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가들이 꼭 알아야 할 두 가지
삼도헌 정태수(한국서예사연구소장)
지난 여름에 필자는 서울의 어느 서예전시장에서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두 가지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그 전시를 관람하던 서예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면서 생각해 본 문제이다. 서예를 지도하는 스승으로 보이는 노신사가 제자들에게 전시된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 가운데 “낙관(落款)을 잘 새기지 못했다”는 등의 말이 오가면서 ‘낙관’이란 용어를 원래의 뜻과는 다른 ‘인장’이란 의미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다른 방문객에게 조용히 ‘낙관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역시 손가락으로 전시된 인장(印章)을 가리켰다. 그들은 ‘인장’을 ‘낙관’이라고 말하였고 또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낙관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낙관은 낙성관지(落成款識)를 줄인말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린 뒤 작자가 직접 그 작품에 년월(年月), 성명(姓名), 시구(詩句), 발어(跋語)를 쓰든가 성명(姓名)이나 아호(雅號)를 쓰고 인장을 찍는 전체를 의미한다. 낙관은 제관(題款)이라고도 하는데 서예작품 전체의 중요한 유기적 구성성분이다. 그것은 전체화면을 안정시키거나 분위기를 돋구기도 하고, 작품의 주제를 부각시키거나 예술적 의경을 조성하여 더욱 풍부한 정취를 갖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서화작품에서 낙관은 전체구도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
낙관은 상관(上款)과 하관(下款)으로 나누거나 장관(長款)과 단관(短款)으로 나누기도 한다. 상관은 시(詩)의 명칭이나 작품을 받을 사람의 성과 이름을 기록하고, 하관은 글씨를 쓴 사람의 성명, 년월, 글씨를 쓴 장소 등을 기술한다. 특정인에게 작품을 주지 않을 때 일반적으로 상관은 생략하고 하관만 하는데, 이것을 단관(單款)이라고도 한다. 또한 화면의 구도상 여백이 많아서 전체화면을 채우고 빈자리를 보충하기 위해서 본문과 관계있는 문장을 길게 덧붙이고 성명, 아호 등을 적어 글자수가 많아지게 하는 형식을 장관이라고 하고, 이와 반대로 화면 구도상 아호와 성명을 적고 인장을 찍을 공간만 있어서 글자수가 적어지게 하는 형식을 단관이라고 한다. 고대 시기에는 서화작품에 낙관을 하지 않았다. 송, 원대를 지나면서 조금씩 낙관을 하게되었고, 명, 청대에 접어들면서 거의 제도화되어 작품제작의 필수적인 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서화작품에서 낙관은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완성의 표시이기도 하고, 후세에 한 작가의 작품이 진적인지 위작인지를 가리는 귀중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는 낙관을 할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주의해야 한다. 첫째, 본문보다 낙관글씨는 작아야 한다. 왼쪽 모서리에 본문보다 작으면서 조화를 이루도록 처리해야 한다. 둘째, 하관을 하는 서체는 본문과 어울려야 한다. 예컨대 전서작품은 행서낙관, 예서작품은 해서나 행서낙관, 해서작품은 해서나 행서낙관, 행서작품은 행서나 초서로 낙관할 수 있다. 행서는 서화작품에서 낙관하기에 가장 무난한 서체이다. 셋째, 낙관에는 작가의 연령이나 신분을 밝히기도 하는데 젊은 사람이 나이를 쓴다든가 ○○거사, ○○도인 등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넷째, 윗사람이나 친구 등의 부탁으로 본문을 쓰고 낙관을 할 때는 항렬이나 선후배를 따져서 격에 맞게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몇 가지 쌍관(雙款)한 예를 아래에서 살펴보자.
첫째, 상대를 높이는 경우는 다음과 같이 하면된다. ①○○道兄指正 ○○拜贈(○○도형께서 바로잡아 주기를 바랍니다. ○○은 절하면서 선사합니다. (여기서 도형(道兄)은 상대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고, 지정(指正)은 남에게 작품을 보낼 때 자신의 작품에 잘못된 곳이 있으니 바로 지적해 달라는 겸손의 의미가 있다.) ②○○先生正之 ○○○題贈(○○선생께서는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는 제(題)하여 바칩니다. ■여기서 正之는 자신의 작품이 잘못되었으니 고쳐달라는 겸사이다.) ③○○女史雅正 ○○○畵(○○여사께서는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그렸습니다. ■여기서 아정(雅正)은 지정(指正)과 같은 의미로 자신의 작품 중에 잘못된 부분을 고쳐달라는 겸사이다.) ④○○吾兄七十壽書(畵)此以祝(○○형의 칩십세 수연(壽筵)에 이를 써서(그려서) 축하합니다.) ⑤辛巳初冬寫(書)呈○○○博士(將軍, 社長)敎正 ○○○敬獻(신사년 초겨울에 ○○○박사(장군, 사장)께 그려서(써서) 드리니 잘못된 곳을 바로 가르쳐 주십시오, ○○○는 삼가 바칩니다.)
둘째, 상대와 신분이 비슷한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면된다. ①辛巳秋爲○○作 ○○○書(寫) (신사년 중추에 ○○을 위하여 제작하였다. ○○○쓰다(그리다). ②辛巳晩秋○○仁兄(大雅)之屬 ○○○書(畵)(신사년 늦가을에 ○○仁兄(大兄)의 부탁으로 ○○○이 씁니다.<그립니다>. ■여기서 인형(仁兄)은 친구끼리 상대편을 대접하여 부르는 말이고, 대아(大雅)는 평교간(平交間)에서나 문인(文人)에 대하여 존경한다는 뜻으로 상대자의 이름 밑에 쓰는 말이다.) ③○○仁兄大人雅屬卽正 ○○○(○○인형(仁兄)의 부친의 부탁으로 제작하였으니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
셋째, 특별한 신분일 때 혹은 익살스럽게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한다. ①○○法家 指正 ○○○ 敬寫(스님께서는 보시고 바로 고쳐 주십시오. ○○○이 삼가 그렸습니다. (여기서 법가(法家)는 승려를 높여서 한 말이다.) ②○○道友補壁 ○○○塗鴉(도형(道兄)의 벽을 보충하십시오. ○○○이 먹으로 그렸습니다. ■여기서 보벽(補壁)은 서화를 벽에 걸어 벽을 채운다는 뜻이니 겸사이면서도 익살스러운 말이고, 도아(塗鴉)는 종이 위에 먹을 새까맣게 칠하였다는 뜻이니 곧 글씨가 서툴다는 겸사이다.)
이와 같이 낙관은 본문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주기 위하여 구도나 장법상 전체 화면에 어울리게 하여야 한다. 쌍관이든 단관이든 인장의 날인까지 마쳐서 낙관이 마무리 되면 본문과 어울려 서화작품의 격조를 높이는 열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인장자체를 낙관이라고 하거나 낙관이 삐뚤게 새겨졌다는 말은 고쳐져야 할 것이다. 지도자들은 용어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된다고 본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그 전시장에 비치된 도록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다. 일상적으로 서예계에서 인쇄되는 작품집을 보면 그 작품에 대한 정보를 표기할 때 각양각색으로 작가마다 차이가 있다. 이번 기회에 국제적으로 미술품을 표기할 때 어떻게 하는지에 대하여 소개하고 서단의 작품표기가 통일 내지는 표준화되기를 기대하는 바램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다.
서예작품의 표기에서 가장 오류가 많은 것은 작품크기를 알리는 높이(세로)X너비(가로)㎝를 바꾸어서 대부분 너비(가로)X높이(세로)로 기록하고 있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미술작품의 도판에는 그 작품에 관한 정보를 정해진 순서대로 도판 밑 왼쪽에서 시작하여 오른쪽 방향으로 가로쓰기를 한다. 그 순서는 ①도판번호〔영어로는 본문 속에 오는 삽도는 Figure 또는 Fig.로 쓰고 도판은 Plate 또는 Pl.로 한다〕. ②작가명, ③작품명(영문의 경우 이탤릭체나 밑줄을 긋고 국문인 경우< >표를 한다), ④제작연대. ⑤재료, ⑥크기(높이는 너비보다 먼저 써준다), ⑦소장처(도시를 먼저쓰고 소장처는 다음에 쓴다). 등을 밝히는 설명문을 첨가한다. 보기를 들면 다음과 같다.
도판 94. 이황, <書簡>, 1562. 紙本, 28.5㎝X19.5㎝ 額, 서울. 한빛문화재단 소장.
작가가 개인전을 할 경우에도 도록에 이와 같은 표기의 원칙은 지켜져야 할 것이다. 즉 개인전 도록의 경우 작가의 성명은 알고 있기 때문에 생략이 가능하나 그 외의 사항은 순서대로 기록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개인전을 하는 작가는 최소한 ①<작품명>, ②제작연대. ③재료, ④크기(세로X가로), 등의 순서대로 표기해 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누구든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고 국제적으로도 통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제기한 두 가지 문제는 가볍게 볼 수 있는 점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낙관과 작품의 표기에 관한 문제는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중요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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