楷書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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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서의 기원
해서는 書體의 하나로써 올바르게는 楷書體라 해야 한다. 문자가 창시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5천년 전이라 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랜 것으로 殷代(은대)의 甲骨文字(갑골문자), 周代(주대)의 鍾鼎文字(종정문자)가 있다. 어느것이나 소박한 繪文字(회문자)이다. 秦代(진대)에 大篆(대전), 소전이 만들어지고 소전은 다시 略화 되어 예서가 되고 이것이 漢代(한대)에 들어서서는 速書에 적합하도록 近隸(근예)가 생겼다. 근예가 다시 간략화외어 소위 해서체가 되었다고 한다. 한대의 예서가 쇠퇴하여 삼국 시대로 들어서면서 찬보자비와 찬룡안비를 필두로 비로소 해서가 된다.

2. 해서의 특징
점획이나 형이 간결하고 분명한 소위 間架結構(간가결구)가 정돈된 서체이다. 따라서 가장 쓰기 쉽고, 읽기 쉬우며 실용서로서 중심적 존재가 되었다. 해서는 이 서체 본래의 성격에서 스스로 정제, 엄정, 침착, 강건이라는 방향의 아름다움을 특질로 하고 있다. 해서의 점획은 하나하나가 명료하고 더구나 직선이므로 이것을 쓸때에 있어서도 현대 건축처럼 일획 일획을 차례차례로 쌓아나가는 것이다. 더구나 그 쌓아나가는 방식은 수평, 평형, 수직, 등분할 등의 원리에 의해 엄격히 해야 하는 것으로 그 결과도 엄정하고 더욱이 정제한 미가 표현되고, 침착 부동의 느낌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 한점 한획이 직선이므로 운필에 있어 한점 한획에 起筆(기필), 送筆(송필), 終筆(종필)의 삼요소를 뜻대로 가할 수 있는 일이 가능하고, 따라서 沈靜(침정) 강건한, 힘에 찬 작품이 많다.

3. 해서의 書風(서풍)
해서는 정제의 아름다움을 각기 개성적으로 나타내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수종을 연대별로 들어보면 오랜 것일수록 소박하고 대범하며, 시대가 새로워짐에 따라 실용성이 강조되어 평행, 수직, 수평, 등분할의 원리가 엄정하게 구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해서의 성립을 나타내는 유력한 자료는, 한대의 현존된 碑인 개통보사도석각, 石門誦(석문송), 禮器碑(예기비), 孔宙碑(공주비), 西狹頌(서협송), 曹全碑(조전비) 중에서, 공주비에 나타난 漢隸(한예)의 특징인 파책이, 삼국시대의 대표작인 谷朗碑(곡랑비-서기 272)에서는 한예 특유의 파세가 아주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서체적 구조는 아직도 남아 있어서, 한자의 형이 4각이며 점획은 수평, 등분할을 엄격히 지키고 점획의 굵기도 일정해 있다. 아리의 몇가지에 대해 알아보면서 해서의 서풍에 대해 좀더 알아보기로 하겠다.

4. 해서의 종류
1. 찬보자비와 찬룡안비
이 두비(이를 이찬이라 부른다.)를 놓고 과연 해서라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예서인가하는 문제는 아직도 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글자의 기필법(起筆法)이 해서와 같으므로 해서라고 말함이 옳을 것이다. 찬보자비는 중국의 운남서 변경에서 발견된 것으로 동진(왕희 원년 서기 405년)때 세워진 것이나 필자는 알 수 없다. 이와 풍격이 같은 것으로 458년에 세워진 찬룡안비가 있는데 이 두비는 해서의 시초가 되었다.

2. 九成宮醴泉名(구성궁예천명)
해서는 書法(서법)의 기본적인 結構(결구)와 用筆(용필)을 갖추고 있어서 각 서체의 서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중에서도 구성궁은 교본으로서 이상적이다. 字形(자형)이 크고 정규적이며 端嚴(단엄)하여 해서로서의 기본조건을 모두다 충족시키고 있다. 또 이것은 구양순의 대표작이며 背勢(배세)구성의 대표적 작품이기도 하다.
구성궁이란 唐帝室(당제실)의 離宮(이궁)의 이름으로서 挾西省(협서성)의 麟遊(린유), 즉 현재의 붕양부산중에 있었다. 이 離宮(이궁)은 隋(수)의 文帝(문제)가 조영한 것으로 隋(수)가 가꿔온 후에는 한동안 황폐되었던 것을 당태종이 개축을 하고 舊名(구명)인 仁壽宮(인수궁)을 구성궁이라고 고쳐 불렀다. 그러나 지세가 높은 탓인지 물이 결핍된 흠이 있었다. 언젠가 태종이 황후와 함께 궁내를 산책하는데, 우연히도 아지랭이 피는 곳이 있어 그곳을 파 보았더니 샘물이 솟아 나왔다. 그래서, 실로 당 제실의 덕에 따른 一大祥瑞(일대상서)라 하여 이 사실을 적어 碑에 刻(각)을 하게 된 것이다. 選文(선문)은 (위징)에게 명하고 구양순에게 명령하여 쓰게 한 것이 바로 九成宮醴泉名(구성궁예천명)이다. 구양순은 隋(수) 그리고 당나라 초엽에 걸친 서예가로 新舊(신구)에는 그의 사적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구양순(557-641)- 字는 信本(신본), 潭州(담주)의 臨湘(임상)사람. 구양순은 얼굴이 아주 흉측하게 못생겼으나 두뇌만은 비상하게 총명하여 책을 볼때면 언제나 네댓줄을 한눈에 내리 읽었다. 널리 학문을 닦아 수나라의 太常博士(태상박사)라는 벼슬을 살았다.
구양순은 처음에는 왕희지의 글씨를 배웠으나 후에 서풍이 차츰차츰 변하여 필력이 힘차기로는 당대에 따를 사람이 없었다. 구양순은 隋代에 자라난 사람이다. 書學을 깊이 연구하여 젊은 시절에는 왕희지의 <黃庭經(황정경)>을 공부한 적이 있다. 더욱 貞觀初(정관초)에는 <蘭亭敍(난정서)>마저 배웠다. 따라서 結體(결체)가 晉法(진법)답게 건강하고 힘차고 또 잘 정돈되어 있다. 그것은 南派(남파)의 특징이다. 그러나 구양순의 준엄하고 세찬 점, 즉 붓을 댈 때 면도날을 베고 도끼날로 찍듯하는 그 명쾌한 날카로운 맛은 분명히 北派(북파)의 영향이다. 그가 쓴 房彦謙(방언겸)의 碑(비)는 그가 북파의 書家(서가)임을 잘 보여준다. 그 해서와 예서의 필법을 범벅한 것 같은 서체, 칼을 꺾듯한 落筆法(낙필법)등이 그것을 증명한다. 점과 획의 符仰向背(부앙향배). 分合聚散(분합취산)이 힘의 균현에 맞고, 빽빽한 데, 빈 곳, 곧은 데, 흰 곳이 적절히 놓여져서 변화가 다채로워졌다. 그의 글씨는 복잡하든 혹은 단순하든지간에 견실하고 차분하다. 마치 몸을 굽히고 빨리 달리는 모습이 안정되고 아름답게 보이며 또 결코 넘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구양순書의 결체의 멋진 묘미가 바로 이런데 있다. 결국 그의 특징은 왕희지 父子의 기법에 北碑의 꿋꿋함, 그리고 漢隸, 章草(예서를 간략하게 쓴 초서의 別體) 등의 갖가지 요소를 섭취하고 과감하게 새로운 양식을 창조해 낸 데 있다. 한가지 양식에 사로 잡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쓴 글씨는 모나면서도 붓자국이 둥글둥글하고 온화하면서도 힘차다. 그는 이렇듯 南北 쌍방의 좋은 점을 겸해 가졌고,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書法藝術에 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도 할 수 있다.
九成宮醴泉名(76세의 書)은 황제의 명령에 의해 쓴 작품이다. 구양순이 특히 심혼을 기울여 휘호한 만큼 用筆 結構에 추호의 어김이 없다. 그 심경은 높고 품경은 아름답다. 구양순書의 碑중에서는 字體도 비교적 크고 字形도 가장 잘 정리 되어 있다. 물론 다른 碑들도 아름답게 짜여 있기는 마찬가지나, 字形이 背勢(배세)를 따르는 內逼法(내핍법)을 좇았기 때문에 점이나 획은 모두 가운데를 향해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 碑는 결체에 여유가 있고 용필도 자유자재 발휘되어 있다. 가장 빼어난 점은, 꺾거나 휘는 데서 붓이 나가다가 멈추고 그대로 자연스럽게 거둔다. 그러면 모가 선 것 같으면서도 모나지 않고 둥근 듯하면서도 둥글지 않은, 즉 黃庭(황정)이나 樂毅(락의)에서 보는 것같은 筆意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碑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수많은 拓本(탁본)을 떴기 때문에, 어지간히 좋은 탁본이 아니면 이런 미묘한 변화를 좀처럼 맛볼 수가 없게 됐다.

3. 顔勤禮碑(안근례비)
해서의 창안자인 顔眞卿(안진경)은 중국 산동성의 사람으로 호는 應方(응방)이고 字는 淸臣이다. 그리고 顔勤禮(안근례)는 안진경의 증조부로서 字는 敬이다. 안진경은 貞元 元年(정원 원년 785) 77세때 사망하였는데, 晩年에 이르러서는 그 서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고 心手가 다함께 丹熟(단숙)했을 것이니만큼 그러한 것을 보고자 하는 기대는 컸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半世紀(반세기) 前인 民國 11년(1922)에 長安의 舊藩(구번)해고, 즉 布政使(포정사) 소속의 창고 뒤 쪽 땅속에서 顔碑 一基가 발견되었다. 이것이 안근례비이다. 안진경은 왕희지 이래의 서예와는 달리 아주 다른 용필법을 가지고 그 독특한 서풍을 형성하였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正鋒(정봉)의 전면적 채용이다. 晉(진) 이래 唐(당)에 이르는 용필법을 指掌法(지장법)이라고 해서, 팔만 쓰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도 움직이고 붓끝을 사방 팔방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이야말로 변화에 풍부한 필법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안진경은 지장법에 의하지 않고 정봉, 즉 수직으로 붓을 세운 채로 쓴 부완법을 사용했다. 그의 글씨는 藏鋒(장봉: 鋒芒(봉망)을 획 안쪽으로 하여 밖으로 노출되지 않게 하는 형식) 이라고 한다. 장봉이라는 것은 보통 붓끝이 획의 중심을 지나간 것이라고 풀이되고 있으나 正鋒(정봉)으로 쓰면 자연히 안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지장법에서도 장봉을 원칙으로 한다. 장봉을 정봉으로 쓰려는 경우에는 直上으로부터 압력으로 힘을 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위부터 힘을 가감하는 것이나 운필의 減速(감속)등에서 안진경의 독특한 필법이 생겨나는 셈이다.

4. 안탑성교서
저수량 54세 때의 글씨이다. 구양순의 글이 정사각형이며 무표정한 배세미인데 반해 편평하며 銳利多變(예리다변)한 향세미의 대표이다. 마른선에 정묘한데다가 골격의 강렬함과 탄력이 있는 아름다움을 특질로 하고 있다. 정문공비, 구성궁예천명, 공자묘당 등의 온화한 정형에 대하여 동적인 구성법을 취해 해법에 일분야를 차지했다. 성교서란 정관 212년 (648) 8월, 태종이 현장, 삼장법사의 청에 응하여 그 新譯(신역)의 불전에 대하여 쓴 서문으로 불교원리의 심원한 것, 현장의 비범한 재능, 노력을 칭찬한 것이다.

5. 마고선단기(麻姑仙壇記)
당대의 서풍은 왕희지 글의 전통에서 태어난 것이다. 따라서 우세남의 공자묘당비나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이나 또 저수량의 안탑성교서나, 정제된 즉 잘 정돈된 귀족적 풍격이 강한 데가 있다. 이에 반하여 안진경의 글씨는 씩씩한 힘, 감동과 기백이 나타나 강쾌한 것으로 실로 서도사상에 있어 혁신적 존재이다. 마고선단기에는 大字, 中字와 小字의 세 종이 있으나 여기에 든 것은 대자로 안진경(62세) 大曆(대력) 6년작으로 女仙麻姑(여선마고)에 관한 기술이다. 마고선단기에서 비류가 없는 강직한 그의 성격과 풍부한 창조력을 느끼게 한다.

6. 장맹룡비(張猛龍碑)
북위 정광 3년(522년)에 건립된 것으로, 필자는 알 수 없고, 지금은 곡부(曲阜)에 있는 孔子의 묘소안에 모두 있다. 방필법(方筆法)의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전문 26행에 매행 46자로 되어있다. 그 필획이 방준경리(方峻勁利)하여 운필이 엄근(嚴謹)하며 결구에 있어서는 평정(平正)속에 곡(曲)함이 있고 풍격은 웅강무밀(雄强茂密)하다라고 말 할 정도로 힘이 있고 엄정한 글씨이다.


7. 고정비(高貞碑)
북위 정광 4년(523)의 글씨로써 필자는 미상이며 청 건륭때에 산동에서 출토되었다. 송덕비(頌德碑)이며, 방필로써 점획이 날카롭고 모가 나며 힘 있는 것이 북비의 정방한 아름다움을 특구(特具)하고 있다.

8. 조상기(造像記)
조상기란 어떤 건축물의 건축과정을 샅샅이 기록한 것으로 용문석굴(龍門石窟)의 것이 가장 유명하며 용문 50품이란 말에서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이 그 수효와 형태가 매우 방대하다.
1) 우궐조상기(牛厥造像記) : 용문조상의 하나로써 북위태화 19년(495)때의 작품이다. 자형은 편평(扁平)하며 특히 어깨부분의 전철에서 이곡절을 이룬 것이 특징이다.
2) 시평공조상기(始平公造像記) : 북위(서기498)때에 양각으로 새겨진 것으로 필획이 방준능려(方峻稜廬)하여 마치 칼로벤 듯한 풍격이 중후하다. 청의 조지겸이 애호한 것으로 유명하다.

9. 석문명(石門銘)
자연석에 새긴 것으로 북위 영평 4년(509) 왕원(王遠)의 글씨이다. 필획이 운원(運圓)하고 결체는 횡편(橫扁)하면서 기울어 있는데 자유분방한 면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돈되어 있어 엉성하지 않은 느낌은 높이 사야할 것이다. 그래서 康有爲(강유위)는 '飛逸渾禾宗之宗(비일혼화종지종)'으로써 神品으로 평하였으며 梁啓超(량계초)는 '可賞玩不可學(하상완불가학)'이라 평한 훌륭한 작품이다.

10. 정문공비(鄭文公碑)
이 비는 북위에서 높은 벼슬을 지냈던 정희의 셋째아들 정도소(鄭道昭)의 글씨이다. 도소는 정문공비 이외에도 '雲峯山論經書詩', ' 登雲峯山海童詩', '夫柱山東湛石室銘', '白駒谷題名' 등 많은 비가 있는데 그것의 대부분은 마애비(자연석을 갈아서 만든 비문)이다. 서법은 원필로써 전서나 장서(초기의 草書)의 서법과 마찬가지로 붓끝을 비교적 가운데에 두고 있어 둥그스름한 맛이 풍기는 용필법이다. 이 비는 오랫동안 그 존재가 잊혀졌다가 청의 원운(阮云)이 탁본을 소개하고 포세신(包世臣)이 추상(推賞)한 이후 유명해져서 북위書家의 대표적 이물로 인식되었다. 포세신이 '篆勢 分韻 草情이 모두 갖춰져 있다'라고 격찬한 바와 같이 원필이 있고 방필이 있으며 곡이 있고, 직이 있으며 느슨한데가 있고, 급한데가 있어 힘있고 율동이 풍부하여 대범하고 정취가 있어 강경하고 자미(姿媚)하다.

11. 묘지명(墓誌銘)
석판(石版)이 지상에 세워지면 묘비이고 장사지낼 때 묘중에 들어가면 묘지(墓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토되었을 때 완호(完好)한 것이 많다. 묘지의 서체는 蘊藉姸華(온자연화)한 것이 특징인데 비각이나 조상기와는 다른 특색이 있다. 묘지의 대표적인 것은 방준(方峻)한 원우(元羽)와 원유(圓柔)한 장흑녀(張黑女)가 있다.
1) 원우묘지명(元羽墓誌銘) : 서기 501년에 새겨졌으나, 1918년에 출토되었다. 왕릉의 것으로 각(刻)도 정교한 것이 걸작으로 평가된다.
2) 장흑녀 묘지명(張黑女墓誌銘) : 서기 351년의 작품으로 원석은 지금 없어지고 1825년 하소기가 산동에서 구탁본을 구하였는데 이미 전표(剪標 : 가위로 잘라 책을 만듦)되어 있었으며 행관(行款 : 행서로 낙관한 것)도 불분명하였다. 장현(張玄)묘지명이라고 하는 특징이 있는 이 묘지는 운필에 방필과 장로(藏露)가 어우러져 있고, 결체는 납작한 편이다.

 

<書藝技法>

 - 대만 서예가 杜忠誥(두충고) 저, 대만사범대학 출신 정철재 역

 

서예의 精髓는 ‘붓놀림(用筆, 運筆)’에 있다.

 

 * 비유

1. 맹자 권7 離婁篇(이루편) 공수자라는 재주 있는 사람 - 規矩(규구, 規는 원을 그리는 제구, 矩는 방형을 그리는 자)가 있어야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다.

2. 왕 - 王道가 있어야 王道政治를 할 수 있다.

3. 서예가 - 훌륭한 붓이 있어야 명작을 낼 수 있다.

 

옛날에는 글씨를 연습할 종이가 비쌌으므로 무명에 글씨를 썼다가, 이를 빨아서 다시 글씨를 연습하였다. 그리하여 글씨를 많이 쓰는 것을 비유하여 ‘무명이 얇아지도록 썼다.’ 라고 한다.

 

예술 = 기교 + 형이상학적인 心靈과 미적인 감각

 

 * 楷書 쓰는 법

기본이 되는 점과 획의 붓 움직이는 요령

(1) 橫(가로긋기)의 붓 움직이는 요령

  ① 藏鋒(붓 끝을 숨기는 것)

  ② 頓筆(돈필, 붓을 멈춤)

  ③ 逆鋒(붓을 거꾸로 미는 것)

  ④ 勒筆(늑필, 묶을 늑, 정돈된 붓)

  ⑤ 折筆(절필)

(2) 竪(더벅머리 수, 세로획; ⽴-총13획; shù, 豎의 속자) - 懸針과 垂露

(3) 撇(닦을 별; ⼿-총15획; piē,pie, 왼쪽으로 삐침)

(4) 捺(누를 날; ⼿-총11획; na, 오른쪽으로 삐침, 찍다, 파임)

(5) 挑(휠 도; ⼿-총9획; tiāo,tiǎo, 위로 끌어올리기, 돋우다. 의욕을 돋우다)

    * 撇의 반대

(6) 右彎鉤(오른쪽으로 구부러진 갈고리, 儿 乙)

(7) 豎鉤(수구, 세로로 긋는 획의 갈로리, 刂)

(8) 斜鉤(사구, 비스듬한 갈고리, 戈 弋 代)

(9) 點을 찍을 때 움직이는 요령(直點, 左點, 右點)

 

結構(결구, 글자를 짜 모으는 요령)

(1) 均間(균간, 고른 간격) - 具, 勿, 安, 求

(2) 避就(피취, 피하는 양보하기, 서로 의지하여 붙기) - 鳩, 旭

(3) 覆載(복재, 덮는 것과 싣는 것) - 官, 雷, 圭, 昌, 要

(4) 向背(마주 봄과 등짐) - 妙, 幼

(5) 脈絡(점획의 움직이는 길) - 之, 淸

(6) 接筆(이어 쓰기) - 떨어져 있는 같기도 하고 이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① 左肩(허접과 실접이 있다) - 口

  ② 右肩(오른쪽 어깨) - ㄱ

  ③ 左下角(왼편 아래의 모서리) - ㄴ

  ④ 右下角(오른편 아래의 모서리) - 口

(7) 變化 - 三, 食(두 개의 파임 중 하나는 長點 처리), 群과 羣, 峯과 峰, 嘆 과 歎

(8) 增減 - 辟(임금 벽; bì), 京, 達, 身, 節, 使, 得(淂), 懷, 陰, 學

(9) 重心 - 主, 同, 그러나 乃, 母

출처 : 임계전한숙 서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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