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章 王天下之基〉
3‧1‧52 都邑華夏는 東西二京이라 (都邑●華夏◑는 東西二◑京◎이라)
都邑之在華夏者는 隨代而異也라
東京은 洛陽이니 東周東漢魏晉石趙後魏都焉하고 西京은 長安이니 西周秦西漢後秦西魏後周隋唐都焉하니라


〈제삼장 왕천하지기〉
中國에 도읍한 곳은 東京(洛陽)과 西京(長安)의 두 서울이다.
도읍이 華夏(中華)에 있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東京은 洛陽으로 東周‧東漢(後漢)‧魏‧晉‧石趙(石勒의 後趙)‧後魏가 도읍하였고, 西京은 長安(西安)으로 西周‧秦‧西漢(前漢)‧後秦‧西魏‧後周‧隋‧唐이 도읍하였다.
[章旨] 이상은 第3章이다. 이 장은 天下에서 王 노릇하는 사람은 그 서울의 크기, 궁궐의 장엄함, 典籍의 성대함, 英才의 많음, 토지의 넓음이 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釋義》)


역주
역주1 都邑華夏 東西二京 : 《帝王世紀》에 이르기를 “天子가 宮을 지은 곳을 都라고 한다.” 하였다. 邑은 고을인데, 王都를 또한 邑이라고 일컫는다. 《詩經》 〈商頌 殷武〉에 이르기를 “商나라 도읍이 가지런하다.” 하였는데 여기서 말한 邑은 王都의 邑이다. 華는 文明한 모양이다. 夏는 크다는 뜻이다. 中國을 華夏라고 하니, 그 빛나고 큰 것을 말한다. 華는 빛나는 모양이다. 京은 또한 크다는 뜻이니, 王者가 사는 나라이다.(《釋義》)


신습한자

都:도읍 도/모두 도 都給 都城 都賣 都市 都會 京都 首都 都木手
邑:고을 읍 邑內 邑里 邑面 邑長 邑誌 都邑 邊邑 十室之邑
華:빛날 화/꽃 화 華甲 華麗 榮華 華而不實 中華料理 慕華思想
夏:여름 하/중화 하 夏季 夏服 夏節 夏至 立夏 初夏 春夏秋冬
東:동녘 동 東洋 東風 東問西答 東奔西走 東家食西家宿
西:서녘 서 西京 西紀 西洋 關西 湖西 西方淨土 東西南北
二:두 이 二心 二重 第二 二姓之合 二十四節氣 二律背反
京:서울 경 京畿 京師 京城 京鄕 東京 望京 北京 上京

 

3‧1‧53 背邙面洛하고 浮渭據涇이라 (背◑邙面◑洛●하고 浮渭◑據◑涇◎이라)
東京은 則邙山在其北하고 洛水經其南이라
西京은 則涇渭二水가 橫其西北하니
此는 言二京之形勝也라


〈東京은〉 北邙山을 뒤로 하며 洛水를 앞으로 하고, 〈西京은〉 渭水에 배를 타고 가 涇水에 의거한다.
東京은 북망산이 북쪽에 있고 낙수가 남쪽을 지나간다.
西京은 경수와 위수의 두 물이 서북쪽을 가로질러 흐른다.
이는 동경과 서경의 形勝(형세와 경치)을 말한 것이다.
[節旨] 이 이하는 王者의 일을 말하였다. 여기서는 왕자의 서울이 큰 것을 말하였다.(《釋義》)
[節解] 이 節은 王者의 도읍은 두 서울을 최고로 여겼는데, 두 서울의 山川形勝은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釋義》)


역주
역주1 面 : 俗字는 靣(앞 면)이다.(《中》)
역주2 洛 : 雒(물 이름 락)으로도 쓴다.(《註解》)
魚豢이 이르기를 “漢나라는 五行에서 火(불)의 德을 사용하여 水克火의 相克法에 의해 水(물)를 꺼렸으므로 洛의 水를 빼고 隹를 더하였다.” 하였다. 魚氏의 주장대로라면 〈낙양에 도읍한〉 光武皇帝 이후에 雒으로 고친 것이다.(《漢書》 卷28 上 〈地理志〉 顔師古 注)
역주3 浮 : “濟水와 漯水에 배 타고 가서 河水에 이른다.”의 註에 “배로 물에 떠가는 것을 浮라고 한다.”라고 하였다.(《書經》 〈禹貢〉 集傳)
역주4 據 : 据(의지할 거)와 같다.(《註解》)
역주5 背邙面洛 浮渭據涇 : 周나라의 成王이 洛邑을 건설하고 王城으로 삼았는데, 平王이 동쪽으로 천도하게 되어서는 거기에 살았고, 東漢의 光武皇帝도 그 곳을 도읍으로 하고 東京이라 불렀는데 즉 지금의 河南府가 그곳이다. 周나라의 武王은 鎬京에 도읍하였고, 秦나라는 咸陽에 도읍하였고, 西漢은 長安에 도읍하여 西京이라 불렀는데 곧 지금의 西安府가 그곳이다.
背는 뒤이니 서울의 뒤를 말한다. 面은 앞이니 서울의 앞을 말한다. 邙은 北邙山이니, 지금의 河南府城의 북쪽에 있다. 洛은 물 이름이다.
이 글귀는 위의 東京을 이어서 말하였는데, 邙山은 東京城의 북쪽에 있고 洛水는 동경성의 남쪽에 있다.
浮는 배 타고 물에 떠가는 것이다. 據는 의지한다는 뜻이다. 渭와 涇은 물 이름이다.
이 글귀는 윗절의 西京을 이어서 말하였는데, 서경은 왼쪽으로 渭水에 배를 타고 가고 오른쪽으로 涇水에 의거한다.(《釋義》)


신습한자

背:등 배/뒤 배 背景 背反 違背 背水陣 背山臨水 背恩忘德
邙:산 이름 망 邙風 據邙 嵩邙 瞻邙 北邙山
面:낯 면/앞 면 面目 面會 方面 顔面 外面 體面 面從腹背
洛:물 이름 락 洛論 洛陽 駕洛 洛東江 洛陽紙價 河圖洛書
浮:뜰 부 浮揚 浮沈 浮萍草 浮生如夢 浮言流說 浮雲富貴
渭:물 이름 위 渭洛 渭水 渭陽 渭樹江雲 太公釣渭 渭濱漁父
據:의지할 거 據點 根據 雄據 依據 證據 準據 群雄割據
涇:물 이름 경 涇流 涇水 濁涇 涇渭分明 涇濁渭淸

 

3‧2‧54 宮殿盤鬱하고 樓觀飛驚이라 (宮殿◑盤鬱●하고 樓觀◑飛驚◎이라)
端居를 謂之宮이요 臨御를 謂之殿이라
盤鬱은 攢簇之意라
憑眺를 謂之樓요 延覽을 謂之觀이라
飛驚은 翬革之貌라


궁전이 모여 빽빽하고, 높은 집은 〈처마는〉 새가 놀라 나는 듯하다.
〈王이〉 평소 거처하는 곳을 宮이라 하고, 납시어 계시는 곳을 殿이라 한다.
盤鬱은 모여 있는 뜻이다.
기대어 보는 곳을 樓라 하고, 멀리 바라보는 곳을 觀이라 한다.
飛驚은 꿩이 나는 듯, 새가 움직이는 듯한 모양이다.


역주
역주1 殿 : 《註解》에는 𣪫(큰 집 전)으로 쓰였다. 𣪫은 殿과 같다.(《檀》)
역주2 盤 : 《註解》에는 槃(그릇 반)‧鎜(그릇 반)으로도 쓴다고 하였는데, 모두 같은 글자이다.
역주3 鬱 : 欝(성대할 울)과 같다.(《檀》) 𣡸(성대할 울)은 俗字이다.(《檀》) 𣡸(성대할 울)과 같다.(《中華》) 鬱은 28畫으로 《千字文》에서 가장 획수가 많은 글자이다.
역주4 宮殿盤鬱 樓觀飛驚 : 《爾雅》에 말하기를 “宮을 室이라 한다.” 하였다. 옛날에는 宮이 室의 통칭이었는데, 후세에는 오로지 天子의 집만을 일컫게 되었다. 殿은 집이 높고 큰 것인데 秦나라 始皇이 처음 지었다.
盤은 굽은 모양이다. 鬱은 무성한 모양이다. 樓는 《說文》에 말하기를 “중복된 집이다.” 하고, 《爾雅》에 “觀을 闕이라 한다.” 하고, 《釋名》에 말하기를 “觀은 위에서 관망하는 것이다.” 하니, 모두 집의 가장 높은 것이다. 觀은 去聲이다. 飛는 새가 나는 것이다.
《詩經》 〈小雅 斯干〉에 말하기를 “처마는 꿩이 나는 듯하다.” 하였다. 驚은 놀람이다. 이는 樓와 觀이 높아 형세가 나는 듯하여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함을 말한다.(《釋義》)
역주5 端居 : 평소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漢》)
역주6 翬革 : 《詩經》 〈小雅 斯干〉의 “들보가 일어섬은 새가 움직이는 듯하고, 처마는 꿩이 나는 듯하다.[如鳥斯革 如翬斯飛]”에서 따온 것이다.


신습한자

宮:집 궁/대궐 궁 宮闕 宮室 宮中 迷宮 王宮 昌慶宮 九重宮闕
殿:큰 집 전 殿閣 殿門 殿上 殿中 殿下 宮殿 正殿 大雄殿
盤:그릇 반/서릴 반 盤石 盤松 基盤 小盤 音盤 承露盤 盤根錯節
鬱:답답 울/성대할 울 鬱金 鬱茂 鬱憤 鬱蒼 憂鬱 抑鬱 沈鬱 鬱鬯酒
樓:다락 루/층층 집 루 樓閣 樓臺 樓上 望樓 摩天樓 蜃氣樓 沙上樓閣
觀:볼 관/전망하는 집 관 觀客 觀望 觀相 觀察 道觀 壯觀 觀覽席 明若觀火
飛:날 비 飛躍 飛翔 飛虎 飛仙 雄飛 飛行機 高飛遠走
驚:놀랄 경 驚愕 驚動 驚異 驚歎 大驚 驚天動地

 

3‧2‧55 圖寫禽獸하고 畫綵仙靈이라 (圖寫◯禽獸◑하고 畫◑綵◯仙靈◎이라)
宮殿樓觀에 必圖寫龍虎麟鳳之狀하여 以爲美觀也라
亦以五采로 畫神仙靈怪之物也라


〈宮殿과 樓觀에〉 새와 짐승을 그렸으며, 신선과 신령을 그려 채색하였다.
궁전과 높은 집에 반드시 용‧범‧기린‧봉황의 모습을 그려 아름다운 景觀으로 삼았다.
또한 다섯 가지 채색으로 신선과 신령스러우며 기괴한 물건을 그렸다.


역주
역주1 畫 : 俗字는 𦘕(그릴 화)이다.(《註解》) 畵(그릴 화)는 畫의 俗字이다.(《中》)
畫는 본래 音義가 ‘그을 획’이고, 異音義로 ‘그릴 화’가 추가된 것이다.
역주2 綵 : 采(채색할 채)와 같다.(《註解》)
역주3 仙 : 僊(신선 선)으로도 쓴다. 屳(신선 선)과 같다. 仚과는 다르다. 仚은 음이 ‘헌’이고 가볍게 든다는 뜻이다.(《註解》)
역주4 圖寫禽獸 畫綵仙靈 : 圖와 寫는 모두 그린다는 뜻이다. 나는 짐승을 禽이라 하고 달리는 짐승을 獸라 한다. 五色으로 물건의 모양을 나타내는 것을 畫라고 한다. 綵는 색칠한다는 뜻이다. 《釋名》에 말하기를 “오래 살아 죽지 않는 이를 仙이라 한다.” 하였다. 靈은 神이다.
이 궁전과 높은 집 속에는 모두 채색으로 나는 새와 달리는 짐승 및 신선의 모양을 그렸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釋義》)


신습한자

圖:그릴 도/꾀할 도 圖謀 圖章 企圖 原圖 地圖 圖畵紙 圖南鵬翼
寫:베낄 사/그릴 사 寫木 寫眞 謄寫 模寫 描寫 寫生畵 寫實主義
禽:새 금 禽獸 禽語 禽鳥 家禽 神禽 鳴禽 野禽 珍禽
獸:짐승 수 獸心 獸醫 野獸 鳥獸 獸蹄鳥跡 人面獸心
畫:그릴 화/그을 획 畫家 畫工 畫風 名畫 東洋畫 風俗畫 畫中之餠
綵:채색할 채 綵絲 綵緞 綵漆 綵畫 文綵 雜綵 綵衣娛親
仙:신선 선 仙敎 仙女 飛仙 詩仙 神仙 酒中仙 仙風道骨
靈:신령 령 靈感 靈肉 神靈 魂靈 靈魂不滅 救國英靈

 

3‧2‧56 丙舍傍啓하고 甲帳對楹이라 (丙◯舍◑傍啓◯하고 甲●帳◑對◑楹◎이라)
丙舍는 殿前左右之舍니 侍臣所居가 相向兩傍而開也라
東方朔이 造甲乙帳하니 人君暫止之處에 分對於兩楹之閒也라


병 차례의 집[丙舍]이 〈전각 양쪽〉 옆에 펼쳐 있고, 갑 차례의 휘장[甲帳]이 기둥 사이에 마주하고 있다.
丙舍는 殿閣 앞의 좌우에 있는 집이니, 모시는 신하의 거처가 서로 양쪽을 향하여 전개되어 있다.
東邦朔이 甲帳과 乙帳을 만들었으니, 임금이 잠시 머무는 곳이 두 기둥 사이에서 나뉘어 마주하고 있다.


역주
역주1 丙舍 : 後漢 때 궁중 정실의 양쪽 집을 甲‧乙‧丙으로 차례를 매기고 그것의 제삼등 집을 丙舍라고 하였다. 《後漢書》 〈清河孝王慶傳〉에 “마침내 귀인‧자매를 내보내어 병사에 두었다.” 하였는데, 王先謙의 集解에서 胡三省의 말을 인용하여 “병사는 궁중의 집을 甲‧乙‧丙‧丁으로 차례를 매긴 것이다.” 하였다.(《漢》)
역주2 傍 : 㫄(곁 방)과 같다.(《註解》) 𠊓(곁 방)은 傍과 같다.(《中華字解》) 㫄은 旁(곁 방)의 本字이다.(《字彙》)
역주3 傍啓 : 《註解》에서는 “건물이 옆에 펼쳐 있다.”로, 《釋義》에서는 “문이 곁에 열려 있다.”로 풀이되었다.
역주4 丙舍傍啓 甲帳對楹 : 丙은 셋째 天干 이름이고, 舍는 집이다. 〈天官書〉에 이르기를 “亥(11시 방향)는 天門이 되고 巳(5시 방향)는 地戶*가 된다.” 하였다.* 巳에 丙舍를 지으므로 무릇 地戶는 모두 병사라고 일컫는다. 魏나라 鍾繇의 帖에 이르기를 “墓地 農土의 丙舍이다.” 하였다.
傍은 곁이고, 啓는 연다는 뜻이다. 이는 “병사의 문이 그 곁에 열려 있다.”고 한 것이다. 甲은 천간의 첫째이다. 帳은 《釋名》에 말하기를 “펼친다는 뜻이니, 평상 위에 펼치는 것이다.” 하였다.
《漢武故事》에 말하기를 “위에는 琉璃‧珠玉‧明月‧夜光으로 진기한 보물을 섞어서 甲帳을 만들었고, 그 다음은 乙帳을 만들었다.” 하였다. 對는 마주한다는 뜻이다. 楹은 기둥이다.(《釋義》)
*地戶 : 地戶는 땅의 門이다. 옛날 전설에 하늘에는 門이 있고 땅에는 戶가 있는데, 天門은 서북에 있고 地戶는 동남에 있다.(《漢》)
*〈天官書〉에……하였다 : 《史記》 〈天官書〉에서는 확인하지 못하였고, 《協紀辨方書》 卷1‧卷6에서 확인하였다.


신습한자

丙:남녁 병/셋째 병/천간 병 丙科 丙種 甲乙丙 丙寅洋擾 丙子胡亂
舍:집 사 舍廊 校舍 舍己從人 舍短取長 舍生取義
傍:곁 방 傍聽 近傍 傍觀者審 傍若無人 作舍道傍
啓:열 계 啓告 啓蒙 啓發 啓示 謹啓 狀啓 啓寵納侮
甲:갑옷 갑/첫째 갑 甲科 甲富 甲乙 甲冑 同甲 鐵甲 甲論乙駁
帳:휘장 장 帳內 帳幕 帳簿 帳外 錦帳 記帳 臺帳 通帳
對:대할 대/마주할 대 對答 對面 對備 對人 相對 敵對 對牛彈琴
楹:기둥 영 楹桷 楹棟 楹柱 楹帖 丹楹 雕楹 彩楹 華楹

 

3‧2‧57 肆筵設席하고 鼓瑟吹笙이라 (肆◑筵設●席●하고 鼓◯瑟●吹笙◎이라)
詩大雅行葦篇之詞니 言燕會之際에 排列筵席也라
詩小雅鹿鳴篇之詞니 言燕會之時에 迭奏笙瑟也라


〈宴會의〉 자리를 펴며 방석을 놓고, 琵琶를 타며 笙簧을 분다.
肆筵設席은 《詩經》 〈大雅 行葦〉의 노래가사이니, 燕會(宴會)할 때에 자리와 방석을 배열함을 말한 것이다.
鼓瑟吹笙은 《詩經》 〈小雅 鹿鳴〉의 노래가사이니, 연회할 때에 笙簧과 비파를 번갈아 연주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鼓 : 《註解》에서는 鼔(탈 고)로 제시하고 그 설명에 “鼔는 ‘친다’는 뜻이니, 종‧북이라는 鼓자와 다르다. 鼓(북 고)는 가죽 소리를 내는 기물이고, 皷(북 고)는 俗字로 잘못이다.” 하여 本字인 鼔로 쓸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鼔는 살펴보건대 鼔舞의 鼔는 攴(칠 복)을 따르고, 鐘鼓의 鼓는 支(나눌 지)를 따라서 조금 다름이 있다. 그러나 지금 대개 支를 사용하고 다시 攴을 사용하지 않는다. 皷는 鼓의 俗字이다.”(《字彙》) 하여, 鼔는 鼓와 통용되고, 皷는 鼓의 俗字로 인정되었다.
역주2 肆筵設席 鼓瑟吹笙 : 肆는 편다는 뜻이고, 設은 설치한다는 뜻이다. 겹자리를 筵이라 하고, 홑자리를 席이라 한다. 옛사람이 땅에 깔고 앉을 때에 筵‧席은 모두 앉는 도구이다. 鼓는 떨리게 함이다. 瑟은 악기인데 모양이 琴과 비슷하고 25줄이 있다. 입으로 바람을 부는 것을 吹라 한다. 笙도 악기인데 박[匏]으로 만들어 대롱을 박 안에 나열하고 또 떨림판을 대롱 끝에 설치하여 그 소리를 낸다.(《釋義》)


신습한자

肆:방자할 사/가게 사/펼 사 肆赦 茶肆 放肆 書肆 市肆 藥肆 魚肆 酒肆
筵:자리 연 筵上 筵席 講筵 經筵 法筵 別筵 賓筵 壽筵
設:베풀 설/놓을 설 設計 設令 設立 設宴 設置 建設 新設 陳設
席:자리 석 席捲 席次 首席 座席 次席 貴賓席 席上珍
鼓:북 고/칠 고/탈 고 鼓動 鼓舞 擊鼓 鼓琴 小鼓 勝戰鼓 鼓腹擊壤
瑟:비파 슬 瑟縮 琴瑟 鳴瑟 如鼓瑟琴 膠柱鼓瑟
吹:불 취 吹入 吹雪 吹奏 吹竹 鼓吹 吹打手 吹毛求疵
笙:생황 생 笙歌 笙鼓 笙管 笙篁 奏笙 匏笙 笙磬同音

 

3‧2‧58 陞階納陛하니 弁轉疑星이라 (陞階納●陛◯하니 弁◑轉◯疑星◎이라)
階在堂外하여 諸臣所陞이요 陛在堂內하여 尊者之陛라
曰 納陛는 謂鑿殿基爲陛하여 納于霤下하여 不使露而陞也라
弁有三梁五梁七梁之別하니 梁皆有珠라
群臣升降之際에 見弁珠環轉如星하니 詩曰 會弁如星이 是也라


〈臣下들이〉 계단으로 오르고 〈天子가〉 섬돌로 들어가니, 구슬 달린 모자가 〈걷는 대로〉 돌아가서 별과 같다.
階의 계단은 堂 밖에 있어 여러 신하들이 오르는 곳이고, 陛의 계단은 堂 안에 있어 높은 사람이 쓰는 계단이다.
納陛라고 말한 것은 전각 터를 파서 陛의 계단을 만들어 처마 아래로 들어가서 드러나지 않게 하고 오르게 됨을 이른다.
弁(모자)에는 3梁, 5량, 7량의 구별이 있는데, 梁(관의 솔기)에는 모두 구슬이 달려 있다.
여러 신하들이 오르내리는 사이에 弁의 구슬이 돌아 별처럼 보이니, 《詩經》 〈衛風 淇奧〉에 말하기를 “모자에 솔기의 구슬이 별인 듯하다.”는 것이 이것이다.


역주
역주1 陞 : 升(오를 승)이 本字이다.(《釋義》)
역주2 階 : 堦(섬돌 계)와 同字이다.(《釋義》)
역주3 陛 : 천자의 섬돌이다.(《玉篇》)
陛는 당에 오를 때 경유하는 섬돌인데, 천자는 반드시 측근 신하가 兵器를 잡고서 陛 곁에 도열하여 뜻밖의 사태를 경계하니, 陛下라고 하는 것은 여러 신하들이 천자와 말을 할 적에 감히 천자를 가리키지 못하므로 陛 아래에 있는 사람을 불러 고함으로써, 낮은 이를 통하여 높은 이에게 도달하는 뜻이다. 천자에게 올리는 글에도 이와 같다. 그리고 여러 신하들과 선비‧일반인이 서로 함께 말할 적에 殿下(왕)‧閣下(대신)‧執事(상대방 존칭) 등도 모두 이러한 부류이다.(《獨斷》 卷上)
역주4 弁轉疑星 : 《註解》는 ‘〈여러 신하들이 오르내리는 사이에〉 弁의 구슬이 돌아 별인 듯하다’로, 《釋義》는 ‘〈階를 오르고 陛에 들어가는 사람이〉 弁의 이동함이 별처럼 많다’로 풀이하였다. 의미는 큰 차이가 없으나 《釋義》는 ‘많다[多]’라는 표현을 더 써서 더욱 자세하다.
역주5 陞階納陛 弁轉疑星 : 陞은 오른다는 뜻이고, 階는 계단이고, 納은 들어간다는 뜻이다. 陛는 바로 階이다. 당이 높은 것은 거리가 땅과 멀어서 階‧陛를 설치하니, 당에 오르기 위한 것이다.
弁은 冠 이름이다. 《白虎通》에 이르기를 “弁이라는 말은 올린다는 뜻이니, 머리칼을 고정시키는 물건이다. 爵弁(참새 머리색과 비슷한 관)‧韋弁(붉은 무두질한 가죽 관)‧皮弁(사슴 가죽 관) 등의 제도가 있다. 轉은 움직인다는 뜻이다. 疑는 비슷하다는 뜻이다. 《詩經》 〈衛風 淇奧〉에 말하기를 會弁如星이라고 하였는데, 이 節은 윗절의 階‧陛를 이어서 말하여 階를 오르고 陛에 들어가는 사람이 그 弁의 이동함이 별처럼 많아서 계‧폐의 넓음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이니, 극도로 말하여 그것을 형용한 것이다.
이는 丙으로 차례를 매긴 집이 그 문은 곁에 열렸고 기둥 사이에는 甲 휘장이 설치되고, 또 자리를 펴고서 그 사이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계단이 넓어서 오르는 이들의 모자가 마치 별과 같아 다 셀 수 없다고 한 것이다.(《釋義》)
역주6 霤下 : 처마 아래[屋檐下]를 가리킨다.(《資治通鑑新註》, 資治通鑑新註編纂委員會, 陝西人民出版社, 西安, 1998. 卷36, 漢平帝下, 元始5年, 乙丑, A.D.5年)
역주7 弁有三梁五梁七梁之別 : 3~7량 이외에 2~9량으로 제시된 것도 있다.
머리의 관은 각각 品等에 따르니, 宰執(중요한 재상)‧親王(황제 친속 중의 왕)은 9량에 貂蟬籠巾을 더하고, 侍從官은 7량이고, 나머지 관원은 6량~2량까지 차이가 있다.(《夢粱録》 巻5 〈駕出宿齋殿〉)
역주8 會 : ‘솔기 가운데’로 더 자세하게 설명한 주석도 있다.(《詩經》 〈衛風 淇奧〉 大全)
역주9 會弁如星 : 會는 솔기[縫]이고, 弁은 皮弁이니, 玉으로 피변의 솔기 가운데를 꾸며 별처럼 밝은 것이다.(《詩經》 〈衛風 淇奧〉 集傳)


신습한자

陞:오를 승 陞級 陞敍 陞進 陞陟 陞遷 陞黜 陞降石 陞官圖
階:섬돌 계 階級 階段 階層 東階 西階 兩階 位階 層階
納:들일 납 納期 納吉 納履 納稅 納幣 代納 滯納 出納
陛:천자 섬돌 폐 陛戟 陛下 陛見 階陛 宮陛 禁陛 丹陛 玉陛
弁:관 변 弁冕 弁髦 弁言 弁韓 冠弁 武弁 雀弁 皮弁
轉:돌 전 轉勤 轉換 運轉 移轉 轉禍爲福 起承轉結
疑:의심할 의/비슷할 의 疑問 疑獄 疑事無功 疑人勿用 半信半疑
星:별 성 星霜 星雲 星座 明星 將星 恒星 北斗七星

 

3‧2‧59 右通廣內하고 左達承明이라 (右◯通廣◯內◑하고 左◯達●承明◎이라)
漢正殿之右에 有延閣廣內하니 皆藏秘書之室이라
有承明廬石渠閣이 在金馬門左하니 亦校閱書史之室이라


오른쪽으로는 廣內에 통하고, 왼쪽으로는 承明에 이른다.
한나라 正殿의 오른쪽에 延閣‧廣內가 있으니, 모두 秘書(궁중의 도서)를 보관하는 집이다.
承明廬‧石渠閣이 金馬門의 왼쪽에 있으니, 또한 書籍과 史書를 校閱하는 집이다.
[節旨] 이것은 王者의 宮室이 장엄함을 말한 것이다.(《釋義》)


역주
역주1 右通廣內 左達承明 : 동쪽은 왼쪽이 되고, 서쪽은 오른쪽이 된다. 通은 바로 이른다는 뜻이다. 廣內‧承明은 모두 殿閣 이름이다. 《三輔黃圖》에 말하였다. “建章宮 안에 서쪽은 廣內殿이다.” 또 말하였다. “未央宫에는 承明殿이 있다.” 이 두 구절은 윗글을 총괄하여 궁실의 거대함을 말하였는데 그 오른쪽은 곧바로 광내에 통하고 그 왼쪽은 곧바로 승명에 이른다.(《釋義》)
이 경우 左右는 북쪽에서 본 것으로, 左는 東이며 右는 西이다. 우리나라의 全羅左右道 등의 左右도 모두 이와 같다.
역주2 廣內‧承明 : 《註解》에서는 室로, 《釋義》에서는 殿으로 풀이하였다.
역주3 金馬門 : 漢나라 시대의 궁전 문 이름으로, 학사들이 詔勅을 기다리는 곳이다.(《漢》)
金馬門은 문 곁에 銅馬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史記》 〈東方朔傳〉), 漢 武帝가 大宛의 名馬를 얻고서 구리로 말의 銅像을 만들어 세웠다.(《三輔黃圖》 3 〈未央宮〉)


신습한자

右:오른쪽 우 右傾 右文 右邊 左右 右往左往 左靑龍右白虎
通:통할 통 通過 通達 通譯 交通 達通 亨通 通略粗不
廣:넓을 광 廣告 廣大 廣場 廣布 深廣 增廣 廣範圍
內:안 내 內心 內人 內外 內應 國內 校內 社內 內憂外患
左:왼쪽 좌 左傾 左相 左右 左顧右眄 左之右之 左衝右突
達:통달 달/이를 달 達成 達人 到達 未達 速達 通達 欲速不達
承:이을 승 承繼 承諾 承認 承旨 繼承 拜承 不承權輿
明:밝을 명 公明 幽明 證明 明鏡止水 明明白白 明眸皓齒

 

3‧3‧60 旣集墳典하고 亦聚群英이라 (旣◑集●墳典◯하고 亦●聚◯群英◎이라)
三皇書曰三墳이니 言高大也요 五帝書曰五典이니 言可法也라
不言九丘八索諸經百家는 擧大包小也라
旣集墳典하고 又必徵訪英賢하여 聚於廣內承明하여 講明討論하여 以昭治道也라


이미 《三墳》과 《五典》을 모으고, 또한 뭇 英才를 모았다.
三皇의 책을 《三墳》이라 하니 높고 크다는 뜻이고, 五帝의 책을 《五典》이라 하니 본받을 만하다는 뜻이다.
《九丘》, 《八索》, 여러 經書, 百家書를 말하지 않은 것은 큰 것을 들어 작은 것을 포함한 것이다.
이미 《三墳》‧《五典》을 모아놓고 또 반드시 英才와 賢士들을 부르며 찾아서 廣內‧承命에 모아 강론하며 토론하여 정치하는 도리를 밝혔다.
[節旨]


역주
역주1 墳典 : 살펴보건대 옛날의 《三墳》은 이미 고찰할 수 없다. 宋나라 元豊(1078~1085) 연간에 張商英이 唐州 北陽의 민가에서 얻었는데 그 책은 《山墳》‧《氣墳》‧《形墳》 3편이 있었고 말이 대부분 허탄하며 망측하니, 僞書였다. 《五典》은 곧 《書經》의 〈堯典〉‧〈舜典〉‧〈大禹謨〉‧〈皋陶謨〉‧〈益稷〉의 5편이다.(《釋義》)
역주2 群 : 羣의 俗字이다.(《中》)
역주3 旣集墳典 亦聚群英 : 旣는 일을 마쳤다는 말이다. 集은 聚이다. 墳은 《三墳》이고, 典은 《五典》이다. 《三墳》은 三皇의 일을 기록한 것이고, 《五典》은 五帝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春秋左氏傳》 昭公 12年에 이르기를 “楚나라 左史 倚相이 능히 《三墳》‧《五典》을 읽었다.” 하였다. 책은 《三墳》‧《五典》보다 오래된 것이 없으므로 이를 들어 여러 책을 겸하였다. 亦은 또이다. 群은 무리이다. 才德이 무리에서 뛰어난 사람을 英이라 한다.(《釋義》)
역주4 三皇 : 삼황은 전설 속 上古시대의 세 임금으로, 가리키는 것이 한결같지 않다. ① 伏羲‧神農‧黃帝. ② 伏羲‧神農‧女媧. ③ 伏羲‧神農‧燧人. ④ 伏羲‧神農‧祝融. ⑤ 天皇‧地皇‧泰皇. ⑥ 天皇‧地皇‧人皇.(《漢》)
역주5 九丘 : 전설 속 중국의 가장 오래된 책 이름이다.(《漢》)
역주6 八索 : 옛 책 이름인데, 후대에는 대부분 古代 典籍 혹은 八卦를 지칭한다.(《漢》)


신습한자

旣:이미 기 旣成 旣往 旣婚 旣得權 旣張之舞 皆旣月蝕
集:모을 집 文集 集結 集合 雲集 集大成 集姓村 經史子集
墳:무덤 분/책 분 墳墓 墳山 墳上 古墳 舊墳 大墳 雙墳
典:법 전/책 전 典範 經典 古典 法典 辭典 典型的 經國大典
亦:또 역 亦是 亦然 亦云 亦且 此亦 窮亦樂 亦步亦趨
聚:모을 취 聚落 聚散 聚集 民聚 會聚 類聚 聚蚊成雷
群:무리 군 群衆 群集 拔群 不群 群鷄一鶴 群雄割據
英:꽃부리 영/인재(人才) 영 英傑 英文 英才 英華 群英 育英 英雄欺人哉

 

3‧4‧61 杜稾鍾隷요 漆書壁經이라 (杜◯稾鍾隷◑요 漆●書壁●經◎이라)
蒼頡造書러니 三代互有損益하며 秦隷人程邈은 作隷書하고 東漢杜操는 作草書하고 魏鍾繇는 作小隷하니 今楷字也라
漢魯恭王이 修孔子廟라가 壞古牆壁하여 得尙書하니 以古篆으로 畫漆書於竹簡者也라
得於孔壁이라 故曰壁經이라


杜操의 草書와 鍾繇의 隷書이고, 옻칠 액 글씨의 벽 속 經書이다.
蒼頡이 글자를 만들었는데, 三代(夏‧殷‧周)에 서로 증감이 있었으며, 秦나라의 隷人 程邈은 隷書를 만들고 東漢의 杜操는 草書를 만들고 魏나라의 鍾繇는 小隷를 만들었으니, 小隷가 바로 지금의 楷字이다.
前漢 때 魯恭王이 孔子의 사당을 수리하다가 옛 벽을 헐어 《尙書》를 얻었는데, 옛 篆字로 옻칠 액 글씨로 대나무 쪽[竹簡]에 그어 쓴 것이다.
공자 집의 벽 속에서 얻었으므로 壁經이라 하였다.
[節旨] 이 節은 윗글의 墳‧典을 이어 말하여 서적이 많음을 보였다.(《釋義》)


역주
역주1 稾 : 俗字가 藁이고, 稿와 同字이다.(《註解》)
역주2 隷 : 本字가 隸이다.(《註解》)
예서는 곧 지금의 眞書(해서)이다. 《書苑》에 이르기를 “程邈의 예서를 분할하여 二分(20%)을 채택하고 李斯의 小篆을 분할하여 八分(80%)을 채택하여 八分書가 되었다.” 하였으니, 지금 예서라고 일컫는 것은 팔분서이고, 옛날에 예서라고 일컫던 것은 바로 眞書이다.
또 《唐六典》에는 “校書郎과 正字가 쓰는 서체는 5가지가 있는데 네 번째가 팔분서로 石經의 碑碣에 쓰는 것이고, 다섯 번째가 예서로 典籍과 表奏의 公用‧私用의 상소문에 쓰는 것이다.” 하였으니, 예서가 真書인 것은 의심이 없다.(《釋義》)
역주3 杜稾鍾隷 漆書壁經 : 杜는 杜度(杜操)이고, 鍾은 鍾繇이다. 稾는 草稿이니, 무릇 글을 지을 적에 초고는 대부분 초서를 사용하므로 초서를 稾라고 한다. 漢 章帝 때에 두도가 초서를 잘 썼다.
隷는 미천한 사람의 칭호이다. 진시황 때에 程邈이 처음으로 古文 篆書를 바꾸어 隷書를 만들었는데 간단하고 빨라서 노역하는 노예들에게 편리하였으므로 예서라고 불렀다. 魏나라 鍾繇가 이 글씨를 잘 썼다.
漆은 나무 액체로서 기물을 치장할 수 있는 것이다. 옛날 사람은 먹이 없어서 옻칠 액으로 대나무 쪽 위에 글자를 썼다.
書는 載籍(書籍)의 통칭이다. 壁은 담장이다. 經은 6經이니, 《易經》‧《書經》‧《詩經》‧《禮經》‧《樂經》‧《春秋經》이다.
여기서 이른바 經은 바로 《書經》이다. 진시황이 책을 불태울 때에 공자의 8세손 孔騰이 《書經》을 벽 속에 보관하였다. 한나라 때에 이르러 魯恭王 劉餘가 공자의 옛 집을 헐다가 이것을 얻었는데 《古文尙書》라고 불렀다.
이 節은 서적이 많아 초서도 있고 예서도 있고 칠서도 있으며 벽 속의 고문과 같은 것도 있는데, 전서로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釋義》)
역주4 倉頡 : 蒼頡로도 쓴다. 전설 속의 고대 인물이다. 黃帝의 史官으로서 처음으로 漢字를 만들었다고 한다.(《人》)
역주5 隷人 : 직위가 낮고 천한 관리를 가리킨다.(《漢》)
역주6 杜操 : 東漢 사람으로, 字가 伯度이다. 魏‧晉시대에는 曹操의 이름을 피하여 杜度로 바꾸어 불렀다. 章帝 때에 齊相이 되었고 章草*를 잘 썼다.(《人》)
*章草 : 草書의 일종이다. 필획에 예서의 波磔(오른쪽 捺筆)이 있고 글자마다 독립되어서 연이어 쓰지 않는다.(《漢》)
역주7 魯恭王 : 劉餘이다. 출생은 미상이고, 武帝 元朔 원년(B.C.128)에 죽었다. 景帝의 다섯째 아들이다. 景帝 전2년(B.C.155)에 淮陽王에 봉해지고 뒤에 魯王으로 옮겼다. 궁실을 수리하기 좋아하였는데, 공자의 옛 집을 헐어서 그 집을 넓히다가 벽 속에서 古文 經傳을 얻었다. 죽자 시호를 恭이라고 하였다.(《人》)


신습한자

杜:막을 두 杜康 杜鵑 杜絶 老杜 李杜 杜鵑花 杜門不出
稾:볏짚 고/초서 고/원고 고 稾料 稾本 玉稾 原稾 遺稾 草稾 投稾 脫稾
鍾:쇠북 종 鍾閣 鍾愛 鍾王 鍾情 警鍾 晩鍾 鍾乳石 萬鍾祿
隷:종 례/예서 례 隷書 隷屬 奴隷 僕隷 篆隷 秦隷 隷也不力
漆:옻칠할 칠 漆器 漆板 漆黑 膠漆 丹漆 黑漆 漆身爲癘
書:글 서/글씨 서 書簡 書記 書冊 讀書 塗抹詩書 焚書坑儒
壁:벽 벽 壁報 壁畵 堅壁 城壁 絶壁 壁中書 金城鐵壁
經:글 경/다스릴 경/지날 경/성경(聖經) 경 經過 經歷 聖經 十三經 經世濟民 經天緯地

 

3‧5‧62 府羅將相하고 路挾槐卿이라 (府◯羅將◑相◑하고 路◑挾●槐卿◎이라)
皇居左右에 府第羅列하니 或將或相也라
路는 王朝之路也라
夾路左植三槐하니 三公位焉하고 右植九棘하니 九卿位焉이라
槐는 謂三公也라


官府에는 장수와 정승이 나열되었고, 대궐 길에는 三公과 九卿이 길을 끼고 늘어서 있다.
皇帝가 거처하는 좌우에 관청 집들이 나열되었으니, 혹은 장수이거나 혹은 정승들이 있다.
路는 王朝(조정)의 길이다.
길을 끼고 왼쪽에는 세 그루 槐木을 심었는데 三公이 거기에 자리하고, 오른쪽에는 아홉 그루 棘木을 심었는데 九卿이 거기에 자리한다.
槐는 삼공을 말한다.


역주
역주1 將相 : 將‧相은 모두 去聲이다.(《釋義》)
將은 ‘장군’ ‘거느리다’이면 거성, ‘장차’이면 평성이다. 相은 ‘정승’ ‘보다’ ‘돕다’이면 거성, ‘서로’이면 평성이다.
역주2 挾 : 《註解》와 《釋義》에는 俠으로 쓰였는바, 《漢字典》에 “俠은 夾과 통하고, 挾과 통한다.”라고 하였다. 곧 俠은 夾‧挾과 통용이다.
역주3 府羅將相 路挾槐卿 : 府는 《風俗通》에 ‘모임’이라 하였으니, 公‧卿과 牧守*가 모이는 곳이다. 羅는 나열한다는 뜻이다. 將相은 文臣‧武臣이다. 路는 길이다. 挾(끼다)은 夾과 同字이다.
《周禮》에 六卿은 冢宰‧司徒‧宗伯‧司馬‧司寇‧司空이다. 漢나라의 九卿은 太常‧光祿勳‧衛尉‧太僕‧廷尉‧鴻臚‧宗正‧司農‧少府이다.
《周禮》에, 外朝*를 세우는 법은 三槐를 정면에 심어 三公이 그곳에 자리하고 九棘을 왼쪽에 심어 孤‧卿‧大夫가 그곳에 자리한다. 槐를 말하면서 棘을 말하지 않았으며 卿을 말하면서 公‧孤‧大夫를 말하지 않은 것은 글을 생략한 것이다.(《釋義》)
路挾槐卿은 ‘路挾槐(棘路挾公)卿’, 다시 말하면 ‘路挾槐(公棘)卿’에서 괄호부분이 생략된 互文이라고 할 수 있다.(해제 참조)
*牧守 : 州‧郡의 장관이니, 州의 관원을 牧이라 하고 郡의 관원을 守라고 한다.
*外朝 : 周나라 제도에 천자‧제후가 조정의 정무를 처리하는 곳으로, 內朝와 상대하여 말한 것이다. 內朝는 천자‧제후가 정무를 처리하며 휴식하는 곳으로 두 곳인데, 路門 밖에 있어 정무를 처리하는 治朝, 路門 안에 있어 휴식하는 燕朝가 있다.(《漢》)
역주4 夾路 : 도로 양 옆에 늘어서 있는 것이다.(《漢》)


신습한자

府:관청 부 府庫 府君 府尹 府中 官府 明府 王府 政府
羅:벌릴 라/비단 라/그물 라 羅列 羅馬 羅紗 網羅 新羅 羅針盤 羅浮春
將:장수 장/장차 장 將軍 將來 名將 敗將 將進酒 大將軍 日就月將
相:서로 상/볼 상/정승 상 相關 相對 相互 觀相 宰相 左相 刮目相對
路:길 로 路上 路中 水路 要路 路不拾遺 君子大路行
挾:낄 협 挾憾 挾擊 挾攻 挾貴 挾私 挾勢 挾雜 挾書律
槐:회화나무 괴/삼공 괴 槐木 槐門 槐鼎 槐座 大槐 槐安夢 三槐九戟
卿:경재(卿宰) 경 卿宰 卿相 公卿 卿大夫 樞機卿 三公九卿

 

3‧5‧63 戶封八縣하고 家給千兵이라 (戶◯封八●縣◑하고 家給●千兵◎이라)
漢平定天下하고 大封功臣할새 重者는 食八縣民戶하여 爲侯國하니라
侯國에 許置兵千人하여 以衛其家하니라


〈功臣에게〉 民家를 여덟 縣이나 冊封하고, 집에는 천 명의 병사를 주었다.
漢나라는 천하를 평정하고 공신을 크게 책봉하였는데, 중대한 자는 여덟 縣의 민가에서 세금을 받아먹어 諸侯國이 되었다.
諸侯國에 천 명의 병사를 두어 그 집을 호위하도록 허락하였다.


역주
역주1 戶封八縣 : 秦나라가 제후책봉을 없앤 이후 漢나라 초기에 다시 황제의 자제들을 나누어 왕으로 삼았는데, 뒤에 七國*의 禍를 경계하여 작위를 책봉해야 할 자들은 그 邑의 민가에서만 세를 받아먹게 하였다.
그러나 東漢은 吳漢*‧鄧禹*의 공로에 책봉해 준 것이 4縣에 불과하였고, 晉나라는 오직 羊祜만이 5현을 얻어 책봉되었는데 여기에서 말한 8현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지 못하겠다.
또 중신으로서 공훈과 덕망이 있는 자는 병사를 주어 따르며 호위하게 하였는데 그 수효의 많고 적음은 같지 않았다. 예컨대 晉나라 衛瓘‧陸玩 등에게 모두 1천 명의 병사를 주었으니, 은혜와 예우의 성대함이 이들을 넘을 자가 없다.(《釋義》)
《庾開府集箋註》에는 “민가를 8縣이나 책봉해 주니 은혜가 寇恂의 공로에 깊게 하였다.” 하였는데, 그 〈註〉에 “《後漢書》 〈冦恂傳〉에 ‘冦恂의 同腹 형제 및 형의 아들, 누나의 아들로서 군대 공로로 列侯에 책봉된 사람이 8인이었다.’ 하였다.” 하였다.(《庾開府集箋註》 卷10 〈周大將軍豳國公廣墓誌銘〉) 이에 의하면 戶封八縣은 後漢의 冦恂 및 그 친속 8인의 집마다 각각 1縣씩 책봉해 주어 모두 8縣을 책봉해 준 것이다.
*七國 : 漢나라 景帝 때의 7개 제후국으로, 吳國‧楚國‧趙國‧膠西國‧濟南國‧菑川國‧膠東國을 말한다. B.C.145년에 동시 다발로 무장 반란을 일으켰는데, 역사에서 七國之亂이라고 일컫는다.(《漢》)
*吳漢 : 東漢 南陽 宛 사람이다. 字는 子顔이다. 뒤에 여러 장군들과 光武帝 劉秀를 옹립하여 황제로 삼았다. 大司馬에 임명되고 舞陽侯에 책봉되었다. 죽은 뒤 시호를 忠이라 하였다.(《人》)
*鄧禹 : 東漢 南陽 新野 사람이다. 字는 仲華이다. 젊어서 長安에 유학하여 劉秀와 親善하였다. 光武帝(유수)가 즉위하자 大司徒에 임명되고 酇侯에 책봉되었다. 明帝 때 太傅에 임명되었다. 죽자 시호를 元이라 하였다.(《人》)
역주2 戶封八縣 家給千兵 : 戶는 민가이다. 封은 그 수입을 먹게 하는 것이다. 縣은 《釋名》에 이르기를 “매달린다는 뜻이니, 郡에 매달린 것이다.” 하였다. 家는 장군‧정승과 공‧경의 집이다. 給은 준다는 뜻이다. 兵은 사졸이다.(《釋義》)


신습한자

戶:지게문 호/민가 호 戶籍 戶曹 戶主 門戶 民戶 富戶 家家戶戶
封:봉할 봉/책봉할 봉 封鎖 封爵 封土 封套 封緘 同封 桐葉封弟
八:여덟 팔 八卦 八德 八道江山 八方美人 八字打令
縣:고을 현 縣官 縣監 縣令 郡縣 近縣 僻縣 小縣 州縣
家:집 가 家臣 家屋 家庭 農家 文學家 家貧思良妻
給:줄 급 給使 給水 給食 給與 配給 俸給 自給自足
千:일천 천 千金 千秋 千軍萬馬 千萬不當 千載一遇
兵:군사 병 兵法 兵士 兵曹 義兵 海兵 勝敗兵家常事

 

3‧5‧64 高冠陪輦하고 驅轂振纓이라 (高冠陪輦◯하고 驅轂●振◑纓◎이라)
諸侯出하면 則有高冠大帶之士가 左右陪輦也라
諸侯從者가 驅轂而行하면 振動其車馬之纓旒也라


높은 冠을 쓴 이들이 임금의 輦을 모시고, 수레바퀴를 몰아가면 〈수레와 말의〉 갓끈이 흔들린다.
제후가 외출하면 높은 모자 쓰고 큰 띠 맨 人士들이 좌우에서 輦을 모시었다.
제후의 수행원이 수레바퀴를 몰아서 가면 그 수레와 말의 끈과 술이 흔들린다.


역주
역주1 高冠陪輦 驅轂振纓 : 陪는 모신다는 뜻이다. 輦은 天子의 수레이다. 驅는 달린다는 뜻이다. 轂은 수레바퀴이다. 振은 움직인다는 뜻이다. 纓은 갓끈이다. 驅轂은 위의 陪輦을 이어서 말하였고, 振纓은 위의 高冠을 이어서 말하였다.(《釋義》)
《釋義》에 의하면 ‘陪輦高冠 驅轂振纓’이 정치법이겠으나, 出句末字 輦(仄)과 압운 纓이 仄‧平의 대응을 위해 도치형으로 나타났다. 冠은 ‘모자’인 경우 平聲이므로 冠‧纓은 平‧平이어서 仄‧平의 대응을 이루지 못한다.(해제 참조)
역주2 輦 : 두 남자가 나란히 끌어 가는[㚘] 수레[車]로 字形이 설명되어, 本義가 ‘사람 손으로 끄는 수레’인데, 秦‧漢 이후로는 帝王‧后妃의 수레만을 뜻하게 되었다.
輦은 끄는 수레이다. 車(수레 거)‧㚘(두 남자가 나란히 갈 반)을 따랐다. 㚘은 수레 앞에서 끄는 것이다.(《說文》) 사람이 끌어서 가는 수레를 말한다.(《説文》 段注)
㚘은 나란히 간다는 뜻이다. 두 개의 夫(사나이 부)를 따랐다.(《説文》)
輦은 秦‧漢 이후로는 오로지 帝王‧后妃만 타는 수레를 가리킨다.(《漢》)
역주3 纓 : 《註解》에서는 수레‧말의 끈과 술로, 《釋義》에서는 갓끈으로 풀이하였다.


신습한자

高:높을 고 高貴 高齡 高低 最高 高官大爵 高談峻論
冠:갓 관 冠帶 冠禮 王冠 冠履顚倒 冠婚喪祭 李下不整冠
陪:모실 배 陪席 陪乘 陪食 陪臣 陪從 陪行 奉陪 陪審員
輦:손수레 련 輦道 輦路 輦夫 輦下 大輦 御輦 玉輦 駐輦
驅:몰 구 驅步 前驅 驅逐艦 先驅者 驅群羊攻猛虎
轂:수레바퀴통 곡 轂士 轂下 車轂 輪轂 長轂 華轂 轂擊肩摩
振:떨친 진 振動 振作 振鐸 振興 振恤 奮振 金聲玉振
纓:끈 영 纓冠 纓紳 冠纓 馬纓 玉纓 簪纓 濯纓 珠纓

 

3‧5‧65 世祿侈富하니 車駕肥輕이라 (世◑祿●侈◯富◑하니 車駕◑肥輕◎이라)
功臣子孫이 世享祿位하여 侈大富盛也라
其所乘之車輕하고 其所駕之馬肥也라


〈功臣은〉 대대로 봉급을 받아 豪奢하며 부유하니, 수레와 멍에 씌운 말이 살찌고 빠르다.
공신의 자손들이 대대로 녹봉과 지위를 누려 크고 풍성하였다.
그들이 타는 수레가 경쾌하고 멍에 씌운 말이 살쪘다.
[節旨] 여기서부터 이하 5節은 윗글 群英(여러 영웅)을 모두 이어 말하였는데, 이 節은 여러 영웅들의 녹봉‧지위가 높으며 부유함을 말하였다.(《釋義》)
[節解] 이 여러 영웅들로서 장군‧정승과 公‧卿에 있는 자들은 책봉된 民家가 넓게는 8縣을 소유하였고 그 집에 준 것은 많게는 1천 병사를 소유하여, 외출할 적에 그 수레바퀴를 몰아가서 천자의 수레를 모시어 가는데 쓰고 있는 높은 모자가 수레가 달리면서 갓 끈이 떨리니, 이와 같이 그 모자와 복장이 아름다우며 성대하였고 자손에 있어서는 또한 대대로 그 祿俸을 먹어 호사스러우며 풍족하고 살찐 말을 멍에 메우며 경쾌한 수레를 탄다고 말한 것이다.(《釋義》)


역주
역주1 世祿侈富 :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잇는 것이 世이다. 祿은 봉급이다. 이는 將軍‧政丞과 公‧卿의 자손들이 모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녹봉을 얻어먹어서 대대로 서로 잇는 것을 말한 것이다.
侈는 호사한다는 뜻이다. 富는 재물이 넉넉한 것이다. 駕는 《說文》에 말하기를 “말이 멍에 안에 있는 것이다.” 하였다. 肥는 《說文》에 말하기를 “살이 많은 것이다.” 하였다. 輕은 빠르다는 뜻이다. 肥는 그 말[馬]을 말하였고, 輕은 그 수레를 말하였다.(《釋義》)
역주2 車駕肥輕 : 《釋義》에 “肥는 그 말[馬]을 말하였고, 輕은 그 수레를 말하였다.” 하여, 정치법으로 제시하면 ‘車輕駕肥’가 될 것인데, 輕의 압운 사용으로 도치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註解》는 “其所乘之車輕 其所駕之馬肥也”로 풀이하였는데, 이를 줄여 제시하면 ‘(乘)車輕 駕(馬)肥’의 乘과 馬가 생략된 互文으로 볼 수도 있다.


신습한자

世:인간 세/대대로 세 世界 世代 世上 世態 今世 來世 世傳之物
祿:봉급 록 祿俸 祿米 祿仕 干祿 官祿 福祿 爵祿 天祿
侈:호사할 치 侈大 侈靡 侈飾 侈傲 驕侈 華侈 奢侈風潮
富:부유할 부 富强 富貴 富裕 富豪 甲富 貧富 富益富
車:수레 거/수레 차 車道 車輛 乘車 電車 自動車 車馬費 人力車
駕:멍에 씌운 말 가/멍에 가 駕御 車駕 大駕 凌駕 駕輕就熟 千里命駕
肥:살찔 비 肥大 肥料 肥滿 肥沃 甘肥 堆肥 天高馬肥
輕:가벼울 경 輕率 輕蔑 輕視 輕重 輕快 鴻毛輕 輕擧妄動

 

3‧6‧66 策功茂實하고 勒碑刻銘이라 (策●功茂◑實●하고 勒●碑刻●銘◎이라)
紀績曰策功이라
茂實은 懋實也니 功懋懋賞之意라
以其功烈로 勒之爲碑하고 刻之爲銘하니 待功臣이 其亦厚矣라


〈功臣의〉 功績을 기록하여 실적을 성대하게 하고, 비석을 조각하여 銘文을 새긴다.
공적을 기록함을 策功이라 한다.
茂實은 실적을 성대하게 함이니, 《書經》 〈仲虺之誥〉의 “공이 많은 사람에게는 상을 많이 준다.”는 뜻이다.
그 공적을 돌에 조각하여 비석을 만들고 새겨 銘文을 만드니, 공신을 대우함이 그 또한 후한 것이다.


역주
역주1 茂 : 懋(성할 무)와 同字이다.(《註解》)
역주2 策功茂實 勒碑刻銘 : 策은 謀畫이다. 《說文》에 말하기를 “勞苦로 나라를 안정시킴을 功이라 한다.” 하였다. 茂는 성대하다는 뜻이다. 實은 명칭에 상대하여 말하였으니 실제 그 공이 있음을 이른다.
勒은 바로 조각한다는 뜻이다. 碑는 《說文》에 말하기를 “돌을 세워 功德을 기록하는 것이다.” 하였다. 銘은 기록이니, 《釋名》에 말하기를 “그 功을 기록하여 일컫는 것이다.” 하였다. 여기서 말한 바 銘은 바로 碑銘이다. 그 공을 서술하여 글을 만들어 비석에 새기고 글의 끝에 또 韻文을 지어서 찬미하니 이를 일러 銘이라고 한다.
이는 여러 인재들이 봉급과 지위가 높으며 풍부할 뿐만 아니라, 계획이 실로 국가를 안정시키는 공이 있어 비석에 조각하여 명문에 새기는 것을 말하는데, 예컨대 아랫글의 여러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釋義》)


신습한자

策:기록할 책/꾀 책 策動 策問 計策 策勳 建策 對策 方策 失策
功:공로 공 功過 功勞 功名 功臣 大功 有功 事半功倍
茂:성할 무 茂林 茂士 茂盛 茂松 茂才 美茂 竹苞松茂
實:열매 실 實物 果實 眞實 虛實 實事求是 有名無實
勒:굴레 륵/조각할 륵/새길 륵 勒銘 勒石 勒奪 勒婚 馬勒 彌勒 勒于金石
碑:비석 비 碑文 碑石 墓碑 紀念碑 神道碑 口碑文學
刻:새길 각 刻薄 刻印 時刻 寸刻 刻骨難忘 刻舟求劍
銘:문체 이름 명/새길 명 銘刻 銘旌 感銘 墓碑銘 座右銘 銘心不忘

 

3‧6‧67 磻溪伊尹이 佐時阿衡이라 (磻溪伊尹◯이 佐◑時阿衡◎이라)
周文王은 聘呂尙于磻谿하고 殷湯은 聘伊尹于莘野也라
呂尙이 釣磻谿라가 得玉璜하니 有文曰 姬受命에 呂佐時라하니라
阿衡은 商宰相之稱이라


磻溪의 呂尙과 莘野의 伊尹은 그 시대를 도우며 阿衡 관직을 맡았다.
周나라 문왕은 呂尙(姜太公)을 磻谿에서 초빙하고, 殷나라 成湯은 伊尹을 莘野에서 초빙하였다.
여상이 반계에서 낚시질하다가 玉璜(반원형 옥)을 얻었는데, “姬姓(周나라 성)이 天命을 받는데 呂氏가 시대를 돕는다.”는 글이 있었다.
阿衡은 商(殷)나라 재상의 칭호이다.


역주
역주1 溪 : 《註解》에는 谿로 쓰고 그 同字‧俗字를 제시하였다. 谿(시내 계)는 嵠(시내 계)‧磎(시내 계)와 同字이고, 俗字는 溪(시내 계)이다.(《註解》)
역주2 伊尹 : 商나라 사람이다. 이름은 伊, 또 다른 이름은 摯이고, 尹은 官名이다. 전해오기를 집안의 노예로서 有莘氏의 딸이 시집가는 것을 모시는 종이었다고 한다. 湯의 알아줌을 받아 등용되고 商나라를 도와 夏나라를 멸망시키고 국가의 일을 총괄하였다.(《人》) 이는 아래 주석의 《釋義》와 다른 표현이다.
역주3 磻溪伊尹 佐時阿衡 : 磻溪는 太公望*이 낚시하던 곳이다. 그 곁에 太公石室이 있다. 伊는 姓이고 尹은 字이니 成湯의 재상이다. 佐는 돕는다는 뜻이다. 時는 시대이다. 阿衡은 商나라 관직 이름인데 이윤이 그 관직을 맡았다.
阿는 의지한다는 뜻이고 衡은 공평하다는 뜻이니, 천하가 의뢰하여 공평하게 다스려짐을 말한다. 《詩經》 〈商頌 長發〉에 “실로 아형이 되어, 실로 商나라 왕을 보좌하였다.” 하였다.(《釋義》)
磻溪伊尹은 互文이다. 磻溪의 呂尙과 莘野의 伊尹이 완전한 글인데, 磻溪‧伊尹만 들고 呂尙‧莘野를 생략하였다. 이를 정리하면 ‘磻溪(呂尙 莘野)伊尹’에서 괄호부분이 생략된 것이다.
*太公望 : 周나라 초기 사람이다. 姜姓이고 呂氏이며 이름은 尙이고 속칭 姜太公이라 한다. 呂尙이 곤궁하고 늙어서 渭水가에서 낚시질하였는데 文王이 사냥을 나왔다가 그를 만나서 함께 대화하고는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나의 太公[조상]께서 그대를 바란[望] 지 오래되었다.” 하였으므로, 太公望이라고 일컬었다. 수레에 태우고 함께 돌아와 그를 세워 선생으로 삼았다.(《漢》)


신습한자

磻:시내 이름 반 磻礡 磻石 磻溪叟 磻溪釣
溪:시내 계 溪谷 溪邊 溪聲 溪亭 綠溪 玉溪 淸溪 碧溪水
伊:저 이 伊呂 伊傅 伊昔 伊水 伊時 伊人 伊太利
尹:다스릴 윤/맏 윤 尹司 尹祭 卿尹 庶尹 令伊 府尹 左尹 判尹
佐:도울 좌 佐理 佐命 佐貳 補佐 良佐 王佐 將佐 賢佐
時:때 시 時間 時機 時日 四時 恒時 不時 時時刻刻
阿:언덕 아 阿膠 阿黨 阿附 阿片 阿衡 太阿 阿鼻叫喚
衡:저울대 형 衡平 衡門 權衡 均衡 銓衡 平衡 抗衡 度量衡

 

3‧6‧68 奄宅曲阜하니 微旦孰營이리오 (奄◯宅●曲●阜◯하니 微旦◑孰●營◎이리오)
曲阜는 魯地라
周公이 有大勳勞할새 封於魯하여 定都於曲阜也라
旦은 周公名이니 言非周公之勳이면 孰能營此鴻基也리오


曲阜를 취하여 살았으니, 〈周公〉 姬旦이 아니면 누가 경영할까!
曲阜는 魯나라 땅이다.
周公이 큰 공로가 있으므로 노나라에 봉해져 도읍을 곡부에 정하였다.
旦은 주공의 이름이니 “주공의 공로가 아니면 누가 능히 이 큰 터전을 경영하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旦 : 周公의 이름으로 쓰였으나, 한자의 原義는 ‘아침’으로, ‘일찍’, ‘밝다’의 뜻이다. 朝鮮시대에는 李太祖의 이름이어서 읽기를 ‘죠(조)’와 같이 했다.(《註解》) 周公의 姓은 姬이다.
旦의 국음 ‘조’는 朝(아침 조)에서 온 것이며, 조선시대에 旦자를 새로 쓸 경우에는 朝를 대용하였다.
역주2 奄宅曲阜 微旦孰營 : 奄은 취한다는 뜻이다. 宅은 산다는 뜻이다. 曲阜는 땅 이름으로, 周公이 봉해진 곳이니, 바로 魯나라이다. 微는 없다는 뜻이다. 孰은 누구이다. 營은 짓는다는 뜻이다. 이는 곡부를 취하여 사는데 주공 姬旦의 공로가 아니면 누가 이 노나라 지역을 건설할 수 있느냐고 말한 것이다.(《釋義》)


신습한자

奄:문득 엄/취할 엄 奄官 奄棄 奄留 奄然 奄奄 奄有 奄人 奄忽
宅:살 택/집 택 宅地 宅里 宅號 家宅 舊宅 貴宅 舍宅 住宅
曲:굽을 곡 曲名 曲折 曲解 作曲 戱曲 交響曲 曲學阿世
阜:언덕 부 阜盛 高阜 曲阜 大阜 山阜 長阜
微:작을 미/아닐 미 微妙 微物 微弱 微細 微賤 微行 輕微 熹微
旦:아침 단 旦旦 旦暮 旦夕 旦朝 今旦 每旦 明旦 元旦
孰:누구 숙 孰若 孰誰 孰與 孰何 孰能禦之 孰是孰非
營:경영 영 營業 營爲 營造 經營 兵營 水營 野營 鎭營

 

3‧6‧69 桓公匡合하여 濟弱扶傾이라 (桓公匡合●하여 濟◯弱●扶傾◎이라)
桓公은 齊君小白이니 五霸之一이라
用管仲하여 一匡天下하고 九合諸侯하니라
定周襄王之位하여 濟之於微弱하고 扶之於傾危하니 卽匡合之實也라


桓公은 바로잡고 糾合하여, 약자를 구제하며 기우는 나라를 붙들어주었다.
桓公은 齊나라의 군주 小白이니, 五霸의 하나이다.
管仲을 등용하여 한 번 천하를 바로잡고 아홉 번 제후들을 회합하였다.
周나라 襄王의 王位를 안정시켜 미약할 때에 구제하고 위태로울 때에 붙들어주었으니, 바로잡고 규합함[匡合]의 실제이다.


역주
역주1 桓公匡合 : 齊나라 桓公이 管仲을 시켜서 周나라가 戎과 화평하게 하고 隰朋을 시켜서 晉나라가 융과 화평하게 하였다.(《史記》 卷4 〈周本紀〉)
역주2 桓公匡合 濟弱扶傾 : 桓公은 齊나라 임금으로 이름이 小白이다. 諡號를 주는 법에 “토지를 개척하여 먼 곳을 승복시킴을 桓이라 한다.” 하였다. 匡은 바로잡는다는 뜻이니, 천하의 어지러움을 바로잡음이다. 合은 제후를 결합함이다. 《論語》 〈憲問〉에 말하기를 “환공이 제후를 아홉 번 규합하고 한 번 천하를 바로잡았다.” 하였다.
濟는 구제한다는 뜻이다. 弱은 병력이 적은 것이다. 扶는 유지한다는 뜻이다. 傾은 위태롭다는 뜻이다. 제후의 약자를 구제하고 위태로운 자를 유지시켜주었다.(《釋義》)
역주3 五霸 : 五霸는 春秋時代의 齊 桓公, 晉 文公, 宋 襄公, 楚 莊王, 秦 穆公을 가리킨다.(《漢》) 宋 襄公, 秦 穆公 대신 吳王 闔閭, 越王 句踐으로 하는 異說이 있다.
霸는 伯(제후 맹주 패)‧覇(제후 맹주 패)로도 쓴다.
역주4 九合諸侯 : 九合은 ‘구합’으로 읽어 ‘아홉 번 회합하다’라고 풀이하기도 하고, ‘규합’으로 읽어 ‘감독하여 회합하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아홉 번 회합하였다고 말한 것은 《史記》에 “軍用 수레로 모인 것이 세 번이고 乘用 수레로 모인 것이 여섯 번이다.”라고 하였다.(《論語》 〈憲問〉 邢昺 疏)
九(규)는 《春秋傳》에 糾로 썼는데 감독한다는 뜻으로 古字에 통용하였다.(《論語》 〈憲問〉 集註)


신습한자

桓:굳셀 환 桓圭 桓桓 桓雄 盤桓 三桓 烏桓 桓檀古記
公:공정할 공/임금 공/귀 공 公開 公共 公正 主人公 公平無私 先公後私
匡:바를 광 匡諫 匡救 匡言 匡正 匡濟 匡弼 一匡天下
合:합할 합/모을 합 合格 合同 合線 結合 統合 和合 混合 會合
濟:건널 제/구원할 제 濟民 濟世 經濟 救濟 相濟 弘濟 濟濟多士
弱:약할 약 强力 强弱 老弱 貧弱 弱肉强食 抑強扶弱
扶:도울 부 扶養 扶腋 扶助 扶持 扶老携幼 相扶相助
傾:기울 경 傾斜 傾注 傾聽 傾向 右傾 左傾 傾國之色

 

3‧6‧70 綺回漢惠하고 說感武丁하니라 (綺◯回漢◑惠◑하고 說●感◯武◯丁◎하니라)
綺는 綺里季니 商山四皓之一이라
漢高帝將廢太子러니 四皓從游하여 成羽翼하여 使漢惠로 太子之位를 轉而安焉하니라
說은 傅說이라
築於傅巖之野러니 商王武丁이 夢帝賚良弼일새 旁求天下하여 爰立作相하니 是說感夢於武丁也라


綺里季는 폐위되려던 漢나라 惠帝를 되돌려놓았고, 商나라 傅說은 武丁에게 現夢하였다.
綺는 綺里季이니 商山四皓의 하나이다.
漢나라 高帝(劉邦)가 장차 太子(惠帝 劉盈)를 폐위하려 하였는데, 四皓가 태자를 따라 노닐어 羽翼(보좌인)이 됨으로써 한나라 惠帝에게 태자의 자리를 되돌려 안전하도록 하였다.
說은 傅說이다.
부열은 傅巖의 들에서 담을 쌓고 있었는데, 商나라 왕 武丁이 꿈속에서 하느님이 훌륭한 보필자를 주시므로, 널리 천하에 찾아 재상으로 세우니, 이는 부열이 무정에게 느껴 현몽하도록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綺回漢惠 說感武丁 : 殷나라 傅說‧武丁은 漢나라 綺里季‧惠帝보다 먼저이므로 ‘說感武丁 綺回漢惠’라고 해야 할 것인데 丁의 압운 사용으로 도치된 모습을 보인다.
역주2 回 : 《釋義》에는 廻로 되어 있는데, 《註解》에 “回(돌아올 회)는 廻(돌아올 회)와 同字이다.” 하였다.
역주3 綺回漢惠 : 綺는 四皓(머리 센 네 사람)의 하나이다. 廻는 돌린다는 뜻이다. 秦나라 때에 사호가 있어서 난리를 피하여 商山으로 갔는데 漢나라 高祖가 불러도 이르지 않았다. 뒤에 고조가 태자를 바꾸려 하자 張良이 마침내 사호를 초빙하여 태자와 交遊하도록 하였다. 고조가 그것을 보고 말하기를 “羽翼이 이미 이룩되어 변동하기 어렵구나!” 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바꾸지 않게 되었다. 고조가 돌아가고 태자가 즉위했는데 이 사람이 한나라 惠帝이다.
諡號를 주는 법에 “유연한 바탕에 백성을 사랑함을 惠라 한다.” 하였다. 四皓는 綺里季‧東園公‧夏黃公‧甪里先生인데 한 사람을 들어 세 사람을 포함하였다. 이는 폐위당할 뻔한 한나라 惠帝가 四皓로 인하여 태자의 지위를 되돌릴 수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釋義》)
역주4 說 : 悅(기쁠 열)과 同字이다.(《註解》)
역주5 說感武丁 : 說은 傅說이다. 感은 감격한다는 뜻이다. 武丁은 商나라의 현명한 임금으로 꿈에 하느님이 훌륭한 보필자를 주었는데 깨어나 그 용모를 그려서 널리 천하에서 찾았다.
傅巖의 들에서 부열을 얻었는데 용모가 꿈에 본 것과 들어맞아서 마침내 등용하여 재상으로 삼았고 商나라의 道가 흥성을 맞았다. 이는 부열의 현명함이 무정에게 꿈속에서 느끼도록 하였다고 말한 것이다.(《釋義》)
역주6 築 : 산다[居]는 뜻이다.(《書經》 〈説命 上〉 集傳)
역주7 傅巖 : 傅險으로도 일컫는다. 옛 지명이다.(《漢》)
역주8 築於傅巖之野 : 《書經》 〈説命 上〉의 ‘說築傅巖之野’에 의거한 것인데, 築은 ‘담을 쌓다’라고 풀이하기도 하고, ‘산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이때에 傅險에서 담을 쌓았으니, 절구공이로 흙을 다졌다고 말한 것이다.”(《書經》 〈説命 上〉 孔穎達 疏)


신습한자

綺:비단 기 綺語 綺衣 綺帳 輕綺 文綺 綺羅星 綺紈子弟
回:돌릴 회 回甲 回答 回路 回轉 每回 輪回 次回 回歸線
漢:물 이름 한/나라 이름 한/사내 한 漢文 漢方 漢水 怪漢 惡漢 無賴漢 門外漢
惠:은혜 혜 惠念 惠書 惠澤 惠化 恩惠 仁惠 慈惠 厚惠
說:말씀 설/달랠 세/기뻐할 열 說明 演說 小說 異說 說往說來 遊說
感:느낄 감 感泣 感情 萬感 有感 感慨無量 多情多感
武:무예 무/용감할 무 武官 武藝 文武兼全 武陵桃源 右文左武
丁:장정 정/고무래 정 丁役 丁寧 丁夫 白丁 兵丁 壯丁 目不識丁

 

3‧6‧71 俊乂密勿하여 多士寔寧이라 (俊◑乂◑密●勿●하여 多士◯寔●寧◎이라)
大而千人之俊과 小而百人之乂가 咸集于朝하여 經緯密勿也라
俊乂在官하여 國以寧謐하니 詩云 濟濟多士여 文王以寧이 是也라


英俊 호걸들이 〈다스리는 데〉 부지런하여, 많은 學士들이 있어 이들로 태평하다.
크게는 1천 명 중의 俊傑과 작게는 1백 명 중의 英傑이 모두 조정에 모여 다스리기를 부지런히 한다.
俊乂가 관직에 있어서 나라가 편안히 안정되니, 《詩經》 〈大雅 文王〉에 이르기를 “가득히 많은 학사들이 있어서 이들로 文王이 편안하다.” 한 것이 이것이다.
[節旨] 이 아래 4節은 역시 위의 群英을 이어서 그 사람들을 종합적으로 거론하여 실증하였다.(《釋義》)
[節解] 여러 인재 가운데 공로가 기록된 이들은 또한 太公‧伊尹처럼 세상을 도와 평안히 다스린 공로가 있으며 周公처럼 周나라를 도와 처음 책봉된 공로가 있으며 齊나라 桓公처럼 약자를 구제하고 기우는 이를 부축해 준 공로가 있으며 四皓처럼 태자를 정해준 공로가 있으며 傅說처럼 중흥시킨 공로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1천 사람 중에 俊傑이며 1백 사람 중에 英雄으로서 힘써 도와 다스렸고, 임금은 이 많은 인사들을 의뢰하여 편안하다고 말한 것이다.(《釋義》)


역주
역주1 俊乂密勿 多士寔寧 : 1천 사람 중의 英傑을 俊이라 하고 1백 사람 중의 영걸을 乂라고 한다. 《書經》 〈皐陶謨〉에 이르기를 “俊乂가 관직에 있다.” 하였다. 密勿은 노력한다는 뜻이다. 《詩經》 〈小雅 十月之交〉에 이르기를 “힘써 일을 따른다.” 하였는데, 《漢書》 〈劉向傳〉에서 이것을 인용하여 “힘써 일을 따른다.” 하였다.
多는 많다는 뜻이다. 《漢書》 〈食貨志 第4〉에 이르기를 “학문하여 벼슬에 있는 이를 士라 한다.” 하였다. 寔은 《韻會》에 이르기를 “이것[是]이다.” 하였으니, ‘진실로[實]’와는 같지 않다. 寧은 편안하다는 뜻이다. 《詩經》 〈大雅 文王〉에 이르기를 “가득히 많은 학사들이 있어 文王이 이들로 해서 편안하다.” 하였다.(《釋義》)


신습한자

俊:준걸 준 俊傑 俊林 俊秀 俊才 民俊 英俊 豪俊 巖穴俊
乂:풀 깎을 예/다스릴 예/영재 예 乂安 乂淸 乂寧 康乂 群乂 英乂 俊乂 從乂
密:빽빽할 밀 密告 密談 密林 綿密 稠密 親密 密雲不雨
勿:말 물 勿論 四勿箴 勿施於人 寧爲鷄口勿爲牛後
多:많을 다 多情 煩多 多岐亡羊 多多益善 多事多難
士:선비 사/관원 사 士族 士林 兵士 國士 紳士 士大夫 士農工商
寔:이 식 寔艱 寔多 寔來 寔命 寔繁 寔隆
寧:편안할 녕/차라리 녕/어찌 녕 寧居 寧日 康寧 安寧 寧可玉碎何能瓦全

 

3‧7‧72 晉楚更霸하고 趙魏困橫이라 (晉◑楚更霸◑하고 趙◯魏◑困◑橫◎이라)
春秋時에 晉文公이 敗楚成王于城濮而霸러니 至靈公하여 失霸하고 楚莊王이 又稱霸하니 是晉與楚更迭而霸也라
戰國時에 縱人은 欲以六國伐秦하고 橫人은 欲使六國事秦이러니 六國이 終困于橫하니라
六國에 只擧趙魏나 其餘可見이라


〈春秋時代에〉 晉나라와 楚나라가 번갈아 霸權을 잡았고, 〈戰國時代에〉 趙나라와 魏나라가 連橫에 곤궁하였다.
春秋時代에 晉나라 文公이 楚나라 成王을 城濮에서 패퇴시키고 패권을 잡았는데, 靈公에 이르러 패권을 잃고 초나라 莊王이 다시 패자가 되었으니, 이는 진나라와 초나라가 번갈아서 패권을 잡은 것이다.
戰國시대에 合縱을 주장한 사람들은 六國으로 秦나라를 치려 하였고, 連橫을 주장한 사람들은 六國에게 秦나라를 섬기도록 하려 하였는데, 六國이 마침내 연횡에 곤궁하게 되었다.
六國 중에 趙‧魏만을 들었으나, 그 나머지도 곤궁했음을 알 수 있다.


역주
역주1 晉楚更霸 : 춘추시대의 五霸는 齊나라 桓公뿐만 아니라, 또 晉나라 文公과 楚나라 莊王도 있다. 晉‧楚는 모두 나라 이름이다. 更은 ‘번갈아’이다. 霸는 제후의 우두머리이다. 이는 晉‧楚가 제나라 환공의 뒤를 이어서 서로 바꾸어가면서 제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五霸는 齊 桓公, 晉 文公, 秦 穆公, 宋 襄公, 楚 莊王이 있는데, 晉‧楚만 말하고 秦‧宋을 말하지 않은 것은 글을 생략한 것이다.(《釋義》)
역주2 更 : 平聲이다.(《釋義》)
이 평성에 의해 ‘번갈아 경’으로 독해되고 去聲의 ‘다시 갱’으로 독해되지 않는다. 《註解》에서는 㪅으로 썼는데, 更이 俗字이다.
역주3 趙魏困橫 : 趙‧魏는 모두 나라 이름이다. 困은 괴로움이 극심한 것이다. 橫은 連橫이다. 전국시대에 蘇秦이 六國 제후들을 설득하여 合從으로 秦나라를 막게 하였고, 뒤에 張儀가 또 육국 제후들을 설득하여 連橫으로 진나라를 섬기게 하였으니, 六國 제후들이 合從‧連橫에 곤궁함을 말한 것이다. 연횡만 말하고 합종을 말하지 않은 것은 글을 생략한 것이다.
六國은 趙‧魏‧韓‧齊‧楚‧燕이 있으나 둘만 들어 그 나머지를 포괄하였다.(《釋義》)
역주4 城濮 : 지금의 山東 鄄城 西南 지역인데, 城濮之戰으로 유명하다. B.C.632년에 晉나라와 楚나라가 전쟁하여 晉나라가 크게 승리하였다.
역주5 縱 : 從(남북 군사동맹 종)으로도 쓴다. 六國이 상호 南北으로 군사동맹을 맺어 秦나라에 대항하게 하는 일이다.
역주6 橫 : 衡(동서 군사동맹 횡)으로도 쓴다. 서쪽의 秦나라가 동쪽 六國의 각 나라와 東西로 군사동맹을 맺어 自國인 秦나라를 섬기게 하는 일이다.


신습한자

晉:나라 이름 진/나아갈 진 晉接 晉書 東晉 西晉 兩晉 呂秦牛晉
楚:나라 이름 초 楚棘 楚撻 楚腰 淸楚 四面楚歌 楚材晉用
更:번갈아 경/다시 갱 更新 更迭 變更 三更 更生 更年期
霸:제후 맹주 패 霸權 霸道 霸者 王霸 爭霸 制霸 霸氣滿滿
趙:나라 이름 조 趙璧 趙宋 救趙 燕趙 前趙 後趙 魏趙韓
魏:나라 이름 위 魏闕 魏書 魏魏 北魏 象魏 曹魏 魏蜀吳
困:피곤할 곤 困境 困窮 困難 貧困 疲困 困獸猶鬪 困知勉行
橫:가로 횡/동서 군사동맹 횡 橫領 橫書 專橫 縱橫 橫說豎說 橫行闊步

 

3‧7‧73 假途滅虢하고 踐土會盟이라 (假◑途滅●虢●하고 踐◯土◯會◑盟◎이라)
晉獻公이 欲伐虢하여 假途於虞하니 虞公이 不聽宮之奇之諫而假之러니
及晉滅虢에 竝滅虞하니라
踐土는 地名이니
晉文公이 約諸侯할새 會盟於此하고 召周襄王於河陽而朝之하니 是挾天子以令諸侯也라


〈晉나라가 虞나라에게〉 길을 빌려 虢나라를 멸망시키고, 踐土에 모여 맹약하였다.
〈春秋時代〉 晉나라 獻公이 虢나라를 치려 하여 虞나라에 길을 빌리자고 하였는데, 虞公(우나라 임금)은 宮之奇의 進言을 듣지 않고 길을 빌려주었다.
진나라는 괵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 우나라도 함께 멸망시켰다.
踐土는 지명이다.
晉나라 文公이 제후들과 약속하여 이곳에서 모여 맹약하고 周나라 襄王을 河陽에서 불러와 받드는 인사를 하였으니, 이는 天子를 끼고서 제후들을 호령한 것이다.
[節旨] 이것도 위의 群英을 이어서 말하였다.(《釋義》)
[節解] 이 節은 五霸에 계획하는 신하가 있고 七雄에 계책 세우는 인사가 있으니, 또한 여러 영웅을 대개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釋義》)


역주
역주1 途 : 《註解》에 “途(길 도)는 塗(길 도)와 同字이다.” 하였고, 《六書尋源》에 “途는 현재 다니는 道(길 도)이다.” 하여, 途는 塗와 同字, 道와 통용자로 설명하였다.
역주2 假途滅虢 : 假는 빌린다는 뜻이다. 途는 길이다. 滅은 망한다는 뜻이다. 虢은 나라 이름이다. 晉나라 獻公이 虢나라를 치려 하였는데 길이 虞나라를 지나게 되었다. 謀臣 荀息의 계책을 써서 垂棘에서 생산된 구슬과 屈에서 생산된 말을 虞나라 임금에게 보내어 길을 빌려서 괵나라를 멸망시켰다. 군대가 돌아오다가 우나라를 아울러 습격하여 멸망시켰다.(《釋義》)
역주3 踐土會盟 : 踐土는 지명이니, 踐土臺가 있다. 會는 제후를 모으는 일이다. 盟은 서약함이니, 피를 마셔 신의를 맺는 것이다. 《禮記》 〈曲禮 下〉에 말하기를 “제후가 한가히 틈난 곳에서 서로 만나는 일을 會라 하고, 희생을 놓고 임하여 하는 서약을 盟이라 한다.” 하였다. 春秋時代 魯나라 僖公 28년에 晉나라 文公이 제후들을 모아 踐土에서 맹약하였다. 이는 晉나라 일을 들어서 五霸와 六國을 포괄하였으니, 모두 속이는 謀議로 남에게 승리함을 말한 것이다.(《釋義》)


신습한자

假:거짓 가/빌릴 가 假空 假令 假名 假飾 假裝 眞假 狐假虎威
途:길 도 途上 途中 官途 窮途 歸途 登途 前途 中途
滅:멸할 멸 滅亡 明滅 寂滅 全滅 滅倫敗常 滅門之禍
虢:나라 이름 괵 東虢 亡虢 伐虢 西虢 二虢 虢國夫人
踐:밟을 천 踐言 踐位 踐祚 踐行 踐形 實踐 毋踐履
土:흙 토 土器 土地 土人 國土 領土 土産物 積土成山
會:모일 회 會談 會同 會遇 會議 開會 詩會 會稽之恥
盟:맹세할 맹 盟邦 盟誓 盟約 盟主 鷗盟 聯盟 攻守同盟

 

3‧8‧74 何遵約法하고 韓弊煩刑이라 (何遵約●法●하고 韓弊◑煩刑◎이라)
何는 蕭何也라
漢高祖約法三章이러니 蕭何損益而遵行之하여 漢歷秊四百하고 何亦子孫榮顯하니 寬大之效也라
韓은 韓非也니 以慘刻說秦王하고 著書十餘萬言하니 皆刻薄之論이러니
秦二世而亡하고 韓亦誅死하니 煩刑之弊也라


漢나라 蕭何는 漢 高祖의 約法三章으로 다스렸고, 秦나라 韓非는 가혹한 형벌로 疲弊하였다.
何는 蕭何이다.
한나라 高祖(劉邦)는 간략하게 만든 법 3장[約法三章]만을 썼는데, 소하가 이를 가감하여 준행해서 한나라는 4백 년을 지냈고, 소하 또한 자손들이 영화롭고 顯達하였으니, 관대하게 한 효험이었다.
韓은 韓非이니, 참혹하고 각박한 법을 쓰도록 秦나라 왕을 설득하였으며 10여만 자나 되는 책을 지었는데 모두 각박한 내용이었다.
진나라는 2世 만에 망하였고 한비 또한 죽음을 당하였으니, 이는 번거로운 형벌의 폐해였다.
[節旨] 이는 여러 영재들이 명분과 법률을 담당한 것을 말하였다.(《釋義》)


역주
역주1 何遵約法 韓弊煩刑 : 秦나라 韓非는 漢나라 蕭何보다 먼저이므로 ‘韓弊煩刑 何遵約法’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刑의 압운 사용으로 도치된 모습을 보인다.
역주2 何遵約法 : 遵은 받든다는 뜻이다. 約은 요약이다. 法은 형벌이다. 漢나라 高祖가 처음으로 關中에 들어와서 秦나라를 평정하고 원로들과 간략한 법 3장을 말하기를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사람을 상해한 자 및 도둑질한 자는 그 죄를 당하게 하고, 나머지 秦나라의 가혹한 법은 모두 없앤다.” 하였다.
뒤에 그것으로 간사함을 막기에 부족하다고 하여 또 蕭何에게 秦나라 법에서 채취하여 법률 9장을 만들었으니, 이는 “소하가 한나라 법을 제정할 적에 高祖의 간략한 법을 받들어서 만들었다.”고 한 것이다.(《釋義》)
‘원로들과 간략한 법 3장’은 《史記》 卷8 〈高祖本紀〉의 “고조가 여러 현의 원로와 호걸들을 불러 말하기를 ‘원로들께서 진나라의 가혹한 법에 괴로움을 당하신 지 오래 되었으니, 비방한 자는 멸족하고 마주하여 말하는 자는 죽여 시체를 市街에 늘어놓았소. 나는 제후들과 약속하기를 關中에 먼저 들어가는 자를 왕으로 삼는다고 하였는데 내가 관중에서 왕을 하게 되어서는 與父老約法三章일 뿐이오.’ 했다.”는 말에 의거한 것인데, 이에 대한 논의가 여러 가지인바 다음에 소개한다.
① 約은 생략함이다. 秦나라의 번거로운 법을 줄여 오직 3장뿐이니, 殺人‧傷人 및 도적을 말한다.(《史記》 卷8 〈高祖本紀〉 正義)
이에 의하면 구두는 ‘與父老約法 三章耳’로 된다.
② 王應麟이 말하기를 “與父老約에서 구두를 떼고 아래에 法三章을 말했을 뿐이다.” 하였고, 何焯이 말하기를 “王應麟은 《漢書》 卷1下 〈高帝紀 第1下〉 끝부분에 ‘처음으로 백성의 마음을 순히 하여 3장의 약속을 만들었다.’가 있음으로 인하여 約자에서 구두를 떼는 것으로 고쳤다. 이 約法은 위의 苛法과 對句이다. 《漢書》 卷4 〈文帝紀〉 속에 宋昌의 ‘법령을 생략하게 한다.’는 말이 있고, 《漢書》 卷4 〈刑法志〉에 ‘約法三章’을 말한 것이 하나가 아니니, 옛날대로 해야 할 것이다.” 하였는데, 내(考證 저자)가 살펴보건대 윗글에도 吾與諸侯約이 있어 約자 뜻이 같으니 왕응린의 주장은 바꿀 수 없다.(《史記》 卷8 〈高祖本紀〉 考證)
왕응린에 의하면 ‘원로들과 약속하니 법이 3장일 뿐이다.’로 풀이되고, 구두는 ‘與父老約 約法三章耳’로 된다. 何焯에 의하면 ‘원로들과 생략된 법 3장일 뿐이다.’로 풀이되고, 구두는 ‘與父老約法三章耳’로 된다.
③ 李宗侗이 말하였다. “살펴보면 約자는 본래 겹친 글자이니, 원래 ‘與父老約 約法三章耳’라고 써야 한다. 원래 위의 約자에서 구절을 끊은 것과 대응하였는데 뒤에 옮겨 베낄 때에 約 한 글자를 생략해 없애서 마침내 쟁변을 일으켰다. 옛사람이 무릇 겹친 글자 혹은 겹친 말에는 대부분 2개의 점으로 표시하였으므로 쉽게 소홀히 생략되었다. 이와 같은 말은 원래 ‘與父老約⺀法三章耳’라고 썼던 것인데, 뒤에 이 두 점이 생략되어 마침내 하나의 約자가 되었다.(《資治通鑑今註》 卷9 李宗侗等 校註, 臺灣商務印書官, 臺北, 民國74. 16面. B.C.206年)
이에 의하면 ‘원로들과 약속하여 생략된 법 3장일 뿐이다.’로 풀이되고, 約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한다.
역주3 韓弊煩刑 : 韓은 姓인데 이름이 非다. 弊는 고단하다는 뜻이다. 煩은 가혹하다는 뜻이다. 韓非는 刑名學(형벌을 밝히며 名實을 따르는 학문)을 하였는데 李斯가 헐뜯어서 秦나라 감옥에서 죽었으니, 이는 형벌을 번거로이 하여 스스로 곤란하게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釋義》)
역주4 秊 : 年(해 년)의 本字이다.(《中》)
秊은 ‘곡식이 익다’가 본의이고, 일 년에 벼가 한 번 익음을 취해 일 년의 뜻이 되었다.
年(곡식 익을 년)은 곡식이 익음이다. 禾(벼 화)를 따르고 千(일천 천)이 소리이다. 年(해 년)은 벼가 한 번 익음을 취하였다.(《說文》 段注)


신습한자

何:어찌 하 何暇 何等 何時 何人 何必 誰何 如何 何如間
遵:좇을 준 遵法 遵奉 遵守 遵用 遵行 難遵 永遵
約:약속할 약/간략할 약 約束 約定 約婚 契約 公約 期約 金石盟約
法:법 법 法令 法律 法治 無法 不法 戰法 約法三章
韓:나라 한 韓國 韓服 韓食 韓屋 馬韓 三韓 大韓民國
弊:해질 폐 弊端 弊社 弊習 弊風 弊害 困弊 時弊 疲弊
煩:번거로울 번 煩多 煩悶 煩熱 煩雜 除煩 煩言鎖辭
刑:형벌 형 刑罰 刑法 刑曹 減刑 體刑 斬刑 處刑 刑務所

 

3‧9‧75 起翦頗牧은 用軍最精이라 (起◯翦◯頗牧●은 用◑軍最◑精◎이라)
白起王翦은 秦將이요 廉頗李牧은 趙將이라
言用軍之法이 四將最精也라


〈秦나라의〉 白起‧王翦과 〈趙나라의〉 廉頗‧李牧은 군사를 운용하는 것이 가장 정묘하였다.
白起와 王翦은 秦나라 장수이고, 廉頗와 李牧은 趙나라 장수이다.
군사를 운용하는 법은 이들 네 장수가 가장 정묘하다고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翦 : 俗字는 剪(자를 전)이다.(《釋義》)
역주2 用軍最精 : 軍은 병사이다. 最는 극도이다. 精은 잘함이다.(《釋義》)


신습한자

起:일어날 기 起伏 起床 起用 突起 坐起 興起 起死回生
翦:자를 전 翦斷 翦刀 翦伐 誅翦 翦髮易書 翦草除根
頗:자못 파 頗多 頗僻 不頗 偏頗 險頗 無偏無頗
牧:칠 목 牧歌 牧童 牧養 牧場 牧畜 放牧 牧民心書
用:쓸 용 用道 用例 用務 用捨 國用 信用 利用 採用
軍:군사 군 軍閥 軍隊 軍備 軍士 水軍 友軍 陸軍 軍資金
最:가장 최 最大 最上 最新 最後 殿最 最高級 最新銳
精:정묘할 정 精氣 精選 精神 精銳 精通 妖精 酒精 精米所

 

3‧9‧76 宣威沙漠하고 馳譽丹靑이라 (宣威沙漠●하고 馳譽丹靑◎이라)
沙漠은 朔北極邊之地니 言爲將者能宣揚威武於沙漠也라
丹靑은 圖其形貌라
樹功則圖形하여 而馳名譽於永久하니 如漢宣帝圖畫功臣於麒麟閣이 是也라


威力을 사막에 펼치고, 畫像에 얼굴을 그려 명예를 전파하였다.
沙漠은 朔北의 맨 끝 변방의 지역이니, 장군이 된 자가 위엄과 무용을 사막에 능히 펴 드날림을 말한 것이다.
丹靑은 그 얼굴과 모양을 그린 것이다.
공을 세우면 얼굴을 그려 명예를 영원히 전파하니, 漢나라 宣帝가 공신들을 麒麟閣에 그려놓은 것이 그것이다.
[節旨] 이는 여러 영재들이 武功을 세운 것을 말하였다.(《釋義》)
[節解] 이는 이 네 사람이 군대 운용을 매우 잘하여 威嚴을 북방 사막의 땅에 펼치고, 그 名譽가 멀리 달려 나가 심지어 그 화상을 그려서 잊지 않게 됨을 말한 것이다.(《釋義》)
이상 4節은 모두 여러 영재들의 성대함을 말하였으니 예컨대 殷나라의 伊尹‧傅說이 있고, 주나라의 周公‧太公望이 있고, 한나라의 四皓가 있는 것과 같다. 또 확충하여 말하였으니, 예컨대 五霸‧七雄의 謀臣‧策士가 있고, 명분과 법률을 담당한 이에 蕭何‧韓非와 같은 이가 있고, 武功을 세운 이에 白起‧王翦‧廉頗‧李牧과 같은 이가 있어 이루 다 셀 수 없다고 한 것이다.(《釋義》)


역주
역주1 宣威沙漠 : 宣은 펼친다는 뜻이다. 威는 군대의 위엄이다. 沙는 《說文》에 이르기를 “돌이 물에 부서진 것이다.” 하였다. 漠은 광대하다는 뜻이다. 북방의 땅은 모두 모래에다 초목이 나지 않아 한 번 바라봄에 광대하므로 사막이라고 한다.(《釋義》)
역주2 馳譽丹靑 : 馳는 말이 빨리 달려감이다. 譽는 명성이다. 丹靑은 모두 채색이니, 그림에 쓰는 것이다. 이는 그 명성을 그림 속에 전파한 것으로 예컨대 한나라 宣帝가 공신들을 麒麟閣에 그려놓고 後漢 明帝가 공신들을 雲臺*에 그려놓은 것과 같은 부류라고 말한 것이다.(《釋義》)
*雲臺 : 臺 이름이다. 漢나라 궁중의 높은 대인데 南宮 안에 있다. 後漢 永平 연간에 明帝가 功臣들을 추념하여 鄧禹 등 28장군의 화상을 그 위에 그려놓았다.(《中》)
역주3 朔北 : 북방 邊塞 밖의 지역이다.(《中》)
역주4 麒麟閣 : 漢나라 때의 전각 이름으로 未央宮 안에 있다. 한나라 宣帝 때 일찍이 霍光 등 11공신의 화상을 기린각 위에 그려놓아 그 공적을 나타내 드날렸다.(《漢》)


신습한자

宣:베풀 선 宣告 宣敎 宣言 宣傳 宣布 承宣 宣戰布告
威:위엄 위 威力 威嚴 威脅 國威 威風堂堂 威而不猛
沙:모래 사 沙器 土沙 沙鉢通文 沙上樓閣 明沙十里
漠:아득할 막 漠北 漠然 廣漠 沙漠 寂漠 荒漠 漠漠大海
馳:달릴 치 馳馬 馳辯 馳報 馳走 驅馳
譽:칭찬할 예 譽聞 譽言 光譽 名譽 榮譽 稱譽 毁譽 譽兒癖
丹:붉을 단 丹心 牡丹 丹脣皓齒 一片丹心 盲玩丹靑
靑:푸를 청 靑年 靑史 靑寫眞 萬古常靑 靑出於藍而靑於藍

 

3‧10‧77 九州禹跡이요 百郡秦幷이라 (九◯州禹◯跡●이요 百●郡◑秦幷◎이라)
九州는 冀兗靑徐揚荊豫梁雍也라
夏禹隨山刊木하여 分別九州하시니 九州는 皆禹所經이라
故曰禹跡이라하니라
秦始皇이 有天下에 廢封建之制하고 置郡凡三十六이러니
歷代增益하여 乃至百郡이나 而置郡始於秦이라 故曰秦幷이라하니라


9州는 禹임금의 발자취가 이른 곳이고, 100郡은 秦나라가 합병한 땅이다.
9州는 冀州‧兗州‧靑州‧徐州‧揚州‧荊州‧豫州‧梁州‧雍州이다.
夏나라 禹王이 산을 따라 나무를 베어 길을 통하게 해서 구주를 분별하니, 구주는 모두 禹王이 경유한 곳이다.
그러므로 禹王의 발자취라고 하였다.
秦나라 始皇은 천하를 소유하고서 封建制를 폐지하고 郡을 설치하였는데 모두 36개 군이었다.
시대가 지나면서 증가하여 1백 개의 군에 이르렀으나 군을 설치한 것이 진나라 때에 시작되었으므로 “진나라가 합병했다.”고 하였다.


역주
역주1 九州禹跡 : 禹는 夏나라 왕이다. 跡은 발자취이다. 《書經》 〈立政〉에 말하기를 “우왕의 발자취에 따라 올라간다.” 하였다.
黃帝로부터 처음으로 천하를 나누어 9주로 만들고, 虞‧舜에 이르러 나누어 12주로 하였다가 禹王이 물과 땅을 평안히 한 때에 이르러 다시 9주로 하였는데 〈夏‧殷‧周〉 三代에서 이를 따랐다. 이는 9주가 夏나라 우왕에게 세워져서 모두 그의 발자취가 이른 곳이라고 한 것이다.(《釋義》)
역주2 跡 : 《註解》에 迹으로 썼는데 그 주석에 “迹(발자취 적)은 跡과 同字이다. 蹟(발자취 적)도 同字이다.”라고 하여 同字 관계를 밝혔다.
역주3 百郡秦幷 : 100군은 京兆‧左馮翊(좌빙익)‧右扶風‧弘農‧河東‧河內‧河南……遼西‧遼東‧玄菟‧樂浪‧廣陽‧南海‧鬱林‧蒼梧‧交趾‧合浦‧九眞‧日南으로 모두 103군인데 100군이라고 말한 것은 큰 숫자를 든 것이다. 秦은 나라 이름이다. 幷은 합하여 하나로 한 것이다.
상고시대부터 三代까지 모두 제후를 책봉해 세워서 천하를 나누어 다스렸는데 秦나라 시황 때에 이르러 6국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하나로 합병하였다. 이에 봉건제를 없애고 천하를 나누어 36군으로 하였다가 漢나라 때에 이르러 또 나누어 100군으로 하였다. 이는 한나라의 100군 지역이 진나라에 합병됨을 말한 것이다.(《釋義》)
역주4 封建 : 邦을 책봉하고 國을 세움이다. 古代에 帝王이 爵位와 土地를 친척 혹은 공신에게 나누어주고 그에게 각각 해당 지역 안에서 나라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전해오기를 黃帝가 봉건을 시작하여 周나라에 이르러 제도가 비로소 갖추어졌다고 한다.(《漢》)


신습한자

九:아홉 구 九經 九思 九死一生 九牛一毛 九折羊腸
州:고을 주 州郡 州里 州牧 州俗 九州 神州 諸州 知州
禹:하우씨 우 禹貢 禹步 禹域 禪禹 舜禹 夏禹 禹行舜趨
跡:발자취 적 跡殊 古跡 人跡 蹤跡 足跡 筆跡 車轍馬跡
百:일백 백 百官 百姓 百年河淸 百折不屈 百尺竿頭
郡:고을 군 郡廳 郡民 郡守 市郡 郡縣制度 道郡面里
秦:나라 이름 진 秦聲 秦越 秦篆 秦火 先秦 帝秦 三秦 秦始皇
幷:아우를 병 幷轡 幷呑 兼幷 合幷 幷駕齊驅 幷行不悖

 

3‧10‧78 嶽宗恒岱하고 禪主云亭하니라 (嶽●宗恒岱◑하고 禪主◯云亭◎하니라)
言五嶽은 以恒岱爲宗也라
恒은 唐本作泰하니 泰岱는 東嶽也라
天子는 十二秊에 一巡狩할새 必封禪泰岱하니라
云云亭亭은 泰岱下小山이니 必主宿於是하여 齋沐而後에 祀岱宗焉하니라


五嶽은 恒山과 岱山을 으뜸으로 하고, 禪제사는 云云山과 亭亭山에 의거하였다.
五嶽은 恒山과 岱山을 으뜸으로 삼음을 말한 것이다.
恒은 唐本에 泰로 되어 있으니, 泰岱(泰山)는 東嶽이다.
天子는 12년에 한 번씩 巡狩하였는데, 반드시 泰岱에서 封禪 의식을 하였다.
云云‧亭亭은 태대 아래에 있는 작은 산인데, 천자가 반드시 이곳에서 유숙하며 목욕재계한 뒤에 岱宗에 제사하였다.


역주
역주1 恒岱 : 《釋義》에는 泰岱로 되어 있다. 恒岱는 恒山과 岱山 두 산이고, 泰岱는 泰山 하나이다. 泰는 太(클 태)와 같다.(《中》)
泰山은 太山으로도 쓰고, 또 岱宗으로 부르기도 한다. 泰岱를 한 개 산으로 보는 것보다 恒岱의 두 개 산으로 보는 것이 云‧亭의 두 개 산과 對句를 이룬다.
역주2 嶽宗恒岱 禪主云亭 : 嶽은 五嶽이니, 東嶽은 泰山이고 西嶽은 華山이고 南嶽은 衡山이고 北嶽은 恒山이고 中嶽은 嵩山이다. 宗은 높다는 뜻이다. 泰岱는 바로 太山이다. 五嶽에서는 泰山이 존귀하다.
《書經》 〈舜典〉에 말하기를 “岱宗에 이르렀다.” 하였다. 禪은 封禪이다. 태산 위에 흙을 쌓아 壇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는 것을 封이라 하고, 또 태산의 아래 작은 산 위에 땅을 掃除하여 제사 터[墠]를 만들어 땅에 제사하는 것을 禪이라 한다.
主는 의거한다는 뜻이다. 云‧亭은 모두 산 이름이니, 云云山‧亭亭山은 모두 태산의 아래 작은 산이다. 이는 말하기를 “태산에서 封제사 지낸 사람이 禪제사는 운운산‧정정산 두 산에 의거한다.”고 한 것이다.
《史記》 〈封禪書〉에 이르기를 “옛날 無懷氏는 태산에 封제사하며 운운산에 禪제사하였고, 伏羲氏는 태산에 封제사하며 운운산에 禪제사하였고, …… 舜은 태산에 封제사하며 운운산에 禪제사하였고, 湯은 태산에 封제사하며 운운산에 禪제사하였다.” 하였다.(《釋義》)
역주3 天子十二秊 一巡狩 : 6년 만에 5服 구역 제후들이 한 번 인사 드리러 오고, 또 6년 만에 왕이 철에 맞추어 순수한다.(《書經》 〈周官〉)
12년 만에 왕이 한 번 巡守하는 것이다.(《書經》 〈周官〉 集傳)
역주4 岱宗 : 泰山이다. 태산은 옛부터 五嶽의 우두머리에 있어서 여러 산에서 높임을 받으므로 이렇게 일컫는 것이다.(《漢》)
신습한자
신습
한자
嶽:산마루 악 嶽降 嶽母 嶽丈 巨嶽 喬嶽 山嶽 五嶽 海嶽
宗:마루 종/으뜸 종 宗家 宗敎 宗社 宗派 同宗 正宗 祖宗 宗親會
恒:항상 항/항산 항 恒久 恒常 恒時 用恒 有恒 無恒産者無恒心
岱:태산 대 岱山 岱嶽 岱宗 岱華 望岱 封岱 如岱 海岱
禪:참선할 선/터 닦아 제사할 선/물려줄 선 禪門 禪讓 禪宗 封禪 坐禪 參禪
主:주인 주/의지할 주/임금 주 主食 主人 主宰 君主 地主 天主 主客顚倒
云:이를 운/산 이름 운 云云 云爲 云謂 云何 多云 亦云 食云 入云
亭:정자 정/산 이름 정 亭閣 亭子 亭長 官亭 山亭 驛亭 料亭 長亭

 

3‧10‧79 雁門紫塞요 雞田赤城이라 (雁◑門紫◯塞◑요 雞田赤●城◎이라)
雁門은 郡名이니 在幷州하니 春雁北歸踰此라 故名이라
紫塞는 地名이니 秦築長城에 土色皆紫하니라
雞田은 在雍州라
昔에 周文은 獲雌而王하고 秦穆은 獲雌而霸하니라
下有寶雞祠하니 秦郊祀處라
赤城은 在夔州魚腹縣하니라


관문은 雁門, 성벽은 紫塞, 역참은 雞田, 성벽은 赤城이다.
雁門은 郡 이름이니, 幷州에 있었는데, 봄에 기러기가 북쪽으로 돌아갈 때에 이곳을 넘어가므로 이름이 된 것이다.
紫塞는 지명이니, 秦나라가 이곳에 장성을 쌓았는데, 흙빛이 모두 자주색이었다.
雞田은 雍州에 있었다.
옛날에 周나라 文王은 암탉을 얻고 왕자가 되었으며, 秦나라 穆公은 암탉을 얻고 패자가 되었다.
아래에 寶雞祠가 있으니, 秦나라에서 하늘에 郊祭를 지내던 곳이다.
赤城은 夔州 魚腹縣에 있다.


역주
역주1 雁 : 鴈(기러기 안)과 同字이다.(《中》)
역주2 紫塞 : 《註解》에 地名, 《釋義》에 長城(萬里長城)으로 풀이되었으나, 여러 典據에는 ‘長城’으로 나타나고 ‘地名’은 확인하기 어렵다. 《註解》의 ‘地名’을 삭제하면 《釋義》와 같은 풀이가 된다.
역주3 雞 : 籒文에는 鷄(닭 계)로 썼다.(《中》)
역주4 雁門紫塞 雞田赤城 : 雁門은 關門 이름이다. 紫塞는 바로 장성이니, 秦나라 始皇이 쌓았는데 서쪽으로 臨洮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朝鮮까지 이르러 그 길이가 만 리이고, 흙빛이 모두 검붉으므로 紫塞라고 일컬었다. 雞田은 역 이름이다. 赤城은 옛날 蚩尤가 살던 곳이다.(《釋義》)
역주5 昔周文 獲雌而王 : 周나라 文王 때에 鸑鷟(악착:봉황의 일종)이 岐山에서 울었다. (《玉海》 卷199 〈祥瑞 動物 鳳 祥禽〉)
역주6 下有 : 《唐書》에 ‘始爲’로 나타났다.
역주7 秦穆獲雌而霸 下有寶雞祠 : 당나라 褚遂良이 말하였다. “옛날 秦나라 文公 때에 아동이 있어 변하여 꿩이 되었는데 암꿩은 陳倉에서 울고 수꿩은 南陽에서 울었습니다. 아동이 말하기를 ‘수컷을 얻는 이는 王이 되고 암컷을 얻는 이는 霸가 된다.’ 하였는데, 文公이 마침내 패자가 되어 처음으로 寶雞祠를 지었습니다. 後漢 光武皇帝는 그 수컷을 얻어 南陽에서 일어나서 천하를 차지하였습니다.”(《唐書》 卷105 〈褚遂良傳〉)


신습한자

雁:기러기 안 雁書 雁信 雁陣 雁行(항) 孤雁 歸雁 鳴雁 鴻雁
門:문 문 門人 名門 部門 登龍門 門下生 門前沃畓
紫:자줏빛 자/검붉을 자 紫泥 紫色 紫霞 紅紫 紫外線 紫雲英 紫奪朱
塞:변방 새/막을 색 塞外 邊塞 要塞 塞翁之馬 塞(색)責 窮塞(색) 壅塞(색)
雞:닭 계 雞卵 鬪雞 雞口牛後 雞鳴狗盜 群雞一鶴
田:밭 전 田畓 田野 油田 井田 良田萬頃 瓜田不納履
赤:붉을 적 赤旗 赤誠 赧赤 赤裸裸 赤壁賦 赤松子 赤十字
城:성벽 성 城郭 城壁 宮城 長城 不夜城 城下之盟

 

3‧10‧80 昆池碣石과 鉅野洞庭이라 (昆池碣●石●과 鉅◯野◯洞◑庭◎이라)
昆池는 在雲南昆明縣하니
漢武欲通雲南하여 鑿昆明池하여 以習水戰하니 亦曰昆池라
碣石은 在北平郡黎城縣하니라
鉅野郡은 在泰山之東하고 洞庭湖는 在岳州大江之南과 彭蠡之西하니라


못은 昆池, 산은 碣石, 늪은 鉅野, 호수는 洞庭이다.
昆池는 雲南 昆明縣에 있다.
漢나라 武帝는 운남을 통행하려 하여 昆明池를 파고서 수상 전투를 익혔는데, 또한 곤지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碣石은 北平郡 黎城縣에 있다.
鉅野郡은 泰山의 동쪽에 있고 洞庭湖는 岳州의 大江(揚子江) 남쪽과 彭蠡의 서쪽에 있다.


역주
역주1 鉅 : 巨(클 거)와 同字이다.(《註解》)
역주2 鉅野 : 鉅野는 郡과 澤으로 나타난다. 王莽 때에 鉅野郡이 된 적이 있으나, 《千字文》 본문은 池‧山‧澤‧湖를 제시한 것이므로 澤으로 풀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역주3 昆池碣石 鉅野洞庭 : 昆池는 바로 滇池이니, 일명 昆明池이다. 碣石은 산 이름이다. 鉅野는 늪 이름인데 지금은 이미 말랐다. 洞庭은 호수 이름이다.(《釋義》)
역주4 漢武欲通雲南 : 鑿昆明池의 설명을 참고하면 通은 雲南을 정벌하여 소통함을 뜻한다.
역주5 鑿昆明池 : 長安에 운남의 昆明池를 본떠서 못을 판 것을 말한다.
漢나라 武帝가 판 昆明池는 지금 西安府 성 안의 上林苑 속에 있다. 무제는 昆明의 夷族을 정벌하려 하였는데, 그 나라에 滇池가 있어서 마침내 못을 파서 본떠서 수상 전투를 연습하였으니 주위가 40리였다.(《山堂肆考》 卷24 〈地理 池〉)


신습한자

昆:맏 곤 昆季 昆孫 昆裔 昆玉 昆弟 昆蟲 諸昆 後昆
池:못 지 池塘 瑤池 天池 貯水池 池魚籠鳥 金城湯池
碣:비석 갈/돌 갈 古碣 碑碣 斷碣 石碣 臥碣 立碣 殘碣 墓碣銘
石:돌 석 石刻 石油 石炭 木石 玉石 大理石 以卵投石
鉅:클 거 鉅萬 鉅商 鉅魚 鉅鐵 細鉅 業鉅 才鉅 最鉅
野:들 야 野談 野蠻 野生 野人 分野 山野 平野 荒野
洞:골 동/살필 통 洞口 洞里 大洞 洞內坊內 洞房花燭 洞察
庭:뜰 정 庭球 庭燎 庭園 庭前 家庭 校庭 玉樹後庭花

 

3‧10‧81 曠遠綿邈하고 巖岫杳冥이라 (曠◑遠◯綿邈●하고 巖岫◑杳◯冥◎이라)
上文所列山川이 皆空曠而遙遠也라
巖岫는 山之岌嶪而不可登이요 杳冥은 水之淵深而不可測也라


〈山川이〉 광막하고 멀며, 바위와 봉우리가 높고 물이 아득하다.
윗글에 나열한 山川이 모두 텅 비고 아득히 멀다.
巖岫는 산이 높아서 오를 수 없는 것이요, 杳冥은 물이 깊어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節旨] 이 節은 王者의 土地가 넓음을 말하였다.
[節解] 王者의 토지가 광대하여 9州와 100郡이 모두 그의 소유라고 말한 것이다. 그 중에 또 토지의 현저한 것을 들어 그 성대함을 말하였으니, 예컨대 封禪하는 곳으로 泰山과 云云山‧亭亭山이 있으며, 關門에는 雁門이 있으며, 성에는 紫塞(자새)‧赤城이 있으며, 驛에는 雞田이 있으며, 못에는 昆明이 있으며, 산에는 碣石이 있으며, 늪에는 鉅野가 있으며, 호수에는 洞庭이 있어서 모두 광활하며 멀고 아득하여 끝이 없으며 그 산의 바위굴 또한 깊숙하고 어둑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역주
역주1 綿 : 緜과 同字이다.(《中》)
역주2 巖岫 : 산의 굴이며, 산의 봉우리이다.(《漢》)
이에 의하여 巖岫에 대한 《註解》의 ‘산봉우리’, 《釋義》의 ‘돌의 굴’과 ‘산의 굴’의 견해를 모두 인정할 수 있다.
역주3 巖 : 俗字가 岩(바위 암)이다.(《註解》)
역주4 岫 : 峀(산굴 수, 산봉우리 수)와 같다.(《中華字解》)
역주5 曠遠綿邈 巖岫杳冥 : 曠은 넓다는 뜻이다. 綿邈은 먼 모양이다. 돌의 굴을 巖이라 한다. 산의 굴을 岫라 한다. 杳는 깊다는 뜻이다. 冥은 어둡다는 뜻이다.(《釋義》)


신습한자

曠:빌 광 曠邈 曠野 曠遠 高曠 曠日持久 曠世之才
遠:멀 원 遠近 永遠 遠視眼 遠交近攻 遠親不如近隣
綿:솜 면/멀 면 綿力 綿絲 綿布 綿花 木綿 純綿 連綿 綿織物
邈:멀 막 邈邈 邈然 邈志 曠邈 路邈 茫邈 冥邈 遐邈
巖:바위 암 巖盤 巖壁 巖石 巖鹽 巨巖 山巖 巖穴之士
岫:산봉우리 수 岫列 岫雲 群岫 深岫 列岫 遠岫 幽岫 曉岫
杳:아득할 묘 杳茫 杳杳 杳邃 杳然 空杳 思杳 深杳 林杳
冥:어두울 명 冥界 冥福 冥府 冥想 冥晦 幽冥 昏冥 晦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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