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歌辭)

   가사(歌辭)가 문학사상에 형태를 나타낸 것은 조선에 들어와서이다. 3ㆍ4조 또는 4ㆍ4조 운문(韻文)으로 된 연속체(連續體)로서, 운문문학이 산문문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생긴 형태문학이며, 처음 발생할 때에는 시가(詩歌)와 같았으나, 점점 산문적인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연산군(燕山君)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사화(士禍)로 말미암아 여러 뜻 있는 선비들은 강호(江湖)에 은둔하여 자연을 벗삼게 되어 차차 자연의 미(美)에 대해 새로이 이해가 깊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자연미의 발견을 계기로 새로운 형식문학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종래의 시조는 그 형식이 너무 짧아서 부분적인 묘사에는 적당하나, 광범위하고 유장(悠長)한 감정을 담기에는 너무나 그 그릇이 협소하였고, 또 경기체가(景幾體歌)도 이미 그 형식이 낡은 옛 문학일뿐더러 원래가 귀족적이며 순 한문체이고, 아름다운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나열하여 문자의 희롱은 될지언정 참다운 생활 표현의 문학으로서는 부적당하였다. 이와 같은 시대적인 요청에 의하여 새로운 형태 문학의 대두는 필연적인 것이었으며, 이로써 나타난 것이 가사문학(歌辭文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 최초의 작품은 성종 시대의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이며, 그 후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사미인곡(續思美人曲)>, 박인로(朴仁老)의 <태평사(太平詞)> <선상탄(船上嘆)>, 차오산(車五山)의 <강촌별곡(江村別曲)>, 진복창(陳復昌)의 <역대가(歷代歌)>, 조식(曺植)의 <남명가(南冥歌)> <왕롱가(王弄歌)>, 송인(宋寅)의 <수월정가(水月亭歌)>, 허전(許典)의 <고공가(雇工歌)> 등이 있고, 이외에도 유명ㆍ무명의 가사(歌辭)가 많이 있다.

 

   한국 고유의 문학 형태. 4ㆍ4조 연속체(連續體)의 운문과 산문의 중간 형태로, 시가(詩歌) 형식이면서도 내용은 산문적(散文的)이다. 즉 <사미인곡(思美人曲)> <관돌별곡(關東別曲)>과 같이 시가적(詩歌的)인 정서를 나타낸 것도 있지만, <사시풍경가(四時風景歌)> <놀춘가(弄春歌)>와 같이 절후(節侯)에 따른 자연미를 영탄한 것, <강촌별곡(江村別曲)> <낙빈가(樂貧歌)> 등과 같이 은일적(隱逸的) 기분을 토로한 것, <화전가(花煎歌)> 등과 같이 회유(會遊)를 즐긴 것, <이별가(離別歌)> <상사곡(相思曲)> 등 이별의 애정(哀情)을 호소한 것, <백발가(白髮歌)> <과부가(寡婦歌)> <박명가(薄命歌)> 등 인생의 무상함을 통탄한 것, <도수가(道修歌)><부부가(夫婦歌)> 등 순도덕을 가르친 것, <영남가(嶺南歌)> <호남가(湖南歌)> <한양가(漢陽歌)> 등 지방의 문물제도를 서술한 것, <북천가(北遷歌)> <연행가(燕行歌)>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등 여행 노정(路程)을 기록한 것, <계녀가(誡女歌)> <경계사(警戒詞)> 등과 같이 교훈을 설유(說諭)한 것 등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미인곡>을 제외한 이상의 작품은 기록문학의 감상문ㆍ수필문ㆍ기행문 등과 같은 것으로 기록문학ㅈ덕인 성격이 농후한 이런 작품들은 시가(詩歌)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가사는 운문의 형식을 쓰면서 산문적 내용을 나타내는 독특한 문학형태이다. 즉 시가(詩歌)ㆍ산문(散文)의 요소를 이울러 가졌건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성격을 동시에 구비한 문학 형태로서 운문학(韻文學에)서 산문학(散文學)으로 전개되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가사는 조선에 들어와서 발달한 문학으로 현재 남아있는 작품으로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이 가장 오래다. 그 뒤 정철(鄭澈)에 이르러 가사는 대성(大成)되었는데, <송강가사(松江歌辭)>에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성산별곡(星山別曲)> 등이 전한다. 이 밖에도 유명ㆍ무명씯의 작품이 허다하나, 송강 정철을 따르지는 못하였다.

   이 무렵의 작자로 이원익(李元翼)ㆍ이수광(李晬光)ㆍ박인로(朴仁老)ㆍ무옥(巫玉)ㆍ조위한(趙偉韓)ㆍ임유후(任有後) 등이 있다. 박인로는 송강 이후 가사 작가의 제일인자로 작품에 <선상탄(船上嘆)> <태평사(太平詞)> <사제곡(莎堤曲)> <누항사(陋巷詞)> 등이 있다. 김인겸(金仁謙)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홍순학(洪淳學)의 <연행가(燕行歌)>, 김진형(金鎭衡)의 <북천가(北遷歌)>, 한산거사(漢山居士)의 <한양가(漢陽歌)> 등 매우 긴 작품도 나타났다. (이홍직: <국사대사전>)

 

   조선 초기에 발생한 시가(詩歌) 형태의 하나. 3ㆍ4조 혹은 4ㆍ4조의 연속체(連續體)로 된 운문 형식에 산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국문학사상으로는 운문학(韻文學)에서 산문학(散文學)으로 발전하는 중간적 위치에 있다.

   가사는 제한된 형식에 얽매여 있던 고래(古來)의 시가(詩歌)가 사회의 발전에 따른 산문정신의 태동에 의한 문학적 요구를 더 이상 수용할 수 없게 되면서 나타난 문학 형태이다. 운문과 산문 그 어느 것도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두 성격을 동시에 구비한 가사는 조선사화가 정비되고 국한문(國漢文) 혼용에 익숙해지면서 하나의 문학형태로 정착하게 되었다.

   가사가 국문학사상 정제(整齊)된 형태로 나타난 최초의 작품은 조선 성종 때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이다. 그러나 그 기원은 멀리 고려말엽부터 엿보인다. <어부사(漁父詞)> 등 고려 장가(長歌)나 경기체가(景幾體歌)의 분절체(分節體) 형태가 붕괴되면서 연속체(連續體)로 발전하여 가사(歌辭) 형태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여말(麗末)의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지었다는 <서왕가(西往歌)>는 가사의 원초적인 형태를 거의 갖추고 있다. 따라서 가사가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던 시기에는 한문체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인 듯하다.

   거기에 국어체를 혼용하는 것이 차츰 익숙해지면서 아름다운 우리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게 되자, 그 형태가 완성되고 발전해 간 것이라 추측된다. <상춘곡>으로 형식이 정착된 가사문학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에 와서 대성된다. 내(內)․외(外) 해금강과 관동팔경을 두루 유람하고 그 도정(途程)ㆍ산수(山水)ㆍ풍경ㆍ고사(故事)ㆍ풍속 등을 유려한 필치로 묘사한 <관동별고(關東別曲)>, 군신이합(君臣離合)을 남녀애증(男女愛憎)에 비하여 표현한 <사미인곡(思美人曲)>, 그외 <성산별곡(星山別曲)> <속미인곡(續美人曲)> 등은 모두 송강의 걸작이고, 가사문학의 백미들이다. 가사문학은 송강에 와서야 종래의 한문에만 의지해 오던 산문문학의 영역을 한글의 영역에까지 확대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가사문학은 자연에 주관적 자아를 몰입시키는 음풍영월적인 귀족문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국문학의 영역이 자연미의 발견으로 과거의 제한된 틀을 벗어나게 되었다는 점과 우리글이 국문학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허강의 <서호별곡(西湖別曲)>, 백광홍(白光弘)의 <관서별곡(關西別曲)>, 송순(宋純)의 <면앙정가(俛仰亭歌)>, 이시(李視)의 <백상루별곡(百祥樓別曲)>, 허난설헌의 <봉선화가>, 차천로(車天輅)의 <강촌별곡(江村別曲)> 등 작품도 모두 작가가 벼슬을 버리고 강호에 들아가 유유자적하는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자연의 미를 감상하고 찬탄하던 가사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차차 인간의 실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온다. 이러한 내용상의 변천을 겪는 과도기상의 대표적인 작가로 박인로(朴仁老)가 있다. 그는 <태평사(太平詞)> <사제곡(莎提曲)> <누항사(陋巷詞)> <선상탄(船上歎)> <독락당(獨樂堂)> <노계가(蘆溪歌)> <영남가(嶺南歌)> 등의 작품을 남겼다. 이 중 <산상탄>은 <태평사>와 아울러 임진왜란의 종군생활에서 제작된 가사이다. 값싼 감상에 흐르지 않고 배의 유래에서 시작하여 우국단심(憂國丹心)을 피력한 이 가사는 전쟁의 비애를 읊어 평화를 추구함과 함께 귀족이 아니라, 일반 수군(水軍)을 위로하기 위해 제작된 가사라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조선 봉건제도 아래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부녀자의 슬픔을 표현한 허균(許筠)의 첩 무옥(巫玉)이 지은 <규원가(閨怨歌)>도 작가가 서민층으로 확대되는 과도기적인 성격을 드러내 준다. 그외 작품은 전하지 않으나 이 무렵의 가사 작가로 이원익(李元翼)ㆍ이수광ㆍ임유휴(任有後)의 이름이 전한다.

   가사문학은 영정(英正)시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변화한다. 주관적 서정성에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객관적인 사실성이 도입된다. 즉 <농가월령가> <경가(耕歌)> <권농가(勸農歌)> <농부가> 등 실제 생활을 다루는 작품이 나타난다. 또한 이에 따라 가사문학이 대중화된다. 작가의 범위가 서민층에까지 깊이 침투하고 수많은 내방가사(內房歌辭)가 쏟아져 나온다. 귀족 관료들의 독점적인 가사문학이 서민들을 기반으로 사실적인 수사(修辭)와 실제 생활적인 내용으로 변전(變轉)됨에 따라 내용의 다양화도 이루어졌다. <금강별곡(金剛別曲)> <속관동별곡(屬關東別曲)> <매호별곡(梅湖別曲)> 등 풍경ㆍ사적을 읊은 것, 여행 노정을 기록한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연행가(燕行歌)> 등 기행가사(紀行歌辭), <북천가(北遷歌)><북관곡(北關曲)> <만언사> 등 유배가사(流配歌辭), <계녀가(誡女歌)> <백발가(白髮歌)> 등 교훈ㆍ권선(勸善)ㆍ도덕(道德)적인 것, <상사별곡(相思別曲)> <춘면곡(春眠曲)>  등 연정(戀情)을 읊은 것, <하류가(花柳歌)> <유산가(遊山歌)> 등 유흥을 읊은 것, <사친가(思親歌)> <관동해가(關東海歌)> 등 사친(事親)ㆍ사우(思友)ㆍ사향(思鄕)을 읊은 것, <노처녀가> <과부가(寡婦歌)> <원한가(怨恨歌)> 등 규원(閨怨)을 읊은 것, <금릉별곡(金陵別曲)> 등 선치(善治)ㆍ송덕(頌德)을 읊은 것, <용담가(龍潭歌)> <귀산곡(歸山曲)> 등 종교적인 가사 등 그 제재(製材)가 인간생활의 것의 모든 분야에 미치고 있다.

   또 이 시기에 오면 가사의 대중화에 따라 창(唱)으로 구전됨으로써 작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많고, 가탁(假託)ㆍ]위작(僞作)ㆍ개찬(改撰)된 것이 많으며, 특히 여류 작품에는 익명이 많다.

   형식상으로도 시가의 영역을 일탈(逸脫)한 파격적인 작품들이 등장한다. <연행가> <북천가> <한양가> 등의 매우 긴 작품은 물론, 대중화된 잡가(雜歌)가 유행한다. 즉 종래의 국문학이 시가(詩歌) 한 방면에 치중, 한문으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산문문학이 가사의 발달과 대중화로 시가문학 이외에 수록(隨錄)ㆍ일기문ㆍ기행문에까지도 우리말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가사문학은 초기의 주관적 서정성과 귀족들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사실성(事實性)이 도입되고, 서민들의 생활감정과 의식 형태를 기초로 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을 수용, 대중화되면서 산문정신의 난숙과 함께 갑오경장 이후 새로 일어나는 신문학으로 발전하는 데 하나의 교량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하게 된다. (문원각: <한국문학대사전>)

【발생과 특징】

   가사는 시조와 함께 조선 전기(前期)의 대표적인 문학 양식이다. 시조가 단가(短歌)임에 대하여 가사는 장가(長歌)이며, 시조가 서정적인 데 대하여 가사는 대체로 서사적 시가(詩歌)였다. 가사의 발생에 대하여는 아직 밝혀져야 할 문제가 많으나, 대체로 고려속요(高麗俗謠)와 강기체가(景幾體歌)에서 발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가사의 특징은 외형적으로는 운문으로 되어 있으나, 내용은 오늘의 수필과 같은 것이어서 산문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가사를 산문정신이 가미된 운문이라고도 하고, 산문적 시이며, 시적 산문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1) 가사(歌辭)는 4음보의 연속체 시가(詩歌)다. 한 음보를 이루는 음절수는 3 내지 4이며. 행수(行數)에는 제한이 없다. 한 작품의 최종행(最終行)은 시조의 종장과 유사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데, 전자(前者)를 정격(正格), 후자(後者)를 변격(變格)이라 한다.

   (2) 가사(歌辭)의 효시에 대하여는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이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었으나, 고려말의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서왕가(西往歌)>라는 설도 있다.

   (3) 가사(歌辭)는 내용에 따라 은일가사(隱逸歌辭)ㆍ유배가사(流配歌辭)ㆍ기행가사(紀行歌辭)ㆍ도덕가사(道德歌辭)ㆍ전쟁가사(戰爭歌辭)ㆍ포교가사(布敎歌辭ㆍ내방가사(內房歌辭)등으로 구분된다.

   (4) 가사(歌辭)는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에서 시작하여 송순(宋純)의 <면앙정가(俛仰亭歌)>를 거쳐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에 이르러 절정을 보인 뒤, 조선 후기 박인로(朴仁老)의 작품을 지나면서 급속히 산문화ㆍ장편화(長篇化)되어 갔다. (최장수: <고전문학>)

【기원】 

  “별곡이 붕괴되면서 이루어졌다” - 정병욱

  “<용비어천가> 등 악장에서 이루어졌다.” - 김사엽

【작가】 귀족층

【형식】 3ㆍ4조, 4ㆍ4조의 연속체(連續體), 4음보 중심(산문과 운문 혼합 형식)

(1) 정형 가사 : 1행이 내외 2句, 3ㆍ4조, 4음보, 연속체. 말행(末行)이 시조 종장 형식. 임진왜란 전의 전기, 양반, 사대부가 주률 이루었다.

(2) 변형 가사 : 1행이 내외 2구, 4ㆍ4조, 4음보, 연속체가 끝까지 계속됨. 임진왜란 후의 후기. 평민 가사 및 내방가사(규방가사)

【내용】애초에는 귀족 계급에 의해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충군사상이나 자연 예찬 등의 작품이 지어졌으나, 후기에 오면서 점차 대중화되고 현실화되어 내용도 신변잡기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생활 주변의 일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주는 등, 실학사상을 기반으로 수필적 특성을 갖기에 이르렀다.

 1. 서정적인 것    2. 서사적(敍事的)인 것    3. 교시적(敎示的)인 것

【계보】 향가, 한문학 → 경기체가 → 가사 → 창가 가사 → 신체시

【효시】 조선 성종 때 정극인 : <상춘곡>

【역사적 단계】

(1) 조선 전기의 양반 가사 : 안빈낙도하는 군자의 미덕(자연), 군신 사이의 충의 이념(남녀․애정에 비유)  - 정극인, 정철, 박인로

(2) 조선 후기의 평민 가사 : 교훈, 기행, 유배, 신세 등 생활의 구체적 내용. 내방가사가 영남지방 부녀자들에 의해 예(禮)와 현모양처의 도리 등을 읊었다. 규방문학으로 희로애락을 읊음.

(3) 개화기 가사 : 최제우의 <용담유사(龍潭遺詞)>에서 비롯. 고민, 우국(憂國)의 정.

【종류】

 1. 기행 가사 : <관동별곡>, <일동장유가>, <연행가>

 2. 유배 가사 : <만분가>, <북천가>

 3. 내방 가사 : <규원가>, <봉선화가>, <계녀사>

 4. 평민 가사 : <상사별곡>, <권주가>, <행군가>

【작품】

<서왕가(西往歌)> : 고려말 나옹화상 작. 세사에 집착하는 중생에게 불교귀의 권장. 가사의 효시라는 설이 있으나, 후세의 의작(擬作)이라는 설도 있어 확실하지 않음.

<상춘곡(賞春曲)> : 조선 성종 때 정극인(丁克仁) 작. 태인(泰仁)에 은거하면서 춘경(春景)을 노래함, 가사의 효시.

<매창월가(梅窓月歌)> : 조선 성종 때 이인형(李仁亨) 작. 시골에서 한가하게 자연을 즐기는 사대부의 풍류생활을 노래함.

<만분가(萬憤歌)> : 조선 연산군 4년(1498) 조위(曺偉) 작. 무오사화(1498년) 때 유배지인 전남 순천(順天)에서 지은 유배가사(流配歌辭). 유배가사의 효시.

<면앙정가(俛仰亭歌)> : 조선 중종 19년(1524) 송순(宋純) 작. 향리인 전라도 담양의 면앙정에서 자연미를 노래.

<선반가(宣飯歌)> : 조선 중종 22(1527) 권씨(權氏) 작. 이현보(李賢輔)가 부승지가 되어 자당을 뵈러 올 때 어머니가 지어 비아(婢兒)들에게 가르쳐 영접의 연에서 부르게 한 것. 내방가사(內房歌辭)의 효시.

<역대가(歷代歌)> : 조선 중종 때 진복창(陳復昌) 작. 역대 제왕과 성현의 사적을 찬양함.

<관서별곡(關西別曲)> : 명종 때 백광홍 작. 관서지방의 자연 풍물을 노래함

<권선지로가(勸善指路歌) :  조선 명종 때 조식(曺植) 작. 세속을 근심하고 후학에게 도덕을 가르치는 노래. <권의지로사(勸義指路辭)>라고도 함.

<수월정가(水月亭歌)> : 조선 명종 때 송인(宋寅) 작. 내용은 전하지 않음.

<남정가(南征歌)> : 조선 명종 10(1555) 양사준(楊士俊) 작. 을묘왜변(1555) 때 남정군(南征軍)으로 왜적을 물리친 전쟁가사(戰爭歌辭). 작가를 양사언으로 보와 왔으나 잘못임이 밝혀짐.

<미인곡(美人曲)> : 조선 명종 때 양사준(楊士俊) 작. 한 여인의 미를 노래함.

<관서별곡(關西別曲)> : 조선 명종 11(1556) 백광홍(白光弘) 작. 관서의 자연 경치를 노래한 것. <기성별곡(箕成別曲>과 향산별곡(香山別曲)>으로 되어 있음. 송강의 <관동별곡>에 영향을 줌.

<환산별곡(還山別曲)> : 조선 명종 때 이황(李滉) 작. 세속을 근심하고 전원에서 유유자적하는 생활을 노래함.

<목동문답가(牧童問答歌)> : 조선 명종 때 이황(李滉) 작. 부귀영화를 버리고 초야에서 소나 먹이며 살겠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노래함.

<자경별곡(自警別曲)> : 조선 선조 9(1576) 이이(李珥) 작. 향풍(鄕風)을 바로잡기 위한 도덕가사(道德歌辭).

<낙빈가(樂貧歌)> : 조선 선조 때 이이(李珥) 작. 은퇴기에 안빈낙도하는 생활 신념을 노래한 은일가사(隱逸歌辭).

<낙지가(樂志歌): : 조선 선조 때 이이(李珥) 작.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한 은일가사.

<도산가(陶山歌)> : 조선 선조 25(1592) 고응척(高應陟) 작. 작자가 임진왜란을 피하여 도산(陶山)의 유곡(幽谷)에 은거하는 생활을 노래한 은일가사.

<성산별곡(星山別曲)> : 조선 명종 15(1560) 정철(鄭澈) 작. 전라도 담양군 성산의 자연미 노래함.

<관동별곡(關東別曲)> : 조선 선조 13(1580 정철(鄭澈) 작.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여 그곳의 자연 풍치를 노래한 기행가사(紀行歌辭).

<사미인곡(思美人曲)> : 조선 선조 때 정철(鄭澈) 작. 창평에 귀양가서 임을 그리는 저에 비겨 충신연모(忠信戀慕)의 뜻을 노래함.

<속미인곡(續美人曲)> : 조선 선조 때 정철(鄭澈) 작. <시미인곡>의 속편. 두 여인의 대화체 형식으로 된 연군지사(戀君之詞).

<서호별곡(西湖別曲)> : 조선 선조 때 허강(許橿) 작. 한강의 풍치를 노래함.

<백상루별곡(百祥樓別曲)> : 조선 선조 때 이현(李俔) 작. 백상루 부근의 풍치와 선치안면(善治安民)의 모습을 노래함.

<강촌별곡(江村別曲)> : 조선 선조 때 차천로(車天輅) 작. 전원생활의 한가함

<규원가(閨怨歌)> : 조선 선조 때 허난설헌(許蘭雪軒) 작. 남편에 대한 원망과 여자의 설움을 노래한 내방가사. 허균의 첩 무옥(巫玉)이 지었다고도 함. 일명 <원부가(怨夫歌)>.

 

 

[출처] 가사(歌辭)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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