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화 / 도종환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 자락 덮어도

매화 한 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진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 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속 홍매화 한 송이

 

꽃잎 / 도종환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운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지금 내가

외로워서가 아니다

 

피었다 저 혼자 지는

오늘 흙에 누운

저 꽃잎 때문도 아니다

 

형언할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시작도 알지 못할 곳에서 와서

끝 모르게 흘러가는

존재의 저 외로운 나부낌

 

아득하고

아득하여

 

무엇이 성공인가 / 류시화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라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만일 / 루디야드 키플링

 

만일 네가 모든 걸 잃었고 모두가 너를 비난할 때

너 자신이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체하지 않고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네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너의 전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몸을 굽히고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한번쯤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가슴과 어깨와 머리가 널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해도

강한 의지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만일 군중과 이야기하면서도 너 자신의 덕을 지킬 수 있고

왕과 함께 걸으면서도 상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적이든 친구든 너를 해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되

그들로 하여금

너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두사람 / 아파치인디언 결혼축시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행복해 진다는 것 / 헤르만 헷세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당신은 / 폴 발레리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머지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 / 안도현

 

길가에 민들레 한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 때가 / 이어령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노엽고 외로운 때가 있을 겁니다.

 

내 신발 옆에 벗어놓았던 작은 신발들

내 편지봉투에 적은 수신인들의 이름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던 말소리들은

지금 모두

다 어디 있는가.

아니 정말 그런 것들이 있기라도 했었는가.

 

그런 때에는 연필 한 자루 잘 깍아

글을 씁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손톱에 대하여

문득 발견한 묵은 흉터에 대하여

떨어진 단추에 대하여

빗방울에 대하여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고독하는 것은 / 조병화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요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요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요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사랑 / 한용운

 

봄물보다 깊으니라

갈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단풍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사랑 한다는 것으로 / 서정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가을 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선물 / 나태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바위 /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

아예 애린에 물들지 않고

희로 (喜怒 )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億年 ) 비정 (非情 )의 함묵 (緘黙 )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遠雷 )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다른길은 없다 / 마르타 스목

 

자기 인생의 의미를 볼 수 없다면

지금 여기, 이 순간, 삶이 현재 위치로 오기까지

많은 빗나간 길들을 걸어 왔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영혼이 절벽을 올라왔음도 알아야 한다.

그 상처, 그 방황, 그 두려움을

그 삶의 불모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지치고 피곤한 발걸음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이처럼 성장하지도 못했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갖지 못했으리라.

그러므로 기억하라.

그 외의 다른 길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을.

자기가 지나온 그 길이

자신에게는 유일한 길이었음을.

우리들 여행자는

끝없는 삶의 길을 걸어간다.

인생의 진리를 깨달을 때까지

수많은 모퉁이를 돌아가야 한다.

들리지 않는가.

지금도 그 진리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삶은 끝이 없으며

우리는 영원 불멸한 존재들이라고.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인생 / 라이너 릴케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길을 걸아가는 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날려 오는

꽃잎의 선물을 받아들이듯

하루하루를 있는 그대로 살아가라.

아이는 흩어지는 꽃잎을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제 머리카락 속으로 기꺼이 날아 들어온 꽃잎

아이는 살며시 떼어내고

사랑스런 젊은 시절을 향해

더욱 새로운 꽃잎을 향해 두 손을 내민다.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어쩔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벽을 오른다
  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담쟁이는 서두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뼘이라도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덮을 때까지
바로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담쟁이  하나는 담쟁이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벽을 넘는다

 

그대앞에 봄이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 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백꽃 시모음 2  (0) 2018.01.10
동백꽃 시모음  (0) 2018.01.10
류시화 이해인 시모음  (0) 2017.11.30
조병화 김수영 시모음  (0) 2017.11.30
서정주 박인환 시모음  (0) 2017.11.3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