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결구 84법이란

 

1.天覆 : 宇宙宮官 ---要上面蓋盡下面宜上淸而下濁

윗면이 아랫면을 모두 덮을 수 있어야하며 위는 맑고 가볍고 경쾌하게 하여야하고 아래는 무겁고 탁하게 해야한다.

 

2.地載 : 直且至里 ---要下 載起上 宜上輕而下重

아래획이 윗획을 싣고 있는 듯이 해야하고 위에는 가볍게 아래획은 무겁게 처리하여야 글씨가 어우러진다.

 

3.讓左 : 助幼卽却 ---要左高而右低右邊須讓左邊

왼쪽이 높고 오른쪽은 낮아야 하는데 우변은 반드시 왼편에 양보를 하는 것처럼 왼편은 크게 오른편은 작게 해야한다.

 

4.讓右 : 晴 蝀 績 峙 ---要右高而左平左邊須讓右邊

우측은 높고 좌측은 우측과 평평하게 해야하는데 좌변이 우측에 양보를 하는 것처럼 좌측을 작게 써야하는 것이다.

 

5.分疆 : 體輔願順 ---左右平不相讓如兩人幷立

좌우를 고르게 하여 서로 양보하는 것이 없도록 하여 마치 두사람이 나란히 서있는 것처럼 하여야한다.

 

6.三勻 : 謝樹衛術 ---中間正而勿偏左右致拱揖之狀

중간은 바르면서 치우치지 말아야하며 좌우의 것들은 공손하게 읍하고 있는 모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7.二段 :鑾 嚮需留 ---要分爲兩半相其長短略加饒減

두부분으로 나뉘어지게 하여야하는데 서로 그장단을 맞추기 위하여 획이 적은 것은 크게하고 획이 많은 부분은 줄여서 작게 써야하는 것이다.

 

8.三停 : 章意素累 ---要分爲三截量其疏密以布勻停

세마디로 나뉘어지게 써야하는데 그 성글고 빽빽한 것을 생각하여 고르게 배치되도록 하여야한다.

 

9.上占地步 : 雷雪普昔 ---要上面闊而 輕下面窄而 

윗면은 활달하게 하면서 획이 가볍게 해야하고 아랫면은 좁으면서 획을 무겁게 하여야한다.

 

10.下占地步 : 衆界要禹 ---要下面闊而 輕上面窄而 

아랫면을 활달하게 하면서 획이 가볍게 하여야하고 상면은 좁으면서 획이 탁하고 무겁게 하여야한다.

 

11.左占地步 : 數敬劉對 ---要左邊大而 細左邊小而 

좌변이 크면서 획이 가늘게 하여야하고 우변은 작으면서 획이 굵어야한다.

 

12.右占地步 : 騰施故地 ---要右寬而 瘦左邊窄而 

오른쪽은 넓으면서 획이 마르고 왼쪽은 좁으면서 획이 살쪄있어야 한다.

 

13.左右占地步 : 弼辦衍仰 ---要左右都瘦而長中間獨肥而短

좌우가 모두 마르면서 길어야하고 중간부분만이 통통하면서 짧아야한다.

 

14.上下占地步 : 鸞鶯釁---要上下寬而稍扁中間窄而勿長

위아래가 넓으면서 조금 납짝하게 하여야하고 중간은 좁으나 길게하지 말아야한다.

 

15.中占地步 : 蕃華衝擲 ---要中間寬大而 輕兩頭窄小而 

중간부분을 관대하게 하면서 획을 가볍게 해야하고 위아래나 좌우는 좁으면서 획이 무거워야한다.

 

16.俯仰勾  : 冠寇密宅 ---要上蓋窄小而勾短下腕寬大而勾長

위의 덮개는 좁고 작게하고 구<갈고리>를 짧게하고 하완은 관대하게 하면서 구를 길게 하여야한다.

 

17.平四角 : 國固門閉 ---上兩角要平下兩角要齊忌挫肩垂脚

위의 양각을 평평하게 하여야하고 아래 양각은 가지런하게 하여야하는데 어깨가 뒤틀리거나 다리부분이 축늘어진 것은 좋지않다.

 

18.開兩肩 : 南丙兩而 ---上兩肩要開下兩脚要合忌直脚却肩

위의 양어깨는 벌어지게 하여야 하고 아래 양다리는 모이도록 해야하는데 곧게 나란히 내려온 다리나 좁은 어깨를 만들면 어울리지 않는다.

 

19.勻畵 : 壽 疆 畵 ---黑白點 須要均勻

흑백점획을 모름지기 고르게 해야한다.

 

20.錯綜 : 馨聲繁繫 ---要三部交錯均勻不致互相障碍

세부분의 교착을 고르게 해야하는데 서로 장애가 되게 하여서는 안된다.

 

21.疏排 : 瓜介川不 ---疎排要疎闊各 要開展

소배는 성글고 활달하게 해야하며 각 삐침획은 펼쳐지는 듯이 하여야 한다.

 

22.縝密 : 繼 爟 纁   --- 要緊縮若疏開則 

점획을 긴밀히게 하여야한다. 만약 벌려놓으면 흩어져보이게 된다.

 

23.懸針 : 車申中巾 ---懸針須鋒不宜中  則無精神

현침은 반드시 봉이 드러나게 해야하는 것이니 중수로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중수로하면 정신이 없어 보인다.

 

24.中竪: 軍年單畢 --- 不宜懸針懸針則不穩重

중수는 현침으로 하는 것이 옳지 않으며 현침으로 하면 온중하지 않다.

 

25.上平 : 師明牡野 ---上平是小的在左邊上面要平齊

상평은 작은 것이 좌변에 있는 것인데 상면을 평평하게 맞추어서 써야한다.

 

26.下平 : 朝敍叔細 ---下平是小的在右邊下面要平齊

하평은 작은 것이 우변에 있는 것인데 하면을 평평하게 맞추어서 써야한다.

 

27.上寬 : 守可亨市 ---下面不宜過大上面要疎展

하면을 너무 크게 쓰지 말아야하며 상면은 넓고 시원하게 해야한다.

 

28.下寬 : 春卷夫太 ---上面緊小短促下面要開展

상면을 줄여서 좁게하고 하면을 넓고 시원하게 벌려줘야한다.

 

29.減捺 : 變癸食黍 ---複捺要減少不減少則主客不分

파책이 두개이상 있게 되는 경우에는 그중에 하나는 줄여서 점이나 작은 파책으로 써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객이 분명해지지 않는다.

 

30.減勾 : 禁埜梨---複勾要減少不減則輕重不辨

갈고리가 두개이상 있을 경우에는 줄여서 철주처럼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중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31.讓橫 : 喜婁吾玄 --- 都要長才不像

횡획을 모두 반드시 길게 해야한다. 그래야 비로소 들려지는 모양이 되지 않는다.

 

32.讓直 : 甲干平市乖 ---要直 正長而不偏短

직획을 바르고 길게 해야하니 그래야 너무 작아지지 않는다.

 

33.橫勒 : 此七也乜  ---橫勒若過於放平則無筆勢

횡평이 만약 방평보다 지나치게 되면 곧 필세가 없어진다. 乜: 사팔뜨기 먀

 

34.均平 : 三云去不 ---長短須平均相配相齊則失威

장단이 반드시 고르게 서로 어울려야 한다. 길이를 서로 같게하면 위엄을 잃게된다.

 

35.縱波 : 丈尺吏臾 ---縱波的波須要藏頭收尾

종파의 파책은 장두로 해야하고 수미로 해야한다.

 

36.橫波 : 道之是足 ---橫波的波先要拓頸寬胸

횡파의 파책은 목부분을 넓게하고 가슴부분을 시원하게 해야한다.

 

37.縱戈 : 武成幾夷 ---縱戈的戈過彎曲則無力

종과의 과는 지나치게 구부러지게되면 힘이 없게 되는 것이다.

 

38.橫戈 : 心思志必 ---橫戈的戈不宜挺直勾平

횡과의 과는 몸이 곧으며 구가 평평해서는 않된다.

 

39.屈脚 : 烏馬焉爲 ---屈脚的勾要共包兩點

굴각의 구는 두개의 점을 감싸고 있도록 해야한다.

 

40.承上 : 天文支交 ---承上的 要使叉對正中

승상의 삐침은 교차되는 부분이 정중앙에 있도록 해야한다.

 

41.曾頭 : 曾善英羊 ---曾頭的字要上開下合

증두의 점은 위는 벌어지고 아래는 모여야한다.

 

42.其脚 : 其具與典 ---其脚的字要上合下開

기각의 점은 위는 모이고 아래는 벌어져야한다.

 

43.長方 : 罔周同冊 ---長方的字四面要直而寬大

장방의 글자는 사면이 곧으면서 넓고 커야한다.

 

44.短方 : 西曲回田 ---短方的字兩肩要平開

단방의 글자는 양어깨가 평평하고 벌어져야한다.

 

45.搭勾 : 民衣良長 ---搭勾的字要 搭否則筆勢苟且

탑구의 갈고리는 다른 갈고리보다 더욱 올려서 써야하니 그렇지 않으면 필세가 구차하여진다.

 

46.重徶(중별): 友及反皮  ---  宛轉勿使兩 平行

중별의 별획은 모름지기 완만하게 구부러지게 해야한다. 두개의 삐침을 나란하게 해서는 안된다.

 

47.攢: 采孚妥受 --- 點的點須朝向否則像 

찬점의 점은 반드시 조회를 받듯 아랫쪽을 향하여 모이도록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섬돌과 같이 된다.

 

48.排點 : 無照點然 ---排點的點勿平板如布棋要貴變化

배점의 점은 평평한 판에 바둑돌을 놓는 것처럼 해서는 안된다. 변화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49.勾努: 菊葡蜀曷 ---勾努不宜向內  則外難方圓

구로는 안으로 향하여 싸려고 하지 마라. 안으로 싸는 모양이 되면 밖으로 방원을 만들기 어렵다.

 

50.勾裹구과 : 甸句勾勺 ---勾努不宜用直努直努則外難飽滿

구과에는 직노를 사용하지 마라. 노획을 곧게 하다보면 안으로 포만한 느낌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51.中勾 : 東束米未 ---中勾的字但求偏正生硏

중구가 들어가는 글자는 다만 치우치고 바르게되는 것을 잘 생각하여 할것인데 갈고리가 보통의 각도처럼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52.綽勾 : 乎手予于 ---綽勾的字亦喜硏生偏正

작구가 들어가는 글자는 역시 치우치고 바른 것에 대하여 잘생각하여 할 것인데 갈고리가 보통의 각도보다 조금 느슨하게 좌측방향으로 올라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53.伸勾 : 紫訾紫觜 旭勉 ---伸勾的字惟在屈伸取體

신구가 들어가는 글자는 오직 굽어진 곳에서 몸을 취해야한다.

 

54.屈勾 :  鳩輝  ---屈勾的字要知體力屈伸

굴구가 들어가는 글자는 체와 힘과 굴신을 알아야 한다.

 

55.左垂 :  幷亦弗 ---左垂的字右邊不得太長

좌수가 들어가는 글자는 우변을 너무 길게 해서는 안된다.

 

56.右垂 : 升叔拜卯 ---右垂的字左邊須要縮短

우수가 들어가는 글자는 좌변을 짧게 해야한다.

 

57.蓋下 : 會合金舍 ---蓋下的蓋左右要平均分

개하의 개는 좌우가 고르게 배분되어야한다.

 

58.: 琴谷呑吝 --- 下的 兩邊要平展

진하의 진은 양변이 모두 고르게 벌어져야한다.

 

59.縱腕 : 風鳳飛氣 ---縱腕要長但 蜂腰鶴膝

종완은 길게 해야하나 봉요나 학슬이 되지 않도록 하여야한다.

 

60.橫腕 : 見毛尤兎 ---橫腕也要梢長亦忌蜂腰鶴膝

횡완 또한 조금 길어야하나 또한 봉요나 학슬이 되지 말아야한다.

 

61.  : 尹戶居庶 --- 忌短 牛頭鼠尾

종별은 짧은 것을 꺼리나 우두 서미가 되는 것을 꺼린다.

 

62.  : 考老省少 --- 喜長也 牛頭鼠尾

횡별은 길은 것이 좋으나 또한 우두 서미가 되는 것을 꺼린다.

 

63.  : 參彦形  --- 在以下 之首對上 的胸

연별은 하별의 머리부분이 상별의 가슴부분을 대하고 있어야한다.

 

64.散水 : 沐波池海 ---散水在以下一點之起鋒應上一點之尾

산수는 아래 한점의 기봉하는 부분이 상일점의 꼬리 부분에 상응하여한다.

 

65.: 土止山公 ---此等字宜肥然忌擁腫擁腫則顯更肥

이러한 등등의 글자는 도톰하게 써야하나 부어있는 느낌은 좋지 않다. 부어있는 느낌이 들면 살찐 것이 더욱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66.: 了卜才寸 ---此等字瘦瘦忌枯削枯削則形更瘦

이러한 등등의 글자는 수척하게 써야하나 수는 삐쩍마른 것을 꺼린다 삐쩍마르면 모양이 더욱 수척해보이기 때문이다.

 

67.: 上下士千 ---疎本稀排乃用豊肥碩壯

소는 본래 드문드문하게 배열하는 것이나 풍비석장함을 사용하여야한다.

 

68.:  齎龜  ---密要安疎須知輕細勿宜粗重

밀은 성글게 쓰는 것이 편안한 것인데 가볍고 가늘게 써야함을 알고 두텁거나 무겁게 쓰지 않는 것이 좋다.

 

69.: 晶品 ---堆重 勻注意結合的地方勿使過疎過密

퇴는 골고루 배치시키는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그러나 결합하는 곳은 너무 성글거나 너무 조밀하게 하지말라.

 

70.:   ---繁複中取均勻整潔否則形體刺眼難看

복잡하고 중복이되는 획이 많은 경우는 고르게 정돈되고 깨끗하게 써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체가 눈을 자극하여 보기싫게 된다.

 

71.: 入八乙己 ---偏中要能勻稱勻稱則其形勢始相安

편중이된 글자는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하니 균형이 맞아야 그자세가 비로소 편안해진다.

 

72.:  巒樂欒 ---圓是要圍滿成圓形不要露鋒芒

원은 주위가 꽉차서 원형을 이루어야하니 봉망이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한다.

 

73.: 毋勿乃力 ---斜中須取方正如不能方正則形體更斜

기울어진 속에서 반듯한 것을 취해야하니 반듯하지 못하면 형체가 더욱 기울어지게 되는 것이다.

 

74.: 主王正本 ---正要四方不偏如磐石泰山之安而不搖動

정은 사방 어느 곳으로든 치우침이 없어야한다. 반석이나 태산과 같이 편안하여 동요되는 것이 없어야한다.

 

75.: 哥昌呂圭 ---重的字下半要大亦不可太大上面宜梢小

중첩된 글자는 아래에 있는 것을 크게 해야하는데 너무 크게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상면은 약간 작게 해야한다.

 

76.: 竹林羽弱 ---倂的字右邊要梢寬左邊要梢窄能讓

같은 모양으로 나란한 글자는 우변을 조금 더 크게 해야하는데 좌변은 약간 작으면서 양보하는 기분으로 써야한다.

 

77.: 自目耳葺 ---長的字不要使短使短則變原形

긴 글자는 억지로 짧게 쓰려고 하지 마라. 짧아지면 원래의 모습이 사라진다.

 

78.: 白曰工四 ---短的字不要求長求長則不成體

납짝한 글자는 길게 쓰려고 하지마라. 길게 쓰면 원래의 형체를 만들지 못하다.

 

79.:   囊戇 ---大的字要 簇如 散則不能站立

큰글자는 모아서 긴밀하게 써야하니 흩어지게 되면 서있을 수도 없게 된다.

 

80.:  口小工 ---小的字要豊厚莊嚴否則更形小

작은 글자는 豊厚하고 莊嚴하게 써야하니 그렇지 않으면 모양이 더욱 작아지게 된다.

 

81.: 妙舒飭好 ---向的字雖相向但手足仍須廻避得當

향세의 자형으로된 글자는 비록 서로 향세를 이루고 있더라도 수족에 해당되는 부분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피하여서 알맞도록 해야한다.

 

82.: 孔乳兆非 ---背的字雖相背而脈絡仍是貫通

背勢로된 글자는 비록 서로 배세의 모양을 하고 있으나 서로 어울어져 그맥이 관통할 수 있어야한다.

 

83.: 一二十  ---孤的字筆 忌輕浮枯瘦否則更孤

획이 별로 없는 글자는 필획이 가볍고 들뜨고 마르고 수척한 것을 꺼리나니 그렇지 않으면 더욱 외로와지게 되는 것이다.

 

84.:日月弓乍 ---單的字筆 要俊麗淸長亦忌枯瘦

간단한 글자는 필획이 씩씩하고 아름다우며 맑고 길어야하는데 이것 또한 마르고 수척한 것을 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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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필은 점획을 표현하기 위해 붓을 대고 뗄 때까지의 방법을 말한다. 즉 용필은 기필, 행필, 수필의 단계를 말하며 점획의 표현의 기본이 된다. 운필은 용필과정에서 붓의 방향, 압력, 속도 등의 변화를 주면서 움직이는 것인데 여기서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이 작용하게 된다.

아름다운 글씨를 쓰려면 단순히 선을 긋는다 해도 이러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  용 필 (用筆)

    용필은 3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즉 필획을 시작하는 기필(起筆 : 시필이라고도 한다. 용필의 3단계 중 붓을 대어 점획을 쓰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이때 굵기, 방향, 위치 등에 따라 점획의 느낌이 달라진다.) 과 획이 이어져 나아가는 행필(行筆 : 송필이라고도 한다. 기필과 수필의 중간 단계로 붓을 옮겨가는 과정이다. 행필은 직선적인 것과 곡선적인 것이 있다. 이때 굵기의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 이것을 마무리 하는 수필(收筆 : 종필이라고도 하며 점획을 마무리하는 끝 부분의 붓 사용을 말한다. 수필은 점획의 특징에 따라 여러 가지 필법이 있다.)의 단계를 말한다.

    모든 점획은 이와 같은 단계를 거쳐서 표현하게 되는데, 기필은 붓을 대는 모양과 각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붓끝이 필획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장봉(藏鋒)과 이와 반대되는 노봉(露鋒)이 바로 그것이다.

    행필에서는 획의 굵기와 방향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방향이 바뀌면서 모가 생기는 것을 절(折), 모가 생기지 않고 방향이 바뀌는 것을 전(轉)이라 한다. 행필과정에서 붓끝이 필획의 중심을 지나는 중봉(中鋒)획은 매끈하고 원만하며 무게가 나타난다. 그리고 붓끝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행필한 것은 측봉(側鋒)이라 한다.

    수필은 점획의 끝맺음으로 그 방향과 굵기의 변화에 유의하여야 한다. 기필과 수필 방법에 따라 방필과 원필의 표현이 가능하다. 방필(方筆, 方的 필획)은 방형(方形)의 필획을 일컫는 것으로, 그 모양이 방정하고 돈필(頓筆)할 때 골력(骨力)이 밖으로 향해 펴지는 까닭에 '외탁필(外拓筆)'이라고도 부른다. 장중한 느낌을 주며 용비어천가, 월인청강지곡의 한글자에서, 장천비(張遷碑), 맹법사비(孟法師碑)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원필(圓筆)은 방필의 필획에는 모[角]가 나 있는데 반해, 각(角)이 나지 않는 둥근 형상의 필획을 말한다. 원필은 그 점획이 원경(圓勁)하고 절골(節骨)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여 '내함필(內含筆)'이라고도 한다. 원필은 우아한 느낌이 있는데 훈민정음해례본 한글자에서, 또 조전비(曹全碑)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에서 그 특징이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에서는 방원겸필(方圓兼筆)이 보여지고 있다.

     

     

     

    ▣  운 필 (運筆)

    용필도 넓은 의미로는 운필의 범주에 속한다. 즉 용필은 붓의 위치에 따른 것만으로 제한되며, 운필은 용필 방법에 따라 붓 움직임을 수용하여 필획이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운필이란 점?획을 형성하기 위해 붓이 움직이는 과정과 그에 따른 상황을 말한다. 따라서 운필법이라고 하면 붓이 움직이는 상태를 시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운필의 상태에 따라 생기는 획의 성질은 크게 보면 다음 네 가지 조건을 통해서 나타난다.

    첫째, 획은 어느 방향으로 긋느냐에 따라 문자의 형태나 필세에서 받는 느낌이 달라진다. 그런데 획의 방향 각도는 문자의 형태나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큰 변경을 더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굵기의 성질은 비교적 다양하여 굵은 획, 가는 획 등 변화가 있을 수 있으며 그것으로서 독자적인 표현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셋째, 속도는 획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앞에 말한 첫 번째 두 번째 것의 성질과는 달리 자형(字形)이나 서체(書體)에 따라서 다양한 변화가 가능할뿐더러 그 표현의 영영도 풍부하다.

    넷째, 붓의 경중(輕重)인데, 이것은 선질(線質)의 표현에 있어서 더욱 높은 성질을 갖고 있다. 획의 무겁고 가벼움은 주로 운필에 있어서의 붓의 경중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역량에 따라서 빠르면서도 무겁고, 느리면서도 가벼운 획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깊이 있는 중량감의 차이가 바로 書자체의 예술성을 좌우하는 요건이 된다.

          ※ 참고

      - 경(輕)과 중(重)

       점획의 경(輕)과 중(重)은 제(提)와 안(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필(下筆)을 가볍게 하면 나타나는 점획이 가늘고, 무거우면 점획이 굵은 것은 당연하다. 경중(輕重)과 제안(提按)이 동일한 것 같은 착각이 들지도 모르나, 양자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곧 제안(提按)은 점획간의 기필(起筆)과 행필(行筆)과 수필(收筆)에 있어서, 용력(用力)에 따라 조세(粗細)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고, 용필(用筆)의 경중(輕重)은 점획의 내적 변화 뿐만 아니라 비첩(碑帖)의 풍격(風格)과 특징까지도 표현되는 것이다.

      서법(書法)은 용필(用筆)의 경중에 따라 각기 특징을 지니는 것이어서, 모든 작품에서 느낌도 달리 한다.

      용필(用筆)이 경(輕)하면 영활하고 수려함을 느끼게 하는 바, 이러한 예를 예서(隸書)의 [조전비(曹全碑)]에서 볼 수 있으며, 용필(用筆)이 중하여 단장하고 침착한 느낌을 주는 것은 [장천비(張遷碑)]에서 볼 수 있다.

      용필(用筆)의 경중(輕重)에 대해서는 필호(筆毫)가 종이에 닿는 부분에 따라 세 유형으로 나눈다. 호(毫)의 중간에서 봉(鋒)까지의 사이를 삼등분하여 붓이 지면에 닿는 부분이 3분의 1일 경우, 이것을 '용일분필(用一分筆)'이라 하고 3분의 2일 경우를 '용이분필(用二分筆)', 그리고 호(毫)의 하반부(下半部)가 종이에 닿는 경우를 '용삼분필(用三分筆)'이라고 한다.

      이것을 각각 비첩(碑帖)에서 찾아보면

      일분필(一分筆) : 예기비(禮器碑), 장맹룡비(張猛龍碑), 황보탄비(皇甫誕碑)

      이분필(二分筆) : 장천비(張遷碑), 정문공비(鄭文公碑),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삼분필(三分筆) : 서협송(西狹頌), 동방삭화찬(東方朔畵贊)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작품은 용필(用筆)의 경중(輕重)으로 특징지어져 있어서 어떠한 비첩(碑帖)이든 간에 임첩(臨帖)에 앞서 용필(用筆)의 경중을 심중(心中)에 두나면, 보다 용이하게 원작품의 격조와 화합을 통일시켜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용필(用筆) 상의 특징을 소홀히 한다면 일분필(一分筆)의 [예기비(禮器碑)]를 삼분필(三分筆)로 써서 비중(肥重)하여 수경(瘦勁) 관작(寬綽)한 [예기비(禮器碑)]의 특징을 잃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나 어느 획은 일분필(一分筆)을 쓰고, 다른 획은 이분필(二分筆)로, 또 다른 획은 삼분필(三分筆)로 써서 필획의 조세적(粗細的) 변화를 뚜렷히 보이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이와는 경우를 달리 하여 어느 서가(書家)는 일분필(一分筆)을 쓰고, 어느 사람은 이분필(二分筆)을, 어느 서가(書家)는 삼분필(三分筆)을 써서, 각자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할 수도 있다.  

       - 전(轉)과 절(折)

      '전(轉)'이란 붓을 종이에 대고 둥글 게 굴려 돌려서 모나게 꺾어 뿔이 나지 않는 필획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때 손가락으로 필관(筆管)을 굴리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원적(圓的) 점획의 용필 방법을 '전이성원(轉以成圓)'이라 하는 바, 그 요령은 행필(行筆) 과정에서 붓이 머무르지[정주(停駐)] 않고 속도를 고르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전(轉)에 비해 '절(折)'은 방적(方的) 점획을 만드는 용필법(用筆法)으로서 '절이성방(折以成方)'이라 한다. 절(折)은 한 획의 중간에서 소위 '일필삼과(一筆三過)'라 하여, 관절의 작용으로 꺾는 것이 있기는 하나, 주로 한 획의 개시(開始)나 결속 할 때 방향을 바꾸는 데 쓰인다.

      절필(折筆)로서 개시(開始)[기필(起筆)]와 결속[수필(收筆)], 또는 가로획에서 세로획으로, 세로획에서 가로획으로 꺾는 방법에 대해 증명하겠다.

      가로획의 절필(折筆) 방법 : 기필(起筆 : 필봉(筆鋒)이 종이와 접촉하는 시초)은 좌측 상방을 향해 일단 대었다가, 아래로 돈필(頓筆)하여 머무른 다음, 절봉(折鋒)하여 우(右)로 향해 행필(行筆)하며, 수필(收筆)할 때에는 우측 하방으로 돈필(頓筆)한 다음, 절봉(折鋒)하여 좌(左)로 향해 수필(收筆)한다.

       세로획의 절필(折筆) 방법 : 좌측 상방으로 기필(起筆)하여 종이에 댄 다음, 절봉(折鋒)하여 우측 하방으로 돈필(頓筆)하고, 아래로 향해 행필(行筆)하며, 수필(收筆)할 때에는 눌러 머무르자마자[돈주(頓駐)] 즉시 절봉(折鋒)하여 위로 향해 제필(提筆)한다.

      횡절적(橫折的) 방법 : 기필(起筆)은 상술한 횡획 방법과 동일하게 한 다음, 행필(行筆)하다가 꺾고자 하는 곳에서 돈필절봉(頓筆折鋒)[이것도 절필(折筆)이라고 한다] 하여 아래로 향해 행필(行筆)한다.

      수절적(수折的) 방법 : 기필(起筆)은 세로획의 방법과 같으나 내리 긋다가 꺾고자 할 때, 머물러 누른 다음 절봉(折鋒)하여 위로 향해 행필(行筆)한다.

      개괄(槪括)해서 설명하자면 절필(折筆)의 방법은 필봉(筆鋒)이 왼쪽으로 가려면 먼저 오른쪽이,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려면 왼쪽이 먼저 닿아야 하며, 위로 가기전에 아래를 먼저 대고, 아래로 쓰려면 위를 먼저 댄 다음에 쓰기 시작해야 하는 법으로, 이것이 곧 '역입(逆入)의 원칙'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절필(折筆)의 중점은 돈필(頓筆)하였다가 꺾는 데에 있다.

      이상에 말한 방법들은 유의하여 반복 훈련만 하면 자연 요령을 얻어, 그 이치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 방(方)과 원(圓)

       기본 점획의 주된 특징은 방(方)이 아니면 원(圓)이고, 그렇지 않으면 방(方)에 원(圓)을 겸하거나, 원(圓)에 방(方)을 겸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글씨는 분류의 원칙을 방(方)과 원(圓)으로 구분한다.

      방필(方筆, 方的 필획) : 방형(方形)의 필획을 일컫는 것으로, 그 모양이 방정하고 돈필(頓筆)할 때 골력(骨力)이 밖으로 향해 펴지는 까닭에 '외탁필(外拓筆)'이라고도 부른다.

      '방필(方筆)의 용필(用筆) 방법'은 기필(起筆)할 때 돈봉(頓鋒)으로 붓을 내려 역필(逆筆)→절봉(折鋒)→행필(行筆)하고, 수필(收筆)할 때에도 역시 돈필(頓筆)→절봉(折鋒)한 다음 결속한다. 그래서 방필법(方筆法)에 의한 점획은 방정(方整)하고 추경(추勁 : 필세에 힘이 있다.)한 것이 특징이다.

      원필(圓筆) : 방필의 필획에는 모[角]가 나 있는데 반해, 원필은 각(角)이 나지 않는 둥근 형상의 필획을 말한다. 원필은 그 점획이 원경(圓勁)하고 절골(節骨)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여 '내함필(內含筆)'이라고도 한다.

      원필은 기필할 때 '과봉(과鋒)'으로 쓴다.

      '과봉(과鋒)'이란 봉(鋒)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봉(筆鋒)을 감싸듯 하는 법으로 붓을 종이에 대었을 때 봉(鋒)이 완전히 뭉치도록 하는 법이다. 이렇게 하여 행필(行筆)할 때에는 필봉을 똑바로 세워서 운행하고, 수필(收筆)할 때에는 봉(鋒)을 굴려서 거두면, 자연 둥글고 입체적인 원필(圓筆)의 형상이 된다.

      방(方)과 원(圓)을 겸비한 점획의 방법은 대체로 방필과 원필을 혼용하는 것으로 알면 무방하다.

      방필과 원필의 차이를 우리는 비첩(碑帖)에서 볼 수 이다. 방(方)과 원(圓)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장천비(張遷碑)>, <맹법사비(孟法師碑)>  : 방필

      <조전비(曹全碑)>.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 : 원필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 방원겸필(方圓兼筆)  

      - 장봉(藏鋒)과 노봉(露鋒)

      '장봉(藏鋒)'이란 원필(圓筆)의 경우처럼 봉(鋒)을 휩싸서 감추듯 기필(起筆)하여 필획이 개시되는 곳과, 결미(結尾)되는 곳에 봉(鋒)의 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장필(藏筆)의 방법으로서 기필에는 역봉(逆鋒)을, 수필에는 회봉(回鋒)을 쓴다. 이른 바 '역입도출(逆入倒出)'이 그것이다.

      장봉 용필로 쓰는 점획이 함축적 감각을 주는 것은 봉망(鋒芒, 鋒의 끝)이 노출되지 않고, 점획 안에 모든 기력이 포장되어 있는(藏鋒以包其氣) 까닭이다.

      '노봉(露鋒)'은 필법(筆法)에 있어서 장봉(藏鋒)과 반대 현상으로 지칭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봉(中鋒)과 편봉(偏鋒)과의 관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노봉(露鋒)은 서법의 점과 획에 항상 나타나는 것으로, 특히 점과 획 간의 호응이나, 혹은 행(行)과 관(款)간의 기승(起承)에 많이 운용(運用)된다. 그리고 노봉(露鋒)은 신정(神情)이 밖으로 나타나는 듯한 감각을 주며, 자(字)와 행(行)간의 좌호우응(左呼右應)과 승상계하(承上啓下)의 신태(神態, 露鋒以縱其神)를 보여준다.

      노봉으로 쓴 글씨는 점과 획에 봉망(鋒芒)이 노출되고, 노출된 봉망(鋒芒)은 두 현상을 보인다. 곧 봉망(鋒芒)이 점과 획의 정중간(正中間)에서부터 나오는 것과, 점과 획의 한편으로 치우쳐서 나오는 것이 있다. 전자는 중봉(中鋒)인 경우여서 원경(圓勁)하며, 후자는 편봉(偏鋒)이어서 편약한 것이니, 전자가 좋은 것임은 당연하다. 원경(圓勁)한 노봉은 삐침, 파임, 꺾임등 획에서 삐칠 때 쓰이는 것으로, 반드시 중봉(中鋒)[鋒이 필획의 정중간(正中間)에 있도록 하는 것]이라야 하며, 노봉(露鋒)이 아무리 첨세(尖細)하더라도 편획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자면 물론 많은 연습을 쌓아야만 가능하다.  

       - 중봉(中鋒), 측봉(側鋒), 편봉(偏鋒)

      '중봉(中鋒)'은 정봉(正鋒)이라고도 한다. 중봉이란 행필(行筆)에 있어 필봉(筆鋒)이 획의 정중간을 점하고 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붓이 종이에 닿았을 때, 만호(萬毫)가 가지런히 펴진 다음 획이 가는 길의 정중간에서 필봉이 가도록 하는 것이 중봉(中鋒) 용필(用筆)이다.

      중봉용필을 '중봉직하(中鋒直下)'라고도 칭한다. 모필(毛筆)은 동물의 털을 재료로 해서 원추체(圓錐體)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펴질 수 있고 모아질 수 있으며, 먹은 필첨(筆尖)을 따라 아래로 흐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중필용필은 상하좌우로 고르게 스며, 퍼지고 호(毫)의 사면팔방이 모두 종이에 닿게 되어 원주형(圓柱形)의 필획을 이룬다.

      전(篆)·예(隸)·해(楷)·행(行)·초(草)의 각 체의 서법은 모두 중봉을 위주로 하여 운용하게 되며, 그 중에서도 특히 전서(篆書)는 오직 중봉으로만 쓰는 것이 기본이어서, 이 주옹 용필은 바로 서법의 전통적 필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봅 운용을 하면 자연 '만호제착(萬毫齊着)'도 되는 것이니 정확한 집필과 운완으로 모름지기 부단한 연습이 또한 요구된다.

      이에 반해 '측봉(側鋒)'은 측(側)으로 "세(勢)"를 취한다는 뜻이다. 영자팔법(永字八法)에 "점(點)"법은 "측(側)"법이 일컬었음에 비추어 '측봉(側鋒)'은 곧 점법(點法)으로 기필(起筆)하는 것이니 '중봉(中鋒)'이 장봉원필(藏鋒圓筆)이라면 '측봉(側鋒)'은 노봉방필(露鋒方筆)이다.

      '측봉(側鋒)'은 점을 이룰 때 필봉이 편측(偏側)의 상태를 형성하나 운필할 때는 필호의 탄성과 수완(手腕)의 동작으로 말미암아 붓을 세우면 편측(偏側)되었던 필봉이 획의 중앙으로 거두어 들어가게 마련이라 필모(筆毛)는 종이 위에 퍼지게(평포,平鋪) 된다.

      역세(逆勢)로 점을 이루는 목적은 호를 펴기(鋪毫) 위하여서이다. 그리하여 측봉을 필봉이 편(偏)으로부터 굴려서 획의 중앙으로 향하게 하는 과정이다.

      '편봉(偏鋒)'은 필호가 종이 위에 드러누워 일어설 수 없다면 '측봉(側鋒)'은 드러우웠다가 일어설 수 있는 것이 다르다. 그리하여 측봉은 운필할 때 편봉의 성분을 띄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붓이 서서가지만, 편봉은 누워서 꼼짝 못하는 것이 다르다.

      따라서 '편봉'은 점획의 한곁으로 필봉이 기울어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옆으로 획을 그을 때 필봉이 상단이나 하단으로 치우쳐 가거나 아래로 그을 경우 왼쪽으로 치우쳐 그어졌다면 이것은 글씨를 쓴 것이 아니라 먹을 바른 것이 되겠다. 그리고 수필에 봉회(鋒回)는 물론 되지 아니하려니와 호가 드러누은 그대로 들리고 만다.

      편봉은 '병필(病筆)'과 '패필(敗筆)'의 가장 큰 원인이된다. '병필'과 '패필'이란 점과 획 상의 병폐를 말하는 것으로, 초학자 뿐 아니라 상당히 조예가 있는 서가에게도 항상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서가에 있을 때 병폐는 더욱 면하기 어렵다.

      '병필'을 시정 내지 방지하려면 글씨를 쓰기에 앞서 반드시 임하고자 하는 비첩(碑帖)의 필법을 정확하게 검토하여 파악하고 신중을 기할 일이다.

      첫째 붓이 종이에 닿자마자 생각도 없이 점획을 써서는 안된다. 신중히 붓을 내리되, 낙필(落筆)한 다음에는 잠깐 쉬는 듯이 마음을 가라앉혀서 행필(行筆)해야 한다.

      둘째, 한 획을 쓸 때마다 필력을 다해서 움직여야 한다. 가령 삐칠 경우라면 힘을 들인다고 해서 필봉을 누르자마자 그대로 내리 삐치거나 하면 안된다. 너무 빨리 사납게 하면 필관이 옆으로 누워 내려오게 되는 나머지, 삐친 획의 하반이 끊겨지고, 갑자기 가늘게 변해서 삐친 끝이 길게 노출된다. 이 현상을 '허첨(虛尖)'이라고 한다.

      '병필'이 나타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전신 정력으로 운용하지 않은 탓이니, 가로와 세로 획에 있어 바른 획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할 것도 없이 바른 획은 손바닥을 세워(虛掌) 필관의 수직을 유지하고 중봉을 하는 데 있다.

      셋째, 하필(下筆)에 '역입(逆入)'하고, 행필(行筆)에는 '평출(平出)'하여야 한다. '역입(逆入)'이란 오른쪽으로 행필(行筆)할 때에는 일단 왼쪽을 향해서 행필(行筆)한 다음에 절봉(折鋒)해서 오른쪽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 '평출'은 행필할 때 필호가 펴지게 되는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호가 평포가 되어야만 필호가 낱낱이 털이 세워져서 '만호제착(력)[萬毫齊着(力)]'이 되어 중봉용필하는 것이 된다.

      이상 용필(用筆)의 주요방법에 대해 설명하거니와, 모든 방법을 체득한 다음, 기본연습으로서 방필과 원필을 막론하고 일점 일획에 적어도 3차의 전절(轉折)이 되어야 한다.

      황소중(黃小仲)이 "唐 이전의 書는 모두 艮으로부터 시작하여 乾에서 끝나며, 南宋 이후의 書는 巽에 비롯하여 坤에서 마친다."고 한 것은, 이 삼절(三折)의 방법을 말한 것이다. 다음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팔괘의 방위로 호의 팔방을 지적하고, 그 起止의 방향이 비록 같지 않다 하여도 일필에 삼절(三折)을 함에 있어서는 한가지다.

      포세신(包世臣)의 설(說)에 의하면, 후인이 글씨를 쓸 때 모두 仰筆하고 尖鋒하게 하니, 鋒의 尖한 곳이 巽이다. 붓을 치키면(仰) 획이 양에 있게 되며, 그 음은 부호(副毫)에 먹을 적실 뿐이어서, 획의 형태만을 이룰 뿐이니, 坤에 이르면 鋒이 그치게 되어 좋은 것은 겨우 일면이 될 뿐이다.

      鋒이 尖한 곳인 巽은 筆鋒의 서북방을 가리킨다. 이처럼 필봉의 尖한 곳을 대게 되면, 상면의 삼분지일(三分之一)에 미칠뿐 획의 중간에는 미치지 못하니, 획의 하면(下面)에는 더욱 미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리하여 이것은 측봉(側鋒)으로 巽에 시작해서 坤에서 끝난다(始巽終坤).

      중봉(中鋒)을 운용하려면 붓을 좌로 향해 조금 기울이듯 해서, 종이에 대는 즉시 역으로 하지 않으면 평포할 수 없으니, 하필(下筆)은 스스로 艮에 시작하여 乾에 그쳐야 된다고 하겠다.  

       - 필력과 필압

      글씨를 잘 쓰려면 필법의 정확성과 정획형의 정확한 표현 이외에 획형중에 무형의 필력을 가해야 한다.

      붓을 잡는, 집필 그 자체에도 힘을 주어야 하고 필봉을 움직이는 그 순간에도 힘을 주어야 하는데 항상 힘을 가한다고 해서 글자가 잘 표현되는 것도 아니다. 한 개의 획을 쓰는 과정에서는 힘을 주어야 할 곳이 있고, 힘을 덜 주어야 할 곳이 있다. 힘을 주어 누르는 정도 즉, 필압에 따라 글씨의 정획이 굵고 가늘게 표현되는 동시에 힘의 표현도 되는 것이다. 항상 힘을 주면 긴장이 되고 각 書字가 바라는 방향으로 운필이 불가능하게 된다.

       - 필의

        필의란 말은 추상적인 용어로서 글씨를 쓸 때나 써놓은 글씨를 볼 때 느껴지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즉 외형의 자태에서 풍기는 형체미와 그 속에 내재하여 있는 의미성을 맛볼 수 있을 때에 쓰는 말이다. 또는 글씨에 깃들어 있는 정신을 느낌으로 맛볼 때 글씨로부터 풍기는 의미성을 筆意라고도 한다. 따라서 의미없는 글씨, 개성없는 글씨는 죽은 글씨가 되고 마는 것이다.

      

     

     

    ▣  임 서 (書)

    아름다운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법첩이나 체본을 선택하여 임서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가능하다 데생이나 사생이 조형 예술의 기초 학습인 것처럼 임서는 서예표현의 기초를 닦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임서는 학습자의 수준이나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데 단순히 글자의 모양에 중점을 두는 경우와, 내면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있다. 임서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현대적 관점에서는 자형의 모사보다 표현능력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서 보다 새로운 시도가 요구된다.

      - 특징적 임서

      서예가 예술로서의 성격이 강조되기 위해서는 먼저 감성을 풍부하게 하여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져야 한다. 특징적 임서는 서예표현을 위한 기초 과정으로 법첩을 임서할 때 자형을 그대로 모방하기보다는 직감적으로 느낀 글자의 골격과 점획의 변화를 대담하게 나타내는 방법을 말한다. 이와 같이 특징을 살려 임서할 경우 부드럽고 폭넓은 서예 표현의 감각을 터득할 수 있다.

      - 자의적 임서

      자의적 임서는 자형을 충실하게 익힐 뿐 아니라 문자와 점획의 표현에서 개성을 발휘하는 방법으로 의임이라고도 한다. 즉 자신의 예술적 의지를 발휘함에 따라 자형과 점획에 변화를 꾀하게 되어 창작 능력을 높인다. 이 방법은 법첩의 구조를 파악하고 선질을 자의적으로 변화 시키는 경우와, 자형을 엄격하게 따라 쓰되, 품격을 취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 표현 의지를 담아서 표현해야 한다.

      - 사실적 임서

      사실적 임서는 법첩이나 체본을 그대로 모방하여 쓰는 방법으로 형림이라고도 한다. 글씨에는 외적인 모양과 내면적인 품격이 있는데, 여기서는 외적인 것에 비중을 둔다. 임서 과정에서 자형을 소홀히 하면 그 법칙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법첩이나 체본에 충실함으로써 그 속에 숨어있는 서법의 기초를 바르게 익힐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특징적 임서는 법첩의 자형과 골격, 변화 등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야 하며, 사실적 임서는 자형과 선질을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가능하다. 자의적 임서는 법첩의 자형과 점획을 나타내는데 그 특징을 살릴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임서하기 전에 필의와 운필의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변화가 가능하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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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집필법, 완법, 방필법,

1. 집필법

大凡學書 指欲實 掌欲虛 管欲直 心欲圓. 又曰 腕竪則鋒正 鋒正則四面勢全. 次實指 指實則筋骨均平. 次虛掌 掌虛則運用便易.  ---李世民〈論筆法〉

 

대저 글씨를 배움에, (먼저 바른 집필법을 알아야하니 붓을 잡을 때에는) 손가락은 실하게 하고, 손바닥은 비게 하며, 필관은 곧게 하고, 필심은 둥글게 해야 한다. 또 말하길 수완이 서면 필봉이 바르고, 필봉이 바르면 사면의 세가 온전해진다. 다음으로 손가락을 실하게 하니, 손가락이 실하면 곤골이 고르게 된다. 다음으로 손바닥을 비게 하니, 손바닥이 비면 운용하기가 간편하다.

 

筆在指端 則掌虛 運動適意 騰躍頓挫 生氣在焉. ---張懷瓘《執筆法》

 

붓이 손끝에 있으면 손바닥이 비어 운동이 쾌적하게 될 것이며, 올리고 뛰고 누르고 꺾어도 생기가 여기에 있게 된다.

 

  

夫書之妙 在于執管 旣以雙指苞管 亦當五指共執. 其要指實掌虛 鉤擫간(言+干)送 亦曰抵送 以備口傳手授之說也. 世俗皆以單指苞之 則力不足而無神氣 每作一點畫 雖有解法 亦當使用不成. 曰平腕雙苞 虛掌實指 妙無所加也. -韓方明《授筆要說》

무릇 글씨의 미묘함은 집필법에 있으니, 이미 두 손가락으로 필관을 감싸서 잡고(중지와 식지) 또한 다섯 손가락으로 함께 붓을 잡아야 한다. 그것은 손가락은 실하게 손바닥은 비어있게 잡아야하며, 구(鉤) 엽(擫: 대지로 식지와 중지에 마주하여 밖으로 밀쳐내는 것) 간(<言+干>: 무명지의 손톱과 살이 만나는 곳에 붓대를 대고 밖으로 밀어내는 것) 송(送: 소지를 무명지 아래에 붙여 무명지의 힘을 강하게 하는 것)이며, 또한 저 송이라 말하니 이것이 입으로 전해지거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말이다. 세속에서는 모두가 한 손가락으로 필관을 감싸서 잡으니 이렇게 붓을 잡으면 힘이 부족하여 신기가 없어진다. 매번 하나의 점과 획을 그어도 비록 해법이 있으나 또한 사용하지 못한다. 수완을 평평히 하고 쌍구로 잡으며 손바닥은 비게 하고 손가락은 실하게 잡으면 미묘함이 여기에서 더해질 것이 없다.   

 


書有七字法 謂之撥鐙 自衛夫人幷鍾王 傳授于歐顔褚陸等 流于此日. 然世人罕知其道者. 所謂法者 擫壓鉤揭抵拒導送是也. -李煜《書述》

서법(書法)에 칠자법(七字法)이 있는데 이를 발등법(撥鐙法)이라고 한다. 이는 위부인과 종요 왕희지로부터 구양순 안진경 저수량 육간지 등을 거쳐 오늘까지 전해지나, 세상사람들 중에 그 도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 칠자법이라 이르는 것은  擫壓鉤揭抵拒導送이다.


주: 발등은 세 가지로 해석이 된다.

1. 발로 말의 등자를 밟는 것을 앝게 밟아야 전동하기가 쉬움을 뜻함.

2. 붓을 잡을 때에 호구(虎口)로 속은 비고 둥글게 잡은 것이 등자와 같다는 의미.

3. 손가락 끝으로 물건을 잡고 등(燈)의 심지를 돋우는 모습과 같음을 이르는 말.



              

雙鉤懸腕 讓左側右 虛掌實指 意前筆後 此古人所傳用筆之訣也. 然妙在第四指得力 俯仰進退 收往垂縮 剛柔曲直 縱橫運轉 無不如意 則筆在畫中 左右皆無病矣. -豊道生《書訣》

쌍구로 붓을 잡고 팔을 들어 왼쪽 팔꿈치는 뒤로빼고 오른쪽 팔꿈치는 앞으로 기울이며 손바닥을 비게 하고 손가락을 실하게 하며 뜻이 앞서고 붓이 뒤에 있어야 하니, 이것이 고인이 전하였던 용필의 비결이다. 그러나 묘함은 넷째손가락이 힘을 얻는데 있다.  구부리거나 올리며, 나아가고 물러나며, 거두고 수축하며, 강하고 부드러우며, 굽고 곧은 것을 자유롭게 움직여 마음대로 하지 않는 것이 없으면, 붓이 획중에 있어 좌우에 모두 병이 없게 된다.


*讓左側右: 단정히 앉아 글씨를 쓸 때에 두 팔꿈치는 벌려야 하는데 좌측 팔꿈치는 양보하여 바깥쪽에 있게 하고 우측 팔꿈치는 기울여 안에서 움직이게 하여 구속되거나 긴장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掌虛指實者 指不實則顫掣而無力 掌不虛則窒碍而無勢 -豊道生《書訣》

손바닥이 비고 손가락을 실하게 하는 것은 손가락이 실하지 않으면 떨리면서 힘이 없고 손바닥이 비지 않으면 막혀서 세가 없어지게 된다.


*붓을 잡을 때에는 힘을 쓰는 것이 적당해야 한다. 붓을 너무 긴밀하게 잡으면 필획이 죽고 너무 느슨하면 힘이 없어지며, 팔은 자유롭게 해야 한다.  

     

撥者 筆管着中指無名指尖 令圓活易轉動也. 鐙卽馬鐙 筆管直 則虎口間空圓如馬鐙也. 足踏馬鐙淺 則易出入 手執筆管淺 則易轉動也. -陳繹曾《翰林要訣》

발(撥)이란 필관에 중지(中指)와 무명지(無名指)의 끝을 붙여서 원활하고 쉽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등(鐙)은 곧 말의 등자(鐙子)로 필관을 곧게 하면 호구(虎口)사이가 비어 둥근 것이 말의 등자와 같은 것이다. 발로 말의 등자를 얕게 밟으면 출입이 쉬운 것처럼, 손으로 필관을 얕게 잡으면 움직이기가 쉬워진다. 


筆居半則掌實 如樞不能轉掣 豈能自由轉運回旋 乃成稜角. 筆旣死矣 寧望字之生動乎! -徐渭《筆玄要旨》

붓이 손가락의 중간에 있으면 손바닥이 실하게 되어 중심을 회전하거나 끌 수가 없으니 어찌하여 자유롭게 움직이고 회전(回轉)할 수가 있는가? 그래서 능각(稜角)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붓이 이미 죽었으니 어찌 글자의 생동(生動)을 바랄 수가 있을까?


筆在指端 掌虛容卵 要知把握 亦無定法 熟則巧生. 又須拙多于巧 而後眞巧生焉. 但忌實掌 掌實則不能轉動自由 務求筆力從腕中來 筆頭令剛勁 手腕令輕便 點畫波掠 騰躍頓挫 無往不宜. 若掌實不得自由 乃成棱角 縱佳亦是露鋒 筆機死矣. 腕竪則鋒正 正則四面鋒全 常想筆鋒在畫中 則左右逢源 靜躁俱稱 學字卽成 猶養于心 令無俗氣 而藏鋒漸熟. 藏鋒之法 全在握筆勿深. 深者 掌實之謂也. 譬之足踏馬鐙 淺則易于出入 執筆亦如之. -宋曹《書法約言》

붓이 손가락의 끝에 있고 손바닥은 비어 계란이 들어갈 만해야 하지만, 집필법에는 또한 정해진 법이 없어, 익숙해지면 기교가 생겨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졸박함이 교묘(巧妙)한 것보다 많아진 후에 진정한 기교가 생겨난다. 그러나 손바닥이 실한 것[實掌]을 꺼리니, 손바닥이 실하면 회전하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기 대문이다. 필력은 수완(手腕)으로부터 구하면 필두(筆頭)는 그로해서 강하면서 굳세지고 수완은 그로해서 가볍고 편해진다. 그렇게 되면 점과 획과 파책과 삐침과 올리고 뛰고 누르고 꺾음에 마땅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만약 손바닥이 실하면 자유로울 수 없어 이에 능각(棱角)이 만들어지기에, 비록 아름다울지라도 또한 노봉이 되니 붓이 이미 죽은 것이다. 수완이 서면 필봉이 바르게 되고, 바르면 사면의 세가 온전해진다. 항상 필봉이 획가운데 있음을 생각하면 곧 좌우에서 근원을 만나 차분하거나 역동적인 것이 모두 어우러지며, 글자를 배우면 곧 이루어지고 마음에 수양이 되니, 그로해서 속기가 없어지며 장봉이 점차 익숙해진다. 장봉의 법은 온전히 집필을 깊게 하지 않는 데에 있다.  깊은 것은 손바닥이 실한 것을 이르는 것이다.  비유하면 발로 말의 등자를 밟음에 얕게 밟으면 출입이 쉬우니 붓을 잡는 것도 이와 같다. 


起筆收筆正直以待作書 及其運也 上下斜側 惟意所使 至筆旣定 端若引繩 此之謂筆正. -蔣和《書法正宗》

기필과 수필에는 붓을 똑바로 세워서 글씨쓰기를 기대하지만 그 운필에 미쳐서는 상하로 기울이기도 한다. 오직 마음으로 운용하는 바가 붓에 이르러 이미 안정되면 단정한 것이 줄을 끄는 것과 같으니 이를 필정(筆正)이라고 한다.


執筆大中食三指宜死 肘宜活. 低則沈着 高則飄逸 下筆宜着實 然要跳得起 不可使筆死在紙上. 作書不可力弱 然下筆時用力太過 收轉處筆力反松 此謂過猶不及. -梁巘《評書帖》

붓을 잡으면 대지 중지 식지 세 손가락을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지만 팔꿈치는 활발하게 움직여야 한다. 붓을 낮게 잡으면 글씨가 침착해지고 높게 잡으면 글씨가 표일해진다. 낙필할 때에는 착실하게 하면서 발딱 일어나도록 해야지 붓이 지면에서 죽도록 해서는 안된다. 글씨를 쓸 때에 힘이 약해지면 안된다. 낙필할 때 힘을 지나치게 쓰면 수필이나 전필할 대 도리어 느슨해지게 되니, 이를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이라고 한다.

            

把筆無定法 要使虛而寬. 歐陽文忠公謂余 當使指運而腕不知 此語最妙. 方其運也 左右前後 却不免欹側 及其定也 上下如引繩 此之謂筆正 柳誠懸之言良是. -蘇軾《東坡集》

붓을 잡는 데에는 정해진 법이 없고 비게 하면서 너그럽게 해야 한다. 구양문충공이 나에게 이르기를 마땅히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수완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정말로 미묘하다. 그 운필에 미쳐서는 좌우전후로 기울어짐을 면하지 못하지만, 그 안정됨에 미쳐서는 상하가 줄을 끄는 것과 같아 이를 필정(筆正)이라 이르니 유성현의 말이 진실로 옳다.


* 필정(筆正): 붓을 바로 하면[필정(筆正)] 봉이 감추어지고, 붓을 기울이면[필의(筆欹)] 봉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붓을 바로하면 중봉전법(中鋒篆法)이요 붓을 기울이면 측봉예법(側鋒隸法)이다. 붓을 바로하면 둥글고 붓을 기울이면 각이 진다. 행초서를 쓸 때에  용필은 지극히 활발하고 지극히 둥글지만 방원을 겸하여 사용한다. 그 수필에 미쳐서는 방원(方圓)과 장로(藏露)를 논할 것도 없이 필봉을 모두 획의 가운데로 거두어들이니 이것이 진실로 필정(筆正)이라 이르는 것이다.  

 

 

古之所謂實指虛掌者 謂五指皆貼管爲實 其小指實貼名指 空中用力 令到指端 非緊握之說也. 握之太緊 力止在管而不注毫端 其書必抛筋露骨 枯而且弱 -包世臣《藝舟雙楫》

예전에 지실허장(指實虛掌)이라고 말한 것은, 다섯 손가락 모두를 필관에 실하게 붙이는데 소지(小指)는 명지(名指)에 실하게 붙이며, 공중에서 힘을 써서 손가락 끝에 이르도록 하지만 너무 힘을 주어 잡지 말라는 것이다. 잡는 것이 너무 긴장되면 힘이 필관에 머물러 붓끝으로 들어가지 못하므로 그 글씨는 반드시 근육은 없어지고 뼈가 드러나며 마르면서도 나약하게 된다.


2.완법

元章告伯修父子曰 “以腕着紙 則筆端有指力無臂力也.” 曰 “提筆亦可作小楷乎?” 元章笑顧小吏 索紙書其所進《黼嵖表》筆畫端謹 字如蠅頭 而位置規矩一如大字. 伯修父子相顧嘆服 因請筆法 元章曰 “此無他 自今以後 每作書時 無一字不提筆 久之自熟矣.” -米芾《提筆法》

미불이 백수부자에게 말하길“수완(手腕)을 지면에 붙이면, 붓끝에는 지력(指力: 손가락의 힘)만이 있고 비력(臂力: 팔의 힘)은 없다”고 하니, “제필(提筆) 또한 소해(小楷)를 쓸만합니까?”라고 말하였다. 미불이 웃으며 소리(小吏)를 돌아보면서, 종이를 찾아 《보차표》를 써 보이니, 필획이 단정하고 근엄하여 글자가 파리의 머리만하나 위치와 법도는 한결같이 대자(大字)와 같았다. 백수부자가 서로 돌아보며 탄복하면서 필법을 청하니, 미불이 말하길 “이것은 다른 것이 없고 지금 이후로는 매번 글씨를 쓸 때에 한 글자를 쓰더라도 반드시 제필로 써서 오래되면 자연히 익숙하게 된다”고 하였다.

: 嵯와 통함.     元章: 미불의 자


枕腕以書小字 提腕以書中字 懸腕以書大字. 行草卽須懸腕 懸腕則筆勢無限 否則拘而難運. 今代惟鮮于郞中善懸腕書 問之 則瞑目伸臂曰 膽!膽!膽! -陳繹曾《翰林要訣》

침완(枕腕)으로는 소자(小字)를 쓰고 제완(提腕)으로는 중자(中字)를 쓰고 현완(懸腕)으로는 대자(大字)를 쓴다. 행초서를 쓸 때에는 현완으로 해야 하니, 현완으로 하면 필세가 무한(無限)하다. 그렇지 않다면 구속되어 운필하기가 어렵다. 요즈음에 선우랑중은 현완(懸腕)으로 글씨를 잘 쓰기에 이에 대해 물어보니 눈을 감고 팔을 펼치면서 “대담하게! 대담하게! 대담하게 써보세요!” 라고 말했다.


 

古人貴懸腕者 以可盡力耳 大小諸字 古人皆用此法 若以掌貼桌上則指便粘著于紙 終無氣力 輕重便當失准 雖便揮運 終欠圓健. 盖腕能挺起則覺其竪 腕竪則鋒必正 鋒正則四面勢全也.  -徐渭《論執管法》

고인(古人)이 현완법을 귀히 여긴 것은 팔을 들면 힘을 다 사용할 수 있기에, 크건 작건 모든 글자에 고인들은 모두 이법을 사용하였다. 만약 손바닥을 탁자위에 붙이면 손가락이 종이에 달라붙어 마침내 힘을 사용할 수가 없다. 경중(輕重)에 법도를 잃게 되면 비록 운용은 편할 것이나 마침내는 원만하고 튼튼한 필세가 줄어든다. 대체로 손목을 일으키면 그 수직을 알 것이니, 손목이 수직이 되면 봉은 반드시 바르게 되며, 봉이 바르게 되면 사면의 세가 온전해진다.    


* 설명: 손목을 높이 들면 운동범위가 넓어 종횡으로 자유롭게 되며 여유롭게 운필할 수가 있을 것이다. 조맹부가 말하길 “고인은 하필(下筆)을 할 때 천인(千仞)의 세가 있어야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반드시 손목을 높이 들은 후에 가능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握管太緊則力止于管而不及毫 且反使筆不靈活 又安能指揮如意哉! -趙宧光《寒山帚談》

붓을 잡는 것이 너무 긴밀하면 힘이 필관에 머물러 필호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도리어 용필이 영활하지 못하게 되니 또한 어찌 손가락을 운용함이 마음과 같겠는가!


* 설명: 필력은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을 거쳐 붓끝으로 이르는 것이니 어느 한 곳이라도 긴장하여 힘을 쓰면 안된다. 전인에게는 “기는 열손가락을 거쳐 하나의 점으로 집중시켜야한다”라는 설이 있다. 붓을 잡음이 너무 긴밀하면 힘이 필관에 머물러 있고 손목부분이 너무 긴장되면 힘이 손목에 머물러 있게 된다.


筋生于腕 腕能懸 則筋脈相連而有勢 指能實 則骨體堅定而不弱. -豊坊《書訣》

근육은 손목에서 생기므로, 손목을 들면 곧 근맥이 서로 이어져 세(勢)가 있게 되며 손가락이 실하게 되면 골격과 몸체가 견고하고 안정되어 약해지지 않는다.


* 설명: 근은 글자의 근육이다. 손목을 들면 붓이 원활해지므로 기세가 펼쳐진다. 큰 작품을 쓸 때에는 일어서서 쓰는 것이 가장 좋다. 일어서서 쓰면 필력을 발휘하기에 쉬워지고, 또한 앞과 뒤를 보고 좌우를 맞춰보면서 전체를 보게 된다. 서서 쓸 때에는 두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오른 다리를 반보정도 내밀며 왼손으로는 탁자를 누르고 상체는 약간 앞으로 기울인다. 이렇게 하면 허리부분의 힘까지도 발휘하기가 쉬워진다.


 

3.방필법

   

右軍書于發筆處最深留意 故有上體過多而重 左偏含蓄而遲 盖自上而下 自左而右 下筆旣審 因而成之. 所謂文從理順 操縱自如 造化在筆端矣! -湯臨初《書指》

우군의 글씨는 발필처에서 가장 깊이 유의하였으므로 상체가 지나치게 무겁고, 좌측을 지나치게 함축하면서 느리게 한다. 대개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고 좌로부터 우측으로 써가니, 하필하면서 이미 살피고 그로 인하여 이루게 된다. 이는 문(文)이 따르고 이(理)가 순응하여 조종이 자유로우니 조화가 필단에 있음을 이르는 것이로다! 


要筆鋒無處不到 須是用逆字訣. 勒則鋒右管左 努則鋒下管上 皆是也 然亦只暗中機栝如此 著相便非. -劉熙載《書槪》

필봉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어야하니 모름지기 역을 사용하는 것이 글자의 비결이다. 가로획은 필봉을 우측으로 하고 필관은 좌측으로 하며, 세로획은 필봉을 아래로 하고 필관을 위로 하니 모두가 이것이다. 그러나 또한 암중에 권능(權能)이 이와 같으니 상(相)을 드러내면 문득 그르게 된다.


凡字每落筆 皆從點起 點定則四面皆圓 筆有主宰 不致偏枯草率. 波折鉤勒一氣相生 風骨自然遒勁. 董文敏謂如大力人通身是力 倒輒能起.  -周星蓮《臨池管見》

무릇 글자에서 매번 낙필을 할 때에는 모두가 점으로부터 시작하니 점이 정해지면 사면이 모두 원만하게 되는 것이다. 운필에는 주재(主宰)함이 있으면 너무 마르고 경솔함에 이르지 않는다. 파책(波磔) 전절(轉折) 구륵(鉤勒)이 하나의 기운으로 상생하면 풍골(風骨)이 자연 주경(遒勁)하게 된다. 동기창은 큰 힘을 쓰는 사람이 전신에 힘이 있어 넘어지면 문득 일어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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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란 무엇인가?

중국 고대 서론은 매우 방대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곱가지의 명제는 심미론에서

출발하여 그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는 기법론과

창작론․감상론도 포함되어 있다.

첫째, <骨氣論>은 서예의 <形質>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으로,

중국 서예의 심미 원칙에 대한 기본적인 요점이라 하겠다.

둘째, <神彩論>은 形質로부터 심화하여 神彩에 이르는 것으로,

形과 神의 변증법적인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셋째, <自然天趣論>은 기본으로 <神彩>에 대한 것을 확대하여

설명한 것으로, 이에 대한 핵심은 바로 <我神>에 있다.

그런데 이 <我神> 가운데에는 또한 정감과 인격 정신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나누면 넷째, <寄情論>과 다섯째, <人格象徵論>이라는

두 개의 명제로 나누어진다.

그 의미를 볼 때, 후자는 전자의 내재적인 기초가 되기 때문에

인격의 배양은 매우 중요한 명제로 대두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여섯째, <學養論>이라는 것이 파생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곱째, <通變論>에 이르러 앞에서

설명한 모든 명제들을 총집결하여, 서예의 가장 기본적인

규율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일곱 가지의 명제는 고대에 거의 동시적으로

생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부단히 발전하여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고 완전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는 상당히 완전한 규모를

갖추면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고대 서론이라고 할 수 있다.

1. 骨氣論


1)書以筋骨爲先

• 필력이 좋은 자는 골력이 많고,

필력이 좋지 못한 자는 획에 살점이 많다.

골력이 많고 획에 살점이 적은 것을 근서라 하고,

획에 살점이 많고 골력이 적은 것을 묵저라고 부른다.

(진)위부인<필진도>

• 글씨에는 근․ 골․ 혈․ 육이 있다. (청)주리정『서학첩요』

2)書以氣味爲第一

• 글씨를 배우는 요점은 오직 정신과 기운을 취하여 아름답게

하는 데에 있다. 만약 형상과 모양만을 모방한다면,

비록 형체는 같을지라도 정신이 없게 되어 글씨가 이루어진

바를 알지 못할 따름이다.(송) 채양『채충혜공 문집』

• 서론 중에서 골은 통상적으로 골력을 말하고 있다.

이는 필획에 내재된 힘이며, 이것으로부터 筋이라는 서법적

필의라는 말이 파생된다. 그리고 기라는 것도 서룬 중에서

여러 가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氣勢․ 氣韻․ 氣脈(行氣)등과

서예의 여러 요소 중에서 神氣와 書券氣 및 서예의 정신적

의취인 氣味 등을 통틀어 기라고 볼 수 있다.

骨은 서예의 비교적 형상적인 점과 획의 형태나 질감 그리고 힘과,

이것으로부터 형성된 미감에 편중된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하여 氣는 서예의 형상 가운데 비교적 추상적인

형식감에서 어떤 정신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데에 주로

편중되어 있다. 따라서 골기론을 좁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골력에 관한 기법과 의의 및 미학의 특징적인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2. 神彩論

• 神彩僞上, 以形傳神

神彩僞上, 形質次之

서예의 묘한 경지는 정신과 풍채를 으뜸으로 치고,

형태와 본질이 그 다음이다.(남조,왕승건)『필의찬』

형태와 정신의 관계를 체현하는 이론이 바로 神彩論이다.

따라서 형질의 필법․ 묵법․ 장법 등은 단지 수단에 불과한 것이고,

정신으로 쓰고자 하는 것이 최종의 목적이 된다.

이러한 설명은 신채가 서예에서 주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말이다.

<情神爲上, 捨形得神>이라는 것은 서예의 감상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이다. 이것은 결국 감상자와 작가가 이미 서예의

물질적인 형태의 감상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서로 교류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3. 自然天趣論

• 書者, 散也

글씨라는 것은 마음을 한산하게 하여야 한다.

글씨를 쓰려고 할 때에는 먼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한가하게 하고, 뜻에 맡기고 성품을 방종하게 한 뒤에

써야 한다.(한)채용, 『필론』

• 書初無意于佳乃佳爾

글씨를 씀에 있어서, 처음에 아름다움에 뜻을 주지 않았을 때

비로소 아름답게 된다. (송) 소식,『평초서』

<逸品>設

拙者勝巧

졸박한 것은 교묘함을 이긴다. (청)옹 방강『복초재문집』

<自然天趣>의 경지는 중국 고대 예술의 각 부분에서

최고로 숭상하는 경지이다. 서예에서도 중요한 심미적인

이론으로 별도의 창작론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미학

사상의 근원은 전국 시대의 노장 사상에서 기인한다.

고대 서론 중에서 서예의 최고 경지를 말할 때 항상<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본래<放縱>이라는 의미를 가리키는 것이다.

진부한 법도에 구속을 받지 않고 뜻을 따라 나아간다는 것으로

쓰였는데, 후세에 와서는 이를 마음에 작용이 없는 한가로움,

<安閑>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4. 寄情論


<寄情論>은 중국 고대 문학 이론 중에서 중요한 명제 중의

하나이다. 문학 이론 중에서 선진 시대에<詩言志>라는 유명한

관점이 있다.(《尙書․堯典》)

서예가 고도의 추상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주로 도덕과 교화의 목적으로 편중되고 있었을 때에는

서론 중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5. 人格象徵論

<人格象徵論>은 고대 서론 중 핵심이 되는 명제의 하나이다.

고대 서론 중에서 인격과 정신은 가장 높은 경지의 서예의

관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안진경의 글씨는 <堅正勻靜>하다고 하였다면, 이는 곧 그

글씨가 가지고 있는 장중하면서도 넓은 기본적 풍격을

말하는 것이다. 그

리고 이것은 또한 장중하면서도 깊고 연박한 것으로 알려진

대사학자 사마천의 인격과도 같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소식의 글씨에서 가로획과 세로획에 있어서 기울어진

것이 많은 것은 일종의 <天眞爛漫>한<豪杰之氣>로 표현하고 있다.

6. 學養論

<學養論>은 서예가가 서예 이외의 학문을 닦아,

자신의 학식과 수양을 높임으로써 심미 능력을 배양하여

서예의 경지를 높인다는 이론이다.

명나라 동기창이 말한 <讀萬券書, 行萬里路>라는 여덟

글자는 중국 고대 예술가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수양에

대한 관점을 알려 주고 있다.

7. 通變論

처음 글씨를 배우는 자들은 글자의 구성과 형세를 제대로

맞추는 데 주력하나 오직 평정함만을 추구해야 된다.

글씨가 이미 평정하게 되었으면 이번에는 다시 험절함을

추구하여야 한다.

이미 글씨가 험절해졌으면 이번에는 다시 평정함으로

돌아와야 한다.

첫 단계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것 같으나 중간 단계는

오히려 지나친 것 같으며, 마지막 단계는 이치를 통하게 된다.

이치를 통할 정도가 되면 글씨도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어

노숙하게 된다. (당)손과정,『서보』

貫通古今, 方能變新

<通變論>은 고대 서예 창작론 중의 하나로 모든 예술 발전의

내재적인 규율이다.

서학도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通變>의 정신으로 고루한

서예에 다시 한번 새로운 광채를 발휘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곽노봉 선역,『중국 역대서론 정태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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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법(서예) 감상하는 법


서법감상의 심미표준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서법감상의 기초를 정확하게 진행하는 것이고, 서법감상의 방법을 장악하는 것은 서법감상의 관건을 진행하는 것이다.

 

1. 서법의 심미표준


남조의 서가 왕승건은 <筆意贊>에서 말하기를" 서의 묘한 도는 신채가 제일 우선이고 형질은 그 다음이다. 이것을 겸한 사람은 고인에 이을 수 있다"라고 한다. 이 말 속에는 형질로서 신채를 쓰기를 강조하고 이 두 가지를 겸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形"은 점획 및 이것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서법공간의 결구를 포함하고, "神"은 서법의 神采의미를 주요하게 가르친다.

 

(1) 서법의 점획


서법의 점획은 무한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으나 이것은 원래 추상이고 구성적인 서법의 형상도 확실히 지적하는 바가 없으며 오히려 그 중에서 전체의 미적특질을 포용하기를 요구한다. 이와 같이 서법의 점획에 대하여 특수한 요구를 들고 나오게 한다. 즉 역량감, 절주감과 입체감을 가지고 있도록 요구한다.

 

가.力量感

점획의 역량감은 선조미의 요소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일종의 비유로 점획은 사람의 마음속에 불며 일어나는 힘의 감각이 있다 일직이 한나라의 채옹은<九勢>에서 점획은 전문적인 연구에 의해서 나왔으며 " (장두획미)해야 힘이 그 글자 중에 있다" , "붓의 중심은 항상 점획 가운데를 지나야 한다", " 점획은 세가 다하면 힘으로 그것을 거두어들인다"라고 가르친다.

점획은 심장규각이 되도록 요구하고, 붓이 갔으면 반드시 되돌려야 하며, 처음과 끝이 있어야 하며, 그래야 힘의 정도를 보여준다. 주의 할 것은 '장두획미하고 규각을 드러내지 아니함은 중간의 행필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중간 행필은 반드시 삽세이며 중봉을 취해야 하고 점획로 하여금 혼돈하고 순화되고, 온순하게 하면서도 부드럽지 않게 함으로 힘이 그 속에 있다. 단지 이것은 점획의 起止이며 전부가 深藏圭角하고 봉망을 드러내지 않는것은 아니다.(대전과 소전은 모두 장봉이다) 서법중에 가끔은 장봉과 노봉의 결합을 필요로 하는데 특히 행초서 중에서 천변만화하고 감상할 때 起止적인 연접과 호응에 주의를 해야 하고 중단에 글씨가 경박하거나 부활이 않되기를 주의를 요한다.

 

나. 節奏感

절주는 원래 음악이 음부에서 규율의 고저, 강약, 장단의 변화를 말한다. 서법은 창작과정에서 운필과 용력의 대소와 속도 쾌만의 차이에서 경중, 조세, 장단, 대소등의 서로 다른 형태의 교체변화를 만들고 서법의 선조점획으로 하여금 절주를 만들어낸다.

한자의 필획장단, 대소차이, 이런 것이 서법중의 점획 선조의 절주감을 더해준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정태적인 서체(전서, 예서, 해서)의 절주감은 비교적 약하고 동태적인 서체(행서, 초서)의 절주감은 비교적 강하고 변화 또한 매우 풍부하다.

 

다. 입체감

입체감은 중봉용필의 결과인데 중봉으로 쓴 필획은 "햇빛에 비추어 보면 획의 중심에 짙은 먹의 흔적이 있는데 이것은 중봉의 결과이고 선조의 꺾이는 부분에서도 또한 측 봉과 편 봉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해야 점획선조가 포만하고 원형의 실함을 나타내고, 깡마르지 않고 윤 갈이 있게 된다. 때문에 중봉용필은 역사 이래 중시되고 있다 그러나 서법 창작 중에 측 봉 용필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소전을 제외하고는 기타의 모든 서체에서 측 봉은 떨어질 수가 없다 특히 행 초 서중에서 측 봉은 중봉의 보조와 덧붙이기 역할을 해서 여러 곳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

 

(2) 서법의 공간결구

서법의 점획선조는 한자의 형체와 필순원칙의 전제하에 따라서 교체조합하고, 공간을 분할하며, 서법의 공간결구를 형성한다. 공간결구는 각 글자의 결체, 행간의 행기, 그리고 전체적인 포국의 3가지 부분을 포함한다.

 

가. 각 글자의 결체

한 글자의 결체는 정제평정, 장단의 조화, 소밀의 균형등을 요구한다. 이렇게 해서 바른 틀 안에서 바르게도 하고 기울게도 하며 여기저기 섞어 변화를 주며, 자연스런 형상을 만들게 되며, 평정 중에서 험절을 나타내어야 하며 험절 중에서 의취를 구해야 한다.

 

나. 전체적인 행의 행기

서법작품중의 글자와 글자는 상하가 혹은 전후가 서로 이어지고 소위"연철"을 이루어서 상하의 승접, 호응연관을 요구한다. 해서, 예서, 전서등의 정태적인 서체는 비록 자자독립하고 붓놀림은 끊어지지만 필의는 연속된다. 행서와 초서등의 동태적인 서체는 자자연관, 유사견인하게 된다. 이외에도 전체적인 행간의 행기는 대소변화, 글자의 똑바름과 기울임 그리고 호응, 허실변화등에 주의해서 절주감을 만든다. 이렇게 해서 행간의 행기가 자연스럽게 연관되고 혈맥이 환하게 통하도록 한다.

 

다. 전체적인 포국

서법작품은 점을 모아서 글자를 만들고 글자가 이어져서 행을 이루며 행을 모아서 문장을 만들며 점획선조는 공간의 분할을 구성하게 되며 이렇게 구성된 것이 전체적인 서법의 전체포국이라고 할 수 있다. 글자와 글자, 행과 행간의 소밀은 바르게 되어야 하고, 여백을 계산해서 공간을 채워 나가야 하며, 평정하고 균형있게 해야 하며, 글자가 바르게 서고 기울게 선 것이 서로 조화가 되어야 하며, 이렇게 들쭉날쭉하고 울퉁불퉁해야 변화가 많게 된다. 그 중에서 해서, 예서, 전서등의 정태적인 서체는 평정과 균형을 위주로하고, 초서등의 동태적인 서체는 변화가 엉키어 있고 질탕하고 기복해야 한다.

 

(3)서법의 신채의미

神采는 원래 사람의 얼굴의 신기와 광채를 말한다. 서법중의 신채는 점획선조와 결구조합중의 표출된 정신, 격조, 기질, 정취와 의미의 전체적인 총칭이다 "신채가 우선이고 형질이 다음이며 이것을 겸비한 사람은 고인에게 알릴 만 하다." 이 말은 "형질 (점획선조및 그 결구포국의 형태와 외관)"보다는 신채를 높게 말한 것이다 형질은 신채가 있다는 전제와 기초를 말한다. 때문에 서법예술 신채의 실질은 점획선조 및 그 공간조합의 총제적인 조화이다. 신채를 추구하는 것은 서법가의 최고의경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서법중의 신채의 획득은 한편으로는 창작기교의 정묘함과 익숙함에 의해서 생겨나니 이것은 전제와 기초가 된다. 또 한편으로는 창작할 때의 마음의 상태, 창작 중의 심수쌍창, 물아일치등에서 진정한 감정을 표현 하고 자기의 지식과 학문수양과 심미의취를 표현 한다.

 

 

2. 서법감상의 방법


서법감상은 기타의 예술품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데 인류인식활동의 일반적인 규율을 따른다. 서법예술의 특수성에 따라 서법감상은 방법상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음의 몇개의 방법을 따를 수 있다.

 

(1)전체에서 국부로 , 국부에서 전체로


서법감상할 때 먼저 전제적으로 한 번 보고 표현수법과 예술풍격의 개괄적인 인상을 보는 것이다. 나아가서 용필과 결자, 장법, 묵운등의 국부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이것은 법과 의를 겸하고 있는지, 생동활발한지의 여부를 보는 것이다. 국부에 대한 감상이 끝나고 난 후 다시 멀리 물러서서 전체를 보고 처음에 보고 얻은 대략적인 인상을 수정하고, 거기다가 새롭게 이성적으로 파악한 것을 더한다. 예술표현수법과 예술풍격의 협조여부를 주의깊게 보고 어느 곳이 精采이고 어느 곳이 부족한지를 보아전체적인 느낌과 세부적인 느낌을 충분히 반영하도록 한다.

 

(2)정지되어 있는 형태와 운동적인 과정을 파악해서 연상하도록 한다.


서법작품의 창작물은 정지적이지 동적이지는 않다. 감상할 때 작자의 창작과정에 따르고 글자의 선을 따라서 이동하는 방법을 채용하고, 작품의 전후(말, 시간)시간에 의거하고, 작자의 창작과정 중 용필의 절주를 생각하고, 작자의 감정의 부동의 변화를 헤아리고, 정지적인 형태뿐만아니라 운동의 과정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작자의 창작과정을 그대로 모사하고 작자의 창작의도와 감정변화등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3) 서법형상에서 구체형상까지 연상해서 작품의 意境을 정확하게 이해한다.


감상하는 과정중에 서법형상과 실제생활중에 서로 유사한 진행을 비교해서 서법으로 하여금 형상의 구체화를 연상하도록 한다. 그 다음에 서법형상화와 비슷한 사물의 심미특징으로 부터 작품의 심미가치까지 작품의 의경을 이해해야 한다 안진경 해서를 감상할 때가 대표적인 것이다.

 

(4) 작품창작의 배경을 이해하고 작품의 정서와 격조를 정확히 파악한다.


어떤 서법작품이든지 문화와 역사의 산물이다 때문에 작품의 배경을 이해하고 작품 속에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 지식과 작자의 인격수양, 심미정취, 창작심경, 창작목적등등을 헤아려서 작자의 창작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작품의 정서와 격조를 파악해야한다. 작자의 인격수양, 창작심경, 창작환경 이런 것은 모두가 작품의 정서와 격조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거기다가 서법작품은 특정한 시대의 서풍과 심미풍조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점이 서법작품을 감상하는데에 어렵게 하고 동시에 서법감상의 묘미를 생기게 한다.

결론적으로 서법감상과정 중에 개성 심리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감상하는 방법에는 고정된 모범적인 틀은 없다. 이상의 서법감상의 방법은 감상하는 과정 중에 몇 개의 것을 교체 사용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감상 중에 반드시 각종서법기능, 기교와 서법이론지식을 종합해서 자기의 심미평가능력을 극대화하고 작자의 창작의도를 작품 속에서 몸소 느끼도록 한다. 노력은 감상 중에 평을 하게하고 평 중에 감상을 있게 하며 작품이 역사적 환경중에 놓인 처지를 고찰하게 하며, 정확하고 공정하게 , 객관적인 평가를 하게 한다. 당연히 정확하게 감상하는 방법을 장악하고 난 후에 감상에 나아가야 하는데 이것은 감상능력의 지름길을 만들어 준다. 揚雄이 " 능히 천 종류의 검을 보고난 후에 능히 검을 알고 천편의 賦를 읽고 난 다음에야 부에 능하다"라고 한 이 말이 진실로 의미 있는 말이다.

 

 

 

 

 

 

중국의 서첩 인용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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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공부를 위하여 우리는 교재를 선택하고 그것을 꾸준히 임서하는 길을 걷게된다. 최근에 주로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법첩을 서체별로 정리해 보았다.
(초보자를 위한 참고용일 뿐이다)

  • 전서

    - 석고문, 태산각석
    소전과 대전의 양식을 고루 갖추고 있는 석고문을 먼저 쓰는 추세이다.
    금문과 같은 대전을 공부할 수도 있고, 소전을 공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태산각석도 이와 유사하다.

  • 소전

    - 등석여 전서, 이양빙 삼분기
    등석여와 같은 청대의 소전이나, 당나라 때 이양빙의 삼분기가 좋다.

  • 금문

    - 산씨반, 모공정, 대우정 3가지 정도면 족하다.

  • 예서

    - 을영비, 석문송, 예기비, 사신비, 서협송, 장천비, 광개토대왕비
    예서는 한나라 시대의 예서를 공부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해서를 공부할 때도 한예를 근본으로 하여 배워야 한다.
    광개토대왕비는 우리나라가 자랑할 수 있는 대단히 훌륭한 법첩이다.

  • 목간

    - 무위한간, 거연한간
    예서가 꽃을 피울 무렵 사용한 민간서체 목간은 비문과 달리 생생한 육필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목간, 죽간, 백서들이 여기에 속한다.

  • 행서

    - 난정서, 집자성교서, 흥복사 단비, 안진경 쟁좌위고(행초), 황정견행서, 소식행서, 미불 촉소첩, 왕탁 행서
    행서는 왕희지를 비롯하여 당대 안진경 쟁좌위고를 비롯한 3고와 개성을 존 중한 송대의 소식, 미불, 황산곡 등이 유명하다.
    또한 청대의 왕탁은 왕희지에서 근본을 삼고 있으면서 현대적 미감을 보여주고 있어 행서에서 훌륭한 교재가 될 수 있다.

  • 초서

    - 왕희지 초서, 손과정 서보, 왕탁 초서, 부산초서 들이 있다.

  • 해서

    - 장맹룡비, 정문공비, 원현준묘지명, 채경옹묘지명 그밖의 묘지명
    - 구양순 구성궁예천명, 안진경(공자가묘비)
    육조시대 해서는 장맹룡비와 정문공비가 가장 훌륭하여 북위시대 대표적인 글씨로 인정되고 있다. 방필을 사용하여 북방의 굳세고 힘찬 기상을 대표하는 장맹룡비와 북방의 기상에 남방의 부드러움을 겸비하여 웅혼한 기상을 내포하고 있는 정문공비는 매우 훌륭한 교재가 될 수 있다.
    그 외에 다양한 개성을 가진 여러 묘지명을 참고해 볼만하다.
    당나라 해서는 육조서에 비교해보면 같은 해서라도 서풍이 매우 다르다.
    구양순, 안진경을 훌륭한 교재로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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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鋒에 관한 小攷

義石 洪愚基


Ⅰ 서언(序言)


20세기 한국의 서예는 공모전을 위한 준비와 그 결과로 얻어지는 초대작가라는 명예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시기이다. 공모전에 당선되기 위하여 작가들은, 개성적인 글씨보다 영향력있는 몇몇 작가의 글씨풍을 선호하였고, 공모전에 유리하다는 이유때문에 몇몇 서체와 몇몇 비첩만이 서예교육의 중심에 있었다. 출품자들은 다른 작품보다 더 드러나게 보이기 위하여 변화가 풍부한 가늘고 작은 글씨보다는 힘이 있어 보이는 굵고 큰 글씨를 선호하였고, 모험적인 면보다는 정해진 틀에서 안전하게 작품을 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붓도 세필보다는 큰 붓을 주로 사용하였고 작품의 규격도 너무나 커서 실용의 범위를 벗어나 단지 전시용으로만 사용되었다. 작가들의 생각이 여기에 묶여있는 동안 우리 한국의 서예는, 그 근본이 되는 서예이론이나 서예사, 우리 한국의 서예 등에 관하여는 너무나도 소홀하게 다뤄졌음으로, 늦은 감이 없지는 않으나, 이제부터라도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에서부터 심각하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예는 대체로 붓에 먹물을 찍어 점획을 긋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기 때문에, 글씨의 서사과정에 붓의 역할은 대부분의 과정을 차지한다. 이렇게 중요한 붓을 다루는 데에 서예인들이 금과옥조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중봉이다. 그러므로 서예를 시작하는 사람에서 깊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까지 모두가 이 중봉을 중요시하고 소홀히 여기는 사람이 없으나, 막상 작품에 임하여서는 그렇지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작품은 그 기초적인 틀에 속박되어 있는 것 같고, 어떤 작품은 필법을 멋대로 벗어나 붓을 마구 휘두른 것 같기 때문이다. 이는 서법을 잘못 생각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중봉은 구속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 편리할뿐더러,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어느 경지로 인도하는 안내자와 같은 것이다. 자전거를 배울 때, 처음에는 이리저리 쓰러져 불안하지만, 중심을 잡을 줄 알고, 이리저리 방향을 틀을 수 있으며, 브레이크를 잡고 타고 내릴 수만 있다면, 편리하게 즐기면서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붓의 다양한 성능을 분명하게 알고, 붓이 꼿꼿이 서서 쓰러지지 않아 그를 자신의 수족처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면, 주경(遒勁)하고 아름다운 필획을 구사할 수가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고는 그동안 많은 서예인들이 생각하여 왔던 중봉에 대한 대강의 견해를 살펴보고 그 중봉으로 나타나는 효과를 살펴보는 것으로 중봉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Ⅱ 중봉용필(中鋒用筆)


1. 필성(筆性)


“군자의 성(性)은 중인(衆人)들과 다르지 않다. 배워서 사물의 능력을 잘 빌릴 뿐이다”1)라는 말처럼, 사람의 능력은 사물에 대한 이해와 운용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사람이 만약 자동차를 능숙하게 운전할 수 있다면 필요한대로 자동차를 다양하게 운용할 수 있으나, 운전을 하지 못하면 고철덩이에 불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붓이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안다면 우리는 그 붓의 성질을 이용하여 마음대로 붓을 다룰 수 있다. 다음은 먼저 붓의 특성을 대략 다섯 가지로 분석해본 것이다.

첫째, 붓은 부드러우면서 탄성이 있다. 요즘의 펜은 사용법을 따로 익힐 필요도 없이 바로 글씨를 쓸 수 있지만, 붓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루기가 어려워, 이를 마음대로 다루려면 많은 세월의 고된 연습이 필요하다. 경필(硬筆)은 누구나가 쉽게 다룰 수 있는 대신 일정한 선만을 그을 수밖에 없지만, 부드러운 붓으로는 그 탄력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

둘째, 많은 털을 모아 만들었기 때문에 붓끝을 모으거나 펴서 획의 굵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또한, 많은 털은 먹물을 저장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한번 먹물을 찍어 많은 글자를 단번에 쓸 수도 있게 한다. 붓에 먹물이 많을 때에는 푹 번지는 획을 그을 수 있고, 먹물이 적을 때에는 비백(飛白)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붓에 같은 먹물이 있어도 붓을 눌러주고 들어주며 지속완급을 조절하는 것으로도 이러한 효과들을 얻을 수 있다.

셋째, 붓털이 길기 때문에 새끼줄처럼 꼬이게 할 수도 있고 곧게 펴서 운필할 수도 있다. 붓털을 가지런하게 하면 먹은 편하게 붓끝으로 흘러내려 행필이 또한 포만(飽滿)하고 후실(厚實)해진다. 반대로 붓털이 굽거나 꼬이면 먹물이 편안하게 아래로 내려오지 못해 다양한 비백효과를 만들어 낸다. 마치 강에 굴곡이 심하면 그 유속이 느려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붓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운필의 빠르고 느림과 붓털을 꼬고 펴며 누르고 들어주는 것을 이용하여 다양한 선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넷째, 끝이 뾰족한 많은 털을 묶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끝을 모으면 봉이 뾰족하여 옆에서 보면 어느 쪽으로 보아도 둥근 송곳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를 이용하여 붓을 들어주거나 눌러주면서 굵기를 조절할 수도 있으며, 필봉의 중심을 중간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고, 필획의 가장자리로 향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性을 이용하지 못하면 필호가 꺾여 드러눕게 되고, 지면에 작용하는 힘도 일치하지 않아, 점획이 추하고 기괴해진다. 필호에는 주부(主副)가 있어, 주호(主毫)는 골을 세우고 근육으로 싸는 역할을 하고, 부호(副毫)는 선의 고움을 얻는 역할을 한다.

다섯째, 그 절면(切面)을 보면, 서양의 그림붓은 평면적인데 반하여, 서사에 사용하는 동양의 붓은 원형이다. 서양의 붓은 넓적하기 때문에 몇 가지 효과밖에 기대할 수가 없어 주로 면에 색을 칠하기 위한 것으로 활용하지만, 동양의 붓은 절면이 원이기에 작용력과 반작용력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고 팔면으로 출봉하며 다양한 선질효과를 낼 수가 있다.2) 이는 굳이 붓을 돌리지 않아도 어느 방향으로든 여러 가지 효과를 만들어 낼 수가 있음을 의미한다.


2. 중봉(中鋒)


1) 수봉(竪鋒)․조봉(調鋒)

수봉은 필봉을 바르게 들어 지면의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수직으로 세우는 것으로, 이것은 중봉용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글씨를 쓰기 전에는 주호(主毫)와 부호(副毫)가 고르게 서서 엉기거나 굽는 현상이 없으나, 붓이 일단 종이에 닿으면 종이위에 눕게 된다. 하지만 붓이 누워서 끌려가고 끌려온다면 필획은 단조로워지고, 붓끝에도 힘이 이르지 않아 편박한 필획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필봉을 똑바로 세우면[수봉(竪鋒)] 중봉으로 유도되어 중함(中含)하는 효과와 원적(圓的)인 입체감을 주기 때문에, 역대로 서가들은 수봉을 매우 중시하였다. 물체에 작용하는 힘은 힘을 주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수직에서 작용력이 가장 크게 나타나고, 수직과 각도가 크면 클수록 그에 대한 작용력은 더욱 작아진다. 45도 방향에서 힘을 가하면 직각방향에서 똑같은 힘을 주었을 경우에 비해 절반의 작용력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일정한 힘을 주어 그만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만큼 힘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붓을 수직으로 세워서 전체의 역량을 종이에 집중시키는 수봉은, 중앙으로 필봉을 유도할 뿐 아니라, 역감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힘을 강하게 준다고 역감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지만 붓을 똑바로 세웠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필획은 상당히 달라진다.

모든 필획에는 반드시 중심이 있고 외계가 있다. 중심은 주봉에서 나오고 외계는 부호에서 나온다. 필봉에 처음․중간․마지막을 모두 실하게 해야 하고, 호(毫)는 상하좌우를 모두 가지런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글씨를 쓰다보면 제안(提按)을 거듭하고 전후좌우로 방향을 바꿔가며 운필하여야 하니 필봉이 항상 중심에만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좋은 필획은 조정과 전환을 그치지 않는 데에서 나타나는데, 이러한 운필방법을 조봉(調鋒)이라고 한다. 조봉의 기본수단에는 제안돈좌(提按頓挫)가 있으며, 제안에 관해서는 역사상 두 가지의 견해가 나타난다. 첫째는, 필봉을 누르는 것을 안필(按筆)로 사용하고, 필봉을 들어주는 것을 제필(提筆)로 사용하여 필획의 굵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둘째는, 필봉을 모으는 것[斂心]을 제필(提筆)로 보고 필봉을 펴는 것[展筆]을 안필(按筆)로 여겨서 필획의 굵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어느 방법을 사용하건 제와 안은 붓을 모아주고 펴서 필획의 굵기를 조절하며 다양한 필획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진역증(1333-1340)은 “성근 곳에서는 풍성하게[날만(捺滿)] 하고, 빽빽한 곳에서는 수척하게[제비(提飛)] 하며, 평이한 곳에서는 풍성하게 하고, 험절한 곳에서는 수척하게 하라. 날만은 살찐 것이요, 제비는 수척한 것이다”3)라 하였다. 이는 용필이 무거운 곳에서는 제비(提飛)해야 하고, 용필이 가벼운 곳에서는 바로 실안(實按)을 해야, 너무 무거워 축처지거나 너무 가벼워 표령하는 단점을 벗어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안필(按筆)은 반드시 제(提)의 기초위에서 눌러가고, 제필은 곧 안(按)을 한다는 전제에서 제기(提起)한다. 이러한 이유로 제(提)를 빼놓고 안(按)을 말하거나 안(按)을 빼놓고 제(提)를 말하는 것은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있을 수가 없다. 조봉은 동시에 환향(換向)과 조정작업(調整作業)을 계속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환향은 붓의 사용면을 바꾸는 것이지 필심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 유희재(1813-1881)는 「예개」에서 “필심(筆心)은 장수요 부호(副毫)는 병졸이다. 병졸은 바꾸어 대신할 수도 있지만 장수는 대신할 수가 없다. 논자(論者)가 매번 필심(筆心)을 바꾼다고 말하나 사실은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2) 포호(鋪毫)․과봉(裹鋒)

오육(吳育)은 포호설의 시조로, 그는 포호와 이양빙의 전서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양빙의 전서를 보면 필획이 가늘고 꼿꼿하여 부호가 종이에 닿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포호에는 사포(斜鋪)와 평포(平鋪)가 있다. 사포는 편봉이나 측봉을 의미하고, 평포는 중봉을 의미한다. 평포는 붓끝을 가지런히 벌려 그 벌어진 길이가 곧 획의 넓이가 되는 방법이다. 포(鋪)라는 것은 포호중봉으로 행필할 때에 진력(盡力)으로 필호를 벌려 필봉을 평포하는 것이다. 필봉이 치우치지 않으면 만호가 일력(一力)이 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필력이 고르게 유지될 수가 있고, 빼어나면서 맑고 아름다운 필획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4) 이는 모든 호망(毫芒)이 지면에 접촉할 때에 서로 같은 작용을 일으키고, 글씨를 쓰는 사람의 손을 통해 전달하는 힘이 고르게 점획속에 주입하게 되면 어떻게든 치우침이 있을 수가 없음을 설명한 것이다.

포세신(1775-1855)은 필첨을 곧바르게 내리고[필첨직하(筆尖直下)], 장봉으로 내전(內轉)할 것[장봉내전(藏鋒內轉)]을 강조하였다. 필첨을 바르게 내리는 것은 필봉을 바로 세워 종이위에서 행필하기 위함이다. 필봉이 종이위에 똑바로 서서 움직이면, 필봉의 자유운동과 수시조정을 보증할 수가 있어서 엉키지 않는다. 오육은 “붓으로 필봉을 펴서 종이위에 평포(平鋪)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러야한다”고 했다. 종이위에 평포하는 것은 필봉을 똑바로 내린 결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상에 평포할 때에 장봉을 따로 하지 않고 내전(內轉)을 하는 것이다.

중봉용필에서 매우 중요한 또 하나는 과봉(裹鋒)이다. 포세신에 의하면 “과봉은 저수량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며 서호(703-782)나 안진경(708-784, 一作709-785)이 사용하였고, 소동파(1036-1101) 등이 능하였다”5)라고 말하고 있으나, 포호와 과봉의 분별은 청대의 서가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용필의 제안(提按)을 나누어 포호를 안(按)으로 과봉을 제(提)라고 하였다. “과봉은 서사할 때에 전체의 필봉이 원추모양을 유지하는 용필방법으로 평포(平鋪)와 상대되는 말이다. 봉을 모아 안으로 집결하면 붓은 획의 중심으로 움직이고 선조는 전체가 간명하게 모여 주경감(遒勁感)과 탄력감(彈力感)을 준다.”6) 필봉이 원추모양을 유지하니 어느 방향으로 붓이 움직이더라도 중봉이 되기 때문에 운필에 자유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며, 부드러워지고 서로 호응하는 필획을 구사할 수 있다. 붓이 자유롭게 움직이니 필호에는 자연스런 변화가 나타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경하고 다양한 필획이 나타나게 된다. 포과(鋪裹)는 상대적이면서도 보완적인 관계에 있어 서가들은 이를 이용하여 아름답고 역감이 있는 필획을 만들어 낸다.


3) 측봉(側鋒)․편봉(偏鋒)

일반적으로 “전서를 쓰는 데는 중봉을 많이 사용하고 예서를 쓰는 데는 측봉을 겸용하며 전법은 원필이고 예법은 방필이다. 이는 측봉용필이 실질상으로는 예법에 기원한다는 것을 초보적으로 제출한다.”7) 전서에서 예서로의 발전은 중봉필획에서 측봉(側鋒)이 가미된 자유로운 필획으로 변화한 것이다. 곡선을 위주로 하는 전서에서 직선을 위주로 하는 예서로의 변화는, 문자를 간단하게하고 서사속도를 빨리 하여, 문자가 실용과 대중속으로 파고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대중이 문자를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예술미가 가미된 것은 결국 화려한 한자예술의 꽃을 피우는 기반이 되었다. 다시 그것은 해서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초서가 탄생하는 길을 열어 주었으므로, 중봉에서 측봉으로의 변화는 결국 중국서예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주화갱은 「임지심해」에서 “정봉에서는 굳셈을 취하고 측봉은 연미함을 취한다. 왕희지(321-379, 一作303-361, 一作307-365)의 글씨인 「난정서」는 연미함을 표현할 때에 때로 측봉을 사용하였다. 나는 매가 토끼를 잡을 때에 먼저 공중에서 빙빙 돌다가 그런 후에 날개를 옆으로 하여 스쳐지나가면서 내려와 움켜쥐는 것을 매번 보았다”8)라고 했다. 글씨를 쓰는 것도 이와 같아서 붓을 잡아 곧바로 아래로 내리는데 필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점과 획을 서사할 때마다 따로 역입을 하고 회봉을 하면서 장봉과 중봉을 도모한다면, 그로해서 나타나는 결과가 튼실하고 주경한 느낌은 있으나 필맥이 끊어지고 절주감을 잃을 것이다. 마치 박자를 놓치고 음정이 맞지 않는 노래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는 것처럼 글씨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횡획은 필봉을 세로로 입필하고 수획은 필봉을 가로로 입필한다”9) 이러한 논리는 필세의 왕래를 편리하게 하였고, 전법에 비하여 기필을 빠르고 간편하게 하였다. 측봉은 중봉과 편봉사이에 끼어있는 용필방식이다. 고인(古人)이 점법(點法)을 측법이라 한 것도 점이 측봉으로 세를 취한다는 의미가 있다. 편봉용필은 필호에 긴장감이 없어 그 필획에 부박(浮薄)한 느낌이 들지만, 측봉용필이나 중봉용필은 필호에 긴장감이 있어서 필획에 입체감이 드러난다. 중봉운필은 필호를 지상에 평포하고 측봉운필은 필호를 지상에 사포한다. 필모가 지상에 사포하면, 조봉을 통해 필모를 지상에 평포하도록 한다.

이른바 편봉은 운필할 때에 붓대가 기울어져 필봉이 획의 한쪽 변에 있고 필신(筆身)은 획의 다른 한쪽 변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쪽 면은 매끄러우나 다른 면은 톱니와 같이 고르지 못하게 되고, 먹이 종이에 스며들지 않아 필획은 편평(扁平)하며 종이위에 떠있는[부로(浮露)] 느낌을 주게 된다. 편봉은 필모가 종이위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요, 측봉은 누웠으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봉과 측봉은 서로 비슷하기는 하나 근본적으로는 다르다.


3. 중봉(中鋒)에 관한 제설(諸說)


왕세정(1526-1590)은 “정봉이나 편봉이란 말이 고본에는 없었으나 근래에 축윤명(1460- 1526)을 공격하기 위하여 이를 말했을 따름이다”10)라고 하였다. 이처럼 중봉론11)이 심각하게 논의되었던 것은 명말에서 청에 이르는 시기였으니, 이로 미루어 보면 중봉이나 편봉 등에 대하여 그전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중봉설의 연원은 채옹(133-192, 一作132-192)의 「구세」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세」에서 “장두(藏頭)는 원필로 종이에 대어 필심을 항상 점획의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것이다12)”라 하였다. 후에 이세민(597-649)은 「필법결」에서 이르기를 “대저 완(腕)이 수직이면 봉(鋒)이 바르고 봉이 바르면 사면의 세가 온전해진다”13)라 하였다. 이 두 가지 설은 후세 중봉관의 근원이 되었다. 사실 중봉설의 전신은 정봉설(正鋒說)이다. 정봉이란 말은 강기(1155- 1235, 一作1163-1203)의 「속서보」에서 “안진경(708-784, 一作709-785)과 유공권(778-865)에 이르러 비로소 정봉을 사용했으며, 정봉에는 표일한 기운이 없다”14)라고 한 것이 처음이다. 당대(唐代)의 풍방은 「서결」에서 “고인(古人)이 전서․팔분․해서․행서․초서를 썼지만, 용필은 다르지 않았고 반드시 정봉을 위주로 했으며 간간히 측봉을 사용하여 고운 자태를 취했다”15)라고 했다. 여기서 정봉과 대립적인 것이 측봉과 편봉이다. 이로부터 많은 이들이 중봉에 대하여 말했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중봉에 대한 역대의 이론은 대체로 다음 세 종류의 중봉관(中鋒觀)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 중봉관은, 필첨이 시작에서 끝까지 점획의 중간에 있어야 비로소 중봉․정봉이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편봉․측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송대의 진유(陳槱)는 “이양빙(李陽氷)은 홀로 그 묘함이 뛰어나서 항상 진적(眞跡)을 보면 그 자획이 시작하고 멈추는 곳에 모두 약간의 봉망(鋒芒)이 드러났다. 햇빛에 이를 비춰보면 중심에 있는 한 줄의 선에 먹이 배로 짙었으며 그 용필은 힘이 있고 곧게 내려 치우치지 않았으므로 봉은 항상 필획의 가운데에 있었다(惟陽氷獨擅其妙 常見眞跡 其字畫起止處 皆微露鋒鍔 映日觀之 中心一縷之墨倍濃 蓋其用筆有力且直下不欹 故鋒常在畫中)”16)고 했고, 서현의 전서에 대하여도 이와 유사한 기록이 있다. 이는 필봉이 항상 필획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주봉과 부호에서 연출되는 작용에 의해 중앙과 양변의 먹색이 달라짐으로 해서 입체감을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또한 양변은 보드랍고 중실하며 공제효과(控制效果)와 역감(力感)이 있음으로 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필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봉을 완전하게 운용하려면 전서를 제외한 다른 서체에서는 가능하지가 않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학설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중봉관은, 예․해․행․초서의 하필(下筆)과 전절처(轉折處)에서 필봉을 정중앙으로 유지할 수없다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중봉용필은 마땅히 행필할 때에 부단히 필봉을 조정하여 측봉으로부터 중봉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세」의 “필심을 항상 점획의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令筆心常在點畫中行)”는 말에서 ‘令’의 의미를 부각시킨 것이다. 필첨을 항상 중심으로 유지할 수가 없기에 끊임없는 제어를 통해 필봉을 점획의 중심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봉과 정봉은 개념을 달리한다.

세번째 중봉관은, 구양수(1007-1072)로부터 시작하였으며, 소동파는 「동파제발」에서 “그 운필은 전후좌우로 기울어지고 치우침을 면할 수가 없으나, 그 안정됨은 상하로 줄을 끄는 것과 같다. 이것을 필정(筆正)이라 한다17)”고 기록하였다. 상술한 두 번째의 중봉관과 모양이 비슷한 곳은 중봉용필이 정봉이나 측봉으로부터 상호보완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요, 서로 다른 점은 단지 점획전절처(點畫關節處)18)에서 필봉을 상하로 줄을 끄는 것과 같이 해서 정봉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청대의 왕주(1668-1743)는 “중봉은 필획의 가운데에서 봉을 움직이는 것이니 평측언앙(平側偃仰)을 뜻에 따라 구사하는 것이다. 필봉이 이미 안정되면 단정하기가 마치 줄을 끄는 것과 같으니[단약인승(端若引繩)], 이러면 필봉이 위나 아래로 치우치지 않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아 팔면으로 출봉하게 된다. 붓을 팔면으로 출봉하게 되면 마땅하지 않는 것이 없다”19)라고 했다. 왕주가 여기서 말한 ‘단약인승(端若引繩)’이란 글자의 필획이 단정하기가 뽑아놓은 묵선과 같이 곧은 것을 가리킨다. 단(端)은 단정한 것이고 인(引)은 뽑아내는 것이다. 용필에서 비록 중봉이 위주가 되는데, 필필정봉이 되면 변화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변화를 추구하려면 마땅히 정용․측용․중용․편용․역용․순용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필할 때에는 필봉이 마땅히 획의 가운데로 돌아와야 하고 점획의 안으로 감춰져야 팔면으로 출봉할 수가 있을 것이다. 왕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중봉의 핵심은 환필(換筆)에 있다. 환필을 할 수 있으면 행필에 중봉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환필의 환(換)은 곧 채옹의 「구세」에 있는 ‘영(令)’을 구체화한 것이다. 팔면출봉(八面出鋒)은 곧 이세민의 「필법결」의 사면세전(四面勢全)이며, 본질상으로 말하자면 중봉관 또한 「구세」와 「필법결」의 본의에 위배되지 않는다.20)

이와 같은 관점에서 첫 번째의 중봉관을 논하지 않는다면, 곧 중봉은 측봉과 편봉의 대립면이 아니며, 또한 정봉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또한 필필중봉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확실하게 용필의 핵심임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정확한 중봉관은 필봉의 정측의 사용을 폐하지 않고, 환필(換筆)로 수단을 삼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정봉과 측봉은 상제상성(相濟相成)하며 그로써 수준높은 선질의 점획을 서사할 수가 있다.



Ⅳ 중봉효과(中鋒效果)


1. 입체감(立體感)


중봉용필을 통해서 얻어지는 효과는 입체감(立體感)의 표현이다. 미불(1051-1107)은 “득필(得筆)하면 비록 가늘어 수염과 같아도 발(發)하면 또한 둥글고, 득필하지 못하면 두터워 서까래와 같아도 또한 납작하게 된다”21)고 하였다. 중봉운용을 하면 서법중에서 골력이 있게 되고, 점획중에 골력(骨力)이 있으면 자체(字體)는 자연히 웅건해진다. 중봉용필의 골력과 입체감은 깊고 두터움으로 나타나고 여기서 표현되는 정발(挺拔)하면서 중함(中含)한 필획들에 대하여 고인들은 추획사(錐畫沙)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추획사는 송곳으로 마른 모래에 긋는 것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에 대하여 異見을 가지고 있다. 마른 모래에 글씨를 쓰면 전서(篆書)를 연상하듯이, 획의 들어가고 나간 자취가 없이 필획이 둔중하고 획의 양면이 보드라우나 삽기(澁氣)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젖은 모래에 글씨를 쓰면 예서나 해서를 쓰는 것처럼, 획에 삽기가 넘친다. 안진경은 「술장장사필법십이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후에 저수량에게 물으니 말하기를 “용필은 마땅히 인인니(印印泥)와 같아야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생각하여도 깨닫지를 못하다가, 후에 강도(江島)에 모래가 평평한 곳[사평지정(沙平地靜)]을 보고 글을 쓰고 싶어져 날카로운 끝으로 그어가며 글을 쓰니 그 험경한 모양이 분명하고 아름다웠다. 이로부터 용필은 추획사와 같이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장봉(藏鋒)으로 하면 획이 침착해진다. 그 용필이 항상 지배(紙背)를 투과(透過)하도록 하면 이는 공(功)을 이룸이 지극한 것이다.22)


강의 섬에서 모래가 평평한 곳이라면, 인간이나 비바람과 새와 같은 등등의 외적(外的)인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 시간을 요한다. 물이 지나갔으나 어느 정도 오랜 기간이 지나지 않아 약간은 젖어있는 상태이다. 그곳에 썼던 필획에서 경험(勁險)한 모양이 있었다는 것이나, 인인니(印印泥)를 연상하여 추획사(錐畫沙)를 생각한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는 도장을 찍듯이 막대기를 곧바로 세우고 눌러가며 글을 썼을 것이다. 도장은 비스듬하게 하면 찍을 수가 없다. 직각으로 곧바르게 눌러야 도장이 바로 찍힌다. 힘있게 누르든 힘이 없이 약간을 누르든 곧바르게 눌러야 한다. 이는 붓끝을 곧바로 아래로 내리는 필첨직하(筆尖直下)를 의미이며, 행필부분을 정봉(正鋒)으로 했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마른 모래에서는 송곳을 비스듬히 그어도 똑바로 세우고 그은 것과 다르지 않은 느낌을 얻으며, 지배를 투과하는 느낌으로 막대기를 눌러 그어도 모래가 다시 덮여 획의 변화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젖은 모래에서는 도장을 찍듯이 막대기를 곧게 세워 글을 쓰면 측봉으로 글을 쓸 때와 많은 차이가 보이며, 힘을 주어 획을 그어도 사뭇 다른 필획을 얻을 수 있다. 측봉으로 글씨를 쓰게 되면, 그어진 획속으로 모래가 다시 덮여 탁하고 연약한 필획이 만들어진다. 더구나 이글에서 등장하는 저수량․장욱․안진경 등이 활약한 시기에는 전서가 아닌, 해서와 행초서가 유행하였던 시기라고 보여지고 있어 이러한 사실을 더욱 뒷받침 해주고 있다. 장욱이 인인니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생각하고 고민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했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마른 모래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을 비추어 볼 때 당시의 모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른 모래보다는 젖어있는 모래일 가능성이 많다.


2. 생동감(生動感)


중봉은 옥루흔(屋漏痕)으로도 비유를 한다. 옥루흔은 벽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린 흔적으로, 구불구불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물줄기를 연상하게 한다. 물줄기는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다. 비어있는 공간을 반드시 채우고 지나간다. 전진하는 방향과 같지 않더라도 주변에 낮은 곳이 있으면 그곳을 채우고 다시 흐름을 지속한다. 우리에겐 매끄러운 면으로 보여지는 곳도 물줄기는 직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옥루흔에서는 바로 이러한 ‘생기(生氣)’ ‘생동감(生動感)’을 강조한 것이다. “생기가 있다는 것은 획이 살아있다는 말이다. 획이 매끄럽지 않아야하며 거칠어서도 안된다. 획은 윤기가 있으면서도 까칠까칠해야한다. 대체로 미끄러운 획보다는 다소 거친 편이 낫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이다.”23) 여기서 살아 있다는 것은 절주감(節奏感)이 있고 역동감(力動感)이 있으며 다양한 획질을 의미한다. 획이 주변상황에 따라 알맞고 자유롭게 대응하여 사람들에게 꿈틀대거나 질주하는 역감(力感)을 준다. 이러한 현상은 또한 “자형(字形)에 생명력을 갖추게 하면 생명의 미를 드러내지만, 필력이 없으면 병든 환자처럼 창백하고 생기가 없게 된다.”24) 생명력은 붓에서 필획으로 힘을 관주하는 데에서 비롯되며, 어느 글자든지 전체작품에서 웅건한 힘이 넘치게 한다. 만약 병든 사람의 피부라면 창백한 색깔을 나타내고, 죽은 사람의 피부라면 그것은 단지 곱거나 활발한 느낌이 없는 삐쩍마른 느낌이다. 당연히 획에는 건강미가 넘쳐야 한다. 당의 서예가 서호(703-782)가 「논서」에서 말한 다음의 비유는 마치 정곡을 찌르는 듯하다.


무릇 매는 채색이 부족하나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골이 굳세고 기(氣)가 용맹하다. 훨훨 나는 꿩이 색을 갖추었으나 날아가는 것이 백발자국밖에 되지 않는 것은 살이 쪄서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25)


이는 중봉용필을 매에 비유하고 편봉용필을 꿩에 비유하여, 중봉용필은 매처럼 아름다운 색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근골이 뛰어나고 살이 적으며 생동감이 있음을 말한 것이고, 편봉용필은 꿩과 같이 아름다우나 살이 많아 백발자국도 날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3. 지졸감(至拙感)


중봉으로 운필을 하다보면 필획에서 지졸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 지졸미는 질박하고 소박한 자연미를 뜻한다. 질박이나 소박에서 사용하는 글자를 살펴보면, 질(質)은 꾸미지 않은 본연 그대로의 성질인 본바탕을 뜻하고, 소(素)는 물들이기 전의 흰 비단이며, 박(朴)은 박(樸)과 통하는 글자로 가공하지 않은 통나무를 뜻한다. 그러므로 질박하거나 소박하다는 것은 물들이거나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다. 고인들은 시각적으로 끌리는 연미함보다는 못난 듯하면서 어눌한 拙을 강조하였다. 뾰족한 것보다는 원만한 것, 가벼운 것 보다는 무거운 것, 원색적인 것보다는 은근한 것, 얇은 것보다는 두터운 것, 인공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것 등을 선호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후자를 중요시 여긴 것이라기보다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말이 대변하듯 대부분의 글씨가 후자쪽이 부족하므로 후자를 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서예 역시 이러한 면을 중시하고 있고 중봉은 바로 이러한 미를 체현하기 위한 필법이다. 서예는 양강(陽剛)의 아름다움이나 음유(陰柔)의 아름다움으로 나누어 설명은 하고 있으나, 결코 전적으로 강한 것이나 전적으로 부드러운 것을 추구하거나 고집하지는 않는다. 서예는 강하고 부드러운 것을 서로 조화를 시키면서 골과 육이 알맞게 조화된 중화의 미를 추구한다.

졸(拙)에는 자연소박미가 있고, 교(巧)에는 인공수식미가 있으며, 교하면 달콤하면서 연미하고, 졸하면 새롭고 기이하다. 사람들은 졸할망정 교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데, 반드시 어렵고 힘든 예술구상과 반복되는 고된 훈련을 거쳐야 졸한 모습이 나타난다. 이러한 졸은 일종의 대교지졸(大巧至美)한 것으로 자유의 산물이다. 일단 마음에서 얻고 손에서 응하면 대미지졸(大美至拙)한 경계에 이를 수가 있을 것이다. 교는 경박하지 않으면서 민첩하게 하고 졸은 혼탁하지 않으면서 혼고(渾古)하게 해야 한다. 대자연의 교와 졸의 통일은 필묵의 교졸이 이루어지고 천법(天法)에 맞아야 교졸이 합일된다.



Ⅴ 결어(結語)


어느 날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다 문득 이를 닮은 필획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언제나 평온을 유지하는 고인 물은 세상만물을 담아내고 있을지는 모르나, 흐르는 물에서는 리듬감이 있고 생명력이 있고 입체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움직임에는 고요한 움직임도 있고 격동하는 움직임도 있다. 물이 흘러가는 것은 결국 변화를 의미하며, 흐름의 모양도, 깊이와 넓이도, 흐름의 중심도 역시 꾸준히 변화하고 있다. 물줄기가 휘돌아 나갈 때에는 중심이 바깥으로 향하고 바위에 부딪쳐 방향이 바뀔 때에는 중심이 바위에 닿는다. 개울물처럼 넓은 면을 흐를 때에는 물의 깊이와 힘을 느끼지 못하지만, 넓은 면으로 바위를 부딪치면서 떨어지는 폭포에서는 강렬한 飛白의 역감을 받았다. 많은 양의 물이 좁은 공간을 지날 때의 빠름과 강물처럼 느리지만 도도하게 흐르는 웅장한 기세에서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느낌을 필획으로 담아내고 싶었고 중봉의 의미에 담아내보고 싶었다.

서법은 선(線)으로 인품과 형식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선이란 어떤 것인가? 자연의 모습을 닮은 것이다. 평면적이기 보다는 입체적이며, 죽어서 고정된 것이 아닌 살아서 꿈틀대고 변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선이다. 어떻게 필획이 평면적인 종이위에 입체적으로 나타나는가? 그 필봉을 곧바로 내려 넘어지지 않기에 봉이 항상 획의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먹색이 중심으로부터 양변으로 침투하여 만들어진 농담(濃淡)의 변화는 필획에 사주포만(四周飽滿)을 얻게 하고 입체감(立體感)과 생명감 그리고 대미지졸(大美至拙)한 필획을 바탕으로 충실한 역도를 드러낸다. 서예가의 우열은 그 관건이 중봉을 사용할 수 없느냐, 중봉을 사용할 수 있느냐이다. 중봉을 사용할 수 있으면 둥글고 윤택하며 풍성하고 아름다운 필획을 그을 수 있고 둔(鈍)한 붓이라고 하더라도 예리하게 할 수 있고 붓이 예리한 것이라도 둔하게 할 수가 있다. 중봉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은 비록 일생의 힘을 다하더라도 좋은 글씨를 써내기 어려울 것이다.

끝으로, 본논문의 주제와 약간 벗어나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다음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한국의 서예인들에게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하고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중국의 역대서론들을 비롯하여 우리 선인들과 중국․일본 등지에서 그동안 연구되었던 많은 서예관련 논문들을 번역하여 체계를 세우는 작업이다. 그러한 작업이 선행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도 서예에 관련한 다양한 서적이나 연구논문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서예비평도 다양하게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승이 써준 체본만을 보고, 오랜 세월 손에 익숙해지기만을 기다리는 서예에서 벗어나, 알고 쓰고, 이해하면서 감상하는 차원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또한 서예를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예를 감상하는 층에 대한 다양한 각도에서의 배려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는 어느 몇몇 사람들의 손에 의해 단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범서예인적인 차원이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21세기에는 서파를 나누고 수많은 공모전을 통해 입상자를 나누는 차원에서 벗어나, 서예이론을 정립하고 비평문화가 더욱 활성화된다면 21세기 한국의 서예문화도 한 차원 승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

1) 荀子,『荀子․勸學篇』(卷1),『漢文大系』(15), 東京: 富山房, 明治43年, pp.4-5: 君子生非異也 善假於物也.

2) 白鶴,「筆性論」,『書法硏究』, 上海: 上海書局, 1992, 총49집, pp.111 -112에서 內容參照.

3) 陳繹曾, 「翰林要訣」,『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483: 疎處捺滿 密處提飛 平處捺滿 險處提飛 捺滿卽肥 提飛則瘦.

4) 白鶴,「運筆十四勢論」,『書法硏究』, 上海: 上海書局, 1989. 총38집. pp.27-28: 所謂鋪就是平鋪中鋒 其中包含兩層含義一是指在行筆時 要盡力開張平鋪毫鋒 不偏不倚萬毫一力 這樣才能達到筆力勻稱 挺秀明麗之目的.

5) 陶明君,『中國書論辭典』, 長沙: 湖南美術出版社, 2001, p.137: 包世臣《藝舟雙楫》: “河南始于履險之處裹鋒取致, 下至徐顔, 益事用逆, 用逆而筆駛, 則裹鋒側入, 姿韻生動, ……後世能者, 多宗二家, 東坡尤爲上座, 坡老書多爛漫, 時時斂鋒以凝散緩之氣, 裹鋒之尙, 自此而盛.” 又云: “二王眞行草俱存, 用筆之變備矣, 然未嘗出裹鋒也.”

6) 陶明君, 上揭書 p.137: 指書寫時整个筆鋒保持圓錐狀的用筆方法 與平鋪對言 因裹鋒集結內斂 筆行畫中 故線條渾融凝練 富于遒勁感和彈力感.

7) 劉小晴,「側鋒初探」,『書法硏究』, 上海: 上海書局, 1982, pp.91-92: 篆法多用中鋒 隸法兼用側鋒 篆法圓隸法方 這就初步提出側鋒用筆實質上起源于隸法.

8) 劉小晴, 「側鋒初探」,上揭書 p.94에서 再引用.

9) 無名氏, 「書法三昧」: 橫畫須直入筆鋒 竪畫須橫入筆鋒. 劉小晴, 上揭書, p.93에서 再引用.

10) 王世貞《藝苑卮言》: “正鋒偏鋒之說古本無之, 近來專欲攻祝京兆故借此爲談耳.”

11) 중봉은, 명의 왕불이 「서화전습록 ․ 논서」에서 “당나라 때의 서예가들은 글자에 중봉을 취하여 규범의 실마리를 분명하게 드러냈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것이 그 시초가 아닌가 한다.

12) 蔡邕, 「九勢」『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7 : 藏頭圓筆屬紙令筆心常在點畫中行.

13) 李世民, 「筆法訣」『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118: 大抵腕竪則鋒正 鋒正則四面勢全.

14) 姜夔,「續書譜」『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385: 至顔柳始正鋒爲之 正鋒則無飄逸之氣.

15) 豊坊 「書訣」 『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506: 古人作篆分眞行草書 用筆無二 必以正鋒爲主 間用側鋒取姸.

16) 陳槱,「負暄野錄 ․ 篆法總論」,『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376.

17) 蘇軾, 『東坡題跋』 上海: 上海遠東出版社 1996. p.308: 方其運也 左右前後却不免欹側. 及其定也 上下如引蠅. 此之謂筆正.

18) 轉折處나 收筆處와 같은 곳을 말한다.

19) 王澍, 「論書剩語」: 所謂中鋒者謂運鋒在筆畫之中 平側偃仰 惟意所使及其旣定也 端若引繩 如此則筆鋒不倚上下 不偏左右 乃能八面出鋒 筆至八面出鋒 斯無往不當矣. 劉小晴, 『中國書學技法評注』, 上海: 上海書畵出版社, 2002, p.39에서 再引用.

20) 許洪流, 『技與道』, 浙江人民美術出版社, 2001. pp.156-159에서 內容參照.

21) 朱大熙,「竪鋒 鋪毫 換向」,『書法硏究』, 上海: 上海書局, 1989, 1期, p.124: 米南宮的所謂得筆 雖細如髭發亦圓 不得筆 雖粗如椽亦扁.

22) 『書畫篆刻實用辭典』, 中國: 上海書畵出版社, 1988, p.55: 後問于楮河南 曰‘用筆當須如印印泥’ 思而不悟 後于江島 遇見沙平地靜 令人意欲悅書 乃遇以利鋒畫而書之 其勁險之狀 明利媚好 自玆乃悟用筆如錐畫沙 使其藏鋒畫乃沈着 當其用筆 常欲使其透過紙背 此功成之極矣.

23) 宣柱善,『書藝通論』, 益山: 圓光大學校出版局, 1998, p.69.

24) 金開誠 王岳川,『中國書法文化大觀』, 北京: 北京大學出版社, 1996, p.140: 又使字形具有生命力 顯示生命的美 無筆力者則病態蒼白 了無生氣.

25) 徐浩,「論書」,『歷代書法論文選』, 杭州: 上海書畵出版社, 1979, p.276: 夫鷹隼乏彩 而翰飛戾天 骨勁而氣猛也 翬翟備色 而翶翔百步 肉豊而力沈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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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4년 10월 16일 구로학술발표회 발표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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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중국문자의 형성시기  

최초의 중국문자로 이해되고 있는 것은 산동 거현의 능양하 대문구문화 말기 유적지에서 찾
아볼 수 있다. 시대는 약 기원전 2500 - 2000년의 도기 위에 새겨진 부호이다. 그것은 (아침
단) 자의 초기 자 형으로 구름이 감돌고 있는 산 위의 태양이 떠오른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산간에 살고있는 단족을 표시하는데 사용되었다. 조자법에서 볼 때 이는 이미 원
시적인 상형자가 아닌 것이 분명하며 응당 제2류의 회의자 또는가장 진보된 형태인 제3류의
형성자이다. 이 대문구 도문은 한자의 꼴을 갖추고 있는 갑골문의 선구가 된다. 이를 간단히
말하면 기원전 2000년 전에 중국은 모종의 계통을 지닌 문자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구체
적인 중국문자의 기원문제는 여전히 더욱 많은 자료의 출토를 기다릴 일이지만 상나라 후기
의 갑골문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아주 성숙된 문자체계를 갖추고 있다.

 

II. 서사 공구와 서사 재료

중국 문자는 두가지 특징이 있다. 글을 쓰는 방향이 위에서 아래이며 좌에서 우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 것은 모두 서사 공구, 즉 모필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붓 필)자의 초기 형태
는 (오직 율) 자이다. 갑골문의 율자는 한 손으로 붓의 필관을 잡고 있는 모양이다. 필관은
대남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뒤에 와 율위에 (대나무 죽)이란 의부를 더하여 필자가 되었다.
갑골문의 서자는 손에 잡은 붓이 먹물병 위에 있는 모양이며, 점은 먹물을 묻혀야 글씨를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으로 상대에는 보편적으로 붓이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
실 기원전 4000여년의 반파유적지의 도기 위에 그려진 채색 그림에 서도 붓을 사용한 흔적
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상나라 사람들이 글자를 썼던 중요한 재료는 죽간이다. 대나무를
길게 쪼개어 생긴 평탄한 표면에 글씨를 썼으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쓰는 종서가 횡서 보
다 편했으며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고 왼손으로 댓조각을 잡아야 했으므로 글씨를 다 쓰고
난 뒤에 는 우에서 좌로 하나하나 배열하는게 쉬웠다. 그러므로 위에서 아래로, 우에서 좌로
써나가는 중국 특유의 서사습관이 되었다.

III. 서체의 변천

서는 문자를 소재로 하는 조형적인 선의 미술이며, 작자의 미의식가 그 생명을 단적으로 표
현한 것이 다. 주로 수필을 사용해 왔는데 모필만큼 치묘한 작용을 나타내는 것은 없다. 서
의 소재인 한자의 발 생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4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회화문자 즉
상형에 발단하여 처음에는 부호시 대에 사물의 기억, 기술등 오로지 필요한 일을 충족할 따
름이었으나, 시대의 추이에 의해 문화의 진전 에 따라 변천을 거듭해 왔다. 그간 많은 통달
한 사람들이 미적표현을 하게되자 감상의 대상이 되어 동양예술의 정수라 일컬을 만큼 승화
하였다.

전 서
사 주는 갑골문, 금문 등을 간소화하여 대전을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서적은 석고문이다. 그
모양은 북과 비슷하며 글씨가 크고 잘 정돈되었다. 그 후 진나라의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
고 이사에게 소전을 만들게 하였다. 대표적인 글씨로 태산각석이 있다.
 
예 서
한 나라때 완성된 예서는 글자의 모양과 필법에서 전서와 다른점이 많다. 예서가 만들어진  
까닭은 전서의 결구가 복잡하여 실용성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초기의 예서는 직선에 가까
운 소박한 획이었으나 파책이 생기는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서적으로 조전비,
예기비, 사신비등이 있다.
 
해.행.초서
중국의 삼국 시대와 육조 시대는 해서, 행서, 초서가 완성된 시기이다. 초서는 예서의 점, 획
을 단순화하여 빨리 쓸 수 있게 만들었고, 해서는 예서의 파책을 억제하여 자형을 방정하게
나타내었다.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과 안진경의 가묘비는 해서의 대표적인 서 적이다. 초서
를 읽기 쉽고, 해서를 빠르게 쓸 수 있도록 절충하여 만든 서체가 행서이며 동진 시대의 왕
희지, 왕헌지 등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1. 갑골문 , 금문 , 석고문 , 대전과 소전, 전서의 특징

가. 갑골문

갑골문은 선조에 대한 제사와 농작물의 풍흉, 폭우, 오랑캐의 정벌, 10일 마다의 재앙, 꿈의
뒷탈 등에 대하여 점을 친 내용을 담고 있다. 상왕국의 통치 질서는 신정적 결합과 혈연적
조직이 복합되어 있었다. 신정적 결합은 연맹 관계에 있던 각 부족을 대표한 정인들로 구성
된 정인 기구를 통하여 신의 뜻을 파악하고 정사에 반영하는 점복 행사와 각 부족의 수호신
을 상왕실의 주관아래 공동으로 제사를 지내는 제사의식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혈연적 조
직은 상왕의 왕자들을 비롯한 상왕실의 근친을 특정한 지역에 파견하여 다스리도록 하는 소
위 분봉 및 상왕실이 다른 부족과 결혼을 통해 유대를 강화하는 통혼관계가 기초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통치조직을 가지고 있던 상왕은 점복을 통하여 파악한 신의 뜻을 지상의 질
서에 반영하는 대리자로서 신권통치가 가능하였다. 문자의 결합이나 구성 등으로 보아 아직
도 원시성을 보여주는 면도 있지만 회화문자의 단계는 이미 벗어난 것으로 설문의 육서에
의하여 분류하면 확실히 상형과 지사의 비율이 높지만 이미 회의와 형성자도 상당한 양을
점하고 있다. 가차(임시로 빌림)도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어느 정도 진화가 이루어진 문자라
고 할 수 있다. 문구는 매우 간단하고 질박하여 어느 정도 원시성을 보여주지만 문장의 결
구와 품사등을 통하여 볼 때 오늘날의 중국어의 기본형식을 이미 갖추고 있다. 갑골문은
1899년 청말의 앙의영에 의하여 최초로 그 존재가 인식되어 20세기 초반 안양의 발굴에 의
하여 대량으로 출토되었으며 은허는 상의 7번째이자 마지막 도읍으로 기록된 곳으로 갑골문

은 이 시기, 즉 상말(기원전 15 -12세기)의 유물로 본다.

(1) 갑골문의 서풍변화

갑골문을 5기로 나눈 동작빈은 그 분류기준의 하나로 서풍의 차이를 들고 있다. 제 1기의
서풍은 다양 한데 주로 웅혼하며 힘이 있다. 제 2기는 근칙하
며 일반적으로 문자의 외형은 단장, 대소가 조화되고 행간도
균등하고 정돈되어 조밀도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제 3기
는 퇴미(점차로 쇠퇴함)라고 평한 것이 주다. 제 4기는 경초
하여 문자는 험하게 우뚝 서고 또 호방한 곳이 있다 .제 5기
는 엄정하며 규칙 이 있어 변별이 쉽다. 갑골문 서풍 변천의
흐름은 처음에는 규모가 크고 위엄이 있는 것이 있고 다음에
는 기술이 발전하여 잘 다듬어진 것이 나타나고 이어서 퇴폐
적인 것이 출현한다. 그 다음에는 복고조가 나타나며 최후에
는 잘 다듬어지고 있으나 규모가 작고 약한 것이 된다. 상대
의 금문과 갑골문의 서체를 비교해 볼 때 결각한 것(갑골문)
과 주조한 것(금문)의 차이는 있지만 그 차이는 서풍에 있는
것이며 문자의 구조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상대 금문의 서체
는 갑골문 제 5기의 서체에 가까운 것이 많다.

(2) 재례각사

제을 또는 제신 시대 사슴뿔에 새긴 각사로 제 5기 갑골문이다. 한면에는 용의 문양이 새겨
져 있고 다 른 한면에는 2행 28자가 새겨져 있다. 상왕이 사냥하면서 신하 재풍에게 상을
내린 일을 기록하고 있어 재풍각사라 한다. 이것은 서예에 심오한 조예가 있었음을 보여주
는 것으로 3천년 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작품이다.

나. 금문

학자들이 한 대로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여 삼대(중국 고대 3왕조)의 것으로 간주되었던 많은
청동제의 제사용 그릇에 진지하게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경의 북송왕조 때부
터였다. 최근세기 동안에 이들 청동기는 미술사가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로 중요한 연구의
초점이 되면서 일본과 서구의 박물관 수집품 사이에 모습을 나타냈다. 현존하는 상과 주의
청동기 가운데 아주 일부에만 있는 명문은 제품 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음각으로 주조되었
다. 가장 짧은 명문은 하나의 문자로만 되어있으며 가장 긴 것으로 알려진 서주의 명문은
497개의 문자에 달하는 명문이다. 모든 명문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부호와 설
명이다. 부호(기호, 도상기호)에 대한 통상적인 해석은 그 청동기를 사용했거나 그 청동기가
바쳐진 대상의 조상 집단이나 개인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상기호 부갑으로 구
성된 것은 도상기호로 표시되는 성족에 속하는 아버지 (갑)헝로 해석된다. 대부 분의 도상기
호는 주보다는 상의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선조의 기호를 사용한 것은 상말기의 제도로
간주되어 왔다. 설명문을 싣고 있는 명문에서도 시호까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들은 대
게 그 그릇으로 주조하게 되었던 상황에 관한 설명이다. 상의 것으로 간주되는 청동기 가운
데 극히 일부분만 설명 문이 있는데 (따라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금문은, 서주의 것으로 보
아도 무방하다) 50 개 문자 정도의 비교적 짧은 문장이다.

(1) 금문의 서풍 변화

서주 시대의 청동기는 시기에 따라 그릇의 종류, 형태, 문양 등에 변화를 보이는데 명문,즉
금문의 서체, 서풍, 내용 등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상 말기로부터 서주 전기의 강왕까지 의
것은 여유가 있으면서도 유동감이 있는 선을 이루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문자의 크기는 가지
런하지 않으나 생기가 넘치고 있다. 중기에 이르면 전체가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긴장된 선
으로 문자의 크기도 균일하게 쓰여졌고 상하좌우의 간격도 가지런하다. 전기의 것과 같은
생기는 없으나 아직은 운필에 따라 다소의 유동 감이 남아 있다.  후기에 이르면 펜글씨와
같이 선의 굵기가 일정하고 필력을 잃고 있으며 특히 말기에 이르면 문자나 서풍이 어지러
워진다. 전체적으로 생기도 없고 아름다움도 상실된다.

(2) 작품 소개

금문을 또한 종정문 이라고도 하는데 서풍의 시대적이 특징으로 삼을만한 것으로 다음과 같
은 것들이 있다. 주장반의 명문은 처녀처럼 조용한 특색이 사람들에게 조용하고 온순 편안
한 느낌을 준다. 모공 명문은 주장반과는 또 다르다. 자형이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곡선은 미
끈하여 마치 봄빛에 나부끼는 화려한 꽃가지와도 같다. 산씨반 명문은 몸단장을 대충하고
화장도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동시에 거친 야성이 보인다. 이자백반 명문은 맑
고 깨끗한데 점차 말쑥하게 분장하여 대가집 규수처럼 기색은 맑고 신선하며 행동은 적당히
조신하다. 대맹은 주 강앙 때의 그릇이며 명문은 주 금문서예 중에서 걸출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주 목왕 때의 제기로 명문의 서법은 한적하며 소박하고 자연 스러워 힘들여 새기
지 않은 격조를 지니고 있어 서주 금문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3. 석고문과 봉산각석

석고문은 현존하는 최초의 각석문자로 모두 10 개의 석고(북모양의 돌)에 차례대로 10단락
이 한 조가 되는 사언시를 새긴 것인데 그 중심 내용은 임금이 사냥한 일을 기술한 것이다.
당 초에 발견되었으며 흔적은 이미 절반 이상이 훼손되고 없으며 제 9단은 한 글자도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전하는 가장 훌륭한 탁본으로 북송 때의 것이 있다. 운필, 구성, 장법, 격조
는 물론 글자의 구체적인 모양이 모두 위 로는 괵계자백반의 명문에 이어지고 아래로는 태
산각석과 상통하고 있다. 즉 주대의 금문과 진대의 소전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서예역사에 있어 크고 심원한 영향을 끼쳤으며 청대 전서로 유명한 서예가 오
창석,곽석여,오대징 등ㅇㄴ 석고문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하겠다.(진전은 진대의 전서 다시말
해서 소전이고 청전은 청대 오창석 등의 전서를 말한다.)

태산각석은 시황제 28년( 기원전 219년) 동으로 순수할 시 태산에 올랐다가 승상 이기등이
진시황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165자가 실려있 다. 소전은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한 후 이사에게 대전을 근거로 하여 통일되지 못했던 문자를 정리하고 수정하여 획의
순서를 정하고, 행을 나누는 표준자체를 만들도록 명령한 것이다. 이사의 서체 흔적으 로는
봉산각석 등이 있다.

 

 

D.대전과 소전

소전이 만들어 지기 이전의 문자이며 중국의 넓은 땅 만
큼이나 문자 또한 지방에 따라 다른 것을 사용 했는데 이
것이 대전이다. 소전은 진나라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나서 여러 가지 문자를 한가지로
통일하기 위해 재상인 이기에게 명령하여 만들어진 문자이다.

E.전서의 특징

전서는 각국이 문자를 달리하고 있는 혼란시대에 나타났다. 시황은 제상인 이기에게 명하여
종래의 문자를 정리하여 새로운 체제를 갖추어 이체문자는 폐지하였다. 한의 전서는 남아
있는 것이 적으며 후한의 허신의 작 설문해자 15편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자전의 사조라
말할 수 있다. 전서는 장식성 이 풍부하고 아름다워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전서의 자형은 선
의 굵기가 비슷하고 시작되는 부분과 끝 부분이 둥그스름 하며, 특히 소전은 자측과 우측이
대칭을 이루는 것이 많고 대체적으로 세로를 길 게 쓰며 정중하고 경건한 문자이다.

**예서 : 예서의 특징 , 팔분서


A.예서의 특징

예서는 주대에 제정되었으나 실용서체에는 적합하지 않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정막이란 자
가 각고십 년, 옥중에서 만들었다고 한다.전서가 색세이며 장방형인 것을 방세로 바꾸어 옆
을 넓게 하고 획을 생 략하였기 때문에 훨씬 쓰기 쉽게 되었다. 주로 잔역에 종사하는 자가
사용하였으므로 이 이름을 붙였 다.예서는 또한 전서의 보조체로서 탄생딘 것이지만 진이
멸망하고 한이 되자 시대의 정체로서 표면 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예서는 소전 이
후에 일반적으로 쓰였던 서체이며 시대적으로 수많은 예서가 쓰여 왔는데 전서보다 쓰기가
편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특히, 진나라때 한 사람이 시황제에 게 죄를 지어 감옥에 있으면
서 만들어낸 서체라 하여 진예라고 하는 명칭
도 있다.예서의 자형은 팔자 모양으로 양쪽이
균제하여 안정감이 있으며 획의 질이 상당히
부드러우며 같은 방향의 획간은 거의 평행 균
등하고 명쾌하다.

B.팔분서

예서 가운데의 한 서체이며 글씨 모양이 양쪽
으로 팔자 모양으로 쓰여 이쓴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서 : 해서의 변천사

A. 해서의 변천사(위진의 서 , 남조의 해서 , 북조의 해서)

해서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항상 접하고 있는 글씨체이다. 해서의
(해) 자는 (본뜨다. 본보다.)와 같 은 의미를 가진 문자로서, 해서라고
하면 가장 규범이 되고 표준이 되는 글씨라는 뜻에서 진서, 혹은 정
서라고 불린워진다. 일반적으로 해서는 한말에 시작디어 위진남북조
시대에 성행하였으며 당 나라 때에 그 전성기를 맞이하여 서법을 완
전히 정착시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이렇게 발달되 어 현
재에 사용되고 있는 해서를 해서의 양대 산맥으로 분류되는 육조해
와 당해를 중심으로 꼭 필요 하다고 생각되는 서가와 유적을 기술해
보았다.

1.해서의 출현과정과 한왕조

중국 역사상 문자가 서로써 가장 찬란하게 꽃피었던 시대는 한 대로
써 진왕조로부터 삼국 시대로 옮겨가는 약 400년간 게속된 왕조이다.
이 시기는 정치 .문화의 발달은 물론이고 서예사에서 보아도 어느 시
대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국문자를 정리 분석한 (설문해
자)가 완성되었고 , 종이 의 제조법도 이때에 확립되었다. 이 시대에는 서사 도구 즉, 붓이
나 죽, 목간, 종이 등이 발달하였고 따라서 글씨는 실생활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
다. 글씨가 실용화 되면서 비문등의 글씨와는 다른 빠르고 단순한 형태의 글씨를 요구하게
되었는데 예서와 결합하여 행서가 생겨났는데 이 모든 서체들이 복합적으로 정리 발전되면
서 해서가 출현된 것이다. 그러니까 예서의 기반위에서 초서,행서,해서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한 대야 말로 모든 서체가 다 나타난 시기로써 서예사에서 가장 지대한 공헌을 남긴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위진남북조 시대의 해서

한 대의 장초를 이어받아 행서와 초서가 발전되었으며 해서가 정착된 시대로서 북조에는 석
비가 주류  를 이루었고 남조에는 첩서가 대부분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북비, 남첩이라고 부
르는 것도 이 때문이 다.

가.위.진의 서

위(A.D.220 - 265)에서 서진(A.D.265 - 316)까지의 시대로 해서의 형태가 채 정리되지 못하
고 예서 의 자취가 남아있던 시기인데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좋은 문서에는 행압서가 사용
되었고 한편으로는 한의 장초에서 비롯된 초서가 발달된 때였다. 또 이 시대는 위엣 금비령
을 내렸고, 서진때에도 역시 무제의 금비령 때문에 전하는 묵적이 극히 적다. 그러나 이때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태어났다. 그가 바로 해서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종요이다. 종요 외
에도 이 당시에 많은 서가들이 있으나 전하는 묵적 으로는 종요의 것 외에는 거의 없다.

1)종요의 서(A.D.151 - 230)

종요의 자는 원상,위나라 장시사람.벼슬이 상국에 이르렀고 그의 유적은 모두 해서인데 현존
하는 것 들은 위작으로 보인다.

2)해서의 발전과정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자료로는 찬보자비등이 있으며, 또 서진 이후 130
여년간 계속 된 5호 16국 시대에도 광무장군비가 있는데 예서의 필의이나 해서에 가깝다.

3)위.서진의 서풍

삼국에서 서진 5호 16국에 이르는 이 시대는 중국 서예가 쇠퇴해가는 시대였으나 행초서는
발전하여 훗날 왕희지의 서에 영향을 주었다.

나.남조의 해서

영가의 난에(316) 의해 밀려난 진왕실의 일족이 강남지방의 통치에 힘쓰다 318 년에 제위에
올라  진 강(남경)에 도읍을 정하였다. 이것이 동진이다. 이 왕조는 문벌귀족들에 의해지지
되었으며, 그중에서 도 특히 명문으로 불 리는 가문이 왕씨였다. 이때의 서가들은 위진의 서
풍을 계승하게 되었으나, 진 무 제의 금비령이 풀리지 않았던 때여서 서가들이 비단이나 종
이에 글씨를 썼기 때문에 행초가 발달하였 다. 이때에 서성으로 존경받는 왕희지가 출현하
여 중국서도사에 빛나는 장을 열었다.그 후 앙희지가 나왔다.

1)왕희지의 서

 동진의 서법은 왕희지 부자에 의해 집대성되었으며, 그 경지는 오늘날까지 아무도 뛰어넘
지 못하고 있다.왕희지의 생졸년대는 두 가지 설이 있다. (303 -361, 321 -369)귀족출신으로
우군장군이란 벼슬 에 재직했기에 왕석군이라 불리웠으며, 궁직을 떠난 뒤에는 산은에 살았
다.어려서 위부인에게 글씨를 배우기 시작하여 초서는 장지를 정서(해서) 는 종요를 배웠으
며, 또한 여러 종류의 글씨를 구하여 그 장점만을 취하여 연마.정진하였다.전설에 의하면 팔
분,해, 행, 초, 비백등 각체의 서에 능하였으며, 특 히 예서, 지금의해서에 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전해오는 그의 묵적은 모두 해.행.초 삼체에 한 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이처
럼 뛰어난 왕석군의 서가가 하나도 없고 세전하는 묵적은 모두 탑모본 이나 , 임모본으로서
전해지는 것들이 있다.

2)왕헌지의 서

헌지의 자는 자경,왕희지의 일곱째 아들로 벼슬이 중서령에 이르렀고 부친 서의 기초위에
자기 나름 대로의 풍격을 이루어 세칭 이왕이라고 불린다. 전하는 해서 유적으로는 락신부
13행이 있다. 이것은 락수의 여신에 대한 것을 부한 유명한 문장인데 불과 13행밖에 남아
있지 않다.

3)지영의 서

생졸 연대는 미상이며, 진 왕조때 태어나 수대 사이에 있었던 승으로 왕희지의 7세 손으로
전하며 이 름은 법극이다. 왕희지의 서법을 이어 받아 점차 서법의 규범으로 존중받게 되었
다.초서와 해서를 잘 썼으며, 손과정의 서보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4)남조의 서풍

남조는 위진 이후 반영하던 문벌귀족의 황금시대였다.정치,경제,문화등 기타 모든 것이 귀족
들의 손 에 의해 장악되었다. 남조 4개 왕조의 수도가 공히 건강이었으며 특히 양대의 건강
의 인구는 백수십만 에 도달하였다 하니 가히 짐작할 만한 일이다. 이와 같은 남조의 귀족
문화는 이왕의 서와 잘 조화되었 고, 따라서 이러한 이왕의 글씨는 남조의 서풍을 이끌어
갔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특기할 것은 남 조시대는 북조와 달리 금비령 때문에 비서가
남아 있는 것은 많지 않고 현존하는 것은 송의 찬룡안비 등이 있을 뿐이다.

다.북조의 해서

서기 317년에 화북의 중원을 버리고 떠난 진왕조 이후 화북 땅에서는 소위 5호 16국의 단명
한 왕조가 항쟁을 계속하다,선비족이 세운 위왕조에 의해 화북의 통일이 이루어졌다.(439 세
조) 우리가 일반적 으로 알고 있는 육조체라고 부르는 서가 바로 이 북위의 서를 일컫는 말
로서 북비라고 한다. 이때에는 금비령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비문이 남아 있는데 북비
특유의 서체가 형성 발전되었고 남조의 서풍과는 또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비각 이
외에도 조상기등의 글씨가 전해지고 있으므로 이 를 살펴보기로 한다.

1) 비

비에 대하여 말할 때는 반드시 북위시대를 말하게 되는데 서의 형으로나 내용면 모두 충실
하게 포함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표적인 해서 비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ㄱ)장맹룡비

522년에세워진 것이다. 전문 26행에 매행 46자로 청대에 이르러 비학의 발달과 함께 더욱
추중되었다 운필은 근엄하고, 결구는 평정속에 곡함이 있다.

ㄴ)고정비

서기 523년에 새겨진 것으로 청대 건륭제 때 산동의 덕현에서 출토되었다. 모든 서는 전성
기가 되면, 어떠한 형태로든 규범이 정해지게 되는데 이 비의 점과 획의 배치가 모두 그러
한 규범에 맞게 되어 있다. 비문은 24행에 매행 46자인데, 북비의 방정미를 갖추고 있어 장
맹룡비와 더불어 북비의 걸작을 꼽힌다.

ㄷ)경사군비(540년)

이 비석이 주는 느낌은 남조의 서풍이다. 파법을 멀리 뻗치지 않으면서, 짧게 힘주어 썼다.
오른쪽 어깨등도 일부러 각을 주지 않고, 여유있게 붓을 이동시키고 있다.

2)묘지명

사자를 장사지낼 때 방형의 돌에 사자의 이력과 성명을 각입하여 묘혈안에 매장한 것인데
대략 서진 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가장 많이 만들어진 것은 북조 특히 위왕조 때
로서, 낙양을 비롯하 여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근일에도 가끔 발견되고 있다. 땅속에 묻
혔고 또한 뚜껑을 씌운 것이 많 아 출토되었을 때 비보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3)북조의 서풍

북조의 서를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몇차례의 변화 조정을 볼 수 있다.첫째로 위의 효문제
가 낙양으 로 천도하기 전 옛 서진의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유적으로는 에서도 해서도 아닌
서체를 형성했다.이 는 운남성남령의 찬보자비의 서풍과 유사하다.이때 남조에서는 송의 효
무제의 이건 3년에 해당되는 데 이미 동진의 왕희지.헌지에 의해 이루어진 새로운 양식의
서가 유행하던 때였다. 둘째 효문제 출현 으로 낙양천도와 함께 이루어진 한화 정책으로 낙
양의 옛문화와 새로이 수입된 남조의 수도인 건강의 문화가 충분히 융하되지 못한 채 탁발
족 정신의 바탕위에 종합된 문화가 출현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용문 조상기이다. 조상기는
남조의 신서풍인 해서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이들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그러나 위왕
조 말기가 되면서 남조의 신양식과 옛부터 있어온  구양식을 교묘하게 조하시켜 비교적 훌
륭한 서를 만들어낸 것이 장맹룡비 등이다.효문제 사후 한화정책은 현저히 후퇴하였으나 위
왕조가 동서로 분할되면서 부터 제 앙조 이후 남조의 신양식인 이앙의 서가 점차 북조로 옮
겨 왔다 동위의 서는 남조의 지영보다 빠른 시대지만 이왕의 영향을 받은 서롯 마치 지영의
서를 보는 듯 하다. 결론적으로 남방이나 북방 모두 동일한 서풍의 서가 생기게 되는데 이
는 문화의 중심에서 발달한 서 와 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자연발달적인 서의 두 가지
로 분류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남북조 시대 에는 그 도읍의 서풍이 차차 사방으로 전파되어
초당에 이르러 결국 통일되고 완성을 보게 되는 것이 다.

 

**행서 : 행서의 특징

초서도 아니고 해서도 아닌 중간정도의 것이 행서인데 걸어가는데
비유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왕희지 (동진때의
사람) 의 난정서가 행서의 대표격 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행서는
전한말에 기존의 다른 서체와 마찬가지로 그 무렵 자연히 발생한 것
이 아닌가 생각된다. 행서는 약동 감이 풍부하며 정신유로에 적합하
며 읽기 쉽고 친숙하므로 실용상으로나 예술상으로 널리 쓰여직 있
다.

A.행서의 특징

글씨 자체가 걸어가는 것에 비유된 만큼 중심선이 이동하거나 경사
지면서 균형을 이루고, 중심을 이 동시키며 글자가 휘어진 상태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글자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큰 글씨가 있
는가 하면 작은 글씨가 있고 조밀의 변화가 많으며 해서 같이 줄이
똑바르지 않으면서도 별로 비뚤어 진 것 같이 느껴지지 않는 데에 행서의 멋이 있는 것이
다.

 

 

**초서 : 초서의 특징, 초서의 종류

알기 어렵게 휘갈겨서 쓰여진 서체가 초서인데, 비유하면 뛰어가는 형세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자가 만 들어진 것은 전서에서 비롯 된다고 하니 상당히 오래 되었다.

A.초서의 특징

여러자를 한 줄로 꿰어놓은 듯이 줄줄이 이어져 있는 것을 들 수 있겠으나 최초의 초서가
생길 적에는 전서나 해서 보다도 쓰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하며 한나라 이전에는 거의
모든 초서가 한자씩 떨어 져 있었다. 요즈음 같이 이어서 쓰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때부터
아닌가 한다. 지금까지 이어쓰니 시간 도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지만 전서에서 초서로 그
모양을 개발해 왔으니 처음 쓰여질 때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서체의 아름다움
이 느껴진 것은 우선 균일하지 않고, 대소, 태세, 장단의 조 화 가 변화 무쌍한 데서  일 것
이고, 직선과 곡선의 조형 또한 아름다움의 핵이라 할 수 있다.

B.초서의 종류

서보 : 당대의 손과정이 쓴 것으로 붓글씨를 쓰는데 대
하여 적은 서법 이론이다.초서를 배우는데 교본 용으로
는 가장 적당하며 이론도 명쾌하게 밝혀져 있으나 글씨
는 더욱 명쾌하게 쓰여진 것이 자랑할 만한 서체이다.

광초 : 당대 장욱의 글씨가 대표적인 광초이다. 이는 너
무가 휘갈겨 쓴 것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 전 서 (篆 書)

1) 석 고 문 (石 鼓 文)

대전 자체(字體)의 가장 구체적인 작품이며, 중국역사상 가장
오래된 각석으로 북모양으로 다듬은 돌에 세겨져 있다하여
석고 문이라 부른다. 돌의 수는 10개이고 표면에 700여자가
실려 있으나, 판독이 가능한 글자 수는 270여자,현재 통용되
고 있는 글자 수는 470여자 정도이다.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
서는 학설이 분분하나, 동주의 위열왕 4년(기원전 481)에 진
나라에서 만들어졌다 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 석고문은 4언구
로 현재 내용이 완벽하게 이해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전
국시대의 진나라 군주가 사 냥을 하는 것과 영토의 개척으로
도읍을 세운 것, 제사에 관한 일들이 기술되어 있다. 석고문
은 금문과 소전의 중간에 속하고 금문보다 잘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소전보다 방편(方遍)하고 복잡한 것이 있고 자체는 대
체로 정방형을 이루고 있다.

2) 태 산 각 석 (泰 山 刻 石)

태산각석은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동방의 군현을 순회하면서 세운 송덕비의 하나로
낭아대각석과 더불어 소전의 표준 이라 불릴 만큼 유명하다. 이 각석을 탁본해 본 결과 2백
23자의 전문을 얻을 수 있었는데, 명시대의 탁본에는 29자만 남아 있었 고, 청조때는 화재로
파손되어 그 패석에 겨우 10여자가 보일 뿐이었다.

3) 낭 아 대 각 석 (瑯 牙 臺 刻 石)

진시황제는 태산각석을 세운 해에 산동의 낭아에 올라가 제대를 쌓고 돌에 각하여 진의 덕
을 기리었다. 이 각석의 글자는 뭉개지고 떨어져나가 겨우 탁본으로 10행 정도 전해지고 있
다. 이 비석의 패석은 북경 박물관에 일부 소장되어 있다. 이사의 서(書)로 전해지며, 태산각
석이 정제된데 비해 용필이 좀 부드럽고 좌우 상칭의 균제가 잘 잡힌 힘찬 표현의 장중감을
준다.

 

2. 예 서 (隸 書)

1) 을 영 비 ( 乙 瑛 碑 )

후한의 환제(桓帝)때에 노나라의 재상 을영의 신청에 의하여 공자묘에 묘를 관리하는 사람
을 두게 한 것을 기술하고, 을영 이 하 그 일에 관계된 사람들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
웠다. 비문은 18행,각 행에 14자로 되어 있다. 결구가 잘 맞춰져 있고 용필이 날카로우며 그
파책은 특히 역동적이다. 조전비에서처럼 중심으로 밀집시키고 좌우 양면으로 세를 확장시
켜 내는 결구 도 아니며, 장천비처럼 방형안에 필획을 제한시키는 결구형식도 아니다. 평범
한 모양이지만 힘이 들어 있고,소박하면서도 경부 한 느낌을 주지 않는 충실한 서체로서 팔
분서체의 정통으로 꼽힌다. 중량감과 균형미가 아낌없이 발휘한 한대의 걸작이라 할 수 있
다.

2) 예 기 비(禮 器 碑)

예기비가 새겨진 것은 약 1800여 년전 후한의 환제 영수(永壽) 2년의 일이며, 한래비 라고도
부른다. 이 비문의 내용은 노나 라의 제상이던 한래의 공적을 칭송한 글인데, 그는 공자를
존중해 그 자손 일족에게는 일반인과 다른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한다고 주장, 징병이나 노역
을 면해 주는 등,진심어린 예우를 다했다. 또 그는 진시황제의 폭거 이후 산뚱성 취무에 있
던 허물어진 공 자묘(이곳은 한이후 역대의 비가 많아 곡장비림(曲章碑林) 이라 불린다.)를
수리하고 제사에 쓰이는 가장 중요한 기구류,즉 예기 를 정비하고 또 공자의 생가를 수복하
고,묘 주변의 배수 사업 등도 했다. 이와 같은 한래의 작업에 감동한 사람들이 그의 높은 덕
을 기리고자 돌에 새긴 것이 바로 이 예기비이다. 한비는 중후한 것과 연미(硏美)한 것이 있
느데 이 비는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용을 지키고 있다. 문자의 구성이 알맞고 운필이
정교하여 높은 품격을 지니고 있는 비로서 새김도 훌륭하고 글자수도 많아 예서를 익히는데
적당하다. 그리고 예기비의 선조(線條)에 관하여서는 유(여윔),경(단단함),청(맑음),정(곧음)이
언급되 어진다. 즉,예기비는 선조가 여위어 신정(神情)이 넘치며 단단해서 골격이 튼튼하고
맑아서 모습이 명랑하며 곧아서 태도가 준 수하다고 말해진다. 따라서 예기비에 대한 감상
은 필획의 선조를 통해 그 신정과 골격,모양,자태를 터득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 다.

3) 사 신 비 (史 晨 碑)

이 비는 후한의 영제 시대에 노나라의 승상이 된 사신이 공자묘에 성대히 제사를 치르고 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로 현 재 산동성 곡부{공자묘의 비림(碑林)}에 있다. 이 비는 전
후 양면으로 문장이 가득 새겨져 있는데, 앞면을 사신전비,후면을 사신 후비라 칭한다. 사신
전비의 내용은 대개 사신이 공자의 고향에서 노나라 승상의 직에 있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
로 알고 아울러 상 서(尙書)에게 성상(聖上)으로 하여금 공자의 제사를 올리도록 청하여 주
기를 간청한 것이다. 사신후비의 내용은 사신이공자에게 제사 올릴 때의 성대한 정황에 대
하여 기술한 것이다. 고박하고 후실(厚實)하며,팔분예의 전형적인 것의 하나이다. 글자체는
3: 2내지 4:3정도의 세로 구성이다. 서법을 확실히 지켜 늘씬한 맛이 있고 화려하고 기교있
는 필법에 신중하고 긴장미가 있으며 단아하게 자형이 잡혀 있어 예서를 배우는 입문으로
적당하다.

4) 서 협 송 ( 西 狹 頌 )

서협송은 마애각으로 무도(武都)의 태수가 서협의 각도(閣道)를 수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원형,사각형의 결 구로 시작하거나 끝나고, 파책이 다른 비석처럼 강조되지도
않은 소박하고 야성미 넘치는 글씨,굵고 가늠이 없이 똑같은 굵기로 글씨를 쓰고 있지만 무
미 건조하지 않고 마음에 다가오는 박력이 있다. 장천비에서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감서성 성현 이궁협의 절벽에 새겨져 있는데, 처음에 오단크기의 그림이 그
려져 있고 다시 오단크기의 유래가 적혀 있다. 이 왼쪽에 서협송의 본문이 있다. 글의 끝에
구정(仇靖)이란 글쓴이의 서명이 있다. 한비는 대체로 글쓴이를 밝히지 않지만, 이 작품은
서명이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서풍은 중앙 도시의 전형을 약간 벗어났지만 의지적인 늠
름한 붓놀림은 모든 한비 가 운데 단연 돋보인다.

5) 조 전 비( 曺 全 碑 )

조전비는 흙속에 매몰되어 오다가 명나라때 섬서성 부양현의 옛 성터에서 발굴되었다. 그전
에 이 비는 한비의 하나에 불과하 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였으나, 20C 영국 고고학자인 스타
인이 한인들의 진적(眞蹟)을 발견함으로써,조전의 우려한 서풍이 한말의 퇴폐한 풍조와 일치
하지 않다는 것과 이 비의 자형이나 필화의 모양새는 예법이 완성된 극치점을 보이고 있다
는 사실이 알려졌 다. 이 비의 서법은 300년간의 정칙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진
적이 아니라는 아쉬움은 면할 길이 없다. 또 하나 조전 비의 단정한 모습에서 결체나 용필
의 비밀을 엿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단장하면서도 아리땁고 중후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풍 모와 중심 밀집과 좌우서전(左右舒展)의 결구를 특징으로 하고 있는 이 비는 몇 단점에
도 불구하고 한비의 치보(致寶)라 일컬어 지고 있다. 조전비의 내용은 정확히 알 길이 없으
나, 상황증거를 추리하건대 부양현 장관이던 조전의 희망에 따라 그의 창덕비가 세워지기로
되어 며칠후면 입비식까지 갖게 될 무렵 돌연 조전이 실각한 것으로 보인다. 비의 뒷면에는
관계한 사람들의 이름과 기부한 금액까지 명기되어 있는데,바로 그들이 연루되는 것이 두려
워 증거품이 될 비를 땅속에 묻어 버렸을 가능성이 짙다. 이 비를 세운 날짜는 중평 2년 10
월이고 사서에 의하면 그해 9월 삼공,즉 최고 권력자중의 한 사람인 사공 양사가 죽었다. 동
시에 그 참모격이던 간의 대부 류도는 갑자기 실각하고 다음날 처형되었다. 조전도 그 일당
에 속해 있었던 것같다. 조전의 동생 영창 태수 조란도 당쟁때문에 죽고 조전도 그때문에

벼슬을 버리고 7년간이나 숨어 지내던 일이 기록되어 있다.

6) 장 천 비 ( 張 遷 碑 )

낙음현의 현령이었던 장천의 공덕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본문에는 가차자(假借字)
나 오자가 더러 있어서 후세의 모각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지만, 소박하면서도 너그러운 서
풍은 후세에 따르기 힘든 미를 지니고 있다. 시기상으로는 후한의 말기에 해당되는 이 비는
용필이 방모(方模)하고 졸후(拙厚)한 맛이 있다. 서법은 위진의 팔분서체의 선구가 되었다.
소박하 고 힘찬 점획,완강한 네모꼴의 구성,굵기를 모르는 단순한 선이 그 특징을 이루고 있
다. 충분히 뻗은 점획,자유롭고 메이지 않 은 결체에 그 참맛이 있다. 필획의 기필과 수필이
곧바로 이루어지고 전절(轉折)이 항상 직각을 이루어, 장천비가 한예중 방필 웅강(方筆雄强)
의 전형으로도 일컬어진다. 또,후한말에 나타난 이 비는 이미 해서의 형태에 매우 근접한 서
체를 보이고 있어서 , 그 시기에 해서의 원형이 태동되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도
가치가 있다. 본문에는 이 비를 세우게 된 유래와 사자 구(四字句)로 된 명문이 있다.


3. 해 서 ( 楷 書 )

1) 장 맹 룡 비 ( 張 孟 龍 碑 )

육조 시대의 대표적인 해서이다. 서도에서의 힘은 적절한 조화가 따라야 한다. 결구법이 바
로 그것인데, 장비액(張碑額)은 그런 것의 본보기라 하겠다. 본문도 점획의 배치에 따라 소
박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이지적으로 당대(唐代)의 서와 같은 정제미 를 나타내고 있다. 경중
의 배합,각도의 변화, 그리고 글자의 흐름에 따라 그것들을 조절하는 의욕적인 필력, 이러한
모든 요소 가 큰 비석에는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흔적들을 표면에 나타나지 않게
할 것, 여기에 서도의 비결이 있다. 북위서 가 유행하던 때의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용
문(龍門)의 강함과 예리함,정도소(鄭道昭)의 온화함, 고정비의 완성된 계획성 등이 함축되어
있는 훌륭한 유산으로 여겨진다. 비면은 해서로 26행,한 행에 24자씩 새겨져 있고, 비음은
이 비를 세움에 있 어서 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의 관위 성명을 연서한 것이 10여단 있다. 이
비의 비액에서 '청송(淸頌:덕을 칭송한다)'으로 표현 되는 바와 같이 송덕비이다. 장맹룡은
당시 불교가 성행하고 있었지만, 공자와 맹자의 학문을 깊이 믿는 유교를 선양하였다. 그 공
적이 컸기 때문에 향당(鄕黨)들이 이에 감탄하여서 장맹룡의 덕을 기리고자 비를 세웠고, 그
의 일대기에 관한 것과 칭송이 그 내용이다.

2) 고 정 비 ( 高 貞 碑 )

당의 구양순과 더불어 이지파(理智派)의 대표격으로 이 비석을 꼽을 수 있다. 이렇듯 고정비
는 구양순의 비와 쌍벽을 이룰 만한 해서의 비문이다. 이 비문의 작자는 전해지지 않고 있
으며 그 출토 시기도 얼마되지 않아서,이 서체에 관해 논의하는 사 람도 많지 않을 뿐만 아
니라 이 비를 수록한 책도 그리 많지 않다. 한 책에 의하면 고정이라는 사람은 비서랑의 벼
슬을 지냈고 나이 26세에 죽었다고 한다. 이 비는 그가 죽은 지 9년이 지나고서 세워졌다고
한다. 이 비에서 그려지고 있는 고정이 명족 (名族)이었고 게다가 외척(外戚)이었던 것을 생
각해 본다면 이 비를 쓴 사람은 당시 제일의 명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비는 구양
순의 비와 마찬가지로 필의 기수(起收)가 매우 자연스럽고 형태의 조합이 합리적이어서 비
난할 여지가 없는 구조를 이 루고 있다. 더불어 전서의 균형감과 통일성을 갖추고 있어서
회화적인 미가 뛰어나다.

3) 구 성 궁 예 천 명 ( 九 成 宮 醴 天 銘 )

이 비는 당태종 6년(632)에 당태종이 수나라의 인수궁을 수리하면서 만든 구성궁에 샘물이
뿜어 나오게 된 것을 기념하여 만 든 비이다. 문장은 위징이 쓰고 글씨는 황제의 명에 따라
구양순이 특별히 정성들여 썼다. 이는 구양순의 나이 75세의 서(書 )로 구양순이 왕희지의
필법을 배웠으나, 이미 글씨는 구양순 자신의 자체였다. 해서의 필법이 극에 달했다고 평가
된다. 전 각은 양문으로 되어 있고 구성궁예천명의 여섯 글자가 2행에 있고, 본문은 24행으
로 되어 있다. 남북서풍을 융합한 수대의 서 풍을 전,예서에 바탕을 둔 구성법으로 방향을
바꾸어 장방형의 형태로 씌어져 있다. 내핍법(內逼法) 혹은 배세(背勢)에 따르고 있으므로
점,획이 중심에 모여 있으나, 비의 결체는 여유가 있고 전절(轉折)과 구부러진 곳의 용필은
아주 훌륭하다. 새 시대 감각을 불어 넣은 것으로 화도사비(化度寺碑)와 더불어 구양순의 대
표작이다. 해서를 쓰는데 있어서 정통이라 할 수 있으나, 너무도 정제된 필획의 구성을 하고
있어서 자칫하면 형태만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기 쉽다.

4) 안 근 례 비 ( 顔 勤 禮 碑 )

안씨가묘비와 더불어 안진경 해서의 2대 역작중의 하나이다. 비가 세워진 연도는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비문 중에 기재된 사실을 감안해 입비(立碑)는 안진경의 말기의 글씨로 추정되
어 진다. 비는 사면각이나 세째 면은 갈아 없어졌고, 약 1천 6백 여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
다. 비의 자획이 온전하며 특히 삼면의 글씨는 원필이며 강,유가 잘 조화되어 있다. 장봉의
표현이 세련되어 있으며 그의 해서중에서 가장 우수한 기교 표현 작품이라 한다. 안진경의
필법은 구양순의 경우와 다른 바 없으나 구 법(歐法)보다도 약간 붓을 세우며, 안서(顔書)의
가로획은 우상향세(右上向勢:손에 쥔 붓을 그대로 댄 후 일단 조금 띄웠다 오른 쪽으로 그
음)의 수법을 사용한다. 구(歐)의 배세(背勢), 안(顔)의 향세(向勢)라고 부르는 이 상대적인
조형수법은 해서 기법의 양극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비의 내용은 안진경이 그의 조
부인 안근례의 일대기를 써 놓은 것이다.


4. 행 서 ( 行 書 )

1) 난 정 서 ( 蘭 亭 序 )

행서의 용(龍)이라 불리는 난정시서(蘭亭詩敍)는 왕희지가 51세 때에 '흥에 겨워서 쓴' 작품
으로, 고금의 서적중에서 영원히 빛나는 밝은 별이라 하겠다. 동진의 목제(穆帝) 영화(永
和)9년 3월에 명승지 난정에서 우군장군(右軍將軍) 왕희지의 주재하에 성대하고 풍아(風雅)
로운 모임을 가졌다. 거기서 각지의 명사들이 모여 시를 지었는데 이것으로 난정집을 엮었
다. 여기에 왕 희지가 전서(前序)를 보탰는데 이것이 유명한 난정서가 된 것이다. 즉석에서
시편의 서(序)를 짓고 쓴 것이지만 서(書)뿐만 아 니고 문장이나 사상도 지극히 높은 수준
의 작품이라 한다. 이 진적은 줄곧 왕가(王家)에 진장되어 7대째인 지영(智永)에게까지 전해
졌다가, 당태종이 왕희지의 글씨를 몹시 사랑하여 이 난정서를 입수했다. 후에 당태종은 이
를 존중히 여겨 "천하 제 일의 행서"라 명하고 죽을 때 관속에 같이 넣게 함으로써 아쉽게
도 진적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2) 집 자 성 교 서 ( 集 字 聖 敎 序 )

홍복사(弘福寺)의 승려 회인(懷仁)이 칙령에 의해 궁중에 비장(秘藏)된 왕희지의 법첩중에서
집자한 서이다. 몇몇 조수와 함께 무려 25년간에 걸친 비상한 각고끝에 집대성한 것이다.{감
형 3년(672) 12월 8일 경성법려건립(京城法侶建立)} 변이나 방 을 취합하거나 점획을 해체,
합병시키거나 했는데, 사진술(寫眞術)도 없던 당시에 그 노고가 어떠했는가는 짐작하고도 남
음이 있 다. 내용은 당태종이 명승 현장삼장(玄奬三藏)의 신역불전(新譯佛典)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여 지은 성교서(聖敎序)와 당시 황 태자였던 고종이 그 경전 번역까지의 경과를 적은
술성기(述聖記)와 그리고 현장삼장이 번역한 반야심경(般若心經)이 함께 비문 을 이루고 있
다. 30행에 각 행마다 80 여자씩 1904자로 되어 있다. 이 성교서는 당대(塘代)의 모본이기는
하나 왕희지 행서 의 진수를 파악하는데 불가결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서(書)는 왕희
지의 진적으로부터 집자하여 새긴 천하의 명비로 품격 이 높고 형이 정제되어 습벽이 없다.
게다가 용필이 유려하고 다채로와 한없는 정기를 깊이 간직하고 있어 예로부터 행서 입문
에 필수적 교본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왕희지의 조형원리는 엄격히 정돈된 구조가 아니
고, 부조화(不調和)라고 생각될 정 도로 비뚤어진 형태의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 비뚤림은
각도나 용필에 일정한 벽이 없이 종횡 무진으로 변화하고 있다. 부 조화속의 조화와 변화의
원칙을 이 집자성교서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집자성교서는 이때 만들어진 원비(源碑)와 송대
의 탁본을 가장 귀하게 치는데, 명의 시대에 이르러 원비가 절

단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 것
을 미단본(未斷本), 그 이후 것을 기단본(己斷本) 이라 구분해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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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사 연표

 

한국

ㅡ시대 작가 작품 비 고ㅡ

선사시대 울주 반구대암각화(盤龜臺岩刻畵) 신석기 말엽청동기

고조선 창원 다호리 고분(古墳)에서 붓 출토 B.C. 1세기경

고구려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414

모두루묘지명(牟頭婁墓誌銘) 장수왕 때. 모두루는 인명

평양성벽석각(平壤城壁石刻) 566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 5세기 후반

백제 무녕왕릉매지권(武寧王陵買地卷) 525?

사택지적당탑비(砂宅智積堂塔碑) 654. 사택지적은 인명

신라 영일냉수리비(迎日冷水里碑) 443, 503?

울진봉평비(蔚珍鳳坪碑) 524

영천청제비(永川菁堤碑) 536

단양적성비(丹陽赤城碑) 545550

창녕진흥왕척경비(昌寧眞興王拓境碑) 561

북한산진흥왕순수비(北漢山眞興王巡狩碑) 568

황초령진흥왕순수비(黃草嶺眞興王巡狩碑) 568

마운령진흥왕순수비(磨雲嶺眞興王巡狩碑 568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552, 612? 우리말식 한문체

경주남산신성비(慶州南山新城碑) 591

통일 최치원(崔致遠) 진감선사비(眞鑑禪師碑) 887

신라 김생(金生) 여산폭포시(廬山瀑布詩) 해동서성(海東書聖)으로 일컬음

고려 낭공대사비(朗空大師碑) 954. 김생의 글씨를 집자

장단열(張端說) 정진대사비(靜眞大師碑) 965

석탄연(釋坦然) 문수원중수기(文殊院重修碑) 1130. 행서

이암() 문수사장경비(文殊寺藏經碑) 13361339? 행서

조선 훈민정음(訓民正音) 1446. 판본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1447. 판본체

석보상절(釋譜詳節) 1447. 판본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1447. 판본체

동국정운(東國正韻) 1448. 판본체

월인석보(月印釋譜) 1459. 판본체

이용(李瑢) 세종대왕영릉신도비(世宗大王英陵神道碑) 1452. 안평대군

이용(李瑢) 몽유도원도(夢遊挑源圖) 발문(跋文) 안평대군

이문건(李文楗) 한글고비 536. 최초의 한글비

황기로(黃耆老) 초서(草書) 초서의 대가

신사임당 신사임당필첩(申師任堂筆帖) 여류 서예가

한호(韓濩) 기자묘비(箕子廟碑).권도원수대첩비 전면 한석봉(韓石峯)

이광사(李匡師) 행서(行書) 4언시 원교체(圓嶠體) 이룩

김정희(金正喜) 완당척독(阮堂尺牘). 1867

김정희(金正喜) 세한도(歲寒圖)병제 추사체(秋史體) 이룩

이하응(李昰應) 난초(蘭草) 흥선대원군. 난초를 잘 그림

민영익(閔泳翊) 묵란도(墨蘭圖). 묵죽도(墨竹圖) 문인화에 뛰어남

오세창(吳世昌)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서화협회 결성(1918)

 

중국

ㅡ시대 작가 작품 비고ㅡ

() 귀갑(龜甲), 수골(獸骨) 갑골문(甲骨文)

() 산씨반(散氏盤) 금문(金文)

전국(戰國) 석고문(石鼓文) 대전(大篆)

() 태산각석(泰山刻石) B.C.219. 소전(小篆):이사 정리

낭야대각석(瑯邪臺刻石) 소전(小篆)

전한(前漢) 마왕퇴출토백서(馬王堆出土帛書) 죽간(竹簡) 과도기적 서체

오봉원년목간(五鳳元年木簡) B.C.57

후한(後漢) 을영비(乙瑛碑) 153. 예서(隸書)

예기비(禮器碑) 156. 예서(隸書)

사신전비(史晨前碑) 169. 예서(隸書)

구정(仇靖) 서협송(西狹頌) 171. 서명(署名)이 있는 最古作

조전비(曹全碑) 185. 예서(隸書)

장천비(張遷碑) 186. 예서(隸書)

삼국(三國) ··초서 등장

() 왕희지(王羲之) 난정서(蘭亭敍) 353. 행서(行書)

찬보자비(寶子碑) 405. 예서와 해서의 중간

남북조(南北朝) 용문조상기(龍門造像記.龍門二十品) 495520. 해서(楷書)

장맹룡비(張猛龍碑) 522. 해서(楷書)

() 구양순(歐陽詢)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632. 해서(楷書)의 극치

저수량(遂良)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 653. 해서(楷書)

손과정(孫過庭) 서보(書譜) 687. 초서(草書)

안진경(顔眞卿) 안근례비(顔勤禮碑) 779. 해서(楷書). 1922년 발견

() 채양(蔡襄) 척독(尺牘) 행서(行書)

소식(蘇軾) 황주한식시권(黃州寒食詩卷) 1082. 행서(行書). 東坡

황정견(黃庭堅) 황주한식시권발(黃州寒食詩卷跋) 1100. 행서(行書)

미불() 촉소첩(蜀素帖) 1088. 행서(行書)

() 조맹부(趙孟) 난정첩십삼팔(蘭亭帖十三跋) 1310년 송설체(松雪體)

예찬(倪瓚) 정무본난정서발(定武本蘭亭敍跋) 1372. 서화가

() 축윤명(祝允明) 출사표(出師表) 1514. 해서(楷書). 고전파

문징명(文徵明) 도연명음주이십수(陶淵明飮酒) 1554.행초서.고전파

동기창(董其昌) 행초시권(行草詩卷) 초서(草書). 고전파

장서도(張瑞圖) 이백시권(李白詩卷) 초서(草書). 개성파

왕탁(王鐸) 시권(詩卷), 시폭(詩幅) 연면초(連綿草). 개성파

부산(傅山) 조폭삼종(條幅三種) 연면초(連綿草). 개성파

진홍수(陳洪綬) 시폭(詩幅) 행초(行草). 시인. 화가

() 석도제(釋道濟) 나부산도책대제(羅浮山圖冊對題) 호 석도(石濤). 화가

정섭(鄭燮) 절회소자서(節懷素自敍) 板橋. 대를 잘 그림. 碑派

등석여(鄧石如) 전서칠언련(篆書七言聯) 전예(篆隸)에 뛰어남

이병수(伊秉綬) 다보탑비제자(多寶塔碑題字) 대자(大字)에 뛰어남

옹방강(翁方綱) 행서시폭(行書詩幅) 행서(行書). 첩파(帖派)

완원(阮元) 석거보급서(石渠寶) 서예 이론가. 北碑南帖論

하소기(何紹基) 행서폭(行書幅) 비파(碑派)의 거장

조지겸(趙之謙) 전서액(篆書額) 전예(篆隸). 전각(篆刻)

오준경(吳俊卿) 임석고문(臨石鼓文) 호 창석(昌碩). 전각(篆刻). 화가

 

출처: 서예술 천국
서 예 사 연 대 표
중 국 한 국
하(夏) BC2000

 

고조선

 

은(殷) BC1500 갑골문, 금문

 

 

주(周) BC500 석고문

 

 

진(秦) (BC221-BC206) 소전

 

 

전한(前漢) (BC202-BC08) 고예(古隸) 신라(BC57-)

 

목간(木簡)류 고구려(BC37-)

 

백제(BC18-)
후한(後漢) (252-220) 석문송(148)

 

 

을영비(153)
예기비(156)
서협송(171)
장천비(186)
三國(위,오,촉) (220-280)

 

 

 

서진(西晋) (280-317) 난정서(353)

 

 

동진(東晋) (317-412) 십월첩

 

 

북위(北魏) (386-534) 조상기, 장맹룡비(522), 고정비(523) 고구려 광개토대왕비(414)
서위(西魏) (534-556)

 

 

 

진(陳) (557-589)

 

신라 창녕진흥왕척경비(562)
북한산비(567)
단양적성비
수(隋) (581-618)

 

백제 무녕왕릉매지권(525?)
사택지적비(?)
당(唐) (618-907) 공자묘당비(627) 신라 무열왕릉비(666)
구성궁예천명(632) 통일신라 김생의 백율사석당기
저수량의 맹법사비(642)

 

최치원의 쌍계사진감선사공탑
집자성교서(672)

 

비(924)
쟁좌위(764)

 

 

안씨가묘비(780)

 

 

오대(五代) (907-960)

 

고려(918-1392) 탄연의 문수원중수비(1130)
북송(北宋) (960-1127)

 

 

 

남송(南宋) (1127-1279)

 

 

 

(元) (1271-1368) 조맹부의 행서천자문

 

 

명(明) (1368-1644)

 

축윤명의 출사표(1514) 조선시대 (1392-) 안평대군의 백화문편액
문징명의 전후적벽부(1545)

 

허목의 척주동해비
동기창의 행초서권(1603)

 

한호의 선죽교비
청(淸) (1644-1912) 등석여, 이병수

 

김정희의 추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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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書藝의 定義와 3大要素
서예는 문자를 표현한 독특한 예술이다. 특히 모필을 사용하여 문자를 표현하기 때
문에 애초부터 문자를 기록한다는 서사적 기능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러나 서예는
실용가치 뿐 아니라 예술적 행위로서의 가치를 동시에 지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글
씨 쓰기 행위와 다르며, 문자디자인과도 구별된다.

 

반드시 모필을 사용하여야 하고, 글자간의 구도와 행간의 구도인 章法을 강구해야하며 먹을 다루는 법(墨法)을 제대로 사용하였을 때 비로소 서예라 할 수 있다.

 

서예는 3대 요소인 筆法, 筆勢, 筆意의 예술적 기교를 포괄하여야 한다.
筆法은, 글자의 점과 획을 쓸 때 붓을 움직이는 법을 총칭한 것이다. 필법은 크게 붓
을 잡는 집필과 붓을 움직이는 用筆로 나뉘는데, 좁은 의미의 필법은 용필을 의미한
다. 집필법은 손가락을 사용하는 指法과 팔을 사용하는 腕法으로 나뉘며, 용필은 起
筆, 收筆, 圓筆, 方筆, 中鋒, 側鋒, 露鋒, 臧鋒, 提按, 轉折 등이 있다. 글씨를 쓰는 사
람과 서체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되며, 그 미감도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필력은 획을 긋는 내재적인 힘을 말한다. 점획과 점획 사이, 글자와 글자 사이, 그리
고 행과 행 사이의 상호 호응관계를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붓이 가지 않
은 곳이라 할지라도 기세가 끊어져서는 안되며, 점과 획의 모양이 각각 다르다 할지
라도 그 필세는 항상 혼연일치 되어야한다.

 

필의는 글씨 속에 표현된 작가의 감정과 취향을 가리킨다. 글씨 속에 글자의 자연적
인 정취와 우미한 기운, 그리고 글씨를 쓰는 사람의 고상한 인품이 함께 표현될 때
필의가 나타난다.

 

필법과 필세는 서예의 技巧에 해당하고, 필의는 서예의 根本에 해당한다.
서예의 구조는 문자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법칙과 글씨를 쓰는 사람의 심미적 정취
가 하나로 만나 표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장법은 글자와 글자, 행과 행 사이
의 전체적인 관계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강구하는 법칙이다.

묵법은 붓과 먹 그리고 종이의 상호변화와 효과를 추구하는 법이다. 농묵, 담묵, 간
묵, 갈묵, 습묵, 고묵, 창묵 등이 있다. 이것은 글씨를 쓰는 사람과 서체 및 용도에 따
라서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각각의 적용에 따라서 무궁무진한 미감을 표현할
수 있다.

2. 書體의 種類와 美學的 特徵

중국 서예의 서체는 篆書, 隸書, 草書, 楷書, 行書로 나뉜다. 각 서체의 형성은 다른
서체와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각 서체마다 독특한 형체와 특징
을 가지고 있으며, 예술적 표현 역시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전서는, 商나라 때의 갑골문과 周나라 때의 金文, 戰國시대의 篆書, 秦나라 때의 小
篆을 포괄한다. 이들 서체는 서사도구가 각기 달라 미감 역시 다르게 나타난다. 갑골
문은 딱딱한 거북이 껍질과 동물의 뼈 위에 칼로 새긴 것이므로 가늘면서도 딱딱하
면서, 모가 나 있고 직선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금문은 청동기를 주조할
때 새긴 것으로, 갑골문에 비하여 유창하고 자형이 단정하다.

 

예서는 佐書, 史書라고도 한다. 소전을 계승하여 통행되었던 서체인데, 晉나라의 관
리들이 산적한 행정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기존의 소전을 흘려 쓰면서부
터 생겨났다고 한다. 따라서 이 서체는 전국시대에 진나라 때 생겨나 한나라 때 정체
로 정해져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서에 없던 파책이 생겼으며, 글자가 매우 간
략해졌다. 또한 상형적인 모양이 사라지고 곡선이 직선화되었으며 정방형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해서는, 正書 또는 眞書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해서의 본의는 법칙을 준수하여 모범
이 될 수 있는 표준체를 말한다. 따라서 해서는 자체가 단정해야 한다. 해서는 漢나
라 때에 이미 초보적인 형태가 등장하였고, 예서가 변형되어 생긴 것이다. 이 서체
는 魏晉南北朝에 발전하기 시작하여 당나라 때에 최고 성행하였다. 왕희지, 왕헌지,
우세남, 구양순, 저수량, 안진경 등 중국의 서예대가들은 모두 해서에 능하였다.

 

초서는, 아주 일찍이 등장하였다. 글자를 간편하게 흘려 쓰는 습관은 전서시대에도
이미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서가 독립적인 서체로 발전한 것은 한나라 때이
다. 초서는 章草, 今草, 狂草 3단계로 발전하였다. 장초는 예서처럼 파책이 있는 것
을 말하는데, 예서가 한창 유행하전 한나라 때에 생겨났다.

 

금초는 小草라고도 하는데, 해서가 나온 뒤에 나타났으며, 장초의 기초위에 해서의 필세와 필의가 가미되어 발생하였다. 장초의 파책을 없애고 붓의 움직임을 더욱 빠르게 하였다. 광초는 大草라고도 하는데 금초보다 더 빠르고 활달하게 붓을 놀려서 쓰는 것을 말하며, 당나라 때 시작되었다.

행서는 行押書라고도 하는데 해서와 초서사이에 끼어있는 서체로서 간결하면서도
유창하다. 행서는 한나라 때 생겨나 위진남북조시대에 성행하였다. 행서의 발전은
해서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해서를 간략하게 쓰면서 획과 획 사이를 물 흐르
듯이 다닌다고 해서 ‘행서’라고 하였다. 왕희지의 <蘭亭集序>를 천하제일 행서로 평
가한다.

3. 그림과 글씨의 관계, 글씨와 글의 관계

먼저 그림과 글씨의 관계를 알아보자.
중국 사람들은 ‘글과 그림은 근원이 같다(書畵同源)’라는 말을 자주 쓴다. 즉 서예와
회화는 시작이 같다는 말이다. 중국의 글자인 한자는 상형문자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림과 같은 장식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갑골문과 금문, 그리고 전서, 예서 등은 도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또한 실용적 필요성에 의해 서사기능을 감당하던 ‘書’가, 漢末 이후에 등장한 草書 단계에 오면, 그림과 같은 예술적 선묘감과 율동미를 갖추게 된다.

 

양자 관계가 이처럼 하나로 인식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국의 그림과 글
씨가 모두 붓이라는 동일한 도구를 사용하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붓은 짐승
의 가는 철로 만들기 때문에 ‘모필’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붓은, 끝이 평평한 서양화
붓과 달리 중심이 뾰족하게 모이도록 만든다. 뾰족한 붓끝을 中鋒이라 한다.

 

중국의 그림이나 글씨에서는 붓끝이 선의 중심을 지나가도록 하는 中鋒筆法을 주로 쓴다. 따라서 글씨와 그림에 있어서 선의 질감이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장르가 분화된 근대 이후, 水墨畵나 文人畵가 여전히 서예 영역에 속해있는 것도 중국 그림의 이런 전통과 관련이 있다. 또한 중국 그림이 면보다는 선을 중요시 하는 것도 이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면 글씨(서예)와 글(문학)은 어떤 관계인가? 글씨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혼합되
어 있기 때문에 공간적이며 시간적이다. 반면에 글은 시간적이다. 왕희지의 글씨를
통하여 그 관계를 알아보자.

옆 페이지 상단의 글은 왕희지가 晉 穆帝 서기 353년 3월 삼짇날 당시의 42명의 명사
들과 절강성 소흥 난저(蘭渚)에 있던 정자에 모여 곡수연(曲水宴)을 베풀고, 여기서
지은 시를 모아 만든 시집의 서문을 쓴 것이다. 먼저 작가는 연회의 시간, 장소, 이
유, 참석자의 면모를 밝혔고, 이어서 연회장소와 풍광을 서술하였다.

 

또 참석한 사람들이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한잔 술에 시 한수를 읊조리며 마음속 깊은 곳에 담긴 그윽한 정을 풀어내는 모습(暢敍幽情)을 그렸다. 그러므로 이 글은, 수미가 일관하도록 감정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서술되어 있다.

그 행간에는 인생과 자연을 대하는 시인들의 감흥과 상상력이 나타나 있다. 인간의
自足과 悲哀가 교착하고 있어, 현실 속을 살고 있으면서도 정신세계로 초원하려고
한다. 조물주가 만든 영원한 시간, 그 속에 사는 인간의 유한한 삶에서 오는 슬픔이
대비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유한한 삶이지만 인간의 감회로 빚어낸 문학
은 영원할 것이라며 작가는 끝을 맺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영원한 것을 동경하는 인간의 애절한 소망, 유한한 인생에 대
한 애상, 그러면서도 유한한 삶을 영원한 세계에 담아보려는(世殊事異, 所以興懷,
其致一也.) 중용적 사유가 잘 나타나 있다. 이 글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
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속에 작자의 감정과 정서가 녹아 있다.

그러면 왕희지는 이러한 정감과 사상을 공간적으로 어떻게 표현하였는가? 글자는
크고 작은 것, 길고 짧은 것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고, 물 흐르듯이 내려가고 가로열
을 맞추지 않아 딱딱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점과 획이 서로 어울려 다양하면서도 변
화된 글자의 구조를 이루고 있어 글자마다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어떤 필획은 평온하고, 어떤 것은 험준하며, 어떤 것은 편안히 쭉 편 듯 하고, 어떤 것은 안으로 수축하고 있다. 해서처럼 반듯하면서도 초서처럼 유려하다. 붓을 마음껏 휘둘러 한글자도 구속됨이 없으면서도, 필획의 시작과 끝이 적당하고 중봉이 필획을 관통하는 법도가 매우 정확하다. 공간적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적 미학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즉, 왕희지가 추구하려고 했던 시간의 중용적 세계를 공간의 중용적 미학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이처럼 서예는 글자를 형상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공간적이지만, 일을 시간적 흐
름에 따라 기술한다는 점에서 시간적이다. 이 두 차원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
로 서예이다. 따라서 서예예술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

4. 書藝의 美學的 世界

서예의 미학적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書論에 대한 천착이 우선되어야 한다. 중
국에는 위진시대에 처음 서론이 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서론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채옹의 <九勢>를 인용하여 보자.

서예는 자연에서 시작된다. 자연의 법칙이 이미 생겨있으니, 음양이 생기고, 음양이
이미생기니 형세가 나타난다.
夫書肇于自然, 自然旣立, 陰陽生焉. 陰陽旣生, 形勢出矣.

서예가 자연의 법칙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자연을 모방한다는 점에서 그
림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음양이 생겨난다는 것은, 서예가 자연의 외형만을 모방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변화도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그림이 각 물상의 기계적인 조립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체의 유기적 만남을 묘사하듯이, 서예 역시 점과 획의 動靜, 剛柔, 虛實 등 상호 유기적인 관계와 변화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그림처럼 서예 역시 자연 이미지로서의 예술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왕승건(426-485)은 <서부(西賦)>에서 서예의 미학을 ‘택운생황(托韻笙簧)’으로 표
현하였다. 이는 서예가 표현한 글자의 형상이 음악적 운율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운’은 사혁이 회화에서 제시한 ‘기운생동(氣韻生動)’과 일맥상통한다
고 할 수 있다. 기운생동은 대상의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내재미를 추구한다.

 

때문에 비록 화려한 색채나 수려한 수사가 없어도 대상 속에 작가의 개성적 특징이 저절로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운생동’은 수식과 기교의 외부적 장치 속에 들어있는 본질을 파악하는 미학이다. 서예도 이와 같은 예술적 경지라고 할 수 있
다. 따라서 그는 “서예의 오묘한 도는 심미적 정신을 최상으로 하고, 외형미는 그 다
음이다.(書之妙道, 神彩爲上, 形質次之)”라고 말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서예는 문자기록에 그치거나 단순히 먹물을 바르는 행위
가 아니라, 그림의 선과 면처럼 점과 획 사이의 미묘한 변화와 율동을 통하여 균형
의 미와 더 나아가 심미적 정신을 표현하는 예술적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출처: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다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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