也라하니라

不易이란 그 자리(위치)이니,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며 人君南向을 하고 신하는 北向을 하며 아비는 앉아 있고 자식은 엎드려 있으니, 이것이 바로 不易이다.”

鄭玄依此義하여 作易贊及易論云

鄭玄이 이 뜻을 따라 易贊易論을 지으면서 말하였다.

一名而含三義하니 易簡一也變易二也不易三也

은 한 이름에 세 가지 뜻을 포함하였으니, 易簡이 첫 번째이고, 變易이 두 번째이고, 不易이 세 번째이다.

繫辭云 乾坤其易之蘊邪인저하고 又云 易之門戶邪인저하고

그러므로 繫辭傳에 이르기를 , 의 심오한 내용일 것이다.’ 하였고,

又云 夫乾確然하여 示人易矣夫坤隤然하여 示人簡矣易則易知簡則易從이라하니

또 말하기를 門戶일 것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은 굳세어 사람들에게 쉬움[]을 보여주고 은 순하여 사람들에게 간략함[]을 보여주니, 쉬우면 알기 쉽고 간략하면 따르기 쉽다.’ 하였으니,

此言其易簡之法則也

이는 易簡의 법칙을 말한 것이다.

又云 爲道也屢遷하니 變動不居하여 周流六虛하여

繫辭傳에 이르기를 가 자주 바뀌니, 변동하여 한 곳에머물지 않아서 여섯 자리에 두루 흐른다.

上下無常하고 剛柔相易하여 不可爲典要唯變所適이라하니 言順時變易하여 出入移動者也

그리하여 오르내림이 無常하고 가 서로 바뀌어서 典要(일정한 법칙)로 삼을 수 없고, 오직 변화하여 나간다.’ 하였으니, 이는 때에 따라 變易하여 출입하고 이동함을 말한 것이다.

又云 天尊地卑하니 乾坤定矣卑高以陳하니 貴賤位矣動靜有常하니 剛柔斷矣라하니 言其張設布列하여 不易者也라하니라

繫辭傳에 이르기를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이 정해졌고, 낮음과 높음이 진열되니 이 자리하고, 이 일정함이 있으니 가 결단되었다.’ 하였으니, 이는 자리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어서 바뀌지 않음[不易]을 말한 것이다.”

崔覲, 劉貞簡等竝用此義하여

崔覲劉貞簡 등은 모두 이 뜻을 따라 말하기를

易者謂生生之德有易簡之義

는 낳고 낳는 易簡의 뜻이 있음을 말한 것이요,

不易者言天地定位하여 不可相易이요

不易은 하늘과 땅이 자리를 정해서 서로 뒤바뀔 수 없음을 말한 것이요,

變易者謂生生之道 變而相續이라하니

變易은 낳고 낳는 가 변하여 서로 이어짐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皆以緯稱不煩不擾하여 澹泊不失하니 明是易簡之義無爲之道

이는 모두 緯書(建鑿度)에서 번거롭지 않고 소요하지 않아서 담박하여 잃지 않는다.”고 한 것을 쓴 것이니, 이는 분명히 易簡의 뜻이요 無爲이다.

易者易也作難易之音이로되

그러므로 는 쉬움이니, 難易으로 읽는다.

而周簡子云 易者-音亦-不易者變易也易者易代之名이라

그런데 周簡子(周弘正)는 말하기를 은 바뀜-이다. -이니, 不易變易하는 것이요 은 바꾸어 교대하는 것을 이르는 명칭이다.

凡有無相代하고 彼此相易皆是易義

무릇 가 서로 교대하고 가 서로 바뀌는 것이 모두 의 뜻이다.

不易者常體之名이니 有常有體하고 無常無體是不易之義

不易이란 常體의 이름이니, 떳떳함[]이 있고 가 있으며 떳떳함이 없고 가 없음은 바로 不易의 뜻이다.

變易者相變改之名이니 兩有相變此爲變易이라하니라

變易이란 서로 변하여 바뀌는 것을 이르는 명칭이니, 가 서로 변하는 것, 이것이 變易이 된다.” 하였다.

張氏, 何氏竝用此義하여 云 易者換代之名이요 待奪之義라하니라

張氏(張譏)何氏(何妥)는 모두 이 뜻을 따라 말하기를 은 교대하는 것을 이르는 명칭이요, 상대를 기다려 빼앗는 뜻이다.” 하였다.

因於乾鑿度云 易者其德也라한대

이로 인하여 乾鑿度란 그 이다.” 한 것을

或沒而不論하고 或云 德者得也萬法相形하여 皆得相易이라하여 不顧緯文不煩不擾之言하니

혹자는 묻어두고 논하지 않고, 혹자는 은 얻음이니, 萬法이 서로 나타나서 모두 얻어 서로 바뀌는 것이다.”라고 하여, 緯書번거롭지 않고 소요하지 않는다.”는 말을 돌아보지 않았으니,

所謂用其文而背其義

이른바 그 글은 따르면서 그 뜻은 배반한다는 것이다.

何不思之甚

깊이 생각하지 않음이 어찌 이리도 심한가.

今之所用同鄭康成等易者易也音爲難易之音이요 義爲簡易之義得緯文之本實也

그러므로 지금 따른 것은 鄭康成 등의 란 쉬움이니, 難易이 되고 뜻은 簡易의 뜻이 된다.’고 한 해석인바, 이것이 緯書의 본래 실재를 얻은 것이다.

蓋易之三義唯在於有

의 세 뜻은 오직 에 달려 있다.

이나 有從无出하니 理則包无

그러나 에서 나왔으니 이치는 를 포함한다.

乾鑿度云 夫有形者生於无形하니 則乾坤安從而生이리오

그러므로 乾鑿度에 이르기를 형체가 있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에서 생겼으니, 이 어디로부터 생겼겠는가.

故有太易하고 有太初하고 有太始하고 有太素하니 太易者未見氣也太初者氣之始也太始者形之始也太素者質之始也

그러므로 太易이 있고 太初가 있고 太始가 있고 太素가 있으니, 太易은 아직 기운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요, 太初는 기운의 시작이요, 太始는 형체의 시작이요, 太素의 시작이다.

, , 質具而未相離謂之渾沌이니 渾沌者言萬物相渾沌而未相離也

기운과 형체와 이 모두 갖추어져서 서로 떠나지 않음을 渾沌이라 이르니, 渾沌이란 萬物이 서로 뒤섞여 있어서 서로 떠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視之不見하고 聽之不聞하고 循之不得이라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좇아도 얻을 수가 없다.

故曰易也라하니라 是知易理備包有无

그러므로 이라고 말한 것이다.” 하였으니, 이로써 의 이치가 를 골고루 포괄함을 알 수 있다.

而易象唯在於有者蓋以聖人作易本以垂敎敎之所備本備於有

그러나 易象이 오직 에 있는 까닭은, 聖人을 지은 것은 본래 후세에 가르침을 남기기 위한 것이요, 가르침이 갖추어진 것은 본래 에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繫辭云 形而上者謂之道라하니 道卽无也形而下者謂之器라하니 器卽有也

그러므로 繫辭傳에 이르기를 形而上인 것을 라 이른다.” 하였으니, 란 바로 이고, “形而下인 것을 라 이른다.” 하였으니, 는 바로 이다.

以无言之하면 存乎道體하고 以有言之하면 存乎器用하고 以變化言之하면 存乎其神하고 以生成言之하면 存乎其易하고 以眞言之하면 存乎其性하고 以邪言之하면 存乎其情하고 以氣言之하면 存乎陰陽하고 以質言之하면 存乎爻象하고 以敎言之하면 存乎精義하고 以人言之하면 存乎景行하니 此等是也

그러므로 를 가지고 말하면 道體에 보존되어 있고, 를 가지고 말하면 器用에 보존되어 있으며, 변화를 가지고 말하면 에 보존되어 있고, 생성을 가지고 말하면 에 보존되어 있으며, 진실을 가지고 말하면 에 보존되어 있고, 간사함을 가지고 말하면 에 보존되어 있으며, 를 가지고 말하면 陰陽에 보존되어 있고, 을 가지고 말하면 爻象에 보존되어 있으며, 가르침을 가지고 말하면 精義에 보존되어 있고, 사람을 가지고 말하면 景行(훌륭한 행실)에 보존되어 있으니, 이런 것들이 바로 를 포괄한 것이다.

且易者象也物无不可象也

이라는 것은 이니, 물건은 형상할 수 없는 것이 없다.

作易所以垂敎者卽乾鑿度云

을 지은 것은 후세에 가르침을 남기기 위한 것이니, 바로 乾鑿度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孔子曰

孔子가 말씀하였다.

上古之時人民無別하고 群物未殊하여 未有衣食器用之利러니 伏犧乃仰觀象於天하고 俯觀法於地하고 中觀萬物之宜하여 於是始作八卦하여 以通神明之德하고 以類萬物之情이라

上古 시대에는 人民이 구별 없고 여러 물건이 다르지 않아서 의복과 음식과 器用의 편리함이 있지 않았는데, 伏羲氏가 마침내 우러러 하늘에서 을 보고 굽어 땅에서 을 보고 중간으로 萬物의 마땅함을 살펴보아서, 이에 처음으로 八卦를 만들어 神明을 통하고 萬物을 분류하였다.

故易者所以斷天地하고 理人倫而明王道

그러므로 이란 天地를 결단하고 人倫을 다스리고 王道를 밝힌 것이다.

是以畫八卦하고 建五氣하여 以立五常之行하며 象法乾坤하고 順陰陽하여 以正君臣, 父子, 夫婦之義하며 度時制宜하여 作爲罔罟하여 以佃以漁하여 以贍民用이라

이 때문에 八卦를 긋고 五行의 기운을 세워서 五常의 행실을 세우며, 乾坤을 법받고 陰陽을 순히 하여 君臣父子夫婦의 의리를 바루며, 때를 헤아려 마땅하게 만들어서 그물을 만들어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아 백성들의 쓰임을 풍족하게 하였다.

於是人民乃治하여 君親以尊하고 臣子以順하여 群生和洽하여 各安其性이라하니

이에 人民이 마침내 다스려져서 君主와 어버이가 높아지고 신하와 자식이 순해져서 여러 생명이 화합하여 각기 자신의 을 편안히 했다.’”

此其作易垂敎之本意也

이것이 바로 을 지어 후세에 가르침을 남긴 本意이다.

周易正義 卷第一(卷首) 第二 論重卦之人 2 重卦를 만든 사람을 논함

第二 論重卦之人

2 重卦를 만든 사람을 논함

繫辭云 河出圖하고 洛出書어늘 聖人則之라하고 又禮緯含文嘉曰 伏犧德合上下하사 天應以鳥獸文章하고 地應以河圖洛書어늘

繫辭傳黃河에서 그림이 나오고 洛水에서 글이 나오자 聖人이 이것을 본받았다.” 하였고, 緯書含文嘉에 이르기를 伏羲氏上下天地에 합하시어, 하늘은 새와 짐승의 文章으로 응하고 땅은 河圖洛書로 응하였다.

伏犧則而象之하여 乃作八卦라하니라

이에 伏羲氏가 이것을 본받아 형상해서 마침내 八卦를 지었다.” 하였다.

孔安國, 馬融, 王肅, 姚信等竝云 伏犧得河圖而作易이라하니 是則伏羲 雖得河圖復須仰觀俯察하여 以相參正然後畫卦

그러므로 孔安國, 馬融, 王肅, 姚信 등이 모두 말하기를 伏羲氏河圖를 얻어 을 지었다.” 하였으니, 이는 伏羲氏가 비록 河圖를 얻었으나 다시 위로 天文을 관찰하고 아래로 地理를 살펴서 서로 참고하여 바로잡은 뒤에 를 그은 것이다.

伏犧初畫八卦하니 萬物之象皆在其中이라

伏羲氏가 처음 八卦를 그으니, 萬物이 모두 이 가운데 들어 있었다.

繫辭曰 八卦成列象在其中矣 是也

그러므로 繫辭傳에 이르기를 八卦을 이루니 이 이 가운데 들어 있다.” 한 것이 이것이다.

雖有萬物之象이나 其萬物變通之理猶自未備

비록 萬物이 있으나 만물의 변통하는 이치는 아직 여전히 미비하였다.

因其八卦而更重之하니 卦有六爻하여 遂重爲六十四卦也繫辭曰 因而重之하니 爻在其中矣 是也

그러므로 八卦를 인하여 다시 거듭하였으니, 에 여섯 가 있어서 마침내 거듭하여 64가 된 것으로, 繫辭傳에 이르기를 인하여 거듭하니 가 이 가운데 들어 있다.”는 것이 이것이다.

然重卦之人諸儒不同하여 凡有四說이라

그러나 重卦를 만든 사람은 여러 학자들의 이 똑같지 않아서 모두 네 가지의 이 있다.

王輔嗣等以爲伏犧畫卦라하고 鄭玄之徒以爲神農重卦라하고 孫盛以爲夏禹重卦라하고 史遷等以爲文王重卦라하니라

王輔嗣 등은 伏羲氏重卦를 만들었다.’ 하였고, 鄭玄의 무리는 神農氏重卦를 만들었다.’ 하였고, 孫盛나라 禹王重卦를 만들었다.’ 하였고, 司馬遷 등은 文王重卦를 만들었다.’ 하였다.

其言夏禹及文王重卦者案繫辭神農之時已有하니 蓋取益與噬嗑이니 以此論之하면 不攻自破

나라 禹王나라 文王重卦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말은, 繫辭傳을 살펴보건대, 神農 때에 이미 64가 있어서 益卦噬嗑卦에서 취하였으니, 이것을 가지고 논해보면 굳이 공격하지 않아도 그 이 저절로 깨뜨려진다.

其言神農重卦亦未爲得이니 今以諸文驗之호리라

그리고 神農氏重卦를 만들었다는 것도 옳지 못하니, 이제 여러 글을 가지고 징험해보겠다.

案說卦云 昔者聖人之作易也幽贊於神明而生蓍라하니 凡言作者創造之謂也

살펴보건대, 說卦傳옛날 聖人을 지을[] 적에 神明를 깊이 밝혀 蓍草를 만들어내었다.” 하였으니, 무릇 이라고 말하는 것은 創作을 이른다.

神農以後便是述修不可謂之作也則幽贊用蓍謂伏犧矣

神農氏 이후는 바로 傳述하여 닦은 것으로 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그렇다면 神明를 깊이 밝혀 蓍草를 사용함伏羲氏를 이른 것이다.

乾鑿度云 垂皇策者犧라하니라

그러므로 乾鑿度에 이르기를 皇策을 드리운 자는 伏羲氏이다.” 한 것이다.

上繫論用蓍云 四營而成易하고 十有八變而成卦라하니

繫辭上傳蓍草를 사용하는 법을 논하면서 말하기를 “4번 경영하여 을 이루고 18번 변하여 를 이룬다.” 하였다.

旣言聖人作易하고 十八變成卦하니 明用蓍在六爻之後非三畫之時

이미 聖人을 짓고 18번 변하여 를 이루었다고 말하였으니, 蓍草를 사용함이 6의 뒤에 있었고 3의 때가 아님을 밝힌 것이다.

伏犧用蓍하니 卽伏犧已重卦矣

그런데 伏羲氏蓍草를 사용하였으니, 그렇다면 伏羲氏가 이미 重卦를 만든 것이다.

說卦又云 昔者聖人之作易也將以順性命之理

說卦傳에 또 이르기를 옛날에 聖人을 지음은 장차 性命의 이치를 순히 하려고 해서였다.

是以立天之道曰陰與陽이요 立地之道曰柔與剛이요 立人之道曰仁與義兼三才而兩之

이 때문에 하늘의 를 세우는 것은 이요, 땅의 를 세우는 것은 이요, 사람의 를 세우는 것은 이니, 三才를 겸하여 두 번 하였다.

六畫而成卦라하니라

그러므로 이 여섯 번 그어서 를 이루었다.” 하였다.

旣言聖人作易兼三才而兩之라하니 又非神農始重卦矣

이미 聖人을 지음에 三才를 겸하여 두 번 하였다.’ 하였으니, 神農氏가 처음 重卦를 만든 것이 아니다.

又上繫云 易有聖人之道四焉하니 以言者尙其辭하고 以動者尙其變하고 以制器者尙其象하고 以卜筮者尙其占이라하니

繫辭上傳에 이르기를 聖人네 가지가 있으니, 을 가지고 말하는 자는 그 글을 숭상하고, 을 가지고 하는 자는 그 을 숭상하고, 을 가지고 器物을 만드는 자는 그 을 숭상하고, 을 가지고 卜筮하는 자는 그 을 숭상한다.” 하였으니,

此之四事皆在六爻之後

이 네 가지 일은 모두 六爻가 있은 뒤에 있는 것이다.

何者

어째서인가?

三畫之時未有彖繇하여 不得有尙其辭因而重之라야 始有變動하니 三畫不動하여 不得有尙其變이며

세 번 그은 八卦때에는 彖繇(卦辭)가 있지 않아서 그 글을 숭상함이 있을 수 없고, 八卦인하여 거듭하여야 비로소 변동이 있으니, 三畫에서는 변동하지 않으므로 그 을 숭상함이 있을 수 없다.

揲蓍布爻라야 方用之卜筮하여 蓍起六爻之後하니 三畫不得有尙其占이라

蓍草를 떼어 여섯 를 펼쳐놓아야 비로소 卜筮에 사용할 수 있어서 蓍草六爻의 뒤에 시작되니, 三畫에서는 그 을 숭상함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自然中間以制器者尙其象亦非三畫之時

자연히 중간에 을 가지고器物을 만드는 자는 그 을 숭상한다.’고 한 것도 三畫의 때가 아니다.

今伏犧結繩而爲罔罟則是制器明伏犧已重卦矣

이제 伏羲氏가 노끈을 묶어 그물을 만들었다면 이것은 기물을 만든 것이니, 伏羲氏가 이미 重卦를 만들었음을 밝힌 것이다.

又周禮(小史)[外史]掌三皇五帝之書라하니 明三皇已有書也

周禮外史三皇五帝의 글을 관장한다.” 하였으니, 三皇 때에 이미 글이 있었음을 밝힌 것이다.

下繫云 上古結繩而治러니 後世聖人易之以書契하니 蓋取諸夬라하니 旣象夬卦而造書契하니 伏犧有書契則有夬卦矣

繫辭下傳上古에는 노끈을 묶어 다스렸는데 후세에 聖人書契(文字)로 바꾸었으니, 이는 夬卦에서 취한 것이다.” 하였으니, 이미 夬卦를 형상하여 書契를 만든 것으로, 伏羲氏書契가 있었다면 夬卦가 있었던 것이다.

孔安國書序云 古者伏犧氏之王天下也始畫八卦하여 造書契하여 以代結繩之政이라하고

그러므로 孔安國尙書傳序文에 이르기를 옛날 伏羲氏가 천하에 왕 노릇할 적에 처음으로 八卦를 긋고 書契를 만들어서 노끈으로 묶던 政事를 대신했다.” 하였고,

又曰 伏犧, 神農, 黃帝之書謂之三墳是也

또 이르기를 伏羲, 神農, 黃帝의 글을 三墳이라 한다.” 한 것이 이것이다.

又八卦小成爻象未備하고 重三成六이라야 能事畢矣若言重卦起自神農이면 其爲功也 豈比繫辭而已哉

八卦小成에는 爻象이 미비하고, 三畫을 거듭하여 六畫을 만들어야 能事가 끝나니, 만약 重卦神農氏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면 그 이 어찌 文王周公繫辭(卦辭爻辭를 단 것)에 견줄 뿐이겠는가.

何因易緯等數所歷三聖但云伏犧, 文王, 孔子하고 竟不及神農

그런데 어찌하여 易緯 등에서 세 聖人을 거친 것을 말할 적에 다만 伏羲, 文王, 孔子를 말하고 끝내 神農을 언급하지 않은 것인가.

明神農但有蓋取諸益이요 不重卦矣

이는 神農氏는 다만 益卦에서 취함이 있을 뿐이요 重卦를 만들지 않았음을 밝힌 것이다.

今依王輔嗣하여 以伏犧旣畫八卦하고 卽自重爲六十四卦爲得其實이라

그러므로 지금 王輔嗣을 따라 伏羲氏가 이미 八卦를 긋고 곧 스스로 거듭하여 64를 만든 것을, 실제를 얻은 것으로 삼는 것이다.

其重卦之意備在說卦하니 此不具敍하노라

重卦의 뜻은 說卦傳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여기서는 자세히 서술하지 않는다.

伏犧之時道尙質素하여 畫卦重爻 足以垂法이러니 後代澆訛하여 德不如古하여 爻象不足以爲敎

伏羲氏 때에는 가 질박함과 검소함을 숭상하여 를 긋고 를 거듭한 것으로 충분히 후세에 을 남길 수 있었는데, 후대에는 민심이 浮薄하고 거짓되어 이 예전만 못해서 爻象만으로는 가르침이 될 수 없었다.

故作繫辭以明之하니라

그러므로 繫辭를 지어서 밝힌 것이다.

 

'고전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자  (0) 2018.07.24
莊子  (0) 2018.07.24
십삼경과 경서구성  (0) 2018.07.23
한문의 구조와 형식   (0) 2009.07.29
귀거래사   (0) 2009.06.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