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서체

1)고체(古體)

고체는 한글이 처음 반포되었을 때의 옛 서체를 말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처음 만들었을 때 를 둥근 점모양 그대로 쓴 [훈민정음해례본]과 를 짧은 방형으로 바꾸어 쓴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등 두 가지 서체가 있었다. 고체는 방형의 모양으로 썼기 때문에 대칭의 조형성을 갖는 장엄한 성격을 가졌다. 고체는 선조 때까지 이어졌지만 새로운 서체를 예견하는 점진적인 변화도 갖게 되었다.

2) 한글의 판각화(板刻化)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글을 보급시키기 위하여 한글로 된 책들을 많이 만들게 하였다. 한글이 널리 보급되면서 더욱 많은 책들이 필요해졌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목판본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여러 곳에서 만들어진 목판본의 서체는 단아한 맛을 지니거나 조형적 완성에는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지방마다 또는 판각자 개인의 성향도 나타나게 되었다. 한글의 판각화는 고체가 이미 퇴화한 뒤 나왔으므로 한글의 변화된 여러 서체를 목판의 제작에 잘 어울릴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따라서 필사형태와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재료의 변화에 따른 글씨체의 발굴에 더욱 관심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3) 궁체(宮體)정자

궁체는 대궐의 글씨라는 뜻이다. 궁체를 궁녀들이 쓴 글씨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궁녀들이 많이썼기 때문에 잘못 알려진 것일 뿐 여러 왕과 대신들도 궁체를 썼다. 한글이 만들어진 뒤 왕실에서는 철저히 한글을 지켜왔다. 특히 왕후를 중심으로 이 전통을 지켜왔고, 따라서 한글은 내전을 중심으로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발전하였다. 궁체라고 불리는 한글서체는 선조 이후에 나타났으며, 크게 정자와 흘림으로 나뉜다. 정자는 한자의 당해와 흐름을 같이 한다. 이 글씨는 장중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절제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창제 당시의 고체가 모든 글자의 길이를 같은 크기로 구속하였다면 궁체는 그 길이를 글자의 모양에 따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조형적인 자유로움을 얻게 하였다. 이점이 바로 궁체의 조형적 성격을 결정짓는 요인이라고 하겠다.

4) 궁체(宮體)흘림

궁체흘림은 한문의 행서에 비유된다. 선조전후 한글이 널리 보급되면서 한글은 기호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을 찾기 시작하였다. 글자 크기의 구속을 벗어나며 자유로움을 얻은 한글은 붓의 역동적인 흐름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서체를 요구하였고, 이 요구가 바로 궁체 흘림의 출발이 된다. 흘림은 처음 비교적 자유로운 모양이었으나 점차 정제과정을 거치며 정형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글은 부호가 단순하여 한자의 초서와 같이 생략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생략의 길보다는 도리어 정형화의 길을 선택하여 지금 우리가 쓰는 흘림의 모양으로 정착되었다.

 

서예에서 잘 쓰이는 말

서예가 본디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므로 한자어로 된 서예 용어가 많다. 여기에서 잘 쓰이는 말의 뜻을 알아보자.

* 법서(法書)전통적인 서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글씨이다.

* 속서(俗書) 법서의 반대라고 할수 있다. 서법에 근거를 두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쓰는 글씨이다.

* 비갈(碑碣) 비석의 형식으로 사각을 이루고 있는 것을 비라 하고 둥근 모양의 것을 갈이라 한다.

* 비학(碑學) 비의 원류, 시대, 체제, 탁본의 진위와 문자 내용등을 연구하고 고증하는 학문이다. 첩학과 상대되는 말인데, 청나라 초기 이전에는 법첩을 숭상하다가, 완원이 남북서파론을 제창하고 포세신이 북비의 중요성을 부르짖음에 따라 비각을 숭상하는 풍조가 생겨 크게 성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비학은 북파라 하고 첩학은 남파라 부르게 되었다.

* 첩학(帖學) 법첩의 원류와 우열 그리고 서적의 진위와 문자 내용 등을 연구하고 고증하는 학문이다.

* 법첩(法帖) 돌이나 나무에 모각된 법서와 그것의 탁본들이 포함된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고전 법서의 책자들을 법첩이라 부른다.

* 자체(字體) 글지의 형체, 이를테면 전자체, 예자체, 해자체 등을 말한다.

* 서체(書體) 문자의 체세를 일컫는다. 자체와 비슷한 말이다.

* 속자(俗字) 이체자의 일종이다. 본래의 글자와는 조금달리 민간인들 다수가 사용한 간체 따위를 말한다.

* 필획(筆劃) 자형을 구성하는 갖가지 형상의 점와 선이다.

* 조충서(鳥蟲書) 전서의 변체로 획이 새나 벌레의 모양을 이룬다. 춘추 전국 시대에 자주 사용 되었다. 무전 진 시대를 전후로 인장에 쓰이던 전서체로서 그뒤로 전각에 쓰이는 문자가 되었다. 무는 일종의 헝겊인데 헝겁에 글씨를 쓰면 이리저리 늘일 수 있는 이치대로 전서가 상하좌우로 늘이거나 줄이기 쉬워서 사용되었다. 명과 청 시대에 와서 문이들 전각을 새기는데 반드시 전서를 사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 금예(今隸) 예서에서 해서가 발전되었는데, 위진 이후 곧 종왕 이후의 예서의 변체를 금예라 한다. 곧 해서이다.

* 종왕(鐘王) 종요와 왕희지 또는 그 필법을 이르는 말이다.

* 이왕(二王) 왕희지 부자 또는 그 필법을 이르는 말이다.

* 안류(顔柳) 안진경과 유공권 또는 그 필법을 이르는 말이다.

* 비백(飛白) 일종의 특수한 풍격의 글씨인데 어느 장인이 흰가루를 사용하여 쓸 듯이 글씨를 채옹이 보고 개발한 것을 '비백서'라 한다. 요즈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백은 이 마르거나 거칠 때 또는 부지불식간의 속도에서 희게 나오는 특수한 선질을 일컫는다.

* 현침수로(懸針垂露) 세로획을 형용하는 말인데 곧 아래 끝의 뽀족한 모양이 침을 매달아 놓은 것 같다 하여 현침이라 하고, 아래 끝에 마치 이슬이 맺혀 있는 모양이라 하여 수로라 한다.

* 역입평출(逆入平出) 붓 쓰는 법의 한가지로 붓을 댈적에 획이 나아갈 방향의 반대편에서 들어와 장봉하여 만호제착을 만들어서 나아가는 것이다.

* 잠두안미(蠶頭雁尾) 예서의 한일자에서 앞 부분이 누에머리, 파책 부분이 기러기 꼬리와 같이 생긴 데서 나온 말이다.

* 서미(鼠尾) 현침이나 약획 등의 끝부분이 털같이 뽀족하지 않고 쥐꼬리의 끝부분같이 도톰한 모양을 내는 것을 말한다.

* 마제잠두(馬蹄蠶頭) 한일자에서 처음의 모양이 마치 말발굽같다 하여 마제라 하고 끝나는 부분이 누에의 머리같다 하여 잠두라 한다.

* 절차고(折叉股) 굽어진 획을 긋는데 중봉을 하는 방법과 그 획의 모양을 형용하는 것으로 붓을 바르게 세워 둥글게 비틀려 돌아감을 말한다. 금비녀를 구부렸을 때 그 둥근 형체를 보존하는 형상을 연상하면 된다.

* 옥루혼(屋漏痕) 필획의 원활함이나 생동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단순히 긋는 획이 아닌 호흡과 맥박이 있는 획을 그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낡은 집에 물이 새어 벽을 타고 내릴 때 물이 곧바로 떨어지지 않고 주름을 내며 마디를 이루고 흐르듯이 획도 그러한 맛이 나야 한다는 표현이다.

* 추획사(錐劃沙) 붓 쓰는 방법으로 붓을 세워 중봉으로 쓰는 법이다. 곧 송곳으로 모래사장에 글씨를 쓸때 송곳이 바로 서지 않으면 확실한 획이 나타나지 않는다. 만일 옆으로 뉘어 쓰면 모래가 획을 덮어 버려 획이 어렴풋이 나타나는 이치이다.

* 인인니(印印泥) 참으로 어려운 표현으로 필봉이 저절로 획 중에 감춰지고 쓰고자 하는 생각과 뜻이 획보다 앞서야 한다는 황정견의 해석이다. 인주에다 도장을 찍으면 그 본래의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나타나는 데서 형용된 말인데, 말하자면 붓을 댈 때 심경이 안온하고 필법도 표준이면 능히 마음에 둔 글자를 유감없이 구성할 수 있다는 표현이다.

* 영련(楹聯) 보통 대련이라 한다. 양쪽 기둥에 걸어 놓는 일이 많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 임지(臨池) 연못에서 글씨를 공부한는 것을 일러 임지라 한다.

* 제발(題跋) 서적이나 비첩, 서화 따위에 서명을 하거나 제목 또는 설명을 다는 것을 말한다. 본래는 앞에 쓰는 것을 제라 하고 뒤에 쓰는 것을 발이라 하는데 지금은 대개 작품의 본문을 쓰고 뒤에 서명이나 설명 따위를 쓰는 것을 말한다.

* 돈좌(頓挫) 돈은 굵은 획으로 변해 갈 때 붓을 약간 틀면서 누르는 동작으로 전절의 관절 부분에서 하는 동작을 말하며, 좌는 획의 방향이 바뀔 때 붓의 쓰는 면을 바꾸어 주는 것을 말한다. 돈좌를 모르고 필관을 손가락으로 돌린다거나계속 한면으로 쓰면결코 의미있는 획을그을수없다.

* 전절(轉折) 획의 방향이 바뀔 적에 붓을 궁글려 붓의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전은 원필에 쓰는 방법이며 절은 방필을 쓰는 방법이다.

* 결구(結句) 한 글자를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간가라고도 한다.

* 장법(章法) 행간의 좁고 넓음 또는 자간의 좁고 넓음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데 이러한 공간 포백을 하는 법을 장법이라 한다.

* 낙관(落款) 작품을 할 적에 본문을 다 쓰고 나서 서명을 하고 전각을 찍는 행위를 말한다. 말하자면 서명 날인을 한꺼번에 일컫는데 요즈음에 와서는 서명도 낙관한다고 표현하고 도장도 낙관이라 하는 경향이 있다.

* 전각(篆刻) 전서를 새긴다는 뜻으로 ,도장을 말한다. 전각에는 성명인, 아호인, 한장, 장서인, 수장인, 관인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永字八法(영자팔법)意味(의미)

해서(楷書)의 기본적인 필법을 갖춘 문자로서 ''가 있다. ''에는 문자구성상 특징이 되는 필획이 비교적 고루 갖추어져 있어 옛부터 이 문자를 연습함으로써 필법의 기초를 연마하는데 활용해 왔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글씨입문의 초보단계에 이 '永字八法'의 숙달을 통해 필법을 익히게 있다. 永字八法에는 다음과 같은 각부분의 명칭이 있는데 각 필획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어원을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설명을 가해보기로 한다.

. () : 이것은 점획(點獲)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永字의 첫머리 점이 마치 ()으로 기울어 있다는 데서 유래한 것 이다. 그러므로 ''으로써 점획을 쓸 때에는 반월형(半月形)으로 기울어진 머리를 연상케 하는 모양이 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점획에는 실로 여러가지 형태의 것이 있어서 모두를 ''로 처리해서는 물론 안된다.

, () : 말을 말안장으로 누르는 느낌과 같다 하여 지닌 이름이다. 특히 이 획의 수필은 벼랑에서 말을 힘껏 누르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 획은 이른바 ''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보기에는 가장 원시적인 획인데 흔히 '한일조차 제대로 쓰기 힘들다' 고 한탄하 듯 얼핏 단순한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실은 이 단순함 속에 의미 깊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획 수가 적고 구성이 단순하면 할수록 쓴 사람의 성격이 잘 나타나는 법이다. 一畵은 글씨 가운데 그 수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 결구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의 성공여부로 작품 전체의 우열을 결정하게 되는 수가 적지 않다. 앞서 말한 통속적인 말과는 반대로 '한일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면 대부분의 글자는 바르게 쓰게 된다'는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 () : 마치 활을 당겨 힘껏 당길때의 ()를 닮았다고 해서 칭하는 말이다. 이것은 내리긋는 획(竪劃)이다. 竪劃(수획)의 본질은 그 명칭으로도 짐작이 되는 것처럼 수직이 원칙이다. 그런데 단순한 수직이 아니라 상하끝부분에는 돌을 튕겨낼 만한 ()이 매어져 있는 것이어서 여기에는 집중된 힘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 상하의 힘에 대응해서 중간부분에는 탄력성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다소 彎曲性(만곡성)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성질을 통해서 생각할 때, 수직은 단순한 직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각적인 직선일 필요가 있는 것이며 그런 만큼 중간부분의 彎曲性과 이 上下의 힘찬 상대관계는 이 획의 佳拙(가졸)을 결정하는 요건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이 획에 있어 중요한 점은 의 움직임에 따라 전체의 佳拙을 결정하게 되는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漢字縱書(종서)이므로 이 획이 수직으로 보이지 않거나 중심을 통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문자가 굽거나 흐느적거리게 보이게 되어 결국 전체의 구성이 우습게 되어 버린다

, (): 이것은 공이 튀는() 것 같은 筆勢(필세)에서 붙혀진 이름이다. 공이 벽에 부딪혔을 때, 그 탄력으로 벽을 차고 튀어나오듯이 이 획이 갖고 있는 내용도 그 힘의 변화와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이 획이 갖고 있는 중요한 의의는 내용에 있어서의 힘의 분배와 그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나 ''에 있어서는 기필에서 수필까지 사이에 시간적으로 극단적인 불연속성이 없으나 이 획은 '跳躍(도약)'이 주체인만큼 오히려 극단적인 리듬감이 수반된다. 이러한 리듬감이 주체가 되면 筆毛의 성질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기도 한다. , 剛毛筆(강모필)은 특별히 의식을 하지 않아도 탄력성이 있으나 軟毛筆(연모필)은 기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 () : 이 획은 말에 채찍을 치는() 筆勢를 가진 것을 가르켜 생긴 명칭이다. 보통, 말에 채찍을 댈 때에는 옆으 로 하되 위를 향해서 치게 된다. 이 획은 어느 만큼 ()의 성질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으나 筆勢에서 보면 전혀 다른 것이다. 이 획이 과 전적으로 다른 것은 수필이다. 이 수필의 경묘함은 의미가 깊은 바 있어 많은 연습을 통해서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 : 이 획은 두발을 빗어 내리는 모양을 생각케 하는데서 온 말이다. 긴 머리를 빗을 때, 먼저 빗을 머리 위에서 부터 넣고 머리털을 따라 끝부분까지 빗어내리게 되는데 이 빗에 힘을 넣는 방법과 筆意(필의)가 흡사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획의 특징은 마치 빗을 머리에서 뗄 순간에는 엉킨 머리털을 세게 풀어주어야 할 때, 순간적인 힘이 빗에 가해지는 것처럼 수필에 있어서도 에 가해지는 힘이 순간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보통 쓰이는 ''이 모두 이러한 운필에 따라야 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 명칭이 생긴 어원을 깊이 생각할 때, 거기에 이러한 '의 약동'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적어도 바른 운필이라고 말할 수 없겠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음 '()'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며, 그 근본적인 차이는 수필에서의 봉을 다루는 방법 여하에 달려있다 하겠다.

, () : 이 획은 새가 모이를 쪼을 때의 주둥이를 닮은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닭이 쌀을 쪼을 때 보면 주둥이를 콕콕 하고 재빨리,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움직이는데 이 때의 주둥이 움직임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 비하면 붓은 훨씬 가볍고 예리하고 빠른 것이 된다. 이 획은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긋는 것이어서 ''과는 반대의 형상을 보이고 있으나 운필은 비슷한 면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 서 ''''의 변형이라기 보다는 ''과 한 그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는지 모른다. 이 획은 마치 ''처럼 가벼운 運筆(운필)이 특징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지나치게 경묘해 지는 나머지 조잡해 질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경계가 필요하다.

, : 이 획의 고기를 자르는 기분으로 붓을 이끈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고기를 자를 때 처음에는 칼에 가볍게 힘을 넣었다가 점차 힘을 세게 더하면서 최후에 쭉 빼는 방법과 같은 뜻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운필에 있어서는 이 기분을 그대 로 붓에 나타내면 좋은 것이 된다. 이 기분은 관념상으로는 매우 쉬운 것 같으나 실제 운필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어서 일반적으로 책은 힘든 획의 하나로 치는 것이다. 이획의 특징은 한 획 속에 가는 부분과 굵은 부분이 두드러지게 섞여있다는 것이며 또하나의 특징은 한 문자의 최종획으로 사용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책은 그 문자의 성패나 분위기를 본질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많다. 문자 속에서 이 획이 특히 눈에 잘 띤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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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의 정의

  서예는 화선지에 먹물을 적신 붓으로 점과 선을 결합하고, 붓을 당기거나 밀거나 혹은 누르거나 들면서,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고 더디게 동작하느냐 에 따라 다양한 동태미를 나타낸다. 시각예술에 속해 있으면서도 '심상심학(心相心學)'으로서의 특성을 지닌 동양 특유의 조형예술로, 고도의 기능적 숙련에 의한 점과 선을 통해 그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해 낸다. 붓이 한번 움직인 필획에는 길고 짧음의 대비와 굵고 가는선이 있고 굽거나 꺽이는 곳이 있으며, 절제된 것이 있는가 하면 자유분방한 것도 있다. 먹의 색깔 또한 짙음과 옅음, 윤택하거나 마른 느낌등을 적절히 조화시켜 나가면서 문자의 실용적인 형태에 속박되지 않고 주관적인 감정을 형상화 하여 자기의 독창성을 발현하고 그 속에 자신의 심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좋은 서예작품은 자연스러운 마음과 훌륭한 인품에서 우러나온다.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기인(其人)'이란 그 사람의 인품, 교양, 학덕 등을 총칭하는 의미이다. 이것은 서예를 단순히 아름다운 글씨를 쓰기 위한 기술이나 기교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하고 우선 스스로의 인격함양에 힘써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서예는 예술을 통해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 활동이다. 그러므로 서예는 다른 어떤 예술장르보다 작가 자신의 인격 수양이 크게 요구되며, 가장 중요한 예술적 요인이 된다.

 

. 서예의 특성

  한자는 그림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원시적인 그림문자가 점점 모양과 상태가 바뀌면서 실용화, 예술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예는 문자를 아름답게 꾸민 예술로 인식되어 지면서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한자는 우주자연의 이치에서 출발하였고, 특히 한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글자마다 의상(意象)이나 미적인 아름다운 요소를 생성할 때부터 함축하고 있었다. 또한 구조가 복잡하고 자수가 많으며 자형의 변화가 심하고, 같은 글자라도 다른 서체로 쓰면 또 다른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다른 문자에서 볼수 없는 심미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서예는 문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표현에 있어서 서법이라는 일정하고 엄격한 규율이 있다, 붓의 움직임이 빠르고 느림에 따라 표현의 효과는 달라지며, 먹은 단순한 검정색으로 볼 수있지만 붓놀림의 정도에 따라 여러가지 색채로 변화하며 신비한 효과를 가져온다.

서예의 또 다른 특성은 일회성에 있다.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족한 점이 보이더라도 결코 덧칠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회성은 다시 덧칠하지 않은 획 그 자체이며, 그렇기에 서예는 골똘히 생각해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써 내려가는 순간성과 즉흥성을 지닌다.

 

. 서예의 의의

  글로벌시대의 가속화로 우리의 정신적 가치가 더욱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은 정서를 순화하고 정신의 풍요를 가져오게 하는 서예에서 찾아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서예는 단순히 문자를 이용한 예술이라기보다는 인생과 우주의 이치를 담아냄으로써 인격도야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 유례없는 예술이다. 우리의 선인들이 남긴 문화유산 중에서 가장 고귀한 정신이 담긴 전통예술이며, 그 속에는 우리조상들의 삶과 학문, 성정이 배어있고, 치열한 정신과 풍성한 감수성이 형상화 되어있다. 이러한 서예의 우수성을 알고 이를 익힘으로써 민족의 우월성과 자긍심을 깨닫고, 서예의 표현을 통하여 인격의 완성은 물론 실용성도 추구하여야 한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들은 자칫 잊혀지기 쉬운 전통예술로서 서예를 자율적으로 표현, 감상하고 나아가 창작함으로써, 주체적 자아의식을 지닌 창의력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먹을 갈면서 심성을 다듬고, 화선지를 펼쳐 놓고 몸가짐을 정갈하게 하여 마음을 정화시키며, 붓을 움직여 중용을 깨우친다. 글씨를 정성스럽게 써 나감으로써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갈수 있도록 하고, 쓰고 난 붓을 맑은물에 깨끗이 씻음으로써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묘리를 느낄수 있다.

 

. 서예의 기원

  한자는 일반적으로 중국 고대 제왕시대 '황제'의 사관이었던 '창힐'이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는 전설에 불과하며, 최초의 서예라고 할 수있는 문자는 '갑골문(甲骨文)'이다. 이 문자는 3400여년전의 거북이 배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새겨져 있어서 '갑골문' 이라고 하는데, 칼을 사용하여 단단한 뼈위에 새긴 것으로 필획이 가늘고 강하며 자형은 여위고 길다. 글자의 크기는 각기 다르고 매우 강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준다. 붓에 의한 문자의 예술성 추구는 후한대(後漢代)부터 본격화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때에 한자가 전래되었으나 서예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한사군을 통해 한 대(漢代)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부터이다.

 

. 서예의 변천

갑골문에 이어 주대(周代)에 들어서면서 문자의 형태는 청동기에 주조하여 주물틀에 새겨 넣은 글자들로 '종정문(鐘鼎文)' 혹은 '금문(金文)' 이라고 하였다. 금문의 글자체는 갑골문과 비슷하지만 필획이 갑골문보다 굵고 웅장하며, 글자체의 구성 크기에도 균형이 잡히고 정연하다. 그리고 표현된 풍격은 장엄하면서 돈후하여 이미 상당한 예술성을 갖추었다.

  춘추전국시기에 글자체는 지역적인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제()((((· ()등의 문자를 '육국고문(六國古文)'이라 하였다.

  진대(秦代)에 들어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 육국고문을 폐지하고 대전(大篆)을 기초로 하여 소전(小篆)을 만들어 문자를 통일하였다. 소전은 식별하거나 쓰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규범화되었다. 서예에서는 대전과 소전을 통칭하여 '전서(篆書)'라고 한다.

 

진대(秦代)에는 사건과 관련된 문서를 처리하면서 간단하게 글을 쓰는 '예서(隸書)'가 형성되었으며, 서한(西漢)중기에 이르러 사회에 통행되는 정식 글자체가 되었다. 예서가 발전한 시기에 '초서(草書)'가 등장하였는데, 초서는 예서를 흘려 쓰는 방법으로 빨리 써서 필획과 필획이 연결되고 글자와 글자가 연결되어 글자의 형상이 간단해 졌다.··남북조 시기에 예서의 기초 위에 다시 새로운 글자체가 발전하였는데 그것이 '해서(楷書)'이다.

이후 진대에 들어서며 해서와 초서의 중간으로 행서(行書)가 출현한다. 행서는 해서보다 자유롭고 빨리 쓸 수 있으며 편리하고 실용적인 글자체이다.

  한자의 변천은 갑골문-금문-소전-예서-초서-해서-행서 순이며 이것은 서예의 글자체 형성 과정이기도 하다.

 

.서체의 종류

  1.갑골문(甲骨文)

  갑골문(甲骨文) 이란 귀갑수골(龜甲獸骨)의 약칭으로, 한자의 초기형태에 해당된다. 발굴된 뼈의 연대는 기원전 1200년에서 1050년으로 은나라 말기의 것들이다. 갑골의 '()'은 거북의 배 껍질이고, '()'은 소의 어깨뼈나 넓적다리뼈이다. 그 밖에도 사슴두개골, 사슴뿔, 코뿔소, 호랑이뼈, 심지어는 사람 두개골 까지도 발견되었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 1,000년 무렵 중국 고대 은상대(殷商代), 국가 중대사부터 모든 행위를 제사장이 천신이나 혹은 조상신에게 점을 치는 방법으로, 갑골에 구멍 같은 흠집을 내고 그것을 불에 올려놓고, 열로 인해 그 흠집으로부터 갈라진 방향에 따라 길흉을 판단했다. 주로 점을 친 후에 그 결과를 갑골에 기록을 해 놓았기 때문에 갑골문은 '복사(卜辭)'라고도 불리고, 칼로 새겨놓았기 때문에 '계문(契文)'이라고도 한다. 갑골문이 처음 발견된 곳이 은나라의 도읍지였기 때문에 ' 은허문자(殷墟文字) '라고도 한다.

형태는 매우 상형적(象形的)으로 필획이 가늘기는 하지만 둥근원형의 획과 방형의 획으로 장중한 느낌이 들며 획이 굵고 가늠이 조화를 이룬다. 필획은 방형이 다수를 차지하고, 원형인 것은 구불구불 은근히 구르면서 자연스러워 도무지 칼로 새긴 것 같지가 않으며, 서예의 시각으로 보면 크게 웅장하고 힘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에 이미 모필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인데, 1929년에 발견된 3편의 수골에는 먹물과 붓으로 글을 쓰고 난 다음에 채 새기지 못한 서사문자가 적혀 있었다.

 

2 金文 (금문)

  금문은 청동기를 주조할 때 주물틀에 새겨 넣은 글자들이다. 이로 인해 금문의 다른 명칭으로 청동기의 대표적인 유물인 '() '이나 '(:) '의 이름에서 유래해 '종정문(鐘鼎文)'이라고도 한다.

'()'은 대들보에 매달고 두들겨서 소리를 내는 악기의 일종이며, ' ()'은 제사때 쓰는 그릇으로 세발과 두개의 귀를 가지고 있으며 향로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중국 고대 주나라 시절의 유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지만, 그 이전 왕조인 은나라에서 사용된 금문이 발견되기도 하였고, 후대 철기시대인 한나라 때까지 금문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거의 천년에 가까운 사용시기로 인해 다양한 서체의 특징을 보인다. 기물에 새겨진 내용으로는 축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표시하거나 주조된 연원이나 기물의 주인등을 표시했고, 또한 당시의 상황인 전쟁이나 제례, 계약 등을 기록하고 있다. 금문의 특징으로는, 청동기를 주조할 때 주물의 틀에 글자를 새기는 것이었기에 명확하게 글자가 보여지기 위하여 글자가 크고 굵어야만 했다. 그래서 가늘고 긴서체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갑골문 보다 금문은 넓고 굵다. 또한 갑골문에 비해 금문은 회화적 요소로부터 점차 문자로서의 특징을 지닌 기호적 요소가 많이 나타나 점차 문자의 틀로 발전되어 가는 양상을 보여준다. 대표작으로는<모공정(毛公鼎)><산씨반(散氏盤)>등이 있다.

 

3 전서(篆書)

 '전서(篆書)''대전(大篆''소전(小篆)'으로 구분되며, 소전을 일반적으로 '전서'라고 한다. '소전''진시황(秦始皇)'이 승상인 '이사(李斯)'에게 지시하여 이전의 문자들을 한데 모아 통일시켜 만든 문자이다.

'소전'의 특징은 인위적인 통일이라는 점에서 서체가 거의 획일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소전'은 자형 자체가 '대전'격인 '갑골문'이나 '금문'보다 상당하게 상형의 회화적 성격을 탈피하고 문자의 기호적 성격으로 전환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진의 흥망과 함께 운명을 같이 했던 소전이었기에,사용시기는 그리오래지 않고 새로운 서체인'예서(隸書)'가 등장하게 된다.

소전(小篆)의 대표적 작품은 <태산각석(泰山刻石)><낭아대각석(瑯牙臺刻石)>이 있다.

 

4 예서(隸書)

  진시황은 중원을 통일한 뒤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었다. 이에 따라 공문서등이 증가하면서 전서를 간략하게 만든 새로운 서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때 만들어 진 것이 '예서'이다. 상형의 회화적 요소를 벗어버리고 문자의 기호적 요소가 완성되어 현대 한자의 출발점으로도 볼 수가 있다. 기록에 보면 예서는 <장막(程邈)>이 만들었다. 그가 죄를 지어 감옥에 있을 때 십년을 연구하여 예서 3,000자를 지어 진상하였는데 진시황이 좋게 여겨 어사를 시켰다. 예서란 말은 진대의 복역수를 '도예(徒隸)'라 하였는데 정막이 그러했으므로 '()'자를 따서 지었다.

예서에서 '파책'이 없이 전서와 근접한 것을 '고예(古隸)'라 하고 '파책'이 있는 것을 '팔분(八分)'이라고 한다. 파책은 예서를 쓸때 가로획을 긋다가 획의 마지막 단계에서 붓을 누르면서 조금씩 내리다가 오른쪽 위로 튕기면서 붓을 떼는 방법으로 예서만이 가지고 있는 가로획의 특징이다. 예서의 출현은 상형적 회화요소의 고대문자의 틀을 벗어 내고 새로운 문자의 규격을 이루게 되는데 실제 이후에 등장한 서체의 규범이라고 하는 '해서(楷書)'의 자형도 예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한자 자형의 전형은 예서에서 갖추어 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서의 대표적인 법첩으로는 <예기비(禮器碑)> <을영비(乙瑛碑)><사신비(史晨碑)><조전비(曺全碑)> <장천비(張遷碑)> 등이 있다.

 

5. 해서(楷書)

  중국 후한시대 말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해서는 ''자가 '본보기''모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듯이 표준으로 삼을 만한 서체라는 뜻이다. ·, 남북조南北朝시대에 그 기틀이 완성된 '해서'는 동진의 <왕희지>, 당나라의 <구양순>이나 <안진경>등이 등장하면서 서체의 전형이 완성되었다. 예서에서 발전된 해서체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예서체 자형의 전체 윤곽이 다소 가로로 퍼진 형태라고 하면 해서는 다소 세로로 퍼진 형태를 지닌다. 모범적인 표준의 서체로 정서正書〕′혹은 진서眞書〕′의 명칭으로도 불리는 해서는 바른 한자자형의 전형으로 방정한 예술미와 함께 현재에도 꾸준히 서예교습의 기본서체로 애용되고 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도문6) <장맹룡비張猛龍碑> <안근례비顔勤禮碑> 등이 있다.

 

6. 행서行書

  규격체로 인하여 쓰기에 비능률적인 '해서'의 단점과 지나친 간략화로 읽기가 난해한 '초서'의 단점을 함께 보완하고자 생겨난 서체가 바로 '행서行書'이다. 발생시기에 대해서는 '해서''초서'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초서가 서체의 종류 가운데 가장 흘려 쓴 형태이기 때문에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규격체에서 흘림체로 변천하는 과정으로 볼 때 초서가 가장 마지막 단계의 서체로 보여져서 발생시기도 초서가 가장 후대의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제일 나중에 생겨난 서체는 '행서'이다. 후한말기부터 시작되어, 왕희지>가 등장하면서 확고한 틀이 완성된 행서는 해서의 필기체 형태를 띠고 있어 초서처럼 획을 연결해 쓰면서도 지나친 간략화를 하지 않아 쓰기 쉽고 보기 좋은 두 가지 양상을 모두 해결 했다고 볼 수있다. 후한초의 유덕승<劉德昇>에게서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확실하지는 않으며, 대표작으로는 행서의 특징인 표현의 다양성과 형태의 변화감을 느낄수 있는 왕희지王羲之>난정서蘭亭序〕」(도문7)가 있다.

 

7. 초서草書

  예서가 지닌 혁신성이 감소되면서 보다 실용적으로 신속하게 문자를 쓸 필요가 생겨났으며 이에 초서가 등장하였다. 명칭은 극도로 흘려서 쓴 서체라는 의미로 '초서草書'라고 하였다. 표의문자表意文字의 단점인 서체의 복잡함과 난해함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극도로 흘려서 빠르고 간단하게 쓴 서체를 생각해 낸 것이다. 현재 초서는 지나치게 간략화하여 흘려 쓰게 된 결과 해독의 어려움을 가져와 실용성은 상실한 상태이나 문자로서의 실용성을 넘어 최고의 예술적 경지로 발전 하였다. 설문해자 서문한조가 부흥하자 초서가 나왔다는 서술에서 보듯이 예서가 한창 번성하던 한나라시대에 등장하였는데, 진말한초秦末漢初초기의장초章草〕〉로 부터, 동진시대의금초今草〕〉, 당나라 때의 광초狂草〕〉까지 다양하게 발전을 거듭 하였다.

 

7-1. 장초章草

  장초(도문8)는 예서로부터 발전하여 이루어진 서체로서 예서에 가까운 초서이다. 장초를 예서와 비교해 보면 장초의 용필은 예서를 답습한 것이므로 가로획의 끝은 위로 치켜 올려지고 왼쪽의 삐침과 오른쪽의 파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각 글자마다 필획 가운데 이미 휘감아 이끄는 필법이 있어서 금초今草의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필세에 기초를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장초의 가로세로획은 예서와 같고, 필획이 휘감기며 이어지는 것은 금초와 같으니 이것이 장초의 기본 법식이다. 게다가 장초는 필획이 평정하여 금초와 같이 비뚤게 기울어져 형세를 취하지는 않으니, 필법에 예서의 근원을 갖고 있어서 질박하고 혼후한 면모를 포함하고 있다.

 

7-2. 금초今草

  금초今草(도문9)는후한에서 동진시대에 이르면서 장초의 점과 획 그리고 파책을 생략하고 덜어내어 독자적인 서체의 틀을 완성하였다. 전한前漢'장지張芝'가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문자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창조할 수 없듯이, '장지' 또한 예외는 아니다. '금초今草'는 한글자씩 띄어 쓰는 '독초체獨草體'와 붓을 떼지 않고 계속 연결하여 쓰는 '연면체連綿體'로 나누어진다. 현재의 일반적으로 쓰는 초서체로 보면 된다.

 

7-3. 광초狂草

  광초狂草(도문10) 는 마치 미친듯 거의 끊어짐 없이 이어서 쓰는 형식으로, ' 대초大草'혹은 '연면초連綿草'라고 한다. 결자結字상에서 보면 글자마다 독립된 경계를 두지 않고, 연결된 선과 필획은 결코 구분됨이 없다. 간편하고 쾌속하기 때문에 자체는 이어지고, 이어지는 과정 중에 리듬감을 크게 표현 하였다. 자형의 구속력이 비교적 작기때문에 정서의 표현도 자유자재하며, 점획으로써 자태를 이룬 초서는 추상적 작용이 더욱 강렬하다. 당대唐代의 장욱張旭과 회소懷素가 특히 자유분방한 광초狂草를 잘 썼으며 두 사람 모두가 술에 취한 채로 글씨 쓰기를 좋아해서 세간에서는 '미치광이 장과 술꾼 소'라는 뜻으로 전장취소顚張醉素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광초를 일컬어 취초醉草라고도 한다. 서예에 있어서 최고의 예술경지에 이룬다.이처럼 한자서예는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 전5체를 완비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동양 특유의 예술로 자리를 잡았다.

8. 한 글

  한문서예에 비하여 한글서예의 역사는 매우 짧다. 또한 문자의 구조가 단순하여 추상성과 상징성이 부족하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문자형태에 알맞은 독특한 조형원리로 예술성을 창출해 낸 것은 선진들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한글서예는 궁체와 판본체로 나뉘어지며, 궁체는 정자와 흘림으로 나뉜다.

 

8-1. 고체

  한글이 처음 반포되었을 때의 옛 서체를 말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둥근점 모양을 그대로 쓴 훈민정음해례본과 짧은 방형으로 바꾸어 쓴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도문11)등이 있으며, 판본에 쓰인 자형의 글씨로써 판본체또는 훈민정음을 본받아 쓰인 글씨라 하여 정음체正音體〕′라고도 한다.

 

 

8-2. 판각화

  한글을 보급하기 위하여는 책이 필요하게 되었고, 책을 찍어내기 위하여 목판본(도문12)이 만들어졌다. 여러 곳에서 만들어진 목판본의 서체는 조형적 완성에는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지역과 판각자 개인의 성향으로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 되었다.

 

8-3. 궁체정자

  궁체는 대궐의 글씨라는 뜻이다. 한글이 만들어진 뒤 왕실에서는 한글을 사용하여왔다. 따라서 한글은 내전을 중심으로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발전하여 왔으며 조선후기의 궁녀들은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편지를 쓰는 일과 왕실 내 필요한 여러 가지 글들을 썼다. 왕실의 명령에 의해 쓰는 일이었으므로 당연히 엄정하고 품위 있는 글씨를 써야했고 오랜 기간의 습득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궁체의 형태와 선질이 유려하고 단아한 모습은 이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궁체정자(도문13)는 한자의 해서와 흐름을 같이 한다. 이 글씨는 장중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절제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창제 당시의 고체가 모든 글자의 길이를 같은 크기로 구속하였다면 궁체는 그 길이를 글자의 모양에 따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조형적인 자유로움을 얻게 하였다.

 

8-4. 궁체흘림

 

궁체흘림(도문14)은 한문의 행서에 비유된다. 흘림은 처음 비교적 자유로운 모양이었으나 점차 정제과정을 거치며 정형화 되었다.

 

. 서예의 장르

  1전각篆刻

 전각(도문15)은 중국의 상주商周시대 때, 라는 명칭으로 시작하여 한나라에 들어서면서 비로서 인장印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뒤에 명나라에 이르러 전각작가가 등장하면서 예술로 승화되어 오늘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인장을 사용하였으며, 근대에 이르러 추사선생이 금석학의 연구로 많은 발전을 하였다.

새기는 작업으로는, 인장에 새길 바닥면에 우선 글을 써서 배치하고, 칼을 사용하여 문장을 새긴다. 그렇기 때문에 전각을 하기 위해서는 서예와 새김 기법에 모두 능숙해야 한다. 또한, 전각은 서화등의 작품을 완성한 다음, 본인임을 확인하는 도장의 용도로 사용한다. 이러한 과정을 '落款낙관'이라고 하는데 이는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이다.

종류별로는' 성명인'으로 이름을 음각으로 새긴것이다. 작품에 찍힌 글자부분이 희게 나타나므로 '백문'이라 한다. 아호를 새긴 '호인'은 양각으로써 글씨에 인주가 묻어 붉게 찍히므로' 주문'이라고도 한다. '두인''수인'이라 하며 작품의 오른쪽 위에 시작을 알리는 의미로 찍는 도장이다. 그 외에 좋아하는 글귀를 조각한 '사구인', 책의 보관을 위해 조각한 '수장인', 사람, , 물고기 등 동물모양을 전각한 '초형인'등이 있다.

 

2. 서각書刻

 서각이란 문자를 나무와 돌등에 칼을 이용하여 새기는 것으로 고도의 숙련된 기능과 장인정신이 있어야 하며 서화에 병칭될 만큼의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리조상의 얼과 혼이 서려 있는 전통예술이다.

서각의 종류를 몇 가지 분류로 나눠 살펴 보면, 양식에 따라 전통서각현대서각, 형식에 따라 환서각판서각투서각, 형상에 따라 구상반구상추상, 각법에 따라 양각음각음양각음평각, 재료에 따라 목서각석서각철서각토서각(테라코타)포리코트서각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조각과 서각의 차이점을 보면, 조각은 건축에, 서각은 서예에 뿌리를 두고 있고, 조각의 주체는 인체동물추상물 등이며 서각은 문자이다. 또한 조각은 사물의 모양표정 등을 중시하고 서각은 문자의 선질線質)과 획을 중시한다.

전통서각傳統書刻은 과거의 각자刻字기법으로 전승돼 온 것으로 서체를 새김에 있어 문자의 입체적인 조형미 보다는 필의筆意를 도의刀意로 옮기는 것을 더 중요시 했다. 반면 현대서각現代書刻은 기존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전통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위한 노력을 시도 개성과 독창성을 보여준다. 때문에 현대서각은 입체본래의 개념을 전제로 하는 서의 새로운 입체 예술이다. 서각은 문자를 매개로한 서예적인 것 이외에도 칼의 움직임에서 오는 조각적인 것과 색채 가미에 의한 회화적인 것, 그리고 다듬고 가공하는 데서 오는 공예적인 것등을 두루 갖춘 예술이다. 또한 옛 것을 익혀 현대의 감각과 기법으로 재창조함으로서 새로운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하고 있다. 활자의 발명 이전에는 주로 나무에 판각을 하여 책을 만들었으므로 서각은 우리의 문화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인쇄매체로서 뿐만 아니라 건축의 현판, 주련등에 이용 되면서 실로 광범위하게 기록의 역사와 함께 장식의 예술로 이어져 왔다.

 

. 글씨와 서예의 차이

  글씨를 쓰는 것은 실용에 목적이 있는 것이고, 서예는 사람들에게 예술을 감상하게 하는 것이다. 글씨 쓰는 것과 서예는 각각 실용성과 예술성의 특징을 공유하고 둘다 문자를 빌려 글씨를 쓰나 특성과 창조성이 다르다. 하나는 실용미를 추구하여 발전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예술미를 추구하여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 예술미의 일면은 먼저 문자의 조형과 규율을 흐트리지 않고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감정의 동태와 사상의 조화를 이루어 법을 타파하여 의를 얻게 한다. 그리고 자기의 감정을 펴내어 글자의 기세와 풍모로 하여금 예술미와 매력을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감화를 갖게 하는 것이다.

 

. 서예의 규율적 요소

  서예에는 행동의 준칙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붓 잡는 법, 팔을 운용하는 법, 붓을 운용하는 법, 먹을 사용하는 법, 글자를 구성하고 배치하는 법, 운치를 나타내는 법등이 있다.

  1. 필법筆法

글자의 점과 획을 그을때 붓을 움직이는 법이다. 이것은 붓을 잡는 '집필'과 붓을 움직이는 '용필'로 나뉘는데, '집필법'은 손가락을 사용하는 지법指法'단구법' '쌍구법' '오지집필법'이 있으며, 팔을 사용하는 완법腕法'침완법' '제완법' '현완법'이 있다. '용필'은 기필, 수필, 원필, 방필, 중봉, 측봉, 로봉, 장봉, 제안, 전절 등이 있다.

 

1-1. 단구법單鉤法

  엄지손가락과 식지食指:둘째손가락사이에 붓을 쥐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받쳐주며 나머지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하고, 붓대의 중간보다 아래를 쥐며 지면에 대하여 수직으로 하여야 하며, 엄지손가락과 식지는 앞으로 당기는데 이용하며, 가운데손가락은 미는데 사용한다. 평상시 연필을 쥐는 방법이다.

 

1-2. 쌍구법雙鉤法

  둘째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을 나란히 한 후 관절을 꺾어 붓의 오른쪽 위에 대고 손가락 사이를 벌려준다, 엄지는 붓의 왼쪽에서 둘째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 사이의 위치에 대고 힘있게 잡은후 안으로부터 받치며, 붓대의 중간쯤을 쥐고 잡은 붓은 수직이어야 한다. 이때 무명지無名指: 넷째손가락는 안쪽에 대어 밖으로 밀어주며 소지小指:다섯째손가락는 무명지 밑에 겹치듯 댄다.

 

1-3. 발등법撥登法

  다섯 손가락의 특징을 활용해서 집필하는 것으로, 특히 이 방법은 각 손가락의 역량이 고루 발휘된다는 의미에서 오지제력법五指齊力法이라고도 한다. 집필요령은 먼저 엄지와 식지의 관절을 꺾어서 붓대를 잡은 다음 중지는 식지에 붙여 나란히대고 무명지無名指와 소지小指는 붓대 안쪽에 대어준다. 이때, 다섯 손가락의 관절은 모두가 꺾이게 되며, 그래서 엄지와 식지가 이루는 공간은 둥글게 된다. 특히 엄지의 관절은 반드시 꺾여져야한다. 왜냐하면 이에따라 다른 손가락의 관절작용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기때문이다. 집필의 요체로서 허장실지虛掌實指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오지제력五指齊力으로 필관을 잡았을 때 손바닥 안에 달걀하나가 들어갈 만한 상태의 집필을 가리키는 것인데, 손바닥 안은 비고 손가락의 힘은 충실하다는 의미이다. 허장실지는 몸의 힘을 손끝에 모으는데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어떠한 집필법에 있어서도 이 원리만은 공통적인 것이 되어있다. 따라서 이 손가락의 작용이라는 것도 실은 손가락 그 자체의 힘이라기 보다 팔과 온몸에서 생기는 것이다.

 

1-4. 枕腕法침완법

  왼쪽 손을 붓을 잡은 오른쪽 손목에 받치고 쓰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팔의 힘이 필봉筆鋒까지 충분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어서 작은 글을 쓸 때 적용이 된다.

 

1-5. 提腕法제완법

  오른쪽 팔뚝을 책상에 대고 팔목 부분을 들어서 올리고 쓰는 방법이다. 이것은 작은 자와 중간정도의 크기의 글씨를 쓸 때 적용이 된다.

 

1-6. 懸腕法현완법

  팔을 완전히 들어 올리고 쓰는 방법이다. 이것은 팔이 사방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온몸의 힘이 손가락을 통해 붓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어서 아무리 큰 글자 라도 소화할 수가 있게 된다.

집필 할 때는, 일단 잡은 붓은 고쳐 잡지 말아야 하며 특히 붓을 잡은 손가락으로 붓대를 돌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운필은 팔이 행하는 것으로 어깨 힘의 가감이 자유스러워야 한다. 손목은 팔을 통해서 오는 상박부의 움직임에 따라서 동작을 하여야 하는데 자칫 팔이나 상박부는 움직이지 않고 손목만으로 붓을 움직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

 

1-7. 기필起筆과 수필收筆

  기필起筆이란 한 획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며, 획을 그을 때 반드시 역입을 하여 붓끝이 획밖으로 노출이 되지 않도록 하며, 수필收筆이란 한 획의 마무리를 하는 것으로 끝에 이르러서 그어 오던 쪽을 향해 회봉回鋒)시켜 수필收筆하는 것이다. 기필起筆과 수필收筆은 그 점획의 형상을 결정 지우는 중요한 관건이 되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1-8. 제필提筆과 돈필頓筆, 按筆

  서예는 한마디로 붓의 변화 과정이다. 곧 붓이 종이 위에서 움직일 때, :끌거나, 혹은 돈:누르는 것을 교체해 가며 진행된다. 이 원리를 인식하고, 와 돈의 방법에 주의한다는 것은 곧 필세筆勢가 영활한 기운을 띠게 되는데 필요한 것이다.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제하면 돈해야 하고, 한 다음에는 반드시 제)해야 하는 이 변화는 마음이 거느리는 바에 의해 대단히 빠른 가운데 팔의 운동을 거쳐 필봉筆鋒에 이르러야 한다.

 

1-9. 과 중

  점획의 경:가벼움과 중:무거움은 제와 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붓을 화선지에 닿게 함에 있어, 가볍게 하면 나타나는 점획이 가늘고, 무거우면 점획이 굵은 것은 당연하다. 경중輕重과 제안提按이 동일한 것 같은 착각이 들지도 모르나, 양자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곧 제안提按은 점획간의 기필起筆과 행필行筆)과 수필收筆에 있어서, 용력用力에 따라 조세粗細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고, 용필用筆의 경중輕重은 점획의 내적 변화뿐만 아니라 비첩碑帖의 풍격과 특징까지도 표현되는 것이다.

서예는 용필의 경중에 따라 각기 특징을 지니는 것이어서, 모든 작품에서 느낌도 달리 한다.

 

1-10. )과 절)

  ''이란 붓을 종이에 대고 둥글게 굴려 돌려서 모나거나 뿔이 나지 않는 필획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때 손가락으로 필관筆管을 굴리지 않아야 한다. )에 비해 ''은 방적方的점획을 만드는 용필법用筆法으로서 한 획의 중간에서 소위 '일필삼과一筆三過'라 하여, 관절의 작용으로 꺾는 것이 있기는 하나, 주로 한 획의 시작과 마무리 때의 방향을 바꾸는 데 쓰인다.

절필折筆의 방법은 필봉筆鋒이 왼쪽으로 가려면 먼저 오른쪽이,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려면 왼쪽이 먼저 닿아야 하며, 위로 가기 전에 아래를 먼저 대고, 아래로 쓰려면 위를 먼저 댄 다음에 쓰기 시작해야 하는 법으로, 이것이 곧 '역입逆入의 원칙'이다. 그러나 절필折筆의 중점은 눌렸다가 꺾는 데에 있다.

 

1-11. 과 원

  방필의 필획에는 모가 나 있고, 원필은 각이 나지 않는 둥근 형상의 필획을 말한다. 기본 점획의 주된 특징은 방이 아니면 원이고, 그렇지 않으면 방에 원을 겸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글씨는 분류의 원칙을 방과 원으로 구분한다.

 

1-12. 장봉藏鋒과 노봉露鋒

  '장봉藏鋒'이란 원필圓筆의 경우처럼 봉을 휩싸서 감추듯 기필起筆)하여 필획이 시작되는 곳과, 마무리되는 곳에 봉의 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장필藏筆)의 방법으로서 기필에는 역봉逆鋒, 수필에는 회봉回鋒을 한다. 이를 '역입도출逆入倒出'이라고 한다.

노봉露鋒'은 필법筆法에 있어서 장봉藏鋒과 반대 현상으로 지칭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봉中鋒과 편봉偏鋒과의 관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노봉露鋒은 장봉과는 달리, 서선의 방향대로 붓을 대어서 필봉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을 노봉 이라고 한다. 한 획을 쓸 때 붓끝이 밖으로 노출되게 하는 것인데, 글자와 글자가 연결되게 쓸때 노봉이 나타난다. 또한 노봉은 작은 글자나 행 초서를 쓸때 많이 나타나게 된다. 노봉으로 쓴 글씨는 점과 획에 붓끝이 노출되고, 노출된 붓끝은 두 현상을 보인다. 곧 붓끝이 점과 획의 정중간에서 부터 나오는 것과, 점과 획의 한편으로 치우쳐서 나오는 것이 있다. 전자는 중봉中鋒인 경우여서 원경圓勁하며, 후자는 편봉偏鋒이어서 편약한 것이니, 전자가 좋은 것임은 당연하다. 원경圓勁한 노봉은 삐침, 파임, 꺾임등 획에서 삐칠 때 쓰이는 것으로, 반드시 중봉(中鋒이라야 하며, 노봉露鋒이 아무리 첨세尖細)하더라도 편획이 되지 않아야 한다.

 

1-13. 중봉中鋒, 측봉側鋒, 편봉偏鋒

  중봉中鋒'은 정봉正鋒이라고도 한다. 중봉이란 행필行筆에 있어 필봉筆鋒이 획의 정중간을 점하고 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붓이 종이에 닿았을 때, 모든 털이 가지런히 펴진 다음 획이 가는 길의 정중간에서 필봉이 가도록 하는 것이 중봉中鋒이다.

모필은 동물의 털을 재료로 해서 원추체圓錐體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펴질 수 있고 모아질 수 있으며, 먹은 필첨筆尖을 따라 아래로 흐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중봉은 상하좌우로 고르게 스며, 퍼지고 호의 사면팔방이 모두 종이에 닿게 되어 원주형圓柱形의 필획을 이룬다.

측봉側鋒은 측)으로 세를 취한다는 뜻이다. 영자팔법永字八法에 점법은 측법이 일컬었음에 비추어 '측봉側鋒'은 곧 점법點法으로 기필(起筆하는 것이니 '중봉中鋒'이 장봉원필藏鋒圓筆이라면 '측봉側鋒'은 노봉방필露鋒方筆이다.

'편봉'은 점획의 한곁으로 필봉이 기울어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옆으로 획을 그을때 필봉이 상단이나 하단으로 치우쳐 가거나 아래로 그을 경우 왼쪽으로 치우쳐 그어졌다면 이것은 글씨를 쓴 것이 아니라 먹을 바른 것이된다. 그리고 수필에 회봉回鋒는 물론 되지 아니하려니와 호가 드러누은 그대로 들리고 만다.

편봉은 '병필病筆''패필敗筆'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병필과 패필이란 점과 획 상의 병폐를 말하는 것으로, 초학자 뿐 아니라 상당히 조예가 있는 서예가에게도 항상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서예가에 있을 때 병폐는 더욱 면하기 어렵다.

첫째 붓이 종이에 닿자마자 생각도 없이 점획을 써서는 안된다. 신중히 붓을 내리되, 낙필落筆한 다음에는 잠깐 쉬는 듯이 마음을 가라앉혀서 행필行筆해야 한다.

둘째, 한 획을 쓸 때마다 필력을 다해서 움직여야 한다. 가령 삐칠 경우라면 힘을 들인다고 해서 필봉을 누르자마자 그대로 내리 삐치거나 하면 안 된다. 너무 빨리 사납게 하면 필관이 옆으로 누워 내려오게 되는 나머지, 삐친 획의 하반이 끊겨지고, 갑자기 가늘게 변해서 삐친 끝이 길게 노출된다. 이 현상을 '허첨虛尖'이라고 한다.

 

2. 필력筆力

 붓을 움직여 획을 긋는 내재적인 힘을 말한다. 점과 획 사이, 획과 획 사이, 글자와 글자 사이, 그리고 행과 행사이의 상호호응 관계를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붓이 가지 않은 곳이라 할지라도 기세가 끊어져서는 안되며, 점과 획의 모양이 각각 다르다 할지라도 그 필세는 항상 혼연일치 되어야한다.

 

-3. 필의筆意

  글씨속에 표현된 작가의 감정과 취향을 가리킨다. 서예는 문자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법칙과 글씨를 쓰는 사람의 심미적 정취가 하나가 되어 사상감정 활동과 풍부한 상상 및 운필기교에 근거하여 서법의 조형이 각종의 동태를 드러나게 해서 지면에 생동하면서도 함축된 표정과 의취가 표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4. 묵법墨法

  서예에서 중요한 기법의 하나이며 여기에는 농묵濃墨·담묵淡墨·간묵幹墨·갈묵渴墨·습묵濕墨·고묵枯墨·창묵漲墨등이 있다. 이것은 글씨를 쓰는 사람과 서체 및 용도에 따라서 작품의 광채를 결정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옛 사람은 글씨를 쓸 때 대부분 진한 먹을 사용하였으나 묽은 먹을 사용한 사람도 많았다. 송대의 서예가 소동파는 진한 먹을 잘 사용하여 '농묵재상濃墨宰相'이라 칭하였으며 청대의 서예가 왕몽루王夢樓는 묽은 먹을 사용하여 당시에 '담묵탐화지목淡墨探花之目'이라는 명예를 누렸다. 현대에 있어서 일본에는 묽은 먹을 사용하는 서예가들이 많은데 이들의 시도하는 담묵의 표현 기법은 동양화의 먹색을 참고하여 촉촉한 것으로써 아름다움을 구하여 온아함과 세련됨을 나타내었고 구도의 경중을 충분히 이용하여 흑백대비의 예술효과를 이루면서 새롭고 아름다운 맛을 나타내었다. 물론 담묵을 예술적으로 잘 처리하기란 어려워 서예가의 예술적 소양과 기교를 바탕으로 대처해야 하며 꾸미거나 억지로 표현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성공한 서예가는 예술적 처리에 있어서 전후의 호응과 먹색의 윤택함과 운치를 맞추는데 매우 주의하였다. 훌륭한 작품들은 한번 먹을 묻혀서 몇자를 쓴 후 붓에 먹이 다하면 다시 먹을 찍어서 쓴 것을 분명히 알아 볼 수 있다. 한 폭의 작품에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먹은 몇차례 묻히는데 불과하지만 먹색의 변화는 끊임없어서 건조함과 습함, 진함과 묽음을 돋보이게 한다.

 

. 서예의 감상법

  서예의 심미관념審美觀念은 인격과 예술의 통일을 지향하는 전통적인 인문정신의 발현이며 시각예술에 속해 있으면서도 심상심학心相心學으로서의 특성을 지닌 동양 특유의 미적예술이다. 따라서 서예를 감상한다는 것은 사람의 사상, 정감, 취미, 심미안 등을 개발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서예는 회화와 같이 현실 중의 각종사물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예술이다. 그러나 서예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점과 획의 구성은 매우 특수한 예술언어와 리듬감을 가지고 있다.

서예에 있어서, 하나의 획으로 어떤 사물의 형상과 변화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사물의 형태와 동태적인 미감을 충분히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작가가 창작을 할 때 무한히 다양한 객관적 현실 가운데 아름다움을 받아들여, 점과 획 그리고 형체에 집중적으로 표현시킴으로써 작가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감정을 이에 충분히 발설하는 것이다.

서예작품이란 글자들이 모여서 행을 이루고, 들이 모여서 장을 이루면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점은 한 획의 규범이 되며, 한 자가 한 작품의 부분적인 미가 전체적인 미에 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체의 구성을 장법章法이라고 하는데 그림으로 말하자면 구도와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문자를 조화롭게 배열 또는 배자하여 하나의 완성된 문장을 꾸미는 것을 말하는데 이 뿐만이 아니라 최종적인 낙관을 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서예는 이미 정형화된 문자를 소재로 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보다는 모양뒤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필획에 중심을 두게 된다. 따라서 붓을 어떻게 움직여 어떠한 필획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필획의 질감이나 역감力感의 현상이 어떠한가에 의해 작품의 수준이 평가된다. 서예의 미는 모두가 역감力感을 바탕으로 해서 서예의 아름다움이 표현된다. 역감力感이 없으면 모든 글자는 피곤한 듯 늘어지고 필획에는 생기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역감중力感中의 역은 서예를 시각으로 감상할 때에 일종의 감수이며, 이것은 관념중의 힘이며 심리학의 범주에 속한다.

역감力感이란, 필력筆力· 골력· 근력筋力· 역도力度등을 말하는 것인데 글자에는 인체와 같이 뼈, , 힘줄, 피가 모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글씨란 사람의 인체조직과 같아서 4가지 모두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어져야 한다.

, 필획 중에서 힘을 나타낼 수있는 골격을 뜻함이고, 운필을 할 때 중봉으로 글씨가 이루어지게 하며 역봉을 할 때에는 절필을 하여 글씨에서 뼈대가 나타나는 듯하게 쓰는 방법이다.

, 먹물의 농담을 비유하여 선의 굵고 가늚, 즉 살찌고 마름을 말하는 것인데, 필봉에 함묵시키는 먹물의 양을 적당히 하여 용필을 해야 살이 알맞게 쪄보이는 서선을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먹물의 함묵량에 관계가 있는 것인데 먹물이 너무 많이 함묵되어도 적게 되어도 좋지 않다.

, 글자끼리나 획끼리는 기맥이 상통하도록 해야하는데 이것을 사람의 몸으로 보면 힘줄의 역할을 하는것으로 둔필할 때는 붓을 아주 정지하거나 거두지 않으면 안된다.

, 필획이 윤택하고 생기가 있어야 하므로 먹물의 신선함을 피에 비유한 것이다. 먹물은 글자쓰기에서 글자의 피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기있고 윤기있는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먹물의 농도 맞추기를 잘 하여야 한다.

행서나 초서는 한 글자만 보아서는 안된다. 이 글자와 저 글자 도는 이 줄과 저 줄을 보면서 그 속에 담겨진 필력·필세·필의·성기고 빽빽한 것·긴장되고 해이한 것·균형·서로의 획들이 어떻게 배합되었는지를 제대로 살펴야하며, 필묵이 있는 곳에서부터 없는 곳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살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종합하면 한 폭의 서예작품에는 반드시 글자와 글자, 행과 행 사이의 간격과 대소 획들을 적절히 배합시키고, 먹의 농담을 서로 어울리게 하고, 신축성을 고려하여 전체가 일맥상통하게 하여야만 진정한 예술효과가 발휘되는 것이다.

좋은작품에는 필법筆法·묵법墨法·장법章法·기운氣韻등 네 가지 요소가 반드시 구비되어야 한다. 특히 먹빛의 효능은 서예를 평가함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아무리 좋은 글씨를 썼다 하더라도 먹빛이 영롱치 않고 담백한 맛이 없다면 품격이 있는 작품으로 볼 수가 없다. 선현들은묵색판단墨色判斷〕′이라 하여 글씨를 쓰게 한 연후에 그 필세와 먹빛을 보고 그 사람의 길흉과 운명을 판단하였다고 하니 가히 그 중요성이 어떠한가를 짐작 할 수가 있다.

작품을 감상할 때는 다른 사람의 약점만을 들추지 말고 장점을 흡수하여야 한다. 간혹, 글꼴은 안중에도 없고 오자 찾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오자가 생겨서는 안되겠지만 그러한 것이 서예의 평가기준이 될 수는 없다. 서예는 읽는 예술이 아니라 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편견은 결코 예술평가의 바람직한 것이 될 수 없으며, 대충 보고 지나가는 것으로는 작품이 간직하고 있는 품격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드니 세심하게 살펴 보아야 한다.

 

. 서예 도구의 사용

  서예를 함에 있어 도구는 붓, , 벼루, 화전지 네가지로 간단하다,

이를 가리켜 문방사우 또는 문방사보라고 한다. 전문서예가나 서예를 배우려고 하는 초보자도 더 이상의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

  1.

  문헌에 의하면 붓을 처음 만든 사람은 몽염이라는 진나라 사람이다. 그러나 중국은대殷代에 이미 모필毛筆로 쓴 도기의 조각이 발견되므로써 몽염 이전 시대에도 붓의 형태를 지닌 것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붓은 서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서양의 그림붓은 평면적인데 반해 서예에 사용되는 붓은 정원正圓이다. 원추圓錐의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용력과 반작용력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 다양한 선질의 효과를 낼 수 있다.붓은길고 유연하며 얇은 화선지에 단번에 긋는 것으로 모든 것을 완성하기 때문에, 동양의 붓은 도구로서의 기능을 뛰어넘어 작가의 신경과 감각이 연장선상에 있어야 한다.

모필의 재료는 동물의 털을 이용한다. 주로 쓰이는 것은 양털양호羊毫토끼털자호紫毫이며, 말갈기털종모鬃毛늑대털낭호狼毫닭털계호鷄毫쥐수염서수鼠鬚과 다른 짐승털을 겸한것겸호兼毫등이 있다.

붓대는 대부분 대나무을 사용하며 붓의 굵기에 따라 극대필부터 미세필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붓털의 길이에 따라서는 장봉, 중봉 ,단봉으로 나누어진다.

붓의 강한 정도에 따라서는 강호强豪-털의 성질이 강한 붓, 유호柔豪-털이 부드러운 것, 겸호兼豪-강한 털을 붓의 가운데에 넣고 두 종류 이상의 털을 섞어서 만든 것로 나눈다. 초보자에게는 겸호가가장적합하다.

붓을 선택 할때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면 좋은 붓이라 할 수있다.

-.: 붓끝주위가 풍만하고 원추상태이며, 편평하지 않고 여위지 않 은 것.

-.: 붓끝을 합쳐보면 뽀쪽하여 뭉퉁하지 않는것.

-.: 붓끝을 평평하게 편후 끝의 털이 가지런 한 것. -.: 붓끝에 탄력이 있어 붓끝이 펴진 후에도 잘 모아지고, 붓털이 굽었다가도 쉽게 원래대로 곧게 회복되는 것.

 

2. 화선지

  오늘날 종이에 가장 가까운 것은 B.C.4000년경 이집트의 나일강변에서 자라는 파피루스papyrus였다. 고대 이집트 사람은 나일강변에 야생하는 파피루스라는 갈대와 비슷한 식물의 줄기를 얇게 저며서 가로·세로로 맞추어 놓고 끈기가 있는 액체를 발라서 강하게 압착시킨 후, 잘 건조시켜 기록하는 재료로 사용하였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종이를 발명한 사람은 AD 105년 중국 후한의 채륜이라 하였다. 채륜이 발명한 제지술은 나무껍질· 마설· 넝마등을 돌 절구통에 짓이겨 물을 이용하여 종이를 초조하는 원리였는데, 이것은 현대의 초지법抄紙法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후 전한前漢의 한 무덤에서 종이가 출토됨으로써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으며 따라서 채륜은 종이를 개량했던 사람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간: 대나무 혹은 나무조각을 잘 다듬어서 , 표면에 나무즙으로 기록하여 그 조각들을 가죽이나 끈으로 연결한 것)과 독이 많이 사용되었고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붓이 발명되면서부터 비단이 함께 사용되었다.

서화용으로 쓰이는 종이는 크게 나누어 선지계宣紙系와 당지계唐紙系로 나누어진다. 선지는 지질이 무른편이며 습기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옥판전 玉版箋,라문전羅文箋,백지白紙등이 선지에 속한다. 당지는 원래 중국제 종이 전반을 가르 키는 것이었으나 현재는 죽을 원료로 하는 종이를 지칭하고 있다. 그 종류에는 일번당지一番唐紙,이번당지二番唐紙,백당지白唐紙등이 있으며 이 외의 가공지로서 납전蠟箋, 채전彩箋문양전(文樣箋,, 주금전酒金箋, 문당전文唐箋등이 있다. 또 한 청조淸朝시대의 종이로서 지금까지 감상의 대상으로 애장되는 고지(古紙가 있는데 징심당지澄心唐紙,방금율산장경지倣金栗山藏經紙같은 것이 있다.

좋은 화선지의 선택 요령은, 거칠지 않고 매끄러우며 앞뒤의 구분이 정확히 되는 것과 흡수, 윤갈이 적당히 되어서 필법이 잘 나타나는 것, 번지지 않고 발색이 좋고 먹빛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것, 너무 얇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 보존성을 지닌 것등이다. 보관할 때는 습기가 없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어야 벌레나 곰팡이로 인해 종이가 파손되는 것을 방지 할수 있다.

한국의 종이는 지질이 좋고 질기기는 하나 서화에는 적당하지 않아 주로 중국산 종이가 사용되었다.

  3. 벼루

  벼루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묵서墨書의 흔적으로 미루어 그때 이미 벼루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시황제때인 것으로 추정되는 원판석연圓板石硯이 발견되면서 그것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벼루로 알려져있다.

벼루에서 먹을 가는 부분은 연당硯堂·연홍硯泓이라고 하고, 먹물이 모이는 오목한 곳은 묵지墨池또는 연지硯池라고 한다. 모양은 원형과 4각형에서 부터 여러가지 각형과 사물의 형태를 본떠 만든 금연琴硯·풍자연風字硯등이 있으며, 크기도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하다. 재료로는 돌· · 수정· 도자기· · 금동· · 대나무· 조개껍질등이 사용되나 대개는 돌을 사용한다. 좋은 벼루는 먹이 잘 갈리고 고유의 묵색이 잘 나타나야 한다. 연당의 표면에는 숫돌과 같은 꺼끌꺼끌한 미세한 봉망鋒芒이 있어 여기에 물을 붓고 먹을 마찰시킴으로써 먹물이 생긴다. 따라서 봉망의 강도가 알맞아야 한다. 봉망이 약하면 먹이 잘 갈리지 않고 반대로 강하기만 하면 잘 갈리기는 하나 먹빛이 좋지 않다. 벼루는 실용의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는 좋은 재질의 것을 첫째 요건으로 하지만 먹을 가는 도구라는 차원을 넘어 돌의 빛깔이라든가 무늬의 아름다움을 취하고 나아가 연면硯面을 미적 의장으로 조각 장식하여 문방사우의 하나로서 감상의 대상으로 여겨 왔다. 인류가 벼루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은대殷代의 갑골甲骨에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쓴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이 어떠한 형태이든지 먹물을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벼루가 제작된 것은 한대부터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가야시대에 만들어진 도연陶硯인데, 원형의 연면에 연지가 돌려져 있고 5개의 다리가 있다. 중국에서는 당대唐代)부터 단계端溪에서 나는 것이 유명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남포연藍浦硯과 위원연渭原硯이 가장 유명하다.

  4.

  후한(後漢)의 위탄(韋誕)이 발명했다는 설이 있으나, 은대(殷代)의 갑골(甲骨) 가운데 검거나 붉은 액체를 사용한 것이 출토되어 BC 2500년 이전에 먹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상으로도 위탄 이전의 책에서 먹에 관한 기록이 발견된다. 이때 사용한 먹은 석묵(石墨)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지금과 같이 탄소의 분말을 이용하여 만든 것은 한대 이후부터이다.

먹은 위진대魏晋代에 옻과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둥근 형태의 묵환墨丸에서 비롯 되었으며 종류로는 식물성 기름의 그을음으로 만든 유연묵油烟墨, 소나무 그을음과 사슴의 아교로 만든 송연묵松烟墨, 유연에 사향을 섞어 금박을 입힌 용향묵龍香墨, 먹똥과 응어리가 안 생긴다는 청묵淸墨등이 있으며, 지금에 와서는 화학원료인 카본블랙을 사용하여 만든 양연묵洋煙墨이 있다.

먹의 형태는 초기에는 둥글거나 원주형圓柱形이었으며 점차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먹 위에 그림이나 문자를 새겨 장식한 것들도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양덕楊德과 해주海州의 먹이 예로부터 가장 유명하다. 먹을 갈때는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사용후에는 벼루에 먹물을 남겨 두지 않는다. 하루 자고난 먹은 먹찌꺼기와 거품이 섞여 있어서 글씨를 쓰는데 좋지 않다. 이밖에 먹의 농도와 양은 쓰는 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며, 털이 센 붓은 일반적으로 좀 진한 것이 좋고, 털이 연한 붓의 경우에 먹이 진하면 글씨를 쓰기가 어려워진다. 해서를 쓸 때는 조금 진한게 좋고, ·초서의 경우는 먹이 좀 묽은 듯 하여야 흐름이 원활해진다.

먹을 고를 때는 먹빛과 향기가 좋아야하며, 손으로 두들겨 보아 소리가 맑은 것을 고른다. 판매되는 먹물은 가급적 삼가 하는 것이 좋다. 장기간 사용시 방부제로 인해 시력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고 붓의 수명도 짧아진다. 사용하고 남은 먹물은 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2~3일은 사용 할 수 있으나 가급적 쓸 만큼만 갈아서 바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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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이론

필봉(筆鋒)이란
붓털 중에서 뾰쪽하고 약간 노르스름한 빛을 띠는 부분을 필봉(筆鋒)이라고 한다. 이외에 글자의 첫 시작 부분도 필봉이라고 한다.

 붓을 움직일 때 붓의 뾰쪽한 부분을 글자의 중심에 오게 하여
글씨를 쓰는것을 중봉(中鋒)이라 하고,붓 끝을 감추어 모서리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을 장봉(章鋒)이라고 한다.만약 붓 끝이 한 쪽으로 치우쳐진 상태로 글씨를 쓰게 되면 편봉(偏鋒)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간주한 모필의 탄력성은 필봉에 의하여 좌우된다. 필봉이 길면 길수록 탄력성도 풍부하고 먹의 함유량도 많아서 글씨를 쓸 대점과 획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붓을 움직일 때, 한 번 당기면 곧바로 되고 한 번 누르면 붓이 엎어지고 점과 획을 꺾고 누르고 글자사이의 종과 획을 교차시키며 서로 연결하게 하는 것도 모두 필봉의 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서예적인 측변으로 볼 때 용필(用筆)은 바로 필봉에 달려 있다붓 끝을 바로 하거나, 기울게 하거나, 거꾸로 하거나, 순하게 하거나, 무겁게 하거나, 가볍게 하거나, ()하게 하거나, ()하게 하거나 등은 모두 필봉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약 중봉으로 글씨를 쓰게 되면 무겁고 가라앉은 느낌이 나며, 장봉으로 글씨를 쓰면 온후하고 중후한 맛이 나면서 뼈와 근육을 감출 수 있다.

역봉(逆鋒)으로 글씨를 쓰면 점과 획을 웅건하고 육중하게 할 수 있고, 노봉(露鋒)으로 글씨를 쓰면 정신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으며, 측봉(側 鋒)으로 글씨를 쓰면 험하고 기이한 맛을 나타낼 수 있다.

붓을 어떻게 쓰나냐에 따라 위와 같은 효과가 나오므로 각자 개성과 특성에 맞는 필법을 선택하여 쓰면 된다.

초학자들이 글 씨를 쓸 떼에는 하앙 붓 끝에 힘을 주어 종이를 뚫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만일 힘을 제대로 주지 않고 글씨를 쓰면 점과 획이 미끄러져 판에 박힌 듯한 글자가 나오게 된다.
중봉(中鋒)이란 무엇인가?
붓대를 곧바로 하고 붓 끝을 가운데로 오게 하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중봉(中鋒)이라고 한다. 중봉으로 글씨를 쓰면 붓 끝이 항상 점과 획의 중앙에 위차할 수 있게 된다.

<서벌(書 筏)>에서도 "중봉을 운용할 수 있으며 퇴필로도 획을 둥글게 할수있고, 중봉을 하지 못하면 좋은 붓으로도 졸렬한 글씨를 쓰게 되니 글씨의 좋고 나쁨은 바로 중봉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이것은 중봉이 서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만, 현재 서법에서도 중봉은 꼭 지켜야할 중요한 사항이다. 중봉으로 글씨를 쓰면 붓을 일으키고, 엎어지게 하고, 누르고, 당기고, 보내는 변화를 쉽게 할수 있어 거기에 따라 나오는 점과 획에 다양한 변화를 창출할 수 있다.뿐만 아니라 강하고, 부드럽고, 굽고, 곧바로 된 획도 자유자재로 구사할수 있으며 가로 세로의 획과 둥근획도 마음 먹은대로 표현 할수가 있다.

만약 팔을 붓대에 기울인다면 중봉을 운용하는데에 지장이 있어 평평한 획을 그을 때 붓 끝이 글자의 중심에 오지 않게 된다중봉으로 붓을 쓰려면 먼저 붓 끝이 중앙에 위치하도록 자세와 중심을 똑바로 잡아야 한다옛사람들의 경험을 근거로 살펴 보면, 팔목은 세우고 붓끝은 똑바로하여 붓의 사면에 힘이 균등히 가게하여 항상 글자의 중앙에 붓 끝이 오도록 한다. 붓을 움직임에 있어서 머무를 때에는 사로잡는 듯하게, 나갈 때는 내보내는 듯하게,거둘 때에는 긴장을 하는 듯하게, 넓힐 때에는 열어주는 듯하게 , 누를 때에는 내리는 듯하게, 당길 때에는 일어서는 듯하게 하면 붓이 왕래하는 사이에도 붓 끝은 항상 스스로 제자리 에 돌아와 중봉을 유지할 수가 있다.

중봉은 용필(用筆)의 관건이며 붓이 똑바로 서야만 골()이 서 있게 되며 획이 풍부하게 되어 정신과 풍채가 비약할 수 있다. 서예는 획의 변화를 중요시 하는데 중봉을 유지하지 못하면 어떠한 변화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초보자는 반드시 중봉을 유지하면서 글씨를 쓰는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측봉(側鋒)이란 무엇인가?
측봉(측봉)과 정봉(정봉)은 서로 반대되는 말로 붓을 움직이는 일종의 방법과 형식을 말한다. 측봉에 대해서 옛사람들이 많이 언급하였지만 그의 성질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주화갱(朱和羹)<임지심해(臨池心解)>에서 "정봉은 힘을 취하고 측봉은 연미함을 취한다. 왕희지가 쓴 <난정서(蘭亭敍)>에서 연미함을 취할 때에는 측봉을 사용하였다. 내가 가을철에 독수리가 토끼를 잡는 것을 보았는데 먼저 공중을 빙빙 돌다가 한쪽 날 개를 접으면서 뒤집듯이 쏜살같이 내려와 토끼를 잡는다. 이것을 보고 글씨의 경지를 깨달았는데 붓을 똑바로 잡고 곧장 내려오는 형세로 글씨를 쓰면 연미한 맛을 얻을 수가 없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측봉이 용필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풍무(馮武)<서법정전(書法正傳)>에서 "지금 측봉으로 연미함을 취한다는 것은 모두 이단이다. 글씨를 배울때 사악한 외도를 취해서는 종신토록 이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게 되니 경계하고 또 경계하여야 된다."라고 하였다.

풍무(馮武)는 이와같이 측봉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하였으며 심지어는 사악한 이단이라고까지 하였다. 이렇게 상반된 견해를 갖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측봉에 대한 이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것을 간단히 말하면 측봉과 편봉을 같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인데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일로 편봉이 절대로 측봉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른바 편봉이라는 것은 붓을 움직일 때 붓대를 비스듬히 하여 필봉(筆鋒)을 한쪽으로 가게 하고 붓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시켜 한쪽은 매끄럽고 한쪽은 톱니바국처럼 나게 하는 효과를 꾀하는 것이다.

먹물이 종이에 제대로 침투하지 않기 때문에 한쪽 면만 평평하고 나머지는 종이 위에 뜬 상태가 되므로 운필(運筆)에서 제일 꺼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퇴필(退 筆)이라고도 한다.

측봉에 대하여 <영자팔법(永字八法)>에서는 "기울인즉 붓을 평평하게 할 수는 없다. 기울일 때에는 마땅히 오른쪽으로 향하게 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붓을 오른쪽으로 향하게 하니 이는 기울어진 형세를 취한다는 뜻이 된다.

측봉으로 붓을 움직이면 과도하게 획을 돌릴 때 누운 붓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중봉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만약 측봉으로 말하면 점과 같은 획은 모두 측법(側法)으로 쓰는 것이다. 심지어 '··'와 같은 글자에서 삐침과 갈고리와 같은 획도 모두 측법에 속한다. 이렇게 붓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쓰면 물소뿔과 같이 날카롭고 단단한 획을 얻을 수 있으며 정신과 풍채가 밖으로 드러나는 까닭에 점과 획을 강조할 때에는 흔히 이러한 법을 사용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측봉과 정봉은 각기 다른 장점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특성을 보완하여 서예의 오묘한 맛을 나타 내여야 한다.
회봉(回鋒)이란 무엇인가?
회봉(回鋒)이란 붓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점과 획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오던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말한다.
회봉은 점, 가로획, 세로획, 삐침 등의 모든 획에 적용되는 것으로 붓 끝을 버리지 않고 오던 방향을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한 일()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붓을 거두는 곳에 이르면 조금씩 붓을 오른쪽 위로 향하게 하여 다시 한번 오른쪽을 가볍게 누른 뒤에 중간을 향하여 오던 방향으로 붓을 진행시켜 멈춘다.

세로획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붓을 거두는 곳에 이르면 왼쪽 위로 향하게 하여 가볍게 한번 들어서 다시 중간을 향하여 오던 방향으로 붓을 진행시켜 멈춘다. 회봉은 붓을 움직이는 작용으로서 점과 획을 원만하고 안온하게 가라앉혀 주면서 힘줄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여 획을 풍만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회봉은 점과 획을 오던 방향으로 붓을 향하게 하는 것으로 조금도 번거롭지 않은 일이다. 초학자가 처음 해서를 임모(臨摹)할 때 회봉의 법칙을 지키지 않으면 점과 획이 원만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글씨도 안온하고 장중한 맛을 나타내기 어렵다. 그러므로 회봉은 초학자가 꼭 지켜야 할 사항인것이다.

회봉을 할 때 주의할 점은 붓을 움직이는 속도와 경중이다. 붓을 너무 빨리 움직이면 글씨가 가볍게 되쉬우니 마땅히 가볍고도 정성을 들여 장중한 맛이 나게 하여 한다.
절봉(折鋒)이란 무엇인가?
절봉(折鋒)은 역봉(逆鋒)이라고도 하며 붓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기필(起筆)할 때 필봉(筆鋒)을 거꾸로 하여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절봉은 기필할때와 글자 한 자에서 오른쪽 획을 시작할 때 흔히 사용한다.

가로획을 그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는데 글씨를 쓸때는 먼저 거꾸로 붓을 위로 향하게 한 다음 기필의 장점에 이르러서는 아래로 향하여 한 번 눌러준 다음 다시 오른쪽을 향하여 나아간다.

세로로 내려 긋는 획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데 글씨를 쓸 때는 먼저 거꾸로 위를 향하게 한 다음 기필의 정점에 이르면 왼족 아래로 향하여 붓을 한번 눌러준 다음 다시 아래로 향하여 나아간다.

절봉은 글씨의 정신이 많이 나타나 노봉(露鋒)에 비하여 획이 육중하고 필력감도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초학자들이 임모(臨摹)를 하거나 해서(諧書)를 쓸 때에는 곡 이방법을 준수하여야 한다.
만호제력(萬毫齊力)이란 무엇인가?
글씨를 쓸 때에 모든 붓털이 힘을 골고루 발휘하는 것을 만호제력(萬毫齊力)이라고 한다.어떻게 하여야만 모든 붓털이 힘을 골고루 발휘할 수 있는가? 먼저 붓이 손가락 가운데 있으면서 손가락의 간격은 조밀하게하여 그것의 힘이 필봉(筆鋒)에 직접 전달되야 한다. 그리고 진일보하여 팔의 힘과 어깨의 힘이 직접 붓 끝에까지 전달할 수 있으면 만호제력이 된다.그러면 어떻게 하여야만 팔의 힘과 어깨의 힘이 직접 붓 끝에까지 전달될 수 있는가? 팔과 손가락을 긴밀하게 하여 붓을 움직이지 않아야 하며 어깨도 움직이지 말아야 된다.그런 다음 팔꿈치가 책상에 방해를 받지 말아야 하며 이때 팔은 반드시 허공에 있어야만 붓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면 붓에는 완전히 팔의 힘이 전달되어진다. 또한 어깨의 힘과 손가락은 긴밀하게 하여 붓을 움직이지 않고 팔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팔과 팔꿈치가 평행되게 하면 붓에는 자연히 어깨의 힘이 전달되게 된다.너무 강하게 하면 팔의 위치가 팔꿈치보다 높아져 힘이 어깨에 그대로 남게 된다. 또한 힘을 적게 쓰면 반대로 팔꿈치의 위치가 팔보다 높게 되어 힘을 붓에 쏟아붓는 형상이 된다. 여기서 아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서 힘을 붓 끝에 전달시켜 만호제력을 이룩하느냐에 있다. 이에 대한 관건은 바로 글씨를 쓰는 사람의 운필의 기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오랜 숙련을 통하여 운필의 기교를 습득하면 자연히 힘을 붓 끝에 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한낱 탁상공론에 불과할 따름이다.
역입평출(逆入平出)이란 무엇인가?
역입평출(逆入平出)이란 운필의 한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역입(逆入)은 낙필(落筆)을 할때 필봉(筆鋒)을 나아가려는 반대 방향으로 하여 종이에 대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만일 왼쪽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에는 먼저 오른쪽으로 획을 꺾고, 오른쪽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에는 먼저 왼쪽으로 획을 꺾고,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때에는 먼저 위쪽으로 획을 꺾어 장봉(藏鋒)의 형세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평출(平出)은 붓의 운행에 따라 붓털이 쫙 펴져 나아가다 공중에서 붓을 거두는 형세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붓털이 종이 위에서 펴져 있을때 붓의 중심은 항상 획의 가운데에 있어야 하는데 포세신(包世臣)은 이것을 '중선(中線)'이라고 하였다. 이런 상태가 되면 모든 털이 힘을 골고루 발휘할 수가 있어 필세는 굳건하고 험악한 형태를 나타낼 수가 있게 된다. 역입평출은 좁은 의미로 말하면 예서(隸書)의 가로획을 말하는 것으로 처음 시작할 때에는 장봉으로 하고 끝날 때에는 붓을 거두지 않음으로써 누에의 머리(蠶頭)와 제비의 꼬리(燕尾) 형태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초학자들이 만일 다른 서체에서도 역입만 하고 회봉(回鋒)을 지키지 않는다면 점과 획이 힘이 없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 평출을 다른 서체에 적용시키면 마치 붓을 거두어 들이지 않는 듯한다. 획을 운행하는 기본 법칙에는 모든 점과 획을 막론하고 일단 가서는 반드시 붓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 원칙이다. 행서나 초서도 마찬가지나 자세하게 나타나지 아니할 따름이다. 따라서 평출에는 공중에서 붓을 거두어 들이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붓은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뜻은 이르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절대로 평출에는 붓을거두어 들이지 않는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장두획미(藏頭 尾)란 무엇인가?
장두획미(藏頭 尾)란 용필(用筆)의 한 방법을 말한다.

채옹(蔡邕)<구세(九勢)>에서 "장두(藏頭)란 붓을 둥글게 하여 종이에 대는 것으로 붓의 중심이 항상 획의 가운데 있게 하는 것이다.

 획미( )란 점과 획이 다하는 곳에서 힘있게 거두어 들이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장두획미는 붓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원래는 전서(篆書)에서 나왔으며 후인들이 이법을 따르게 되었다. 옛사람도 대부분 이것을 인정하였으니 만약 뼈와 힘줄이 드러나게 되면 병기운이 나타나게 되고, 붓을 움직일 때 곧바로 들어가서 곧바로 나오면 힘이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필력이 점과 획속에 있어야만 비로소 풍채와 정신이 살아난다는 말이다. 장두획미의 특징은 필봉을 안온하게 하는데 있다.왕희지는 <서론(書論)>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힘줄은 존재하나 붓자국은 감추어야 한다. 그리고 자취는 없애고 실마리는 숨겨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의 점에도 항상 붓자국을 감춰야 하며 가로획을 그을 때에는 끝에서 붓을 거두어 들이지 않으면 안되며, 세로획을 내려 그을 때에도 세우되 응축히키지 않으면 안된다. 매번 하나의 획을 그을 때에도 항상 세 번 붓을 꺾으며 점과 획에서 힘줄은 존재하나 뼈를 감추고 붓자국이 밖으로 드러나게 해서는 안된다.
무수불축(無垂不縮)이란 무엇인가?
무수불축(無垂不縮)이란 용필(用筆)의 한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방법의 중요한 의미는 붓을 움직일 때에는 반드시 세워서 응축시켜 위아래가 호응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로획을 내려 그을때 이미 위로 가서는 다시 내려오다 중간에 이르러서 획을 세우면 머리 부분이 둥글게 된다. 그 운필방법으로 필봉(筆鋒)을 거꾸로 하여 위로 향하게 한 다음 기필(起筆)의 정점에 이르면 왼쪽 아래로 가면서 가볍게 한 번 누른 다음 다시 아래로 운행한 뒤에 붓을 돌려 위로 향하게 하여 붓을 거둔다. 이때 세로획의 꼬리는 마치 이슬이 구슬처럼 매달린 형상이 되어야 한다.무수불축이란 송()나라 미원장(米元章)이 말한 것으로 그 의미는 세로획에 대하여 국한하였지만 어떤 획에도 이를 적용시킬 수 있다. 하나의 점과 획에도 반드시 세번의 꺾어짐이 있어야 하니 이러한 법칙과 무수불축은 서로 일맥상통한 다는것과. 이것은 또한 어떠한 획도 반드시 나아가서는 거두어 들어야 하고, 내려그을 때에는 응축됨이 있어야 한다만일 이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게 되면 점과 획은 판에 박힌 듯하여 생명이 없고 죽은 글씨가 되어 정신과 자태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무수불툭의 서법은 붓을 운행함에 있어서 꼭 지켜야 할 기본 원리로 초학자들이 명심해야 한다.
무왕불수(無往不收)란 무엇인가?
무왕불수(無往不收)는 붓을 운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붓을 움직일 때 붓 끝을 반드시 감추어서나가며 나아갔다가는 다시돌아오게 하는 방법이다.예를 들면 가로획을 그을 때 평평하게 지나가서는 다시돌아와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글씨를 씀에 붓끝을 거꾸로 들어간 뒤에 종이에 대고는 붓털을 오른쪽으로 서서히 진행시키다 급히 돌아오게한다. 이것은 글씨를 쓸 때 지나간 자국을 남겨 곧바로 나아가는 것을 방지하고 회봉(回鋒)을 해야 하는 것이다.무왕불수는 송나라 미원장이 말한 것으로 '무수불축(無垂不縮)'과 서로 일맥상통하는 이론이다. 그런데 이것을 둘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유는 이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무왕불수는 무수불축과 마찬가지로 꼭 가로획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점과 획은 반드시 무왕불수와 무수불축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점과 획을 그으면 글씨가 온화하고 무겁게 가라앉아 뼈와 근육이 풍만해진다. 무왕불수에는 실제로 붓을 거두는 방법(實收)과 공중에서 붓을 거두는 방법(空收)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목적과 의의는 서로 같은 것이다. 실제로 붓을 거두는 방법이란 종이 위에서 쉽게 붓의 흔적을 찾아볼수 있는 것을 말하고 공중에서 붓을 거두는 방법이란 종이 위에서 붓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자세히 감상하면 붓을 거둔 필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이때 주의할 점은 반드시 필력이 의도하는 대로 따라와 주어야 한다.이상을 종합하여 말하면 무왕불수나 무수불축은 초학자가 반드시 깨달아 준수해야 할 방법으로 그냥 붓 끝을 평평하게만 써서 다시 돌아오지 않게 해서는 안된다.
잠두연미(蠶頭燕尾)란 무엇인가?
잠두연미(蠶頭燕尾)란 필획의 특징을 형용한 용어로 일반적으로 예서(隸書)의 가로획과 삐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예를 들면 예서의 가로획에서 첫 부분은 누에머리(蠶頭), 끝부분은 제비꼬리(燕尾) 모양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법상에 있어서 가로획의 첫 부분을 지긋이 눌러 누에머리 모양을 만들고 파임에서 붓을 거둘 때 회봉(回鋒)을 한 다음 다시 가닥을 나눠 끝까지 함으로써 제비꼬리와 같은 모양을 만드는 것도 잠두연미라고 한다.잠두연미의 특징은 날아 움직이는 기세를 취하는 것으로 예서의 획을 표현하기에 적당하다. 예를 들어 가로획에서 먼저 오른쪽으로 붓을 일으킨 다음 왼쪽으로 향하여 나아가다 왼쪽 실마리 부분에서 다시 왼쪽으로 조금 경사를 기울여 내려가다 오른쪽 실마리 부분에서 한 번 누른 다음 필봉(筆鋒)을 펴서 다시 위를 향하여 몰아쳐 나아간다이와 같이 하여 형성된 가로획은 기복이 있으며 파도가 치는 듯한데 이것을 이른바 잠두연미라고 한다.물론 이런 종류의 필획은 예서에서 뿐만 아니라 '한간(漢簡)'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어떤 이는 안진경(顔眞卿)의 해서(楷書)에도 이와 유사한 필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초학자들은 예서를 쓰지 않고 이러한 법을 흉내내서는 안된다.
현침수로(懸針垂露)란 무엇인가?
현침수로(懸針垂露)란 서로 다른 세로획을 말하는 것으로, 세로획의 끝 부분이 침이 매달린 듯한 느낌이 들도록 뾰족하게 뺀 것을 현침(懸針)이라 한다. 여기에 비하여 수로(垂露)는 붓 끝을 뾰쪽하게 하지 않고 둥글게 하여 마치 이슬이 매달려 있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필법을말한다. 이외에 전서(篆書)에서는 '현침전(懸針篆)'또는 '수로전(垂露篆)'이라고도 한다.당나라 이양빙(李陽氷)<한림비론(翰林秘論)>에서 현침수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현침(懸針)이란 필봉(筆鋒)을 먼저 펴고 붓대를 형세에 따라 진행시키다 갑자기 긴급하게 움직이면 붓털은 껄끄럽게 진행하여 마치 송곳으로 돌에 글씨를 쓰는 듯하게 된다. 또한 <금경(禁經)>에서는 마치 긴 송곳을 땅에 댄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이와같이 세로획에서는 빼는 획과 머무르는 획을 잘 결정하여야 한다. 왕희지도 현침수로는 체제상 어려운 획이라고 하였으며 위부인(衛夫人)은 오래된 마른 등나무와 같다고 하였다. <임지결(臨池訣)>에서는 현침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을 <난정서(蘭亭敍)>에서는 년()자라고 하였다. 장경립(張敬立)은 갑()자의 가운데 획은 마땅히 버리듯이 곧바로 빼어야 하며 사()자의 가운데 획은 곧바로 내려오다 갈고리를 해야 함으로 멈춰서는 안된다."또한 같은 책에서 수로(垂露)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필봉과 붓대를 가지런히 내려오다가 붓대에 힘을 가하여 필봉을 응축시킨다. 그런후에 붓을 세워 힘을 최대한 주어 필봉이 머무르게 되면 거둘 준비를 한다.

이것을 둔필()이라고도 하며 붓 꺾는 것을 제일 중요시여긴다.

왕희지는 봄에 죽순이 돋아나는 형상과 같다고 하였다. 위부인은 이것을 옥로(玉露)라고도 하는데 전서(篆書)에서 출발하였으며 옥()은 옛날에 귀한 비녀를 만들 때 쓰였던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현침과 수로에 대하여서는 위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으므로 더 이상의 부언 설명은 하지 않기로 하겠다. 후학자들은 반드시 분명하고도 자세하게 이것을 알아 세로획을 그을때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올바르게 선택하여야 한다.예를 들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침은 '··'등에서 가운데 획을 말하는 것이고, 수로의 획은 '使··'등에서 왼쪽 변의 세로획을 말하는 것이다.
일파삼절(一波三折)이란 무엇인가?
일파삼절(一波三折)이란 붓을 사용하는 한 방법이다. ()는 서법에서 파임을 말하며 절()은 필봉(筆鋒)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필법의 생동감과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서법 중에서도 이 일파삼절은 중요한 과제로 강조되어 왔다.

송익(宋翼)이 글씨를 배울 때 점과 획이 판에 박은 듯하여 생기가 없자 그의 삼촌인 종요(鐘繇)가 이것을 엄격하게 비판하였다. 후에 송익은 마음을 가라앉혀 이러한 잘못을 고쳐 매번 파임을 할 때마다 일파삼절로 획을 표현하였고,하나의 점을 찍을 때마다 필봉을 감추어 나아가 마침내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초학자들은 점과 획을 할 때에는 변화와 생동감이 나도록 일파삼절의 법칙을 준수하여야 한다.만약 가로획을 그을 때 그대로 나아가기만 하여 돌아오지 않고, 세로획을 물을 내뿜듯이 죽 내려긋기만 하고, 파임을 멈춤이 없이

그대로획을 뺀다면 글씨는 판에 박은듯하여 생동감이 없게 된다.점과 획을 나타낼 때에는 곧은 것도 있고 굽은 것도 있어 정신과 풍채가 날고 움직이는 듯해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붓을 움직임에 빠르고 천천히 하고, 굽거나 곧게 하고, 필봉을 감추거나 나타나게 하고, 누르고 멈추고 꺾고 둥글게 하여야 하고, 가볍게 혹은 무겁게 하여 다양한 변화를 주어야만 생동감이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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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24절기 (18)

입춘(立春)

 

추위 시샘에도 봄기운은 대문을 넘어오고…

 

 

 

 

 

 

 

 

입춘(立春)은 봄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의미로, 절기의 새로운 시작이다.

입춘은 정월(正月), 즉 새해를 시작하는 달에 들어 있어 옛사람들은 입춘을 기준으로 해가 넘어가는 것으로 여겼다.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고도 하였는데, 절분은 ‘해넘이’라고도 불리며 묵은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니 집안을 청소하여 묵은 기운을 털어내고 새 기운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이날 밤 붉은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마귀를 쫓고 새해를 맞이하기도 한다.

 

춘(春)이라는 글자는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 풀이 돋아 나오는 모양이다. 즉 만물이 소생하는 부활과 시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날은 모든 것이 순조롭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글씨를 써 붙였다.

‘입춘대길’은 그야말로 새봄에 크게 좋은 일들이 있으라는 의미이고, ‘건양다경’의 ‘건양’은 고종황제 때의 연호로 나라와 백성들이 모두 편안하기를 비는 마음이다. 이런 글씨들을 ‘입춘첩(立春帖)’ 혹은 ‘입춘방(立春榜)’이라 하는데, 본래 궁에서 문신들이 지어 올린 신년을 축하하는 시 중에서 잘된 것을 골라 대궐의 기둥과 난간 등에 붙였던 것이 민간에까지 퍼져 유행하게 된 것이다. 민간에서는 대개 집안의 가장 어린 아이가 글을 써 붙이곤 하였다.

 

특히 입춘에는 입춘절식(立春節食)이라 하여 햇나물 무침을 먹는 풍습이 있다. 이는 경기도 일대 산이 많은 양평·가평·연천 등 6개의 고을에서 멧갓·승검초 등과 같은 산나물들을 눈을 헤치고 캐내 임금께 진상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궁궐에서는 이 나물들을 겨자와 함께 무쳐 ‘오신반(五辛盤)’이라 하여 수라상에 올렸다.

쓰고 맵고 쌉쌀한 다섯가지 나물은 겨우내 묵은 입맛을 씻어내고 새 입맛이 돌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 겨우내 결핍된 신선한 야채를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민간에서도 이를 본받아 눈 밑에서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 무쳐 먹는 풍속이 생겼다.

 

입춘이 되면 매서웠던 북서풍은 점차 잦아들고 동풍이 불어 얼어붙었던 땅을 녹이니 농가에서도 농사 준비를 시작할 때다. 아낙들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남자들은 겨우내 넣어 둔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며 한해 농사에 대비했다. 농사를 도울 소를 보살피고, 재와 거름을 잘 섞어 부지런히 재워 두고, 겨우내 묵었던 뒷간을 퍼서 두엄을 만들기도 했다. 또 입춘 때 내리는 비는 만물을 소생시킨다 하여 반겼고, 이때 받아 둔 물을 부부가 마시고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소중히 여겼다.

봄은 그야말로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계절의 시작인 셈이다. 그러나 이 무렵이면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듯 어김없이 추위가 찾아와 ‘입춘한파’나 ‘입춘 추위가 김장독을 깬다’라는 말들도 생겨났다.

 

예전에 농가에서는 이날 보리 뿌리를 뽑아 보고 그 뿌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들에 나가 보리를 뽑아 뿌리가 세가닥이면 풍년이요, 두가닥이면 보통, 한가닥이면 흉년이라 점쳤던 것이다. 또 오곡의 낱알을 솥에 넣고 볶아서,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서로 작황을 가늠하기도 했다.

보리 뿌리가 세가닥으로 튼튼히 자랐다면 기후가 농사짓기에 알맞다는 뜻이겠고, 솥에 볶아서 잘 튄다는 것은 곡식이 제대로 영글었다는 뜻일 테니 나름 과학적인 농사 예측법이 아닐 수 없다.

 

김상철<미술평론가>. 농민신문 

 

 

 

‘입춘첩’에 새해 각오 적어 보세요

 

 

 

 

 

■대문이나 기둥에 양쪽으로 붙이는 대련(對聯·대구 글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 입춘이 되니 크게 길하고, 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다.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하여라.

 -우순풍조 시화세풍(雨順風調 時和歲豊 ) : 비가 순조롭고 바람이 고르니, 시절이 화평하고 풍년이 든다.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 부모님은 오래 살고, 자손들은 길이 번영한다.

 

 

■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단첩(單帖)

 

 -춘도문전증부귀(春到門前增富貴) : 봄이 문 앞에 당도하니 부귀가 늘어난다.

 -춘광선도길인가(春光先到吉人家) : 봄빛은 길인의 집에 먼저 온다.

 -상유호조상화명(上有好鳥相和鳴) : 하늘에는 길한 새들이 서로 조화롭게 운다.

 -일춘화기만문미(一春和氣滿門楣) : 봄날의 온화한 기운이 문에 가득하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우순풍조 시화세풍(雨順風調 時和歲 )….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인 서예가 김성태씨(44·경기 부천시 오정동)는 1월 말이면 ‘입춘첩(立春帖)’을 쓴다고 정신이 없다. 입춘(올해는 2월4일)을 앞두고 명필에게서 입춘첩을 받으려는 이들이 꼬리를 물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글귀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문구를 가져와 부탁하는 이들도 있다. “복을 나눠 주는 마음으로 기꺼이 부탁에 응한다”는 김씨는 “입춘첩은 상서로운 한해를 위한 자기 다짐용 글귀로도 훌륭하다”고 귀띔한다.

 

요즘은 쉬 볼 수 없지만, 한세대 전만 해도 입춘첩 붙이기는 집집마다 행해지던 대표적 풍속이었다.

 

입춘첩이란 입춘 날 아침, 새봄이 온 것을 축하하고 한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대문·기둥 등 집안 곳곳에 붙이던 글귀다. 다른 말로는 입춘축(立春祝)·입춘방(立春榜)·춘첩자(春帖子)라고도 한다.

 

원래 중국에서 시작된 입춘첩 문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고려시대 때다. 고려 말의 문신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는 5언 또는 7언시로 된 춘첩자 이야기가 나오고, 조선 초기에 만든 역사책인 <고려사>에도 ‘입춘에 왕이 신하들에게 춘첩자를 내려 줬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로 들어와서는 궁궐이나 양반가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입춘첩을 써서 널리 붙였다.

 

민간에서는 입춘 날 입춘축을 붙이면 ‘굿 한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여, 요사스러운 귀신들을 물리친다는 벽사( 邪)의 의미까지 부여했다.

 

입춘축은 글씨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직접 써서 붙이고, 글씨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해 붙였다. 입춘축을 쓰는 종이는 글자 수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가로 15㎝ 안팎, 세로 70㎝ 안팎의 한지를 두장 마련해 짝을 지어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입춘첩은 붙이는 위치에 따라 내용을 달리하기도 했다.

대문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

기둥에는 ‘천증세월인증수 춘만건곤복만가(天增歲月人增壽 春萬乾坤福滿家)’,

아버지 방에는 ‘부주평안(父主平安)’,

어머니 방에는 ‘모주평안(母主平安)’,

곳간에는 ‘의이장지 절이용지(義以藏之 節以用之·의롭게 저장하고 절약해 쓴다는 뜻)’를 붙이는 식이다.

 

한편 한번 붙인 입춘첩은 이듬해 입춘 때까지 떼지 않고 그대로 붙여 뒀으며, 상을 당한 집에서는 입춘첩을 붙이지 않았다.

 

최순권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새봄을 맞는 각오를 다지는 데 입춘첩이 갖는 주술적 의미는 크다”면서 “가훈이 한 집안의 생활 지침서 역할을 하듯, 올봄에는 집집마다 입춘첩을 붙여 놓고 가내 평안을 기원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농민신문 

 

 

 

 

입춘첩(立春帖)

입춘방(立春榜), 춘첩자(春帖子), 입춘서(立春書)〕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節氣)인 立春은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그 해의 첫 節氣로 황도(黃道 ; 외견상으로 본 태양의 궤도. 적도에 대하여 23.5의 기울기를 이루며, 그 적도와 마주치는 점이 춘분점과 추분점이 된다)이 315도에 위치할 때이고 이 날부터 봄이 시작된다.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이며, 음력으로는 正月인데 때에 따라서는 섣달(12월)에 들기도 하는데 동양에서는 이 날부터 봄이라고 한다.

윤월(閏月)이 들어있는 해(年)는 반드시 섣달과 정월에 입춘이 두 번 들게 되는데 이것을 복입춘(複立春) 또는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한다.

 

입춘 전날을 철의 마지막이라는 절분(節分)이라고 하며, 이 날 밤을 ‘해넘이’이라고 부르며 입춘을 마치 年初처럼 생각하였다.

 

옛 사람들은 입춘 15일간을 5일씩 3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동풍이 불어서 언 땅을 녹이고, 中候에는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末候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입춘절기가 되면 농가에서는 농사 준비를 하는데 아낙들은 집안 곳곳에 먼지를 털어 내고 남정네들은 겨우내 넣어둔 농기계를 손질을 하며 한 해 농사에 대비를 하였다.

또한 입춘 날이 되면 대문이나 기둥에 새로운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봄을 송축(頌祝)하는 글귀를 붙이는데 그 이름은 위의 제목에 나열한 것들이다.

 

대궐에서는 설날에 文臣들이 임금에게 지어 올린 연상시(延祥詩 ; 신년축시) 중에서 잘된 것을 선정하여 대궐의 기둥과 난간에다 붙였는데 그 글을 春帖子라고 하였고, 民間에서는 춘련(春聯 ; 입춘 날 문이나 기둥 등에 써 붙이는 주련(柱聯))을 써 붙인다.

 

특히 양반 집안에서는 손수 새로운 글귀를 짓거나 옛 사람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춘련을 써서 봄을 축하했는데 이것을 춘축(春祝)이라 하고, 이 때 댓구(對句)를 맞추어 두 구절씩 된 춘련을 대련(對聯)이라 부른다.

이 춘련들은 집안의 기둥이나 대문 또는 문설주 등에 두루 붙인다.

 

입춘첩의 대표적인 글귀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 국태민안 건양다경(國泰民安 建陽多慶) ;

나라가 태평하며 국민 생활이 평안하고, 봄의 따스한 기운이 감도니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

※ 고종황제가 첫 年號(군주시대 임금의 자리에 오른 해부터 그 자리를 물러날 때까지의 기간에 붙이는 年代的인 칭호)로 건양(建陽, 1896–1897)을 사용하자 백성들이 대한제국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빌며 建陽多慶이라는 글귀를 써서 대문에 붙인 것이다.

 

* 입춘대길 소문만복래(立春大吉 笑門萬福來) ;

한 해의 시작인 입춘을 맞이하여 좋은 일이 많기를 바라며, 웃는 집안에 복이 많이 들어온다.

 

* 입춘대길 만사형통(立春大吉 萬事亨通) ;

봄기운이 시작되었으니 큰 행운이 따르고,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잘 되어가기를 바람.

 

*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所持黃金出 開門百福來) ;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바란다.

 

* 우순풍조 시화세풍(雨順風調 時和歲豊) ;

농사에 알맞게 기후가 순조롭고, 집집마다 생활 형편이 부족함이 없이 넉넉함.

 

* 건양다경 가화락(建陽多慶 家和樂) ;

햇볕이 따스하니 경사가 잦으며, 집안이 화목하고 즐겁다.

 

*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지기를 바란다.

 

* 당상부모 천년수 슬하자손 만세영(堂上父母 千年壽 膝下子孫 萬歲榮) ;

집에 계신 부모님 오래 사시고(부모님 방 문기둥에 붙임), 자손들은 오래 영화를 누림(대청 기둥에 붙임)

 

* 부귀문전 수수화(富貴門前 樹樹花) ;

문 앞의 부귀가 나무마다 핀 꽃과 같다(대문에 붙임)

 

* 우여맹호 경백묘(牛如猛虎 耕百畝) ;

맹호 같은 소는 백 이랑의 밭을 간다.(소 외 양간에 붙임)

 

* 마이비룡 행천리(馬似飛龍 行千里) ;

비룡 같은 말은 천리를 간다(마구간에 붙임)

 

♤입춘방을 붙이는 모양

* 한 개를 붙일 때는 세로로(↓) 그냥 붙이면 된다.

* 두 개를 붙일 때는 기울여서 /\같은 모양으로 붙이면 된다.

 

♤ 입춘방을 붙이는 장소

* 대문 ; 좌측은 입춘대길, 우측은 건양다경을 붙인다.

* 아파트 ; 현관문 안에 있는 작은 문의 문설주에 좌우로 붙인다.

 

♤ 아홉 자리

이날은 각자 맡은 바에 따라 아홉 번씩 일을 되풀이하면 한 해 동안 福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액(厄)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글방에 다니는 아이는 천자문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며, 노인들은 아홉 발의 새끼를 꼰다.

계집아이들은 나물 아홉 바구니를, 아낙들은 아홉 가지의 빨래를 하고, 길쌈을 해도 아홉 바디를 삼고, 실을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는다.

아홉 번을 한다는 뜻은 우리 조상들이 ‘9’라는 숫자를 가장 좋은양수(陽數)로 보았기 때문이다.

가난해도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라는 교훈적인 세시풍속(歲時風俗)이다.

 

♤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입춘이나 대보름 전날 밤에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꼭 해야만 일 년 내내 액을 면한다는 풍속이다.

 

예를 들면 밤중에 몰래 냇가에 나가서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거친 길을 곱게 다듬어 놓는다든지, 다리 밑 거지 움막 앞에 밥을 한 솥 지어서 갖다 놓는다든지, 병든 사람에게 약을 모래 지어준다든지 하는 것이 적선 공덕행이다.

 

♤ 속담

* 흥부집 기둥에 입춘방이라.

잠결에 기지개를 켜면 발은 마당 밖으로 나가고, 두 주먹은 벽 밖으로 나가며, 엉덩이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 동네 사람들이 거치적거린다고 “궁둥이를 불러 들이라”고 하여 깜짝 놀라 일어나 대성통곡하는 그런 집을 말한다.

그런 집 기둥에 입춘방을 써 붙였으니 格에 맞지 않음을 빗대는 말이다.

 

* 입춘날 무(사투리로는 무우) 순(荀) 생채(生菜)냐 ?

맛있거나 신나는 일’을 비유할 때 立春時食으로 먹던 무 순이나 생채에 비유했었다.

아무튼 제철 음식이 가장 맛있고 보약이다.

 

* 입춘수(立春水)

입춘 전후에 받아둔 빗물을 말하는데 이 물로 술을 빚어 입춘 날에 부부가 마시고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소중히 여겼다.

 

※ 추로수(秋露水)

가을 풀섶(풀이 많이 난 곳)에 맺힌 이슬을 털은 물인데 이 물로 엿을 고아 먹 으면 백병(百病 ; 온갖 병)을 예방한다고 하였다.

 

* 입춘시기에 가장 큰 일

장(醬)을 담그는 일인데 시기는 입춘 전 아직 추위가 덜 풀린 이른 봄에 담가야 소금이 덜 들어 삼삼한 장맛을 낼 수 있다.

메주는 늦가을(음력 10월)에 쑤어 겨우내 띄운 것이 맛있다.

장은 팔진미(八珍味)의 주인이어서 장맛이 없으면 모든 음식에 제 맛을 낼 수 없다.

 

출처 : http://travelevent.net/

 

 

 

 

 

 

 

 

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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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 갈라지는 이유와 주의할 사항에 대해 서예세상에서 본 글을 정리했습니다.

 

첫쩨는, 빨때 헝클어짐을 조심해야 한다헝클어지게 빨면  붓속이 섞여 갈라지기 쉽다.
둘째는, 붓 끝까지 잘 빨지 않아 먹똥이 꽉차서 점점 갈라진다.

셋째는, 글을 쓸때 너무 비벼쓰기 때문이다. 초보의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개월 수에 관계 없이 어떻게 배우느냐가 중요하다.

         (선생님이 가르칠 때 똑바로 듣지 않고 딴청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함)

넷째는, 글을 쓸때 붓 중간에 먹을 묻혀 항상 붓을 윤택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잘 못 배워서 붓끝에만 먹을 뭍혀 한글자 쓰는 동안 몇 번씩 벼루에 가서

         붓 끝에만 먹물을 묻히는, 그래서 중간은 점점 말라가는 모습임.

         아주안 좋은 버릇이지요. 그러면 갈라집니다. 늘먹을 중간에 묻혀서 체에 따라 다르지만

         해서 등은 4자 이상, 초서는 10자 이상 쓰는 능력을 키워야합니다.

다섯째, 붓을 꼭 역입하고, 중봉 특히, 수필을 잘해야 한다.그래야 붓에 무리가 가지 않고,

붓은 항상 그렇게 잘 다뤄야 하는 것이다. 같은 붓인데도 갈라지게하는 회원은 매일 붓 타령을 하지요. "재수가 없어서..." 등등(절대아님)

 

마지막으로, 붓을 하나로 쓰지말고 2자루를 교대로(3일씩) 잘 말려가며 쓰는 것이 좋다.

 다 쓰고 마치면 벼루와 붓을 잘 빨아 늘 맑은 정신으로 품위있는 서예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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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春祝을 써 붙입시다  해마다 입춘절(立春節)이 되면 동지(冬至) 이후 음의 기운을 지니던 대지가 양의 기운을 갖기 시작하며 모든 사물이 왕성히 생동하기 시작한다. 입춘은 봄으로 접어드는 절후이며,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정월은 새해에 첫번째 드는 달이고, 입춘은 대체로 정월에 첫번째로 드는 절기이다.    입춘 전날이 절분(節分)인데 이것은 철의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이날 밤을 해넘이라고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서 귀신을 쫓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입춘을 마치 연초(年初)처럼 보며, 봄이 시작되는 계절이지만 아직 추위가 강하다. "입춘추위"라는 말이 있는데 마음으로는 봄이라 여겨지지만  계절은  아직 겨울인지라 가시지 않은 찬 기운이 속히 봄의 따사로움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심정에서 연유된 말이라 생각된다.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가르며, 초후(初候)에는 동풍이 불어서 언땅을 녹이고, 중후(中候)에는 겨울잠 자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말후(末候)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한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이날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행해지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춘첩자]
  
옛날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한다. 춘첩자는 입춘첩(立春帖),춘첩(春帖), 입춘축(立春祝)등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사대부 집에서는 흔히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썼으며 서민들도 새 봄을 새롭게 맞이한다는 각오로 입춘첩을 써 붙이는 풍속이 있었다. 현대인들도 세시풍속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어려우나 입춘축 붙이는 일은, 한 해를 의미있게 보내고자하는 기원을 담은 행사이기 때문에 행하면 좋을 것 같고 자녀교육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 본다. 붙이는 곳은 좌우 대문짝이 좋으나 현대인의 가옥은 대문이 없는 경우도 많으므로 현관문이나 기둥에 붙여도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쓰는 방법은 흰 종이에 붓글씨가 좋겠다.중국에서는 붉은 바탕에 금빛 글씨로 쓰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붉은색은 행운을, 금색은 부와 번영을 상징하며 액운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한다. 
                            
 [帖(첩) - 두루말이.주련(세로로 내려쓴 댓구).문서 ] [입춘수]
 입춘(立春) 전후에 받아 둔 빗물이 입춘수(立春水)다. 이 물로 술을 빚어 마시면 아들 낳고 싶은 서방님의 기운을 왕성하게 해준다고 알았다. 아울러 가을 풀섶에 맺힌 이슬을 털어 모은 물이 추로수(秋露水)인데 이 물로 엿을 고아 먹으면 백병을 예방한다고 알았다. [입춘굿]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 옥황상제, 토신, 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아홉 차리]
  
지방에 따라 입춘(立春)날이나 대보름 전 날에 베푸는 "아홉 차리"라는 민속이 있었다. 가난하지만 근면하고 끈기 있게 살라는 교훈적인 세시민속이다. 이날은 각자 소임에 따라 아홉 번씩 부지런하게 일을 되풀이하면 한해 동안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받느다고 믿었다. 글방에 다니는 아이면 천자문(天字文)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며, 노인이면 아홉 발의 새끼를 꼰다. 계집아이들은 나물 아홉 바구니를, 아낙들은 빨래 아홉 가지를, 길쌈을 해도 아홉 바디를 삼고 실 꾸리를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는다. 심지어는 밥을 먹어도 아홉 번, 매를 맞더라도 아홉 번을 맞았다. 굳이 아홉 번이라 함은 많이 했다는 의미이며 우리 조상들의 숫자 개념상 최고의 陽數(양수)이기 때문이다.[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입춘날이나 대보름날 전야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꼭 해야 연중 액(厄)을 면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의 복지(福祉)민속도 있었다. 이를테면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 건너  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가파른 고갯길을 깎아 놓는다든지 다리 밑 동냥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행려병자가 누워있는 원(院) 문전에 약탕 끓여 몰래 놓고 온다든지... [선농제]
  서울 동대문 밖에 제기동(祭基洞), 전농동(典農洞)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곳(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구내)에서 베풀어졌던 선농제(先農祭)의 제사에서 비롯된 이름들이다. 농사를 다스리는 신(神)인 신농(神農)에게 풍년을 비는 제사는 신라 때부터 있어왔다. 입춘(立春) 후 첫 해일(亥日)에 선농제, 입하(立夏) 후 첫 해일에 중농제(中農祭), 입추(立秋) 후 첫 해일에 후농제(後農祭) 도합 세 차례의 제사를 지냈는데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이 동대문 밖에 선농단을 짓고 선농제만을 지내왔던 것이다.
 [오신채(五辛菜)]
   
입춘(立春)날 먹는 시식(時食)으로 오신채(五辛菜)라는 것이 있었다. 다섯 가지 매캐한 모듬나물이다. 시대에 따라, 지방에 따라 오신채의 나물 종류는 달라지고 있으나 다음 여덟 가지 나물 가운데 노랗고 붉고 파랗고 검고 하얀, 각색 나는 다섯 가지를 골라 무쳤다. 파, 마늘, 자총이, 달래, 평지, 부추, 무릇 그리고 미나리의 새로 돋아난 싹이나 새순이 그것이다. 노란 색의 싹을 한복판에 무쳐놓고 동서남북에 청, 적, 흑, 백의 사방색(四方色) 나는 나물을 배치해 내는데, 여기에는 임금을 중심으로 하여 사색당쟁을 초월하라는 정치화합의 의미가 부여돼 있었던 것이다.임금이 굳이 오신채를 진상받아 중신에게 나누어 먹인 뜻이 이에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반 백성들도 그로써 가족의 화목을 상징적으로 보장하고 仁, 義, 禮, 智, 信을 그로써 증진하는 것으로 알았으니 나물의 철학이 아닐 수 없다.세상 살아가는데 다섯 가지 괴로움이 따르는데  다섯 가지 맵고 쓰고 쏘는 이 오신채를 먹는 것은 인생오고(人生五苦)를 참으라는 처세의 신채교훈(辛菜敎訓)이라 한다. 옛 말에 오신채에 기생하는 벌레는 고통을 모른다는 말도 있듯이 고통에 저항력을 길러주는 정신력 증강 음식이기도 했던 것이다.또 오신채는 자극을 주는 정력음식이다. "선원청규(禪苑淸規)"에 절간의 수도승은 오훈을 금한다 했는데 바로 오훈이 정욕을 자극하는 오신채이기 때문이다. 옛 한시(漢詩)에 여인이 젊고 예쁘고 신선하다는 것을 표현할 때 신채기(辛菜氣)란 말을 쓰고 있으며, 여인의 정욕을 마늘 기운,곧 산기(蒜氣)라 표현했음도 이 신채가 정력을 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지루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입춘날에 톡 쏘는 매캐한 신채만을 골라 먹었던 오신채 시식(時食)은 한 해를 새 출발하는 청량제요, 자극제로서 십상이 아닐 수 없다. 오색을 갖추었으니 미학적이요, 정신이 담겼으니 철학적인 것이 입춘날의 오신채이다.
입춘에 쓰는 여러 가지 문구

용(은 복을 부르고)
호랑이(는 재앙을 몰아낸다)
壽如山
富如海
산처럼 수하고
바다처럼 부하게
去千災
來百福
모든 재앙 물러가고
모든 복 들어오리
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이 되니 크게 길할 것이요 
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으리라.
立春大吉
民國多慶
입춘이 되니 크게 길할 것이요
백성들의 나라엔 경사가 많으리라
龍輸五福
虎逐三災
용은 오복을 들여오고  
호랑이는 재앙을 쫓아낸다.
國泰民安
家給人足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며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리.
雨順風調
時和年豊
절기가 순조로우니  
화평하고 풍성한 세월이 되겠네
堯之日月
舜之乾坤
요임금,순임금 때처럼 
모든 것이 평화롭게
千災雪消
萬福雲興
모든 재앙 눈처럼 녹아 없어지고
많은 복 구름처럼 일어나리
富貴安樂
壽比金石
집은 부유하고 몸은 귀하여 편안하고 즐거우며
수명은 쇠나 돌처럼 끝이 없으소서
福祿正明
長樂萬年
행복을 듬뿍 받아 바르고 ?으며
큰 즐거움 오래 유지하소서
和神養素
光風動春
조화로운 정신으로 바탕을 기르고
맑고 밝은 바람이 봄을 부른다
和氣致祥
長樂無極
조화로운 기운은 상서로움으로 이어지고
긴 즐거움은  끝이 없도다
春和怠蕩
發祥致福
봄은 따뜻하고 한가하며
상서로움이 생겨 행복으로 이어진다
龍遊鳳舞
歲樂民喜
용이 놀고 봉황이 춤추니
세월이 즐겁고 백성이 기쁘다
天下太平春
四方無一事
온 세상 태평한 봄이요
사방 어느 곳에도 탈 없기를
天上近三陽
人間五福來
하늘은 삼양에 가깝고    
사람에겐 오복이 오리니
鳳鳴南山月
麟遊北岳風
봉는 남산의 달 아래 울고 
기린은 북악의 바람에서 노닌다
父母千年壽
子孫萬歲榮
부모님 오래 사시고 
자손은 길이 영화를 누리리라.
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많은 복이 들어온다.
春風和一家
淑氣擁重門
봄 바람이 일가를 화애롭게 하고
숙기가 중문을 옹호한다
禍逐夏雲興
災從春雪消
화를 ?아내니 여름 구름처럼 일어나고
재앙은 봄의 눈처럼 녹아서 없어지네
瑞日重門啓(開)
春光福地來
상서로운 태양이 중문을 열고
봄 빛이 복된 땅에 오도다
門迎春夏秋冬福
戶納東西南北財
문으로는 사시사철 복을 받아들이고
집으로는 사방으로 재물을 들여온다
立春大吉吉無窮
建陽多慶慶有餘
입춘대길하니 길함이 무궁하고
건양다경하니 경사가 많으리라
天增歲月人增壽
春滿乾坤福滿家
하늘은 세월을 늘리는데 사람은 수명을 늘리고
봄은 온 천지에 꽉 찼는데 복은 집집마다 가득하네
時時掃地黃金出
日日開門萬福來
때때로 마당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날마다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
堂上父母千年壽
膝下子孫萬歲榮
집의 부모 오래 사시고
슬하의 자녀 오래도록 번영하네
春滿乾坤福滿家
和氣自生君子宅
봄은 천지에 차고 복은 집안에 가득한데
온화한 기운 스스로 생기니 군자의 집이로다.
和氣自生君子宅
春光先到吉人家
화기가 스스로 생기니 군자의 집이요
봄 빛이 먼저 오니 길인의 집이로다.
春光映物生長促
瑞氣滿家福祿連
봄 빛이 사물을 비추이니 생장을 재촉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집에 가득하니 복록이 이어지네
不老草生父母國
無窮花發子孫枝
불로초 자라는 부모님의 나라요
무궁화 만발하는 자손들의 가지로다
雲開萬國同看月
花發千家共得春
온 세상에 구름 걷히니 달을 보는 것 같고
꽃이 모든 집에 피니 함께 봄을 얻었네
長生不老神仙府
與天同壽道人家
장생불로하니 신선의 마을이요
오래 살 수 있으니 도인의 집이로다
積善堂前無限樂
長春花下有餘香
선을 쌓은 집 앞에 즐거움이 끝 없고
봄 꽃 아래엔 향기가 넉넉하네
兄友弟恭喜滿家
夫和婦順敬如賓
형은 우애롭고 동생을 공손하니 기쁨이 집에 가득하고
남편은 화애롭고 아내는 유순하여 서로 손님 같이 공경하네
吉地祥光開泰運
重門旭日耀陽春
길한 곳의 상서로운 햇빛 큰 운수를 열고
중문에 해가 솟으니 밝고 따스한 봄이라
身健功成有福人

春到門前增富貴
몸이 건강하고 공을 이루니 유복한 사람이라

봄이 문 앞에 찾아오니 부귀가 더하겠네
玉洞桃花萬樹春 우리 마을 복숭아꽃 가지마다  맺히는 봄.

 

출처 : 서각사랑 : 송계
글쓴이 : 송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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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力感의 生成


1. 筆 과 力感

서예는 用筆과 結字를 통해 이루어지는 예술이다.

서예는 이미 정형화된 문자를 소재로 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보다는 모양뒤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필획에 중심을 두게 된다.

따라서 붓을 어떻게 움직여 어떠한 필획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필획의 질감이 어떠한가에 의해 작품의 수준이 평가된다.

또한 서예의 필획은 길고 둥근 원추형의 붓으로 찰나간에 완성하는 것이기에,

붓의 성질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붓을 자신의 수족처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야, 다양하고 아름다운 필획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다.

서예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입체감과 생명력이 느껴지는 필획과,

자연미가 감도는 건강하고 신선하며 아름다운 작품을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지는 바로 알 수도 없고, 알고 있더라도 短時間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세월의 노력을 통해 겨우 그 끝자락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나,

알고 서사하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더욱 올바른 서법으로 나아가는데 유리하며, 많은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역감에 대하여 논하는 과정으로, 처음에는 대강의 용필법을 통해 역감이 생성되는 면을 주로 다루었고,

나중에는 필획·결구·장법 등을 통해 느껴지는 역감의 표현효과를 주로 다루었다.

먼저 筆 은 무엇이며, 붓은 어떠한 성질이 있으며, 力感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본다.

1) 筆
동양의 필획은 억센 솔과 같은 짧은 붓으로 물감을 찍어서 두꺼운 종이에 여러 번 칠하는 서양의 것과는 다르다.

길고 유연한 붓으로 얇은 화선지에 단번에 긋는 것으로 모든 것을 완성하기 때문에,

동양의 붓은 도구로서의 기능을 뛰어넘어 작가의 신경과 감각이 연장된 것처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서양의 예술은 面과 外的인 표현에 의미를 두고 있지만

, 동양의 예술은 함축적인 선과 內的인 곳에 의미를 두고 있다.

" 동양예술은, 급박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것에 대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그 존재의 전반을 관조하는 '老의 境地'를 요구한다.

이것은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민족과 儒佛仙을 비롯한 제자백가의 다양한 사상, 광활한 아름다운 대자연속에서 자연을 경외하면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킴바라세이고가 『동양의 마음과 그림』에서한 다음의 말은 매우 의미있는 표현이다.

동양의 아름다움은 老境의 美이고 서양의 아름다움은 若境의 美이다.

원래 서예는 글자를 쓰고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이는 漢의 許愼이

『說文解字 敍』에서 竹帛에 드러난 것을 書라고 한다.

書란 같은 것이다라 했고, 『易·繫辭上』에서는

書는 말을 다하지 않은 것이고 말은 意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으며,

『釋名 釋書契』에서 書는 많은 것이다.

庶物을 기록한 것이며 또한 말을 나타낸 것이다.

簡紙에 나타내서 길이 잊혀지지 않게 한 것이다라고 한 것에서,

우리는 書의 역할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갑골문이나 금문도 예술적인 표현보다는 자연스런 표현에 의해 아름다운 글씨체가 만들어졌던 것 같다.

이와같이 서예는 오랜 세월 붓으로 서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심미추구를 거쳐 발전을 거듭하여 지극히 고아한 예술로 발전한 것이다.

선진시대에는 갑골문과 금문이 있었고,

秦·漢을 거치면서 각종 碑文·竹簡·木簡·帛書 등에 다양한 글씨체가 쓰여졌다.

위진남북조를 지나오면서 많은 저명한 서가들이 출현하며 아름다운 저작과 서론들을 남겼으니,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예술철학이 있고 부단한 노력이 있음으로 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古今에 뛰어난 예술가들은 그들의 독자적인 예술관이 있었다.

그들은 인생·사회·자연에서 그들의 예술에 대한 이념을 自得하기에 苦心하였으니, 예술가에게 이러한 깨달음이 없다면 그것은 한갓 技藝에 종사하는 工人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서예에 관한 故事들을 살펴보면,

혹은 땅이나 이불위에 선을 그어대고 주야로 사색하고 탐구하였으며,

 혹은 神授에 의탁하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연못물을 온통 먹으로 새카맣게 물들였고,

 어떤 이는 파초 수만그루를 심어놓고도 그 잎이 모자랄 정도로 글씨를 썼다.

어떤 이는 안타까워 피멍이 들 정도로 가슴을 치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남의 묘를 도굴하여 비결을 얻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소중한 필법과 書跡들을 남겨놓았고

, 기존의 서체를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서체를 만들어냈다. Herbert Read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술가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독특한 문화적 전통의 한계안에서 예술작품을 창조한다.

 그러나 역사를 통하여 그가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偉大性과 天才性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그의 예술적 창조물을 통하여 기존의 문화적 전통을 초월하고 변경시키기 때문이다.

書史를 통해 보면 귀족 일부만이 향유했던 서예가, 진한으로 넘어오면서 대중들이 함께 느끼는 서예로 발전되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또한 서사하는 재료가 달라짐에 따라 서체나 서풍도 달리하고 있다. 즉 甲骨·金屬·碑碣·竹帛·종이 등에 따라, 그런 서사재료들을 십분활용하여 그에 맞는 아름다운 서체를 창조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書寫速度·便利性·美的感覺 등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를 통해 서예는 다양하고 차원높게 발전하였던 것이다.

2) 筆性
대체로 글씨는 우선 붓에 먹물을 찍어 종이에 대는 것으로 시작하며, 글씨의 서사과정에 붓의 역할은 대부분의 과정을 차지한다. 따라서 붓의 의미를 알고 붓의 성질을 안다면 서예를 올바르게 敎學하는데 보다 유리할 것이다.
우선 『說文解字』를 통해 筆과 力感에 관한 의미부터 살펴본다. 甲骨文과 金文에는 筆字가 보이지 않는다.『說文解字』에서 "筆은 秦地方에서 筆이라고 한다. 聿과 竹은 모두 意味部分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聿字는 본래 손으로 붓을 잡고 있는 모습을 그린 象形字이고,(圖3) 筆字는 붓대가 대나무인 점을 고려하여, 聿에 竹字를 더하여 筆(圖4)이라는 筆記道具를 좀더 分明하게 나타낸 글자라고 하겠다. 『說文解字·聿部』를 보면 "聿은 이것을 가지고 쓰는 것 즉 붓을 뜻한다. 楚地方에서는 聿이라고 하고, 吳地方에서는 不聿이라고 하며, 燕地方에서는 弗이라고 한다"고 했다. 筆字는 이후로 붓을 뜻하는 말 이외에 글씨를 쓰다, 筆跡, 筆才 등을 가리키게 되었다.
『荀子』에서는 "군자의 生(性)은 衆人들과 다르지 않다. 배워서 사물의 능력을 잘 빌릴 뿐이다"라고 했으니, 곧 사람의 능력은 사물에 대한 理解·熟悉·掌握과 運用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붓을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붓이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붓을 잘 다룰 수 있고, 붓을 어떻게 다루는가는 얼마나 글씨를 잘 쓰는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다음에 붓의 特性을 분석해보고 이를 기초로 하여 붓을 운용하는 歷代의 說에 대하여 언급해보고자 한다.
붓의 특성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붓은 짐승의 털로 만든 것이라 부드러우면서 탄성이 있다. 붓의 부드러운 탄성은 딱딱한 펜에 비하여 다양하고 아름다우며 생명력이 넘치는 필획을 표현해낼 수 있게 한다. 부드러운 특성으로 인해 붓을 눌러 굵게 할 수도 있고 붓을 들어 가늘게 할 수도 있다. 硬筆은 선의 효과를 내는데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지만 부드러운 붓으로 글씨를 쓰려면 붓끝에 힘을 부여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붓을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 필획의 효과가 달라진다.
둘째, 많은 짐승의 털을 모아 만들었기 때문에 붓끝을 모으거나 펴서 획의 굵기를 조절할 수도 있고, 붓을 누르거나 들어서 획의 굵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붓털을 새끼줄처럼 꼬이게 할 수도 있고 곧게 펴서 운필할 수도 있다. 필봉의 중심을 중간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고 필봉의 중심을 필획의 가장자리로 향하게 할 수도 있으며, 아예 붓을 뉘어 편박한 획을 그을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중봉의 의미를 결정하는데 다양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다양한 필획을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셋째, 붓은 어느 쪽으로 보아도 圓錐의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筆鋒이 있고 副毫가 있다. 펜이나 연필은 선의 굵기가 어느 정도 一定하지만 붓은 필호가 누울 수도 있고 갈라지거나 꼬일 수도 있어서, 지면에 전달되는 힘이 일정하지 못하여 힘이 있는 필획을 얻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필봉을 잘 운용하는 것은 글씨의 성패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中鋒·偏鋒·折鋒·正鋒·側鋒·藏鋒·露鋒· 鋒·出鋒·絞鋒 등 많은 서예용어에 鋒이 들어가는 것도 이 봉의 功能이 많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넷째, 그 切面을 보면, 서양의 그림붓은 평면적인데 반하여, 서사에 사용하는 동양의 붓은 正圓이다. 서양의 붓은 넓적하기 때문에 몇가지 효과밖에 기대할 수가 없어 주로 면에 색을 칠하기 위한 것으로 활용하지만, 동양의 붓은 절면이 원이기에 作用力과 反作用力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고 八面으로 出鋒하며 다양한 선질효과를 낼 수가 있다.
다섯째, 붓은 많은 수의 털로 만든 것이라 모든 부분이 먹물을 저장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한번 먹물을 찍어 많은 수의 글자를 쓸 수도 있으며 먹물이 많을 때와 먹물이 적을 때의 필획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털이 가지런하면 먹물이 쉽게 흘러내리기 때문에 가지런한 붓으로 쓴 필획은 飽滿하고 厚實해지나, 털이 꼬여있거나 구부러져 있으면 먹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일정하지 않아 마르고 힘이 없으며 평면적인 획이 될 수도 있다.
3) 力感
『說文·力部』에 "力은 筋이다. 사람의 근육의 형상이다.(圖5) 治功을 力이라 하는데 大災를 制御할 수가 있다"라고 했고 『段注』에서는 "筋이라는 것은 그 體이며 力이라는 것은 그 用이다"라고 했다. 이 力字는 후에 運動·活動·機能 등을 가능케하는 힘이나, 어떤 작용의 효험, 혹은 물체가 서로 작용하여 그 속도에 변화를 일으키는 물체상호간의 작용, 힘쓰다, 있는 힘을 다하다라는 등의 의미를 나타내게 되었다. 禹임금이 13년간의 고심끝에 치수사업에 성공을 하였다는 기록이나, 외세의 잦은 침입에 대비하는 등 큰 재앙을 극복하려면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힘으로 인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었고 생활의 편리를 가져올 수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힘이 있는 것을 좋아하고 찬미했다. 인류는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항상 자기가 지극히 작은 것을 느끼면서 이 힘을 숭배하였으니, 좋다·낫다·훌륭하다는 말에 勝을 사용하고, 씩씩하고 용맹하다는 의미의 勇이나, 굳세고 예리하다는 의미의 勁 등과 같이 찬미하는 의미의 글자에 力이 들어가는 한자를 사용하고, 못나고 부족하고 능력이 없는 것을 劣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力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했음을 짐작케 한다.
感字는 甲骨文과 西周金文에 보이지가 않는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의 금문과 小篆의 자형은 모두 心과 咸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있다.(圖6) 『說文解字』에서는 "感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뜻이다. 心은 의미부분이고 咸은 발음부분이다"라고 하였다. 곧 사물을 대했을 때 어떤 情이 일어나는 것이나 마음에 깊이 느껴 감동하는 것이다.
力感은 筆力·骨力·筋骨·力度·筆力感 등으로도 칭한다. 서예의 미는 모두가 반드시 역감을 바탕으로 해서 서예의 아름다움이 표현된다. 역감이 없으면 모든 글자는 피곤한 듯 늘어지고 筆毫에는 생기가 없다.

力感中의 力은 서법을 시각으로 감상할 때에 일종의 감수이며, 이것은 관념중의 힘이며 심리학의 범주에 속한다.

사람들은 붉은 색을 보면서 사람들은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불을 연상하고 달구어진 쇠를 연상하고 붉은 태양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파란색을 보면 시원하거나 차가운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은 푸른색을 보면서 차가운 물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색채가 사람들에게 冷溫感을 주는 것이 분명하지만 모두가 심리상의 느낌일 뿐 물리상의 온도와는 전혀 무관하다. 역감도 이처럼 심리상의 느낌일 뿐이라는 것이다.

3. 中鋒·側鋒

중봉은 蔡邕의 「九勢」중에 "필심이 항상 점획속에서 지나도록 해야한다(令筆心常在點 中行)"라는 말에 始原을 두고 있다. 여기서 中은 정가운데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內와 같은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렇다면 필봉이 꼭 정가운데로 가야만 중봉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가령 중앙선이 그어진 곳을 달려야만 자동차가 도로중에 있는 것은 아니다. 도로의 중앙이나 삼차선을 달려도 자동차는 분명 道路中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 생각하면 필심이 정중앙으로 가는 正鋒은 물론이지만 조금 옆으로 비껴가는 측봉도 중봉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좁은 의미로 말하면 중봉은 정봉으로 측봉과는 엄격하게 다르다. 이때 측봉은 편봉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편봉중에서 입체감이 느껴지는 필획으로 다시 편봉과는 개념을 달리한다.

1) 立體感·生命力
중봉용필을 통해서 얻어지는 효과는 立體感의 표현이다. "得筆하면 비록 가늘어 수염과 같아도 發하면 또한 둥글고, 득필하지 못하면 두터워 서까래와 같아도 또한 넓적하게 된다." 중봉운용을 하면 서법중에서 골력이 있게 되고, 점획중에 骨力이 있으면 字體는 자연히 웅건해진다. 중봉용필의 골력과 입체감은 다음과 같이 錐 沙로 설명된다.

古人은 '錐 沙'로 그것을 형용하였으니 확실히 매우 심각한 것이다. 錐를 세울 수 있으면 평평한 모래의 홈중에 반영되어 나오는 것은 바로 그것의 深度와 厚度이다. 挺拔하면서 中含하니 사람에게 圓的인 입체감을 준다.

錐 沙에 대해서는, "젖은 모래에 글씨를 써보면서 중봉을 느낀 것인가", 아니면 "마른 모래에 글씨를 써보고 중봉필법을 느낀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마른 모래에 글씨를 쓰면 篆書를 연상하듯이, 획의 들어가고 나간 자취가 없이 필획이 둔중하고 획의 양면이 보드라우나 澁氣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젖은 모래에 글씨를 쓰면 예서나 해서를 쓰는 것처럼, 획에 澁氣가 넘치며 획의 들어가고 나간 흔적이 드러나 보인다. 안진경은 「述張長史筆法十二意」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후에 저수량에게 물으니 말하기를 "용필은 마땅히 印印泥와 같아야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생각하여도 깨닫지를 못하다가, 후에 江島에 모래가 평평한 곳(沙平地靜)을 보고 글을 쓰고 싶어져 날카로운 끝으로 그어가며 글을 쓰니 그 험경한 모양이 분명하고 아름다웠다. 이로부터 용필은 추획사와 같이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藏鋒으로 하면 획이 침착해진다. 그 용필이 항상 紙背를 透過하도록 하면 이는 功을 이룸이 지극한 것이다.

江島의 沙平地靜한 곳이라면, 人間이나 風雨 鳥類 등의 外的인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 시간을 요한다. 그러므로 물이 지나갔으나 어느 정도 오랜 기간이 지나지 않아 약간은 젖어있는 상태를 생각하게 한다. 그곳에 썼던 필획에서 勁險한 모양이 있었다는 것이나, 印印泥를 연상하여 錐 沙를 생각한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는 도장을 찍듯이 막대기를 곧바로 세우고 눌러가며 글을 썼을 것이다. 도장은 비스듬하게 찍지를 않는다. 직각으로 곧바르게 눌러야 도장이 바로 찍힌다. 힘있게 누르든 힘이 없이 약간을 누르든 곧바르게 눌러야 한다. 이는 기필과 수필부분을 장봉으로 했고 행필부분을 正鋒으로 했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더구나 이 시대는 해서와 행초서 등이 유행한 시절이고 보면, 그 당시 강도의 모래위에 쓰여졌던 글씨가 전서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마른 모래에서는 어떻게 그었든 장봉과 노봉의 구별이 그리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지배를 투과하는 느낌으로 막대기를 눌러 그어도 모래가 다시 덮여 획의 변화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젖은 모래에서는 도장을 찍듯이 막대기를 곧게 세워 글을 쓰면 노봉으로 글을 쓸 때와 많은 차이가 보이며 힘을 주어 획을 그어도 사뭇 다른 필획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면을 생각하여 볼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른 모래보다는 젖어있는 모래일 가능성이 많다.
中鋒은 錐 沙외에도 印印泥나 屋漏痕으로 비유를 한다. 印印泥는 위에서 잠깐 언급을 한 것처럼 곧게 도장을 내리 누른다는 뜻으로 竪鋒을 통한 中鋒의 의미하고, 屋漏痕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구불구불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물줄기와, 벽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단면에서 보여지는 圓的인 입체감을 의미한다.
그것이 젖어있든 말라있든, 모래위에서는 입체감이 분명하게 드러나나 평평한 종이위에 그어진 묵적에서는 어떻게 입체감이 드러나는가? 이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다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李陽氷은 홀로 그 묘함이 뛰어나서 항상 그 眞跡을 보면 그 字 의 起止處에 모두 약간의 鋒芒이 드러났다. 햇빛에 비춰보면 中心의 一線에 먹이 배로 짙었으며 그 用筆은 힘이 있고 곧게 내려 치우치지 않았으므로 鋒은 항상 그 가운데에 있었다

이와 비슷한 고사는 南唐의 徐鉉(916-991)에게서도 전해진다. 곧 먹색이 중심으로부터 양변으로 침투하여 생겨진 濃淡의 변화는, 필획에 飽滿感이 느껴지고 立體感이 있어야 충실한 역감을 드러낸다. 唐代 서예가 徐浩(703-782)가 「論書」에서 말한 다음의 비유는 마치 정곡을 찌르는 듯하다.

무릇 매는 채색이 부족하나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골이 굳세고 氣가 용맹하다. 훨훨 나는 꿩이 색을 갖추었으나 날아가는 것이 百步밖에 되지 않는 것은 살이 쪄서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이는 중봉용필을 매에 비유하고 편봉용필을 꿩에 비유하여, 중봉용필은 매처럼 아름다운 색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筋骨이 뛰어나고 살이 적으며 생동감이 있음을 말한 것이고, 편봉용필은 꿩과 같이 아름다우나 肉이 많아 百步도 날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편봉용필은 운필이 신속하나 점획이 뜨고 얇아(浮薄) 먹색이 紙背에 깊이 스며들지 못하여 역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나 힘을 얻어 立體感이 표현될 수 있으면 側鋒이 된다. 편봉은 붓대와 필호가 지면으로부터 수직이 되지 않고 많이 기울어져 힘을 발휘할 수가 없고, 측봉은 수직에 가까워 지면에서 힘을 발휘할 수가 있다. 힘은 직각으로 작용할 때에 최대한의 효과를 얻고 기울어지는 각도가 클수록 그 효과를 잃는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필호가 紙面으로부터 수직의 관계를 유지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중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굳센 골력이고, 측봉을 통해 얻어지는 필획은 姸媚함이다."
중봉운필을 통해 얻어지는 또 하나는 生氣이다. 생기에 대하여『書藝通論』에서는 다음과같이 설명한다.

획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生氣이다. 생기가 있다는 것은 획이 살아있다는 말이다. 획이 매끄럽지 않아야하며 거칠어서도 안된다. 획은 潤氣가 있으면서도 까칠까칠해야한다. 대체로 미끄러운 획보다는 다소 거친 편이 낫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여기서 살아 있다는 것은 역동감이 있으면서 획질이 다양함을 의미한다. 동적인 느낌은 사람들에게 꿈틀대거나 질주하는 역감을 준다. 이러한 현상은 또한 "字形에 生命力을 갖추게 하면 생명의 미를 드러내지만, 필력이 없으면 병든 환자처럼 창백하고 생기가 없게 된다." 생명력은 붓에서 필획으로 힘을 貫注하는 데에서 비롯되며, 어느 글자든지 전체작품에서 웅건한 힘이 넘치게 한다. 만약 병든 사람의 피부라면 蒼白한 색깔을 나타내고, 죽은 사람의 피부라면 그것은 단지 곱거나 활발한 느낌이 없는 삐쩍마른 색채이다. 그러므로 획에는 건강미가 넘쳐야 한다. 이것은 곧

書가 사람과 같이 필력이 있으면 骨이 풍부하고 살이 고르게 있으며, 이미 필력을 얻었으면 생기가 활발한 것과 같은 것이다. 왕성한 생명력은 肌膚에서 사람을 感動시키는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서법은 점획 글자 布局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마치 사람의 신체와 같이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생명력이 있다. 한획한획 떨어져 있는 필획이란 어색하기 짝이 없으며, 죽은 필획이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側과 勒에 관한 다음의 설명은 얼마나 생생한 느낌이 드는가?

衛夫人이 『筆陣圖』에서 말한 점은 높은 봉우리에서 떨어지는 돌과 같이 돌이 부딪치는데 실로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니, 이 얼마나 돌이 깨어지고 하늘이 놀라는 力量이 아닌가! 하나의 횡획도 橫이라 말하지 않고 勒이라 칭했으니 그 勢를 말한 것인데,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춰 세워 紙上에서 踊躍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곧 세이고 힘이며 곧 虎虎가 生氣가 있는 節奏이다.

이러한 표현을 마음으로 느끼면, 우리는 글을 쓰면서 생동감있는 장면을 분명하게 연상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하려고 노력을 할 것이며, 생명력이 있는 글씨를 마침내는 얻게 될 것이다. 생명력은 지속적으로 역감을 발휘한다. 한번으로 끝나는 역감이 아니라 약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발휘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강한 것이다. 생명력이 있으니 그 형태가 변화무쌍하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정취가 풍겨 나올 것이다.

2) 竪鋒·鋪
중봉이 되려면, 우선 竪鋒이 되야 하는데, 수봉은 필봉을 바르게 들어 지면의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수직으로 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중봉용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붓을 먹물에 담궈 글씨를 쓰기 전에는 主毫와 副毫가 고르게 서서 엉기거나 굽는 現象이 없다.

그러나 붓이 일단 종이에 닿으면 外界의 壓力을 받아 부드러운 필호가 자연스레 섰다가 紙上에 눕게 되는데(倒向) 만약 이때에 順勢로 운필하면 평이하게 붓이 끌려다니게 되고, 곧바로만 행필하면 얇으면서 단조로운 필획만이 표현될 것이다.

즉 書寫를 할 때에 붓이 눕는 것은 그 常性이지만 그렇게 누워서 끌려가고 끌려오기만 하면 單調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붓끝에도 힘이 이르지 않아 이렇게 해서 나온 필획은 扁薄한 모양이 된다. 그러나 필봉을 바로 세우면 筆心이 언제나 가운데에 있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니, 역대로 서가들은 이 竪鋒을 매우 중시하였다.
중봉용필에서 매우 중요한 또 하나는 鋒과 鋪毫이다.

과봉은 서사할 때에 전체의 필봉이 원추모양을 유지하는 용필방법이다. 平鋪와 상대되는 말이다. 봉을 모아 안으로 집결하면 붓은 획의 중심으로 움직이고 선조는 전체가 간명하게 모여 勁感과 彈力感을 준다.

鋒은 筆中鋒으로 하필한 후에 運筆使轉을 거치는 것으로 毫鋒을 모아서 盡力으로 운필하는 것이다. 마른 곳에 이르면 왕왕 양변에 먹이 묻지 않은 부분이 보이고(墨虛) 중간에는 묵흔이 있어(墨實) 사람들에게 일종의 바깥으로 돌출하는 圓柱體의 형상을 준다.

『中國書論辭典』이나「運筆十四勢論」에서는 과봉에 대해 위와 같이 언급을 하고 있다. 필봉이 원추모양을 유지하니 어느 방향으로든 붓이 움직이더라도 중봉이 될 것이고 운필에 자유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며, 필획이 부드러워지고 서로 호응할 것이다. 붓이 자유롭게 움직이니 필호에는 자연스런 변화가 나타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양한 필획이 나타나게 된다.
과봉은 鋪毫와 상대적인 개념이다. 포호에는 斜鋪와 平鋪가 있는데 사포는 편봉이나 측봉을 의미하고, 평포는 중봉을 의미한다. 平鋪에 대하여 『書藝通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붓의 끝이 가지런히 펴져, 그 펴진 길이가 곧 획의 넓이가 되는 방법이다.

鋪라는 것은 鋪毫中鋒으로 행필할 때에 盡力으로 필호를 벌려 필봉을 平鋪하는 것이다. 필봉이 치우치지 않으며 萬毫가 一力이 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필력이 均稱한 데로 이를 수 있고 挺秀明麗한 目的에 이를 수 있다. 모든 운필하는 과정중에 鋪 는 상대적이면서도 相生하여 역감이 있는 필획을 만들어 낸다.
중봉용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가 萬毫齊力이다. 만호제력은 모든 터럭의 끝에 가지런히 힘을 준다는 것으로, 蔣和(1736-1795)가 『書法正宗』에서 한 다음의 말과 같은 것이다.

글자에는 一筆이라도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없고 一法이라도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牽絲使轉을 해도 또한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힘이 筆尖에 주입되면 화평하게 출봉하니, 붓을 잘 놀리는 사람은 정신이 筆頭로 주입되며 槍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힘이 창끝에 있다.

즉 一筆이나 一法이라도 힘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그것은 書法線條美感에서 가장 중요한 元素이며 마땅히 제일로 중시를 해야한다. 그러나 너무 지나친 힘을 주는 것은 삼가야 하니, 절제하지 않은 거칠고 뻣뻣한 蠻力은 一顧의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필호는 유연한데 힘을 鋒端에 이르게 하고 또한 鋒端自體에서 힘을 發하게 하며, 發力을 끊지 않아야하니 실제로 쉬운 일은 아니다. 萬毫齊力은 이렇게 선조에 역감이 있도록 하고 中實한 선조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어떤 力度나 어떤 速度와 어떤 濃度로든지 반드시 모필을 펴서 每一根의 모필에 모두 최대의 가능한한 힘을 傳導시킬 수 있도록 한다. 가장 훌륭한 鋒端의 瞬間着力狀態는 四面鋪毫·八面出鋒이다. 이것이 전형적인 가장 훌륭한 萬毫齊力이다. 다만 功力이 深厚精熟한 때라야 비로소 이 法을 얻을 수가 있다.
종이에 작용하는 筆毫의 힘에는 大小가 있다. 厚實勁挺한 역감은 종이에 작용하는 필력의 총량을 크게 하며, 연약하고 무력한 감각을 내는 필선은 필호가 종이에서 주동력을 내지 못했던 것에 근거한다. 大凡한 필획은 緊張된 힘으로 종이위에 필선을 긋는 것으로부터 얻어지며, 逆行이나 勒行으로 行筆하면 큰 힘이 표현되고 順鋒順行하면 작은 힘이 표현된다.
3) 側鋒用筆
一般的으로 말하면 篆法은 중봉을 많이 사용하고 隸法은 측봉을 겸용하며 전법은 圓이고 예법은 方이다. 이는 측봉용필이 실질상으로는 예법에 기원한다는 것을 초보적으로 제출한다. 전서에서 예서로의 변화는 中鋒一邊倒에서 側鋒이 가미된 자유로운 필획으로 변화한 것이다. 곡선에서 직선으로의 변화는 문자를 簡易하게 하고 서사속도를 빨리 하여, 문자가 실용과 대중속으로 파고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예서의 발전은 일부 귀족계층에만 머무는 글씨가 아니라 실용과 대중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예술미가 가미되어 화려한 한자예술의 꽃을 피우는 기반이 되었다. 그것은 해서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초서가 탄생하는 길을 열어 주었으므로, 중국서예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篆書에서는 중봉용필을 주로 사용하지만 隸楷行草 등 모든 서체에서는 측봉용필을 겸용한다. 前人들도 용필할 때에는 결코 측봉을 廢하지 않았으니, 중국의 가장 걸출한 서가인 二王父子를 포함한다. 倪蘇門은 「書法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왕희지와 왕헌지가 글을 쓸 때에도 모두가 중봉은 아니었다. 古人은 살펴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서가는 붓을 잡아 지극히 활발하고 지극히 圓的이며 四面八方으로 筆意가 이르게 하니 어찌 중봉에 구속되어 일정한 법에 이를 수가 있겠는가?

다양한 필획을 구사하려면 곧 단일한 중봉운필에 구속될 수는 없다. 또한 무엇이 측봉인가를 알려면 무엇이 중봉이고 무엇이 편봉인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른바 偏鋒은 운필할 때에 붓대가 기울어져 필봉이 획의 한쪽 변에 있고 筆身은 획의 다른 한쪽 변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쪽 면은 매끄럽고 다른 面은 톱니와 같이 고르지 못하게 되고, 먹이 종이에 스며들지 않아 필획은 扁平하며 종이위에 떠있는(浮露) 느낌을 주므로, 서예교학과정에서 가장 꺼리는 것이다.
측봉은 중봉과 편봉사이에 끼어있는 용필방식이다. 우리들이 알기로 古人이 點法을 側法이라 한 것은 側이 側鋒으로 세를 취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횡획은 필봉을 직입하고 竪 은 필봉을 橫入한다"면, 한편으로는 필세의 왕래가 더욱 유리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篆法起筆에 비하여 빠르고 간편해진다. 그러나 落筆하여 成點할 때 중봉이 아닌 편봉의 모양이 종종 형성된다. 그때에 필모는 지상에 斜鋪하는데, 運筆調鋒을 하면서 필모를 지상에 平鋪하도록 하는 것이다. 편봉용필은 필모가 종이위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요, 측봉용필은 누웠으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봉과 측봉은 서로 비슷하기는 하나 근본적으로는 다르다. 중봉운필은 필호를 지상에 平鋪하고 측봉운필은 필호를 지상에 斜鋪한다. 편봉용필은 필호에 긴장감이 없으나 측봉용필이나 중봉용필은 필호에 긴장감이 유지되는 것이다.
요컨대, 서예는 천변만화하는 선을 사용해서 작자의 사상과 감정을 발하여 작자가 창조하는 意境을 표현한다. 이러한 선을 긋기 위한 관건은 좋은 필법을 숙달하는 데에 있다. 필법은 서법예술의 열쇠이다. 그리고 필법을 통해 얻으려는 것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필력이다. 고인들은 이 뛰어난 필력을 얻기 위해, 고민하고 토론하며 많은 작품과 논문들을 남겼다.
필력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蔡邕·衛夫人으로부터 전해지는 전신역도설과 唐의 廬肇로부터 시작되는 기교필력설이다. 이중에 어느 방법으로 표현했든 書跡에서 나타나는 역감을 書跡筆力이라고 한다. 이러한 역감은 중봉을 통해서 얻어지고 생명력을 느끼게 하며 立體感·多樣性·力透紙背·中實感 등으로 표현된다.
生命力은 힘이 있고 살아있는 아름다운 피부와 같아야 하고 죽은 피부처럼 枯槁한 색채를 드러내서는 안된다. 중봉용필은 骨力과 입체감을 표현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며, 점획중에 골력과 입체감이 있으면 字體는 자연히 웅건해진다. 또한 공을 잘 던지는 투수는 공끝이 살아있어야 하는 것처럼 붓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붓끝이 살아있어야 한다. 즉 붓끝에 힘이 있어 긴장된 상태가 되어야 하며, 그 긴장된 필봉은 變化莫測한 필획을 만들어낸다. 또한 力透紙背한 中實感이 붓이 닿지 않는 곳까지라도 전달될 수 있어야 하고, 作書貴一氣貫注라는 말이 의미하듯, 필력이 시종 서로 연결되고 심지어는 먹이 이르지 않는 곳에도 마땅히 필력이 미쳐야 한다.

2. 點畵

骨氣는, 陽的으로 드러나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고, 陰的이며 약하여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은은하게 나타나는 것이 있다. 역감이 강렬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서법작품을 陽剛類라 칭하고 역감이 약하여 內蘊한 것을 陰柔類라고 칭한다. 세상에는 결코 絶對無力한 형상이 없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힘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힘의 유무를 말하는 것은 그것에 비하여 힘이 강하다 약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아래에 모든 필획에서 나타나는 역감의 강약을 다 살펴볼 수 없어, 다음에 몇 가지의 상대적인 면을 설정해놓고 그에 대하여 비교하면서 기술하여 본다.

1) 方圓·曲直
방필에서는 方正雄峻한 아름다움이 보이고 원필에서는 圓轉渾穆한 아름다움이 보인다. 필력의 剛柔面에서 본다면, 角이 있는 것이 각이 없는 원에 비하여 힘이 있다. 米 (1051-1107)은 이에 대해 "세상사람들이 대부분 큰 글자를 쓸 때에, 힘을 써서 붓을 잡으면 글자는 더욱 筋骨神氣가 없어지고, 원필로 쓰면 머리가 마치 쪄놓은 떡과 같아 매우 우습다"고 하였다. 그러나 강하게 보인다고 직선과 방필만을 구사한다면 글씨는 뻣뻣해지고 마른 장작을 쌓아놓은 것 같아서 雅趣가 없어진다. 부드럽고 약하게 보이는 圓도 약간의 방필이 가미되면 방필보다도 강하게 보인다. 方과 圓은 마땅히 병용하여야 한다. 方도 아니면서 圓도 아니고, 圓이면서 또한 方이며, 혹은 방을 體로 하여 원을 사용하고, 혹은 원을 體로 하면서도 방을 사용한다. 혹은 방필을 사용하면서 장법에 圓을 사용하면 神明해질 것이다. 明의 項穆은 「書法雅言」에서 원이면서 방이고 방이면서 원이면 바로 기이함을 간직할 수 있으며 기이하나 바름을 잃지 않으면 中和와 합치될 수가 있으니 아름답다할 것이다라고 했다. 方에는 頓筆을 사용하고 圓에는 提筆을 사용하는데, 제필은 中含하고 돈필은 外拓한다. 중함의 필획을 사용하면 글씨가 渾勁해지고 외탁의 필획을 사용하면 글씨가 웅강해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필획을 함께 사용할 수 있으면 역감이 있는 필획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劉熙載(1813-1881)는 「書槪」에서 곡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서예에는 曲이면서 直體가 있어야 하고 直이면서 곡선의 운치가 있어야한다. 만약 느슨하면서도 엄하지 않고 빠르면서 머물지 않으면 그는 곡직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즉 곡선이면서 강직한 맛이 없으면 늘어진 느낌을 피할 수 없고 직선이면서 부드러움이 없으면 뻣뻣해져서 마른 장작과 같을 것이니 운치가 없다. 오래된 등나무의 줄기를 보면 줄기가 휘었으나 곧은 나무 가지에서 느껴지는 力度보다 오히려 강해 보인다. 뒤틀리면서 올라간 선을 보면 역동하는 당당한 기세를 느끼게 하며, 축 늘어진 것 같으나 오히려 긴장된 선을 보면 오히려 곧게 뻗은 선보다도 더욱 역감을 느끼게 한다.
李世民은 『王羲之傳』에서 "무력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글씨를 보고 겨우 글을 이루었을 뿐 장부의 기세가 없다. 행마다 봄 지렁이가 얽혀있는 것 같고, 글자마다 가을 뱀이 얽혀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봄 지렁이가 얽혀있는 것이나 가을 뱀이 얽혀있는 것은 모두가 무력한 곡선으로 글씨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글자를 쓸 때에는 정신이 있음을 귀하게 생각하고 점획은 挺拔을 귀히 여긴다. 정발은 생동감이 없이 뻣뻣한 것이 아니고 곡세중에 평직의 彈性美가 풍부하게 보이는 것을 가리킨다.
林散之의 「辛苦詩」를 보면 그도 이에 대해 얼마나 고심을 하였는지를 알 수가 있다.

수고로운 찬 燈아래 70년을 살면서
먹을 갈다 간 먹에서 느낀 마음 깊어라.
붓은 曲處를 따르나 다시 直線을 구하고
마음은 圓滿하나 다시 方正함을 깨닫누나.

2) 輕重·粗細
輕은 사람에게 초월한 마음이 들게 하고, 重은 사람에게 침착통쾌한 느낌을 준다. 경은 필획이 섬세하고, 중은 필획이 풍유하다. 필획이 섬세한데 풍유함을 겸하면 자연스럽게 세를 얻을 수가 있으며, 경중을 겸하여 운필하면 무한하고 풍부한 韻律을 형성하여 무한한 변화가 나타난다. 王僧虔은 「筆意贊」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굵다고 무거운 것이 아니며 가늘다고 가벼운 것이 아니다.

철근이나 쇠추를 들면 가늘고 작으나 몹시 무겁고 스폰지나 스치로폴을 들면 비록 굵고 부피가 크나 가볍다. 필획도 마찬가지로 가늘고 작지만 무겁고 힘이 있는 필획이 있고, 길고 굵지만 가볍고 약해보이는 필획이 있다. 용필법이 너무 가벼우면 浮滑하고 너무 무거우면 지체된다. 따라서 마음에서 경중을 얻고 손에서 調應하여야, 경중이 한바탕 잘 어우러진 다양한 필획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경중과 비수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붓으로 서사할 때에 경중을 드러내고 肥瘦가 알맞은 곳에 이르면, 살이 쪄도 살이 쪘다고 느끼지 못하고 수척하나 수척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운필을 가볍게 하지 않을 수 없으나 가벼워도 섬약하거나 경망스럽지 않아야 한다. 운필은 또한 重感이 있는 것이 비교적 좋다. 그러나 무겁더라도 반드시 沈厚해야지 凝滯해서는 안된다. 淸의 朱履貞은 「書學捷要」에서 "침착통쾌한 것이 글씨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무릇 글씨는 살찐 것을 귀히 여기니 그 실은 침후한 것이지 살찐 것은 아니다. 아리땁게만 쓰는 것도 좋지 않지만 경망하게 쓰는 것은 큰 병이다. 書는 마르면서 굳센 것을 귀히 여기니 맑으면서 빼어난 것이지 마르면서 굳센 것이 아니다. 마르면서 潤筆이 없는 것을 枯骨이라 하고 斷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살찐 글자에는 骨이 있어야 하고 마른 글자에는 살이 있어야 한다.
용필은 터럭같이 가는 곳에서도 또한 반드시 全力을 사용해야 하며, 細處에 힘을 사용하는 것은 가장 어렵다. 전력을 사용하는 것은, 온힘을 다하여 붓을 잡고 찍어누르는 것이 아니라 전신의 힘이 느껴지도록 필획을 구사하는 것이다. 가는 필획속에 강한 힘을 느끼게 하려면 고도의 기교가 필요하다. 고도의 기교는 어려우나 이러한 곳에 서예의 묘미가 있다. 淸의 梁 은 『平書帖』에서 "歐陽詢의 글씨는 가로획이 약간 가볍고, 顔眞卿의 글씨는 가로획이 모두 가벼우며, 柳公權(778-865)의 글씨는 가로획이 무거우면서 곧다"고 하였으니, 여기서 말한 중경은 조세로 드러나는 것이다. 粗는 무겁고 重은 力强하며 細는 가볍고 輕은 힘이 약하다.

3) 藏露·進退
장봉은 필획이 점획의 중간에 감추어져 있어 필봉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운필법이다. 장봉으로 이루어진 획은 노봉에 비하여, 기운이 內含하고 필획이 厚重하다. 蔡邕은 「九勢」에서 "장봉은 점획출입의 자취로 좌측으로 가고자하면 먼저 우측으로 가고 좌측에 이르러서도 또한 우측으로 회봉하는 것이다. 藏頭는 원필로 종이에 낙필을 하는데 필심이 항상 점획속을 지나도록 해야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종종 중봉의 의미로도 인용되며, 장봉을 하려면 역입과 회봉을 해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노봉은 붓끝이 드러나는 운필로, 행초서에서 많이 나타나며, 다양한 모양과 아리따운 느낌을 준다. 너무 살이 찌면 형체가 그리워지고, 너무 수척하면 형체가 비쩍 마르게 되니 살찌나 살이 남지 않고 수척하나 골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肉이 많은 것은 骨이 많은 것만 못하고 노봉이 많은 것은 장봉이 많은 것만 못하다. 노봉만을 사용하는 것도 장봉만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노봉을 적절히 사용하여 연미함을 드러내고 장봉을 적절히 사용하여 후중한 느낌을 드러내게 하여 이 두가지 법을 어우러지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 필법일 것이다.
필획의 방향도 역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필획과 뒤로 물러나는 듯한 필획에서는, 나아가는 느낌의 필획이 더욱 힘이 있어 보인다.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라든가 밖으로 나오는 필획은 안으로 들어가는 필획보다 더욱 힘을 느낀다. 사람들은 화선지의 좌우를 좌우라 여겨서 左 右捺이라 말하고 지면을 앞이라 하고 지배를 뒤라고 여기니, 이 때문에 큰 것, 굵은 것, 긴 것, 진한 필획은 모두 앞으로 나아오는 느낌이 들고, 작은 것, 가는 것, 짧은 것, 흐린 필획은 모두가 물러나는 느낌을 준다. 또한 사람들은 대부분 좌측을 앞이라고 생각하고 우측을 뒤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음의 예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자기의 의도를 숨기고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한편으로 전진하는 깃발을 그리게 하였더니 그 결과 매사람은 모두가 깃대를 좌측으로 향했고 기면은 우측으로 펄럭이게 하였다. 다시 그들에게 하나의 측면인물을 그리게 하였더니 그 결과 매사람은 이러한 인물의 얼굴을 좌변을 향하도록 그렸다.

그 원인은 당연히 우리들이 오른 손으로 붓을 잡는 것과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종종 앞으로 향하는 것이나 진보적인 것을 좌파 좌익이라 하고, 뒤로 향하는 것이나 물러나는 것을 우파우익이라 하는데,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4. 其他

여기서는 점획과 결구외에 역감을 느끼게 하는 다른 것을 실어 보았다. 종이 위에서 필묵의 속도가 역감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양강하고 음유한 필획들이 主賓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生熟이나 平險을 거친 후에, 다시 한단계를 뛰어넘은 생이나 평정에서 느껴지는 천진난만한 자연스러움을 다루었다. 이 또한 서예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을 망라한 것이 아니라, 몇가지 예를 들어 그 대강을 짚어본 것이다.

1) 速度·紙墨
필력은 속도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운필이 너무 느리면 鈍滯함을 드러내며, 한결같이 신속하면 또한 浮滑해지게 된다. 이렇게 속도가 느리고 신속함으로 해서 드러나는 鈍滯와 浮滑의 상대적인 것이 침착통쾌라할 수 있다. 침착이라는 것은 용필이 飄浮하지 않고 붓은 攝墨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비록 매우 작은 일점일획이라도 정기를 결집하고 墨光이 浮溢하게 해야하며, 경솔하게 미끌어지지 않아야 한다. 통쾌라 하는 것은 필세가 유창하고 점획이 飛動하고 표정이 활기차며 기세가 도약하고 凝滯하는 세가 없어 사람들에게 상쾌하고 淋?한 예술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沈着·痛快라는 두 가지는 動과 靜의 결합이므로 窮年累月의 공력이 없다면 이러한 境地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
疾澁은 붓의 운행이 빠르고 느린 면에서 침착통쾌라는 관점과 비슷하나 遲速을 거듭하는 운행중에 그 추구하는 것이 약간 다르다. 疾澁의 작용에 대해 鄭祥玉은 "疾筆로 행필하면 필획은 險勁하여지고 澁筆로 행필하면 필획은 重厚하여진다"라고 하였다. 蔡邕은 「九勢」에서 "澁勢는 緊 戰行의 法에 있다"라고 했다. 여기서 緊은 긴박한 의미이며, 은 곧 短促 疾勢를 나타내고, 戰行은 相爭·對抗·摩擦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緊 戰行은 곧 운필할 때에 역세를 취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점차적으로 頓挫하며 필의에 약간 돌아보는 것이 있으며 경솔하고 매끄럽게 지나가서는 안된다. 澁勢는 난도가 매우 높은 운필법이며 또한 점획의 형질미를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이다. 疾澁의 필세를 얻으면 書妙를 다하였다고 할 수가 있으며, 疾中에 澁이 있고 澁中에 疾이 있어야 한다.
질삽의 문제는 문방사우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글은 비록 사람이 쓰지만, 서법을 연구하고, 書法規律을 창신하고, 필기구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활용하는가하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붓을 잡은 힘을 毫端으로 보내면, 붓이 종이에 닿아 작용하면서 먹물을 흘러내리고, 먹물과 붓이 종이에 붙으려는 장력이 작용한다. 이때 필호자체가 종이에서 힘을 발하게 하면 역감이 살고, 필호가 종이의 힘에 끌리면 곧 역감이 죽는다. 그러므로

下筆을 하면 마땅히 着實하게 하고 脈動(跳得起)하게 해야하며 필이 지상에서 죽도록 해서는 안된다.

혹시 붓이 누웠더라도 바로 일으킬 수 있으면 획에는 자연히 힘이 있게 된다. 필을 提起할 수 있는 것이 곧 힘이지만 결정코 힘을 사용하여 붓을 필근까지 내리누르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무지막지하게 힘만을 사용하는 것을 死力이라고 한다. 용필이 착실한 곳에서는 按을 사용하고 자유분방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곳에서는 提를 사용한다. 一提一按하여 붓이 누울 때 바로 일으키면 저절로 뻣뻣해지고 눕는 폐단이 없어진다.
먹의 운용은 붓에 따라 이루어진다. 곧 붓이 가는 곳에는 항상 먹이 따르고, 붓의 운용에 따라 먹에는 다양한 변화가 생겨난다. 먹은 짙으면서 또한 濕하거나 乾燥할 수가 있고 淡墨이면서 또한 乾燥하거나 濕할 수가 있다. 먹이 진하면서 또한 건조하면 붓이 정체되고 쉽게 破毫되지 않아 종종 筋이 없이 骨을 드러낸다. 淡墨은 비록 가볍고 경쾌하며 유창하고 淡雅한 意境을 표현하나 먹이 지나치게 묽으면 蓄留가 어렵고 필력을 표현하고 변화있는 필획을 구사하기 어려우며 운필이 輕浮해지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글씨를 쓰면 항상 유약하고 신채가 없다. 일반적으로 말해 小字는 짙은 것이 적당하고 大字에는 墨韻이 渗化되는 먹농도가 비교적 낮은 것을 요구한다. 먹물이 너무 진하거나 먹의 운용을 잘못하여 오직 역감만을 드러내고 기부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골만 있고 살이 없는 사나운 느낌을 드러낸다. 백지위에 먹색이 진해질수록 刺의 필력은 더욱 强해지며, 묽을수록 刺의 필력은 더욱 弱해진다.
姜夔는 「續書譜」에서 먹물이 진하면 행필이 막히고 건조하면 필획이 삐쩍 마르게 된다고 하였고, 元代의 陳繹曾은 「翰林要訣」에서 먹이 너무 진하면 肉이 凝滯되고 너무 흐리면 肉이 輕薄해진다고 하였다. 먹색이 너무 진하면 또한 먹물이 잘 흘러내리지 못해 행필이 막히고 필선이 고르지 못하며 필획이 엉겨붙게 된다. 먹물이 흐리다고 약해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흐리면 멍청해 보여 俗書를 면하지 못한다. 따라서 적당한 정도의 먹색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2) 陽剛·陰柔
강한 것이란 무엇인가? 『莊子』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紀 子라는 者가 임금을 위하여 싸움닭을 기르는데 열흘만에 임금이 묻기를 "싸울만한 닭이 되었는가"하니 기성자는 대답하기를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 건성으로 사나운 척하며 제 기운만 믿고 있습니다"하였다. 열흘이 지나 또 물으니 "아직 멀었습니다. 다른 닭의 소리만 듣거나 모양만 보아도 덤비려고 합니다"고 하였다. 열흘만에 또 물으니 "아직 안되었습니다. 다른 닭을 보고 눈을 흘기고 기운을 뽐내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열흘이 지나 또 물으니 "인제는 거의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울며 덤벼도 조금도 태도를 변치 않습니다.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깎아 만든 닭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닭의 덕이 온전해져서 다른 닭이 감히 덤비지도 못하고 반대로 달아나 버립니다"라고 하였다.

논어에는 "군자는 태연하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나 태연하지 못하다"는 글이 있다. 姚孟起 또한 「字學憶參」에서 "백번 정련한 쇠로 '繞指柔'라는 검을 만드니, 柔란 약한 것이 아니라 강한 것이 지극하여 부드러워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덕이 있는 사람은 언제보아도 겸손하고 태연하나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어 머리가 숙여진다. 반대로 덕이 없는 이가 세를 얻으면, 억지로 남을 누르려고만 하는 등 허세를 부린다. 허세가 있는 약한 자들은, 강한 것을 의식해서 강한 체하기 때문에 혹시 세가 있으면 교만해지고 세가 없으면 곧바로 비굴해진다. 특히 생존경쟁이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현상이 더욱 극명하다. 진정으로 강한 기운이 안에 가득하여 상대가 없고 두려울 것이 없으면 오히려 편안한 모습이 된다. 정말로 강한 鬪鷄이기에 싸우려고 달려드는 싸움닭 앞에서도 나무로 깎아만든 닭과 같이 여유가 있는 것이며, 강하기에 조그만 위협을 보고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도 있다. 부드럽고 약한 나무뿌리가 바위틈을 헤집고 들어가 나중에는 그렇게 단단하고 육중한 바위를 조각내는 모습이나, 대포알처럼 힘차게 날아가던 축구공이 부드러운 그물에 걸리면 그대로 맥없이 그 자리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된다. 동양철학에서 木生火·火生土·土生金·金生水·水生木·木剋土·土剋水·水剋火·火剋金·金剋木로 순환하는 상생상극의 관계도 세상의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강하거나 절대적으로 약한 것이 없음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水가 火를 이겨도 水의 勢가 火보다 弱하면 火를 꺾지 못한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剛은 강철같이 굳센 것이고, 柔는 버들가지처럼 부드러운 것이다. 그러나 陽剛이나 陰柔한 한 쪽만을 사용하여 글씨를 쓴다면 너무 강하거나 너무 늘어져 자연스런 운치가 없다. 王澍(1668-1743)는 「論書 語」에서 "拙을 사용할 수 있어야 巧를 얻고 부드러움을 利用할 수 있어야 剛을 얻는다"고 하였다. 진정으로 강해보이는 것은 부드러운 필획이 곁들여야 그 강한 필획이 살아나는 것이요, 부드러운 필획 역시 강한 틈에 있어야 부드러운 효과를 최대한 발휘할 수가 있다. 劉熙載는 「書槪」에서 구양순과 우세남의 글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歐虞를 竝稱하나 그들의 글씨에는 方圓剛柔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虞世南을 잘 배운 사람은 和하면서 흐르지 않고, 歐陽詢을 잘 배운 사람은 위엄이 있으나 사납지 않다.

이와 같이 剛中에 柔가 있어야 하고 柔中에 剛이 있어야 한다. 剛柔는 互含互用하며 互濟互成해야 좋은 필획을 얻을 수 있다.

3) 生熟·自然
金元龍은 「韓國美의 探究」에서 동서양의 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다.

전통적인 예술관의 입장에서 볼 때 동서가 추구한 미에 대한 견해는 사뭇 대조적이다. 인간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본 서양인과는 달리 동양인은 인간을 자연의 소생으로 보았으며 또한 곡식을 주로 상식함으로써 육식을 주로 하고 성욕과 생명력을 본성으로 여겨 인간의 나신에 美의 根源을 두고있는 서양인에 비해 미의 근본을 自然에서 찾으려했다. 그러므로 서양인의 창작적인 예술미에 대해 동양인은 수용적인 자연미를 중시하게 되었다.

이처럼 동양의 예술은 수용적인 자연미를 중시한다. 힘에서 자연스러움을 얻으려면 含蓄蘊藉함을 표현하여야한다. 또한 필력이 充盈하다는 전제하에서 화평함을 표현하니 이것은 가볍고 느슨한 자연의 힘이다. 힘이 있다는 것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젖먹던 힘까지 다 사용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추호도 사람에게 긴장하거나 주저함이 없는 자연스러움이 배어있어야 한다. 王虛舟는 『論書 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山을 뽑아내고 솥을 드는 힘으로 舞女에게 꽃을 꽂아주는 것은, 바로 和字를 터득함을 말한다.

和에는 用力이 함축되어 있으며 潛伏하여 드러내지 않은 의미가 있다. 마치 어느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자신이 가진 음량의 70-80%만을 사용하면 여유로움이 숨어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필력은 다만 沈勁入骨하는 공부가 있어야 비로소 和平한 필획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역감이 있는 글씨는 강한 획만을 열거해놓는 것이 아니다. 강하기만 하고 여유로움이 없는 다듬어지지 않은 힘을 蠻力이라 하며, 이러한 만력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절대 아름답게 보여지지 않는다. 역감이 있는 글씨는 안에 축적된 힘이 많아 늘 여유롭고, 준비된 것이 많아 화평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글씨이다. 그것은 생각해가면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니, 변화를 의식해서 다른 모양의 글자를 만드는 수준으로는 숭고한 경지에 이를 수가 없다.
글자의 결구에는 生과 熟의 문제가 있다. 한 점을 잘못 찍으면 미인의 한쪽 눈이 없는 것과 같다고 했으니 이것이 비록 間架·結構의 위치를 가리켜 한 말이나 또한 한 글자중의 敗筆을 들어 비유할 수도 있다. 처음으로 서예를 하면, 집필과 운필에 生疎함을 느끼는데 이 生은 서법실천을 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거나 혹은 매우 적은 서사실천에서 출현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거치면 生에서 熟의 단계에 이른다. 획이 熟에 이르는 단계에서 만약 停滯되어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어느 정도의 尊古守舊하는 모습이 생겨나는데, 이것을 예술상의 淘汰라고 한다. 生에서 熟의 단계에 이르면 또 生을 구하여야 한다. 뒤의 생은 生動하는 필선이나 천진난만한 자연스런 필획을 의미한다. 그것은 많은 기간의 서사실천을 거쳐야하고 또한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해야만 비로소 이를 수 있는 단계이다. 처음의 生은 學力이 미치지 못한 것으로 心手가 서로 어긋난 것이고, 熟을 거친 뒤의 生은 世俗을 따르지 않고 新意가 때로 나오며 붓이 化工과 함께한 것이다. 이것은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에 대하여 억지로 하는 것이 없는 천연그대로의 생과 함께하는 것이다. 다음은 蘇東坡의 말이다.

입은 반드시 소리를 잊은 다음에라야 능히 말을 할 수 있으며 손은 반드시 붓을 잊은 다음에라야 능히 글씨를 쓸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아는 바다. 입이 소리를 잊지 못하는 단계에서는 문장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손이 잡은 붓을 능히 잊지 못하면 자획이 고르지 못할 것이다. 그 서로 잊음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서야만이 心靈을 形容하고 萬物의 變化를 수작하면서도 홀연히 자신이 그것을 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입이 소리를 잊은 다음에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처럼, 손이 붓을 잊은 다음에라야 달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고, 神技에 가까운 글씨를 쓸 수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과 부합된 것이다. 마음과 손과 붓이 모두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좋은 글씨가 나온다는 것을 蘇東坡는 여기서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力에는 强勁한 힘과 柔和한 힘이 있다. 이 두 가지는 筆 ·結構·章法 등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어떻게 적절하게 변화하며 구성되는가에 따라 작품의 우열이 드러난다. 여기서 말하는 역감은 진정 文質彬彬한 군자의 모습이지, 힘과 용기만이 있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蠻力이 아니다. 사실 서예는 근골이 너무 강한 것을 가장 꺼린다. 따라서 힘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死力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虛中有實 實中有虛'한 경중이 서로 겸하고 강유가 서로 보완하는 필획을 구사하는 것이다. 역감이 있는 글씨는 침착통쾌한 필획으로 사람들에게 일종의 상쾌하고 淋?한 예술감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필력감은 글자와 글자의 사이, 行과 行의 사이, 작품전체에서 감지된다. 필력감은 서법작품의 필획·결구·포국의 세 방면의 느낌에 있을 수가 있는데, 글씨를 쓸 때에는 一氣로 관주해야 한다. 상하로 기맥이 이어지고 좌우로 호응이 있어야 아름다운 작품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骨力에는 또한 挺拔의 의미도 있다. 挺拔은 판에 박힌 뻣뻣한 平直이 아니며 일종의 弧度가 있는 힘이고, 曲勢로써 直을 취하는 것이고, 不平중에 平을 求하고 不直中에서 直을 求하는 挺拔이다. 그것은 체형이 건장하고 아름다우며 균형있는 체조선수와 같이 곡선적 형체미가 풍부한 선과 같은 것이다.

Ⅰ. 序 論

중국인들이 쓰는 글자에는 예술품을 만들 수 있는 두 가지 주요한 요소가 있는데, 첫 번째가 중국글자의 시원인 象形이고, 두 번째가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毛筆이다. 이는 한자가 그림에 가까운 象形文字이기에 다양한 아름다움을 표현해 낼 수가 있었음을 밝힌 것이며, 또한 모필을 사용하여 다양한 선을 구사해 낼 수가 있었기 때문에, 심오한 서예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글씨는 단순히 기록을 위해 존재했었으나, 필획을 통하여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하게 되면서부터 서법예술로 거듭 태어났다. 오랜 역사의 흐름과 함께 무수한 名家들이 生滅을 거듭하면서, 세상에는 절묘한 고전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후에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은 法書를 배우기 위하여 臨摹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는데, 그것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書藝敎學의 필수과정이 되고 있다.
그러나 王羲之(321-379, 一說 303-361, 又一說 307-365)가 아무리 글씨를 잘쓰고 歐陽詢(557-641)과 顔眞卿(708-784, 一說709-785)의 글씨가 좋아도, 그것을 臨摹하는 데에만 머문다면 그는 훌륭한 서예가가 아니다. 서예뿐 아니라 모든 예술은 저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다르며, 그들의 개성 또한 모두 다르기에, 억지로 똑같게 하려면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왕희지나 안진경도 자신이 쓴 〈蘭亭敍〉(圖1)나 〈爭座位〉(圖2)를 다시 그만한 수준으로 쓸 수가 없었으니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는가? 그러므로,

예술의 대상은 그대로 복사하는 再現(Representation)이 아니라 주관에 의해 다시 구성하는 表現(Expression!)이다.
즉 예술은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하나 창작을 근본으로 한다. 옛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재현을 하더라도 그것은 창작을 위한 단계이지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서예에서는 재현의 과정이 많이 존재한다. 그것은 법첩을 臨摹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선생이 임모를 해놓은 것을 보고 임모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이 대체적인 현서단의 실정이다. 이것은 직접 의자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의자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속에 나타난 의자를 보고 의자를 단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의자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너머의 이데아(Idea)도 연상할 수도 있어야한다. 법첩을 임모할 때에도 그 모양만을 본뜨려고 하기보다는 원래 작자의 의도까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작자가 글씨를 쓰다 실수한 것이나 잘못된 것까지도 그대로 본받으며 그것이 마치 잘한 것인 양 생각해서도 안된다. 법첩을 바라보되 우리는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근본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에 필요한 것이 서예를 올바로 보는 시각이요, 그 시각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 서예이론이며, 서예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중심적인 시각이 바로 역감이다. 역감은 입체감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필획을 통해 書跡에서 얼마나 힘이 느껴지는가를 근본으로 한다. 아무리 결구가 좋고 모양이 좋다고 하더라도 그 글씨에서 역감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좋은 글씨가 아니다. 그러므로 王僧虔(426-485)은 「論書」에서 "張芝(?-約192)·韋誕(179-253)·鍾會(225-264)·索靖(239-303)·二衛는 모두 前代에 이름이 있던 사람들로, 古今의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거의 우열을 가릴 수 없으나 다만 그들의 필력만은 놀라울 뿐이다"라고 했다. 즉 좋은 서예작품은 비록 書風이 각기 달라도 모두 필력을 갖추고 있기에 좋은 것이요, 필획에 기운이 생동하는 생명력을 갖추었기에, 보고 또 봐도 그 맛이 무궁하다는 뜻이다. 필력은 서예의 우열을 판단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으며, 그것은 하나의 점획에서 한 글자로 이어지고 다시 전체의 작품으로 이어져 生氣있는 여러 가지 작용을 하고 있다. 선질이나 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예를 한다는 것은 모호한 환상에 불과하다.
이 글은 서예를 비롯한 동양회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필획을 통해, 예로부터 작품을 품평하는 중요한 작용을 하는 서예의 力感에 관하여 연구함으로서, 그를 바탕으로 고전을 좀더 분명하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창작의 길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뜻이다. 물론 필력을 논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筆性論을 비롯한 執筆과 用筆部分이다. 그 중에 용필은 서론의 가장 핵심부분으로, 너무나 미묘하며 갖가지 많은 설들이 존재한다. 이를 다루는 것은 너무나 조심스럽고 많은 분량을 차지함으로, 좀더 연구를 하여 학위청구논문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필력에 관하여 논하되 집필과 용필부분을 많이 줄여 書跡에 나타난 역감을 중심으로 기술하였음을 밝혀둔다.

2. 力感에 關한 三種說

필력은 정확한 執筆·運腕·書寫姿勢에서 만들어지며, 필력에 작용하는 힘으로는 腕力·臂力·腰力·全身之力이 있다. 작은 글자를 쓸 때에는 일반적으로 腕力을 사용하지만, 一寸以上의 큰 글자나 行草를 쓸 때에는 懸腕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懸腕은 팔을 붙이고 쓰는 것에 비하여 힘을 발휘하기 쉬우며, 서서 쓰는 것이 앉아서 쓰는 것보다 더욱 역감이 있다. 전신의 힘은 어깨·팔·손가락을 거쳐 筆尖으로 전달되는데, 눈을 감고 귀로만 느끼듯이 생각을 집중하고 臂와 腕을 운용하여 마음대로 마음속의 점획을 써내야 한다. 執筆은 運筆을 위해서 존재하며, 운필을 하는 妙處는 필력을 획득하는 데에 있다. 집필과 운필을 정확하게 하면 먹물을 灌注하는 데에 유리하여, 생동감있고 정신이 느껴지게 하는 墨跡을 얻게 된다. 필력의 생산은 결코 하나의 가볍고 쉬운 일이 아니고 반드시 장기간의 훈련을 거쳐야만 한다. 만약 숙련된 필묵기교와 오랜 세월을 거쳐 쌓여진 공부가 없다면 경절한 필력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점획에서 역감이 넘쳐흐르게 할 수가 있는가? 力과 力感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은 全身力到說·技巧筆力說·書跡筆力說로 요약된다.

1) 全身力到
전신역도설은, 蔡邕(133-192, 一說 132-192)·衛夫人(272-349)·王羲之로부터 전해지는 것으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글자를 쓸 때에 用力이 크면 효과가 더욱 좋아지고, 역감이 더욱 넘치게 된다는 설이다. 虞和(南朝宋의 서가)는 『論書表』에서 말하길 "왕희지가 회계에 있었을 때에 왕헌지(344-386)는 칠팔세의 나이에 글을 배우고 있었다. 희지가 뒤에서 그 붓을 당겼으나 빼앗기지 않자 감탄하면서 말하길 이 아이의 글은 후에 마땅히 대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 고사는 항상 사람들에게 紙上의 경절한 필력을 얻으려면 이렇게 해야한다는 본보기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衛夫人이 「筆陣圖」중에서

點 波 屈曲을 그을 때에는 모두다 일신의 힘을 다하여 송필한다.

고 한데에 그 근원을 둔다. 東漢의 蔡邕은 下筆하는데 힘을 사용하면 필획의 肌膚가 아름다워진다라고 하였으며, 宋의 蔡君謨(1012-1067)는 急流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氣力을 다 사용하여 故處를 떠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南宋의 姜夔(1155?-1235?, 一說1163-1203)도 집필은 긴밀하게 하여야하고 운필은 활달하게 해야한다. 손가락으로 운필하지 말고 완으로 운필하라고 했다. 이 전신역도설은 서예사에 지극히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 말하는 전신역도는 指實을 뜻하는 것으로, 지실은 전신의 힘이 필획에 실리는 느낌을 주는 것이지 지나친 힘을 필관에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指實을 너무 지나치게 힘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여, 손가락에 힘을 많이 주면 필획에 더 많은 힘이 주입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으니,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康有爲(1858-1927)였다. 그는 전신역도설을 주장하였던 包世臣(1775-1855)에 대해, "잡는 것이 너무 긴밀하면 힘이 필관에 머무를 뿐 붓끝으로 전달이 되지 못하며, 그 글씨는 반드시 근육을 포기하고 골을 드러내며 마르고 또한 약하게 한다"고 했다. 이렇게 전신역도의 방법으로 글씨를 썼을 때 굳세고 강한 필획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骨이 없는 딱딱하고 거친 필획이 나온다고 생각한 몇몇 사람들은 다음의 기교필력설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2) 技巧筆力
기교필력설은 唐代의 서예가 盧肇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역감이 강한 필획은 힘주어 붓을 잡는 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힘을 사용하면 필획이 죽는다"는 설을 제기 하였다. 그는 서법의 우열과 역감의 강약이 용필의 기교에서 결정되며 맹목적으로 기운을 쓰는 데에 있지않다는 점을 역설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었다.
서예는 닭을 잡을 만한 힘도 없는 文人이 하는 것이다. 이는 歐陽詢·顔眞卿 등도 힘이 넘치는 젊은 시절이 아닌 고희가 넘은 衰境의 나이에 글씨가 오히려 최고봉에 이르렀으며 역감도 매우 充沛했던 것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운동선수나 무술을 하는 사람들의 글씨를 보면 글씨에서 많은 기가 느껴질 것 같은데 실제로 붓글씨를 쓰게 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글씨는 힘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技巧筆力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설을 살펴보면, 唐의 張旭은 "미묘함은 집필에 있다. 집필을 圓暢하게 해야하며 구속되도록 해서는 안된다"라 했고, 唐의 韓方明은 "집필은 편안한 데에 있다"고 했다. 또한 唐의 虞世南도 "서도의 현묘함은 반드시 정신을 바탕으로 하지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한다"고 하였으며, 蘇東坡(1036-1101) 역시 "집필에는 정해진 법이 없으나 다만 비면서 너그럽게 해야한다"고 했고, 또한 "붓을 잡는 것을 굳게 하는데 있지 않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보면 필력의 생산과 書寫者의 臂力의 대소관계는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全身之力을 사용하여 提筆하고 按筆할 때에 소용되는 힘은 모두 어떤 곳으로 가는가? 대부분은 무의식적 대치중에 毫에서 소모된다.

역감은 점획의 형태로 말미암아 체현되는 것으로 점획의 형태는 용필의 조형의 수준에서 결정된다. 전신역도설의 착오는 곧 심리상의 역감을 물리상의 체력과 혼동함에서 야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점획의 형태만을 가지고 역감의 유무를 판단할 수가 없다. 가령 곡선이나 원필보다는 직선이나 방필이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획에는 등나무 줄기같이 힘찬 곡선이 있고 가는 나뭇가지와 같은 여린 직선이 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굵은 선이 가는 선보다 강하다는 의미는, 쇠줄같이 가늘지만 무겁고 강한 선이 있는 반면에, 스티로폴과 같이 크고 굵어도 가볍고 약한 선이 있음을 도외시할 수가 없다. 또한 力感은 점획의 형태와 질감에서 느껴지기도 하지만, 치밀한 결구와 一氣貫注하는 章法등을 통해서도 강하고 다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3) 書跡筆力
書跡筆力說은 위의 두 설과는 달리 이미 완성된 서예작품을 보는 중에서 力度美를 느낀다는 설이다. 趙一新은 「論筆力」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서자의 체력이 어떠한가와 집필에 얼마나한 힘을 사용하는 여부에 상관하지 않고 단지 작품중의 글자에서 사람들에게 힘이 있는 감각을 주어야만 이것이 곧 필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붓으로 표현되는 서예에서의 역감에 한정하였으므로 여기서는 그 외의 것을 논하지 않겠다. 서적필력에서 우리가 전제해야할 것은 사람의 손을 거쳐서 완성한 서예작품으로, 전신역도나 기교필력의 방법을 통해 나타난 서예작품에서 역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 이 전신역도와 기교필력중에 어느 방법으로 서사하는 것이 더욱 역감있는 서적필력으로 나타나는가하는 문제가 생긴다. "터럭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어도, 그것이 오래되고 멀어지면 천리만큼의 거리가 생길 수도 있다"고 孫過庭은 역설하였다. 이는 곧 처음이 비록 그리 차이가 나진 않지만 신중을 기해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전신역도설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전신의 힘을 다하여 필획을 그어도 전신의 힘이 그대로 필획에 관주되지는 않는다. 왕희지나 왕헌지가 글씨를 쓴 것은 대부분이 작은 글씨이지 큰 글씨가 아니다. 그들이 그러한 작은 글씨를 쓸 때에 온몸의 힘을 다 사용해가며 한획한획을 그었을까? 그리고 왕희지가 술에 취해 난정서를 쓰면서 온몸의 힘을 종이에 실어가며 그렇게 썼을까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는 하나하나의 필획에 온몸의 힘이 실리듯이 그어진 튼튼한 필획을 강조한 것이라 여겨진다. 지나치게 힘있게 붓을 잡으면(握之太緊) 필획이 굳어지고 결구도 자연스럽지 못해 아름다운 서예작품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해이한 정신력으로 느슨하게 붓을 잡아 글씨를 쓰면 획이나 결구에 긴장감이 없게된다. 느슨하게 늘어진 획에서는 또렷한 정신력이 느껴지지 않고 골력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고 근육으로 단련된 운동선수의 몸매와 같은 挺拔한 필획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적당한 힘을 주어 붓을 잡아야 정발한 필획을 얻을 수가 있다. 이처럼 선인들이 정확한 집필에 많은 연구를 하였던 것은, 정확한 운필을 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한 운필은 다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중봉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니, 중봉필획에는 다음과 같이 많은 장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Ⅲ. 力感의 表現效果


1. 力感과 誤解

物에는 근본과 끝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나중이 있으니 그 먼저 해야할 것과 나중에 해야할 것을 안다면 곧 도에 가깝다고 한다. 어느 것이 그 행위를 하는 목적이고, 어느 것이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형식인가를 알고, 그 선후를 정하여 순서대로 해나간다면 그릇되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禮를 행하는데 서로 경애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인사를 어떻게 하고 말씨는 어떻게 하고 옷매무새는 어떻게 하는가와 같은 형식적인 것에만 힘쓴다면 처음에는 바른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중에는 행위 뒤에 숨어있는 속마음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절차를 모르더라도 상대방을 敬愛하는 마음이 있다면 설령 오해가 있더라도 풀어지고 언행도 저절로 법도에 맞게 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글씨도 겉으로는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근본은 필획속에서 건강미로 표현되는 역감이다. 다음에는 이러한 역감이 전래의 법첩을 통하여 어떻게 표현되고 있으며, 역감에 대한 전래의 오해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봄으로써 역감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1) 學書의 根本
李世民(597-649)은 「論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근래 나는 고인의 글을 임서함에 다만 그 형세를 배우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골력을 구하는데 마음을 두고있으니, 형세는 저절로 생겨날 뿐이다.
서예 역시 본말을 생각하고 근본에 치중해야함을 역설한 것이니, 學書者들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말이다. 너무 형태에 매달리다보면 오히려 모든 것이 뒤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근본인 筋骨에 마음을 두고 있으면 처음에 조금은 헝클어졌더라도 나중에는 그리 어긋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잘된 글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점획과 결구가 각기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으나 서로 어울리며 각자각자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수준이 낮은 글씨를 들여다보면 각자의 점획이 서로 같으나 어우러지지 못한다. 『논어』에 "군자는 서로 화목하면서도 분명한 자신의 개성을 가져서 똑같이 하지는 않고, 소인은 자신의 모든 개성까지도 무너뜨린채 똑같이 하기는 하나 화목하지는 못한다"는 의미가 글씨를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참고해야할 말인 것 같다. 張彦遠의 「歷代名畵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옛날의 그림은 형사를 버리고 骨氣를 숭상하여 形似밖에서 그림을 추구하였으니 이는 속인들과 더불어 말하기는 난처하다. 요사이 그림은 설령 形似를 얻었다고 하나 기운이 생겨나지 아니한다.

이와 같이 骨氣를 중요시하여 그림을 그리다 보면, 形似를 중요시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더욱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가 있으며, 또한 기운이 생동하기 때문에 더욱 격이 높은 그림을 얻을 수가 있다. 글씨를 쓰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먼저 骨力 즉 역감을 추구하는데 역점을 두면 아름답고 다양한 필획을 얻을 수가 있고, 필호에 탄력을 얻으면 자유롭게 필획을 구사할 수가 있어 보다 격조높은 글씨를 쓸 수가 있을 것이다.
2) 力感의 比較
원작대로 임모를 하고 똑같이 勁한 필획을 긋는 것을 전제로, 한 사람이 한번은 唐 遂良의 〈雁塔聖敎序〉(圖7)를 임모하고, 다시 한번은 北魏의 〈始平公造像記〉(圖8)를 임모해 보면, 비록 한사람이 썼어도 〈시평공조상기〉를 임모한 것에서 더욱 역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호랑이를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 토끼를 그린다면, 같은 사람이 그렸더라도 호랑이를 그린 그림에서 더욱 힘을 느끼게 된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호랑이를 그릴 때엔 百獸를 제압하는 듯한 강렬한 눈빛,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튼튼하고 날쌘 모습 등을 그리려 하고, 토끼를 그릴 때엔 토끼의 순한 모습을 연상하여 귀를 쫑긋 세우며 경계하는 모습 등을 그리려 하기 때문이다. 관람자의 입장에서도 호랑이 그림을 보면 실제의 호랑이를 연상하여 무섭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토끼를 보면 실제의 토끼를 연상하여 순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서예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역감이 많이 느껴지는 서풍의 글씨와 그보다 역감이 덜 느껴지는 서풍의 글씨가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안탑성교서〉가 그렇게 약한 필획은 아니나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시평공조상기〉와 비교하면 역감이 비교적 작다고 느끼게 된다. 또한, 임모를 하면서도 〈시평공조상기〉를 임모하는 편에 훨씬 더 많은 힘을 들일 것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기교와 힘은 붓대와 筆毫를 거쳐 글자의 일점일획상에서 표현되는데, 같은 사람의 같은 필력으로도 서사공구가 같지 않고 기교변화가 같지않음으로 인해 각각 다른 점획형태를 만들어낸다. 다른 사람의 다른 力度와 다른 서풍으로 인해 만들어진 글씨는 다른 모양의 글씨를 만들어 낸다. 동일한 필기구를 사용해도 기교활동이 다름으로 인해 書跡筆力의 강약정도가 달라진다. 古人이 이르기를 "一橫은 천리에 구름이 늘어선 것(千里陣雲)과 같이하고, 一點은 높은 봉우리에서 바위가 떨어지는 것(高峰墜石)과 같이하고, 一 은 무소뿔이나 상아를 잘라놓은 것(陸斷犀象)과 같이하고, 一鉤는 백균의 쇠뇌를 쏘는 것(百鈞弩發)과 같이하고, 一竪는 만년 묵은 마른 등나무(萬歲枯藤)와 같이한다"는 등등은 모두가 사람들에게 점획의 형태자체를 통하여 그들의 '筆力'을 體會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필력은 필세중에서 생산되며 세가 있어야 비로소 힘이 있다. 한폭의 작품에 필세가 유창하고 근맥이 서로 연결되어 一氣로 貫注되면 모든 글자에 기세가 가득하여(磅 ) 사람들에게 일종의 생명력이 풍부한 역감을 느끼게 한다. 勢와 力은 相補相成하여 相得益彰하는 것이다. 세는 당연히 力의 기초이며, 力은 당연히 勢에 근거한다. 서로가 배합 협조하여야 勢와 力이 비로소 더욱 완미함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3) 力感의 誤解
서예를 실천하거나 감상하는 것을 두고, 지금 사람들이나 옛 선현들도 역감에 대하여 잘못 이해한 부분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나, 서사과정에 오해가 없도록 다음에 다섯 가지정도로 정리하여 밝혀본다.
첫째, 점획의 節이 드러나거나 혹은 方折하고 稜角을 이룬 것을 보고 骨이 있고 역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골법용필을 오해한 가장 보편적인 관념이다. 張懷瓘은 이를 비평하여 "稜角이라는 것은 書의 弊薄한 것이다"라고 했으니, 그를 바로잡는 방법은 세를 우선으로 하고 斂墨入毫하여 圭角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둘째, 밖으로만 강하게 보이고 안으로는 삐쩍마른 것을 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세인들은 단지 弩張한 것을 근골이라 생각하는데 弩張하지 않은 것이 骨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外强中乾' 한 것은 劍拔弩張하여, 오히려 연약하게 보인다. 또한 필묵이 紙面에 떠있으면 골이 있다고 할 수가 없다.
셋째, 집필이 긴밀할수록 더욱 筋骨力量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李世民의 指實說에 대하여 곡해한 것인데 豊坊이 이르기를 指가 實하면 골체가 堅定하여 약하지 않다 하였으니 이것은 그릇되지 않으나 분명하게 분석해 보아야한다. 實指와 死力을 사용하여 붓을 提筆하는 것은 다르다. 前者는 全身之力을 운용하여 필첨에 이르게 하기에 편하고, 後者는 全身關節의 뻣뻣함을 사용한 것이니 오히려 골력이 있는 점획을 구사하지 못한다.
넷째, 骨과 韻을 대립하여, 骨이 있으면 韻이 없다고 생각하고 韻이 있으면 骨이 없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방절을 骨이라 생각하는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상관된 것이니, 그들은 韻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北書는 骨이 勝하고 南書는 韻이 勝하나 北은 스스로 北의 韻이 있고 南은 스스로 南의 骨이 있다"고한 劉熙載는 骨과 韻에 대하여 확실히 알았던 것이다.
다섯째, 사람의 인격을 점획의 골이 되는 결정인소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書에는 骨이 있어야 하나 골이 있는 글씨는 반드시 인격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골력이 붓을 사용하는 사람과 많은 관련이 있으나, 그것은 주로 중봉운필을 통해서 생산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楊賓은 『大瓢偶筆』에서 "鍾紹京·蔡京·趙松雪등과 같은 글씨가 일찍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으나 骨은 곧 미약하다"라고 하였으니, 골이 미약한데 어찌 서가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들의 서는 골이 부족한 것이고 아름다운 글씨이기보다는 연미한 글씨이다.
상술한 갖가지 오해는 역감에 대한 인식이 모호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이러한 면들을 분명하게 교정해 나가면서, 學書에 임한다면 역감있는 글씨를 쓸 수가 있을 것이다.

3. 結構·章法

역감은 점획속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력에서 더 많이 느껴진다. 가령 한사람 한사람의 힘은 미약할지라도 질서있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군대의 행렬을 바라보면 더욱 강한 힘을 느끼게 된다.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하나하나의 필획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전체속에서 유기체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때, 거기서 감지되는 역감은 개별적인 필획에서 느껴지는 역감보다 더욱 강렬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주로, 결구와 장법을 통해 드러나는 필력을 다루었으나, 그것이 각자의 필획에서 느껴지는 것과 연관되어, 분명하게 선을 그을 수가 없었음을 밝혀둔다.

1) 大小·疏密
크기가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큰 것에서 역감을 느낀다. 작품크기가 같은 공모전에 출품하는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이 큰 글씨로 출품한다. 왜냐하면 작고 많은 글씨보다 크고 적은 글씨가 더욱 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작은 글씨를 쓰다보면 움츠러들기 쉽다. 작게 쓰려는 마음이 勢마저도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작게 쓰면서도 기세가 당당하면 큰 글자를 보는 것처럼 툭터진 느낌을 갖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큰 글자는 작은 글자처럼 작은 글자는 큰 글자처럼 써야한다.

곧 좋은 글씨란 작으면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가늘면서도 당당한 필획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다.
소밀을 얻으면 바야흐로 좋은 작품이 될 수가 있다. 소밀은 結字할 때에 寬疎와 緊密을 가리킨다. 疎를 잘 사용하면 신운이 감돌며, 密을 잘 사용하면 노련해진다. 그러나 성글게 할 때 성글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냉혹한 분위기가 감돌고 密해야할 때 密하지 않으면 반드시 엉성한 작품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동양의 예술은 공간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점획과의 간격이나 글자와 글자와의 간격 등도 모두 중요하다. 작품전체에서 강약을 만들고 소밀을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수준은 큰 차이를 보인다. 鄧石如(1743-1805, 一說1739-1805)의 다음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자획의 성글은 부분에서는 말을 달릴 수도 있게 하고, 긴밀한 곳에서는 공기도 통과하지 못하게 하니, 항상 공간을 계산하여 필획을 그으면 奇妙한 정취가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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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의 정의

  서예는 화선지에 먹물을 적신 붓으로 점과 선을 결합하고, 붓을 당기거나 밀거나 혹은 누르거나 들면서,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고 더디게 동작하느냐 에 따라 다양한 동태미를 나타낸다. 시각예술에 속해 있으면서도 '심상심학(心相心學)'으로서의 특성을 지닌 동양 특유의 조형예술로, 고도의 기능적 숙련에 의한 점과 선을 통해 그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해 낸다. 붓이 한번 움직인 필획에는 길고 짧음의 대비와 굵고 가는선이 있고 굽거나 꺽이는 곳이 있으며, 절제된 것이 있는가 하면 자유분방한 것도 있다. 먹의 색깔 또한 짙음과 옅음, 윤택하거나 마른 느낌등을 적절히 조화시켜 나가면서 문자의 실용적인 형태에 속박되지 않고 주관적인 감정을 형상화 하여 자기의 독창성을 발현하고 그 속에 자신의 심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좋은 서예작품은 자연스러운 마음과 훌륭한 인품에서 우러나온다.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기인(其人)'이란 그 사람의 인품, 교양, 학덕 등을 총칭하는 의미이다. 이것은 서예를 단순히 아름다운 글씨를 쓰기 위한 기술이나 기교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하고 우선 스스로의 인격함양에 힘써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서예는 예술을 통해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 활동이다. 그러므로 서예는 다른 어떤 예술장르보다 작가 자신의 인격 수양이 크게 요구되며, 가장 중요한 예술적 요인이 된다.

 

. 서예의 특성

  한자는 그림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원시적인 그림문자가 점점 모양과 상태가 바뀌면서 실용화, 예술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예는 문자를 아름답게 꾸민 예술로 인식되어 지면서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한자는 우주자연의 이치에서 출발하였고, 특히 한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글자마다 의상(意象)이나 미적인 아름다운 요소를 생성할 때부터 함축하고 있었다. 또한 구조가 복잡하고 자수가 많으며 자형의 변화가 심하고, 같은 글자라도 다른 서체로 쓰면 또 다른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다른 문자에서 볼수 없는 심미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서예는 문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표현에 있어서 서법이라는 일정하고 엄격한 규율이 있다, 붓의 움직임이 빠르고 느림에 따라 표현의 효과는 달라지며, 먹은 단순한 검정색으로 볼 수있지만 붓놀림의 정도에 따라 여러가지 색채로 변화하며 신비한 효과를 가져온다.

서예의 또 다른 특성은 일회성에 있다.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족한 점이 보이더라도 결코 덧칠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회성은 다시 덧칠하지 않은 획 그 자체이며, 그렇기에 서예는 골똘히 생각해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써 내려가는 순간성과 즉흥성을 지닌다.

 

. 서예의 의의

  글로벌시대의 가속화로 우리의 정신적 가치가 더욱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은 정서를 순화하고 정신의 풍요를 가져오게 하는 서예에서 찾아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서예는 단순히 문자를 이용한 예술이라기보다는 인생과 우주의 이치를 담아냄으로써 인격도야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 유례없는 예술이다. 우리의 선인들이 남긴 문화유산 중에서 가장 고귀한 정신이 담긴 전통예술이며, 그 속에는 우리조상들의 삶과 학문, 성정이 배어있고, 치열한 정신과 풍성한 감수성이 형상화 되어있다. 이러한 서예의 우수성을 알고 이를 익힘으로써 민족의 우월성과 자긍심을 깨닫고, 서예의 표현을 통하여 인격의 완성은 물론 실용성도 추구하여야 한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들은 자칫 잊혀지기 쉬운 전통예술로서 서예를 자율적으로 표현, 감상하고 나아가 창작함으로써, 주체적 자아의식을 지닌 창의력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먹을 갈면서 심성을 다듬고, 화선지를 펼쳐 놓고 몸가짐을 정갈하게 하여 마음을 정화시키며, 붓을 움직여 중용을 깨우친다. 글씨를 정성스럽게 써 나감으로써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갈수 있도록 하고, 쓰고 난 붓을 맑은물에 깨끗이 씻음으로써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묘리를 느낄수 있다.

 

. 서예의 기원

  한자는 일반적으로 중국 고대 제왕시대 '황제'의 사관이었던 '창힐'이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는 전설에 불과하며, 최초의 서예라고 할 수있는 문자는 '갑골문(甲骨文)'이다. 이 문자는 3400여년전의 거북이 배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새겨져 있어서 '갑골문' 이라고 하는데, 칼을 사용하여 단단한 뼈위에 새긴 것으로 필획이 가늘고 강하며 자형은 여위고 길다. 글자의 크기는 각기 다르고 매우 강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준다. 붓에 의한 문자의 예술성 추구는 후한대(後漢代)부터 본격화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때에 한자가 전래되었으나 서예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한사군을 통해 한 대(漢代)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부터이다.

 

. 서예의 변천

갑골문에 이어 주대(周代)에 들어서면서 문자의 형태는 청동기에 주조하여 주물틀에 새겨 넣은 글자들로 '종정문(鐘鼎文)' 혹은 '금문(金文)' 이라고 하였다. 금문의 글자체는 갑골문과 비슷하지만 필획이 갑골문보다 굵고 웅장하며, 글자체의 구성 크기에도 균형이 잡히고 정연하다. 그리고 표현된 풍격은 장엄하면서 돈후하여 이미 상당한 예술성을 갖추었다.

  춘추전국시기에 글자체는 지역적인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제()((((· ()등의 문자를 '육국고문(六國古文)'이라 하였다.

  진대(秦代)에 들어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 육국고문을 폐지하고 대전(大篆)을 기초로 하여 소전(小篆)을 만들어 문자를 통일하였다. 소전은 식별하거나 쓰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규범화되었다. 서예에서는 대전과 소전을 통칭하여 '전서(篆書)'라고 한다.

 

진대(秦代)에는 사건과 관련된 문서를 처리하면서 간단하게 글을 쓰는 '예서(隸書)'가 형성되었으며, 서한(西漢)중기에 이르러 사회에 통행되는 정식 글자체가 되었다. 예서가 발전한 시기에 '초서(草書)'가 등장하였는데, 초서는 예서를 흘려 쓰는 방법으로 빨리 써서 필획과 필획이 연결되고 글자와 글자가 연결되어 글자의 형상이 간단해 졌다.··남북조 시기에 예서의 기초 위에 다시 새로운 글자체가 발전하였는데 그것이 '해서(楷書)'이다.

이후 진대에 들어서며 해서와 초서의 중간으로 행서(行書)가 출현한다. 행서는 해서보다 자유롭고 빨리 쓸 수 있으며 편리하고 실용적인 글자체이다.

  한자의 변천은 갑골문-금문-소전-예서-초서-해서-행서 순이며 이것은 서예의 글자체 형성 과정이기도 하다.

 

.서체의 종류

  1.갑골문(甲骨文)

  갑골문(甲骨文) 이란 귀갑수골(龜甲獸骨)의 약칭으로, 한자의 초기형태에 해당된다. 발굴된 뼈의 연대는 기원전 1200년에서 1050년으로 은나라 말기의 것들이다. 갑골의 '()'은 거북의 배 껍질이고, '()'은 소의 어깨뼈나 넓적다리뼈이다. 그 밖에도 사슴두개골, 사슴뿔, 코뿔소, 호랑이뼈, 심지어는 사람 두개골 까지도 발견되었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 1,000년 무렵 중국 고대 은상대(殷商代), 국가 중대사부터 모든 행위를 제사장이 천신이나 혹은 조상신에게 점을 치는 방법으로, 갑골에 구멍 같은 흠집을 내고 그것을 불에 올려놓고, 열로 인해 그 흠집으로부터 갈라진 방향에 따라 길흉을 판단했다. 주로 점을 친 후에 그 결과를 갑골에 기록을 해 놓았기 때문에 갑골문은 '복사(卜辭)'라고도 불리고, 칼로 새겨놓았기 때문에 '계문(契文)'이라고도 한다. 갑골문이 처음 발견된 곳이 은나라의 도읍지였기 때문에 ' 은허문자(殷墟文字) '라고도 한다.

형태는 매우 상형적(象形的)으로 필획이 가늘기는 하지만 둥근원형의 획과 방형의 획으로 장중한 느낌이 들며 획이 굵고 가늠이 조화를 이룬다. 필획은 방형이 다수를 차지하고, 원형인 것은 구불구불 은근히 구르면서 자연스러워 도무지 칼로 새긴 것 같지가 않으며, 서예의 시각으로 보면 크게 웅장하고 힘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에 이미 모필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인데, 1929년에 발견된 3편의 수골에는 먹물과 붓으로 글을 쓰고 난 다음에 채 새기지 못한 서사문자가 적혀 있었다.

 

2 金文 (금문)

  금문은 청동기를 주조할 때 주물틀에 새겨 넣은 글자들이다. 이로 인해 금문의 다른 명칭으로 청동기의 대표적인 유물인 '() '이나 '(:) '의 이름에서 유래해 '종정문(鐘鼎文)'이라고도 한다.

'()'은 대들보에 매달고 두들겨서 소리를 내는 악기의 일종이며, ' ()'은 제사때 쓰는 그릇으로 세발과 두개의 귀를 가지고 있으며 향로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중국 고대 주나라 시절의 유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지만, 그 이전 왕조인 은나라에서 사용된 금문이 발견되기도 하였고, 후대 철기시대인 한나라 때까지 금문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거의 천년에 가까운 사용시기로 인해 다양한 서체의 특징을 보인다. 기물에 새겨진 내용으로는 축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표시하거나 주조된 연원이나 기물의 주인등을 표시했고, 또한 당시의 상황인 전쟁이나 제례, 계약 등을 기록하고 있다. 금문의 특징으로는, 청동기를 주조할 때 주물의 틀에 글자를 새기는 것이었기에 명확하게 글자가 보여지기 위하여 글자가 크고 굵어야만 했다. 그래서 가늘고 긴서체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갑골문 보다 금문은 넓고 굵다. 또한 갑골문에 비해 금문은 회화적 요소로부터 점차 문자로서의 특징을 지닌 기호적 요소가 많이 나타나 점차 문자의 틀로 발전되어 가는 양상을 보여준다. 대표작으로는<모공정(毛公鼎)><산씨반(散氏盤)>등이 있다.

 

3 전서(篆書)

 '전서(篆書)''대전(大篆''소전(小篆)'으로 구분되며, 소전을 일반적으로 '전서'라고 한다. '소전''진시황(秦始皇)'이 승상인 '이사(李斯)'에게 지시하여 이전의 문자들을 한데 모아 통일시켜 만든 문자이다.

'소전'의 특징은 인위적인 통일이라는 점에서 서체가 거의 획일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소전'은 자형 자체가 '대전'격인 '갑골문'이나 '금문'보다 상당하게 상형의 회화적 성격을 탈피하고 문자의 기호적 성격으로 전환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진의 흥망과 함께 운명을 같이 했던 소전이었기에,사용시기는 그리오래지 않고 새로운 서체인'예서(隸書)'가 등장하게 된다.

소전(小篆)의 대표적 작품은 <태산각석(泰山刻石)><낭아대각석(瑯牙臺刻石)>이 있다.

 

4 예서(隸書)

  진시황은 중원을 통일한 뒤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었다. 이에 따라 공문서등이 증가하면서 전서를 간략하게 만든 새로운 서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때 만들어 진 것이 '예서'이다. 상형의 회화적 요소를 벗어버리고 문자의 기호적 요소가 완성되어 현대 한자의 출발점으로도 볼 수가 있다. 기록에 보면 예서는 <장막(程邈)>이 만들었다. 그가 죄를 지어 감옥에 있을 때 십년을 연구하여 예서 3,000자를 지어 진상하였는데 진시황이 좋게 여겨 어사를 시켰다. 예서란 말은 진대의 복역수를 '도예(徒隸)'라 하였는데 정막이 그러했으므로 '()'자를 따서 지었다.

예서에서 '파책'이 없이 전서와 근접한 것을 '고예(古隸)'라 하고 '파책'이 있는 것을 '팔분(八分)'이라고 한다. 파책은 예서를 쓸때 가로획을 긋다가 획의 마지막 단계에서 붓을 누르면서 조금씩 내리다가 오른쪽 위로 튕기면서 붓을 떼는 방법으로 예서만이 가지고 있는 가로획의 특징이다. 예서의 출현은 상형적 회화요소의 고대문자의 틀을 벗어 내고 새로운 문자의 규격을 이루게 되는데 실제 이후에 등장한 서체의 규범이라고 하는 '해서(楷書)'의 자형도 예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한자 자형의 전형은 예서에서 갖추어 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서의 대표적인 법첩으로는 <예기비(禮器碑)> <을영비(乙瑛碑)><사신비(史晨碑)><조전비(曺全碑)> <장천비(張遷碑)> 등이 있다.

 

5. 해서(楷書)

  중국 후한시대 말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해서는 ''자가 '본보기''모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듯이 표준으로 삼을 만한 서체라는 뜻이다. ·, 남북조南北朝시대에 그 기틀이 완성된 '해서'는 동진의 <왕희지>, 당나라의 <구양순>이나 <안진경>등이 등장하면서 서체의 전형이 완성되었다. 예서에서 발전된 해서체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예서체 자형의 전체 윤곽이 다소 가로로 퍼진 형태라고 하면 해서는 다소 세로로 퍼진 형태를 지닌다. 모범적인 표준의 서체로 정서正書〕′혹은 진서眞書〕′의 명칭으로도 불리는 해서는 바른 한자자형의 전형으로 방정한 예술미와 함께 현재에도 꾸준히 서예교습의 기본서체로 애용되고 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도문6) <장맹룡비張猛龍碑> <안근례비顔勤禮碑> 등이 있다.

 

6. 행서行書

  규격체로 인하여 쓰기에 비능률적인 '해서'의 단점과 지나친 간략화로 읽기가 난해한 '초서'의 단점을 함께 보완하고자 생겨난 서체가 바로 '행서行書'이다. 발생시기에 대해서는 '해서''초서'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초서가 서체의 종류 가운데 가장 흘려 쓴 형태이기 때문에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규격체에서 흘림체로 변천하는 과정으로 볼 때 초서가 가장 마지막 단계의 서체로 보여져서 발생시기도 초서가 가장 후대의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제일 나중에 생겨난 서체는 '행서'이다. 후한말기부터 시작되어, 왕희지>가 등장하면서 확고한 틀이 완성된 행서는 해서의 필기체 형태를 띠고 있어 초서처럼 획을 연결해 쓰면서도 지나친 간략화를 하지 않아 쓰기 쉽고 보기 좋은 두 가지 양상을 모두 해결 했다고 볼 수있다. 후한초의 유덕승<劉德昇>에게서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확실하지는 않으며, 대표작으로는 행서의 특징인 표현의 다양성과 형태의 변화감을 느낄수 있는 왕희지王羲之>난정서蘭亭序〕」(도문7)가 있다.

 

7. 초서草書

  예서가 지닌 혁신성이 감소되면서 보다 실용적으로 신속하게 문자를 쓸 필요가 생겨났으며 이에 초서가 등장하였다. 명칭은 극도로 흘려서 쓴 서체라는 의미로 '초서草書'라고 하였다. 표의문자表意文字의 단점인 서체의 복잡함과 난해함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극도로 흘려서 빠르고 간단하게 쓴 서체를 생각해 낸 것이다. 현재 초서는 지나치게 간략화하여 흘려 쓰게 된 결과 해독의 어려움을 가져와 실용성은 상실한 상태이나 문자로서의 실용성을 넘어 최고의 예술적 경지로 발전 하였다. 설문해자 서문한조가 부흥하자 초서가 나왔다는 서술에서 보듯이 예서가 한창 번성하던 한나라시대에 등장하였는데, 진말한초秦末漢初초기의장초章草〕〉로 부터, 동진시대의금초今草〕〉, 당나라 때의 광초狂草〕〉까지 다양하게 발전을 거듭 하였다.

 

7-1. 장초章草

  장초(도문8)는 예서로부터 발전하여 이루어진 서체로서 예서에 가까운 초서이다. 장초를 예서와 비교해 보면 장초의 용필은 예서를 답습한 것이므로 가로획의 끝은 위로 치켜 올려지고 왼쪽의 삐침과 오른쪽의 파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각 글자마다 필획 가운데 이미 휘감아 이끄는 필법이 있어서 금초今草의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필세에 기초를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장초의 가로세로획은 예서와 같고, 필획이 휘감기며 이어지는 것은 금초와 같으니 이것이 장초의 기본 법식이다. 게다가 장초는 필획이 평정하여 금초와 같이 비뚤게 기울어져 형세를 취하지는 않으니, 필법에 예서의 근원을 갖고 있어서 질박하고 혼후한 면모를 포함하고 있다.

 

7-2. 금초今草

  금초今草(도문9)는후한에서 동진시대에 이르면서 장초의 점과 획 그리고 파책을 생략하고 덜어내어 독자적인 서체의 틀을 완성하였다. 전한前漢'장지張芝'가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문자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창조할 수 없듯이, '장지' 또한 예외는 아니다. '금초今草'는 한글자씩 띄어 쓰는 '독초체獨草體'와 붓을 떼지 않고 계속 연결하여 쓰는 '연면체連綿體'로 나누어진다. 현재의 일반적으로 쓰는 초서체로 보면 된다.

 

7-3. 광초狂草

  광초狂草(도문10) 는 마치 미친듯 거의 끊어짐 없이 이어서 쓰는 형식으로, ' 대초大草'혹은 '연면초連綿草'라고 한다. 결자結字상에서 보면 글자마다 독립된 경계를 두지 않고, 연결된 선과 필획은 결코 구분됨이 없다. 간편하고 쾌속하기 때문에 자체는 이어지고, 이어지는 과정 중에 리듬감을 크게 표현 하였다. 자형의 구속력이 비교적 작기때문에 정서의 표현도 자유자재하며, 점획으로써 자태를 이룬 초서는 추상적 작용이 더욱 강렬하다. 당대唐代의 장욱張旭과 회소懷素가 특히 자유분방한 광초狂草를 잘 썼으며 두 사람 모두가 술에 취한 채로 글씨 쓰기를 좋아해서 세간에서는 '미치광이 장과 술꾼 소'라는 뜻으로 전장취소顚張醉素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광초를 일컬어 취초醉草라고도 한다. 서예에 있어서 최고의 예술경지에 이룬다.이처럼 한자서예는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 전5체를 완비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동양 특유의 예술로 자리를 잡았다.

8. 한 글

  한문서예에 비하여 한글서예의 역사는 매우 짧다. 또한 문자의 구조가 단순하여 추상성과 상징성이 부족하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문자형태에 알맞은 독특한 조형원리로 예술성을 창출해 낸 것은 선진들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한글서예는 궁체와 판본체로 나뉘어지며, 궁체는 정자와 흘림으로 나뉜다.

 

8-1. 고체

  한글이 처음 반포되었을 때의 옛 서체를 말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둥근점 모양을 그대로 쓴 훈민정음해례본과 짧은 방형으로 바꾸어 쓴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도문11)등이 있으며, 판본에 쓰인 자형의 글씨로써 판본체또는 훈민정음을 본받아 쓰인 글씨라 하여 정음체正音體〕′라고도 한다.

 

 

8-2. 판각화

  한글을 보급하기 위하여는 책이 필요하게 되었고, 책을 찍어내기 위하여 목판본(도문12)이 만들어졌다. 여러 곳에서 만들어진 목판본의 서체는 조형적 완성에는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지역과 판각자 개인의 성향으로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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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궁체정자

  궁체는 대궐의 글씨라는 뜻이다. 한글이 만들어진 뒤 왕실에서는 한글을 사용하여왔다. 따라서 한글은 내전을 중심으로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발전하여 왔으며 조선후기의 궁녀들은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편지를 쓰는 일과 왕실 내 필요한 여러 가지 글들을 썼다. 왕실의 명령에 의해 쓰는 일이었으므로 당연히 엄정하고 품위 있는 글씨를 써야했고 오랜 기간의 습득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궁체의 형태와 선질이 유려하고 단아한 모습은 이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궁체정자(도문13)는 한자의 해서와 흐름을 같이 한다. 이 글씨는 장중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절제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창제 당시의 고체가 모든 글자의 길이를 같은 크기로 구속하였다면 궁체는 그 길이를 글자의 모양에 따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조형적인 자유로움을 얻게 하였다.

 

8-4. 궁체흘림

 

궁체흘림(도문14)은 한문의 행서에 비유된다. 흘림은 처음 비교적 자유로운 모양이었으나 점차 정제과정을 거치며 정형화 되었다.

 

. 서예의 장르

  1전각篆刻

 전각(도문15)은 중국의 상주商周시대 때, 라는 명칭으로 시작하여 한나라에 들어서면서 비로서 인장印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뒤에 명나라에 이르러 전각작가가 등장하면서 예술로 승화되어 오늘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인장을 사용하였으며, 근대에 이르러 추사선생이 금석학의 연구로 많은 발전을 하였다.

새기는 작업으로는, 인장에 새길 바닥면에 우선 글을 써서 배치하고, 칼을 사용하여 문장을 새긴다. 그렇기 때문에 전각을 하기 위해서는 서예와 새김 기법에 모두 능숙해야 한다. 또한, 전각은 서화등의 작품을 완성한 다음, 본인임을 확인하는 도장의 용도로 사용한다. 이러한 과정을 '落款낙관'이라고 하는데 이는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이다.

종류별로는' 성명인'으로 이름을 음각으로 새긴것이다. 작품에 찍힌 글자부분이 희게 나타나므로 '백문'이라 한다. 아호를 새긴 '호인'은 양각으로써 글씨에 인주가 묻어 붉게 찍히므로' 주문'이라고도 한다. '두인''수인'이라 하며 작품의 오른쪽 위에 시작을 알리는 의미로 찍는 도장이다. 그 외에 좋아하는 글귀를 조각한 '사구인', 책의 보관을 위해 조각한 '수장인', 사람, , 물고기 등 동물모양을 전각한 '초형인'등이 있다.

 

2. 서각書刻

 서각이란 문자를 나무와 돌등에 칼을 이용하여 새기는 것으로 고도의 숙련된 기능과 장인정신이 있어야 하며 서화에 병칭될 만큼의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리조상의 얼과 혼이 서려 있는 전통예술이다.

서각의 종류를 몇 가지 분류로 나눠 살펴 보면, 양식에 따라 전통서각현대서각, 형식에 따라 환서각판서각투서각, 형상에 따라 구상반구상추상, 각법에 따라 양각음각음양각음평각, 재료에 따라 목서각석서각철서각토서각(테라코타)포리코트서각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조각과 서각의 차이점을 보면, 조각은 건축에, 서각은 서예에 뿌리를 두고 있고, 조각의 주체는 인체동물추상물 등이며 서각은 문자이다. 또한 조각은 사물의 모양표정 등을 중시하고 서각은 문자의 선질線質)과 획을 중시한다.

전통서각傳統書刻은 과거의 각자刻字기법으로 전승돼 온 것으로 서체를 새김에 있어 문자의 입체적인 조형미 보다는 필의筆意를 도의刀意로 옮기는 것을 더 중요시 했다. 반면 현대서각現代書刻은 기존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전통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위한 노력을 시도 개성과 독창성을 보여준다. 때문에 현대서각은 입체본래의 개념을 전제로 하는 서의 새로운 입체 예술이다. 서각은 문자를 매개로한 서예적인 것 이외에도 칼의 움직임에서 오는 조각적인 것과 색채 가미에 의한 회화적인 것, 그리고 다듬고 가공하는 데서 오는 공예적인 것등을 두루 갖춘 예술이다. 또한 옛 것을 익혀 현대의 감각과 기법으로 재창조함으로서 새로운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하고 있다. 활자의 발명 이전에는 주로 나무에 판각을 하여 책을 만들었으므로 서각은 우리의 문화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인쇄매체로서 뿐만 아니라 건축의 현판, 주련등에 이용 되면서 실로 광범위하게 기록의 역사와 함께 장식의 예술로 이어져 왔다.

 

. 글씨와 서예의 차이

  글씨를 쓰는 것은 실용에 목적이 있는 것이고, 서예는 사람들에게 예술을 감상하게 하는 것이다. 글씨 쓰는 것과 서예는 각각 실용성과 예술성의 특징을 공유하고 둘다 문자를 빌려 글씨를 쓰나 특성과 창조성이 다르다. 하나는 실용미를 추구하여 발전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예술미를 추구하여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 예술미의 일면은 먼저 문자의 조형과 규율을 흐트리지 않고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감정의 동태와 사상의 조화를 이루어 법을 타파하여 의를 얻게 한다. 그리고 자기의 감정을 펴내어 글자의 기세와 풍모로 하여금 예술미와 매력을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감화를 갖게 하는 것이다.

 

. 서예의 규율적 요소

  서예에는 행동의 준칙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붓 잡는 법, 팔을 운용하는 법, 붓을 운용하는 법, 먹을 사용하는 법, 글자를 구성하고 배치하는 법, 운치를 나타내는 법등이 있다.

  1. 필법筆法

글자의 점과 획을 그을때 붓을 움직이는 법이다. 이것은 붓을 잡는 '집필'과 붓을 움직이는 '용필'로 나뉘는데, '집필법'은 손가락을 사용하는 지법指法'단구법' '쌍구법' '오지집필법'이 있으며, 팔을 사용하는 완법腕法'침완법' '제완법' '현완법'이 있다. '용필'은 기필, 수필, 원필, 방필, 중봉, 측봉, 로봉, 장봉, 제안, 전절 등이 있다.

 

1-1. 단구법單鉤法

  엄지손가락과 식지食指:둘째손가락사이에 붓을 쥐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받쳐주며 나머지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하고, 붓대의 중간보다 아래를 쥐며 지면에 대하여 수직으로 하여야 하며, 엄지손가락과 식지는 앞으로 당기는데 이용하며, 가운데손가락은 미는데 사용한다. 평상시 연필을 쥐는 방법이다.

 

1-2. 쌍구법雙鉤法

  둘째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을 나란히 한 후 관절을 꺾어 붓의 오른쪽 위에 대고 손가락 사이를 벌려준다, 엄지는 붓의 왼쪽에서 둘째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 사이의 위치에 대고 힘있게 잡은후 안으로부터 받치며, 붓대의 중간쯤을 쥐고 잡은 붓은 수직이어야 한다. 이때 무명지無名指: 넷째손가락는 안쪽에 대어 밖으로 밀어주며 소지小指:다섯째손가락는 무명지 밑에 겹치듯 댄다.

 

1-3. 발등법撥登法

  다섯 손가락의 특징을 활용해서 집필하는 것으로, 특히 이 방법은 각 손가락의 역량이 고루 발휘된다는 의미에서 오지제력법五指齊力法이라고도 한다. 집필요령은 먼저 엄지와 식지의 관절을 꺾어서 붓대를 잡은 다음 중지는 식지에 붙여 나란히대고 무명지無名指와 소지小指는 붓대 안쪽에 대어준다. 이때, 다섯 손가락의 관절은 모두가 꺾이게 되며, 그래서 엄지와 식지가 이루는 공간은 둥글게 된다. 특히 엄지의 관절은 반드시 꺾여져야한다. 왜냐하면 이에따라 다른 손가락의 관절작용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기때문이다. 집필의 요체로서 허장실지虛掌實指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오지제력五指齊力으로 필관을 잡았을 때 손바닥 안에 달걀하나가 들어갈 만한 상태의 집필을 가리키는 것인데, 손바닥 안은 비고 손가락의 힘은 충실하다는 의미이다. 허장실지는 몸의 힘을 손끝에 모으는데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어떠한 집필법에 있어서도 이 원리만은 공통적인 것이 되어있다. 따라서 이 손가락의 작용이라는 것도 실은 손가락 그 자체의 힘이라기 보다 팔과 온몸에서 생기는 것이다.

 

1-4. 枕腕法침완법

  왼쪽 손을 붓을 잡은 오른쪽 손목에 받치고 쓰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팔의 힘이 필봉筆鋒까지 충분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어서 작은 글을 쓸 때 적용이 된다.

 

1-5. 提腕法제완법

  오른쪽 팔뚝을 책상에 대고 팔목 부분을 들어서 올리고 쓰는 방법이다. 이것은 작은 자와 중간정도의 크기의 글씨를 쓸 때 적용이 된다.

 

1-6. 懸腕法현완법

  팔을 완전히 들어 올리고 쓰는 방법이다. 이것은 팔이 사방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온몸의 힘이 손가락을 통해 붓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어서 아무리 큰 글자 라도 소화할 수가 있게 된다.

집필 할 때는, 일단 잡은 붓은 고쳐 잡지 말아야 하며 특히 붓을 잡은 손가락으로 붓대를 돌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운필은 팔이 행하는 것으로 어깨 힘의 가감이 자유스러워야 한다. 손목은 팔을 통해서 오는 상박부의 움직임에 따라서 동작을 하여야 하는데 자칫 팔이나 상박부는 움직이지 않고 손목만으로 붓을 움직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

 

1-7. 기필起筆과 수필收筆

  기필起筆이란 한 획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며, 획을 그을 때 반드시 역입을 하여 붓끝이 획밖으로 노출이 되지 않도록 하며, 수필收筆이란 한 획의 마무리를 하는 것으로 끝에 이르러서 그어 오던 쪽을 향해 회봉回鋒)시켜 수필收筆하는 것이다. 기필起筆과 수필收筆은 그 점획의 형상을 결정 지우는 중요한 관건이 되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1-8. 제필提筆과 돈필頓筆, 按筆

  서예는 한마디로 붓의 변화 과정이다. 곧 붓이 종이 위에서 움직일 때, :끌거나, 혹은 돈:누르는 것을 교체해 가며 진행된다. 이 원리를 인식하고, 와 돈의 방법에 주의한다는 것은 곧 필세筆勢가 영활한 기운을 띠게 되는데 필요한 것이다.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제하면 돈해야 하고, 한 다음에는 반드시 제)해야 하는 이 변화는 마음이 거느리는 바에 의해 대단히 빠른 가운데 팔의 운동을 거쳐 필봉筆鋒에 이르러야 한다.

 

1-9. 과 중

  점획의 경:가벼움과 중:무거움은 제와 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붓을 화선지에 닿게 함에 있어, 가볍게 하면 나타나는 점획이 가늘고, 무거우면 점획이 굵은 것은 당연하다. 경중輕重과 제안提按이 동일한 것 같은 착각이 들지도 모르나, 양자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곧 제안提按은 점획간의 기필起筆과 행필行筆)과 수필收筆에 있어서, 용력用力에 따라 조세粗細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고, 용필用筆의 경중輕重은 점획의 내적 변화뿐만 아니라 비첩碑帖의 풍격과 특징까지도 표현되는 것이다.

서예는 용필의 경중에 따라 각기 특징을 지니는 것이어서, 모든 작품에서 느낌도 달리 한다.

 

1-10. )과 절)

  ''이란 붓을 종이에 대고 둥글게 굴려 돌려서 모나거나 뿔이 나지 않는 필획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때 손가락으로 필관筆管을 굴리지 않아야 한다. )에 비해 ''은 방적方的점획을 만드는 용필법用筆法으로서 한 획의 중간에서 소위 '일필삼과一筆三過'라 하여, 관절의 작용으로 꺾는 것이 있기는 하나, 주로 한 획의 시작과 마무리 때의 방향을 바꾸는 데 쓰인다.

절필折筆의 방법은 필봉筆鋒이 왼쪽으로 가려면 먼저 오른쪽이,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려면 왼쪽이 먼저 닿아야 하며, 위로 가기 전에 아래를 먼저 대고, 아래로 쓰려면 위를 먼저 댄 다음에 쓰기 시작해야 하는 법으로, 이것이 곧 '역입逆入의 원칙'이다. 그러나 절필折筆의 중점은 눌렸다가 꺾는 데에 있다.

 

1-11. 과 원

  방필의 필획에는 모가 나 있고, 원필은 각이 나지 않는 둥근 형상의 필획을 말한다. 기본 점획의 주된 특징은 방이 아니면 원이고, 그렇지 않으면 방에 원을 겸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글씨는 분류의 원칙을 방과 원으로 구분한다.

 

1-12. 장봉藏鋒과 노봉露鋒

  '장봉藏鋒'이란 원필圓筆의 경우처럼 봉을 휩싸서 감추듯 기필起筆)하여 필획이 시작되는 곳과, 마무리되는 곳에 봉의 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장필藏筆)의 방법으로서 기필에는 역봉逆鋒, 수필에는 회봉回鋒을 한다. 이를 '역입도출逆入倒出'이라고 한다.

노봉露鋒'은 필법筆法에 있어서 장봉藏鋒과 반대 현상으로 지칭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봉中鋒과 편봉偏鋒과의 관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노봉露鋒은 장봉과는 달리, 서선의 방향대로 붓을 대어서 필봉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을 노봉 이라고 한다. 한 획을 쓸 때 붓끝이 밖으로 노출되게 하는 것인데, 글자와 글자가 연결되게 쓸때 노봉이 나타난다. 또한 노봉은 작은 글자나 행 초서를 쓸때 많이 나타나게 된다. 노봉으로 쓴 글씨는 점과 획에 붓끝이 노출되고, 노출된 붓끝은 두 현상을 보인다. 곧 붓끝이 점과 획의 정중간에서 부터 나오는 것과, 점과 획의 한편으로 치우쳐서 나오는 것이 있다. 전자는 중봉中鋒인 경우여서 원경圓勁하며, 후자는 편봉偏鋒이어서 편약한 것이니, 전자가 좋은 것임은 당연하다. 원경圓勁한 노봉은 삐침, 파임, 꺾임등 획에서 삐칠 때 쓰이는 것으로, 반드시 중봉(中鋒이라야 하며, 노봉露鋒이 아무리 첨세尖細)하더라도 편획이 되지 않아야 한다.

 

1-13. 중봉中鋒, 측봉側鋒, 편봉偏鋒

  중봉中鋒'은 정봉正鋒이라고도 한다. 중봉이란 행필行筆에 있어 필봉筆鋒이 획의 정중간을 점하고 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붓이 종이에 닿았을 때, 모든 털이 가지런히 펴진 다음 획이 가는 길의 정중간에서 필봉이 가도록 하는 것이 중봉中鋒이다.

모필은 동물의 털을 재료로 해서 원추체圓錐體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펴질 수 있고 모아질 수 있으며, 먹은 필첨筆尖을 따라 아래로 흐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중봉은 상하좌우로 고르게 스며, 퍼지고 호의 사면팔방이 모두 종이에 닿게 되어 원주형圓柱形의 필획을 이룬다.

측봉側鋒은 측)으로 세를 취한다는 뜻이다. 영자팔법永字八法에 점법은 측법이 일컬었음에 비추어 '측봉側鋒'은 곧 점법點法으로 기필(起筆하는 것이니 '중봉中鋒'이 장봉원필藏鋒圓筆이라면 '측봉側鋒'은 노봉방필露鋒方筆이다.

'편봉'은 점획의 한곁으로 필봉이 기울어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옆으로 획을 그을때 필봉이 상단이나 하단으로 치우쳐 가거나 아래로 그을 경우 왼쪽으로 치우쳐 그어졌다면 이것은 글씨를 쓴 것이 아니라 먹을 바른 것이된다. 그리고 수필에 회봉回鋒는 물론 되지 아니하려니와 호가 드러누은 그대로 들리고 만다.

편봉은 '병필病筆''패필敗筆'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병필과 패필이란 점과 획 상의 병폐를 말하는 것으로, 초학자 뿐 아니라 상당히 조예가 있는 서예가에게도 항상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서예가에 있을 때 병폐는 더욱 면하기 어렵다.

첫째 붓이 종이에 닿자마자 생각도 없이 점획을 써서는 안된다. 신중히 붓을 내리되, 낙필落筆한 다음에는 잠깐 쉬는 듯이 마음을 가라앉혀서 행필行筆해야 한다.

둘째, 한 획을 쓸 때마다 필력을 다해서 움직여야 한다. 가령 삐칠 경우라면 힘을 들인다고 해서 필봉을 누르자마자 그대로 내리 삐치거나 하면 안 된다. 너무 빨리 사납게 하면 필관이 옆으로 누워 내려오게 되는 나머지, 삐친 획의 하반이 끊겨지고, 갑자기 가늘게 변해서 삐친 끝이 길게 노출된다. 이 현상을 '허첨虛尖'이라고 한다.

 

2. 필력筆力

 붓을 움직여 획을 긋는 내재적인 힘을 말한다. 점과 획 사이, 획과 획 사이, 글자와 글자 사이, 그리고 행과 행사이의 상호호응 관계를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붓이 가지 않은 곳이라 할지라도 기세가 끊어져서는 안되며, 점과 획의 모양이 각각 다르다 할지라도 그 필세는 항상 혼연일치 되어야한다.

 

-3. 필의筆意

  글씨속에 표현된 작가의 감정과 취향을 가리킨다. 서예는 문자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법칙과 글씨를 쓰는 사람의 심미적 정취가 하나가 되어 사상감정 활동과 풍부한 상상 및 운필기교에 근거하여 서법의 조형이 각종의 동태를 드러나게 해서 지면에 생동하면서도 함축된 표정과 의취가 표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4. 묵법墨法

  서예에서 중요한 기법의 하나이며 여기에는 농묵濃墨·담묵淡墨·간묵幹墨·갈묵渴墨·습묵濕墨·고묵枯墨·창묵漲墨등이 있다. 이것은 글씨를 쓰는 사람과 서체 및 용도에 따라서 작품의 광채를 결정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옛 사람은 글씨를 쓸 때 대부분 진한 먹을 사용하였으나 묽은 먹을 사용한 사람도 많았다. 송대의 서예가 소동파는 진한 먹을 잘 사용하여 '농묵재상濃墨宰相'이라 칭하였으며 청대의 서예가 왕몽루王夢樓는 묽은 먹을 사용하여 당시에 '담묵탐화지목淡墨探花之目'이라는 명예를 누렸다. 현대에 있어서 일본에는 묽은 먹을 사용하는 서예가들이 많은데 이들의 시도하는 담묵의 표현 기법은 동양화의 먹색을 참고하여 촉촉한 것으로써 아름다움을 구하여 온아함과 세련됨을 나타내었고 구도의 경중을 충분히 이용하여 흑백대비의 예술효과를 이루면서 새롭고 아름다운 맛을 나타내었다. 물론 담묵을 예술적으로 잘 처리하기란 어려워 서예가의 예술적 소양과 기교를 바탕으로 대처해야 하며 꾸미거나 억지로 표현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성공한 서예가는 예술적 처리에 있어서 전후의 호응과 먹색의 윤택함과 운치를 맞추는데 매우 주의하였다. 훌륭한 작품들은 한번 먹을 묻혀서 몇자를 쓴 후 붓에 먹이 다하면 다시 먹을 찍어서 쓴 것을 분명히 알아 볼 수 있다. 한 폭의 작품에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먹은 몇차례 묻히는데 불과하지만 먹색의 변화는 끊임없어서 건조함과 습함, 진함과 묽음을 돋보이게 한다.

 

. 서예의 감상법

  서예의 심미관념審美觀念은 인격과 예술의 통일을 지향하는 전통적인 인문정신의 발현이며 시각예술에 속해 있으면서도 심상심학心相心學으로서의 특성을 지닌 동양 특유의 미적예술이다. 따라서 서예를 감상한다는 것은 사람의 사상, 정감, 취미, 심미안 등을 개발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서예는 회화와 같이 현실 중의 각종사물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예술이다. 그러나 서예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점과 획의 구성은 매우 특수한 예술언어와 리듬감을 가지고 있다.

서예에 있어서, 하나의 획으로 어떤 사물의 형상과 변화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사물의 형태와 동태적인 미감을 충분히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작가가 창작을 할 때 무한히 다양한 객관적 현실 가운데 아름다움을 받아들여, 점과 획 그리고 형체에 집중적으로 표현시킴으로써 작가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감정을 이에 충분히 발설하는 것이다.

서예작품이란 글자들이 모여서 행을 이루고, 들이 모여서 장을 이루면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점은 한 획의 규범이 되며, 한 자가 한 작품의 부분적인 미가 전체적인 미에 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체의 구성을 장법章法이라고 하는데 그림으로 말하자면 구도와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문자를 조화롭게 배열 또는 배자하여 하나의 완성된 문장을 꾸미는 것을 말하는데 이 뿐만이 아니라 최종적인 낙관을 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서예는 이미 정형화된 문자를 소재로 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보다는 모양뒤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필획에 중심을 두게 된다. 따라서 붓을 어떻게 움직여 어떠한 필획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필획의 질감이나 역감力感의 현상이 어떠한가에 의해 작품의 수준이 평가된다. 서예의 미는 모두가 역감力感을 바탕으로 해서 서예의 아름다움이 표현된다. 역감力感이 없으면 모든 글자는 피곤한 듯 늘어지고 필획에는 생기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역감중力感中의 역은 서예를 시각으로 감상할 때에 일종의 감수이며, 이것은 관념중의 힘이며 심리학의 범주에 속한다.

역감力感이란, 필력筆力· 골력· 근력筋力· 역도力度등을 말하는 것인데 글자에는 인체와 같이 뼈, , 힘줄, 피가 모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글씨란 사람의 인체조직과 같아서 4가지 모두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어져야 한다.

, 필획 중에서 힘을 나타낼 수있는 골격을 뜻함이고, 운필을 할 때 중봉으로 글씨가 이루어지게 하며 역봉을 할 때에는 절필을 하여 글씨에서 뼈대가 나타나는 듯하게 쓰는 방법이다.

, 먹물의 농담을 비유하여 선의 굵고 가늚, 즉 살찌고 마름을 말하는 것인데, 필봉에 함묵시키는 먹물의 양을 적당히 하여 용필을 해야 살이 알맞게 쪄보이는 서선을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먹물의 함묵량에 관계가 있는 것인데 먹물이 너무 많이 함묵되어도 적게 되어도 좋지 않다.

, 글자끼리나 획끼리는 기맥이 상통하도록 해야하는데 이것을 사람의 몸으로 보면 힘줄의 역할을 하는것으로 둔필할 때는 붓을 아주 정지하거나 거두지 않으면 안된다.

, 필획이 윤택하고 생기가 있어야 하므로 먹물의 신선함을 피에 비유한 것이다. 먹물은 글자쓰기에서 글자의 피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기있고 윤기있는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먹물의 농도 맞추기를 잘 하여야 한다.

행서나 초서는 한 글자만 보아서는 안된다. 이 글자와 저 글자 도는 이 줄과 저 줄을 보면서 그 속에 담겨진 필력·필세·필의·성기고 빽빽한 것·긴장되고 해이한 것·균형·서로의 획들이 어떻게 배합되었는지를 제대로 살펴야하며, 필묵이 있는 곳에서부터 없는 곳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살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종합하면 한 폭의 서예작품에는 반드시 글자와 글자, 행과 행 사이의 간격과 대소 획들을 적절히 배합시키고, 먹의 농담을 서로 어울리게 하고, 신축성을 고려하여 전체가 일맥상통하게 하여야만 진정한 예술효과가 발휘되는 것이다.

좋은작품에는 필법筆法·묵법墨法·장법章法·기운氣韻등 네 가지 요소가 반드시 구비되어야 한다. 특히 먹빛의 효능은 서예를 평가함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아무리 좋은 글씨를 썼다 하더라도 먹빛이 영롱치 않고 담백한 맛이 없다면 품격이 있는 작품으로 볼 수가 없다. 선현들은묵색판단墨色判斷〕′이라 하여 글씨를 쓰게 한 연후에 그 필세와 먹빛을 보고 그 사람의 길흉과 운명을 판단하였다고 하니 가히 그 중요성이 어떠한가를 짐작 할 수가 있다.

작품을 감상할 때는 다른 사람의 약점만을 들추지 말고 장점을 흡수하여야 한다. 간혹, 글꼴은 안중에도 없고 오자 찾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오자가 생겨서는 안되겠지만 그러한 것이 서예의 평가기준이 될 수는 없다. 서예는 읽는 예술이 아니라 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편견은 결코 예술평가의 바람직한 것이 될 수 없으며, 대충 보고 지나가는 것으로는 작품이 간직하고 있는 품격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드니 세심하게 살펴 보아야 한다.

 

. 서예 도구의 사용

  서예를 함에 있어 도구는 붓, , 벼루, 화전지 네가지로 간단하다,

이를 가리켜 문방사우 또는 문방사보라고 한다. 전문서예가나 서예를 배우려고 하는 초보자도 더 이상의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

  1.

  문헌에 의하면 붓을 처음 만든 사람은 몽염이라는 진나라 사람이다. 그러나 중국은대殷代에 이미 모필毛筆로 쓴 도기의 조각이 발견되므로써 몽염 이전 시대에도 붓의 형태를 지닌 것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붓은 서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서양의 그림붓은 평면적인데 반해 서예에 사용되는 붓은 정원正圓이다. 원추圓錐의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용력과 반작용력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 다양한 선질의 효과를 낼 수 있다.붓은길고 유연하며 얇은 화선지에 단번에 긋는 것으로 모든 것을 완성하기 때문에, 동양의 붓은 도구로서의 기능을 뛰어넘어 작가의 신경과 감각이 연장선상에 있어야 한다.

모필의 재료는 동물의 털을 이용한다. 주로 쓰이는 것은 양털양호羊毫토끼털자호紫毫이며, 말갈기털종모鬃毛늑대털낭호狼毫닭털계호鷄毫쥐수염서수鼠鬚과 다른 짐승털을 겸한것겸호兼毫등이 있다.

붓대는 대부분 대나무을 사용하며 붓의 굵기에 따라 극대필부터 미세필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붓털의 길이에 따라서는 장봉, 중봉 ,단봉으로 나누어진다.

붓의 강한 정도에 따라서는 강호强豪-털의 성질이 강한 붓, 유호柔豪-털이 부드러운 것, 겸호兼豪-강한 털을 붓의 가운데에 넣고 두 종류 이상의 털을 섞어서 만든 것로 나눈다. 초보자에게는 겸호가가장적합하다.

붓을 선택 할때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면 좋은 붓이라 할 수있다.

-.: 붓끝주위가 풍만하고 원추상태이며, 편평하지 않고 여위지 않 은 것.

-.: 붓끝을 합쳐보면 뽀쪽하여 뭉퉁하지 않는것.

-.: 붓끝을 평평하게 편후 끝의 털이 가지런 한 것. -.: 붓끝에 탄력이 있어 붓끝이 펴진 후에도 잘 모아지고, 붓털이 굽었다가도 쉽게 원래대로 곧게 회복되는 것.

 

2. 화선지

  오늘날 종이에 가장 가까운 것은 B.C.4000년경 이집트의 나일강변에서 자라는 파피루스papyrus였다. 고대 이집트 사람은 나일강변에 야생하는 파피루스라는 갈대와 비슷한 식물의 줄기를 얇게 저며서 가로·세로로 맞추어 놓고 끈기가 있는 액체를 발라서 강하게 압착시킨 후, 잘 건조시켜 기록하는 재료로 사용하였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종이를 발명한 사람은 AD 105년 중국 후한의 채륜이라 하였다. 채륜이 발명한 제지술은 나무껍질· 마설· 넝마등을 돌 절구통에 짓이겨 물을 이용하여 종이를 초조하는 원리였는데, 이것은 현대의 초지법抄紙法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후 전한前漢의 한 무덤에서 종이가 출토됨으로써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으며 따라서 채륜은 종이를 개량했던 사람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간: 대나무 혹은 나무조각을 잘 다듬어서 , 표면에 나무즙으로 기록하여 그 조각들을 가죽이나 끈으로 연결한 것)과 독이 많이 사용되었고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붓이 발명되면서부터 비단이 함께 사용되었다.

서화용으로 쓰이는 종이는 크게 나누어 선지계宣紙系와 당지계唐紙系로 나누어진다. 선지는 지질이 무른편이며 습기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옥판전 玉版箋,라문전羅文箋,백지白紙등이 선지에 속한다. 당지는 원래 중국제 종이 전반을 가르 키는 것이었으나 현재는 죽을 원료로 하는 종이를 지칭하고 있다. 그 종류에는 일번당지一番唐紙,이번당지二番唐紙,백당지白唐紙등이 있으며 이 외의 가공지로서 납전蠟箋, 채전彩箋문양전(文樣箋,, 주금전酒金箋, 문당전文唐箋등이 있다. 또 한 청조淸朝시대의 종이로서 지금까지 감상의 대상으로 애장되는 고지(古紙가 있는데 징심당지澄心唐紙,방금율산장경지倣金栗山藏經紙같은 것이 있다.

좋은 화선지의 선택 요령은, 거칠지 않고 매끄러우며 앞뒤의 구분이 정확히 되는 것과 흡수, 윤갈이 적당히 되어서 필법이 잘 나타나는 것, 번지지 않고 발색이 좋고 먹빛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것, 너무 얇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 보존성을 지닌 것등이다. 보관할 때는 습기가 없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어야 벌레나 곰팡이로 인해 종이가 파손되는 것을 방지 할수 있다.

한국의 종이는 지질이 좋고 질기기는 하나 서화에는 적당하지 않아 주로 중국산 종이가 사용되었다.

  3. 벼루

  벼루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묵서墨書의 흔적으로 미루어 그때 이미 벼루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시황제때인 것으로 추정되는 원판석연圓板石硯이 발견되면서 그것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벼루로 알려져있다.

벼루에서 먹을 가는 부분은 연당硯堂·연홍硯泓이라고 하고, 먹물이 모이는 오목한 곳은 묵지墨池또는 연지硯池라고 한다. 모양은 원형과 4각형에서 부터 여러가지 각형과 사물의 형태를 본떠 만든 금연琴硯·풍자연風字硯등이 있으며, 크기도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하다. 재료로는 돌· · 수정· 도자기· · 금동· · 대나무· 조개껍질등이 사용되나 대개는 돌을 사용한다. 좋은 벼루는 먹이 잘 갈리고 고유의 묵색이 잘 나타나야 한다. 연당의 표면에는 숫돌과 같은 꺼끌꺼끌한 미세한 봉망鋒芒이 있어 여기에 물을 붓고 먹을 마찰시킴으로써 먹물이 생긴다. 따라서 봉망의 강도가 알맞아야 한다. 봉망이 약하면 먹이 잘 갈리지 않고 반대로 강하기만 하면 잘 갈리기는 하나 먹빛이 좋지 않다. 벼루는 실용의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는 좋은 재질의 것을 첫째 요건으로 하지만 먹을 가는 도구라는 차원을 넘어 돌의 빛깔이라든가 무늬의 아름다움을 취하고 나아가 연면硯面을 미적 의장으로 조각 장식하여 문방사우의 하나로서 감상의 대상으로 여겨 왔다. 인류가 벼루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은대殷代의 갑골甲骨에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쓴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이 어떠한 형태이든지 먹물을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벼루가 제작된 것은 한대부터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가야시대에 만들어진 도연陶硯인데, 원형의 연면에 연지가 돌려져 있고 5개의 다리가 있다. 중국에서는 당대唐代)부터 단계端溪에서 나는 것이 유명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남포연藍浦硯과 위원연渭原硯이 가장 유명하다.

  4.

  후한(後漢)의 위탄(韋誕)이 발명했다는 설이 있으나, 은대(殷代)의 갑골(甲骨) 가운데 검거나 붉은 액체를 사용한 것이 출토되어 BC 2500년 이전에 먹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상으로도 위탄 이전의 책에서 먹에 관한 기록이 발견된다. 이때 사용한 먹은 석묵(石墨)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지금과 같이 탄소의 분말을 이용하여 만든 것은 한대 이후부터이다.

먹은 위진대魏晋代에 옻과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둥근 형태의 묵환墨丸에서 비롯 되었으며 종류로는 식물성 기름의 그을음으로 만든 유연묵油烟墨, 소나무 그을음과 사슴의 아교로 만든 송연묵松烟墨, 유연에 사향을 섞어 금박을 입힌 용향묵龍香墨, 먹똥과 응어리가 안 생긴다는 청묵淸墨등이 있으며, 지금에 와서는 화학원료인 카본블랙을 사용하여 만든 양연묵洋煙墨이 있다.

먹의 형태는 초기에는 둥글거나 원주형圓柱形이었으며 점차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먹 위에 그림이나 문자를 새겨 장식한 것들도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양덕楊德과 해주海州의 먹이 예로부터 가장 유명하다. 먹을 갈때는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사용후에는 벼루에 먹물을 남겨 두지 않는다. 하루 자고난 먹은 먹찌꺼기와 거품이 섞여 있어서 글씨를 쓰는데 좋지 않다. 이밖에 먹의 농도와 양은 쓰는 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며, 털이 센 붓은 일반적으로 좀 진한 것이 좋고, 털이 연한 붓의 경우에 먹이 진하면 글씨를 쓰기가 어려워진다. 해서를 쓸 때는 조금 진한게 좋고, ·초서의 경우는 먹이 좀 묽은 듯 하여야 흐름이 원활해진다.

먹을 고를 때는 먹빛과 향기가 좋아야하며, 손으로 두들겨 보아 소리가 맑은 것을 고른다. 판매되는 먹물은 가급적 삼가 하는 것이 좋다. 장기간 사용시 방부제로 인해 시력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고 붓의 수명도 짧아진다. 사용하고 남은 먹물은 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2~3일은 사용 할 수 있으나 가급적 쓸 만큼만 갈아서 바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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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봉(筆鋒)이란

붓털 중에서 뾰쪽하고 약간 노르스름한 빛을 띠는 부분을 필봉(筆鋒)이라고 한다.

이외에 글자의 첫 시작 부분도 필봉이라고 한다.

 

 붓을 움직일 때 붓의 뾰쪽한 부분을 글자의 중심에 오게 하여
글씨를 쓰는것을 중봉(中鋒)이라 하고,붓 끝을 감추어 모서리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을 장봉(章鋒)이라고 한다.


만약 붓 끝이 한 쪽으로 치우쳐진 상태로 글씨를 쓰게 되면 편봉(偏鋒)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간주한 모필의 탄력성은 필봉에 의하여 좌우된다.


필봉이 길면 길수록 탄력성도 풍부하고 먹의 함유량도 많아서 글씨를 쓸 대점과 획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붓을 움직일 때, 한 번 당기면 곧바로 되고 한 번 누르면 붓이 엎어지고 점과 획을 꺾고 누르고 글자사이의 종과 획을 교차시키며 서로 연결하게 하는 것도 모두 필봉의 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서예적인 측변으로 볼 때 용필(用筆)은 바로 필봉에 달려 있다.

 

 붓 끝을 바로 하거나, 기울게 하거나, 거꾸로 하거나, 순하게 하거나, 무겁게 하거나, 가볍게 하거나, 실(實)하게 하거나, 허(虛)하게 하거나 등은 모두 필봉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약 중봉으로 글씨를 쓰게 되면 무겁고 가라앉은 느낌이 나며, 장봉으로 글씨를 쓰면 온후하고 중후한 맛이 나면서 뼈와 근육을 감출 수 있다.


역봉(逆鋒)으로 글씨를 쓰면 점과 획을 웅건하고 육중하게 할 수 있고, 노봉(露鋒)으로 글씨를 쓰면 정신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으며, 측봉(側 鋒)으로 글씨를 쓰면 험하고 기이한 맛을 나타낼 수 있다.


붓을 어떻게 쓰나냐에 따라 위와 같은 효과가 나오므로 각자 개성과 특성에 맞는 필법을 선택하여 쓰면 된다.


초학자들이 글 씨를 쓸 떼에는 하앙 붓 끝에 힘을 주어 종이를 뚫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만일 힘을 제대로 주지 않고 글씨를 쓰면 점과 획이 미끄러져 판에 박힌 듯한 글자가 나오게 된다.


중봉(中鋒)이란 무엇인가?

붓대를 곧바로 하고 붓 끝을 가운데로 오게 하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중봉(中鋒)이라고 한다.

중봉으로 글씨를 쓰면 붓 끝이 항상 점과 획의 중앙에 위차할 수 있게 된다.


<서벌(書 筏)>에서도 "중봉을 운용할 수 있으며 퇴필로도 획을 둥글게 할수있고, 중봉을 하지 못하면
좋은 붓으로도 졸렬한 글씨를 쓰게 되니 글씨의 좋고 나쁨은 바로 중봉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중봉이 서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만, 현재 서법에서도 중봉은 꼭 지켜야할 중요한 사항이다.


중봉으로 글씨를 쓰면 붓을 일으키고, 엎어지게 하고, 누르고, 당기고, 보내는 변화를 쉽게 할수 있어 거기에 따라 나오는 점과 획에 다양한 변화를 창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강하고, 부드럽고, 굽고, 곧바로 된 획도 자유자재로 구사할수 있으며 가로 세로의 획과 둥근획도 마음 먹은대로 표현 할수가 있다.


만약 팔을 붓대에 기울인다면 중봉을 운용하는데에 지장이 있어 평평한 획을 그을 때 붓 끝이 글자의 중심에 오지 않게 된다.

 

 중봉으로 붓을 쓰려면 먼저 붓 끝이 중앙에 위치하도록 자세와 중심을 똑바로 잡아야 한다. 


옛사람들의 경험을 근거로 살펴 보면, 팔목은 세우고 붓끝은 똑바로하여 붓의 사면에 힘이 균등히 가게하여 항상 글자의 중앙에 붓 끝이 오도록 한다.


붓을 움직임에 있어서

머무를 때에는 사로잡는 듯하게,


나갈 때는 내보내는 듯하게,


거둘 때에는 긴장을 하는 듯하게,


넓힐 때에는 열어주는 듯하게 ,


누를 때에는 내리는 듯하게,


당길 때에는 일어서는 듯하게 하면


붓이 왕래하는 사이에도 붓 끝은 항상 스스로 제자리 에 돌아와 중봉을 유지할 수가 있다.


중봉은 용필(用筆)의 관건이며 붓이 똑바로 서야만 골(骨)이 서 있게 되며 획이 풍부하게 되어 정신과 풍채가 비약할 수 있다.


서예는 획의 변화를 중요시 하는데 중봉을 유지하지 못하면 어떠한 변화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초보자는 반드시 중봉을 유지하면서 글씨를 쓰는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측봉(側鋒)이란 무엇인가?

측봉(측봉)과 정봉(정봉)은 서로 반대되는 말로 붓을 움직이는 일종의 방법과 형식을 말한다.

측봉에 대해서 옛사람들이 많이 언급하였지만 그의 성질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주화갱(朱和羹)은 <임지심해(臨池心解)>에서 "정봉은 힘을 취하고 측봉은 연미함을 취한다.


왕희지가 쓴 <난정서(蘭亭敍)>에서 연미함을 취할 때에는 측봉을 사용하였다. 내가 가을철에 독수리가 토끼를 잡는 것을 보았는데 먼저 공중을 빙빙 돌다가 한쪽 날 개를 접으면서 뒤집듯이 쏜살같이 내려와 토끼를 잡는다.


이것을 보고 글씨의 경지를 깨달았는데 붓을 똑바로 잡고 곧장 내려오는 형세로 글씨를 쓰면 연미한 맛을 얻을 수가 없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측봉이 용필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풍무(馮武)는 <서법정전(書法正傳)>에서 "지금 측봉으로 연미함을 취한다는 것은 모두 이단이다.


글씨를 배울때 사악한 외도를 취해서는 종신토록 이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게 되니 경계하고 또 경계하여야 된다."라고 하였다.


풍무(馮武)는 이와 같이 측봉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하였으며 심지어는 사악한 이단이라고까지 하였다.


이렇게 상반된 견해를 갖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측봉에 대한 이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것을 간단히 말하면 측봉과 편봉을 같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인데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일로 편봉이 절대로 측봉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른바 편봉이라는 것은 붓을 움직일 때 붓대를 비스듬히 하여 필봉(筆鋒)을 한쪽으로 가게 하고 붓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시켜 한쪽은 매끄럽고 한쪽은 톱니바국처럼 나게 하는 효과를 꾀하는 것이다.


먹물이 종이에 제대로 침투하지 않기 때문에 한쪽 면만 평평하고 나머지는 종이 위에 뜬 상태가 되므로 운필(運筆)에서 제일 꺼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퇴필(退 筆)이라고도 한다.


측봉에 대하여 <영자팔법(永字八法)>에서는 "기울인즉 붓을 평평하게 할 수는 없다.


기울일 때에는 마땅히 오른쪽으로 향하게 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붓을 오른쪽으로 향하게 하니 이는 기울어진 형세를 취한다는 뜻이 된다.


측봉으로 붓을 움직이면 과도하게 획을 돌릴 때 누운 붓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중봉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만약 측봉으로 말하면 점과 같은 획은 모두 측법(側法)으로 쓰는 것이다.


심지어 '天·運·拘'와 같은 글자에서 삐침과 갈고리와 같은 획도 모두 측법에 속한다.


이렇게 붓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쓰면 물소뿔과 같이 날카롭고 단단한 획을 얻을 수 있으며 정신과 풍채가 밖으로 드러나는 까닭에 점과 획을 강조할 때에는 흔히 이러한 법을 사용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측봉과 정봉은 각기 다른 장점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특성을 보완하여 서예의 오묘한 맛을 나타 내여야 한다.


회봉(回鋒)이란 무엇인가?

회봉(回鋒)이란 붓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점과 획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오던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말한다.

회봉은 점, 가로획, 세로획, 삐침 등의 모든 획에 적용되는 것으로 붓 끝을 버리지 않고 오던 방향을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한 일(一)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붓을 거두는 곳에 이르면 조금씩 붓을 오른쪽 위로 향하게 하여 다시 한번 오른쪽을 가볍게 누른 뒤에 중간을 향하여 오던 방향으로 붓을 진행시켜 멈춘다.


세로획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붓을 거두는 곳에 이르면 왼쪽 위로 향하게 하여 가볍게 한번 들어서 다시 중간을 향하여 오던 방향으로 붓을 진행시켜 멈춘다.


회봉은 붓을 움직이는 작용으로서 점과 획을 원만하고 안온하게 가라앉혀 주면서 힘줄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여 획을 풍만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회봉은 점과 획을 오던 방향으로 붓을 향하게 하는 것으로 조금도 번거롭지 않은 일이다.


초학자가 처음 해서를 임모(臨摹)할 때 회봉의 법칙을 지키지 않으면 점과 획이 원만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글씨도 안온하고 장중한 맛을 나타내기 어렵다.

 

그러므로 회봉은 초학자가 꼭 지켜야 할 사항인것이다.


회봉을 할 때 주의할 점은 붓을 움직이는 속도와 경중이다.


붓을 너무 빨리 움직이면 글씨가 가볍게 되쉬우니 마땅히 가볍고도 정성을 들여 장중한 맛이 나게 하여 한다.


절봉(折鋒)이란 무엇인가?

절봉(折鋒)은 역봉(逆鋒)이라고도 하며 붓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기필(起筆)할 때 필봉(筆鋒)을 거꾸로 하여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절봉은 기필할때와 글자 한 자에서 오른쪽 획을 시작할 때 흔히 사용한다.


가로획을 그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는데 글씨를 쓸때는 먼저 거꾸로 붓을 위로 향하게 한 다음 기필의 장점에 이르러서는 아래로 향하여 한 번 눌러준 다음 다시 오른쪽을 향하여 나아간다.


세로로 내려 긋는 획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데 글씨를 쓸 때는 먼저 거꾸로 위를 향하게 한 다음 기필의 정점에 이르면 왼족 아래로 향하여 붓을 한번 눌러준 다음 다시 아래로 향하여 나아간다.


절봉은 글씨의 정신이 많이 나타나 노봉(露鋒)에 비하여 획이 육중하고 필력감도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초학자들이 임모(臨摹)를 하거나 해서(諧書)를 쓸 때에는 곡 이방법을 준수하여야 한다.


만호제력(萬毫齊力)이란 무엇인가?

글씨를 쓸 때에 모든 붓털이 힘을 골고루 발휘하는 것을 만호제력(萬毫齊力)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여야만 모든 붓털이 힘을 골고루 발휘할 수 있는가?


먼저 붓이 손가락 가운데 있으면서 손가락의 간격은 조밀하게하여 그것의 힘이 필봉(筆鋒)에 직접 전달되야 한다.


그리고 진일보하여 팔의 힘과 어깨의 힘이 직접 붓 끝에까지 전달할 수 있으면 만호제력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만 팔의 힘과 어깨의 힘이 직접 붓 끝에까지 전달될 수 있는가?


팔과 손가락을 긴밀하게 하여 붓을 움직이지 않아야 하며 어깨도 움직이지 말아야 된다.


그런 다음 팔꿈치가 책상에 방해를 받지 말아야 하며 이때 팔은 반드시 허공에 있어야만 붓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면 붓에는 완전히 팔의 힘이 전달되어진다.

 

또한 어깨의 힘과 손가락은 긴밀하게 하여 붓을 움직이지 않고 팔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팔과 팔꿈치가 평행되게 하면 붓에는 자연히 어깨의 힘이 전달되게 된다.

 

 

너무 강하게 하면 팔의 위치가 팔꿈치보다 높아져 힘이 어깨에 그대로 남게 된다. 또한 힘을 적게 쓰면 반대로 팔꿈치의 위치가 팔보다 높게 되어 힘을 붓에 쏟아붓는 형상이 된다.


여기서 아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서 힘을 붓 끝에 전달시켜 만호제력을 이룩하느냐에 있다.


이에 대한 관건은 바로 글씨를 쓰는 사람의 운필의 기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오랜 숙련을 통하여 운필의 기교를 습득하면 자연히 힘을 붓 끝에 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한낱 탁상공론에 불과할 따름이다.


역입평출(逆入平出)이란 무엇인가?

역입평출(逆入平出)이란 운필의 한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역입(逆入)은 낙필(落筆)을 할때 필봉(筆鋒)을 나아가려는 반대 방향으로 하여 종이에 대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만일 왼쪽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에는 먼저 오른쪽으로 획을 꺾고, 오른쪽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에는 먼저 왼쪽으로 획을 꺾고,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때에는 먼저 위쪽으로 획을 꺾어 장봉(藏鋒)의 형세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평출(平出)은 붓의 운행에 따라 붓털이 쫙 펴져 나아가다 공중에서 붓을 거두는 형세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붓털이 종이 위에서 펴져 있을때 붓의 중심은 항상 획의 가운데에 있어야 하는데 포세신(包世臣)은 이것을 '중선(中線)'이라고 하였다.


이런 상태가 되면 모든 털이 힘을 골고루 발휘할 수가 있어 필세는 굳건하고 험악한 형태를 나타낼 수가 있게 된다.

역입평출은 좁은 의미로 말하면 예서(隸書)의 가로획을 말하는 것으로 처음 시작할 때에는 장봉으로 하고 끝날 때에는 붓을 거두지 않음으로써 누에의 머리(蠶頭)와 제비의 꼬리(燕尾) 형태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초학자들이 만일 다른 서체에서도 역입만 하고 회봉(回鋒)을 지키지 않는다면 점과 획이 힘이 없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

평출을 다른 서체에 적용시키면 마치 붓을 거두어 들이지 않는 듯한다.


획을 운행하는 기본 법칙에는 모든 점과 획을 막론하고 일단 가서는 반드시 붓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 원칙이다.


행서나 초서도 마찬가지나 자세하게 나타나지 아니할 따름이다.


따라서 평출에는 공중에서 붓을 거두어 들이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붓은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뜻은 이르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절대로 평출에는 붓을거두어 들이지 않는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장두획미(藏頭 尾)란 무엇인가?

장두획미(藏頭 尾)란 용필(用筆)의 한 방법을 말한다.


채옹(蔡邕)은 <구세(九勢)>에서 "장두(藏頭)란 붓을 둥글게 하여 종이에 대는 것으로 붓의 중심이 항상 획의 가운데 있게 하는 것이다.

 

획미( 尾)란 점과 획이 다하는 곳에서 힘있게 거두어 들이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장두획미는 붓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원래는 전서(篆書)에서 나왔으며 후인들이 이법을 따르게 되었다.


옛사람도 대부분 이것을 인정하였으니 만약 뼈와 힘줄이 드러나게 되면 병기운이 나타나게 되고, 붓을 움직일 때 곧바로 들어가서 곧바로 나오면 힘이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필력이 점과 획속에 있어야만 비로소 풍채와 정신이 살아난다는 말이다.


장두획미의 특징은 필봉을 안온하게 하는데 있다.


왕희지는 <서론(書論)>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힘줄은 존재하나 붓자국은 감추어야 한다.


그리고 자취는 없애고 실마리는 숨겨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의 점에도 항상 붓자국을 감춰야 하며 가로획을 그을 때에는 끝에서 붓을 거두어 들이지 않으면 안되며, 세로획을 내려 그을 때에도 세우되 응축히키지 않으면 안된다.


매번 하나의 획을 그을 때에도 항상 세 번 붓을 꺾으며 점과 획에서 힘줄은 존재하나 뼈를 감추고 붓자국이 밖으로 드러나게 해서는 안된다.


무수불축(無垂不縮)이란 무엇인가?

무수불축(無垂不縮)이란 용필(用筆)의 한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방법의 중요한 의미는 붓을 움직일 때에는 반드시 세워서 응축시켜 위아래가 호응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로획을 내려 그을때 이미 위로 가서는 다시 내려오다 중간에 이르러서 획을 세우면 머리 부분이 둥글게 된다.


그 운필방법으로 필봉(筆鋒)을 거꾸로 하여 위로 향하게 한 다음 기필(起筆)의 정점에 이르면 왼쪽 아래로 가면서 가볍게 한 번 누른 다음 다시 아래로 운행한 뒤에 붓을 돌려 위로 향하게 하여 붓을 거둔다.


이때 세로획의 꼬리는 마치 이슬이 구슬처럼 매달린 형상이 되어야 한다.


무수불축이란 송(宋)나라 미원장(米元章)이 말한 것으로 그 의미는 세로획에 대하여 국한하였지만 어떤 획에도 이를 적용시킬 수 있다.


하나의 점과 획에도 반드시 세번의 꺾어짐이 있어야 하니 이러한 법칙과 무수불축은 서로 일맥상통한 다는것과. 이것은 또한 어떠한 획도 반드시 나아가서는 거두어 들어야 하고, 내려그을 때에는 응축됨이 있어야 한다.


 만일 이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게 되면 점과 획은 판에 박힌 듯하여 생명이 없고 죽은 글씨가 되어 정신과 자태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무수불툭의 서법은 붓을 운행함에 있어서 꼭 지켜야 할 기본 원리로 초학자들이 명심해야 한다.


무왕불수(無往不收)란 무엇인가?

무왕불수(無往不收)는 붓을 운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붓을 움직일 때 붓 끝을 반드시 감추어서나가며 나아갔다가는 다시돌아오게 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가로획을 그을 때 평평하게 지나가서는 다시돌아와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글씨를 씀에 붓끝을 거꾸로 들어간 뒤에 종이에 대고는 붓털을 오른쪽으로 서서히 진행시키다 급히 돌아오게한다.


이것은 글씨를 쓸 때 지나간 자국을 남겨 곧바로 나아가는 것을 방지하고 회봉(回鋒)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무왕불수는 송나라 미원장이 말한 것으로 '무수불축(無垂不縮)'과 서로 일맥상통하는 이론이다.


그런데 이것을 둘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유는 이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무왕불수는 무수불축과 마찬가지로 꼭 가로획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점과 획은 반드시 무왕불수와 무수불축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점과 획을 그으면 글씨가 온화하고 무겁게 가라앉아 뼈와 근육이 풍만해진다.


무왕불수에는 실제로 붓을 거두는 방법(實收)과 공중에서 붓을 거두는 방법(空收)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목적과 의의는 서로 같은 것이다.


실제로 붓을 거두는 방법이란 종이 위에서 쉽게 붓의 흔적을 찾아볼수 있는 것을 말하고 공중에서 붓을 거두는 방법이란 종이 위에서 붓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자세히 감상하면 붓을 거둔 필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반드시 필력이 의도하는 대로 따라와 주어야 한다.


이상을 종합하여 말하면 무왕불수나 무수불축은 초학자가 반드시 깨달아 준수해야 할 방법으로 그냥 붓 끝을 평평하게만 써서 다시 돌아오지 않게 해서는 안된다.


잠두연미(蠶頭燕尾)란 무엇인가?

잠두연미(蠶頭燕尾)란 필획의 특징을 형용한 용어로 일반적으로 예서(隸書)의 가로획과 삐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예서의 가로획에서 첫 부분은 누에머리(蠶頭), 끝부분은 제비꼬리(燕尾) 모양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법상에 있어서 가로획의 첫 부분을 지긋이 눌러 누에머리 모양을 만들고 파임에서 붓을 거둘 때 회봉(回鋒)을 한 다음 다시 가닥을 나눠 끝까지 함으로써 제비꼬리와 같은 모양을 만드는 것도 잠두연미라고 한다.


잠두연미의 특징은 날아 움직이는 기세를 취하는 것으로 예서의 획을 표현하기에 적당하다.


예를 들어 가로획에서 먼저 오른쪽으로 붓을 일으킨 다음 왼쪽으로 향하여 나아가다 왼쪽 실마리 부분에서 다시 왼쪽으로 조금 경사를 기울여 내려가다 오른쪽 실마리 부분에서 한 번 누른 다음 필봉(筆鋒)을 펴서 다시 위를 향하여 몰아쳐 나아간다.

 

 이와 같이 하여 형성된 가로획은 기복이 있으며 파도가 치는 듯한데 이것을 이른바 잠두연미라고 한다.


물론 이런 종류의 필획은 예서에서 뿐만 아니라 '한간(漢簡)'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어떤 이는 안진경(顔眞卿)의 해서(楷書)에도 이와 유사한 필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초학자들은 예서를 쓰지 않고 이러한 법을 흉내내서는 안된다.


현침수로(懸針垂露)란 무엇인가?

현침수로(懸針垂露)란 서로 다른 세로획을 말하는 것으로, 세로획의 끝 부분이 침이 매달린 듯한 느낌이 들도록 뾰족하게 뺀 것을 현침(懸針)이라 한다.


여기에 비하여 수로(垂露)는 붓 끝을 뾰쪽하게 하지 않고 둥글게 하여 마치 이슬이 매달려 있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필법을말한다.

 

이외에 전서(篆書)에서는 '현침전(懸針篆)'또는 '수로전(垂露篆)'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이양빙(李陽氷)은 <한림비론(翰林秘論)>에서 현침수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현침(懸針)이란 필봉(筆鋒)을 먼저 펴고 붓대를 형세에 따라 진행시키다 갑자기 긴급하게 움직이면 붓털은 껄끄럽게 진행하여 마치 송곳으로 돌에 글씨를 쓰는 듯하게 된다.


또한 <금경(禁經)>에서는 마치 긴 송곳을 땅에 댄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세로획에서는 빼는 획과 머무르는 획을 잘 결정하여야 한다.


왕희지도 현침수로는 체제상 어려운 획이라고 하였으며 위부인(衛夫人)은 오래된 마른 등나무와 같다고 하였다.


<임지결(臨池訣)>에서는 현침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을 <난정서(蘭亭敍)>에서는 년(年)자라고 하였다.


장경립(張敬立)은 갑(甲)자의 가운데 획은 마땅히 버리듯이 곧바로 빼어야 하며 사(事)자의 가운데 획은 곧바로 내려오다 갈고리를 해야 함으로 멈춰서는 안된다."


또한 같은 책에서 수로(垂露)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필봉과 붓대를 가지런히 내려오다가 붓대에 힘을 가하여 필봉을 응축시킨다.


그런후에 붓을 세워 힘을 최대한 주어 필봉이 머무르게 되면 거둘 준비를 한다.


이것을 둔필(둔筆)이라고도 하며 붓 꺾는 것을 제일 중요시여긴다.


왕희지는 봄에 죽순이 돋아나는 형상과 같다고 하였다. 위부인은 이것을 옥로(玉露)라고도 하는데 전서(篆書)에서 출발하였으며 옥(玉)은 옛날에 귀한 비녀를 만들 때 쓰였던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현침과 수로에 대하여서는 위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으므로 더 이상의 부언 설명은 하지 않기로 하겠다.


후학자들은 반드시 분명하고도 자세하게 이것을 알아 세로획을 그을때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올바르게 선택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침은 '甲·中·年'등에서 가운데 획을 말하는 것이고, 수로의 획은 '使·仁·博'등에서 왼쪽 변의 세로획을 말하는 것이다.


일파삼절(一波三折)이란 무엇인가?

일파삼절(一波三折)이란 붓을 사용하는 한 방법이다. 파(波)는 서법에서 파임을 말하며 절(折)은 필봉(筆鋒)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필법의 생동감과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서법 중에서도 이 일파삼절은 중요한 과제로 강조되어 왔다.


송익(宋翼)이 글씨를 배울 때 점과 획이 판에 박은 듯하여 생기가 없자 그의 삼촌인 종요(鐘繇)가 이것을 엄격하게 비판하였다.

 

후에 송익은 마음을 가라앉혀 이러한 잘못을 고쳐 매번 파임을 할 때마다 일파삼절로 획을 표현하였고,하나의 점을 찍을 때마다 필봉을 감추어 나아가 마침내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초학자들은 점과 획을 할 때에는 변화와 생동감이 나도록 일파삼절의 법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만약 가로획을 그을 때 그대로 나아가기만 하여 돌아오지 않고, 세로획을 물을 내뿜듯이 죽 내려긋기만 하고, 파임을 멈춤이 없이 그대로획을 뺀다면 글씨는 판에 박은듯하여 생동감이 없게 된다.


점과 획을 나타낼 때에는 곧은 것도 있고 굽은 것도 있어 정신과 풍채가 날고 움직이는 듯해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붓을 움직임에 빠르고 천천히 하고, 굽거나 곧게 하고, 필봉을 감추거나 나타나게 하고, 누르고 멈추고 꺾고 둥글게 하여야 하고, 가볍게 혹은 무겁게 하여 다양한 변화를 주어야만 생동감이 나타나게 된다.


 

출처 : 심재 서예연구원
글쓴이 : 동초 박복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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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橫(평횡)

 

 

凸橫(철횡)

 

 

腰細橫

(요세횡)

   

 

直竪(직수)

 

 

下尖竪

(하첨수)

 

 

斜鱉(사별)

 

 

弧鱉(호별)

 

 

縱波(종파)

 

 

橫波(횡파)

 

 

竪鉤(수구)

 

 

右彎鉤

(우만구)

 

 

斜鉤(사구)

 

 

橫折鉤

(횡절구)

 

 

橫折右斜鉤
(횡절우사구)

 

 

竪彎鉤

(수만구)

 

 

弧鉤(호구)

 

 

橫鉤(횡구)

 

 

右向逃

(우향도)

 

 

右上逃

(우상도)

 

 

上向挑

(상향도)

 

 

側點(측점)

 

 

直點(직점)

 

 

左右點

(좌우점)

 

 

橫四點

(횡사점)

 

 

散水點

(산수점)

 

 

 

 

 

平橫(평횡)

 

平橫(평횡)

 

橫劃에는 몇가지 지켜야할 것이 있다.

1. 地載(지재) 편안히 위를받쳐주는 듯한 느낌.
   

2. 天覆(천복):너그럽게아래를 감싸주는듯 한  느낌.
   

3. 右向上昇(우향상승):橫劃 은 오른 쪽이 올라가게긋는다.

4. 筆鋒常在 筆劃之內(필봉상재 필획지내):붓 끝은 항상 획 속에있어야 한다.
 

5. 運筆速度(운필속도)는 遲速(지속)이 있 어야 한다.
       

 화살표 방향으로 붓을 대여 중간부분 (송필)을  조금 가늘게 그어 끝부분(수필) 을 들이켜 세워 수필 방향으로 붓을 뺀다

가로획은 수평선상에서 수필 부분이 조금 올라가게 한다

 橫 法

 횡법은 좌에서 우로 긋는 획인데 

 붓 글씨는 획마다 피와 살이 되며(字資於墨,墨爲字之血肉)

힘을 쓰는 것은 붓 끝에 있으니 붓 끝

은 글자의 뼈와 힘줄이 된다 (用力在筆尖, 爲字之筋骨).

그래서 돌아보면 정이 생기고 핏줄이 흘러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것 들은 모두 기초적인 상식

이므로 가볍게 넘겨서는 안된다.

 

 평횡

 운필 요령은 붓 끝이 逆으로 들어가 아래로 (45도) 향하여 점을 찍고

차츰 차츰 끌어 나아가면서

中鋒이 되게한다.

중봉인채로 우로 향하여 여유있게 운필 한다음 붓 끝을 위로 轉鋒하여 원각을

이루면서 머문다.

맨 밑에 부분에서 붓을 일어켜 회봉한다

 

서예의 조형기초 - 형식의 기본요소 5요소

1.      선의 방향(筆勢)

서예에 있어서 어떠한 선이든지 방향성을 갖추고 있다.

가로(橫)횡

세로(竪)수

 삐침의 세가지 기본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가로획을 살펴보자.

 

  ( 가로)

   . 평횡 (平橫)  : 가로로 곧게 뻗은 직선 획, 곧고 튼튼한 양강의 미를 보여준다.

. 앙횡 (仰橫) :  밑으로 휜 호선弧線,  위를 감싸 안은 형상의 세勢

. 복횡 (覆橫)  : 위로 휜 호선,  아래를 덮어주는 형상의 세勢

 

 

2.      선의 길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경험하게 되는 숱한 일마다 시작과 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예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선에서의 시작과 끝 즉 기필과 수필은 가장 중요한 곳이다. 

어떠한 한자 서예형상이라도 모두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길이 차이가 있다.

 

3.      선의 위치

 

. 間距(同向線)  : 협조식(선과 선의 거리균일)과 대비식(거리비 균일)으로 구분. 

. 交接穿揷(異向線) : 中分(중간지점에 교접)과 偏分(치우친 지점에서 교접)으로 구분.

. 連斷 :  이어지면 긴장되게 하고 끊어지면 편안해 보이게 한다. 

 

 4.      선의 형상

 

어떤 획이든 면적을 가지고 있다. 굵기와 너비(폭)가 면적을 반영한다.

또한 提按을 하는 손의 기술로 선의 형상이 만들어진다.

 

같은 획이지만 형상을 가진 획이 서양의 획과는 다른 것이다

납작한 서양의 붓으론 그 맛을 낼 수가 없다.

붓의 기술과 결구감이 펼쳐질 때  진정한 용필이 나온다.

선의 형상의 3요소는 굵기와 면적, 제안, 起止点의 方圓인 것이다.

 

5.      선의 질감

 

선의 질감에선 虛, 實 및 먹의 濃, 淡 이 중요하다.

재료, 공구, 붓의 선택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다 나무위, 종이위 다르다. 

즉 선의 질감은 재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집필방식에서도 선의 질감은 많은 차이가 발생한다.

작가의 심리상태,

 필과 종이의 마찰감,

속도감 역량감등 이러한 모든 요소가 질감을 변화시킨다.

서예는 특별히 영혼적인 부분이 있다고 여겨진다.

글씨에 묻혀서 무언가 사라진 것이다.

쓰고 난 후 靈感을 말로 표현 할 수 없지만 글씨에 담겨졌다고 할 수 있다.

 

선의 방향,

선의 길이,

선의 위치 이 3요소는 결자와 공간, 흑과 백의 관계의 문제로서 <무엇을 쓰는가?> 를 설명해 주며,

선의 형상, 선의 질감  이 2요소는 용필, 필법의 문제로서 시간적 특징이 비교적 강하며

<어떻게 쓰는가?>를 설명해 준다.

획을 그을 때 결코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기본 요소에서 다 나타나는 것이다.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서예는 바로 이 기본요소로 구성 되어지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서예기초(한자)

 

 1. 直竪(직수)

 

 

 

橫과 상통한다. 방향만 세로일 뿐이다.

 

: 세로방향으로 곧게 뻗은 직선 획                 

 

 

 

 

 

 
 

 2. 下尖竪(하첨수)

 

 

 운필의 요령은 직수와 같으며 행필중 일단 멈추었다가

탄력을 가하여 약간씩 들어올리면서 뺀다.

 

 

 

 

 

 

 3. 斜별(삐칠별)(사별)

 

 

 

 

 

 

 
 

 

 

 4. 弧鱉(호별)

 

 

 

 
 

 

 5. 縱波(종파)

 

 

 

 

 

 

 

 6. 橫波(횡파)

 

 

 

 
 
 
 

 

 

 

 7. 竪鉤(수구)

 

 

 

 

 

 

 竪鉤(수구)

 

 

 

 

 

 

 

 

 

 

 

 

 

 

 

 

8. 右彎鉤(우만구)

 

 

 

 

 

 

 

 

 

 

 

 

 

 

 

 

 

 

 

 

 

 

 

 

 

 

 

 

 

 

 

 

9. 斜鉤(사구)

 

 

 

 

 

 

 

 

 

 

 

 

10. 橫折鉤(횡절구)

 

 

 

 

 

 

 

 

 

 

 

 

 

 

 

 

 

 

 

 

 

 

 

 
 

 

 

 11. 橫折右斜鉤(횡절우사구)

 

 

 

 

 
 

 

 

 

12. 竪彎鉤(수만구)

 

 

 

 

 

 

 
 

 13. 弧鉤(호구)

 

 

 

 

 

 

 

 
 

 

 14. 橫鉤(횡구)

 

 

 

 

 
 

 

 

 15. 右向逃(우향도)

 

 

 

 

 

 

 

 

 

 16. 右上逃(우상도)

 

 

 

 

 

 
 

 

 

 17. 上向挑(상향도)

 

 

 

 

 

 
 
 

 

 18. 側點(측점)

 

 

 

 

 

 

 

 

 

 

 

 19. 直點(직점)

 

 

 

 

 

 

 

 

 

 20. 左右點(좌우점)

 

 

 

左右點

(좌우점)

 

 

 

 

 

 21. 橫四點(횡사점)

 

 

橫四點

(횡사점)

 

 

 

 

 

 

 

 

 

 22. 散水點(산수점)

 

 

 

 

 
 
 
출처 : 靑山(청산) 역학연구원
글쓴이 : 楸岩(추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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