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모음

 

1.孟夏  맹하   초여름
 賈弇   가엄

江南孟夏天   강남맹하천   강남의 초여름
紫竹筍如編   자죽순여편   대나무 숲 죽순이 엮은 듯 솟아나네
蜃氣爲樓閣   신기위루각   아지랑이는 뭉게뭉게 누각을 이루고
蛙聲作管弦   와성작관현   개구리 소리가 그대로 관현악 이로다

 
2.湖上寓居雜詠  호상우거잡영   호숫가에 살며 읊다
姜夔  강기

荷葉披披一浦凉    하엽피피일포량  연잎은 너풀너풀 온 뻘이 시원하고
靑蘆奕奕夜吟商   청로혁혁야음상  갈대는 한들한들 밤이면 가을 노래 읊는다
平生最識江湖味   평생최식강호미   평생에 자연의 멋을 내가 가장 잘 아노니
聽得秋聲憶故鄕   청득추성억고향   가을소리 들으니 고향이 생각나는구나


3.花園帶鋤  화원대서    꽃밭에 호미 메고
姜希孟(朝鮮)  강희맹 1424~1483

荷鋤入花底   하서입화저   호미 메고  꽃 속에 들어가
理荒乘暮回   이황승모회   김을 매고  저물녁에 돌아오네
淸泉可濯足   청천가탁족   맑은 물이 발 씻기에 참 좋으니
石眼林中開   석안림중개   샘이 숲속 돌틈에서 솟아나오네

 

4.作墨戱題其額贈姜國鈞    작묵희제기액증강국균(그림그려 시 한수 적어 강국균에게)
姜希孟   강희맹 1424~1483

胡孫投江月   호손투강월   강 속의 달을 지팡이로 툭 치니
波動影凌亂   파동영능란   물결 따라 달 그림자 조각조각 일렁이네
飜疑月破碎   번의월파쇄   어라, 달이 다 부서져 버렸나
引臂聊戱玩   인비료희완   팔을 뻗어 달 조각을 만져보려 하였네
水月性本空   수월성본공   물에 비친 달은 본디 비어있는 달이라
笑爾起幻觀   소이기환관   우습다. 너는 지금 헛것을 보는 게야
波定月應圓   파정월응원   물결 가라 앉으면 달은 다시 둥글 거리고
爾亦疑思斷   이역의사단   품었던 네 의심도 저절로 없어지리
長嘯天宇寬   장소천우관   한 줄기 휘파람 소리에 하늘은 드넓은데
松偃老龍幹   송언노룡간   소나무 늙은 등걸 老龍처럼 비스듬히 누워 있네

 
5.金剛途中  금강도중  금강산 가는 길에
姜栢年  강백년 1603~1681

百里無人響   백리무인향   백리에 사람 소리 들리지 않고
山深但鳥啼   산심단조제   산 깊어 들리느니 새 울음 소리
逢僧問前路   봉승문전로   중 만나 앞 길을 물어 보고는
僧去路還迷   승거로환미   중 가자 다시금 길을 잃었소

 

 6.峽行雜絶  협행잡절    산골짝을 지나며
 姜진  강진 1807~1858

山翁夜推戶   산옹야추호   산에 사는 노인이 지게문을 열고
四望立一回   사망립일회   사방 한번 둘러보고 서서 하는 말
生憎啄木鳥   생증탁목조   얄미운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에
錯認縣人來   착인현인래   마실온 마을 사람인줄 잘못 알았네

 
7.聽秋蟬  청추선    가을 매미 소리  
 姜靜一堂    강정일당 1772~1832

萬木迎秋氣   만목영추기   어느덧 나무마다 가을빛인데
蟬聲亂夕陽   선성난석양   석양에 어지러운 매미 소리들
沈吟感物性   침음감물성   제철이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林下獨彷徨   임하독방황   쓸쓸한 숲 속을 혼자 걸었네

    

 8.悟道頌    오도송
鏡虛禪師   경허선사 1849~1912
 
忽聞人語無鼻孔   홀문인어무비공   홀연히 사람에게서 고삐 뚫을 구멍 없다는 말 듣고
頓覺三千是我家   돈각삼천시아가   문득 깨닫고 보니 삼천 대천세계가 이 내 집일세
六月鳶巖山下路   육월연암산하로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野人無事太平歌   야인무사태평가   들사람 일이 없어 太平歌를 부르네

    

9.午睡   오수     낮잠
鏡虛禪師  경허선사 1849~1912

無事猶成事   무사유성사   일 없음을 일삼아
掩關白日眠   엄관백일면  빗장을 걸어 잠그고 대낮에 낮잠을 자고 있는 데
幽禽知我獨   유금지아독  깊은 산 속 새들이 나 홀로인 줄 알고서
影影過窓前   영영과창전   창문앞을 어른어른 날면서 그림자를 비치네


 10.遊隱仙洞  유은선동    선동에 숨어 지내며
   鏡虛惺牛   경허성우 1849~1912

山與人無語   산여인무어   산과 사람은 말이 없고 
雲隨鳥共飛   운수조공비   구름은 새를 따라 함께 날으네 
水流花發處   수류화발처   물 흐르고 꽃피는 곳
淡淡欲忘歸   담담욕망귀   아아 모든 것 돌아가 잊고져 하네

 
11.偶吟    우음
  鏡虛惺牛   경허성우 1849~1912

風飄霜葉落   풍표상엽락   바람이 서리맞은 잎을 떨어트린다
落地便成飛   락지편성비   떨어지는 잎이 다시 바람에 날아간다
因此心難定   인차심난정   어쩔거나 이 마음 맡길 데 없어
遊人久未歸   유인구미귀   잎비 속에 길을 잃고 헤메이나니

 

12.觀物吟  관물음   사물을 바라보며
 高尙顔   고상안 1553~1623

牛無上齒虎無角   우무상치호무각   소는 윗니가 없고, 범은 뿔이 없으니
天道均齊付與宜   천도균제부여의   하늘 이치 공평하여 저마다 알맞구나
因觀宦路升沈事   인관환로승침사   이것으로 벼슬길에 오르고 내림을 살펴보니
陟未皆歡黜未悲   척미개환출미비   승진했다 기뻐할 것 없고, ?겨났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13.臨終偈    임종게 
  孤閑熙彦(朝鮮)   고한희언 1561~1647

空來世上       공래세상       공연히 이 세상에 와서  
特作地獄滓矣   특작지옥재의   지옥의 찌꺼기만 만들고 가네 
命布骸林麓     명포해림녹    내 뼈와 살을 숲속 산기슭에 버려 
以飼鳥獸       이사조수      새와 짐승들의 먹이가 되게 하라

 
14. 田家夜春  전가야춘   농가의 봄밤 
   高啓  고계

新婦舂糧獨睡遲   신부용량독수지   신부가 방아 찧다가 혼자 늦게 잠들고
夜寒茅屋雨來時   야한모옥우래시   차가운 밤, 초가에 비가 내리고 있다
燈前每囑兒休哭   등전매촉아휴곡   등불 앞에는 우는 아이 달래라 매번 부탁하나니
明日行人要早炊   명일행인요조취   내일 떠날 사람있어 일찍 밥지어야 한다네

 

15.山亭夏日  산정하일    여름날 산속 정자에서
  高騈(唐)  고병 1350~1413

綠樹濃陰夏日長   록수농음하일장   푸른 나무,그늘은 짙고 여름 해는 길고
樓臺倒影入池塘   누대지영입지당   연못속에 거꾸로 비친 樓臺 그림자 보이네
水晶簾動微風起   수창염동미풍기   수정발 들리니, 실바람 불어오고
一架薔薇滿院香   일가장미만원향   시렁 가득, 장미꽃 향기 집안에 가득하네


 

16.山莊夜雨  산장야우    산장의 밤비
 高兆基  고조기   1088 ~ 1157

昨夜松堂雨   작야송당우   어젯밤 송당에 비가 왔는지
溪聲一枕西   계성일침서   베갯머리 서편에선 시냇물 소리
平明看庭樹   평명간정수   새벽녘 뜨락의 나무를 보니
宿鳥未離棲   숙조미리서   자던 새는 둥지를 아직 떠나지 않았네

 
17.東平路      동평로에서
  高適(唐)  고적 702~765

淸曠凉夜月   청광량야월   맑게 탁 트인 서늘한 달밤
徘回孤客舟   배회고객주   외로운 나그네로 배 안에서 배회하며

渺然風波上   묘연풍파상   아득히 바람 치는 물결 위로
獨愛前山秋   독애전산추   홀로 고향 땅 앞산의 가을을 그렸더니

秋至復搖落   추지부요락   가을이 되어 다시 나뭇잎은 떨어져
空令行者愁   공령행자수   길 떠난 자를 부질없이 시름겹게 하여라


    
18.除夜作   제야작    섣달 그믐날에 만듦
  高適(唐)  고적 702~765

旅館寒燈獨不眠   여관새등독불면  여관의 추운 등불아래 홀로 잠을 못 이루니
客心何事轉凄然   객심하사전처연  나그네 마음은 어쩐지 외롭기만 하다
故鄕今夜思千里   고향금야사천리  고향에서는 오늘밤에 멀리 있는 나를 생각하고있겠지
霜빈明朝又一年   상빈명조우일년   서리 내린듯한 머리에 내일 되면 한살 더 나이를 먹네


19.閑居  한거   한가히 사노니
  高適(唐)  고적 702-765

柳色驚心事   류색경심사   버들 색, 마음을 놀라게하고   
春風厭索居   춘풍염삭거   봄바람도 쓸쓸한 처소를 싫어하네
方知一杯酒   방지일배주   이제사 알겠네, 한잔 술이   
猶勝百家書   유승백가서   오히려 많은 집의 책보다 좋다네

 
20.營州歌  영주가
  高適   고적 702~765

營州少年厭原野   영주소년염원야   영주의 소년 들판에 익숙하여
狐裘蒙茸獵城下   호구몽용렵성하   가죽 옷 휘날리며 성 아래서 사냥하네
虜酒千鍾不醉人   노주천종불취인   노주 천 잔에도 취하지 않으니
胡兒十歲能騎馬   호아십세능기마   오랑케 아이들은 열 살부터 말을 탄다오

裘= 갖옷 구.


21.村居  촌거    시골에서 
 高鼎  고정

草長鶯飛二月天   초장앵비이월천   풀이 돋고 꾀꼬리 나는 二月의 하늘
拂堤楊柳醉春煙   불제양류취춘연   둑 위의 버드나무 봄 안개에 취한 듯 흔들거리고
兒童散學歸來早   아동산학귀래조   어린아이들은 공부가 끝난 후 일찍 돌아와
忙趁東風放紙鳶   망진동풍방지연   동풍을 좇으며 종이 연을 날리네
         ☞  趁= 좇을 진, 밟을 전.


22.聽角思歸  청각사귀   피리소리에 고향생각  
  顧況  고황 727~816

故園黃葉滿靑苔   고원황엽만청태   고원에 낙엽 푸른 이끼 덮는다
夢後城頭曉角哀   몽후성두효각애   꿈 깨니 성 가에 새벽 깨우는 소리 서럽고
此夜斷腸人不見   차야단장인불견   이 밤 애끊는 이도 보이지 않으니
起行殘月影徘徊   기행잔월영배회   기우는 달 아래 홀로 서성거린다

 
23.  偈頌詩    게송시
    恭都寺  공도사

點盡山窓一盞油   점진산창일잔유  온 산의 창아래 등잔불을 밝히니 
地爐無火冷湫湫   지노무화냉추추  화로에도 불이 없어 썰렁하구나
話頭留向明朝擧   화두류향명조거   화두는 놔 두었다 다음 날 묻기로 하고
道者鼓鐘又上樓   도자고종우상루  도인은 종을 치러 다시 樓에 오르네


 24. 禾熟  화숙  벼가 익을 무렵
   孔平仲(宋)   공평중

百里西風禾黍香   백리서풍화서향   백 리 들판에 서녘바람 선뜻 불고 벼 기장 향그럽게 익었는데
鳴泉落竇穀登場   명천락보곡등장   샘물 졸졸 바위 위를 흐르고 탈곡장에 곡식 들어온다
老牛粗了耕耘債   노우조료경운채   늙은 소는 이것으로 논밭갈이 채무를 얼추 갚았는가
齧草坡頭臥夕陽   설초파두와석양   꼴 씹으며 석양빛 언덕 위에 가로 누웠네


25.長源亭應製野叟騎牛 장원정응제야수기우   장원정에서 소타고 가는 저 늙은이
  郭輿(高麗)  곽여 1058~1130 

太平容貌恣騎牛   태평용모자기우   소 타고 가는 저 노인, 편안한 얼굴로
半濕殘霏過壟頭   반습잔비과롱두   뿌연 안개비 속  언덕길을 넘네
知有水邊家近在   지유수변가근재   저 냇가 어디쯤 집이 있는가
從他落日傍溪流   종타락일방계류   흐르는 냇물 위에 夕陽이 지네

 

 26.東郊馬上演雅體  동교마상연아체   동쪽 들판 말위에서 시를 읊음 
  郭預   곽예

信馬尋春事   신마심춘사   말 가는대로 몸을 맡겨 봄 구경 나가보니
牛兒方力耕   우아방역경   소는 한창 밭을 갈고 있네

鳥鳴天氣暖   조명천기난   새는 지저귀고  날씨는 따뜻하고 
魚泳浪紋平   어영랑문평   물고기 헤엄치니 잔물결 이네

野蝶成團戱   야접성단희   들에는 나비가 무리 지어 날고
沙鷗作隊行   사구작대행   沙場의 갈매기는 떼 지어 날아가네

自嫌隨燕雀   자혐수연작   부끄럽구려 소인배들 따르다가            燕雀:제비와 참새 도량이 좁은 소인배
不似鷺鶿淸   불사노자청   큰 인물 닮지 못한 것이...                    鷺鶿:가마우지


27. 雲   운     구름
  郭震(唐)  곽진 656-713  

聚山虛空去復還   취산허공거부환   허공에 모였다가 흩어지고 갔다간 또 오는데
野人閑處倚空看   야인한처의공간   야인이 한가롭게 지팡이 짚고 서서 바라본다네
不知身是無根物   부지신시무근물   스스로 뿌리 없는 신세인 것을 모르고
蔽月遮星作萬端   폐월차성작만단   달 가리고 별 막으며 별짓을 다하는구나

 

28. 西村  서촌    절간 마을의 어부
  郭祥正(宋)  곽상정

遠近皆僧刹   원근개승찰   여기저기 모두가 절간
西村八九家   서촌팔구가   마을이라야 인가가 고작 여덟 아홉
得魚無賣處   득어무매처   잡은 물고기 팔 곳도 없는지라
沽酒入蘆花   고주입노화   술 사들고 갈대꽃 숲 속으로 들어간다네

 
29.退居琵琶山  퇴거비파산     물러나 비파산에 살면서
  郭再祐  곽재우 1552~1617

朋友憐吾絶火煙   붕우연오절화연   친구들은 속세와 인연 끊은 나를 불쌍히 여겨
共成衡宇洛江邊   공성형우낙강변   함께 낙동강 변에 집을 지어주었네

無饑只在啖松葉   무기지재담송엽   나 굶지 않아요, 다만 솔잎을 씹고
不渴惟憑飮玉泉   불갈유빙음옥천   목마르지도 않아요, 맑은 샘물 마신다오

守靜彈琴心淡淡   수정탄금심담담   고요한 마음 지키며 거문고 타니, 마음은 담담하고
杜窓調息意淵淵   두창조식의연연   두견새 우는 창가에 앉았더니 생각은 맑고 깊어라


30.待山月  대산월    산위에 뜨는 달 기다리며
  皎然(唐) 교연

夜夜憶故人   야야억고인    밤마다 밤마다 벗님 그리워
長敎山月待   장교산월대    산 위에 뜬 달 본체만체 하였더라네
今宵故人至   금소고인지    오늘 밤 그 벗님 오셨는데
山月知何在   산월지하재    산 위에 뜨던 그 달 어딜 갔는지

 
31.遠山  원산     먼 산
 歐陽修   구양수 1007~1072

山色無遠近   산색무원근   산빛은 멀고 가까움이 없으니
看山終日行   간산종일행   종일토록 산을 보며 간다
峰巒隨處改   봉만수처개   가는 곳 마다 산봉우리 바뀌어도
行客不知名   행객부지명   길가는 객은 이름을 모른다네

 

32.畵眉鳥   화미조   개똥 지빠귀
  歐陽修   구양수 1007~1072

百囀千聲隨意移   백전천성수의이   마음대로 다니며 온갖 소리 다 내고
山花紅紫樹高低   산화홍자수고저   붉은 꽃 자주 꽃, 높은 나무 낮은 나무 아무 데든 지저귄다
始知鎖向金籠廳   시지쇄향금롱청   이제서야 알았네. 금으로 된 새장속의 소리가
不及林間自在啼   불급임간자재제   수풀 속에서 제멋대로 내는 소리에 미치지 못함을
☞  囀= 지저귈 전,가락 전.

 
33.贈魏野處士   증위야처사   위야 처사에게
  寇準   구준 961~1023

人間名利走鹿埃   인간명리주녹애   사람들은 명리를 쫓아 속세를 헤매어 다니건만
惟子高閑晦盛才   유자고한회성재   오직 그대만이 유유히 뛰어난 재주를 감추고 있네
欹枕夜風喧薛茘   의침야풍훤폐려   베개머리에서 밤바람에 흔들리는 사철나무 소리 듣고
閉門春雨長莓苔   폐문춘우장매태   방문 닫고서 봄비에 자라는 이끼의 소리를 듣는다네
詩題遠岫經年得   시제원수경년득   詩題는 저 멀리 산봉우리에서 일년 내내 얻고
僧戀幽軒繼日來   승연유헌계일래   스님들은 유심한 정자를 좋아해 날마다 찾아오네
却恐明君徵隱逸   각공명군징은일   다만 두려운 건 군왕이 은둔한 그대를 찾는 것이니
溪雲誰得共徘徊   계운수득공배회   계곡의 구름 아래를 누구와 함께 거닐 수 있겠는가

 
34. 華山   화산
  寇準(宋)  구준

只有天在上   지유천재상   그 위로는 하늘이 있을 뿐
更無與山齊   갱무여산제   더불어 겨를 산이 없네
擧頭紅日近   거두홍일근   머리 드니 붉은 해가 가깝고
回看白雲低   회간백운저   고개 돌리니 흰 구름이 낮게 깔렸네

 
35.尋西山隱者不遇 심서산은자부우  서산의 은자를 만나지 못하고
 邱爲  구위

絶頂一茅茨   절정일모자   가장 높은 곳에 띳집 하나
直上三十里   직상삼십리   곧바로 삼십 리나 올라갔다오
叩關無僮仆   구관무동부   문을 두드려도 나와 맞는 아이 하나 없고
窺室惟案几   규실유안궤   방안을 들여다보니 책상 하나뿐이네

若非巾柴車   야비건시거   허술한 수레 타고 가지 않았다면
應是釣秋水   응시조추수   틀림없이 가을 물가에 낚시 갔을 것이네
差池不相見   차지부상견   길 어긋나 만나지 못하고
黽勉空仰止   민면공앙지   머뭇거리며 공연히 생각만하네

 
草色新雨中   초색신우중   내리는 비속의 풀빛 푸르고
松聲晩窻裏   송성만창리  저녁 녘 창문에서 들리는 솔바람 소리
及자契幽絶   급자계유절   지금의 그윽한 경치 마음에 들어
自足蕩心耳   자족탕심이   흡족히 내 마음과 귀를 씻어주네

雖無賓主意   수무빈주의   비록 손님과 주인의 생각 몰라도
頗得淸淨理   파득청정리   다소간 맑고 깨끗한 이치 얻었네
興盡方下山   흥진방하산   기분 다하면 산 내려가리니
何必待之子   하필대지자   어찌 반드시 그대 오기를 기다릴까

 
36.題畵  제화  그림에 부처
  歸莊(淸) 귀장

巖穴幽樓盡隱淪   암혈유루진은륜   동굴에 숨어사는 사람 모두 明나라의 遺民隱士들
抱琴扶杖往來頻   포금부장왕래빈   거문고 안고 단장 짚고 자주들 오고 가네
山家長日無餘事   산가장일무여사   산중 긴 하루 하는 일 따로 없고
一局閑消洞裏春   일국한소동리춘   바둑 한판에 봄날이 가네
屋繞靑山竹遍栽   옥요청산죽편재   푸른 산 집을 에워싸고 뜰에는 온통 대나무
棋枰茗碗酒甁開   기평명완주병개   바둑 두며 茶 마시고 술병을 따네
此中勝景非天地   차중승경비천지  이러한 경치 속세가 아닐지니
邦得閑人入畵來   방득한인입화래   어찌 아무나 그림 속에 들어오게 할 것이랴

 
37.七夕偶書   칠석우서
  權擘   권벽 1520~1593

浮世紛紛樂與悲   부세분분락여비   기쁨과 슬픔으로 뜬 세상 어지럽고
人生聚散動相隨   인생취산동상수   만나고 흩어짐은 인생길을 따르누나
莫言天上渾無事   막언천상혼무사   천상에는 아무런 일 없다고 하지 말라
會合俄時又別離   회합아시우별리   만남은 잠깐일뿐 다시 헤어지느니


38.嘲鼠  조서   불쌍한 쥐새끼
  권구  권구 1672~1749

爾本無家依我屋   이본무가의아옥   너는 본디 집이 없어 내 집에 의지해 사는데
旣依胡乃反穿爲   귀의호내반처위   그렇게 의지하면서 내 집에 왜 구멍을 뚫나
固知爾亦無長慮   고지이역무장려   참으로 너도 멀리 내다보는 생각은 없구나
我屋顚時爾失依   아옥전시이실의   내 집이 무너지면 너도 의지할 데 없어질텐데

 
39.鬪者  투자   싸우는 사람
  권구 1672~1749

怒臂相交千仭側   노비상교천인측   성난 두 어깨 서로 엉겨 천길 낭떠러지에 있네
懸知飄碎在須臾   현지표쇄재수유   자칫 떨어지면 틀림없이 몸이 부서질 것이로다
可憐利害相形處   가련리해상형처   불쌍하기도 하여라, 이해를 따지는 형편과 처지
只見絲毫不見軀   지견사호부견구   터럭같은 이익만 보고 제 몸은 보지 못하는구나

 
40.秋日  추일     가을
  權遇   권우 1363~1419
竹分翠影侵書榻   죽분취영침서탑   푸른 그림자 나눠 책상 맡에 스며들고
菊送淸香滿客衣   국송청향만객의   국화는 맑은 향기 보내 나그네 옷 가득해라
落葉亦能生氣勢   낙엽역능생기세   지는 잎도 또한 능히 기세를 일으켜서
一庭風雨自飛飛   일정풍우자비비   뜰 가득 비 바람에 절로 날려 가누나

 

41.自詠  자영     내 모습 
 權好文    권호문 1532~ 1587

偏性獨高尙   편성독고상   모난 성격 홀로 고상함을 지켜      

卜居空谷中   복거공곡중   텅 빈 골짜기에 집 짓고 살지       
囀林鳥求友  전림조구우   숲속엔 벗 찾는 새소리 맑고         
落체花辭叢   락체화사총   섬돌엔 나풀나풀 어여쁜 꽃잎들    
簾捲野經雨   렴권야경우   주렴 드니 들에는 지나가는 빗줄기 

襟開溪滿風   금개계만풍   냇가 가득 부는 바람 옷깃 열어주네 
淸吟無一事   청음무일사   일없이 청아한 한 수 시를 읊으니  

句句是閑功   구구시한공   구절구절 참 이렇게 한가로울 수가

 

 

42.顧人行   고인행    일꾼들의 걸음
 權攇   권헌 1713~1770

西江雇人健於牛   서강고인건어우   서강나루 일꾼들은 소보다 건장하여
兩肩礧峗如土阜   양견뢰위여토부   두어깨 불끈 솟아 흙더미 같다
每從販船巧射利   매종판선교사리   장사배에서 이익을 교묘히 노려
巨商捐錢聽奔走   거상연전청분주   거상이 돈을 주면 마을은 분주해진다
淸晨比肩集江門   청신비견집강문 이른 새벽 나란히 강어귀로 나가 모여  

較量轉輸立良久   교량전수입량구   하역량을 헤아리며 한참을 서 있다가
卓午南風不欺潮   탁오남풍불기조   정오에 남풍 불어 밀물이 틀림없으면
邂逅舴艦私傳受   해후책함사전수   큰 배 만나서 사사롭게 주고 받는다
終日負米得脅直   종일부미득협치   종일토록 볏짐 져서 품삯 받으니
筋力攻食恐在後   근력공식공재후   근력으로 밥벌이, 행여 뒤질세라
長身慺行仰脅息   장신루행앙협식   큰 키를 구부려 가다가 고개들어 숨 몰아쉬고
大索擔頭常在手   대색담두상재수   동아줄과 등태를 손에 꼭 쥐고 있다
行年六十不息肩   행년육십불식견   나이 육십에도 어깨를 쉬지못해
背坼皮皺生塵垢   배탁피추생진구   등은 갈라지고 살결은 쭈글쭈글 꾀죄죄
終身勤苦得自給   종신근고득자급   한평생 힘들게 노력하여 제 밥 벌면서
但恐任重老無有   단공재중로무유   다만, 늙어 일감 없을까만 염려하니
鮮羹白飯無饑歲   선갱백반무기세   흉년이 없어 생선찌개 쌀밥에 
男子供薪女蒭酒   남자공신여추주   사내는 나무하고 아낙은 술 거른다
道旁流丐何爲者   도방류개하위자  길거리 비렁뱅이는 무얼 하는가
但能乞飯指其口   단능걸반지기구   입구멍 때문에 구걸이 고작이라니

            流丐:거지
 
43.懷妻  회처    아내 생각
 奇遵(朝鮮)  기준 1492-1521

膝下孩兒新學語   슬하해아신학어   슬하의 어린아이는 말을 갓 배웠겠고 
조門老婢舊懸瓢   조문노비구현표   부엌문앞 늙은 종, 양식 없다하겠지 
林園廖落生秋草   림원료락생추초   숲속 밭은 쓸쓸히 가을 풀 돋았겠고 
想見容華日日凋   상견용화일일조   날로 여위는 그대 이쁜 얼굴 보일듯, 생각하네

 

44.述志  술지    내평생의 뜻  
  吉再  길재 1353~1419

臨溪茅屋獨閑居   임계모옥독한거   개울가 초가집 지어  한가히 홀로사니
月白風淸興有餘   월백풍청흥유여   달은 밝고 바람은 맑아  즐거움이 넘치네
外客不來山鳥語   외객부래산조어   손님이 찾지 않아도 산새들이 이야기 하고
移床竹塢臥看書   이상죽오와간서   대나무 둑으로 평상을 옮겨 누워 글을 읽는다오

 
45. 偶吟  우음     우연히 읊다
   吉再  길재 1353~1419

竹色春秋堅節義   죽색춘추견절의   봄가을 대나무 빛 절개를 굳게 하고 
溪流日夜洗貪濫   계류일야세탐람   밤낮 흐르는 개울물 탐욕을 씻어낸다
心源瑩靜無塵態   심원형정무진태   마음의 근원 맑고 고요하여 속기라곤 하나 없고 
從此方知道味甘   종차방지도미감   이때부터 알겠네, 도의 맛이 감미로움을
五更殘月窓前白   오경잔월창전백   오경에 지는 달은 창문 앞에 밝고 
十里松風枕上淸   십리송풍침상청   십리를 불어오는 소나무 바람, 잠자리를 맑게 하네
富貫多勞貧賤苦   부관다노빈천고   부귀 누리기는 힘이 들고, 빈천은 고통스러우니
隱居滋味與誰評   은거자미여수평   숨어 사는 재미를 누구와 함께 말하리오


 
 
46. 始遊京城  시유경성    서울에 와서
  金錦園   김금원 1817~1851

春雨春風未暫開   춘우춘풍미잠개   봄바람은 봄비 섞어 불어오는데
居然春事水聲間   거연춘사수성간   어느덧 좋은 봄철 오고 가누나
擧目何論非我土   거목하논비아토   내 고향이 아니라고 탓할 것 없고
萍遊到處是鄕關   평유도처시향관   부평초처럼 어디나 살면 고향 이라네

 
47.  書懷  서회   회포를 적다
   金宏弼   김굉필 1454~1504

處獨居閒絶往還   처독거한절왕환   홀로 있으며 한가한 곳에 사니, 오가는 이 드물고,
只呼明月照孤寒   지호명월조고한   오직 달을 부르니, 가난하고 외로운 나를 비추네.
憑君莫問生涯事   빙군막문생애사   그대 생각으로, 나의 생애 묻지 말라.
萬頃煙波數疊山   만경연파수첩산   넓은 바다 안개 낀 물결, 첩첩한 산들이 가득하니라

 
48. 絶 句
   金得臣   김득신 1604 ~1684

夕照轉江沙   석조전강사   저녘노을 곱게 강 모래위에 비추고
秋聲生遠樹   추성생원수   가을소리 먼 숲속에서 들려오네
牧童叱犢歸   목동질독귀   목동이 소를 몰고 바삐 돌아오고
衣濕前山雨   의습전산우   산에 내리는 비, 옷이 흠뻑 젖는구나

    
49.만吟   만음    미소 띄우며
  金得臣  김득신 1604~1684

爲人性癖每耽詩   위인성벽매탐시   사람의 성벽이 늘상 시에 빠져서 
詩到吟時下字疑   시도음시하자의   시 이르러 읊조릴 젠 글자 놓기 망설이네
終至不疑方快意   종지불의방쾌의   망설임이 없어야만 마음에 쾌하거니
一生辛苦有誰知   일생신고유수지   일생의 괴로움을 알 사람 그 누구랴

 

 

50. 頭陀山   두타산
   金得臣(朝鮮)  김득신 1604 ~1684 

行行路不盡   행행로부진   가도가도 길은 끝이 없고
萬水更千峰   만수경천봉   많은 개울 건너니 또 많은 산봉우리들
忽覺招堤近   홀각초제근   홀연히 마을 가까와진 줄 알게 되었는데
林端有暮鍾   임단유모종   숲속 끝에서 저녁 종소리 들리는 듯

 

 

51. 雙燕  쌍연   한쌍의 제비
  金履萬   김리만 1683~1758

雙燕銜蟲自忍飢   쌍연함충자인기   제비 한쌍  벌레 물고  배고픔 참으며
往來辛苦哺其兒   왕래신고포기아   힘들게 왔다갔다 제 새끼들 먹이누나
看成羽翼高飛去   간성우익고비거   날개깃 돋아나서 높이 날아 가버리면
未必能知父母慈   미필능지부모자   부모의 자애로움 능히 알지 못하겠지


52. 苔磯釣魚  태기조어    이끼 낀 물가에서 낚시 드리우고
   김류 1571~1648

日日沿江釣   일일연강조   날마다 강가에서 고기 낚는데
呑釣盡小鮮   탄조진소선   낚시 무는 놈은 모두 잔챙이
誰知滄海水   수지창해수   누가 알까, 저 푸른 바닷물 속에
魚有大於船   어유대어선   배보다 더 큰 고기 있음을

 
53.松都甘露寺次惠遠韻 제송도감로사차혜원운  송도 감로사에서
   金富軾  김부식 1075~1151

俗客不到處   속객부도처   세속 나그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登臨意思淸   등임의사청   올라오니 생각이 해맑아진다

山形秋更好   산형추갱호   산의 모습은 가을이라 더욱 곱고
江色夜猶明   강색야유명   강 물빛은 밤인데도 오히려 밝다

白鳥高飛盡   백조고비진   해오라기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孤帆獨去輕   고범독거경   외론 돛만 혼자서 가벼이 떠간다

自慙蝸角上   자참와각상   달팽이 뿔 위에서
半世覓功名   반세멱공명   功名을 찾아다닌 반평생이 부끄럽구나

    

54.  觀瀾寺樓  관란사루    관란사 누대에서
    金富軾   김부식 1075~1151

六月人間暑氣融   육월인간서기융   세속의 유월은 더위가 가득한데
江樓終日足淸風   강루종일족청풍   강루에는 종일토록 청풍불어 좋아라

山容水色無今古   산용수색무금고   산모양 물빛은 고금이 한결같으나
俗態人情有異同   속태인정유이동   세상의 풍속과 사람의 인정은 다름이 있다

舴艋獨行明鏡裏   책맹독행명경리   거룻배는 맑은 거울 속을 홀로 가는데
鷺鶿雙去畵圖中   로자쌍거화도중   가마우지 한 쌍 그림 속으로 날아간다

堪嗟世事如銜勒   감차세사여함륵   아아, 세상사 마치 재갈과 굴레같아
不放衰遲一禿翁   불방쇠지일독옹   약하고 둔한 한 늙은이 놓아주지 않는다

 

55.再過楊季平村舍  재과양계평촌사   양계 평촌사를 다시 지나    면서
  金士衡  김사형 1341~1407

碧溪西畔亂山東   벽계서반란산동   서쪽에 푸른 시냇물이 흐르고 동쪽에는 산들이 어지럽게 서있네
楊子高亭活畵中   양자고정활화중   양자의 높은 정자 그림속에 살아 있으니

淸福豈容人久假   청복기용인구가   이 맑은 복을 어찌 남에게만 오래 주고 있으랴
勝遊眞似夢還空   승유진사몽환공   멋진 놀이는 참으로 허무하게 돌아온 꿈만 같도다

樂生莫作千年調   락생막작천년조   인생이 천년을 고루 살기를 즐기지 마라
養拙甘爲一野翁   양졸감위일야옹   수양하여 한날 野翁이 됨이 좋으련만

不久收身同結社   부구수신동결사   멀지 않아 몸을 거두고 함께 모일 것이니
半分溪月與山風   반분계월여산풍   시냇가에 저 달과 산바람을 반만 나누어 주오


 
56.上洛府院君   상락부원군   상락부원군에 대한 輓詞
  金士衡   김사형 1341~1407

傳家積善正無倫   전가적선정무론   대대로 전해 오는 積善이 뛰어나고
眞箇東韓社稷臣   진개동한사직신   진실로 동한에 사직의 신하였지

許國寸心雙雪鬋   허국촌심쌍설   나라에 마음 바쳐 귀밑머리 희어졌고
接人和氣一團春   접인화기일단춘   사람 대하는 그 화기는 일단의 봄이었지

芸臺繪綵殊勳著   운대회채수훈저   운대에서 필단 잡아 큰 공로 드러나고 
玉輦親臨寵數新   옥레친임총수신   어가가 왕림하여 은총이 새로웠네 

六十七年渾似夢   육십칠년혼사몽   육십칠 년 모두 다 꿈 속과도 같아라 
喪歌凄楚響淸晨   상가처초향청신   처량한 상엿소리 맑은 새벽에 울리네

 

57. 善竹橋    선죽교
    金士衡  김사형 1341~1407

曾聞周國伯夷淸   증문주국백이청   일찍이 周나라 백이숙제의 청백함 들었지만
餓死首陽不死兵   아사수양부사병   전쟁으로 죽지 않고 首陽山에서 굶어 죽었다

善竹橋邊當日事   선죽교변당일사   선죽교의 그 날, 그 참혹한 일에도
無人扶去鄭先生   무인부거정선생   鄭先生 도와 데리고 갈 사람 아무도 없었도다

 

58.述樂府辭   술악부사   
    金守溫(朝鮮)  김수온 1409-1481 

十月層氷上   십월층빙상   시월의 두꺼운 얼음위
寒凝竹葉棲   한응죽엽서   추위 엉긴 대숲속 집
與君寧凍死   여군영동사   차라리 님과 함께 얼어 죽으리
遮莫五更鷄   차막오경계   새벽닭이 울거나,말거나

 

59.  頌祝  송축   慶事을 祝賀
     金守溫(朝鮮)  김수온 1409~1481

大母鶴髮綵爰在坐   대모학발채원재좌   어머님 흰 머리로 편안히 자리하시니
維子維孫趨蹌右左   유자유손추창우좌   손자들이 좌우에서 뛰어 노네
賓旣興止迭走爲賀   빈기흥지질주위하   손님도 흥이 나서 달려와 축하하니
萬有千歲維祺是荷   만유천세유기시하   일만 천년의 상서로움 지니셨네

          趨蹌(추창):예도에 맞게 허리를 굽혀 빨리 걸어감  


60. 雪夜獨坐  설야독좌   눈 오는 밤 홀로 앉아
    金壽恒  김수항 1629~1689

破屋凉風入   파옥량풍입   허름한 집에 서늘한 바람오고
空庭白雪堆   공정백설퇴   빈 뜰에는 흰 눈만 쌓이네
愁心與燈火   수심여등화   근심스런 내 마음 저 등불과
此夜共成灰   차야공성회   오늘 밤 함께 재가 되어가네


61. 夏日  하일     여름 날
    金三宜堂  김삼의당

日長窓外有薰風   일장창외유훈풍   창밖에 낮은 길고 향기로운 바람 이는데
安石榴花個個紅   안석류화개개홍   어찌하여 석류화는 하나하나 붉게 익는가
莫向門前投瓦石   막향문전투와석   문 앞으로 기와조각 돌조각을 던지지 말라
黃鳥只在綠陰中   황조지재녹음중   푸른 그늘 속에는 꾀꼬리가 있단다

 

 62. 詠李上舍鶴四美亭    영리상사학사미정
   (李上舍의 四美亭을 읊다)
   金麟厚  김인후 1510~1560

江雲一雨肥   강운일우비   강 구름이 비 한번 넉넉히 내려
南畝看春耕   남묘간춘경   남쪽 밭두둑 봄갈이하는 것을 본다
日夜自生息   일야자생식   밤 낮 스스로 생겨 자라니
欣欣苗向榮   흔흔묘향영   기쁘게도 곡식들 성히 자랐네

 把鋤去稂莠  파서거랑유   호미를 들고 나가 김을 매주니
漸見秋實成   점견추실성   점점 가을 이삭들 여물어 간다 
兒童驅雀鼠   아동구작서   아이들 참새와 쥐를 몰아내니
一廛輸易嬴   일전수역영   한 뙈기 밭, 농부 살림이 풍족하구나

且詠실솔唱   차영실솔창   이제 귀뚜라미 노래 부르면서
酌醴諧性情   작례해성정   마음편히 술이나 한잔 마셔야지 
蠶月麗景遲   잠월려경지   밤 누에 커가는 모습이 느리고
습桑柔始敷   습상유시부   물가 뽕나무 잎 비로소 두루 퍼졌네

攀條철其葉   반조철기엽   가지 잡아당겨 그 뽕잎 따다 주고
采采看朝  채채간조포   아침 저녁으로 잘 자라는 것을 본다 
蜀蜀佇三眠   촉촉저삼안   누에들 석 잠을 기다렸더니
滿箔奇功輸   만박기공수   잠박 가득 고치들 기특도 해라

新絲足自給   신사족자급   새 명주실은 쓰기 넉넉하고
不見充官租   부견충관조   나라에선 세금으로 빼앗지 않네
萬室樂太平   만실락태평   집집마다 태평시대 함께 즐기어
鼓舞歌康衢   고무가강구   흥겨이 강구노래를 부르는구나

向晩理煙艇   향만리연정   저물녘에 조각배 손질좀 해서
滄波垂釣絲   창파수조사   푸른 물결에 낚시줄 드리웠네
寓興非爲魚   우흥비위어   취미일 뿐, 고기 잡자는 건 아니지만
有得猶可怡   유득유가이   낚이면 그래도 마음 즐겁지

呼童貫之柳   호동관지류   아이 불러 버들가지 꿰어 들리니
皓月山前窺   호월산전규   하얀 달이 산 앞으로 고개 내미네
번思赤壁遊   번사적벽유   예전 적벽놀이를 상상해 보니
宛爾同襟期   완이동금기   지금이 옛 정취 그대로구나

更有暮雪時   경유모설시   다시 저녁눈이 내릴 양이면
蓑笠君知誰   사립군지수   도롱삿갓을 그대는 알아 볼런지
靑山臨碧水   청산림벽수   푸른 산이 푸른 물을 내려다 보니
煙霧生其間   연무생기간   연기 안개 그 사이서 피어오르네

腰鎌者誰子   요겸자수자   허리에 낫을 찬 자 저게 누군가
逕路工제攀   경로공제반   사잇길 익숙히 잘 오르는 걸
長歌采薪蒸   장가채신증   노래가락 뽑으며 나무를 하니
幽興飛孱顔   유흥비잔안   흥겨움은 날아 산 마루 넘네

日夕始歸來   일석시귀래   날 저물어 비로소 집을 향하니
栖鳥相與還   서조상여환   새들도 둥지로 돌아가는군
偶此入吾賞   우차입오상   우연히 나는 이 광경 보게 된 거라
寧知彼行艱   녕지피행간   저들의 고생을 어찌 알리오

 

江雲一雨肥。南畝看春耕。日夜自生息。欣欣苗向榮。把鋤去稂莠。漸見秋實成。兒童驅雀鼠。一廛輸易贏。

且詠蟋蟀唱。酌醴諧性情。 右農

蠶月麗景遲。隰桑柔始敷。攀條掇其葉。采采看朝晡。蠋蠋佇三眠。滿箔奇功輸。新絲足自給。不見充官租。

萬室樂太平。鼓舞歌康衢。 右桑

向晩理煙艇。滄波垂釣絲。寓興非爲魚。有得猶可怡。呼童貫之柳。皓月山前窺。翻思赤壁遊。宛爾同襟期。

更有暮雪時。蓑笠君知誰。 右漁

靑山臨碧水。煙霧生其間。腰鎌者誰子。逕路工躋攀。長歌采薪蒸。幽興飛孱顏。日夕始歸來。棲鳥相與還。

偶此入吾賞。寧知彼行艱。 右樵

 


63. 古木    고목
    金麟厚  김인후 1510~1560

半樹惟存骨   반수유존골   반만 살은 나무  뼈마디만 남았는데
風霆不復憂   풍정불부우   바람과 우레에도 다시 근심치 않네
三春何事業   삼춘하사업   봄 석 달을 무슨 일을 하느뇨
獨立任榮枯   독립임영고   영고성쇠 맡기고 홀로 서있을 뿐

 

64. 茅齋  모재   초가집
    金彦璣(惟一齋) 김언기 1520~1588 

謨拙難成屋數間   모졸난성옥수간   내 계획이 졸렬하여 집 몇 칸 짓기도 어려워
開基春日涉冬寒   개기춘일섭동한   봄에 기초를 닦고 겨울을 지났네

重茅風散椽全露   중모풍산연전로   겹겹 띠풀 바람에 흩어져 서까래 드러나고
塼土氷疑壁未乾   전토빙의벽미건   벽돌벽은 얼어서 벽이 마르지 않는구나

月入虛畯明照榻   월입허첨명조탑   텅 빈 처마에 든 달은 탑상을 밝게 비추고
烟生疎戶翠連山   연생소호취연산   성근 집에서 피어난 연기는 산을 푸르게 이었네

蕭條雖甚吾猶樂   소조수심오유락   쓸쓸함이 심하지만 내 오히려 즐거우니
爲是身心兩得閒   위제신심양득한   이로 인해 몸과 마음 모두 한가롭구나


65. 遊龍門山  유용문산    용문산에서
    金安國    김안국 1478~1543  

步步緣危登   보보연위등   걸음걸음 가파른 길 따라 오르니
看看眼界通   간간안계통   보면 볼수록 눈 앞이 탁 트여라

閒雲迷極浦   한운미극포   한가한 구름은 멀리 포구에 어려 있고
飛鳥沒長空   비조몰장공   날으는 새 하늘속으로 숨어 버린다

萬壑餘殘雪   만학여잔설   골짝기마다 殘雪 남아 있는데
千林響晩風   천림향만풍   숲속에는 저녁 바람 소리 울린다

天涯懷渺渺   천애회묘묘   하늘 끝, 아득한 생각
孤月又生東   고월우생동   외로운 달, 동녘에서 솟아 오른다

 

66. 登津寬寺   등진관사     진관사에 올라
    金雲楚 김운초 1800~1857 

山寺尋登凍凍街   산사심등동동가   언 길 지나 산사를 찾았네
雪花滿發坊坊佳   운화만발방방가   눈꽃 만발하여 곳곳이 아름다워라

寒風靜去丹靑壁   한풍정거단청벽   찬바람 단청 벽 고요히 지나고
暖日動輝銀白階   난일동휘은백계   따스한 햇살 은백의 섬돌 위 빛나네

梵語淸聲空隱隱   범어청성공은은   경 읽는 맑은 소리 하늘가 은은히 울리는데
松枝微舞鳥喈喈   송지미무조개개      솔가지 가는 떨림 새가 개개히 우는구나

死生境界分何處   사생경계분하처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인가
一色乾坤萬物諧   일색건곤만물해   한 빛의 하늘과 땅 만물이 화락하는 것을


67. 龍宮閑居次金蘭溪得韻培  용궁한거차김난계득배운
   (용궁촌에서 난계 김덕배의 시에 화답하여)
   金元發    김원발

江활修鱗縱   강활수린종   강은 넓어 고기 떼 지어 왔다갔다
林深倦鳥歸   임심권조귀   숲은 깊어 지친 새들 날아오네
歸田是吾志   귀전시오지   시골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뜻
非是早知機   비시조지기   세상 일 괴로운 줄 알고 있었소


68. 送童子下山  송동자하산   下山하는 童子를 보내며
    慈藏法師(新羅)  자장법사

空門寂寞汝思家   공문적막여사가   절 적막하여 네가 집생각을 하더니
禮別雲房下九華   예별운방하구화   구름낀 승방에 작별을 하고 九華山을 내려 가는구나 

愛問竹欄騎竹馬   애문죽란기죽마   대나무 난간에서 죽마타기를 즐겨 묻더니
懶於金地聚金沙   나어금지취금사   절에서 금모래 모으기에 게으르고 

添甁澗底休招月   첨병간저휴초월   달 보는 것도 그만두고,산골 시냇물에 병을 적시고
烹茗甌中罷弄花   팽명구중파농화   꽃을 가지고 노는것도 그치고 사발에 茶를 끓이네  

好去不須頻下淚   호거불수빈하루   잘 가거라, 자주 눈물 흘리지 말고,
老僧相伴有煙霞   노승상반유연하   노승은 고요한 산수의 경치와 벗 하리

 

69.  感興  감흥   저녁에
    金淨(朝鮮)  김정 1486~1520

落日臨荒野   낙일임황야   지는 해는 거친 들로 떨어지고
寒鴉下晩村   한아하만촌   갈가마귀 저무는 마을에 내리앉네
空林烟火冷   공림연화냉   빈 숲에 저녁 연기 썰렁하고
白屋掩荊門   백옥엄형문   초가집엔 사립문은 닫혀 있네


70.  失題 4首중 3  오솔길은
      金正喜  김정희 1786~1856

藥徑通幽窅   약경통유요   오솔길은 깊고 먼 곳으로 나 있고
蘿軒積雲霧   라헌적운무   칡덩굴 처마에 안개구름 쌓이네 
山人獨酌時   산인독작시   산사람 저 홀로 대작할 적에 
復與飛花過   복흥비화과   꽃잎이 날아가다 술잔과 마주치네
       


71.  八月初一日早發靈巖過月出山  팔월초일일조발영암과월출산 
     (8월 초하룻날 일찍 영암을 출발하여 월출산을 지나며)
     金宗直(朝鮮)  김종식 1431~1492

 呼燈蓐食苦栖遑  호등욕식고서황  등불을 켜고 새벽밥을 먹은 뒤에 어정어정 거닐자니
月出山頭日出光  월출산두일출광  월출산 꼭대기에 해가 솟네

深深野雲收洞穴  심심야운수동혈  들판에 낀 짙은 구름은 골짜기로 빨려 들어가고
凌凌秋骨倚穹蒼  능능추골의궁창  낙엽진 산등성이에 날카로운 바위들은 푸른 하늘에 솟아있네

浮生强半聞名久  부생강반문명구  인생를 반쯤 지나오는 동안 이산의 이름을 들은 지가 오래 되었는데
 絶頂難攀問俗忙  절정난반문속망  저 꼭대기를 올라가지 못하는 것은 세속일이 바쁘기 때문일세

彷彿伽倻眞足喜  방불가랑진족희  우리 고향 가야산과 비슷하여 참으로 기뻐서
無端馬上憶吾鄕  무단마상억오향  나도 몰래 말 위에서 고향 생각을 하네

 

72.     鑿氷行  착빙행    얼음 뜨러 가는 길 
        金昌協  김창협 1651~1708

季冬江漢氷始壯   계동강한빙시장   늦겨울 한강에 얼음이 꽁꽁 어니
千人萬人出江上   천인만인출강상   사람들 우글우글 강위로 나왔네
丁丁斧斤亂相鑿   정정부근란상착   꽝꽝 도끼로 얼음을 찍어 내니
隱隱下侵馮夷國   은은하침빙이국   울리는 소리가 용궁까지 들리겠네

鑿出層氷似雪山   착출층빙사설산   찍어낸 얼음이 산처럼 쌓이니
積陰凜凜逼人寒   적음름름핍인한   싸늘한 음기가 사람을 엄습하네
朝朝背負入凌陰   조조배부입릉음   낮이면 날마다 석빙고로 져나르고
夜夜椎鑿集江心   야야추착집강심   밤이면 밤마다 얼음을 파 들어가네

晝短夜長夜未休   주단야장야미휴   해짧은 겨울에 밤늦도록 일을 하니
勞歌相應在中洲   로가상응재중주   노동요 노래소리 모래톱에 이어지네
短衣至䯎足無扉   단의지간족무비   짧은 옷, 짚신도 없는 발에 정강이까지 이르고
江上嚴風欲墮指   강상엄풍욕수지   매서운 강바람에 언 손가락 떨어지네

高堂六月盛炎蒸   고당육월성염증   고대광실 오뉴월 무더위 푹푹 찌는 날에
美人素手傳淸氷   미인소수박청빙   여인의 하얀 손이 맑은 얼음을 내어오네
鸞刀擊碎四座偏   조도격졸사좌편   난도로 그 얼음 깨 자리에 두루 돌리니
空裏白日流素霰   공리백일류소하   멀건 대낮에 하얀 안개가 피어나네

滿堂歡樂不知暑   만당환락부지서   왁자지껄 이 양반들 더위를 모르고 사니
誰言鑿氷此勞苦   수언착빙차노고   얼음뜨는 그 고생을 그 누가 알아주리
君不見           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道傍㬞死民       도방갈사민       길가에 더위먹고 죽어 뒹구는 백성들이
多是江中鑿氷人   다시강중착빙인   지난 겨울 강위에서 얼음뜨던 자들인 걸

       ☞   䯎 :정강이뼈 간.   扉: 짚신비.   㬞: 더위 먹을 갈.

 

73.   山民  산민     화전민
      金昌協   김창협 1651~1708

下馬問人居   하마문인거   말에 내려 인가를 찾아가 보니
婦女出門看   부녀출문간   아낙네 문간에 나와 맞이하네
坐客茅屋下   좌객모옥하   띠집 처마아래 손을 앉게 하고
爲我具飯餐   위아구반찬   나를 위해 밥과 반찬 내어오네

丈夫亦何在   장부역하재   남편은 어디에 나가 있는지
扶犁朝上山   부리조상산   아침에 소 끌고 산에 올랐는데
山田苦難耕   산전고난경   산밭을 일구느라 고생을 하며
日晩猶未還   일만유미환   저물도록 돌아오지 못한다네

四顧絶無隣   사고절무린   사방을 둘러봐도 이웃은 없고
鷄犬依層巒   계견의층만   개와 닭도 산기슭에 의지해 사네
中林多猛虎   중림다맹호   숲 속에는 사나운 호랑이 많아
採藿不盈盤   채곽불영반   나물도 마음대로 못 뜯는다네

哀此獨何好   애차독하호   슬프다 외딴 살이 어찌 좋으리
崎嶇山谷間   기구산곡간   험하고 험한 산골짝에서
樂哉彼平土   락재피평토   평지에 살면 더없이 좋으련만
欲往畏縣官   욕왕외현관   가고 싶어도 벼슬아치 두렵다네

 


74. 竹林亭十詠東嶺霽月   죽림정십영동령제월
    金昌協   김창협 1651~1708

夕霽臥遙帷   석제와요유   비갠 저녁에 넓은 장막에 누우니
東峰綠煙歇   동봉록연헐   동쪽 봉우리에 푸른 연기 사라진다
開簾滿地霜   개렴만지상   주렴을 여니 땅에 가득히 서리 내렸고
竹上已明月   죽상이명월   대나무 숲 위의 달이 이미 밝게 떠올랐구나

        遙帷:긴 휘장.  까마득한 장벽

 
75. 臨池  임지    못 가에서
    金昌翕   김창흡 1653~1752 

寂寂臨池坐   적적림지좌   못 가에 가만 앉았노라니
風來水面過   풍래수면과   수면 스치며 바람이 온다
高林有病葉   고림유병엽   병든 나뭇잎 숲에 있길래
一箇委微波   일개위미파   하나 주어서 물결에 띄우네

 

76.  三日浦丹書石  삼일포단서석   삼일포구 단서석에서
     金孝印  김효인  ~1253

 刻碑鐫碣古猶多   각비전갈고유다   비석과 돌기둥에 글 새기는 일,예전에도 많았지만
蘇食塵侵字轉訛   소식진침자전와   이끼끼고 먼지앉아 글자마저 틀려졌도다
爭似指頭千載血   쟁사지두천재혈   손가락 끝으로 천년 혈통 다투건만
一淪山石不銷磨   일륜산석부소마   한 번 山石이 되면 녹여 갈지 못하노라

 


77. 漫興   만흥    가난이 주는 여유
    김효일

樂在貧還好   락재빈환호   즐거움이 있으니, 가난해도 오히려 괜찮고
閒多病亦宜   한다병역의   한가로움이 많으니 병이 있어도 또한 괜찮아라

燒香春雨細   소향춘우세   향불을 사르다 보니, 내리던 봄비 가늘어지고
覓句曉鐘遲   멱구효종지   시구 찾다 보니 어느새, 들려오는 새벽 종소리

巷僻苔封逕   항벽태봉경   골목이 외져, 길은 이끼로 덮혔고
窓虛竹補籬   창허죽보리   창문이 없어 대나무로 울타리를 삼았네

笑他名利客   소타명리객   명예와 이익을 따르는 저 사람들 우스워라
終歲任驅馳   종세임구치   세월이 다하도록 바쁘게 달리기만 하네


78. 幽居卽事 유거즉사   한가히 살며
    金仲權  김중권

家貧營産少   가빈영산소   집이 가난하여 살림살이 적고
草色滿庭除   초색만정제   풀빛만 뜰에 가득하도다

妻病惟須藥   처병유수약   아내가 병들어 약이 필요하고
兒癡懶讀書   아치라독서   아이는 어리석어 글읽기에 게으도다

菊從晴後種   국종청후종   국화는 비갠 뒤에 옮겨심고
苽向晩來鋤   고향만래서   오이밭은 저녁때 쯤에 김을 맨다

漸覺幽居好   점각유거호   차츰 한가히 사는 맛을 알겠노니
門無長者車   문무장자차   집에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은구나

 

79. 白鷺   백로사
    盧仝(唐)  노동

刻成片玉白鷺鷥  각성편옥백로사   옥으로 다듬었나 백로 한 마리
欲捉殲鱗心自急   욕착섬린심자급   물고기 잡으려고 마음 조이며
翹足沙頭不得時   교족사두부득시   물가 모래밭에  발 쫑긋 세웠거늘
傍人不知謂閑立   방인부지위한립   사람들은 영문 모르고 그 모습 한가롭다 말하네


80. 村醉   촌취   시골에서 술에 취해
    盧仝  노동

村醉黃昏歸   촌취황혼귀   저물어 취하여 돌아오다
健倒三四五   건도삼사오   몇 번이고 비틀비틀 넘어졌도다
 摩사靑매苔   마사청매태   푸른 이끼 짓밟아 버려서
莫嗔驚著汝   막진경저여   자네를 놀래킨 것 성내지 말아다오

 

81. 山店    산점   산속 토기굽는 집
    盧綸(唐) 노륜 748~800

 登登山路何時盡   등등산로하시진   끝없이 이어지는 산 길, 언제나 끝 나려나
決決溪泉到處聞   결결계천도처문   괄괄대는 개울 샘물소리 도처에서 들리네
風動葉聲山犬吠   풍동엽성산견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 개가 짖고
一家松火隔秋雲   일가송화격추운   어떤 집의 햇불이 가을구름 너머에 있네

 

82. 道峯寺    도봉사
     羅湜   나식 1498~1546

曲曲溪回復   곡곡계회복   굽이굽이 개울 돌아 또 개울
登登路屈盤   등등노굴반   오를수록 산길은 구불구불 굽어진다
黃昏方到寺   황혼방도사   황혼에야 절에 이르니
淸磬落雲端   청경낙운단   맑은 경쇠소리 구름 끝으로 사라진다

 


83. 自遺   자유    속내
     羅隱(唐)  나은

得卽高歌失卽休   득즉고가실즉휴   득의할 땐 노래하고 실의할 땐 쉬어가며
多愁多恨亦悠悠   다수다한역유유   근심 많고 한 많은 세상 그렁저렁 살아가세
今朝有酒今朝醉   금조유주금조취   오늘 술 생기면 오늘 취하고
明日愁來明日愁   명일수래명일수   내일 근심일랑 내일로 미뤄두세

 

84. 神光寺     신광사
   南袞   남곤 1471~1527 

庭前柏樹儼成行   정전백수엄성행   뜰 앞의 잣나무  의젓이 늘어서서
朝暮蕭森影轉廊   조모소림영전랑   하루 종일 우뚝한 그림자가 행랑을 도네
欲問西來祖師意   욕문서래조사의   서쪽에서 祖師가 온 뜻을 물으려 하니
北山靈風送凄凉   북산령  송처량   北崇山 신령한 바람 서늘한 기운을 보내오네

 

85. 禪詩    선시
    南岳스님     남악스님

祖師心上乾坤靜   조사심상건곤정   祖師의 마음 위엔 하늘과 땅이 고요하기만 하고
法界經中日月閑   법계경중일월한   法界의 길 위엔 해와 달이 한가롭구나

流水遠歸滄海岸   유수원귀창해안   흐르는 물은 멀리 푸른 바다 언덕으로 돌아가고
碧山微露白雲間   벽산미로백운간   푸른 산  흰 구름 사이로, 가는 이슬이 내리네

遊眸大地時移步   유모대지시이보   大地 위를 이리저리 바라보다 때때로 걸음을 걷기도 하고
擧首長空獨破顔   거수장공독파안   먼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나 홀로 크게 웃기도 하네

一切有爲如夢幻   일절유위여몽환   뭔가를 할려는 모든 것들이 다 꿈과 같은 환상
此生名利甚玩愚   차생명리심완우   이 生의 名利란 너무나 완고하고 어리석은 일 뿐이야


86.   哭孫女  곡손녀    손녀를 땅에 묻고 울면서
      南氏   남씨

七年八歲病   칠년팔세병   여덟 해에 일곱 해를 병 앓았으니 
歸臥爾應安   귀와이응안   돌아가 눕는 것이 네겐 편안할테지
只憐今夜雪   지린금야설   다만 눈내리는 이밤이 슬프구나
離母不知寒   리모부지한   제어머 떠나고도 추운줄 모르니

 

87. 送麴司直  송국사직   麴司直을 보내고
    郎士元  낭사원

曙雪蒼蒼兼曙雲  서설창창겸서운  새벽 눈도 추워라 구름도 추워
朔風燕雁不堪聞   삭풍연안불감문   삭풍에 기러기 소리 마음 설랜다
貧交此別無他贈   빈교차별무타증   가난도 몸에 젖어 서러운 이별 
惟有靑山遠送客   유유청산원송객   푸른 산이  객을  멀리 보내네

 


88. 待月  대월    달을 기다리며
   凌雲  능운(조선 후기의 기생)

郞云月出來   랑운월출래   달 뜨면 오시겠다 말해 놓고서
月出郞不來   월출랑불래   달 떠도 우리 임은 오시지 않네
想應君在處   상응군재처   아마도 우리 임 계시는 곳엔
山高月上遲   산고월상지   산이 높아  저 달도 늦게 뜨나 봐

 

 

89. 寒江獨釣圖  한강독조도   추운 강에서 홀로 낚시하며
    唐肅(元)   당숙

非爲投竿僞好奇   비위투간위호기   고기를 잡자는 게 아니고 호기심 때문인데
江寒凍折釣翁  강한동절조옹자   강 바람 추위에 수염이 꽁꽁 얼어 붙었네
綠知雪壓封窓曉   록지설압봉창효   봉창에 쌓인 눈으로 날이 밝은 것 알았거니와
不載漁歸只載詩   부재어귀지재시   고기는 싣지 않고 詩만 돌아오네

 
90. 落第詩    낙제시 
    唐靑臣   당청신

不第遠歸來   부제원귀래   급제하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오니
妻子色不喜   처자색불희   처자의 낯빛이 반기는 기색 없네
黃犬恰有情   황견흡유정   누렁이만 흡사 반갑다는 듯
當門臥搖尾   당문와요미   문 앞에서 드러누워 꼬리 흔드네

 

91.畵竹  화죽    대나무를 그리며
   戴熙 (淸)  대희

雨後龍孫長   우후용손장   비 온 뒤 대나무 쑥쑥 자라고
風前鳳尾搖   풍전봉미악   바람 부니 대나무 산들거리네
心虛根底固   심허근저고   속 비었고 뿌리 굳으니
指日定干宵   지일정간소   이제 곧 하늘까지 닿으리라

 

 

92.  空山春雨圖    공산춘우도
     戴熙   대희

空山足春雨   공산족춘우   빈산에 봄비 내리고
緋桃間丹杏   비도간단행   복숭아꽃 살구꽃 울긋불긋
花發不逢人   화발불봉인   꽃이 피어도 봐주는 이 없고
自照溪中影   자조계중영   스스로 개울속 그림자로 비춰보네


93. 春江獨釣  춘강독조   봄 강에 홀로 낚시대 드리우니
    戴叔倫 (唐)    대숙륜 732~789

獨釣春江上   독조춘강상   홀로 봄 강에 낚시대 드리우니
春江引趣長   춘강인취장   봄 강의 흥취가 마냥 길구나

斷煙樓草碧   단연루초벽   안개 서려있는 누각, 풀은 푸르고
流水帶花香   류수대화향   꽃잎 떠가는 강물 향기롭다

心事同沙鳥   심사동사조   마음은 백사장의 갈매기와 같아
浮生寄野航   부생기야항   뜬구름 같은 인생, 들나루에 머물어 있네

荷衣塵不染   하의진부염   연잎 옷은 애당초 먼지에 물들지 않았으니
何用濯滄浪   하용탁창랑   어찌 창랑수에 빨래를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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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신(金得臣) 1604(선조37)∼1684(숙종10)

 

조선 최고의 다독가(多讀家)

모든 것이 늦된 어린 시절, 10세에 겨우 글자를 깨치고 20세에 비로소 글 한 편을 짓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더욱 치열하게 노력하다
결국, 59세에 과거급제 당대에 인정받는 독자적인 시(詩) 세계를 이루다.
"용호(김득신의 대표시)는 당시(唐詩)에 넣어도 부끄러움이 없다."
- 효종 (1619 ~ 1659)
"재주가 남만 못하다 스스로 한계를 짖지 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려있을 따름이다."
- 김득신 묘비문 中

백곡 김득신(栢谷 金得臣)

치열한 노력의 가치를 보여준 참된 지식인입니다.

조선 현종(顯宗) 시대의 문신(文臣)이자 시(詩)로 이름을 날린

 백곡 김득신(1604~1684)은 당대 최고의 독서광으로

남들보다 부족한 기억력과 노둔함을 벗어나기 위해

 몇 천, 몇 만 번을 되풀이해서 글을 읽어

비록 뒤늦은 나이였지만 59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당대를 대표하는 명시인의 반열에 올랐다.

저서로는 시 1500여 수와 문 180여 편이 실린

‘백곡집’과‘종남총지’등이 있다.

 

조선의 시인. 본관은 안동(安東),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귀석산인(龜石山人),

충무공 시민(時敏)의 손자, 부제학(副提學) 안흥군(安興君) 치(緻)의 아들.

어머니는 사천(泗川) 목씨(睦氏)로 목첨(睦詹)의 딸이고, 아내는 경주 김씨이며,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1642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당시 한문 사대가인 이식(李植)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 제일”이라는 평을 들음으로써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1662년 (현종3) 증광문과(增廣文科) 병과(丙科)로 급제.

장악원 정·지제교(掌樂院 正·知製敎) 등을 거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동중추부사(同中樞府事)를 지냈다. 뒤늦게 벼슬에 올랐으나 장차 일어날 사화(士禍)를 예견하여

벼슬을 버리고 괴산읍 능촌리에 있는 취묵당(醉默堂)에 내려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74세에는 사도시정으로 증광시 시험관이 되었고, 78세에는 통정대부가 되었으며,

80세에는 가선대부에 올랐고 안풍군(安豊君)으로 습봉되었다. 이듬해인 81세에 생을 마쳤다.

묘는 충북 괴산군 증평읍 율리에 있다. 당대 유명한 시인으로 이름이 나 있으며 문집으로

<栢谷文集>이 있고 평론집인 <終南粹言>,<終南叢志> 등이 있다.

백곡은 백이전(伯夷傳)을 1억1만3천번을 읽고 그의 서재 이름을 '억만재(億萬齋)'라 했으며

그의 뛰어난 문장이 세상에 알려지니 효종이 그의 '용호한강시(龍湖漢江詩)'를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문보다는 시, 특히 오언 · 칠언절구를 잘 지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백곡집 외에 시화집인

'종남총지(終南叢志)'가 있으며 그 밖의 작품으로 술과 부채를 의인화한 가전소설

〈환백장군전(歡伯將軍傳)〉과 〈청풍선생전(淸風先生傳)〉을 남기기도 했다.

이것은 '국순전' '국선생전' 등 고려의 한 시대만 한정된 줄 알았던 술 가전계통의 소설이

조선조에도 그 면모가 지속됐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백곡은 노둔한 천품에도 불구하고 후천적인 노력을 통하여 시(詩)로 일가를 이룬 '고음과 다독'

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경세치평(經世治平)이라는 유가적 이상을 당쟁의 현실 속에서

실천하지 못한 번뇌를 토로하기도 하지만 진보적인 시(詩)의식을 가지고 중세에서 근대로 가는

변천기에 활동했던 문예담당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실제 그는 창작활동의 소산으로 주옥같은

시를 남겼는가 하면 한시비평의 기준을 마련한 비평가로 한국한문학사에 확고히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조선 중기에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백곡 김득신의 서재 억만재에 얽힌 내력은 아주 유명합니다.

백곡 김득신(1604~ 1684) 태어날 때 그의 아버지 김치(金緻) 는 꿈에 노자를 만났고 그 연유로

아이적의 이름을 몽담(夢聃)으로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몽을 꾸고 태어난 아이답지 않게 김득신은 머리가 지독하게 나빴습니다.

10살에 비로소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흔히 읽던 십구사락의 첫 단락은 26자에 불과했지만

사흘을 배우고도 구두조차 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오히려 엄청난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의 노력은 간서치였다는 말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간서치는 책벌레라는 말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편집증, 독서마니아 즉 독서광이었을 것입니다.

 

부친이 감사를 역임할 정도로 명문 가문 출신인데도 머리가 나빴던 그는 유명 작품들을 반복하며

읽으며 외웠습니다.

저는 청주에 살기 때문에 괴산의 능촌리 괴강 근처에 가끔 갈일이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김득신이라는 인물에 호감이 갔습니다. 그리고 김득신에 대해서 알아보고픈

마음이 생겼습니다.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괴강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김득신의 옛집, 취묵당(醉墨堂)에

걸려 있는 ‘독수기(讀數記)’에 보면, 그는 1634년부터 1670년 사이에 1만번 이상 읽은 옛글

36편을 밝혔는데, 그 횟수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가 평생 1만 번 이상 읽은 글 36편의 목록이 가득 적혀 있다.

여기에는 김득신이 <사기>(史記) ‘백이전(伯夷傳)’을 무려 1억1만3천 번이나 읽었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억만재(億萬齋)’는 글자 뜻 그대로 김득신이 글을 읽을 때 1만 번이 넘지 않으면 멈추지

않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책벌레 김득신의 책읽기에 대한 일화가 적잖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백곡이 혼례를 치르던 날의 이야기다.백곡이 책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장모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신방에 있는 책을 모두 치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밤 신랑은

신부를 제쳐두고 방을 뒤지며 책을 찾았습니다. 경대 밑에서 백곡이 발견한 것은 책력(冊曆).

밤새도록 읽고 또 읽은 백곡은 날이 새자 “무슨 책이 이렇게 심심하냐”고 말했다 합니다.

 

80이 넘도록 장수한 백곡은 먼저 딸을 여의었는데, 분주한 장례 행렬을 따라가면서도

그가 손에서 놓지 않고 보았던 글이 바로 ‘백이전’이었다. 또 부인의 상중에 일가친척들이

‘애고, 애고’ 곡을 하는데, 그는 곡소리에 맞춰 ‘백이전’의 구절을 읽었다고 이의현은 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백곡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자질을 알아본 사람들은 글공부를

포기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수치요 굴욕적인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벌레 김득신은 40여년간 꾸준히 읽고 시를 공부한 끝에 그는 말년에

‘당대 최고의 시인’(택당 이식)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스스로 지은 묘지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미련하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마는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려 있을 따름이다.”

시작도 하지 않고 재주가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노력도 하지 않고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미련하고 둔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시작하다가 얼마 하지도 않고 좌절하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책벌레가 되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끈기가 필요합니다. 목표가 필요합니다.

독서광이야기/ 김득신의 독수기에서 “그는 무언가에 몰두하면 아예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자이자 초서로 유명한 미수 허목(1595∼1682)도 56세 때 처음으로 최하 말직인

참봉(종9품)의 벼슬을 받았고 80세에 이르러 참판(종2품)에 오를 수 있었다.

명재 윤증(1629~1724)은 조선시대 선비정신의 상징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는 36세 때 처음 종9품인 내시교관에, 53세에 성균관 사예(정사품)에 임용되었지만

관직을 받지 않았고 68세에 이르러 공조판서를 내렸는데 그래도 나아가지 않았다.

여기서 보듯이 조선시대에는 대학자여도 종9품에서 관직을 시작하는 게 관행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에 합격해도 최말단인 종9품에 임용되었다.

요즘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5급 공무원이 되고 경찰대를 나오면 곧바로 파출소장에

임명하는 것도 난센스다. 인재가 많지 않았던 개발도상국 시절에야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요즘처럼 인재가 넘쳐나고 전문가나 경력자가 홍수인 시대에는 5급 공무원 시험이나

경찰대의 파출소장 임명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대학 교수를 장관으로

임명하는 게 관행처럼 돼 있지만 이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교수가 아니어도 인재들은 널려 있다.

백곡 김득신(1604~1684)은 무려 59살에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과거시험은 요즘

 사법고사나 행정고시 공부하는 것보다 더 경쟁이 치열했다. 3년에 한 번씩 보는데

단 70명 정도밖에 뽑지 않았다. 대부분 30대까지 과거시험에 응시하다 계속 떨어지면

포기를 하는데 김득신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과거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과거시험을 때려치우라는 비아냥거림과 조롱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늦게 나간 벼슬길은 순탄치 못했다. 첫 관직으로 성균관 학유(요즘 9급 공무원)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여러 벼슬을 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동료로부터 ‘왕따’를 당하기 일쑤였다. 홍천현감과 정선군수에 뽑혔지만 신하들이 그를 적임자가 아니라고 저지하는 바람에 결국 부임하지 못했다. 결국 김득신은 7년 동안 벼슬을 하다 68살에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오기와 끈기로 예순을 앞두고 과거시험에 합격한 보람도 없이 초라한 귀향이었다. 충북 괴산에 가면 ‘취묵당’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김득신이 책을 읽고 시를 지으면서 말년을 보낸 곳이다. 높은 벼슬은 하지 못했지만 시를 416수나 남겼다. 신흠·이정구·장유와 함께 조선시대 한문사대가의 한 사람인 이식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의 제일”이라는 평을 들음으로써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시인으로는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고위 공무원에는 오르지 못했던 것이다

 

백곡 김득신이 끝까지 과거시험을 포기하지 않고 합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평소 총명하지 못한 것을 알았다. 아들이 비범하지 못하고 평범한 아이들보다

어리석은 듯 보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노둔’하다고 표현했다. 한마디로 어리석고 우매하다는

것이다. 아이가 똑똑하고 총기가 있기를 바라는 게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소망인데

소년 김득신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하자 아버지는 보다 못해

아들에게 하나의 지침을 내리기로 했다. “떨어지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60세까지는

과거에 응해보라”는 지침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는 나이 제한이 없었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탓하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당대 최고의 시인이 되었던 것처럼

책벌레가 되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꿈을 이루며 성공적인 삶을 사시지 않으시렵니까?

또한 책벌레 중의 책벌레가 되어 최고의 지성으로 남고  싶지 않으십니까?

 

춘수(春睡)-김득신(金得臣)
봄잠

驢背春睡足(려배춘수족) : 나귀 등에서 봄잠이 곤하여

靑山夢裏行(청산몽리행) : 꿈속에서 푸른 산을 지나간다.

覺來知雨過(각래지우과) : 깨고서야 비가 온 줄 알았으니

溪水有新聲(계수유신성) : 개울물에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야음(夜吟)-김득신(金得臣)
밤에 읊다

露滴寒空月正西(로적한공월정서) : 찬 하늘 이슬 지고, 달은 서편 이윽한데

欲成佳句意都迷(욕성가구의도미) : 좋은 시구를 지으려도, 마음은 온통 어지럽다

秋宵難作還家夢(추소난작환가몽) : 가을 밤 고향집으로 가는 꿈도 꾸기 어려운데

窓外鵂鶹樹樹啼(창외휴류수수제) : 창밖에선 올빼미가 나무마다 울고 있구나

 

용호(龍湖)-김득신(金得臣)
용호에서

古木寒雲裏(고목한운리) : 차가운 구름 속, 고목

秋山白雨邊(추산백우변) : 가을산에는 비가 내린다

暮江風浪起(모강풍랑기) : 저문 강바람에 물결 일어

漁子急回船(어자급회선) : 어부는 급히 배를 돌린다

 

여관야음(旅館夜吟)-김득신(金得臣)
여관의 밤

永夜坐不寐(영야좌불매) : 긴 밤 잠이 오지 않아 앉았노라니

霜威透褐衣(상위투갈의) : 차가운 서릿기운 베옷을 파고든다

呼僮催鞴馬(호동최비마) : 하인 불러서 말 안장 재촉하니

月落衆星微(월락중성미) : 달은 지고 뭇 별빛 흐려지는구나

 

 

龜亭(구정)-김득신(金得臣)
구정에서

落日下平沙(낙일하평사) : 저무는 해 모랫벌에 지는데

宿禽投遠樹(숙금투원수) : 새들은 잠자리 찾아 먼 나무로 날아든다

歸人欲騎驢(귀인욕기려) : 돌아가는 사람 당나귀 타려는데

更怯前山雨(갱겁전산우) : 눈 앞의 산에 비내릴까 다시 두려워진다

 

 

湖行詩(호행시)-金得臣(김득신)
호행시

湖西踏盡向秦關(호서답진향진관) : 호서를 다 지나 진관을 향해가니

長路行行不暫閑(장로행행불잠한) : 긴 여정 잠시도 쉬지 않고 가고 또 간다.

驪背睡餘開眼見(여배수여개안견) : 당나귀 등에서 졸다가 눈 뜨고 또 보고

暮雲殘雪是何山(모운잔설시하산) : 저문 구름 남은 눈, 이곳이 어느 산일까.

 

 

題畵(제화)-金得臣(김득신)
그림에 부쳐

古木寒煙裏(고목한연이) : 찬 안개 속에 고목 서있고

秋山白雲邊(추산백운변) : 흰 구름 떠있는 곳에 가을 산이 있다

暮江風浪起(모강풍랑기) : 저무는 강에 풍랑이 일고

漁子急回航(어자급회항) : 어부는 급히 고깃배를 돌린다.

 

 

湖行絶句(호행절구)-金得臣(김득신)
호서지방 여행

湖西踏盡向秦關(호서답진향진관) : 충청도 다 돌아보고 경기로 향하네

長路行行不暫閑(장로행행불잠한) : 긴 길을 가고 또 가고 잠시도 쉬지 않았네

驢背睡餘開眼見(려배수여개안견) : 나귀 등에 졸다가 문득 눈 떠보니

暮雲殘雪是何山(모운잔설시하산) : 저문 구름, 남은 눈, 도대체 어느 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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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奉錦溪沈明府(봉금계심명부)-泗溟堂(사명당)-금계 심명부에게

當時一別漢東寺(당시일별한동사) : 한양 동쪽 절에서 헤어져
空悲歲徂靑眼稀(공비세조청안희) : 친구 드물고 가는 세월 슬퍼한다
隨緣江海無定所(수연강해무정소) : 인연 따라 푸른 강과 바다 정처 없이 다니다가
轉蓬復此西南飛(전봉복차서남비) : 구르는 쑥대처럼 여기 서남으로 찾아왔소
知音賴有沈休文(지음뢰유심휴문) : 마음 알아주는 친구, 심휴문 있어
八月南渡瀟湘浦(팔월남도소상포) : 팔월에 남쪽으로 소상포를 건넌다
相看切切語相思(상간절절어상사) : 절절히 서로 보며, 그리웠던 지난 얘기 나누며
上房數夜同淸晤(상방수야동청오) : 몇 날 밤을 상방에서 함께 지냈네
天涯佳節近重陽(천애가절근중양) : 하늘 끝 아름다운 때, 중양절이 가까운데
零露瀼瀼荷欲老(영로양양하욕노) : 차가운 이슬은 내리고 연꽃은 시드는구나
平明却有故山思(평명각유고산사) : 날이 밝으니 도리어 고향 산천 생각
獨望白雲山外路(독망백운산외노) : 나 홀로 흰 구름 저 넘어 먼 산을 바라본다.

 

 

* 2. 청학동추좌(靑鶴洞秋坐)-사명대사(四溟大師)-청학동 가을에 앉아서

西風吹動雨初歇(서풍취동우초헐) : 서풍이 불자 비가 처음 개어
萬里長空無片雲(만리장공무편운) : 만 리 긴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虛室尸居觀衆妙(허실시거관중묘) : 빈 방에 일없이 거하며 묘리를 찾으니
天香桂子落紛紛(천향계자락분분) : 하늘 향기, 계수 열매가 어지럽게 떨어진다.

 

* 3. 수이공구어(酬李公求語)-사명대사(四溟大師)-이공이 한 마디 말을 구하기에 답하다

懸崖峭壁無棲泊(현애초벽무서박) : 깎아지른 높은 절벽 발붙일 곳 없어도
捨命忘形進不疑(사명망형진불의) : 목숨 걸고 몸을 잊고 의심 없이 나아가라.
更向劍鋒飜一轉(갱향검봉번일전) : 다시 칼끝 위에서 한 번 뒤집어야
始知空劫已前時(시지공겁이전시) : 공겁 이전의 나를 비로소 알 수 있도다.

 

 

* 4. 증영운장로(贈靈雲長老)-사명대사(四溟大師)-영운 장로에게 주다

千魔萬難看如幻(천마만난간여환) : 수많은 마귀와 어려움을 허깨비로 보면
直似灘頭撤轉船(직사탄두철전선) : 여울머리에서 배를 돌리는 것과 같도다.
呑透金剛竝栗剳(탄투금강병률답) : 금강과 밤송이를 모두 삼켜버려야만
方知父母未生前(방지부모미생전) :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나를 알 수 있다.

 

 

증부휴자(贈浮休子)-사명대사(四溟大師)-부휴자에게

別傳敎外眞消息(별전교외진소식) : 가르침 밖의 참 소식 있어
專義須還古丈夫(전의수환고장부) : 온전한 뜻, 옛 장부에게 돌아가리
後五百年誰繼此(후오백년수계차) : 뒤 세대 오백년 누가 이어갈까
拈花一脈落嗚呼(념화일맥락오호) : 진리의 한 맥락이 탄식 소리에 떨어진다.

 

 

* 5. 증성수재(贈成秀才)-사명대사(四溟大師)-성수제에 주다

天寒歲暮峽中村(천한세모협중촌) : 차가운 날씨, 저무는 산골마을
籬落蕭蕭掩竹門(리락소소엄죽문) : 울타리 쓸쓸하고 대 사립문 가려있다.
高臥北窓閑夢破(고와북창한몽파) : 북창에 높이 누워 한가한 꿈 깨니
任地風雪亂黃昏(임지풍설난황혼) : 임지의 눈바람이 황혼에 어지럽다.

 

 

* 6. 동림사추석야반(東林寺秋夕夜半)-사명대사(四溟大師)

-동림사 추석날 밤에

東林月出白猿啼(동림월출백원제) : 동림사에 달뜨고 흰 원숭이 울고
丹桂淸霜夜色凄(단계청상야색처) : 붉은 계수나무 맑은 서리에 밤빛 처량하다.
獨倚香臺鐘鼓靜(독의향대종고정) : 홀로 향대에 기대니 종과 북소리 맑고
天風吹棄見禽棲(천풍취기견금서) : 바람은 나뭇잎에 불어 둥지의 새가 보인다.

 

 

* 7. 차낙천당(次樂天堂)-사명대사(四溟大師)-낙천당에 차운하여

不慍人間人不知(불온인간인부지) : 남이 나 알아주지 않음을 성내지 않는데
豈愁軒冕到吾遲(기수헌면도오지) : 어찌 내게는 벼슬이 더디 온다 근심하는가
樂夫天命稱君子(낙부천명칭군자) : 천명을 즐기는 자를 군자라 하니
伯玉何須四十非(백옥하수사십비) : 거백옥은 어찌 인생 사십이 그릇되었다 고민 해야는가.

 

 

* 8. 증낙양사(贈洛陽士)-사명대사(四溟大師)-낙양 선비에게

春愁無禁閉南關(춘수무금폐남관) : 봄 시름 참을 수 없어 남쪽 문을 닫으니
佳節悤悤欲已闌(가절총총욕이란) : 좋은 계절은 그리도 빨리 이미 끝나가는구나
霽後終南開晩眺(제후종남개만조) : 비 갠 뒤의 종남산을 문 열고 바라보니
落花芳草滿長安(낙화방초만장안) : 지는 꽃, 향기로운 풀이 장안에 가득하다.

 

 

* 9. 명사행(鳴沙行)-사명대사(四溟大師)-명사로 가면서

細雨鳴沙三月時(세우명사삼월시) : 가는 비 내리는 명사 땅 삼월에
杏花零落客思歸(행화영락객사귀) : 살구꽃 떨어지니 고향 생각나는 나그네
鄕關猶隔一千里(향관유격일천리) : 고향 아직 천리 아득한 곳
愁見河橋靑柳絲(수견하교청류사) : 강다리 푸른 버들을 수심겨워 보노라

 


* 10. 과명주(過溟洲)-사명대사(四溟大師)-명주를 지나며

離山三日到江陵(이산삼일도강릉) : 산을 떠나 삼일만에 강르에 오니
逆旅寥寥半夜燈(역여요요반야등) : 나그네 적적하고 한밤에 등불만 감빡인다
故國千年多少恨(고국천년다소한) : 고국 천년에 맺힌 한이 얼마인가
水雲寒雪倚樓僧(수운한설의루승) : 물과 구름 그리고 차가운 눈, 누대에 기댄 중 한 사람.

 

 

* 11. 산중(山中)-사명대사(四溟大師)-산 속

柴門終日獨徘徊(시문종일독배회) : 혼자 사립문을 종일토록 오가니
秋雨寒煙首屢回(추우한연수루회) : 가을비에 차가운 연기 머리 위를 도는구나
只尺相思不相見(지척상사불상견) : 지척에 두고도 생각만 하고 만나지 못하고
暮雲孤鳥倦飛來(모운고조권비래) : 저문 구름에 외로운 새는 지쳐서 돌아온다

 

* 12. 귀향(歸鄕)-사명대사(四溟大師)-고향에 돌아오니

十五離家三十四(십오이가삼십사) : 열다섯 살에 집을 떠나 서른 살에 돌아오니
長川依舊水西來(장천의구수서래) : 긴 내는 옛날과 같은데 냇물은 서에서 흘러온다
柿橋東岸千條柳(시교동안천조류) : 시교의 동녘 언덕에 우거진 이천 그루 버드나무는
强半山僧去後裁(강반산승거후재) : 절반이나 산승이 간 뒤에 심은 것이로구나

 

 

* 13. 추헌야좌(秋軒夜坐)-사명대사(四溟大師)-가을 헌함에 앉아

獨坐無眠羈思長(독좌무면기사장) : 홀로 앉으니 잠이 오지 않아 나그네 시름만 깊은데
數螢流影度西廊(수형유영도서랑) : 반딧불 몇 마리 그림자 흘리며 서쪽 회랑으로 지나간다
崇山月出秋天遠(숭산월출추천원) : 숭산에 달이 떠니 가을 하늘 멀구나
一夜歸心鬢已霜(일야귀심빈이상) : 온 밤 돌아가고픈 마음에 귀밑머리 이미 희어졌구나.

 

 

* 14. 증백련승이2(贈白蓮僧二2)-사명대사(四溟大師)-백련암 스님에게

節過重陽雁影高(절과중양안영고) : 계절은 중양절을 지나 기러기 그림자 높아져
霜楓昨夜入麻袍(상풍작야입마포) : 지난 밤 서리 맞은 단풍나무 삼베 도포에 날아드네
客行更覺江東遠(객행갱각강동원) : 나그네 가는 길, 강동은 너무나 멀어
海上靑山夢憶勞(해상청산몽억로) : 바다 위 푸른 산은 꿈에도 너무 피곤하여라.

 

 

* 15. 증백련승이1(贈白蓮僧二1)-사명대사(四溟大師)-백련암 스님에게

秋深南渡下黃葉(추심남도하황엽) : 가을이 깊어 남으로 내려가니 낙엽이 떨어지고
別路霜華已滿衣(별로상화이만의) : 이별하는 길에는 서리꽃이 옷 자락에 가득찬다
此去蓬山一千里(차거봉산일천리) : 여기서 봉래산은 일천리나 떨어져 있는데
碧雲何處更追隨(벽운하처갱추수) : 푸른 구름 그 어느 곳으로 다시 찾아가야 하는가.

 

 

* 16. 증원장로(贈圓長老)-사명대사(四溟大師)-원 장로에게

巖畔雲松巖下泉(암반운송암하천) : 바위 가 구름낀 소나무, 바위 아래 샘
焚香洗鉢過蕭然(분향세발과소연) : 향 사르고 바루 씻으며 깨끗하게 살아간다
十年不下香爐頂(십년불하향로정) : 십년 동안 향로봉 정상을 내려오지 않고
石塔靜看秋水篇(석탑정간추수편) : 돌 탑 아래에서 고요히 추수편을 읽는다.

 

 

* 17. 강선정(降仙亭)-사명대사(四溟大師)-강선정

江源西出峽門開(강원서출협문개) : 강 근원이 서쪽으로 흘러 협문이 열리니
千樹村邊斷岸廻(천수촌변단안회) : 일천 나무 가에 끊어진 언덕이 둘렀구나
中有高臺三百尺(중유고대삼백척) : 가운데에는 삼백 척 높은 누대가 있으니
月明時見羽人來(월명시견우인래) : 달 밝은 밤에 때때로 신선이 내려온다네.

 

 

* 18. 宿般若寺(숙반야사)-四溟大師(사명대사)-반야사에 묵으며

古寺秋晴黃葉多(고사추청황엽다) : 옛 절에 가을 날씨 맑으니 나뭇잎이 누렇게 물들고
月臨靑壁散棲鴉(월림청벽산서아) : 달이 푸른 벽에 비치니 잠자던 까마귀들 흩어진다
澄潮煙盡淨如練(징조연진정여련) : 맑은 호수에 연기 걷혀 비단같이 맑고
夜半寒鐘落玉波(야반한종락옥파) : 밤이 깊어가니 차가운 종소리 옥 물결에 떨어진다.

 

 

* 19. 淸平寺西洞(청평사서동)-四溟大師(사명대사)-청평사 서편

華表鶴廻天路遠(화표학회천로원) : 천년만에 화표에 학이 돌아오니 하늘 길이 멀고
靑山如昨客初歸(청산여작객초귀) : 청산은 어제 같은데 손이 처음 돌아왔도다
淸流白石照明月(청류백석조명월) : 맑은 물 흐르는 흰 돌에 밝은 달이 비치고
一夜空攀靑桂枝(일야공반청계지) : 하룻 밤에 속절없이 푸른 계피나무 가지를 휘어잡는다

 

* 20. 別松庵(별송암)-四溟大師(사명대사)-송암과 이별하며

去歲春風三月時(거세춘풍삼월시) : 지난 해 봄바람 부는 삼월에
一回相見語相思(일회상견어상사) : 한번 만나보고 그립다 말을하네
如今又向南天遠(여금우향남천원) : 지금 또 남쪽을 향하여 멀리 떠나려니
依舊垂楊生綠綠(의구수양생록록) : 수양버들은 옛처럼 푸르기만 하다

 


* 21. 出峽憩江花石(출협게강화석)-四溟大師(사명대사)-협곡을 나와 강화석에서 쉬다

橫塘石路日初斜(횡당석로일초사) : 가로놓인 못의 돌길에 해가 지려는데
春水微茫生綠波(춘수미망생녹파) : 봄 물은 아득한데 푸른 물결이 이는구나
回指金仙是何處(회지금선시하처) : 금선은 어느 곳인지 돌아보며 가리키니
碧峰千疊五雲多(벽봉천첩오운다) : 천 겹 푸른 산봉우리에 오색 구름 자욱하다.

 

 

* 22. 鹿門長川別門下諸公(녹문장천별문하제공)-四溟大師(사명대사)-녹문장천에서 문하의 제공과 이별하다

山到西江路亦分(산도서강노역분) : 산이 서강에 이르니 길 또한 나눠지고
楊花愁殺別離魂(양화수살별리혼) : 버들꽃은 이별하는 마음을 수심으로 죽이네
日斜獨出瞿塘峽(일사독출구당협) : 해는 지는데 혼자 구당협에 나와
回首千峰萬樹雲(회수천봉만수운) : 돌아보니 봉우리마다 숲과 구름뿐이어라.

 

 

* 23. 萬瀑洞(만폭동)-四溟大師(사명대사)-만폭동

此是人間白玉京(차시인간백옥경) : 이곳은 인간의 백옥경이요
琉璃洞府衆香城(유리동부중향성) : 유리동의 관청이요 온갖 향기의 성이구나
飛流萬瀑千峰雪(비류만폭천봉설) : 날아흐르는 온갖 폭포는 온 산봉우리의 눈이라
長嘯一聲天地驚(장소일성천지경) : 길게 한번 소리치니 천지가 놀라는구나

 

 

* 24. 眞歇臺(진헐대)-四溟大師(사명대사)-진헐대

濕雲散盡山如沐(습운산진산여목) : 습한 구름 다 걷히니 산은 목욕한 듯
白玉芙蓉千萬峯(백옥부용천만봉) : 백옥같고 연꽃 같은 천만 봉우리
獨坐翻疑生羽翼(독좌번의생우익) : 홀로 앉으니 뒤집으니 몸에 날개가 생긴 듯
扶搖萬里御冷風(부요만리어냉풍) : 만리를 잡아흔들며 찬 바람을 탄다.

 

 

* 25. 十王洞(시왕동)-四溟大師(사명대사)-시왕동

王子何年築此城(왕자하년축차성) : 왕자는 어느 해에 이 성을 쌓았던가
玉峰依舊老蓂靈(옥봉의구노명령) : 옥봉은 옛과 같은데 명령나무는 늙었구나
鳳凰一去無消息(봉황일거무소식) : 봉황은 한번 가고 소식 없는데
金井千秋瑤草生(금정천추요초생) : 우물 난간에는 천년 동안 요초가 돋아난다

 

* 26. 寄春州刺史(기춘주자사)-四溟大師(사명대사)-춘주자사에게

遙望春城雁不來(요망춘성안불래) : 봄날 성을 멀리서 바라보니 기러기 날지 않고
幾番風雨暗書灰(기번풍우암서회) : 몇 번이나 비바람에 책 재처럼 바래어졌던가
只今獨坐舡潭上(지금독좌강담상) : 지금은 홀로 앉아 강 위의 배를 보며
空憶當時勸酒杯(공억당시권주배) : 당시에 술 권하던 일 공연히 생각해본다.

 

 

* 27. 宿佛頂庵(숙불정암)-四溟大師(사명대사)-불정암에 묵으며

琪樹瑤袋桂影秋(기수요대계영추) : 기수와 요대에 계수나무 가을인데
蓬上宿客思悠悠(봉상숙객사유유) : 봉래산에 묵는 나그네 생각도 유유해라
西風一夜露華冷(서풍일야로화냉) : 서풍 하루밤에 이슬도 차가운데
玉磬數聲人猗樓(옥경수성인의루) : 몇 가닥 옥 경쇠소리에 사람은 누대에 기대선다

 

* 28. 過西都3(과서도3)-四溟大師(사명대사)-서도를 지나며

落月孤雲渺南國(낙월고운묘남국) : 지는 달 외로운 구름 남녁 땅 아득하고
羈愁獨上望鄕臺(기수독상망향대) : 나그네 수심겨워 홀로 망향대에 오른다
秋風黃葉不歸去(추풍황엽불귀거) : 가을바람 불고 단풍지는데 돌아가지 못하고
空館夜聞寒雨來(공관야문한우래) : 빈 여관에 홀로 앉은 밤, 차갑게 비만 내린다

 

* 29. 過西都2(과서도2)-四溟大師(사명대사)-서도를 지나며

淸流壁下古今路(청류벽하고금로) : 청류벽 아래 옛 길과 지금의 길에
靑草夕陽人去來(청초석양인거래) : 석양에 풀은 푸른데 사람은 오고간다
欲問千秋興廢事(욕문천추흥폐사) : 천년의 흥망의 일을 묻고자하니
白雲橋畔夜花開(백운교반야화개) : 백운교 다리 가에 밤에도 꽃이 피었구나.

 

 

* 30. 過西都1(과서도1)-四溟大師(사명대사)-서도를 지나며

國破山河王氣殘(국파산하왕기잔) : 나라가 망하니 산하에 왕기가 쇠잔하고
天孫何處白雲間(천손하처백운간) : 왕손은 흰 구름 속 어디에 있는가
只今宮漏秋鐘歇(지금궁루추종헐) : 지금 궁중의 물시계와 종소리 그치고
千古月明江水寒(천고월명강수한) : 천고에 달은 밝고 강물은 차기만하구나.

 

 

* 31. 贈白蓮寺和尙(증백련사화상)-泗溟堂(사명당)-백련사 스님에게

佳節年年客中過(가절년년객중과) : 해마다 좋은 때를 나그네 신세
故山花謠夢携筇(고산화요몽휴공) : 고향 산의 꽃노래, 꿈속에서 부른다네
會遊到處有芳草(회유도처유방초) : 모여 놀던 곳 풀 향기 가득한 곳이었건만
此日來時迷舊蹤(차일래시미구종) : 오늘 와서 보니 옛 자취 찾을 수 없네
塞上羈愁猶亂緖(새상기수유난서) : 변방 떠도는 나그네 마음 어지럽기만 한데
鏡中衰鬢匕成蓮(경중쇠빈비성연) : 거울 속 귀밑머리 순식간에 연실이 다 되었네
天涯迢遆不歸去(천애초체불귀거) : 그곳은 하늘 끝 바다 먼 곳, 돌아가지 못하고
坐聽白蓮精舍鐘(좌청백련정사종) : 앉아서 그저 백련사 종소리만 들을 뿐...

 

 

* 32. 過咸陽(과함양)-泗溟堂(사명당)-함양을 지나며

眼中如昨舊山河(안중여작구산하) : 둘러보니 어제 같은 옛 산하여
蔓草寒煙不見家(만초한연불견가) : 우거진 덩굴 풀, 찬 연기에 집들은 보이지 않네
立馬早霜城下路(입마조상성하로) : 서리 내린 성 아래 길목에 말을 세우고
凍雲枯木有啼鴉(동운고목유제아) : 차가운 구름 서린 고목에 까마귀가 울고있네.

 

 

* 33. 과선죽교(過善竹橋)-사명당(泗溟堂)-선죽교를 지나며

山川如昨市朝移(산천여작시조이) : 산천은 어제 같은데 세상은 변하고
玉樹歌殘問幾時(옥수가잔문기시) : 궁중의 소리 들린 지 얼마나 되었는가
落日孤城春草裏(락일고성춘초이) : 봄풀 속 쓸쓸한 성에 해는 넘어가고
祗今惟有鄭公碑(지금유유정공비) : 지금은 정몽주의 비석만 남아있네.

 

 

* 34. 過邙山(과망산)-四溟大師(사명대사)-망산을 지나며

太華山前多少塚(태화산전다소총) : 태화산 앞 수 많은 무덤들
洛陽城裏古今人(낙양성리고금인) : 고금의 낙양성 사람 무덤이라
可憐不學長生術(가련불학장생술) : 가련하다, 무슨 일로 장생술을 못 배워
杳杳空成松下塵(묘묘공성송하진) : 아득한 세월 덧없이 소나무 아래 흙먼지로 되었는가.

 

 

* 35. 登香爐峯(등향로봉)-四溟大師(사명대사)-향로봉에 올라

山接白頭天杳杳(산접백두천묘묘) : 산은 백두에 접하고 하늘은 한없이 높고
水連靑海路茫茫(수연청해로망망) : 물은 푸른 바다로 흐르고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大鵬備盡西南闊(대붕비진서남활) : 대붕이 갖추어 날아갈 만큼 서남은 광활하니
何處山河是帝鄕(하처산하시제향) : 산하의 어디쯤이 곧 천재의 사는 곳인가.

 

 

* 36. 集句2(집구2)-四溟大師(사명대사)-집구

日暮東風春草綠(일모동풍춘초록) : 해는 저물고 동풍에 풀은 푸르고
杖藜徐步立芳洲(장려서보립방주) : 지팡이 집고 천천히 걸어 향기로운 물가에 서다
閣中帝子今何在(각중제자금하재) : 누대의 왕족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汀月寒生古石樓(정월한생고석루) : 물가의 달빛은 옛 돌 누대에 차기만 하다.

 

 

* 37. 集句1(집구1)-四溟大師(사명대사)-집구

山圍故國周遭在(산위고국주조재) : 산은 고향땅을 에워싸고 있고
陵谷依然世自移(능곡의연세자이) : 언덕과 골짝은 옛날 같은데 세상은 변하였다
玉輩昇天人已遠(옥배승천인이원) : 녹수레 타고 하늘로 오른 사람 이미 멀어지고
只今唯有鷓鴣飛(지금유유자고비) : 지금은 자고새만 남아 날고 있구나

 

* 38. 山居集句四4(산거집구사4)-四溟大師(사명대사)-산에 살며 집구한 4편

近思丙子重陽日(근사병자중양일) : 병자년 중양일을 생각해보니
寒雨獨登浮碧樓(한우독등부벽루) : 찬비 속에 혼자 부벽루에 올랐네
今夕又經長慶路(금석우경장경로) : 오늘 저녁 다시 장경로를 지나니
黃花依舊去年秋(황화의구거년추) : 누런 단풍잎 지난해와 같은 가을이구나

 


* 39. 山居集句四3(산거집구사3)-四溟大師(사명대사)-산에 살며 집구한 4편

白雲何計是生涯(백운하계시생애) : 흰 구름 속의 생애가 어찌 생애라하리오
朝抱陳編至日斜(조포진편지일사) : 아침에 오래된 책 잡으면 해질 때까지 가는구나
門外啼鵑天寂寂(문외제견천적적) : 문 밖에 두견새 우는데 날은 적적하고
東風吹落刺桐花(동풍취락자동화) : 봄바람 불어 오동나무꽃을 떨어뜨리는구나.

 

 

* 40. 山居集句四2(산거집구사2) - 四溟大師(사명대사)-산에 살며 집 구한 4편

 

閉門春盡綠煙消 (폐문춘진녹연소)    문 닫으니 봄은 가고 푸른 기운 사라지니

眞性如空不動搖 (진성여공부동요)    진성은 허공과 같아 움직임이 없도다.

世出世間俱打了 (세출세간구타료)    세상을 벗어나고 세상에 있는것 모두 떨처 버리니

那知今夕與明朝 (나지금석여명조)    오늘 저녘 일 내일 저녘 일을 어찌 알리오.

 

 

* 41. 山居集句四1(산거집구사1)-四溟大師(사명대사)-산에 살며 집구한 4편

無媒經路章蕭蕭(무매경로장소소) : 지름길 찾는이 없어 글 읽기 외롭고
門掩空庭思寂廖(문엄공정사적료) : 대문 닫힌 빈 뜰은 생각하면 쓸쓸하기만 하다
百鳥不來春又過(백조불래춘우과) : 온갖 새 날아오지 않았는데 봄은 또 자나가고
庵前時有白雲朝(암전시유백운조) : 암자 앞에는 때때로 흰구름만 보이는구.

 

 

* 42. 別松庵陪尊祖西行(별송암배존조서행)-四溟大師(사명대사)-암이 존조를 모시고 서행함을 이별하다

別路寒松日欲斜(별로한송일욕사) : 해는 지려하는데 이별 길에 소나무 차갑고
碧雲殘雪有啼鴉(벽운잔설유제아) : 푸른 구름 남은 눈에 갈가마귀 울음소리들린다
西行想渡浿江水(서행상도패강수) : 서행길에 패강을 건널 일 생각하니
落盡春風處處花(낙진춘풍처처화) : 봄바람에 여기저기 꽃 다 떨어지는구나

* 43. 過咸陽(과함양)-四溟大師(사명대사)-함양을 지나면서

眼中如昨舊山河(안중여작구산하) : 옛 산천 눈앞에선 어제 같은데
蔓草寒煙不見家(만초한연불견가) : 덩굴과 풀 차가운 안개에 집은 보이지 않는구나
立馬早霜城下路(입마조상성하로) : 서리 내린 성 아랫길에 말을 세우고
凍雲枯木有啼鴉(동운고목유제아) : 언 구름 마른 나무 가지에 까마귀가 울고 있구나.

 

 

* 44. 奉全羅防禦使元長浦(봉전라방어사원장포)-四溟大師(사명대사)-전라 방어사 원장포에게 드립니다

百歲三分已二分(백세삼분이이분) : 백년을 삼분하여 벌써 이분이 지났는데
袛今行止更如雲(저금행지갱여운) : 지금도 나의 행덩거지 구름과 같구나
何時高臥崇山室(하시고와숭산실) : 어느 때나 숭산의 방에 편안히 누워
鷄唳猿啼半夜聞(계려원제반야문) : 학과 원숭이 울음소리 한밤 들어볼까.

 

 

* 45. 在南原驛(재남원역)-四溟大師(사명대사)-남원 병영에 있으면서

碧油幢幕夜凄凄(벽유당막야처처) : 벽유 당막에 밤은 처량하고
刁斗無聲月欲低(조두무성월욕저) : 조두 치는 소리 없고 달은 지려하는구나
壯志未酬驚歲晏(장지미수경세안) : 장한 뜻 펴지 못하고 놀랍게도 올 해가 다가니
手持雄劒聽莏鷄(수지웅검청사계) : 큰 칼을 손에 쥐고 귀뚜라미 소리 듣는다.

 

* 46. 嶺南金烏下臥病憶雲中寸調(영남금오하와병억운중촌조)-四溟大師(사명대사)-영남 금오산 아래서

       병으로 누운 운중 재조를 생각하며

一從恩譴度流沙(일종은견도류사) : 한번 은견을 쫓아 유사를 건넌 뒤
望盡三年鬢已華(망진삼년빈이화) : 삼년 동안 바라보다 이미 귀밑머리 희어졌네
怊悵東湖去時路(초창동호거시로) : 슬퍼도다, 동호로 그재 떠나던 길은
春風依舊長新莎(춘풍의구장신사) : 봄바람에 옛날처럼 잔디가 새로이 돋는구나

 

* 47. 癸未秋關西途中3(계미추관서도중3)-四溟大師(사명대사)-계미년 가을 관서로 가는 도중에서

塞外孤身夢裏逢(새외고신몽리봉) : 변방 밖 외로운 몸 꿈에서 만나
同遊澤畔語從容(동유택반어종용) : 못가에 같이 놀며 조용히 말한다
覺來依舊關山遠(각래의구관산원) : 깨어보니 여전히 관산은 멀고
悄悄無言聽曙鐘(초초무언청서종) : 말없이 쓸쓸히 새벽 종소리 듣는다.

 

 

 

* 48. 癸未秋關西途中2(계미추관서도중2)-四溟大師(사명대사)-계미년 가을 관서로 가는 도중에서

黃葉蕭蕭廣陵道(황엽소소광릉도) : 광릉길에 낙엽은 쓸쓸하고
夜來風雨滿江津(야래풍우만강진) : 밤에는 비바람 강나루에 가득하다
孤舟獨繫西湖柳(고주독계서호류) : 외로운 배 서쪽 호수 버드나무에 매여이고
泣向關山憶遠人(읍향관산억원인) : 눈물 흘리며 관산을 향해 먼 사람 생각한다

 

* 49. 癸未秋關西途中1(계미추관서도중1)-四溟大師(사명대사)-계미년 가을 관서로 가는 도중에서

黃雲塞下本無春(황운새하본무춘) : 변방의 황토 구름 본래 봄이 오지 않는데
桃柳應知別處新(도류응지별처신) : 복사꽃 버드나무 다른 지방에서는 새로 피어나리라
雙鯉不來花又落(쌍리불래화우락) : 편지는 오지 않고 꽃이 또 지니
暮山回首泣孤臣(모산회수읍고신) : 저문 산에서 머리 돌려 우는 외로운 신하여.

 

 

 

* 50. 送昱山人還海西(송욱산인환해서)-四溟大師(사명대사)-욱산인을 보내고 서해로 돌아가다

沓盡天南吳楚間(답진천남오초간) : 하늘 남쪽 오나라 쪽나라 사이를 다 밟아보고
逢春還鄕海西山(봉춘환향해서산) : 봄을 맞아 고향 바다 서쪽 산악으로 향하는구나
落花啼鳥東風裏(낙화제조동풍리) : 봄바람 부는데 꽃은 떨어지고 새가 우니
知子香爐獨掩關(지자향로독엄관) : 자네가 향로끼고 홀로 문닫고 있는 것을 알겠구나

 

 

* 51. 贈海運(증해운)-四溟大師(사명대사)-해운에게

一夜聯床話(일야연상화) : 하룻밤 상에서 마주보고 이야기하니
鶴峰秋晩時(학봉추만시) : 학봉에는 가을이 무르익었네
重逢又何日(중봉우하일) : 다시 만날 날은 또 어느 날인가
世事杳難期(세사묘난기) : 세상 일 몰라서 기약하기 어려워라.

 

 

* 52. 浮碧樓用李翰林韻(부벽루용이한림운)-四溟大師(사명대사)-부벽루에서 이한림의 운을 따서

三國去如鴻(삼국거여홍) : 옛 삼국의 일은 기러기처럼 지나고
麒麟秋草沒(기린추초몰) : 기린굴은 가을 풀에 묻혔구나
長江萬古流(장강만고류) : 긴 강물은 영원히 흘러가고
一片孤舟月(일편고주월) : 하늘엔 한 조각 외로운 배같은 달

 

* 53. 己丑橫罹逆獄(기축횡리역옥)-四溟大師(사명대사)-기축년에 엉뚱하게 역옥에 걸려들다

蛾嵋山頂鹿(아미산정록) : 아미산 위의 사슴
擒下就轅門(금하취원문) : 사로잡혀 원문에 내려왔구나
解網放還去(해망방환거) : 그물을 풀고 달아나니
千山萬樹雲(천산만수운) : 온 산에 나무숲과 구름이네.

 

 

* 54. 題降仙亭2(제강선정2)-四溟大師(사명대사)-강선정에 쓰다

白首關河夜(백수관하야) : 흰 머리로 변방의 물가에 있으니
傷心遠客愁(상심원객수) : 애끊는 마음 먼 나그네의 수심이라
相思無限意(상사무한의) : 한없이 서로를 생각하며
明月獨登樓(명월독등루) : 밝은 달 빛 아래 홀로 누대를 오른다.

 

 

* 55. 題降仙亭(제강선정)-四溟大師(사명대사)-강선정에 쓰다

三峽客歸去(삼협객귀거) : 삼협으로 나그네 돌아가니
龍臺生遠愁(용대생원수) : 용대에는 먼 근심 이는구나
靑山雲色暮(청산운색모) : 청산에 구름 빛 저무는데
丹穴水聲幽(단혈수성유) : 붉은 굴에선 물소리 그윽하다

* 56. 贈行脚僧(증행각승)-四溟大師(사명대사)-행각승에게

爾從江海來(이종강해래) : 네가 강과 바다에서 왔다가
還從江海去(환종강해거) : 다시 강과 바다로 떠나니
江海路迢迢(강해로초초) : 강과 바닷길이 멀고도 먼데
重逢又何處(중봉우하처) : 다시 만나는 곳이 또 어딜꼬

 

 

* 57. 次鄭子韻(차정자운)-四溟大師(사명대사)-정자의 운을 빌어.

歲晏迷歸路(세안미귀로) : 해는 저무는데 돌아갈 길을 잃어
行狀問鄭公(행장문정공) : 행장을 정공에게 묻는다
鐘山杳天末(종산묘천말) : 종산은 하늘 멀리 아득한데

衰鬢又秋風(쇠빈우추풍) : 쇠한 귀밑머리 또 가을 바람에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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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인들의 시 모음

 

서영수합

 영수합은 본관이 달성이며 아버지는 서형수(徐逈修·1725~1779). 그녀는 다섯 형제 중 외동딸로. 몸이 허약했지만 영민하고 한 번 들은 것은 잊지 않았다. 영수합의 기질을 알아본 외할머니는 손녀의 재능을 사랑했으나 마냥 격려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여자로서 문장에 뛰어난 이들 중에 명이 짧은 자가 많다고 경계해주었다.영수합은 14세에 홍인모와 부부 인연을 맺었다. 오랫동안 벼슬에 나가지 못한 남편과 지우 같은 관계를 유지했고 남편의 권유로 시도 지었다. 하지만 여성 본분에 어긋난다 하여 직접 손으로 시를 쓰지 않았다. 남편이 아들들을 시켜 옆에서 몰래 적게 했다. 그래서 다행히 시 191수와 사() 1편이 남편 시집인족수당집(足睡堂集)’에 남게 되었다. ‘영수합도 남편이 지어준 당호인데(·목숨)’자를 넣은 것은 허약한 아내를 위한 배려였는지도 모른다.3 2녀를 둔 영수합은 자녀 교육에 큰 열정을 쏟았다. 학문과 역사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었고 밤마다 읽은 책들을 점검했다. 그 노력과 열정 덕분에 맏아들 석주는 좌의정까지 올랐으며 대제학도 지냈다. 둘째 길주는 벼슬을 하지 않았으나 문장으로 큰 이름을 남겼다. 막내아들 현주는 정조의 딸 숙선옹주와 혼인했으며 정약용과 교유하면서 학자로 대성했다. 장녀 홍원주는유한당으로 이름을 떨친 시인이 되어유한당시집을 남겼다.

 

送客      서영수합

送客蒼山暮 (송객창산모) 나그네 전송하려니 푸른 산도 저물고

歸來白雲臥 (귀래백운와) 돌아오는 길에 흰구름이 누웠구나

古壁有鳴琴 (고벽유명금) 옛 돌담길에 가야금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松風時自過 (송풍시자과) 솔바람 때맞춰 지나가는 소리였네

친정에서 온 손님 배웅하려는데 얼마나 반가웠으면 날이 저물도록 보내질 못하고,

멀리까지 배웅하느라 돌아오는 길 밤안개가 드리웠답니다.

보내고도 그리운 마음이 절절한데 돌담길 소리가 스산해 어디서 날까 했더니

솔바람 찬바람이 지나는 소리가 가야금 울리듯 하였답니다.

 

遠樹晩蟬(원수만선) 먼 나무 늦은 가을 매미  -서영수합-

晴窓銜暮景(청창함모경) 비 갠 창에 노을진 풍경 머금고

幽興付殘篇(유흥부잔편) 그윽한 흥을 쇠잔한 시에 부쳐본다.

寒蟬吟露葉(한선음로엽) 찬 매미 이슬 젖은 잎사귀 읊조리니

知是近秋天(지시근추천) 가을 하늘이 가까워옴을 알겠도다.

 

憶弟     洪幽閑堂홍유한당

中夜蟲聲悲淚落(중야충성비루락) 한 밤의 벌레소리에 슬픈 눈물 떨구었더니

外陽蟬語離愁生(외양선어이수생) 묘 앞산 매미 울음에 이별의 설움이 일어나네

枕邊欲作壎篪夢(침변욕작훈지몽) 베개 주변에서 훈지의 꿈이나마 꾸려 하나니

莫敎金鷄報曉鳴(막교금계보효명) 닭이여 부디 새벽을 알리는 울음을 알리지 말라

 

 外陽 : 풍수지리설에서 이르는 삼양(三陽)의 하나. 묘 앞의 안산(案山) 바깥 쪽에 있는 산을 이른다.

蟬語 : 매미 우는 소리

壎篪 : 질 나팔과 피리로 형은 나팔을 불고 동생은 피리를 분다는 뜻으로 형제의 화목한 사이를 말함

金鷄 : 천상에 있다는 닭

 

洪幽閑堂(홍유한당 1791~1842) : 조선 후기의 여류 작가로 이름이 원주(原周) 이며 체계적으로 학문을 익혔다.어머니 '서영수합'또한 여류작가이며 형제 자매가 모두 대단한  문인이다.

 

姜只在堂, <春夢>

 

水晶簾外日將闌 수정발 밖에는 날이 저무는데

垂柳深沉覆碧欄 늘어진 수양버들이 푸른 난간을 덮었구나

枝上黃啼不妨 가지 위의 꾀꼬리 울음소리를 방해마오

尋君夢已到長安 그대 찾아 꿈 속에서 나는 서울에 이르렀소.

 

<봄날에 꿈을 꾸다(春夢)>라는 제목의 시에서 꿈 속에서 내가 처했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대비되어 보여지고 있다. 1~3구에서 보여지는 배경 묘사는 날이 저물어가는 상황과 수양버들이 길게 늘어져서 난간을 뒤 덮고 꾀꼬리 울음 소리를 방해하는 하강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마지막 구에서 그대를 찾아서 나는 꿈 속에서 서울에 도착하였다는 언급은 내가 임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꿈 속에서 임을 찾아갔지만 현실에서 보이는 것은 여전히 임은 없고 그렇기에 화자는 쓸쓸한 감정만을 느낄 뿐이다.

 

金雲楚, <送別> 2首 中 1.

 

南國芳菲天際夢 아름다운 남쪽나라 저 하늘가 꿈에 보고

東明律呂月中聞 동명고도 음악소리 달 속에 들으리라.

閒鷗從似無情緖 한가로운 갈매기는 무정한 듯 하다만은

猶自曉曉嗚索群 소리소리 슬피 울어 벗 찾는 듯 헤매이네.

임을 떠나보내는 감정을 호소한 작품에서 등장한 꿈의 모습이다. 임과 나와의 구체적 추억이 아닌 배경 및 분위기만을 묘사함으로써 이별한 상황에 처한 화자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꿈에서 본 남쪽 나라는 아름답고 달 빛 속에 음악소리가 들려오며 갈매기 또한 한가롭게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지막 구에서 앞의 3구와 반대되는 이미지를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다.

 

 潭挑, <歲暮嘆>

 

窓燈何耿結 창가의 등불은 어찌 또 잠 못 들게 하는가

窓雪又飄旋 창가에 흰 눈은 또 어쩌자고 휘날리는가

梅作將花候 매화는 꽃필 시절 되었다고 하는데

蛾眉又一年 이 고운 얼굴은 또 일 년 허사이네.

 

勝二喬, <秋夜有感>

 

江陽舘裡西風起 강양관에는 서풍이 불어 일고 

後山欲醉前江淸 뒷산은 취하는   강은 맑디 맑다 

紗窓月白百蟲咽 사창에 달은 밝고 벌레들은 흐느낀다 

孤枕衾寒夢不成 외로운 베개에 이불 차서  수가 없네.

 

姜只在堂, <悵望>

 

曲漵花開憐並蔕 곡서화 피었으니  꼭지 가련하고 

芳園樹老愛連枝 정원의 늙은 나무에 새가지 사랑스럽다 

春風別後相思恨 봄바람에 이별한  서로 생각하는 정을 

十輻魚箋幾首詩  폭의 편지에  수의 시나 적어 보내리

 

기옥산(寄玉山)-수향각원씨(繡香閣元氏)   옥산에게

 

秋淸池閣意徘徊(추청지각의배회) 맑은 가을 연못 누대 마음은 배회하고,

向夜憑欄月獨來(향야빙난월독래) 밤에난간에 기대니 달이 홀로 떠오른다

滿水芙蓉三百本(만수부용삼백본) 물에 가득한 연꽃 삼백 그루,

送君從此爲誰開(송군종차위수개) 임 보낸 이곳에서 누굴 위해 피어났는가?

 

 秋思(추사)-翠仙(취선)

가을 심사

 

洞天如水月蒼蒼(동천여수월창창)

樹葉簫簫夜有霜(수엽소소야유상)

十二緗簾人獨宿(십이상렴인독숙)

玉屛還羨繡鴛鴦(옥병환선수원앙)

 

골짜기는 물 같고 달빛은 창창한데

나뭇잎은 우수수 밤 새 서리 내렸구나.

열두 폭 비단 주렴 속에 홀로 잠자니

옥병풍 속 원앙새가 오히려 부럽구나.

 

翠仙(취선)과 雪竹(설죽)은 동일 인.

 

규원(閨怨)-양사기첩(楊士奇妾)

규방의 원망

 

西風摵摵動梧枝(서풍색색동오지)

碧落冥冥雁去遲(벽락명명안거지)

斜倚綠窓仍不寐(사의녹창잉불매)

一眉新月上西池(일미신월상서지)

 

서풍이 불어오니 오동나무 가지 흔들리고,

하늘은 아득한데 기러기 느릿느릿 날아간다,

푸른 창가에 기대니 잠은 오지 않고,

눈썹 같은 초승달이 서쪽 연못에서 떠오른다.

 

 

칠석(七夕)-수향각원씨(繡香閣元氏)

칠석날

 

烏鵲晨頭集絳河(오작신두집강하)

勉敎珠履涉淸波(면교주리섭청파)

一年一度相思淚(일년일도상사루)

滴下人間雨點多(적하인간우점다)

 

새벽녘 까막까치 은하수로 모여들어

주옥같은 신 신은 견우직녀 맑은 물 건너게 한다.

일 년에 한 번 건너니 그리워서 흘리는 눈물

방울져 인간세상에 내리니 비가 되어 넘치는구나.

 

 

送別(송별)-小玉花(소옥화)

 

歲暮風寒又夕暉(세모풍한우석휘)

送君千里沾淚衣(송군천리첨루의)

春堤芳草年年綠(춘제방초연년녹)

莫學王孫去不歸(막학왕손거불귀)

 

세모에 바람 차고 날조차 저무는데

천리 멀리 임 보내려니 눈물이 옷깃적시네.

봄 언덕의 풀은 해마다 파릇파릇 하오니

가서는 오지 않는 도령들은 본받지 마세요.

 

泣別北軒(읍별북헌)-桃花(도화)

북헌에서 눈물로 이별하다

 

洛東江上初逢君(낙동강상초봉군)

普濟院頭更別君(보제원두갱별군)

桃花落地紅無迹(도화낙지홍무적)

明月何時不憶君(명월하시불억군)

 

낙동강 위에서 처음 그대를 만나

보제원 머리에서 다시 그대와 이별하네요.

복사꽃 땅에 떨어져 붉은 자취 없지만

달 밝으면 어느 때나 그대 생각 않으리오.

 

 賞月(상월)-一朶紅(일타홍)

달구경

 

亭亭新月最分明(정정신월최분명)

一片金光萬古情(일편금광만고정)

無限世界今夜望(무한세계금야망)

百年憂樂幾人情(백년우락기인정)

 

우뚝 솟은 초승달 최고로 밝고

한 조각 금빛 만고에 정다워라

끝없는 세상을 오늘 밤에 바라보니

백년 憂樂에 몇 사람에게 정 주었나?

 

別權判書尙愼(별권판서상신)-義州妓(의주기)

권상신 판서님을 보내며

 

去去平安去(거거평안거)

長長萬里多(장장만리다)

瀟湘無月夜(소상무월야)

孤叫雁聲何(고규안성하)

 

가고 가는 길 평안히 가소서

길고 긴 만 리 길 길도 많지요.

소상강 달 없는 밤에

홀로 우는 기러기는 어찌할까요?

 

怨詞(원사)-全州妓(전주기)

원사

 

我本天上月中娘(아본천상월중낭)

謫下人間第一唱(적하인간제일창)

當年若在蘇臺下(당년약재소대하)

豈使西施取吳王(기사서시취오왕)

 

나는 본래 하늘나라 달 속의 선녀

인간 세상에 귀양와 제일 명창이 되었소.

그 당시 오나라 소대에 내가 있었다면

어찌 서시가 오나라 왕을 모셨겠소?

 

四絶亭遇諸學士席上口吟 : 太一(태일)

사절정에서 여러 학사들과 만나 시를 읊다

 

三月離家九月歸(삼월이가구월귀)

楚山吳水夢依依(초산오수몽의의)

此身恰似隨陽鳥(차신흡사수양조)

飛盡南天又北飛(비진남천우북비)

 

삼월에 집을 떠나 구월에 돌아가니

초산과 오수가 꿈속에서 아련하네.

이 몸 떠도는 철새와 흡사하여

남녘 하늘 다 날고 또 북녘으로 날아가네.

 

太一(태일)은 괴산(槐山) 기녀 였다.

 

閨思(규사)-홍성당소실(洪城唐小室)

여자의 심사

 

童報遠帆來(동보원범래)

忙登樓上望(망등루상망)

望潮直過門(망조직과문)

背立空怊悵(배립공초창)

 

멀리서 돛배 온다는 아이 말에

급히 누대에 올라서 바라보았지
조수 따라 문 앞 지나는 걸 바라보며

등 돌리고 서니 공연히 서글퍼구나.

 

詠梧桐(영오동)-이씨(李氏)

오동나무를 노래하다

 

愛此梧桐樹(애차오동수)

當軒納晩凉(당헌납만량)

却愁中夜雨(각수중야우)

飜作斷腸聲(번작단장성)

 

나는 이 오동나무를 좋아 하노니

집 앞에서 저녁에 서늘함을 주지

수심에 겨운데 밤비는 내려

애간장 끊는 소리를 내는 구나.

 

夕潮(석조) - 이씨(李氏)

저녁 조수

 

漁人欵乃帶潮歸(어인관내대조귀)

山影倒江掩夕扉(산영도강엄석비)

知是來時逢海雨(지시래시봉해우)

船頭斜榻綠簑衣(선두사탑록사의)

 

어부는 노저어 조수 타고 돌아오고

산그늘 강에 비껴 저녁 사립문 가리네

올 때에 바다에서 비 맞을 줄 알고

뱃머리 비스듬히 푸른 도롱이 걸려있네.

 

卽事(즉사)-경강녀(京江女)
느낀대로

 

昨夜春隨小雨過(작야춘수소우과)

遠郊芳草近山花(원교방초근산화)

乾坤獨立閑人在(건곤독립한인재)

數曲溪南一宇家(수곡계남일우가)

 

어제 밤 봄 따라 작은 비 지나가고

먼 들판에 꽃다운 풀, 가까운 산엔 꽃피었다.

우뚝 선 천지에, 한가한 사람 살고 있는데

개울 남쪽 한 집에서 몇 곡 노래가 들려온다.

 

相思(상사) - 김씨(金氏)

그리움

 

向來消息問何如(향래소식문하여)

一夜相思鬢欲華(일야상사빈욕화)

獨倚雕欄眠不得(독의조란면부득)

隔簾疎竹雨聲多(격렴소죽우성다)

 

저번 소식에 안부를 물어오셨다니

밤새도록 그리워서 귀밑머리 희어집니다.

난간에 홀로 기대니 잠도 오지 않는데

발 너머 성긴 대밭에 빗소리만 많습니다.

 

登蠶嶺次七松(등잠령차칠송) - 雪竹(설죽)
잠령에 올라 칠송의 운에 차운하여



登臨萬仭嶺(등임만인령)
千里大江迴(천리대강회)
水色山兼遠(수색산겸원)
秋光鴈共來(추광안공래)
雲間奏龍笛(운간주용적)
天上醉瓊杯(천상취경배)
日下皆仙境(일하개선경)
休言入鳳臺(휴언입봉대)



높은 산봉우리에 오르니
큰 강이 천리나 흘러가요.
강물 빛 산과 함께 멀고
가을이 기러기와 함께 찾아 왔어요.
구름 사이엔 용의 피리 들려오고
하늘 위에선 구슬 술잔 돌려요.
태양 아래 모두가 선경이니
봉대에 들어간다고 말하지 마세요.

 


湖西詠懷四韻(호서영회사운) - 雪竹(설죽)
호서에서 감회를 읊은 4



灞陵人送後(파릉인송후)
日月自難留(일월자난류)
草入相思恨(초입상사한)
花添別院愁(화첨별원수)
湘江潮信絶(상강조신절)
楚峽行雲收(초협행운수)
惆悵離腸斷(추창이장단)
誰知玉筋流(수지옥근류)



파릉으로 임 떠나신 뒤,
날마다 어쩔 줄 모르겠어요.
풀잎에도 그리운 마음 깃들고,
꽃을 보아도 근심만 더 해요.
상강엔 조수 소식도 끊기고,
초나라 골짜기엔 구름도 걷혔어요.
슬픈 이별 애간장 끊을 듯한데,
그 누가 눈물 짓는 제 마음 알아줄까요?

양식의

양식의 아래

양식의

양식의 아래

 

 

秋思(추사)-翠竹(취죽)

가을 심사

 

洞天如水月蒼蒼(동천여수월창창)

十二緗簾人獨宿(십이상렴인독숙)

樹葉簫簫夜有霜(수엽소소야유상)

玉屛還羨繡鴛鴦(옥병환선수원앙)

 

골짜기는 물 같고 달빛은 창창한데

열두 폭 비단 주렴 속에 홀로 잠자네

나뭇잎은 쓸쓸히 지고 서리 내린 밤

옥병풍은 수놓인 원앙을 부러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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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陵郊外 (48×69㎝) 梨花雨 흩뿌릴 제―계랑

배꽃 흩어뿌릴 때 울며 잡고 이별한 임
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지은이 : 계랑(桂娘). 여류시인. 부안의 기생. 성은 이(李) 본명은 향금(香今),
호는 매창(梅窓), 계생(桂生). 시조 및 한시 70여 수가 전하고 있다.
황진이와 비견될 만한 시인으로서 여성다운 정서를 노래한 우수한 시편이 많다.

참 고 : 梨花雨―비처럼 휘날리는 배꽃

 
 
乾川里 (46×68㎝) 送人

양양 기생

사랑을 나눈 시냇가에서 임을 보내고
외로이 잔을 들어 하소연할 때
피고 지는 저 꽃 내 뜻 모르니
오지 않는 임을 원망하게 하리

弄珠灘上魂欲消
獨把離懷寄酒樽
無限烟花不留意
忍敎芳草怨王孫

지은이 : 영양 기생

참 고 : 농주(弄珠)―연인과 함께 사랑을 속삭임.

 
 
桂林近郊 (47×68㎝)傷春

계생

이것은 봄이 감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임을 그리워한 탓이네
티끌같은 세상 괴로움도 많아
외로운 목숨 죽고만 싶네

不是傷春病
只因憶玉郞
塵豈多苦累
孤鶴未歸情

지은이 : 계생(桂生), 혹은 매창(梅窓). 부안 기생. 『매창집(梅窓集)』이 전한다.

 
 
孤石亭 (53×97㎝)春愁

금원

시냇가의 실버들 유록색 가지
봄시름을 못 이겨 휘늘어지고
꾀꼬리가 꾀꼴꾀꼴 울음 그치지 못하는 것은
임 이별의 슬픔 이기지 못함인가

池邊楊柳綠垂垂
蠟曙春愁若自知
上有黃隱啼未己
不堪趣紂送人時

지은이 : 금원(錦園). 원주 사람. 김시랑, 덕희(金侍郞 德熙)의 소실.

참 고 : 황리(黃麗鳥)―꾀꼬리

 
 
孤石 竹亭里 雪景 (47×68㎝)매화 옛등걸에

매화

매화 옛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음직도 하다마는
춘설이 어지러이 흩날리니 필듯말듯 하여라
梅花 노등걸에 봄졀이 도라오니
노퓌던 柯枝에 픗염즉도 *다마*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니 필동말동 *여라

지은이 : 매화(梅花). 생몰년 미상, 조선시대 평양 기생. 애절한 연정을 읊은
시조 8수(그중 2수는 불확실함)가 『청구영언』에 전한다.

 
 
公州 문동골 (47×69㎝)待郞

능운

임 가실 제 달 뜨면 오마시더니
달은 떠도 그 임은 왜 안 오실까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임의 곳은
산이 높아 뜨는 달 늦은가 보다

郞去月出來
月出郞不來
相應君在處
山高月出遲

지은이 : 능운(凌雲).

참 고 : 상응(相應)―생각해 보니

 
 
內山里의 겨울 (52×97㎝)玉屛

취선

마을 하늘은 물이런 듯 맑고 달빛도 푸르구나
지다 남은 잎에 서리가 쌓일 때
긴 주렴 드리우고 혼자서 잠을 자려니
병풍의 원앙새가 부러웁네

洞天如水月蒼蒼
樹葉蕭蕭夜有霜
十二擴簾人獨宿
玉屛還羨繡鴛鴦

지은이 : 취선(翠仙). 호는 설죽(雪竹) 김철손(金哲孫)의 소실.

참 고 : 십이상렴(十二擴簾)―긴 발을 뜻함

 
 
魯家村 (57×88㎝)

離別

일지홍

말은 다락 아래 매어 놓고
이제 가면 언제나 오시려나 은근히 묻네
임 보내려는 때 술도 떨어지고
꽃 지고 새가 슬피 우는구나
 
駐馬仙樓下
慇懃問後期
離筵樽酒盡
花落鳥啼時

지은이 : 일지홍(一枝紅). 성천(成川)의 기생.

참 고 : 선루(仙樓)―신선이 산다는 다락.
 
 
大埠古刹 (47×69㎝)묏버들 가려 꺾어

홍랑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잠자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묏버들 갈* 것거 보내노라 님의손*
자시* 窓밧긔 심거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 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지은이 : 홍랑(洪娘).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 때의 명기

 
 
台霞里 雪景 (53×97㎝)청산은 내 뜻이오

황진이

靑山은 내 뜻이오 綠水는 임의 情이로다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잊어 울면서 가는가
靑山은 내*이오 綠水* 님의 정情이
綠水 흘너간들 靑山이야 변(變)*손가
綠水도 靑山을 못니저 우러예여 가*고

지은이 : 황진이(黃眞伊). 생몰 미상. 조선 중종 때의 명기. 개성 출신.

 
 
大興寺 (48×70㎝)

黃昏

죽향

실버들 천만 가지 문 앞에 휘늘어져서
구름인 듯 인가를 볼 길 없더니
문득 목동이 피리불며 지나간다
강 위에 보슬비요 날도 저물어 가누나

千絲萬縷柳垂門
綠暗如雲不見村
忽有牧童吹笛過
一江烟雨自黃昏

지은이 : 죽향(竹香). 호는 낭각(琅珏). 평양 기생.
 
참 고 : 연우(烟雨)―아지랑이가 낀 것처럼 내리는 비
 
 
 
頭甸村 막다른 골목길 (57×88㎝)

秋月夜

추향

노를 저어 맑은 강 어귀에 이르니
인적에 해오라기 잠 깨어 날고
가을이 짙은 탓인가 산빛은 붉고
흰 모래엔 달이 둥글다

移棹淸江口
驚人宿驚飜
山紅秋有色
沙白月無痕

지은이 : 추향(秋香)

 
 
白沙村 (57×88㎝)半月

황진이

崑崙의 귀한 玉을 누가 캐어
織女의 얼레빗을 만들었는가
오마던 임 牽牛 안 오시니
근심에 못 이겨 허공에 던진 거라오

誰斷崑崙玉
裁成織女梳
牽牛一去後
愁擲碧空虛

지은이 : 황진이(黃眞伊). 중종 때 기생.

 
 
寺谷 會鶴里 (47×69㎝)

秋雨

혜정

금강산 늦가을 내리는 비에
나뭇잎은 잎마다 가을을 울리네
십년을 소리없이 흐느낀 이 신세
헛된 시름에 가사만 젖었네

九月金剛蕭瑟雨
雨中無葉不鳴秋
十年獨下無聲淚
淚濕袈衣空自愁

지은이 : 혜정(慧定). 여승(女僧).

참 고 : 가의(袈衣)―중이 입는 옷.
 
 
 
三成里 江邊 (53×97㎝)

어이 얼어 자리

한우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원앙 베개와 비취 이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서 잘까 하노라
어이 얼어 잘이 므스 일 얼어 잘이
鴛鴦枕 翡翠衾을 어듸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비 맛자신이 녹아 잘* *노라

지은이 : 한우(寒雨). 조선 선조 때 임제(林悌)와 가까이 지내던 평양 기생.

 
 
西雙版納湖畔 (47×68㎝)長霖

취연

열흘이나 이 장마 왜 안 개일까
고향을 오가는 꿈 끝이 없구나
고향은 눈 앞에 있으나 길은 먼 千里
근심 어려 난간에 기대 헤아려보노라

十日長霖若未晴
鄕愁蠟蠟夢魂驚
中山在眼如千里
堞然危欄默數程

지은이 : 취연(翠蓮). 자는 일타홍(一朶紅). 기생

참 고 : 장림(長霖)―긴 장마
중산(中山)―지명. 사랑하는 임이 있는 곳, 또한 고향

 
 
水海子村 (47×68㎝)晩春

죽서
꽃이 지는 봄은 첫 가을과 같네
밤이 되니 은하수도 맑게 흐르네
한 많은 몸은 기러기만도 못한 신세
해마다 임이 계신 곳에 가지 못하고 있네

落花天氣似新秋
夜靜銀河淡欲流
却恨此身不如雁
年年未得到原州

지은이 : 죽서(竹西). 철종 때 사람. 서기보(徐箕輔)의 소실

 
 
安東 李陸史마을 (45.5×68㎝)

履霜曲―작자 미상

비가 내리다가 개고 눈이 많이 내린 날에
서리어 있는 수풀의 좁디좁은 굽어돈 길에
다롱디우셔 마득사리 마득너즈세 너우지
잠을 빼앗아간 내 임을 생각하니
그러한 무서운 길에 자러 오겠는가?
때때로 벼락이 쳐서 無間地獄에 떨어져
고대 죽어버릴 내 몸이
내 임을 두고서 다른 임을 따르겠는가?
이렇게 하고자 저렇게 하고자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는 期約입니까?
맙소서 임이시여 임과 한 곳에 가고자 하는 기약뿐입니다

지은이 : 작자 미상

 
月影의 農家 (97×148㎝)河橋

연희

은하수 다리에서 견우직녀 이 날 저녁에 만나
옥동에서 다시 슬프게 헤어지네
이 세상에 이 날이 없었더라면
백년을 즐겁게 살아가리

河橋牛女重逢夕
玉洞郞娘恨別時
若使人間無此日
百年相對不相移

지은이 : 연희(蓮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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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즐기기

 

첫째마당 ― 한자를 외우자

 

 지금 북반부에서는 한자를 쓰지 않는다. 우리 나라 언어생활에서 한자를 몰라도 특별히 불편한 일은 없으나 한자문화권인 우리 나라는 옛날부터 한자를 써왔기때문에 한자의 지식이 있으면 여러가지 재미있는 정보를 얻을수 있는것도 사실이다. 한시도 한자를 알고 읊으면 두배, 세배 깊숙이 그 멋을 즐길수 있다.

(1) ≪한자≫와 ≪한문≫은 다르다
 우리 나라에서는 ≪한자≫란 말과 ≪한문≫이란 말을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두가지 단어는 뚜렷이 구별을 하는것이 낫다. ≪한자(漢字)≫는 그 문자자체를 지칭하며 ≪한문(漢文)≫은 한자로 쓴 글 문장, 즉 고대중국어의 문장을 지칭한다. 따라서 보통 ≪한문을 안다≫라고 할 때, 사실은 ≪한문≫을 아는것이 아니라 ≪한자≫를 아는것이다.

(2) 한자읽기는 의외로 쉽다
 한자는 일단 옥편을 찾으면 그 소리와 뜻을 쉽게 알수 있다. 그렇지만 한자를 볼 때마다 옥편을 찾는것도 번거로우니까 되도록이면 많은 한자를 기억하는것이 낫다. 최저한 글자가 복잡하지 않은 한자는 어느정도 알고있는것이 바람직하다.
 한자를 외울 때 마구 외워가면 너무 힘들다. 이왕이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얻게 외우고싶다. 다행히도 한자는 그렇게 외우는 길이 있는것이다.
 례를 들어 ≪구리 동(銅)≫자를 보자. 銅자는 ≪동≫이라고 발음한다. 이 銅자의 소리 ≪동≫은 그 한자속에 들어있는 同자와 같은 발음이다. 다시 말해 銅자는 그 속에 있는 同자 소리를 빌려서 ≪동≫이라고 발음을 하는것이다. 銅자에서 同자를 뺀 나머지 金자 부분은 이 한자의 뜻과 관련된다. 구리는 금속이기때문에 쇠금변이 달려있는것이다. 이와 같이 한쪽이 소리를 나타내고 다른 쪽이 뜻을 나타내는 한자 구성원리를 ≪형성(形聲)≫이라고 하는데 한자의 80%는 이 형성에 의해 만들어져있다. 그러니까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그 한자의 어느 부분이 소리를 나타내는지를 알면 그 한자 소리는 대략 추측할수 있는것이다. 銅자의 경우는 同자와 발음이 똑같지만 ≪통 통(筒)≫자처럼 발음이 약간 변형될수도 있지만 ≪동≫과 ≪통≫을 보아도 알수 있듯이 전혀 관련이 없는 소리로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
 형성자의 례를 여러가지로 들어보자.

 이것으로 (한자 뜻은 몰라도) 한자를 읽을수는 있게 된다.
 어느쪽이 소리며 어느쪽이 뜻이냐를 가려내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반적으로 부수가 되여 있는 부분은 뜻을 나타낸다. 삼수변이나 갓머리 등은 뜻을 나타내는것이다. 그러고보니 海(해), 湖(호), 滴 등은 다 물에 관한 한자이고 家(가), 宿(숙), 宅(택) 등은 집에 관한 한자다. 그렇게 생각하면 ≪넓을 호(浩)≫자가 원래 바다나 호수가 넓은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라는것까지 짐작할수 있다.

(3) 한자 뜻은 한자말을 활용하라
 한자를 그저 읽는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으나 뜻은 읽기보다 어려울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옥편을 마구 찾기보다 자기가 알고있는 한자지식을 활용하는것이 더 편하다. 그 지식인즉 평소에 많이 쓰고있는 한자말이다. 물론 이 활용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자를 읽을줄 알아야 한다.
 례를 들어 ≪報(보)≫란 한자의 뜻을 알고 싶을 때, 이 報자가 들어있는 한자말을 생각해본다. 그러면 ≪보고(報告)≫란 단어로부터 이 한자가 ≪알리다≫란 뜻을 갖고있는것을 알수 있다. 또 ≪보답(報答)≫이란 단어로부터 ≪대가를 갚다≫란 뜻도 있는것을 알수 있다. 이렇게 한자말을 활용하면 의외로 재미있는 사실을 만날 경우도 있다. ≪보도(報道)≫에서 왜 ≪길 도(道)≫자가 쓰이는지 너무 궁금한데 옥편을 찾아보면 道자의 뜻으로 ≪말하다≫가 있다. 결국 ≪報道≫의 뜻은 ≪알리고 말하다≫인것이다. 이런 발견이 있으면 ≪休道(휴도)≫란 구가 ≪말하기를 멈추다≫라고 알수 있다.

 

 

둘째마당 ― 한문을 읽자

(1) 동사를 찾아라
 한문은 중국어이다. 중국어는 조선어와 달리 동사뒤에 목적어가 오는 영어식의 어순이다. 그러니까 한문을 읽을 때는 어디에 동사가 있는지를 찾아내는것이 중요하다. 동사만 찾으면 그 앞부분은 기본적으로 주어가 되고 뒤부분은 목적어가 되는셈이다.
 ≪國之語音異乎中國≫란 훈민정음의 서두부분은 ≪異≫가 동사이다. 다른 한자들은 다 명사적이니까 이것밖에 없다고 추측할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앞부분인 ≪國之語音≫이 주어가 되고 ≪乎中國≫이 목적어가 된다(정확히 말하면 목적어는 아니지만 목적어 비슷한것이긴 하다). 따라서 이 글의 뜻은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다르다≫가 되는것이다.
 두보의 시 ≪春望(춘망)≫의 서두 부분 ≪國破山河在≫는 ≪破≫와 ≪在≫가 동사로, ≪國破≫와 ≪山河在≫ 두문장으로 이루어져있다. 둘다 동사앞에 말이 있기때문에 그 말들은 주어가 된다. 뜻은 ≪나라가 격파되였는데 산하는 (그대로) 있다≫이다. 한문에서는 과거형이니 현재형이니 하는것은 없기때문에 ≪國破≫는 ≪나라가 격파되였다≫처럼 알아서 과거형으로 해석한다.

(2) 꾸미는 말은 우리 말과 같이
 꾸미는 말은 조선어와 같이 꾸며지는 말의 앞에 오기때문에 문제는 없을것이다. ≪푸른 하늘≫이라고 할 때는 ≪靑空≫이라고 하면 되고 ≪크게 화낸다≫ 할 때는 ≪大怒≫라고 하면 된다.
 不(불), 非(비), 莫(막) 등 부정을 나타내는 말은 앞에 온다. 우리가 흔히 쓰는 한자말 ≪불신(不信; 믿지 않음)≫, ≪비정(非情; 정 없음)≫, ≪막론(莫論; 론하지 않음)≫을 생각하면 쉽게 리해된다.

(3) 한문에서 흔히 쓰는 한자를 꼭 외워두자
 한문에는 문법적인것을 나타내는 한자가 있는데 흔히 나오는것은 꼭 외워두어야 한다.

  • 是(시) … ① 영어 be동사와 같은 것. ≪我是學生≫은 ≪나는 학생이다≫. ② 가끔 ≪이, 이것≫이란 뜻도 된다.
  • 之(지) … ① 토 "-의"  ② 대명사 ≪이, 이것, 여기≫  ③ 한시에서는 ≪가다≫란 동사로서 쓰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요주의.
  • 而(이) … 문장과 문장을 련결하는 접속사로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의 뜻. 론어의 ≪學而時習之≫(배우고 그리고 때마다 이를 익힌다)에도 나온다.
  • 欲(욕) … ≪∼고 싶다≫란 뜻도 있지만 동사앞에 있으면 ≪∼을 것 같다≫란 뜻이 된다. 將(장)도 그런 뜻이 있으니 요주의.
  • 當(당) … 동사앞에서 ≪∼어야 하다≫란 뜻. 우리가 쓰는 한자말중에도 ≪당연(當然)≫이란 말이 있는데 ≪그렇게 되여야 한다≫란 뜻이다.
  • 須(수) … 동사앞에서 ≪꼭 ∼어야 하다≫란 뜻. ≪필수(必須)≫의 須자다.
  • 若(약), 如(여) … ① 문장 첫머리에서는 ≪만약에≫, ② 문중에서는 ≪∼와 같다≫란 뜻.
  • 何(하) … ≪무엇≫ 이외에도 ≪어디, 언제, 왜, 어떤, 어느≫도 나타낸다.
  • 安(안) … 동사앞에 있으면 ≪어찌≫란 뜻이 된다. 요주의.
  • 蓋(개) … 두껑 개자인데 신기하게도 ≪아마 ∼을 것이다≫란 뜻이 된다.
  • 豈(개) … ≪어찌 ∼을까≫란 뜻.
  • 矣(의) … 강조의 뜻 등 어떤 뉘앙스를 가미시키기 위해 문말에 놓는 한자.
  • 焉(언) … ① 동사앞에 있으면 安과 같고 ② 문말에 있으면 矣와 비슷하다.
  • 也(야) … ① 문중에서는 ≪∼이야≫, ② 문말에서는 ≪∼이다≫.

 또 한시에서 많이 쓰이는 한자도 외워두면 편리하다.

  • 辭(사) … ≪떠나다≫. 發도 같은 뜻을 나타낸다.
  • 故人(고인) … 죽은 사람이 아니라 ≪동무≫란 뜻.
  • 疑是(의시) … ≪마치 ∼와 같다≫ 리백이 즐겨 쓴 문구다.
  • 蕭蕭(소소) … 쓸쓸한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
  • 兮(혜) … 말소리를 고르는 한자. ≪에헤라≫ 정도로 별뜻은 없다.

셋째마당 ― 한시를 읊어보자

 사실은 한시는 보통 한문보다 쉽다. 왜냐 하면 귀절이 뚜렷하기때문이다. 오언시는 한구가 다섯자인데 이 다섯자는 2-3으로 나누어지며 칠언시는 한구가 2-2-3으로 나누어진다. 례를 들면 ≪春眠不覺曉, 處處聞啼鳥≫란 구는 ≪春眠-不覺曉, 處處-聞啼鳥≫로 나누어진다.
 이 시는 맹호연(孟浩然)의 유명한 ≪춘효(春曉)≫의 일부분이다.

(례1) 春曉(춘효)   孟浩然(맹호연)

 [첫째구] 覺이 동사. 직역을 하면 ≪봄의 잠은 새벽을 느끼지 않는다≫.
 [둘째구] 동사는 聞이다. 啼도 동사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鳥를 꾸며서 ≪우는 새≫로 해석해야 한다. 직역하면 ≪곳곳에 우는 새를 듣는다≫.
 [셋째구] 여기서는 동사가 없다. 來는 동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夜처럼 시간을 나타내는 말에 붙은것은 ≪∼이래≫란 뜻이다. 직역은 ≪밤부터 풍우의 소리≫.
 [넷째구] 동사같은 말이 落과 知 두개가 있는데 진짜동사는 知이고 落은 花와 함께 ≪꽃이 떨어지기가≫란 주어가 되여있다. 직역하면 ≪꽃이 떨어지기가 많고 적음을 안다≫가 되는데 多少는 현대 중국어에서도 ≪얼마≫란 뜻이 있다. 따라서 知多少는 ≪얼마인지 아느냐≫가 된다.
 한시를 읽을 때는 압운한 부분에 약간 힘을 주어서 읽으면 압운소리가 뚜렷이 울려서 좋다. 그러니까 ≪춘면불각효오∼, 처처문제조오∼≫처럼 약간 과장될 정도로 힘주는것이 좋다.

(례2)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황학루송맹호연지광릉)   李白(리백)

 [제목] 送이 동사이며 그 앞의 黃鶴樓는 장소이니 ≪황학루에서 보낸다≫란 뜻이다. 送 뒤부분이 목적어가 되는데 그중 之가 동사로 있다. 이 之는 ≪가다≫란 뜻이다. 지역하면 ≪맹호연이 광릉으로 감을 황학루에서 보낸다≫가 된다.
 [첫째구] 辭가 동사다. 직역은 ≪친구가 서쪽에서 황학루를 떠난다≫.
 [둘째구] 下는 ≪아래≫가 아니라 ≪내리다≫라는 동사다. 煙花三月가 시간을 나타내여 직역하면 ≪연화 삼월에 양주로 내려간다≫가 된다. 煙은 ≪연기≫가 아니라 ≪안개≫란 뜻으로 꽃 필적에 끼는 안개를 煙花라고 한다. 산수화를 보는듯한 문구다.
 [셋째구] 이 구에서 동사는 맨마지막에 있다. 孤帆遠影가 주어이며 碧空은 장소이다. 직역하면 ≪홀돛의 먼 모습이 푸른 하늘에 사라진다≫.
 [넷째구] 동사는 看이고 그 뒤부분 전부가 목적어이다. 목적어 부분은 문장처럼 되여있는데 長江이 주어, 天際가 장소, 流가 동사로 ≪장강이 하늘끝으로 흘러감≫이란 구성이다. 天際는 낯선 말이지만 ≪하늘 천(天)≫에다 ≪가 제(際)≫이기때문에 하늘가, 즉 하늘끝쪽이란 뜻이다. 직역하면 ≪장강이 하늘 끝으로 흘러감을 오직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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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詩, 즐거운 괴로움

예술에서 上達境界로 진입하려면, 잗단 技巧 쯤은 까맣게 잊어야 한다.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榮辱도 得失도 生死까지도 마음에 두어서는 안된다. 그때 예술은 비로소 참 모습을 드러낸다.

藝術과 狂氣

대상을 향한 미친듯한 몰두 없이 위대한 예술은 이룩되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하찮은 기교라 할지라도 자신을 온전히 잊는 몰두가 있어야만이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예로부터 예술의 천재들에게는 스스로도 주체하기 힘든 狂氣가 있다. 인간의 熱情이 뿜어내는 거친 호흡과, 다른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그들 안에서는 느껴진다.

崔興孝는 조선 초의 유명한 名筆이다. 일찍이 과거를 보러 갔는데, 답안을 쓰다 보니 우연히 한 글자가 王羲之의 글씨와 같게 되었다. 넋을 잃고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뚫어지게 그 글자만을 바라보던 그는, 답안지를 차마 제출하지 못하고 그냥 품에 넣고 돌아오고 말았다. 우연히 같게 써진 한 글자 앞에서 그는 立身出世의 꿈마저도 까맣게 잊고 말았던 것이다. 李澄은 조선 중기의 화가이다. 어려서 다락 위에 올라가 그림을 익히고 있는데, 집에서는 간 곳을 몰라 사방을 찾아 헤매다가 사흘 만에야 그를 찾았다. 아버지는 노하여 볼기를 쳤다. 李澄은 울면서 눈물을 찍어 새를 그렸다. 宗室 鶴山守는 名唱으로 이름 났다. 산에 들어가 노래 공부를 할 때면, 한 곡을 부를 때마다 모래 한 알을 신에다 던져, 신이 모래로 가득차야 돌아왔다. 한번은 도적을 만나 죽게 되었는데, 바람결을 따라 노래를 불렀더니 도적 떼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연암 박지원의 〈炯言挑筆帖序〉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디 그뿐인가. 秋史 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草書에 능했던 名筆 李三晩은 일생에 먹을 갈아 구멍을 낸 벼루 만도 여러 개였다고 한다. 낙수물이 돌을 뚫는다더니, 벼루 여러 개가 구멍 나도록 그는 열심히 먹을 갈고 또 썼다. 師曠은 전국시대의 유명한 樂師였는데, 그는 소리를 듣는데 방해가 된다하여 자신의 눈을 찔러 멀게 하였다. 예술도 이쯤 되면 그 이르러 간 경지를 보통 사람은 측량할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술에서 上達境界로 진입하려면, 잗단 技巧 쯤은 까맣게 잊어야 한다.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榮辱도 得失도 生死까지도 마음에 두어서는 안된다. 그 때 예술은 비로소 참 모습을 드러낸다.

不知老之將至,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

고려 때 金黃元이란 이가 평양 감사가 되어 浮碧樓에 올랐는데, 누각에 걸린 고금의 題詠이 성에 차는 것이 없는지라 詩板을 다 떼어 불사르게 하고는 하루 종일 난간에 기대 괴로이 읊조렸으나 다만,

장성 한 면에는 넘실대는 강물이요
넓은 들 동편에는 점점이 산일래라.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

라는 두 구절을 얻고는, 뜻이 고갈되어 마침내 통곡하고 돌아왔다는 일화가 역대 시화에 두루 전한다.

역시 고려 때 유명한 시인 康日用은 백로를 가지고 시를 지으려고, 비만 오면 짧은 도롱이를 입고 성문 밖 天水寺 남쪽 시내 위로 가서 황소 등에 걸터 앉아 이를 관찰하였다. 날마다 수염을 꼬며 고심하기 백 일이 다 되어 문득
푸른 산 허리를 날며 가르네. 飛割碧山腰"
라는 한 구를 얻고는, "오늘에야 고인이 이르지 못한 것을 비로소 얻었다. 뒤에 마땅히 이를 잇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뒤에 李仁老가 "교목의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占巢喬木頂"를 그 앞에 얹어 짝을 맞추었다.

조선 중기의 시인 申光漢은 일찍이 낮잠을 자다가 소나기가 연꽃 화분을 지나는 소리에 잠을 깨어 문득

꿈이 서늘터니 연 잎에 비가 쏟아지네. 夢凉荷瀉雨

라는 시구를 얻었다. 그 뒤 몇 해가 지나도록 그 대구를 얻지 못하여, 율시 한 수를 이루었으나 그 행만은 빈칸으로 비워두고 반드시 절묘한 대구를 얻어 채우려 하였다. 朴蘭이 이 말을 듣고, "옷이 젖자 돌에선 구름이 이네. 衣濕石生雲"가 어떠냐고 했으나, 신광한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죽을 때까지 이 구절의 대구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상의 예화들은 선인들의 시 한 구절에 대한 애착과 노력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권필은 조선 중기의 시인인데, 평생 벼슬길에 몸담지 않았다. 이를 안타까이 여겨 벼슬을 권하는 벗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古書 여러 권이 있어 홀로 즐기기에 족하고, 시는 비록 졸렬하지만 마음을 풀기에 족하며, 집이 비록 가난해도 또한 막걸리를 댈만은 하니, 매양 술잔 잡고 시를 읊조릴 때면 유연히 스스로 얻어 장차 늙음이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하니, 저 이러쿵 저러쿵 하는 자들이 내게 있어 무엇이리요?"

그는 타고난 시인 기질을 어쩌지 못해, 불의는 결코 좌시하지 못했다. 부딪치는 일마다 氷炭不相容의 형국을 빚었다. 다만 시를 지을 때만은 유연히 늙음이 장차 이르는 것조차 까맣게 몰랐으니, 그는 삶의 의미를 시 속에서 찾았던 생래의 시인이었다. 〈戱題〉라는 시에서 그는,

시는 고민 걷어가 때로 붓을 잡았고
술은 가슴 적셔줘 자주 잔을 들었지.
詩能遣悶時拈筆
酒爲汀胸屢擧圡

라 하여,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지으며 타는 가슴 속의 번민을 토로했던 자신의 삶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뒷날 그는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풍자한 시 한 수 때문에 왕의 노여움을 입어, 곤장을 맞고 귀양길에 올랐다가 杖毒을 추스리지 못해, 한창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야말로 시에 살고 시에 죽었던 시인이다.

당나라 때 周樸이란 이는 경물과 만나면 괴로이 시귀를 찾으며 읊조렸다. 산에서 해가 지는데 돌아오기를 잊은 적도 있었다. 만약 좋은 시귀를 얻게 되면 더욱 신이 나서 즐거워 했다. 한번은 들판에서 등에 나무를 지고 오는 나무꾼을 만났는데, 그를 꽉 잡으며 소리 지르기를, "잡았다!"고 하였다. 나무꾼은 너무 놀라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그만 나무를 진 채로 땅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때 마침 순찰 돌던 나졸이 그 광경을 보고 나무꾼을 도적인 줄 알고 붙잡아 신문하였다. 周樸이 급히 달려와 말하기를, "내가 저 나무꾼을 보자마자 갑작스레 기막힌 영감이 떠올라 좋은 시구를 얻었소.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를 붙잡았던 것이오."라 하고는, 지은 시를 읊조리기를,

자손들은 어디메서 한가롭길래
솔잣나무 대신해서 땔감 되었나.
子孫何處閑爲客
松柏被人代着薪

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尤惼의 《全唐詩話》에 보인다.

당나라의 천재 시인 李賀는 매일 아침 파리한 나귀를 타고 집을 나서는데, 나귀 등에는 낡아 헤진 비단 주머니가 하나 매달려 있었다. 길을 가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메모하여 주머니 속에 넣곤 하였다. 저물어 돌아오면, 그 어머니가 계집 종을 시켜 주머니를 꺼내 보게 하였다. 써 놓은 것이 많으면 문득 말하기를, "이 얘가 심장을 다 토해내어야만 그만 두겠구나."하며 한숨 쉬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李賀는 그 메모지를 가져다가 먹을 정성스레 갈아 원고지에 또박또박 써서는 다른 주머니 속에 보관하였다. 술에 크게 취하거나 초상이 있는 날이 아니면 언제나 이같이 했고, 이미 지난 원고는 다시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렇듯 作詩에 지나치게 골몰한 나머지 건강을 해친 그는 27세의 아까운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죽기 전에 한 비단 옷 입은 사람이 나무 판 하나를 가지고 와서는 그에게 말하기를, "옥황상제께서 백옥루가 완공되어 그대를 불러 상량문을 짓게 하고자 하신다."하였는데, 과연 얼마 뒤에 죽었다. 이 뒤로 세상에서 아까운 인재가 요절하면, 천상에 또 백옥루가 완공된 모양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당나라 때 劉希夷가 일찍이 〈白頭吟〉을 지었는데, 그 한 연에 이르기를,

올해 꽃 지자 낯빛도 시어지니
내년 꽃 피면 다시 누가 있으리오.
今年花落顔色改
明年花開復誰在

라 하였다. 짓고 나서 생각하니, 시의 내용이 매우 불길한지라 이를 지워 버리고 다시 읊으니,

해마다 해마다 꽃은 비슷하건만
해마다 해마다 사람은 같질 않네.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라고 하였다. 그래도 詩想이 역시 펴지질 않자, "死生은 운수가 있는 것이다. 어찌 이까짓 빈 소리에 연연하랴!"하고는 앞서 지웠던 것까지 모두 남겨 두었다. 그의 장인 宋之問이 사위가 지은 위 구절을 너무 아낀 나머지, 자기에게 줄 것을 간절히 청하였다. 劉希夷는 장인에게 짐짓 그러마고는 했으나 끝내 주지는 않았다. 이에 자기를 속였다 하여 격분한 송지문은 하인을 시켜 흙주머니로 눌러 사위를 죽여 버리고 말았다. 그의 나이 서른도 못된 때의 일이다. 시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낳은 패륜의 살인극이다. 《唐才子傳》에 전한다. 사실 여부야 차치하고라도, 과연 시에 대한 이같은 집착과 애착이 있고서야 진정으로 시를 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周興嗣가 하루 저녁 사이에 〈千字文〉을 만들어 올렸는데 수염과 머리털이 다 세어 버렸다. 돌아와서는 두 눈을 한꺼번에 실명하고, 죽을 때에는 마음이 丹田을 떠난 것 같았다 한다. 謝靈運은 반일 동안에 시 백 편을 짓고서 갑자기 이가 열 두 개나 빠졌으며, 孟浩然은 눈썹이 모두 떨어졌다고도 한다. 魏裳은 《楚史》 76권을 저술하고는 심혈이 모두 닳아서 죽고 말았다. 《지봉유설》에 실려 있다. 창작한다는 것은 이같이 피를 말리는 일이다.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韓愈는 〈貞曜先生墓誌銘〉에서 孟郊의 시에 대해, "그 시를 지음에 미쳐서는,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 듯 하였다. 及其爲詩, 墫目鉥心"고 하여, 준열한 시정신을 기린 바 있다. 실제 孟郊는 한 편의 좋은 시를 짓기 위해, 칼로 자기 눈을 찌르고 가슴을 도려내는 것 이상의 고통을 달게 여겼던 시인이다. 그의 시에,

밤새 읊조려 새벽까지 쉬잖으니
괴로이 읊조림, 귀신조차 근심하리.
어찌하여 제 스스로 한가치 못하는가
마음이 몸과는 원수 되었네.
夜吟曉不休
苦吟鬼神愁
如何不自閑
心與身爲仇

라 한 것이 있다. 오죽하면 몸이 마음을 원수로 알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마는, 시를 향한 마음이 골수에 깊이 박힌 痼疾이 되고 보니 자신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푸념이다. 〈宿欒城驛却寄常山張書記〉에서는,

일경이 다 가고 삼경 되도록
이별의 맘 읊으려도 되지를 않네.
一更更盡到三更
吟破離心句不成

라 하여 詩作에 골몰타가 밤을 꼬박 지새는 심경을 노래하였고, 또 〈秋宿山館〉에서는,

산 속 여관 앉아서 새벽을 기다리니
기나긴 밤 시 짓느라 정신을 괴롭혔네.
山館坐待曉
夜長吟役神

라 하였다. 〈秋日閑居寄先達〉에서는,

백년 인생, 뜻 맞는 일 없어도 괜찮지만
하루라도 시를 짓지 않고는 못견디겠네.
乍可百年無稱意
難敎一日不吟詩

라 하였고, 또 〈山中寄友人〉에서는,

살 도리 찾을 재주 없는 것이 아닐세
이 모두 시 짓느라 바쁜 때문이지.
不是營生拙
都緣覓句忙

라 하여, 생활의 무능까지도 시 외에 딴 곳에는 잠시도 정신을 팔 수 없는 탓으로 돌리고 있다. 〈苦吟〉이란 작품에서는 숫제,

살아선 한가한 날 결코 없으리
죽어야만 시를 읊조리지 않겠네.
生應無暇日
死是不吟時

라고 하여, 죽기 전에는 끝이 없을 주체할 길 없는 창작에의 열정을 토로하고 있다. 말하자면 孟郊는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시를 위해 살았던 시인이다. 시를 빼고 나면 그의 삶에서 남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되니, 목숨을 걸고 시를 썼던 시인이 바로 그다.

이 孟郊와 나란히 일컬어지는 시인에 賈島가 있다. 송나라 蘇軾은 〈祭柳子玉文〉에서 "맹교는 차고, 賈島는 수척하다"고 하여, '郊寒島瘦'의 말이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이 賈島 또한 孟郊 이상으로 苦吟의 詩人으로 유명하다. 그는 3년을 沈吟한 끝에 〈送無可上人〉의 頸聯에서,

홀로 걸어가는 연못 아래 그림자
자주 쉬어가는 나무 가의 몸.
獨行潭底影
數息樹邊身

이란 得意句를 얻고는 감격한 나머지 그 아래에다가 다시 시 한수를 써서 得句까지의 사연을 注내어 적었다.

두 구절을 삼 년 만에 얻고서
한 번 읊조리매 눈물이 주루룩 흐르네.
벗들이 좋다고 기리지 아니하면
고향 산 가을에 돌아가 눕겠노라.
兩句三年得
一吟淚雙流
知音如不賞
歸臥故山秋

득의의 시구를 얻고 환호작약 하다가, 끝내 落淚에 이르는 詩心이 갸륵하기까지 하다. 더욱이 자신의 이 시를 안목있는 이들이 칭찬하지 아니하면 아예 죽어 고향 산에 묻히고 말겠노라 하였으니, 그 자부가 또한 대단하다.

《唐才子傳》은, 賈島가 골똘히 作詩에 빠져들 때에는 앞에 王公貴人이 있어도 깨닫지 못하였으며, 마음은 아득한 하늘 위에서 놀고, 생각은 끝없는 속으로 들어 갔었다고 적고 있다. 또 "비록 길 가거나 머물거나 자리에 누울 때나 밥먹을 때나 괴로이 읊조리기를 그만두지 않았다"고도 하였다. 일찍이 절둑거리는 노새를 타고 우산을 쓰고서 長安의 거리를 가로질러 가는데, 가을 바람이 매서워 길 위에 낙엽을 불어가므로 홀연,

낙엽은 장안 길에 가득하건만
가을 바람은 渭水로 불어오누나.
落葉滿長安
秋風吹渭水

란 구절을 얻었다. 기쁨을 가눌 길 없었던 그는, 다짜고짜 大京兆 劉棲楚의 집에 뛰어들었다가 하루 밤 구금되어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석방되었다.

또 한번은 李凝의 幽居를 찾아 가다가,

새는 연못 가 나무에서 잠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미누나.
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

라는 시귀를 얻었다. 그리고는 '推'로 할까 '敲'로 할까 결정치 못하고, 손짓 발짓 하며 가다가 그만 京兆尹 韓愈의 수레를 가로 막고 말았다. 좌우의 하인들이 賈島를 韓愈 앞에 무릎 꿇게 하고 힐문하니, 賈島가 사실대로 이야기 하였다. 수레를 멈추고 한참을 서 있던 韓愈는 "敲字가 낫겠네"하고는, 함께 돌아가 詩道를 논하며 布衣의 사귐을 맺었다. 그리고는 아예 중 노릇을 그만 두고 과거에 응시케 하였다. 두 글자가 다 좋지만, '推'라 하면 문을 그저 삐꺽 하고 밀며 들어가는 것이니 李凝과 미리 약속이 되어 있음이요, '敲'라 하면 똑똑 노크하는 것이니 서로 약속이 없는 불시의 방문이 된다. 못 가에 새도 잠든 밤의 적막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는 과연 삐꺽하고 문을 미는 소리 보다는, 청명하게 울려 퍼지는 똑똑 소리가 더 어울림직 하다. 이때에는 孟郊가 이미 세상을 뜨고 없었으므로 韓愈는,

孟郊가 죽어 북망산에 묻힌 뒤
해와 달 바람 구름, 문득 한가해졌네.
문장이 끊어질까 하늘이 염려하여
賈島를 다시 내어 인간에 있게 했네.
孟郊死葬北邙山
日月風雲頓覺閑
天恐文章渾斷絶
再生賈島在人間

라는 시를 지어 주기까지 하였다. 賈島는 매년 그믐날이 되면 반드시 그 한 해 동안에 지은 작품을 책상 위에 모아 놓고, 향을 살라 두 번 절하고는 술을 부어 빌기를, "이것이 내 한 해 동안의 苦心함이다."라 하며, 취토록 술 마시며 노래 불렀다고 한다.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

《葉石林記》란 책에는 송나라 때 陳師道의 일화가 실려 전한다. 그는 산수를 노닐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곧 돌아와서 이불을 머리 끝까지 푹 뒤집어 쓰고 침상에 누워 버린다.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면, 즉시 고양이나 개는 멀리 쫓고 애기는 안고 어린애는 데리고 가서 이웃집에 맡긴다. 그리고는 그가 시를 완성하기를 기다린다. 시가 완성된 뒤라야 감히 다시 애도 데려오고 고양이와 개도 불러올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사흘 씩 방에 쳐박혀 나오지 않는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시인이 고심참담한 결과만을 놓고 좋으니 나쁘니, 잘 되었네 못 되었네 말들 하지만, 정작 그 갈피 갈피에 서린 고초는 간과해 버리기 일쑤이다. 古人이 作詩의 괴로움을 읊은 시 몇 구를 살펴 보자.

杜甫는 〈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이란 작품에서,

내사 성벽이 佳句를 탐닉하여
말이 남을 놀래키지 못하면 죽어도 그치잖으리.
爲人性僻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

라고 만장의 기염을 토한 바 있고, 盧延讓은

한 글자를 알맞게 읊조리려고
몇 개의 수염을 비벼 끊었던가.
吟安一箇字
撚斷幾莖澙

라 하였는데, 그 작시에 골몰하느라 수염을 배배 꼬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절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方幹은

다섯 자의 시귀를 읊조리느라
일생의 심력을 다 바치었네.
吟成五字句
用破一生心

라고 하였다. 글자 하나 구절 하나를 놓고 左顧右度, 千思萬慮의 고심을 거듭하던 옛 사람들의 詩作 자세를 알 수 있다. 杜牧은,

시 읊조리는 괴로움 알고 싶은가
가슴 속에 가을 서리 서린듯 하네.
欲識吟詩苦
秋霜若在心

라 하였다. 시로 태운 안타까운 가슴은 얼마나 뜨거울 것인가 마는, 그간의 고초를 생각하면 차라리 가슴 속에 차디찬 가을 서리를 품은 듯 하다 했다. 그런데도 이 말이 전혀 엄살이나 과장으로 비치지 않는 것은 스스로에게 냉혹하리만치 준엄했던 옛 시인의 시정신 때문일 터이다. 李白은

묻노니 어찌하여 그다지 말랐더뇨
다만 이제껏 시 짓는 괴로움 때문일테지.
爲問如何太瘦生
只爲從前作詩苦

라 하여, 作詩에 골몰하느라 바싹 야위어버린 벗의 모습을 哀傷한 바 있다. 이 말이 있은 이후 시를 쓰다 야윈 것을 따로 '詩瘦'라 일컫기도 한다. 고금의 시 가운데 창작의 괴로움을 토로한 것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顧文济는

한 글자의 온당함을 구하느라고
긴긴 밤의 추위를 참아 견뎠네.
爲求一字穩
耐得半宵寒

라 했고, 杜荀鶴은

엄동설한 나그네 옷 죄다 잡히고
시구를 가다듬다 머리 다 셋네.
典盡客衣三尺雪
煉精詩句一頭霜

라 하였으며, 齊己는

좋은 시귀 찾기를 범 찾듯 했고
알아줌을 만나면 신선 만난듯 했지.
覓句如探虎
逢知似得仙

라 하였다. 劉昭禹는 〈風雪詩〉에서

구절마다 깊은 밤에 얻은 것이니
마음은 하늘 밖에서 돌아온다오.
句句夜深得
心從天外歸

라 하여 밤마다 作詩에 골몰하느라 넋이 아득한 하늘 밖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즐거운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다. 裵說은

入定에 든 스님처럼 괴로이 읊조리니
시귀를 얻어야만 공을 이루리.
苦吟僧入定
得句始成功

라 하여, 아예 詩道 三昧를 禪定에 든 高僧의 三昧境에다 견주기까지 하였다. 이렇듯 미친듯한 몰두 끝에 얻어진 시이고 보니, 그 시에 대한 애착 또한 유난스럽기 짝이 없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 技榻

歐陽修는 글을 지으면 벽에다 붙여 놓고 볼 때마다 이를 고쳤는데, 마지막 완성되고 나면 처음의 것은 한 글자도 남지 않은 적이 많았다고 한다. 蘇東坡가 〈赤璧賦〉를 지었을 때, 사람들은 그가 단숨에 이를 지은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를 짓느라 버린 초고가 수레 석 대에 가득하였다 했으니 그간의 고초를 헤아려 무엇하랴. 《事文類聚》에 나온다.

宋子京이란 이가 "나는 번번이 예전에 지은 문장을 볼 때마다 그것을 미워하여 반드시 불태워 버리고 싶어진다"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梅堯臣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그대의 글이 진보하는 것입니다. 나의 시 또한 그러합니다." 梅堯臣은 앞서 여러 시인이 그랬듯 詩에 痼疾이 들었던 시인으로, 그는 아예 〈詩癖〉을 제목으로 시를 지은 것이 있다.

인간의 詩癖이 돈 욕심 보다 더하니
애간장 졸이며 시귀 찾느라 몇 봄을 보냈던고.
주머니 비어 가난해도 개의하지 않았고
새로운 시귀 많은 것만 기뻐했었다.
다만 괴로이 층층의 하늘을 치달았을 뿐
곤궁 속에서 저승 갈 일은 따지지도 않았다.
人間詩癖勝錢癖
搜索肝脾過幾春
囊瞲無嫌貧似舊
風騷有喜句多新
但將苦意摩層宙
莫計終窮涉暮津

시에 대한 고질도 이쯤 되면 扁鵲이 열이라도 고칠 방도는 없게 되고 만다. 行住坐臥에 시와 무관한 것이 없고 보니, 시를 짓는다는 것은 이들에게 있어 매 순간 순간을 살아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韓愈는 시를 향한 자신의 병적인 몰두를 두고 "슬프다. 유익함도 없는 일에 정신을 낭비하니. 可憐無益費精神"라고 자조한 바 있다. 이수광은 또 《지봉유설》에서, "대체로 사람의 정신을 피폐케 하고 眞氣를 소모하게 만드는 것은 시라는 魔物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간혹 감흥이 일어난 때에 짓는 것은 좋으나 어찌 마땅히 남에게 좇아 나의 심신의 알맹이를 손상하겠는가."라는 충고를 남기기까지 하였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을 알면서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시인이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주체하기 힘든 표현 욕구를 옛 사람들은 '技榻'이란 말로 표현했다. '榻'이란 가려움증을 말한다. 아무리 긁어도 긁어지지 않는 가려움이 있다. 이런 가려움은 어떤 연고나 내복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표현욕'이 바로 技榻이다.

그렇다면 시인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어, 정신을 피폐케 하고 眞氣를 온통 소모해 가면서까지 旬鍛月鍊, 시구의 조탁에만 힘 쏟게 하는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魔物이 있으니, 옛 사람들은 이를 일러 詩魔라 했다. 李奎報 또한 梅堯臣과 마찬가지로 〈詩癖〉이란 제목의 긴 시를 남긴 바 있다.

나이 이미 칠십을 지나 보냈고
지위 또한 三公에 올라 보았네.
이제는 시 짓는 일 놓을만도 하건만
어찌하여 능히 그만 두지 못하는가.
아침엔 귀뚜라미처럼 읊조려 대고
저녁에도 올빼미인양 노래 부르네.
어찌할 수 없는 詩魔란 놈이
아침 저녁 남몰래 따라 와서는,
한 번 붙어 잠시도 놓아주지 않아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네.
날이면 날마다 心肝을 도려내
몇 편의 시를 쥐어 짜내지.
내 몸의 기름기와 진액일랑은
다 빠져 살에는 남아 있질 않다오.
뼈만 남아 괴롭게 읊조리나니
이 모습 정말로 우스웁구나.
그렇다고 놀랄만한 시를 지어서
천년 뒤에 남길만한 것도 없다네.
손바닥을 부비며 홀로 크게 웃다가
웃음을 그치고는 다시 읊조려 본다.
살고 죽는 것이 필시 시 때문일 터이니
이 병은 의원도 고치기 어렵도다.
年已涉縱心
位亦登台司
始可放雕篆
胡爲不能辭
朝吟類疘嶘
暮嘯如鳶眴
無奈有魔者
夙夜潛相隨
一着不暫捨
使我至於斯
日日剝心肝
汁出幾篇詩
滋膏與脂液
不復留膚肌
骨立苦吟梞
此狀良可嗤
亦無驚人語
足爲千載貽
撫掌自大笑
笑罷復吟之
生死必由是
此病醫難醫

아쉬울 것 없는 일흔을 넘긴 노인이 피골이 상접하도록 詩作에만 몰두하는 가긍한 정황을 적고 있다. 죽고 사는 것이 시에 달려 있다 했으니 이쯤 되면 병도 중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시 때문에 생긴 증세를 自家 진단하는 마당에서도 시로써 그 처방을 내리고 있으니, 과연 시를 떠나서는 단 하루도 삶의 보람은 없게 되고 말 것이 아닌가. 자신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모두 詩魔 때문이라 하였는데, 이 詩魔란 놈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 자세히 소개하기로 하겠다.

金得臣 또한 苦吟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시에 몰두할 때면 멍하니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한번은 점심 상에 상치를 얹어 내 오면서 일부러 초장을 놓지 않았다. 작시에 골몰한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보다 못한 아내가 초장이 없는데 싱겁지도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응응! 모르겠어." 했더란다. 《東詩話》에 보인다. 그도 〈詩癖〉시 한 수를 남기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이 내 성벽이 시 짓기를 좋아하여
시 지어 읊을 제면 글자 놓기 망설이네.
끝내 의심 없어야만 비로소 통쾌하니
일생의 이 괴로움 알아줄 이 그 누구랴.
爲人性癖最耽詩
詩到吟時下字疑
終至不疑方快意
一生辛苦有誰知

한 글자라도 바로 놓이지 않으면 마음에 쾌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평생 스스로를 이렇게 괴롭히니, 그 사이의 괴로움을 누가 알겠느냐는 넋두리다. 이어 그는 "아! 오직 아는 자라야 이러한 경계를 더불어 말할 수 있으리라. 지금 사람들은 얕은 배움으로 경솔하게 시를 지으면서도 남을 놀래킬 말만 지으려 든다. 또한 어리석지 않은가?"라는 말을 덧붙였다. 《終南叢志》에 보인다.

개미와 이

일찍이 높은 산에 올라 城市를 굽어 보니 마치 개미굴 같았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높은 데서 바라보니 참으로 한번 웃을 만 했다. 산이 城市보다 높다한들 능히 얼마나 되랴마는, 그런데도 이미 이와 같으니, 하물며 진짜 신선이 허공 속에 있으면서 티끌 세상을 굽어 본다면 또 어찌 다만 개미굴이겠는가?

허균의 《閒情錄》에 나오는 말이다. 실제로 옛 사람이 步虛登空하여 下界를 조감하는 遊仙詩에는 이러한 광경을 노래한 구절이 있다. 김시습은 〈凌虛詞〉에서,

굽어보니 땅 덩어리 너무도 아득한데
대붕은 잘 안 뵈고 하루살이만 우글대네.
下視塊蘇嗟渺渺
大鵬飛少恰惈多

라 하였고, 林悌는 〈效謫仙體〉에서

아래로 東華 땅을 내려다 보니
아득히 다만 누런 먼지 뿐.
下視東華土
茫然但黃埃

이라 한 바 있다.

근교 산에 올라가 시가지를 굽어 보고 있노라면, 그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또 저 안에서 복작대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가소롭기도 하다. 그럴 때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은 마치 구름 위에 신선인양 통쾌한 호연지기를 심어주기에 족하다. 대개 시인들이란 산 꼭대기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자이다. 그러면서 산 아래에서 헐고 뜯고 싸우는 인간들의 작태를 조소하고 비웃고, 때로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는 자이다. 그런데 연암 박지원이 벗에게 보낸 엽서에 보면 또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내가 일찍이 藥山에 올라 그 都邑을 굽어보니 그 사람과 물건이 달리고 뛴다는 것이 땅에 엎어져 꿈틀꿈틀 하는 듯하여, 마치 개미굴의 개미와 같아 능히 한 번 훅 불면 흩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 마을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바라보게 한다면, 언덕을 더위잡고 바위를 따라 덩굴을 잡고 나무를 안고 꼭대기에 올라, 망녕되이 스스로 높고 큰 체 하는 것은 또한 머리의 이가 머리카락에 붙어 있는 것과 무에 다르겠는가.

그러고 보면 시인들의 산 아래를 향한 연민에 찬 탄식이나, 조소 넘치는 비아냥도 저 아래 사람들이 보기에는 같잖기 그지 없는 일이다. 재미 있지 않은가. 한 사람은 위에서 아래를 보며 개미와 같다고 하고, 훅 불면 날려가 버릴 것 같다고 하고, 가소롭기 짝이 없다고 하는데, 아래서는 또 위를 보며 머리카락 위에서 비틀대는 이 같다고 하고, 괜히 저 혼자만 고상한 체 한다고 하고, 꼴같지 않게 논다고 눈을 흘기니 말이다.

사실 실용적이기로만 말한다면 시처럼 아무 짝에 쓸모 없는 것도 없고, 시인처럼 무능한 인간들도 없다. 공연히 세상 고민을 혼자 다 짊어진 듯이 끙끙대지만, 실제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金宗直은 〈永嘉連魁集序〉에서, "문장은 잗단 技藝이다. 詩賦는 더더욱 문장의 보잘 것 없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앞뒤 헤아리지 않고 보면 詩란 것은 小技인 문장 중에서도 가장 하급에 속하는 것이 된다. 丁若鏞은 또 〈五學論〉에서 "문장학이란 우리 道의 커다란 해독이다. 대저 이른 바 문장이란 것은 무엇이던가? 문장이란 허공에 걸려 있고 땅에 퍼져 있으니, 어찌 바람을 보고 달려가 붙잡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이겠는가?"라고 하고, 나아가 세상에 보탬이 되지 않는 글은, 한 평생 읽고 외워 본들 슬프고 우울하기만 하지 천하와 국가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문학의 심각한 해독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李珥는 〈仁物世藁序〉에서 "말이란 것은 소리의 정채로운 것이고, 文辭란 것은 말의 정채로운 것이며, 詩란 것은 文辭의 빼어난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권필도 "시라는 것은 말의 정채로운 것이다"라고 한 바 있다. 이렇게 보면 詩는 또 인간의 언어 가운데 가장 빛나는 보석이다. 사실 세상에는 쓸모만으로 따지면 맥 빠지는 일들이 많다. 춤이니 그림이니 하는 것들도 쓸모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사람을 배부르게 해주지도 않고, 그다지 기쁘게 해주지도 못한다. 마라톤 주자가 42.195Km를 달린다 한들 그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황영조의 쾌거에 마음 설렌다.

오늘날 말하는 唐나라 때의 시의 융성은 앞서 여러 제가의 시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약간은 미친듯한 열기와 목숨을 건 집착 속에서 이룩된 것이다.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두 눈을 바늘로 찌르며, 심장을 다 토해낼 듯, 가슴 속에 찬 서리가 든듯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이들은 오직 시를 위해 살았고, 시를 위해 일생의 심력을 다 쏟아 부었다. 古人의 이러한 거울 위에 오늘의 詩壇을 비추어 보면 어떨까? 날마다 시집이 쏟아져 나오고, 잡지마다 시가 넘쳐 흐르지만, 落淚의 감격은 고사하고 수염을 꼬는 고심의 흔적도 찾지 못할 시가 수두룩하다. 정신은 간 데 없이 껍데기만 남은 시가 너무도 많다.

비록 그렇기는 해도, 이 아무 데에 쓸모 없는 시를 짓느라고 古今에 피를 말리며 밤을 지새는 시인을 어찌 손 꼽을 수 있으랴. 그 고심참담의 결과를 앞에 놓고 독자들은 마음의 위안을 얻고 삶의 깊은 의미를 읽는다. 중요한 것은 시가 인간의 언어 가운데 가장 정채로운 보석이든, 아무 짝에 쓸모 없는 害毒이든 간에 시는 시라는 사실이다. 그것을 보석으로 만들고 독약으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시인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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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가운데 文川郡守 金時習의 반란 사건이 우리의 흥미를 끈다. 지은이가 시 왕국에서의 일상에 익숙해 갈 무렵 난데 없이 金時習의 반란 소식이 전해진다. 天子 崔致遠이 唐詩風만을 좋아하여 자기와 같이 宋詩風을 즐겨 쓰는 사람들은 박대하여 등용치 않으므로 참을 수 없다는 사연이니, 참으로 시 왕국 다운 반란의 이유다. 이에 李穡의 천거로 토벌의 임무를 맡게 된 沈義는 몇 만의 군대를 주겠다는 천자의 제의를 거절하고, 嘯櫓秘術만으로 대적하겠다 하며 尖頭奴 몇을 데리고 一騎로 적진을 향해 돌진한다. 嘯櫓秘術이란 천지의 풍운조화를 일으키는 피리부는 秘術이니 다름 아닌 詩를 말함이요, 尖頭奴란 머리가 뾰족한 하인이니 붓의 형용이다.

적진에 다다른 沈義가 한 곡조 피리를 불자 반란군은 그만 간담이 서늘해지고 기운이 꺾이며, 두번 불자 그만 몇 겹의 포위를 풀고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賊將金時習은 손을 뒤로 묶고는, "詞壇의 老將이신 沈令公께서 이를 줄은 뜻하지 못했습니다" 하며 투항하고 만다. 반란군의 토벌치고는 싱겁기 짝이 없다.

이 작품은 소설적 구성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沈義의 詩觀과 역대 시인에 대한 평가가 잘 드러나 있고, 또 杜甫를 천자로 하는 중국의 詩 王國에 천자 崔致遠이 초청되어 두 나라의 시인들이 시로써 재주를 겨루는 내용 등 적잖은 흥미소가 가미되어 있다. 여기서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김시습의 반란 사건이다. 崔致遠은 당나라, 특히 화려하고 유미한 시풍으로 대표되는 晩唐 시기의 인물이니 그가 추구한 것이 唐詩風일 것은 당연하다. 그가 천자가 된 이상, 그 밑에 신하들도 唐詩를 추구했을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반면 김시습은 宋詩風을 추구하여 여기에서 소외된 것이 불만스러웠고 아예 반란을 꿈꾸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唐詩風과 宋詩風은 도대체 어떤 시풍을 말하며 둘의 차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반란을 일으켜 바로 잡으려 한 것으로 보아 두 시풍은 타협이나 공존이 어려울 듯 하다. 예전 시비평서를 읽다 보면 도처에서 唐詩에 핍진하다거나, 宋詩에 가깝다는 식의 평어와 만나게 된다. 또 이 두 가지가 함께 거론될 때면 대부분 으례 唐詩風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 일반이다. 비평의 현장에서 唐詩니 宋詩니 하는 개념은 왕조 개념을 떠나 시의 취향 혹은 성향을 말하는 풍격 용어로 사용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당나라 시인의 시에서도 송시풍을 찾아볼 수 있고, 청나라 시인의 시에서도 唐詩風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唐詩와 宋詩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왜 한시사에서 끊임 없는 논란을 빚어 왔던가? 이번 호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

송대의 유명한 화가 郭熙는 그의 《林泉高致》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짜 山水의 안개와 이내는 네 계절이 같지 않다. 봄 산은 담박하고 아름다와 마치 웃는듯 하고, 여름 산은 자욱이 푸르러 마치 물방울이 듣는듯 하며, 가을 산은 맑고 깨끗하여 단장한 듯 하고, 겨울 산은 어두침침하고 엷어 마치 잠자는 듯 하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서 있지만,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날마다 그 모습을 바꾼다. 봄 산이 좋기는 하지만 여름 산의 짙푸름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가을 산의 조촐함과 겨울 산의 담박함은 또 그것대로의 매력이 있다. 사람마다 기호가 같지 않으므로, 꼬집어 어느 산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시 또한 이와 다를 것이 없다. 唐詩를 두고 흔히 중국 고전시가의 꽃이라고 말하여 계절로 치면 봄에 해당한다고들 하고, 이에 반해 宋詩는 가을에 견주기도 한다. 또 백화난만한 고궁의 봄 뜰을 친구와 어울려 산책하는 정취를 唐詩의 세계에 견주고, 들국화 가득히 핀 가을 들판을 홀로 걸으면서 사색에 잠겨 보는 것으로 宋詩의 세계를 비유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唐詩는 호탕한 기개를 지닌 장부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 같고, 宋詩는 달밤에 호수에 배 띄우고 선비가 마주 앉아 학문을 논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唐詩와 宋詩의 차이는 보여주기와 말하기의 차이로도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시인은 시 속에서 자꾸 무엇인가를 말 하고 싶어 하고, 또 어떤 시인은 가급 말하는 것을 절제하는 대신 보여주기를 좋아한다. 이때 말한다는 것의 의미는 도덕적이거나 교훈적인 메세지의 전달을 뜻한다. 시인이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시는 이해가 쉬운 반면 자칫 식상감을 주거나 거부감을 일으키기 쉽다. 반면 보여주기만 하는 시는 추상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거나, 자칫 무슨 말인지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또 이 경우 시인의 의도는 단지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므로 독자의 적극적인 讀詩가 요청된다. 말하는 시가 좋은지, 보여주는 시가 좋은지는 순전히 기호에 달린 것이므로 둘 사이의 우열을 갈라 말하기란 난처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가을 산이 가장 좋다는 사람에게 겨울 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타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繆鉞은 〈論宋詩〉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唐詩는 芍藥이나 海棠처럼 婇華와 繁采가 있다. 宋詩는 寒梅나 秋菊처럼 幽韻과 冷香이 있다. 唐詩는 嵊枝를 씹는 것처럼 한 알을 입 안에 넣으면 단맛과 향기가 양 볼에 가득 찬다. 宋詩는 橄欖을 먹는 것처럼 처음엔 떠름한 맛을 느끼지만 뒷맛이 빼어나고 오래 간다. 이것을 山水에 노는 것에 비유하면 唐詩는 곧 높은 봉우리에서 遠望하여 意氣가 浩然한 것과 같고, 송시는 곧 그윽한 골찌기 냇물을 찾아 情境이 冷痒한 것과 같다.

芍藥이나 海棠花의 화려한 색채는 화려하게 盛裝한 美人의 우아한 자태를 연상시킨다. 이것이 唐詩이다. 반면 눈 속에 피어나는 梅花나 서리를 이겨내는 菊花의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는 화장도 하지 않고 소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의 얼음같은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이것은 宋詩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申景濬은 〈詩則〉이란 글에서 역대로 많은 시가 있어 왔지만, 시의 작법은 '影描'와 '鋪陳', 두 가지를 벗어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唐人은 광경을 즐겨 서술하였다. 그래서 그 시에는 影描가 많다. 宋人은 의론 세움을 즐겨하였다. 그래서 그 시에는 鋪陳이 많다. 대저 광경을 서술함은 國風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이니 자못 참되고 두터운 맛이 적다. 의론을 세움은 兩雅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의 자취가 완전히 드러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당인은 詩를 가지고 詩를 지었고, 송인은 文을 가지고 詩를 지었다고 생각하여 唐詩가 宋詩보다 훨씬 뛰어나 宋詩는 唐詩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는 唐詩에는 影描가 많고, 宋詩에는 鋪陳이 많은 까닭이다. 그러나 宋詩가 唐詩만 못한 것은 바로 氣格이 모두 밑도는 까닭이지 鋪陳이 影描만 못하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대개 당시의 묘사적이고 서정적 경향과 송시의 사변적이고 說理的 경향을 갈라 대비한 것이다. 여기서 唐詩의 특징으로 거론한 影描란 글자 그대로 그림자를 묘사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말 그대로 그림자일뿐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는 것을 어떻게 묘사해낸다는 말인가. 대상과 마주하여 일어나는 시인의 感情은 실로 그림자와 같아서, 무어라고 꼭 꼬집어서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시는 그 무어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느낌을 언어로 옮겨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반면 鋪陳이라 함은 사실을 사실 그대로 진술한다는 의미이다. 시인은 어느 때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가. 議論을 세워 자신의 주의 주장을 전달하려 할 때 鋪陳의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唐詩가 낭만적て감성적 취향이라면, 宋詩는 고전적て이성적 취향이다. 대개 감성의 욕구는 자칫 무절제로 흐르기 쉽고, 이성의 욕구는 흔히 논리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漢詩史의 전개에 있어서 唐詩風과 宋詩風의 변화 교체가 쟁점이 되어 온 것은 그 시대 문학의 풍격과 성향의 자연스런 변화와 관계된다. 錢鍾書는 《談藝錄》에서 "사람의 일생에서 소년시절에는 재기가 발랄하여 마침내 唐詩의 기풍을 띠게 되기 마련이고, 노년시절에 이르면 사려가 깊어져서 宋詩의 기풍을 띠게 되기 마련이다" 라고 한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도 이럴진대, 문학 환경의 변화에 따른 시풍의 변모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점은 현대의 시인도 비슷하다. 젊은 시절 격동하는 감정의 분출과 화려한 비유로 독자를 사로잡던 시인도 만년에는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담한 언어에 담아 노래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이로 보면 唐詩와 宋詩의 구분은 실제로는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와 연관되는 것이기도 함을 알 수 있다.

다음 李杙光의 언급은 당시와 송시를 구분하는 한 실례를 제시하고 있다. 《芝峯類說》에 보인다.

당나라 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꽃 피자 나비들 가지에 가득터니, 꽃 시드니 나비는 다시금 안 보이네. 다만 저 옛 둥지의 제비만이 주인이 가난해도 돌아왔구나. 花開蝶滿枝, 花謝蝶還稀. 惟有舊巢燕, 主人貧亦歸"라 하였다. 또 송나라 사람이 길 가의 나무를 읊어 이르기를, "미친 바람 뽑아서 거꾸러 뜨리니, 나무는 거꾸러져 뿌리까지 드러났네. 그 위의 몇 가지 등나무 줄기, 푸릇푸릇 여태도 모르고 있네. 狂風拔倒樹, 樹倒根已露. 上有數枝藤, 靑靑猶未悟."라 하였다. 이 두 시는 句法이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당시와 송시의 구분 또한 뚜렷하다.

예로 든 두 시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알겠는가? 이것이 당시와 송시의 차이다.

洪萬宗은 그의 〈詩話叢林證正〉에서 "당을 존중하는 사람은 송을 배척하여 비루하여 배울 바 못된다 하고, 송을 배우는 사람은 당을 배척하여 나약하여 배울 것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모두 편벽된 언론이다. 당이 쇠퇴하였을 때에는 어찌 속된 작품이 없었겠으며, 송이 성할 때에는 또 어찌 고아한 작품이 없었겠는가. 우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라고 하여 당시나 송시 어느 일방에만 흐르는 편벽된 경향을 경계하고 있다.

唐音, 가슴으로 쓴 시

唐詩는 가슴으로 쓴 시이다. 여기에는 시인의 웃음과 눈물이 있어, 마음으로 전해오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하다. 이에 반해 宋詩는 머리로 쓴 시이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깊고 담담한 觀照와 거리를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眺望이 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혀 주는 위안과 인간의 정신을 高遠한 곳으로 이끌어주는 깊이가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시에서 서정함축을 중시하고 意興이 뛰어난 시를 '唐音'이라 하고, 생각에 잠기고 이치를 따지며 幽玄한 맛을 풍기는 시를 '宋調'라고 일컬어 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두 풍격은 실제 작품 상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를 보여주는가. 먼저 당시풍의 시를 감상해보자. 李達은 조선 중기 三唐시인으로 일컬어진 사람이다. 다음은 그의 〈襄陽曲〉이다.

평호 긴 뚝 서편으로 해가 기울고
꽃 아래 노던 이들 취해 비틀거리네.
다시금 교방 남쪽 길로 나서려니
집집 골목마다 백동제 가락일세.
平湖日落大堤西
花下遊人醉欲迷
更出敎坊南畔路
家家門巷白銅燬

平湖는 중국 남방에 있는 아득히 넓은 호수다. 호수가로 끝도 없이 긴 방죽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장엄한 봄 날의 하루 해가 저물고 있다. 꽃놀이 나온 벗님들은 벌써 술에 잔뜩 취하여 걸음조차 가누질 못한다. 아스라한 수면과 끝없이 긴 방죽, 호수를 붉게 물들이며 지는 저녁 노을, 붉은 꽃과 불콰하게 취한 사람들. 그들은 다시 기생집이 즐비하게 늘어선 교방 남쪽 길로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기고 있다. 거리 거리마다에선 흥겨운 노래 가락이 흘러 넘친다.

시인은 상상을 통해 멋진 한 폭 봄 날의 장면을 그려 보이고 있다. 무슨 심각한 주제의식이나 철학적 사변이 끼어들 틈은 아예 없다. 이 시를 읽고 감상하는 독자들의 정서 반응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은 시인이 그려 보이고 있는 이국적 풍물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자신이 봄날의 흥취에 듬뿍 취해 교방 남반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되며, 술집에서 들려오는 농탕한 노래 가락을 듣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에 젖어들게 될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시인이 그려 보이고 있는 경물은 그 자체로 합목적적일 뿐 제 3의 의도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엄하리만큼 아름다운 봄날의 풍광 속에 그려지는 젊음의 낭만은 곧 관념 속에 남아 있는 태평성대에의 열망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낭만적 상상은 일그러지고 부조리한 현실의 모순으로부터 자아를 멀찌감치 떼어 놓아 정서적 淨化와 逸脫을 경험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달이 언어로 그려낸 한 폭의 그림은 서구 낭만주의 시들이 그려 보이고 있는 이국정서의 표출과 다를 것이 없다. 상상의 화면으로 그려낸 평호의 긴 뚝은 곧 저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湖島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것은 또 박목월이 그려낸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눈에 비친, 南道 삼백리의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과도 본질 의미에서 다르지 않다.

저물어 외로운 객점에 드니
산 깊어 사립도 닫지를 않네.
닭 울어 앞 길을 묻노라니까
누런 잎만 날 향해 날려 오누나.
日入投孤店
山深不掩扉
鷄鳴問前路
黃葉向人飛

李達 보다 조금 뒤진 시기의 걸출한 시인 權禝의 〈途中〉이란 작품이다. 권필은 우리나라 역대 시인 가운데 杜詩의 경지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당시풍에 정통한 시인이다.

시를 보면 깊은 산 속에 자리잡은 주막이 있고, 지친 발걸음을 쉬어 가는 삶에 지친 나그네가 있다. '黃葉'이라 했으니 계절은 늦은 가을이다. 하루 종일 길을 걸은 나그네는 해가 서산을 넘어간 뒤에야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주막에 들 수가 있었다. 2구에서 밤까지 열어 둔 사립문이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을 보면, 시인의 내면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불안과 초조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깊은 밤까지 도적 걱정 없이 문을 열어 둘 수 있는 편안함을 그는 부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자신을 내몬 부조리한 현실이 더 이상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멀어진 데 대한 안도감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닭이 우는 가을 새벽, 먼동이 트기도 전에 나그네는 다시 쫓기듯 길을 재촉한다. 뼈를 저미는 추위. 어디로 가야 할까. 길을 묻는 나그네 앞에 들려오는 대답은 공허한 바람소리와 자신을 향해 날려오는 누르시든 낙엽 뿐이다. 그러고 보면 애초에 갈 길은 있지도 않았다. 인생이란 결국 길을 찾아 헤매이는 과정의 연속일 뿐이 아닌가. 길을 가로막고 달려드는 낙엽은 시인에게 인생은 이와 같이 덧없는 것이라고, 길은 어디에도 있고 또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대개 20자에 불과하지만 길가는 나그네의 辛苦와 뼈에 저미는 외로움이 생생하게 마음을 파고 드는 시이다.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 해도
흰 머리의 어버이 근심하실까 저어하여,
그늘진 산, 쌓인 눈이 깊이가 천장인데
금년 겨울은 봄처럼 따뜻하다 말하네.
欲作家書說苦辛
恐敎愁殺白頭親
陰山積雪深千丈
却報今冬暖似春

선조 때 시인 李安訥의 〈寄家書〉란 작품이다. 이안눌은 평생에 杜甫의 시를 일만 삼천 번을 읽었다는 시인이다. 그가 함경도 북평사의 벼슬을 살러 북방에 가 있을 때 집에 편지를 보내면서 지은 시이다. 문집에 보면 편지를 받고 지은 시가 위 시 바로 앞에 실려 있다. 그 사연인 즉, 지난 해 집에서 보낸 편지와 겨울 옷을 해를 넘겨서야 받았는데, 집 식구는 남편이 변방에서 고생하느라 야윈 것도 모르고, 옷을 예전 입던 옷에 맞춰 보낸 까닭에 헐겁기 그지 없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위 시는 그 편지와 옷을 받고 보낸 답장이다. 따뜻한 남쪽 고향을 떠나 北風寒雪 휘몰아치는 낯선 변방에서 키를 넘게 쌓이는 눈과 혹독한 추위 속에 보낸 겨울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몸도 견디다 못해 예전 옷이 헐거울 정도로 야위었다. 이러한 괴로움을 편지에 쓰려 하니 안 그래도 변방에 자식을 보내 놓고 근심에 쌓여 계실 늙으신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도리어 '어머님! 이번 겨울은 마치 봄처럼 따뜻합니다'하는 거짓말을 적고 말았다는 것이다.

먼 변방 산은 길고 길은 험하니
서울에 닿을 제면 한 해도 늦었겠지.
봄날 올린 편지에 가을 날자 적은 뜻은
근래 부친 편지로 여기시라 함일세.
塞遠山長道路難
蕃人入洛歲應峐
春天寄信題秋日
要遣家親作近看

이어지는 둘째 수이다. 아득한 변방, 험한 길, 인편을 구해 편지를 보낸대도 이 편지는 년말이 다 되어서야 서울에 닿을 것이다. 그래서 봄날 쓰는 편지에 가을 날짜를 적었다. 조금이라도 날짜가 가까워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까닭이다. 봄날 보낸 편지를 겨울에야 받는다면 또 그 상심은 오죽하시겠는가. 늙으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붉은 마음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이와 같이 唐詩는 가슴으로 전해오는 정감의 세계를 노래한다. 때로 들뜬 어감으로, 간혹 슬픔에 젖어 노래하지만 감정의 노예가 되는 법은 좀체 없다. 이런 까닭에 唐詩風의 시는 이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시대 보다는 감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시대에 즐겨 불리워 진다. 당시풍과 송시풍이 詩史의 전개에서 반복 교체의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宋調, 머리로 쓴 詩

당시풍에 대비되는 송시풍의 특징을 일괄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체로 송시는 이 시기 발달한 禪宗과 性理學의 영향으로 인생에 대한 철학적 음미를 내용으로 하는 철리적 성향이 강하고, 쓸데 없는 수식을 배제하고 섬세한 관찰과 개성적 표현을 중시하였으며, 제재상에 있어서는 일상생활에의 관심과 밀착이 두드러짐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에 따라 시의 공용성은 더욱 강조되었고, 표현은 다분히 산문적이고 서술적이 되어, 정감이 풍부하고 유려한 당시에 비해 송시는 이지적이고 심원한 풍격을 갖추게 되었다. 또 宋代에 발달한 詞文學은 詩에 비해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세계를 노래하여, 宋代에는 詩와 詞 사이에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종일 짚신 신고 발길 따라 가노라니
한 산을 가고 나면 또 한 산이 푸르도다.
마음에 생각 없으니 어찌 형상에 부림 당하며
道는 본시 無名하니 어찌 거짓 이룰까.
간 밤 이슬 마르지 않아 산 새는 지저귀고
봄 바람 끝나지 않았는데 들 꽃은 피었구나.
지팡이 짚고 돌아갈 때 천봉이 고요터니
푸른 절벽 어지런 안개에 저녁 햇살 비쳐드네.
終日芒鞋信脚行
一山行盡一山靑
心非有想奚形役
道本無名豈假成
宿露未晞山鳥語
春風不盡野花明
短嚁歸去千峯靜
翠壁亂烟生晩晴

우선 앞서 송시풍을 대우해 주지 않는다며 반란을 일으켰던 金時習의 〈無題〉라는 작품을 감상해 보기로 하자. 앞서 본 세 작품과는 우선 사물에 접근하는 태도가 판이하다. 무언가 그냥 읽기만 해서는 의미가 명료하게 잡히지도 않는다. 3.4구로 보아 시인은 지금 무엇인가 묵직한 주제를 말하고 있는듯 한데 그것은 무엇일까?

1구에는 짚신을 신고 하루 종일 길을 가는 나그네가 나온다. 그의 생각에 눈 앞에 있는 저 산만 넘어가면 길이 끝나겠지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자신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산은 산에 연하여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 1.2구는 옛 시에 "저 들판 끝난 곳이 바로 청산인데, 행인은 다시금 청산 밖에 있도다. 平蕪盡處是靑山, 行人更在靑山外"라 한 탄식을 일깨운다.

3.4구에서는 1.2구의 체험이 이끌어낸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하루 종일 몸을 피곤하게 길을 걸었던 것은 저 산의 끝까지 가고야 말겠다는 내 마음의 집착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집착을 마음에서 걷어내 轉迷開悟하고 나면 공연히 육신을 괴롭힐 이유가 없다. 4구에 가서야 시인은 의도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난데 없이 道는 본래 無名한 것인데 이것을 어찌 이루고 말고 하는 이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道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욕망, 즉 成道 成佛에의 욕망은 한 산을 가고 나면 또 한 산이 막아 서듯 이루어질 수 없는 마음이 빚어낸 허망한 집착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1.2구의 언술은 求道의 行脚에 나선 구도승의 수행 과정을 비유하고 있고, 3.4구는 그 과정 끝에 도달한 어떤 깨달음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5.6구에 오면 시적 화자는 숨고 사물의 세계를 노래한다. 간 밤의 이슬이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새들은 어느 새 날이 샌 것을 알고 광명을 노래한다. 봄 바람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꽃들은 망울을 터뜨린다. 누가 알려 주었는가. 아무도 알려준 사람은 없다. 알려주지 않아도 제 스스로 알아 지저귀고 망울 부프는 것이 자연의 섭리가 아닌가. 求道의 깨달음도 이와 같아서 누가 알려주어서 관념으로 깨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스스로의 삶 속에서 洞然自得, 豁然貫通 해야 한다.

이제 먼 데 산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던 화자는 다시금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 온다. 7구에서 '千峯이 고요하다'고 한 것은 사실 앞서의 깨달음이 가져온 내면의 고요, 내면의 平靜을 말하려 함이다. 돌아온다는 것은 밖을 향해 있던 집착에서 놓여나 본래의 자신에게로 返本함을 뜻한다. 8구의 '푸른 절벽 어지런 안개'는 무슨 말인가. 절벽은 아득한 높이로 사람의 길을 막는다. 앞선 행각의 길에서 이 절벽은 無門의 關門처럼 앞길을 막았고, 어지러운 안개는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끔 혼란을 가중시켰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迷妄을 던져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늦저녁의 햇살'이 비쳐들어 이전 나를 괴롭히던 妄執의 실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볼 때 위 시는 자연 속을 서성이는 나그네의 노래 쯤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 의미를 하나 하나 따져 보면 뜻밖에 이같이 심오한 깨달음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치 어느 高僧의 上乘法文과 접하고 난 느낌마져 든다. 흔히 큰 사찰의 대웅전 둘레에 그려진 尋牛圖의 이치를 詩로 표현한다면 이 보다 적절한 것이 있을까.

그런데 김시습의 위 시는 宋나라 어느 女尼가 지은 〈悟道詩〉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悟道詩란 도를 깨달은 순간의 法悅을 노래한 시이다.

종일 봄을 찾았어도 봄은 보지 못했네
짚신 신고 산 머리 구름 위까지 가 보았지.
돌아올 때 우연히 매화 향기 맡으니
봄은 가지 위에 벌써 와 있었네.
終日尋春不見春
芒鞋踏破嶺頭雲
歸來偶把梅花臭
春在枝上已十分

그녀는 봄을 찾기 위하여 하루 종일 온 산을 찾아 헤매이고 있다. 산 꼭대기 구름 위에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그녀는 봄을 찾지는 못하였다. 지칠대로 지친 그녀는 이제 봄을 찾으려는 생각을 접어두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녀의 코 끝에는 매화의 향기가 스쳐오는 것이 아닌가. 정작 봄은 자기 집 뜰 매화가지 위에 와 있었던 것이다.

앞의 시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봄을 찾으려고 온 산을 헤매이는 것은 道를 깨달으려고 求道의 행각에 나섬을 뜻한다. 그녀는 온갖 고행을 무릅쓰며 일념으로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온 산 어디에도 없는 봄처럼, 道의 실체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지친 그녀는 이제 집으로 돌아온다. 무엇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집착 속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다. 위의 시는 메텔링크의 파랑새 이야기를 떠올려 준다.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파랑새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헤매이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파랑새는 정작 자기 집 마당에서 울고 있었던 것이다. 깨달음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그런데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욕망과 아집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리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우리나라에 있어 송시풍은 흔히 濂洛風의 哲理的 내용을 노래한 시풍을 지칭하는 의미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는 즉 자연물을 통해 物我一體의 溫柔敦厚하고 沖澹蕭散한 경지를 노래함으로써 吟詠性情 하는 시풍으로 대표된다. 퇴계의 시를 한 수 보기로 하자.

이슬 젖은 풀잎은 물 가를 둘러 있고
조그마한 연못 맑고 깨끗해, 모래도 없네.
구름 날고 새 지남은 어쩔 수 없다지만
때때로 제비 와서 물결 찰까 두려워라.
露草夭夭繞水涯
小塘淸活淨無沙
雲飛鳥過元相管
只硲時時燕蹴波

퇴계가 연곡리라는 곳에 갔다가 맑은 못을 보고 느낌이 있어 지었다는 시이다. 조그마한 연못이 있고 그 연못 가에는 여리디 여린 풀잎이 이슬에 함초롬히 젖어 있다. 연못의 물은 어찌나 맑은지 모래조차 보이질 않는다. 그 위로 이따금 지나가던 구름이 와서 쉬고 새가 날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거울 같이 매끄러운 그 수면 위로 제비가 날아와 물결을 차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제비가 물결을 차면 수면의 평정이 깨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아무도 없는 고요한 연못 가에 홀로 엎드려 맑고 잔잔한 수면 위를 바라보는 순수한 동심의 세계가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퇴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물 자체의 세계가 아니다. 맑고 일렁임이 없는 못은 사실은 일체의 삿됨이 개재됨 없는 純粹無垢한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를 두고 제자인 金富倫은 "천리가 유행함에 인욕이 여기에 끼어듦을 두려워 한 것이다. 天理流行而恐人欲間之"라고 설명한 바 있다. 사람의 마음은 본디 純善하여 맑고 깨끗하기가 이슬 머금은 풀잎이나 물결 없는 수면과도 같다. 그러나 그 위로는 변화하는 구름과 새들이 지나감으로써 그 고요와 평정을 위협한다. 마찬가지로 사람 또한 타고난 그대로의 純善한 본성을 지키려 해도 언제나 人欲이 여기에 끼어들어 순수를 잃게 되기 쉽다. 그러므로 제비가 물결을 차고 지나감을 두려워 하듯 혹 자신의 삶 속에 인욕이 개입되어 본성을 잃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시인은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시인이 표층에서 묘사하고 있는 외물은 시인이 전달코자 하는 내용의 표피에 불과하다. 그 안에는 깊고 幽遠한 사변의 세계가 자리잡고 있다.

송시풍의 시는 이와 같이 담담한 가운데 깊이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당시가 대상 그 자체에 몰입함으로써 자연스레 시인의 情意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는데 반해, 송시는 시인이 자신의 情意를 대상을 통해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배 속에 넣은 먹물

에이브럼즈는 《거울과 등불》이란 책에서 문학의 기능을 거울과 등불의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시인은 캄캄한 밤에 등불을 들고 어둠 속을 헤매이는 영혼들의 갈 길을 일깨워주는 先知者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시인은 그 시대를 물끄러미 비춰주는 거울이어야 하는가. 보기에 따라서는 당시와 송시도 거울과 등불이라는 문학의 두 기능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다만 '나는 당시풍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송시풍의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내가 빨간색을 좋아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파란색을 좋아하면 안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미덕을 갖추지 못한 작품을 두고는 이러한 논쟁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한 때 우리 시단에서도 참여시니 순수시니 하는 이름으로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한편에서는 암흑의 시대에 거울만 닦고 있는 시인을 향해, 창 밖에서 천둥 번개가 치든 말든 안방에서 내방가사나 읊고 있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이라고 매도하고, 또 한켠에선 등불을 높이 들고 무조건 따라오라고만 외치는 시인을 향해 시가 무슨 혁명의 도구냐고 항변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리 시의 겉모양을 갖추었다 해도 선동가의 연설이나 삐라를 시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가슴을 저미는 감미로운 유행가의 가사도 시와는 구별되는 법이다.

시는 우선 시가 되어야 한다. 당시와 송시의 구분이나, 참여니 순수니 하는 변별은 그 다음 문제다. 동시에 그것은 세계관의 문제이므로 好惡의 판단이 있을 뿐 優劣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시인이 詩歌 言語의 규율을 무시하고 목청만 잔뜩 높이게 되면 그것은 한때 대학가에 요란스레 나붙었던 대자보나 근엄한 목회자의 설교와 다를 바 없다. 웅변이나 설교를 시의 형식을 빌어 듣고 싶은 독자는 없을 것이다. 시는 결코 관념의 堆積場이어서는 안된다. 또 자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몽환적 어휘의 나열이나 이미지의 배합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그것은 惑世誣民의 연금술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시는 결코 독해할 수 없는 상형문자이거나 암호문일 수는 없다.

다시 沈義의 〈記夢〉으로 돌아가보자. 꿈 속의 詩 왕국에서 현세에서는 누려보지 못한 得意의 세월을 보내고 있던 沈義에게 群臣들의 시샘에서 비롯된 탄핵이 올라오고, 이에 천자는 마지 못해 다시 塵世로 복귀할 것을 명한다. 이러한 결구는 대개 覺夢을 위한 장치인데, 복귀에 앞서 李穡은 沈義를 깨끗히 목욕시키고 칼로 배를 갈라 먹물 몇 말을 붓는다. 그리고는 40년 뒤에 다시 만나 부귀를 함께 누릴 것이니 근심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홀연 배가 칼로 찌르듯 아파, 놀라 깨어보니 배는 북처럼 불러 있고, 殘燈은 꺼질듯 가물거리며, 병든 아내는 곁에 누워 끙끙대고 있을 뿐이었다. 꿈 속에서의 환상이 급전직하 티끌세상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沈義는 복수가 차서 배가 부른 것을 李穡이 앞으로 살 40년 동안 인간 세상에서 써 먹으라고 넣어준 먹물로 치부하는 오만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찌하리. 현세에서 시인의 삶이란 곁에 누운 병든 아내의 신음 소리처럼 고달프고 괴로운 것을. 그러고 보면 시란 까맣게 잊고 있던 신선 세계, 또는 존재하지 않는 피안의 세계를 향한 회귀의 몸부림일 지도 모르겠다. 天上의 白玉樓가 준공되었으나 上樑文을 지을 사람이 없어 옥황상제가 唐나라의 유명한 시인 李賀를 하늘 나라로 불러 갔던 것처럼, 티끌 세상의 귀양살이가 끝나 천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배 속의 먹물이 다 마르도록 시인은 다만 깨어 노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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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     杜甫    ( 712 ~ 770 )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불렸던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 널리 인간의 심리, 자연의 사실 가운데 그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찾아내어 시를 지었다. 장편의 고체시(古體詩)는 주로 사회성을 발휘하였으므로 시로 표현된 역사라는 뜻으로 시사(詩史)라 불린다. 주요 작품에는 북정(北征),추흥(秋興) 등이 있다

 

소릉(少陵)
본명 두보
별칭 자 자미(子美)
국적 중국 당()
활동분야
출생지 중국 허난성[河南省] 궁현[鞏縣]
주요작품 북정(北征)》 《추흥(秋興)》 《삼리삼별(三吏三別)

 

자 자미(子美). 호 소릉(少陵).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불렸으며,   이백(李白)과 병칭하여 이두(李杜)라고 일컫는다. 본적은 후베이성[湖北省]의 샹양[襄陽]이지만, 허난성[河南省]의 궁현[鞏縣]에서 태어났다. 먼 조상은 진대(晉代)의 위인 두예(杜預)이고, 조부는 초당기(初唐期)의 시인 두심언(杜審言)이다. 소년시절부터 시를 잘 지었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였고, 각지를 방랑하여   이백  ·고적(高適) 등과 알게 되었으며, 후에 장안(長安)으로 나왔으나 여전히 불우하였다.
44세에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적군에게 포로가 되어 장안에 연금된 지 1년 만에 탈출, 새로 즉위한 황제 숙종(肅宗)의 행재소(行在所)에 달려갔으므로, 그 공에 의하여 좌습유(左拾遺)의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관군이 장안을 회복하자, 돌아와 조정에 출사(出仕)하였으나 1년 만에 화저우[華州]의 지방관으로 좌천되었으며, 그것도 1년 만에 기내(畿內) 일대의 대기근을 만나 48세에 관직을 버리고 식량을 구하려고 처자와 함께 간쑤성[甘肅省]의 친저우[秦州] ·퉁구[同谷]를 거쳐 쓰촨성[四川省]의 청두[成都]에 정착하여 시외의 완화계(浣花溪)에다 초당을 세웠다. 이것이 곧 완화초당(浣花草堂)이다.
일시적으로는 지방 군벌의 내란 때문에 동쓰촨[東四川]의 쯔저우[梓州] ·랑저우[閬州]로 피난을 한 일도 있었으나, 전후 수년 동안에 걸친 초당에서의 생활은 비교적 평화로웠다. 이 무렵에 청두의 절도사 엄무(嚴武)의 막료(幕僚)로서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의 관직을 지냈으므로 이로 인해 두공부(杜工部)라고 불리게 되었다. 54세 때, 귀향할 뜻을 품고 청두를 떠나 양쯔강[揚子江]을 하행하여 쓰촨성 동단(東端)의 쿠이저우[夔州]의 협곡에 이르러, 여기서 2년 동안 체류하다가 다시 협곡에서 나와, 이후 2년간 후베이 ·후난의 수상(水上)에서 방랑을 계속하였는데, 배 안에서 병을 얻어 둥팅호[洞庭湖]에서 59세를 일기로 병사하였다.
그의 시를 성립시킨 것은 인간에 대한 위대한 성실이었으며, 성실이 낳은 우수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제재를 많이 따서, 널리 인간의 사실, 인간의 심리, 자연의 사실 가운데서 그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찾아내어 시를 지었는데, 표현에는 심혈을 기울였다. 장편의 고체시(古體詩)는 주로 사회성을 발휘하였으므로 시로 표현된 역사라는 뜻으로 시사(詩史)라 불린다.
단시정형(短詩定型)의 금체(今體)는 특히 율체(律體)에 뛰어나 엄격한 형식에다 복잡한 감정을 세밀하게 노래하여 이 시형의 완성자로서의 명예를 얻었다. 그에 앞선 육조(六朝) ·초당(初唐)의 시가 정신을 잃은 장식에 불과하고, 또 고대의 시가 지나치게 소박한 데 대하여 두보는 고대의 순수한 정신을 회복하여, 그것을 더욱 성숙된 기교로 표현함으로써 중국 시의 역사에 한 시기를 이루었고, 그 이후 시의 전형(典型)으로 조술(祖述)되어 왔다. 최초로 그를 숭배했던 이는 중당기(中唐期)  한유(韓愈) ·백거이(白居易) 등이지만, 그에 대한 평가의 확정은 북송(北宋)  왕안석(王安石) ·소식(蘇軾) 등에게 칭송됨으로써 이루어졌으며, 중국 최고의 시인이라는 인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대표작으로 북정(北征)》 《추흥(秋興)》 《삼리삼별(三吏三別)》 《병거행(兵車行)》 《여인행(麗人行)등이 있다. 그 밖에 북송(北宋) 왕수(王洙)두공부집(杜工部集)20권과 1,400여 편의 시, 그리고 소수의 산문이 전해진다. 주석서(註釋書) 중에서는 송의 곽지달(郭知達)구가집주(九家集註)는 훈고()에 뛰어났으며, ()의 전겸익(錢謙益)두시전주(杜詩箋注)는 사실(史實)에 상세하며, 구조오(仇兆鰲)두시상주(杜詩詳註)는 집대성으로서 편리하다.
그의 시 작품과 시풍이 한국에 미친 영향은 크다. 고려시대에  이제현(李齊賢) · 이색(李穡)이 크게 영향을 받았고, 중국인 채몽필(蔡夢弼)의 저작인 두공부초당시전(杜工部草堂詩箋), 황학(黃鶴) 보주(補註)두공부시보유(杜工部詩補遺)등이 복간(複刊)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그의 작품이 특히 높이 평가되었는데, 찬주분류두시(纂註分類杜詩)5차례나 간행되었고, 성종(成宗) 때는 유윤겸(柳允謙) 등이 왕명을 받아 그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전역서(全譯書)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杜詩諺解)를 간행하였으며, 또 이식(李植)의 저서 찬주두시택풍당비해(纂註杜詩澤風堂批解)26권은 두시(杜詩)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 유일한 전서(專書)이다. 현대의 것으로는 이병주(李丙疇)두시언해비주(杜詩諺解批註)(1958), 양상경(梁相卿)두시선(杜詩選)(1973) 등이 알려져 있다.
 
 
                                                                                                            (출처 두산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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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足境界, 脫俗境地

이시는 조선 중기의 유명한 학자 龜峯 宋翼弼足不足이란 작품이다. 모두 40280자에 달하는 장편으로 ''자만을 운자로 사용한, 중국에서도 달리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작품이다. 그 형식 뿐 아니라 내용 또한 참으로 삶의 귀감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宋翼弼의 일생 학문이 이 한 수의 시에 무르녹아 있다 해도 조금의 지나침이 없다.

 

君子如何長自足   (군자여하장자족)   군자는 어째서 길이 스스로 넉넉하다 하는데

小人如何長不足   (소인여하장부족)   소인은 어째서 길이 부족하다 하는가?

不足之足每有餘   (부족지족매유여)   부족한데도 넉넉하다 여기면 늘 여유가 있지만

足而不足常不足   (족이부족상부족)   넉넉한데도 부족하다 여기면 늘 부족한 것이다.

樂在有餘無不足   (락재유여무부족)   즐거움은 여유로움에 있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憂在不足何時足   (우재부족하시족)   걱정은 부족하다 여기는 데에 있기에, 어느 때에 만족할 것이냐?

安時處順更何憂   (안시처순갱하우)   주어진 시기를 편안히 여기고 순종함에 거처하니 다시 무엇을 근심하겠으며

怨天尤人悲不足   (원천우인비부족)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하니 슬퍼함으로도 부족하다네.

求在我者無不足   (구재아자무부족)   타고난 나에게서 구하는 이는 부족이 없지만

求在外者何能足   (구재외자하능족)   나 외의 것에서 구하는 이는 어찌 만족할 수 있겠는가?

一瓢之水樂有餘   (일표지수락유여)   한 표주박의 물으로도 즐거워함엔 남음이 있지만

萬錢之羞憂不足   (만전지수우부족)   하 많은 음식으로도 근심하기에는 부족하니,

古今至樂在知足   (고금지락재지족)   고금의 지극한 즐거움은 만족함을 아는데 있었고

天下大患在不足   (천하대환재부족)   천하의 크나큰 근심은 부족하다 여기는데 있었다.

二世高枕望夷宮   (이세고침망이궁)   진나라 호해가 망이궁에서 베개를 높였을 땐

擬盡吾年猶不足   (의진오년유부족)   나의 삶을 다 누리더라도 오히려 부족하다 여겼었고

唐宗路窮馬嵬坡   (당종로궁마외파)   당나라 현종이 마외파에서 나갈 길이 끊겼을 땐

謂卜他生曾未足   (위복타생증미족)   다른 삶을 점치더라도 일찍이 부족하다 말했었지.

匹夫一抱知足樂   (필부일포지족락)   필부는 한아름으로도 만족함을 알기에 즐겁지만

王公富貴還不足   (왕공부귀환부족)   왕공의 부귀한 이들은 도리어 부족하다 여기네.

天子一坐不知足   (천자일좌부지족)   천자의 한 자리 만족함을 모르니

匹夫之貧羨其足   (필부지빈선기족)   필부가 가난한데도 만족할 줄 아는 게 부럽구나.

不足與足皆在己   (부족여족개재기)   부족함과 넉넉함은 모두 나에게 있으니

外物焉爲足不足   (외물언위족부족)   외물이 어찌 부족한 걸 채워줄 수 있겠는가.

人謂不足吾則足   (인위부족오칙족)   사람들은 부족하다 말하지만 나는 충분하니

吾年七十臥窮谷   (오년칠십와궁곡)   내 나이 70살에 깊은 골짜기에 누워

朝看萬峯生白雲   (조간만봉생백운)   아침엔 온 봉우리에서 흰 구름 피어오르는 걸 보며

自去自來高致足   (자거자래고치족)   유유자적 왔다 갔다 하니 고상한 운치가 넉넉하고

暮看滄海吐明月   (모간창해토명월)   저녁은 푸른 바다가 밝은 달 뱉어내는 걸 보며

浩浩金波眼界足   (호호금파안계족)   넘실넘실 황금빛 파도, 시야에 충분하며

春有梅花秋有菊   (춘유매화추유국)   봄엔 매화가 피고 가을엔 국화가 피어

代謝無窮幽興足   (대사무궁유흥족)   무궁하게 번갈아 지니 그윽한 흥취가 충분하다네.

一床經書道味深   (일상경서도미심)   한 책상에 놓인 경서 속 고갱이의 맛이 깊고

尙友萬古師友足   (상우만고사우족)   시기를 거슬로 만고를 벗삼으니 사우가 충분하며

德比先賢雖不足   (덕비선현수부족)   덕을 선현에 견주면 비록 부족하다지만

白髮滿頭年紀足   (발만두년기족흰)   머리가 머리에 가득하니 나이는 이미 충분하다네.

同吾所樂信有時   (동오소락신유시)   내가 즐기는 것 함께 하기에 진실로 시기가 있어

卷藏于身樂已足   (권장우신락이족)   책 내용이 몸에 쌓여감에 즐거움이 이미 충분하네.

俯仰天地能自在   (부앙천지능자재)   천지를 우러러 보고 굽어보며 유유자적할 수 있으니

天之待我亦云足   (천지대아역운족)   하늘이 나를 대우하며 또한 말하리라. “충분하구나.”

      【망이궁(望夷宮): 진(秦)의 궁 이름. 조고(趙高)가 여기서 이세(二世) 호해(胡亥)를 시해(弑害)하였음】

 

龜峯先生集卷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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