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시 모음

봄바람 / (양채영·시인, 1935-)

너는

매화꽃 가지에

은은히 숨어 있다

목련꽃에서는 더 환하다

절벽 난간 붉은 진달래꽃

신라적 노인의 헌화가의

간절한 숨소리로

너는 하늘거린다

새소리에도 봄물살에도

허리를 뒤틀며

재잘대고 깔깔댄다

눈을 감아도 너는

내 볼을 부비며

내 가슴을 파고든다

 

봄 ㅡ김기택ㅡ

바람 속에 아직도 차가운 발톱이 남아있는 3

양지쪽에 누워있던 고양이가 네 발을 모두 땅에 대고

햇볕에 살짝 녹은 몸을 쭉 늘여 기지개를 한다

힘껏 앞으로 뻗은 앞다리

앞다리를 팽팽하게 잡아 당기는 뒷다리

그 사이에서 활처럼 땅을 향해 가늘게 휘어지는 허리

고양이 부드러운 등을 핥으며 순해지는 바람

새순 돋는 가지를 활짝 벌리고

바람에 가파르게 휘어지는 우두둑 우두둑 늘어나는 나무들

 

/ 김광섭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 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인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거리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가지로

사랑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해를 따라

몇 천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라나와

산골짜기에서 겨울 산 뼈를 씻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가로 간다

 

/ 반칠환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룐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

 

봄 ㅡ서정주ㅡ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색 비 무처오는 하늬바람우에 혼령있는 하늘이여

피가 잘 도라...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좀 슬픈 일좀, 있어야겠다

 

봄 ㅡ오탁번ㅡ

소쩍새는

밤 이슥토록 울고

조롱조롱 금낭화

붉은 꽃잎이 짙다

너비바위 틈에 피어난

개미딸기

오종종 오종종

노란 꽃잎이 여리다

하늘 높이 뜬

솔개 눈씨에

참새도 오목눈이도

찔레넝쿨 사이로 숨는다

하느님이

수염에 묻은 황사를 턴다

붕어들이 알 낳느라

몸을 떨며 피 흘린다

 

봄날 생각 ㅡ곽진구ㅡ

저 조팝꽃 좀 봐라

봄이 왔다고

머슴 똥 싸듯이 흐드러지게

잔치 날 흰쌀밥 꽃 같은 꽃을 울타리에

고봉으로 쏟아내고 있다

 

저 꽃의 피는 모양새를 보면

아이 한 둘쯤을 낳고

사내의 성질도 적당히 다룰 줄 알고

인생의 아픈 때가 비껴가지 못해 살짝 살짝 껴 있는,

그래서 뭔가를 생각할 적마다 생각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몰래 흘린 눈물이 한 됫박쯤 되는,

아직은 큰집 노릇을 톡톡히 하는

마흔 살 짜리 우리 집 질부(姪婦)의 눈빛 같기도 하다

나는 오늘 마루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저 꽃 앞에서 무수히 망설였을 홀로 사는 형수를 생각한다

자식 때문에 저 꽃울타리를 함부로 넘지 못하고

머뭇머뭇 돌아섰을

그 발걸음을 생각한다

 

봄 ㅡ이성부ㅡ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 ㅡ유안진ㅡ

저 쉬임없이 구르는 윤회의 수레바퀴 잠시 멈춘 자리

이승에서, 하 그리도 많은 어여쁨에 흘리어 스스로 발길

내려 놓은 여자, 그 무슨 간절한 염원 하나 있어

내 이제 사람으로 태어 났음이랴

머언 산 바윗등에 어리운 보랏빛, 돌각담을 기어오르는 봄 햇살

춘설을 쓰고 선 마른 갈대대궁

그 깃에 부는 살 떨리는 휘파람

얼음 낀 무논에 알을 까는 개구리

실뱀의 하품소리, 홀로 찾아든 남녘 제비 한 마리

선머슴의 지게 우에 꽂혀 앉은 진달래꽃...

처음 나는 이 많은 신비에 넋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자리잡지 못하는 내 그리움의 방황 아지랭이야, 어쩔 셈이냐

나는 아직 춥고 을씨년스런 움집에서 따순 손길이 기다려지니

속눈썹을 적시는 가랑비 주렴 너머

딱 한번 눈 맞춘 볼이 붉은 소년

내 너랑 첫눈 맞아, 숨바꼭질 노니는 산골짜기에는

뻐꾹뻐꾹 사랑노래 자지러지고

잠든 가지마다 깨어나며 빠져드는 어리어리 어지럼증, 산 아래

돌부처도 덩달아 어깨춤 추는,

시방 세상은 첫사랑 앓는 분홍빛 봄

 

봄 ㅡ윤동주ㅡ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 도르 시내 차가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三冬을 참어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봄 ㅡ정지용ㅡ

외ㅅ가마귀 울며 나른 알로

허울한 돌기둥 넷이 스고

이끼 흔적 푸르른데

황혼이 붉게 물든다

거북 등 솟아오른 다리

길기도 한 다리

바람이 수면에 옴기니

휘이 비껴 쓸리다

 

봄 ㅡ천양희ㅡ

그 자리가 비었어도 밖엔 봄이 충분하였다

나 혼자 있어도 밖엔 봄이 충분하였다

충분한 봄으로 그 시간을 채웠다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는가?> 작가.2003

 

봄 ㅡ홉킨스ㅡ

봄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이름 없는 풀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파릇파릇 아름답게 자라고

티티새의 알은 낮은 하늘 갈아 티티새 자신은

메아리치는 숲을 노래로 울리며 귓전은 때려

그 소리를 들으며 벼락을 맞은 듯하고

윤기 도는 배나무 잎사귀와 꽃잎은

하늘을 닦아 내어 푸르름이 다가오는 풍요로움

뛰노는 어린 양들은 깡충 거리나니

이 생기 넘치는 활력과 기쁨은 무엇이던가

에덴 동산에서 비롯된 대지의 감미로운 흐름이니

그것을 차지하여라, 소유하거라, 그것이 죄 때문에

싫어지고 흐려지고 더러워지기 전에, 주 그리스도여

소년 소녀가 지닌 바 티 없는 마음과 5월의 날을

동정녀의 아들이여 당신이 선택하시고

그 무엇보다도 값어치 있는 것을 가지게 하라

 

봄 ㅡ황인숙ㅡ

온종일 비는 쟁여논 말씀을 풀고

나무들의 귀는 물이 오른다

나무들은 전신이 귀가 되어

채 발음되지 않은

자음의 잔뿌리도 놓치지 않는다

발가락 사이에서 졸졸거리며 작은 개울은

이파리 끝에서 떨어질 이응을 기다리고

각질들은 세례수를 부풀어

기쁘게 흘러 넘친다

그리고 나무로부터 한 발 물러나

고막이 터질 듯한 고요함 속에서

작은 거품들이 눈을 트는 것을 본다

첫 뻐꾸기 젖은 몸을 털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봄날 ㅡ김종길ㅡ

골목의 흰 목련 꽃송이

수틀 위에서처럼

눈을 뜨고

한나절 젖빛 운애 속에

몸풀고 돌아누운

북한사

번데기처럼 나온 애벌레인가

나도 꿈틀거린다

눈을 뜬다

 

봄날 ㅡ김기택ㅡ

할머니들이 아파트 앞에 모여 햇볕을 쪼이고 있다

굵은 주름 가는 주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햇볕을 채워넣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뼈와 관절들 다 녹도록

온 몸을 노곤노곤하게 지지고 있다

마른버짐 사이로 아지랑이 피어오를 것 같고

잘만 하면 한순간 뽀오얀 젖살도 오를 것 같다

할머니들은 마음을 저수지마냥 넓게 벌려

한 철 폭우처럼 쏟아지는 빛을 양껏 받는다

미처 몸에 스며들지 못한 빛이 흘러 넘쳐

할머니들 모두 눈부시다

아침부터 끈질기게 추근대던 봄볕에 못이겨

나무마다 푸른 망울들이 터지고

할머니들은 사방으로 바삐 눈을 흘긴다

할머니 주름살들이 일제히 웃는다

오오 얼마 만에 환해져 보는가

일생에 이렇게 환한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눈 앞에는 햇빛이 종일 반짝거리며 떠다니고

환한 빛에 한나절 한눈을 팔다가

깜빡 졸았던가 한평생이 그새 또 지나갔던가

할머니들은 가끔 눈을 비빈다

 

봄날 ㅡ 김용택ㅡ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 잡고

매화꽃 보러 간 줄 알아라

 

봄날 ㅡ송수권ㅡ

앵두꽃이 피었다 일러라 살구꽃이 피었다 일러라

또 복사꽃이 피었다 일러라

할머니 마루 끝에 나앉아 무연히 앞산을 보신다

등이 간지러운지 자꾸만 등을 긁어신다

올해는 철이 일들었나 보다라고 말하는 사이

그 앞산에도 진달래꽃 분홍 불이 붙었다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죽한 뱃고동이 운다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병이 울고 야야, 쭈꾸미 왱병 ㅡ 식초병

배가 들었구나 , 할머니 쩝쩝 입맛을 다신다

빙초산 맛이 입에 들척지근하고 새콤한 것이

달기가 햇뻐꾸기 소리 같다

아버지 주꾸미 한 뭇을 사오셨다 어머니 고추장

된장을 버물 또 부뚜막의 왱병을 기울이신다

주꾸미 대가리를 씹을 때마다 톡톡 알이 터지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 아버지 하신 말씀

니 할매는 이 맛을 두고 어찌 갔을거나

환장한 환장한 봄날이었다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병이 오도방정을 떨고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즉한 뱃고동이 울었다

 

봄날 ㅡ송찬호ㅡ

봄날 우리는 돼지를 몰고 냇가에 가기로 했었네

아니라네 그 돼지 발병을 했다 해서

자기의 엉덩짝살 몇 근 베어 보낸다 했네

우린 냇가에 철판을 걸고 고기를 얹어 놓았네

뜨거운 철판 위에 봄볕이 지글거렸네 정말 봄이었네

내를 건너 하얀 무명 단장의 나비가 너울거리며 찾아왔데

그날따라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더없이 향기로왔네

이제, 우리들 나이 불혹이 됐네 젊은 시절은 갔네

눈을 씻지만, 책이 어두워 보인다네

술도 탁해졌다네

이제 젊은 시절은 갔네

한때는 문자로 세상을 일으키려 한 적 있었네

아직도 마비되지 않고 있는 건 흐르는 저 냇물 뿐이네

아무려면, 이 구수한 고기 냄새에 콧병이나 고치고 갔으면 좋겠네

아직 더 올 사람이 있는가, 저 나비

십리 밖 복사꽃 마을 친구 부르러 가 아직 소식이 없네

냇물에 지는 복사꽃 사태가 그 소식이네

봄날 우린 냇가에 갔었네, 그날 왁자지껄

돼지 멱따는 소리 들리지 않았네

복사꽃 흐르는 물에 술잔만 띄우고 돌와왔데

 

봄날 ㅡ신경림ㅡ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의 딸이

늙은 소나무 아래서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판다

벚꽃잎이 날아와 앉고

저녁놀 비낀 냇물에서 처녀들

벌겋게 단 볼을 식히고 있다

벚꽃 무더기를 비집으며

늙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하얀 달이 뜨고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이 딸이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파는

삶의 마지막 고살

북한산 어귀

온 산에 풋내 가득한 봄날

처녀들 웃음소리 가득한 봄날

 

봄날 ㅡ심재휘ㅡ

새들이 깃털 속의 바람을 풀어내면

먼 바다에서는 배들이 풍랑에 길을 잃고는 하였다

오전 11시의 봄날이 이렇게 무사히 지나가는 것은

저 작은 새들이 바람을 품으며 날기 때문인 걸

적막한 개나리 꽃 그늘이 말해줘서 알았다

이런 때에 나는 상오의 낮달보다도 스스로

민들레인 그 꽃보다도 못하였다

나를 등지고 앉은 그 풍경에

한엇이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나는 바보 같았다

 

봄날 ㅡ이동순ㅡ

꽃은 피었다가

왜 이다지 속절없이 지고 마는가

봄은 불현듯이 왔다가

왜 이다지 자취없이 사라져버리는가

내 사랑하는 것들도

언젠가는 모두 이렇게 다 떠나고

끝까지 내 곁에 남아 나를 호젓이 지키고 있는 것은

다만 빈 그림자뿐이려니

그림자여

너는 무슨 인연 그리도 깊어

나를 놓지 못하는가

이 봄날엔 왜 그저

모든 것이 아쉬웁고 허전하고 쓸쓸한가

만나는 것마다

왜 마냥 서럽고 애틋한가

 

봄날 ㅡ이수지ㅡ

기타를 치고 싶었다 日語도 배우고 싶었다

잘래희망 란에는 언제나 디자이너라고 적어넣었다

우리집 가장은 소주병과 약봉지였다

삼청교육대에서 씀바귀 같은 절망을 키우고 돌아온 아버지는

어느 날 소주병이 되어 세상 밖으로 데구루루, 굴러갔다

정부 보조금으로는 뇌종양에 걸린 엄마의 약값조차 보조하기 힘들었다

학교에서 오자마자 빨아 널은 체육복, 하얀 체육복이 벌써 말라기네 ...

봄날이 오긴 왔네, 팔락팔락 ...자꾸 잠이 오네.

운동화는 오래 전에 닳아버렸네...

돈꾸러 갔던 엄마가 때가 훨씬 지나 돌아왔을때

전기밥솥엔 저녁밥이 그득했다

밥은 식어 있고, 전기 코드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불 꺼진 방문 앞에 한참을 목발처럼 서 있었다

피자마자 시들은 꽃무리처럼 누렇게 흔들리는 저녁밤

아무도 밥을 퍼먹지 못한 그 밤

꽃잎 같은 밥알들이 흩어지며 소리 없이 강물로 흘러 들어갔다

강바닥에 강물 위에 밥주걱처럼 꽂혀 있는 달빛

바람이 불때마다 수면 위로 무심히 퍼올려지는 밥 냄새 ...같은 봄꽃들

아무리 퍼먹어도 퍼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봄밤

벚꽃이 훌훌 나태주-

벚꽃이 훌훌 옷을 벗고 있었다

나 오기 기다리다 지쳐서 끝내

그 눈붓니 연분홍빛 웨딩드레스 벗어던지고

연초록빛 새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봄이 올 때까지는 ㅡ안도현ㅡ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봄은 고양이로다 ㅡ이장희ㅡ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봄은 전쟁처 ㅡ오세영ㅡ

산천은 지뢰밭인가

봄이 밟고 간 땅마다 온통

지뢰의 폭발로 수라장이다.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푸르고 붉은

꽃과 풀과 나무의 여린 새싹들.

전선엔 하얀 연기 피어오르고

아지랑이 손짓을 신호로

은폐 중인 다람쥐, 너구리, 고슴도치, 꽃뱀---

일제히 참호를 뛰쳐나온다.

한 치의 땅, 한 뼘의 하늘을 점령하기 위한

격돌,

그 무참한 생존을 위하여

봄은 잠깐의 휴전을 파기하고 다시

전쟁의 포문을 연다.

 

봄을 위하여 ㅡ천상병ㅡ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화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이른봄의 서정 ㅡ김소엽ㅡ

눈 속에서도

봄의 씨앗은 움트고

얼음장 속에서도

맑은 물은 흐르나니

마른 나무껍질 속에서도

수액은 흐르고

하나님의 역사는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건져 올리느니

시린 겨울밤에도

사랑의 운동은 계속되거늘

인생은

겨울을 참아내어

봄 강물에 배를 다시 띄우는 일

갈 길은 멀고

해는 서산 마루에 걸렸어도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오게 되어 있나니

서러워 마라

봄은

겨울을 인내한 자의 것이거늘

 

그 해의 봄 ㅡ주근옥ㅡ

새벽에 나와

밤에 기어들고

때때로 외지에 나가

내 전심전력 쏟으며

영토를 넓히고 있을 때

울안의 나무란 나무

풀씨란 풀씨 모두가

음모를 꾸미고 있었느니

바람 불면 손을 흔들거나

눈 쌓이면 어깨를 늘어뜨려

평온을 위장한 채

거사를 획책하고 있었으니

그때 일신상의 화급한 문제로

집을 비웠다가 돌아온 날 정오

울안에서 일제히 함성이 터졌느니

철쭉꽃 애기사과꽃 새싹이란 새싹

모두가 일제히 발을 굴러

그 해의 봄은

둑 터진 강물이었느니

 

해마다 봄이 되면 ㅡ조병화ㅡ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둑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봄 주의보 ㅡ임영준ㅡ

보드라운 손길이 쓰다듬고

응축된 눈물이 대지를 적셔야만

새순이 솟아나온다

화사한 능선에 얼핏 현혹되어

섣부르게 치마 올리고

옷고름 풀지는 말았으면

가슴을 열고

오롯한 씨앗을 품어주는 것은

투명한 햇살과 초록숨결뿐이다

 

봄 편지 ㅡ이해인ㅡ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 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둣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 ★꽃 먼저 와서 ㅡ류인서ㅡ

횡단보도 신호들이 파란불로 바뀔 동안

도둑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도로를 질러갈 동안

나 잠시 한눈팔 동안,

꽃 먼저 피고 말았다

쥐똥나무 울타리에는 개나리꽃이

탱자나무에는 살구꽃이

민들레 톱니진 잎겨드랑이에는 오랑캐꽃이

하얗게 붉게 샛노랗게, 뒤죽박죽 앞뒤 없이 꽃피고 말았다

이 환한 봄날

세상천지 난만하게

꽃들이 먼저 와서, 피고 말았다

 

★​새봄·3 ㅡ김지하ㅡ

겨우내

외로웠지요

새봄이 와

풀과 말하고

새순과 얘기하며

외로움이란 없다고

그래 흙도 물도 공기도 바람도

모두 다 형제라고

형제보다 더 높은

어른이라고

그리 생각하게 되었지요

마음 편해졌어요

축복처럼

새가 머리 위에서 노래합니다.

 

저 못된 것들 ㅡ이재무ㅡ

저 환장하게 빛나는 햇살

나를 꼬드기네

어깨에 둘러맨 가방 그만 내려놓고

오는 차 아무거나 잡아타라네

저 도화지처럼 푸르고 하얗고 높은

하늘 나를 충동질하네

멀쩡한 아내 버리고 젊은 새 여자 얻어

살림을 차려보라네

저 못된 것들 좀 보소

흐르는 냇물 시켜

가지 밖으로 얼굴 내민 연초록 시켜

지갑 속 명함을 버리라네

기어이 문제아가 되라 하네

 

어느 봄날 ㅡ나희덕ㅡ

청소부 김씨

길을 쓸다가

간밤 떨어져내린 꽃잎 쓸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빗자루 세워두고, 빗자루처럼,

제 몸에 화르르 꽃물 드는 줄도 모르고

불타는 영산홍에 취해서 취해서

그가 쓸어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봄볕, 환한 ㅡ김형진ㅡ

교양학관 뒷편 잔디밭 꽃그늘에서

재잘거림이 나뭇잎 깨워 연푸른 빛을 띄게 한다거나

덩그라니 큰 사무실에서 컵라면 먹으며

창 밖 분수대로 외로움을 끌어올린다거나

중앙시장 먹자골목 한 줌 들어오는

하늘빛에 아줌마들 욕지거리 더 높아진다거나

바람이 바람이게

그늘이 그늘이게

눈물이 눈물이게 할 수 있는

저 부끄러운 봄의 속살

우리를 하나로 묶는 무언의 힘

 

순서 ㅡ안도현ㅡ

맨 처음 마당가에

매화가

혼자서 꽃을 피우더니

마을회관 앞에서

산수유나무가

노란 기침을 해댄다

그 다음에는

밭둑의

조팝나무가

튀밥처럼 하얀

꽃을 피우고

그 다음에는

뒷집 우물가

앵두나무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피어나고

그 다음에는

재 너머 사과밭

사과나무가

따복따복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사과밭 울타리

탱자꽃이

나도 질세라, 핀다

한 번도

꽃 피는 순서

어긴 적 없이

펑펑,

팡팡,

봄꽃은 핀다

 

봄이 오는 소리 ㅡ최원정ㅡ

가지마다 봄기운이 앉았습니다.

아직은 그 가지에서

어느 꽃이 머물다 갈까 짐작만 할 뿐

햇살 돋으면

어떻게 웃고 있을지

빗방울 머금으면

어떻게 울고 있을지

얼마나 머물지

어느 꽃잎에 사랑 고백을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둠 내리는 시간에도

새로움 여는 봄의 발자국 소리에

마음은 아지랑이처럼 들떠만 있습니다

.........

얼음 밑으로 흐르는 냇가

보송보송 솜털 난 버들강아지

이 봄에 제일 먼저 찾아 왔습니다

 

약속의 봄 ㅡ성낙일ㅡ

키를 조금 낮추고

아니, 쪼그리고 앉아서 보면

봄이 왔네 봄.

논둑 길 돌아 밭으로 가는 길가로

벌써 봄이 와 있네.

우리 아베 쉰 머리카락 마냥

듬성듬성하게 헝클어진 빛 바랜

풀들 속에서

쑥이랑 냉이 씀바귀 잡풀들이

겨우내 땅속에서 쓴 물 빨아먹고

비죽비죽 돋아나네, 이 어린 것.

살아있었노라고 눈 틔우네

봄은 참으로 고마운 약속

씨앗을 품고 온몸으로 겨울을 견뎌낸 대지와

거짓말처럼 씨앗이 밀어 올려낸 약속

보면 볼수록 눈물겨운 약속

대지가 어지러운 열로 몸이 붓기 시작하는 이유를

내 이제 알 것도 같네.

 

참 좋은 봄날 ㅡ구종현ㅡ

실비는 오지요.

꽃밭은 젖지요.

이제 보니 달팽이 한 마리가

꽃밭에 심은 옥수수 줄기를 타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어갑니다. 기어가서 마침내

오를 수 있을 만큼 올라간 것일까요

이제 그만 하는 걸까요. 그쯤에서

알맞게 휘어진 잎사귀 하나

초록빛 꽃 붙들고 앉아

하루 종일 있을 모양입니다.

제 한 몸

잠적하기에는

참 좋은 봄날입니다.

 

씨앗 하나가 ㅡ문근영ㅡ

꼼틀 꼼틀 태기가 있었나보다

햇볕의 담금질로 해산할 모양이다

어둠을 꼬박 지새운 길에서

산통 때문에 이리저리 몸을 가누고 있다

은하수 같은 꿈을 왈칵왈칵 쏟아 놓고

꽃밭인 듯 가슴 졸인 머리를 빠끔히 내민다

해산의 꿈들이 어둠을 헤엄쳐와

줄줄이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탄생

꽃잎 하나 살며시 열고 햇살이 내려와 앉는다

가슴으로 빨려들 듯 봄이 반짝인다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ㅡ반칠환ㅡ

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혔구나

봄바람 불고 또 불어도

삭정이 가슴에서 꽃을 꺼낼 수 없는 건

두근거림이 없기 때문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봄날 ㅡ조미선ㅡ

얼음장 밑으로

시냇물이 실뱀처럼 스르르

몸을 푼다

버들강아지

금빛 은빛 햇살 모아

보송보송 하얀 솜털 고른다

새싹이

목 길게 빼고 두리번두리번

늘어나는 가족 얼굴 익힌다

대문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개나리 으스스 추운지

햇볕 치맛자락을 끌어다 덮는다

 

아름다운 곳 ㅡ문정희ㅡ

봄이라고 해서 사실은

새로 난 것 한 가지도 없다

어디인가 깊고 먼 곳을 다녀온

모두가 낯익은 작년 것들이다

우리가 날마다 작고 슬픈 밥솥에다

쌀을 씻어 헹구고 있는 사이

보아라, 죽어서 땅에 떨어진

저 가느다란 풀잎에

푸르고 생생한 기적이 돌아왔다

창백한 고목나무에도

일제히 눈펄 같은 벚꽃들이 피었다

누구의 손이 쓰다듬었을까

어디를 다녀와야 다시 봄이 될까

나도 그곳에 한 번 다녀오고 싶다

 

우리나라 꽃들엔 ㅡ김명수ㅡ

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 불면 쓰러질 듯

,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우리나라 나무들엔

아픈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쥐똥나무 똘배나무 지렁쿠나무

모진 산비탈

바위틈에 뿌리 내려

, 그러나 그것들 새싹 돋아 잎 피우면

얼어붙은 강물 풀려

서러운 봄이 온다

 

봄에 소박하게 질문하다 ㅡ엄원태ㅡ

몸 풀린 청량천 냇가 살가운 미풍 아래

수북해서 푸근한 연둣빛 미나릿단 위에

은실삼단 햇살다발 소복하니 얹혀 있고

방울방울 공기의 해맑은 기포들

바라보는 눈자위에서 자글자글 터진다

냇물에 발 담근 채 봇둑에 퍼질러앉은 아낙 셋

미나리를 냇물에 씻는 분주한 손들

너희에게 묻고 싶다, 다만,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산자락 비탈에 한 무더기 조릿대

칼바람도 아주 잘 견뎠노라 자랑하듯

햇살에 반짝이며 글썽이는 잎, 잎들

너희들에게도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폭설과 혹한, 칼바람 따윈 잊을 만하다고

꽃샘추위며 황사바람까지 견딜 만하다고

그래서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그대 생의 솔숲에서 ㅡ김용택ㅡ

나도 봄산에서는

나를 버릴 수 있으리

솔이파리들이 가만히 이 세상에 내리고

상수리나무 묵은 잎은 저만큼 지네

봄이 오는 이 숲에서는

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놓아도 좋으리

그러면 지나온 날들처럼

남은 생도 벅차리

봄이 오는 이 솔숲에서

무엇을 내 손에 쥐고

무엇을 내 마음 가장자리에 잡아두리

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 찾아오고

박새들은 솔가지에서 솔가지로 가벼이 내리네

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돌아와 거니는 숲이여

거기 이는 바람이여,

찬 서리 내린 실가지 끝에서

눈뜨리

눈을 뜨리

그대는 저 수많은 새 잎사귀들처럼

푸르른 눈을 뜨리

그대 생의 이 고요한 솔숲에서

 

봄은 ㅡ이희숙ㅡ

굳었던 관절이 부드러워지듯

봄은 가까이 더 깊숙이 들어왔다

걸음이 빨라지고

얼굴 가득 미소가 번져나는,

꿈꿀 준비가 되어 있는 자와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는

욕심 없이 건강해질 수 있는 계절이다 봄은

,

그 누가 첫사랑 같은 설렘 가득한 봄날에

희망으로 가는 통로를

행복으로 가는 첫 계단을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집중할 수 없는 순수와 열정은 가라

거짓사랑도 가라

 

봄날과 시 ㅡ 나해철ㅡ

봄날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시가 씌어지기나 하나

목련이 마당가에서 우윳빛 육체를 다 펼쳐보이고

개나리가 담 위에서 제 마음을 다 늘어뜨리고

진달래가 언덕마다 썼으나 못 부친 편지처럼 피어있는데

시가 라일락 곁에서 햇빛에 섞이어 눈부신데

종이 위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씌어진 게 시이기는 하나 뭐

 

봄 ㅡ곽재구ㅡ

다시 그리움이 일어

봄바람이 새 꽃가지를 흔들 것이다

흙바람이 일어 가슴의 큰 슬픔도

꽃잎처럼 바람에 묻힐 것이다

진달래 꽃편지 무더기 써갈긴 산언덕 너머

잊혀진 누군가의 돌무덤가에도

이슬 맺힌 들메꽃 한 송이 피어날 것이다

웃통을 드러낸 아낙들이 강물에 머리를 감고

5월이면 머리에 꽂을 한 송이의

창포꽃을 생각할 것이다

강물 새에 섧게 드러난 징검다리를 밟고

언젠가 돌아온다던 임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보리꽃이 만발하고

마실 가는 가시내들의 젖가슴이 부풀어

이 땅위에 그리움의 단내가 물결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곁을 떠나가주렴 절망이여

징검다리 선들선들 밟고 오는 봄바람 속에

오늘은 잊혀진 봄 슬픔 되살아난다

바지게 가득 떨어진 꽃잎 지고

쉬엄쉬엄 돌무덤을 넘는 봄

 

봄 ㅡ김기택ㅡ

바람 속에 아직도 차가운 발톱이 남아있는 3

양지쪽에 누워있던 고양이가 네 발을 모두 땅에 대고

햇볕에 살짝 녹은 몸을 쭉 늘여 기지개를 한다

힘껏 앞으로 뻗은 앞다리

앞다리를 팽팽하게 잡아 당기는 뒷다리

그 사이에서 활처럼 땅을 향해 가늘게 휘어지는 허리

고양이 부드러운 등을 핥으며 순해지는 바람

새순 돋는 가지를 활짝 벌리고

바람에 가파르게 휘어지는 우두둑 우두둑 늘어나는 나무들

 

봄 ㅡ김광섭ㅡ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 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인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거리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가지로

사랑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해를 따라

몇 천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라나와

산골짜기에서 겨울 산 뼈를 씻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가로 간다

 

봄 ㅡ오탁번ㅡ

소쩍새는

밤 이슥토록 울고

조롱조롱 금낭화

붉은 꽃잎이 짙다

너비바위 틈에 피어난

개미딸기

오종종 오종종

노란 꽃잎이 여리다

하늘 높이 뜬

솔개 눈씨에

참새도 오목눈이도

찔레넝쿨 사이로 숨는다

하느님이

수염에 묻은 황사를 턴다

붕어들이 알 낳느라

몸을 떨며 피 흘린다

 

봄 ㅡ이성부ㅡ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 ㅡ유안진ㅡ

저 쉬임없이 구르는 윤회의 수레바퀴 잠시 멈춘 자리

이승에서, 하 그리도 많은 어여쁨에 흘리어 스스로 발길

내려 놓은 여자, 그 무슨 간절한 염원 하나 있어

내 이제 사람으로 태어 났음이랴

머언 산 바윗등에 어리운 보랏빛, 돌각담을 기어오르는 봄 햇살

춘설을 쓰고 선 마른 갈대대궁

그 깃에 부는 살 떨리는 휘파람

얼음 낀 무논에 알을 까는 개구리

실뱀의 하품소리, 홀로 찾아든 남녘 제비 한 마리

선머슴의 지게 우에 꽂혀 앉은 진달래꽃...

처음 나는 이 많은 신비에 넋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자리잡지 못하는 내 그리움의 방황 아지랭이야, 어쩔 셈이냐

나는 아직 춥고 을씨년스런 움집에서 따순 손길이 기다려지니

속눈썹을 적시는 가랑비 주렴 너머

딱 한번 눈 맞춘 볼이 붉은 소년

내 너랑 첫눈 맞아, 숨바꼭질 노니는 산골짜기에는

뻐꾹뻐꾹 사랑노래 자지러지고

잠든 가지마다 깨어나며 빠져드는 어리어리 어지럼증, 산 아래

돌부처도 덩달아 어깨춤 추는,

시방 세상은 첫사랑 앓는 분홍빛 봄

 


가랑잎/미산 윤의섭

 

빛바랜 단풍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가랑잎 굴러내려 오솔길을 덮는다

 

계곡의 바위도 가랑잎 덮어쓰고

옹달샘도 부끄러워 숨어 버린다

 

어디선가 물소리 조용히 들려오고

산새 한 마리 나무 위에 앉아있다

 

욕망을 버리는 나목을 보고

청심을 노래하는 물소리를 듣는다.

 

3월 명지바람 걸터앉아/은파 오애숙

 

한파가 끝나고 나니

엉성한 가지에 앙증스런

손톱만한 노란 나팔

 

새 봄이 돌아왔다고

열십자로 활짝 웃는 모습에

잠에서 화들짝 깨어났으나

 

아직 심연에서는

동면이라고 다시 잠에 취해

고갤 숙이는 겨울이나

 

한겨울 덮었던 거적

명지바람 불어 오고있기에

허공에 날려 버리리

갯마을

 

靑山 손병흥

 

유난히 갯가에 자리한 작은 어촌 마을

옹기종기 촌락을 이룬 정겨운 바닷가 포구

 

갯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맞춰서

검푸른 바다와 갈매기들이 넘나드는 하늘가

 

대문도 열어놓은 채 서로 다들 믿고 살아가는

좀처럼 보기 드문 담장 문패와 어우러진 대문처럼

 

삭막하고 오염된 도시문명과는 서로 대비가 될

공동체 유풍이 남겨진 드물게 볼 수 있는 어촌풍경

매화가 피면 / 정심 김덕성

 

 

 

봄소식 전 하는

앙상한 가지에 품위 있고 아름다운

순백의 속살을 들어내는

사랑스러운 매화

 

그리움으로 기다림

그 설렘으로 깊이 심취되어

매화의 감미로운 사랑 이야기를

수즙은 듯 엿듣고 싶다

 

옛 선비들이 좋아하던

고결하고 밝은 마음을 지닌

어느 꽃보다도 꽃향기가 일품인

명성어린 매화

 

사랑하며 그리는 나

하얀 향기 마음에 스미는

매화가 피면

영영 네 곁을 떠나지 않으리

 

 

산중의 봄맞이 /初月 윤갑수

 

민둥산 산기슭에 진달래꽃

순풍에 미소 지며 소곤대는

나비들 시기에 그만 꽃망울

여울지다 꽃잎 진다

 

빛바랜 억새밭 언저리에

겁먹은 새싹들이 비집고 나와

지난봄을 되새김질한다

 

아지랑이는 너울대듯 햇살

좇아 하늘 끝에 서성이니

종다리 유혹의 노래 부른다

 

하늘과 땅과 바람과 흰 구름

봄맞이에 山中은 지금 벌과

나비들의 유희가 한창이다.

 

 

봄맞이

 

靑山 손병흥

 

창가를 두드리는

햇살 밀어낸 솔바람 사이로

소리 없이 봄꽃 피어나

살포시 나비 날아와 앉듯이

내 고요한 마음속에다

잔잔한 파문 일으키며

숲 속 행운의 파랑새 되어

어느 날 성큼 내 곁으로

이리도 화사하게 꽃단장 하고서

햇살 빗질하며 마구 내게 다가와

이제는 이미 은총이 되어버린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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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시모음

개 화 안도현

생명이 요동치는 계절이면

넌 하나씩 육신의 향기를 벗는다.

온갖 색깔을

고이 펼쳐 둔 뒤란으로

물빛 숨소리 한자락 떨어져 내릴 때

물관부에서 차 오르는 긴 몸살의 숨결

저리도 견딜 수 없이 안타까운 떨림이여.

허덕이는 목숨의 한 끝에서

이웃의 웃음을 불러일으켜

줄지어 우리의 사랑이 흐르는

오선의 개울

그곳을 건너는 화음을 뿜으며

꽃잎 빗장이 하나 둘

풀리는 소리들.

햇볕은 일제히

꽃술을 밝게 흔들고

별무늬같이 어지러운 꽃이여,

이웃들의 더운 영혼 위에

목내일을 노래하는 맘을 가지렴.

내일을 노래하는 맘을 가지렴.

 

그대의 눈동자는 푸른 연꽃잎화 /- 인도의 고시

그대의 눈동자는 푸른 연꽃잎

그대의 치아는 하얀 말리꽃

향기로운 연꽃 내음 그대에게서 난다

그 몸도 꽃잎처럼 휘날리련만

낮으로 사모하고 사모하여도

돌과 같이 단단한 그대의 마음 .

 

- 윤여흥

꽃이 아름다워 쳐다보는 사람을

여자처럼 꽃은 의식하고 있을까

꽃이 거울을 보며 사람을 보고

사람을 위해 웃고 있는 것일까

수반 위의 꽃을 만지며 여자처럼

꽃의 은유를 만지며 생각하는

미학 또는 여자의 허구

여자의 속살처럼

훔쳐보기, 눈흘기기,여지없이

타락하기.

꽃을 주제로 한

꽃뱀의 혓바닥

클레오파트라의 사랑 또는

시법을 위하여.

 

꽃 꺾어 그대 앞에- 양성우

그대 큰 산 넘어 오랜만에

오시는 임

꽃 꺾어 그대 앞에

떨리는 손으로 받들고, 두 눈에

넘치는 눈물 애써 누르며

끝없이 그대를 바라보게 하라.

그대 큰 산 넘어 이슬 털고

오시는 임

꽃 꺾어 그대 앞에

떨리는 손으로 받들고

그대의 발, 머리 풀어 닦으며,

오히려 기쁨에 잦아드는

목소리

그대를 위하여

길고 뜨거운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하라

 

꽃다운- 안정옥

오늘 문득 생각했지요

몇 년 전에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를

그때가 꽃다운 나날이었는데 혀를 차다가

몇 년 후에 혀를 차고 있을 지금을 헤아리면

지금은 분명 꽃다운 날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사는 나날이 꽃다운데 그것도 모르고

내게서 이미 가버렸다고 믿고는

어려서 누군가 꽃다웁다고 하면 흘러버리고

이제 꽃다웁다고 말해주지 않는데 불현듯 나는

꽃 지는 이 가을에

꽃같이 아름답고 꽃같은 향기에 빠져

거처가 없는 힘센 사랑 쑥쑥 자라더니

더는 들어서지 못해

제 몸을 밀치며 제 몸을 밀치며

이 떨림을 달래려

꽃 지는 가을 공원으로 갔지요

몸이 잠겨 실눈을 뜨고 햇살을 마주하니

피곤이 몰려와

몸을 뒤틀면 두두둑 타게지는 소리 그렇지요

좋을 때는 짧아서 가을 해도 짧고 공원도 텅 비고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들을 그리워하며

나날이 새로웠는데

나날이 꽃다웠는데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나는

꽃 지는 가을에 불현듯 귀를 세우고

오늘 이 쓸쓸한 사랑을

오래오래 묵혔다가 내게 어떻게 다시 찾아오는지 기다리지요

 

꽃등 류시화

누가 죽었는지

꽃집에 등이 하나 걸려 있다

꽃들이 저마다 너무 환해

등이 오히려 어둡다,

어둔 등 밑을 지나

문상객들은 죽은 자보다 더 서둘러

꽃집을 나서고

살아서는 마음의 등을 꺼뜨린 자가

죽어서 등을 켜고 말없이 누워 있다

때로는 사랑하는 순간보다

사랑이 준 상처를

생각하는 순간이 더 많아

지금은 상처마저도 등을 켜는 시간

누가 한 생애를 꽃처럼 저버렸는지

등 하나가

꽃집에 걸려 있다

 

꽃 멀미 이해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

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 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꽃밭 김수복

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

힘이 자꾸 빠지는 흐린 봄날에는

작은 꽃밭 하나만이라도

갖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

이리저리 벌떼들이 잉잉거리는 오후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작은 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

물을 뿌리고 희망을 키우는

절망하지 않는 작은 꽃밭 하나를

흐린 봄날에는 갖고 싶다.

 

꽃밭에 서면 이해인

꽃밭에 서면 큰 소리로 꽈리를 불고 싶다

피리를 불 듯이

순결한 마음으로

꽈리 속의 잘디잔 씨알처럼

내 가슴에 가득 찬 근심 걱정

후련히 쏟아 내며

꽈리를 불고 싶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동그란 마음으로

꽃밭에 서면

저녁노을 바라보며

지는 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 싶다

남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나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받고 싶다

 

꽃샘 바람 - 이해인

속으론 나를 좋아하면서도

만나면 짐짓 모른채하던

어느 옛친구를 닮았네

꽃을 피우기 위해선

쌀쌀한 냉랭함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며서

얄밉도록 오래 부는

눈매 고운 꽃샘바람

나는 갑자기

아프고 싶다

 

꽃 씨 서정윤

눈물보다 아름다운 시를 써야지.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대 한 사람만을 위해

내 생명 하나의 유리이슬이 되어야지.

은해사 솔바람 목에 두르고

내 가슴의 서쪽으로 떨어지는 노을도 들고

그대 앞에 서면

그대는 깊이 숨겨 둔 눈물로

내 눈 속 들꽃의 의미를 찾아내겠지.

사랑은 자기를 버릴 때 별이 되고

눈물은 모두 보여주며

비로소 고귀해진다.

목숨을 걸고 시를 써도

나는 아직

그대의 노을을 보지 못했다.

눈물보다 아름다운 시를 위해

나는 그대 창 앞에 꽃씨를 뿌린다.

오직 그대 한 사람만을 위해

내 생명의 꽃씨를 묻는다.

맑은 영혼으로 그대 앞에 서야지.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이해인

내가 심은 꽃씨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

그 고운 설레임으로

며칠을 앓고 난 후

창문을 열고

푸른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눈부신 감동으로

비 온 뒤의 햇빛속에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별 것 아닌 일로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던

친구와 오랜만의 화해한 후의

그 티없는 웃음으로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못견디게 힘든 때에도

다시 기뻐하고

다시 시작하여

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 찍힌

한 통의 아름다운 편지로

매일을 살고 싶다

 

꽃잎 이정하

그대를 영원히 간직하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어쩌면 그대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쓸데없는 집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마저 버려야

비로소 그대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음을..

사랑은 그대를 내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훌훌 털어 버리는 것임을..

오늘 아침 맑게 피어나는 채송화 꽃잎을 보고

나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꽃잎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햇살을 받치고 떠 있는 자줏빛 모양새가 아니라

자신을 통해 씨앗을 잉태하는,

그리하여 씨앗이 영글면 훌훌 자신을 털어 버리는

그 헌신 때문이 아닐까요?

 

꽃을 주고 간 사랑 하덕규

언젠가부터 허전한 내 곁에 하얀 너의 넋이 찾아와

아주 옛날부터 혼자뿐이던 곁에 하얀 너의 넋이 찾아와

내 마음속에 조용한 돋움은

작은 그리움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마음속에 세찬 울렁임은

한 때의 보고픔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젠 안녕 빠알간 꽃을 쥐어 주고 너를 돌아서니

찌르며 새겨지는 이 가슴의 한은 어데다 어데다

버려야 하느냐 사랑아

꽃을 쥐어 준 사랑아

이별인 듯 빨갛게 꽃을 쥐어 주고 떠난 사랑아

 

꽃 피는 날 꽃 지는 날 구광본

꽃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그 만남이 첫만남이 아닙니다.

그 이별이 첫이별이 아니고요.

마당 한 모퉁이에 꽃씨를 뿌립니다.

꽃피는 날에서 꽃지는 날까지

마음은 머리 풀어 헤치고 떠다닐 테지요.

그대만이 떠나간 것이 아닙니다.

꽃지는 날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고요.

그대의 뒷모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날이 새로 잎 피는 길을 갑니다.

 

내 사랑은 빨간 장미꽃 R.버언즈(1759~1769)

내 사랑은 6월에 갓 피어난

빨간 한 송이 장미,

오 내 사랑은 부드러운 선율

박자 맞춰 감미롭게 흐르는 가락.

그대 정녕 아름다운 연인이여

내 사랑 이렇듯 간절하오

온 바닷물이 다 마를지라도

내 사랑은 변하지 않으리.

온 바닷물이 다 마를지라도

모든 바위가 태양에 녹아 없어진다 해도

모래알 같은 덧없는 인생이 다하더라도

내 사랑은 변하지 않으리.

잘 있거라, 내 사랑하는 사람아!

잠시동안 우리 헤어져 있을지라도

천리 만리 떨어져 있다해도

그리운 님아, 나는 다시 돌아오리다.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하이네(1797~1856)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참으로 귀엽고 예쁘고 깨끗하여라.

너를 보고 있으면 서러움이

나의 가슴 속까지 스며든다.

언제나 하느님이 밝고 곱고 귀엽게

너를 지켜주시길

네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나는 빌고만 싶다.

 

노을 속의 백장미 헤르만 헤세(1877~1962)

슬픈 듯 너는 얼굴을 잎새에 묻는다.

때로는 죽음에 몸을 맡기고

유령과 같은 빛을 숨쉬며

창백한 꿈을 꽃피운다.

그러나 너의 맑은 향기는

아직도 밤이 지나도록 방에서

최후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

한 가닥 은은한 선율처럼 마음을 적신다.

너의 어린 영환은

불안하게 이름 없는 것에 손을 편다.

그리고 내 누이인 장미여,

너의 영혼은 미소를 머금고

내 가슴에 안겨 임종의 숨을 거둔다.

 

누군가 내 마음을 적시네 이월하

누군가 내마음을 적시네

비내리는 풀밭처럼

소리없이 온 몸을 두드리며, 전율케하며

쓰러지고 쓰러지고 또 일어서게 하네

누군가 내마음을 적시네

장미꽃 붉은 꽃잎에 구르는 이슬로

날 물들게하네

여름이 지나고 고요한 날이 오면

나는 그대에게 가겠네...

 

땅속에 있는 수선화를 기다린다 이생진

겨울에 피는 수선화가 좋아

나처럼 혼자여서 좋아

매화처럼 나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흙속에서 나왔기에 흙냄새가 나서 좋아

죽은 사람과 살다 나와서 좋아

팔월은 수선화가 흙속에 묻혀 있는 시기여서

수선화는 수평선을 땅속에서 보겠지

수평선을 보며 자란 수선화

구엄리 수선화는 유명하니까

수선화도 수평선을 잊지 못해 밤마다 꿈을 꿀거야

구엄리는 수선화도 유명하니까

수평선도 수선화를 잊지 않으려고 꿈을 꿀거야

수선화의 꿈엔 흙이 묻었고 수평선의 꿈엔 물이 묻었어

구엄리는 꿈이 아름다워

해안도로를 질주하다가도 수평선 때문에 차를 세워 놓고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또 질주하던 사람

어디선가 꿈을 꿀거야

수평선에 뜬 수선화

나는 GNP가 늘어나는 것 보다 수평선이 늘어나는 것이 좋아

수평선은 사라진 것의 소실선

하늘로 사라진 것들의 소실점

수선화는 땅으로 사라진 것들의 소실점

두 소실점을 뛰어넘으면 소실되지 않은 것이 꼬리를 잡히겠지

나는 수선화의 뿌리처럼 모질게 살다 남은 봄을 기다리고 있어

돌아오지 않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다리려 하니 기가 막혀

나는 수선화 앞에 서면 어미 잃은 강아지야

 

때없이 꽃은 시들어 무명씨

빛과 어둠

높음과 깊음이 교차하는 정점에

사람이 산다

별이 지고

빛이 돋아나는 정각에

꽃이 핀다

때없이 꽃은 시들어

의연히 봉인하는 영원의 서약

빛으로 돋아 깊음으로 내려가는

삶처럼

때없이 꽃은 시들어

씨앗으로 남긴 혈서

사람이 꽃이 되려한다.

 

동백 강은교

만약

내가 네게로 가서

문 두드리면.

내 몸에 숨은

봉우리 전부로

흐느끼면.

또는 어느 날

꿈 끝에

네가 내게로 와서

마른 이 살을

비추고

활활 우리 피어나면.

끝나기 전에

, 모두

잠이기 전에.

동백꽃 문충성

누이야.

동백꽃 피어나는 꽃소리 들어본 적 있느냐.

사각사각 맨발로 하얀 눈 한 겨울 캄캄함을 밟아올 때

제주바다는 이러저리 불안을 뒤척이고

찬바람을 몰아다니던 낙엽 소리 돌돌 잠재우며

밤새 동백꽃 피어나는 꽃소리 아련히

나의 잠 속에 묻혀가고 있다.

 

두가지 국화 무명씨

산행길 수로옆 들국화

먼지만 가득

살짝 꺽어 먼지터니

깨끗한 아기손

가늘게 엉퀸

하얀 손톱 끝으로

살짜기 물들인

보라빛 메니큐어

옹기종기 몇채의 집

비니루 덮인 창문사이

인적의 숨소리와

가지런한 국화송이

사랑이 피워있는

두가지의 국화가

도시의 수증기와

맞닿아 섞여 있네

 

들꽃에게 서정윤

어디에서 피어

언제 지든지

너는 들꽃이다

내가 너에게 보내는 그리움은

오히려 너를 시들게 할 뿐,

너는 그저 논두렁 길가에

피었다 지면 그만이다.

인간이 살아, 살면서 맺는

숱한 인연의 매듭들을

이제는 풀면서 살아야겠다.

들꽃처럼 소리 소문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었다 지면 그만이다.

한 하늘 아래

너와 나는 살아있다.

그것만으로도 아직은 살 수 있고

나에게 허여된 시간을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냥 피었다 지면

그만일 들꽃이지만

홑씨들 날릴 강한 바람을

아직은 기다려야 한다.

 

들풀 류시화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라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노래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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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민들레 ㅡ윤갑수ㅡ

보이나요. 하얀 민들레꽃이

꽃대가 길어 사슴처럼 가녀린

너지만 바람에는 절대로

꺾이지 않는다.

바람난 처녀 가슴 애태우듯

해맑은 햇살처럼 청초하게도

피었다네!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누구를 위해 순백의 꽃을

되었나!

소년의 작은 가슴에도

너를 닮고 싶어 하는 희망의

꽃이고 싶다

 

억새풀 ㅡ한승수ㅡ

가을 언덕 저무는 햇살에

은은한 미소

흩날리는 머리칼이

저리도 허허로울 수 있으랴

여름 한때 푸르던 서슬은 간데없고

은발의 노신사인 양

고즈넉이

하늘에 순응하는데

바람결에 서걱이며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고

울어도 울지 않는,

나도 한 줄기

억새풀이고 싶다

 

가을 저녁 어스름/미산 윤의섭

풀벌레소리

멀어지고

먼저 떨어진 낙엽이

홀로 얼굴을 붉힌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니

소나무 가지에

달이 걸렸구나

찬물이 바위로 흐르니

여름의 향기

시들었지만

머물만하지 않은가?

달이 뜨고

별이 빛나는

밤을 위하여

가을 저녁 어스름이 서산에 드리운다.

 

둘만의 사랑 / 정심 김덕성

가을아침

구슬프게 가을비 내리며

촉촉하게 젖는데

누구도 맛보지 못한

단 하나인 달콤한 사랑에

따뜻한 마음을 담고

차 한 잔 나누며

차 잔에는

분홍빛 코스모스 꽃잎을

살짝 띠워

사랑의 향이

그윽한 풍기는

둘만의 사랑 이야기로

행복한 꿈속에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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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시모음

 

4월의 시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4월 비빔밥 /박남수

햇살 한 줌 주세요

새순도 몇 잎 넣어주세요

바람 잔잔한 오후 한 큰 술에

산목련 향은 두 방울만

새들의 합창을 실은 아기병아리

걸음은 열 걸음이 좋겠어요

수줍은 아랫마을 순이 생각을 듬뿍 넣을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고명으로 얹어주세요

 

4/문인수

절을 에워싼 산빛이 수상하다.

잡목 사이로 여기저기 펄럭 걸린 진달래.

단청 엎질린 것 같다.

등산로를 따라 한 무리

어린 여자들이 내려와서 마을 쪽으로 사라진다.

조용하라, 조용히 하라 마음이여

절을 에워싼 산빛이 비릿하다.

 

4햇살 /김태인

어머니, 어머니여

자애로운 어머니여

가지마다 새싹 돋게 하였듯

콘크리트 벽에 갇혀

핏기 잃은 가여운 생명에게도

당신의 젖꼭지 물려주오

 

4/ 한승수

여기저기 봄꽃들 피었다.

가로수 왕벚꽃 화려한 왕관을 쓴 채

임대아파트 울타리에 매달린 어린 개나리를 내려다보고

철없는 목련은 하얀 알몸으로

부잣집 정원에서 일광욕을 한다.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다.

화려함이 다르고, 눈높이가 다르고

사는 동네가 다르지만

그것으로 서로를 무시하지 않는다.

빛깔이 다르지만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다.

어우러져서 참 아름다운 세상.

 

4월의 편지 / 오순화

꽃이 울면 하늘도 울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꽃이 아프면 꽃을 품고 있는

흙도 아프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꽃이 웃으면 하늘도 웃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꽃이 피는 날 꽃을 품고 있는

흙도 헤죽헤죽 웃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맑고 착한 바람에

고운 향기 실어 보내는 하늘이 품은 사랑

그대에게 띄우며

하늘이 울면 꽃이 따라 울고

하늘이 웃으면 꽃도 함께 웃는 봄날

그대의 눈물 속에 내가 있고

내 웃음 속에 그대가 있음을

사랑합니다

 

4/ 반기룡

바람의 힘으로

눈 뜬 새싹이 나풀거리고

동안거 끝낸 새잎이 파르르

목단꽃 같은 웃음 사분사분 보낸다

미호천 미루나무는

양손 흔들며 환호하고

조치원 농원에 옹기종기 박힌

복숭아나무는 복사꽃 활짝 피우며

파안대소로 벌들을 유혹하고

산수유 개나리 목련화는

사천왕처럼 눈망울 치켜뜨고

약동의 소리에 귓바퀴 굴린다

동구 밖 들판에는

달래 냉이 쑥 씀바귀가

아장아장 걸어나와

미각 돋우라 추파 던지고

둑방길에는 밥알 같은

조팝나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다

 

4/ 윤용기

잔인한 잔치

시작되었네.

처소 곳곳에

퉁퉁 불어 있던

몸 동아리

터져 나오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 나오듯

하늘 향해 천지를 개벽시키네.

날카로운 칼바람

견디어 온

환희의 기쁨 숨어 있었네.

 

4월에 내리는 눈 / 안도현

눈이 온다

4월에도

교사 뒤뜰 매화나무 한 그루가

열심히 꽃을 피워 내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을 맞는다

엉거주춤 담벼락에 오줌 누다 들킨 녀석처럼

매실주 마실 생각 하다가

나도 찬 눈을 맞는다

 

4월에 / 박종숙

숨죽인 빈 空間을 차고

새가 난다.

물오른 나무들의 귀가

쏟아지는 빛 속으로

솟아오르고

목숨의 눈부신 四月

유채꽃 향기로 가득하다.

아름다워라

침묵만큼이나

안으로 충동질하며

온 피 걸러

生命의 진액으로 타는

四月의 하늘이여.

다만 살아있음이

눈물겨워

 

4월에는 / 목필균

축축해진 내 마음에

아주 작은 씨앗 하나

떨구렵니다

새벽마다 출렁대는

그리움 하나

연둣빛 새잎으로

돋아나라고

여린 보라 꽃으로

피어나라고

양지쪽으로 가슴을 열어

떡잎 하나 곱게 가꾸렵니다.

 

4/ 오세영

언제 우레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

눈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

 

4월의 바람 / 홍경임

모짜르트가 흐르는 거실에서

홀가분한 마음 되어

커피 한 잔 말없이 마시니

잠에 취했던 나의 영혼 기지개를 켠다

맑은 기분으로 4월의 햇살을 받으며

돌산 밑 작은 동네를 지날 때면

골목 파란 대문집 라일락 꽃잎은

내 볼을 어루만지는데

4월의 바람 오늘은 더욱

여며진 내 가슴을 헤집으며

어제와는 다른 몸짓으로 하여

나를 반긴다.

 

할머니의 4/ 전숙영

시장 한 귀퉁이

변변한 돋보기 없이도

따스한 봄볕

할머니의 눈이 되어주고 있다

땟물 든 전대 든든히 배를 감싸고

한 올 한 올 대바늘 지나간 자리마다

품이 넓어지는 스웨터

할머니의 웃음 옴실옴실 커져만 간다

함지박 속 산나물이 줄지 않아도

헝클어진 백발 귀밑이 간지러워도

여전히 볕이 있는 한

바람도 할머니에게는 고마운 선물이다

흙 위에 누운 산나물 돌아앉아 소망이 되니

꿈을 쪼개 새 빛을 짜는 실타래

함지박엔 토실토실 보름달이 내려앉고

별무리로 살아난 눈망울 동구밖 길 밝혀준다

 

4/ 박인걸

사월이 오면

옛 생각에 어지럽다.

성황당 뒷골에

진달래 얼굴 붉히면

연분홍 살구꽃은

앞산 고갯길을 밝히고

나물 캐는 처녀들

분홍치마 휘날리면

마을 숫총각들 가슴은

온종일 애가 끓고

두견새는 짝을 찾고

나비들 꽃잎에 노닐고

뭉게구름은 졸고

동심은 막연히 설레고

半白 긴 세월에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 시절

앞마당에 핀 진달래

그때처럼 붉다.

 

4월이 떠나고 나면 / 목필균

꽃들아, 4월의 아름다운 꽃들아.

지거라, 한 잎 남김없이 다 지거라,

가슴에 만발했던 시름들

너와 함께 다 떠나버리게

지다보면

다시 피어날 날이 가까이 오고

피다보면 질 날이 더 가까워지는 것

새순 돋아 무성해질 푸르름

네가 간다 한들 설움뿐이겠느냐

4월이 그렇게 떠나고 나면

눈부신 5월이 아카시아 향기로

다가오고

바람에 스러진 네 모습

이른 아침, 맑은 이슬로 피어날 것을

 

4월의 노래 / 노천명

사월이 오면은,

사월이 오면은

향기로운 라일락이 우거지리

회색빛 우울을 걷어 버리고

가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저 라일락 아래로

라일락 아래로

푸른물 다담뿍 안고 사월이 오면

가냘푼 맥박에도 피가 더하리니

나의 사람아 눈물을 걷자

청춘의 노래를 사월의 정령을

드높이 기운차게 불려 보지 않으려나

앙상한 얼골이 구름을 벗기고

사월의 태양을 맞기 위해

다시 거문고의 줄을 골라

내 노래에 맞추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사월의 시 / 이해인

꽃 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양 활짝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새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맘이고,

고운 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적이며,

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느끼며

두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볼랍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4월이 문을 엽니다.

4월의 만남 / 김덕성

함께 사는 세상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정이건 애정이건 만남은

정이 오가면서

믿음이 생기게 되어

비로소 사랑의 꽃 피게 되나니

4월의 만남으로

미덥지 않는 선거용 악수가 아닌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진실한 믿음으로

나누는 사랑의 악수가 되고

신중한 한 표 한 표

깨끗한 선거로 뿌리를 내리는 4

4월의 만남은

우리에게 행복이요 축복이어라

4월에 내리는 봄비 / 나상국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삼동추위 떠나가는 자리

봄 언제 올까, 기다리는데

꽃샘추위가 시샘을 부리더니

며칠째 몸져누운 파리한

온기마져도 사라진

텅 빈 허허로운 벌판 같은 방안으로

우울이 한 웅큼씩 찾아들더니

저렇게 봄비가 내린다

4월에 / 정희성

보이지 않는 것은 죽음만이 아니다.

굳이 돌에 새긴 피

그 시절의 무덤을 홀로

지키고 있는 것은 석탑(石塔)

이 땅의 정처 없는 넋이

다만 풀 가운데 누워

풀로서 자라게 한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룬 것은 없고

죽은 자가 또다시 무엇을 이루겠느냐

봄이 오면 속절없이 찾는 자 하나를

젖은 눈물에 다시 젖게 하려느냐

4월이여

4월의 사랑은 / 이재민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

잔 거품 오르는 생맥주가 앞에 있다

그리움 한 모금을 삼킨다

이른 아침 산을 오르며

가슴속 그리움을 물갈이 하는 여인은

같은 시간

물을 차며 수영을 하듯

내 그리움을 가른다

별빛 같은 아파트 저녁 불빛 속에

사랑의 등대를 찾아

항로를 바꾼 여인은

자신만의 선착장에

그리움의 배를 대고 안식하고 싶어 한다

그곳엔 폭풍우도

세상을 가를듯한 천둥번개도 없기를

간절한 기도로 소망한다

사랑의 동산에

4월의 향기 짙은 개나리꽃도 피어주고

진달래꽃도 함께 피어주기 바란다

다가올

7월의 뜨거운 햇살처럼

4월과 아침 / 오규원

나무에서 생년월일이 같은 잎들이

와르르 태어나

잠시 서로 어리둥절하네

밤새 젖은 풀 사이에 서 있다가

몸이 축축해진 바람이 풀밭에서 나와

나무 위로 올라가 있네

어제 밤하늘에 가서 별이 되어 반짝이다가

슬그머니 제 자리로 돌아온 돌들이

늦은 아침 잠에 단단하게 들어있네

봄이여, 4월이여 / 조 병화

하늘로 하늘로 당겨오르는 가슴

이걸 생명이라고 할까자유라고 할까

해방이라고 할까

4월은 이러한 힘으로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을

밖으로, 밖으로, 인생 밖으로

한없이, 한없이 끌어내어

하늘에 가득히 풀어놓는다

멀리 가물거리는 것은 유혹인가

그리움인가

사랑이라는 아지랑인가

잊었던 꿈이 다시 살아난다

, 봄이여, 4월이여

이 어지러움을 어찌하리

사월에 걸려 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 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가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4월에 꿈꾸는 사랑 / 이채

4월엔 그대와 나

알록달록 꽃으로 피어요

빨강 꽃도 좋고요

노랑 꽃도 좋아요

빛깔도 향기도 다르지만

꽃 가슴 가슴끼리 함께 피어요

홀로 피는 꽃은 쓸쓸하고요

함게 피는 꽃은 아름다워요

인연이 깊다 한들

출렁임이 없을까요

인연이 곱다 한들

미움이 없을까요

나누는 정

베푸는 사랑으로

생각의 잡초가 자라지 않게

불만의 먼지가 쌓이지 않게

햇살에 피는 꽃은

바람에 흔들려도

기쁨의 향기로 고요를 다스려요

꽃잎 속에 맑은 이슬은 기도가 되지요

4월엔 그대와 나

알록달록 꽃으로 피어요

진달래도 좋고요

개나리도 좋아요

사월 / 조성심

사월, 사월

사월을 입 속에서 되뇌이다보면

파아란 잎사귀가 돋아난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사월에 어찌 자리를 묵힐 수 있으랴

그냥 길을 보라

발을 내디딜 때마다

눈 속에 들어오는 건

어제와 또 다른 숨막히는

사월의 드라마

그냥 빈 마음만 준비해도

사월 내내 누구나

초대받은 손님이 된다.

4월 나무 / 최연창

움직임이 없다는 것

소리가 없다는 것

그것은 생명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움직임도 없이

소리도 없이

4월의 나무는

생명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움을 틔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연록의 잎들을

가득 품고

푸른 봄을 이루었습니다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커다란 몸부림이었고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침묵의 노래였습니다

4월이 오면 / 권영상

4월이 오면

마른 들판을

파랗게 색칠하는 보리처럼

나도 좀 달라져야지.

솜사탕처럼 벙그는

살구꽃같이

나도 좀 꿈에 젖어

부풀어 봐야지.

봄비 내린 뒷날

개울을 마구 달리는

힘찬 개울물처럼

나도 좀 앞을 향해 달려 봐야지.

, 4월이 오면

좀 산뜻해져야지.

참나무 가지에 새로 돋는 속잎같이.

4월의 거리에 서면 / 노태웅

벗이여

체념의 행렬 깨우던 이 거리에

4월이 오거든

마음에서 멀어진 그날의 함성

우리 모두의 바램 다시 한번 기억해다오

창 밖 향나무

당신을 위해

몸을 태워 향기 날릴 때

항거했던 아픈 가슴

영원한 울림 그날을 기억해다오

벗이여

웃음으로 가득한 이 거리

다시 4월이 오거든

그때 많은 꿈 묻어둔 거리를 거닐며

어제의 함성에 귀 기울여다오

4월의 거리에 서면.

4/ 정연복

악의 없는 거짓말이

너그럽게 용납되고도 남는

만우절로 시작되는 4월은

통이 무척 큰 달이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걷잡을 수 없이

지천으로 피는 꽃들 때문이다.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과 벚꽃뿐이랴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초록 풀들과 민들레 앞에서

거짓과 기만의 세상은

한풀 꺾이고 만다

4월의 노래 / 정호승

사월이 오면

저 산을 뽑으리라

산새도 살지 않는

사람들도 쫓겨간

저 붉은 산을 뽑아

바다에 던지리라

개꽃이 피고

개꽃잎이 흩어져도

저 붉은 산을 뽑아

바다에 던지고

자유의 무덤 앞을

떠나가리라

, 4/ 이시영

감자 대를 뜯다가도 나는 너를 기다렸다

오늘도 동냥 나가 나는 너를 기다렸다.

강 건너 버들잎 날리면

보리밭 둑을 타고 너는 오리라

뒷산에 진달래 붉게 울면

목발을 짚고 너는 오리라

땀에 젖은 얼굴 빛나는 함성

그날의 총탄 속을 뚫고

너는 다시 오리라

거친 땅이 낳은 아들 문둥이 아들

누더기 속에 간 오히려 깨끗한 사랑

두 팔에 덥석 안을 날은 오리라

아아 몇몇 해던가

먹구름을 몰아내면 또 같은 먹구름

소나기를 피하면 더 거센 소나기

너는 오지 않고 쉽사리 오지 않고

종살이에 지친 누이들

칡꽃이 희게 울 때 또 다른 주인 찾아 몸 팔러 갔네

종달이 빈 밭에 날 때

힘깨나 쓰는 동생들 서울 가 떠돌이가 되었네

애비 같은 비렁뱅이 되었네

아아 몇몇 해던가 기다림의 나날

한번은 박차고 나아가 맞이해야 할 날

가난하지만 자랑스럽게 우리가 우리 차지해야 할 날

크나큰 슬픔의 날 별빛 해방의 날 오리라

바로 너는 오리라 꽃수레 타고

가랑잎만 굴러도 나는 너를 기다렸다.

다리 밑 움막 열고 나와 나는 너를 기다렸다.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 정해종

우수 경칩 다 지나고

거리엔 꽃을 든 여인들 분주하고

살아 있는 것들 모두 살아 있으니

말을 걸어 달라고 종알대고

마음속으론 황사바람만 몰려오는데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나서

마침내 바람이 되고 싶다

바람이 되어도 거센 바람이 되어서

모래와 먼지들을 데리고 멀리 가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나라

어느 하늘 한족을 자욱이 물들이고 싶다

일렁이고 싶다

4월 엽서 / 정일근

가슴으로 읽는 시] 사월 비

막차가 끝나기 전에 돌아가려 합니다

그곳에는 하마 분분한 낙화 끝나고 지는 꽃잎 꽃잎 사이

착하고 여린 새 잎들 눈뜨고 있겠지요

바다가 보이는 교정 4월 나무에 기대어

낮은 휘파람 불며 그리움의 시편들을

날려 보내던 추억의 그림자가 그곳에 남아있습니다

작은 바람 한 줌에도 온몸으로 대답하던

새 잎들처럼 나는 참으로 푸르게

시의 길을 걸어 그대 마을로 가고 싶었습니다

날이 저물면 바다로 향해 난 길 걸어

돌아가던 옛집 진해에는 따뜻한 저녁 불빛

돋아나고 옛친구들은 잘 익은 술내음으로 남아있겠지요

4월입니다.

막차가 끝나기 전에

길이 끝나기 전에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사월 비 / 이제하

보소, 보이소로 오시는 사월 가랑비

헤어진 여자 같은 사월 가랑비

잔치도 끝나고 술도 깨고 피도 삭고 꿈도 걷히고

주머니마저 텅텅빈 이른 새벽에

가신 이들 보이는 건널목 저편

사랑한다, 한다 횡설수설하면서

어디까지 따라오는 사월 가랑비

, 사월에 / 이재무

꽃이 피는 속도를 그대 아는가

시속 40Km

남에서 북으로 나는 달리며

숨이 가쁘다네

저 사랑의 속도

뒤따르며 내 쉽게 지치는 것은

몸이 지친 탓만이 아니라네

꽃으로 살지 않고

함부로 꽃 사랑하고 노래한 죄

저리 커서 달아나는 님

길의 고비마다 불쑥 얼굴 내미는

돌팍과 자갈의 충고

그걸 알고 부르튼 마음의 맨발바닥

꽃이 피는 속도에 숨이 가빠서

나는 슬프네 나는 기쁘네

4/ 장석주

금치산자 같은 4월이 왔다간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시시하지?

하는 얼굴을 하고

방부 처리되지 않은 추억들이

질척거리는 침출수를

삶의 빈 틈으로 조금씩 흘러보낸다

개척자는 아니지만 무능이

뼈에 사무치는 것은

일품요리 같은 여자와의 연애가

곧 끝나고 말리라는 예감 때문이다

무능과 게으름은

내 삶에 붙은 이면옵션이다

나쁜 패를 잡고 전전긍긍하는 노름꾼에게도

4월이 오고 내게도

사지를 절단한 편지가 도착하고

끔찍한 날들이 이어진다

머리 없는 남자가

낚시터로 가는 길을 묻는다

4월에는 / 이명희

4월의 하늘은 친절하고 햇살은 상냥 합니다

담장에 기대인 목련의 성근가지에도 하얀 꽃이 피고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그리운 소식들이

한꺼번에 들려 올 것 같습니다

쌀쌀한 마음을 거두고 포근한 무릎을 내민

그대의 살 내음에 취하고 싶은 날

내 맘의 위안이고 희망인 그대를 만나기 위해

땅을 일궈야 하겠습니다

잡초를 뽑아내고 꽃씨를 뿌려

꽃을 피워야 하겠습니다

인연으로 시작하는 사람들과

다시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설렘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희망의 밭을 기름지게 일궈야 하겠습니다.

사월의 꽃 / 김경숙

전국은 비상사태다

봄바람에 꽃들이

참았던 웃음 보내느라

하루해가 짧다고

노을 붙잡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밤이면 달빛 끌어안더니,

밤낮 가리지 않고

함박웃음 터뜨려 유혹하더니,

향기에 취한 사월

흔들리며 걸어간다

꽃바람 따라 어디든

4월의 만남 / 김덕성

함께 사는 세상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정이건 애정이건 만남은

정이 오가면서

믿음이 생기게 되어

비로소 사랑의 꽃 피게 되나니

4월의 만남으로

미덥지 않는 선거용 악수가 아닌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진실한 믿음으로

나누는 사랑의 악수가 되고

신중한 한 표 한 표

깨끗한 선거로 뿌리를 내리는 4

4월의 만남은

우리에게 행복이요 축복이어라

4월에 내리는 봄비 / 나상국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삼동추위 떠나가는 자리

봄 언제 올까, 기다리는데

꽃샘추위가 시샘을 부리더니

며칠째 몸져누운 파리한

온기마져도 사라진

텅 빈 허허로운 벌판 같은 방안으로

우울이 한 웅큼씩 찾아들더니

저렇게 봄비가 내린다

중년의 가슴에 4월이 오면 / 이채

꽃이 예쁘기로

앞서고 뒤서지 아니하니

4월의 꽃이여!

중년의 꽃이라고 꽃마저 중년이랴

내 꽃의 빛깔이 바래지 않는 것은

한때의 청춘이 그리운 까닭이요

내 꽃의 향기가 시들지 않는 것은

한때의 사랑을 못 잊는 까닭이다

구름은 흘러도 흔적이 없고

바람은 불어도 자취가 없건만

구름 같고 바람 같은 인생아!

,

사람의 주름은 늘어만 가는가

꽃이 예쁘기로

피었다 아니 질 수 없으니

4월의 꽃이여!

그대, 젊음을 낭비하지 마오

지나고 보니

반 백년 세월도 짧기만 하더이다

4월의 환희 / 이해인

깊은 동굴 속에 엎디어 있던

내 무의식의 기도가

해와 바람에 씻겨

얼굴을 드는 4

산기슭마다 쏟아 놓은

진달래꽃

웃음소리

설레이는 가슴은

바다로 뛴다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랑을 향해

바위 끝에 부서지는

그리움의 파도

못자국 선연한

당신의 손을 볼 제

남루했던 내 믿음은

새 옷을 갈아입고

이웃을 불러 모아

일제히 춤을 추는

풀잎들의 무도회

나는

어디서나 당신을 본다

우주를 환희로 이은

아름다운 상흔을

눈 비비며 들여다본다

하찮은 일로 몸살하며

늪으로 침몰했던

초조한 기다림이

이제는 행복한

별이 되어

승천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부활하신 당신 앞에

숙명처럼 돌아와

진달래 꽃빛 짙은

사랑을 고백한다

4, 진해만 / 정일근

바다는 푸른 접시에 담겨

신의 아침 식탁 위에 놓여 있다

신은 아페리티프를 주문해 놓고

노래하듯 시를 읽거나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듣는다

세일러복을 입은 갈매기들이

거수경례를 하며 지나간다

향커피 한 잔이 뜨거워지는 사이

바다의 표정은 세룰리언블루에서

색스블루(saxe blue)로 변해가고

사월 바람에 꽃잎 몇 장 날아와

접시 속의 가벼운 섬으로 앉는다

, 하고 꽃잎들을 불어본다

자욱한 꽃향기 바다를 덮는다

사월 / 김현승

플라타너스의 순들도 아직 어린 염소의 뿔처럼

돋아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시는 그들 첨탑 안에 든 예언의 종을 울려

지금 파종의 시간을 아뢰어 준다.

깊은 상처에 잠겼던 골짜기들도

이제 그 낡고 허연 붕대를 풀어버린 지 오래이다.

시간은 다시 황금의 빛을 얻고,

의혹의 안개는 한동안 우리들의 불안한 거리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검은 연돌(煙突)들은 떼어다 망각의 창고 속에

넣어 버리고,

유순한 남풍을 불러다 밤새도록

어린 수선(水仙)들의 쳐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개구리의 숨통도 지금쯤은 어느 땅 밑에서 불룩거릴 게다.

추억도 절반, 희망도 절반이어

사월은 언제나 어설프지만,

먼 북녘에까지 해동(解凍)의 기적이 울리이면

또다시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 달은 어딘가 미신(迷信)의 달……

사월의 시 / 이해인

꽃 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양 활짝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새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맘이고,

고운 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적이며,

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느끼며

두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볼랍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4월이 문을 엽니다.

4월의 불꽃 / 장수남

그가 돌아왔다

뜨거운 미소로 창을 두드리며

나를 흔들어 깨웠다.

419민주의거

영원한 민주의 불꽃

4월 진달래 삼천리 흐드러지게

붉게 꽃피우리라.

4/ 오세영

언제 우레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

눈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

4월에 / 채호기

겨울이 다 가도

봄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깡깡한 얼음덩어리 속에서

불쑥 몸을 돌려

꽃으로 변신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끔 깨어져 날카롭게 일어서는

동지들의 아름다움이

심장을 쩡쩡 울린다.

잎 트고 어지러이 봄꽃들 피어나도

얼음은 얼음

영하 20도의

차갑고 분명한 정신으로

오월을 맞는다.

4월과 5/ 박정만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봄빛보다 찬란하게 사라져간 너를 그린다

그린 듯이 그린 듯이

너는 라일락 꽃잎 속에 숨어서

라일락 꽃잎 같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너는 나를 그리며 더 큰 웃음을 웃고 있지만

네가 던진 함성도 돌멩이도 꿈 밖에 지고

모호한 안개, 모호한 슬픔 속으로

저 첫새벽의 단꿈도 사라지는 것을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사라진다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세월의 앙금처럼 가라앉아

그것이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되고

그 뿌리 속에 묻어 둔 불씨가 되는 너를 그린다

그린 듯이 그린 듯이

너는 라일락 꽃잎 속에 숨어서

라일락 꽃잎 같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파아란 보랏빛 얼굴로 웃고 있지만

 

4월의 향기를 / 윤보영

4월은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3월의 피었던 꽃향기와

4월에 피게 될 꽃향기

고스란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

눈빛가지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향기를 나누며

향기를 즐기며

아름다운 4월로 만들고

싱그러운 5월을 맞을 수 있게

마음을 열어 두어야겠어요

4월에는

한달 내내 향기속의 나처럼

당신에게도 향기가 났으면 더 좋겠습니다

마주보며 웃을 수 있게

그 웃음이 내 행복이 될 수 있기에..

4/ 안재동

사회의 엘리트 그룹에 진입하는 지름길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수천 편의 응모작품들 중 단 한 사람의

작품만이 행운의 여신에 의해 선택되는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다.

해외유학 길에 올라 상처받지 않고

버젓하게 박사학위를 따오는 일도

돈도 있어야 하고 실력도 있어야 하는,

참 어려운 일이고

수십 내지 수백, 아니 수천 명이나 되는

종업원의 밥줄이 걸린, 크고 작은

사업체 하나 망하지 않게 운영하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다.

먹고 살기 위해 무더위나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일 년 내내 막노동판에서

등짐을 져다 나르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고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 없어

세월아 네월아 하고 빈둥거리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다.

고통스러운 기나긴 겨울 동안 묵묵히,

바야흐로 세상 모든 나무들이

다시 푸른 싹을 틔우며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자태를 갖추는데

세상 모든 꽃들이

오래전 잃어버린 얼굴을 찾기나 한 듯

감동처럼 느껴지는 새 얼굴과

짙은 향기를 세상에 들이미는데

긴 시간, 내 속의 살았으되 죽은 영혼,

저 나무와 꽃들처럼 참 어려웠던 듯

쉬운 듯

이제 소생했으면 하는, 4.

4월의 노래 / 정연복

꽃들

지천으로 피는데

마음 약해지지 말자

나쁜 생각은 하지 말자.

진달래 개나리의

웃음소리 크게 들리고

벚꽃과 목련의

환한 빛으로 온 세상 밝은

4월에는 그냥

좋은 생각만 하며 살자.

한철을 살다 가는 꽃들

저리도 해맑게 웃는데

한세상 살다 가는 나도

웃자 환하게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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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甫名句


陰壑生虛籁북쪽 골짜기에서 빈 바람 소리 울리고,(..一作 靈)

月林散清影달빛 찬 숲에서 맑은 그림자 흩어지네.

 

欲覺聞晨鍾잠 깨려할 때 듣는 새벽 종소리,

令人發深省사람에게 깊은 깨우침 일으키네.

 

造化鍾神秀-조화종신수- 조물주가 신령스럽고 빼어난 것 모두 모았고,

陰陽割昏曉-음양할혼효- 음양이 저녁 아침을 나누네.

-- 한 곳에 모으다, 鍾美 미를 한 곳에 모으다

--日觀峰에서 닭이 울 때 보면 어둡고 밝은 지역이 확연히 구분된다.

 

會當凌絶頂-회당릉절정- 산 정상에 오른다면

一覽衆山小-일람중산소- 뭇 산들의 작은 모습이 펼쳐지겠지.

 

從來多古意(종내다고의) : 지금껏 옛날을 그리는 마음이 많아

臨眺獨躊躇(임조독주저) : 임하여 바라보며 홀로 서성거리네.- 인생행로 암시..

 

春山無伴獨相求 봄 산길을 동행도 없이 홀로 그대 찾아가는데

伐木丁丁山更幽 나무 찍는 쩡쩡 소리 도리어 산은 고요하네

 

蟬噪林逾靜, 鳥鳴山更幽 (왕적)

霽潭鱣發發 제담전발발-비 갠 연못에는 잉어가 팔딱 뛰어오르고

春草鹿呦呦 춘초녹유유-봄풀 위에서 사슴이 우우 우는구나

 

菱熟經時雨물 위의 마름들 익어갈 제 때 맞춰 내리는 빗방울,

蒲荒八月天물가의 부들이 말라가는 팔월의 하늘.

 

震雷翻幕燕(진뇌번막연) : 진동하는 우뢰는 장막의 제비를 뒤집고

驟雨落河魚(취우낙하어) : 소나기에 강물의 물고기 숨는다.

 

風林纖月落(풍림섬월락) : 바람 부는 나무숲에 초승달 넘어가고

衣露淨琴張(의로정금장) : 옷에 이슬 젖자 맑은 거문고 뜯네.

 

暗水流花徑(암수류화경) : 어둠 속의 개울물은 꽃길로 흘러가고

春星帶草堂(춘성대초당) : 봄별은 초당을 에워싸네.

 

往來時屢改(왕내시누개) : 왕래하는 때마다 경물 자주 바뀌나

川陸日悠哉(천륙일유재) : 냇가와 땅은 날마다 변함없구나.

 

屛開金孔雀(금개금공작) 병풍에는 금빛 공작이 펼쳐져 있고

褥隱繡芙蓉(욕은수부용) 요에는 수놓은 부용꽃이 숨어있다.

 

雜花分戶映(잡화분호영) 여러 꽃들이 문마다 비치고

嬌燕入簾回(교연입렴회) 어여쁜 제비는 주렴으로 들어왔다 돌아나가네

 

二年客東都 이년객동도- 낙양의 길손 된지 2년 남짓 지나고

所歷厭機巧 소력염기교-그간 잔꾀와 교활함에 넌더리났네

 

雲山已發興운산이발흥-구름 낀 산에 이미 흥취가 생겨나

玉佩仍當歌옥패잉당가-옥 패물 찬 기생은 때 맞춰 노래하네.

 

蕴眞惬所遇온진협소우-참된 정취 보이는 경지에 녹아드는데,

落日將如何? 낙일장여하-넘어가는 해를 어떻게 하여야 할까?

 

新亭結構罷(신정결구파) :새 정자 짓는 일 모두 마치니

隱見淸湖陰(은현청호음) :맑은 호수 남쪽에 보이다 말다 하네. /xian

 

痛飲狂歌空度日 마시고 노래하며 미친 듯이 세월을 축내니

飛揚跋扈為誰雄 멋대로 날뛰니 누구에게 영웅처럼 보이려는가.

跋扈 큰 물고기가 꼬리치며 뛰어오르는 것 수행하다

 

落景聞寒杵 낙경문한저-황혼에 다듬이 두드리는 소리 쓸쓸하고

屯雲對古城 둔운대고성-겹겹의 구름이 古城을 대하고 있었네

모으다, 비축하다, 주둔하다


春酒杯濃琥珀薄잔에 넘치는 봄 술은 엷은 호박색/ 琥珀.. 술이면서 잔

冰漿碗碧瑪瑙寒푸른 사발의얼음음료는차가운마노색/ 瑪瑙..음료이면서 사발

 

飮如長鯨吸百川(음여장경흡백천) :큰고래가백천의물을모두마시듯이술을 마시고

銜杯樂聖稱避賢(함배락성칭피현) :술잔을들면청주를마시지탁주는마시지않는다.

 

今夕何夕歲云徂(금석하석세운조) :오늘저녁은어떤저녁인가,한해가가는 날이네

更長燭明不可孤(갱장촉명불가고) :밤은길고촛불은밝으니혼자 지낼 수야 없다네

 

霜蹄千里駿서릿발 발굽의 천리마 같으며

風翮九霄鵬바람 타고 하늘 높이 오르는 봉새 같네

 

仙醴來浮蟻좋은 술로 부의가 내려졌고 / 醴 甘酒

奇毛或賜鷹빼어난 새로 매가 하사 되었네

 

學業醇儒富순정한 선비처럼 학업 공부하고

辭華哲匠能뛰어난 문장가처럼 글 솜씨 훌륭하네

 

筆飛鸞聳立붓이 날면 난새 솟구치는 듯

章罷鳳鶱騰글 다 지으면 봉황 날아오르는 듯 / , 새가 나는 모양

 

披霧初歡夕안개 걷히니 비로소 즐거운 저녁

高秋爽氣澄높은 가을 하늘에 삽상한 가운 맑네

 

尊罍臨極浦술잔 들고 먼 포구 바라보는데 / 단지 모양의 술병

鳧雁宿張燈철새들 등불 아래 자고 있네

 

花月窮遊宴달빛 어린 꽃밭에서 한껏 잔치하며

炎天避鬱蒸여름날의 무더운 더위 피하네

 

研寒金井水벼루는 금정의 물처럼 차갑고

簷動玉壺冰처마는 옥병의 얼음처럼 움직이네

 

漂蕩雲天闊구름 낀 넓은 하늘아래 떠돌아다녔고

沈埋日月奔묵혀 지낸 세월 화살 같았네

 

尊榮瞻地絶 -尊榮하신 어른의 지위 비할 데 없이 높음을 보면서

疎放憶途窮 -거칠게 멋대로 살아 갈 길이 막힌 저를 생각합니다

 

江湖漂短褐 -짧고 거친 옷 입고 江湖를 유랑하느라

霜雪滿飛蓬 -헝클어진 백발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老驥思千里, 늙은 천리마가 천리를 달릴 날을 기다리고,

餓應待一呼. 굶주린 매는 한 번 소리지를 날을 기다리네.

 

紈袴不餓死(환고불아사) : 비단옷 귀족들은 굶어죽는 일 없으나,

儒冠多誤身(유관다오신) : 관 쓴 선비들은 자기 몸 그르치는 일 많다네.

 

讀書破萬卷(독서파만권) : 책은 만권을 읽고

下筆如有神(하필여유신) : 붓을 들면 신들린 듯이 명문을 써냈네.

 

致君堯舜上(치군요순상) : 황제를 요순보다 훌륭하게 해드리고

再使風俗淳(재사풍속순) : 다시 풍속을 순박하게 하려했지요.

 

此意竟蕭條(차의경소조) : 이러한 뜻은 결국 쓸쓸하게 되고 말았으나

行歌非隱淪(행가비은륜) : 길 가며 노래 불러도 세상을 등지지 않았소.

 

騎驢三十載(기려삼십재) : 나귀타고 다니기 삼십 년

旅食京華春(여식경화춘) : 장안의 화려한 봄을 걸식하며 사네요.

 

白鷗沒浩蕩(백구몰호탕) : 흰 갈매기 넓은 바다에서 자맥질 하는데

萬里誰能馴(만리수능순) : 만 리 밖 갈매기를 누가 잡아둘 수 있으리오.

白鷗沒浩蕩..갈매기가 이내와 파도 사이에서 보였다 말았다 하는 것

..로 바꾼 사람이 있었는데 맛이 없어졌다 함


碧瓦初寒外(벽와초한외) : 푸른 기와는 첫 추위 밖에 있고

金莖一氣旁(금경일기방) : 구리 기둥은 우주의 한 기운 옆에 있었다.

 

山河扶繡戶(산하부수호) : 산하는 아름답게 수놓은 문을 부축하고

日月近雕梁(일월근조량) : 해와 달은 조각한 대들보에 가까이 닿아있다.

 

翠柏深留景(취백심류경) : 겨울 푸른 잣나무는 짙게 빛을 남기고

紅梨逈得霜(홍리형득상) : 겨울 붉은 배나무는 멀리 서리를 맞아있었다.

 

安西都護胡靑驄(안서도호호청총) : 안서 도호(고선지) 장군의 푸른 총이말

聲價欻然來向東(성가훌연래향동) : 높은 이름 날리며 동으로 달려오네

 

雄姿未受伏櫪恩(웅자미수복력은) :씩씩한자태는마굿간에서편히 쉬려 하지 않고

猛氣猶思戰場利(맹기유사전장리) : 용맹한 기운 아직도 전쟁터를 그리는 듯

 

無復隨高鳳(무복수고봉) : 높이 나는 봉황새 다시 따를 수 없고

空餘泣聚螢(공여읍취형) : 쓸쓸히 남아 모은 반딧불에다 눈물만 흘립니다.

 

此生任春草(차생임춘초) : 이러한 삶을 봄풀에 맡긴 채로

垂老獨漂萍(수노독표평) : 늙어가며 홀로 떠도는 부평초 신세입니다.

 

世儒多汩沒(세유다골몰) : 세상 선비들은 몰락하는 이가 많은데

夫子獨聲名(부자독성명) : 선생께서는 홀로 명성이 날리십니다.

 

皁雕寒始急(조조한시급) : 매는 추워져야 빨리 날고

天馬老能行(천마노능항) : 천마는 늙어서도 달릴 수 있습니다.

 

寂寞書齋裏적막한 서재에서

終朝獨爾思홀로 아침 내내 그대를 그리워하네

 

渭北春天樹 [위북춘천수] 위북에 머무는 봄날의 나무

江東日暮雲 [강동일모운] 강동에 떠도는 저녁 구름.

 

何時一樽酒 [하시일준주] 어느 때에나 술 한 잔 나누며

重與細論文 [중여세논문] 다시 함께 글은 논할까

 

巢父掉頭不肯住 : 소보는 머리를 흔들며 머물려 하지 않고

東將入海隨煙霧 : 동으로 장차 바다로 가 안개를 따라가려 한다.


詩卷長留天地間 : 시를 적은 두루마리를 세상에 남겨 두고

釣竿欲拂珊瑚樹 : 낚싯대 가지고 산호초를 흔들려 하신다.


南尋禹穴見李白 : 남쪽으로 우임금 무덤 찾다가 이백을 만나거든

道甫問訊今何如 : 두보가 지금은 어떠하신지 묻더라고 말해주게나.


耶娘妻子走相送 -부모처자 총총걸음 뒤쫓으며 전송하네

塵埃不見咸陽橋 -먼지 날아 함양교 뒤덮였네

 

君不見 -그대여 못 보았는가.

漢家山東二百州 -이 나라의 산동(화산의 동쪽)2백주에

千村萬落生荊杞 -모든 촌락 가시 덤블 잡초에 덥혔다는 것을

 

生女猶是嫁比隣 -여자로 태어나면 이웃에 시집도 가련만

生男埋沒隨百草 -남자로 태어나서 흙에 묻혀 풀에 엉기네.

 

君不見靑海頭 -그대 못 보았소? 청해 벌판에

古來白骨無人收 -옛 부터 백골 거두는 이 없어

 

新鬼煩寃舊鬼哭 -새 귀신 원통해 몸부림 치고 옛 귀신 울어

天陰雨濕聲啾啾 -비오는 날 훌쩍훌쩍 우는소리 들린다오


高標跨蒼天 높은 탑이 푸른하늘에 솟아나 있고 -高標 높은 표지, 탑 꼭대기

烈風無時休 매서운 바람은 쉴 새 없이 부는구나

 

秦山忽破碎 종남산이 부서져 흩어진 듯한데 ==>봉우리가 흩어져 있는 모습

涇渭不可求 경수와 위수가 맑고 흐린지 구별할 수 없어라/ 원래 경수는 탁하고 위수는 맑음


俯視但一氣 내려다보니 다만 한 덩어리 기운이라

焉能辨皇州 어디가 장안인지 어찌 분별할 수 있으랴? -皇州 장안

 

君看隨陽雁 그대 보게나, 양기를 따라 움직이는 기러기 -隨陽雁 ,소인배

各有稻粱謀 저마다 나락과 좁쌀 먹을 생각뿐인 것을!


長安苦寒誰獨悲너무 추운 장안에서 누가 홀로 슬퍼하나

杜陵野老骨欲折뼈 부러질 듯 추운 두릉의 시골 노인이라네

 

鄉里兒童項領成시골의 아이들도 목을 뻣뻣이 하고

朝廷故舊禮數絕조정의 옛 동료들도 나를 돌아보지 않네

 

自然棄擲與時異자연스레 버림받아 세상과 어긋났는데

況乃疏頑臨事拙더구나 거친 재주로 일처리 졸렬함에랴

 

君不見空牆日色晚보지 못했나, 빈 담장에 해가 저물면

此老無聲淚垂血이 늙은이 소리없이 피눈물 흘리는 것을

 

麟角鳳觜世莫辯: 기린 뿔과 봉황 부리를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만

煎膠續弦奇自見: 아교 끓여 붙인 악기 줄에 기이함은 절로 나타나네.

 

平明跨驢出(평명과려출) : 날이 밝아 나귀 타고 길을 나서니

未知適誰門(미지적수문) : 누구에 집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所來爲宗族(소내위종족) : 내가 자네를 찾아온 것은 일가의 일 때문이지

亦不爲盤餐(역부위반찬) : 또한 밥 먹으러 온 것은 아니란다

 

四十明朝過(사십명조과) : 사십 내 나이도 내일 아침이면 지나고

飛騰暮景斜(비등모경사) : 날아오르던 기상도 저녁 햇빛에 기우는구나.

 

誰能更拘束(수능경구속) : 누가 능히 다시 나를 구속할 수 있으랴

蘭醉是生涯(난취시생애) : 거나하게 취하리, 이 인생이여.

 

子規夜啼山竹裂(자규야제산죽렬) : 자규가 밤에 울어 산 대나무 갈라지고

王母晝下雲旗翻(왕모주하운기번) : 왕모새는 낮에 내려와 구름처럼 깃을 친다.

 

此身飮罷無歸處(차신음파무귀처) : 이 몸은 술자리 끝나도 돌아갈 곳도 없으니

獨立蒼茫自咏詩(독립창망자영시) : 홀로 서서 창망히 스스로 시를 읊는다네.

 

曲江蕭條秋氣高(곡강소조추기고) : 곡강은 스산하고 가을 기운 높은데

菱荷枯折隨風濤(능하고절수풍도) : 마름과 연꽃 시들어꺾여바람따라 물결친다.


白石素沙亦相蕩(백석소사역상탕) : 흰 돌과 흰 모래도 서로 요동치는데

哀鴻獨叫求其曹(애홍독규구기조) : 애통한비둘기홀로부르짖으며무리를 찾는다.


卽事非今亦非古(즉사비금역비고) : 바로 지은 이 시는금체시도고체시도 아니라

長歌激越捎林莽(장가격월소림장) :긴노래가세차게도수풀을 스쳐 넘어가는구나.

 

短衣匹馬隨李廣(단의필마수리광) : 짧은 옷과 한 필 말로 이광을 따르며

看射猛虎終殘年(간사맹호종잔년) :사나운호랑이 쏘는것보면서여생을 마치리라.

 

思飄雲物外상상력은 구름 밖으로 날아오르고

律中鬼神驚운율은 귀신도 놀라네요

 

毫髮無遺恨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으며 (..一作 憾)

波瀾獨老成파란곡절은 홀로 노련합니다 毫髮..머리털 10개가,10발이()

波瀾..시 전체의 구성방식, 은 큰 파도, 작은 파도는 ()

 

野人甯得所거친 제가 어찌 편안히 살리요

天意薄浮生하늘이 저를 복 없게 만들었으니

 

築居仙縹緲높은 산의 신선은 아득히 너울거리는데

旅食歲崢嶸떠돌이로 걸식하며 또 한해를 보내네

縹緲..群仙縹緲. 餐玉淸涯 뭇 신선들 아득히 너눌거리고,맑은물가에서옥을먹네

崢嶸..歲崢嶸而愁暮 한 해가 다 가니 세모에 근심하네

 

飜手作雲覆手雨 손바닥 뒤집으면 구름이요 엎으면 비가 되니,

紛紛輕薄何須數 이처럼 변덕스러운 무리들을 어찌 다 헤아리리오.

 

春天衣著爲君舞(춘천의착위군무) : 봄날 비단옷 입고서 임을 위해 춤을 추니

蛺蝶飛來黃鸝語(협접비내황리어) : 나비가 날아오고 꾀꼬리가 노래하는구나.

 

落絮遊絲亦有情(낙서유사역유정) : 떨어지는 날아다니는 버들개지도 정은 있어

隨風照日宜輕擧(수풍조일의경거) :바람에 흔들리며 해에 빛나가볍게 흩날리네.

 

君已富土境 상감의 국가영토 한없이 넓거늘

開邊一何多 어찌하여 정벌을 끝없이 벌이는지


磨刀嗚咽水 흐느껴 우는 용두강에서 칼을 갈다가

水赤刃傷手 칼날에 손을 베고 붉은 피를 흘렸네.


功名圖麒麟 공을 세워 기린각에 화상이 걸리길 바라나

戰骨當速朽 전사한 백골은 더욱 빨리 썩으리.

 

哀哉兩決絶(애재량결절) : 슬프다, 두 편이 나누어떨어지니

不復同苦辛(부복동고신) : 다시는 고생을 같이 할 수 없는 것을.

 

挽弓當挽强 활은 강한것을 당기고

用箭當用長 화살은 긴것을 재어라

 

射人先射馬 사람보다 말을 먼저 쏘고

擒敵先敵王 적병의 왕을 먼저 잡아라. ..

 

浮雲暮南征 뜬구름은 날이 저무니 남으로 가는데

可望不可攀 저 구름에 올라타지 못하는 설움.

 

丈夫四方志(장부사방지) : 장부의 천하를 경영하려는 큰 뜻

安可辭固窮(안가사고궁) : 어찌 곤궁함을 마다할까.

 

饑鷹未飽肉(기응미포육) : 굶주린 매는 고기 충분히 먹지 못하면

側翅隨人飛(측시수인비) : 날개를 기울여 사람을 따라 날아간다오.

 

男兒功名遂(남아공명수) : 사나이로 공명을 이루는 일은

亦在老大時(역재노대시) : 또한 늙어 나이 든 때일 것입니다.

 

驚風吹鴻鵠(경풍취홍곡) : 거친 바람 큰 새에게 불어오니

不得相追隨(부득상추수) : 그대를 쫓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孤嶼亭何處 -고서정은 어디에 있나?

天涯水氣中-하늘가 물기 어린 가운데.

 

隱吏逢梅福-은둔한 관리라 매복을 만나고

遊山憶謝公-산에 노닐다 사공을 떠올리리


兩行秦樹直길 좌우에 진나라 나무는 곧고

萬點蜀山尖만 점 촉나라 산은 뾰족하리 / ,두 글자에 오묘함이 있다

 


壯夫思敢決(장부사감결) : 용사들은 그의 과감한 결단을 생각하고 /敢 一作 果

哀詔惜精靈(애조석정령) : 슬퍼하는 임금의 조서는 정령을 애도하였다.

 

路人紛雨泣(노인분우읍) : 행인도 비 뿌리듯 눈물 흘리고

天意颯風飇(천의삽풍표) : 하늘의 마음도 바람불어 회오리 인다.

 

靑冥猶契闊(청명유글활) : 푸른 하늘은 여전히 멀어서

凌厲不飛翻(능려부비번) : 높이 날려고 해도 날아오를 수 없었습니다.

 

異才應間出(이재응간출) : 특이한 인재는 간간히 나오나니

爽氣必殊倫(상기필수륜) : 삽상한 기운은 무리를 달리하리라.

 

驊騮開道路(화류개도노) : 화류 같은 말은 길을 열고

鵰鶚離風塵(조악리풍진) : 조악 같은 새는 풍진을 떠났습니다.

態濃意遠淑且眞,(태농의원숙차진),자태는 농염하고 맑고 참한 기운 어리고

肌理細膩骨肉勻.(기리세니골육윤).비단 같은 고운 피부에 균형잡힌 몸매

 

楊花雪落覆白蘋,(양화설낙복백빈),버들꽃 눈같이 떨어져 흰 부평초에 덮이고

靑鳥飛去銜紅巾.(청조비거함홍건).푸른 새, 붉은 수건 물고 물어온다

 

庭前甘菊移時晩(정전감국이시만): 처마앞의 감국은 옮겨 심는 때를 놓쳐,

靑蕊重陽不堪摘(청예중양부감적):푸른 꽃술은 중양절에도 딸 수가 없구나.

 

明日蕭條醉盡醒(명일소조취진성):내일 쓸쓸한 가운데 술이 다 깨고 나면

殘花爛漫開何益(잔화난만개하익):남은 꽃들 만발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

 

德尊一代常轗軻(덕존일대상감가) :덕망이일대에 높아도항상기회를 얻지 못하니

名垂萬古知何用(명수만고지하용) : 명성 만고에 전해진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杜陵野客人更嗤(두릉야객인갱치) : 두릉의 늙은이를 사람들은 더욱 비웃으리라

被褐短窄鬢如絲(피갈단착빈여사) :입은베옷은짧고좁으며머리털은명주실 같도다

 

先生早賦歸去來(선생조부귀거래) : 선생도 빨리 귀거래사 지으시게

石田茅屋荒蒼苔(석전모옥황창태) : 돌밭과초갓집이푸른이끼러 황폐해지기 전에

 

儒術於我何有哉(유술어아하유재) : 유학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孔丘盜跖俱塵埃(공구도척구진애) : 공자와 도척이 모두 흙먼지가 되었도다

 

汝身已見唾成珠(여신이견타성주) : 너는 뱉어내는 말마다 구슬이 되는데

汝伯何由髮如漆(여백하유발여칠) : 삼촌두보는어이해야머리털이옻처럼검어질까

 

春光淡沲秦東亭(춘광담타진동정) : 장안 동쪽 역 누대에 봄빛이 출렁이고

渚蒲牙白水荇靑(저포아백수행청) :물가의창포는치아처럼 희고 마름풀은 푸르다

 

風吹客衣日杲杲(풍취객의일고고) :햇살은 밝은데 바람은 나그네 옷에 불어들고

樹攪離思花冥冥(수교리사화명명):꽃빛은어둑한데나무는이별의심사를어지럽힌다

 

細草偏稱坐(세초편칭좌) : 가늘게 난 풀은 특별히 앉기 좋아

香醪懶再沽(향료나재고) : 향기로운 술마저 사 오기가 귀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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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속담 1051가지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

가난한 집 신주 굶듯 한다

가난한 집 제삿날 돌아오듯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는 떡이 커야 오는 떡도 크다

가는 말에 채찍질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

가는 세월 오는 백발

가는 손님은 뒤꼭지가 예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가랑잎으로 눈 가리고 아웅한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가마 밑이 노구솥 밑을 검다 한다

가마 타고 시집 가기는 다 틀렸다

가마 타고 시집가기는 코집이 앵글 어졌다

가물에 콩나듯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

가을 볕에는 딸을 쬐고 봄 볕에는 며느리를 쬐인다

가을비는 장인의 나룻 밑에서도 피한다

가을철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단다

가재는 게편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

간다 간다 하면서 아이 셋 낳고 간다

간에 붙고 쓸개에 붙는다

간장이 시고 소금이 곰팡 난다

갈수록 태산이다

갈치가 갈치 꼬리 문다

감기 고뿔도 남 안 준다

감나무 밑에 누워 연시 입 안에 떨어지기 바란다

감나무 밑에 누워도 삿갓 미사리를 대어라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 떨어지기를 바란다

감사 덕분에 비장 나리 호사한다

감투가 커도 귀가 짐작한다

갓 쓰고 박치기해도 제 멋이다

강물도 쓰면 준다

강물이 돌을 굴리지 못한다

강아지 메주 멍석 맡긴 것 같다

강한 말을 매 놓은 기둥이 상한다

같은 값에 분홍 치마

같은 값이면 은가락지 낀 손에 맞으랬다

같은 떡도 맏며느리 주는 것이 더 크다

개 겨 먹다 필경 쌀 먹는다

개 귀에 방울, 개발에 편자

개 꼬리 삼 년 묻어도 황모되지 않는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 똥도 약에 쓰려면 귀하다

개 못된 것은 들에 가서 짓는다

개 못된 것이 부뚜막에 올라간다

개 싸움에 물 끼얹는다

개 잡아먹고 동네 인심 잃고 닭 잡아먹고 이웃 인심 잃는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한다

개구리 주저앉은 뜻은 멀리 뛰자는 뜻이다

개구리도 움쳐야 뛴다

개꼬리 삼년 묻어도 황모 안된다

개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아라

개도 사나운 개를 돌아본다

개도 제 주인은 알아본다

개똥 참외는 먼저 맡는 이가 임자다

개미 쳇바퀴 돌듯한다

개밥에 도토리

개살구 지레 터진다

개장수도 올가미가 있어야 한다

개팔자가 상팔자

객주가 망하려니 짚단만 들어온다

객지 생활 삼 년에 골이 빈다

거동길 닦아 놓으니까 깍정이가 먼저 지나간다

거문고 인 놈이 춤을 추면 칼 쓴 놈도 춤을 춘다

거미도 줄을 쳐야 벌레를 잡는다

거북이 잔등의 털을 긁는다

거지 베 두루마기 해 입힌 셈만 친다

거지가 밥술이나 먹게 되면 거지 밥한 술 안 준다

거지도 손 볼 날이 있다

건넛 산 보고 꾸짖기

걷고 가다가도 날만 보면 타고 가자 한다

걸음아 나살려라

검은 머리 가진 짐승은 구제 말란다

겉보리 서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허랴

게눈 감추듯 한다

게으른 선비 책장 넘기기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흉 본다

겨울 바람이 봄바람보고 춥다고 한다

겨울 화롯불은 어머니보다 낫다

겨울이 다 되어야 솔이 푸른 줄 안다

겨울이 지나지 않고 봄이 오랴?

계란에도 뼈가 있다

계집 둘 가진 놈의 창자는 호랑이도 안 먹는다

계집 바뀐 건 모르고 젓가락 짝 바뀐 건 안다

계집의 곡한 마음 오뉴월에 서리 친다

고기 말린 손 국 솥에 씻으랴?

고기 보고 부럽거든 가서 그물을 뜨라

고기 한 점이 귀신 천 마리를 쫓는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요 말은 해야 맛이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고사리도 꺾을 때 꺾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고양이 덕과 며느리 덕은 알지 못한다

고양이 앞에 쥐 걸음

고양이 죽은 데 쥐 눈물만큼

고양이 쥐생각 하네

고양이보고 반찬가게 지키라는 격이다

고와도 내 임 미워도 내 임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

고운 사람 미운 데 없고 미운 사람 고운 데 없다

고운 일하면 고운 밥 먹는다

고쟁이를 열두 벌 입어도 보일 것은 다 보인다

고추는 작아도 맵다

고추장 단지가 열 둘이라도 서방님 비위를 못 맞춘다

곡식 이삭은 잘 될수록 고개를 숙인다

곤지 주고 잉어 낚는다

골 나면 보리 방아 더 잘 찧는다

곯아도 젓국이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

곱슬머리 옥니박이하고는 말도 말랬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

과부사정은 과부가 안다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말라

광주리에 담은 밥도 엎어질 수 있다

괴 죽 쑤어 줄 것 없고 새앙쥐 볼 가심할 것 없다

구년 홍수에 햇빛 기다리듯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구두장이 셋이 모이면 제갈량보다 낫다

구렁이 담넘어 가듯

구르는 돌은 이끼가 안 낀다

구멍에 든 뱀 길이를 모른다

구멍은 깎을수록 커진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야 보배라

구운 게도 다리를 떼고 먹는다

국에 덴 놈은 물보고도 분다

굳은땅에 물이 고인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

굵은 베가 옷 없는 것보다 낫다

굶기를 밥먹듯 한다

굶어 죽기는 정승하기보다 어렵다

굼벵이가 지붕에서 떨어질 때는 생각이 있어서 떨어진다

굽은 지팡이 그림자도 굽어 비친다

굿 구경하려면 계면떡이 나오도록 해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굿하고 싶어도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다

귀 막고 방울 도둑질한다

귀머리 삼 년이요 벙어리 삼 년이라

귀신은 경문에 막히고 사람은 인정에 막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귀에 걸면 귀엣고리 코에 걸면 코엣고리

귀한 자식 매 한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한개 더 준다

귤 껍질 한 조각만 먹어도 동정호를 잊지 않는다

그물에 든 고기요 쏘아 놓은 범이라

근원 벨 칼이 없고 근심 없앨 약이 없다

글 속에 글 있고 말 속에 말 있다

글 잘 쓰는 사람은 필묵을 탓하지 않는다

긁어 부스럼

금강산도 식후경

급하기는 우물에 가 숭늉 달라겠다

급하면 관세음보살을 왼다

급하면 바늘 허리를 매어 쓰나?

기는놈위에 나는놈있다

기둥보다 서까래가 더 굵다

기둥을 치면 대들보가 울린다

기와 한 장 아껴서 대들보 썩인다

긴병에 효자없다

길로 가라면 뫼로간다

길은 갈 탓 말은 할 탓

길이 아니거든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거든 듣지를 말라

길이 없으니 한 길을 걷고 물이 없으니 한 물을 먹는다

김 안 나는 숭늉이 더 뜨겁다

김칫국 부터 마신다

깊고 얕은 물은 건너 보아야 안다

깊던 물이 얕아지면 오던 고기도 아니 온다

깊은 산에서 목마르다고 하면 호랑이를 본다

까마귀 검기로 마음도 검겠나

까마귀 고기를 먹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까마귀 열 두 소리에 하나도 좋지 않다

까마귀 하루에 열 두 마디를 울어도 송장 먹는 소리

까마귀가 고욤을 마다한다

까마귀가 까치 집을 빼앗는다

깨어진 그릇 맞추기

꺾이느니보다 차라리 굽히는 편이 낫다

껍질 상치 않게 호랑이를 잡을까?

껍질 없는 털이 있을까?

꼬리 먼저 친 개가 밥은 나중 먹는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꼴 같지 않은 말은 이도 들쳐 보지 않는다

꽃샘 입샘에 반늙은이 얼어 죽는다

꽃이 좋아야 나비가 모인다

꿀 먹은 벙어리요, 침 먹은 지네

꿈보다 해몽

꿩 대신 닭

꿩머고 알먹고

끈떨어진 뒤웅박 신세

나 부를 노래를 사돈 집에서 부른다

나간 사람 몫은 있어도, 자는 사람 몫은 없다

나귀는 샌님만 섬긴다

나귀에 짐을 지고 타나 싣고 타나

나그네 모양보아 표주박에 밥을 담고 주인 모양보아 손으로 밥먹는다

나는 새도 깃을 쳐야 날아간다

나루 건너 배 타기

나룻이 석 자라도 먹어야 샌님

나무는 큰 나무 덕을 못 보아도 사람은 큰 사람의 덕을 본다

나무라도 고목 되면 오던 새도 아니 온다

나무에 오르라 하고 흔드는 격

나무에도 못 대고 돌에도 못 댄다

나이 이길 장사 없다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

나한에도 모래 먹는 나한 있다

낙숫물은 떨어지던 데 또 떨어진다

날 잡은 놈이 자루 잡은 놈을 당하랴

남 눈 똥에 주저앉고 애매한 두꺼비 떡돌에 치인다

남 떡 먹는데 팥고물 떨어지는 걱정한다

남의 것을 마 베어 먹듯 한다

남의 고기 한 점 먹고 내 고기 열 점 준다

남의 눈 속의 티만 보지 말고 자기 눈 속의 대들보를 보라

남의 눈에 눈물 나면 제 눈에는 피가 난다

남의 다리 긁는다

남의 말 다 들으면 목에 칼 벗을 날이 없다

남의 말이라면 쌍지팡이 짚고 나선다

남의 밥에 든 콩이 굵어 보인다

남의 잔치에 감놓아라 배놓아라 한다

남의 집 불 구경 않는 군자 없다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거름 지고 나선다

남이야 지게를 지고 제사를 지내건 말건

남자는 크게 자란 어린이에 불과하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내 것 잃고 내 함박 깨뜨린다

내 돈 서푼은 알고 남의 돈 칠 푼은 모른다

내 말은 남이 하고 남 말은 내가 한다

내 배가 부르니 종의 배 고픈 줄 모른다

내 집 노새가 옆집 말보다 낫다

내 칼도 남의 칼집에 들면 찾기 어렵다

내가 할말을 사돈이 한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내외간 싸움은 칼로 물 베기

내일 백냥보다 당장의 쉰냥이 낫다

내코가 석자

너는 구제할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너무 고르다가 눈 먼 사위 고른다

네 떡이 한 개면 내 떡이 한 개라

네 콩이 크니 내 콩이 크니 한다

노루 꼬리가 길면 얼마나 길까?

노루 때린 몽둥이 삼 년 우린다

노루 친 몽둥이 삼 년 우린다

노인 부랑한 것 어린아이 입잰 것

노적 볏가리에 불 지르고 박산 주어 먹는다

노적가리에 불지르고 싸라기 주어 먹는다

노처녀가 시집을 가려니 등창이 난다

높은 가지가 부러지기 쉽다

높은 나무에는 바람이 세다

뇌성 벽력은 귀머거리도 듣는다

누울 자리 봐 가며 발을 뻗어라

누워 떡먹기

누워서 침뱉기

누이 좋고 매부좋다

눈 먹던 토끼 얼음 먹던 토끼가 다 각각

눈 집어먹은 토끼 다르고 얼음 집어먹은 토끼 다르다

눈가리고 아웅

눈감으면 코 베어먹을 세상

눈뜨고 도둑 맞는다

눈먼 소경더러 눈멀었다 하면 성낸다

눈먼 탓이나 하지 개천 나무래어 무엇하랴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국을 얻어 먹는다

느린 걸음이 잰 걸음

늙은 나귀 팔려면 잘 꾸며 줘야 한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

다 가도 문턱 못 넘기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다리 부러진 장수 성 안에서 호령한다

다시 긷지 아니한다고 이 우물에 똥을 눌까?

단단한 땅에 물이 괸다

달 무리한 지 사흘이면 비가 온다

달 밝은 밤이 흐린 낮만 못하다

달걀도 굴러가다 서는 모가 있다

달고 치는데 아니 맞는 장수 있나?

달기는 옆집 할미 손가락이다

달도 차야 기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달무리한 지 사흘이면 비가 온다

달아나는 노루보고 얻은 토끼 놓았다

닭 벼슬이 될망정 쇠꼬리는 되지 마라

닭 쫏던개 지붕쳐다 보듯

닭이 천 마리이면 봉이 한 마리

닭이 천이면 봉이 한 마리 있다

닭잡아 먹고 오리발 내민다

닷돈 보고 보리밭에 갔다가 명주 속옷 찢었다

닷새를 굶어도 풍잠 멋으로 굶는다

당나귀 못된 것은 생원님만 업신여긴다

대감 죽은 데는 안 가도 대감 말 죽은 데는 간다

대문 밖이 저승이라

대문턱 높은 집에 정강이 높은 며느리 들어온다

대신 댁 송아지 백정 무서운 줄 모른다

대천 바다도 건너 봐야 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

더러운 처와 악한 첩이 빈 방보다 낫다

더운 술을 불고 마시면 코 끝이 붉어진다

덤불이 커야 도깨비가 나온다

도깨비는 방망이로 떼고 귀신은 경으로 뗀다

도끼 가진 놈이 바늘 가진 놈을 못 당한다

도끼가 제 자루 못 찍는다

도끼는 날을 달아 써도 사람은 죽으면 그만

도둑고양이더러 제물 지켜 달라 한다

도둑놈은 한 죄 잃은 놈은 열 죄

도둑에도 의리가 있고 땅꾼에도 꼭지가 있다

도둑의 두목도 도둑이요 그 졸개도 또한 도둑이다

도둑이 제발이 저리다

도둑질을 해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

도련님은 당나귀가 제격이다

도마 위엣 고기가 칼을 무서워하랴?

도마에 오른고기

독안에 든쥐

돈 빌려주면 돈도 잃고 친구도 잃는다

돈 없는 놈이 큰 떡 먼저 든다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하고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돌도 십년을 보고 있으면 구멍이 뚫린다

돌로 치면 돌로 치고 떡으로 치면 떡으로 친다

돌부리 걷어차면 발부리만 아프다

돌아본 마을 뀌어 본 방귀

동냥 자루도 마주 벌려야 들어간다

동냥은 않주고 쪽박만 깬다

동무 따라 강남간다

동아 속 썩는 것은 밭 임자도 모른다

동에번쩍 서에번쩍

동의 일 하라면 서의 일 한다

동정 못 다는 며느리 맹물 발라 머리 빗는다

돼지 우리에 주석 자물쇠 달기

되 글을 가지고 말 글로 써먹는다

되로주고 말로 받는다

되지못한 풍잠이 갓 밖에 어른거린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두 동서 사이에 산 쇠사다리라

두 손뼉이 맞아야 소리가 난다

두꺼비 씨름 누가 질지 누가 이길지?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두부 먹다 이 빠진다

둘러치나 메어치나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겠다

둘째 며느리 삼아 보아야 맏며느리 착한 줄 안다

뒤에 볼 나무는 그루를 돋우어라

뒤주 밑이 긁히면 밥맛이 더 난다

뒷간과 사돈집은 멀어야 한다

뒷간에 갈 적 맘 다르고 올 적 맘 다르다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

뒷집 마당 벌어진 데 솔뿌리 걱정한다

뒹굴 자리보고 씨름에 나간다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 걸음

듣기 좋은노래도 한두번이지

들으면 병이요 안 들으면 약이다

등겨 먹던 개는 들키고 쌀 먹던 개는 안 들킨다

등잔밑이 어둡다

따놓은 당상

딸은 제 딸이 고와 보이고 곡식은 남의 곡식이 탐스러워 보인다

딸의 굿에 가도 자루 아홉은 갖고 간다

딸의 시앗은 바늘 방석에 앉히고 며느리 시앗은 꽃방석에 앉힌다

딸의 차반 재 넘어가고 며느리 차반 농 위에 있다

딸이 셋이면 문을 열어 놓고 잔다

땅 넓은 줄은 모르고 하늘 높은 줄만 안다

땅지고 헤엄치기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

떡갈나무에 회초리 나고 바늘 간 데 실이 따라간다

떡도 나오기 전에 김칫국 부터 마시지 말라

떡도 떡같이 못 해 먹고 찹쌀 한 섬만 다 없어졌다

떡방아를 찧어도 옳은 방아를 찧어라

떡본김에 제사 지낸다

떡으로 치면 떡으로 치고 돌로 치면 돌로 친다

떡해먹을 집안

똥 누러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

똥뭍은 개가 겨뭍은 개 나무란다

똥은 건드릴수록 구린내만 난다

똥친 막대기

뚝배기 보다 장맛이 낫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마루 넘은 수레 내려가기

마른하늘에 날벼락

마소의 새끼는 시골로 보내고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보내라

마음 한 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이 굽어보신다

마음씨가 고우면 옷 앞섶이 아문다

마음이 풀어지면 하는 일이 가볍다

마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는다

마파람에 곡식이 혀를 빼물고 자란다

만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말 꼬리에 파리가 천 리 간다

말 많은 집에 장 맛이 쓰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

말고기를 다 먹고 무슨 냄새 난다 한다

말똥도 모르고 마의 노릇 한다

말은 갈수록 태보고, 봉송은 갈수록 준다

말은 쉬워도 하기는 어렵다

말은 할수록 늘고 되질은 할수록 준다

말은 해야 맛이요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

말은 행동보다 쉽고 약속은 실행보다 쉽다

말을 했거든 잘 실행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침묵을 지키라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맛없는 국이 뜨겁기만 하다

망건 쓰자 파장

망나니 짓을 하여도 금관자 서슬에 큰 기침한다

망둥이가 뛰니까 빗자루도 뛴다

망신하려면 아버지 이름자도 안 나온다

맞기 싫은 매는 맞아도 먹기 싫은 음식은 못 먹는다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

매도 먼저 맞는놈이 낫다

매에는 장사없다

머리 없는 놈 댕기 치레하듯

머리는 끝부터 가르고 말은 밑부터 한다

머리털을 베어 신을 삼는다

먹기는 아귀같이 먹고 일은 장승처럼 한다

먹는 데는 감돌이 일에는 배돌이

먹는 데는 남이요 궂은 일엔 일가다

먹지 못할 풀이 오월에 겨우 난다

먼 데 단 냉이보다 가까운 데 쓴 냉이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

메고 나면 상둣군 들고나면 초롱군

멧돌 집으러 갔다가 집돌 잃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사위 사랑은 장모

며느리 자라 시어미 되니 시어미 티 더한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 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

명주 옷은 육촌까지 따습다

명태 한 마리 놓고 딴전 본다

명함도 못들이다

모래 위에 물 쏟은 격이라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모사는 재인 이요 성사는 재천이라

모처럼 능참봉을 하니까 한 달에 거동이 스물 아홉 번

모처럼 태수가 되니 턱이 떨어져

목구멍이 포도청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

목수가 많으면 집 무너뜨린다

못 입어 잘난 놈 없고 잘 입어 못난 놈 없다

못난 색시 달밤에 삿갓 쓰고 나선다

못된 바람은 수구 문으로 들어온다

못된 송아지 응덩이에 쁠난다

못먹는감 찔러나 본다

못살면 조상탓

몽둥이 세 개 맞아 담 안 뛰어넘을 놈 없다

무당이 제 굿 못하고 소경이 저 죽을 날 모른다

무소식이 희소식

무쇠도 갈면 바늘 된다

묵은 거지보다 햇거지가 더 어렵다

문 틈으로 보나 열고 보나 보기는 일반

물건을 모르거든 금보고 사라

물어도 준치, 썩어도 준치

물에 물탄듯 술에술탄듯

물에 빠진 것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한다

물에빠진 새양쥐

물위에 기름

물은 건너보아야 알고 사람은 지내보아야 안다

물이 깊을수록 소리가 없다

물이 아니면 건너지 말고 인정이 아니면 사귀지 말라

미꾸라지 용됬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 물을 다 흐린다

미운 강아지 보리 멍석에 똥싼다

미운아이 떡하나 더준다

미친개 눈에는 몽둥이만 보인다

미친년 널뛰듯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밀가루 장사하면 바람이 불고 소금 장사하면 비가 온다

밉다고 차 버리면 떡고리에 자빠진다

밑 빠진 가마에 물 붓기

밑구멍으로 호박씨 깐다

바늘 가는데 실간다

바늘 구멍으로 하늘 보기

바늘 구멍으로 황소 바람 들어온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바늘 방석에 앉은것 같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메운다

바보는 죽어야 고쳐진다

바쁘게 찧는 방아에도 손 놀 틈이 있다

바위를 차면 제 발부리만 아프다

반달 같은 딸 있으면 온달 같은 사위 삼겠다

발가락의 티눈만큼도 여기지 않는다

밟힌 지렁이 꿈틀한다

밤 말은 쥐가 듣고 낮 말은 새가 듣는다

밤 잔 원수 없고 날 샌 은혜 없다

밤새도록 울다가 누구 초상이냐고

밤에 보아도 낫자루 낮에 보아도 밤나무

밥 군 것이 떡 군 것보다 못하다

밥 그릇이 높으니까 생일만큼 여긴다

밥 빌어다가 죽을 쑤어 먹을 놈

밥은 열 곳에 가서 먹어도 잠은 한 곳에서 자랬다

방귀 뀐놈이 성낸다

방둥이 부러진 소 사돈 아니면 못 팔아먹는다

방앗공이는 제 산 밑에서 팔아 먹으랬다

배 썩은 것은 딸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

배꼽에 어루쇠를 붙인 것 같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백년을 다 살아야 삼만 육천 일

백두산 까마귀도 심지 맛에 산다

백성의 입 막기는 내 입 막기보다 어렵다

백일 장마에 하루만 더 왔으면 한다

백지장도 맞들으면 낫다

뱁새가 황새 따라 가려면 다리가 찢어 진다

번개불에 콩볶아 먹겠다

벌집 건드리다

범 모르는 관리가 볼기로 위세 부린다

범 없는 골에는 토끼가 스승이라

범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는다

범도 새끼 둔 골을 두남 둔다

범도 제 소리 하면 오고 사람도 제 말하면 온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벙어리 두 몫 떠들어댄다

베 돌던 닭도 때가 되면 홰 안에 찾아 든다

베는 석자라도 틀은 틀대로 해야 된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

벼룩의 등에 육간 대청을 짓겠다

벼르던 제사에 물도 못 떠놓는다

벼슬은 높이고 마음은 낮추어라

병든 놈 두고 약 지러 갔더니 약국도 두건을 썼더란다

병에 가득찬 물은 저어도 소리가 안난다

병주고 약준다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고 울거든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보리 누름에 선 늙은이 얼어죽는다

보리로 담은 술 보리 냄새가 안 빠진다

보리밭에 가 숭늉 찾겠다

보자보자 하니까 얻어온 장 한 번 더 뜬다

복은 쌍으로 안 오고 화는 홀로 안 온다

봄 사돈은 꿈에도 보기 무섭다

봄 첫 갑자 일에 비가 오면 백리중이 가물다

봄볕에 그을리면 보던 임도 몰라본다

봄에 깐 병아리 가을에 와서 세어 본다

봇짐 내어 주며 하룻밤 더 묵으라 한다

부귀 빈천이 물레바퀴 돌 듯 한다

부뚜막 땜질 못하는 며느리 이마의 털만 뽑는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다

부모 속에는 부처가 들어 있고 자식 속에는 앙칼이 들어 있다

부엌에 가면 더 먹을까 방에 가면 더 먹을까?

부자 하나면 세 동네가 망한다

부잣집 외상보다 거지 맞돈이 좋다

부지런한 물방아는 얼 새도 없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다

부처님 살찌고 마르기는 석공에게 달렸다

부처님에게 생선 방어 토막 훔쳐먹었다고 한다

북어 한 마리 주고 젯상 엎는다

분에 심어 놓으면 못된 풀도 화초라 한다

불난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

불난데 부채질한다

비단 대단 곱다 해도 말같이 고운 것은 없다

비렁뱅이가 하늘을 불쌍히 여긴다

비싼 놈의 떡은 안 사 먹으면 그만이라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칸 태운다

빗자루 든 놈보고 마당 쓸라 한다

빚 보증하는 자식 낳지도 마라

빚주고 뺨맞는다

빠른 바람에 굳센 풀을 안다

뺨 맞는 데 구렛나루이 한 부조

뺨 맞아도 은가락지 낀 손에 맞는 것이 좋다

뺨 맞을 놈이 여기 때려라 저기 때려라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을을 타지 않는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사나운 개 콧등 아물 틈 없다

사나운 말에는 별난 길마 지운다

사당치레하다 신주 개 물려 보낸다

사돈 남말한다

사돈집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사람 죽여 놓고 초상 치러 주기

사람과 쪽박은 있는 대로 쓴다

사람은 구하면 앙분을 하고 짐승은 구하면 은혜를 한다

사람은 나이로 늙는 것이 아니라, 기분으로 늙는다

사람은 늙어지고 시집살이는 젊어진다

사람은 잡기를 해보아야 마음을 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

사람은 헌 사람이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

사람을 죽이는 세가지, 내리 쪼이는 태양, 만찬, 그리고 걱정

사람의 혀는 뼈가 없어도 사람의 뼈를 부순다

사랑이 여자에게 대하는 것은 태양이 꽃에 대하는 것과 같다

사위는 백 년 손이요 며느리는 종신 식구

사자 없는땅에 토끼가 대장노릇 한다

사주에 없는 관을 쓰면 이마가 벗어진다

사촌이 땅을사면 배가아프다

사후 술 석잔 말고 생전에 한 잔 술이 달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아니한놈 없다

사흘 길에 하루쯤 가서 열흘씩 눕는다

산 김씨 셋이 죽은 최씨 하나를 못 당한다

산 속의 놈은 도끼질 들판의 놈은 괭이질

산밖에 난 범이요 물밖에 난 고기

산사람 입에 거미줄 치랴

산속 열 놈의 도둑은 잡아도 제 맘 속에 있는 한 놈의 도둑은 못 잡는다

산에 가야 범을 잡는다

산을 오를수록 높고 물은 건널수록 깊다

산중 농사 지어 고라니 좋은 일 했다

산지기가 놀고 중이 추렴을 낸다

살아 생이별은 생초목에 불붙는다

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살이 살을 먹고 쇠가 쇠를 먹는다

삼 정승 부러워 말고 내 한 몸 튼튼히 가지라

삼 천 갑자 동방삭이도 저 죽을 날 몰랐다

삼각산 바람이 오르락내리락

삼간 집이 다 타도 빈대 타 죽는 것만 재미있다

삼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달 장마에는 못 산다

삼사월에 낳은 애기 저녁에 인사한다

삼현육각 잡히고 시집 간 사람 잘 산 데 없다

상전 배 부르면 종 배고픈 줄 모른다

상좌 중이 많으면 가마솥을 깨트린다

새 오리 장가가면 헌 오리 나도 간다

새 잡아 잔치할 것을 소 잡아 잔치한다

새끼 아홉둔 소가 길마 벗을 날 없다

새는 앉는 곳마다 깃이 떨어진다

새도 가지를 가려 앉는다

새도 염불을 하고 쥐도 방귀를 뀐다

새발의 피

새벽달 보려고 으스름달 안 보랴?

생일날 잘 먹으려고 이레를 굶는다

서까랫감인지 도릿감인지 모르고 길다 짧다 한다

서울 가서 김 서방 집 찾기

서울 소식은 시골 가서 들어라

서쪽에서 해가뜨다

서투른 도둑이 첫날밤에 들킨다

석 자 베를 짜도 베틀 벌이기는 일반

석류는 떨어져도 안 떨어지는 유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석수장이는 눈 깜짝이부터 배운다

선비 논 데 용 나고 학이 논 데 비늘이 쏟아진다

설마가 사람 죽인다

섶 지고 불로 들어가려 한다

세 사람만 우겨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제 손엣 것 안 내놓는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세 잎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세월이 약

소 잡은 터전은 없어도 밤 벗긴 자리는 있다

소금도 먹은 놈이 물을 켠다

소더러 한 말은 안나도, 처더러 한 말은 난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것 없다

소잃고 오양간 고친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 가도 한다

속빈 강정

손안대고 코풀기

손자 밥 떠먹고 천장 쳐다본다

손자를 귀애하면 코 묻은 밥을 먹는다

손톰 밑에 가시 드는 줄을 알아도 염통 밑에 쉬 스는 줄은 모른다

솔잎이 버썩 하니 가랑잎이 할 말이 없다

솔잎이 새파라니까 오뉴월만 여긴다

송아지 못된 것 엉덩이에 뿔 난다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면 떨어진다

솥은 부엌에 걸고 절구는 헛간에 놓아라 한다

쇠귀에 경 읽기

쇠똥에 미끄러져 개똥에 코 방아 찧는다

쇠모시 키우는 놈하고 자식 키우는 놈은 막말을 못한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

쇠힘도 힘이요 새힘도 힘이다

수박 겉핥기

수염이 석자래도 먹어야 양반

수풀엣 꿩은 개가 내몰고 오장의 말은 술이 내몬다

숫돌이 저 닳는 줄 모른다

숲도 커야 짐승이 나온다

시간은 우정을 돈독하게 하고 사랑을 엷게 한다

시거든 떫지나 말고 얽거든 검지나 말지

시러베 장단에 호박국 끓여 먹는다

시루에 물붓기

시시덕이는 재를 넘어도 새침데기는 골로 빠진다

시앗 싸움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시앗 죽은 눈물이 눈 가장자리 젖으랴?

시어머니가 죽으면 안방이 내 차지

시작이 나쁘면 끝도 나쁘다

시작이 반이다

식칼이 제 자루는 깎지 못한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실 엉킨 것은 풀어도 노 엉킨 것은 못 푼다

실뱀 한 마리가 온 바닷물을 흐린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싫어 싫어 하면서 손 내민다

싫은 매는 맞아도 싫은 음식은 못 먹는다

심사는 없어도 이웃집 불난 데 키 들고나선다

십 년 세도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

십년공부 나무아미 타불

십리 도 못가서 발병난다

십리가 모랫바닥이라도 눈 찌를 가시나무가 있다

싸고 싼 사향도 냄새 난다

싸라기 쌀 한 말에 칠 푼 오리라도 오리 없어 못 먹더라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부치랬다

싼것이 비지떡

쌀은 쏟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쌈지돈이 주머니돈

쏘아 놓은 살이요 엎지른 물이다

아끼는 것이 찌로 간다

아내 나쁜 것은 백 년 원수 된장 신 것은 일 년 원수

아내가 귀여우면 처가집 말뚝보고 절을 한다

아는길도 물어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

아들 못난 건 제 집만 망하고 딸 못난 건 양 사돈이 망한다

아랫돌 빼어 웃돌 괴기

아무렇지도 않은 다리에 침 놓기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 매어 쓰지 못한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된다

아침놀 저녁 비요 저녁놀 아침 비라

아홉 살 일곱 살 때에는 아홉 동네에서 미움을 받는다

악으로 모은 살림 악으로 망한다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안 인심이 좋아야 바깥 양반 출입이 넓다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나겠다

않되면 조상탓

알다가도 모를일

앓느니 죽지

앓던이 빠진것같다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

애호박 삼 년을 삶아도 이빨도 안 들어 간다

약방에 감초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짚불은 안 쬔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옳을지

어린 아이와 개는 괴는 데로 간다

어물전 망신은 꼴두기가 시킨다

어장이 안 되려면 해파리만 끓는다

억지가 사촌보다 낮다

언덕에 자빠진 돼지가 평지에 자빠진 돼지를 나무란다

언청이만 아니면 일색일텐데

업은 아이 삼 년 찾는다

없는놈이 찬밥 더운밥 가리랴

엎드려 절받기

엎지른 물

에해 다르고 애해 다르다

여든에 죽어도 구들동티에 죽었다 한다

여럿이 가는 데 섞이면 병든 다리도 끌려간다

여름 비는 잠비 가을 비는 떡 비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

여물 많이 먹은 소 똥 눌 때 알아본다

열 골 물이 한 골로 모인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열 놈이 백 말을 하여도 들을 이 짐작

열 두 가지 재주 가진 놈이 저녁거리가 없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없다

열 벙어리가 말을 해도 가만 있거라

열 사람 형리를 사귀지 말고 한 가지 죄를 범하지 말라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 못 막는다

열 손가락 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열의 한 술 밥이 한 그릇 푼푼하다

염불 못하는 중이 아궁이에 불을 땐다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

영감 밥은 누워먹고 아들 밥은 앉아 먹고 딸 밥은 서서 먹는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아니 앓는다

오뉴월 더위에는 암소 뿔이 물러 빠진다

오뉴월 병아리 하룻 볕이 새롭다

오뉴월 소나기는 쇠등을 두고 다툰다

오뉴월 품앗이라도 진작 갚으랬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

오라는 데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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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인 문구

 

歸陽귀양: 봄이 돌아오고 있다

發陽발양: 양기가 발생 한다

馥舒복서: 덕을 베푼다

增綠증록: 푸른빛을 더하여 준다

補神보신: 정신을 도와 준다

凜嚴름엄:추위에도 름름하다

賞雪상설: 눈을 구경한다 즉 평화로운 마음

迎律영률: 장의 音聲음성(소리)을 듣느다

種德종덕: 덕행을 남 모르게 하는것

廣敬관경: 恭敬공경을 널리한다

寶儉보검: 검소한 것이 보배란 뜻

處和처화: 평화로운 곳에 산다

守德수덕: 덕을 지키는 일

淸心청심: 마음을 맑게 한다

寬和관화: 너그럽고 온화하다

       曲卽全 : 굽은 것이 완전한 것이다

       吉祥 : 좋고 상서로움

       德化: 덕이 조화를 이루다

       樂道 : 도를 즐기다

       明德 : 덕을 밝히다

       明善 : 선을 밝히다

       聞道 : 도에 대해 듣는다

       守拙 : 졸박함을 지키다

       守中 : 중용을 지키다

       守眞 : 진실을 지키다

       時雨 : 때에 맞게 내리는 비

       愼德 : 덕을 삼가 하다

       愼獨 : 몸가짐을 삼가다

       安禪 : 명상에 안주하다

       養神 : 정신을 기르다

       仁義 : 어질고 의로움

       仁者壽 : 어진이가 장수한다.

       日日新 : 나날이 새롭다

       入德 : 덕을 세우다

       張樂 : 항상 즐겁다

       作善: 착한 일을 하다

       中和: 알맞게 조화됨

       中卽正 : 알맞으면 바로 선다

       行義 : 옳은 일을 행하다

       玄天 : 오묘한 자연의 조화

       好善 : 착한 일을 좋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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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漢詩 모음

영회(詠懷) - 정철 (鄭澈)

三千里外美人在(삼천리외미인재)-삼천리나 먼 밖에 그리운 님 계시온데

十二樓中秋月明(십이누중추월명)-열 두 누각엔 가을 달이 밝도다.

安得此身化爲鶴(안득차신화위학)-어찌 이 몸 화하여 학으로 될 수 있다면

統軍亭下一悲鳴(통군정하일비명)-님 계신 통군정 아래 한 번 슬피 울어나볼것을.

 

강릉경포대 (江陵鏡浦臺) - 안축(安軸)

雨晴秋氣滿江城(우청추기만강성)-비 개니 가을 기운 강언덕에 가득하고

來泛扁舟放野情(내범편주방야정)-다가오는 조각배는 한껏 소박한 정취로다.

地入壺中塵不倒(지입호중진불도)-땅은 병속에 들어 티끌도 이르지 못하고

天遊鏡裏畵難成(천유경리화난성)-하늘은 경포 속에 노니 그리기 어렵도다.

烟波白鷗時時過(연파백구시시과)-아지랭이 물결에 흰 갈매기만 때때로 오가고

沙路靑驢緩緩行(사로청려완완행)-모랫길엔 나귀가 느릿느릿 가는구나

爲報長年休疾棹(위보장연휴질도)-늙은 사공 보고 힘든 삿대길 쉬게 하고

待看孤月夜深明(대간고월야심명)-홀로 뜬 달 바라보니 밤 더욱 밝구료.

 

차추흥 (次秋興) - 조영석

幽居寥落對秋山(유거요락대추산)-쓸쓸히 숨어사는 형편에 가을산 대하니

濃淡雲霞戶牖間(농담운하호유간)-창틈 새로 보인 구름과 놀 농담이 뒤섞였다

五世祖孫傳宅里(오세조손전택리)-오대째 살아온 이마을 저택

一溪兄弟共門關(일계형제공문관)-시내를 사이한 형제간들 대문을 함께 했다

老來轉覺書中味(노래전각서중미)-늙으막에 바뀐 생각 책 속 진리 음미하고

暑退方蘇病後顔(서퇴방소병후안)-더위 가시자 병마에서 되살아났네

晏起早眠吾事辨(안기조면오사변)-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내 형편 생각하고

較量霜曉진원(교량상효진원반)-서리친 새벽 조회에 치닫던 때와 비교해보네.

 

노상(路上) - 이제현

馬上行吟蜀道難(마상행음촉도난)-말을 타고 가면서 촉도난을 읊으니

今朝始復入秦關(금조시복입진관)-오늘 아침에 처음으로 진관에 다시 드네

碧雲暮隔魚鳧水(벽운모격어부수)-파란 구름 이는 저녁은 어부수 저쪽이요

紅樹秋連鳥鼠山(홍수추련조서산)-단풍나무 가을은 조서산에 잇닿았네

文字剩添千古恨(문자잉첨천고한)-문자(文字)는 천고 한을 보탤 따름인데

利名誰博一身閒(이명수박일신한)-명리가 그 누구의 한가함을 널렸던가

今人最憶安和路(금인최억안화로)-대지팡이 짚새기로 편안한 차림

竹杖芒鞋自往還(죽장망혜자왕환)-스스로 오고감이 생각나네.

소상야우(瀟湘夜雨) - 이제현

楓葉蘆花水國秋(풍엽노화수국추)-단풍잎과 갈대꽃 수국의 가을인데

一江風雨灑扁舟(일강풍우쇄편주)-강바람이 비를 몰아 작은 배에 뿌리네

驚回楚客三更夢(경회초객삼경몽)-놀라 돌아오니 고달픈 나그네의 한밤중 꿈을

分與湘妃萬古愁(분여상비만고수)-이황 여영의 만고의 시름으로 나누어주네.


소상야우(瀟湘夜雨) - 진화()

江村入夜秋陰重(강촌입야추음중)-강촌에 밤이 들어 가을 그늘 무거운데

小店漁燈光欲凍(소점어등광욕동)-조그만 주막에 고깃불 얼겠다.

森森雨脚跨平湖(삼삼우각과평호)-빗발이 주룩주룩 편편 호수 걸렸는데

萬點波濤欲飛送(만점파도욕비송)-만 방울 파도는 날아갈 듯 하는구나.

竹枝蕭瑟碎明珠(죽지소슬쇄명주)-바삭바삭 댓가지 밝은 구슬 부수듯하고

荷葉翩翩走環汞(하엽편편주환홍)-연잎사귀 푸득푸득 둥근 수은 굴린다.

孤舟徹曉掩蓬窓(고주철효엄봉창)-밤새도록 외론 배 봉창을 닫아놓아

緊風吹斷天涯夢(긴풍취단천애몽)-바람 부는 하늘가 꿈을 끊어 버린다.


규원(閨怨) - 허난설헌(許蘭雪軒)

月棲秋盡玉屛空(월서추진옥병공)-달 밝은 누각 가을은 가고 방은 텅 비었네

霜打廬洲下暮鴻(상타여주하모홍)-서리 내린 갈섬에 기러기 내린다.

瑤琴一彈人不見(요금일탄인부견)-거문고 타고 있어도 임은 보이지 않고

藕花零落野塘中(우화영락야당중)-연꽃은 연못으로 한 잎 두 잎 떨어지네.


추석루거(秋夕樓居) - 오융(吳融. 당 시인)

月裏靑山淡如畵(월이청산담여화)-달빛 속의 푸른 산 그림과 같고

露中黃葉颯然秋(노중황엽삽연추)-이슬 맞은 단풍잎 삽연한 가을

危欄倚都無寐(위란의편도무매)-높은 난간에 의지해 잠 못 이룸은

祗恐星河墮入樓(지공성하타입루)-은하수가 다락 위로 떨어질까바


추야산거(秋夜山居) - 시견오(施肩吾. 당 시인)

幽居正想飡霞客(유거정상손하객)-고요한 곳에 머물러 있으니 찬하객이 된 듯

夜久月寒珠露滴(야구월한주로적)-깊은 밤 싸늘한 달빛 구슬이슬 방울지네

千年獨鶴兩三聲(천년독학양삼성)-천년 외로운 학이 두세 번 울면서

飛下巖前一枝栢(비하암전일지백)-바위앞 잣나무 가지에 날아 앉는다


추야우음차고운(秋夜偶吟次古韻) - 고산 윤선도

秋夜篁動曉風(추야소황동효풍)-가을 밤 새벽 바람에 성긴 대 흔들리고

一輪明月掛遙空(일륜명월괘요공)-둥그런 밝은 달이 아득히 하늘에 걸렸는데

幽人無限滄浪趣(유인무한창랑취)-유인은 물결같이 사는 정취 흥겨워서

只在瑤琴數曲中(지재요금수곡중)-요금을 끌어 당겨 당겨 몇 곡조 퉁겨본다

 

가을() - 진온(陳溫. 고려 시인)

釦砌微微著痰霜(구체미미저담상)-섬돌위에 쌀쌀한 무서리 내려

裌衣新護玉膚凉(겹의신호옥부량)-겹옷을 새로 지어 차려 입었네

王孫不解悲秋賦(왕손불해비추부)-가을이 처량함을 왕손은 모르는지

只喜深閨夜漸長(지희심규야점장)-색씨방에 밤이 길어 좋다구 하네


추일(秋日) - 권우(權遇. 조선시대 시인)

竹分翠影侵書榻(죽분취영침서탑)-대그림자 시원하게 서탑에 들고

菊送淸香滿客衣(국송청향만객의)-국화는 향기로이 옷속에 차네

落葉亦能生氣勢(낙엽역능생기세)-뜰 앞에 지는 잎 무어 좋은지

一庭風雨自飛飛(일정풍우자비비)-쓸쓸한 비바람에 펄렁대누나


국화불개창연유작(菊花不開悵然有作) - 서거정(徐居正. 조선시대 시인)

佳菊今年皆較遲(가국금년개교지)-국화는 무슨일로 더디피련고

一秋淸興謾東籬(일추청흥만동리)-올가을 좋은흥도 늦어만 가네

西風大是無情思(서풍대시무정사)-서풍은 왜이리도 무정하온지

不入黃花入鬢絲(불입황화입빈사)-귀밑에 서릿발을 재촉하느니


추일영회(秋日詠懷) - 정회원(鄭恢遠. 조선시대 시인)

光陰忽忽歲將(광음홀홀세장추)-세월은 어느듯 해가 거의 다하고

萬里愁獨依樓(만리수독의루)-만리밖 나그네 애를 끓이오

鏡裏紅顔非昔日(경이홍안비석일)-거울속 비친얼골 옛날 아니고

鬢邊華髮又今秋(빈변화발우금추)-살쩍머리 센터럭 벌서늙었네

寒蟬露求高樹(한선읍로구고수)-가을매미 찬이슬에 얼어 울고요

旅雁隨風落遠洲(여안수풍락원주)-든기러기 바람따라 물에 앉으니

怊悵幾年歸未得(초창기년귀미득)-그린고향 가지못함 몇해이런가

故園松桂夢中幽(고원송계몽중유)-꿈속에 보던동산 그윽하구나


추야작(秋夜作) - 김연광(金鍊光. 조선시대 시인)

小窓殘月夢初醒(소창잔월몽초성)-고이든잠 깨어보니 새벽달 창에 들고

一枕愁吟柰有情(일침수음내유정)-쓸쓸한 이내심사 벼개머리 젖어지네

却悔從前輕種樹(각회종전경종수)-이럴줄 모르고서 나무심어 놓았는가

滿庭搖落作秋聲(만정요락작추성)-우수수 지는소리 애 더욱 끓이느니


걸국화(乞菊花) - 해원군 이건(海原君 李健. 조선시대 시인)

淸秋佳節近重陽(청추가절근중양)-가을이라 중양절 가까워지니

正是陶家醉興長(정시도가취흥장)-따는 바루 새술추;게 마실적일세

相見傲霜花滿(상견오상화만체)-섬돌위 국화곱게 피었으려니

可能分與一枝香(가능분여일지향)-한가지 좋은향기 나눠주시오


추사(秋思) - 김효일 (金孝一) 조선시대 시인

滿庭梧葉散西風(만정오엽산서풍)-오동잎 바람따라 우수수 지는소리

孤夢初回燭淚紅(고몽초회촉루홍)-겨우든잠 깨고보니 촛불 홀로 눈물지네

窓外候蟲秋思苦(창외후충추사고)-창밖에 섬돌밑에 귀두라미 슬피울어

泮人啼到五更終(반인제도오경종)-시름하는 사람함께 잠못들고 새는구나


추야(秋夜) - 유계(兪棨. 조선시대 시인)

秋天寥落夜凉多(추천요락야량다)-가을하늘 텡비우고 가을밤 쌀쌀한데

月色雲容澹似波(월색운용담사파)-달빛에 물이들은 구름마저 조촐쿠나

莫遣西風催玉露(막견서풍최옥로)-이제로 바람높아 찬이슬 맺게되면

恐殘窓外小塘荷(공잔창외소당하)-곱게핀 연꽃송이 시들을가 저어하네

 

추야(秋夜) - 윤치 (尹治. 조선시대 시인)

老樹荒岡響遠聞(노수황강향원문)-바람은 숲을 울려 멀리로서 들려오고

深夜霜意亂黃雲(심야상의난황운)-밤들어 하늘차니 서리아마 내리겠네

汀洲客雁如相語(정주객안여상어)-물가에 뜬기러기 떼를지어 소리할제

月在西峰缺半分(월재서봉결반분)-서산머리 지는달 반만걸려 떠있구나


추야(秋夜) - 박영 (朴英. 조선시대 시인)

西風吹動碧梧枝(서풍취동벽오지)-서풍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밤

落葉侵窓夢覺時(낙엽침창몽각시)-오동잎 지는소리 잠이깨였네

明月滿庭人寂寂(명월만정인적적)-밝은달 뜰에가득 고요하온데

一簾秋思候蟲知(일염추사후충지)-슬피우는 귀뚜라미 가을알리오


추야월우명(秋夜月又明) - 사도세자(思悼世子)

繡簾捲盡畵樓頭(수렴권진화루두)-그림같은 다락머리 주렴걷고 앉았으니

坐看金風木葉流(좌간금풍목엽류)-가을바람 불어오며 지는잎 물에떴네

萬星碧如海日(만성벽소여해일)-별을 뿌린 하늘위에 뚜렸이 솟은달은

年年高著不曾休(년년고저불증휴)-해마다 높이걸어 떨어질 줄 모르네


추일전원(秋日田園) - 이서구(李書九. 조선시대 시인)

柴門新拓數弓荒(시문신척수궁황)-사립문밖 묵밭새로 일어냈으니

眞是終南舊草堂(진시종남구초당)-종남산 기슭이 옛터전일세

藜杖閒聽田水響(려장한청전수향)-지팡이 꽂아놓고 물고를보고

筍輿時過稻花香(순여시과도화향)-대바구니 손에들고 들러나가네

魚梁夜火歸寒雨(어량야화귀한우)-고깃불 찬비속을 젖어돌오고

蟹窟秋煙拾早霜(해굴추연습조상)-계연기 된서리에 얼어서렸오

始信鄕園風味好(시신향원풍미호)-이제겨우 시골재미 알게되었으니

百年吾欲老耕桑(백년오욕노경상)-앞으론 농사지어 늙으려하오


추회(秋懷) - 이채 (李采. 조선시대 시인)

秋來病起減腰圍(추래병기감요위)-병든모 가을들어 몸집마저 여위는데

倦枕看山繞翠微(권침간산요취미)-벼개를 돋우비고 산만바라 누었구나

黃葉村深人不到(황엽촌심인불도)-단풍잎 짙은마을 오는사람 하나없고

雀羅終日掩柴扉(작라종일엄시비)-새그늘 종일토록 사립위에 쳐놓았네


추침(秋砧. 가을 다디미 소리) - 정학연(丁學淵. 조선시대 시인)

百濟城高一雁飛(백제성고일안비)-허무러진 성터위로 외기러기 나르는데

憶郞秋夜減腰圍(억랑추야감요위)-가을밤 임그리워 가는허리 더야위웠네

西關北塞無征戌(서관북새무정술)-북쪽새방 무사한지 수자리 간이없고

只是忠州敲客衣(지시충주고객의)-밤을새어 뚜디는건 싹다듬이 소리구나

 

추침(秋砧. 가을 다디미 소리) - 정익용(鄭益鎔. 조선시대 시인)

手製郞衣草色新(수제랑의초색신)-풀빛파릇 좋을적에 봄노리 하신다고

香塵了五陵春(향진투료오릉춘)-차려입고 가신그옷 곤때묻어 더러울걸

春閨一別無消息(춘규일별무소식)-한번훌적 떠나신님 소식마저 아득한데

作秋燈不寐人(만작추등불매인)-가을밤 새워가며 옷다듬어 무얼하나


추일산중즉사(秋日山中卽事) - 왕석보(王錫輔. 조선시대 시인)

高林策策響西風(고림책책향서풍)-나무 숲 우수수 바람앞에 울부짖고

霜果團團霜葉紅(상과단단상엽홍)-과실모두 서리멎어 잎새함께 붉엇구나

時有隣鷄來啄栗(시유인계래탁율)-이웃 달가 모아들어 널은 서속 쪼아먹되

主人看屋臥庭中(주인간옥와정중)-주인은 모르고서 뜰위에서 잠만자네


추흥(秋興) - 강난향(姜蘭馨. 조선시대 시인)

獨抱琴書久掩扉(독포금서구엄비)-()를뜯고 책을 보며 조용하게 살아가니

迂儒心事世相違(우유심사세상위)-시꺼러운 세상형편 마음서로 맞질않네

伊來病骨知寒早(이래병골지한조)-병들고 약한몸이 추위일직 알게되어

八月中旬己授衣(팔월중순기수의)-팔월도 반못가서 철옷구며 입었으니


추만출혜화문(秋晩出惠化門) - 정대식(丁大寔. 조선시대 시인)

小靑門外市塵空(소청문외시진공)-소청문밖 내달으니 먼지잠자고

驢背斜陽艶艶紅(려배사양염염홍)-나귀등에 지는햇볕 곱게비치네

野菊溪楓霜意近(야국계풍상의근)-단풍붉고 국화곱게 피어있어서

十分秋色畵圖中(십분추색화도중)-가을풍경 그림인듯 황홀하구나


추야유감(秋夜有感) - 작자미상

陽江館裡西風起(양강관리서풍기)-나그네마음 처량할제 가을바람 불어와서

後山欲醉前江淸(후산욕취전강청)-산취한듯 붉었는데 강물만은 맑았구나

紗窓月白百蟲咽(사창월백백충인)-사창에 달이밝고 귀뚜리도 슬피울제

孤枕衾寒夢不成(고침금한몽불성)-외로울사 벼겟머리 꿈도자로 못이루네


추사(秋思) - 취죽(翠竹. 안동권씨 여종-家婢-. 조선시대)

洞天如水月蒼蒼(동천여수월창창)-파란달빛 차거웁게 쌀쌀하온데

樹葉簫簫夜有霜(수엽소소야유상)-나뭇잎 지는소리 처량하구나

十二擴簾人獨宿(십이상렴인독숙)-비단주렴 드린속에 혼자누으니

玉屛還繡鴛鴦(옥병환이수원앙)-원앙침 함께하는 임이그리워

가을() - 운곡 원천석

殘暑逼軒楹(잔서핍헌영)-남은 더위가 난간을 핍박하건만

滿野秋光天降祥(만야추광천강상)-들에 가득한 가을빛이 상서로운 조짐인지

雨過餘熱遞新涼(우과여열체신량)-비가 지나자 남은 더위가 서늘하게 바뀌었네

露華初重夜生涼(로화초중야생량)-이슬 꽃이 막 내려 밤이면 서늘해지네

天衢漂渺氣凝祥(천구표묘기응상)-아득한 하늘 거리에 상서로운 기운이 어리어

河漢無波夜色涼(하한무파야색량)-은하수는 물결 없고 밤 빛은 서늘하네

蟬老燕歸風颯颯(선로연귀풍삽삽)-매미는 늙고 제비는 돌아가 바람도 쓸쓸한데

虫弔藜床序已秋(충조려상서이추)-명아주 평상에 벌레 우니 벌써 가을인가

聲緊孤梧金井畔(성긴고오금정반)-오동나무 우물가에 벌레소리 들리자

中秋氣候稍淸寒(중추기후초청한)-한가위 날씨가 차츰 맑고 서늘해져

月從山頂湧銀槃(월종산정용은반)-달은 산꼭대기에서 은 쟁반으로 솟아오르네

九月九日天光淸(구월구일천광청)-구월 구일에 하늘빛이 맑아

菊澗楓林又一秋(국간풍임우일추)-국화꽃 단풍나무가 또다시 가을일세

 

감로사차운(甘露寺次韻. 감로사의 운을 따라) - 김부식 (金富軾)

俗客不到處(속객부도처)-속된 세상 사람은 오지 않는 곳에

登臨意思淸(등임의사청)-올라와 바라보면 마음이 맑아진다.

山形秋更好(산형추경호)-산의 모습은 가을에도 또한 좋고

江色夜猶明(강색야유명)-강물 빛깔은 밤이면 더욱 밝다.

白鳥高飛盡(백조고비진)-흰 물새는 높이 날아 사라지고

孤帆獨去輕(고범독거경)-외로운 배는 홀로 가기 가볍다.

自慙蝸角上(자참와각상)-부끄러워라, 달팽이 뿔 위에서

半世覓功名(반세멱공명)-반평생 동안 공명 찾아 허덕였구나.


도의사(衣詞) - 설손

皎皎天上月(교교천상월)-희고 흰 하늘에 떠 있는 저 달이

照此秋夜長(조차추야장)-이 가을 긴긴 밤을 비춰주니라.

悲風西北來(비풍서북래)-슬픈 바람은 서북으로부터 불어오고

蟋蟀鳴我床(실솔명아상)-귀뚜라미는 나의 평상 틈에서 우니라.

君子遠行役(군자원행역)-임은 먼 곳에 가서 나라를 지키고

賤妾守空房(천첩수공방)-아내는 쓸쓸히 빈 방을 지키니라.

空房不足恨(공방불족한)-빈 방을 지키는 것이 족히 한이 되는 것은 아니나

感子寒無裳(감자한무상)-임이 추운 곳에서 옷이 없어 떠는 것이걱정이 되니라.


주중야음(舟中夜吟) - 박인량(朴寅亮)

故國三韓遠(고국삼한원)-고국인 삼한 땅은 멀고

秋風客意多(추풍객의다)-가을 바람에 나그네의 회포는 많기도 하다.

孤舟一夜夢(고주일야몽)-외로운 배에 실은 하룻밤 꿈길

月落洞庭波(월락동정파)-달도 진 동정호에 물결이 인다.


홍경사(弘慶寺) - 백광훈 (白光勳)

秋草前朝寺(추초전조사)-가을 풀이 우거진 고려 시대의 남은 절에

殘碑學士文(잔비학사문)-낡은 비석에는 당시의 이름난 선비를글귀만 남았도다.

千年有流水(천년유류수)-천 년 세월이 흐르는 물같음이 있으니

落日見歸雲(낙일견귀운)-떨어지는 저녁 해에 떠 가는 구름만 바라보고 있노라.

 

한아서부경(寒鴉栖復驚) - 김시습

楓葉冷吳江(풍엽냉오강)-단풍잎은 오강에 싸늘도 한데

蕭蕭半山雨(소소반산우)-우수수 반산엔 비가 내리네.

寒鴉栖不定(한아서부정)-갈가마귀 보금자리 정하지 못해

低回弄社塢(저회롱사오)-낮게 돌며 사당 언덕 서성거리네.

渺渺黃雲城(묘묘황운성)-아스라히 먼지 구름 자욱한 성에

依依紅葉村(의의홍엽촌)-안타까이 붉은 잎 물들은 마을

相思憶遠人(상사억원인)-먼데 있는 그대가 그리웁구나

聽爾添鎖魂(청이첨쇄혼)-네 소리 듣자니 애가 녹는다.


화학(畵鶴) - 이달(李達)

獨鶴望遙空(독학망요공)-한마리 학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夜寒拳一足(야한권일족)-밤은 찬데 한 다리를 들고 서있네.

西風苦竹叢(서풍고죽총)-참대 숲에 서풍이 불어오더니

滿身秋露滴(만신추로적)-온 몸에 가을 이슬 뚝뚝 듣누나.


산중(山中) - 이이(李珥)

採藥忽迷路(채약홀미로)-약초를 캐다가 문득 길을 잃었는데

千峯秋葉裏(천봉추엽리)-온 산이 단풍으로 물들었네.

山僧汲水歸(산승급수귀)-산승이 물을 길어 돌아가고

林末茶烟起(임말차연기)-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피어나네.


추강만도(秋江晩渡) - 백균(伯均. 명나라 시인)

落日歸棹緩(낙일귀도완)-지는 해에 느릿느릿 돌아가는 배

瘡江秋思加(창강추사가)-푸른 강에는 가을빛 더욱 깊어

雙鱗上荷葉(쌍린상하엽)-짝지은 물고기 연잎 위로 뛰고

一雁下(일안하빈화)-마름꽃 마름밑으로 날아드는 외기러기


추야우중(秋夜雨中) - 최치원

秋風惟苦吟(추풍유고음)-가을바람 쓸쓸하고 애처로운데

擧世少知音(거세소지음)-세상에는 알아줄이 별반 없구나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창밖에 밤은 깊고 비는 오는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등잔불만 고요히 비추어 주네


추경(秋景) - 최석항 (崔錫恒) 조선시대 시인

秋山樵路轉(추산초로전)-숲속으로 구비도는 가을산길이

去去唯淸風(거거유청풍)-가도가도 푸른안개 그것뿐이네

夕鳥空林下(석조공림하)-잘새는 빈수풀로 날아내리고

紅葉落兩三(홍엽락양삼)-고은단풍 두셋잎 떨어지누나


산행(山行) - 석지영(石之嶸. 조선시대 시인)

斜日不逢人(사일불봉인)-해지도록 만나는이 한사람없고

徹雲遙寺磬(철운요사경)-구름밖에 풍경소리 들려만오네

山寒秋己盡(산한추기진)-날씨차고 가을이미 저물어가니

黃葉覆樵徑(황엽복초경)-단풍들어 지는잎 산길을 덮네


창헌추일(蒼軒秋日) - 범경문(范慶文. 조선시대 시인)

歸雲映夕塘(귀운영석당)-가는구름 못물위에 떠러저뜨고

落照飜秋木(락조번추목)-저녁노을 나뭇가지 걸려붉었네

開戶對靑山(개호대청산)-창을여니 푸른산 우뚝서있어

悠然太古色(유연태고색)-언제든지 옛모습 그대로일세


창암정(蒼岩亭) - 추향(秋香. 장성기생. 조선시대)

移棹蒼江口(이도창강구)-노를저어 강어구에 배를 대이니

驚人宿鳥飜(경인숙조번)-자든새 놀라깨어 펄펄나르네

山紅秋有迹(산홍추유적)-가을은 나뭇잎에 곱게물들고

沙白月無痕(사백월무흔)-밝은달 모래밭에 떠러져희네

가을() - 작자미상

颱風襲萬里(태풍습만리)-태풍이 불어와 사방을 덥치고,

暴雨日增流(폭우일증류)-사나운 비는 날마다 더욱더 흘러 내리네.

野毁人心愁(야훼인심수)-들녘은 무너져 사람의 마음 근심스러운데,

唯蟋亂醒秋(유실난성추)-오직 귀뚜라미 시끄러워 가을이 옴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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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島嶼명품섬Best-10 선정현황 >

 

선정결과 :명품섬 10(유형화 6, 클러스터 4)

 

? 유형화 사업 - 6개 섬


강화군 교동도 : 근대문화공간 조성

 

옹진군 이작도 : 바다 생태마을 조성

 

당진군 난지도 : 생태문화 및 해양체험 조성

 

군산시 어청도 : 역사문화자원 복원 및 고래 체험장 조성

 

거제도 내도 : 사계절 꽃 섬 조성

 

사천시 신수도 : 바다가 숨쉬는 해변공원 조성


? 클러스터 사업 - 4개 섬

보령시 장고도권 : 자연이 공존하는 신비의 섬 조성(장고도삽시도고대도)

 

여수시 개도권 : 전통술 체험의장과 역사문화공간 조성(송여자도적금도둔병도)

 

통영시 연대도 : 에코아일랜드 조성(연대도만지도)

 

서귀포시 가파도권 : 청보리테마 경관조성(마라도가파도)

 

 

 

 

 

 




글씨를 배우려면 어떠한 단계를 거쳐야 하나?

 

글씨를 배우려면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방법과 단계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전쟁을 함에 있어 만약 세부적인 계획이 없다면 승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문제는 초학자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어떤 초학자들은 순서없이 글씨를 배우기도 하고, 혹은 되는 대로 배우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글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글씨를 배울때는 어떻게 시작하여 어떤 경로를 거쳐야 하느냐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있어야만 된다. 만일 이러한 개념이 없다면, 힘만 들고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헛수고를 면할 수 없다. 글씨를 배울 때의 첫 단계는 붓을 움직이기 전에 준비작업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전쟁을 하기 전에 군사들을 충분히 훈련시키는 준비가 있어야만 승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면 글씨를 쓰기 전에 어떠한 준비작업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먼저 글씨를 쓰는 목적을 분명히 한 다음 서예에 관한 기초적인 책들을 읽어야 한다. 그런 다음 어떤 비첩(碑帖)을 써야 하며, 어떤 글자들을 익혀야 하며, 어떤 붓을 써야 하며, 붓은 어떻게 잡아야 하며, 올바른 자세와 글씨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문제들을 알아야 한다. 붓을 움직이기 전에 이러한 문제들을 먼저 알아야만 헛수고를 줄일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를 곧 붓을 움직이는 초급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글씨를 배울 때 먼저 글씨체를 받아서 쓰기 시작하는데 이것보다는 알맞는 비첩을 선책하여 임모(臨摹)를 하여야 만 직접적으로 초학자들의 모방실력을 배양할 수 있다. 만일 이것이 어렵게 느껴지면 먼저 점·가로획·세로획·삐침·갈고리 등등의 획들을 익히고, 붓을 시작하고 끝내고 보내는 것 등을 알게 되면 훨씬 쉬워질 것이다. 글씨를 받아서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면 판에 박은 듯한 글씨가 나와서 발전의 여지가 없게 된다. 따라서 초학자는 임모로부터 시작하여야만이 좋은 글씨를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어떠한 서체(書體)에서부터 시작하여야만 옳은 길인가?

이 문제에 대한 서단의 의견은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예서(隸書)부터 시작하여야 한다고 하고, 혹은 해서(楷書)부터 시작하여야 한다고 하고, 혹은 초서(草書)나 행서(行書)부터 시작하여야 한다고 하기도 하여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해서를 시작할 때에는 당해(唐諧)나 위비(魏碑)를 선택하는 것이 좋은데 이는 개인의 상황에 근거를 두어 결정하는 것이 좋다.

세 번째 단계는 해서의 기초가 비교적 착실하다고 느껴졌을 때 행서로 들어가는 과정을 말 한다. 행서는 일반적으로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서(蘭亭敍)>, <성교서(聖敎序)>를 쓰거나 이북 해(李北海)의 <이사훈비(李思訓碑)>를 거쳐 안진경(顔眞卿) 혹은 미원장(米元章), 황정견(黃 庭堅)의 행서를 쓰는 것이 좋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처음 해서를 배운 사람의 것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안진경의 해서를 썼으면 행서도 그의 것을 쓰는 것이 좋다는말이다. 만일 글씨의 조화를 이루려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처음 배운 비첩과 같은 계열의 것을 쓰는 것이다. 현격하게 다른 것을 쓴다면 그만큼 글씨의 진보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네 번째 단계는 행서가 이미 숙달된 상태에서 전서(篆書)나 예서(隸書)를 쓰는 과정이다. 옛사람이 말하길 "예서를 배우려먼 먼저 전서를 써야만 고풍(古風)의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다."라고 하였다. 저서를 배우려면 먼저 소전(小篆)을 배운 뒤에 대전(大篆)을 배우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소전의 가로획이 가지런하고 세로획은 곧바르고, 둥근 획과 꺾어지는 획들 이 손에 어우러지고, 짜임새를 쉽게 익힐 수있고, 붓을 자유스럽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 다. 어떤 사람은 "만약 소전으로 기초를 삼고 갑골(甲骨)·종정(鐘鼎)·석고(石鼓)를 넘본다면 이루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처음 시작도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소전은 이양빙(李陽氷), 등석여(鄧石如) 등의 전서를 쓰고 <석고문(石鼓文)>을 쓰는 것이 좋다. 예서는 한(漢)나라의 비(碑)를 쓰는 것이 좋은데, 예를 든다면 예기비(禮器碑), 사신비(史晨碑), 을영 비(乙瑛碑) 등이 그것이다.

다섯 번째의 단계는 이상의 여러 체를 골고루 습득한 후에 초서(草書)로 들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초서를 배우려면 먼저 장초(章草)를 써야 한다. 왜냐하면 장초는 한자씩 떨어져 있으면서도 초법(草法)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서 초서의 필법(筆法)과 짜임새를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점을 무시하고 쓰기 때문에 초서를 마치 거미줄과 같이 이러 저리 엉기게 하여 힘도 없고 심지어는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게 쓰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것은 올바른 초서라고 할 수 없다. 이상을 종합하여 말하면 글씨를 배우는 단계가 바로 초학자의 열쇠이며, 좋은 글씨를 쓰느냐 못쓰느냐의 관건인 것이니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것을 무시한다면 성공의 길로 가기에는 무척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임서와 창작에 대한 고찰




1. 서론

碑, 帖을 임서하는 것은 글씨는 배우는 첩경인데, 이는 碑, 帖은 시대성의 유산일 뿐 아니라 書家心血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張旭(장욱)의 말을 빌리면 '임서에 힘쓰다 보면 서법은 스스로 깨쳐진다' 한 것과 마찬가지로 깨달은 서법을 바탕으로 창작하게 된다. 모방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글씨를 쓴다면 한갓 붓장난에 불과하며 기초없이 고층 건물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무릇 '法에 너무 얽매여서 탁 트이지 못한다'는 표현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트이고 트여 보아도 그 가운데 역시 法이 있음이다. 법이 없으면 俗이요 客氣일 뿐이고 마치 일본 書家들이 추구하는 前衛藝術, 혹은 墨象의 범주에서 노닐음이 될 뿐이니 이는 그야말로 새가 공중에서 싼 똥이 바닥에 펼쳐진 것에 조금도 나을 바가 없다.
임서 이전에 더욱 중요한 바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다. 無師獨學이란 말이 있지만 스승없는 혼자 공부는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게 되어 자칫 邪道에 빠지게 되며 그렇지 않더라도 온전한 길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 스승이 있더라도 잘못 만나면 아무 소용없다. 스승을 잘못 만나 그 곳에서 십 여년 글씨를 쓰다 다행이도 눈에 뜨여 올바른 글씨를 쓰려 하면 나쁜 필법을 떨쳐 버리는 데 또한 몇 십년이 걸린다. 그러므로 이십 년이나 글씨를 썼다 해도 이제 正法에 입문한 초심자보다 나을 것이 없으니 좋은 스승을 만남은 복이라 할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진정 좋은 스승은 자신의 법을 고집하지 않는다. 즉 집필, 운필에 기본이 잡히면 그 다음부터는 좋은 서체를 가려주고 글씨쓰는 마음과 자세, 그리고 인간적인 것을 가르치는 안내자 혹은 충고자의 역할만 할 뿐이다. 이것은 인격이라던가 개인의지를 존중하는 바여서 학습자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질 수 있게 되고 또한 진정한 창작도 여기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

2. 임서와 창작과의 관계

임서는 古法書를 보고 그것과 똑같이 募寫하는 것을 말한다. 창작이라 하면 임서로 얻은 법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일을 일컫는다.
그러나 임서도 창작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똑같이 베끼는 임서라 하여도 시대환경, 書寫道具등이 같을 수 없고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해석에 따라서 그 개성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과거의 예를 보아도 八大山人이 난정서(행서의 종류)를 임해 놓은 것은 원본과 조금도 같은 곳이 없이 자가풍으로 썼으나 분명히 끝에는 임서란 표를 하였다.

3. 임서와 창작의 六指

1) 專
一志로 專心해야 한다.
비단 글씨뿐만 아니라 모든 연구는 모름지기 一心專念해야 됨은 말할 여지가 없다. 장자의 양생주에 보면 포정이란 이가 소를 잡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의역하여 그 내용을 대략 보면, <포정이 文專君을 위하여 소를 잡는데 손, 어깨, 다리, 무릎의 동작이 음과 춤에 그대로 합치되어 그림같이 소를 해부함으로써, 文專君이 감탄하여 그 기술의 연유를 물으니 포정이 대답하기를 '저는 기술이 아닌 道로써 합니다.
처음 소를 잡기 시작할 때는 소 아닌게 없더니 3년이 지나서는 일찍이 全牛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소의 구조를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며 감각으로 하지 않고 精神으로 하니 이것은 곳 天理입니다. 보통 소를 잘 잡는 사람이 칼을 한 달에 한 번 날을 다시 세우고, 아주 뛰어난 사람은 일년에 한번 가는데 저는 19년이 지났으나 이 칼의 예리함이 처음과 같으니 이것은 소의 세포 조직의 空洞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後人이 여기서의 全牛에 대한 해석을 포정과 소의 대립이 이미 해소된 物我一體로 풀이 하였다. 그러므로 포정이 소 아닌게 없더라 하였듯이 글씨를 씀에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글씨로 보여서 物我一體가 되어야 지고한 法과 藝道에 들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2) 勤
쉬지 않고 열심으루 근면히 써야한다. 이것은 위의 專과 일맥 상통한다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일관성을 가지고 공부해야 함은 물론이고, 특별한 경우로 글씨는 못 쓸지라도 法書를 늘 완성하여 글자의 形과 態를 머리에 기억해 두어야 한다.
즉 글씨 쓰고자 하는 마음이 뇌리를 떠나지 않아야 한다. 吉人의 예를 보면 金生이 봄 논에 물이 가득할 때 제자들을 데리고 들에 산보를 나갔을 때 제자가 글씨 잘 쓰는 비결을 물으니 아무 말 없이 지팡이로 그득한 물을 가리켰다고 한다. 이것은 그 물이 다 닳도록 글씨를 쓰라는 교훈이었다.
그리고 옛 書家들이 벼루를 여러개 구명을 냈다는 얘기도 學書의 힘씀을 말하는 것이다.


3) 傳
폭넓게 공부해야 한다. 처음에는 한 두 개의 法書로부터 기초를 얻어서 차차 널리 보고 배워 衆長을 취하고 마침내는 자신의 개성에 맞는 法統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물론 각체의 서적을 다 임서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수반되는 書藝史的인 측면과 서체의 흐름과 변화, 그리고 서예와 다른 미술들과의 관계의 理論方面에도 시야를 넓혀야 된다.
蘇東坡는 글씨쓰는 데 있어서 다 닳은 붓이 산을 이루어도 그 진수에 이름이 못 되며 만 권의 책을 읽어야 비로소 信韻이 동한다고 하였다.

4) 變
변화를 구해야 한다. 어떠한 서첩을 대하든지 그 맛과 특징을 잡아낼 정도가 되면 險絶(험절)을 구하게 된다.
한 점을 찍는데 붓끝을 엎고 제치며 한 획에서도 筆鋒에 起伏을 주는 것으로부터 結講(결강)이나 章法에서 脫法(탈법)하려는 의도가 생긴다. 이것은 인간이 미적 변화를 구하는 일면이며 찬란한 서예 문화가 이루어진 관건이다.
險絶에서 다시 평정을 얻어 양자가 서로 어울리면 이미 높은 경지에 도달하였다 할 수 있다.

5) 巧
이것은 위의 變과 통한다. 변화를 구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기교를 부리게 된다. 곧 법을 알면 기교를 부리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인 듯 싶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과정으로서는 중요한 바 이지만 지나치면 제작의 의미가 있으므로 꾀글씨가 된다.
무릇 글씨는 점잖은게 최상이며 그러기는 참으로 어렵다. 글씨에 군획 떼기는 애인 떼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마치 군자의 풍모와 같은 단정하면서도 멋을 부린 글씨를 써야 한다.


6) 神
書의 道는 神采(신채)가 으뜸이다. 書는 문자 내용을 쓰는 것에서 神采를 표현하게 될 적에 書法藝術의 성숙이라 할 수 있다.
神采는 神韻과 비슷한 말로 곧 작품중에 작가의 흉금과 기질, 정취, 사상, 감정등 정신 세계의 반영이어서 바로 개성미라고 볼 수 있다.
神韻이 감도는 작품은 奇하면서도 險하지 않고, 시시하지만 有味하며,奸邪하면서 俗하지 않고 秀하난 요염하지 않으며 못생겼으나 밉지 않은 경지이므로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고 볼수록 새로워서 그 느낌이 끝이 없다.


4. 學書의 순서

글씨를 처음 배울 때 어떤 체로 시작해야 좋은지에 대해서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글씨의 발달과정을 따라서 전서로부터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해서로 시작하여 다른 글씨로 옮겨가는 방법이다.
어느 방법이 좋다고 고집할 수도 없을뿐더러 개인의 차이와 재능에 따라 그 효과 또한 달라지니 단언할 수는 없고 두 방법을 그저 설명할 따름이다. 전서부터 쓰게 되면 초심자가 획의 원리를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획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象形의 형태를 띄고 있으므로 지금의 글자와 비교하는 재미와 더불어 서법에 흥미를 갖게 된다. 전서의 원획에 파임과 방획을 곁들이면 자연스럽게 예서를 배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전서에 일단 입문하면 그 맛을 거의 설렵하고 넘어가면 몰라도 잠깐 쓰다가 隸나 楷書로 넘어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해서로 입문하는 것에 대해 宋高宗은 <글씨 배움에 반드시 正書로 시작해야 되는 것은 八法이 갖춰져 있고, 또 예서의 餘風이므로 해서를 터득하면 이미 行間에 노닐음이니 古聖에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였고, 豊坊이란 사람은 <글씨 배움에 반드시 해서를 익히고, 글자는 大字를 먼저 써야 한다.
그 다음에 행서, 초서를 쓰고 예서를 쓰려거든 전서를 꼭 써야 한다>라고 하였다. 글씨를 배우는 것도 차근차근 해야지 성급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손을 대면 체계를 이루지 못한다. 하여튼 篆을 먼저하든 楷를 먼저하든 마찬가지겠으나, 중요한 것은 한가지 체를 완전히 습득한 후에 다른 체로 넘어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대개 五體를 다 그런대로 구사하려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20년은 걸려야 하며 거기서 더 한걸음 나아가 뛰어난 書品을 남기는 것은 아무나 되는 일이 아니다.

5. 작품에 임하는 자세

작품을 하려면 누구나 마음이 설레인다.
이는 과연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와줄까 하는 기대감과 남이 이것을 볼텐데 하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偶然得書]라는 말이 있다. 아무생각없이 쓴 것 중에서 더할 나위없는 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맨 처음 體制를 잡는다고 한번 써본 것이 그 뒤에 수 백번 심혈을 기울여 써 본 다른 것들보다 월등히 좋은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글씨는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써야 하는데, 보통 사람에게는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러나 남을 의식하면서 글씨가 는다. 작품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난감한 점에 접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애를 먹이는 것은 그 면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작품의 체제에는 액자, 족자, 병풍, 가리개, 대련 등이 있는데 그 크기의 大小를 막론하고 어렵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 체제의 여백을 그대로 벽에 붙여놓고 그 면을 바라보며 눈으로 글씨를 쓰며 면을 메꾸어 본다.
[腦中成竹]이란 말대로 이런 식으로 마음으로 글씨를 써 보는 것은 매우 좋은 훈련이라 생각한다. 그러다가 언뜻 마음에 맞는 체제가 구상되어 일사천리로 써 내려간 단 한번의 작품이 가장 고귀하다.
이것은 한 획에서의 일괄성과도 통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그 당시의 전부를 단 한번에 표현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경지에 못 이른 사람은, 수백 수십장을 써서 그 중에 가장 나은 것을 추려내는 것이 글을 배우는 태도이다. 글씨는 印章을 찍음으로서 완전한 작품이 된다.
도장을 찍는 일은 자기가 쓴 글씨라는 개념 이외에 남의 玩賞物이 된다는 부담이어서 그 작품에 대한 책임을 확정짓는 순간이기 때문에 여간 어렵지 않고 또한 무척이나 신경 써지는 일이다. 작품이나 방명록에 이름 석자 잘 어울리게 쓰기가 참 어렵다. 인장을 누르는 일은 곧잘 [畵龍點睛]에 비유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다된 작품을 잘못 찍어서 구겨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6. 서예 창작에 대한 제언

[書者如其人也]란 말이 있다. 여기서의 [其人]은 그 사람의 모든 것으로 곧 印象이라 할 수 있다.
글씨를 쓰는 사람중에서 이 말을 모를 자가 없겠지만, 이 세상에는 눈살을 찌푸릴 글씨들이 판을 친다. 무지한 초심자들이 덧없이 방황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옛 선비들의 고고한 공부였던 것이 어느덧 할 일 없는 이들의 잡기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 다행이 누가 알아주건 말건 고군분투하는 서예가들이 있어 그 진면목을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서예 이론의 확립과 보급으로 차츰 서예에 눈을 뜨면 저속한 글씨는 사라지리라고 본다. 서예도 예술인가 하는 문제에서 특히 한글 세대에 발을 맞추려면 여러측면에 생각이 미치는데, 우선 한글 서예를 더욱 많이 보급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風을 창출해야 할 것이고, 일반인이 어렵게 느끼는 한문 서예 또한 새로운 보급 방법을 찾아 실생활에 이용할 수 있게끔 한다면 서예가 다른 예술과 공존하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한다.




서예하는 모든분들 읽어바야할 글이라 싶어 가져왔습니다


공모전과 서예교육

의석 홍우기


Ⅰ 서언


두꺼운 종이에 빳빳하고 짧은 붓으로 여러 가지 색을 칠하는 서양화에 비해, 서예는 얇은 종이에 부드럽고 긴 붓으로 단번에 그어 완성하는 일회적이고 찰나적인 예술이다. 다시 말하면 서예는 맑은 인품과 축적된 학문이 온몸에 흠씬 녹아들었다가 일시에 한 획으로 분출되는 순간예술이다. 서예는 원래 실용의 범주에서 사용되었으나, 붓이 주요서사도구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美的인 요소가 가미되었고, 예술의 경지로 승화하였으며, 실용을 뛰어넘어 보고 감상하기 위한 문화로 발전하였다. 서예는, 20세기에 이르러 다시 전람회문화로 변화하였는데, 전람회중에 서예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공모전이다.

국전이 그 수명을 다하고, 1990년대 즈음에는, 한국서단이 크게 3단체로 나뉘면서 공모전이 급속도로 늘어나더니, 현재에는 이삼백 개를 넘나드는 수가 생성․발전․쇠멸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시기이며, 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들이 넘쳐나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일들이 쉴 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서예개인전․그룹전․회원전이 홈페이지나 서예전문카페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컴퓨터를 이용해 얼마든지 작품을 관람할 수 있고, 서예에 관한 여러 가지 다양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가 있다. 이제는 국전시절과 같은 권위의식이 통하지 않는 시기이다. 공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본고는, 서예가 실용적인 면에서 예술적인 면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있었던 한국의 20세기 서예공모전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서예가 흥성하고 침체되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난 공모전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짚어보고자 한다. 또한, 21세기 인터넷시대에 심사위원․출품자․관람객이 함께하는 공모전과, 서예이론에 대한 연구가 미약한 한국의 서예계에 논문부문의 도입을 제시하면서, 우리 서예계가 공모전을 어떻게 운영하여, 어떻게 서예계를 활성화시키고, 공모전과 서예교육, 서예교육과 공모전은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Ⅱ 공모전의 변천


1. 실용에서 예술로

처음에 사람들이 문자를 만들고 사용했던 것은 단순히 사건을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갖가지 서사재료가 개발되었고, 그에 따라 문자를 사용한 사람들의 심미의식이 작용하면서 필획과 결구가 정리되었고 각종의 서체가 만들어졌다. 한글이나 한문의 각종서체는 모두 당시의 서사재료와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에 따라 실용적인 면에서 사용되었던 서체이다. 지금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는 편지글․竹簡․冊書․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한 각종 碑文 등도 모두 당시 발생했던 사건과 사람에 대한 사항을 종이나 돌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에 기록한 것들이다. 여기에는 미적인 면도 있지만 모두가 실용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이 실용서예1)는 서예의 기본적 역사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여기서 잠시 信札에 관한 구양수의 의견을 잠시 들어보자.


이른바 帖이란 그 일이 거의 모두 조문이나 애도문, 또는 안부를 묻는 말, 또는 이별을 전하거나 소식을 통하는 것이었다. 이는 주로 집안의 식구나 친구들 사이에 주고받았던 것으로 불과 몇 줄의 글에 지나지 않았다. 대개 처음에는 잘 쓰려는 뜻을 두지 않았으나 표일한 필치에 흥이 나서 써내려가다 보면 혹은 예쁘기도 하고 혹은 밉기도 하면서 모든 형태가 저절로 나온다.2)


이를 통해 보면 帖은 일상적인 교류과정에서 씌어진 것이지만, 그 속에 작가의 표일한 필치와 흥취가 담겨있음으로 해서 예술적인 면이 드러나고 법첩으로까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옛날사람들은 거의가 소폭의 형식인 手札․詩稿를 冊頁이나 手卷으로 만들어 손안에서 감상하는 자신들의 書齋文化를 형성했을 뿐, 서예전을 열거나 서예전에 출품하기 위해 글씨를 쓰지 않았다. 이것은 단지 문인사대부의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수단에 불과할 뿐, 예술을 위한 궁극적 추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명나라 중엽이후 서예작품을 벽에다 걸어놓고 감상하는 條幅․對聯 등의 형식이 점차로 완비되었다. 즉 책상에서 읽던 서예가 벽에 걸어놓고 보는 서예로 작품의 형식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작품의 크기도 정밀한 소품에서 규모가 큰 대작으로 변모하였다. 이것은 서예가 전람회문화로 시선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3) 오늘날의 서예는 전적으로 감상을 위한 예술형식이 되었다. 일반적인 글씨마저도 이제는 거의 펜을 사용하지 않는다. 더구나 붓을 사용하여 편지를 쓰거나 문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랑방에 선비들이 모여 책을 베끼고 편지를 쓰는 모습은 인쇄와 복사,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특이한 괴물들이 등장하면서 우리의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릴 기세로 밀려든다.


2. 鮮展과 國展시대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귀족의 저택이나 서당에서 명가(名家)의 서화를 완상(玩賞)하는 모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에서의 본격적인 미술전람회는, 1915년 고희동(高羲東)이 도쿄[東京]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돌아와 개인전람회를 연 것이 처음이며, 1921년 서화협회4)에서 ‘제1회서화협회전’을 개최한 것이 한국에서 열렸던 단체미술전람회의 효시이다. 이 전람회는 일제의 탄압으로 해산되던 1939년까지 19회전을 가졌고, 1922년 조선총독부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시작한 조선미술전람회5)는 1945년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23회전을 개최하였다. 선전은 일제강점기에 열렸던 전시였음으로, 일부인사들은 친일적인 성격을 띠었고 일부의 뜻있는 인사들은 항일적인 성격을 가지고 대립하였다. 그러나 1932년 ‘조선서도전람회’로 분리된 이후에는 친일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이완용과 김돈희 등이 심사에 참여하면서 주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니 실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해방이후 우리나라의 서예는 여러 가지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이 한글전용6)이란 어문정책이다. 한글전용정책은 국민들이 한자를 멀리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왔고, 한자로 적혀있는 글이나 서예작품을 독해할 수 없게 하였으며, 우리 선인들의 생활과 철학을 이해할 수가 없게 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된 지 3일 후 서울에서는 조선문화건설중앙위원회(약칭 문건)가 조직되고, 그 산하에 조선미술건설본부가 설립되었다. 격동기에 만들어진 여러 예술단체들이 차츰 정비되어가면서, 1948년에 결성되었던 조선미술협회가 1949년 대한미술협회7)로 개편되었고,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8)를 경복궁전시실에서 개최하였다. 국전은 그간의 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1949년에서 1981년까지 30회에 이르는 동안 (6․25동란 기간에는 중단되었음) 이 나라 서단의 주춧돌과 기둥이 되는 서예가들을 배출시킴으로서 서단의 기초를 튼튼하게 다져냈다. 국전의 주최기관과 주관기관으로 1~16회까지는 문교부가 담당하였고, 17~30회까지는 문화공보부와 운영위원회가 담당하였다. 국전은 국가에 의해 주도되고 추천 초대작가의 엄격한 구분이 제도화됨에 따라 서단 전반이 매우 경직되고 수직적인 상하의식이 팽배하였으나, 기초가 매우 빈약했던 서단에 전통서예에 대한 철저한 학습과 임서를 강조하면서 법고의 시대가 열렸다. 국전시대의 개막과 함께 서예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많은 지망자들이 차츰 증가하였고 이에 호응하여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동안 경향각지에 사설교육기관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9) 1960년대 후반 학교교육에서 습자시간이 사라짐에 따라, 서예는 자연 사숙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졌고, 1980년대 이후 점차 서예학원이 활성화되면서 서예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3. 미술대전과 새로운 질서

1981년 30회를 끝으로 국전이 막을 내리고, 1982년에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10)을 개최함에 따라 미술대전시대의 막이 열렸다. 그 주최기관도 문화공보부에서 문예진흥원으로 이관되고 종래의 추천 초대작가 제도도 편대미술초대작가 제도로 통합개편되면서 서단의 활동연령층이 한층 젊어졌다. 이에 따라 종래와 같은 권위주의적 경향이 약화되었고 서예가들의 개성적인 창작활동도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1988년, 서예인의 보금자리 ‘예술의전당 서예관’이 개관되면서 서예의 열기는 고조되었다. 이곳에서는 공모전․그룹전․개인전․기획전을 비롯한 다양한 전시가 열렸다. ‘한국서예백년전’ ‘국제현대서예전’ ‘옛탁본의 아름다움 그리고 우리역사’ ‘고려말․조선초의 서예’ ‘조선중기서예’ ‘조선후기서예전’ ‘조선왕조어필전’ 등을 의욕적으로 펼쳐보임으로 해서 서예계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한국서예청년작가전’을 열어 의욕적이고 감각이 풍부한 젊은 서예인들의 시각을 통해 서체의 다양화와 파괴적인 모습을 선보였고, 변화를 추구하고 연구하는 풍토를 진작시켰던 것은 한국서예발전에 대단히 큰 공헌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서단은 1989년을 기점으로 하여 여러 변혁의 조짐과 사건들이 곳곳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한국미술협회11)로부터의 분리독립을 표방하면서 한국서예협회가 창립되었고, 한국미술협회 서예분과와 한국서예협회의 화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국서가협회가 창립되었다. 그리고 똑같은 이름의 대한민국서예대전12)과 대한민국서예전람회13)가 상호보완과 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공모전에 대한 불신은 현장에서 직접 쓰고, 그 현장에서 즉시 심사하여 발표하는 휘호대회로 이어졌다. 국제서법예술연합에서 주최하는 ‘전국휘호대회’ 나, 예산문화원에서 주최하는 ‘전국서예백일장’ 등이 그것이며, 미술문화원에서 주최하는 ‘서예대전’은 공모작과 휘호작을 합산하여 심사하는 방식으로 작가들을 선발하였다.

서단이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미술협회․서예협회․서가협회는 공모전의 권익과 공정을 위하여 서로간에 운영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갖가지 혼란과 후유증이 생겨났다. 한편, 3단체의 초대작가들이 함께 ‘한국서예초대작가전’을 열어 서로간의 화합을 다지기도 하였고, 일발에 그치기는 하였지만 ‘전임대통령및현대서예가백인초대전’을 열었으며, 2004년에는 ‘현대서예가백인포럼’ 등도 만들어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기도 하였다. 각 서단의 작가들은 개인전이나 그룹전을 통해 서단 서파의 경계를 넘어 발표의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광명미협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서예한마당’에서는, 30명의 심사위원이 공개된 장소에서 공정하게 채점하고, 심사점수를 즉석에서 집계하여 현장스크린에 발표하는 획기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또한, 한국서도협회 서울․경기남부지회에서 주최하는 ‘한남서도대전’에서는, 서예이론정립을 위하여 논문부를 신설하였고, 또한 인터넷카페회원들이 투표를 하여 대상을 선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서단에서 불합리하게 실행되고 있는 공모전의 단점을 보완하여 서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서예계도 변해야 한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세상은 지구촌이 되어가고 있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도 사라져가고 있으며, 서열과 上命下服의 개념이 아닌 창의와 개성이 존중되는 시대이다. 다음은 서예계의 변화를 바라는 오후규교수의 지적이다.


디지털 사회는 위계질서와 권위의식, 그리고 관습을 거부한다. 대신 토론과 논쟁, 그리고 창조적인 파괴를 필요로 한다. 서예가 이러한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이 바뀌거나 아니면 교육을 통해 이룩될 수밖에 없고, 고전 서예철학도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14)

Ⅲ. 공모전의 효과


1. 공모현황

오후규선생이 그간 월간서예나 한국서예학회에서 발표한 서예연감을 보면, 1999년에는 개인전이 57건 공모전이 153건이었고, 2000년에는 개인전이 139건 공모전이 120건 해외개인전이 13건이었으며, 2001년에는 개인전이 127건 공모전이 166/5건 해외개인전이 6건이었다. 2002년에는 개인전이 147건 공모전이 171건 해외개인전이 11건으로 조사되고 있다. 참고로 연도별 공모전신설은 1999년도 5건 2000년도 7건 2001년도 11건 2002년도 14건이다.15)

위의 자료를 통해보면 공모전의 수가 지나치게 많은데, 여기에는 각 시군구에서 실시하고 있는 여성휘호대회․공모전․학생휘호대회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렇게 급격하게 증가된 공모전의 숫자는 서예의 활성화라는 이면에 각 서예단체들이 지방조직을 유지하기 위하여 내용이 같은 공모전을 매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며, 공모전 심사의 공정성 문제나 여러 가지 이권상의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각 서단마다 발표되는 초대작가를 보면 세 단체만 합하더라도 1000명이 훨씬 넘고, 여기에 이삼백을 헤아리는 공모전에서 배출된 초대작가까지 합하면 그 숫자가 상당히 많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많은 초대작가들이 한국서단에 존재하는데 2002년 서예개인전이 160건 정도에 불과한 것을 보면, 서예시장이 없고 경제침체의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미미하다.

이들 전시는 공모전의 영향으로, 당해나 예기비풍보다는 장맹룡비나 장천비와 같이 튼튼하고 힘있는 글씨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한편, 기존의 해서와 예서중심의 단정한 글씨에서 벗어나고픈 작가들의 충동은 목간과 같은 자유로운 글씨를 유행시켰고, ‘필묵정신전’ ‘초신전’ 등에서 보이듯 초서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많아졌다. 대체로 스승에게 종속되어 있는 글씨가 아직 많이 보이기는 하나, 한글에서는 민간서체나 편지글과 같은 필체가 점점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고, 몇몇 작가는 다양한 법첩을 통해 얻은 다양한 필법을 구사하여 자신의 개성을 아름답게 드러내고 있으니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순기능

공모전은 수상작 발표와 함께 대중의 시선을 한곳으로 집중시키는 큰 힘이 있고, 신진작가선발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금의 많은 서예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효과로 인하여 공모전의 수상작품이나 입․특선의 선발경향은 서예교육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鮮展이나 國展時節에는 어느 대가의 서풍이 유행하고, 어느 시기엔 唐楷․北魏楷書․木簡風 등이 유행했던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때문에 공모전에 출품하는 작가들은 시각적 충격을 주는 작품을 생각하게 되며, 보다 아름답게, 보다 강하게, 보다 특이하게 하려는 심리가 작용한다. 여기에는 미술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서예창작에 적용시키기도 한다.

공모전은, 안목을 갖춘 심사위원이나 선배들의 시각을 통해 자신의 잘잘못을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설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입상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낙선을 하게 되면 섭섭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이를 도약의 기회로 삼는다면 더 큰 발전을 예약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출품자들은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정신을 집중하고 평소보다 많은 시간 작품완성에 골몰하게 된다. 결국 그것은 작가들에게 그 동안에 익혔던 運筆․結構․章法 등등에 관하여 보다 자세하고 많은 것을 체득할 수 있게 한다. 작품하기에 좋은 문장을 분석해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경향을 보기 위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각종 전시회의 도록을 살펴보기도 한다.

전시장에서는 좋은 작품만이 좋은 학습재료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무엇부터 고쳐야할지를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은 작품이다. 항상 눈에 익어있는 내 작품에서는 큰 결점도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남의 작품에서는 사소한 것도 쉽게 보이며 좋은 작품에서는 좋은 면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공모전은 많은 이들의 다양한 수준의 작품을 통해 나의 작품을 제고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휘호대회는 공모전에서보다 더욱 많은 것을 얻게 한다. 각지에서 온 다양한 필법을 구사하는 여러 사람들의 운필법을 경험할 수 있고 직접 그러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휘호에만 열중하기 보다는, 숨을 한 번 돌리고, 방해가 되지 않게, 주변에서 휘호하는 작가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다.

3. 역기능

한국의 서예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공정한 심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여기서 공생과 민주라는 문제를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보다 중요시해야할 것은 실력과 권위의 문제이다. 심사를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출품자보다 실력이나 안목이 있어야 한다. 출품을 하면 입선도 하지 못할 사람이 심사를 하는 경우도 문제지만, 그 심사위원과 관련된 출품자가 많다면, 심사과정에서 사사롭고 불합리한 일들이 적잖게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면, 서단은 공정함을 잃게 되고, 그 권위는 땅에 떨어지며 대중들의 마음은 냉정하게 서예를 떠날 것이다. 요즈음은 대상을 수상하고 입특선을 한 사람들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그리 없는데, 이것은 공모전이 공정하기 때문일 수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아는 이들은 그나마 심각한 불황으로 기진맥진한 서예계에 한바탕의 상처라도 입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이의를 제기해도 먹혀들어가지 않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조용히 서단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음은 통렬한 시각으로 현시대의 공모전을 바라본 전종주선생의 지적이다.


일부 기성작가들은 부패한 공모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그들은 실제로 출품자들을 먹이사슬로 엮어서 지배하고 통제하면서 오늘날까지도 명리만을 쫓고 있음을 볼 수가 있는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16)


또한 전․예․해․행․초에 능한 사람이 각기 다르고, 한글이나 그림에 능한 사람들이 따로 있지만, 모든 것을 혼자서 다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이유로 어쩌다 어느 한 문하에 입문하면 거의가 평생동안 그 문하에서 사제관계를 유지하며 스승과 똑같은 필치를 구사하게 된다. 또한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것이 자신들의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다보니, 필사적으로 이를 쟁취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글씨를 잘 쓰는 법만 강조하며, 다양한 창작이나 교육내용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답습만을 해가며 공모전에 출품을 하고 있다.17)

사실, 공모전에 분명한 목적도 없이 출품을 계속한다면 공모전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동원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많은 기간 연구하고, 그 연구결과를 정리해서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면, 작품을 위해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쉽게 마무리를 하게 되면서 질적 수준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Ⅳ 공모전과 서예교육


1. 서예교사

우리나라 서예는 광복이후 60년대 중반까지 초등학교에서 습자시간이 설정되었지만 이후 그것마저 폐지되어 지금은 미술시간의 일부분으로 통합되었다. 공교육에서 서예를 허술하게 다루다보니 자연 사교육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사교육을 담당하는 서예교사의 자격기준도 허술한 건 마찬가지다. 이는 서예의 전문성을 잘 모르는 공무원들도 책임이 있지만, 그 기준을 분명하게 정하지 못하고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있는 서예인에게 더 무거운 책임이 있다. 수백의 서예공모전이 ‘대한민국’을 표방하고 있고 모두가 공정하며 최고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서예를 알지 못하는 공무원들은 이들의 속사정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그들은 공무원의 잣대로 도지사나 장관 등등의 명칭을 들먹일 뿐, 인품․작품제작능력․교수능력 등등을 문제로 삼지 않는다. 삼개단체에서 초대작가가 되었거나, 제법 권위있다는 공모전에서 수상한 상장도 인정되지 않지만, 초보자들이 응모하는 공모전이라도 상장구석에 ‘○○장관’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바로 자격이 된다. 또한 서예과목교사자격증이 없기에 어느 과목이라도 교사자격증만 있다면 결격사유가 없다. 더구나 지금 성황을 누리고 있는 각종의 문화센터 등은 아예 그러한 기준마저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서예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제는 서예학과가 있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교직과목을 이수하게 하고 그들에게 서예교사자격증을 만들어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서예교육이 시작되고, 이러한 바탕에서 다시 공모전이 이어지며, 그 공모전의 수상결과가 다시 서예교사 자격기준이 되고 있으니, 이는 원천적으로 상당히 심각하게 다루어야할 중요한 문제이다.

2. 한국적 서예와 서예이론

공모전은 서예교육의 결과이다. 출품자들은 배우고 익히지 않은 것을 공모전에 발표할 수가 없다. 지금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개성이 강한 인터넷시대이다. 그러므로 궁중에서 모든 언행을 통제받고 숨죽이듯이 지낸 궁녀들의 한글이, 찢어진 청바지에 배꼽을 드러내놓은 젊은 이들의 생기발랄한 젊은 가슴속으로는 파고들까 의문이 된다. 古人들이 작은 붓으로 쓴 碑文을, 우리가 왜 그렇게 큰 붓으로 재현하려고 애써야할까를 재고해보고, 서예작품의 규격도 우리의 현실에 맞게 고쳐야한다. 우리나라에 산재해있는 古人의 명적들을 탁본하고, 탁본한 자료중에 학습하기에 좋은 것들은 모아서 법첩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자. 간혹 탁본을 하러가면 정말 좋은 글씨들이 많은데, 이렇게 무조건 중국의 글씨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가 고민해야한다. 공모전에, 우리 풍의 글씨를 우선해서 선발하면 사람들은 우리글씨에 눈을 돌릴 것이다. 무조건 우리의 법첩이라고 사람들이 배울 리는 만무하다. 정말로 좋은 비문을 교재로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글씨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면, 많은 이들이 배우고 이러한 운동에도 동참할 것이다. 공모전은 서예교육의 결과로 나타나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모전을 통해 새바람을 진작시키고 선도하는 역할도 있어야 한다. 누가 안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가능한 곳부터, 나부터 하면 될 것이다.

또한, 한국의 서예이론과 비평문화정착을 위해 논문부문의 신설이 시급하다. 이는 대학에 서예과가 신설된 지 15년이 되었고, 수도권 몇몇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은 인재들도 많아졌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서예인들이 서예와 서예이론을 함께 병행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으나, 모든 것을 수준있게 잘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공모전에서 한글부문․한문부문․사군자부문․전각부문을 나누어 놓은 것처럼,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서예이론을 전공한 인재들을 육성하기 위하여 논문부문을 신설해야 한다. 글씨가 아닌 논문부문에서 그들을 초대작가로 만들어 그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전념하여 논문을 쓰고, 서론이나 관련 서적을 번역하고, 평론을 하는데 마음을 기울이게 한다면 한국서예문화는 더 큰 발전을 기약할 것이다.

그해 실시된 공모전에 대하여 비평가에게 글을 부탁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예술작품에서 비평은 매우 중요하다. 비평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작품을 보다 의미있게 감상할 수 있고 흥미진진하게 이해할 수가 있으며, 작가로 하여금 새로운 창작의욕을 일으키게 한다.18) 이점에 대하여 김병기선생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공정하고 권위있는 서단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문에 바탕을 두고서 객관적인 평을 할 수 있는 권위있는 평론이 먼저 활성화 되어야한다. 평론이 활성화되면 서단의 어지러운 상황을 교통정리 할 수 있다. 그리고 서예단체는 평론의 도움을 받아 남발된 초대작가를 정리하고 공모전 때마다 공정한 심사를 통해 우수한 작품을 입상작으로 선발함으로써 공정성과 권위를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서예의 장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19)


3. 출품시의 유의사항

공모전에 출품하는 사람들이나 교육을 담당한 사람들은 다음의 몇 가지를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된다. 이는 공모전의 당락과도 직접 관련이 되지만, 근본적으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하는 것이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첫째, 작품을 하기 전에 우선 내용파악을 하였으면 한다. 예전에는 한문에 문리를 얻은 선비들이 글을 썼기에 당연히 알고 글을 썼지만, 요즈음은 내용은 접어두고 글씨부터 배우는 것이 다반사다. 문인화 작가들도 화제내용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림의 분위기와 畵題의 내용이 다르면, 작가의 실력이 의심스러워지고, 겸하여 작품의 격을 심하게 떨어진다. 또한, 자신이 지은 시가 아니라면 반드시 출전을 밝혀두는 것이 좋다. 그 당시에는 기억이 날 수 있어도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면 글씨를 쓴 자신도 어디에서 골라 쓴 것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감상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것을 알면서 보게 되니 적잖이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誤字·脫字에 대하여 신중해야 한다. 서예작품은 글을 쓰는 것인데, 정작 글자를 빠뜨리거나 잘못 쓴다면 엉뚱한 뜻이 되기도 하고 의미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서예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문서예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요즈음 인쇄되어 나오는 한시를 번역한 책에서 오자가 많이 발견되는 것도 이를 부채질한다. 한문독해능력이 약하고 원전을 볼 수 없는 이들은 해석이 되어있는 책을 구입하는데, 이를 참고로 하는 작가라면 아무리 확인해도 오자나 탈자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은 시나 확실히 알고 있는 시가 아니라면, 항상 원전을 찾아보는 습관을 들여놔야 할 것이다.

셋째, 자신의 개성이 승화된 글씨를 써야 한다. 법첩을 임서해도 모양만을 보고 그대로 베껴 쓰는데 열중한다면 이 역시 창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벌들이 이 꽃 저 꽃 찾아다니며 흡입하는 바로 그것을, 벌이 아닌 주사기로 빼내서 모아놓으면 꿀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법첩을 늘 임서하지만 나의 개성이란 침으로 법첩을 소화하지 못한다면, 결국 법첩은 법첩이고 나는 나일뿐이다. 법첩에서 요구하는 주된 用筆․結構․章法을 생각하고, 輕重․方圓․主賓․剛柔․虛實 등등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모양을 흉내내기에 바쁘다면, 아무리 국그릇을 드나들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는 숟가락처럼, 서예의 본령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서예가들이 남의 흉내를 내다가 중도에서 좌절하고 많다. 어느 누구에게 배웠는지는 알지만, 정작 누구의 작품인지는 알아보기 어려운 것은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4. 관객을 위한 배려

서예전은 해마다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으나 거의가 개막시간 정도만 조금 붐빌 뿐 그 이후에는 관람객이 매우 드물다. 어느 누구는 “사람 보러 가지 뻔한 글씨 보러 가냐?”고 말한다. 이는 서예전이 전시의 본래 목적을 잃었다는 반증이다. 작품이 언제나 비슷하고 변한 것이 없다면 뻔한 전시장에 대중들의 바쁜 발걸음이 옮겨질리 만무하다. 이러한 관점을 통감하면서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 예술의 전당 이동국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흔히 서예인구가 500만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자기작품 남의작품 다 떠나서 그 자체의 감동을 위해 전시장을 찾는 유료관객이 예술의 전당의 기획전의 경우 앞에서 본대로 대체로 50-100명 남짓한 것이 사실이다. 작가만 있고 관객 즉 그것을 소비할 사람이 없는 예술이란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를 이제 대중들이 심판하고 있다.20)


작품을 할 때에는, 다양한 고전을 깊이 공부하고 많은 생각을 하여, 훨씬 변해진 모습으로 대중앞에 나서야 하며, 대중들이 관심이 없다고 서운해 할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로 우리가 다가가야하며, 대중을 위한 서예교육에도 눈을 돌려야한다. 서예학원이나 대학․초중등학교․문화단체․문화센터 등에서도 서예작품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강좌가 필요하다. 이는 전문교육과는 달리 일반인의 관심을 증대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다. 공모전전시장에서 서예작품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도록 전문작가가 직접 안내를 해주는 방법이나, 그에 관한 자료를 제시해준다든가, 영상물을 통해 자연스럽게 관객을 이끌어 주는 방법을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서예관련 유적지를 답사하고, 탁본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탁본을 해본 사람들은 주변의 비석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고, 자연 거기에 쓰여진 글씨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실제의 작품을 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홈페이지나 인터넷카페를 이용하여 동시에 전시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으려면 우선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고 그만한 비용을 수반하지만, 인터넷은 책상앞에 앉아 손가락만 움직여도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그 내용을 읽어나갈 수 없었더라도, 홈페이지나 서예전문카페의 화면에 작품내용을 비롯하여, 서체에 대한 설명, 작품제작의도 등을 곁들인다면 관객들은 전시장에서보다 더 진하게 감동할 수 있다.

인터넷카페를 통해서 대상작을 결정하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공모전이 한문․한글․사군자 등등의 부문에서 최고작을 뽑아놓고 그중에서 대상작을 결정하는데, 바로 이부분에 대한 결정을 서예에 관심이 있는 카페회원들에게 맡겨보는 것이다. 설령 투표를 하러 카페에 입장한 사람이라도 투표만 하고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저곳 돌아보며 다른 서예작품을 감상하고, 한시를 감상하며, 서예에 관련한 질문과 대답을 돌아보면서, 서예에 매료될 수도 있고, 그 단체의 목적이나 취지 등을 알게도 될 것이다. 수상작이 결정되면, 대상․우수상․특선․입선작 모두를 카페에 올려놓고 회원들에게 작품사진아래에 ‘꼬리글’을 달도록 한다면, 대중들은 나름대로 그에 대한 평을 쓸 것이다. 이는 심사위원에게는 공정을 유도하고, 대중들에게는 관심을 유도하는 좋은 제도가 될 것으로 짐작된다. 결국 이들은 서예를 감상하는 층이 될 것이고, 서예작품을 구매하는 층이 될 것이고, 또 서예에 입문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Ⅴ 마치며


작품에 임하는 작가는 주체의식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공모전에 출품을 하는 입장이거나 어느 누가 심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수상에만 관심을 갖기보다는, 나의 개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여유있게 평가를 기다리는 자세가, 진정한 작가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작품은 스승이 하는 것도 아니요, 선후배가 하는 것도 아닌, 바로 내가 하는 것이다. 내 호와 이름을 쓰고 내 도장을 찍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작품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작가의식이 있어야 한다. ‘가훈써주기’와 같은 행사는 가급적 자제하였으면 한다. 그냥 써주면 받아가는 사람들이야 좋겠고, 행사를 주최하는 입장에서도 고맙기 한량이 없겠지만, 그들은 싸구려로 얻은 작품이라고 그냥 싸구려로 생각하며, 다른 기회가 되면 또 그렇게 얻으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남에게 주기도 하니 더 큰 문제이다. 결국 작가는 서예의 보급을 위해 인심을 쓰고 있으나,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을 바로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셈이다.

공모전은, 열심히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질을 높이고, 다른 서파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없이 좋다. 하지만, 초대작가나 수상에 목표를 두고, 수상만을 위해 애쓴다면 분명 이는 서예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어느 해에 한번 받은 대상이나 우수상이라는 명예가 언제나 그 사람의 작품을 평가하는 척도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부단히 정진하고 연구하고 변화하지 않는 작가는 언제라도 그 명예와 권위가 추락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서예기법이나 쓰기자체에 대한 교육외에, 관객들이 서예에 친숙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교육방법이나 공모전도 생각해야 한다. 인터넷의 홈페이지나 카페를 적극 활용하여 전시장에 젊은 학생들을 끌어들여서 이들에게 서예를 알게 하고 서예에 흥미를 갖도록 도와주고, 그들의 느낌을 존중해주며 그들의 가슴속으로 다가가야 한다.

요즘 서예계가 여러모로 어려워졌으나, 이젠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비난하기 이전에 나부터 바르게 선택하고 나부터 바르게 실천해야 한다. 알고 있어도 실천으로 옮겨놓지 않는다면 모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좋은 제도가 있어도 바르게 실천하고자하는 의지가 없다면 역시 아무런 가치가 없다. 공모전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거시적인 안목으로 지금의 서예계가 진정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간파하여 끊임없이 반영하고 기획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응모자들도 진정 서예계의 미래를 위해 사심없이 노력하고 있는 단체가 있다면, 모든 계파를 떠나 동참하고 활성화시켜야 한다.


주)

1) 고대서예는 줄곧 실용과 더불어 떨어질 수 없었으며 서예의 존재형태도 주로 다음과 같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새김과 주조의 수단을 빌어 骨․金․石․碑․崖 등에 형태를 남겼으니, 예를 들면 甲骨文․金文․大小篆․碑誌․墓誌․磨崖文字 등이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쓰는 수단을 빌려 종이나 비단 등에 문자를 남겼으니 예를 들면 書契․公文․信札 등이 그러하다.

2) 郭魯鳳, 「中國書法與中國當代書壇現狀之硏究」, 中國美術學院博士學位論文, 1999. , p.81.에서 재인용.

3) 郭魯鳳, 上揭書, p.82.에서 내용요약.

4) 서화협회: 신구서화계(新舊書畵界)의 발전과 동서미술의 연구, 향학후진(向學後進)의 교육 및 공중(公衆)의 고취아상(高趣雅想)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18년 6월 16일 서화애호가 김진옥(金鎭玉)의 집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협회취지서와 규칙을 채택하는 한편 회장 안중식, 총무 고희동, 간사 김균정(金均楨)을 선출하였다.

5) 조선미술전람회: ‘선전(鮮展)’으로 약칭되었다. 이보다 앞서 오세창(吳世昌) ·고희동(高羲東) ·안중식(安中植) 등이 조직한 서화협회(書畵協會)와 서화협회전이 심상치 않은 민족의식과 주체성 있는 단합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데 주목한 조선총독부는 1922년 조선에서의 문화정책을 표방하고 최대 규모의 종합미술전으로서 조선미술전람회를 설정하고 작품을 공모하여 그해 6월 1일 제1회 전람회를 열었다. 동양화 ·서양화 ·조각 ·서예 ·사군자의 5개 부문으로 나누어 공모 시상하였으며 1944년 제23회를 끝으로 폐지되었다.

6) 1945년 11월, 사회각계층의 인사80여명으로 ‘조선교육심의회’를 조직하고 각종교육문제를 분과별로 토의하게 되었는데, ‘교과서분과위원회’에서는 최현배 장지영이 크게 활약하고 조진만 황신덕 피천득 등이 이들에 협력하여 같은 분과 소속위원인 조윤제의 반대를 꺾고 “한자사용을 폐지하고 초등 증등학교의 교과서는 전부 한글로 하되, 다만 필요에 따라 한자를 도림(괄호)안에 적어 넣을 수 있음”이란 결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결의안은 전체회의의 토의를 거쳐 1945년 12월 8일 통과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한글전용”에 대한 최초의 공식결의로서 이것이 5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시행된 한글전용정책의 모태가 된 것이다. 이안이 통과되자 미군정청은 바로 이를 재가하여 우리나라 각급학교의 교과서는 한글전용에 가로쓰기로 나오게 되었다. 한글학회, 「한글학회이사회회의록 제1권」『한글학회50년사』, 1771 pp418-419. 김병기, 「한국서예 무엇이 문제이며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서예학』제3호, 한국서예학회, 2002. p.5.에서 재인용

7) 대한미술협회: 광복 직후 좌익단체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조선미술건설본부를 모체로 재조직된 미술 단체이다. 숙명여고 강당에서 가진 준비대회에서 선출된 23명이 전국에서 98명의 회원을 추천하여 결성하였고, 초대회장에 고희동(高羲東)과 평의원 15명, 상무위원 10명이 선출되었다.

8)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약칭하여 국전(國展)이라고 한다. 1948년 정부수립 후 미술인의 보호와 육성을 위하여 문교부 내에 미술분과위원회를 두고 여기에서 국전 규약을 만들어 이듬해 11월 경복궁미술관에서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개최하였다.

9) 송하경, 『신서예시대』, 도서출판 불이, 1996. pp.12-14.내용참조.

10) 대한민국미술대전: 1949년부터 1981년까지 30회를 열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국전) 1982년 1월 16일 제도를 개편하면서 기성작가전과 분리하여 순수한 작가 발굴 및 육성을 위하여 실시하였다. 초기에는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로 운영되다가 이후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고 있다.

11) 한국미술협회: 1945년 11월에 결성된 조선미술협회가 한국미술협회의 모태(母胎)이며, 정부 수립 후 대한미술협회로 개칭되었다. 1955년 위원장 선출을 둘러싸고 미술계의 양대 산맥인 홍익대학파와 서울대학파가 갈등을 빚으면서 대한미술협회와 한국미술가협회로 분리되었다. 이후 5 ·16군사정변 속에서 민족미술의 발전 도모와 상호간의 협조를 표방하면서 두 미술가 단체는 통합되었고, 1978년 사단법인체로 등록하여 조직이 강화되었다.

12) 대한민국서예대전: 1989년 사단법인 한국서예협회가 창립된 뒤, 같은 해 9월 23일부터 10월 6일까지 제1회 대회를 개최한 이후 매년 열리는 서예 공모전이다.

13) 대한민국서예전람회: 1982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가 폐지되고, 1992년 사단법인 한국서가협회가 창립된 뒤, 이듬해 4월 2일부터 30일까지 제1회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한국서가협회가 주최하는 서예공모전으로, 한국 서단(書壇)의 화합과 신뢰를 구축하고, 한국 서예계를 빛낸 참신한 신인들을 발굴·육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14) 오후규, 「IT시대에서의 서예철학과 서예활성화 방안」,『서예학』제3호,

한국서예학회, 2002. p.101.

15) 오후규, 「2002년도 대한서예연감」『월간서예』, 미술문화원, 2003.2. p.113.

16) 전종주, 「한국 현대서예의 방황과 오류」 『서예학』제3호, 한국서예학회,

2002. p.79.

17) 최병식, 「한국서예에 대한 재검증과 서예교육의 개선방안」,『서예학』제3호,

한국서예학회, 2002. p.66. 에서 내용참조.

18) 李完雨, 「21세기 한국서예의 방향」『동양예술』, 한국동양예술학회 2000.

p.38.

19) 김병기, 「한국서예 무엇이 문제이며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서예학』제3호, 한국서예학회, 2002. pp.33-34.

20) 이동국, 「서예 활성화 방안」,『서예학』제3호, 한국서예학회, 2002. p.52.


參考文獻

곽노봉,「中國書法與中國當代書壇現狀之硏究」, 中國美術學院博士學位論文, 1999.

김병기, 「한국서예 무엇이 문제이며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서예학』제3호, 한국서예학회, 2002.

송하경, 『신서예시대』, 도서출판 불이, 1996.

오후규, 「2002년도 대한서예연감」『월간서예』, 미술문화원, 2003.2.

──, 「IT시대에서의 서예철학과 서예활성화 방안」,『서예학』제3호,

한국서예학회, 2002.

이동국, 「서예 활성화 방안」,『서예학』제3호, 한국서예학회, 2002.

李完雨, 「21세기 한국서예의 방향」『동양예술』, 한국동양예술학회 2000.

전종주, 「한국 현대서예의 방황과 오류」 『서예학』제3호, 한국서예학회, 2002.

최병식, 「한국서예에 대한 재검증과 서예교육의 개선방안」,『서예학』제3호,

한국서예학회, 2002.

이 글은 2004년 9월 4일 광명학술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입니다.


書藝作品은 어떻게 感想하여야 하는가?

서예는 동양 특유의 미적 예술이다. 따라서 서예를 감상한다는 것은

사람의 사상, 정감, 취미, 심미안 등을 개발할 수 있게 할뿐만 아니라

서예의 수준을 이끌어 올리는 데에도 상당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반백응(潘白鷹)은 이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작가의 창조를 보는 것만 아니라 감상자들도 창조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다.


베토벤은 음악의 대가로 그의 작품은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랄 만큼 훌륭한 창조물이라는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음악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베토벤의 작품이라도 어려울 뿐이고 심지어는 듣기가 괴로울 정도다. 


따라서 우리가 예술을 감상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스스로가 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있어야 한다.

서예는 이러한 것이 더욱 요구되어지는 예술이다.

그리고 좋은 글씨의 오묘함은 진정한 감상자가 있어야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제대로 발휘하여 새로운 창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서예를 감상하려는 자가 어느 정도 이에 대한 기초가 있어야만 제대로 서예를 감상할 수가 있지 그렇지 못하면 깨닫기가 힘들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서예는 회화와 같이 현실 중의 각종 사물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예술이다.

그러나 서예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점과 획의 구성은 매우 특수한 예술언어와 리듬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 폭의 좋은 작품을 대하노라면 백 번을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으며,

감람을 씹는 것과 같이 처음에는 떫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더 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사람의 시각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형체와 동태미에서 풍기는 맛에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식미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인류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축적되어 형성된 획득물이며,

나아가서는 수만 년동안 인류가 경험하였던 의식 속에 집중되었거나 개괄되었거나

 추상적으로 상당히 공고되었던 어떤 것들에 대한 연상과 정감의식이 통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곧 서예의 창조와 감상의 현실에 의거할 수밖에 없다.

동한(東漢)은 "좋은 글씨의 형체는 앉은 것 같고, 서 있는 것 같고, 나는 것 같고,

움직이는 것 같고, 오고 가는 것 같으며, 눕고 일어나는 것 같으며, 근심하는 것 같으며,

 기뻐하는 것 같으며, 벌레가 잎사귀를 갉아 먹는 것 같으며,

 날카로운 칼과 창 같으며, 강한 화살 같으며, 물이나 하늘같으며,

 구름이나 안개 같으며, 해와 달과 같으며, 종횡으로 방방 뛰는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글씨라고 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서예의 점과 획 그리고 형체가 반드시 사람들이 대하고 있는 현실 가운데에서

 아름다운 모양 그리고 동태적인 것을 연상시킬 수 있어야만 비로소 훌륭한 예술이라는 말이다.


 물론 서예가들이 하나의 획으로 어떤 사물의 형상과 변화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사물의 형태와 동태적인 미감을 충분히 표현할 수는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작가가 창작을 할 때 무한히 다양한 객관적 현실 가운데 아름다움을 받아들여,

점과 획 그리고 형체에 집중적으로 표현시킴으로써

작가가 가지고 있는 사상 감정을 이에 충분히 발설하는 것이다. 

글씨체로 볼 때 전서, 예서, 행서, 초서, 해서 등은 각기 다르며 저마다 고유한 풍격과 유파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작가의 각기 다른 성격, 기질, 예술의 연원, 생활경험 등을 삽입하면

작품의 풍격도 각양각색으로 나타난다. 이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견해도 전부 일치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안진경(顔眞卿)의 서풍은 법도가 있고 의젓하기가 태산이 내려앉은 듯하여 장중하면서도

후박한 기상으로 호방한 풍격을 개척하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오히려 안진경의 글씨를 평하여 말하길 법은 갖추고 있으나 아름다운 것은 없으며

마치 껍질이 두꺼운 만두와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는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과 씩씩한 장부의 기상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더라도 글씨에 대한 견해가 각각 다르고 감상하는 기준도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견해야 어찌되었건 좋은 작품에는 반드시 필법(筆法), 묵법(墨法), 장법(章法), 기운(氣韻) 등의네 가지 요소가 구비되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모두들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힘이 꼭 점과 획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서예작품이란 글자들이 모여서 행을 이루고, 행들이 모여서 장을 이루면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점은 한 획의 규범이 되며, 한 자가 한 작품의 부분적인 미가 전체적인 미에 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행서나 초서는 한 글자만 보아서는 안된다. 이 글자와 저 글자 도는 이 줄과 저 줄을 보면서 그 속에 담겨진 필력·필세·필의·성기고 빽빽한 것·긴장되고 해이한 것·균형·서로의 획들이 어떻게 배합되었는지를 제대로 살펴야하며, 필묵이 있는 곳에서부터 없는 곳에 이르기까지를 살펴야 하며 조밀한 곳에서부터 성긴 곳에 이르기까지도 자세히 살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종합하면 한 폭의 서예작품을 예술적으로 치라 할 때에는 반드시 글자와 글자,

행 과 행 사이의 간격과 대소 획들을 적절히 배합시키고,

먹의 농담을 서로 어울리게 하고, 신축성을 고려하여 전체가 일맥상통하게 하여야만

진정한 예술효과가 발휘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몇 가지 처리방법이 온당치 못하면

엉성하고 산만하거나 무질서하게 되어 문체가 나지도 않게 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피로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읽기도 어려워 감상 을 곤란하게 만든다. 

왕희지의 <난정서(蘭亭敍)>는 불후의 명작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형체와 짜임새 속에 편안하고 안온한 맛이 있으면서도 매우 다양한 변화가 엿보인다. 필획을 둥글게 돌리는 것은 마음먹은 대로 되었으며, 펄펄 나는 획들은 생동감이 서려 있으며, 인위적인 운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으니 작품 전체에서 아름답고 윤기 있고 청신한 아름다움이 저절로 풍겨난다.


 당대(唐代) 감상가인 이사진(李嗣眞)은 일찍이 구름 속에서 삐져나온 태양이요, 연꼿이 물 속에서 나온 형상이요, 음양과 춥고 더움의 사계절 변화가 고르게 조화되어 있으며, 맑은 바람이 소매에서 나오고 밝은 달이 품 속에 들어가는 모습이라는 말로 왕희지의 글씨를 연상하여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안진경(顔眞卿) 행초의 풍격은 확실히 독특한 데가 있다.

그의 <제질문고(祭嫉文稿)>는 이러한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좋은 자료다.

그는 안록산(安祿山)의 반란에 저항하다 장렬하게 죽은 조카에 대한 비분강개한 정이

행간에 가득 담겨져 있고 ,붓에 먹물을 듬뿍 찍어 강하고도 뻣센 획으로 담수에 써내려 갔으니

격조는 격앙되어 있어서 이전에 형성하였던 침착하고 후박한 풍격을 찾을 수 없다.

초서의 대가인 장욱(張旭)의 <고시사첩(古詩四帖)>을 보면 표일한 기세로 기이한 형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새가 춤을 추며 나는 것 같으니 그 묘한 맛이 고금에 드물다 할 것이다.

장욱은 일생의 희노애락,궁핍함, 우수, 유쾌함, 원망, 그리움 등을 모두 술에 섞어 마시면서

무료한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가슴속에 있는 모든 불평과 정서를 모두 초서 위에 배출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 즉 산수, 벼랑, 계곡, 짐승, 곤충, 물고기, 초목, 꽃, 해와 달

그리고 별, 풍우, 불, 번개, 구름, 춤, 전투 등에서 기쁘고 놀라운 현상들까지도 모두 상징화하여

초서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감상자의 입장에서 보면 작가의 경력과 시대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확하게

작품을 평가하기가 곤란하다. 이 점은 옛사람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과제다.

일반적으로 해서는 경직화되기가 쉽고, 행초는 매끄럽게 되기가 쉽고,

큰 글씨는 산만해지기가 쉽고, 작은 글씨는 구속되기가 쉽다.


그러므로 해서를 쓸 때에는 단정하면서도 활발하게 하여야 하며,

행초를 쓸 때에는 날아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침착해야 한다.

 큰 글씨를 쓸 때에는 짜임새를 긴밀하게 하여야 하며,

작은 글씨를 쓸 때에는 너그럽게 하여야 한다.

여기에 기이한 것에는 바른 것을 배합하여야 하고,

바른 것은 기이한 것을 보충하여 기이하면서도 촌스럽지 않게 하며,

생동감이 있으면서도 경직되지 않게 하여 세련되고 피곤하지 않게 하여야 한다.

이것은 비록 작가에 대한 요구사항일 뿐만 아니라 감상자들도 이러한 각도에서 

작품의 우열을 감상하여야 한다.

예술이란 모방 혹은 복사하거나 사진 찍듯이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다.

적지 않은 감상자들은 왕왕 기계적으로 비첩의 맛을 추구하고 심지어

이를 따르지 않으면 가치 없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옛사람의 작품에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환경과 사상 감정이 있기 때문에

배우고 따른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법은 중요한 것이지만 옛 법에만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된다.

 감상할 때는 다른 사람의 약점만 들추지 말고 장점을 흡수하여야 한다.

 편견은 결코 예술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주마간산으로 대충 보고 지나가는 것으로는 작품이 간직하고 있는 기법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다.

 세심히 살피고 완비하여야만 비로소 유파와 운필의 기법등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 





원태연님 시 모음

 

오직 하나의 기억으로 / 원태연


오직 하나의 이름으로

간직하고 싶습니다

많은 괴로움이 자리하겠지만

그 괴로움이

나를 미치게 만들지라도

미치는 순간까지

오직 하나의 이름으로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 하나의

오직 하나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 해도

추억은

떠나지 않은 그리움으로

그 마음에 뿌리깊게 심어져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흔들림 없이

오직 하나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공약 / 원태연


헤어짐이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떠나버린 님의 마음을

그 전처럼 돌려주겠다고

가슴아픈 이별을 했더라도

하룻밤 아파하다

거짓말처럼 잊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이런 공약을 한다면

이별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몰표를 얻을 수 있을텐데...

정치니 장난이니

투표 안 하고 만다던 나부터도

당장 그 사람 찍어줄텐데...

 

길들여지기 / 원태연

 

무언가에 길들여져 있다면

좀처럼 고쳐지기 어렵겠지만

그만큼의 노력을 한다면

가능한 것이나

누군가에게 길들여져 있다면

좀처럼 고쳐지기도 어렵겠지만

사랑한 만큼의 눈물을 흘린 뒤

가능하다 하여도

그땐 이미 그리움에 길들여져 있을 것이다.

 

이유 / 원태연

 

이별한 순간부터

눈물이 많아지는 사람은

못다 한 사랑의 안타까움 때문이요

말이 많아지는 사람은

그만큼의 남은 미련 때문이요

많은 친구를 만나려 하는 사람은

정 줄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요

혼자만 있으려 하고

가슴이 아픈 지조차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이별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밤이면 슬퍼지는 이유는

그대 밤이면 날 그리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고

나 술 마시면 미어지는 이유는

그대 술 마시다 흘리고 있을 눈물이 아파보여서이고

나 음악을 들으면 눈물 나는 이유는

그대 음악 속의 주인공으로 날 만들어 듣고 있기 때문이고

나 이런 모든 생각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떨쳐버리고 나면 무너질

나를 위해서입니다.

 

이루어지기 싫은 사랑 / 원태연

 

객관적으로 봐도 상당히 예쁘게 생긴 여인

태어나서 단 한번의 양치질도 안 하고서

과감히 내 입에 키스를 하는 여인

매력적인 궁둥이를 흔들며 유혹하듯 쏘다니다가도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볼일을 보는 여인

조금만 기분을 맞추어 주면

발라당 뒤집어져 가슴을 드러내는 여인

TV 개그 프로보다 더 재미있는 여인

만나자고 전화할 필요도

없는 돈에 커피값 걱정하며 약속할 필요도 없는

아주아주 날 편하게 해주는 여인

아침마다 내 침대로 기어올라와 단잠을 깨우는

그때마다 뒤통수를 내리치는데도

조금도 섭섭치 않은 눈길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안겨오는 여인

그녀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도 없지만

이루어지기도 싫은 까닭에

내 양말을 물어뜯거나 연습장을 찢어 놓으면

그녀의 촌스러운 이름을 외치며

식탁밑으로 숨는 그녀를 한대 쥐어박는다.

갑쑨아!”

 

기다림 / 원태연


가장 고된 날을 기다렸다가

그대에게 전화를 걸지요

고된 날에는

망설임도 힘이 들어 쉬고 있을테니까요

 

가장 우울한 날을 기다렸다가

그대에게 편지를 쓰지요

우울한 날의 그리움은

기쁜 날의 그리움보다

더욱 짙게 묻어날테니까요

 

고된 일을 하고

우울한 영화를 보는 날이면

눈물보다 더 슬픈 보고픔을 달래며

그대의 회답을 기다리지요

 

 

혼자이기 때문입니다 / 원태연

 

티격태격 싸울 일도 없어졌습니다.

짜증을 낼 필요도 없고

만나야 될 의무감도

전화해야 하는데 하는 부담도

이 밖에도 답답함을 느끼게 하던

여러가지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혼자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도 만나볼 겁니다.

전에는 늦게 들어올 때

엄마보다 더 눈치가 보였는데

이제는 괜찮습니다.

참 편해진 것 같습니다.

근데... 이상한 건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아무 할일이 없어진 그 시간에

자꾸만 생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이제는...

혼자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혼자이기 때문입니다 / 원태연

 

심심한 저녁시간이면

특별한 용건 없이 전화 걸어

몇 시간이고 애기할 곳이 없어졌습니다.

소개팅 같은 거 할 때면

좀 찔리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 마음 들게 할 곳이 없어졌습니다.

 

특별히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참 많은 것이 달라져 보입니다.

인기스타보다 더 보기 힘든 사람이 생긴 것과

아파도

열이 많이 나도

나 아파 하고 기댈 곳과

열 재줄 손이 없어졌고

생일이나 의미가 있는 날

선물을 고를 일도 기대할 일도 없어진 것이

또 그렇습니다.

토요일 오후나 공휴일 아침이면

당연히 만나고 있어야 하는데

친구를 만나고 있거나

TV를 보고 있으면

이제는 우리가 아니란 걸 실감하게 됩니다.

어떤 이름이 부르고 싶어지거나

어떤 얼굴이 보고 싶어지면

그때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눈앞이 깜깜해집니다.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닌 듯한데 / 원태연


그리 먼 얘기도 아닌 듯한데

당신 이름 석자 불러보면

낯설게 들립니다

그렇게 많이 불러왔던 이름인데...

 

그리 먼 얘기도 아닌 듯한데

당신 고운 얼굴 떠올리면

썰렁할 정도로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많이 보아왔던 얼굴인데...

 

그리 먼 얘기도 아닌 듯한데

이제는 잊고 살 때가 되었나 봅니다

외로움이 넘칠 때마다 원해 왔던 일인데

힘들여 잊으려 했던 때보다

더 마음이 아파옵니다

그렇게 간절히 원해 왔던 일인데...

 

복구공사 / 원태연


추억공사중

사랑통행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현재 미련구간 복구공사로 인해

사랑통행이 금지되오니

다른 사랑을 이용하시거나

부득이한 분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복구가 끝난다 해도

예전 같은 통행은 어려울 것 같으니

이 점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유비무환 / 원태연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너무 자주 보지 마세요

사랑이 끝난 후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무심히 지나칠 수 있도록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너무 많이 가지지 마세요

사랑이 끝난 후

그 마음 가져가려 할 때

큰 상처 없이 돌려줄 수 있도록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 깊이 빠지지 마세요

사랑이 끝난 후

그 아름다운 기억이

한 방울 눈물로 기억되지 않도록

 

때로는 우리가 / 원태연


때로는 그대가

불행한 운명을 타고났으면 합니다.

모자랄 것 없는 그대 곁에서

너무도 작아 보이는 나이기에

함부로 내 사람이 되길 원할 수 없었고

너무도 멀리 있는 느낌이 들었기에

한 걸음 다가가려 할 때

두 걸음 망설여야 했습니다.

 

때로는 내가

그대와 동성이기를 바라곤 합니다.

사랑의 시간이 지나간 후

친구도 어려운 이성보다는

가끔은 힌들겠지만

그대의 사랑얘기 들어가며

영원히 지켜봐 줄 수 있는

부담없는 동성이기를 바라곤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원수진 인연이었으면 합니다.

서로가 잘되는 꼴을 못보고

헐뜯고 싸워가며

재수없는 날이나 한번 마주치는 인연이었으면

생살 찢어지는 그리움보다는

차라리 나을 것 같습니다.

 

미안해요 하느님 / 원태연

 

나 선한 일을 많이 하여

하느님의 신뢰를 받아

그 능력을 조금이라도 부여받는다면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넉넉한 마음을

외로운 이들에게 참다운 벗을

거짓인생 사는 이들에게 진실을

투기와 욕심이 가득한 이들에겐

사랑을 선물하리라

그러나

현실로 내게 그 힘이 주어진다면

모든 일을 뒤로하고

네가 나만을 생각하게 만들리라

그런 후 신의 노여움을 사

걷지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게 될지라도

[가 나만을 생각하며

영원히 머물러만 준다면

웃으며 그렇게 하리라

 

가지 말라 하셔도 / 원태연


가라 하시면

가야 하지요

마음 밖으로 멀리멀리

아주 가라 하시면

돌아보지 말고

가야 하지요

 

가지 말라 하셔도

가야 하지요

연민만으로 사랑하기엔

구속이 너무 심한 걸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까지

남아 있을 자신도 없는 걸

 

가라 하셔도 가슴 아픈데

가지 말라 하시면

못내 눈물 보이고 말지요

사랑하고 계셨구나 알 수 있지요

그 한마디로도

오랜 세월 그리워해도 될

이유가 되지요

 

술버릇 / 원태연


술 마시면 어김없이

그대를 생각합니다

한잔 한잔 보태갈수록

더 진하게 떠오릅니다.

술 취하면 어김없이

그대에게 전화를 겁니다.

일곱 자리 누르는데

칠십 번도 더 주저하다

그런 내가 초라해 보여

그냥 내려놓습니다.

술이 깨면 어김없이

어제일을 후회합니다.

쓰린 속 냉수로 씻어내며

그저 한편에 자리했던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었던

그 날을 떠올려 봅니다.

 

부 기도문 / 원태연

 

가진 건 돈뿐이신 우리 아버지시여

숨기고 계신 땅을 계속 불리사

투기에 임하시옵고

친구가 외제차를 수입함과 같이

제게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쓰다 지칠 돈을 주시옵고

제가 애인에게 다른 애인을

안 걸리듯 아버지도 어머니 눈치 좀 보시옵고

제가 무슨 짓을 해도 신경쓰지 마시옵고

다만 법에서만 구하시옵소서

땅과 빽과 쾌락이

아버지와 제게 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름다운 당신 / 원태연


그 사람 이름을

당신이라고 합니다

잘생긴 턱선과

시원한 이마를 가진

그 사람 이름을

당신이라고 합니다

터무니없는 많은 기억으로 상처 주시고

그 터무니없이 많은 기억으로

치료를 해주시는

그 사람 이름을

당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 이름 떠올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일이지만

그 이름 떠들어댈 자격이 없는 몸이라

눈물을 머금고

그 사람 이름을

아름다운 당신이라고만 합니다.

 

평생을 두고 기억나는 사람 / 원태연


평생을 두고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기를

나는

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을 알고부터

그것이라고 바래야 했다.

어쩌면

당연한 권리라 생각하며

슬프디 슬픈 사랑으로 기억 속에 남아

그 가슴 촉촉이 적시울 수 있게 되기를

이룰 수 없게 된 사랑을 대신해 바래야 했다.

그래서 그때마다

그 눈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기를

참으로 부질없음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믿으며

진작부터 그런 바람으로

평생을 두고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기를

나는

애원이라도 하며 바랬어야 했다.

 

이별 / 원태연


그 사람 마음이 진정이라면

그 사람 생각대로 될 수 있게 도우소서

내 힘으로 하려했던 모든 기도 거두시고

이제는 그 사람을 도우소서

편하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그래서 잊어버렸던 옛얼굴 기억해낼 수 있도록

찢어버렸어야 했을 사랑의 편지

이렇게 고이 간직하는 죄쯤으로 알고

나는 살아갈 테니

그 사람 마음이 진정이라면

그 사람의 생각대로 될 수 있게

그 사람을 도우소서

 

둘이 될 수 없어 / 원태연


둘에서 하나를 빼면

하나일 텐데

너를 뺀 나는

하나일 수 없고

하나에다 하나를 더하면

둘이어야 하는데

너를 더한 나는

둘이 될 순 없잖아

언제나 하나여야 하는데

너를 보낸 후

내 자리를 찾지 못해

내 존재를 의식 못해

시리게 느껴지던

한마디 되새기면

그대로 하나일 수 없어

시간을 돌려달라

기도하고 있어

 

둘에서 하날 빼면 하나일 순 있어도

너를 뺀 나는

하나일 수 없는 거야

 

서글픈 바람 / 원태연


누가 오기로 한 것도 아니면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삐그덕 문소리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누가 오기로 한 것도 아니면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두 잔의 차를 시켜 놓고

막연히 앞잔을 쳐다본다.

누가 오기로 한 것도 아니면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마음 속 깊이 인사말을 준비하고

그 말을 반복한다.

누가 오기로 한 것도 아니면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나서는 발길

초라한 망설임으로

추억만이 남아 있는

그 찻집의 문을 돌아다본다.

 

대가리가 단단한건지 / 원태연


아리랑은 없어도

가라오케는 언제나 만원이다

건빠이는 외쳐대도

지화자를 외치는 이는 없다

로바다 야끼가

포장마차보다 많아진다

사찌꼬는 따라불러도

우리의 소원을 부르면 어색하다

우리 스스로

다시 한번 식민지가 되려고

구슬땀을 흘려 가며

아주 광적으로 노력들을 하고 있다

 

대가리가 단단한건지 / 원태연


참 대단한 민족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더 이상의 더러운 짓은

할 수 없을 정도의 만행을

서슴없이 저질러 놓고

쫓겨 도망간 민족

도망가면서까지

더러운 짓을 하나라도 더 하고 가야겠다는

굳은 신념하에 떠나간 민족

얼마나 위대합니까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더 대단한 민족이 있습니다

그렇게 당하고서도

옛일 떠올리면 뭐하냐

잊고 다시 한번 밟혀 보자

하는 식으로 두 팔도 모자라

사지를 벌려 그 민족을 받아들이는

대단한 민족이 있습니다

그런 엄청난 민족의 자손이

지금 이 낙서를 하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이런 날 만나게 해 주십시요 / 원태연


이런 날 우연이 필요합니다

그 애가 많이 힘들어하는 날

만나게 하시어

그 고통 덜어줄 수 있게

이미 내게는 그런 힘이 없을지라도

날 보고 당황하는 순간만이라도

그 고통 내 것이 되게 해 주십시요.

 

이런 날 우연이 필요합니다.

내게 기쁨이 넘치는 날

만나게 하시어

그 기쁨 다는 줄 수 없을지라도

밝게 웃는 표정 보여 줘

잠시라도 내 기쁨

그 애의 것이 되게 해 주십시요.

 

그러고도 혹시 우연이 남는다면

무척이나 그리운 날

둘 중 하나는 걷고 하나는 차에 타게 하시어

스쳐 지나가듯

잠시라도 마주치게 해 주십시요.

 

누군가 다시 만나야 한다면 / 원태연

 

다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여전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당연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그리워 해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또 너를

다시 누군가와 이별해야 한다면

누군가를 떠나 보내야 한다면

두번 죽어도 너와는..

 

사랑의 크기 / 원태연


사랑해요

할 때는 모릅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랑했어요

할 때야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이 내려 앉은 다음에야

사랑

그 크기를 알 수 있습니다.

 

과소비 / 원태연

 

시원한 음료수

아니 차가운 맥주

타고 다닐 자동차

아니 외제 스포츠카

부드럽고 긴 머리

아니 얼굴에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

먹고 살 만한 은행 잔고

아니 쓰다 쓰다 남을 통장

혼자 살 만한 아파트

아니 2층 짜리 빌라

인정받을 만한 지식

아니 그들을 사용할 능력

그 다음

이 모두를 함께 누릴

사랑하는 여자

아니,

 

그냥 좋은 것 / 원태연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어디가 좋고

무엇이 마음에 들면,

언제나 같을 수는 없는 사람

어느 순간 식상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특별히 끌리는 부분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때문에 그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가 좋아 그 부분이 좋은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그저 좋은 것입니다

 

말 잘 듣는 아이 / 원태연


내가 두고가라 한 건

추억 조금이었는데

느닷없이 찾아 올 썰렁함이 싫어

다른 이름을 마음속에 새겨놓을까 봐

추억 조금 남겨 놓으라 한 건데

말 잘 듣는 그 아이는

남길 수 있는 모든 것을 두고가

아직까지 멀리까지

혼자인걸 못 느끼게 하네

 

내가 가지고 가라한 건

사랑 조금이었는데

다음 세상으로 떠나갈 때

마지막으로라도 생각나는 얼굴이고 싶은 욕심에

사랑 조금 가져가라 한건데

말 잘 듣는 그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줄 사랑마저 남겨놓지 않아

사랑에 인색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네

 

내가 간직하라고 한 건

슬픈 기억 조금이었는데

언젠가 잊혀지게 될

우리 얘기가 눈에 밟혀

가슴 조금 상한다해도

우리가 책임져야 할 얘기이기에

슬픈 기억 조금 간직하라 한건데

말 잘 듣는 그 아이는

없던 일까지 만들어 간직하려 하려는지

보고만 있기에도 눈물이 필요한 표정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네

 

정말 싫어질 때 / 원태연


정말 싫어지면

말이 없습니다

표정이 없습니다

꼴도 보기가 싫다 하지 않습니다

인상을 찌뿌리지도 않습니다

때리지도 않습니다

투정도 없습니다

정말 싫어질 때는

표정도, 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때는 말없이

떠나달란 뜻입니다

 

누가 무엇이 / 원태연


돈 좋고 그짓 좋아

씹놀리는 년들도

버젓이 고개들고 식자에 들어가는데

그분들은

희생뿐인 우리 할머니들은

이제껏 고개 못들고

썩어버린 가슴

담배로 달래게 하는가

 

나라 팔아먹지 못해 발 구르고

민족의 자존심을 도매로 넘겨버린

쌍놈의 것들도

애국자라 목청 찢어지게 소리치며

눈 시퍼렇게 뜨고 배 두드리며 살아가는데

누가 무엇이

죄는 그분들이 다 지신 듯

큰 기침 한번 어렵게 만들었나

 

억울해 저승도 못 가시는

그 원귀들을 어찌 감당하려

누가 무엇이

오늘까지 오게 했는가

 

눈물에...얼굴을 묻는다 / 원태연


너의 목소리, 눈빛, 나를 만져주던 손길,머릿결

부르던 순간부터 각인 되어버린 이름,

어쩌면 재앙과도 같았던 사랑

우리는 서로의 사랑에 그렇게 중독되어 갔다

니가 조금만 더 천천히 울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그 때

너의 눈물에 손끝조차

가져가 볼 수가 없던 그 때

단 한번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이유로

살점을 떼어내듯 서로를 떼어 내었던 그 때

나는 사람들이 싫었고 사람들의 생각이 싫었고

사람들의 모습을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사랑도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인가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그렇게 서로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뿐인 사랑을 지켜내지 못했었다

마지막임을 알고 만나야 했던 그날,

얼굴을, 목소리를, 상처를, 다시 한번 각인 시켰던 그날

너를 보내며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보고 싶었던 기도를

하얀 눈이 까맣게 덮어 버렸던 그날,

이제 나는 무엇을 참아내야 하는가

이런 모습으로 이런 성격으로 이런 환경으로 태어나

그렇지가 않은 너를 만난 죄

니가 나를 사랑하게 만든 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 그것뿐이었던 죄

그렇다면 이모든 나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도 살아있음에 미련이 없음이

나를 더욱더 가볍게 만들어 준다

의미를 남겨두고 싶어 올려다본 하늘에

눈물에 얼굴을 묻던 너의 모습이 아련하게 스쳐간다

내가 태어나던 날의 하늘은 어떤 색깔이었을까 . . .

 

예감한 이별 - 원태연


이별을 예감하는 일이란

피멍든 가슴에

비수가 꽃히는 아픔보다

통증이 심한 것

눈앞에 두고도

싸늘히 이별을 느낄 때가

이별 후의 시간보다

더 힘들 수도 있는 것

 

착한 헤어짐 - 원태연


떠나갈 사람은

남아 있는 사람을 위해

모진 척 싸늘하게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나 간 사람을 위해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하게

 

아니라고

죽어도 아니라고

목구멍까지 치미는 말

억지로 삼켜가며

헤어지는 자리에서는

슬프도록 평번하게

 

이런 젠장 - 원태연


생각이 날 때마다

술을 마셨더니

이제는

술만 마시면

생각이 나네

 

요즘 우리는 - 원태연


이별하려고

사랑을 하고 있다

 

우울해지는 이유 - 원태연


잊으려는 고통보다

잊혀지는 슬픔이

더 크기 때문에

 

자랑 - 원태연


우리 아버지를

좀 알려 주고 싶은데

착하게 살아오셨다고

정직하게 살아오셨다고

존경받으실 만하다고

이런 걸 좀 나타내고 싶은데

미약한 필력으로

행여 욕되게 할지 몰라

그저 존경한다고

엄마를 좀 고생시킨 것만 빼고는

모두가

자랑스럽다고

 

사용설명서 - 원태연


씹어 삼키면 안 됩니다

목구멍이 크게 아프지 않을

적당한 크기로 얼려

꿀꺽 한번에 삼켜야 합니다

목구멍부터

찌릿한 찬 기운이 밀려올 테지만

참고 또 참으며

먼저 삼켰던 얼음들이

다 녹아버리기 전에

부지런히 삼켜 채워넣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감기에 걸리거나

복통으로 받는 고통이

훨씬 덜하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어느 정도 얼음들이 쌓여

가슴을 다 얼렸다 생각이 들 때

준비했던 손망치를 사용합니다

한 번에

정확히.


아침 - 원태연


막 뽑아낸 커피를 마신다

막 떠오르는 그리움

눈물이 나온다

.

 

상처 - 원태연


먹지도 않은 생선가시가

목에 걸려있는 것 같다

그것도

.

 

익사 - 원태연


자살이라뇨

저는 그럴 용기 낼

주제도 못되는 걸요

그저

생각이 좀 넘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뿐이예요.

 

거울 - 원태연


보여준다

그리고 덧붙여

그는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하다

그만두었다고 한다.

 

절망에 관한 독백 - 원태연


인간들은

다람쥐에게

쳇바퀴 하나를 만들어주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오늘과 같은 내일을

대신 살아주길 바란다.

 

만취 - 원태연


한 잔이 모여서

두 잔이 된다지요

한 잔이 모여서

한 병이 된다지요

한 잔이 모여서

세 병이 된다지요

고마운 한 잔이

어서어서 모이면

어김없이 버거운 오늘이

후딱,

가버린다지요.

 

원죄 1 - 원태연


조금 더

노력해야 해

노력의

노력을 다해

조금은 더

노력하고 살아야 해

보다 화려한 장례를 위해

피똥 흘리며

노력에

노력을 다해야 해.

 

원죄 2 - 원태연


마음을 추스리지 못해

혼자 엄청나게 괴로워할 때가 있다

그냥 한 번

숨이나 쉬어보지 말자 하고

가만히 있어 보면

이게 아니구나 싶어서

한숨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고민에 빠진다

이제는 시간이 조금 지나서

새로운 문제거리들로

골머리를 앓느라

지나간 생각들은

어디로들 가버렸는지 알 수도 없지만

그것이 해결은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그만큼 익숙해

자신의 고민은 매우 특별하다고

버둥대지만

지켜보는 보이지 않는 눈에겐

유치한 흥미거리

나의 고민은

내가 만든건지

내가 만들어 놓은 허상이 만든건지

에 대한 고민으로

또 하루만큼의 나를 괴롭힌다.

 

타살 - 원태연


절제를 배우지 못해

나를 또 죽이네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절충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난 그만

절제를 배우지 못해

다시 한 번

나를 죽이네.

 

자유 - 원태연


그래야만 하는 것도 없고

그래서는 안되는 것도 없다

중요한 건

결정이다

정해진 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

 

낚시터 - 원태연


걸린다

또 걸린다

미끼인 줄 알면서,

두 눈이 달렸기에

정확히도 알면서도

걸린다

또 걸린다

꾸물꾸물 유혹하는

구수한 희망에

걸린다

또 걸린다.

 

- 원태연


어디서 왔냐고 한다

어디를 찾느냐고 한다

처음으로 가는 길을 묻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인색한 눈으로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놈 보듯

어디서 왔냐고 한다

어디를 찾느냐고 한다.

 

어쩌죠 - 원태연


까맣게 잊었더니

하얗게 떠오르는 건.

 

집단 - 원태연


가끔씩

굉장히 유치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정체 - 원태연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나

그렇다면 너는 바람이었을까?

 

사랑한다는 것은 - 원태연


이렇게 속으로는 조용히 울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모르게 하는 일

 

별 땅 - 원 태 연


마음둘 곳을 찾아 헤매인다

 

체중계 - 원태연


숫자로써의 나

그나마 변함없는 모습

 

컴퓨터 - 원태연


나 너만 있으면 됐는데

왜그렇게넌 필요한게 많았을까 ..

나 너만 있으면 됐는데

왜그렇게넌 필요한게 많았을까

- 그녀와 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통증 - 원태연


시간이 약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이렇게 쓴가보죠

당신없이 지내고 있는 내 모든 시간들

 

어느 날 - 원태연


정말 보고 싶었어 그래서 다

너로 보였어 커피잔도

가로수도 하늘도 바람도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는 사람들도

다 너처럼 보였어

그래서 순간 순간 마음이 뛰고

가슴이 울리고 그랬어

가슴이 울릴 때마다

너를 진짜 만나서 보고 싶었어

라고 얘기하고 싶었어

 

향기- 원태연


이상해

정말 이상해

이건 진짜 이상해

니가 없어도 니가 느껴져

이상해

정말 이상해

 

연어 - 원태연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잖아

떠나도 또

떠나도 다시

떠 나 도

 

순간 순간 - 원태연


떠나고 싶어

하지만 한 번도 떠난 적은 없어

이상하지 떠나고 싶어지면 짐을 싸야 하는데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먼저 찾고 있으니까

이것저것

묶였고 묶어버린 끈들 때문에

떠나고 싶단 생각도 금방 접어버려

그때마다 난 떠나고 싶어

 

그냥 좋은 것 - 원태연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어디가 좋고

무엇이 마음에 들면,

언제나 같을 수는 없는 사람

어느 순간 식상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특별히 끌리는 부분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때문에 그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가 좋아 그 부분이 좋은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그저 좋은 것입니다.

 

해결 원태연


뭘 해보고 싶어도

돈이 안 댐빈다고

그럼 시비걸어

댐빌 때까지

 

영어 2 재수강하며 - 원태연


미국 애들은

생각도 영어로 하겠지

얼마나 좋을까

씨팔

 

벤취 - 원태연


한 사람이 앉아 있다

한 사람은 혼자였다

두 사람이 앉아 있다

두 사람은 혼자였다

세 사람이 앉아 있다

세 사람은 혼자였다

네 사람이 앉아 있다

네 사람도 혼자였다

 

빠삐용 - 원태연


보지 좀 마

바쁘잖아

버스도 기다리고

신문도 봐야 하고

은행도 다녀와야 하는데

괜찮으니까 보지 좀 마

신경쓰지 좀 마

숨막히잖아

전기세도 내야 하고

카드값도 막아야 하고

애 성적도 신경써야 하는데

안 섭섭하니까 신경 좀 꺼 줘

생긴대로 살게

위로 받기도 싫고

칭찬도 충고도 싫어

제발이지

몰랐었다 생각해

아예 죽었다 생각하든지

어디가서 죽어버렸다 생각하고

내버려 좀 둬

누가 어디있냐 물으면

죽었다고 해 줘

 

사랑해 - 원태연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을 년

미친 개한테 주둥아리 물릴 년

달리는 차바퀴에서 튕겨나온

돌에 맞아 죽을 년

발바닥을 바늘로

죽을 때까지 찔러도 시원찮을 년

아무리 심한 욕을 하고

죽일 년 살릴 년 해 보아도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

 

그리움 - 원태연


손톱

머리카락

아니면

도마뱀 꼬리와 같은 것

 

- 원태연


어쩌면

못 이루었을 때

이루어지는

 

연체 - 원태연


당신은

지정된 기간 내에

미련을 정리하지 못했으므로

현재 지니고계신 아픔에

10%가 가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2차 정리 기간 내에도

미련 구좌 정리를 이행하지 않을 시에는

담보로 잡혀있는 앞으로의 사랑을

부득이

차압할 수 밖에 없사오니

부디 정해진 기간 내에

정리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타살 - 원태연


저녘 나절

자기가 보낸 하루에 찌들어

절망하는 친구에게

술을 사주었다

그 친구가

아침에 찾아왔으면

눈뜨자마자

책임져야 할 하루에 눌려

버둥대고 있었다면

가지고 있던 쥐약을

나누어 마셨을 것이다

 

가정통신문 - 원태연


안녕하십니까 예비투사 여러분

팔 년 동안 살아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시작될 이 코스는

초급투사 국민학 과정입니다

짝꿍과 적이 되어 싸우는 과정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는

지난 팔 년 동안 교육받으신

우월감과 이기심,부모 직업,

집 형수 등이 되겠습니다

여러분 선배 기수 때까지 이 과정 중

순수함과 꿈 두 과목이 존재하였으나

이 과목으로 인하여 현실 부적격 낙오자가

속출하는 관계로 훌륭하신 문교부 관계자

여러분의 배려로 개편,대학 입학후,

필요에 따라 자유수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삼년 동안 초급투사 국민학 과정을 통과하시면

무기선택의 폭이 넓어져

영어,수학,컴퓨터 등 다양한 무기를

지닐 수 있게 되겠습니다

이제 곧 부모님이 배정해 주신

무적투사,대학과정 조교들에게

무기사용 방법을 배울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이 무기사용법의 문외한 짝궁들은

무시하고 짓밟아도 무방합니다

여러분 부모님의 체면과

자신들의 값어치,안락한 미래를 위해

남보다 더 열심히 투쟁하시기를 당부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중급투사 중고등과정에서

현실낙오 판정을 받아 피지배계층에 속하는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길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

 

난치병 - 원태연


가을은

기상대보다

내게 먼저 들른다

꾸역 꾸역

어김도 없다

오나보다

또 기어오나 보다

내 가을은

약도 없다

 

시인의 자격 - 원태연


누가 부여하는데요

체계적인 과정이 있나요

그건 또 누가 정해놨는데요

알다가도,

난 시인 자격미달이란 걸

그들보다 잘 알다가도

웃겨요

가끔 웃겨요

 

시간 없다고 - 원태연


내가 빌려 줄게

내 시간

니가 다 써

 

정말 싫어질때 - 원태연


정말 싫어지면

말이 없습니다

표정이 없습니다

꼴도 보기가 싫다 하지 않습니다

인상을 찌뿌리지도 않습니다

때리지도 않습니다

정말 싫어질 때는

표정도,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때는 말없이

떠나달란 뜻입니다

 

사랑해요 - 원태연


문득

가슴이 따뜻해질 때가 있다

입김 나오는 겨울 새벽

두터운 겨울 잠바를 입고 있지 않아도

가슴만은

따뜻하게 데워질 때가 있다.

그 이름을 불러보면

그 얼굴을 떠올리면

이렇게 문득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다.

 

일기 - 원태연


자다가도 일어나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얼핏 눈이 떠졌을 때 생각이 나

부시시 눈 비비며 전화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터무니없는 투정으로 잠을 깨워놔도

목소리 가다듬고

다시 나를 재워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워낙에 욕심이 많은 것일까 생각도 들지만

그런 욕심마저 채워주려 노력사는 사람이 생겨준다면

그 사람이 채워주기 전에

욕심 따위 다 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양치를 하다가도

차가 막힐 때도

커피를 사러 가다가도 생각이 나는 사람

그런 사람 있다면

그런 사람이 나를 원해 준다면

자다가도 일어나 반겨줄 것 같습니다.

 

이혼 - 원태연


부럽다

나도

싫어서 헤어져 보고 싶다

한 번 살아라도 보고 싶다

 

살상 무기 - 원태연


청산가리, , 농약, 중성자 탄, 피아노 줄, ,

마이크 타이슨 주먹, , AIDS, 마약……,

당 신 의 뒷 모 습.

 

하나만 넘치도록 - 원태연


오직 하나의 이름만을

생각하게 하여 주십시오.

햇님만을 사모하여

꽃피는 해바라기처럼

달님만을 사모하여

꽃피는 달맞이꽃처럼

피어 있게 하여 주십시오.

새벽 종소리에 긴긴 여운

빈 가슴 속에

넘치도록 채워주십시오.

하나만 넘치도록...

 

이별역 - 원태연


이번 정차할 역은

이별 이별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잊으신 미련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내리십시오.

계속해서

사랑역으로 가실 분도

이번 역에서

기다림행 열차로 갈아타십시오.

추억행 열차는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당분간 운행하지 않습니다.

 

이러고 산다 - 원태연


화장실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밥숟가락 들면서 설거지할 때까지

아니다

눈 뜨는 순간부터 눈 감을 때까지

없던 일까지 만들어 상상하며

미친놈 소리 들어가면서도

희죽희죽 웃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원태연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짜증을 내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고백을 하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을 하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너를 보고 싶어

넌 누구니?

 

동전이 되기를 - 원태연


우리 보잘 것 없지만

동전이 되기를 기도하자

너는 앞면

나는 뒷면

한 면이라도 없어지면 버려지는

동전이 되기를 기도하자

마주볼 수는 없어도

항상 같이 하는

확인할 수는 없어도

영원히 함께 하는

동전이 되기를 기도하자

 

알아 - 원태연


,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하여금 - 원태연


너로 하여금

나는

바보가 되어간다

나로 하여금

너는

반복되는 필름이 되어간다

 

미련 1 - 원태연


사랑이 떠나버린 사람의 가슴을

다시 한 번 무너지게 하는 것은

길에서 닮은 사람을 보는 것보다

우연히 듣게 된 그 사람 소식보다

아직 간직하고 있는 사진보다

한 밤에 걸려온

그냥 끊는 전화일 것입니다

 

미련 2 - 원태연


돌아서야 할 때를 알고

돌아서는 사람은

슬피 울지만

돌아서야 할 때를 알면서도

못 돌아서는 사람은

울지도 못한다

 

기다림 - 원태연


가장 고된 날을 기다렸다가

그대에게 전화를 걸지요

고된 날에는

망설임도 힘이 들어 쉬고 있을테니까요

가장 우울한 날을 기다렸다가

그대에게 편지를 쓰지요

우울한 날의 그리움은

기쁜 날의 그리움보다

더욱 짙게 묻어날테니까요

고된 일을 하고

우울한 영화를 보는 날이면

눈물보다 더 슬픈 보고픔을 달래며

그대의 회답을 기다리지요

 

다 잊고 사는데도 - 원태연


다 잊고 산다

그러려고 노력하며 산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

가슴이 저려올 때가 있다

그 무언가

잊은 줄 알고 있던 기억을

간간이 건드리면

멍하니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그 무엇이 너라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못다한 내 사랑이라고는 한다.

 

상사병 - 원태연


처음에는 이쁘게 시작되는 병

조금 심해지면

약간씩 짜증나는 병

거기에 더 발전하면

합병증까지 유발시키는 병

완전히 중증이 되면

속이 새까맣게 타버리는 병

그러나

안 걸리는 것보다

걸려보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는 병

세월이

약이 되는 병

 

알려줘 - 원태연


네 사람만 건너뛰면

아는 사람이고

세 시간만 걸어 다니면

아는 사람을 만나고

두 시간만 얘기하면

아는 사람이 되는

어지간히 좁은 세상에 살면서

한 시간도 마주할 수 없는

너와 나는

아는 사람이니

모르는 사람이니?

 

취미 - 원태연


니가 내 취미였나 봐

너 하나 잃어 버리니까

모든 일에 흥미가 없다

뭐 하나 재미난 일이 없어

 

정의 - 원태연

알고 있는 이는

알고만 있으려 하고

믿으려 하는 이는

믿으려 하는 것에 만족하고

행하는 이는

가난해야 하는

이 시대의 정의는

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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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 蘭皐 金笠 金炳淵(18071863) 安東 金笠詩集


金剛山1(금강산1) 금강산1-金炳淵

矗矗金剛山(촉촉금강산) 뾰족뾰족한 촉촉 금강산 우거질촉

高峰萬二千(고봉만이천) 높은 봉우리 일만 이천 봉

遂來平地望(수래평지망) 마침 내려와 평지서 바래

三夜宿靑天(삼야숙청천) 사흘 밤 묵어 푸른 하늘서


() -金炳淵

天皇崩乎人皇崩(천황붕호인황붕) 천황씨 죽었는가 인황씨 죽었는가

萬樹靑山皆被服(만수청산개피복) 모든 나무 푸른 산 모두 상복 입었네

明日若使陽來弔(명일약사양래조) 밝을 날 만일시켜 태양이 조문 오면

家家簷前淚滴滴(가가첨전누적적) 집집마다 처마 앞 눈물 져 방울방울


() -金炳淵

周遊天下皆歡迎(주유천하개환영) 천하를 돌아다녀 모두 다 환영

興國興家勢不輕(흥국흥가세불경) 나라 집안 일으켜 힘도 세다네

去復還來來復去(거부환래래부거) 떠나 다시 돌아와 와도 다시 가

生能死捨死能生(생능사사사능생) 삶을 죽여 버리고 죽음도 살려


艱飮野店(간음야점) 들 주점에서-金炳淵

千里行裝付一柯(천리행장부일가) 천리 길 나그네 짐 붙은 지팡이

餘錢七葉尙云多(여전칠엽상운다) 남은 돈 일곱 닢이 오히려 많아

囊中戒爾深深在(낭중계이심심재) 주머니 속 다짐 해 깊이 간직을

野店斜陽見酒何(야점사양견주하) 들 주막 저녁 무렵 술을 어쩌나


粥一器(죽일기) 죽 한 그릇-金炳淵

四脚松盤鬻一器(사각송반죽일기) 네다리 소나무상 죽 한 그릇이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 하늘빛 구름 비쳐 함께 감돌아

主人莫道無顔色(주인막도무안색) 주인은 말마시오 미안하다며

吾愛靑山倒水來(오애청산도수래) 내 아끼니 푸른 산 물에 비침을


詠影(영영) 그림자를 읊어-金炳淵

進退隨儂莫汝恭(진퇴수농막여공) 나서 물러 날 좇아 너처럼 섬김 없어

汝儂酷似實非儂(여농혹사실비농) 너 나 너무 엇비슷 참으로 나는 아냐

月斜岸面驚魁狀(월사안면경괴상) 달 비껴 기슭 비쳐 커다람에 놀라고

日午庭中笑矮容(일오정중소왜용) 한낮의 뜰 가운데 꼬맹이 꼴이 웃겨

枕上若尋無覓得(침상약심무멱득) 베개머리 찾으니 찾을 수도 없지만

燈前回顧忽相逢(등전회고홀상봉) 등불 앞 고개 돌려 문득 서로 만나네

心雖可愛終無信(심수가애종무신) 마음에 아끼려도 끝내 믿음 없으니

不映光明去絶蹤(불영광명거절종) 빛 밝혀 비춤 없어 자취 끊고 사라져


() -金炳淵

擅主司晨獨擅雄(천주사신독천웅) 새벽 맡아 다스려 혼자 맘대로

絳冠蒼距拔於叢(강관창거발어총) 붉은 벼슬 푸른 발톱 모두에 빼나

頻驚玉兎旋臟白(빈경옥토선장백) 달을 자주 놀라게 하얗게 돌게

每喚金烏卽放紅(매환금오즉방홍) 해를 불러 번번이 벌겋게 가게

欲鬪努嗔瞳閃火(욕투노진동섬화) 싸우려고 성 내면 눈에 불을 켜

將鳴奮鼓翅生風(장명분고시생풍) 울려고 목청 돋아 날개 바람나

名高五德標於世(명고오덕표어세) 이름 높은 다섯 덕 세상에 보여

逈代桃都響徹空(형대도도향철공) 먼 옛날 무릉 고을 울려 하늘에

玉兎:金烏:五德: 智 信 仁 勇 嚴


() -金炳淵

稟性忠於主饋人(품성충어주궤인) 난 바탕 충성으로 주인 밥 주니

呼來斥去任其身(호래척거임기신) 불러 오며 쫓겨 가 그 몸 맡기니

跳前搖尾偏蒙愛(도전요미편몽애) 뛰어와 꼬리 치니 사랑도 받아

退後垂頭却被嗔(퇴후수두각피진) 물러나 고개 내려 성냄도 그쳐

職察奸偸司守固(직찰간투사수고) 할 일은 도둑 살핌 지키기 다해

名傳義塚領聲頻(명전의총영성빈) 이름난 의로운 개 들림도 잦아

褒勳自古施帷蓋(포훈자고시유개) 공을 기려 예부터 씌우고 덮어

反愧無力尸位臣(반괴무력시위신) 부끄러움 힘없이 자리 찬 신하


尿罁 / 溺缸(요강) 요강-金炳淵

賴渠深夜不煩扉(뢰거심야불번비) 힘입으니 깊은 밤 귀찮지 않게

令作團隣臥處圍(영작단린와처위) 이웃으로 되게 해 누운 곳 둘레

醉客持來端跪膝(취객지래단궤슬) 취한 손님 지켜와 무릎을 꿇어

態娥挾坐惜收衣(태아협좌석수의) 고운 아씨 끼고선 치마를 걷어

堅剛做體銅山局(견강주체동산국) 단단하게 지은 몸 구리 산 형국

灑落傳聲練瀑飛(쇄락전성연폭비) 뿌려 흩여 소리 나 폭포수 날림

最是功多風雨曉(최시공다풍우효) 가장 공이 많기는 비바람 새벽

偸閒養性使人肥(투한양성사인비) 훔친 느긋 길러져 살찌게 하네


淮陽過次(회양과차) 회양을 지나며-金炳淵

山中處子大如孃(산중처자대여양) 산골 처녀 컸다고 색시 같아서

緩著粉紅短布裳(완저분홍단포상) 드러난 살짝 분홍 짧은 베치마

赤脚踉蹌羞過客(적각량창수과객) 맨다리로 뛰어가 길손 부끄러

松籬深院弄花香(송리심원농화향) 솔 울타리 깊은 담 꽃향기 놀려


() -金炳淵

飢而吮血飽而擠(기이연혈포이제) 주리면 피를 빨고 배불러 밀쳐 빨연 밀제

三百昆蟲最下才(삼백곤충최하재) 삼백의 벌레에서 가장 밑 재주 형곤

遠客懷中愁午日(원객회중수오일) 멀리 길손 품속서 한낮엔 시름 밝아서

窮人腹上聽晨雷(궁인복상청신뢰) 없는 사람 배위선 우레를 들어 꼬르륵

形雖似麥難爲麯(형수사맥난위국) 꼴 비록 보리 같아 누룩이 못돼

字不成風未落梅(자불성풍미낙매) 글자론 바람 안 돼 매화 못 떨쳐

問爾能侵仙骨否(문이능침선골부) 네게 물어 쳐들어 신선 몸에를

麻姑搔首坐天台(마고소수좌천태) 마고선 머릴 긁어 천태에 앉아 긁을소 별태


() 벼룩-金炳淵

貌似棗仁勇絶倫(모사조인용절륜) 꼴은 마치 대추씨 날램 뛰어나

半風爲友蝎爲鄰(반풍위우갈위린) 바람반()과 벗하고 빈대와 이웃 나무좀갈

朝從席隙藏身密(조종석극장신밀) 아침 되면 자리 틈 깊이 몸 숨겨 틈극

暮向衾中犯脚親(모향금중범각친) 저물자 이불속에 다리라 쏘아

尖嘴嚼時心動索(첨취작시심동색) 뾰족한 입 쏠때면 잡을 마음에 부리취 씹을작

赤身躍處夢驚頻(적신약처몽경빈) 빨간 몸 뛰는 곳은 꿈 놀램 잦아 뛸약

平明點檢肌膺上(평명점검기응상) 먼동이 터 살펴봐 살갗 가슴 위

剩得桃花萬片春(잉득도화만편춘) 남겨놓은 복사꽃 만발한 봄이 남을잉


1(1) 고양이1-金炳淵

乘夜橫行路北南(승야횡행노북남) 밤을 타 질러 다녀 길은 남북에

中於狐狸傑爲三(중어호리걸위삼) 더불어 여우와 삵 호걸 셋이 돼 -

毛分黑白渾成繡(모분흑백혼성수) 털 나눠 검고 희고 온통 수 놓여 흐릴혼

目挾靑黃半染藍(목협청황반염람) 눈에 낀 푸릇 누릇 쪽빛 반 들여 낄협

貴客床前偸美饌(귀객상전투미찬) 귀한손님 밥상 앞 맛 반찬훔쳐 훔칠투 반찬찬

老人懷裡傍溫衫(노인회리방온삼) 늙은이 품음 속에 따뜻 옷 덮어 적삼삼

那邊雀鼠能驕慢(나변작서능교만) 어디 곁에 참새 쥐 잘난 체 뽐내

出獵雄聲若大談(출엽웅성약대담) 사냥 나서 큰소리 크게도 얘기 -


2(2) 고양이2-金炳淵

世稱虎儀色何玄(세칭호의색하현) 세상 일러 호랑이 빛깔 왜 검어

射彩金精視必園(사채금정시필원) 쏜 달빛 쇠의 정기 눈길 꼭 뜰을

逈察兩端趨縮地(형찰양단추축지) 멀리 살펴 두 끝을 땅 줄여 달려 달릴추

高聽亂齧勢騰天(고청난설세등천) 높이 들어 갉아댐 하늘을 올라 물설

吃威能使安藩內(흘위능사안번내) 멈칫 을러 하게해 울안을 편히 말더듬을흘

俘馘堪觀弄囷前(부괵감관농균전) 잡아족침 어찌 봐곳집앞놀림 사로잡을부 벨괵

田舍秋登應無害(전사추등응무해) 농삿집 가을걷이 맞아 해 없어

曾蒙禮典歲三千(증몽예전세삼천) 일찍 입어 예 책에 해 이미 삼천


逢雨宿村家(봉우숙촌가) 비를 만나 마을 집에 묵으며-金炳淵

曲木爲椽簷着地(곡목위연첨착지) 굽은 나무 서까래 처마 땅 붙어 서까래연

其間如斗僅容身(기간여두근용신) 그 사이 꼬부라져 겨우 몸 눕혀 겨우근

平生不欲長腰屈(평생불욕장요굴) 한 삶에 않으려든 긴 허리 굽혀

此夜難謀一脚伸(차야난모일각신) 이 밤도 꾀를 못내 한 다리 펴기 다리각 펼신

鼠穴煙通渾似漆(서혈연통혼사칠) 쥐구멍 연기 스며 온통 옻 같아 옻칠

篷窓茅隔亦無晨(봉창모격역무신) 봉창 문 띠 집 가려 날도 아니 새 띠모

雖然免得衣冠濕(수연면득의관습) 그래도 벗어나니 옷과 갓 젖음

臨別慇懃謝主人(임별은근사주인) 떠날 때는 슬며시 임자 고마워


見乞人尸詩(견걸인시시) 걸인 주검을 보고는-金炳淵

不知汝姓不識名(부지여성불식명) 모르니 자네 성씨 몰라 이름도 너여

何處靑山子故鄕(하처청산자고향) 어디 있는 푸른 산 그대 고향이

蠅侵腐肉喧朝日(승침부육훤조일) 파리 붙어 살 썩어 시끄런 아침 파리승

烏喚孤魂弔夕陽(오환고혼조석양) 까마귀 넋을 불러 저녁볕 조문 부를환

一寸短筇身後物(일촌단공신후물) 한 치 짤막 지팡이 몸에 남긴 것 대이름공

數升殘米乞時糧(수승잔미걸시량) 몇 되 남은 쌀이란 빌어먹던 것 빌걸

其於前村諸子輩(기어전촌제자배) 그렇게 앞마을에 여럿 사람들

携來一簣掩風霜(휴래일궤엄풍상) 끌어와 한삼태기세월 덮어야 삼태기궤 가릴엄


貧吟(빈음) 가난을 읊음-金炳淵

盤中無肉權歸菜(반중무육권귀채) 밥상에 고기 없어 나물이 설쳐

廚中乏薪禍及籬(주중핍신화급리) 부엌에 땔감 없어 울타리 화를 부엌주

婦姑食時同器食(부고식시동기식) 며느리에 시어미 한 그릇 밥을

出門父子易衣行(출문부자역의행) 문 나서 아비 아들 옷 바꿔 다녀


宿農家(숙농가) 농가에서 묵으며-金炳淵

終日緣溪不見人(종일연계불견인) 하루 내 시내 따라 사람 아니 봬

幸尋斗屋伴江濱(행심두옥반강빈) 찾아 다행 오두막 강가에 짝해 물가빈

門塗女媧元年紙(문도여와원년지) 문 발린 복희 여와 오랜 옛 종이

房掃天皇甲子塵(방소천황갑자진) 방 쓸어 천황 지황 먼 옛적 먼지 三皇

光黑器皿虞陶出(광흑기명우도출) 검은 때깔 그릇들 요순 때 나와 虞舜 陶唐

色紅麥飯漢倉陳(색홍맥반한창진) 빛 붉은 보리밥은 한 곳집 묵혀

平明謝主登前途(평명사주등전도) 널리 밝아 물러나 앞길에 올라

若思經宵口味辛(약사경소구미신) 생각하니 밤 겪음 입맛 씁쓸해 매울신


風俗薄(풍속박) 얄팍한 풍속-金炳淵

斜陽鼓立兩柴扉(사양고립양시비) 비낀 볕 두들겨 서 두 쪽 사립문 섶시 문짝비

三彼主人手却揮(삼피주인수각휘) 세 번 저래 집임자 손으로 물려 휘두를휘

杜宇亦知風俗薄(두우역지풍속박) 두견새 또한 알아 인심 얄팍해

隔林啼送不如歸(격림제송불여귀)숲너머 울며보내 불여귀라며 돌아감 같지 않아


姜座首逐客詩(강좌수축객시) 강좌수 손님 쫓는 시-金炳淵

祠堂洞裡問祠堂(사당동리문사당) 사당동 동네 안에 사당을 물어

輔國大匡姓氏姜(보국대광성씨강)보국대광 벼슬한 성씨는강씨덧방나무보 바룰광

先祖遺風依北佛(선조유풍의북불) 할아비 남긴 기풍 북쪽의 불교

子孫愚流學西羗(자손우류학서강) 아들손자 어두워 서학을 배워 종족이름강

主窺檐下低冠角(주규첨하저관각) 주인 엿봐 처마 밑 낮은 갓 씀을 엿볼규

客立門前嘆夕陽(객립문전탄석양) 길손 서서 문 앞에 저녁볕 한숨

座首別監分外事(좌수별감분외사) 좌수라 별감이라 분수 밖에 일

騎兵步卒可當當(기병보졸가당당) 말 타고 걷는 병졸 옳아 마땅해


艱貧(간빈) 어려운 가난-金炳淵

地上有仙仙見富(지상유선선견부) 땅 위에 신선 있어 부자가 신선

人間無罪罪有貧(인간무죄죄유빈) 사람세상 죄 없어 죄라면 가난

莫道貧富別有種(막도빈부별유종) 말마라 빈자 부자 따로 씨 있어

貧者還富富還貧(빈자환부부환빈) 빈자가 부자 되고 부자 빈자로


元堂里(원당리) 원당리에서-金炳淵

晋州元堂里(진주원당리) 진주 고을에 원당 마을서

過客夕飯乞(과객석반걸) 지나는 길손 저녁밥 빌어

奴出無人云(노출무인운) 종이 나와선 사람 없다며

兒來有故曰(아래유고왈) 아이 오더니 일 났다하네

朝鮮國中初(조선국중초) 조선에 나라 다니며 처음

慶尙道內一(경상도내일) 경상도 땅에 안에서 하나

禮儀我東方(예의아동방) 예의 일컬어 우리 동방이

世上人心不(세상인심불) 세상에 아냐 사람 마음이


警世(경세) 세상에 깨우침-金炳淵

富人困富貧困貧(부인곤부빈곤빈) 부한 이 부에 괴롬 빈자 가난에

飢飽雖殊困則均(기포수수곤즉균) 주림 부름 달라도 괴로움 고루

貧富俱非吾所願(빈부구비오소원) 가난 부함 안 갖춤 내가 바란 바

願爲不富不貧人(원위불부불빈인) 바라니 아니 부자 아니 가난함


嚥乳三章(연유삼장) 젖을 빨다-金炳淵

父嚥其上婦嚥其下(보연기상부연기하) 사내 빨아 그 위를 계집 빨아 그 아래

上下不同其味則同(상하부동기미즉동) 위아래 같지 않지 그 맛이야 똑같지

父嚥其二婦嚥其一(보연기이부연기일) 사내 빨아 그 둘을 계집 빨아 그 하나

一二不同其味則同(일이부동기미즉동) 하나 둘 아니 같아 그 맛마저 똑같아

父嚥其甘婦嚥其酸(보연기감부연기산) 사내 빨아 그 단맛 계집 빨아 그 신맛

甘酸不同其味則同(감산부동기미즉동) 달고 시고 안 같아 그 맛이란 같아서


贈某女(증모녀) 어떤 여인에게-金炳淵

客枕蕭條夢不仁(객침소조몽불인) 나그네 잠 쓸쓸해 꿈도 산란해

滿天霜月照吾隣(만천상월조오린) 하늘 가득 찬 달빛 내 곁을 비춰

綠竹靑松千古節(녹죽청송천고절) 푸른 대 푸른 솔은 오랜 옛 지킴

紅桃白梨片時春(홍도백리편시춘) 붉은 복사 흰 배꽃 때는 봄날에

昭君玉骨胡地土(소군옥골호지토) 왕소군 옥의 백골 오랑캐 땅에

貴妃花容馬嵬塵(귀비화용마외진) 양귀비 꽃의 얼굴 마외에 티끌

人性本非無情物(인성본비무정물) 사람 바탕 본디 정 아닌 게 없어

莫惜今宵解汝裙(막석금소해녀군) 아낌 마오 오늘밤 치마 푼다고


贈還甲宴老人(증환갑연노인) 환갑잔치에서-金炳淵

可憐江浦望(가련강포망) 어여뻐구나 강가 바라봐 可憐江浦望(杜甫)

明沙十里連(명사십리연) 고운 모래로 십리 이어져

令人個個拾(영인개개습) 사람을 시켜 낱낱이 주어

共數父母年(공수부모년) 같이 헤리니 어버이 나이


辱說某書堂(욕설모서당)어떤서당을욕하며추운겨울재워주기를청했다내쫓겨

書堂乃早知(서당 내조지) 서당은 접때 일찍 알았지

房中皆尊物(방중 개존물) 방 가운데는 다 모실 것들

生徒諸未十(생도 제미십) 학생이라야 모두 열 안 돼

先生來不謁(선생 래불알) 선생 와봐야 뵙지를 않아


訓長(훈장) 훈장-金炳淵

世上誰云訓長好(세상수운훈장호) 세상에 누가 일러 훈장 좋다고

無煙心火自然生(무연심화자연생) 연기 없는 마음 불 절로 치밀어

曰天曰地靑春去(왈천왈지청춘거) 하늘은 땅은 하며 푸른 봄 보내

云賦云詩白髮成(운부운시백발성) 일러 부라 일러 시 흰머리 되어

雖誠難聞稱道語(수성난문칭도현) 비록 참되 못 들어 도덕 가르쳐

暫離易得是非聲(잠리이득시비성) 잠시 떠나 쉽게도 따지는 소리

掌中寶玉千金子(장중보옥천금자)손안에 보배 옥이 천금의 자식

請囑撻刑是眞情(청촉달형시진정)부디 맡겨때려서참뜻이던가부탁할촉 매질할달


嘲幼冠子(조유관자) 어려서 갓 쓴 이를 비웃어-金炳淵

畏鳶身勢隱冠蓋(외연신세은관개) 두려워 솔개 챌까 갓 덮어 숨겨

何人咳嗽吐棗仁(하인해수토조인) 어떤이기침하다 뱉은 대추씨 기침할수 토할토

若使每人皆如此(약사매인개여차) 되기를 사람마다 다 이와 같아

一腹可生五六人(일복가생오륙인) 한 배에 낳을 거라 대여섯 사람


嘲年長冠子(조연장관자) 나이 들어 갓 쓴 이를 비웃어-金炳淵

方冠長竹兩班兒(방관장죽양반아) 막 갓 써 장죽 물어 양반에 아이

新買雛書大讀之(신매추서대독지) 새로 산 맹자 책을 크게도 읽어 병아리추

白晝猴孫初出袋(백주후손초출대) 한낮 새끼 원숭이 자루 갓 나와 자루대

黃昏蛙子亂鳴池(황혼와자난명지) 어스름에 개구리 우는 못 시끌 개구리와


嘲地官(조지관) 지관을 비웃어-金炳淵

風水先生本是虛(풍수선생본시허) 풍수에 선생이라 본디 텅 비어

指南指北舌飜空(지남지북설번공) 남쪽으로 북쪽엘 혀를 헛 놀려 손가락지

靑山若有公侯地(청산약유공후지) 푸른 산에 있다면 벼슬할 땅이

何不當年葬爾翁(하불당년장이옹) 어찌 안 써 그때는 네 어른 묻어 장사지낼장


惰婦(타부) 게으른 부인-金炳淵

惰婦夜摘葉(타부야적엽) 게으른 아낙 밤에 잎을 따 딸적

纔成粥一器(재성죽일기) 겨우 끓이니 죽 한 그릇을 겨우재

廚間暗食聲(주간암식성) 부엌서 몰래 먹는 소리가 부엌주

山鳥善形容(산조선형용) 멧새가 훌훌 나는 소리라


入金剛(입금강) 금강산에 들어서-金炳淵

書爲白髮劍斜陽(서위백발검사양) 글을 해 흰머리 돼 칼 비낀 볕에

天地無窮一恨長(천지무궁일한장) 하늘땅 끝이 없어 한 하나 오래

痛飮長安紅十斗(통음장안홍십두) 하도 마셔 서울서 붉은 술 열 말

秋風簑笠入金剛(추풍사립입금강) 가을바람 삿갓 써 금강에 들어 도롱이사


雪中寒梅(설중한매) 눈 속에 추운매화-金炳淵

雪中寒梅酒傷妓(설중한매주상기) 눈 속에 추운 매화 술 쩔은 기생

風前槁柳誦經僧(풍전고류송경승) 바람 앞 마른 버들 경 외는 스님 마를고

栗花落花狵尾短(율화낙화방미단) 밤꽃은 떨어진 꽃 짧은 개 꼬리 삽살개방

柳花初生鼠耳凸(유화초생서이철) 버들 꽃이 갓 나와 볼록한 쥐 귀 볼록할철


過廣灘(과광탄) 넓은 여울을 지나며-金炳淵

幾年短杖謾徘徊(기년단장만배회) 몇해를 짧게 짚어 느릿 노닐어 속일만 노닐배

愁外鄕山夢裏回(수외향산몽리회) 시름 너머 고향 산 꿈속 떠돌아

憂國空題王粲賦(우국공제왕찬부) 나라 걱정 헛 지어 왕찬 같은 글

逢時虛老賈誼才(봉시허노가의재) 때 만나 비어 늙어 가의 재주로

風吹落葉三更急(풍취낙엽삼경급) 바람 불어 잎은 져 한밤엔 빨라

月搗寒衣萬戶催(월도한의만호최) 달 내려쫴 옷 추워 모든 집 들썩 찧을도

齷齪生涯何足歎(악착생애하족탄) 악물어 살아가니 어찌 한숨만

携杯更上鳳凰臺(휴배갱상봉황대) 잔 끌어 다시 올라 봉황대에를

왕찬과 가의는 불우했던 중국 인사


過寶林寺(과보림사) 보림사를 지나며-金炳淵

窮達在天豈易求(궁달재천기이구) 막힘 뚫림 하늘에 어찌 찾으랴

從吾所好任悠悠(종오소호임유유) 나는 따라 좋은바 멋대로 생각

家鄕北望雲千里(가향북망운천리) 고향은 북쪽 바래 구름에 천리

身勢南遊海一區(신세남유해일구) 몸 뻗혀 남쪽 놀아 바다 한쪽 땅

掃去愁城盃作箒(소거수성배작추) 쓸어내는 시름 성 잔이 빗자루 비추

釣來詩句月爲鉤(조구시구월위구) 낚으러 와 시구를 달은 갈고리 낚시조

寶林看盡龍泉又(보림간진용천우) 보림사를 다 보고 용천사를 또

物外閑跡共比丘(물외한적공비구) 물건 밖 느긋 밟음 스님과 함께

自詠(자영) 스스로 읊어-金炳淵

寒松孤店裏(한송고점리) 추운 소나무 외딴 주막 안

高臥別區人(고와별구인) 높이 누우니 다른 땅 사람

近峽雲同樂(근협운동락) 가까운 골짝 구름과 즐겨 골짜기협

臨溪鳥與隣(임계조여린) 시내 다가가 새 함께 이웃

錙銖寧荒志(치수녕황지) 조그만 것에 어찌 거친 뜻 저울눈치

詩酒自娛身(시주자오신) 시에다 술로 스스로 즐겨

得月卽帶憶(득월즉대억) 달 밝아 나서 생각을 둘러

悠悠甘夢頻(유유감몽빈) 아득해선지 단꿈이 잦아


自顧偶吟(자고우음) 스스로 돌아보며-金炳淵

笑仰蒼穹生可超(소앙창궁생가초) 쳐다봐 푸른 하늘 멀어지기만 하늘궁

回思世路更迢迢(회사세로갱초초) 돌아보니 세상길 다시 더 멀어 멀초

居貧每受家人謫(거빈매수가인적) 살기 가난 늘 받아 식구들 핀잔 귀양갈적

亂飮多逢市女嘲(난음다봉시녀조) 마구 마셔 잘 만나 주모들 놀림 비웃을조

萬事付看花散日(만사부간화산일) 모든 일 붙여 보아 꽃 흩을 날이 줄부

一生占得明月宵(일생점득명월소) 한 삶에 지켰으니 밝은 달 밤이

世應身業斯而已(세응신업사이이) 세상 맞춰 이 몸 일 이것뿐이라

漸覺靑雲分外遙(점각청운분외요) 차츰 깨쳐 벼슬 꿈 멀어 분수 밖


嶺南述懷(영남술회) 영남에서 품음을 말해-金炳淵

超超獨倚望鄕臺(초초독의망향대) 넘고 넘어 홀로 기대 망향대에서

强壓羈愁快眼開(강압기수쾌안개) 억지 눌린 떠돈 시름 눈 떠니 말끔

與月經營觀海去(여월경영관해거) 달 더불어 꾸리려 바다 보러가

乘花消息入山來(승화소식입산래) 꽃 따라 소식 들어 산에 들어와

長遊宇宙餘雙屐(장유우주여쌍극) 오래 돌아 온 누리 신 한 짝 남아 나막신극

盡數英雄又一杯(진수영웅우일배) 다한 팔자 영웅은 또 한잔 술을

南國風光非我土(남국풍과비아토) 남쪽나라 바람 볕 아닌 내 고향

不如歸對漢濱梅(불여귀대한빈매) 안 같아 가서 맞는 한강 가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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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史 金正喜 시 모음

1786 元春 秋史 金正喜(17861856) 慶州 阮堂集


秋牧丹(추모란) 가을모란(국화)-金正喜

紅紫年年迭變更(홍자년년질변경) 울긋불긋 해마다 번갈아 바꿔

牧丹之葉菊之英(모란지엽국지영) 모란 잎에 국화의 꽃봉오리라

秋來富貴無如汝(추래부귀무여여) 가을 오니 부귀로 너 같음 없어

橫冒東籬處士名(횡모동리처사명) 동쪽 울에 있다고 머문 선비라

국화: 東籬君子 傲霜孤節


重陽黃菊(중양황국) 중양절 노란국화-金正喜

黃菊蓓蕾初地禪(황국배뢰초지선) 노란 국화 꽃부리 첫 땅의 좌선

風雨籬邊託靜緣(풍우리변탁정연) 비바람 울타리 곁 고요한 까닭

供養詩人須末後(공양시인수말후) 시인을 이바지해 맨 끝에 나중

襍花百億任渠先(잡화백억임거선) 온갖 꽃 백억 속에 먼저 꼽아야


雪夜偶吟(설야우음) 눈 내리는 밤에-金正喜

酒綠燈靑老屋中(주록등청노옥중) 술 맑고 등불 밝아 낡은 집 안에

水仙花發玉玲瓏(수선화발옥영롱) 수선화가 피어서 옥으로 아롱

尋常雪意多關涉(심상설의다관섭) 늘 찾는 흰 눈 뜻에 많은 뜻함이

詩境空濛畫境同(시경공몽화경동) 시 세계 흐릿한데 그림도 같아


驟雨(취우) 소나기-金正喜

樹樹薰風葉欲齊(수수훈풍엽욕제) 나무마다 더운 바람 잎들 늘리려

正濃黑雨數峯西(정농흑우수봉서) 마침 짙어 먹구름이 몇몇 봉 서쪽

小蛙一種靑於艾(소와일종청어애) 한 조그만 청개구리 쑥보다 파래

跳上蕉梢效鵲啼(도상초초효작제) 뛰어 올라 파초 끝에 까치 울음을


鷄鳴(계명) 닭 울음-金正喜

年少鷄鳴方就枕(년소계명방취침) 젊어선 닭 울어야 잠자리 들어

老年枕上待鷄鳴(노년침상대계명) 늙으니 베개 베고 닭 울음 들어

轉頭三十餘年事(전두삼십여년사) 돌아보니 서른 해 남짓한 일들

不道銷磨只數聲(부도소마지수성) 말 안 해 녹아 닳아 다만 몇 소리

 

二樂樓(이락루) 이락루-金正喜

紅樓斜日拜三字(홍루사일배삼자) 붉은 루에 지는 해 세 글자 뵙네

二百年中無此君(이백년중무차군) 이백 년 가운데에 이런 글 없어

想見當時洗硯處(상견당시세연처) 그때를 생각하니 벼루 씻던 곳

古香浮動一溪雲(고향부동일계운) 옛 향기 떠서 돌아 시내 한 구름


午睡1(오수1) 낮잠-金正喜

一枕輕安趁晩涼(일침경안진만량) 한 숨 잠 느긋하여 서늘 해 졌네

眼中靈境妙圓光(안중령경묘원광) 눈 안의 신령 경지 묘한 둥근 빛

誰知夢覺元無二(수지몽각원무이) 누가 알까 꿈 생시 둘이 아닌 걸

蝴蝶來時日正長(호접래시일정장) 나비 날아 다닐 땐 해도 참 길어


午睡2(오수2) 낮잠-金正喜

苽花離落粟風涼(고화리락속풍량) 오이꽃 똑 떨어져 들바람 서늘

住在玲瓏怳惚光(주재영롱황홀광) 아른아른 집 있어 흐릿한 빛에

富貴神仙饒一轉(부귀신선요일전) 부귀라 신선이라 한 번 넉넉해

炊煙漫敎枕頭長(취연만교침두장) 불 땐 연기 퍼뜨려 잠만 늘게 해

午睡3(오수3) 낮잠-金正喜


松風分外占恩涼(송풍분외점은량) 솔바람 생각 밖에 고맙게 서늘

攝轉葡萄現在光(섭전포도현재광) 끌어 옮긴 포도는 이젠 빛깔 나

特地家鄕成尺咫(특지가향성척지) 내세울 땅 내 고향 가까이 두니

靑山一髮未曾長(청산일발미증장) 푸른 산 한 자락은 멀지도 않아


立秋(입추) 입추 양력 87일경-金正喜

野情老去最宜秋(야정노거최의추) 들에 뜻 늙어 가니 가을이 좋아

冷逕蓬蒿少熱流(냉경봉호소열류) 찬 오솔길 다북쑥 열 흘러 식어

卽看曳履歌商處(즉간예리가상처) 신 끌고 나가보니 노래 슬픈 곳

已放唫蟬出一頭(이방금선출일두) 이미 매미 목 놓아 한 마리 노래


題村舍壁(제촌사벽) 시골집 벽에-金正喜

禿柳一株屋數椽(독류일주옥수연) 잎 떨어진 한 버들 몇몇 서까래

翁婆白髮兩蕭然(옹파백발양소연) 할아버지 할머니 둘 다 쓸쓸해

未過三尺溪邊路(미과삼척계변로) 아니 넘는 세 자에 시냇가 길에

玉薥西風七十年(옥촉서풍칠십년) 옥 접시꽃 서풍에 일흔 해 살아 촉규화촉


送紫霞入燕1(송자하입연1) 자하를 연경에 보내며-金正喜

墨雲一縷東溟外(묵운일루동명외) 먹구름 한 오라기 동쪽바다 밖 실루

秋月輪連臘雪明(추월륜련랍설명) 가을 달 둘러 이어 섣달 눈 밝아

聞證蘇齋詩夢偈(문증소재시몽게) 들어 알려 소재에 시의 꿈 게송

苔岑風味本同情(태잠풍미본동정) 이끼 봉 멋스런 맛 본디 같은 정


送紫霞入燕2(송자하입연2) 자하를 연경에 보내며-金正喜

漢學商量兼宋學(한학상량겸송학) 한학을 헤아리고 송학 아울러 訓詁學性理學

崇深元不露峯尖(숭심원불로봉첨) 높고 깊어 뾰족 봉 아니 드러내

已分儀禮徵今古(이분의예징금고) 이미 나눈 의례에 옛 이제 불러 考證學

更證春秋杜歷添(갱증춘추두력첨) 다시 알려 춘추를 막힘 지나와


送紫霞入燕3(송자하입연3) 자하를 연경에 보내며-金正喜

混侖元氣唐沿晉(혼륜원기당연진) 섞여진 으뜸 기운 당이 따른 진

篆勢蒼茫到筆尖(전세창망도필첨) 반듯한 힘 아득히 붓 끝에 옮겨

邕塔嵩陽拈一義(옹탑숭양념일의) 탑을 둘러 높인 양 한 옳음 집어

都從稧帖瓣香添(도종계첩판향첨) 모두 좇은 난정첩 꽃잎 향더해 王羲之蘭亭叙


送紫霞入燕4(송자하입연4) 자하를 연경에 보내며-金正喜

詩境軒中風雨驚(시경헌중풍우경) 시경헌 집 가운데 비바람 놀라 옹방강

南窓埽破鳳凰翎(남창소파봉황령) 남쪽 창가 쓸어 깨 봉황 깃털을 남창보죽도

江秋史去留完璧(강추사거유완벽) 강추사가 떠나니 완벽첩 남겨 姜德量

黃小松來搨石經(황소송래탑석경) 황소송이 찾아 와 석경을 베껴 황이 拓本


送紫霞入燕5(송자하입연5) 자하를 연경에 보내며-金正喜

樓前山日澹餘紅(루전산일담여홍) 누대 앞 산에 해는 묽어도 붉어

快雪粉箋說異同(쾌설분전설이동) 기쁜 눈 가루찌지 같고 다름 말

萬里許君靑眼在(만리허군청안재) 만 리 멂 그대 맡겨 반김이 있어

曾於扇底覓春風(증어선저멱춘풍) 일찍이 부채바닥 봄바람 찾아


送紫霞入燕6(송자하입연6) 자하를 연경에 보내며-金正喜

百摹雨雪摠塵塵(백모우설총진진) 백 번 베낀 비눈 시 모두가 티끌

又一九霞洞裏春(우일구하동리춘) 또 하나 아홉 노을 골짝 속 봄이

顴右誌傳松下供(권우지전송하공) 권우지 책을 전해 솔 아래 바쳐 광대뼈권

何如子固硏圖人(하여자고연도인) 어떠한지 조자고 벼루 그린 이


送紫霞入燕7(송자하입연7) 자하를 연경에 보내며-金正喜

東坡石銚今猶在(동파석요금유재) 소동파의 돌 냄비 이제껏 있어 쟁개비요

圖壓蘇齋書畫船(도압소재서화선) 그림 눌린 소식 집 글 그림의 배

淮泗道中明月影(회사도중명월영) 회수사수 길에서 밝은 달 그늘

松風夢罷尙涓涓(송풍몽파상연연) 솔바람에 꿈을 깨 아직도 아련 시내연


送紫霞入燕8(송자하입연8) 자하를 연경에 보내며-金正喜

三百年來無此翁(삼백년래무차옹) 삼백 년이 오면서 이런이없어 陸游 300

石帆亭上聞宗風(석범정상문종풍) 석범정 정자 위에 으뜸 풍 들어 王士禎

團成八月生辰日(단성팔월생신일) 둘러 앉아 팔월에 생일날이라

祝嘏碧雲紅樹中(축하벽운홍수중) 복 빌어 푸른 구름 붉은 나무 속 클하


送紫霞入燕9(송자하입연9) 자하를 연경에 보내며-金正喜

自從實際覰精魂(자종실제처정혼) 채움에서 가 까지 알과 얼 엿봐 엿볼처

底事滄浪禪理論(저사창랑선리론) 바닥 일 푸른 물결 선 이치 따져

一世異才收勿騁(일세이재수물빙) 한 세상 다른 재주 거둠 막 마라 달릴빙

十年浮氣掃無痕(십년부기소무흔) 십 년을 뜬 기운에 쓸어 안 남겨


送紫霞入燕10(송자하입연10) 자하를 연경에 보내며-金正喜

唐碑宋槧萃英華(당비송참췌영화) 당 비석 송 현판에 모인 빛난 글 판참 모일췌

漢畫尤堪對客誇(한화우감대객과) 한 그림 더욱 빼나 손님에 자랑

拱璧河圖曾過眼(공벽하도증과안) 아름 큰 옥 하도는 진작 눈 스쳐 河圖洛書

雪鴻怊悵篆留沙(설홍초창전류사) 눈 기러기 서글퍼 모래 위 글자 篆字


題草衣佛國寺詩後(제초의불국사시후) 제 초의 불국사 시 후-金正喜

蓮地寶塔法興年(연지보탑법흥년) 연꽃 땅 다보탑은 법흥 임금 해

禪榻花風一惘然(선탑화풍일망연) 선방 의자 꽃바람 한번 아련해 멍할망

可是羚羊掛角處(가시령양괘각처) 옳다 여긴 영양이 뿔 걸어 둔데 걸괘

誰將怪石注淸泉(수장괴석주청천) 누가 장차 야릇 돌 맑은 샘 물대 물댈주


題澹菊軒詩後(제담국헌시후) 제 담국헌 시 후-金正喜

卄四品中澹菊如(입사품중담국여) 이십사 품 가운데 담담함 국화

人功神力兩相於(인공신력량상어) 사람 공에 신의 힘 서로 둘 여기

墨緣海外全收取(묵연해외전수취) 먹으로 돼 바다 밖 모두다 거둬

讀遍君家姊妹書(독편군가자매서) 읽어 두루 그대 집 자매의 글을


寄上淵泉丈(기상연천장) 기상 연천 장-金正喜

萬壑千峯悵獨遊(만학천봉창독유) 만 골짝 천 봉우리 슬피 혼자 가

白雲一抹夢中秋(백운일말몽중추) 흰 구름 한번 스쳐 꿈속에 가을

若於此境甘枯寂(약어차경감고적) 이와 같은 땅이면 고요를 즐겨

還敎人人羨八州(환교인인선팔주) 도리어 사람마다 팔주 부럽게


重興寺次黃山1(중흥사차황산1) 중흥사 차 황산-金正喜

上方明月下方燈(상방명월하방등) 위로는 밝은 달이 아래론 등불

法界應須不已登(법계응수불이등) 법계란 모름지기 안 그쳐 올라

鍾鼎雲林非二事(종정운림비이사) 청동그릇 구름 숲 아니 다른 일

名山空自與殘僧(명산공자여잔승) 이름난 산 하늘만 남은 중 함께


重興寺次黃山2(중흥사차황산2) 중흥사 차 황산-金正喜

十年筇屐每同君(십년공극매동군) 십년을 짚어 걸어 늘 그대 함께 나막신극

衣上留殘幾朶雲(의상류잔기타운) 옷 위에 배어남아 몇 떨기 구름 늘어질타

吾輩果無諸漏未(오배과무제루미) 우리들 과연 없어 모든 틈 아니

空山風雨只聲聞(공산풍우지성문) 빈산에 비바람이 소리만 들려


送鍾城使君1(송종성사군1) 송 종성 사군-金正喜

秋風送客出邊頭(추풍송객출변두) 가을바람 보낸 손 변방을 나서

蓋馬山光着遠愁(개마산광착원수) 개마산에 산 빛은 먼 시름 어려

天上玉堂回首處(천상옥당회수처) 하늘 위에 옥당은 고개 돌린 곳

雙旌應過幘溝婁(쌍정응과책구루) 깃발 둘 마침 지나 책구루 땅을 건책


送鍾城使君2(송종성사군2) 송 종성 사군-金正喜

苔篆剝殘漫古墟(태전박잔만고허) 이끼 글자 부서져 흩어진 옛 터 벗길박

高麗之境問何如(고려지경문하여) 고려 땅의 테두리 물어 어딘지

尋常石砮行人得(심상석노행인득) 예사로 돌화살촉 길 가다 주워 돌살촉노

此是周庭舊貢餘(차시주정구공여) 이게 바로 주나라 옛 공물 남아 바칠공


題羅兩峯梅花幀(제라양봉매화정) 제 라 양봉 매화 정-金正喜

朱草林中綠玉枝(주초림중록옥지) 붉은 풀이 숲 속에 푸른 옥 가지

三生舊夢證花之(삼생구몽증화지) 삼생에의 옛 꿈을 꽃피워 밝혀

應知霧夕相思甚(응지무석상사심) 알아야 안개 저녁 그리움 너무

惆悵蘇齋畫扇時(추창소재화선시) 서글퍼서 소재에 부채 그린 때


玉美人(옥미인) 옥미인-金正喜

裁玉方能敎性眞(재옥방능교성진) 옥 다듬어 반듯함 바탕 참되게

美人强得艶情勻(미인강득염정균) 고운 이 억지로 대 고운 맘 흩어 적을균

恰如五色羅浮蝶(흡여오색라부접) 같은 듯 다섯 빛깔 비단 뜬 나비마치흡나비접

放繭今朝滿院春(방견금조만원춘) 고치 뚫은 이 아침 집 가득 봄날 고치견


奉寧寺題示堯仙(봉령사제시요선) 봉령사 제 시요선-金正喜

野寺平圓別一區(야사평원별일구) 들에 절 널리 동글 달리 한 나눔

遙山都是佛頭無(요산도시불두무) 멀리 산 모두 이리 불두란 없어

虎兒筆力飛來遠(호아필력비래원) 송나라 호아 필력 멀리 날아와

淸曉圖成失舊樵(청효도성실구초) 청효도 그림 이뤄 옛 초동 잃어

米友仁(1072~1151)宋太原사람米芾의아들초명伊仁元暉懶拙老人小名虎兒


戲題示優曇 曇方踝腫(희제시우담 담방과종) 희제시우담 담방과종-金正喜

抹却毗邪示疾圖(말각비사시질도) 지워 없애 비야를 병 그림 보여

佛瘡祖病一都盧(불창조병일도로) 부처 종기 조상 병 하나로 돌림

法華藥草還鈍劣(법화약초환둔렬) 법화의 약초 풀에 무딘 못함이

不是藥者採來無(불시약자채래무) 이 아니 약 캐는 이 약 캐옴 없어


用元曉故事曇病在腨又戲續示曇(용원효고사담병재천우희속시담)-金正喜

四百四病無是病(사백사병무시병) 사백네 개 병에도 이런 병 없어

八十毒草無渠藥(팔십독초무거약) 여든 가지 독초에 저런 약 없어

可是今日拭瘡紙(가시금일식창지) 옳다하니 오늘날 닦아낸 종이 닦을식

金剛三昧經的的(금강삼매경적적) 금강의 삼매경이 뚜렷이 적혀


戲贈晩虛(희증만허) 희 증 만허-金正喜

涅槃魔說送驢年(열반마설송려년) 열반은 얄궂은 말 없는 해 보내

只貴於師眼正禪(지귀어사안정선) 다만 높여 스님께 눈에 바른 선

茶事更兼叅學事(차사갱겸참학사) 차의 일 다시 함께 배움의 일에

勸人人喫塔光圓(권인인끽탑광원) 남에 권해 남 마셔 둥근 탑의 빛


戲次兒輩喜雨(희차아배희우) 희 차 아배 희우-金正喜

村橋呑漲汎村流(촌교탄창범촌류) 마을다리 삼키고 마을로 흘러

上下濃靑處處柔(상하농청처처유) 위아래 짙고 푸름 곳곳 부드럼

太守力能廻野色(태수력능회야색) 원님이 힘을 써서 들 빛깔 돌려

婆娑數樹効神休(파사수수효신휴) 파사세계 몇 나무 신의 멋 보여


卽事(즉사) 바로지어-金正喜

日見過橋幾百人(일견과교기백인) 날로 봬 다리 지나 몇 백 사람이

何曾橋力減橋身(하증교력감교신) 어찌 일찍 다리 힘 다리 키 줄어

丁之畚土添橋者(정지분토첨교자) 장정에 흙 삼태기 다리 붓는 이

荒落山川報政新(황락산천보정신) 거쳐 흩인 산과 내 새 정치 알려


蕙百將歸病懷甚無憀取其袖中舊白毫書贈(혜백장귀병회심무료취기수중구백호서증)-金正喜

山川時雨兩笻晴(산천시우양공청) 산과 내 때 맞은 비 갠 지팡이 둘

五色毫光漫去程(오색호광만거정) 오색에 가는 털 빛 가는 길 넘쳐

料得世間無熱處(요득세간무열처) 헤어보니 세상엔 더운 곳 없어

一千里洽萬蟬聲(일천리흡만선성) 천리 길 넉넉 적셔 만 마리 매미


戲贈吳大山昌烈(희증오대산창렬) 희증 대산 오창렬-金正喜

未窺一字岐軒書(미규일자기헌서) 아니 엿봐 한 글자 기헌의 책을

白喫人間酒麵猪(백끽인간주면저) 하도 먹어 세상에 술 국수 돼지

慾速他年地獄罰(욕속타년지옥벌) 빨리 가랴 다른 해 지옥에 벌로

陽陽跨馬又騎驢(양양과마우기려) 버젓이 말을 걸터 또한 나귀 타


雪霽窓明書鐵虯扇(설제창명서철규선) 설제창명서철규선-金正喜

雪後烘晴暖似還(설후홍청난사환) 눈 뒤에 볕 나 개여 따뜻함 돌아 횃불홍

夕陽漫漫小窓間(석양만만소창간) 저녁볕 넘쳐 흩여 작은 창 사이

稻堆庭畔高於塔(도퇴정반고어탑) 볏가리 뜨락 두둑 탑보다 높아

直對西南佛鬘山(직대서남불만산) 바로 마주 서남쪽 불만산으로 머리장식만


戲贈浿妓竹香1(희증패기죽향1) 희증 패기 죽향-金正喜

日竹亭亭一捻香(일죽정정일념향) 햇빛에 대 꼿꼿해 꼬인 향 하나 비틀념

歌聲抽出綠心長(가성추출록심장) 노랫소리 뽑아선 푸른 맘 길어

衙蜂欲覓偸花約(아봉욕멱투화약) 관아 벌을 찾으려 꽃 맺음 훔쳐 마을아

高節那能有別腸(고절나능유별장) 높은 뜻 어찌하나 딴 속내 있어


戲贈浿妓竹香2(희증패기죽향2) 희증 패기 죽향-金正喜

鴛鴦七十二紛紛(원앙칠십이분분) 원앙새 일흔둘에 어지러워서

畢竟何人是紫雲(필경하인시자운) 마침내 어떤 사람 바로 자운이

試看西京新太守(시간서경신태수) 보자꾸나 서경에 새로 온 원님

風流狼藉舊司勳(풍류낭자구사훈) 바람흐름 흥건해 옛날 맡은 공


咏棋(영기) 바둑-金正喜

局面南風冷暖情(국면남풍냉난정) 벌인 판에 남풍은 차고 따신 뜻

古松流水任縱橫(고송류수임종횡) 옛 솔에 흐르는 물 내맡긴 종횡

蓬萊淸淺非高着(봉래청천비고착) 봉래 산 맑아 얕아 아니 높아서

橘裏丁丁鶴夢輕(귤리정정학몽경) 귤 속에 딱딱거림 학 꿈 가벼워


看山(간산) 산을 보며-金正喜

山與大癡寫意同(산여대치사의동) 산 함께 큰 어리숙 베낀 뜻 같아

匡廬詩偈杳難窮(광려시게묘난궁) 광산의 시 게송에 깊이 다 못해

都無冬夏靑蒼氣(도무동하청창기) 다 없어 겨울 여름 푸르른 기운

陡壑脩林一樣紅(두학수림일양홍) 험한 골짝 뻗은 숲 하나로 붉어 험할두


庭草(정초) 뜰에 풀-金正喜

一一屐痕昨見經(일일극흔작견경) 낱낱이 신발자국 어제 지난 것 나막신극

蒙茸旋復被階庭(몽용선복피계정) 덥수룩 돌아 다시 섬돌 뜰 덮어

機鋒最有春風巧(기봉최유춘풍교) 뾰족 풀끝 꼭 있어 봄바람 예쁨

纔抹紅過又點靑(재말홍과우점청) 겨우 발라 붉게 해 또 푸름 찍어


上仙巖(상선암) 선암에 올라-金正喜

行行路轉峯廻處(행행로전봉회처) 걷고 걸어 길 돌아 봉우리 돌아

一道淸泉天上來(일도청천천상래) 길 하나 맑은 샘물 하늘 위 올라

縱使有方能出世(종사유방능출세) 놓아 시켜 길 있어 세상 내놓아

異時歸海亦蓬萊(이시귀해역봉래) 다른 때 바다 돌려 또한 봉래 섬


村舍(촌사) 시골 집-金正喜

數朶鷄冠醬瓿東(수타계관장부동) 몇 떨기 맨드라미 장독대 동쪽 단지부

南瓜蔓碧上牛宮(남과만벽상우궁) 호박 넝쿨 파랗게 외양간 위로

三家村裏徵花事(삼가촌리징화사) 집 셋에 마을 안에 불러 꽃 일을

開到戎葵一丈紅(개도융규일장홍) 활짝 핀 접시꽃에 한 길을 붉어


題泛槎圖(제범사도) 제 범사도-金正喜

秋靜天門兩扇開(추정천문양선개) 가을 고요 하늘 문 두 짝이 열려

千年又見一槎來(천년우견일사래) 천년에 또한 보니 뗏목 하나 와

女牛莫敎無端犯(여우막교무단범) 직녀 견우 하겐 마 무단히 해침

此老新從五嶽回(차로신종오악회) 이 늙은이 새로이 오악을 돌아


玉筍峯(옥순봉) 옥순봉-金正喜

照映空江月一丸(조영공강월일환) 비쳐오는 빈 강엔 달이 둥글어

如聞萬籟起蒼寒(여문만뢰기창한) 들리는 듯 온 울림 푸른 물 일어

人間艸木元閒漫(인간초목원한만) 사람세상 풀 나무 원래 느긋해

不學芙蓉與牧丹(불학부용여목단) 아니 배워 연꽃은 모란 더불어


隱仙臺(은선대) 은선대-金正喜

黃葉空山打角巾(황엽공산타각건) 누른 잎이 빈산에 각건을 때려

長歌何處采芝人(장가하처채지인) 긴 노래는 어딘지 지초 캐는 이

鞭鸞駕鶴還多事(편란가학환다사) 난새 몰아 학을 타 되레 많은 일

旣是神仙又隱淪(기시신선우은륜) 이미 이리 신선에 또 숨어 빠져


詠雨1(영우1) -金正喜

入雨山光翠合圍(입우산광취합위) 빗발 든 산에 빛은 푸름에 에워

桃花風送帆風歸(도화풍송범풍귀) 복사꽃 바람 보내 돛 바람 돌려

春鴻程路無遮礙(춘홍정로무차애) 봄 기러기 갈 길엔 거리낌 없어 거리낄애

纔見南來又北飛(재견남래우북비) 겨우 보니 남쪽 와 또 북을 날아


詠雨2(영우2) -金正喜

時雨山川破久慳(시우산천파구간) 때에 비에 산과 내 오랜 아낌 깨 아낄간

東風力斡曉雲還(동풍력알효운환) 봄바람 힘껏 돌려 새벽구름 껴 관리할알

一絲一點皆膏澤(일사일점개고택) 한 오라기 한 방울 다 기름진 윤

草木心情恰解顔(초목심정흡해안) 풀 나무에 마음 뜻 얼굴을 편 듯


詠雨3(영우3) -金正喜

春雨冥濛夕掩關(춘우명몽석엄관) 봄비에 어둑 흐릿 저녁 닫힌 문

一犁田水想潺湲(일리전수상잔원) 쟁기 하나 논에 물 졸졸 흐르지 물흐를원

任他笑吠黎家路(임타소폐려가로) 남이야 웃던 짖던 시골집 길에 검을려

坡老當年戴笠還(파로당년대립환) 고개 노인 그 나이 삿갓 쓰고 와 일대


喚風亭(환풍정) 환풍정-金正喜

喚風亭接望洋臺(환풍정접망양대) 환풍정 정자 붙어 망양대 대와

俯見紅毛帆影來(부견홍모범영래) 굽어보니 붉은 털 돛 그림자 와

眼界商量容一吸(안계상량용일흡) 눈에 들어 헤아려 한 번에 마셔 숨들이쉴흡

兩丸出入掌中杯(양환출입장중배) 두 알맹이 나들어 손 안에 술잔 해와 달


秋日晩興1(추일만흥1) 가을날 늦은 흥-金正喜

稻黃蟹紫過京裏(도황해자과경리) 벼 누레 게는 붉어 서울서 지내

秋興無端鴈(추흥무단안) 가을 흥 끝이 없어 기러기 물가

最是漁亭垂釣處(최시어정수조처) 이 가장 고기 누각 낚시 늘인 곳

任放沙禽自在眠(임방사금자재면) 놓여날다 모래 새 절로 둬 졸아


秋日晩興2(추일만흥2) 가을날 늦은 흥-金正喜

銀河當屋柳旗斜(은하당옥류기사) 은하수 지붕 맞춰 버들 기 비껴

喜事明朝占燭華(희사명조점촉화) 기쁜 일 밝을 아침 촛불 빛 점쳐

佳客來時多酒食(가객래시다주식) 좋은 손님 오실 때 술에 밥 많아

夜光生白吉祥家(야광생백길상가) 밤에 빛 희게 비쳐 상서로운 집


秋日晩興3(추일만흥3) 가을날 늦은 흥-金正喜

碧花無數出堦頭(벽화무수출계두) 푸른 꽃 셀 수 없이 섬돌에 돋아 섬돌계

占斷山家第一秋(점단산가제일추) 지켜 끊어 산에 집 가을이 으뜸

榴後菊前容續玩(류후국전용속완) 석류 뒤에 국화 앞 놀 거리 이어

壯元紅是竝風流(장원홍시병풍류) 장원홍 이리 붉어 풍류 아울러


鵲巢(작소) 까치집-金正喜

喜鵲喳喳繞屋茆(희작사사요옥묘) 기쁜 까치 까악깍 띠 집을 둘러 순채묘

窓南直對一丸巢(창남직대일환소) 창 남쪽 곧장 마주 한 둥근 둥지

新來不唾靑城地(신래불타청성지) 새로 와 침 못 뱉어 푸른 성 땅에 침타

透頂恩光敢自抛(투정은광감자포) 꼭대기 베풂의 빛 제 어찌 던져 던질포


涵碧樓(함벽루) 함벽루-金正喜

綠蕪鶴脚白雲橫(녹무학각백운횡) 거친 푸름 학 다리 흰 구름 비껴

取次江光照眼明(취차강광조안명) 이어 보니 강물 빛 비춰 눈부셔

自愛此行如讀畫(자애차행여독화) 절로 아껴 이 걸음 그림 읽듯이

孤亭風雨卷頭生(고정풍우권두생) 외론 정자 비바람 책머리 일어


南窟(남굴) 남굴-金正喜

千秋幽怪歎燃犀(천추유괴탄연서) 천 년을 숨은 괴물 물소 불태워

肅肅靈風吹暗溪(숙숙령풍취암계) 쓸쓸한 신령바람 어둔 내 불어

彈指龍蛇皆化石(탄지룡사개화석) 퉁기니 용과 뱀을 모두 돌이 돼

燈光猶作紫虹霓(등광유작자홍예) 등 불빛 외려 지어 보라 무지개 무지개홍예


寄野雲居士(기야운거사) 기 야운 거사-金正喜

古木寒鴉客到時(고목한아객도시) 옛 나무 찬 까마귀 손님 닿을 때

詩情借與畫情移(시정차여화정이) 시의 뜻 빌려주어 그림 뜻 옮아

煙雲供養知無盡(연운공양지무진) 안개구름 먹느라 다 못함 알아

笏外秋光滿硯池(홀외추광만연지) 홀 밖의 가을빛깔 벼루에 가득


甁花(병화) 꽃병의 꽃-金正喜

安排畫意盡名花(안배화의진명화) 잘 꽂으니 그림 뜻 이름 다한 꽃

五百年瓷秘色誇(오백년자비색과) 오백년 된 도자기 푸른빛 자랑 靑瓷 翡色

香澤不敎容易改(향택불교용이개) 향기 광택 안 되지 쉽사리 고쳐

世間風雨詎相加(세간풍우거상가) 세상 속에 비바람 어찌 서로다 어찌거


松京道中(송경도중) 송경도중-金正喜

山山紫翠幾書堂(산산자취기서당) 산마다 울긋불긋 서당이 몇이

籬落勾連碧澗長(리락구련벽간장) 울타리 굽어 이어 푸른 내 길어 굽을구

野笠卷風林雨散(야립권풍림우산) 들 삿갓 바람 날려 숲에 비 흩여

人蔘花發一村香(인삼화발일촌향) 인삼에 꽃 피어나 한 마을 향기


水雲亭(수운정) 수운정-金正喜

秋雨濛濛鶴氣橫(추우몽몽학기횡) 가을비 추적추적 학 기운 비껴

松針石脈滿山明(송침석맥만산명) 솔잎에 돌 더미로 산 가득 밝아

試從一笠亭中看(시종일립정중간) 따라가 봐 한 삿갓 정자에서 봐

環珮泠泠樹頂生(환패령령수정생) 패물 차 떨렁떨렁 나무 끝 울려 깨우칠령


舍人巖(사인암) 사인함-金正喜

怪底靑天降畫圖(괴저청천강화도) 다른 밑 푸른 하늘 그림에 내려

俗情凡韻一毫無(속정범운일호무) 속된 정 고만한 운 털 하나 없어

人間五色元閒漫(인간오색원한만) 사람에 다섯 빛깔 본디 흩어져

格外淋漓施碧朱(격외림리시벽주) 틀 밖에 질펀 스며 붉고 푸르게 물뿌릴림 스


龜潭(구담) 구담-金正喜

石怪如龜下碧漣(석괴여구하벽련) 돌 야릇 거북 같아 푸른 물 내려 물놀이련

噴波成雨白連天(분파성우백련천) 물결 뿜어 비 지어 흰 이음 하늘

衆峯皆作芙蓉色(중봉개작부용색) 뭇 봉우리 다 되니 부용 빛깔이

一笑看來似小錢(일소간래사소전) 한번 웃어 보며 와 엽전 같아서


石門(석문) 돌문-金正喜

百尺石霓開曲灣(백척석예개곡만) 백 척의 돌 무지개 물굽이 열어 무지개예

神工千缺杳難攀(신공천결묘난반) 신의 재주 다 빠져 멀어 못 잡아

不敎車馬通來跡(부교거마통래적) 안 시킨 수레에 말 오고간 자국

只有煙霞自往還(지유연하자왕환) 다만 있어 안개 놀 절로 가고와


島潭(도담) 도담-金正喜

徒聞海外有三山(도문해외유삼산) 듣기론 바다 밖에 삼신산 있어

何處飛來學佛鬟(하처비래학불환) 어디서 날아와서 부처를 배워 쪽찐머리환

格韻比人仙骨在(격운비인선골재) 틀 잡힌 멋 사람에 신선 뼈대라

恰如中散住塵寰(흡여중산주진환) 같기는 모여 흩여 티끌에 살아 기내환


紫霞洞(자하동) 자하동-金正喜

小谿幽洞自層層(소계유동자층층) 작은 시내 깊은 골 스스로 겹겹

一道名泉雨後勝(일도명천우후승) 길 하나 이름난 샘 비 온 뒤 빼나

夕照近人松籟起(석조근인송뢰기) 저녁 비춤 다가와 솔바람 일어 세구멍퉁소뢰

老身石上聽泠泠(노신석상청령령) 늙은 몸에 바위 위 깨우침 들어 깨우칠령


初涼(초량) 처음 서늘함-金正喜

楞楞山出瘦靑意(릉릉산출수청의) 모가 난 산은 솟아 여윈 푸른 뜻 모릉

瑟瑟波明經縠流(슬슬파명경곡류) 쓸쓸히 물결 밝아 깁 주름 흘러 주름비단곡

的的遙天孤夢直(적적요천고몽직) 또렷또렷 먼 하늘 외론 꿈 곧아

頭頭露地百蟲秋(두두로지백충추) 여기저기 이슬 땅 온 가을벌레


義林池(의림지) 의림지-金正喜

濃抹秋山似畫眉(농말추산사화미) 짙게 바른 가을 산 그린 눈썹이

圓潭平布碧琉璃(원담평포벽류리) 둥근 못 널리 깔려 푸른 유리로

如將小大論齊物(여장소대론제물) 같다하랴 작고 큼 제물론 따져

直道硯山環墨池(직도연산환묵지) 바로 말해 벼루 산 먹물 못 둘러


下仙巖(하선암) 하선암-金正喜

陰陰脩壑似長廊(음음수학사장랑) 그늘져 뻗은 골짝 마치 긴 행랑

流水浮廻日月光(유수부회일월광) 흐르는 물 떠돌아 해와 달 빛에

一點緇塵渾不着(일점치진혼불착) 점 하나 검은 먼지 하나 안 붙어 검은비단치

白雲深處欲焚香(백운심처욕분향) 흰 구름 깊은 곳에 향을 사르려


仙遊洞(선유동) 선유동-金正喜

碧雲零落作秋陰(벽운령락작추음) 푸른 구름 흩어져 가을그늘을

唯有飛泉灑石林(유유비천쇄석림) 오직 있어 샘 날려 돌 숲에 뿌려 뿌릴쇄

一自吹簫人去後(일자취소인거후) 저만 쭉 퉁소 불던 사람 떠난 뒤

桂花香冷到如今(계화향랭도여금) 계수 꽃 향기 차게 오늘에 닿아


果寓村舍(과우촌사) 과우촌사-金正喜

寒女縣西擁病居(한여현서옹병거) 한녀라 고을 서쪽 병 끼고 살아

溪聲徹夜甚淸虛(계성철야심청허) 시내 소리 밤새며 너무나 맑아

羸牛劣馬橋前路(리우렬마교전로) 여윈 소 못한 말은 다리 앞 길에

畫科蒼茫也屬渠(화과창망야속거) 그릴 것 푸름 아득 도랑에 붙어

兩山靑綠夾晴開(양산청록협청개) 양쪽 산 푸릇푸릇 개여 열린 틈

村氣泥醺盡野獃(촌기니훈진야애) 마을 기운 무더워 들이 다 흐릿 못생길애

不覺平生牛後耻(불각평생우후치) 못 깨달아 한 삶에 소 뒤 부끄럼 소몰이

城中日日販柴廻(성중일일판시회) 성 가운데 날마다 땔감 팔고 와 섶시


夏夜初集(하야초집) 하야초집-金正喜

閉戶常存萬里心(폐호상존만리심) 문 닫고 늘 있어도 마음은 만 리

雲飛水逝有誰禁(운비수서유수금) 구름 날아 물 떠가 뉘 있어 말려

尙憐夏日孤花在(상련하일고화재) 외려 불쌍 여름날 외론 꽃 있어

閱罷春山百鳥吟(열파춘산백조음) 찾기 그친 봄에 산 온갖 새 노래

已看靑眸回白眼(이간청모회백안) 이미 봐 반긴 눈이 돌아 곁눈질 눈동자모

曾將一字易千金(증장일자역천금) 일찍 해 한 글자라 천금을 바꿔

詩家衣鉢傳來久(시가의발전래구) 시 짓는 이 물릴 것 물려옴 오래 바리때발

自是宗何與祖陰(자시종하여조음) 이 절로 무얼 으뜸 스승의 그늘


楊州途中(양주도중) 양주 가는 길-金正喜

霜晨搖落歎征衣(상신요락탄정의) 찬 새벽 흔들려 져 길손 옷 한숨

極目平原秋草稀(극목평원추초희) 눈에 끝 너른 들에 가을 풀 드문

天地蕭蕭虛籟合(천지소소허뢰합) 하늘땅 쓸쓸한데 빈 소리 더해

山川歷歷數鴻歸(산천역역수홍귀) 산과 내 또록또록 기러기 몇이

淡煙喬木圍孤墅(담연교목위고서) 묽은 연기 큰 나무 외딴집 둘러 농막서

流水平沙易夕暉(유수평사역석휘) 흐르는 물 모래밭 바뀐 저녁 빛 빛휘

淮北江南何處是(회북강남하처시) 회수 북쪽 강 남쪽 어디가 옳아

二分明月夢依微(이분명월몽의미) 둘로 나눈 밝은 달 꿈에 어른대


山寺(산사) 산사-金正喜

側峯橫嶺箇中眞(측봉횡령개중진) 곁에 봉 비낀 고개 낱낱 속 참이

枉却從前十丈塵(왕각종전십장진) 굽어 그쳐 앞서간 열 길의 티끌 굽을왕

龕佛見人如欲語(감불견인여욕어) 감실 부처 사람 봐 말하려는 듯 감실감

山禽挾子自來親(산금협자자래친) 멧새는 새끼 끼고 저 오며 반겨

點烹筧竹冷冷水(점팽견죽랭랭수) 끓이니 홈통 대에 차디찬 물로삶을팽대홈통견

供養盆花澹澹春(공양분화담담춘) 바쳐 길러 분에 꽃 담담한 봄을

拭涕工夫誰得了(식체공부수득료) 눈물 닦아 공부해 누가 마치랴

松風萬壑一嚬申(송풍만학일빈신) 솔바람 온 골짝에 한번 찡긋 펴 찡그릴빈


水落山寺(수락산사) 수락산사-金正喜

我見日與月(아견일여월) 나는 보느니 해하고 달을

光景覺常新(광경각상신) 빛과 볕 깨쳐 늘 새로움을

萬象各自在(만상각자재) 온갖 꼴 갖춤 따로이 있어

刹刹及塵塵(찰찰급진진) 절이면 절에 티끌세상 다 절찰

誰知玄廓處(수지현곽처) 누가 알아서 아득 두른 곳

此雪同此人(차설동차인) 이 눈과 같이 이러한 사람

虛籟錯爲雨(허뢰착위우) 빈 바람소리 잘못 빗소리

幻華不成春(환화불성춘) 홀린 꽃의 빛 봄을 못 이뤄

手中百億寶(수중백억보) 손안에 쥐니 백억의 보배

曾非乞之隣(증비걸지린) 일찍이 아니 이웃에 빌어


北園初夏(북원초하) 북원 초하-金正喜

天氣正熟梅(천기정숙매) 날씨는 한창 매실이 익어

陰晴摠不眞(음청총부진) 흐리고 개고 모두 참 아니

近峯一圭出(근봉일규출) 곁에 봉우리 한 모퉁이 나

雨雲還往頻(우운환왕빈) 비구름 돌아 가버림 잦아

綠陰合巾裾(록음합건거) 푸르른 그늘 갓 옷에 더해

啼鶯如可親(제앵여가친) 우는 꾀꼬리 가까울 만치

玟瑰雜刺桐(민괴잡자동) 옥구슬 섞여 가시 엄나무

紅白表餘春(홍백표여춘) 붉고 흰 겉에 남은 봄날이

來結靑霞侶(래결청하려) 와서 맺으니 푸름 노을 짝

自是芳杜身(자시방두신) 저절로 이리 향 팥배의 몸


禮山(예산) 예산-金正喜

禮山儼若拱(예산엄약공) 예산 땅 의젓 껴안은 듯이

仁山靜如眠(인산정여면) 인산은 가만 잠을 자는 듯

衆人所同眺(중인소동조) 사람들 함께 바라보는바 바라볼조

獨有神往邊(독유신왕변) 혼자 있으니 신 다니는 데

渺渺斷霞外(묘묘단하외) 아득히 끊겨 노을 밖으로

依依孤鳥前(의의고조전) 아련히 날아 외론 새 앞을

廣原固可喜(광원고가희) 널따란 벌판 참으로 기뻐

善風亦欣然(선풍역흔연) 좋게도 바람 또한 기쁘게

長禾埋畦畛(장화매휴진) 자라난 벼에 밭둑길 묻혀 밭두둑휴 두렁길진

平若一人田(평약일인전) 반반히 같기 한 사람 논이

蟹屋連渙灣(해옥연환만) 게 구멍 이어 물굽이 흩여 흩어질환

蛩雨襍雁煙(공우잡안연) 메뚜기 비에 기러기 안개 섞일잡

秋柳三四行(추류삼사행) 가을에 버들 서너 줄 늘려

顦悴蒙行塵(초췌몽행진) 파리해 덮인 먼지를 걸어 파리할초 파리할췌

紛紛具畫意(분분구화의) 어지럽게도 그릴 뜻 갖춰

夕景澹遠天(석경담원천) 저녁볕 묽어 멀리 하늘에

重三日雨(중삼일우) 삼짇날의 비-金正喜

花心齊蓄銳(화심제축예) 꽃술 가지런 날카롬 포개

麗景千林積(려경천림적) 고운 볕으로 온 숲에 쌓여

平生曲水想(평생곡수상) 한 삶 살면서 굽이 물 생각 流觴曲水

庶幾酬素昔(서기수소석) 거의 다 갚아 그때 옛날 일

朝雨如俗士(조우여속사) 아침에 비는 속세 선비라

雲禽遭鎩翮(운금조쇄핵) 구름에 새도 깃촉 창 만나 만날조 창쇄 깃촉핵

閉戶慙笠屐(폐호참립극) 문 닫아 길손 부끄럽기도 우리립 나막신극

林邱山川隔(림구산천격) 숲 언덕 건너 산에 시내가 사이뜰격

人生天地間(인생천지간) 사람살이는 하늘 땅 사이

遂爲風雨役(수위풍우역) 이윽고 되니 비바람 부림

賞春足他日(상춘족타일) 봄날 즐김이 다른 날 되랴

重三不可易(중삼불가역) 삼이 겹친 날 바꿀 수 없어 삼짇날

奈此獨命酌(나차독명작) 어쩌나 이를 홀로 술 해야

朋素並離析(붕소병리석) 벗들 다 함께 떨어져 갈려

焚香當聽花(분향당청화) 향 살라 마침 꽃을 들으려

細煙縈爐栢(세연영로백) 가다란 연기 화로 잣 얽혀 얽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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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성(文聖) 공자(孔子)

 

공자(B.C 551 ~ B.C 479).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노(魯)나라 추읍[陬邑: 지금의 산둥(山东) 취푸(曲阜)시 동남쪽] 사람. 중국 춘추(春秋)시대 말기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이며, 유학(儒學)의 창시자이다.

공자는 ‘인(仁)’을 최고의 도덕 가치로 보고 ‘인(仁)’사상을 제창하였으며, 최초로 사학(私學)을 설립, 널리 제자들을 받아들여 현자 70명을 포함한 3천여 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공자의 사상과 학설은 주로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논어(論語)》에 집중적으로 담겨있으며, 《좌전(左傳)》과 《사기(史記)·공자세가(孔子世家)》에도 공자의 언행과 관련된 기록이 있다. 공자의 평생에 걸친 노력과 그 후 대대로 이어진 유가(儒家)의 발전으로 중국 유가 학설은 중화문화의 주류가 되었으며, 2천여 년이 넘는 오랜 세월동안 중국인의 기본 사상이 되어왔다.

 

2. 사성(史聖) 사마천(司馬遷)

 

사마천(B.C 145 ~ ?). 서한(西漢)의 역사가이자 문학가. 자(字)는 자장(子長), 좌풍익하양[左馮翊夏陽: 지금의 산시(陕西)성 한성(韩城) 서남쪽]사람. 

사마천은 10세 때부터 고문으로 된 서적들을 익히기 시작하였으며, 원봉(元封) 3년(B.C 108)에 태사령(太史令)에 임명되어 천문 역법과 황실의 서적들을 담당하게 되었고, 덕분에 사관(史官)들이 소장한 도서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 후, 사마천은 그가 일생을 통해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수십 년에 걸쳐《사기(史記)》를 저술하였는데, 이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기전체(紀傳體) 형식의 통사로 후대 역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마천은 중국역사상 위대한 역사가이다. 그는 직언으로 인해 궁형을 당했으나, 오히려 그 분함을 승화시켜 저술에 임하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으뜸으로 손꼽히는 걸작이자 중국인과 세계인을 위해 전해 내려오는 귀중한 문화유산인 《사기(史記)》를 집필해 낸다.

 

3. 시성(詩聖) 두보(杜甫)

 

두보(712 ~ 770). 자(字)는 자미(子美), 하남 공현[河南巩縣: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궁현(巩县)] 태생. 일찍이 장안성(长安城) 남쪽 소릉(少陵)에 살면서 스스로를 소릉야로(少陵野老)라 칭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은 두소릉(杜少陵)이라 칭하였다.

두보는 당(唐)왕조가 쇠퇴기로 접어들 무렵에 살았던 사람으로, 일평생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불우하게 살았다. 그의 시는 풍부하면서도 다채로운 시풍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웅장하면서도 호방한가 하면, 처량하면서도 슬프기도 하고, 시어의 수식이 정교하여 아름답기 그지없는가 하면 또 때로는 평이하고 순박하기도 하다. 율시(律詩)에 뛰어났던 그는 신악부시체(新樂府詩體)의 창시자이기도 한데, 그의 시는 성율(聲律)이 조화롭고, 시어의 선택이 매우 정제되어 있어, 창작에 대한 그의 진지한 태도는 “为人性癖耽佳句,语不惊人死不休:아름다운 구절을 지나치게 탐닉하여, 글이 다른 이들로 하여금 탄복하게 하는 경지에 이를 때까지  다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라는 문구와 꼭 들어 맞는다. 때문에 중국문학사에서는 그를 시성(詩聖)이라 칭송한다. 두보의 시는 지금까지 1천 4백여 수가 전해지고 있으며, 《두공부집(杜工部集)》이 이를 전하고 있다.

 

4. 의성(醫聖) 장중경(張仲景)

 

장중경(150 ~ 219). 성은 장(張), 이름은 기(機)이며 중경(仲景)은 자(字)이다. 남양 군열양[南陽郡涅陽: 지금의 허난성 덩현(邓县) 랑둥진(穰东镇)] 사람. 

장중경은 많은 서적들을 읽고 여러 가지 각종 처방들을 널리 채집하여 한대(漢代) 이전 의학의 정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으며, 자신의 풍부한 실제 의료 경험에 근거하여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16권을 저술하였다. 후세 의학자들은 그를 의성(醫聖)이라 칭송했으며, 그가 저술한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을 의학의 경서로 받들었다. 장중경의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은 인류 의학사상 최초로 ‘병리, 병을 다스리는 법, 처방, 약재’를 두루 갖춘 의학 전문서적인데, 처음으로 전염병과 각종 내과 질환의 병인(病因)과 병리(病理) 및 치료 원칙과 치료 방법을 체계적으로 기술하여 후세 각 진료과목의 임상 발전을 위한 탄탄한 이론적 기초 역할을 하게 된다.

 

5. 무성(武聖) 관우(關羽)

 

관우의 자(字)는 운장(雲長)이며 동한(東漢) 말기 촉(蜀)나라 장수로, 의리를 중시하고 무예가 뛰어나 후세 사람들은 그를 ‘관성(關聖)’,‘관제(關帝)’라 칭했다.  관우는 촉나라의‘오호상장(五虎上将: 관우, 장비, 조자룡, 마초, 황충)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장수로서 남북조 시대부터 청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줄곧 역대 제왕들의 숭배를 받아왔으며, 역사상 가장 추앙 받는 우상 중 한명으로 공자와 함께‘문무이성(文武二聖)’으로 칭해진다. 관우는 충정과 의리, 용맹함과 고강한 무예로 유명하여, 위문제(魏文帝) 조비(曺丕)와 신하들은 관우를 촉나라의‘명장’이라 칭했으며, 조조(曹操)의 가장 유명한 모사(謀士)인 곽가(郭嘉) 역시“관우, 장비는 일만의 적을 대적할 수 있는 장수이다”라고 칭송하였다.

 

6.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

왕희지는 동진(東晉)의 서예가로 자(字)는 일소(逸少)이다. 본적은 낭야[琅琊: 지금의 산둥성 린이(临沂)]이지만 회계산(会稽山) 북쪽[저쟝(浙江) 사오싱(绍兴))에 거주하였다.

양한(兩漢),서진(西晉)시기와 비교해 볼 때, 왕희지 서풍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운필이 세밀하며 구조에 변화가 많다는 점인데, 그의 서법은 부드럽고 기품이 있으며 운필이 자유로워 예서(隸書)의 새로운 경지를 이루었으며, 물 흐르듯 아름다운 금체(今体) 서풍을 창조하여 후대에‘서성(書聖)’으로 숭상되었다. 현존하는 왕희지의 진본 필체는 매우 찾기 어려우며 우리가 접하는 것은 모두 모사본이다.

 

왕희지는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에 모두 능했는데, 해서체 작품으로는《악의론(樂毅論)》, 《황정경(黄庭經)》이 있고, 초서체 작품으로는《십칠첩(十七帖)》, 행서체 작품으로는《이모첩(姨母帖)》, 《상란첩(喪亂帖)》등이 있으며, 행서와 해서로 쓰여진 《난정서(蘭亭序)》가 가장 대표적이다. 왕희지의 서법은 후대까지 줄곧 서예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역사적으로는 두 차례에 걸쳐 그의 서체를 따라 배우려고 하는 풍조가 크게 일었었다.]

 

7. 화성(畵聖) 오도자(吳道子)

 

送子天王圖(송자천왕도)의 일부 그림

오도자(약 686 ~ 760전후), 양적[陽翟: 지금의 허난성 위현(禹县)] 사람. 당(唐)나라 시대의 화가로 도현(道玄)이라 이름하기도 하며, 회화사에서는 오생(吳生)이라 존칭된다. 

문인명사들과 교류하며, 각지로 유람하기를 즐겼던 그는 초년시기 육조시대 풍의 유려하고 섬세한 필법을 배웠으나, 중년 이후에는 웅장하고 기세가 빼어난 성숙한 필치를 갖게 된다. 그는 인물, 불상, 신상과 귀신, 산수, 초목, 조수, 전각등 각종 제재에 모두 능했는데, 특히 인물과 불상에 뛰어났다. 또한 예술성에 있어 그의 창조정신은 매우 풍부하여 일설에는 ‘산수화의 일대 변화가 그에게서 비롯되었다’하기도 한다. 오도자의 진본 작품은 이미 송대(宋代)부터 그 모습을 보기 어려웠으며, 지금까지 전하는 중요 모사본으로 《송자천왕도(送子天王圖)》가 있다. 이 작품은 송대 사람이 모사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오도자의 풍격에 비교적 근접한 것으로 평해지고 있다.

 

8. 다성(茶聖) 육우(陸羽)

 

육우(733 ~ 804)의 자(字)는 홍점(鴻漸)이다. 또한, 달리 이름을 질(疾), 자(字)를 계자(季疵)라고도 하며, 호는 다산어사(茶山御史)이다. 당(唐) 현종(玄宗) 개원(开元) 연간에 태어났으며, 복주 경릉군[復州竟陵郡: 지금의 후베이성(湖北省) 톈먼현(天门县)] 사람이다. 

육우는 평생 차를 즐겼으며 다도에 정통했는데, 당나라 초기 이후 각지에서는 차를 즐기는 풍속이 점차 유행하였고, 그는 반평생 차를 즐긴 자신의 경험과 차에 관한 지식을 모으는 등 십여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중국 최초의 차 문화 저작인 《다경(茶经)》을 탈고하였다. 《다경(茶经)》이 세상에 소개됨으로써 세인들은 차에 관해 잘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명성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가 창조해 낸 다학(茶學), 다예(茶藝), 다도(茶道) 사상및 그가 저술한 《다경(茶经)》은 중국 차 문화사의 한 획을 긋는 시대적 지표가 되었다.

 

9. 병성(兵聖) 손무(孫武)

 

손무(B.C 535 전후 ~ ?),제(濟)나라 낙안[樂安: 지금의 산둥성 훼이민(惠民)] 사람. 춘추시대 말기의 군사가로 자(字)는 장경(長卿)이며, 후세 사람들은 손자(孫子) 또는 손무자(孫武子)로 존칭하였다. 

손무는 병법에 정통하였으며 오왕(吳王) 합려(闔閭)를 만난 뒤 장군의 직을받고 오자서(吴子胥)와 함께 부국강병에 힘썼다. 그는 정치 개혁을 주장하였으며, 전쟁은 백성과 군사들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이 걸린 대사이므로 진지하게 다루고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그는‘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과 같은 체계적인 전략 전술의 원칙을 만들어 내고, 합리적인 병사의 운용 및 적의 의표를 찌르는 기이한 책략등을 사용하여 승리를 이끄는가 하면 침착하고 냉정하면서도 과감한 용맹을 중요시하였다. 또한 지형적 특징과 정찰, 군대 기강및 교육등 각 방면에 대해서도 중요한 원칙들을 제시하였는데, 이러한 원칙들이 집대성된 것이 바로 《손자병법(孫子兵法)》으로 중국 최초의 병법서이자 세계 군사 역사상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저작이다. 

 

10. 주성(酒聖) 두강(杜康)

 

두강(약 B.C 10세기경), 자(字)는 중녕(仲寧). 전하는 바에 따르면 백수현 강가위[白水縣康家衛: 지금의 두캉진(杜康镇)]사람으로 술을 잘 빚었다고 한다. 두캉천의 샘물은 은은하게 솟아나와 겨울에도 마르지 않으며 4리를 흘러 바이쉐이하(白水河)로 흘러 들어 가는데 이곳 사람들은 지금도 이 물에서 술맛이 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강은 바로 이 물을 가지고 술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술의 제조는 중화민족 음식문화의 일대 사건이다. 두강은 최초로 술을 만든 시조로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화하(華夏)민족 술 문화의 원류를 개척한 사람이다. 그는 술에 그 지방의 풍토와 인정을 함께 담아 빚어냈으며, 술로써 오랜 바이쉐이(白水) 문화를 빚어냈다. 삼국시대 조조(曹操)가 “무엇으로 근심을 풀까? 오로지 두강뿐이구나.”라고 천고의 절창을 지어 음송할 만큼 향기 짙은 두강주는 황토고원의 순박함과 열정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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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관한 시 모음> 

 

 

+ 마음의 길 하나 트면서 

 

마음을 씻고 닦아 비워내고 

길 하나 만들며 가리. 

 

이 세상 먼지 너머, 흙탕물을 빠져나와 

유리알같이 맑고 투명한, 

아득히 흔들리는 불빛 더듬어 

마음의 길 하나 트면서 가리. 

 

이 세상 안개 헤치며, 따스하고 높게 

이마에는 푸른 불을 달고서, 

 

(이태수·시인, 1947-) 

 

 

+ 구부러진 길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이준관·시인, 1949-) 

 

 

+ 길 

 

사람에게는 사람의 길이 있고 

개에게는 개의 길이 있고 

구름에게는 구름의 길이 있다 

사람 같은 개도 있고 

개 같은 사람도 있다 

사람 같은 구름도 있고 

구름 같은 사람도 있다 

사람이 구름의 길을 가기도 하고 

구름이 사람의 길을 가기도 한다 

사람이 개의 길을 가기도 하고 

개가 사람의 길을 가기도 한다 

나는 구름인가 사람인가 개인가 

무엇으로서 무엇의 길을 가고 있는가 

 

(한승원·시인이며 소설가, 1939-) 

 

 

+ 길 

 

문득문득 오던 길을 

되돌아본다 

왠가 꼭 잘못 들어선 것만 같은 

이 길 

 

가는 곳은 저기 저 계곡의 끝 

그 계곡의 흙인데 

나는 왜 매일매일 

이 무거운 다리를 끌며 

가고 있는 것일까 

 

아, 돌아갈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는 

이 길. 

 

(이영춘·시인, 1941-) 

 

 

+ 아픔과 슬픔도 길이 된다 

 

오랜 시간의 아픔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아픔도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람 불지 않는 인생은 없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이유다. 

바람이 우리들을 흔드는 이유다. 

 

아픔도 길이 된다. 

슬픔도 길이 된다. 

 

(이철환·소설가, 1962-) 

 

 

+ 그릇 

 

집 안에 머물다 집 떠나니 

집이 내 안에 와 머무네 

 

집은 내 속에 담겨 

나를 또 담고 있고 

 

지상에서 가장 큰 그릇인 길은 

길 밖에다 모든 것을 담고 있네 

 

(함민복·시인, 1962-) 

 

 

+ 길 위에서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 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나희덕·시인, 1966-) 

 

 

+ 그런 길은 없다 

 

아무리 어둔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나의 어두운 시기가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베드로시안) 

 

 

+ 마음이 담긴 길을 걸어라 

 

마음이 담긴 길을 걸어라. 

모든 길은 단지 수많은 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대가 걷고 있는 그 길이 

단지 하나의 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대가 걷고 있는 그 길을 

자세히 살펴보라. 

필요하다면 몇 번이고 살펴봐야 한다. 

만일 그 길에 그대의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만일 그 길에 

그대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대는 기꺼이 그 길을 떠나야 하리라.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길을 

버리는 것은 

그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결코 무례한 일이 아니니까. 

 

(돈 후앙·야키족 치료사) 

 

 

+ 길 위에서 말하다 

 

길 위에 서서 생각한다 

무수한 길을 달리며, 한때 

길에게서 참으로 많은 지혜와 깨달음을 얻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을 찬미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온갖 엔진들이 내지르는 포효와 

단단한 포도(鋪道) 같은 절망의 중심에 서서 

나는 묻는다 

나는 길로부터 진정 무엇을 배웠는가 

길이 가르쳐준 진리와 법들은 

왜 내 노래를 가두려 드는가 

 

길은 질주하는 바퀴들에 오랫동안 단련되었다 

바퀴는 길을 만들고 

바퀴의 방법과 사고로 길을 길들였다 

 

상상력이여, 

꿈이여 

희망이여 

길들여진 길을 따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보이는 모든 길을 의심한다 

길만이 길이 아니다 

꽃은 향기로 나비의 길을 만들고 

계절은 바람과 태양과 눈보라로 

철새의 길을 만든다 

진리와 법이 존재하지 않는 그 어떤 길을 

 

도시와 국가로 향하는 감각의 고속도로여 

나는 길에서 얻은 깨달음을 버릴 것이다 

나를 이끌었던 상상력의 바퀴들아 

멈추어라 

그리고 보이는 모든 길에서 이륙하라 

 

(유하·시인이며 영화 감독, 1963-) 

 

 

+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시인, 1950-) 

 

 

+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패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턱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 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도종환·시인, 1954-) 

 

 

+조문(弔文) 

 

뒷집 조성오 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셨다. 

감나무 두 그루 딸린 빈집만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살아서 눈 어두운 동네 노인들 편지 읽어주고 먼저 떠난 이들 묏자리도 더러 봐주고 추석 가까워지면 동네 초입의 풀 환하게 베고 물꼬싸움 나면 양쪽 불러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심판 봐주던 

 

이 동네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슬프도록 야문 길이었다. 

 

돌아가셨을 때 문상도 못한 나는 마루 끝에 앉아, 할아버지네 고추밭으로 올라가는 비탈, 오래 보고 있다. 

 

지게 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할아버지가 오르내릴 때 풀들은 옆으로 슬쩍 비켜 앉아 지그재그로 길을 터주곤 했다 

 

비탈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던 그 길은 여름 내내 바지 걷어붙인 할아버지 정강이에 볼록하게 돋던 핏줄같이 파르스름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비탈길을 힘겹게 밟고 올라가던 

느린 발소리와 끙, 하던 안간힘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그만 

 

길도 돌아가시고 말았다. 

 

풀들이 우북하게 수의를 해 입힌 길, 

지금은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길 위로 

조의를 표하듯 산그늘이 엎드려 절하는 저녁이다. 

 

(안도현·시인, 1961-) 

 

 

+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시인, 1917-1945) 

 

 

+ 길 위에 서다 

 

세상의 모든 길은 

어디론가 통하는 모양이다 

 

사랑은 미움으로 

기쁨은 슬픔으로 

 

생명은 죽음으로 

그 죽음은 다시 한 줌의 흙이 되어 

새 생명의 분신(分身)으로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가만히 머무르지 말라고 

 

길 위에 멈추어 서는 생은 

이미 생이 아니라고 

 

작은 몸뚱이로 

혼신의 날갯짓을 하여 

 

허공을 가르며 나는 

저 가벼운 새들 

 

(정연복,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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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花下醉 화하취 꽃밭에서 취하여

                        李商隱(唐) 이상은

尋芳不覺醉流霞 심방부각취류하 꽃 찾아 나섰다가 나도 몰래 流霞에 취하여

依樹沈眠日已斜 의수심면일이사 나무에 기대어 잠이 든 사이 해가 저물었네

客散酒醒深夜後 객산주성심야후 손님 다 가고 술 깨고 보니 오밤중

更持紅燭賞殘花 갱지홍촉상잔화 다시 촛불 밝혀 남은 꽃 구경하였네.

 

2. 無題 무제

             李商隱(唐) 이상은

八歲偸照鏡 ( 팔세투조경) 여덟 살 때 거울을 몰래 들여다보고

長眉已能畵 ( 장미이능화) 눈썹을 길게 그렸지요

十歲去踏靑 ( 십세거답청) 열 살 때 나물 캐러 다니는 게 좋았어요

芙蓉作裙차 ( 부용작군차) 연꽃 수 놓은 치마를 입고

十二學彈箏 ( 십이학탄쟁) 열 두 살 때 거문고를 배웠어요

銀甲不能사 ( 은갑부능사) 은갑을 손에서 놓지 않았지요

十四藏六親 ( 십사장육친) 열 네살 때 곧잘 부모 뒤에 숨었어요

懸知猶未嫁 ( 현지유미가) 남자들이 왜 그런지 부끄러워서

十五泣春風 ( 십오읍춘풍) 열 다섯 살 때 봄이 까닭없이 슬펐어요

背面秋韆下 ( 배면추천하) 그래서 그넷줄 잡은 채 얼굴 돌려 울었지요

 

3. 無題 무제 제목 없음

             李商隱(唐) 이상은

相見時難別亦難 상견시난별역난 어렵게 만났다 헤어지긴 더 어려워

東風無力百花殘 동풍무력백화잔 시들어 지는 꽃을 바람인들 어이하리

春蠶到死絲方盡 춘잠도사사방진 봄 누에는 죽기까지 실을 뽑고

蠟炬成恢淚始乾 납거성회누시건 초는 재 되어야 눈물이 마른다네

曉鏡但愁雲빈改 효경단수운빈개 아침 거울 앞에 변한 머리 한숨 짓고

夜吟應覺月光寒 야음응각월광한 잠 못 이뤄 시 읊는 밤 달빛은 차리

蓬山此去無多路 봉산차거무다로 봉래산은 여기서 멀지 않으니

靑鳥殷勤爲探看 청조은근위탐간 파랑새야 살며시 가보고 오렴

 

4. 早起 조기 일찍 일어나서

            李商隱(唐) 이상은

風露澹淸晨 풍로담청신 찬 이슬 바람 이는 이른 봄 아침 

簾間獨起人 염간독기인 발 사이에 혼자서 일어나 보면

鶯花啼又笑 앵화제우소 꽃 피고 꾀꼬리도 울어 대는데

畢竟是誰春 필경시수춘 아무리 생각해도 내 봄은 아니어라

 

5. 有感 유감

          李穡(高麗) 이색

非詩能窮人 비시능궁인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할 수 없고

窮者詩乃工 궁자시내공 궁한 이의 시가 좋은 법이라

我道異今世 아도이금세 내 가는 길 지금 세상과 맞지 않으니

苦意搜鴻곤 고의수홍곤 괴로이 광막한 벌판을 찾아 헤맨다

氷雪뇨肌骨 빙설뇨기골 얼음 눈이 살과 뼈를 에이듯 해도

歡然心自融 환연심자충 기꺼워 마음만은 평화로웠지

始信古人語 시신고인어 옛 사람의 말을 이제야 믿겠네

秀句在羈窮 수구재기궁 빼어난 시귀는 떠돌이 窮人에게 있다던 그 말

 

6. 觀物 관물 萬物을 바라보며

           李穡(高麗) 이색

大哉觀物處 대재관물처 크도다! 사물이 있는곳을 바라보니    

因勢自相形 인세자상형 형세 따라 절로 형상이 다스려진다

白水深成黑 백수심성흑 하얀 물이 깊어지면 검게 변하고    

黃山遠送靑 황산원송청 누런 산이 멀리서는 푸른빛을 보내지

位高威自重 위고위자중 지위가 높아지면 위엄은 절로 무겁고    

室陋德彌馨 실누덕미형 집이 누추해도 德은 더욱 향기롭네

老牧忘言久 노목망언구 늙은 이 몸은 말을 잊은 지 오래이고    

苔痕滿小庭 태흔만소정 이끼 자국 작은 뜰에 가득하네

 

7. 讀書 독서 글을 읽으며   

             李穡(高麗) 이색

讀書如遊山 독서여유산 글읽기란 산에 오르는 것 같아

深淺皆自得 심천개자득 깊고 옅음이 모두 自得함에 달려있네

淸風來徐寥 청풍래서요 맑은 바람은 천천히 하늘에서 불어오고

飛雹動陰黑 비박동음흑 나는 우박은 어두운 곳에서 내려오네

玄규蟠重淵 현규반중연 검은 교룡은 깊은 못에 서려있고

丹鳳翔八極 주봉상팔극 붉은 봉황은 하늘로 날아오르네

精微十六字 정미십육자 精微한 열여섯 글자

的的在胸臆 적적재흉억 분명하게 가슴에 간직하네

輔以五車書 보이오거서 다섯 수래의 책 읽어서 돕고

博約見天則 박약견천칙 능히 하늘의 이치를 본다네

王風久蕭索 왕풍구소삭 옳은 기풍 오래도록 쓸쓸하고

大道예荊棘 대도예형극 큰 길은 가시나무에 가려있네

誰知蓬窓底 수지봉창저 뉘 알랴, 蓬窓 아래에서

掩卷長太息 엄권장태식 책을 덮고 길이 탄식하는 것을

 

8. 晨興卽事 신흥즉사 새벽 興을 즐기며

         李穡(高麗) 이색

湯沸風爐鵲조첨 탕비풍로작조첨 風爐에는 국 끓고, 처마 끝에 까치 울고

老妻관櫛試梅鹽 노처관즐시매염 치장 끝낸 아내는 국물 간을 맞추네

日高三丈紬衾煖 일고삼장주금난 아침 해 높이 떠도 명주 이불 따뜻해

一片乾坤屬黑甛 일편건곤속흑첨 세상일 나 몰라라, 잠이나 더 자자

 

9. 雪軒鄭相宅靑山白雲圖 설헌정상택청산백운도 청산 백운도

            李穡 이색

山本乎止本乎靜 산본호지본호정 산은 그침이 본색이고, 고요함이 본색인데

雲可以西可以東 운가이서가이동 구름이야 동서 어디라도 떠다닌다

本乎止靜者有體而附地 본호지정자유체이부지 그침과 고요함이 본색인것은 형체가 땅에 붙은 탓이고

可以西東者無心而隨風 가이서동자무심이수풍 동서로 떠다니는 건 무심히 바람을 따른 탓이다

一動一靜將觀物所性 이동일정장관물소성 움직이고 쉬는 데서 사물의 성격을 보았네만

或靑或白已累吾之瞳 혹청혹백이누오지동 푸르기도 하고 희기도 해서 내눈에 누를 끼쳤도다

 

 10. 詠雪 영설 눈을 보며

       李穡 이색

松山蒼翠暮雲黃 송산창취모운황 송악산 푸르름에 저녁 구름 물들더니

飛雪初來已夕陽 비설초래이석양 눈발 흩날리자 이미 해는 저물었네

入夜不知晴了未 입야부지청료미 밤들면 혹시나 이 눈이 그칠려나

曉來銀海冷搖光 효래은해랭요광 새벽되면 은빛 바다에 차가운 빛 출렁이겠지

 

11. 浮碧樓 부벽루

       李穡 이색

昨過永明寺 작과영명사 어제 영명사를 찾아 갔다가

暫登浮碧樓 잠등부벽루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

城空月一片 성공월일편 성은 텅 비어 있고, 달 한 조각 떠 있고

石老雲千秋 석로운천추 바위는 늙어 천 년 두고 구름이 흐르네

麟馬去不返 기마거불반 麟馬는 떠나간 뒤 돌아올 줄 모르고

天孫何處遊 천손하처유 天孫은 어느 곳에서 노니시는가

長嘯倚風등 장소의풍등 바람부는 돌계단에 기대어 긴 휘파람 부니

山靑江自流 산청강자류 산은 푸르고 강은 저절로 흐르네

 

12. 閑寂詩 한적시

         李穡(高麗) 이색

夜冷狸奴近 야냉리노근 차가운 밤 고양이는 가까이 붙고 

天晴燕子高 천청연자고 맑은 하늘 제비는 높이 나누나

殘年深閉戶 잔년심폐호 남은 해, 깊이 문 닫아 걸고

淸曉獨行庭 청효독행정 맑은 새벽, 홀로 뜰을 걸으리

 

13. 小雨 소우 이슬비

           李穡 이색

細雨몽몽暗小村 세우몽몽암소촌 이슬비 부슬부슬 작은 마을은 어두운데

餘花點點落空園 여화점점락공원 남은 꽃 점점이 빈 정원에 떨어지네

閑居剩得悠然興 한거잉득유연흥 한가로이 지내며 느긋한 흥취 넉넉하니

有客開門去閉門 유객개문거폐문 손님 오면 문 열고 떠나면 문 닫노라

 

14. 守歲 수세 섣달 그믐

            李世民(唐) 이세민

暮景斜芳殿 모경사방전 석양 전각에 비끼고

年華麗奇官 년화여기관 세월은 아름다운 궁궐에 아롱지네

寒辭去冬雪 한사거동설 겨울눈과 추위도 사라지고

暖帶入春風 난대입춘풍 봄바람 속에 따스함이 스미네

階馥舒梅素 계복서매소 섬돌에 매화 향기 하얗게 번지고

盤花卷燭紅 반화권촉홍 쟁반위의 꽃은 촛불 받아 붉네

共歡新故歲 공환신고세 모든 이 기쁨 속에 해가 바뀌니

迎送一宵中 영송일소중 맞이하고 보냄이 이 한 밤중에 있네

 

15. 莫愁曲 막수곡 앞 강물

        李英輔 이영보

二八吳娃花揷頭 이팔오와화삽두 십팔세 예쁜 아씨 머리에 꽃을 꽂고

每逢春日動春愁 매봉춘일동춘수 해마다 봄날이면 봄 시름 싱숭생숭

若爲化作前江水 약위화작전강수 만약 다시 태어나면 앞 강물이 되어서

天際隨君日夜流 천제수군일야류 하늘 가 님을 따라 밤낮으로 흐르련만

 

16. 白鷺 백로

        李亮淵 이양연

蓑衣混草色 사의혼초색 도롱이 衣色이 풀빛과 같아

白鷺下溪止 백로하계지 白鷺가 냇가에 앉았네

或恐驚飛去 혹공경비거 혹여 놀라 날아갈까봐

欲起還不起 욕기환불기 일어나려다 다시 그대로 앉아버렸네

 

17. 村婦 촌부 시골 아낙네

         李亮淵 이양연

君家遠還好 군가원환호 자네 친정은 멀어서 오히려 좋겠네

未歸猶有說 미귀유유설 집에 가지 못해도 할 말이 있으니까

而我嫁同鄕 이아가동향 나는 한동네로 시집와서도

慈母三年別 자모삼년별 어머니를 삼 년이나 못 뵈었다네

 

18. 偶吟 우음 우연히 읊다

        栗谷 율곡(李珥)

風月養我情 풍월양아정 바람과 달은 나의 情感 키우고

煙霞盈我身 연하영아신 안개와 노을은 나의 몸을 충만케 한다

子長吾所慕 자장오소모 子長는 그리워 하는 사람

悅卿吾所親 열경오소친 悅卿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

非探山水興 비탐산수흥 山水의 흥취를 찾는 것이 아니라

聊以全吾眞 료이전오진 나의 참된 마음을 온전하게 하고자 함이다

物我合一體 물아합일체 사물과 내가 一體가 되니

誰主誰爲賓 수주수위빈 누가 주인이고 누가 客 인가

湛湛若澄潭 담담약징담 깊음은 맑은 못과 같고

肅肅如秋旻 숙숙여추민 고요하기는 가을 하늘과 같다

無憂亦無喜 무우역무희 근심도 없고 기쁨도 없으니

此境人難臻 차경인난진 이러한 경지에 사람이 이르기는 어렵다


19. 花石亭 화석정 

        李珥 이이

林亭秋已晩 임정추이만  숲속의 정자에 가을이 이미 지나가니

騷客意無窮 소객의무궁  취해 떠드는 나그네의 뜻은 끝이 없다

遠水連天碧 원수련천벽   멀리 강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 상풍향일홍  서리 내린 단풍나무는 해빛을 받고 빨갛다

山吐孤輪月 산토고륜월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江含萬里風 강함만리풍  강은 말리 멀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다

寒鴻何處去 한홍하처거   추운 날, 기러기 어디로 날아 가는가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기러기 울음소리, 夕陽속으로 사라진다

 

20. 浩然亭見月 호연정견월 호연정에서 달을 보며

         李珥 이이

天放空疎客 천방공소객 하늘이 쫓아낸 쓸쓸한 나그네

逍遙江上山 소요강상산 강 위의 산을 소요한다

登臨夕陽盡 등림석양진 올라와 바라보니 석양은 지고

月出海雲間 월출해운간 바다구름 사이로 달이 떠오른다

 

21. 梅梢明月 매초명월 매화 가지 끝의 밝은 달

         李珥 이이

梅花本瑩然 매화본영연 매화는 본래부터 환히 밝은데

映月疑成水 영월의성수 달빛이 비치니 물결 같구나

霜雪助素艶 상설조소염 서리 눈에 흰 살결이 더욱 어여뻐

淸寒徹人髓 청한철인수 맑고 찬 기운이 뼈에 스민다

對此洗靈臺 대차세령대 매화꽃 마주 보며 마음 씻으니

今宵無點滓 금소무점재 오늘밤엔 한 점의 찌꺼기 없네

 

22. 求退有感 구퇴유감 세 번 상소하고 물러나기를 허락 받고서

            李珥 이이

行藏유命豈有人 행장유명기유인 벼슬에 나가고 돌아오는 것도 천명이지, 어찌 사람에 달렸으랴

素志會非在潔身 삭지회비재결신 본래의 뜻이 내 몸만 깨끗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었네

여闔三章辭聖主 여합삼장사성주 대궐문에 세 번 상소하여 성스러운 님을 하직하고는

江湖一葦載孤身 강호일위재고신 강호 조각배에다 외로운 몸을 실었네

疎才只合耕南畝 소재지합경남무 재주가 못났으니 다만 밭을 갈기에 알맞은데

淸夢從然繞北辰 청몽종연요북진 맑은 꿈은 부질없이 북극성을 감도네

茅屋石田還舊業 모옥석전환구업 초가에 돌밭 옛 살림이 되어

半生心事不憂貧 반생심사불우빈 반평생에 가난 따위는 걱정도 않네

 

23. 山中 산중 산 속에서

       李珥 이율곡

採藥忽迷路 채약홀미로 약초 캐다 홀연히 길을 잃었네

千峯秋葉裏 천봉추엽리 봉우리마다 단풍 곱게 물들었는데

山僧汲水歸 산승급수귀 산에 사는 스님이 물길어 돌아간 뒤

林末茶烟起 임말다연기 숲 끝에 피어오르는 차 달이는 연기

 

24. 溪分峰秀 계분봉수

        李珥 이율곡

溪分泗洙派 계분사수파 시내는 사수가 흐르는 것 같고

峰秀武夷山 봉수무이산 산봉우리 무이산 보다 아름답다

活討經千卷 활토경천권 재산이라고는 천 권 경서와 몸담을 방 몇 간 뿐인데

行藏屋數間 행장옥수간 주고받는 얘기와 웃음은

襟懷開霽日 근회개제일 밝은 달이 가슴속까지 환하게 비치는 듯하여

談笑止狂란 담소지광란 설레는 이 가슴을 진정시켜 주노라

小子求聞道 소자구문도 선생을 찾아온 뜻은 도를 알고자 함이지

非偸半日閒 비투반일한 한가로이 놀러 다님이 아니 오리

 

25. 滿月臺 만월대

       李珥 이이

下馬披荊棘 하마피형극 말에서 내려 가시밭길 이리저리 헤치며

高臺四望虛 고대사망허 높은 누대에 올라서 사면을 바라보니 허전하구나

雲山孤鳥外 운산고조외 구름 자욱한 산 속에서 외로운 새마저 날아가니

民物故都餘 민물고도여 백성 사는 옛 도읍은 황폐하기 그지없네

 

26. 土亭李之函送別詩 土亭 李之函 송별시

        栗谷 율곡(李珥)

難兄難弟摠淸流 난형난제총청류 형과 아우 모두 깨끗한 사대부인데

選勝移家占一區 선승이가점일구 좋은 곳 골라 집 옮기며 구역을 차지하였네

活計鼎條車不滿 활계정조거불만 살림살이라야 조촐하여 한 수레에 가득하지 않지만

塵紋間絶地偏幽 진문간절지편유 시끄러운 세속 멀리 떨어져 주위가 더욱 그윽하네

紫荊陰裏三間足 자형음리삼간족 붉은 가시나무 그늘 속에 초가삼간으로 만족하고

黃犢披邊二頃優 황독피변이경우 누런 송아지 언덕 가에, 두어 이랑 밭으로 넉넉하다니

何日得諧携手約 하일득해휴수약 다시 만나지는 약속은 어느 날이나 이루려나

春江佇立送扁舟 춘강저립송편주 봄날 강가에 우두커니 서서 조각배를 보낸다네

 

28. 瀟湘夜雨 소상야우 어두운 밤 瀟湘에 비 내리네 

        李仁老 이인로

一帶滄波兩岸秋 일대창파양안추 한 줄기 푸른 물결, 양켠 언덕 가을인데

風吹細雨灑歸舟 풍취세우쇄귀주 바람 불자 보슬비 가는 배에 흩뿌리네

夜來泊近江邊竹 야래박근강변죽 밤이 되어 江邊의 대나무 숲 가까이 배를 대니

葉寒聲摠是愁 엽엽한성총시수 잎마다 차가운 소리, 모두 다 수심일세

 

29. 詠雪 영설 눈

        李仁老 이인로

千林欲瞑已棲鴉 천림욕명이서아 온 숲이 저물어 갈가마귀 깃드는데

燦燦明珠尙照車 찬찬명주상조거 찬란히 반짝이며 수레를 비추는 눈

仙骨共驚如處子 선골공경여처자 신선도 놀랄 만큼 깨끗한 순수세상

春風無計管光花 춘풍무계관광화 봄바람도 저 꽃들은 어쩌지 못하네

聲迷細雨鳴窓紙 성미세우명창지 가랑비 소리인 듯 창호지를 울리고

寒引羈愁到酒家 한인기수도주가 추위에 시름은 주막으로 발길 끌어

萬里都盧銀作界 만리도로은작계 만리천지 은으로 만들어 놓은 세상

渾敎路口沒三叉 혼교로구몰삼차 뿌여니 동구 앞 세 갈래 길 덮였네

 

30. 山居 산거 산에 살면서

          李仁老 이인로

春去花猶在 춘거화유재 봄은 갔어도 꽃은 아직 남아있고

天晴谷自陰 천청곡자음 하늘 맑아도 골짜기엔 그늘 있어

杜鵑啼白晝 두견제백주 대낮에도 두견새 우는 것을 보니

始覺卜居深 시각복거심 깊은 산골에 사는 것을 깨닫겠네

 

31. 秋夜東山 추야동산 가을밤 동산에서

         李의 이의

林臥避殘暑 림와피잔서 숲에 누워 늦더위를 피하고 

白雲長在長 백운장재장 흰 구름은 하늘에 장구하구나

賞心旣如此 상심기여차 자연을 즐기는 마음 이미 이와 같으니  

對酒非徒然 대주비도연 술을 먹음이 부질없는 일은 아니로다

月色편秋露 월색편추로 달빛은 가을 이슬에 두루 비치고  

竹聲兼夜泉 죽성겸야천 이 밤에 대나무 소리, 샘물 소리 모두 들리네

凉風懷袖裏 량풍회수이 서늘한 바람 소매 속으로 불어들면   

玆意與誰傳 자의여수전 이러할 때 내 마음 누구에게 전할까

 

32. 存養 존양 양기를 보존함  

           李彦迪 이언적

山雨蕭蕭夢自醒 산우소소몽자성 산에 내리는 비 쓸쓸하여 꿈에서 저절로 깨니

忽聞窓外野鷄聲 홀문창외야계성 문득 창밖의 꿩 우는 소리 들린다

人間萬慮都消盡 인간만려도소진 인간세상 온갖 생각들 녹아 내리고

只有靈源一點明 지유령원일점명 다만 신령한 근원 있어, 마음만은 또렷하다

 

33. 無爲 무위 하는 일 없이

        李彦迪 이언적

萬物變遷無定態 만물변천무정태 만물이 변천함은 일정함의 형태 없나니

一身閒適自隨時 일신한적자수시 한가로이 자적하며 때를 따라 사노라

年來漸省經營力 년래점성경영력 근년 들어 사는 일은 돌보질 않고

長對靑山不賦詩 장대청산부부시 청산을 마주 보며 시도 짓질 않는다

 

34. 林居十五詠 임거십오영 숲에 살면서

       李彦迪 이언적

卞築雲泉歲月深 복축운천세월심 자연에 집을 짓고 세월만 깊었는데

手栽松竹摠成林 수재송죽총성림 손수 심은 솔과 대가 온통 숲이 되었구나

烟霞朝慕多新態 연하조모다신태 아침 저녁 안개와 노을의 모습 변하여도

唯有靑山無古今 유유청산무고금 저 푸른 산만은 예나 지금이나 꼭 같아라

 

35-1. 閨情 규정 여자의 속마음

          李玉峰 이옥봉

平生離恨成身病 평생이한성신병 평생 이별의 한이 병이 되어

酒不能療藥不治 주불능료약불치 술로도, 약으로도 못 고칩니다

衾裏泣如氷下水 금리읍여빙하수 이불 속 눈물 얼음 아래 물같아

日夜長流人不知 일야장류인부지 밤낮을 흘러도 사람들 모르리라

 

35-2. 寧越道中 영월도중 영월가는 도중에

      李玉峰 이옥봉

五月長干三日越 오월장간삼일월 오월 긴 산을 삼 일만에 넘어서니

哀歌唱斷魯陵雲 애가창단노릉운 노릉의 구름에 애처로운 노래 끊어진다

安身亦是王孫女 안신역시왕손녀 내 몸 또한 왕가의 자손이라

此地鵑聲不忍聞 차지견성불인문 이 곳 두견새 우는 소리 차마 듣지 못하겠네

 

35-3. 夢魂 몽혼 꿈속의 넋

        李玉峰 이옥봉

近來安否問如何 근래안부문여하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떠하시나요

月到紗窓妾恨多 월도사창첩한다 달 비친 紗窓에 저의 恨이 많습니다

若使夢魂行有跡 약사몽혼행유적 꿈 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35-4. 造化 조화 永遠大自然理致

       李用休(朝鮮) 이용휴

村郊景物日芳菲 촌교경물일방비 시골 마을 풍경이 날로 꽃다워지니 

閒坐松陰玩化機 한좌송음완화기 솔 그늘에 가만히 앉아 때가 변하는 것 바라보네

金色청령銀色蝶 금색청령은색접 금빛의 잠자리와 은빛의 나비들이

菜花園裏盡心飛 채화원리진심비 채마밭 동산에서 마음껏 날고 있네

 

36. 田家 전가 농가

         李用休 이용휴

婦坐도兒頭 부좌도아두 아낙이 앉아, 아이 머리 다독이고

翁구掃牛圈 옹구소우권 늙은이는 외양간을 치운다

庭堆田螺殼 정퇴전나각 마당에는 우렁이 껍질 쌓여있고

廚遺野蒜本 주유야산본 부엌에는 마늘 뿌리 남아 있네

 

37. 初春感興 초춘감흥 초봄의 감흥

         李混 이혼

陽生混沌竅 양생혼돈규 陽 기운이 混沌에게 구멍 만드니

萬物自陶鎔 만물자도용 만물들이 저절로 모습 갖추네

誰知有形物 수지유형물 누가 알랴 형체 갖춘 모든 사물이

生此無形中 생차무형중 형체 없는 가운데서 생겨난 것을

 

38. 西京永明寺 서경영명사 西京永明寺에서

       李混 이혼

永明寺中僧不見 영명사중승불견 영명사에는 스님 보이지 않고

永明寺前江自流 영명사전강자류 영명사 앞에는 강물만 흐르고 있네

山空孤塔立庭際 산공고탑립정제 산은 비고 탑만 뜰 안에 외로이 서 있고

人斷小舟橫渡頭 인단소주횡단두 사람은 없는데 빈배만 나루에 매어 있네

長天去鳥欲何向 장천거조욕하향 하늘을 날아가는 저 새는 어디로 가나

大野東風吹不休 대야동풍취불휴 넓은 들에 동풍은 불어 그치지 않는데

往事微茫問無處 왕사미망문무처 지난일 아득하여 물을 곳 없어

淡煙斜日使人愁 담연사일사인수 연기 속 석양을 바라보니 시름뿐이네

 

39. 杜宇 두우 소쩍새

      李弘暐(端宗) 이홍위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한 마리 원한을 품은 새 되어 궁궐을 나왔네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외로운 몸, 홀 그림자 푸른 산속에 깃들었네

假眠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밤마다 밤마다 잠을 청해도 잠은 오질 않고

窮恨年年恨不窮 궁한연년한불궁 해가 갈수록 괴로운 恨은 끝없이 깊어가네

聲斷晩岑殘月白 성단만잠잔월백 울음소리 끊어진 해질 녘, 산봉우리엔 달빛이 흰데

血流春谷落花紅 혈류춘곡낙화홍 피처럼 흐르는 봄 맞은 계곡의 떨어진 붉은 꽃잎이여

天聾尙未聞哀訴 천농상미문애소 하늘은 귀 멀었나, 애닯은 호소 듣지 못하는데 

何奈愁人耳獨聰 하내수인이독총 어이하여 수심에 찬 사람의 귀만 홀로 밝은가

 

40. 美人梳頭歌 미인소두가 아름다운 여인이 머리를 빗으며

       李賀 이하

西施曉夢綃帳寒 서시효몽초장한 西施의 새벽 꿈은 얇은 사 안에 싸늘한데

香鬟墮髻半沈檀 향환타계반침단 머리카락은 흩뜨러져 향기롭고, 반쯤 지워진 입술 연지

轆轤咿啞轉鳴玉 록로이아전명옥 우물 가 옥 구르는듯 맑은 도르래 소리에

驚起芙蓉睡新足 경기부용수신족 놀라 깬 연꽃같은 미녀 기지개 켠다

雙鸞開鏡秋水光 쌍난개경추수광 한 쌍 난새를 조각한 거울은 맑기 가을 물 같은데

解환臨鏡立象牀 해환임경입상상 상아 침상 위 거울 마주해 머리를 푼다

一編香絲雲撒地 일편향사운살지 향기로운 머리카락 구름같이 바닥에 흘러 내려

玉鎞落處無聲膩 옥비락처무성니 옥비녀 떨어져도 소리 없이 매끄럽네

繊手却盤老鴉色 섬수각반노아색 섬섬옥수로 새카만 머리 다시 틀어 올리고

翠滑寶釵簪不得 취골보차잠불득 비녀 꽂으려 해도 검은 머리 매끄러워 꽂지 못하네

春風爛慢惱嬌慵 춘풍난만뇌교용 봄 기운 무르녹아 미녀는 수심에 잠겨

十八鬟多無氣力 십팔환다무기력 열여덟 머리숱 까만 아가씨 기운 없구나

粧成鬈鬌欹不斜 장성권추의불사 화장 마치고 머리 가지런히 빗고

雲거數步踏雁沙 운거수보답안사 구름 옷소매 하늘하늘 얌전히도 걷는구나

背人不語向何處 배인불어향하처 말 없이 돌아서서 어디로 향하는가

下階自折櫻桃花 하계자절앵도화 섬돌 내려서 앵도꽃 꺽어드네

 

41. 官街鼓 관가고 官街의 북소리

         李賀(唐) 이하

曉聲隆隆催轉日 효성륭륭최전일 새벽녘 둥둥둥 해 뜨는 것 재촉하고

暮聲隆隆呼月出 모성륭륭호월출 저물녘 둥둥둥 달을 불러오네

漢城黃柳映新簾 한성황류영신렴 長安의 새봄 버드나무 가지 주렴발에 비추이는데

柏陵飛燕埋香骨 백릉비연매향골 지난날 황제나 妃嬪들 지금은 모두 무덤 속

추碎千年日長白 추쇄천년일장백 북소리에 천년 세월 부서져 내리고 하루 해가 지루한데

孝武秦皇聽不得 효무진황청부득 漢武帝,秦始皇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네

從君翠髮蘆花色 종군취발노화색 검은 머리 갈대꽃처럼 희어지도록 산다지만

獨共南山守中國 독공남산수중국 저홀로 남산처럼 오래오래 중원 땅에 함께할 수 있으랴

 幾回天上葬神仙 기회천상장신선 신선 된다는 사람들 수없이 하늘 위에 장사 지내고

漏聲相將無斷絶 루성상장무단절 시계소리, 북소리 속에 시간은 그저 흘러만 간다네

 

42. 南園 남원 남쪽 텃밭

         李賀(唐) 이하

小樹開朝徑 소수개조경 키작은 나무 사이로 새벽 길이 보이고

長茸濕夜煙 장용습야연 길가의 풀섶 이슬에 젖어있네

柳花驚雪浦 유화경설포 날리는 버들솜 포구에 덮인 눈인가 놀라고

麥雨漲溪田 맥우창계전 때마침 내린 비에 개울 논 밭고랑에 물이 불었네

古刹疏鐘度 고찰소종도 고찰의 종소리 아련히 들려오고

遙嵐破月懸 요람파월현 산마루엔 달이 이지러져 걸렸네

沙頭敲石火 사도고석화 물가에서 부싯돌로 불을 부치니

燒竹照漁船 소죽조어선 대나무 타는 불에 고기배 비치네

 

43. 將進酒 장진주  

        李賀(唐) 이하

琉璃鐘 유리종 유리잔에

琥珀濃 호박농 호박 빛 짙은 술

小槽酒滴眞珠紅 소조주적진주홍 조그마한 술통에 남술은 술 진주같이 붉어라

烹龍포鳳玉脂泣 팽룡포봉옥지읍 용을 삶고 봉을 지지니 옥 같은 기름 눈물 흘린다

羅屛繡幕圍香風 라병수막위향풍 羅屛 치고 繡幕 두르니 향기로운 바람 감싸고,

吹龍笛 취룡적 용의 피리를 불고

擊타鼓 격타고 악어가죽 북을 두드린다

皓齒歌 호치가 미인은 노래하고

細腰舞 세요무 미인은 춤을 춘다

況是靑春日將暮 황시청춘일장모 하물며 이 푸르른 봄도 저무는데

桃花亂落如紅雨 도화란락여홍우 복사꽃 어지러이 붉은 비 오듯 떨어진다

勸君終日酩酊醉 권군종일명정취 그대에게 권하노니, 종일토록 취해보세

酒不到劉伶墳上土 주불도류령분상토 유령의 무덤에는 아무도 술 권하지 않으리

 

44. 秋來 추래 가을이 오니

          李賀 이하

桐風驚心壯士苦 동풍경심장사고 오동에 부는 바람 사람을 놀라게 하여 장사도 괴로운데

衰燈絡緯啼寒素 쇠등락위제한소 꺼져가는 등잔 불빛휘장을 두르고 귀뚜라미 차가운 베를짜듯 울어댄다

誰看靑簡一編書 수간청간일편서 그 누가 죽간으로 엮은 나의 책을 보아주어

不遣花蟲粉空 불견화충분공두 책벌레가 가루내어 헛되이 좀먹지 않게 할까

思牽今夜腸應直 사견금야장응직 온갖 생각에 오늘밤 창자가 곧추서고

雨冷香魂吊書客 우랭향혼적서객 비 내려 차가운 이 곳, 어여쁜 여자 귀신 책 지은 나를 조상한다

秋墳鬼唱鮑家詩 추분귀창포가시 가을 내 무덤 속에서, 내 넋은 포조의 시를 읊으며

恨血千年土中碧 한혈천년토중벽 한스러운 내 피는 흙무덤 속에서 천년을 푸르리라

 

45. 題歸夢 제귀몽 돌아가는 꿈

      李賀(唐) 이하

長安風雨夜 장안풍우야 장안의 비바람 몰아치는 밤에

書客夢昌谷 서객몽창곡 객지 서생은 창곡을 꿈꿨네

怡怡中堂笑 이이중당소 어머니는 기뻐 즐거운 웃음소리 내고

小弟裁澗菉 소제재간록 동생은 산골 개울에서 푸른 미나리를 꺾는구나

家門厚重意 가문후중의 집안의 두터운 사랑과 기대는

望我飢充腹 망아기충복 나에게 주린 배 채워주길 바라지만

勞勞一寸心 노노일촌심 피곤에 지친 마음

燈花照魚目 등화조어목 등불만 잠못 이룬 눈 비춰주네

 

46. 崇義裡滯雨 숭의리체우 崇義裡 비 오는데

        李賀(唐) 이하

 

 

落莫誰家子 락막수가자 뉘 집의 자식이 이리도 낙망한가

來感長安秋 래감장안추 돌아와 장안의 가을에 젖어본다

壯年抱羈恨 장년포기한 젊은 나이로 떠도는 한을 품고

夢泣生白頭 몽읍생백두 백발이 된 것을 꿈에서 보고, 눈물 흘리며 울었다

 

 

瘦馬말敗草 수마말패초 여윈 말에 마른 풀을 먹이는데

雨沫飄寒溝 우말표한구 빗방울은 차가운 도랑에 날려 떨어진다

南宮古簾暗 남궁고렴암 흐름한 발 저쪽 남궁은 어둑하고

濕景傳籤籌 습경전첨주 칙칙한 풍경 속으로 시간 종소리 들려온다

 

 

家山遠千里 가산원천리 고향은 천리 아득한 곳

雲각天東頭 운각천동두 구름은 하늘 동쪽 머리에 걸려 있다

憂眠枕劍匣 우면침검갑 시름에 칼 상자 베고 잠이 들어

客帳夢封侯 객장몽봉후 나그네 장막 안에서 제후 되는 꿈을 꾼다

 

☞ 말?= 말먹이 말.

 

 

47. 長平箭頭歌 장평전두가

李賀 이하

 

 

漆灰骨末丹水沙 칠회골말단수사 옻칠 한 검은 점, 뼛가루, 붉은 물가 모래

凄凄古血生銅花 처처고혈생동화 흥건히 굳은 옛 피 흔적 쇠에 꽃처럼 돋아 있다

白翎金竿雨中盡 백령금간우중진 흰 깃 쇠 화살 대 빗속에 남아

直余三脊殘狼牙 직여삼척잔랑아 다만 엷어진 잔혹한 늑대 이빨 같은 세 개의 화살촉

 

 

我尋平原乘兩馬 아심평원승량마 나는 평원을 찾아 두 마리 말에 타니

驛東石田蒿塢下 역동석전호오하 역 동쪽 돌밭에 쑥 흐트러진 언덕 아래

風長日短星蕭蕭 풍장일단성소소 바람은 길고 낮은 짧아 별빛 쓸쓸하다

黑旗雲濕懸空夜 흑기운습현공야 검은 깃발 구름에 젖어 공중에 드리운 밤

 

 

左魂右魄啼肌瘦 좌혼우백제기수 좌우에 혼백은 말라빠진 살에서 통곡한다

酪병倒盡將羊炙 락병도진장양자 굴러 흩어진 병에 양 잡아 구워나 볼까

蟲棲雁病蘆筍紅 충서안병로순홍 벌레 깃들고 기러기도 병들고 갈대 잎 붉게 물들이고

回風送客吹陰火 회풍송객취음화 회오리바람 나를 몰아치고 도깨비불 불어온다

 

 

訪古환瀾收斷鏃 방고환란수단족 옛 곳을 찾아 눈물 흘리며 부서진 화살촉 주워

折鋒赤문曾귀肉 절봉적문증귀육 부러진 화살촉 붉은 끝으로 누구의 살을 찔렀나

南陌東城馬上兒 남맥동성마상아 동쪽 성 남쪽 길 말 위의 젊은이

勸我將金換료竹 권아장금환료죽 광주리와 쇠 화살촉 바꾸자고 조른다.

 

 

 

48. 感諷 3 감풍 풍자함

李賀 이하 790~816

 

 

南山何其悲 남산하기비 남산은 어찌 그렇게 서글픈지

鬼雨灑空草 귀우쇄공초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비가 아무도 없는 풀빛에 뿌린다

 

 

長安夜半秋 장안야반추 장안의 이 깊은 가을밤

風前幾人老 풍전기인로 불어오는 바람에 몇 사람이나 늙어가나

 

 

低迷黃昏徑 저미황혼경 황혼에 길은 어둑하고

요뇨靑력道 요뇨청력도 푸른 굴참나무 흔들린다

 

 

月午樹無影 월오수무영 낮에 뜬 달인가, 나무에는 그림자 하나 없고

一山唯白曉 일산유백효 온 산은 오직 하얀 새벽

 

 

漆炬迎新人 칠거영신인 옻빛 횃불은 새로이 죽은 사람 맞아들이고

幽壙螢擾擾 유광형요요 어둑한 무덤에는 반딧불이 어지럽다

 

 

49. 神弦 신현

李賀(唐) 이하 790~816

 

 

女巫酌酒雲滿空 여무요주운만공 무녀가 술을 부으면 하늘에 구름 가득 해지고

玉爐炭火香동동 옥로탄화향동동 향로에 숯불은 향불처럼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海神山鬼來座中 해신산귀래좌중 바다귀신 산귀신 모두 몰려와 앉고

紙錢何處鳴旋風 지전실솔명선풍 지전을 느릿느릿 타오르니 어디선가 회오리바람 소리울려온다

 

 

相思木貼金舞鸞 상사목첩금무란 상사나무에 금빛 춤 방울 달고

찬蛾一잡重一彈 찬아일잡중일탄 눈썹 한번 찡그리며 다시 또 연주한다

 

 

呼星召鬼歆杯盤 호성소귀흠배반 별을 부르고 귀신도 불러 술과 음식 흠향하니

山魅食時人森寒 산매식시인삼한 산도깨비 흠향할 때 사람들 숲들에 놀란다

 

 

終南日色低平灣 종남일색저평만 종남산 지는 햇빛 산등성에 깔리고

神兮長在有無間 신혜장재유무간 귀신은 이승과 저승사이에 영원히 있다

 

 

神嗔神喜師更顔 신진신희사경안 귀신 노하고 기뻐함에 무당은 얼굴빛 바꾸며

送神萬騎還靑山 송신만기환청산 신을 보내고 온갖 것 타고서 청산으로 돌아온다

 

 

50. 神弦曲 신현곡

李賀(唐) 이하 790~816

 

 

西山日沒東山昏 서산일몰동산혼 서산에 해지고 東山이 어두워지면

旋風吹馬馬踏雲 선풍취마마답운 회오리바람 馬에 불고, 馬은 구름 밝고 날아온다

 

 

화弦素管聲淺繁 화현소관성천번 비파소리, 퉁소소리 얕은 듯 깊은 듯 어지럽고

花裙萃봉步秋塵 화군췌봉보추진 꽃 치마 끌면서 가을 티끌 밝으며 온다

 

 

桂葉刷風桂墜子 계엽쇄풍계추자 계수나무 잎들 바람에 쓸리고 열매는 떨어지는데

청狸哭血寒狐死 청리곡혈한호사 삵은 피 토하며 울고, 여우는 추위에 죽는다

 

 

古壁彩규金貼尾 고벽채규금첩미 오래된 벽에 그려진 용은 황금에 꼬리를 담그고

雨工騎入秋潭水 우공기입추담수 비의 神은 용을 타고, 가을 못 속으로 들어간다

 

 

百年老효成木魅 백년로효성목매 백년 묵은 올빼미는 나무귀신이 되고

笑聲碧火巢中起 소성벽화소중기 웃음소리 지르는 푸른 도깨비불은 새둥지 안에서 나오네

 

 

51. 馬 말

李賀 이하 790~816

 

 

臘月草根甛 납월초근첨 섣달에도 풀 뿌리는 달착지건 하건만

天街雪似鹽 천가설이염 장안 거리엔 소금같은 눈발만

未知口硬軟 미지구경연 내 입에 닿을 것이 무엇일지는 몰라도

先擬칠藜衝 선의질려함 가시 덩굴 한입에 힘껏 뜯어 보련다

 

 

52. 嘲少年 조소년 소년을 조롱하며

李賀(唐) 이하 790~816

 

 

청총馬肥金鞍光 청총마비금안광 청백색 총이 말은 살찌고 금 안장은 번쩍번쩍

龍腦如縷羅衫香 룡뇌여루라삼향 용뇌향을 실로 삼아 비단옷을 짜니 향기로워라

美人狹坐飛瓊觴 미인협좌비경상 미인들이 끼고 앉아 옥 술잔을 돌리니

貧人喚雲天上랑 빈인환운천상랑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을 구름 위의 도련님이라 부른다

 

 

別起高樓臨碧소 별기고루림벽소 또 다른 곳엔 높은 누각이 우뚝한데 푸른 대숲에 있다

絲曳紅鱗出深沼 사예홍린출심소 낚싯줄에 싱싱한 고기를 낚아 깊은 못에서 건져낸다

 

有時半醉百花前 유시반취백화전 때로는 온갖 꽃 앞에서 취하고

背把金丸落飛鳥 배파금환락비조 등 뒤로는 총을 잡고 날아가는 새를 쏘아 떨어뜨리네

 

 

自說生來未위客 자설생래미위객 스스로 말하기를 한번도 나그네가 되어보지 못했고

一身美妾過三百 일신미첩과삼백 한 몸에 첩이 삼백 명이 넘는다고

 

 

豈知촉地種田家 기지촉지종전가 땅을 파서 농사짓는 집의 사정을 어찌 알랴

官稅頻催沒人織 관세빈최몰인직 관가에서는 세금 재촉 잦고, 남이 짠 천을 빼앗아간다

長金積玉과豪毅 장금적옥과호의 금 늘이고 옥을 쌓아 부호임을 자랑하고

每揖閒人多意氣 매읍한인다의기 매일 한가한 자들과 인사 나누며 의기를 자랑한다

 

 

生來不讀半行書 생래불독반행서 평생 동안 반줄의 글도 읽지 않고

只把黃金買身貴 지파황금매신귀 다만 황금으로 몸의 귀함을 산다

少年安得長少年 소년안득장소년 젊음을 어찌 능히 연장할 수 있으리

海波상變위桑田 해파상변위상전 바다 물결도 오히려 뽕나무 밭으로 변하고 마는 것을

 

 

榮枯遞轉急如箭 영고체전급여전 영고성쇠의 변함이 화살과 같이 빠른 것을

天公豈肯於公偏 천공기긍어공편 조물주가 어찌 그대들만 생각해주랴

莫道韶華진長在 막도소화진장재 아름다운 꽃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간다고 말하지 마라

發白面皺專相待 발백면추전상대 흰 머리와 얼굴의 주름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53. 我笑堂 아소당 興宣 大院君의 별장

李昰應 이하응 1820~1898

 

 

吾負吾身任不輕 오부오신임불경 나의 짐, 내 몸이 맡은것 가볍지 않아

退公閒日酒樽傾 퇴공한일주준경 벼슬 물러나와 한가히 술잔 기울이네

從知往事皆吾夢 종지왕사개오몽 지난간 일 모두가 꿈인줄 알았고

惟愧餘年任世情 유괴여년임세성 오직 남은 삶, 세속에 맡기자니 부끄럽네

理극山村俚談好 리극산촌리담호 나막신 신고 山村을 걸으니 시골 덕담 좋고

聞蟬溪柳古詩成 문선계류고시성 시냇가 버드나무, 매미소리 들으며 詩 짓는다네

世論百歲安排地 세론백세안배지 世論은 어찌 이삶이 물러난 신분이라 논하나

我笑前生又此生 아소전생우차생 전생과 이생을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네

 

 

 

54. 題王處士山居 제왕처사산거 왕거사의 산속 집

李咸用 이함용

 

 

雲木沈沈夏亦寒 운목침침하역한 구름 낀 나무숲 무성하여 여름이 차갑고

此中幽隱幾經年 차중유은기경연 이곳에서 지낸 지가 몇 년이나 되는지

 

無多別業供王稅 무다별업공왕세 남처럼 별장이 많아서 세금 낼 일도 없이

大半生涯在釣船 대반생애재조선 반생을 고깃배를 탔겠소

 

 

蜀魂叫回芳草色 촉혼규회방초색 두견은 울어 향기로운 풀빛 새로 불러오고

鷺사飛破夕陽煙 로사비파석양연 해오라기 날아들며 저녁연기 깨뜨린다

 

 

干戈消地能高臥 간과소지능고와 전쟁이 그치면 베개 높이 베고 잠들 수 있건만

只個逍遙是謫仙 지개소요시적선 이런 중에도 소요하는 그대가 곧 신선이라오

 

 

 

55. 春日 춘일 어느 봄날

李咸用 이함용

 

 

浩蕩春風裏 호탕춘풍리 호탕한 봄바람 속

徘徊無所親 배회무소친 아는 사람 없어 배회하노라

 

 

危城三面水 위성삼면수 높은 성, 삼 면은 물

古木一邊春 고목일변춘 고목의 한 켠에도 봄이로다

 

 

衰世難行道 쇠세난행도 어지러운 세상 도를 행하기도 어려워

花時不稱貧 화시불칭빈 꽃 피는 시절, 가난하다 말하지 말라

 

 

滔滔天下者 도도천하자 천하는 도도한 것

何處問通津 하처문통진 어디서 나룻터를 물어볼까

 

 

56. 雪後 설후 눈 내린 뒤

李恒福 이항복 1556~1618

 

 

雪後山扉晩不開 설후산비만부개 눈내린 뒤 산 사립은 늦도록 닫혀 있고

溪橋日午少人來 계교일오소인래 시내 다리 한낮에도 오가는 사람 적다

구爐伏火騰騰煖 구로복화등등난 화로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거운 기운

茅栗如拳手自외 모률여권수자외 알 굵은 산 밤을 혼자서 구워 먹네.

 

 

57. 春行卽興 춘행즉흥 봄나들이

李華(唐) 이화 715~766

 

 

宜陽城下草처처 의양성하초처처 宜陽城 아래 풀이 무성하고

澗水東流復向西 간수동류복향서 시냇물은 동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서쪽으로

芳樹無人花自落 방수무인화자락 보는 이 없는데도 꽃 절로 지고

春山一路鳥空啼 춘산일로조공제 봄 산길 내내 새 소리만 들리네

 

 

58. 花徑 화경 꽃길

李荇 이행 1478~1534

 

 

無數幽花隨分開 무수유화수분개 무수한 이름 없는 꽃 저마다 피어있고

登山小逕故盤廻 등산소경고반회 산 오르는 작은 길은 옛부터 구부러져 있다

殘香莫向東風掃 잔향막향동풍소 남은 꽃향기 東風을 향해 쓸지 말아라

당有閑人載酒來 당유한인재주래 혹 한가한 사람 술 가지고 올지도 모르겠노라

 

 

59. 感懷 감회

李荇 이행 1478~1534

 

 

白髮非白雪 백발비백설 白髮은 白雪이 아니거니

豈爲春風滅 기위춘풍멸 어찌 봄바람에 사라지리

春愁若春草 춘수약춘초 봄날 시름은 봄풀 같아

日夜生滿道 일야생만도 밤낮으로 길 가득 생겨나네

 

 

東海無返波 동해무반파 동쪽 바다에는 돌아오는 물결 없고

西日難再早 서일난재조 서쪽 해는 다시 새벽 되기 어렵다네

大運只如此 대운지여차 큰 운수가 이러하니

安得不衰老 안득불쇠로 어찌 쇠하고 늙지 않음을 바라리요

 

 

生也本澹泊 생야본담박 삶이란 본래 담박한 것인데

外物作煩惱 외물작번뇌 바깥 사물이 번뇌를 만드네

奈何今之人 내하금지인 어찌하여 요즘 사람들은

不自寶其寶 부자보기보 스스로 그 보배를 보배라 하지 않는가

 

 

簞食是金液 단사시금액 도시락 밥은 금 같은 음식이요

陋巷乃蓬島 누항내봉도 누추한 거리는 봉래산이라네

超然萬世事 초연만세사 온갖 세상사에 초연하면

下視彭갱夭 하시팽갱요 오래 삶과 일찍 죽음을 하찮게 보게 되리라

 

60. 八月十五夜 팔월십오야 추석날 밤

李荇 이행 1478~1534

 

 

平生交舊盡凋零 평생교구진조령 평생 사귄 벗들은 먼저들 갔고

白髮相看影與形 백발상간영여형 흰머리에 몸과 그림자만 서로 바라보네

正是高樓明月夜 정시고루명월야 높은 누에 달 밝은 이런 밤이면

笛聲凄斷不堪聽 적성처단불감청 피리 소리 처량하여 차마 듣기 어렵네

 

 

61. 溪上秋興 계상추흥 시냇가 가을 흥취

李滉 이황 1501~1570

 

雨捲雲歸暮天碧 우권운귀모천벽 구름 흘러가고 비 걷혀, 저녘 하늘 푸르고

西風入林鳴策策 서풍입림명책책 서녘바람 숲에 들어 소슬히 울고 있네

溪禽忘機立多時 계금망기립다시 물새가 때 잊고서, 오래도록 서 있다가

忽然決起飛無迹 홀연결기비무적 홀연히 솟아올라 자취도 없이 날아가네

 

 

62. 溪堂에서 우연히

李滉 이황 1501~1570

 

 

국泉注硯池 국천주연지 샘물을 두손으로 움켜다 벼루에 붓고

閒坐寫新詩 한좌사신시 한가로이 앉아 새로지은 시 쓰네

自適幽居趣 자적유거촉 그윽하게 사는 맛 스스로 즐기나니

何論知不知 하론지부지 남이 알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어라

 

 

63. 善竹橋頭血 선죽교두혈

李滉 이황 1501~1570

 

 

善竹橋頭血 선죽교두혈 선죽교 머리 위의 피

人悲我不悲 인비아불비 사람들은 슬퍼하지만 나는 슬퍼하지 않네

 

 

忠臣當國危 충신당국위 충신이 나라의 위기를 맞아

不死更何爲 불사경하위 죽지 않고 어찌하리

 

 

蕭蕭草蓋屋 소소초개옥 보잘것없는 초가 오막살이

上雨以旁風 상우이방풍 위로는 비가 새고 옆으로는 바람이 치네

 

 

就燥屢種狀 취조루종상 바른 곳을 찾아 가구를 옮기고

叛書故萊中 반서고래중 서적은 헌 상자 속에 거두네

 

 

64. 陶山月夜詠梅 1 도산월야영매 도산 달밤에 핀 매화

李滉 이황

 

 

獨倚山窓夜色寒 독의산창야색한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기운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 매초월상정단단 매화나무 가지 끝엔 둥근 달이 오르네

不須更喚微風至 불수갱환미풍지 구태여 부르지 않아도 산들바람 불어오니

自有淸香滿院間 자유청향만원간 맑은 향기 저절로 뜨락에 가득 차네

 

 

 

65. 陶山月夜詠梅 2 도산월야영매 도산의 달밤에 매화를 읊다

李滉 이황

 

 

步섭中庭月진人 보섭중정월진인 뜰을 거니노라니 달이 사람을 좇아오네

梅邊行繞幾回巡 매변행요기회순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夜深坐久渾忘起 야심좌구혼망기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 향만의건영만신 옷 가득 향기 스미고 달그림자 몸에 닿네

 

 

66. 陶山月夜詠梅 3 도산월야영매 도산 달밤에 핀 매화

李滉 이황

 

 

晩發梅兄更識眞 만발매형갱식진 늦게 피는 매화꽃, 참 뜻을 새삼 알겠네

故應知我怯寒辰 고응지아겁한진 일부러 내가 추위에 약한 것을 알아서 겠지

可憐此夜宜蘇病 가련차야의소병 가련하다, 이 밤 내 병이 나을 수만 았다면

能作終宵對月人 능작종소대월인 밤새도록 달만 보고 있겠네

 

 

67. 陶山言志 도산언지

李滉 이황 1501~1570

 

 

自喜山堂半已成 자희산당반이성 기쁘게도 山堂이 벌써 반이나 지어졌으니

山居猶得免躬耕 산거유득면궁경 산에 살면서도 오히려 밭갈이 면할 수 있네

 

 

移書稍稍舊龕盡 이서초초구룡진 책 옮기니 차츰차츰 해묵은 책장 비어가고

植竹看看新筍生 식죽견견신순생 대나무 심었더니 볼 때마다 새 죽순 돋아난다

 

 

未覺泉聲妨夜靜 미각천성묘야정 샘물소리 밤의 고요, 방해해도 깨닫지 못하고

更憐山色好朝晴 경린산색호조청 사랑스런 山色은 맑은 아침에 더 아름답구나

 

 

方知自古中林士 방지자고중림사 이제야 알겠구나! 예로부터 숲속에 사는 선비는

萬事渾忘欲晦名 만사혼망욕회명 萬事를 다 잊고 이름마저 숨기려 했던 것을

 

 

 

68. 晩步 만보 저녁무렵 거닐며

李滉 이황 1501~1570

 

 

苦忘亂抽書 고망란추서 건망증이 염려되어 책들을 어지러이 뽑아 놓고서

散漫還復整 산만환부정 이리저리 흩어진 책을 다시 정리한다

曜靈忽西頹 요령홀서퇴 해는 문득 서쪽으로 기울고

江光搖林影 강광요림영 강에는 빛이 번쩍이고 숲 그림자는 들린다

 

 

扶공下中庭 부공하중정 대나무 지팡이 짚고 뜰로 내려가

矯首望雲嶺 교수망운령 고개 들고 구름재를 멀리바라본다

漠漠炊烟生 막막취연생 밥짓는 연기 아득히 피어오르고

蕭蕭原野冷 소소원야랭 언덕과 들이 차가워 쓸쓸하구나

 

 

田家近秋穫 전가근추확 농가의 가을걷이 가까워지니

喜色動臼井 희색동구정 고을 방앗간에 기쁜 빛 도는구나

鴉還天機熟 아환천기숙 갈가마귀 돌아오니 절기 익어가고

鷺立風標형 로립풍표형 나뭇가지에 바람 불고 해오라기 우두커니 서있다

 

 

我生獨何爲 아생독하위 내 인생 홀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宿願久相梗 숙원구상경 숙원은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다

無人語此懷 무인어차회 내 마음 속의 이야기 나눌 사람 아무도 없어

瑤琴彈夜靜 요금탄야정 고요한 이 밤에 거문고만 타본다

 

 

70. 浮碧樓 부벽루

李滉 이황 1501~1570

 

 

永明寺中僧不見 영명사중승부견 영명사에 스님은 보이지 않고

永明寺前江自流 영명사전강자류 절 앞에는 강물만 흘러가네

 

 

山空孤塔立庭際 산공고탑립정제 산은 고요하고 뜰에는 탑만 우뚝 서 있고

人斷小舟橫渡頭 인단소주횡도두 나루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조각배만 매어있네

 

 

長天去鳥欲何向 장천거조욕하향 높은 하늘을 날아가는 저 새는 어디로 가나

大野東風吹不休 대야동풍취부휴 넓은 들에 봄바람은 끝없이 불어오네

 

往事微茫問無處 왕사미망문무처 지난일 아득하여 물을 곳 없고

淡煙斜日使人愁 담연사일사인수 뿌연 연기 속의 석양은 사람을 수심케 하네

 

 

71. 詠花王 영화왕 모란을 읊다

李玄逸 이현일 1627~1704

 

 

花王發春風 화왕발춘풍 화왕이 봄바람에 피어

不語階壇上 부어계단상 말없이 단 위에 서 있네

紛紛百花開 분분백화개 분분히 핀 온갖 꽃들 중에

何花爲丞相 하화위승상 어느 꽃이 정승일까

 

 

 

72. 寄僧 기승 스님에게

李주 이주

 

 

鐘聲鼓月落秋雲 종성고월락추운 종소리 달을 치니, 가을 구름에 떨어지고

山雨유유不見君 산우유유불견군 산에 소낙비 내리는데, 그대는 보지 않는다

鹽井閉門猶有火 염정폐문유유화 鹽井에 문 닫아도 불빛은 깜박거리고

隔溪人語夜深聞 격계인어야심문 개울 건너 사람의 말소리 밤이 깊어도 들려온다

 

 

73. 白雲庵 백운암

李楫 이집 1668~1731

 

 

雲爲臥점石爲扉 운위와점석위비 구름을 자리 삼고 바위를 사립삼아

月滿心臺風滿衣 월만심대풍만의 마음엔 달이 가득 옷에는 바람 가득

盡與魚龍說經罷 진여어룡설경파 魚龍을 데리고서 說經을 마치시면

院庭歷亂雨花飛 원정력란우화비 뜨락엔 어지러이 꽃비가 날리겠지

 

 

74. 晩晴 효청 저녁 비 개이고

李集 이집 1327~1387

 

 

晩晴溪水振風凉 만청계수진풍량 저녁 비 갠 시내에 바람이 서늘하고

屋上峰陰半入墻 옥상봉음반입장 지붕 위의 산 그림자 반쯤 담 안에 들어왔네

滿眼新詩收未得 만안신시수미득 눈 가득한 그 풍경을 미처 시에 담기 전에

一枝花月送淸香 일지화월송청향 꽃 가지에 걸린 달이 맑은 향기 보내오네

 

 

75. 尋僧 심승 스님을 찾아

李廷龜 이정귀 1564~1635

 

 

石逕崎嶇杖滑苔 석경기구장활태 지팡이 짚고 이끼 낀 미끄러운 石逕 오르니

淡雲疎磬共徘徊 담운소경공배회 아득한 풍경소리 엷은 구름 위에서 노니네

沙彌叉手迎門語 사미차수영문어 어린 중이 두 손 모으며 맞더니

師在前山宿未回 사재전산숙미회 스님은 앞산에서 잠들어 돌아오지 않으셨다하네

 

 

76. 幽居 유거 한가히 살며

李廷龜 이정귀 1564~1635

 

 

幽居地僻斷過從 유거지벽단과종 외진 곳에 한가로이 사니, 발길 끊기고

睡起閑齋萬事용 수기한재만사용 한가한 집, 잠에서 깨어도 할 일이 없네

猶有憂時心未已 유유우시심미이 그래도 근심은 있어, 마음이 안 좋으면

夕陽扶杖看前峯 석양부장간전봉 석양에 지팡이 짚고 산 봉우리 바라보네

 

 

 

77. 雪 설 눈

李廷柱(朝鮮) 이정주

 

 

曉失雙白鶴 효실쌍백학 새벽에 백학 한 쌍이 보이지 않아

초창望遠空 초창망원공 마음 섭섭하여 먼 하늘을 바라본다

忽聞淸려響 홀문청려향 문득 맑은 학 울음소리 들리니

依舊在庭中 의구재정중 예전과 같이 뜰 안에 있었구나

 

 

78. 自寬 자관 스스로 너그럽게

李藏用 이장용 1201~1272

 

 

萬事唯宜一笑休 만사유의일소휴 모든 일은 오직 한번 웃고 마는 것이 마땅하리

蒼蒼在上豈容求 창창재상기용구 위로는 아득함 있어 어찌 구하는 모든 것을 허락하겠나

但知吾道何如耳 단지오도하여이 다만 나의 길이 어떠한지 알고 싶을 뿐

不用斜陽獨依樓 불용사양독의루 夕陽에 홀로 망루에 기댈 필요가 없으리

 

 

79. 無題 무제

文山 李載毅 이재의 1772~1839

 

 

孤松不改節 고송불개절 외로운 소나무가 절개를 안 고치니

隱者盤桓處 은자반환처 은둔자가 이리저리 노니는 곳 되었지

傍有小壇築 방유소단축 그 곁에는 작은 壇이 하나 있으니

此心誰與語 차심수여어 이 맘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으랴

 

 

 

80. 題香山僧軸 제향산승축

李제 이제 讓寧大君 1394~1462

 

 

山霞朝作飯 산하조작반 산의 노을로 아침에 밥을 짓고

蘿月夜爲燈 라월야위등 숲 사이 돋는 달로 밤에 등불을 삼네

獨宿孤庵下 독숙고암하 외로운 암자 찾아와 홀로 자니

惟存塔一層 유존탑일층 중들은 어디 가고 탑만 서 있네

 

 

81. 戱贈西關妓 호증서관기 西關의 기생에게

 

李제 이제 讓寧大君 1394~1462

 

 

別後音容杳莫追 별후음용향막추 이별 후 소식 묘연하니

楚臺無路覓佳期 초대무로멱가기 楚臺에서 만날 기약 없구나

粧成玉貌人誰見 반성옥모인수견 단장한 고운 얼굴 누가 볼까

愁殺紅顔鏡獨知 수쇄홍안경독지 수심진 紅顔은 거울이 홀로 알겠지

 

 

夜月猶嫌窺繡枕 야월요혐규수침 달빛은 비단 베개 엿보고

晩風何事捲羅? 만풍하사권라? 저녘 바람은 무슨 일로 휘장을 걷어 치나

庭前賴有丁香樹 정전뢰유정향수 뜰앞에 丁香樹 서 있기에

强把春情折一枝 강파춘정절일지 春情을 못잊어 한 가지 꺾었네

 

 

82. 贈別丁香 증별정향 이별하는 丁香에게

 

李제 이제 讓寧大君 1394~1462

 

 

別路香雲散 별로향운산 헤어진 길에는 향기로운 구름 흩어지고

離情片月鉤 리정편월구 이별의 情은 휘어진 조각달

可憐轉輾夜 가련전전야 가련타 잠 못 이루는 이 밤

誰復慰殘愁 수복위잔수 누가 다시 남은 근심 위로해 주리

 

 

83 .普德窟 보덕굴

李齊賢 이제현

 

 

陰風生巖谷 음풍생암곡 찬바람 바위 골짜기에서 불어오고

溪水深更綠 계수심갱녹 계곡 물은 깊고도 푸르네

倚杖望層전 의장망층전 지팡이에 기대 겹친 산꼭대기 바라보니

飛첨駕雲木 비첨가운목 구름은 나무를 감싸 안으며 날아가네

 

 

 

84. 山舍朝炊 산사조취 山舍 아침 굴뚝연기

李齊賢 이제현

 

 

山下誰家遠似村 산하수가원사촌 산 아래 외딴 집은 누구의 집일까

屋頭烟帶大平痕 옥두연대대평흔 굴뚝에선 가느다란 연기 피어오르고

時聞一犬吠籬落 시문일견폐리락 무너진 울타리 옆에서는 개 짖는 소리

乞火有人來구門 걸화유인래구문 불씨 꾸러 온 사람이 문이라도 두드리나  

 

 

85. 山中雪夜 산중설야 산 속 눈 내리는 밤에

李齊賢 이제현

 

 

紙被生寒佛燈暗 지피생한불등암 얇은 이불에선 한기가 일고 佛燈 어두운데

沙彌一夜不鳴鐘 사미일야불명종 어린 중은 밤새도록 종을 울리지 않는구나

應嗔宿客開門早 응진숙객개문조 자는 客 문을 일찍 연다고 화를 내겠지만

要看庵前雪壓松 요간암전설압송 암자 앞 눈 쌓인 소나무 꼭 보리라

 

 

86. 登峨眉山 등아미산 아미산에 올라

李齊賢 이제현 1287~1367

 

 

蒼雲浮地面 창운부지면 검푸른 구름 땅 위에 떠 있고

白日轉山腰 백일전산요 밝은 해는 산허리로 둘러간다

萬像歸無極 만상귀무극 萬像은 無極으로 돌아가니

長空自寂寥 장공자적요 허공은 스스로 고요하기만 하다

 

 

87. 沙里花 사리화

李齊賢 (高麗) 이제현 1287~1367

 

 

黃雀何方來去飛 황작하방래거비 참새야 어디서 오가며 우느냐

一年農事不曾知 일년농사불증지 일 년 농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鰥翁獨自耕耘了 환옹독자경운료 늙은 홀아비 홀로 갈고 맸는데

耗盡田中禾黍爲 모진전중화서위 밭의 벼며 기장을 다 없애다니

 

 

88. 鄭瓜亭 정과정

李齊賢 이제현 1287~1367

 

 

憶君無日不霑衣 억군무일부점의 그대를 생각하느라 하루도 옷을 적시지 않는 날이 없으니

政似春山蜀子規 정사춘산촉자규 바로 봄 산 접동새 같네

爲是爲非人莫問 위시위비인막문 옳고 그릇됨을 사람들아 묻지를 마오

只應殘月曉星知 지응잔월효성지 단지 응당 지는 달과 새벽별만은 알리라

 

 

89. 居士戀 거사연

李齊賢 이제현

 

 

鵲兒籬際塞花枝 작아이제새화지 울타리 꽃가지엔 새벽까치 짖어대고

희子床頭引網線 희자상두인망선 갈거미는 침상 머리에서 그물 실을 뽑아내네

余美歸來應未遠 여미귀래응미원 우리 님 머지않아 오시려나

精神早己報人和 정신조기보인화 어쩐지 내 마음이 미리 설레네

 

 

90. 九曜堂 구요당 깊은 산 속 집

李齊賢 이제현

 

 

溪水潺潺石逕斜 계수잔잔석경사 시냇물 잔잔하고 돌길이 비탈진 곳

寂廖誰似道人家 적요수사도인가 적막하기 도인 사는 거처와 비슷해라

庭前臥樹春無葉 정전와수춘무엽 뜰 앞 누운 나무 봄에도 잎은 없고

盡日山蜂咽草花 진일산봉인초화 진종일 산 벌만 풀꽃에서 잉잉대네

 

 

91. 桐花 동화 오동 꽃

李春元 이춘원

 

 

桐花一朶殿群芳 동화타염전군방 오동 꽃 한 송이 뒤늦게 피었기에

折揷金壺別有香 절삽금호별유향 꺾어 꽃병에 꽂으니 향기 새롭네

幾度春風開落後 기도춘풍개락후 몇 해를 봄바람에 피고 진 뒤엔

化身琴瑟夜鳴堂 화신금슬야명당 거문고 되어 대청에서 울어댈 거야

 

 

92. 幇甚 방심 게으름

李詹 이첨

 

 

平生志願已蹉타 평생지원이차타 평생에 뜻하던 일 이미 글렀고

爭奈衰慂十倍多 쟁내쇠용십배다 어쩌랴 게으름만 부쩍 느는 걸

午枕覺來花影轉 오침각래화영전 낮잠에서 깨보니 꽃 그늘은 옮겨가

暫携稚子看新荷 잠휴치자간신하 아이의 손잡고 갓 핀 연꽃 구경하네

 

 

93. 偶成 우성 우연히 짓다

李淸照(宋) 이청조

 

 

十五年前花月底 십오년전화월저 십오년전 달빛 어린 꽃 아래서

相從曾賦賞花詩 상종증부상화시 함께 꽃을 보며 詩 지었었지

今春花月渾相似 금춘화월혼상사 그 꽃과 그 달은 예전 그대로 인데

安得精懷似往時 안득정회사왕시 이내 마음 어찌 옛날과 같겠는가

 

 

94. 雨夜有懷 우야유회 비오는 밤에

印毅 인의

 

 

草堂秋七月 초당추칠월 초가집 칠월 가을날

霖雨夜三更 임우야삼경 한밤에 장마비는 주절주절

 

의枕客無夢 의침객무몽 베개를 높여도 잠은 오지 않고

隔窓충有聲 격창충유성 창밖엔 벌레소리 요란하네

 

 

淺莎번亂滴 천사번난적 잔디에 어지러이 빗방울 떨어지고

寒葉쇄餘淸 한엽쇄여청 떨어진 빗방울에 나뭇잎 남은 푸른 빛 더 씻기겠네

 

 

自我有幽趣 자아유유취 자연히 나에게 그윽한 마음 생기니

知君今多情 지군금다정 이제 그대 다정함을 알겠네

 

 

95. 華嚴一乘法界圖 화엄일승법계도

義湘스님 의상스님

 

 

法性圓融無二相 법성원융무이상 법과 성품은 원융하여 두가지 모양이 없나니

諸法不動本來寂 제법부동본래적 모든 법이 움직임이 없어 본래부터 고요하다

無名無相絶一切 무명무상절일체 이름없고 모양도 없어서 온갖 경계가 끊겼으니

證智所知非餘境 증지소지비여경 깨달은 지혜로만 알 뿐 다른 경계 아니로다

 

 

眞性甚深極微妙 진성심심극미묘 참된 성품 깊고 깊어 지극히 미묘하나

不守自性隨緣成 불수자성수연성 자기 성품 지키잖고 인연따라 이루더라

一中一切多中一 일중일체다중일 하나 중에 일체있고 일체 중에 하나있으니

一卽一切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

 

 

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 한 티끌 그 가운데 시방세계 머금었고

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 일체의 티끌 속도 또한 다시 그러해라

無量遠劫卽一念 무량원겁즉일념 끝이 없는 무량겁이 곧 일념이요

一念卽是無量劫 일념즉시무량겁 일념이 곧 끝이 없는 겁이어라

 

 

九世十世互相卽 구세십세호상즉 구세 십세가 서로서로 섞였으되

仍不雜亂隔別成 잉불잡란격별성 잡란없이 따로따로 이뤘어라

初發心時便正覺 초발심시변정각 처음 발심 하온 때가 정각을 이룬 때요

生死涅槃相共和 생사열반상공화 생사와 열반이 서로 서로 함께 했고

 

 

理事冥然無分別 이사명연무분별 이와 사가 그윽히 조화하여 분별할 것 없으니

十佛普賢大人境 십불보현대인경 열 부처님 보현보살 큰 사람의 경계더라

能仁海印三昧中 능인해인삼매중 부처님의 해인 삼매 그 가운데

繁出如意不思義 번출여의불사의 불가사의 무진법문 마음대로 드러내며

 

 

雨寶益生滿虛空 우보익생만허공 빗방울같이 보배로 중생을 이롭게 한 일 허공에 가득 차니

衆生隨器得利益 중생수기득이익 중생들이 그릇따라 갖은 이익 얻음이라

是故行者還本際 시고행자환본제 이 까닭에 수행자들은 마음자리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碻息妄想必不得 파식망상필부득 망상을 쉬지않곤 얻을 수 없네

 

 

無緣善巧着如意 무연선교착여의 인연 짓지않는 좋은 방편으로 마음대로 잡아쓰니

歸家隨分得資糧 귀가수분득자량 집에 돌아가 분수따라 양식 얻네

以陀羅尼無盡寶 이다라니무진보 이 다라니 무진법문 끝이 없는 보배로써

莊嚴法界實寶殿 장엄법계실보전 온 법계를 장엄하여 보배궁전 이루고서

 

 

窮坐實際中道床 궁좌실제중도상 영원토록 법의 중도 자리에 편히 앉아

舊來不動名爲佛 구래부동명위불 억만겁에 부동함을 이름하여 부처라하느니라

 

 

 

96. 그대 무릎 베고 빈몸으로 가네

一休禪師(日本) 일휴선사

 

 

十年花下理芳盟 십년화하리방맹 십년 동안 꽃 아래서 부부언약 잘 지켰으니

一段風流無限淸 일단풍류무한청 한 가락 풍류는 무한한 정치여라

情別枕頭兒女膝 정별침두아여슬 그대 무릎 베고 누워 이 세상을 하직하니

夜深雲雨約三生 야심운우약삼생 깊은 밤 운우 속에서 삼생을 기약하네

 

 

97. 吉祥寺古梅 길상사고매 吉祥寺에 묵은 매화

林古度(淸) 임고도

 

 

一樹古梅花數畝 일수고매화수무 묵은 매화나무 가지에 꽃 흐드러져

城中客子乍來看 성중객사작래간 도성 안 사람들 몰려와 구경하네

不知花氣淸相逼 부지화기청상핍 꽃에서 맑은 기운 피어나는 줄 모르고

但覺深山春尙寒 단각심산춘상한 산이 깊어 봄인데도 아직 춥다 말하네

 

 

98. 山園小梅 산원소매 산속 동산에 핀 작은 매화

林逋(北宋) 임보

 

 

衆芳搖落獨暄姸 중방요락독훤연 꽃들은 떨어졌건만 홀로 곱고 아름다워

占盡風情向小園 점진풍정향소원 풍정을 모두 앗아간 채 작은 정원을 향해 피었다

 

 

疎影橫斜水淸淺 소영횡사수청천 성긴 그림자 가로질러 흐르는데 물은 맑고

暗香浮動月黃昏 암향부동월황혼 그윽한 향기 뿜어내니 때는 달뜨는 황혼이로다

 

 

霜禽欲下先偸眼 상금욕하선투안 흰 학은 내려 올려는 듯 먼저 자리를 살피고

粉蝶如知合斷魂 분접여지합단혼 나비도 아는 듯이 넋을 잃고 함께 한다

幸有微吟可相狎 행유미음가상압 다행히 나직이 시를 읊어 서로 가까이할 수 있으니

不須檀板共金尊 불수단판공금존 단판 과 금 술잔은 필요가 없으리라


99. 貧女吟 빈녀음 가난한 여인의 노래

              林碧堂金氏(朝鮮) 임벽당김씨

夜久직末休 야구직말휴 밤 깊도록 베를 짜며 쉬지 않으니

憂憂鳴寒機 우우명한기 베 짜는 소리만 차가운 베틀에서 울려 퍼지네

機中一疋練 기중일필련 베틀의 한 필 옷감

終作阿誰衣 종작아수의 마침내 누구의 옷이 지어지려나

                練= 흰 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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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山行) - 두목(杜牧) 당 말기 시인(803-853)

 

遠上寒山石俓斜(원상한산석경사)

白雲深處有人家(백운심처유인가)

停車坐愛楓林晩(정차좌애풍림만)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멀리 사람없는 산에 오르니 돌길이 비스듬히 끝이 없구나

-흰구름이 피어오르는 곳에 인가가 있어

-수례를 멈추고 석양에 비치는 단풍숲을 보니

-서리 맞은 단풍잎이 한창때 봄꽃보다 더욱 붉고나

 

★ 추야우중(秋夜雨中. 가을비 내리는 밤에) -최치원(崔致遠)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가을 바람에 괴로워 애써 읊어도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세상에 내 마음 아는 이 없어.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창밖엔 밤 깊도록 밤비 내리고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등잔 앞에서 만리길 고향 그리네.

 

★ 기아거자(棄我去者) -이백

 

棄我去者(기아거자) -날 버리고 가버린

昨日之日不可留(작일지일불가류)-어젯날은 머물게 할 수 없고

亂我心者(난아심자) -내 마음 어지럽힌

今日之日多煩憂(금일지일다번우)-오늘은 얼마나 근심스러운지

長風万里送秋雁(장풍만리송추안)-긴 바람은 만리서 가을 기러기를 실어보내오고

對此可以甘高樓(대차가이감고루)-이를 대하니 높은 누각에서 마음껏 취하리로다

蓬萊文章建安骨(봉래문장건안골)-봉래의 문장은 건안의 풍골이요

中間小謝又淸發(중간소사우청발)-중간의 소사 또한 맑고도 수려하다

俱懷逸興壯思飛(구회일흥장사비)-모두 빼어난 흥 장한 생각 품고날아서

欲上靑天攬明月(욕상청천람명월)-푸른 하늘 올라서 명월을 따려 든다

抽刀斷水水更流(추도단수수경류)-칼 빼어 물을 베나 물은 다시 흘러가고

擧杯銷愁愁更愁(거배소수수경수)-잔 들어 근심을 삭이나 시름은 더하듯

人生在世不稱意(인생재세불칭의)-사람 나서 세상에서 뜻대로 되잖으니

明朝散髮弄扁舟(명조산발롱편주)-내일 아침 머리 흩날리며 조각배나 띄어볼거나

 

★ 화석정(花石亭) - 이율곡 (李栗谷)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숲 속의 정자에 가을이 벌써 저물어가니,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시인의 시상이 끝없이 일어나네.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멀리 보이는 저 물빛은 하늘에 이어져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서리맞은 단풍은 햇볕을 받아 붉구나.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산은 외롭게 생긴 둥근 달을 토해 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변방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울음 소리 석양의 구름 속에 끊어지네.

 

※ 율곡 선생이 8살 때 파주 화석정에서 지었다는시다.

 

★ 추야(秋夜) -정철(鄭澈) 조선시대

 

蕭蕭落葉聲(소소낙엽성)-우수수 낙엽지는 소리를

錯認爲疏雨(착인위소우)-가랑비 소리로 잘못 들어

呼童出門看(호동출문간)-아이불러 문박엘 나가보게 하니

月掛溪南樹(월괘계남수)-시냇가 남쪽 나무에 달이 걸려 있구나

 

★ 상월(霜月) - 이행(李荇)

 

晩來微雨洗長天(만래미우세장천)-저물녘 가랑비 내려 긴 하늘 씻어내고

入夜高風捲暝烟(입야고풍권명연)-밤 들자 높이 부는 바람 어둑한 안개 걷어내네

夢覺曉鍾寒徹骨(몽각효종한철골)-새벽 종소리에 잠을 깨니 寒氣가 사무치는데

素娥靑女鬪嬋娟(소아청녀투선연)-달빛과 서리가 아름다움을 다투네

 

★ 추흥(秋興. 가을의 흥취) -두보

 

玉露凋傷楓樹林(옥로조상풍수림)

巫山巫峽氣蕭森(무산무협기소삼)

江間波浪兼天湧(강간파랑겸천용)

塞上風雲接地陰(새상풍운접지음)

叢菊兩開他日淚(총국양개타일루)

孤舟一繫故園心(고주일계고원심)

寒衣處處催刀尺(한의처처최도척)

白帝城高急暮砧(백제성고금모침)

 

-玉같은 이슬에 숲속 단풍나뭇잎도 떨어지고

-어지러운 산과 골짝기의 기운이 쓸쓸함 가득하구나

-江의 파도와 물결은 하늘로 성하게 일고

-城위 바람과 구름은 땅 그늘에 이르니 어두어지네

-두송이 국화꽃 피니 지난날의 눈물이요

-외로운 배 매였으니 고향생각이 절로 난다

-겨울옷 준비로 곳곳에 마름질하는 손길 바쁜데

-白帝城 저 높이 저녁 다듬이 소리 급하다

 

★ 추풍인 (秋風引. 가을 바람의 노래) - 류우석 (劉禹錫) 

何處秋風至(하처추풍지)-어디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지

蕭蕭送雁群(소소송안군)-살살 불고 기러기 무리를 보낸다

朝來入庭樹(조래입정수)-아침이 되여 마당 나무가지에 불어오는데

孤客最先聞(고객최선문)-고독한 나그네가 가장 먼저 이 소리를 듣네

 

★ 채련곡(采蓮曲. 연꽃을 따는 노래) - 허란설헌(許蘭雪軒)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가을에 맑은 호숫물 옥돌처럼 흘러가고

蓮花深處繫蘭舟(련화심처계란주)-련꽃 피는 깊은 곳에 란초 배를 매놓고서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련자 )-당신 보고 물건너서 련꽃을 던졌는데

或被人知半日羞(혹피인지반일 수)-혹시 남이 봤을가봐 반나절 부끄럽네

 

★ 반달(詠半月) - 황진이(黃眞伊)

 

誰斷崑山玉(수단곤산옥)-그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서

裁成織女梳(재성직녀소)-직녀의 머리빗을 만들어 주었던고.

牽牛一去後(견우이별후)-견우님 떠나신 뒤에 오지를 않아

愁擲碧空虛(수척벽공허)-수심이 깊어 푸른 허공에 걸어 놓았네.

곤륜산(崑崙山)은 전설상의 높은 산으로 중국의 서쪽에 있으며, 옥(玉)의 생산지이다.

 

 견우직녀는 설화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이다. 한 번 간 뒤에 온다던 견우가 오지를 않자

옥으로 만든 얼빗을 허공에 던진 것이 반달이다.

 

★ 가을 새벽 - 권필(權韠, 1569-1612)

 

日入投孤店(일입투고점)-저물어 외로운 여관에 드니

山深不掩扉(산심불엄비)-산 깊어 사립도 닫지를 않네.

鷄鳴問前路(계명문전로)-닭 우는 새벽에 앞길 묻는데

 

★ 추사(秋思. 가을 생각)- 장적(張籍)(768-830). 중당(中唐) 시인

 

洛陽城裏見秋風-낙양성 안에서 가을 바람을 맞아

欲作家書意萬重-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쓰고자 하니 뜻이 만겹이나 되네

復恐悤悤說不盡-바쁘고 바빠서 말을 다하지 못했을까 다시 염려가 되어

行人臨發又開封-길 떠나는 사람이 출발하기에 앞서 또 다시 봉한 것을 열어보네

 

※ 이 시는 춘향전에도 인용('行人臨發又開封')된 유명한 시이다.

 

★ 청추선(聽秋蟬. 가을 매미 소리) -강정일당(姜靜一堂)

 

萬木迎秋氣(만목영추기)-어느덧 나무마다 가을빛인데

蟬聲亂夕陽(선성난석양)-석양에 어지러운 매미 소리들

沈吟感物性(침음감물성)-제철이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林下獨彷徨(임하독방황)-쓸쓸한 숲 속을 혼자 헤맸네.

 

★ 옥중시 - 만해 한용운

 

雁秋聲遠(일안추성원)-가을 기러기 한 마리 멀리서 울고

數星夜色多(수성야색다)-밤에 헤아리는 별 색도 다양해

燈深猶未宿(등심유미숙)-등불 짙어지니 잠도 오지 않는데

獄吏問歸家(옥리문귀가)-옥리는 집에 가고 싶지 않는가 묻는다.

天涯一雁叫(천애일안규)-하늘 끝 기러기 한 마리 울며 지나가니

滿獄秋聲長(만옥추성장)-감옥에도 가득히 가을 바람소리 뻗치는구나

道破蘆月外(도파노월외)-갈대가 쓰러지는 길 저 밖의 달이여

有何圓舌椎(유하원설추)-어찌하여 너는 둥근 쇠몽치 혀를 내미는 거냐.

 

★ 중양(重陽) - 만해 한용운

 

九月九日百潭寺(구월구일백담사)-구월 초아흐래 중양절의 백담사

萬樹歸根病離身(만수귀근병리신)-온 나뭇잎이 지니 병도 내 몸 떠나

閒雲不定孰非客(한운부정숙비객)-한가한 구름 정처 없이 누구나 나그네 아니며

黃花已發我何人(황화이발아하인)-누런 국화 꽃 이미 피었으니 나는 또 누구

溪磵水落晴有玉(계간수락청유옥)-시내에는 물이 잦아 옥돌이 드러나고

鴻雁秋高逈無塵(홍안추고형무진)-기러기 가을 하늘 높아 아득히 먼지 없다

午來更起蒲團上(오래갱기포단상)-낮 되자 다시 부들 방석 위로 일어나니

千峰入戶碧燐栒(천봉입호벽인순)-일천 봉우리 방에 들어 푸른 빛으로 솟네.

 

★ 주중야음(舟中夜吟) - 박인량 (朴寅亮) 

 

故國三韓遠(고국삼한원)-고국 삼한은 멀리 떨어져 있고

 

秋風客意多(추풍객의다)-가을 바람에 나그네의 뜻은 깊어지네

 

孤舟一夜夢(고주일야몽)-외로운 배에서 하룻밤의 꿈을

 

月落洞庭波(월락동정파)-달이 떨어지니 동정호에 물결이 일어나네

 

 

 

★ 야좌유감(夜坐有感) - 이병휴 (李秉休)

 

秋堂夜氣淸(추당야기청)-가을 당에 밤 기운은 맑아서

 

危坐到深更(위좌도심경)-단정히 앉아 깊은 밤까지 이르렀네.

 

獨愛天心月(독애천심월)-하늘 한 가운데 떠 있는 달을 홀로 사랑하니

 

無人亦自明(무인역자명)-사람이 없어 절로 밝구나.

 

 

 

★ 題, 作者未祥

 

昨夜江南雨(작야강남우)-어제 저녁 강남에 비가 내리더니

 

洞庭秋水深(동정추수심)-동정호에 가을 물이 깊기도 하네.

 

一葉孤舟客(일엽고주객)-일엽(一葉)작은 배 외로운 나그네

 

月中千里心(월중천리심)-달빛 속에 고향생각 천리를 달리네.

 

 

 

★ 임종게 (臨終偈) - 천동굉지 (天童宏智)

 

夢幻空花 (몽환공화)-꿈같고, 환상같고, 허공꽃같은

 

六十七年 (육십칠년)-육십년 칠년의 세월이여!

 

白鳥煙沒 (백조연몰)-백조 날아가고 물안개 걷히니

 

秋水天連 (추수천연)-가을물이 하늘에 닿았네.

 

 

 

★ 정야사(靜夜思) - 이백 (李白) 

 

牀前看月光(상전간월광)-침대에 기대어 달 빛을 바라보니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이것이 땅 위의 서리인가 의심스럽구나.

 

擧頭望山月(거두망산월)-머리를 들어 산 위에 떠있는 달을 바라보고

 

低頭地上霜(저두지상상)-머리를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 방김거사야거(訪金居士夜居) - 정도전 (鄭道傳)

 

秋雲漠漠四山空(추운막막사산공)-가을 구름은 아득히 떠 가고 온 산은 고요한데

 

落葉無聲滿地紅(낙엽무성만지홍)-낙엽은 소리 없이 땅에 가득 붉었구나.

 

立馬溪橋問歸路(입마계교문귀로)-시내가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돌아갈 길을 물으니

 

不知身在畵圖中(부지신재화도중)-내 몸이 그림 속에 있는지 알지 못하겠네.

 

 

 

★ 추석(秋夕) - 두목(杜牧)

 

銀燭秋光冷畵屛(은촉추광냉화병)-은촉불 가을 빛은 병풍에 찬데

 

輕羅小扇搏流螢(경라소선박유형)-가벼운 비단 부채로 반디불을 치누나.

 

天際夜色凉如水(천제야색량여수)-하늘 가 밤빛은 물처럼 싸늘한데

 

坐看牽牛織女星(좌간견우직녀성)-견우와 직녀성을 오두마니 바라보네.

 

※가을 밤의 애상적 분위기가 물씬한 작품이다.

 

방 안에는 은촉불이 타고 있고, 방에는 화사한 그림 병풍이 둘려 있다.

 

그녀의 손에는 가벼운 비단 부채가 쥐어져 있다.

 

한 눈에도 매우 넉넉한 귀족풍의 규방을 떠올릴 수 있다.

 

 

 

★ 추일작(秋日作.가을날 짓다) - 정철(鄭澈) 

 

山雨夜鳴竹(산우야명죽)-산 속의 빗줄기가 밤새 대숲을 울리고

 

草蟲秋近床(초충추근상)-풀 벌레 소리 가을되니 침상에 가깝네

 

流年那可駐(유년나가주)-흐르는 세월 어찌 멈출 수 있으랴

 

白髮不禁長(백발부금장)-흰 머리만 길어지는 걸 막을 수 없구나

 

 

 

★ 별퇴도선생(別退陶先生.퇴계선생과 이별하며) - 정철(鄭澈) 

 

追到廣陵上(추도광릉상)-뒷쫓아 광릉에 이르렀거늘

 

仙舟已杳冥(선주이묘명)-선주(仙舟)는 이미 떠나 아득하고나.

 

秋風滿江思(추풍만강사)-가을바람 이는 강가에 그리움만 가득하나니

 

斜時獨登亭(사시독등정)-지는 해에 홀로 정자에 올라라.

 

 

 

★ 한산도(閑山島) - 이순신(李舜臣)

 

水國秋光暮(수국추광모)-물 나라에 가을 빛이 저무니

 

驚寒雁陣高(경한안진고)-추위에 놀란 기러기 떼가 높이 날아가네.

 

憂心輾轉夜(우심전전야)-근심하는 마음으로 엎치락 뒤치락하는 밤에

 

殘月照弓刀(잔월조궁도)-새벽달빛이 활과 칼을 비추네.

 

 

 

★ 登高 - 두보

 

風急天高猿嘯哀(풍급천고원소애)

 

渚淸沙白鳥飛廻(저청사백조비회)

 

無邊落木蕭蕭下(무변락목소소하)

 

不盡長江滾滾來(불진장강곤곤래)

 

萬里悲秋常作客(만리비추상작객)

 

百年多病獨登臺(백년다병독등대)

 

艱難苦恨繁霜빈(간난고한번상빈)

 

燎倒新停濁酒杯(요도신정탁주배)

 

-가을 바람이 소슬하고 하늘은 맑아 한결 드높고 원숭이 울음소리는 처량하게 들리는데,

 

-맑은 강변 白沙洲(백사주)에는 물새들이 제 보금자리인 양 날아든다.

 

-우수수 지는 낙엽은, 져도 져도 한없이 자꾸만 떨어지는데,

 

-무진장으로 흐르는 강물은, 흘러도 흘러도 다함이 없이 있고 이어서 오는구나.

 

-객지 만리를 유랑하며 가을을 슬퍼하여 내내 나그네의 몸이 되니,

 

-한평생 허구헌 노심(勞心)과 병고(病苦)로 지친 몸이 친구도 없이

 

홀로 대에 올라 답답한 가슴을 헤쳐 보려고 한다.

 

-간난에 시달려 서리같이 센 귀밑털이 어지럽게 휘날리는 것을 몹시 슬퍼하나니,

 

-늙고 영락(零落)한 봄임을 생각하매 또 한 잔 탁주잔을 들어 한스러운 마음을 달래려 한다.

 

★ 금강산 잡영(金剛山雜詠) - 정철 

 

穴網峯前寺(혈망봉전사)-혈망봉 앞에 절이 있어

 

寒流對石門(한류대석문)-치운 물이 석문이랑 대하고 있네.

 

秋風一聲笛(추풍일성적)-가을 바람 속에 피리 소리 하나가

 

吹破萬山雲(취파만산운)-만산의 구름을 뚫나니.

 

 

 

★ 연구(聯句) - 정철 

 

秋雲低薄暮(추운저박모)-가을 구름은 저물녘 나직도 한데

 

別意醉中生(별의취중생)-이별의 정은 취중에 이네.

 

前路崎嶇甚(전로기구심)-갈 길은 기구하기만 하니

 

相留多少情(상류다소정)-서로 머물고 싶은 다소의 정이여.

 

 

 

★ 송강정(松江亭) - 정철 

 

明月在空庭(명월재공정)-달빛은 빈 뜰 안에 가득한데

 

主人何處去(주인하처거)-주인은 어디 갔나.

 

落葉掩柴門(낙엽엄시문)-낙엽은 사립문을 덮어 버리고

 

風松夜深語(풍송야심어)-바람은 소나무에서 밤새도록 속삭이네.

 

 

 

★ 봉별소판서세양(奉別蘇判書世讓. 소세양판서를 보내면서) - 황진이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달빛에 오동잎이 다지고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서리에 들국화 황금빛이 되다.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누각 높이가 하늘이 한 자이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사람은 천 잔 술에 취했도다.

 

流水知琴冷(유수지금랭)-유수(流水)는 거문고 소리와 응하여 차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매화는 피리 소리와 어울려 향기롭다.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내일 아침 이별하고선

 

精興碧波長(정흥벽파장)-내 정회(情懷)는 푸른 물결이 되어 흐르리라.

 

※조선조 여류시인으로서, 허난설헌(許蘭雪軒)과 비견할만한 인물은

 

황진이 한 사람 뿐이라고 높히 평가되고 있으며,

 

한시에는 허난설헌에게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겠으나,

 

시조에 있어서는 황진이가 독보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고 했다.

 

 

 

★청산리벽계수(靑山裡碧溪水) - 황진이

 

靑山裡碧溪水(청산리벽계수)-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莫誇易移去(막과이이거)-수이 감을 자랑마라

 

一到滄海不復還(일도창해부부환)-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오니

 

明月滿空山(명월만공산)-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暫休且去若何(잠휴차거약하)-쉬어 간들 어떠리

 

 

★박연폭포 (朴淵瀑布) - 황진이 

 

一派長天噴壑(롱일파장천분학롱)-한 줄기 물줄기 하늘에서 골짝에 떨어져

 

龍湫百仭水叢叢(용추백인수총총)-용추못 백 길되는 물줄기 용솟음 치는구나

 

飛泉倒瀉疑銀漢(비천도사의은한)-날아 오른 샘물은 거꾸로 쏟아진 은하수인듯

 

怒瀑橫垂宛白虹(노폭횡수완백홍)-성난 듯 한 물결이 흰 무지개처럼 드리웠구나

 

雹亂霆馳彌洞府(박난정치미동부)-날리는 우박, 치닫는 우뢰소리 골짝에 가득 차고

 

珠聳玉碎徹晴空(주용옥쇄철청공)-구슬같이 치솟아 옥같이 부셔져 하늘까지 이른다

 

遊人莫道廬山勝(유인막도려산승)-나그네여, 여산의 폭포만 좋다고 말하지 말라

 

須識天磨冠海東(수식천마관해동)- 이 천마산 폭포가 해동의 제일임을 알아야 하리

 

 

 

★ 감추회문 (感秋回文) - 이지심(李知深)

 

散暑知秋早(산서지추조)-더위도 사라지고 가을이 되니

 

悠悠稍感傷(유유초감상)-이시름 저시름 마음 상하네

 

亂松靑蓋倒(난송청개도)-푸른 그늘 거꾸러져 일산 펴든듯

 

流水碧羅長(유수벽라장)-물소리 조랑조랑 흘러 가노니

 

岸遠凝煙皓(안원응연호)-연기는 멀리멀리 희게 어리고

 

樓高散吹凉(루고산취량)-다락은 높고 높아 서늘하구나

 

半天明月好(반천명월호)-반넘어 기우른 밝은 저달이

 

幽室照輝光(유실조휘광)-소리 없이 방안에 비치어 오네

 

 

★ 사시(四時) - 도연명 (陶淵明)

 

春水滿四澤(춘수만사택)-봄 물은 연못에 가득하고

 

夏雲多奇峰(하운다기봉)-여름 구름은 산봉우리들처럼 떠 있네.

 

秋月揚明輝(추월양명휘)-가을 달은 밝은 빛을 비추고

 

冬嶺秀孤松(동령수고송)-겨울 산마루엔 큰 소나무 한 그루 서 있네.

 

 

 

★ 영회(詠懷) - 정철 (鄭澈)

 

三千里外美人在(삼천리외미인재)-삼천리나 먼 밖에 그리운 님 계시온데

 

十二樓中秋月明(십이누중추월명)-열 두 누각엔 가을 달이 밝도다.

 

安得此身化爲鶴(안득차신화위학)-어찌 이 몸 화하여 학으로 될 수 있다면

 

統軍亭下一悲鳴(통군정하일비명)-님 계신 통군정 아래 한 번 슬피 울어나 볼 것을.

 

 

 

★ 감로사차운(甘露寺次韻.감로사의 운을 따라) - 김부식 (金富軾)

 

俗客不到處(속객부도처)-속된 세상 사람은 오지 않는 곳에

 

登臨意思淸(등임의사청)-올라와 바라보면 마음이 맑아진다.

 

山形秋更好(산형추경호)-산의 모습은 가을에도 또한 좋고

 

江色夜猶明(강색야유명)-강물 빛깔은 밤이면 더욱 밝다.

 

白鳥高飛盡(백조고비진)-흰 물새는 높이 날아 사라지고

 

孤帆獨去輕(고범독거경)-외로운 배는 홀로 가기 가볍다.

 

自慙蝸角上(자참와각상)-부끄러워라, 달팽이 뿔 위에서

 

半世覓功名(반세멱공명)-반평생 동안 공명 찾아 허덕였구나.

 

절을 찾아서 자신이 살아온 반생을 돌아보며 더욱 높은 정신 세계를 지향하려는 뜻을 담았다.

 

첫 연에서 속된 사람과 정신이 맑은 경지를 대비해 보여주고,

 

둘째 연에서 정신이 맑은 경지에서 보는 산의 모습과 강물 빛깔이 봄보다는 가을이,

 

낮보다는 밤이 더욱 좋다고 하여, 세속적 입장보다 한 차원 높은 세계가 있음을 표현하였다.

 

셋째 연에서 맑고 높은 경지를 풍경에 투사했는데, 그것은 흰 물새처럼 높이 날고 외로운

 

배 같이 가벼운 경지라는 말이다.

 

끝 연은 또 지나온 자기 생애에 대한 한탄이다.

 

달팽이 뿔처럼 좁은 세상에서 권세를 차지하고자 분투해 온 자신의 일생을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구축한 기반을 부정하고 은둔하지는 않았으므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탄일 뿐이다.

 

 

 

★ 도의사(도衣詞) - 설손

 

皎皎天上月(교교천상월)-희고 흰 하늘에 떠 있는 저 달이

 

照此秋夜長(조차추야장)-이 가을 긴긴 밤을 비춰주니라.

 

悲風西北來(비풍서북래)-슬픈 바람은 서북으로부터 불어오고

 

蟋蟀鳴我床(실솔명아상)-귀뚜라미는 나의 평상 틈에서 우니라.

 

君子遠行役(군자원행역)-임은 먼 곳에 가서 나라를 지키고

 

賤妾守空房(천첩수공방)-아내는 쓸쓸히 빈 방을 지키니라.

 

空房不足恨(공방불족한)-빈 방을 지키는 것이 족히 한이 되는 것은 아니나

 

感子寒無裳(감자한무상)-임이 추운 곳에서 옷이 없어 떠는 것이 걱정이 되니라.

 

 

★ 강릉경포대 (江陵鏡浦臺) - 안축(安軸) 

 

雨晴秋氣滿江城(우청추기만강성)-비 개니 가을 기운 강언덕에 가득하고

 

來泛扁舟放野情(내범편주방야정)-다가오는 조각배는 한껏 소박한 정취로다.

 

地入壺中塵不倒(지입호중진불도)-땅은 병속에 들어 티끌도 이르지 못하고

 

天遊鏡裏畵難成(천유경리화난성)-하늘은 경포 속에 노니 그리기 어렵도다.

 

烟波白鷗時時過(연파백구시시과)-아지랭이 물결에 흰 갈매기만 때때로 오가고

 

沙路靑驢緩緩行(사로청려완완행)-모랫길엔 나귀가 느릿느릿 가는구나

 

爲報長年休疾棹(위보장연휴질도)-늙은 사공 보고 힘든 삿대길 쉬게 하고

 

待看孤月夜深明(대간고월야심명)-홀로 뜬 달 바라보니 밤 더욱 밝구료.

 

 

 

★ 음주(飮酒) - 도연명(陶淵明)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변두리에 오두막 짓고 사니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날 찾는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 하나 없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묻노리, 어찌 이럴 수 있는가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마음이 욕심에서 멀어지니, 사는 곳도 구석지다네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꽃 따며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편안히 남산을 바라본다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산기운은 저녁 햇빛에 더욱 아름답고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나는 새들도 서로 더불어 둥지로 돌아오네

 

此間有眞意(차간유진의)-이러한 자연 속에 참다운 삶의 뜻이 있으니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말로 표현하려해도 할 말을 잊었네

 

 

 

★ 주중야음(舟中夜吟) - 박인량(朴寅亮) 

故國三韓遠(고국삼한원)-고국인 삼한 땅은 멀고

 

秋風客意多(추풍객의다)-가을 바람에 나그네의 회포는 많기도 하다.

 

孤舟一夜夢(고주일야몽)-외로운 배에 실은 하룻밤 꿈길

 

月落洞庭波(월락동정파)-달도 진 동정호에 물결이 인다.

 

 

 

 

 

★ 홍경사(弘慶寺) - 백광훈 (白光勳) 

秋草前朝寺(추초전조사)-가을 풀이 우거진 고려 시대의 남은 절에

 

殘碑學士文(잔비학사문)-낡은 비석에는 당시의 이름난 선비를 글귀만 남았도다.

 

千年有流水(천년유류수)-천 년 세월이 흐르는 물같음이 있으니

 

落日見歸雲(낙일견귀운)-떨어지는 저녁 해에 떠 가는 구름만 바라보고 있노라.

 

 

 

★ 한아서부경(寒鴉栖復驚) - 김시습 

楓葉冷吳江(풍엽냉오강)-단풍잎은 오강에 싸늘도 한데

 

蕭蕭半山雨(소소반산우)-우수수 반산엔 비가 내리네.

 

寒鴉栖不定(한아서부정)-갈가마귀 보금자리 정하지 못해

 

低回弄社塢(저회롱사오)-낮게 돌며 사당 언덕 서성거리네.

 

渺渺黃雲城(묘묘황운성)-아스라히 먼지 구름 자욱한 성에

 

依依紅葉村(의의홍엽촌)-안타까이 붉은 잎 물들은 마을

 

相思憶遠人(상사억원인)-먼데 있는 그대가 그리웁구나

 

聽爾添鎖魂(청이첨쇄혼)-네 소리 듣자니 애가 녹는다.

 

 

 

★ 화학(畵鶴) - 이달(李達)

 

獨鶴望遙空(독학망요공)-한마리 학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夜寒拳一足(야한권일족)-밤은 찬데 한 다리를 들고 서있네.

 

西風苦竹叢(서풍고죽총)-참대 숲에 서풍이 불어오더니

 

滿身秋露滴(만신추로적)-온 몸에 가을 이슬 뚝뚝 듣누나. 

 

★산중(山中) - 이이(李珥) 

採藥忽迷路(채약홀미로)-약초를 캐다가 문득 길을 잃었는데

 

千峯秋葉裏(천봉추엽리)-온 산이 단풍으로 물들었네.

 

山僧汲水歸(산승급수귀)-산승이 물을 길어 돌아가고

 

林末茶烟起(임말차연기)-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피어나네.

 

 

 

★ 차추흥 (次秋興) - 조영석

 

幽居寥落對秋山(유거요락대추산)-쓸쓸히 숨어사는 형편에 가을산 대하니

 

濃淡雲霞戶牖間(농담운하호유간)-창틈 새로 보인 구름과 놀 농담이 뒤섞였다

 

五世祖孫傳宅里(오세조손전택리)-오대째 살아온 이마을 저택

 

一溪兄弟共門關(일계형제공문관)-시내를 사이한 형제간들 대문을 함께 했다

 

老來轉覺書中味(노래전각서중미)-늙으막에 바뀐 생각 책 속 진리 음미하고

 

暑退方蘇病後顔(서퇴방소병후안)-더위 가시자 병마에서 되살아났네

 

晏起早眠吾事辨(안기조면오사변)-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내 형편 생각하고

 

較量霜曉진원班(교량상효진원반)-서리친 새벽 조회에 치닫던 때와 비교해보네.

 

 

 

★ 노상(路上) - 이제현

 

馬上行吟蜀道難(마상행음촉도난)-말을 타고 가면서 촉도난을 읊으니

 

今朝始復入秦關(금조시복입진관)-오늘 아침에 처음으로 진관에 다시 드네

 

碧雲暮隔魚鳧水(벽운모격어부수)-파란 구름 이는 저녁은 어부수 저쪽이요

 

紅樹秋連鳥鼠山(홍수추련조서산)-단풍나무 가을은 조서산에 잇닿았네

 

文字剩添千古恨(문자잉첨천고한)-문자(文字)는 천고 한을 보탤 따름인데

 

利名誰博一身閒(이명수박일신한)-명리가 그 누구의 한가함을 널렸던가

 

今人最憶安和路(금인최억안화로)-대지팡이 짚새기로 편안한 차림

 

竹杖芒鞋自往還(죽장망혜자왕환)-스스로 오고감이 생각나네.

 

 

 

★ 소상야우(瀟湘夜雨) - 이제현 

楓葉蘆花水國秋(풍엽노화수국추)-단풍잎과 갈대꽃 수국의 가을인데

 

一江風雨灑扁舟(일강풍우쇄편주)-강바람이 비를 몰아 작은 배에 뿌리네

 

驚回楚客三更夢(경회초객삼경몽)-놀라 돌아오니 고달픈 나그네의 한밤중 꿈을

 

分與湘妃萬古愁(분여상비만고수)-이황 여영의 만고의 시름으로 나누어주네.

 

 

 

★ 소상야우(瀟湘夜雨) - 진화(陣화) 

江村入夜秋陰重(강촌입야추음중)-강촌에 밤이 들어 가을 그늘 무거운데

 

小店漁燈光欲凍(소점어등광욕동)-조그만 주막에 고깃불 얼겠다.

 

森森雨脚跨平湖(삼삼우각과평호)-빗발이 주룩주룩 편편 호수 걸렸는데

 

萬點波濤欲飛送(만점파도욕비송)-만 방울 파도는 날아갈 듯 하는구나.

 

竹枝蕭瑟碎明珠(죽지소슬쇄명주)-바삭바삭 댓가지 밝은 구슬 부수듯하고

 

荷葉翩翩走環汞(하엽편편주환홍)-연잎사귀 푸득푸득 둥근 수은 굴린다.

 

孤舟徹曉掩蓬窓(고주철효엄봉창)-밤새도록 외론 배 봉창을 닫아놓아

 

緊風吹斷天涯夢(긴풍취단천애몽)-바람 부는 하늘가 꿈을 끊어 버린다.

 

 

 

★ 규원(閨怨) - 허난설헌(許蘭雪軒) 

月棲秋盡玉屛空(월서추진옥병공)-달 밝은 누각 가을은 가고 방은 텅 비었네

 

霜打廬洲下暮鴻(상타여주하모홍)-서리 내린 갈섬에 기러기 내린다.

 

瑤琴一彈人不見(요금일탄인부견)-거문고 타고 있어도 임은 보이지 않고

 

藕花零落野塘中(우화영락야당중)-연꽃은 연못으로 한 잎 두 잎 떨어지네.

 

 

 

★ 추강만도(秋江晩渡) - 백균(伯均. 명나라 시인) 

落日歸棹緩(낙일귀도완)-지는 해에 느릿느릿 돌아가는 배

 

瘡江秋思加(창강추사가)-푸른 강에는 가을빛 더욱 깊어

 

雙鱗上荷葉(쌍린상하엽)-짝지은 물고기 연잎 위로 뛰고

 

一雁下빈花(일안하빈화)-마름꽃 마름밑으로 날아드는 외기러기

 

 

 

★ 추석루거(秋夕樓居) - 오융(吳融. 당 시인)

月裏靑山淡如畵(월이청산담여화)-달빛 속의 푸른 산 그림과 같고

 

露中黃葉颯然秋(노중황엽삽연추)-이슬 맞은 단풍잎 삽연한 가을

 

危欄倚편都無寐(위란의편도무매)-높은 난간에 의지해 잠 못 이룸은

 

祗恐星河墮入樓(지공성하타입루)-은하수가 다락 위로 떨어질까바

 

 

 

★ 추야산거(秋夜山居) - 시견오(施肩吾. 당 시인) 

幽居正想飡霞客(유거정상손하객)-고요한 곳에 머물러 있으니 찬하객이 된 듯

 

夜久月寒珠露滴(야구월한주로적)-깊은 밤 싸늘한 달빛 구슬이슬 방울지네

 

千年獨鶴兩三聲(천년독학양삼성)-천년 외로운 학이 두세 번 울면서

 

飛下巖前一枝栢(비하암전일지백)-바위앞 잣나무 가지에 날아 앉는다

 

 

 

★ 추야우음차고운(秋夜偶吟次古韻) - 고산 윤선도

 

秋夜소篁動曉風(추야소황동효풍)-가을 밤 새벽 바람에 성긴 대 흔들리고

 

一輪明月掛遙空(일륜명월괘요공)-둥그런 밝은 달이 아득히 하늘에 걸렸는데

 

幽人無限滄浪趣(유인무한창랑취)-유인은 물결같이 사는 정취 흥겨워서

 

只在瑤琴數曲中(지재요금수곡중)-요금을 끌어 당겨 당겨 몇 곡조 퉁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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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광수 시인의 짧은 시 모음 =

 

 

◆ 산에서 본 꽃

 

 

산에 오르다

꽃 한 송이를 보았네

나를 보고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

 

산에서 내려오다

다시 그 꽃을 보았네

하늘을 보고 피어있는 누님 닮은 꽃

 

 

◆ 봄볕

 

 

꽃가루 날림에 방문을 닫았더니

환한데도 더 환하게 한 줄 빛이 들어오네

앉거라 권하지도 않았지만은

동그마니 자리 잡음이 너무 익숙해

손가락으로 살짝 밀쳐내 보니

눈웃음 따뜻하게 손등을 쓰다듬네!

 

 

◆ 가을햇살

 

 

등 뒤에서 살짝 안는 이 누구 신가요?

설레는 마음에 뒤돌아보니

산모퉁이 돌아온 가을 햇살이

아슴아슴 남아있는 그 사람 되어

단풍 조막손 내밀며 걷자 합니다

 

 

◆ 홍시(紅枾) 두 알

 

 

하얀 쟁반에 담아 내온 홍시 두 알.

무슨 수줍음이 저리도 짙고 짙어서

보는 나로 하여금 이리도 미안케 하는지

 

가슴을 열면서 가만히 속살을 보이는데

마음이 얼마만큼 곱고 고우면 저리될까?

권함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 낙엽 한 장

 

 

나릿물 떠내려온 잎 하나 눈에 띄어

살가운 마음으로 살며시 건졌더니

멀리 본 늦가을 산이 손안에서 고와라.

 

 

◆ 홍류폭포

 

 

수정 눈망울 살금 돌 틈에다 감추고

잠깐 햇살에 또르르 한줌물 손에담고

언제였나 오색 무지개가 꿈인듯하여

바람도 피하는 간월산 늙은 억새사이로

가을 지나간 하얀 계곡을 내려다봅니다.

 

 

◆ 가을에는

 

 

가을에는 나이 듬이 곱고도 서러워

초저녁 햇살을 등 뒤에 숨기고

갈대 사이로 돌아보는

지나온 먼 길

놓아야 하는 아쉬운 가슴

그 빈자리마다

추하지 않게 점을 찍으며

나만 아는 단풍으로 꽃을 피운다

 

 

◆ 비 오는 밤

 

 

기다린 님의 발걸음 소리런가

멀리도 아닌 곳에서 이리 오시는데

밖은 더 캄캄하여

모습 모이지 않고

불나간 방에 켜둔 촛불 하나만

살랑살랑 고개를 내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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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하자면 모든 시작은

 

단지 '계속'의 연속일 뿐,

 

사건이 기록된 책은

 

언제나 중간부터 펼쳐져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첫눈에 반한 사랑 중

 

 

2

 

사랑하는 이여,

 

상처 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중

 

 

3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방문객 중

 

 

4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5

 

우리는 하나의 징후다, 더는 아무 의미도 

 

더는 아무 고뇌도 아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는

 

거의 잃어버렸다.

 

낯선 땅에서 언어를

 

 

횔덜린,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6

 

저녁은 하나의 '간주곡'이다. 

 

밤은 아직 기다려야 하고 낮은 이미 아니다. 

 

바로 나비들이 죽는 시간이다. 

 

다만, 슈만의 저녁이 진짜 저녁인 경우는 거의 없다. 

 

바로 캄캄해지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떨어지듯 완수된 하루의 무게 아래서 

 

모든 것이 서서히 저무는 그런 순간이다. 

 

머지않아 다가올 밤을, 

 

죄 없이 여행자의 적이 되는 밤을 부르는 불분명한 박명이다. 

 

 

미셸 슈나이더, 슈만, 내면의 풍경 중

 

 

7

 

낮은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낮은 곳으로

 

 

8

 

만약의 세계 지도

 

변하는 하늘 처럼

 

매일 변하는 땅의 모습이

 

만약의 세계 지도

 

 

거기에선 일기 예보를 듣는 것처럼

 

지도 예보 소식에 귀 기울여야 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지도를 공부하고

 

어른들은 집에 바퀴를 단다

 

세상 사람 모두가 유목민이 된다

 

 

이번 계절엔 너와 내가 사는 곳이 다가와

 

나란해질 것

 

나는 풍경에 맞춰 옷을 입고 집을 떠난다

 

 

가방 속엔 너와 내가 함께할 세상

 

만약의 세계 지도가 반듯하게 접혀 있다

 

 

배수연, 만약의 세계 지도

 

 

9

 

우리 차나 한 잔 합시다. 

 

오후의 햇살이 대숲을 화사하게 비추고, 

 

샘물은 기쁨에 들떠 흐르고, 

 

탕관에서 솔잎 사이로 부는 산들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아, 덧없는 것을 꿈꿨던 어리석음과 사물의 아름다움 속에서 서성거립시다.

 

 

오카쿠라 톈신, 차의 책 중

 

 

10

 

꿈에 문을 열고 꽃밭을 기웃거렸다

 

꽃밭을 노니는 꿈을 꾸면

 

마음에 둔 정인과 이별한다던데

 

 

 

그래서 오늘 만난 그에게서

 

휘파람 소리가 났는가 보다

 

 

김경미, 꽃씨, 하나

 

 

11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 위독한 길을 따라 속수무책의 몸이여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

 

 

정든 병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어둑어둑 대책없습니다

 

 

허수경, 정든 병

 

 

12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13

 

내 몸에 줄줄이 달린 선을 뽑는다

 

뭣보다 먼저 핸드폰을 던져두고

 

시계도 풀어놓고

 

승용차 따윈 물론 세워둔다

 

태양에 꽂은 전선만 남겨 두고

 

배낭 하나로 집을 나선다

 

훌훌 씨방 떠난 풀씨처럼

 

이제 어디에 닿을지 모른다

 

줄을 벗어 났으니

 

광막한 공간이 나를 품어줄 것이다.

 

 

조향미, 탈선

 

 

14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 집

 

 

15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16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 

 

집 앞은 이미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고 나면 보낼 수 있다 

 

죽지 않았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를 내다 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 같다 

 

 

한밤중 누군가 버리고 싶다 

 

한밤중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창밖 가로등 아래 

 

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

 

 

강성은, 기일

 

 

17

 

생생한 꽃들일수록 슬쩍 한 귀퉁이를

 

손톱으로 상처내본다, 피 흘리는지 본다

 

가짜를 사랑하긴

 

싫다 어디든 손톱을 대본다

 

 

햇빛들 목련꽃만큼씩 떨어지는 날 당신이

 

손톱 열 개

 

똑똑 발톱 열 개마저 깎아준다

 

가끔씩 입속 혀로 거친 발톱결 적셔주면서

 

 

신에게 사과했다

 

 

김경미, 생화

 

 

18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19

 

의사의 처방은 항상 속을 따뜻이 하라는 것이다

 

 

전기담요를 먹을까요

 

달걀 비린내 나는 뜨건 백열등이라도 먹을까요

 

장미무늬 양초와 끓어넘치는 주전자를 함께 먹거나

 

홧홧한 박하나 겨자를 얹으면 좀 더 빠를까요

 

손 닿지 않는 그 안을 어찌 뜨겁게 달굴까요

 

 

차라리 개미를 믿지, 개미 지나간 길의 온기를 믿지

 

사람이건 꽃이건 비단 견직물처럼 매끄러워

 

미덥지 않았다

 

 

책상이나 서랍만이 더러 눈물을 보여주었다

 

저녁 불빛들로 들판의 겨울 한 낮들 덥혀질 때마다

 

 

실은 얼마나 따뜻하고 싶었는지

 

끝내 말할 수 없었다

 

 

김경미, 해명

 

 

20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 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잘랄루딘 루미, 봄의 정원으로 오라

 

 

21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나태주, 멀리서 빈다

 

 

22

 

그대, 

 

천막을 기울이면 별을 녹인 물이 내 구두 속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오소리가 나의 흰 드레스 자락에 불을 붙였고 

 

타는 불과 흐르는 물을 가로질러 그대가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말들이 서커스단 코끼리의 발아래서 놀았고 

 

나는 사자의 이빨에 줄무늬를 그렸습니다 

 

스스로 누군가를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무거워서 

 

우리는 일부러 하품을 크게 했지만 

 

한 번도 서커스 단원들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커다란 단지에 눈물을 쏟고 코끼리 여물을 삶았습니다 

 

뜨거운 김을 쐬어 눈알을 씻으면 

 

천막 밖으로 아직은 너그러운 바람과 

 

누구도 보지 못한 짐승의 냄새 

 

손바닥이 따뜻한 당신의 휘파람과 

 

그래도 가끔씩은 

 

우리를 대신해 그네에 오르는 별들이 녹으면서 

 

싸르락 싸르락 반짝였습니다

 

 

배수연, 우리들의 서커스

 

 

23

 

하늘의 창문들 열려 있고

 

영혼, 밤으로부터 풀려났다,

 

폭풍우, 우리 땅을 압도해

 

대화를, 언어를 삼켜버렸다

 

수많은 과도한 언어를, 그리하여

 

그 잔해가 굴러다닌다

 

이 시각까지.

 

 

횔덜린, 가장 가까운 최선

 

 

24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롯이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나태주, 내가 너를

 

 

25

 

눈을 깜박이는 것마저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었다

 

때로 저무는 시간을 바라보고 앉아

 

자살을 꿈꾸곤 했다

 

한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가 흙 위에 쓰러지듯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 앞에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다

 

 

류시화, 자살

 

 

26

 

어느 

 

이름모를 거리에서

 

예고없이

 

그대와 마주치고 싶다

 

 

그대가

 

처음

 

내 안의 들어왔을 때의

 

그 예고없음처럼

 

 

구명주, 헛된 바람

 

 

27

 

 

역사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 내어놓고보니 도무 지어디인가 본듯한생각이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메고나가더니 어디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짝이없는 큰길가더라.

 

 

그날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그돌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참이런처량한생각에서아래와같은작문을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라.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이상, 이런 시

 

 

28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나무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김경미, 다정이 나를

 

 

29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더욱 필요한 것임을.

 

 

그대를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여, 지금 어디 있는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도 못 할 만큼

 

그대가 그립습니다.

 

 

이정하,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30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귀절을 쓰면 한 귀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김남조, 편지

 

 

31

 

 

가장 화려한 꽃이

 

가장 처참하게 진다

 

 

네 사랑을 보아라

 

네 사랑의 밀물진 꽃밭에

 

서서 보아라

 

 

절정에 이르렀던 날의 추억이

 

너를 더 아프게 하리라 칸나꽃밭

 

 

도종환, 칸나 꽃밭

 

 

32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내가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33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류시화, 소금인형

 

 

34

 

 

그리하여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날 

 

낡은 수첩 한구석에서 나는 이런 구절을 읽게 되리라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랬던가

 

너를 사랑해서 너를 그토록 사랑해서 

 

너 없이 살아갈 세상을 상상할 수 조차 없어서

 

너를 사랑한 것을 기필코 먼 옛날의 일로 보내버려야만 했던 그 날이

 

나에게 있었던가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한사코 생각하는 내가 

 

이토록 낯설게 마주한 나를 

 

나만 다만 떠올릴 수 없어서

 

낡은 수첩 한 구석에 밀어넣은 그말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그 말에 줄을 긋고 이렇게 새로 적어 넣는다 

 

 

언젠가 너를 잊은 적이 있다

 

그런 나를 한 번도 사랑할 수 없었다

 

 

남진우,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35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오르텅스 블루, 사막

 

 

36

 

 

새가 사나워지는 것은

 

내 피가 점점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새가

 

하늘 높이 솟아오를수록

 

내 피는 조금씩 말라간다 이윽고

 

새가 시선을 끊어버린 채

 

허공 깊숙이 증발해 버리면

 

나는 내 피의 넝쿨 가득히

 

환한 죽음을 꽃피운다

 

 

남진우, 정오, 허공에 반짝이는 새 울음소리

 

 

37

 

 

일상의 과육이 해체되는 이 순간, 푸가의 골격에서 찾아지는 그런 힘.

 

그가 건반 위로 쓰러질 듯 몸을 숙인 모습을 보면, 

 

그는 마치 자신과 음악 사이에서 더 이상 피아노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며 

 

피아노 속에 자신을 폐지시키고 융해시켜 버리려는 것 같다.

 

'피아노 앞에 앉은 글렌 굴드' 가 아니고,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인 것이다.

 

 

미셸 슈나이더,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중

 

 

38

 

 

"온전한 것들은 모두 이렇게 반쪽을 내버릴 수 있지."

 

바위 위에 머리를 기대고 누운 외삼촌이 꿈틀거리는 반쪽짜리 낙지들을 쓰다듬으면서 문득 말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둔감해서 모르고 있는 자신들의 완전성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거야.

 

나는 완전해. 그리고 내게는 모든 것들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막연하고 어리석어 보여. 

 

나는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껍질에 지나지 않았어.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난 너를 축하하겠다. 

 

얘야, 넌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 외의 사실들을 알게 될 거야. 

 

너는 너 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지.

 

그리고 너는 모든 것을 반쪽으로 만들고 너의 이미지에 맞춰 파괴해 버리고 싶을거야.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은 바로 조각난 것들 속에만 있으니까."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중

 

 

39

 

 

그러자 착한 메다르도가 말했다.

 

"아, 파멜라. 이건 반쪽짜리 인간의 선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그들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 때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머거리처럼 움직였고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들을 느낄 수 없었어.

 

성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있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파멜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받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면서 너 자신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중

 

 

40

 

 

"우리는 항상 선한 것을 기대하지. 하지만 영혼이 착하든 악하든 간에, 

 

우리를 찾아 이 언덕을 올라오는 사람이 전쟁에서 부상당한 불쌍한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해도 

 

우리는 매일 우리 도리에 따라 행동하고 우리 밭을 경작하면 되는 거야."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중

 

 

41

 

 

그렇게 테랄바에서의 나날들이 흘러갔다.

 

그리고 우리들의 감정은 색깔을 잃어버렸고 무감각해져버렸다.

 

비인간적인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중

 

 

42

 

 

나는 죽지 못하는 실망과 살지 못하는 복수, 이 속에서 호흡을 계속할 것이다. 

 

나는 지금 희망한다. 그것은 살겠다는 희망도 죽겠다는 희망도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이 무서운 기록을 다 써서 마치기 전에는 나의 그 최후에 내가 차지할 행운은 찾아와 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무서운 기록이다.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 

 

 

이상, 십이월 십이일 중

 

 

43

 

 

반면에 나는 완전히 열정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항상 부족함과 슬픔을 느꼈다.

 

때때로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젊기 때문이다.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중

 

 

44

 

 

역사적인 현실이 우리에게 전해준 긴장은 곧 풀리게 된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죽은 물 위에서 항해를 하고 있다.

 

우리들이 맨 처음 현실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역사적 현실에 대한 신뢰성이나 그 현실의 표정, 책임감, 에너지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하려고 애썼지만 점점 더 힘을 잃어가기만 했다.

 

환상적인 소설을 통해 나는 현실의 표정, 에너지, 곧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에 활기를 주고 싶었다.

 

 

이탈로 칼비노

 

 

45

 

 

결말이 따뜻한 한 편의 소설 속

 

너와 내가 주인공이길 바랐지만

 

너의 행복과 슬픔, 그리고 일생을 읽는 동안

 

나는 등장하지 않았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까지

 

지문에 눈물만 뭍혀가며

 

말 없이 페이지를 넘길 뿐이었다.

 

 

소설 속 나의 이름은 고작

 

'너를 앓으며 사랑했던 소년 1' 이었다.

 

 

서덕준, 등장인물

 

 

46

 

 

누가 내게

 

"당신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외면하며 "손톱만큼요" 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돌아서서는

 

잘라내도 잘라내도 평생 자라나고야 마는

 

내 손톱을 보고 마음이 저려

 

펑펑 울지도 모른다

 

 

왕구슬, 손톱깎이

 

 

47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두 반쪽이 재결합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한 생활을 했고,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올바른 통치를 했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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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訪王侍御不遇(방왕시어불우) 왕 시어를 찾아 만나지 못해-劉長卿

九日驅馳一日閑(구일구치일일한) 아홉 날 몰아치다 하루 느긋해

尋君不遇又空還(심군불우우공환) 그대 찾아 못 만나 또 헛돼 돌려

怪來詩思淸人骨(괴래시사청인골) 야릇이 든 시 생각 사람 뼈 맑혀

門對寒流雪滿山(문대한류설만산) 문엔 마주 찬 흐름 산엔 눈 가득

尋盛禪師蘭若(심성선사난야) 성 선사의 절을 찾아-劉長卿

秋草黃花覆古阡(추초황화복고천) 가을 풀 국화꽃이 옛 길을 덮어 두렁천

隔林遙見起人煙(격림요견기인연) 숲 너머 멀리 보여 밥 연기 올라

山僧獨在山中老(산승독재산중로) 산 스님 혼자 있어 산 속에 늙어

惟有寒松見少年(유유한송견소년) 오직 있어 솔 썰렁 어릴 적 보아

奇別朱拾遺(기별주습유) 주 습유를 보내며 주다-劉長卿

天書遠召滄浪客(천서원소창랑객) 임금 글 멀리 부름 찬 물결 길손

幾到臨歧病未能(기도림기병미능) 몇 번 닿은 갈림길 앓아 못 하나

江海茫茫春欲遍(강해망망춘욕편) 강 바다 아득하게 봄을 두르려

行人一騎發金陵(행인일기발금릉) 가는 이 한 필 말에 금릉엘 떠나

贈崔九(증최구) 최구에게 주며-劉長卿

憐君一見一悲歌(연군일견일비가) 가여운 그대 보니 한 슬픈 노래

歲歲無如老去何(세세무여로거하) 해마다 같지 않아 늙어 감 어째

白屋漸看秋草沒(백옥점간추초몰) 흰 띠 집 차츰 보여 가을 풀 말라

靑雲莫道故人多(청운막도고인다) 푸른 꿈 말을 마라 오랜 이 많아

新息道中作(신식도중작) 신식으로 가는 길에-劉長卿

蕭條獨向汝南行(소조독향여남행) 쓸쓸히 홀로 향해 여남으로 가

客路多達漢騎營(객로다달한기영) 나그네 길 많기도 한나라 기병

古木蒼蒼離亂後(고목창창리란후) 오랜 나무 푸르러 난리 겪은 뒤

幾家同住一孤城(기가동주일고성) 몇 집이 같이 사나 외론 성 하나

江中對月(강중대월) 강에서의 달맞이-劉長卿

空洲夕煙斂(공주석연렴) 빈 섬에 저녁 안개가 걷혀

對月秋江裡(대월추강리) 달을 마주해 가을 강에서

歷歷沙上人(역력사상인) 뚜렷이도 봬 모래 위 사람

月中孤渡水(월중고도수) 달뜬 가운데 외론 물 건너

送張十八歸桐廬(송장십팔귀동려)장씨네 열여덟째가동려에감을보내며-劉長卿

歸人乘野艇(귀인승야정) 돌아가는 이 거룻배 올라 거룻배정

帶月過江村(대월과강촌) 달빛을 둘러 강마을 지나

正落寒潮水(정락한조수) 바로 떨어져 차가운 썰물

相隨夜到門(상수야도문) 서로 따르니 밤이 닿은 문

逢雪宿芙蓉山(봉설숙부용산) 눈을 만나 부용산에 묵어-劉長卿

日暮蒼山遠(일모창산원) 해는 저물어 푸른 산 멀어

天寒白屋貧(천한백옥빈) 날씨 추우니 초가집 가난

柴門聞犬吠(시문문견폐) 사립문에서 듣는 개 짖음

風雪夜歸人(풍설야귀인) 눈보라의 밤 돌아오는 이

春宮古懷(춘궁고회) 봄 궁궐의 옛 생각-劉長卿

君王不可見(군왕불가견) 임금은 어째 보지도 못해

芳草舊宮春(방초구궁춘) 꽃다운 풀에 옛 궁궐 봄이

猶帶羅裙色(유대라군색) 오히려 띄니 비단치마 빛

靑靑向楚人(청청향초인) 푸릇해 바래 초나라사람

平蕃曲(평번곡) 번국을 평정한 노래-劉長卿

絶漠大軍還(절막대군환) 끊인 사막에 대군 돌아와

平沙獨戍閑(평사독수한) 너른 모래에 홀로 군에서

空留一片石(공류일편석) 괜히 남겨진 한 조각 돌에

萬古在燕山(만고재연산) 오랜 만고를 연산에 있어

浮石瀨(부석뢰) 바위 뜬 여울-劉長卿

秋月照瀟湘(추월조소상) 가을 달 비춰 소상강에는

月明聞盪槳(월명문탕장) 달 밝아 들려 삿대소리가 상앗대장

石橫晩瀨急(석횡만뢰급) 돌 놓인 저녁 여울이 빨라 여울뢰

水落寒沙廣(수락한사광) 물은 떨어져 찬 모래 넓어

衆嶺猿嘯垂(중령원소수) 뭇 고개 걸린 원숭이 울음 휘파람불소 드리울수

空江人語響(공강인어향) 빈 강에 사람 말소리 울려

淸輝朝復暮(청휘조부모) 맑은 빛 아침 그리고 저녁

如待扁舟賞(여대편주상) 기다리는 듯 얕은 배 바래

穆陵關北逢人歸漁陽(목릉관북봉인귀어양)목릉관 북쪽서 어양 가는 사람 만나

逢君穆陵路(봉군목릉로) 그대 만나니 목릉 길에서

匹馬向桑乾(필마향상건) 말 하나 타고 상건을 가며

楚國蒼山古(초국창산고) 초나라에는 푸른 산 오래

幽州白日寒(유주백일한) 유주 땅이란 한낮도 추워

城地百戰後(성지백전후) 성 있는 자리 온갖 싸움 뒤

耆舊幾家殘(기구기가잔) 옛날 늙은이 몇 집 남았나 늙은이기

處處蓬蒿徧(처처봉호편) 곳곳에 두루 다북쑥 자라

歸人掩淚看(귀인엄루간) 돌아가는 이 눈물 닦고 봐 가릴엄

新年作(신년작) 새해에 짓다-劉長卿

鄕心新歲切(향심신세절) 고향에 마음 새해도 뻔질

天畔獨潸然(천반독산연) 하늘가 홀로 눈물이 흘러 눈물흐를산

老至居人下(노지거인하) 늙어지도록 남 아래 살아

春歸在客先(춘귀재객선) 봄이 돌아와 앞길 나그네

嶺猿同旦暮(영원동단모) 고개 원숭이 아침 저녁을

江柳共風煙(강류공풍연) 강가 버들에 바람 연기가

已似長沙傅(이사장사부) 이미 되었듯 장사왕 태부 스승부

從今又幾年(종금우기년) 이제껏 다시 몇 년이 가나

過鄭山人所居(과정산인소거) 정 산인 집을 지나며-劉長卿

寂寂孤鶯啼杏園(적적고앵제행원) 고요해 외론 꾀꼴 울어 살구 뜰

寥寥一犬吠桃源(요요일견폐도원) 쓸쓸해 개 한 마리 짖어 복사 골

落花芳草無處尋(낙화방초무처심) 꽃잎 져 꽃다운 풀 찾을 데 없어

萬壑千峰獨閉門(만학천봉독폐문) 온 골짝 온 봉우리 혼자 문 닫아

彈琴(탄금) 거문고를 타며-劉長卿

冷冷七絃上(냉랭칠현상) 차디찬 울림 일곱 줄 위에

靜聽松風寒(정청송풍한) 가만히 들어 솔바람 추워

古調雖自愛(고조수자애) 옛 가락 비록 스스로 아껴

今人多不彈(금인다불탄) 오늘날 사람 많이 안 타지

酬李穆見寄(수이목견기) 이목에게 부치니-劉長卿

孤舟相訪至天涯(고주상방지천애) 외론 배 서로 찾아 닿은 하늘 끝

萬里雲山路更賖(만리운산로경사) 만 리에 구름 산에 길은 비끼어

欲掃柴門迎遠客(욕소시문영원객) 쓸어야지 사립문 먼 손님 맞아

靑苔黃葉萬貧家(청태황엽만빈가) 푸른 이끼 누른 잎 가난한 집을

重送裴郞中貶吉州(중송배랑중폄길주) 배낭중을 길주로 다시 보내며-劉長卿

猿啼客散暮江頭(원제객산모강두) 원숭 울어 손 떠나 저문 강 머리

人自傷心水自流(인자상심수자류) 사람 저만 다친 맘 물 절로 흘러

同作逐臣君更遠(동작축신군갱원) 같이 된 내쳐진 몸 그댄 더 멀리

靑山萬里一孤舟(청산만리일고주) 푸른 산 만 리 먼데 외론 배하나

送靈澈上人(송영철상인) 영철 스님을 보내며-劉長卿

蒼蒼竹林寺(창창죽림사) 푸른 대숲에 죽림사 절이

杳杳鐘聲晩(묘묘종성만) 아득히 들려 종소리 늦게

荷笠帶斜陽(하립대사양) 삿갓을 쓰고 두른 비낀 볕

靑山獨歸遠(청산독귀원) 청산에 홀로 돌아감 멀어

送上人(송상인) 스님을 보내며-劉長卿

孤雲將野鶴(고운장야학) 외로운 구름 마치 들에 학

豈向人間住(기향인간주) 어찌 바라며 사람과 살아

莫買沃洲山(막매옥주산) 사진 말아요 옥주산이면

時人已知處(시인이지처) 그때 사람들 이미 아는 곳

長沙過賈誼宅(장사과가의댁) 장사에서 가의의 집을 지나며-劉長卿

三年謫宦此棲遲(삼년적환차서지) 삼년을 귀양살이 이 삶은 더뎌

萬古惟留楚客悲(만고유류초객비) 오랜 옛 오죽이나 굴원 슬픔이

秋草獨尋人去后(추초독심인거후) 가을 풀 홀로 찾아 사람 떠난 뒤

寒林空見日斜時(한림공견일사시) 차가운 숲 멍히 봐 해가 지는 때

漢文有道恩猶薄(한문유도은유박) 한 문제 도를 지녀 베풂이 엷어

湘水無情吊豈知(상수무정적개지) 상수 물 정이 없어 본들 뭘 알아

寂寂江山搖落處(적적강산요락처) 고요한 강에 산에 흔들려 떨궈

憐君何事到天涯(연군하사도천애) 그대 아껴 무슨 일 닿은 하늘 끝

尋南溪常山道人隱居(심남계상산도인은거)남계 상산도인의 숨은 곳을 찾아

一路經行處(일로경행처) 길은 하나에 지나가는 곳

莓苔見履痕(매태견리흔) 이끼에 보여 신 밟은 자국

白雲依靜渚(백운의정저) 흰 구름 어린 고요한 물가

春草閉閑門(춘초폐한문) 봄풀로 닫혀 느긋한 문이

過雨看松色(과우간송색) 비 지나 보는 소나무 빛깔

隨山到水源(수산도수원) 산을 따라서 샘물에 닿아

溪花與禪意(계화여선의) 시내 꽃 주니 선정에 든 뜻

相對亦忘言(상대역망언) 서로 마주해 할 말도 잊어

送李中丞歸漢陽別業(송이중승귀한양별업)이중승이한양별업에돌아감을 보내며

流落征南將(유낙정남장) 흘러 떨어져 남쪽 친 장군

曾驅十萬師(증구십만사) 일찍 몰아쳐 십 만 군사로

罷歸無舊業(파귀무구업) 그만두고 와 옛일은 없고

老去戀明時(노거련명시) 늙어가면서 밝을 때 그려

獨立三邊靜(독립삼변정) 홀로 서있어 세 변방 재워

輕生一劍知(경생일검지) 삶 가벼이 해 칼 하나 알아

茫茫江漢上(망망강한상) 아득하기만 장강 한수 위

日暮復何之(일모부하지) 해는 저물어 다시 어디로

同金壇令武平一遊湖(동금단령무평일유호)금단령무평일과호수를다니며儲光羲

朝來仙閣聽絃歌(조래선각청현가) 아침오니 선각에 현 노래 들려

暝入花亭見綺羅(명입화정견기라) 어두워 화정 들어 비단옷을 봐

池邊命酒憐風月(지변명주련풍월) 못가에 술을 시켜 바람 달 아껴

浦口還船惜芰荷(포구환선석기하) 포구에 배 돌아가 마름 연 어째

同金壇令武平一遊湖(동금단령무평일유호)금단령무평일과호수를다니며儲光羲

花潭竹嶼傍幽蹊(화담죽서방유혜) 꽃 핀 못 대나무섬 곁에 지름길

畵檝浮空入夜溪(화즙부공입야계) 그림배 하늘 떠가 밤이 든 시내

菱荷覆水船難進(능하복수선난진) 마름 연 물을 덮어 배는 못 나가

歌舞留人月易低(가무류인월이저) 노래 춤에 남은 이 달은 쉽게 져

明妃詞1(명비사1) 명비사 王昭君-儲光羲

日暮驚沙亂雪飛(일모경사란설비) 해 저묾 놀란 모래 어지러이 눈 날려

傍人相勸易羅衣(방인상권역라의) 옆 사람 서로 권해 비단옷 바꿔 입어

强來前殿看歌舞(강래전전간가무) 억지로 온 궁전 앞 노래에 춤 보다가

共待單于夜獵歸(공대선우야렵귀) 기다리니 선우를 밤 사냥 돌아오길

明妃詞2(명비사2) 명비사 王昭君-儲光羲

胡王知妾不勝悲(호왕지첩불승비) 호땅 임금 절 알아 슬픔 못 이김

樂府皆傳漢國辭(악부개전한국사) 음악에 다 알리니 한나라 가사

朝來馬上箜篌引(조래마상공후인) 아침 옴에 말 올라 공후인 연주

稍似宮中閑夜時(초사궁중한야시) 조금은 궁중 같아 한가한 밤이

寄孫山人(기손산인) 손 산인에게-儲光羲

新林二月孤舟還(신림이월고주환) 신림 땅에 이월은 외론 배 돌아

水滿淸江花滿山(수만청강화만산) 물이 가득 맑은 강 산엔 꽃 가득

借問故園隱君子(차문고원은군자) 묻느니 오랜 고향 숨은 군자여

時時來往住人間(시시래왕주인간) 때때로 오가면서 세상 머물게

戱贈趙使君美人(희증조사군미인) 조사군 미인에게 주며 놀리다-杜審言

紅紛靑蛾映楚雲(홍분청아영초운) 빨간 분 푸른 눈썹 초나라 구름

桃花馬上石榴裙(도화마상석류군) 복사꽃이 말 위에 석류 알 치마

羅敷獨向東方去(나부독향동방거) 비단 펼쳐 혼자서 동방에 떠나

謾學他家作使君(만학타가작사군) 늦 배워 다른 집서 임금 시켜서

送別(송별) 떠나보냄-王之渙

楊柳東風樹(양류동풍수) 버들 늘어져 봄바람 나무

靑靑夾御河(청청협어하) 푸릇푸릇이 강물을 끼고 낄협

近來攀折苦(근래반절고) 요사이 와선 잡고 못 꺾어

因爲別離多(인위별리다) 따름은 그리 헤어짐 잦아

 

登鸛雀樓(등관작루) 관작루에 올라-王之渙

白日依山盡(백일의산진) 한낮 밝은 해 산 기대 넘어

黃河入海流(황하입해류) 황하 누런 물 바다로 흘러

欲窮千里目(욕궁천리목) 다하려 함에 천리 눈을 둬

更上一層樓(갱상일층루) 다시 오르니 누각 한 층을

九月送別(구월송별) 구월에 떠나보내-王之渙

薊庭蕭瑟故人稀(계정소슬고인희) 계정 땅 쓸쓸하니 오랜 이 없어 삽주계

何處登高且送別(하처등고차송별) 어디에 높이 올라 또 떠나보내

今日暫同芳菊酒(금일잠동방국주) 오늘날 잠시 함께 국화 향기 술

明朝應作斷蓬飛(명조응작단봉비) 내일아침 되리니 잘린 쑥 날림

出塞(출새) 변방에 나가-王之渙

黃河遠上白雲間(황하원상백운간) 황하 물 멀리 올라 흰 구름 사이

一片孤城萬仞山(일편고성만인산) 한 조각 외로운 성 만 길 높은 산

羌笛何須怨楊柳(강적하수원양류) 오랑캐 피리 어찌 버들을 탓해

春風不渡玉門關(춘풍부도옥문관) 봄바람이 못 넘어 옥문관 길목

少伯 王昌齡(698~755)

李倉曹宅夜飮(이창조댁야음) 이창조 댁에서 밤에 술 마셔-王昌齡

霜天留飮故情歡(상천류음고정환) 서리 날씨 술 마셔 오랜 정 즐겨

銀燭金爐夜不寒(은촉금려야불한) 은촛대 금 화로에 밤이 안 추워

若問吳江別來意(약문오강별래의) 묻는다면 오강에 떠나온 뜻을

靑山明月夢中看(청산명월몽중간) 푸른 산 밝은 달이 꿈속에 보여

重別李評事(중별이평사) 이 평사와 다시 헤어지며-王昌齡

莫道秋江離別難(막도추강이별난) 말마라 가을 강에 떠남 어려움

舟船明日是長安(주선명일시장안) 배 타서 날 밝으면 바로 서울이

吳姬緩舞留君醉(오희완무류군취) 오 여인 늘어진 춤 그대 취하리

隨意靑風白露寒(수의청풍백로한) 뜻 따라 맑은 바람 이슬 차가워

送別魏二(송별위이) 위이를 보내며-王昌齡

醉別江樓橘柚香(취별강루귤유향) 취해 떠난 강 누각 귤 유자 향기

江風引雨入船凉(강풍인우입선량) 강바람 비를 몰아 배 타니 썰렁

憶君遙在湘山月(억군요재상산월) 그대 생각 멀리서 상산에 달이

愁聽淸猿夢裏長(수청청원몽리장) 시름에 듣는 소리 꿈에도 오래

芙蓉樓送辛漸(부용루송신점) 부용루에서 신점을 보내-王昌齡

寒雨連江夜入吳(한우연강야입오) 차가운 비 닿은 강 밤에 든 오땅

平明送客楚山孤(평명송객초산고) 밝아서 길손 보내 외로운 초산

洛陽親友如相問(낙양친우여상문) 낙양땅 가까운 벗 서로 묻는 듯

一片氷心在玉壺(일편빙심재옥호) 한 조각 얼음마음 옥병에 있어

送薜大赴安陸(송벽대부안륙) 안륙에 가는 벽대를 보내며-王昌齡

津頭雲雨暗湘山(진두운우암상산) 나루터에 비구름 어두운 상산

遷客離憂楚地顔(천객이우초지안) 옮긴 객 떠난 시름 초나라 얼굴

遙送扁舟安陸郡(요송편주안륙군) 멀리 보내 조각배 안륙 고을로

天邊何處穆陵關(천변하처목릉관) 하늘 끝에 어느 곳 목릉관인가

出塞行(출새행) 변방에 나와-王昌齡

白花原頭望京師(백화원두망경사) 온갖 꽃 벌판에서 서울을 바래

黃河水流無盡時(황하수류무진시) 황하의 물은 흘러 다할 때 없어

秋天曠野行人絶(추천광야행인절) 가을 날씨 휑한 들 행인은 끊겨

馬首東來知是誰(마수동래지시수) 말머리 동쪽에 와 이를 앎 누구

長信秋詞2(장신추사2) 장신궁 가을노래-王昌齡

奉帚平明金殿開(봉추평명금전개) 빗자루 널리 밝혀 금 궁전 열려

且將團扇暫徘徊(차장단선잠배회) 그다음 둥근 부채 잠깐 노닐어

玉顔不及寒鴉色(옥안불급한아색) 옥 얼굴 못 미치니 추운 까마귀

猶帶昭陽日影來(유대소양일영래) 오히려 띤 밝은 볕 해 그림자 와

長信秋詞3(장신추사3) 장신궁 가을노래-王昌齡

眞成薄命久尋思(진성박명구심사) 참 이룬 엷은 목숨 오래 생각해

夢見君王覺後疑(몽견군왕각후의) 꿈에 보는 임금님 깨서도 알쏭

火照西宮知夜飮(화조서궁지야음) 불 밝힌 서궁에는 술에 밤 알아

分明複道奉恩時(분명복도봉은시) 뚜렷한 궁궐 길에 베풂 받들 때

胡笳曲(호가곡) 호가곡-王昌齡

城南虜已合(성남로이합) 성 남쪽 오랑캐들 이미 모여서

一夜幾重圍(일야기중위) 밤새며 몇 겹으로 에워쌌구나

自有金笳引(자유김가인) 절로 있어 금피리 끌어당기며

能令出塞飛(능영출새비) 하게하니 출새곡 불러 날리네

聽臨關月苦(청림관월고) 들으며 다가서니 변방 달 괴롬

淸入海風微(청입해풍미) 말갛게 불어들어 바다바람이

三奏高樓晩(삼주고루만) 세 번 불어 높은 누 늦어 저물어

胡人掩淚歸(호인엄루귀) 호 사람 눈물 가려 돌아들 가네

從軍行(종군행) 군대를 따르며-王昌齡

大漠風塵日色昏(대막풍진일색혼) 큰 사막 먼지바람 햇빛은 어둑

紅旗半捲出轅門(홍기반권출원문) 붉은 깃발 반 말려 막사 문 나서

前軍夜戰洮河北(전군야전조하북) 앞에 군대 싸운 밤 조하 물 북쪽

已報生擒吐谷渾(이보생금토곡혼) 알려진 산채 잡음 토곡혼 사람

4世紀 中國菁海지방에 있던 나라이름 王族鮮卑 663吐藩에게 당함

從軍行4(종군행4) 군대를 따르며-王昌齡

靑海長雲暗雪山(청해장운암설산) 푸른 바다 긴 구름 어두운 눈산

孤城遙望玉門關(고성요망옥문관) 외로운 성 멀리 봐 옥문관에를

黃沙百戰穿金甲(황사백전천금갑) 누런 모래 온 싸움 쇠 갑옷 뚫어

不破樓蘭終不還(불파루란종불환) 깨지 못해 누란 땅 끝내 못 돌아

청해 : 중국 청해성 동부에 있는 중국 최대의 鹽湖

옥문관 : 중국의 서쪽 요지였던 甘肅省 敦煌縣 부근에 있던 관문

누란:나라 나라때 西域의나라 신강성타림분지의동쪽에있던오아시스 도시

盧溪別人(노계별인) 노계에서 사람을 보내며-王昌齡

武陵溪口駐扁舟(무릉계구주편주) 무릉의 시내어귀 조각배 매여

溪水隨君向北流(계수수군향북류) 시냇물 그대 따라 북으로 흘러

行到荊門上三峽(행도형문상삼협) 가서 닿아 형문에 삼협에 올라

莫將孤月對猿愁(막장고월대원수) 하려마라 외론 달 원숭이 슬퍼

山禽(산금) 멧새-張籍

山禽毛如白練帶(산금모여백련대) 멧새 털은 같기가 하얀 비단 띠

棲我庭前栗樹枝(서아정전율수지) 깃드니 우리 뜰 앞 밤나무 가지

獼猴半夜來取栗(미후반야래취률) 원숭이는 한밤에 와서 밤 따가

一雙中林向月飛(일쌍중림향월비) 한 쌍이 숲 가운데 달보고 날아

寒塘曲(한당곡) 한당곡-張籍

寒塘沈沈柳葉疎(한당침침유엽소) 차가운 못 잠기니 버들잎 드문

水暗人語驚棲鳧(수암인어경서부) 못물 어둑 사람 말 놀라는 오리

舟中少年醉不起(주중소년취불기) 배 가운데 아이들 아니 일어나

持燭照水射游魚(지촉조수사유어) 촛불 들어 물 비춰 물고기 쏘아

成都曲(성도곡) 성도의 노래-張籍

錦江近西春水綠(금강근서춘수록) 비단 강 가까운 쪽 봄물 푸르러

新雨山頭茘枝熟(신우산두려지숙) 새론 비 산마루에 여뀌가 익어

萬里橋邊多酒家(만리교변다주가) 만리교 다리 가에 술집도 많아

遊人愛向誰家宿(유인애향수가숙) 노는 이 아낀다며 뉘 집에 들까

蠻中(만중) 남방에서-張籍

瘴水蠻中入洞流(장수만중입동류) 장수 물 남만 골짝 들어 흐르고

人家多住竹棚頭(인가다주죽붕두) 사람 집 많이 몰려 대 시렁 머리

一山海上無城郭(일산해상무성곽) 산 하나 바다 위로 성곽은 없고

惟見松牌記象州(유견송패기상주) 오직 보여 솔 팻말 상주라 적혀

寄李渤(기이발) 이발에게 부쳐-張籍

五度溪頭躑躅紅(오도계두척촉홍) 오도계 시내어귀 철쭉꽃 붉어

嵩陽寺裏講時鐘(숭양사리강시종) 숭양사 절 안에는 모임에 종을

春山處處行應好(춘산처처행응호) 봄에 산 여기저기 다니니 좋아

一月看花到機峰(일월간화도기봉) 한 달을 꽃을 보며 이른 봉우리

送蜀道(송촉도) 촉나라 길 보내며-張籍

蜀客南行聽碧鷄(촉객남행청벽계) 촉나라 객 남쪽 가 닭소리 들어

木綿花發錦江西(목면화발금강서) 목화 꽃 피었으니 금강 서쪽에

山頭日晩行人少(산두일만행인소) 산마루에 해지니 행인이 적어

時見猩猩樹上啼(시견성성수상제) 볼 때면 성성이가 나무 위 울어

逢賈島(봉가도) 가도를 만나-張籍

僧房逢着款冬花(승방봉착관동화) 절집에서 만나니 관동화라네

山寺行吟日已斜(산사행음일이사) 산에 절 걸어 읊어 해 이미 기웃

二十街中春色徧(이십가중춘색편) 스무 거리 가운데 봄빛이 두루

馬蹄今去入誰家(마제금거입수가) 말발굽 이제 가면 뉘 집에 들까

與賈島閒遊(여가도한유) 가도와 한가히 놀다-張籍

水北原南草色新(수북원남초색신) 물 북쪽 들 남쪽에 풀빛 새로워

雪消風暖不生塵(설소풍난불생진) 눈 녹인 바람 따뜻 먼지 안 일어

城中車馬應無數(성중거마응무수) 성안에는 수레 말 셀 수가 없어

能解閑行有幾人(능해한행유기인) 알 텐가 느긋 걸음 몇이나 있어

寄遠曲(기원곡) 멀리 부치는 노래-張籍

美人來去春江暖(미인래거춘강난) 고운이 왔다 떠난 봄 강은 따뜻

江頭無人湘水滿(강두무인상수만) 강 머리 사람 없고 상수 물 가득

浣絲石上水禽棲(완사석상수금서) 실 빨던 바위위에 물새 깃들어

江南路長春日短(강남로장춘일단) 강남 길 멀고 길어 봄날은 짧아

蘭舟桂楫常渡江(난주계즙상도강) 난초 배 계수 노에 늘 강을 건너

無因重寄雙瓊(무인중기쌍경당) 또 부칠 까닭 없어 쌍경당에를

行路難(행로난) 가는 길 어려워라-張籍

湘東行人長歎息(상동행인장탄식) 상수 동쪽 걷는 이 길게 한숨을

十年離家歸未得(십년리가귀미득) 십년을 집을 떠나 아니 돌아가

弊裘羸馬苦難行(폐구리마고난행) 헤진 갖옷 여윈 말 걷기 괴로워

僮僕飢寒少筋力(동복기한소근력) 아이 종 주려 추워 힘도 떨어져

君不見牀頭黃金盡(군불견상두황금진) 그대 보지 못 했나 머리맡 황금 다해

壯士無顏色 (장사무안색)`````````장사 잃은 얼굴빛

龍蟠泥中未有雲(용반니중미유운) 용이 서린 진흙 속 구름을 못 타

不能生彼升天翼(불능생피승천익) 할 수 없는 저 나옴 하늘 날개는

추사(秋思)-장적(張籍) 가을 심사-張籍(장적)

洛陽城裏見秋風(낙양성이견추풍) : 낙양성 안에 가을바람 불어와

欲作家書意萬重(욕작가서의만중):집에 보낼 편지를쓰려니 온갖 생각 다 들어라

復恐悤悤說不盡(복공총총설부진) : 너무 바빠 할 말을 다 쓰지 못 한 것 같아

行人臨發又開封(행인임발우개봉) : 가는 사람 떠나려 함에, 다시 또 뜯어본다.

몰번고인(沒蕃故人)-장적(張籍) 번에서 죽은 친구여-장적(張籍)

前年伐月支,(전년벌월지), 지난 해 월지국을 치다가

城下沒全師.(성하몰전사). 성 아래에서 전 군사가 전멸당했소

蕃漢斷消息,(번한단소식), 번과 중국과는 소식 끊어지고

死生長別離.(사생장별리). 죽은 사람과 산 사람 긴 이별 하였다네

無人收廢帳,(무인수폐장), 부서진 휘막 거두는 이 아무도 없고

歸馬識殘旗.(귀마식잔기). 돌아온 말만이 남아 있는 깃발의 주인 안다네

欲祭疑君在,(욕제의군재), 제사를 지내고 싶어도 그대 살아있는 것 같아

天涯哭此時.(천애곡차시). 이 시간 하늘 먼 곳을 향하여 통곡하노라

睡覺偶吟(수각우음) 잠에서 깨어-白居易

官初罷後歸來夜(관초파후귀래야) 벼슬 처음 일 마쳐 밤에 돌아와

天欲明前睡覺時(천욕명전수각시) 날도 새기 앞서서 잠에서 깰 때

起坐思量更無事(기좌사량갱무사) 일어나 앉아 생각 달리 일 없어

身心安樂復誰知(신심안락부수지) 몸 마음 편히 즐겨 누가 또 알까

杭州春望(항주춘망) 항주에서 봄을 바래-白居易

望海樓明照曙霞(망해루명조서하) 망해루에 날 밝아 비춘 새벽 놀 새벽서

護江隄白蹋晴沙(호강제백답청사) 호강제는 깨끗해 갠 모래 밟아 밟을답

濤聲夜入伍員廟(도성야입오원묘) 파도소리 밤들어 오원의 사당 큰물결도

柳色春藏蘇小家(유색춘장소소가) 버들 빛깔 봄 감춰 소주 작은 집

紅袖織綾誇柿蔕(홍수직릉과시체) 붉은소매 짠 비단 감꼭지 자랑 비단릉 가시체

靑旗沽酒趁梨花(청기고주진리화) 푸른 기 술을 팔아 배꽃을 좇아 팔고 좇을진

誰開湖寺西南路(수개호사서남로) 누가 열어 호수 절 서남쪽 길을

草綠裙腰一道斜(초록군요일도사) 풀 푸름 치마허리 길 하나 비껴 치마군

涼風歎(양풍탄) 서늘한 바람-白居易

昨夜涼風又颯然(작야량풍우삽연) 어젯밤 서늘바람 또 바람소리 바람소리삽

螢飄葉墜臥床前(형표엽추와상전) 반딧불 잎 떨어져 누운 자리 앞

逢秋莫歎須知分(봉추막탄수지분) 가을 맞아 탄식 마 나뉨 꼭 알아

已過潘安三十年(이과반안삼십년) 이미 지난 반안은 서른 해 되니 뜨물반

夜招晦叔(야초회숙) 밤에 회숙을 불러-白居易

庭草留霜池結冰(정초류상지결빙) 뜰에 풀 남은 서리 못엔 얼음이

黃昏鍾絶凍雲凝(황혼종절동운응) 어스름에 끊인 종 언 구름 엉겨

碧氈帳上正飄雪(벽전장상정표설) 푸른 담요 휘장 위 눈이 휘몰아 모전전

紅火爐前初炷燈(홍화로전초주등) 붉은 불 화로 앞에 등불 첫 심지

高調秦箏一兩弄(고조진쟁일량롱) 높은 음 진나라 쟁 한두 번 놀아

小花蠻榼二三升(소화만합이삼승) 작은 꽃 오랑캐 통 두어 되 술이 통합

爲君更奏湘神曲(위군갱주상신곡) 그대께 다시 울려 상신곡 가락 아뢸주

夜就儂家能不能(야취농가능부능) 밤이되 우리 집에 올지 안 올지 나농

戲招諸客(희초제객) 여러 손님을 불러 놀아-白居易

黃醅綠醑迎冬熟(황배록서영동숙) 누른 술 푸른 술에 겨울이 익어 안거른술배

絳帳紅爐逐夜開(강장홍로축야개) 붉은 막 빨간 난로 밤 쫓겨 열려 진홍강

誰道洛中多逸客(수도락중다일객) 누가 말해 낙양엔 멋진 이 많아

不將書喚不曾來(부장서환부증래) 글 부름 아니라면 오지를 않아 부를환

池畔二首1(지반이수1) 못가에서-白居易

結構池西廊(결구지서랑) 짜 맞춰 지어 못 서쪽 행랑

疏理池東樹(소리지동수) 틔어 손을 봐 못 동쪽 나무

此意人不知(차의인부지) 이런 뜻함을 남들은 몰라

欲爲待月處(욕위대월처) 하려고 함은 달을 맞을 곳

池邊卽事(지변즉사) 못가에서-白居易

氈帳胡琴出塞曲(전장호금출새곡) 담요휘장 호금에 출새곡 가락

蘭塘越棹弄潮聲(난당월도롱조성) 난초 못 건너는 노 물소리 놀려

何言此處同風月(하언차처동풍월) 어찌 말해 이곳을 바람 달 같아

薊北空南萬里情(계북공남만리정) 계북의 하늘남쪽 만 리를 뜻해 삽주계

送客(송객) 손님 보내며-白居易

病上籃輿相送來(병상남여상송래) 병들어 남여 올라 보내러 와선

衰容秋思兩悠哉(쇠용추사량유재) 여윈 낯 가을 생각 둘 다 아득해

涼風嫋嫋吹槐子(량풍뇨뇨취괴자) 서늘바람 흔들려 홰나무 불어

却請行人勸一盃(각청행인권일배) 되레 빌어 가는 이 한 잔 따르게

浪淘沙詞六首1(낭도사사륙수1) 물결이 모래를 일어-白居易

一泊沙來一泊去(일박사래일박거) 한번 밀려 모래에 한번 쓸려가 배댈박

一重浪滅一重生(일중랑멸일중생) 한번 겹쳐 물결이 한번 또 겹쳐

相攪相淘無歇日(상교상도무헐일)휘저어서로 일어 그칠날 없어 어지러울교 일도

會敎山海一時平(회교산해일시평) 만나게 해 산 바다 한때 반반히

浪淘沙詞六首3(낭도사사륙수3) 물결이 모래를 일어-白居易

靑草湖中萬里程(청초호중만리정) 푸른 풀 호수 안에 만 리 먼 길이

黃梅雨裏一人行(황매우리일인행) 누런 매실 빗속에 한 사람 걸어

愁見灘頭夜泊處(수견탄두야박처) 시름에 여울머리 밤에 머물 곳 여울탄

風翻闇浪打船聲(풍번암낭타선성) 바람 쳐 어둔 물결 배 때린 소리 닫힌문암

浪淘沙詞六首4(낭도사사륙수4) 물결이 모래를 일어-白居易

借問江潮與海水(차문강조여해수) 물어보니 강물에 바닷물에다

何似君情與妾心(하사군정여첩심) 어찌 같아 그대 뜻 함께 저의 맘

相恨不如潮有信(상한불여조유신) 서로 한해 안 같아 조수 믿음과

相思始覺海非深(상사시각해비심) 서로 생각 깨치니 바다 안 깊어

浪淘沙詞六首5(낭도사사륙수5) 물결이 모래를 일어-白居易

海底飛塵終有日(해저비진종유일) 바다 밑 먼지 날려 끝내 해가 나

山頭化石豈無時(산두화석기무시) 산꼭대기 돌이 돼 어찌 때 없어

誰道小郎抛小婦(수도소랑포소부) 누구 말 젊은 사내 아낙을 버려 던질포

船頭一去沒廻期(선두일거몰회기) 뱃머리 한번 떠나 돌아옴 묻어 가라앉을몰

浪淘沙詞六首6(낭도사사륙수6) 물결이 모래를 일어-白居易

隨波逐浪到天涯(수파축랑도천애) 물 따라 물결 쫓아 하늘 끝닿아

遷客生還有幾家(천객생환유기가) 옮겨간 이 돌아옴 몇 집이 있어

却到帝鄕重富貴(각도제향중부귀) 물리쳐 이른 서울 부귀 무게 둬

請君莫忘浪淘沙(청군막망랑도사) 제발 그대 잊지 마 모래 인 물결

閒出(한출) 느긋하여-白居易

兀兀出門何處去(올올출문하처거) 똑바로 문을 나서 어디로 가나 우뚝할올

新昌街晩樹陰斜(신창가만수음사) 새로 난 거리 늦어 나무그늘에

馬蹄知意緣行熟(마제지의연행숙) 말발굽 뜻을 알아 다니니 익어

不向楊家卽庾家(불향양가즉유가) 아니 나선 양씨네 유씨네로 가 곳집유

老病(노병) 늙어 병듦-白居易

晝聽笙歌夜醉眠(주청생가야취면) 낮에는 생황노래 밤엔 취해 잠

若非月下卽花前(약비월하즉화전) 달빛 아래 아니면 나아가 꽃 앞

如今老病須知分(여금노병수지분) 이제처럼 늙어 병 분수 알아야

不負春來二十年(불부춘래이십년) 못 저버려 봄이 와 이십 년이라

秋遊(추유) 가을 놀이-白居易

下馬閒行伊水頭(하마한행이수두) 말 내려 느긋 걸어 이수 물가를

涼風淸景勝春遊(량풍청경승춘유) 서늘바람 맑은 볕 봄놀이보다

何事古今詩句裏(하사고금시구리) 무슨 일 예나 이제 시구 안에는

不多說著洛陽秋(부다설저낙양추) 적잖이 말해 지어 낙양의 가을

劉家花(유가화) 유가화-白居易

劉家牆上花還發(유가장상화환발) 유씨 집 담장 위에 꽃 다시 피고

李十門前草又春(이십문전초우춘) 이씨 집 문 앞에는 풀에도 봄이

處處傷心心始悟(처처상심심시오) 곳곳에 마음 다쳐 맘 처음 알아

多情不及少情人(다정불급소정인) 정이 많아 못 미쳐 정든 이 적어

張十八(장십팔) 장십팔-白居易

諫垣幾見遷遺補(간원기견천유보) 간원에서 몇 번 봐 유보로 옮겨 담원

憲府頻聞轉殿監(헌부빈문전전감) 헌부서 자주 들어 전감에 돌려

獨有詠詩張太祝(독유영시장태축) 홀로 있어 시 읊는 장태축이라

十年不改舊官銜(십년불개구관함) 십 년을 아니 바꿔 옛 벼슬 이름 재갈함

高相宅(고상댁) 고상댁-白居易

靑苔故里懷恩地(청태고리회은지) 푸른 이끼 옛 마을 베풂 받은 땅

白髮新生抱病身(백발신생포병신) 흰머리 새로 나는 병을 가진 몸

涕淚雖多無哭處(체루수다무곡처) 눈물 흘림 많아도 울 곳이 없어

永寧門館屬他人(영녕문관속타인) 영녕문에 집이란 다른 이 차지

伏翼西洞送人(복익서동송인) 복익 서쪽 골에서 사람을 보내며-柳宗元

洞裏春晴花正開(동리춘청화정개) 골 마을 안 봄 개여 꽃이 정말 펴

看花出洞幾時回(간화출동기시회) 꽃 보며 마을 나가 언제 돌아와

慇懃好去武陵客(은근호거무릉객) 넌지시 잘 가라네 무릉 나그네

莫引世人相逐來(막인세인상축래) 들이지마 사람들 서로 따라와 쫓을축

與浩初上人同看山寄京華親故(여호초상인동간산기경화친고)호초 상인과 함께 산을 구경하고 서울 벗에게 보내며-柳宗元

海畔尖山似劍鋩(해반첨산사검망) 바닷가 뾰족한 산마치칼날 끝뾰족할첨 서슬망

秋來處處割愁腸(추래처처할수장) 가을 오니 곳곳에 시름 맘 갈라 나눌할

若爲化得身千億(약위화득신천억) 된다면 바꾸어서 몸을 천억 개

散上峰頭望故鄕(산상봉두망고향) 흩뿌려 산꼭대기 고향을 보리

銅魚使赴都寄親友(동어사부도기친우)동어사서울로가기에벗에게부치며柳宗元

行盡關山萬里余(행진관산만리여) 다 지나 고향 산은 만 리길 남아

到時閭井是荒墟(도시려정시황허) 닿을때 거리우물 거친 옛 터전 이문려 언덕허

附庸唯有銅魚使(부용유유동어사) 붙은 땅엔 있어서 동어사만이 쓸용

此後無因寄遠書(차후무인기원서) 이 뒤로는 없으리 멀리 글 부침

酬曹侍御過象縣見寄(수조시어과상현견기) 조 시어에게 답하며-柳宗元

破額山前碧玉流(파액산전벽옥류) 파액산 산 앞에는 푸른 옥 흘러 이마액

騷人遙駐木蘭舟(소인요주목란주) 시인은 멀리 있어 목란배를타 떠들소머무를주

春風無限瀟湘意(춘풍무한소상의) 봄바람에 끝없이 소상강 생각

欲采蘋花不自由(욕채빈화부자유) 캐려는 마름꽃은 내키지 않아 네가래빈

秋曉行南谷經荒村(추효행남곡경황촌) 가을아침 남곡가며황촌을 지나-柳宗元

杪秋霜露重(초추상로중) 끝 가을 묵직 서리 이슬에 끝초

晨起行幽谷(신기행유곡) 새벽 일어나 깊은 골에 가 새벽신

黃葉覆溪橋(황엽복계교) 누런 잎 덮여 시내 다리에

荒村惟古木(황촌유고목) 거친 마을엔 오랜 나무가

寒花疎寂歷(한화소적력) 차운 꽃 드문 고요히 지내

幽泉微斷續(유천미단속) 깊은 샘 살짝 끊겨 이어가 이을속

機心久已忘(기심구이망) 속일 마음에 잊은 지 오래 틀기

何事驚糜鹿(하사경미록) 무슨 일 놀라 사슴 고라니 죽미 큰사슴미

柳州二月榕葉盡落偶題(유주이월용엽진락우제)

유주의 이월 용나무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柳宗元

宦情羈思共悽悽(환정기사공처처) 벼슬 뜻 나그네 맘 다 같이 슬퍼 굴레기

春半如秋意轉迷(춘반여추의전미) 봄은 반 가을 같이 뜻 돌아 아득

山城過雨白花盡(산성과우백화진) 산에 성 비 지나니 온갖 꽃 지고

榕葉滿庭鶯亂啼(용엽만정앵난제) 용나무 잎 뜰 가득 꾀꼬리 울어

江花落(강화락) 강에는 꽃이 지네 벌레 반 마리-元稹

日暮嘉陵江水東(일모가릉강수동) 날 저문 가릉 땅은 강물 동쪽에

梨花萬片逐東風(이화만편축동풍) 배꽃 잎 만 조각이 바람에 몰려

江花何處最斷腸(강화하처최단장) 강에 꽃 어느 곳이 가장 애 끊나

半落江水半在空(반락강수반재공) 반 떨어져 강물에 반은 공중에

離思五首(이사오수) 헤어지는 생각-元稹

曾經滄海難爲水(증경창해난위수) 일찍 본 너른 바다 강이라 못해

除却巫山不是雲(제각무산불시운) 무산을 빼고서는 구름 아니지

取次花叢懶回顧(취차화총라회고) 아름다운 꽃떨기 돌아봄 물려

半緣修道半緣君(반연수도반연군) 반은 도를 닦아서 반은 그대에

遣懷(견회) 품은 뜻을 달래며-元稹

我隨楚澤波中水(아수초택파중수) 내 따름 초나라 못 물결 속에 물

君作咸陽泉中泥(군작함양천중니) 그대 지음 함양 땅 샘 가운데 뻘

百事無心値寒食(백사무심치한식) 온갖 일 마음 없이 찬밥이 될 터

身將稚女帳前啼(신장치녀장전제) 앞으로 몸 어린 딸 막 앞에 울어

遣懷詩(견회시) 품은 뜻을 달래는 시-元稹

昔日戱言身後言(석일희언신후언) 지난 날 놀리는 말 몸 떠난 뒤 말

今朝皆到眼前來(금조개도안전래) 오늘아침 다 닥쳐 눈앞에 닿아

衣裳已施行看盡(의상이시행간진) 옷 치마 베풀고서 보기만 다해

針線猶存未忍開(침선유존미인개) 바늘 실 그대론데 차마 못 열어

尙想舊情憐婢僕(상상구정련비복) 아직 생각 옛 정에 종들 불쌍해

也曾因夢送錢財(야증인몽송전재) 또한 일찍 꿈꾸던 노자 돈 보내

誠知此恨人人有(성지차한인인유) 정말 알아 이 한은 사람에 있어

貧賤夫妻白事哀(빈천부처백사애) 가난에 남편 아내 온갖 일 슬퍼

聞白樂天左降江州司馬(문백락천좌강강주사마)

백낙천이 강주사마로 좌천됨을 듣고-元稹

殘燈無焰影幢幢(잔등무염영당당) 꺼질 등 불꽃 없이 그림자 펄럭

此夕聞君謫九江(차석문군적구강) 이 저녁 그댈 들어 구강에 쫓겨

垂死病中驚坐起(수사병중경좌기) 죽음 드린 앓든 몸 놀라 앉으니

暗風吹雨入寒窓(암풍취우입한창) 어둔 바람 비 몰아 찬 창에 들어

夢天(몽천) 하늘 꿈을 꿔-李賀

老兎寒蟾泣天色(노토한섬읍천색) 늙은 토끼 추운 두꺼비 우는 하늘빛

雲樓半開壁斜光(운루반개벽사광) 구름 누각 반 열려 벽에 비낀 빛

玉輪軋露濕團光(옥륜알로습단광) 옥 바퀴 삐걱 빠져 젖은 빛 둥글

鸞佩相逢桂香陌(난패상봉계향맥) 난새 패 서로 만나 계수 향 거리

黃塵淸水三山下(황진청수삼산하) 누런 세상 맑은 물 삼신 산 아래

更變千年如走馬(갱변천년여주마) 다시 바뀐 천년은 말 달리듯 해

遙望齊州九点煙(요망제주구점연) 멀리 바래 제 땅을 아홉 점 연기

一泓海水杯中瀉(일홍해수배중사) 한 웅덩이 바닷물 잔속에 쏟아

楊柳詞(양류사) 버들의 노래-溫庭筠

館娃宮外鄴城西(관왜궁외업성서) 관왜궁 궁궐 밖에 업성 서쪽 땅

遠映征帆近拂堤(원영정범근불제) 멀리 비친 가는 배 가까이 둑에

繫得王孫歸意切(계득왕손귀의절) 매여져 왕손으로 돌아갈 뜻만

不關芳草綠萋萋(불관방초록처처) 나몰라 꽃다운 풀 푸름 우거져

新添聲楊柳枝(신첨성양류지) 버들가지에 새로 소리를 붙여-溫庭筠

一尺深紅蒙曲塵(일척심홍몽곡진) 한 자 깊이 붉음이 잘못 티끌로

天生舊物不如新(천생구물불여신) 천생배필 옛 것이 새 것만 못해

合歡桃核終堪恨(합환도핵종감한) 즐김 합한 복숭 씨 끝내 한 견뎌

裏許原來別有人(이허원래별유인) 속에 원래 있게 해 달리

咸陽値雨(함양치우) 함양에 내린 비-溫庭筠

咸陽橋上雨如懸(함양교상우여현) 함양교 다리위에 빗줄기 걸려

萬點空蒙隔釣船(만점공몽격조선) 많은 점 하늘 덮어 낚싯배 멀어

還似洞庭春水色(환사동정춘수색) 되레 같은 동정호 봄날 물 빛깔

晩雲將入岳陽天(만운장입악양천) 저녁 구름 들이려 악양 하늘에

利洲南渡(이주남도) 이주에서 남쪽으로 건너며-溫庭筠

澹然空水對斜暉(담연공수대사휘) 말갛게 텅 빈 물은 비낀 빛 마주

曲島蒼茫接翠微(곡도창망접취미) 둘러선 섬 아득히 이내에 닿아

波上馬嘶看棹去(파상마시간도거) 물결 위로 말울음 배 떠남 보여

柳邊人歇待船歸(류변인헐대선귀) 버들 가 사람 쉬며 배 오길 바래

數叢沙草群鷗散(삭총사초군구산) 몇 떨기 모래에 풀 갈매기 떼 흩어져

萬頃江田一鷺飛(만경강전일로비) 만 이랑 강변 밭에 한 마리 해오라기

誰解乘舟尋范蠡(수해승주심범려) 누가 알까 배 타고 범려 찾는지

湖煙水獨忘機(오호연수독망기) 다섯 호수 물안개 홀로 잊으려

南湖(남호) 남쪽 호수-溫庭筠

湖上微風入檻凉(호상미풍입함량) 호수 위 살랑 바람 난간 시원히

飜飜菱荇滿廻塘(번번능행만회당) 나풀나풀 마름 풀 못 가득 돌아

野船着岸偎春草(야선착안외춘초) 들에 배 언덕 닿아 봄풀과 친해

水鳥帶波飛夕陽(수조대파비석양) 물새는 물결 띠고 석양을 날아

蘆葉有聲疑夜雨(노엽유성의야우) 갈대 잎 소리 내니 밤비인 줄로

浪花無際似淸湘(낭화무제사청상) 물가 꽃 끝도 없어 맑은 상수라

飄然蓬艇東遊客(표연봉정동유객) 날아 떠돈 거룻배 동쪽 놀이 객

盡日相看憶楚鄕(진일상간억초향) 날 다해 바라보니 초 땅 고향이

蘇武廟(소무묘) 소무의 사당-溫庭筠

蘇武魂銷漢使前(소무혼소한사전) 소무의 넋 녹으니 한나라 사신

古祠高樹兩茫然(고사고수량망연) 옛 사당 높은 나무 둘 다 아득해

雲邊雁斷胡天月(운변안단호천월) 기러기 끊인 구름 호 땅 하늘 달

隴上羊歸塞草煙(롱상양귀새초연) 언덕 위 양떼 돌려 변방 풀 연기

迴日樓臺非甲帳(회일루태비갑장) 돌아온 날 누대는 갑장 아니며

去時冠劍是丁年(거시관검시정년) 떠날 때 갓과 칼은 정년이었지 丁年:20

茂陵不見封侯印(무릉불견봉후인) 무릉에 아니 보여 봉후 인끈이

空向秋波哭逝川(공향추파곡서천) 헛 바랜 가을 물결 내 흘러 울어

子卿 蘇武(BC140~BC80)전한武帝의 명에 흉노에 사신으로가單于에게 붙잡혀

北海(바이칼호)19년간 유폐되었다 흉노에게항복한 지난날 동료 李陵이 설득했으나 절개를 지켜 귀국했다 후에 宣帝의 옹립에 가담하여 그 공으로 關內侯가 되었다

無題(무제) 제목 없이-李商隱

颯颯東風細雨來(삽삽동풍세우래) 살랑살랑 봄바람 가랑비 내려

芙蓉塘外有輕雷(부용당외유경뢰) 연꽃 핀 연못 바깥 우레 가벼워

金蟾齧鏁燒香入(금섬설쇄소향입) 금 두껍 물려 잠가 사른 향 들어

玉虎牽絲汲井回(옥호견사급정회) 옥 호랑이 실 끌어 물 길어 오네

賈氏窺簾韓掾少(가씨규렴한연소) 가씨가 발 엿보니 한연은 젊어

宓妃留枕魏王才(복비류침위왕재) 복비는 머물러 잠 위왕의 재주

春心莫共花爭發(춘심막공화쟁발) 봄 마음 함께 마라 꽃 다퉈 피니

一寸相思一寸灰(일촌상사일촌회) 한때 짧은 그리움 한 움큼 재로

無題(무제) 제목 없이-李商隱

昨夜星辰昨夜風(작야성신작야풍) 어젯밤에 별자리 어젯밤 바람

畵樓西畔桂堂東(화루서반계당동) 그림 누각 서쪽 둑 계당의 동쪽

身無彩鳳雙飛翼(신무채봉쌍비익) 몸에 없는 고운 봉황 함께 날 날개

心有靈犀一點通(심유령서일점통) 마음에는 신령 물소 한 점 꿰뚫음

隔座送鉤春酒暖(격좌송구춘주난) 떼서 앉아 송구놀이 봄 술은 따뜻

分曹射覆蠟燈紅(분조사복납등홍) 편 나누어 사복놀이 촛불은 발개

嗟余聽鼓應官去(차여청고응관거) 아 나는 북소리에 관아로 가야

走馬蘭臺類斷蓬(주마난대류단봉) 말을 달려 난대로 잘린 쑥 닮아

無題(무제) 제목 없이-李相隱

相見時難別亦難(상견시난별역난) 서로 보기 어려워 헤짐도 그래

東風無力百花殘(동풍무력백화잔) 봄바람 힘이 없어 온갖 꽃 시들

春蠶到死絲方盡(춘잠도사사방진) 봄누에 죽어서야 실뽑기 다해

蠟炬成灰㴃始干(납거성회루시간) 밀초는 재가 되어 눈물이 말라

曉鏡但愁雲鬢改(효경단수운빈개) 새벽거울 시름에 흰머리 고쳐

夜吟應覺月光寒(야음응각월광한) 밤에 읊어 깨달아 달빛 차가워

蓬山此去無多路(봉산차거무다로) 봉래산 여기서는 많은 길 없어

靑鳥殷勤爲探看(청조은근위탐간) 파랑새야 꾸준히 찾아 살펴줘

無題二首之一(무제이수지일) 무제-李商隱

鳳尾香羅薄幾重(봉미향라박기중) 봉황꼬리 향 비단 엷게 몇 겹을

碧文圓頂夜深縫(벽문원정야심봉) 푸른 무늬 둥근 테 밤 깊게 꿰매

扇裁月魄羞難掩(선재월백수난엄) 부채 헝겊 달 넋에 부끄럼 못 가려

車走雷聲語未通(거주뢰성어미통) 수레 달려 우레 소리 말도 안 들려

曾是寂寥金燼暗(증시적료금신암) 일찍이 고요 쓸쓸 금 촛불 어둑

斷無消息石榴紅(단무소식석류홍) 끊겨 없어 소식은 석류꽃 붉어

斑騅只系垂楊岸(반추지계수양안) 얼룩 말 다만 매여 수양버들 언덕

何處西南任好風(하처서남임호풍) 어느 곳이 서남쪽 좋은 바람이

無題二首之二(무제이수지이) 무제-李商隱

重帷深下莫愁堂(중유심하막수당) 겹 휘장 깊음 아래 시름없는 집

臥後淸宵細細長(와후청소세세장) 누운 다음 맑은 밤 가늘게 길어

神女生涯原是夢(신녀생애원시몽) 무산 신녀 삶이란 원래 꿈이지

小姑居處本無郎(소고거처본무랑) 마고할미 사는 곳 사내가 없어

風波不信菱枝弱(풍파불신릉지약) 바람물결 못 믿어 마름 대 여려

月露誰敎桂葉香(월로수교계엽향) 달 이슬 뉘 알게 해 월계수 잎 향

直道相思了無益(직도상사료무익) 바로말해 그리움 깨침 이 없어

未妨惆愴是淸狂(미방추창시청광) 거침없이 슬퍼해 말간 미침에

爲有(위유) 가지게 되어-李商隱

爲有雲屛無限嬌(위유운병무한교) 갖게 된 구름병풍 너무나 아리따워

鳳城寒盡怕春宵(봉성한진파춘소) 서울엔 추위 다해 봄밤이 두려워요

無端嫁得金龜婿(무단가득금구서) 아무튼 시집오니 금 거북 남편으로

辜負香衾事早朝(고부향금사조조) 둘러씌운 향 이불 이른 아침 일해야

寄令狐郎中(기영호랑중) 영호낭중에 부쳐-李商隱

嵩雲秦樹久離居(숭운진수구리거) 숭산 구름 진 나무 오래 떨어져

雙鯉迢迢一紙書(쌍리초초일지) 편지 둘 멀리멀리 한 장의 글을

休問梁園舊賓客(휴문량원구빈객) 묻지 마라 양원의 옛 손님에겐

茂陵秋雨病相如(무릉추우병상여) 무릉에 가을비로 서로 같은 병

月夕(월석) 달 밝은 밤-李商隱

草下陰蟲葉上霜(초하음충엽상상) 풀 아래 그늘벌레 잎 위엔 서리

朱欄迢遞壓湖光(주난초체압호광) 붉은 난간 아득히 내린 호수 빛

兎寒蟾冷桂花白(토한섬랭계화백) 두꺼비 토끼 추워 흰 계수나무

此夜嫦蛾應斷腸(차야항아응단장) 이 밤에도 항아는 애가 끊기지

過楚宮(과초궁) 초궁을 지나며-李商隱

巫峽迢迢舊楚宮(무협초초구초궁) 무협에 아득 멀리 옛 초나라 궁

至今雲雨暗丹楓(지금운우암단풍) 이제껏 남녀사랑 몰래 단풍에

浮生盡戀人間樂(부생진련인간락) 떠돈 삶 다한 연애 세상에 즐김

只有襄王憶夢中(지유양왕억몽중) 다만 있던 양왕의 꿈속 일 생각

宮詞(궁사) 궁사-李商隱

君恩如水向東流(군은여수향동류) 임금 베풂 물처럼 동쪽 흘러가

得寵憂移失寵愁(득총우이실총수) 굄 얻어 옮을 걱정 잃으면 시름

莫向尊前奏花落(막향존전주화락) 말아야 임금 앞에 꽃이 졌단 말

凉風只在殿西頭(양풍지재전서두) 서늘바람 있어도 대궐 서쪽에

元和甲午歲詔書盡徵江湘逐客(원화갑오세조서진징강상축객)

원화 갑오년에 조서로 강상의 축객을 모두 불러서-李商隱

雷雨江湘起臥龍(뇌우강상기와룡) 천둥과 비 강상에 누운 용 일어 세워

武陵樵客躡仙縱(무릉초객섭선종) 무릉의 나무꾼이 신선 쫓아 밟는다

十年楚水楓林下(십년초수풍림하) 십년의 초나라 물 단풍 수풀 아래에

今夜初聞長樂鐘(금야초문장락종) 오늘 밤 처음 듣네 장락궁 종소리를

四皓廟(사호묘) 사호의 사당-李商隱

本爲留侯慕赤松(본위유후모적송) 본디 된 남은 제후 적송자 그려

漢庭方識紫芝翁(한정방식자지옹) 한 조정 마침 알아 자지옹이라

蕭何徒解追韓信(소하도해추한신) 소하는 잘못 알아 한신을 쫓아

豈得虛當第一功(기득허당제일공) 어찌 얻나 헛되이 제일의 공덕

商山四皓 : 東園公 夏黃公 甪里先生 綺里季

吳宮(오궁) 오나라 궁궐-李商隱

龍檻沈沈水殿淸(용함침침수전청) 용 난간 빠져 잠겨 물가 궁궐 맑은데

禁門深掩斷人聲(금문심엄단인성) 궁궐 문 깊이 닫혀 사람 소리 끊겼네

吳王宴罷滿宮醉(오왕연파만궁취) 오왕의 잔치 끝나 궁궐 가득 취하니

日暮水漂花出城(일모수표화출성) 해 저물어 물에 떠 꽃잎은 성을 나서

咸陽(함양) 함양에서-李商隱

咸陽宮闕鬱嵯峨(함양궁궐울차아) 함양 땅에 궁궐은 높고 성대해

六國樓臺艶綺羅(육국루대염기라) 여섯 나라 누대는 곱게 늘어서

自是當時天帝醉(자시당시천제취) 이로부터 그때에 하느님 취해

不關秦地有山河(불관진지유산하) 괜찮아 진나라 땅 산하 있으니

霜月(상월) 서리 내리는 달밤에-李商隱

初聞征雁已無蟬(초문정안이무선) 첫 들린 기러기 떼 매미 없으니

百尺樓南水接天(백척루남수접천) 백 척 누대 남쪽은 하늘 닿은 물

靑女素娥俱耐冷(청녀소아구내랭) 푸른 여자 흰 여인 차가움 참아

月中霜裏鬪嬋娟(월중상리투선연) 달 가운데 서리 속 고움을 다퉈

江東(강동) 강동에서-李商隱

驚魚潑剌燕翩翸(경어발랄연편분) 물고기 놀라 펄떡 제비는 펄럭

獨自江東上釣船(독자강동상조선) 혼자서 강동에서 낚싯배 올라

今日春光太漂蕩(금일춘광태표탕) 오늘은 봄빛깔이 너무 떠돌아

謝家輕絮沈郎錢(사가경서침랑전) 집 떠나 가벼운 솜 느릅꼬투리 앉아

岳陽樓(악양루) 악양루-李商隱

欲爲平生一散愁(욕위평생일산수) 하려고 해 한평생 흩어진 시름

洞庭湖上岳陽樓(동정호상악양루) 동정호 호수 위로 악양루 올라

可憐萬里堪乘興(가련만리감승흥) 가여워서 만 리에 흥겨움 견뎌

枉是蛟龍解覆舟(왕시교룡해복주) 잘못 알아 교룡이 배 엎은 줄로

賈生(가생) 가생-李商隱

宣室求賢訪逐臣(선실구현방축신) 선실 찾는 어진 이 쫓겨난 신하 찾아

賈生才調更無倫(가생재조갱무륜) 가의의 재주 고름 다시없어 견줄 이

可憐夜半虛前席(가련야반허전석) 아까워라 한밤에 그냥 보낸 앞자리

不問蒼生問鬼神(불문창생문귀신) 묻지 않은 백성 일 귀신 일만 물었네

嫦娥(항아) 항아-李商隱

雲母屛風燭影深(운모병풍촉영심) 운모 병풍 둘러쳐서 촛불 깊은 그림자

長河漸落曉星沈(장하점락효성침) 은하수는 차츰 져가 새벽별도 잠기네

嫦娥應悔偸靈藥(항아응회투영약) 항아 마땅 뉘우치지 불사약 훔쳤으니

碧海靑天夜夜心(벽해청천야야심) 푸른 바다 푸른 하늘 밤마다 외론 마음

() 버드나무-李商隱

曾逐東風拂舞筵(증축동풍불무연) 일찍 쫓아 봄바람 춤 자리 펼쳐

樂游春苑斷腸天(낙유춘원단장천) 즐겨 노는 봄 동산 애 끊는 하늘

如何肯到清秋日(여하긍도청추일) 어쩌면 옳게 이른 맑은 가을날

已帶斜陽又帶蟬(이대사양우대선) 이미 띠니 기운 볕 또 두른 매미

龍池(용지) 용지-李商隱

龍池賜酒敞雲屏(용지사주창운병) 용 못에 잔치 펼쳐 구름병풍에

羯鼓聲高衆樂停(갈고성고중악정) 갈고 북 소리 높아 뭇 악기 그쳐

夜半宴歸宮漏永(야반연귀궁루영) 밤 깊어 잔치 돌아 물시계 오래

薛王沉醉壽王醒(설왕침취수왕성) 설왕은 깊이 취해 수왕은 깨네

日日(일일) 날마다-李商隱

日日春光斗日光(일일춘광일광) 날로날로 봄빛은 햇살과 다퉈

山城斜路杏花香(산성사로행화향) 산성에 비탈길에 살구꽃 향내

幾時心緒渾無事(기시심서혼무사) 몇 때는 마음자락 일없어 흐릿

得及游絲百尺長(득급유사백척장) 오르니 아지랑이 백 자 높이로

夢澤(몽택) 꿈에 본 연못-李商隱

夢澤悲風動白茅(몽택비풍동백모) 꿈에 못 슬픈 바람 흰 띠 풀 흔들

楚王葬盡滿城嬌(초왕장진만성교) 초 임금 다 묻으니 성 가득 미녀

未知歌舞能多少(미지가무능다소) 알지 못해 노래 춤 얼마나 하랴

虛減宮廚爲細腰(허감궁주위세요) 헛 줄인 궁궐부엌 가는 허리 돼

日射(일사) 해가 내리 쫴-李商隱

日射紗窗風撼扉(일사사창풍감비) 햇살 쬐인 깁 창문 바람 흔든 문

香羅拭手春事違(향라식수춘사위) 향기비단 손 닦아 봄날 일 틀려

回廊四合掩寂寞(회랑사합엄적막) 두른 복도 사방에 쓸쓸함 가려

碧鸚鵡對紅薔薇(벽앵무대홍장미) 마주 푸른 앵무새 붉은 장미와

宮妓(궁기) 궁녀-李商隱

珠箔輕明拂玉墀(주박경명불옥지) 구슬 발 밝아 살랑 치켜 옥난간

披香新殿斗腰支(피향신전두요지) 열린 향내 새 궁전 허리선 다퉈

不須看盡魚龍戲(불수간진어룡희) 꼭 다해 보지마라 어룡놀이는

終遣君王怒堰師(종견군왕노언사) 끝내 임금 하게 돼 언사에 화내

瑤池(요지) 요지-李商隱

瑤池阿母綺窓開(요지아모기창개) 요지 못에 서왕모 깁 창문 열어

黃竹歌聲動地哀(황죽가성동지애) 황죽가 노랫소리 땅 울려 슬퍼

八駿日行三萬里(팔준일행삼만리) 여덟 준마 하루에 삼만 리 달려

穆王何事不重來(목왕하사부중래) 주목왕 무슨 일로 또 오지 않나

隋宮(수궁) 수나라 궁궐-李商隱

乘興南游不戒嚴(승흥남유불계엄) 흥 타고 강남 놀아 경계도 아니 엄해

九重誰省諫書函(구중수성간서함) 구중궁궐 뉘 살펴 상소 글을 담을까

春風擧國裁宮錦(춘풍거국재궁금) 봄바람에 온 나라 궁궐 비단 마름질

半作障泥半作帆(반작장니반작범) 절반은 말다래를 반은 돛을 만들어

隋宮(수궁) 수나라 궁전-李商隱

紫泉宮殿鎖煙霞(자천궁전쇄연하) 보라 샘에 궁전은 안개 놀 잠겨

欲取蕪城作帝家(욕취무성작제가) 얻고자한 무성에 서울 만들려

玉璽不緣歸日角(옥새불연귀일각) 옥새는 인연 없어 귀인에 돌려

錦帆應是到天涯(금범응시도천애) 비단 돛배 마땅히 하늘 끝 닿아

於今腐草無螢火(어금부초무형화) 이제껏 썩은 풀에 반딧불 없어

終古垂楊有暮鴉(종고수양유모아) 끝내 옛 수양버들 갈 까마귀에

地下若逢陳后主(지하약봉진후주) 지하에서 만나면 진나라 후주

豈宜重問后庭花(개의중문후정화) 어찌 마땅 또 묻지 후정에 꽃을

曲江(곡강) 곡강-李商隱

望斷平時翠輦過(망단평시취련과) 바램 끊어 늘 할 때 비취빛 수레 지나

空聞子夜鬼悲歌(공문자야귀비가) 괜히 들려 한밤에 귀신 슬픈 노래가

金輿不返傾城色(금여불반경성색) 황금수레 못 돌려 기우는 성 빛깔에

玉殿猶分下苑波(옥전유분하원파) 옥 전각 마치 나눠 동산 물결 내려가

死憶華亭聞唳鶴(사억화정문려학) 죽어 기억 꽃 정자 학 울음 들었으니

老憂王室泣銅駝(노우왕실읍동타) 늙어 걱정 왕실을 낙타동상 눈물져

天荒地變心雖折(천황지변심수절) 하늘 거칢 땅 바뀜 마음마저 꺾어서

若比傷春意未多(약비상춘의미다) 봄 애태움 견주면 뜻은 많지 않아서

銀河吹笙(은하취생) 은하에 피리 불어-李商隱

悵望銀河吹玉笙(창망은하취옥생) 슬피 바란 은하수 옥피리 불어

樓寒院冷接平明(루한원랭접평명) 누각 차고 집 싸늘 밝기 기다려

重衾幽夢他年斷(중금유몽타년단) 겹이불 그윽한 꿈 다른 해 끊겨

別樹羈雌昨夜驚(별수기자작야경) 나무 떠난 새장 새 어젯밤 놀라

月榭故香因雨發(월사고향인우발) 달 정자 오랜 향기 비 내려 풍겨

風簾殘燭隔霜清(풍렴잔촉격상청) 바람 발 남은 촛불 서리에 맑아

不須浪作緱山意(불수랑작구산의) 아니 꼭 마구 지어 산을 감을 뜻

湘瑟秦簫自有情(상슬진소자유정) 상비 비파 소사 피리 나름의 뜻이

二月二日(이월이일) 이월 이일-李商隱

二月二日江上行(이월이일강상행) 이월 달 이틀 날에 강위를 걸어

東風日暖聞吹笙(동풍일난문취생) 봄바람 날 따뜻해 피리소리로

花鬚柳眼各無賴(화수류안각무뢰) 꽃술과 버들눈은 힘입음 없어

紫蝶黃蜂俱有情(자접황봉구유정) 보라나비 누런 벌 모두 정 있어

萬裡憶歸元亮井(만리억귀원량정) 만리 속 돌아갈 꾀 원량정 고향

三年從事亞夫營(삼년종사아부영) 삼년 된 쫓아한 일 아부영 군영

新灘莫悟游人意(신탄막오유인의) 새 여울 알지 못한 나그네 마음

更作風檐夜雨聲(갱작풍첨야우성) 또 일어 바람 처마 밤비 소리가

錦瑟(금슬) 금슬-李商隱

錦瑟無端五十弦(금슬무단오십현) 비단 비파 까닭 없이 오십 줄인가

一弦一柱思華年(일현일주사화년) 줄 하나 발 하나에 꽃 시절 생각

莊生曉夢迷蝴蝶(장생효몽미호접) 장주는 꿈 깨달아 나비도 되고

望帝春心托杜鵑(망제춘심탁두견) 초 망제 봄날 마음 두견에 붙여

滄海月明珠有淚(창해월명주유루) 푸른 바다 달 밝아 눈물이 진주

藍田日暖玉生煙(람전일난옥생연) 쪽 밭에 날 따뜻해 옥에 연기 나

此情可待成追憶(차정가대성추억) 이런 뜻 기다려서 추억이 되지

只是當時已惘然(지시당시이망연) 다만 그땐 이것들 멍하게 그쳐

春雨(춘우) 봄비-李商隱

悵臥新春白袷衣(창와신춘백겁의) 슬피 누워 새 봄에 흰 겹옷 입고

白門寥落意多違(백문요락의다위) 쓸쓸히 지는 흰 문 뜻 많이 어긋

紅樓隔雨相望冷(홍루격우상망랭) 홍루 너머 비 내려 바라봐 썰렁

珠箔飄燈獨自歸(주박표등독자귀) 구슬 발 등불 흔들 혼자 돌아와

遠路應悲春(원로응비춘완만) 먼 길을 맞아 슬퍼 봄날 저녁에

殘宵猶得夢依稀(잔소유득몽의희) 남은 밤에 얻어진 꿈에도 안 뵈

玉璫緘札何由達(옥당함찰하유달) 옥 귀고리 싼 편지 어찌 보낼까

萬里雲羅一雁飛(만리운라일안비) 만 리 구름 펼치니 기러기 날아

碧城三首1(벽성삼수1) 벽성삼수-李商隱

碧城十二曲闌干(벽성십이곡란간) 푸른 성 열두 구비 난간이 걸쳐

犀辟塵埃玉辟寒(서벽진애옥벽한) 무소뿔 먼지 막고 옥 추위 막아

閬苑有書多附鶴(랑원유서다부학) 대문 동산 글 있어 학 많이 붙어

女床無樹不栖鸞(녀상무수불서란) 여인 방 나무 없어 난새 못 살아

星沉海底當窗見(성침해저당창견) 별 잠긴 바다 바닥 창문에 보여

雨過河源隔座看(우과하원격좌간) 비 지난 강물 발원 자리 건너 봐

若是曉珠明又定(약시효주명우정) 이 같이 환한 구슬 밝게도 놓여

一生長對水晶盤(일생장대수정반) 한 삶에 오래 마주 맑은 수정반

碧城三首2(벽성삼수2) 벽성삼수-李商隱

對影聞聲已可憐(대영문성이가련) 그림자 소리 들어 이미 가여워

玉池荷葉正田田(옥지하엽정전전) 옥 연못에 연꽃잎 정말 반듯해

不逢蕭史休回首(불봉소사휴회수) 아니 만난 소사에 돌아보지 마

莫見洪崖又拍肩(막견홍애우박견) 홍애 보면 말아라 어깨 두드림

紫鳳放嬌銜楚佩(자봉방교함초패) 보라 봉황 곱다며 가시 패 물고

赤鱗狂舞撥湘弦(적린광무발상현) 붉은 어룡 미친 춤 상수 물 퉁겨

鄂君悵望舟中夜(악군창망주중야) 악군은 슬피 바래 배에서 밤을

繡被焚香獨自眠(수피분향독자면) 수논 이불 향 살라 홀로 잠들어

碧城三首3(벽성삼수3) 벽성삼수-李商隱

七夕來時先有期(칠석래시선유기) 칠석날 다가올 때 앞선 약속이

洞房簾箔至今垂(동방렴박지금수) 침실에는 주렴이 이제껏 처져

玉輪顧初生魄(옥륜고토초생백) 옥 달 속 토끼 살펴 달빛 생겨나

鐵網珊瑚未有枝(철망산호미유지) 쇠 그물에 산호는 가지도 안나

檢與神方敎駐景(검여신방교주경) 챙겨준 신묘 처방 볕이 머물게

收將鳳紙寫相思(수장봉지사상사) 거두려 봉황 종이 생각을 적어

武皇內傳分明在(무황내전분명재) 한 무제 내전에는 뚜렷이 있어

莫道人間總不知(막도인간총부지) 말마라 세상사람 모두 다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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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민들레 ㅡ윤갑수ㅡ

 

보이나요. 하얀 민들레꽃이

꽃대가 길어 사슴처럼 가녀린

너지만 바람에는 절대로

꺾이지 않는다.

바람난 처녀 가슴 애태우듯

해맑은 햇살처럼 청초하게도

피었다네!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누구를 위해 순백의 꽃을

되었나!

소년의 작은 가슴에도

너를 닮고 싶어 하는 희망의

꽃이고 싶다

 

억새풀 ㅡ한승수ㅡ

 

가을 언덕 저무는 햇살에

은은한 미소

흩날리는 머리칼이

저리도 허허로울 수 있으랴

여름 한때 푸르던 서슬은 간데없고

은발의 노신사인 양

고즈넉이

하늘에 순응하는데

바람결에 서걱이며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고

울어도 울지 않는,

나도 한 줄기

억새풀이고 싶다

 

가을 저녁 어스름/미산 윤의섭

 

풀벌레소리

멀어지고

먼저 떨어진 낙엽이

홀로 얼굴을 붉힌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니

소나무 가지에

달이 걸렸구나

찬물이 바위로 흐르니

여름의 향기

시들었지만

머물만하지 않은가?

달이 뜨고

별이 빛나는

밤을 위하여

가을 저녁 어스름이 서산에 드리운다.

 

둘만의 사랑 / 정심 김덕성

 

가을아침

구슬프게 가을비 내리며

촉촉하게 젖는데

누구도 맛보지 못한

단 하나인 달콤한 사랑에

따뜻한 마음을 담고

차 한 잔 나누며

차 잔에는

분홍빛 코스모스 꽃잎을

살짝 띠워

사랑의 향이

그윽한 풍기는

둘만의 사랑 이야기로

행복한 꿈속에 머물고 싶다

 

 

매화 풍경    /    박종영

 

겨울 강을 건너온 매화 꽃잎 한 개

절정을 위해 상큼한 바람 앞에 서서

백옥의 여인이다

이내 펄럭이는 치맛자락

그때마다 하얀 속살이 좀처럼 인색하게

붉게 퍼진다

낡은 세월 모두 밀어내는

그대 향기 같아

그 추억의 허리춤을 살며시 당기면

저절로 안겨오는 그리움을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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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서 팔병에 대하여

漢詩 작시상 피해야 할 점들에서 팔병이란 평두(平頭상미(上尾봉요(蜂腰학슬(鶴膝대운(大韻소운(小韻방뉴(旁紐정뉴(正紐)를 말한다

 

1.평두- 첫글자와 여섯 번째 글자, 두번째 글자와 일곱 번째 글자에 동성(同聲)문자 쓰는것.

2.상미- 상구(上句)의 첫 글자와, 아래 구의 첫 글자가 같은 성조(聲調)가 되는것.

3.봉요- 두 번째 글자와 다섯 번째 글자와 성조(聲調)가 같은것.

4.학슬- 첫줄의 다섯째 글자와, 세 째 줄의 다섯 째 글자에 같은 운통(韻統)의 글자를 쓰는것.

5.대운- 전체 문장에 같은 운통의 문자를 썼을 경우.

6.소운- 오언시의 한 연 가운데에 운각(韻脚)을 제외한 아홉자중에 같은 운통에 속하는 글자가 있는것.

7.방뉴- 한 구 가운데에 쌍성(雙聲)을 이루는 글자를 사용하는 것.

 

8.정뉴- 시의 한 구절에 같은 자음자(子音字)가 쓰일 수 없는 것. 예컨대 이 쓰일 경우 이나 을 쓸 수 없는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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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字八法(영자팔법)의 意味(의미)
해서(楷書)의 기본적인 필법을 갖춘 문자로서 '永'字가 있다. 이 '永'字에는 문자구성상 특징이 되는 필획이 비교적 고루 갖추어져 있어 옛 부터 이 문자를 연습함으로써 필법의 기초를 연마하는데 활용해 왔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글씨입문의 초보단계에 이 '영자팔법(永字八法)'의 숙달을 통해 필법을 익히고 있다. 永字八法에는 다음과 같은 각 부분의 명칭이 있는데 각 필획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어원을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설명을 가해보기로 한다.
一. 側(측;곁. 옆) :
이것은 점획(點獲)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永字의 첫머리 점이 마치 側(옆)으로 기울어 있다는데서 유래한 것 이다. 그러므로 '側'으로써 점획을 쓸 때에는 반월형(半月形)으로 기울어진 머리를 연상케 하는 모양이 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점획에는 실로 여러 가지 형태의 것이 있어서 모두를 '側'로 처리해서는 물론 안 된다.
마치 기러기가 날아가다 내릴 때 그 기울기를 연상하게 되는데. 비록 짧고 간단한 획이지만 그 당야한 변화는 글씨에서 표정 또는 정서(情緖)라고 할 수 있다. 그 모양이 토란, 괴석, 강낭콩, 등에 비유 되었다. 1에서 가볍게 역입하여 2에서 붓의 방향을 오른쪽으로 45° 정도로 쓰러져 있는 붓의 탄력으로 3에서 가볍게 뺀다.
二, 勒(늑 o r륵. 굴레. 묶다.) :
말을 말안장으로 누르는 느낌과 같다 하여 지닌 이름이다. 특히 이 획의 수필은 벼랑에서 말을 힘껏 누르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 획은 이른바 '一'字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보기에는 가장 원시적인 획인데 흔히 '한일字 조차 제대로 쓰기 힘들다' 고 한탄하듯 얼핏 단순한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실은 이 단순함 속에 의미 깊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획 수가 적고 구성이 단순하면 할수록 쓴 사람의 성격이 잘 나타나는 법이다. 이 일획(一畵)은 글씨 가운데 그 수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 결구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획(畵)의 성공여부로 작품 전체의 우열을 결정하게 되는 수가 적지 않다. 앞서 말한 통속적인 말과는 반대로 '한일字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면 대부분의 글자는 바르게 쓰게 된다.'는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1에서 역입하여 2에서 45°로 눌러 3에서 붓이 나갈 방향으로 틀어 엎어 가지고 4쯤에서 붓을 약간 들어 허리와 같은 탄력을 만들어 5, 6에서 점을 찍는 방법으로 하여 뗀다.
그 기울기는 앞머리의 윗부분과 뒤의 마지막 아래 부분을 수평으로 맞춘다.
위의 획에서 1번과 6번의 점을 종이 위의 수평으로 보고 머리 부분의 위를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아래를 수평선에 놓으면 획의 기울기가 알맞다는 이야기가 된다.
三, 弩(노; 활쏠노) :
마치 활을 당겨 힘껏 당길 때의 세(勢)를 닮았다고 해서 칭하는 말이다. 이것은 내리긋는 수획(竪劃)이다.
竪;더벅머리 수; 아래 위 모양이 더벅머리 같음을 말한다.
竪劃(수획)의 본질은 그 명칭으로도 짐작이 되는 것처럼 수직이 원칙이다. 그런데 단순한 수직이 아니라 상하끝부분에는 돌을 튕겨낼 만한 弦(현)이 매어져 있는 것이어서 여기에는 집중된 힘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상하의 힘에 대응해서 중간부분에는 탄력성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다소 彎曲性(만곡성)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성질을 통해서 생각할 때, 수직은 단순한 직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각적인 직선일 필요가 있는 것이며 그런 만큼 중간부분의 彎曲性과 이 上下의 힘찬 상대관계는 이 획의 佳拙(가졸;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요건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이 획에 있어 중요한 점은 봉(鋒)의 움직임에 따라 전체의 가졸(佳拙; 좋고 나쁨)을 결정하게 되는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漢字는 縱書(종서)이므로 이 획이 수직으로 보이지 않거나 중심을 통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문자가 굽거나 흐느적거리게 보이게 되어 결국 전체의 구성이 우습게 되어 버린다.
세로획은 가로 획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은 모양이며 수로와 현침이 있다.
현침획은 О부분 정도에서 붓을 차차 들면서 뺀다. 끝 부분이 서미(쥐꼬리)의 형태이면 좋다.
四, 趯(적; 뛸적):
이것은 공이 튀는(躍약) 것 같은 筆勢(필세)에서 붙어진 이름이다. 공이 벽에 부딪혔을 때, 그 탄력으로 벽을 차고 튀어나오듯이 이 획이 갖고 있는 내용도 그 힘의 변화와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이 획이 갖고 있는 중요한 의의는 내용에 있어서의 힘의 분배와 그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늑(勒)'이나 '노(弩)'에 있어서는 기필에서 수필까지 사이에 시간적으로 극단적인 불연속성이 없으나 이 획은 '跳躍(도약)'이 주체인 만큼 오히려 극단적인 리듬감이 수반된다. 이러한 리듬감이 주체가 되면 필모(筆毛)의 성질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기도 한다. 즉, 강모필(剛毛筆)은 특별히 의식을 하지 않아도 탄력성이 있으나 연모필(軟毛筆)은 기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적은 뛴다는 뜻인 데 구(銶)라고도 한다. 흔히 갈고리, 파임만 잘하면 잘 쓰는 글씨라 할 만큼 어렵기도 하고 중요한 획이다.
4까지는 세로획과 같고 5에서 약간 왼쪽으로 틀어서 약간 뉘어져 있는 붓을 세우며 6으로 나간다.
구법(구양순)은 서서히 획을 긋듯이 빼며, 안법(안진경)은 뛰어 나가듯이 뺀다.
五, 策(책; 채찍) :
이 획은 말에 채찍을 치는 타(打) 필세(筆勢)를 가진 것을 가르쳐 생긴 명칭이다. 보통, 말에 채찍을 댈 때에는 옆으로 하되 위를 향해서 치게 된다. 이 획은 얼마만큼 勒(늑)의 성질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으나 筆勢에서 보면 전혀 다른 것이다. 이 획이 勒과 전적으로 다른 것은 수필이다. 이 수필의 경묘함은 의미가 깊은 바 있어 많은 연습을 통해서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식 이름으로는 "오른쪽 삐침"이라고도 한다. 1, 2, 3은 가로 획과 통하는데 그 속도나 처리가 경쾌해야 하며, 4에서는 빠르게 뺀다.
六, 掠(약; 스쳐지나가다. 매질하다) :
이 획은 두발(머리카락)을 빗어 내리는 모양을 생각하게 하는데서 온 말이다. 긴 머리를 빗을 때, 먼저 빗을 머리 위에서 부터 넣고 머리털을 따라 끝부분까지 빗어 내리게 되는데 이 빗에 힘을 넣는 방법과 筆意(필의)가 흡사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획의 특징은 마치 빗을 머리에서 뗄 순간에는 엉킨 머리털을 세게 풀어주어야 할 때, 순간적인 힘이 빗에 가해지는 것처럼 수필에 있어서도 鋒에 가해지는 힘이 순간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보통 쓰이는 '약(掠)'이 모두 이러한 운필에 따라야 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 명칭이 생긴 어원을 깊이 생각할 때, 거기에 이러한 '봉(鋒)의 약동'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적어도 바른 운필이라고 말할 수 없겠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음 '啄(탁)'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며, 그 근본적인 차이는 수필에서의 봉을 다루는 방법 여하에 달려있다 하겠다.
"홱 재갈 약"자이다. 우리식 이름으로는 "긴 왼 삐침"이라 한다.
이 획은 커다란 획의 일부분 같은 모양인데, 보통 머리를 빗으로 빗는 것같이 하여 끝부분에서 힘을 주어 빗어 내리는 맛이라 한다.
5에서 약간의 전절을 가하여 6에서 서비가 되도록 한다.
七, 啄(탁; 쪼을 탁. 두드리다) : 이 획은 새가 모이를 쪼을 때의 주둥이를 닮은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닭이 쌀을 쪼을 때 보면 주둥이를 콕콕 하고 재빨리,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움직이는데 이때의 주둥이 움직임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掠'(약)에 비하면 붓은 훨씬 가볍고 예리하고 빠른 것이 된다. 이 획은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긋는 것이어서 '책(策)'과는 반대의 형상을 보이고 있으나 운필은 비슷한 면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 서 '책(策)'은 '늑(勒)'의 변형이라기보다는 '탁(啄)'과 한 그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는지 모른다. 이 획은 마치 '측(側)'처럼 가벼운 運筆(운필)이 특징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지나치게 경묘해지는 나머지 조잡해 질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경계가 필요하다.
짧은 왼 삐침이라 할 수 있으며 오른 삐침의 반대 모양이다. 새가 모이를 쪼는 동작에서이름이 붙어 졌다. 구법은 위쪽으로 약간 굽는 듯하며 안법은 수직이거나 아래로 굽는 듯 하게 쓴다.
八, 磔(책; 찟다. 가르다):
이 획의 고기를 자르는 기분으로 붓을 이끈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고기를 자를 때 처음에는 칼에 가볍게 힘을 넣었다가 점차 힘을 세게 더하면서 최후에 쭉 빼는 방법과 같은 뜻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운필에 있어서는 이 기분을 그대 로 붓에 나타내면 좋은 것이 된다. 이 기분은 관념상으로는 매우 쉬운 것 같으나 실제 운필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어서 일반적으로 책은 힘든 획의 하나로 치는 것이다. 이 획의 특징은 한 획 속에 가는 부분과 굵은 부분이 두드러지게 섞여있다는 것이며 또 하나의 특징은 한 문자의 최종 획으로 사용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책은 그 문자의 성패나 분위기를 본질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많다. 문자 속에서 이 획이 특히 눈에 잘 띤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찟을 책"자인데, 마치 잘 드는 카로 고기를 가르는 기분으로 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파책이라고 하는데 획에 가까운 것이 파이고 경사진 것을 책이라 한다. 파임은 글씨에서 액센트라 할 수 있다.
4에서 붓을 약간 틀어서 5로 지긋이 뺀다. 안법(안진경)은 4에서 탄력으로 뛰어나간다. 즉 4에서 붓을 세워 면을 바꾸어 중봉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서각과 전각, 그리고 사경

서각

서각은 말 그대로 서()와 각()이 합쳐서 이루어진 단어이다. 붓으로 글자를 쓰는 것은 필서(筆書)이고, 칼로 글자를 새기는 것은 각서(刻書)이다. 전통적으로 각서를 하는 경우는 각서자가 직접 글을 쓰지 않고 서가가 쓴 글을 새기기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칼로 글자를 새기기만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글자를 분명하게 드러내서 뜻의 전달에 왜곡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것을 생각하였다. 글자를 분명하도록 잘 새기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예술인 대접을 받지 못 하였다. 장인 취급을 받았다.

사찰이나 제실, 또는 정자 등에 걸려있는 편액이나 주렴, 기타 건물의 명칭을 새긴 현판, 제영(題詠), 기문(記文), 상량문(上梁文)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런 것은 그때의 명필가가 주로 글씨를 썼고, 각자공(刻子工)은 글자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새기는 역할만 하였다. 이것은 순수한 감상의 대상물이 아니고, 실용적인 용도로 새겼으므로, 새기는 사람은 기능적인 역할만 열심히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창의력을 쏟아부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새겨야 하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글자를 잘 새겼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처럼, 서각하는 사람을 장인으로 바라본 것은 한, , 일이 거의 같았다. 일본에서는 각자(刻字)라 하였고, 중국에서는 각서(刻書)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서각(書刻)으로 통일하여 부르고 있다.

앞에서 말하였듯이 서각을 예술의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이외에도 인쇄용 목판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각자공으로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생활 용구에 장식적 목적으로 글자를 새기는 일이 흔하였다. 목각 분야의 전문인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어 있었다.조선시대를 지배한 유교사상에서는 기()와 공()은 천민이 하는 일이다. 라는 사고 방식이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어서 오래 동안 예술의 영역의 진입하지 못 하였다. 그러나 각자공이 빚어내는 글자나 문양은 민족 정서 속에 녹아 있는 원초적인 전통미를 형성하였다.

70년 대로 접어들면서 이처럼 전통 공예를 하는 장인들을 발굴하여 한국미를 보존하려는 운동이 일어났다. 정부에서도 노력을 기울였다. 그때 갖자장 오옥진(吳玉鎭)이 무형 문화재 각자장 106호 지정되어 예술인의 대우를 받는 과정을 따라가 보자. 그럼으로 현대 한국 서각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오옥진은 원래 소목장이었다. 그러다가 활자의 복원과 문헌 복원에 관여하면서 글자를 새기는 전문가로 변신하였다. 장인에서 예술가로 변신한 것이다. 조선초기의 희귀본인 목판본의 복원도 있었고, 문서 복원도 있었다. 고지도의 복원(판각으로)도 있었다. 이때의 새김질은 창의성의 발휘보다는 사실에 충실하게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이것을 전통 서각이라고 말한다. 민족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일반인들도 서각에 관심을 가지고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1982년에는 전통 서각가들이 한국서각협회를 결성하였다.

사람들이 서각을 배우려 찾아오므로 사승 관계의 제자도 생겼다. 일부의 젊은 서각가들은 스승이 하는 전통 기법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섰다. 이들은 변화가 없는 동일한 방법을 반복하여 하는 일에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나섰던 것이다. 결과로서 현대서각이라는 이름을 붙인 새로운 유파가 태어났다. 이들의 핵심이 되는 주장은 자서자각(自書自刻)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쓴 글씨를 새기므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들이 모여서 199011월에 현댁서각연구회를 만들었다가 1991년에 현대서각협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리고 매년 전시회를 가졌다.

이 과정에 기존의 한국서각협회와 조금의 마찰이 있었으나 서예협회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원로 서각가가 자신을 예술인이라는 개념에 깊이 사로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장 쟁탈 따위의 이해가 걸린 문제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전통 서각은 글씨를 분명하고, 잘 살려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서예적인 작품을 만드는데 각자공은 보조적인 역할만 하였을 뿐이다.

1989년에 이현춘, 유장식, 안민관 3인이 서울의 백악 갤러리에서 현대서각 3인전을 열었다. 이들은 전통 서각의 틀을 과감히 탈피하고 입체 성향의 서체와 작품 양식을 추구하였다. 전통적인 서각 작품은 판액, 현판, 주렴이나, 기타 여러 가지 판자성의 벽걸이 개념이 바탕이었다. 이들은 작품을 입체적 개념으로 제작하였으므로 조각 형식을 취하였다. 이러한 작품을 당시의 관중은 놀라움으로 바라 보았다. 미술전문지에서도 관심을 표하였다.

일반적으로 현대 서각의 기점을 이 3인전에 두고 있다. 이들은 서각의 개념을 바꾸므로 서각이 나아갈 길을 활짝 넓혔다. 서각을 재해석하도록 하였다. 일본은 우리보다 서각을 예술로 받아들인 곳이 20년 쯤 앞선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평면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일본의 영향을 받고 있으므로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하나의 아류로 취급받고 있다. 한국은 작품의 참신성과 다양성으로 이들보다 앞서 나아가고 있다.

‘3인전의 작가 중의 한 사람이 이현춘은 현대서각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째는 문자를 새겼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는 예술일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이 쓴 글자를 내가 아무리 잘 새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 작품이 될 수 없다. 즉 과거에 서각의 글씨를 쓴 사람(書家)와 새긴 사람인 각()이 이원화 됨으로 자신의 작품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또 하나는 서각은 글자를 새기지만 글자를 그대로 부각시켜야 함으로 쓰는 행위와 동일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서각은 회화나 조각 또는 전각처럼 독립된 장르가 아니고 단지 서예일 뿐이다.”

이로서 평면적이던 서예가 각을 통하여 입체적이고, 조형적인 개념으로 탈바꿈 할 수 있었다. 현대서각을 지향하는 사람은 서각이라는 말 그대로 서가 각을 앞선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따라서 자서자각(自書自刻)을 내세웠던 것이다

전통 서각을 하는 사람은 각()이 우선이므로 좋은 글씨라면 굳이 내 글이냐, 남의 글이냐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현대서각에서 글의 조형미를 주장하는 것은 수용할 수 있지만 현대라는 이름을 내걸고 새김질이 아닌 이상한 방법을 동원하여 작품 제작을 하는 것까지 서각이라고 해야 하느냐, 며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전통파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었다.

이러한 갈등이 1990년 대 내내, 거의 10년이나 계속하였다. 그러나 1999년에는 하나의 단체로 통합하여 현대서각협회라고 명칭을 통일하였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목소리를 크게 낸 것은 아니었다.

오늘의 현대서각의 대표적인 작가로 떠오른 유장식을 통하여 현대서각이 걸어온 궤적을 되살려 보자.

1970년 대에 서울에서 오옥진이 문화재 보수와 목판을 재현하는 전통 서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가 하는 주된 작업은 현판이나 주렴 등의 문화재 보수이었다. 작업의 성격상 긴 칼을 사용하고 있었다. 대구에서는 정기호와 안광석이 전각가로 활동하면서 서각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각 기법을 서각 작업에 활용하고 있었다. 유장식은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눈으로 익히면서 스스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구에서 서각을 잘 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영남권에서는 이름이 쟁쟁한 서예가들이 자신의 글을 현판으로 제작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이 과정을 서예를 하는 사람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면 전통서각은 나름대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술계에서 시장이 형성되는 것은 예술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의 글을 받아서 글자를 새기는 전통 서예에 회의가 생기자 이성조를 찾아가서 정식으로 서예를 배웠다. 이로서 자서자각이라는 주장을 펼 수가 있었다. 3인전의 작품평을 김양동은 이렇게 하였다.

“3인의 작업은 문자가 지닌 고전주의를 진부하지 않는 형식으로 변형시키기면서 조형 공간 속에 놀라울 정도로 밀도있게 구축하여 놓고 있다.”(가나아트. 11-12월호. 1989)

1989년에 서협이 출범하자 서협의 공모전에 서각은 하나의 장르로서 당당하게 참여하게 된다. 이로서 서각은 서예의 한 장르로 정식으로 진입하였다.

1989년에 ‘3인전으로 이름을 얻은 이들은 대구에서 3미터 높이의 화강암으로 호국(護國)이라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 작품의 재료는 나무가 아닌 화강암이었다. 이로서 나무라는 재료에 관한 전통적인 관념에 변화를 가져왔다. 칼로서 새긴다는 방법론에서도 조각한다는 방식으로 변화가 올 수 밖에 없었다. 실내의 벽걸이 형태가 아닌 실외에 설치한다는 조각 형식을 취하였다.

더욱이 문자를 이용한 조형물의 형성을 두고 미술의 어느 장르로 분류해야 할 지를 두고 논란을 불러올 수 있었다. 정충락은 평 글에서 유장식의 조형 시각은 보다는 종합적인 조형 언어를 담고 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민족예술의 좋은 본보기로 예술 장르를 개척하였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유장식은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까지 문자라 함은 평면적인 2차원의 표현 영역으로만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문자는 원래 그림에서 가원되었고, 이러한 그림을 간소화하거나 합병시키는 방법으로 고대에 문자를 창조하였다. 오늘의 현대 문자각은 평면의 문자를 다시 상형화하여 입체화함으로 문자를 도시 공간 속으로 끌어냄으로 입체조형 영역인 환경조각으로 나타났다.”

서각이 건물의 부속물 내지 장식물인 것을 독립적인 조형물로 형상화하여 환경조각의 일익을 담당한다는 생각이었다.

서각은 소재로서 목재를 많이 사용함으로 내부이 주거 공간을 부드럽고 안락한 장르로 꾸미려는 현대인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서각의 존재 논리도 시장 친화성을 을 꼽고 있다. 전통 서각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유장식의 예에서 보았듯이 시장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서각이라는 이름을 걸고 예술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도, 단순히 예술이기 위한 것이 이유가 아니다. 시장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의 서예가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시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회환경이 변하고 있는데도 그 변화를 뒤따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현대서예의 경우는 변신을 하면서 시장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적인 정서를 올바르게 읽어내지 못함으로 엇길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이다

2000년에 있었던 제 18회 한국서각협회전에 대한 정충락의 평은 고무적이다.

“2000년을 맞이 하여 세종문화회관에서 펼친 새김질의 잔치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참가한 회원들의 수도 수려니와 작품이 지니고 있는 격조 높은 예술성에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해마다 환조 형식의 것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금년은 달랐다. 조각과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 자료도 나무를 비롯하여 쇠, 포맅코타, , 돌 등등 동원할 있는 것은 모두 등장하였다. 채색도 등장하였다

서각이 순수 예술로 정착하는데 10년에 끝났다.”(서예문화.10월호. 2000)

2004년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제 1회 대한민국 서각대전을 개최함으로 미술의 한 장르로 완전히 자리를 굳혔다.

전통 서각이 현대서각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면 서각가들이 예술가로서 표현하고 싶은 강력한 욕구가 있었다. 전통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려는 용기가 있었다. 원로 서각가들이 못마땅해하는 일면도 있었지만 이전투구 형의 싸움을 하지 않고, 비교적 단합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더 큰 사회적 배경으로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서예인들이 작품 시장을 가지지 못한 체 오로지 공모전만 바라보아야 했던 상황과는 달랐기 때문에 서각가들이 심각한 분열을 일으키지 않았다. 시장이 형성된 원인으로는 서각이 비교적 한국적 정서에도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서예인들도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서 과감히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전각

고래로부터 전각은 인장의 역할을 하면서 존재하고 있었다. 명나라 때 문팽(1498-1537)이 전각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림이나 서예작품에 전각을 사용함으로 예술작품의 한 부분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정희가 중국에서 금석학을 연구하여 많은 전각 작품을 남겼다. 그이 제자로 오규일을 꼽고 있으나 남아 있는 작품은 아주 드물다. 19세기 후반에 정학교, 유한익, 강진희, 오세창, 김태석에게 전해져서 전각의 명맥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전각은 단순히 장인이 글자를 새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전을 주로 사용함으로 문자학에 조예가 깊어야 한다.

서각과 전각은 새긴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전통 서각과 전통 전각에는 차이가 있다. 서각은 주로 나무에 새긴다. 나무는 재질이 부드러워서 칼의 묘미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자를 드러낸다. 전각은 주로 돌에 새기므로 재질이 깨어지기 쉽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내야 한다. 전각은 인주에 묻혀서 종이에 찍어야만이 글자가 바르게 나타난다. 아름다움을 나타내는데는 인주도 한몫을 한다 서각은 새기기만 하면 되지만 전각은 돌의 깨어짐(라고 한다.)도 관여한다.

과거에는 서예나 그림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대에는 독립된 장르가 되어 있다. 공모전에서도 독립된 장르로 참여하고 있다. 전통 전각으로는 크기가 작으므로 표현에도 제한을 받고 있고, 관람자의 시선을 끌기에도 역부족이라고 하여,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오세창은 김정희로부터 이어오는 전각의 맥을 현대로 이어주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또 한 사람은 김태식이다. 이들의 제자들이 한국 전각의 전통을 잇고 있다. 오세창에게 직접 전각을 배운 사람으로는 이기우가 있다. 이기우는 전각은 서예가 기초이므로 반드시 서예를 공부하고 나서 전각을 하라고 강조하였다. 김태식은 중국에서 전각을 배워서 국민당 정부시절에 명성을 얻었다. 국민당 정부의 옥새도 그의 작품이다. 귀국 후에는 제자를 양성함으로 그도 역시 한국 전각의 맥을 이어주었다. 전각은 전서가 기본이고, 해서와 예서도 사용하였다. 따라서 전각을 하려면 서예를 공부하는 것은 필수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독립된 전각가는 거의 없다. 오세창처럼 서예가로 알려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네모꼴의 좁은 면적에 글자를 넣어야 함으로 문자의 형태에 변화를 많이 주었다. 이로서 조형미를 나타내므로 예술의 장르로 진입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서예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최근에 와서야 서예의 한 장르로 독립하였다. 이기우는 오세창에게 전각을 배운 이외에도 이한복의 지도를 받았고,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함으로 현대적 포치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기우의 제자인 김양동, 황창배의 작품이 회화성을 띄는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태식의 제자로는 김재인, 고봉주, 정기호가 있다. 고봉주(1906-1991)는 일본에서도 전각 공부를 하였으므로 섬여하면서도 고아한 품격을 지니므로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알려져 있다.

정기호는 중국의 조지겸, 오창석, 제백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종의 옥새를 만들었다는 황소산에게도 배웠다고 한다. 도제 제도에 의한 장인의 수업을 받았다. 정기호의 제자에는 현대 전각가인 민홍규가 있다.

오창석 풍의 전각을 하는 전각가로서는 이한복-이기우-이택익 계열이 있다. 정문경은 제백석 풍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정문경의 제자에 정병례가 있다.

1974년에 김영기(화가)와 이가원(한문학자)이 주동이 되어서 한국전각협회를 만들었다. 회원은 21명이었으나 대부분이 서예가이었고, 전문 전각가는 거의 없었다. 1974년에 제 1회 전각협회전을 개최하여 1978년까지 5회를 열었다. 1978년에는 한국전각학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후의 활동은 아주 미미하였다. 1990년까지는 협회전도 열지 못하였다.

그러나 1987년에 미술대전의 공모전에 전각부를 신설하였다. 동아미술제에서도 한국의 전통미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처음ㅇ부터 전각부를 두었다.

1992년에는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한,,3국의 전각 교류전으로서 ‘92서울국제전각전을 열었다.

아직까지도 전각은 활기를 띄지 못하고 있고, 전문 전각인도 거의 없다. 교육도 전통적인 도제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정기호에게 사사하였다는 민홍규의 말을 들어보자. ‘처음에 그를 찾아갔을 때는 2년 동안은 온갖 허드레 일로 시간을 보냈다.’ 전각 교육의 실태를 보여주는 동시에 후진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전각은 문자를 이용한 디자인에 아주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서예의 미래에 하나의 돌파구를 열어주리라고 생각된다. 전통 전각의 틀에서 벗어나서 현대 전각을 추구한 전각가로는 정병례가 있다. 그는 인장포10년 동안 운영하면서 전각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정병례는 현대전각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전통 전각에서 벗어나서 변화를 시도하였다. 우선 사방 3cm 크기의 좁은 면적에서는 표현의 제한이 심하였다. 그 크기에서 벗어났다. 글자 이외의 온갖 조형을 새겨 넣었다. 빨간 인주색 대신에 오방색을 사용하였다. 오방색 이외로는 금니와 은니도 사용하여 회화화 하였다. 전통서각계에서는 곱지 않는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현대전각을 하는 사람은 모각을 뛰어 넘으므로 서예에 존속되지 않는 독자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서예가 미래에도 예술의 장르에서 존속하기 위해서는 전각의 디자인화를 통하여 시장을 확보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병례의 실험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사경

서예 분야에서 미술의 장르에 아직까지 정식(?)으로 진입하지 못한 것으로는 사경이 있다. 사경은 서각보다 훨씬 더 장인의 솜씨를 요구하고 있다.

사경은 불경을 붓으로 필사하는 작업이다. 기본적으로는 서예의 한 영역이다. 신라 시대의 백지묵서(국보196)도 사경이므로 그 역사는 아주 오래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사경원, 금자원, 은자원을 두고 대량으로 제작하였다. 사경은 불교 경전을 복사하는 것이므로 임하는 자세에서 서예적 붓글씨와는 차이가 있다. 정신적으로 긴장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규범성도 철저히 지켜야 함으로 사경은 해서을 선호한다. 해서체는 기필과 행필, 수필 등에 흐름이 일관되게 순일한 상태이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강조하는 서예가들은 사경을 소홀하게 다루었다. 사경은 신앙에 의한 자기정화를 목적으로 하는 수가 많으므로 수행 방법의 하나로서 정신성을 고양시키는 목적도 있다. 그러나 사경도 나름대로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사경은 정신성의 발휘가 중요함으로 감성적인 표현은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사경의 미학은 물질문명의 발달로 고갈되어가는 인간성을 되살리고, 인간 본연의 자세로 되돌아보게 하는 역할도 한다. 그럼으로 오늘날에 가치를 더해가는 것이 사경이다. 사경은 최근 10여 년 사이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사경은 서예의 한 영역으로 전통 필법의 기법 위에 존재한다. 서사 재료와 도구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아서 사용한다. 이런 면에서 서예보다 오히려 더 자유로울 수도 있다. 경필 사경과 컴퓨터 사경이 나타남으로 서예가 보이는 경직성을 탈피하고 있다. 현대사경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김경호를 꼽을 수 있다. 고려 사경을 모본으로 스스로 익힌 후에 현대사경을 쓰고 있다. 2000년에 결러리 동국에서 외길 김경호 사경전을 열었다. 그는 사경서체를 연구함으로 사경을 한국 서예의 한 분야로 수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사경은 서예와 회화, 그리고 공예를 활용하는 종합 예술적 성격을 지녔지만 기본은 어디까지나 서예이다. 먹물 대신에 금니와 은니도 많이 사용함으로 서예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사경의 표지나 변상도까지도 그리므로 회화의 영역으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김경호는 제자를 양성함으로 사경 인구가 아주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20005, 20063, 그리고 20076월에 사경 개인전을 열므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동시에 일반인에게 사경을 알리고, 보급하는데 큰 일을 수행하고 있다. ‘ 월간 서예문화지의 공모전에서는 사경을 하나의 장르로 신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로서 사경은 점차 서예의 한 분야로 수용되어 감으로 더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사경이 오늘날에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가 사경수행을 통하여 심리치료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로서 서예의 영역을 확대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사경의 개인전도 요즘은 자주 열리고 있다. 앞으로는 미술대전에서도 사경이 한 부분으로 참여할 날이 올 것이다 2010년에는 사경 전시회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므로 서예 근, 현대사에 또 하나의 흐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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