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황(李滉) 유학서(儒學書).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 이황(李滉)이 성학의 개요를 도해한 책. 1책. 목판본. 1568년(선조 1) 대제학으로 있을 당시 새로 즉위한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으로 성학의 뜻을 집약하여 10폭의 도식(圖式)으로 그린 것이다. 1681년(숙종 7) 오도일(吳道一)이 간행했고 1741년(영조 17) 중간했다. 체제는 10개의 도(圖)와 설(說)로 되어 있으며, 권말에 오도일의 발문이 있다. 도식의 각 내용을 보면, 제1도 태극도(太極圖)는 음양조화의 원리를 설명한 것으로,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태극도설을 싣고, 다음에 주자의 주해, 끝으로 선유들의 설을 인용하여 자신의 해설을 수록했다. 제2도 서명도(西銘圖)는 송말 원초(元初)의 정복심(程復心)이 장재(張載)의 〈서명 西銘〉을 도식화한 것으로 상도(上圖)·하도(下圖)로 되어 있다. 저자는 여기서 성학은 인(仁)을 구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제3도 소학도(小學圖)는 저자가 〈소학〉의 목록에 따라 만든 것으로, 대학도(大學圖)와 상호 표리관계를 이룬다. 제4도 대학도에서는 치지(致知)·역행(力行)이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근본임을 강조했다. 제5도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는 주자의 백록동규문의 목차에 따라 저자가 도식화한 것으로, 제왕학(帝王學)의 근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의 제1~5도는 천도(天道)에 근본하여 인륜을 밝히고 덕업에 힘쓰게 하는 데 공(功)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제6도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는 임은정(林隱程)이 지은 상도와, 저자가 성현들의 뜻을 미루어 완성한 중도·하도로 되어 있는데, 주로 이기설(理氣說)과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내용을 도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제7도 인설도(人說圖)에서는 측은의 단(端)이 사덕(四德)과 만화(萬化)를 통괄·관철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제8도 심학설(心學說)에서는 존심양성(存心養性)의 공(功)을 강조하고, 정복심의 행적을 밝혔다. 제9도 경재잠도(敬齋箴圖)와 제10도 숙흥야침잠도(夙興夜寢箴圖)에서는 성학의 시작과 끝이 경(敬)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 제6~10도는 심성에 근원하여 일용에 힘쓰고 경외(敬畏)를 높이는 데 그 요점이 있다. 이 책은 비록 여러 선유들의 글 속에서 채택한 것이지만, 그것을 취사선택하는 하나의 철학적 구성을 이루어놓은 점에서 이황의 도학(道學)·이학(理學)에 대한 학문적 깊이를 알 수 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리는 차자를 올리다.
판중추부사 신이황(李滉, 1501~1570)은 삼가 두 번 절하고 아뢰옵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도(道)는 형상이 없고 하늘은 말이 없습니다. 하도(河圖)1)와 낙서(洛書)2)가 출현하면서부터 성인이 이를 근거로 괘(卦)와 효(爻)를 만들었으니, 도가 비로소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도는 넓고도 크니 어디서부터 착수할 것이며, 옛 교훈이 천만 가지이니 어디로부터 들어가겠습니까? 성학(聖學)에는 커다란 단서[大端]가 있고 심법(心法)에는 지극한 요령이 있습니다. 이것을 드러내어 그림[도(圖)]를 만들고, 이것을 향해서 설명[(설)說]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과 덕을 쌓는 토대를 보여 주니, 이것 또한 후대 현인이 부득이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물며 임금의 한 마음[一心]은 만 가지 조짐이 연유하는 곳이요 백 가지 책임이 모이는 곳이니, 온갖 욕심이 서로 다투고 온갖 사특함이 차례로 마음을 꿰뚫습니다. 한 가지라도 태만하고 소홀하여 방종이 뒤따르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들끓는 것과 같을 것이니, 누가 이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성군(聖君)과 현명한 왕[명왕(明王)]은 이를 근심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삼가고 노력하며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면서도 오히려 미흡하다고 여겼습니다.
사부(師傅)의 관직을 세우고간쟁(諫諍)하는 직책을 만들어 앞에는 의(疑)가 있고 뒤에는 승(丞)이 있으며, 왼쪽에는 보(輔)가 있고 오른쪽에는 필(弼)이 있으며3), 수레를 타면 여분(旅賁)4)의 규범이 있고, 위저(位宁)5)에서는 관사(官師)의 법이 있으며, 책상에 기대고 있을 때는 훈송(訓誦)의 간함이 있고, 침전에 들어서는 설어(暬御)6)의 잠언(箴言)이 있으며, 일을 처리할 때는 고사(瞽史)7)의 인도함이 있고, 한가롭게 거처할 때는 공사(工師)의 송(誦)이 있으며, 소반과 밥그릇과 책상과 지팡이, 칼과 검, 출입문과 들창문에 이르기까지 무릇 눈이 가는 곳과 몸이 처하는 곳은 어디나 명(銘)과 계(戒)를 새겨 놓았으니 마음을 지키고 몸을 방비하는 법도가 이와 같이 지극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덕이 날로 새로워지고 사업이 날로 넓어져서 털끝만 한 허물도 없게 되고 크게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후세의 임금은 천명(天命)을 받고 왕위에 올랐으니, 책임이 지극히 중하고 큼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스스로 다스리는 수단은 한 가지도 이러한 엄격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왕공(王公)과 많은 백성이 추대하는 자리에서 성인인 것처럼 하고 오만하게 스스로 방자히 하다가 결국에는 난이 일어나고 멸망하는 것이 어찌 괴이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남의 신하가 되어 임금을 인도하고 도에 합당하도록 하는 이는 진실로 그 마음을 쓰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장구령(張九齡)8)이 『금감록(金鑑錄)』을 올린 것과 송경(宋璟)9)이 「무일도(無逸圖)」를 바친 것과 이덕유(李德裕)10)가 「단의육잠(丹扆六箴)」을 바친 것과 진덕수(眞德秀)가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를 올린 것11)등은 임금을 아끼고 나라를 근심하는 깊은 충의와 선을 베풀고 가르침을 드리는 간절한 뜻이니, 임금이 깊이 생각하고 공경하여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지극히 어리석고 매우 비루함에도 여러 임금께 요행히 은혜를 입었고 병으로 시골에 들어앉아 초목과 함께 썩기로 기약하였는데, 뜻밖에 헛된 이름[허명(虛名)]이 잘못 알려져서 조정에 불려 와경연(經筵)의 중한 자리에 앉게 되니, 두렵고 황송하지만 사양하여 피할 길이 없습니다. 기왕에 피하지 못하고 이 자리를 더럽힌 이상, 이는 성학(聖學)을 권도(勸導)하고 군덕(君德)을 보양하여 요순시대처럼 융성한 데 이르기를 기약해야 하니, 비록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돌이켜 보건대, 신은 학술이 거칠고 말주변이 서투른데, 여기에다 몹쓸 병이 잇따라 시강(侍講)도 드물게 하다가 겨울철 이후로는 완전히 폐하기에 이르렀으니, 신의 죄는 만 번이라도 죽어야 마땅한지라 근심되고 두려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신이 가만히 엎드려 생각해 보건대, 처음에 글을 올려 학문을 논한 말들이 이미 전하의 뜻을 감동시켜 분발하게 하지 못하였고, 그 후 전하를 뵙고 여러 번 아뢴 말씀이 또 전하의 생각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 미력한 신의 정성으로 무엇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옛 현인과 군자들이 성학(聖學)을 밝히고 심법(心法)을 얻어서 도(圖)를 만들고 설(說)을 만들어 남들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과 덕을 쌓는 토대를 보여 준 것이 오늘날 세상에 행하고 있어서 해와 별같이 밝습니다. 이에 감히 이것을 가지고 나아가 전하께 진술하여 옛 제왕(帝王)의 공송(工誦)12)과 기명(器銘)13)의 남긴 뜻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지난날 성현들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빌려서 앞으로 유익하도록 하려는 바람입니다.
이에 삼가 그 가운데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 것을 골라 일곱 개를 얻었습니다. 그 중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는 정임은(程林隱)14)의 그림에다 신이 만든 두 개의 작은 그림을 덧붙인 것입니다. 세 가지는 그림은 비록 신이 만들었으나 그 글과 뜻의 조목(條目)과 규획(規畫)은 한결같이 옛 현인이 만든 것을 따른 것이요, 신이 창작하여 만든 것은 아닙니다. 이것들을 합하여 「성학십도」라 하고, 각 그림 아래에 또한 외람되게 신의 의견을 덧붙여서 삼가 잘 써서 올립니다.
다만 신은 추위에 떨리고 병에 걸린 가운데 혼자 힘으로 이것을 작성하자니, 눈은 어둡고 손이 떨려서 글씨는 단정하지 못한 데다 줄을 맞추어 글자를 고르게 하지 못해 규격에 맞지 않습니다. 만약에 전하께서 물리치지 않으신다면, 바라건대 이것을경연관에게 내리어 상세하게 고치고 논의하며 잘못된 것을 고치고 보완하게 하고서 다시 글씨 잘 쓰는 사람에게 정밀하게 베껴 정본(正本)을 만들게 하고, 해당 관서에 보내어 병풍 한 벌을 만들어서 평소 조용히 거처하시는 곳에 펼쳐 놓으시고, 혹은 별도로 조그마하게 한 권으로 꾸며 수첩을 만들어서 항상 책상 위에 놓아두시고, 기거동작(起居動作)하실 때에 살피고 경계로 삼으신다면, 구구하게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저의 뜻에 이보다 다행함이 없겠습니다. 그 뜻에 있어서 미진한 것은 신이 다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일찍이 듣건대, 맹자의 말에 “마음의 본분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 하였고,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을 위하여 홍범(洪範)을 진술하여 또 이르기를, “생각하면 명철해지고, 명철해지면 성인이 된다” 하였습니다. 대개 마음은 방촌(方寸)15)에 갖추어져 있으면서 지극히 허(虛)하고 지극히 영(靈)하며, 이치는 그림과 글 속에 나타나 있으면서 지극히 뚜렷하고 지극히 진실하니, 지극히 허령한 마음을 가지고 지극히 뚜렷하고 진실된 이치를 구한다면 마땅히 얻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즉 생각하면 얻고 명철하면 성인이 되는 것이 어찌 오늘날에 징험을 얻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이 허령하다 해도 만약 주재(主宰)함이 없으면 앞에 일을 당해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이치가 뚜렷하고 진실해도 만약 비추어 보지 않으면 항상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또한 그림 때문에 생각하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또한 공자께서는, “배우고도 생각하지 아니하면 남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하다16)” 하였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그 일을 익혀서 참되게 실천함을 이릅니다. 대개 성현의 학문은 마음에서 구하지 않으면 혼미해져서 얻는 것이 없는 까닭에 반드시 생각하여 그 미묘한 것에 통달해야 하고, 그 일을 익히지 않으면 위태로워져서 불안한 까닭에 반드시 배워서 그 실질을 이행하여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과 배우는 것은 서로 발전시켜 주고 서로 이익이 되게 합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의 명철함으로 이 이치를 깊게 헤아리시고 모름지기 먼저 뜻을 세우시어,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면 또한 이와 같이 된다. ”17)고 하시고, 분연히 힘을 내셔서 배우고 생각하는 이 두 가지 공부에 힘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경(敬)을 지킨다는 것은 생각과 배움을 겸하고 동(動)과 정(靜)을 관통하며, 안과 밖을 합일시키고 드러난 것과 은미(隱微)한 것을 한결같이 하는 도(道)입니다. 이것을 하는 방법은 반드시 가지런하고 정중하며 고요하고 한결같은 가운데 이 마음을 두어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동안에 이 이치를 궁리하여 보이거나 들리기 전에는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더욱 엄숙하게 하고 더욱 공경스럽게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은미한 곳과 혼자 있는 곳에서는 성찰하는 것을 더욱 더 정밀하게 하여 어느 한 가지 그림에 대해서 생각할 적에는 마땅히 이 그림에만 마음을 오로지 하여 다른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하고, 어떤 한 가지 일을 익힐 때는 마땅히 이 일에 오로지 하여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하여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변함이 없이 하고 매일매일 계속하며, 혹 새벽에 정신이 맑을 때에 그 의미를 풀어 보고 음미하며, 혹은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응대할 때 몸소 경험하고 북돋우면 처음에는 혹 불편하고 모순되는 근심을 면하지 못하고, 때로는 극히 고통스럽고 유쾌하지 못한 병통이 있기는 하나, 이것이 곧 옛사람이 말한 장차 크게 나아가려는 징조요, 또한 좋은 소식이 올 단서입니다. 절대로 이 때문에 스스로 그만두지 말고 더욱 자신을 가지고 힘써서 참된 것을 많이 쌓고 힘쓰기를 오래 하면 자연히 마음과 이치가 서로 잦아들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융회관통(融會貫通)하게 되며, 익히는 것과 일이 서로 익숙하여져서 점차 평탄한 길을 편안하게 행하게 됨을 보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각각 그 한 가지에만 집중하였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하나의 근원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실로 맹자가 논한, ‘깊이 이해하고 자득하는’ 경지이며, ‘생기가 나면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경험입니다. 또 따라서 부지런히 힘써서 자신의 재주를 다하면, 안자(顔子)의 인(仁)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나라 다스리는 사업이 바로 그 가운데 있게 되고, 증자(曾子)의 충(忠)과 서(恕)로 일관하여 도(道)를 전하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함과 공경함이 일상생활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중화(中和)⋅위육(位育)18)의 공(功)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덕행(德行)이 떳떳한 인륜(人倫)에서 벗어나지 아니하여 천(天)과 인(人)이 하나가 되는 신묘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그 그림을 만들고 설명을 만들어 겨우 열 폭의 종이 위에 서술해 놓았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고 익혀서 평소에 조용히 계실 때에 공부하시면 도를 깨달고 성인이 되는 요령과 근본을 바로잡고 나아가 다스리는 근원이 다 여기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전하께서는 정신을 모으고 뜻을 더하여 반복하기를 시종 계속하시어 경미한 것이라고 소홀히 하지 마시고 싫증나고 번거롭다 하여 그만두지 않으신다면,종묘사직으로서도 매우 다행한 일이며 신하와 백성에게도 매우 다행한 일입니다. 신은 야인(野人)들이 미나리와 햇볕[芹曝]을 임금께 바치고자 하는 정성19)을 이기지 못하여, 전하의 위엄을 모독하는 줄 알면서도 이에 바칩니다. 황송하여 숨을 멈추고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퇴계선생문집』권7, 차, 진성학십도차
聖學十圖
[1. 太極圖說]
[1. 太極圖說]
無極而太極. 太極, 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무극이 태극이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움직임이 극한에 이르면 고요해진다, 고요함이 음을 낳는다. 고요함이 극한에 이르면 다시 움직인다.) 一動一靜, 互爲其根, 分陰分陽, 兩儀立焉. 陽變陰合, 而生水火木金土, 五氣順布, 四時行焉. (한 번 동(動)하고 한 번 정(靜)한 것이 서로 그 뿌리가 되어 음(陰)으로 나뉘고 양(陽)으로 나뉨에 양의(兩儀)가 성립되었다.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화․목․금․토를 낳으니, 이 오행(五行)의 기운이 순조롭게 퍼져서 사시(四時)가 운행되는 것이다.)
五行, 一陰陽也. 陰陽, 一太極也. 太極, 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다섯 가지 자연의 기운은 음양이 하는 짓이요, 음양은 태극이 하는 짓이며 태극은 본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無極). 다섯 가지 성질이 생기면서 각각 그 나름대로의 성질을 가진다.)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 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 而變化無窮焉 (무극의 참됨과 음양오행의 정수는 신묘하게 화합하여 응결한다. 하늘의 원리로 남성(男性)이 이루어지고 땅의 원리로 여성(女性)이 이루어지며, 두 기운(天地 陰陽)이 서로 감응하여 만물이 생겨난다. 만물이 나고 나는 변화는 무궁하다.)
惟人也得其秀而最靈. 形旣生矣, 神發知矣. 五性感動而善惡分, 萬事出矣 (오직 사람만이 그 빼어난 기운을 얻어 가장 영특하다. 육신이 생긴 뒤에 영(靈)은 차츰 의식을 갖게 된다. 오성(仁義禮智信)이 외부 현상에 접촉하여 자극을 받아 움직여서 선악이 갈라지고 인간에 관한 모든 일이 생긴다.)
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 故聖人 “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 君子修之吉, 小人悖之凶. (성인은 알맞음, 바름, 어짐, 의로움에 따라 인간 만사를 정(定)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한 것(主靜)을 인간에 있어서 가장 큰 윤리의 표준(人極)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그 덕이 일치하고, 일월과 밝음이 일치하며, 사계절과 그 질서가 일치하고, 귀신과 그 길흉이 일치한다. 군자는 이것(中正仁義)을 닦아서 길하고 소인은 이것을 어겨서 흉하다.)
故曰, “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又曰,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大哉<易>也. 斯其至矣. (그러므로 하늘의 원리는 음양이라 하고 땅의 원리는 부드러움과 굳셈이라 하며 사람의 도리는 어짊과 의로움(仁義)이라 한다. 또 시작과 끝의 순환하는 이치를 깊이 생각해 보면 죽음과 삶의 이치를 알 수가 있다. 크도다, 변화의 이치(易)여! 이것이야말로 지극한 진리다.)
[2. 西銘圖(서명도)]
[2. 西銘圖(서명도)] -상도- 乾稱父 坤稱母 予玆藐焉 乃混然中處 (건칭부 곤칭모 여자묘언 내혼연중처) 건은 하늘이며 아버지라 일컫고 곤은 땅으로 어머니라 일컫는다 나의 이 작은 몸은 아버지와 어머니 가운데에 태어나 있으며.
故天地之塞 吾其體 天地之師 吾其性 (고천지지색 오기체 천지지사 오기성) 그러므로 하늘과 땅 사이에 막아 서있는 것은 나의 몸이고 하늘과 땅 사이에 스승인 것은 나의 마음인 성이다.
民吾同胞 物吾與也 (민오동포 물오여야) 민중과 나는 한 어머니 배 속에서 태어난 친형제와 같고 만물과 나는 모두 더불어 함께하는 친구다.
大君者 吾父母宗子 其大臣 宗子之家相也 (대군자 오부모종자 기대신 종자지가상야) 큰 군자라고 하는 것은 우리 부모의 근본의 아들이고 즉 우리부모의 장손이요 큰 신하인 대신은 종자의 집안을 다스리는 집사이다.
尊高年 所以長其長 慈孤弱 所以幼其幼 (존고년 소이장기장 자고약 소이유기유) 나이 많은 어른을 존중할 때에는 자기의 어버이를 모시듯이 존중하고 외롭고 약한 이를 돌볼 때에는 자기 아이를 돌보듯이 사랑한다.
聖其合德 賢其秀也 (성기합덕 현기수야) 성인은 하늘과 땅의 덕과 일치하는 사람이고, 현자는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다.
凡天下疲癃殘疾 惸獨鰥寡 皆吾兄弟之顚連 而無告者也 (범천하피융잔질 경독환과 개오형제지전연 이무고자야) 무릇 하늘 아래 병들어 폐쇠된 사람과 손발이 없는 불구자 자손이 없는 사람과 홀아비 과부 등과 같은 사람들도 전부 나의 형제들로서 팽개칠 수 없이 연결 되어있다. 이들은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하도- 于時保之 子之翼也 樂且不憂 純乎孝者也 違曰悖德 害仁曰賊 濟惡者不才 其踐形 惟肖者也 (우시보지 자지익야 낙차불우 순호효자야 위왈패덕 해인왈적 제악자부재 기천형 유초자야) :이러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주어야 하며 그리고 그러한 자식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 또한 즐겁게 해주고 근심이 없도록 해주는 사람이 진정한 효도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 이러한 행위를 어기는 사람을 패덕이라 말하고 : 이러한 어진 베품을 해치는 사람을 도적이라고 말 한다. : 악한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것을 재주가 모자라는 사람이라 하고 : 성현의 행동대로 하늘의 이치를 실천하면 그런 사람을 오직 하늘을 닮은 사람이라고 한다.
知化 則善述其事 窮神 則善繼其志 (지화 즉선술기사 궁신 즉선계기지) : 성현의 말씀들을 알고 변화 할 줄 알면 모든일을 잘 할 수가 있으며 : 하늘의 이치를 궁리하면 그 뜻을 바르게 이어갈 수가 있다.
不愧屋漏爲無忝 存心養性爲匪懈 (불괴옥루위무첨 존심양성위비해) :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부끄러움이 없으면 욕됨이 없고 : 마음속에 하늘이 준 성품을 기르면 고달프지 않게된다.
惡旨酒 崇伯子 之顧養育英才 穎封人之錫類 (오지주 숭백자 지고양육영재 영봉인지석류) : 술은 사람의 본성을 어지럽히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니 : 우왕의 아버지는 숭국의 백작으로 봉해져 영재를 양육하여 훌륭한 사람에게 지방을 다스리게 하였다.
不弛勞而底豫 舜其功也 無所逃而待烹 申生其恭也 (불이노이저예 순기공야 무소도이대팽 신생기공야) : 마음을 놓지 않고 힘써 공경하여 저 밑에서부터 힘써서 기쁘게 한 것은 순임금의 지극한 효도의 공이다 : 부자의 의는 도망할 곳이 없다하여 아버지에게 삶아 죽임을 당하기를 기다린 것은 신생의 공손함이다. (헌공이 애첩의 말을 믿고 아들 신생을 죽이려 하자 아버지를 피하라는 주위의 권고를 듣고도 하늘과 땅 사이에서 도망할 곳이 없다고 하여 차라리 삶아 죽기를 기다린 것은 신생의 공순함이다)
體其受而歸全者 參乎 勇於從而順令者 伯奇也 (체기수이귀전자 삼호 용어종이순령자 백기야) : 태어날 때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죽을 때까지 온전하게 하여 돌아간 사람은 증삼(曾參)이다 : 용기 있게 결단하여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는 데 순응한 사람은 백기였다.
富貴福澤 將厚吾之生也 貧賤憂戚 庸玉汝于成也 (부귀복택 장후오지생야 빈천우척 용옥여우성야) : 부하고 귀하며 복이 있고 윤택한 것은 하늘이 내 삶을 두떱게 하는 것이며 : 가난하고 천하고 근심스럽고 슬픈 것은 나를 단련시켜 옥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存吾順事 沒吾寧也 (존오순사 몰오영야) : 살아서 모든 일에 순리에 따르면 죽음에 이르러서는 편안해질 것이다. !
[第三小學圖 (제삼소학도)]
第三小學圖 (제삼소학도)
• 立敎 (입교:가르침을 세움)
-立胎育保養之敎(입태육보양지교): 아이가 태 안에 있을 때 키우고 보호하는 가르침을 세움.
원(元), 형(亨), 이(利), 정(貞)은 천도의 상, 즉 하늘의 불변의 법칙이고, 인(仁), 의(義), 예(禮), 지(智)는 인성의 강(綱) 즉, 인간의 벼리가 되는 본성이다.
이 인간의 본성들은 원래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네 가지 단서인 "사단"이 풍성히 감동됨에 따라 드러난다.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며, 임금께 충성하고 어른에게 공손히 대하는 바로 이것이 "병이(秉彛)"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적·순리적으로 되는 것이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인만이 그 본성이 자연적으로 실현되어 하늘과 같이 넓어서, 털끝만큼의 힘으로 더하지 않아도 "온갖 선함(萬善)"이 다 갖추어진다.
일반 사람들은 어리석어 물욕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그 도리를 무너뜨리고 서슴없이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진다. 성인이 이것을 가엾게 여긴 나머지 학문을 만들고 스승을 두고 가르치어 그 본성의 뿌리를 북돋는 한편 그 가지를 뻗게 하였다.
[소학]의 방법은 쇄소(灑掃)하고 응대(應對)하며, 집안에서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남에게 공경하여 행동이 조금도 법도를 어김이 없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완전히 행하고 난 다음에 힘이 남으면 시를 외고, 글을 읽고, 노래를 읊조리고, 춤을 추며 모든 생각이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 이 법의 궁구와 깊이 생각하여 몸을 닦음이 이 학문의 큰 뜻이며 목적이다.
밝은 명(明命)은 환하여 안팎이 없다.
덕을 높이고 학업을 넓혀야 곧 본래의 본성을 회복하게 된다. 이것이 옛날에 부족하지 않았다고 하여 오늘날 어찌 넉넉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세월이 멀리 흘러왔고, 어진 사람들이 돌아갔는데 다 경전들은 피폐되고 교육마저 해이해져, 어린이의 양육이 바르지 못하매, 자란 뒤에는 더욱 부박하고 사치스러워진다.
마을에는 좋은 풍습이 없어지고 세상에는 어진 인재가 없으며, 사리사욕으로 뒤얽혀 싸우고 이단의 말들이 시끄러워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병이는 하늘에 표준을 둔 것이어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에 옛날에 들어온 말들을 주워 모아 뒷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하노라.
애달프다! 소년들이여! 삼가 이 글을 배우도록 하라. 이것은 늙은 나의 노망한 소리를 적은 것이 아니라 오직 성인의 가르침이니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그대가 사람에게 [대학]의 도를 말하려 하면서도 또 [소학]의 글을 참고하려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고 물었다.
주자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배움의 크고 작음은 확실히 같지 않으나 '도'가 되는 점에 있어서는 한 가지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릴 때에 [소학]에서 익히는 것이 없으면, 그 방심을 거두고 덕성을 길러서 [대학]의 기본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커서 [대학]을 더 배우지 않는다면 의리를 살피고 그것을 사업에 시행함으로써 [소학]의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어린 학도로 하여금, 반드시 먼저 쇄소응대하든가 진퇴하는 가운데,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의 학습들에 스스로 진력함으로써, 자라난 뒤에는 '명덕'과 '신민'하는 일에 나아가 '지극히 선한 경지'에 까지 가서 머물게 하려는, 이것이야 말로 순서상 당연한 것이니, 어찌 불가하겠는가?"
어떤 사람이 또 "만일 나이가 이미 자랐는데 공부가 이렇게 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라고 하자, 그에 답하여 이렇게 말했다. "세월이 이미 지나간 것은 물론 뒤따라 갈 수 없지만, 공부의 차례나 조목은 어찌 다시 보충하지 못하겠는가? 내가 듣기로는, '경'이라는 한 글자는 성학의 시초와 종국을 성립시켜 주는 것이라 한다. [소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이것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참으로 본원을 함양하여 쇄소·응대·진퇴에 관한 법도 및 육예의 가르침에 마음을 쓰지 못하게 된다. [대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이것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역시 총명을 개발하여 덕을 닦고 학업을 익히어 '명덕', '신민'의 공을 가져오지 못한다. 불행히도 때가 이미 지난 뒤에라도 배우는 사람들이 참으로 이것에 힘을 기울여 큰 것을 닦아 나아가게 되는 동시에 그 작은 것을 겸하여 보충할 수 있다면, 그 나아가게 하는 소이로서는 장차 근본이 없어서 스스로 도달하지 못 할까 하는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위의 [소학]은 옛날에는 그림이 없었습니다.
신이 삼가 본서의 목록에 의거하여 이 그림을 만들어서 대학의 그림과 대조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자가 [대학혹문]에서 [대학], [소학]에 대하여 통론한 것을 인용하여 양자의 공부하는 대강을 나타내었습니다.
원래 [소학]과 [대학]은 서로 상대적으로 기다리면서 성립합니다. 이것들이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혹문]에서는 그것들을 통론할 수 있었고, 이 두 그림에서도 겸수 상비하여 말할 수 있었습니다.
[第 四 大學圖]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則近道矣,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신민, 재지어지선,
지지이후유정, 정이후능정, 정이후능안, 안이후능려, 려이후능득.
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
[대학]의 도는 명덕(明德)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新民)에 있으며, 지극히 선한 경지(至善)에서 머무는 데(止) 있다 . 머무를 데를 안 뒤에야 정함이 있고, 정한 뒤에야 동요되지 않을 수 있으며(靜), 동요되지 않은 뒤에야 편안할(安) 수 있다. 편안한 뒤에야 생각할 수 있고(廉), 생각한 뒤에야 얻을(得) 수 있다. 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시초와 종결이 있으니, 먼저 하고 나중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워질 것이다.
옛날 명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바로 잡았고, 그 집안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닦았고, 그 몸을 닦으려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였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참되게 했고, 그 뜻을 참되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앎을 투철히 했으니, 앎을 투철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구명하는 데 있다.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修, 身修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
지지이후의성, 의성이후심정, 심정이후신수, 신수이후가제,가제이후국치, 국치이후천하평
사물의 이치가 구명된 뒤에라야 앎이 투철하여지고, 앎이 투철하여진 뒤에라야 뜻이 진실하여지고, 뜻이 진실하여진 뒤에라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라야 몸이 닦아지고, 몸이 닦아진 뒤에라야 집안이 바로 잡히고, 집안이 바로 잡히고 난 뒤에라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라야 천하가 화평하게 된다.
원래 이 마음이 이미 있게 되면, 이 경에 의하여 사물을 밝히고, 앎을 투철히 하여 사물의 이치를 모두 궁구하면, 이것이 이른바 덕성을 놓이고 학문을 일삼는 것이다. 경에 의하여 뜻을 진실히 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 자신의 몸을 닦으면, 이것이 이른바 "먼저 그 큰 것을 세우면 작은 것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에 의하면 집안을 바로잡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에까지 미치면, 이것이 이른바 "자기 자신을 닦아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고, "공손한 태도를 독실히 하여 천하가 화평하여 진다"는 것이다. 이상의 모든 것이 다 하루라도 "경"을 떠나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경이라는 한 글자가 성학의 시작과 끝맺음에 걸친 일관된 요건이 아니겠는가!
위의 글은 공자가 남긴 첫 장입니다. 국초의 신하 권근이 근래에 이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장 아래에 인용한 [혹문]의 [대학]과 [소학]을 통론한 설은 [소학도] 아래서 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만 이 두 설만 통하여 볼 것이 아니라, 상하의 여덟 그림도 모두 마땅히 이 두 그림과 통하여서 보아야 합니다.
대저 위의 두 그림은 실마리를 구하여 확충하고, 하늘을 본받아 도를 다하는 극치 점으로 [소학]과 [대학]의 포준 및 본원이 되는 것입니다. 아래의 여섯 그림은 선을 밝히고 자신을 참되게 하며, 덕을 높이고 학업을 넓히며, 힘을 기울여야 할 점으로 [소학], [대학]의 근거이자 공효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이란 상하에 다 통하는 것으로서, 공부를 착수하는 데서나 그 공부의 효과를 거두는 데서나 항상 실천하여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자의 말이 위와 같았으며, 이제 이 [십도]도 모두 경을 위주로 하였습니다. [태극설]에서는 정만 말하고 경은 말하지 않았는데, 주자가 주해하는 가운데 서경을 말하여 보충하였습니다.
[第5 白鹿洞規圖(백록동규도)]
第5 白鹿洞規圖(백록동규도) [五敎之目] 인간이 되기 위한 학문, •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 부모 자식 사이에 사랑이 있고, 군신 사이에 의리가 있고, 부부 사이에 다름이 있고, 어른과 젊은이 사이에 질서를 지키고, 친구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
[爲學之序]학문하는 순서 • 窮理(궁리)의 요체 -.博學(박학):편협하지 않고 넓게 배우는 것 -.審問(심문):의심나는 것에 대한 질문 -.愼思(신사):매사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 -.明辯(명변):사물을 밝히 분별하는 것 -.篤行(독행):배운 대로 바르게 힘써 행하는 것 • 修身之要 (수신지요) -.言忠信 行篤敬(언충신 행독경):말에 신의가 있어야 하고, 행동에 독실함 있어야 하며 -.懲忿窒慾 遷善改過(징분질욕 천선개과): 성냄을 경계하고 욕심을 억누르며, 선을 따르고 잘못은 바로잡는다. • 處事之要(처사지요) 일을 처리하는 요체 -.正其義不謨其利(정기의불모기이): 사물을 대하고 처리함에는, 의를 앞세우고 사욕을 취하지 말 것이며 -.明其道不計其功(명기도불계기공):도리에 맞게 할 것이고, 자기의 공을 세우려 하지 말아야 한다. • 接物之要(접물지요):인간관계의 요체 -.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욕물시어인):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 -.行有不得 反求諸己(행유부득 반구제기):행하여 뜻을 얻지 못하면 자신에게 돌이킨다.
내가 옛날의 성현(聖賢)이 학문에 뜻을 두도록 사람들을 가르친 까닭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자신의 수양을 위하여 의리를 설명하고 밝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양이 이루어지면, 그 영향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읽고 외는데 힘쓰고 글 짓는 것을 일삼음으로써 명예를 구하고 자신의 이익이나 녹을 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학문을 한다는 자는 그 반대다.
그러나 성현께서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은 경전에 다 갖추어져 있다. 뜻있는 선비는 마땅히 경전을 숙독하고 그 뜻을 깊이 생각해서 의문 나는 점을 묻고 그것을 분별해야 한다. 진실로 이치의 당연함을 알아서 그 자신을 꾸짖어 반드시 그렇게 한다면 어찌 여러 도덕적 규범을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기를 기다려서 그것을 지키려 할 필요가 있겠는가?
제군은 서로 조목들을 논의하여 의미를 밝히고 지키며 그것을 몸에 익힐 것을 자신의 책무로 삼도록 하라. 그러면, 삼가고 두려운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저들의 규칙보다 엄격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켜야 할 바를 어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규칙은 반드시 받아 들여야 하고 이를 소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제군들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第6圖 心統性情圖]
第6圖 心統性情圖 [上圖] 心統性情 심통성정 寂然不動爲性 感而遂通爲情 적연부동위성 감이수통위정 (마음이 性情(본성,감정)을 통괄한다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는것이 성이고, 느끼고 통하게 되는 것이 성이다.) ● 爲心之體 爲心之用 위심지체-위심지용 (마음의 본체 - 마음의 작용) 未發之性 已發之情 미발지성-이발지정 (발현되지 않은 본성 - 이미 발현된 감정) .稟木之秀 具愛之理曰仁 惻隱之心 仁之端 .稟火之秀 具敬之理曰禮 辭讓之心 禮之端 .稟金之秀 具宜之理曰義 羞惡之心 義之端 .稟水之秀 具別之理曰知 是非之心 智之端 .稟土之秀 具實之理曰信 誠實之心 信之端
[下圖] 性本一因在 氣中有二名 성본일인재 기중유이명 (성은 본래 하나로 인하여 존재하는데, 기 속에서는 두 가지의 이름이 있다.) ● ‘心 - 性’ 虛靈 / 知覺, 仁義禮智 허령 / 지각, 인의예지 (심성은 텅비고 신령하며, 지각하고 인.의.예.지가 있다.) 本然 - 性 - 氣質 淸濁粹駁 청탁수박 (맑고탁하고 순수하고섞임) 四端 : 理發而 氣隨之 이발이 기수지 七情 : 氣發而 理乘之 기발이 이승지 四端이란 ‘理가 발현하는데 氣가 거기에 따르는 것’이고, 七情이란 ‘氣가 발현하는데 理가 그 위에 올라타는 것’이다.
[상도(上圖)에 대한 정복심(程復心)의 말]
林隱 程氏曰: 所謂心統性情者,
임은 정씨왈: 소위심통성정자,
임은 정(程)씨는 ‘심(心)이 성(性)과 정(情)을 통솔한다’는 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言人稟五行之秀以生. 於基秀而五性具焉, 於其動而七情出焉.
언인품오행지수이생. 어기수이오성구언, 어기동이칠정출언.
사람은 오행의 빼어난 기운을 받아 세상에 태어난다. 그 빼어난 기운을 바탕으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같은 다섯 가지 성품이 갖추어 진다. 그 빼어난 기운이 움직임에 따라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 등의 일곱 가지 감정이 나오게 된다. 무릇 성과 정을 다 함께 통솔하는 주체는 심(心)이다.
凡所以統會 其性情者, 則心也.
故其心寂然不動爲性, 心之體也; 感而遂通爲情, 心之用也.
범소이통회 기성정자, 즉심야.
고기심적연불동위성, 심지체야; 감이수통위정, 심지용야.
마음과 성정(性情)의 관계는 마음이 성정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통회·통괄이 될 것이며, 마음이 성정을 조절한다는 측면에서는 통섭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요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한 상태 적연부동(寂然不動: 마음이 외물과 관계를 맺기 이전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성(性)이요, 마음의 본체(體)이다. 마음이 현실적 사물을 느껴 두루 통하는 것 감이수통(感而遂通)이 정(情)이요, 마음의 작용이다.
張子曰: ‘心統性情, 斯言當矣’ 心統性, 故仁·義·禮·智爲性, 而又有言仁義之心者'.
장자왈: ‘심통성정, 사언당의’ 심통성, 고인·의·예·지위성, 이우유언인의지심자
장재(張載)는 “마음이 성과 정을 통솔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마음이 성을 통솔하기 때문에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성이 되고 ‘인의의 마음’이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心統情, 故惻隱·羞惡·辭讓·是非爲情, 而又有言惻隱之心, 羞惡·辭讓·是非之心者.
심통정, 고측은·수오·사양·시비위정, 이우유언측은지심, 수오·사양·시비지심자
마음이 정을 통하기 때문에 불쌍히 여김, 잘못을 부끄러이 여김, 미워함, 사양함, 옳고 그름을 분별함이 정이 되며, 또 불쌍히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사양하며 미워하기도 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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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不統性, 則無以致其未發之中, 而性易鑿; 心不統情, 則無 以致其中節之和, 而情易蕩.
심불통성, 즉무이치기미발지중, 이성이착; 심불통정, 칙무 이치기중절지화, 이정이탕.
만약 마음이 성을 통솔하지 못한다면 中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게 되어서 성이 훼손되기 쉽다. 심이 정을 통솔하지 못한다면 나타난 희로애락의 정이 화(和)를 이룰 수 없어 정이 방탕하기 쉽다.
學者知此, 必先正其心, 以養其性, 而約其情, 則學之爲道得矣.
학자지차, 필선정기심, 이양기성, 이약기정, 즉학지위도득의.
배우는 이는 이런 사실을 알아 반드시 먼저 자기의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성을 기르고 그 정을 절제한다면 배우는 도리를 얻었다 할 것이다.
신이 삼가 생각하옵건대, 정자의 "호학론(好學論)"에는 “감정을 알맞게 절제한다”는 말이 “마음을 바르게 하고 성을 기른다”는 말 앞에 있는데 여기서는 도리어 뒤에 있습니다. 이는 마음이 성과 정을 통솔한다고 말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이치를 따져 말한다면 당연히 정자의 논리가 그 순서에 맞을 것입니다. 그림에 온당치 못한 곳이 발견되어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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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하도(中下圖)에 대한 퇴계선생 설명]
右三圖, 上一圖林隱程氏作, 自有其說矣. 其中, 下二圖, 臣妄竊推原聖賢立言垂敎之意而作.
우삼도, 상일도임은정씨작, 자유기설의. 기중, 하이도, 신망절추원성현입언수교지의이작.
위 삼도 가운데 상도(上圖)는 임은 정씨가 만들고 자기 스스로 설명을 붙인 것입니다. 중과 하 두 그림은 성현이 하신 좋은 말씀과 훌륭한 가르침을 펴신 뜻을 미루어 생각해서 신이 외람 되게 만든 것입니다.
其中圖者, 就氣稟中指出, 本然之性不雜乎氣稟而爲言. 子思所謂天命之性,
기중도자, 취기품중지출, 본연지성불잡호기품이위언. 자사소위천명지성,
孟子所謂性善之性, 程子所謂卽理之性, 張子所謂天地之性, 是也.
맹자소위성선지성, 정자소위즉이지성, 장자소위천지지성, 시야.
가운데 그림은 인간이 받은 기품(氣稟) 중에 내재되어 있는 본연의 성은 기품과는 섞이지 않음을 지적한 말입니다. 자사(子思)의 ‘천명(天命)의 성(性)’이라든가, 맹자의 ‘성선(性善)의 성(性)’이라든가, 정자(程子)의 ‘이(理)의 성’, 장자(張子)의 ‘천지(天地)의 성’이라는 것이 ‘본연(本然)의 성(性)’입니다.
其言性旣如此, 故其發而爲情亦皆指其善者而言, 如子思所謂 中節之情, 孟子所謂
기언성기여차, 고기발이위정역개지기선자이언, 여자사소위중절지정, 맹자소위
四端之情, 程子所謂何得以不善名之之情, 朱子所謂從性中流出元無不善之情, 是也.
사단지정, 정자소위하득이불선명지지정, 주자소위종성중유출원무불선지정, 시야.
성(性)을 말함이 이와 같기 때문에 성(性)이 나타나 정이 되는 것도 모두 착함을 가리켜 한 말이니, 자사의 ‘중화로써 절제된 정’, 맹자의 ‘사단(四端)의 정’, 정자의 ‘어찌 착하지 아니한 정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는가’라고 할 때의 정, 주자(朱子)의 이른바 ‘성(性) 중에서 흘러 나왔으니 원래 착하지 않음이 없다는 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其下圖者, 以理與氣合而言之, 孔子所謂相近之性, 程子所謂 性卽氣, 氣卽性之性,
기하도자, 이이여기합이언지, 공자소위상근지성, 정자소위 성즉기, 기즉성지성,
張子所謂氣質之性, 朱子所謂雖在氣中, 氣自氣, 性自性, 不相夾雜之性, 是也.
장자소위기질지성, 주자소위수재기중, 기자기, 성자성, 불상협잡지성, 시야.
그 아래 그림은 이(理)와 기(氣)를 통합하여 말한 것이니, 공자의 ‘인간 각자의 성은 서로 비슷하다’라든가, 정자의 ‘성은 기이고 기는 성’이라든가, 장자(張子)의 ‘기를 바탕으로 한 성’, 주자(朱子)의 ‘비록 현실 속에 있어도 기는 기대로 성은 성대로 서로 섞이지 않는 성’이라 할 때의 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其言性旣如此, 故其發而爲情亦以理氣之相須, 或相害處言`.
기언성기여차, 고기발이위정역이이기지상수, 혹상해처언`.
성을 말함이 이와 같기 때문에 성이 나타나 정이 되는 것은 이(理)와 기(氣)가 서로 돕기도 하고 서로 모순되어 방해하기도 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如四端之情, 理發而氣隨之, 自純善無惡, 必理發未遂而揜於氣, 然後流爲不善.
여사단지정, 이발이기수지, 자순선무악, 필이발미수이엄어기, 연후유위불선.
七者之情, 氣發而理乘之, 亦無有不善, 若氣發不中而滅其理, 則放而爲惡也.
칠자지정, 기발이이승지, 역무유불선, 약기발불중이멸기이, 즉방이위악야.
이를테면, 사단의 정(情)은 이(理)가 나타날 때 기가 그것을 따르면 저절로 선(善)만 있고 악은 없으나, 이(理)가 나타나더라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기에 가려지게 되면 착하지 못함에 흐르게 되는 것이 필연적인 사실인 것이며, 칠정(七情)의 정은 기가 나타날 때 이(理)가 그것을 인도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착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만약 기(氣)가 나타나더라도 알맞게 조절하지 못해 이(理)가 소멸되면 인간의 마음이 방탕하여 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夫如是, 故程夫子之言曰: “論性不論氣不備, 論氣不論性不明. 二之則不是.
부여시, 고정부자지언왈: “논성불논기불비, 논기불논성불명. 이지즉불시.”
성(性)과 정(情)에 대한 이치가 이와 같기 때문에 정자가 말하기를 “성을 논함에 있어 기를 논하지 않으면 완벽한 이론이라 할 수 없으며, 기를 논함에 있어 성을 논하지 않으면 밝은 이론이라고 할 수 없다. 기와 성을 둘로 갈라놓으면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요컨대 理와 氣를 겸하고 성과 정을 통솔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성이 나타나 정이 될 한 마음의 기미는 모든 변화의 근본 요인이 되고, 착함과 악함이 갈라지는 시발이 되는 것입니다.
學者誠能一於持敬, 不昧理欲, 而尤致謹於此. 未發而存養之功深, 已發而省察之習熟.
학자성능일어지경, 불매이욕, 이우치근어차. 미발이존양지공심, 이발이성찰지습숙.
眞積力久而不已焉, 則所謂精一執中之聖學, 存體應用之心法, 皆可不待外求而得之於此矣.
진적력구이불이언, 즉소위정일집중지성학, 존체응용지심법, 개가불대외구이득지어차의.
배우는 사람은 진실로 경(敬)의 태도를 갖도록 전념해야 합니다. 이(理)와 욕(欲)을 분별함에 어둡지 않고 더욱 (경의 태도를 지니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아직 마음이 나타나지 않을 때 마음을 보존해서 성(性)을 기르는 공부를 깊게 한다면, 마음이 나타날 때 능숙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살피게 될 것입니다. 참되게 공부를 쌓아 오래도록 노력하여 끊이지 않으면 이른바 정성껏 한결같이 진실로 중(中)을 잡는 성학(聖學)과 마음의 본체를 잘 보존하고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심법(心法)을 모두 다른 곳에서 구할 필요가 없이 여기에서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第7圖 仁說圖 (인설도)]
第7圖 仁說圖 (인설도)
仁者 天地生物之心 (인자 천지생물지심) -. 元亨利貞 便是天地之心 (원형리정 편시천지지심) -. 而人之所得以爲心 (이인지소득이위심) 인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이 만물을 태어나게 하는 마음이며 -. 원형리정은 천지의 마음이다. -. 사람은 천지의 마음을 가진다.
ㅇ 未發之前 四德具焉 而惟仁則包乎四者 (미발지전 사덕구언 이유인즉포호사자) 마음이 발(發)하기 전 4덕(四德)이 갖추어져 있는데, 오직 인만이 4덕을 다 포용한다 是以涵育渾全 無所不統 (시이함육혼전 무소불통) 그러므로 인은 모든 것을 함양하고 기르고 온전하게하여 통괄하지 않는 것이 없다. 所謂生之性 愛之理 仁之體也 (소위생지성 애지리 인지체야) 이른바 생명의 본성(性)이란 사랑의 이치이고 인의 본체이다. ㅇ已發之際 四端著焉 而惟惻隱則貫乎四端 (이발지제 사단저언 이유측은즉관호사단) 마음이 발(發)하는 순간에 사단이 나타나는데 오직 측은(惻隱)이 사단을 관통한다. [四端(사단):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 是以周流貫澈 無所不統 (시이주류관철 무소불통) 이와 같이 두루 흘러 꿰뚫고 있어 통하지 않음이 없다. 所謂性之情 愛之發 仁之用也 (소위성지정 애지발 인지용야) 이른바 성(性)에 있어서 정(情)이란 사랑이 발한 인의 작용이다.
專言則未發是體 已發是用 (전언즉미발시체 이발시용) 전체적으로 말하여 마음이 미발(未發)한 상태는 본체이고, 이미 발한 상태는 작용이다 偏言則仁是體 惻隱是用 (편언즉인시체 측은시용) 단편적으로 말하면 인이 본체이고 측은은 작용이다
公者所以體仁 猶言克己復禮爲仁也 (공자소이체인 유언극기복례위인야) 공(公)이라는 것은 인을 체득하는 것으로서, 마치 자신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 되는 것이다
蓋公則仁 仁則愛 (개공즉인 인즉애) 대개 공이라는 것은 곧 인이며, 인은 곧 사랑이다. 孝悌其用也 而恕其施也 知覺乃知之事 (효제기용야 이서기시야 지각내지지사) 효도와 공손은 인의 작용이고, 서(恕)하는 것은 인을 베푸는 것이다 깨닫는 다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又曰 天地之心 其德有四 曰 元亨利貞 而元無不通 (우왈 천지지심 기덕유사 왈 원형이정 이원무불통) 또 주자가 말하기를 하늘과 땅의 마음은 그 덕이 4가지가 있는 데, 그것은 원형이정 이며 원은 4가지를 통하지 않음이 없다
其運行焉 則爲春夏秋冬之序 而春生之氣 無所不通 (기운행언 즉위춘하추동지서 이춘생지기 무소불통) 그것이 운행을 하면 곧 춘하추동의 사계절의 차례가 되며, 봄의 생명의 기운은 4계절 통하지 않음이 없다
故人之爲心 其德亦有四 曰 仁義禮智 而仁無不包 (고인지위심 기덕역유사 왈 인의예지 이인무불포)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에도 그 덕이 또한 4가지가 있는 데 그것은 인의예지라고 하며 이 인이 4덕을 다 포함하고 있지 않음이 없다
其發用焉 則爲愛恭宜別之情 而惻隱之心 無所不貫 (기발용언 즉위애공의별지정 이측은지심 무소불관) 이 사덕이 발하여 작용하게 되면, 곧 사랑하고 공손하고 마땅히 여기고 구분하고 하는 정이 되는데, 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모든 정을 다 관통하고 있지 않음이 없다
蓋仁之爲道 乃天地生物之心 卽物而在 (개인지위도 내천지생물지심 즉물이재) 대개 인이라고 하는 것을 도가 되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만물을 태어나게 하는 마음이 곧 만물에게도 존재하는 것이다.
情之未發 而此體已具 情之旣發 而其用不窮 (정지미발 이차체이구 정지기발 이기용불궁) 정이 발동 되지 않았을 때는 이것이 본체에 모두 갖추어져있고 정이 이미 발동이 되면 그 작용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誠能體而存之 則衆善之源 百行之本 莫不在是( (성능체이존지 즉중선지원 백행지본 막부재시) 진실로 인을 체득하여 잘 보존하게 되면 곧 모든 착함의 근원이 되고 모든 행동의 근본 되어 이 속에 있지 않음이 없다.
此孔門之敎 所以必使學者 汲汲於求仁也 (차공문지교 소이필사학자 급급어구인야) 이것은 공자의 문하에서 가르치는 것이며 이는 반드시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을 구하는데 쉬지 않고 힘쓰도록 하는 것이다
其言有曰 克己復禮爲仁 言能克去已私 (기언유왈 극기복례위인 언능극거이사) 그 말씀을 두어 말하기를 자신을 극복하고 즉 사리사욕을 누르고 예절로 돌아 서는 것을 인이라고 하였는데 말하기를 능히 자신의 사사로움을 이겨 없애고
復乎天理 則此心之體 無不在 而此心之用 無不行也 (복호천리 즉차심지체 무부재 이차심지용 무불행야) 하늘의 이치로 돌아가면 이러한 마음의 인의 본체는 존재하지 않음이 없으며 이러한 마음의 작용은 행하지 아니함이 없다.
又曰居處恭 執事敬與人忠 則亦所以存此心也(우왈거처공 집사경여인충 즉역소이존차심야)
또한 말하기를 집안에 있을 때는 공손하고 일을 맡았을 때는 정중하게 최선을 다 하며
사람을 대할 때는 충실하게 하는 것이 역시 이러한 마음을 보존하는 것은 본체인 인의 마음이다.
又曰 事親孝 事兄悌 及物恕 則亦所以行此心也(우왈 사친효 사형제 급물서 즉역소이행차심야)
주자가 또 말하기를
어버이를 섬기는 데는 효도로서 하고,형님을 섬길 때는 공경하고,사물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데는 용서로서 하고,역시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이러한 인의 마음이다
此心何心也 在天地 則坱然生物之心 在人則溫然愛人利物之心 包四德 而貫四端者也
(차심하심야 재천지 즉앙연생물지심 재인즉온연애인이물지심 포사덕 이관사단자야)
이러한 본체인 인의 마음은 어떠한 마음인가 천지에 존재하는 것에 있어서,곧 한 없이 넓은 것으로 만물을 태어나게 하는 마음이요,사람에 있어서는 곧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마음이니,사덕을 포괄하고 사단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或曰 若子之言 程子所謂愛情仁性 不可以愛名仁者 非歟
(혹왈 약자지언 정자소위애정인성 불가이애명인자 비여)
간혹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자께서 즉 정명도 정이천께서 이른바 사랑은 정이고 인은 성이다 하였는데 사랑으로서 인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그른 것이 아닌가.
曰不然 程子之所謂以愛之發 而名仁者也 吾之所論以愛之理 而名仁者也
(왈불연 정자지소위이애지발 이명인자야 오지소론이애지리 이명인자야)
주자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정자가 말한 것은 사랑이 발동한 것을 인이라 이름을 지은 것이고내가(주자)논한 것은 사랑하는 이치로서 인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다.
蓋所謂情性者 雖其分域之不同 然其脈絡之通 各有攸屬者 則曷嘗離絶 而不相管哉
(개소위정성자 수기분역지부동 연기맥락지통 각유유속자 즉갈상리절 이불상관재)
대개 정과 성이라고 하는 것은 비록 그 나누어지는 영역이 동일하지 않지만,그러하나 정과 성의 맥락(혈액의 연결)은 서로 통하고 각각 그 소속된 것은 같은 것인데 어찌 떨어지고 끊는다고 하느냐.그것은 서로 관계를 하지 안 는다고 하겠는가.
吾方病夫學者 誦程子之言 而不求其意 遂至於判然離愛而言仁
(오방병부학자 송정자지언 이불구기의 수지어판연리애이언인)
우리 주위의 잘못 배우는 학자들은 정자의 말만 외우고 그 기본 뜻은 구하지 못하고 끝내가서는 당연히 판가름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사랑을 떠나서 인을 말하는데 이르고 있다.
故特論此 以發明其遺意 子以爲異乎程子之說 不亦誤哉
(고특론차 이발명기유의 자이위이호정자지설 불역오재)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특별히 논하여 그분이 남긴 뜻을 분명하게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여기 그대가 정자의 설명과 다르다고 한 것은 이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닌가.
曰程子之徒 有以萬物與我爲一 爲仁之體者 亦有以心有知覺 釋仁之名者 皆非歟
(왈정자지도 유이만물여아위일 위인지체자 역유이심유지각 석인지명자 개비여)
그렇다면 정자의 제자들이 배우기를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된 것이 인의 본체가 된다고 하고 또한 마음이 있으므로 해서 알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이것을 인의 이름으로 해석하고 있다.이 모두가 틀린 것인가.
曰爲物我爲一者 可以見仁之無不愛 而非仁之所以爲體之眞也
(왈위물아위일자 가이견인지무불애 이비인지소이위체지진야)
주자가 말하기를 만물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 곧 인이 사랑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본 것이요,인이 모체가 된다는 진실은 아니라 하겠다
謂心有知覺者 可以見仁之包乎智矣 而非仁之所以得名之實也
(위심유지각자 가이견인지포호지의 이비인지소이득명지실야)
마음에 앎과 깨달음이 있다고 한 것은 인이 지혜를 포용한 것을 본 것이요
인이라고 이름을 얻은 실상을 말한 것은 아니다
觀孔子答子貢 博施濟衆之問 與程子所謂覺不可以訓仁 則可見矣
(관공자답자공 박시제중지문 여정자소위각불가이훈인 즉가견의)
공자께서 자공에게 답한 것을 보면 널리 베풀고 대중을 구제하는 것에 대한 질문의 답변과 또 정자의 이른바 깨닫는다는 것은 인만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으로 가히 볼 수 있는 것이다
★ "敬" : 一心 主宰 : 惟精, 惟一 / 擇善, 固執 • 愼獨, 戒懼, 克復, 操存, 心在, 心思, 求放心, 養心, 正心, 盡心, 四十不動心, 七十而從心 ㅡㅡㅡㅡㅡ • 心 : 一身主宰 (심-일신주재) • 敬 : 一心主宰 (경-일심주재) 마음은 몸을 주재하고, 경은 마음을 주재한다. 敬은 깨어있는 마음으로 하늘로 부터 받은 본래마음을 보존하고 행하는 것이다. ★ "心" : 虛靈.知覺.神明 -.허령(虛靈): 허(虛)는 마음의 본래적인 모습이 텅 빈 상태임을 뜻하고 령(靈)은 마음이 신묘하게 작용하고 움직이는 것을 가리킨다. 거울에 비유하면 ‘허’란 마음의 본모습이 마치 사물을 비추기 전의 거울과 같다. 사물을 비추기 전의 거울은 아무런 상(象)도 반영하지 않는 텅 빈 상태다. 인간의 마음 역시 본래 비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외부사물을 접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은 비어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만사만물을 감각하고 인식하며 판단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스스로 움직이고 작용하는 마음의 신묘한 능력(령)인 것이다. -.지각(知覺):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외부의 사물이나 자극을 의식하고 판단 하는것. -.신명(神明):신령스럽고 밝게 비추는 것. • 心 : 良心, 本心, 赤子心, 大人心, 人心, 道心 (양심,본심,적자심,대인심,인심,도심) -.본래 마음(本心)은 하늘 같이 큰 마음(大人心)이고 진리를 깨달은 마음(道心)이다. 또한 마음은 선량하고(良心) 어린아이 마음처럼 순수하나 (赤子心) 욕심에 따르기도 한다(人心).그래서 거경(居敬) 하는 것이다.
★ "敬" : 一心 主宰 (경.일심주재) : 惟精, 惟一 /擇善, 固執 (유정.유일/택선.고집) • 愼獨, 戒懼 (신독.계구) 克復, 操存 (극복.조존) 心在, 心思 (심재.심사) 求放心, 養心 (구방심.양심) 正心, 盡心 (정심.진심) 四十不動心, 七十而從心 (사십부동심.칠십이종심) -.유정 유일(惟精 惟一) : 서경(書經)의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人心惟危 道心惟徵 惟精惟一 允執厥中)에서 나온 말로 욕심으로 싸인 인심은 변하기 쉽고, 양심을 지키려는 도심은 그 힘이 약하니, 오직 깨어있어서 정성을 다해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 가운데(中)를 잡아야 한다. 중(中)이란 중용에서 '희노애락이 나타나지 않는 상태이고, 그것들이 나타나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의 중을 말하며, 때와 상황에 맞게 나타나는 시중(時中)의 중이다. -.택선고집(擇善固執): 선(善)을 택하는 것이고, 그것을 굳게 지켜나가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선을 선택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내재한 본성을 자각하는 것이고, 굳게 지킨다는 것은 자각한 본성을 행동에 옮기는 실천하는 것이다. • 경을 하는 법 -.신독(愼獨),계구(戒懼): 홀로 있을 때에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하고 신중해야 하며, 늘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언행을 조심 한다. -.극복(克復),조존(操存): 욕심을 이겨내어 예로 돌아가고(극기복례), 미미한 본심을 보존한다. -.심재(心在),심사(心思) :마음을 굳건히 지키고, 본 마음에 대해 성찰한다. -.구방심(求放心),양심(養心): 흩어지려는 마음을 찾고, 그 마음을 키운다. -.정심(正心),진심(盡心):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바르게하여, 극진하게 발휘한다. -.사십부동심(四十不動心),칠십이종심’(七十而從心): 나이 40이 되면 외적 유혹과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70에는 ‘내 마음 가는 대로 해도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從心所慾不踰矩)'의 경지가 된다. 마음수양과 경을 통해 마침내 대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경을 하는 것에 대한 잠언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어그러짐이 없게 하라. 의관을 바르게 하고, 눈매를 존엄하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가지고 있기를 마치 상제를 대하듯 하라. 걸음(足容)은 반드시 무겁게 할 것이며, 손가짐(手容)은 반드시 공손하게 하여야 하니, 길을 갈때는 땅은 가려서 밟아, 개미집 두덩까지도 (밟지 말고)돌아서 가라.
출문여빈 승사여제 전전긍긍 망감혹이, 수구여병 방의여성, 통통촉촉 망감혹경) 문을 나설 때는 손님을 대하듯, 일을 할 때는 제사를 지내듯, 조심하고 조심하여 혹시라도 소홀 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이 하고, 잡념 막기를 성곽과 같이 하여, 성실하고 진실하여 조금도 경솔히 함이 없도록 하라.
[從事於斯是曰持敬] (종사어사시왈지경) 이러한 것을 그치지 않고 일삼아 하는 것을 "경을 유지함 (持敬)"이라 한다.
부동이서 불남이북 당사이존 미타기적 불이이이 불삼이삼 유심유일 만변시감)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하여, 마음씀이 다른 데로 가지 않도록 한다 동으로 가면서 서쪽 생각말고, 북으로 가면서 남쪽 생각말며, 일을 당하여서는 그 일에만 마음을 두어, 그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게 하라. 두 가지, 세 가지 일로 마음을 두 갈래 세 갈래 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오직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하여, 만 가지 변화를 살피도록 하라.
주자는 말하였다. "주선(周旋)이 규(規)에 맞는다고 함은 회전처가 그 둥긂이 규에 맞는 것처럼 되길 바란다는 것이고,절선(折旋)이 구(矩)에 맞는다 함은 횡전처가 그 모남이 구에 맞는 것처럼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의봉(蟻封)이란 의질(蟻垤,개미둑 질)이다.옛말에"말을 타고 의봉 사이로 굽어서 돌아갔다"고 하는데,그것은 의봉 사이의 길이 꼬부라지고 좁아서,말을 타고 그 사이를 절도를 잃지 않으며 꼬불꼬불 달려 돌아간다는 것이 바로 어려운 일을 해내는 소이(所以)임을 말한 것이다.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이 한다는 것은 말을 망령되게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고,잡념 막기를 성과 같이 한다는 것은 사악한 것이 들어옴을 막는다는 것이다.또"경"이 모름지기"주일"하는 것임을 말하였다.본래 한 개의 일이 있던 데에 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고,원래 한 개 있던 데에 두 개를 더하면 곧 세 개를 이룬다.잠깐 사이란 때로 말함이고,터럭 끝만큼의 차이란 일로 말함이다.
임천 오씨는 말하였다. "이 잠(箴)은 대략10장으로 되었는데,한 장은4구씩이다.첫째 장은 정할 때에 어김이 없을 것을 말한 것이며,둘째 장은 동할 때에 어김이 없을 것을 말한 것이다.셋째 장은 겉의 바름을,넷째 장은 속의 바름을 말한 것이다.다섯째 장은 마음이 바로잡혀 일에 통달될 것을 말하였으며,여섯째 장은 일에 주일,즉 집중하되 마음에 근본 할 것을 말하였다.일곱째 장은 앞의 여섯 장을 총괄한 것이며,여덟째 장은 마음이 흩어 지지 않을 수 없는 병폐를 말한 것이다.아홉째 장은 일에 집중되지 못하는 병폐를 말한 것이며,열째 장은 이 한 편을 총괄적으로 결론지은 것이다."
○西山眞氏曰,敬之爲義,至是無復餘蘊,有志於聖學者宜熟復之.
서산 진씨는 말하기를, "경에 대한 뜻은 여기에서 더 이상 남김이 없게 되었다.성학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것을 잘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라 하였다.
신의 생각으로는 지두의 설은 공부하는 데 좋은 근거가 될 것이라 하겠는데,금화의 왕노재가 지두를 배열하여 이 도(圖)를 만듦으로써,명백히 정동되고 모두 단락 지어짐이 또한 이와 같이 되었습니다.일상생활 속에서 생각하고 눈에 띌 때마다 항상 몸소 체험,음미하시고 경계삼아 반성하시어 깨닫는 것이 있으셔야겠습니다.그렇게 된다면 경이 성학을 하는 데 시종이 됨을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第 10. 夙興夜寐箴]
[제 10. 夙興夜寐箴] ["敬"] • 夙寤 鷄鳴而寤 思慮漸馳 盍於其間 澹以整之 或省舊愆 或紬新得 次第條理 瞭然黙識 (숙오 – 계명이오 사려점치 합어기간 담이정지 혹성구건 혹주신득 차제조리 요연묵식) 아침에 일찍 깨어난다. 닭이 울어 잠에서 깨어나면 생각이 차츰 일어나게 되니, 그 사이에 조용히 마음을 정돈해야 한다. 혹은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혹은 새로 깨달은 것을 모아, 차례와 조리를 분명하게 알아 차린다.
• 晨興 本旣立矣 昧爽乃興 盥櫛衣冠 端坐斂形 提掇此心 皦如出日 嚴肅整齊 虛明靜一 (신흥 - 본기립의 매상내흥 관즐의관 단좌렴형 제철차심 교여출일 엄숙정제 허명정일) 새벽에 일어난다. 근본이 확립 되었으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을 갖추어 입고 단정하게 앉아 몸을 가다듬는다. 마음을 끌어 모아 떠오르는 햇살처럼 밝게 하여, 몸을 엄숙하고 가지런히 정돈하여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집중 한다.
• 讀書 乃啓方冊 對越聖賢 夫子在坐 顔曾後先 聖師所言 親切敬聽 弟子問辨 反覆參訂 (독서- 내계방책 대월성현 부자재좌 안증후선 성사소언 친절경청 제자문변 반복참정) 글을 읽는다. 정좌하고 책을 펴서 성현을 대하면, 공자께서 자리에 계시고 안회와 증자가 앞뒤에 있을 것이다. 성현께서 말씀하신 것을 정성스럽고 정답게 경청하고, 제자들의 질문과 답변을 반복 참구하여 살피어 본 받는다.
• 應事 事至斯應 則驗于爲 明命赫然 常目在之 事應旣已 我則如故 方寸湛然 凝神息慮 (응사 - 사지사응 즉험우위 명명혁연 상목재지 사응기이 아즉여고 방촌담연 응신식려) 일을 대하는 자세 일을 대할 때는 실천하는 기회로 삼으며, 밝은 천명이 빛나고 있으니 항상 거기에 주목한다. 일에 대응하고 나면 나의 예전과 같이 마음은 고요하고 담담하게 하여 정신을 집중하고 사사로운 생각을 멈춘다.
• 日乾 動靜循環 惟心是監 靜存動祭 勿貳勿參 讀書之餘 間以游詠 發舒精神 休養情性 (일건- 동정순환 유심시감 정존동제 물이물삼 독서지여 간이유영 발서정신 휴양정성) 낮이 다할 때까지 부지런히 일함 움직임과 고요함이 순환하는 것을 오직 마음으로 볼 수 있으므로, 고요할 때 이 마음 잘 보존하고 움직일 때 관찰하여 마음이 둘 셋으로 흩어지지 않게 한다. 글을 읽다가 틈이 나면 잠깐 휴식을 취하고, 정신을 활짝 펴서 성정을 아름답게 기른다.
저녁에도 조심하고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는다. 날이 저물어 사람이 피곤해 지면 나쁜 기운이 들어오기 쉬우므로 몸과 마음을 잘 가다듬어 정신을 맑게 이끌어야 한다. 밤이 깊어 잠을 잘 때는 손발을 가지런하게 모아 아무 생각을 하지 말고 마음과 정신을 잠들게 한다.
[兼夙夜] 養以夜氣 貞則復元 念玆在玆 日夕乾乾 (겸숙야 - 양이야기 정즉부원 염자재자 일석건건) 낮부터 밤까지 자신의 정신과 기를 가다듬는 것 밤의 기운으로 마음과 정신을 잘 기르면 정(貞)이 다시 원(元)으로 돌아 온다. 이것을 항상 생각하고 마음에 두어 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퇴계 선생 해설-
右箴,南塘陳茂卿柏所作以自警者
金華王魯齋嘗主敎台州上蔡書院 專以是箴爲敎 使學者人 人誦習服行.
우잠,남당진무경백소작이자경자
금화왕노재상주교태주상채서원 전이시잠위교 사학자인 인송습복행.
위의 잠은 남당 진무경(南塘 陳茂卿,名은 栢)이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하여 지은 것입니다.
금화 왕노재가 태주(台州)의 상채서원(上蔡書院)에서 가르치는 일을 맡아 볼 때 오로지 이 잠으로써 가르쳤으며,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마다 외우고 실천하도록 하였습니다.
臣今謹倣魯齋<敬齋箴圖>作此圖 以與彼圖相對蓋<敬齋箴>有許多用工地頭 故隨其地頭而排列爲圖
此箴有許多用工時分 故隨其時分而排列爲圖.
신금근방노재<경재잠도>작차도 이여피도상대개<경재잠>유허다용공지두 고수기지두이배열위도.
차잠유허다용공시분 고수기시분이배열위도.
이제 삼가 노재의 경재잠도(敬齋箴圖)를 본떠서 이 도형을 만들어 그의 도형과 비슷하게 하였습니다.
대개 경재잠에는 경(敬)을 실천하는데 적용할 수 있는 여러 주제를 제시하였고,그 주제에 따라 배열하여 도형을 만들었습니다.
이 잠에는 하루 중에 시간대에 따라 경(敬)을 적용하도록 제시하였고,도형은 시간대에 따라 정리하여 만들었습니다.
대개 도는 일상생활 어디에나 있어 가는 곳마다 없는 곳이 없으므로,理가 없는 곳이란 한 군데도 없습니다.그러므로 어느 곳에서라도 공부를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도(道)는 잠깐 이라도 정지할 수 없습니다.그러므로 이(理)가 없는 때가 없으니 어느 때인들 공부를 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故子思子曰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是故 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又曰 “莫見乎隱,莫顯乎微.故君子愼其獨也”.
고자사자왈 “도야자 불가수유이야 가이비도야시고 군자계신호기소불도 공구호기소불문”.
우왈 “막현호은 막현호미 고군자신기독야.”
그러므로 자사(子思)가 중용(中庸)에서 말씀하기를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만약 인간이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도(道)가 아니다.군자가 남에게 보이지 않는 곳을 삼가고 남에게 들리지 않는 곳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고 하였다.
또“가장 은밀한 것만큼 잘 보이는 것이 없으며,가장 미미한 것만큼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군자는 홀로 있을 때 삼간다”고 했다.
此一靜一動 隨處隨時 存養省察 交致其功之法也
果能如是 則不遺地頭理無毫釐之差 不失時分而無須臾之間二者竝進 作聖之要 其在斯乎.
以上五圖 原於心性 而要在勉日用 崇敬畏.
차일정일동 수처수시 존양성찰 교치기공지법야
과능여시 즉불유지두이무호리지차 불실시분이무수유지간이자병진 작성지요 기재사호.
이상오도 원어심성 이요재면일용 숭경외,
이것은 한 번 멈추고 한 번 움직일 경우에나 어느 곳 어느 때에도 본 마음을 보존하여 기르고(存養)잘 살펴서(省察)서로 번갈아 최대한으로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과연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어느 상황에서나 털끝만한 어김이 없을 것이요,어느 때나 잠시의 중단도 없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병행하여 정진하면 성인이 되는 요체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상의 다섯 그림(6심통성정도~10숙흥야매도)은 심성에 근원한 것으로서,그 요점은 일용생활에 힘쓰고 삼가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높이고자 한 것입니다.
ⅳ. 疑問形 의문사나 의문 종결사가 쓰이어 '∼인가 ?, ∼이냐 ?' 등의 의문의 뜻을 갖는 글의 형식.
(1) 의문사가 쓰인 경우 ① 의문 대명사 : 誰, 孰, 何, 安, 惡 - <누구, 어떤, 무엇 > ·誰能爲我, 折花而來 ·君子去仁, 惡乎成名 ② 의문 부사 : 何, 何以, 何如(如何), 奈何 - <어찌, 어떻게, 왜> ·何以附耳相語 ·當奈公何 (2) 의문 종결사가 쓰인 경우 : 乎, 哉, 與(=歟), 諸(저:之乎) - <∼는가 ?> ·子非三閭大夫與 ·以羊易之, 有諸
ⅴ. 反語形 어떤 문장을 강조하기 위해 꺼꾸로 물어 보는 글의 형식
(1) 반어 부사가 쓰인 경우 : 豈, 安, 寧, 焉, 胡, 奚 - <어찌> ·豈可是己而非人 ·子非魚, 安知魚之樂 (2) 반어 종결사가 쓰인 경우 : 乎, 哉, 耶 - <∼는가 ?> ·敢不從將軍之令乎 ·不仁者, 可與言哉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說 +-(설)말하다 +-(열)기쁘다 +-(세)유세하다, 달래다 * 반어형은 겉보기에 의문형의 모습을 하고 있어 의문형과 혼동하기 쉬우나, 반어형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 반어사와 종결사의 호응 ·豈能獨樂哉 ·王候將相, 寧有種乎 ·燕雀安知鴻鵠之志哉
ⅵ. 比較形 비교 또는 선택의 뜻을 나타내는 글의 형식
(1) 비교 전치사가 쓰인 경우 於 (=于, 乎) ① 우열 비교 : <∼보다 더> ·苛政猛於虎 ② 동등 비교 : <∼와 (∼과)> ·國之語音, 異乎中國 (2) 비교형 서술어가 쓰인 경우 ① 동급 : '若, 如, 猶, 由' <마치 ∼와(과) 같다> ·學問如逆水行舟 ② 비교급 : '不如, 不若' <∼만(같지) 못하다> ·遠親不如近隣 ③ 최상급 : '莫如, 莫若' <∼만한(∼만 같은) 것이 없다> ·知子莫若其父 (3) 선택적 관용구가 쓰인 경우 '與其A 寧B'의 기본형과 여러가지 변형이 쓰여 <A보다는 차라리 B가 낫다>로 해석.
(1) 한정 부사가 쓰인 경우 : '惟, 維, 唯, 但, 只, 徒'<오직> ·學者所患, 惟有立志不誠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2) 한정 종결사가 쓰인 경우 : '耳, 爾, 已, 而已, 而已矣' ·昭帝立時, 年五歲爾 ·隧事各得其當而已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3) 호응구가 쓰인 경우 ·惟淡泊, 是愧耳 ·直不百步耳, 是亦走也
* 기타 한정형 문장 ·便於日用耳 ·不獨染絲爲然 ·不獨中華也
ⅹⅱ. 抑揚形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가볍게 눌렀다가 다시 어조를 높임으로써 뜻을 강조하는 문장 형 식. : '況∼乎'<하물며 ∼하랴 ?>, '且∼安∼'<∼도 하는데 어찌 ∼하랴> ·布衣之交, 尙不相欺, 況大國乎 ·死馬且買之, 況生者乎 ·臣, 死且不避, 酒安足辭
ⅹⅲ. 累加形 글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점차 뜻을 보태가는 문장형식 : '非徒∼且', '不惟∼亦', '非獨∼且' <다만 ∼일 뿐만 아니라 또(한)∼>, '豈徒∼又', '豈獨∼亦'<어찌 ∼뿐이겠는 가 또(한)∼> ·非徒危己也, 又且危父矣 ·不惟有超世之才, 亦有堅忍之心 ·豈徒順之, 又從而爲之辭 *累加形의 형태 ① '부정사 (不,非) + 한정부사 (惟,獨,徒,只,但) + 접속사 (亦,又) ② '의문사(豈,奚) + 한정부사(惟,獨,只) + 접속사(又,亦)
※ '以'와 '而' : '以'가 접속사로 쓰이는 경우 '而'의 순접용법과 같이 쓰인다. 이 경우 '以'의 (앞과) 뒤에는 각 각 용언이 온다. ※ '以'의 특수 용법 ① '以A爲B' : A를 B라고 여기다(생각하다, 삼다) ·百姓皆以王爲愛也 ·以修身爲本 * '以爲B' : '以(A)爲B'의 변형 ·虎以(之)爲然 ② 명사 - 이유, 까닭 ·良有以也 ③ 부사어(이 + 명사류)의 강조 ·事君以忠 → '以忠事君'의 도치 '以忠' 강조
(1) 語氣詞 : 語頭, 語中 語氣詞에 쓰인다. ① 추측 : '아마, 혹, 대개' <語頭 語氣詞> ·子其怨我乎 <아마> ·不可一日而廢學, 其惟讀書乎 <아마도> ② 명령·권고 : '진실로, 절대로, 또한' <語中語氣詞> ·子其勉之 <진실로> ·與爾三矢, 爾其無忘乃父之志 <절대로> ※ 語氣詞 : 단어나 句文의 앞(발어사), 가운데나 뒤(종결사) 에 놓이어 語氣를 표시하는 글자.
< 복합자 '諸'와 '焉'의 용법>
Ⅰ. '諸(저)'의 용법 (1) 문장의 중간에 쓰일 경우 : ∼에 그것을 <'之於'의 축약>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不若投諸江而忘之 (2) 문장의 끝에 쓰일 경우 : ∼하였는 가 ? <'之乎'의 축약> ·一言而可以興邦, 有諸 ※ '諸'의 다른 용법 (접두사) ·諸君, 不察耳 ·一日不念善, 諸惡皆自起
Ⅱ. '焉'의 용법
(1) 문장의 처음에 쓰이는 경우 : 어찌 ∼하겠는가 <반어부사> ·割鷄, 焉用牛刀 ·未知生, 焉知死 (2) 문장의 끝에 쓰일 경우 ① 단정 종결사 : ∼이다 ·吾於足下有厚望焉 ② 비교 : 이보다 <'於是, 於此, 於之'의 축약> ·過而能改, 善莫大焉 ③ 시간 <접미사> : ∼에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④ 대명사 : 그것을, 여기에<'之, 於之'의 축약 > ·衆好之, 必察焉 <焉 = 之> ·三人行, 必有我師焉 <焉 = 於之>
ⅶ. 接續詞 (1) 보통 接續詞 ① 체언과 체언의 연결 : 與, 及 등 ·天命與天道 ·予及女, 偕亡 ② 용언과 용언의 연결 : 而, 且 등 ·謹而愼 ·仁且智 (2) 副詞的 接續詞 ① 順接 : 而, 以 등 ·敏於事而愼於言 ·殺身以成仁 ② 逆接 : 而, 然, 抑 등 ·視而不見 ·求之與, 抑與之與 ③ 因果關係 : 則, 故, 是以, 是故, 於是 등 ·虎以爲然, 故遂與之行 ·是以見放 ④ 假定 : 則 ·用之則行, 舍之則藏
한문에서 실질적인 의미가 없이 다른 한자를 보조하여 우리말의 조사, 어미, 의존 명사 같은 역할을 하는 한자를 어조사(語助辭)라고 한다. 대표적인 어조사로는 於, 也, 而 등이 있다. 어조사에 대하여 처음부터 옥편이나 허사(허자) 사전에 있는 많은 어조사의 의미나 기능을 샅샅이 자세히 알고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니 우선은 주요한 어조사의 주된 의미나 기능을 대충 안 뒤에, 문장을 통해서 단어(한자)를 익히는 것이 효율적이듯이, 어조사도 문장 공부를 하면서 차츰 배워 가면 되겠다. 그리고 어조사는 말 그대로 보조하는 것이니, 문장을 해석할 때에 어조사만 따로 떼어 해석하기보다는, 어조사가 보조하는 실사(實辭)나 문맥을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어조사는 부수적으로 참고하여 문장을 해석해야 한다.
◆ 어조사의 종류
於나, 于처럼 명사 앞에 위치하여 뒤에 오는 명사와 결합하여, 마치 영어의 전치사 비슷한 노릇을 하는 어조사를 개사(介詞)라고 한다. 그리고 영어의 전치사구 비슷하게 개사와 그 뒤에 오는 명사(대명사, 수사, 명사구 포함)와 합하여 개사구(介詞句)를 이룬다. 개사에는 於, 于, 乎, 以, 與, 自, 從, 由, 道 등이 있다. 또 어조사 중에서 국어의 의존명사 ‘것’처럼 대개 동사를 명사로 바꾸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이런 어조사는 所, 攸, 者 등이다. 그 외 어조사는 대개 문장이나 단어 뒤에 쓰이거나, 문장 중간에 쓰이는 것들이다. 문장, 단어, 구절 뒤에 쓰이는 어조사는 也, 矣, 哉, 乎, 兮, 耳, 焉, 之, 止, 邪(야), 耶, 與, 歟, 夫 등이다. 문장이나 구절 중간에 쓰이는 어조사로는 而, 則, 乃, 及, 與, ? 등이 있는데, 일부는 어조사로 볼 것인지 애매한 것도 있다. 乎, 與 같은 어조사는 단어 앞에서 쓰이기도 하고 단어 뒤에 쓰이기도 하고, 또 적지 않은 어조사가 실사(實辭)적인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다. 이점이 때로 해석에 혼란을 주므로, 주의해야 한다. 여기서는 주요 어조사의 허사적인 주된 의미나 기능만을 간단히 정리한다. 자세한 것은 옥편이나 한한(漢韓)대사전, 허자사전 등을 보기 바란다.
ㆍ於(=于, 乎)
於는 의미나 기능이 대단히 광범위하여, 이것을 몇 개로 정리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다행히도 於는 대개 우리말로 ‘-에, -에게, -에서’ 등으로 해석된다. 于, 乎는 於와 그 쓰임이 비슷하나, 乎는 단어나 문장 뒤에도 쓰이기도 한다.
○‘~에, ~에서, ~로’ (장소, 공간, 방향)
生於鄕, 長於京.(촌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다.)
晝耕於野, 夜讀於家.(낮에는 들에서 농사짓고, 밤에는 집에서 책을 본다.)
○ ‘-에게, -에, -한테, -을’ (상대. 대상. 목표)
孔子問禮於老子矣(공자가 노자에게예를 물었다.)
君子敏於義, 小人敏於利.(군자는 의에민첩하고, 소인은 이익에민첩하다.)
醫攻於病.(의원은 병을 다스린다)
○ ‘~에, ~에게’ (수동, 피동)
日本敗於韓國矣.(일본은 한국에게 패했다.)
將見禽於敵.(장수가 적에게 사로잡혔다.)
○ ‘~과(와), ~보다, ~에’ (비교)
我國之語異於中國.(우리나라 말이 중국과다르다.)
夏暑於春, 冬寒於秋.(여름은 봄보다덥고, 겨울은 가을보다춥다)
地異山之景不及於金剛山.(지리산의 경치는 금강산에미치지 못한다.)
○ ‘~에서, ~에’ (발단, 유래, 원인)
佛敎始於印度.(불교는 인도에서시작되었다.)
福生於淸儉.(복은 청렴하고 검소함에서생긴다)
○ ‘~에게는(한테는), ~에는’
白頭山於我國, 若母也.(백두산은 우리나라에는 어머니와 같다.)
良藥苦於口.(좋은 약은 입에는 쓰다.)
○ ‘-대하여’
ㆍ自
○ ‘-에서, -부터’ (시작)
自古至今, 海未嘗竭.(예로부터지금까지 바닷물이 마른 적이 없다.)
京釜線發自京, 到於釜山也.(경부선은 서울에서출발하여 부산에 이른다)
自金氏得橫財, 未嘗勞矣.(김씨는 횡재를 하고부터일한 적이 없다)
○ ‘-에서’ (발단. 원인)
禍福自己出也.(화복은 자기에게서 나온다)
○ ‘자기, 스스로, 저절로’
ㆍ以
以가 이끄는 개사구는 대개 부사어로 쓰인다.
○ ‘까닭, 이유’ (명사로 쓰일 때)
○ ‘로써, -를 가지고, -로써 하다’ (수단. 도구. 방법)
以卵投石.(달걀로돌을 친다.)
以夷制夷.(오랑캐로써오랑캐를 제압하다)
交友以信.(미더움으로친구를 사귀어라)
聽不以目, 以耳也.(듣는 것은 눈으로 하지 않고 귀로 한다)
○ ‘-를, -로써’ (목적. 기준)
兄以黃金授弟也.(형이 황금을 동생에게 주었다)
姜太公以釣爲事矣.(강태공은 낚시로 일을 삼았다)
○ '~때문에(-때문이다), -이므로, 까닭이다' (이유. 원인)
勿以小利, 失大利哉.(작은 이익때문에큰 이익을 놓치지 마라)
富者爲富者, 貧者爲貧者, 以八字也.(부자가 부자이고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인 것은 팔자때문이다.)
○ ‘-해 가지고서, -해서(-하여)’ (연결)
殺身以成仁(자신을 희생하여인을 이루다)
滿醉以歌舞.(만취해 가지고서노래하고 춤추다)
○ ‘그것을, 그것으로써, 그래가지고서, 그것 때문에’ (받는 말)
甲授乙酒, 乙以授丙.(갑은 을에게 술을 주었고, 을은 그것을 갖고 병에게 주었다)
兄打弟, 父以責兄也.(형이 아우를 때리니, 아버지가 그것을 가지고 형을 꾸짖었다)
甲夢抱豚矣. 甲以告乙也.(갑이 돼지를 안는 꿈을 꿨다. 갑이 그것을 을에게 고했다.)
○ '-로서' (자격. 지위. 신분)
王待吾以國士.(왕이 나를 국사로서 대접한다)
先生雖非親父, 以子事之.(선생이 친부는 아니지만, 자식으로 그를 섬겼다)
○ ‘~에’ (시점)
以三月甲子日 虎出市焉.(삼월 갑자일에 호랑이가 저잣거리에 나타났다)
ㆍ與
○ ‘주다, 참여하다’ (실사로 쓰일 때는 이외에도 뜻이 많다.)
○ ‘-과(와), ∼과(와) 더불어’ (개사. 접속사)
與民同樂(백성과 더불어 즐긴다).
國語與日本異矣.(우리말은 일본과다르다)
富與貴 是人之所欲也(부와귀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다.)
○ ‘-하냐, -하랴’ (어조사로 의문이나 반어에 쓰임)
父謂男曰, 汝知我心與.(아버지가 아들에게 ‘너는 내 마음을 아느냐’고 말했다.)
猫不勝犬, 況勝虎與.(고양이가 개를 이기지 못하는데, 하물며 호랑이를 이기겠는가.)
ㆍ由
○ ‘말미암다. 기인하다’ (원인. 기인)
○ ‘-를 거쳐, -를 통하여’ (경유)
○ ‘-에서’ (시작. 발원)
ㆍ所(=攸)
○ ‘-하는 바(것)’ (동사나 형용사를 명사로 전환시킴)
己所不欲, 勿施於人(내가 원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
不敢請, 固所願(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진실로 원하던 바이다.)
○ ‘-하는’ (동사를 관형사로 전환시킴)
王所好女, 非妃也.(왕이 좋아한여인은 왕비가 아니다.)
王脫其所履鞋也.(왕이 신고 있던 신을 벗었다)
○ ‘-하게 되다. -함을 당하다’ (피동)
ㆍ者
○ ‘-하는 사람(자), -하는 것’
來者不拒, 往者不追.(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쫓아가지 않는다)
魚, 大者至於數丈, 小者不過一寸.
○ ‘-하면, -하는 자(것)’ (가정)
積善者, 必受福.(선을 쌓으면 반드시 복을 받는다)
順天者存, 逆天者亡.(하늘을 따르는 자는 살아남고, 하늘을 거스르면 망한다)
○ ‘-하는 것’ (명사로 전환)
弱人制强獸者, 智也.(약한 사람이 강한 짐승을 제압하는 것은 지력 때문이다.)
夫不勞而欲得者, 猶
○ ‘-라는 것(사람)’
農者 天下之大本也.(농사라는 것은천하의 큰 근본이다.)
夫富貴者 人之所欲也.(부귀란사람이 원하는 것이다)
朝鮮有洪吉童者矣.(조선에 홍길동이란 사람이있었다)
○ ‘-에’ (시간 뒤에 붙여 쓴다)
昔者(옛날에)古者(옛날에)
今者之人(지금 사람)
ㆍ之
○ ‘가다’ (동사)
○ ‘그(그것. 그사람). 이’ (대명사)
○ ‘-이(가), -을(를)’ (조사)
○ ‘-의, -중에, -하는’ (소유격. 관형격)
○ ‘-에’ (어조사)
ㆍ也
也자는 단어나 구절, 문장 뒤에 쓰이는 대표적인 어조사이다. 也는 쓰임이 매우 넓어서, 평서문, 감탄문, 반어문, 의문문, 명령문 등에 두루 두루 쓰인다. 이것은 마치 우리말의 종결어미 ‘-어(아)’가 문맥에 따라 평서문, 의문, 감탄 등에 두루 쓰이는 것과 흡사하다.
○ ‘-이다, -하다, -한 것이다’ (평서형)
周公 文王之子也.(주공은 문왕의 아들이다)
虎與獅鬪, 則不知孰勝也.(호랑이가 사자와 싸우면 무엇이 이길지 알 수 없다)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나라에 도가 없는데, 부유하고 귀함은 부끄러운 것이다.)
○ ‘때문이다, 한 것이다’ (이유)
强者敗於弱者, 輕之也.(강자가 약자에게 패하는 것은 얕봤기 때문이다.)
○ ‘-한가, -하랴, -하구나’ (의문. 반어. 감탄)
日本富强於我國, 何也.(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부강한 것은 왜인가)
雖飢, 何以盜也.(아무리 배고프더라도 어찌 훔치겠는가)
○ ‘-함이, -함에, -하여, -한데, -하면, -하니’ (구말이나 문중에 쓰인다)
君子食也 無求飽.(군자는 먹음에배부름을 구하지 않는다)
朴氏爲人也 優柔不斷.(박씨의 사람됨이우유부단하다)
親愛子也, 厚于子思親也.(부모가 자식을 아낌은자식이 부모를 생각함보다 더하다)
○ ‘-는, -이, -란’ (단어 뒤에 쓰인다)
ㆍ矣
矣가 문장 끝에 쓰이는 경우에 也와 대개 그 쓰임이 비슷한 것 같다. 둘의 차이는 矣자는 也에 비해 단정적, 주관적, 의지적인 듯하다.
○ ‘-하다(-이다), -하구나’ (평서문(단언), 감탄)
朝聞道, 夕死可矣.(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
靑矣. 天乎.(푸르구나. 하늘이여)
好仁而害人者, 鮮矣.(인을 좋아하고 남을 해치는 자는 드물다.)
不恐其死, 可謂勇矣.(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용감하다 할만하다.)
○ ‘뿐이다, -따름이다’(=耳, 而已矣) (한정. 단정)
○ ‘-하겠다. -할 것이다’ (의지. 추측)
背信者, 佛不欲見之矣.(배신자는 부처도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甲謂乙曰 ‘貸錢, 吾必償之矣.’(갑이 을에게 ‘돈을 빌려주면, 내가 반드시 갚겠다.’라고 했다)
勤勞而節用, 則致富矣.(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하여 쓰면, 부를 이룰 것이다.)
○ ‘-하냐. -하랴’ (의문. 반어)
○ ‘-하니, -하지만(-하나), -한데’ (문장 중간에)
旱五月矣, 洑幾竭焉.(가뭄이 다섯 달 가니, 봇물이 거의 말랐다)
ㆍ乎
○ ‘-에, -에서’ (개사로 쓰일 때는 於자와 쓰임이 거의 비슷하다.)
○ ‘-하냐, -하랴’(의문. 반어)
甲問乙曰 汝嘗讀淮南子乎.(갑이 을에게 ‘너는 회남자를 읽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人無禮, 則與禽獸有異乎.(사람이 예가 없으면, 금수와 다름이 있으리오)
○ ‘-하구나, -하다’ (감탄)
美乎. 彼女.(예쁘구나. 저 여자.)
○ ‘-하게’ (형용사나 구절 뒤에)
惡乎
若是乎 賢者
○ ‘-이야’ (포함. 강조)
不知論語, 況周易乎.(논어를 모르는데, 하물며 주역이야)
○ ‘-하면’ (가정)
今有人睹金塊乎, 則卽拾之矣.
ㆍ哉
哉자 단독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다른 어조사와 어우러져 ‘乎哉, 也哉, 矣哉’ 등으로 쓰이기도 한다.
○ ‘-하구나, -하도다’ (감탄. 영탄 )
高哉. 無等山乎.(높구나. 무등산이여)
仁哉. 舜也.(어질구나. 순임금이여)
○ ‘-하리오. -하랴’ (반어)
牛安追馬哉.(소가 어찌 말을 (속도가) 따라가겠는가.)
豈忘恩哉.(어찌 은혜를 잊으리오).
○ ‘-한가, -하냐’ (의문)
ㆍ焉
○ ‘어찌’ (대개 반어에 쓰임)
○ ‘(=之, 於之) 그것(이것), 그에, 그보다’ (대명사)
年有二十四節氣, 端午不與焉.(해에 24절기가 있는데, 단오는 그것에 들어가지 않는다)
過而能改, 善莫大焉(허물이 있되 능히 고친다면 선이이보다큼이 없다)
○ (문미에 평서문. 의문. 반어 등으로 쓰임)
父與母, 奚好焉.
○ ‘-하니, -한데’ (구말이나 문중에)
光州之東南有山焉, 名曰無等山.(광주의 동남쪽에 산이 있으니, 무등산이라고 한다)
千里馬不致千里, 是無他焉,
○ ‘-하게, -하다’ ((=然)의태어에 접사로)
○ 시간(~에)
少焉, 月出於東山之上(조금 뒤에 달이 동산위에 뜨다)
ㆍ而
○ ‘-하고, -하면서, -하고서, -하여, -하자마자’ (순접. 연결)
夫鳥飛天而魚愼泳水.(새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친다.)
開門而入室.(문을 열고서방에 들어가다)
無生而可言者矣.(태어나자말할 수 있는 자는 없다)
○ '-하나, -하되, -한데, -하지만, -해도' (역접)
樹欲靜而風不止(나무는 고요하려고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人不知己而不?.(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성내지 않는다)
○ ‘-하면, -해야(-한 후에), -하여, -하니’ (가정)
飢而欲食, 寒而欲煖, 是人之常情.(배고프면먹고 싶고 추우면따뜻해지고 싶은 것은 이는 인지상정이다.)
똑같이 영어를 배우면, 중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고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한문과 영어는 어순(말의 순서)가 같다는 것이다.
영어 문장을 해석해보면 말의 순서가 우리와 다르다. 예를 들어 "I go to school"을 우리말로 해석하면 "나는 간다, 학교에"가 된다. 즉 주어("나는")가 맨 먼저 오는 것은 같으나, 목적어나 보어("학교에")가 영어에서는 뒤에 나온다.
한문의 어순은 영어와 똑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I go to school"은 "오등교(吾:나 오 登:오를 등 校:학교 교)"가 된다. 여기에서 "등(登)"자는 "간다"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간단한 영어를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은 한문의 문법은 별도로 배울 필요가 없다.
몇가지 예를 더 보자.
⊙ 아시소년(我:나 아 是:이 시 少:젋을 소 年:해 년) : I am a boy. 나는 소년이다. 是는 "~이다"라는 뜻도 있다.
⊙ 소년위왕(少:젋을 소 年:해 년 爲:할 위 王) : The boy become a king. 소년은 왕이 되었다. 爲는 "~이 되다"라는 뜻도 있다.
⊙ 형귀가(兄:형 영 歸:돌아올 귀 家:집 가) : The brother return to home. 형은 집으로 돌아왔다.
⊙ 오독책(吾:나 오 讀:읽을 독 書:글 서) : I read a book 나는 책을 읽는다.
⊙ 청출어람, 청어람(靑:푸를 청 出:날 출 於:어조사 어 藍:쪽 람 靑:푸를 청 於:어조사 어 藍:쪽 람) : The blue color is come from tinctoria, but is bluer than tinctoria. 푸른 색은 쪽풀에서 나왔으나, 쪽풀보다 더 푸르다. 참고로 쪽풀은 푸른색 물감을 만드는 풀의 일종이다.
■주어가 생략되는 것은 한글과 같다.
영어에는 반드시 주어가 들어간다. 영어에서 주어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에는 모두 명령문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한글에는 주어를 생략할 수 있다. 에를 들어 "너 어디 가니?"하고 물어 볼 때 "나는 학교에 간다"와 "학교에 간다"는 같은 의미이다. 하지만 영어에서 "Where are you going?"이라고 물을 때 대답이, "I go to school."과 "Go to school."은 완전히 다른 뜻이 된다. 앞 문장은 "(나는) 학교에 간다"라는 뜻이지만 뒷 문장은 "학교에 가라"라는 의미가 된다.
한문에서는 한글과 마찬가지로 주어를 생략할 수 있다. 또한 영어처럼 주어를 생략했다고해서 명령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예를 든 "오등교(吾登校)"에서 "등교(登校)"만 쓰더라도 "학교에 간다"라는 뜻이 된다.
일반적으로 맨 앞에 오는 글자가 주어가 되지만, 주어가 생략될 때에는 동사가 바로 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한다.
■한자에는 품사(品詞)가 없다.
한글 사전이나 영어 사전에는 모든 단어 마다 품사가 있다. 즉 명사, 동사 형용사 등을 구분해 놓았다. 하지만 한자 자전에는 이러한 품사가 없다. 왜냐하면 한자의 모든 글자는, 글자의 위치에 따라 모든 품사가 다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의 예를 다시 보자. 여기에서 앞에 나오는 청(靑)자는 "푸른색(The blue color)"이라는 명사가 되고, 뒤에 나오는 청(靑)자는 "더 푸르다(bluer)"라는 비교급 형용사가 된다. 어(於)자도 두번 나오는데, 앞에 나오는 어(於)자는 "~로 부터(from)"이 되고, 뒤에 나오는 어(於)자는 "~보다(than)"라는 접속사가 된다.
한문의 해석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사나 동사의 구분만 있어도, 동사 앞부분은 주어, 동사 뒷부분은 목적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한자는 어디까지가 주어이고, 어디부터가 목적이인지를 알 수 없다. 더우기 한자는 띄어쓰기가 없어서 더더욱 어렵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無無無無無"를 해석해보면 "무(無)란 없다(無)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무(無)란 없는 것(無) 조차도 없다(無)"가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無)의 해석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논어(論語)에 나오는 문장 중 "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 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라고 해석한다.
■한자를 잘 해석하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한문을 해석하려면 상상력을 최대로 발휘해야한다. 위의 문장에서 앞의 "君"은 주어니까 "임금은"이 된다. 하지만 뒤에 나오는 "君"은 "임금다워야 한다."로 해석하였다. 왜 하필이면 "임금다워야 한다'일까? "임금은 임금일 뿐이다", 혹은 "임금을 임금이라 한다" 라고 해석하면 안되나?" 여기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굳이 답이 있다면 앞뒤 문장으로 뜻을 추리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말에도 "나는 배를 샀다"라고 하면 "배"가 "먹는 배"인지, "타는 배"인지, 이 문장 하나만으로 알기 어렵다. 하지만 앞뒤 문장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먹는 배"인지, "타는 배"인지 둘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자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따라서 한자를 해석할 때에는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이유로, 예로부터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을 보면 문장의 해석을 통채로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해왔다. 하지만 한문 해석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포기할 필요는 없다.
■글자를 보고 문장의 종류를 먼저 파악하자
어떤 글자가 문장에 들어 있으면, 이 문장이 서술문인지, 의문문인지, 가정문인지 알 수 있다. 한문 해석하는 방법을 빨리 익히려면 이런 글자부터 외어야 한다. 또한 이런 글자들은 대부분 글자의 원래 의미보다는 새로운 의미가 가차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앞에서 배운 글자의 의미와 별도로 다시 배워야한다. 다음은 이런 글자들의 예이다.
▶ 서술문
⊙ 주어 바로 다음에 오는 서술어(be, become) : 시(是), 위(爲) - 색즉사공(色卽是空) : 색이(色) 곧(卽) 공(空)이다(是). 색(色)은 "세상의 만물"을 공(空)은 무(無)를 의미한다. ⊙ 문장 뒤의 어조사(am, are, is) : 어조사 야(也), 어찌 언(焉), 어조사 의(矣) 이런 글자가 문장 끝에 들어가 있으면 "~이다"라고 해석하면 된다.
▶ 의문문
⊙ 동사 앞의 의문사(what, where, when, which, how 등) : 어찌 하(何), 어찌 해(奚), 편안할 안(安), 어찌 언(焉) 이런 단어가 동사 앞에 오면 의문문이 된다. ⊙ 문장 뒤의 어조사(Am I~, Are you~, Is he 등) : 어조사 호(乎) 문장 맨 뒤에 이런 글자가 있으면 의문문이 된다. -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배우고(學) 그리고(而) 때때로(時) 그것을(之) 익히면(習), 또한(亦) 기쁘지(說) 아니(不)한가?(乎)
▶ 부정문
⊙ 부정(not) : 아닐 부(不), 아닐 비(非), 없을 무(無), 없을 막(莫), 없을 무(毋), 아닐 미(未) 동사 앞에 이런 글자가 들어가면 부정문이 된다. 영어의 "not"이 동사 앞에 가는 것과 같다.
▶ 명령문
⊙ 금지(Do not) : 말 물(勿) 문장 앞에 오면 "~을 하지마라"는 의미가 된다. - 물식빙(勿食氷) : 얼음을 먹지 마라
⊙ 부탁(please) : 원할 원(願) 문장 맨 앞에 원(願)자가 들어가면 부탁하는 말이 된다. - 원선생동행(願先生同行) : 원하건데(부디), 선생(先生)은 함께(同) 갑시다(行).
⊙ 강한 명령 : 어조사 의(矣) 동사 뒤에 와서 강한 명령을 나타낸다. - 왕의(往矣) : 가거라
▶ 가정문
⊙ 만약에(if) : 약(若)
▶ 감탄문
■한자에도 품사가 있다
한자에는 품사가 없다고는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인칭 대명사나 전치사, 접속사 등이 있다. 이런 글자를 익혀 두면 문맥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 인칭 대명사
⊙ 1 인칭 대명사(I, my, me, we 등) : 나 오(吾), 나 아(我), 나 여(余), 나 여(予), 나 짐(朕) 모두 나라는 의미를 가졌다. 따라서 이런 글자가 문장 앞에 오면 대부분 "나는~(I)"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또한 아(我)자는 "우리"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 오불문(吾不聞) : 나는 듣지 못했다 - 왕염여(王厭予) : 왕은 나를 싫어한다.
⊙ 2인칭 대명사(you, your 등) : 너 여(汝), 여자 여(女), 이(爾) 2인칭 대명사로 주격,소유격, 목적격 등으로 사용된다.
⊙ 3인칭 대명사(he, she, it, they 등) : 저 피(彼), 다를 타(他), 갈 지(之), 아무 모(某), 그 기(其) 3인칭 대명사로 주격,소유격, 목적격 등으로 사용된다.
ⅳ. 疑問形 의문사나 의문 종결사가 쓰이어 '∼인가 ?, ∼이냐 ?' 등의 의문의 뜻을 갖는 글의 형식.
(1) 의문사가 쓰인 경우 ① 의문 대명사 : 誰, 孰, 何, 安, 惡 - <누구, 어떤, 무엇 > ·誰能爲我, 折花而來 ·君子去仁, 惡乎成名 ② 의문 부사 : 何, 何以, 何如(如何), 奈何 - <어찌, 어떻게, 왜> ·何以附耳相語 ·當奈公何 (2) 의문 종결사가 쓰인 경우 : 乎, 哉, 與(=歟), 諸(저:之乎) - <∼는가 ?> ·子非三閭大夫與 ·以羊易之, 有諸
ⅴ. 反語形 어떤 문장을 강조하기 위해 꺼꾸로 물어 보는 글의 형식
(1) 반어 부사가 쓰인 경우 : 豈, 安, 寧, 焉, 胡, 奚 - <어찌> ·豈可是己而非人 ·子非魚, 安知魚之樂 (2) 반어 종결사가 쓰인 경우 : 乎, 哉, 耶 - <∼는가 ?> ·敢不從將軍之令乎 ·不仁者, 可與言哉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說 +-(설)말하다 +-(열)기쁘다 +-(세)유세하다, 달래다 * 반어형은 겉보기에 의문형의 모습을 하고 있어 의문형과 혼동하기 쉬우나, 반어형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 반어사와 종결사의 호응 ·豈能獨樂哉 ·王候將相, 寧有種乎 ·燕雀安知鴻鵠之志哉
ⅵ. 比較形 비교 또는 선택의 뜻을 나타내는 글의 형식
(1) 비교 전치사가 쓰인 경우 於 (=于, 乎) ① 우열 비교 : <∼보다 더> ·苛政猛於虎 ② 동등 비교 : <∼와 (∼과)> ·國之語音, 異乎中國 (2) 비교형 서술어가 쓰인 경우 ① 동급 : '若, 如, 猶, 由' <마치 ∼와(과) 같다> ·學問如逆水行舟 ② 비교급 : '不如, 不若' <∼만(같지) 못하다> ·遠親不如近隣 ③ 최상급 : '莫如, 莫若' <∼만한(∼만 같은) 것이 없다> ·知子莫若其父 (3) 선택적 관용구가 쓰인 경우 '與其A 寧B'의 기본형과 여러가지 변형이 쓰여 <A보다는 차라리 B가 낫다>로 해석.
(1) 한정 부사가 쓰인 경우 : '惟, 維, 唯, 但, 只, 徒'<오직> ·學者所患, 惟有立志不誠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2) 한정 종결사가 쓰인 경우 : '耳, 爾, 已, 而已, 而已矣' ·昭帝立時, 年五歲爾 ·隧事各得其當而已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3) 호응구가 쓰인 경우 ·惟淡泊, 是愧耳 ·直不百步耳, 是亦走也
* 기타 한정형 문장 ·便於日用耳 ·不獨染絲爲然 ·不獨中華也
ⅹⅱ. 抑揚形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가볍게 눌렀다가 다시 어조를 높임으로써 뜻을 강조하는 문장 형 식. : '況∼乎'<하물며 ∼하랴 ?>, '且∼安∼'<∼도 하는데 어찌 ∼하랴> ·布衣之交, 尙不相欺, 況大國乎 ·死馬且買之, 況生者乎 ·臣, 死且不避, 酒安足辭
ⅹⅲ. 累加形 글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점차 뜻을 보태가는 문장형식 : '非徒∼且', '不惟∼亦', '非獨∼且' <다만 ∼일 뿐만 아니라 또(한)∼>, '豈徒∼又', '豈獨∼亦'<어찌 ∼뿐이겠는 가 또(한)∼> ·非徒危己也, 又且危父矣 ·不惟有超世之才, 亦有堅忍之心 ·豈徒順之, 又從而爲之辭 *累加形의 형태 ① '부정사 (不,非) + 한정부사 (惟,獨,徒,只,但) + 접속사 (亦,又) ② '의문사(豈,奚) + 한정부사(惟,獨,只) + 접속사(又,亦)
※ '以'와 '而' : '以'가 접속사로 쓰이는 경우 '而'의 순접용법과 같이 쓰인다. 이 경우 '以'의 (앞과) 뒤에는 각 각 용언이 온다. ※ '以'의 특수 용법 ① '以A爲B' : A를 B라고 여기다(생각하다, 삼다) ·百姓皆以王爲愛也 ·以修身爲本 * '以爲B' : '以(A)爲B'의 변형 ·虎以(之)爲然 ② 명사 - 이유, 까닭 ·良有以也 ③ 부사어(이 + 명사류)의 강조 ·事君以忠 → '以忠事君'의 도치 '以忠' 강조
(1) 語氣詞 : 語頭, 語中 語氣詞에 쓰인다. ① 추측 : '아마, 혹, 대개' <語頭 語氣詞> ·子其怨我乎 <아마> ·不可一日而廢學, 其惟讀書乎 <아마도> ② 명령·권고 : '진실로, 절대로, 또한' <語中語氣詞> ·子其勉之 <진실로> ·與爾三矢, 爾其無忘乃父之志 <절대로> ※ 語氣詞 : 단어나 句文의 앞(발어사), 가운데나 뒤(종결사) 에 놓이어 語氣를 표시하는 글자.
< 복합자 '諸'와 '焉'의 용법>
Ⅰ. '諸(저)'의 용법 (1) 문장의 중간에 쓰일 경우 : ∼에 그것을 <'之於'의 축약>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不若投諸江而忘之 (2) 문장의 끝에 쓰일 경우 : ∼하였는 가 ? <'之乎'의 축약> ·一言而可以興邦, 有諸 ※ '諸'의 다른 용법 (접두사) ·諸君, 不察耳 ·一日不念善, 諸惡皆自起
Ⅱ. '焉'의 용법
(1) 문장의 처음에 쓰이는 경우 : 어찌 ∼하겠는가 <반어부사> ·割鷄, 焉用牛刀 ·未知生, 焉知死 (2) 문장의 끝에 쓰일 경우 ① 단정 종결사 : ∼이다 ·吾於足下有厚望焉 ② 비교 : 이보다 <'於是, 於此, 於之'의 축약> ·過而能改, 善莫大焉 ③ 시간 <접미사> : ∼에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④ 대명사 : 그것을, 여기에<'之, 於之'의 축약 > ·衆好之, 必察焉 <焉 = 之> ·三人行, 必有我師焉 <焉 = 於之>
ⅶ. 接續詞 (1) 보통 接續詞 ① 체언과 체언의 연결 : 與, 及 등 ·天命與天道 ·予及女, 偕亡 ② 용언과 용언의 연결 : 而, 且 등 ·謹而愼 ·仁且智 (2) 副詞的 接續詞 ① 順接 : 而, 以 등 ·敏於事而愼於言 ·殺身以成仁 ② 逆接 : 而, 然, 抑 등 ·視而不見 ·求之與, 抑與之與 ③ 因果關係 : 則, 故, 是以, 是故, 於是 등 ·虎以爲然, 故遂與之行 ·是以見放 ④ 假定 : 則 ·用之則行, 舍之則藏
오방색은 음양오행의 오행을 색으로 나타낸 것으로 목(木)은 청(靑), 금(金)은 백(白), 화(火)는 적(赤), 수(水)는 흑(黑), 토(土)는 황(黃)으로 대응된다. 음양오행 사상에 따르면 흰색,황색,적색은 양(陽)이고 청색,흑색은 음(陰)이며, 각각의 색이 지닌 의미와 상징에 따라오방신장, 오방처용무, 관복, 오방낭자, 오색실, 색동옷, 오곡, 단청,화문석등 우리의 의,식,주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오방색의 의미를 좀 더 살펴보면, 먼저 청색은 동쪽, 봄, 간장(肝腸), 신맛, 기쁨, 인(仁)을 상징하며, 백색은 서쪽, 가을, 폐장(肺臟)과 코, 매운맛, 분노, 의(義)를 상징한다. 적색은 남쪽, 여름, 심장(心臟), 쓴맛, 즐거움, 예(禮)를, 흑색은 북쪽, 겨울, 신장(腎臟), 짠맛, 슬픔, 지(智)를, 황색은 중앙, 비장(脾臟), 단맛, 욕심, 신(信) 등을 상징한다.
식생활과 음양오행
식생활의 중요한 도구인 밥상, 그릇, 수저 등으로 이루어진상차림에도 음양오행의 사상이 깃들여 있다. 차려진 음식이 놓이는 밥상은 대부분 둥근 형태로 양(陽)을 상징하며 상의 다리가 네개인 것은 사방(四方)과 땅인 음(陰)을 상징한다. 둥근 모양의 그릇은 양으로써, 그릇에 담긴 음식을 통해 하늘의 양기를 몸에 받아들이고자 했다. 또한 둥근 모양의 숟가락은 양이라고 할 수 있고 두개의 젓가락은 음으로써, 수저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음과 양의 조화를 의미한다. 또 오행적인 측면으로 볼 때에도 밥상은 나무(木)이며, 수저와 그릇은 금, 은, 놋쇠, 유기 등과 같은 쇠(金)와 흙(土)으로 만든 도자기이고, 간장, 국, 찌개, 동치미 등은 수기(水氣), 생선이나 육류등과 같이 불에 굽거나 찐 것으로 화기(火氣)가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음식과 식기로 이루어진 상차림 하나에도 음양오행의 사상이 깃들어 있어, 옛사람들의 음양오행 사상에 대한 섬세함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때는 갑작스럽게 깨어서 정상적인 생리적 요구를 만들기 위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1분 30초 법칙”을 숙지해 두십시오.
누군가가 건강상태가 좋았는데 밤에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사망했다고 하는 얘기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뇌가 조금더 쉬어야 할 시간이 필요한데 쉬지 못함으로 인해 뇌졸중이 일어 납니다.
그 경우들이 대부분 혈액순환과 관계된 <기립성 빈혈>에서 비롯된 뇌졸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긴 시간 앉았거나 누었거나 잠을 자다 일어나면 온 몸에 가라앉았던 혈액이 뇌에까지 전달될 시간이 필요한데 모든 조직들이 퇴화하고 있는 중장년들에게는 그 시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그럴 경우 30초씩 3번에 걸쳐 <1분 30초 법칙>을 습관 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꼭 잊지않도록 습관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잠에서 깨었거나, 누었다가 일어날 때는?
1. 눈을 뜨고도 약 30초 가량 그냥 누워 있는다.
2. 일어나면 침대 아래로 발을 내리거나 앉은 자세로 30초 가량 그대로 있는다.
3. 곧게 일어설 때도 위기를 염두에 두고 30초 정도 느린 동작으로 몸을 세운 뒤 움직인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면 나이에 관계없이 갑작스런 뇌졸중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회가 커집니다.
불행하게도 세월이 오래 흐른 뒤에 두 종류의說이 전해지는 경우가 있다면 어느 것을 따라야 하는가?
믿을 만한 한 가지 설을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을 만한 것을 알아서 따르겠는가?
말한 사람의德行과名望에 의거하여 그의說을 믿어야 한다.
衆人의 설이 저와 같고君子의 설이 이와 같다면 중인을 버리고 군자를 따른다.
군자는 널리 배워見聞이 많으나 군자가 전하는 설에도 잘못이 없을 수 없다.
君子의 설이 저와 같고聖人의 설이 이와 같다면 군자를 버리고 성인을 따른다.
이는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 《春秋》를 배우는 자들만은 이와 다르다.
孔子는聖人이니 만세토록 이 한 사람이 믿음을 받았을 뿐이다.
公羊高,穀梁赤,左丘明세 사람으로 말하자면 널리 배워 견문이 많았지만, 그들이 기록한傳에 잘못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공자가 기록한經과 세 사람이 기록한傳에 다른 점이 있으면, 배우는 자들은 차라리經을 버리고傳을 따르며, 공자를 믿지 않고 세 사람을 믿으니, 심하도다. 그 미혹됨이여!
經에魯隱公의 일에 대해 “公과邾儀父가蔑에서會盟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은공이 죽었을 때 “公이薨하였다.”라고 기록하여孔子는 시종 ‘公’이라 하였고,
세 사람은 “정식으로卽位한 것이 아니라攝行한 것이기 때문에 ‘公’이라 부를 수 없다.”라고 하였는데,
배우는 자들이 공자를 따라 ‘公’이라 하지 않고 세 사람을 따라 ‘攝行하였다.’라고 하였다.
또晉靈公의 일에 대해 공자는 “趙盾이 자기 임금夷皐를 시해하였다.”라고 기록하였고,
세 사람은 “임금을 시해한 자가趙盾이 아니라趙穿이다.”라고 하였는데,
배우는 자들이 공자를 따라 임금을 시해한 자가 ‘趙盾’이라고 믿지 않고 세 사람을 따라 ‘趙穿’이라고 믿었다.
또許悼公의 일에 대해 공자는 “許나라의世子止가 자기 임금買를 시해하였다.”라고 기록하였고, 세 사람은 “허나라의 세자 지가 자기 임금買를 시해한 것이 아니다.
買는 병들어 죽은 것이고止는藥을 맛보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하였는데, 배우는 자들이 공자를 따라 ‘임금을 시해하였다.’라고 믿지 않고 세 사람을 따라 ‘약을 맛보지 않았다.’라고 믿었으니,經을 버리고傳을 따른 것은 무엇 때문인가?
經은簡直하고傳은新奇하니,簡直한 것은 듣기 좋은 말이 없고新奇한 것은 기뻐할 만한 의논이 많다.
이러므로 배우는 자들이 듣기를 좋아하고 미혹되기 쉽다.
내가 감히 “미혹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孔子를 독실하게 믿는 자이니,經에 기록된 것은 내가 믿는 바이고經에 말하지 않은 것은 내가 모르는 바이다.
변론하는 자가 말하기를 “그대의 말은 마음에 감발하는 바가 있어서 그렇게 이르는 것일 뿐이다.
세 사람은 모두聖人에게 배웠고傳은經의 내용을 서술한 글이니,經은 글이 은미하고 뜻이 깊은데 세 사람이 이에 의거하여 의미를 밝혀낸 것이다.
그러므로經에 말하지 않은 것을傳에서 상세히 말한 것이니, 두 가지 설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경에 기록하지 않은 바를 세 사람이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변론하는 자가 대답하기를 “前後의 사실을 유추하여 알았고 전하는 말을 듣고서 알았다.
《春秋》에서는國君에 대해 반드시卽位사실을 기록하는데魯隱公에 대해서는 ‘卽位’라고 기록하지 않았으니, 이것이傳에서攝政임을 알았던 까닭이다.
또 임금을 시해한 자는 다시經에 드러내지 않는데趙盾의 경우 〈‘宣公6년 봄에晉나라趙盾과衛나라孫免이陳나라를 습격하였다.’라고〉 다시經에 드러났으니, 이것이傳에서 임금을 시해한 자가趙盾이 아님을 알았던 까닭이다.
또 임금이 시해를 당하였을 때賊을 토벌하지 않았으면 장사 지낸 사실을 기록하지 않는데許悼公의 경우 〈‘겨울에許悼公을 장사 지냈다.’라고〉 장사 지낸 사실을 기록하였으니, 이것이傳에서世子止가 실제로 시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던 까닭이다.
經의 기록이 은미한데傳에서 곡진하게 드러내었기에 배우는 자들이 세 사람의說이 성인의 깊은 뜻이라고 여겼다.
이러므로 세 사람의 설을 따랐을 뿐이지 공자를 버리고 세 사람을 믿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그렇다면 망령되이 성인의 뜻을 짐작하여, 배우는 자들을 미혹되게 하는 것이 세 사람의 허물일 뿐이다.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반드시 세 사람의 설을 믿게 하려 한다면 내가 어쩔 수 없지만, 그들이 진실만을 구하게 하려 한다면 나는 변론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역주역주1春秋論上: 〈春秋論〉 上‧中‧下 3篇은歐陽脩의 史論인데, 비록 3편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편의 글로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春秋》는 중국 제일의 編年體 斷代史로 孔子가 編修한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문장은 간결하고 문맥에는 褒貶의 의미가 들어 있다. 《春秋》를 해석한 책으로는 《左氏傳》, 《公羊傳》, 《穀梁傳》의 三傳이 있다.역주2傳: 經의 의미에 대한 해설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公羊高와 穀梁赤과 左丘明이 지은 《春秋公羊傳》, 《春秋穀梁傳》, 《春秋左氏傳》을 가리킨다.역주3經: 典範이 되는 글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孔子가 지은 《春秋》를 가리킨다.역주4公及邾儀父 盟于蔑: 《春秋》 隱公 원년 經文에 “3월에 魯나라 은공이 주나라 임금 儀父와 蔑에서 만나 평화조약을 맺었다.[三月 公及邾儀父盟于蔑]”라고 하였다.역주5公薨: 《春秋》 隱公 11년 經文에 “겨울 11월 壬辰에 공이 薨逝하였다.[冬十一月壬辰公薨]”라고 하였다. 薨은 諸侯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역주6趙盾(돈)弑其君夷皐: 이 일은 《春秋》 宣公 2년 9월 乙丑 조에 보인다. 趙盾은 趙衰의 아들인 趙宣子로, 춘추시대 晉나라의 정사를 맡아보았다. 임금의 미움을 받고 망명하는 도중에 趙穿이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돌아왔는데, 《춘추》에 ‘趙盾이 자기 임금 夷皐를 시해하였다.’라고 기록한 것은 조돈이 돌아와서 임금을 죽인 조천의 죄를 다스리지 않았으므로, 조돈이 임금을 죽인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이다.역주7許世子止弑其君買: 이 일은 《春秋》 昭公 19년 여름 5월 戊辰에 보인다. 당시 許 悼公이 병중에 약에 중독되어 죽었는데, 《춘추》에 ‘許나라의 世子 止가 자기 임금 買를 시해하였다.’라고 기록한 것은 세자인 止가 아버지가 먹을 약을 먼저 맛보지 않은 탓이라 하여 죄를 준 것이다.
名分을 바로잡아分數를 정하고,情況을 상고하여事實을 탐구하며,是非를 분변하고善惡을 밝히는 것이 《춘추》가 지어진 까닭이다.
周나라의 국력이 쇠퇴해진 뒤로 신하가 임금을弑害하고 자식이 아비를 시해하며 제후의 나라가 서로屠戮하여 다투어 군주가 되려고 한 것은 천하가 모두 그러하였다.
이러한 때에 한 사람이 있었으니, 염치를 좋아하고 양보할 줄 알아 서로君位를 쟁탈하던亂世에 우뚝 서서 군위를 물려주려는高節을 품었다면孔子가 이를 알았을 것이다.
공자가經에 어떻게 분변하여 명백히 하며, 어떻게 찬미하여 드러나게 하였겠는가.
隱公이攝位한 사실을 기록하지 않고서 여러 군주의 예를 그대로 따라 기록하고 속여서公이라고 하려 하였겠는가.
이른바攝政이라는 것은 신하가 군주의 일을 대신 행하는 데 대한 명칭이다.
伊尹,周公,共和와 같은 신하가 일찍이攝政하였지만商나라와周나라 사람들이王이라고 이르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가령息姑가 실제 섭정하였더라도 칭호가正君과 다름이 없었다면 명분이 바르지 않고 시비가 분변되지 않는다.
대저 섭정이라는 것은 마음은 군주가 되려고 하지 않지만 몸은 군주의 일을 대신 행하는 것이니, 비록 군주의 일을 행하더라도 실제는 군주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 《春秋》에 ‘公’이라고 기록하였으니, 이는息姑의 마음은 군주가 되려고 하지 않았고 실제 군주가 되지 않았는데,孔子가 〈‘公’이라는 명칭을〉 더하여 식고의本心을 해치고虛名으로 속여서 실제의善을 없앤 것이다.
식고의 정황을 상고하지 않으며 사실을 탐구하지 않아서善惡이 밝혀지지 않음이 이와 같다면 공자의 뜻은 엉성하고 《춘추》는 그릇된 것이다.
《春秋》는 말에 차이가 있어서 더욱謹嚴하고簡易하다.
이 때문에 의혹을 분변하고 미세함을 밝혀서 신중하여 믿음을 받았으니,是非와善惡이 밝혀지기 어려운 때에 성인이 마음을 다한 것이다.
息姑가 섭정할 때에會盟과征伐,賞刑과祭祀를 모두 자신이 주관하여 온魯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명을 들었으니,正君이 되지 못한 것이 얼마였는가.
즉위했다는 명분을 가지지 못하였을 뿐이니, 가령 명분과 실제가 모두 자신에게 있었다면 어떻게 그가 섭정하였다는 사실을 알았겠는가.
그러므로息姑가 섭정을 했는지 섭정을 하지 않았는지는公이라고 하였는지公이라고 하지 않았는지에 달려 있을 뿐이니, 의혹을 분변하고 미세함을 밝히는 것이 여기에 매여 있을 뿐이다.
또桓公에게 군위를 물려주려는 뜻을 미처 실행하기도 전에 살해되었으니, 살아서는 뜻을 펴지 못하였고 죽어서는虛名을 뒤집어쓰고本心과 어긋났으니,息姑의 한을 어찌 후세에 펼 수 있겠는가.
息姑의 매우 높은 절개와 밝히기 어려운善心을 또한 어찌 《춘추》에 바라겠는가.
지금 《春秋》에 대해 말하는 자들이 모두名字와氏族이 기록되었느냐 기록되지 않았느냐로輕重을 삼는다.
그러므로 “한 글자가褒貶이 된다.”라고 한다.
또 ‘公’이라는 글자가 어찌名字와氏族보다 중하지 않겠는가.
孔子가名字와氏族에 있어서 망령되이 남에게 더하지 않았으니, ‘公’이라는 글자를 망령되이 남에게 더하여 그 실상을 없애려 하였겠는가.
이로써 말하건대,隱公이 실제로 섭정하였다면 공자가 결코 공이라고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자가 공이라고 기록하였으니, 은공은 결코 섭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변론하는 자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찌하여卽位라고 기록하지 않았는가?”라고 하기에, 대답하기를 “惠公이 세상을 떠난 일이魯나라 역사에 보이지 않으니,隱公이 처음 즉위한 시기를 또한 알 수 없다.
孔子는 200년 뒤에 태어나서遺書를 얻어서 《春秋》를編修하였으니, 모르는 일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확실한 내용을 후세에 전하려는 의도였다.”라고 하였다.
변론하는 자들이 또 말하기를 “섭정하였다고 이른 자는左丘明이고,公羊高와穀梁赤은 모두 ‘대신 즉위하여桓公이 성장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므로公이라고假稱한 것이다.’ 하였다.”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魯나라의 정사가 은공 자신에게 비롯되었고 온 노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명을 들었으며, 살아서는 ‘公’이라고 일컬었고 죽어서는 ‘薨’이라고 기록되었는데, 어떻게 가칭임을 알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역주역주1春秋論中: 이 글은 隱公이 攝政한 문제를 중심으로 논술을 전개하였다. 작자가 《春秋》에 은공을 ‘公’이라고 일컬은 것에 포착하여, 여기에 의거하여 사실을 논하고 이치를 분석하여 三傳에 이른바 은공이 섭정했다는 설이 근거가 없음을 밝혔다.역주2有一人焉: 魯 隱公을 가리킨다.역주3懷讓國之高節: 隱公은 惠公의 繼室인 聲子의 소생으로, 仲子의 소생인 桓公을 임금으로 세워 부친의 뜻을 이루어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환공이 어렸기 때문에 그를 太子로 세우고 대신 攝政하였다.역주4共和: 周나라 사람으로 共 땅에 봉해졌기 때문에 共和라고 일컬어지며, 伯爵을 지냈기 때문에 共伯和라고도 일컬어진다. 仁義를 행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제후들이 이를 높이고 어질게 여겼다. 周 厲王이 彘로 달아나자 天子의 일을 攝行하였다. 《竹書紀年 下》역주5息姑: 춘추시대 魯 隱公의 이름이다. 惠公의 長庶子로 혜공이 죽자 태자 軌가 어렸기 때문에 추대되어 11년 동안 攝政하다가 공자 翬의 참소로 시해되었다.역주6傳信: 확실한 내용을 기록해서 후세에 전한다는 말이다. 《春秋左氏傳》 桓公 5년에 “봄 정월 甲戌 己丑에 陳侯 鮑가 죽었다.[春正月 甲戌 己丑 陳侯鮑卒]”라고 하였는데, 《春秋穀梁傳》에 “어찌하여 죽은 날짜를 두 개나 기록하였는가? 《춘추》의 원칙을 보면, 사건이 확실한 것은 확실하게 기록하고 의심되는 것은 의심되는 대로 기록해두기 때문이다.[卒何爲以二日卒之 春秋之義 信以傳信 疑以傳疑]”라고 하였다.
그 죄는 속량할 수 없고 죄를 저지른 사람은 용납할 수 없으며法에 있어서는 사면할 수 없다.
사람에게 법을 시행할 때에는 비록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삼가는데, 하물며大法을 들어大惡에 가하는 데 있어서이겠는가.
이미 번번이 법을 가해놓고 또 번번이 용서해준다면 스스로 그 법을 업신여기고 남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니, 《春秋》에서 법을 씀이 이처럼 경솔하지는 않다.
三子가 《春秋》를 해설하면서 ‘趙盾이逆賊을 토벌하지 않았기 때문에大惡을 가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이윽고趙盾이 실제로 시해한 것이 아니라고 여겨서는 다시經에 드러내어서趙盾의 무죄를 밝혔으니, 이는 번번이 법을 가해놓고 번번이 용서해준 것이다.
趙盾이 시해할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면 경솔하게大惡을 가할 수 있겠는가.
趙盾이 역적을 토벌하지 않은 것이實情을 책망할 만하여大惡을 가해야 하였다면, 그 뒤에趙盾은 끝까지 역적을 토벌하지도 않았고 이미 허물을 고쳐 스스로 속량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대뜸 용서해주어 죄 없는 사람과 같게 하였단 말인가.
어느 쪽이든 모두 옳지 않으니, 이는 《春秋》의 뜻이 아니다.
趙穿이 군주를 시해한 것은大惡인데도趙盾은 역적을 토벌하지도 못하고 군주를 위해 복수하지도 못하고서 아래에서刑政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였으니, 두 사람의輕重은 헤아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가령趙盾의 경우는 책망하는 정도로 할 수 있으나,趙穿의 경우 어찌 죄를 면할 수 있겠는가?
지금首罪를 면하여善人으로 만들고 무고한 자에게는大惡을 받게 하니, 이는 결단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春秋》의 법에惡을 행한 자는 요행으로라도 죄를 면할 수 없게 하고, 의심이 가는 자는 판별하여 명확하게 해주는 바가 있으니, 이른바是非의 공정함이라는 것이다.
三子의 설에 의거해보건대, 애초에靈公이趙盾을 죽이려고 하였는데趙盾은 도망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趙穿은趙盾의一族인지라 마침내靈公을 시해하였다.
그런데趙盾이 그를 토벌하지 않았으니, 그 행적은 시해에 참여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는 의심이 가서 밝히기 어려운 일이니聖人이 더욱 마땅히 정황을 상고하여 사실을 탐구해서 명백하게 밝혔을 것이다.
만일趙盾에게 정말 시해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자연히 죄가趙盾에게 있는 것이니 ‘법을 위하여惡名을 받았다.’고 하여 그 어짊을 칭찬하지 못했을 것이고,
만일 정말 시해하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당연히 그를 위하여 판별하여 밝히되 필히 우선적으로趙穿의 죄악을 바로잡아 죄가 귀착될 곳이 있게 한 연후에趙盾이 역적을 풀어준 것을 책망한다면,
趙穿의大惡은 요행으로 면할 수 없게 될 것이고趙盾의 의심 가는 행적은 분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趙盾이 역적을 토벌하지 않은 책임은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한다면是非와善惡이 명백해질 터인데, 이제惡을 행한 자는 면죄를 받고 의심이 가는 사람은大惡의 오명에 빠졌으니 이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趙盾이 역적을 토벌하지 않은 것은 군주가 시해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니 스스로 시해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趙穿을 논외로 두는 한이 있더라도趙盾을 죄준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는 바로 남이 나를 속일까 미리 걱정하여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대로 일을 처리하는 관리의 균형 잃은 치우친 처사일 뿐이지,孔子가忠恕의 태도를 견지하여 서술한 《春秋》에서王道로治人하던 법이 아니다.
孔子가 ‘舊史’의是非가 혼란스럽고善惡이 분명하지 않은 것을 근심하였다.
이 때문에 《春秋》를 편수한 것이니, 가령 ‘舊史’가 이와 같다면孔子가 수긍하여 바로잡지 않았다는 말인가.
수긍하여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또 사람들에게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도망가면 죄악을 피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란 말인가.
이는 와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혹자가 묻기를 “그렇다면夷皐(晉靈公)는 누가 시해한 것인가.”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孔子가 기록한 것이 옳으니,趙盾이 군주를 시해한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그 아비가 병들었는데 몸소藥을 올리면서 미리 맛보지 않은 경우가 하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아비가 병듦에 몸소 약을 올리지 못한 경우가 하나 있는데, 두 사람의 아비가 모두 죽었다고 하자.
또 어떤 사람은 칼을 쥐고 그 아비를 살해한 경우가 있다고 하자.
관리에게 죄를 다스리게 한다면 이 세 사람은 그 죄가 같겠는가?”라고 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비록 용렬한 관리라 하더라도 그 죄가 같지 않음을 알 것이다.
몸소 약을 올리면서 미리 맛볼 줄 모른 자는 어버이를 사랑하는孝心은 있으나禮를 익히지 못한 것이니, 이는 슬퍼할 만한 일이지 죄가 없는 사람이다.
몸소 약을 올리지 않은 자는 참으로不孝한 것이니, 비록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없었다고 하나 아비를 살해하려는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만일 옥사를 잘 다스리는 자라면 응당 칼을 쥐고 아비를 죽인 자와는 다르게 법률을 적용할 것인데, 몸소 약을 올린 효자를 도리어 칼을 쥐고 아비를 살해한 자와 같은 죄로 처리해서야 되겠는가.
이는 용렬한 관리도 하지 않을 짓이다.
그러한즉許나라世子止가 실제로 약을 맛보지 않았다면孔子가 결코 ‘임금을 시해하였다.’고 기록하지 않았을 터인데孔子가 ‘임금을 시해하였다.’고 기록하였으니,止는 결코 약을 맛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였다.
변론하는 자가 말하기를 “聖人이止의 경우를 빌려 가르침을 남겼을 뿐이다.”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다.
이른바 ‘止의 경우를 빌려 가르침을 남겼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약을 미리 맛볼 줄 알게 하고자 한 것밖에 안 된다.
성인이 한마디 말로 밝게 사람에게 고한즉萬世의 법이 되는데, 어찌 굳이 효자에게大惡의汚名을 더하였겠는가.
약을 맛본 일은 끝내 글에 보이지 않으니,
가령 후세 사람들이 단지止가 군주를 시해한 것만 알고 약을 미리 맛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가르침을 남기지도 못하고 애꿎은 사람만大惡에 빠뜨리는 것이니,
성인이 가르침을 남기는 것이 이처럼 오활하지 않을 것이고, 정말로止를 책망한다 하더라도 이처럼 각박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였다.
변론하는 자가 말하기를 “그렇다면趙盾을 어찌하여 다시經에 드러내었으며,許悼公이 죽었을 때 어찌하여 ‘葬’이라고 기록한 것인가?”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군주를 시해한 신하를經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三子의 설에서 나온 것일 뿐이니, 과연 성인의 법이겠는가.
悼公이 죽었을 때 ‘葬’이라고 기록한 것은逆賊을 토벌하지 않고 ‘葬’이라고 기록한 것인지 또 어찌 알겠는가.
止가 군주를 시해한 일로經에 드러난 때로부터 4년 뒤에吳나라가許나라 군사를 패퇴시켰고, 또 18년 뒤인定公4년에許男이 비로소經에 보이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이상이許가經에 기록된 것의 대략이다.
止의 사적은 알 수 없다.”라고 하였다.
논란하는 자가 말하기를 “三子의 설은 억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수받은 바가 이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전수받은 바를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말인가?”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전해 들은 것을 어찌 다 믿을 수 있겠는가.
公羊과穀梁은尹氏가 죽은 것을正卿이라 하였고,左氏는尹氏가 죽은 것을隱公의 어머니라 하였으니, 한쪽은 남자로 생각하였고 한쪽은 부인으로 생각하였다.
전수받은 바라는 것이 대개 이와 같으니, 어찌 다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역주역주1春秋論下: 이 글은 趙盾과 許나라 太子 止가 실제 군주를 시해한 자임을 闡明하고, 《春秋》 三傳이 다른 사람에게 惡名을 받도록 한 것과 ‘藥을 맛보지 않았다.[不嘗藥]’고 한 설을 반박한 것이다.역주2加之大惡: 三子의 이 부분에 대한 해설은 다음과 같다. 《左氏傳》 宣公 2년에 “太史가 ‘趙盾이 군주를 시해하였다.’라고 기록하여 조정에 보이자, 宣子(趙盾)가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太史가 대답하기를 ‘그대가 正卿이 되어, 도망하면서는 국경을 넘지 않았고 돌아와서는 역적을 토벌하지 않았으니, 임금을 시해한 것이 그대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穀梁傳》 宣公 2년에 “史官 董狐가 역적을 기록하기를 ‘趙盾이 군주를 시해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趙盾은 ‘하늘이여! 하늘이여! 나는 죄가 없도다. 누가 내가 임금을 죽인 자라 생각하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董狐는 ‘그대가 正卿이 되어, 조정에 들어와 간함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나가서 도망하면서는 멀리 가지 않았소. 또 군주가 시해되었는데도 돌아와서 역적을 토벌하지 않았으니, 이는 趙穿과 뜻을 함께한 것이오. 뜻을 함께하였다면 무거운 죄명을 쓰는 것이니, 그대가 아니면 누구겠소?’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公羊傳》 宣公 2년에 “직접 군주를 시해한 자는 趙穿인데 어찌하여 趙盾이 시해하였다고 하였는가? 역적을 토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역주3旣而以盾非實弑 則又復見於經: 趙盾이 실제로 군주를 시해한 자가 아니라고 여겨서 趙盾의 이름을 다시 《春秋》 속에 드러냈다는 뜻이다. 《公羊傳》의 설에 의거하면, 《春秋》에서 記事할 때에는 군주를 시해한 사람의 이후 행적은 다시 기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經에 드러났다는 것은 《春秋》 宣公 6년에 “봄에 晉나라 趙盾과 衛나라 孫免이 陳나라를 침공하였다.”라고 한 기사를 가리킨다.역주4靈公欲殺盾 盾走而免: 《春秋》 宣公 2년과 《公羊傳》 宣公 6년의 기록에 의거해보면, 晉 靈公이 無道하여 趙盾이 누차 간하였는데, 靈公은 자신의 잘못을 고치기는커녕, 도리어 鉏麑를 시켜 趙盾을 암살하려 하였다. 그러나 鉏麑는 趙盾이 어진 신하라고 생각하여 趙盾을 죽이지 않고 스스로 자살하였다. 그 뒤 靈公은 다시 趙盾을 연회에 초대하여 병사를 매복시켜 놓고 趙盾을 죽이려 하였는데, 趙盾을 侍衛하던 사람이 구원해주었다. 이에 趙盾은 도망하였다.역주5爲法受惡: 《春秋》 宣公 2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太史가 “趙盾이 군주를 시해하였다.”라고 기록하여 조정에 보이니, 趙宣子(趙盾)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太史가 “그대가 正卿이 되어 도망하면서는 국경을 넘지 않았고 돌아와서는 역적을 토벌하지 않았으니, 임금을 시해한 것이 그대가 아니면 누구인가?”라고 하자, 趙宣子는 “아아! 《詩經》에 ‘나의 생각함이여. 스스로 이러한 憂患을 끼쳤도다.’라고 하더니 나의 경우를 이르는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孔子는 “董狐는 옛날의 좋은 史官이니 법대로 기록하여 죄악을 숨기지 않았다. 趙宣子는 옛날의 좋은 대부이니 법을 위하여 惡名을 감수하였다. 애석하도다!”라고 하였다.역주6不習於禮: 古禮에 어른을 侍藥할 때에는 먼저 이상이 없는지 맛본 이후에 올렸다. 《禮記》 〈曲禮 下〉에 “군주에게 병이 있어 약을 드실 때에는 신하가 먼저 이상이 없는지 맛을 보며, 어버이에게 질병이 있어 약을 드실 때에는 아들이 먼저 이상이 없는지 맛을 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역주7自止以弑見經……吳敗許師: 《春秋》 昭公 23년에 “戊辰에 吳가 鷄父에서 頓, 胡, 沈, 蔡, 陳, 許의 군사를 패퇴시켰다. 胡子 髡과 沈子 逞은 죽었고, 陳의 夏齧을 붙잡았다.”라고 하였다.역주8又十有八年……許男始見于經而不名: 《春秋》 定公 4년에 “3월에 공이 劉子, 晉侯, 宋公, 蔡侯, 衛侯, 陳子, 鄭伯, 許男, 曹伯, 莒子, 邾子, 頓子, 胡子, 滕子, 薛伯, 杞伯, 小邾子, 齊의 國夏와 召陵에서 회합하고 楚를 침략하였다.”라고 하였다.역주9公羊穀梁……一以爲婦人: 《公羊傳》과 《穀梁傳》에서는 尹氏를 周王의 大夫로 보았는데, 《左氏傳》은 魯 惠公의 부인이며 魯 隱公의 모친인 聲子로 보았다. 《春秋》 隱公 3년의 “여름 4월 辛卯에 尹氏가 졸하였다.”라는 기록에 대해 三傳은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公羊傳》에는 “尹氏는 누구인가? 天子의 大夫이다. 어찌하여 尹氏라고 하였는가? 貶下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穀梁傳》에는 “尹氏는 누구인가? 天子의 大夫이다.”라고 하였다. 《左氏傳》에는 “여름에 君氏가 졸하였으니 바로 聲子이다. 군주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君氏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김해 은하사 뒤에 김해의 명산 신어산 김해의 정기는 신어산에서 시작한다 시원한 조망과 시야가 몸과 마음을 쉬게한다 은하사에서 출발 신어산 정상 동림사로 원점회기 산행 초급정도의 산행길
은하사
범종루
대웅전
신어산 등산로ㅡ 은하사ㅡ 천진암 ㅡ출렁다리ㅡ 정상 ㅡ동림사
*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이 창건한 사찰, 동림사 *
신령스러운 물고기란 뜻을 가진 수려한 경관과 토속적인 느낌이 짙은 신어산(神魚山)에는 가락국(43-532) 초기에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이 창건한 동림사가 있다. 동림사는 가락국의 안전과 번영을 염원하는 뜻에서 창건되어졌다 전하는데,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된 것을 화엄선사와 월주스님이 복원하였다.
진북 금산 편백나무 숲은 30여년전에 현재 개인 소유주인 이민규(48세)씨의 선친인 술용씨(93년 작고)가 이곳에 묘목을 심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30만평이 넘는 규모에 직경 20∼30㎝ 편백나무 수십만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임도 약 6㎞가 이곳을 아는 몇몇 사람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개인 소유라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가 개방한지 십년은 될것 같다
입구에 주차장이 있고 오른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묘법사 절이 나온다
절이 아담하고 전망도 좋고 깨끗하고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바람을 타고 오는 수목의 향긋한 냄새가 짙다 . 길 양편으로 편백 숲이 울창한 우주를 이루고 있다.
경사로를 따라 탐방로가 잘 조성이 되어 . 숲의 푸름과 편백이 내뿜는 특유의 방향성물질이 온몸을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