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漢詩 모음


감추회문 (感秋回文) /李知深

散暑知秋早(산서지추조)-더위도 사라지고 가을이 되니

悠悠稍感傷(유유초감상)-이시름 저시름 마음 상하네

亂松靑蓋倒(난송청개도)-푸른 그늘 거꾸러져 일산 펴든듯

流水碧羅長(유수벽라장)-물소리 조랑조랑 흘러 가노니

岸遠凝煙皓(안원응연호)-연기는 멀리멀리 희게 어리고

樓高散吹凉(루고산취량)-다락은 높고 높아 서늘하구나

半天明月好(반천명월호)-반넘어 기우른 밝은 저달이

幽室照輝光(유실조휘광)-소리 없이 방안에 비치어 오네

 

영회(詠懷) / 鄭澈

三千里外美人在(삼천리외미인재)-삼천리나 먼 밖에 그리운 님 계시온데

十二樓中秋月明(십이누중추월명)-열 두 누각엔 가을 달이 밝도다.

安得此身化爲鶴(안득차신화위학)-어찌 이 몸 화하여 학으로 될 수 있다면

統軍亭下一悲鳴(통군정하일비명)-님계신 통군정 아래 한번 슬피울어나 볼것을.

 

도의사 (衣詞) / 偰遜

皎皎天上月(교교천상월)-희고 흰 하늘에 떠 있는 저 달이

照此秋夜長(조차추야장)-이 가을 긴긴 밤을 비춰주니라.

悲風西北來(비풍서북래)-슬픈 바람은 서북으로부터 불어오고

蟋蟀鳴我床(실솔명아상)-귀뚜라미는 나의 평상 틈에서 우니라.

君子遠行役(군자원행역)-임은 먼 곳에 가서 나라를 지키고

賤妾守空房(천첩수공방)-아내는 쓸쓸히 빈 방을 지키니라.

空房不足恨(공방불족한)-빈 방을 지키는 것이 족히 한이 되는 것은 아니나

感子寒無裳(감자한무상)-임이추운 곳에서 옷이 없어 떠는 것이 걱정이 되니라.

 

강릉경포대 (江陵鏡浦臺) / 安軸

雨晴秋氣滿江城(우청추기만강성)-비 개니 가을 기운 강언덕에 가득하고

來泛扁舟放野情(내범편주방야정)-다가오는 조각배는 한껏 소박한 정취로다.

地入壺中塵不倒(지입호중진불도)-땅은 병속에 들어 티끌도 이르지 못하고

天遊鏡裏畵難成(천유경리화난성)-하늘은 경포 속에 노니 그리기 어렵도다.

烟波白鷗時時過(연파백구시시과)-아지랭이 물결에 흰 갈매기만 때때로 오가고

沙路靑驢緩緩行(사로청려완완행)-모랫길엔 나귀가 느릿느릿 가는구나

爲報長年休疾棹(위보장연휴질도)-늙은 사공 보고 힘든 삿대길 쉬게 하고

待看孤月夜深明(대간고월야심명)-홀로 뜬 달 바라보니 밤 더욱 밝구료.

 

홍경사 (弘慶寺) / 白光勳

秋草前朝寺(추초전조사)-가을 풀이 우거진 고려 시대의 남은 절에

殘碑學士文(잔비학사문)-낡은비석에는 당시의 이름난 선비를 글귀만 남았도다.

千年有流水(천년유류수)-천 년 세월이 흐르는 물같음이 있으니

落日見歸雲(낙일견귀운)-떨어지는 저녁 해에 떠 가는 구름만 바라보고 있노라.

 

한아서부경(寒鴉栖復驚) / 金時習

楓葉冷吳江(풍엽냉오강)-단풍잎은 오강에 싸늘도 한데

蕭蕭半山雨(소소반산우)-우수수 반산엔 비가 내리네.

寒鴉栖不定(한아서부정)-갈가마귀 보금자리 정하지 못해

低回弄社塢(저회롱사오)-낮게 돌며 사당 언덕 서성거리네.

渺渺黃雲城(묘묘황운성)-아스라히 먼지 구름 자욱한 성에

依依紅葉村(의의홍엽촌)-안타까이 붉은 잎 물들은 마을

相思憶遠人(상사억원인)-먼데 있는 그대가 그리웁구나

聽爾添鎖魂(청이첨쇄혼)-네 소리 듣자니 애가 녹는다.

 

화학(畵鶴) / 李達

獨鶴望遙空(독학망요공)-한마리 학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夜寒拳一足(야한권일족)-밤은 찬데 한 다리를 들고 서있네.

西風苦竹叢(서풍고죽총)-참대 숲에 서풍이 불어오더니

滿身秋露滴(만신추로적)-온 몸에 가을 이슬 뚝뚝 듣누나.

 

산중 (山中) / 李珥

採藥忽迷路(채약홀미로)-약초를 캐다가 문득 길을 잃었는데

千峯秋葉裏(천봉추엽리)-온 산이 단풍으로 물들었네.

山僧汲水歸(산승급수귀)-산승이 물을 길어 돌아가고

林末茶烟起(임말차연기)-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피어나네.

 

차추흥 (次秋興) / 趙永錫

幽居寥落對秋山(유거요락대추산)-쓸쓸히 숨어사는 형편에 가을산 대하니

濃淡雲霞戶牖間(농담운하호유간)-창틈 새로 보인 구름과 놀 농담이 뒤섞였다

五世祖孫傳宅里(오세조손전택리)-오대째 살아온 이마을 저택

一溪兄弟共門關(일계형제공문관)-시내를 사이한 형제간들 대문을 함께 했다

老來轉覺書中味(노래전각서중미)-늙으막에 바뀐 생각 책 속 진리 음미하고

暑退方蘇病後顔(서퇴방소병후안)-더위 가시자 병마에서 되살아났네

晏起早眠吾事辨(안기조면오사변)-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내 형편 생각하고

較量霜曉趁鵷班(교량상효진원반)-서리친 새벽 조회에 치닫던 때와 비교해보네.

 

소상야우(瀟湘夜雨) / 李齊賢

楓葉蘆花水國秋(풍엽노화수국추)-단풍잎과 갈대꽃 수국의 가을인데

一江風雨灑扁舟(일강풍우쇄편주)-강바람이 비를 몰아 작은 배에 뿌리네

驚回楚客三更夢(경회초객삼경몽)-놀라 돌아오니 고달픈 나그네의 한밤중 꿈을

分與湘妃萬古愁(분여상비만고수)-이황 여영의 만고의 시름으로 나누어주네.

 

소상야우(瀟湘夜雨) / 陳澕

江村入夜秋陰重(강촌입야추음중)-강촌에 밤이 들어 가을 그늘 무거운데

小店漁燈光欲凍(소점어등광욕동)-조그만 주막에 고깃불 얼겠다.

森森雨脚跨平湖(삼삼우각과평호)-빗발이 주룩주룩 편편 호수 걸렸는데

萬點波濤欲飛送(만점파도욕비송)-만 방울 파도는 날아갈 듯 하는구나.

竹枝蕭瑟碎明珠(죽지소슬쇄명주)-바삭바삭 댓가지 밝은 구슬 부수듯하고

荷葉翩翩走環汞(하엽편편주환홍)-연잎사귀 푸득푸득 둥근 수은 굴린다.

孤舟徹曉掩蓬窓(고주철효엄봉창)-밤새도록 외론 배 봉창을 닫아놓아

緊風吹斷天涯夢(긴풍취단천애몽)-바람 부는 하늘가 꿈을 끊어 버린다.

 

규원 (閨怨) / 許蘭雪軒

月棲秋盡玉屛空(월서추진옥병공)-달 밝은 누각 가을은 가고 방은 텅 비었네

霜打廬洲下暮鴻(상타여주하모홍)-서리 내린 갈섬에 기러기 내린다.

瑤琴一彈人不見(요금일탄인부견)-거문고 타고 있어도 임은 보이지 않고

藕花零落野塘中(우화영락야당중)-연꽃은 연못으로 한 잎 두 잎 떨어지네.

 

추강만도(秋江晩渡) / 伯均 명나라 시인

落日歸棹緩(낙일귀도완)-지는 해에 느릿느릿 돌아가는 배

瘡江秋思加(창강추사가)-푸른 강에는 가을빛 더욱 깊어

雙鱗上荷葉(쌍린상하엽)-짝지은 물고기 연잎 위로 뛰고

一雁下蘋花(일안하빈화)-마름꽃 마름밑으로 날아드는 외기러기

 

추석루거(秋夕樓居) / 吳融 당 시인

月裏靑山淡如畵(월이청산담여화)-달빛 속의 푸른 산 그림과 같고

露中黃葉颯然秋(노중황엽삽연추)-이슬 맞은 단풍잎 삽연한 가을

危欄倚遍都無寐(위란의편도무매)-높은 난간에 의지해 잠 못 이룸은

祗恐星河墮入樓(지공성하타입루)-은하수가 다락 위로 떨어질까바

 

추야산거(秋夜山居) / 施肩吾 당 시인

幽居正想飡霞客(유거정상손하객)-고요한 곳에 머물러 있으니 찬하객이 된 듯

夜久月寒珠露滴(야구월한주로적)-깊은 밤 싸늘한 달빛 구슬이슬 방울지네

千年獨鶴兩三聲(천년독학양삼성)-천년 외로운 학이 두세 번 울면서

飛下巖前一枝栢(비하암전일지백)-바위앞 잣나무 가지에 날아 앉는다

 

추야우음차고운(秋夜偶吟次古韻) / 尹善道

秋夜疏篁動曉風(추야소황동효풍)-가을 밤 새벽 바람에 성긴 대 흔들리고

一輪明月掛遙空(일륜명월괘요공)-둥그런 밝은 달이 아득히 하늘에 걸렸는데

幽人無限滄浪趣(유인무한창랑취)-유인은 물결같이 사는 정취 흥겨워서

只在瑤琴數曲中(지재요금수곡중)-요금을 끌어 당겨 당겨 몇 곡조 퉁겨본다

 

가을() / 陳溫 고려 시인

釦砌微微著痰霜(구체미미저담상)-섬돌위에 쌀쌀한 무서리 내려

裌衣新護玉膚凉(겹의신호옥부량)-겹옷을 새로 지어 차려 입었네

王孫不解悲秋賦(왕손불해비추부)-가을이 처량함을 왕손은 모르는지

只喜深閨夜漸長(지희심규야점장)-색씨방에 밤이 길어 좋다구 하네

 

추일(秋日) / 權遇 조선시대 시인

竹分翠影侵書榻(죽분취영침서탑)-대그림자 시원하게 서탑에 들고

菊送淸香滿客衣(국송청향만객의)-국화는 향기로이 옷속에 차네

落葉亦能生氣勢(낙엽역능생기세)-뜰 앞에 지는 잎 무어 좋은지

一庭風雨自飛飛(일정풍우자비비)-쓸쓸한 비바람에 펄렁대누나

 

국화불개창연유작(菊花不開悵然有作) / 徐居正 조선시대 시인

佳菊今年皆較遲(가국금년개교지)-국화는 무슨일로 더디피련고

一秋淸興謾東籬(일추청흥만동리)-올가을 좋은흥도 늦어만 가네

西風大是無情思(서풍대시무정사)-서풍은 왜이리도 무정하온지

不入黃花入鬢絲(불입황화입빈사)-귀밑에 서릿발을 재촉하느니

 

추일영회(秋日詠懷) / 정회원(鄭恢遠) 조선시대 시인

光陰忽忽歲將遒(광음홀홀세장주)-세월은 어느듯 해가 거의 다하고

萬里羈愁獨依樓(만리기수독의루)-만리밖 나그네 애를 끓이오

鏡裏紅顔非昔日(경이홍안비석일)-거울속 비친얼골 옛날 아니고

鬢邊華髮又今秋(빈변화발우금추)-살쩍머리 센터럭 벌서늙었네

寒蟬浥露求高樹(한선읍로구고수)-가을매미 찬이슬에 얼어 울고요

旅雁隨風落遠洲(여안수풍락원주)-든기러기 바람따라 물에 앉으니

怊悵幾年歸未得(초창기년귀미득)-그린고향 가지못함 몇해이런가

故園松桂夢中幽(고원송계몽중유)-꿈속에 보던동산 그윽하구나

 

추야작(秋夜作) / 김연광(金鍊光) 조선시대 시인

小窓殘月夢初醒(소창잔월몽초성)-고이든잠 깨어보니 새벽달 창에 들고

一枕愁吟柰有情(일침수음내유정)-쓸쓸한 이내심사 벼개머리 ?Q어지네

却悔從前輕種樹(각회종전경종수)-이럴줄 모르고서 나무심어 놓았는가

滿庭搖落作秋聲(만정요락작추성)-우수수 지는소리 애 더욱 끓이느니

 

걸국화(乞菊花) / 해원군 이건(海原君 李健) 조선시대 시인

淸秋佳節近重陽(청추가절근중양)-가을이라 중양절 가까워지니

正是陶家醉興長(정시도가취흥장)-따는 바루 새술추;게 마실적일세

相見傲霜花滿砌(상견오상화만체)-섬돌위 국화곱게 피었으려니

可能分與一枝香(가능분여일지향)-한가지 좋은향기 나눠주시오

 

추사(秋思) / 김효일 (金孝一) 조선시대 시인

滿庭梧葉散西風(만정오엽산서풍)-오동잎 바람따라 우수수 지는소리

孤夢初回燭淚紅(고몽초회촉루홍)-겨우든잠 깨고보니 ?Y불홀로 눈물지네

窓外候蟲秋思苦(창외후충추사고)-창밖에 섬돌밑에 귀두라미 슬피울어

泮人啼到五更終(반인제도오경종)-시름하는 사람함께 잠못들고 새는구나

 

추야(秋夜) / 유계(兪棨) 조선시대 시인

秋天寥落夜凉多(추천요락야량다)-가을하늘 텡비우고 가을밤 쌀쌀한데

月色雲容澹似波(월색운용담사파)-달빛에 물이들은 구름마저 조촐쿠나

莫遣西風催玉露(막견서풍최옥로)-이제로 바람높아 찬이슬 맺게되면

恐殘窓外小塘荷(공잔창외소당하)-곱게핀 연꽃송이 시들을가 저어하네

 

추야우중 (秋夜雨中) / 崔致遠

秋風惟苦吟(추풍유고음)-가을 바람에 오직 괴로이 읊나니

擧世少知音(거세소지음)-온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적구나.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깊은밤 창밖에는 비가 내리는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등불 앞 외로운 마음 만리를 달리네.

 

추경(秋景) / 최석항 (崔錫恒) 조선시대 시인

秋山樵路轉(추산초로전)-숲속으로 구비도는 가을산길이

去去唯淸風(거거유청풍)-가도가도 푸른안개 그것뿐이네

夕鳥空林下(석조공림하)-잘새는 빈수?V로 날아내리고

紅葉落兩三(홍엽락양삼)-고은단풍 두셋잎 떨어지누나

 

추야(秋夜) / 윤치 (尹治) 조선시대 시인

老樹荒岡響遠聞(노수황강향원문)-바람은 숲을 울려 멀리로서 들려오고

深夜霜意亂黃雲(심야상의난황운)-밤들어 하늘차니 서리아마 내리겠네

汀洲客鴈如相語(정주객안여상어)-물가에 뜬기러기 떼를지어 소리할제

月在西峰缺半分(월재서봉결반분)-서산머리 지는달 반만걸려 떠있구나

 

추야(秋夜) / 朴英 조선시대 시인

西風吹動碧梧枝(서풍취동벽오지)-서풍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밤

落葉侵窓夢覺時(낙엽침창몽각시)-오동잎 지는소리 잠이깨였네

明月滿庭人寂寂(명월만정인적적)-밝은달 뜰에가득 고요하온데

一簾秋思候蟲知(일염추사후충지)-슬피우는 귀뚜라미 가을알리오

 

산행(山行) / 석지영(石之嶸) 조선시대 시인

斜日不逢人(사일불봉인)-해지도록 만나는이 한사람없고

徹雲遙寺磬(철운요사경)-구름밖에 풍경소리 들려만오네

山寒秋己盡(산한추기진)-날씨차고 가을이미 저물어가니

黃葉覆樵徑(황엽복초경)-단풍들어 지는잎 산길을덮네

 

추야월우명(秋夜月又明) / 사도세자 (思悼世子) 조선 정조의 아버지

繡簾捲盡畵樓頭(수렴권진화루두)-그림같은 다락머리 주렴걷고 앉았으니

坐看金風木葉流(좌간금풍목엽류)-가을바람 불어오며 지는잎 물에떴네

萬星碧宵如海日(만성벽소여해일)-별을 뿌린 하늘위에 뚜렸이 솟은달은

年年高著不曾休(년년고저불증휴)-해마다 높이걸어 떨어질줄 모르네

 

추일전원(秋日田園) / 李書九) 조선시대 시인

柴門新拓數弓荒(시문신척수궁황)-사립문밖 묵밭새로 일어냈으니

眞是終南舊草堂(진시종남구초당)-종남산 기슭이 옛터전일세

藜杖閒聽田水響(려장한청전수향)-지팡이 꽂아놓고 물고를보고

荀輿時過稻花香(순여시과도화향)-대바구니 손에들고 들러나가네

魚梁夜火歸寒雨(어량야화귀한우)-고깃불 찬비속을 젖어돌오고

蟹窟秋煙拾早霜(해굴추연습조상)-계연기 된서리에 얼어서렸오

始信鄕園風味好(시신향원풍미호)-이제겨우 시골재미 알게

百年吾欲老耕桑(백년오욕노경상)-앞으론 농사지어 늙으려하오

 

창헌추일(蒼軒秋日) / 범경문 (范慶文) 조선시대 시인

歸雲映夕塘(귀운영석당)-가는구름 못물위에 떠러저뜨고

落照飜秋木(락조번추목)-저녁노을 나뭇가지 걸려붉었네

開戶對靑山(개호대청산)-창을여니 푸른산 우뚝서있어

悠然太古色(유연태고색)-언제든지 옛모습 그대로일세

 

추회(秋懷) / 이채 (李采) 조선시대 시인

秋來病起減腰圍(추래병기감요위)-병든모 가을들어 몸집마저 여위는데

倦枕看山繞翠微(권침간산요취미)-벼개를 돋우비고 산만바라 누었구나

黃葉村深人不到(황엽촌심인불도)-단풍잎 짙은마을 오는사람 하나없고

雀羅終日掩柴扉(작라종일엄시비)-새그늘 종일토록 사립위에 쳐놓았네

 

추침(秋砧) 가을 다디미 소리 / 정학연 (丁學淵) 조선시대 시인

百濟城高一雁飛(백제성고일안비)-백제성 하늘 높이 외기러기 나르는데

憶郞秋夜減腰圍(억랑추야감요위)-가을밤 임그리워 가는허리 더야위웠네

西關北塞無征戌(서관북새무정술)-서관북새 수자리 가는 사람이 없고

只是忠州估客衣(지시충주고객의)-아마 충주 장사치 옷 싹다듬이 소리구나

 

추일산중즉사(秋日山中卽事) / 왕석보 (王錫輔) 조선시대 시인

高林策策響西風(고림책책향서풍)-나무 숲 우수수 바람앞에 울부짖고

霜果團團霜葉紅(상과단단상엽홍)-과실모두 서리멎어 잎새함께 붉엇구나

時有隣鷄來啄栗(시유인계래탁율)-이웃 달가 모아들어 널은 서속 쪼아먹되

主人看屋臥庭中(주인간옥와정중)-주인은 모르고서 뜰위에서 잠만자네

 

추흥(秋興) / 강난향 (姜蘭馨) 조선시대 시인

獨抱琴書久掩扉(독포금서구엄비)-()를뜯고 책을 보며 조용하게 살아가니

迂儒心事世相違(우유심사세상위)-시꺼러운 세상형편 마음서로 맞질않네

伊來病骨知寒早(이래병골지한조)-병들고 약한몸이 추위일직 알게되어

八月中旬己授衣(팔월중순기수의)-팔월도 반못가서 철옷구며 입었으니

 

추만출혜화문(秋晩出惠化門) / 정대식 (丁大寔) 조선시대 시인

小靑門外市塵空(소청문외시진공)-소청문밖 내달으니 먼지잠자고

驢背斜陽艶艶紅(려배사양염염홍)-나귀등에 지는햇볕 곱게비치네

野菊溪楓霜意近(야국계풍상의근)-단풍붉고 국화곱게 피어있어서

十分秋色畵圖中(십분추색화도중)-가을풍경 그림인듯 황홀하구나

 

추침(秋砧) 가을 다디미 소리

手製郞衣草色新(수제랑의초색신)-풀빛파릇 좋을적에 봄노리 하신다고

香塵渝了五陵春(향진투료오릉춘)-차려입고 가신그옷 곤때묻어 더러울걸

春閨一別無消息(춘규일별무소식)-한번훌적 떠나신님 소식마저 아득한데

謾作秋燈不寐人(만작추등불매인)-가을밤 새워가며 옷다듬어 무얼하나

 

추야유감(秋夜有感) / 작자미상 조선시대

陽江館裡西風起(양강관리서풍기)-나그네마음 처량할제 가을바람 불어와서

後山欲醉前江淸(후산욕취전강청)-산취한듯 붉었는데 강물만은 맑았구나

紗窓月白百蟲咽(사창월백백충인)-사창에 달이밝고 귀뚜리도 슬피울제

孤枕衾寒夢不成(고침금한몽불성)-외로운 벼겟머리 찬 이불 꿈도 못이루네

 

창암정(蒼岩亭) /장성기생 추향(長城妓生 秋香) 조선시대

移棹蒼江口(이도창강구)-노를저어 강어구에 배를 대이니

驚人宿鳥飜(경인숙조번)-자든새 놀라깨어 펄펄나르네

山紅秋有迹(산홍추유적)-가을은 나뭇잎에 곱게물들고

沙白月無痕(사백월무흔)-밝은달 모래밭에 떠러져희네

 

추사(秋思) / 안동권씨 여종 취죽(安東權氏 家婢 翠竹) 조선시대

洞天如水月蒼蒼(동천여수월창창)-파란달빛 차거웁게 쌀쌀하온데

樹葉簫簫夜有霜(수엽소소야유상)-나뭇잎 지는소리 처량하구나

十二擴簾人獨宿(십이상렴인독숙)-비단주렴 드린속에 혼자누으니

玉屛還羡繡鴛鴦(옥병환이수원앙)-원앙침 함께하는 임이그리워

(가을) / 작자미상

颱風襲萬里(태풍습만리)-태풍이 불어와 사방을 덥치고,

暴雨日增流(폭우일증류)-사나운 비는 날마다 더욱더 흘러 내리네.

野毁人心愁(야훼인심수)-들녘은 무너져 사람의 마음 근심스러운데,

唯蟋亂醒秋(유실난성추)-오직 귀뚜라미 시끄러워 가을이 옴을 알았네.

 

/ 원천석(元天錫)

殘暑逼軒楹(잔서핍헌영)-남은 더위가 난간을 핍박하건만

滿野秋光天降祥(만야추광천강상)-들에 가득한 가을빛이 상서로운 조짐인지

雨過餘熱遞新涼(우과여열체신량)-비가 지나자 남은 더위가 서늘하게 바뀌었네

露華初重夜生涼(로화초중야생량)-이슬 꽃이 막 내려 밤이면 서늘해지네

天衢漂渺氣凝祥(천구표묘기응상)-아득한 하늘 거리에 상서로운 기운이 어리어

河漢無波夜色涼(하한무파야색량)-은하수는 물결 없고 밤 빛은 서늘하네

蟬老燕歸風颯颯(선로연귀풍삽삽)-매미는 늙고 제비는 돌아가 바람도 쓸쓸한데

虫弔藜床序已秋(충조려상서이추)-명아주 평상에 벌레 우니 벌써 가을인가

聲緊孤梧金井畔(성긴고오금정반)-오동나무 우물가에 벌레소리 들리자

中秋氣候稍淸寒(중추기후초청한)-한가위 날씨가 차츰 맑고 서늘해져

月從山頂湧銀槃(월종산정용은반)-달은 산꼭대기에서 은 쟁반으로 솟아오르네

九月九日天光淸(구월구일천광청)-구월 구일에 하늘빛이 맑아

菊澗楓林又一秋(국간풍임우일추)-국화꽃 단풍나무가 또다시 가을일세

   

★가을 산행(山行)  /  두목(杜牧) 당 말기 시인 (803-853)

遠上寒山石俓斜(원상한산석경사)-멀리 사람 없는 산에 오르니 돌길이 비스듬히 끝이 없구나

白雲深處有人家(백운심처유인가)-흰 구름이 피어오르는 곳에 인가가 있어

停車坐愛楓林晩(정차좌애풍림만)-수례를 멈추고 석양에 비치는 단풍 숲을 보니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서리 맞은 단풍잎이 한창때 봄꽃보다 더욱 붉고나

 

★산행(山行)  /  석지영(石之嶸) 조선시대 시인

斜日不逢人(사일불봉인)-해지도록 만나는 이 한사람 없고

徹雲遙寺磬(철운요사경)-구름밖에 풍경소리 들려만오네

山寒秋己盡(산한추기진)-날씨차고 가을이미 저물어가니

黃葉覆樵徑(황엽복초경)-단풍들어 지는 잎 산길을 덮네

  

★추흥 秋興 가을의 흥취  /  杜甫

玉露凋傷楓樹林(옥로조상풍수림)-玉같은 이슬에 숲속 단풍 나뭇잎도 떨어지고

巫山巫峽氣蕭森(무산무협기소삼)-어지러운 산과 골짝기의 기운이 쓸쓸함 가득하구나

江間波浪兼天湧(강간파랑겸천용)-江의 파도와 물결은 하늘로 성하게 일고

塞上風雲接地陰(새상풍운접지음)-城위 바람과 구름은 땅 그늘에 이르니 어두어지네

叢菊兩開他日淚(총국양개타일루)-두송이 국화꽃 피니 지난날의 눈물이요

孤舟一繫故園心(고주일계고원심)-외로운 배 매였으니 고향생각이 절로 난다

寒衣處處催刀尺(한의처처최도척)-겨울옷 준비로 곳곳에 마름질하는 손길 바쁜데

白帝城高急暮砧(백제성고금모침)-白帝城 저 높이 저녁 다듬이 소리 급하다

 

★청추선 (聽秋蟬 가을매미 소리)  /  강정일당 (姜靜一堂)

萬木迎秋氣(만목영추기)-어느덧 나무마다 가을빛인데

蟬聲亂夕陽(선성난석양)-석양에 어지러운 매미 소리들

沈吟感物性(침음감물성)-제철이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林下獨彷徨(임하독방황)-쓸쓸한 숲 속을 혼자 헤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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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栢舟 잣나무 배 <황진이>

汎彼中流小柏舟 저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잣나무 배

幾年閑繫碧波頭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

後人若問誰先渡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넜느냐 묻는다면

文武兼全萬戶侯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

 

詠半月 반달을 노래함 <황진이>

誰斷崑山玉 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 내어

裁成織女梳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牽牛離別後 견우와 이별한 후에

愁擲壁空虛 슬픔에 겨워 벽공에 던졌다오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황진이>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霜中野菊黃(설중야국황)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랭)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別金慶元 (별김경원) 김경원과 헤어지며 <황진이>

三世金緣成燕尾 (삼세금연성연미) 삼세의 굳은 인연 좋은 짝이니

此中生死兩心知 (차중생사양심지) 이 중에서 생사는 두 마음만 알리로다

楊州芳約吾無負 (양주방약오무부) 양주의 꽃다운 언약 내 아니 저버렸는데

恐子還如杜牧之(공자환여두목지)도리어그대가두목(杜牧)처럼한량이라두려울 뿐.

 

朴淵瀑布 (박연폭포) <황진이>

一派長川噴壑壟 (일파장천분학롱) 한 줄기 긴 물줄기가 바위에서 뿜어나와

龍湫百仞水叢叢 (용추백인수총총) 폭포수 백 길 넘어 물소리 우렁차다

飛泉倒瀉疑銀漢 (비천도사의은한) 나는 듯 거꾸로 솟아 은하수 같고

怒瀑橫垂宛白虹 (노폭횡수완백홍) 성난 폭포 가로 드리우니 흰무지개 완연하다

雹亂霆馳彌洞府 (박난정치미동부) 어지러운 물방울이 골짜기에 가득하니

珠聳玉碎徹晴空 (주용옥쇄철청공) 구슬 방아에 부서진 옥 허공에 치솟는다

遊人莫道廬山勝 (유인막도려산승) 나그네여, 여산을 말하지 말라

須識天磨冠海東 (수식천마관해동) 천마산야말로 해동에서 으뜸인 것을.

 

滿月臺懷古 (만월대회고) 만월대를 생각하며 <황진이>

古寺蕭然傍御溝 (고사소연방어구) 옛 절은 쓸쓸히 어구 옆에 있고

夕陽喬木使人愁 (석양교목사인수) 저녁 해가 교목에 비치어 서럽구나

煙霞冷落殘僧夢(연하냉락잔승몽)연기같은놀(태평)은스러지고중의꿈만남았는데

歲月嶸破塔頭 (세월쟁영파탑두) 세월만 첩첩이 깨진 탑머리에 어렸다.

黃鳳羽歸飛鳥雀 (황봉우귀비조작) 황봉은 어디가고 참새만 날아들고

杜鵑花發牧羊牛 (두견화발목양우) 두견화 핀 성터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네.

神松憶得繁華日 (신송억득번화일) 송악의 번화롭던 날을 생각하니

豈意如今春似秋 (기의여금춘사추) 어찌 봄이 온들 가을 같을 줄 알았으랴

 

松 都 (송 도) 송도를 노래함 <황진이>

雪中前朝色 (설중전조색) 눈 가운데 옛 고려의 빛 떠돌고

寒鐘故國聲 (한종고국성) 차디찬 종소리는 옛 나라의 소리 같네

南樓愁獨立 (남루수독립) 남루에 올라 수심 겨워 홀로 섰노라니

殘廓暮烟香 (잔곽모연향) 남은 성터에 저녁연기 피어 오르네

 

相思夢 (상사몽) <황진이>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訪歡時歡訪? (농방환시환방농)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로중봉)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秋曉  (가을새벽)  황진이(黃眞伊)


日入投孤店(일입투고점)-저물어 외로운 여관에 드니

山深不掩扉(산심불엄비)-산 깊어 사립도 닫지를 않네.

鷄鳴問前路(계명문전로)-닭 우는 새벽에 앞길 묻는데

黃葉向人飛(황엽향인비)-누런 잎만 날 향해 날려오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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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家詩人 懋官 炯庵 李德懋(17411793) 全州 靑莊館全書

 

端陽日集觀軒(단양일집관헌) 단오날 집관헌에서-李德懋

的的榴花燒綠枝(적적류화소록지) 이글이글 석류꽃 가지를 살라

緗簾透影午暉移(상렴투영오휘이) 비단 발 비춘 그늘 낮 햇빛 옮겨

篆烟欲歇茶鳴沸(전연욕헐다명비) 꼬불 연기 마르려 차 끓어 울려

政是幽人讀畵時(정시유인독화시) 이거야 그윽한 이 그림 읽을 때

 

壽翁 拙翁 崔瀣 최해 (1287~1340) 慶州 拙稿千百 東人之文

 

風荷(풍하) 바람속의 연꽃-崔瀣

淸晨纔罷浴(청신재파욕) 말간 새벽에 겨우 다 씻어

臨鏡力不持(임경력부지) 거울 다가가 몸을 못 가눠

天然無限美(천연무한미) 하늘 그대로 끝없는 멋이

摠在未粧時(총재미장시) 다 있는 채로 아니 꾸민 때 모두총

 

雨荷(우하) 빗속의 연꽃-崔瀣

貯椒八百斛(저초팔백곡) 산초를 쌓아 팔백 섬이나 산초나무초 휘곡

千載笑其愚(천재소기우) 천년 비웃어 그 어리석음

何如綠玉斗(하여록옥두) 어떻게 하나 푸른 옥 말로

竟日量明珠(경일량명주) 마침내 햇님 밝은 구슬 헤 다할경

 

己酉三月褫官後作(기유삼월치관후작) 기유년삼월에벼슬을벗은 뒤 지어-崔瀣

塞翁雖失馬(새옹수실마) 변방 늙은이 비록 말 잃어

莊叟詎知魚(장수거지어) 장자 어르신 고기를 알아 어찌거

倚仗人如問(의장인여문) 지팡이 기대 남이 묻거든

當須質子虛(당수질자허) 마땅히 꼭해 그대 빔 바탕

 

春城路上(춘성로상) 춘성 가는 길에-元天錫

矮帽輕衫何處客(왜모경삼하처객) 작은모자옷가뿐 어디 나그네 키작을왜 적삼삼

柳西花外尋芳春(유서화외심방춘) 버들 서쪽 꽃 밖에 꽃의 봄 찾아

半醒半醉一驪背(반성반취일) 반쯤 깨 반쯤 취해 한 나귀 등에 가라말려

暮影靑山佳句新(모영청산가구신) 저문 그늘 푸른 산 좋은 글 새삼

堤州南郊(제주남교) 제주고을 남쪽 들녘-元天錫

十里春原新雨過(십리춘원신우과) 십리에 봄 들판에 새론 비 지나

鶬鶊上下弄晴光(창경상하롱청광) 꾀꼬리 오르내려 맑은 빛 놀려 꾀꼬리경

軟沙細草溪邊路(연사세초계변로) 보들 모래 가늘 풀 시냇가 길에 연할연

時有幽花渡水香(시유유화도수향) 때때로 그윽한 꽃 물 건너 향내

 

春晩卽事(춘만즉사) 봄날 저녁에-權近

綠樹園林已暮春(록수원림이모춘) 푸른 나무 동산 숲 이미 저문 봄

綿蠻鳥語惱幽人(면만조어뇌유인) 지저귀는 새소리 괴론 숨은 이

風吹弱柳初飛絮(풍취약류초비서) 바람 불어 실버들 처음 날린 솜

雨壓殘花已委塵(우압잔화이) 비에 눌린 남은 꽃 이미 다 시들

縱飮仍成長日醉(종음잉성장일취) 내리 마셔 되느니 긴 날을 취해

吟詩能得幾篇新(음시능득기편신) 시 읊어 얻게 되니 몇 편 새론 시

今朝欲解餘酲在(금조욕해여정재) 올 아침 풀려하니 취함이 남아 숙취정

更覓淵明漉酒巾(갱멱연명록주건) 다시 찾는 도연명 두건 술 걸러 거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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潁叔 牧隱 李穡(13281396)文靖 韓山 牧隱文藁


田家(전가) 농가-李穡

一犁微雨暗田家(일리미우암전가) 한보지락 보슬비 어두운 농가

桃杏成林路自斜(도행성림로자사) 복숭살구 숲 이뤄 길 절로 비껴

歸跨老牛蔉半濕(귀과노우곤반습) 늙은 소 타고 오니 도랑 반 젖어

陂塘處處泛殘花(피당처처범잔화) 비탈 연못 곳곳에 남은 꽃 떴네


縢王閣圖(등왕각도) 등왕각 그림-李穡

落霞孤鶩水浮空(낙하고목수부공) 지는 놀 외론 오리 물이 뜬 하늘

畫棟飛簾雲雨中(화동비렴운우중) 그림기둥 발 날려 구름비 속에

當日江神知我否(당일강신지아부) 그때 그날 강의 신 날 알 리 없어

何時更借半帆風(하시갱차반범풍) 언제 다시 빌리나 돛 바람 반을


洞庭晩靄(동정만애) 동정호 저녁 안개-李穡

一點君山夕照紅(일점산석조홍) 한 점 모인 산에는 저녁놀 붉어

闊呑吳楚勢無窮(활탄오초세무궁) 트여 삼켜 오 초를 기세 끝없이

長風吹上黃昏月(장풍취상황혼월) 긴 바람 불어 올라 황혼의 달에

銀燭紗籠暗淡中(은촉사롱암담중) 은 촛불 깁 등롱 묽은 어둠 속


★寄東亭(기동정) 동쪽 정자에 부쳐-李穡

春深門巷少經過(춘심문항소경과) 봄이 깊은 골목길 적은 이 지나

桃李花開落又多(도리화개낙우다) 복사 오얏 꽃 피어 떨어짐 많아

記得去年亭上坐(기득거년정상좌) 기억하니 지난해 정자에 앉아

一簾疎雨酒生波(일렴소우주생파) 발 하나 성글은 비 술에 물결이


感春(감춘) 봄날에-李穡

花今衰未問來人(화금쇠미문래인) 꽃 아직 안 시들어 오는 이 말이

恐是城中別有春(공시성중별유춘) 아마도 성 안에는 따로 봄 있나

步上東山還大笑(보상동산환대소) 걸어올라 동녘 산 한바탕 웃어

東君何處着嫌親(동군하처착혐친) 봄의 임금 어딘들 싫고 친할까


獨坐(독좌) 혼자 앉아-李穡

寂寂虛堂白晝長(적적허당백주장) 쓸쓸해서 빈 집은 한낮이 길어

乾坤一片黑甛鄕(건곤일편흑첨향) 하늘땅에 한 조각 낮잠 자는 곳

數聲啼鳥南風細(수성제조남풍세) 소리 몇 번 새 울어 남풍에 들려

身世悠然墮渺茫(신세유연타묘망) 몸 둔 처지 멀게도 떨어져 아득


小雨(소우) 가랑비-李穡

細雨濛濛暗小村(세우몽몽암소촌) 보슬비 보슬보슬 어두운 마을

餘花點點落空圜(여화점점낙공환) 남은 꽃 하나하나 떨어진 빈 뜰

閑居剩得悠然興(한거잉득유연흥) 느긋이 머묾 남아 멀찍한 흥이

有客開門去閉門(유객개문거폐문) 손님 있어 문 열어 떠나면 닫지


蠶婦(잠부) 누에치는 아낙네-李穡

城中蠶婦多(성중잠부다) 성안에 누에치는 아낙네 많아

桑葉何其肥(상엽하기비) 뽕잎파리 어찌해 그저 푸른가

雖云桑葉少(수운상엽소) 말로는 뽕잎파리 적다고하며

不見蠶苦飢(불견잠고기) 못 보지 누에치기 힘들고 주림

蠶生桑葉足(잠생상엽족) 누에가 자랄 때는 뽕잎 넉넉해

蠶大桑葉稀(잠대상엽희) 누에 커져 뽕잎도 드물어지지

流汗走朝夕(유한주조석) 흐르는 땀 바쁘니 아침저녁을

非緣身上衣(비연신상의) 인연 없어 이 몸에 아니 걸칠 옷


夜雨(야우) 밤비-李穡

夜雨空階滴不休(야우공계적불휴) 밤비는 빈 섬돌에 그치지 않아

疾餘情興轉悠悠(질여정흥전유유) 병이 남아 뜻 일음 돌며 아득해

神仙已遠誰靑骨(신선이원수청골) 신선은 이미 멀어 누가 신선에

天地無窮我白頭(천지무궁아백두) 천지는 다함없어 나도 백발이

頗信殘年如上瀨(파신잔년여상뢰) 자못 믿어 남은 삶 여울물 같아

可憐當日欲東周(가련당일욕동주) 가여워라 날 맞아 동주를 꿈꿔

祗今心跡誰能辨(지금심적수능변) 이제와 마음 밟음 누가 헤일까

高臥元龍百尺樓(고와원룡백척루) 높이 누운 으뜸 용 백 척 누대에


寒風(한풍1) 차가운 바람-李穡

寒風西北來(한풍서북래) 차운 바람 서북서 불어오는데

客子思故鄕(객자사고향) 나그네는 잠기니 고향 생각에

悄然共長夜(초연공장야) 쓸쓸히 함께하니 기나긴 밤을

燈光搖我床(등광요아상) 등불 빛이 흔들어 내 책상마저

古道已云遠(고도이운원) 옛날 도리 이제는 멀다하고서

但見浮雲翔(단견부운상) 다만 보니 뜬구름 날려가기만

悲哉庭下松(비재정하송) 슬프구나 뜰아래 소나무라고

歲晩逾蒼蒼(세만유창창) 해 늦게야 더욱더 푸릇푸릇해

願言篤交誼(원언독교의) 바램 말 도타웁게 사귀는 정이

善保金玉相(선보금옥상) 잘 지켜 금에 옥에 서로 서로를


偶吟(우음) 우연히 읊다-李穡

桑海眞朝暮(상해진조모) 상전벽해 참으로 아침저녁 일

浮生況有涯(부생황유애) 떠도는 삶 하물며 끝이 있음에

陶潛方愛酒(도잠방애주) 도잠은 바야흐로 술을 좋아해

江摠未還家(강총미환가) 강총은 아직 못해 고향 돌아감

小雨山光活(소우산광활) 가랑비 조금 내려 산 빛을 살려

微風柳影斜(미풍류영사) 가는 바람 버들에 그림자 쏠려

句回還遊意(구회환유의) 글귀 돌아 다시가 놀고 싶은 뜻

獨坐賞年華(독좌상년화) 홀로 앉아 즐기니 올해의 꽃을


韓山八詠1 崇井巖松(숭정암송) 우물 높인 바위소나무ㅡ李穡

峰頭蒼石聳(봉두창석용) 봉우리 마루에는 푸른 돌 솟아

松頂白雲連(송정백운연) 소나무 꼭대기엔 흰 구름 이어

羅漢堂寥閴(나한당요격) 아라한의 절에는 쓸쓸히 고요

居僧雜敎禪(거승잡교선) 머문 스님 섞여서 선을 가르쳐


韓山八詠2 日光石壁(일광석벽) 햇살 비친 돌벼랑

崔嵬揷平野(최외삽평야) 높이도 꽂혀 너른 들판에 높을외 꽂을삽

漂渺俯長天(표묘부장천) 아득히 굽어 멀리 하늘을 떠돌표 아득할묘

翠壁僧窓小(취벽승창소) 푸른 벼랑엔 스님 창 작고

佛燈空半懸(불등공반현) 부처님 등불 하늘에 달려 매달현


韓山八詠3 孤石深洞(고석심동) 외로운 돌 깊은 골

平野行將盡(평야행장진) 너른 들 걸어 다 지나려니

回峯望更高(회봉망갱고) 도는 봉우리 바래 더 높아

一區幽僻處(일구유벽처) 한 옹기종기 숨어 외진 곳 후미질벽

梵刹本來孤(범찰본래고) 절은 오면서 본디 외로이 범어범 절찰


韓山八詠4 回寺高峰(회사고봉) 절 돌아 높은 봉우리

後嶺如三角(후령여삼각) 뒤에 고개는 삼각산 같아

前峰入半空(전봉입반공) 앞에 봉우리 하늘에 들어

行舟缶鐵砭(행주부철폄) 지나가는 배 그릇 쇠 돌침 장군부 돌침폄

遮莫有狂風(차막유광풍) 막지를 마라 미친바람을 막을차


韓山八詠5 圓山戍敲(원산수고) 원산 수자리 두드림

海嶠傳烽火(해교전봉화) 바다 뾰족 봉 봉홧불 알려 뾰족하게높을교

閭閻壓波浪(여염압파랑) 마을거리는 물결 읾 싫어 이문여염

百年無事地(백년무사지) 백 년을 아무 일 없는 땅에

戍敲夕陽多(수고석양다) 수자리 북이 저녁볕 몹시 두드릴고


韓山八詠6 鎭浦歸帆(진포귀범) 진포로 돌아오는 돛배

細雨桃花浪(세우도화랑) 보슬비 내려 복사꽃 물결

淸霜蘆葉秋(청상로엽추) 맑은 서리에 갈댓잎 가을

歸帆何處落(귀범하처락) 돌아가는 돛 어디 머물러

渺渺一扁舟(묘묘일편주) 끝없이 아득 조각배 하나


韓山八詠7 鴨野勸農(압야권농) 압야 들에 농사를 권해

川平原似砥(천평원사지) 내는 널러서 들 숫돌인 듯 숫돌지

禾稼浩如雲(화가호여운) 벼논의 벼는 넓기 구름이 심을가 클호

太守催星駕(태수최성가) 태수님 하기 말을 다그쳐 재촉할최 멍에가

巡田欲夕曛(순전욕석훈) 밭을 돌아봐 저녁 빛 지려 돌순 석양빛훈


韓山八詠8 雄津觀釣(웅진관조) 웅진에서 낚시하며

馬邑山橫牆(마읍산횡장) 말 고을 산이 가로로 쳐져 담장

雄津水漆苔(진수칠태) 곰나루 물이 이끼로 발려 옻칠

釣絲風裏裊(조사풍리뇨) 낚싯줄 한들 바람 속에서 간드러질뇨

恰得月明回(흡득월명회) 마치 달 얻어 밝아 돌아와 마치흡


板橋(판교) 판교-李穡

板橋江畔草如煙(판교강반초여연) 널다리 강가두둑 풀이 안개로

落盡寒潮近午天(낙진한조근오천) 다 떨어져 찬 밀물 한낮 가까이

隔岸小舟呼不應(격안소주호불응) 언덕너머 작은 배 불러도 몰라

漁人分去賣魚錢(어인분거매어전) 어부들 나눠떠나 생선 판 돈에


遣懷(견회) 마음을 달래-李穡

倏忽百年半(숙홀백년반) 갑자기 문득 백 년의 반이 갑자기숙

蒼黃東海隅(창황동해우) 푸르다 누레 동해 모퉁이 모퉁이우

吾生元跼蹐(오생원국척) 우리 삶 원래 살며시 굽혀 구부릴국 살금살금걸을척

世路亦崎嶇(세로역기구) 세상 길 또한 험하기도 해 험할기구

白髮或時有(백발혹시유) 흰 머리 때론 어쩌다 있어

靑山何處無(청산하처무) 푸른 산 어디 머물 데 없어

微吟意不盡(미음의부진) 살며시 읊어 뜻 아니 다해

兀坐似枯株(올좌사고주) 우뚝 앉아서 마른 나무라 우뚝할올


夜吟(야음) 밤에 읊다-李穡

行年已知命(행년이지명) 나이 먹으니 이미 쉰이라 知天命

身世轉悠哉(신세전유재) 세상 몸 두기 아득하여져

細雨燈前落(세우등전락) 가랑비 내려 등불 앞으로

名山枕上來(명산침상래) 이름난 산이 베개 위로 와

憂時知杞國(우시지기국) 때를 걱정해 기나라 알아 杞憂

請始有燕臺(청시유연대) 빌어 비롯해 연나라 누대 昭王郭隗

恰到俱忘處(흡도구망처) 마치 이르니 모두 잊는 곳

心原冷欲灰(심원냉욕회) 마음의 근원 재 같이 싸늘


絶句(절구) 절구-李穡

玉堂高處絶塵埃(옥당고처절진애)옥의집 높은 데라 티끌도 없어 弘文館(朝鮮)

白日淸風動綠槐(백일청풍동록괴) 한낮에 맑은 바람 푸른 홰나무

一揖長官終日坐(일읍장관종일좌) 읍 한번 장관에게 하루를 앉아

數聲啼鳥滿庭苔(수성제조만정태) 몇 마디 새는 울어 뜰 가득 이끼


讀杜詩(독두시) 두보 시를 읽으니-李穡

操心如孟子(조심여맹자) 마음 씀에는 맹자 같은데

紀事如馬遷(기사여마천) 일의 실마리 사마천처럼

文章振厥聲(문장진궐성) 글 지어 떨쳐 소리 다하고 떨칠진 그궐

惻怛全爾天(측달전이천) 가여워 슬퍼 오롯 그 바탕 슬퍼할측 슬플달

法服坐廊廟(법복좌랑묘) 법 따라 앉아 조정 사당에 복도랑 사당묘

禮樂趨群賢(예악추군현) 예악에 좇아 여러 어진이 달릴추

門墻高數仞(문장고수인) 문에다 담은 높이 몇 길에 길인

後來徒比肩(후래도비견) 뒷사람 그저 어깨 나란히

何曾望堂奧(하증망당오) 어찌 일찍이 집 속을 볼까

矯首時茫然(교수시망연) 고개 곧추어 때마다 아득 바로잡을교


讀杜詩(독두시) 두보의 시를 읽고-李穡

錦里先生豈是貧(금리선생기시빈) 금리선생 두보는 어찌 이 가난

桑麻杜曲又回春(상마두곡우회춘) 뽕잎 삼대 두릉 땅 또 봄은 찾아

鉤簾丸藥身無病(구렴환약신무병) 발 걸어 환약 먹어 몸엔 병 없어 알환

畵紙敲針意更眞(화지고침의갱진) 종이 그려 바늘 쳐 뜻 더욱 참되 바둑 낚시

傀値亂雜增節義(괴치난잡증절의) 크게 쳐 난리 만나 절의를 불려 클괴 불을증

肯因衰老損精神(긍인쇠로손정신) 옳게 여겨 늙어가 정신을 덜어

古今絶唱誰能繼(고금절창수능계) 옛 이제 빼난 노래 누가 이어가 노래창

賸馥殘膏丐後人(승복잔고개후인) 남은 향 남긴 기름 뒷사람 가져 남을승 빌개


喬洞(교동) 교동-李穡

海門無際碧天低(해문무제벽천저) 바다 문 끝이 없어 푸른 하늘에

帆影飛來日在西(범영비래일재서) 돛 그늘 날아서와 해는 서산엘

山下家家蒭白酒(산하가가추백주) 산 아래 집집마다 흰 술을 빚고 꼴추

斷葱斫膾欲鷄棲(단총작회욕계서) 파 썰어 회를 쳐서 닭을 잡으려 벨작



雨暗江林(우암강림) 비 어두운 강 수풀-李穡

天低山遠樹浮雲(천저산원수부운) 하늘 낮춰 산 멀리 나무에 뜬 구름이

政是江天日欲曛(정시강천일욕훈) 바루니 이강하늘 해 기울어 저물려 석양빛훈

虎嘯猿啼愁不盡(호소원제수부진) 범 원숭이 울부짖음 시름은 다함없고

逐臣騷客苦思君(축신소객고사군) 쫓긴 신하 시인들 괴로운 임금생각


寄東亭(기동정) 동정에 부쳐-李穡

春深門巷少經過(춘심문항소경과) 봄 깊어 문에 거리 지나감 적어

桃李花開落又多(도리화개락우다) 복사 오얏 꽃 피어 떨어짐 많아

記得去年亭上坐(기득거년정상좌) 알고 있어 지난 해 정자 위 앉아

一簾疏雨酒生波(일렴소우주생파) 발 하나 성긴 비에 술에 인 물결


訪蜜城兩朴先生還京(방밀성양박선생환경)

밀양의 두 박선생을 찾아갔다가 서울 돌아와-李穡

碧桃花下月黃昏(벽도화하월황혼) 푸른 복사 꽃 아래 어스름의 달

爭換長條雪灑樽(쟁환장조설쇄준) 다퉈 잡아 긴 가지 눈 뿌린 술잔 뿌릴쇄

當日回遊幾人在(당일회유기인재) 그날에 돌며 놀아 몇 사람 있어

自怜攜影更鼔門(자령휴영갱고문) 가여워 끈 그림자 문을 두드려 영리할령 끌휴


曉雨(효우) 새벽 비-李穡

淸晨小雨酒茅簷(청신소우주모첨) 맑은 새벽 보슬비 띠 처마 적셔 띠모 처마첨

客興悠然白柄鑱(객흥유연백병참) 나그네 흥 아득히 흰 자루 보습 보습참

江上平田煙漠漠(강상평전연막막) 강 위로 너른 밭은 안개에 자욱

山崖細逕草纖纖(산애세경초섬섬) 산벼랑 좁은 길로 풀은 가늘게 벼랑애

載花侯館初開塢(재화후관초개오) 꽃이 실린 벼슬 집 먼저 열린 둑 둑오

沽酒詩家欲典衫(고주시가욕전삼) 술사와 시 읊는 집 적삼 잡히려 팔고

最是病夫謀口腹(최시병부모구복) 가장 옳기 병든 몸 꾀한 입과 배

海天歸思滿歸帆(해천귀사만귀범) 바다로 돌릴 생각 가는 돛 가득


東山(동산) 동쪽 산-李穡

東山高頂立移時(동산고정립이시) 동쪽 산 높은 마루 서서 한참을

思入鴻濛自不知(사입홍몽자부지) 생각드니 흐릿해 저도 모르게 가랑비올몽

飛鳥片雲俱縹渺(비조편운구표묘) 새 날아 조각구름 모두 아득해 옥색표

連岡斷壟自逶迤(연강단롱자위이) 이은 뫼 끊긴 언덕 절로 비스듬 구블구불갈위

秋風老杜破茅屋(추풍로두파모옥) 갈바람 늙은 팥배 띠 지붕 부숴

落日山公倒接罹(낙일산공도접리) 지는 해 산에 솔에 걱정 메 씌워 근심리

畎畝忘君非我志(견무망군비아지) 밭도랑 임금잊어내뜻함 아니 밭도랑견 이랑무

更將餘力念安危(갱장여력념안위) 다시 해야 남은 힘 안위를 생각 위태할위


秋日(추일) 가을날-李穡

曉上高樓獨自憑(효상고루독자빙) 새벽 오른 높은 누 혼자서 기대 기댈빙

白雲靑嶂共層層(백운청장공층층) 흰구름푸른 산은 모두다 겹겹 높고가파른산장

一庭雨遇苔逾長(일정우우태유장) 뜰 하나 비를 만나 이끼 더 불어 넘을유

勇里天晴日又昇(용리천청일우승) 용리 마을 하늘 개 해도 떠올라 오를승

膽氣崢嶸身老大(담기쟁영신로대) 담력은 엄청난데 몸은 늙어가 가파를쟁영

顔客枯槁鬂鬅鬠(고고빈붕괄) 얼굴은바싹 말라 머리 흩으려 머리흐트러질붕

乾坤幾度秋風起(건곤기도추풍기) 하늘땅 몇 번 지나 가을바람 나

回首江東憶李鷹(회수강동억리응) 고개 돌려 강 동쪽 이응을 생각


春晩(춘만) 늦은 봄날-李穡

春晩南城翩綠蕪(춘만남성편록무) 봄이 늦어 남쪽 성 섞인 푸른 풀 거칠어질무

寂寥庭宇鳥相呼(적료정우조상호) 쓸쓸한 뜰 집에는 새 서로 불러

天陰欲雨連山暗(천음욕우련산암) 날 흐려 비 올라나 이은 산 어둑

花落猶風掃地無(화락유풍소지무) 꽃 져도 외려 바람 땅 쓸어 없애

放膽幾年揮筆札(방담기년휘필찰) 마음 놓고 몇년을 붓 떨쳐 글 써 쓸개담 패찰

乞身何日向江湖(걸신하일향강호) 몸을 탓해 어느 날 강 호수에를 빌걸

古來豪傑能經世(고래호걸능경세) 예부터 영웅호걸 세상 다스려

自笑區區一腐儒(자소구구일부유) 절로 웃어 낱낱이 한 썩은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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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思 益齋 李齊賢(12871367)文忠 慶州 櫟翁稗說


簡李員外(간이원외) 이원외에게 편지하며-李齊賢

吾生如寄耳(오생여기이) 우리의 삶은 더부살이지

方寸只君知(방촌지군지) 조그만 마음 그댄 알겠지

歲晩深期在(세만심기재) 나이 들어서 깊어진 바램

東歸定幾時(동귀정기시) 동쪽 돌아감 몇 때나 놓여


書天壽僧院(서천수승원) 천수승원에 적다-李齊賢

待客客未到(대객객미도) 손님 기다려 손님 아니 와

尋僧僧亦無(심승승역무) 스님을 찾아 스님도 없어

惟餘林外鳥(유여림외조) 오직 넉넉해 숲 밖에 새가

款曲勸提壺(관곡권제호) 정성에 굽어 술병 끌게 해 정성관


招崔壽翁(초최수옹) 최수옹을 부르며-李齊賢

琴書一茅屋(금서일모옥) 거문고에 책 한 초가집에

高臥樂幽獨(고와락유독) 높이 누우니 즐김 혼자서

故人來不來(고인래불래) 오랜 벗이란 오나 안 오나

東鄰酒新熱(동린주신열) 동쪽에 이웃 새 술이 익어


幽深山居(유심산거) 깊은 산에 살며-李齊賢

春去花猶在(춘거화유재) 봄은 갔어도 꽃 아직 피어

天晴谷自陰(천청곡자음) 하늘은 개여 골짝 그늘져

杜鵑啼白晝(두견제백주) 두견새마저 한낮에 울어

始覺卜居深(시각복거심) 이제야 깨쳐 사는 곳 깊어


金剛山 普德窟(보덕굴) 보덕굴-李齊賢

陰風生巖谷(음풍생암곡) 서늘한 바람 바윗골서 나

溪水深更綠(계수심갱록) 시냇물 깊어 게다 푸르러

倚杖望層巓(의장망층전) 지팡이 짚어 겹 꼭대기 봐 산꼭대기전

飛簷駕雲木(비첨가운목) 날듯이 처마 구름 탄 나무


金剛山 摩訶衍菴(마가연암) 마하연 암자-李齊賢

山中日亭午(산중일정오) 산 속에 정자 해는 한낮에

草露渥芒屨(초로악망구) 풀에 이슬로 미투리 흠뻑 두터울악 신구

古寺無居僧(고사무거승) 오랜 절에는 스님이 없고

白雲滿庭戶(백운만정호) 하얀 구름에 집 뜰을 채워


登峨眉山(등아미산) 아미산에 올라-李齊賢

蒼雲浮地面(창운부지면) 푸른 구름이 땅 위에 떴고

白日轉山腰(백일전산요) 한낮 밝은 해 산허리 돌아

萬像歸無極(만상귀무극) 모든 본뜸에 돌아간 무극

長空自寂寥(장공자적요) 먼 하늘 저만 고요에 쓸쓸


冷泉亭(냉천정) 냉천정-李齊賢

爲愛溪邊石(위애계변석) 아끼게 되니 시냇가 바위

扶筇小立時(부공소립시) 지팡이 짚고 조금 섰을 때

微波含落照(미파함락조) 잔물결 어려 지는 볕 담아

影動掛猿枝(영동괘원지) 그림자 흔들 원숭이 가지


題手卷1(제수권1) 두루마리에 쓰다-李齊賢

豊干老去不參禪(풍간로거불참선) 풍간은 늙어가며 참선도 않고 승려?

寒拾從來只掣顚(한습종래지체전) 한습은 따라오며 정수리 끌어 끌채

白額將軍亦何者(백액장군역하자) 하얀 이마 장군은 또한 어떤 이

忍飢共打一場眠(인기공타일장면) 주림 참고 함께 쳐 한바탕 낮잠


題手卷2(제수권2) 두루마리에 쓰다-李齊賢

顔色雖非滿鏡春(안색수비만경춘) 낯빛은 아니라도 거울 가득 봄

歌聲尙足動梁塵(가성상족동량진) 노래 소리 넘쳐서 대들보 울려

感君一贈同心結(감군일증동심결) 그댈 느껴 한번 줘 같은 맘 맺어

不爲千金更媚人(불위천금갱미인) 아니하니 천금에 다시 아양 떪 아첨할미


西京留守慶宰臣寄凍魚(서경유수경재신기동어)

서경유수 경재신이 얼린 고기를 부쳐-李齊賢

朝天石下玉鱗魚(조천석하옥린어) 조천석 바위아래 옥 비늘 고기

千里飛來入我廬(천리비래입아려) 천 리길 날아와서 내 집에 들어

一見忽驚淸到骨(일견홀경청도골) 한번 봐 문득 놀라 뼈 닿는 맑음

只緣腹有令公書(지연복유령공서) 알았네 배에 있어 공의 편지가


雪後約竹軒訪李柯亭山齋(설후약죽헌방이가정산재)

눈 내린 뒤 죽헌과 약속하여 이가정의 산 재실을 찾아-李齊賢

柯亭人境兩淸幽(가정인경양청유) 가정의 사람됨은 맑고도 그윽

像想山陰雪後遊(상상산음설후유) 그려 생각 산그늘 눈 온 뒤 놀아

若使同行有詩友(약사동행유시우) 만일 시켜 함께 가 시 벗이 있어

子猷未必便回舟(자유미필편회주) 그대 꾀해 아니 꼭 배를 돌리게


西都留別邢通憲(서도류별형통헌) 서도에서 형통헌과 헤어지며-李齊賢

露侵征袖曉寒多(로침정수효한다) 이슬 쳐든 소매에 새벽추위 꽤

酒盡離觴塞月斜(주진리상새월사) 술도 다해 이별 잔 변방 달 기웃

誰料北窓螢雪客(수료북창형설객) 누가 알아 북쪽 창 글 읽던 길손 螢雪之功

每年鞍馬走風沙(매년안마주풍사) 해마다 말을 달려 바람 모래에


寄遠(기원) 멀리 부치며-李齊賢

懽樂翻敎恨懊新(환락번교한오신) 기뻐 즐겨 도리어 한이 돼 새로 한할오

功名只管別離頻(공명지관별리빈) 공 이름 다만 뚫어 헤어짐 잦아

可憐畫閣樽前月(가련화각준전월) 가엽다 그림 누각 술통 앞에 달

還照邊城馬上人(환조변성마상인) 돌아 비쳐 변방 성 말 위에 사람


感懷二首1(감회이수1) 품은 마음 느껴-李齊賢

杜鵑花發杜鵑啼(두견화발두견제) 진달래 꽃은 피고 접동새 울어

香霧空濛月欲西(향무공몽월욕서) 향긋 안개 하늘 멍 달은 서산엘

立馬得詩還忘却(립마득시환망각) 말 멈춰 시를 얻어 헐 잊어버려

鳳城東望草萋萋(봉성동망초처처) 봉성 땅 동쪽 바래 풀로 우거져


感懷二首2(감회이수2) 품은 마음 느껴-李齊賢

光風轉夜露華微(광풍전야로화미) 빛 바람 도는 밤에 이슬 꽃 살짝

零落春紅欲滿衣(영락춘홍욕만의) 가만 떨친 봄 붉음 옷을 채우려

喚取佳人騎細馬(환취가인기세마) 외쳐서 고운사람 작은 말 태워

敎吹玉笛月中歸(교취옥적월중귀) 불게 해 옥피리를 달과 돌아가


孟宗冬筍(맹종동순) 맹종죽 겨울 죽순-李齊賢

雪中新筍宅邊生(설중신순택변생) 눈 속에 새 죽순이 집 가에 돋아

摘去高堂慰母情(적거고당위모정) 따가서 집에 계신 엄마 맘 달래

但使子孫能盡孝(단사자손능진효) 다만 시켜 자손들 효를 다하게

乾坤感應自分明(건곤감응자분명) 하늘땅 느낌 받아 절로 뚜렷해


過漁家(과어가) 어부 집을 지나며-李齊賢

婆娑城下盡漁村(파사성하진어촌) 파사성 성 아래는 다 어촌 마을

夜雨沙磯見漲痕(야우사기견창흔) 밤비에 모래톱에 물불은 자국 물가기

渚草汀花無限好(저초정화무한호) 물가 풀 물가 꽃이 끝없이 좋아

一篙春水度朝昏(일고춘수도조혼) 삿대 하나 봄 강물 아침저녁에 상앗대고


鷰尋玉京(연심옥경) 연심옥경-李齊賢

翩翩隻燕訪空閨(편편척연방공규) 훨훨 날아 한 제비 빈 안방 찾아

應感佳人惜別詩(응감가인석별시) 느껴서 고운사람 애틋 떠난 시

相對知心不知語(상대지심부지어) 서로마주 맘 알아 말은 못 알아

一庭風雨落花時(일정풍우락화시) 뜰 하나 비바람에 꽃 떨어질 때


廬山三笑(여산삼소) 여산삼소-李齊賢

釋道於儒理本齊(석도어유리본제) 불교 도교 유교와 본 이치 같아

强將分別自相迷(강장분별자상미) 억지로 나눠 갈라 저 서로 헤매

三賢用意無人識(삼현용의무인식) 세 어진이 마음 씀 남들 몰라줘

一笑非關過虎溪(일소비관과호계) 한 번 웃어 안 따져 호계를 건너


四皓歸漢(사호귀한) 사호 한나라로 돌아와-李齊賢

見說扶蘇孝且仁(견설부소효차인) 말하게 해 부소는 효도에 어짊 皇太子

胡令二世禍生民(호령이세화생민) 어찌시켜이세에백성에재앙胡亥(BC229~207)

逋翁不爲卑辭屈(포옹불위비사굴) 포옹은 아니 하니 비사에 굽힘

未忍劉家又似秦(미인류가우사진) 차마 아니 유씨 집 진나라 같이


和李明叔雲錦樓四詠1 荷洲香月(하주향월) 연꽃 물가 향기로운 달-李齊賢

微波澹澹月溶溶(미파담담월용용) 가는 물결 잔잔해 달빛은 넘실

十頃荷花一道風(십경하화일도풍) 열 이랑 연꽃에는 한 줄기 바람

記得臨平山下宿(기득림평산하숙) 알았으니 임평산 산 아래 묵어

酒醒身在畫船中(주성신재화선중) 술 깨자 몸이 있어 그림배 속에


和李明叔雲錦樓四詠2 松壑翠雲(송학취운) 솔 골짝 푸른 구름-李齊賢

一林黃葉遠無聲(일림황엽원무성) 온 숲속에 누른 잎은 멀어서 소리 없어

萬壑蒼雲漲欲平(만학창운창욕평) 모든 골짝 푸른 구름 넘쳐나 반반하게

捲上山頭吹不散(권상산두취불산) 말려 올라 산꼭대기 불려도 안 흩어져

料應晩雨未全晴(료응만우미전청) 맞아 알아 늦은 비는 오롯이 아니 개여


和李明叔雲錦樓四詠3 漁磯晩釣(어기만조) 어촌물가 늦은 낚시-李齊賢

魚兒出沒弄微瀾(어아출몰롱미란) 고기새끼 들고나며 잔물결 놀려

閑擲纖鉤柳影閒(한척섬구류영한) 느긋 던져 가는 낚시 버들 그림자

日暮欲歸衣半濕(일모욕귀의반습) 날 저물어 돌아가려 옷이 반 젖어

綠煙和雨暗前山(록연화우암전산) 푸른 연기 비 어울려 앞산 어두워

 

和李明叔雲錦樓四詠4 山舍朝炊(산사조취) 산에 집 아침 불을 때-李齊賢

山下誰家遠似村(산하수가원사촌) 산 아래 누구 넨가 멀리 마을이

屋頭煙帶大平㾗(옥두연대대평량) 지붕머리 연기 껴 큰 평온 서려 눈병량

時聞一犬吠籬落(시문일견폐리락) 때론 들려 개 하나 짖는 울타리

乞火有人來扣門(걸화유인래구문) 불 빌리러 사람 와 문을 두드려


松都八詠 西江月艇(서강월정) 서강에 달 실은 배-李齊賢

江寒夜靜得魚遲(강한야정득어지) 강물 차고 밤 고요 고기 안 낚여

獨倚蓬窓捲釣絲(독의봉창권조사) 혼자 기댄 봉창에 낚싯줄 거둬

滿目靑山一船月(만목청산일선월) 눈에 가득 푸른 산 배 하나 달이

風流未必載西施(풍류미필재서시) 풍류라면 아니 꼭 서시를 태워 美女


松都八詠 南浦烟蓑(남포연사) 남포의 안개 풀 섶-李齊賢

一灣蒲葦雨蕭蕭(일만포위우소소) 한 굽이 부들갈대 비는 우수수

隔岸人家更寂寥(격안인가갱적료) 언덕너머 사람 집 다시 고요해

漁罷呼兒收綠網(어파호아수록망) 천렵 마쳐 애 불러 그물을 거둬

剌船歸起晩來潮(랄선귀기만래조) 삐거덕 배 돌아와 늦은 밀물에 어그러질랄


松都八詠 龍野尋春(룡야심춘) 용야들에 봄을 찾아-李齊賢

偶到溪邊藉碧蕪(우도계변자벽무) 뜻밖 닿은 시냇가 푸른 풀 깔려

春禽好事勸提壺(춘금호사권제호) 봄새는좋은일이술 끌어 권해 提壺 직박구리

起來欲覓花開處(기래욕멱화개처) 일어나 찾으려해 꽃이 핀 곳을

度水幽香近却無(도수유향근각무) 물 건너 그윽한 향 다가가 없어


松都八詠 熊川禊飮(웅천계음) 웅천계음-李齊賢

沙頭酒盡欲斜暉(사두주진욕사휘) 모래머리 술 다해 해도 비스듬

濯足淸流看鳥飛(탁족청류간조비) 발 씻어 맑은 물에 새를 봐 날아

此意自佳誰領取(차의자가수령취) 이런 뜻 절로 멋져 누가 알아줘

孔門吾與舞雩歸(공문오여무우귀) 공자 문하 우리는 놀다 돌아가


松都八詠 靑郊送客(청교송객) 청교에서 손님 보내-李齊賢

小溪深處柳飛綿(소계심처류비면) 실개울 깊은 곳에 버들 솜 날려

細雨晴時草似煙(세우청시초사연) 보슬비 개일 때면 연기 같은 풀

客去客留俱不礙(객거객류구불애) 손님 가든 머물든 함께 안 막아

一樽相對好山川(일준상대호산천) 동이 술 서로 마주 좋은 산천이


松都八詠 紫洞尋僧(자동심승) 자동에 스님을 찾아-李齊賢

石泉激激風生腋(석천격격풍생액) 돌샘에 샘물 콸콸 몸에 바람나 겨드랑이액

松霧霏霏翠滴巾(송무비비취적건) 솔 안개 부슬부슬 푸름에 젖어

未用山僧勤挽袖(미용산승근만수) 아니 써 산에 스님 소매를 당겨

野花啼鳥解留人(야화제조해류인) 들꽃에 우는 새는 사람 붙들어


松都八詠 龍山秋晩(룡산추만) 용산에 가을이 늦어-李齊賢

去年龍岫菊花時(거년룡수국화시) 지난해 용산 마루 국화꽃 필 때

與客携壺上翠微(여객휴호상취미) 손님과 술병 차고 산중턱 올라

一逕松風吹帽落(일경송풍취모락) 한 오솔길 솔바람 모자 떨어져

滿衣紅葉醉扶歸(만의홍엽취부귀) 옷 가득 붉은 잎에 취해 잡고 와


松都八詠 鵠嶺春晴(곡령춘청) 곡령에 봄날 맑아-李齊賢

八仙宮住翠微峯(팔선궁주취미봉) 여덟 신선 궁 있어 푸른 기운 봉

縹緲煙霞幾萬重(표묘연하기만중) 아득하다 안개 놀 몇 만 겹이나

一夜長風吹雨過(일야장풍취우과) 하룻밤을 긴 바람 비 몰고 지나

海龍擎出玉芙蓉(해룡경출옥부용) 바다용 들어 솟아 옥의 연꽃을


白溝(백구) 백구강-李齊賢

誰將督亢餌强隣(수장독항이강린) 누가하랴 독항 땅 강한 이웃 줘

空費金繒歲結親(공비금증세결친) 괜히 써 금과 비단 해마다 맺어

尺水區區遏南牧(척수구구알남목) 한 자 물 자잘하게 남쪽을 막아

可能臥榻不容人(가능와탑불용인) 하는 건 누운 자리 사람 안 들여


?郡(탁군) 탁군-李齊賢

美壤每每接大行(미양매매접대항) 아름다운 땅은 늘 태항에 닿아

東秦右臂北燕吭(동진우비북연항) 동쪽 진은 오른 팔 북쪽 연 목이

劉郞却愛蠶叢國(류랑각애잠총국) 유 총각 되레 아껴 잠총국 나라

故里虛生羽葆桑(고리허생우보상) 고향 마을 그저 나 우보 뽕나무 풀더부룩할보


登鵠嶺(등곡령) 곡령에 올라-李齊賢

煙生渴咽汗如流(연생갈인한여류) 연기 나니 마른 목 땀은 흐르듯

十步眞成八九休(십보진성팔구휴) 열 걸음 걸으면서 여덟아홉 쉼

莫怪後來當面過(막괴후래당면과) 달리마라 뒤서 와 앞을 지나도

徐行終亦到山頭(서행종역도산두) 천천히 가 마침내 산마루 닿아


栗谷人家(율곡인가) 율곡 골짝 사람 집-李齊賢

歲暮天寒雪欲飛(세모천한설욕비) 한 해 가며 날 추워 눈이 날리려

旋收鷄狗掩柴扉(선수계구엄시비) 돌려 거둬 닭과 개 사립문 닫아

馬蒭奴飯猶能辦(마추노반유능판) 말 꼴에다 종 밥을 힘써 마련해

勸客明朝且莫歸(권객명조차막귀) 부디 손 내일 아침 돌아가지마


送息影菴(송식영암) 식영암에 보내며-李齊賢

同道相從古亦稀(동도상종고역희) 같은 도 서로 좇아 옛 또한 드문

中年遠別忍霑衣(중년원별인점의) 중년에 멀리 헤져 차마 옷 적셔

空江目盡思無盡(공강목진사무진) 빈 강에 바램 다해 생각 끝없어

一片風帆去似飛(일편풍범거사비) 한 조각 바람 돛배 떠나 날듯이


九曜堂1(구요당1) 구요당-李齊賢

溪水潺潺石逕斜(계수잔잔석경사) 시냇물 잔잔해도 돌길 비스듬

寂寥誰似道人家(적료수사도인가) 고요 쓸쓸 뉘 같아 도인 집이랴

庭前臥樹春無葉(정전와수춘무엽) 뜰 앞에 누운 나무 봄에 잎 없어

盡日山蜂咽草花(진일산봉열초화) 하루 내 산에 벌은 풀꽃에 목메


九曜堂2(구요당2) 구요당-李齊賢

夢破虛窓月半斜(몽파허창월반사) 꿈을 깬 빈 창가에 달이 반 기웃

隔林鐘鼓認僧家(격림종고인승가) 숲 너머 종 북소리 알아 스님 집

無端五夜東風惡(무단오야동풍악) 무던히 밤은 오경 봄바람 나빠

南澗朝來幾片花(남간조래기편화) 남쪽 도랑 아침 와 몇 조각 꽃이


山中雪夜(산중설야) 산 속 눈 오는 밤-李齊賢

紙被生寒佛燈暗(지피생한불등암) 얇은 이불 소름 나 등잔불 어둑 寒粟

沙彌一夜不鳴鍾(사미일야불명종) 사미승 밤새도록 종을 안 울려

應嗔宿客開門早(응진숙객개문조) 마주 성내 묵는 손 문 일찍 열어

要看庵前雪壓松(요간암전설압송) 살펴보려 암자 앞 눈 눌린 솔을


瀟湘夜雨(소상야우) 소상강 밤비-李齊賢

楓葉蘆花水國秋(풍엽로화수국추) 단풍잎 갈대꽃에 물나라 가을

一江風雨灑片舟(일강풍우쇄편주) 온 강엔 비바람이 조각배 뿌려

鷺回楚客三更夢(로회초객삼경몽) 해오라기 오는 손 한밤의 꿈에

分與湘妃萬古愁(분여상비만고수) 헤어진 소상왕비 오랜 옛 시름


淮陰漂母墳1(회음표모분1) 회음의 빨래하는 아낙 무덤에서-李齊賢

重士憐窮義自深(중사련궁의자심) 선비 중해 백성 가련 옳음은 절로 깊어

豈將一飯望千金(기장일반망천금) 어찌 나중 밥 한 그릇 천금을 바랬을까

歸來却責南昌長(귀래각책남창장) 돌아와서 되레 따져 남창의 정장에게

未必王孫識母心(미필왕손식모심) 아니 꼭이 왕손으로 표모 마음 알아야


淮陰漂母墳2(회음표모분2) 회음의 빨래하는 아낙 무덤에서-李齊賢

婦人猶解識英雄(부인유해식영웅) 아주머니 그리 알아 영웅을 알아

一見殷勤慰困窮(일견은근위곤궁) 한눈에 봐 넌짓 힘써 어려움 달래

自棄爪牙資敵國(자기조아자적국) 저만 버려 발톱 이빨 적 나라 밑천

項王無賴目重瞳(항왕무뢰목중동) 항왕으로 쓸데없이 눈동자 붙어


益齋小樂府 鄭瓜亭(정과정)瓜亭 鄭敍(明宗元年 1170赦免)-李齊賢

憶君無日不霑衣(억군무일불점의) 임 그려 날이면 날 눈물에 젖어

政似春山蜀子規(정사춘산촉자규) 정치란 봄 산 같아 접동새 울음

爲是爲非人莫問(위시위비인막문) 옳으니 그르니는 묻지를 마오

只應殘月曉星知(지응잔월효성지) 조각달 새벽별이 알고 있느니


古風七首1(고풍칠수1) 고풍칠수-李齊賢

歲暮連日雪(세모연일설) 해는 저물어 날을 이어 눈

百卉俱拉摧(백훼구랍최) 온갖 풀들은 모두 꺾이어 꺾을랍최

政恐入新春(정공입신춘) 정말 두렵기 새봄이 들어

陰雲仍未開(음운잉미개) 그늘진 구름 이에 안 개여

娟娟一樹梅(연연일수매) 아리땁게도 한 그루 매화

脈脈在空谷(맥맥재공곡) 이어 이어져 빈 골짝에서

幽香人不知(유향인부지) 그윽한 향기 남들은 몰라

瘦骨淸如玉(수골청여옥) 여윈 뼈마디 옥처럼 맑아


古風七首2(고풍칠수2) 고풍칠수-李齊賢

宵寒夢易破(소한몽이파) 밤이 차가워 꿈을 쉽게 깨

展轉不自聊(전전부자료) 돌아 굴러서 절로 못 기대 輾轉反側

攬衣起窺戶(람의기규호) 옷을 걸쳐서 일어나 살펴

落落星月高(낙락성월고) 쏟아 떨어져 별과 달 높아

開爐具燈火(개로구등화) 화로 불 피워 등불을 밝혀

坐聽風枝號(좌청풍지호) 앉아서 들어 가지에 바람

念彼窮谷士(념피궁곡사) 저기 생각을 막힌 골 선비

誰與同其袍(수여동기포) 누가 줄건 지 함께 그 핫옷


古風七首3(고풍칠수3) 고풍칠수-李齊賢

公子遠行役(공자원행역) 도련님께선 먼 길 갈일이

鞍馬光翁赩(안마광옹혁) 말안장 올려 얼굴빛 붉어 붉을혁

憔悴玉樓妾(초췌옥루첩) 애태워 여윈 옥루의 아낙

忍淚不敎滴(인루불교적) 눈물 참으며 아니 흐르게

念之不可忘(념지불가망) 생각하느니 잊지를 못해

奮飛無羽翼(분비무우익) 떨쳐서 날려 날개가 없어

寒鍾鳴苦遲(한종명고지) 차운 종 울려 괴로움 늦춰

何時東方白(하시동방백) 언제면 동녘 날이 새려나


古風七首4(고풍칠수4) 고풍칠수-李齊賢

三冬天地閉(삼동천지폐) 석 달 겨울엔 하늘땅 막혀

龍蛇蟄幽宮(용사칩유궁) 용과 뱀들은 깊은 궁 숨어

世道多反覆(세도다반복) 세상길 많아 엎고 뒤엎어

君子有固窮(군자유고궁) 군자 가지니 정말 어려움

虛窓列遠岫(허창열원수) 빈 창문으로 먼 산 줄지어

白雲度晴空(백운도청공) 흰 구름 지나 개인 하늘을

從嗔不迎客(종진불영객) 좇아 성내어 손님 못 맞아

揮琴送飛鴻(휘금송비홍) 거문고 둘러 기러기 날려


古風七首5(고풍칠수5) 고풍칠수-李齊賢

蘇秦學鬼谷(소진학귀곡) 소진은 배워 귀곡 선생께

適取勞其生(적취로기생) 마침내 얻어 그 삶 지치게

起來佩相印(기래패상인) 일어서 오니 재상 인끈 차

足使妻嫂驚(족사처수경) 놀랄 만하니 아내와 형수

胡爲任寸舌(호위임촌설) 어찌하여서 한 치 혀 놀려

抵死談縱橫(저사담종횡) 죽을 때까지 종횡책 말해 합종연횡책

便有二頃田(편유이경전) 있다고 쳐서 두 이랑 밭이

知渠不躬耕(지거불궁경) 알건가 어찌 몸소 안 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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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奎報 漢詩


兒三百飮酒(아삼백음주) 아들 삼백이 술을 마셔-李奎報

汝今乳齒已傾觴(여금유치이경상) 네가 이제 젖니에 벌써 잔 기웃 기울경

心恐年來必腐腸(심공년래필부장) 두려운 맘 앞으로 꼭 창자 썩어 썩을부

莫學乃翁長醉倒(막학내옹장취도) 배우지마 이 아비 늘 취해 비틀 넘어질도

一生人道太顚狂(일생인도태전광) 한 삶에 남들 말이 너무나 미쳐 꼭대기전

一生誤身全是酒(일생오신전시주) 한 살이 그릇된 몸 워낙 이 술이

汝今好飮又何哉(여금호음우하재) 너 이제 좋아 마셔 또 어찌할꼬

命名三百吾方悔(명명삼백오방회) 이름 붙여 삼백이 내 막 뉘우쳐

恐爾日傾三百杯(공이일경삼백배) 아마 너 날 기울여 삼백 잔 할까


江上偶吟(강상우음) 강 위에서-李奎報

滾滾長江流向東(곤곤장강류향동) 흘러흘러 긴 강은 흘러 동으로 흐를곤

古今來往亦何窮(고금래왕역하궁) 옛 이제 오고가니 또 어찌 다해

商船截破寒濤碧(상선절파한도벽) 장삿배 끊고 부숴 찬 물결 푸름 끊을절

漁笛吹殘落照紅(어적취잔락조홍) 고기피리 불리어 지는 빛 붉어

鷺格斗高菰岸上(로격두고고안상) 해오라기 별 높이 부추 언덕 위 향초고

雁謀都寄稻畦中(안모도기도휴중) 기러기 꾀 다 붙어 논두렁 속에 밭두둑휴

嚴陵舊迹無人繼(엄릉구적무인계) 엄자릉 옛날 자취 잇는 이 없어

終抱煙波作釣翁(종포연파작조옹) 끝내 안겨 안개 결 낚시 늙은이


犬浦偶吟(견포우음) 견포에서-李奎報

無端馬上換星霜(무단마상환성상) 까닭 없이 말 위서 해가 바뀌고

望闕思家倍感傷(망궐사가배감상) 대궐 바래 집 생각 아픔만 더해

紅日落時天杳杳(홍일락시천묘묘) 붉은 해 떨어질 때 하늘 어두워 어두울묘

白雲缺處水蒼蒼(백운결처수창창) 흰 구름 모자란 곳 물이 푸르러

雨晴草色連空綠(우청초색련공록) 비 개어 풀 빛깔은 하늘 이은 빛

風暖梅花度嶺香(풍난매화도령향) 바람 따뜻 매화꽃 재 넘은 내음

薄宦江涯良悒悒(박환강애량읍읍) 엷은벼슬강물가 정말 착잡해 벼슬환 근심할읍

春光何況攪離腸(춘광하황교리장) 봄날 빛 어이 그리 속을 휘젓나 어지러울교


三月又到保安縣江上課木(삼월우도보안현강상과목)

삼월에 보안현 강에 이르러 나무를 매겨 올리며-李奎報

一春三過此江頭(일춘삼과차강두) 봄 한철 세 번 지나 이 강 머리를

王事何曾怨未休(왕사하증원미휴) 임금 일 어찌 일찍 못 쉬어 탓해

萬里壯濤奔白馬(만리장도분백마) 만 리 거센 큰 물결 흰말이 달려

千年古木臥蒼虯(천년고목와창규) 천년을 묵은 나무 푸른 용 누워 규룡규

海風吹落蠻村笛(해풍취락만촌적) 바다바람 불려 져 어촌의 피리

沙月來迎浦客舟(사월래영포객주) 모래 달 오며 맞아 갯가 찾는 배

擁去騶童應怪我(옹거추동응괴아) 안고가말잡이애 으레 날 몰라 말먹이는사람추

每逢佳景立遲留(매봉가경립지류) 좋은 경치 만나선 더디 서 머뭇


再入臨陂郡(재입림피군) 다시 임피군에 들어가며-李奎報

古縣依然接水湄(고현의연접수미) 옛 고을 그렇듯이 물가에 닿아 물가미

前驅紅旆拂林歸(전구홍패불림귀) 앞 몰이 붉은 깃발 숲을 스쳐가 기패

往來雌有鶯相識(왕래자유앵상식) 오가니 암컷 있어 꾀꼬리 알아

衰病那堪馬似飛(쇠병나감마사비) 늙어 병 어찌 견뎌 날듯 한 말이

客舍新除垂柳路(객사신제수류로) 객사에 새로 닦은 버들 드린 길

人家半掩映花扉(인가반엄영화비) 사람 집 반쯤 닫혀 꽃 어린 사립

參軍孤瘦難堪見(참군고수난감견) 참군에 외론 여윔 보니 못 견뎌

士女可須聚作圍(사녀가수취작위) 선비 아낙 꼭 옳아 모여 둘러서


題浦口小村(제포구소촌) 포구의 작은 마을-李奎報

流水聲中朝復暮(류수성중조부모) 물 흐름 소리 속에 아침 또 저녁

海村籬落苦蕭條(해촌리락고소조) 바다마을 울 흩여 괴로움 쓸쓸

湖淸巧印當心月(호청교인당심월) 호수 맑아 꼭 찍어 마음 달 맞아

浦濶貪呑入口潮(포활탐탄입구조) 포구 넓어 폭 삼켜 밀물을 들여

古石浪舂平作礪(고석랑용평작려) 오랜 돌 물결 찧어 너른 숫돌이 거친숫돌려

壞船苔沒臥成橋(괴선태몰와성교) 깨진 배 이끼 덮여 누워 다리로

江山萬景吟難狀(강산만경음난상) 강산에 모든 볕발 읊어 못 그려

須倩丹靑畫筆描(수천단청화필묘) 꼭 빌어 붉음 푸름 붓이라 그려 예쁠천


寄吳德全(기오덕전) 오덕전에게-李奎報

海山東去路悠悠(해산동거로유유) 바다 산 동쪽 떠나 길은 아득해

一落天涯故倦遊(일락천애고권유) 한 떨어진 하늘 끝 가다가 지쳐

黃稻日肥鷄鶩喜(황도일비계목희) 누른 벼 날로 살쪄 닭오리 반겨 집오리목

碧梧秋老鳳凰愁(벽오추로봉황수) 벽오동 가을 시듦 봉황새 시름

煙波不返遊吳棹(연파불반유오도) 안개물결 아니 와 오 배로 놀아 노도

雪月期浮訪剡舟(설월기부방섬주) 눈의 달에 띄우려 섬 배로 찾아 땅이름섬

聖代未應終見棄(성대미응종견기) 태평성대 안 맞아 끝내 버려져

莫辭垂白釣淸流(막사수백조청류) 물림 마 흰머리에 맑은 물 낚시


又用東度坡詩韻贈之(우용동도파시운증지)동도파시의운으로 지어주다-李奎報

鮎魚緣竹一何遲(점어연죽일하지) 메기로대에 묶임이어찌더뎌메기점 緣木求魚

慙愧頭銜似昔時(참괴두함사석시) 부끄러 머리 이름 옛 때와 같아 재갈함

只爲別來長飽戀(지위별래장포련) 다만 하니 따로 와 오래 배불려

故應相見更多姿(고응상견갱다자) 맞아서 서로 보니 또 많은 맵시

詩敎雪暈微侵鬢(시교설훈미침빈) 시가 시킨 눈 무리 살짝 든 머리

酒放春紅半蘸肌(주방춘홍반잠기) 술에 내친 봄 붉음 반쯤 담근 살 담글잠

我亦參禪老居士(아역참선로거사) 내 또한 선에 드는 늙어 머문 이

祖師林下舊橫枝(조사림하구횡지) 처음스님 숲 아래 옛 걸친 가지


景福寺路上作(경복사로상작) 경복사 길 위에서-李奎報

一路脩脩繞碧山(일로수수요벽산) 길 하나 쭉쭉 뻗어 푸른 산 둘러

觸松紗帽紸梢端(촉송사모주초단) 솔에 닿은 깁 모자 가지 끝 걸려 댈주

渴窺深井難抔飮(갈규심정난부음) 목말라 깊은 우물 움켜 못 마셔 움킬부

行過幽花試折看(행과유화시절간) 지나가며 그윽 꽃 꺾어도 보네

蜻蜓點過淸溝上(청정점과청구상) 잠자리 흩여 지나 맑은 도랑 위 봇도랑구

蜇蝪遁藏碧草中(철탕둔장벽초중) 도마뱀숨어 감춰 푸른 풀 속에 쏠철 땅거미탕

山路何須僧導去(산로하수승도거) 산길에 어찌해 꼭 스님 끌어 가

磬聲敲處認鴦宮(경성고처인앙궁) 경쇠소리 치는 곳 알아 원앙 궁 두드릴고


渡臨津(도임진) 임진강을 건너며-李奎報

扁舟駕浪疾於飛(편주가랑질어비) 얕은 배 물결 타니 날기보다 더

水氣凄涼逼客衣(수기처량핍객의) 물 기운 싸늘 썰렁 길손 옷에 다 닥칠핍

綠岸有時雙鷺立(록안유시쌍로립) 푸른 언덕 때로는 백로 나란 서

碧天何處一帆歸(벽천하처일범귀) 파란 하늘 어디로 돛배 하나 가

山含紅日低村樹(산함홍일저촌수) 산 머금은 붉은 해 마을 나무 밑

風卷銀濤碎釣磯(풍권은도쇄조기) 바람 말아 은물결 낚시터를 쳐

初出東門尙怊悵(초출동문상초창) 처음 나와 동문엘 외려 슬퍼 해

渡江無奈益依依(도강무내익의의) 강 건너기 어쩌나 더욱 못내 해


又贈金君(우증금군) 또 김군에게 주며-李奎報

珍重金君愛客心(진중김군애객심) 보배 같이 김군은 손님 맘 아껴

見來長共酒杯深(견래장공주배심) 오면 봐 오래 함께 술잔 깊어가

霜秋少睡先鷄起(상추소수선계기) 서리가을 잠 적어 닭 앞서 깨어

露曉多情伴鶴吟(로효다정반학음) 이슬새벽 겨운 정 학 벗해 읊어

俊拔子應三耳湧(준발자응삼이용) 잘빠진 그대 으레 귀 셋이 솟아 샘솟을용

衰遲我已二毛侵(쇠지아이이모침) 늙음 더뎌 내 벌써 다른 털 들어

相逢話舊翻悽悵(상봉화구번처창) 서로 만나 옛 얘기 슬픔 엎치락

挑盡靑燈淚濕襟(도진청등루습금) 심지 다해 푸른 등 눈물 젖은 옷


八月二日(팔월이일) 팔월이일-李奎報

食罷禪房暫啜茶(식파선방잠철다) 밥 다 먹은 절 방서 잠깐 차 마셔 마실철

半山紅日已西斜(반산홍일이서사) 산 중턱에 붉은 해 이미 서쪽엘

坐呼階畔馴人鶴(좌호계반순인학) 앉아 불러 뜰 두둑 사람 따른 학

臥聽門前警盜鵝(와청문전경도아) 누워 들어 문 앞에 도둑 놀랠 새 거위아

萬柳影中南北路(만류영중남북로) 많은 버들 그늘 속 남북으로 길

一溪聲外兩三家(일계성외량삼가) 한 시내 물소리 밖 두어 채 집이

卒然得句聊題壁(졸연득구료제벽) 마침내 시구 얻어 벽에다 쓰니 猝然

寄語闍梨莫羃紗(기어도리막멱사) 말 붙여큰스님께 깁 덮지 마오 망루도 덮을멱


開國寺池上作(개국사지상작) 개국사 연못에서 짓다-李奎報

尋僧散步樹陰中(심승산보수음중) 스님 찾아 거닐어 나무 그늘 속

遇勝留連曲沼東(우승류련곡소동) 빼남 만나 남겨져 굽은 못 동쪽

點水蜻蜓綃翼綠(점수청정초익록) 물을 찍는 잠자리 얇은 날개에

浴波鶒繡毛紅(욕파계칙수모홍) 물결멱물새들새수논털 붉어 비오리계 뜸부기칙

仙人掌重蓮承露(선인장중련승로) 신선은 손바닥 둘 연잎 위 이슬

宮女腰輕柳帶風(궁녀요경류대풍) 궁녀는 허리 간들 버들 띠 바람

出戲游魚休避去(출희유어휴피거) 놀러 나온 물고기 아니 벗어나

蹲池不必是漁翁(준지불필시어옹) 웅크린 못 꼭 아니 고기 잡는 이 웅크릴준


和宿天壽寺(화숙천수사) 천수사에 묵으며 답하다-李奎報

百花相倚鬪輕盈(백화상의투경영) 온갖 꽃 서로 기대 다퉈 살짝 차

準擬同君醉太平(준의동군취태평) 견줘 봐 그대 함께 취해 태평해 헤아릴의

嘉節無端揮淚別(가절무단휘루별) 좋은 철 까닭 없이 눈물로 헤져

亂山何處皺眉行(난산하처추미행) 어지런 산 어디로 주름져 가나 주름추

玉川文字五十卷(옥천문자오십권) 옥천 노동 문자는 오십 권의 글 盧仝

魯望生涯三十楹(노망생애삼십영) 육귀몽 노망 삶은 삼십 칸의 집 陸龜蒙

曾是少年爲客處(증시소년위객처) 일찍이 젊은 나이 나그네 된 곳

逢人問我舊姓名(봉인문아구성명) 사람 만나 날 물어 옛 성과 이름


梅花(매화) 매화-李奎報

庾嶺侵寒拆凍脣(유령침한탁동순) 유령 재 추위 들어 언 입술 터져 곳집유 열탁

不將紅粉損天眞(부장홍분손천진) 않으려 붉은 가루 하늘 참 덜어

莫敎驚落羌兒笛(막교경락강아적) 하겐 마 놀람 떨침 오랑캐 피리

好待來隨驛使塵(호대래수역사진) 잘 기다려 오면서 역 사자 먼지

帶雪更粧千點雪(대설갱장천점설) 두른 눈 다시 꾸며 천 송이 눈꽃

先春偸作一番春(선춘투작일번춘) 봄 앞서 훔쳐 지어 한바탕 봄을 훔칠투

玉肌尙有淸香在(옥기상유청향재) 옥 살결 여태 있어 맑은 향 지녀

竊藥姮娥月裏身(절약항아월이신) 약을 훔친 항아로 달 가운데 몸


和子美成都草堂韻1(화자미성도초당운1) 두보의 성도초당 운에답하며-李奎報

嬾惰無心賦兩鄕(란타무심부량향) 게을러 마음 없어 두 고을 읊기 게으를란타

況堪著論效王符(황감저론효왕부) 하물며지어논해 왕부본받아後漢 王符潛夫論

緬思潘閬三峯好(면사반랑삼봉호) 생각골 반랑의삼봉도좋아가는실면 솟을대문랑

且任陳蕃一室蕪(차임진번일실무) 잠깐 맡겨 진번의 한 칸 집 거칢 우거질번

小塢移花邀客看(소오이화요객간) 작은 둑에 옮긴 꽃 손님 맞아 봐 둑오 맞을요

比隣有酒遣兒沽(비린유주견아고) 이웃 나란 술 있어 아이 보내 사 팔고

何煩點檢人間事(하번점검인간사) 어찌 괴롬 밝혀내 세상살이 일

出處悲歡命矣夫(출처비환명의부) 나선 곳 기쁨 슬픔 해야 할 일이


和子美成都草堂韻2(화자미성도초당운2) 두보의 성도초당 운에답하며-李奎報

不把餘愚汚及溪(불파여우오급계) 안 잡아 어리석음 더럽힌 시내

幽棲租免宦途迷(유서조면환도미) 깊이 살아 세 벗어 벼슬길 헤매

披襟快得風來北(피금쾌득풍래북) 옷깃 헤쳐 시원함 바람 든 북쪽

隱几從敎日向西(은궤종교일향서) 숨은 책상 쫓게 해 해 저문 서쪽

世味淺深曾染指(세미천심증염지) 세상맛 얕고 깊어 일찍 물든 손

人生得失已忘蹄(인생득실이망제) 사람 삶 얻고 잃어 벌써 잊힌 발

半窓林影搖森翠(반창림영요삼취) 창에 반쯤 숲 그늘 숲 푸름 흔들

讀罷書頭落燕尾(독파서두락연미) 읽기 마친 책머리 제비 똥 떨렁


和子美成都草堂韻3(화자미성도초당운3) 두보의 성도초당운에 답하며-李奎報

半捲疎簾獨倚欄(반권소렴독의란) 반쯤 걷힌 성긴 발 난간에 기대

雨聲淙瀉劇驚湍(우성종사극경단) 빗소리쏟아부어 여울이 놀래 물소리종 쏟을사

橫雲尙自暗千嶂(횡운상자암천장) 비낀구름아직도 온 산에 어둑 높고가파른산장

落日不知餘幾竿(낙일부지여기간) 저문 해 아니 알아 낚싯대 몇몇

遇客只愁浮太白(우객지수부태백) 손님 만나 시름은 떠돈 이태백

學仙何苦鍊還丹(학선하고련환단) 신선 배워 어찌해 선단 굽는 일

爲言隣叟好來往(위언린수호래왕) 말하니 이웃 노인 잘도 오고가

除却閑談送老難(제각한담송로난) 빼물려 느긋 얘기 늘그막 보내


聊省驛壁上韻(료성역벽상운) 요성역 벽의 운으로-李奎報

幽谷一宵中酒宿(유곡일소중주숙) 깊은 골짝 하룻밤 술 취해 묵어

聊省半日解驂留(료성반일해참류) 기대 살펴 반나절 푼 안장 머뭇 곁마참

歸來阮籍空長嘯(귀래완적공장소) 돌아온 완적처럼 길게 휘파람 阮籍(210

寂寞相與故倦遊(적막상고권유) 쓸쓸 고요 상여는 놀기도 지쳐 司馬相如

郵吏送迎何日了(우리송영하일료) 역 아전 보냄 맞음 어느 날 끝나 역참우

使華來往幾時休(사화래왕기시휴) 중국사신 오고감 몇몇 때 쉬나

唯予幸是閑行者(유여행시한행자) 오직 내 다행히도 느긋한 길손

來不煩人去自由(래불번인거자유) 오며 아니 괴론 이 가기 저 하기


杜門(두문) 문을 닫아두고-李奎報

爲避人間謗議騰(위피인간방의등) 벗어나려세상을 헐뜯음 끓어 헏뜰을방 오를등

杜門高臥髮鬅鬠(두문고와발붕괄) 문닫고높이 누워 머리 헝클려 머리흐트러질붕

初如蕩蕩懷春女(초여탕탕회춘녀) 처음엔 흐드러져 품어 봄 처녀

漸作寥寥結夏僧(점작료료결하승) 차츰 돼 쓸쓸 고요 매인 여름 중

兒戱牽衣聊足樂(아희견의료족락) 아이 놀이 옷 끌어 넉넉히 즐겨

客來敲戶不須應(객래고호불수응) 손님 와 문 두드려 꼭 반김 않아

窮通榮辱皆天賦(궁통영욕개천부) 막힘 뚫림 피고 짊 다 하늘이 줘

斥鷃何曾羨大鵬(척안하증선대붕) 메추리 어찌 일찍 붕새 부러워 부러워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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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風 冷齋 柳得恭(17481807) 文化 渤海考

 

二十一都懷古詩-檀君朝鮮(이십일도회고시-단군조선) 단군조선-柳得恭

大同江水浸煙薰(대동강수침연훈) 대동강 강물에는 스민 연기 향

王儉城春似畫圖(왕검성춘사화도) 왕검성 성에 봄은 그림 그린 듯

萬里塗山來執玉(만리도산래집옥) 만리 먼 도산에서 옥 지녀옴에 하나라

佳兒尙憶解扶婁(가아상억해부루) 멋진 이 아직 그려 태자 해부루 2세단군

 

二十一都懷古詩-箕子朝鮮1(이십일도회고시-기자조선1) 기자조선-柳得恭

兎山山色碧林沈(토산산색벽림침) 토산에 산 빛깔은 푸른 숲 빠져

翁巾仲裾草露侵(옹건중거초로침) 옹건에 긴 옷자락 풀 이슬 들어

猶似龍年奔卉寇(유사룡년분훼구) 마치 같기 임진년 왜구 쫓던 때

松風閑作管絃音(송풍한작관현음) 솔바람 느긋 지어 관과 줄 울림

 

二十一都懷古詩-箕子朝鮮2(이십일도회고시-기자조선2) 기자조선-柳得恭

麂眼籬斜井字阡(궤안리사정자천) 노루눈 울비스듬 정자 꼴두렁 큰노루궤두렁천

一村桑柷望芊芊(일촌상축망천천) 한 마을 뽕나무 축 바래 우거져 악기이름축

誰知遼海蒼茫外(수지료해창망외) 누가 알아 먼 바다 아득한 바깥

耕種殷人七十田(경종은인칠십전) 갈아 심어 은나라 일흔의 밭에

 

二十一都懷古詩-衛滿朝鮮1(이십일도회고시-위만조선1) 위만조선-柳得恭

魋結人來漢祖年(추결인래한조년) 북상투 튼 사람 와 한고조 때에 북상투추()

同時差擬趙龍川(동시차의조룡천) 같은 때 어긋 헤어 용천의 조타

箕王可恨無分別(기왕가한무분별) 기왕에 한이 되니 가림이 없어

塡補梟雄博士員(전보효웅박사원) 메워 줘 못된 영웅 박사 벼슬에

 

二十一都懷古詩-衛滿朝鮮2(이십일도회고시-위만조선2) 위만조선-柳得恭

樂浪城外水悠悠(낙랑성외수유유) 낙랑성 성 밖으로 물은 아득히

誰識萩苴漢代侯(수식추저한대후) 누가 알아 추저후 한나라 제후

不及當年津吏婦(불급당년진리부) 아니 미쳐 그때의 나루터 아내麗玉霍里子高

箜篌一曲艶千秋(공후일곡염천추) 공후인 한 가락은 곱기가 천년 箜篌引

 

二十一都懷古詩-(이십일도회고시-) -柳得恭

當年枉信漢亡人(당년왕신한망인) 그때는 잘못 믿어 한을 버린 이

麥秀殷墟又一春(맥수은허우일춘) 보리 팬 은나라 터 또 하나 봄이 麥秀之嘆

可笑蒼黃浮海日(가소창황부해일) 우스워 허둥지둥 바다 떠돈 날

船頭猶載善花濱(선두유재선화빈) 뱃머리 외려 태워 좋은 꽃 물가 宮女

 

二十一都懷古詩-(이십일도회고시-) -柳得恭

大關嶺外大東洋(대관령외대동양) 대관령 재 너머로 큰 동쪽바다

蘂國山川蔭搏桑(예국산천음박상) 꽃술나라 산 시내 해 뜨는 그늘 扶桑

野老不知興廢事(야로부지흥폐사) 들 늙은이 모르니 흥해 망한 일

田間閑拾古銅章(전간한습고동장) 밭 사이 느긋 주워 옛날 구리 글

 

二十一都懷古詩-(이십일도회고시-) -柳得恭

昭陽江水接滄津(소양강수접창진) 소양강 강물에는 찬 나루 붙어

通道碑殘沒棘榛(통도비잔몰극진) 통도비 비석 깨져 가시덤불에

東史未窮班椽志(동사미궁반연지) 동사강목 못 다해 반고 한서를

堯時君命漢時臣(요시군명한시신) 요순 때 임금 명해 한나라 신하 彭吳

 

二十一都懷古詩-高句麗1(이십일도회고시-고구려1) 고구려-柳得恭

弧矢橫行一九年(호시횡행일구년) 활 화살 질러 다녀 열아홉 해를

麒麟寶馬去朝天(기린보마거조천) 기린 말 보배론 말 하늘조회 가

千秋覇氣凉于水(천추패기량우수) 천년의 뚫을 기운 물보다 싸늘

墓裏消沈白玉鞭(묘리소침백옥편) 무덤 속 숨어빠진 하얀 옥 채찍

 

二十一都懷古詩-高句麗2(이십일도회고시-고구려2) 고구려-柳得恭

昔日夫餘挾彈兒(석일부여협탄아) 옛날에 부여나라 활을 낀 아이

東明王子號琉璃(동명왕자호유리) 동명왕 임금아들 유리라 불러

數聲黃鳥啼深樹(수성황조제심수) 몇몇 소리 꾀꼬리 깊은 숲 울어

猶似禾姬罵雉姬(유사화희매치희) 마치 같아 화히가 치희 꾸짖어 黃鳥歌

 

二十一都懷古詩-高句麗3(이십일도회고시-고구려3) 고구려-柳得恭

鷄立山前滄戰塵(계립산전창전진) 계립산 산 앞으로 싸늘한 먼지

丹旌依戀沁園春(단정의련심원춘) 붉은 명정 그리움 뜰에 스민 봄

平生慷慨愚溫達(평생강개우온달) 한 삶을 슬피 받쳐 어리석 온달

自是龍種可笑人(자시용종가소인) 이로부터 왕손을 비웃을 사람

 

二十一都懷古詩-高句麗4(이십일도회고시-고구려4) 고구려-柳得恭

遼海歸旌數片紅(료해귀정수편홍) 요하에 돌린 깃발 몇 조각 붉어

湯湯薩水捲沙蟲(탕탕살수권사충) 넘실넘실 살수에 쓸린 모래알

乙支文德眞才士(을지문덕진재사) 을지문덕 참으로 재주 있는 이

倡五言語冠大東(창오언어관대동) 불렀던 오언시는 동방에 으뜸

 

二十一都懷古詩-高句麗5(이십일도회고시-고구려5) 고구려-柳得恭

句麗錯料下句麗(구려착료하구려) 고구려 잘못 헤어 하구려라며

駐蹕山靑老六卿(주필산청로육경) 주필산 산 푸르름 늙은 육경에

爲問西京紅拂妓(위문서경홍불기) 물어보니 서경에 떨치는 기생

虬髥客是莫離支(규염객시막리지) 이무기 수염한 이 바로 막리지

 

二十一都懷古詩-報德(이십일도회고시-보덕) 보덕-柳得恭

春草萋萋金馬渚(춘초처처금마저) 봄풀이 우거지니 금마 물가에 益山

句麗南渡有荒域(구려남도유황역) 고구려 남쪽 건너 거친 땅 있어

未知欲報誰家德(미지욕보수가덕) 아니 앎 갚으려니 누구네 덕을

可惜英風劍大兄(가석영풍검대형) 아까운 영웅 풍모 검모잠 대형

 

二十一都懷古詩-沸流(이십일도회고시-비류) 비류-柳得恭

劍峰靑樣一十二(검봉청양일십이) 칼날 봉 푸른 모양 열두 봉우리

遊車衣川逝湯湯(유거의천서탕탕) 가는 수레 옷 시내 물 흘러 넘실

朱蒙不是眞豪傑(주몽불시진호걸) 주몽은 아니어서 참다운 호걸

欺負酸寒喫菜王(기부산한끽채왕) 속여 지워 시고 찬 나물먹는 왕

 

二十一都懷古詩-百濟1(이십일도회고시-백제1) 백제-柳得恭

歌樓舞殿向江開(가루무전향강개) 노래 누각 춤 전각 강 보고 열려

半月城頭月影來(반월성두월영래) 반월성 성 머리에 달그림자 와

紅毾㲪寒眠不得(홍탑등한면부득) 붉은담요 찬담요 잠을못 들어담요탑 모직물등

君王愛在自溫臺(군왕애재자온대) 임금님 아낌 있어 자온대 바위

 

二十一都懷古詩-百濟2(이십일도회고시-백제2) 백제-柳得恭

落日扶蘇數點烽(낙일부소수점봉) 지는 해 부소산에 몇 군데 봉화

天寒白馬怒濤洶(천한백마노도흉) 날씨 찬데 백마강 세찬 큰 물결

奈使不用成忠策(내사불용성충책) 어찌하여 아니 써 성충의 꾀함

却恃江中護國龍(각시강중호국룡) 되레 믿어 강 속에 나라 지킬 용

 

二十一都懷古詩-百濟3(이십일도회고시-백제3) 백제-柳得恭

雨冷風凄去國愁(우랭풍처거국수) 비 찬데 바람 썰렁 나라 떠 시름

巖花落盡水悠悠(암화락진수유유) 바위 꽃 다 떨어져 물은 아득해 落花巖

泉臺寂寞誰相伴(천대적막수상반) 저승길 고요 쓸쓸 뉘 서로 함께

同是江南歸命侯(동시강남귀명후) 이리 같기 강남땅 귀명후 신세

 

二十一都懷古詩-百濟4(이십일도회고시-백제4) 백제-柳得恭

浴槃零落涴臙脂(욕반령락완연지) 씻고 즐겨 떨어져 붉은빛흘러 물굽이쳐흐를완

石室藏書事何疑(석실장서사하의) 돌로 된 방 감춘 책 일 어찌 의심

時見荒原秋草裏(시견황원추초리) 때론 보여 거친 들 가을 풀 속을

行人駐馬讀唐碑(행인주마독당비) 가던 이 말을 세워 당 빗돌 읽어

 

二十一都懷古詩-彌鄒忽(이십일도회고시-미추홀) 미추홀-柳得恭

浿上悲歌別弟兄(패상비가별제형) 패수 위 슬픈 노래 형제 헤어져

登山臨水汨南征(등산림수골남정) 산 올라 물 다가가 빠진 남쪽엘 빠질골

三韓地劣姜肱被(삼한지열강굉피) 삼한에 땅이 못해 강굉에 미침

休築崢嶸恚忿城(휴축쟁영에분성) 쌓지 마라 가파른 성낼 성일랑

 

二十一都懷古詩-新羅1(이십일도회고시-신라1) 신라-柳得恭

辰韓六府澹秋煙(진한육부담추연) 진한 땅 육부마을 가을연기 맑아서

徐苑繁華想可憐(서원번화상가련) 서라벌 한껏 빛남 생각하니 즐거워

萬萬波波加號笛(만만파파가호적) 많고 많은 물결에 붙여 불린피리에萬波息笛

橫吹三姓一千年(횡취삼성일천년) 비껴 불어 세 성씨 천년 왕업 누렸네朴昔金

 

二十一都懷古詩-新羅2(이십일도회고시-신라2) 신라-柳得恭

幾處靑山幾佛幢(기처청산기불당) 몇몇 곳 푸른 산에 몇몇 절 깃발 幢竿支柱

荒池雁鴨不成雙(황지안압불성쌍) 거친 못 기럭 오리 짝을 못 이뤄

春風曲口松花屋(춘풍곡구송화옥) 봄바람 굽은 어귀 송홧가루 집

時聽寥寥短尾狵(시청요요단미방) 때론 들려 쓸쓸이 짧은 꼬리 개 삽살개방

 

二十一都懷古詩-新羅3(이십일도회고시-신라3) 신라-柳得恭

料峭風中過上元(료초풍중과상원) 꽤 세찬 바람 속에 대보름 지내 가파를초

忉忉怛怛踏歌暄(도도달달답가훤) 걱정에두려움에 밟아 노래해 근심할도 슬플달

年年糯飯無人祭(년년나반무인제) 해마다 찹쌀밥에 제사 안 지내 찰벼나

一陣寒鴉噪別村(일진한아조별촌) 한 떼 찬 갈까마귀 딴 마을 시끌 떠들썩할조

 

二十一都懷古詩-新羅4(이십일도회고시-신라4) 신라-柳得恭

金鰲山色晩蒼蒼(금오산색만창창) 금오산 산 빛깔은 저묾에 푸릇

渲染鷄林一半霜(선염계림일반상) 빛바랜 계림 숲은 절반이 서리 바림선

萬疊伽倻人去後(만첩가야인거후) 만 겹의 가야산은 사람 떠난 뒤

至今紅葉上書莊(지금홍엽상서장) 이제껏 붉은 잎은 글 올린 별장

 

二十一都懷古詩-新羅5(이십일도회고시-신라5) 신라-柳得恭

城南城北蔚藍峯(성남성북울람봉) 성 남쪽 성의 북쪽 쪽빛 봉우리

落日昌林寺裏鐘(낙일창림사리종) 지는 해 뻗히는 숲 절 안 종소리

閑補東京書畵傳(한보동경서화전) 느긋 채워 서울에 글 그림 전해

金生碑版率居松(김생비판솔거송) 김생의 빗돌 뜬 글 솔거 솔 그림 拓本 搨本

 

二十一都懷古詩-新羅6(이십일도회고시-신라6) 신라-柳得恭

三月初旬去踏靑(삼월초순거답청) 삼월 달 초순에는 답청놀이 가

蚊川花柳鎖冥冥(문천화류쇄명명) 문천시내 꽃 버들 잠겨 어두워

流觴曲水傷心事(유상곡수상심사) 잔 띄운 구비 물에 마음 다친 일

休上春風鮑石亭(휴상춘풍포석정) 오름 마라 봄바람 포석정에를

 

二十一都懷古詩-溟州(이십일도회고시-명주) 명주 何瑟羅-柳得恭

鷄林眞骨大王親(계림진골대왕친) 계림의 진골로서 임금의 친족 無月郞

九雉分公左海濱(구치분공좌해빈) 아홉으로 나누어 좌해 물가에

最憶如花池上女(최억여화지상녀) 가장 그려 꽃 같아 못 위에 여자

魚書遠寄倦遊人(어서원기권유인) 고기 글 멀리 부쳐 쉬며 노는 이

 

二十一都懷古詩-金冠(이십일도회고시-금관) 금관-柳得恭

訪古伽倻咽竹枝(방고가야열죽지) 찾아든 옛 가야에 죽지사 목메

婆娑塔影虎溪湄(파사탑영호계미) 파사탑의 그림자 호계의 물가

回省落日沈西海(회성락일침서해) 돌아보니 지는 해 서해로 빠져

正似紅旗入浦時(정사홍기입포시) 꼭 같기 붉은 깃발 갯가에 들 때

 

二十一都懷古詩-大伽倻(이십일도회고시-대가야) 대가야-柳得恭

千載高山流水音(천재고산류수음) 천년을 높은 산에 흐른 물소리

冷冷一十二絃琴(랭랭일십이현금) 차갑게 열두 줄에 가야금 소리 于勒

凄凉往事無人問(처량왕사무인문) 썰렁하게 지난 일 물을 이 없어

紅葉迎雪作錦林(홍엽영설작금림) 붉은 잎 눈 맞이해 비단 숲 이뤄

 

二十一都懷古詩-甘文(이십일도회고시-감문) 감문-柳得恭

獐姬一去野花香(장희일거야화향) 장부인 한 번 가니 들꽃이 향긋

埋沒殘碑古孝王(매몰잔비고효왕) 묻혀진 깨진 빗돌 옛 효왕 빗돌

三十雄兵曾大發(삼십웅병증대발) 서른의 씩씩 병사 일찍 큰 나섬

蝸牛角上鬪千場(와우각상투천장) 달팽이 뿔 위에서 천 번은 싸워

 

二十一都懷古詩-于山(이십일도회고시-우산) 우산-柳得恭

春風五兩邏帆廻(춘풍오량라범회) 봄바람에 다섯 짝 돛 둘러 돌아 순행할라

海上桃花寂寞開(해상도화적막개) 바다 위에 복사꽃 쓸쓸히 피어

唯見可之登岸臥(유견가지등안와) 오직 보여 가게 돼 언덕에 누워

更無獅子撲人來(갱무사자박인래) 다신 없어 사자로 사람 잡을 일

 

二十一都懷古詩-耽羅(이십일도회고시-탐라) 탐라-柳得恭

三乙那域瘴霧開(삼을나역장무개) 삼을나 땅에서는 독 안개 피어 高夫良

耽津江口峭帆廻(탐진강구초범회) 탐진강 강어귀에 산뜻 돛 돌아

厥初還有毛興穴(궐초환유모흥혈) 그 비롯 되레 있어 모흥혈 구멍 三姓穴

何必他人筍下來(하필타인순하래) 어찌 꼭 다른 사람 죽순 아래 와

 

二十一都懷古詩-後百濟(이십일도회고시-후백제) 후백제-柳得恭

 

佳事悠悠疸背翁(가사유유달배옹) 좋은 일 아득하니 등창 난 노인 甄萱황달달

繽紛紅葉古城東(빈분홍엽고성동) 어지러운 붉은 잎 옛 성 동쪽에

可憐探穀金山寺(가련탐곡금산사) 가엽게 곡식 찾던 금산사에서

亡國何關絶影驄(망국하관절영총) 나라 잃어 어쩐 일 절영총 명마 총이말총

 

二十一都懷古詩-泰封(이십일도회고시-태봉) 태봉-柳得恭

烏鵲飛邊認古宮(오작비변인고궁) 까막까치 나는 곁 옛 궁궐 알아

凄凉霸業黑金東(처량패업흑금동) 쓸쓸 썰렁 임금 일 흑금의 동쪽

設弧猶記端陽節(설호유기단양절) 활 세워 여태 기억 단오 날 생일 弓裔

未作鷄林老薛公(미작계림로설공) 아니 되니 계림의 늙은 설공이 孟嘗君

 

二十一都懷古詩-高麗1(이십일도회고시-고려1) 고려 개성松都-柳得恭

荒凉二十八王陵(황량이십팔왕릉) 거칠어 썰렁하기 이십팔 왕릉

風雪年年暗漆燈(풍설년년암칠등) 바람눈에 해마다 어둔 옻칠 등

進鳳山中紅躑躅(진봉산중홍척촉) 진봉산 산 가운데 붉은 진달래

春來猶自發層層(춘래유자발층층) 봄이 와 외려 절로 겹겹이 피어

 

二十一都懷古詩-高麗2(이십일도회고시-고려2) 고려-柳得恭

鳳輦逶遲降帝姬(봉련위지강제희) 봉황수레 구불 더뎌 내린 임금 딸

春寒氈帳祓羊脂(춘한전장불양지) 봄날추위 담요 휘장 양지 액막이

浮生白眼應難較(부생백안응난교) 떠돈 삶에 째려봄에 맞이 어려워

紅淚先浩芍藥枝(홍루선호작약지) 붉은 눈물 먼저 흥건 작약 가지에

 

二十一都懷古詩-高麗3(이십일도회고시-고려3) 고려-柳得恭

結識中朝趙子仰(결식중조조자앙) 맺어 안 중국조정 조자앙과도 趙孟頫

風流都尉瀋陽王(풍류도위심양왕) 풍류의 도위벼슬 심양왕이 돼 나라 封爵

留醉蘆溝萬卷堂(류취로구만권당) 남아취해 갈대밭 만권당에서충선왕燕京書齋

敎人提學征東省(교인제학정동성) 사람들공부시켜정동성에서나라의開京官廳

 

二十一都懷古詩-高麗4(이십일도회고시-고려4) 고려-柳得恭

銀燭前朝宰相家(은촉전조재상가) 은빛 촛불 앞 왕조 재상하던 집

廢園風雨土墻斜(폐원풍우토장사) 버려진 뜰 비바람 흙 담 기울어

牧丹孔雀凋零下(목단공작조령하) 모란꽃 공작새는 시들어 떨렁

黃蝶雙雙飛菜花(황접쌍쌍비채화) 노랑나비 짝지어 나물 꽃 날아 十字花

 

二十一都懷古詩-高麗5(이십일도회고시-고려5) 고려-柳得恭

凋落潮生急水門(조락조생급수문) 시든 떨침 물 밀려 수문 서둘러

年年商船到江村(연년상선도강촌) 해마다 장삿배가 강마을 닿아

攢峰十二巫山似(찬봉십이무산사) 모인 봉 열두 개는 무산 같아서

只少三聲墜淚猿(지소삼성추루원) 다만 적은 세 소리 눈물 원숭이

 

二十一都懷古詩-高麗6(이십일도회고시-고려6) 고려-柳得恭

天壽南門春暮時(천수남문춘모시) 천수산 남쪽 문에 봄이 저물 때

丹樓碧閣影忝差(단루벽각영첨차) 붉은 루 푸른 전각 그림자 어긋

風簔雨笠何村客(풍사우립하촌객) 바람 풀옷 비 삿갓 어찌 시골 손

終日沈吟看鷺鶿(종일침음간로자) 날 다해 잠겨 읊어 물새들 살펴 가마우지자

 

二十一都懷古詩-高麗7(이십일도회고시-고려7) 고려-柳得恭

紫霞洞裏草菲菲(자하동리초비비) 자하동 골짝 안은 풀이 시들어 엷을비

不見宮姬幷馬歸(불견궁희병마귀) 아니 보인 궁녀에 말과 돌아가

爲是辛王行樂地(위시신왕행락지) 이리 돼 신왕으로 즐기던 땅이 辛旽

至今猶有燕雙飛(지금유유연쌍비) 이제껏 여태 있어 제비 짝 날아

 

二十一都懷古詩-高麗8(이십일도회고시-고려8) 고려-柳得恭

可憐靑木未藏龍(가련청목미장룡) 가엽기 푸른 나무 아니 숨은 용

蕭瑟千年鵠嶺松(소슬천년곡령송) 소슬바람 천년의 곡령 소나무

鐵犬寥寥向東吠(철견요요향동폐) 쇠 개는 쓸쓸해서 동쪽엘 짖어

白雲飛盡見三峰(백운비진견삼봉) 흰 구름 다 날려가 삼봉이 보여

 

始到加平群公餘雜錄(시도가평군공여잡록) 가평군에서-柳得恭

人學牛音却敎牛(인학우음각교우) 사람 배워 소 울음을 되레 소 부려

煙嵐深處喝牟牟(연람심처갈모모) 연기남기 깊은 골에 소 소리 외쳐

碧峰滿種朱黃黍(벽봉만종주황서) 푸른 봉에 가득 심어 눌 붉은 기장

夏旱秋霜也不愁(하한추상야불수) 여름가뭄 가을서리 걱정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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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仲 燕巖 朴趾源(17371805) 潘南 熱河日記

 

映帶亭雜詠 山行(영대정잡영 산행) 산행 一作山耕 燕巖集 4-朴趾源

叱牛聲出白雲邊(질우성출백운변) 소 모는 소리 질러 흰 구름 가에

危嶂鱗塍翠揷天(위장린승취삽천) 가파른 산 비늘 논 하늘을 갈아

牛女何須烏鵲渡(우녀하수오작도) 견우직녀 어찌 꼭 오작교 건너

銀河西畔月如船(은하서반월여선) 은하수 서쪽 물가 달이 배 인걸

 

映帶亭雜詠 燕巖憶先兄(연암억선형) 돌아가신 형을 그리며 燕巖集 4

我兄顔髮曾誰似(아형안발증수사) 우리 형님 얼굴은 누굴 닮으니

每憶先君看我兄(매억선군간아형) 아버지 그리울 때 형을 보았네

今日思兄何處見(금일사형하처견) 이제는 형을 그려 어디서 보나

自將巾袂映溪行(자장건몌영계행) 스스로 옷매 만져 시내에 비춰

 

映帶亭雜詠 一鷺(일로) 한 마리 해오라기一作道中乍晴燕巖集4-朴趾源

一鷺踏柳根 (일로답류근) 한 마리 해오라기 버들 뿌리에

一鷺立水中 (일로립수중) 한 마리 해오라기 물 가운데 서

山腹深靑天黑色(산복심청천흑색) 산 중턱 푸름 깊어 하늘은 검어

無數白鷺飛飜空(무수백로비번공) 셀 수 없는 흰 백로 하늘을 날아

頑童騎牛亂溪水(완동기우란계수) 어린 아인 소 태워 콸콸 시냇물

隔溪飛上美人虹(격계비상미인홍) 시내 너머 나래 편 고운 무지개

 

映帶亭雜詠 田家(전가) 시골집 燕巖集 4-朴趾源

翁老守雀坐南陂(옹로수작좌남피) 늙은이 참새 지켜 앉은 남쪽 둑

粟拖狗尾黃雀垂(속타구미황작수) 조 이삭 개꼬리에 노란 참새들

長男中男皆出田(장남중남개출전) 맏이 둘째 아들들 다 밭에 나가

田家盡日晝掩扉(전가진일주엄비) 농삿집 하루 내내 사립 닫힌 낮

鳶蹴鷄兒攫不得(연축계아확부득) 솔개 채려 병아리 움키질 못해

群鷄亂啼匏花籬(군계란제포화리) 닭 무리 울어 시끌 박꽃 울타리

小婦戴棬疑渡溪(소부대권의도계) 함지 인 젊은 아낙 내 건널 걱정

赤子黃犬相追隨(적자황견상추수) 벌거숭이 누렁이 쫓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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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規 樊巖 蔡濟恭(17201799)文肅 平康 樊巖集번암체재공시서화 三絶


宿海山亭(숙해산정) 해산정에 묵으며-蔡濟恭

暮倚海棠喚小船(모의해당환소선) 저묾 기댄 해당화 작은 배 불러

數家楡柳海雲冥(수가유류해운명) 몇몇 집 느릅 버들 바다구름에

鵬邊天去含吳楚(붕변천거함오초) 붕새 떠난 하늘 곁 오 초나라가

鼇頂樓飛抗月星(오정루비항월성) 자라머리 루 날아 달과 별 들어

蓬島靈氣風生腋(봉도영기풍생액) 봉래 섬 신령기운 겨드랑 바람

縣城空翠雨連汀(현성공취우련정) 고을 성 하늘 푸름 비 이은 물가

三珠咫尺鸞笙過(삼주지척란생과) 삼주수 가까운 곁 난 피리 지나 三珠樹

不用絃歌五夜聽(불용현가오야청) 안 써도 악기노래 밤 새워 들어


雨還月精寺(우환월정사) 빗속에 돌아본 월정사-蔡濟恭

淋漓暮雨暗山椒(임리모우암산초) 젖어 스민 저녁 비 어둔 산 분디

霧裏巖肩更覺遙(무리암견갱각요) 안개 속 바위자락 언뜻 봬 멀어

幽澗水生知幾尺(유간수생지기척) 그윽 골짝 물 불어 몇 잔지 알아

來時不辨去時橋(내시불변거시교) 올 때는 아니 알아 갈 때 다리를


高城道中遇雨(고성도중우우) 고성으로 가다가 비를 만나-蔡濟恭

積水冥濛天倒垂(적수명몽천도수) 쌓인 물 그윽 흐릿 하늘 쏟아져

海棠沙岸雨淋旗(해당사안우림기) 해당화 모래언덕 비 뿌린 깃발

汀鷗莫挽行人騎(정구막만행인기) 물 갈매기 잡지 마 말 탄 가는 이

南石書來怪我志(남석서래괴아지) 남석랑 글에 오니 내 뜻 못 믿어 四國仙

4國仙: 永郞 述郞 南石郞 安祥郞


永郞湖(영랑호) 영랑호-蔡濟恭

竝海雲屛曲曲奇(병해운병곡곡기) 바다 나란 구름 병풍 굽이굽이 뛰어나 潟湖

練痕飜動夕陽時(연흔번동석양시) 누인 흉터 엎어 꿈틀 저녁볕이 저물 때

仙軿漠漠來何日(선병막막래하일) 신선수레아득하여오려니어느 날이 거마소리병

煙雨春波到處疑(연우춘파도처의) 안개비에 봄 물결에 가는 곳곳 모르리


鳴沙路中遺興(명사로중유흥) 모래 울린 길 가운데 흥이 남아서-蔡濟恭

如畵如眞更絶奇(여화여진갱절기) 그림 같아 참 같아 다시 끝내줘 :肖像

乍晴乍雨巧相宜(사청사우교상의) 언뜻 개여 언뜻 비 예뻐 서로들

縈沙弱草煙無際(영사약초연무제) 모래 얽힌 여린 풀 안개 끝없어

滿地飛花馬不疑(만지비화마불의) 땅 가득 날리는 꽃 말마저 알아

蓬島書憑靑鳥歸(봉도서빙청조귀) 봉래 섬 글 보자면 푸른 새가 와

鏡湖詩許白鷗知(경호시허백구지) 거울 호수 시 되니 흰 갈매기 앎

鏡湖猶護燒丹竈(경호유호소단조) 경호에 외려 지켜 단사 불 부엌

楊子遺墟有所思(양자유허유소사) 양자강 남긴 터에 생각이 있어


宿洛山寺感吟(숙낙산사감음) 낙산사에 묵으며 느낌에 읊어-蔡濟恭

黃昏百感倚禪樓(황혼백감의선루) 어스름 온갖 느낌 선루에 기대

奎宿茫茫海月留(규수망망해월류) 규수 별 아득 멀어 바다 달이 떠

當日靑蛾皆白髮(당일청아개백발) 그날에 젊은 미인 다들 흰머리

不知誰唱大堤謳(부지수창대제구) 알지 못해 뉘 불러 큰 둑의 노래


訪鏡浦(방경포) 경포대를 찾아서-蔡濟恭

宮袍染盡五峯霞(궁포염진오봉하) 궁궐 옷 다 물들여 다섯 봉 노을

蓬島歸程竝海賖(봉도귀정병해사) 봉래 섬 돌아온 길 바다 곁 멀리

王事三淸繙竹簡(왕사삼청번죽간) 임금 일 삼청궁에 죽간 뒤적여

仙期終日倚桃花(선기종일의도화) 신선 맺어 날 다해 기댄 복사꽃

疎松馬首溶溶鏡(소송마수용용경) 성긴 솔에 말머리 흐르는 거울

細雨鷗邊淡淡沙(세우구변담담사) 가랑비 갈매기 곁 물 엷은 모래

待到抽簪來結社(대도추잠래결사) 기다려 비녀 뽑아 와서 살기를

應令道氣屬全家(응령도기속전가) 영 맞춰 도의 기운 온 집안 엮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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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之 豹菴 姜世晃(17131791)憲靖 晉州 豹菴遺稿

 

桃花圖(도화도) 복사꽃 그림-姜世晃

今歲春寒甚(금세춘한심) 올해는 봄이 너무나 추워

桃花晩未開(도화만미개) 복사꽃 늦어 아니 피었네

從敎庭樹寂(종교정수적) 따라 고요해 뜰에 나무는

花向筆頭栽(화향필두재) 꽃을 바라니 붓 머리 피워


鳩杖(구장) 비둘기 지팡이-姜世晃

杖上有一鳥(장상유일조) 지팡이 위에 비둘기 하나

不飛又不鳴(불비우불명) 날지도 못해 울지도 않아

身被白雪衣(신피백설의) 몸에 입으니 하얀 눈 옷을

如一東土喪(여일동토상) 하나로 같아 나라의 국상


林居秋景圖(임거추경도) 숲에 사는 가을정경-姜世晃

樹屋依山僻(수옥의산벽) 나무사이 오두막 산 기대 외져

千林照水殷(천림조수은) 커다란 숲 비친 물 은은하기도

羨殺漁舟子(선살어주자) 부러워라 죽이게 고깃배 어부

攬盡好溪山(람진호계산) 손에 쥐기 다 했네 좋은 시내 산


竹圖(죽도) 대나무 그림-姜世晃

疑帶簫簫雨(의대소소우) 둘러나는지 소리소리 비

仍生颯颯風(잉생삽삽풍) 거듭해 일어 바람소리가

渭川千畝翠(위천천무취) 위수 시내에 천 이랑 푸름

幼入小扇中(유입소선중) 그윽이 들어 작은 부채에


畵扇樓題畵詩1(화선루제화시1) 화선루 그림에 지어-前面圖-姜世晃

橋樓獨臥起(교루독와기) 다리 누각에 누워 일어나

終朝面冠岳(종조면관악) 아침 다하게 관악산 바래

不是兩不厭(불시양불염) 둘이 아니니 싫지 않아서

別無他可樂(별무타가락) 달리 없어라 즐길 만 한건


畵扇樓題畵詩2(화선루제화시2) 화선루 그림에 지어-北眺圖-姜世晃

僑居條已久(교거조이구) 따로 산지가 이미 오래라

尙有京城戀(상유경성련) 오히려 나니 서울 그리움

南山與三角(남산여삼각) 남산 더불어 삼각산이라

時登屋後見(시등옥후견) 때때로 올라 집 뒤를 본다


畵扇樓題畵詩3(화선루제화시3) 화선루 그림에 지어-東面圖-姜世晃

小閣依翠柳(소각의취류) 작은 누각에 기댄 듯 버들

柳外雙池明(유외쌍지명) 버들 바깥 두 연못은 밝아

遠看山下村(원간산하촌) 멀리 보이는 산 아래 마을

澹澹炊煙生(담담취연생) 가만히 불 때 연기 피어나


畵扇樓題畵詩4(화선루제화시4) 화선루 그림에 지어-西面圖-姜世晃

樓西何所有(누서하소유) 누각 서쪽에 무엇이 있나

粉牆葡萄架(분장포도가) 꾸며진 담엔 포도덩굴로

有時携杖登(유시휴장등) 때로는 올라 지팡이 짚고

逍遙栗林下(소요율림하) 거닐어보니 밤 숲 아래를


畵扇樓題畵詩5(화선루제화시5) 화선루 그림에 지어-側面圖-姜世晃

晩外郊壓養病軀(만외교압양병구) 늙어선 들에 눌러 앓는 몸 돌봐

高樓縹緲俯銅湖(고루표묘부동호) 높은 누대 아득해 동정호 굽어

滄波一帶千株柳(창파일대천주류) 푸른 물결 쭉 둘러 천 그루 버들

宛是江南春意圖(완시강남춘의도) 이대로 강남이라 봄 뜻한 그림


西山(서산) 서산-姜世晃

世外忽驚超穢累(세외홀경초예루) 세상 밖 문득 놀라 세상 누 벗어

眼中無處着塵氛(안중무처착진분) 눈에 하나 없으니 티끌 기 붙음

敢將詩畵形容得(감장시화형용득) 어찌 앞에 시 그림 꾸며 얻을까

癡坐橋頭送夕曛(치좌교두송석훈) 멍히 앉아 다리에 보낸 석양빛


孤竹城1(고죽성1) 고죽성-姜世晃

山腰粉堞勢周遭(산요분첩세주조) 산허리 분 성가퀴 두루 뻗히고

灤水東來自作濠(란수동래자작호) 난하 물 동쪽 흘러 절로 해자 돼

皇帝行宮何壯麗(황제행궁하장려) 임금님 다닌 궁궐 얼마나 멋져

古賢遺像尙淸高(고현유상상청고) 옛 어짊 남긴 모습 오히려 나아


★孤竹城2(고죽성2) 고죽성-姜世晃

林開落照明雕檻(임개낙조명조함) 숲에 펼친 지는 빛 난간을 밝혀

岸曲澄波閣小舠(안곡징파각소도) 언덕 굽 맑은 물결 거룻배 멎어

向晩登車更回頭(향만등거갱회두) 늦게야 오른 수레 고개 또 돌려

緇塵多愧滿征袍(치진다괴만정포) 세속 티끌 부끄럼 가는 옷 가득


山響齋(산향재) 산향재-姜世晃

隱隱幽巖曲曲泉(은은유암곡곡천) 숨겨 논 깊은 바위 굽이굽이 샘

石林茆屋兩三椽(석림묘옥양삼연) 돌에 수풀 띠 집에 두어 서까래

平生不盡江山興(평생부진강산흥) 한 삶 살며 다 못한 강산의 흥을

只是丹靑已可憐(지시단청이가련) 다만 이 단청 그림 가엽기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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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幻松雲 四溟堂 惟政 任應奎(15441610)慈通弘濟尊者豊川

 

贈海運(증해운) 해운에게-四溟大師

一夜聯床話(일야련상화) 밤 하나 이어 상에 이야기 잇달련

鶴峰秋晩時(학봉추만시) 학의 봉우리 가을 늦은 때

重逢又何日(중봉우하일) 다시 만나면 또 어느 날이

世事杳難期(세사묘난기) 세상일 어둑 맺기 어려워 어두울묘


己丑橫罹逆獄(기축횡리역옥) 기축년에 뜻밖에 역옥에 걸려-四溟大師

蛾嵋山頂鹿(아미산정록) 아미산이라 꼭대기 사슴

擒下就轅門(금하취원문) 사로잡혀서 군문에 왔네 끌채원

解網放還去(해망방환거) 그물을 풀어 놓아 달아나

千山萬樹雲(천산만수운) 모든 산 구름 모든 나무에


題降仙亭2(제강선정2) 강선정에 쓰다-四溟大師

白首關河夜(백수관하야) 하얀 머리에 변방 물가 밤

傷心遠客愁(상심원객수) 다친 마음에 먼 길손 시름

相思無限意(상사무한의) 서로 생각에 끝없는 뜻이

明月獨登樓(명월독등루) 밝은 달 아래 홀로 누 올라


次鄭子韻(차정자운) 정자의 운을 빌어-四溟大師

歲晏迷歸路(세안미귀로) 해는 늦은데 갈 길을 잃어 늦을안

行狀問鄭公(행장문정공) 가는 길 글을 정공께 물어

鐘山杳天末(종산묘천말) 종산은 아득 하늘 먼 끝에

衰鬢又秋風(쇠빈우추풍) 여윈 귀밑 털 가을바람에


贈靈雲長老(증령운장로) 영운 장로에게 주며-四溟大師

千魔萬難看如幻(천마만난간여환) 많은 마귀 어려움 허깨비로 봬 변할환

直似灘頭撤轉船(직사탄두철전선) 같기는 여울머리 배 거둬 돌림 거둘철

呑透金剛竝栗剳(탄투금강병률답) 삼켜 뚫어 쇠굳음 함께 밤 꺼내 낫답

方知父母未生前(방지부모미생전) 바로 알아 어버이 낳기도 앞서


贈浮休子(증부휴자) 부휴자에게-四溟大師

別傳敎外眞消息(별전교외진소식) 달리 준 가르침 밖 참다운 소식

專義須還古丈夫(전의수환고장부) 오롯이 뜻 꼭 돌려 옛 사내장부

後五百年誰繼此(후오백년수계차) 다음에 오백년을 뉘 이를 이어

拈花一脈落嗚呼(념화일맥락오호) 꽃 집어 한 이어짐 아하 소리를 拈華示衆


贈成秀才(증성수재) 성수재에게-四溟大師

天寒歲暮峽中村(천한세모협중촌) 날 추워 해 저물어 골짝 속 마을 골짜기협

籬落蕭蕭掩竹門(리락소소엄죽문) 저만치 울 쓸쓸해 대 가린 문이

高臥北窓閑夢破(고와북창한몽파) 높이 누워 북창에 느긋한 꿈 깨

任地風雪亂黃昏(임지풍설난황혼) 맡은 땅 눈바람에 어스름 엉망


東林寺秋夕夜半(동림사추석야반) 동림사 추석날 밤에-四溟大師

東林月出白猿啼(동림월출백원제) 동림사에 달이 떠 원숭이 울어 울제

丹桂淸霜夜色凄(단계청상야색처) 붉은 계수 무서리 밤 빛깔 쓸쓸

獨倚香臺鐘鼓靜(독의향대종고정) 홀로 기대 향대에 종에 북 고요

天風吹棄見禽棲(천풍취기견금서) 하늘 바람 불어가 새둥지 보여 버릴기


次樂天堂(차락천당) 낙천당 운으로-四溟大師

不慍人間人不知(불온인간인부지) 아니 성내 세상에 남이 몰라도 성낼온

豈愁軒冕到吾遲(기수헌면도오지) 어찌 시름 큰 벼슬 내게 더뎌서 면류관면

樂夫天命稱君子(낙부천명칭군자) 즐기는 이 하늘 명 군자라 하지

伯玉何須四十非(백옥하수사십비) 거백옥 어찌해 꼭 마흔에 잘못


贈洛陽士(증낙양사) 낙양 선비에게-四溟大師

春愁無禁閉南關(춘수무금폐남관) 봄 시름 그침 없어 남쪽 문 닫아

佳節悤悤欲已闌(가절총총욕이란) 좋은 철 바삐 바빠 막혀 그치려

霽後終南開晩眺(제후종남개만조) 비 갠 뒤에 종남산 열린 저묾 봐

落花芳草滿長安(낙화방초만장안) 지는 꽃 꽃다운 풀 장안에 가득


鳴沙行(명사행) 명사로 가면서-四溟大師

細雨鳴沙三月時(세우명사삼월시) 보슬비 모래 울려 삼월인 때에

杏花零落客思歸(행화영락객사귀) 살구꽃 떨어져서 길손 갈 생각

鄕關猶隔一千里(향관유격일천리) 고향 땅 아직 멀어 천리 길 너머

愁見河橋靑柳絲(수견하교청류사) 시름겨워 강다리 푸른 버들 솜


過溟洲(과명주) 명주를 지나며-四溟大師

離山三日到江陵(이산삼일도강릉) 산을 떠나 사흘을 강릉에 닿아

逆旅寥寥半夜燈(역여요요반야등) 나그네 길 쓸쓸해 한밤에 등불

故國千年多少恨(고국천년다소한) 고향 나라 천년에 얼마나 한이

水雲寒雪倚樓僧(수운한설의루승) 물구름 차가운 눈 누 기댄 스님


山中(산중) 산 속-四溟大師

柴門終日獨徘徊(시문종일독배회) 사립문에 하루 내 혼자 노닐어

秋雨寒煙首屢回(추우한연수루회) 가을비에 찬 연기 머리 위 돌아

只尺相思不相見(지척상사불상견) 가까워 서로 생각 서로 못 만나

暮雲孤鳥倦飛來(모운고조권비래) 저문 구름 외론 새 지쳐 날아와


秋軒夜坐(추헌야좌) 가을 집 밤에 앉아-四溟大師

獨坐無眠羈思長(독좌무면기사장) 홀로 앉아 잠 없어 길 생각 길어 굴레기

數螢流影度西廊(수형유영도서랑) 반디 몇 흐른 그늘 서쪽 회랑을

崇山月出秋天遠(숭산월출추천원) 숭산에 달이 떠서 가을 먼 하늘

一夜歸心鬢已霜(일야귀심빈이상) 밤 하나 돌아갈 맘 귀밑털 서리


贈白蓮僧二1(증백련승이1) 백련암 스님에게-四溟大師

秋深南渡下黃葉(추심남도하황엽) 가을 깊어 남쪽건너 지는 누런 잎

別路霜華已滿衣(별로상화이만의) 헤어진 길 서리꽃이 이미 옷 가득

此去蓬山一千里(차거봉산일천리) 여기 떠나 봉래산은 일천리 길이

碧雲何處更追隨(벽운하처갱추수) 푸른 구름 어느 곳을 다시 쫓을까


贈白蓮僧二2(증백련승이2) 백련암 스님에게-四溟大師

節過重陽雁影高(절과중양안영고) 철 지난 중양절엔 기러기 높아

霜楓昨夜入麻袍(상풍작야입마포) 지난 밤 단풍 서리 삼 옷에 들어

客行更覺江東遠(객행갱각강동원) 나그네 가며 느껴 강동 쪽 멀어

海上靑山夢憶勞(해상청산몽억로) 바다 위로 푸른 산 꿈 생각 지쳐


贈圓長老(증원장로) 원 장로에게-四溟大師

巖畔雲松巖下泉(암반운송암하천) 바위 곁 해 구름 솔 바위 아래 샘

焚香洗鉢過蕭然(분향세발과소연) 향 살라 바루 씻어 깨끗이 살아

十年不下香爐頂(십년불하향로정) 십년을 안 내려와 향로 봉우리

石塔靜看秋水篇(석탑정간추수편) 돌탑을 가만히 봐 가을물 글을


降仙亭(강선정) 강선정-四溟大師

江源西出峽門開(강원서출협문개) 강 근원 서쪽 나서 골짝 문 열려

千樹村邊斷岸廻(천수촌변단안회) 일천 나무 시골 가 벼랑을 돌아

中有高臺三百尺(중유고대삼백척) 가운데로 높은 루 삼백 자 길이

月明時見羽人來(월명시견우인래) 달 밝아 때론 보여 신선 내림이


宿般若寺(숙반야사) 반야사에 묵으며-四溟大師

古寺秋晴黃葉多(고사추청황엽다) 옛 절에 가을 개여 누런 잎 많아

月臨靑壁散棲鴉(월림청벽산서아) 달 오른 푸른 벽에 까마귀 흩여

澄潮煙盡淨如練(징조연진정여련) 맑은 물결 안개 개 맑기가 비단

夜半寒鐘落玉波(야반한종락옥파) 깊은 밤 차가운 종 옥 물결 떨쳐


淸平寺西洞(청평사서동) 청평사 서쪽 골-四溟大師

華表鶴廻天路遠(화표학회천로원) 무덤 앞 학 돌아와 하늘 길 멀어

靑山如昨客初歸(청산여작객초귀) 푸른 산 어제처럼 길손 처음 와

淸流白石照明月(청류백석조명월) 맑은 흐름 흰 돌에 밝은 달 비춰

一夜空攀靑桂枝(일야공반청계지) 밤 하나 하늘 올라 푸른 계수에


別松庵(별송암) 송암과 헤어지며-四溟大師

去歲春風三月時(거세춘풍삼월시) 지난해도 봄바람 삼월 봄일 때

一回相見語相思(일회상견어상사) 한번 둘러 서로 봐 말로는 그려

如今又向南天遠(여금우향남천원) 이제처럼 또 바래 남쪽은 멀어

依舊垂楊生綠綠(의구수양생록록) 예대로 수양버들 푸릇푸릇 나


出峽憩江花石(출협게강화석) 골짝을 나와 강 꽃 돌에서 쉬며-四溟大師

橫塘石路日初斜(횡당석로일초사) 못을 질러 돌길에 해 처음 기웃

春水微茫生綠波(춘수미망생록파) 봄물은 살짝 아득 푸른 물결로

回指金仙是何處(회지금선시하처) 둘러 손짓 금 신선 바로 어딘지

碧峰千疊五雲多(벽봉천첩오운다) 푸른 봉 천의 겹침 오색구름에


鹿門長川別門下諸公(녹문장천별문하제공)

녹문장천에서 문하의 여러 공과 헤어지며-四溟大師

山到西江路亦分(산도서강로역분) 산이 이른 서강엔 길 또한 갈려

楊花愁殺別離魂(양화수살별리혼) 버들 꽃 시름 없애 헤어지는 맘

日斜獨出瞿塘峽(일사독출구당협) 해 비껴 혼자 나와 구당협 골짝

回首千峰萬樹雲(회수천봉만수운) 고개 돌려 모든 봉 모든 숲 구름


眞歇臺(진헐대) 진헐대-四溟大師

濕雲散盡山如沐(습운산진산여목) 젖은 구름 다 걷혀 산은 멱 감아

白玉芙蓉千萬峯(백옥부용천만봉) 하얀 옥 연꽃 같은 천만 봉우리

獨坐翻疑生羽翼(독좌번의생우익) 홀로 앉아 홀딱 써 깃 날개 돋아

扶搖萬里御冷風(부요만리어랭풍) 잡아채니 만 리를 찬바람 부려


十王洞(십왕동) 시왕동-四溟大師

王子何年築此城(왕자하년축차성) 왕자는 어느 해에 이 성을 쌓아

玉峰依舊老蓂靈(옥봉의구로명령) 옥 봉은 옛 그대로 늙은 명협 풀 명협명

鳳凰一去無消息(봉황일거무소식) 봉황은 한번 떠나 소식이 없어

金井千秋瑤草生(금정천추요초생) 금 우물 천년이면 옥의 풀 돋아


寄春州刺史(기춘주자사) 춘주자사에게-四溟大師

遙望春城雁不來(요망춘성안불래) 멀리서본 봄날 성 기러기 안 와

幾番風雨暗書灰(기번풍우암서회) 몇 번을 비바람에 몰래 책 태워

只今獨坐舡潭上(지금독좌강담상) 이제 막 혼자 앉아 배는 물올라

空憶當時勸酒杯(공억당시권주배) 괜한 생각 그때에 술잔 주던 일


宿佛頂庵(숙불정암) 불정암에 묵으며-四溟大師

琪樹瑤袋桂影秋(기수요대계영추) 옥 나무 옥의 자루 달 그늘 가을 北斗七星

蓬上宿客思悠悠(봉상숙객사유유) 봉래 올라 묵는 손 생각이 아득

西風一夜露華冷(서풍일야로화랭) 서쪽바람 온 밤을 이슬 꽃 찬 데

玉磬數聲人猗樓(옥경수성인) 옥 경쇠 몇 소리에 사람 루 기대


★過西都1(과서도1) 서도를 지나며-四溟大師

國破山河王氣殘(국파산하왕기잔) 나라 깨져 산과 강 왕기는 여려

天孫何處白雲間(천손하처백운간) 하늘 자손 어디에 흰 구름 사이

只今宮漏秋鐘歇(지금궁루추종헐) 이제야 궁 물시계 가을 종 쉬어

千古月明江水寒(천고월명강수한) 오랜 옛 달은 밝아 강물은 추워


過西都2(과서도2) 서도를 지나며-四溟大師

淸流壁下古今路(청류벽하고금로) 맑은 흐름 벽 아래 옛 이제 길이

靑草夕陽人去來(청초석양인거래) 푸른 풀 저무는 볕 사람 오고가

欲問千秋興廢事(욕문천추흥폐사) 물으려 천년의 날 흥망의 일을

白雲橋畔夜花開(백운교반야화개) 백운교 다리 가에 밤에 꽃 피어


過西都3(과서도3) 서도를 지나며-四溟大師

落月孤雲渺南國(낙월고운묘남국) 지는 달 외론 구름 남녘땅 아득

羈愁獨上望鄕臺(기수독상망향대) 길 시름 홀로 올라 망향대 높이

秋風黃葉不歸去(추풍황엽불귀거) 가을바람 누런 잎 못 돌아가니

空館夜聞寒雨來(공관야문한우래) 빈 객사 밤을 들어 찬비가 내려


登香爐峯(등향로봉) 향로봉에 올라-四溟大師

山接白頭天杳杳(산접백두천묘묘) 산은 붙어 백두에 하늘은 가물

水連靑海路茫茫(수연청해로망망) 물은 이어 청해로 물길이 아득

大鵬備盡西南闊(대붕비진서남활) 대붕이 갖춤 다해 서남은 트여

何處山河是帝鄕(하처산하시제향) 어디쯤에 산하가 하느님 고향


集句1(집구1) 글귀를 모아-四溟大師

山圍故國周遭在(산위고국주조재) 산이 두른 고향땅 에워싸였고

陵谷依然世自移(능곡의연세자이) 언덕 골짝 기대서 세상 옮아가

玉輩昇天人已遠(옥배승천인이원) 옥 수레 하늘 올라 사람 멀어져 玉輦

只今唯有鷓鴣飛(지금유유자고비) 다만 이제 오죽이 자고새 날아


集句2(집구2) 글귀를 모아-四溟大師

日暮東風春草綠(일모동풍춘초록) 해 저물어 봄바람 봄풀은 푸릇

杖藜徐步立芳洲(장려서보립방주) 지팡이 설설 걸어 꽃 물가에 서

閣中帝子今何在(각중제자금하재) 큰 집 속 임금 아들 이젠 어디에

汀月寒生古石樓(정월한생고석루) 물가에 달 차가워 옛 돌 누대에


山居集句四1(산거집구사1) 산에 살며 글귀 모아 4-四溟大師

無媒經路章蕭蕭(무매경로장소소) 이끎 없어 지날 길 글마저 쓸쓸

門掩空庭思寂廖(문엄공정사적료) 문 닫힌 빈 뜰에서 생각 고요해

百鳥不來春又過(백조불래춘우과) 온갖 새 아니 와도 봄은 또 지나

庵前時有白雲朝(암전시유백운조) 암자 앞 때론 있어 흰 구름 아침



山居集句四2(산거집구사2) 산에 살며 글귀 모아 4-四溟大師

閉門春盡綠煙消(폐문춘진록연소) 문 닫아 봄은 다해 푸름 사라져

眞性如空不動搖(진성여공부동요) 참 바탕 텅 빔 같아 아니 흔들려

世出世間俱打了(세출세간구타료) 세상 나와 세상을 함께 다 떨쳐

那知今夕與明朝(나지금석여명조) 어찌 알아 오늘밤 내일 아침을


山居集句四3(산거집구사3) 산에 살며 글귀 모아 4-四溟大師

白雲何計是生涯(백운하계시생애) 흰 구름 어찌 꾀해 한 삶이라며

朝抱陳編至日斜(조포진편지일사) 아침에 쥔 낡은 책 해질 때까지

門外啼鵑天寂寂(문외제견천적적) 문 밖 우는 두견이 날은 고요해

東風吹落刺桐花(동풍취락자동화) 봄바람 불어 지네 엄나무 꽃이


山居集句四4(산거집구사4) 산에 살며 글귀 모아 4-四溟大師

近思丙子重陽日(근사병자중양일) 생각해본 병자년 중양절 날짜

寒雨獨登浮碧樓(한우독등부벽루) 찬비에 혼자 올라 부벽루 누각

今夕又經長慶路(금석우경장경로) 오늘 저녁 또 지나 장경로 길을

黃花依舊去年秋(황화의구거년추) 국화꽃 옛 그대로 지난해 가을


別松庵陪尊祖西行(별송암배존조서행)

송암이 존조를 모시고 서쪽 감에 헤어지며-四溟大師

別路寒松日欲斜(별로한송일욕사) 떠나는 길 차운 솔 해는 기울려

碧雲殘雪有啼鴉(벽운잔설유제아) 푸른 구름 남은 눈 까마귀 울음

西行想渡浿江水(서행상도패강수) 서쪽 가 건널 생각 패강 강물을

落盡春風處處花(낙진춘풍처처화) 다 떨어져 봄바람 여기저기 꽃


過咸陽(과함양) 함양을 지나며-四溟大師

眼中如昨舊山河(안중여작구산하) 눈에 듦 어제 같아 오랜 옛 산하

蔓草寒煙不見家(만초한연불견가) 덩굴 풀 차운 연기 집은 아니 봬

立馬早霜城下路(입마조상성하로) 말 세운 이른 서리 성 아래 길을

凍雲枯木有啼鴉(동운고목유제아) 언 구름 마른 나무 까마귀 울어


奉全羅防禦使元長浦(봉전라방어사원장포)전라방어사원장포에게드리며-四溟

百歲三分已二分(백세삼분이이분) 백년을 셋 나누어 이미 둘 지나

袛今行止更如雲(저금행지갱여운) 이제야가고 멎음구름과 같아속적삼저마침지

何時高臥崇山室(하시고와숭산실) 언제면 높이 누워 숭산의 방에

鷄唳猿啼半夜聞(계려원제반야문) 학 원숭이 울어서 한밤에 듣네 울려


在南原驛(재남원역) 남원 역에서-四溟大師

碧油幢幕夜凄凄(벽유당막야처처) 푸름 매끈 기 장막 밤은 쓸쓸해 기당

刁斗無聲月欲低(조두무성월욕저) 바라 징 소리 없어 달은 지려해 바라조

壯志未酬驚歲晏(장지미수경세안) 씩씩한 뜻 못 갚아 해 늦어 놀라 늦을안

手持雄劒聽莎鷄(수지웅검청사계) 손에 쥔 묵직한 칼 베짱이 소리 莎 莏


嶺南金烏下臥病憶雲中寸調(영남금오하와병억운중촌조)

영남 금오산 아래 앓아누운 운중 촌조를 생각하며-四溟大師

一從恩譴度流沙(일종은견도류사) 한 쫓음 베풂 혼냄 흐름을 건너 꾸짖을견

望盡三年鬢已華(망진삼년빈이화) 바라기 다한 삼년 귀밑털 희어

怊悵東湖去時路(초창동호거시로) 슬펐구나 동호로 떠날 때 길은

春風依舊長新莎(춘풍의구장신사) 봄바람 옛날처럼 새 잔디 자라


癸未秋關西途中1(계미추관서도중1) 계미년 가을 관서로 가는 길에-四溟大師

黃雲塞下本無春(황운새하본무춘) 누런 구름 변방 밑 본디 봄 없나

桃柳應知別處新(도류응지별처신) 복사 버들 알아서 딴 곳서 새록

雙鯉不來花又落(쌍리불래화우락) 편지글은 아니 와 꽃은 또 지고

暮山回首泣孤臣(모산회수읍고신) 저문 산 고개 돌려 우는 외론 이


癸未秋關西途中2(계미추관서도중2) 계미년 가을 관서로 가는 길에-四溟大師

黃葉蕭蕭廣陵道(황엽소소광릉도) 누런 잎이 쓸쓸해 광릉의 길에

夜來風雨滿江津(야래풍우만강진) 밤이 오니 비바람 강나루 가득

孤舟獨繫西湖柳(고주독계서호류) 외론 배 홀로 매여 서호 버들에

泣向關山憶遠人(읍향관산억원인) 울며 관산 쳐다봐 먼 사람 생각


癸未秋關西途中3(계미추관서도중3) 계미년 가을 관서로 가는 길에-四溟大師

塞外孤身夢裏逢(새외고신몽리봉) 변방 밖 외로운 몸 꿈에서 만나

同遊澤畔語從容(동유택반어종용) 같이 놀며 못가서 살며시 말해

覺來依舊關山遠(각래의구관산원) 깨어오며 그대로 관산은 멀어

悄悄無言聽曙鐘(초초무언청서종) 시름하여 말없이 새벽 종 들어


送昱山人還海西(송욱산인환해서) 욱산인이 해서로 돌아가 보내며-四溟大師

沓盡天南吳楚間(답진천남오초간) 다 밟아 하늘 남쪽 오에 초나라

逢春還鄕海西山(봉춘환향해서산) 봄 만나 시골 가니 바다서쪽 산

落花啼鳥東風裏(낙화제조동풍리) 지는 꽃 우는 새는 봄바람 속에

知子香爐獨掩關(지자향로독엄관) 자네 알아 향로에 홀로 닫은 문


贈白蓮寺和尙(증백련사화상) 백련사 스님에게-泗溟堂

佳節年年客中過(가절년년객중과) 좋은 철을 해마다 나그네로 가

故山花謠夢携筇(고산화요몽휴공) 고향 산 꽃노래에 꿈에 지팡이

會遊到處有芳草(회유도처유방초) 모여 놀아 이른 곳 꽃다운 풀이

此日來時迷舊蹤(차일래시미구종) 이날에야 오는 때 옛 자취 몰라

塞上羈愁猶亂緖(새상기수유란서) 변방을 떠돈 시름 어지러운 맘

鏡中衰鬢匕成蓮(경중쇠빈비성련) 거울 속 쇤 귀밑털 연밥이 되어

天涯迢遆不歸去(천애초체불귀거) 하늘 끝 바다 멀리 아니 돌아가

坐聽白蓮精舍鐘(좌청백련정사종) 앉아 들어 백련사 절집 종소리

奉錦溪沈明府(봉금계심명부) 금계 심명부에게-泗溟堂

當時一別漢東寺(당시일별한동사) 그때에 한 헤어짐 서울 동쪽 절

空悲歲徂靑眼稀(공비세조청안희) 괜한 슬픔 세월 가 반길 이 드문

隨緣江海無定所(수연강해무정소) 맺음 따라 강 바다 놓인데 없어

轉蓬復此西南飛(전봉부차서남비) 굴러 흩어 또 여기 서남을 날아

知音賴有沈休文(지음뢰유심휴문) 알아줄 이 힘입어 심휴문 있어

八月南渡瀟湘浦(팔월남도소상포) 팔월에 남쪽 건너 소상포 물가

相看切切語相思(상간절절어상사) 서로 보며 끊어져 서로 그리워

上房數夜同淸晤(상방수야동청오) 윗방서 몇 날밤을 함께 밝혔네 밝을오

天涯佳節近重陽(천애가절근중양) 하늘 끝 좋은 철에 중양 가까워

零露瀼瀼荷欲老(영로양양하욕로) 이슬져 많은 이슬 연꽃 시들려 이슬많을양

平明却有故山思(평명각유고산사) 먼동이 터 도리어 고향 산 생각

獨望白雲山外路(독망백운산외로) 혼자 바래 흰 구름 산 넘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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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叔 象村 申欽(15661628)文貞 平山 象村集

 

時運2(시운2) 시절 운수-申欽

杖策登原(장책등원) 지팡이 짚고 언덕에 올라

臨流斯濯(임류사탁) 물에 나아가 이렇게 씻어 濯足

曠彼郊墟(광피교허) 휑하니 저래 들판 기슭이

盈我游矚(영아유촉) 채우니 나를 떠돌아 본다 볼촉

萬鍾匪豐(만종비풍) 일만 그릇에 아니 넘쳐도

一瓢亦足(일표역족) 표주박 하나 또한 넉넉해

從吾所好(종오소호) 나를 따르니 좋아하는바

孔顏之樂(공안지악) 공자에 안회 하던 음악을 孔丘 顔回


菊馨(국형) 국화향기-申欽

擧世皆能種(거세개능종) 온 세상 다들 심을 수 있어

何如獨說陶(하여독설도) 어찌해 홀로 도연명 말만

始知陶與菊(시지도여국) 비로소 알아 도잠과 국화

馨德兩俱高(형덕량구고) 향기에 덕에 둘 함께 높아


詠懷(영회) 마음을 읊어-申欽

淚作竹間血(누작죽간혈) 눈물에 지어 대나무에 피

冤歸江上濤(원귀강상도) 원통함 돌려 강 위에 물결

悠悠千古恨(유유천고한) 멀어 아득한 천년 오랜 한

付與左徙騷(부여좌사소) 부쳐 주리니 굴원 이소곡 옮길사 屈原 左道 離騷


晴窓軟談(청창연담) 갠 창가에서 부드럽게 이야기하며-申欽

未見聖人心(미견성인심) 아니 보이니 성인의 마음

焉知聖人事(언지성인사) 어찌 알아서 성인의 일을

安得洗心人(안득세심인) 어찌해 얻어 마음 씻은 이

與之論時義(여지론시의) 함께 더불어 때 옳음 따져


詠事(영사) 일을 읊어-申欽

昨日一相去(작일일상거) 어제 날 하루 한 재상 떠나

今日一相去(금일일상거) 오늘도 하루 한 재상 떠나

相去亦何關(상거역하관) 재상 떠나도 어찌 매이랴

但恐言路阻(단공언로조) 다만 두려움 말길이 막혀


壬辰亂後到平壤(임진란후도평양) 임진란 뒤에 평양에 와서-申欽

漠漠箕城草(막막기성초) 없이 아득한 평양성 풀로

春來動客愁(춘래동객수) 봄이 와 움칠 나그네 시름

繁華問無處(번화문무처) 시끌벅적대 물어 없는 곳

獨上仲宣樓(독상중선루) 홀로 오르니 중선루에를


癸巳冬奉使西路牛峰途中作(계사동봉사서로우봉도중작)

계사년 겨울 서쪽 길 사신으로 우봉 가는 길에서-申欽

覊緖悠悠路正長(기서유유로정장) 나그네 마음 아득 길은 참 멀어

年年鞍馬滯殊方(년년안마체수방) 해마다 말을 타니 멎어 낯선 땅 막힐체

關河歲暮多氷雪(관하세모다빙설) 변방 강 해 저물어 많은 얼음 눈

瘦盡腰圍一半强(수진요위일반강) 다 여윈 허리둘레 한 반은 뻣뻣 파리할수


感春(감춘) 봄을 느껴-申欽

蜂唼花鬚燕唼泥(봉삽화수연삽니) 벌은 물어 꽃술을 제비 흙 물어 쪼아먹을삽

雨餘深院綠苔齊(우여심원록태제) 비 개여 깊은 뜨락 푸른 이끼로 가지런할제

春來無限傷心事(춘래무한상심사) 봄이 와 끝이 없어 마음 다칠 일

分付流鶯盡意啼(분부류앵진의제) 나눠 준 꾀꼴 흐름 뜻 다해 울어 줄부


感春贈人六首(감춘증인육수) 봄 느낌을 남에게 주며-申欽

役役街塵二十年(역역가진이십년) 힘쓰니 거리티끌 스무 해 보내

致君堯舜志徒然(치군요순지도연) 임금을 요순 되게 뜻은 헛되이

春禽格格如呼我(춘금격격여호아) 봄에 새 맞아 맞아 날 부르는 듯

胡不歸來雪滿顚(호불귀래설만전) 어찌 아니 돌아와 눈 가득 산에


大雪(대설) 큰 눈-申欽

塡壑埋山極目同(전학매산극목동) 골 메워 산을 묻어 눈 둔데 같아

瓊瑤世界水晶宮(경요세계수정궁) 옥빛 옥 세상경계 수정의 궁궐

人間畵史知無數(인간화사지무수) 사람세상 화가들 셀 수 없으나

難寫陰陽變化功(난사음양변화공) 못 베껴 그늘과 볕 바꾸는 일을


元央曲(원앙곡) 원앙곡-申欽

飛來飛去兩鴛鴦(비래비거량원앙) 날아 와선 날아가 원앙 두 마리

共向荷花深處藏(공향하화심처장) 함께 바란 연꽃에 깊은데 숨어

何事橫塘浦口望(하사횡당포구망) 무슨 일 연못 질러 포구 바라봐

年年長是怨檀郞(년년장시원단랑) 해마다 이리 오래 단랑을 탓해


宮詞2(궁사2) 궁사-申欽

未央前路接長門(미앙전로접장문) 미앙궁 앞에 길은 장문궁 닿아

牌字新題賜淑媛(패자신제사숙원) 패에 글자 새로써 숙원벼슬 줘內命婦從四品

從此羊車不須引(종차양거불수인) 이로서 임금 수레 아니 꼭 끌어

夜來天語有殊恩(야래천어유수은) 밤 오니 임금 말씀 달리 베풂이


雨後(우후) 비온 뒤에-申欽

雨歇閑庭草色齊(우헐한정초색제) 비 개인 고요한 뜰 풀빛 가지런 쉴헐

綠萍深處亂蛙啼(록평심처란와제) 부평초 짙은 곳에 개구리 시끌

無端亭午田園夢(무단정오전원몽) 까닭 없이 정자 낮 시골들에 꿈

正逐漁舠過故溪(정축어도과고계) 바로 좇아 고깃배 오랜 내 지나 거룻배도


林畔館戲贈宋仁叟(임반관희증송인수) 임반관에서 놀리며 송인수에게-申欽

煙雨濛濛纈晩霞(연우몽몽힐만하) 안개비 흐릿흐릿 저녁놀 주름 홀치기염색힐

東風十里柳絲斜(동풍십리류사사) 봄바람에 십리를 버들 실 날려

河陽一縣春無限(하양일현춘무한) 강 언덕에 한 고을 봄은 끝없어

偏愛階前荳蔲花(편애계전두구화) 아낌쏠린 섬돌앞 두구 꽃에를 치우칠편 두구구



百祥樓月夜(백상루월야) 백상루의 달밤-申欽

金波瑤海兩蒼茫(금파요해량창망) 금물결 옥의 바다 둘 다 푸르러 아득할망

沆瀣浮空夜未央(항해부공야미앙) 넓은이슬뜬하늘밤 아니다해 넓을항이슬기운해

欲就麻姑問眞訣(욕취마고문진결) 찾아가 마고할미 참 비결 물어

世間還有幾滄桑(세간환유기창상) 세상에 되레 있어 몇몇 바다 밭 桑田碧海


朝望海門(조망해문) 아침에 바라본 바다어귀-申欽

草綠沙長洲渚幽(초록사장주저유) 풀 푸릇 모래 멀어 모래톱 그윽 물가저

乍憑江檻遣閒愁(사빙강함견한수) 잠깐 기댄 강 난간 틈을 내 시름 잠깐사

海門初日潮頭迅(해문초일조두신) 바다어귀 처음 해 물 밀림 빨라 빠를신

穩送龍驤萬斛舟(온송룡양만곡주) 가만 보낸 용양위 만 섬 큰 배를 머리들양

龍驤衛: 조선시대 중앙군사조직인 5위 가운데 하나 5위진법 체제에서 左翼을 맡아 左衛라 함


早秋遠眺(조추원조) 이른 가을 멀리 바래-申欽

曉來秋色集林皐(효래추색집림고) 새벽 와 가을빛깔 숲 모인 언덕 언덕고

雨洗遙岑氣勢豪(우세요잠기세호) 비 씻은 먼 봉우리 힘 뻗힘 대단

更有澄湖千萬頃(갱유징호천만경) 또 있어 맑은 호수 천만 이랑이

此間唯合着吾曹(차간유합착오조) 이 사이 오직 더해 우리들 붙어


登後阜(등후부) 뒷동산에 올라-申欽

沿江沙路細彎彎(연강사로세만만) 강을 따라 모랫길 구불구불해 굽을만

落日歸舟艤淺灣(락일귀주의천만) 해질녘 돌아온 배 물굽이 배대 배댈의

西去數峯靑一抹(서거수봉청일말) 서쪽 뻗은 몇몇 봉 푸름 한 번에 바를말

行人說是桂陽山(행인설시계양산) 지나는 이 말하니 계양산이라


村居卽事1(촌거즉사1) 시골에 살면서-申欽

柴門臨水稻花香(시문림수도화향) 사립문 물에 닿아 나락 꽃 향긋

始覺村居氣味長(시각촌거기미장) 비로소 안 시골 삶 멋진 맛 좋아

偶與老農談野事(우여로농담야사) 뜻밖에 늙은 농부 들일 이야기

不知山日已嚑黃(부지산일이훈황) 아니 알아 산에 해 이미 어스름


村居卽事2(촌거즉사2) 시골에 살면서-申欽

蕙蘭爲佩芰荷衣(혜란위패기하의) 혜초 난초 지닌 패 마름 연잎 옷 세발마름기

迹混漁樵息世機(적혼어초식세기) 다니며 고기나무 세상잊은틀 자취적 땔나무초

萬事不求溫飽外(만사불구온포외) 모든 일에 안 찾아 따뜻 배부름

小簷閒坐對朝暉(소첨한좌대조휘) 작은 처마 앉은 틈 아침 해 마주 빛휘


村居卽事3(촌거즉사3) 시골에 살면서-申欽

精舂玉粒供晨飯(정용옥립공신반) 곱게 찧은 옥 쌀알 들여 새벽밥 찧을용 알립

旋劈團臍備客羞(선벽단제비객수) 돌려쪼개 뭉쳐서 손님 찬 마련 쪼갤벽 배꼽제

借問野翁何所事(차문야옹하소사) 물어봐 들 늙은이 무얼 하는지

本來無喜又無憂(본래무희우무우) 본디에 기쁨 없어 걱정도 없어


村居卽事4(촌거즉사4) 시골에 살면서-申欽

莫覓仙方覓睡方(막멱선방멱수방) 찾지 마라 신선술 잠잘 꾀 찾아 찾을멱

蒲團瓦枕竹匡牀(포단와침죽광상) 부들자리 질 베개 대나무 침대 바룰광

何須更作周公夢(하수갱작주공몽) 어찌 꼭 다시 지어 주공의 꿈을

夢到羲皇一味長(몽도희황일미장) 꿈꾸니 복희 황제 한 맛 더 나아 숨희


村居卽事5(촌거즉사5) 시골에 살면서-申欽

上池種荷荷萬柄(상지종하하만병) 웃 못엔 연을 심어 연이 만 자루

下池養魚魚千頭(하지양어어천두) 아래 못 고기 길러 고기 천 마리

野翁生計此足矣(야옹생계차족의) 들 늙은이 사는 꾀 이리 넉넉해

不須更要千戶侯(불수갱요천호후) 아니 꼭 다시 찾나 천호의 벼슬


峽裏(협리) 두메산골 속-申欽

峽裏生涯淡似僧(협리생애담사승) 골짝 속에 삶 살이 묽어 중처럼

向來愁疾轉侵陵(향래수질전침릉) 오면서 시름 앓이 언덕에 들어

柴扉寥落無人迹(시비요락무인적) 사립문 썰렁 떨렁 찾는 이 없어

隴樹蕭蕭野水氷(롱수소소야수빙) 고개나무 쓸쓸히 들에 물 얼어 고개이름롱


題歌詞後(제가사후) 노랫말을 읽고서-申欽

白首孤蹤寄薛蘿(백수고종기설라) 흰머리외론 발길대쑥에 부쳐 맑은대쑥설 무라

傷心一曲浣溪莎(상심일곡완계사) 마음아픈 한 가락 완계사 노래 빨완 향부자사

世間定有多情者(세간정유다정자) 세상에 놓여 있어 정 많은 것이

試向樽前且放歌(시향준전차방가) 나아가 술통 앞을 노래나 불러


雨餘(우여) 비 내린 뒤에-申欽

雨餘簾幕透輕寒(우여렴막투경한) 비온 다음 발 가림 추위 설뚫어 통할투

軟柳嬌花未破顔(연류교화미파안) 엷은 버들 예쁜 꽃 아니 웃는 낯 破顔大笑

倦倚屛山成悵望(권의병산성창망) 지쳐 기대 병풍 산 슬피 바램에 슬퍼할창

一年春恨鏡中看(일년춘한경중간) 한해의 봄날 탓을 거울 속에 봬


題扇畫(제선화) 부채그림에-申欽

暮鼓晨鍾吾已老(모고신종오이로) 저녁에 북 새벽종 내 이미 늙어

芒鞋竹杖爾何閒(망혜죽장이하한) 짚신에 대지팡이 넌 어찌 느긋 신혜

平坡古樹蒼茫遠(평파고수창망원) 너른 둑 오랜 나무 아득히 멀어

興入孤鴻滅沒間(흥입고홍멸몰간) 흥겨워 외기러기 날아갈 때면


次金沙溪連山別業韻1(차금사계련산별업운1) 김사계의 연산별업 운으로-申欽

投紱歸來結野亭(투불귀래결야정) 벼슬 던져 돌아와 들 정자 지어 인끈불

暮年生活是雙淸(모년생활시쌍청) 늙은 나이 살아감 둘 다 맑음이

從今不管人間事(종금불관인간사) 이제는 안 껴들어 사람세상 일

唯對村農校雨晴(유대촌농교우청) 오직 마주 시골 들 날씨나 살펴


人有來賀余拜京兆尹者詩以言志(인유래하여배경조윤자시이언지)

내가 경조윤 된 것을 축하하여 시로써 마음을 말해-申欽

浮世功名不直錢(부세공명불직전) 뜬세상 이룬 이름 돈 되지 않아

侍郞京兆亦徒然(시랑경조역도연) 시랑벼슬 경조윤 또한 헛되이

何時湖海尋初服(하시호해심초복) 어느 때 호수바다 찾아 첫 입어

煙雨灣頭理釣船(연우만두리조선) 안개비 굽이어귀 낚싯배 손질


題西湖志後(제서호지후) 서호지 뒤에 부쳐-申欽

錢塘淸賞世間無(전당청상세간무) 전당호 맑은 즐김 세상에 없어 못당

南北高峯裏外湖(남북고봉리외호) 남에 북에 높은 봉 안팎은 호수

安得來生作湖長(안득래생작호장) 어찌해 오며 살아 호수 돼 오래

放遊如白又如蘇(방유여백우여소) 놓아 놀아 이태백 또는 소동파 李白 蘇軾


過山村(과산촌) 산촌을 지나며-申欽

木麥花開豆實垂(목맥화개두실수) 메밀꽃이 피더니 콩 열려 주렁

緣墻瓜蔓已離披(연장과만이리피) 담 뻗은 오이넝쿨 이미 다 흩여 나눌피

門前客子欲投宿(문전객자욕투숙) 문 앞에 나그네는 묵으려는데

落日在山庬吠籬(락일재산방폐리) 지는해 산에걸려 울에 개 짖어 두터울방尨狵


謝仙源(사선원) 선원에게 사례하며-申欽

客從何處寄雙魚(객종하처기쌍어) 손님 오니 어디서 고기 둘 부쳐

中有故人天外書(중유고인천외서) 속에 있어 오랜 이 하늘 밖 편지

却算舊遊還悵望(각산구유환창망) 되레 세니 옛 놀이 외려 슬퍼져

菊花時節又離居(국화시절우리거) 국화꽃이 피는 철 또 헤져 살아


曉霜(효상) 새벽서리-申欽

井欄疏樹曉霜晞(정란소수효상희) 우물 곁 성긴 나무 새벽서리 마르고 마를희

簾外山光捲宿霏(렴외산광권숙비) 발 밖에 산에 빛은 묵은 안개 걷히어

玄嚥不知秋社近(현연부지추사근) 검은 제비 모르니 가을제사 가까움 삼킬연

畵梁東畔尙飛飛(화량동반상비비) 그림다리 동쪽 곁 아직도 날고 날아


次法洪上人軸中韻1(차법홍상인축중운1) 법홍스님 시축의 운을 빌어-申欽

紅塵何事苦棲棲(홍진하사고서서) 티끌세상 무슨 일 괴롭게 살아

蘿薛秋深舊路迷(라설추심구로미) 무 대쑥 가을 깊어 옛 길을 헤매

尙憶昔年相訪處(상억석년상방처) 아직 생각 지난해 서로 찾은 곳

一聲淸唄度前溪(일성청패도전계) 한소리 맑은 범패 앞 시내 건너 찬불패


次法洪上人軸中韻2(차법홍상인축중운2) 법홍스님 시축의 운을 빌어-申欽

禪居知在翠微顚(선거지재취미전) 닦는 삶 있음 알아 푸른 산 속에 꼭대기전

丈室多時慣借眠(장실다시관차면) 나지막 방 많은 때 잠 빌림 버릇

步出寺門雲滿壑(보출사문운만학) 걸어 나와 절 문을 구름 찬 골짝

東臺晴月向人圓(동대청월향인원) 동쪽 누대 갠 달이 사람 앞 둥글


次僧軸韻(차승축운) 스님 시축의 운을 빌어-申欽

躑躅花開亂燕飛(척촉화개난연비) 진달래 꽃이 피니 제비 막 날아

枯梧睡罷正忘機(고오수파정망기) 마른 오동 잠이 깨 정말 잊은 틀

僧來不作人間話(승래부작인간화) 스님 와서 말 않는 세상 이야기

知我歸心在翠微(지아귀심재취미) 날 알아 돌린 마음 산에 있음을


卽事(즉사) 그 자리에서 바로-申欽

玉漏聲稀星漢微(옥루성희성한미) 물시계 소리 드문 은하수 흐릿

小堂幽絶意多違(소당유절의다위) 작은 집 그윽 끊겨 뜻 하도 어긋

西林風雨夜如漆(서림풍우야여칠) 서쪽 숲에 비바람 밤은 칠한 듯 옻칠

露草時看螢火飛(로초시간형화비) 이슬 풀 때론 보여 나는 반딧불


晩春(만춘) 늦은 봄-申欽

庭宇寥寥門晝關(정우요요문주관) 집안은 쓸쓸하여 낮에 문 닫아

葛巾烏几對靑山(갈건오궤대청산) 갈건에 검은 안석 푸른 산 마주 칡갈

桃花落盡春光歇(도화락진춘광헐) 복사꽃 다 떨어져 봄빛도 다해

蛺蝶如何苦未閒(협접여하고미한) 나비는 어찌하여 괴롬 틈 없이 나비협


早朝(조조) 이른 아침에-申欽

鳳城霞色正微冥(봉성하색정미명) 봉성에 노을빛깔 조금 어두워 어두울명

阿馬翩翩趁曉星(아마편편진효성) 말몰이 빨랑빨랑 새벽별 좇아 좇을진

內裏定應宣召急(내리정응선소급) 궐 안에 놓여 으레 부름 서둘러

中官催鑰啓嚴扃(중관최약계엄경) 중관에빗장 닦달닫힌문 열게 자물쇠약 빗장경


題壁1(제벽1) 벽에 쓰다-申欽

行年四十九年非(행년사십구년비) 해를 나기 마흔에 아홉 아닌가

始覺天機是道機(시각천기시도기) 첫 알음 타고난 틀 바로 도의 틀

脫盡世緣消盡累(탈진세연소진루) 다 벗어 세상 맺음 허물 다 없애

萬山紅綠掩重扉(만산홍록엄중비) 모든 산 불긋 푸릇 사립 겹 가려 가릴엄


題壁2(제벽2) 벽에 쓰다-申欽

池荷紅褪露翻叢(지하홍퇴로번총) 못 연꽃 붉음 바래 이슬에 떨기 바랠퇴

昨夜西風撼井桐(작야서풍감정동) 어젯밤 가을바람 우물 오동에 흔들감

禪客入秋無氣息(선객입추무기식) 도 닦는 이 든 가을 숨기운 없어

不曾三笑過溪東(부증삼소과계동) 아니 일찍 세 웃음 내를 건너서 虎溪三笑


感事1(감사1) 일에 느끼어-申欽

椎埋何技亦興王(추매하기역흥왕) 때려 묻어 무슨 재주 또한 왕이 돼 몽치추

董賈無時事可傷(동가무시사가상) 중서 가의 때 못 만나 일에 다침이 동독할동

小草在原霑雨露(소초재원점우로) 작은 풀은 들에 있어 비이슬 젖어 젖을점

長松臥壑困風霜(장송와학곤풍상) 기다란 솔 누운 골짝 바람서리에

董仲舒(BC176?~BC104) 중국 전한의 대표적 유학자

賈誼(BC200~BC168) 중국 前漢 文帝 때의 문인 학자로 洛陽출생


感事2(감사2) 일에 느끼어-申欽

顔如緇墨鬢如絲(안여치묵빈여사) 얼굴은 까만 먹물 머린 실처럼 검은비단치

衰相年來不可支(쇠상년래불가지) 늙는 꼴 해가 오며 받치질 못해

唯有此心同鐵石(유유차심동철석) 오직 있는 이 마음 쇠나 돌 같아

幾經鍛鍊未曾移(기경단련미증이) 몇 번한 달굼 불림 일찍 못 옮겨 쇠불릴단


小雨(소우) 이슬비-申欽

小雨初晴麥壠分(소우초청맥롱분) 이슬비 처음 개어 보리 둑 나눠 언덕롱

鳴鳩乳燕正紛紛(명구유연정분분) 비둘기 새끼 제비 정말 어지러

山村長夏無來客(산촌장하무래객) 두메마을 긴 여름 오는 손 없어

閒倚東樓詠白雲(한의동루영백운) 느긋 기댄 동쪽 누 흰 구름 읊어


唐虞(당우) 요순임금-申欽

土階三等不誅茅(토계삼등부주모) 흙섬돌 셋 나누어 띠도 안 베어 벨주

蓂莢陰中日未哺(명협음중일미포) 달력풀 그늘속에 해아니먹혀 명협명 풀열매협

借問帝堯何所事(차문제요하소사) 묻고파 요임금은 일한 게 뭔지

至今人口誦唐虞(지금인구송당우) 이제껏사람입에요순을외니唐堯虞舜人口膾炙


閱邵易有感(열소역유감) 소옹의 주역을 읽고-申欽

一倍乘之作一元(일배승지작일원)한번곱절곱하여일원을지어 360×360=129600

興亡千古卽朝昏(흥망천고즉조혼) 일고 잃어 먼 오램 바로 아침 밤 興亡盛衰

北窓淸晝忘言處(북창청주망언처) 북녘 창 말간 낮에 말을 잊은 곳

安得堯夫與討論(안득요부여토론) 어찌하면 소옹과 더불어 말해

邵雍(1011~1077) 邵康節 邵堯夫라고도 하며 象數學이론을 만듦


上巳(상사) 삼짇날 음력 삼월삼일-申欽

章臺不作踏靑人(장대불작답청인) 장대에선 못 지어 푸름 밟는 이

湖海僑居又一春(호해교거우일춘) 호수바다 붙어삶 또 하나 봄을

試拓小窓煙景晩(시척소창연경만) 열어보니 작은 창 안개 볕 늦어 주울척

山花無數碧溪濱(산화무수벽계빈) 산에 꽃 셀 수 없어 푸른 시냇가


昭陽竹枝歌1(소양죽지가1) 소양죽지가-申欽

席破嶺頭日欲落(석파령두일욕락) 석파령 고개머리 해는 지려해

新淵江口行人稀(신연강구행인희) 신연강 강어귀에 걷는 이 드문

短檣輕枻亂波去(단장경예난파거) 짧은 돛 가벼운 노 막 물결 지나 돛대장 노예

遙指鳳凰臺下磯(요지봉황대하기) 먼 가리킴 봉황대 아래 낚시터


昭陽竹枝歌2(소양죽지가2) 소양죽지가-申欽

居人莫唱赧郞曲(거인막창난랑곡) 사는 이 부르지 마 낭군 부끄럼 얼굴붉힐난

游子此時空斷腸(유자차시공단장) 노는 그대 이런 때 괜한 애 끊어

一百八盤何處是(일백팔반하처시) 일백여덟 얽힌 곳 어디가 바로

鉤輈聲裏樹蒼蒼(구주성리수창창) 자고새소리 속에나무푸르러끌채주 鉤輈格磔


昭陽竹枝歌3(소양죽지가3) 소양죽지가-申欽

水大已無橋下灘(수대이무교하탄) 물 불어 이미 없어 다리 밑 여울

雨昏不見淸平山(우혼불견청평산) 비에 어둑 안 보여 청평산이란

湖邊列店小如斗(호변열점소여두) 호숫가 줄선 가게 작기가 구기

半夜柴扉純浸灣(반야시비순침만) 한 밤을 사립문은 물굽이 담겨


世故1(세고1) 세상 일-申欽

世故何曾料(세고하증료) 세상 일 어찌 일찍 헤아려

巫咸不問寃(무함불문원) 무함 원통함 묻지도 못해

法深心反泰(법심심반태) 법은 깊어도 마음은 느긋

毁積骨猶存(훼적골유존) 헐뜯어 쌓아 뼈는 그대로

水落沙灘響(수락사탄향) 물이 떨어져 모래 여울에

霜晞木葉翻(상희목엽번) 서리 마르자 나뭇잎 엎어 마를희

餘生虫共蟄(여생충공칩) 남은 삶 함께 벌레와 숨어 숨을칩

萬事已無言(만사이무언) 모든 일 이미 말이 없어서


世故2(세고2) 세상 일-申欽

天意終何似(천의종하사) 하늘 뜻 끝내 무엇과 같아

孤臣抱至寃(고신포지원) 외로운 신하 다한 한 안아

古今時或變(고금시혹변) 옛 이제 때때 어쩌면 바꿔

宇宙理長存(우주리장존) 온 우주 이치 그대로 오래

耻作侯鯖護(치작후청호) 부끄럼 지어 오후정 감싸 청어청 五侯鯖(요리이름)

休論骨相翻(휴론골상번) 따짐 말마라 골상 뒤집음 手相 觀相 骨相 心相

香燈秋夜靜(향등추야정) 향긋한 등불 가을밤 고요

隱几正忘言(은궤정망언) 안석에 기대 정말 말 잊어


★秋夜(추야) 가을밤-申欽

嵐光侵戶冷(남광침호랭) 아지랑이 빛 문 들어 서늘 남기람

露氣濕林斑(노기습림반) 이슬지려고 숲 적셔 얼룩 얼룩반

書劍身同廢(서검신동폐) 책과 칼 함께 몸에서 멀어 폐할폐

漁樵跡已閑(어초적이한) 어부 나무꾼 이미 다님 뜸

夜從愁共永(야종수공영) 밤을 따라서 시름도 길어

秋與鴈俱還(추여안구환) 가을 더불어 기러기와 와

搖落亭臺靜(요락정대정) 흔들어 떨쳐 정자 고요해

寒蟾下碧灣(한섬하벽만) 차운 달 지는 푸른 물굽이 두꺼비섬


雨後坐草亭(우후좌초정) 비 온 뒤 초정에 앉아-申欽

峽裏逢連雨(협리봉련우) 골짝 속에서 이은 비 만나

初晴麗景新(초청려경신) 비로소 개니 고운 볕 새록

江平鷗出戱(강평구출희) 강은 넓어서 갈매기 놀고

山靜鹿來馴(산정록래순) 산이 고요해 사슴 길들어 길들순

草合誰開徑(초합수개경) 풀은 보태어 누가 길 열어

苔深欲上茵(태심욕상인) 이끼 짙어져 자리 오르려 자리인

僮兒翻解事(동아번해사) 아이는 번뜩 일을 알아서 아이동

把釣下溪濱(파조하계빈) 낚시 들고서 시냇가 내려 물가빈


僦屋二首2(추옥이수2) 집을 빌려서-申欽

耿耿燈遺燼(경경등유신) 깜박 깜박임 등불 남긴 불 빛날경 깜부기불신

浪浪雨未休(랑랑우미휴) 찰랑 찰랑대 비는 안 그쳐

五年離故國(오년리고국) 다섯 해 떠나 오랜 고향땅

白髮寄他州(백발기타주) 흰머리 되어 붙인 딴 고을

萬事惟孤墳(만사유고분) 모든 일 오직 외로운 무덤

全家共一舟(전가공일주) 온 가족 함께 하나의 배에

平生遂初賦(평생수초부) 한 삶을 살아 이른 첫 지음

愧殺海中鷗(괴쇄해중구) 부끄럼 너무 바다 갈매기 빠를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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楗仲 南冥 曺植(15011572)文貞 昌寧 南冥集

 

種竹山海亭(종죽산해정) 산해정에 대나무 심어-曺植

此君孤不孤(차군고불고) 이 군자 외로워도 외롭지 않아 대나무

髥叟則爲隣(염수즉위린) 수염 난 늙은이면 이웃이 되니 소나무

莫待風霜看(막대풍상간) 기다리진 않으나 바람서리에

猗猗這見眞(의의저견진) 아름다움 이렇게 참다움 보여


寄叔安(기숙안) 숙안에게 부치니-曺植

梅上春候動(매상춘후동) 매화나무 위 봄 날씨 움찔

枝間鳥語溫(지간조어온) 가지 사이로 새 소리 따뜻

海亭山月白(해정산월백) 산해정에는 산에 달 밝아

何以坐吾君(하이좌오군) 어찌 하며는 내 그대 앉나


無題(무제) 제목 없이-曺植

服藥求長年(복약구장년) 선단을 먹어 오래 삶 찾아 仙丹 丹藥 仙藥

不如孤竹子(불여고죽자) 같지 못하니 고죽국 아들 伯夷叔齊

一食西山薇(일식서산미) 한결 먹으니 수양산 고비 首陽山

萬古猶不死(만고유불사) 오랜 세월을 오히려 살아 고비고사리


贈成東洲(증성동주) 성동주에게-曺植

斗縣無公事(두현무공사) 조그만 고을 하는 일 없이

時時入醉鄕(시시입취향) 때때로 들어 취하는 마을

目牛無全刃(목우무전인) 소를 보고서 다할 벰 없이

焉用割鷄傷(언용할계상) 어찌 쓰리오 닭 잡는 아픔


漫成(만성) 떠올라 짓다-曺植

天風振大漠(천풍진대막) 하늘 바람 떨치니 커다란 사막

疾雲紛蔽虧(질운분폐휴) 빠른 구름 뒤섞여 가려 덮어서

鳶騰固其宜(연등고기의) 솔개는 날아오름 마땅하다만

烏戾而何爲(오려이하위) 까마귀 어긋나니 무얼 하려고


贈別(증별) 헤어지며 주니-曺植

爲憐霜鬢促(위련상빈촉) 가엽게 재촉 서리 귀밑털

朝日上遲遲(조일상지지) 아침에 해는 늦게도 올라

東山猶有意(동산유유의) 동쪽 산 마치 뜻이 있어서

靑眼送將歸(청안송장귀) 푸른 눈 보내 돌아가려니 靑眼白眼


寄健叔(기건숙) 건숙에게-曺植

之子五鳳樓手(지자오봉루수) 이 사람 다섯 봉황 오봉루 솜씨

堯時不直一飯(요시부직일반) 요임금 때 안 쳐줘 밥 한 그릇 값

明月或藏老蚌(명월혹장로방) 명월주 어째 감춰 묵은 방합에

山龍烏可騫楦(산룡오가건훤) 산의 용은 어찌해 틀어진 신골 신골훤


題聞見寺松亭(제문견사송정) 문견사 송정에 제하다-曺植

雲袖霞冠尊兩老(운수하관존양로) 구름 소매 노을 갓 높은 두 노인

常瞻長日數竿西(상첨장일수간서) 늘 보는 기나긴 해 몇 발에 서쪽

石壇風露少塵事(석단풍로소진사) 돌 제단 바람 이슬 티끌 일 적어

松老巖邊鳥不啼(송로암변조부제) 솔 늙은 바위 가엔 새도 안 울어


題聞見寺松亭(제문견사송정) 문견사 송정에 제하다-曺植

袖裏行裝書一卷(수리행장서일권) 소매 안 행장으로 책을 한 권을

靑鞋竹杖上方西(청혜죽장상방서) 푸른 신 대지팡이 서쪽을 올라

遊人未釋無名恨(유인미석무명한) 노는 이 아니 버려 이름 없는 한

盡日山禽盡意啼(진일산금진의제) 하루 다해 산새는 뜻 다해 우네


江亭偶吟(강정우음) 강가 정자에서 우연히 읊다-曺植

臥疾高齋晝夢煩(와질고재주몽번) 앓아누워 높은 루 시달린 낮 꿈

幾重雲樹隔桃源(기중운수격도원) 몇 겹 구름 나무로 도원과 갈려

新水淨於靑玉面(신수정어청옥면) 새 물은 깨끗하기 푸른 옥보다

爲憎飛燕蹴生痕(위증비연축생흔) 미우니 제비 날아 물찬 흔적이


地雷吟(지뢰음) 지뢰 복괘를 읊다 復卦: 의 시작-曺植

易象分明見地雷(역상분명견지뢰) 주역 괘상 분명히 지뢰 복괘라

人心何昧善端開(인심하매선단개) 사람 맘 어찌 어둑 착함 열림을

祇應萌蘖如山木(기응맹얼여산목) 마침 받아 싹과 움 산에 나무에

莫遣牛羊日日來(막견우양일일래) 풀지 마소 소와 양 하루하루 와


山中卽事1(산중즉사1) 산에서 읊어-曺植

從前六十天曾假(종전육십천증가) 여태껏 예순 해는 하늘서 빌려

此後雲山地借之(차후운산지차지) 이다음 구름 산은 땅이 빌려줘

猶是窮塗還有路(유시궁도환유로) 오히려 막다른 길 다시 길 있어

却尋幽逕採薇歸(각심유경채미귀) 도리어 그윽한 길 고사리 캐지


山中卽事2(산중즉사2) 산에서 읊어-曺植

日暮山童荷鋤長(일모산동하서장) 해는 져 산골 아이 호미 메고 서

耘時不問種時忘(운시불문종시망) 김맬 때 묻지 않고 심은 때 잊어

五更鶴唳驚殘夢(오경학려경잔몽) 밤을 샌 학 울음에 놀라 남긴 꿈

始覺身兼蟻國王(시각신겸의국왕) 알게 돼 이 몸 겸한 개미나라 왕


鮑石亭(포석정) 포석정 경북 경주 927년 경애왕-曺植

楓葉鷄林已改柯(풍엽계림이개가) 단풍잎에 계림은 자루 바뀌니

甄萱不是滅新羅(견훤불시멸신라) 견훤이 아님이라 신라 없앰은

鮑亭自召宮兵伐(포정자소궁병벌) 포석정 절로 불러 대궐 침입을

到此君臣無計何(도차군신무계하) 여기 온 임금신하 꾀 없이 어찌


斷俗寺政堂梅(단속사정당매) 단속사 정당의 매화-曺植

寺破僧嬴山不古(사파승산불고) 절 부서져 중 앓아 산도 예 아냐 여윌리

前王自是未堪家(전왕자시미감가) 앞 임금 저만 옳아 집을 못 견뎌

化工正誤寒梅事(화공정오한매사) 꾸며 되기 참 잘못 추운 매화 일

昨日開花今日花(작일개화금일화) 어제도 꽃을 피워 오늘날 꽃이


次友人韻(차우인운) 벗의 운을 빌어-曺植

泛泛楊舟檣木蘭(범범양주장목란) 두둥실 뜬 버들 배 돛은 목련을

美人何處隔雲間(미인하처격운간) 고운 이 어디 있나 구름에 막혀

蓴鱸裡面猶多意(순로리면유다의) 순채 농어 속에는 참 많은 뜻이

只會江東一帆看(지회강동일범간) 다만 만나 강동에 한 돛배 보게


無題(무제) 제목 없이-曺植

神武城西氷欲泮(신무성서빙욕반) 신무성 서쪽으로 얼음 녹으려

鈴風初呌看儀竅(령풍초규간의규) 방울바람첫울림천지운행에 부르짖을규 구멍규

羹艾湯餠渾閑事(갱애탕병혼한사) 쑥국 떡국 먹는 일 느긋함 흐려

太半遺忘太半知(태반유망태반지) 거의 반 잊어버려 반쯤은 알아


寄西舍翁(기서사옹) 서사옹에게-曺植

萬疊靑山萬市嵐(만첩청산만시람) 만 겹으로 푸른 산 만 저자 아른

一身全愛一天函(일신전애일천함) 한 몸에 오롯 아낌 한 하늘 담아

區區諸葛終何事(구구제갈종하사) 자잘하게 제갈량 끝내 무슨 일 孔明 諸葛亮

膝就孫郞僅得三(슬취손랑근득삼) 무릎 굽혀 손권에 겨우 삼등 해魏吳蜀 三國


松月(송월) 소나무에 달-曺植

寒聲浙瀝頻蕭颯(한성절력빈소삽) 추운소리 걸러서 잦은 바람 쓸쓸이 거를력

天桂交加淨復森(천계교가정부삼) 하늘 달 얼려 붙어 깨끗해져 빽빽이

何處獨無繁好樹(하처독무번호수) 어딘들 홀로 없어 우거져 좋은 나무

不常其德二三心(불상기덕이삼심) 아니 늘 한 그 덕은 두어 마음가짐이


遊黃溪贈金敬夫(유황계증김경부) 황계에 놀며 김경부에게-曺植

莫恨秋容淡更疏(막한추용담갱소) 한 마라 가을 얼굴 멀건이 드문

一春留意未全除(일춘류의미전제) 봄 하나 남긴 뜻이 아니 다 가셔

天香滿地薰生鼻(천향만지훈생비) 하늘 향기 땅 가득 향 풀 코에 나 향풀훈

十月黃花錦不如(십월황화금불여) 시월에 노란 꽃엔 비단 못 비겨


訪村老(방촌로) 시골 노인을 찾아-曺植

黃流波上輕烟細(황류파상경연세) 황강 흘러 물결 위 안개 가늘게

白日窺中銀箭斜(백일규중은전사) 한낮 해 엿보는 속 은 화살 빗겨 화살전

谷口小溪開小室(곡구소계개소실) 골 어귀 작은 시내 작은 집 열어

蹇驢時有野人過(건려시유야인과) 저는 나귀 때있어 들사람 지나 절건 나귀려


庭梨(정리) 뜰에 배나무-曺植

半庭梨樹兩三株(반정리수량삼주) 뜰에 반을 배나무 두어 그루가

遮爲東陽擬木奴(차위동양의목노) 가려지니 동쪽 볕 나무 놈 흉내 막을차

無味一生全類我(무미일생전류아) 맛없이 한 삶 살아 모두 날 닮아 무리류

世人應道學楊朱(세인응도학양주) 세상사람 말하길 양주를 배워

楊朱(BC440?~BC360?)魏 子居 楊生 楊子 楊子居 이기적인 爲我說 주장


觀書有感(관서유감) 책을 본 느낌-曺植

半畝方塘一鑑開(반무방당일감개) 반 이랑 반듯한 못 한 거울 열어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 하늘 빛 구름그늘 함께 노닐어

問渠那得淸如許(문거나득청여허) 도랑 물어 어찌해 맡긴 듯 맑아 도랑거

爲有源頭活水來(위유원두활수래) 있으니 샘물머리 콸콸 물 솟아


德山卜居(덕산복거) 덕산에 살며-曹植

春山底處无芳草(춘산저처무방초) 봄 산에 바닥인 곳 꽃다움 없어

只愛天王近帝居(지애천왕근제거) 다만 아껴 천왕봉 하늘 가까워

白手歸來何物食(백수귀래하물식) 말간 손 돌아오니 무엇을 먹어

銀河十里喫猶餘(은하십리끽유여) 은하수 십 리 물은 마시고 남아 마실끽


有感(유감) 느낌에-曺植

忍飢獨有忘飢事(인기독유망기사) 주림참기 오로지 굶는 일 잊기

總爲生靈無處休(총위생령무처휴) 거느려 사는 백성 쉴 곳이 없어

舍主眠來百不救(사주면래백불구) 집임자 잠만 오니 모두 못 건져

碧山蒼倒暮溪流(벽산창도모계류) 푸른 산 푸름 쏟은 저묾 내 흘러 넘어질도


黃溪瀑布1(황계폭포1) 황계폭포-曺植

投璧還爲壑所羞(투벽환위학소수) 큰옥 던져 돌려야 골짝 부끄러 둥근옥벽 골학

石傳糜玉不曾留(석전미옥불증류) 돌 보내 싸라기 옥 아니 머물러 죽미

溪神謾事龍王欲(계신만사룡왕욕) 골짝 신 일이 더뎌 용왕이 하려

朝作明珠許盡輸(조작명주허진수) 아침에 밝은 구슬 다 실어가게


黃溪瀑布2(황계폭포2) 황계폭포-曺植

懸河一束瀉牛津(현하일속사우진) 달아맨 물 한 묶음쏟아 견우진 매달현 쏟을사

走石飜成萬斛珉(주석번성만곡민) 달리는 돌 엎어져 만 섬 옥돌이 휘곡 옥돌민

物議明朝無已迫(물의명조무이박) 뭇 말냄 밝을 아침 안 그쳐 닥쳐 닥칠박

貪於水石又於人(탐어수석우어인) 물에 돌에 껄떡대 또한 사람에


遊安陰玉山洞(유안음옥산동) 안음 옥산동에 놀며-曺植

春風三月武陵還(춘풍삼월무릉환) 봄바람에 삼월은 무릉도원에

霽色中流水面寬(제색중류수면관) 갠빛깔속에흘러 물얼굴 널찍 갤제 너그러울관

不是一遊非分事(불시일유비분사) 이 아니 한 노닐음 아니 맡은 일

一遊人世亦應難(일유인세역응난) 한번 놀아 세상에 또한 못 마땅


贈崔賢佐(증최현좌) 최현좌에게-曺植

金積烟雲洞(금적연운동) 금을 쌓아서 안개구름 골

逢君雙涕流(봉군쌍체류) 그대를 만나 두 눈물 흘러

憐君貧到骨(련군빈도골) 가여운 그대 뼈 닿은 가난

恨我雪渾頭(한아설혼두) 한스런 나는 머리 온통 눈

碧樹初經雨(벽수초경우) 푸른 나무 첫 비는 지나가

黃花正得秋(황화정득추) 노란 국화 딱 가을을 만나

還山抱白月(환산포백월) 산에 돌아와 밝은 달 안아

魂夢付悠悠(혼몽부유유) 넋에 꿈 부쳐 아득하여라


書李黃江亭楣(서리황강정미) 이희안의 황강정 문미에 적어-曺植

子規誰與呌(자규수여규) 두견새 울부짖어 누구에게 줘 부르짖을규

孤夢不能裁(고몽불능재) 외로운 꿈 못하니 지어 이룸을 마를재

身世隍中鹿(신세황중록) 몸을 둬 구덩이 속 빠진 사슴이 해자황

行藏沙畔能(행장사반능) 겪어 품어 할 수가 모래두둑을

草邊多路去(초변다로거) 풀 곁으로 많이도 길이 사라져

江上少人來(강상소인래) 강 위에는 적구나 오는 사람이

複複芭蕉葉(복복파초엽) 겹겹이 겹쳐 나온 넓은 파초 잎

外開心未開(외개심미개) 겉으로야 열렸지 마음 안 열어


明鏡臺(명경대) 명경대에서-曺植

高臺誰使聳浮空(고대수사용부공) 높은 누대 뉘 시켜 하늘 솟게 했을까

螯柱當年折壑中(오주당년절학중) 게 발 기둥 그때에 골짝에서 꺾어서

不許穹蒼聊自下(불허궁창료자하) 푸른 하늘 아니 돼 힘입으니 아래서

肯敎暘谷始能窮(긍교양곡시능궁) 옳다 여겨 양곡을 비로소 다하게끔

門嫌俗到雲猶鎖(문혐속도운유쇄) 속세 닿음 싫어서 구름 마치 자물쇠

巖怕魔猜樹亦籠(암파마시수역롱) 마귀 시기 두려워 나무 또한 에웠지

欲乞上皇堪作主(욕걸상황감작주) 상제께 빌어보아 감당해 주인 되려

人間不奈妬恩隆(인간불내투은륭) 인간에 어찌 못해 은혜 큼을 시샘해

明鏡臺:저승길 입구의 거울 暘谷:해 돋는 곳


贈黃江(증황강) 황강에게-曺植

思君霜月正離離(사군상월정리리) 그대생각서리달정말 떠나 떨어져 7/동짓달

新鴈時兼旅燕歸(신안시겸려연귀) 새 기러기 때함께 제비는 돌아가지

紅葉滿山全有色(홍엽만산전유색) 붉은 잎 산에 가득 온통 다 빛깔 있어

靑松留壑半無枝(청송류학반무지) 푸른 솔 머무는 골 반 쯤은 가지 없어

侵陵白髮愁爲橫(침릉백발수위횡) 달려드는 흰머리 시름에 질러 놓여

鳴咽蒼生稔益飢(명인창생임익기) 흐느껴백성들은곡식 익어 더 굶어 곡식익을임

果腹噎懷書不得(과복일회서불득) 불린 배 품어 목메 적으려다 못하니 목멜일

黃芚老子爾能知(황둔로자이능지) 황강 듬직 노인네 그대는알수있지 채소이름둔


贈吳學錄(증오학록) 오학록에게-曺植

卽懷風振木(즉회풍진목) 바로 품어 바람에 떨리는 나무

曾噎義寃人(증일의원인) 일찍 목메 옳아도 옭아맨 사람 목멜일

無以佳賓餉(무이가빈향) 없으니 멋진 손님 대접할 것이 건량향

採之南澗濱(채지남간빈) 이를 캐니 남쪽에 골짝 물가에


書劒柄贈趙壯元瑗(서검병증조장원원) 칼자루에 써서 장원 조원에게-曺植

离宮抽太白(이궁추태백) 남방 궁에서 태백을 뽑아 산신리 =뺄추

霜拍廣寒流(상박광한류) 서릿발 치니 달빛이 흘러 칠박

牛斗恢恢地(우두회회지) 견우 북두성 넓고 넓은 땅 넓을회

神游刃不游(신유인불유) 얼은 노닐어 칼날 안 놀아 헤엄칠유


贈鄭判書惟吉(증정판서유길) 판서 정유길에게-曺植

君能還冀北(군능환기북) 그대 바라니 북쪽 돌아감 바랄기

山鷓鴣吾南(산자고오남) 산 자고새로 나는 남쪽에 자고자고

名亭曰山海(명정왈산해) 정자 이름을 산해라 일러

海鶴來庭叅(해학래정참) 바다 학이 와 뜰에서 놀아


涵碧樓(함벽루) 함벽루-曺植

喪非南郭子(상비남곽자) 잃음에 못해 남곽자처럼

江水渺無知(강수묘무지) 강물 아득해 알지를 못해

欲學浮雲事(욕학부운사) 배우려 해도 뜬 구름 일들

高風猶破之(고풍유파지) 높은 풍류가 오히려 깨지


山海亭偶吟(산해정우음) 산해정에서-曺植

十里降王界(십리강왕계) 십리 되는 땅 왕이 내려와

長江流恨深(장강류한심) 긴 강에 흘러 한이 깊어서

雲浮黃馬島(운부황마도) 구름 떠가는 황마도 섬에

山導翠鷄林(산도취계림) 산이 이끌어 푸른 계림에


和淸香堂詩(화청향당시) 청향당 시에 답하며淸香堂李源(15011569)-曺植

四同應不在新知(사동응불재신지) 넷 같아 마주 아니 새로 앎 있어

擬我曾於鍾子期(의아증어종자기) 나를 비겨 일찍이 종자기에다

七字五言金直萬(칠자오언금직만) 칠언시 오언시는 만금의 가치

傍人看作一篇詩(방인간작일편시) 곁 한 이 보아 넘겨 한 낱의 시로


寄子修姪(기자수질) 자수 조카에게-曺植

百憂明未喪(백우명미상) 온갖 시름에 밝음 안 잃어

萬事寸無關(만사촌무관) 모든 일 조금 닫힘이 없어

姊姪一千里(자질일천리) 생질이 있어 천리 밖에서

星霜十二還(성상십이환) 세월의 해는 열 둘 돌아와

窮霪三月晦(궁음삼월회) 장마에 막혀 석 달 어두워 장마음

孤夢五更寒(고몽오경한) 외로운 꿈에 새벽은 추워

方丈如毋負(방장여무부) 방장이라서 저버림 마라 작은處所 住持 方丈山

音書亦復難(음서역부난) 소리 글 또한 다시 어려워


竹淵亭次文老韻(죽연정차문로운) 죽연정에서 문로의 운을 빌어-曺植

倻水遙從百里流(야수요종백리류) 가야산 물 먼 쫓음 백리를 흘러

洛神還與女深幽(낙신환여여심유) 낙동 신 되레 함께 넌 깊고 그윽

參差亂羽銀魚羂(참치란우은어견) 들쭉날쭉 섞인 깃 은어 그물이 올무견

高下飛絲野馬遊(고하비사야마유) 높게 낮게 날린 실 아지랑이가

鶴髮苔深多歲月(학발태심다세월) 흰머리 이끼 깊이 세월이 많아

荊花香發少春秋(형화향발소춘추) 가시 꽃에 향 피어 나이는 젊어

老來泉石廉於利(노래천석렴어리) 늙어와 샘에 돌에 이끗에 맑아

未作蘇黃十日留(미작소황십일류) 아니되 東坡 山谷 열흘 머물기蘇軾 黃庭堅


題永陽採蓮堂(제영양채련당) 영양 채연당에 제하다-曺植

樑木蘭江玉沙 (목란양목옥강사) 대들보 목란 무늬 강에는 옥 모래가

綠野蒼烟渾亦何(녹야창연혼역하) 푸른 들 파란 연기 흐릿 흘러 어떠랴

欲把天香聞帝室(욕파천향문제실) 잡아 쥔 하늘향기 하느님 방 맡으려

茫茫下土塵霞 (망망하토세진하) 아득함 땅에 내려 세상티끌 노을이



詠蓮1(영련1) 연꽃을 노래해-曺植

華盖亭亭翠滿塘(화개정정취만당) 꽃봉오리 우뚝해 푸르름 연못 가득

德馨誰與此生香(덕형수여차생향) 덕스런 향 누굴 줘 이렇게 향내 내어

請看黙黙淤泥在(청간묵묵어니재) 보시어요 묵묵히 진흙 속에 있어도 진흙어니

不啻葵花向日光(불시규화향일광) 해바라기 아니나 햇빛은 바라지요 뿐시



詠蓮2(영련2) 연꽃을 노래해-曺植

只愛芙蕖柳下風(지애부거류하풍) 다만 아껴 연꽃에버들밑 바람 연꽃거柳下惠

援而還止于潢中(원이환지우황중) 당겨도되레 멎어웅덩이 속에 당길원 웅덩이황

應嫌孤竹方爲隘(응혐고죽방위애) 으레 싫어 고죽국 마침 좁아서 좁을애

遠播淸香到老翁(원파청향도로옹) 멀리 퍼져 맑은 향 늙은이에게 뿌릴파


盆蓮(분련) 화분의 연꽃-曺植

上園休許小桃誇(상원휴허소도과) 웃동산에 하겐 마 작은 복사 자랑을

淤裡誰知君子花(어리수지군자화) 진흙 속 누가 알아 군자다운 꽃 있어 진흙어

留得小盆涵養意(유득소분함양의) 머무른 작은 화분 담겨져 뜻을 길러

暗香將月夜深和(암향장월야심화) 남몰래 향 달빛에 밤이 깊어 어울려


和寄宋相(화기송상) 송상에게 어울리게 부쳐-曺植

泰嶽雲藏天柱峯(태악운장천주봉) 큰 산 구름 숨기니 하늘기둥 봉

相公來到爲開容(상공래도위개용) 상공 와서 이르니 모습을 열어

山翁黍麥醺無類(산옹서맥훈무류) 산 늙은이 기장 술 취해 뉘 없이 취할훈

對與高明未有窮(대여고명미유궁) 맞아 함께 높 밝아 막힘이 없어


鳳鳴樓(봉명루) 봉명루-曺植

岐下遺音屬有樓(기하유음속유루) 갈림길 밑 남은 소리 닿아 루 있어

親賢樂利迄悠悠(친현락리흘유유) 어진 이는 이끗 즐겨 미쳐 멀리에 이를흘

自從矗石新開宇(자종촉석신개우) 부터까지 우거진 돌 새로 집 지어

六六鳴隨上下流(육륙명수상하류) 서른여섯 울며 따라 위아래 흘러


無題(무제) 무제-曺植

斯干日日樂靡違(사간일일락미위) 이 물가 날이면 날 즐겨 안 떠나

舍此談天未是奇(사차담천미시기) 이를 버려 하늘 말 아니 옳아서

智異三藏居彷佛(지이삼장거방불) 지리산 셋 숨김에 살아 그럴 듯

武夷九曲水依俙(무이구곡수의희) 무이산 아홉 구비 물도 비슷해 비슷할희

鏝墻瓦老風飄去(만장와로풍표거) 바른 담 묵은 기와 바람 몰아가 흙손만

石路歧深馬自知(석로기심마자지) 돌길은 갈려 깊이 말 절로 알아

皓首重來非舊主(호수중래비구주) 흰 머리에 다시와 아닌 옛 주인 흴호

一年春盡詠無衣(일년춘진영무의) 한 해의 봄은 다해 무의를 읊어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 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寄楗仲(기건중) 건중에게-曺植

冥鴻矯翼海南飛(명홍교익해남비) 기러기 날개 고쳐 바다 남쪽엘

正値秋風木落時(정치추풍목락시) 바른 값 가을바람 나뭇잎 질 때

滿地稻粱鷄騖啄(만지도량계무탁) 땅가득 나락낟알 닭 달려 쪼아 기장량 달릴무

碧雲天末自忘飢(벽운천말자망기) 푸른 구름 하늘 끝 제 주림 잊어


漫成(만성) 떠올라 짓다-曹植

半日雲中是赤誠(반일운중시적성) 반쯤 해 구름 속에 이 붉은 마음

一生難許入承明(일생난허입승명) 한 삶에 어렵기는 벼슬에 들기

方知巢許無全節(방지소허무전절) 마침 안 소부 허유 오롯함 없어

自是箕山做得成(자시기산주득성) 이로부터 기산서 이룸을 지어 지을주


聞李愚翁還鄕(문리우옹환향) 이우옹 고향 돌아옴을 듣고-曺植

山海亭中夢幾回(산해정중몽기회) 산해정 정자에서 꿈을 몇 번 꿔

黃江老叟雪盈腮(황강로수설영시) 황강에 늙은 노인 뺨 가득 흰 눈

半生金馬門三到(반생금마문삼도) 살면서 궁궐 문에 문 세 번 닿아

不見君王面目來(불견군왕면목래) 아니 뵌 임금님께 뵈올 낯 오며


贈別大谷(증별대곡) 대곡과 헤어지며-曺植

出自北門同渡漢(출자북문동도한) 북문으로 나와서 같이 건너 한강을

三同猶有姓非同(삼동유유성비동) 같음 셋 마치 있어 성씨는 아니 같아

九皐鶴和曾心願(구고학화증심원) 아홉 언덕 학 얼려 일찍이 마음 바래

千里星分已道窮(천리성분이도궁) 천 리길 별 나뉘니 이미 길은 다하네

野水東流歸不返(야수동류귀불반) 들에 물 동쪽 흘러 가면야 못 돌아와

塞雲南下去無從(색운남하거무종) 변방 구름 남으로 떠나가 좇지 못해

丁寧白日相思意(정녕백일상사의) 그리 정말 한낮에 서로 그려 마음에

魂夢慇懃他夜通(혼몽은근타야통) 넋에 꿈 꾸역꾸역 다른 밤 뚫어 미쳐


贐別李學士增榮(신별이학사증영) 학사 이증영을 떠나보내며-曺植

送君江月千尋恨(송군강월천심한) 그대 보내 강물 달 천 길의 한이

畵筆何能畵得深(화필하능화득심) 그림붓 어찌하랴 깊이를 그려

此面由今長別面(차면유금장별면) 이 낯에 이제라서 오래 헤질 때

此心長是未離心(차심장시미리심) 이 마음 길이 옳아 맘은 안 떠나


浴川(욕천) 냇물에 멱 감아-曺植

全身四十年前累(전신사십년전루) 온몸이 마흔이라 지난해 허물

千斛淸淵洗盡休(천곡청연세진휴) 천석의 맑은 못물 씻어내 모두

塵土倘能生五內(진토당능생오내) 티끌 흙 혹시라도 오장 속 살아 혹시당

直今刳腹付歸流(직금고복부귀류) 이제 바로 배 갈라 흘려보내리 가를고


民巖賦(민암부) 백성바위 노래-曺植

亙萬古而設險(선만고이설험) 만고를 걸쳐 험함 베풀어

幾帝王之泄泄(기제왕지설설) 몇몇 임금님 흘려 지나가

桀紂非亡於湯武(걸주비망어탕무) 걸주안망해탕왕무왕에나라 桀王殷나라紂王

乃不得於丘民(내부득어구민) 이는 못 얻어 언덕에 백성

漢劉季爲小民(한유계위소민) 한나라 유방 작은 백성 돼

秦二世爲大君(진이세위대군) 진나라 이세 큰 임금 되어

以匹夫而易萬乘(이필부이역만승) 한 사내로서 만승 바꿈이

是大權之何在(시대권지하재) 이런 큰 힘 쥠 어디에 있어

只在乎吾民之手兮(지재호오민지수혜) 다만 있으니 우리의 손에

不可畏者甚可畏也(불가외자심가외야) 겁낼 것 없어 두려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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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卿 春亭 卞季良(13691430)文肅 密陽 春亭集

 

次子剛韻(차자강운) 자강의 운을 따서-卞季良

關門一室淸(관문일실청) 문 닫으니 방 하나 맑기만 하고

烏几淨橫經(오궤정횡경) 까만 책상 깔끔히 경전이 놓여

纖月入林影(섬월입림영) 초승달 숨어들어 숲 그림자에

孤燈終夜明(고등종야명) 외론등불 다해서 밤을 밝히네


睡起1(수기1) 잠에서 일어나-卞季良

地僻家何事(지벽가하사) 땅은 외져 집안에 무슨 일 있나

簷虛日自斜(첨허일자사) 처마는 비었는데 해 절로 기웃

幽人初睡覺(유인초수각) 그윽한 이 비로소 졸다 깨어나

開遍一林花(개편일림화) 두루 열린 숲 하나 꽃이 피었네


睡起2(수기2) 잠에서 일어나-卞季良

墻樹花初盛(장수화초성) 담장 나무 꽃으로 비로소 만발

庭苔綠漸深(정태녹점심) 뜨락 이끼 푸르러 갈수록 더욱

蝶飛如有約(접비여유약) 나비 날아 모이니 약속한 듯이

人立自長吟(인립자장음) 사람 서서 저절로 길게 읊음을


初冬雨夜(초동우야) 초겨울 비 오는 밤-卞季良

旅窓冬夜靜(려창동야정) 나그네 방에 겨울밤 고요

危坐轉悠哉(위좌전유재) 꿇어앉으니 갈수록 아득

夢斷三更雨(몽단삼경우) 꿈을 깨우는 한밤 빗소리

心驚十月雷(심경십월뢰) 마음 놀래게 시월 달 우레

壁燈熏散秩(벽등훈산질) 벽 걸린 등불 책을 그을려

爐火沒深灰(로화몰심회) 화로 불씨는 깊은 재 속에

少壯須勤力(소장수근력) 젊을 때 부디 힘써 부지런

光陰自解催(광음자해최) 세월은 절로 서둘러 흘러


宿山寺(숙산사) 숙산사-卞季良

山半古時寺(산반고시사) 산에 반쯤은 옛날 절이라

居僧多白頭(거승다백두) 머무는 스님 많이 흰 머리

禪枝寒磬動(선지한경동) 절집 추녀에 찬 풍경 울려

佛殿晩香浮(불전만향부) 부처 전각에 저녁 향 올라

塔影中庭月(탑영중정월) 탑 그림자에 뜰 가운데 달

松聲萬嶺秋(송성만령추) 솔바람소리 온 산에 가을

隔林城市近(격림성시근) 숲 너머에는 성시 가까워

一夜且淹留(일야차엄류) 하룻밤이야 머물러 보자


題靑溪山行上人院(제청계산행상인원) 청계산 행상인원에 제하여-卞季良

石路千崖盡(석로천애진) 돌길은 천길 절벽서 끝나

香煙一室淸(향연일실청) 향 연기 피어 방하나 맑아

客來求煮茗(객래구자명) 손은 와 찾아 차 싹 끓이길

僧坐自飜經(승좌자번경) 스님은 앉아 혼자 경을 펴

樹老何年種(수로하년종) 나무는 늙어 어느 해 심어

鍾殘半夜聲(종잔반야성) 종소리 남겨 한밤의 소리

悟空人事絶(오공인사절) 을 깨달아 사람 일 끊어

高臥樂無生(고와락무생) 높이 누워서 즐겨 살아


遣興(견흥) 흥을 달래며-卞季良

寂寞家何事(적막가하사) 고요 쓸쓸 집에야 뭔 일 있으랴

淸明日漸長(청명일점장) 청명이 되어선지 해 차츰 길어

暖風吹午夢(난풍취오몽) 따뜻한 바람 불어 낮에 꿈을 꿔

幽草自春香(유초자춘향) 그윽한 풀 저절로 봄의 향기를

遣興披書帙(견흥피서질) 흥 일어 달래려고 책을 펼치고

寬心索酒觴(관심색주상) 마음을 눅여보려 술잔을 찾아

向來眞趣足(향래진취족) 여태껏 참말이지 멋 냄 넉넉해

誰復憶羲皇(수복억희황) 뉘 돌아가 복희씨 생각할건가


睡起(수기) 잠에서 일어나-卞季良

茆簷日靜小窓明(묘첨일정소창명) 처마에 해 가만히 작은 창 밝혀

窓外靑山作畫屛(창외청산작화병) 창 밖에 푸른 산은 그림병풍에

宿醉醒來時政午(숙취성내시정오) 간밤 취함 가시니 때는 한낮에

手開爐火煖茶甁(수개노화난다병) 손수 열어 화롯불 차병을 데워


午吟(오음) 낮에 읊어-卞季良

綠樹陰濃近午天(녹수음농근오천) 푸른 나무 그늘 짙은 한낮의 하늘

白雲當戶正如綿(백운당호정여면) 하얀 구름 문에 서니 정말 솜 같아

鳥啼花落茅齋靜(조제화락모재정) 새는 울어 꽃이 지니 띠 집은 고요

剩得蒲團盡日眠(잉득포단진일면) 왕골자리 그 위에서 날 다해 잠을


月夜(월야) 달밤-卞季良

焚香一室足淸幽(분향일실족청유) 향불 피운 방 하나 맑고 그윽해

衾簟涼生暑氣收(금점량생서기수) 삿자리 서늘하여 더위를 거둬

直到夜深難作夢(직도야심난작몽) 내려 비춰 밤 깊이 잠들지 못해

月華星彩動新秋(월화성채동신추) 달빛어린 별빛에 가을 새로워


新秋雨夜(신추우야) 새 가을 비 내린 밤-卞季良

忽忽逢秋意易悲(홀홀봉추의역비) 훌쩍 만난 가을엔 마음 서글퍼

坐看楓葉落庭枝(좌간풍엽낙정지) 앉아 바래 단풍잎 뜰에 떨어져

算來多少心中事(산래다소심중사) 헤어 오니 얼마간 마음 속 일을

月暗疎窓夜雨時(월암소창야우시) 달빛 어둑 성긴 창 밤비 내릴 때


夜雨(야우) 밤비-卞季良

小雨冥冥久未晴(소우명명구미청) 보슬비 어둑어둑 오래 안 그쳐

連雲接塞暗重城(연운접새암중성) 이은 구름 변방에 까만 겹친 성

無端更向空階滴(무단갱향공계적) 실없이 다시 뿌려 빈 섬돌 적셔

遮莫幽人夢不成(차막유인몽불성) 막지 마라 숨은 이 꿈을 못 이뤄


雪晴(설청) 눈이 개이니-卞季良

風急雪花飄若絮(풍급설화표야서) 바람 빨라 눈꽃은 솜처럼 날려

山晴雲葉白於綿(산청운엽백어면) 산이 개니 구름 잎 솜보다 희네

箇中莫怪無新句(개중막괴무신구) 이 가운데 새론 시 없다 말아라

佳興從來未易傳(가흥종내미이전) 좋은 멋 냄 예부터 쉽겐 못 알려


冬至(동지) 동짓날-卞季良

繡紋添線管灰飛(수문첨선관회비) 수 무늬에 더한 실 대롱 재 날려

冬至家家作豆糜(동지가가작두미) 동짓날 집집마다 팥죽을 쑤네

欲識陽生何處是(욕식양생하처시) 알고 싶은 하나 어딘가 했지

梅花一白動南枝(매화일백동남지) 매화꽃 흰 꽃 하나 남쪽 가지에


試闈(시위) 과장에서 과거시험장 대궐작은문위-卞季良

春闈曾見士如林(춘위증견사여림) 봄 과장 일찍이 본 선비들 수풀

萬萬花容有淺深(만만화용유천심) 많고 많은 꽃빛은 옅고 짙어서

李白桃紅都自取(리백도홍도자취) 흰 오얏 붉은 복사 다 절로 얻어

天工造物本無心(천공조물본무심) 하늘이 지은 만물 본디 무심해


病中(병중) 아픈 가운데-卞季良

幽棲地僻客來遲(유서지벽객내지) 그윽한 삶 외진 곳 손 오기 늦어

門掩苔痕欲上扉(문엄태흔욕상비) 문 닫아 이끼 끼어 사립문 번져

巢燕似應憐我病(소연사응련아병) 깃든 제비 내 병을 가엽게 여겨

簷前終日語還飛(첨전종일어환비) 처마 앞에 하루 내 묻고 날아가


冬至日早朝(동지일조조) 동짓날 이른 아침-卞季良

金碧輝輝映道周(금벽휘휘영도주) 금에 옥에 빛나니 길 두루 비쳐

九門寒漏促更籌(구문한누촉갱주) 아홉 문 찬 물시계 다그쳐 헤어

鷄人報曉開天闕(계인보효개천궐) 닭 사람 새벽 알려 대궐문 열려

鸞鷺盈庭拜冕旒(난로영정배면류) 신하들로 뜰 가득 임금님 뵈어

雲近御牀分五色(운근어상분오색) 구름 둘러 용상 곁 오색 나뉘어

山呼聖壽獻千秋(산호성수헌천추) 산도 외쳐 임금 삶 천세를 빌어

佳辰況是陽初動(가신황시양초동) 좋은 날에 하물며 한 양기 비롯

蹈舞歌時敢自休(도무가시감자휴) 춤추며 노래한 때 혼자만 쉴까


獨坐呈柳先達(독좌정류선달) 홀로 앉아 류선달에게 드림-卞季良

雨後靑靑苔色新(우후청청태색신) 비온 뒤 푸릇푸릇 이끼 빛 새록

空庭惟有燕來頻(공정유유연래빈) 빈 뜰에 오직 있어 제비 자주 와

科頭箕踞茅簷畔(과두기거모첨반) 맨머리에 웅크려 처마 두둑에 키기 웅크릴거

時復題詩寄故人(시부제시기고인) 때론 다시 시 지어 벗에게 주지 부칠기


不出(불출) 나가지 않아-卞季良

幽意自多愜(유의자다협) 그윽한 뜻에 나는 꽤 흐뭇 쾌할협

竟無賓客來(경무빈객래) 끝내 없으니 오는 손님이

酒杯浮蟻嫰(주배부의눈) 술잔에 떠니 거품이 보글 개미의 어릴눈

花朶近人開(화타근인개) 꽃떨기 피워 사람 가까이 늘어질타

試筆添詩藁(시필첨시고) 붓 들어 해봐 시 한 수 보태 마를고

移牀掃石苔(이상소석태) 평상을 옮겨 돌이끼 쓸어 평상상 쓸소

數旬仍不出(삭순잉불출) 몇 십일 거듭 나가지 않아 열흘순

冠帶暗生埃(관대암생애) 갓에 띠에도 언제 먼지에 티끌애


晨興(신흥) 새벽 흥-卞季良

殘夜涼侵簟(잔야량침점) 새벽 서늘함 삿자리 들어 삿자리점

窓虛露氣通(창허로기통) 창문 틈으로 이슬 기 미쳐

四鄰明宿火(사린명숙화) 온데 이웃에 밤 등불 밝혀

萬井動晨鍾(만정동신종) 모든 우물에 새벽 잔 놓여

日出疎煙外(일출소연외) 해가 떠올라 엷은 연기 밖

秋生積雨中(추생적우중) 가을로 접어 비 쌓인 끝에

幽棲忘盥櫛(유서망관즐) 숨어 살아서 잊은 대야 빗 대야관 빗즐

客至强爲容(객지강위용) 손님이 찾아 억지로 꾸며


感興1(감흥1) 흥을 느껴-卞季良

肅肅風露涼(숙숙풍로량) 쓸쓸한 바람 이슬 차가워 서늘할량

輝輝星月明(휘휘성월명) 빛나는 별에 달은 밝기도

悄然坐長夜(초연좌장야) 시름겨워서 앉아 긴 밤을 근심할초

百感由中生(백감유중생) 온갖 느낌이 따름 속 솟아

男兒貴立身(남아귀립신) 사내 받들어 몸을 세우기

出處諒難輕(출처량난경) 난 곳을 믿어 가벼이 못해 믿을량

忘義決性命(망의결성명) 옳음을 잊고 바탕 명 제쳐 터질결

碌碌徒求榮(녹록도구영) 울퉁불퉁 헛 꽃피움 찾아 돌모양록

子晉亦何爲(자진역하위) 자진은 또한 어떠했는가

緱山獨吹笙(구산독취생) 구산에 홀로 생황을 불어 칼자루감을구 생황생

無可無不可(무가무불가) 옳음이 없어 안 옳음 없어

大聖初難名(대성초난명) 큰 성인 처음 이름 어려워


感興2(감흥2) 흥을 느껴-卞季良

吾聞神仙人(오문신선인) 우리 들으니 신선인 사람

高步餐紫霞(고보찬자하) 높이 거닐며 붉은 놀 먹어 먹을찬

逍遙壺中天(소요호중천) 거닐어 놀아 병 속에 하늘 거닐소 병호

流光任蹉跎(유광임차타) 빛 흘러 맡겨 헛디뎌 지나 넘어질차 헛디딜타

我生異於是(아생이어시) 내 삶은 달라 이런 것과는

撫琴良歎嗟(무금량탄차) 거문고 만져 참으로 탄식

充腸用禾稼(충장용화가) 배를 채우려 벼농사 짓고

煖身以絲麻(난신이사마) 몸을 데우려 삼 잣는 까닭 따뜻할난 삼마

但願崇令德(단원숭령덕) 다만 바라니 좋은 덕 높여 높을숭

壽夭心靡他(수요심미타) 오래 삶 못삶 마음 안 달라 어릴요 쓰러질미


感興3(감흥3) 흥을 느껴-卞季良

瑞蓮出衆卉(서련출중훼) 좋으니 연꽃 뭇 풀 뛰어나 풀훼

不染亦不靡(불염역불미) 물들지 않아 쏠리지 않아 쓰러질미

結根非其地(결근비기지) 뿌리를 맺어 그 땅 아니나

生此東海涘(생차동해사) 이리 자라니 동해 물가에 물가사

我行適見之(아행적견지) 내 길을 가다 마침 널 보니

悲歎未能已(비탄미능이) 슬피 읊음에 그치질 못해

世無濂溪翁(세무렴계옹) 세상에 없어 렴계 늙은이 濂溪周敦頤(1017~1073)

誰知是君子(수지시군자) 누가 알건가 이것이 군자

政恐霜雪逼(정공상설핍) 정말 두려워 서리 눈 닥침 닥칠핍

紅芳難久恃(홍방난구시) 붉은 꽃다움 오래 못 믿어


感興4(감흥4) 흥을 느껴-卞季良

春蠶復秋蛾(춘잠복추아) 봄누에 돌아 가을엔 나방 누에잠 나방아

歲月無停期(세월무정기) 세월에 없어 멎은 동안이

人生非金石(인생비금석) 사람 삶 아니 쇠나 돌로는

少年能幾時(소년능기시) 젊은 나이로 몇 때 보낼까

馳名日拘束(치명일구속) 이름 치달아 날로 얽매여 달릴치

靜言心傷悲(정언심상비) 가만히 말해 맘 다친 슬픔

旣壯不努力(기장불노력) 이미 다자라 힘쓰지 않아

白首而無知(백수이무지) 흰머리라도 아는 게 없어

思之一長歎(사지일장탄) 이를 생각해 긴 한숨 하나

庶幾來可追(서기래가추) 거의 왔는데 쫓아가야해


感興5(감흥5) 흥을 느껴-卞季良

嶙峋有古柏(인순유고백) 깊고 깊은 산 오랜 잣나무 가파를린 깊숙할순

托根深山中(탁근심산중) 뿌리 내리니 깊은 산속에 밀탁

霜露日夜催(상로일야최) 서리 이슬로 밤낮 다그쳐

臥壑如蟄龍(와학여칩룡) 골짝에 누워 숨은 용처럼 숨을칩

豈乏梁棟材(개핍량동재) 어찌 버리랴 들보 기둥감 가난할핍 용마루동

所嗟無良工(소차무량공) 탓하니 없어 좋은 대목이

我來久吁怪(아래구우괴) 내 와서 오래 어째 이상해 탄식할우

柯葉嘶悲風(가엽시비풍) 가지 잎 울어 슬픈 바람에 자루가 울시

棄捐勿復道(기연물부도) 버려둘 테니 다시 말 마라 버릴기연

此恨今昔同(차한금석동) 이런 한이란 이제 옛 같아


感興6(감흥6) 흥을 느껴-卞季良

綺樓何鮮明(기루하선명) 멋진 누각이 어찌나 뚜렷 비단기 고울선

照耀浮雲邊(조요부운변) 비춰 빛나니 뜬구름 가에 빛날요

樓中有佳女(누중유가녀) 누대 안에는 아름다운 이

容色妖且姸(용색요차연) 얼굴 맵시는 요염해 고와 아리따울요 고울연

一笑竟不發(일소경불발) 웃음 하나를 끝내 안 보내

芳心誰爲傳(방심수위전) 꽃다운 마음 누가 해 알려

試取鳴琴彈(시취명금탄) 잡아 울려봐 거문고 뜯어

哀響飛靑天(애향비청천) 서글픈 울림 푸른 하늘로 울림향

願爲君子逑(원위군자구) 되기 바라니 군자의 배필 짝구

偕老終百年(해로종백년) 함께 늙어서 백년을 다해 함께해


感興7(감흥7) 흥을 느껴-卞季良

千門桃與李(천문도여리) 모든 문에 핀 복사 오얏꽃

當春各爭媚(당춘각쟁미) 봄 맞아 따로 다투는 아양 아첨할미

兒女竟耽翫(아녀경탐완) 아녀자 다해 즐겨서 놀아 가지고놀완

爛熳誇富貴(난만과부귀) 흐드러지게 부귀를 자랑 문드러질란 자랑할과

一夕龍火飛(일석룡화비) 어느 한 저녁 용 불이 날아

摧脫卽枯卉(최탈즉고훼) 꺾이고 벗어 마른 풀 나무 꺾을최

不見南山松(불견남산송) 보지도 않아 남산 소나무

歲寒含晩翠(세한함만취) 해 추운 겨울 늦 푸름 품어


次靈通寺壁上韻(차령통사벽상운) 영통사 벽 위의 운으로-卞季良

地僻塵機息(지벽진기식) 땅은 외져서 티끌 틀 재워 후미질벽

樓高暑氣微(누고서기미) 누대는 높아 더운 티 가셔

鳥隨鳴磬下(조수명경하) 새 따라 내려 경쇠 울림에 경쇠경

僧趁暮鍾歸(승진모종귀) 중 좇아 옴은 저녁 종소리 좇을진

移石雲生袖(이석운생수) 돌을 옮겨서 구름 난 소매 소매수

看松露滴衣(간송로적의) 솔을 우러러 이슬 맞은 옷 물방울적

秋霜山菓熟(추상산과숙) 가을 서리에 산 과일 익어

更此扣岩扉(갱차구암비) 다시 여기서 바위 문 당겨 두드릴구 문짝비


題僧舍(제승사) 스님 집-卞季良

俗客來參佛(속객래참불) 세속 나그네 와서 부처 봬

高僧坐誦經(고승좌송경) 높은 스님은 앉아 경을 외

晝燈熏古壁(주등훈고벽) 낮에 등불로 옛 벽 그을려 연기낄훈

老檜響空庭(노회향공정) 늙은 전나무 빈 뜰에 울려 노송나무회

塔立三層白(탑립삼층백) 탑은 우뚝 서 삼층 하얗고

山回四面靑(산회사면청) 산은 둘러져 사면 푸르러

禪窓更無事(선창갱무사) 선방 창 다시 아무 일 없어

終日倚風欞(종일의풍령) 하루 내 기대 바람 난간에 격자창령


登聖居山金神寺(등성거산금신사) 성거산 금신사에 올라-卞季良

攀蘿登絶頂(반라등절정) 넝쿨을 잡고 꼭대기 올라 무라

碧殿拱寒虛(벽전공한허) 푸른 집 안겨 차가운 빔에 두손맞잡을공

佛古稱尊者(불고칭존자) 불상 오래되 높일 이 일러

山靈號聖居(산령호성거) 산은 신령해 성인 삶 불려

鍾聲雲外落(종성운외락) 종소리 떨렁 구름 밖으로

松影月中疏(송영월중소) 솔 그늘 드문 달 가운데에

最愛安禪子(최애안선자) 가장 아끼니 편한 불자여 봉선선

渠心政自如(거심정자여) 어찌 마음은 정말 절로라 도랑거


寄鼎谷(기정곡) 정곡에게 부쳐 將赴京都長湍途中寄呈鼎谷-卞季良

蓬轉東南影與身(봉전동남영여신) 뽑혀 굴러 동남을 몸과 그림자 쑥봉

舊情誰復似雷陳(구정수복사뢰진) 옛 정을 누가 돌려 우레 폄 같이

病深藥物渾無賴(병심약물혼무뢰) 병이 깊어 약이란 다 소용없어 힘입을뢰

吟苦詩篇頗有神(음고시편파유신) 아픔 읊은 시들로 자못 얼차려

虛白連天江群曉(허백련천강군효) 비어 흰 이은 하늘 강 뭉텅 훤해

暗黃浮地柳是春(암황부지류시춘) 검누렇게 뜬 땅에 버들이 봄날

自憐令節情懷惡(자련령절정회악) 저만 불쌍 좋은 철 정 품어 나빠

題句時還寄故人(제구시환기고인) 지은 글 때론 돌려 옛 벗에 부쳐


金神寺(금신사) 금신사-卞季良

金神洞府深復深(금신동부심부심) 금신동 골짜기는 깊고도 깊어

時有老僧邀獨尋(시유로승요독심) 때로는 늙은 스님 홀로 맞으려 찾을심

鹿麋穩眠草如織(녹미온면초여직) 사슴들 편한 잠에 풀은 짜인 듯 큰사슴미

蝙蝠亂飛山正陰(편복란비산정음) 박쥐 날아 어지러 산은 그늘이 박쥐편복

石根嵓泉碎玉斗(석근암천쇄옥두) 바위밑동 바위샘 깨진 옥 한말 바위암 부술쇄

風吹蘿月散黃金(풍취라월산황금) 바람 불어 덩굴 달 흩어진 황금

曉來欲覺聞鍾坐(효래욕각문종좌) 새벽 오니 잠깨려 듣는 종소리

當日少陵知此心(당일소릉지차심) 그 날의 소릉이라 이 마음 알아 杜甫


原仲(원중) 원중-卞季良

長嘯飄然海一隅(장소표연해일우) 길게 읊어 획 떠나 바다 한 쪽을 모퉁이우

早年行路正荒蕪(조년행로정황무) 젊은 날 가는 길이 정말 거칠어 거칠어질무

不才自合居蓬蓽(부재자합거봉필) 아닌 재주 딱 맞아 풀밭에 살아 콩필

高興時時滿八區(고흥시시만팔구) 높은 흥에 때때로 온데로 넘쳐


偶吟1(우음1) 우음-卞季良

螢雪辛勤十載餘(형설신근십재여) 어렵게 맵게 힘써 열해 남짓에 螢雪之功

少年豪氣塞堪輿(소년호기색감여) 어린나이 씩씩함 하늘땅 막아 수레여

一庭綠草春將半(일정록초춘장반) 뜰 하나 푸른 풀로 봄은 반이나

且取星書强卷舒(차취성서강권서) 가져다 별 글 달력 억지 열어 펴 펼서


偶吟2(우음2) 우음-卞季良

易數元來未易窮(역수원래미이궁) 주역 수리 원래가 다함 안 쉬워

先生能向一中通(선생능향일중통) 선생은 쭉 하여서 하나로 꿰어

天根月窟曾探躡(천근월굴증탐섭) 하늘뿌리 달의 굴 일찍 찾아서 밟을섭

須信堯夫在海東(수신요부재해동) 꼭 믿어 요부 소옹 우리도 있어 邵雍


雨中看梨花(우중간이화) 빗속의 배꽃을 보며-卞季良

梨花着雨映簷端(리화착우영첨단) 배꽃에 빗물 달려 처마 끝 비춰

終日無人獨憑欄(종일무인독빙란) 하루 내 사람 없어 혼자만 기대 기댈빙

恰似明妃在胡虜(흡사명비재호로) 마치 꼭 왕소군이 흉노에 있기 마치흡

玉顔雙淚不曾乾(옥안쌍루부증건) 옥 얼굴 두 줄 눈물 마름 못 만나


暮春卽事(모춘즉사) 늦은 봄에-卞季良

落花撩亂入風欞(낙화료란입풍령) 지는 꽃 돋워 시끌 바람 든 난간 다스릴료

灑面頻敎醉夢驚(쇄면빈교취몽경) 얼굴에 뿌리게 해 꿈꾸다 놀라 뿌릴쇄

應是東君好詩者(응시동군호시자) 이래 맞는 봄 임금 시를 좋아해

深嗔才子太無情(심진재자태무정) 하도 성내 시인에 너무 정 없어 성낼진


層峯裏(층봉리) 겹친 봉우리 속에-卞季良

寂寞蘿窓底(적막라창저) 고요 쓸쓸히 넝쿨 창 나직 밑저

惟聞澗水聲(유문간수성) 오직 들으니 골짝 물소리 계곡시내간

淸心談佛性(청심담불성) 말간 마음에 얘긴 부처님

叉手問僧名(차수문승명) 손 모아 물어 스님 이름을 깍지낄차

遊宦誠無策(유환성무책) 벼슬살면서 정말 꾀 없어 벼슬환

烟霞合鍊形(연하합련형) 안개노을에 붙어 불린 꼴 불릴련

坐來山正靜(좌래산정정) 앉아있자니 산은 참 가만

一鳥不曾鳴(일조부증명) 한 마리 새도 일찍 안 울어


寄東窓(기동창) 동녘 창에 부쳐-卞季良

祖翁多積善(조옹다적선) 할아비께서 선 쌓음 많아

故此有賢孫(고차유현손) 그래서 이리 어진 손자가

詩態春雲麗(시태춘운려) 시는 맵시나 봄 구름 고움

容儀白玉溫(용의백옥온) 얼굴 몸가짐 하얀 옥 말쑥

林花依屋角(임화의옥각) 숲의 꽃 기대 집 모퉁이에

庭樹到窓根(정수도창근) 뜰 나무 뻗어 창문 아래로

窮巷誰曾過(궁항수증과) 끝 다한 마을 뉘 일찍 지나 거리항

殘經手自翻(잔경수자번) 남겨진 경전 손수 뒤적여 날번


寄陽曲(기양곡) 양곡에게 부쳐-卞季良

落落隴西彦(낙락롱서언) 우뚝 뛰어나 농서의 선비 고개이름롱

早年成大家(조년성대가) 이른 나이에 큰 갖춤 이뤄

新篇惟我共(신편유아공) 새 시 지음에 오직 내 함께

高義更誰過(고의갱수과) 높은 의리에 다시 뉘 넘어

樹密聞幽鳥(수밀문유조) 나무 빽빽해 숨은 새소리

簷虛對晩花(첨허대만화) 처마는 비어 늦은 꽃 마주

佳辰看又近(가신간우근) 아름다운 날 보며 다가와

身病欲如何(신병욕여하) 몸이 병들어 어떻게 하나


觀音窟(관음굴) 관음굴-卞季良

聖居山東天磨西(성거산동천마서) 성거산 동쪽으로 천마산 서쪽

觀音之窟幽且淸(관음지굴유차청) 관음굴은 그윽해 게다가 맑아

朴淵水下垂玉虹(박연수하수옥홍) 박연폭포 물 쏟아 옥의 무지개

倚祥臺逈干靑冥(의상대형간청명) 의상대는 멀기만 푸른 하늘에 멀형 어두울명

兩箇石佛是眞象(량개석불시진상) 두 개의 돌부처는 바로 참 본떠 낱개

白頭老僧非世情(백두노승비세정) 흰머리 늙은 스님 속세 아닌 정

生平遊歷未曾有(생평유력미증유) 살면서 거쳐 다녀 일찍이 없어

殷勤掃壁題姓名(은근소벽제성명) 힘써서 벽을 쓸어 성 이름 새겨 성할은 慇懃


無題(무제) 무제-卞季良

軒冕從來世所誇(헌면종래세소과) 높은 자리 예부터 세상 자랑해 면류관면

相公須信聖恩加(상공수신성은가) 재상은 꼭 알아야 임금 은혜를

卽今門戶光輝大(즉금문호광휘대) 나아 이제 집안에 빛남이 큼직 빛날휘

況乃高堂白髮何(황내고당백발하) 하면 집에 어버이 어찌하려오 하물며황


上卽位明朝受朝賀(상즉위명조수조하) 상 즉위 명조 수 조하 世宗-卞季良

天命人歸在嗣王(천명인귀재사왕) 하늘 명 사람 마음 이은 임금께 이을사

勃興垂拱正當陽(발흥수공정당양) 우쩍 일어 맞잡아 바로 남쪽을 우쩍일어날발

絳侯撥亂開新業(강후발란개신업) 강후주발난리에새 업을 열어 진홍강 다스릴발

漢室從玆獲再昌(한실종자획재창) 한 나라 이에 따라 다시 번창해 이자 얻을획

文武分行庭左右(문무분항정좌우) 문무관 나눠 줄서 조정 좌우에 줄항 朝廷

冕旒臨下殿中央(면류림하전중앙) 면류관 아랠 보며 대전 가운데 大殿

永安宗社伊誰力(영안종사이수력) 길이 평안 종사를 누구의 힘이宗廟社稷저이

應使斯民竟不忘(응사사민경불망) 맞아하여 이 백성 끝내 못 잊어


次陽谷韻1(차양곡운1) 양곡의 운으로-卞季良

珠翠城都百萬家(주취성도백만가) 구슬비취 서울엔 백만의 집이

春濃何處不開花(춘농하처불개화) 봄 짙은 어디인들 꽃이 안 필까 짙을농

吟餘却想池塘草(음여각상지당초) 읊음 남아 생각해 연못에 풀이

倍覺君居興轉賖(배각군거흥전사) 더느껴 그대 머묾 흥 돌아 아득 외상으로살사

次陽谷韻2(차양곡운2) 양곡의 운으로-卞季良

晴窓終日聽春禽(청창종일청춘금) 갠 창에 하루 다해 듣는 봄날 새

門靜無人可共吟(문정무인가공음) 문 고요 사람 없어 함께 읊을만

賴有寄來詩句在(뢰유기래시구재) 힘입음에 부쳐온 시구가 있어 힘입을뢰

能將破却憶君心(능장파각억군심) 깨뜨려보려하네그대생각맘 깨뜨릴파 물리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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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剛中 四佳亭 徐居正(14201488)文忠 大邱 東文選


畵竹(화죽) 대나무를 그려-徐居正

此君無曲性(차군무곡성) 이 군자 바탕 굽힘이 없어

由來大節名(유래대절명) 내려오면서 큰 절개 이름

獨立天地間(독립천지간) 홀로 서있어 천지 사이에

斯爲聖之淸(사위성지청) 이러 하기에 성스런 맑음


卽事(즉사) 즉사-徐居正

圍爐烘藥酒(위로홍약주) 화롯가 둘러 약주를 데워 횃불홍

點筆寫方書(점필사방서) 붓에 먹 찍어 베껴 책으로

自信經營拙(자신경영졸) 스스로 믿어 짓기 서툴러

仍知故舊疎(잉지고구소) 이에 알았네 옛 벗 뜸하여


小雨(소우) 보슬비-徐居正

逆旅少親舊(역려소친구) 나그네 길엔 친구가 적어

人生多別離(인생다별리) 사람 살면서 이별은 많아

如何連曉夢(여하연효몽) 무슨 까닭에 이은 새벽꿈

未有不歸時(미유불귀시) 아니 있어서 못 돌아갈 때


處世(처세) 세상살이-徐居正

處世三無慍(처세삼무온) 세상 살며 세 가지 성냄 말아야 성낼온

安貧百無憂(안빈백무우) 안빈낙도 백가지 시름이 없어

病中親藥餌(병중친약이) 병나면 몸소 챙겨 약에 음식을

慵裏度春秋(용리도춘추) 게을리 돌봄 없이 세월만 보내

矍鑠身難健(확삭신난건) 부들부들 떨어서 몸은 어렵고 두리번거릴확

伶俜跡已浮(령빙적이부) 헤매는 꼴 자국은 이미 떠올라 비틀거릴빙

十年歸老計(십년귀로계) 열 해 두고 돌리려 늘그막 꾀함

湖海一扁舟(호해일편주) 호수 바다 하나의 조각배려니 넓적할편


憶村家(억촌가) 시골집을 생각하며-徐居正

梅迎今日雨(매영금일우) 매화 반기니 오늘의 비를

麥送故園秋(맥송고원추) 보리로 보낸 옛 동산 가을

最識還家好(최식환가호) 좋은 줄 아니 고향 돌아감

那堪作宦愁(나감작환수) 어찌 견딜까 벼슬길 시름

江山雙蠟屣(강산쌍랍사) 강산은 한 짝 밀랍 신발이 밀랍 신사

天地一漁舟(천지일어주) 천지는 한 척 고기잡이 배

歸去知何日(귀거지하일) 돌아갈 날은 언제 일런가

吾能昨夢遊(오능작몽유) 나는 놀기만 간밤에 꿈에


途中(도중) 길에서-徐居正

雨後長途澁馬蹄(우후장도삽마제) 비온 다음 갈 길은 말 발길 꺼려

龍鐘衫袖半霑泥(용종삼수반점니) 구지레한 적삼소매 진흙 반 적셔

漏雲斜日長林晩(누운사일장림만) 구름 새로 비낀 해 늦은 긴 숲에

無數山禽種種啼(무수산금종종제) 셀 수 없는 산새들 갖가지 울음


晩山圖(만산도) 저녁 산 그림-徐居正

嵳峨古樹與雲參(차아고수여운참) 우뚝이 늙은 나무 구름과 함께

石老巖奇水滿潭(석로암기수만담) 돌 묵어 바위 야릇 못엔 물 가득

更欲乘鸞吹鐵笛(갱욕승란취철적) 다시 해 난새 타려 날라리 불어

夜深明月過江南(야심명월과강남) 밤 깊어 밝은 달은 강남을 지나


小雨(소우) 가랑비-徐居正

朝來小雨更庶織(조래소우갱서직) 아침에 온 가랑비 다시 베틀로

落絮飛花滿一簾(낙서비화만일렴) 버들 솜 날린 꽃잎 발 하나 가득

九十日春今已暮(구십일춘금이모) 아흔 날의 봄날도 이젠 저물어

病餘杯酒懶重拈(병여배주나중념) 병만 남아 술잔도 거듭 집어야


麻浦夜雨(마포야우) 마포에는 밤비 내려-徐居正

百年身世政悠悠(백년신세정유유) 백년에 몸을 두고 다스림 아득

夜雨江湖惹起愁(야우강호야기수) 밤비 내린 강호에 시름 일으켜

袖裏歸田曾有賦(수리귀전증유부) 소매 속 돌아갈 밭 일찍 글 있어

已拚終老白鷗洲(이변종로백구주) 이미 두니 늘그막 흰 갈매기 섬


四皓圖(사호도) 상산 네 늙은이 그림-徐居正

於世於名兩已逃(어세어명양이도) 속세도 공명에도 둘 다 벗어나

閑圍一局子頻敲(한위일국자빈고) 한가히 두는 한판 알 자주 뚝딱

此中妙手無人識(차중묘수무인식) 이 판에 야릇한 수 아는 이 없어

會有安劉一着高(회유안유일착고) 때맞춰 유방 지킨 한 수가 높아


扶桑驛(부상역) 부상역 扶桑: 해 뜨는 곳에 있는 나무-徐居正

光陰逆旅身如寄(광음역려신여기) 세월이란 나그네 몸을 맡겨서

羈宦他鄕思轉迷(기환타향사전미) 벼슬 매여 타향에 생각 헤매다

自笑詩狂猶故態(자소시광유고태) 씩 웃어 시에 미쳐 마치 옛 모습

壁間重檢古人題(벽간중검고인제) 거듭 살펴 벽에 건 옛사람 시를


春日(춘일) 봄날-徐居正

金入垂楊玉謝梅(금입수양옥사매) 황금 깃든 수양버들 옥 떠난 매화

小池新水碧於苔(소지신수벽어태) 작은 연못 새 물 푸름 이끼보다도

春愁春興誰深淺(춘수춘흥수심천) 봄의 시름 봄의 재미 뉘 깊고 얕아

燕子不來花未開(연자불래화미개) 제비란 놈 오지 않아 꽃도 아니 펴

黃金: 꾀꼬리 :


自笑詩(자소시) 스스로 웃으며-徐居正

一詩吟了又吟詩(일시음료우음시) 시 한 수 읊고 마쳐 또 시를 읊어

盡日吟詩外不知(진일음시외부지) 하루 다해 시 읊어 그 밖은 몰라

閱得舊詩今萬首(열득구시금만수) 찾아보니 지은 시 오늘로 만수

儘知死日不吟詩(진지사일불음시) 죽을 날을 알아야 시 읊지 않지


敍懷(서회) 품은 뜻 펼쳐-徐居正

大隱誰知在世間(대은수지재세간) 큰 숨음 누가 알아 세간에 있어

宦情塵思共闌珊(환정진사공란산) 벼슬 뜻 티끌생각 모두 막는 옥

已諳一鐵能成錯(이암일철능성착) 이미 알아 한 쇠가 섞일 수 있어

未信千錢可買閑(미신천전가매한) 믿지 못해 천금을 한가함 못 사

詩道中興黃太史(시도중흥황태사) 시의 도 다시 일게 황태사에서

世祿終淺白香山(세록종천백향산) 세상 복록 얕아져 백향산부터

殘年心事憑誰語(잔년심사빙수어) 남은 날 마음 둔 일 누구 말 기대

笑把靑菱仔細看(소파청릉자세간) 웃으며 푸른 마름 낱낱이 보네

黃太史: 山谷 黃庭堅(10451105) 白香山: 樂天 白居易(772846)


楊花踏雲(양화답운)漢都十詠 양화에서 구름을 밟아-徐居正

北風捲地萬籟響(북풍권지만뢰향) 북풍이 땅을 감아 온갖 울림이

江橋雲片大於掌(강교운편대어장) 강에 다리 눈송이 크기 손바닥

茫茫銀界無人蹤(망망은계무인종) 아득한 은세계엔 찾는 이 없어

玉山倚空千萬丈(옥산의공천만장) 옥의 산 하늘 닿아 천만 길이나

我時騎驢帽如屋(아시기려모여옥) 내 그때 나귀 타니 집만 한 갓이

銀花眩眼髮竪竹(은화현안발수죽) 은 눈꽃 눈에 아찔 머리 곧은 대

歸來沽酒靑樓飮(귀래고주청루음) 돌아와 술을 사니 청루서 마셔

醉傍寒梅訪消息(취방한매방소식) 취해 곁에 찬 매화 봄을 찾았네


菊花不開惆然有作(국화불개추연유작) 국화 안 피어 슬피 시 지어-徐居正

佳菊今年開較遲(가국금년개교지) 고운 국화 올해엔 피기가 늦어

一秋淸興謾東籬(일추청흥만동리) 한 가을 맑은 흥에 느린 동쪽 울

西風大是無情思(서풍대시무정사) 서풍이 크게 불어 정 없다 생각

不入黃花入鬢絲(불입황화입빈사) 노란 꽃에 안 들고 귀밑에 들어


偶吟(우음) 우음-徐居正

心院風恬柳影多(원풍념류영다) 깊은 담 바람 고요 버들에 그늘

寒塘雨足長蒲芽(한당우족장포아) 차가운 못 비 넉넉 부들 싹 길어

閑愁正與春相伴(한수정여춘상반) 느긋 시름 참 함께 봄과 서로 벗

獨坐無言數落花(독좌무언수낙화) 혼자 앉아 말없이 지는 꽃 헤며


卽事(즉사) 즉사-徐居正

小沼如盆水淺淸(소소여분수천청) 작은 늪 동이처럼 물 얕아 맑아

菰蒲新長荻芽生(고포신장적아생) 줄 부들 새로 자라 갈대 싹이 나

呼兒爲引連筒去(호아위인련통거) 아이 불러 물 끌어 통을 이어가

養得芭蕉聽雨聲(양득파초청우성) 길러 얻어 파초를 빗소리 들어


退衙(퇴아) 관아를 나서며-徐居正

公事無多早退衙(공사무다조퇴아) 관아 일 많이 없어 일찍 나서니

西風吹顔鬢邊絲(서풍취안빈변사) 서풍이 얼굴 때려 귀밑머리에

曲闌閑立無人見(곡란한립무인견) 난간구비 넌짓 서 사람 안 보여

獨對東籬黃菊花(독대동리황국화) 홀로 마주 동쪽 울 노란 국화꽃


絶句(절구) 절구-徐居正

光風香嫋海棠花(광풍향뇨해당화) 빛 바람 향내 물씬 해당화 꽃에

小雨池塘生綠波(소우지당생록파) 가랑비 뿌린 연못 푸른 물결 나 못당

遲日濃陰人寂寂(지일농음인적적) 늦은 해 짙은 그늘 사람 고요해

一雙睡鴨占晴沙(일쌍수압점청사) 한 쌍에 조는 오리 모래밭 차지


次權參議韻(차권참의운) 권 참의의 운을 빌어-徐居正

多君退朝能節義(다군퇴조능절의) 많은 분들 물러나 곧고 옳음에

愧我虛名已誤身(괴아허명이오신) 부끄런 내 빈 이름 이미 틀린 몸 그릇할오

悵望凭羅歸不得(창망빙라귀부득)슬피 바래 기대어돌아감 못해 슬퍼할창 기댈빙

春風到處蕨芽新(춘풍도처궐아신) 봄바람 부는 곳곳 고사리 새싹


山居(산거) 산에 살면서-徐居正(14201488)

花潭一草廬(화담일초려)꽃 깊은 못에 초가집 하나

瀟灑類僊居(소쇄류선거) 물을 뿌린 듯 신선들 삶을 춤출선

山簇開軒面(산족개헌면) 산들이 모여 열린 집 앞에 조릿대족

泉絃咽枕虛(천현열침허) 샘물 거문고 베개 틈 노래 목멜열

洞幽風淡蕩(동유풍담탕) 골은 깊어서 바람 맑아져 淡蕩

境僻樹扶疎(경벽수부소) 땅은 외져서 나무 뻗어나 도울부 扶疏

中有逍遙子(중유소요자) 속에 있어서 그대 거닐어

淸朝好讀書(청조호독서) 맑은 아침에 책 읽기 좋아


秋日(추일) 가을날-徐居正

茅齋連竹逕(모재연죽경) 띠 집에 이어 대나무 길이 띠모

秋日艶晴暉(추일염청휘) 가을날 고와 갠 하늘 빛나 고울염

果熟擎枝重(과숙경지중) 과일 익어서 윗가지 묵직 들경

瓜寒著蔓稀(과한저만희) 참외밭 썰렁 덩굴이 드문 덩굴만

遊蜂飛不定(유봉비부정) 떠도는 꿀벌 안 있고 날아

閑鴨睡相依(한압수상의) 느긋한 오리 기대어 졸아

頗識身心靜(파식신심정) 자못 알아서 몸 마음 가만

棲遲願不違(서지원불위) 머물기 늦어 바램 안 어겨


漢都十詠 閑中寓懷(한중우회) 느긋함에 사는 뜻-徐居正

一身多病且衰遲(일신다병차쇠지) 몸 하나 병이 많아 또 여위어가

物議紛紜百不知(물의분운백부지) 하는 말 어지러워 온갖 것 몰라

白髮悠悠長袖手(백발유유장수수) 흰머리 아득해서 오래 팔짱 껴

靑山黙黙獨支頤(청산묵묵독지이) 푸른 산 고요해서 혼자 턱을 괴 턱이

書籤筆架閑相伴(서첨필가한상반) 글쪽지에 붓걸이 느긋 서로 짝 제비첨 시렁가

藥鼎茶甌老更宜(약정다구로갱의) 약 솥에 차 사발은 늙어 마땅해 사발구

晴日小窓酣打睡(청일소창감타수) 맑은 날 작은 창에 졸다 잠을 깨 즐길감 잘수

忽驚喜鵲語簷枝(홀경희작어첨지) 문득 놀라 까치가 처마가지에


漢都十詠 鍾街觀燈(종가관등) 종로 거리 관등놀이-徐居正

長安城中百萬家(장안성중백만가) 서울 성 가운데는 백만의 집이

一夜燃燈明以霞(일야연등명이하) 밤을 새 켜놓은 등 노을로 밝아

三千世界珊瑚樹(삼천세계산호수) 삼천의 세상경계 산호 빛 나무 산호산호

二十四橋芙蓉花(이십사교부용화) 스물넷 다리마다 부용 연꽃이

東街西市白如晝(동가서시백여주) 동쪽 길 서쪽 저자 낮처럼 환해

兒童狂走疾於狖(아동광주질어유) 아이들 마구 뛰어 개보다 빨라 검은원숭이유

星斗闌干爛未收(성두란간란미수) 북두성 가로막혀 불을 안 거둬 문드러질란

黃金樓前催曉漏(황금루전최효루) 황금루 누각 앞에 물시계 날 새 샐루


漢都十詠 箭郊尋芳(전교심방) 전교에서 꽃을 찾아-徐居正

平郊如掌草如茵(평교여장초여인) 너른 들 손바닥에 자리 같은 풀 자리인

晴日暖風濃殺人(청일난풍농살인) 갠 해에 따뜻 바람 사람 참 죽여

朝來沽酒典靑衫(조래고주전청삼) 아침 오자 술 사와 청 적삼 잡혀 적삼삼

三三五五尋芳草(삼삼오오심방초) 삼삼오오 모여서 꽃 풀을 찾아

飛觴轉急流水曲(비상전급류수곡) 돌림잔 돌기 빨라 흐른 물굽이 流觴曲水

靑樽易枯長鯨吸(청준이고장경흡) 청 술통 쉬이 말라 고래 들이켜

歸來駿馬踏銀蟾(귀래준마답은섬) 돌아오니 준마로 은빛 달 밟아

玉箸聲殘杏花落(옥저성잔행화락) 옥피리 소리 남아 살구꽃 지네

 

漢都十詠 立石釣魚(입석조어) 선돌에서 낚시를-徐居正

溪邊怪石余人立(계변괴석인립) 시냇가 야릇한 돌 사람처럼 서

秋水玲瓏照寒碧(추수영롱조한벽) 가을 물 옥 소리에 찬 푸름 비춰

把釣歸來籍綠蕪(파조귀래록무) 낚시 들고 돌아와 푸름 깐 풀밭 거칠어질무

百尺銀絲金鯉躍(백척은사금리약) 백 자 길이 은실에 금 잉어 펄떡

細斫爲膾燖爲羹(세작위회심위갱) 잘게 썰어 회를 쳐 삶아 국 끓여 벨작 삶을심

沙頭屢臥雙玉甁(사두루와쌍옥병) 모래 위 여럿 누워 옥의 병 둘에

醉來鼓脚歌滄浪(취래고각가창랑) 취하면서 다리 쳐 창랑가 노래

不用萬古麒麟名(불용만고기린명) 아니 쓰니 먼 옛날 기린각 이름


漢都十詠 興德賞蓮(흥덕상연) 흥덕사의 연꽃 즐김-徐居正

招提金碧照水底(초제금벽조수저) 불러 끌어 멋진 빛 물속을 비춰 밑저

荷花初開淨如洗(하화초개정여세) 연꽃은 막 피어나 씻은 듯 깨끗 깨끗할정

霏霏紅霧拂瓊闌(비비홍무불경란) 피어오른 붉은 안개 옥난간 스쳐 떨불 옥경

香風欲動飜袖紵(향풍욕동번수저) 향기바람 물씬 불어 소매 깃 펄럭 모시저

有時碧筒飮無數(유시벽통음무수) 때로는 푸른 연잎 못 세고 마셔 대롱통

白日高談揮玉麈(백일고담휘옥주)한낮에 높은 얘기 옥 주미 떨쳐 큰사슴주麈尾

居僧挽手待明月(거승만수대명월) 사는 스님 손 당겨 밝은 달 바래 당길만

小樓一夜涼似雨(소루일야량사우) 작은 누대 밤 하루 비 오듯 서늘


漢都十詠 藏義尋僧(장의심승) 장의사의 스님 찾아-徐居正

三峰亭亭削寒玉(삼봉정정삭한옥) 세 봉우리 우뚝해 찬 옥을 깎아 깎을삭

前朝古寺年八百(전조고사년팔백) 앞 왕조의 옛 절은 나이가 팔백

古木回巖樓閣重(고목회암루각중) 옛 나무 두른 바위 누각을 겹겹

鳴泉激激山石裂(명천격격산석렬) 샘 울려 콸콸 쏟아 산 바위 찢어 찢을렬

我昔尋僧一歸去(아석심승일귀거) 내 앞서 스님 찾아 한 번 돌아가

夜闌明月共軟語(야란명월공연어) 밤을 막는 밝은 달 함께 속삭여 연할연

曉鐘一聲發深省(효종일성발심성) 새벽종 한 소리에 깊이 깨달아 살필성

白雲滿地不知處(백운만지부지처) 흰 구름 땅 자욱해 어딘지 몰라


漢都十詠 盤松送客(반송송객) 반송에서 손님 보내-徐居正

故人別我歌遠遊(고인별아가원유) 오랜 이 나와 헤져 멀리 감 노래

何以送之雙銀甌(하이송지쌍은구) 무엇으로 보낼까 은 사발 둘로

都門楊柳不堪折(도문양류불감절) 도성 문 버드나무 차마 못 꺾어

芳草有恨何時休(방초유한하시휴) 꽃다운 풀 한스레 어느 때 그쳐

去年今年長參商(거년금년장삼상) 지난해도 올해도 오래 못 만나 參商之歎

富別貧別皆銷腸(부별빈별개소장) 부자 빈자 헤어짐 다 애를 녹여 녹일소

陽關三疊歌旣關(양관삼첩가기관) 왕유의 양관삼첩 노래도 닫혀 이별노래

東雲北樹俱茫茫(동운북수구망망) 동쪽구름 북쪽 숲 다들 아득해


漢都十詠 濟川玩月(제천완월) 제천에서 달 놀이-徐居正

秋光萬頃琉璃靜(추광만경유리정) 가을빛에 만이랑 유리로 맑아

畵棟珠簾蘸寒影(화동주렴잠한영) 그림기둥 구슬발 잠긴 그림자 담글잠

長空無雲淨如掃(장공무운정여소) 먼 하늘 구름 없어 쓴 듯이 깨끗 깨끗할정

坐待月出黃金餠(좌대월출황금병) 앉아 바래 뜨는 달 황금 송편이 떡병

乾坤淸氣骨已徹(건곤청기골이철) 하늘땅 맑은 기운 뼈까지 스며 통할철

明光一一手毛髮(명광일일수모발) 밝은 빛 하나하나 머리털 손질

雨夜深深更奇絶(우야심심갱기절) 비 오는 밤 깊어가 더욱 뛰어나

倚遍欄干十二曲(의편난간십이곡) 두루 기대 난간에 열두 구비에


漢都十詠 麻浦泛舟(마포범주) 마포에서 배를 띄워-徐居正

西湖濃抹如西施(서호농말여서시) 서호에 짙은 꾸밈 서시와 같아

桃花細雨生綠漪(도화세우생록의) 복사꽃에 가랑비 푸른 잔물결 물놀이의

盪槳歸來水半蓉(탕장귀래수반용) 배밀어 돌아오니 물 반이연꽃 씻을탕상앗대장

日暮無人歌竹枝(일모무인가죽지) 해 저물어 없는 이 죽지가 노래

三山隱隱金鼈頭(삼산은은금별두) 삼산은 숨겨 숨어 금자라 머리 자라별

漢陽歷歷鸚鵡洲(한양력력앵무주) 한양 땅 또록또록 앵무주 섬이 앵무새앵무

夷猶不見一黃鶴(이유불견일황학) 마음 편해 안보여 한 마리 황학

飛來忽有雙白鷗(비래홀유쌍백구) 날아와 문득 있어 한 쌍 갈매기


漢都十詠 木覓賞花(목멱상화) 목멱산의 꽃놀이-徐居正

尺五城南山政高(척오성남산정고) 다섯 자 성 남쪽은 산 정말 높아

攀緣十二靑雲橋(반연십이청운교) 잡고 올라 열두 개 청운의 다리

華山揷立玉芙蓉(화산삽립옥부용) 화산은 꽂아 세워 옥의 연꽃을

漢江染出金葡萄(한강염출금포도) 한강은 물들여 내 금빛 포도를

長安萬家百花塢(장안만가백화오) 서울에 모든 집이 온갖 꽃마을 둑오

樓臺隱映紅似雨(누대은영홍사우) 누대를 가려 비춰 붉어 비 오듯

靑春未賞能幾何(청춘미상능기하) 청춘을 아니 즐겨 얼마나 되나

白日政長催羯鼓(백일정장최갈고) 한낮 해는 참 길어 갈고 북 갈겨 불깐흑양갈


扶安次李相國奎報韻(부안차이상국규보운)부안에서상국이규보의운을빌어徐居正

十載東西信轉蓬(십재동서신전봉) 열 해를 동쪽서쪽 떠돌며 편지

登樓聊喜使君同(등루료희사군동) 누각 올라 기뻤지 그대 같이해

雨聲長在芭蕉葉(우성장재파초엽) 빗소리는 오래 돼 파초 잎에서

春色深留芍藥叢(춘색심류작약총) 봄 빛깔 깊이 남아 작약 떨기에

身世已拚杯酒裏(신세이변배주리) 몸을 둬 이미 버려 잔에 술 속에 칠변

光陰空費路歧中(광음공비로기중) 빛 그늘 흘려보내 길에 갈림에

醉餘猶記江南夢(취여유기강남몽) 취해도 아직 또렷 강남의 꿈이

萬柄荷花十里紅(만병하화십리홍) 만 자루 연꽃으로 십리 붉음이 자루병


七月二十九日誕辰賀禮後作(칠월이십구일탄신하례후작)칠월이십구일탄신하례뒤지어

誕辰陳賀紫宸朝(탄신진하자신조) 태어난 날 하례를 자신궁 아침

稽顙瑤墀拜赭袍(계상요지배자포) 이마 닿은 옥섬돌 곤룡포에 절

金甕初開千日酒(금옹초개천일주) 금 단지 처음 열어 천일 익힌 술

玉盤齊獻萬年桃(옥반제헌만년도) 옥쟁반 갖춰 바쳐 만년 복숭아

奇逢幸際雲龍會(기봉행제운룡회) 만나니 행복한 때 구름 용 모여

沛澤深涵雨露饒(패택심함우로요) 늪 진펄 깊이 젖어 비이슬 넉넉 늪패 젖을함

醉飽小臣賡大雅(취포소신갱대아) 실컷 취해 신하들 대아를 이어 이을갱

更伸華祝頌唐堯(갱신화축송당요) 다시 펴 멋진 바램 요임금 노래


少日(소일) 젊은 날-徐居正

少日豪談奮雨髥(소일호담분우염) 젊은 날 큰소리 쳐 비 수염 떨쳐 떨칠분

年來斂鑰遠人嫌(년래렴약원인혐) 해 오며 빗장 거둬 남 눈치 멀리 자물쇠약

徒前宦路羊腸險(도전환로양장험) 여태 앞에 벼슬길 양 창자 구불

抵老才名鼠尾尖(저로재명서미첨) 늙게야 재주 이름 쥐꼬리 끝이 뾰족할첨

詩不驚人吟又改(시불경인음우개) 시로 못해 남 놀램 읊고서 고쳐

酒能忘我醉還添(주능망아취환첨) 술로는 날 잊게 해 취해도 마셔

欲書折簡招碁伴(욕서절간초기반) 편지 써다 말았네 부를 바둑 벗

凍筆如錐不可拈(동필여추불가념) 언 붓은 송곳 같아 집지도 못해 집을념


送昌原府使朴公之任(송창원부사박공지임)창원부사박공을임지로보내며徐居正

憶昔重過月影臺(억석중과월영대) 지난생각 몇 지남 월영대에를

檜山依舊翠成堆(회산의구취성퇴) 회산은 옛 그대로 푸름이 쌓여 언덕퇴

高吟落日欲將去(고음락일욕장거) 높이 읊어 지는 해 떠나려 하고

爲喚孤雲猶不來(위환고운유불래) 부르니 외론 구름 오히려 안 와

滄海有潮環古壘(창해유조환고루) 찬 바다 물때 있어 옛 진 감돌아 진루

短碑無字半荒苔(단비무자반황태) 작은 빗돌 글 없애 거친 이끼로

風流太守仍文雅(풍류태수잉문아) 바람 흐름 사또는 이리 글 멋져

爲我閑登酒一杯(위아한등주일배) 날 위해 느긋 올라 술을 한 잔해


朝坐(조좌) 아침에 앉아-徐居正

小窓扶坐倚烏床(소창부좌의오상) 작은 창 붙어 앉아 검은 상 놓아

瘦骨如峰鬢似霜(수골여봉빈사상) 여윈 뼈 봉우리에 살쩍 서리라

多病已會嘗藥遍(다병이회상약편) 병 많아 이미 모아 약 두루 맛봐 두루편

怯凉猶復攬衣忙(겁량유부람의망) 추위 질려 외려 또 옷 잡기 바빠 잡을람

蕪菁細切靑蔬軟(무청세절청소연) 순무를 잘게 썰어 풋나물 물러 우거질청

薏苡新炊白粥香(의이신취백죽향) 율무를 새로 끓여 하얀 죽 내음 율무의

萬事不如眠食隱(만사불여면식은) 모든 일 같지 않아 자고 먹는 속

何須苦覓養生方(하수고멱양생방) 어찌 꼭 괴롬 찾아 삶을 기르랴 찾을멱


謝岑上人惠雀舌茶(사잠상인혜작설차)산에 스님작설차베풂에감사하며-徐居正

靑縢布幭拂我衣(청등포멸불아의) 푸른끈 매베 덮개내 옷을 걷어 봉할등 덮개멸

尋師去向山中歸(심사거향산중귀) 스님 찾아 떠나니 산 속 돌아가 行纏 脚絆

瀟團淨几紙窓明(소단정궤지창명) 조촐한 집 맑은 상 종이창 밝아

石鼎共廳松風聲(석정공청송풍성) 돌솥에 마루 함께 솔바람소리 솥정


林亭晩吟次岑上人韻(임정만음차잠상인운)숲정자의저녁 산에스님의 운을 빌어

城市那無隱者家(성시나무은자가) 성 저자 어찌 없어 숨은 이 집이

林亭幽絶隔鹿譁(임정유절격록화) 숲 정자 숨어 끊겨 시끄럼 너머 시끄러울화

年年爲種幾多樹(년년위종기다수) 해마다 심게 되니 꽤 많은 나무

續續自開無數花(속속자개무수화) 이어서 절로 피니 셀 수 없는 꽃

白蟻戰酣山雨至(백의전감산우지) 흰 개미 싸움 한참 산에 비 내려

黃蜂衙罷溪日斜(황봉아파계일사) 노란 벌 일을 마쳐 시내 해가 져 마을아

移時軟共高僧話(이시연공고승화) 때는 옮아 넌지시 높은 스님 말

石鼎松聲送煮茶(석정송성송자다) 돌솥에 솔 소리에 차 다려 보내 삶을자


淸晨(청신) 맑은 새벽에-徐居正

淸晨小坐擁緜衾(청신소좌옹면금) 맑은 새벽 좀앉아 솜이불 끼고 안을옹 햇솜면

窓日暉暉淨客心(창일휘휘정객심) 창에 햇살 빛나니 길손 맘 맑혀

歲月幾何詩是史(세월기하시시사) 세월은 얼마인가 시가 곧 역사

顔容如此酒爲箴(안용여차주위잠) 얼굴 낯 이와 같아 술 살펴야 해 바늘잠

防身只有杜陵劒(방신지유두릉검) 몸 지켜 다만 있어 두릉의 칼이

垂橐曾無陸賈金(수탁증무육고금) 늘인 낭 일찍 없어 육고의 금은 전대탁

何日歸還仍乞骨(하일귀환잉걸골) 어느 날 돌아와서 뼈를 묻으려

向鑱歸去斲人蔘(향참귀거착인삼) 보습에 돌아가서 인삼을 캐나 보습참 깎을착

陸賈: 전한 초기 외교가 新語 12편 저술


次韻日休見寄(차운일휴견기) 일휴견기를 빌어-徐居正

平生性癖愛吾廬(평생성벽애오려) 한 삶 살며 버릇이 내 집을 아껴 적취벽

閉闇焚香淨掃除(폐암분향정소제) 문 닫아 향 사르니 깨끗이 쓸어 닫힌문암

陶令但知樽有酒(도령단지준유주) 도연명 다만 알아 단지에 술을

馮郞空嘆出無車(풍랑공탄출무거) 풍완은 괜히 탓해 수레를 못타 馮湲 孟嘗君

病餘身世渾成夢(병여신세혼성몽) 앓아 남아 몸을 둬 모두 꿈이 돼

老去文章欲著書(노거문장욕저서) 늙어가니 글이라 책을 쓰려네

名利到頭從自苦(명리도두종자고) 이름 이끗 다다라 절로 괴로워

會須歸問鹿門居(회수귀문문거) 만나 꼭 갈 곳 물어 산기슭 살 곳


七旬(칠순) 일흔-徐居正

七旬身世轉疎迃(칠순신세전소우) 일흔 나이 몸 둠은 점점 멀어져 멀우

少日風流太半無(소일풍류태반무) 젊은 날에 풍류는 거의 없어져

聊把靑編遮病眼(요파청편차병안) 애써잡은푸른 책 흐린 눈 막아 엮을편 막을차

不禁白雲上衰鬚(불금백운상쇠수) 못 말려서 흰 구름 수염에 올라 수염수

閑中獨坐親香鼎(한중독좌친향정) 느긋해 혼자 앉아 향로 가까이

醉後長歌擊唾壺(취후장가격타호) 취하니 오래 노래 병을 두드려 침타 병호

預喜明年當致仕(예희명년당치사) 미리 기뻐 오는 해 벼슬 물러나 미리예

蒼波白鳥老江湖(창파백조로강호) 푸른 물결 흰 새로 강호에 늙어

秋懷(추회) 가을에 품은 마음-徐居正

硫光冉冉不曾留(광염염부증류) 빛흘러 나아가니 머물지않아 유황류 나아갈염

鳥帽西風怯白頭(조모서풍겁백두) 벼슬은 서풍 날려 흰머리 질려 모자모 겁낼겁

出處由來難自斷(출처유래난자단) 나갈 데 내려오기 혼자 못 잘라

閑忙自古不相謀(한망자고불상모) 틈남 바쁨 예부터 서로 꾀 않아

陶潛歸去欣瞻宇(도잠귀거흔첨우) 陶淵明 돌아가서 집을 봐 기뻐 볼첨

杜甫行藏獨倚樓(두보행장독의루) 杜子美 길짐 꾸려 혼자 누각에

我亦歸田曾有賦(아역귀전증유부) 나 또한 시골 가서 일찍 시 지어

欲將身世老扁舟(욕장신세로편주) 하려하니 몸을 둬 늙어 얕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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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은 시 모음 71편

《1》가슴에 머무는 사랑

박고은

머물지 못하는 세월에
오랫동안 깊은 사랑으로 와서
내 안에 여울져 머무는 사람,
골짝 깊은 쓸쓸한 외로움 속
메아리 보내 힘이 되는 사람
무한대 하늘로 커가는 사랑이
이리도 흐뭇할 줄이야!

노상 섧은 나를 위하여
진실로 뜨겁게 울어주는
날로 불심지로 돋아나는 사랑,
오롯이 애틋한 그에게
잔 가득 부은 정 건네주고
가진 것 다 주고라도
마음꽃 한 송이 준비하여,
영원을 더듬어 가는 그를 쫓아
내 영혼도 순순히 닮고 싶다.

《2》가슴이 아리거든

박고은

서러운 이여
하늘이 무너지는 눈물방울
시린 손 마디마디 떨어지는
무슨 사연이 있거들랑
청산에 올라 잠시만 쉬어 오자

버릴수록 맑아지는 마음 길 따라
돌탑을 쌓아 올리며
'아직도 살아 있구나' 감사하자

붉은 낙조에 가슴 문질러
푸른 멍울 지우며
많이 아프고 지치어도
희망을 지피는 심정으로
다시금 웃으시라 환하게!

그래도 그대여 가슴이 아리거든
도도히 흐르는 강물 위에
종이배 하나 띄워
끝없는 해원으로 노 저어가자

《3》가을 들녘

박고은

뮤즈가 깔렸다
갈바람 한 점
싸하니ㅡ 지나가는 들판

익은 가을을 짊어진
농부의 뒷모습에
숨 가쁜 노을이 따라가고
노을 자락 끝에 매달려 있는
애수 어린 小曲 하나

가을이 불을 지른다
들판이 온통 불이 탄다
금빛으로 타는 가을 들판
타다 남은 잔재 위로
어디서 날아왔는지

빨간 고추잠자리 두 마리
가냘픈 날개 위에
졸음 겨운 눈을 스르르 감고
꿈꾸기에 여념이 없다
지천으로 무성히 피어
갈대 숲을 이룬 가을 들판에서


《4》가을 앓이

박고은

해마다 이맘때면
자질자질 몸이 아프다

후끈한 열기와
짜릿한 바람기가 남긴
여름날의 상흔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만추의 늪에 빠진
카랑한 기러기 울음은
센치멘탈, 나를 또 울리고

스산한 바람 기류에
뒹구는 풍엽들
발걸음 자국마다
심장 앓는 가을
그저 저리기만 하다

《5》가을 정사

박고은

한 송이 꽃은 햇살 한 줌 입고
그리움을 쓰고 있을 게다
밤을 헤아리던 갈증으로
그대 이름을 부르며
아침을 맞이할 때
또……
나는
산을 그린다

우뚝 선 암릉들
감히 그 길을 들어서기에는 벅찬 가슴
뜨거운 열기처럼 부푼 욕심은 다시 손길이 간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암릉 가슴팍이 뜨겁다.
한 편으로는 잔잔한 호수 마음 같고
때로는 거친 파도처럼 밀쳐 낸다.

섬세한 손길
발끝의 감각이 비밀 문을 연다.
오르다
오르다
결국은 정상을 정복하고서야 긴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나를 허락하고 안아 준 거대한 암릉 가슴이 포근하다.

《6》가을이 깊어지면

박고은

온통 추상에 젖은 산천
가을이 갈빛으로 깊어지면
바람은 또 얼마나 꿈꾸며 가는가
무수히 계절을 밟고 왔을 바람은

텅 비워서 가득찬 풍요
올 맑은 사유의 눈을 떠서
온 누리 더불어 여물고 싶음이여
시떫은 젊음은 결 삭고
비린 욕망은 단물이 들어
한 알 홍시로 무르익고 싶다

여기저기서 우수수 지는 것들
나이만큼 가슴속에 지는 소리
섧게 지는 낙과를 주워
그 의미를 만져 보고
천심 묻은 영원의 뜰에 두고 싶다

끝내 모든 것이 떠나고 잃는대도
카랑한 정신과 내 안에 사랑만은 남겨
연륜의 강기슭 갈대를 흔들고 싶다 

《7》가을처럼 우리 사랑하자

박고은

가을은 그대 그리움으로
물들어
내 마음에 흐르고

코발트 빛 청명한 하늘같이
내 안에 자리한 그대
넓디넓은 들녘같이, 바다같이
깊고 풍량한 마음을 지니고
가을처럼 우리 사랑하자.

아름답게 펼쳐진 감빛처럼
곱게 번져오는 따스한 손길같이
서로 마음을, 가슴을, 사랑을 잡아주자.
그댄 내가 되고,
나는 그대가 되어, 가을에는
더 아름답고 예쁘게 사랑하자 우리..

첫 만남의 설레임처럼
풋풋하고 싱그러움 닮은 느낌으로
달콤한 첫 입맞춤처럼
눈 뜰 수 없는 수줍음 같은 사랑으로
가을처럼 우리 사랑하자.

모든 것이 풍성하고
알알이 꽉 찬 농익은 과실처럼
단맛과 포만감이 주는 느낌처럼
그대와 내가 서로 마음이며 눈빛 하나에도
늘 부자인 것같이 사랑하자 우리

이름만 부르고 읊조리기만 하여도 좋은 사람,
사랑한다 말만 입가에 흘러도 눈물이 나는 사람,
그대가 계셔서 좋은 이 계절
가을처럼 우리 사랑하자
사랑하는 나의 사랑아

《8》강가에 서서

박고은

깊은 속살 드러내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

그대 사랑아
살며시 눈감고
귀담아 들어 보아라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에
증오와 회한 실어 보내고
옹이진 마음도 풀어 버리고
하얀 음률로
심연 두드리는 물소리
가만 들어 보아라

온갖 시름 잊어버리고
그대도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 가보아라
푸른 대양에 닿아보아라

《9》계절의 우수

박고은

그래 삶이란 구름무늬
한갖 덧없는 일장춘몽,
부귀영화란 것도
한 줄기 바람일지 몰라

지금은 가을, 인생의 가을
바람에 낙엽은 뒹굴고
빛 바랜 추억이 맴도는…….

머잖아 추운 계절이 온대도
마음 시리지 않기로,
다행히 여윈 손 잡아주고
빈 가슴 쓸어줄 이 있으니
올겨울 쓸쓸하지는 않으리

인업의 껍질을 벗고
뭇 사연은 사루어
찬 이슬에 묻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
가을이 진다 그만 돌아서자

《10》그 사랑

박고은

그대 눈동자에 내가 있어서
그 입가에 예쁜 미소 번질 때
수줍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대 눈동자 어둠이 깃들어
내 마음에 슬픔이 잠겨올 때
차라리 그대, 잊으려 했습니다

별이 지는 가슴에 그대 그림자
숨죽여 흐느끼며 어려올 때
그 사랑 다시 힘껏 품었습니다

《11》그대 사랑입니다

박고은

꽃이 지나간다
꽃이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로 남는 발자국이 향기롭다.
그대 그리움이 지나갈 때처럼……

시간이 지나간다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더 깊이 더 많이 쌓이는 사랑이 곱다.
그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마음 빛으로 ……

바람 불고
해의 비늘이 내리는 언덕 넘어
그 어느 집 아궁이에서 불씨로 남아
꺼질 줄 모르는 열정은 늘 그대 편으로 서 있다.
어둡고 추운 날 길 잃어 방황할 때도
따뜻한 불씨 한 점 품은
가슴으로 사는 불새처럼 뜨겁다.
그대 사랑은……

때로는 허기진 그리움이어도
담벼락에 기대선 절룩이는 기다림이어도
눈멀고 귀 먹어도 보고 듣는 희망이요.
밝은 미래요 달디 단 미래의 선물
그대 사랑입니다!

《12》그대 하나의 사랑으로

박고은

그대 하나의 사랑으로
그대
마음속에 담긴
사랑에 기록을 읽으면서

그대 사랑에서 자라는
한 송이 꽃을 봅니다

붉게 물든
잎새 닮은 바람 소리가 발자국 그림자를 잃고
휘어진 길목으로 접어들면
낮별 하나 낯설다 한다.
잠시 허공을 베어내고서야
하얀 이름을 써 내려갈 때 빛을 기억하고
숲에서 빠져 나온다.

두 손을 움켜잡으면
따뜻한 체온
포근한 가슴이 미소로 번지고
막 피어난 꽃 눈빛처럼 향기롭고 예쁘다.
진즉, 놓을 수 없는 기억이다.
움켜쥔 사랑이다.

어둠이 겹겹으로 쌓여도
깜깜한 밤이어도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사랑이다.
그대가 피어 놓은 사랑 꽃
돌에서도 향기가 난다
그대 하나의 사랑으로……

나의 사랑아!

《13》그대 향한 소망은

박고은

내 청순한 소망은
마음 색색이 뽑은 비단실로
그대 고운 눈빛 짜는 것

쓸쓸한 그대 영혼에
이슬 송송, 꽃 한 송이
피워 올리는 일

그대와 나 두 가슴에
쌍무지개 걸어
아름다이 이어가는 정

그대 향한 내 소망은
진정 이것이라네

《14》그대에게 가는 길은

박고은

그대에게 가는 길은

아리도록 눈부셔 온다

긴 밤을 껴안고도 밤을 잃어버리는 날

한 줌 빛은 별이 되고
뚝뚝 떨어지는 시간의 기억들이
물비늘처럼 꿈틀거리면서 일어서서는
당신께로 갈 때
나는 이미 그리움을 입고 있다

창가 달빛은 기웃기웃 얼굴을 붉혀가며
눈만 깜박이고 진작 창을 열면 저만치
수줍은 듯 고개 떨구는 것이
꼭 나를 닮았다 내가 그랬으니,
그대 들어 오라 마음을 열면 노을 빛처럼
붉어진 가슴은 봉숭아물들이고 말지

하루하루 깊이 뿌리내린 지금은
그대 부름 없이도 길을 잃지 않는다
이렇듯 지금
그대에게 가는 길은

아리도록 눈부셔 온다

《15》그리운 추억

박고은

흙 냄새 너른 들녘
씨 뿌리고 땀 흘려
푸지게 가꿔 살던 곳

치맛자락 적시며
돌방구 뒤져 다슬기 줍던 강
올 여름도 멱 감는 애들이 있을까

저녁밥 짓는 연기가 자욱하면
꼴망태 등에 지고
소 몰고 돌아오던 아이들

매캐한 모깃불 피워놓고
대자로 평상에 누워
밤하늘 은하수 마시며
푸른 꿈 키우던 시절

그리운 고 모습
다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채워지지 않는 이 허기는
또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16》그리움이 밀려오는 바다

박고은

그리움이 잔잔히 밀물져 오면
가뭇이 열리는 바다
갈매기로 날고픈 바램이여

잠재워도 설레는 물결
끝 모를 그리움의 출렁임에
가슴은 깃을 펼쳐 날으고
쪽빛으로 물이 드는 마음

진종일 몸부림치는 파도에
아린 상흔을 씻고
안타까움마저 훌훌 떨치면
숨 가삐 달려오는 포말 끝
절규하는 절정의 정념이여

짙푸른 물 다 삭히고도
몸서리치게 살아나는 물결따라
후드륵 나래치는 그리움
밤 찧는 등댓불과 지새운다

《17》기다림

박고은

기약 없이 길 떠난 사람아
강남 제비 돌아오듯
잊지 못해 다시 오거들랑
기껏 머리칼 날리는
꽃바람으로 오지 말고

봄빛 귓불에 닿아서
영혼의 깊은 골짝을
꽃물로 찰박찰박 적시는
감미론 향기로 오라

꽃샘바람 잘라먹고
화알짝 웃는 한 떨기 꽃송이
더없이 섧도록 살고 지고픈
진정 고운 사랑으로 오라

《18》꽃 같은 사랑아 그대보고 있으면

박고은

그대 보고 있으면
나는 그대 눈속에 있고,
그대는
내 가슴속에 꽃으로 피어 향기로 번져오고
최초의 울림처럼 느껴지는 꽃 태동에
나는 그만 눈 멀고 귀 멀고 맙니다.

허공을 베어내면 빛으로 터져 부서지듯
그대 그리움 베어내면 빠알간 꽃잎 같은
사랑이 이슬 머금어 빛나고
내 가슴은 이미 꽃물 들어
그대 손길을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너무도 눈부신 그대 사랑은
나에게 보석이요, 보물이기에
소중하고 고귀하여
마음속이고 가슴속 깊이깊이 숨기고 싶어
낮이고 밤이고
두 눈을 닫지 못합니다.

하늘을 보면
눈처럼 비처럼 음악처럼 내리는
그대 음성 한 마디라도 흘리지 않으려
두 손 모두 벌려 껴안습니다.
꽃 같은 사랑아

《19》꽃 빛 그리움

박고은

날 선 어둠 밤
별들이 주인공이듯
하나인 마음 밭
내 사랑
그대가 주인이 됩니다.

긴긴 기다림의 날
먼먼 그리움의 날
겹겹으로 쌓이고 쌓인 밤이어도
그대 사랑 하나이면
휘어진 길도 낯설지 않는
꽃길이요, 봄날

꽃잎에 창을 내어
하늘을 담고
호수를 담을 때,
물풀처럼 떠오르고 피어나는 것은
늘 그랬듯
그대 꽃 빛 그리움!

사랑이라고 부르고
사랑 앞에 그대 이름 넣으면
어느새 다가와 피는 꽃
매화 향기입니다.

《20》꽃잎 피는 꿈자리

박고은

그대 그립고 그리워
詩 한 줄잡아도
풀리지 않는 그리움

먹빛 드리운 창가에
견우직녀의 애틋한 전설
빛 한 자락 걸어놓고
그대 그려 깁는 고운 꿈

뚜벅뚜벅

그대 오는 꿈길마다
사랑 꽃불 환히 켜지고
일제히 일렁이는 꽃물결 소리
손끝에 묻어나는 꽃향기

둘이서 속살 태워 피워내는
붉디붉은 열꽃으로
더운 가슴 휘감도는 향취에
영혼 갈피갈피 고이는 미소,
그대와 꽃 피우는 꿈자리
밤새 사랑 꽃빛이 뜨겁다

《21》꿈을 사랑하는 사람아

박고은

사랑하는 사람아
네 꿈은 한밤에 돋는
별처럼 곱구나

고와서 노래되고
바람이 되어
티 없이 맑은 하늘
걷힐 것도 없어라

가만히 눈을 맞추면
반짝 웃는 별빛
은근한 네 속삭임에
나는 넋이 젖어
그립다는 생각뿐

너를 두고서 달리 뉘라서
속울음 울어 껴안겠나
가슴에 초록별 지면
삶마저 어두운데

《22》나 그대와 하나이고 싶습니다

박고은

멀리서 한밤
별이 되게하시는 나의 사랑이시여!
그대 뜰에 뜨고 질 때 그리움 꽃이 됩니다.

뚝뚝 떨어지는 이슬방울 소리
그대 마음속으로 투신하고 하나 되어
정갈히 담기는 사랑
나 그대와 하나이고 싶습니다.

멀리서 그림자로 번져와 꽃 자리를 펴
불 밝혀 놓고 오시는 길,
담벼락에 기대인 한 줌 바람은 옷깃을 나부껴
하얀 손 내밀고 허리 굽혀 정중히
그대 사랑을 안을 때
꿈을 꾸는 듯 두 눈을 감고 맙니다.

보고 싶다는 말, 그립다는 말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한 가슴속에 묻어둔 날은
더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단단한 호두 껍질처럼 마음속에 품고 안고 산
그대 사랑, 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꽉 찬 열매로 단 맛이 깃들고 성숙한 나이를 먹고
더욱이 든든한 큰 나무로 서 계십니다.

때로는 하늘로
넓고 깊은 바다의 가슴으로 품고
넓은 대지처럼 안은 마음이기에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나의 사랑아!

《23》나는 갈대랍니다

박고은

갈대로 섭니다

술에 취한 듯
이리저리
춤을 추는
은발을 뒤 쓴 갈대
갈대로 섭니다

떠도는
백광부 넋인 양
꺼이 꺼이
울부짖는 갈대
나는 가을 갈대입니다

《24》내 사랑에게

박고은

참 좋은 내 사랑 당신
내 생명의 의미여
그대를 진정 사랑합니다

깊은 속 울음마저
맡겨 놓은 나에게
사랑은 풀꽃처럼
시드는 계절은 없습니다
이제는 아픔도 없을 겁니다

행여 요동치기를 멈추지 않는
태풍 속 바다의 멀미에
하얗게 엎질러 쓰러져도
사랑의 계절은 갯바위 운명처럼
오늘도 내일도 다함이 없습니다

끝내 잊지 못할 그대
영영 사랑할 겁니다
설령 그대 가고 없어도
내게 없어도

《25》내 안의 그대라는 한 사람

박고은

날마다 벗어 놓은 자리
벌겋게 달구어진 발자국마다
그리움으로 데이고, 꽃잎 지는 아픔보다
내 안의 그대 기다림은
천 년같이 멀어도 단맛이 있다

허기를 삼키는 벼랑 끝에는
한 사람 사랑이 고요히
두레박줄을 내려놓은 손길,
햇살 짜듯 섬세하고 포근한 눈빛은
그대 내 사랑

눈먼 비둘기처럼
낮과 밤을 그리듯 꿈꾸는 세상
그대 붓질 하나로 펼쳐진 세상이 아름답다

내 안의 그대라는 한 사람
이슬로 오는 갓 태어난 아침 햇살

《26》

박고은

순한 눈빛으로 맞이하는
감동의 파노라마
숨이 멎는 무한경

사락 사르락 활강하는
흰 나비, 나비 떼
온 우주를 채워서
비로소 텅 비는 고요

소복소복 내리는
저 눈발 속으로
나를 묻으며 숨지고 싶다
백일환몽을 꿈꾸며
마냥 잠들고 싶다

《27》눈이 내리면

박고은

펑펑 눈이 내려
산천은 온통 적막의 韻운
그 누구의 연서인가

쓸쓸한 겨울 풍경에
소복이 눈이 쌓이면
이 몸은 날뛰는 꽃사슴
치렁치렁 그리움 매달고
소식 뜸한 벗에게 달려가
보고픈 마음 전하리

'잘 가라' 작별의 잔 데운
님의 입술이라도
시린 영혼에 담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리

한 세상 고적하기만 했던
깡마른 씨앗 한 알
가슴에 떨구어
향기로운 꽃 피워 보리

《28》다시 사랑한다면

박고은

또다시 사랑한다면
그늘진 영혼에게 희망 주는
제야에 울리는 종처럼
첫 마음으로 돌아갈 거야

때로 풀썩 주저앉고 싶도록
걷는 길이 외롭고 지칠 때
선뜻 손잡아 주는 사랑

짙푸른 향나무 향같이
누군가의 가슴속에
오래 머무는 사랑을 할거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마음 접히지 않도록
늘 웃음으로 다림질해
포근한 안식처가 되는
사랑을 할거야

물살에 닳은 조약돌처럼
등 뒤 그림자로 묵묵히 따르는
그런 사랑을 할거야

《29》단풍잎

박고은

그대 느끼시나요
허공을 팽그르르 돌다
시린 어깨 위에
똑! 떨어져 앉는 단풍잎 하나,
그것은 숨 가쁜 내 떨림임을요.

행여 그대 아시나요
해 질 녘 그대 발밑에
허리 잘린 채 신음하는 단풍잎
붉디붉은 선혈의 내 생채기임을요.

하마 짐작이나 하실까요
두 눈 짓무르도록
그리움에 젖고 젖어
온 가슴 단풍으로 불타고 있음을
어쩜 생각이나 하실까요.

정녕
내가 사랑하는 그대는

《30》당신 바라기

박고은

나 당신 바라기,
큐피드 화살에 꽂힌 나
당신이 무지 좋아

그저 바라만 봐도 좋고
바보야 바보야 부르면
수줍게 볼 붉어지는 당신이
진짜 얼마나 좋으냐고?

내 팔을 뻗어도 내뻗어도
닿을 수 없는 하늘 키만큼이나
좋아 죽겠다!
내 마음 다 주고도
더 있음 주고 싶을 만치
좋아 죽겠다!

온 세상 다 가진 듯,
사랑스런 당신이 있어
정말이지 좋아 죽겠다!

《31》당신은 누구십니까

박고은

한 철 불새로 날아와
내 가슴에 둥지를 튼
당신은 누구십니까

화가의 붓놀림에
높아지는 그 하늘처럼
내 손짓에 따라
즐거이 움직이는 당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매일 세상 가시넝쿨에
온몸이 찔려 피 흘려도
내 앞에 서기만 하면
너털웃음 함박 짓는,
피에로 같은 사람
해바라기 같은 사람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32》동반자

박고은

불의 담금질 속에도
변치 않는 천동 같은 마음
수천 번 휘저은 칼로도
감히 쪼갤 수 없는
부부로 맺은 사랑
세상 어디에도
당신 만한 사람은 없어
천정배필 운명의 사랑
만천하 사랑 본이 될
청홍 빛 원앙 한 쌍 

《33》동백꽃 사랑

박고은

눈보라 칠수록 솟구치는
설원의 붉은 순정
절정의 순간 목숨 다한대도
희열로 벙그는 향취의 입술
독장 같이 찬바람 먹고
쌍코피 쏟으며
뚝뚝 질 운명일지언정
고운 동백꽃아!
너 홀로 사랑이구나
시린 겨울을 지우며
보조개 수놓을 봄이구나

《34》동행

박고은

달 보며 지새는 밤은
아름다운 동행

님 따라 내가 가나
뒤따라 님이 오나
서로 짝이 꼭 맞아
어디를 향해도
동심으로 타는 가슴

함께하는 길이기에
사랑이 잠시 눈 돌려도
그 서운함
눈빛 속에 감춘 채
미덥게 가리라

빈 손 안에
물기만 남을 인생
두 손잡고 가노라면
슬픈 것만은 아닌 삶

《35》등대

박고은

어둠을 사루는 자비
등대 불은 사랑의 눈짓이다
거친 풍랑 속 나침판은 제멋대로
엔진마저 고장 나 방향을 잃을 때
등대는 길잡이 손짓이다

지금 그대는 길 잃은 배
나 한줄기 등대 불로
믿음의 키 잃고
심해를 헤매는 그대 이끄네

한 치 앞 뵈지 않는 이 밤도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지 않기를
너울이 덮쳐도 표류치 않고
나래 쳐 나가기를

거칠고 험한 삶의 길
고비마다 풍파를 넘으며
안식의 돛을 내려 함께함이
참 행복이나니

오늘 밤 그대 가슴은
길 잃은 배
등대불로 밝혀 주마
사랑의 눈짓을 쏘아 주마

《36》만남

박고은

그 날 웃음이 참 좋았습니다
그건
봄을 알리는 시작이었습니다
지그시 응시하던
당신의 까만 눈망울은
밤하늘 샛별을 담고 있었고
말없이 다독이던 손동작은
편안함이 있어 좋았습니다.

그 날 이후 가슴에 품은 이름은
차마 토하지 못한 채
단단한 꽃씨로 박혀 버렸기에
이제 나는 당신으로 인해 피는 꽃이요
당신은 내 어깨에 머무는 햇살
불러주길 기다리는 노래
내 혼에 빛으로 내린 아침입니다

《37》매화

박고은

매운 눈서리 맞으며
인고로 홀로 견딘
매화의 고귀한 멋

연연한 정 맺혀
속속 깊이 붉어진 혼
暗香이 발아하여
송, 송이 터지는 순간

우주는 귀가 열리고
차마 숨죽인 가슴은
화음으로 가득 차

절조의 기품 맵시
화사한 그 미소에
결빙의 언 가슴은
사르르 녹아 집니다

《38》못 견디게 외로운 날

박고은

못 견디게
외로운 날은
와인 한 잔으로
짙 붉은 헛 꿈을 켜보네

외로움은
바람빛깔

고립된 가슴속에
청승 풀어 바람에
한 움큼 띄우고

못 견디게
정녕 외로운 날은
하늘 보며
머리 세워 갈망하는
살무사 눈빛 닮아 가네

《39》무지개로 뜨는 사랑

박고은

그대가 하늘이면
그대 품에 무지개로 뜨리라
화심 띠로 빚어낸
빨주노초파남보

빨간색 띠에 뜨거운 열정
주황색 띠에 눈부신 환희
노란색 띠에 고요한 평화
초록색 띠에 싱그런 순수
파란색 띠에 밝은 희망
남색 띠에 굳센 믿음
보라색 띠에 고운 사랑

겹 지른 아름다운 조화
신비의 비경
내게서 솟아난 무지개
그대 품에 걸리거든
영혼의 피리를 불어라

온 세상 다 퍼지도록
행복의 메아리 울려라

《40》바램

박고은

애틋이 사랑을 품었기에
줄 것 하나 없어
섭섭한 마음인데,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때로 돌아서서
되거퍼 슬퍼지는 일이 없도록

율 고운 현이 울리듯이,
상호 감응하는 가슴에
마음의 줄을 튕기면
오롯이 진심 우러나는
청징한 소리만 한결로
가슴에 울리기를……

티 없이 진정 사랑하기에
고운 눈빛만 주고받는
순한 바램을 가져요.

《41》바위처럼

박고은

차라리 세상만사 입 다문
바위처럼 살고파

가슴 깊숙이 품은 뜻
말로는 다 할 수 없어
묵묵히 침묵으로 견디는

비오면 빗물 머금고
눈이 오면 눈에 덮여
풍화작용에 무늬 지는 바위

세월이 준 상흔
빛살에 헹궈 잠재우고
때론 밤중에 깨어나
달을 안는 바위

애당초 잃음도 얻음도 없는
무명의 바위처럼 살고파

《42》봄바람아 불어라

박고은

살랑 봄바람이 불어
마른 가지마다 잎눈 뜨게 하고
잔설 덮인 산자락 매화도 피웠네

시냇가 버들가지 타며, 술래 도는
봄바람 웃음 속에 꽃구름 일고
살가운 사랑을 배어
연인 얼굴에 분홍빛 꽃 피우는데
떠난 벗도 돌아오는 아홉 굽이 사랑길

불어라 봄바람아 신나게 불어라
뜨겁게 불어서 정열의 꽃피우고
모질고 무딘 마음 흔들어
푸른 꿈을 빚어야지

봄바람 난 詩人의 가슴도
훗훗한 감성 뜨락 쓸어내고
누리 곳곳 훈김이 돌아
고운 노래 여울져 흘러야지

《43》봄이 오는 길목에 서서

박고은

겨우내 탕약처럼 달인 가슴
불러 보아, 봄이 어디만큼 왔나
강바람 타고 산 넘어오고 있는지
응달비알 선 나무 타고 오는지
우리들이 바라고 좋아하는 계절
해묵은 마음을 풀고
응어리진 가슴 해토할
봄이여 하느적 오렴
고적한 넋이 뛰놀고 하늘을 날
싱그러운 봄아 어서 오렴
증오도 애정처럼 쏟아 볼
자연도 사람도 길할
봄 그 속에 즐겨 살고파

《44》봄이 오지 않는 가슴

박고은

등걸같이 메마른 가슴
생 봄빛 채우면
활짝 꽃이 필까

먼 산하 타고 와
들녘을 밟는 봄내음
치마폭에 살풋 담으면
열아홉 순정마냥 설렐까

오라오라 봄이여
어디서 무얼 하는가
읊조리는 이 가슴은
지금은 한겨울 속

새움 트는 가지마다
봄바람 속삭이는데
어이해 내 마음의 담은
못 넘어오는 건가

야속타 봄이여
진정 봄은 어디로
누구를 위해 오는 건가

《45》사랑 속에 사는 이여

박고은

마음이 간절하면
한겨울에도 꽃을 피우는가

추위에도 개의치 않고
겨울 강변에 핀
코스모스의 고운 미소
붉게 타는 단풍나무의 열정

사랑이여, 우리도 저와 같이
매섭고 차가운 세상
고달픔이 밀물쳐도
한파가 몰아쳐도 마다치 않고
강인한 생명력을 불 밝혀요

가난한 마음 뜰에
한 그루 나무 뿌리 깊이 박고
평화의 하늘 우러러
묵묵한 사랑 올올이 새겨 보아요

참사랑의 소중함을 곱씹으며
가 없는 무량심으로
알찬 소망의 열매 맺어 보아요

《46》사랑이 그랬습니다

박고은

비 내리는 날
담벼락에 기대인 풀잎이 흔들릴 때
비에 젖은 그리움이 다가와
울컥!
그대 생각으로 눈물이 납니다.

유리창으로 제 몸 던져 전하는 빗방울은
투명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속울음까지 뜨겁게 흘리면서
"그립다!". "보고 싶다!"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은 내 마음도 뜨거워집니다.
비 오는 날 사랑이 그랬습니다.

이제 막 깊이 익어 가는 어둠 속까지
흠뻑 적시는 빗물에서 맨발로 뚜벅뚜벅 걸어
그대가 오고 가는 길목에 서성이며
행여 그대를 그리는 그리움이 젖을까
빨간 꽃을 펼쳐 놓습니다.

비 내리는 날은
커피 한잔을 타 놓고
커피 잔에 그리운 사람에 얼굴을 띄워
살포시 입 맞춥니다.
그대 향기를 마시고 싶어서입니다.

커피 잔에서 시간이 자라고 어둠이 일렁이고
잠들지 못한 생각들이 몸을 뒤척이고,
홑이불처럼 서걱이는 소리 따라 길을 나설 때
혹시나 그리운 사람을 만날까 두 눈을 감습니다 .

아름다운 사람이여,
이때
오십시오.
나의 사랑아!

《47》사랑해 말 한마디

박고은

"사랑해"
다정히 주고받는
말 한마디
시린 속을 뎁혀주고
화알짝 꽃피우는 마음

동공 속 채색되는 화색
가슴은 꽃물이 들어
번지는 삶의 향,
더 깊어진 존재의미

진심 우리들 소망은
지극정성 맺은 마음,
붉디붉은 사랑의 열매로
연연히 영글기를

《48》서로 사랑하고 싶다는 것은

박고은

그대는
나의 계절이다.
꽃이 피고 비 내리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릴 때, 가슴이 시리잖아

키 작은 하늘에서
울먹울먹 어깨를 들썩일 때
먹물 번지는 구름의 반란……
수억의 비 화살이 쏟아지고
날개 접은 그리움이 젖어 흔들릴 때,
기다림은 허공에 기대고 두 눈을 감지
풍경에 갇힌 모습을 보면서……

그래서 때로는
서로 좋아한다는 것은
꽃 마음 닮고 싶다는 것이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전설 속의 비익조가 되는 것이다.

그대가 그렇고
내가 그렇듯이……

좋아한다는 것은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아픔과 시린 가슴일 수 있기에
그 모든 것을 견디어야하기에 소중한지 몰라.
진주조개처럼 불같은 칼날 앞에 맨살을 내어 주고
아픔과 고통을 견디어 낼 때,
비로소 하나의 진주를 잉태하듯
그대와 나의 사랑이 그래.

나의 아름다운 사랑아!

《49》서시

박고은

내 꿈은 감성이 흐르는 강

첫새벽 물안개 피는 그리움의 강
손수건 한 장 띄워 보내는
속 깊은 여심이고 싶다.

길손이 오가는 언덕, 수줍음 숨긴 채
안으로 여민 인종으로 맑은 향 피우는
들국화 연정을 품고 싶다.

순간, 바람에 내몰려 일제히 날아 오르는
철새 떼 움직임의 피날레
그 준열한 미학,
눈시울 뜨거운 감동을 갖고 싶다.

일깨우는 갈바람 속
흰머리 풀어 춤추는 갈대꽃의 포에지
떨리는 목소리로 읊는
한 편의 서정시를 쓰고 싶다.

《50》선홍빛 그리움

박고은

눈보라 속, 칼바람 속
붉디붉은 산수유
함께 붉고 싶은 마음
오로지 인고이어라

가지마다 조롱조롱
선홍빛 영근 그리움
목숨 뜨겁게 타는 사랑
하얀 고독으로 익는
내 사랑도 산수유 같아라

《51》세월이 힘겨워도

박고은

힘겹게 보낸 세월, 한 뼘 봄만 얻어도
사는 낙이 즐거울 텐데
어둡고 흉흉한 계절에
목매는 열원, 얼마를 더 불러야
영혼마저 해갈될 봄은 올까.

암울하고 답답한 가슴
가만히 앉아서 푸념만 할 수 없는
분명한 진실 하나,
부끄럽지 않은 이름을 위하여
고뇌하는 시대를 지고 매고
갈라진 맨발로 걷다가 쓰러질지언정
맨땅이라도 쳐보는 패기를 갖고
한겨울 몹쓸 추위와 대결을 해야 하리.

저 하늘이 지친다 해도 잠들 수 없는 몸
철통 같은 기막힌 성을 허물고,
무성한 잡초를 불태우고
창공을 누비며 우리는 날아야 하리.
아픈 쓴 가슴 헤집고 새살 찾아줄
진정 따스한 봄을 위하여
어둠 사뤄 마시고 미명 속을 나는 새같이
입술을 꽉 깨물고 우리는 날아야 하리.

《52》아름다운 계절

박고은

글썽이는 눈으로 가을들을 보라
수정구슬 부딪치듯 쏟아지는
저 햇살을 받으라
잎잎이 물들어 비단같이 빛나는
단풍 타는 소리를 들어보라

가을은 호두처럼 여물어가고
가을은 홍옥처럼 익어가고
가을은 달빛같이 가득 차오르고
가을은 아기잠처럼 깊어가고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
한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을
수채화 같은 세상
젖어드는 가을을 가슴에 안고
여기 나도 섰노라

《53》아름다운 포옹

박고은

그대와 나,
힘껏 껴안은 가슴은 바다
콩닥콩닥 하얀 숨결 소리
파도치는 황홀한 사랑

부드럽게 눈빛 마주 하고
감미롭게 혀끝을 핥으며
장미보다 더 붉은 입맞춤 하네

분홍빛 젖가슴 짜내듯
와랑 와랑 전신을 떨면서
아득히 동공 속으로 빨려들고
아득히 영혼 속으로 빨려가고

후끈 불끈 달아오른
두 몸은 한 몸이 되어
불 타들어 가는 불나방 한 쌍
살포시 가슴이 녹아버리고
살포시 마음이 녹아버리고

《54》애인

박고은

단 한 번의 키스로
앙다문 입술
열어버린 그대여

떨리는 전율로
귓불 비비며
情바다를 핥는
달디단 육체

고혹스런 날갯짓에
까무러쳐 죽고 싶은
사랑의 절정이여

춤추는 촛불처럼
사르르 녹아 피는 그대는
깊은 내 안에 뜬
황홀한 무지개

《55》얄밉도록 보고픈 사랑아

박고은

얄밉도록 보고픈 사랑아
우리가 줄곧 가진 건
지칠 줄 모르는 눈빛 하나
오늘 밤음 우리 둘이
미치도록 행복하자

혼이 화닥화닥 불 달아
꽃술 하얀 숨결
거칠게 토해내는 사랑
바위가 피 돌아 솟구치듯
몸서리칠 사랑

온 삭신의 결마다
열정의 전율이 요동쳐
가슴 짜릿한 고통 빨아올릴
몸 젖는 사랑 해보자
기찬 사랑 한 번 하자    

《56》연가

박고은

봄 깊어 한창인 저 장미꽃도
님이 있어 아름다운 것을
더 향기로운 것을

한 송이 고이 꺾어
님에게 보내면
나를 보듯 반가워 웃으실까
어쩌면 우실까

송이송이 꽃망울 터지는 소리
눈물 핑 도는 그리움
왈칵 솟는 보고품!

《57》온 가슴으로 당신 사랑을 안겠습니다

박고은

그리움은 하늘에 두고
기다림은 땅에 두어도
끝끝내는
하나로 만나는 그 날을 위해
꽃가지에 등불을 밝혀두자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
나를 버리고
그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한 곳에 영혼을 내려놓는 것이다.
외롭고 고독스러워도
그 사람을 위해 한 송이 꽃이 되는 것!

때로는 저녁노을이 황홀할 때
가슴 적셔 그 사람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자
사랑이고 사랑이라고……
그리운 사람이 사랑의 편지를 읽고 말없이
별로 떠 창가에 비출 때 눈물 흘리지 않게...
그리움은 하늘에 두고
기다림은 땅에 두어도
끝끝내는 하나 된 사랑일테니……

그 사람이 주는 그리움, 기다림
사랑의 비단실로 한 올 한 올 수놓아
사랑 꽃 피워 하나 될 사랑,
온 가슴으로 당신 사랑 꼭 안을 것입니다.
내 생애 단 한 번이 될
오직 단 하나의 사랑아!

《58》우리 사랑해요

박고은

계절은 쉼 없이 바람 불고
현실은 노상 고달파도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는
당신이 있어 행복해요

세상살이 굽이굽이
죽을 만치 괴롭고 아플 때
용기와 위안을 주는 당신
오로지 순금 빛 마음으로
세상 저편까지, 그대
그림자 되어 함께 갈래요

나의 천사, 내 마음의 보배
진정 당신을 사랑해요
우리 언제나 한결같이
서로 함께 사랑해요

《59》우리 차 한 잔 해요

박고은

함께 마주 앉아 주고받는
그윽한 향이 모락모락 피는
따끈한 한 잔의 차를 들면

채우지 못한 여백의 삶,
고된 세상살이, 이슬 녹듯 감치고
마음 따뜻이 피어나는 꽃,
일상의 여유란 차 한 잔의 깊이뿐

다정히 마주 앉은 자리
두 손으로 오롯이 건네는 찻 잔에
메마름 축여가며 고이는 사랑,
눈으로 오가는 정
잔 속에 우러나는 훈훈한 이야기는
진정으로 피우는 사랑의 맛,멋

서로의 가슴 뎁히며 나누는 마음
맞잡은 손에 전해지는 따스한 체온
가난해도 풍성하고 미소 밝은 얼굴빛,
가실 줄 모르는 심향은
은근히 깊고도 넉넉하나니

우리 차 한 잔 꼭 함께해요.

《60》이런 당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고은

내게도
훤히 밖이 보이는 찻집에서
마주 보며 커피 한 잔
미소 한 모금, 나누고 싶은
당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바람불어 시린 날
입술 델까 봐 호호 불어
버섯 찌게 떠먹여 주는 배려 깊은
당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빗방울 방울 가슴을 적실 때
혹시라도 내가 울까 봐
장미 한 송이로 마음 보담아 주는

홀로 주말을 보내는 날
조수석에 날 태우고,
둘이 노래 흥얼거리며
무작정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당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내게도
사랑의 손 잡아주고
행복을 느끼게해 주는 연인같은
당신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61》인연

박고은

아무리 안아도 한 아름이 못될 삶
혼자서 다독여도 다 못 이루는 정
나는 여기서, 너는 거기서
질긴 인연의 끈을
서로 맞당기고 끌려가는 우리

온 세상 비추고도 남은 빛으로
사람 맘속에 스미는 달같이
얼어붙은 별빛이 비수 날로 잘리고
마른 강물이 여울져 넘치는
깊고 도타운 정

굽이굽이 흐르는 강 언덕에
인연의 모둠 줄이 찬바람 사이 떨며
애젓이 낙엽을 떨굴지라도
차마 등 돌리고 선 긋는 일 없게
나의 친구여, 연인이여
우리가 쌓은 연연한 정은
대낮에도 속 눈 뜨는 별에게 전하고
이끼 핀 바위에도 꼭꼭 새겨 두련다

《62》잡을 수도 보낼 수도 없는 사랑

박고은

어쩌자고 사랑을 했을까

사랑할수록
온몸의 세포는 그리움에 물들고
허수아비처럼 외로움은 쌓여만 가는데
이토록 아픈 게 사랑일 줄이야

대체 어쩌자고, 어쩌자고 했을까
차라리 물빛 감은 인어처럼
물거품으로 점점이 흩어질 것을
얼음에 응고된 촉수처럼
박제된 채 영원히 잠들 것을

《63》저녁 놀 물 드는 창가에 서서

박고은

저무는 창가에 서면
조용히 눈 감지 않아도
선뜻 곁에 머무는 듯
떠오르는 슬픈 영상

아슴이 타는 저녁 놀
애잔한 눈빛이 닿아
이슬 맺히는 하늘가
외롭고 쓸쓸한 그 심정

한 자욱 또 한 자욱
오늘에 선 지금도, 어제처럼
먼 옛일을 헤아리는 눈,
낮에는 꽃으로 달래고
밤에는 뭇별로 말벗 삼고

고르지 못한 숨결을
행여라도 들킬까 봐
가만가만 창가에 다가와
바람인 양 흐르는 얼굴,
그 누가 아니래도
믿음이 아파옴은 왜일까....

《64》존재의 의미

박고은

때가 되면 모과 열매가
여태껏 키워 준 나무에게
감사하며 떨어지듯
이듬해 결실을 위해
미련 없이 떨어지는 비장미

자연 본성은 거스를 수 없는 것
누구나 적멸로 가야 하는 길
무변한 허허로움과
설움이 골을 이루어도
묵묵히 자신을 비우며
불안마저 초극하고 나면
평화의 안식이 기다릴 것을

시시로 버는 고독감
허울 죄다 털어버리고
무명시인에의 족한 영위,
하늘에 귀의하는 그 날 향해
어정 세월을 눕히며
절정의 잎 하나 떨군다

《65》중년의 고독

박고은

허심한 발걸음 옮기는 오늘은
세상이 어찌 이다지도 쓸쓸한지
홀로 허허 벌판에 내버려진 듯
파편진 가슴으로 토하는 읊조림은
차가운 바람벽에 흔들릴 뿐

심연한 고독으로 하여
첩으로 쌓여가는 이 적막함
세상은 날이 갈수록 낯설기만 하고
저물어 가는 육신과 묻혀 가는 존재감

비탈진 시린 가슴속에
이제는 무슨 불을 지펴야 할지
무슨 연유의 꿈을 엮어야 할지
여태 버티어 온 삶이 서럽고
무변한 쓸쓸함 달랠 길이 없다

《66》지는 가을

박고은

눈동자에 지는 빛
가을이 진다
우수수 낙엽이 진다

한 잎 두 잎 나래치는
노오란 은행잎의 贇舞윤무
그 애처러운 몸짓에
볼 비벼 울고 싶나니
긴 회랑 속 회한 때리는
추억의 가락이여

계절의 흐름에
무심함을 어쩌리
미워한들 무엇하리
괴로워한들 무엇하리

허물일랑 벗고서
지는 잎 겹겹이 덥고 가자
서럽게 지는 가을일랑
발부리에 묻고 가자

《67》창에 머무는 그리움

박고은

지척이 아니기에 더욱 보고파
창을 열면 미소 머금은 네 모습
꽃 이울던 하늘 종일 꼬나보던 날은
치솟는 그리움으로 얼마나 기다렸나

늘 반기던 창에서 서로 보지 못해
만남이 어긋나버린, 동혈보다
깊고 추운 겨울날 닫힌 창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덜컹덜컹 창을 휘감는 바람 소리뿐

그 언제쯤 마주할거나
다정히 속삭이던 네 눈빛
꿈결처럼 감미론 자장가 소리를

《68》촛불 한 자루 켜는 마음

박고은

1
하늘 우러러
두 손 모우는 마음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촛불 하나 켭니다

떨리는 숨결로
타오르는 눈물 속의 향연
귀하게 소중하게 쌓은
선업마저 남김없이 사루는
목숨의 혼불이여

홀로 새긴 묵약이듯
지조 지켜 불타는 가슴에
뜨거운 사랑마저
성스러운 기도이게 하소서
영원의 불을 지피는
경외로운 신앙이게 하소서

2
숱한 세월 피맺힌 생채기
넘칠 대로 애끓는 회한은
은빛 고인 눈물 속에
말갛게 녹여주시고

무심코 가지 흔드는 바람결에
힘겨워 오열하는 심장도
잠재워 주시고

잘라내도 또다시 돋아나는
욕망의 잔뿌릴랑은
소지 사루 듯 불태워
학무리로 승천하게 하소서

《69》코스모스

박고은

내 그리움도 이맘때면
가을들녘
코스모스 넋쯤 필까

울먹인 눈동자
이슬 젖은 소녀 같이
웬지 눈물겨우면서도 해맑은
사랑 닮은 꽃

가만한 바람에도
꽃잎을 곧잘 흔드는
자조의 몸짓 코스모스야

가을 이맘때면
내 그리움도
속앓이로 피고 지는
코스모스의 넋쯤 필까

《70》허공에 이름 하나 수놓는 날

박고은

허공에 이름하나 수놓는 날
한 줌 바람은
그대
그리움으로 내리고
그리움은 별이 됩니다.

속을 비워낸
빈 소라처럼 바람, 파도
가을 빗소리를 담으면서
귀에 익은 발자국소리를 기억하듯
그대 오늘도 그러하셨지요.
홀로 그림자마저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눈뚝을 넘은 빗줄기는 뜨거웠으리라……

뚝뚝 꺾기는 관절처럼 굴절된 하루,
벌겋게 녹슨 시간을 닦는 수고와 발품 팔아
풍경을 사고 군중 속에서 나를 버리는 발걸음이
밝은 내일을 기억했으면 했습니다.

홀로 있다는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한 송이 꽃이 필 때 그 순간처럼
작은 진통과 같은 지도 모릅니다.
향기를 품고 까맣게 익은 씨앗 한 톨을 잉태하는
산고의 아픔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대를 보고 있으면 향기가 나고
꽃의 언어로 말씀하실 때 그랬으니까요.

하여, 꿈속에서도
그 향기 그립고 그리운
나의 아름다운 사랑아!

《71》호수

박고은

맑은 물결이
흐르는 듯,머무는 듯
둥근 거울 속

무심히 던진 돌팔매에
산산조각 깨진 얼굴
침잠해버린 한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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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화시모음 75편

《1》10월에는   


 정연화

코발트빛 가을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이고 싶습니다

10월에는

눈부신 가을 햇살처럼
따뜻한 가슴이고 싶습니다

10월에는

길섶에 핀 들국화처럼
은은한 향기를 지니고 싶습니다

10월에는

밤하늘의 별빛처럼
아련한 그리움 하나 품고 싶습니다

10월에는

단 한사람 누군가 있어
잠 못 이루는 밤이어도

가을
가을 때문이겠거니 생각하겠습니다

《2》가슴속에 담긴 소설

정연화

어디에다 써야 할까

페이지가 너무 많아
어디에도
쓸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냥 돌아서서
그리움이라고 쓴다

떨리는 마음 한켠에……

《3》가을

정연화

어제 밤에는
선선한 바람 불었어요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의 별들도
가을을 품은듯
유난히 밝게 반짝였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가느다란
풀벌레 소리 또한
가을밤의 정취였구요

한줄의 시를 쓰고자
밤하늘을 보고있다가
풀벌레 소리에
눈감고 귀 기울이다가

나도 몰래 스르르
잠이 들었었나 봅니다

발아래 놓인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고서……

《4》가을 속을 걸어요

정연화

가을하늘이 너무나
맑고 높고 청명합니다
이런 날 목적지 없이
그냥 가을길을 걸어요

걷다보면 계절에 마음이
물들어 가겠지요
누구라도 어디든
무작정 떠나고 싶은 계절

꼭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가을은 동행하는 것만으로도
그림같은 풍경이 될것입니다

가을은
가을 그 자체만으로도
영혼이 자유로워 질 테니까요

가을속을 걸어요
가을속에 머무는 동안은
사람도 들꽃도
가슴에 품은 생각도
다 아름다워 지리라 여겨집니다

《5》가을 이야기

정연화

가을에는 온 가슴을 연다

코발트빛 하늘을 담고
뭉게구름도 담고
옷깃 스치는 바람도 담고

들꽃위에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을 담고
가만히 가을꽃도 담고

그리고
가을이기에 차오르는
지독한 그리움을 담으려고

《6》가을 향기

정연화

낮동안 내리쬐는 햇볕이
아직은 뜨거워서
손가리개를 하지만

극성이던 더위는
어느 새 한 풀 꺾였고

가끔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속에는
가을 향기가 묻어납니다

나뭇잎의 살랑거림도
철이 든 듯 온화해졌으며
하늘의 뭉게구름도
왠지 가을스러움을 주는군요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가을 향기 그대를
맞이할 꿈에
여심은 벌써
설레이는 마음이 되어
그렇게 가을속에 서 있습니다

《7》가을빛 닮은 사랑

정연화

향기 너무 짙은
색 진한 사랑말고
잔잔하고 은은한
가을빛 닮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눈이 너무 부셔
눈을 감아야 하는 사랑말고
나뭇잎이
갈 빛으로 채색되듯
마음을 물들이는
가을빛 닮은 사랑이면 좋겠습니다

이 가을에

사랑이……
그대가……

나란히 손잡고
내 품에 안겨왔으면 좋겠습니다

《8》겨울 여자

정연화

차갑게 식은 커피를
조용히 내려다 보며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여자

눈 내리는 날에
오히려
손과 마음이 더 따뜻한 여자

겨울에 태어난 여자
겨울에 이별한 여자
겨울을 사랑하는 여자

겨울에
외로움을 가장 많이 타는 여자

그 여자 겨울 여자

《9》고운님의 하루에

정연화

나의 하루를
곱게 물들이고 싶다

뻐꾸기 울음소리
산골의 아침을 열고
노오란 꽃 피워
봄을 알렸던 산수유

이젠 어여쁜 열매
주렁주렁 매달았네

계곡의 물소리에
앵두 산딸기
빨갛게 익어가고

잎새에 스치는
초록향기
가슴에
꼭 보듬고 살아가는

고운님의
싱그러운 하루에
나의 하루를
곱게 물들이고 싶다.

《10》그 마음

정연화

소중하게 받을게요
향기 담아
고이접어 놓겠어요

아무도 모르게
가슴속에 넣어놓고

밤하늘의 은하수
눈부시게 내리는 날

떨리는 가슴으로
살포시 펼쳐보겠어요

하늘엔 별들이
반짝반짝 빛날테지요

《11》그 사람 당신이예요

정연화

그사람
당신이예요
보고싶고
그리워서
늘 가슴이 아려오는 사람
그사람 당신이예요

모습 떠오르지 않는
신기루 같은 그대지만
아는건 아무것도 없는
당신이지만
내 마음속의 그사람
당신이예요

볼 수 없는 곳
눈빛 닿을수 없는
아득히 먼곳에 있는 사람
그사람 당신이예요

그래서 이토록
아픈 그리움만
안겨주는 사람
그사람 당신이예요

밤하늘의 별빛에게
내 마음 띄워 전하고픈
오직 한사람 그대
그사람 당신이예요

《12》그냥 잊어라 합니다

정연화

사랑이라는 말을
이별이라는 말을
언제 우리가 했었던가요

하늘의 뭉게구름과
풀섶의 들꽃을 보며
아쉬운 마음에
그들에게 물어봅니다

가던길 유유히 흐를 뿐
바람에게 몸짓만 내줄 뿐
그냥 잊어라 합니다

잊을수 있겠는지요
지울 수 있겠는지요
진정 그럴수 있겠는지요

하지만……잊어라 합니다

그냥 잊어라 합니다

《13》그대 꿈속에서 만나요

정연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둘이 하나 될수 없는 사랑

어떻게 하면 만날수 있을까
기도하는 날들이었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을이 오고
또 그렇게 가을이 가고

진정 그대를
못 보고 살아야 하는건가요?

오늘밤엔 꿈을 꾸겠습니다
꿈속에서나마 꼭 다녀가십시오
그대 꿈속에서 만나요

《14》그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연화

어제는 멍하니 창가에 앉아
가을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보고 있는데
눈물이 주루룩 흐르더군요

비에 젖은 초목들의 모습도
내 마음을 보는 듯
어쩐지 애처롭게 느껴졌습니다

가끔씩 밀려오는 그리움과
뜻 모를 공허함의 실체와
울컥하는 가슴의 요동이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센티함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닌 것 같습니다
가을 때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대 때문에 이 가을이
한 여자를 눈물 글썽이게 합니다

《15》그대 미안합니다

정연화

그대 미안합니다
그냥 많이 미안합니다

그대 힘들게 해서
미안합니다

나를 아느냐 물어 오지만
벙어리가 된듯
말을 못합니다

가슴은 말 하라 하지만
머리가 아직은 아니라고

먼훗날 그대 심장의
불꽃같은 사랑이 식거든
말 하라 합니다

보라빛 그리움이
연분홍 설레임이
한줄기
바람되어 소풍 가는 날

나를 아느냐
또다시 물어온다면
그때는 말 하리다

그대를 진정으로
그리워하고 사랑했노라고

그대 가슴에
새겨진 멍울 벌 받을게요

그대 지금은 미안합니다

《16》그대가 선물입니다

정연화

가을타고 오신 당신
바라만 보아도 좋은당신
그대가 선물입니다

눈부신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꽃단풍

그 단풍보다 붉게 물든
가슴속 사랑
곱게 전하고픈 사람이
그대입니다

생각할수록
가슴 설레이게 하는
그리운 당신은
선물처럼 오신 그대입니다

《17》그대는 알고 계신가요

정연화

아침에 일어나면
내 첫 마음
오롯이 그대인줄
그대는 알고 계신가요

모닝커피 한 잔의
시간에도
그대 모습
떠올리고 있는 나
그대는 알고 계신가요

창밖에 서성이는
아련한 영상이
그대일것만 같아
내 마음 떨려옴을
그대는 알고 계신가요

이런 내 마음
그대는 알고 계신가요

《18》그대를 가까이서 바라보고 싶습니다

정연화

아는 건 아무것도 없는 그대지만
글 한 줄의 인연만으로도
느낌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정다감한 분이라는 거
소탈한 분이라는 거
계절의 변화를
마음에 담을 줄 아시는 분이라는 거

아무리 마음 아파도
상대방이 불편해 할까봐
속마음 드러내지 않는 분이라는 거

때로는 가끔 외로움에
풀섶의 들꽃에게라도
말 건네고 싶어하는 분이라는 거

그런 그대를 이젠
조금 더 가까이서 바라보고 싶습니다

《19》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

정연화

마음이 구름 위를 걷습니다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 위에
마음을 실은채
스치는 바람의 향기를 맡습니다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
길섶 한켠에 하얀 들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습니다
진주를 흩뿌려 놓은 듯
눈이 부시게 빛이 납니다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
앞서거니 뒷 서거니
노랑나비 한 마리
나풀나풀 길을 함께 합니다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
가슴에 그리움을 안고
소녀 같은 설레임을 안고
사뿐사뿐 걸음을 떼어놓습니다

《20》그대에게 보냅니다

정연화

소리 없이 내리는
가을비의 서정을
그대에게 보냅니다

잔잔한 가슴 안에
파문 일며 안겨오는
가을밤의 운치를
그대에게 보냅니다

흐르는 음악의 선율과
그윽한 커피 향기를
그대에게 보냅니다

은은하게 물든 사랑을
가을빛 그리움에 담아
이 밤 그대에게 보냅니다

《21》그렇게 살고 싶다

정연화

바람이 쉬어 가는 곳

새벽 산책 길
산새들의 지저귐에
아침이 상쾌한 곳

이슬 머금은
풀섶의 들꽃이 미소 주는 곳

한적한 시골에
자그마한
예쁜집 하나 지어 살고 싶다

텃밭에 상추 가꾸고
시냇물에 발 담그며

그렇게 살고 싶다

오고가는 계절의 변화와
가슴으로 내리는 밤비에
몸살을 앓을지도 모르지만

진달래의 여린 미소
설레이는 봄도 찾아 올테니

그렇게 살고 싶다

《22》그리움만 쌓이겠지요

정연화

잊는다 말하고
지금껏
잊지못하고 있음은

아직도 내 가슴에
그대가
앉아있기 때문입니다

안녕이라 말하며
슬픈 이별을 했어도

그대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한 발자욱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
내 가슴에
그리움으로 앉았습니다

잊는다
잊어야지
헤아릴 수 없이 말했지만

정말로 훌쩍 가겠다 말해오면
못 잊어
또다시 그리움만 쌓이겠지요

《23》그립고 그립던 사람

정연화

가을비 추적추적
흐느끼듯 내리는 날
그립고 그립던 사람

한때 사랑했던 사람
한때 못 잊어
가슴앓이 했던 사람

가을비에 나뭇잎이 젖고
아픈 가슴이 젖어 들고
가을 들꽃에 빗물이 어리고

뜨겁게 고인 눈물은……

가을비가 데리고 온
슬픈 연가

또다시
그 날의 그립고 그립던 사람

《24》그립기만 한 당신입니다

정연화

안을 수 없는 당신
바람인줄 알았는데
그리움이었습니다

잠시 머물다 갈
바람인 줄 알았는데
지독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이제는
안을 수 도
보낼 수도 없는 사람

못잊어
가슴 한켠에 묻어야 할
그립기만 한 당신입니다

《25》기다림

정연화

이렇게 애타는 마음
그대는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알고도 모른척 딴곳을 보시나요

어제밤 창밖에
달빛이 하얗게 내렸지요

그 달빛을 보는순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별빛은 또 왜 그렇게
아름답게 반짝이던지

오늘밤 달빛 맑게 비추거든
은하수 별빛 동화처럼 흐르거든

그대 내 창가에 다녀가 주실래요

《26》꽃단풍 그대

정연화

내 마음
철없이 설레일 때

꽃단풍 그대는
서늘한 찬바람에
몸 아파
가슴앓이 했군요

노랗게 아리다
붉게 토해낸 가슴

눈 속에 담을게요
마음으로 보듬을게요
깊이 더 오래
가슴속에 간직하겠어요

《27》나와 같은 그대

정연화

잡히지도 않으면서
보고 있는 모든 풍경이
마음만 쓸쓸하게 하는
눈물나도록 이상한 계절

산과 들과
그리고 허허로운 가슴에
홍단풍 붉게 타 오르면

나와 같은 그대
살포시 다가와 내 손 잡아줘요

《28》내 안에 있는 당신

정연화

멀리 그 어디에 있든
항상 내 안에 있는 당신

가슴 깊이 그리움
쌓이는 날은
흔들리는 잎새가 되었다가

안개비 내리는 날엔
길섶 한 모퉁이
이름모를 들꽃으로

가끔은……

뜻 모를 의미로 다가와서
바람처럼 머물다
내 맘 흔들고 가는 당신

떠나 보낼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는
길고 긴 그리움의 시간들

오늘도 그대는
내 마음 안에 들어있는
그리운 당신입니다

《29》너무 궁금하니까요

정연화

어디에 살고 있는지
나이는 몇살인지
키는 또 얼마인지……

전체적인
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궁금하니까요

《30》능소화 연정

정연화

얼마나 긴 세월을
흐느끼다 기다리다
꽃이 되었을까?

아니 오시는 님
못잊어 줄기마다
붉은 꽃잎 피웠네

그리움에 시린
아련한 몸짓
애처로이
담장타고 흘러라

혹여 님 오시려나
눈물로 지새운
가슴앓이 나날들

님이시여
지나시는 길
능소화 만나거든

고운 눈길 담은
따뜻한 마음으로
한번 안아주고 가옵소서

《31》당신의 여자예요

정연화

내리는 가을비에
쓸쓸함을 느끼는 여자

흐르는 슬픈 음악에
마음 우울해 하는 여자

커피를 사랑하는 여자
들꽃과 친구가 된 여자

그 여자를 안아주세요
그 여자를 지켜주세요

당신의 여자예요

《32》당신이 떠난 빈자리

정연화

잠시 비운 자리이지만
아주 떠난것 마냥 허전합니다

기다려지고
애가 타는 마음에
하루에도 몇번을
할일없이 서성거립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생각하니 이상합니다

있을때는 잘 몰랐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냥 무덤덤했었지요

이 도시가 쓸쓸하고
마음 안 전체가 텅 빈 것처럼
허허롭기 그지없습니다

당신 떠난 빈자리에
가을바람 하나 옷깃을 스쳐갑니다

《33》마음의 문

정연화

아직도 마음의 문을 닫고 사시나요
감추고 숨길것이 왜 그렇게 많아요
속시원히 털어놓으면 될것을
가두어 놓으면 너무 무겁지 않나요

숨이 막힐것처럼 보여서
내 마음이 다 답답해요
이젠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람을 믿고 속마음 드러내봐요

사람들께 기대어 봐요
다 좋은 사람들이예요
털어놓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 질겁니다

응원할게요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거예요
사람들 속에 서 있는
그대를 비추는 햇살이
오늘따라 얼마나 화사하고 예쁜가 좀 봐요

《34》마음이 먼저인 사랑

정연화

서로 마주 본다고
다 사랑일까요
진정한 사랑일까요

활활 타 오르는
불꽃같은 사랑말고
음악처럼 흐르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가슴깊이 스며드는
잔잔한 사랑이면 좋겠어요

먼곳에 있더라도
마음향기가 천리를 날아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온유하여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가는
마음이 먼저인
진실한 그대와 나이고 싶어요

《35》바람으로 오신다면

정연화

어디선가 바람 불어와
내 찻잔 앞에 머물면

그 바람 님인줄 알고
가서 덥석 안길 것입니다

그러다 바람이라면
흩어져 날리는
한갓되이 바람이라면

나 또한 스치는
바람되어
그리운이의 가슴을
두드리고 갈것입니다

가을은 또 그렇게
그리움을
데리고 오려나 봅니다

《36》봄처럼 오실 그대를 위해

정연화

바람 한줄기와
구름 한점과
포근하게 스미는 공기에
마음의 앞가슴 풀어헤칩니다

앞다투어 피어낼 꽃들과
초목들의 기척에
마음의 귀 활짝 열어봅니다

봄처럼 오실 그대를 위해

그대처럼 오실 새 봄을 위해

《37》부부

정연화

당신과 나 우리 서로
남남으로 만나서
하나되어 부부가 되었고

두 눈에 눈물 흘리지 않게
해 주겠다며
손가락 걸고 약속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뜻대로 잘 안 돼
약속 못 지키고 고생시켰다며

뒷모습 보이고
쓸쓸한 모습으로
돈벌러 나가던 당신

그 모습 차마 못보고
마음 짠해져 울먹였습니다

가슴에 멍 같은 눈물 맺히던 그 날……

《38》비밀

정연화

살포시 곁에 왔어요
그래서
가슴에만 담으려구요

아무도 눈치 못채게
꼭 안고 있을거예요

바람도 꽃망울도
눈부신 햇살도
못본척
눈감아 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그대는 알아야지요

밤하늘의 맑은 은하수
쏟아질듯
그대에게 내리거든

내 비밀이라 생각해줘요

《39》사랑 때문인가 봅니다

정연화

못견디게 더운 날에도
가끔씩 불어오는 솔바람에
가슴 가득 시원함을 느끼고

답답한 느낌의 불편함도
여름이니까라는 이해심이
나도 모르게 생기는건
아마도 누군가를 향한
설레이는 마음이지 싶습니다

예전에는 없었던 유연함
느긋해지는 마음의 여유
생각을 해보니
아마도 누군가를 향한
가슴속 사랑 때문인가 봅니다

《40》사랑 참 어렵다

정연화

한사람을
가슴안에 둔다는 것
사람이 사람에게
좋은감정을 가진다는 것

눈빛을 느껴야 하고
마음이 통해야 하고

그러다 용기내어
고백의 시간을 가져야 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을
달기까지는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를
얼마나 반복해야 하는지

그러나
돌아올 대답이 두려워
가슴만 앓다가 돌아서는……

사랑 참 어렵다

《41》사랑을 고백해요

정연화

언제부턴가
차츰 좋아진 그대
그대만 떠올리면
가슴이 뛰어요

안그런척 애써
다른곳을 보고있어도
그대만 생각하면
가슴이 마구 뛰어요

이 마음
그대에게 말할게요
사랑을 고백해요

《42》사랑인가 봅니다

정연화

창가를 비추는 아침 햇살처럼
투명한 화사함을 주는 사람

마음을 먼저 보여주는 사람
그 순수함에
가슴이 봄처럼 따뜻할것 같은 사람

일상속의 기쁜 이야기와
드러낼수 없는 속마음을
문자로 빼곡히 전하고 싶은 사람

그랬을때
마주보고 이야기 한것처럼
장문의 글을 정성껏 보내오는 사람

내가 아프면
자신이 아픈듯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아파하는 사람

봄에는 향기실은 봄바람으로
여름에는 신록의 싱그러움으로
가을에는 조금은 센치한 모습으로
겨울에는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으로

그렇게 일년 열두달을
설레임을 품고
계절이 되어 다가오는 한 사람

사랑인가 봅니다
생각해 보니 사랑인가 봅니다

《43》사랑해요

정연화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사랑해도 되냐고
물어보셨지요

사랑하는 이 마음
어쩌면 좋으냐고
물어보셨지요

사랑하면 안되냐고
다시 한번 더
물어보셨지요

바보처럼
망설이고 있는 사이

바보처럼 떠나셨어요

사랑해요

《44》새해에는

정연화

좋은 일은 가슴에 담고
슬픈일은 기억에서 지워요

너무 돈에 얽매이지 말고
내가 조금 더 있으면
나누면서 살아가도록 해요
국수 한그릇 값이라도
내가 낼수 있으니
베푸는 마음에 행복하답니다

화와 스트레스는 건강의 적이니
마음 비우고 웃으며 살아요
한걸음 물러서서
상대방 마음이 되어보니
이해 못할일도 없더라구요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 사이에서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한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자신을 무대로
주연도 있고 조연도 있고
설레임이 있는 아름다운 인생

지난해를 잘 살았듯이
올 한해도 우리 잘 살아요

건강하고
행복하고
날마다 최선을 다하는 하루로……

《45》소중한 인연

정연화

너와 나의 인연은
우연으로 시작되어
서로에게 필연이 되었다

누가 먼저 손짓 했는지
누가 먼저 눈빛 보냈는지
한 순간 마음을 보았던것 같아
우리의 인연에 감사해

인연이란 가꾸어 가는것
필연이라고 해도
소홀히 하다보면
한갓 스치는 인연이 되리라

소중하게 다가와
우리 곁을 지키는 인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도
항상 함께 하는 인연이기를……

《46》수선화

정연화

노오란 그 꽃잎에
사연 있나봐
내맘이 이리도 아린걸 보면

바람도 비켜가네

꽃잎 떨려와 시릴까봐
꽃잎 흔들려 아플까봐

가만히 바라보다
가까이 다가선다

꽃을 내 안에 넣어본다
수선화에 이슬이 맺힌다

《47》스치는 인연과 필연

정연화

삶의 여정에서
중년은 지금껏
얼마만큼의
인연을 만났을까요?

그리고 그들 인연중
스치는 인연은
무엇이었으며
놓지 못할
필연은 또 얼마만큼 일까요?

문득 이 시각
마음속 깊은곳에 박혀
서성거리고 있는
멍울같은 인연 하나

그 인연은
스쳐갈 인연일까
필연일까를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48》시월의 마지막 날

정연화

오늘은 늘 그래왔듯이
그냥 보내고 싶지 않은
어떤 의미라도 두고 싶은 날

사랑은 물론이고
이별마저도 낭만일것 같은 날

시월의 마지막날에

동성이든
이성이든
이런 카톡 편지를
받고 싶고 보내고 싶다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네?
저녁에 차 한 잔 하자''

《49》어떤 그리움

정연화

조용히
작은 몸짓으로

살며시 가슴속에
스며든
따뜻한 마음 하나

설레임으로
기다림으로

하루
이틀
사흘……

온 가슴 채우고도
눈빛인사 너무 멀어

또다시
가슴 언저리
어떤 그리움만 쌓입니다

《50》언제부터 였을까

정연화

언제였을까?
너를 처음 보았던 그 날이……

언제부터 였을까?

너를 내 가슴안에
넣어놓고 사모한 날이……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마음만 한없이 설레었을 뿐

그동안 놓쳤던
바람과 하늘과 구름과
들꽃 그리고 너

오늘 또렷이 바라보았다
다른 세상을 보는 듯 하다

너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나

《51》연민

정연화

애틋해요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무어라 딱히
말할순 없지만
스며드는 생각들이 그래요

커피 한잔의 시간도
일상속의 바쁜 시간도

창 밖의 나뭇잎 떨리는
그 사소한 모습 하나까지도……

《52》연인이 아니어도

정연화

이 가을에
연인처럼 걸어봐요
코스모스 꽃길을……

한적한 시골길
하늘하늘 코스모스가
그대를 보고
또 나를 보고
가만히 웃어 줄것만 같아요

둘이 손 꼭 잡고 걷는 꽃길
가끔씩 마주보고
수줍은 미소 짓는다면

어느듯 연인이 된듯
가슴이 떨려 올것만 같습니다

우리 연인처럼 걸어 봐요
연인이 아니어도 이 가을에……

《53》외로운 여자

정연화

빗소리에 흐느끼는 바다

겨울바다는
외로움에
서러움에
부서지는 파도에 아프다

그 바다만큼
고독에
몸부림치는 외로운 영혼

겨울 찬비 내리는 밤이
두렵고 무서워
분재처럼 앉았다고 한다

얼마나 아팠으면
분재처럼 앉았다고 할까

찡 해 오는 콧등 시려와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녀의 깊은 마음속을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지

외로운 사람아

우도의 여인아

밤새도록 내리는
빗소리에
그대 생각으로
나 또한 하얀밤을 새웠다

《54》용기 내 볼게요

정연화

화사한 느낌이 오는데
용기가 없어 고백 못해요

세월은 가는데
가만있을 수만은 없는데
마음 퇴색될까 두려운데
용기가 없어서 고백 못해요

그러나 용기 내 볼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상쾌한 바람이
기분까지 상쾌하게 해 주는 날

바람 편에 마음 띄워 보낼게요

《55》우리는 아름다운 중년

정연화

계절이 얼마만큼 스쳐가고
강산은 또 몇번이나 바뀌었을까요?

세월은 그렇게도 바삐 흘러
수많은 사연을 등에 업고
우리들을 불혹을 지나 지천명
중년의 자리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이곳까지
참으로 정신없이
달려온것 같군요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연인을 만나 사랑했었고
결혼했었고
첫아이를 얻었을때의 기쁨등

기뻤던일
슬펐던일
가슴안에 빼곡히 들어있는
이 모두를 정녕 지울수가 없기에
눈감는 그날까지 간직할테지요

불같던 성질 죽었다고
자존심마저 죽은건 아닙니다
적당히 다스릴줄도 알고
포용할줄도 아는
잔잔한 가슴을 가진게지요

안하던 칭찬도
멋쩍은듯 가끔씩 하고
중년의 아줌마
중년의 아저씨
어느정도 나이살도 보기좋은걸요
적당히 여유있고 품위도 있습니다

아둥바둥 그렇게도 살았어요
아이와 남편이 내 전부인줄 알고
그들만을 위해 헌신한 세월이었지요

우리들 중년
친구와 이런저런 지난얘기
도란도란 나누며
오랜시간 함께해도 좋은
커피한잔의 여유로움도 있습니다

차 한잔 하자고
밥한끼 같이 먹자고
내가 먼저 카톡문자 보낼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오는 계절을
가는 계절을
눈으로 가슴으로
포근히 감싸 안을줄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중년입니다

《56》이제 그만 날 잊어요

정연화

꿈을 꾸었었나 봐요
이제 그만 날 지워요
이제 그만 날 떠나요
스쳐간 바람이었어요

한참을 걸어와서
왔던길 뒤돌아보니

환희로 물들었던 그 길은
안개 속 꿈길이었어요

들꽃이 피어 있고
새들이 노래하고
그대의 환영이 어렸고

하지만 꿈길이었어요
그대는 강건너
먼곳에 있는 신기루였어요

이제 그만 날 잊어요

《57》잊혀지지 않는 그대

정연화

보내고 그리워할 거면서
그리움에 힘겨워 할거면서
왜 이별을 해야만 했는지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한사람으로 이어집니다
한사람으로 엇갈립니다

잊지도 못할 거면서
서성거리는 마음이면서
왜 쉽게 이별의 말을 했을까

이별의 그림자가
아직 떠나지 않아
언제나 그립고 보고싶은
잊혀지지 않는 그대입니다

《58》잊혀진 여인

정연화

오늘 이렇듯 마음이
허허로운 걸 보니
아마도 그대가 나를
까맣게 잊은 것 같습니다

뜸하게 오던 문자마저
뚝 끊긴걸 보니
아무래도
그대가 날 가슴에서
영영 지운 것 같습니다

안색은 창백해지고
커피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흐르는 시간 속에 쓸쓸히
잊혀진 여인이 되어
창 밖만 멍하니 바라봅니다

《59》중년 여인 가을을 앓다

정연화

코발트빛 하늘을 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고
떨어지는 단풍잎을 보면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바람에 옷자락만 날려도
영혼에 구멍이 난듯
오스스 한기를 느끼게 되고

누군가 이름만 불러줘도
여인은 떨리는 가슴이 됩니다

깊게 드리워진 그리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가슴앓이

가을이면 앓는 병에
두눈가득
알수없는 슬픈 눈물 고이고

중년 여인의 가을은
또 그렇게
가슴속 회오리 되어 깊어만 갑니다

《60》중년의 가슴

정연화

만추의 계절에 서서
산과들의 나뭇잎이
붉게 타듯
중년의 가슴도 타 오릅니다

하고싶은 말이 있어도
혹여 어떻게 들릴까
가슴에 상처는 아닐까
괜스레 걱정부터 앞서고

내 생각보다는 상대의
입장부터 챙기며 살아가는 중년

마음속에 있는 말 숨기고
다 말하지 못해
중년에 앓는병도 찾아왔지만
바쁘게 산것이 약이었지요

중년의 세월을 살지만
사랑앞에서는
아직도 가슴이 뜨겁고

중년에 찾아온 사랑
한사람을 마음속에 품고서도
사랑앞에 무모하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삭일줄 아는 의지도 있습니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꽃잎과 잎새를 보며
뜻모를 눈물로
흔들리는 가슴이 되기도 하고

사랑해도 될까요? 라는 빈말에도
소년 소녀처럼 가슴이 뜁니다

평온한 가정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살아가는 중년

연로하신 부모님의 자식으로
남편과 아내의 배우자로
자녀의 부모로

나이 들어 가면서
애정을 보내야만 하는
형제간의 정도

이 모두를 아우르며
살아야 하는 중년이기에
어깨는 늘 무겁고

그 무게만큼 중년의 가슴에
고독하나 스며드는 늦가을입니다

그런 중년을 응원하며
우리들 중년의 탁자위에
마음으로
따뜻한 커피 한 잔 놓고 갑니다

《61》중년의 가슴에 부는 바람

정연화

강바람도 아니고 산바람도 아닌
무어라 어떻게 말하지 못하는
바람 하나가 스치듯 지나갑니다

그 바람은 형체가 없으니
눈으로 볼 수도
인사를 할 수도
손으로 잡을 수도 없습니다

다만 스치는 순간
얼마나 큰 울림이었을까를
조용히 생각해 보게됩니다

이리도 가슴이 떨리는걸 보면
아마도 그 바람
여운이 너무나도 컸나봅니다

중년의 가슴에 불어온 바람이
진정 몹쓸 그리움이 아니기를

가슴 시리도록 아픈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멍에가 아니기를

스치듯 훌쩍 떠나갔지만
중년의 가슴은
그 바람 아련히 기억하고 있음을……

《62》중년의 로맨스

정연화

중년이라는 팍팍한 삶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오는 동안에
지금껏 가슴속 허허로움
하나 없이 살아온 사람 있을까?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첫사랑 같은 설레임
아니, 그 옛날 첫사랑보다
더 떨려오는 가슴속 울림
중년의 로맨스

봄 햇살 같은 따뜻함을……
그 애틋한 눈빛을……
마음으로 곱게 받아놓고서도
가슴속의 연정으로
쉽게 화답할 수 없음은

평생을 함께 하자 맹세한
인연과의 숙명이기에
의리이기에
깨트림을 두려워해
마음 닫고
절제하며 살아가나 봅니다

중년에 찾아온 고운 인연
모른 척 놓치고 싶지 않지만
인연의 한계는
여기까지라 생각하고
내려놓기 힘든 마음자락
바람에 실어 날려보냅니다

갈등했던 수많은 시간들로
뒤척이며 잠 못 이루었어도
그동안의 시간을 행복이라 여기며
그리움이라는 꼬리표만
하나 더 추가하려 합니다
그리워하는 것이 죄만 아니라면...

찬바람 불어도 봄은 오겠지요
사랑 없어도 봄은 오겠지요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가 피고
벚꽃또한 흐드러지게 피겠지요

아……바람이여!

제발 이젠
두 번 다시 날 흔들지 마라
입술 꼭 깨물고 맹세하나니
조용히 살며시 지나가다오

봄바람 살랑이며 불어오는 날

스치는 그 봄바람이 또다시
잔잔한 가슴에 이는 폭풍이 아니기를……

《63》중년의 신비한 멋스러움

정연화

꽃이 예쁘게 피었는데
그 꽃을 보면서
그냥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아름답다는 말 한마디 건넬줄 알며

스치는 바람 한줄기에도
계절의 향기를
맡을줄 아는 사람

깊어가는 가을날
보도 블럭 위의
노란 은행잎을 바라보며

설레임으로 센티해져
무작정 그 길을
걸어보고 싶어하는 사람

가정을 아낄줄 알고 사랑하며
그 울타리 안에서
편안해 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연인같은 친구의 만남에
미세한 가슴의
떨림도 보일줄 아는 사람

이 모두를 아우르는
신비로운 중년의 멋스러움

그 신비한 멋스러움에
살며시 동행하고픈
또 한 사람의 중년입니다

《64》중년이 되고 보니

정연화

사람이 그립다
따뜻함이 그립다
외로움이 깊어진다
왠지 가을이 더 가을스럽다

지나는 길
길섶의 이슬 머금은
파르르 꽃잎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아침 인사를 한다
들꽃은 중년과 참 많이 닮았다

어디론가 혼자 훌쩍
떠나고는 싶지만
청춘 같은 용기가 이젠 없다
걸핏하면 눈물이 난다

방황하는 길 고양이를
손짓하여 불러 앉히니
금새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중년이 되고보니
이해 못할 일도 없다
용서 못할 일도 없다
그 옛날의 상처도
밤을 새며 앓았던 가슴앓이도……

세월은 흐른다
너무나 빠르게 흐른다

중년이 되고 보니
한 잔의 커피에서도
은은한 가을꽃 향기가 난다
중년의 연륜만큼 향기롭다

조용히 창밖을 응시한다
가을이
잔잔한 가슴안에 들어와
한줄기 회오리 파문을 일으킨다

살며시 눈을 감는다

《65》중년이라는 이름의 선물

정연화

애써 담으려 하지 않아요
애써 꾸미려고도 않지요
하지만 저만치 하늘가에
눈길 주고 있으면
일곱빛깔의 무지개가 뜹니다

중년은
마시는 커피한잔에도
영혼의 향기가 스며들고
입술을 타고 흐르는 언어에도
듣기편한 잔잔함이 묻어납니다

붉게 핀 목백일홍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풍경에 심신이 물드는것 같아요

사람이 곁에 있습니다
자연 또한 숨을 쉬지요

조경수에 대롱대롱 매달린
앙증맞은 수박을 보고
예쁘다고 귀엽다고
소녀처럼 호들갑스럽게
사람들을 불러 모을줄도 압니다

''이리 와서 수박 좀 보세요''
자연의 신기함에
한참을 허리굽혀
수박을 보고 있는 중년

중년이라는 이름이 주는
세월의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66》지워지지 않는 이름

정연화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 또렷해 지는 이름
그 이름 석자에
지독한 가슴앓이 그리움만……

추억속을 맴도는 그 이름
바람결에 날려 보내고
잊자 잊어버리자
모질게 마음 먹어도
잊혀지지 않는 그 이름

가을비 내리는 밤
창가에 서서
그 이름 빗방울에 새겨 봅니다

가을이 데리고 온
바람같은 또 하나의 그리움

《67》참 서글픈 일

정연화

누군가로부터
잊혀진다는 것

누군가를
하얗게 잊어 간다는 것

참 서글픈 일

삶이라는 여정에서

만남과 헤어짐이
한갓되이 스치는 바람같네

《68》커피 한 잔의 여유

정연화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오는
가을날 오후
커피 한 잔을 마주 합니다

창밖의 익어 가는 풍경
가을빛을 바라보며
은은한 커피 향에 취해
잔잔한 그리움을 마십니다

혼자서 마시는 커피

계절의 상념도
시간 속의 시련도
내 안의 아픔도
모두 내려놓는 시간

오직 나만의 시간

커피 한 잔의 여유로운 시간

《69》하얀 달빛

정연화

너를 보는데
왜 내 마음이 쿵 내려앉지?
모를 일이다

볼도 시리고
손도 시리고
발도 시린데

너를 이렇게 보고 있는 이유

모를 일이다
알 수가 없다

그냥 이라면 믿어주겠니?

《70》한 눈 팔고 다녔다

정연화

그 누가
그 무엇이
빨리 오라 재촉하든 말든

길을 가다가 들꽃을 만나면
물오른 나뭇가지에
여리디 여린 잎눈이 피면

눈맞추고 가느라
느릿 느릿 한 눈 팔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일년이 훌쩍 가버렸네

그래도 올 한 해 잘 살았다

《71》한사람 그대

정연화

어느 햇살 따사로운 봄날
풀섶의 들꽃이
살며시 미소지을 때
그대가 내 곁에 왔습니다

산자락의 진달래가
온 마음을
연분홍으로 물들여 갈 즈음
그대가 나를 보고 웃었습니다

봄비가 꽃잎을 적시며
보슬보슬
운치 있게 내리던 어느 날
그대의 심장 소리를 들었습니다

연두 빛으로 물든
잎새의 몸짓이
너무도 눈부셔
두눈 꼭 감고 앉아 있을 때
그대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렇게 살포시 온 한 사람 그대
그대가 지금은
가을빛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72》한해를 보내며

정연화

모두들 열심히 사셨습니다
최선을 다 하셨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두루두루 대인관계에 있어서

후회되는 일도 있겠지요
서운한 일도 있겠지요

좀더 잘 하고 살걸
조금만 참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겠지요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말 한마디에
웃고 울고
화내고 상처받고
또 위로하고 위로받고
그러면서 사는게 인생입니다

올 한해 수고하셨습니다
이루지 못한 소망 있으시다면
새해에는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새해에는
우리 더욱 예쁘게 잘 살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73》한해의 끝자락에 서서

정연화

꽃물결 이루던 봄은
봄바람 불어와
소녀처럼 설레었고

무더웠던 여름은
청춘같은
녹색의 싱그러움이 좋았다

단풍산 붉으니
그리움에
가슴까지 타 올랐고

이제 차가운 겨울은
하얗게 여백을 남기며
마음 비우라 재촉한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지난 일년을 뒤돌아보니
기쁜 일 슬픈 일
참 사연 많은 날들이었다

《74》할말이 남았는데

정연화

들어나 주지
듣고나 가지
홀연히 가셨나요

이런게 아닌데
이건 아닌데
이럴 순 없습니다

그렇게 바삐
꼭 떠나야 했나요
남은 사람 힘들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75》홍매화

정연화

사무치는 그리움
지울길이 없는데

홍매화는
저 혼자
어여삐도 피었어라

가슴속 그리움은
끝이 없는데

저 홀로 봄인듯

붉은 꽃잎
파르르
봄바람을 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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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 모음>

★아침  / 정현종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 맑은 아침  /정세훈

이 아침
내 오줌빛이
왜 이토록
푸르고
맑으냐

지난밤 그리운 사람 만나서
그 사람 술잔에 술 한 잔 쳐주었네

 ★ 아침 / 천상병

아침은 매우 기분 좋다
오늘은 시작되고
출발은 이제부터다

세수를 하고 나면
내 할 일을 시작하고
나는 책을 더듬는다

오늘은 복이 있을지어다
좋은 하늘에서
즐거운 소식이 있기를

★ 오늘 아침에  / 이봉직

오늘 아침 골목에서
제일 처음 눈 맞춘 게 꽃이었으니
내 마음은 지금 꽃이 되어 있겠다.

오늘 아침 처음 들은 게
새가 불러 주는 노랫소리였으니
내 마음은 지금 새가 되어 있겠다.

그리고 숲길을 걸어 나오며
나뭇가지 흔들리는 걸 보았으니
내 마음은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있겠다.

가지마다 예쁜 꽃이 피고
새가 날아와 앉아 노래 부르는
그런 나무가 되어 있겠다.
 

★  아침  / 윤동주

휙,휙,휙
쇠꼬리가 부드러운 채찍질로
어둠을 쫓아,
캄,캄, 어둠이 깊다깊다 밝으오.

이제 이 동리의 아침이
풀살 오른 소엉덩이처럼 푸르오.

이 동리 콩죽 먹은 사람들이
땀물을 뿌려 이 여름을 길렀소.

잎,잎,풀잎마다 땀방울이 맺혔소.

구김살 없는 이 아침을
심호흡하오, 또 하오 


 ★ 아침인사  /  조희선

그만 일어나시게
아침이 오셨네.

그대 고단한 여행길 지친 것은 내 아네만
그래도 오늘 하룻길 또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루만 더
하루만 더

그대 여독을 핑계삼아 쉬는 건 좋네만
그러다 아예
추억과 회한에 매여
다시 길 떠나지 못할까 걱정되네.

그만 일어나시게
그대 다녀온 그곳보다 더 좋은 풍경과 인연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네.

이제 그만 툭툭 털고 일어나시게
갈 길이 아직 더 남았으니… 

★  아침을 여는 소리  / 유명숙

주인님
어서 일어나세요
단잠 깨우는
휴대전화 알람 소리
부스스 일어나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
잔뜩 찌푸린 얼굴
애써 외면하고
그 낯선 얼굴에
최면을 건다

일그러진 표정에
다림질한다
고르게 다듬어진
밝은 표정
그래
그게 바로 너야

기다랗게 드리워진
커튼 젖히고
창문을 활짝 연다
맑은 햇살
상큼한 바람
아!
상쾌한 아침
활기찬
하루의 시작이다

★ 아침 햇살   /  박인걸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맑은 아침 햇살이
집무실 가득하게
평온으로 채우고 있다.

인사말도 없이
자신의 의지로 들어와
마음 가득 부어 주는
흘러넘치는 평화

영혼 깊은 곳에서
맑은 가락을 자아나고
따스한 손길로
본성적 선(善)을 일깨운다.

어둠을 몰아내고
희망으로 채워주는
아침 햇살은 과연
누가 보낸 선물일까 


★  아침이 즐거운 이유  /  하영순

아침 햇살
밤새 내린 이슬을 간지를 때
이슬은 또르르 연잎에 구릅니다.

내 사랑 눈빛
몸으로 받으며
하늘은 푸르르 날개를 폅니다.

사랑이 있어
오늘이 즐겁고
사랑을 줄 수 있어 아침이 즐겁습니다.
우유 빛 해맑은 웃음

그 웃음이
닫힌 문을 열어
사랑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주고도  
주고도
주어도주어도  
모자라는 샘물 같은 내 사랑

아침이 즐거운 이유
그녀 때문입니다

 ★ 아침  /  신혜림

새벽이
하얀 모습으로 문 두드리면
햇살의 입맞춤으로
잠에서 깨어난 대지는
부산스럽기만 하다

나들이를 꿈꾸며
이슬로 세수하는 꽃들
밤을 새운 개울물
지치지도 않는다

배부른 바람
안개를 거둬들이며
눈부시게
하루의 문을 연다

 ★ 아침  /  이해인

사랑하는 친구에게 처음 받은
시집의 첫 장을 열듯
오늘도 아침을 엽니다.

나에겐 오늘이 새날이듯
당신도 언제나 새사람이고
당신을 느끼는 내 마음도
언제나 새마음입니다

처음으로 당신을 만났던 날의
설레임으로
나의 하루는 눈을 뜨고

나는 당신을 향해
출렁이는 안타까운 강입니다.
 
★   새날 아침에  /  문태준

새날이 왔습니다.
아침 햇살을 따사롭게 입습니다.
햇살은 사랑의 음악처럼 부드럽습니다.
아침은 늘 긍정적입니다.
아침은 고개를 잘 끄덕이며 수긍하는,
배려심 많은 사람을 닮았습니다.

어제의 우울과 슬픔은
구름처럼 지나가버렸습니다.
어제의 곤란을 기억해내야 할 의무도,
필요도 없습니다.
간단하게 어제의 그것을
이 아침에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면 됩니다.

우리에겐 새로운 하루가 앞에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우리는 다시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
 
★ 아침 언어  /  이기철

저렇게 빨간 말을 토하려고
꽃들은 얼마나 지난밤을 참고 지냈을까
뿌리들은 또 얼마나 이파리들을 재촉했을까
그 빛깔에 닿기만 해도 얼굴이 빨갛게 물드는
저 뜨거운 꽃들의 언어

하루는 언제나 어린 아침을 데리고 온다
그 곁에서 풀잎이 깨어나고
밤은 별의 잠옷을 벗는다

아침만큼 자신만만한 얼굴은 없다
모든 신생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초록이 몸 속으로 스며드는 아침 곁에서
사람을 기다려 보면 즐거우리라

내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꽃의 언어를 주고 싶지만
그러나 꽃의 언어는 번역되지 않는다
나무에서 길어낸 그 말은
나무처럼 신선할 것이다
초록에서 길어낸 그 말은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모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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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4 경산 반곡지




































예쁜 마음 ♧

귀에 들린다고 생각에 담지 말고
눈에 보인다고 마음에 담지 마라.
담아서 상처가 되는 것은 흘려버리고
담아서 더러워지는 것은 쳐다보지 마라.
좋은 것만 마음에 가져올 수 없지만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은 지워버려라.
귀에 거슬린다고 귀를 막아버리지 말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눈을 감지 마라.
귀를 열어 놓아야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눈을 뜨고 있어야 예쁜 것들을
마음에 가져올 수 있으리라.
세상에는 슬픈 일보다 기쁜 일이
더 많기에 웃으면서 사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귀 기울이며 들어주는 마음……
그 마음이 활짝 열려있는 사람이 되어보세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보이는
대화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의사소통에 탁월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많은 사람입니다.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며
그가 자신감을 갖도록 분위기를 이끌어줍니다.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듣기에 익숙해 보이죠.
사람들은 그래서 그를 좋아합니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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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사람이 행복합니다 ★

누가 나에게 섭섭하게 해도 그 동안 나에게
그가 베풀어주었던 고마움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나의 행동이 다른 이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가를 미리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남이 잘 사는 것을 배아파하지 않고 사촌이 땅을 사도
축하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의 직위가 낮아도 인격까지 낮은 것은 아니므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처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비가 오면 만물이 자라나서 좋고 날이 개면 쾌청해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비가 새도 바람을 막을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느끼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좋았던 추억을 되살리고
앞날을 희망차게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받을 것은 잊어버리고
줄 것을 잊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은 돈으로는 살수가 없는 것이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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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 대한 시 모음 71편

《1》어떤 친구

강대실

백년가약이 무슨 애들 소꿉장난인가?
어떤 친구가 차량 실족으로
병상 신세 지다 목발로 나와, 결국엔
일터에서 늙은 도짓소같이 되더니
생활 전선에 나섰던 부인
알바에 보험에 방물장사로 돌다
사방에서 떼이어 빚만 쳐지고
친구 역시, 산 입에
거미줄 치게 할 수 없어 투자했더니
덜컥 덫에 걸려 날리고 빚에 치여
하나는 몇 십 년을 통째로 쥐어 준 봉투
어디다 숨겼냐 하고
한쪽은 여우한테 홀려 쪽박 찼다고
서로 너니 내니 하다
얼기설기 마련한 아파트며
묻어 둔 땅 몇 평까지 홀랑 넘겨주고
끝내는 도장 찍고 돌아섰다 하네
금이야 옥이야 하다가도
한 번 토라져 등 돌리면
부부간은 깨어진 그릇 되는가?
질그릇 깨고 놋그릇 장만 못할진대. 

《2》못난 친구

강민경

커피에 꿀을 넣으려다가
꿀단지 앞에서 엎어져 죽은
바퀴벌레를 보는데
사랑하는 사람 지척에 두고 그리워하다
더는 그리워하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간 친구가 생각난다

누군가는 전생에 인연이라 하였고,
누군가는 전생에 원수라 하였지만
그래, 그게 그렇지 않아,
긍정하고 부정하는 사이
이웃집 오빠였거나, 누이동생 같았을
지척에 제 사랑이 있는데
건너지 못할 강 앞에서 애만 태우다
요단강 건넜다는 그 소문처럼

바퀴벌레의 죽음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불길에 뛰어든
그 친구의 생애 같아
평소에
바퀴벌레를 끔찍이 싫어하는 나에게
때아닌 측은지심이라니!

하찮은 바퀴벌레의 죽음을 보면서
사랑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하늘나라를 선택한 그 친구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3》술에게 친구에게

강효수

술에 취한 건지
친구에게 취한 건지
친구가 술에 취한 건지
술이 친구에게 취한 건지

술이 술에 취한 건지
친구가 친구에 취한 건지
우리가 술에 취한 건지
술이 우리에게 취한 건지

술이여 내 친구여
그대 내게 오려거든
나비의 애벌레 대지의
봄 아드레날린으로 오라

달과 별 깨지던 밤 불면의
모르핀으로 오라
입술과 혀로 피는
심장의 꽃으로 오라
엔도르핀으로 오라

죽이려 하는 영혼과
죽을 수 없는 영혼
불멸의 촛불로 오라
엑스터시로 오라

영혼의 불꽃 만남으로 오라
얼어붙은 자아의 해방구로 오라
갈 수 없는 금단 구역의
출입증으로 오라
시체는 두고 오라 

《4》친구에게

곽정숙

깔끔한 너에겐
밝은 옷이 잘 어울릴 거야

수줍은 네 미소
영원히 지녔으면 좋을 거야

즐거울 때 같이 기뻐해 주고
못할 고민 있을 때 묵묵히 들어주고
바다가 보고 싶을 때
말없이 같이 가줄 수 있는
허물없고 마음이 넓은 너이길 바랠 거야

그냥 네가 보고 싶을 때
전화해도 귀찮아하지 않고
재잘대는 수다 다 들어주는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는
그런 친구였으면 한다.

《5》설화되어 가버린 산친구

권경업

밤새 눈 쌓인 자작나무 숲에
내려진 달빛이 모여
아침을 일깨우고
청봉을 넘던
동해의 푸른 바람이
그대 서있는 자리에서 머무노라

꿈길처럼 이어지는
공룡능선에
설화되어 흩날리다
가버린 산선배
오늘은 얼마나 귀가 시릴까

지천으로 피는 참꽃이
마등령 쪽에서 불타오를 때
우리는 선배가 남긴
산 노래를 백두대간에서 부르니

그대 영혼은
지금도 어느 설악의 골짜기를

《6》친구의 넋두리

권오범

못 배운 한 대물림 싫어
땅 팔고 소 팔어 먹물 멕여놨더니
써먹을 디 한군데 읍써 구들직장이니
복장 터질 수밖에

선보먼 퇴짜 맞어 장가는커녕
같이 늙어 가는 꼬락서니
집터가 삼살 방인지
조상 묘에 수맥이 흐르나

남의 자식들은 못 배웠어도 돈 잘 벌고
즈덜끼리 눈 맞어 잘두 살건만
허우대는 호랭이도 잡아먹게 생긴 것이
세상 겁나 입때껏 운전면허두 읍당게

허구한 날 컴퓨터 속 귀신과
고스톱만 치고 자빠졌으니, 위티게 헌댜
저 빌어먹을 꼴 보기 전에
내가 일찌감치 숟가락 놨어야 허넌디

《7》친구야

권옥희

우리의 떠남은
만남보다 먼저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잔뜩 웅크린 고향 하늘을
품에 안고 가는 길은
비 오기 전의 정적처럼 늘 가슴이 먹먹했다

만만한 것 하나 없는 세상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살아도
오래된 그리움을 뭉텅뭉텅 잘라
베개 밑으로 숨기며
옹이처럼 단단해져 가는 그 먼 날들을
나는 욱신거리는 통증으로 안고 살았다

또 보자는 희망이 무거운 어깨에 얹어지고
잘 가라, 그래 잘 가라
애잔한 눈빛으로 발목을 잡아끄는
너의 안부를 못 잊은 듯 삼키면

내 가슴 여러 갈래에 너를 보낸 길이 나고
너무 많은 추억들이 바퀴자국 몇 개로
너를 따라가는 동안
나는 입이 얼얼하도록
친구야, 친구야! 부르고 있었다.

《8》친구에게

  권태원

오늘밤
별이 되어 뜨는 나의 사랑을
친구여, 너는 알고 있느냐

살아서도 죽어 가는
하느님의 빈 자리를
친구여, 너는 보고 있느냐

당신 앞에서 한없이 부서지고 있는
나의 생애를
친구여, 너는 느끼고 있느냐

《9》친구

김길남

어젯밤 꿈결에
먼저 간 친구를 만났다
아니 소문에 네가 갔다고 하던데 하니
친구 왈 지금 네 옆에 있는데 내가 어딜 가니

살아 생전 처럼
온 갖 얘기들을 얼마나 했는지
오랫만의 해후를 위해
술집에를 들렀다

한 참 너수레를 떨다
깨었더니 꿈이었다
아니 친구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날이 새면 전화-ㄹ 해 봐야 되는지 고민이다

생전 나와 같이 둘이서 산엘 가면
서로 앞 서거니 뒷 서거니 암벽도 빙벽도 같이 오르고
인생사 서로 토론하면서
식구들끼리도 오며 가며 그랬는데

《10》좋은 친구

김내식

먼 바다에서 육지로
뒷 물결에 밀려오는 파도
속절없는 겨울바람
밀어 대던 날

늘 푸른 소나무 숲 길
앞뒤로 걸어 오르며
떨어진 낙엽 밟고
흘러간 추억을 되살린다

짧아지는 햇볕 아래
과거를 다 아는 바람 맞으며
넓고 부드러운 바다를 끼고
한가로운 구름부부 함께 걷는다

멀리 밤으로 건너가는 다리 위
걸려 있는 낙조를 보며
부딪히는 술잔 속으로
황혼이 가라앉는다

《11》그 친구

김덕길

접속만 하면 방긋 웃음 보내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사이트에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항상
웃으면서 안부를 묻던 친구이었는데

장미꽃 곱게 피고
아카시아 향이 나풀거리는 오월이 되었을 때
꽃잎에 숨었는지
향기에 취해 잠 들었는지.
꼭 오월이 되었을 때
그 친구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
바다가 보고싶다 말했습니다.
섬에 가고 싶다 말했습니다.
어느 섬인가 물었습니다.
그 친구 빙그레 웃음 내 보이며
그리운 섬이라 말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잘 해준 것도 없었는데
바다 보여주겠단 약속도 못했는데
그리운 섬에 가자는 말도 못했는데
그 친구 그렇게 떠났습니다.

성남 거리를 정처 없이 걷다
스치듯 한번쯤 그 친구 만났으면
이곳 저곳 사이트 항해하다
우연이라도 좋으니 한번만 보았으면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나버린 친구가
오늘은
자꾸 눈에 밟힙니다.
해 밝고 하늘 청아할 때 밟히지 않던
그 친구
우수에 찬 모습으로 구름 일렁이는
이 우중충한 날에는
추적 추적 비가 되어 내릴는지
자꾸만
내 눈가에 밟히고 있습니다.

《12》소식 마른 친구에게

김문숙

새벽 창으로 내어다 보니
큰 밤비 퍼부어
길 흥건 젖었구료

소식 마른 친구여
그대는 괞찮으뇨

그대 잠든 이 하룻 밤 사이
흠뻑 젖은 저 많은 사연
뉘, 다
읽어 내리까 만

나도 어서 잠들어
꿈으로 부치리다


《13》친구들이 그리운 날

김병훈

친구들이 그리운 날이면
소주한잔도 그리워집니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는
오늘 소주한잔 하자는
갑작스런 문자 메시지로
사랑하는 서로의 마음을
부끄러워 늘 숨겨 두었던
나의 소중한 친구들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서
늦은 밤까지 술잔을 들면
일상의 찌든 때로
메마르고 아팠던
사나이들의 뜨거운 가슴도
어느덧 술에 흠뻑 취해
희망으로 빛나는 별이 되어
서로를 다정하게 비추어주며
각자의 집을 향해 떠나지만
빈 술잔마다 남겨진 것은
나와 친구들의 깊고 진한
우정의 향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주한잔 그리운 날이면
보고픈 친구들에게
소주한잔 마시자고
문자 메시지를 보냅니다

《14》친구와 술

김병훈

내 휴대전화 단축번호
4번, 5번, 6번에
저장되어 있는 친구들
자칭 공인애주가 트리오와
나는 최근에 자주 술을 마셨다

성난 파도처럼 보이는
친구 A와 어제 만나서
나는 바다가 되어 술을 마셨다
바다처럼 친구 A의 괴로움을
조용히 들어주다가

검은 먹구름처럼 보이는
친구 B와 오늘 만나서
나는 하늘이 되어 술을 마셨다
하늘처럼 친구 B의 괴로움을
조용히 들어주다가

내일은 주인 잃은 낙타처럼 보이는
친구 C와 술 약속이 또 있는데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과연 나는 친구 C를 만나면
사막이 되어 술을 마실 수 있을까?

《15》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김소월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 내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습니까!

오늘은 또다시, 당신의 가슴속, 속모를 곳을
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 그려.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心事에 쓰라린 가슴은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16》좋은 친구

김시천

가까이 있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대가 먼 산처럼 있어도
나는 그대가 보이고
그대가 보이지 않는 날에도
그대 더욱 깊은 강물로 내 가슴을 흘러가나니

마음 비우면
번잡할 것 하나 없는
무주공산
그대가 없어도 내가 있고
내가 없어도 그대가 있으니

가까이 있지 않아서
굳이 서운할 일이 무어랴

《17》친구

김안로

어둠을 보내고 다가와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
내 이마 위에 선


네 나중은 언제나
어둠 속에서 나온 빛이었으나
내 시작은
또다시 무거운 눈을 떴지

내 손을 잡은 빛이여

《18》친구에게

김재진

어느 날 네가 메마른 들꽃으로 피어
흔들리고 있다면
소리 없이 구르는 개울 되어
네 곁에 흐르리라.

저물 녘 들판에 혼자 서서 네가
말없이 어둠을 맞이하고 있다면
작지만 꺼지지 않는 모닥불 되어
네 곁에 타오르리라.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네가
누군가를 위해 울고 있다면
손수건 되어 네 눈물 닦으리라.

어느 날 갑자기
가까운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 내게 온다면
가만히 네 손 당겨 내 앞에 두고
네가 짓는 미소로 위로하리라.

《19》꽃 보다 친구

김종석

우리가 삼십 년 훌쩍 지난 날 만났었지
꽃씨 뿌리고 누군가 만들어 놨던
사이사이 꽃 길 걸으며 살아 왔는데

술, 마법의 목마름 채우고
그날 밤새 새로워진 길들의 향방
옛길을 더듬기 위하여 밤새 울부짖고

우리의 목소리는 도시 울리고
그 누구도 방해 하는 이 없어
도시도 잃어버린 길을 통곡하듯
어느 여름날 공원정자에서 밤을 세웠지

낡은 정자에 그 마법의 액체들과
삶은 돼지머리 반 조각과 양파와
매운 풋고추 된장 늙어버린 주름진
손길이 챙겨주는 대로 두 보따리

밤새 낡은 공원 정자는 지나버린
유행가의 울부짖음이 새벽 고요하게
바람불어 오며

지나간 세월 한탄과 파안대소가
밤새도록 도시는 잠 못 이루고
꽃 같은 얘기를 들어야 했었네.

《20》그리운 친구

김종익

초록빛 시간여행은
그리운 눈물이 된다

따뜻한 고구마로
허기진 슬픔을
달래주던 다정했던 란이

억새풀로 노래하는
산들바람에 네 소식 물어도
고개만 살래살래 젓는다

냇물에 떠내려온 보름달에
소식 전해달라고
사연 적어보낸다

좋아한다고
수줍어 말못하고
가슴앓이만 했었다고

《21》내 친구는 다시

김준철

내 친구는 배를 움켜쥐고
낯익은 하늘에 별이 된다

별은,
별은 다시 신이고 싶다

더이상 무엇도 될 수 없는 신들의 외출에
사람들의 발길은 자신들의 동굴로 향하고
잊혀진 신들은 다시 태어나고 싶어 하지만
개들만이 신경질적으로 하늘을 향해 짖는다

개처럼
개처럼 시간은 흘러
발정난 암캐의 울음소리에
밤은 새벽을 유산하고
그렇게 나른한 수음의 꿈으로 잠들려 한다

잠……
새벽녘 창틀에 끼어있는
햇살을 안고 잠든 친구가
아직은 깨어나지 않는다

친구는다시
사랑되지 않는 밤을 향해 돌아눕는다

《22》친구의 시집

김향숙

친구에게서 빌려 온 시집을 펼치니
마른 꽃잎 몇 장이 초르르 떨어진다

나보다 먼저 시를 만난 붉은 장미꽃잎
詩語의 가슴 어디 쯤에 젖은 몸을 부비어
애가 타고 목이 타고 입술 말라 갔을까

친구여
시보다 고운 그대 삶의 갈피마다
그 마음 꽃잎보다 향기로워라

《23》좋은 친구

나명옥

좋은 친구는
슬픈 일에 함께 슬퍼하고
울어주는 친구보다

친구의 기쁜 일에 질투나 시기함이 없이
함께 기뻐하고
웃으며 축하해줄 수 있는
마음이 넉넉한 참다운 친구입니다

좋은 친구는
같이 어울리는 동안
혹 친구의 허물이 보여도 말하기 보다

그 친구만이 가진 인간적인 매력으로 받아들이며
인정해주고 감싸주며
오히려 그 허물마저
돋보이도록 해줄 수 있는 친구입니다

좋은 친구는
서로의 간격이 없는
이미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무언의 동의를 얻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관계이기에
친구의 장단점마저
있는 그대로 아끼고 위하며
좋아해줄 수 있는
그 또한 자신의 한 그림자로 생각하는
두 사람이 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친구입니다

《24》친구

류정숙

꽃가루 날리듯
오간 사연들
가슴에
화문으로
조각되고

노크 없이
찾아드는
향 묻은 꽃잎

기실 내겐
추억을 가두어 둘
빗장이 풀린지 오래다

무지개로
다리 놓은
가슴과 가슴 사이
크게 불러보는 날엔
환한 꽃잎이 핀다

《25》친구에게

박두순

친구야
너는 나에게 별이다.
하늘 마을 산자락에
망초꽃처럼 흐드러지게 핀 별들
그 사이의 한 송이 별이다.

눈을 감으면
어둠의 둘레에서 돋아나는
별자리 되어
내 마음 하늘 환히 밝히는

기쁠 때도 별이다.
슬플 때도 별이다.

친구야
네가 사랑스러울 땐
사랑스런 만큼 별이 돋고
네가 미울 땐
미운 만큼 별이 돋았다.

친구야
숨길수록 빛을 내는 너는
어둔 밤에 별로 떠
내가 밝아진다.

《26》이런 친구가 그리워진다

박영숙

꽃이 피는
외로운
봄날에는

격식과 예의를 떠나서
아무 때고 찾아가도
들꽃같이 순수한 미소로
두 팔 벌려 반기는
언니같이 다정한
이런 친구가 그리워진다

비가 오는
슬픈 날에 찾아가면
무작정
흐르는 내 눈물 이해하며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내 슬픔 잠재울 수 있는
포근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엄마 같은
이런 친구가 그리워진다

거짓과
숫자만이 넘실대는
인파 속을 헤쳐나갈 때면
물같이 투명한 충고와
칼날 같은 지혜로
바른길로 이끌 수 있는
선생님 같이 자상한
이런 친구가 그리워진다

회색 빛 좌절이
거센 바람을 몰고 와서
넝마처럼 방황할 때가 내게 온다면
여명의 빛같이
대지에 생기를 불어넣는 봄비같이
언제나
희망과 사랑의 손 내미는
수도자 같은
이런 친구가 그리워진다

《27》그리운 친구들

박정순

구멍 난 검정고무신을 움켜쥔 채
운동장을 종횡무진으로
치닫던 코 흘리게 친구

여학생 고무줄놀이만 보면
끊고 다니던 개구쟁이 친구들
지금은 어데서 뭘 할까

빛 바랜 플라타너스 낙엽사이로
조각난 달빛이 얼굴을 여 밀면
가버린 추억들의 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이제라도 다시 그 순간들
소쿠리로 주섬주섬 담아보려 해도
술술 빠져버린 시간들

잊혀진 추억들 한 움큼이라도 있으면
다시는 붙잡고 놓지 않으련만
어디서 쑥부쟁이 꽃처럼 부시시 웃고 있을까

아직도 그 허름한 운동장은
나를 부르고 있지만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추억

즐거웠던 순간들을
세월에 물려주고
추억의 고목에 기대여 있다 

《28》초등 친구

박태강

같이 뛰놀다 배우며
싸우면서 정이 든 친구
만나지 않아도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

각기 다른 길을 걸어
헤어진지 반세기 얼굴엔 골이 패이고
삶의 자욱 남아도
아이 그대로인 친구 만나 즐거웠노라.

걸어온 길 달라도
옛날 돌아가는 길 순간으로 짧아
너, 나, 모두가 하나되어
옛이야기 꽃피울 때 진정 행복하였다.

멀리 있어도
자주 만나지 않아도
그리운 친구야
또다시 만날 수 있게 건강하여라

다음 또 웃으면서 만날 친구
저문 날의 달빛처럼
우리 밝히는 그리움은
잔잔한 행복이어라.

《29》친구

박현수

늦은 밤 친구가 그리울 때
불꺼진 방에서 수화기를 더듬는다.

익숙한 손놀림
수화기 건너 편한 목소리

응…… 나야……
그냥 후후 비가 와서

별다른 대화가 없어도
너의 숨소리만 들을 수 있으면……

늘 숨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네 이름 석자에서 위안을 느낀다.

응…… 나……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지금도 나는 전화기를 더듬는다.
지금도 나는 너를 그리워한다.

《30》이런 친구가 좋다

송정숙

별빛도 한 잔 달빛도 한 잔
한 잔 술로 취하고 싶을 때
가끔은 눈물, 콧물에
주절이 궁상도 떨지만
어느 날은 빙그레 웃으며
시 한 구절 쓰는 친구가 좋다

누룩처럼 피는 곰팡이 벗삼아
푸른 하늘 있던가 모르다
눈사람을 만들고 허물다
모자가 필요하다며
이 모자 저 모자 씌우다
뛰어오라는 친구가 좋다

《31》보고 싶은 친구에게

신경숙

보고 싶은 친구에게
친구야, 해가 저물고 있다.
어두운 불투명의 고요가 찾아오면
난 버릇처럼 너를 그린다.
너의 모습,
네가 떠난 설움처럼 그리움으로 밀려온다.
보고싶다.
내 마음 저 깊은 곳의 미완성 작품처럼
자꾸만 보고 싶은 너.
우리가 이 다음에 만날 때는 어떤 연인보다도
아름답고 다정한 미소를 나누자.
나는 너에게
꼭 필요한 친구, 없어서는 안 되는 친구가 되고 싶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야!
해가 저물고 있다.
이렇게 너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가고 있다.

울어 본 적 있는 친구가

《32》친구

신순균

어릴 때부터
미운정 고운정 들어
가까이 하는 친구가 있다

멀리 할 수도 없고
가까이 할 수도 없는
막연한 친구가 있다

항상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인생의 동반자가 있다

하나 밖에 없는 친구
그 사람이 아니면 살 수 없는
나의 분신이 있다

만나면 부담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마음 편한 친구가 있다

있으나 마나 한 친구
내 삶에 백해무익한
골치 아픈 친구가 있다

그러나 나를 위해서
목숨 바쳐 희생한
생명의 주인이 있다

《33》그 친구 생각난다

신재순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었는데
웃고 즐긴 시간들 신이 났었는데
바람불어도 그리 춥지 않았는데
오늘은 유난히 생각난다.
그 친구 생각난다.
언젠가 그 모습 잊을까봐
내 기억 속에서 잊혀질까봐
뚜렷이 바라보던 그 친구,
이제는 얼굴마저 희미해진다.

《34》보고 싶은 친구에게

신재순

친구야,
해가 저물고 있다.
어두운 불투명의 고요가 찾아오면
난 버릇처럼 너를 그린다.
너의 모습,
네가 떠난 설움처럼 그리움으로 밀려온다.
보고 싶다.
내 마음 저 깊은 곳의 미완성 작품처럼
자꾸만 보고 싶은 너.
우리가 이 다음에 만날 때는 어떤 연인보다도
아름답고 다정한 미소를 나누자.
나는 너에게
꼭 필요한 친구, 없어선 안 되는 친구가 되고 싶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야!
해가 저물고 있다.
이렇게 너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가고 있다.

《35》친구에게

심억수

우리는 생각합니다.
나에겐 함께할 친구가 많다고
그러나 정작 같이 있고 싶을 때
함께할 친구가 그리 많지 않다는것을 느낍니다.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합니다.
나에겐 좋은 친구가 많다고
그러나 정작 축하해줄 자리에
함께 할 친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기쁨에 처해있을 때……

우리는 생각합니다.
나에겐 마음을 같이할 친구가 많다고
그러나 정작 외롭고 괴로울 때
달래줄 친구가 그리 많지 않다는것을 느낍니다.
내가 슬픔에 처해있을 때……

많은 생각속에 살아가는 세월
돌아보면 아무것도 보이지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찾을 수 있는것은
내 가까이에 있는 친구라 생각합니다.

평생을 함께할
내 마음에 안식을줄
내 말에 귀 기울여줄
내 울음에 눈물 닦아줄
내 웃음에 기뻐해줄
그런 친구가 얼마나 있는지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지금 이 순간 눈을 감고 생각해 봅니다.

세상을 살면서
나에게 득이 되든 실이 되든
그대가
나에겐
진정한 친구랍니다.

《36》사랑을 찾는 친구에게

심홍섭

친구를 위해
여기 영혼의 쉼터
안식의 의자
하나
비어 놓았습니다
별처럼
달처럼
살고픈 그대를 위해
사랑 하나
사랑 둘
사랑 셋
사랑의 메아리
가슴에 메아리 칠 때
휴식의 바다
밀물처럼
다가옵니다.

《37》소중한 친구에게

안근찬

친구라는 말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우정보다 소중한것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아름다운 친구
소중한 우정이길 바랍니다.

가끔 사랑이란 말이 오고가도
아무 부담없는 친구,

혼자울고있을때 아무말없이
다가와 "힘내"라고 말해주는 당신은
바로 내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당신의 어떤 마음도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이고 싶습니다.

함께있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걱정하고,
칭찬하는 친구이고 싶습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도 당신이 있으면,
당신도 내가 있으면 만족하는
그런친구이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행복이 없다면 그 행복을 찾아 줄 수 있고,
당신에게 불행이 있다면,
그불행을 물리칠 수 있는 친구이고 싶습니다.

각자의 만족보다는 서로의 만족에
더 즐거워하는 그런 친구이고 싶습니다.

사랑보다는 우정, 우정보다는 진실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친구이고 싶습니다.

고맙다는 말대신 아무말 없이 미소로 답할 수 있고,
둘 보다는 하나라는 말이 더잘 어울리며,
당신보다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할 수 있는 그런 친구이고 싶습니다.
아무말이 없어도 같은 것을 느끼고
나를 속인다해도 전혀 미움이 없으며,
당신의 나쁜점을 덜어줄수 있는
그런친구이고 싶습니다.

잠시의 행복이나 웃음보다는 가슴깊이
남을 수 있는 행복이 더 소중한 친구이고 싶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친구 보다는 늘 함께 있을 수 있는
나지막한 목소리에도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아낌의 소중함보다 믿음의 소중함을 더 중요시하는
먼 곳에서도 서로를 믿고 생각하는 친구이고 싶습니다.

당신보다 더 소중한 친구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에게 처음으로 행복을 가르쳐준 친구,
당신을 위해 늘 기도 하겠습니다.

《38》친구들

오하룡

만나자 해서 만나면 술판만 벌이는 친구들
서로 얼굴보고는 그만 쉽게 취해버리는 친구들
하나 쓸거리 없는 농담 잡담 질편히 쏟으며
실성한 것 같이 허허거리다가
유행가나 내 지르다가
한바탕 꿈꾼 기분 그 뿐
만나자 해서 만나면 술판만 벌이는 친구들

《39》네가 내 가슴에 없는 날

용혜원

친구야!
우리가 꿈이 무엇인가를
알았을 때,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빛나는
이유를 알고 싶었지.

그때마다
우리들 마음에
꽃으로 피어나더니
아이들의 비누방울 마냥 크고 작게
하늘로 하늘로 퍼져 나갔다.

친구야!
우리들의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
커다랗게 웃었지.
우리들의 꿈이 산산이 깨져버렸을 때,
얼싸안고 울었다.
욕심 없던 날
우리들의 꿈은 하나였지.

친구야!
너를 부른다.
네가 내 가슴에 없는 날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40》고향 친구

유소례

따르릉……따르릉……
간이역을 굴절해 오는
폰 벨의 울림
세월을 껴입고 변색 된 음성이
내 가슴을 절이게 한다

고향은 간이역,
지치면 쉬어 가는 쉼터
정수리 위 별들은
너의 별, 나의 별
전선을 굴러 온 목소리는
가슴 설레는 네 별의 진동이다

서로 폰을 타고 나와
간이녁에 앉아서
포로 된 현실의 겉치레를 뜯어내고
별빛 속에 들어가
까마득히 묻어놓은 보고를 열어
푹 익은 풀빛 추억을 마셔본다 . 

《41》그대의 소중한 친구이고 싶습니다

윤석구

내가 쓸쓸하고 허전할 때
만나서 술 한잔 마시는 친구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삶에 힘들어 할 때
따스한 말 한마디로
위로해 주고, 위로 받는
가슴에 새긴 소중한 친구이고 싶습니다

혼자라는 쓸쓸함에 밀려오는
외롭고 허전한 가슴의 울부짖음을
서슴없이 말할 수 있고
조용히 들어 줄 수 있는 진정한 우정을
가슴에 심은 소중한 친구이고 싶습니다

서로 살아가는 하늘이 다르고
별꽃 모양이 다른 밤길을 걸어도
사랑보다 더 진한 우정으로
그대의 영혼과 함께
인생의 들길을 걸을 수 있는
진정 소중한 친구이고 싶습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
아주 가끔 목소리한번 들어도
기뻐하고 반가워하는
찬란한 우정의 꽃으로
믿음직한 가슴을 지닌
그대의 소중한 친구이고 싶습니다

《42》친구

윤용기

오랜 시간의 벽을 쌓고 쌓아
살아 온 날들
전화벨이 울렸다.
새롭게 옛 영상이
순식간에 피---익 돌아간다.
너무 낡은 필름 속으로
나 자신도 빨려 들어간다.
아롱아롱
기억들이 추억이 되어
까까머리 중학시절로
되돌아간다.
세사의 고된 역경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 있는
들꽃이 되어
그 자리, 그 모습으로……

친구야!
그 오랜 시간 속에
꽃피어 온 우정
가슴을 화알짝 열고
아름답게 피어 보렴아. 

《43》오래된 친구

윤의섭

그를 만나면
거울과 같은 얼굴이
나를 대하고
자리를 함께 할 때는
그림자 같이 가깝네

심성이 우물같이 깊으니
믿음이 깊고
바다와 같은 넓은 배려
편안함이 그지없네

삶에 지쳤을 때
소리 없이 위로를 주는

아!
오랜 시간을 농익은
나의 친구여!

《44》곁에 있으면 좋은 친구

이남일

뜰안에 친구하나 심고 싶다.
밤마다 달빛 가득 찾아올 때면
못 가에 그윽한 향기 화답하는
화사한 꽃 한 송이 피우고 싶다.

숲속에 친구하나 만나고 싶다.
종일 나무가지에 귀대고
지저귀는 노래 가슴에 담아도 좋을
작은 새 하나 부르고 싶다.

강가에 친구하나 노닐고 싶다.
별처럼 맑은 눈빛으로
부드러운 강바람과 만나는
언덕 위에 정자 하나 짓고 싶다.

마음의 향기 이슬로 영글었다가
아침이면 따뜻한 차 한잔 내어놓는
늘 곁에 있으면 좋은
친구 하나 만나고 싶다.

《45》내 친구

이문조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
내 친구

밖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잘하고
구수한 육두문자(肉頭文字)도
곧잘하는데

집에만 들어가면
진짜 갱상도
말 없는 그 사나이

아(童)는……
밥(食)도……
자자……

《46》친구

이민숙

왼손을 내밀면
오른손 내밀어 손잡고
지친 어깨를 두드리던 친구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조용히 가슴과 눈빛으로 말하며
낙심했던 마음 위로했던 친구

고난이 닥쳐 눈물 흘리면
손수건 접어 건네며
말없이 일을 해결하고
웃어 주던 친구

주름살 마냥 늘어난 세월 앞에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나고
왠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살다 문득
누군가가 필요할 때
그때 꼭 떠오르는 얼굴

그립기만 하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친구

《47》친구라는 건

이성민

나와 너라는 말보다
우리라는 말이 더 정겨운 것이
친구라는 거지.
내가 지닌 고통의 무게보다
네가 보인 눈물 방울에
더 가슴 아픈게 친구의 마음.
친구라는 건
어느 지루한 오후 불쑥 날아든
한 통의 편지 같은 기쁨.
때론 모든 것에 너무나 실망해서
내 마음도 차갑게 얼어붙지만
잡아주는 따스한 네 손길이
세상엔 아직 잃어버린 사랑보다는
베풀어야 할 사랑이 많다는 걸 가르쳐 주지.
내게 남는 것을 나누어주기보다
내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줄수 있는,
친구의 사랑은 바로 그런걸 꺼야.
친구라는 건
너무 힘이 들어 그냥 주저앉고 싶을 때라도
변함 없이 따사로운 웃음으로
다시 아름다운 내일을 꿈꾸게 하는
그런 희망 같은 거란다.

《48》친구에게

이재호

이 세상에서
친구보다 더 값진 길이 있을까?

이 세상에서
친구보다 더 빛나는
그 어떤 발견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 일이다.

내 괴로움을
그대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돌아오는 들길에서
종달새의 노래 소리를 듣는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세월이 흘러 가더라도

우정이란
영원한 종교처럼
언제나 새롭고 거룩한 일이기에

친구여
인간만이 인간을 구원할 뿐인
우정의 믿음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갈 일이다.

《49》별을 보며

이해인

고개가 아프도록
별을 올려다본 날은
꿈에도 별을 봅니다.

반짝이는 별을 보면
반짝이는 기쁨이
내 마음의 하늘에도
쏟아져 내립니다.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혼자일 줄 아는 별.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는 별.
나도 별처럼 티 없이 살고 싶습니다.

얼굴은 작게 보여도
마음은 크고 넉넉한 별.
먼 데까지 많은 이를 비춰 주는 나의 하늘 친구 별.

나도 별처럼
고운 마음 반짝이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싶습니다.

《50》친구랑 장날에

이향아

내 창자 속까지 안다는 친구
그 친구 불러내어 장에나 가고 싶다.
화순 장날이나 담양 장날 언젠가
하루 골라서
기웃거려 반나절은 지나가게 두고
장터 국밥 허름한 포장을 밀면
와락 달려드는 눈물 같은 훈김
삐걱대는 걸상에 아무렇게 걸터앉아
숭덩숭덩 조선 파 듬뿍 얹어야지
뚝배기 넘치게 밥을 말아야지
세상이 변했어,
인심도 변했어
우리는 입 안 가득 세월을 씹으면서
파장이야
파장이야 웨쳐도 좋아.
떨이야 떨이야 목을 놓아도 좋아
친구 하나 불러서 장에나 가고 싶다.

《51》친구 안부

이현기

건강한가
모두 묻지 않았 다네
야속다 하지 마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침묵으로 말 했지
무거운 침묵으로
이 사람
노장 친구 들아
이제 철이 들었나
외 로움이야
외로움 속으로 들어 가면
그만 이지
소박한 친구 처럼
배우지 못하고
살아간 그대가 더 좋아
형 아우 내것 네것
없이 살아간
소박한 친구들
오늘은 핏대 올리며
눈 부라리고
삿 대질 하 다가도
내일은 웃어 버리던
친구들……
꾹 참아 버린
아름 다운 인내
우리 시간 이었다
가슴에 숨은 앙금
바다 깊은 물에
밀려 보냈지
비까지 내리던 날 이면
대포집
한사발 회포 푸는
참 아름다운 시간 이었다
언제나 맘 언저리에
숨어 있는 사연……
불쑥 나타날 때면
참기 어려운 시간들
어제도 오늘도
안부 묻지 않았다네
용서 하게나

《52》친구와의 추억

임계자

호롱불빛 머금은 문 창호 사이로
초승달 따라 떠나버린 친구야
마음의 눈을 뜰 수 있었다면

개구멍 앞에서 민들레꽃 들여다보던
여울목에서 뒷걸음질하여
달아나지 않았을 것을

거미줄에 달려있는 이슬방울에서도
너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잔솔밭 바람이 잠들고 나니
총총이 박혀있는 추억들이
떠나버린 슬픈 초승달빛 되어
담 없는 추억을 비추네

어제도 오늘도
이제까지 그 모습들 별처럼 빛나서
발길에 차이는 조약돌 하나에게도
떠나 보내고 싶지 않는
너와 나의 우정의 추억이 아니던가

《53》친구와 함께

이임영

마음에 맞는 친구와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일에 관해서도 좋고
사랑에 관해서 건
아니면 가족이나 삶에 관해서
같은 시절 같은 공간에 머물러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시절
삶의 곳곳에 섭렵했거나
미완으로 매듭지어졌던
보따리 다 풀어서
진지하게 경청하고
삶의 노고에 대해 위로해주고
늦은 오후의 햇살의 여유처럼
열정적이지는 않으나
선하고 온화한 중년의 여유를 누려보고 싶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동화돼보기도 하고
불합리한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열변도 늘어놓으면
쉽게 코드가 조율되어질 수 있고
마음을 나눠서 채워가질 수 있어서
서로에게 할애 한 시간에 대해
보람을 만끽할 수 있는
친구가 있음을 확인해보고 싶다

헤어지고 나면
재빨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겠지만
가슴 가득 채운 기쁨의 충만감으로도
두고두고 삶의 힘이 되는
친구와 함께 하고싶다

《54》이런 친구가 됐으면 해

정승혜

반짝 하다 사라지는 유행가보다
가끔 들어도
어느새 가사를 외워버린
순간순간 다른 느낌을 주는
그런 음악 같은 친구

기쁠때보다
힘들고 외로울때
망설임 없이 연락할 수 있는
목소리만으로
서로를 느끼는 친구

사람들이 그러잖아
진실한 친구 세 명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그 중에 하나가 나이고 싶어

《55》이런 친구가 됐으면 해

정승혜

반짝 하다 사라지는 유행가보다
가끔 들어도
어느새 가사를 외워버린
순간순간 다른 느낌을 주는
그런 음악 같은 친구

기쁠때보다
힘들고 외로울때
망설임 없이 연락할 수 있는
목소리만으로
서로를 느끼는 친구

사람들이 그러잖아
진실한 친구 세 명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그 중에 하나가 나이고 싶어

《56》외로운 벗에게

조병화

고독하십니까,
운명이옵니다

몹시 그립고 쓸쓸하고, 외롭습니까,
운명이옵니다

어이없는 배신을 느끼십니까,
운명이옵니다

고립무원, 온 천하에 홀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계시옵니까
그것도 당신의 운명이옵니다

아, 운명은 어찌할 수 없는
전생의 약속인 것을
그곳에 그렇게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 있는 것도
이곳에 이렇게
가랑잎이 소리 없이 내리는 것도

《57》친구

천양희

좋은 일이 없는 것이 불행한 게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것이 다행한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이나 원망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더러워진 발은 깨끗이 씻을 수 있지만
더러워지면 안 될 것은 정신인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투덜대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자기 하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은
실상의 빛을 가려버리는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발길질이나 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58》나의 친구

최다원

나의 친구는 남의 어려움을 보려한다
나의 친구는 남의 말을 새겨듣는다
나의 친구는 항상 온화한 표정으로 남을 대한다
나의 친구는 남을 존경하는 태도를 갖는다
나의 친구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나의 친구는 늘 신중하게 행동한다
나의 친구는 의문점이 발견되면 풀려 애쓴다
나의 친구는 화나는 일에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나의 친구는 정의롭게 이득을 얻는다
나의 친구는 어디서 무얼 할까 

《59》친구야

최대희

보고 싶다 친구야 라는
말을 들으면
어두웠던 마음이 보름달처럼
환해지지요

보고 싶다 친구야 라는
말을 들으면
한겨울의 외로움도 군고구마처럼
따듯하지요

보고 싶다 친구야 라는
말을 들으면
봄날의 버들눈처럼
새 희망이 움트지요

비가 오는 날
활짝 핀 우산을 건네주는
둥근 마음 그리워

오늘, 그대에게
보고 싶다 친구야 라고
편지를 씁니다.

《60》친구에게

최복현

친구야
널 한 번도 미워해 본 적이 없어
나를 멀리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네가 밉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미웠어

이렇게 비가 오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그리울 땐
자꾸 네 생각이 나
사랑보다 더 강한 것이
우정이란 걸 넌 아니?
사랑보다 더 깊은 추억을
새겨 준 친구야

《61》친구의 편지

최영희

친구에게서
고향의 구름을 걷어 쓴 편지가 왔습니다

우리가 향수에 젖는 것은
풀 내 나는 비릿한
그리움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람 끝에 묻어, 끝도 없이
어머니 아버지 무덤가에 이끼로 내려앉는
습한 그림자 하나 걷지 못하는
애틋함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갯짓처럼
우리 가슴에는
언제나 허공에 너울지는
고향을 향한 영혼의 몸짓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아무렇게나 나고 지는
풀 한 포기도 제 뿌리내린 흙의 내음은
쉽게 덜지 못 하겠거니
우리 가슴에는 늘, 안개처럼 젖어드는
고향이 있었습니다
친구여,
내게 보내 온 편지는 잔잔한 바람이었습니다
누었던 풀 포기가 바람에 일렁이듯
우리의 서러웠던 기억까지 그리움의 물결을 이룹니다
편지 속에는, 학교 가는 길
한낮의 굽이를 넘기는 애절하던 새소리,
그리고 가슴을 에이듯 씽씽 울어 대던
놋재를 돌아온 바람소리도 들립니다
그곳이,
그곳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62》친구란

U. 샤퍼

친구란
같이 웃어 줄 사람
같이 울어 줄 사람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하며
같이 싸워 줄 사람

친구란
가장 귀한 재산이며,
지극한 기쁨이며,
애정으로 포장하고,
완벽으로 줄을 맨

친구란
하늘로부터의 선물

《63》한 둘

허형만

이만큼 살다보니
함께 나이 든 친구 한 둘
뭐 하냐 밥 먹자
전화해주는 게 고맙다

이만큼 살다보니
보이지 않던 산 빛도 한 둘
들리지 않던 풍경소리도 한 둘
맑은 생각 속에 자리잡아 가고

아꼈던 제자 한 둘
선생님이 계셔 행복합니다
말 건네주는 게 고맙다

《64》친구 시인

홍경임

이 날 이 때 까지 가난 아귀와 동거하는
친구 시인이 있다

장녀였던 그녀는 열일곱살때 부터
집안 청소 시장 보기 국수가게 부수러기 국수 줍기

열여섯 열일곱 학교 다니며
공장에서 미싱시다 일하기

열 여덟 살 회사에 급사로 들어가 야간학교 다니며
낮에는
남 출근하기 전 3시간
남 퇴근 후 3시간 더 일하여 수당 받아
식구 먹여 살리기

가진 거라곤 불알뿐인 남편과 사랑으로 결혼하여
십육년간 월세방 전전하다
간만에 전세방 하나 얻었는데
시동생 약 먹고 죽는다 자살 소동 벌여
병원비로 전셋돈 마저 날아갔단다

이제 달거리도 끊긴 마흔 후반의 여인
고물로 모은 헌 책장사 너무 힘이 들어
집어치우곤 요사인 Y시 외곽에서
꽃으로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이름하여 꽃 편지 꽃가게를 하며
오늘도 손님들께 향기 없는 환한 미소로 꽃을 판다.

《65》친구

홍수희

오랜 침묵을 건너고도
항상 그 자리에 있네

친구라는 이름 앞엔
도무지 세월이 흐르지 않아
세월이 부끄러워
제 얼굴을 붉히고 숨어 버리지

나이를 먹고도
제 나이 먹은 줄을 모른다네

항상 조잘댈 준비가 되어 있지
체면도 위선도 필요가 없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웃을 수 있지
애정이 있으되 묶어 놓을 이유가 없네
사랑하되 질투할 이유도 없네

다만 바라거니
어디에서건 너의 삶에 충실하기를
마음 허전할 때에
벗이 있음을 기억하기를
신은 우리에게 고귀한 선물을 주셨네
우정의 나뭇가지에 깃든
날갯짓 아름다운 새를 주셨네

《66》내 사랑 친구

김옥준

마음속 밑바닥 무명 자리에
자리 깔고 누운 그리움
그, 그리움 속 공허함 비집고
그 우정은 내 가슴 속 깊이
한뼘 한뼘 그 불량을 키워 갔지
한때는 솟구치는 감정을 포개면
찻집으로 밥집으로
헤매면 우정을 키웠지
친구는 날이 갈수록 무장된
언어의 마술사로 언제나 본인 뜻대로
합리화시키면 난 늘 매료되고
부족한 나의 가슴을 메우면
촌스런 나의 행동을 휘감았지
싱글이란 너의 자유를 만끽했지만
웃음으로 코팅된 뒷모습엔
진한 고독의 외로움이 흐르고 있었지
그 고독 그 외로움
어루만져 주지 못한 이 친구
이해하겠니
용서하겠니
제대로 따뜻한 차림새도 하지 못하고
뜨거운 가슴 열어 보이지도 못하고
만나면 늘 그렇게 바삐 돌아가곤 했지
우정은 파랗게 파랗게 새봄에도 잘 자라겠지
우리 두 사람 잘 키웠으니까

《67》보고 싶다 친구야

노정혜

다정 다감한 친구야
어디서 무얼 하나
꽃 진자리에 초록으로 물던 지금
너무 보고 싶다
친구야! 꿈 많은 소녀
우리는 서로 경쟁하며 공부했지
정 많은 내 친구야
각자의 독특한 개성
꿈 많은 소녀
지금은 노을 진 언덕
우리는 많이들 변했지
지금의 모습 어떻게 변했나
행여 만나면 몰라 볼가 두렵기도 해
보고 싶은 내 친구들
서녘 노을 아름답게 물들고 있다
부르고 싶은 내 친구들
건강하게 아름답게 익으가길

오늘 밤 꿈속에서
우리 같이 만나자

《68》친구

문정희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누가 몰랐으랴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끼리도
끝까지 함께 갈 순 없다는 것을...

진실로 슬픈 것은 그게 아니었지
언젠가 이 손이 낙엽이 되고
산이 된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언젠가가
너무 빨리 온다는 사실이지
미처 숨돌릴 틈도 없이
온몸으로 사랑할 겨를도 없이

어느 하루
잠시 잊었던 친구처럼
홀연 다가와
투욱 어깨를 친다는 사실이지

《69》추억 속의 친구

용혜원

추억 속에
얼굴로만
남아 있던
친구가

낙엽 지던 날
전화를 했다

"늘 보고 싶었다"고
"늘 보고 싶었다"고

추억 속에
얼굴로만
남아 있던
친구가

눈이 오던 날
전화를 했다

"늘 기억하고 있었다"고
"늘 기억하고 있었다"고

《70》친구에게

전혜령

오늘은
문득 멀리 있는 친구에게
한 장의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몹시 행복합니다.

날은 점차 어두워지고
하늘이
어둠으로 물들면
작은 별 하나 떠오릅니다

그 별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친구의 얼굴이
그 위에 겹쳐집니다.

삶은 타오르는 촛불처럼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누군가에게 빛을 던지는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됩니다.

문득 작은 별 위에
사랑 하나 걸어두고 싶습니다.

《71》애인 같은 친구

이호길

삶이 힘들어 피곤할 때
초라한 선술집에서
가을밤처럼 깊은 우정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어쩌다
비 갠 오후처럼
싱그러운 마음이 들면
분위기 있는 노래방에 가
서로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책갈피처럼 단짝인
친구가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그립지만
언제나 부담이 되지않고
좋은 마음으로 지켜주는
애인 같은 친구가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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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시 모음 70편

《1》찔레꽃

강금중

한라산 바람
망월동 푸른 벌판에
찔레꽃 두고 왔다

수의를 찢긴 가슴
섧은 꽃
무덤을 감싼 찔레꽃


사안
사람이
우리의 말 전할 수 없음
안다

아직
한라 혼백은
시들은 찔레꽃

바당 속 누이들
앙가슴
섧다

《2》찔레꽃

고은영


보아주는 이 없는
깊은 산,
그래서
물빛 서러움일레라

하이얀 미소
순결의 서약으로 떠도는
슬픈 입맞춤
외로운 몸짓일레라

우수수
소리도 없이 떨어지는
깊은 언어의 침묵
아, 고독한 사랑일레라

천년을 기다려도
만날 수 없는 임을 그리다
이는 바람에 포물선 그리는
너의 하얀 비망록

《3》찔레꽃

공재동

찔레꽃은
서러운 꽃
눈물나는 꽃

배고픈 설움을
뻐꾸기는 알아

학교 갔다
돌아오는
십리 산길에

누나가 따서 먹던
하얀 찔레꽃.

배고파
따서 먹던
눈물의 꽃
찔레꽃.

《4》하얀 찔레꽃 향기 따라서

공재룡

무너진 산비탈 황톳길 돌아서
해맑은 방울방울 하얀 찔레꽃
향기 가득히 고운 미소짓는다.

어릴 적 오빠 등에 잠들었던
철부지 누이가 고운 여인 되어
소꿉친구 돌이네! 시집을 갔다.

구름 머무는 찔레꽃 숲길 돌아
떠날 때 울던 누이가 오려는가.
종일 앞산에 까치만 울어댄다.

《5》찔레꽃

권도중

못 보고 살아도
가시처럼 닿았다

내 구원이
절절했던
귀한 사람아

찔레꽃
절면서 마을 밖
저 끝을 가고 있다

새순 쭉쭉 꿈을 누르고
간절함이 울며 온다

받아줄 데 없는 마음
쪽지 쪽지로 하얗다

순정은 갈 곳 없어서
진 꽃잎 모아
가슴 덮는다

《6》찔레꽃

권경업

그 날, 처음으로
처음으로 내가 본 것은
한없이 투명한 가을하늘
가을하늘에 핀 찔레꽃이었습니다

아니 아니, 지금 피어서 어떻게
어떻게 겨울을 나려고
깔딱고개로 깔딱고개로
무서리는 넘어 와

아픔 몇 없다면 어찌 세상일일까

보시오, 땅 위는 다 아픔이라오
도선사 대웅전 부연 끝
뎅그렁, 풍경(風磬)을 울리며
가을하늘 날아오는 물고기 한 마리

아! 윤회(輪廻)의 이 봄날
내 안에, 내 안에 가득한 만다라
하얀 찔레꽃 덤불

《7》그대 내 마음에 찔레꽃 향기 같이

한휘준

그대 사랑은
먼 산 속에 있을지라도
내 마음에 찔레꽃향기같이
살풋 살풋 나래 쳐 온다.

그대 사랑의 체취는
파아란 하늘 그득
내 가슴에 은은히 아려온다.

그대 사랑은 깊은 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처럼
잠들지 못하는 향 짙은 그리움이다.

찔레꽃 깊은 밤 소리 없이
진한향수 흩뿌리고 다가서는
하얀 달빛의 미소 띤 순백의 사랑이다.

그대 사랑은
깊어 갈수록 피 흘려야 하는
가슴앓이 가시 상처가 있는
숨어 울음 우는 사랑이다.

영롱한 이슬 같은
고독이 밤을 지새우다 못해
풀잎마다 송알송알 맺히도록
잠들지 못하는 향 짙은 그리움이다.

그대 사랑은
먼 산속에 있을지라도
내 마음에 찔레꽃 진한 향기같이
하얗게 울려온다.

그대 사랑은
접동 접동 접동새 울음이 되어
밤새 목이 메이도록
깊은 산속을 메아리 치는
피울음 삼키우 듯 애달픈 그리움이다.

《8》찔레꽃

김경렬

오매불망 그리움에
달빛도 녹아들고

가시가 가슴을
깊게 파고들어도

님 향한 일념에
빨간 염낭을 키운다

《9》찔레꽃

김귀녀

찔레꽃 피는 오월
낙산사 가는 길
날 건드리지 마세요. 가시 도친 말
나를 부른 건가요?

오월 고개를 넘는 찔레꽃 향기
하얗게 피우는 봄밤에
나도 당신에게 가시 도친 말

당신에게 서운하게 한 말
날 건드리지 마세요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슬픔 툭툭 흘리며
달빛 받으며

미안타
미안타

《10》찔레꽃

김근이

황토 언덕에
기다림도 바램도 없는
시간에 밀려와
여기, 가난을 자리한
소박한 화심

황혼의 애걸에
호소로 뭍일듯

어느 눈밭 길에서 줏어온
무뉘도 아닌
소복 단장한 옷 매무새에
여미는 저녁 바람이 차
움추린 송이송이

그리움에 지친 얼굴로
돌아와 마주서면
단정히 옷깃을 여미며
송이송이
눈물로 보내주는 꽃 잎파리 

《11》찔레꽃 연가

김근이

찬바람 몰아치던 들판에서
가시 넝쿨 위로
그리움으로 태운
빨간 열매 매달고
서리 맞고 눈비 맞으며
오직 이 날을 기다려
그리움으로 피운 내 꽃이여

오월을 건너온
작은 바람결에도
수줍어 움 추리며
애띈 소녀의 미소 같은 모습으로
짧은 기간 내 마음을 사로잡아준
그 정 아쉬움으로 맺어놓은
푸른 열매 매달고
유월 한 달음을 힘겹게
달려가는 내 사랑아

들판에서 산비탈에서
계곡에서 외로움 도사려 안고
푸른 태양을 이고
오직 순정으로만 자라 그라
여름가고
가을 서리에
네 사랑이 붉게 익어 가는 날
비로써 나는 네 사랑을
온 몸으로 감사 안으리

《12》하얀 찔레꽃

김길자

가난의 눈물인가
삶을 딛고 돋아난 아픔인가
허공에 하소연하는 향기에
서슬 퍼런 가시로도 지킬 수 없는
푸른달* 며칠
뻐꾸기소리 산울림 구비돌 때
아침 햇살이 달콤하여
가슴 뭉클하도록 평화롭게 피어
끈적끈적 떠나지 않는 벌 같은 사랑
꾸밈없는 그 다솜*
내 안에 가시로 박혀
나는 기억 속에 잠시 맴돌다
언젠가, 나에게도 오월이 오면
비에 흠뻑 젖은 여인을 찾아
흰모시적삼 앞섶에 피어나리라

《13》찔레꽃 사랑

김덕성

그것이 네 마음이요
네가 아닌가

수줍어
숲 속에 깊숙이 숨은
하얀 찔레꽃

비록 여리지만
햇살에 곱게 빛나는 하얀 얼굴
내 마음을 비추는구나.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네 진심을
모를 리 있겠는가

사랑을 지닌
눈부신 하얀 순결
내 마음 가득 담아 기억하고 싶어

이제는
네게 향한
내 사랑을 알아주겠지? 

《14》찔레꽃

김선옥

오솔길 옆에 하얗게 핀 찔레꽃
진한 향기는 없어도
그윽한 눈길로 길손의 발길을
멈추게 하네
연한 가시로 온몸을 감싸고
님 그려 지키는 정절이
한없이 고와 보이네
꽃그늘 밑에 누워 쳐다보는
파아란 하늘은
온통 그리운 님의 얼굴로
가득히 다가오네
연한 새순을 꺾어 입에 씹으며
배가 고파 찔레순을 꺾어 먹든
옛날을 회억하네
희디흰 찔레꽃이 뭉텅이로 핀
그 오솔길
봄바람에 실려 오는 그윽한 향기가
온 가슴을 그리움으로 물들이네

《15》찔레꽃

김신오

곱디곱게
꽃으로 피어나
내 밥 먹고
열심히 살아도

따라다니며
병신이라 놀리는
저 아이들

너희들 무서워 산골로 간다
서러운 마음
나 홀로 웃으러 간다

《16》찔레꽃

김윤자

겨울 강을 건너온
어머니
파르르 시린 입술로
고뇌의 가시덤불
보듬어 안고
버선발 질긴 목심으로
피워내는
하얀 모시 꽃등
그 빛으로
강산은 밝아오고
조국은 여물어 간다.

《17》하얀 찔레꽃의 미소

도지현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햇살 조각들이 오늘 따라 찬란하다
찬란한 햇살과 대비해서
“가까이 오지 마세요”
가시로 무장하고 손사래 치는
아리따운 아가씨의
파리한 얼굴이
마음 한 귀퉁이를 싸하게 만드는데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가시로 무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시 속에 갇혀
모든 가시를 가슴에 꽂고 있다
진한 고통을 승화시킨
하얗게 미소 진 그녀의 모습에서
고독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데
그 미소 뒤에 숨은 진실은 무엇일까

《18》찔레꽃

류종호

이 땅의 외지고 외진
산비탈 돌틈을 비집고
하얀 소복차림으로
눈익어 오는 것들

벌 나비 짝해 데불고
달디단 입맞춤으로 젖으며
보잘것없는 사랑의 시대
맑게 깨우치는 것들

세상엔 아직도
한 무리의 사랑이 저렇게 펄펄 살아서
짬도 없이 허리 굽힌 하루를
선들바람으로 토닥이는구나

사람아
사랑은 이렇게 가난한 자의 땅에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오나니
내 사랑을 익히지 않고는
저렇게 펄펄 살아보지 않고는
떠나지 못하겠구나, 죽지 못하겠구나.

《19》찔레꽃

박계희

여기
풀섶을 돌고 돌아
그리로만 피어나던 슬픔이
점점이 선을 그으며
개구리 울음보다
더욱 붉게 벗기어 놓은
달빛을
절름거리며 절름거리며
베어먹는 예감으로
있네
서 있네

《20》찔레꽃 바라보며

박광호

어느 누구 보살핌 없이
초록 숲에 자리하고
순결로 피어나
초여름 햇살에 평화를 만끽하는
순백의 사랑,

너의 순정을 실려 보낸 실바람에선
유년의 고향을 불러오는 향내가 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우리 곁에 늘 같이한
정절의 꽃이여!

너를 주제로한 노래도 많아
정겹게만 느껴지는 그 이름 찔레꽃,
바라보는 내 마음도
왜 이리 편안한가.

《21》찔레꽃 연가

박광호

이른 봄 너의 사랑 맛보여주던
찔레 순,
그리고는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주는
5월의 찔레꽃,
너를 바라보니 왜 그리
유년이 그리워지는가?

찔레 순 입에 물고
눈웃음치던 영희 그리고 철민이……

아득한 그 세월에
소식 없이 늙어진 그 모습들 떠올리니
그리워 눈물 고여지고
한 숨 절로 난다

찔레꽃,
순수하고 정갈한 네 모습
바라 볼 때면
언제나 그리워지는 유년의 세월.

《22》찔레꽃

박상희

초여름 아침 햇살이 하얗게 웃는다.
유년 시절
싸 근한 꽃잎 따 먹으며 등교하던 그 길에
찔레꽃 하얗게 웃는다
보자기 둘둘 말아 동여맨 책 보따리
순박했던 마음
그때도 찔레꽃 하얗게 웃었다
크고 작은 돌멩이 걷어차며
긴 개울 따라 올라
돌 뒤지면
물방개, 가재 놀라 웅크리던 하교 길
그때도 찔레꽃 하얗게 웃었다

마음은 그때 그대로인데
세월은 나를 이만큼 데려다 놓고
노란색 어린이 등교 버스가 지나가고
이름 모를 바쁜 차들이 지나가고
초여름 아침 저 외진 언덕에
찔레꽃 하얗게 웃는다.

《23》찔레꽃 이야기

박이도

찔레꽃을 아느냐
찔레꽃은 몰라도
찔레꽃 냄새는 알지요

시집간 아낙네들의
얼굴은 잊었지만
그들이 풍겨주던 찔레꽃 냄새
살 냄새는 알지요

유월, 감자바위 골짜기의
찔레꽃을 보러 가요
저마다의 옛이야기
찔레꽃 童話를 들려줘요

《24》비얀리 찔레꽃

박이현

어찌 하시다가
하늘로 오르지 못한 선녀님
장광을 걷다가
검불에 보드라운 발을 찔리셨다.

기우뚱 넘어지실라
달님이 아슬아슬
지켜보신다.

몸의 문고리 꼭 잡으신 선녀님
눕지 않으시고
바위틈에 기대이신다

지켜보는 이 있어
달밤은 고적하지 않다 

《25》고향 찔레꽃

박종영

별처럼 서러운 꽃
언제나 고향 언덕배기에서 핀다

청보리 배를 불리는 오월
알싸한 향기는 절망의 벽을 넘어
골고루 후미진 들녘에 퍼진다

달빛 부서지는 외로운 밤
떠나간 이별 하얀 웃음으로 달래는 향기,
그 향기 가슴에 담아보면
순이도 보이고,
철수도 보이고,

어느새,
은빛 왕관으로 치장하는 흘러간 청춘이
높고 푸른 허공에 쏘아 올리는 세월,
그리움이다.

《26》찔레꽃 필 무렵

박현태

한밤
가슴이 아픈 소리를 내면서
몇 개의 뼈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제 몸 속에서 튀어나온
비명 소리를 잡기 위하여
마음이 손을 휘저었다
그리움이 벌떼처럼 사방에서 몰려
하얗게 핀 찔레꽃에 앉는다
순간 아찔한 가시에 찔리며
아야야 하고
다시 그 봄 속에 나른하게 눕는다.

《27》찔레꽃

백우선

꽃사과빛이 잠든
반도의 산하
포복의 숨가쁜
6월의 산하에서

나는 또
짐승
꽃사과를 입에 깨문
무서운 짐승이 된다.

꽃이 피면서
수많은
소복(素服)
찔레꽃이 피면서

피어나 시들지 못할
칼의

피어나 나부끼면서.

《28》찔레꽃

백원기

담장 너머로 내민 얼굴
찔레꽃 하얀 얼굴
내가 태어난 오월의 꽃
찔레꽃이 피면 엄마 생각이나요
장 보고 돌아오실 때 뛰어나가면
바람결에 풍겨오던 찔레향
산책길에 스며드는 엄마 냄새
그리운 냄새 고운 냄새
오월이면 생각나는
찔레꽃 엄마 냄새
그리워 코 벌름거리며
찔레 향을 맡아봅니다
생각이 나네요, 오월이 오면
순이와 손잡고 뛰놀다
낮에 한 약속 지키고 싶어
어스름 달밤 호랑 바위에 앉아
포르스름 어색한 얼굴 바라볼 때
괴괴한 밤 공기 타고 흘러들던
찔레꽃 감미로운 냄새가

《29》찔레꽃

변형규

앙탈도 귀엽던 단발머리 가시내
팔목이 가늘어 호미자루 무겁다더니
돈 많고 잘산다는 서울로 팔려 가서
몸도 마음도 오지리 뺏기고
앙칼지게 가시만 달고 와서는
봄날, 논두렁에 퍼질고 앉아 운다.
해도 기운데 들어가지 않고
오빠 미안해요 퍼질고 운다.
오월 한 달을 하얗게 운다.

《30》찔레꽃

변형규

앙탈도 귀엽던 단발머리 가시내
팔목이 가늘어 호미자루 무겁다더니
돈 많고 잘산다는 서울로 팔려 가서
몸도 마음도 오지리 뺏기고
앙칼지게 가시만 달고 와서는
봄날, 논두렁에 퍼질고 앉아 운다.
해도 기운데 들어가지 않고
오빠 미안해요 퍼질고 운다.
오월 한 달을 하얗게 운다. 

《31》찔레꽃 타령

서지월

임아,
백 고무신 벗어두고 간 임아
하얀 찔레꽃 수북이 피어서
오늘같이 서러운 날이면
온 몸에 찔레가시 바르고
나도야 남풍따라 가서는
돌아오지 않을까부다.

아아,
장독간에 숨겨둔 얼레빗 마저 꺼내
머리 빗고서
그 더운 머리털 날리는 구름 따라
나도야 정처 없이 떠날까부다.

《32》찔레꽃 그녀

성백군

봄볕 모여드는
돌담 밑 길가 찔레
햇살 불러와 세상 바라기에 설레는 마음을
꽃봉에 연서로 적더니
꽃잎 벌어지는 날 마침표를 찍고
바람 불 때 바람 편에 부쳤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급하게 서둘다 보니
주소도 못 적고 수취인도 잊었다고
아무 데나 마구 꽃 내를 흘립니다
나비도 오고 벌도 오지만
개미도 오고 진드기도 모이네요
누가 내 님인지 사랑 고백하기도 전에
화냥년 소리를 들어야 하느냐고 찔레꽃
갓길에 나와 팔자타령 합니다

어찌합니까
아비 모르는 새끼도
제 뱃속으로 낳았으니 자식인 것을
제 새끼 예쁘다고 들여다보면
방긋 웃으며 향내를 풍기다가도
꺾으려 들면 가시를 세우며
설레설레 고개를 흔듭니다

조심하세요. 길가 꽃이라고
함부로 대하다가는
상처 입고 몸 상하고 패가망신합니다.

《33》찔레꽃

성진명

나날이 푸르러 가는 산골짝마다
붕붕, 나폴 나폴, 쑥쑥, 꿩꿩……. 빛나는 함성은
새 생명 원소를 실어 나르는
사랑의 세레나데이던가?

구렁이 기어간 듯
구부렁구부렁 산골짝 다랑논에는
못줄도 뛴 듯 만 듯, 공일 맞은
식구들 옹기종기 모내기한다.

콩자반 가죽무침 간고등어 비린
무시지짐에
보리밥 배불리 점심을 채우고
새참엔 국시에 막걸리도 댓 사발 먹었다.

저문 해 비끄러맬 수 없어
초가둥지 찾아 돌아오던 길가에
흐드러진 찔레꽃,
하얗게 웃을 땐 제법 곱더구나.

《34》찔레꽃

송기원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어질머리 흔들리는 봄날 저녁이면
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그런 지경에서
꿈결같이 사람 냄새를 맡곤 하였습니다.
한 번 돌고, 두 번 돌고, 또다시 도는
그런 산모롱이 아래 아늑한 곳에서는
개 짖는 소리, 된장국 냄새, 밥 짓는 연기 속에서
마을의 불빛들 하나 둘 밝게 켜지고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갈 길도 돌아설 길도 모두 어둠 속에 묻혀버릴 때
그대 대신에 느닷없는 수천 수만 찔레꽃 송이들
무언(無言), 무언으로 피어올랐습니다.
그렇게 그대 대신에 피어올라서
돌아설 한 가닥 외길 비추어주었습니다.

《35》찔레꽃

송정운

눈물 많은 꽃 하얀 찔레꽃
아픈 상처로 가시는 펄펄 살아
하얀 눈물 향기 되었다네
보고픈 하늘아래 하얀 얼굴
하얀 마음 밤 벌레 소리
가도 가도 끝 없는 길 하얀 찔레꽃 향기

《36》찔레꽃

신경림

아카샤 꽃냄새가 진한 과수원 샛길을
처녀애들이 기운없이 걷고 있었다
먼지가 켜로 앉은 이파리 사이로
멀리 실공장이 보이고 행진곡이 들리고
기름과 오물로 더럽혀진 냇물에서
아이들이 병든 고기를 잡고 있었다
나는 한 그루 찔레꽃을 찾고 있었다
가라앉은 어둠 번지는 종소리
보리 팬 언덕 그 소녀를 찾고 있었다
보도는 불을 뿜고 가뭄은 목을 태워
마주치면 사람들은 눈길을 피했다
겨울은 아직 멀다지만 죽음은 다가오고
플라타나스도 미루나무도 누렇게 썩었다
늙은이들은 잘린 느티나무에 붙어앉아
깊고 지친 기침들을 하는데
오직 한 그루 찔레꽃이 피어 있었다
냇가 허물어진 방죽 아래 숨어 서서
다가오는 죽음의 발자국을 울고 있었다

《37》찔레꽃

신종범

한시도 잊지 못한 극성스런 치정을
말갛게 꽃대에 올려 불 환히 밝힙니다.
그 마음
흰 나비 되어
까마득히 오릅니다.

당신은 가시 솟는 아픔을 아는가요?
어젯밤 서몽에서 무지개가 일길래
오늘은
혹시나 하고
동구 밖을 봅니다.

기다림은 칼바람에 솔래솔래 씻겨가고
마음에 눈 내려 얼어붙어 가는데
주홍빛
돋을 양지에서
붉은 망울 아립니다.

《38》찔레꽃 연가

심의표

짙푸른 송림사이 달리는 화심
게으른 뻐꾸기 울어 시샘해도
수줍은 듯 뽀얀 얼굴
내 고향 뒷동산 한 자락 깔고 누워
낮 익은 길손 마음 설레게 한다.
활짝 핀 그리움 하나
연녹색 풀섶에 살며시 묻고 서서
뿌옇게 떠오르는 달빛 맞으며
정든 임 기다리는 열아홉 순정
순애보 같은 사랑을 안고
꽃향기 풀어 순수의 눈빛 열어간다.

《39》찔레꽃 미소

안국훈

한 시절 죽도록 사랑하던 이름
안타깝게 잊혀만 가는데
꽃피는 봄날 맞아
누구라고 감히 잠들 수 있으랴

신비로운 우주는 오늘도
기다리던 저 둥근 달빛 아래
연분홍빛 구름을 산자락에 멈춰놓고
경이로운 기적을 잉태 중이다

밤새워 뒤척이던 그리움에
먹 갈며 글 쓰노라면
밤하늘 눈부시게 별빛 반짝이고
시린 눈물방울 끝에 연초록 봄빛 번진다

가시덤불 속 수줍게 핀 그녀 미소
한 줄기 바람에 하이얀 설레임 전하면
만나고 싶은 마음에 억겁의 세월을 돌아온
그리도 꿈꾸던 내 사랑 아니더냐

《40》찔레꽃

안수동

슬픔이 점령군이 되어
나를 허물기에 그냥 뒷길에 웅크렸네
굳이 말하라 하면
아픔 없는 사랑은 없다는데
나를 용서 못함도
가시를 숨기지 못함도 모두가
사소한 일에 상처 입는 사랑 때문인데
너 보내고 내가 핀들 그게 무슨 꽃이리
너를 사랑하지 않고는
나는 살 수가 없네
이유 하나 제대로 있는 눈물
꽃향기인 양 흘리고 싶어
찔레꽃은
봄 내내 하얗게 울지 않느냐.

《41》찔레꽃 향기는

안행덕

외진 산길 아무데서나
하얗게 웃는 찔레꽃
알싸한 향기는 애틋해서
소리 없는 울음이네
하얗게 피는 꽃 찔레꽃은
애달픈 전설 가슴이 찡해서
서럽도록 좋아라
그리움에 야위어 가시만 남은 꽃대에
하얀 꽃잎은 잎마다 눈물 고여서
나를 울리네
애절한 그리움으로 향기 만들어
나 여기 있다오
지나가는 바람, 옷깃에 매달려
향기만 전하고
저만치 달아나 숨어서 우네

《42》찔레꽃

안희선

하이얀 착각
미안하다
너를 꽃으로 보았구나
눈물 아롱진
독백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야기는
꽃잎 속을 닮았지
문득, 현기증 같은
그리움
엄마의 따스한 품에
아련히 잠긴

《43》찔레꽃 사랑

양전형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못한다
풀과 나무는 물론 세상 무엇이든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으면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 넘치고 넘쳐 마침내
찢어진 가슴 열며 상처투성이 꽃
왈칵왈칵 구구절절이 피워내는 것
그리고 아픔이 큰 꽃일수록
고웁고 향기 더 나는 것

사랑은 아프게 해야 한다
꽃이 아프게 피어나듯
가슴이 찢기도록 해야 한다
상처는 정녕코 아름다운 것이므로

아, 저 하늬 길목 갯도랑 찔레꽃
한겨울을 얼마나 아파했을까
온몸 가시에 뚫리는 고통 견디며
누굴 저리 활활 사랑했을까

《44》찔레꽃

양현근

이제 쉬었다 가요
나무 작대기도 거기 내려놓으시구요
당신이 좋아하시는 찔레꽃도 환하게 피어났어요
찔레꽃가뭄 들면 하늘만 바라보던
섬진강 웃대꿀 열댓마지기 논배미는
평생을 지고도 다 못진 당신의 등지게였다지요
경운기도 못 다니는 비좁은 논둑길을
등판이 휘도록 혼자 짊어지고 다녔다지요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괜찮다 괜찮다 하며 어깨의 통증
밤새도록 돌아눕곤 했다지요
당신의 헛기침이 다져놓은 신작로를
말표고무신이 까까중 머시마들을 데리고 다녀요
벌써 마을은 지워지고 모판 한 짐이 참방거려요
이제 내려놓으시라고 달빛은 졸졸 따라다녀요
무논자락에선 개구리 울음소리가
밤새도록 들판을 감았다 풀었다 하네요
허기진 하루 돌아설 때
당신이 내려놓은 무거운 등지게는
이제 내가 지고가요
흙냄새 맡아 새파래지는 아랫대꿀 지나
미루나무 한 소절 낭창낭창 휘어져가요

《45》찔레꽃에게

양해선

갈수록
꿈틀거리는
가슴
다독일수록
더더욱
버둥댄다
가만두어도
아프다
자그마치
찔러라

《46》찔레꽃

오세영

더럽히고 싶다.
한 방울의 피를
순결은 육신의 감옥,
수인(囚人)으로 남기보다는 차라리
창녀로 살고 싶다.
아름다움은 왜 항상 갇혀 있어야만
하는가,
아름다움의 밖이 기쁨이라면
그 안은 슬픔이다.
서슬 푸른 가시로도 지킬 수 없는
하늘,
사랑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는 것을
일컬음이다.

아아, 나는 이제 밝은 햇빛을 보아 버렸다.
사내와 눈 맞아 가출을 기도하는
소녀처럼
울타리를 타고 넘어 허공으로, 허공으로
내닫는
찔레꽃.

《47》찔레꽃 내 고향

유응교

멀고 먼 나라로
고향을 떠나
살아 보신 적이 있나요

가난하게 살아도 고향이 좋고
지위가 낮아도 내 부모가 좋고
남루한 옷을 입어도 내 형제가 좋아요.
고향을 떠나 살아본 사람만이
제 심정을 아실 거 에요.

그러나
그리운 고향에 찾아 왔건만
부모 형제 이미 떠나시고
형제는 찾아 볼 수도 없이
고향집이 잡초에 묻혀 있다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겠어요.

고향산천 골짜기마다 개울가마다
제가 소복을 입고 외롭게
울고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아셨죠
부모 형제 애타게 그리며
목놓아 부르는 제 외침이
애잔한 향기로
바람결에 산천을 헤매는 까닭을
이제야 아셨죠

고향은
외로운 마음의 안식처라고 하지만
흙먼지 속에 엎드려 울고 있는
저를 안아 주세요
전 지금 너무 외로워요.
부디 고향에 오시거든

《48》하얀 찔레꽃

유인숙

가만히 눈감으면
그 옛날
5월 푸른 하늘 우러러
배고프면 하나, 둘 따먹었다던
내 언니 부르던 하얀 찔레꽃

슬픈 향기 싸하게
온 가슴 후비고
애달픈 곡조에 묻어 나온 그리움
아, 그리움이
너무도 희어 섧다

그것 참, 가난도 희었더구나
창백한 얼굴에 번지던
몹쓸 버짐처럼
성난 가시 곧추세운 나무마다
처량하게 피어오른 백색의 꽃 무리

세월이 흐른다고 잊혀지더냐
눈감으면 떠오르던
지난 추억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던
내 언니 부르던 하얀 찔레꽃

《49》찔레꽃

윤갑수

길섶에 별빛모아 하얀 꽃 섬 만드니
파란하늘 꼭대기 두둥실 떠가는
조각구름처럼 널브러지게 하늘거린다.

살랑 이는 바람 결에 저물어가는 햇살
찔레꽃 향기에 취했는가?
묽게 수놓은 내 눈가에
사랑하는 아내의 고운 입술을 포갠 듯
내려앉은 빠알간 햇살
흐드러지게 핀 어두운 과거의 봄을
그리워한다.

저 하늘 끝 그리움을 매달아
뒤돌아본 추억속의 청춘의 봄처럼
넘실거리는 추억들
찔레꽃 잎들이 하나둘 꽃비가 되어
눈가에 흩날리운다.

밤새 달려온 계절의 뒤안길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새 꽃잎들이
우수수 땅에 눕는다.
하얗게 내리는 비가 봄날을 데려간다.

《50》찔레꽃 향기

이경옥

가까운듯 멀리 있어도
너의 향기는 언제나 내 마음속을 헤집어드네
문득 네 향기가 그리워 고개를 들면
진하게 밀려 오는 그리움

눈 감아 아른거리는
너의 모습에 휘청거리는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어느새 너의 곁으로 달려 가고 있네

《51》찔레꽃

이외수

마음으로만은
사랑할 수 없어
밤마다 편지를 썼었지
서랍을 열면
우울한 스무살 가슴앓이
사어들만 수북히 쌓여 있었지

입대하기 전날 아무도 몰래
편지를 모두 잘게 찢어
그대집 담벼락에 깊이 묻고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으리
나는 바삐 걸었네

《52》찔레꽃의 노을

이원문

작년 그 작년
네 하얀 찔레꽃
네 하얀 꽃에
바람 불던 날
다음을 기약 하며
오늘을 기다렸다

하얀 꽃송이
가냘픈 너의 꽃
네 하얀 꽃에
이슬 앉던 날
그 약속 기다리며
오늘 너를 찾았다

《53》산천에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이은경

선배,
오늘은 약통을 책장에 들어 옮기다가
스텝이 꼬여 넘어질뻔 했어.
간신히 살아났지만 눈물이 치솟더라
이렇게까지 살려고 애쓰야되나 싶어지더라.
서러워서 울었다.
산천에 하얀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할머니가 나타나서
나 대신 식구들에게 말을 전해 주는 거야.
대신에 흰 머리칼 하나 얻고 그래도 서럽다.
내 서러움에는 정체가 없다.
산천에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54》찔레꽃

이재봉

오월의 숲길을 거닐다
한 무더기 꽃을 보았네
멀리서 보니 아카시아 같고
가까이서 보니 들장미 같네
순백한 냄새에 취해 코를 댔더니
슬프도록 하얀 꽃송이가 툭 떨어지네
찔레꽃 그늘에 앉아 숨어 울던
옛 누이의 눈물처럼

《55》찔레꽃

이해인

아프다 아프다 하고
아무리 외쳐도

괜찮다 괜찮다 하며
마구 꺾으려는 손길 때문에

나의 상처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남모르게
내가 쏟은
하얀 피
하얀 눈물
한데 모여
향기가 되었다고

사랑은 원래
아픈 것이라고
당신이 내게 말하는 순간

나의 삶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축복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56》찔레꽃

이현우

부활하는 넋인가 보다.
흙먼지 자욱한 포연(砲煙) 속에서
운명처럼 만났던 가시와 향기
멍울져 돌아앉은 산과 들마다
유월이면 네 모습 소복이었다.
낭자한 꽃싸움 풀숲에 묻고
홀연히 떠나버린 봄의 끝 자락
축배도 영화도 아랑곳 없이
오롯이 피어 오른 무명의 향불이여.
가난한 사람들은 사람들끼리
외로운 사람들은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사는 길 너무 멀어라.
끓던 여름 타는 가을 다 보내고
재 되어 물이 되어 겨울 강에 닿으면
하얗게, 하얗게, 더욱 아프게
쌓여가는 어둠 속 눈이 오리니
계절마저 잊었나 갈은리(葛隱里) 하늘
활짝 열고 부활하는 넋인가 보다. 

《57》찔레꽃 피는 계절

이효녕

창문 두드려 돌아온 계절
너의 따뜻한 마음의 문 활짝 열어
모든 꽃잎이 흩어져 떨어진
산비탈 언덕 위에 하얀 찔레꽃 향기
너의 가슴에 듬뿍 넣어주고 싶다

풀잎 사이 튼튼하게 뿌리 뻗은
팔 없는 팔로 너를 껴안고 맴도는 나비
피어나는 꽃의 마음을 아는 사람
따가운 가시 잎사귀 사이 감추던 시간마다
한 무더기 하얀 별 쏟아 놓고
별똥별 밤새 바라보고 나서
어린 나뭇가지들에 달린 바람 털며
하얀 향기에 눈을 감고
아주 오래도록 너와 같이하고 싶다

창문 활짝 열어 별을 노래하는 동안
뾰족한 가시에 찔린 상처
밤이면 밤마다 이슬에 젖는 날이 많았다

오늘은 그 아픔의 상처마다
꽃잎 속에 활짝 펼쳐놓고
향기를 내어주는 이 시간
고요한 향기로 너의 곁을 항상 맴도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어딘가 날고 싶다

《58》찔레꽃

장사익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노래하며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59》찔레꽃

전병조

보리향기 푸르른 오 월이 오면
산으로 강으로 들길로
찔레꽃 개구쟁이들 봄나들이를 가겠지

팔 걷고 도랑 치며 가재 잡다
배 고프면 따 먹었던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한 입에 노오란 하늘이
찔레꽃 두 입에 서울 간 누이의 얼굴이
눈물겹게 그리워지던 찔레꽃 그 언덕

배 고픈 아이들은 종일토록
찔레꽃 덤불을 찾아서 헤매곤 하였지

어쩌면 남 몰래 훔쳐 본
<지아>의 속살과도 같았던 새하얀 찔레꽃
그 꽃잎 베어 물고 하늘을 바라보면

남몰래 <지아>와 입 맞추다 푸드득 산꿩에 놀라버린
지독히도 무안했던 어느 봄날, <지아>도 떠났고
산꿩의 소리는 여전히 골마다 우렁찬데

땅거미 밟으며 홀로이 길을 걷는 동구 밖
서산에 걸린 노을이 시리도록 아팠다

이제 나 떠나고 없어도
고향의 찔레꽃 여전히 화려한 자태를 뽐낼 테고
개구쟁이 악동들 여전히 떼를 지어
봄나들이 산꿩과 숨바꼭질 즐기겠지

《60》찔레꽃

정민호

청 밀밭 햇살 머금고
산새 한 마리 날아 와
하얗게 흩어진 꽃들의 미소를
하나씩, 하나씩 골라내고 있다.

오솔길 따라 나서면
구름은 새털처럼 피어오르고
멀리보이는 보리밭 언덕에도
환한 얼굴로 도론, 도론 핀다.

살짝 불어오는 푸른 바람결에
흩어지는 부끄러운 꽃내음,
곱게 뻗어 나간 덩굴 속에서
누나의 뒷모습으로 머리 숙어 앉는다.

청자 빛 하늘 자락이 내리고 있는
비탈 밭 언저리엔 지금
맑은 산울림으로 나는 산 꿩 한 마리,
새하얀 찔레꽃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61》싸리재에 찔레꽃이 필 때부터

정세일

사랑하는 나의 당신이여
당신의 그리움 속으로 다시 걸어간 날입니다
싸리재 고개위에
별들이 숨겨놓은 그리움의 보물찻기
솔가지에도
풀잎 사이에도
싸리나무들의 종아리에도
비가 소리없이 이슬비로 내린날
그래서 당신의 어린날
그 산 중턱에서
혹이라도 까치들이 울면
그리운 임이 올까봐
산까치 노래를 혼자서 중얼거려봅니다
산에서만 살고있는
말하는 까치들의
가을 말하기
가을책 읽기
수필처럼 청아하게
그리움 낭송하기
그래서 뒷문 밖에는 도토리들의
노래들이 들려올것 같습니다
네가 울면 우리 임이 오신다는데
너마져 울다 서산너머
그래서 이 애태움 하나만으로도
이슬비가 되어버린
당신의 그리움속으로 걸어간 날입니다
사랑하는 당신이여
긴 긴 여름날부터 하얀 교복을 입고
싸리재에 찔레꽃이 필때부터
그 향기로움으로 기다리고 있는
당신이 숨겨놓은 이 그리움은
별들이 숨겨놓은
보물찻기를 하려고 저 고개를 넘어서
이미 갔습니다
산까치처럼 임을 기다리는날에 말에요

《62》찔레꽃

정연화

단아하고 깔끔한 모습이
내 어릴적 낭자머리에
비녀꽂은 우리 엄마같다

하얗게 피어서
향기마저 은은한
저 찔레꽃이
옥양목 저고리를
풀먹여서 다려입은
정갈한 우리 엄마같다

부드러운 찔레순
꺾어서 먹었던 어린시절

하얀 찔레꽃 앞에서
젊었을적 우리 엄마와
고향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한다

《63》찔레꽃

차성우

동산에 오르면
찔레꽃 향기
꽃잎마다
미소짓는 그대의 얼굴
행여나 오실까
뒤돌아보면
보리밭 종달새만
노래부르고
어느 세상
아득한 동리
그대 사는가,
꽃잎만 하얗게
짙어가누나.    

《64》찔레꽃의 전설

최영희

봄이면 산과 들에
하얗게 피어나는 찔레꽃
고려시대 몽고족에
공녀로 끌려간
찔레라는 소녀가 있었다네
십 여년 만에 고향 찾은 찔레 소녀
흩어진 가족을 찾아
산이며 들이며 헤매다
죽고 말았다네
그 자리에 피어난 하얀 꽃
그리움은 가시가 되고
마음은 하얀 꽃잎, 눈물은 빨간 열매
그리고 애타던 음성은
향기가 되었네
내 고향 산천 곳곳에 피어나는
슬프도록 하얀 꽃
지금도 봄이면
가시덤불 속
우리의 언니 같은 찔레의 넋은
꽃으로 피네.

《65》찔레꽃

최제형

찔레꽃 피어
오월이 오지
떡갈나무 새닢 돋는 산비탈에서

초생달 아련히 봄바람 맞는 저녁
처량한 개구리 울음은
무리져 고향 떠난 이들
서럽게 토하던 가슴 한 조각

찔레꽃 지면
오월이 가지
함박눈같이 흰 꽃닢 날리며

꾀꼬리 종일 울던 연둣빛 산골
차마 못 잊어 소주 한 잔 기울이면
수줍게 떠오르는 예쁜 순이 얼굴

달밤에만 피어
하얗게 쏟아놓는 그리운 편린 뒤로
어느새 슬그머니 유월이 오지.

《66》찔레꽃

최창화

5월이면 찔레꽃 핀다
내 어머니 가시던 날 고이 신으셨던
버선발같이 하얀 그 꽃이
해마다 이맘때면 잊지도 아니하고
양지쪽 함초롬 또다시 핀다

내 어머니 계실 적 늘 하시던 말씀
거스르지 말거라 누누이 일러주셨건만
그 말씀 거역하고
날마다 쿵쿵 가슴에다 박았던
그 많은 못 중에
끝내 단 한 개도 뽑지 못하시고

그 말씀 잊지 말라며
해마다 이맘때면 잊지도 아니하고
가시 달린 하얀 꽃 되어
또다시 핀다.

《67》찔레꽃 향기에 쌓인 그리움

하영순

모퉁이 돌아돌아
산길 어귀
찔레꽃 향기 초여름 햇살 젖어든 오월

세상에 태어나서
탯줄 떨어진 자리
채 마르기도 전에

하얀 꽃가마 타고 가신 님
그때는
서러움도 그리움도 미처 몰랐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찔레꽃 향기 가슴을 적시면

심장에서 치미는 그리움
목젖을 막아도
그립다. 말못하고
찔레순 꺾어 씹어 삼키며 참아온 세월

서산에 산 까치 지저귀는데
찔레꽃향기 고개를 넘어
아카시아 꽃잎으로 피리를 봅니다

그리워 그리워서
피리를 붑니다

찔레꽃 하얀 계절에!

《68》그대도 찔레꽃보고 있을까

허정자

라일락 향기 실바람타고
하늘하늘 날아서
그대 있는 곳까지
가려나?
실록이 무루 익어
가지마다 푸르럼이
그대 있는 곳에도
울창하게 섰는가?
임이여
밭둑 밑에 앙증맞은
찔레꽃도
하얗게
피였습니까?
임 그리워 밤새
하얀 불 밝히는
찔레꽃 말입니다
떠날 줄 모르고
행여나 오실님 기다리는
찔레꽃
아예 오실 때 까지 기다리려고
밭둑밑에 퍼질러 앉아 있는
찔레꽃 말입니다

《69》찔레꽃

허호석

옛생각
잊을까봐 꽃 피우고
잊으라 꽃 지우는가

찔레꽃
향기로 물들었던 연정
언제까지 피고 질 이야기를
나눠가진 우리는 누구였나

생각나는 사람
하나 있으면 행복인 걸
꽃은 져도
봄은지지 않는 것을

《70》찔레꽃

홍해리

장미꽃 어질머리 사이
찔레꽃 한 그루
옥양목 속적삼으로 피어 있다.

돈도 칼도 다 소용없다고
사랑도 복수도 부질없다고
지나고 나서야 하릴없이 고개 끄덕이는
천릿길 유배와 하늘보고 서 있는 선비.

왜 슬픔은 가시처럼 자꾸 배어 나오는지
무장무장 물결표로 이어지고 끊어지는 그리움으로
세상 가득 흰 물이 드는구나.

밤이면 사기등잔 심지 돋워 밝혀 놓고
치마폭 다소곳이 여미지도 못하고 가는
달빛 잣아 젖은 사연 올올 엮는데,

바람도 눈감고 서서 잠시 쉴 때면
생기짚어 피지 않았어도
찔레꽃 마악 몸 씻은 듯 풋풋하여
선비는 귀가 푸르게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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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 모음 30편

《1》가을

최승자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내 문간에 낙엽 한 잎 떨어뜨립디다
가을입니다

그리고 일진광풍처럼 몰아칩디다
오래 사모했던
그대 이름
오늘 내 문간에 기어이 휘몰아칩디다

《2》그대 영혼의 살림집에

최승자

그대 영혼의 살림집에
아직 불기가 남아 있는지
그대의 아궁이와 굴뚝에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지

잡탕 찌개백반이며 꿀꿀이죽인
나의 사랑 한 사발을 들고서,
그대 아직 연명하고 계신지
그대 문간을 조심히 두드려봅니다.

《3》근황

최승자

못 살겠습니다.
(실은 이만하면 잘 살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원한다면, 죽여주십시오.

생각해보면,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내 죄이며 내 업입니다.
그 죄와 그 업 때문에 지금 살아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잘 살아 있습니다.

《4》기억하는가

최승자

기억하는가
우리가 만났던 그 날
환희처럼 슬픔처럼
오래 큰물 내리던 그날

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 뒤척였다.

《5》나는 그대의 벽을 핥는다

최승자

나는 그대의 벽을 핥는다.
달디단 내 혀의 입맞춤에 녹아
무너져라고 무너져라고
나는 그대의 벽을 핥는다.

그러나 결코 사랑은 아니라고
깨달아지는 이 나이는 무슨 나이인가?
결코 사랑만이 아니다.
결코 사랑만으로는 태부족이다.
이런, 나는 호 혹시
테러리스트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오 꼬집어다오, 형제여, 내가 호 혹시
깡패의 순정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6》내 청춘의 영원한

최승자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7》너에게

최승자

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흐른다.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8》돌아와 이제

최승자

새들은 항상 낮게 낮게 가라앉고
산발한 그리움은 밖에서,
밖에서만 날 부르고

쉬임 없는 파문과 파문 사이에서
나는 너무 오랫동안 춤추었다.

이젠 너를 떠나야 하리.

어화 어화 우리 슬픔
여기까지 노저어 왔었나.

내 너를 큰물 가운데 두고
이제 차마 떠나야 하리.

오래 전에 내 눈 속 깊이 가라앉았던 별,
다시 떠오르는 별.
오래 갈구해온 나의 땅에
다시 피가 돌고
돌아와 이제 내 울타리를 고치느니,

허술함이여 허술함이여
버려진 잡초들이
이미 내 키를 넘었구나

《9》마흔

최승자

서른이 될 때는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지
이 다음 발걸음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추락하듯 내려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궁륭같은 평야로구나.
한없이 넓어, 가도가도
벽도 내리받이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벽이 있어,
재수 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10》바람의 편지

최승자

내 너 두고 온지
벌써 한 달
바람의 편지도
이제 그쳤구나

아 내 기억 속에서
푸르른 푸르른

또 다시 하루 가고 이틀 가도
내 기억 속에서
푸르고 푸르를

언제나 새로이 쓰여 질
아 지리산, 바람의 편지

《11》밤 부엉이

최승자

밤부엉이 한 마리가 창가에서
나를 꼬나보기 시작했어.
나는 허둥거리며 내 몸의
모든 기관들을 닫아 버렸지만
부엉이의 눈빛이 오토머신처럼
내 몸 구석구석을 헤집어 열고
노란 방사선을 쏘아 부었어.
나는 사지를 늘어뜨린 채
천천히, 차갑게 융해되어 갔어.

이윽고 잠, 닫혀진 회색 강철 바다,
속으로 한 사내의 그림자가 숨어들어
내 꿈의 뒷전을 어지러이 배회하고
환각처럼 들리는 창가에서, 누구시죠?
내게 희미한 두통과 고통을 흘러 붓는, 누구시죠?
내 死産의 침상에 낮게 가라앉아,
누구시죠? 누구 누구 누구……?

밤부엉이가 밤새 내 지붕을 파먹었어.
아침엔 날이 흐렸고
벌어진 큰골 속으로 빗물이 흘러들었어.
이미 죽은 내 몸뚱이 위에
누군가 줄기차게 오줌을 깔기고,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떠나갔어.

《12》비극

최승자

죽고 싶음의 절정에서
죽지 못한다, 혹은
죽지 않는다.
드라마가 되지 않고
비극이 되지 않고
클라이막스가 되지 않는다.
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견뎌내야 할 비극이다.
시시하고 미미하고 지지하고 데데한 비극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 물을 건너갈 수밖에 없다.
맞은편에서 병신 같은 죽음이 날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13》빈배처럼 텅 비어

최승자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리고도 어언 수천 년

빈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

《14》살았능가 살았능가

최승자

살았능가 살았능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
대답하라는 소리
살았능가 살았능가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고
벽을 두드리는 소리만
대답하라는 소리만
살았능가 살았능가

삶은 무지근한 잠
오늘도 하늘의 시계는
흘러가지 않고 있네

《15》생각은

최승자

생각은 마음에 머물지 않고
마음은 몸에 깃들이지 않고
몸은 집에 거하지 않고
집은 항상 길 떠나니,

생각이 마음을 짊어지고
마음이 몸을 짊어지고
몸이 집을 짊어지고
그러나 집 짊어진 몸으로
무릉도원 찾아 길 떠나니,

그 마음이 어떻게 천국을 찾을까.

무게 있는 것들만 데불고,
보이는 것들만 보면서,
시야에 빽빽한 그 형상들과
그것들의 빽빽한 중력 사이에서

어떻게 길 잃지 않고
허방에 빠지지 않고
귀향할 수 있을까.

제가 몸인 줄로만 아는 생각이
어떻게 제 출처였던
마음으로 귀향할 수 있을까.

《16》술독에 빠진 그리움

최승자

무수한 꿈이 그녀를 짓밟았다
독한 희망에 그녀는 썩어갔다
그리고 오늘밤 또다시 바람은
하늘 밖에서 그녀를 부르고
오오 벼락치는 그리움에
절망이 번개 광선처럼
그녀의 뇌 속에 침투한다
그녀의 머리통이 깨어지고
꿈이 좌르르 쏟아진다
뇌수와 함께.

《17》시간이 사각사각

최승자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사각사각 아름다운 설탕의 시간들
사각사각 아름다운 눈(雪)의 시간들
한 불안한 결정체로서의
시간들도 있습니다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시간이 지나갑니다
시간의 마술사는 깃발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사회가 휙,
역사가 휙,
문명이 휙,
시간의 마술사가 사각사각 지나갑니다
아하 사실은
(통시성의 하늘 아래서
공시성인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
시간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입니다)
시간이 사각사각
시간이 아삭아삭
시간이 바삭바삭
아하 기실은
사회가 휙,
역사가 휙,
문명이 휙,
시간의 마술사가 사각사각 지나갑니다

《18》시인

최승자

시인은 여전히 컹컹거린다.
그는 시간의 가시뼈를 잘못 삼켰다.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의 뼈를
그러나 시인은 삼켰고
그리고 잘못 삼켰다.

이 피곤한 컹컹거림을 멈추게 해다오.
이 대열에서 벗어나게 해다오.

내 심장에서 고요히,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나는 누워
비디오로 보고 싶다.

그리고 폐광처럼 깊은 잠을
꾸고 싶다.

《19》악순환

최승자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겐 공포였다.
나는 독 안에 든 쥐였고,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는 쥐였고,
그래서 그 공포가 나를 잡아먹기 전에
지레 질려 먼저 앙앙대고 위협하는 쥐였다.
어쩌면 그 때문에 세계가 나를
잡아먹지 않을는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오 한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20》어떤 아침에는

최승자

어떤 아침에는, 이 세계가
치유할 수 없이 깊이 병들어 있다는 생각.

또 어떤 아침에는, 내가 이 세계와
화해할 수 없을 만큼 깊이 병들어 있다는 생각.

내가나를 버리고
손 발, 다리 팔, 모두 버리고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숨죽일 때
속절없이 다가오는 한 풍경.

속절없이 한 여자가 보리를 찧고
해가 뜨고 해가 질 때까지
보리를 찧고, 그 힘으로 지구가 돌고 …….

시간의 사막 한 가운데서
죽음이 홀로 나를 꿈꾸고 있다.
(내가 나를 모독한 것일까,
이십 세기가 나를 모독한 것일까.)

《21》어떤 풍경

최승자

고요한 서편 하늘
해가 지고 있습니다
건널 수 없는 한 세계를
건넜던 한 사람이
책상 앞에서 시집들을
뒤적이고 있습니다

그가 읽는 시의 행간들 속에서
고요가 피어오릅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시간의 무상함

어떤 사람이 시간의 시를
읽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22》언젠가 다시 한번

최승자

언젠가 다시 한번
너를 만나러 가마.
언젠가 다시 한번
내 몸이 무덤에 닿기 전에.

나는 언제나 너이고 싶었고
너의 고통이고 싶었지만
우리가 지나쳐온,
아직도 어느 갈피에선가
흔들리고 있을 아득한 그 거리들.

나는 언제나 너이고 싶었고
너의 고통이고 싶었지만
그러나 나는 다만 들이키고 들이키는
흉내를 내었을 뿐이다.
그 치욕의 잔
끝없는 나날
죽음 앞에서
한 발 앞으로
한 발 뒤로
끝없는 그 삶의 무도를
다만 흉내내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너를 피해
달아나고 달아나는
흉내를 내고 있다.
어디에도 없는 너를 피해

언젠가 다시 한번
너를 만나러 가마
언젠가 다시 한번
내 몸이 무덤에 닿기 전에.

(이 세계의
어느 낯선 모퉁이에서
내가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23》여성에 관하여

최승자

여자들은 저마다의 몸속에 하나씩의 무덤을 갖고 있다.
죽음과 탄생이 땀 흘리는 곳,
어디로인지 떠나기 위하여 모든 인간들이 몸부림치는
영원히 눈먼 항구,
알타미라 동굴처럼 거대한 사원의 폐허처럼
굳어진 죽은 바다처럼 여자들은 누워 있다.
새들의 고향은 거기,
모래바람 부는 여자들의 내부엔
새들이 최초의 알을 까고 나온 탄생의 껍질과
죽음의 잔해가 탄피처럼 가득 쌓여 있다.
모든 것들이 태어나고 또 죽기 위해선
그 폐허의 사원과 굳어진 죽은 바다를 거쳐야만 한다.

《24》외롭지 않기 위하여

최승자

외롭지 않기 위하여
밥을 많이 먹습니다
괴롭지 않기 위하여
술을 조금 마십니다
꿈꾸지 않기 위하여
수면제를 삼킵니다.
마지막으로 내 두뇌의
스위치를 끕니다

그러면 온밤내 시계 소리만이
빈 방을 걸어다니죠
그러나 잘 들어 보세요
무심한 부재를 슬퍼하며
내 신발들이 쓰러져 웁니다

《25》이제 가야만 한다

최승자

때론 낭만주의적 지진아의 고백은
눈물겹기도 하지만,
이제 가야만 한다
몹쓸 고통은 버려야 한다

한때는 한없는 고통의 가속도,
가속도의 취기에 실려
나 폭풍처럼
세상 끝을 헤매였지만
나 고통이라는 말을
이제 결코 발음하고 싶지 않다

파악할 수 없는 이 세계 위에서
나는 너무 오래 뒤뚱거리고만 있었다

목구멍과 숨구멍을 위해서는
동사만으로 충분하고,
내 몸보다 그림자가 먼저 허덕일지라도
오냐 온 몸 온 정신으로
이 세상을 관통해보자

내가 더이상 나를 죽일 수 없을 때
내가 더이상 나를 죽일 수 없는 곳에서
혹 내가 피어나리라

《26》일찌기 나는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27》중구난방이다

최승자

중구난방이다.
한없이 외롭다.
입이 틀어 막혔던 시대보다 더 외롭다.

모든 접속사들이 무의미하다.
논리의 관절들을 삐어버린
접속이 되지 않는 모든 접속사들의 허부적거림.
생존하는 유일한 논리의 관절은 자본뿐.

중구난방이다.
자기 함몰이다.
온 팔 휘저으며 물 속 깊이 빨려 들어가면서
질러대는 비명 소리들로 세상은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없이 외롭다.
신앙촌 지나 해방촌 지나
희망촌 가는 길목에서.

《28》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최승자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雪)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듯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헤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29》파괴의 집

최승자

사방팔방으로 바람, 바람 소리.
바람 파도에 포위된 집,
누울 곳 없는 삼십칠 세.

없는 꿈과 있는 현실,
그 사이에서 바람……
바람 소리가 날 흔들어댄다.

영원히 뿌리 없는
허공의 방, 허방의 집.

허망하고 허망하여
이 집을 파괴합니다.
이 집을 복원하지 마십시오.
행여, 이 위에 기념 건물을 세우지 마십시오.
명실공히, 이 집은 파괴의 집입니다.

《30》해마다 유월이면

최승자

해마다 유월이면 당신 그늘 아래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내일 열겠다고, 내일 열릴 것이라고 하면서
닫고, 또 닫고 또 닫으면서 뒷걸음질 치는
이 진행성 퇴화의 삶,

그 짬과 짬 사이에
해마다 유월에는 당신 그늘 아래
한번 푸근히 누웠다 가겠습니다.

언제나 리허설 없는 개막이엇던
당신의 삶은 눈치 챘었겟지요?

내 삶이 관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오만과 교만의 리허설뿐이라는 것을

오늘도 극장 문은 열리지 않았고
저 혼자 숨어서 하는 리허설뿐이로군요.

그래도 다시 한번 지켜봐 주시겠어요?
(l go, l go 나는 간다.
(Ego, Ego, 나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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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시 모음 45편

《1》6월의 童謠

고재종

6월은 모내는 달, 모를 다 내면
개구리 떼가 대지를 장악해버려
함부로는 들 건너지 못한다네

정글도록 땀방울 떨구어서는
청천하늘에 별톨밭 일군 사람만
그 빛살로 길 밝혀 건넌다네

심어논 어린 모들의 박수 받으며
치자꽃의 향그런 갈채 받으며
사람 귀한 마을로 돌아간다네

《2》개기월식

고재종

이웃들과 아랫마을에 문화예술단 공연 보러 갔다가
공짜 공연 본 죄로 강권하는 만병통치약을 한 박스 이고 왔다
수십만 원 되는 외상값 미처 못 갚아서 독촉장 수없이 받았다
붉은 도장 팡팡 찍은 재산 압류 계고장 계속 받고
오밤중이건 새벽녘이건 협박 전화질 받다가
자식 직장 상사까지 알아내 전화질 한 ‘그놈 목소리’ 때문에
자식 앞길 막았다고 순창할매 홀로 제초제를 마셨다

전직 경찰관이라는 그 해결사의 쇠갈고리에 찍힌 삶을
캄캄하게 조문하고 있는 오늘, 개기월식의 지구라니!

《3》고요를 시청하다

고재종

초록으로 쓸어놓은 마당을 낳은 고요는
새암가에 뭉실뭉실 수국송이로 부푼다

날아갈 것 같은 감나무를 누르고 앉은 동박새가
딱 한 번 울어서 넓히는 고요의 면적,
감잎들은 유정무정을 죄다 토설하고 있다

작년에 담가둔 송순주 한 잔에 생각나는 건
이런 정오, 멸치국수를 말아 소반에 내놓던
어머니의 소박한 고요를
윤기 나게 닦은 마루에 꼿꼿이 앉아 들던
아버지의 묵묵한 고요,

초록의 군림이 점점 더해지는
마당, 담장의 덩굴장미가 내쏘는 향기는
고요의 심장을 붉은 진동으로 물들인다

사랑은 갔어도 가락은 남아, 그 몇 절을 안주 삼고
삼베올만치나 무수한 고요를 둘러치고 앉은
고금孤衾의 시골집 마루,

아무것도 새어 나게 하지 않을 것 같은 고요가
초록바람에 반짝반짝 누설해 놓은 오월의
날 비린내 나서 더 은밀한 연주를 듣는다

《4》광채

고재종

석모도 방죽, 그 아득한 억새 밭에 섰더니
일몰에 젖은 네 눈동자는
되레 무슨 깊고 푸른 수만 리로 일렁거렸다
억새 때문만도 아니게 길 하나 보이지 않고
내 눈은 내 눈동자를 보지 못할 때
네 눈동자에서 터져 나오는 광채는
저 수평선까지를 황홍(黃紅)으로 물들여놓곤
되레 넌 깊고 푸른 네 심연으로 잦아들었다
억새꽃 금발들이 하염없이 반짝거렸다


《5》그 희고 둥근 세계

고재종

나 힐끗 보았네
냇갈에서 목욕하는 여자들을
구름 낀 달밤이었지
구름 터진 사이로
언뜻, 달의 얼굴 내민 순간
물푸레나무 잎새가
얼른, 달의 얼굴 가리는 순간
나 힐끗 보았네
그 희고 둥근 여자들의
그 희고 풍성한
모든 목숨과 神出의 고향을
내 마음의 천둥 번개 쳐서는
세상 일체를 감전시키는 순간
때마침 어디 딴 세상에서인 듯한
풍덩거리는 여자들의
참을 수 없는 키들거림이여
때마침 어디 마을에선
훅, 끼치는 밤꽃 향기가
밀려왔던가 말았던가

《6》그리운 죄

고재종

산아래 사는 내가
산 속에 사는 너를 만나러
숫눈 수북이 덮힌 산길을 오르니
산수유 고 열매 빨간 것들이
아직도 옹송옹송 싸리울을 밝히고 서 있는
네 토담집 아궁이엔 장작불 이글거리고
너는 토끼 거두러 가고 없고
곰 같은 네 아내만 지게문을 빼꼼이 열고
들어와 몸 녹이슈! 한다면
내 생의 생생한 뿌리가 불끈 일어선들
그 어찌 뜨거운 죄 아니랴
포르릉 ,어치가 날며 흩어놓은
눈꽃의 길을 또한 나는 안다.

《7》기도하는 사람

고재종

길가의 오락기에서 아무리 두들겨대도
한사코 튀어나오는 두더지 대가리처럼
한사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퇴행성 고독의 습관 같은 게 그를 홀로 세운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우느냐고 하지 말아라
울 수라도 있다면 왜 기도하겠느냐고
반문하는 데에도 지쳐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게 없는 생이
나를 참을 수 없게 한다던 랭보여
중대장의 명령 하나에 인분을 먹은 병사들의
굴욕 같은 생도 이미 참았으니

다만 오그라지고 우그러지고
말라비틀어진 과일 도사리 같은 것으로
그를 아무도 눈여기지 않는 곳에 홀로 세우는
저주받은 고독의 습관이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저 풍찬노숙의 나날을 누구에게 물을까

《8》꽃의 권력

고재종

꽃을 꽃이라고 가만 불러 보면
눈앞에 이는
홍색 자색 연분홍 물결

꽃이 꽃이라서 가만 코에 대 보면
물큰, 향기는 알 수도 없이 해독된다

꽃 속에 번개가 있고
번개는 영영
찰나의 황홀을 각인하는데

꽃 핀 처녀들의 얼굴에서
오만 가지의 꽃들을 읽는 나의 난봉은

벌 나비가 먼저 알고
담 너머 大鵬도 다 아는 일이어서

나는 이미 난 길들의 지도를 버리고
하릴없는 꽃길에서는
꽃의 권력을 따른다

《9》날랜 사랑

고재종

장마 걷힌 냇가
세찬 여울물 차고 오르는
은피라미떼 보아라
산란기 맞아
얼마나 좋으면
혼인색으로 몸단장까지 하고서
좀 더 맑고 푸른 상류로
발딱발딱 배 뒤집어 차고 오르는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에
푸른 햇발 튀는구나

오호, 흐린 세월의 늪 헤쳐
깨끗한 사랑 하나 닦아세울
날랜 연인아 연인들아

《10》너의 얼굴

고재종

예기치 않은 어느 날 내 앞에서
눈물로 중독된 눈을 하고서는
무언가를 애써 말하려고 더듬, 더듬거리는
그러나 끝내 온몸이 뒤틀려버려 말을 못하는
너의 얼굴은 내게 계시(啓示)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무력한 네 얼굴로 나는 상처 받고
무력한 네 얼굴에 저항할 수 없다

버려진 고아처럼 나는 나를 얼마나 울어야 하나
홀로된 과부처럼 나는 세상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한밤중 나그네처럼 별의 지도도 없이

예기치 않게 나타난 내 앞의 너는
네가 당하는 가난과 고통으로 나의 하늘이다
나는 너로 인해 죄책 하지도 않고
나는 너를 연민하지도 않고
그러므로 나는 다만 너를 모실 뿐이다

기막히게는 말할 수 없는 네 뒤로
기막히게는 번지는 밀감 빛 노을을
네가 잃어버린 날에 대한 서러움이라기보단
네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곳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차마 부를 수 있다면

나는 중독된 눈물을 잃어버리고
말해질 수 없는 말을 잃어버리고
내 마음을 잃어버리기까지는, 너의 계시
너의 사랑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11》누님

고재종

저것 좀 보아 저 아가씨
봉선화 따서 손톱 묶네
저 아가씨 얼굴 좀 보아
홍색 자색 연분홍 드네
가슴 봉긋한 저 아가씨
꽃물 든 손 가슴에 얹네
저 먼 데로 까치발 딛네
말만한 엉덩이 저 아가씨
어쩌자고 저 아가씨
바알갛게 달아오르네
숨쉬기조차 힘들어 하네
아아, 저 아가씨 눈이슬짓네
내사 차마는 못 보겠네
진저리치다 깨어나니
울 밑의 봉선화 비에 젖네

《12》눈물을 위하여

고재종

저 오월 맑은 햇살 속
강변의 미루나무로 서고 싶다
미풍 한자락에도 연초록 이파리들
반짝반짝, 한량없는 물살로 파닥이며
저렇듯 굽이굽이, 제 세월의 피로 흐르는
강물에 기인 그림자 드리우고 싶다
그러다 그대 이윽고 강둑에 우뚝 나서
윤기 흐르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며
저 강물 끝으로 고개 드는 그대의
두 눈 가득 살아 글썽이는
그 무슨 슬픔 그 무슨 아름다움을 위해서면
그대의 묵묵한 배경이 되어도 좋다
그대의 등 뒤로 돌아가 가만히 서서
나 또한 강끝 저 멀리로 눈 드는
멀쑥한 뼈의 미루나무나 되고 싶다

《13》달밤에 숨어

고재종

외로운 자는 소리에 민감하다.
저 미끈한 능선 위의
쟁명한 달이 불러 강변에 서니,
강물 속의 잉어 한 마리도
쑤욱 치솟아 오르며
갈대 숲 위로 은방울들 튀기는가.
난 나도 몰래 한숨 터지고,
그 갈대 숲에 자던 개개비 떼는
화다닥 놀라 또 저리 튀면
풀섶의 풀 끝마다에
이슬농사를 한 태산씩이나 짓던
풀여치들이 뚝, 그치고
난 나도 차마 숨죽이다간
풀여치들도 내 외진 서러움도
다시금 자지러진다.
그 소리에 또또 저 물싸린가 여뀌꽃인가
수천 수만 눈뜨는 것이니
보라, 외로운 것들 서로를 이끌면
강물도 더는 못 참고 서걱서걱
온갖 보석을 체질해대곤
난 나도 무엇도 마냥 젖어선
이렇게는 못 견디는 밤,
외로운 것들 외로움을 일 삼아
저마다 보름달 하나씩 껴안고
생생생생 발광하며
아, 씨알을 익히고 익히며
저마다 제 능선을 넘고 넘는가.
외로운 자는 제 무명의 빛으로
혹간은 우주의 쓸쓸함을 빛내리.

《14》대설

고재종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주막집 난로엔
생목이 타는 것이다
난로 뚜껑 위엔
술국이 끓는 것이다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괜히 서럽고
괜히 그리워
뜨건 소주 한 잔
날래 꺽는 것이다
또 한잔 꺽는 것이다

세상잡사 하루쯤
저만큼 밀어두고

나는 시방
눈 맞고 싶은 것이다
너 보고 싶은 것이다

《15》면면함에 대하여

고재종

너 들어 보았니
저 동구밖 느티나무의
푸르른 울음소리

날이면 날마다 삭풍 되게는 치고
우듬지 끝에 별 하나 매달지 못하던
지난 겨울
온몸 상처투성이인 저 나무
제 상처마다에서 뽑아내던
푸르른 울음소리

너 들어 보았니
다 청산하고 떠나버리는 마을에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그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소리 죽여 흐느끼던 소리
가지 팽팽히 후리던 소리

오늘은 그 푸르른 울음
모두 이파리 이파리에 내주어
저렇게 생생한 초록의 광휘를
저렇게 생생히 내뿜는데

앞들에서 모를 내다
허리 펴는 사람들
왜 저 나무 한참씩이나 쳐다보겠니
어디선가 북소리는
왜 둥둥둥둥 울려나겠니

《16》무늬

고재종

나뭇잎 그늘이 일렁일렁
오솔길을 쓸고
오솔길에 무늬를 짠다

나뭇잎 그늘 없는
나뭇잎이 어디에 있는가

나뭇잎 그늘에
누워 마음의 상처를
쓸지만 상처 없이는
생의 무늬를 짜지못한다

아. 사랑의 그늘은
나를 이윽하게 하지
이윽함 없는 봄날은
찬란히 갔지

나뭇잎 그늘이 일렁일렁
내 생의 이정(里程)을 쓸고
그 이정의 무늬를 밟으며

나는 이제 막 중생의
하루를 통과하는데

시방 눈앞에 일렁이는 게
나뭇잎인가 그 그늘인가

《17》묵정지 이 쓸쓸함의 저편

고재종

한때의 푸르른 피를 잘 씻어낸

억새꽃 은발들이 잔광에 반짝인다.
한때의 무성한 살을 잘 비워낸
억새꽃 은발들이 바람에 쓸린다.
이때쯤 개울물 소리는 청천에 닿고
나는 묵정지 서 마지기, 할말이 없다.
이 저녁까지 나날의 서러움을 잘 부린
머슴새가 시방도 쭉쭉쭉쭉 소를 몬다.
이 저녁까지 나날의 그리움을 잘 빛낸
머슴새가 시방도 그 누굴 호명한다.
이곳저곳 구절초가 속속 듣고
너는 못 뒤엎는 자리, 들을 귀가 없다.
바람은 또 우수수히 풀밭에서 인다.
풀들은 또 소슬하게 그만큼 시든다.
하여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먼가.
꽃도 새도 어둠으로 눕는 자리엔
두루총총 별이 참 많이는 돋는다.
두루총총 서리 쓴 들국빛으로 돋아선
너나 나나의 눈물의 사리를 닦는다.
그러면 타는 밭과 빠지는 수렁을 넘던
우리의 외진 사랑과 노래여, 안녕.
이 저녁 아득아득 저무는 길에서도
찔레 열매들 형형, 사상을 묻고
실베짱이 씨르래기 풀무치 한 떼는
시간 너머의 더 높은 꿈을 연주한다.
너와 난들 이 무명을 무얼로 점등하랴.

《18》백련사 동백숲길에서

고재종

누이야, 네 초롱한 말처럼
네 딛는 발자국마다에
시방 동백꽃 송이송이 벙그는가.
시린 바람에 네 볼은
이미 붉어 있구나.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에 씻어 보겠다는 나인가.
이윽고 저렇게 저렇게
절에선 저녁종을 울려대면
너와 나는 쇠든 영혼 일깨워선
서로의 무명을 들여다보고
동백꽃은 피고 지는가.
동백꽃은 여전히 피고 지고
누이야, 그러면 너와 나는
수천 수만 동백꽃 등을 밝히고
이 저녁, 이 뜨건 상처의 길을
한번쯤 걸어 보긴 걸어 볼 참인가.

《19》봄 마당에서 한나절

고재종

하늘은 쪽빛이고 마당은 환하다.
햇병아리 몇 마리가 무언가를 콕콕 찍고
토방의 늙은 개가 그걸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도 세상 살며
바람에 꾸벅이는 제비꽃이나
처마 밑에 떨어진 참새 주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 잦아진다. 담 너머 대숲의
고요 모르는 수런거림과
사립 옆 윤기 나는 감나무 잎의
반짝거림에, 한때는 목숨이라도 걸 듯
그리움과 노여움을 옹호하기도 했던 것이다.
먹이 모자라던 까치 지난 겨울엔
개밥 그덩에까지 내려와 어슬렁거리더니
그 까치 시방은 마당을 차고 오르며
흰 무늬 날개 활짝 펴서 대숲 위를 다닌다.
그 부신 꿈의 비상엔 언제나
차고 오를 마당과 몇 알의 밥알이 필요했던
것인데, 나는 시방 생의 어디쯤
어슬렁거리며 날개 짓 해보는 것인가.
마당은 환하고 불혹은 눈앞이다.
헛간의 녹슨 경운기와 담장 밑의 풀덤불이
세월을 가르치고, 장독대의 곰삭은 옹기들은
미륵불처럼 처연하다. 서러운 것들의
모든 가슴이 미륵불 되면 좋으련만
아직도 외양간의 부사리는 영각을 쓰며
마당을 한바탕 뒤흔드는 것이다.
아직도 세상에 사랑을 부르는 소리가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마당 귀퉁이의 참배 꽃은 펄펄
져내리고, 나는 목이 메이는 것도 지쳐
물끄러미 생의 안마당을 들여다보는 일에
익숙해지고, 우편배달부는 늘 늦는 것이다.

《20》북극성을 일별하다

고재종

별 볼일 없는 일들 때문에
별 한번 보지 못하고 살다가
추석날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자리 사이
북극성, 당신을 일별합니다.
늘 저의 일에 관심을 두시고
언제든지 맞아들일 채비를 마친 채
저를 내려다 보시는 당신의
恒心 아래서 저는 떠돌이였습니다.
아주 어릴 적, 제가 사랑하는 소녀와
늦도록 강둑에 앉아 애너벨 리를 읽고
아예 씨르래기 울음을 연주 삼아
당신을 애너벨 리로 명명했지요.
그 호명 이후 늘 당신은
제가 부자될만하면 가난케 하고
제가 날 것 같으면 어깨를 치시고
제가 연애할 양이면 눈멀게 하셔서
쌀싸라기 같은 그때 그 순결을
호젓이 돌아보게 했지요.
제가 헌 상자며 넝마 등을 가득 싣고
좌우로 낑낑대며 비탈길을 오르는
굽은 등허리의 리어카꾼 노인처럼
생을 낑낑대며 끌어대다 돌아와
이제 이렇게 당신께 고백합니다.
애초에 당신을 함께 호명했던 소녀마저
이젠 남의 여자가 된 지 오래라고.

《21》死因

고재종

세상에 아름다운 시신은 없다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 박혜진 씨는 다만
사회가 외면하는 시신의 침묵을
묵묵히 대변할 뿐이라며 웃는다
부검 날엔 몸에 배는 부패 냄새 때문에
밖에 나가 점심도 먹을 수 없는 그녀가
토막 난 사체의 위장을 가르고
썩어 문드러진 사체에서 피를 뽑고
유괴 후 숨진 아이 부검 때는 펑펑 울기도 한단다
하지만 그녀가 고독과 죽음을 관통하며
그토록 밝히고자 하는 사인은
저마다에게 어떻게든 있긴 있는 것일까
마음대로 처치할 수 있는 하인이 없고
공포를 휘두를 제국이 없어서 자신을 증오하는
우리들의 너무도 의당한 천국에서
우리들의 죽음은 스스로 저당 잡힌 게 아니던가
인간에 대한 예의
그 관대한 거짓말 때문에
오월 강변의 미루나무 이파리들이
보석처럼 짤랑거린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

《22》성숙

고재종

바람의 따뜻한 혀가
사알작,우듬지에 닿기만 해도
갱변의 미루나무 그 이파리들
짜갈짜갈 소리날듯
온통 보석조각으로 반짝이더니

바람의 싸늘한 손이
씽 씨잉, 싸대기를 후리자
갱변의 미루나무 그 이파리들
후둑후두둑 굵은 눈물방울로
온통 강물에 쏟아지나니

온몸이 떨리는 황홀과
온몸이 떨리는 매정함 사이
그러나 미루나무는
그 키 한두자쯤이나 더 키우고
몸피 두세치나 더 불린채

이제는 바람도 무심한 어느날
저 강 끝으로 정정한 눈빛도 주거니
애증의 이파리 모두 떨구고
이제는 제 고독의 자리에 서서
남빛 하늘로 고개 들줄도 알거니

《23》세월의 여자

고재종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의 상족암에
때아닌 겨울비 치는 바다,
파도가 고래 떼처럼 몰려온다 말한
그녀는 거기 홀로 견디는 거다.
그녀와 거기서 좀 지체해도 좋았던 그곳엔
백악기 때의 공룡 발자국과
만권서 쌓은 듯한 퇴적암에 층층 새겨진 세월,
그것과 함께 그곳에선
그녀 가슴에 패인 삶의 사랑의 상처도
빗물 고이는 공룡 발자국처럼 오래
가리라는 것을 짐짓 모른 체해야 한다.
몇 번이고 숨이 턱턱 막혀
그 가슴의 울혈, 퇴적암처럼 더께 얹고 나니
고독은 삶에 대한 경건한 수절이더라며
그녀는 오연한 눈빛이던 거다.
어쩌면 그녀는 일억 년 전까지는 추억되는
무상의 시간들을 보았는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또 만권서보다 더한 것들을
세월 밖에까지 쌓고 싶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람이 조금만 일어도, 바다가
고래 떼처럼 몰려온다고 말한 것도 그녀다.
난 비 아니라도 온통 젖어 그만이던 거다.

《24》수선화 그 환한 자리

고재종

거기 뜨락 전체가 문득
네 서늘한 긴장 위에 놓인다

아직 맵찬 바람이 하르르 멎고
거기 시간이 잠깐 정지한다

저토록 파리한 줄기 사이로
저토록 환한 꽃을 밀어올리다니!

거기 문득 네가 오롯함으로
세상 하나가 엄정해지는 시간

네 서늘한 기운을 느낀 죄로
나는 조금만 더 높아야겠다

《25》수숫대 높이만큼

고재종

네가 그리다 말고 간
달이 휘영청 밝아서는
댓 그림자 쓰윽 쓰윽
마당을 잘 쓸고 있다
백 리까지 확 트여서는
귀뚜라미 찌찌찌찌찌
너를 향해 타전을 하는데
아무 장애는 없다
바람이 한결 선선해져서
날개가 까실까실 잘 마른
씨르래기의 연주도
씨르릉 씨르릉 넘친다
텃밭의 수숫대 높이를 하곤
이 깊고 푸른 잔을 든다
나는 아직 견딜 만하다
시방 제 이름을 못 얻는
대숲 속의 저 새울음만큼,

《26》수평선

고재종

저렇게는 저렇게는
물낯에 꽂히는 빛의 작살 떼와

그 작살 뗄 맞고 번쩍번쩍
물낯 위로 튀는 숭어 떼와

그 또 숭어뗄 채고 채는
하도나 무정한 갈매기 떼여

이런 날엔 이런 날엔
네게 차마 못 닿고 부서지던
서러움, 서러움의 떼까지

이내 까치놀 이는 먼 곳까지

《27》숲의 묵언

고재종

숲은 아무 말 않고 잎사귀를 보여준다.
저 부신 햇살에 속창까지 길러 낸 푸르른 투명함
바람 한 자락에도 온 세상 환하게 반짝이며
일렁이는 잎새 앞에서
내 생 맑게 씻어내고 걸러낼 것은 무엇인가

숲은 아무 말 않고 새소리를 들려준다.
저것이 어치인지 찌르레기인지
소리 떨리는 둥그런 파문 속에서 무명의 귀청을 열고 들어가
그 무슨 득음을 이루었으면 한다
숲은 그러자 이윽고 꽃을 흔들어 준다

어제는 산나리꽃 오늘은 달맞이꽃
깊은 골 백도라지조차 흔들어 주니
내 생 또 얼마나 순해져야
맑은 꽃 한 송이 우주 속 깊이
밀어 올릴 수 있을까

문득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다
때마침 오솔길의 다람쥐 눈빛에 취해
면경처럼 환한 마음일 때라야 들려오는 낭랑한 청청한 소리여
이 고요 지경을 여는 소리여

그러면 숲의 침묵이 이룬 외로운 봉우리 하나
이젠 말쑥하게 닦을 수 있을 것 같다

설령 내 석삼년 벙어리 외로움일지라도
이 숲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니다
숲은 다만 시원의 솔바람 소리를 들려줄 뿐이다.

《28》시간에 기대어

고재종

강의 면목이라면 면면한 유수와 범람,
강물 따라 걷는 마음은 넘치고 또 흐르네.
보리숭어며 비오리 떼가 튀고
창졸간의 갸륵한 것들이 좋이 울어도
순간의 꽃보다는 이야기로 더 유장할 터,
금결은결 반짝이는가 했더니 금세
그리움의 파란으로 일렁이는 시간 아닌가.
한때는 한도 없이 파닥거렸던
강변 은백양 잎새와 첫사랑의 흑단머리는
바람의 갈래 갈래로 흩어지고
오늘은 강가에 퍼지는 라일락 향기,
강섶을 일구는 고라니며 노인장과 함께
또 무엇, 그 누구로 흘러드는 구름 떼라니!
구름이 깊어지면 강물도 높아져서는
서러움 밖의 그 무엇이라도 소환할 듯한 모색,
서녘 놀이 비쳐 든 갈대밭 속의 연애 너머
썩지 않고 들끓는 고독의 항성으로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그런 유정의
경계 같은 것들을 오늘도 추문 하는 것이랴.
흐르는 강에 차마 가닿지 못하고
사소한 마음 하나에도 수만 물비늘을 뒤채는,
지금은 결락한 꿈의 시간에 기대어
제 물소리에 귀 기울이는 강의 명색이여.

《29》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고재종

그토록 흐르고도 흐를 것이 있어서 강은
우리에게 늘 면면한 희망으로 흐르던가.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듯
굽이굽이 굽이치다 끊기다
다시 온몸을 세차게 뒤틀던 강은 거기
아침 햇살에 샛노란 숭어가 튀어오르게도
했었지. 무언가 다 놓쳐버리고
문득 황황해하듯 홀로 강둑에 선 오늘,
꼭 가뭄 때문만도 아니게 강은 자꾸 야위고
저기 하상을 가득 채운 갈대숲의
갈대잎은 시퍼렇게 치솟아오르며
무어라 무어라고 마구 소리친다. 그러니까
우리 정녕 강길을 따라 거닐며
그 윤기나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던
날들은 기어이, 기어이는 오지 않아서
강물에 뱉은 쓴 약의 시간들은 저기 저렇게
새까만 암죽으로 끓어서 강줄기를 막는
것인가.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
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이여,
삶은 강변 미루나무 잎새들의 파닥거림과
저 모래톱에서 씹던 단물 빠진 수수깡 사이의
이제 더는 안 들리는 물새의 노래와도 같더라.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좀 졌으면
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며 흐를 강물이 시방 가르치는 건
소소소 갈대 잎 우는 소리 가득한 세월이거니
언뜻 스치는 바람 한 자락에도
심금 다잡을 수 없는 다잡을 수 없는 떨림이여!
오늘도 강변에 고추멍석이 널리고
작은 패랭이꽃이 흔들릴 때
그나마 실날같은 흰줄기를 뚫으며 흐르는
강물도 저렇게 그리움으로 야위었다는 것인가.

《30》억새 꽃 빛 서천에 놀이나 좀 비낄까

고재종

알밤 다 쏟아버린 밤송이 같은
마음의 거처를 찾아
십일월의 억새 밭에 든다.
이 쓸쓸한 봉두 난발의 바람에서
내 어쩌려고 고향을 느끼는 건
내 안에 든 행려나 남루 때문일 터.
먼 데서 아주 먼 데서
내 안으로 속삭여오는 바람은
시퍼런 초록으로 뻗치던 억새 밭에
마른 울음이나 치고, 그 울음에
나도 뭔가 한없이 떨리는 게 있지만
내 몸의 새것들을 누더기로 만들고
나날의 새것들을 흙먼지로 만들고
비로소 눈이 보이는 나는
억새 속에 고개 떨군 귀신이 보인다.
어깨를 들썩이는 망나니를 쓸어댄다.
알밤 다 쏟아버린 밤송이 같은
마음의 거처에 누우면
훗날 거기 바람도 없이 억새도 없이
억새 꽃 빛 서천에 놀이나 좀 비낄까.

《31》에로스의 혀

고재종

차마 뱉을 수 없는 말이 입는 육체는
타는 듯이 취하는 향기와
터진 석류의 신음이 퉁기는 탄금

한 세계를 발사하는 치명의 눈빛과
붉은 입술의 이승저승
출렁이는 파도의 무한을
하루 더 춤추게 할 시간의 깊숙한 창날

차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의 음부에서
새어나온 고유의 방언들이
처절하게 미끄러지는
모든 색택과 조형의 전위인 달항아리

막 따낸 수밀도를 베어 물며
달고 탄탄한 모든 것의 목록을 해독하는
미뢰, 에로스의 극히 사적인 혀는

뜨거운 왕국의 첫 글자
추문의 고요라면 더 뜨거울 왕국의 화두

승인하라, 시와 나비의 리듬
질정 없는 연주의 알레그로비바체
아편 먹은 듯 번지는 총천연색의 꽃구름

《32》외로움에 대하여

고재종

들어봐, 저 처서철의 나뭇잎이
저렇게 서걱이는 소리,
풀잎들이 스치는 소리,
시방 달빛은 휘영청하고
앞들의 수숫대는 마냥 일렁이는 소리

들어봐, 저 풀섶의 씨르래기며
귀뚜라미 울어 끓는 소리에
동구밖 느티나무의 잎새들
\바르르 떠는 소리,
그 옆 대숲 위에 부시럭부시럭
참새떼 뒤척이는 소리

외로운 이는 소리에 민감하나니
들어봐, 저기 저렇게
기차 오는 소리,
기적 소리를 들으며 달려와
기차는 또 저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져 가버리는 소리
그러면 그러면, 그때마다
그 기차 불빛 한 줄기에도 반짝반짝
온 목숨 꽃사래치다간
이제 무척 야위어버린, 저 간이역
코스모스들이 목 늘어나는 소리,
역사 위로는 툭, 툭,
오동잎 아득히 지는 소리

《33》웅숭 깊어지는 사랑

고재종

수수 꽃 다리 꽃이
바람에 우수수 거릴 때마다
그 청량한 향기가
보이지 않는 사방의
별을 생생히 닦아 내느데요

수수 꽃 다리 꽃을
정 혼자에게 보내선
파혼을 통고했다는 한 여인은
저 꽃을 일러
젊은 날의 추억이라 했다지요

그런 서럽고 서느러운
그늘이 드리워져
수수 꽃 다리 꽃도 우리네 사랑도
아, 연자줏빛으로
웅숭깇어지는 건 아닐런지요

《34》유서

고재종

된서리에 배추 속 차듯이 살면
땅 밑의 알토란 무더기 캐듯 할 거라더니,

개평술 몇 잔에 이 집 저 집
상갓집 개처럼 어슬렁거리다간 죽었다.

평생을 리자만 갑다 말었따!
모진 생만큼이나 쓰라린 유서 한 줄 남기고,

서로 외면하는 그의 집에 삭풍만 들락거리며
문에 붙은 조합의 차압 딱지를 추문해댔다.

《35》이승 꽃의 향기에 저승 새가 취하면

고재종

고산의 석남화라 했지요.
네가 석남화 머리에 꽂고 죽으면
나도 석남화 머리에 꽂고 죽는소리에
너와나와가 함께 깨어난다고 했지요.
백두산 골짝 암벽에 피는 꽃,
노랑만병초라고도 하는데요.
그 향기가 하도나 좋아선, 네 오랜 체증도
내 밭은 정기도 새삼새삼 씻는다는데요.
그것이 광대고원을 달리는 바람 향이거나
그것이 감사나운 강풍이 잠깐 비낀 날,
아청빛 하늘의 흰구름 향이거나
그것이 구름 저편에 아스라히 묻힌
시간 밖의 시간을 일깨우는 은하 향이어서
그래요, 석남화 향기 맡으면
妙音鳥라던가 그런 새가 울 것 같아요.
극락정토 설산에 살아서
너무도 춤 잘 추고 너무도 미음을 내어선
네가 병들고 내가 죽을지라도
왜 아니 싱싱하고 왜 아니 생생하도록
그렇게 그렇게 새가 울고 말겠지요.
그러면 석남화주, 내 마시고 너도 마시고
한 오십년 더 우는 거예요, 그 눈물로
꽃향기와 새 노래 듣는 꿈길을
너와나와는 조금은 닦을 수가 있어서
두발부리 두억시니와 같은 세상의
서러운 사랑들 먼저 걷게 할 테지요.

《36》정자나무 그늘 아래

고재종

느티나무 수만 이파리들이 손사래 치는
느티나무 그늘 소쇄한 정자에
애진 마음이 다 되어 앉아본 적이 있느냐.
물색 푸른 앞들은 가멸지고,
나는 오늘도 정자에 나와선
멍석몰이쯤 당한 삭신이라도
바람의 아홉새베에 씻고 씻어보는 것이다.
느티나무 그늘 암암할수록
그늘 밖의 세상은 아연 환해지는
느티나무 그늘에 너와라도 함께인 듯 앉아,
저 느티나무의 어처구니 둥치와
둥치에 새겨진 세월의 鱗片을 생각하면
오목가슴이 꽉 메여오기도 하는데,
나는 내 사소한 날의
우련 우련 치미는 서러움만
매미 떼의 곡지통에 실어보는 것이다.
이제는 찾는 이도 몇 안 되는 정자에
시방 몇몇의 고랑진 허드레 얼굴들,
그 흙빛 들수록 앞들은 점점 푸르러지는
느티나무 그늘 생생한 정자에서
어제는 하염없던 쑥국새 울음을 듣고
시방은 치자향 아득한 것도 맡아보는데,
딴엔 꽃과 새의 視聽 너머에
더 간절한 바도 있는 것이다.
가령 이 느티나무 둥치 부여안고
흰 달밤, 어느 여인이 목놓아 울고
이 느티나무 둥치 찍어대며
웬 봉두난발이 발분했던가 하는 것들인데,
너는 언젠가 추억되는 것의 아름다움
혹은 슬픔이라고 했던가. 나는
내친김에 실낱 줄기 못 끊는 저 냇물과
그 냇가의 새까만 벌때추니 떼며
겨울이면 마을의 그만그만한 집들과
나뭇가지 끝마다 열리는 별 떼랑
하냥 난장을 트던 것도 되새김하다간,
그 은성했던 육두문자와 파안대소와도
참 서느럽게는 등을 돌린 정자에 앉아
오늘은 다만 성성한 노동과
오늘은 다만 뜨거운 사랑과 휴식의
오늘의 생생한 나라를 묻고 묻는 것이다.
오늘도 간간 쑥국새 울음은 깃들어선
이렇게 두 눈 그렁그렁하게는
흰 구름 저편까지를 바라보게 하는데
그러면 저기, 저 生은 또 어쩌려고
뭉실뭉실 이는 수국화처럼
환한 그늘로 차오르고,
이쯤이면 나도 그만 애진 마음이 다 되어
부쩌지 못하는 걸 너도 알겠느냐.
그러다가도 상처투성이의 느티나무와
그 상처마다에서 끈덕지게는 뽑아내는
푸른 잎새를 헤다보면
그 잎새 하나로 默默靑靑 남은 일도
너무 서러워지지는 않겠다 싶은 날,

《37》즐거운 경배

고재종

나는 가난해서 면서기의 권세도 없이
냉이, 패랭이, 감국, 바람꽃
그 여린 숨탄것들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유는 꽃들에게 가서 물으라
다만 그 애젖함에 목이 메리라

《38》천지간의 네 속삭임

고재종

나, 무엇을 차마 기다리지 않았지만
무어라 무어라, 종일 속삭이는
저 봄비 아득한 숨결은 돌아와
이제 마악 옴짓거리는 살구나무의
어린 꽃망울엔 무슨 구슬이 엉기는지
와르르 무너지는 해동의 담 너머
앞들 메말라터진 보리밭엔
무슨 꿈들이 파릇파릇해지는지
고요하여라, 다만 천지가 속삭이며
서로를 한없이 달래는 소리뿐
나, 무엇을 차마 기다리지 않았지만
그 오랜 지글거림도, 그 지글거림의
내 영혼 속 쓸쓸한 적막산천도
이제는 깨어나 봄비 머금는 시간,
동구밖 당산나무 둥치는
왜 그렇게 부르르 떨어대는지
거기 때까치는 젖어드는 날개를 접고
왠 생각에 골똘히 잠겼는지
나, 무엇을 차마 기다리지 않았지만
내가 그저 살아낸 모든 상처들이
저 봄비 융융한 숨결로 넘쳐나
十方이 촉촉히 젖어든다면
세상 모든 죽은 것들의 흙은
산 것들의 새싹들을 속속 틔우는지
아니 이 고요의 밀림 속, 무엇 하나
속삭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봄비는
내 생의 작은 뜰을 꽤는 적셔볼 참인지

《39》첫사람

고재종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40》청춘

고재종

동백꽃 송이송이가
저렇게는
빨갛게 탐나는
피어나는 시간을
사무치는
사무치는 시간이라 할까.
저 동박새 한 마리
동백가지에 앉아
동백꽃 송이송이를
차마 쪼다간
한 번 울고는
먼바다를 바라보는데
목이 메이는
목이 메이는
무엇이라도 있어서일까.
동백꽃 송이송이가
빨갛게 무참하게
지는 날에는
저 파랗게 질린 바다도
야심하도록
야심하도록 문창가에
해조음을 밝혀놓고,
너와 나는
홍역을 앓듯
홍역을 앓듯
목놓아 울지도 못하던
자청의 밤이 있었다.

《41》출렁거림에 대하여

고재종

너를 만나고 온 날은, 어쩌랴 마음에
반짝이는 물비늘 같은 것 가득 출렁거려서
바람 불어오는 강둑에 오래오래 서 있느니
잔 바람 한 자락에도 한없이 물살 치는 잎새처럼
네 숨결 한 올에 내 가슴별처럼 희게 부서지던
그 못다 한 시간들이 마냥 출렁거려서
내가 시방도 강변의 조약돌로 일렁이건 말건
내가 시방도 강둑에 패랭이꽃 총총 피우건 말건

《42》침묵에 대하여

고재종

용구산 아래 있는 나의 오래된 우거는
용과 거북이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는 사방이
단단한 침묵으로 둘러쳐 있다

침묵은 녹슨 함석대문에 붙어 있고
마당가에 비쭉비쭉 솟은 망촛대로 자라고
침묵은, 재선충병에 걸린 뜰의 반송으로 붉어지고
토방에 벗어 둔 검정고무신으로 암암하다

어느덧 내 몸조차 침묵으로 하나 됐다가
그중 몇 개쯤 파계하여 들고양이로 울다가
때론 용과 거북이가 재림하길 염불하게도 하는
무자비하고 포악한 침묵이란 짐승은

송송 구멍이 뚫리는 외로움의 골다공증과
사괘가 마구 뒤틀리는 고독의 퇴행성관절염과
바람에 욱신거리는 그리움의 신경통을 앓는
앞집 폐가에 달라붙어 와지끈,
그 근골이 주저앉을 때까지
시간의 공적(空寂)에 대하여 더는 묻지도 않는다

침묵의 폐허를 차마 감추지 못하는 달빛은
이것이 무장무장 은산철벽을 치는 것이어서
용과 거북이의 뿔 자라는 소리 듣다 보면
나는 나일 것도 없다고 할 때가 오리라, 생각한다

《43》할매 말에 싹이 돋고 잎이 피고

고재종

고들빼기는 씨가 잔게 흙에다 섞어 뿌리고
도라지는 잔설 있을 때 심거야 썩지 않는다네
진안장 귀퉁이 주재순 할매의 씨앗가게
콩씨 상추시 아주까리씨며 참깨씨랑
요모조모 다 있는 씨오쟁이마다 쌔근거리는 씨들
요렇게 햇볕 좋고 날 따수어야 싹이 튼다네
흙이 보슬보슬해져야 쑥쑥 자란다네
세상에 저 혼자 나오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다 씨가 있어야 나온다는 할매 말에
금새 수숫잎이 일렁이고 해바라기가 돌고
배추가 깍짓동만 해지고 참깨가 은종을 울리는
장터, 이제 스스로는 무얼 더 생산할 수도 없이
유복자가 해준 틀니에 등은 온통 굽었는데
나는 작은 게 좋아, 요 씨앗들이 다 작잖아,
요것 한 줌이면 식구들 배불리 먹인다는 할매는
길 걸을 때면 발길 닿는 데마다 씨오쟁이를 열어
갓씨 고추씨 오이씨 죄다 뿌린다네
할매에겐 땅 한 뼘 없어도 걸어댕겨 보면
천지에 온통 오목조목 씨뿌릴 땅이어서
어느 누가 거두어 가든 상관 않고 뿌린다네
누가 됐든 흡족하게 묵으면 월매나 좋겄냐고.

《44》화음

고재종

나의 사랑은 가령
네 솔숲에 부는 바람이라 할까
그 바람 끌어안고 또 흘려보내며
온몸으로 울음소리 내는 것이
너의 사랑이라 할까

나의 바람 그러나
네 솔숲에서만 그예 싱싱하고
너의 그지없는 울음 또한
내 바람맞아서만 푸르게 빗질하는
그런 비밀이라 할까 우리의 사랑

《45》목 백일홍 꽃 그늘에서 보낸 한철

고재종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노래한 시인은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고 적었네.
오늘 나는 목 백일홍 꽃 그늘에서
석 달 열흘은 사랑하리라고 적어도
나의 큰 죄과는 어쩔 수 없네, 늘 삶의 바깥에
숨은 음모가 있는 거라고 핑계댔으니
불행은 내가 창조한 신이어서,
저 황홀한 아편 송이송이 같은 색들
아편 맛 같은 색정에 저항하지 못하는
삼복염천의 호사를 어찌하랴.
회의하다니 몽상하다니, 고통은 여기 있고
우울이라니 동경이라니, 죽음은 내가 원했다.
새 애인을 만나 전 남자의 아이를 지우러 가는
여자가 걷는 길처럼
내가 걷는 길은 언제나 나의 형벌이었으니
삼복염천 개는 제발 목 달지 말고, 피비린내는
참수의 무리가 닥치기 전에
온통 색뿐이어서 색정뿐이어서
천지가 따로 없는 저 황홀로 터지며
석 달 열흘은 사랑하리라 해도, 복날
개처럼 늘어진 환멸 때문에
마냥 긁어대는 상처에서 끊임없이 피가 나는
내 비명의, 송이송이의, 목백일홍만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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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시 모음 35편

《1》1월

오규원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 일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 일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의 발성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 일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함성

《2》9월과 뜰

오규원

8월이 담장 너머로 다 둘러메고
가지 못한 늦여름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뜰 한켠
까자귀나무 검은 그림자가
퍽 엎질러져 있다
그곳에
지나가던 새 한 마리
자기 그림자를 묻어버리고
쉬고 있다

《3》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오규원

서울은 어디를 가도 간판이 많다.
4월의 개나리나 전경(全景)보다 더 많다.
더러는 건물이 마빡이나 심장
한가운데 못으로 꽝꽝 박아 놓고
더러는 문이란 문 모두가 간판이다.
밥 한 그릇 먹기 위해서도 우리는
간판 밑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소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도 우리는
간판 밑으로 또는 간판의 두 다리 사이로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서는 사전에 배치해 놓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
마빡에 달린 간판을 보기 위해서는 두 눈을 들어
우러러보아야 한다.
간판이 있는 곳에는 무슨 일이 있다
좌와 우 앞과 뒤 무수한 간판이 그대를 기다리며 버젓이
가로로 누워서 세로로 서서 지켜보고 있다.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자세히 보라
간판이 많은 집은 수상하다.

《4》강 건너

오규원

벚 고개에는
산 오리나무
갈림길에는
표지판 위의 문호와
서후
그리고 대지에는
애기 똥 풀과
조팝나무

《5》개봉동과 장미

오규원

개봉동 입구의 길은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
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나와
장미는
길을 제 혼자 가게하고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

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
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장미는 이곳 주민이 아니어서
시간 밖의 서울의 일부이고,
그대와 나는
사촌(四寸)들 얘기 속의 한 토막으로
비 오는 지상의 어느 발자국에나 고인다.

말해 보라
무엇으로 장미와 닿을 수 있는가를.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
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
두드려 보라 개봉동 집들의 문은
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

《6》거리의 시간

오규원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 사내가 간다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뒷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의 모가지 하나가
여러 사내 어깨 사이에 끼인다
급히 여자가 자기의 모가지를 남의 몸에
붙인다 두 발짝 가더니 다시
사람들을 비키며 제자리에 붙인다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 여자의
핸드백과 한 여자의 아랫도리 사이
하얀 성모 마리아의 가슴에
주전자가 올라붙는다 마리아의 한쪽 가슴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놀란 여자 하나
그 자리에 멈춘다 아스팔트가 꿈틀한다
꾹꾹 아스팔트를 제압하며 승용차가
간다 또 한 대 두 대의 트럭이
이런 사내와 저런 여자들을 썩썩 뭉개며
간다 사내와 여자들이 뭉개지며 감동할
시간을 주지 않고
나는 시간을 따로 잘라내어 만든다

《7》겨울 나그네

오규원

지난 겨울도 나의 발은
발가락 사이 그 차가운 겨울을
딛고 있었다.
아무데서나
심장을 놓고
기우뚱, 기우뚱 소멸을
딛고 있었다.

그 곁에서
계절은 귀로를 덮고 있었다.
모음을 분분히 싸고도는
인식의 나무들이
그냥
서서 하루를 이고 있었다

지난 겨울도 이번 겨울과
동일했다.
겨울을 밟고 선 애 곁에서
동일했다.

마음할 수 없는 사랑이여, 사랑……
내외들의 사랑을 울고 있는 비둘기
따스한 날을 쪼고 있는 곁에서
동일했다.
모든 나는 왜 이유를 모를까.
어디서나 기우뚱, 기우뚱하며
나는 획득을 딛고
발은 소멸을 딛고 있었다.

끝없는 축복.
떨어진 것은 根대로 다 떨어지고
그 밑에서 무게를 받는 日月이여
모두 떨어져 덤숙히 쌓인 위에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발자국이 하나씩 남는다.

손은 필요를 저으며 떨어져나가고.
손은 필요를 저으며 떨어져나가고.

서서 작별을 지지하는 발
발가락 사이 이 차가운 겨울을
부수며
무엇인가 아낌없이 주어버리며
오늘도 딛고 있다.

바람을 흔들며 선 고목 밑
죽은 언어들이 히죽히죽 하얗게 웃고있는
겨울을.
첨탑에서 안식일을 우는 종이
얼어서 얼어서 들려오는
겨울을.

이번 겨울에도 나의 발은
기우뚱, 기우뚱 소멸을 딛고
日月이 부서지는 소리
그 밑 누군가가 무게를 받들고……

《8》겨울 숲을 바라보며

오규원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9》고요

오규원

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고요가 있다
바람이 나무 밑에서 그림자를 흔들어도 고요는 고요하다
비비추 밑에는 비비추의 고요가 쌓여 있고
때죽나무 밑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때죽나무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
창 앞의 장미 한 송이는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
고요로 지고 있다

《10》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오규원

씨앗은 씨방에
넣어 보관하고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있는 바람은
잔디 위에 내려놓고

밤에 볼 꿈은
새벽 2시쯤에 놓아두고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기는 일이다

가을은 가을텃밭에
묻어 놓고

구름은 말려서
하늘 높이 올려놓고

몇송이 코스모스를
길가에 계속 피게 해놓고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다가오는 겨울이
섭섭하지 않도록

하루 한 걸음씩 하루 한 걸음씩
마중가는 일이다

《11》꽃과 그림자

오규원

붓꽃이 무리지어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어
왼쪽과 오른쪽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왼쪽에 핀 둘은
서로 붙들고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가운데 무더기로 핀 아홉은
서로 엉켜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오른쪽에 핀 하나와 다른 하나는
서로 거리를 두고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붓꽃들이 그림자를
바위에 붙입니다
그러나 그림자는 바위에 붙지 않고
바람에 붙습니다

《12》나비

오규원

작약꽃이 한창인 아파트 단지의
화단을 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어린 호박나무를 지나 향나무를 지나 목단을 넘고
화단 가장자리의 쥐똥나무를 넘어 밖으로 가더니
다시 속으로 들어와
한창인 작약꽃을 빙글빙글 돌더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혼자 훌쩍 날아올라 넘더니
비칠대는 온몸의 균형을 바로잡고
날아넘은 허공을 뒤돌아본다.
뒤돌아보며 몸을 부풀린다.


《13》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오규원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14》버스정거장에서

오규원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노점을 지키는 저 여자를
버스를 타려고 뛰는 저 남자의
엉덩이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내가 무거워
시가 무거워 배운
작시법을 버리고
버스 정거장에서 견딘다

경찰의 불심 검문에 내미는
내 주민등록증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주민등록증 번호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안 된다면 안 되는 모두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어리석은 독자를
배반하는 방법을
오늘도 궁리하고 있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며
오지 않는 버스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시를 모르는 사람들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배반을 모르는 시가
있다면 말해보라
의미하는 모든 것은
배반을 안다
시대의 시가 배반을 알 때까지
쮸쮸바를 빨고 있는
저 여자의 입술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15》비가와도 이제는

오규원

비가 온다, 어제도 왔다.
비가와도 이제는 슬프지 않다.
슬픈 것은 슬픔도 주지 못하고
제 혼자 내리는 비.

비속으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비속에서 우산으로
비가 오지 않는 세계를 받쳐들고
오, 그들은 정말 갈 수 있을까.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오늘도
우산 밖의 비에 젖고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젖은 몸으로
비 오는 세계에 참가한다.

비가 온다.
슬프지도 않은 비.
제 혼자 슬픈 비.

《16》비가와도 젖은 자는

오규원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 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17》빈자리가 필요하다

오규원

빈 자리도 빈 자리가 드나들
빈 자리가 필요하다
질서도 문화도
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
빈 자리가 필요하다

지식도 지식이 드나들 지식의
빈 자리가 필요하고
나도 내가 드나들 나의
빈 자리가 필요하다

친구들이여
내가 드나들 자리가 없으면
나의 어리석음이라도 드나들
빈 자리가 어디 한구석 필요하다

《18》사랑의 감옥

오규원

뱃속의 아이야 너를 뱃속에 넣고
난장의 리어카에 붙어 서서 엄마는
털옷을 고르고 있단다 털옷도 사랑만큼
다르단다 바깥 세상은 곧 겨울이란다
엄마는 털옷을 하나씩 골라
손으로 뺨으로 문질러보면서 그것 하나로
추운 세상 안으로 따뜻하게
세상 하나 감추려 한단다 뱃속의 아이야
아직도 엄마는 옷을 골라잡지 못하고
얼굴에는 땀이 배어 나오고 있단다 털옷으로
어찌 이 추운 세상을 다 막고
가릴 수 있겠느냐 있다고 엄마가
믿겠느냐 그러나 엄마는
털옷 안의 털옷 안의 집으로
오 그래 그 구멍 숭숭한 사랑의 감옥으로
너를 데리고 가려 한단다 그렇게 한동안
견뎌야 하는 곳에 엄마가 산단다
언젠가는 털옷조차 벗어야 한다는 사실을
뱃속의 아이야 너도 태어나서 알게 되고
이 세상의 부드러운 바람이나 햇볕 하나로 너도
울며 세상의 것을 사랑하게 되리라 되리라만

《19》사랑의 대낮

오규원

솟구치는 질경이는 잎 뒤의 햇볕을
어디에다 두었나 잎 뒤가 텅 비었다
송장풀과 개비름은 잎 뒤의 그림자를
어디에다 숨겨두었나 그림자가 없는
육체라니! 숨긴 그림자 속에 무엇을
숨겨두었나 허물어진 아파트 단지
외곽의 땅이 개쑥갓과 쑥부쟁이처럼
부풀고 있다 드러누워 기고 있는
외풀은 다리를 어디에다 숨겨두었나
(그곳에 나는 오늘 가보고 싶다)
野古草와 바랭이는 허리를 어디에다
숨겨두었나 어디에다

《20》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21》삼월

오규원

삼월에 신은 남쪽
물결을 타고 온다.
봄에 일할 가복들은
양 허리에 끼고,
해변의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의 서류를 갖춘다.
결재가 날 동안
나무들은 예산을 끝내고
들은 목책을 헐고
부드러운 바람은 방목한다.
아, 배태의 순간은
뜰 위에 방학이 내려와 노닥거리는
학동의 마을이다.
신이 웃고 있는 곳에
심상이 간지러운 보슬비는
내리고.

《22》새와 나무

오규원

어제 내린 눈이 어제에 있지 않고
오늘 위에 쌓여 있습니다
눈은 그래도 여전히 희고 부드럽고

개나리 울타리 근처에서 찍히는
새의 발자국에는 깊이가 생기고 있습니다
어제의 새들은 그러나 발자국만
오늘 위에 있고 몸은
어제 위의 눈에서 거닐고 있습니다
작은 돌들은 아직도 여기에
있었다거나 있다거나 하지 않고
나무들은 모두 눈을 뚫고 서서
잎 하나 없는 가지를 가지의 허공과
허공의 가지 사이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23》새와 날개

오규원

강에는 강물이 흐르고 한 여자가
흐르지 않고 강가에 서 있다
안고 있는 아이에게 한쪽 젖을 맡기고
강이 만든 길을 보고 있다

길은 강에만 있고 강둑에는
흐린 하늘이 바짝 붙어 있다

아이는 한 손으로 젖을 움켜쥐고
넓은 들에서 하늘로 무너지는
강을 보고 있다

강에는 강물이 흐르고
물 속에는 날개가 젖지 않는
새 한 마리가
강을 건너가고 있다

《24》순례의 서

오규원

종일 바람에 귀를 갈고 있는 풀잎.
길은 늘 두려운 이마를 열고
우리들을 멈춘 자리에
다시 멈추게 한다.

막막하고 어지럽지만 그러나
고개를 넘으면 전신이 우는 들.
그 들이 기르는 한 사내의
편애와 죽음을 지나
먼 길의 귀속으로 한 사람씩
낯 들어가는
영원히 집이 없을 사람들.

먼 길의 귀속으로 한 사람씩
낯 들어가는 영원히 집이 없을 사람들.

바람이 분다, 살아 봐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 봐야겠다.

무엇인가 저기 저 길을 몰고 오는
바람은
저기 저 길을 몰고 오는 바람 속에서
홀로 나부끼는 옷자락은
나를 오래 어두운 그림자로 길가에 세워 두는 것은
그리고 무엇인가 단 한마디의 말로
나를 영원히 여기에서 떨게 하는 것은

멈추면서 그리고 나아가면서
나는 저 무엇인가를 사랑하면서

《25》안개

오규원

강의 물을 따라가며 안개가 일었다
안개를 따라가며 강이 사라졌다
강의 물 밖으로 오래 전에 나온
돌들까지 안개를 따라 사라졌다
돌밭을 지나 초지를 지나 둑에까지
올라온 안개가 망초를 지우더니
곧 나의 하체를 지웠다
하체 없는 나의 상체가
허공에 떠 있었다
나는 이미 나의 지워진 두 손으로
지워진 하체를 툭 툭 쳤다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강변에서 툭 툭 소리를 냈다  

《26》여름에는 저녁을

오규원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숲 속에서는
바람이 잠들고
마을에서는
지붕이 잠들고

들에는 잔잔한 달빛
들에는
봄의 발자국처럼
잔잔한
풀잎들

마음도
달빛에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 차는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27》우리는 어디서나

오규원

우리는 어디서나 앉는다.
앉으면 중심이 다시 잡힌다.
우리는 어디서나 앉는다.
일어서기 위해 앉는다.
만나기 위해서도 앉고 협잡을 위해서도 앉고
의자 위에도 앉고 책상 옆에도 앉듯
역사의 밑바닥에도 앉는다.
가볍게도 앉고 무겁게도 앉고
청탁불문 장소불문 우리는 어디서나 앉는다.
밑을 보기 위해서도 앉고
바닥을 보기 위해서도 앉는다.
바로 보기 위해 어깨를 낮추듯

《28》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오규원

비상하는 새의 꿈은
날개 속에만 있지 않다 새의 꿈은
그 작디작은 두 다리 사이에도 있다
날기 전에 부드럽게 굽혔다 펴는
두 다리의 운동 속에도 그렇고
하늘을 응시하는 두 눈 속에도 있다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우리의 몸속에 숨어서 비상을
욕망하는 날개와 다리와 눈을 보라
언제나 미래를 향해 그것들을 반짝인다
모든 나무의 꿈이 푸른 것은
잎이나 꽃의 힘에만 있지 않다
나무의 꿈이 푸른 것은
막막한 허공에 길을 열고
그곳에서 꽃을 키우고 잎을 견디는
빛나지 않는 줄기와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깜깜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숨어서 일하는 혈관과 뼈를 보라
우리의 새로움은 거기에서 나온다
길이 아름다운 것은
미지를 향해 뻗고 있기 때문이듯
달리는 말이 아름다운 것은
힘찬 네 다리로
길의 꿈을 경쾌하게 찍어내기 때문이듯
새해가 아름다운 것은 그리고
우리들의 꿈이 아름다운 것은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의
비상하는 날개와 다리와 눈과
하늘로 뻗는 줄기와 가지가
그곳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29》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오규원

죽음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 잔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한 잔 하고
한 잔 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술을 한 잔 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내일은 주말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30》잎과 가지

오규원

가지가 뻗으면 허공은
가지 안에 들어가 자리잡는다
잎이 생기면 허공은
앞 안에 들어가 몸을 편다
새가 날고 잠자리가 날고
꿀벌이 날면 허공은
새와 잠자리와 꿀벌이 되어
함께 난다 부리와 날개와
침이 되어 반짝인다

잎 속의 허공은 잎이고
잎 밖의 허공은 빛이다

《31》절과 나무

오규원

나무 몇 그루가 묵묵히 가지 속에
자기 몸을 밀어넣고 있다

그 나무들 위에 절(寺)이 한 채 얹혀 있다

나무의 가지 끝까지 올라간 물이
나무에서 절 안으로 길을 내고 있는지
가지가 닿은 벽의 곳곳에 이끼가 끼어 있다

양광은 하늘에 가득하고
부처는 절 안에 있고
사람은 절 밖에서 나무에 잡혀 있다

바람이 불어도 절은 뒤에 있는
하늘에 붙어
흔들리지 않는다

《32》하늘과 두께

오규원

투명한 햇살 창창 떨어지는 봄날
새 한 마리 햇살에 찔리며 붉 나무에 앉아 있더니
허공을 힘차게 위로 위로 솟구치더니
하늘을 열고 들어가
뚫고 들어가
그곳에서
파랗게 하늘이 되었습니다
오늘 생긴
하늘의 또 다른 두께가 되었습니다

《33》하늘과 침묵

오규원

온몸을 뜰의 허공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고
한 사내가 하늘의 침묵을 이마에 얹고 서 있다
침묵은 아무 곳에나 잘 얹힌다
침묵은 돌에도 잘 스민다
사나의 이마 위에서 그리고 이마 밑에서
침묵과 허공은 서로 잘 스며서 투명하다
그 위로 잠자리 몇 마리가 좌우로 물살을 나누며
사내 앞까지 와서는 급하게 우회전해 나아간다
그래도 침묵은 좌우로 갈라지지 않고
잎에 닿으면 잎이 되고
가지에 닿으면 가지가 된다
사내는 몸 속에 있던 그림자를 밖으로 꺼내
뜰 위에 놓고 말이 없다
그림자에 덮인 침묵은 어둑하게 누워 있고
허공은 사내의 등에서 가파르다

《34》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끄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나는 정말로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35》호수와 나무

오규원

잔물결 일으키는 고기를 낚아채
어망에 넣고
호수가 다시 호수가 되도록
기다리는 한 사내와
귀는 접고 눈은 뜨고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개 한 마리
물가에 앉아 있다

사내는 턱을 허공에 박고
개는 사내의 그림자에 코를 박고

건너편에서 높이로 서 있던 나무는
물 속에 와서 깊이로 다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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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수 시 모음 50편

《1》5월을 드립니다

오광수

당신 가슴에
빨간 장미가 만발한 5월을 드립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생길 겁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느낌이 자꾸 듭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많이 많이 생겨나서
예쁘고 고른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얼굴 가득히 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당신 모습을 자주 보고 싶습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기분이 자꾸 듭니다

당신 가슴에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5월을 가득 드립니다

《2》8월의 소망

오광수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반가운 8월엔
소나기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얼굴이 되고
만나면 시원한 대화에

흠뻑 젖어버리는
우리의 모습이면 얼마나 좋으랴?

푸름이 하늘까지 차고 넘치는 8월에
호젓이 붉은 나무 백일홍 밑에 누우면
바람이 와서 나를 간지럽게 하는가

아님 꽃잎으로 다가온
여인의 향기인가
붉은 입술의 키스는

얼마나 달콤하랴?
8월엔 꿈이어도 좋다.
아리온의 하프소리를 듣고

찾아온 돌고래같이
그리워 부르는 노래를 듣고

보고픈 그 님이 백조를 타고
먼먼 밤하늘을 가로질러
찾아왔으면,

《3》8월의 연가(戀歌)

오광수

8월에
그대는 빨간 장미가 되세요
나는 그대의 꽃잎에 머무르는 햇살이 되렵니다

그대는 초록세상에 아름다움이 되고
힘겨운 대지에는 꿈이 되리니
나는 그대를 위해 정열을 아끼지 않으렵니다

푸른 파도의 손짓도 외면하렵니다
오로지 그대를 향해
뜨거운 사랑의 눈길을 쉬임없이 보내며
빨갛게 빨갛게 그대의 색깔을 품으렵니다

매미들의 향연이 막을 내리고
저 들판 너머로 꽃가마가 나타나면은
나는 믿음직한 그대의 신랑이 되고
그대는 노란 머플러로 한껏 멋을 낸 신부가 되리니

아!
두근거리는 땅의 울림에
한줄기 소나기까지 단비가 되어
지금 그대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8월에
그대는 빨간 장미가 되세요
나는 하늘의 푸른 물 한 줌씩 집어다가
두 손으로 돌돌 말아 이슬 진주 만들어
그대의 가슴에 달아드리는
아침 햇살이 되렵니다.

《4》9월의 약속

오광수

산이 그냥 산이지 않고 바람이
그냥 바람이 아니라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약속이 되고 소망이 되면
떡갈나무 잎으로 커다란 얼굴을 만들어
우리는 서로서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손 내밀면 잡을만한 거리까지도 좋고
팔을 쭉 내밀어 서로 어깨에 손을 얹어도 좋을 거야
가슴을 환히 드러내면
알지 못했던 진실함들이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산울림이 되고
아름다운 정열이 되어
우리는 곱고 아름다운 사랑들을 맘껏 눈에 담겠지

손잡자 아름다운 사랑을 원하는 우리는
9월이 만들어놓은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에서
약속이 소망으로 열매가 되고
산울림이 가슴에서 잔잔한 울림이 되어
하늘 가득히 피어오를 변치 않는 하나를 위해! 우리

《5》가을에는

오광수

가을에는 나이 듬이 곱고도 서러워
초저녁 햇살을 등뒤에 숨기고
갈대 사이로 돌아보는지 나온 먼 길
놓아야 하는 아쉬운 가슴
그 빈자리 마다 추하지 않게 점을 찍으며
나만 아는 단풍으로 꽃을 피운다

《6》가을의 러브레터

오광수

연분홍 편지지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고운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여름의 꽃밭에서
까만 분꽃 씨를 받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타는 가슴이지만
연분홍 꽃을 피운 분꽃이랍니다

《7》가을햇살

오광수

등뒤에서 살짝 안는 이 누구 신가요?
설레는 마음에 뒤돌아보니
산모퉁이 돌아온 가을 햇살이
아슴아슴 남아있는 그 사람 되어
단풍 조막손 내밀며 걷자 합니다

《8》같이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

오광수

은은한 화장에 밝은 미소를 가진 사람과
커피를 마시고 싶습니다.
내면의 모습은 더 아름다워서
조용한 미소만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하얀 프림같은 그런 사람의 미소가 좋습니다

마음도 넉넉한 고운 심성을 가진 사람과
커피를 마시고 싶습니다.
따스한 마음은 더 정스러워서
푸근한 말 한 마디로도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커피 향기 같은 그런 사람의 모습이 좋습니다.

창조적 생각에 멋진 감각을 가진 사람과
커피를 마시고 싶습니다.
몰랐던 세상은 더 흥미로워서
신기한 발상만으로도 모두를 즐겁게 하는
노란 설탕 같은 그런 사람의 세계가 좋습니다.

《9》겨울로 가는 바닷가에서

오광수

꿈같은 사랑의 미련 때문에
하얗게 진이
다하도록
파도가 발버둥을 치며
소리소리 지르고 있다.

까맣게 흔적이 없는 늪에 앉아
푸념조차 퇴색해버린
몽돌을 붙잡고
묻고 또 물으며
지난 계절의 흔적을 뒤져봐도

당신이 내게 한 황홀한 고백이,
내가 당신에게 속삭이던
밀어가
까만 젖꼭지 같은 잔돌이 되어
이제는 좌르르 다른 소리를 내는데

아침에 보이던 환한 얼굴은 어디 가고

머리칼로 물기 가득 뿌리면서
잔뜩 몰려온 바다 안개들이
날름 날름 그 소리마저도 삼켜버린다.

《10》겨울에 그리는 수채화

오광수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면
당신의 곱고 하얀 마음을
눈 속에서 찾지
못할까봐 걱정됩니다.
온 세상이 더 하얗게 되면
당신의 그 고운 마음씨들이
하얀 꽃가루처럼 날아가서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숨어 버릴 테지요.

개울물이 꽁꽁 얼어 버리면
당신의 맑은 노래 소리를
겨울 내내 듣지 못할까봐 걱정됩니다.

세상이 더 반짝거리면
당신의 그 맑은 노랫소리는
퐁당 깊은 물 속에 들어가서
물고기들의 자장가로 변해 버릴 테지요.

찬바람이 씽씽 불어버리면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하늘에서 볼 수 없을까봐 걱정됩니다.
온 세상이 너무
추우면
당신이 베푸는 따스함들이
살금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어린이들의 말동무가 되어 있을 테지요.

《11》겨울에 읽는 하얀 편지

오광수

당신을 향해 기도하고 잠이 든 시간
밤새도록 당신이 써 보낸
하얀 편지가 하늘에서 왔습니다.

잠 든 나를 깨우지 않으려고
발걸음 소리도 내지않고
조용히 조용히 그렇게 왔습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은
얼마나 큰지 온 세상을 덮으며
˝사랑해!˝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당신도 내가 그립답니다.
당신도 내가 보고 싶답니다.
당신도 내가 너무 너무 기다려 진답니다.

새 날을 맞이하며 창을 여는 순간부터
한참을 일하는 분주한 낮시간에도
당신은 언제나 나를 생각한답니다.

너무나 반갑고 고마워 눈물 방울져 떨어지면
닿는 곳 점 점이 쉼표가 되어
쉬어가면서 읽고 또 읽습니다.

넘어져 하얀 편지속에 폭 안기면
당신은 나를 더욱 꼬옥 안고
˝많이 사랑해!˝ 하는 느낌이 옵니다.

하얀 편지를 읽는 이 행복한 시간.
내 마음속에서 피어난 하얀 입김으로
˝나도 당신을 많이 사랑합니다.˝

《12》그냥 좋기만 한 사람

오광수

가만히 생각만 해도
당신이 그냥 좋은 건
하늘 아래 누구보다도
당신을 많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내 좁은 가슴이 눈을 떠서
나로 인한 당신의 아픔을 알았고
나로 인한 당신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나의 정다운 말 한마디가
당신에겐 보석보다 값지며
내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당신에겐 하늘이 됨을 알았습니다

더 이상 아프게 안할께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마세요
하늘이 당신과 함께하라 심은
당신을 많이 사랑하라 하심입니다

이제는 가만히 생각만 해도
당신이 그냥 좋은 건
하늘아래 무엇보다도
당신이 소중한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13》그대는 누구 신가요

오광수

그대는 파란 하늘바다에다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들을 띄워놓고
흰 구름섬 가운데를
지나가는 동화의
나라 주인인가요

그대는 모르는 곳에서
불어와,코스오스 같은 내
가슴을 부플려 놓고
해바라기 같이 바라만
보게하는 바람의 나라
요정인가요?

그대는 이세상의
눈물들을 은하수에다
수천 번을 씻고 또 씻어서
영롱한 이슬진주로
만들어 놓은 달님의 나라
마술사 인가요?

눈부신 해님이 깨우는
아침에 희망의 나팔을
불며 창을 열고 들어오는
금빛 찬란한 생명들에게
보석같은 오늘 하루를
선물하는 그대는 정녕
천사인가요?

그대가 뿌려놓은
고움들이 가득 내려앉은
삶을 시작하는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한 만큼
서로 용서하는 마음들로
가득한 이 계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나와 함께 하는 그대는
누구 신가요?

《14》그대라는 이름

오광수

그대 이름을
언제 불러봤을까요?
이젠 서먹하기까지 합니다
눈뜨면 꼭 만나는 얼굴이었고
만나면 즐거웠던 그대였는데.

하얀 목련을 유난히 좋아해서
배경 삼아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그대와의 유일한 해후(邂逅)
이젠 불러보려 해도
소리가 나오질 않습니다

잘 계시지요?
잘 사셔야할 텐데
어떻게 변했을까요?
그러나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간직하렵니다

밖에선 겨울바람이 나를 부르는데
내가 불렸던 그대 이름은
지금 누가 부를까요?
사진첩을 덮는 것처럼
가슴 한가운데 가만히 접어두렵니다.

《15》그립고 그리우면

오광수

그리워 눈물이 나면
뒤돌아 서서 울렵니다.
지나가는 바람이 내 얼굴을 보곤
혹시 님께서 내 모습 물으신다면
흉한 모습만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보고파 눈물이 나면
고개 숙이고 울렵니다.
떨어지는 낙엽이 내 얼굴을 보곤
혹시 님께서 내 형편 물으신다면
딱한 모습만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눈물이 나면
하늘을 보고 울렵니다.
흘러가는 구름이 내 얼굴을 보고
혹시 님께서 내 소식 물으신다면
이렇게 서서 기다린다고 말할 겁니다.

소리쳐 울고 싶으면
강가에 앉아 울렵니다.
흘러가는 강물이 눈물 동무되고
혹시 님에게 서운함 있었어도
흐르는 물에 세월과 같이 띄울 겁니다.

《16》글에도 마음씨가 있습니다

오광수

글에도 마음씨가 있습니다.
고운 글은 고운 마음씨에서 나옵니다
고운 마음으로 글을 쓰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고운 마음이 그대로 옮겨가서 읽는 사람도 고운 마음이되고
하나 둘 고운 마음들이 모이면
우리 주위가 고운 마음의 사람들로 가득 찰 겁니다

글에도 얼굴이 있습니다
예쁜 글은 웃는 얼굴에서 나옵니다
즐거운 얼굴로 글을 쓰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정겨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읽는 사람도 웃는 얼굴이 되고
하나 둘 미소 짓는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 주위가 활짝 웃는 사람들로 가득 찰 겁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더라도
직접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비록 한 줄의 짧은 답글이라도
고운 글로 마음을 전하며
읽는 사람에겐 미소를 짓게 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17》기다림도 사랑입니다

오광수

철교를 건가는 기차가
창마다 불빛을 쏟아내며
새벽 찬바람에
출렁 출렁 흔들리며 갑니다.

기다림에 내려다보는
개울 물 속엔
달빛 사라진 까만 하늘의
별들만이 조용히 찰랑거립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마음이 없다면
새벽 찬바람의 모진 시련도
까만 하늘의 방황도
모두 견디지 못할 겁니다

기다림에 이렇게 얼어붙어도
기다림에 이렇게 혼이 나기도
당신이 내게 베푼 그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첫 시간 드린다는 서원대로
당신의 눈길을 기다리고
당신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당신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오늘도 하늘 문이 열리며
빛나고 찬란한 햇빛이 내리면
약속의 확신에 더 목말라가도
그 기다림마저도 나의 사랑입니다.

《18》낙엽 한 장

오광수

나릿물 떠내려온 잎 하나 눈에 띄어
살가운 마음으로 살며시 건졌더니
멀리 본 늦가을 산이 손안에서 고와라.

《19》내가 당신에게 행복이길

오광수

내가 당신에게
웃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손짓과 우스운 표정보다
내 마음속에 흐르는 당신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당신의 생활 속에 즐거움이 되어
당신의 삶의 미소가 되길 원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믿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백 마디 맹세와 말뿐인 다짐보다
내 가슴속에 흐르는
당신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당신의 생각 속에 미더운 이 되어
당신의 삶의 동반자가 되길 원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소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에 구름 같은 신기루보다
내 생활 속에 흐르는
당신을 향한 진솔한 사랑이

당신의 신앙 속에 닮아감이 되어
당신의 삶의 이정표가 되길 원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행복이길 원합니다.

나와 함께 웃을 수 있고
나와 함께 믿음을 키우며 나와 함께 소망을 가꾸어

우리 서로 마주보며 살아가는 세상
당신의 삶이 행복이길 원합니다.

《20》눈 오는 밤의 이별

오광수

우리!
이 밤 슬픈 이별의 길을 걷자.
초가지붕 가득히 겨울을 싣고
너의 옷자락을 매만지며
눈물을
가득 익혀 떨구어보자.

눈송이 하나에 추억 하나 쌓여지고
가로등의 불빛도 지쳐가는데
날이 밝으면 모두가 지난 일이
되고
너의 일기장엔
내 이름마저도 지워질 텐데......

우리!
이 밤, 너와의 걷는 이 밤이
하늘에서 가득히
흰 눈이 내려
깨끗한 추억으로
내 가슴에 묻히기를 원하는구나.

벌써 뿌옇게 새벽이 일어나고
쌓이는 눈따라 아쉬움만
더 하는데
너를 싣고갈 기차는 하얀 숨을 고르고
밤새 걸었던 길에는
우리가 걸어왔던 흔적마저 지워 버린다.

이제는

서로의 미래를 위해 헤어질 시간
눈속에서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는
너의 눈에서, 내 가슴에서
이렇게 눈이 되어
녹아내린다.

《21》당신은 정말 소중한 사람입니다

오광수

우리에게
당신의 미소는 소중합니다.
입가에 환하게 피어오른 미소는
짜증난 생각을 멀리 쫓아버립니다.
그 미소가 시원한 산소가 되어
보고 있는 우리의 마음 마음들을
새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손길은 소중합니다.
따뜻한 사랑이 담겨있는 손길은
어려운 시련들을 멀리 쫓아버립니다.
그 손길이 일어나는 새 힘이 되어
지쳐있는 우리의 마음 마음들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목소리는 소중합니다.
따뜻하게 위로하는 말 한마디는
불평과 원망을 멀리 쫓아버립니다.
그 한마디가 상대방을 이해하며
미워하는 우리의 마음 마음들을
용서케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발걸음은 소중합니다.
올바로 내디딘 그 믿음의 걸음은
실패와 좌절을 멀리 쫓아버립니다.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신뢰를 주어
믿고 사는 우리의 마음들을 모아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입니다.

《22》만남에 어찌 우연이 있겠습니까

오광수

길가에 피어있는 들꽃도
그냥 피었다 지는 것이 아닐진대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어찌 우연이 있겠습니까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그저 아무런 의미 없이 대하기보다는
따뜻한 미소에 정겹게 말 한마디라도 나누는 일은
소중한 인연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는 게 아무리 제 잘난 멋에 산다고는 하지만
그 잘난 멋도 보아주는 이가 있어야 하질 않겠습니까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인연과 인연으로 서로 더불어 사는 것이기에
소홀히 대한 인연으로 후일 아쉬운 때가 온다면
그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의미 없는 만남과 소홀히 대할 인연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만남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것은 어떠한 삶이든 첫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23》보고픈 사람이 있거든

오광수

보고픈
사람이 있거든
눈감고 노래를 불러보세요.

그리워 못 잊어
부르는 노래마다

한절 한절 길게
다리가 놓여져

내 노래 듣고
찾아오시는 보고픈 이가
살며시 밟고 오려니

보고픈
사람이 있거든
밤하늘 별들을 세어보세요.

그리워 눈물이 고이며
볼 때마다 한별 한별
환한 빛들이 모아져

내 모습보고
찾아오시는 보고픈 이가
어둔 길 쉽게 오려니

보고픈
사람이 있거든
바람에 가슴을 열어보세요.

그리워 애타게
기다린 마음 알고

살랑살랑 고운
바람을 타고서

내 가슴 꼬옥 안아주시는
보고픈 이가
눈뜨면 와 있으려니

《24》봄볕

오광수

꽃가루 날림에 방문을 닫았더니
환한데도 더 환하게 한 줄 빛이 들어오네
앉거라 권하지도 않았지만은
동그마니 자리 잡음이 너무 익숙해
손가락으로 살짝 밀쳐내 보니
눈웃음 따뜻하게 손등을 쓰다듬네!

《25》비 오는 밤

오광수

기다린 님의 발걸음 소리런가
멀리도 아닌 곳에서 이리 오시는데
밖은 더 캄캄하여 모습 모이지 않고
불나간 방에 켜둔 촛불 하나만
살랑살랑 고개를 내젓고 있다

《26》사람이 만난다는 것이

오광수

사람이 산다는 것이
안개를 타고
바다를 항해는 것과
같아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은

집채같은 파도가 앞을
막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고비만 넘기면 되겠지 하는
작은 소망이 있어 삽니다.

우리네 사는 일들이
이렇게 비 오듯 슬픈날이 있고,
바람불 듯 불안한 날들이 있으며
파도 치듯 어려운 날도 있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견디지 못할 일도 없고
참지 못할 일도 없습니다.

다른 집은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사는게 이렇게 어려운가 생각하지만
조금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집집이 가슴 아픈 사연 없는 집이 없고

가정마다
아픈 눈물 없는 집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웃으며 사는 것은
서로서로 힘이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27》사람이 사는 일에

오광수

사람이 사는 일에
어떻게 늘 좋은 일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크든 작든 가슴 쓰라린 일도 있고
견디기 어려운 실패도 있지만
세월은 내가 다시 살아가도록
한장 한장 사는 방법을 그려줍니다.

사람이 사는 일에
어떻게 늘 웃는 일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생각지도 않게 눈물 흘릴 일도 있고
속마음 깊숙이 한숨쉴 일도 있지만
세월은 내가 다시 시작하도록
하루하루 소중한 가치로 보태줍니다

사람이 사는 일에
늘 어려움만 있고 한숨쉴 일만 있다면
희망과 소망이라는 말이 왜 있겠습니까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견디노라면
쓰라림을 통하여 사는 방법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림으로 사는 가치를 알게 됩니다.

《28》사람이 산다는 것이

오광수

사람이 산다는 것이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은
집채같은 파도가 앞을 막기도 하여
금방이라도 배를 삼킬듯하지만
그래도 이 고비만 넘기면 되겠지 하는
작은 소망이 있어 삽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이렇게 비 오듯 슬픈 날이 있고
바람불듯 불안한 날도 있으며
파도 치듯 어려운 날도 있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견디지 못할 일도 없고
참지 못할 일도 없습니다.

다른 집은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가 생각하지만
조금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집집이 가슴 아픈 사연 없는 집이 없고
가정마다 아픈 눈물 없는 집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웃으며 사는 것은
서로서로 힘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29》사랑이 남겨준 그리움

오광수

그대가 따스한 눈길로
내 마음에 싹을 틔우던 날
그대의 사랑은
언제나 함께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대의 봄이 되어 내 가슴에서
사랑의 꽃을 피울 때에
그대의 그 꽃은
언제나 피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대는 푸른 나무가 되고
나는 그대의 품에 안긴 새가 되어
노래를 부를 때
언제나 부르는 노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낙엽이 떨어질 때
그대의 사랑도 떨어지고
그대는 그렇게 빈 가슴만 남겼지만

앙상한 가지를 쓰다듬는 바람 따라
이렇게 매달려 흔들리는 남은 잎같이
말라 있는 내 가슴 속에서는
그대는 언제나 그리움입니다.

《30》사랑할 땐

오광수

사랑할 땐 높은 하늘도 낮게만 보입니다.
별이든 달이든 원하면 따 줄 수 있으니까요.

사랑할 땐 시간도 요술을 부립니다.
기다릴 땐 지루하고 만나면 너무 짧으니까요.

사랑할 땐 모두가 아름다워 보입니다.
내 가슴이 아름다운 생각으로만 가득하니까요.

사랑할 땐 상대방의 흠도 매력으로 느껴집니다.
내 눈높이를 상대방에게 맞췄으니까요.

사랑할 땐 모든 것이 좋게만 보입니다.
사랑할 땐 모든 것이 소중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랑할 땐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31》산에서 본 꽃

오광수

산에 오르다
꽃 한 송이를 보았네
나를 보고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
산에서 내려오다
다시 그 꽃을 보았네
하늘을 보고 피어있는 누님 닮은 꽃

《32》산처럼 물처럼

오광수

산은
산이어서 좋다
이곳저곳 기웃거려 옮겨다니지 않고
세상의 지킴이 되고
살아가는 기본이 되어
보듬고 다독이며 함께 더불어 사는 가운데
철 따라 가꾸는 어울림이 있어 더 좋다

물은
물이어서 좋다
순리대로 길을 가니 볼썽사납지 않고
이 세상 이치가 되고
생명에겐 가치가 되어
싹 틔고 꽃피우며 함께 가꾸어 가는 가운데
물빛이 하늘의 얼굴을 닮으니 더 좋다

우리네 사는 게 어디 별난 모습이 있으랴
그 산에 내가 있고
그 물에 내가 있으니
그래서 더 좋다.
사랑은 이별보다 훨씬 더 크다
사랑했었다는 것에 대해 너무 아파하지 마라 

《33》삶에 가장 소중한 때

오광수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힘들 때가 있으면 편안할 때도 있고
울고 싶은 날이 있으면 웃을 날도 있고
궁핍할 때가 있으면 넉넉할 때도 있어 그렇게 삽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식을 키우느라 많이 힘이 들었어도
자식들이 다 커서 각자 제 몫을 하는 지금에는
힘들었던 그때가 왠지 좋은 때같고

한창 일할 때에는 몇 달 푹 쉬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부르는 이 없고 찾는 이 없는 날이 오면
그때가 제일 좋은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답니다.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 중에서
힘들 때와 궁핍할 때가 어려운 시절 같지만
그래도 참고 삶을 더 사노라면
그때의 힘듦과 눈물이 오늘의 편안함이고
그때의 열심과 아낌이 오늘의 넉넉함이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다 버리고 살 수 없고
편안하고 넉넉하다고 다 혼자 가질 수 없는 것은
우리네 사는 것이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고
나를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서로 소중한 시절을 가꾸며 함께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34》소중한 오늘 하루

오광수

고운 햇살을 가득히 창에 담아
아침을 여는 당신의 오늘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천사들의 도움으로 시작합니다

당신의 영혼 가득히
하늘의 축복으로 눈을 뜨고
새 날,
오늘을 보며 선물로 받음은
당신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제의 고단함은 오늘에 맡겨보세요.
당신이 맞이한 오늘은
당신의 용기만큼 힘이 있어
넘지 못할 슬픔도 없으며
이기지못할 어려움도 없습니다

오늘 하루가 길다고 생각하면
벌써 해가 중천이라고 생각하세요
오늘 하루가 짧다고 생각하면
아직 서쪽까진 멀다고 생각하세요
오늘을 내게 맞추는 지혜입니다

오늘을 사랑해 보세요
사랑한 만큼
오늘을 믿고 일어설 용기가 생깁니다
오늘에 대해 자신이 있는 만큼
내일에는 더욱 희망이 보입니다

나 자신은 소중합니다
나와 함께하는 가족은 더 소중합니다
나의 이웃도 많이 소중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소중함 들은
내가 맞이한 오늘을 소중히 여길 때 가능합니다

고운 햇살 가득히 가슴에 안으면서
천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오늘을 맞이한 당신은
복되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런 당신의 오늘은 정말 소중합니다.

《35》아름다운 중년

오광수

중년은 많은 색깔을 갖고 있는 나이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가운데서도 분홍 추억이 생각나고
초록이 싱그러운 계절에도 회색의 고독을 그릴 수 있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본다.

중년은 많은 눈물을 가지고 있는 나이이다.
어느 가슴 아픈 사연이라도 모두 내 사연이 되어버리고
훈훈한 정이 오가는 감동 어린 현장엔 함께하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만 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운다.

중년은 새로운 꿈들을 꾸고 사는 나이이다
나 자신의 소중했던 꿈들은 뿌연 안개처럼 사라져가고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꿈들로 가득해진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 꿈을 꾸고 가슴으로 잊어가며 산다

중년은 여자는 남자가 되고 남자는 여자가 되는 나이이다
마주보며 살아온 사이 상대방의 성격은 내 성격이 되었고
서로 자리를 비우면 불편하고 불안한 또 다른 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 흘기면서도 가슴으로 이해하며 산다

중년은 진정한 사랑을 가꾸어갈 줄 안다.
중년은 아름답게 포기를 할 줄도 안다.
중년은 자기주위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
그래서 중년은 앞섬보다 한발 뒤에서 챙겨가는 나이이다.

《36》어제보다 아름다운 오늘

오광수

어제는 망울만 맺혀 안쓰럽던 저 꽃이
아침햇살 사랑으로 저리도 활짝 웃고 있음은
오늘이 어제보다는 더 아름다운 날인가 보다

수많은 아픈 가슴들이 모두 어제가 되고
맺혔던 눈물 방울일랑 이슬동네에다 맡기고는
하늘보고 무릎치며 오늘은 활짝 웃는 날이길

아이야!
어제의 미움이 아직 남았니?
시린 마음 꺼내어 따스한 빛깔을 묻혀서
노란 개나리 숨소리같이 후- 후- 불어보자

하늘은 우리를 사랑한단다
어제보다 견디지 못할 오늘은 없고
어제는 못 피웠던 꽃송이지만
오늘은 아름답게 피어나니까

《37》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오광수

오늘은 왠지
좋은 일들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오늘 열리는 아침이
더욱 깨끗하여 새롭고

오늘 찾아온 햇빛이
더욱 찬란하게 빛남은

오늘이 참으로
좋은 날인가 봅니다.

오늘은
슬기롭게 어려움을 풀고

오늘은
지혜롭게 닫힌 것을 열어서

마음 마음들이 더 푸근한
날이었음 좋겠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누는 인사에 정을 더하고

서운한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참된 용기를 가져서
오늘을 더 소중하게 만드렵니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서

두고두고 기억해도 좋은
그런 날일 것 같습니다.

《38》우리 5월에는 웃자

오광수

우리 5월에는 웃자
그것도 아주 환하게 웃자

봄 햇살이 우리들 두 볼에서
우리들 두 손 등에서

사랑하는 이의 입맞춤이 되어
함께 하자는데 어찌 그 마음들을 외면하겠는가

지난 날 이런저런 사연으로 쓰리고
아픈 가슴이 생기고 어둡고 무거운 짐을 지고
혼자 가야 할 먼 길이 앞에 있을 지라도
5월에는 힘내자.

두 볼에 앉은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고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함께함을 생각하며
힘내고 사랑하고 따습게 살자.

우리 5월에는 웃자
그것도 아주 큰 소리 내며 웃자.

《39》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오광수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빨간색 머플러로 따스함을 두르고
노란색 털장갑엔 두근거림을 쥐고서
아직도 가을 색이 남아있는
작은 공원이면 좋겠다.

내가 먼저 갈께
네가 오면 앉을 벤치에
하나하나
쌓이는 눈들은
파란 우산 위에다 불러모으고
발자국 두길 쭉 내면서
쉽게 찾아오게 할거야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온 세상이 우리 둘만의 세계가 되어
나의 소중한 고백이
하얀 입김에 예쁘게 싸여
분홍빛 너의 가슴에선
감동의
물결이 되고

나를 바라보는
너의 맑은 두 눈 속에
소망하던 그 날의 모습으로
내 모습이 자리하면
우리들의
약속은
소복소복 쌓이는 사랑일 거야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40》좋은 말을 하고 살면

오광수

말 한 마디가 당신입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아름다운 말을 하면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말 한 마디가 당신의 생활입니다
험한 말을 하는 생활은 험할 수밖에 없고
고운 말을 하는 생활은 고와집니다

말 한 마디가 당신의 이웃입니다
친절한 말을 하면 모두 친절한 이웃이 되고
거친 말을 하면 거북한 관계가 됩니다

말 한 마디가 당신의 미래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면 아름다운 소망을 이루지만
부정적인 말을 하면 실패만 되풀이됩니다

말 한 마디에 이제 당신이 달라집니다
예의바르며 겸손한 말은 존경을 받습니다
진실하며 자신 있는 말은 신뢰를 받습니다

좋은 말을 하고 살면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41》지금 하늘을 보세요

오광수

당신이 힘들고 어려우면 하늘을 보세요.
이제까지 당신은 몰랐어도
파란 하늘에서 뿌려주는
파란 희망들이
당신의 가슴속에
한 겹 또 한 겹 쌓여서
넉넉히 이길 힘을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이 슬프고 괴로우면 하늘을 보세요.
이제까지 당신은 몰랐어도
수많은 별들이 힘을 모아
은하수 물가지고
당신의 슬픔들을
한 장 또 한 장 씻어서
즐겁게 웃을 날을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이 외롭고 허전하면 하늘을 보세요.
이제까지 당신은 몰랐어도
둥실 흘러가는 구름들이
어깨동무하며
당신의 친구 되어
힘껏 또 힘껏 손잡고
도우며 사는 날을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이 용기가 필요하면 하늘을 보세요.
이제까지 당신은 몰랐어도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새날의 태양이
당신의 길이 되어
환히 더 환히 비추며
소망을 이룰 날을 만들고 있습니다.

《42》첫눈

오광수

누가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순백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저리도 조용히
기도하는가

당신이
가져다준 설레임으로
뽀얀 미소의 창을 열고
우리는 소망의 가닥 가닥들을
여미고 펼치기를 얼마나 했으며

만나고픔에
무작정 달리고
보고픔에 거저 소리치고
사랑하고픔에
두 팔을 한껏 벌렸는데

오!
내 품에 달려와
안기운이는
하늘 마음 가득담고온
사랑이어라

《43》친구야 술 한잔하자

오광수

친구야!
술 한잔하자

우리들의 주머니 형편대로
포장마차면 어떻고
시장 좌판이면 어떠냐?
마주보며 높이든 술잔만으로도
우린 족한걸,

목청 돋우며 얼굴 벌겋게 쏟아내는
동서고금의 진리부터
솔깃하며 은근하게 내려놓는
음담패설까지도
한잔술에겐 좋은 안주인걸,

자네가 어려울 때 큰 도움이 되지못해
마음아프고 부끄러워도
오히려 웃는 자네 모습에 마음 놓이고
내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말할 땐 뭉클한 가슴.

우리 열심히 살아보자.
찾으면 곁에 있는
변치 않는 너의 우정이 있어
이렇게 부딪치는 술잔은
맑은소리를 내며 반기는데,

친구야!
고맙다. 술 한잔하자

《44》코스모스

오광수

저 길로 오실게야
분명 저 길로 오실게야
길섶에 함초롬한 기다림입니다

보고픔으로 달빛을 하얗게 태우고
그리움은 하늘 가득 물빛이 되어도
바램을 이룰 수 만 있다면,

가냘픔엔 이슬 한 방울도 짐이 되는데,
밤새워 기다림도 부족하신지
찾아온 아침 햇살에 등 기대어 서 있습니다

《45》하늘 소리

오광수

뽀얗게 눈오는 길에 서서
사락 사락 하늘 소리를
담는다

시린 손끝이 색깔을 내고
부딪치는 연약함은
한 방울의 물도 못되는데
호 호 내뿜는 따스함엔
그마져 그냥
돌아눕는다

묻히기 싫어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든
노란 단풍 하나는
발끝까지 와서는
지치고
포기했나보다

손을 귀에 대고 듣는 하늘 소리는
그냥 보기만 했던 저 세계의
신비한 소리보다
내 어머니가 날 부르는
소리
차가 기어가는 소리

하늘에는
우리들의 소리들로 가득차있다.

《46》하늘빛 고운 날

오광수

하늘빛이 파랗게 고운 날
가슴에서 보고픈 이를 불러내어
눈이 아프도록 보고 또 봅니다.

아직 하늘에 매달려 있는 감 하나
하얀 구름으로 빨갛게 꽃을 만들고

부르다
부르다
손이 야위어진 갈대의 사랑도
품에 꼬옥 안겨 드립니다.

내 마음을 아시지요?
하늘빛으로 곱게 물이 들어서
언제나 그 모습 변치 않았으면

잊지 않으려고
잊지 않으려고
내 마음에서 이는 작은 바람에도
두 손을 꼭 쥡니다.

하늘빛이 파랗게 고운 날
설레임으로 문을 두드려서
그렇게 보고픈 이를 불러내렵니다.

《47》하늘을 보고 산다면

오광수

우리네 사는 모습 속에
아껴주는 마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시기하기보다 인정하고
배우려는 마음과 더불어
삶을 이루려는 마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운 마음 때문에
거북한 모습보다는
이해와 사랑이 가득한
마음들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네 있는 모습 속에
다독이는 가슴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차가운 똑똑함보다는
눈물을 아는 따뜻함과
정겹게 손잡을 수 있는
고움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시샘과 욕심으로
서로 흠을 찾기보다는
보듬고 위하여 베풀고
나누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네 사는 모습에서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할 때는
내 손을 펴야 하고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내 마음도 아픈 게 이치인데
좋은 것은 내가 하고

험한 것은 남의 몫이길 원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어찌 하늘을 보고 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48》하얀 겨울의 노래

오광수

겨울에는 하얀 눈이 있어 좋습니다.
하얀 눈꽃이
조용히 내리면
매섭게 설치던 찬바람도
아침에 보이던 산새들도
덩달아 가만히 숲으로 와서
사락 사락 노래를 들으며 쉬다
갑니다.

겨울에는 하얀 노래가 더 좋습니다.
두 손을 입에다 호호 모으고
가만히 혼자서 부르면은
하얀 입김으로
피어올라
처마끝 고드름 녹는 소리와
살랑 살랑 박자를 맞추며 날아갑니다.

겨울에는 봄을 기다려서 좋습니다.
하얀
목련이 마당에 필 때면
조용히 잠자던 봄바람도
숨었던 화사한 꽃 노래도
은근히 우리네 곁으로 와서
두근 두근
사랑의 가슴을 두드립니다.

겨울에는 내 님 마중가기 좋습니다.
강물이 추워서 서로 안으면
님이 부르시는
노래라도
멀리서 희미한 모습이라도
들리든 보이든 그날이라면
걸음 걸음 날으듯 저 강을
건너렵니다.

《49》한번은 보고 싶습니다

오광수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습니다.

사는 모습이
궁금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내 가슴속에 그려진 모습 그대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제 와서 아는척해서 무얼 합니까?
이제 와서
안부를 물어봐야 무얼 합니까?


어떤 말로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때의 일들도
오묘한 세월의 설득 앞에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그저 웃는 모습
한번 보고플 뿐입니다.
한번은 보고 싶습니다.

내 가슴속에 그려져 있는 얼굴 하나가
여느 아낙네보다 더 곱게 나이 들어가도

환하게 웃고 있는 미소는
그때 그대로
그렇게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삶이 혹시나 고단하시면
당신의 모습에서
그 미소가 사라졌다면
나는 가슴이 아파서 어찌합니까?

그래도
한번은 보고 싶습니다.

《50》하얀 계절의 기다림

오광수

하얀 눈으로 쓰신 편지에
아직은 아니라
시니
강가 돌 틈 사이로
아쉬움 걸어놓고 기다리렵니다.

하얀 목련이 활짝 웃을 때
그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물소리가 신나게 노래할 때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릴까요.

기다림으로 쌓인 하얀 밭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손대면 따스함이 느껴지는 건
당신의 숨결이 가까이 있음입니다.

오늘은 창문을 활짝 열고
서운한 맘
모두 쓸어내고
방안 가득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로만 채우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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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시 모음 34편

1.  12월

이외수

떠도는 그대 영혼 더욱
쓸쓸하라고
눈이 내린다

닫혀 있는 거리
아직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고
종말처럼 날이 저문다

가난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그대 더욱 목메이라고
길이 막힌다

흑백 사진처럼 정지해 있는 시간
누군가 흐느끼고 있다
회개하라 회개라하 회개하라
폭석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이 한 해의 마지막 언덕길
지워지고 있다

2.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이외수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 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3.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 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리라

더러는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눈이 내리고
참담한 사랑마저 소식이 두절되더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침묵으로
침묵으로 깊은 강을 건너가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4.  겨울비

이외수

모르겠어
과거로 돌아가는 터널이
어디 있는지
흐린 기억의 벌판 어디쯤
아직도 매장되지 않는 추억의 살점
한 조각 유기 되어 있는지
저물녘 행선지도 없이 떠도는 거리
늑골을 적시며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모르겠어 돌아보면
폐쇄된 시간의 건널목
왜 그대 이름 아직도
날카로운 비수로 박히는지

5.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이외수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을
한 겹씩 파내려 가면
먼 중생대 어디쯤
화석으로 남아 있는
내 전생을 만날 수 있을까
그 때도 나는
한 줌의 고사리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무는 바다 쪽으로 흔들리면서
눈물보다 투명한 서정시를
꿈꾸고 있었을까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
멀리 있어 그리운 이름일수록
더욱 선명한 화석이 된다 

6.  더 깊은 눈물 속으로

이외수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비로소 내 가슴에 박혀 있는
모난 돌들이 보인다.
결국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고
흩날리는 물보라에 날개 적시며
갈매기 한 마리
지워진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파도는 목놓아 울부짖는데
시간이 거대한 시체로
백사장에 누워 있다.
부끄럽다
나는 왜 하찮은 일에도
쓰라린 상처를 입고
막다른 골목에서
쓰러져 울고 있었던가.

그만 잊어야겠다.
지나간 날들은 비록 억울하고
비참했지만
이제 뒤돌아보지 말아야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 거대한 바다에는 분명
내가 흘린 눈물도 몇방울
그때의 순순한 아픔 그대로
간직되어 있나니.
이런 날은 견딜 수 없는 몸살로
출렁거리나니.

그만 잊어야겠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우리들의 인연은 아직 다 하지 않았는데
죽은 시간이 해체되고 있다.
더 깊은 눈물 속으로
더 깊은 눈물 속으로
그대의 모습도 해체되고 있다.

7.  봄날은 간다

이외수

부끄러워라
내가 쓰는 글들은
아직 썩어 가는 세상의
방부제가 되지 못하고
내가 흘린 눈물은
아직 고통받는 이들의
진통제가 되지 못하네
돌아보면 오십 평생
파지만 가득하고
아뿔사
또 한 해
어느 새 유채꽃 한 바지게 짊어지고
저기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봄날이여

8.  봄밤의 회상

이외수

밤 새도록 산문시 같은 빗소리를
한 페이지씩 넘기다가 새벽녘에
문득 봄이 떠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네
내 생애 언제 한번
꿀벌들 날개짓소리 어지러운 햇빛 아래서
함박웃음 가득 베어물고
기념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 본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풍경들은 언제나 흐림
젊은날 만개한 벚꽃같이 눈부시던 사랑도 끝내는
종식되고 말았네
모든 기다림 끝에 푸르른 산들이 허물어지고
온 세상을 절망으로 범람하는 황사바람
그래도 나는 언제나 펄럭거리고 있었네
이제는 이마 위로 탄식처럼 깊어지는 주름살
한 사발 막걸리에도 휘청거리는 내리막
어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네
별로 기대할 추억조차 없는 나날 속에서
올해도 속절없이 봄은 떠나가는데
무슨 이유로 아직도 나는
밤새도록 혼자 펄럭거리고 있는지를

9.  설야

이외수

사람들은 믿지 않으리
내가 홀로 깊은 밤에 시를 쓰며
눈이 내린다는 말 한마디

어디선가
나귀등에 몽상의 봇짐을 싣고
나그네 하나 떠나가는지
방울소리
들리는데
창을 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함박눈만 쌓여라
숨죽인 새벽 두 시

생각나느니 그리운 이여
나는 무슨 이유로
전생의 어느 호젓한 길섶에
그대를 두고 떠나왔던가

오늘밤엔 기다리며 기다리며
간직해 둔 그대 말씀
자욱한 눈송이로 내리는데
이제 사람들은 믿지 않으리
내가 홀로 깊은 밤에 시를 쓰면
울고 싶다는 말 한마디
이미 세상은 내게서 등을 돌리고
살아온 한 생애가 부질없구나

하지만 이 시간 누구든 홀로
깨어있음으로 소중한 이여
보라 그대 외롭고 그립다던 나날 속에
저리도 자욱히 내리는 눈
아무도 걷지 않은 순백의 길 하나
그대 전생까지 닿아 있음을

10.  외로운 세상

이외수

힘들고 눈물겨운 세상
나는 오늘도 방황 하나로 저물녘에 닿았다
거짓말처럼 나는 혼자였다
만날사람이 없었다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사람만 그리워졌다
사람들속에서 걷고 이야기하고 작별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섞여지지 않았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왜 자꾸만
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결국
내가 더 사랑한다고 느낄 때
외로움을 느낀다

11.  함께 있는 때

이외수

세상에 神의 사랑 가득한 줄은
풀을 보고 알 것인가
꽃을 보고 알 것인가

눈을 감아라 보이리니
척박한 땅에 자라난
그대 스스로 한 그루 나무
실낱같은 뿌리에
또 뿌리의 끝

하나님의 눈은 보이지 않고
다만 존재할 뿐
사람이여
정답다 우리
함께 있는 때 

12.  6월

이외수

바람 부는 날은 백양나무 숲으로 가면 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 주름살이 깊어가는
지천명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 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13.  가을빛

이외수

밥이 보다 요긴했던 시대
밥 때문에 상처받던 시대
사랑도 밥 앞에서는
맥 못 쓰던
그런 날에도.
흰쌀밥으로만 보이던
원고지 빈 칸
뜯어먹으며 쓴 말

밤마다 푸른 잉크로
살아온 날만큼
사랑이라 적으면
눈시울 젖은 채로 죽고 싶어라

14.  걸인의 노래

이외수

삶은 계란
반으로 잘랐더니
그 속에
보름달이
두 개나 숨어 있었네
세상이 이토록 눈부신 뜻
내장만 비우고도 알 수 있는 일

15.  기다림

이외수

어느 날은 속삭이듯
배꽃나무 그늘로
스미고 싶다던 그대여.
스며 그에게로
가닿을 수 있다면.
터진 꽃망울의 속살로
피어날 수 있다면.
한 꽃나무에서 다른 꽃나무로
흐를 수만 있다면

16.  꽃

이외수

안개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가 말했다.
수은등 밑에 서성이는
안개는
더욱 슬프다고
미농지처럼 구겨져
울고 있었다.
젖은 기적 소리가
멀리서 왔다.

17.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이외수

인간은 누구나 소유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완전무결한
자기 소유로 삼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요

아예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내 꺼는 없어, 라는
말을 대부분이 진리처럼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오늘 제가 어떤 대상이든지
영원한 내 꺼로 만드는
비결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 대상이 그대가 존재하는 현실
속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세요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순간 그 대상은
영원한 내 꺼로 등재됩니다

비록 그것이 언젠가는 사라져버린다
하더라도 이미 그것은 그대의
영혼 속에 함유되어 있습니다

다시 새로운 한 날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을 소유하는 삶보다
많은 것들에 함유되는
삶이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18.  노을

이외수

허공에 새 한 마리
그려 넣으면
남은 여백 모두가 하늘이어라
너무 쓸쓸하여
점하나를 찍노니
세상사는 이치가
한 점안에 있구나.

안개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가 말했다.
수은등 밑에 서성이는
안개는
더욱 슬프다고
미농지처럼 구겨져
울고 있었다.

19.  놀

이외수

이 세상에 저물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누군가가 그림자 지는 풍경 속에
배 한 척을 띄우고
복받치는 울음을 삼키며
뼈 가루를 뿌리고 있다
살아 있는 날들은
무엇을 증오하고 무엇을 사랑하랴
나도 언젠가는 서산머리 불타는 놀 속에
영혼을 눕히리니
가슴에 못다한 말들이 남아 있어
더러는 저녁 강에 잘디잔 물 비늘로
되살아나서
안타까이 그대 이름 불러도
알지 못하리
걸음마다 이별이 기다리고
이별 끝에 저 하늘도 놀이 지나니
이 세상에 저물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20.  만추

이외수

영혼이 없는 육체를 보았습니까.
그는 영혼을 호주머니 속에 넣어둡니다.
마른 풀씨 처럼
불을 붙이면
연기도 없이 지워질 몸은,
차곡차곡 접어서
서랍 속 흰 빨래 옆에 가지런히 놓아둡니다.
가끔은 주머니를 털고
술잔 속에
담배연기 속에
우리들 손등 위에 가만히
그의 영혼을 옮겨 놓습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서랍 속으로 들어가
이 세상과 분리됩니다.
우리가 그를 만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21.  별

이외수

내 영혼이 죽은 채로 술병 속에
썩고 있을 때
잠들어 이대로 죽고 싶다
울고 있을 때
그대 무심히 초겨울 바람 속을 걸어와
별이 되었다

오늘은 서울에 찾아와 하늘을 보니
하늘에는 자욱한 문명의 먼지
내 별이 교신하는 소리 들리지 않고
나는 다만 마음에 점 하나만 찍어 두노니
어느 날 하늘 맑은 땅이 있어
문득 하늘을 보면
그 점도 별이 되어 빛날 것이다

22.  봄눈

이외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뜨고요
영혼들만
새벽 안개등으로 빛나는 날
샘밭에 가면
강물처럼 흐르는 축축한
혼들의 행렬이 보이지요
안개는 슬픈 사람들의 넋이야
배추밭 뚝에서 젖은 채
흐느끼는 그대를
만나는 날이 많았습니다.

23.  수변

이외수

벽 속에도
벽 밖에도
담장에도 굴뚝에도
달마만 보였다.
구들장에도 서까래에도
하늘에도 땅에도
그리운 별은 또 어떻고.
버혀도 버혀도
달마는
비처럼 내렸다.

話頭를 놓았다.
달마도 벽도
간 곳이 없다.

24.  여름

이외수

샘밭에 가면
남루한 옷차림의
노을이,
남루한 사랑이
펼쳐진다. 공복인 그대가
어루만지던 원고지의
빈칸처럼.
그리움도 사랑도 시든 지
오래.
옛사랑은 노래가 되지 않는다.

25.  연꽃

이외수

흐린 세상을 욕하지 마라

진흙탕에 온 가슴을
적시면서
대낮에도 밝아 있는
저 등불 하나

26.  초저녁 강가에서

이외수

헤어진 사랑
땅에서는 바위틈에 피어나는
한 무더기 꽃
하늘에서는 달이 되고 별이 되고
또 더러는 내 소중한 이의 귀밑머리
거기에 무심히 닿는 바람소리

27.  풀꽃

이외수

세상길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도 법문 같은 개소리
몇 마디쯤 던질 줄은 알지만
낯선 시골길
한가로이 걷다 만나는 풀꽃 한 송이
너만 보면 절로 말문이 막혀 버린다
그렇다면 내 공부는 아직도 멀었다는 뜻

28.  한세상 산다는 것

이외수

한세상 산다는 것도
물에 비친 뜬구름 같도다

가슴이 있는 자
부디 그 가슴에
빗장을 채우지 말라

살아있을 때는 모름지기
연약한 풀꽃 하나라도
못 견디게 사랑하고 볼 일이다

29.  강이 흐르리

이외수

이승은 언제나 쓰라린 겨울이어라
바람에 베이는 살갗
홀로 걷는 꿈이어라

다가오는 겨울에는 아름답다
그대 기다린 뜻도

우리가 전생으로 돌아가는 마음 하나로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길
눈을 맞으며 걸으리니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마다
겨울이 끝나는 봄녘 햇빛이 되고
오스스 떨며 나서는 거미의 여린 실낱
맺힌 이슬이 되고
그 이슬에 비치는 민들레가 되리라

살아있어 소생하는 모든 것에도
죽어서 멎어 있는 모든 것에도
우리가 불어 넣은 말 한 마디

사랑한다고
비로소 얼음이 풀리면서
건너가는 나룻배
저승에서 이승으로 강이 흐르리

30.  길

이외수

버리고 일어서라.
시간의 감옥
눈 먼 등대 아래서
살해당한 바다곁에서
누군가
진눈깨비에 뼈를 적시며
울고 있지만
아무리 깊은 어둠
부러진 날개
참혹하여도
버리고 일어서라.

버리고 일어서라.

이 세상 모든 길들은
내게서 떠나가는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로 돌아오는 자를 위해서
영원토록
잠들지 않나니...

31.  섬

이외수

삽작 어귀도 쓸고
댓돌도 쓸고
방 안도 거울처럼
쓸고 닦았다.
벽 속의 달마가 말하기를
웬 쓰레기가
이리 큰 것이 앉았는고.

32.  여름 엽서

이외수

오늘 같은 날은
문득 사는 일이 별스럽지 않구나
우리는 까닭도 없이
싸우고만 살아왔네
그 동안 하늘 가득 별들이 깔리고
물소리 저만 혼자 자욱한 밤
깊이 생가지 앓아도 나는
외롭거니 그믐밤에는 더욱 외롭거니
우리가 비록 물 마른 개울가에
달맞이꽃으로 혼자 피어도
사실은 혼자이지 않았음을
오늘 같은 날은 알겠구나

낮잠에서 깨어나
그대 엽서 한 장을 나는 읽노라
사랑이란
저울로도 자로도 잴 수 없는
손바닥만한 엽서 한 장
그 속에 보고 싶다는
말 한 마디
말 한 마디만으로도
내 뼛속 가득
떠오르는 해

33.  조각잠

이외수

겨울 강바람이
산발치로
산길 몇 개를 틀어 올리면.
사람이 그리워
내려오는
산길로 들자.
무엇을 더 끊어야 하리.
세상 밖에 나와서
세상을 보는
저 깊은
적멸.

34.  흐린 세상 건너기

이외수

비는 예감을 동반한다.

오늘쯤은 그대를
거리에서라도 우연히
만날는지 모른다는 예감.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엽서 한 장쯤은
받을지 모른다는 예감.

그리운 사람은 그리워하기 때문에
더욱 그리워진다는
사실을 비는 알게 한다.

이것은 낭만이 아니라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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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정 시 모음 65편

《1》가을이 지금은 먼 길을 떠나려 하나니

신석정

운모(雲母)처럼 투명한 바람에 이끌려
가을이 지금은 먼 길을 떠나려 하나니
푸른 하늘의 대낮을 흰 달이 소리 없이 오고가며
밤이면 물결에 스쳐나려가는 바둑돌처럼
흰구름 엷은 사이사이로 푸른 별이 흘러갑데다

남국의 노란 은행잎새들이
푸른 하늘을 순례한다 먼 길을 떠나기 비롯하면
산새의 노래 짙은 숲엔 밤알이 쌓인 잎새들을 조심히 밟고
묵은 산장 붉은 감이 조용히 석양 하늘을 바라볼 때
가마귀 맑은 소리 산을 넘어 들려옵데다

어머니
오늘은 고양이 졸음 조는
저 후원의 따뜻한 볕 아래서
흰 토끼의 눈동자같이 붉은 석류알을 쪼개어먹으며
그리고 내일은 들장미 붉은 저 숲길을 거닐며
가을이 남기는 이 현란한 풍경들을 이야기하지 않으렵니까
가을이 지금은 먼 길을 떠나려 하나니……

《2》고운 심장

신석정

별도
하늘도
밤도 치웁다.

얼어 붙은 심장 밑으로 흐르던
한 줄기 가는 어느 난류(暖流)가 멈추고.

지치도록 고요한 하늘에 별도 얼어 붙어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가 정지하고
푸른 별이 모조리 떨어질지라도
그대로 서러울리 없다는 너는
오 너는 아직 고운 심장을 지녔거니
밤이 이대로 억만 년이야 갈리라구......

《3》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신석정

어머니
산새는 저 숲에서 살지요?
해 저문 하늘에 날아가는 새는
저 숲을 어떻게 찾아간답디까?
구름도 고요한 하늘의
푸른 길을 밟고 헤매이는데……
어머니 석양에 내 홀로 강가에서
모래성 쌓고 놀 때
은행나무 밑에서 어머니가 나를 부르듯이
안개 끼어 자욱한 강 건너 숲에서는
스며드는 달빛에 빈 보금자리가
늦게 오는 산새를 기다릴까요?

어머니
먼 하늘 붉은 놀에 비낀 숲길에는
돌아가는 사람들의
꿈 같은 그림자 어지럽고
흰 모래 언덕에 속삭이던 물결도
소몰이 피리에 귀기울여 고요한데
저녁바람은 그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언덕의 풀잎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가 어머니 무릎에 잠이 들 때
저 바람이 숲을 찾아가서
작은 산새의 한없이 깊은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4》그 마음에는

신석정

그 사사스러운 일로
정히 닦아온 마음에
얼룩진 그림자를 보내지 말라.

그 마음에는
한 그루 나무를 심어
꽃을 피게 할 일이요

한 마리
학으로 하여
노래를 부르게 할 일이다.

대숲에
자취 없이
바람이 쉬어 가고

구름도
흔적 없이
하늘을 지나가듯

어둡고
흐린 날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받들어

그 마음에는
한 마리 작은 나비도
너그러게 쉬어 가게 하라.

《5》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 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 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 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 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6》꽃 덤불

신석정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 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보리라.

《7》꿈의 일부(一部)

신석정

바람이
몹시 불고 있었다.

내가 타고 있는 백마의 갈기도
바람에 몹시 날리고 있었다.

출발 직전
백마는 길게 목놓아 울었다.

잠시
지구를 떠나기로 작정했다.

내가 탄 백마는
무작정 달리고만 있었다.

동백꽃이 붉게 타는
어느 해안선을 돌고 있었다.

이윽고
로마궁전의 원주(圓柱)가 멀리 바라보였다.

그 뒤 나는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메콩강(江) 언덕을 달릴 때였다.
문득 총소리에 내가 깬 것은……

《8》나랑 함께

신석정

비낀 햇빛 아래
문득 바라보는 나무

나무 옆에 서보면
나무가 되고,

꽃 옆에 서보면
꽃이 되어도,

두루미 흘러가는
저 하늘을 이고 보면,

너희들의 가슴 언저리에
그 뜨거운 가슴 언저리에 있고 싶어라.

흐드러진 웃음,
그 웃음소리에도

꽃은 피고
마냥 꽃은 피어나고,

빛나는 너희 눈망울이야
그대로 한 개 별빛이거늘,

흘러간 지난날이사
돌아볼 겨를도 없다.

너희들 내다보는 앞날을
나랑 함께 걷게 하여라.

《9》나무 등걸에 앉아서

신석정

요요한
산이로다.

겹겹이 쌓인 풀 길 없는 우리 가슴같이
깊은 산이로다.

아아라한 오월 하늘 짙푸른 속에
종달새
종달새
종달새는 미치게 울고

산은
첩첩
청대숲보다 더 밋밋하고 무성한데

아기자기한 우리 두 가슴엔
오늘사 태양 따라 환히 트인 길이 있어

이 나무 등걸에 널 껴안은 채
이토록 즐거운 눈물이 자꾸만 쏟아지는 것은

진정 죽고 싶도록 살고 싶은
사랑보다도 뜨겁고 더 존엄한 꽃이
가슴 깊이 피어난 까닭이리라.

《10》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신석정

햇볕이 유달리 맑은 하늘의 푸른 길을 밟고
아스라한 산너머 그 나라에 나를 담쑥 안고 가시겠습니까?
어머니가 만일 구름이 된다면……

바람 잔 밤하늘의 고요한 은하수를 저어서 저어서
별나라를 속속들이 구경시켜주실 수가 있습니까?
어머니가 만일 초승달이 된다면……

내가 만일 산새가 되어 보금자리에 잠이 든다면
어머니는 별이 되어 달도 없는 고요한 밤에
그 푸른 눈동자로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까?

《11》나의 노래는

신석정

나의 노래는
라일락꽃과 그 꽃잎에 사운대는
바람 속에 있다.

나의 노래는
너의 타는 눈망울과
그 뜨거운 가슴속에 있다.

나의 노래는
저어 빨간 장미의 산호 빛 웃음 속에 있다.

나의 노래는
항상 별같이 살고파 하는 네 마음 속에 있다.

나의 노래는
흰 나리꽃이 가쁘도록 내쉬는 짙은 향기 속에 있다.

나의 노래는
꽃잎이 서로 부딪치며 이뤄지는 죄 없는 입맞춤 속에 있다.

나의 노래는
소쩍새 미치게 우는 어둔 밤엘랑 아예 찾지 말라.
나의 노래는
태양의 꽃가루 쏟아지는 칠월 바다의 푸르른 수평선에 있다.

《12》난초(蘭草)

신석정

난초는
얌전하게 뽑아올린 듯 갸륵한 입새가 어여쁘다

난초는
건드러지게 처진 청수한 잎새가 더 어여쁘다

난초는
바위틈에서 자랐는지 그윽한 돌냄새가 난다

난초는
산에서 살던 놈이라 아무래도 산냄새가 난다

난초는
예운림(倪雲林)보다도 청담한 풍모를 갖추었다

난초는
도연명(陶淵明)보다도 청담한 풍모를 갖추었다
그러기에
사철 난초를 보고 살고 싶다
그러기에
사철 난초와 같이 살고 싶다

《13》날개가 돋쳤다면

신석정

어머니
만일 나에게 날개가 돋쳤다면

산새새끼 포르르 포르르 멀리 날아가듯
찬란히 피는 밤하늘의 별밭을 찾아가서
나는 원정(園丁)이 되오리다 별밭을 지키는……

그리하여 적적한 밤하늘에 유성이 뵈이거든
동산에 피는 별을 따 던지는 나의 장난인 줄 아시오

그런데 어머니
어찌하여 나에게는 날개가 없을까요?

어머니
만일 나에게 날개가 돋쳤다면

석양에 능금같이 붉은 하늘을 날아서
똥그란 지구를 멀리 바라보며
옥토끼 기르는 목동이 되오리다 달나라에 가서……
그리하여 푸른 달밤 피리소리 들려오거든
석양에 토끼 몰고 돌아가며 달나라에서 부는 나의 옥퉁소인 줄 아시오

그런데 어머니
어찌하여 나에게는 날개가 없을까요?

《14》네 눈망울에서는

신석정

네 눈망울에서는
초록빛 오월
하이얀 찔레꽃 내음새가 난다

네 눈망울에서는
초롱초롱한
별들이 이야기를 머금었다

네 눈망울에서는
새벽을 알리는
아득한 종소리가 들린다

네 눈망울에서는
머언 먼 뒷날
만나야 할 뜨거운 손들이 보인다

네 눈망울에는
손잡고 이야기할
즐거운 나날이 오고 있다

《15》눈맞춤

신석정

바람은 연신 불고 있었다.

안개 같은 비 사이로
비 같은 안개 사이로
엷은 햇볕이 내다보는 동안

문득
떠난 지 오랜 ‘생활’을 찾던 나의 눈은
아내의 눈을 붙잡았다.
아내의 눈도 나의 눈을 붙잡고 있었다.

불현듯 마주친
아내와 나의 눈맞춤 속에
어쩜 그토록 긴 세월이 흘러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몰랐다.

치열(齒列) 한 모서리가 무너진 아내는
이내 원뢰(遠雷)처럼 조용히 웃고 있었다.
조용한 우리들의 눈맞춤 속에




원뢰(遠雷)가 아스라이 또 들려오고 있었다.

《16》단장소곡(斷腸小曲)

신석정

추워 지친 하늘
서럽도록 짙푸르다.

물소리 잦아 시린 속에
해 지고
너는 가고,

종소리
노을에 젖어
목메어 은은한데,

원수도 없는 날을
살고파 타는 가슴

빈 주먹 쥐고 펴다
하루 해를 또 보냈다.

《17》대 바람 소리

신석정

대 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소(蕭蕭)한 대 바람 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 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그릴지언정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 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소리.

《18》대숲에 서서

신석정

대숲으로 간다
대숲으로 간다
한사코 성근 대숲으로 간다

자욱한 밤안개에 벌레 소리 젖어 흐르고
벌레 소리에 푸른 달빛이 배어 흐르고

대숲은 좋더라
성글어 좋더라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더라

꽃가루 날리듯 흥근히 드는 달빛에
기억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꺼나

《19》대춘부(待春賦)

신석정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거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은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뻐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20》대화(對話)

신석정

모란 순이
새끼손가락만치 자랐습데다.

너는 그렇게도
봄을 기두렸고나.

산수유(山茱萸)꽃이
벌써 시나브로 지던데요.

글쎄
봄은 오자 또 떠나는 게지……

그러기에 우린 아직도
경칩(驚蟄)이 먼 지역의 주민인가 봅니다.

산(山) 같은 침묵(沈?)이 흐른다.

《21》들길에 서서

신석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22》망향(望鄕)의 노래

신석정

한 이파리
또 한 이파리
시나브로 지는
지치도록 흰 복사꽃을

꽃잎마다
지는 꽃잎마다
곱다랗게 자꾸만
감기는 서러운 서러운 연륜(年輪)을

늙으신 아버지의
기침소리랑
곤때 가신 지 오랜 아내랑
어리디어린 손주랑 사는 곳

버리고 온 ‘생활(生活)’이며
나의 벅차던 청춘이
아직도 되살아 있는
고향인 성만 싶어 밤을 새운다.

《23》바다에게 주는 시

신석정

바다여
날이 날마다 속삭이는
너의 수다스런 이야기에 지쳐
해안선(海岸線)의 바위는
‘베―토벤’처럼 귀가 먹었다.

지구(地球)도 나같이 네가 성가시면
참다못해
너를 벌써 엎질렀을 게다.

저 언덕에서
동백꽃은 네가 하 우스워
파란 이파리 속에 숨어서
너를 웃고 있지 않니?

동백꽃이
자꾸만 웃어 대는
고 빨간 입술이
예뻐 죽겠다.

《24》발음(發音)

신석정

살아보니
지구(地球)는
몹시도 좁은 고장이더군요.

아무리
한 억만년(億萬年)쯤
태양을 따라다녔기로서니
이렇게도 호흡(呼吸)이 가쁠 수야 있습니까?

그래도 낡은 청춘을
숨가빠하는 지구(地球)에게 매달려 가면서
오늘은 가슴 속으로 리듬이 없는
눈물을 흘려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여보!
안심하십시요,
오는 봄엔
나도 저 나무랑 풀과 더불어
지줄대는 새같이
발음하겠습니다.

《25》밤의 노래

신석정

어둠이 범람하는 지역에
도도히 범람하는 처참한 지역에,
자꾸만 짐승들은 울고
목놓고 짐승들은 자꾸만 울고,
찌눌린 가슴이라 숨결도 영영 동결되어 가는가?

‘그렇지만 설마 그래서야 될리라구!’

시궁창 같은 세월을 꽃도 머물어,
그대로 멈출 수 없는 작은 핏줄에
핏줄 속에 수떨이는 가느다란 소리 있어,
아직은 뜨거운 가슴을 서로서로
꽃으로 문지르는가?

‘아예 그대로 잦아들 순 없는 것이여!’

몸서리나는 어둔 밤을 비바람 미치게 몰려드는데,
번갯불 사이사이 천둥소리 들려오고,
머언 먼 천둥소리 산을 넘어 들려오고,
새벽을 잉태하는 뼈저린 신음소리,
우리 가슴에 밀려드는 파도소리……

‘그대들의 귀에 젖은 노래소리 아닌가?’

《26》봄을 기다리는 마음

신석정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고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으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27》비가(悲歌)

신석정

‘루오’의 그림처럼
어둡게 살아가지만,
눈부신 햇볕을 원하는 건 아니다.

꾀꼬리
옥을 굴리듯 우는 소리보다는
차라리 가슴을 에어내는
귀,
촉,
도,
소리로 멍든 가슴을 채워 달라.

저 검은
까마귀떼가 지구 밖에서
하늘을 뒤덮는 건
차라리 견딜 수 있는 일이지만

안쓰러운 것들이
눈에 걸리는데
자꾸만 자꾸만
눈에 걸리는데,

그저
소라껍질을
스쳐가는 바람결처럼
차마 눈감을 수도 없거늘,

아아
하늘이여
피가 돌 양이면,

저어
야물딱진
민들레꽃을 피워내듯이
어서 숨을 돌리게 하라.

《28》비의 서정시(抒情詩)

신석정

길이 넘는 유리창에 기대어
그 여인은 자꾸만 흐느껴 울었다.

유리창 밖에서는 놋낱 같은 비가 좌악 좍 쏟아지고
쏟아지는 비는 자꾸만 유리창에 들이치는데
여인의 흐느껴 우는 소리는
빗소리에 영영 묻혀 버렸다.

그때 나는 벗과 같이 극장을 나오면서
그 여배우를 아무래도 잊을 수가 없다고
이야기한 일이 있다.

생활의 창문에 들이치는 비가 치워
들이치는 비에 가슴이 더욱 치워
나는 다시 그 여인을 생각한다.

글쎄 여보!
우리는 이 어설픈 극장에서 언제까지
서투른 배우 노릇을 하오리까?

《29》비의 抒情詩

신석정

 길이 넘는 유리창에 기대어
그 여인은 자꾸만 흐느껴 울었다.

유리창 밖에서는 놋낱 같은 비가 좌악 좍 쏟아지고
쏟아지는 비는 자꾸만 유리창에 들이치는데
여인의 흐느껴 우는 소리는
빗소리에 영영 묻혀버렸다.

그때 나는 벗과 같이 극장을 나오면서
그 여배우를 아무래도 잊을 수가 없다고
이야기한 일이 있다.

생활의 창문에 들이치는 비가 치워
들이치는 비에 가슴이 더욱 치워
나는 다시 그 여인을 생각한다.

글쎄 여보!
우리는 이 어설픈 극장에서 언제까지
서투른 배우 노릇을 하오리까?

《30》빙하(氷河)

신석정

동백꽃이 떨어진다
빗속에 동백꽃이
시나브로 떨어진다.

수(水)
평(平)
선(線)
너머로 꿈 많은 내 소년을 몰아가던
파도소리
파도소리 부서지는 해안에
동백꽃이 떨어진다

억만 년 지구와 주고받던
회화에도 태양은 지쳐
엷은 구름의 면사포(面紗布)를 썼는데
떠나자는 머언 뱃고동소리와
뚝뚝 지는 동백꽃에도
뜨거운 눈물지우던 나의 벅찬 청춘을
귀대어 몇 번이고 소근거려도
가고오는 빛날 역사란
모두 다 우리 상처 입은 옷자락을
갈가리 스쳐갈 바람결이여

생활이 주고 간 화상(火傷)쯤이야
아예 서럽진 않아도
치밀어오는 뜨거운 가슴도 식고
한 가닥 남은 청춘마저 떠난다면
동백꽃 지듯 소리 없이 떠난다면
차라리 심장(心臟)도 빙하(氷河) 되어
남은 피 한 천 년 녹아
철 철 철 흘리고 싶다.

《31》산방일기(山房日記)

신석정

봉우리 넘어오는 구름
추녀를 스쳐가고

골엔
꾀꼬리 화답(和答)하는 소리
산이 울린다.

방을 둘러가는
산나비 지친 나랫소리―

그저
해만 설핏하면
소쩍새 울고,

산도 을씨년스러워
하늘만 바라보는데,

밤 들기 전
풀벌레 사운대는 속에
나긋나긋 잠이 온다.

《32》산산산

신석정

지구엔
돋아난
산이 아름다웁다

산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다웁다

산에는
아무 죄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아름다웁다

언제나
나도 산이 되어보나 하고
기린같이 목을 길게 늘이고 서서
멀리 바라보는





《33》산수도(山水圖)

신석정

숲길 짙어 이끼 푸르고
나무 사이사이 강물이 희어

햇볕 어린 가지 끝에 산새 쉬고
흰구름 한가히 하늘을 거닌다.

산가마귀 소리 골짝에 잦은데
등 너머 바람이 넘어 닥쳐와

굽어든 숲길을 돌아서 돌아서
시냇물 여음이 옥인듯 맑아라.

푸른 산 푸른 산이 천 년만 가리
강물이 흘러흘러 만 년만 가리

《34》산으로 가는 마음

신석정

내 마음
주름살 많은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 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든 산을 찾아 내 마음 머언길을 떠나네

산에는
고요한 품안에 고산 식물들이 자라나거니

마음이여
너는 해가 저물어 이윽고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산에서
그렇게 고요한 품안을 떠나와서야 쓰겠니

《35》산협인상(山峽印象)

신석정

밋밋한 오리나무 숲을
성낸 짐승처럼 함부로 헤쳐나오면
성근 소나무 소나무 사이로
아스므라한 바라 푸른 언덕에 솟아오르고
꾀꼬리 호반새 울어예는 산협에
홈초로니 푸른 오월이 지르르 흘러

시냇물 졸졸졸 사뭇 지즐대는 기슭에
전나무 상나무 대 수풀 우거지고
간지람 나무 바람풍나무 제자리 잡아 서고
언덕을 돌아드는 오월 바람이 간지러워 간지러워
나뭇잎새들은 푸른 손을 자꾸만 뒤흔들며 몸부림친다

나는
짐승도 아니란다
나무도 아니란다
얇은 모시두루마기에 덮인 채
백로처럼 날아볼 수도 없고나
태화처럼 흔들릴 수도 없고나

《36》새벽을 기다리는 마음

신석정

잔인한 촛불에게 추방을 당하면서도
나의 침실을 잊지 않는 충실한 어둠이여

오늘밤 나는 너를 위하여 촛불을 끄고
재 작은 침실의 전면적을 제공하노니

어둠이여 너는 오늘밤에도 나를 안고
새벽이 온다는 단조한 이야기를 계속하겠지?

그러나 나는 밤마다 네가 속삭이는
그 새벽을 한 번도 맞아본 일은 없다

"대체 네가 새벽이 온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오래되건만……"

《37》생존(生存)

신석정

체온(體溫)도 스며들지 않는
서글픈 악수에 지친 주민(住民)이기에
나는 문득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숨이 가빠
그래도 숨이 가빠
어항도곤 좁은 지구를
뛰어나가고 싶었다.

《38》서가(書架)

신석정

개미새끼 흙탑을 쌓아올리듯
작은 서가에 틈 없이 책을 쌓아놓고

마음이 호수처럼 가라앉는 날
한 권 두 권 내들고 읽는 한가한 날

때로는 서가가 드높은 산같이 보이기도 하고
나는 그 산을 천천히 오르기도 하고

곤륜산보다 더 깊숙한 내 서가에
오늘은 난초 향기가 그윽이 흐르는 듯하이

《39》서정가(抒情歌)

신석정

흰 복사꽃이 진다기로서니
빗날 같이 뚜욱 뚝 진다기로서니
아예 눈물짓지 마라 눈물짓지 마라

너와 나의 푸른 봄도
강물로 흘렀거니
그지없이 강물로 흘러갔거니

흰 복사꽃이 날린다기로서니
낙엽처럼 휘날린다 하기로서니
서러울 리 없다 서러울 리 없어

너와 나는 봄도 없는 흰 복사꽃이여
빗날같이 지다가 낙엽처럼 날려서
강물로 강물로 흘러가 버리는

《40》서정소곡

신석정

삼월보다 따스한
네 손을 달라

백목련보다 하이얀
네 가슴을 달라

불보다 불보다 뜨거운
네 심장을 달라

시방 거리에는
음악 같은 실비 내리고

실비 내리는 속에
동백꽃 뚜욱 뚝 지는 소리 들려오고,

돌멩이의 체온도 그리운
죽음보다 외로운 오후

음악같이 내리는 실비 속에
나는 산처럼 서서 널 생각한다

《41》선물

신석정

하늘가에 붉은 빛 말없이 퍼지고
물결이 자개처럼 반짝이는 날
저녁해 보내는 이도 없이
초라히 바다를 넘어갑니다

어슷어슷 하면서도
그림자조차 뵈이지 않는 어둠이
부르는 이 없이 찾아와선
아득한 섬을 싸고돕니다

주검같이 말없는 바다에는
지금도 물살이 웃음처럼 남실거리는 흔적이 뵈입니다
그 언제 해가 넘어갔는지 그도 모른 체하고―

무심히 살고 또 지내는
해∼ 바다∼ 섬∼ 하고 나는 부르짖으면서
내 몸도 거기에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42》소곡(小曲)

신석정

산이여
그 무슨 그리움이 복받쳐
지구와 더불어 탄생한 이후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느뇨

산이여
나 또한 진정 그리운 것 있어
발돋움하고 우러러보아도
나의 하늘은 너무 아득하고나

《43》소곡(小曲)

신석정

산이여
그 무슨 그리움이 복받쳐
지구와 더불어 탄생한 이후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느뇨

산이여
나 또한 진정 그리운 것 있어
발돋움하고 우러러보아도
나의 하늘은 너무 아득하고나

《44》수선화(水仙花)

신석정

수선화는
어린 연잎처럼 오므라진 흰 수반에 있다

수선화는
암탉 모양하고 흰 수반이 안고 있다

수선화는
솜병아리 주둥이같이 연약한 움이 자라난다

수선화는
아직 햇볕과 은하수를 구경한 적이 없다

수선화는
돌과 물에서 자라도 그렇게 냉정한 식물이 아니다

수선화는
그러기에 파아란 혀끝으로 봄을 핥으려고 애쓴다

《45》슬픈 구도

신석정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어날 지구(地球)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 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 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 뿐이요,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하늘 별이더뇨.

《47》슬픈 전설을 지니고

신석정

나무 사이로
가시 사이로
잎 사이로
옆 맥이 드러나게 햇볕이 흘러들고
젊은 산맥 멀리 푸른 하늘이 넘어갑니다

어머니
한때는 하늘을 잃어버리고
한때는 햇볕을 잃어버리고
슬픈 전설을 가슴에 지닌 채
죄 없는 짐승처럼 살아왔지만
죄 없는 짐승처럼 살아왔지만

하늘이 너무 푸르지 않습니까?
햇볕이 너무 빛나지 않습니까?
어머니
당신은 이제 아예 슬픈 전설을 빚어내지 마십시오

너그러운 햇볕을 안고
저 푸른 하늘을 우러러
무성한 나무처럼 세차게 서서
무성한 나무처럼 세차게 서서
슬픈 전설은 심장에 지니고
정정한 나무처럼 살아가오리다

《48》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신석정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우에는 인제야 저녁안개가 자욱히 나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뚝을 거쳐서 들려오던 물결소리도
차츰 차츰 멀어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을 방문하는 가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읍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인제야 저 숲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50》어느 지류에 서서

신석정

강물 아래로 강물 아래로
한 줄기 어두운 이 강물 아래로
검은 밤이 흐른다.
은하수가 흐른다.

낡은 밤에 숨 막히는 나도 흐르고
은하수에 빠진 푸른 별이 흐른다.

강물 아래로 강물 아래로
못 견디게 어두운 이 강물 아래로
빛나는 태양이
다다를 무렵

이 강물 어느 지류에 조각처럼 서서
나는 다시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리......

《51》연꽃이었다

신석정

 그 사람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이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 하나 있다

눈빛 맑아,
호수처럼 푸르고 고요해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침나절 연잎 위,
이슬방울 굵게 맺혔다가
물 위로 굴러 떨어지듯, 나는
때때로 자맥질하거나
수시로 부서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삶의 궤도는, 억겁을 돌아
물결처럼 출렁거린다
수없이. 수도 없이

그저 그런, 내가
그 깊고도 깊은 물 속을
얼만큼 더 바라볼 수 있을런지
그 생각만으로도 아리다
그 하나만으로도 아프다

《52》은방울꽃

신석정

나는
그때 외롭게
산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나뭇가지를 옮아앉으며
‘동박새’가 울고 있었다.

어쩜
혼자 우는 ‘동박새’는
나도곤 더 외로웠는지 모른다.

숲길에선
은방울꽃 내음이 솔곳이
바람결에 풍겨오고 있었다.

너희들의
그 맑은 눈망울을
은방울꽃 속에서 난 역력히 보았다.

그것은
나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너희 가슴속에 핀 꽃이었는지도 모른다.

《53》이 밤이 너무나 길지 않습니까

신석정

젊고 늙은 산맥들을

푸른 바다의 거만한 가슴을 벗어나
우리들의 태양이
지금은 어느 나라 국경을 넘고 있겠습니까?

어머니
바로 그 뒤
우리는 우리들의 화려한 꿈과
금시 떠나간 태양의 빛나는 이야기를
한참 소근대고 있을 때
당신의 성스러운 유방같이 부드러운 황혼이
저 숲길을 걸어오지 않았습니까?

어머니
황혼마저 어느 성좌로 떠나고
밤∼
밤이 왔습니다
그 검고 무서운 밤이 또 왔습니다

태양이 가고
빛나는 모든 것이 가고
어둠은 아름다운 전설과 신화까지도 먹칠하였습니다
어머니
옛이야기나 하나 들려주세요
이 밤이 너무나 길지 않습니까?

《54》임께서 부르시면

신석정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아로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은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 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아란 하늘에 백로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55》입춘(立春)

신석정

가벼운
기침에도
허리가 울리더니

엊그제
마파람엔
능금도 바람이 들겠다.


노곤한 햇볕에
등이 근지러운 곤충처럼
나도
맨발로 토방 아랠
살그머니 내려가고 싶다.

‘남풍이 ×m의 속도로 불고
곳에 따라서는 한때 눈 또는 비가 내리겠습니다’

《56》작은 짐승

신석정

란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란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란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 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 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란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란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그늘에 말없이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순하디순한 짐승이었다

《57》촐촐한 밤

신석정

새새끼 포르르 포르르 날아가 버리듯
오늘밤 하늘에는 별도 숨었네.
풀려서 틈가는 요지음 땅에는
오늘밤 비도 스며들겠다.

어두운 하늘을 제쳐보고 싶듯
나는 오늘밤 먼 세계가 그리워

비 내리는 촐촐한 이 밤에는
밀감 껍질이라도 지근거리고 싶구나!

나는 이런 밤에 새끼궝 소리가 그립고
흰 물새 떠다니는 먼 호수를 꿈꾸고 싶다

《58》파도(波濤)

신석정

갈대에 숨어드는
소슬한 사람
구월도 깊었다.

철 그른
뻐꾸기 목멘 소리
애가 잦아 타는 노을

안쓰럽도록
어진 것과
어질지 않은 것을 남겨 놓고

이대로
차마 이대로
눈감을 수도 없거늘

산을 닮아
입을 다물어도
자꾸만 가슴이 뜨거워오는 날은

소나무 성근 숲너머
파도소리가
유달리 달려드는 속을

부르르 떨리는 손은
주먹으로 달래 놓고
파도 밖에 트여올 한 줄기 빛을 본다.

《59》푸른 하늘 바라보는 행복이 있다

신석정

따뜻한 햇볕 물 우에 미끄러지고
흰 물새 동당동당 물에 뜨듯 놀고 싶은 날이네

언덕에는 누런 잔디 헤치는 바람이 있고
흰 염소 그림자 물 속에 어지러워

묵은 밭에 가마귀 그 소리 한가하고
오늘도 춤이 잦았다…하늘에 해오리…

이렇게 나른한 봄날 언덕에 누워
나는 푸른 하늘 바라보는 행복이 있다

《60》하도 햇볕이 다냥해서

신석정

하도 햇볕이 다냥해서
뱀이 부시시 눈을 떠보았다.

― 그러나 아직 겨울이었다.

하도 땅속이 훈훈해서
개구리도 뒷발을 쭈욱 펴보았다.

― 그러나 봄은 아니었다.

어디서 살얼음 풀린 물소리가 나서
나무움들도 살포시
밖을 내다보았다.

― 그러나 머언 산엔 눈이 하얗다.

핸 멀찌막히 ‘경칩(驚蟄)’을 세워 놓고
이렇게 따뜻하게 비췰 건 뭐람?

― 그러나 봄 머금은 햇볕이어서 좋다.

미치고 싶도록 햇볕이 다냥해서
나도 발을 쭈욱 펴고 눈을 떠본다.

― 그러나 ‘입춘(立春)’은 칼렌다 속에

숨어 하품을 하고 있었다.

《61》한대식물(寒帶植物)

신석정

푸른 계절이 모조리 휩쓸려가고
건강한 산맥들이 아주 물러앉은 뒤
세월은 오로지 슬픈 이야기만 싣고
장미처럼 받들던 네 심장을 사뭇 지나갔다

한사코 태양을 따라다니던 대낮도 인젠 싫다
푸른 하늘까지도 단숨에 삼키는 거룩한 밤을 가졌노라
한때 곤곤히 흐르던 난류가 멈춘 이후
네 심장에는 나날이 자라가는 한대식물이 무성하고나

《62》항구(港口)에서

신석정

네가 떠난 항구(港口)에
오월 바람이 설렌다.

머리칼을 날리는 젊은 아낙네들은
베피떡이랑 뎀뿌라랑 소주병을 늘어놓고
뱃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꼬박꼬박 기두리고 있는 항구(港口).

가대기의 뒤를 따라다니는 발 벗은 아이들은
구호양곡(救護糧穀)의 가마니에서 쑤시알갱이가 빠지면
병아리처럼 주워서는 차대기에 넣는 항구(港口).

Singoara같이 사랑하는 이의
성한 피가 몹시는 먹고프다는 그 백랍 같은 여인도곤
아낙네와 발 벗은 어린 것이 더 안쓰러운 항구(港口).

오월 바람 설레는 항구(港口)에
멀리 떠난 너를 생각하는 눈시울이 뜨겁다.

《63》화석이 되고 싶어

신석정

하늘이 저렇게 옥같이 푸른 날엔
멀리 흰 비둘기 그림자 찾고 싶다

느린 구름 무엇을 노려보듯 가지 않고
먼 강물은 소리 없이 혼자 가네

뽑아 올린 듯 밋밋한 산봉우리 곡선이 또렷하고
명항한 날이라 낮달이 더욱 희고나

석양에 빛나는 까마귀 날개같이 검은 바위에
이런 날엔 먼 강을 바라보고 앉은 대로 화석이 되고 싶어......

《64》황(篁)

신석정

댓이파리
댓이파리
댓이파리에
바람이 왔다.

바람은
댓이파리보다
더 짙푸르다.

난 밋밋한 대와
나란히 서서
쏟아지는 태양(太陽)의 파란 분수(噴水)를
어린 금붕어 새끼처럼 뻐끔뻐끔
마시는 것이
좋다.

나는
갑자기 대가 되어버린다.

파란 대가 섞인
나는 나를 잊어버린 채

대랑 산다.

《65》봄의 유혹

신석정

파란 하늘에 흰 구름 가벼이 떠가고
가뜬한 남풍이 무엇을 찾어내일 듯이
강 너머 푸른 언덕을 더듬어 갑니다

언뜻언뜻 숲새로 먼 못물이 희고
푸른 빛 연기처럼 떠도는 저 들에서는
종달새가 오늘도 푸른 하늘의 먼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시내물이 나직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아지랑이 영창 건너 먼 산이 고요합니다
오늘은 왜 이 풍경들이 나를 그리워하는 것 같애요

산새는 오늘 어데서 그들의 소박한 궁전을 생각하며
청아한 목소리로 대화를 하겠읍니까?
나는 지금 산새를 생각하는 '빛나는 외로움'이 있읍니다.

임이여 무척 명랑한 봄날이외다
이런 날 당신은 따뜻한 햇볕이 되어
저 푸른 하늘에 고요히 잠들어 보고 싶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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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 모음 52편

1.  가벼움

김지하

불꽃이 타는
이마 위에 물을 이고
물의 진양조의 무게 아래 숨지는
나비 같은 가벼움
나비 같은 불꽃이 타는
이마 위에 물살을 이고
퍼부어 내리는 비의 쌔하얀
파성을 이고 불꽃이 타는
이마 위에 이마 위에
총창이 그어댄 주름살의 나비 같은
익살을 이고
불꽃이 타는 그 이마 위에
물살이 흐르고 옆으로
옆으로 흐르는 물살만이 자유롭고
불꽃이 타는 이마 위에
퍼부어 내리는 비의 쌔하얀
공포를 이고
숨져간 그 날의 너의
나비 같은 가벼움.

2.  가을

김지하

낙엽철
햇빛 속에서

머리를 긁어 올린다
흰 비듬이
우수수 쏟아진다

가슴에 꽂힌
모진 눈빛들 칼끝 같은 말들
다 쏟아진다

푸른 하늘

제주 어디쯤
검은 돌 틈 흰 갈꽃에 가 있는
내 마음 그물 새

가을.

3.  갈꽃

김지하

싸늘한 듯 살가운
가을 풀 냄새
이리
돌아오는 옛 마을 
코끝에
또 가슴속에
갈꽃 하나 흔들려 

지금
거리에서 버티고
모멸에도 미소짓고 
술 취한 밤
파김치 발길이
집 찾아 돌아오고
또 돌아오는 것은 
갈꽃 하나
내 아내 
마음의 틈 
이 가을
숨쉬는 일 모두 다
아아 귀향!

4.  겨울에

김지하

마음 산란하여
문을 여니

흰눈 가득한데
푸른 대가 겨울 견디네

사나운 짐승도 상처받으면
굴속에 내내 웅크리는 법

아아
아직 한참 멀었다

마음만 열고
문은 닫아라. 

5.  길

김지하

걷기가 불편하다
가야하고 또 걸어야 하는 이곳
미루어 주고 싶다.
다하지 못한 그리움과
끝내지 못한 슬픈 노래를
허나
길은 걸어야 하고 생각은
가야 하나 보다.

눈물이 흐른다.
보내야 하고 잊어야 하는 이곳
눈 있어 보지 못한 너와
입 있어 말 못하는 내가

허나
길은 걸어야 하고
생각은 가야 하나 보다.

6.  꽃 그늘

김지하 


이제야 그늘 속에


핀다

꽃과 그늘 사이
언젯적부터인가
그 긴장은

이제야
짧은 행간에
웬 무늬무늬 드러나
흰 무늬들
속의 속
흐드러진다

내 삶의


여기
청도 각북골에 와
엎드린 한 새벽에 흘러
흘러 넘치며 아롱거리는
샘물 속 

7.  끝

김지하

기다림밖엔
그 무엇도 남김 없는 세월이여
끝없는 끝들이여
말없는 가없는 모습도 없는
수렁 깊이 두 발을 묻고 하늘이여
하늘이여
외쳐 부르는 이 기나긴 소리의 끝
연꽃으로도 피어 못 날 이 서투른 몸부림의 끝
못 믿을 돌덩이나마 하나
죽기 전엔 디뎌보마
죽기 전엔

꿈없는 네 하얀 살결에나마 기어이
불길한 꿈 하나는 남기고 가마
바람도 소리도 빛도 없는 세월이여 기다림밖엔
남김 없는 죽음이 죽음에서 일어서는
외침의 칼날을 기다림밖엔
끝없는 끝들이여
모든 끝들이여 잠자는 끝들이여
죽기 전엔 기어이
결별의 글 한 줄은 써두고 가마

8.  나 한때

김지하

나 한때
잎새였다

지금도
가끔은 잎새

해 스치는 세포마다
말들 태어나
온 우주가 노래 노래부르고

잎새는 새들 속에
또 물방울 속에
가없는 시간의 무늬 그리며
나 태어난다고
끊임없이 노래부르고 노래부른다

지금도
신실하고 웅숭스런
무궁한 나의 삶

내 귓속에
내 핏줄 속에 울리는
우주의 시간

나 한때
잎새였다

지금도
가끔은 잎새

잊었는가
잎새가 나를 먹이고
물방울이 나를 키우고
새들이 나를 기르는 것

잊었는가

오늘도
잎새 속에서

뚫어져라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는 것.

9.  나그네

김지하

길 너머
저편에
아무것도 없다

가야 한다
나그네는 가는 것
길에서 죽는 것

길 너머
저편에
고향 없다

내 고향은

끝없는 하얀 길

길가에 한 송이
씀바귀
피었다.

10.  나이

김지하

바람은 풍덩풍덩 불고
햇볕은 사뭇 초봄인데
매지리 못가에 앉으니
괴로움도 기쁨도 자취 없고
파문 자취만 물 위에 남는다
이울어진 함석집 한 귀퉁이
늦은 탈곡이 한창인데
나는 항상 구경꾼
나는 항상 여행자
내 속에서도 늦은 탈곡이 한창인데

11.  낮선 희망

김지하  

내리는 비를 타고
한없이 내려라

증발의 날을
기다림도 없이

내려라
내린 속에 떠오르는

첫 무지개

태양도 없이 떠오르는
비 오는 날의
낯선 낯선 희망

12.  노을 무렵

김지하

 눈부신 흰 시루봉 저녁
어여쁜 분홍 노을
내 시린 이마에 타는 노을
행길 저기서
아이들과 함께 공받기 하는 내 속에
행길 여기서
아이들과 함께 공받기 보고 있는 내 속에
담배 피우며 신문을 읽고 있는
내 속에 노을 무렵에
되똥거리는 빛나는 재잘거리는
닭, 참새, 붉은 구름, 사철나무 스쳐
지나는 바람, 머언 거리의 노래 소리
노래 소리 속에
나와 함께 공받기 하는 아이들 속에
눈부신 흰 시루봉 저녁
어여쁜 분홍 노을
내 시린 이마에 타는 노을
우리 집에 문득
불 켜질 때 나는 다시 혼자다
오늘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자.

13.  녹두 꽃

김지하

빈손 가득히 움켜쥔
햇살에 살아
벽에도 쇠창살에도
노을로 붉게 살아
타네
불타네
깊은 밤 넋 속의 깊고
깊은 상처에 살아
모질수록 매질 아래 날이 갈수록
흡뜨는 거역의 눈동자에 핏발로 살아
열쇠소리 사라져버린 밤은 끝없고
끝없이 혀는 짤리어 굳고 굳고
굳은 벽 속의 마지막
통곡으로 살아
타네
불타네
녹두꽃 타네
별 푸른 시구문 아래 목 베어 횃불 아래
횃불이여 그슬러라
하늘을 온 세상을
번뜩이는 총검 아래 비웃음 아래
너희, 나를 육시토록
끝끝내 살아.

14.  녹두 꽃

김지하

빈손 가득히 움켜쥔
햇살에 살아
벽에도 쇠창살에도
노을로 붉게 살아
타네
불타네
깊은 밤 넋 속의 깊고
깊은 상처에 살아
모질수록 매질 아래 날이 갈수록
흡뜨는 거역의 눈동자에 핏발로 살아
열쇠소리 사라져버린 밤은 끝없고
끝없이 혀는 짤리어 굳고 굳고
굳은 벽 속의 마지막
통곡으로 살아
타네
불타네
녹두꽃 타네
별 푸른 시구문 아래 목 베어 횃불 아래
횃불이여 그슬러라
하늘을 온 세상을
번뜩이는 총검 아래 비웃음 아래
너희, 나를 육시토록
끝끝내 살아.

15.  短詩

김지하

短詩 하나

끊으려면 잇는 법
아주 잊히기 위해
이리 우뚝 선다
이루지 못하고 가는 것이 사람이라
오늘
진지하게
죽음을 한번 생각한다.

短詩 둘

내 가슴에 달이 들어
내 가난한 가슴에
보름달이 들어
고층 아파트 사이사이를
산책 가는 내 가슴에
가을달이 들어.

短詩 넷

진종일 바람 불고
바람 속에 꽃 피고
꽃 속에 내 그리움 피어
세계는 잠시도 멈추지 않는데
내 어쩌다 먼 산 바라
여기에 굳어 돌이 되었나.

16.  들녘

김지하

무엇이 여기서
무너지고 있느냐
무엇이 저렇게 소리치고 있느냐
아름다운 바람의 저 흰 물결은 밀려와
뜨거운 흙을 적시는 한탄리 들녘
무엇이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느냐
참혹한 옛 싸움터의 꿈인 듯
햇살은 부르르 떨리고
하얗게 빛 바랜 돌무더기 위를
이윽고 몇 발의 총소리가 울려간 뒤
바람은 나직이 속살거린다
그것은 늙은 산맥이 찢어지는 소리
그것은 허물어진 옛 성터에
미친 듯이 타오르는 붉은 산딸기와
꽃들의 외침소리
그것은 그리고
시드는 힘과 새로 피어오르는 모든 힘의 기인 싸움을
알리는 쇠나팔소리
내 귓속에서
또 내 가슴속에서 울리는
피끓는 소리
잔잔하게
저녁 물살처럼 잔잔하게
붓꽃이 타오르는 빈 들녘에 서면
무엇인가 자꾸만 무너지는 소리
무엇인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소리.

17.  無

김지하

공허하므로 움직인다

시장해서

너를 사랑했노라

땅 위의 풀과 벌레
거리의 이웃들
해와 달별과 구름 모두 다
모두 다 죽어 가는 이 한낮

내 속에
텅 빈속에
바람처럼 움트는
왠 첫사랑 우주 사랑

그 새붉음을
본다

공허하므로
공허함으로 움직인다.

18.  무화과

김지하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섰다.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뽑아 등 다스려주며
이것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19.  바다

김지하

가겠다
나 이제 바다로
참으로 이제 가겠다
손짓해 부르는
저 큰 물결이 손짓해 나를 부르는
망망한 바다
바다로

없는 것
아득한 바다로 가지 않고는
끝없는 무궁의 바다로 가는 꿈 없이는 없는 것
검은 산 하얀 방 저 울음소리 그칠 길
아예 여긴 없는 것

나 이제 바다로
창공만큼한
창공보다 더 큰 우주만큼한
우주보다 더 큰 시방세계만큼한
끝간 데 없는 것 꿈꿈 없이는
작은 벌레의
아주 작은 깨침도 있을 수 없듯
가겠다

나 이제 가겠다
숱한 저 옛 벗들이
빛 밝은 날 눈부신 물 속의 이어도
일곱 빛 영롱한 낙토의 꿈에 미쳐
가차없이 파멸해 갔듯
여지없이 파멸해 갔듯
가겠다
나 이제 바다로

백방포에서 가겠다
무릉계에서 가겠다
아오지 끝에서부터라도 가겠다
새빨간 동백꽃 한 잎
아직 봉오리일 때
입에 물고만 가겠다
조각배 한 척 없이도
반드시 반드시 이젠 한사코
당신과 함께 가겠다
혼자서는 가지 않겠다

바다가 소리 질러
나를 부르는 소리 소리, 소리의 이슬
이슬 가득 찬 한 아침에
그 아침에
문득 일어서
우리 그 날 함께 가겠다
살아서 가겠다
아아
삶이 들끓는 바다, 바다 너머
저 가없이 넓고 깊은, 떠나온 생명의 고향
저 까마득한 화엄의 바다

가지 않겠다
가지 않겠다
혼자서라면
함께가 아니라면 헤어져서라면
나는 결코 가지 않겠다

바다보다 더 큰 하늘이라도
하늘보다 우주보다 더 큰 시방세계라도
화엄의 바다라도
극락이라도.

20.  바람에게

김지하

내게서 이제
다 떠나갔네
옛날 훗날도
먼 곳으로 홀가분하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네, 남은 것은
겉머리 속머리
가끔 쑤시는 짜증뿐
빈 가슴 스쳐 지나는
윗녘 아랫녘 바람 소리뿐

내게서 더는
바랄 것 없네
버리려 떠나 보내려
그토록 애태웠으니
바랄 것은
아무것도 없네, 바랄 것은
몹시도 시장한 중에
눈 밝혀 찾아 먹는 밥 한 그릇
배부르면 배 두드려
대중없이 부르는 밥노래 한 가락뿐

춘란 뽑혀
멀리 팔려간 티끌 이는 길섶
못생긴 여뀌닢여뀌 잎으로 잔뜩
비틀어져 내 다시 났으니
바람아
내 잎새에 와 무심결에
새 햇살로 흔들려라.

21.  백학봉(白鶴峰)

김지하


멀리서 보는
백학봉白鶴峰

슬프고
두렵구나

가까이서 보면 영락없는
한 마리 흰 학,

봉우리 아래 치솟은
저 팔층 사리탑

고통과
고통의 결정체인
저 검은 돌탑이
왜 이토록 아리따운가
왜 이토록 소롯소롯한가

투쟁으로 병들고
병으로 여윈 지선知詵스님 얼굴이
오늘
웬일로
이리 아담한가
이리 소담한가

산문 밖 개울가에서
합장하고 헤어질 때
검은 물위에 언뜻 비친
흰 장삼 한 자락이 펄럭,

아 이제야 알겠구나
흰 빛의
서로 다른
두 얼굴을-

22.  벼랑

김지하

북풍은 가슴을 꿰뚫고
이마 위에 눈 쌓인 시루봉이 차다

삶은 명치끝에
노을만큼 타다 사위어가는데

온몸 저려오는 소리 있어
살아라
살아라
울부짖는다

한치 틈도 없는 벼랑에 서서
살자 살자고
누군가 부르짖는다

거리에 나서도
아는 사람 없는 빈 오후에. 

23.  벽

김지하


그것뿐
있는 것은 그것 하나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하나

그것뿐
내 마음에
내 몸에 몸 둘레에
너와 나 사이 모든 우리들 사이

다시 벽
네 이름을 쓰는
내 그리움을 눌러서 쓰는

붉은 벽
옛날 훗날
꿈길도 헛것도 아닌 바로 지금 여기
내 마음이 네 가슴속에
네 몸속에 내 살덩이가
파고들어 파고들어 끝없이 파고들어
기어이 본디는
하나님이 화안이 드러나 열리는
자유, 열리는
눈부신 빛무리 속의 아침바다
그것을 손톱으로 쓰는
그것을 흐느낌으로 우리가 쓰는
온몸으로 매일 쓰는

네 이름을 쓰는
내 그리움을 눌러서 쓰는

그것은 이미 우리 앞에 없다.

24.  별

김지하

내일 새벽
나의 죽음 뒤에
아마도
별이 뜰 것이다

불쌍한 우리 네 식구처럼
네 개의
푸른 별 뜰 것이다

우주의 비밀이다
살아서는
내 몸 속에 빛나던,
아름답던,

나를 이제껏
살게 했던

그 별이 처음으로
우주에 뜰 것이다
숨어 있던 별,

아마도
내일 새벽
나의 죽음 위에
비밀을 열 것이다

다시 산다면
나는
불쌍한 우리 네 식구처럼
네 개의 푸른 별로

항상 떠
내내 비췰 것이다.

25.  별빛마저 보이지 않네

김지하

아직은 따스한 토담에 기대
모두 토해버리고 울다 일어나
무너진 토담에 기대 우러른 하늘

아무것도 없는
댓잎 하나 쓰적일 바람도 없는
이렇게 비어 있고
이렇게 메말라 있고
미칠 것만 같은 미칠 것만 같은
서로서로 물어뜯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저 불 켠 방의 초라한 술자리 초라한 벗들

날이 새면
너는 진부령 넘어
강릉으로 오징어잡이, 나는
또 몸을 피해 광산으로 가야 할 마지막
저 술자리

서로 싸우지 않고는 서로 물어뜯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낯선 마을의 캄캄한 이 시대의 한 밤
토담에 기대 우러른 하늘
아아 별빛마저 보이지 않네

26.  不歸

김지하

못 돌아가리
한번 딛어 여기 잠들면
육신 깊이 내린 잠
저 잠의 저 하얀 방 저 밑 모를 어지러움

못 돌아가리
일어섰다도
벽 위의 붉은 피 옛 비명들처럼
소스라쳐 소스라쳐 일어섰다도 한번
잠들고 나면 끝끝내
아아 거친 길
나그네로 두번 다시는

굽 높은 발자국소리 밤새워
천장 위를 거니는 곳
보이지 않는 얼굴들 손들 몸짓들
소리쳐 웃어대는 저 방
저 하얀 방 저 밑 모를 어지러움

뽑혀나가는 손톱의 아픔으로 눈을 흡뜨고
찢어지는 살덩이로나 외쳐 행여는
여윈 넋 홀로 살아
길 위에 설까

덧없이
덧없이 스러져간 벗들
잠들어 수치에 덮여 잠들어서 덧없이
한때는 미소짓던
한때는 울부짖던
좋았던 벗들

아아 못 돌아가리 못 돌아가리
저 방에 잠이 들면
시퍼렇게 시퍼렇게
미쳐 몸부림치지 않으면 다시는
바람 부는 거친 길
내 형제와
나그네로 두번 다시는

27.  비

김지하

리듬은 떠나고
비만 내린다

내리는 빗속에
춤추며 하소하나

리듬은 떠나고
비만 내린다

내리는 빗속에
온갖 것 소리지른다

흙도 사금파리도
상추잎도 소리지른다

닫힌 몸 속에서
누군가 소리지른다

외침의 침묵
리듬은 떠나고
비만 내린다.

28.  빈 산

김지하

빈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저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아득한 산
빈 산

너무 길어라
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퍼라
지금은 숨어
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
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
불꽃일 줄도 몰라라

한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사람아
네가 죽을 저 산에 죽어
끝없이 죽어
산에 저 빈 산에 아아

불꽃일 줄도 몰라라
내일은 한 그루 새 푸른
솔일 줄도 몰라라.

29.  빗소리

김지하

눈감고
빗소리 듣네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돌아 다시 하늘로
비 솟는 소리
듣네

귀 열리어
삼라만상
숨쉬는 소리 듣네

추위를 끌고 오는
초겨울의 저 비
산성비에 시드는
먼 숲속 나무들 저 한숨 소리

내 마음속 파초잎에
귀 열리어

모든 생명들
신음 소리 듣네
신음 소리들 모여
하늘로 비 솟는 소리
굿치는 소리 영산 소리 듣네

사람아
사람아
외쳐 부르는 소리
듣네

30.  사람 사이의 틈

김지하

아파트 사이사이
빈틈으로
꽃샘분다
아파트 속마다
사람 몸 속에
꽃눈 튼다
갇힌 삶에도
봄 오는 것은
빈틈 때문
사람은 틈
새일은 늘
틈에서 벌어진다

31.  사랑

김지하

꽃 피어도
나비
오지 않는다

봄의 적막이
속에 든다

춥고
외로와
사랑하고저 하나
내밀어 볼

없다

온 마음
맨몸이 죽도록
거리를 걷는다
피투성이로 걷는다
사랑하고저.

32.  산책은 행동

김지하

겨울 나무를 사랑한다면
봄은 기적 같으리

고독한 사람이
물 밑을 보리

이리저리 흩날리는
가랑잎에 훨훨훨
노을 불이 붙는다

산책은
행동.

33.  새

김지하

저 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왜 나를 울리나
밤 새워 물어뜯어도 닫지 않을
마지막 살의 그리움
피만 흐르네 더운 여름날
썩은 피만 흐르네
함께 답세라 아 뜨거운
새하얀 사슬 소리여

날이 밝을 수록 어두워 가는
암흑 속의 별밭
청한 하늘 푸르른 저 산맥 넘어
멀리 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뜨거운 햇살
새하얀 저 구름
죽어 너 되는 날의 아득함
아 묶인 이 가슴

34.  새봄3

김지하

겨우내
외로웠지요
새봄이 와
풀과 말하고
새순과 얘기하며
외로움이란 없다고
그래 흙도 물도 공기도 바람도
모두 다 형제라고
형제보다 더 높은
어른이라고
그리 생각하게 되었지요
마음 편해졌어요

축복처럼
새가 머리 위에서 노래합니다.

35.  생명

김지하

생명
한 줄기 희망이다
캄캄 벼랑에 걸린 이 목숨
한 줄기 희망이다

돌이킬 수도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이 자리

노랗게 쓰러져버릴 수도
뿌리쳐 솟구칠 수도 없는
이 마지막 자리

어미가
새끼를 껴안고 울고 있다
생명의 슬픔
한 줄기 희망이다.

36.  서편

김지하

내 마음에
불길 꺼지고

밤낮
흰 달 뜬다

차가운 자리
노을마저 스러져

무서운 꿈마다
꽃 피어난다

지난날 회한도
이제는 즐거움

아파트 사이
봉숭아 한 잎에도

하늘 든다

님아
이젠 오소서


검은 삶에
붉은 살 돋우시라

나 지금
서편으로 가는데.

37.  아파트 꿈

김지하

나는
아파트에다
토담집을 짓는다

아파트 사이사이로
돌아 나가는 강물이 있어
산책길에
내 발을 적신다

음악이 들리는 창문
장미가 피는 창문
라일락이 서 있는 창문은
모두 다 내 집이다

내 눈의 집

저녁달이 오르면
내 눈은 거대한 우주가 되어
아파트 위에 둥실 뜬다

내 눈은 이제


푸른 초원 비취는
구월 밤의
빛.

38.  애린

김지하

외롭다.
이말한마디
하기도 퍽은 어렵더만
이제는 하마.
크게
허공에 하마
외롭다.

가슴을 쓸고가는 빗살
빗살사이로 언듯언듯 났다 저무는
가느다란 햇살들이 얕게 얕게
지남 날들 스쳐지날수록
얕을수록
쓰리다.

입 있어도 말건넬이
이세상엔 이미없고
주먹 쥐어보나
아무것도 이젠 쥐어줄수없는
그리움마저 끊어짐 자리
밤비는 내리는데
소경 피리소리 한자락
이리 외롭다.

39.  엽서

김지하

잊어줘
난 벌써 잊었어
볼펜이 말 안 듣는 걸 봐
아니야
펜이 나빠서가 아니야
잊었어
귀밑머리 하얘지고
한 달이 하루같이 바삐 스러져가는
그때만 기다리고 있어
잊어줘
함께라는 말
지금 여기 끝끝내 우린 함께라는 그 말
그 말만 잊지 말아줘
나머지는 얼굴도
이름마저도 다 잊어줘
난 벌써 잊었어
아니야
엽서 위의 얼룩은 눈물자국이 아니야
창살 사이 흩뿌리는 빗방울자국이야
아니야
벽 위에 손톱으로 쓴 저 구절들은
네게 바친 것이 아니야
아니야
지금 쓰는 이 엽서는
네게 부칠 것이 아니야
습작이야 습작
손 무디어지지 않기 위해
그래
잊어줘
난 벌써 잊었어
단 하나
함께라는 말
지금 여기 끝끝내 우린 함께라는 그 말
그 말만 잊지 말아줘
나머지는 얼굴도
이름마저도 다 잊어줘
난 오래 전에
아주 오래 전에
벌써 잊었어
애린이란 네 이름마저
그 옛날에.

40.  엽서

김지하

잊어줘
난 벌써 잊었어
볼펜이 말 안 듣는 걸 봐
아니야
펜이 나빠서가 아니야
잊었어
귀밑머리 하얘지고
한 달이 하루같이 바삐 스러져가는
그때만 기다리고 있어
잊어줘
함께라는 말
지금 여기 끝끝내 우린 함께라는 그 말
그 말만 잊지 말아줘
나머지는 얼굴도
이름마저도 다 잊어줘
난 벌써 잊었어
아니야
엽서 위의 얼룩은 눈물자국이 아니야
창살 사이 흩뿌리는 빗방울자국이야
아니야
벽 위에 손톱으로 쓴 저 구절들은
네게 바친 것이 아니야
아니야
지금 쓰는 이 엽서는
네게 부칠 것이 아니야
습작이야 습작
손 무디어지지 않기 위해
그래
잊어줘
난 벌써 잊었어
단 하나
함께라는 말
지금 여기 끝끝내 우린 함께라는 그 말
그 말만 잊지 말아줘
나머지는 얼굴도
이름마저도 다 잊어줘
난 오래 전에
아주 오래 전에
벌써 잊었어
애린이란 네 이름마저
그 옛날에.

41.  一山詩帖

김지하

외로울 땐
풀잎 하나도 정답다

하늘 가득 스모그 속에
아직도 살아있는 개지


참새 지저귀고
아직도 꽃이 피고

하늘엔
흰 구름도 흐른다
아파트에 쭈그려 앉아
허공 한 쪽 볼 수 있으니

내 삶
아직도 괜찮다

고마워
눈물난다

42.  저녁 산책

김지하

숙인 머리에
종소리 떨어지고

새들이 와 우짖는다

숙인 머리에
바람이 와 소스라치고

가슴 펴라
가슴 펴라 악쓰고

숙인 머리에
별 뜬다

오늘밤은 무슨 꿈을 꾸랴
먼 하늘엔 새빨간
노을 쏟아지고.

43.  죽음

김지하

빛 밝은 삼월 아침
상여 소리 지나는데

황매꽃 지고
꽃상여 지나는데

산란하던 마음
이리 차분해

황토 한줌
황산 어디쯤 산이면 어디쯤
눈부실 황토 한줌

종이꽃 하나
내 목숨.

44.  중심의 괴로움

김지하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 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45.  지리산 근처

김지하

가긴 가지만
근처까지만 가는 길
 
구름 도는
봉우리 저 푸른 빛
 
영기(靈氣)도 원한(怨恨)도
함께 서린 지리산 저기
 
안 간다
우러러볼 뿐
간다만
구례(求禮) 화엄사(華嚴寺)
화개(花開)까지만
 
강 건너가고
작은 폐활량에
헐떡이며 쉼없이 가고
 
다 가면
못 오리
 
가긴 가지만
근처까지만 가는 그 길
 
돌아서는 뒤꿈치가
유난히도 둥글고 하얗던 그 날
 
고달픈 아름다운
 
가며
가지 않는
이순(耳順) 근처 어느 날.

46.  쳐라

김지하

노을이여
나를 쳐라
내 마음을 쳐라
불타는 노을이여

새벽에나 겨우겨우 길 찾아나서는
둔한 내 마음을
잠든 내 삶을 쳐라

맑은 샘물에다 구원 청하는
산란한 내 마음
더욱 더 산란하게 쳐라

산란하여
아으
소리치며 벌떡 일어서게 쳐라

일어서 아무 때 아무 곳이든
뚜벅뚜벅 진흙길 나서게 쳐라

쳐라 쳐라
힘차게 쳐라
사그라드는 애잔한 끝만 남은
덧없는 노을이여
노을이여
쳐라 쳐라.

47.  초롱불 진달래

김지향

삭둑삭둑 키를 잘라낼 땐
피 한 방울 안 나던 진달래
오늘 아침 창문을 열고 보니
꽃분홍 선혈을 뒤집어쓰고 있네

조금씩 가지를 쳐낼 땐
신음소리 한 마디 안 내던 진달래
오늘 아침 물주다 보니

빨갛게 켜든 초롱불 속에
마디마디 아픔이 웅크린
눈물을 감추고 있네

초롱불 한 잎 한 잎 만지작거리다
돌아선 나의 등뒤에서
진달래 아픈 비명소리가
딸,딸,딸, 신발을 끄을며 따라오네

48.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이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흐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49.  틈

김지하

사랑은

내안에 벌어지는
꽃이파리 하나
해살 비쳐들고
바람 불어오고
벌이 오고 또 나비가 오고
흰 구름 흐르다 흐르다
밤이면
푸른 별자리들 기울어
이슬 내리고
사랑은

거리에서도 
아아
너로 하여
나 
우주에 살고

50.  푸른 옷

김지하

새라면 좋겠네
물이라면 혹시는 바람이라면

여윈 알몸을 가둔
옷 푸른빛이여 바다라면
바다의 한때나마 꿈일 수나마 있다면

가슴에 꽂히어 아프게 피 흐르다
굳어 버린 네모의 붉은 표지여 네가 없다면
네가 없다면
아아 죽어도 좋겠네
재 되어 흩날리는 운명이라도 나는 좋겠네
캄캄한 밤에 그토록
새벽이 오길 애가 타도록
기다리던 눈들에 흘러 넘치는 맑은 눈물들에
영롱한 나팔꽃 한번이나마 어릴 수 있다면
햇살이 빛날 수만 있다면

꿈마다 먹구름 뚫고 열리던 새푸른 하늘
쏟아지는 햇살 아래 잠시나마 서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네 푸른 옷에 갇힌 채 죽더라도 좋겠네
그것이 생시라면
그것이 지금이라면
그것이 끝끝내 끝끝내
가리어지지만 않는다면.

51.  황톳길

김지하
(1)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2)
밤바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이파리
뻗시디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3)
대샆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 아래 쓰러져 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괴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4)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5)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뻘길을 지나면 다시 모밀밭
희디흰 고랑 너머
청천 드높은 하늘에 갈리던
아아 그날의 만세는 십년을 지나
철삿줄 파고드는 살결에 숨결 속에
너의 목소리를 느끼면 흐느끼며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52.  회귀

김지하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 모두
짧은 눈부심 뒤에 남기고
이리로 혹은 저리로
아메리카로 혹은 유럽으로
하나 둘씩 혹은 감옥으로 혹은 저승으로

가데
검은 등걸 속
애틋했던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무성한 잎새 시절
기인 긴 기다림만 남기고
봄날을 가데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아 저 모든 꽃들 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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