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몽선습(童蒙先習)
童蒙先習(동몽선습)은 조선 중종 때 학자 박세무(朴世茂)가 저술하여 1670년(현종 11)에 간행하였다. ≪千字文≫을 익히고 난 후의 학동(學童)들이 배우는 초급교재로, 먼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五倫)을 설명하였다.
이어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부터 명나라까지의 역대사실(歷代史實)과 韓國의 단군(檀君)에서부터 朝鮮時代까지의 역사를 약술(略述)하였다.
이 책의 중요성을 깨달은 英祖大王은 교서관(校書館)으로 하여금 발간하여 널리 보급하도록 하였다. 1541년(중종 36)에 쓴 저자의 친필사본(親筆寫本)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소장되어 있고, 초간본(初刊本)은 전하지 않는다. 1759년(영조 35)의 重刊本만 전하며, 1742년 英祖가 쓴 序(서)와 1770년에 송시열(宋時烈)이 쓴 跋(발)이 있다.
순 서
1. 序文(서문) - 始(시)
2. 父子有親(부자유친)
3. 君臣有義(군신유의)
4. 夫婦有別(부부유별)
5. 長幼有序(장유유서)
6. 朋友有信(붕우유신)
7. 總論(총론, 1)
8. 總論(총론, 2)
9. 總論(총론, 3)
10. 總論(총론, 4)
11. 總論(총론, 5)
12. 어제동몽선습서(御製童蒙先習序)
13. 跋文(발문) - 終(종)
1. 서문(序文) - 始(시)
* 天地之間 萬物之衆(천지지간 만물지중)에 惟人(유인)이 最貴(최귀)하니 所貴乎人者(소귀호인자)는 以其有五倫也(이기유오륜야)니라
(解釋) 천지 사이에 있는 만물의 무리 가운데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五倫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是故(시고)로 孟子曰(맹자왈) 父子有親(부자유친)하며
君臣有義(군신유의)하며 夫婦有別(부부유별)하며 長幼有序(장유유서)하며 朋友有信(붕우유신)이라하시니 人而不知有五常(인이부지유오상)이면 則其違禽獸(즉기위금수)와 不遠矣(불원의)리라
(解釋) 이 때문에 孟子께서는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는 親愛함이 있어야 하며,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義理가 있어야 하며, 부부 사이에는 區別이 있어야 하며,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하며, 친구 사이에는 信義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면서 五常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짐승과의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다.
* 然則 父慈子孝(연즉 부자자효)하며 君義臣忠(군의신충)하며 夫和婦順(부화부순)하며 兄友弟恭(형우제공)하며 朋友輔仁 然後(붕우보인 연후)에야 方可謂之人矣(방가위지의)리라
(解釋)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며, 임금은 신하에게 의리를 지키고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하며, 남편은 가족을 화합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형은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며, 친구 사이에는 仁을 도와준 뒤에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부자유친(父子有親)
* 父子(부자)는 天性之親(천성지친)이라 生而育之(생이육지)하고 愛而敎之(애이교지)하며 奉而承之(봉이승지)하고 孝而養之(효이양지)하나니 是故(시고)로 敎之以義方(교지이의방)하여 弗納於邪(불납어사)하며 柔聲以諫(유성이간)하여 不使得罪於鄕黨州閭(불사득죄어향당주려)하나니
(解釋)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정해준 친한 관계이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사랑하고 가르쳐야 하며, <자식은> 부모를 받들어 부모님의 뜻을 이어가고, 효도하면서 봉양해야 한다. 이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올바른 도리로 가르쳐서, 부정한 곳에 발을 들여 놓지 않게 해야 하며, <자식은> 부모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려서 고을에서 죄를 얻지 않게 해야 한다.
* 苟或父而不子其子(구혹부이부자기자)하며 子而不父其父(자이부부기부)하면 其何以立於世乎(기하이립어세호)리오 雖然(수연)이나 天下(천하)에 無不是底父母(무불시저부모)라 父雖不慈(부수부자)나 子不可以不孝(자불가이불효)니라
(解釋) 만약 혹시라도 부모이면서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식이면서 자기 부모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세상에서 자립할 수 있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천하에는, 善하지 않은 부모가 없는지라, 부모가 비록 자식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자식은 효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 昔者(석자)에 大舜(대순)이 父頑母?(부완모은)하여 嘗欲殺舜(상욕살순)이어늘 舜(순)이 克諧以孝(극해이효)하사 烝烝乂(증증예)하여 不格姦(부격간)하시니 孝子之道(효자지도)가 於斯至矣(어사지의)로다 孔子曰 五刑之屬(공자왈 오형지속)이 三千(삼천)이로되 而罪莫大於不孝(이죄막대어불효)라하시니라
頑: 완고할 완. ?: 어리석을 은. 烝烝: 끈임없이. 乂: 다스릴 예.
(解釋) 옛적에, 위대하신 舜임금의, 아버지는 완악하고 어머니는 모질어서, 일찍이 순을 죽이려 하거늘, 순은 효도로써 화합하고, 끊임없이 다스려,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셨으니, 효자의 도리가, 여기에서 지극하였다. 공자께서는 "五刑에 해당하는 죄목이, 삼천 가지이지만, 그 중에서 불효보다 더 큰 죄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3. 군신유의(君臣有義)
* 君臣(군신)은 天地之分(천지지분)이라 尊且貴焉(존차귀언)하며 卑且賤焉(비차천언)하니 尊貴之使卑賤(존귀지사비천)과 卑賤之事尊貴(비천지사존귀)는 天地之常經(천지지상경)이며 古今之通義(고금지통의)라
(解釋) 임금과 신하는 하늘과 땅처럼 분명히 구분되는 관계이다. 임금은 높고 귀하며, 신하는 낮고 천하니, 존귀한 이가 비천한 이를 부리고, 비천한 이가 존귀한 이를 섬기는 것은, 천지간의 어디에나 통용되는 도리이며, 예나 지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의리이다.
* 是故(시고)로 君者(군자)는 體元而發號施令者也(체원이발호시령자야)요 臣者(신자)는 調元而陳善閉邪者也(조원이진선폐사자야)라 會遇之際(회우지제)에 各盡其道(각진기도)하여 同寅協恭(동인협공)하여 以臻至治(이진지치)하나니
(解釋) 이 때문에, 임금은, 元의 도리를 體行하여 명령을 내리는 존재이고, 신하는 임금을 도와 착한 일을 아뢰고 부정한 일을 막는 존재이다. 임금과 신하가 만날 때에, 각각 자신의 도리를 극진히 하여, 함께 공경하여, 지극한 정치를 이루어야 한다.
* 苟或君而不能盡君道(구혹군이불능진군도)하며 臣而不能修臣職(신이불능수신직)이면 不可與共治天下國家也(불가여공치천하국가야)니라 雖然(수연)이나 吾君不能(오군불능)을 謂之賊(위지적)이니라.
(解釋) 만약 혹시라도 임금이면서 임금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며, 신하이면서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함께 천하 국가를 다스릴 수 없다. 비록 그렇지만, 우리 임금은 훌륭한 정치를 베풀 수 없다고 말하는 이를, 임금을 해치는 자라고 하니라.
* 昔者(석자)에 商紂暴虐(상주포학)이어늘 比干(비우)이 諫而死(간이사)하니 忠臣之節(충신지절)이 於斯盡矣(어사진의)로다 孔子曰 臣事君以忠(공자왈 신사군이충)이라하시니라
(解釋) 옛적에, 商나라 임금 紂(주)가 포학한 짓을 하자, 比干이, 간하다가 목숨을 잃었으니, 충신의 절개가, 여기서 극진했다. 공자께서는 신하는 임금을 忠으로 섬겨야 한다고 하셨다.
4. 부부유별(夫婦有別)
* 夫婦(부부)는 二姓之合(이성지합)이라 生民之始(생민지시)며 萬福之原(만복지원)이니 行媒議婚(행매의혼)하며 納幣親迎者(납폐친영자)는 厚其別也(후기별야)라 是故(시고)로 娶妻(취처, 아내를 얻음)하되 不娶同姓(불취동성)하며 爲宮室(위궁실)하되 辨內外(변내외)하여 男子(남자)는 居外而不言內(거외이불언내)하고 婦人(부인)은 居內而不言外(거내이불언외)하나니
(解釋) 남편과 아내는, 두 성이 합한 관계이다. 백성들이 태어난 시초이며, 모든 복의 근원이니, 중매를 시행하여 혼인을 의논하며, 폐백을 드리고 친히 맞이하는 것은, 그 區別을 두터이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를 맞아들이되, 같은 姓은 취하지 않으며, 집을 짓되, 안과 밖을 구별하여, 남자는 밖에 거처하여 안의 일에 대해 말하지 않고, 부인은 안에 거처하여 밖의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 苟能莊以對之(구능장이대지)하여 以體乾健之道(이체건건지도)하고 柔以正之(유이정지)하여 以承坤順之義(이승곤순지의)면 則家道正矣(즉가도정의)어니와 反是而夫不能專制(반시이부불능전제)하여 御之不以其道(어지불이기도)하고 婦乘其夫(부승기부)하여 事之不以其義(사지불이기의)하여 昧三從之道(미삼종지도)하고 有七去之惡(유칠거지악)이면 則家道索矣(즉가도삭의)리라
(解釋) 만일 <남편이> 씩씩함으로써 대하여, 하늘의 굳건한 도리를 體行하고, <아내는> 부드러움으로써 바로잡아, 땅이 하늘에 순종하는 도리를 받든다면, 집안의 도리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만약 이와 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하여, 올바른 도리로 다스리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의 약점을 틈 타, 올바른 도리로 섬기지 않아서, 三從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七去에 해당하는 악행이 있으면, 집안의 법도가 무너질 것이다.
* 須是夫敬其身(수시부경기신)하여 以帥其婦(이사기부)하고 婦敬其身(부경기신)하여 以承其夫(이승기부)하여 內外和順(내외화순)이라야 父母其安樂之矣(부모기안락지의)시리라
(解釋) 모름지기 남편은 자기 몸을 삼가서, 아내를 잘 거느리고, 아내는 자기 몸을 공경하여, 남편을 잘 받들어서, 내외가 화순해야, 부모님께서 편안하고 즐거워하실 것이다.
* 昔者(석자)에 郤缺(극결)이 耨(누)어늘, 其妻饁之(기처 엽지)하되 敬(경)하여 相待如賓(상대여빈)하니 夫婦之道(부부지도)가 當如是也(당여시야)니라 子思曰(자사왈) 君子之道(군자지도)는 造端乎夫婦(조단호부부)라하시니라
耨:밭에 김을 맬 누. 饁:들밥 낼 엽.
(解釋) 옛적에 郤缺이 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때, 그 아내가 새참을 내왔는데, 서로 공경하여, 상대하기를 마치 손님 모시듯 하였으니, 부부간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子思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의 도리는, 부부 사이에서 비롯된다."고 하셨다.
5. 장유유서(長幼有序)
* 長幼(장유)는天倫之序(천륜지서)라 兄之所以爲兄(형지소이위형)하고 弟之所以爲弟(제지소이위제)하야 長幼之道(장유지도)가 所自出也(소자출야)라 蓋宗族鄕黨(개종족향당)에 皆有長幼(개유장유)하니 不可紊也(불가문야)라
(解釋) 어른과 아이는, 하늘이 차례를 지어 준 관계이다. 형이 형 노릇하고, 아우가 아우 노릇 하는 것이, 어른과 어린이의 도리가, 비롯된 유래이다. 종족과 향당 에는, 모두 어른과 아이가 있으니, 이를 문란 시켜서는 안 된다.
* 徐行後長者(서행후장자)를 謂之弟(위지제)요 疾行先長者(질행선장자)를 謂之不弟(위지불제)니 是故(시고)로 年長以倍則父事之(년장이배즉부사지)하고 十年以長則兄事之(십년이장즉형사지)하고 五年以長則肩隨之(오년이장즉견수지)니
長慈幼(장자유)하며 幼敬長然後(유경장연후)에야 無侮少陵長之弊(무모소릉장지폐)하여 而人道正矣(이인도정의)리라
(解釋) 천천히 걸어서 어른보다 뒤에 쳐져 가는 것을, 공손한 태도라고 이르고, 빨리 걸어서 어른보다 앞서 걸어가는 것을, 공손하지 못한 태도라고 일컫는다. 그러므로, 나이가 갑절 많으면 어버이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나이가 열 살이 많으면 형을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나이가 다섯 살이 많으면 어깨 폭 만큼 뒤쳐져 따라가니, 어른은 어린 사람을 사랑하며, 어린 사람은 어른을 공경한 뒤에야, 젊은이를 업신여기거나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져서, 사람의 도리가 바로 설 것이다.
* 而況兄弟(이황형제)는 同氣之人(동기지인)이라 骨肉至親(골육지친)이니 尤當友愛(우당우애)요 不可藏怒宿怨(불가장노숙원)하여 以敗天常也(이패천상야)니라
(解釋) 하물며 형제간은, 기운을 함께 나눈 사람이다. 뼈와 살을 나눈 지극히 가까운 관계이니, 더욱 우애해야 할 것이요, 노여움을 마음속에 감추고 원한을 묵혀서, 하늘의 떳떳한 도리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 昔者(석자)에 司馬光(사마광)이 與其兄伯康(여기형백강)으로 友愛尤篤(우애우독)하여 敬之如嚴父(경지여엄부)하고 保之如?兒(보지여영아)하니 兄弟之道(형제지도)가 當如是也(당여시야)니라 孟子曰(맹자왈) 孩提之童(해제지동)이 無不知愛其親(무부지애기친)이며 及其長也(급기장야)하여는 無不知敬其兄也(무부지경기형야)라 하시니라
(解釋) 옛적에 司馬光이, 그의 형 伯康과 더불어, 우애하기를 더욱 돈독히 하여, 형을 엄한 아버지처럼 공경하고, 어린 아이처럼 보호하였으니, 형제간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맹자께서는, "웃을 줄 알고 손을 잡아주고 안아 줄만한 아이도, 자기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경우가 없으며, 그가 성장해서는, 그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하셨다.
6. 붕우유신(朋友有信)
* 朋友(붕우)는 同類之人(동류지인)이라 益者三友(익자삼우)요 損者三友(손자삼우)니 友直(우직)하며 友諒(우량)하며 友多聞(우다문)이면 益矣(익의)요
友便僻(우편벽)하며 友善柔(우선유)하며 友便獰(우편녕)이면 損矣(손의)리라
(解釋) 붕우는 부류가 같은 사람이다. 유익한 벗이 세 종류 있고, 해로운 벗이 세 종류가 있으니, 정직한 사람을 벗하며, 살피는 사람을 벗하며, 식견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 이롭고, 치우친 사람을 벗하며, 구미만 맞추는 사람을 벗하며, 말재주만 뛰어난 사람을 벗하면, 해롭다.
* 友也者(우야자)는 友其德也(우기덕야)니 自天子(자천자)로 至於庶人(지어서인)히 未有不須友以成者(미유불수우이성자)하니 其分(기분)이 若疎(약소)나 而其所關(이기소관)이 爲至親(위지친)하니라.
(解釋) 벗을 사귀는 것은, 그 사람의 德性을 보고 사귀는 것이다. 天子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벗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그 관계가, 소원한 것 같지만, 관련되는 것이, 지극히 가까운 관계와 같다.
* 是故(시고)로 取友(취우)를 必端人(필단인)하며 擇友(택우)를 必勝己(필승기)니 要當責善以信(요당책선이신)하며 切切時時(절절시시)하여 忠告而善道之(충고이선도지)하다가 不可則止(불가즉지)니라
(解釋) 이 때문에, 벗을 사귈 때에는, 반드시 단정한 사람을 사귀며, 벗을 가릴 때에는, 반드시 나보다 나은 사람을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 마땅히 진실한 태도를 지니고 좋은 일로 권면할 것을 요구하며 간절하고 자세하게 권면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알려주고 선으로 인도하다가, 안 되면 친구 관계를 그만두어야 한다.
* 苟或交遊之際(구혹교우지제)에 不以切磋琢磨(불이절차탁마)로 爲相與(위상여)하고 但以歡狎戱謔(단이환압허학)으로 爲相親(위상친)이면 則安能久而不疎乎(즉안능구이불소호)리오
(解釋) 만약 혹시라도, 서로 사귈 때에, 切磋琢磨하는 것으로 서로, 함께 하지 아니하고, 다만 기뻐하고 친하며 장난하고 농담하는 것으로, 서로 가까이 한다면, 어찌 오래 되어도 소원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 昔者(석자)에 晏子與人交(안자여인교)하되 久而敬之(구이경지)하니 朋友之道(붕우지도)가 當如是也(당여시야)니라 孔子曰(공자왈) 不信乎朋友(불신호붕우)면 不獲乎上矣(불획호상의)리라 信乎朋友에有道(신호붕우에유도)하니 不順乎親(불순호친)이면 不信乎朋友矣(불신호붕우의)라하셨다
(解釋) 옛적에, 晏子는 남과 사귀되, 오래 되어도 상대를 공경하였으니, 붕우간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孔子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였다. "친구들에게서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친구들에게서 신임을 얻는데, 일정한 방법이 있으니, 어버이에게서 순종한다고 인정받지 못하면, 친구들의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7. 총론(總論 )<1> 全體에 共通되는 論이라.
* 此五品者(차오품자)는 天敍之典而人理之所固有者(천서지전이인리지소고유자)라 人之行(인지행)이 不外乎五者而唯孝爲百行之源(불외호오자이유효위백행지원)이라
解釋 : 이 다섯 가지 일은, 하늘이 펼쳐 준 모범이고 사람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도리이다. 사람의 행실이, 이 다섯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오직 효도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 된다.
* 是以(시이)로 孝子之事親也(효자지사친야)는 鷄初鳴(계초명)이어든 咸?漱(함관수)하고 適父母之所(적부모지소)하여 下氣怡聲(하기이성)하여 問衣?寒(문의욱한)하며 問何食飮(문하식음)하며 冬溫而夏淸(동온이하청)하며 昏定而晨省(혼정이신성)하며 出必告(출필고)하며 反必面(반필면)하며 不遠遊(불원유)하며 遊必有方(유필유방)하며 不敢有其身(불감유기신)하며 不敢私其財(불감사기재)니라
(解釋) 이 때문에,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첫닭이 울면, 모두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옷이 더운지 추운지를 여쭈며, 무엇을 잡수시고 마시고 싶은지를 여쭈며,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돌봐드리고 새벽에는 안부를 여쭈며, 외출할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님을 대면하며, 멀리 나가 놀지 않으며, 나가 놀되 반드시 일정한 장소를 두며, 감히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감히 재물을 자기 것으로 사유하지 않는다.
* 父母愛之(부모애지)어시든 喜而不忘(희이불망)하며 惡之(오지)어시든 懼而無怨(구이무원)하며 有過(유과)어시든 諫而不逆(간이불역)하고 三諫而不聽(삼간이불청)이어시든 則號泣而隨之(즉호읍이수지)하며 怒而撻之流血(노이달지유혈)이라도 不敢疾怨(불감질원)하며 居則致其敬(거즉치기경)하고 養則致其樂(양즉치기락)하고 病則致其憂(병즉치기우)하고 喪則致其哀(상즉치기애)하고 祭則致其嚴(제즉치기엄)이니라
(解釋) 부모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시거든, 기뻐하되 잊지 않으며, 미워하시거든, 두려워하되 원망하지 않으며, 부모님께서 과실을 저지르시면, 말리되 거스르지 않으며, 세 번 간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으시거든, 부르짖고 울면서 따르며, 부모님께서 怒하여 종아리를 때려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치 않으며, 거처할 때에는 공경함을 극진히 하고, 봉양할 때는 즐거움을 극진히 하고, 병환이 드셨을 때는 근심을 극진히 해야 하고, 喪을 당해서는 슬픔을 극진히 하고, 제사 지낼 때는 엄숙함을 극진히 해야 한다.
* 若夫人子之不孝也(약부인자지불효야)는 不愛其親(불애기친)이요 而愛他人(이애타인)하며 不敬其親(불경기친)이요 而敬他人(이경타인)하며 惰其四肢(타기사지)하여 不顧父母之養(불고부모지양)하며 博奕好飮酒(박혁호음주)하여 不顧父母之養(불고부모지양)하며 好貨財(호화재)하며 私妻子(사처자)하여 不顧父母之養(불고부모지양)하며 從耳目之好(종이목지호)하여 以爲父母戮(이위부모륙)하며 好勇鬪狼(호용투낭)하여 以危父母(이위부모)니라
惰 : 게으를 타. 奕 :바둑 혁. 戮 :욕될 육.
(解釋) 부모님께 불효하는 자식은, 자기 어버이는 사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은 사랑하며, 자기 어버이는 공경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은 공경하며, 四肢를 게을리 하여,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장기나 바둑,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여,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식만을 사랑해서,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耳目의 욕망을 좇아, 부모를 욕되게 하며, 용맹을 좋아하여 싸우고 사나워서, 부모님을 위태롭게 한다.
8. 總論 <2>
* 噫(희)라 欲觀其人(욕관기인)의 行之善不善(행지선불선)인대 必先觀其人之孝不孝(필선관기인지효불효)니 可不愼哉(가불신재)며 可不懼哉(가불구재)아 苟能孝於其親(구능효어기친)이면 則推之於君臣也(즉추지어군신야)와 夫婦也(부부야)와 長幼也(장유야)와 朋友也(붕우야)에 何往而不可哉(하왕이불가재)하리오 然則孝之於人(연즉효지어인)에 大矣(대의)로되 而亦非高遠難行之事也(이역비고원난행지사야)라 噫 : 탄식할 희. 推: 밀 추.
(解釋) 아! 그 사람의, 행실이 착한지 아닌지를 살펴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이 효도하는지 아닌지를 살펴볼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으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 어버이에게 효도한다면, 그 마음을 군신간과 부부간과 장유간과 붕우간에 미루어감에 어떤 경우에 적용한들 옳지 않음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孝는 사람에게, 중대한 것이며, 또한 高遠(높고 멀어)하여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然(연)이나 自非生知者(자비생지자)면 必資學問而知之(필자학문이지지)니 學問之道(학문지도)는 無他(무타)라 將欲通古今(장욕통고금)하며 達事理(달사리)하여 存之於心(존지어심)하며 體之於身(체지어신)이니 可不勉其學問之力哉(가불면기학문지력재)아 玆用(자용)에 其歷代要義(기역대요의)하여 書之于左(서지우좌)하노라
(解釋) 그러나, 스스로 나면서부터 이치를 아는 이가 아니라면, 반드시 학문에 의지하여 알 수 있으니, 학문하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장차 古今의 事理를 통달하여 마음 속에 보존하며, 몸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이니, 학문하는 힘을 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역대의 중요한 의리를 뽑아서,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둔다.
* 蓋自太極肇判(개자태극조판)하여 陰陽始分(음양시분)으로 五行(오행)이 相生(상생)에 先有理氣(선유리기)라 人物之生(인물지생)이 林林總總(림림총총)하더니 於是(어시)에 聖人(성인)이 首出(수출)하사 繼天立極(계천립극)하시니 天皇氏(천황씨)와 地皇氏(지황시)와 人皇氏(인황씨)와 有巢氏(유소씨)와 燧人氏(수인씨)가 是爲太古(시위태고)니 在書契以前(재서계이전)이라 不可考(불가고)로다 肇:처음 조. 隧:부싯돌 수. 書契:중국 고대문자.
(解釋) 태극이 처음으로 판별되어, 음과 양이 비로소 나누어진 시기로부터, 五行이, 서로 생성됨에, 먼저 理와 氣가 있었다. 사람과 물건이 많이 생성되더니, 이에, 聖人이, 먼저 나타나서,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인간의 표준을 세웠으니, 天皇氏와 地皇氏와 人皇氏와 有巢氏와 燧人氏가 태고시절의 성인이다. 書契문자가 나타나기 이전이기 때문에, 상고할 수가 없다.
* 伏羲氏始劃 八卦(복희씨시획 팔괘)하며 造書契(조서계)하여 以代結繩之政(이대결승지정)하시고 神農氏作??(신농씨작뢰사)하며 製醫藥(제의약)하시고 黃帝氏用干戈(황제씨용간과)하며 作舟車(작주거)하며 造曆算(조역산)하며 制音律(제음률)하시니 是爲三皇(시위삼황)이니 至德之世(지덕지세)라 無爲而治(무위이치)하니라 ??: 쟁기, ?는 쟁기날, ?는 그 자루. 結繩文字(결승문자): 태고에 새끼를 매듭지어 그 모양과 수로써 의사를 소통하던 문자. 干:방패 간. 戈:창 과.
(解釋) 복희씨가 처음으로, 八卦를 긋고, 書契문자를 만들어, 結繩文字(결승문자)를 시행하여 정사를 대신했고, 신농씨가 쟁기와 보습을 만들며, 의술과 약을 만들고, 황제씨가 방패와 창을 사용하며, 배와 수레를 만들었으며, 달력과 산수를 만들며, 音律을 제정하셨으니, 이들을 三皇이라 일컫는다. 이 때는 사람들의 본성이 지극히 순박했기 때문에 인위적인 정치를 베풀지 않고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 少昊(소호)와 ?頊(전욱)과 帝?(제곡)과 帝堯(제요)와 帝舜(제순)이 是爲五帝(시위오제)라 皐夔稷契(고기직글)이 佐堯舜(좌요순)하여 而堯舜之治 卓冠百王(이요순지치- 탁관백왕)이라 孔子定書(공자정서)에 斷自唐虞(단자당우)하시니라
(註解) ?頊:고대 중국의 오제 중의 한 사람. 帝?:五帝 중의 한 분. 皐:부르는소리 고. 夔:조심할 기. 唐虞:중국 도당씨(陶唐氏)와 유우씨(有虞氏)즉 堯舜시대를 말함.
唐虞三代: 堯舜時代에다 夏, 殷, 周(하,은,주) 삼대를 합해 부르는 말.
(解釋) 少昊와 ?頊과 帝?과 요임금, 순임금을 五帝라 일컫는다. 皐陶(도)와 夔와 稷과 契이 요임금과 순임금을 보좌했으니, 요임금과 순임금의 다스림이 모든 왕의 으뜸이 되었다. 공자께서 書經을 刪定하심에 唐虞時代로부터 단정하셨다.
* 夏禹(하우)와 商湯(상탕)과 周文王武王(주문왕무왕)이 是爲三王(시위삼왕)이니 歷年(역년)이 或四百(혹사백)하며 或六百(혹육백)하며 或八百(혹팔백)하니 三代之隆(삼대지융)을 後世莫及(후세막급)이요 而商之伊尹傅說(이상지이윤전설)과 周之周公召公(주지주공소공)이 皆賢臣也(개현신야)라 周公(주공)이 制禮作樂(제례작악)하시니 典章法度(전장법도)가 粲然極備(찬연극비)하더니라.
粲然: 번쩍거리며 빛나는 모양.
(解釋) 夏나라 우왕과 商나라 탕왕과 周나라 문왕?무왕을 三王이라 일컫는다. 왕조의 수명이 어떤 경우는 400년이며 어떤 경우는 600년이며 어떤 경우는 800년이었으니 三代 시절에 융성했던 문물을 후세에는 미치지 못했고 상나라의 伊尹이나 傅說, 주나라의 周公과 召公이 모두 뛰어난 신하였다. 周公이 禮樂을 제작하셨으니 典章과 법도가 지극히 찬연하게 갖추어졌다.
* 及其衰也(급기쇠야)하여 五覇樓諸侯(오패누제후)하여 以匡王室(이광왕실)하니 若齊桓公(약제환공)과 晉文公(진문공)과 宋襄公(송양공)과 秦穆公(진목공)과 楚莊王(초장왕)이 迭主夏盟(질주하맹)하니 王靈(왕령)이 不振(부진)하니라
(解釋) 周나라가 쇠미함에 미쳐 五覇가 제후들을 이끌어 왕실을 바로 세웠으니 이를테면 제나라 桓公, 진나라 文公, 송나라 襄公, 진나라 穆公, 초나라 莊王이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중국의 맹약을 주도하였으니 왕실의 위엄이 떨쳐지지 못했다.
9. 總論 <3>
* 孔子以天縱之聖(공자이천종지성)으로 轍環天下(철환천하)하사 道不得行于世(도부득행우세)하여 刪詩書(책시서)하시며 定禮樂(정례악)하시며 贊周易(찬주역)하시며 修春秋(수춘추)하사 繼往聖(계왕성), 開來學(개래학)하시고 而傳其道者(이전기도자)는 顔子曾子(안자증자)라 事在論語(사재논어)하니라 曾子之門人(증자지문인)이 述大學(술대학)하니라
(解釋) 공자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수레를 타고 천하를 주유(周遊) 하셨으나, 道가 세상에서 시행되지 않아서, ≪시경≫과 ≪서경≫을 刪定하시며, 禮와 樂을 결정하시며, ≪주역≫을 해설하시며, 춘추를 편수하셔서, 지나간 성인을 계승하고, 후세의 학자들을 인도하셨고, 그 도를 전수 받은 이는, 顔子와 曾子이다. 이런 사실에 대한 기록은 ≪논어≫에 있다. 증자의 문인이 대학을 기술하였다.
* 列國則曰魯(열국즉왈노)와 曰衛(왈위)와 曰晉(왈진)과 曰鄭(왈정)과 曰趙(왈조)와 曰蔡(왈채)와 曰燕(왈연)과 曰吳(왈오)와 曰齊(왈제)와 曰宋(왈송)과 曰陳(왈진)과 曰楚(왈초)와 曰秦(왈진)이니 干戈日尋(간과일심)하여 戰爭不息(전쟁불식)하여 遂爲戰國(수위전국)하니 秦楚燕齊韓魏趙(진초연제한위조)가 是爲七雄(시위칠웅)이라
(解釋) 열국은 魯?衛?晉?鄭?趙?蔡?燕?吳?齊?宋?陳?楚?秦나라 등이니 방패와 창이 날마다 이어져 전쟁이 끊이지 않아 마침내 전국시대가 되었으니 秦?楚?燕?齊?韓?魏?趙의 일곱 나라를 戰國 七雄이라 일컫는다.
* 孔子之孫子思(공자지손자사) 生斯時(생사시)하사 作中庸(작중용)하시고 其門人之弟孟軻(기문인지제맹가) 陳王道於齊梁(진왕도어제양)하사 道又不行(도우불행)하여 作孟子七篇(작맹자칠편)하시되 而異端縱橫功利之說(이이단종힁공리지설)이 盛行(성행)이라 吾道不傳(오도불전)하니라
(解釋) 공자의 손자인 子思가, 이 시기에 태어나, ≪中庸≫을 저술하셨고, 그 문인의 제자인 孟軻가,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왕도정치를 진술하셨는데, 도가 또 시행되지 못하여, ≪孟子≫ 7편을 저술하셨으나, 이단과 종횡과 공리의 학설이, 성행해서, 우리 유학의 도가 전해지지 못하였다.
* 及秦始皇(급진시황)하여 呑二周(탄이주) 滅六國(멸육국)하며 廢封建爲郡縣(폐봉건위군현)하며 焚詩書(분시서), 坑儒生(갱유생)하니 二世而亡(이세이망)하니라
(解釋) 진시황 시대에 이르러서는, 두 주나라를 병탄하고, 여섯 제후국을 멸망시키며,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시행하며, 詩書를 불태우고 유생들을 구덩이 속에 파묻어 죽이니, 2代만에 멸망하였다. 분서갱유(焚書坑儒)
10. 總論 < 4 >
* 漢高祖起布衣成帝業(한고조기포의성제업)하여 歷年四百(역년사백)하되 在明帝時(재명제시)하여 西域佛法(서역불법)이 始通中國(시통중국)하여 惑世誣民(혹세무민)하니라 蜀漢(촉한)과 吳(오)와 魏(위) 三國이 鼎峙而諸葛亮(정치이제갈량)이 仗義扶漢(장의부한)하다가 病卒軍中(병졸군중)하니라
(解釋) 한나라 고조가 布衣로 일어나 황제의 위업을 이루어서, 왕조의 수명이 4백년에 이르렀는데, 明帝때에, 西域의 불교가, 처음으로 중국에 유통하여, 세상을 미혹시키고 백성들을 속였다. 蜀漢과 吳와 魏의 세 나라가 솥발처럼 대치하고 있었는데, 제갈량이 의리를 지켜 漢나라를 부지하다가, 병이 들어 전쟁터에서 죽었다.
* 晉有天下(진유천하)에 歷年百餘(역년백여)하되 五胡亂華(오호난화)하니 宋齊梁陳(송제양진)에 南北分裂(남북분열)이러니 隋能混一(수능혼일)하되 歷年三十(역년삼십)하니라
(解釋) 晉나라가 천하를 다스림에, 왕조의 수명이 100여 년에 이르렀는데, 다섯 오랑캐나라가 중화를 어지럽히니, 宋?齊?梁?陳에,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隋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였으나, 왕조의 수명이 30년에 그쳤다.
* 唐高祖(당고조)와 太宗(태종)이 乘隋室亂(승수실난)하여 化家爲國(화가위국)하여 歷年三百(역년삼백)하니라 後梁(후량)과 後唐(후당)과 後晉(후진)과 後漢(후한)과 後周(후주) 是爲五季(시위오계)니 朝得暮失(조득모실)하여 大亂(대란)이 極矣(극의)라
(解釋) 당나라 고조와, 태종이, 隋나라 왕실의 어지러움을 틈타, 일개 집안을 변화시켜 나라로 만들어, 왕조의 수명이 300년에 이르렀다. 後梁과 後唐과 後晉과 後漢과 後周를 五季라고 하니, 아침에 나라를 얻었다가 저녁이면 잃어버려서, 크게 혼란함이, 극도에 이르렀다.
* 宋太祖立國之初(송태조입국지초)에 五星(오성)이 聚奎(취규)하여 濂洛關?(렴락관민)에 諸賢(제현)이 輩出(배출)하니 若周敦?(약주돈이)와 程顥(정호)와 程?(정이)와 司馬光(사마광)과 張載(장재)와 邵雍(소옹)과 朱熹(주희)가 相繼而起(상계이기)하여 以闡明斯道(이천명사도)로 爲己任(위기임)하되 身且不得見容(신차부득견용)하고 而朱子集諸家說(이주자집제가설)하사 註四書五經(주사서오경)하시니 其有功於學者(기유공어학자) 大矣(대의)로다
(濂洛關?이란 濂溪의 周燉?(字:茂叔). 洛陽의 程顥(字:伯淳, 號:明道). 程顥의 아우 程?(字:正叔, 號:伊川). 關中의 張載(字:子厚, 號:橫渠). ?中의 朱熹(字:元晦, 號:晦庵)등 이들이 主唱한 儒敎를 宋學?道學?濂洛關?之學이라고도 한다. 司馬光:宋나라 名臣이며 司馬溫公이라고도 한다.
(解釋) 송나라 태조가 국가를 세운 초기에, 다섯별이, 奎星에 모여, 濂?洛?關??에, 여러 현인들이, 배출되었으니, 周敦?와 程顥와 程?와 司馬光과 張載와 邵雍과 朱熹 같은 학자들이, 서로 이어 나타나, 이 유학의 도를 밝히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로 삼았지만, 자기 몸조차도 용납 받지 못했다. 주자가 諸家의 학설을 모아서, 사서와 오경을 주해하셨으니, 배우는 자들에게 크게 공을 세웠다.
* 然而國勢不競(연이국세불경)하여 歷年三百(역년삼백)하니 契丹(걸안)과 蒙古(몽고)와 遼(요)와 金(금)이 迭爲侵?(질위침질)하고 而及其垂亡(이급기수망)하여 文天祥(문천상)이 竭忠報宋(갈충보송)하다가 竟死燕獄(경사연옥)하니라
迭:바꿀 질. ?:번갈아 질. 竭:다할 갈. 竟:마침내 경.
(解釋) 그러나 국가의 힘이 강하지 못하여, 왕조의 수명이 300년에 그쳤으니, 거란과 몽골과 遼와 金이, 차례대로 침략하고, 망조를 드리움에 미쳐, 文天祥이, 충성을 다하여 송나라에 보답하다가, 마침내 연경의 옥에서 죽었다.
* 胡元(호원)이 滅宋(멸송)하고 混一區宇(혼일구우)하여 綿歷百年(면역백년)하니 夷狄之盛(이적지성)이 未有若此者也(미유약차자야)로다 天厭穢德(천염예덕)이라 大明(대명)이 中天(중천)하사 聖繼神承(성계신승)하시니 於(오)千萬年(천만년)이로다.
夷는 동방 오랑케. 狄은 북방 오랑케. 厭:싫을 염. 穢:더러울 예.
(解釋) 오랑캐 元나라가, 宋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여, 면면히 백년을 이어갔으니, 오랑캐가 세력을 떨침이, 이 때만한 적이 없었다. 하늘이 더러운 덕을 싫어하셨는지라, 大明이, 하늘 한 가운데로 떠올라, 聖人과 神人이 계승하였으니, 아! 천만년을 이어가리로다.
* 嗚呼(오호)라 三綱五常之道(삼강오상지도)가 與天地(여천지)로 相終始(상종시)하니 三代以前(삼대이전)에는 聖帝明王(성제명왕)과 賢相良佐(현상양좌)가 相與講明之(상여강명지)라 故(고)로 治日(치일)이 常多(상다)하고 亂日(난일)이 常少(상소)하더니 三代以後(삼대이후)에는 庸君暗主(용군암주)와 亂臣賊子(난신적자)가 相與敗壞之(상여패괴지)라 故(고)로 亂日(난일)이 常多(상다)하고 治日(치일)이 常少(상소)하니 其所以世之治亂安危(기소이세지치난안위)와 國之興廢存亡(국지흥폐존망)이 皆由於人倫之明不明如何耳(개유어인륜지명불명여하이)라 可不察哉(가불찰재)아
(解釋) 아! 三綱五常의 도리는, 천지와 더불어, 始終을 함께 하니, 三代 이전에는, 성스러운 임금, 명철한 군주와, 어진 재상과 뛰어난 보좌관들이, 서로 함께 강론하여 밝혔다. 그 때문에, 다스려진 날이 항상 많았고, 어지러운 날이 항상 적었는데, 三代 이후에는, 용렬한 임금, 어두운 군주들과,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신하와 집안의 도리를 해치는 자식들이, 서로 함께 그것을 무너뜨렸다. 그 때문에,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고, 다스려진 날이 항상 적었다. 세상이 다스려지고 어지러우며 편안하고 위태로운 것과, 나라가 일어나고 폐지되며 보존되고 멸망하는 까닭은, 모두 人倫이 밝혀졌느냐 밝혀지지 않았느냐 가 어떠한지 에서 말미암는다.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11. 總論 <5>
* 東方(동방)에 初無君長(초무군장)하더니 有神人(유신인)이 降于太白山檀木下(강우태백산단목하)하여 神靈明智(신령명지)어늘 國人(국인)이 立以爲君(립이위군)하니 與堯(여요)로 竝立(병립)하여 國號(국호)를 朝鮮(조선)이라 하니 是爲檀君(시위단군)이라
(解釋) 동방에, 처음에는 君長이 없었는데, 神人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자, 신령스럽고 지혜가 밝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의 아들을〉 임금으로 삼았다. 堯임금과 동시대에 즉위하여, 국호를 朝鮮이라고 했으니, 이가 檀君이다.
* 殷太師箕子가 封于朝鮮(봉기자우조선)하여 率衆東來하사 敎民禮儀(교민예의)하여 設八條之敎(설팔조지교)하시니 有仁賢之化(유인현지화)하더라
(解釋) 은 태사 기자가, 조선에 봉하니 기자가 무리를 이끌고 동쪽에 와서 백성들에게 예의를 가르쳐서, 여덟 조목의 가르침〔八條之敎〕를 베풀었으니 어진 사람 기자의 교화가 있었다.
* 燕人衛滿(연인위만)이 因盧?亂(인노관란)하여 亡命來(망명래)하여 誘逐箕準(유축기준)하고 據王儉城(거왕검성)하더니 至孫右渠(지손우거)하여 漢武帝討滅之(한무제토멸지)하고 分其地(분기지)하여 置樂浪臨屯玄?眞蕃四郡(치낭랑임둔현토진번사군)하다 昭帝以平那玄?(소제이평나현토)로 爲平州(위평주)하고 臨屯樂浪(임둔낭랑)으로 爲東府二都督府(위동부이도독부)하다
(解釋) 燕나라 사람 衛滿이, 盧?의 난리를 피하여, 망명해 와서, 箕準을 유인하여 쫓아내고, 王儉城을 차지하였는데, 손자인 右渠王대에 이르러, 한나라 무제가 토벌하여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분할하여, 樂浪?臨屯?玄??眞蕃의 四郡을 만들었다. 昭帝가 平那와 玄?를 합쳐서 平州로 만들고, 임둔과 낙랑을 동부의 두 都督府로 만들었다.
* 箕準(기준)이 避衛滿(피위만)하여 浮海而南(부해이남)하여 居金馬郡(거금마군)하니 是爲馬韓(시위마한)이라 秦亡人(진망인)이 避人韓(피인한)이어늘 韓(한)이 割東界以與(할동계이여)하니 是爲辰韓(시위진한)이라 弁韓則立國於韓地(변한즉입국어한지)하니 不知其始祖年代(부지기시조연대)라 是爲三韓(시위삼한)이라
(解釋) 箕準이, 위만을 피해, 바다에 떠서 남쪽으로 내려와, 金馬郡에 정착했으니, 이것이 馬韓이다. 秦나라에서 망명한 사람이, 진나라 사람을 피하여 韓나라로 들어오자, 韓나라가 동쪽 영토를 분할하여 제공하니, 이것이 辰韓이다. 弁韓은 韓나라의 영토에 나라를 세웠으니 그 시조와 연대를 알 수 없다. 이것이 三韓이다.
* 新羅始祖赫居世(신라시조혁거세)는 都辰韓地(도진한지)하여 以朴爲姓(이박위성)하고 高句麗始祖朱蒙(고구려시조주몽)은 至卒本(지졸본)하여 自稱高辛之後(자칭고신지후)로라 하여 因姓高(인성고)하고 百濟始祖溫祚(백제시조온조)는 都河南慰禮城(도하남위례성)하여 以扶餘(이부여)로 爲氏(위씨)하여 三國(삼국)이 各保一隅(각보일우)하여 互相侵伐(호상침벌)하더니
(解釋) 신라의 시조 赫居世는, 진한의 영토에 도읍을 정하여,00 朴을 성씨로 삼고, 고구려의 시조인 朱蒙은, 卒本땅에 이르러, 스스로 高辛씨의 후예라고 일컬어, 그에 따라 高를 성씨로 삼았고, 백제의 시조인 溫祚는, 河南땅 慰禮城을 도읍지로 정하여, 扶餘를 성씨로 삼아서, 삼국이, 각각 한 모퉁이를 차지하여, 서로 공격하였다.
* 其後(기후)에 唐高宗(당고종)이 滅百濟高句麗(멸백제고구려)하고 分其地(분기지)하여 置都督府(치도독부)하여 以劉仁願 薛仁貴(이유인원 설인귀)로 留鎭撫之(유진무지)하니 百濟(백제)는 歷年(역년)이 六百七十八年(678년)이요 高句麗(고구려)는 七百五年(705년)이라
(解釋) 그 뒤에, 당나라 고종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분할하여, 都督府를 설치하여, 劉仁願과 薛仁貴로 하여금, 머물러서 진무케 하였으니, 백제는 왕조의 수명이 678년에 이르렀고, 고구려는 705년이었다.
* 新羅之末(신라지말)에 弓裔叛于北京(궁예반우북경)하여 國號(국호)를 泰封(태봉)이라하고 甄萱(견훤)이 叛據完山(반거완산)하여 自稱後百濟(자칭후백제)로라하다 新羅亡(신라망)하니 朴昔金三姓(박석금삼성)이 相傳(상전)하여 歷年(역년)이 九百九十二年(992년)이라.
(解釋) 신라의 말기에, 弓裔가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泰封이라 하였고, 甄萱이, 반란을 일으켜 完山州를 점거하여, 스스로 後百濟라고 일컬었다. 신라가 멸망하니, 朴?昔?金의 세 성씨가, 서로 왕위를 전수하여, 왕조의 수명이, 992년에 이르렀다.
* 泰封諸將(태봉제장)이 立麗祖王建(입려조왕건)하여 爲王(위왕)하니 國號(국호)를 高麗(고려)라 하여 剋殘群凶(극잔군흉)하고 統合三韓(통합삼한)하여 移都松嶽(이도송악)이러시니 至于季世(지우계세)하여 恭愍(공민)이 無嗣(무사)하고 僞主辛禑(위주신우)가 昏暴自恣(혼폭자자)하며 而王瑤不君(이왕요불군)하여 遂至於亡(수지어망)하니 歷年(역년)이 四百七十五年(475년)이라
(解釋) 泰封의 여러 장수들이, 고려의 시조 왕건을 세워서, 왕으로 삼으니, 國號를, 高麗라고 하여, 여러 흉악한 인물들을 이겨 없애고, 三韓을 통합하여, 도읍을 松嶽으로 옮겼다. 고려의 말년에 이르러, 恭愍에게, 後嗣가 없고, 가짜 임금 辛禑가, 어둡고 포악하며 스스로 방자하였으며, 恭讓이 임금 노릇을 못하여, 마침내 망하기에 이르니, 왕조의 수명이, 475년이었다.
* 天命(천명)이 歸于眞主(귀우진주)하니 大明太祖高皇帝賜改國號曰朝鮮(대명태조고황제사개국호왈조선)이어시늘 定鼎于漢陽(정정우한양)하사 聖子神孫(성자신손)이 繼繼繩繩(계계승승)하사 重熙累洽(중희누흡)하사 式至于今(식지우금)하시니 實萬世無疆之休(실만세무강지휴)삿다
(解釋) 天命이, 진정한 군주에게 돌아가니, 明나라 太祖 高皇帝가 국호를 朝鮮이라고 고쳐 내리자, 한양에 도읍을 정하여,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자손들이, 끊임없이 계승하여, 거듭 빛내고 여러 차례 스며들어서, 지금에 이르니, 실로 만세 토록 끝없을 아름다움이로다.
* 於?(어희)라 我國(아국)이 雖僻在海隅(수벽재해우)하여 壤地編小(양지편소)하나 禮樂法度(예악법도)와 衣冠文物(의관물물)을 悉遵華制(실존화제)하여 人倫(인륜)이 明於上(명어상)하고 敎化行於下(교화행어하)하여 風俗之美(풍속지미)가 模擬中華(모의중화)하니 華人(화인)이 稱之曰小中華(칭지왈소중화)라하니 玆豈非箕子之遺化耶(자개비기자지유화야)리오 嗟爾小子(차이소자)는 宜其觀感而興起哉(의기관감이흥기재)인저
(解釋) 아!, 우리나라가, 비록 궁벽하게 바다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영토가 編小하지만, 예악법도와, 의관문물을, 모두 중화의 제도를 따라, 인륜이, 위에서 밝혀지고, 교화가 아래에서 시행되어, 풍속의 아름다움이, 中華를 방불하였다. 이 때문에 중화 인들이, 우리를 小 中華라고 일컬으니, 이 어찌 箕子가 끼쳐준 교화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 너희 小子들은 의당 보고 느껴서 興起할지어다.
12. 어제동몽선습서(御製童蒙先習序)
* 夫此書(부차서)는 卽東儒所撰也(즉동유소찬야)라 總冠以五倫(총관이오륜)하고 復以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복이부자군신부부장유붕우)로 列之于次(열지우차)하고 而其自太極肇判(이기자태극조판)으로 三皇五帝 夏殷周 漢唐宋以至皇朝(삼황오제 하은주 한당송이지황조)히 歷代世系(역대세계)를 纖悉備錄(섬실비록)하고 逮夫我東(체부아동)에 始檀君 歷三國(시단군 역삼국)하야 至于我朝(지우아조)히 亦爲俱載(역위구재)하니 文雖約而錄則博(문수약이록즉박)하고 卷雖小而包則大(권수소이포즉대)라
(解釋) 이 책은, 바로 우리나라 유학자가 저술한 것이다. 앞에는 五倫을 총론으로 놓고, 다시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의 도리를, 다음에 열거하였으며, 太極이 처음 나뉨으로부터, 三皇?五帝와 夏?殷?周, 漢?唐?宋을 거쳐 皇朝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세계를 상세히 갖추어 기록하고, 우리나라에 미쳐서는, 檀君으로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를 거쳐, 우리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또한 모두 기록하였으니, 글은 비록 간략하지만 기록한 범위는 넓고, 卷은 비록 작지만 포함하고 있는 뜻은 크다.
* 其況堯舜之道(기황요순지도)는 孝弟而已(효제이기)라 舜之命契(순지명설)하사대 以五品爲重(이오품위중)하시니 此文之冠以五倫者 其意宏矣(차문지관이오륜자 기의굉의)로다 噫(희)라 孝於親然後 忠於君(효어친연후 충어군)하고 弟于兄然後(제우형연후)에 敬于長(경우장)하나니 以此觀之(이차관지)컨대 五倫之中(오륜지중)에 孝弟爲先(효제위선)이라 雖然(수연)이나 詩贊文王曰 於緝熙敬止(시찬문왕왈)삿다하니 敬者(경자)는 成始終徹上下之工夫也(성시종철상하지공부야)라 故(고)로 大學要旨(대학요지)는 卽敬字也(즉경자야)요 中庸要旨(중용요지)는 卽誠字也(즉성자야)니 誠敬(성경)이 亦於學問(역어학문)에 車兩輪鳥兩翼者也(차양륜조양익자)라
(解釋) 더욱이 요순의 도는, 효도와 공경일 뿐이다. 순임금이 契(설)에게 명령하시되, 五品(五倫)을 가장 중시하셨으니, 이 책에서 五倫을 맨 앞에 놓은 것은, 그 뜻이 크다고 할 것이다. 아! 부모에게 효도한 뒤에야, 임금에게 충성할 수 있고, 형을 공경한 뒤에라야, 윗사람을 공경할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을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오륜 가운데에서, 효도와 공경이 가장 우선이다. 그러나, ≪시경≫에서 문왕을 찬양하면서, "아! 끊임없이 빛내시어 敬에 머무르셨다."고 했으니, 敬이란, 처음과 끝을 이루고 上과 下에 모두 통하는 공부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요지는, 敬 한 글자에 있고, ≪중용≫의 요지는, 誠 한 글자에 있으니, 誠과 敬이, 또한 학문을 해 나아가는 데에,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새의 두 날개와 같다고 하겠다.
* 今予於此書(금여어차서)에 以誠敬二字(이성경이자)로 冠于篇首(관우편수)하노니 誠然後(성연후)에야 能免書自我自(능면서자아자)오 敬然後(경연후)에야 可以欽體欽遵(가이흠체흠존)이니 學者豈可忽乎哉(학자개가홀호재)아 予又於卷下 國初開創 受號朝鮮之文(여우어권하 국초개창 수호조선지문)에 慨然追慕(개연추모)하야 三復興感也(삼부흥감야)하노라
噫(희)라 繼繼承承(계계승승)하사 重熙累洽(중희누흡)이 寔是至仁盛德(식시지인성덕)과 深恩隆惠(심은융혜)가 垂裕後昆之致(수유후곤지치)시니 繼體之君(계체지군)이 式體至德(식체지덕)하야 兢兢業業(긍긍업업)하야 誠心調劑(성심조제)하야 至于蕩蕩(지우탕탕)하며 誠心愛民(성심애민)하야 永保元元(영보원원)이면 則吾國(즉오국)이 其庶幾也(기서기야)며 吾國(오국)이 其庶幾也(기서기야)인저
(解釋) 이제 내가 이 책에서, 誠과 敬 두 글자를 가지고, 책의 맨 앞에 놓으니, 誠을 이룩한 뒤에야, 책은 책 대로이고 나는 나 대로인 병통을 면할 수 있고, 敬을 유지한 뒤에야 삼가 體行하고 삼가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니, 배우는 사람들이 어찌 이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또 책 말미에 국초에 나라를 세우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는 부분에 대하여, 개연히 추모해서 세 번 반복하여 읽고 감동했노라.
아! 끊임없이 이어서 거듭 빛내시고 여러 번 무젖어듬은 실로 선왕들께서 지극한 덕성과 깊은 은혜를 후손들에게 넉넉히 남겨주신 것이 이룬 것이니, 체통을 이어갈 군주들이 이 지극한 덕을 체행하여,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지니고 성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닦아 蕩蕩(공평 무사함)함을 이루며, 성심으로 백성들을 사랑하여 길이 만백성들을 보호한다면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지게 될 것이며,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지게 될 것이다.
且我東禮義 雖因箕聖之敎化(차아동예의 수인기성지교화)나 三韓以後(삼한이후)에는 幾乎泯焉(기호민언)이러니 入于我朝(입우아조)하야 禮樂(예악)이 畢擧(필거)하고 文物(문물)이 咸備(함비)하니 惜乎(차호)라 述者之猶遺乎此哉(술자지유유호차재)여 嗟爾小子(차이소자)아 益加勉?也夫(익가면전야)인저
時玄??茂 朝月上浣(시현익암무 조월상완)에 命芸館而廣印(명예관이광인)하고 作序文於卷首(작서문어권수)하노라
泯:망할 민. 焉:어찌 언. 擧:들 거.?:말 그칠 전. ?:검을 익,天干의 壬의 딴이름. ?:내시 엄, 환관.
(解釋)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예의는, 비록 箕子의 교화에 힘입었지만, 三韓 이후에는, 거의 민멸 되었다가, 우리 조선조에 들어와, 예악이, 다 거행되고, 문물이, 다 구비되었는데, 저자가 이 내용을 빠뜨리고 기록하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 아! 小子들은 더욱 노력할지어다.
때는 壬戌年(1742년) 정월 상순에 芸館에 명하여 널리 인쇄해서 반포케 하고, 책머리에 서문을 쓰노라.
13. 발문(跋文) - 終
* 孟子曰 讀其書(맹자왈 독기서)하고 誦其詩(송기시)하되 不知其人(부지기인)이 可乎(가호)아 하시니라 余幼時(여유시)에 見人家子弟初學者 無不以是書爲先(견인가자제초학자 무불이시서위선)하되 而第不知出於何人之手矣(이제부지출어하인지수의)러니 今朴上舍廷儀氏 來謂余曰(금박상사정의씨 래위여왈) 此(차)는 吾高祖諱世茂之所編也(오고조휘세무지소편야)라하니 余不覺驚喜曰(여불각경희왈) 今日(금일)에 始知其人矣(시지기인의)와라
(解釋) 맹자께서는 "그 사람의 글을 읽고, 그 사람의 시를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어릴 때에, 남의 집안 자제들을 보니, 초 학자로서, 모두 이 책을 제일 먼저 배우지 않음이 없었는데, 다만 누구의 손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朴上舍 廷儀氏가 와서 나에게, "이 책은, 저희 고조부이신 諱가 世茂인 분이 엮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기뻐서 "오늘에야, 비로소 그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 公(공)은 爲明廟朝名臣(위명묘조명신)이라 其學問有淵源(기학문유연원)하고 而門路亦甚正(이문로역심정)하니 觀於此編(관어차편)하면 則可知矣(즉가지의)라 其該括約說(기해괄약설)이 無非學問中體認一大公案(무비학문중체인일대공안)이요 而所序歷代(이소서역대)는 又史家之總目也(우사가지총목야)라
(解釋) 公은, 明宗 代의 이름난 신하로, 그의 학문은 연원이 있고, 門路 또한 매우 바르니,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내용이 포괄적이면서도 요약하여 말했으니, 이는 모두 학문하는 가운데 반드시 體認해야 할 일대의 公案이요, 차례대로 서술한 역대의 사실, 또한 史家의 總目이다.
* 或疑編內所輯理氣性命等說(혹의편내소집이기성명등설)은 非童學所能知(비동학소능지)라하나 此則不知作者本意所在也(차즉부지작자본의소재야)라 朱子嘗論仁說曰 此等名義(주자상론인설왈 차등명의)는 古人之敎 自小學之時(고인지교 자소학지시)로 已有白直分明訓說(이유백직분명훈설)하여 得知此道理(득지차도리)를 不可不著實踐履(불가불저실천이)니 所以實造其地位也(소이실조기지위야)라 若茫然理會不得(약망연리회부득)이면 則其所以求之者 乃其平生所不識之物(즉기소이구지자 내기평생소불식지물)이니 復何所向望慕愛而知所以用其力耶(복하소향망모애이지소이용기력야)아하시니 今之童學(금지동학)이 略識諸般名義界限(약식제반명의계한)하여 終有所歸宿者(종유소귀숙자)는 必於此書而得之(필어차서이득지)리니 其功(기공)이 豈不大哉(개불대재)아
(解釋) 어떤 사람은 이 책에 수록된 理氣나 性命과 같은 말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의심하지만, 이는 저자의 본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것이다. 朱子는 일찍이 仁에 관한 내용을 논의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종류의 명칭과 의미는, 고인들이 가르칠 때에, ≪小學≫을 배울 때부터, 이미 명백 직절하고 분명한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이> 이 도리를, 착실하게 실천하지 않아서는 안 됨을 알 수 있었으니, 실제로 그와 같은 경지에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망연히 이해하다가 안 되면,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마침내 평생토록 알지 못할 개념이 되고 말 것이니, 다시 어디를 바라보고 사모하여 힘을 쓸 줄 알겠는가?." 요즘의 童學들이, 대략이나마 여러 가지 명칭과 의미가 구분됨을 알아서, 결국 귀결할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반드시 이 책에서 얻은 것일 터이니, 그 공로가, 어찌 크지 않다 하겠는가!
* 竊聞今上殿下每臨筵(절문금상전하매임연)에 喜說此書(희설차서)라하니 睿學之明(예학지명)이 必有以識此矣(필유이식차의)시리라
公(공)의 字(자)는 景藩(경번)이요 咸陽人(함양인)이니 登第(등제)하여 始爲翰林(시위한림)하고 官止監正(관지감정)하니라 蘇齋盧相公守愼(소제노상공수신)이 以嘗著此書 訓其子弟(이상저차서훈기자제)로 載公墓碣云(재공묘갈운)이라 竊:가만히 절, 저으기 절.
(解釋) 저으기 들으니 지금 임금께서 經筵에 나아가실 때마다, 이 책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즐기신다고 하니, 임금님의 밝은 지혜가, 반드시 이 점을 아시기 때문일 것이다.
공의 자는, 景藩이고, 본관은 함양이니, 처음 과제에 올라, 한림이 되었고, 벼슬이 監正에 이르렀다. 蘇齋 盧相公 守愼은, "공이 일찍이 이 책을 저술하여, 자제들을 가르쳤다."는 내용으로 공의 墓碣銘에 기록하였다.
崇禎紀元之商橫 茂陽月日(숭정기원지상횡)에 恩津宋時烈(은율송시열)은 謹跋(근발)하노라
(解釋) 崇貞 기원후 庚戌年(1670년) 10월 일에 恩津人 宋時烈은 삼가 발문을 쓰노라
〈 大尾 〉
<동몽선습(童蒙先習)>
【해설】
조선시대 서당(書堂)에서 교재로 사용한 책. 조선 중종 때 학자 박세무(朴世茂)가 저술하여 1670년(현종 11)에 간행하였다. <천자문>을 익히고 난 후의 학동들이 배우는 초급교재로, 먼저 부자유친(父子有親)ㆍ군신유의(君臣有義)ㆍ부부유별(夫婦有別)ㆍ장유유서(長幼有序)ㆍ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五倫)을 설명하였다. 이어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부터 명나라까지의 역대사실(歷代史實)과 한국의 단군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를 약술하였다.
이 책의 중요성을 깨달은 영조는 교서관(校書館)으로 하여금 발간하여 널리 보급하도록 하였다. 1541년(중종 36)에 쓴 저자의 친필사본(親筆寫本)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초간본은 전하지 않고 1759년(영조 35)의 중간본만 전하며, 1742년 영조가 쓴 서(序)와 1770년에 송시열이 쓴 발(跋)이 있다.
【편찬자 박세무】
편찬자 박세무(朴世茂)는 조선 전기 중종 연간(1487∼1554.성종 18∼명종 9) 사람으로 자 경번(景蕃), 호 소요당(逍遙堂),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1516년(중종 11)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31년 식년문과에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들어갔으며 여러 벼슬을 거쳐 헌납(獻納)이 되었다. 39년 중추부경력(中樞府經歷)을 지냈으며 마전군수(麻田郡守) 때는 선정을 베풀었다. 44년 승문원 참교(參校)를 지내고 이어 안변부사(安邊府使) 등을 거쳐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했으며, 글씨를 잘 썼다. 예조판서에 추증, 괴산(槐山) 화암서원(花巖書院)에 배향되었다.
박세무는 44세가 되서야 급제하였고 관직 또한 높지 않았으며 눈에 띄는 공적도 없다. 그러나 이는 그의 출신성분과 관련있지 않을까 한다. 필선채응복소(弼善蔡膺福疏)에 의하면 김식(金湜), 김정(金淨)과 도의지교(道義之交)였다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묘사림과 긴밀한 관계였다 여겨진다. 그의 집안 역시 중앙정계와는 거리가 멀다. 아마 그 역시 중종 초기에는 관직이 없었지만 심정적으로는 사림에 속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기묘사화 이후 직접적인 화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훈신들이 주도하는 정국에서 그의 정치적 출세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그가 묵묵히 저술했던 저서가 후대 조선사회에 대표적인 초급교육교재가 될 줄은 그도 몰랐을 것이다.
그의 대표저서는 단연 동몽선습(童蒙先習)이라 할 수 있다. 정확한 편찬연대는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발문에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 이 책을 읽지 않는 자가 없었다는 대목과 이 책으로 노수신(盧守愼)이 자제를 가르쳤다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동몽선습이 초학자(初學者)들의 필독서임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몽선습의 책 체제】
동몽선습은 1책으로 대략 5,000자 남짓 되는 짧은 내용이다. 또한 간단한 한자로 구성되어 있어 초학자(初學者)들이 대하기 쉬운 책이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유학의 핵심을 포함하고 있다. 동몽선습의 본문은 중종 연간 사람인 박세무가 지었으나 그 후에 영조(英祖) 임금이 서문을 쓰고 송시열이 발문을 써 합친 형태가 일반적이다.
어제 서문(御製序文)은 영조 18년 책이 중간(重刊)될 때 영조가 직접 지은 부분이다. 여기서 영조는 책에 수록된 내용을 간단히 언급하며 효제(孝悌)를 강조한다. 책에 수록된 내용은 오륜(五倫)에 대한 각각의 설명과 이를 정리하는 총론(總論)이 나온 후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하며 초학자들의 분발을 요구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들어가면 만물 중 사람만이 귀한데 그 이유는 오륜(五倫)이 있기 때문이라 하며 이 다섯 가지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오륜이라 함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붕우유신(朋友有信),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말하는 것으로 유교성리학 이념을 실생활에 접목시켜 설명하는 것이다. 오륜이란 말은 맹자(孟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잘 지켜지는 곳이 이상(理想)사회라 하니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전통윤리관이라 하겠다. 간단하게 오륜을 설명한 후에는 각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고사(古事)를 인용하여 그 이해를 돕고 있다.
총론(總論)에서는 오륜의 기초를 효도라 하며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까지 언급한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의 역사의 주요 사건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간략하게 적고 있다. 이런 사략형 서술을 초학자들에게 역사를 부담 없이 손쉽게 접하게 해주는 이점이 있다.
전체적으로 중국사에 치중한 것이나 한국사의 서술에 있어 모화(慕華)주의적 경향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고 하나 당시 한국사에 대한 인식은 중국사에 대해 독자적인 민족사라기보다 하나의 문화권 안에서 중화(中華)의 일부로서의 역사라 여겼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발문(跋文)은 송시열에게 진사(進士) 박정의(朴廷儀)가 책을 가져와 자신의 고조부 박세무가 지은 것이라 하며 발문을 청했기 때문에 지어 준 것이다. 송시열은 일찍이 저자를 알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다가 박세무의 이름을 듣고 그의 약력과 함께 책의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설명을 칭찬하며 책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사략(史略) 부분 요지】
16세기 사림들은 왕도정치 구현이라는 정치목표 달성을 위해 자신들의 기반을 강화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역사인식과 서술에 힘쓸 수만은 없었다. 사서를 체계적으로 편찬할 만한 여유를 가지기 어려웠기 때문에 기존 사서의 축약본인 사략형 사서들이 많았으며 자제들이나 향촌사회의 주민들에게 도덕적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의리, 절의, 명분이 강조되었다.
이에 전체 중국사와 한국사의 시간적 서술에 고사인용을 더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천지창조서부터 명조(明朝)까지 한족(漢族) 중심의 중화주의적 역사서술을 하고 있다.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신화적 활약과 삼대(三代)의 융성, 춘추전국의 혼란함, 진(秦)의 폭정과 후대 왕조의 명멸을 나타내며 편찬자는 하(夏)ㆍ은(殷)ㆍ주(周) 삼대(三代) 이전에는 삼강오상(三綱五常)의 도리가 잘 지켜져 세상이 평화스러웠는데 삼대 이후에는 그 도리가 무너져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부언하고 있다. 즉 국가나 사회의 흥망(興亡)안위(安危)가 도의에 달렸음을 강조하며 초학자들에게 이를 실천할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한국사 서술에 있어서는 단군(檀君)부터 시작하는데 요(堯)와 병립하였음을 주장하며 국호가 조선(朝鮮)이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조선(箕子朝鮮)과 위만조선(衛滿朝鮮)을 언급함에 있어서는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하며 덕분에 조선에 예의와 도의가 전해진 것 같이 묘사해 모화적이라 비판받을 수 있겠다. 삼한(三韓)에 대해서도 마한과 진한은 중국 출신이 세웠다는 묘한 언급을 하고 있다. 당(唐)의 고구려(高句麗)ㆍ백제(百濟) 정벌도 ‘진무(鎭撫)’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있다. 또한 고려 말기 우왕(禑王)을 신우(辛禑)라 지칭해 조선왕조 개창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선을 ‘소중화(小中華)’라 칭함을 자랑스레 말하며 초학자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감상 및 평가】
동몽선습은 비록 독립된 사서가 아니며 모화적이기는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역사가 일반인들에게 언제부터 교재로서 영향력을 발휘했었는가라는 문제라고 여겨진다. 이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역시 조선시대에 이르러 일반적인 서당교재로서 동몽선습이 채택된 이후가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을 교재로 써야 했다는 측면에서 마련된 책이 바로 동몽선습이다. 물론 동몽선습은 중국사에 치중하여 그 내용을 수록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비판해야 할 충분한 이유는 있다. 그러나 그 시대에 한국사를 수록하여 천자문을 뗀 학생에게, 윤리교육 다음으로 중요한 가치덕목으로서의 역사를 교육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조선 말기 신학문이 도입될 때까지 동몽선습은 향촌사회의 기초적 역사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역사교육은 서원이나 성균관 등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일반 민들에게는 이 정도의 역사교육만이 행해졌을 것이다. 물론 단편적인 역사사실을 습득할 수는 있었지만 중국사나 한국사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역사인식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또한 동몽선습의 원래 편찬목적이 향촌민들에 대한 도학적 교훈교육이었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교육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까지의 세계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향촌사회에 알렸다는 점과 덕분에 조선 후기 편찬되었던 실학자들이나 중인 출신들의 사서 편찬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
<동몽선습 원문ㆍ번역>
天地之間 萬物之衆에 惟人이 最貴하니 所貴乎人者는 以其有五倫也니라
천지 사이에 있는 만물의 무리 가운데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五倫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是故로 孟子曰 父子有親하며 君臣有義하며 夫婦有別하며 長幼有序하며 朋友有信이라하시니 人而不知有五常이면 則其違禽獸 不遠矣리라
이 때문에 孟子께서는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는 親愛함이 있어야 하며,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義理가 있어야 하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區別이 있어야 하며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하며 친구 사이에는 信義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면서 五常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짐승과의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다.
然則父慈子孝하며 君義臣忠하며 夫和婦順하며 兄友弟恭하며 朋友輔仁然後에야 方可謂之人矣리라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며, 임금은 신하에게 의리를 지키고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하며, 남편은 가족을 화합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형은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며, 친구 사이에는 仁을 도와준 뒤에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父子有親
父子는 天性之親이라 生而育之하고 愛而敎之하며 奉而承之하고 孝而養之하나니 是故로 敎之以義方하여 弗納於邪하며 柔聲以諫하여 不使得罪於鄕黨州閭하나니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정해준 친한 관계이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사랑하고 가르쳐야 하며, <자식은> 부모를 받들어 부모님의 뜻을 이어가고 효도하면서 봉양해야 한다. 이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올바른 도리로 가르쳐서 부정한 곳에 발을 들여 놓지 않게 해야 하며, <자식은> 부모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려서 고을에서 죄를 얻지 않게 해야 한다.
苟或父而不子其子하며 子而不父其父하면 其何以立於世乎리오 雖然이나 天下에 無不是底父母라 父雖不慈나 子不可以不孝니
만약 혹시라도 부모이면서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식이면서 자기 부모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세상에서 자립할 수 있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천하에는 善하지 않은 부모가 없는지라 부모가 비록 자식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자식은 효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昔者에 大舜이 父頑母嚚하여 嘗欲殺舜이어늘 舜이 克諧以孝하사 烝烝乂하여 不格姦하시니 孝子之道가 於斯至矣로다 孔子曰 五刑之屬이 三千이로되 而罪莫大於不孝라하시니라.
옛적에 위대하신 舜임금이 아버지는 완악하고 어머니는 모질어서 일찍이 순을 죽이려 하거늘 순은 효도로써 화합하고 끊임없이 다스려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셨으니 효자의 도리가 여기에서 지극하였다. 공자께서는 “五刑에 해당하는 죄목이 삼천 가지이지만 그 중에서 불효보다 더 큰 죄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君臣有義
君臣은 天地之分이라 尊且貴焉하며 卑且賤焉하니 尊貴之使卑賤과 卑賤之事尊貴는 天地之常經이며 古今之通義라
임금과 신하는 하늘과 땅처럼 분명히 구분되는 관계이다. 임금은 높고 귀하며 신하는 낮고 천하니 존귀한 이가 비천한 이를 부리고 비천한 이가 존귀한 이를 섬기는 것은 천지간의 어디에나 통용되는 도리이며 예나 지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의리이다.
是故로 君者는 體元而發號施令者也요 臣者는 調元而陳善閉邪者也라 會遇之際에 各盡其道하여 同寅協恭하여 以臻至治하나니
이 때문에 임금은 元의 도리를 體行하여 명령을 내리는 존재이고 신하는 임금을 도와 착한 일을 아뢰고 부정한 일을 막는 존재이다. 임금과 신하가 만날 때에 각각 자신의 도리를 극진히 하여 함께 공경하여 지극한 정치를 이루어야 한다.
苟或君而不能盡君道하며 臣而不能修臣職이면 不可與共治天下國家也니라 雖然이나 吾君不能을 謂之賊이니
만약 혹시라도 임금이면서 임금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며 신하이면서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함께 천하 국가를 다스릴 수 없다. 비록 그렇지만 우리 임금은 훌륭한 정치를 베풀 수 없다고 말하는 이를 임금을 해치는 자라고 하니
昔者에 商紂暴虐이어늘 比干이 諫而死하니 忠臣之節이 於斯盡矣로다 孔子曰 臣事君以忠이라하시니라
옛적에 商나라 임금 紂가 포학한 짓을 하자 比干이 간하다가 목숨을 잃었으니 충신의 절개가 여기서 극진했다. 공자께서는 신하는 임금을 忠으로 섬겨야 한다고 하셨다.
夫婦有別
夫婦는 二姓之合이라 生民之始며 萬福之原이니 行媒議婚하며 納幣親迎者는 厚其別也라 是故로 娶妻하되 不娶同姓하며 爲宮室하되 辨內外하여 男子는 居外而不言內하고 婦人은 居內而不言外하나니
남편과 아내는 두 성이 합한 관계이다. 백성들이 태어난 시초이며 모든 복의 근원이니 중매를 시행하여 혼인을 의논하며 폐백을 들이고 친히 맞이하는 것은 그 區別을 두터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를 맞아 들이되 같은 姓은 취하지 않으며, 집을 짓되 안과 밖을 구별하여 남자는 밖에 거처하여 안의 일에 대해 말하지 않고, 부인은 안에 거처하여 밖의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苟能莊以涖之하여 以體乾健之道하고 柔以正之하여 以承坤順之義면 則家道正矣어니와 反是而夫不能專制하여 御之不以其道하고 婦乘其夫하여 事之不以其義하여 昧三從之道하고 有七去之惡이면 則家道索(삭)矣리라
만일 <남편이> 씩씩함으로써 대하여 하늘의 굳건한 도리를 體行하고 <아내는> 부드러움으로써 바로잡아 땅이 하늘에 순종하는 도리를 받든다면 집안의 도리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만약 이와 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하여 올바른 도리로 다스리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의 약점을 틈 타 올바른 도리로 섬기지 않아서 三從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七去에 해당하는 악행이 있으면 집안의 법도가 무너질 것이다.
須是夫敬其身하여 以帥其婦하고 婦敬其身하여 以承其夫하여 內外和順이라야 父母其安樂之矣시리라
모름지기 남편은 자기 몸을 삼가서 아내를 잘 거느리고, 아내는 자기 몸을 공경하여 남편을 잘 받들어서 내외가 화순해야 부모님께서 편안하고 즐거워하실 것이다.
昔者에 郤缺이 耨어늘 其妻饁之하되 敬하여 相待如賓하니 夫婦之道가 當如是也니라 子思曰 君子之道 造端乎夫婦라하시니라
옛적에 郤缺이 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때, 그 아내가 새참을 내왔는데 서로 공경하여 상대하기를 마치 손님 모시듯 하였으니, 부부간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子思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의 도리는 부부 사이에서 비롯된다.”고 하셨다.
長幼有序
長幼는 天倫之序라 兄之所以爲兄과 弟之所以爲弟 長幼之道 所自出也라 蓋宗族鄕黨에 皆有長幼하니 不可紊也라
어른과 아이는 하늘이 차례지어 준 관계이다. 형이 형 노릇하고 아우가 아우 노릇하는 것이 어른과 어린이의 도리가 비롯된 유래이다. 종족과 향당에는 모두 어른과 아이가 있으니, 이를 문란시켜서는 안 된다.
徐行後長者를 謂之弟요 疾行先長者를 謂之不弟니 是故로 年長以倍則父事之하고 十年以長則兄事之하고 五年以長則肩隨之니 長慈幼하며 幼敬長然後에야 無侮少陵長之弊하여 而人道正矣리라
천천히 걸어서 어른보다 뒤에 쳐져 가는 것을 공손한 태도라고 이르고, 빨리 걸어서 어른보다 앞서 걸어 가는 것을 공손하지 못한 태도라고 일컫는다. 그러므로 나이가 갑절 많으면 어버이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나이가 열 살이 많으면 형을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나이가 다섯 살이 많으면 어깨폭 만큼 뒤쳐져 따라가니, 어른은 어린 사람을 사랑하며 어린 사람은 어른을 공경한 뒤에야 젊은이를 업신여기거나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져서 사람의 도리가 바로 설 것이다.
而況兄弟는 同氣之人이라 骨肉至親이니 尤當友愛요 不可藏怒宿怨하여 以敗天常也니라
하물며 형제간은 기운을 함께 나눈 사람이다. 뼈와 살을 나눈 지극히 가까운 관계이니 더욱 우애해야 할 것이요, 노여움을 마음 속에 감추고 원한을 묵혀서 하늘의 떳떳한 도리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昔者에 司馬光이 與其兄伯康으로 友愛尤篤하여 敬之如嚴父하고 保之如嬰兒하니 兄弟之道가 當如是也니라 孟子曰 孩提之童이 無不知愛其親이며 及其長也하여는 無不知敬其兄也라하시니라
옛적에 司馬光이 그의 형 伯康과 더불어 우애하기를 더욱 돈독히 하여, 형을 엄한 아버지처럼 공경하고, 어린 아이처럼 보호하였으니, 형제간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맹자께서는 “웃을 줄 알고 손을 잡아주고 안아 줄 만한 아이도 자기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경우가 없으며, 그가 성장해서는 그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하셨다.
朋友有信
朋友는 同類之人이라 益者三友요 損者三友니 友直하며 友諒하며 友多聞이면 益矣요 友便辟하며 友善柔하며 友便佞이면 損矣리라
붕우는 부류가 같은 사람이다. 유익한 벗이 세 종류 있고, 해로운 벗이 세 종류가 있으니, 정직한 사람을 벗하며 신실한 사람을 벗하며 식견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 이롭고, 치우친 사람을 벗하며 구미만 맞추는 사람을 벗하며 말재주만 뛰어난 사람을 벗하면 해롭다.
友也者는 友其德也니 自天子로 至於庶人히 未有不須友以成者하니 其分이 若疎나 而其所關이 爲至親하니
벗을 사귀는 것은 그 사람의 德性을 보고 사귀는 것이다. 天子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벗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그 관계가 소원한 것 같지만 관련되는 것이 지극히 가까운 관계와 같다.
是故로 取友를 必端人하며 擇友를 必勝己니 要當責善以信하며 切切偲偲하여 忠告而善道之하다가 不可則止니라
이 때문에 벗을 사귈 때에는 반드시 단정한 사람을 사귀며, 벗을 가릴 때에는 반드시 나보다 나은 사람을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 마땅히 진실한 태도를 지니고 좋은 일로 권면할 것을 요구하며 간절하고 자세하게 권면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알려주고 선으로 인도하다가 안 되면 친구 관계를 그만두어야 한다.
苟或交遊之際에 不以切磋琢磨로 爲相與하고 但以歡狎戱謔으로 爲相親이면 則安能久而不疎乎리오
만약 혹시라도 서로 사귈 때에 切磋琢磨하는 것으로 서로 함께 하지 아니하고, 다만 기뻐하고 친하며 장난하고 농담하는 것으로 서로 가까이 한다면, 어찌 오래 되어도 소원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昔者에 晏子與人交하되 久而敬之하니 朋友之道가 當如是也니라 孔子曰 不信乎朋友면 不獲乎上矣리라 信乎朋友 有道하니 不順乎親이면 不信乎朋友矣라하시니라
옛적에 晏子는 남과 사귀되 오래 되어도 상대를 공경하였으니, 붕우간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孔子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였다. “친구들에게서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친구들에게서 신임을 얻는데 일정한 방법이 있으니, 어버이에게서 순종한다고 인정받지 못하면 친구들의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總論
此五品者는 天敍之典而人理之所固有者라 人之行이 不外乎五者而唯孝爲百行之源이라
이 다섯 가지 일은 하늘이 펼쳐 준 모범이고 사람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도리이다. 사람의 행실이 이 다섯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오직 효도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 된다.
是以로 孝子之事親也는 鷄初鳴이어든 咸盥漱하고 適父母之所하여 下氣怡聲하여 問衣燠寒하며 問何食飮하며 冬溫而夏凊하며 昏定而晨省하며 出必告하며 反必面하며 不遠遊하며 遊必有方하며 不敢有其身하며 不敢私其財니라
이 때문에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첫닭이 울면 모두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옷이 더운지 추운지를 여쭈며, 무엇을 잡수시고 마시고 싶은지를 여쭈며,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돌봐드리고 새벽에는 안부를 여쭈며, 외출할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님을 대면하며, 멀리 나가 놀지 않으며 나가 놀되 반드시 일정한 장소를 두며, 감히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감히 재물을 자기 것으로 사유하지 않는다.
父母愛之어시든 喜而不忘하며 惡之어시든 懼而無怨하며 有過어시든 諫而不逆하고 三諫而不聽이어시든 則號泣而隨之하며 怒而撻之流血이라도 不敢疾怨하며 居則致其敬하고 養則致其樂하고 病則致其憂하고 喪則致其哀하고 祭則致其嚴이니라
부모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시거든 기뻐하되 잊지 않으며 미워하시거든 두려워하되 원망하지 않으며, 부모님께서 과실을 저지르시면 말리되 거스르지 않으며 세 번 간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으시거든 부르짖고 울면서 따르며, 부모님께서 怒하여 종아리를 때려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치 않으며, 거처할 때에는 공경함을 극진히 하고, 봉양할 때는 즐거움을 극진히 하고, 병환이 드셨을 때는 근심을 극진히 해야 하고, 喪을 당해서는 슬픔을 극진히 하고, 제사 지낼 때는 엄숙함을 극진히 해야 한다.
若夫人子之不孝也는 不愛其親이요 而愛他人하며 不敬其親이요 而敬他人하며 惰其四肢하여 不顧父母之養하며 博奕好飮酒하여 不顧父母之養하며 好貨財하며 私妻子하여 不顧父母之養하며 從耳目之好하여 以爲父母戮하며 好勇鬪狠하여 以危父母니라
부모님께 불효하는 자식은 자기 어버이는 사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은 사랑하며, 자기 어버이는 공경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은 공경하며, 四肢를 게을리 하여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장기나 바둑,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여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식만을 사랑해서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耳目의 욕망을 좇아 부모를 욕되게 하며, 용맹을 좋아하여 싸우고 사나워서 부모님을 위태롭게 한다.
噫라 欲觀其人의 行之善不善인대 必先觀其人之孝不孝니 可不愼哉며 可不懼哉아 苟能孝於其親이면 則推之於君臣也와 夫婦也와 長幼也와 朋友也에 何往而不可哉리오 然則孝之於人에 大矣로되 而亦非高遠難行之事也라
아! 그 사람의 행실이 착한지 아닌지를 살펴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이 효도하는지 아닌지를 살펴볼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으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 어버이에게 효도한다면 그 마음을 군신간과 부부간과 장유간과 붕우간에 미루어감에 어떤 경우에 적용한들 옳지 않음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孝는 사람에게 중대한 것이면서 또한 高遠하여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然이나 自非生知者면 必資學問而知之니 學問之道는 無他라 將欲通古今하며 達事理하여 存之於心하며 體之於身이니 可不勉其學問之力哉아 玆用摭其歷代要義하여 書之于左하노라
그러나 스스로 나면서부터 이치를 아는 이가 아니라면 반드시 학문에 의지하여 알 수 있으니 학문하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장차 古今의 事理를 통달하여 마음 속에 보존하며 몸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이니 학문하는 힘을 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역대의 중요한 의리를 뽑아서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둔다.
蓋自太極肇判하여 陰陽始分으로 五行이 相生에 先有理氣라 人物之生이 林林總總하더니 於是에 聖人이 首出하사 繼天立極하시니 天皇氏와 地皇氏와 人皇氏와 有巢氏와 燧人氏가 是爲太古니 在書契以前이라 不可考로다
태극이 처음으로 판별되어 음과 양이 비로소 나누어진 시기로부터 五行이 서로 생성됨에 먼저 理와 氣가 있었다. 사람과 물건이 많이 생성되더니 이에 聖人이 먼저 나타나서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인간의 표준을 세웠으니, 天皇氏와 地皇氏와 人皇氏와 有巢氏와 燧人氏가 태고시절의 성인이다. 書契문자가 나타나기 이전이기 때문에 상고할 수가 없다.
伏羲氏始畫八卦하며 造書契하여 以代結繩之政하시고 神農氏作耒耜하며 製醫藥하시고 黃帝氏用干戈하며 作舟車하며 造曆算하며 制音律하시니 是爲三皇이니 至德之世라 無爲而治하니라
복희씨가 처음으로 八卦를 긋고 書契문자를 만들어 結繩문자로 시행하던 정사를 대신했고, 신농씨가 쟁기와 보습을 만들며 의술과 약을 만들고, 황제씨가 방패와 창을 사용하며 배와 수레를 만들었으며 달력과 산수를 만들며 音律을 제정하셨으니 이들을 三皇이라 일컫는다. 이 때는 사람들의 본성이 지극히 순박했기 때문에 인위적인 정치를 베풀지 않고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少昊와 顓頊과 帝嚳과 帝堯와 帝舜이 是爲五帝라 皐夔稷契이 佐堯舜하여 而堯舜之治 卓冠百王이라 孔子定書에 斷自唐虞하시니라
少昊와 顓頊과 帝嚳과 요임금, 순임금을 五帝라 일컫는다. 皐陶와 夔와 稷과 契이 요임금과 순임금을 보좌했으니 요임금과 순임금의 다스림이 모든 왕의 으뜸이 되었다. 공자께서 書經을 刪定하심에 唐․虞시대로부터 단정하셨다.
夏禹와 商湯과 周文王武王이 是爲三王이니 歷年이 或四百하며 或六百하며 或八百하니 三代之隆을 後世莫及이요 而商之伊尹傅說과 周之周公召公이 皆賢臣也라 周公이 制禮作樂하시니 典章法度가 粲然極備하더니
夏나라 우왕과 商나라 탕왕과 周나라 문왕․무왕을 三王이라 일컫는다. 왕조의 수명이 어떤 경우는 400년이며 어떤 경우는 600년이며 어떤 경우는 800년이었으니 三代 시절에 융성했던 문물을 후세에는 미치지 못했고 상나라의 伊尹이나 傅說, 주나라의 周公과 召公이 모두 뛰어난 신하였다. 周公이 禮樂을 제작하셨으니 典章과 법도가 지극히 찬란하게 갖추어졌다.
及其衰也하여 五覇摟諸侯하여 以匡王室하니 若齊桓公과 晉文公과 宋襄公과 秦穆公과 楚莊王이 迭主夏盟하니 王靈이 不振하니라
周나라가 쇠미함에 미쳐 五覇가 제후들을 이끌어 왕실을 바로 세웠으니 이를테면 제나라 桓公, 진나라 文公, 송나라 襄公, 진나라 穆公, 초나라 莊王이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중국의 맹약을 주도하였으니 왕실의 위엄이 떨쳐지지 못했다.
孔子以天縱之聖으로 轍環天下하사 道不得行于世하여 刪詩書하시며 定禮樂하시며 贊周易하시며 修春秋하사 繼往聖, 開來學하시고 而傳其道者는 顔子曾子라 事在論語하니라 曾子之門人이 述大學하니라
공자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수레를 타고 천하를 주유하셨으나 道가 세상에서 시행되지 않아서 ≪시경≫과 ≪서경≫을 刪定하시며 禮와 樂을 결정하시며 ≪주역≫을 해설하시며 춘추를 편수하셔서 지나간 성인을 계승하고 후세의 학자들을 인도하셨고, 그 도를 전수받은 이는 顔子와 曾子이다. 이런 사실에 대한 기록은 ≪논어≫에 있다. 증자의 문인이 대학을 기술하였다.
列國則曰魯와 曰衛와 曰晉과 曰鄭과 曰趙와 曰蔡와 曰燕과 曰吳와 曰齊와 曰宋과 曰陳과 曰楚와 曰秦이니 干戈日尋하여 戰爭不息하여 遂爲戰國하니 秦楚燕齊韓魏趙 是爲七雄이라
열국은 魯․衛․晉․鄭․趙․蔡․燕․吳․齊․宋․陳․楚․秦나라 등이니 방패와 창이 날마다 이어져 전쟁이 끊이지 않아 마침내 전국시대가 되었으니 秦․楚․燕․齊․韓․魏․趙의 일곱 나라를 戰國七雄이라 일컫는다.
孔子之孫子思 生斯時하사 作中庸하시고 其門人之弟孟軻 陳王道於齊梁하사 道又不行하여 作孟子七篇하시되 而異端縱橫功利之說이 盛行이라 吾道不傳하니라
공자의 손자인 子思가 이 시기에 태어나 ≪中庸≫을 저술하셨고, 그 문인의 제자인 孟軻가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왕도정치를 진술하셨는데 도가 또 시행되지 못하여 ≪孟子≫ 7편을 저술하셨으나, 이단과 종횡과 공리의 학설이 성행해서 우리 유학의 도가 전해지지 못하였다.
及秦始皇하여 呑二周 滅六國하며 廢封建爲郡縣하며 焚詩書, 坑儒生하니 二世而亡하니라
진시황 시대에 이르러서는 두 주나라를 병탄하고 여섯 제후국을 멸망시키며,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시행하며 詩書를 불태우고 유생들을 구덩이 속에 파묻어 죽이니 2代만에 멸망하였다.
漢高祖起布衣成帝業하여 歷年四百하되 在明帝時하여 西域佛法이 始通中國하여 惑世誣民하니라 蜀漢과 吳와 魏 三國이 鼎峙而諸葛亮이 仗義扶漢하다가 病卒軍中하니라
한나라 고조가 布衣로 일어나 황제의 위업을 이루어서 왕조의 수명이 4백년에 이르렀는데 明帝때에 西域의 불교가 처음으로 중국에 유통하여 세상을 미혹시키고 백성들을 속였다. 蜀漢과 吳와 魏의 세 나라가 솥발처럼 대치하고 있었는데, 제갈량이 의리를 지켜 한나라를 부지하다가 병이 들어 전쟁터에서 죽었다.
晉有天下에 歷年百餘하되 五胡亂華하니 宋齊梁陳에 南北分裂이러니 隋能混一하되 歷年三十하니라
晉나라가 천하를 다스림에 왕조의 수명이 100여 년에 이르렀는데 다섯 오랑캐나라가 중화를 어지럽히니 宋․齊․梁․陳에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隋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였으나 왕조의 수명이 30년에 그쳤다.
唐高祖와 太宗이 乘隋室亂하여 化家爲國하여 歷年三百하니라 後梁과 後唐과 後晉과 後漢과 後周 是爲五季니 朝得暮失하여 大亂이 極矣라
당나라 고조와 태종이 隋나라 왕실의 어지럼움을 틈타 일개 집안을 변화시켜 나라로 만들어 왕조의 수명이 300년에 이르렀다. 後梁과 後唐과 後晉과 後漢과 後周를 五季라고 하니, 아침에 나라를 얻었다가 저녁이면 잃어버려서 크게 혼란함이 극도에 이르렀다.
宋太祖立國之初에 五星이 聚奎하여 濂洛關閩에 諸賢이 輩出하니 若周敦頤와 程顥와 程頤와 司馬光과 張載와 邵雍과 朱熹가 相繼而起하여 以闡明斯道로 爲己任하되 身且不得見容하고 而朱子集諸家說하사 註四書五經하시니 其有功於學者 大矣로다
송나라 태조가 국가를 세운 초기에 다섯 별이 奎星에 모여 濂․洛․關․閩에 여러 현인들이 배출되었으니, 周敦頤와 程顥와 程頤와 司馬光과 張載와 邵雍과 朱熹 같은 학자들이 서로 이어 나타나 이 유학의 도를 밝히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로 삼았지만 자기 몸조차도 용납받지 못했다. 주자가 諸家의 학설을 모아서 사서와 오경을 주해하셨으니 배우는 자들에게 크게 공을 세웠다.
然而國勢不競하여 歷年三百하니 契丹과 蒙古과 遼와 金이 迭爲侵軼하고 而及其垂亡하여 文天祥이 竭忠報宋하다가 竟死燕獄하니라
그러나 국가의 힘이 강하지 못하여 왕조의 수명이 300년에 그쳤으니 거란과 몽골과 遼와 金이 차례대로 침략하고 망조를 드리움에 미쳐 文天祥이 충성을 다하여 송나라에 보답하다가 마침내 연경의 옥에서 죽었다.
胡元이 滅宋하고 混一區宇하여 綿歷百年하니 夷狄之盛이 未有若此者也로다 天厭穢德이라 大明이 中天하사 聖繼神承하시니 於(오)千萬年이로다
오랑캐 元나라가 宋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여 면면히 백년을 이어갔으니 오랑캐가 세력을 떨침이 이 때만한 적이 없었다. 하늘이 더러운 덕을 싫어하셨는지라 大明이 하늘 한 가운데로 떠올라 聖人과 神人이 계승하였으니 아! 천만년을 이어가리로다.
嗚呼라 三綱五常之道가 與天地로 相終始하니 三代以前에는 聖帝明王과 賢相良佐가 相與講明之라 故로 治日이 常多하고 亂日이 常少하더니 三代以後에는 庸君暗主와 亂臣賊子가 相與敗壞之라 故로 亂日이 常多하고 治日이 常少하니 其所以世之治亂安危와 國之興廢存亡이 皆由於人倫之明不明如何耳라 可不察哉아
아! 三綱五常의 도리는 천지와 더불어 始終을 함께하니 三代 이전에는 성스러운 임금, 명철한 군주와 어진 재상과 뛰어난 보좌관들이 서로 함께 강론하여 밝혔다. 그 때문에 다스려진 날이 항상 많았고 어지러운 날이 항상 적었는데 三代 이후에는 용렬한 임금, 어두운 군주들과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신하와 집안의 도리를 해치는 자식들이 서로 함께 그것을 무너뜨렸다. 그 때문에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고 다스려진 날이 항상 적었다. 세상이 다스려지고 어지러우며 편안하고 위태로운 것과 나라가 일어나고 폐지되며 보존되고 멸망하는 까닭은 모두 人倫이 밝혀졌느냐 밝혀지지 않았느냐가 어떠한지에서 말미암는다.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東方에 初無君長하더니 有神人이 降于太白山檀木下어늘 國人이 立以爲君하니 與堯로 竝立하여 國號를 朝鮮이라하니 是爲檀君이라
동방에 처음에는 君長이 없었는데 神人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자 나라 사람들이 〈그의 아들을〉 임금으로 삼았다. 堯임금과 동시대에 즉위하여 국호를 朝鮮이라고 했으니 이가 檀君이다.
周武王이 封箕子于朝鮮하신대 敎民禮義하여 設八條之敎하시니 有仁賢之化하더라
周나라 무왕이 箕子를 조선에 봉하자 <기자가> 백성들에게 예의를 가르쳐서 여덟 조목의 가르침〔八條之敎〕을 베풀었으니 어진 사람 기자의 교화가 있었다.
燕人衛滿이 因盧綰亂하여 亡命來하여 誘逐箕準하고 據王儉城하더니 至孫右渠하여 漢武帝討滅之하고 分其地하여 置樂浪臨屯玄菟眞蕃四郡하다 昭帝以平那玄菟로 爲平州하고 臨屯樂浪으로 爲東府二都督府하다
燕나라 사람 衛滿이 盧綰의 난리를 피하여 망명해 와서 箕準을 유인하여 쫓아내고 王儉城을 차지하였는데 손자인 右渠王대에 이르러 한나라 무제가 토벌하여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분할하여 樂浪․臨屯․玄菟․眞蕃의 四郡을 만들었다. 昭帝가 平那와 현도를 합쳐서 平州로 만들고 임둔과 낙랑을 동부의 두 都督府로 만들었다.
箕準이 避衛滿하여 浮海而南하여 居金馬郡하니 是爲馬韓이라 秦亡人이 避入韓이어늘 韓이 割東界以與하니 是爲辰韓이라 弁韓則立國於韓地하니 不知其始祖年代라 是爲三韓이라
箕準이 위만을 피해 바다에 떠서 남쪽으로 내려와 金馬郡에 정착했으니 이것이 馬韓이다. 秦나라에서 망명한 사람이 노역을 피하여 韓나라로 들어오자 韓나라가 동쪽 영토를 분할하여 제공하니 이것이 辰韓이다. 弁韓은 韓나라의 영토에 나라를 세웠으니 그 시조와 연대를 알 수 없다. 이것이 三韓이다.
新羅始祖赫居世는 都辰韓地하여 以朴爲姓하고 高句麗始祖朱蒙은 至卒本하여 自稱高辛之後로라하여 因姓高하고 百濟始祖溫祚는 都河南慰禮城하여 以扶餘로 爲氏하여 三國이 各保一隅하여 互相侵伐하더니
신라의 시조 赫居世는 진한의 영토에 도읍을 정하여 朴을 성씨로 삼고, 고구려의 시조인 朱蒙은 卒本땅에 이르러 스스로 高辛씨의 후예라고 일컬어 그에 따라 高를 성씨로 삼았고 백제의 시조인 溫祚는 河南땅 慰禮城을 도읍지로 정하여 扶餘를 성씨로 삼아서 삼국이 각각 한 모퉁이를 차지하여 서로 공격하였다.
其後에 唐高宗이 滅百濟高句麗하고 分其地하여 置都督府하여 以劉仁願 薛仁貴로 留鎭撫之하니 百濟는 歷年이 六百七十八年이요 高句麗는 七百五年이라
그 뒤에 당나라 고종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분할하여 都督府를 설치하여 劉仁願과 薛仁貴로 하여금 머물러서 진무케 하였으니 백제는 왕조의 수명이 678년에 이르렀고 고구려는 705년이었다.
新羅之末에 弓裔叛于北京하여 國號를 泰封이라하고 甄萱이 叛據完山하여 自稱後百濟로라하다 新羅亡하니 朴昔金三姓이 相傳하여 歷年이 九百九十二年이라
신라의 말기에 弓裔가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泰封이라 하였고 甄萱이 반란을 일으켜 完山州를 점거하여 스스로 後百濟라고 일컬었다. 신라가 멸망하니 朴․昔․金의 세 성씨가 서로 왕위를 전수하여 왕조의 수명이 992년에 이르렀다.
泰封諸將이 立麗祖하여 爲王하니 國號를 高麗라하여 剋殘群凶하고 統合三韓하여 移都松嶽이러시니 至于季世하여 恭愍이 無嗣하고 僞主辛禑가 昏暴自恣하며 而王瑤不君하여 遂至於亡하니 歷年이 四百七十五年이라
泰封의 여러 장수들이 고려의 시조 왕건을 세워서 왕으로 삼으니 國號를 高麗라고 하여 여러 흉악한 인물들을 이겨 없애고 三韓을 통합하여 도읍을 松嶽으로 옮겼다. 고려의 말년에 이르러 恭愍에게 後嗣가 없고 가짜 임금 辛禑가 어둡고 포악하며 스스로 방자하였으며 恭讓이 임금 노릇을 못하여 마침내 망하기에 이르니 왕조의 수명이 475년이었다.
天命이 歸于眞主하니 大明太祖高皇帝賜改國號曰朝鮮이어시늘 定鼎于漢陽하사 聖子神孫이 繼繼繩繩하사 重熙累洽하사 式至于今하시니 實萬世無疆之休삿다
天命이 진정한 군주에게 돌아가니 明나라 太祖 高皇帝가 국호를 朝鮮이라고 고쳐 내리자 한양에 도읍을 정하여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자손들이 끊임없이 계승하여 거듭 빛내고 여러 차례 스며들어서 지금에 이르니 실로 만세토록 끝없을 아름다움이로다.
於戲라 我國이 雖僻在海隅하여 壤地褊小하나 禮樂法度와 衣冠文物을 悉遵華制하여 人倫이 明於上하고 敎化行於下하여 風俗之美 侔擬中華하니 華人이 稱之曰小中華라하니 玆豈非箕子之遺化耶리오 嗟爾小子는 宜其觀感而興起哉인저
아! 우리 나라가 비록 궁벽하게 바다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영토가 褊小하지만 예악법도와 의관문물을 모두 중화의 제도를 따라 인륜이 위에서 밝혀지고 교화가 아래에서 시행되어 풍속의 아름다움이 中華를 방불하였다. 이 때문에 중화인들이 우리를 小中華라고 일컬으니 이 어찌 箕子가 끼쳐준 교화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 너희 小子들은 의당 보고 느껴서 興起할지어다.
御製童蒙先習序
夫此書는 卽東儒所撰也라 總冠以五倫하고 復以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로 列之于次하고 而其自太極肇判으로 三皇五帝 夏殷周 漢唐宋以至皇朝히 歷代世系를 纖悉備錄하고 逮夫我東에 始檀君 歷三國하야 至于我朝히 亦爲俱載하니 文雖約而錄則博하고 卷雖小而包則大라
이 책은 바로 우리 나라 유학자가 저술한 것이다. 앞에는 五倫을 총론으로 놓고, 다시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의 도리를 다음에 열거하였으며, 太極이 처음 나뉨으로부터 三皇․五帝와 夏․殷․周, 漢․唐․宋을 거쳐 皇朝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세계를 상세히 갖추어 기록하고, 우리 나라에 미쳐서는 檀君으로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를 거쳐 우리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또한 모두 기록하였으니, 글은 비록 간략하지만 기록한 범위는 넓고 卷은 비록 작지만 포함하고 있는 뜻은 크다.
其況堯舜之道는 孝弟而已라 舜之命契하사대 以五品爲重하시니 此文之冠以五倫者 其意宏矣로다 噫라 孝於親然後 忠於君하고 弟于兄然後에 敬于長하나니 以此觀之컨대 五倫之中에 孝弟爲先이라 雖然이나 詩贊文王曰 於緝熙敬止삿다하니 敬者는 成始終徹上下之工夫也라 故로 大學要旨는 卽敬字也요 中庸要旨는 卽誠字也니 誠敬이 亦於學問에 車兩輪鳥兩翼者也라
더욱이 요순의 도는 효도와 공경일 뿐이다. 순임금이 契(설)에게 명령하시되 五品(五倫)을 가장 중시하셨으니, 이 책에서 五倫을 맨 앞에 놓은 것은 그 뜻이 크다고 할 것이다. 아! 부모에게 효도한 뒤에야 임금에게 충성할 수 있고, 형을 공경한 뒤에라야 윗사람을 공경할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을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오륜 가운데에서 효도와 공경이 가장 우선이다. 그러나 ≪시경≫에서 문왕을 찬양하면서 “아! 끊임없이 빛내시어 敬에 머무르셨다.”고 했으니, 敬이란 처음과 끝을 이루고 上과 下에 모두 통하는 공부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요지는 敬 한 글자에 있고, ≪중용≫의 요지는 誠 한 글자에 있으니, 誠과 敬이 또한 학문을 해 나아가는 데에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새의 두 날개와 같다고 하겠다.
今予於此書에 以誠敬二字로 冠于篇首하노니 誠然後에야 能免書自我自오 敬然後에야 可以欽體欽遵이니 學者豈可忽乎哉아 予又於卷下 國初開創 受號朝鮮之文에 慨然追慕하야 三復興感也하노라
噫라 繼繼承承하사 重熙累洽이 寔是至仁盛德과 深恩隆惠가 垂裕後昆之致시니 繼體之君이 式體至德하야 兢兢業業하야 誠心調劑하야 至于蕩蕩하며 誠心愛民하야 永保元元이면 則吾國이 其庶幾也며 吾國이 其庶幾也인저
이제 내가 이 책에서 誠과 敬 두 글자를 가지고 책의 맨 앞에 놓으니, 誠을 이룩한 뒤에야 책은 책대로이고 나는 나대로인 병통을 면할 수 있고, 敬을 유지한 뒤에야 삼가 體行하고 삼가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니, 배우는 사람들이 어찌 이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또 책 말미에 국초에 나라를 세우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는 부분에 대하여, 개연히 추모해서 세 번 반복하여 읽고 감동했노라.
아! 끊임없이 이어서 거듭 빛내시고 여러 번 무젖어듬은 실로 선왕들께서 지극한 덕성과 깊은 은혜를 후손들에게 넉넉히 남겨주신 것이 이룬 것이니, 체통을 이어갈 군주들이 이 지극한 덕을 체행하여,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지니고 성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닦아 蕩蕩(공평 무사함)함을 이루며, 성심으로 백성들을 사랑하여 길이 만백성들을 보호한다면 우리 나라는 잘 다스려지게 될 것이며, 우리 나라는 잘 다스려지게 될 것이다.
且我東禮義 雖因箕聖之敎化나 三韓以後에는 幾乎泯焉이러니 入于我朝하야 禮樂이 畢擧하고 文物이 咸備하니 惜乎라 述者之猶遺乎此哉여 嗟爾小子아 益加勉旃也夫인저
時玄黓閹茂 朝月上浣에 命芸館而廣印하고 作序文於卷首하노라.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예의는 비록 箕子의 교화에 힘입었지만 三韓 이후에는 거의 민멸되었다가, 우리 조선조에 들어와 예악이 다 거행되고 문물이 다 구비되었는데, 저자가 이 내용을 빠뜨리고 기록하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 아! 小子들은 더욱 노력할지어다.
때는 壬戌年(1742년) 정월 상순에 芸館에 명하여 널리 인쇄해서 반포케 하고 책 머리에 서문을 쓰노라.
跋文
孟子曰 讀其書하고 誦其詩하되 不知其人이 可乎아하시니라 余幼時에 見人家子弟初學者 無不以是書爲先하되 而第不知出於何人之手矣러니 今朴上舍廷儀氏 來謂余曰 此는 吾高祖諱世茂之所編也라하니 余不覺驚喜曰 今日에 始知其人矣와라
맹자께서는 “그 사람의 글을 읽고 그 사람의 시를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어릴 때에 남의 집안 자제들을 보니, 초학자로서 모두 이 책을 제일 먼저 배우지 않음이 없었는데, 다만 누구의 손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朴上舍 廷儀氏가 와서 나에게 “이 책은 저희 고조부이신 諱가 世茂인 분이 엮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기뻐서 “오늘에야 비로소 그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公은 爲明廟朝名臣이라 其學問有淵源하고 而門路亦甚正하니 觀於此編하면 則可知矣라 其該括約說이 無非學問中體認一大公案
이요 而所序歷代는 又史家之總目也라
公은 明宗代의 이름난 신하로 그의 학문은 연원이 있고 門路 또한 매우 바르니,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내용이 포괄적이면서도 요약하여 말했으니, 이는 모두 학문하는 가운데 반드시 體認해야 할 일대의 公案이요, 차례대로 서술한 역대의 사실 또한 史家의 總目이다.
或疑編內所輯理氣性命等說은 非童學所能知라하나 此則不知作者本意所在也라 朱子嘗論仁說曰 此等名義는 古人之敎 自小學之時로 已有白直分明訓說하여 得知此道理를 不可不著實踐履니 所以實造其地位也라 若茫然理會不得이면 則其所以求之者 乃其平生所不識之物이니 復何所向望慕愛而知所以用其力耶아하시니 今之童學이 略識諸般名義界限하여 終有所歸宿者는 必於此書而得之리니 其功이 豈不大哉아
어떤 사람은 이 책에 수록된 理氣나 性命과 같은 말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의심하지만, 이는 저자의 본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것이다. 朱子는 일찍이 仁에 관한 내용을 논의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종류의 명칭과 의미는 고인들이 가르칠 때에 ≪小學≫을 배울 때부터 이미 명백 직절하고 분명한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이> 이 도리를 착실하게 실천하지 않아서는 안 됨을 알 수 있었으니 실제로 그와 같은 경지에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망연히 이해하다가 안 되면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마침내 평생토록 알지 못할 개념이 되고 말 것이니 다시 어디를 바라보고 사모하여 힘을 쓸 줄 알겠는가?.” 요즘의 童學들이 대략이나마 여러 가지 명칭과 의미가 구분됨을 알아서 결국 귀결할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반드시 이 책에서 얻은 것일 터이니 그 공로가 어찌 크지 않다 하겠는가!
竊聞今上殿下每臨筵에 喜說此書라하니 睿學之明이 必有以識此矣시리라
公의 字는 景藩이요 咸陽人이니 登第하여 始爲翰林하고 官止監正하니라 蘇齋盧相公守愼이 以嘗著此書 訓其子弟로 載公墓碣云이라
적이 들으니 지금 임금께서 經筵에 나아가실 때마다 이 책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즐기신다고 하니 임금님의 밝은 지혜가 반드시 이 점을 아시기 때문일 것이다. 공의 자는 景藩이고 본관은 함양이니, 처음 과제에 올라 한림이 되었고, 벼슬이 監正에 이르렀다. 蘇齋 盧相公 守愼은 “공이 일찍이 이 책을 저술하여 자제들을 가르쳤다.”는 내용으로 공의 墓碣銘에 기록하였다.
崇禎紀元之商橫閹茂陽月日에 恩津宋時烈은 謹跋하노라.
崇貞 기원후 庚戌年(1670년) 10월 일에 恩津人 宋時烈은 삼가 발문을 쓰다.
<독후감>
<동몽선습(童蒙先習)>
옛날에는 어떻게 역사교육을 하였을까?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초급교육기관이었던 서당에서는 학동이 입학하면 먼저 천자문(千字文)이나 유합(類合)을 가르쳐 단자(單字)에 대한 음훈(音訓)과 음독(音讀)을 깨닫게 하였다. 그 후 동몽선습(童蒙先習)이나 격몽요결(擊蒙要訣), 명심보감(明心寶鑑)을 통해 초보적인 구두(句讀)와 문장해독 능력을 기르는 동시에 책 속의 교훈적인 내용을 터득하게 했다.
이 중 동몽선습은 학동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사서(史書)였다. 물론 독립되어 전문적인 역사를 다룬 사서는 아니었지만 학동들이 가장 먼저, 가장 대중적으로 교육받았던 점에서 중요하다 여겨진다. 동몽선습 이후 통감(通監)이나 사기(史記), 사략(史略)류의 역사서를 배우기는 했지만 이들은 중국사에 대한 역사교육이었다. 결국 서당이라는 초급교육기관에서 행해진 우리 역사에 대한 교육은 <동몽선습> 수준에 머물렀다 여겨진다.
<동몽선습(童蒙先習)>은 말 그대로 조선시대 서당(書堂)에서 교재로 사용한 책이다.
조선 중종 때 학자 박세무(朴世茂)가 저술하여 1670년(현종 11)에 간행하였는데, <천자문>을 익히고 난 후의 학동들이 배우는 초급교재로, 먼저 부자유친(父子有親)ㆍ군신유의(君臣有義)ㆍ부부유별(夫婦有別)ㆍ장유유서(長幼有序)ㆍ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五倫)을 설명하고, 이어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부터 명나라까지의 역대사실(歷代史實)과 한국의 단군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를 약술하였다.
이 책의 중요성을 깨달은 영조는 교서관(校書館)으로 하여금 발간하여 널리 보급하도록 하였으며, 1541년(중종 36)에 쓴 저자의 친필사본(親筆寫本)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초간본은 전하지 않고 1759년(영조 35)의 중간본만 전하며, 1742년 영조가 쓴 서(序)와 1770년에 송시열이 쓴 발(跋)이 있다.
【사략(史略) 부분 요지】
16세기 사림들은 왕도정치 구현이라는 정치목표 달성을 위해 자신들의 기반을 강화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역사인식과 서술에 힘쓸 수만은 없었다. 사서를 체계적으로 편찬할 만한 여유를 가지기 어려웠기 때문에 기존 사서의 축약본인 사략형 사서들이 많았으며 자제들이나 향촌사회의 주민들에게 도덕적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의리, 절의, 명분이 강조되었다.
이에 전체 중국사와 한국사의 시간적 서술에 고사인용을 더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천지창조서부터 명조(明朝)까지 한족(漢族) 중심의 중화주의적 역사서술을 하고 있다.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신화적 활약과 삼대(三代)의 융성, 춘추전국의 혼란함, 진(秦)의 폭정과 후대 왕조의 명멸을 나타내며 편찬자는 하(夏)ㆍ은(殷)ㆍ주(周) 삼대(三代) 이전에는 삼강오상(三綱五常)의 도리가 잘 지켜져 세상이 평화스러웠는데 삼대 이후에는 그 도리가 무너져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부언하고 있다. 즉 국가나 사회의 흥망(興亡)ㆍ안위(安危)가 도의에 달렸음을 강조하며 초학자들에게 이를 실천할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한국사 서술에 있어서는 단군(檀君)부터 시작하는데 요(堯)와 병립하였음을 주장하며 국호가 조선(朝鮮)이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조선(箕子朝鮮)과 위만조선(衛滿朝鮮)을 언급함에 있어서는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하며 덕분에 조선에 예의와 도의가 전해진 것 같이 묘사해 모화적이라 비판받을 수 있겠다. 삼한(三韓)에 대해서도 마한과 진한은 중국 출신이 세웠다는 묘한 언급을 하고 있다. 당(唐)의 고구려(高句麗)ㆍ백제(百濟) 정벌도 ‘진무(鎭撫)’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있다. 또한 고려 말기 우왕(禑王)을 신우(辛禑)라 지칭해 조선왕조 개창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선을 ‘소중화(小中華)’라 칭함을 자랑스레 말하며 초학자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감상 및 평가】
동몽선습은 비록 독립된 사서가 아니며 모화적이기는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역사가 일반인들에게 언제부터 교재로서 영향력을 발휘했었는가라는 문제라고 여겨진다. 이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역시 조선시대에 이르러 일반적인 서당교재로서 동몽선습이 채택된 이후가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을 교재로 써야 했다는 측면에서 마련된 책이 바로 동몽선습이다. 물론 동몽선습은 중국사에 치중하여 그 내용을 수록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비판해야 할 충분한 이유는 있다. 그러나 그 시대에 한국사를 수록하여 천자문을 뗀 학생에게, 윤리교육 다음으로 중요한 가치덕목으로서의 역사를 교육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조선 말기 신학문이 도입될 때까지 동몽선습은 향촌사회의 기초적 역사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역사교육은 서원이나 성균관 등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일반 민들에게는 이 정도의 역사교육만이 행해졌을 것이다. 물론 단편적인 역사사실을 습득할 수는 있었지만 중국사나 한국사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역사인식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또한 동몽선습의 원래 편찬목적이 향촌민들에 대한 도학적 교훈교육이었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교육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까지의 세계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향촌사회에 알렸다는 점과 덕분에 조선 후기 편찬되었던 실학자들이나 중인 출신들의 사서 편찬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童蒙先習 (동몽선습)
御製童蒙先習序(御 ; 어거할 어, 다스릴 어, 製 ; 지을 제, 童 ; 아이 동, 蒙 ; 어릴 몽, 先 ; 먼저 선, 習 ; 익힐 습, 序 ; 차례 서, 서문 서)
임금이 지은 동몽선습의 서문
夫此書는 卽東儒所撰也라 總冠以五倫하고 復以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로 列之于次하며(夫 ; 지아비 부, 대개 부, 此 ; 이 차, 書 ; 쓸 서, 책 서, 卽 ; 곧 즉, 東 ; 동녘 동, 儒 ; 선비 유, 所 ; 바 소, 五 ; 다섯 오, 倫 ; 인륜 륜, 復 ; 다시 부, 父 ; 아비 부, 子 ; 아들 자, 君 ; 임금 군, 臣 ; 신하 신, 婦 ; 아내 부, 長 ; 어른 장, 幼 ; 어릴 유, 朋 ; 벗 붕, 友 ; 벗 우, 列 ; 벌일 렬, 之 ; 갈 지, 어조사 지, 于 ; 어조사 우, 次 ; 다음 차)
대개 이 책은 곧 우리나라 선비가 지은 것이라. 개괄해 보면, 오륜을 맨 처음에 놓고 다시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를 그 다음에 늘어놓았다.
而其自太極肇判으로 三皇五帝夏殷周漢唐宋以至皇朝에 歷代世系를 纖悉備錄하고(而 ; 말 이을 이, 其 ; 그 기, 自 ; 스스로 자, 부터 자, 太 ; 클 태, 肇 ; 시작할 조, 判 ; 판가를 판, 三 ; 석 삼, 皇 ; 임금 황, 五 ; 다섯 오, 帝 ; 임금 제, 夏 ; 여름 하, 나라이름 하, 殷 ; 성할 은, 나라이름 은, 周 ; 두루 주, 나라이름 주, 漢 ; 한수 한, 나라이름 한, 唐 ; 당나라 당, 宋 ; 송나라 송, 至 ; 이를 지, 朝 ; 아침 조, 조정 조, 歷 ; 지낼 력, 代 ; 대신할 대, 시대 대, 世 ; 누리 세, 대 세, 系 ; 이를 계, 纖 ; 가늘 섬, 悉 ; 다 실, 備 ; 갖출 비, 錄 ; 기록할 록)
그리고 세상이 처음 열릴 때부터 삼황오제와 하, 은, 주, 한, 당, 송에서 (지금)황제의 나라에 이르기까지에 역대 계통을 모두 갖추어 세세히 기록하고
逮夫我東하여는 始檀君으로 歷三國하여 至于我朝에 亦爲俱載하니 文雖約이나 而錄則博하고 卷雖小나 而包則大라(逮 ; 미칠 체, 我 ; 나 아, 우리 아, 始 ; 처음 시, 檀 ; 박달나무 단, 國 ; 나라 국, 亦 ; 또 역, 爲 ; 할 위, 俱 ; 함께 구, 갖출 구, 文 ; 글월 문, 雖 ; 비록 수, 約 ; 묶을 약, 간략할 약, 則 ; 곧 즉, 博 ; 넓을 박, 卷 ; 책 권, 小 ; 작을 소, 包 ; 쌀 포, 大 ; 큰 대)
우리 동방에 이르러는 단군으로부터 삼국을 거쳐 우리 왕조(조선)에 이르기까지 또한 모두 실었으니 글은 비록 간략하지만 기록한 것은 넓고 책은 비록 작지만 포함한 것은 크다.
其況堯舜之道는 孝弟而已라 舜之命契에 以五品爲重하니 此文之冠以五倫者가 其意宏矣로다(況 ; 하물며 황, 堯 ; 요임금 요, 舜 ; 순임금 순, 道 ; 길 도, 孝 ; 효도 효, 弟 ; 아우 제, 공경할 제, 已 ; 이미 이, 그칠 이, 命 ; 목숨 명, 명령할 명, 契 ; 맺을 계, 사람이름 설, 品 ; 물건 품, 등급 품, 重 ; 무거울 중, 者 ; 놈 자, 意 ; 뜻 의, 宏 ; 클 굉, 矣 ; 어조사 의)
게다가 요순의 도는 효도와 공경일 따름이라. 순임금이 설에게 명하여 다섯 가지를 중요하게 하였으니 이 글에서 오륜을 맨 처음에 둔 것은 그 뜻이 크구나.
噫라 孝於親然後에 忠於君하며 弟於兄然後에 敬于長하니 以此觀之면 五倫之中에 孝弟爲先이라(噫 ; 탄식할 희, 아 희, 於 ; 어조사(에) 어, 親 ; 어버이 친, 然 ; 그럴 연, 後 ; 뒤 후, 敬 ; 공경할 경, 于 ; 어조사 우, 觀 ; 볼 관, 中 ; 가운데 중)
아, 부모에게 효도한 연후에 임금에게 충성하며, 형에게 공경한 연후에 어른을 존경할 수 있는 것이니 이로 본다면 오륜 가운데에서 효도와 공경이 먼저인 것이라.
雖然이나 詩讚文王曰 於緝熙敬止라하니 敬者는 成始終徹上下之工夫也라 故로 大學要旨는 卽敬字也요 中庸要旨는 卽誠字也라(詩 ; 시 시. 讚 ; 기릴 찬, 王 ; 임금 왕, 曰 ; 가로되 왈, 緝 ; 이을 집, 熙 ; 빛날 희, 止, 발 지, 머물 지, 成 ; 이룰 성, 終 ; 끝날 종, 徹 ; 뚫을 철, 上 ; 위 상, 下 ; 아래 하, 工 ; 장인 공, 故 ; 연고 고, 學 ; 배울 학, 要 ; 요구할 요, 긴요할 요, 旨 ; 맛있을 지, 뜻 지, 字 ; 글자 자, 庸 ; 쓸 용, 범상할 용, 誠 ; 정성 성)
비록 그러하나 <시경>에 문왕을 기려서 말하기를 “공경함을 이어 그치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공경이라는 것은 처음과 끝을 이루고 위와 아래를 꿰뚫는 공부라. 그러므로 대학의 요지는 곧 ‘공경’이라는 글자요, 중용의 요지는 곧 ‘정성’이라는 글자라.
誠敬이 亦於學問에 車兩輪鳥兩翼者也라 今予於此書에 以誠敬二字로 冠于篇首하노라(問 ; 물을 문, 車 ; 수레 차, 兩 ; 두 량, 輪 ; 바퀴 륜, 鳥 ; 새 조, 翼 ; 날개 익, 今 ; 이제 금, 予 ; 나 여, 篇 ; 책 편, 首 ; 머리 수)
정성과 공경이 또한 학문에 있어서 차의 두 바퀴나 새의 두 날개와 같은 것이라. (그래서) 지금 내가 이 책에서 정성과 공경 두 글자로 책머리에 쓰노라.
誠然後에 能免書自我自하고 敬然後에 可以欽體欽遵하니 學豈可忽乎哉리오(能 ; 능할 능, 免 ; 면할 면, (勉과 통함), 欽 ; 공경할 흠, 體 ; 몸 체, 遵 ; 좇을 준, (欽體欽遵은 공경히 받든다는 뜻) 豈 ; 어찌 기, 忽 ; 소홀히 할 홀, 乎 ; 어조사 호, 哉 ; 어조사 재)
정성스런 연후에 능히 노력하여 자신을 쓸 수 있고 공경한 연후에 가히 (임금을) 공경히 받들 수 있으니 배움을 어찌 가히 소홀히 하리오.
予又於卷下 國初開創 受號朝鮮之文에 慨然追慕하며 三復興感也로다 (又 ; 또 우, 初 ; 처음 초, 開 ; 열 개, 創 ; 비롯할 창, 受 ; 받을 수, 號 ; 이름 호, 朝 ; 아침 조, 鮮 ; 고울 선, 慨 ; 개탄할 개, 追 ; 좇을 추, 慕 ; 그리워할 모, 三 ; 석 삼, 興 ; 일어날 흥, 感 ; 느낄 감)
나는 또 하권에서 우리나라의 처음 개국한 것과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은 글에 느껴서 추모하며 두 번 세 번 감동을 일으키는 바이로다.
噫라 繼繼承承하사 重熙累洽의 寔是至仁盛德과 深恩隆惠가 垂裕後昆之致니 (繼 ; 이을 계, 承 ; 받들 승, 重 ; 무거울 중, 거듭 중, 累 ; 묶을 루, 洽 ; 적실 흡, 寔 ; 참으로 식, 是 ; 이 시, 옳을 시, 仁 ; 어질 인, 盛 ; 번성할 성, 德 ; 덕 덕, 深 ; 깊을 심, 恩 ; 은혜 은, 隆 ; 융성할 융, 惠 ; 은혜 혜, 垂 ; 드리울 수, 裕 ; 넉넉할 유, 昆 ; 맏 곤, 致 ; 이를 치)
아, 대대로 이어서 이 지극히 인자하고 덕스러움을 거듭 빛내어 펼치어서 깊고 융성한 은혜가 후손에게 두텁게 미칠 것이니
繼體之君은 式體至德하여 兢兢業業하며 誠心調劑하여 至于蕩蕩하며 誠心愛民하여 永保元元하면 則吾國其庶幾也며 吾國이 其庶幾也인저(式 ; 범 식, 본받을 식, 競 ; 겨룰 경, 業 ; 일 업, 心 ; 마음 심, 調 ; 고를 조, 劑 ; 배합할 제, 蕩 ; 쓸 탕, 넓을 탕, 愛 ; 사랑 애, 民 ; 백성 민, 永 ; 길 영, 保 ; 지킬 보, 元 ; 근본 원, 吾 ; 나오, 庶 ; 여러 서, 幾 ; 거의 기)
근본(왕권)을 이은 임금은 본바탕을 본받고 덕에 이르러 부지런히 힘쓰고 성심으로 조절하여 두루 넓게 성심을 다하여 백성을 사랑하고 근본을 길이 보전하면 우리나라가 거의 (태평)하게 될 것이며 거의 (태평)하게 될 것이라.
且我東禮義가 雖因箕聖之敎나 三韓以後에 幾乎泯焉이라 入于我朝하며 禮義畢擧하고 文物이 咸備어늘 (且 ; 또 차, 禮 ; 예의 예, 義 ; 옳을 의, 因 ; 인할 인, 箕 ; 키 기, 聖 ; 성스러울 성, 敎 ; 가르칠 교, 韓 ; 나라이름 한, 泯 ; 없어질 민, 焉 ; 어조사 언, 入 ; 들 입, 畢 ; 마칠 필, 擧 ; 들 거, 오를 거, 物 ; 만물 물, 咸 ; 모두 함, 備 ; 갖출 비)
또 우리 동방의 예의가 비록 기자 성인의 가르침으로 비롯되었으나 삼한 이후에 거의 없어졌다가 우리나라(조선)에 들어와서야 예의가 마침내 일어나고 문물이 모두 갖추어졌지만
惜乎라 述者之猶遺乎此哉여 嗟爾小子아 益加勉旃也夫인저 峕玄黓閹茂朝月上浣에 命芸館而廣印하고 作序文於卷首하니라 (惜 ; 아까울 석, 述 ; 지을 술, 서술할 술, 猶 ; 오히려 유, 遺 ; 잃을 유, 嗟 ; 탄식할 차, 爾 ; 너 이, 小 ; 작을 소, 子 ; 아들 자, 益 ; 더할 익, 이익 익, 加 ; 더할 가, 勉 ; 힘쓸 면, 旃 ; 깃발 전, 어조사 전, 峕 ; 때 시(時와 같음), 玄 ; 검을 현, 黓 ; 검을 익, (玄黓은 세차로 壬에 해당) 閹 ; 내시 엄, 궁문 엄, 茂 ; 우거질 무, (閹茂는 세차로 戌에 해당) 月 ; 달 월, 浣 ; 빨 완, 열흘 사이 완)
아깝다. (이 글을) 지은 사람은 여기에서 오히려 (이름을) 잃어 버렸구나. 자, 너희 어린이들은 더욱 노력할 것인저. 때는 임술년 일월 상순에 운관(校書館)에 명하여 널리 찍고 책머리에 서문을 지었노라.
童蒙先習 (童 ; 어린이 동, 蒙 ; 어릴 몽, 先 ; 먼저 선, 習 ; 익힐 습) 어린이가 먼저 익혀야 할 책
天地之間萬物之衆에 惟人이 最貴하니 所貴乎人者는 以其有五倫也라 (天 ; 하늘 천, 地 ; 땅 지, 之 ; 갈 지, -의 지, 間 ; 사이 간, 萬 ; 일만 만, 物 ; 물건 물, 衆 ; 무리 중, 惟 ; 생각 유, 오직 유, 人 ; 사람 인, 最 ; 가장 최, 貴 ; 귀할 귀, 所 ; 바 소, 乎 ; 어조사 호, 者 ; 놈 자, 以 ; 써 이, 其 ; 그 기, 有 ; 있을 유, 五 ; 다섯 오, 倫 ; 인륜 륜, 也 ; 어조사 야)
하늘과 땅 사이의 만물 무리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에게서 귀한 바는 오륜(다섯 가지 인륜)이 있기 때문이라.
是故로 孟子曰 父子有親하며 君臣有義하며 夫婦有別하며 長幼有序하며 朋友有信이라 하시니 (是 ; 이 시, 故 ; 까닭 고, 孟 ; 맏 맹, 子 ; 아들 자, 曰 ; 가로되 왈, 父 ; 아비 부, 親 ; 친할 친, 君 ; 임금 군, 臣 ; 신하 신, 義 ; 옳을 의, 夫 ; 남편 부, 婦 ; 아내 부, 別 ; 다를 별, 長 ; 어른 장, 幼 ; 어릴 유, 序 ; 차례 서, 朋 ; 벗 붕, 友 ; 벗 우, 信 ; 믿을 신)
이런 까닭으로 맹자가 말하기를, 아버지와 아들은 친함이 있으며 임금과 신하는 옳음이 있으며 남편과 아내는 다름이 있으며 어른과 아이는 차례가 있으며 친구 사이에는 신의가 있는 것이라 하시니
人而不知有五常則其違禽獸 不遠矣리라 然則父慈子孝하며 君義臣忠하며 夫和婦順하며 兄友弟恭하며 朋友輔仁然後에 方可謂之人矣니라 (而 ; 말 이을 이, 不 ; 아닐 불, 知 ; 알 지, 常 ; 항상 상, 則 ; 곧 즉, 違 ; 어길 위, 다를 위, 禽 ; 새 금, 獸 ; 짐승 수, 遠 ; 멀 원, 矣 ; 어조사 의, 然 ; 그럴 연, 慈 ; 사랑 자, 孝 ; 효도 효, 忠 ; 충성 충, 和 ; 화할 화, 順 ; 따를 순, 兄 ; 맏 형, 弟 ; 아우 제, 恭 ; 공손할 공, 輔 ; 도울 보, 仁 ; 어질 인, 後 ; 뒤 후, 方 ; 바야흐로 방, 可 ; 가히 가, 謂 ; 이를 위)
사람이면서 오상(오륜)이 있는 줄 모르면 짐승과 다를 바가 멀지 않느니라. 그런즉 부모는 사랑하고 자녀는 효도하며 임금은 정의롭고 신하는 충성하며 남편은 화합하고 아내는 따르며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경하며 친구는 서로 어질기를 도운 연후에 바야흐로 가히 사람이라고 이를 것이라.
父子有親 (부모와 자식은 친함이 있다)
父子는 天性之親이라 生而育之하고 愛而敎之하며 奉而承之하고 孝而養之하나니 (性 ; 성품 성, 生 ; 날 생, 育 ; 기를 육, 愛 ; 사랑 애, 敎 ; 가르칠 교, 奉 ; 받들 봉, 承 ; 이을 승, 받들 승, 養 ; 기를 양, 봉양할 양)
부모와 자식은 하늘에서 타고난 육친이라 (부모는) 낳아서 길러주고 사랑하여 가르치며 (자식은) 받들어 이으며 효도하고 봉양하나니
是故로 敎之以義方하야 弗納於邪하며 柔聲以諫하야 不使得罪於鄕黨州閭하나니 (方 ; 모 방, 방법 방, 弗 ; 아닐 불, 納 ; 바칠 납, 들일 납, 於 ; 어조사 어, 邪 ; 간사할 사, 사악할 사, 柔 ; 부드러울 유, 聲 ; 소리 성, 諫 ; 간할 간, 使 ; 하여금 사, 得 ; 얻을 득, 罪 ; 허물 죄, 鄕 ; 시골 향, 黨 ; 무리 당, 州 ; 고을 주, 閭 ; 마을 려)
이런 까닭으로 (부모는) 옳은 방법으로 가르쳐서 사악함에 들지 않게 하며 (자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간하여 시골 마을에서 허물을 짓지 않게 하는 것이니
苟或父而不子其子하며 子而不父其父하면 其何以立於世乎리오 雖然이나 天下에 無不是底父母라 父雖不慈나 子不可以不孝니 (苟 ; 진실로 구, 或 ; 간혹 혹, 何 ; 어찌 하, 무엇 하, 立 ; 설 립, 世 ; 세상 세, 雖 ; 비록 수, 下 ; 아래 하, 無 ; 없을 무, 底 ; 밑 저, 바탕 저, 母 ; 어미 모)
진실로 간혹 부모가 되어 그 자식을 자식으로 대하지 않으며 자식이 되어 그 부모를 부모로 대하지 아니하면 그 무엇으로써 이 세상에 서리오. 비록 그러하나 천하에 부모에게 바탕을 두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이라. 부모가 비록 사랑하지 않으나 자식이 불효를 할 수는 없으니
昔者에 大舜이 父頑母嚚하야 嘗欲殺舜이어늘 舜이 克諧以孝하사 烝烝乂하야 不格姦하시니 孝子之道 於斯에 至矣로다 (昔 ; 옛 석, 大 ; 큰 대, 舜 ; 순임금 순, 頑 ; 완고할 완, 嚚 ; 어리석을 은, 嘗 ; 일찍 상, 欲 ; 하고자 할 욕, 殺 ; 죽일 살, 克 ; 이길 극, 능히 극, 諧 ; 화합할 해, 烝 ; 찔 증, 많을 증, 乂 ; 벨 예, 어질 예, 格 ; 바로잡을 격, 대적할 격, 姦 ; 간사할 간, 나쁠 간, 道 ; 길 도, 斯 ; 이 사, 至 ; 이를 지, 지극할 지)
옛날에 순 임금이 아버지는 완고하고 (새)어머니는 어리석어서 일찍이 순을 죽이고자 하거늘 순이 효도로써 능히 화합하고 어질게 대처하여 간악함에 맞서지 아니하니 효자의 길이 이에 지극한 경지에 이른 것이로다.
孔子曰 五刑之屬이 三千이로되 而罪莫大於不孝라 하시니라 (孔 ; 구멍 공, 성 공, 刑 ; 형벌 형, 屬 ; 엮을 속, 속할 속, 三 ; 석 삼, 千 ; 일천 천, 莫 ; 없을 막, 於 ; -보다 어)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섯 가지 형벌에 속한 것이 삼 천 가지지만 불효보다 큰 죄는 없다고 하셨다.
君臣有義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정의로움이 있다)
君臣은 天地之分이라 尊且貴焉하며 卑且賤焉하니 尊貴之使卑賤과 卑賤之事尊貴는 天地之常經이며 古今之通義라 (分 ; 나눌 분, 尊 ; 높을 존, 且 ; 또 차, 貴 ; 귀할 귀, 焉 ; 어조사 언, 卑 ; 낮을 비, 賤 ; 천할 천, 使 ; 부릴 사, 事 ; 섬길 사, 經 ; 날실 경, 조리 경, 古 ; 옛 고, 今 ; 이제 금, 通 ; 통할 통, 義 ; 뜻 의)
임금과 신하는 하늘과 땅으로 나누어진 것이라. (임금은) 높고 또 귀하며 (신하는) 낮고 또 천하니 존귀한 임금은 비천한 신하를 부리고 비천한 신하는 존귀한 임금을 섬기는 것이 하늘과 땅의 변함없는 도리이며 옛날과 지금에 두루 통하는 뜻이라.
是故로 君者는 體元而發號施令者也오 臣者는 調元而陳善閉邪者也라 會遇之際에 各盡其道하야 同寅協恭하야 以臻至治하나니 (體 ; 몸 체, 元 ; 으뜸 원, 근본 원, 發 ; 필 발, 號 ; 부를 호, 施 ; 베풀 시, 令 ; 명령 령, 調 ; 고를 조, 陳 ; 늘어놓을 진, 善 ; 착할 선, 閉 ; 닫을 폐, 會 ; 모일 회, 遇 ; 만날 우, 際 ; 사이 제, 때 제, 各 ; 각각 각, 盡 ; 다할 진, 同 ; 한가지 동, 寅 ; 동료 인, 協 ; 합할 협, 臻 ; 이를 진, 治 ; 다스릴 치)
이런 연고로 임금은 주체의 근본이며 호령을 발하여 명령을 하는 자이고, 신하는 (일을) 주선하는 책임자로 착한 것을 펴고 사악한 것을 막는 자이라. (임금과 신하가) 만났을 적에는 각각 그 도리를 다하여 (신하는) 동료와 함께 공경하여 지극한 정치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니
苟或君而不能盡君道하며 臣而不能修臣職이면 不可與共治天下國家也니라 (能 ; 능할 능, 修 ; 닦을 수, 職 ; 벼슬 직, 직분 직, 與 ; 더불어 여, 共 ; 함께 할 공, 國 ; 나라 국, 家 ; 집 가)
진실로 혹 임금이 능히 임금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며 신하가 능히 신하의 직분을 해내지 못한다면 더불어 천하의 국가를 함께할 수가 없는 것이니라.
雖然이나 吾君不能을 謂之賊이니 昔者에 商紂暴虐이어늘 比干이 諫而死하니 忠臣之節이 於斯에 盡矣로다 孔子曰 臣事君以忠이라 하시니라 (吾 ; 나 오, 賊 ; 도적 적, 商 ; 헤아릴 상, 나라이름 상, 紂 ; 주 임금 주, 暴 ; 사나울 포, 虐 ; 사나울 학, 比 ; 견줄 비, 干 ; 방패 간, 死 ; 죽을 사, 節 ; 마디 절, 절개 절)
비록 그러하나 내 임금이 (임금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을 일러 도적이라 하나니 옛날에 상나라의 주임금이 포학하거늘 비간이 간하다가 죽으니 충신의 절개가 이에 다한(한껏 드러난) 것이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신하는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셨다.
夫婦有別 (남편과 아내는 구별이 있다)
夫婦는 二姓之合이라 生民之始며 萬福之原이니 行媒議婚하며 納幣親迎者는 厚其別也라. (夫 ; 지아비 부, 婦 ; 아내 부, 姓 ; 성 성, 合 ; 합할 합, 生 ; 날 생, 民 ; 백성 민, 始 ; 처음 시, 萬 ; 일만 만, 福 ; 복 복, 原 ; 근원 원, 行 ; 갈 행, 행할 행, 媒 ; 중매 매, 議 ; 의논할 의, 婚 ; 혼인할 혼, 納 ; 바칠 납, 幣 ; 예물 폐, 親 ; 친할 친, 迎 ; 맞이할 영, 者 ; 놈 자, 것 자, 厚 ; 두터울 후, 其 ; 그 기, 別 ; 나눌 별, 다를 별, 也 ; 어조사 야)
남편과 아내는 두 종족의 결합이라. 백성을 낳은 처음이며 온갖 복의 근원이니 중매를 행하여 혼사를 의논하고 예물을 드리고 친히 맞아 오는 것은 그 구별의 두터운 부분이다.
是故로 娶妻하되 不娶同姓하며 爲宮室하되 辨內外하여 男子는 居外而不言內하고 婦人은 居內而不言外하나니 (是 ; 옳을 시, 이 시, 故 ; 옛 고, 까닭 고, 娶 ; 장가들 취, 妻 ; 아내 처, 同 ; 한 가지 동, 爲 ; 할 위, 宮 ; 집 궁, 室 ; 집 실, 방 실, 辨 ; 분별할 변, 나눌 변, 內 ; 안 내, 外 ; 바깥 외, 男 ; 사내 남, 子 ; 아들 자, 居 ; 있을 거, 살 거, 而 ; 말 이을 이, 言 ; 말씀 언)
이런 까닭으로 아내를 얻되 같은 종족(성)에 장가들지 않으며 집을 마련하되 안과 밖을 갈라서 남자는 밖에 살며 안의 일을 말하지 아니하고 부인은 안에 살며 바깥일을 말하지 아니하나니
苟能莊以涖之하여 以體乾健之道하고 柔以正之하여 以承坤順之義면 則家道正矣거니와 (苟 ; 진실로 구, 能 ; 능할 능, 莊 ; 엄숙할 장, 以 ; 써 이, 涖 ; 다다를 위, 임할 위, 之 ; 갈 지, 어조사 지, 體 ; 몸 체, 乾 ; 하늘 건, 健 ; 튼튼할 건, 道 ; 길 도, 柔 ; 부드러울 유, 正 ; 바를 정, 承 ; 받들 승, 坤 ; 땅 곤, 順 ; 순할 순, 義 ; 옳을 의, 則 ; 법칙 칙, 곧 즉, 家 ; 집 가, 矣 ; 어조사 의)
(남편은) 진실로 능히 엄숙하게 임하여 하늘같이 씩씩한 도리를 바탕으로 하고, (아내는) 부드럽고 바르게 하여 땅처럼 순한 길로 받들면 집안의 가풍이 바로 설 것이지만
反是而夫不能專制하여 御之不以其道하고 婦乘其夫하여 事之不以其義하여 昧三從之道하고 有七去之惡이면 則家道索矣리라. (反 ; 도리어 반, 專 ; 오로지 전, 制 ; 지을 제, 御 ; 다스릴 어, 乘 ; 탈 승, 事 ; 일 사, 昧 ; 어두울 매, 從 ; 좇을 종, 有 ; 있을 유, 去 ; 갈 거, 惡 ; 악할 악, 索 ; 꼬일 삭)
이와 반대로 남편이 집안을 전제(장악)하지 못하여 그 도리로써 다스리지 못하고 아내가 그 남편을 타고 바르지 않은 길로 일을 처리하여 삼종지도를 모르고 칠거지악이 있게 되면 집안의 가풍은 꼬이게 된다.
須是夫敬其身하여 以帥其婦하고 婦敬其身하여 以承其夫하여 內外和順이라야 父母其安樂之矣니라. (須 ; 모름지기 수, 敬 ; 공경할 경, 身 ; 몸 신, 帥 ; 장수 수, 거느릴 수, 和 ; 화할 화, 父 ; 아비 부, 母 ; 어미 모, 安 ; 편안 할 안, 樂 ; 즐길 락)
모름지기 남편은 그 자신을 공경하여 그 아내를 거느리고, 아내도 그 자신을 공경하여 그 남편을 받들어서 안과 밖이 화합하고 순종하여야 부모가 그것을 편안하게 여길 것이다.
昔者에 郤缺이 耨이거늘 其妻饁之하되 敬하여 相待如賓하니 夫婦之道가 當如是也니라 子思曰 君子之道 造端乎夫婦라 하시니라. (昔 ; 예 석, 郤 ; 성 극, 缺 ; 이지러질 결, 이름 결, 耨 ; 김맬 누, 饁 ; 들밥 엽, 相 ; 서로 상, 待 ; 기다릴 대, 如 ; 같을 여, 賓 ; 손님 빈, 當 ; 마땅히 당, 思 ; 생각할 사, 君 ; 임금 군, 造 ; 만들 조, 端 ; 바른 단, 실끝 단, 乎 ; 어조사 호)
옛날에 극결이 밭에서 김을 매는데 그 아내가 들밥을 가져가되 공경하여 손님같이 대하니 부부의 도리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니라. 자사가 말하기를, 군자의 도리는 부부에서부터 그 실마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長幼有序 (어른과 아이는 차례가 있다)
長幼는 天倫之序라 兄之所以爲兄과 弟之所以爲弟는 長幼之道에서 所自出也라. 蓋宗族鄕黨에 皆有長幼하니 不可紊也라. (長 ; 길 장, 어른 장, 幼 ; 어릴 유, 天 ; 하늘 천, 倫 ; 인륜 륜, 序 ; 차례 서, 兄 ; 맏 형, 所 ; 바 소, 弟 ; 아우 제, 自 ; 스스로 자, 出 ; 날 출, 蓋 ; 덮을 개, 대개 개, 宗 ; 마루 종, 근본 종, 族 ; 겨레 족, 鄕 ; 시골 향, 黨 ; 무리 당, 마을 당, 皆 ; 모두 개, 可 ; 옳을 가, 紊 ; 어지러울 문)
어른과 아이는 하늘이 정한 인륜의 순서라. 형이 형 되는 까닭과 아우가 아우 되는 까닭은 어른과 아이의 도리에서 절로 나오는 것이라. 대개 겨레붙이와 시골 마을에 모두 어른과 아이가 있으니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이라.
徐行後長者를 謂之弟요 疾行先長者를 謂之不弟니 是故로 年長以倍則父事之하고 十年以長則兄事之하고 五年以長則肩隨之니 (徐 ; 천천히 서, 行 ; 갈 행, 後 ; 뒤 후, 疾 ; 병 질, 빠를 질, 先 ; 먼저 선, 年 ; 해 년, 倍 ; 곱 배, 事 ; 섬길 사, 肩 ; 어깨 견, 隨 ; 따를 수)
천천히 어른 뒤에 가는 것을 공손하다고 이르고, 빨리 가서 어른보다 먼저 가는 것을 공손치 않다고 하나니, 이런 까닭으로 나이가 곱절로 많으면 아버지뻘로 섬기고 나이가 십년이 많으면 형으로 섬기고 나이가 오년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여 따르니라.
長慈幼하며 幼敬長然後에야 無侮少陵長之弊하여 而人道正矣리라. (慈 ; 사랑 자, 然 ; 그럴 연, 侮 ; 업신여길 모, 少 ; 적을 소, 젊을 소, 陵 ; 언덕 릉, 능멸할 릉, 弊 ; 해질 폐, 폐단 폐)
어른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는 어른을 공경한 연후에야 젊은이를 업신여기고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져서 사람의 도리가 바로 설 것이라.
而況兄弟는 同氣之人이라 骨肉至親이니 尤當友愛요 不可藏怒宿怨하여 以敗天常也니라. (況 ; 하물며 황, 氣 ; 기운 기, 骨 ; 뼈 골, 肉 ; 고기 육, 至 ; 이를 지, 지극할 지, 親 ; 친할 친, 육친 친, 尤 ; 더욱 우, 友 ; 벗 우, 愛 ; 사랑 애, 藏 ; 감출 장, 怒 ; 성낼 노, 宿 ; 묵을 숙, 怨 ; 원망할 원, 敗 ; 깨뜨릴 패, 常 ; 항상 상, 법 상)
하물며 형제는 (부모의) 기운을 함께 받아 태어난 사람이라 뼈와 살이 같은 지극히 가까운 육친이니 더욱 마땅히 우애하여야 할 것이요 성냄을 숨기거나 묵은 원망을 지녀서 천륜을 깨뜨려서는 아니 될 것이라.
昔者에 司馬光이 與其兄伯康으로 友愛尤篤하여 敬之如嚴父하고 保之如嬰兒하니 兄弟之道 當如是也니라. (司 ; 맡을 사, 馬 ; 말 마, 光 ; 빛 광, 與 ; 줄 여, 더불어 여, 伯 ; 맏 백, 康 ; 편안할 강, 篤 ; 도타울 독, 嚴 ; 엄할 엄, 保 ; 지킬 보, 嬰 ; 갓난 아이 영, 兒 ; 아이 아)
옛날에 사마광이 그 형 백강과 더불어 우애가 더욱 두터워서 형을 공경하여 엄한 아버지같이 하고 (형은) 그를 보호하여 갓난아이같이 하니 형제의 도리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느니라.
孟子曰 孩提之童이 無不知愛其親이며 及其長也하여는 無不知敬其兄也라 하시니라. (孟 ; 맏 맹, 성 맹, 曰 ; 가로되 왈, 孩 ; 어린애 해, 提 ; 잡을 제, 이끌 제, 童 ; 아이 동, 知 ; 알 지, 及 ; 미칠 급, 이를 급)
맹자가 말하기를, 아우를 이끌고 가는 아이가 그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모르지 않으며, 그가 자라기에 이르러서는 그 형을 공경하기를 모르지 않는다고 하였다.
朋友有信(친구 사이에는 신의가 있다)
朋友는 同類之人이라 益者 三友요 損者 三友니 友直하고 友諒하며 友多聞이면 益矣요 友便辟하며 友善柔하며 友便佞이면 損矣니라. (朋 ; 벗 붕, 友 ; 벗 우, 同 ; 한 가지 동, 類 ; 무리 류, 之 ; 갈 지, 어조사(의) 지, 人 ; 사람 인, 益 ; 더할 익, 이익 익, 者 ; 놈 자, 것 자, 三 ; 세 삼, 損 ; 덜 손, 直 ; 곧을 직, 諒 ; 믿을 량, 多 ; 많을 다, 聞 ; 들을 문, 矣 ; 어조사 의, 便 ; 편할 편, 辟 ; 허물 벽, 善 ; 착할 선, 잘할 선, 柔 ; 부드러울 유, 佞 ; 아첨할 녕)
친구는 같은 무리의 사람이라. 유익한 것이 세 가지 벗이요, 해로운 것이 세 가지 벗이니, 정직한 사람을 벗하고 성실한 사람을 벗하며 견문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 유익하고, 치우친 사람을 벗하고 부드럽게 비위를 맞추는 사람을 벗하며 말재주만 뛰어난 사람을 벗하면 해로우니라.
友也者는 友其德也라 自天子로 至於庶人히 未有不須友以成者하니 其分이 若疎而其所關이 爲至親하니 (也 ; 어조사 야, 其 ; 그 기, 德 ; 덕 덕, 自 ; 스스로 자, -부터 자, 天 ; 하늘 천, 子 ; 아들 자, 至 ; 이를 지, 於 ; 어조사(-에) 어, 庶 ; 여러 서, 未 ; 아닐 미, 有 ; 있을 유, 不 ; 아닐 불, 須 ; 모름지기 수, 以 ; 써 이, 成 ; 이룰 성, 分 ; 나눌 분, 若 ; 같을 약, 만약 약, 疎 ; 성길 소, 而 ; 말 이을 이, 所 ; 바 소, 關 ; 빗장 관, 爲 ; 할 위, 될 위, 親 ; 친할 친)
벗이라는 것은 그 덕성을 사귀는 것이라. 황제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름지기 벗으로써 (자신을) 완성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그 몫이 성긴 것 같지만 관련되는 바가 지극히 가까운 것이니
是故로 取友를 必端人하며 擇友를 必勝己니 要當責善以信하며 切切偲偲하여 忠告而善道之하다가 不可則止니라 (是 ; 이 시, 故 ; 까닭 고, 取 ; 취할 취, 必 ; 반드시 필, 端 ; 바를 단, 擇 ; 가릴 택, 勝 ; 이길 승, 나을 승, 己 ; 자기 기, 要 ; 구할 요, 當 ; 마땅히 당, 責 ; 꾸짖을 책, 善 ; 착할 선, 信 ; 믿을 신, 切 ; 끊을 절, 偲 ; 굳셀 시, 忠 ; 충성 충, 告 ; 알릴 고, 道 ; 길 도, 이끌 도, 可 ; 옳을 가, 則 ; 곧 즉, 止 ; 그칠 지)
이런 까닭에 벗을 사귈 때에는 반드시 단정한 사람을 사귀며, 벗을 가릴 때에는 반드시 나보다 나은 사람을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 마땅히 믿음으로써 꾸짖어 좋은 일을 하게하며 간절하고 굳세게 충고하여 착함으로 이끌다가 안 되면 그치는 것이니라.
苟或交遊之際에 不以切磋琢磨로 爲相與하고 但以歡狎戱謔으로 爲相親이면 則安能久而不疎乎리오 (苟 ; 진실로 구, 或 ; 혹 혹, 交 ; 사귈 교, 遊 ; 놀 유, 際 ; 사이 제, 磋 ; 갈 차, 琢 ; 쫄 탁, 磨 ; 갈 마, 相 ; 서로 상, 與 ; 더불어 여, 但 ; 다만 단, 歡 ; 기쁠 환, 狎 ; 친할 압, 戱 ; 희롱할 희, 謔 ; 희롱할 학, 安 ; 평란할 안, 어찌 안, 能 ; 능할 능, 久 ; 오랠 구)
진실로 혹 서로 사귈 때에 절차탁마(인격도야)로 서로 함께하지 아니하고, 다만 기뻐하고 친하며 희롱하는 것으로 서로 가까이 한다면, 어찌 능히 오래도록 소원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昔者에 晏子與人交하되 久而敬之하니 朋友之道가 當如是也니라 孔子曰 不信乎朋友면 不獲乎上矣리라 信乎朋友 有道하니 不順乎親이면 不信乎朋友矣라하시니라 (昔 ; 예 석, 晏 ; 늦을 안, 敬 ; 공경할 경, 如 ; 같을 여, 孔 ; 구멍 공, 성 공, 乎 ; 어조사(-에) 호, 獲 ; 얻을 획, 上 ; 위 상, 順 ; 순할 순, 親 ; 어버이 친)
옛날에 안자(안영)는 사람과 사귀되 오래 되어도 그를 공경하니, 벗을 사귀는 길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친구에게 믿음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리라. 친구에게 믿음을 얻는데 길이 있으니, 어버이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면 친구에게 믿음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니라.
總論 (전체를 논의함)
此五品者는 天敍之典而人理之所固有者라 人之行이 不外乎五者而唯孝爲百行之源이라 (此 ; 이 차, 五 ; 다섯 오, 品 ; 물건 품, 敍 ; 차례 서, 典 ; 법 전, 理 ; 다스릴 리, 도리 리, 固 ; 굳을 고, 行 ; 갈 행, 外 ; 밖 외, 唯 ; 오직 유, 孝 ; 효도 효, 百 ; 일백 백, 모든 백, 源 ; 근원 원)
이 다섯 가지 일은 하늘이 차례지은 법칙이고 사람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도리라. 사람의 행실이 이 다섯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오직 효도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라.
是以로 孝子之事親也는 鷄初鳴이어든 咸盥漱하고 適父母之所하여 下氣怡聲하여 問衣燠寒하며 問何食飮하며 (以 ; 까닭 이, 事 ; 섬길 사, 鷄 ; 닭 계, 初 ; 처음 초, 鳴 ; 울 명, 咸 ; 다 함, 盥 ; 대야 관, 漱 ; 양치질할 수, 適 ; 나아갈 적, 氣 ; 기운 기, 怡 ; 기쁠 이, 聲 ; 소리 성, 問 ; 물을 문, 衣 ; 옷 의, 燠 ; 따뜻할 욱, 寒 ; 찰 한, 何 ; 어찌 하, 食 ; 먹을 식, 飮 ; 마실 음)
이런 까닭에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첫닭이 울면 모두 세수하고 양치질하며, 부모가 계신 곳에 나아가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옷이 따뜻한지 추운지를 여쭈며, 무엇을 잡수시고 마시고 싶은지를 여쭈며,
冬溫而夏凊하며 昏定而晨省하며 出必告하며 反必面하며 不遠遊하며 遊必有方하며 不敢有其身하며 不敢私其財니라 (冬 ; 겨울 동, 溫 ; 따뜻할 온, 夏 ; 여름 하, 凊 ; 서늘할 청, 昏 ; 어두울 혼, 定 ; 정할 정, 晨 ; 새벽 신, 省 ; 살필 성, 出 ; 날 출, 反 ; 되돌릴 반, 面 ; 낯 면, 遠 ; 멀 원, 遊 ; 놀 유, 方 ; 모 방, 방향 방, 敢 ; 감히 감, 身 ; 몸 신, 私 ; 사사로울 사, 財 ; 재물 재)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돌봐드리고 새벽에는 안부를 여쭈며, 외출할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님을 대면하며, 멀리 나가 놀지 않으며 나가 놀되 반드시 일정한 장소를 두며, 감히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감히 재물을 자기 것으로 사유하지 않느니라.
父母愛之어시든 喜而不忘하며 惡之어시든 懼而無怨하며 有過어시든 諫而不逆하고 三諫而不聽이어시든 則號泣而隨之하며 (愛 ; 사랑 애, 喜 ; 기쁠 희, 忘 ; 잊을 망, 惡 ; 미워할 오, 懼 ; 두려워할 구, 無 ; 없을 무, 怨 ; 원망할 원, 過 ; 지날 과, 허물 과, 諫 ; 간할 간, 逆 ; 거스를 역, 聽 ; 들을 청, 號 ; 부르짖을 호, 泣 ; 울 읍, 隨 ; 따를 수)
부모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시거든 기뻐하고 잊지 않으며 미워하시거든 두려워하고 원망하지 않으며, 부모님께서 잘못을 저지르시면 말리되 거스르지 않으며 세 번 간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으시거든 부르짖고 울면서 따르며,
怒而撻之流血이라도 不敢疾怨하며 居則致其敬하고 養則致其樂하고 病則致其憂하고 喪則致其哀하고 祭則致其嚴이니라 (怒 ; 성낼 노, 撻 ; 매질할 달, 流 ; 흐를 류, 血 ; 피 혈, 疾 ; 병 질, 미워할 질, 居 ; 있을 거, 致 ; 보낼 치, 養 ; 기를 양, 樂 ; 즐거울 락, 病 ; 병 병, 憂 ; 근심할 우, 喪 ; 죽을 상, 哀 ; 슬플 애, 祭 ; 제사 제, 嚴 ; 엄숙할 엄)
(부모님께서) 노하여 종아리를 때려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치 않으며, 거처할 때에는 공경함을 다하고, 봉양할 때는 즐거움을 극진히 하고, 병환이 드셨을 때는 근심을 극진히 해야 하고, 상을 당해서는 슬픔을 극진히 하고, 제사 지낼 때는 엄숙함을 다해야 하니라.
若夫人子之不孝也는 不愛其親이요 而愛他人하며 不敬其親이요 而敬他人하며 惰其四肢하여 不顧父母之養하며 (若 ; 만약 약, 夫 ; 지아비 부, 대개 부, 他 ; 다른 타, 남 타, 惰 ; 게으를 타, 四 ; 넉 사, 肢 ; 팔다리 지, 顧 ; 돌아볼 고)
만약 대개 부모님께 불효하는 자식은 자기 어버이는 사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은 사랑하며, 자기 어버이는 공경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은 공경하며, 팔다리를 게을리 하여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博奕好飮酒하여 不顧父母之養하며 好貨財하며 私妻子하여 不顧父母之養하며 從耳目之好하여 以爲父母戮하며 好勇鬪狠하여 以危父母니라 (博 ; 너를 박, 노름 박, 奕 ; 클 혁, 바둑 혁, 好 ; 좋을 호, 酒 ; 술 주, 貨 ; 재화 화, 妻 ; 아내 처, 從 ; 좇을 종, 耳 ; 귀 이, 目 ; 눈 목, 戮 ; 죽일 륙, 욕보일 륙, 勇 ; 날쌜 용, 鬪 ; 싸움 투, 狠 ; 사나울 한, 危 ; 위태할 위)
노름이나 바둑,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여 부모님의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식만을 사랑해서 부모님의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이목의 좋아함을 좇아 부모를 욕되게 하며, 용맹을 좋아하여 싸우고 사나워서 부모님을 위태롭게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