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수년을 서예를 하면서도 체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체본이 있어야만 출품을 할 수 있는 친구와 둘이서 술 한 잔 나누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체본이 없으면 글씨를 쓸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에서 시작하여, 해서는 재미가 없고 지루하여 조금 껄적거리다 바로 행서로 넘어왔는데 행서만 십년을 썼는데도 처음엔 조금 느는가 싶더니 늘 그자리서 맴돌고 만다는 이야기며, 행서의 법첩이 하도 많아 이것을 보면 이것이 좋아 보이고 저것을 보면 저것이 좋아 보여 이것도 한 번, 저것도 한 번, 이렇게 법첩만 임서해 본 것만 해도 열가지가 넘는다는 이야기며......
라석 현민식 선생께서 후학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픈 마음에서 직접 써 출판하신 <라석 현민식 서해서 천자문>을 보내 주시면서 행서 법첩의 경우 <난정서>도 좋지만 초학자는 기초를 튼실히 익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집자성교서>를 신중하게 익히는 것이 긴요하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이전에 잠깐 보았던 집자성교서 법첩을 꺼내서 새로 찬찬히 들여다 보기 시작했습니다.
<집자성교서 법첩>
이 책은 30여년 전, 성균서관이란 출판사에서 펴낸 책인데 출판사도 없어져 버렸고, 그 후 다른 출판사에서 약간 비슷하게 출판한 법첩이 유포되고 있으나 이 책이 더 알찬 것 같았습니다.
서예의 경우서법과결구법은 서예의 뼈대와 몸체를 이루는 근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골격을 튼실히 하는 것이 첫째가는 요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법과 결구법이 갖추어진 연 후에태세라든가강약이라든가신리,이태며,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을 생각하여포치,장법에 이르기 까지를 고려하게 되는 것이 예술적 표현을 하게 하는 순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미인의 선발 조건에서 근골이 튼실한 바탕 위에 이목구비며, 적당하게 볼륨감 있게 다듬어진 몸매며, 탄력과 운동살이 붙어 생명력이 넘치는 활기찬 모습에다, 너무 큰 키도 그렇다고 너무 작은 키도 아닌 몸매가 아름답게 보이는 이치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해서의 경우, 서법과 결구법을 익히는 데는 <영자팔법>에서 시작하여 <구성궁 해서 결구 44법>을 익히기 쉽도록 법첩이 나와 있어 초학자들이 알기 쉽게 공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서의 경우는 이 곳 저 곳에서 두서없이 조금씩 설명되고 있어 정작 임서할 때는 해설은 자세히 보지 아니하고 곧바로 형림에 들어가는 까닭에<행서의 기초에 관한 정확한 서법>이나<행서의 결구법>은 지나쳐 버리고 그저 열심히 글자의 형태만 임모하기에 열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행서의 법첩으로 난정서를 먼저 익혔는데 문맥과 문장의 흐름은 좋았으나 정작 행서의 기초가 되는 서법과 결구법은 도외시 하고 형림에 치우쳤다고 생각합니다.
라석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새삼 눈이 뜨여 이 집자성교서 법첩을 다시 보니 이 책이 이렇게 보배인 줄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를 일이라 저의 경험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우선 성질 급한 사람을 위하여 행서의 서법과 결구법에 앞서 이 법첩의 대략적인 요약을 먼저 소개합니다.
< 선과 모양에서 나타나는 행서의 특징>
A. 점과 획에 둥근 맛이 있다.
해서는 대체로 직선적으로 쓰지만 행서는 곡선이 많다.
따라서 행서는 점 획이 둥글고 평화롭다.
B. 점 획을 잇따라 쓴다.
해서는 모가 나 있어서 일점 일획에 분명한 구별이 있으나 행서는 점이나 획이 잇따라 있으며, 앞의 필획의 끝이 뒤의 필획의 시작이 되어 이른바 허획이 실획으로 나타난다.
C. 점획이 생략된다.
행서는 해서처럼 일점 일획이 고립되어 있지 않으므로 점 획을 계속 써 내려가는 동안 점이나 획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D. 필순이 바뀌어진다.
점 획이 생략되거나 계속되거나 하는 결과, 해서의 필순과 다른 경우가 생긴다.
명심해야 할 사실은 행서가 해서보다 먼저 확립되었으며, 다만 우리가 해서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란 점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E. 점 획의 모양이 바뀐다.
점 획에 둥근 맛을 보이거나 계속하거나 생략하거나 하는 관계상 해서의 점 획과 모양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F. 여러가지 자형이 있다.
같은 행서라도 해서에 가까운 것에서 부터 초서에 가까운 것 까지, 또 허획이 이어지는 장단, 태세 따위, 또는 생략법에 따라 여러가지 자형이 된다.
집자성교서의 학습에 유의할 사항
집자성교서는 왕희지가 직접 쓴 글씨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후세인이 왕희지의 글씨를 한자 한자 집자하여 만든 비석이기 때문에 글씨를 익힐 때 몇가지 유의해야할 점이 있는데
1. 기맥관통을 살필 것
2. 부드러움을 살릴 것
3. 절세에 주의하여 운필할 것
4. 태세의 조화를 잘 익힐 것
5. 변형의 원칙을 충분히 익힐 것
이상의 다섯가지 중에서도 특히 맨 마지막의 변화의 원칙은 왕희지 행서의 조형원리가 되는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고 있으므로 이것이 왕희지 행서의 결구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
원칙 1. 부등분할 <川, 而, 海>
점획과 점획 사이에 이루어진 공간을 균등분할하지 않고, 넓은 곳과 좁은 곳을 만들므로써, 같은 크기의 글씨인데도 위치의 광협으로 글씨의 크기가 달라 보인다.
그러한 까닭에 동적인 느낌도 주고 있다.
원칙 2. 중심이동 <蜜, 古, 崇>
글씨의 중심을 이동하여 변화를 붙인다.
이 경우 중심이 될 종획은 다른 획과의 각도 따위, 역학적인 관계에 따라 조화를 견지한다.
변화의 허용범위를 잘 보아야 한다.
원칙 3. 불평행선 <書, 潤, 亨>
평행된 획을 피하고 넓이의 방향성 등 동적인 변화가 있다.
원칙 4. 좌우 변화
편과 방의 역학관계를 어느 쪽엔가 중점을 둔 모양으로 변화시켜 동적인 성격을 이룬다.
4-1. 편소 방대 <懷, 敏, 妙>
4-2. 편대 방소 <能, 鋼, 기>
원칙 5. 상하 변화
상하의 크기의 강함을 동등하게 하지 않고, 어느 쪽엔가 중점을 두고 넓이의 방향성을 견지하고 있다.
5-1. 아래로 넓어진다. <廣, 兼, 若>
5-2. 위로 넓어진다. <學, 業, 雲>
원칙 6. 경사 상하 좌우의 변화
왕희지 행서의 특징인 비뚤어짐 속에서 가장 현저한 것이 기울어져 넓이를 갖게 하는 조형성이다.
사향성을 견지하는 변화이므로 행서로서의 움직임이 극도로 발휘된다.
6-1. 우상으로 넓어진다. <陰, 投, 波>
6-2. 좌하로 넓어진다. <裁, 馳,乎>
6-3. 좌상으로 넓어진다. <老, 聖, 體>
6-4. 우하로 넓어진다. <慶, 藏, 域>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모든 글자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글씨에 따라, 또는 점획 구성상의 특징에 따라 각각의 원칙을 적용해야 할 것이며, 한 글씨에 과도하게 적용하여 아름다움을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 오지 않도록 유효적절한 변화를 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내용에 따라 창건상량문, 중수상량문, 중건상량문 등으로 나뉜다. 원래 상량대에 간략하게 붓글씨로 썼지만 궁실, 관아, 학교, 사원 등에서는 써야 할 내용이 많아 따로 상량문을 써서 상량대에 홈을 파고 넣어 두었다. 종이 대신 비단에 적기도 하며 대나무나 나무·구리 통 등에 넣는데 통의 위아래에는 다음 중수 때 보태 쓰라는 의미로 패물이나 부적을 함께 넣었다. 일반 집에서는 장혀 배바닥에 먹글씨로 써서 마루에서 올려다 볼 수 있게 하지만 공공 건물에서는 마루도리 배바닥이나 받침장혀의 등덜미에 써서 결구(結構)하면 가려져 보이지 않게 하였다.
공공건물에서는 조영(造營) 사실과 집지은 뒤 좋은 일이 있기를 비는 찬문(讚文), 공역에 관계한 사람들의 이름과 글을 쓴 시기를 적어 둔다. 일반 집에서는 집의 좌향과 개기(開基), 입주, 상량 날짜와 시각을 한 줄로 내려 쓰고 그 아래 두 줄로 기원 내용을 적는다. 때로는 집주인의 방명(芳名)을 적어 두기도 하였다. 선비들은 자신의 문집에 자기가 지은 상량문이나 당대 명문장의 상량문을 싣기도 하였다. 상량을 올리는 날에는 성대한 상량고사를 지냈으며 이를 상량식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면 실제로 쓰는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자. 세로로 긴 비단, 무명, 또는 종이에 아니면 원목 대들보 위에다 길게 붓글씨로 쓰는데, 맨 위에는 ‘龍’자를 크게 거꾸로 쓰고, 세로로 ‘某年某月某日立柱上樑’이라고 쓴 후에, 그 아래에 좀 작은 글씨로 다음의 내용을 두 줄로 쓴다. 이어서 오른쪽에 應天上之五光 (하늘의 오색빛이 감응하고) 왼쪽에 備地上之五福 (땅의 오복이 준비하도다.)을 두 줄로 쓴 뒤에, 그 밑에 큰 글씨로 거북 龜자를 쓰면 된다. 날짜는 쓸 때는 ‘甲申年四月 日’처럼 통상 구체적인 날짜를 비워둔다.
서예가가 쓴 글씨가 타인에게는 읽지 못하는 분방자의(奔放恣意)의 자태일지 모르나 그 서예가에게는 읽는 문자로서 미의식 표현의 서사인 것이다.
서의 조형적 요소로서 형태와 선질(線質) 따위는 별개의 것이 아니고 표현에 있어서 깊은 관련이 있다. 그 형태는 서체(書體) 또는 서풍(書風)에 의한 정도로서 제약을 받는 것이고, 서의 선질은 서예가의 주관을 어느 정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서예는 선의 예술이다.
그래서 서의 선은 회화의 선과 같이 어느 물체의 형상을 표현하는 윤곽선이 아니고 비구상적인 선이다.
물론 사출(寫出)된 선에 의해서 문자의 자형(字形)이 표시되나 그것이 서선(書線)의 본질은 아니다.
서선은 부호로서 읽는 형(形)이 선이 아니고 내용 있는 선, 미의 선, 인간의 생명이 통하는 선이다. 이는 구상성을 떠난 선으로 필압(筆壓)과 속도로서 사출된 서예가를 상징하는 선이다. 즉 물체의 형태 또는 대상의 연관성을 그리는 선이 아니고, 인간성과 연관성이 깊은 선이다.
고래로부터 서를 심화(心畵)라고 한 것은 이 특질 있는 선질 표현의 기초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서의 형태미 이상으로 서의 본질을 형성하고 있다.
2.2. 서예의 근본정신
서예의 심오한 뜻은 기법의 연습(習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기법과 병행해서 정신수련을 중요시한다. 중국에서 서는 육예(六藝), 즉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중의 일부분으로 인간의 선행 수련이다.
고상한 사군자(士君子) 수업의 도(道)로서 많은 위인들이 전생애를 바쳐서 상승(相承) 발전시켜 왔다. 서예는 실용적인 요구와 서예적 만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인간의 영원성을 추구하는 도(道)로서 철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열구(熱求)되어 있다. 그래서 서예의 근본정신이 동양 일반의 예도(藝道)에 통하는 자연관을 기조로 한 것이다.
서의 표현 내용은 그 서의 소재·어구(語句) 시문(詩文)·문학적인 요소를 의미하고 있으나 독립된 시각성 예술로 향상되는 한, 서의 내용은 소재로서 문자보다 그 작품에 포함된 서미(書美)의 문제점이 생긴다. 즉 하나의 완성된 작품에는 전체를 구성하는 문자의 대소·포치(布置), 먹의 윤갈(潤渴), 낙관(落款)의 위치 즉 장법(章法=經營位置)이 중요하다.
그 작품에 구성된 문자의 형태미로서 동양문자는 회(繪)문자에서 발달된 상형문자며 표의문자다.
한글은 표음문자로서 한 자 한 구를 형태미로 '응물상형(應物象形)' 결체(結體)로 표현한다.
해행문자(蟹行文字)로서 유럽의 과학발달로 전체를 점령할 수 있는 유럽인이 조적문자(鳥跡文字)로서 동양의 도덕윤리를 발전시킨 인간 본질을 순화시키는 서예정신을 배울 수 있다.
서예는 정신적으로 세계 유물사상에 한 줄기 서광을 비추어 주고 있다.
3. 서예의 기초지식
3-1.서법(書法)
문자를 쓰는 데에 필요한 점화(点畵), 문자를 쓰는 방법, 붓을 쥐는 방법, 운필법(運筆法)이 좋은 방법을 말한다 문자는 오랜 서예의 역사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형성되었다.
그 동안 걸출한 천재에 의하여 무상(無上)의 방법이 나타났고 또한 많은 사람들의 눈을 통하여 모범이라고 할 만한 글씨가 전해졌다. 물론 방법은 일정불변한 것은 아니고 학문의 발달, 서가(書家)의 성격에 따라 저마다 독특한 서법이 나타나고 있다.
3-2. 법첩(法帖)
습자(習字)의 자습서로서 또한 감상용으로서 고인의 우품(優品)을 돌이나 나무에 파서 새기고, 이것을 인쇄하여 책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상각(上刻)한 것이 일인인종(一人一種)이라면 단첩(單帖), 많은 사람의 글씨를 모은 것이라면 집첩(集帖)이라 한다.
단첩으로서는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서(蘭亭序)>나 당 사대가(四大家)의 해서작(楷書作) 등이 저명하다. 집첩으로서는 송의 <순화각법첩(淳化閣法帖)>, 명의 <정운관첩(停雲館帖)>, <희홍당첩(戱鴻堂帖)>, 청의 <삼희당첩(三希堂帖)>, <여청재첩(餘淸齋帖)> 등이 알려져 있다. 더욱이 남당(南唐)의 후주(後主)가 고금의 서적(書跡)을 돌에 새겨서 제작한 <승원첩(昇元帖)>이 집첩(集帖)의 시조로 알려지고 있다.
3-3. 임서(臨書)
자습서를 곁에 놓고 보면서 쓰는 것, 그리고 그렇게 쓴 글씨를 말한다.
학서(學書)에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으로서, 효과가 크기 때문에 초심자, 대가의 구별없이 행해진다.
임서에는 형림(形臨)과 의림(意臨)이 있다. 형림은 자형(字形)을 충실하게 보고서 쓰는 것이며, 의림은 그 글씨의 뜻(마음)을 파악해서 표현함에 중점을 둔 방법이다.
그러나 글씨의 정신은 자형을 통하여 해석·표현되어야 하므로 앞뒤가 서로 연결되는 것이라 한다.
이 밖에 배림(背臨)이라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자습서를 잘 관찰하고서 충분히 그 뜻을 배우고 난 다음, 붓을 내릴 때에는 자습서를 보지 않고서 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비교적 솜씨가 숙달되고 난 다음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방법이다. 더욱이 자습서로는 양서의 선택이 중요하다.
서성으로 알려졌던 왕희지의 글씨는 한국, 중국, 일본의 구별없이 어느 시대에나 본보기가 되어 있다.
이처럼 고인의 우품(사진:법첩에 의한)을 자습서로 할 경우와 스승의 육필(肉筆)을 자습서로 할 경우가 있다.
3-4. 자운(自運)
임서에 대한 말로서 타인의 글씨를 참고로 하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공부하고 연구하여 제작하는 것과 그 작품을 말한다.
깊이 글씨를 배운 사람이 아니고서는 개성이 풍부한 작품을 쓰는 것은 곤란하다.
자운의 경우 문자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정감을 담아 쓴다는 것이 중요하지만 전체의 힘의 균형을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전체를 잘 마무리하는 것을 장법(章法)이라 한다.
3-5. 낙관(落款)
낙성관지(落成款識)를 약한 것이다. 서화의 일단에 서명·압인하고 완성이 뜻을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상세하게는 시구(詩句), 연월(年月), 간지(干支), 쓴 장소, 서사(書寫)의 이유, 증여할 상대방의 성호(性號)를 써넣어 서명·압인할 경우도 있다.
현재는 다만 호만을 쓰는 일이 많고, 도장 하나를 눌러서 대신할 경우도 있다.
중국회화에서는 원 이전은 거의 낙관을 하지 않았으며, 이따금 낙관할 때에는 화면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돌 틈새 등에 숨겨 썼다. 이것을 은낙관(隱落款)이라고 한다.
3-6. 전각(篆刻)
서화 등의 낙관에 쓰이는 도장에 전서(篆書)를 새기는 것을 말한다.
현대에는 방촌(方寸)의 세계의 생명의 약동을 표현하는 예술로서 글씨의 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다.
어떠한 서체이건 좋으나 작서를 새길 경우가 많으므로 전각이라 한다.
돌·나무·대나무 등의 인재(印材)에 문자를 반대로 쓰고서 인도(印刀=鐵筆)를 가지고서 새긴다. 문자가 붉게 바탕이 희게 압인되는 것을 주문(朱文)이라 하고, 그 반대를 백문(白文)이라 한다.
주문으로 새기는 것을 양각(陽刻), 백문으로 새기는 것을 음각(陰刻)이라고도 한다.
또한 각자(刻字)를 전각가(篆刻家), 새긴 것을 인장(印章)이라 하고, 역대의 고인(古印), 각 가각인(家刻印)의 인영(印影)을 모은 것을 인보(印譜)·인집(印集)·인존(印存)이라 부르고 있다.
3-7. 묵적(墨蹟)
중국에서는 단순히 필적(筆蹟)을 말하는데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임제(臨濟)를 주로 한 선종승려의 필적을 특히 묵적이라 부르고 있다.
그 내용은 중국 및 한국의 선승이 쓴 인가장(印可狀)·게송·법어(法語)·자호(字號)·진도어(進道語)·시(詩), 액자(額子)·서장(書狀) 등 전부를 말한다.
이 묵적은 정통적인 서법에 의한 것은 아니나 엄격한 수도에 단련된 고승의 인간성이 보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특수한 자유로운 서풍(書風)과 선(禪)의 정신이 존중되어 감상용으로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원오극근·허당지우(虛堂智愚)·요암청욕(了庵淸慾) 등의 묵적이 존중되고 있다.
3-8. 첩학·비학(帖學·碑學)
청조(淸朝)로 들어서면 진첩(晋帖)이나 당비(唐碑)의 연구가 성하게 되고, 건륭(乾隆) 가경기(嘉慶期)가 되자 교묘한 구조와 풍부한 정신을 가진 고전주의가 성립되었다.
이른바 첩합(帖學)의 개화로 유용(劉鏞)·양동서(梁同書)·왕문치(王文治)·성친왕(成親王) 등은 법첩을 본으로 삼은 첩학파(帖學派)의 사람들이다.
한편 금석학(金石學)의 연구가 진전되자 종래의 첩학과 같이 몇 번이나 번각(飜刻)을 거듭한 법첩보다도 진적(眞跡)에 가까운 비(碑)의 탁본(拓本)을 배워야 된다는 비학이 생겼다. 등석여(鄧石如)·이병수(伊秉綏)·진홍수(陳鴻壽)·오양지(吳讓之)·조지겸(趙之謙) 등이 비학파에 속하는 사람으로 그들은 진한(秦漢)의 고비(古碑)를 연구하여 전서·예서(隸書)에 새로운 업적을 세웠다.
아울러 학서(學書)의 방법을 주장한 것이다. 첩학파는 행서(行書)·초서(草書), 비학파는 전서·예서·해서를 주제로 한 표현이 많다.
3-9. 감정(鑑定)
미술품 등의 진위(眞僞)·양부(良否)를 감별판정(鑑別判定)하는 것을 말한다.
3-10. 탁본(拓本)
금속·기와·돌·나무 등에 새겨진 그림이나 문자를 베껴내는 것으로서 그 방법에는 습탁(濕拓)과 건탁(乾拓)의 두 가지가 있다.
습탁은 사물에 직접 종이를 대고서 물을 칠한 다음 밀착시켜 솜뭉치 먹칠을 해서 두들기는 방법이다. 건탁은 석화묵(石花墨)으로 종이 위에서 문질러 베끼는 방법으로서 물로 적시지 않는 것, 급히 할 필요가 있을 때에 편리하다.
중국에서는 당시대부터 탁본의 기술이 행해져 송시대 이후의 법첩제작에 공헌하였다.
3-11. 쌍구진묵(雙鉤塡墨)
뛰어난 필적 위에 얇은 종이를 얹어 놓고 문자의 윤곽을 사서(寫書)해서 그 속에 먹칠을 한다.
이것은 중국 당시대에 발달한 일종의 복제법(複製法)으로서 이 방법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을 쌍구진묵본(雙鉤塡墨本)이라고 한다.
3-12.우필(祐筆)
주인을 대신하여 서장(書狀)이나 각종 문서를 대필하는 직명으로서 그 필적을 우필서(祐筆書)라 부른다.
그 글씨는 개성(個性)이란 것을 압살한 독특한 형(型)을 가지고 있다.
4. 서체
4-1. 고문(古文)
전서가 성립된 이전의 서체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인 귀갑수골문(龜甲獸骨文)을 위시하여 은·주 고동기(古銅器)의 명문(銘文) 등을 총칭하여 부르고 있다.
허진(許塡)의 <설문해자(說文解字)> 서(序)의 설면에서는 공자의 벽중(壁中)에서 나온 문자를 가리키고 있다.
신(新)나라 왕망(王莽) 때에는 대전(大篆)까지도 고문이라 하였다.
4-2. 전서(篆書)
고문의 자체와 서풍이 정리된 것으로서 대전·소전의 2종이 있다.
대전은 주문이라고도 불리고 주의 사주가 만들었다고도 전해진다.
소전은 대전의 체세(體勢)를 길게, 점획(点劃)를 방정하게 하여 서사(書寫)를 편리하게 한 것으로서 진시황제의 문자통일 때에 승상 이사(李斯)가 창시하였다고 전해진다.
4-3. 예서(隸書)
소전을 직선적으로 간략화한 것으로서 하급관리인 도례(徒隷) 사이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예서라 부르고 있다. 이것이 모체가 되어 해행초(楷行草)의 삼체(三體)가 전개된다.
4-4. 초서(草書)
문자를 흘려서 쓴 서체이다.
서역(西域)에서 출토된 전한(前漢)의 목간(木簡)에 팔부의 파세와 리듬을 가진 속필의 문자(장초章草라고도 한다)가 있으며, 이로부터 지금의 초서로 진전되었다고 알려진다.
읽는 게 곤란하므로 일반화 되지 않았지만 변화가 풍부하기 때문에 예술작품에 많이 쓰이고 있다.
4-5. 행서(行書)
행압서(行押書)라고도 하고 해서와 초서의 중간 서체이다.
한대의 목간에는 오랜 예가 있고 역시 예서의 속필로서 발생한 것이다.
행압서란 교환하는 문서란 의미인데 행서는 빨리 써지고 읽기 쉽다는 잇점이 있다.
4-6. 해서(楷書)
예서에서 변이(變移)된 것으로서 필획(筆劃)에 생략이 없는 서체이다.
다른 서체보다 발생단계로서는 가장 뒤늦게 성립되었다.
실용이라기보다는 의식적인 정제(整齊)함을 요구해서 생긴 것이라 하겠다.
정서(正書) 진서(眞書)라고도 하여 현재 일반적으로 쓰고 있어 활자체에도 활용되고 있다.
4-7. 비백(飛白)
후한(後漢)의 채옹(蔡邕)이, 좌관(左官)이 솔로 글자를 쓰고 있는 것을 보고 고안했다고 한다. 따라서 본래 예서에서 필획속에 스치듯이 비치는 수법을 많이 내쓰는 기교를 특색으로 한다.
당시는 궁전의 액자에 사용되고 있었다.
예서체는 아니지만 당비(唐碑)나 공해(空海)의 글씨에 비백의 유례(遺例)가 있다.
5. 서예의 기법
5-1. 집필법
집필법(執筆法)은 붓을 쥐는 방법을 말한다. 붓의 크기, 쓰는 문자의 대소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단구법(單鉤法): 집게손가락 하나를 붓에 걸고서 쓰는 방법이다. 세자(細字)를 쓰는 데 알맞다.
쌍구법(雙鉤法): 집게손가락·가운데 손가락의 두 개를 건다. 대자(大字)·중자(中字)에 알맞다.
그 밖에 촬관법(撮管法)·족관법(鏃管法)·염관법(捻管法)·악관법(握管法) 등이 있는데 요컨대 저마다 쓰기 쉬운 집필법을 연구하면 된다.
5-2. 완법
완법(腕法)은 문자를 쓸 때의 팔을 놓은 방법으로서 기호에 따라 또는 목적에 따라 몇몇 형이 있다.
침완법(沈腕法): 왼쪽 손바닥을 책상 위에 펴집고, 바른쪽 손목을 얹고서 쓰는 방법을 말한다. 세자에 알맞다.
제완법(提腕法): 오른쪽 팔꿈치를 책상에 가볍게 대고 쓰는 방법으로, 중간 글씨나 작은 글씨를 쓰기에 알맞다.
착완법(着腕法): 팔꿈치를 겨드랑에 붙이고 쓰는 방법이다. 중자·세자에 알맞다.
현완법(懸腕法): 팔을 들고 팔꿈치를 겨드랑에서 벌려서 쓰는 방법이다. 팔이 자유로워 대자·중자에 알맞다.
완법(腕法): 엄지손가락과 다른 네 손가락 끝으로 붓을 쥐고 팔꿈치를 전방으로 내펴고 붓을 수직으로 겨누고서 쓰는 방법이다. 회완집필법이라고도 하여 특수한 것이다.
5-3. 영자팔법
문자를 쓸 때에 필요한 8종의 용필법(用筆法)으로서 그것이 영(永)자의 8개의 점획에 맞기 때문에 영자팔법(永字八法)이라 부르고 있다.
<서원청화(書苑靑華)>에 "팔법은 예자(隸字)로부터 생긴다……"하였으며, 오래 전부터 그렇게 말해진 듯한데 당시대에 해서의 전형이 확립된 것에 곁들여 영자팔법을 습득하면 모든 문자에 응용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림과 같이 첫째 점을 측(側), 둘째의 횡획(橫劃)을 늑(勒), 셋째의 종획(縱劃)을 노(努), 그 날개를 적, 다섯째의 바른쪽 위로 긋는 선을 책(策), 왼쪽 밑으로 긋는 선을 약(掠), 일곱째의 바른쪽에서 왼쪽으로의 선을 탁(啄), 바른쪽 밑으로 터는 선을 책이라 한다.
초학자를 상대로 하나 그다지 가치있는 기법은 아니다.
5-4. 간가결구법
간가결구법(間架結構法)은 점획 사이의 띠는 방법(間架), 짜맞추는 방법(結構)을 생각해서 밸런스 있게 문자를 조형(造型)함을 말한다.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갖는 해서를 주체로 한 조형이론이다.
5-5. 장봉·노봉
장봉(藏鋒)이란 붓의 수(穗) 끝을 필획 속에서 감싸고 밖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으로서 직필(直筆)이라고도 한다.
이에 대하여 붓수 끝을 획의 외측에 대어 외면에 봉(鋒)이 드러나는 것을 노봉(露鋒) 또는 측필(側筆)이라 한다.
5-4. 부앙법
부앙법(俯仰法)은 문자를 쓸 때 선의 방향에 거슬리지 않고 붓을 쥔 손이 위를 보게 하거나 밑을 보게 하거나 하여 심하게 움직여서 쓰는 방법이다.
즉 왼쪽으로 운필(運筆)할 경우에는 손바닥은 밑을 보게 되고 오른쪽으로 움직일 때에는 위를 보게 된다.
5-7.역입평출
역입평출(逆入平出)은 청시대의 포세신(包世臣)이 제창한 운필법의 일종으로서 글자를 쓸 경우 붓의 봉(鋒:끝)을 역으로 눌러서 운필해 나가는 방법이다.
기(氣)가 넘치는 글씨를 쓰자면 역입평출의 방법이어야 된다고 한다.
6. 문방사우
종이[紙]·붓[筆]·먹[墨]·벼루[硯] 등 옛날 서방이나 서재에 없어서는 안 되는 4가지 기구를 의인화해 쓴 말.
호치후(好畤侯)·관성후(管城侯:붓)·송자후(松滋侯:먹)·즉묵후(卽墨侯:벼루)와 같이 벼슬이름을 붙여 문방4후(文房四侯)라고도 하며 문방4보(文房四寶)라고도 한다. 가장 유명한 4보로는 각 명산지의 이름을 딴 안휘 경현의 선지(宣紙), 흡현의 휘묵(徽墨), 절강 오흥의 호필(湖筆), 광동 고요현의 단연(端硯)을 든다. 북송 소이간(蘇易簡)의 〈문방사보〉는 지필묵연의 여러 종류와 원류·고사·제조법·문학작품 등에 대해서 지보·필보·묵보·연보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6-1. 종이
후한 105년 채륜에 의해 제지술이 발명된 이래 중국의 종이는 원료·용도·생산지에 따라 크기·지질·색깔·이름 등을 달리해 매우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문방에서는 선지·화선지·옥판선지(玉版宣紙) 외에도 화려한 색깔로 염색하고 판화로 여러 가지 문양을 찍은 시전(詩箋)이 애용되었다.
한국에 종이가 전래된 것은 왕인 박사가 285년 일본에 건너가 〈논어〉와 〈천자문〉을 전하고, 353년 왕희지가 잠견지(蠶繭紙:高麗紙)에 〈난정서〉를 썼다는 기록을 통해 200년경으로 추측된다. 그후 고구려의 담징이 610년 제지술과 조묵법(造墨法)을 일본에 전한 기록과 751년 석가탑 탑신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당시의 우수한 제지술을 증명해준다.
조선시대에는 수요가 급증해 창의문(彰義門) 밖에 조지소(造紙所)를 설치했고 충청도의 마골지(麻骨紙), 전라도의 고정지(藁精紙), 경상도의 모절지(麰節紙) 같은 특수지의 진상 의무가 민간과 사찰에 부과되기도 했다.
한국의 종이는 지질이 좋고 질기기는 하나 서화에는 적당하지 않아 주로 중국산 종이가 사용되었다.
6-2. 붓
붓의 사용은 중국 은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나 기록상에 나타난 최초의 붓은 진(秦)의 몽염(蒙恬)이 나무 붓대에 사슴털과 양털로 붓촉을 만든 창호(蒼毫)이다.
한국에서도 경상남도 의창군(지금의 창원시) 다호리의 철기시대 목곽분에서 5자루의 붓이 발굴된 바 있다. 조선시대에는 공조에서 관장해 붓을 생산했으나 중국만큼 발달하지는 못해 상류층에서는 거의 중국에서 수입된 붓을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족제비털로 만든 황모필(黃毛筆)이 가장 유명하다.
6-3. 먹
먹은 위진대(魏晋代)에 옻과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둥근 형태의 묵환(墨丸)에서 비롯되었다. 그뒤 조묵법이 발달해 기름의 그을음으로 만든 유연묵(油烟墨), 소나무 그을음과 사슴의 아교로 만든 송연묵(松烟墨), 유연에 사향을 섞어 금박을 입힌 용향묵(龍香墨), 먹똥과 응어리가 안 생긴다는 청묵(淸墨) 등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연묵과 송연묵이 제조, 사용되었으며 평안도 양덕과 황해도 해주의 먹이 유명했는데 서울의 먹골(지금의 묵정동)에서도 생산되었다.
또한 해주 먹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수출되었다고 한다.
6-4. 벼루
벼루에 대한 기록은 중국의 상고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나 진대(晋代)에 묵환과 함께 사용된 요심연(凹心硯)이 본격적인 벼루라 할 수 있다.
벼루는 벼루돌[硯石]에 의해 그 질이 좌우되는데 중국에서는 단계연(端溪硯)이 가장 좋으며, 한국에서는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산의 남포석과 자강도 위원군의 청석이 유명하다.
석연(石硯) 이외에 가야와 백제의 도연(陶硯)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는 귀면각(鬼面脚)에 인화무늬[印花紋]가 장식된 것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형태·조각장식·문양 등이 다양해지고 문인취향의 시구(詩句)가 곁들여지기도 했다.
이렇게 중국에서 전해진 지필묵연은 삼국시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이르면 송 이래의 문방취미의 유행과 함께 널리 보급되었고 우리의 생활양식과 미감이 반영되어 발전했다.
그 밖에 붓을 보관하는 붓통과 붓걸이,물을 담는 연적, 종이를 누르는 문진. 붓말이 등이 있다.
7. 해서 - 영자팔법
영자팔법(永字八法)은 붓글씨로 한자를 쓸 때 자주 나오는 획의 종류 여덟 가지를 길 영(永) 자를 통해 설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