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 김용택시집[참 좋은 당신]-시와시학사
* 선운사 동백꽃 - 김윤자
사랑의 불밭이구나 수백년을 기다린 꽃의 화신이
오늘밤 정녕 너를 남겼구나 선운산 고봉으로 해는 넘어가도
삼천 그루 동백 꽃등불에 길이 밝으니
선운사 초입에서 대웅전 뒤켠 네가 선 산허리까지
먼 길이어도 님은 넘어지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 오시겠구나
해풍을 만나야 그리움 하나 피워 올리고
겨울강을 건너야 사랑의 심지 하나 돋우는 저 뽀얀 발목
누가 네 앞에서 봄을 짧다 하겠는가 이밤 바람도 잠들고
산도 눈감고 세월의 문이 닫히겠구나
* 선운사 동백꽃 - 김선주
선운사 동백꽃이 진다.
명치끝에 처억 내려 앉는다.
무쇠 칼날처럼 시퍼렇게 아리다.
그녀가 떠나가던 날도 이랬다.
천년을 두고 이렇게 아팠구나
뜨거운 눈물을 떨구었다.
무쇠 칼등처럼 무거웠다
세상 모든 것이 이렇게
아픔으로 제 발등을 덮는구나
* 선운사 동백꽃 - 유안진
무너지고 싶습니다.
녹아지고 싶습니다라고//여우바람으로 자맥질치는 불길//
미친 이 불길 잡아 달라고
눈비를 맞아봅니다만//
밤마다 고개 드는
죄를 죽입니다만//
눈서리가 매울수록
오히려 뜨거워만집니다//
마침내는 왈칵
각혈 쏟고 말았습니다. 부처님.
* 선운사 동백꽃 - 용혜원
선운사 뒤편 산비탈에는 소문 난 만큼이나 무성하게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고 많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가지가지마다 탐스런 열매라도 달린 듯
큼지막하게 피어나는 동백꽃을 바라보면
미칠 듯한 독한 사랑에 흠뻑 취한 것만 같았다
가슴 저린 한이 얼마나 크면
이 환장하도록 화창한 봄날에
피를 머금은 듯 피를 토한 듯이
보기에도 섬뜩하게 검붉게 검붉게 피어나고 있는가
* 선운사 동백꽃 - 박남준
선운사 동백꽃 보러 갔습니다
대웅전 뒷산 동백꽃 당당 멀었다 여겼는데요
도솔암 너머 마애불 앞 남으로 내린 한 동백 가지
선홍빛 수줍은 연지곤지 새색시로 피었습니다
휜 눈 밭에 울컥 각혈을 하듯 가슴도 철렁 떨어졌습니다그려
* 선운사 동백꽃 - 이산하
나비도 없고 벌도 없고 동박새뿐
그 동박새에게 마지막 씨를 남기고
흰 눈 위에 떨어진 한 치 흐트러짐 없이
통째로 툭 떨어진 선운사 붉은 동백꽃
떨어지지 않은 꽃보다 더 붉구나
* 선운사 동백꽃 - 오순택
선운사 동백꽃은
누나 입술같이 곱더라
고운 입술에 봄빛 듬뿍 물고
배시시 웃고 있더라
지난 겨울 싸락눈 먹고 자란
초록잎사귀가 저렇게 붉은 꽃 피웠겠지
꽃이 지면 어쩌지
붉은 동백꽃 똑똑 따며 봄이 가버리면 어쩌지
어디서 날아왔는지
꽁지 몽땅한 새 한 마리
떨어진 꽃잎을 쪼아먹고 있더라
* 동백 - 석여공
누가 첫 입술로 저 동백에 입맞춤 했나
누가 저 동백 못 잊게 해서
들어오시라고, 성큼 꽃 속으로 동백길 가자고
붉은 몸 열어 만지작거리게 했나
저 동백 누가 훔쳐 달아나 버려서
혼자라도 그리운가 아득히
동백을 보면 언제나 춘정은 몸살지게 살아
나 아직 쿵쿵 뛰는 가슴이어서
그대여 저 붉은 귀에다 소식 전하면
그 길에 누워서 죽어버려도 좋겠네
* 고사포 앞바다 - 김용택
사랑도 이만큼 붉으면 지리
선운사에 가서 동백꽃을 보고 온 사람아
그대가 그리워서
견딜 수 없을 때
붉게 터지는 것이
선운사 동백꽃이냐
그대가 보고 싶어
참다가 참다가 참을 수 없어서
뚝 떨어지는 것이
선운사의 동백꽃이더냐
변산 반도를 다 돌아다니다가
고사포 앞 바다 하얀 모래밭으로 달려와서
소리도 없이 잦아지는 파도야
수평선 끝에서 지금 떨어지는
붉은 저것이 시방
네 몸이냐
내 몸이냐
선운사의 동백꽃이다냐
* 동백꽃 그리움 - 김초혜
떨어져 누운 꽃은
나무의 꽃을 보고
나무의 꽃은
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
그대는 내가 되어라
나는 그대가 되리
* 꽃처럼 살려고 - 이생진
꽃피기 어려운 계절에 쉽게 피는 동백꽃이
나보고 쉽게 살라 하네
내가 쉽게 사는 길은
쉽게 벌어서 쉽게 먹는 일
어찌하여 동백은 저런 절벽에 뿌리 박고도
쉽게 먹고 쉽게 웃는가
저 웃음에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닌지
'쉽게 살려고 시를 썼는데 시도 어렵고 살기도 어렵네
동백은 무슨 재미로 저런 절벽에서 웃고 사는가
시를 배우지 말고 동백을 배울 일인데’
이런 산조(散調)를 써놓고
이젠 죽음이나 쉬웠으면 한다
* 동백 - 강은교
만약 내가 네게로 가서 문 두드리면,
내 몸에 숨은 봉우리 전부로 흐느끼면.
또는 어느 날 꿈 끝에 네가 내게로 와서
마른 이 살을 비추고 활활 우리 피어나면.
끝나기 전에 아, 모두 잠이기 전에.
* 동백꽃 - 김영탁
겨울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린 北風에
몸 내주며 시방 몸하고 있는
저 동백꽃
천 년, 천 번의 몸풀기!
긴 여정에서 돌아온 바람이
풀무질하면
상처에 길들여진 몸 그게 부끄러워
땅에 떨어지는 붉은
몸꽃
* 동백 - 송찬호
어쩌자고 저 사람들
배를 끌고 산으로 갈까요
홍어는 썩고 썩어
술은 벌써 동이 났는데
짜디짠 소금 가마를 싣고
벌거숭이 갯망둥이를 데리고
어쩌자고 저 사람들
거친 풀과 나무로 길을 엮으며
산으로 산으로 들까요
어느 바닷가
꽃 이름이 그랬던가요
꽃 보러 가는 길
산경으로 가는 길
사람들 울며 노래하며
산으로 노를 젓지요
홍어는 썩고 썩어
내륙의 봄도 벌써 갔는데
어쩌자고 저 사람들
산경 가자 할까요
길에서 주워 돌탑에 올린 돌 하나
그게 목 부러진 동백이었는데
* 동백이 활짝 - 송찬호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
허공으로의 네 발
허공에서의 갈기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물고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 동백이 지고 있네 - 송찬호
기어이 기어이 동백이 지고 있네
싸리비를 들고
연신 마당에 나서지만
떨어져 누운 붉은 빛이 이미
수백 근 넘어 보이네
벗이여, 이 볕 좋은 날
약술도 마다하고
저리 붉은 입술도 치워버리고
어디서 글을 읽고 있는가
이른 아침부터
한 동이씩 꽃을 퍼다 버리는
이 빗자루 경전 좀 읽어보게
* 검은머리 동백 - 송찬호
누가 검은머리 동백을 아시는지요
머리 우에 앉은뱅이 박새를
얹고 다니는 동백 말이지요
그 동백은 한번도
나무에 오르지 않았다지요
거친 땅을 돌아다니며
떨어져 뒹구는
노래가 되지 못한 새들을
그 자리에 올려놓는 거지요
이따금 파도가 밀려와
붉게 붉게 그를 때리고 가곤 하지요
자신의 가슴이 얼마나 빨갛게 멍들었는지
거울도 안 보고 살아가는 검은머리 동백
* 동백꽃 - 이수복
동백꽃은
훗시집간 순아누님이
매양 보며 울던 꽃
눈 녹은 양지쪽에 피어
집에 온 누님을 울리던 꽃
홍 치마에 지던
하늘비친 눈물도
가냘피고 씁쓸하던 누님의 한숨도
오늘토록 나는 몰라....,
울어야던 누님도 누님을 울리던 동백꽃도
나는 몰라
오늘토록 나는 몰라....,
지금은 하이얀 촉루가 된
누님이 매양 보며 울던 꽃
빨간 동백꽃
* 동백꽃 - 문충성
누이야
동백꽃 피어나는 꽃소리 들어본 적 있느냐.
사각사각 맨발로 하얀 눈 한겨울 캄캄함을 밟아 올 때
제주바다는 이리저리 불안을 뒤척이고
찬 바람을 몰아다니던 낙엽 소리 돌돌 잠재우며
밤새 동백꽃 피어나는 꽃소리 아련히 *
* 동백, 그대 붉은 절망 앞에서 - 김금용
동백꽃 찾아 한 숨 안 쉬고 날아온 동박새
봄은 산보다 바다가 먼저라고 일렀을까
사정없이 일어서는 봄은
파도 끝에 매달려온다고 일렀을까
속절없이 무릎꿇는 바다 앞에서
목숨 떨어뜨리는 붉은 동백꽃의 절망
차라리 바다에 죽어
고해성사 하고픈 한 가닥 바램이 남았을까
오동도 산자락 너머 향일암 높은 절벽까지
까마득히 길을 막는 동백향 짙은 그림자
어둠 벗겨내는 첫 새벽 간절한 기도 아래
봄맞이 해돋이를 바라보는 사람들 곁에
잔인하게 모가지채 떨어지는
동백, 그대 붉은 절망이여
* 붉은 동백 - 문태준
신라의 여승 설요는
꽃 피어 봄마음 이리 설레 환속했다는데
나도 봄날에는
작은 절 풍경에 갇혀 우는 눈먼 물고기 이고 싶더라
쩌렁쩌렁 해빙하는 저수지처럼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어도
봄밤에는 숨죽이듯 갇혀 울고 싶더라
먼발치서 한 사람을 공양하는
무정한 불목하니로 살아도
봄날에는 사랑이 살짝 들키기도 해서
절마당에 핀 동백처럼 붉은 뺨이고 싶더라
* 동백 - 문정희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 *
* 동백 - 문인수
섬진강 가 동백 진 거 본다
조금도 시들지 않은 채 동백 져 버린 거
아, 마구 내다 버린 거 본다
대가리째 뚝 뚝 떨어져
낭자하구나
나는 그러나 단 한번 아파한 적 없구나
이제 와 참 붉디붉다 내 청춘
비명도 없이 흘러갔다
* 동백꽃 -선운사에서 - 김명원
지고 말면 그뿐
흔적이 살아 있던 자리에
바람조차 성글 터인데
그랬으면 좋겠다
내 사랑 어디에도
있었다 속죄하지 않아도 되는
불현듯 피었다 지는
선운사 동백처럼
지고 나면 그뿐
아무런 자취 찾을 수 없어 눈 머는
깨끗한 허무였으면 좋겠다
* 동백꽃 - 이생진
남쪽 섬, 여서도에 와서
초로의 여인에게 물었다
- 아주머니, 왜 루주 안 발라요?
"루주가 뭔데?"
- 있잖아요, 입술을 빨갛게 칠하는 거
"그걸 왜 발라, 동백꽃이 웃게"
동백꽃이 웃는다는 소리
섬에 와서 처음 들었다
* 禪雲寺 洞口 - 서정주
선운사(禪雲寺)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선운사, 그 똥낭구 - 김선우
- 불혹의 누이 영덕 스님께
선운사에 와
해우소 앞 은행나무 아래 잠시 앉았습니다
이상한 냄새에 내 뒤춤을 자꾸 흘끔거렸는데
갓 여문 은행열매가 피우는 냄새였습니다
애기똥 냄새... 달작지근한,
저렇게 대기 속에 하초를 활짝 펼치고
배내똥 같은 열매를 길러낼 수 있다면
당신 생각이 생각났습니다
폐소공포증을 앓는 당신이 지하서울역에서
황급히 뛰어올라가 파하, 하던
그 계단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바랑을 지고 플랫폼을 들어서던
당신이 문득 그랬지요...썩자...
푹 썩어 맑은 물 한국자 우려낼 수 있다면
목어가 울립니다
짭쪼롬하니 곰삭은 목어 소리 속에
온갖 허드렛물 이윽히 발효시키는
선운사 이 똥낭구가 나를 때립니다 *
* 지는 동백꽃을 보며 - 도종환
내가 다만 인정하기 주저하고 있을 뿐
내 인생도 꽃잎은 지고 열매 역시
시원치 않음을 나는 안다
담 밑에 개나리 환장하게 피는데
내 인생의 봄날은 이미 가고 있음을 안다
몸은 바쁘고 걸쳐놓은 가지 많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거두어들인 것 없고
마음먹은 만큼 이 땅을
아름답게 하지도 못하였다
겨울바람 속에서 먼저 피었다는 걸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나를 앞질러가는 시간과 강물
뒤쫓아오는 온갖 꽃의 새순들과
나뭇가지마다 용솟음치는 많은 꽃의 봉오리들로
오래오래 이 세상이 환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선연하게도 붉던 꽃잎 툭툭 지는 봄날에
* 동백 피는 날 - 도종환
허공에 진눈깨비 치는 날에도
동백꽃 붉게 피어 아름답구나
눈비 오는 저 하늘에 길이 없어도
길을 내어 돌아오는 새들 있으리니
살아 생전 뜻한 일 못다 이루고
그대 앞길 눈보라 가득하여도
동백 한 송이는 가슴에 품어 가시라
다시 올 꽃 한 송이 품어 가시라
* 동백꽃이 질 때 - 이해인
비에 젖은 동백꽃이
바다를 안고 종일토록 토해내는
처절한 울음소리 들어보셨어요?
피 흘려도사랑은 찬란한 것이라고
순간마다 외치며 꽃을 피워냈듯이
이제는 온몸으로 노래하며
떨어지는 꽃잎들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거부하고 편히 살고 싶은 나의 생각들
쌓이고 쌓이면 죄가 될 것 같아서
마침내 여기 섬에 이르러 행복하네요
동백꽃 지고 나면 내가 그대로
붉게 타오르는 꽃이 되려는
남쪽의 동백섬에서!
--
백련사에 두고 온 동전 한 닢 / 안상학
누군가 나에게서 떠나고 있던 날
나도 내 마음속 누군가를 버리러
멀리도 떠나갔다 백련사 동백은
꽃도 새도 없이 잎만 무성하였다 우두커니
석등은 불빛을 버리고 얻은
동전을 세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손을 모으게 했을
잘 안 되는 일들의 기록을 살피고 있었다
나도 내 잘 안 되는 일들의 기록을
동전 한 닢으로 던져 주었다, 석등은
내 안의 석등도 오래 어두울 것이라 일러주었다
가질 수 없는 누군가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 꽃등 없는 동백나무 한 그루
끝끝내 따라와서 내 가슴에 박혀 아팠다
백련사 석등에게 미안했다 누군가에게
너무 오래 걸린 이별을 바치며 미안하고 미안했다
동백 신전 / 박진성
동백은 봄의 중심으로 지면서 빛을 뿜어낸다
목이 잘리고 서도 꼿꼿하게 제 몸 함부로 버리지 않는 사랑이다
파르테 논도 동백꽃이다
낡은 육신으로 낡은 시간 버티면서 이천 오백 년 동안
제 몸 간직하고 있는 꽃이다 꽃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 먼 데서부터 소식 전해오겠는가
붉은 혀 같은 동 백꽃잎 바닥에 떨어지면
하나쯤 주워 내 입에 넣고 싶다
내 몸 속 붉은 피에 불지르고 싶다
다 타버리고 나서도 어느 날
내가 遺蹟처럼 남아 이 자리에서 꽃 한 송이 밀어내면
그게 내 사랑이다
피 흘리면서 목숨 꺾여도 봄볕에 달아오르는
내 전 생애다
교감 / 고영
동백나무 꽃망울 속에
내가 평소 갖고 싶던 방을 들인다
겹겹이 붉은 단열벽도 치고
아무나 침범할 수 없도록
출입문은 딱 한 개, 봄을 향해 단다
아아, 갑갑해, 너무, 갑갑해,
세상 구석구석 다 볼 수 있도록
천장엔 하늘문을 단다
동백꽃숲은 위성 안테나
초고속 인터넷에 접속한다
침침하던 동백꽃망울 속에
환한 생기가 돈다
이 단촐한 방에서 나는
겨울바람과 채팅도 하고
떨어지는 눈(雪)과 몸도 섞는다
좀 더 우주적으로 省察하고 싶어
밤마다 전갈자리별과 사랑도 주고받는다
내가 사랑한 전갈자리별을
동백나무 꽃망울 속
내 붉은 방에
은밀히 초대하고 싶다
동 백 꽃
- 유치환 -
그 대 위하여
목 놓아 울던 청춘이 이 꽃 되어
천년 푸른 하늘 아래
소리없이 피었나니
그날
한 장 종이로 꾸겨진 나의 젊은 죽음은
젊음으로 말미암은
마땅히 받을 罰이었기에
원통함이 설령 하늘만 하기로
그 대 위하여선
다시도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아아 나의 청춘의 이 피꽃
+== 동백꽃 ==
안 된다
그만
이제 더 이상
그만
모가지를 꺾어
붉게 지는 꽃
잊어야할
사랑이거든
아예
지워버려라
붉게
뚝
뚝
토해내는
사랑의 각혈
(김옥남·시인, 1952-)
+== 동백꽃에게 ==
고맙다, 꽃아
네 맥박 소리에
들숨 날숨으로 피가 흐르고
고층 아파트 햇살로
봄을 끌어안는다
겨울 끝자락
베란다 가득 만발한 너
나비 한 마리
넘나들지 못하는 곳에서도
처절한 사랑을 했는지
넘지 못할 담을 넘은 몹쓸 사람처럼
그리 섧게 우는구나
꽃답게 피었다가
꽃답게 지는
선혈로 흐르는 그리움
까맣게 타버린 가슴에
붉은 발자국 남겨 주어
고맙다. 꽃아
(목필균·시인, 1954-)
+== 동백꽃들 - 틈·5 =
어느 정변의
뜰 안,
바람 소스라치는
검붉게
타오르던
쿵쿵
산 무너지던
눈물도
미처
거두지 못한
소리 없는
저
절규!
(권갑하·시인, 1958-)
+== 동백꽃 편지 ==
설 명절이라고
며칠동안 집 비운 새에
우리집 베란다 동백나무가
그리움 참지 못하고
글쎄, 꽃을!
다섯 송이나 피웠어요
빨간 입술에 노오란 웃음 흘리는
그 꽃 앞에서
한참 동안이나 말문 열지 못하고
짜릿짜릿 해오는 아랫도리를 움켜쥐고 서있는데
문득 그대가 그립더군요
아픈 상처도 한 십 년쯤 지나면 이렇듯 꽃이 되는지
썩지 않는 비닐봉지처럼 가슴에 묻어둔
그 시절들!
붉은 동백꽃으로 막 피어나고 있더군요
(김경윤·시인,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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