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은 1902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하여 오산중학교 및 배재고보를 졸업하였고 동경상대에서 수학하였다. 김 억의 영향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20년 『창조』에 「浪人의 봄」「夜의 雨滴」「그리워」등을 발표하고 등단하였다. 주옥같은서정시를 남긴 근대문학 최대의민요시인이다.
주요한은 1900년 평양에서 출생하여 일본 동경 제1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중국 상해 호강대학을 졸업하였다.1919년 『창조』에「불놀이」를 발표하였으며시집 『아름다운 새벽』(1924), 시조집『봉사꽃』(1930)등을 간행하였다.김동인·김 억·최승만 등과『창조』편집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이상화는 1902년 충북 옥천에서 출생하여 경성 중앙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1년「백조」동인으로 참가하여 「單調」「가을의 風景」등을『백조』에,「나의 寢室로」「二重의 死亡」등을 각각 발표하였다. 일제하 대표적 저항시인의 한사람으로 3·1운동 당시, 대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한용운은 1879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여 향리에서 한학을 수학한 후 불가에 입문하였다. 시집 『님의 침묵』(1926)을 간행하였으며 『唯心』(1918)을 창간 발생하였고 월간 『불교』(1931)사장을 역임하였다. 3·1운동 당시, 33인을 대표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피검되었으며 조선의 불교계 및 독립운동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박팔양은 1905년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하여 배재고보와 경성 법전을 졸업하였다. 1923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신의 酒」가당선되어 등단했으며시집 『麗水詩抄』(1940)를 간행하였다. 정지용·박제찬 등과 동인지『요람』을 발간하였고구인회 및 카프·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활동하였다.
박세영은 1902년 경기도 고양에서 출생하여 서울 배재고보를 졸업하였고 연희전문에서 수학하였다. 1927년 『문예시대』에 「농부 아들의 탄식」「산협에서」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시집 『산제비』(1938), 해방기념공동시집 『횃불』(1946)을 간행하였다. 「염군사」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김동환은 1901년 함북 경성에서 출생하여 중동학교를 졸업하였고 일본 동경 東洋大學 영문과에서 수학하였다. 1924년 『금성』에 「赤星을 손가락질하며」를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국경의 밤』(1925)등의 시집과, 이광수·주요한과 『三人詩歌集』(1929)을 간행하였다.
이병기는 1891년 전북 익산에서 출생하여 주시경의 조선어 강습원에서 수학하고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하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가람시조집』(1939)『역대시조선』(1940)『국문학전사』(1957)『국문학개설』(1961)『가람文選』(1966) 등을 간행하였다.
정지용은 1903년 충북 옥천에서 출생하여 휘문고보 및 일본 同志社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첫시집 『정지용시집』(1935) 이후 『白鹿潭』(1941)『지용시선』(1946) 등과 『文學讀本』(1948)『散文』(1949) 등을 간행하였다. 김화산·박팔양·박제경 등과 동인지 『요람』간행, 박용철·김영랑 등과 「시문학」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임화는 1908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보성중학에서 수학하였다. 1927년 『조선지광』에 「화가의 詩」를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현해탄』(1938) 이후 『찬가』(1947) 등의 시집과 평론집 『문학의 논리』(1940)를 간행하였다. 카프·조선문학건설본부·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였으며, 1947년 월북하여 1953년 처형되었다.
김영랑은 1903년 전남 강진에서 출생하여 휘문의숙과 일본 동경 靑山學院 영문과에서 수학하였다. 1930년 『시문학』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영랑시집』(1935) 이후 『영랑시선』(1949) 『현대시집』(1950) 등을 간행하였다. 정지용·박용철과 「시문학」동인으로 활동하였다.
박용철은 1904년 전남 광산에서 출생하여 광주공립고보 및 일본 동경 靑山學院, 東京外國語學校 독문과와 연희전문에서 수학하였다. 1930년에는 김영랑·정지용 등과 함께 동인지 『시문학』을 창간, 그 첫호에 「떠나가는 배」「싸늘한 이마」「비 내리는 밤」등을 발표하였다.
신석정은 1907년 전북 부안에서 출생하여 보통학교 졸업 후, 향리에서 한문 수학,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불전을 연구하였다. 1931년 『시문학』에 「선물」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촛불』(1939) 이후 『슬픈 牧歌』(1947) 『氷河』(1956)『山의 序曲』(1967) 『대바람 소리』(1970)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김기림은 1908년 함북 학성에서 출생하여 보성고보에서 수학, 日本大學을 졸업하였다. 1930년 『조선일보』에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를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氣象圖』(1936) 이후 『태양의 풍속』(1939)『바다와 나비』(1946)『새노래』(1949)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김광섭은 1905년 함북 경성에서 출생하여 중동학교 및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첫시집 『憧憬』(1938)이후 『마음』(1949)『해바라기』(1957)『反應』(1971) 등의 시집과 『김광섭시전집』(1974), 시선집 『겨울날』(1975), 자전문집 『나의 獄中記』(1976) 등을 간행하였다.
유치환은 1908년 경남 충무에서 출생하여 동래고보를 졸업하였고 연희전문에서 수학하였다. 1931년 『문예월간』에 「靜寂」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청마시초』(1939) 이후 『生命의 書』(1947) 『울릉도』(1948)『보병과 더불어』(1951)『예루살렘의 닭』(1953)『미류나무와 남풍』(1964)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김달진은 1907년 경남 창원에서 출생하여 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29년 『문예공론』에「雜詠數曲」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靑柿』(1940) 이후 시전집 『올빼미의 노래』(1983) 장편서사시 『큰 연꽃 한 송이 피기까지』(1984) 등과 다수의 漢詩·禪詩를번역하여 간행하였다.
이육사는 1904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여 예안 보문의숙을 거쳐 중국에서 군관학교 및 북경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33년 『신조선』에 「黃昏」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靑葡萄」(1939)「絶頂」(1940)「子夜曲」(1941)을 『문장』에 발표하였다. 신석초·윤곤강 등과 「자오선」「시학」동인으로 활동했다.
이상은 1910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보성고보 및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였다. 1934년 「구인회」에 가입하여 이태준·박태원·안회남 등과 동인지 「시와 소설」(1936)을 간행하였으며 不逞鮮人으로 日警에 체포, 감금되었다가 신병악화로 석방되었다. 1937년 작고 후 『이상전집』(1956)이 간행되었다.
백석은 1912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하여 오산고보를 졸업하였고 일본 동경 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수학하였다. 1935년 『조선일보』에 「定州城」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시집『사슴』(1936)을 간행하였다. 해방 후 남북분단으로 북한에서 문필활동중이라 추정된다. 『백석시전집』(1987)이 간행되었다.
노천명은 1912년 황해도 장연에서 출생하여 진명여자고등학교 및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34년 『신동아』에「밤의 찬미」를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시집 『산호림』(1938) 『창변』(1945)『별을 쳐다보며』(1953) 등과수필집 『산딸기』(1948)『나의생활백서』(1954)등을간행하였다.
김광균은 1914년 경기도 개성에서 출생하여 송도상고를 졸업하였다. 1926년 「중외일보」에 「가는 누님」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瓦斯燈』(1939) 이후『기항지』(1947) 『황혼가』(1957)『임진화』(1989)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시인부락」「자오선」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서정주는 1915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하여 중앙고보와 중앙불교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花蛇集』(1941) 이후 『歸蜀途』(1948)『新羅抄』(1961)『冬天』(1969)『鶴이 울고 간 날들의 詩』(1982)『산시』(1991)등 다수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오장환은 1918년 충북 보은에서 출생하여 휘문고보에서 수학하였다. 1933년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성벽』(1937) 이후 『헌사』(1939) 『병든 서울』(1946)『나 사는 곳』(1947)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낭만」「시인부락」「자오선」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신석초는 1909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하여 일본 法政大學에서 수학하였다. 첫시집 『石艸詩集』(1946) 이후『바라춤』(1959) 『暴風의 노래』(1970)『處容은 말한다』(1974) 『水踰洞韻』(1974)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서정주·김광균·윤곤강·이육사 등과 「자오선」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이용악은 1914년 함북 경성에서 출생하여 일본 동경 上智大學에서 수학하였다.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분수령』(1937) 이후 『낡은 집』(1938)『오랑캐꽃』(1947)『이용악집』(1949) 등을 간행하였다. 1950년 월북 후『이용악시전집』(1988)이 간행되었다.
김현승은 1913년 광주에서 출생하여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34년 『동아일보』에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김현승詩抄』(1957) 이후 『옹호자의 노래』(1963)『견고한 고독』(1968)『절대고독』(1970)『김현승시전집』(1974)등의시집을간행
김용호는 1912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하여 일본 明治大學 법과 및 신문고등연구과를 졸업하였다. 첫시집 『향연』(1941) 이후 『해마다 피는 꽃』(1941)『푸른 별』(1952)『날개』(1956)『의상세례』(1962)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맥」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자유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박남수는 1918년 평양에서 출생하여 평양 숭인상업학교와 일본 中央大學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39년 『문장』에 「深夜」「마을」「酒幕」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초롱불』(1940) 이후 『갈매기 素描』(1958)『神의 쓰레기』(1964)『새의 暗葬』(1970)『사슴의 冠』(1981)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박목월은 1916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하여 계성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39년『문장』에 「가을 어스름」『年輪』등이 추천완료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山桃花』이후 『蘭 其他』(1959)『청담』(1964)『경상도의 가랑잎』(1968)『無順』(1976) 등의 시집과 동시집 『산새알 물새알』(1962), 『박목월자선집』(1973)을 간행하였다.
박두진은 1916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여 1940년 『문장』에 「香峴」「墓地頌」등을 발표하고 등단하였다. 첫시집 『해』(1949) 이후 『午禱』(1954)『거미와 星座』(1961)『泡擁無限』(1981)『氷壁을 깬다』(1990) 등의 시집과 시선집 『예레미야의 노래』(1981), 시론집『현대시의 이해와 체험』(1973)을 간행하였다.
조지훈은 1920년 경북 영양에서 출생하여 혜화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1939년 『문장』에 「古風衣裳」「僧舞」「鳳凰愁」등이 정지용에 의해 추천완료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풀잎斷章』(1952) 이후 『조지훈시선』(1956) 『歷史 앞에서』(1959)『여운』(1964)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출생하여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였고 일본 교토 同志社大學에서 수학하였다. 1939년 산문 「달을 쏘다」를 『조선일보』에, 동요 「산울림」을 『소년』에 발표하였으며 1914년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간행하려 했으나이루지못하였다.
설정식은 1912년 함단 단천에서 출생하여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첫시집 『鐘』(1947) 이후 『葡萄』(1948)『諸神의 憤怒』(1948)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였고 영자신문 『서울타임즈』를 편집하였으며 1950년 전쟁중 월북, 숙청당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박인환은 1926년 강원도 인제에서 출생하여 해방과 함께 평양의전을 중퇴하였다.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를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후반기」동인으로 김경린·김수영·양병식·임호권과 동인지 「신시론」(1948), 합동시집 『새로운 都市와 市民들의 合唱』(1949)과,『박인환 시선집』(1955)을 간행하였다.
구상은 1919년 함남 원산에서 출생하여 일본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46년 시집 『凝香』에 실은 작품으로 필화를 입고 월남하였으며 첫시집 『具常』(1951) 이후 『焦土의 詩』(1956)『말씀의 實相』(1980)『까마귀』(1981)『개똥밭』(1987)『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1988)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김춘수는 1922년 경남 충무에서 출생하여 경기중학교 및 일본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첫시집 『구름과 薔薇』(1948)이후 『늪』(1950)『旗』(1951)『隣人』(1953)『비에 젖은 달』(1980) 등의 시집과 시선집『처용』(1974)『꽃의 소묘』(1977)『처용 이후』(1982),『한국현대시형태론』(1958), 『김춘수전집』(1986)등을 간행하였다.
정한모는 1923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첫시집 『카오스의 사족』(1958) 이후『여백을 위한 서정』(1959)『아가의 방』(1970)『새벽』(1975)『아가의 방 別詞』(1983)『原點에 서서』(1989)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서울시문화상·예술원상·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홍윤숙은 1925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를 수학하였다. 1947년 『문예신보』에 「가을」,『신천지』에 「낙엽의 노래」, 『예술평론』에「가마귀」등을 발표하고등단했으며 첫시집 『여사시집』(1962) 이후 『풍차』(1964)『타관의햇살』(1974)『사는법』(1983)등을간행하였다.
김종길은 1926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여 고려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47년 『경향신문』에 「門」이 입선되어 등단했으며 『성탄제』(1969)『황사현상』(1986) 등의 시집과 탐구시선 『시론』, 시론집 『진실과 언어』(1973)『시에 대하여』(1986), 산문집 『산문』(1986) 등을 간행하였다.
김규동은 1925년 함북 경성에서 출생하여 연변의대에서 수학하였다. 1948년 『예술조선』을 통하여 등단했으며 첫시집 『나비와 광장』(1955) 이후 『현대의 신화』(1958)『나비와 광장』(1955) 이후 『현대의 신화』(1958)『죽음 속의 영웅』(1977)『오늘밤 기러기 떼는』(1989)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김남조는 1927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첫시집 『목숨』(1953) 이후『나무와 바람』(1958)『정념의 旗』(1960)『겨울바다』(1967)『사랑 草書』(1974)『同行』(1980)『빛과 고요』(1983)『바람 세례』(1988) 등의 시집과, 다수의 수상집 등을 간행하였다.
김광림은 1929년 함남 원산에서 출생하여 평양종합대 외국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곧 월남하여 뒤늦게 국학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1948년 『연합신문』에 「문풍지」「벽」「석등」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상심하는 접목』(1959) 이후 『오전의 투망』(1965)『학의 추락』(1971) 등을 간행하였다.
한하운은 1919년 함남 함주에서 출생하여 이리농림학교와 북경대 농업원 축산학과를 졸업하였다. 1949년 『신천지』에 「한하운 시초」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한하운 시초』 (1949) 이후 『보리피리』와 자작시 해설 『황톳길』(1960)을 간행하는 한편,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를 월간 『희망』에 연재하였다.
조병화는 1921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여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첫시집『버리고 싶은 유산』(1949) 이후 『사랑이 가기 전에』(1955)『石阿花』(1958)『假宿의 램프』(1968)『남남』(1975)『어두운 밤에도 별은 떠서』(1985)『외로운 혼자들』(1987) 등을 간행하였다.
이형기는 1933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여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50년 『문예』지에 시가 추천완료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문예』지에 시가 추천완료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적막강산』(1963) 이후『돌베개의시』(1971)『풍선 심장』(1981)『보물섬의지도』(1985)등을간행하였다.
천상병은 1930년 일본 嬉路市에서 출생하여 해방후 귀국하였다. 1952년 『文藝』지에 「갈매기」등이 추천완료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새』(1971) 이후 『酒幕에서』(1979)『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 『歸天』(1989) 등을 간행하였다.
김종삼은 1921년 황해도 은율에서 출생하여 일본 동경문화학원 문학과에서 수학하였다. 1953년 『신세계』에 「園丁」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십이음계』(1969) 이후『시인학교』(1977)『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 등의 시집과 시선집 『북치는 소년』(1979)『평화롭게』(1984) 등을 간행하였다.
문덕수는 1928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여 홍익대 및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55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했으며 첫시집『황홀』(1956) 이후 『선·공간』(1966)『영원한 꽃밭』(1976)『살아남은 우리들만이 6월을 맞아』(1980) 등을간행하였다.
박희진은 1931년 경기도 연천에서 출생하여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55년 『문학예술』에 이한직·조지훈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첫시집『실내악』(1960) 이후『빛과 어둠의 사이』(1976)『가슴속의 시냇물』(1982)『아이오와에서 꿈에』(1985) 등을 간행하였다. 월탄문학상·현대시학작품상·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하였다.
박재삼은 1933년 일본 동경에서 출생하여 고려대 국문과에서 수학하였다. 1955년 『현대문학』에 서정주의 추천으로 「정적」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춘향이 마음』(1962) 이후 『천년의 바람』(1975)『어린것들 옆에서』(1976)『비 듣는 가을나무』(1981)『찬란한 미지수』(1986) 등을 간행하였다.
황금찬은 1918년 강원도 속초에서 출생하였다. 1956년 『현대문학』에 「여운」등이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현장』(1965) 이후『오월의 나무』(1969)『오후의 한강』(1973)『구름과 바위』(1977)『고독과 허무와 사랑과』(1986)『산다는 것은』(1987)『보석의 노래』(1990) 등 다수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박용래는 1925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강경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56년『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黃土길」「땅」이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싸락눈』(1969) 이후『강아지풀』(1975)『백발의 꽃대궁』(1979) 등의 시집과 시전집『먼 바다』(1984) 등이 간행되었다.
성찬경은 1930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문리대 및 동 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56년 『문학예술』에 조지훈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첫시집『火刑遁走曲』(1966) 이후『벌레소리頌』(1970)『時間吟』(1982)『반투명』(1984)『황홀한 초록빛』(1989) 등을 간행하였다.
박봉우는 1934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하여 전남대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6년 『조선일보』신춘문예에 「휴전선」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휴전선』(1957) 이후 『겨울에도 피는 꽃나무』(1959)『4월의 화요일』(1962)『荒地의 풀잎』(1976)『딸의 손을 잡고』(1987)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신경림은 1935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하여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56년 『문학예술』에「갈대」「墓碑」등이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農舞』(1973) 이후『새재』(1979)『달 넘세』(1985)『가난한 사랑노래』(1988) 등의 시집과 장시집 『南漢江』(1987), 기행시집 『길』(1990) 등을 간행하였다.
고 은은 1933년 전북 군산에서 출생하여 1952년 입산, 승려생활을 하다가 1962년 환속하였다. 1958년『현대문학』에 「폐결핵」등이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彼岸感性』(1960) 이후『해변의 운문집』(1964)『文義마을에 가서』(1974)『人山』(1977)『새벽길』(1978) 등을 간행하였다.
신동엽은 1930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하여 전주사범 및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59년『조선일보』에「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입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아사녀』(1963)간행 이후, 시극「그 입술에 파인 그늘」,장편서사시 「금강」, 오페레타「석가탑」등을 발표하였다.
김영태는 1936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1959년 『사상계』에 「試練의 사과나무」「雪景」「꽃씨를 받아둔다」가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1965) 이후『草芥手帖』(1975) 『客草』(1978)『여울목 비오리』(1981) 등을 간행하였다.
정진규는 1939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여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60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마른수수깡의 平和』(1965)이후『有限의 빗장』(1971)『들판의 비인 집이로다』(1977)『비어 있음의 충만을 위하여』(1983)『연필로 쓰기』(1985) 등을 간행하였다.
허영자는 1938년 경남 함양에서 출생하여 숙명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2년『현대문학』에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첫시집『가슴엔 듯 눈엔 듯』(1966) 이후『親展』(1971)『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1977)『빈 들판을 걸어가면』(1984) 등을 간행하였다.
이성부는 1942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하여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62년『현대문학』에「列車」「이빨」로 추천완료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李盛夫詩集』(1969)이후『우리들의 양식』(1974)『百濟行』(1977)『前夜』(1981)『빈 山 뒤에 두고』(1989)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김종해는 1941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1963년『자유문학』신인상에 당선되고『경향신문』신춘문예에 시「內亂」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인간의樂器』(1966)이후『神의 열쇠』(1971)『왜 아니오시나요』(1979)『賤奴, 일어서다』(1982)『항해일지』(1985)『바람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1990)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조태일은 1941년 전남 곡성에서 출생하여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4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아침 선박」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아침 선박』(1965) 이후『식칼론』(1970)『국토』(1975)『가거도』(1983)『자유가 시인더러』(1987)『산속에서 꽃속에서』(1991) 등을 간행하였다.
김초혜는 1943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하여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64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떠돌이별』(1984) 이후『사랑굿1』(1985)『사랑굿2』(1986)『섬』(1987)『어머니』(1988) 등의 시집과 시해설집『떠돌이 별의 노래』(1989) 등을 간행하였다.
정현종은 1939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65년『현대문학』에「和音」「獨舞」등이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사물의 꿈』(1972) 이후『나는 별아저씨』(1978)『떨어져도 튀는 공처럼』(1984)『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1989) 등을 간행하였다
유안진은 1941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 및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5년 『현대문학』에「달」「별」「위로」가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달하』(1970) 이후『絶望詩篇』(1972)『물로 바람으로!』(1975) 등을 간행하였다.
박제천은 1945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동국대 국문과에서 수학하였다. 1966년 『현대문학』에「벽시계에서」등이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莊子詩』(1975) 이후『心法』(1979)『律』(1988)『달은 즈믄 가람에』(1984)『老子詩篇』(1988)『너의 이름 나의 시』(1989) 등을 간행하였다.
오규원은 1941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하여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65년『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분명한 사건』(1971) 이후『巡禮』(1973)『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이 땅에 씌어지는 抒情詩』(1981)『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1987)『사랑의 감옥』(1991) 등을 간행하였다.
오세영은 1942년 전남 영광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8년『현대문학』에『잠깨는 추상』등이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반란하는 빛』(1970)이후『가장 어두운날 저녁에』(1982)『無明戀詩』(1986)『불타는 물』(1988)『사랑의 저쪽』(1990)등을간행하였다.
이건청은 1942년 경기도 이천에서 출생하여 한양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7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이건청시집』(1970) 이후 『목마른 자는 잠들고』(1975)『망초꽃 하나』(1983)『하이에나』(1989)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강은교는 1946년 함남 홍원군에서 출생하여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68년『사상계』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虛無集』(1971) 이후『貧者日記』(1977)『소리集』(1982)『바람노래』(1987)『오늘도 너를 기다린다』1989)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김지하는 1941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하였다. 1969년「황톳길」 등 5편의 시를 『詩人』에 발표하여 작품활동 시작하였으며 1975년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로부터 로터스상을 수상하였다. 1991년『김지하전집』(동광)이 간행되었다.
문정희는 1947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하여 동국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9년『월간문학』신인상에 「不眠」과 「하늘」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꽃숨』(1965) 이후『문정희 시집』(1973)『혼자 무너지는 종소리』(1984)『아우내의 새』(1986) 등을 간행하였다. 현대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김준태는 1948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여 조선대 사대 독어과를 졸업하였다. 1969년『시인』지에「머슴」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참깨를 털면서』(1977) 이후『나는 하느님을 보았다』(1981)『국밥과 희망』(1984)『불이냐 꽃이냐』(1986) 등을 간행하였다.
이성선은 1941년 강원도 고성에서 출생하여 고려대 농대 및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1970년『문화비평』에「시인의 병풍」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1972년 『시문학』에 재추천되었다. 첫시집 『詩人의 병풍』(1974) 이후 『하늘문을 두드리며』(1977) 등을 간행하였다.
양성우는 1943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하여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70년『시인』지에『發想法』『증언』등을 밢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發想法』(1972) 이후『신하여 신하여』(1974)『겨울공화국』(1977)『북치는 앉은뱅이』(1980)『靑山이소리쳐 부르거든』(1981) 등의시집을간행하였다.
조정권은 1949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중앙대 영어교육과에서 수학하였다. 1970년 『현대시학』에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첫시집 『비를 바라보는 일곱가지 마음의 形態』(1977) 이후『시편』(1982)『虛心頌』(1985)『하늘이불』(1987)『산정묘지』(1991)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나태주는 194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하여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1971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대숲 아래서』(1973) 이후『幕洞里 素描』(1980)『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1985)『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1987)『눈물난다』(1991)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이하석은 1948년 경북 고령에서 출생하여 경북대 사회학과에서 수학하였다. 1971년『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첫시집『투명한 속』(1980)『金氏의 옆얼굴』(1984)『우리 낯선 사람들』(1989)등의 시집과 소설『여름강』(1989)등을 간행하였다.대구문학상·김수영문학상을수상하였다.
감태준은 1947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하여 중앙대 문예창작과 및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 『월간문학』신인상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몸 바뀐 사람들』(1978)이후『마음이 불어가는쪽』(1987)등의 시집과 평론집『이용악 시연구』(1991)를간행하였다.
김명인은 1946년 경북 울진에서 출생하여 고려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73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 「출항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東豆川』(1979) 이후 『머나먼 곳 스와니』(1988) 등의 시집과 김창완·이동순·정호승 등과 「反詩」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정호승은 1950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하여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73년 『대한일보』신춘문예에 「첨성대」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슬픔이 기쁨에게』(1979) 이후 『서울의 예수』(1982)『새벽편지』(1987)『별들은 따뜻하다』(1990)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김남주는 1946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여 전남대 영문과에서 수학하였다. 1974년 『창작과 비평』에 「잿더미」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진혼가』(1984) 이후 『나의 칼 나의 피』(1987)『조국은 하나다』(1988)『솔직히 말하자』(1989)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신동엽창작기금 수혜.
송수권은 1940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하여 순천사범학교 및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75년『문학사상』신인상에「山門에 기대어」등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山門에 기대어』(1980) 이후『꿈꾸는 섬』(1982)『啞陶』(1984)『새야 새야 파랑새야』(1986) 등을간행하였다.
김광규는 1941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였다. 1975년 『문학과 지성』에 「時論」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 이후 『아니다 그렇지 않다』(1983)『크낙산의 마음』(1986)『좀팽이처럼』(1988)『아니리』(1990)등의시집을간행하였다.
고정희는 1948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여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였다. 1975년 『현대시학』에 「연가」「부활과 그 이후」가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이후 『失樂園記行』(1981)『초혼제』(1983)『지리산의 봄』(1987)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이성복은 1952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였다. 1977년 『문학과 지성』에 「정든 유곽에서」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 이후 『남해 금산』(1986)『그 여름의 끝』(1990)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김수영문학상·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최승호는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하여 춘천교육대학을 졸업하였다. 1977년『현대시학』에 「비발디」등이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 『大雪主意報』(1983) 이후 『고슴도치의 마을』(1985)『진흙소를 타고』(1987)『세속도시의 즐거움』(1990)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최승자는 1952년 충남 연기에서 출생하여 고려대 독문과에서 수학하였다. 1979년『문학과 지성』에「이 시대의 사랑」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이時代의 사랑』(1981)이후『즐거운 日記』(1984)『기억의 집』(1989)등의 시집과 시선집『내게 새를 가르쳐 주시겠어요』(1989)등을 간행하였다.
황지우는 1952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였다. 1980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沿革」이입선,『문학과 지성』에「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등을 발표하고 등단하였다. 첫시집『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이후『겨울-나무로부터-봄-나무에로』(1985)『나는너다』(1987) 등을 간행하였다.
김정환은 1954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80년『창작과 비평』에「마포, 강변동네에서」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지울 수 없는 노래』(1982)이후『황색예수전1·2·3』(1983·1984·1986)』『좋은 꽃』(1985)『해방序詩』(1985)『우리 노동자』(1989) 등을 간행하였다.
최두석은 1955년 전남 담양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80년『심상』에「김통정」「옻나무」등이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대꽃』(1984)이후 서사시집『임진강』(1986)『성에꽃』(1990)을 간행하였다.「오월시」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곽재구는 1954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하여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81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沙平驛에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시집『沙平驛에서』(1983)이후『전장포 아리랑』(1985)『한국의 연인들』(1986)『서울 세노야』(1990)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김용택은 1948년 전북 임실에서 출생하여 순창농림고를 졸업하였다. 1982년 창작과비평사의 21인 신작 시집『꺼지지 않는 횃불로』에「섬진강 1」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섬진강』(1985)이후『맑은 날』(1986)『누이야 날이 저문다』(1988)『꽃산 가는 길』(1988)『그리운 꽃편지』(1989)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도종환은 1954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하여 충북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4년 동인지『분단시대』를 통해 등단했으며 첫시집『고두미 마을에서』(1985) 이후『접시꽃 당신』(1987)『접시꽃 당신 2』(1988)『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났지만』(1989)등의시집을간행하였다.
서정윤은 1957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현대문학』에「서녘 바다」「城」등으로 김춘수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으며 첫시집『홀로서기』(1987) 이후『홀로 서기2 점등인의 별에서』(1987)『나의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요』(1991)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장정일은 196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대구 성서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84년『언어의 세계』「강정 간다」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1987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희곡「실내극」이 당선되기도 하였다. 첫시집『햄버거에 관한 명상』(1987) 이후『서울에서 보낸 3주일』(1988)등을 간행하였다.
박노해는 1956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하여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83년『시와 경제』에「시다의 꿈」등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시집『노동의 새벽』(1984)과 산문집『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1989)를 간행하였다. 노동문학상 수상.
아시아는 밤이 지배한다. 그리고 밤을 다스린다. 밤은 아시아의 마음의 象徵(상징)이요 아시아는 밤의 實現(실현)이다. 아시아의 밤은 永遠(영원)의 밤이다. 아시아는 밤의 受胎者(수태자)이다. 밤은 아시아 産母(산모)요 産婆(산파)이다. 아시아는 실로 밤이 낳아준 선물이다. 밤은 아시아를 지키는 主人(주인)이요 神(신)이다. 아시아는 어둠의 검이 다스리는 나라요 世界(세계)이다.
아시아의 밤은 限(한)없이 깊고 속모르게 깊다. 밤은 아시아의 心臟(심장)이다. 아시아의 心臟(심장)은 밤에 鼓動(고동)한다. 아시아는 밤은 呼吸(호흡)기관이요 밤은 아시아의 呼吸(호흡)이다. 밤은 아시아의 눈이다. 아시아는 밤을 통해서 一切相(일체상)을 뚜렸이 본다. 올빼미 모양으로ㅡ 밤은 아시아의 귀다. 아시아는 밤에 一切音(일체음)을 듣는다.
밤은 아시아의 感覺(감각)이오 感性(감성)이오 性慾(성욕)이다. 아시아는 밤에 萬有愛(만유애)를 느끼고 임을 抱擁(포옹)한다. 밤은 아시아의 食慾(식욕)이다. 아시아의 몸은 밤을 먹고生生(생생)한다. 아시아는 밤에 그 靈魂(영혼)의 양식을 求(구)한다. 猛獸(맹수) 모양으로ㅡ 밤은 아시아의 芳醇(방순)한 술이다. 아시아는 밤에 노래하고 춤춘다.
밤은 아시아의 마음이오 悟性(오성)이오 그 行(행)이다. 아시아의 認識(인식)도 叡智(예지)도 信仰(신앙)도 모두 밤의 實現(실현) 이요 表現(표현)이다.
오ㅡ 아시아의 마음은 밤의 마음ㅡ 아시아의 生理系統(생리계통)과 精神體系(정신체계)는 실로 아시아의 밤은 神秘的(신비적) 所産(소산)인저ㅡ 밤은 아시아의 美學(미학)이오 宗敎(종교)이다. 밤은 아시아의 唯一(유일)한 사랑이오 자랑이오 보배요 榮光(영광)이다. 밤은 아시아의 靈魂(영혼)의 宮殿(궁전)이오 個性(개성)의 터요
性格(성격) 의 틀이다. 밤은 아시아의 가진 무진장의 寶庫(보고)이다. 마법사의 魔術(마술)의 보고와도 같은ㅡ밤은 곧 아시아요 아시아는 곧 밤이다. 아시아의 悠久(유구)한 生命(생명)과 個性(개성)과 性格(성격)과 歷史(역사) 는 밤의 記錄(기록)이오. 밤神(신)의 발자취요 밤의 造化(조화)요
밤의 生命(생명)의 創造的(창조적) 發展史(발전사)ㅡ
보라! 아시아의 山河(산하) 大地(대지)와 物相(물상)과 風物(풍물)과
品格(품격) 과 文化(문화) ㅡ 有相(유상) 無相(무상)의 一切相(일체상)이 밤의 洗禮(세례)를 받지 않는 者(자) 있는가를ㅡ 아시아의 山脈(산맥)은 아시아의 물의「리듬」을 象徵(상징)하고 아시아의 물의 리듬은 아시아의 밤의 리듬을 상징하고
아시아의 딸들의 칠빛같은 머리의 흐름은 아시아의 밤의
그윽한 呼吸(호흡)의 리듬ㅡ 한손으로 地軸(지축)을 잡아 흔들고 天地(천지)를 含吐(함토)하는 아무리 억세고 사나운 아시아의 사나이라도 그마음 어느 구석인지 숫처녀의 머리털과도 같이 끝모르게 감돌아드는 밤 물결의 흐름 같은 리듬의 曲線(곡선)은 그윽히 서리어 흐르나니ㅡ
그리고 아시아의 아들들의 자기를 팔아 술과 美(미)와 한숨을 사는 浩蕩(호탕)한 放遊性(방유성)도 감당키 어려운 이ㅡ 밤때문이라 하리라.
밤에 취하고 밤을 사랑하고 밤을 즐기고 밤을 嘆美(탄미)하고 밤을 崇拜(숭배)하고ㅡ 밤에 나서 밤에 살고 밤속에 죽는 것이 아시아의 運命(운명)인가. 아시아의 沈黙(침묵)과 靜謐(정밀)과 幽寂(유적)과 枯淡(고담)과 典雅(전아)와 曲線(곡선) 과 餘韻(여운)과 玄晦(현회)와 幽影(유영)과 後光(후광)과 또 滋味(자미) 醍醐味(제호미)ㅡ 는 아시아의 밤神(신)들의 饗宴(향연)의 交響曲(교향곡)의 樂譜(악보)인저ㅡ 오ㅡ 崇嚴(숭엄)하고 幽玄(유현)하고 神秘(신비)롭고 不思議(불사의)한 아시아의 밤이여ㅡ 太陽(태양)은, 燃燒(연소)하고 刺激(자격)
하고 誇張(과장)하고 傲慢(오만)하고 君臨(군림) 하고 命令(명령)한다.
그리고 男性的(남성적)이 父格(부격)이오積極的(적극적)이오攻勢的(공세적)이다. 따라서 物理的(물리적)이오 現實的(현실적)이오 學問的(학문적)이오 自己中心的(자기중심적) 이오 鬪爭的(투쟁적)이오 物體的(물체적)이오 物質的(물질적)이다. 太陽(태양)의 아들과 딸은 기승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건설 하고 파괴하고 돌진한다. 白日下(백일하)에 自信(자신)있게 萬有(만유)하고 분석하고 해부하고 綜合(종합)하고 統一(통일)하고 盛(성)할줄만 알고 衰(쇠)하는줄 모르고 氣勢(기세)좋게 모험하고 制作(제작)하고 외치고 몸부림치고 疲勞(피로)한다. 差別相(차별상)에 低廻(저회)하고 有(유)의 面(면)에 固執(고집)한다. 여기 뜻아니한 悲劇(비극)의 胚胎(배태)와 誕生(탄생)이 있다.
2. 진달래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3. 석류 / 조운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4.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ㅡ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맛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것 같지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울타리 넘어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 밤 자정이 넘어 나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닽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 춤만 추고 가네
나는 제비야 깝지지마라
맨드라미 마들 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 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므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로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잡혔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5.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돗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잊힐리야
9. 우리 오빠와 화로 / 임화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男)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 온 그 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야 지금은 화젓가락만이 불쌍한 우리 영남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웨 - 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실 그날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卷煙]을 세 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었어요
오빠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 - 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웨 그 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 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야 기어올라가든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 -
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백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야 제가 영남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었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바루르 밟는 거치른 구두 소리와 함께 - 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 - 그래서 저도 영남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의 일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뚫어 트리고 영남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 - 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 - 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든 쇠 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어요
그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나는 우리 오빠 동모의 소식을 전해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었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이가 있고
그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듯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 저뿐이 사항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섧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 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의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야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는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 누이동생
※피오닐 : 개척자 선구자
10. 고지가 바로 저긴데 / 이은상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위적 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 안고
가야만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피 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11. 떠나가는 배 (나두야 간다) / 박용철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야.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12. 모란꽃 / 조종현
하얗게 못 핀 것이
네 그렇게 부끄러워
5월
훈풍에 넋두리나 하잔 거냐
뜬구름
같은 사랑을
어쩌자고 하느냐.
-덕수궁에서
13.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와 나타샤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시골로 가자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집)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백석(백기향)이 사랑한 김진향(김영한)에게 쓴 시
14.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15. 광야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하여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친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고선 지고 큰 강물이 드디어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가득하니 내 여기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16. 행복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려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17. 모란이 피기 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의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는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18.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산림 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아무도 살지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때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즈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위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먼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않는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어머니부디 잊지 마세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 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 거릴 때나와 함께 그 샛빨간 능금을--------- 또오똑따지 않으렵니까
19.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 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오
20. 그날이 오면 /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21. 병든 서울 /오장환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蕩兒)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를 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 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나온다 포장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에 차려 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 구융*같이 늘어선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아,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그리고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월 15일, 9월 15일, 아니, 삼백예순 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가 시골 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 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여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아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서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 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 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 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22. 가을의 기도 / 김승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23. 오랑캐꽃 / 이용익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골짝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 백년이 뒤를 이어흘러갔다
너는 오랑캐의 피한방울을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팔로 햇빛을 막아줄께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24.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一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를 입에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25.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 / 서정주
禪雲寺고랑으로 禪雲寺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것만 오히려 남았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읍디다.
26. 개화 (開花)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 이호우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27. 설야 /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밑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양 흰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28. 백자부 / 김상옥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附椽) 끝에 풍경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틈에 불로초(不老草) 돋아나고 채운(彩雲)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드노다.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하도다
29.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도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 가에,
나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 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어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난,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북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
30. 나그네 /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녘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31. 승무 /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32.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33. 풀이 눕는다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34. 외따로 열고 / 이영도
비 오고 바람 불어도
가슴은 푸른 하늘
홀로 고운 성좌
지우고 일으키며
솔바람
머언 가락에
목이 긴 학 한 마리
멀수록 다가드는
사모의 공간 밖을
만리도 지척같이
넘나드는 꿈의 통로
그 세월
외따로 열고
다둑이는 추운 마음
35. 목마와 숙녀 / 박인환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져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36.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병 없이 앓는, 안동댐 민속촌의 헛 제사밥 같은, 그런 것들을 시랍시고 쓰지는 말자. 강 건너 임청각 기왓곡에는 아직도 북만주의 삭풍이 불고, 한낮에도 무시로 서리가 내린다. 진실은 따뜻한 아랫목이 아니라 성에 낀 창가에나 얼비치는 것, 선열한 육사의 겨울 무지개! 유유히 날던 학 같은 건 이제는 없다. 얼음 박힌 산천에 불을 지피며 오늘도 타는 저녁 노을 속, 깃털을 곤두세우고 찬바람 거스르는 솔개 한 마리.
39. 장식론 / 홍윤숙
여자가 장식(裝飾)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 잃어가는 때문이다 씻은 무우 같다든가 뛰는 생선(生鮮) 같다든가 (陳腐(진부)한 말이지만) 그렇게 젊은 날은 젊음 하나 만도 빛나는 장식(裝飾)이 아니었겠는가 때로 거리를 걷다 보면 쇼우원도우에 비치는 내 초라한 모습에 사뭇 놀란다 어디에 그 빛나는 장식(裝飾)들을 잃고 왔을까 이 피에로 같은 生活의 衣裳(의상)들은 무엇일까 안개같은 피곤(疲困)으로 門을 연다 피하듯 숨어 보는 거리의 꽃집 젊음은 거기에도 만발(滿發)하여 있고 꽃은 그대로가 눈부신 장식(裝飾)이었다 꽃을 더듬는 내 흰 손이 물기 없이 마른 한장의 낙엽(落葉)처럼 쓸쓸해져 돌아와 몰래 진보라 고운 자수정(紫水晶) 반지 하나 끼워 달래어 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42. 사랑이 가기전에 / 조병화
사랑이 가기 전에 이렇게 될줄 알면서도
이렇게 될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주리 부스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 가슴에 안겨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사람들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이 아스팔트
어느 잎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했습니다.
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하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나를 믿어야 했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하나의 최후와 같이
당신의 소중한 가슴에 안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될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될줄을 알면서도
43.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44. 북치는 소년 / 김종삼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45. 어머님의 아리랑 / 황금찬
함경북도 마천령, 용두골 집이 있었다 집이라 해도 십 분의 4는 집을 닮고 그 남은 6은 토굴이었다 어머님은 봄 산에 올라 참꽃(진달래)을 한 자루 따다놓고 아침과 점심을 대신하여 와기에 꽃을 담아 주었다 입술이 푸르도록 꽃을 먹어도 허기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런 날에 어머님이 눈물로 부르던 조용한 아리랑 청천 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엔 가난도 많지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산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울고 무산자 누구냐 탄식 말라 부귀와 영화는 돌고 돈다네 박꽃이 젖고 있다 구겨지며 어머니의 유산 아리랑
46. 내 산하에 서다 / 이태극
일월도 서먹한 채
그늘 진 정은 흘러
핏자욱 길목마다
귀촉도 우는 구나
건널목 숲으로 가름한
저 언덕과 이 강물!
2
진달래 피어들고
단풍잎 불타나고
부르며 바라보는
어베들의 보금자리
배리(背理)는 화사(花蛇) 습성
굳어만 가는 마음벌!
3
얼룩진 수의(囚衣) 이기
되씹는 회한인가
깁소매 접어 넣고
활짝 열자 닫힌 창을
섭리는 새날의 기수
지켜서는 내강토
4
오랜 역사의 장(章)이
갈피갈피 어엿하다.
한 핏줄 소용돌아
가슴 가슴 솟구친다.
갈림은 만남의 정점(頂點)
휘어잡는 내 손길-.
47. 라일락 향기 / 문덕수
네 품안에 할 알의 씨로 묻혀
너를 닮은 과일로 익고 싶다
내 물살의 칼날은 꽃잎이 되고
뾰족한 내 돌부리는 만월滿月처럼 깎이어
너를 닮아 차라리 타버리고 싶다
외길로만 뻗는 이 직선을 잡아다오
부러져 모가 서는 이 삼각을 풀어다오
꺾이어 모가서는 이 사각에서 놓아다오
윤곽이 아니라 그대로 가득 찬 충실이기에
실은 우주도 너를 닮은 충실이기에
네 품안에 떨어진 하나의 물방울로
바다처럼 넘치며 출렁이고 싶다
48. 울음이 타는 가을강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겄네.
49. 항아리 / 박희진
무슨 흙으로 빚었기에
어느 여인의 살결이 이처럼 고울 수 있으랴
얇은 하늘빛 어린 바탕에
그려진 것은 이슬 머금은 달개비인가
만지면 스러질 듯 아련히 묻어오는
차단한 기운이여
놓이는 자리는 아무 데고
끝인 동시에 시작이 되는
너는 그런 하나의 중심이라
모든 것이 잠잠할 때에도
끊임없이 숨 쉬며 있는
오 항아리
너 그지없이 둥근 것이여
소리 없는 가락의 동결이여
물 위에 뜬
연꽃보다도 가벼우면서
바위보다 무겁게 가라앉는 것
네 살결 밖을 감돌다 사라지는
세월은 한갓 보이지 않는 물무늬인가
항아리 만든 손은 티끌로 돌아가도
불멸의 윤곽을 지닌 너 항시 우러른
그 안은 아무도 헤아릴 길이 없다
50.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51. 저문 산 / 박용래
1
상칫단 씻는
아욱단 씻는
오 리 안팎에 개구리 울음.
보릿대 씹는
호밀대 씹는
일락서산(日落西山)에 개구리 울음
2
댕댕이 덩굴, 가시덤불
헤치고 헤치면
그날 나막신
쌓여 들어 있네
나비잔등에 올라앉은 보릿고개
작두로도 못 잘라
먼 삼십 리
청솔가지 타고
아름 따던 고사리 순
할머니 나막신도
포개있네
빗물 고여, 저문 산
묻혀 있네.
52. 풍선 날리기 / 성찬경
대축제다. 어린이들의 풍선 날리기다. 오색 풍선이 200개쯤 일제히 하늘로 솟는다. 풍선의 해방이다. 하늘에 뜬 꽃밭이다. 하늘이 너무 파랗다. 영감적인 너무나 영감적인. 이 놀이엔 의미가 없다. 절대의미絶對意味가 있을 뿐이다. 어린이는 영감靈感의 샘. 노아의 가족인가. 풍선들이 모두 함께 동남풍 미풍을 타고 서서히 흐르며 작아진다. 슬픈 원근법이다. 어린이 마술에 걸린 나는 언제까지나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풍선의 승천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하늘로 하늘로 사라짐. 세상에서 제일 축복 받은 운명이다. 아, 이때 기적이 인다. 나의 눈이 1.5다. 아니, 2.0이다. 바늘 끝만한 것이 계속 보인다. 빛깔은 이미 없고 반짝반짝하는 것. 대낮별이다. 아득히 남은 한 별, 하는 사이 하나가 다시 나타나, 두 별이다. 하는 사이 셋이다. 최후로 이젠 정말 하나다. 그것마저 영영 사라졌을 때 내가 보는 창궁蒼穹에 올챙이꼬리 달린 풍선만한 별들이 일제히 헤엄쳐 들어와 불멸의 성좌 되어 찬란히 빛난다.
53. 대나무에게 / 최승범
설청의 눈부신 아침 너를 바라본다 너를 바라본다 따로 날이 있으랴 사철을 바라보아도 너로 설 수 없는 것을 설청의 이 아침에 너를 다시 바라본다 개운히 스미는 빛이여 성글어 맑은 소리여 빼어나 밋밋한 마디에 부추겨다오 나를나를
54. 백두산 / 고 은
모든 산들을 저 아래에 두고 몇 억만 년 지나도록 아직껏 이것은 산이 아니었다 오, 너 백두산 그토록 나날이건만 새로이 네 열여섯 봉우리 펼쳐라 장군봉 망천후 사이 성난 노루막이 비바람처럼 가까스로 날라가 버릴 몸뚱어리 버티고 선 내 불쌍한 발밑조차 보이지 않아 캄캄하지만 수많은 어제였던 오늘이었고 내일이어야 할 오늘이었다 활짝 펼쳐라 여기 억만 년 세월의 가슴 있다면 그 가슴 삼아 열여섯 봉우리 네 이름을 부른다 열여섯 봉우리 스물여섯 봉우리에 걸어 이 나라 시원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너를 부른다 목 놓아 너를 부른다 푸른 피 엉겨 푸른 피 엉겨 너를 부른다 장군봉이여 백운 관명봉이여 삼기봉이여 천활 지반 왕주 제운봉이여 와호 고준 자하봉이여 화개 철벽 용문봉이여 관일 금병봉이여 오늘 네 이름을 부르고 부른다 네 이름 불러 하늘의 물 자손만대로 나아가는 천지여 네 거룩하지 않을 수 없는 이름 부른다 그리하여 백두산 열여섯 봉우리의 나라 동방 옛 조선 이래 끝없이 앞을 향하여 가고 있다 그토록 숨돌릴 겨를 모르던 침노 한사코 물리쳤다 여기 백두산 힘찬 아기처럼 쩌렁 쩌렁 울어대는 환희일진대 눈부시어라 그 날을 네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 어서 오라 어서 오라 춤추는 빛발 아니고 그 무엇이리 여기 백두산 열여섯 봉우리에 이어 삼천리 강토 수수천만 온갖 산 온갖 봉우리 온갖 골짜기 그 이름을 부른다 지난 날 이 겨레 극심하게 잃은 것들 기어이 칮아내는 기쁨으로 이름없는 모든 것 다 이름 붙여 그 이름 새로 부른다 이 나라 온통 하나의 백두산인 그 날을 네 이름으로 네 이름으로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른다 이여 이여 이여 이여 이여....
55.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56.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당신은 우리 편이 되어야 합니다) / 이성부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 벅찬 가슴들 열어 당도해야 할 먼 그곳이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 찢겨지고 피 흘렸던 우리
이리저리 헤매다가 떠돌다가
우리 힘으로 다시 찾은 우리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는 길 힘겨워 우리 허파 헉헉거려도 가쁜 숨 몰아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 서럽도록 푸른 자유 마음이 먼저 날아가서 산 넘어 축지법!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
57. 이 세상의 긴강 / 마종기
며칠 동안 혼자, 긴 강이 흐르는 기슭에서 지냈다. 티브이도, 라디오도 없었고, 문학도 미술도 음악도 없었다. 있는 것은 모두 살아 있었다. 음악이 물과 바위 사이에 살아 있었고, 풀잎 이슬 만나는 다른 이슬의 입술에 미술이 살고 있었다. 땅바닥을 더듬는 벌레의 가는 촉수에 사는 시, 소설은 그 벌레의 깊고 여유 있는 여정에 살고 있었다.
있는 것은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 물이, 나뭇잎이, 구름이, 새와 작은 동물이 쉬지 않고 움직였고, 빗물이 밤벌레의 울음이, 낮의 햇빛과 밤의 달빛과 강의 물빛과 그 모든 것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이는 세상이 내 몸 주위에서 나를 밀어내며 내 몸을 움직여 주었다. 나는 몸을 송두리째 내어놓고 무성한 나뭇잎의 호흡법을 흉내내어 숨쉬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는 내 살까지도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숨쉬는 몸이, 불안한 내 머리의 복잡한 명령을 떠나자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어깨가 가벼워지고 눈이 밝아지고, 나무 열매가 거미줄 속에 숨고, 갑옷의 곤충이 깃을 흔들어내는 사랑 노래도 볼 수 있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였다. 다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크고 작은 것의 차이에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의 차이에서 떠나고, 살고 죽는 것의 차이에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내게는 어려운 결심이었다. 며칠 후 인적없는 강기슭을 떠나며 작별 인사를 하자 강은 말없이 내게 다가와 맑고 긴 강물빛 몇 개를 내 가슴에 넣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강이 되었다.
58. 노트북 연서 / 김후란
허공에 떠도는 언어의 축제 클릭한다 침묵의 대화로 사랑을 나눈다 목이 마르다 네 목소리가 듣고 싶다 젖은 글씨로 쓴 편지를 받고 싶다 살아있는 연인이고 싶다
59. 밥을 멕이다 / 정진규
어둠이 밤새 아침에게 밥을 멕이고
이슬들이 새벽 잔디밭에 밥을 멕이고 있다
연일 저 양귀비 꽃밭엔 누가 꽃밥을 저토록 간 맞추어 멕이고 있는 겔까
우리 집 괘종 붕알시계에게 밥을 주는,
멕이는 일이 매일 아침 어릴 적 나의 일과였던
생가에 와서 다시 매일 아침 우리 집 식구들 조반을 챙기는
그러한 일로 하루를 열게 되었다
강아지에게도 밥을 멕이고
마당의 수련들 물항아리에도 물을 채우고
뒤꼍 상추, 고추들 눈에 뜨이게 자라오르는
고요의 틈서리에도
봄철 내내 밥을 멕였다
물밥을 말아주었다
60. 살다가 보면 / 이근배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61. 조국(祖國) / 정완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 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 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어 학처럼만 여위느냐.
62. 풍경 / 김제현
뎅그렁 바람 따라 풍경이 웁니다 그것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일 뿐 아무도 그 마음 속 깊은 적막을 알지 못합니다 卍燈이 꺼진 산에 풍경이 웁니다 비어서 오히려 넘치는 무상無上의 별빘 아, 쇠도 혼자서 우는 아픔이 있나 봅니다
63. 찔레꽃/ 허영자
가시와 꽃이
위태롭게 나란히
적의와 관능이
부딪칠 듯 나란히
울음과 웃음을
한 가지에 머금은
모순의 향기
하얀 찔레꽃.
64. 이 시대의 시쓰기 / 이승훈
물론 이승훈 씨는 시를 쓰신다
언어가 있기때문이다
언어라? 언어라? 언어라?
도대체 언어란 무엇인가? 그는 언어 때문
에 시를 쓰지만 언어 때문에 실패의 연
속이다 언어 유리디체여 그녀를 돌아보면
안된다 차라리 불을 지르라 물론 어려울 것
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훔쳐오기 그렇
다 이제 그는 유리디체를 훔친다 그가 읽은
책, 그가 읽을 책, 그리고 최근의 경험, 말
라빠진 현실, 엉터리 꿈, 한낮에 졸고 있
던 약방, 카페에서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던 사람(얼마나 고맙던가?) 그는 작은
일에 약하다 말하자면 예민하다 그의 예
민성은 신경증이 되고 우울증이 되고, 신경증
엔 히스테리와 강박증이 있고, 우울증이 도
지면 의기소침해지고 그러나 우울증엔 여러
가지 유형, 험담을 하는 유형(최근에 그를
괴롭힌, 따라서 그를 즐겁게 한 여자가 이
유형임), 험담은 병이 아니라 이 시대의
상식이다 험담을 하고 모함을 하고 인간들은
우울증을 극복한다 그도 극복한다 우울증 환자
가운덴 알코올 중독자도 있고 투전꾼도 있고 약
물 중독자도 있고 요컨대 이승훈 씨가 쓰는 시는
우울증의 산물이다 오오 우울증이 무슨 죄란 말
입니까? 그는 불안이라고 하지만 아마 우울증
일 것이다 그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우울증
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불안하면 도둑질도 한
다 무슨 짓을 못하랴? 그는 오늘도 그가 읽은 책
에서 언어를 훔치고 창문도 훔치고 종이도 줍고 물
론 불을 지를 순 없으리라 언어 속에서 언어를 훔
치는 이승훈 씨여 언어라는 아파트에서 그는 가
구나 물건들(예컨대 재떨이, 신발, 양말, 의
자, 낡은 셔츠 등)을 훔친다 도둑질을 한다 그는
염치도 없이 염치도 없이 훔친다 벼락처럼 훔
친다 이젠 자신도 훔친다 그도 언어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쓴 책 속에 그가 있다 이 시대의
시쓰기는 도둑질이다 자연파 시인들은 자연을 훔
치고 나 같은 자칭 언어파 시인들은 언어를 훔친
다 오오 표절 속에 표절 속에 2월이 간다 김춘수
선생의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시에는 '가도
가도 2월은 2월이다'는 시행이 나온다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낡은 시도 많고 새로운 시도 많고
나처럼 조금 미친 이승훈 씨도 있고 겨울 저녁 불을
켜고 앉아 언어를 훔치는 시인도 있다 그럼 이승훈
씨여 부디 분발하기 바란다
65. 푸른 하늘과 붉은 황토 / 조태일
아내와의 모든 접선도 끊어버리고
말 배우는 어린 새끼들과의 대화도 끊어버리고
나를 가르친 모든 책으로부터도
중고가 돼버린 철없는 장난감으로부터도
멍청한 가구들로부터도 떠나버리자.
아이고 무서워
아이고 무서워
그림자를 고요히 고요히만 밟혀주는
달빛 별빛으로부터도,
무수히 발바닥을 포개보던
광화문이며 종로며 태평로로부터도
자유다 평등이다 인권이다 민주다 의무다 국민이다
어쩌고 하는 한국적 표준말로부터도 떠나버리자.
아이고 무서워
아이고 무서워
망우리 근처 푸른 하늘 밑의 풀잎들은
그렇게 푸르기만 하며
푸른 하늘 밑의 황토들은
그렇게 붉기만 하며
푸른 하늘 밑의 무덤들은
그렇게 고요히만 누웠냐
아이고 무서워
아이고 무서워
바람 자고 소리 끊겨 고요하기는 해도
끝간데없는 푸른 하늘은 저리 답답하단다.
푸른 풀들이 흔들리긴 해도
하늘 밑에 깔린 황토들은 저리 답답하단다.
66. 우리들의 우산 / 김종해
비를 가리기 위해 우산을 펴면
빗방울 같은 서정시 같은 우산 속으로
바람이 불고
하늘은 우리들 우산 안으로 들어와 있다
잠시 접혀 있는 우리들의 사랑 같은
우산을 펴면
우산 안에서 우리는 서로 젖지 않기
외로움으로부터 슬픔으로부터 서로 젖지 않기
물결 위로 혹은 꿈 위로 얕게 튀어오르는
빗방울 같은 우리 시대의 사랑법 같은
우산을 받쳐 들고 비 오는 날 우산 안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가기
비는 내려서 우리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흘러가지만
정작 젖는 것은 우리들의 여린 마음이다
우산 하나로 이 빗속에서 무엇을 가리랴
비를 가리기 위해 우산을 펴면
물방울 같은 서정시 같은 우산 속으로
바람이 불고
하늘은 우산만큼 작아져서 정답다
아직 우리에게 사랑이 남아 있는 한
한 번도 꺼내 쓰지 않은
하늘 같은 우산 하나
누구에게나 있다
67. 화엄벌판 / 이상범
억새꽃이 나부끼며 빛을 끌어당긴다
몸 비벼 금빛 띠고 다시 비벼 은빛 띠는
아직도 섬찍섬찍한 그 말씀의 영락소리
아득한 변방에서 물소리가 산을 오른다
망루의 높이에서 가슴을 치는 골물
내 눈빛 맑게 바래어 흩고 있는 억새꽃.
정수리 찍어대면 샘물 터져 뿜을까
좌대에 눈감으면 그 여운의 높은 파고
잃은 것 얻은 것 없는데 밀짚모자 홀로 간다.
가을 하늘 한 장 떼어 거울경문 걸어 두면
뉘이며 일어서는 비늘 빛 화엄설법
육신은 보시로 올리고 바람 속에 듣는다.
68. 편지 / 김초혜
먼저 핀 꽃도
나중 핀 꽃도
모두 다 지는 꽃이라
그대가 어제 피운 꽃 한 송이
오늘은 내게 와서 지고 있다
69. 너를 위한 노래 / 신달자
바람 부는 겨울
새벽 역두에 나가고 싶다.
쫓겨난 여자처럼 머리카락을 날리며
긴 코트의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느린 걸음으로
역두를 서성이고 싶다.
그대여 그런 날 새벽에
우연히 널 만날 수는 없을까
나는 수없이 뒤를 돌아보며 약속 없는
너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내가 탈 기차를 보내고
그 다음의 기차를 보내며
시린 가슴으로 떨고 있을 때
두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너를 만날 수는 없을까
새벽 역두에 나가고 싶다.
찬비 뿌리는 새벽
우산을 받쳐들고 역두를 서성이면
멀리 보이는 불빛들의 젖은
그림자 일렁이는 무늬 속으로
너는 보이고 그리고 없고
그러나 나 결코 떠나지 않으며
너를 기다리며
바람과 함께 흔들리며
비와 함께 떨어지며
너를 기다리며 그렇게
참으로 어리석은 낭만을 믿으며 나는
겨울 역두에 서 있고 싶다.
늦은 밤 자정인들 어떠랴
축축이 젖은 채로
널 우연히 만날 수만 있다면.
70. 노래의 자연 / 정현종
<사물의 꿈>- 정현종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1. 달도 돌리고 해도 돌리시는 사랑이 / 정현종
한 처녀가 자기의 눈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남자와 풍경 사이에서 깜박거린다 남자일 때 나는 말발굽 소리를 내고 풍경일 때 나는 다만 한 그루 나무와 같다 달도 돌리고 해도 돌리시는 사랑이 우리 눈동자도 돌리시느니 한 남자가 자기의 눈 속에서 처녀를 바라본다
2. 견딜 수 없네 / 정현종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71. 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72. 나는 내가 낳는다 / 유안진
누구의 유전자에도 오염되지 않은
무염시태(無染始胎)의 나는
내가 잉태하기로 했다
다시 태어나야 진정한 내가 될 수 있거든
나는 자궁을 가졌거든
누구의 간섭 어떤 의무도
어떤 관습에도 감시당하지 않고
어떤 규범에도 검토당하지 않는
모든 순치를 거부한 나를 살며
처음부터 끝까지 나로서만 살게 될 새로운 나는
아무도 낳아 줄 수 없으니까
성스러운 사랑과 추악한 스캔들은 동전의 양면이니
성스럽지도 추악하지도 말거라
저 나가 되기 위해서나 그 나가 되기 위해서는
부디 이 나를 배반하거라
나의 태아기는 280일로는 태부족이리니
무한 기다리리라
태초의 아담보다 더 최초의 나이기 위해서는
73. 눈 내리는 마을 / 오탁번
건너 마을 다듬이 소리가
눈발 사이로 다듬다듬 들려오면
보리밭의 보리는
봄을 꿈꾸고
시렁 위의 씨옥수수도
새앙쥐 같은 아이들도
잠이 든다
꿈나라의 마을에도
눈이 내리고
밤마실 나온 호랑이가
달디단 곶감이 겁이나서
어흥어흥 헛기침을 하면
눈사람의 한쪽 수염이
툭 떨어져서 숯이 된다
밤새 내린 눈에
고샅길이 막히면
은하수 물빛 어린 까치들이
아침 소식을 전해 주고
다음 빙하기가 만년이나 남은
눈 내리는 마을의 하양 지붕이
먼 은하수까지 비친다
74. 바지락 줍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시간) / 이가림
바르비종 마을의 만종 같은
저녁 종소리가
천도 복숭아 빛깔로
포구를 물들일 때
모르는 분을 위해
무릎 꿇어 개펄에 입맞추는
간절함이여
거룩하여라
호미 든 아낙네들의 옆모습
75. 질라래비훨훨 / 윤금초
별똥별 튀밥같이 어지러이 흩어질 때
어둑새벽 등 떠밀며 달려오는 먼 산줄기
풍경이 풍경을 포개어 굴렁쇠 굴려 간다.
자궁 훤히 드러낸 회임(懷姙)의 연못 하나
제각기 펼친 만큼 내려앉은 햇살 속으로
염소 떼 주인을 몰고 질라래비, 질라래비...
이 땅의 잔가지들 손잡고 살 비비는가.
질라래비훨훨, 질라래비훨훨, 활개 치는 풀빛 아이들
봄날도 향기로 와서 생금가루 흩뿌린다.
76. 무당벌레가 되고 싶은 시인 / 이건청
한때, 나는
무당벌레가
되고 싶던 때가
있었다.
등허리에
선연한 7개
검은 반점을 찍고
푸른 갈대 잎에
매달린 채
이슬에 젖고 싶은
때가 있었다.
77. 마음하나 / 조오현
그 옛날 천하장수가
천하를 다 들었다 놓아도
한 티끌 겨자씨보다
어쩌면 더 작을
그 마음 하나는 끝내
들지도 놓지도 못했다더라
78. 천년의 잠 / 오세영
강변의 저 수 많은 돌들 중에서
당신이 집어 지금
손 안에 든 돌,
어떤 돌은
화암사(禾巖寺) 중창 미타전(彌陀殿)의 셋째 기둥 주춧돌 로
놓이기를 바라고,
어떤 돌은
어느 시인의 서재 한 귀퉁이에 나붓이 앉아
시가 씌어지지 않는 밤, 그의 빈 원고지 칸을 지키기를 바 라고
또 어떤 돌은
어느 순결한 죽음 앞에서 만대(萬代)의 의(義)를 그의 붉 은
가슴에 새기기를 바라지만
아, 나는 다만 당신이
물 수재비 뜨듯 또 다시 강가에 나를
팽개치지 않기만을------
아무도 깨워주지 않는 천년의 잠은
죽음보다 더 잔인할지니
흙 위에 엎드려 잠들기 보다는
급류 속의 일개
징검다리가 되리라.
그러므로 님이여, 장난 삼아 던질 양이면 차라리
거친 물살에 던지시라.
그리하여 먼 후일 당신이 다시 찾아오시는 날,
나는 즐겨 내 몸을 당신 앞에 바치리니
당신은 주저 말고 내 등을
밟고 건너시기를------.
79. 캘린더 호수 / 서정춘
나에게는 참개 밭의 꿀벌 같은
하도나 이쁜 늦둥이 어린 딸이 있어
오늘은 깨잘도입에 달아주면서
캘린더 걸어놓고 숫자를 읽히는데
아빠
2는 오리 한 마리
아빠
22는 오리 두 마리
아빠
우리 함께 호수공원에 갔을 때
뒷놈 오리가 앞놈을 타올라 물을 먹여 주었어요
히길래설랑
나는 저런저런 하다가
나도 호숫가 물소리로 그럼그럼 했더라
80. 막다른 골목 / 강은교
막다른 골목을 사랑했네, 나는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나의 애인을 지독히 사랑했네 막다른 골목에서 늘 헤어지던 인사 막다른 골목에서 만져보던 애인의 손 끝없는 미로의 미래의 단추를 사랑했네
빈 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저 아득한 산 빈 산 너무 길어라 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퍼라 지금은 숨어 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 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 불꽃일 줄도 몰라라 한 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사람아 네가 죽을 저 산에 죽어 끝없이 죽어 산에 저 빈 산에 아아 불꽃일 줄도 몰라라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일 줄도 몰라라.
손금을 드나들면서 숨결은 늘 고르다. 햇빛을 이고 서서 눈매가 문득 말갛다 이끼가 필 적에는 흐르던 땀도 머뭇해 봉긋이 부푸는서정 쌀이 익고 봄을 달인다.
85.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86. 아버지의 힘 / 유지효
아직은 잠들 때가 아닙니다.
아버님
가실 길이 남았습니다
깨어나십시오
그 용기와 힘을 보여주시고
담대함과 거침없음
사내다움을 보여주소서
너무나 약해빠져
실패를 겁내며
속으로만 욕을 하면서
계집애처럼
한만 쌓아가는 약골들에게
벼락을 내리소서
아버님
깨어나소서
87. 노래마다 눈물이 묻어있다 / 이기철
떠나간 사람은 이별을 만들고
다시 만난 사람은 해후를 만든다
눈물은 꽃잎을 만들지 못해도
꽃잎은 눈물을 만드는 날이 있다
사랑은 떠나갈 때 가장 아름다운 것
이별을 흔드는 조그만 손짓은
인간이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인사
눈망울과 입술과 표정이 작별을 만들 때
울음은 가장 순수한 발명품
이 표절할 수 없는 의식은
누구의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일까
그러기에 노래마다 눈물이 묻어 있다
88. 어쩌면 이것들은 / 이우걸
가을 꽃잎같은
아이들 찬송가 소리
정원은 일어나서 잎새의 작은 귀로
교회당 흰 벽에 쌓이는
노래를 듣고 있다.
섬길 이 없어도 고운
한나절 그 봄날을
하늘엔 마음처럼 둥둥 구름이 가고
햇볕은 가지에 닿아
천사의 얼굴을 한다.
어쩌면 이것들은 어젯밤 꿈이었을까
바람이 무심히 와서 나뭇잎을 흔들어도
이 강산 뼈에 사무친 칼소리가
걸어나오네.
89. 변성기의 아침 / 유재영
창 열린 집을 지나 자작나무숲을 지나 아그배꽃 핀 아침 장수하늘소가 묵은 가지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혀가 예쁜 새들은 조금 전부터 울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소리에도 맑게 금이 가는 공기들의 푸른 이동 지빠귀 분홍색 알은 내일쯤이면 무슨 소식이 있으리라 안개가 떠난 자리 채식지 않은 은색 똥 몇 개 햇빛을 향해 우리가 남겨야 할 꿈처럼 누워 있다
90. 겨울강에서 / 정호성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겨울강 강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으스스 내 몸이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91. 장국밥 / 민병도
울 오매 뼈가 다 녹은 청도 장날 난전에서 목이 타는 나무처럼 흙비 흠뻑 맞다가 설움을 붉게 우려낸 장국밥을 먹는다. 5원짜리 부추 몇 단 3원에도 팔지 못하고 윤 사설 뙤약볕에 부추보다 늘쳐져도 하교 길 기다렸다가 둘이서 함께 먹던... 내 미처 그때는 셈하지 못하였지만 한 그릇에 부추가 열 단, 당신은 차마 못 먹고 때늦은 점심을 핑계로 울며 먹던 그 장국밥.
92. 병속의 바다 / 최동호
피서객이 떠난 모래사장에 거꾸로 박힌 소주병이 바다를 들고 있다 대지의 형벌은 팔 들어 지울 수 없다 누가 사랑의 피리를 부는지 병 속에서 파란 바다 휘파람 소리 들린다
93. 나를 키우는 말 /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는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 하면서 다시 알지
94. 파꽃 / 안도현
이 세상 가장 서러운 곳에 별똥별
씨앗을 밀어올리느라
다리가 퉁퉁 부은 어머니,
마당 안에 극지가 아홉 평 있으므로
아, 파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는 그냥 혼자 사무치자
먼 기차 대가리야,
흰 나비 한 마리도 들이받지 말고 천천히 오너라
95. 집 / 김용택
외딴집,
외딴집이라고
왼손으로 쓰고
바른손으로 고쳤다
뒤뚱거리며 가는 가는 어깨를 가뒀다
불 하나 끄고
불 하나 달았다
가물가물 눈이 내렸다
※그 여자네 집 /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이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타작 도리깨가 지붕 위로 보이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 자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96. 그릇에 관한 명상 / 이지엽
흙과 물이 만나 한몸으로 빚어낸 몸 해와 달이 지나가고 별구름이 새긴 세월 잘 닦인 낡은 그릇하나 식탁위에 놓여 있네
가슴에 불이 일던 시절인 들 없었으랴 함부로 부딕혀 깨지지도 못한 채 숨 막혀 사려 안은 눈물, 붉은 기억 없었으랴
내가 너를 사랑함도 그릇 하나 갖는 일 무형으로 떠돌던 생각과 느낌들이 비로소 몸 가라앉혀 편안하게 잠이 들 듯
모난 것도 한때의 일둥글게 낮아질 때 잘 익은 달하나가 거울 속으로 들어오고 한잔물 비워낸 자리, 새 울음이 빛난다
97.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98. 꽃밭을 바라보는 일 / 장석남
저, 꽃밭에 스미는 바람으로
서걱이는 그늘로
편지글을 적었으면, 함부로 멀리가는
사랑을 했으면, 그 바람으로
나는 레이스 달린 꿈도 꿀 수 있었으면,
꽃 속에 머무는 햇빛들로
가슴을 빚었으면 사랑의
밭은 처마를 이었으면
꽃의 향기랑은 몸을 섞으면서 그래 아직은
몸보단 영혼이 승한 나비였으면
내가 내 숲을 가만히 느껴 들으며
꽃밭을 바라보고 있는 일은
몸에, 도망온 별 몇을
꼭 나처럼 가여워해 이내 숨겨주는 일 같네
99. 당신 생각을 켜놓은채 잠이 들었습니다 / 함민복
빗소리가 귓가에 들리던 날 잠가놓은 심장 안으로 당신이 다가섰습니다
빗속으로 당신을 보내고 싶었지만 내 맘대루 되지 않는걸 어찌 하나요
빗방울 소리 흘러내리던 밤 가슴은 개천되어 당신의 마음이 흘러들었습니다
어둠 속으로 당신의 마음을 떠나보내고 싶었지만 떠나지 않고 자꾸만 자꾸만 내 옆을 서성거리고.
그래서....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힘들게 잠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잠든 사이에 꿈속에라두 다녀는 가셨나요
당신 생각에 켜 둔 촛불이 여름 바람에 흔들리곤 합니다
오늘도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 것 같습니다....
100. 애인 있어요 / 홍성란
노래자랑에 입상하신 여든한살 할머니가 분홍셔츠에 흰바지 차려입고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를 다소곳 환히 부르네. 숨은 턱에 찼으나 손모아 파르르 입술 모아 애인 있어요, 말 못한 애인 있다니 여든넷 어머니 그늘 겹쳐 오네. 새치 뽑던 파마머리 젖가슴 뭉클 잡히던 얼굴 *연하고질*이여, 희미한 내 노래여 나도 애인 있어요,춘천 어디 산비탈 가지마다 매어두신 실오리 실오리 스쳐 *돈담무심 *내려온 데 목메도록 애인 있어요 *천석고황*이여,희미한 내 노래여 골도 좋아 물 시린 집, 다시 못 올 흔들의자에 내가 버린 애인있어요. 나 날 적 궁전있으나 내가 버린 폐가 있어요.
101. 풍장 (風葬)·1/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 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2006-07-08
상처 없는 영혼이 세상 어디 있으랴 사람이 그리운 날 아, 미치게 그리운 날 네 생각 더 짙어지라고 혼자서 술 마신다
73. 맹인부부가수 / 정호승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겨울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 없이 노래 부르니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뿐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네.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눈 맞으며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노래가 길이 되어 앞질러가고
돌아올 길 없는 눈길 앞질러가고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질 때까지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함박눈은 내리는데 갈 길은 먼데 무관심을 사랑하는 노랠 부르며 눈사람을 기다리는 노랠 부르며 이 겨울 밤거리의 눈사람이 되었네.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었네.
74.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 김남주
서른에서 마흔몇 살까지 황금의 내 청춘은 패배와 투옥의 긴 터널이었다 이에 나는 불만이 없다
자본과의 싸움에서 내가 이겨 금방 이겨 혁명의 과일을 따먹으리라고는 꿈에도 생시에도 상상한 적 없었고 살아 남아 다시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밥상을 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나 또한 혁명의 길에서 옛 싸움터의 전사들처럼 가게 될 것이라고 그쯤 다짐했던 것이다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조직도 파괴되고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 부끄럽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징역만 잔뜩 살았으니 이것이 나의 불만이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싸웠다! 잘 싸웠거나 못 싸웠거나 승리 아니면 죽음! 양자택일만이 허용되는 해방투쟁의 최전선에서 자유의 적과 싸웠다 압제와 노동의 적과 싸웠다 자본과 펜을 들고 싸웠다 칼을 들고 싸웠다 무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들고 나는 싸웠다
75.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무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없는 모임을 끝낸 밤
헤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 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 수상하게 들어 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 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히 늪으로 발을 옮겼다.
76. 선림원지에 가서 / 이상국
선림으로 가는 길은 멀다 미천골 물소리 엄하다고 초입부터 허리 구부리고 선 나무들 따라 마음의 오랜 폐허를 지나가면 거기에 정말 선림이 있는지 영덕, 서림만 지나도 벌써 세상은 보이지 않는데 닭죽지 비틀어 쥐고 양양장 버스 기다리는 파마머리 촌부들은 선림 쪽에서 나오네 천년이 가고 다시 남은 세월이 몇번이나 세상을 뒤엎었음에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 농가 몇채는 아직 면산하고 용맹정진하는구나
좋다야, 이 아름다운 물감 같은 가을에 어지러운 나라와 마음 하나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소처럼 선림에 눞다 절이름에 깔려죽은 말들의 혼인지 꽃들이 지천인데 경전이 무거웠던가 중동이 부러진 비석 하나가 불편한 몸으로 햇볕을 가려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오는데 마흔아홉해가 걸렸구나 선승들도 그랬을 것이다 남설악이 다 들어가고도 남는 그리움 때문에 이 큰 잣나무 밑동에 기대어 서캐를 잡듯 마음을 죽이거나 저 물소리 서러워 용두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슬픔엔들 등급이 없으랴 말이 많았구나 돌아가자 여기서 백날 뒹군들 니 마음이 절간이라고 선림은 등을 떼밀며 문을 닫는데 깨어진 부도에서 떨어지는 뼛가루 같은 햇살이나 몇됫박 얻어 쓰고 나는 저 세간의 무림으로 돌아가네
77. 남해 금산 / 이성복
한 女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女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女子 울면서 돌속에서 떠나갔네
떠나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서있네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속에 나 혼자 잠기네
78. 북어 /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79. 밤 미시령 / 고형렬
저만큼 11시 불빛이 저만큼
보이는 용대리 굽은 길가에 차을 세워
도어를 열고 나와 서서 달을 보다가
물소리 듣는다
다시 차를 타고 이 밤 딸그락,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듯
시동을 걸고 천천히 미시령으로 향하는
밤 11시 내 몸의 불빛 두 줄기, 휘어지며
모든 차들 앞서 가게 하고
미시령에 올라서서 음, 기척을 내보지만
두려워하는 천불동 달처럼 복받친 마음
우리 무슨 특별한 약속은 없었지만
잠드는 속초 불빛을 보니
그는 가고 없구나
시의 행간은 얼마나 성성하게 가야 하는지
생수 한통 다 마시고
허전하단 말도 저 허공에 주지 않을뿐더러
---그 사람 다시 생각지 않으리
---그 사람 미워 다시 오지 않으리
80. 환한 걸레 / 김혜순
물동이 인 여자들의 가랑이 아래 눕고 싶다
저 아래 우물에서 동이 가득 물을 이고
언덕을 오르는 여자들의 가랑이 아래 눕고 싶다
땅 속에서 싱싱한 영양을 퍼올려
굵은 가지들 작은 줄기들 속으로 젖물을 퍼붓는
여자들 가득 품고 서 있는 저 나무
아래 누워 그 여자들 가랑이 만지고 싶다
짓이겨진 초록 비린내 후욱 풍긴다
가파른 계단을 다 올라
더 이상 올라갈 곳 없는
물동이들이 줄기 끝
위태로운 가지에 쏟아 부어진다
허공중에 분홍색 꽃이 한꺼번에 핀다
분홍색 꽃나무 한 그루 허공을 닦는다
겨우내 텅 비었던 그곳이 몇 나절 찬찬히 닦인다
물동이 인 여자들이 치켜든
분홍색 대걸레가 환하다
81. 철길 / 김정환
철길이 철길인 것은
만날 수 없음이
당장은 이리도 끈질기다는 뜻이다
단단한 무쇠덩어리가 이만큼 견뎌 오도록
비는 항상 촉촉히 내려
철길의 들끊어 오름을 적셔 주었다
무너져 내리지 못하고
철길이 철길로 벼텨온 것은
그 위로 밟고 자나간 사람들의
희망이 그만큼 어깨를 짖누르는
답답한 것이였다는 뜻이다
철길이 나서 사람들이 어디론가 찿아
나서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리 깔려진 버팀목으로 양편으로 갈라져
남해안 까지 휴전선까지 달려가는 철길은
다시 끼리끼리 갈라져
한강교를 건너면서
인천방면으로 그리고 수원방면으로 떠난다
아직 플랫폼에 머문 내 발길 앞에서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하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 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치 못했다는 뜻이다
어느때 어느 곳에서나
길이 이토록 먼 것은
그 이전의 떠남이
그토록 절실했다는 뜻이다
만남은 길보다 먼져 준비되고 있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에 까지 다가와
어느새 철길을
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자욱이 된다.
82. 대꽃 7 / 최두석
물찬 은어가 영산강 상류로 거슬러 오르다 지느러미
스치는 바위. 노령 산줄기 하나 강물에 부딪쳐 일렁이는 금당 마을 바위. 어느 날을 기다려 바위는 자라기 시작했다. 담장의 호박이 자라듯이 그러한 속도로 몸 저리며. 그러면 서 자기 몸 깊슥이 핏줄을 아로새기고 있었다. 강물은 몸 부른 바위를 감돌아 몇십 삭의 나날을 흐르고 이윽고 바위에 균열이 왔다. 점점점 벌어지는 바위틈으로 물은 거센 아우성으로 흐르고 마을의 집이 한 채 두 채 무 너졌다. 강물에 돼지가 떴다. 바위 몸조각도 격류에 휩쓸리 기 시작했다. 몸조각 하나 둘 셋 넷 다섯......마침내 바위 가 낳고 있던 아이조차도, 겨드랑이에 날개 돋친 아이조차 도 강물에 휩쓸려갔다.
83.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군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낄낄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84. 사평역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85. 노숙 /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86.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86-2. 연탄재 - 안도현
발로 차지는 말아라 네가 언제 남을 위해 그렇게 타오른 적이 있었더냐
86-3. 반쯤 깨진 연탄 - 안도현
언젠가는 나도 활할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잔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아 발갛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86-4.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듯이 연탄은,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나는
87. 마음의 짐승 / 이재무
몸의 굴 속 웅크린 짐승 눈뜨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수성, 몸 밖의, 죄어오는 무형의 오랏줄에 답답한 듯 발버둥치네 그때마다 가까스로 뿌리내린 가계의 나무 휘청거리네 오랜 굶주림 휑한 두 눈의 형형한 살기에 그대가 다치네 두툼한 봉급으로 쓰다듬어도 식솔의 안전으로 얼러보아도 도박, 여자, 술로 달래보아도 오오, 마음의 짐승 세운 갈기 숙이지 않네
88. 눈 / 김용택
눈아
눈아
펑펑 내려라
우리 아가
눈 보며
잘도 자게
펑펑 내려라
89. 시다의 꿈 / 박노해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미빛 꿈을 잘라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 피 흐르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아직은 시다 미싱대에 오르고 싶다 미싱을 타고 장군처럼 당당한 얼굴로 미싱을 타고 언 몸뚱아리 감싸 줄 따스한 옷을 만들고 싶다 찢겨진 살림을 깁고 싶다 떨려 오는 온몸을 소름치며 가위질 망치질로 다짐질하는 아직은 시다, 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으로 찬 바람 치는 공단거리를 허청이며 내달리는 왜소한 시다의 몸짓 파리한 이마 위으로 새벽별 빛나다
90. 행려 / 박영근
詩(시) 한 편을 쓰기가 이렇게 어렵다 하필이면 너는 백화점 입구에서 쁘렝땅인지 이랜든지 끝물이 된 옷들을 쎄일하고, 네 목에서 울리는 PCS 벨소리가 오래 허공을 떠돌다 돌아와 나를 울린다 어쩌면 쓰다 만 소설처럼 굴러다니던
네 러시아 기행담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경계가 사라진 백야의 세계와 떠돌이 오퍼상을 유혹하는 무너진 사회주의 뒷골목의 딸라 이야기를 나는 쓰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네가 서 있는 기다림의 밑바닥 다 내려갈 수 없는, 탕진해버린 시간의 무덤 속을 비추고 있는 광고탑의 위용 앞에서 詩(시)란 또 무엇일까 끝없는 행려(行旅)가 있을 뿐 돌아갈 곳이 없다 컨테이너 박스 안을 뒹구는 재고가 된 옷보따리와 그 곁의 새우잠처럼 먹다 남긴 소주병처럼 그 속에서 깨어나지 않는 꿈처럼
91. 우기 / 도종환
새 한마리 젖으며 먼 길을 간다 하늘에서 땅끝까지 적시며 비는 내리고 소리내어 울진 않았으나 우리도 많은 날 피할 길 없는 빗줄기에 젖으며 남 모르는 험한 길을 많이도 지나왔다 하늘은 언제든 비가 되어 적실 듯 무거웠고 세상은 우리를 버려둔 채 낮밤없이 흘러갔다 살다보면 배지구름 걷히고 하늘 개는 날 있으리라 그런 날 크게 믿으며 여기까지 왔다 새 한 마리 비를 뚫고 말없이 하늘 간다
92. 안개 / 기형도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 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 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 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 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銃身)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93. 태아의 잠 1 / 김기택
그녀의 배 위에 귀를 대고 누우면 맑은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작은 숨소리 사이로 흐르는 고요한 움직임이 들린다
따뜻한 실핏줄마다 그것들은 찰랑거린다 때로 갈비뼈 안에서 멈추고
오랫동안 둔중한 울림이 되어 맴돌다가 다시 실핏줄속으로 떨며 스며든다
이 소리들이 흘러가는 곳 어딘가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한 아이가 숨어 있을 것 같다
생각 없는 꿈이 되려고 놀란 눈이 되고 간지러운
손가락 발가락 꿈틀거림이 되려고 소리들은
여기 한 곳으로 모이나보다 이 모든 소리들이
녹아 코가 되고 얼굴이 되려면,
심장이 되고 가슴이 되려면
잠은 얼마나 깊어야 하는 것일까 잠의 힘찬 부력에 못 이겨 아기는
더 이상 숨지 못하고 탯줄이 끊어지도록
떠올라 물결따라 마냥 흔들리고 있다
고기를 잡을 줄 모르는 잎사귀 같은 손으로 부신 눈을 비비고 있다.
94. 뻘 / 함민복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 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 준다. 말랑말랑 힘 말랑말랑 힘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98.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열 걸음 바깥은 물 묻은 풍경들…… 열 걸음의 그 앞은 뿌우연히 피어오르는 무지개 가루뿐…… 거리도, 나무들도, 창도, 벽도 잡으면 꺼질 듯한 물거품의 안팎들…… 우비를 대신하는 파라솔의 홍수 저편 거긴 또 모든 것이 분해되어 허물어지는 포말의 가루…… 포말의 가루 ……
43. 저녁눈 /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44.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45. 내 노동으로 / 신동문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꾀던 그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그 눈물을 달래던 내 어릿광대 표정은 다 무엇인가 이 야위고 흰 손가락은 다 무엇인가 제 맛도 모르면서 밤 새워 마시는 이 술버릇은 다 무엇인가 그리고 친구여 모두가 모두 창백한 얼굴로 명동에 모이는 친구여 당신들을 만나는 쓸쓸한 이 습성은 다 무엇인가 절반을 더 살고도 절반을 다 못 깨친 이 답답한 목숨의 미련 미련을 되씹는 이 어리석음은 다 무엇인가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했던 것이 언제인데
배가 고파 우는 아이야 울다 지쳐 잠든 아이야 장난감이 없어 보채는 아이야 보채다 돌멩이를 가지고 노는 아이야
네 어미는 젖이 모자랐단다 네 아비는 벌이가 시원치 않았단다 네가 철나기 전 두 분은 가시면서 어미는 눈물과 한숨을 아비는 매질과 술주정을 벼 몇 섬의 빚과 함께 남겼단다 뼛골이 부서지게 일은 했으나 워낙 못사는 나라의 백성이라서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야 사채기만 가리지 않으면 성별을 알 수 없는 아이야 누더기옷의 아이야 계집아이는 어미를 닮지 말고 사내아이는 아비를 닮지 말고 못 사는 나라에 태어난 죄만으로 보다 더 뼛골이 부서지게 일을 해서 멀지 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
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 멀지 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 잘 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명심할 것은 아이야 일가친척 하나 없는 아이야 혈단신의 아이야 너무 외롭다고 해서 숙부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 외숙이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가지고 노는 돌멩이로 미운 놈의 이마빡을 깔 줄 알고 정교한 조각을 쪼을 줄 알고 하나의 성을 쌓아 올리도록 하여라 맑은 눈빛의 아이야 빛나는 눈빛의 아이야 불타는 눈빛의 아이야
57. 노을 / 조태일
저 노을 좀 봐.
저 노을 좀 봐
사람들은 누구나
해질녘이면 노을 한 폭 씩
머리에 이고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서성거린다.
쌀쌀한 바람 속에서 싸리나무도
노을 한 폭씩 머리에 이고
흔들거린다.
저 노을 좀 봐. 저 노을 좀 봐.
누가 서녘하늘에 불을 붙였나.
그래도 이승이 그리워
저승 가다가 불을 지폈냐.
이것 좀 봐. 이것 좀 봐.
내 가슴 서편 쪽에도
불이 붙었다.
58. 저녁 바다와 아침 바다 / 최하림
광산촌의 여인은 보고 있었다 물에 뜬 붉은 바다
날빛 새들이 날아오르고 물결에 별들이
씻겨져 제 모습으로 갈앉고
상수리나무가 한 그루 흔들리고 있었다
키 작은 사내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가
일천 피트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으나
가도가도 막막한 어둠뿐 모두 다 뜨내기와 갈보뿐
낡아빠진 궤도차가 달리는 길목에서
우리들은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젓가락을 두들기며 노래
불렀으나, 신참내기 전도사도 노래불렀으나 가슴의
멍울은 풀리지 않고 싸움도 끝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슬픔만 달빛이 내리는
나무 그늘이라든가 산등에서 아주 낮게
흘러내리고 어떤 적의도 없이 흘러내리고
밤이 가고 아침이 오고
새들 무리가 무의미하게 날아오르고
물결에 흔들리는 여인의 얼굴 위로
상수리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59. 파랗게, 땅 전체를 / 정현종
1
파랗게, 땅 전체를 들어올리는
봄 풀잎.
하늘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고 있는 기둥
봄 풀잎
2
그림 속의 여자도 개구리도
꿈틀거리는
봄바람 속
내 노래의 물소리는 저
풀잎들 가까이 흘러가야지
60. 항토에 내리는 비 / 이가림
동풍이 목놓아 소리치는 날
빈 창자를 쓰리게 하는 소주 마시며
호남선에 매달려 간다
차창 밖 바라보면
달려와 마중하는 누우런 안개
호롱불의 얼굴들은 왜 떠오르지 않는가
언제나 버려져 있는 고향땅
단 한번 무쇠낫이 빛났을 때에도
모든 목숨들은 언문으로 울었을 뿐이다
논두렁 밭두렁에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아우성처럼 내리는 비
캄캄한 들녘 어디선가녹두장군의 발짝 소리 들려온다
하늘에 직소(直訴)하듯 치켜든 말없이 젖어 있는 풀들의 머리
61. 구미호 / 유안진
어렵사리 서럽사리 사노라 사랑하노라,
천년을 묵어도 아니 풀릴 원한으로,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가 되어,
꽃피는 서낭고개 타고 앉아 캉캉 웃었으면,
서리치는 밤하늘을 피칠하며 새웠으면.
62.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 노향림
바닷바람 속에는 치아가 누렇게 삭은 작은 꽃이 웃지 않는다.
얼굴가린 채 흔들린다.
지폐 몇 닢이 옛날 옛적처럼 묶였다.
목욕재계하고 술잔 올리듯 몇 구의 죽음이 엎드려있다. 후투티새가 오지않는 압해도였다.
63. 아버지의 빛 5 / 신달자
세월이 흐른 다음 그리움의 손끝이 펼쳐든 아버지의 일기장 온몸으로 쓴 유서의 간절한 핏자국을 본다. 한자 한자 생명을 헐어 쓴 병상일지 그 안에 폭우로 뒤척이는 강물 넘실거려 나는 미처 몇줄을 못 읽고 몸이 젖는다.
저기 저쪽이다! 생의 좌표로 힘차게 방향을 가리키는 어버지의 분명한 손끝 그 너머 일출보다 장엄한 빛이 터진다
아버지의 육필 몇줄에 술렁이던 어둠 쉽게 물러가고 어둡 눈이 밝아지는 광명한 유산이 내 앞에 아흔 아홉칸 큰 궁궐로 서 있었다
64. 풀잎 / 강은교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 나는 알고 있어요. 아주 뒷날 눈비가 어느 집 창틀을 넘나드는지도. 늦도록 잠이 안 와 살(肉) 밖으로 나가 앉는 날이면 어쩌면 그렇게도 어김없이 울며 떠나는 당신들이 보여요. 누런 베수건 거머쥐고 닦아도 닦아도 지지 않는 피(血)들 닦으며 아,하루나 이틀 해 저문 하늘을 우러르다 가네요. 알 수 있어요. 우린 땅 속에 다시 눕지 않아도.
65. 남자를 위하여 / 문정희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몸을 던져오는
거대한 파도를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것들뿐
눈에 띌까 ,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뿐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
여권 운동가들이 저지른 일 중에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세상에서
멋진 잡놈들을 추방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핑계 대기 쉬운 말로 산업사회 탓인가.
그들의 빛나는 이빨을 뽑아내고
그들의 거친 머리칼을 솎아 내고
그들의 발에 제지의 쇠고리를
채워 버린 것은 누구일까.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여자들은 누구나 마음속 깊이
야성의 사나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걸.
갈증처럼 바람둥이에게 휘말려
한평생을 던져 버리고 싶은 걸.
안토니우스 시저 그리고
안록산에게 무너진 현종을 봐.
그뿐인가, 나폴레옹 너는 뭐며 심지어
돈주앙, 변학도, 그 끝없는 식욕을
여자들이 얼마나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 어찌된 일이야. 요새는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
때 묻고 약아빠진 졸개들은 많은데
불꽃을 찿아 온 사막을 헤매이며
검은 눈섭을 태우는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 멸종 위기네.
66.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가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67.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는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위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68. 밤 / 이시영
밤은 먼 들의 바람을 몰고 와
십오층 빌딩의 옥상에 부려 놓는다.
거세게 부딪는 바람소리 들으면
나는 빈들로 나아가
한 마리 성난 사랑이 되고 싶다.
그러나 밤은 가슴에 더욱 큰 바람을 안고와
다시 한번 난간을 들이받고
피 흘리며 들판을 헤매다가
새벽녘 가장 강한 폭풍이 되어
빛나는 눈동자를 태어나게 한다.
69.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흐르는 것이 어디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70. 산정묘지 1 / 조정권
겨울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의 일각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에 서는 것. 그러나 한 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하나의 형상 역시 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 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 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 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 나의 영혼이 이 침묵 속에서 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 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 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 물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 주리.
여름 내내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하여 계곡을 울리며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들은 얼어붙어 있다. 계곡과 계곡 사이 잔뜩 엎드려 있는 얼음 덩어리들은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해 있다. 결빙의 바람이여, 내 핏줄 속으로 회오리 치라.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나의 전신을 관통하라. 점령하라. 도취하게 하라. 산정의 새들은 마른 나무 꼭대기 위에서 날개를 접은 채 도취의 시간을 꿈꾸고 열매들은 마른 씨앗 몇 개로 남아 껍데기 속에서 도취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빗방울과 입맞추던 뿌리는 얼어붙은 바위 옆에서 흙을 물어뜯으며 제 이빨에 도취하고 바위는 우둔스런 제 무게에 도취하여 스스로 기쁨에 떨고 있다.
보라, 바위는 스스로의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허나 하늘은 허공에 바쳐진 무수한 가슴. 무수한 가슴들이 소거된 허공으로, 무수한 손목들이 촛불을 받치면서 빛의 축복이 쌓인 나목의 계단을 오르지 않았는가. 정결한 씨앗을 품은 불꽃을 천상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며 나의 눈은 도취의 시간을 꿈꾸지 않았는가. 나의 시간은 오히려 눈부신 성숙의 무게로 인해 침잠하며 하강하지 않았는가. 밤이여 이제 출동 명령을 내리라.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나의 핏줄을 나의 뼈를 점령하라, 압도하라, 관통하라.
한때는 눈비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그리고 다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상으로 오던 나날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헛된 휴식과 오랜 기다림 지치고 지친 자의 불면의 밤을 내 나날의 인력으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둠은 존재의 처소에 뿌려진 생목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50. 정신과 병동 / 마종기 51. 어물어 벙그는 알밥처럼 / 정진규 52. 유랑악사 / 이근배 53. 벼 / 이성부 54. 긴 봄날 / 허영자 55. 오래된 골목 / 천양희 56. 한국의 아이 / 황명걸 57. 노을 / 조태일 58. 저녁 바다와 아침 바다 / 최하림 59. 파랗게, 땅 전체를 / 정현종 60. 항토에 내리는 비 / 이가림 61. 구미호 / 유안진 62.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 노향림 63. 아버지의 빛 5 / 신달자 64. 풀잎 / 강은교 65. 남자를 위하여 / 문정희 66.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67.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68. 밤 / 이시영 69.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70. 산정묘지 1 / 조정권 71. 동두천 1 / 김명인 72. 독직 / 박시교 73. 맹인부부가수 / 정호승 74.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 김남주 75.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76. 선림원지에 가서 / 이상국 77. 남해 금산 / 이성복 78. 북어 / 최승호 79. 밤 미시령 / 고형렬 80. 환한 걸레 / 김혜순 81. 철길 / 김정환 82. 대꽃 7 / 최두석 83.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84. 사평역에서 / 곽재구 85. 노숙 / 김사인 86.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87. 마음의 짐승 / 이재무 88. 눈 / 김용택 89. 시다의 꿈 / 박노해 90. 행려 / 박영근 91. 우기 / 도종환 92. 안개 / 기형도 93. 태아의 잠 1 / 김기택 94. 뻘 / 함민복 95. 저 숲에 누가 있다 / 나희덕 96.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 박라연 97. 그리운 시냇가 / 장석남 98. 선운사에서 / 최영미 99. 가재미 / 문태준 100.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 김선우
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호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2. 복종 / 한용운
남들이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라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3.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4. 송별 / 이병기
재너머 두서너 집 호젓한 마을이다
촛불을 다시 혀고 잔들고 마주 앉아
이야기 끝이 못나고 밤은 벌써 깊었다
눈이 도로 얼고 산머리 달은 진다
잡아도 뿌리치고 가시는 이 밤의 정이
십리가 못되는 길도 백리도곤 멀어라
5.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6. 깃발을 내리자 / 임화
노름꾼과 강도를
잡던 손이
위대한 혁명가의
소매를 쥐려는
욕된 하늘에
무슨 깃발이
날리고 있느냐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가난한 동포의
주머니를 노리는
외국 상관의
늙은 종들이
광목과 통조림의
밀매를 의논하는
폐 왕궁의
상표를 위하여
우리의 머리 위에
국기를 날릴
필요가 없다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살인의 자유와
약탈의 神聖이
주야로 방송되는
남부조선
더러운 하늘에
무슨 깃발이
날리고 있느냐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7. 눈 내리는 보성의 밤 / 이찬
시월 중순이언만 함박눈이 퍽퍽
보성의 밤은 한치, 두치, 전설속에 깊어간다
깊어가는 밤거리엔 '누구얏'소리 잦아가고
압록강 굽이치는 물결 귓가에 옮긴 듯 우렁차다
江岸 강안엔 錯雜 착잡하는 경비등 경비등
그 속에 번쩍이는 森森 삼삼한 총검
포대는 산벼랑에 숨죽은 듯 엎드리고
그 기슭에 나룻배 몇 척 언제나의 도강을 정비코 있다
오, 북만의 15도구 말없는 산천이여
어서 크낙한 네 비밀의 문을 열어라
여기 오다가다 깃들인 설움 많은 한 사나이
들어 목메던 그 빛, 그 소리로 한껏 즐거워 보려노니
8.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9.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모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힌 나미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 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공주처럼 지처서 도라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10. 산수도 / 신석정
숲길 짙어 이끼 푸르고
나무 사이사이 강물이 희어...
햇볕 어린 가지 끝에 산새 쉬고
흰 구름 한가히 하늘을 거닌다.
산 까마귀 소리 골짝에 잦은데
등 넘어 바람이 넘어 닥쳐와...
굽어든 숲길을 돌아서 돌아서
시냇물 여운이 옥인 듯 맑아라.
푸른 산 푸른 산이 천 년만 가리
강물이 흘러 흘러 만 년만 가리
산수는 한 폭의 그림이냐.
11. 그리움 1. /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그리워
긴 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2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딹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12.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13. 북방의 길 / 오장환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
14.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어지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하고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깎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매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임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가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15. 북쪽 / 이용악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女人)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山脈)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른다
16. 장날 / 노천명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17. 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시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18. 설야 /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밑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양 흰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19. 풍장 / 이한직
사구(砂丘) 위에서는
호궁(胡弓)을 뜯는
님프의 동화가 그립다.
계절풍이여
카라반의 방울 소리를
실어다 다오.
장송보(葬送譜)도 없이
나는 사구 위에서
풍장이 되는구나.
날마다 밤마다
나는 한개의 실루엣으로
괴로워했다.
깨어진 오르간이
묘연(杳然)한 요람(搖籃)의 노래를
부른다, 귀의 탓인지.
장송보도 없이
나는 사구 위에서
풍장이 되는구나.
그립은 사람아.
20. 이별가 / 박목월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 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21. 해 / 박두진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뙨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뙤고 고은 날을 누려 보리라.
22. 古寺 1 / 조지훈
木漁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西域 萬理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古寺 2 / 조지훈
목련꽃 향기로운 그늘 아래
물로 씻은 듯이 조약돌 빛나고
흰 옷깃 매무새의 구층탑 위로
파르라니 돌아가는 신라 천년의 꽃구름이여
한나절 조찰히 구르던
여울 물소리 그치고
비인 골에 은은히 울려오는 낮 종소리.
바람도 잠자는 언덕에서 복사꽃 잎은
종소리에 새삼 놀라 떨어지노니
무지개빛 햇살 속에
의희한 단청丹靑은 말이 없고......
23.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4. 나막신 / 이병철
은하 푸른 물에 머리 좀 감아 빗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목숨 수(壽)자 박힌 정한 그릇으로
체할라 버들잎 띄워 물 좀 먹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삽살개 앞세우곤 좀 쓸쓸하다만
고운 밤에 딸그락딸그락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25.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피리불며 봄언덕 고향그리워 피ㅡㄹ닐니리 보리피리불며 꽃청산 어린때그리워 피ㅡㄹ닐니리
보리피리불며 인환의거리 인간사그리워 피ㅡㄹ닐니리
보리피리불며 방랑의기산하(幾山河) 눈물의언덕을지나 피ㅡㄹ닐니리
26.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一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를 입에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27. 묵을 갈다가 / 김상옥
묵을 갈다가
문득 수몰된 무덤을 생각한다.
물 위에 꽃을 뿌리는 이의 마음을 생각한다.
꽃은 물에 떠서 흐르고
마음은 춧돌을 달고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묵을 갈다가
제삿날 놋그릇 같은 달빛을 생각한다.
그 숲속, 그 달빛 속 인기척을 생각한다.
엿듣지 마라 엿듣지 마라
용케도 살아 남았으니
이제 들려줄 것은 벌레의 울음소리밖에 없다.
밤마다 밤이 이스토록
묵을 갈다가
벼루에 흥건히 괴는 먹물
먹물은 갑자기 선지빛으로 변한다.
사람은 해치지도 않았는데
지울 수 없는 선지빛은 온 가슴을 번져난다.
28.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29.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30. 목마와 숙녀 / 박인환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 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31. 낙엽끼리 모여 산다 / 조병화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어떤 사람은 시에서 그려주는 그림과 그 그림을 통하여 전달되는 메시지를 가지고 답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시가 추구하는 시의 사명적 또는 임무의 측면에서 답을 하는 등 그야 말로 그 정의를 내리는 답이 다양 하다.
논어의 시경(詩經)에서는 시를 짓는 마음과 자세로 사무사(思無邪)를 이야기 하는데 이 사무사가 바로 시의 정의가 되는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무사(思無邪)란 깨끗한 마음으로 추호도 흐트러지지 않게 하면서 잡되거나 간사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그의 시학에서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용어를 사용 하였다.
이 용어는 정화라는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는 한편, 몸안의 불순물을 배설한다는 의학적 술어 이나 시의 측면에서는 진정한 비극이 관객에게 주는 효과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은유로 이 효과를 통하여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행동이나 말을 통하여 발산(배설)함으로써 정신의 균형이나 안전을 회복(정화)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시의 정의를 놓고 볼 때 그 속성적 측면에서 아름다움과 진실을 시의 정의 시의 개념 시의 역할 등 모든 측면의 답으로 정의 할 수 있고 독자는 시를 통하여 힐링을 한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좋은시란 위에서 언급한 시의 개념, 역활에 가장 근접하게 창작된 시라할 수 있고 시인이 되는것 역시 이러한 정신을 살려서 시를 창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좋은시란?
다음은 최근에 출간한 오세영 시집 『바람의 아들들』 표4의 글이다. 깊이 새겨 음미해 볼 내용으로 특히, 신기(新奇)와 효빈(效顰)의 유행에 민감한 요즘의 신진들에게는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지표가 될 만한 내용이다.
이 내용을 먼저 음미해 본 후 좋은시에 대한 나름의 시론을 펼칠까 한다.
<시 쓰기에도 네 가지 유형이 있지 않을까 한다.
첫째 쉬운 내용을 쉽게 쓴 시.
둘째 쉬운 내용을 어렵게 쓴 시.
셋째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쓴 시.
넷째 어려운 내용을 쉽게 쓴 시.
첫째는 산문의 수준에 머물러 있어 아직 유치한 단계이다.
둘째는 능력 부족이거나 남을 속이려는 자의 작품이다.
셋째는 자기도 모르는 것을 쓴 것이니 의욕은 과하나 머리가 아둔한 경우이다.
넷째는 시에 대해 나름으로 달관한 경지에 든 시인의 작품이다.>
위의 내용을 보면 어떤 시가 좋은 시라는 것을 설명이 필요 없어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작대기 시인들은 위의 셋째 유형의 시가 최고의 시라고 평하고 쉽게 창작된 시를 폄하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한숨을 쉴 수 밖에 없다. 시의 사명은 무엇인가? 독자에게 힐링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힐링을 주기 위해 아름다움과 진실을 배설해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과 진실이란 시에서 이미지와 메시지가 어우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할것이다. 즉, 이미지가 아름다움이고 메시시가 진실 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시란 이 아름다움과 진실이 균형있게 짜여 졌을 때 좋은시라하고 독자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메시지가 없더라도 아름다움 즉, 이미지 그 자체가 정말 뛰어나게 그려 졌어도 좋은시로 평을 받는다. 또한 이와 반대로 이미지는 별로로 즉 아름다움은 표현이 좀 빈약해도 메시지 즉, 시가 담고 있는 철학이 감동을 주는 진실이 엿보이면 이 또한 아주 좋은시로 평을 받는다. 이 두조건을 충족 시키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하여 어느 한쪽 만이라도 흡족하다면 그 시는 성공작이 될것이다.
그리고 메시지 하면 보통 앙가지망적 사고인 참여시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흔히 말하는 메시지란 우리의 삶 자체에서 느끼는 의미 그 자체임을 밝힌다.
3.시인이 되기 위한 길
시인이 되기 위한 길은 좋은 시를 창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서 작금의 문단현실의 타락된 정신을 갖지 않는것이다. 즉 선비 정신으로 올곧은 시 정신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시학에서
<시인은 죽어서 땅에 육신을 남기고 작품은 지상에 띄우고 혼은 하늘에서 영생한다.>했다.
이러한 시인이 되기 위한길 그리고 좋은시를 창작해 내기 위한 3가지 원칙을 제시 하고 있는데 흔히 이를 <시인이 되기위한 3다의 원칙>이라고들 말한다. 그 원칙을 소개하면
1)많이 읽어라/자신의 정서에 맞는 시인을 정하고 그 시집을 집중해서 읽어라.
2) 많이 생각하라/남의 시에 등장하는 세련된 표현을 곰곰히 생각하고 익숙해질 때까지 외우고, 그 작품을 내 방식으로 바꿔서 써보라.
모든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한다.
3)많이 써라/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줄이고 줄여서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어법으로 계속 써 보라. 언젠가는 당신만의 '꼴'과 '문채'가 생길 것이다.
4.결어
이상으로 좋은시 짓기와 시인이 되는 길을 서술 했다
시인이 되는 길 자체가 좋은시를 짓는 것이지만
아무리 좋은 시를 짓는 시인이라도 시인의 길, 선비 정신에 충실치 못 할 때는 시역시 좋은시로 평가받지 못함을 새겨야 할 것을 당부하면서 소고를 마친다.
주)
효빈 [效顰/效矉]
멋모르고 남의 흉내를 내거나 남의 결점을 장점인 줄 알고 따라함. 중국 월(越)나라의 미녀 서시(西施)가 배가 아파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어떤 추녀가 보고, 미인은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도 얼굴을 찡그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같은 말을 수없이 되풀이해도 참을성을 잃지 않습니다. 사랑은 질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다른 이와 경쟁하려 하지 않고 모방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잘난 체하지도 자기를 내세우지도 자기 업적을 과시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용서를 청하지 않을 정도로 교만하지도 나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며 으스대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도, 야비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그대는 그를 위해, 그는 그대를 위해 존재하며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주저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성급하게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한 번만 더 그렇게 하기만 해봐라." 사랑은 용서합니다. 사랑은 누구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용서하고 새로운 출발을 인정하며 선입견이나 소문으로 누구를 저울질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홧김에 한 말은 가슴에 품지 않으며 입을 다물어버려 상대방이 어쩔 수 없이 항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사랑은 잘못을 잘못으로 되갚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오류를 덮어두지 않고 명확한 해결책을 내놓으며 용서합니다. 사랑은 진리를 팔아 평화를 사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하지 않으며 사랑 없는 진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 사랑은 이해 못 할 사람과도 얼굴을 마주할 수 있으며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 앞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말이 미끼인 줄 알면서도 속아주고, 믿어줍니다. 사랑은 멋진 말이 아니라 사랑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가 어떠한 약점을 가졌다 해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품어줍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뎌냅니다. 사랑은 부당한 것도 견뎌내며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을 때도 폐허 위에 거대한 희망이 솟아오름을 봅니다.
82. 방랑의 노래 / 예이츠
머릿속에서 타는 불 있어
나 개암나무 숲으로 갔네.
나뭇가지 꺾어 껍질 벗기고
갈고리 바늘에 딸기 꿰고 줄에 매달아
흰 나방 날고
나방 같은 별들 멀리서 반짝일 때,
나는 냇물에 그 열매를 던져
작은 은빛 송어 한 마리 낚았네.
돌아와 그걸 마루 바닥에 놓고
불을 피우러 갔지.
뭔가 마룻바닥에서 바스락거렸고
누가 내 이름을 불렀네.
송어는 사과꽃을 머리에 단
어렴풋이 빛나는 소녀가 되어
내 이름을 부르곤 뛰어나가
빛나는 공기 속으로 사라졌네.
낮은 땅 높은 땅 헤매느라고
비록 나 늙었어도,
그녀 간 곳을 찾아내어
입 맞추고 손 잡으리.
그리하여 얼룩진 긴 풀 사이를 걸으며
시간과 세월이 다할 때까지 따리라,
달의 은빛 사과
해의 금빛 사과를.
83. 당신이 나를 영원하게 하셨으니 / 타고르
당신이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그것은
당신의 기쁨 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비우고 또 비우시고 끊임없이
이 그릇을 싱싱한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이 가냘픈 갈대 피리를 당신은 언덕과 골짜기
넘어 지니고 다니셨고 이 피리로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부르십니다.
당신 손길의 끝없는 토닥거림에 내 가냘픈 가슴은
한 없는 즐거움에 젖고 막히었던 말문이
열립니다.
당신의 무한한 선물은 이처럼 작은
내 손으로만 옵니다.
세월은 흐르고 당신은 여전히 채우시고
그러나 여전히 채울 자리는 남아 있습니다.
84. 높은 곳을 향해 / 브라우닝
위대한 사람이 단번에 그와 같이
높은 곳에 뛰여오른것은 아니다.
동료들이 단잠을 잘 때
그는 깨여서 일에 몰두했던것이다.
인생의 묘미는 자고 쉬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한걸음 한걸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다.
무덤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자고 쉴수 있다.
자고 쉬는것은 그때 가서 실컷 하도록 하자.
살아있는 동안은 생명체답게 열심히 활동하자.
잠을 줄이고 한걸음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이 내딛자.
높은 곳을 향해,위대한 곳을 향해
85. 진정한 여행 /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수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86. 선물 / 아폴리네르
당신이 만일 바라기만 하신다면
나는 당신에게 드리려 하노라.
아침, 나의 그 명랑한 아침과
또한 당신이 좋아하는
나의 빛나는 머리카락과
나의 푸르스름한 금빛 눈을.
당신이 만일 바라기만 하신다면
나는 당신에게 드리려 하노라.
따사로운 햇살 비치는 곳에서
아침에 눈 뜰 때 들려오는 모든 소리와
그 근처에 있는 분수에서 들리는
흐르는 물줄기의 감미로운 소리를.
이윽고 찾아들 저녁 노을과
내 쓸쓸한 마음으로 해서 얼룩진 저녁.
또한 조그만 내 손과
그리고 당신의 마음 가까이에
놓아 두어야 할
나의 마음을
87. 인생 / 플라텐
세상이 어떤 것인가를 알 사람 누구랴. 사람들은 중병에 든 환자처럼 일생의 반을 꿈 속에서 지내며 어리석은 사람들과 허튼 말을 나누며
사랑이라는 번민에 빠져 괴로워하느니
별로 생각도 못하고 하는 일도 없이 건들건들 놀다가 죽는 것이라 하네.
88. 비가 / 알프레드 뮈세
나 죽거든, 사랑하는 친구여,
내 무덤 위에 버드나무를 심어 다오。
그늘진 그 가지를 나는 좋아하느니
창백한 그 빛 또한 정겹고 그리워
내 잠들 땅위에
그 그늘 사뿐히 드리워 다오。
89. 슬픔 / 알프레드 뮈세
나는 힘과 생명을 잃어버렸다
친구들과 쾌활함을 잃었다.
천재성을 믿게 했던 자존심도 잃었다.
진리를 접했을 때,
그것이 나의 벗이라 믿었으나,
진리를 이해하고 느꼈을 때,
이미 그것에 진저리 치고 있었다.
하지만 진리는 영원한 것이니
진리를 모르고 산 사람들은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셈이다.
신이 말씀하시니, 우리는 답해야 한다.
세상에서 내게 남은 유일한 재산은
이따금 눈물 흘렸다는 것.
90. 저 산 지나 / 붓세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길래
남 따라 행복을 찾아 갔건만
눈물 지으며 돌아왔네.
산 너머 저쪽 하늘 저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91. 한 가슴의 깨어짐을 막을 수만 있다면 / 디킨슨
내가 말인 한 가슴의 깨어짐을 막을 수 있다면
나의 삶은 헛되지 않아요.
내가 만일 한 생명의 아픔을 덜어주고
고통 하나를 식혀줄 수 있다면
그리고 또한 힘이 다해가는 로빈새 한 마리를
그 둥지에 다시올려 줄 수만 있어도
나의 삶은 진정 헛되지 않아요.
92. 사랑 / 크라우디우스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은 아무리 이를 막아도
모든 것 속으로 뚫고 들어간다.
사랑은 영원히
그 날개를 퍼득이고 있다.
93. 석양 / 롱펠로우
여름의 태양이 기울기 시작하니
이제는 나무 꼭대기만이 붉게 빛나는구나
마을의 교회 지붕 위에 있는 바람개비만이
지는 해에 비치어 불타고
이제는 모두가 어둠에 잠기고 있다.
아 아름다워라 여름 날이여 !
너는 하루 종일 무엇을 주고
무엇을 가져 가려느냐?
죽음과 삶 사랑과 미움 행복과 슬픔
슬픈 가슴과 즐거운 마음.
94. 그리움이란 / 릴케
그리움이란 바로 이런 것 출렁이는 파도같은 삶
그러나 시간속에 고향은 없는 것
소망이란 바로 이런 것
스치는 순간들이 영원과
나누는 아주 진실한 대화
그리고 산다는 건 바로 이런 것
온갖 시간들 중에서도
가장 고독한 순간이
어제 하루를 뚫고 우뚝 솟아 오를때까지
다른 시간들과는 또 다른 미소를 짓고
영원 속에서 침묵하고 마는 것
95. 이별 / 랜더
다툴 값어치가 없기에
싸움 없이 살았다
자연을 사랑했고
또 예술을 사랑했다
두 손을
생명의 불 앞에 쪼이였으나
불은 꺼져가고
이제............
미련 없이
나 떠나련다
96. 메리에게 / 클레어
너는 나와 함께 자고 함께 눈 뜨는데
나 있는 곳에는 없구나
나는 내 품에 너를 향한 그리움 가득 안고
한갓 공기만을 품을 따름이다
네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네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고
아침이나 낮이나 그리고 또 밤에도
내 입술은 언제나 네 입술에 닿아 있다
97. 오늘 / 칼라일
오늘을 사랑하라
어제는 이미 과게 속에 묻혀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날이라네.
우리가 살고 있는 날은 바로 오늘,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날은 오늘 ,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날은 오늘 뿐,
오늘을 사랑하라 .
오늘에 정성을 쏟아라. 오늘 만나는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라.
오늘은 영원속의 오늘, 오늘 처럼 소중한 날도 없다. .
오늘처럼 소중한 시간도 없다.
오늘을 사랑하라 .
어제의 미련을 버려라. 오지도 않는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
우리의 삶은 오늘의 연속이다.
오늘이 30번 모여 한 달이 되고,
오늘이 365번이 모여 일 년이 되고
오늘이 3만 번이 모여 일생이 된다.
오늘 / 칼라일
여기에 또다른
희망찬 새 날이 밝아 온다.
그대는 이 날을
헛되이 흘려 보내려 하는가?
우리는 시간을 느끼지만
누구도 그 실체를 본 사람은 없다.
시간은 우리가 자칫
딴 짓을 하는 동안
순식간에 저만치 도망처 버린다.
오늘 또 다른
새날이 밝아왔다.
설마 그대는 이 날을
헛되이 흘려 보내려 하는 것은 아니겠지?
98. 담에 핀 한 송이 꽃 / 테니슨
담에 핀 한 송이 꽃을 금 간 틈바구니에서
뿌리째 뽑아 내 손에 들었네. 이 작은 꽃, 내 만일 네 뿌리까지 모두 알 수 있다면 신과 사람도 무언지 알 수 있으리.
누구든 떠날 때에는 한여름에 모아 둔 조개껍데기 가득 담긴 모자를 바다에 던지고 머리카락 휘날리며 떠나야 한다 사랑을 위해 차린 식탁 바다에 뒤엎고 잔에 남은 포도주는 파도에 따르고 남은 빵도 물고기에게 던져 주어야 한다 피 한 방울 뿌려서 바다에 섞고 나이프를 파도에 띄우고 구두를 물 속에 가라앉혀야 한다
심장에 십자가를 달고 머리카락 휘날리며 떠나야 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는 것을 그날이 언제인가는 묻지 말라
104. 사랑의 철학 / 셀리
샘물은 강물과 하나 되고 강물은 바다와 하나 되며 하늘의 바람은 끊임없이 다정한 정으로 뒤섞인다 세상에 홀로인 것 없으니 만물이 신의 섭리 따라 한 마음으로 만나 섞이기 마련이라 내가 왜 그대와 섞이지 못하랴 보라 산이 높은 하늘과 입맞추고 파도가 서로를 껴안는다 누이꽃이 아우꽃을 경멸하면 누이꽃은 용서받지 못하리라 햇빛이 대지를 얼싸안고 달빛은 바다와 입맞춘다 허나 달디단 이 모든 것 무슨 소용 있으랴 그대 내게 입맞추지 않으면
105. 내사랑을 의심하지 말아요 / 다니엘
당신을 생각할 때면 사랑하는 마음이 다시 솟는 걸요.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하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예요.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당신의 손을 잡고 말하는 거예요.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의 삶에서 당신을 얼마나 원하는지. 부탁이에요.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아요. 나의 사랑은 지금도 우리가 처음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던 그날처럼 진실하니까요.
106. 우리 사랑은 / 소네트
어느날 나는 그녀의 이름을 백사장에 썼으나
파도가 밀려와 씻겨 버리고 말았네.
나는 또다시 그 이름을 모래 위에 썼으나
다시금 내 수고를 삼켜 버리고 말았네.
그녀는 말하기를 우쭐대는 분, 헛된 짓을 말아요.
언젠가 죽을 운명인데 불멸의 것으로 하지 말아요.
나자신도 언젠가는 파멸되어 이 모래처럼 되고
내 이름 또한 그처럼 지워지겠지요.
나는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소. 천한 것은 죽어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당신은 명성에 의해 계속 살게 되오리다.
내 노래는 비할 바 없는 당신의 미덕을 길이 전하고
당신의 빛나는 이름을 하늘에 새길 것이오.
아아, 설령 죽음이 온 세계를 다스려도
우리 사랑은 남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오리다.
106. 자주 보는꿈 / 베를렌
이상하게도 가슴 설레는 이 꿈을 나는 자주 꿉니다.
내가 사랑하고,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는
그러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한 여자입니다.
볼 적마다 항상 다르나 그렇다고 전혀 다른 사람도 아닌
그러면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이해해 주는 한 여자입니다.
그 여자에게만 내 마음은 환히 드러나 보입니다.
그 여자에게만 내 마음은 알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창백한 내 이마의 진땀을 그 여자만이
그녀의 눈물로 깨끗이 해 줄 수 있습니다.
그 여자의 머리카락 빛깔도
사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여자의 이름조차 생각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다만 한결같은 사랑만 속삭이던 옛 연인들의 이름처럼
그렇게 고운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는.
그 여자의 눈짓은 조각상의 그것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멀리 끊어질 듯 그러나 엄숙하게 울려오는
지금은 입 다물어 버린 그리운 목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107. 동경 / 실러
차디찬 안개가 짓누르고 있는 아, 이 골짜기로부터 출구를 찾을 수 있다면야 아, 나는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영원히 젊고도 가없이 푸른 그곳의 아름다운 언덕을 본다. 아, 내게 날개가 있다면 그 언덕에 언제라도 갈 수 있으련만.
나는 듣는다 천국으로부터 들려오는 감미로운 소리의 합창을. 가벼운 바람은 나에게로 감미로운 향내음을 실어온다. 짙은 녹음 사이에서 하늘거리며 불타는 황금빛 과일을 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는 꽃들은 겨울철에도 남아 있다.
그곳, 영원한 햇빛 속은 내가 살기에 얼마나 많은 활기를 줄 것인가! 그러나 미친 듯 그 사이에 굽이치는 강물의 큰 물결이 나를 막는다. 파도가 넘실거리 때마다 내 영혼은 겁을 내고 있다.
흔들리는 배 한 척을 보았으나 아, 그러나 사공이 없다. 주저말고 용기 내어 타 보자. 이제 돛을 펼쳐 나는 아름다운 그의 나라로 가야 한다. 신들은 담보를 받지 않은 까닭에 그대는 믿고 모험을 해야 한다. 다만 놀라움만이 그대와 나를 아름다운 나의 나라로 데려갈 것인가!
108. 산 비둘기 / 콕토
두 마리의 산비둘기가
상냥한 마음으로
사랑을 하였답니다
그 나머지는 차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109. 연인 곁에서 / 괴테
태양이 바다에 옅은 빛을 비출 때
나는 너를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샘물위에 비출 때
나는 너를 생각한다.
먼 길 위에 먼지가 일어날 때
나는 너를 떠올린다.
깊은 밤, 좁은 오솔길에
낯선이들이 비틀거리며 다가올 때
그곳에서 아득한 소리를 내며 파도가 일어날 때
나는 너의 소리를 듣는다.
모든것이 침묵속에 있을 때
가만히 숲속으로 가서 나는 때때로
바람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너와 함께 있다.
너는 아직도 멀리 있지만
내게는 가깝구나..
태양이 지고 이어 별빛이 반짝인다.
아! 그곳에 네가 있다면!
110. 붉고 붉은 장미 / 번즈
아, 내 사랑은 유월에 갓 피어난 새빨간 장미 아, 내 사랑은 음률 곱게 울리는 멜로디. 내 고운 소녀여, 그대 고운 그 모습 마음 속 깊이 사무쳐 모든 바다가 마른다 해도 그대여 내 사랑 변함없으리. 온 세상의 바다가 모두 말라 버리고 바위가 햋빛에 녹아 없어진다 해도 내 목숨 다할 때까지 그대여 내 사랑 변함없으리. 내 사랑 그대여, 잘 있어요
잠시 헤어질 동안이지만 그대 부디 잘 있어요 나 다시 돌아오리라 내 사랑이여, 길은 아득히 멀다 하지만.....
111. 나의 마음을 위해서라면 / 파블로 네루다
나의 마음을 위해사라면 당신의 가슴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나의 날개로 충분합니다
당신의 영혼 위에서 잠들고 있던 것은
나의 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갑니다
매일의 환상은 당신 속에 있습니다
꽃관에 맺혀 있는 이슬처럼
당신은 사뿐히 다가옵니다
당신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당신은 지평선을 파들어갑니다
그리고는 파도처럼 영원히 떠나갑니다
소나무 돛대처럼
당신은 바람을 통해 노래한다고
나는 말했습니다
그들처럼 키가 크고 말이 없지만
길 떠난 나그네처럼
갑자기 당신은 슬픔에 잠겨 버립니다
112. 산위에서 / 괴테
릴리여, 만일 내가 너를 사라하지 않는다면
어떤 기쁨을 이 경치가 줄 수 있었으랴!
그리하여 릴리여, 만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디서 나는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까
113. 단 한순간 만이라도 / 디 뽀쁘헤
단 한순간만이라도 한순간이라도 당신과 내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당신도 알게 될 테니까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114. 그대 그리워 지는 날에는 / 스템코프스키
그대가 몹시 그리워지는 날에는 함께한 지난날들을 떠올리고 함께할 멋진 날들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냅니다 그대 미소가 그립습니다 그대 미소는 나를 사랑한다는 미묘하면서 감출 수 없는 표현임을 나는 압니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따뜻한 위안이 되고 의심과 두려움을 녹여 줍니다 또한 그대의 미소는 깊고 진지한 사랑만이 가져다 주는 행복감과 안도감을 나에게 줍니다 그대 손길이 그립습니다 그 어떤 손길보다도 따뜻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나는 그립습니다 그대는 나의 반쪽 지금 내가 바라는 삶은 우리 삶의 모든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는 삶입니다
115. 아 그리움이여 / 괴테
아, 당신의 변함없는 그리움이여 당신에게도 변함없는 내가 되는지요 아니, 이 진실을 나는 결코 의심하지 않아요 ' 아, 그대 멀리 있으면 나는 참으로 깊이 그대 사랑함을 느껴요
거리에 소리 없이 비가 내린다. 아르튀르 랭보 내 마음에 눈물 내린다. 가슴속에 스며드는 이 설레임은 무엇일까? 대지에도 지붕에도 내리는 빗소리의 부드러움이여! 답답한 마음에 아, 비 내리는 노랫소리여! 울적한 이 마음에 까닭도 없이 눈물 내린다. 웬일인가! 원한도 없는데 ? 이유 없는 이 크나큰 슬픔은 무엇인가. 이건 진정 까닭 모르는 가장 괴로운 고통 사랑도 없고 증오도 없는데 내 마음 한 없이 괴로워라!
44. 귀 / 콕토
나의 귀는 소라껍질,
바다의 소리를 그리워 한다
1.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의 소리를 듣는다 2.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 소리 그리워라
3. 내 귀는 하나의 소라껍질, 바다의 소리를 그리워 한다
4.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닷물 소리를 그리워한다 5. 내 귀는 하나의 소라 껍데기, 그리운 바다의 물결 소리여
너의 웃음은...... 장 콕토
장미꽃 잎의 가장자리처럼 위로 잦혀진 네 미소는 너의 변신에 원망스럽던 내 심사를 달래준다. 너는 잠이 깨어 이제는 꿈은 잊어버렸다. 나는 또다시 너의 나무에 매어진 몸이 된다. 너는 네 작은 힘을 다하여 내 몸을 얼싸안는다. 우리는 어째서 나무가 되지 않는가, 한 껍질 한 체온, 한 빛깔의 나무가, 그리고 우리들의 입맞춤이 그 나무의 유일의 꽃이 되지 않는다.
45. 나그네의 밤 노래 | 괴테69
모든 산봉우리위에 안식이 있고 나뭇가지에도 바람소리 하나 없으니 새들도 숲속에 잠잔다. 잠시만 기다려라 그대 또한 쉬리니.
46. 스무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절망노래 / 네루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고 당신도 터널처럼 외로웠다.
외롭던 내가 외롭던 당신을 만났을 때,
우리는 조금도 덜 외로워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나는 홀로 기차를 타고
외로운 당신이 외로운 나의 손을 잡아주었을 때,
외로운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아주 잠깐 외롭지 않았던 그때의 꿈을 꾸었다.
기차는 나를 외로움의 심연으로 데려다주었고,
당신도 한때 그곳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외로움은 조금도 변질되지 않은 채,
영원히 끝나지 않는 터널처럼 그곳에 갇혀 있었다.
나는 아주 조금 당신 생각을 했고, 외로운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 친구는 네루다를 읽고 있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고,
밤은 그 강력한 침입으로 나를 엄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버리고..
내 화살의 활처럼, 내 투석기의 돌처럼 버렸다.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스무 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절망노래(16) - 파블루 네루다
황혼녘 나의 하늘에서 너는 한 조각 구름 같고 너의 색깔과 모양새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너는 나의 여자, 너는 나의 여자, 달디 단 입술의 여자, 그래서 나의 한없는 꿈들이 네 삶 속에 살고 있다.
내 영혼의 등불은 네 발을 붉게 물들이고, 시디신 내 포도주는 네 입술에서 더욱 달콤하기만 하다. 오, 해질녘의 내 노래를 거두어 들이는 여인이여, 어찌하여 내 외로운 꿈들은 네가 나의 여인이라 느끼는가! 너는 나의 여자, 너는 나의 여자, 하오의 산들바람 속에 내가 소리치며 지나노라면, 바람은 내 홀아비 같은 목소리를 끌고 사라져버린다.
내 눈 깊숙한 곳의 여자 사냥꾼아, 너는 나를 사로잡아 밤이면 활발한 너의 눈길은 마치 물처럼 고여들게 하는구나. 너는 내 음악의 그물에 잡힌 나의 포로, 나의 사랑아, 내 음악의 그물들은 하늘처럼 넓기만 하다.
나의 영혼은 상복(喪服) 같은 네 눈동자의 기슭에서 태어난다. 상복 같은 너의 눈동자 속에서 꿈의 나라가 시작된다.
47. 5월의 노래 / 괴테
오오 눈부시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뭇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지는 이 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
아침 구름과 같은 금빛 아름다움
그 크나큰 은혜는
신선한 들에 꽃 위에 그리고
한가로운 땅에 넘친다
소녀여 소녀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오 반짝이는 네 눈동자
나는 너를 사랑한다.종달새가 노래와
산들바람을 사랑하고
아침에 핀 꽃이 향긋한 공기를 사랑하듯이
뜨거운 피 가슴치나니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게 청춘과 기쁨과 용기를 부어라.
새로운 노래로 그리고 춤으로
나를 몰고 가나니 그대여 영원히 행복하여라.
나를 향한 사랑과 더불어.
48. 새빨간 장미 | 번즈75
오 나의 님은 유월에 새로이 피어 새빨간 장미 오 나의 님은 곡조 맞춰 감미롭게 연주된 멜로디. 이처럼 너는 예뻐, 사랑스런 소녀야, 이처럼 깊이 나는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나는 너를 사랑하리, 내 님이여, 온 바다가 말라버릴 때까지. 온 바다가 말라버릴 때까지, 내 님이여, 그리고 바위가 햇볕에 녹아 없어질 때까지 오 언제까지나 나는 너를 사랑하리, 인생의 모래알이 다 할 때까지.
그러니 잘 있어, 단 하나의 내 님이여, 잠시 동안 잘 있어! 그럼 나는 다시 돌아오리, 내 님이여, 만리 먼 곳이라 할지라도.
49.수선화 / 워즈워드
골짜기와 언덕 위를 하늘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다가 문득 나는 보았네, 수없이 많은 황금빛 수선화가 무리지어 호숫가 나무 밑에서 미풍에 한들한들 춤추는 것을. 은하수를 타고 흐르는 반짝이는 별들처럼 수선화는 호수의 물섶에 끝없이 줄지어 줄지어 있었네. 나는 한눈에 보았네, 흥겨운 춤추며 고개를 살랑대는 무수한 수선화를. 호숫물이 꽃 주위에서 춤추었지만 반짝이는 물결보다 더욱 흥겹던 수선화 이토록 즐거운 벗과 어울릴 때 즐겁지 않을 시인이 있을건가, 나는 보고 또 보았다, 그러나 그 광경이 얼마나 값진 재물을 내게 주었는지 나는 미처 몰랐었다. 이따금 하염없이, 혹은 수심에 잠겨 자리에 누워 있으면 수선화는 내 마음 속 눈 앞에서 반짝이는 고독의 축복, 내 가슴 기쁨에 넘쳐 수선화와 춤을 춘다.
50. 무지개 / 워즈워드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뛰노라. 내 생명 시작될 때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매한가지, 장차 늙어서도 그럴 것이다. 아니라면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자연에 대한 경애로 이어지기를
51. 나의 사랑아 / 예이츠
내사랑, 나의 사랑아,
나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무엇이 그대의 가슴을 그토록 뛰게 하는지를,
그대의 어머니조차도
나만큼은 그걸 모르리
그 열렬한 생각이
ㅡ그걸 그녀는 부인하고 그리고 잊어버렸지만 ㅡ
그녀의 피를 온통 들뜨게 하고
그녀의 눈에서 반짝이게 할 때
그녀 때문에 내 마음 아프게 했던 게
누구인지
52. 당신의 맑은 두 눈을 / 하이네
당신의 맑은 두눈을 들여다 보면
내 모든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당신의 고운 입술에 입을 맟추면
내 모든 정신이 되살아납니다.
포근한 당신의 가슴에 몸을 기대면
마치 천국에 온것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요.당신이 속삭이면
한없는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53. 그대 눈 안에 / 다우텐다이
그대 눈 안에 나를 쉬게 해주십시오. 그대의 눈은 세상에서 가장 고요합니다. 그대의 검은 눈매 안에 살고 싶습니다. 그대의 눈매는 밤처럼 아늑합니다. 대지 위의 아득한 지평선을 떠나 단 한 걸음으로 하늘에 오릅니다. 그대의 눈 안에 내 인생은 끝납니다.
54. 나 일찍이 너를 사랑했었다 / 푸시킨
나 일찍이 너를 사랑했었네.
그 사랑 어쩌면 아직도 감추어진 불씨처럼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다네.
하지만 그것이 너를 낙심하게 하지 말기를,
차라리 잊어버리길.
나는 조그만 괴로움도 너에게 주고 싶지 않거니.
말없이 사랑했었네.
절망적으로 사랑했었네.
지금도 소심하게, 지금은 질투의 마음
나는 그렇게 깊이 사랑했었네.
그렇게 애절하게 사랑했었네.
55. 님은 얼음 / 스젠더
님이 얼음이면 나는 불
뜨거운 내 사랑에도 그대 얼음 녹지않네
어찌된 까닭일까
더워지는 내사랑에
그대 얼음 더 굳어짐은
끓는 듯 뜨거운 내 사랑이
심장마저 얼게 하는 그대 얼음에 식지 않고
더욱더 끓어 올라 불길 더욱 높아짐은
만물을 녹일 불이 얼음 더욱 얼게 하고
뼈까지 얼리는 아픔
타는 불의 기름되니
또다시 있으랴
이보다 이상한 일
사랑은 무슨 힘이기에 천성마저 바꾸는가.
56. 그리움 / 후호
만일 그대 곁에 있다면
어떤 고생도 무서움도 견디리다
친구도 집도 이 땅의 모든 호강도
만일 그대 곁에 있다면 버리리다
나는 그대를 그립니다
육지를 그리는 밀물처럼
남쪽 나라를 그리는 가을날 제비처럼
나는 그대를 그립니다
밤마다 외로이 달 아래 서서
눈 쌓인 그 산을 그리는
집 떠난 알프스 애들처럼
나는 그대를 그립니다
57. 피파의 노래 / 브라우닝
봄 날
이른 아침
일곱 시인데
이슬 젖은 언덕 기슭에서
종달새 노래하며 하늘로 날아
달팽이도 춤추는 가시나무 위
하늘 높은 그 곳에 그 분은 계시나니--
아 온 세상은 광명이어라!
58. 당신을 사랑하기에 / 헤세
당신을 사랑하기에 밤에 나는 그토록 설레며 당신께 가서 속삭였지요. 당신이 나를 영원히 잊지 못하도록 당신의 마음을 따 왔었지요. 당신 마음은 나와 함께 있으니 좋든 싫든 오로지 내 것이랍니다. 설레며 불타오르는 내사랑에서 어떤 천사라도 그대를 앗아가진 못해요.
59. 잊은 것은 아니지만 / 사포
높다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어
과일 따는 사람
잊고 간
잊은 것은 아니지만
따기 어려워 남겨 놓은
새빨간 능금처럼......
60. 슬프고 어려운 일을 만나거든 / 아우렐리우스
슬프고 어려운 일을 만나거든
이처럼 생각하라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어려운 일은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타인들도 당하는 일이다’라고
거기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라
‘이런 일은 처음 있는 괴로움이 아니고
과거에도 있었던 것인데
잊어버리게 되었을 뿐이다’라고
당신을 괴롭히고 어렵게 하는 일은
단지 하나의 시련일 뿐이라고 생각하라
뜨거운 불에 달구어야 쇠는 강해진다
지금 껶고 있는 시련을 통해서
당신은 더욱 굳센 마음을 지니게 될 것이다
61. 로렐라이 / 하이네
이토록 슬픈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난 모르오
옛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하나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네
바람은 차고 날은 저물어
라인강은 고요히 흘러만 가네
저녁 햇살에 산마루는 빛나고
그 위에 놀라운 모습으로
아리따운 아가씨가 앉아있소
그녀의 금 장신구가 반짝이고
그녀는 금빛 머리칼을 빗질하오
황금 빗으로 빗질하며 노래를 부른다오
경이롭고 마력적인 멜로디가
거기 담겨져 있소
작은 배를 탄 뱃사공
노랫소리에 거친 비애에 빠지고
암초에는 눈을 두지않고 높은 산 위만 바라보네
드디어는 뱃사공과 배를
물결이 삼켜버릴것으로 나는 믿네
62. 가을날 /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져 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살이 찌도록 마련해 주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따뜻한 날을 베풀어주소서,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해 주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돋구어 주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도 집을 짓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오랫동안 외롭게 그러합니다.
잠이 깨어, 책을 읽고, 길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질 때면, 불안스레
가로수 사이를 이리 저리 헤맬 것입니다.
63. 낙엽 / 구르몽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64. 바다의 미풍 / 스테판 말라르메
오 ! 육체의 덧없음에슬퍼라
나는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었다. 떠나버리자, 저 멀리 떠나버리자. 새들은 낯선 거품과 하늘에 벌써 취하였다. 눈에 비치는 오랜 정원도 그 무엇도 바다에 잠긴 이 마음을 잡아두지 못하리.
오 ! 여인의요염한 밤이라도 잡아두지 못하리, 흰빛이 지켜주는 여유로움,
그 위에 쏟아지는나른한 빛도 아이 젖물리는 젊은 아내까지도..
나는 떠나리라! 돛대를 펼치는 커다란 배여 이국의 자연 속으로 배를 띄워라
잔혹한 희망에 시달린 어느 권태는 아직도 손수건의 그 거창한 작별을 믿고 있는지 그런데, 돛들이 이제 폭풍을 부르니 우리는 어쩌면 바람에 밀려 길을 잃고 돛도 없이 돛도 없이,
풍요로운 섬도 없이 난파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오 나의 마음이여, 이제 저 뱃사람들의 노래 소리를 들어라
65. 살아남은 자의 슬픔 / 베르톨트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67. 잊혀진 여자 / 마리 로랑생
권태로운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슬픈 여자
슬픈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불행한 여자
불행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버려진 여자
버려진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떠도는 여자
떠도는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쫓겨난 여자
쫓겨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죽은 여자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
잊혀진다는건가장 슬픈일
68. 사랑 / 바울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약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끼버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리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69. 애정의 숲 / 발레리
우린 순수를 생각했었다
나란히 길을 걸으며
우린 서로 손을 잡았다
말없이...이름 모를 꽃들 사이에서
우린 약혼자처럼 걸었다
둘이서, 목장의 푸른 밤 속을
그리고 나눠 먹었다 저 꿈나무 열매
취한 이들이 좋아하는 달을
그리고 우린 이끼 위에 쓰러졌다
둘이서 아주 머멀리, 소곤거리는 친밀한
저 숲의 부드러운 그늘 사이에서
그리고 저 하늘 높아, 무한한 빛 속에서
우린 울고 있었다
오 사랑스러운, 말없는 나의 반려여!
70. 생일 / 로제티
내 마음은 샘물가에서 물 오른 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새 내 마음은 주렁주렁 맺힌 열매로 휘늘어진 사과나무 내 마음은 바다 속에서 헤엄치며 노니는 무지개빛 조가비 내 마음은 이 모든 것보다 더 기뻐요 내 사랑 나를 찾아왔으니까요 비단과 솜털로 단을 세우고 가죽과 자줏빛 물감으로 치장해 주세요 비둘기와 석류를 예쁘게 수놓고 눈 많은 공작도 아로새기고 금빛 은빛 포도송이와 나뭇잎과 붓끝으로 수놓아주세요 내 새애의 생일이 왔으니까요 내 사랑 나를 찾아왔으니까요
71. 이별 / 포르
그러면 마지막 이별의 키스
바닷가에 나아가 보내 드리오리다. 아니 아니 바닷바람 거센 바람
키스쯤은 멀리 날려 버려요 그러면 이별의 정표로써
이 손수건 흔들어 보내 드리오리다 아니 아니 바닷바람 거센 바람 눈물쯤은
이내 말라 버릴 것이오 정말로 그렇다면 언제나 언제나
잊지않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아 그러길레 너는 내사랑
그러므로 해서 너는 내 사랑일세.
72. 고엽 / 프레베르
기억하라 함께 지낸 행복스런 나날을!
그때 태양은 훨씬 더 뜨거웠고
인생은 훨씬 더 아름답기 그지없었지
마른 잎을 갈퀴로 긁어모으고 있다
모든 추억도 또 모든 뉘우침도 함께
북풍은 그 모든 것을 싣고 가느니
망각의 춥고 추운 밤 저편으로
나는 그 모든 것을 잊을 수 없었지
네가 불러 준 그 노랫소리
그건 우리 마음 그대로의 노래였고
너는 나를 사랑했고
나는 너를 사랑했고
우리 둘은 언제나 함께 살았었다
하지만 인생은 남 몰래소리 없이
사랑하는 이들을 갈라놓는다
그리고 헤어지는 연인들이 모래에 남긴
발자취를 물결이 지운다
73. 평화의 기도 / 성프란시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하나 됨을
잘못이 있는 곳에 진리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림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합니다.
74. 모든 것은 지나간다 / 알렉산더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일출의 장엄함이 아침 내내 계속되진 않으며 비가 영원히 내리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일몰의 아름다움이 한밤중까지 이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땅과 하늘과 천둥, 바람과 불, 호수와 산과 물, 이런 것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만일 그것들마저 사라진다면 인간의 꿈이 계속 될 수 있을까. 인간의 환상이.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라.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린다.
75. 이 깊은 상처를 / 하이네
내 마음의 깊은 상처를 고운 꽃이 알기만 한다면 내 아픔을 달래기 위해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려 주련만. 내 간절한 슬픔을 꾀꼬리가 안다면 즐겁게 지저귀어 내 외로움을 어쩌면 풀어 줄 수도 있으련만. 나의 이 탄식을 저 별이 황금빛 별이 알기만 한다면 그 높은 곳에서 내려와 틀림없이 위로해 주겠건만. 그렇지만 이내 슬픔 아는 이 없네. 알아 줄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내 가슴을 손톱으로 갈갈이 찢어 놓은 오직 한 사람.
정녕 그대들은 아는가 / 하이네
쓸쓸함에 고독감에 오늘도 기다림되어 하염없이 님 기다리고 서 있는 갈대의 흐느낌을 들어 보았는가 애닯다 서럽다 몸부림치는 갈대의 외침을 들어보았는가 그저 불어오는 갈바람으로 흔들리는 갈대의 흔들림으로만 스쳐 지나갈 뿐 지나치는 이 어느 누구도 갈대의 아픔을 알려고도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음을 아는가 정녕 그대들은 아는가 말하지 못하고 내어 놓지 못하고 그저 고개 숙여 삭이고 삭이며 몸으로 우는 고독한 갈대의 아픔을 고독한 갈대의 깊은 고뇌를 또한 붉은 석양 뒤로 눈물 흘리며 돌아서는 갈대의 서글픔까지도 정녕... 그대들은 아는가.
76. 사랑의 노래 / 릴케
나의 마음이 당신의 마음에 닿지 않으려면
내 마음을 어떻게 지녀야 되겠습니까. 당신으로
어떻게 내 마음을 다른 사물들에 미치게 해야 하겠습니까.
아, 나는 내 마음을 어둠 속의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 옆에 간수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깊숙한 곳이 흔들려도
덩달아서 흥들리지 않는 어딘가 낯설고 으슥한 곳에.
그렇지만 우리에게 닿는 모든 것이
우리를, 당신과 나를 하나로 묶어버립니다.
두 현에서 하나의 소리를 끌어내는 바이올린 활같이.
우리는 어떤 악기에 매여 있는 현입니까.
어떤 연주자가 우리를 켜고 있습니까.
아, 감미로운 노래
사랑의 노래/릴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오직 그대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 한 줄기 빛도 비치지 않는 어두운 암흑 속에서도 나는 그대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의 눈길로 그대와 나는 바이올린의 현처럼 서로 공명하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음악가가 우리를 연주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 달콤한 노래여 그대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4.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 하이네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참으로 귀엽고 예쁘고 깨끗하여라. 너를 보고 있으면 서러움이 나의 가슴 속까지 스며든다. 언제나 하나님이 밝고 곱고 귀엽게 너를 지켜주시길 네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나는 빌고만 싶다.
5. 편지/ 헤세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온다. 보리수가 깊은 신음소리를 내고 달빛은 나뭇가지 사이로 내 방을 엿본다. 나를 버린 그리운 사람에게 긴 편지를 썼다. 달빛이 종이 위로 흐른다. 글위를 흐르는 고요한 달빛에 나는 슬픔에 젖어 잠도, 달도, 밤 기도도 모두 잊는다.
6.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 밴더빌트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외로운 여름과
거친 꽃이 시들고도
기나긴 세월이 흐를 때
사랑은 천천히 오는 것
얼어붙은 물속으로 파고드는
밤하늘의 총총한 별처럼
지그시 송이송이
내려앉는 눈과도 같이
조용히 천천히
땅 속에 뿌리박은 밀
사랑은 더디고 조용한 것
내려왔다가 치솟는
눈처럼
사랑은 살며시 뿌리로 스며드는 것
조용히 씨앗은싹을 튼다.
달이 커지듯 천천히
7. 당신 곁에 / 타고르
하던 일 모두 뒤로 미루고
잠시 동안 당신 곁에 앉아 있고 싶습니다.
잠시라도 당신을 보지 못하면
마음에는 인식이 이미 사라져 버리고
고뇌의 바다에서 내가 하는 일은
모두 한없는 번민이 되고 맙니다.
불만스러운 낮인 여름이 한숨을 쉬며
오늘 창가에 와 머물고 있습니다.
꽃이 핀 나뭇가지 사이 사이에서
꿀벌들이 잉잉 노래하고 있습니다.
임이시여, 어서 당신과 마주 앉아
목숨 바칠 노래를 부르렵니다.
신비스러운 침묵 속에 가득 싸인
이 한가로운 시간 속에서.
8.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 괴테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단 한 번 네 얼굴을 보기만 하면
단 한번 네 눈을 보기만 하면
내 마음은 괴로움의 흔적이 사라지리
얼마나 즐거운 기분인가는 하느님만이 알고 있을 뿐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9. 잊어버립시다 / 티이즈데일
꽃을 잊듯이 잊어버립시다.
한 때 훨훨 타오르던 불꽃을 잊듯이
영영 잊어버립시다.
세월은 고마운 벗, 세월 따라 우리도 늙는답니다.
그 누가 묻거들랑 이렇게 대답하시구료.
"그건 벌써 오래 전에 잊었습니다.
꽃처럼, 불꽃처럼, 그 옛날에 잊혀진 눈 위에
찍혀 있던 발자국처럼 잊었습니다.“
10. 내 사랑은 빨간 장미꽃 / 버언즈
오, 내 사랑은 유월에 새로이 피어난
빨갛고 빨간 한 송이 장미꽃
오, 내 사랑은 고운 선율 곡조 맞춰 달콤히 흐르는 가락
그대 정녕 아름답다, 나의 귀여눈 소녀
이토록 깊이 나 너를 사랑하노라.
바닷물이 다 말라 버릴 때까지
한결같이 그대를 사랑하리라.
바닷물이 다 말라 버릴 때까지
바위가 햇볕에 녹아 스러질 때까지
한결같이 그대를 사랑하리라.
그럼 안녕, 내 하나뿐인 사랑이여
우리 잠시 헤어져 있을 동안!
천리 만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나는야 다시 돌아오련다.
11. 호수의 섬 이니스프리 / 예이츠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을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벌 윙윙대는 숲 속에 나 혼자 살으리.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은 온통 은은히 빛나고, 한낮은 자주색으로 타오르며, 저녁엔 홍방울새의 날개 소리 가득한 그곳.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길 소리 들리네.
12. 하늘의 융단 / 예이츠
금빛 은빛 무늬가 있는 하늘이 수놓은 융단이 밤과 낮 어스름의 푸르고 침침하고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 밑에 깔아 줄 텐데 가난하여 오직 꿈만을 가졌기에 그대 발 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 사뿐히 걸어다오 그대가 밟는 것은 내 꿈이니.
13. 미라보 다리 / 아폴리네르 (기욤 아뽈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 둘의 사랑을 나는 회상해야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 뒤에 왔었지
밤이 오고 종이 울리고
나날은 가버리고 나는 남는다.
손을 맞잡고 마주 보고 있자
영원한 시선들에 지쳐버린 물결이
우리 팔의 다리 아래로 지나가는 동안
밤이 오고 종이 울리고
나날은 가버리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가버린다 저 흐르는 물처럼
사랑은 가버리고 삶은 얼마나 느린가
희망은 또 얼마나 사나운가
밤이 오고 종이 울리고
나날은 가버리고 나는 남는다.
나날이 가버리고 주일들이 지나가
지나간 시간도 사랑들도 되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른다.
밤이 오고 종이 울리고
나날은 가버리고 나는 남는다.
14.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 브라우닝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주세요
'난 저 여자를 사랑해
미소 때문에 예쁘기 때문에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나와 꼭 어울리기 때문에
어느날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러한 것은 그 자체가 변하거나
당신으로 하여금 변할 테니까요
그처럼 짜여진 사랑은 그처럼 퓰려 버릴 거예요
내 뺨의 눈물을 닦아 주는 당신의 사랑어린 연민으로
날 사랑하진 마세요
당신의 위로를 오래 받았던 사람은 울기를 잊어버려
당신의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오로지 사랑을 위해 날 사랑해 주세요
그래서 언제까지나
당신이 사랑할 수 있게
영원한 사랑을 위해
15. 소녀들에게 주는 충고 | 헤릭
장미 봉오리를 모을 수 있는 동안 그것들을 모으라 세월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 날아가니 오늘 미소짓는 바로 이 꽃이 내일이면 지리니. 하늘의 영광스러운 등불인 해가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그의 경주는 곧 끝날 것이고,
일몰에 더 가까워지리니. 젊음과 피가 따뜻한 첫 시절이 가장 좋고, 그것이 지나면 더 나빠지고 가장 나쁜 시절이 잇따르리. 그러니 수줍어 말고 시간을 활용하라. 그리고 결혼할 수 있을 때 하라. 청춘을 한 번 잃어버리면
너희는 영원히 기다려야 하리.
16. 인적 없는 외진 곳에 그 소녀는 살았다 / 워즈워
다브의 생가 인적 없는 외진 곳에서
그녀는 살았습니다.
칭찬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는 처녀였습니다.
이끼 낀 바위 틈에 반쯤 가리워
다소곳이 피어 있는 한 떨기 오랑케꽃
샛별이 홀로 빛날 때처럼
그렇게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이름 없이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떠나버린 가엷은 루시
이제 그녀는 고이 잠들었으나
지금의 나에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17. 그 소녀는 / 프랑시스 잠
그 소녀는
펼쳐진 소매 밑으로
손목의 푸르스름한
정맥이 드러나 보인다.
어째서 그 소녀가 웃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이따금 소녀는 부른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길가에서 꽃을 따기만 해도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사실을
저도 알고 있는지?
하얀 살결에 날씬한 몸매, 게다가
참 미끈한 팔을 하고 있다.
언제 봐도 얌전한 몸맵시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고 있다.
18. 아름다운 여인 / 헤르만 헤세
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고서,
기어이 부셔 버리고
다음날엔 벌써 그를 준 사람조차
잊고 있는 아이와 같이
당신은 내가 드린 내 마음을
고운 장난감같이 조그만 손으로 장난을 하며
내 마음이 고뇌(苦惱)에 떠는 것을
돌보지도 않습니다.
19. 오, 내 사랑 그대여 / 세익스피어
오, 내 사랑 그대여 그어디를 해메는고?
발거름멈추고 들어보소, 여기 그대의 참다운 사랑있어
높고 낮은가락 건드러지게 부르나니.
이제는 더 이상 해매지 마오. 오아리따운 그대
나그네길 끝나면정든 님 만난다오,
이건 현명한 사람의 아들이면 누구나 다 아는일
사랑이 뮈냐고요? 그건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것
지금의 기쁨은지금의웃음
내일은있는듯 없는것
공연히 지체하면아무소득 없소이다,
그러니자아 입맞춰요, 꽃다운 내 님이여
청춘은영원한 것이 아니라오
20. 기억해 줘요 / 로제티
날 기억해 줘요, 나 가고 없을 때, 머나먼 침묵의 나라로, 나 영영 가 버렸을 때
당신이 더 이상 내 손을 잡지 못하고 나 되돌아 가려다 다시 돌아서 버리는 그 때에,
날 기억해 줘요, 당신이 짜내던 우리들 앞날의 계획을
날마다 나한테 이야기 할 수 없게 될 때에 날 기억해 주기만 해요
그땐엔 의논도 기도도 이미 늦는 다는 것을 당신은 알아요 그러나 행여 당신이 나를 잠시나마 잊어야 할때가 있을 지라도 그 후에 곧 다시 기억해줘요,가슴 아파 하질랑 말고 혹시 암흑과 부패 속에서 살아 생전 내가 품던 생가의 흔적이라도 보고 나를 기억하여 슬퍼하느니 보다 잊어버리고 웃는 편이 훨씬 나을 테니
21. 물 속의 섬 / 예이츠
수줍어하는, 수줍어하고
수줍어하는 나의 님
님은 불빛 속에서 움직인다.
저만치 떨어져 슬프게
님은 접시를 가지고 들어와
한 줄로 늘어놓는다.
나는 가리라, 님과 함께
물 속의 섬으로
님은 초를 가지고 들어와
커튼 친 방에서 불을 켠다.
문간에서 수줍어하며
어둠 속에서 수줍어하며
토끼처럼 수줍어하고
도움을 베풀며 수줍어하는 님
나는 날아가리라, 님과 함께
물 속의 섬으로.
22. 첫사랑 / 괴테
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다운 날 그 첫사랑의 날을. 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다운 시절의 그 사랑스러운 때를.
쓸쓸히 나는 이 상처를 키우며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슬픔에 잃어버린 행복을 슬퍼하고 있으니 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다운 나날 첫사랑 그 즐거운 때를.
23. 붉고 귀여운 입을 가진 아가씨 / 하이네
붉고 귀여운 입을 가진 달콤하고 시원스런 눈을 가진 아가씨 나의 귀여운 어린 아가씨 언제나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 긴 긴 겨울 밤을 네 곁에 있고 싶다. 너와 나란히 정든 방에 앉아 이야기 하고 싶다. 네 작은 하이얀 손을 나는 입에 가져다 대고 그 손을 눈물로 적시고 싶다. 네 작은 하이얀 손아.
24. 비 오는 날 / 롱펠로우
날은 춥고 어둡고 쓸쓸하여라
비는 내리고 바람은 그치지 않고,
허물어지는 벽에는 담쟁이 덩굴,
바람이 불 때마다 잎을 날려가네
날은 춥고, 쓸쓸하네
내 인생도 춥고, 어둡고, 쓸쓸하네
비는 내리고 바람은 그치지 않네
내 생각은 허물어지는 과거의 담벽에 붙어
불어오는 질풍에 젊음의 꿈을 날려 보냈네
날은 어둡고, 적막하네
슬픈 가슴이여, 조용하라!
불평은 그만하라!
먹구름 뒤에는 밝은 태양이 비치고 있다
그대의 운명도 예외는 아닌 것!
모든 사람의 운명에 얼마의 비는 내리는 것
인생이 어둡고 쓸쓸할 때도 있는 것!
25. 날은 어느덧 저물어가고 있었다 | 릴케
해는 어느덧 저물어 가고 있었다.
숲에는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고
송아지 발치에서는 시클라멘꽃이 피를 토하고 있었다
높다란 전나무는 줄기마다 불기둥이다
바람이 불면 훗훗한 향내가 몰려왔다
우리는 먼 길을 걸어온 탓으로 당신은 늘어질 대로 늘어졌다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당신의 그리운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러자 당신의 마음속 흰 나리꽃 씨앗에서
열정의 불 나리꽃이
황홀에 젖어 마구 비집고 나왔다
빨갛게 물든 저녁 - 당신 이도 빨갛게 물이 들었다
꼭 내 입술이 그리움에 화끈 달아 찾아낸 입술 같구나
그리고 삽시에 우리 몸을 활활 불태우고 마는 저 불길
옷을 질투라도 하듯 내 입술을 핥았음에
숲은 고요하고 하루 남은 목숨이 다했다
하나 우리를 위해 구세주는 부활하고
하루 해와 더불어 질투도 어려움도
목숨이 끊겼다
달은 우리의 언덕에 커다랗게 올라서고
하얀 배에서는 소리 없이 행복이 솟아올랐다
26. 들장미 / 괴테
사내아이는 보았네 들에 핀 한 떨기 장미를 갓 피어난 싱그러운 향기 달려가 떨기 속을 보았네 웃음 머금은 장미 장미, 장미, 붉은 장미여 들장미여
사내아이는 말했네. 내 너를 꺾을테야 들에 핀 장미를 장미는 말했네. 꺾기만 해 봐라. 찌를테야 나도 꺾이고 싶진 않은 것을 장미, 장미, 붉은 장미여 들장미여
개구장이 사내아이는 꺾고 말았네 들에 핀 장미를 장미는 가시로 어린이를 찌르고 꺾이지 않으려 몸부림쳤으나 장미, 장미, 붉은 장미여 들장미여
27. 여승(女僧) / 백석
여승(女僧)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낮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느 산(山)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28. 품에서 나온다 / 휘트먼
여자의 품에서 남자가 나온다. 언제나 풀려 나온다. 지상의 가장 훌륭한 여자로부터만 지상의 가장 훌륭한 남자가 나온다. 가장 우정 깊은 여자에게서 가장 우정 깊은 남자가 나온다. 여자의 온전한 육체에서만 남자의 온전한 육체가 형성될 수 있다. 여자의 독특한 시에서만 남자의 시가 나올 수 있다(나의 시는 거기에서 왔다). 내가 사랑하는 강하고 자존심 있는 여자로부터, 거기에서만 내가 사랑하는 강하고 자존심 있는 남자가 나타날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억센 포옹에 의해서만, 남자의 억센 포옹이 있을 수 있다. 여자의 한계는 그에 복종하는 모든 남자의 한계다. 여자의 정의로부터, 모든 정의가 펼쳐지는 것이다. 여자의 동정으로부터, 모든 동정이 나온다. 남자는 이 지상에서, 또 영원히 위대한 존재이다. 그러나 남자의 위대함은 모두 여자에게서 오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만들어진다. 그 뒤에야 남자는 스스로를 만들 수 있다.
29. 오월의 마술 / 마츠
작은 씨 하나
나는 뿌렸죠.
흙을 조금
씨가 자라게
조그만 구멍
토닥토닥
잘 자라라고 기도하면
그만이에요.
햇빛을 조금
소나기 조금
세월이 조금
그러고 나면 꽃이 피지요
30. 황혼은 아득한 저쪽으로부터 온다 / 릴케
황혼은 아득한 저쪽으로 부터 온다 눈 내리는 조용한 숲을 지나서
그리고 황혼은 그 겨울의 볼을 창마다 밀어낸다 가만가만히 귀 기울이면서 어느 집이나 모두 조용해진다 노인들은 팔걸이 의자속에서 생각에 잠기고 어머니들은 여왕님 같다
아이들은 이제 놀기를 그만 두고 하녀들은 더 길쌈을 하지 않는다 황혼은 집 속을 살펴보고 집 속에선 다들 바깥을 살펴보고 있다
31. 용기가 없는 자는 노예랍니다 / 로우얼
쓰러진 약자를 옹호라려는
용기가 없는 자는 노예랍니다.
미움받고, 조롱받고, 학대받는 게
두려운 나머지 몸을 사리며
마땅히 걱정해야 할 문제도
못 본 체하는 자는 노예랍니다.
소수의 사람과도 정의를 지킬
용기가 없는 자는 노예랍니다.
32.밝고 아름다운 모든 것을 / 알렉산더
밝고 아름다운 모든 것을
크고 작은 모든 짐승들을
슬기롭고 놀라운 모든 것을
하느님 아버지가 만드셨지요.
방긋방긋 피어나는 작은 꽃들과
즐겁게 노래하는 작은 새들도
하느님이 그 고운 색 마련해 주고
귀여운 날개를 달아 주셨죠.
여명과 일몰의 아름다움도
유유히 흘러가는 저 강물도
하늘을 훤하게 밝히고 있는
보라색이 감도는 저 청산도―
겨울철에 불어 오는 차디찬 바람
기분 좋게 내려 쬐는 여름의 햇살
마당에서 익어 가는 열매들까지
한결같이 하느님이 만드셨지요.
푸른 숲에 우뚝 솟은 저 나무도
우리가 뛰어 노는 이 초원도
그리고 우리가 거둬들이는
물가의 꼴풀도 만드셨지요.
이런 것을 알아보고 말할 수 있게
우리에겐 눈과 입을 주셨죠.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만든신 임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죠.
33.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오월에 / 하이네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게게 고백했어라.
오월의 노래 ~ 괴테 詩
오오 눈부시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뭇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지는 이 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
아침 구름과 같은 금빛 아름다움
그 크나큰 은혜는
신선한 들에 꽃 위에 그리고
한가로운 땅에 넘친다
소녀여 소녀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오 반짝이는 네 눈동자
나는 너를 사랑한다.종달새가 노래와
산들바람을 사랑하고
아침에 핀 꽃이 향긋한 공기를 사랑하듯이
뜨거운 피 가슴치나니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게 청춘과 기쁨과 용기를 부어라.
새로운 노래로 그리고 춤으로
나를 몰고 가나니 그대여 영원히 행복하여라.
나를 향한 사랑과 더불어.
34. 가보지 못한 길 / 프로스트
두 길이 노란 숲으로 갈라졌습니다. 두 길을 다 갈 수는 없어 한 길을 골라야 했기에 한참을 서서 덤불속 어디로 갈라지는지 한 길을 쳐다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역시 아름다운 다른 길을, 아마 좀 더 나은듯, 보다 풀이 무성하고 발길이 뜸한, 그러나 사람이 다닌 흔적으로는 정말 둘다 거의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 둘다 나뭇잎에 덮여 검게 찍힌 발자국 하나 없었습니다. 아 저는 다른 길은 훗날에 가려 했습니다. 길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기에 과연 돌아올 수 있을지 의심을 하면서도. 세월이 흘러 어디선가 한숨을 지으며 말하겠지요. 두 길이 숲속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발길이 보다 뜸한 하나를 택했노라고, 그래서 제 삶이 모두 바뀌었노라고.
입춘은 정월(正月), 즉 새해를 시작하는 달에 들어 있어 옛사람들은 입춘을 기준으로 해가 넘어가는 것으로 여겼다.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고도 하였는데, 절분은 ‘해넘이’라고도 불리며 묵은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니 집안을 청소하여 묵은 기운을 털어내고 새 기운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이날 밤 붉은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마귀를 쫓고 새해를 맞이하기도 한다.
춘(春)이라는 글자는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 풀이 돋아 나오는 모양이다. 즉 만물이 소생하는 부활과 시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날은 모든 것이 순조롭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글씨를 써 붙였다.
‘입춘대길’은 그야말로 새봄에 크게 좋은 일들이 있으라는 의미이고, ‘건양다경’의 ‘건양’은 고종황제 때의 연호로 나라와 백성들이 모두 편안하기를 비는 마음이다. 이런 글씨들을 ‘입춘첩(立春帖)’ 혹은 ‘입춘방(立春榜)’이라 하는데, 본래 궁에서 문신들이 지어 올린 신년을 축하하는 시 중에서 잘된 것을 골라 대궐의 기둥과 난간 등에 붙였던 것이 민간에까지 퍼져 유행하게 된 것이다. 민간에서는 대개 집안의 가장 어린 아이가 글을 써 붙이곤 하였다.
특히 입춘에는 입춘절식(立春節食)이라 하여 햇나물 무침을 먹는 풍습이 있다. 이는 경기도 일대 산이 많은 양평·가평·연천 등 6개의 고을에서 멧갓·승검초 등과 같은 산나물들을 눈을 헤치고 캐내 임금께 진상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궁궐에서는 이 나물들을 겨자와 함께 무쳐 ‘오신반(五辛盤)’이라 하여 수라상에 올렸다.
쓰고 맵고 쌉쌀한 다섯가지 나물은 겨우내 묵은 입맛을 씻어내고 새 입맛이 돌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 겨우내 결핍된 신선한 야채를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민간에서도 이를 본받아 눈 밑에서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 무쳐 먹는 풍속이 생겼다.
입춘이 되면 매서웠던 북서풍은 점차 잦아들고 동풍이 불어 얼어붙었던 땅을 녹이니 농가에서도 농사 준비를 시작할 때다. 아낙들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남자들은 겨우내 넣어 둔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며 한해 농사에 대비했다. 농사를 도울 소를 보살피고, 재와 거름을 잘 섞어 부지런히 재워 두고, 겨우내 묵었던 뒷간을 퍼서 두엄을 만들기도 했다. 또 입춘 때 내리는 비는 만물을 소생시킨다 하여 반겼고, 이때 받아 둔 물을 부부가 마시고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소중히 여겼다.
봄은 그야말로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계절의 시작인 셈이다. 그러나 이 무렵이면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듯 어김없이 추위가 찾아와 ‘입춘한파’나 ‘입춘 추위가 김장독을 깬다’라는 말들도 생겨났다.
예전에 농가에서는 이날 보리 뿌리를 뽑아 보고 그 뿌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들에 나가 보리를 뽑아 뿌리가 세가닥이면 풍년이요, 두가닥이면 보통, 한가닥이면 흉년이라 점쳤던 것이다. 또 오곡의 낱알을 솥에 넣고 볶아서,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서로 작황을 가늠하기도 했다.
보리 뿌리가 세가닥으로 튼튼히 자랐다면 기후가 농사짓기에 알맞다는 뜻이겠고, 솥에 볶아서 잘 튄다는 것은 곡식이 제대로 영글었다는 뜻일 테니 나름 과학적인 농사 예측법이 아닐 수 없다.
김상철<미술평론가>. 농민신문
‘입춘첩’에 새해 각오 적어 보세요
■대문이나 기둥에 양쪽으로 붙이는 대련(對聯·대구 글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 입춘이 되니 크게 길하고, 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다.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하여라.
-우순풍조 시화세풍(雨順風調 時和歲豊 ) : 비가 순조롭고 바람이 고르니, 시절이 화평하고 풍년이 든다.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 부모님은 오래 살고, 자손들은 길이 번영한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인 서예가 김성태씨(44·경기 부천시 오정동)는 1월 말이면 ‘입춘첩(立春帖)’을 쓴다고 정신이 없다. 입춘(올해는 2월4일)을 앞두고 명필에게서 입춘첩을 받으려는 이들이 꼬리를 물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글귀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문구를 가져와 부탁하는 이들도 있다. “복을 나눠 주는 마음으로 기꺼이 부탁에 응한다”는 김씨는 “입춘첩은 상서로운 한해를 위한 자기 다짐용 글귀로도 훌륭하다”고 귀띔한다.
요즘은 쉬 볼 수 없지만, 한세대 전만 해도 입춘첩 붙이기는 집집마다 행해지던 대표적 풍속이었다.
입춘첩이란 입춘 날 아침, 새봄이 온 것을 축하하고 한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대문·기둥 등 집안 곳곳에 붙이던 글귀다. 다른 말로는 입춘축(立春祝)·입춘방(立春榜)·춘첩자(春帖子)라고도 한다.
원래 중국에서 시작된 입춘첩 문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고려시대 때다. 고려 말의 문신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는 5언 또는 7언시로 된 춘첩자 이야기가 나오고, 조선 초기에 만든 역사책인 <고려사>에도 ‘입춘에 왕이 신하들에게 춘첩자를 내려 줬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로 들어와서는 궁궐이나 양반가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입춘첩을 써서 널리 붙였다.
민간에서는 입춘 날 입춘축을 붙이면 ‘굿 한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여, 요사스러운 귀신들을 물리친다는 벽사( 邪)의 의미까지 부여했다.
입춘축은 글씨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직접 써서 붙이고, 글씨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해 붙였다. 입춘축을 쓰는 종이는 글자 수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가로 15㎝ 안팎, 세로 70㎝ 안팎의 한지를 두장 마련해 짝을 지어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입춘첩은 붙이는 위치에 따라 내용을 달리하기도 했다.
대문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
기둥에는 ‘천증세월인증수 춘만건곤복만가(天增歲月人增壽 春萬乾坤福滿家)’,
아버지 방에는 ‘부주평안(父主平安)’,
어머니 방에는 ‘모주평안(母主平安)’,
곳간에는 ‘의이장지 절이용지(義以藏之 節以用之·의롭게 저장하고 절약해 쓴다는 뜻)’를 붙이는 식이다.
한편 한번 붙인 입춘첩은 이듬해 입춘 때까지 떼지 않고 그대로 붙여 뒀으며, 상을 당한 집에서는 입춘첩을 붙이지 않았다.
최순권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새봄을 맞는 각오를 다지는 데 입춘첩이 갖는 주술적 의미는 크다”면서 “가훈이 한 집안의 생활 지침서 역할을 하듯, 올봄에는 집집마다 입춘첩을 붙여 놓고 가내 평안을 기원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농민신문
입춘첩(立春帖)
입춘방(立春榜), 춘첩자(春帖子), 입춘서(立春書)〕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節氣)인 立春은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그 해의 첫 節氣로 황도(黃道 ; 외견상으로 본 태양의 궤도. 적도에 대하여 23.5의 기울기를 이루며, 그 적도와 마주치는 점이 춘분점과 추분점이 된다)이 315도에 위치할 때이고 이 날부터 봄이 시작된다.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이며, 음력으로는 正月인데 때에 따라서는 섣달(12월)에 들기도 하는데 동양에서는 이 날부터 봄이라고 한다.
윤월(閏月)이 들어있는 해(年)는 반드시 섣달과 정월에 입춘이 두 번 들게 되는데 이것을 복입춘(複立春) 또는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한다.
입춘 전날을 철의 마지막이라는 절분(節分)이라고 하며, 이 날 밤을 ‘해넘이’이라고 부르며 입춘을 마치 年初처럼 생각하였다.
옛 사람들은 입춘 15일간을 5일씩 3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동풍이 불어서 언 땅을 녹이고, 中候에는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末候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입춘절기가 되면 농가에서는 농사 준비를 하는데 아낙들은 집안 곳곳에 먼지를 털어 내고 남정네들은 겨우내 넣어둔 농기계를 손질을 하며 한 해 농사에 대비를 하였다.
또한 입춘 날이 되면 대문이나 기둥에 새로운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봄을 송축(頌祝)하는 글귀를 붙이는데 그 이름은 위의 제목에 나열한 것들이다.
대궐에서는 설날에 文臣들이 임금에게 지어 올린 연상시(延祥詩 ; 신년축시) 중에서 잘된 것을 선정하여 대궐의 기둥과 난간에다 붙였는데 그 글을 春帖子라고 하였고, 民間에서는 춘련(春聯 ; 입춘 날 문이나 기둥 등에 써 붙이는 주련(柱聯))을 써 붙인다.
특히 양반 집안에서는 손수 새로운 글귀를 짓거나 옛 사람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춘련을 써서 봄을 축하했는데 이것을 춘축(春祝)이라 하고, 이 때 댓구(對句)를 맞추어 두 구절씩 된 춘련을 대련(對聯)이라 부른다.
이 춘련들은 집안의 기둥이나 대문 또는 문설주 등에 두루 붙인다.
입춘첩의 대표적인 글귀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 국태민안 건양다경(國泰民安 建陽多慶) ;
나라가 태평하며 국민 생활이 평안하고, 봄의 따스한 기운이 감도니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
※ 고종황제가 첫 年號(군주시대 임금의 자리에 오른 해부터 그 자리를 물러날 때까지의 기간에 붙이는 年代的인 칭호)로 건양(建陽, 1896–1897)을 사용하자 백성들이 대한제국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빌며 建陽多慶이라는 글귀를 써서 대문에 붙인 것이다.
* 입춘대길 소문만복래(立春大吉 笑門萬福來) ;
한 해의 시작인 입춘을 맞이하여 좋은 일이 많기를 바라며, 웃는 집안에 복이 많이 들어온다.
* 입춘대길 만사형통(立春大吉 萬事亨通) ;
봄기운이 시작되었으니 큰 행운이 따르고,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잘 되어가기를 바람.
*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所持黃金出 開門百福來) ;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바란다.
* 우순풍조 시화세풍(雨順風調 時和歲豊) ;
농사에 알맞게 기후가 순조롭고, 집집마다 생활 형편이 부족함이 없이 넉넉함.
* 건양다경 가화락(建陽多慶 家和樂) ;
햇볕이 따스하니 경사가 잦으며, 집안이 화목하고 즐겁다.
*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지기를 바란다.
* 당상부모 천년수 슬하자손 만세영(堂上父母 千年壽 膝下子孫 萬歲榮) ;
집에 계신 부모님 오래 사시고(부모님 방 문기둥에 붙임), 자손들은 오래 영화를 누림(대청 기둥에 붙임)
* 부귀문전 수수화(富貴門前 樹樹花) ;
문 앞의 부귀가 나무마다 핀 꽃과 같다(대문에 붙임)
* 우여맹호 경백묘(牛如猛虎 耕百畝) ;
맹호 같은 소는 백 이랑의 밭을 간다.(소 외 양간에 붙임)
* 마이비룡 행천리(馬似飛龍 行千里) ;
비룡 같은 말은 천리를 간다(마구간에 붙임)
♤입춘방을 붙이는 모양
* 한 개를 붙일 때는 세로로(↓) 그냥 붙이면 된다.
* 두 개를 붙일 때는 기울여서 /\같은 모양으로 붙이면 된다.
♤ 입춘방을 붙이는 장소
* 대문 ; 좌측은 입춘대길, 우측은 건양다경을 붙인다.
* 아파트 ; 현관문 안에 있는 작은 문의 문설주에 좌우로 붙인다.
♤ 아홉 자리
이날은 각자 맡은 바에 따라 아홉 번씩 일을 되풀이하면 한 해 동안 福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액(厄)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글방에 다니는 아이는 천자문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며, 노인들은 아홉 발의 새끼를 꼰다.
계집아이들은 나물 아홉 바구니를, 아낙들은 아홉 가지의 빨래를 하고, 길쌈을 해도 아홉 바디를 삼고, 실을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는다.
아홉 번을 한다는 뜻은 우리 조상들이 ‘9’라는 숫자를 가장 좋은양수(陽數)로 보았기 때문이다.
가난해도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라는 교훈적인 세시풍속(歲時風俗)이다.
♤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입춘이나 대보름 전날 밤에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꼭 해야만 일 년 내내 액을 면한다는 풍속이다.
예를 들면 밤중에 몰래 냇가에 나가서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거친 길을 곱게 다듬어 놓는다든지, 다리 밑 거지 움막 앞에 밥을 한 솥 지어서 갖다 놓는다든지, 병든 사람에게 약을 모래 지어준다든지 하는 것이 적선 공덕행이다.
♤ 속담
* 흥부집 기둥에 입춘방이라.
잠결에 기지개를 켜면 발은 마당 밖으로 나가고, 두 주먹은 벽 밖으로 나가며, 엉덩이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 동네 사람들이 거치적거린다고 “궁둥이를 불러 들이라”고 하여 깜짝 놀라 일어나 대성통곡하는 그런 집을 말한다.
그런 집 기둥에 입춘방을 써 붙였으니 格에 맞지 않음을 빗대는 말이다.
* 입춘날 무(사투리로는 무우) 순(荀) 생채(生菜)냐 ?
맛있거나 신나는 일’을 비유할 때 立春時食으로 먹던 무 순이나 생채에 비유했었다.
아무튼 제철 음식이 가장 맛있고 보약이다.
* 입춘수(立春水)
입춘 전후에 받아둔 빗물을 말하는데 이 물로 술을 빚어 입춘 날에 부부가 마시고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소중히 여겼다.
※ 추로수(秋露水)
가을 풀섶(풀이 많이 난 곳)에 맺힌 이슬을 털은 물인데 이 물로 엿을 고아 먹 으면 백병(百病 ; 온갖 병)을 예방한다고 하였다.
* 입춘시기에 가장 큰 일
장(醬)을 담그는 일인데 시기는 입춘 전 아직 추위가 덜 풀린 이른 봄에 담가야 소금이 덜 들어 삼삼한 장맛을 낼 수 있다.
立春祝을 써 붙입시다 해마다 입춘절(立春節)이 되면 동지(冬至) 이후 음의 기운을 지니던 대지가 양의 기운을 갖기 시작하며 모든 사물이 왕성히 생동하기 시작한다. 입춘은 봄으로 접어드는 절후이며,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정월은 새해에 첫번째 드는 달이고, 입춘은 대체로 정월에 첫번째로 드는 절기이다. 입춘 전날이 절분(節分)인데 이것은 철의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이날 밤을 해넘이라고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서 귀신을 쫓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입춘을 마치 연초(年初)처럼 보며, 봄이 시작되는 계절이지만 아직 추위가 강하다. "입춘추위"라는 말이 있는데 마음으로는 봄이라 여겨지지만 계절은 아직 겨울인지라 가시지 않은 찬 기운이 속히 봄의 따사로움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심정에서 연유된 말이라 생각된다.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가르며, 초후(初候)에는 동풍이 불어서 언땅을 녹이고, 중후(中候)에는 겨울잠 자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말후(末候)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한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이날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행해지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춘첩자] 옛날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한다. 춘첩자는 입춘첩(立春帖),춘첩(春帖), 입춘축(立春祝)등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사대부 집에서는 흔히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썼으며 서민들도 새 봄을 새롭게 맞이한다는 각오로 입춘첩을 써 붙이는 풍속이 있었다. 현대인들도 세시풍속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어려우나 입춘축 붙이는 일은, 한 해를 의미있게 보내고자하는 기원을 담은 행사이기 때문에 행하면 좋을 것 같고 자녀교육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 본다. 붙이는 곳은 좌우 대문짝이 좋으나 현대인의 가옥은 대문이 없는 경우도 많으므로 현관문이나 기둥에 붙여도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쓰는 방법은 흰 종이에 붓글씨가 좋겠다.중국에서는 붉은 바탕에 금빛 글씨로 쓰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붉은색은 행운을, 금색은 부와 번영을 상징하며 액운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한다. [帖(첩) - 두루말이.주련(세로로 내려쓴 댓구).문서 ][입춘수] 입춘(立春) 전후에 받아 둔 빗물이 입춘수(立春水)다. 이 물로 술을 빚어 마시면 아들 낳고 싶은 서방님의 기운을 왕성하게 해준다고 알았다. 아울러 가을 풀섶에 맺힌 이슬을 털어 모은 물이 추로수(秋露水)인데 이 물로 엿을 고아 먹으면 백병을 예방한다고 알았다.[입춘굿]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 옥황상제, 토신, 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아홉 차리] 지방에 따라 입춘(立春)날이나 대보름 전 날에 베푸는 "아홉 차리"라는 민속이 있었다. 가난하지만 근면하고 끈기 있게 살라는 교훈적인 세시민속이다. 이날은 각자 소임에 따라 아홉 번씩 부지런하게 일을 되풀이하면 한해 동안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받느다고 믿었다. 글방에 다니는 아이면 천자문(天字文)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며, 노인이면 아홉 발의 새끼를 꼰다. 계집아이들은 나물 아홉 바구니를, 아낙들은 빨래 아홉 가지를, 길쌈을 해도 아홉 바디를 삼고 실 꾸리를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는다. 심지어는 밥을 먹어도 아홉 번, 매를 맞더라도 아홉 번을 맞았다. 굳이 아홉 번이라 함은 많이 했다는 의미이며 우리 조상들의 숫자 개념상 최고의 陽數(양수)이기 때문이다.[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입춘날이나 대보름날 전야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꼭 해야 연중 액(厄)을 면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의 복지(福祉)민속도 있었다. 이를테면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 건너 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가파른 고갯길을 깎아 놓는다든지 다리 밑 동냥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행려병자가 누워있는 원(院) 문전에 약탕 끓여 몰래 놓고 온다든지...[선농제] 서울 동대문 밖에 제기동(祭基洞), 전농동(典農洞)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곳(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구내)에서 베풀어졌던 선농제(先農祭)의 제사에서 비롯된 이름들이다. 농사를 다스리는 신(神)인 신농(神農)에게 풍년을 비는 제사는 신라 때부터 있어왔다. 입춘(立春) 후 첫 해일(亥日)에 선농제, 입하(立夏) 후 첫 해일에 중농제(中農祭), 입추(立秋) 후 첫 해일에 후농제(後農祭) 도합 세 차례의 제사를 지냈는데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이 동대문 밖에 선농단을 짓고 선농제만을 지내왔던 것이다.[오신채(五辛菜)] 입춘(立春)날 먹는 시식(時食)으로 오신채(五辛菜)라는 것이 있었다. 다섯 가지 매캐한 모듬나물이다. 시대에 따라, 지방에 따라 오신채의 나물 종류는 달라지고 있으나 다음 여덟 가지 나물 가운데 노랗고 붉고 파랗고 검고 하얀, 각색 나는 다섯 가지를 골라 무쳤다. 파, 마늘, 자총이, 달래, 평지, 부추, 무릇 그리고 미나리의 새로 돋아난 싹이나 새순이 그것이다. 노란 색의 싹을 한복판에 무쳐놓고 동서남북에 청, 적, 흑, 백의 사방색(四方色) 나는 나물을 배치해 내는데, 여기에는 임금을 중심으로 하여 사색당쟁을 초월하라는 정치화합의 의미가 부여돼 있었던 것이다.임금이 굳이 오신채를 진상받아 중신에게 나누어 먹인 뜻이 이에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반 백성들도 그로써 가족의 화목을 상징적으로 보장하고 仁, 義, 禮, 智, 信을 그로써 증진하는 것으로 알았으니 나물의 철학이 아닐 수 없다.세상 살아가는데 다섯 가지 괴로움이 따르는데 다섯 가지 맵고 쓰고 쏘는 이 오신채를 먹는 것은 인생오고(人生五苦)를 참으라는 처세의 신채교훈(辛菜敎訓)이라 한다. 옛 말에 오신채에 기생하는 벌레는 고통을 모른다는 말도 있듯이 고통에 저항력을 길러주는 정신력 증강 음식이기도 했던 것이다.또 오신채는 자극을 주는 정력음식이다. "선원청규(禪苑淸規)"에 절간의 수도승은 오훈을 금한다 했는데 바로 오훈이 정욕을 자극하는 오신채이기 때문이다. 옛 한시(漢詩)에 여인이 젊고 예쁘고 신선하다는 것을 표현할 때 신채기(辛菜氣)란 말을 쓰고 있으며, 여인의 정욕을 마늘 기운,곧 산기(蒜氣)라 표현했음도 이 신채가 정력을 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지루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입춘날에 톡 쏘는 매캐한 신채만을 골라 먹었던 오신채 시식(時食)은 한 해를 새 출발하는 청량제요, 자극제로서 십상이 아닐 수 없다. 오색을 갖추었으니 미학적이요, 정신이 담겼으니 철학적인 것이 입춘날의 오신채이다.
입춘에 쓰는 여러 가지 문구
龍 虎
용(은 복을 부르고) 호랑이(는 재앙을 몰아낸다)
壽如山 富如海
산처럼 수하고 바다처럼 부하게
去千災 來百福
모든 재앙 물러가고 모든 복 들어오리
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이 되니 크게 길할 것이요 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으리라.
立春大吉 民國多慶
입춘이 되니 크게 길할 것이요 백성들의 나라엔 경사가 많으리라
龍輸五福 虎逐三災
용은 오복을 들여오고 호랑이는 재앙을 쫓아낸다.
國泰民安 家給人足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며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리.
雨順風調 時和年豊
절기가 순조로우니 화평하고 풍성한 세월이 되겠네
堯之日月 舜之乾坤
요임금,순임금 때처럼 모든 것이 평화롭게
千災雪消 萬福雲興
모든 재앙 눈처럼 녹아 없어지고 많은 복 구름처럼 일어나리
富貴安樂 壽比金石
집은 부유하고 몸은 귀하여 편안하고 즐거우며 수명은 쇠나 돌처럼 끝이 없으소서
福祿正明 長樂萬年
행복을 듬뿍 받아 바르고 ?으며 큰 즐거움 오래 유지하소서
和神養素 光風動春
조화로운 정신으로 바탕을 기르고 맑고 밝은 바람이 봄을 부른다
和氣致祥 長樂無極
조화로운 기운은 상서로움으로 이어지고 긴 즐거움은 끝이 없도다
春和怠蕩 發祥致福
봄은 따뜻하고 한가하며 상서로움이 생겨 행복으로 이어진다
龍遊鳳舞 歲樂民喜
용이 놀고 봉황이 춤추니 세월이 즐겁고 백성이 기쁘다
天下太平春 四方無一事
온 세상 태평한 봄이요 사방 어느 곳에도 탈 없기를
天上近三陽 人間五福來
하늘은 삼양에 가깝고 사람에겐 오복이 오리니
鳳鳴南山月 麟遊北岳風
봉는 남산의 달 아래 울고 기린은 북악의 바람에서 노닌다
父母千年壽 子孫萬歲榮
부모님 오래 사시고 자손은 길이 영화를 누리리라.
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많은 복이 들어온다.
春風和一家 淑氣擁重門
봄 바람이 일가를 화애롭게 하고 숙기가 중문을 옹호한다
禍逐夏雲興 災從春雪消
화를 ?아내니 여름 구름처럼 일어나고 재앙은 봄의 눈처럼 녹아서 없어지네
瑞日重門啓(開) 春光福地來
상서로운 태양이 중문을 열고 봄 빛이 복된 땅에 오도다
門迎春夏秋冬福 戶納東西南北財
문으로는 사시사철 복을 받아들이고 집으로는 사방으로 재물을 들여온다
立春大吉吉無窮 建陽多慶慶有餘
입춘대길하니 길함이 무궁하고 건양다경하니 경사가 많으리라
天增歲月人增壽 春滿乾坤福滿家
하늘은 세월을 늘리는데 사람은 수명을 늘리고 봄은 온 천지에 꽉 찼는데 복은 집집마다 가득하네
時時掃地黃金出 日日開門萬福來
때때로 마당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날마다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
堂上父母千年壽 膝下子孫萬歲榮
집의 부모 오래 사시고 슬하의 자녀 오래도록 번영하네
春滿乾坤福滿家 和氣自生君子宅
봄은 천지에 차고 복은 집안에 가득한데 온화한 기운 스스로 생기니 군자의 집이로다.
和氣自生君子宅 春光先到吉人家
화기가 스스로 생기니 군자의 집이요 봄 빛이 먼저 오니 길인의 집이로다.
春光映物生長促 瑞氣滿家福祿連
봄 빛이 사물을 비추이니 생장을 재촉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집에 가득하니 복록이 이어지네
不老草生父母國 無窮花發子孫枝
불로초 자라는 부모님의 나라요 무궁화 만발하는 자손들의 가지로다
雲開萬國同看月 花發千家共得春
온 세상에 구름 걷히니 달을 보는 것 같고 꽃이 모든 집에 피니 함께 봄을 얻었네
長生不老神仙府 與天同壽道人家
장생불로하니 신선의 마을이요 오래 살 수 있으니 도인의 집이로다
積善堂前無限樂 長春花下有餘香
선을 쌓은 집 앞에 즐거움이 끝 없고 봄 꽃 아래엔 향기가 넉넉하네
兄友弟恭喜滿家 夫和婦順敬如賓
형은 우애롭고 동생을 공손하니 기쁨이 집에 가득하고 남편은 화애롭고 아내는 유순하여 서로 손님 같이 공경하네
따라서 붓을 어떻게 움직여 어떠한 필획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필획의 질감이 어떠한가에 의해 작품의 수준이 평가된다.
또한 서예의 필획은 길고 둥근 원추형의 붓으로 찰나간에 완성하는 것이기에,
붓의 성질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붓을 자신의 수족처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야, 다양하고 아름다운 필획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다.
서예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입체감과 생명력이 느껴지는 필획과,
자연미가 감도는 건강하고 신선하며 아름다운 작품을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지는 바로 알 수도 없고, 알고 있더라도 短時間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세월의 노력을 통해 겨우 그 끝자락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나,
알고 서사하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더욱 올바른 서법으로 나아가는데 유리하며, 많은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역감에 대하여 논하는 과정으로, 처음에는 대강의 용필법을 통해 역감이 생성되는 면을 주로 다루었고,
나중에는 필획·결구·장법 등을 통해 느껴지는 역감의 표현효과를 주로 다루었다.
먼저 筆 은 무엇이며, 붓은 어떠한 성질이 있으며, 力感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본다.
1) 筆 동양의 필획은 억센 솔과 같은 짧은 붓으로 물감을 찍어서 두꺼운 종이에 여러 번 칠하는 서양의 것과는 다르다.
길고 유연한 붓으로 얇은 화선지에 단번에 긋는 것으로 모든 것을 완성하기 때문에,
동양의 붓은 도구로서의 기능을 뛰어넘어 작가의 신경과 감각이 연장된 것처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서양의 예술은 面과 外的인 표현에 의미를 두고 있지만
, 동양의 예술은 함축적인 선과 內的인 곳에 의미를 두고 있다.
" 동양예술은, 급박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것에 대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그 존재의 전반을 관조하는 '老의 境地'를 요구한다.
이것은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민족과 儒佛仙을 비롯한 제자백가의 다양한 사상, 광활한 아름다운 대자연속에서 자연을 경외하면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킴바라세이고가 『동양의 마음과 그림』에서한 다음의 말은 매우 의미있는 표현이다.
동양의 아름다움은 老境의 美이고 서양의 아름다움은 若境의 美이다.
원래 서예는 글자를 쓰고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이는 漢의 許愼이
『說文解字 敍』에서 竹帛에 드러난 것을 書라고 한다.
書란 같은 것이다라 했고, 『易·繫辭上』에서는
書는 말을 다하지 않은 것이고 말은 意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으며,
『釋名 釋書契』에서 書는 많은 것이다.
庶物을 기록한 것이며 또한 말을 나타낸 것이다.
簡紙에 나타내서 길이 잊혀지지 않게 한 것이다라고 한 것에서,
우리는 書의 역할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갑골문이나 금문도 예술적인 표현보다는 자연스런 표현에 의해 아름다운 글씨체가 만들어졌던 것 같다.
이와같이 서예는 오랜 세월 붓으로 서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심미추구를 거쳐 발전을 거듭하여 지극히 고아한 예술로 발전한 것이다.
선진시대에는 갑골문과 금문이 있었고,
秦·漢을 거치면서 각종 碑文·竹簡·木簡·帛書 등에 다양한 글씨체가 쓰여졌다.
위진남북조를 지나오면서 많은 저명한 서가들이 출현하며 아름다운 저작과 서론들을 남겼으니,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예술철학이 있고 부단한 노력이 있음으로 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古今에 뛰어난 예술가들은 그들의 독자적인 예술관이 있었다.
그들은 인생·사회·자연에서 그들의 예술에 대한 이념을 自得하기에 苦心하였으니, 예술가에게 이러한 깨달음이 없다면 그것은 한갓 技藝에 종사하는 工人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서예에 관한 故事들을 살펴보면,
혹은 땅이나 이불위에 선을 그어대고 주야로 사색하고 탐구하였으며,
혹은 神授에 의탁하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연못물을 온통 먹으로 새카맣게 물들였고,
어떤 이는 파초 수만그루를 심어놓고도 그 잎이 모자랄 정도로 글씨를 썼다.
어떤 이는 안타까워 피멍이 들 정도로 가슴을 치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남의 묘를 도굴하여 비결을 얻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소중한 필법과 書跡들을 남겨놓았고
, 기존의 서체를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서체를 만들어냈다. Herbert Read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술가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독특한 문화적 전통의 한계안에서 예술작품을 창조한다.
그러나 역사를 통하여 그가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偉大性과 天才性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그의 예술적 창조물을 통하여 기존의 문화적 전통을 초월하고 변경시키기 때문이다.
書史를 통해 보면 귀족 일부만이 향유했던 서예가, 진한으로 넘어오면서 대중들이 함께 느끼는 서예로 발전되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또한 서사하는 재료가 달라짐에 따라 서체나 서풍도 달리하고 있다. 즉 甲骨·金屬·碑碣·竹帛·종이 등에 따라, 그런 서사재료들을 십분활용하여 그에 맞는 아름다운 서체를 창조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書寫速度·便利性·美的感覺 등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를 통해 서예는 다양하고 차원높게 발전하였던 것이다.
2) 筆性 대체로 글씨는 우선 붓에 먹물을 찍어 종이에 대는 것으로 시작하며, 글씨의 서사과정에 붓의 역할은 대부분의 과정을 차지한다. 따라서 붓의 의미를 알고 붓의 성질을 안다면 서예를 올바르게 敎學하는데 보다 유리할 것이다. 우선 『說文解字』를 통해 筆과 力感에 관한 의미부터 살펴본다. 甲骨文과 金文에는 筆字가 보이지 않는다.『說文解字』에서 "筆은 秦地方에서 筆이라고 한다. 聿과 竹은 모두 意味部分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聿字는 본래 손으로 붓을 잡고 있는 모습을 그린 象形字이고,(圖3) 筆字는 붓대가 대나무인 점을 고려하여, 聿에 竹字를 더하여 筆(圖4)이라는 筆記道具를 좀더 分明하게 나타낸 글자라고 하겠다. 『說文解字·聿部』를 보면 "聿은 이것을 가지고 쓰는 것 즉 붓을 뜻한다. 楚地方에서는 聿이라고 하고, 吳地方에서는 不聿이라고 하며, 燕地方에서는 弗이라고 한다"고 했다. 筆字는 이후로 붓을 뜻하는 말 이외에 글씨를 쓰다, 筆跡, 筆才 등을 가리키게 되었다. 『荀子』에서는 "군자의 生(性)은 衆人들과 다르지 않다. 배워서 사물의 능력을 잘 빌릴 뿐이다"라고 했으니, 곧 사람의 능력은 사물에 대한 理解·熟悉·掌握과 運用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붓을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붓이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붓을 잘 다룰 수 있고, 붓을 어떻게 다루는가는 얼마나 글씨를 잘 쓰는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다음에 붓의 特性을 분석해보고 이를 기초로 하여 붓을 운용하는 歷代의 說에 대하여 언급해보고자 한다. 붓의 특성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붓은 짐승의 털로 만든 것이라 부드러우면서 탄성이 있다. 붓의 부드러운 탄성은 딱딱한 펜에 비하여 다양하고 아름다우며 생명력이 넘치는 필획을 표현해낼 수 있게 한다. 부드러운 특성으로 인해 붓을 눌러 굵게 할 수도 있고 붓을 들어 가늘게 할 수도 있다. 硬筆은 선의 효과를 내는데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지만 부드러운 붓으로 글씨를 쓰려면 붓끝에 힘을 부여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붓을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 필획의 효과가 달라진다. 둘째, 많은 짐승의 털을 모아 만들었기 때문에 붓끝을 모으거나 펴서 획의 굵기를 조절할 수도 있고, 붓을 누르거나 들어서 획의 굵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붓털을 새끼줄처럼 꼬이게 할 수도 있고 곧게 펴서 운필할 수도 있다. 필봉의 중심을 중간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고 필봉의 중심을 필획의 가장자리로 향하게 할 수도 있으며, 아예 붓을 뉘어 편박한 획을 그을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중봉의 의미를 결정하는데 다양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다양한 필획을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셋째, 붓은 어느 쪽으로 보아도 圓錐의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筆鋒이 있고 副毫가 있다. 펜이나 연필은 선의 굵기가 어느 정도 一定하지만 붓은 필호가 누울 수도 있고 갈라지거나 꼬일 수도 있어서, 지면에 전달되는 힘이 일정하지 못하여 힘이 있는 필획을 얻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필봉을 잘 운용하는 것은 글씨의 성패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中鋒·偏鋒·折鋒·正鋒·側鋒·藏鋒·露鋒· 鋒·出鋒·絞鋒 등 많은 서예용어에 鋒이 들어가는 것도 이 봉의 功能이 많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넷째, 그 切面을 보면, 서양의 그림붓은 평면적인데 반하여, 서사에 사용하는 동양의 붓은 正圓이다. 서양의 붓은 넓적하기 때문에 몇가지 효과밖에 기대할 수가 없어 주로 면에 색을 칠하기 위한 것으로 활용하지만, 동양의 붓은 절면이 원이기에 作用力과 反作用力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고 八面으로 出鋒하며 다양한 선질효과를 낼 수가 있다. 다섯째, 붓은 많은 수의 털로 만든 것이라 모든 부분이 먹물을 저장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한번 먹물을 찍어 많은 수의 글자를 쓸 수도 있으며 먹물이 많을 때와 먹물이 적을 때의 필획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털이 가지런하면 먹물이 쉽게 흘러내리기 때문에 가지런한 붓으로 쓴 필획은 飽滿하고 厚實해지나, 털이 꼬여있거나 구부러져 있으면 먹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일정하지 않아 마르고 힘이 없으며 평면적인 획이 될 수도 있다. 3) 力感 『說文·力部』에 "力은 筋이다. 사람의 근육의 형상이다.(圖5) 治功을 力이라 하는데 大災를 制御할 수가 있다"라고 했고 『段注』에서는 "筋이라는 것은 그 體이며 力이라는 것은 그 用이다"라고 했다. 이 力字는 후에 運動·活動·機能 등을 가능케하는 힘이나, 어떤 작용의 효험, 혹은 물체가 서로 작용하여 그 속도에 변화를 일으키는 물체상호간의 작용, 힘쓰다, 있는 힘을 다하다라는 등의 의미를 나타내게 되었다. 禹임금이 13년간의 고심끝에 치수사업에 성공을 하였다는 기록이나, 외세의 잦은 침입에 대비하는 등 큰 재앙을 극복하려면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힘으로 인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었고 생활의 편리를 가져올 수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힘이 있는 것을 좋아하고 찬미했다. 인류는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항상 자기가 지극히 작은 것을 느끼면서 이 힘을 숭배하였으니, 좋다·낫다·훌륭하다는 말에 勝을 사용하고, 씩씩하고 용맹하다는 의미의 勇이나, 굳세고 예리하다는 의미의 勁 등과 같이 찬미하는 의미의 글자에 力이 들어가는 한자를 사용하고, 못나고 부족하고 능력이 없는 것을 劣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力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했음을 짐작케 한다. 感字는 甲骨文과 西周金文에 보이지가 않는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의 금문과 小篆의 자형은 모두 心과 咸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있다.(圖6) 『說文解字』에서는 "感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뜻이다. 心은 의미부분이고 咸은 발음부분이다"라고 하였다. 곧 사물을 대했을 때 어떤 情이 일어나는 것이나 마음에 깊이 느껴 감동하는 것이다. 力感은 筆力·骨力·筋骨·力度·筆力感 등으로도 칭한다. 서예의 미는 모두가 반드시 역감을 바탕으로 해서 서예의 아름다움이 표현된다. 역감이 없으면 모든 글자는 피곤한 듯 늘어지고 筆毫에는 생기가 없다.
力感中의 力은 서법을 시각으로 감상할 때에 일종의 감수이며, 이것은 관념중의 힘이며 심리학의 범주에 속한다.
사람들은 붉은 색을 보면서 사람들은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불을 연상하고 달구어진 쇠를 연상하고 붉은 태양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파란색을 보면 시원하거나 차가운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은 푸른색을 보면서 차가운 물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색채가 사람들에게 冷溫感을 주는 것이 분명하지만 모두가 심리상의 느낌일 뿐 물리상의 온도와는 전혀 무관하다. 역감도 이처럼 심리상의 느낌일 뿐이라는 것이다.
3. 中鋒·側鋒
중봉은 蔡邕의 「九勢」중에 "필심이 항상 점획속에서 지나도록 해야한다(令筆心常在點 中行)"라는 말에 始原을 두고 있다. 여기서 中은 정가운데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內와 같은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렇다면 필봉이 꼭 정가운데로 가야만 중봉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가령 중앙선이 그어진 곳을 달려야만 자동차가 도로중에 있는 것은 아니다. 도로의 중앙이나 삼차선을 달려도 자동차는 분명 道路中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 생각하면 필심이 정중앙으로 가는 正鋒은 물론이지만 조금 옆으로 비껴가는 측봉도 중봉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좁은 의미로 말하면 중봉은 정봉으로 측봉과는 엄격하게 다르다. 이때 측봉은 편봉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편봉중에서 입체감이 느껴지는 필획으로 다시 편봉과는 개념을 달리한다.
1) 立體感·生命力 중봉용필을 통해서 얻어지는 효과는 立體感의 표현이다. "得筆하면 비록 가늘어 수염과 같아도 發하면 또한 둥글고, 득필하지 못하면 두터워 서까래와 같아도 또한 넓적하게 된다." 중봉운용을 하면 서법중에서 골력이 있게 되고, 점획중에 骨力이 있으면 字體는 자연히 웅건해진다. 중봉용필의 골력과 입체감은 다음과 같이 錐 沙로 설명된다.
古人은 '錐 沙'로 그것을 형용하였으니 확실히 매우 심각한 것이다. 錐를 세울 수 있으면 평평한 모래의 홈중에 반영되어 나오는 것은 바로 그것의 深度와 厚度이다. 挺拔하면서 中含하니 사람에게 圓的인 입체감을 준다.
錐 沙에 대해서는, "젖은 모래에 글씨를 써보면서 중봉을 느낀 것인가", 아니면 "마른 모래에 글씨를 써보고 중봉필법을 느낀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마른 모래에 글씨를 쓰면 篆書를 연상하듯이, 획의 들어가고 나간 자취가 없이 필획이 둔중하고 획의 양면이 보드라우나 澁氣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젖은 모래에 글씨를 쓰면 예서나 해서를 쓰는 것처럼, 획에 澁氣가 넘치며 획의 들어가고 나간 흔적이 드러나 보인다. 안진경은 「述張長史筆法十二意」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후에 저수량에게 물으니 말하기를 "용필은 마땅히 印印泥와 같아야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생각하여도 깨닫지를 못하다가, 후에 江島에 모래가 평평한 곳(沙平地靜)을 보고 글을 쓰고 싶어져 날카로운 끝으로 그어가며 글을 쓰니 그 험경한 모양이 분명하고 아름다웠다. 이로부터 용필은 추획사와 같이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藏鋒으로 하면 획이 침착해진다. 그 용필이 항상 紙背를 透過하도록 하면 이는 功을 이룸이 지극한 것이다.
江島의 沙平地靜한 곳이라면, 人間이나 風雨 鳥類 등의 外的인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 시간을 요한다. 그러므로 물이 지나갔으나 어느 정도 오랜 기간이 지나지 않아 약간은 젖어있는 상태를 생각하게 한다. 그곳에 썼던 필획에서 勁險한 모양이 있었다는 것이나, 印印泥를 연상하여 錐 沙를 생각한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는 도장을 찍듯이 막대기를 곧바로 세우고 눌러가며 글을 썼을 것이다. 도장은 비스듬하게 찍지를 않는다. 직각으로 곧바르게 눌러야 도장이 바로 찍힌다. 힘있게 누르든 힘이 없이 약간을 누르든 곧바르게 눌러야 한다. 이는 기필과 수필부분을 장봉으로 했고 행필부분을 正鋒으로 했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더구나 이 시대는 해서와 행초서 등이 유행한 시절이고 보면, 그 당시 강도의 모래위에 쓰여졌던 글씨가 전서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마른 모래에서는 어떻게 그었든 장봉과 노봉의 구별이 그리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지배를 투과하는 느낌으로 막대기를 눌러 그어도 모래가 다시 덮여 획의 변화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젖은 모래에서는 도장을 찍듯이 막대기를 곧게 세워 글을 쓰면 노봉으로 글을 쓸 때와 많은 차이가 보이며 힘을 주어 획을 그어도 사뭇 다른 필획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면을 생각하여 볼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른 모래보다는 젖어있는 모래일 가능성이 많다. 中鋒은 錐 沙외에도 印印泥나 屋漏痕으로 비유를 한다. 印印泥는 위에서 잠깐 언급을 한 것처럼 곧게 도장을 내리 누른다는 뜻으로 竪鋒을 통한 中鋒의 의미하고, 屋漏痕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구불구불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물줄기와, 벽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단면에서 보여지는 圓的인 입체감을 의미한다. 그것이 젖어있든 말라있든, 모래위에서는 입체감이 분명하게 드러나나 평평한 종이위에 그어진 묵적에서는 어떻게 입체감이 드러나는가? 이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다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李陽氷은 홀로 그 묘함이 뛰어나서 항상 그 眞跡을 보면 그 字 의 起止處에 모두 약간의 鋒芒이 드러났다. 햇빛에 비춰보면 中心의 一線에 먹이 배로 짙었으며 그 用筆은 힘이 있고 곧게 내려 치우치지 않았으므로 鋒은 항상 그 가운데에 있었다
이와 비슷한 고사는 南唐의 徐鉉(916-991)에게서도 전해진다. 곧 먹색이 중심으로부터 양변으로 침투하여 생겨진 濃淡의 변화는, 필획에 飽滿感이 느껴지고 立體感이 있어야 충실한 역감을 드러낸다. 唐代 서예가 徐浩(703-782)가 「論書」에서 말한 다음의 비유는 마치 정곡을 찌르는 듯하다.
무릇 매는 채색이 부족하나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골이 굳세고 氣가 용맹하다. 훨훨 나는 꿩이 색을 갖추었으나 날아가는 것이 百步밖에 되지 않는 것은 살이 쪄서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이는 중봉용필을 매에 비유하고 편봉용필을 꿩에 비유하여, 중봉용필은 매처럼 아름다운 색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筋骨이 뛰어나고 살이 적으며 생동감이 있음을 말한 것이고, 편봉용필은 꿩과 같이 아름다우나 肉이 많아 百步도 날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편봉용필은 운필이 신속하나 점획이 뜨고 얇아(浮薄) 먹색이 紙背에 깊이 스며들지 못하여 역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나 힘을 얻어 立體感이 표현될 수 있으면 側鋒이 된다. 편봉은 붓대와 필호가 지면으로부터 수직이 되지 않고 많이 기울어져 힘을 발휘할 수가 없고, 측봉은 수직에 가까워 지면에서 힘을 발휘할 수가 있다. 힘은 직각으로 작용할 때에 최대한의 효과를 얻고 기울어지는 각도가 클수록 그 효과를 잃는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필호가 紙面으로부터 수직의 관계를 유지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중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굳센 골력이고, 측봉을 통해 얻어지는 필획은 姸媚함이다." 중봉운필을 통해 얻어지는 또 하나는 生氣이다. 생기에 대하여『書藝通論』에서는 다음과같이 설명한다.
획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生氣이다. 생기가 있다는 것은 획이 살아있다는 말이다. 획이 매끄럽지 않아야하며 거칠어서도 안된다. 획은 潤氣가 있으면서도 까칠까칠해야한다. 대체로 미끄러운 획보다는 다소 거친 편이 낫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여기서 살아 있다는 것은 역동감이 있으면서 획질이 다양함을 의미한다. 동적인 느낌은 사람들에게 꿈틀대거나 질주하는 역감을 준다. 이러한 현상은 또한 "字形에 生命力을 갖추게 하면 생명의 미를 드러내지만, 필력이 없으면 병든 환자처럼 창백하고 생기가 없게 된다." 생명력은 붓에서 필획으로 힘을 貫注하는 데에서 비롯되며, 어느 글자든지 전체작품에서 웅건한 힘이 넘치게 한다. 만약 병든 사람의 피부라면 蒼白한 색깔을 나타내고, 죽은 사람의 피부라면 그것은 단지 곱거나 활발한 느낌이 없는 삐쩍마른 색채이다. 그러므로 획에는 건강미가 넘쳐야 한다. 이것은 곧
書가 사람과 같이 필력이 있으면 骨이 풍부하고 살이 고르게 있으며, 이미 필력을 얻었으면 생기가 활발한 것과 같은 것이다. 왕성한 생명력은 肌膚에서 사람을 感動시키는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서법은 점획 글자 布局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마치 사람의 신체와 같이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생명력이 있다. 한획한획 떨어져 있는 필획이란 어색하기 짝이 없으며, 죽은 필획이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側과 勒에 관한 다음의 설명은 얼마나 생생한 느낌이 드는가?
衛夫人이 『筆陣圖』에서 말한 점은 높은 봉우리에서 떨어지는 돌과 같이 돌이 부딪치는데 실로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니, 이 얼마나 돌이 깨어지고 하늘이 놀라는 力量이 아닌가! 하나의 횡획도 橫이라 말하지 않고 勒이라 칭했으니 그 勢를 말한 것인데,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춰 세워 紙上에서 踊躍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곧 세이고 힘이며 곧 虎虎가 生氣가 있는 節奏이다.
이러한 표현을 마음으로 느끼면, 우리는 글을 쓰면서 생동감있는 장면을 분명하게 연상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하려고 노력을 할 것이며, 생명력이 있는 글씨를 마침내는 얻게 될 것이다. 생명력은 지속적으로 역감을 발휘한다. 한번으로 끝나는 역감이 아니라 약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발휘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강한 것이다. 생명력이 있으니 그 형태가 변화무쌍하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정취가 풍겨 나올 것이다.
2) 竪鋒·鋪 중봉이 되려면, 우선 竪鋒이 되야 하는데, 수봉은 필봉을 바르게 들어 지면의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수직으로 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중봉용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붓을 먹물에 담궈 글씨를 쓰기 전에는 主毫와 副毫가 고르게 서서 엉기거나 굽는 現象이 없다.
그러나 붓이 일단 종이에 닿으면 外界의 壓力을 받아 부드러운 필호가 자연스레 섰다가 紙上에 눕게 되는데(倒向) 만약 이때에 順勢로 운필하면 평이하게 붓이 끌려다니게 되고, 곧바로만 행필하면 얇으면서 단조로운 필획만이 표현될 것이다.
즉 書寫를 할 때에 붓이 눕는 것은 그 常性이지만 그렇게 누워서 끌려가고 끌려오기만 하면 單調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붓끝에도 힘이 이르지 않아 이렇게 해서 나온 필획은 扁薄한 모양이 된다. 그러나 필봉을 바로 세우면 筆心이 언제나 가운데에 있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니, 역대로 서가들은 이 竪鋒을 매우 중시하였다. 중봉용필에서 매우 중요한 또 하나는 鋒과 鋪毫이다.
과봉은 서사할 때에 전체의 필봉이 원추모양을 유지하는 용필방법이다. 平鋪와 상대되는 말이다. 봉을 모아 안으로 집결하면 붓은 획의 중심으로 움직이고 선조는 전체가 간명하게 모여 勁感과 彈力感을 준다.
鋒은 筆中鋒으로 하필한 후에 運筆使轉을 거치는 것으로 毫鋒을 모아서 盡力으로 운필하는 것이다. 마른 곳에 이르면 왕왕 양변에 먹이 묻지 않은 부분이 보이고(墨虛) 중간에는 묵흔이 있어(墨實) 사람들에게 일종의 바깥으로 돌출하는 圓柱體의 형상을 준다.
『中國書論辭典』이나「運筆十四勢論」에서는 과봉에 대해 위와 같이 언급을 하고 있다. 필봉이 원추모양을 유지하니 어느 방향으로든 붓이 움직이더라도 중봉이 될 것이고 운필에 자유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며, 필획이 부드러워지고 서로 호응할 것이다. 붓이 자유롭게 움직이니 필호에는 자연스런 변화가 나타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양한 필획이 나타나게 된다. 과봉은 鋪毫와 상대적인 개념이다. 포호에는 斜鋪와 平鋪가 있는데 사포는 편봉이나 측봉을 의미하고, 평포는 중봉을 의미한다. 平鋪에 대하여 『書藝通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붓의 끝이 가지런히 펴져, 그 펴진 길이가 곧 획의 넓이가 되는 방법이다.
鋪라는 것은 鋪毫中鋒으로 행필할 때에 盡力으로 필호를 벌려 필봉을 平鋪하는 것이다. 필봉이 치우치지 않으며 萬毫가 一力이 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필력이 均稱한 데로 이를 수 있고 挺秀明麗한 目的에 이를 수 있다. 모든 운필하는 과정중에 鋪 는 상대적이면서도 相生하여 역감이 있는 필획을 만들어 낸다. 중봉용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가 萬毫齊力이다. 만호제력은 모든 터럭의 끝에 가지런히 힘을 준다는 것으로, 蔣和(1736-1795)가 『書法正宗』에서 한 다음의 말과 같은 것이다.
글자에는 一筆이라도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없고 一法이라도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牽絲使轉을 해도 또한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힘이 筆尖에 주입되면 화평하게 출봉하니, 붓을 잘 놀리는 사람은 정신이 筆頭로 주입되며 槍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힘이 창끝에 있다.
즉 一筆이나 一法이라도 힘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그것은 書法線條美感에서 가장 중요한 元素이며 마땅히 제일로 중시를 해야한다. 그러나 너무 지나친 힘을 주는 것은 삼가야 하니, 절제하지 않은 거칠고 뻣뻣한 蠻力은 一顧의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필호는 유연한데 힘을 鋒端에 이르게 하고 또한 鋒端自體에서 힘을 發하게 하며, 發力을 끊지 않아야하니 실제로 쉬운 일은 아니다. 萬毫齊力은 이렇게 선조에 역감이 있도록 하고 中實한 선조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어떤 力度나 어떤 速度와 어떤 濃度로든지 반드시 모필을 펴서 每一根의 모필에 모두 최대의 가능한한 힘을 傳導시킬 수 있도록 한다. 가장 훌륭한 鋒端의 瞬間着力狀態는 四面鋪毫·八面出鋒이다. 이것이 전형적인 가장 훌륭한 萬毫齊力이다. 다만 功力이 深厚精熟한 때라야 비로소 이 法을 얻을 수가 있다. 종이에 작용하는 筆毫의 힘에는 大小가 있다. 厚實勁挺한 역감은 종이에 작용하는 필력의 총량을 크게 하며, 연약하고 무력한 감각을 내는 필선은 필호가 종이에서 주동력을 내지 못했던 것에 근거한다. 大凡한 필획은 緊張된 힘으로 종이위에 필선을 긋는 것으로부터 얻어지며, 逆行이나 勒行으로 行筆하면 큰 힘이 표현되고 順鋒順行하면 작은 힘이 표현된다. 3) 側鋒用筆 一般的으로 말하면 篆法은 중봉을 많이 사용하고 隸法은 측봉을 겸용하며 전법은 圓이고 예법은 方이다. 이는 측봉용필이 실질상으로는 예법에 기원한다는 것을 초보적으로 제출한다. 전서에서 예서로의 변화는 中鋒一邊倒에서 側鋒이 가미된 자유로운 필획으로 변화한 것이다. 곡선에서 직선으로의 변화는 문자를 簡易하게 하고 서사속도를 빨리 하여, 문자가 실용과 대중속으로 파고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예서의 발전은 일부 귀족계층에만 머무는 글씨가 아니라 실용과 대중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예술미가 가미되어 화려한 한자예술의 꽃을 피우는 기반이 되었다. 그것은 해서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초서가 탄생하는 길을 열어 주었으므로, 중국서예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篆書에서는 중봉용필을 주로 사용하지만 隸楷行草 등 모든 서체에서는 측봉용필을 겸용한다. 前人들도 용필할 때에는 결코 측봉을 廢하지 않았으니, 중국의 가장 걸출한 서가인 二王父子를 포함한다. 倪蘇門은 「書法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왕희지와 왕헌지가 글을 쓸 때에도 모두가 중봉은 아니었다. 古人은 살펴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서가는 붓을 잡아 지극히 활발하고 지극히 圓的이며 四面八方으로 筆意가 이르게 하니 어찌 중봉에 구속되어 일정한 법에 이를 수가 있겠는가?
다양한 필획을 구사하려면 곧 단일한 중봉운필에 구속될 수는 없다. 또한 무엇이 측봉인가를 알려면 무엇이 중봉이고 무엇이 편봉인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른바 偏鋒은 운필할 때에 붓대가 기울어져 필봉이 획의 한쪽 변에 있고 筆身은 획의 다른 한쪽 변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쪽 면은 매끄럽고 다른 面은 톱니와 같이 고르지 못하게 되고, 먹이 종이에 스며들지 않아 필획은 扁平하며 종이위에 떠있는(浮露) 느낌을 주므로, 서예교학과정에서 가장 꺼리는 것이다. 측봉은 중봉과 편봉사이에 끼어있는 용필방식이다. 우리들이 알기로 古人이 點法을 側法이라 한 것은 側이 側鋒으로 세를 취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횡획은 필봉을 직입하고 竪 은 필봉을 橫入한다"면, 한편으로는 필세의 왕래가 더욱 유리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篆法起筆에 비하여 빠르고 간편해진다. 그러나 落筆하여 成點할 때 중봉이 아닌 편봉의 모양이 종종 형성된다. 그때에 필모는 지상에 斜鋪하는데, 運筆調鋒을 하면서 필모를 지상에 平鋪하도록 하는 것이다. 편봉용필은 필모가 종이위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요, 측봉용필은 누웠으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봉과 측봉은 서로 비슷하기는 하나 근본적으로는 다르다. 중봉운필은 필호를 지상에 平鋪하고 측봉운필은 필호를 지상에 斜鋪한다. 편봉용필은 필호에 긴장감이 없으나 측봉용필이나 중봉용필은 필호에 긴장감이 유지되는 것이다. 요컨대, 서예는 천변만화하는 선을 사용해서 작자의 사상과 감정을 발하여 작자가 창조하는 意境을 표현한다. 이러한 선을 긋기 위한 관건은 좋은 필법을 숙달하는 데에 있다. 필법은 서법예술의 열쇠이다. 그리고 필법을 통해 얻으려는 것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필력이다. 고인들은 이 뛰어난 필력을 얻기 위해, 고민하고 토론하며 많은 작품과 논문들을 남겼다. 필력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蔡邕·衛夫人으로부터 전해지는 전신역도설과 唐의 廬肇로부터 시작되는 기교필력설이다. 이중에 어느 방법으로 표현했든 書跡에서 나타나는 역감을 書跡筆力이라고 한다. 이러한 역감은 중봉을 통해서 얻어지고 생명력을 느끼게 하며 立體感·多樣性·力透紙背·中實感 등으로 표현된다. 生命力은 힘이 있고 살아있는 아름다운 피부와 같아야 하고 죽은 피부처럼 枯槁한 색채를 드러내서는 안된다. 중봉용필은 骨力과 입체감을 표현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며, 점획중에 골력과 입체감이 있으면 字體는 자연히 웅건해진다. 또한 공을 잘 던지는 투수는 공끝이 살아있어야 하는 것처럼 붓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붓끝이 살아있어야 한다. 즉 붓끝에 힘이 있어 긴장된 상태가 되어야 하며, 그 긴장된 필봉은 變化莫測한 필획을 만들어낸다. 또한 力透紙背한 中實感이 붓이 닿지 않는 곳까지라도 전달될 수 있어야 하고, 作書貴一氣貫注라는 말이 의미하듯, 필력이 시종 서로 연결되고 심지어는 먹이 이르지 않는 곳에도 마땅히 필력이 미쳐야 한다.
2. 點畵
骨氣는, 陽的으로 드러나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고, 陰的이며 약하여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은은하게 나타나는 것이 있다. 역감이 강렬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서법작품을 陽剛類라 칭하고 역감이 약하여 內蘊한 것을 陰柔類라고 칭한다. 세상에는 결코 絶對無力한 형상이 없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힘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힘의 유무를 말하는 것은 그것에 비하여 힘이 강하다 약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아래에 모든 필획에서 나타나는 역감의 강약을 다 살펴볼 수 없어, 다음에 몇 가지의 상대적인 면을 설정해놓고 그에 대하여 비교하면서 기술하여 본다.
1) 方圓·曲直 방필에서는 方正雄峻한 아름다움이 보이고 원필에서는 圓轉渾穆한 아름다움이 보인다. 필력의 剛柔面에서 본다면, 角이 있는 것이 각이 없는 원에 비하여 힘이 있다. 米 (1051-1107)은 이에 대해 "세상사람들이 대부분 큰 글자를 쓸 때에, 힘을 써서 붓을 잡으면 글자는 더욱 筋骨神氣가 없어지고, 원필로 쓰면 머리가 마치 쪄놓은 떡과 같아 매우 우습다"고 하였다. 그러나 강하게 보인다고 직선과 방필만을 구사한다면 글씨는 뻣뻣해지고 마른 장작을 쌓아놓은 것 같아서 雅趣가 없어진다. 부드럽고 약하게 보이는 圓도 약간의 방필이 가미되면 방필보다도 강하게 보인다. 方과 圓은 마땅히 병용하여야 한다. 方도 아니면서 圓도 아니고, 圓이면서 또한 方이며, 혹은 방을 體로 하여 원을 사용하고, 혹은 원을 體로 하면서도 방을 사용한다. 혹은 방필을 사용하면서 장법에 圓을 사용하면 神明해질 것이다. 明의 項穆은 「書法雅言」에서 원이면서 방이고 방이면서 원이면 바로 기이함을 간직할 수 있으며 기이하나 바름을 잃지 않으면 中和와 합치될 수가 있으니 아름답다할 것이다라고 했다. 方에는 頓筆을 사용하고 圓에는 提筆을 사용하는데, 제필은 中含하고 돈필은 外拓한다. 중함의 필획을 사용하면 글씨가 渾勁해지고 외탁의 필획을 사용하면 글씨가 웅강해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필획을 함께 사용할 수 있으면 역감이 있는 필획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劉熙載(1813-1881)는 「書槪」에서 곡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서예에는 曲이면서 直體가 있어야 하고 直이면서 곡선의 운치가 있어야한다. 만약 느슨하면서도 엄하지 않고 빠르면서 머물지 않으면 그는 곡직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즉 곡선이면서 강직한 맛이 없으면 늘어진 느낌을 피할 수 없고 직선이면서 부드러움이 없으면 뻣뻣해져서 마른 장작과 같을 것이니 운치가 없다. 오래된 등나무의 줄기를 보면 줄기가 휘었으나 곧은 나무 가지에서 느껴지는 力度보다 오히려 강해 보인다. 뒤틀리면서 올라간 선을 보면 역동하는 당당한 기세를 느끼게 하며, 축 늘어진 것 같으나 오히려 긴장된 선을 보면 오히려 곧게 뻗은 선보다도 더욱 역감을 느끼게 한다. 李世民은 『王羲之傳』에서 "무력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글씨를 보고 겨우 글을 이루었을 뿐 장부의 기세가 없다. 행마다 봄 지렁이가 얽혀있는 것 같고, 글자마다 가을 뱀이 얽혀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봄 지렁이가 얽혀있는 것이나 가을 뱀이 얽혀있는 것은 모두가 무력한 곡선으로 글씨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글자를 쓸 때에는 정신이 있음을 귀하게 생각하고 점획은 挺拔을 귀히 여긴다. 정발은 생동감이 없이 뻣뻣한 것이 아니고 곡세중에 평직의 彈性美가 풍부하게 보이는 것을 가리킨다. 林散之의 「辛苦詩」를 보면 그도 이에 대해 얼마나 고심을 하였는지를 알 수가 있다.
수고로운 찬 燈아래 70년을 살면서 먹을 갈다 간 먹에서 느낀 마음 깊어라. 붓은 曲處를 따르나 다시 直線을 구하고 마음은 圓滿하나 다시 方正함을 깨닫누나.
2) 輕重·粗細 輕은 사람에게 초월한 마음이 들게 하고, 重은 사람에게 침착통쾌한 느낌을 준다. 경은 필획이 섬세하고, 중은 필획이 풍유하다. 필획이 섬세한데 풍유함을 겸하면 자연스럽게 세를 얻을 수가 있으며, 경중을 겸하여 운필하면 무한하고 풍부한 韻律을 형성하여 무한한 변화가 나타난다. 王僧虔은 「筆意贊」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굵다고 무거운 것이 아니며 가늘다고 가벼운 것이 아니다.
철근이나 쇠추를 들면 가늘고 작으나 몹시 무겁고 스폰지나 스치로폴을 들면 비록 굵고 부피가 크나 가볍다. 필획도 마찬가지로 가늘고 작지만 무겁고 힘이 있는 필획이 있고, 길고 굵지만 가볍고 약해보이는 필획이 있다. 용필법이 너무 가벼우면 浮滑하고 너무 무거우면 지체된다. 따라서 마음에서 경중을 얻고 손에서 調應하여야, 경중이 한바탕 잘 어우러진 다양한 필획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경중과 비수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붓으로 서사할 때에 경중을 드러내고 肥瘦가 알맞은 곳에 이르면, 살이 쪄도 살이 쪘다고 느끼지 못하고 수척하나 수척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운필을 가볍게 하지 않을 수 없으나 가벼워도 섬약하거나 경망스럽지 않아야 한다. 운필은 또한 重感이 있는 것이 비교적 좋다. 그러나 무겁더라도 반드시 沈厚해야지 凝滯해서는 안된다. 淸의 朱履貞은 「書學捷要」에서 "침착통쾌한 것이 글씨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무릇 글씨는 살찐 것을 귀히 여기니 그 실은 침후한 것이지 살찐 것은 아니다. 아리땁게만 쓰는 것도 좋지 않지만 경망하게 쓰는 것은 큰 병이다. 書는 마르면서 굳센 것을 귀히 여기니 맑으면서 빼어난 것이지 마르면서 굳센 것이 아니다. 마르면서 潤筆이 없는 것을 枯骨이라 하고 斷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살찐 글자에는 骨이 있어야 하고 마른 글자에는 살이 있어야 한다. 용필은 터럭같이 가는 곳에서도 또한 반드시 全力을 사용해야 하며, 細處에 힘을 사용하는 것은 가장 어렵다. 전력을 사용하는 것은, 온힘을 다하여 붓을 잡고 찍어누르는 것이 아니라 전신의 힘이 느껴지도록 필획을 구사하는 것이다. 가는 필획속에 강한 힘을 느끼게 하려면 고도의 기교가 필요하다. 고도의 기교는 어려우나 이러한 곳에 서예의 묘미가 있다. 淸의 梁 은 『平書帖』에서 "歐陽詢의 글씨는 가로획이 약간 가볍고, 顔眞卿의 글씨는 가로획이 모두 가벼우며, 柳公權(778-865)의 글씨는 가로획이 무거우면서 곧다"고 하였으니, 여기서 말한 중경은 조세로 드러나는 것이다. 粗는 무겁고 重은 力强하며 細는 가볍고 輕은 힘이 약하다.
3) 藏露·進退 장봉은 필획이 점획의 중간에 감추어져 있어 필봉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운필법이다. 장봉으로 이루어진 획은 노봉에 비하여, 기운이 內含하고 필획이 厚重하다. 蔡邕은 「九勢」에서 "장봉은 점획출입의 자취로 좌측으로 가고자하면 먼저 우측으로 가고 좌측에 이르러서도 또한 우측으로 회봉하는 것이다. 藏頭는 원필로 종이에 낙필을 하는데 필심이 항상 점획속을 지나도록 해야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종종 중봉의 의미로도 인용되며, 장봉을 하려면 역입과 회봉을 해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노봉은 붓끝이 드러나는 운필로, 행초서에서 많이 나타나며, 다양한 모양과 아리따운 느낌을 준다. 너무 살이 찌면 형체가 그리워지고, 너무 수척하면 형체가 비쩍 마르게 되니 살찌나 살이 남지 않고 수척하나 골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肉이 많은 것은 骨이 많은 것만 못하고 노봉이 많은 것은 장봉이 많은 것만 못하다. 노봉만을 사용하는 것도 장봉만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노봉을 적절히 사용하여 연미함을 드러내고 장봉을 적절히 사용하여 후중한 느낌을 드러내게 하여 이 두가지 법을 어우러지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 필법일 것이다. 필획의 방향도 역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필획과 뒤로 물러나는 듯한 필획에서는, 나아가는 느낌의 필획이 더욱 힘이 있어 보인다.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라든가 밖으로 나오는 필획은 안으로 들어가는 필획보다 더욱 힘을 느낀다. 사람들은 화선지의 좌우를 좌우라 여겨서 左 右捺이라 말하고 지면을 앞이라 하고 지배를 뒤라고 여기니, 이 때문에 큰 것, 굵은 것, 긴 것, 진한 필획은 모두 앞으로 나아오는 느낌이 들고, 작은 것, 가는 것, 짧은 것, 흐린 필획은 모두가 물러나는 느낌을 준다. 또한 사람들은 대부분 좌측을 앞이라고 생각하고 우측을 뒤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음의 예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자기의 의도를 숨기고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한편으로 전진하는 깃발을 그리게 하였더니 그 결과 매사람은 모두가 깃대를 좌측으로 향했고 기면은 우측으로 펄럭이게 하였다. 다시 그들에게 하나의 측면인물을 그리게 하였더니 그 결과 매사람은 이러한 인물의 얼굴을 좌변을 향하도록 그렸다.
그 원인은 당연히 우리들이 오른 손으로 붓을 잡는 것과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종종 앞으로 향하는 것이나 진보적인 것을 좌파 좌익이라 하고, 뒤로 향하는 것이나 물러나는 것을 우파우익이라 하는데,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4. 其他
여기서는 점획과 결구외에 역감을 느끼게 하는 다른 것을 실어 보았다. 종이 위에서 필묵의 속도가 역감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양강하고 음유한 필획들이 主賓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生熟이나 平險을 거친 후에, 다시 한단계를 뛰어넘은 생이나 평정에서 느껴지는 천진난만한 자연스러움을 다루었다. 이 또한 서예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을 망라한 것이 아니라, 몇가지 예를 들어 그 대강을 짚어본 것이다.
1) 速度·紙墨 필력은 속도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운필이 너무 느리면 鈍滯함을 드러내며, 한결같이 신속하면 또한 浮滑해지게 된다. 이렇게 속도가 느리고 신속함으로 해서 드러나는 鈍滯와 浮滑의 상대적인 것이 침착통쾌라할 수 있다. 침착이라는 것은 용필이 飄浮하지 않고 붓은 攝墨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비록 매우 작은 일점일획이라도 정기를 결집하고 墨光이 浮溢하게 해야하며, 경솔하게 미끌어지지 않아야 한다. 통쾌라 하는 것은 필세가 유창하고 점획이 飛動하고 표정이 활기차며 기세가 도약하고 凝滯하는 세가 없어 사람들에게 상쾌하고 淋?한 예술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沈着·痛快라는 두 가지는 動과 靜의 결합이므로 窮年累月의 공력이 없다면 이러한 境地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 疾澁은 붓의 운행이 빠르고 느린 면에서 침착통쾌라는 관점과 비슷하나 遲速을 거듭하는 운행중에 그 추구하는 것이 약간 다르다. 疾澁의 작용에 대해 鄭祥玉은 "疾筆로 행필하면 필획은 險勁하여지고 澁筆로 행필하면 필획은 重厚하여진다"라고 하였다. 蔡邕은 「九勢」에서 "澁勢는 緊 戰行의 法에 있다"라고 했다. 여기서 緊은 긴박한 의미이며, 은 곧 短促 疾勢를 나타내고, 戰行은 相爭·對抗·摩擦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緊 戰行은 곧 운필할 때에 역세를 취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점차적으로 頓挫하며 필의에 약간 돌아보는 것이 있으며 경솔하고 매끄럽게 지나가서는 안된다. 澁勢는 난도가 매우 높은 운필법이며 또한 점획의 형질미를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이다. 疾澁의 필세를 얻으면 書妙를 다하였다고 할 수가 있으며, 疾中에 澁이 있고 澁中에 疾이 있어야 한다. 질삽의 문제는 문방사우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글은 비록 사람이 쓰지만, 서법을 연구하고, 書法規律을 창신하고, 필기구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활용하는가하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붓을 잡은 힘을 毫端으로 보내면, 붓이 종이에 닿아 작용하면서 먹물을 흘러내리고, 먹물과 붓이 종이에 붙으려는 장력이 작용한다. 이때 필호자체가 종이에서 힘을 발하게 하면 역감이 살고, 필호가 종이의 힘에 끌리면 곧 역감이 죽는다. 그러므로
下筆을 하면 마땅히 着實하게 하고 脈動(跳得起)하게 해야하며 필이 지상에서 죽도록 해서는 안된다.
혹시 붓이 누웠더라도 바로 일으킬 수 있으면 획에는 자연히 힘이 있게 된다. 필을 提起할 수 있는 것이 곧 힘이지만 결정코 힘을 사용하여 붓을 필근까지 내리누르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무지막지하게 힘만을 사용하는 것을 死力이라고 한다. 용필이 착실한 곳에서는 按을 사용하고 자유분방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곳에서는 提를 사용한다. 一提一按하여 붓이 누울 때 바로 일으키면 저절로 뻣뻣해지고 눕는 폐단이 없어진다. 먹의 운용은 붓에 따라 이루어진다. 곧 붓이 가는 곳에는 항상 먹이 따르고, 붓의 운용에 따라 먹에는 다양한 변화가 생겨난다. 먹은 짙으면서 또한 濕하거나 乾燥할 수가 있고 淡墨이면서 또한 乾燥하거나 濕할 수가 있다. 먹이 진하면서 또한 건조하면 붓이 정체되고 쉽게 破毫되지 않아 종종 筋이 없이 骨을 드러낸다. 淡墨은 비록 가볍고 경쾌하며 유창하고 淡雅한 意境을 표현하나 먹이 지나치게 묽으면 蓄留가 어렵고 필력을 표현하고 변화있는 필획을 구사하기 어려우며 운필이 輕浮해지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글씨를 쓰면 항상 유약하고 신채가 없다. 일반적으로 말해 小字는 짙은 것이 적당하고 大字에는 墨韻이 渗化되는 먹농도가 비교적 낮은 것을 요구한다. 먹물이 너무 진하거나 먹의 운용을 잘못하여 오직 역감만을 드러내고 기부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골만 있고 살이 없는 사나운 느낌을 드러낸다. 백지위에 먹색이 진해질수록 刺의 필력은 더욱 强해지며, 묽을수록 刺의 필력은 더욱 弱해진다. 姜夔는 「續書譜」에서 먹물이 진하면 행필이 막히고 건조하면 필획이 삐쩍 마르게 된다고 하였고, 元代의 陳繹曾은 「翰林要訣」에서 먹이 너무 진하면 肉이 凝滯되고 너무 흐리면 肉이 輕薄해진다고 하였다. 먹색이 너무 진하면 또한 먹물이 잘 흘러내리지 못해 행필이 막히고 필선이 고르지 못하며 필획이 엉겨붙게 된다. 먹물이 흐리다고 약해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흐리면 멍청해 보여 俗書를 면하지 못한다. 따라서 적당한 정도의 먹색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2) 陽剛·陰柔 강한 것이란 무엇인가? 『莊子』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紀 子라는 者가 임금을 위하여 싸움닭을 기르는데 열흘만에 임금이 묻기를 "싸울만한 닭이 되었는가"하니 기성자는 대답하기를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 건성으로 사나운 척하며 제 기운만 믿고 있습니다"하였다. 열흘이 지나 또 물으니 "아직 멀었습니다. 다른 닭의 소리만 듣거나 모양만 보아도 덤비려고 합니다"고 하였다. 열흘만에 또 물으니 "아직 안되었습니다. 다른 닭을 보고 눈을 흘기고 기운을 뽐내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열흘이 지나 또 물으니 "인제는 거의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울며 덤벼도 조금도 태도를 변치 않습니다.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깎아 만든 닭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닭의 덕이 온전해져서 다른 닭이 감히 덤비지도 못하고 반대로 달아나 버립니다"라고 하였다.
논어에는 "군자는 태연하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나 태연하지 못하다"는 글이 있다. 姚孟起 또한 「字學憶參」에서 "백번 정련한 쇠로 '繞指柔'라는 검을 만드니, 柔란 약한 것이 아니라 강한 것이 지극하여 부드러워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덕이 있는 사람은 언제보아도 겸손하고 태연하나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어 머리가 숙여진다. 반대로 덕이 없는 이가 세를 얻으면, 억지로 남을 누르려고만 하는 등 허세를 부린다. 허세가 있는 약한 자들은, 강한 것을 의식해서 강한 체하기 때문에 혹시 세가 있으면 교만해지고 세가 없으면 곧바로 비굴해진다. 특히 생존경쟁이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현상이 더욱 극명하다. 진정으로 강한 기운이 안에 가득하여 상대가 없고 두려울 것이 없으면 오히려 편안한 모습이 된다. 정말로 강한 鬪鷄이기에 싸우려고 달려드는 싸움닭 앞에서도 나무로 깎아만든 닭과 같이 여유가 있는 것이며, 강하기에 조그만 위협을 보고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도 있다. 부드럽고 약한 나무뿌리가 바위틈을 헤집고 들어가 나중에는 그렇게 단단하고 육중한 바위를 조각내는 모습이나, 대포알처럼 힘차게 날아가던 축구공이 부드러운 그물에 걸리면 그대로 맥없이 그 자리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된다. 동양철학에서 木生火·火生土·土生金·金生水·水生木·木剋土·土剋水·水剋火·火剋金·金剋木로 순환하는 상생상극의 관계도 세상의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강하거나 절대적으로 약한 것이 없음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水가 火를 이겨도 水의 勢가 火보다 弱하면 火를 꺾지 못한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剛은 강철같이 굳센 것이고, 柔는 버들가지처럼 부드러운 것이다. 그러나 陽剛이나 陰柔한 한 쪽만을 사용하여 글씨를 쓴다면 너무 강하거나 너무 늘어져 자연스런 운치가 없다. 王澍(1668-1743)는 「論書 語」에서 "拙을 사용할 수 있어야 巧를 얻고 부드러움을 利用할 수 있어야 剛을 얻는다"고 하였다. 진정으로 강해보이는 것은 부드러운 필획이 곁들여야 그 강한 필획이 살아나는 것이요, 부드러운 필획 역시 강한 틈에 있어야 부드러운 효과를 최대한 발휘할 수가 있다. 劉熙載는 「書槪」에서 구양순과 우세남의 글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歐虞를 竝稱하나 그들의 글씨에는 方圓剛柔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虞世南을 잘 배운 사람은 和하면서 흐르지 않고, 歐陽詢을 잘 배운 사람은 위엄이 있으나 사납지 않다.
이와 같이 剛中에 柔가 있어야 하고 柔中에 剛이 있어야 한다. 剛柔는 互含互用하며 互濟互成해야 좋은 필획을 얻을 수 있다.
3) 生熟·自然 金元龍은 「韓國美의 探究」에서 동서양의 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다.
전통적인 예술관의 입장에서 볼 때 동서가 추구한 미에 대한 견해는 사뭇 대조적이다. 인간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본 서양인과는 달리 동양인은 인간을 자연의 소생으로 보았으며 또한 곡식을 주로 상식함으로써 육식을 주로 하고 성욕과 생명력을 본성으로 여겨 인간의 나신에 美의 根源을 두고있는 서양인에 비해 미의 근본을 自然에서 찾으려했다. 그러므로 서양인의 창작적인 예술미에 대해 동양인은 수용적인 자연미를 중시하게 되었다.
이처럼 동양의 예술은 수용적인 자연미를 중시한다. 힘에서 자연스러움을 얻으려면 含蓄蘊藉함을 표현하여야한다. 또한 필력이 充盈하다는 전제하에서 화평함을 표현하니 이것은 가볍고 느슨한 자연의 힘이다. 힘이 있다는 것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젖먹던 힘까지 다 사용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추호도 사람에게 긴장하거나 주저함이 없는 자연스러움이 배어있어야 한다. 王虛舟는 『論書 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山을 뽑아내고 솥을 드는 힘으로 舞女에게 꽃을 꽂아주는 것은, 바로 和字를 터득함을 말한다.
和에는 用力이 함축되어 있으며 潛伏하여 드러내지 않은 의미가 있다. 마치 어느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자신이 가진 음량의 70-80%만을 사용하면 여유로움이 숨어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필력은 다만 沈勁入骨하는 공부가 있어야 비로소 和平한 필획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역감이 있는 글씨는 강한 획만을 열거해놓는 것이 아니다. 강하기만 하고 여유로움이 없는 다듬어지지 않은 힘을 蠻力이라 하며, 이러한 만력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절대 아름답게 보여지지 않는다. 역감이 있는 글씨는 안에 축적된 힘이 많아 늘 여유롭고, 준비된 것이 많아 화평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글씨이다. 그것은 생각해가면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니, 변화를 의식해서 다른 모양의 글자를 만드는 수준으로는 숭고한 경지에 이를 수가 없다. 글자의 결구에는 生과 熟의 문제가 있다. 한 점을 잘못 찍으면 미인의 한쪽 눈이 없는 것과 같다고 했으니 이것이 비록 間架·結構의 위치를 가리켜 한 말이나 또한 한 글자중의 敗筆을 들어 비유할 수도 있다. 처음으로 서예를 하면, 집필과 운필에 生疎함을 느끼는데 이 生은 서법실천을 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거나 혹은 매우 적은 서사실천에서 출현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거치면 生에서 熟의 단계에 이른다. 획이 熟에 이르는 단계에서 만약 停滯되어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어느 정도의 尊古守舊하는 모습이 생겨나는데, 이것을 예술상의 淘汰라고 한다. 生에서 熟의 단계에 이르면 또 生을 구하여야 한다. 뒤의 생은 生動하는 필선이나 천진난만한 자연스런 필획을 의미한다. 그것은 많은 기간의 서사실천을 거쳐야하고 또한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해야만 비로소 이를 수 있는 단계이다. 처음의 生은 學力이 미치지 못한 것으로 心手가 서로 어긋난 것이고, 熟을 거친 뒤의 生은 世俗을 따르지 않고 新意가 때로 나오며 붓이 化工과 함께한 것이다. 이것은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에 대하여 억지로 하는 것이 없는 천연그대로의 생과 함께하는 것이다. 다음은 蘇東坡의 말이다.
입은 반드시 소리를 잊은 다음에라야 능히 말을 할 수 있으며 손은 반드시 붓을 잊은 다음에라야 능히 글씨를 쓸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아는 바다. 입이 소리를 잊지 못하는 단계에서는 문장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손이 잡은 붓을 능히 잊지 못하면 자획이 고르지 못할 것이다. 그 서로 잊음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서야만이 心靈을 形容하고 萬物의 變化를 수작하면서도 홀연히 자신이 그것을 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입이 소리를 잊은 다음에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처럼, 손이 붓을 잊은 다음에라야 달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고, 神技에 가까운 글씨를 쓸 수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과 부합된 것이다. 마음과 손과 붓이 모두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좋은 글씨가 나온다는 것을 蘇東坡는 여기서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力에는 强勁한 힘과 柔和한 힘이 있다. 이 두 가지는 筆 ·結構·章法 등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어떻게 적절하게 변화하며 구성되는가에 따라 작품의 우열이 드러난다. 여기서 말하는 역감은 진정 文質彬彬한 군자의 모습이지, 힘과 용기만이 있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蠻力이 아니다. 사실 서예는 근골이 너무 강한 것을 가장 꺼린다. 따라서 힘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死力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虛中有實 實中有虛'한 경중이 서로 겸하고 강유가 서로 보완하는 필획을 구사하는 것이다. 역감이 있는 글씨는 침착통쾌한 필획으로 사람들에게 일종의 상쾌하고 淋?한 예술감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필력감은 글자와 글자의 사이, 行과 行의 사이, 작품전체에서 감지된다. 필력감은 서법작품의 필획·결구·포국의 세 방면의 느낌에 있을 수가 있는데, 글씨를 쓸 때에는 一氣로 관주해야 한다. 상하로 기맥이 이어지고 좌우로 호응이 있어야 아름다운 작품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骨力에는 또한 挺拔의 의미도 있다. 挺拔은 판에 박힌 뻣뻣한 平直이 아니며 일종의 弧度가 있는 힘이고, 曲勢로써 直을 취하는 것이고, 不平중에 平을 求하고 不直中에서 直을 求하는 挺拔이다. 그것은 체형이 건장하고 아름다우며 균형있는 체조선수와 같이 곡선적 형체미가 풍부한 선과 같은 것이다.
Ⅰ. 序 論
중국인들이 쓰는 글자에는 예술품을 만들 수 있는 두 가지 주요한 요소가 있는데, 첫 번째가 중국글자의 시원인 象形이고, 두 번째가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毛筆이다. 이는 한자가 그림에 가까운 象形文字이기에 다양한 아름다움을 표현해 낼 수가 있었음을 밝힌 것이며, 또한 모필을 사용하여 다양한 선을 구사해 낼 수가 있었기 때문에, 심오한 서예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글씨는 단순히 기록을 위해 존재했었으나, 필획을 통하여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하게 되면서부터 서법예술로 거듭 태어났다. 오랜 역사의 흐름과 함께 무수한 名家들이 生滅을 거듭하면서, 세상에는 절묘한 고전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후에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은 法書를 배우기 위하여 臨摹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는데, 그것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書藝敎學의 필수과정이 되고 있다. 그러나 王羲之(321-379, 一說 303-361, 又一說 307-365)가 아무리 글씨를 잘쓰고 歐陽詢(557-641)과 顔眞卿(708-784, 一說709-785)의 글씨가 좋아도, 그것을 臨摹하는 데에만 머문다면 그는 훌륭한 서예가가 아니다. 서예뿐 아니라 모든 예술은 저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다르며, 그들의 개성 또한 모두 다르기에, 억지로 똑같게 하려면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왕희지나 안진경도 자신이 쓴 〈蘭亭敍〉(圖1)나 〈爭座位〉(圖2)를 다시 그만한 수준으로 쓸 수가 없었으니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는가? 그러므로,
예술의 대상은 그대로 복사하는 再現(Representation)이 아니라 주관에 의해 다시 구성하는 表現(Expression!)이다. 즉 예술은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하나 창작을 근본으로 한다. 옛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재현을 하더라도 그것은 창작을 위한 단계이지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서예에서는 재현의 과정이 많이 존재한다. 그것은 법첩을 臨摹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선생이 임모를 해놓은 것을 보고 임모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이 대체적인 현서단의 실정이다. 이것은 직접 의자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의자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속에 나타난 의자를 보고 의자를 단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의자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너머의 이데아(Idea)도 연상할 수도 있어야한다. 법첩을 임모할 때에도 그 모양만을 본뜨려고 하기보다는 원래 작자의 의도까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작자가 글씨를 쓰다 실수한 것이나 잘못된 것까지도 그대로 본받으며 그것이 마치 잘한 것인 양 생각해서도 안된다. 법첩을 바라보되 우리는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근본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에 필요한 것이 서예를 올바로 보는 시각이요, 그 시각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 서예이론이며, 서예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중심적인 시각이 바로 역감이다. 역감은 입체감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필획을 통해 書跡에서 얼마나 힘이 느껴지는가를 근본으로 한다. 아무리 결구가 좋고 모양이 좋다고 하더라도 그 글씨에서 역감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좋은 글씨가 아니다. 그러므로 王僧虔(426-485)은 「論書」에서 "張芝(?-約192)·韋誕(179-253)·鍾會(225-264)·索靖(239-303)·二衛는 모두 前代에 이름이 있던 사람들로, 古今의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거의 우열을 가릴 수 없으나 다만 그들의 필력만은 놀라울 뿐이다"라고 했다. 즉 좋은 서예작품은 비록 書風이 각기 달라도 모두 필력을 갖추고 있기에 좋은 것이요, 필획에 기운이 생동하는 생명력을 갖추었기에, 보고 또 봐도 그 맛이 무궁하다는 뜻이다. 필력은 서예의 우열을 판단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으며, 그것은 하나의 점획에서 한 글자로 이어지고 다시 전체의 작품으로 이어져 生氣있는 여러 가지 작용을 하고 있다. 선질이나 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예를 한다는 것은 모호한 환상에 불과하다. 이 글은 서예를 비롯한 동양회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필획을 통해, 예로부터 작품을 품평하는 중요한 작용을 하는 서예의 力感에 관하여 연구함으로서, 그를 바탕으로 고전을 좀더 분명하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창작의 길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뜻이다. 물론 필력을 논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筆性論을 비롯한 執筆과 用筆部分이다. 그 중에 용필은 서론의 가장 핵심부분으로, 너무나 미묘하며 갖가지 많은 설들이 존재한다. 이를 다루는 것은 너무나 조심스럽고 많은 분량을 차지함으로, 좀더 연구를 하여 학위청구논문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필력에 관하여 논하되 집필과 용필부분을 많이 줄여 書跡에 나타난 역감을 중심으로 기술하였음을 밝혀둔다.
2. 力感에 關한 三種說
필력은 정확한 執筆·運腕·書寫姿勢에서 만들어지며, 필력에 작용하는 힘으로는 腕力·臂力·腰力·全身之力이 있다. 작은 글자를 쓸 때에는 일반적으로 腕力을 사용하지만, 一寸以上의 큰 글자나 行草를 쓸 때에는 懸腕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懸腕은 팔을 붙이고 쓰는 것에 비하여 힘을 발휘하기 쉬우며, 서서 쓰는 것이 앉아서 쓰는 것보다 더욱 역감이 있다. 전신의 힘은 어깨·팔·손가락을 거쳐 筆尖으로 전달되는데, 눈을 감고 귀로만 느끼듯이 생각을 집중하고 臂와 腕을 운용하여 마음대로 마음속의 점획을 써내야 한다. 執筆은 運筆을 위해서 존재하며, 운필을 하는 妙處는 필력을 획득하는 데에 있다. 집필과 운필을 정확하게 하면 먹물을 灌注하는 데에 유리하여, 생동감있고 정신이 느껴지게 하는 墨跡을 얻게 된다. 필력의 생산은 결코 하나의 가볍고 쉬운 일이 아니고 반드시 장기간의 훈련을 거쳐야만 한다. 만약 숙련된 필묵기교와 오랜 세월을 거쳐 쌓여진 공부가 없다면 경절한 필력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점획에서 역감이 넘쳐흐르게 할 수가 있는가? 力과 力感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은 全身力到說·技巧筆力說·書跡筆力說로 요약된다.
1) 全身力到 전신역도설은, 蔡邕(133-192, 一說 132-192)·衛夫人(272-349)·王羲之로부터 전해지는 것으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글자를 쓸 때에 用力이 크면 효과가 더욱 좋아지고, 역감이 더욱 넘치게 된다는 설이다. 虞和(南朝宋의 서가)는 『論書表』에서 말하길 "왕희지가 회계에 있었을 때에 왕헌지(344-386)는 칠팔세의 나이에 글을 배우고 있었다. 희지가 뒤에서 그 붓을 당겼으나 빼앗기지 않자 감탄하면서 말하길 이 아이의 글은 후에 마땅히 대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 고사는 항상 사람들에게 紙上의 경절한 필력을 얻으려면 이렇게 해야한다는 본보기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衛夫人이 「筆陣圖」중에서
點 波 屈曲을 그을 때에는 모두다 일신의 힘을 다하여 송필한다.
고 한데에 그 근원을 둔다. 東漢의 蔡邕은 下筆하는데 힘을 사용하면 필획의 肌膚가 아름다워진다라고 하였으며, 宋의 蔡君謨(1012-1067)는 急流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氣力을 다 사용하여 故處를 떠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南宋의 姜夔(1155?-1235?, 一說1163-1203)도 집필은 긴밀하게 하여야하고 운필은 활달하게 해야한다. 손가락으로 운필하지 말고 완으로 운필하라고 했다. 이 전신역도설은 서예사에 지극히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 말하는 전신역도는 指實을 뜻하는 것으로, 지실은 전신의 힘이 필획에 실리는 느낌을 주는 것이지 지나친 힘을 필관에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指實을 너무 지나치게 힘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여, 손가락에 힘을 많이 주면 필획에 더 많은 힘이 주입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으니,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康有爲(1858-1927)였다. 그는 전신역도설을 주장하였던 包世臣(1775-1855)에 대해, "잡는 것이 너무 긴밀하면 힘이 필관에 머무를 뿐 붓끝으로 전달이 되지 못하며, 그 글씨는 반드시 근육을 포기하고 골을 드러내며 마르고 또한 약하게 한다"고 했다. 이렇게 전신역도의 방법으로 글씨를 썼을 때 굳세고 강한 필획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骨이 없는 딱딱하고 거친 필획이 나온다고 생각한 몇몇 사람들은 다음의 기교필력설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2) 技巧筆力 기교필력설은 唐代의 서예가 盧肇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역감이 강한 필획은 힘주어 붓을 잡는 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힘을 사용하면 필획이 죽는다"는 설을 제기 하였다. 그는 서법의 우열과 역감의 강약이 용필의 기교에서 결정되며 맹목적으로 기운을 쓰는 데에 있지않다는 점을 역설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었다. 서예는 닭을 잡을 만한 힘도 없는 文人이 하는 것이다. 이는 歐陽詢·顔眞卿 등도 힘이 넘치는 젊은 시절이 아닌 고희가 넘은 衰境의 나이에 글씨가 오히려 최고봉에 이르렀으며 역감도 매우 充沛했던 것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운동선수나 무술을 하는 사람들의 글씨를 보면 글씨에서 많은 기가 느껴질 것 같은데 실제로 붓글씨를 쓰게 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글씨는 힘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技巧筆力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설을 살펴보면, 唐의 張旭은 "미묘함은 집필에 있다. 집필을 圓暢하게 해야하며 구속되도록 해서는 안된다"라 했고, 唐의 韓方明은 "집필은 편안한 데에 있다"고 했다. 또한 唐의 虞世南도 "서도의 현묘함은 반드시 정신을 바탕으로 하지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한다"고 하였으며, 蘇東坡(1036-1101) 역시 "집필에는 정해진 법이 없으나 다만 비면서 너그럽게 해야한다"고 했고, 또한 "붓을 잡는 것을 굳게 하는데 있지 않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보면 필력의 생산과 書寫者의 臂力의 대소관계는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全身之力을 사용하여 提筆하고 按筆할 때에 소용되는 힘은 모두 어떤 곳으로 가는가? 대부분은 무의식적 대치중에 毫에서 소모된다.
역감은 점획의 형태로 말미암아 체현되는 것으로 점획의 형태는 용필의 조형의 수준에서 결정된다. 전신역도설의 착오는 곧 심리상의 역감을 물리상의 체력과 혼동함에서 야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점획의 형태만을 가지고 역감의 유무를 판단할 수가 없다. 가령 곡선이나 원필보다는 직선이나 방필이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획에는 등나무 줄기같이 힘찬 곡선이 있고 가는 나뭇가지와 같은 여린 직선이 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굵은 선이 가는 선보다 강하다는 의미는, 쇠줄같이 가늘지만 무겁고 강한 선이 있는 반면에, 스티로폴과 같이 크고 굵어도 가볍고 약한 선이 있음을 도외시할 수가 없다. 또한 力感은 점획의 형태와 질감에서 느껴지기도 하지만, 치밀한 결구와 一氣貫注하는 章法등을 통해서도 강하고 다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3) 書跡筆力 書跡筆力說은 위의 두 설과는 달리 이미 완성된 서예작품을 보는 중에서 力度美를 느낀다는 설이다. 趙一新은 「論筆力」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서자의 체력이 어떠한가와 집필에 얼마나한 힘을 사용하는 여부에 상관하지 않고 단지 작품중의 글자에서 사람들에게 힘이 있는 감각을 주어야만 이것이 곧 필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붓으로 표현되는 서예에서의 역감에 한정하였으므로 여기서는 그 외의 것을 논하지 않겠다. 서적필력에서 우리가 전제해야할 것은 사람의 손을 거쳐서 완성한 서예작품으로, 전신역도나 기교필력의 방법을 통해 나타난 서예작품에서 역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 이 전신역도와 기교필력중에 어느 방법으로 서사하는 것이 더욱 역감있는 서적필력으로 나타나는가하는 문제가 생긴다. "터럭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어도, 그것이 오래되고 멀어지면 천리만큼의 거리가 생길 수도 있다"고 孫過庭은 역설하였다. 이는 곧 처음이 비록 그리 차이가 나진 않지만 신중을 기해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전신역도설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전신의 힘을 다하여 필획을 그어도 전신의 힘이 그대로 필획에 관주되지는 않는다. 왕희지나 왕헌지가 글씨를 쓴 것은 대부분이 작은 글씨이지 큰 글씨가 아니다. 그들이 그러한 작은 글씨를 쓸 때에 온몸의 힘을 다 사용해가며 한획한획을 그었을까? 그리고 왕희지가 술에 취해 난정서를 쓰면서 온몸의 힘을 종이에 실어가며 그렇게 썼을까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는 하나하나의 필획에 온몸의 힘이 실리듯이 그어진 튼튼한 필획을 강조한 것이라 여겨진다. 지나치게 힘있게 붓을 잡으면(握之太緊) 필획이 굳어지고 결구도 자연스럽지 못해 아름다운 서예작품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해이한 정신력으로 느슨하게 붓을 잡아 글씨를 쓰면 획이나 결구에 긴장감이 없게된다. 느슨하게 늘어진 획에서는 또렷한 정신력이 느껴지지 않고 골력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고 근육으로 단련된 운동선수의 몸매와 같은 挺拔한 필획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적당한 힘을 주어 붓을 잡아야 정발한 필획을 얻을 수가 있다. 이처럼 선인들이 정확한 집필에 많은 연구를 하였던 것은, 정확한 운필을 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한 운필은 다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중봉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니, 중봉필획에는 다음과 같이 많은 장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Ⅲ. 力感의 表現效果
1. 力感과 誤解
物에는 근본과 끝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나중이 있으니 그 먼저 해야할 것과 나중에 해야할 것을 안다면 곧 도에 가깝다고 한다. 어느 것이 그 행위를 하는 목적이고, 어느 것이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형식인가를 알고, 그 선후를 정하여 순서대로 해나간다면 그릇되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禮를 행하는데 서로 경애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인사를 어떻게 하고 말씨는 어떻게 하고 옷매무새는 어떻게 하는가와 같은 형식적인 것에만 힘쓴다면 처음에는 바른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중에는 행위 뒤에 숨어있는 속마음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절차를 모르더라도 상대방을 敬愛하는 마음이 있다면 설령 오해가 있더라도 풀어지고 언행도 저절로 법도에 맞게 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글씨도 겉으로는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근본은 필획속에서 건강미로 표현되는 역감이다. 다음에는 이러한 역감이 전래의 법첩을 통하여 어떻게 표현되고 있으며, 역감에 대한 전래의 오해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봄으로써 역감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1) 學書의 根本 李世民(597-649)은 「論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근래 나는 고인의 글을 임서함에 다만 그 형세를 배우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골력을 구하는데 마음을 두고있으니, 형세는 저절로 생겨날 뿐이다. 서예 역시 본말을 생각하고 근본에 치중해야함을 역설한 것이니, 學書者들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말이다. 너무 형태에 매달리다보면 오히려 모든 것이 뒤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근본인 筋骨에 마음을 두고 있으면 처음에 조금은 헝클어졌더라도 나중에는 그리 어긋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잘된 글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점획과 결구가 각기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으나 서로 어울리며 각자각자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수준이 낮은 글씨를 들여다보면 각자의 점획이 서로 같으나 어우러지지 못한다. 『논어』에 "군자는 서로 화목하면서도 분명한 자신의 개성을 가져서 똑같이 하지는 않고, 소인은 자신의 모든 개성까지도 무너뜨린채 똑같이 하기는 하나 화목하지는 못한다"는 의미가 글씨를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참고해야할 말인 것 같다. 張彦遠의 「歷代名畵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옛날의 그림은 형사를 버리고 骨氣를 숭상하여 形似밖에서 그림을 추구하였으니 이는 속인들과 더불어 말하기는 난처하다. 요사이 그림은 설령 形似를 얻었다고 하나 기운이 생겨나지 아니한다.
이와 같이 骨氣를 중요시하여 그림을 그리다 보면, 形似를 중요시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더욱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가 있으며, 또한 기운이 생동하기 때문에 더욱 격이 높은 그림을 얻을 수가 있다. 글씨를 쓰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먼저 骨力 즉 역감을 추구하는데 역점을 두면 아름답고 다양한 필획을 얻을 수가 있고, 필호에 탄력을 얻으면 자유롭게 필획을 구사할 수가 있어 보다 격조높은 글씨를 쓸 수가 있을 것이다. 2) 力感의 比較 원작대로 임모를 하고 똑같이 勁한 필획을 긋는 것을 전제로, 한 사람이 한번은 唐 遂良의 〈雁塔聖敎序〉(圖7)를 임모하고, 다시 한번은 北魏의 〈始平公造像記〉(圖8)를 임모해 보면, 비록 한사람이 썼어도 〈시평공조상기〉를 임모한 것에서 더욱 역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호랑이를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 토끼를 그린다면, 같은 사람이 그렸더라도 호랑이를 그린 그림에서 더욱 힘을 느끼게 된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호랑이를 그릴 때엔 百獸를 제압하는 듯한 강렬한 눈빛,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튼튼하고 날쌘 모습 등을 그리려 하고, 토끼를 그릴 때엔 토끼의 순한 모습을 연상하여 귀를 쫑긋 세우며 경계하는 모습 등을 그리려 하기 때문이다. 관람자의 입장에서도 호랑이 그림을 보면 실제의 호랑이를 연상하여 무섭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토끼를 보면 실제의 토끼를 연상하여 순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서예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역감이 많이 느껴지는 서풍의 글씨와 그보다 역감이 덜 느껴지는 서풍의 글씨가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안탑성교서〉가 그렇게 약한 필획은 아니나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시평공조상기〉와 비교하면 역감이 비교적 작다고 느끼게 된다. 또한, 임모를 하면서도 〈시평공조상기〉를 임모하는 편에 훨씬 더 많은 힘을 들일 것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기교와 힘은 붓대와 筆毫를 거쳐 글자의 일점일획상에서 표현되는데, 같은 사람의 같은 필력으로도 서사공구가 같지 않고 기교변화가 같지않음으로 인해 각각 다른 점획형태를 만들어낸다. 다른 사람의 다른 力度와 다른 서풍으로 인해 만들어진 글씨는 다른 모양의 글씨를 만들어 낸다. 동일한 필기구를 사용해도 기교활동이 다름으로 인해 書跡筆力의 강약정도가 달라진다. 古人이 이르기를 "一橫은 천리에 구름이 늘어선 것(千里陣雲)과 같이하고, 一點은 높은 봉우리에서 바위가 떨어지는 것(高峰墜石)과 같이하고, 一 은 무소뿔이나 상아를 잘라놓은 것(陸斷犀象)과 같이하고, 一鉤는 백균의 쇠뇌를 쏘는 것(百鈞弩發)과 같이하고, 一竪는 만년 묵은 마른 등나무(萬歲枯藤)와 같이한다"는 등등은 모두가 사람들에게 점획의 형태자체를 통하여 그들의 '筆力'을 體會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필력은 필세중에서 생산되며 세가 있어야 비로소 힘이 있다. 한폭의 작품에 필세가 유창하고 근맥이 서로 연결되어 一氣로 貫注되면 모든 글자에 기세가 가득하여(磅 ) 사람들에게 일종의 생명력이 풍부한 역감을 느끼게 한다. 勢와 力은 相補相成하여 相得益彰하는 것이다. 세는 당연히 力의 기초이며, 力은 당연히 勢에 근거한다. 서로가 배합 협조하여야 勢와 力이 비로소 더욱 완미함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3) 力感의 誤解 서예를 실천하거나 감상하는 것을 두고, 지금 사람들이나 옛 선현들도 역감에 대하여 잘못 이해한 부분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나, 서사과정에 오해가 없도록 다음에 다섯 가지정도로 정리하여 밝혀본다. 첫째, 점획의 節이 드러나거나 혹은 方折하고 稜角을 이룬 것을 보고 骨이 있고 역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골법용필을 오해한 가장 보편적인 관념이다. 張懷瓘은 이를 비평하여 "稜角이라는 것은 書의 弊薄한 것이다"라고 했으니, 그를 바로잡는 방법은 세를 우선으로 하고 斂墨入毫하여 圭角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둘째, 밖으로만 강하게 보이고 안으로는 삐쩍마른 것을 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세인들은 단지 弩張한 것을 근골이라 생각하는데 弩張하지 않은 것이 骨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外强中乾' 한 것은 劍拔弩張하여, 오히려 연약하게 보인다. 또한 필묵이 紙面에 떠있으면 골이 있다고 할 수가 없다. 셋째, 집필이 긴밀할수록 더욱 筋骨力量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李世民의 指實說에 대하여 곡해한 것인데 豊坊이 이르기를 指가 實하면 골체가 堅定하여 약하지 않다 하였으니 이것은 그릇되지 않으나 분명하게 분석해 보아야한다. 實指와 死力을 사용하여 붓을 提筆하는 것은 다르다. 前者는 全身之力을 운용하여 필첨에 이르게 하기에 편하고, 後者는 全身關節의 뻣뻣함을 사용한 것이니 오히려 골력이 있는 점획을 구사하지 못한다. 넷째, 骨과 韻을 대립하여, 骨이 있으면 韻이 없다고 생각하고 韻이 있으면 骨이 없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방절을 骨이라 생각하는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상관된 것이니, 그들은 韻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北書는 骨이 勝하고 南書는 韻이 勝하나 北은 스스로 北의 韻이 있고 南은 스스로 南의 骨이 있다"고한 劉熙載는 骨과 韻에 대하여 확실히 알았던 것이다. 다섯째, 사람의 인격을 점획의 골이 되는 결정인소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書에는 骨이 있어야 하나 골이 있는 글씨는 반드시 인격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골력이 붓을 사용하는 사람과 많은 관련이 있으나, 그것은 주로 중봉운필을 통해서 생산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楊賓은 『大瓢偶筆』에서 "鍾紹京·蔡京·趙松雪등과 같은 글씨가 일찍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으나 骨은 곧 미약하다"라고 하였으니, 골이 미약한데 어찌 서가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들의 서는 골이 부족한 것이고 아름다운 글씨이기보다는 연미한 글씨이다. 상술한 갖가지 오해는 역감에 대한 인식이 모호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이러한 면들을 분명하게 교정해 나가면서, 學書에 임한다면 역감있는 글씨를 쓸 수가 있을 것이다.
3. 結構·章法
역감은 점획속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력에서 더 많이 느껴진다. 가령 한사람 한사람의 힘은 미약할지라도 질서있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군대의 행렬을 바라보면 더욱 강한 힘을 느끼게 된다.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하나하나의 필획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전체속에서 유기체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때, 거기서 감지되는 역감은 개별적인 필획에서 느껴지는 역감보다 더욱 강렬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주로, 결구와 장법을 통해 드러나는 필력을 다루었으나, 그것이 각자의 필획에서 느껴지는 것과 연관되어, 분명하게 선을 그을 수가 없었음을 밝혀둔다.
1) 大小·疏密 크기가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큰 것에서 역감을 느낀다. 작품크기가 같은 공모전에 출품하는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이 큰 글씨로 출품한다. 왜냐하면 작고 많은 글씨보다 크고 적은 글씨가 더욱 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작은 글씨를 쓰다보면 움츠러들기 쉽다. 작게 쓰려는 마음이 勢마저도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작게 쓰면서도 기세가 당당하면 큰 글자를 보는 것처럼 툭터진 느낌을 갖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큰 글자는 작은 글자처럼 작은 글자는 큰 글자처럼 써야한다.
곧 좋은 글씨란 작으면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가늘면서도 당당한 필획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다. 소밀을 얻으면 바야흐로 좋은 작품이 될 수가 있다. 소밀은 結字할 때에 寬疎와 緊密을 가리킨다. 疎를 잘 사용하면 신운이 감돌며, 密을 잘 사용하면 노련해진다. 그러나 성글게 할 때 성글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냉혹한 분위기가 감돌고 密해야할 때 密하지 않으면 반드시 엉성한 작품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동양의 예술은 공간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점획과의 간격이나 글자와 글자와의 간격 등도 모두 중요하다. 작품전체에서 강약을 만들고 소밀을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수준은 큰 차이를 보인다. 鄧石如(1743-1805, 一說1739-1805)의 다음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자획의 성글은 부분에서는 말을 달릴 수도 있게 하고, 긴밀한 곳에서는 공기도 통과하지 못하게 하니, 항상 공간을 계산하여 필획을 그으면 奇妙한 정취가 나타나게 된다.
서예는 화선지에 먹물을 적신 붓으로 점과 선을 결합하고, 붓을 당기거나 밀거나 혹은 누르거나 들면서,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고 더디게 동작하느냐 에 따라 다양한 동태미를 나타낸다. 시각예술에 속해 있으면서도 '심상심학(心相心學)'으로서의 특성을 지닌 동양 특유의 조형예술로, 고도의 기능적 숙련에 의한 점과 선을 통해 그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해 낸다. 붓이 한번 움직인 필획에는 길고 짧음의 대비와 굵고 가는선이 있고 굽거나 꺽이는 곳이 있으며, 절제된 것이 있는가 하면 자유분방한 것도 있다. 먹의 색깔 또한 짙음과 옅음, 윤택하거나 마른 느낌등을 적절히 조화시켜 나가면서 문자의 실용적인 형태에 속박되지 않고 주관적인 감정을 형상화 하여 자기의 독창성을 발현하고 그 속에 자신의 심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좋은 서예작품은 자연스러운 마음과 훌륭한 인품에서 우러나온다.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기인(其人)'이란 그 사람의 인품, 교양, 학덕 등을 총칭하는 의미이다. 이것은 서예를 단순히 아름다운 글씨를 쓰기 위한 기술이나 기교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하고 우선 스스로의 인격함양에 힘써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서예는 예술을 통해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 활동이다. 그러므로 서예는 다른 어떤 예술장르보다 작가 자신의 인격 수양이 크게 요구되며, 가장 중요한 예술적 요인이 된다.
Ⅱ. 서예의 특성
한자는 그림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원시적인 그림문자가 점점 모양과 상태가 바뀌면서 실용화, 예술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예는 문자를 아름답게 꾸민 예술로 인식되어 지면서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한자는 우주자연의 이치에서 출발하였고, 특히 한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글자마다 의상(意象)이나 미적인 아름다운 요소를 생성할 때부터 함축하고 있었다. 또한 구조가 복잡하고 자수가 많으며 자형의 변화가 심하고, 같은 글자라도 다른 서체로 쓰면 또 다른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다른 문자에서 볼수 없는 심미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서예는 문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표현에 있어서 서법이라는 일정하고 엄격한 규율이 있다, 붓의 움직임이 빠르고 느림에 따라 표현의 효과는 달라지며, 먹은 단순한 검정색으로 볼 수있지만 붓놀림의 정도에 따라 여러가지 색채로 변화하며 신비한 효과를 가져온다.
서예의 또 다른 특성은 일회성에 있다.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족한 점이 보이더라도 결코 덧칠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회성은 다시 덧칠하지 않은 획 그 자체이며, 그렇기에 서예는 골똘히 생각해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써 내려가는 순간성과 즉흥성을 지닌다.
Ⅲ. 서예의 의의
글로벌시대의 가속화로 우리의 정신적 가치가 더욱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은 정서를 순화하고 정신의 풍요를 가져오게 하는 서예에서 찾아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서예는 단순히 문자를 이용한 예술이라기보다는 인생과 우주의 이치를 담아냄으로써 인격도야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 유례없는 예술이다. 우리의 선인들이 남긴 문화유산 중에서 가장 고귀한 정신이 담긴 전통예술이며, 그 속에는 우리조상들의 삶과 학문, 성정이 배어있고, 치열한 정신과 풍성한 감수성이 형상화 되어있다. 이러한 서예의 우수성을 알고 이를 익힘으로써 민족의 우월성과 자긍심을 깨닫고, 서예의 표현을 통하여 인격의 완성은 물론 실용성도 추구하여야 한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들은 자칫 잊혀지기 쉬운 전통예술로서 서예를 자율적으로 표현, 감상하고 나아가 창작함으로써, 주체적 자아의식을 지닌 창의력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먹을 갈면서 심성을 다듬고, 화선지를 펼쳐 놓고 몸가짐을 정갈하게 하여 마음을 정화시키며, 붓을 움직여 중용을 깨우친다. 글씨를 정성스럽게 써 나감으로써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갈수 있도록 하고, 쓰고 난 붓을 맑은물에 깨끗이 씻음으로써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묘리를 느낄수 있다.
Ⅳ. 서예의 기원
한자는 일반적으로 중국 고대 제왕시대 '황제'의 사관이었던 '창힐'이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는 전설에 불과하며, 최초의 서예라고 할 수있는 문자는 '갑골문(甲骨文)'이다. 이 문자는 3400여년전의 거북이 배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새겨져 있어서 '갑골문' 이라고 하는데, 칼을 사용하여 단단한 뼈위에 새긴 것으로 필획이 가늘고 강하며 자형은 여위고 길다. 글자의 크기는 각기 다르고 매우 강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준다. 붓에 의한 문자의 예술성 추구는 후한대(後漢代)부터 본격화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때에 한자가 전래되었으나 서예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한사군을 통해 한 대(漢代)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부터이다.
Ⅴ. 서예의 변천
갑골문에 이어 주대(周代)에 들어서면서 문자의 형태는 청동기에 주조하여 주물틀에 새겨 넣은 글자들로 '종정문(鐘鼎文)' 혹은 '금문(金文)' 이라고 하였다. 금문의 글자체는 갑골문과 비슷하지만 필획이 갑골문보다 굵고 웅장하며, 글자체의 구성 크기에도 균형이 잡히고 정연하다. 그리고 표현된 풍격은 장엄하면서 돈후하여 이미 상당한 예술성을 갖추었다.
춘추전국시기에 글자체는 지역적인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제(齊)초(楚)· 연(燕)· 한(韓)·조(趙〕· 위(魏)등의 문자를 '육국고문(六國古文)'이라 하였다.
진대(秦代)에 들어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 육국고문을 폐지하고 대전(大篆)을 기초로 하여 소전(小篆)을 만들어 문자를 통일하였다. 소전은 식별하거나 쓰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규범화되었다. 서예에서는 대전과 소전을 통칭하여 '전서(篆書)'라고 한다.
진대(秦代)에는 사건과 관련된 문서를 처리하면서 간단하게 글을 쓰는 '예서(隸書)'가 형성되었으며, 서한(西漢)중기에 이르러 사회에 통행되는 정식 글자체가 되었다. 예서가 발전한 시기에 '초서(草書)'가 등장하였는데, 초서는 예서를 흘려 쓰는 방법으로 빨리 써서 필획과 필획이 연결되고 글자와 글자가 연결되어 글자의 형상이 간단해 졌다.위·진·남북조 시기에 예서의 기초 위에 다시 새로운 글자체가 발전하였는데 그것이 '해서(楷書)'이다.
이후 진대에 들어서며 해서와 초서의 중간으로 행서(行書)가 출현한다. 행서는 해서보다 자유롭고 빨리 쓸 수 있으며 편리하고 실용적인 글자체이다.
한자의 변천은 갑골문-금문-소전-예서-초서-해서-행서 순이며 이것은 서예의 글자체 형성 과정이기도 하다.
Ⅵ.서체의 종류
1.갑골문(甲骨文)
갑골문(甲骨文) 이란 귀갑수골(龜甲獸骨)의 약칭으로, 한자의 초기형태에 해당된다. 발굴된 뼈의 연대는 기원전 1200년에서 1050년으로 은나라 말기의 것들이다. 갑골의 '甲(갑)'은 거북의 배 껍질이고, '骨(골)'은 소의 어깨뼈나 넓적다리뼈이다. 그 밖에도 사슴두개골, 사슴뿔, 코뿔소, 호랑이뼈, 심지어는 사람 두개골 까지도 발견되었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 1,000년 무렵 중국 고대 은상대(殷商代)때, 국가 중대사부터 모든 행위를 제사장이 천신이나 혹은 조상신에게 점을 치는 방법으로, 갑골에 구멍 같은 흠집을 내고 그것을 불에 올려놓고, 열로 인해 그 흠집으로부터 갈라진 방향에 따라 길흉을 판단했다. 주로 점을 친 후에 그 결과를 갑골에 기록을 해 놓았기 때문에 갑골문은 '복사(卜辭)'라고도 불리고, 칼로 새겨놓았기 때문에 '계문(契文)'이라고도 한다. 갑골문이 처음 발견된 곳이 은나라의 도읍지였기 때문에 ' 은허문자(殷墟文字) '라고도 한다.
형태는 매우 상형적(象形的)으로 필획이 가늘기는 하지만 둥근원형의 획과 방형의 획으로 장중한 느낌이 들며 획이 굵고 가늠이 조화를 이룬다. 필획은 방형이 다수를 차지하고, 원형인 것은 구불구불 은근히 구르면서 자연스러워 도무지 칼로 새긴 것 같지가 않으며, 서예의 시각으로 보면 크게 웅장하고 힘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에 이미 모필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인데, 1929년에 발견된 3편의 수골에는 먹물과 붓으로 글을 쓰고 난 다음에 채 새기지 못한 서사문자가 적혀 있었다.
2 金文 (금문)
금문은 청동기를 주조할 때 주물틀에 새겨 넣은 글자들이다. 이로 인해 금문의 다른 명칭으로 청동기의 대표적인 유물인 '종(鐘) '이나 '솥(鼎:정) '의 이름에서 유래해 '종정문(鐘鼎文)'이라고도 한다.
'종(鐘)'은 대들보에 매달고 두들겨서 소리를 내는 악기의 일종이며, ' 정(鼎)'은 제사때 쓰는 그릇으로 세발과 두개의 귀를 가지고 있으며 향로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중국 고대 주나라 시절의 유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지만, 그 이전 왕조인 은나라에서 사용된 금문이 발견되기도 하였고, 후대 철기시대인 한나라 때까지 금문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거의 천년에 가까운 사용시기로 인해 다양한 서체의 특징을 보인다. 기물에 새겨진 내용으로는 축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표시하거나 주조된 연원이나 기물의 주인등을 표시했고, 또한 당시의 상황인 전쟁이나 제례, 계약 등을 기록하고 있다. 금문의 특징으로는, 청동기를 주조할 때 주물의 틀에 글자를 새기는 것이었기에 명확하게 글자가 보여지기 위하여 글자가 크고 굵어야만 했다. 그래서 가늘고 긴서체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갑골문 보다 금문은 넓고 굵다. 또한 갑골문에 비해 금문은 회화적 요소로부터 점차 문자로서의 특징을 지닌 기호적 요소가 많이 나타나 점차 문자의 틀로 발전되어 가는 양상을 보여준다. 대표작으로는<모공정(毛公鼎)>과<산씨반(散氏盤)>등이 있다.
3 전서(篆書)
'전서(篆書)'는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으로 구분되며, 소전을 일반적으로 '전서'라고 한다. '소전'은 '진시황(秦始皇)'이 승상인 '이사(李斯)'에게 지시하여 이전의 문자들을 한데 모아 통일시켜 만든 문자이다.
'소전'의 특징은 인위적인 통일이라는 점에서 서체가 거의 획일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소전'은 자형 자체가 '대전'격인 '갑골문'이나 '금문'보다 상당하게 상형의 회화적 성격을 탈피하고 문자의 기호적 성격으로 전환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진의 흥망과 함께 운명을 같이 했던 소전이었기에,사용시기는 그리오래지 않고 새로운 서체인'예서(隸書)'가 등장하게 된다.
소전(小篆)의 대표적 작품은 <태산각석(泰山刻石)>과 <낭아대각석(瑯牙臺刻石)>이 있다.
4 예서(隸書)
진시황은 중원을 통일한 뒤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었다. 이에 따라 공문서등이 증가하면서 전서를 간략하게 만든 새로운 서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때 만들어 진 것이 '예서'이다. 상형의 회화적 요소를 벗어버리고 문자의 기호적 요소가 완성되어 현대 한자의 출발점으로도 볼 수가 있다. 기록에 보면 예서는 <장막(程邈)>이 만들었다. 그가 죄를 지어 감옥에 있을 때 십년을 연구하여 예서 3,000자를 지어 진상하였는데 진시황이 좋게 여겨 어사를 시켰다. 예서란 말은 진대의 복역수를 '도예(徒隸)'라 하였는데 정막이 그러했으므로 '예(隸)'자를 따서 지었다.
예서에서 '파책'이 없이 전서와 근접한 것을 '고예(古隸)'라 하고 '파책'이 있는 것을 '팔분(八分)'이라고 한다. 파책은 예서를 쓸때 가로획을 긋다가 획의 마지막 단계에서 붓을 누르면서 조금씩 내리다가 오른쪽 위로 튕기면서 붓을 떼는 방법으로 예서만이 가지고 있는 가로획의 특징이다. 예서의 출현은 상형적 회화요소의 고대문자의 틀을 벗어 내고 새로운 문자의 규격을 이루게 되는데 실제 이후에 등장한 서체의 규범이라고 하는 '해서(楷書)'의 자형도 예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한자 자형의 전형은 예서에서 갖추어 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서의 대표적인 법첩으로는 <예기비(禮器碑)> <을영비(乙瑛碑)><사신비(史晨碑)><조전비(曺全碑)> <장천비(張遷碑)> 등이 있다.
5. 해서(楷書)
중국 후한시대 말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해서는 '해〔楷〕'자가 '본보기'나 '모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듯이 표준으로 삼을 만한 서체라는 뜻이다. 위〔委〕·진〔晉〕, 남북조〔南北朝〕시대에 그 기틀이 완성된 '해서'는 동진의 <왕희지>, 당나라의 <구양순>이나 <안진경>등이 등장하면서 서체의 전형이 완성되었다. 예서에서 발전된 해서체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예서체 자형의 전체 윤곽이 다소 가로로 퍼진 형태라고 하면 해서는 다소 세로로 퍼진 형태를 지닌다. 모범적인 표준의 서체로 ′정서〔正書〕′혹은 ′진서〔眞書〕′의 명칭으로도 불리는 해서는 바른 한자자형의 전형으로 방정한 예술미와 함께 현재에도 꾸준히 서예교습의 기본서체로 애용되고 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도문6)<장맹룡비〔張猛龍碑〕> <〔안근례비顔勤禮碑〕> 등이 있다.
6. 행서〔行書〕
규격체로 인하여 쓰기에 비능률적인 '해서'의 단점과 지나친 간략화로 읽기가 난해한 '초서'의 단점을 함께 보완하고자 생겨난 서체가 바로 '행서〔行書〕'이다. 발생시기에 대해서는 '해서'와 '초서'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초서가 서체의 종류 가운데 가장 흘려 쓴 형태이기 때문에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규격체에서 흘림체로 변천하는 과정으로 볼 때 초서가 가장 마지막 단계의 서체로 보여져서 발생시기도 초서가 가장 후대의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제일 나중에 생겨난 서체는 '행서'이다. 후한말기부터 시작되어, 진〔晉〕의〈왕희지>가 등장하면서 확고한 틀이 완성된 행서는 해서의 필기체 형태를 띠고 있어 초서처럼 획을 연결해 쓰면서도 지나친 간략화를 하지 않아 쓰기 쉽고 보기 좋은 두 가지 양상을 모두 해결 했다고 볼 수있다. 후한초의 유덕승<〔劉德昇〕>에게서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확실하지는 않으며, 대표작으로는 행서의 특징인 표현의 다양성과 형태의 변화감을 느낄수 있는 〈왕희지〔王羲之〕>의「난정서〔蘭亭序〕」(도문7)가 있다.
7. 초서〔草書〕
예서가 지닌 혁신성이 감소되면서 보다 실용적으로 신속하게 문자를 쓸 필요가 생겨났으며 이에 초서가 등장하였다. 명칭은 극도로 흘려서 쓴 서체라는 의미로 '초서〔草書〕'라고 하였다. 표의문자〔表意文字〕의 단점인 서체의 복잡함과 난해함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극도로 흘려서 빠르고 간단하게 쓴 서체를 생각해 낸 것이다. 현재 초서는 지나치게 간략화하여 흘려 쓰게 된 결과 해독의 어려움을 가져와 실용성은 상실한 상태이나 문자로서의 실용성을 넘어 최고의 예술적 경지로 발전 하였다. ′설문해자 서문′에 ′한조가 부흥하자 초서가 나왔다′는 서술에서 보듯이 예서가 한창 번성하던 한나라시대에 등장하였는데, 진말한초〔秦末漢初〕초기의〈장초〔章草〕〉로 부터, 동진시대의〈금초〔今草〕〉, 당나라 때의 〈광초〔狂草〕〉까지 다양하게 발전을 거듭 하였다.
7-1. 장초〔章草〕
장초(도문8)는 예서로부터 발전하여 이루어진 서체로서 예서에 가까운 초서이다. 장초를 예서와 비교해 보면 장초의 용필은 예서를 답습한 것이므로 가로획의 끝은 위로 치켜 올려지고 왼쪽의 삐침과 오른쪽의 파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각 글자마다 필획 가운데 이미 휘감아 이끄는 필법이 있어서 금초〔今草〕의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필세에 기초를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장초의 가로ㆍ세로획은 예서와 같고, 필획이 휘감기며 이어지는 것은 금초와 같으니 이것이 장초의 기본 법식이다. 게다가 장초는 필획이 평정하여 금초와 같이 비뚤게 기울어져 형세를 취하지는 않으니, 필법에 예서의 근원을 갖고 있어서 질박하고 혼후한 면모를 포함하고 있다.
7-2. 금초〔今草〕
금초〔今草〕(도문9)는후한에서 동진시대에 이르면서 장초의 점과 획 그리고 파책을 생략하고 덜어내어 독자적인 서체의 틀을 완성하였다. 전한〔前漢〕의 '장지〔張芝〕'가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문자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창조할 수 없듯이, '장지' 또한 예외는 아니다. '금초〔今草〕'는 한글자씩 띄어 쓰는 '독초체〔獨草體〕'와 붓을 떼지 않고 계속 연결하여 쓰는 '연면체〔連綿體〕'로 나누어진다. 현재의 일반적으로 쓰는 초서체로 보면 된다.
7-3. 광초〔狂草〕
광초〔狂草〕(도문10)는 마치 미친듯 거의 끊어짐 없이 이어서 쓰는 형식으로, ' 대초〔大草〕'혹은 '연면초〔連綿草〕'라고 한다. 결자〔結字〕상에서 보면 글자마다 독립된 경계를 두지 않고, 연결된 선과 필획은 결코 구분됨이 없다. 간편하고 쾌속하기 때문에 자체는 이어지고, 이어지는 과정 중에 리듬감을 크게 표현 하였다. 자형의 구속력이 비교적 작기때문에 정서의 표현도 자유자재하며, 점획으로써 자태를 이룬 초서는 추상적 작용이 더욱 강렬하다. 당대〔唐代〕의 장욱〔張旭〕과 회소〔懷素〕가 특히 자유분방한 광초〔狂草〕를 잘 썼으며 두 사람 모두가 술에 취한 채로 글씨 쓰기를 좋아해서 세간에서는 '미치광이 장과 술꾼 소'라는 뜻으로 전장취소〔顚張醉素〕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광초를 일컬어 취초〔醉草〕라고도 한다. 서예에 있어서 최고의 예술경지에 이룬다.이처럼 한자서예는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 전〔篆〕예〔隸〕초〔草〕해〔楷〕행〔行〕등 5체를 완비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동양 특유의 예술로 자리를 잡았다.
8. 한 글
한문서예에 비하여 한글서예의 역사는 매우 짧다. 또한 문자의 구조가 단순하여 추상성과 상징성이 부족하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문자형태에 알맞은 독특한 조형원리로 예술성을 창출해 낸 것은 선진들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한글서예는 궁체와 판본체로 나뉘어지며, 궁체는 정자와 흘림으로 나뉜다.
8-1. 고체
한글이 처음 반포되었을 때의 옛 서체를 말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둥근점 모양을 그대로 쓴 『훈민정음해례본』과 짧은 방형으로 바꾸어 쓴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도문11)등이 있으며, 판본에 쓰인 자형의 글씨로써 ′판본체′ 또는 훈민정음을 본받아 쓰인 글씨라 하여 ′정음체〔正音體〕′라고도 한다.
8-2. 판각화
한글을 보급하기 위하여는 책이 필요하게 되었고, 책을 찍어내기 위하여 목판본(도문12)이 만들어졌다. 여러 곳에서 만들어진 목판본의 서체는 조형적 완성에는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지역과 판각자 개인의 성향으로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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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궁체정자
궁체는 대궐의 글씨라는 뜻이다. 한글이 만들어진 뒤 왕실에서는 한글을 사용하여왔다. 따라서 한글은 내전을 중심으로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발전하여 왔으며 조선후기의 궁녀들은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편지를 쓰는 일과 왕실 내 필요한 여러 가지 글들을 썼다. 왕실의 명령에 의해 쓰는 일이었으므로 당연히 엄정하고 품위 있는 글씨를 써야했고 오랜 기간의 습득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궁체의 형태와 선질이 유려하고 단아한 모습은 이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궁체정자(도문13)는 한자의 해서와 흐름을 같이 한다. 이 글씨는 장중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절제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창제 당시의 고체가 모든 글자의 길이를 같은 크기로 구속하였다면 궁체는 그 길이를 글자의 모양에 따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조형적인 자유로움을 얻게 하였다.
8-4. 궁체흘림
궁체흘림(도문14)은 한문의 행서에 비유된다. 흘림은 처음 비교적 자유로운 모양이었으나 점차 정제과정을 거치며 정형화 되었다.
Ⅶ. 서예의 장르
1전각〔篆刻〕
전각(도문15)은 중국의 상주〔商周〕시대 때, 새〔璽〕라는 명칭으로 시작하여 한〔漢〕나라에 들어서면서 비로서 인장〔印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뒤에 명나라에 이르러 전각작가가 등장하면서 예술로 승화되어 오늘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인장을 사용하였으며, 근대에 이르러 추사선생이 금석학의 연구로 많은 발전을 하였다.
새기는 작업으로는, 인장에 새길 바닥면에 우선 글을 써서 배치하고, 칼을 사용하여 문장을 새긴다. 그렇기 때문에 전각을 하기 위해서는 서예와 새김 기법에 모두 능숙해야 한다. 또한, 전각은 서화등의 작품을 완성한 다음, 본인임을 확인하는 도장의 용도로 사용한다. 이러한 과정을 '落款〔낙관〕'이라고 하는데 이는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이다.
종류별로는' 성명인'으로 이름을 음각으로 새긴것이다. 작품에 찍힌 글자부분이 희게 나타나므로 '백문'이라 한다. 아호를 새긴 '호인'은 양각으로써 글씨에 인주가 묻어 붉게 찍히므로' 주문'이라고도 한다. '두인'은 '수인'이라 하며 작품의 오른쪽 위에 시작을 알리는 의미로 찍는 도장이다. 그 외에 좋아하는 글귀를 조각한 '사구인', 책의 보관을 위해 조각한 '수장인', 사람, 새, 물고기 등 동물모양을 전각한 '초형인'등이 있다.
2. 서각〔書刻〕
서각이란 문자를 나무와 돌등에 칼을 이용하여 새기는 것으로 고도의 숙련된 기능과 장인정신이 있어야 하며 서화에 병칭될 만큼의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리조상의 얼과 혼이 서려 있는 전통예술이다.
서각의 종류를 몇 가지 분류로 나눠 살펴 보면, 양식에 따라 전통서각・현대서각, 형식에 따라 환서각・판서각・투서각, 형상에 따라 구상・반구상・추상, 각법에 따라 양각・음각・음양각・음평각, 재료에 따라 목서각・석서각・철서각・토서각(테라코타)・포리코트서각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조각과 서각의 차이점을 보면, 조각은 건축에, 서각은 서예에 뿌리를 두고 있고, 조각의 주체는 인체・동물・추상물 등이며 서각은 문자이다. 또한 조각은 사물의 모양・표정 등을 중시하고 서각은 문자의 선질〔線質〕・점〔點)과 획〔劃〕을 중시한다.
전통서각〔傳統書刻〕은 과거의 각자〔刻字〕기법으로 전승돼 온 것으로 서체를 새김에 있어 문자의 입체적인 조형미 보다는 필의〔筆意〕를 도의〔刀意〕로 옮기는 것을 더 중요시 했다. 반면 현대서각〔現代書刻〕 은 기존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전통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위한 노력을 시도 개성과 독창성을 보여준다. 때문에 현대서각은 입체본래의 개념을 전제로 하는 서〔書〕의 새로운 입체 예술이다. 서각은 문자를 매개로한 서예적인 것 이외에도 칼의 움직임에서 오는 조각적인 것과 색채 가미에 의한 회화적인 것, 그리고 다듬고 가공하는 데서 오는 공예적인 것등을 두루 갖춘 예술이다. 또한 옛 것을 익혀 현대의 감각과 기법으로 재창조함으로서 새로운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하고 있다. 활자의 발명 이전에는 주로 나무에 판각을 하여 책을 만들었으므로 서각은 우리의 문화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인쇄매체로서 뿐만 아니라 건축의 현판, 주련등에 이용 되면서 실로 광범위하게 기록의 역사와 함께 장식의 예술로 이어져 왔다.
Ⅷ. 글씨와 서예의 차이
글씨를 쓰는 것은 실용에 목적이 있는 것이고, 서예는 사람들에게 예술을 감상하게 하는 것이다. 글씨 쓰는 것과 서예는 각각 실용성과 예술성의 특징을 공유하고 둘다 문자를 빌려 글씨를 쓰나 특성과 창조성이 다르다. 하나는 실용미를 추구하여 발전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예술미를 추구하여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 예술미의 일면은 먼저 문자의 조형과 규율을 흐트리지 않고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감정의 동태와 사상의 조화를 이루어 법을 타파하여 의를 얻게 한다. 그리고 자기의 감정을 펴내어 글자의 기세와 풍모로 하여금 예술미와 매력을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감화를 갖게 하는 것이다.
Ⅸ. 서예의 규율적 요소
서예에는 행동의 준칙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붓 잡는 법, 팔을 운용하는 법, 붓을 운용하는 법, 먹을 사용하는 법, 글자를 구성하고 배치하는 법, 운치를 나타내는 법등이 있다.
1. 필법〔筆法〕
글자의 점과 획을 그을때 붓을 움직이는 법이다. 이것은 붓을 잡는 '집필'과 붓을 움직이는 '용필'로 나뉘는데, '집필법'은 손가락을 사용하는 지법〔指法〕인 '단구법' '쌍구법' '오지집필법'이 있으며, 팔을 사용하는 완법〔腕法〕인 '침완법' '제완법' '현완법'이 있다. '용필'은 기필, 수필, 원필, 방필, 중봉, 측봉, 로봉, 장봉, 제안, 전절 등이 있다.
1-1. 단구법〔單鉤法〕
엄지손가락과 식지〔食指:둘째손가락〕사이에 붓을 쥐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받쳐주며 나머지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하고, 붓대의 중간보다 아래를 쥐며 지면에 대하여 수직으로 하여야 하며, 엄지손가락과 식지는 앞으로 당기는데 이용하며, 가운데손가락은 미는데 사용한다. 평상시 연필을 쥐는 방법이다.
1-2. 쌍구법〔雙鉤法〕
둘째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을 나란히 한 후 관절을 꺾어 붓의 오른쪽 위에 대고 손가락 사이를 벌려준다, 엄지는 붓의 왼쪽에서 둘째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 사이의 위치에 대고 힘있게 잡은후 안으로부터 받치며, 붓대의 중간쯤을 쥐고 잡은 붓은 수직이어야 한다. 이때 무명지〔無名指: 넷째손가락〕는 안쪽에 대어 밖으로 밀어주며 소지〔小指:다섯째손가락〕는 무명지 밑에 겹치듯 댄다.
1-3. 발등법〔撥登法〕
다섯 손가락의 특징을 활용해서 집필하는 것으로, 특히 이 방법은 각 손가락의 역량이 고루 발휘된다는 의미에서 오지제력법〔五指齊力法〕이라고도 한다. 집필요령은 먼저 엄지와 식지의 관절을 꺾어서 붓대를 잡은 다음 중지는 식지에 붙여 나란히대고 무명지〔無名指〕와 소지〔小指〕는 붓대 안쪽에 대어준다. 이때, 다섯 손가락의 관절은 모두가 꺾이게 되며, 그래서 엄지와 식지가 이루는 공간은 둥글게 된다. 특히 엄지의 관절은 반드시 꺾여져야한다. 왜냐하면 이에따라 다른 손가락의 관절작용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기때문이다. 집필의 요체로서 허장실지〔虛掌實指〕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오지제력〔五指齊力〕으로 필관을 잡았을 때 손바닥 안에 달걀하나가 들어갈 만한 상태의 집필을 가리키는 것인데, 손바닥 안은 비고 손가락의 힘은 충실하다는 의미이다. 허장실지는 몸의 힘을 손끝에 모으는데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어떠한 집필법에 있어서도 이 원리만은 공통적인 것이 되어있다. 따라서 이 손가락의 작용이라는 것도 실은 손가락 그 자체의 힘이라기 보다 팔과 온몸에서 생기는 것이다.
1-4. 枕腕法〔침완법〕
왼쪽 손을 붓을 잡은 오른쪽 손목에 받치고 쓰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팔의 힘이 필봉〔筆鋒〕까지 충분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어서 작은 글을 쓸 때 적용이 된다.
1-5. 提腕法〔제완법〕
오른쪽 팔뚝을 책상에 대고 팔목 부분을 들어서 올리고 쓰는 방법이다. 이것은 작은 자와 중간정도의 크기의 글씨를 쓸 때 적용이 된다.
1-6. 懸腕法〔현완법〕
팔을 완전히 들어 올리고 쓰는 방법이다. 이것은 팔이 사방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온몸의 힘이 손가락을 통해 붓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어서 아무리 큰 글자 라도 소화할 수가 있게 된다.
집필 할 때는, 일단 잡은 붓은 고쳐 잡지 말아야 하며 특히 붓을 잡은 손가락으로 붓대를 돌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운필은 팔이 행하는 것으로 어깨 힘의 가감이 자유스러워야 한다. 손목은 팔을 통해서 오는 상박부의 움직임에 따라서 동작을 하여야 하는데 자칫 팔이나 상박부는 움직이지 않고 손목만으로 붓을 움직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
1-7. 기필〔起筆〕과 수필〔收筆〕
기필〔起筆〕이란 한 획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며, 획을 그을 때 반드시 역입을 하여 붓끝이 획밖으로 노출이 되지 않도록 하며, 수필〔收筆〕이란 한 획의 마무리를 하는 것으로 끝에 이르러서 그어 오던 쪽을 향해 회봉〔回鋒)시켜 수필〔收筆〕하는 것이다. 기필〔起筆〕과 수필〔收筆〕은 그 점획의 형상을 결정 지우는 중요한 관건이 되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1-8. 제필〔提筆〕과 돈필〔頓筆, 按筆〕
서예는 한마디로 붓의 변화 과정이다. 곧 붓이 종이 위에서 움직일 때, 제〔提:끌거나〕, 혹은 돈〔頓:누르는 것〕을 교체해 가며 진행된다. 이 원리를 인식하고, 제〔提〕와 돈〔頓〕의 방법에 주의한다는 것은 곧 필세〔筆勢〕가 영활한 기운을 띠게 되는데 필요한 것이다.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제〔提〕하면 돈〔頓〕해야 하고, 돈〔頓〕한 다음에는 반드시 제〔提)해야 하는 이 변화는 마음이 거느리는 바에 의해 대단히 빠른 가운데 팔의 운동을 거쳐 필봉〔筆鋒〕에 이르러야 한다.
1-9. 경〔輕〕과 중〔重〕
점획의 경〔輕:가벼움〕과 중〔重:무거움〕은 제〔提〕와 돈〔頓〕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붓을 화선지에 닿게 함에 있어, 가볍게 하면 나타나는 점획이 가늘고, 무거우면 점획이 굵은 것은 당연하다. 경중〔輕重〕과 제안〔提按〕이 동일한 것 같은 착각이 들지도 모르나, 양자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곧 제안〔提按〕은 점획간의 기필〔起筆〕과 행필〔行筆)과 수필〔收筆〕에 있어서, 용력〔用力〕에 따라 조세〔粗細〕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고, 용필〔用筆〕의 경중〔輕重〕은 점획의 내적 변화뿐만 아니라 비첩〔碑帖〕의 풍격과 특징까지도 표현되는 것이다.
서예는 용필의 경중에 따라 각기 특징을 지니는 것이어서, 모든 작품에서 느낌도 달리 한다.
1-10. 전〔轉)과 절〔折)
'전〔轉〕'이란 붓을 종이에 대고 둥글게 굴려 돌려서 모나거나 뿔이 나지 않는 필획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때 손가락으로 필관〔筆管〕을 굴리지 않아야 한다. 전〔轉)에 비해 '절〔折〕'은 방적〔方的〕 점획을 만드는 용필법〔用筆法〕으로서 한 획의 중간에서 소위 '일필삼과〔一筆三過〕'라 하여, 관절의 작용으로 꺾는 것이 있기는 하나, 주로 한 획의 시작과 마무리 때의 방향을 바꾸는 데 쓰인다.
절필〔折筆〕의 방법은 필봉〔筆鋒〕이 왼쪽으로 가려면 먼저 오른쪽이,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려면 왼쪽이 먼저 닿아야 하며, 위로 가기 전에 아래를 먼저 대고, 아래로 쓰려면 위를 먼저 댄 다음에 쓰기 시작해야 하는 법으로, 이것이 곧 '역입〔逆入〕의 원칙'이다. 그러나 절필〔折筆〕의 중점은 눌렸다가 꺾는 데에 있다.
1-11. 방〔方〕과 원〔圓〕
방필의 필획에는 모가 나 있고, 원필은 각이 나지 않는 둥근 형상의 필획을 말한다. 기본 점획의 주된 특징은 방〔方〕이 아니면 원〔圓〕이고, 그렇지 않으면 방〔方〕에 원〔圓〕을 겸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글씨는 분류의 원칙을 방〔方〕과 원〔圓〕으로 구분한다.
1-12. 장봉〔藏鋒〕과 노봉〔露鋒〕
'장봉〔藏鋒〕'이란 원필〔圓筆〕의 경우처럼 봉〔鋒〕을 휩싸서 감추듯 기필〔起筆)하여 필획이 시작되는 곳과, 마무리되는 곳에 봉의 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장필〔藏筆)의 방법으로서 기필에는 역봉〔逆鋒〕을, 수필에는 회봉〔回鋒〕을 한다. 이를 '역입도출〔逆入倒出〕'이라고 한다.
노봉〔露鋒〕'은 필법〔筆法〕에 있어서 장봉〔藏鋒〕과 반대 현상으로 지칭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봉〔中鋒〕과 편봉〔偏鋒〕과의 관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노봉〔露鋒〕은 장봉과는 달리, 서선의 방향대로 붓을 대어서 필봉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을 노봉 이라고 한다. 한 획을 쓸 때 붓끝이 밖으로 노출되게 하는 것인데, 글자와 글자가 연결되게 쓸때 노봉이 나타난다. 또한 노봉은 작은 글자나 행 초서를 쓸때 많이 나타나게 된다. 노봉으로 쓴 글씨는 점과 획에 붓끝이 노출되고, 노출된 붓끝은 두 현상을 보인다. 곧 붓끝이 점과 획의 정중간에서 부터 나오는 것과, 점과 획의 한편으로 치우쳐서 나오는 것이 있다. 전자는 중봉〔中鋒〕인 경우여서 원경〔圓勁〕하며, 후자는 편봉〔偏鋒〕이어서 편약한 것이니, 전자가 좋은 것임은 당연하다. 원경〔圓勁〕한 노봉은 삐침, 파임, 꺾임등 획에서 삐칠 때 쓰이는 것으로, 반드시 중봉(中鋒〕이라야 하며, 노봉〔露鋒〕이 아무리 첨세〔尖細)하더라도 편획이 되지 않아야 한다.
1-13. 중봉〔中鋒〕, 측봉〔側鋒〕, 편봉〔偏鋒〕
중봉〔中鋒〕'은 정봉〔正鋒〕이라고도 한다. 중봉이란 행필〔行筆〕에 있어 필봉〔筆鋒〕이 획의 정중간을 점하고 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붓이 종이에 닿았을 때, 모든 털이 가지런히 펴진 다음 획이 가는 길의 정중간에서 필봉이 가도록 하는 것이 중봉〔中鋒〕이다.
모필은 동물의 털을 재료로 해서 원추체〔圓錐體〕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펴질 수 있고 모아질 수 있으며, 먹은 필첨〔筆尖〕을 따라 아래로 흐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중봉은 상하좌우로 고르게 스며, 퍼지고 호〔毫〕의 사면팔방이 모두 종이에 닿게 되어 원주형〔圓柱形〕의 필획을 이룬다.
측봉〔側鋒〕은 측〔側)으로 세〔勢〕를 취한다는 뜻이다. 영자팔법〔永字八法〕에 점〔點〕법은 측〔側〕법이 일컬었음에 비추어 '측봉〔側鋒〕'은 곧 점법〔點法〕으로 기필(〔起筆〕하는 것이니 '중봉〔中鋒〕'이 장봉원필〔藏鋒圓筆〕이라면 '측봉〔側鋒〕'은 노봉방필〔露鋒方筆〕이다.
'편봉'은 점획의 한곁으로 필봉이 기울어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옆으로 획을 그을때 필봉이 상단이나 하단으로 치우쳐 가거나 아래로 그을 경우 왼쪽으로 치우쳐 그어졌다면 이것은 글씨를 쓴 것이 아니라 먹을 바른 것이된다. 그리고 수필에 회봉〔回鋒〕는 물론 되지 아니하려니와 호가 드러누은 그대로 들리고 만다.
편봉은 '병필〔病筆〕'과 '패필〔敗筆〕'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병필과 패필이란 점과 획 상의 병폐를 말하는 것으로, 초학자 뿐 아니라 상당히 조예가 있는 서예가에게도 항상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서예가에 있을 때 병폐는 더욱 면하기 어렵다.
첫째 붓이 종이에 닿자마자 생각도 없이 점획을 써서는 안된다. 신중히 붓을 내리되, 낙필〔落筆〕한 다음에는 잠깐 쉬는 듯이 마음을 가라앉혀서 행필〔行筆〕해야 한다.
둘째, 한 획을 쓸 때마다 필력을 다해서 움직여야 한다. 가령 삐칠 경우라면 힘을 들인다고 해서 필봉을 누르자마자 그대로 내리 삐치거나 하면 안 된다. 너무 빨리 사납게 하면 필관이 옆으로 누워 내려오게 되는 나머지, 삐친 획의 하반이 끊겨지고, 갑자기 가늘게 변해서 삐친 끝이 길게 노출된다. 이 현상을 '허첨〔虛尖〕'이라고 한다.
2. 필력〔筆力〕
붓을 움직여 획을 긋는 내재적인 힘을 말한다. 점과 획 사이, 획과 획 사이, 글자와 글자 사이, 그리고 행과 행사이의 상호호응 관계를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붓이 가지 않은 곳이라 할지라도 기세가 끊어져서는 안되며, 점과 획의 모양이 각각 다르다 할지라도 그 필세는 항상 혼연일치 되어야한다.
-3. 필의〔筆意〕
글씨속에 표현된 작가의 감정과 취향을 가리킨다. 서예는 문자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법칙과 글씨를 쓰는 사람의 심미적 정취가 하나가 되어 사상ㆍ감정 활동과 풍부한 상상 및 운필기교에 근거하여 서법의 조형이 각종의 동태를 드러나게 해서 지면에 생동하면서도 함축된 표정과 의취가 표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4. 묵법〔墨法〕
서예에서 중요한 기법의 하나이며 여기에는 농묵〔濃墨〕·담묵〔淡墨〕·간묵〔幹墨〕·갈묵〔渴墨〕·습묵〔濕墨〕·고묵〔枯墨〕·창묵〔漲墨〕등이 있다. 이것은 글씨를 쓰는 사람과 서체 및 용도에 따라서 작품의 광채를 결정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옛 사람은 글씨를 쓸 때 대부분 진한 먹을 사용하였으나 묽은 먹을 사용한 사람도 많았다. 송대의 서예가 소동파는 진한 먹을 잘 사용하여 '농묵재상〔濃墨宰相〕'이라 칭하였으며 청대의 서예가 왕몽루〔王夢樓〕는 묽은 먹을 사용하여 당시에 '담묵탐화지목〔淡墨探花之目〕'이라는 명예를 누렸다. 현대에 있어서 일본에는 묽은 먹을 사용하는 서예가들이 많은데 이들의 시도하는 담묵의 표현 기법은 동양화의 먹색을 참고하여 촉촉한 것으로써 아름다움을 구하여 온아함과 세련됨을 나타내었고 구도의 경중을 충분히 이용하여 흑백대비의 예술효과를 이루면서 새롭고 아름다운 맛을 나타내었다. 물론 담묵을 예술적으로 잘 처리하기란 어려워 서예가의 예술적 소양과 기교를 바탕으로 대처해야 하며 꾸미거나 억지로 표현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성공한 서예가는 예술적 처리에 있어서 전후의 호응과 먹색의 윤택함과 운치를 맞추는데 매우 주의하였다. 훌륭한 작품들은 한번 먹을 묻혀서 몇자를 쓴 후 붓에 먹이 다하면 다시 먹을 찍어서 쓴 것을 분명히 알아 볼 수 있다. 한 폭의 작품에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먹은 몇차례 묻히는데 불과하지만 먹색의 변화는 끊임없어서 건조함과 습함, 진함과 묽음을 돋보이게 한다.
Ⅹ. 서예의 감상법
서예의 심미관념〔審美觀念〕은 인격과 예술의 통일을 지향하는 전통적인 인문정신의 발현이며 시각예술에 속해 있으면서도 심상심학〔心相心學〕으로서의 특성을 지닌 동양 특유의 미적예술이다. 따라서 서예를 감상한다는 것은 사람의 사상, 정감, 취미, 심미안 등을 개발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서예는 회화와 같이 현실 중의 각종사물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예술이다. 그러나 서예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점과 획의 구성은 매우 특수한 예술언어와 리듬감을 가지고 있다.
서예에 있어서, 하나의 획으로 어떤 사물의 형상과 변화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사물의 형태와 동태적인 미감을 충분히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작가가 창작을 할 때 무한히 다양한 객관적 현실 가운데 아름다움을 받아들여, 점과 획 그리고 형체에 집중적으로 표현시킴으로써 작가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감정을 이에 충분히 발설하는 것이다.
서예작품이란 글자들이 모여서 행〔行〕을 이루고, 행〔行〕들이 모여서 장〔章〕을 이루면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점은 한 획의 규범이 되며, 한 자가 한 작품의 부분적인 미가 전체적인 미에 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체의 구성을 장법〔章法〕이라고 하는데 그림으로 말하자면 구도와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문자를 조화롭게 배열 또는 배자하여 하나의 완성된 문장을 꾸미는 것을 말하는데 이 뿐만이 아니라 최종적인 낙관을 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서예는 이미 정형화된 문자를 소재로 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보다는 모양뒤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필획에 중심을 두게 된다. 따라서 붓을 어떻게 움직여 어떠한 필획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필획의 질감이나 역감〔力感〕의 현상이 어떠한가에 의해 작품의 수준이 평가된다. 서예의 미는 모두가 역감〔力感〕을 바탕으로 해서 서예의 아름다움이 표현된다. 역감〔力感〕이 없으면 모든 글자는 피곤한 듯 늘어지고 필획에는 생기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역감중〔力感中〕의 역〔力〕은 서예를 시각으로 감상할 때에 일종의 감수이며, 이것은 관념중의 힘이며 심리학의 범주에 속한다.
역감〔力感〕이란, 필력〔筆力〕· 골력〔力〕· 근력〔筋力〕· 역도〔力度〕등을 말하는 것인데 글자에는 인체와 같이 뼈, 살, 힘줄, 피가 모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글씨란 사람의 인체조직과 같아서 4가지 모두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어져야 한다.
골〔骨〕은, 필획 중에서 힘을 나타낼 수있는 골격을 뜻함이고, 운필을 할 때 중봉으로 글씨가 이루어지게 하며 역봉을 할 때에는 절필을 하여 글씨에서 뼈대가 나타나는 듯하게 쓰는 방법이다.
육〔肉〕은, 먹물의 농담을 비유하여 선의 굵고 가늚, 즉 살찌고 마름을 말하는 것인데, 필봉에 함묵시키는 먹물의 양을 적당히 하여 용필을 해야 살이 알맞게 쪄보이는 서선을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먹물의 함묵량에 관계가 있는 것인데 먹물이 너무 많이 함묵되어도 적게 되어도 좋지 않다.
근〔筋〕은, 글자끼리나 획끼리는 기맥이 상통하도록 해야하는데 이것을 사람의 몸으로 보면 힘줄의 역할을 하는것으로 둔필할 때는 붓을 아주 정지하거나 거두지 않으면 안된다.
혈〔血〕은, 필획이 윤택하고 생기가 있어야 하므로 먹물의 신선함을 피에 비유한 것이다. 먹물은 글자쓰기에서 글자의 피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기있고 윤기있는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먹물의 농도 맞추기를 잘 하여야 한다.
행서나 초서는 한 글자만 보아서는 안된다. 이 글자와 저 글자 도는 이 줄과 저 줄을 보면서 그 속에 담겨진 필력·필세·필의·성기고 빽빽한 것·긴장되고 해이한 것·균형·서로의 획들이 어떻게 배합되었는지를 제대로 살펴야하며, 필묵이 있는 곳에서부터 없는 곳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살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종합하면 한 폭의 서예작품에는 반드시 글자와 글자, 행과 행 사이의 간격과 대소 획들을 적절히 배합시키고, 먹의 농담을 서로 어울리게 하고, 신축성을 고려하여 전체가 일맥상통하게 하여야만 진정한 예술효과가 발휘되는 것이다.
좋은작품에는 필법〔筆法〕·묵법〔墨法〕·장법〔章法〕·기운〔氣韻〕등 네 가지 요소가 반드시 구비되어야 한다. 특히 먹빛의 효능은 서예를 평가함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아무리 좋은 글씨를 썼다 하더라도 먹빛이 영롱치 않고 담백한 맛이 없다면 품격이 있는 작품으로 볼 수가 없다. 선현들은′묵색판단〔墨色判斷〕′이라 하여 글씨를 쓰게 한 연후에 그 필세와 먹빛을 보고 그 사람의 길흉과 운명을 판단하였다고 하니 가히 그 중요성이 어떠한가를 짐작 할 수가 있다.
작품을 감상할 때는 다른 사람의 약점만을 들추지 말고 장점을 흡수하여야 한다. 간혹, 글꼴은 안중에도 없고 오자 찾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오자가 생겨서는 안되겠지만 그러한 것이 서예의 평가기준이 될 수는 없다. 서예는 읽는 예술이 아니라 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편견은 결코 예술평가의 바람직한 것이 될 수 없으며, 대충 보고 지나가는 것으로는 작품이 간직하고 있는 품격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드니 세심하게 살펴 보아야 한다.
Ⅺ. 서예 도구의 사용
서예를 함에 있어 도구는 붓, 먹, 벼루, 화전지 네가지로 간단하다,
이를 가리켜 문방사우 또는 문방사보라고 한다. 전문서예가나 서예를 배우려고 하는 초보자도 더 이상의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
1. 붓〔筆〕
문헌에 의하면 붓을 처음 만든 사람은 몽염이라는 진〔秦〕나라 사람이다. 그러나 중국은대〔殷代〕에 이미 모필〔毛筆〕로 쓴 도기의 조각이 발견되므로써 몽염 이전 시대에도 붓의 형태를 지닌 것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붓은 서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서양의 그림붓은 평면적인데 반해 서예에 사용되는 붓은 정원〔正圓〕이다. 원추〔圓錐〕의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용력과 반작용력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 다양한 선질의 효과를 낼 수 있다.붓은길고 유연하며 얇은 화선지에 단번에 긋는 것으로 모든 것을 완성하기 때문에, 동양의 붓은 도구로서의 기능을 뛰어넘어 작가의 신경과 감각이 연장선상에 있어야 한다.
모필의 재료는 동물의 털을 이용한다. 주로 쓰이는 것은 양털〔양호羊毫〕 토끼털〔자호紫毫〕이며, 말갈기털〔종모鬃毛〕 늑대털〔낭호狼毫〕 닭털〔계호鷄毫〕 쥐수염〔서수鼠鬚〕과 다른 짐승털을 겸한것〔겸호兼毫〕등이 있다.
붓대는 대부분 대나무을 사용하며 붓의 굵기에 따라 극대필부터 미세필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붓털의 길이에 따라서는 장봉, 중봉 ,단봉으로 나누어진다.
붓의 강한 정도에 따라서는 강호〔强豪-털의 성질이 강한 붓〕, 유호〔柔豪-털이 부드러운 것〕, 겸호〔兼豪-강한 털을 붓의 가운데에 넣고 두 종류 이상의 털을 섞어서 만든 것〕로 나눈다. 초보자에게는 겸호가가장적합하다.
붓을 선택 할때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면 좋은 붓이라 할 수있다.
-.원〔圓〕: 붓끝주위가 풍만하고 원추상태이며, 편평하지 않고 여위지 않 은 것.
-.첨〔尖〕: 붓끝을 합쳐보면 뽀쪽하여 뭉퉁하지 않는것.
-.제〔齊〕: 붓끝을 평평하게 편후 끝의 털이 가지런 한 것. -.건〔健〕: 붓끝에 탄력이 있어 붓끝이 펴진 후에도 잘 모아지고, 붓털이 굽었다가도 쉽게 원래대로 곧게 회복되는 것.
2. 화선지〔紙〕
오늘날 종이에 가장 가까운 것은 B.C.4000년경 이집트의 나일강변에서 자라는 파피루스〔papyrus〕였다. 고대 이집트 사람은 나일강변에 야생하는 파피루스라는 갈대와 비슷한 식물의 줄기를 얇게 저며서 가로·세로로 맞추어 놓고 끈기가 있는 액체를 발라서 강하게 압착시킨 후, 잘 건조시켜 기록하는 재료로 사용하였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종이를 발명한 사람은 AD 105년 중국 후한의 채륜이라 하였다. 채륜이 발명한 제지술은 나무껍질· 마설· 넝마등을 돌 절구통에 짓이겨 물을 이용하여 종이를 초조하는 원리였는데, 이것은 현대의 초지법〔抄紙法〕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후 전한〔前漢〕의 한 무덤에서 종이가 출토됨으로써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으며 따라서 채륜은 종이를 개량했던 사람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간〔簡: 대나무 혹은 나무조각을 잘 다듬어서 , 표면에 나무즙으로 기록하여 그 조각들을 가죽이나 끈으로 연결한 것)과 독〔牘〕이 많이 사용되었고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붓이 발명되면서부터 비단이 함께 사용되었다.
서화용으로 쓰이는 종이는 크게 나누어 선지계〔宣紙系〕와 당지계〔唐紙系〕로 나누어진다. 선지는 지질이 무른편이며 습기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옥판전 〔玉版箋〕,라문전〔羅文箋〕,백지〔白紙〕등이 선지에 속한다. 당지는 원래 중국제 종이 전반을 가르 키는 것이었으나 현재는 죽을 원료로 하는 종이를 지칭하고 있다. 그 종류에는 일번당지〔一番唐紙〕,이번당지〔二番唐紙〕,백당지〔白唐紙〕 등이 있으며 이 외의 가공지로서 납전〔蠟箋〕, 채전〔彩箋〕 문양전(文樣箋〕,, 주금전〔酒金箋〕, 문당전〔文唐箋〕 등이 있다. 또 한 청조〔淸朝〕시대의 종이로서 지금까지 감상의 대상으로 애장되는 고지(古紙〕가 있는데 징심당지〔澄心唐紙〕,방금율산장경지〔倣金栗山藏經紙〕같은 것이 있다.
좋은 화선지의 선택 요령은, 거칠지 않고 매끄러우며 앞뒤의 구분이 정확히 되는 것과 흡수, 윤갈이 적당히 되어서 필법이 잘 나타나는 것, 번지지 않고 발색이 좋고 먹빛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것, 너무 얇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 보존성을 지닌 것등이다. 보관할 때는 습기가 없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어야 벌레나 곰팡이로 인해 종이가 파손되는 것을 방지 할수 있다.
한국의 종이는 지질이 좋고 질기기는 하나 서화에는 적당하지 않아 주로 중국산 종이가 사용되었다.
3. 벼루〔硯〕
벼루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묵서〔墨書〕의 흔적으로 미루어 그때 이미 벼루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시황제때인 것으로 추정되는 원판석연〔圓板石硯〕이 발견되면서 그것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벼루로 알려져있다.
벼루에서 먹을 가는 부분은 연당〔硯堂〕·연홍〔硯泓〕이라고 하고, 먹물이 모이는 오목한 곳은 묵지〔墨池〕또는 연지〔硯池〕라고 한다. 모양은 원형과 4각형에서 부터 여러가지 각형과 사물의 형태를 본떠 만든 금연〔琴硯〕·풍자연〔風字硯〕등이 있으며, 크기도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하다. 재료로는 돌· 옥· 수정· 도자기· 철· 금동· 은· 대나무· 조개껍질등이 사용되나 대개는 돌을 사용한다. 좋은 벼루는 먹이 잘 갈리고 고유의 묵색이 잘 나타나야 한다. 연당의 표면에는 숫돌과 같은 꺼끌꺼끌한 미세한 봉망〔鋒芒〕이 있어 여기에 물을 붓고 먹을 마찰시킴으로써 먹물이 생긴다. 따라서 봉망의 강도가 알맞아야 한다. 봉망이 약하면 먹이 잘 갈리지 않고 반대로 강하기만 하면 잘 갈리기는 하나 먹빛이 좋지 않다. 벼루는 실용의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는 좋은 재질의 것을 첫째 요건으로 하지만 먹을 가는 도구라는 차원을 넘어 돌의 빛깔이라든가 무늬의 아름다움을 취하고 나아가 연면〔硯面〕을 미적 의장으로 조각 장식하여 문방사우의 하나로서 감상의 대상으로 여겨 왔다. 인류가 벼루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은대〔殷代〕의 갑골〔甲骨〕에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쓴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이 어떠한 형태이든지 먹물을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벼루가 제작된 것은 한대부터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가야시대에 만들어진 도연〔陶硯〕인데, 원형의 연면에 연지가 돌려져 있고 5개의 다리가 있다. 중국에서는 당대〔唐代)부터 단계〔端溪〕에서 나는 것이 유명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남포연〔藍浦硯〕과 위원연〔渭原硯〕이 가장 유명하다.
4. 먹〔墨〕
후한(後漢)의 위탄(韋誕)이 발명했다는 설이 있으나, 은대(殷代)의 갑골(甲骨) 가운데 검거나 붉은 액체를 사용한 것이 출토되어 BC 2500년 이전에 먹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상으로도 위탄 이전의 책에서 먹에 관한 기록이 발견된다. 이때 사용한 먹은 석묵(石墨)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지금과 같이 탄소의 분말을 이용하여 만든 것은 한대 이후부터이다.
먹은 위진대〔魏晋代〕에 옻과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둥근 형태의 묵환〔墨丸〕에서 비롯 되었으며 종류로는 식물성 기름의 그을음으로 만든 유연묵〔油烟墨〕, 소나무 그을음과 사슴의 아교로 만든 송연묵〔松烟墨〕, 유연에 사향을 섞어 금박을 입힌 용향묵〔龍香墨〕, 먹똥과 응어리가 안 생긴다는 청묵〔淸墨〕 등이 있으며, 지금에 와서는 화학원료인 카본블랙을 사용하여 만든 양연묵〔洋煙墨〕 이 있다.
먹의 형태는 초기에는 둥글거나 원주형〔圓柱形〕이었으며 점차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먹 위에 그림이나 문자를 새겨 장식한 것들도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양덕〔楊德〕과 해주〔海州〕의 먹이 예로부터 가장 유명하다. 먹을 갈때는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사용후에는 벼루에 먹물을 남겨 두지 않는다. 하루 자고난 먹은 먹찌꺼기와 거품이 섞여 있어서 글씨를 쓰는데 좋지 않다. 이밖에 먹의 농도와 양은 쓰는 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며, 털이 센 붓은 일반적으로 좀 진한 것이 좋고, 털이 연한 붓의 경우에 먹이 진하면 글씨를 쓰기가 어려워진다. 해서를 쓸 때는 조금 진한게 좋고, 행·초서의 경우는 먹이 좀 묽은 듯 하여야 흐름이 원활해진다.
먹을 고를 때는 먹빛과 향기가 좋아야하며, 손으로 두들겨 보아 소리가 맑은 것을 고른다. 판매되는 먹물은 가급적 삼가 하는 것이 좋다. 장기간 사용시 방부제로 인해 시력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고 붓의 수명도 짧아진다. 사용하고 남은 먹물은 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2~3일은 사용 할 수 있으나 가급적 쓸 만큼만 갈아서 바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전영택(田榮澤)의 ‘늘봄’ 등이 곧 그것이다. 이병기는 자신의 호를 ‘가람’이라 한 데 대하여, 그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한 바 있다.
“수당(壽堂)께 갔었다. 이말 저말 끝에 내 호를 지어준다. 한자로 임당(任堂)이라 한다. 나는 이미 가람이라 했다. 가람은 강이란 우리말이니, 온갖 샘물이 모여 가람이 되고 가람물이 나아가 바다가 된다.
그러면 샘과 바다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그 근원도 무궁하고 끝도 무궁하니 영원하며, 이 골물 저 골물 합하여 진실로 떳떳함을 이루니 완전하며, 산과 들 사이사이에 끼여 뭍〔陸〕을 기름지게 하니 조화(調和)함이다. 이 세 가지 뜻을 붙이어 지음이라. 우리말로는 가람이라 하고 한자로는 임당(任堂)이라 하겠다.”
이 일기는 1920년 7월 31일자의 것이다. 저때에 이렇듯 순수한 우리말로 호를 쓰고자 한 것은, 그 말이 지닌 뜻도 뜻이려니와 민족적·자주적인 것을 찾고자 한 당시 선인들의 생각에서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인들은 자신의 호에 대하여 설명한 변(辨)이나 기(記)를 짓기도 하였고, 남의 호를 지어줄 때에는 그 글자의 출전이나 뜻을 밝힌 글을 아울러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글을 호변(號辨) 또는 호기(號記)라 한다.
우리 나라에는 몇 종의 ≪호보 號譜≫가 전해지는데, 명인들의 호를 수집하여 그 호와 성명 밑에 잔글씨〔細字〕로 자·본관·관위(官位)·사적(事蹟) 등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호의 사용이 옛날과 같이 성행되지 않고 있다. 더러는 호라는 말 대신에 필명(筆名, pen-name)이라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호에서 우리는 선인들의 풍아한 취미의 하나를 엿볼 수 있으므로, 이러한 취미는 앞으로도 이어받으면 좋을 것이다.
셋째 : 이름과 마찬가지로 부르기 쉽고 듣기 좋아서 울려서 퍼지는 소노리티(Sonority)가 좋아야한다.
넷째 : 아호 자체의 음양오행이나 수리오행에 서로 상극되는 경우를 피하고 길함이 좋다.
다섯째 : 타고난 사주와 음양오행의 조화를 이루게 하고 본명의 결함을 보완해 주어야 한다.
여섯째 : 아호 두 글자의 획수를 합하여 길한 수리를 사용해야 한다.
일곱째 : 아호는 겸손을 미덕으로 하여 높고 고귀한 문자보다는 소박하고 정감이 있는 겸손한 문자를
사용해야 한다.
사전적인 해석을 보면
1.자 [ 字 ]
남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붙이는 이름.
중국에서 비롯된 풍습으로, 본명이 태어났을 때 부모에 의해 붙여지는 데 비해 자는 윗사람이 본인의 기호나 덕을 고려하여 붙이게 되며 자가 생기면 본명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본명을 휘명(諱名)이라고도 한다.
흔히 윗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을 본명으로 말하지만 동년배 이하의 사람에게는 자를 쓴다. 다른 사람을 부를 때도 자를 사용하나 손아래 사람인 경우, 특히 부모나 스승이 그 아들이나 제자를 부를 때는 본명을 사용한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제자 안연(顔淵)을 회(回), 자공(子貢)을 사(賜)라 부르고 있다.
또 공자는 본명을 구(丘), 자를 중니(仲尼)라고 했는데 중(仲)은 아우라는 뜻으로 공자에게는 형이 있었으므로 이렇게 지었고, 니(尼)는 그가 이산(尼山)에 기도를 드려 낳은 아들인 것에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이 습속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는 설총(薛聰)의 자가 총지(聰智)였던 것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자의 사용이 보편화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동시대인인 원효(元曉)는 자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 근세의 유학자들이 중국을 본떠 자를 많이 사용하였다.
2.호 [ 號 ]
본 이름이나 자(字) 외에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
본 이름을 부르는 것을 피하는 풍속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한국이나 중국 등 주로 동양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래로 호가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일반 ·사대부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보편화되었다.
중국의 경우 호는 당나라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송나라대에 이르러 보편화되었다. 당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인 이태백(李太白)이나 송나라의 문장가 소동파(蘇東坡)는 그의 본 이름인 이백(李白)이나 소식(蘇軾)보다도 호가 널리 알려진 경우이다. 호의 사용이 정착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학자들간에 학문적 교류와 편지 교환이 일반화되면서본 이름보다는 호나 자를 사용하는 것이 예의를 차리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호는 대부분이 거처하는 곳이나 자신이 지향하는 뜻, 좋아하는 물건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거처하는 곳이 바뀜에 따라 호가 달리 사용되기도 했으며, 좋아하는 물건이 여럿인 경우 호는 늘어나게 마련이었다. 호는 집안에서 사용한다는 의미의 당호(堂號)와 시 ·서 ·화 등에 쓰는 아호(雅號)로 나누어지기도 했으나, 양자간에는 뚜렷한 구별이 없이 혼용되었다.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문신 이규보(李奎輔)의 경우는 초기에는 시 ·술 ·거문고 세 가지를 좋아하여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호하였다가 나중에는 구름에 묻혀 있는 자신의 처지를 좋아하여 백운거사(白雲居士)로 호를 바꾸기도 했다. 조선 중기 이후로 호의 사용은 더욱 확대되었으며 주로 자신이 학문을 배우고 가르친 곳을 호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황의 퇴계(退溪), 이이(李珥)의 율곡(栗谷), 서경덕(徐敬德)의 화담(花潭)등이 대표적이며, 이들 문인들을 지칭할 때도 퇴계문인 ·화담문인 ·율곡문인 등으로 호를 사용하였다. 성리학자 조식(曺植)의 호 남명(南冥)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용어로서 노장사상에 관심을 가진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표현하였다.
호가 가장 많았던 사람은 조선 후기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로서, 알려진 것만 해도 약 500여 개가 된다. 김정희가 많은 호를 사용한 것은 시 ·서 ·화에 두루 능하였던 예술인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의 대표적인 호는 추사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선객(仙客) ·불노(佛奴) ·방외도인(方外道人) 등으로서 유 ·불 ·도 삼교사상을 망라하는 호를 사용한 것이주목된다. 조선 후기 이래로 호 사전의 성격을 띤 많은 ‘호보(號譜)’들의 편찬은 호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던 당시 상황을 반영해주고 있다.
1945년에 편찬된 《대동명가호보(大東名家號譜)》에는 호를 유형별로 분석하고 있는데, 당(堂) ·암(巖) ·실(室) 등으로 끝나는 호가 많았다. 내용별로는 자신이 거주했던 곳이나 인연이 있었던 곳을 따서 지은 경우와, 인생관이나 수양목표를 한 경우, 완호물(玩好物)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일제강점기에서는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주시경(周時經)의 ‘한힌샘’, 최현배(崔鉉培)의 ‘외솔’ 등의 호가 나타났으며, 순수문학을 지향하던 김정식(金廷湜)의 소월(素月), 박영종(朴泳鍾)의 목월(木月) 등의 호도 우리에게 이름보다는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 외에 이상백(李相佰)의 호 상백(想白)과 시조시인 이호우(李鎬雨)의 호 이호우(爾豪愚)는 이름과 호의 음을 같게 한 경우이다. 오늘날에는 사회체제가 다원화되면서 2종 이상을 쓰는 호보다는 자신의 실명(實名)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문학 ·예술 등 일부 분야에서 호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호를 통하여 당시 인물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호의 종류에 대하여
별호
일반적으로 호라고 하면 별호(別號)를 가리킨다. 지은 사람의 개성이나 이름을 가지게 될 사람의 성품이나 직업, 취미, 특기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남이 지어주는 때도 있으나, 오늘날 대부분 자신이 직접 짓는다. 필명이나 별명도 별호로 볼 수 있다.
아호
아호(雅號)는, 별호 가운데 하나로서, 우아하게 부르는 호칭이다. 성호(星湖)나 다산(茶山) 등의 아호는 지역 이름에서 취한 것이고, 의암(義庵) 또는 경재(敬齋) 등의 아호는 덕목에서 취한 것이다.
아명
아호(兒號)라고도 하며, 주로 어릴 때 정식 이름을 짓기 전에 집안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사용하는 친근한 이름이다. 옛날에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천한 의미의 이름으로 아명을 지었는데, 대한제국 고종의 아명은 개똥이, 황희의 아명은 도야지(돼지)였다. ‘개똥’을 ‘개동’(開東)으로 표기한 예에서 보이듯이 아명을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 정식 이름으로 발전한 예도 있다.
택호
주로 여성에게 붙이며, 택호(宅號)란 성명 대신에 그 사람의 출신지 이름에 ‘댁’을 얹어 부르는 호칭을 말한다. 예를 들어 부산 출신에게는 부산댁, 대전 출신에게 대전댁 등으로 호칭하는 방식이다. 주로 결혼한 여성의 시집오기 전 친정의 지명에 붙여, 본명 대신에 부르는 통명으로 사용하였다.
지명 외에 남편의 직업이나 직함(사장→사장댁, 김선생님→김선생님댁) 등에 붙이기도 하나, 엄밀히 말해 이는 택호는 아니다.
당호
당호(堂號)란 성명 대신에 그 사람이 머무는 거처의 이름으로써 인명을 대신하여 부르는 호칭이다. 예컨대 신사임당에서 “사임당”이나 여유당 정약용에서 “여유당”은 당호이다. 당호는 대부분 ‘-당’으로 끝나지만, 최한기의 당호 태연재(泰然齋)처럼 ‘거처’를 뜻하는 한자어(‘-재’)로 끝나며, 간혹 그러한 형식을 따르지 않더라도 ‘거처’의 이름이 당호로서 쓰인다.
시호
호 중에는 시호(諡號)가 있는데, 이 죽은 인물에게 국가에서 내려주는 특별한 이름이다. 시호는 동양의 봉건 왕조 국가에서 군주나 군주의 배우자, 군주 및 배우자의 친척,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사람(공신), 고급 관료, 기타 국가적으로 명망을 쌓은 저명한 인물 등이 죽은 뒤에, 그들이 생전에 국가에 기여한 공적을 감안하여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는 뜻에서 지어서 내린다.
유명한 시호로는 명성황후의 명성, 충무공 이순신의 충무 등이 있다.
국가에서 시호를 정하는 것이 원칙이나, 나라가 망하였거나 시대 상황이 맞지 않아 시호가 내려지지 않을 때는 저명한 학자나 문인,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시호를 올려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사시(私諡)라고 한다.
묘호
묘호(廟號)는 동양의 봉건 왕조 국가에서 황제 또는 국왕과 같은 군주에게만 붙인 명칭이다.
조선 태조와 같이 건국 시조에게 붙이는 ‘태조’나 ‘세종’이 대표적이며, 후대의 왕이 신하들과 논의하여 선대의 왕에 대한 묘호를 “유공왈조 유덕왈종”(有功曰祖 有德曰宗) 또는 “입승왈조 계승왈종”(入承曰祖 繼承曰宗)과 같은 원칙에 따라 붙인다. 곧 나라를 세운 왕(創業之主)과 그에 비견할 만한 업적이 있거나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공(功)이 있다면 “조”(祖)를, 나라를 다스린 것에 덕(德)이 우세하거나 선왕의 뜻을 잘 계승해 종묘사직을 지킨 수성지군(守成之君)이라면 “종”(宗)을 붙이며,
이 글자 앞에 군주의 치세를 잘 나타내는 글자를 하나 추가하여 2글자로 묘호를 완성한다. 앞에 붙이는 글자를 정하는 것은 시호를 정할 때의 법칙인 시호법(諡號法)에 준한다.
또 묘호는 원칙적으로 황제만이 가질 수 있었지만, 고려와 조선은 중국의 입김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동아시아의 외교적 특수 상황 속에서도 불구하고 이러한 묘호를 사용하여 자주성을 대내에 표방하였다.
군호와 제호
군호(君號)란 성명 대신에 그 사람이 받은 군의 작위로써 대신하여 부르는 호칭이다. 군호를 쓰는 사람은 왕자와 공신, 국구(왕의 장인, 곧 왕비의 아버지) 등이며, 조선에서는 왕도 군호로써 자칭하기도 했다. 예컨대 명나라와 청나라 사신에게 조선 왕이 왕자 시절의 군호로써 자칭하였다.
제호(帝號)는 제왕의 칭호이며, 왕호(王號)와는 다르다. 왕호는 군주의 지위를 나타내는 칭호를 가리키며, 황제, 왕, 칸, 천황 등을 가리킨다. 한편 제호는 군주를 가리키는 칭호, 곧 시호와 묘호 등을 가리킨다. 명나라 만력제, 청나라 강희제 등도 제호 가운데 하나이다.
자(字)와 호(號)의 특징은
자는 부모나 집안어른이 지어주는 것이 보통이나 호는 웃어른 또는 선생이 지어 주거나 스스로 지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字)란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서 관례때 가명 외에 붙여 주는 성인으로서의 별명 입니다.
우리나fk 경우 남자의 경우 20세가 되면 여자의 경우 15세로 결혼하게 되어 비녀를 꽂으면 자를 짓습니다.
자를 가지게 된 배경은 두 가지 이상의 이름을 갖는 풍속과 또는 실제의 이름을
피하는 풍속으로 전해지는데 그 근원은 실제의 이름을 공경하여 부르기를 꺼리는데서 나왔다고 봅니다.
자가 붙은 후로는 윗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을 본명으로 말하지만 동년배 이하의 사람에게는 자가 쓰였다고 합니다.
특히 부모나 스승이 그 아들이나 제자를 부를 때에는 본명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
입니다.
成三問(성삼문)의 자 : 謹甫(근보)
李滉(이황)의 자 : 景浩(경호)
李珥(이이)의 자 : 叔獻(숙헌) 조금은 생소 하게 들립니다.
그건 그만큼 자 보다 호를 많이 사용 하게 되어서지요
호는 이름이나 자 외에 누구나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칭호 입니다. 호는 본래 중국에서 주거지, 출생지등에 연유해서 누구나 보편화 하면서 호를 많이 사용하므로써 자 는 피하게 된것입니다.
이 결과 후세인들도 선인들의 이름이나 자 보다 더 호를 더 잘 알게 되었구요 이황 보다는 李退계(이퇴계)로 이이 보다는 李栗谷(이율곡)으로 더 많이 부르고 기억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와 같은 호가 사라지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몇년전 신문이나 잡지 가운데는 정치인등을 애칭으로 부를 때 당사자에게
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DJ(후광), YS(거산), JP(운정)등 영어의 머리글자로 표기
하는 태도가 너무 시류에 영합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논어에 보면 공자는 제자인 안연을 회(回), 자공을 사(賜)라고 부른 것을 보면 중국은 예전부터 자와 호를 사용하고 우리나라에 전파를 했습니다. 출처 : "한국인의 자*호 연구" 신용호외 공저 pp29~30 인용
호와 이름을 혼용해서 사용 가능한가 ?
원칙적으로 본다면 호와 성을 붙여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호란 본명을 직접 부르는 것을 실례로 여기는 풍습에서 상대를 허물
없이 부르기 위한 호칭 입니다.
'소월'이나 '다산' 같은 경우 성을 붙이지 않아도 대상을 식별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호를 앞에 쓰고 이름을 쓰는 것 '소월 김정식' '다산 정약용' 같이 표현 할 수는 있지만 '김 소월'이나 '정 다산' 같은 표현은 어딘지 어색합니다.
'소월'이라는 호는 시인 김정식을 부르는 호 입니다. 따라서 [김소월]이라고 쓴 것은 사실상 [김 김정식]이라고 쓴 것과 같고, 다산 역시 정약용이란 사람을 칭하는 호로서 이와 같습니다.
사실 시집이나 서적 등에 작가 이름을[김소월][김영랑]등으로 잘못 표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이들이 호가 본명 보다 널리 알려져 보통명사화 된 까닭에 출판사 등에서 잘못 표기한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역전(驛前; 역 앞)을 역전앞(역 앞의 앞)으로 잘못 표현한 것 처럼요.
호에는 성을 붙이지 않는 것이 올바른 표현 입니다.
字와 號의 개념
*자[字] ;
사람의 본 이름 외에 흔히 장가든 뒤에 성인이 됨으로 본 이름 대신하여 부르는 이름.
*호[號] ;
본명이나 字외에 雅名(아명)으로 학자,문인,화가등 名士들이 즐겨 쓰는 별호,아호라함.
<참고;삼국시대부터 `호(號)`라는 문헌이 있음>
- 보통 五行을 적용하지 않고 자유롭게 짓습니다.
- 齋나 堂자는 당 본인의 거처(所處以號)의 뒷 字입니다.
즉,생활의 터전인 집이나 서재를 말함.
호에 쓰이는 한자를 보면
자기의 理想이나 隱, 堂, 庵, 齋, 江, 山, 谷, 石, 梅, 蘭, 菊, 竹, 松,과 같이
집이나 자연, 4군자를 비유한 글자들이 많이 보입니다.
일단 호는 자신 스스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스스로 짓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 자호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호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지어주고 스스로는 자를 짓습니다.
옛 선비들의 호 중에는 재(齋)를 씁니다. 과연 이것을 무엇을 뜻합니까?
여기서 齋는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신독재 김집 선생이 있습니다.
김집 선생은 자신이 공부하고 기거하던 신독재라는 집의 이름을 자신의 호로 이용한 것입니다.
남자들도 호를 지을 때 당(堂)이 들어갑니까?
매월당 김시습처럼 당이 들어갑니까?
이 경우 당호라 부릅니다.
당과 재는 모두 집의 이름을 이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호라는 것은 겸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이 뛰어남을 자랑하는 것이 호가 아니라 자신의 겸손을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현대에서 호는 그리 필요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전 자나 호를 짓는 이유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호는 아랫사람이 손 윗사람을 부를때 많이 사용하였고 자는 일반적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접하는 뜻에서 지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름이면 다 통합니다.
요즘은 호를 작명소에서 많이들 짓기는 합니다만,
우리도 호를 한번 지어볼까요. 호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송죽(松竹)이라고 한다면
그의미는
푸를松 : 항상 푸르듯이 변함없는 마음, 변절하지 않는 마음 을 나타내고
대나무竹 : 곧곧한 선비의 절개
일죽(一竹) :오직 대 처럼 곧게 프르게
* 일(一) 이름자에 피해야 할 한자임 (맨 뒷쪽 글 참조)
一(한 일): 독자(獨自), 독신(獨身)의 외로움 속에 어느 한 분야에 일위(一位)가 되기 위해서는
필자는 오래 전부터 작명을 연구해 왔다.그러나 시중에 나와 있는 작명에 관한 책에는 대부분 아호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간혹 언급했더라도 단 몇 줄의 뜻풀이에 불과하거나 일반 작명법에 준한다는 암시만 풍기며 끝을 맺기 일쑤였다. 그래서 아호에 관심이 있어도 자료를 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이 책을 내게 되었다.아호를 짓는 것은 그리 대단하거나 복잡하지 않으니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착실히 공부한다면 누구나 좋은 아호를 지어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는 모든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미술 시간에 서각과 전각 수업을 펼치면서 학생들에게 호 짓기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참고자료로
만든 것에 살을 붙여본 것이다.
1. 이름이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잘 알려진 김춘수 님의 [꽃]이라는 시입니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서기 위한 것이 이름입니다.
나를 넘어 ‘관계’를 맺기 위한 것입니다.
2. 내 이름에 이의(?)있습니다.
민학기(閔鶴基)
참 이름 좋습니다. 참 맘에 듭니다.
국민학교 때는 ‘학이 노는 터’ 등으로 해석하면서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뭔가 신령스럽기도 하고, 신선이 된 듯도 하고....’
제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습니다. 십장생 중 하나인 학(鶴)을 집어넣어 오래 무병장수하란 뜻으로 지어주셨다 합니다. 오래 사는 게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鶴’자와 ‘基’자는 참으로 좋습니다.
민학기(閔鶴基)
이건 제 이름입니다.
내 이름이긴 하되 내가 짓지 않았습니다. 살아생전, 죽어도 내가 쓸 내 이름인데 우리 할아버지는 최소한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감히(?) 내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름이란 그렇습니다. 내가 쓸, 내가 주인인 내 이름을 내가 짓지 않았으며 내가 동의해준 적도 없는 것이 우리의 이름입니다.
3. 이름에는 부모의 욕심이 묻어있다.
내가 짓지 않은 내 이름에는 부모의 욕심이 묻어 있습니다.
부자 되라고, 오래 살라고, 남보다 뛰어나라고, 빼어나게 이쁘라고(秀美), 번듯하라고, 부귀와 영화를 한껏 누리라고, 높은 벼슬하라고.....이런 탐욕(?)이 아니더라도 우리 딸 시우(時雨 : 때맞춰 내리는 비처럼 만물을 기쁘게 해주라)처럼 제법 겸양과 미덕을 강조한 이름에도 색깔을 달리할 뿐 부모의 욕심이 묻어있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4. 우리의 이름 짓기 문화
사람이 삶을 누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불리기 시작했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의 수단이 아니라 명예와 인격성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 형태는 국가나 민족, 그리고 배경이 되는 사회나 문화에 따라 복잡다양하며, 보통 각기 다른 유래와 의미나 이유 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토박이말로 지었던 우리의 이름이 한자의 유입과 함께 한자 이름으로 지어지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4-1. 참고로 토박이 이름 짓기의 유형을 살펴보면
1) 출산 장소에 따른 것(부엌손, 마당쇠)
2) 간지(干支)나 달 이름에 따른 것(갑돌이, 정월이)
3) 성격에 따른 것(억척이, 납작이)
4) 기원을 곁들인 것(딸고만이, 붙드리)
5) 순서에 따른 것(삼돌이, 막내)
6) 복을 비는 천한 것(개똥이, 돼지)
7) 동식물, 어류 이름에 따른 것(강아지, 도미)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이 동물 이름입니다.
이름을 한자로 지을 경우의 성명 3자 가운데에서 선택권은 1자밖에 없지요.(외자이름도 있지만). 성과 항렬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남은 1자도 같은 항렬의 동명이인을 피해야 하고 가까운 조상의 이름에 나오는 글자도 피했습니다.
4-2. 일생 네다섯 개 이상의 이름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에는 실명을 삼가는 것이 세계적인 경향인데,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모독이라 생각하여 금기시 하는 풍습이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보통 조선시대에 이르러 정착된 사대부집안의 이름 짓기의 경우 일생에 걸쳐 네다섯 가지의 이름을 갖게 됩니다.
◆ ① 아명 (兒名 : 어린아이 때의 이름)
아명은 보통 생존확률이 높지 않았던 옛날에 무병장수를 염원하며 천하게 짓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개똥이, 쇠똥이, 말똥이 등의 이름이 흔했지요. 이름을 너무 귀하게 지으면 운명을 관장하는 하늘이 시기해 일찍 명을 앗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입니다.
관명이 '희(熙)'였던 고종 황제의 아명이 개똥이었고, 황희(黃喜)의 아명은 도야지(都耶只)였음이 그 사례입니다.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논개(朱論介)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무남독녀인 논개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논개의 부모는 일부러 천한 이름인 논개(개를 낳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특이하게도 갑술년(甲戌年, 1574년), 갑술월(甲戌月, 음력 9월), 갑술일(甲戌日), 갑술시(甲戌時, 오후 7∼9시 사이)의 4갑술(甲戌)의 사주를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술(戌)은『개』를 상징하므로 사주(四柱)가 모두 개이기 때문에『개를 놓았다(‘낳았다’의 사투리)』는 뜻에서 이두(吏讀)의 한음(漢音)을 따서 논개(論介)로 작명하였다고 전합니다.
아명이 그대로 관명으로 되어 한자로 '개동(介東), 계동(啓東), 소동(召東), 소동(蘇同), 마동(馬銅), 마동(馬東)'으로 되기도 합니다. 또한 서민들은 아명으로 평생을 살기도 했습니다.
◆ ② 관명( 冠名 : 본명. 장성해서 그 집안의 항렬에 따라 짓는 이름. 호적에 올리는 이름)
본명임에도 일상생활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보통 생후 백일은 지나야 ‘이 놈이 살 기미가 있겠구나!’하고 생존확률이 명확해진 뒤에 짓게 됩니다.
◆ ③자 (字 : 혼인한(성인식) 후에 본 이름 대신 부르는 이름 )
우리의 전통 예법에 의하면 남자가 20세가 되거나 여자가 15세가 되면 요즘의 성인식(成人式)에 해당하는 관례(冠禮)와 계례가 있었는데, 이때 남자는 어른의 의복을 입히고 모자인 관(冠)을 씌우고 여자에게는 비녀를 꽂아 성년(成年)이 되었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이 관례(冠禮)가 행해질 때 비로소 성인(成人)임을 인정해 주기 위해 어린 아이의 이름인 아명(兒名)을 버리고 관자(冠字)라 해서 지어주는 이름이 바로 자(字)입니다. 자(字)가 붙은 이후로는 임금이나 부모 또는 웃어른에 대해서는 자신을 본명(本名)으로 말하지만, 동년배이거나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 대해서는 자(字)를 사용하여 명(名)과 자(字)를 구분하여 사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부를 때에도 자(字)를 사용하는데 자기보다 손위 사람을 부를 때에는 자(字)를 사용하고 아래 사람은 본명(本名)을 사용했습니다.
자(字)를 지을 때에는 본인의 기호나 윗사람이 본인의 덕(德)을 고려하려 짓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장유(長幼)의 차례에 따라 정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자(字)를 부르고 사용함은 곧 성인(成人)이 되어 상호 예(禮)를 갖추고 품격(品格)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 ④ 호(號)
호(號)는 본명인 명(名)과 자(字) 이외에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지은 또 다른 이름으로 아호(雅號), 당호(堂號), 필명(筆名), 별호(別號) 등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택호(宅號)와 시호(諡號) 예명(藝名) 또는 법명(法名)도 넓은 의미로 호(號)라 할 수 있습니다.
아호(雅號)는 문인(文人)이나 예술가(藝術家) 등의 분들이 시문(詩文)이나 서화(書畵) 등의 작품에 본명 이외에 우아한 이름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이름입니다. 이를 글 쓴 사람의 이름이라 하여 필명(筆名)이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호(堂號)란 원래는 당우(堂宇)인 본채와 별채에 따로 붙인 이름이었는데 이것이 그 집의 주인을 나타내는 이름이 되어 당호(堂號)가 그대로 그 사람의 호가 되기도 합니다.
여성은 호를 갖지 않는 것이 보통의 관례입니다. 대신 당호, 또는 택호를 갖지요. 평민의 경우 순천댁, 수원댁 등처럼 친정의 지명을 딴 택호를 갖게 되지만 사대부집안의 여인들은 신사임당, 허난설헌처럼 당호를 갖습니다. 조선의 여인 중 유일하게 호를 지어 쓴 이는 이매창(李梅窓)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명이 향금(香今)이며 계유년에 낳아 아명은 계생(癸生)이며 천향(天香)이란 자를 갖고 있습니다. 황진이와 더불어 명기의 쌍벽을 이루는 이로써 유희경, 허균 등 당대의 호걸들과 교유한 특출한 신분이 여성임에도(?) 당호가 아닌 호의 사용을 가능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별호(別號)는 본 이름 이외의 이름이라는 뜻으로 보통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용모 또는 특징을 따서 지어 부르는 별명과 같은 호(號)를 말합니다. 그리고 택호(宅號)는 어떤 이름 있는 사람의 가옥 위치를 그 사람의 호(號)로 부르는 것으로 ○○ 대감댁 등으로 불렀으며, 출가한 여인에게는 친정의 지명을 붙여 진주댁, 하동댁, 부산댁, 공주댁 등으로 불렀는데 이를 택호(宅號)라고 합니다.
법명(法名)은 승명(僧名)이라고도 하는데 불문(佛門)에 귀의하여 승려가 된 사람이나 또는 불법을 공부하는 신도에게 의식에 따라 속명(俗名) 대신에 지어준 이름을 법명(法名)이라 합니다. 이 법명에도 이름의 항렬처럼 모시는 스승의 계보에 따라 항렬자가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호(諡號)란 벼슬한 사람이나 관직에 있던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 행적에 따라 왕(王)으로부터 받은 이름을 말하는데, 착한 행적이나 나쁜 행적에 따라 정하는 시호(諡號)를 달리하였는데 이는 여러 신하의 선악(善惡)을 구별하고 후대에 권장(勸?)과 징계(懲戒)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시호(諡號)인 충무공(忠武公)이 한 예라 하겠습니다. 살아있을 때의 본명을 휘(諱:부르기를 삼가야할 이름이라는 뜻)라고 하고 죽은 후에 주어진 이름을 시(諡)라고 합니다.
점차 사회의 계층이 확대되고 계층간 또는 상하간 만남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이름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는데 성인(成人)의 본명(本名)은 부모와 스승 등 윗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부를 수 없게 되자 더욱 호(號)의 사용이 촉진되어 일반화되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 후세인들도 선인들의 본명(本名)이나 자(字)보다는 호(號)를 더 많이 부르고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여러 이름을 사용하는 데에는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명이 짧아진다는 속설에 따라 실명을 기피하는 실명기피풍속(實名忌避風俗)과 두 가지 이상의 이름을 선호하는 복명풍속(複名風俗)에 기인해 허물없이 부르는 이름을 짓고자 한 것이 호라고 이해하면 될 듯 합니다.
5. 우리시대에 호는 무엇인가?
일생 4-5개 이상의 이름을 갖는다는 것이 한 이름으로 평생을 사는 오늘에 비춰본다면 거추장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명분에 휩싸인 사치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여럿의 이름이 있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름도 불리고, 어떤 이는 이름보다 별명이 더 그 사람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주기도 합니다. 또 김부장, 이과장, 박선생님, 강변호사님 등의 호칭으로 불리기도 하고 시우아빠, 경윤이엄마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불리는 상대에 따라, 직함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어느 블로그를 뒤지다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IMF때 명퇴를 한 이였습니다. 퇴직을 하고 나니 김부장, 이과장 등의 직함을 그대로 부르기도 무엇해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호를 하나씩 지어 보기로 했다는.... 그래서 자기의 호가 00이되었는데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나중에 보니 촌스러운 느낌이 들어 새로운 호를 하나 새롭게 짓게 됐노라고.
1) 호는 누가 불러도 좋습니다.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 불러도 실례되는 일이 없습니다. 부르기가 적절찮아 ‘어이!’, ‘야!’, ‘너!’, ‘저-어-’ 등의 모호함이 없습니다.
2) 호는 바로 ‘나’입니다.
아랫사람, 윗사람, 아직 친밀한 밀착이 되지 않아 그 이의 이름 부르기에 적절하지 않을 때 우리는 00이 엄마, 00이 아빠, 00이 할아버지, 00이 처 등으로 부릅니다. 살아있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관계를 대리한 나일뿐입니다. 이렇듯 살아가면서 종종 나를(나의 이름을) 잃어 버리게 되지요. 호는 다른 이를 통하지 않고 나를 드러내는 내 이름입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나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개방형’ 이름입니다.
3) 호는 그 사람의 정체성을 더 명확히 해줍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의 본명이 나와는 상관없이 부모의 일방적인 욕심에 의해 지어집니다. 그 이름에 따라 내 성품이 닮아가기도 합니다만 보통은 나의 주체성과는 상관없는 것이 우리의 이름이기도 한 것입니다.
4) 호는 자신을 반영합니다.
별명이 그 사람을 어떠한 형태로든 반영하듯이 호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모양, 바램, 의지 등을 반영하는 그릇이 됩니다. 스스로 자호하든 남이 지어주든 주인의 동의를 전제로 사용되는 것이 호이기 때문입니다.
5) 호는 자신을 가꾸게 합니다.
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남에게 나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삶의 방향을, 삶의 의지를 드러내는 일이기에 자신의 삶을 되보고 가꾸게 됩니다.
6) 호는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게 해줍니다.
자신을 가꾸는 이름이기에 그 사람의 ‘격’이 됩니다.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일지라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이름이 됩니다.
7) 호는 사회적 활동을 왕성하게 해줍니다.
호는 부모를 떠나 한 인간으로 내가 서 있음을 공표하는 이름입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받치는 당당한 한 축임을 공표하는 이름입니다. 이름이란 열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싹을 가리키는 부름이라는 얘기를 어디서 본 듯 합니다. 어떤 것의 이룬 결과가 이름이 아니라, 이루고자하는 스스로의 과제가 스스로의 이름이란 얘기입니다.
6. 호를 어떻게 지을까?
호는 나를 가장 나답게 드러내는 주체적인 이름입니다. 따라서 가장 나답게 지으면 됩니다.
특별히 정해져 있는 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꼭 한자를 이용해야 할 이유도 없고 글자수의 제한이 있지도 않습니다. 지어 쓰다 맘이 변하거나 다른 생각이 일면 또 지어 써도 무방합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의 경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503개의 호를 지어 썼습니다. 70성상을 산 그 의 일생에 500여 개의 이름을 사용했다 함은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일입니다.
성년이 된 20세 전후부터 호를 지어 썼다 가정할 경우 70세까지 50년간 한 해에 10개 이상의 새 이름을 지어 썼다는 얘기가 됩니다. 워낙에 삶의 태도가 기고만장하고 지적 활동이 왕성한 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가히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김정희 입니다.
김정희의 호 짓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그의 관심 영역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이름이 생겨난 것이지요. 예를 들어 그에게 시서화와 경학, 금석학에 큰 영향을 준 중국의 거유 담계 옹방강과 교유할 땐 ‘담계 옹방강을 아주 보배롭게 생각하는 선비’라는 뜻으로 보담재(寶覃齋)라는 호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담계 옹방강의 또 다른 호인 보소재(寶蘇齋)를 재치 있게 차용한 것인데, 이는 옹방강이 적벽부로 유명한 북송 때의 시인 소식(蘇東坡)의 시에 흠뻑 빠져 보소재(寶蘇齋 : 소동파를 보배롭게 생각하는 선비라는 뜻)라는 호를 사용한 것을 같은 방식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또 보통은 호를 두 자로 짓는 경우가 많겠으나 외자, 석자, 넉자 그 이상의 글자수를 짓는 경우도 흔하긴 합니다. 하지만 추사 김정희의 경우 10자로 된 호(향각자다처로향각노인香閣煮茶處로香閣老人)도 사용했습니다.
워낙에 삶의 태도가 기고만장한 사람이라 각 시시기별 그의 사상편력과 관심의 편린들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자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해낸 증거들입니다. 또한 당대 최고의 신학문, 신예술의 수용자로서 고루한 겸손쯤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호기와 변덕, 자기에 대한 애착이 오히려 그의 힘의 원천이었음을 숨김없이, 부끄럼 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남송의 화가 鄭思肖는 송이 망한 후 스스로 호를 "所南", "木穴國人"("木"과 "穴"을 합쳐 쓰면 "宋"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호와 그 사람의 행실이 별개인 경우도 있습니다. 袁世凱는 파직을 당하여 고향에 머물고 있을 때 스스로 "洹上漁人"이라고 했으나 그의 뜻은 "東山再起"에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름과 字는 부모나 연장자가 지어 주지만, 호는 본인이 스스로 취하기 때문에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정서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6-1. 이번에는 호를 짓는 기준이나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지요.
고려시대 이규보는 그의 [백운거사록(白雲居士綠)]이란 책에서 "거처하는 바를 따라서 호로 한 사람도 있고, 그가 간직한 것을 근거로 하거나, 혹은 얻은 바의 실상을 기준으로 호를 지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여 신용호라는 사람은 호를 짓는데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소처이호(所處以號): 생활하고 있거나 인연이 있는 처소를 호로 삼은 것
(예컨대 도곡 김태정 선생은 도곡이란 지명을 호로 삼았지요)
2) 소지이호(所志以號): 이루어진 뜻이나 이루고자 하는 뜻을 호로 삼는 것
(예컨대 여초 김응현 선생은 항상 처음과 같은 자세로 공부에 임하겠노라고 여초(如初:처음과 같이)라고 하였지요)
3) 소우이호(所遇以號):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여건을 호로 삼은 것
(퇴계 이황 선생은 고향으로 물러나 시내를 벗하면서 공부에 전념하겠노라고 퇴계(退溪)라고 하였지요)
4) 소축이호(所蓄以號):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것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것으로 호를 삼은 것이지요.
이와 비슷하기는 하나 저는 조금 더 세분화 된 기준으로 나눠볼까 합니다.
서로 기준이 중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호 짓는 발상을 돕고자 편의상 분류해본 것입니다. 유래와 같이 적어 봅니다.
1) 인연 깊은 장소나 처소를 호로 삼은 것 - 소처이호(所處以號)
○ 퇴계(退溪) 이황
고향이 안동 하회이다. 河回를 순 우리말로 바꾸면 ‘물돌이 마을’이 된다. 낙동강이 이 마을을 에두르고 지나간다. 집 뒤로 시내가 흘러가는데 이 시내를 일러 퇴계라 했다. 집 앞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집 뒤로 흐른다하여 ‘물러나는 시내’라 해서 퇴계이다. 어렸을 적 노닐던 이 퇴계를 자신의 호로 삼은 경우이다.
자신의 어릴 적 자양분이 되어준 장소에 대한 그리움 등이 녹아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이 속에 비유도 있다.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 뒤로 물러나는 것의 겸손함. 남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렸던 이황의 겸손의 덕이 호에 반영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표를 쓴 사람이 이황이다. 무려 79번의 사표를 썼으니 겸손도 그만하면 허물이 될 듯도 하다. 평생 야인으로 살고 싶어 동시대의 학자 남명 조식을 한없이 부러워했다는 그다. 임금이 그를 놓아주지 않아 임명과 사퇴를 번복하며 살았다. 그런 만큼 퇴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으리란 짐작을 해본다.
○ 연암(燕巖) 박지원
만년을 제외하고는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글로 인하여 정조와 불화를 겪게 된다. 문체로 인한 필화를 겪게 되는 것인데 정조의 대리인 격인 홍국영에 몰려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에 살 것을 다짐하며 그 지명을 빌려 연암이라 자호했다.
○ 다산(茶山) 정약용
19년 유배지인 전라도 강진의 뒷산 이름을 호로 삼았다. 19년 유배생활을 통해 그의 학문과 500여권이 넘는 저술이 여유당전서란 이름으로 완성되었다. 여유당(與猶堂)응 그의 당호이다. 다산 외에 삼미, 사암, 태수, 자하도인 등의 호가 있다.
○덕암(德岩) 이선열
나의 고등학교 미술선생님. 학교에서 그의 본명을 아는 이는 동료 선생님들과 미술부 학생들 뿐. 나머지는 모두 덕암 선생님이라 불렀다. 지금은 대한미협 경기지부장이다. 그 분의 고향 뒷산 큰 바위 이름을 따서 자호한 경우다. 어렸을 적 동무들과 총싸움도 하고 헤집고 다니던 뒷산의 큰 바위. 그 위에 벌렁 누워 흘러가는 구름도 보았으리라.
한번은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문제로 ‘한국 근 현대 화가 5인을 아는 대로 쓰시오.’라는 주관식 문제를 출제했다. 학생들 아는 대로 김환기, 이중섭, 나헤석 정도를 써 내려가다가 더 이상 답이 나오지 않자 ‘에이! 누가 알쏘냐? 우기면 되지!’하며 자기 친구 이름, 아버지 이름, 마구 튀어나오는데 그 중 센스 있는 몇몇 학생 답하기를 ‘덕암’하고 버젓이 적어 놨겠다. 그런데 그 중 몇 놈은 보란 듯이 부르던 대로 ‘더감’이라 적어놨겠다! 덕암 선생님에게 불려나가 귀때기 적잖이 뜯겼구나. “어딜 더 가! 어디로 더 가라고!”
○ 토정(土亭) 이지함
마포 근처의 초라한 흙더미 집에서 헐벗은 자들을 구휼하며 지냈다하여 토정을 호로 삼았다.
○ 화담(華潭) 서경덕
화담은 개성의 교외에 있는 연못으로 경치가 아름다워 여기에 은둔하는 사람이 많았다. 유교지식인들이 호를 지을 때 보편적으로 사용한 방식은 자신의 향리나 승경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이다.
○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젊은 시절 학문을 닦았던 한양의 삼각산의 세 봉우리를 따서 지은 호. 이단의 학문을 배격하고 자신의 학문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봉(峰)으로 표현하고 있다.
2) 자신을 한껏 낮춰 비유한 호
○ 쇠귀 신영복
‘쇠귀에 경 읽기’에서 따온 한글 호다. 즉 ‘나는 미련하고 아둔한 자로소이다.’의 속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그 뿐일까? 이재와 이세, 처세에 밝지 못하지만 자신이 믿는 것 소처럼 우직하게 한 길을 갈 줄 아는 소의 숭고함이 진짜 속뜻이 아닐까? 한문으로는 牛耳를 쓴다. 또 간혹 그의 집이 있는 마을인 서울 목동(木洞)의 우리 말인 ‘나?골’을 쓰기도 한다.
○ 태골(怠骨) 도정일
도정일 교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냥 영문과 교수 또는 문화평론가, 인문학자 등으로 소개하기에는 너무 적절치 않다. 하여튼 그는 머리통이 무척 크다. 머리통이 커서 아는 것도, 든 것도 많다. 머리통이 무거워서인지 나는 그가 머리통을 꼿꼿이 세운 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늘 한쪽 팔에 책 뭉치 또는 서류뭉치를 들고 고개를 15도에서 45도 정도 옆으로 기울이고 걷는다.
거기에 죽죽 뻗쳐나간 곱슬 거리는 머리카락은 그의 머리통을 더 크게 보이게 만든다. 그러면 그의 호 태골은 머리통이 커서 생긴 것일까? 아니! 그는 호를 내놓고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책에서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다.
‘게으른 뼉다구’. 태골怠骨이다.
그의 집은 우이동이다. 북한산을 지척에 두고도 남들 일부러 오르내리는 길. 그는 가본 적이 없다. 에라! 이 게으른 뼉다구야! 怠骨!
엄청 분량의 저술 계획을 잡아놓고도 이런저런 잡문청탁에 휘둘려 그의 이름 석 자 들고 나온 책이 별로 없다. 에라! 이 게으른 뼉다구야! 怠骨!
간만에 잡문이라도 엮어 부추김에 냈다는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의 서문의 내용을 내 맘대로 옭아 썼다. 그에게 실례가 되질 않길 바란다. 나의 대학 때 교수다. 한번도 그의 강의를 들은 적은 없다.
○ 점필재(占畢齋) 김종직(金宗直)
영남사림의 거두로 사화에 휘말려 부관참시까지 당한 성리학의 달통문인.
점(占)은 본다는 뜻이며 필(畢)은 간략하다는 뜻이다. 본 것이 적어 견식이 얕은 까닭으로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자신의 학문을 겸손히 표현함.
○ ?翁(역옹) 李濟賢
자신은 나라의 큰일을 할 사람이 못되며 단지 오래나 살고 싶다는 겸손한 소망을 표현. ?(상수리나무 역)은 재목감이 못되는 하찮은 나무를 뜻함.
○ 눌재(訥齋) 박상(朴詳)
자신이 아주 못났음을 나타내는 뜻. 졸(못날 졸)이나 눌(어눌할 눌)자를 써서 자신의 재주를 감추고자 했다.
○ 수졸당(守拙堂) 유홍준, 이의잠
우리나라에 수졸당이라는 당호를 가진 건축물이 두 군데 있다. 경주의 양동 수졸당이 그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는 서울의 학동(논현동) 수졸당이다. 경주의 수졸당은 400년 전의 건축물이고 학동 수졸당은 이제 채 10년이 못된 건축물이다.
경주 양동의 수졸당은 회재 이언적의 4대손인 이의잠이 그의 호를 붙여 지은 집이고 서울 학동의 수졸당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이자 현 문화재청장인 유홍준 교수가 당대 최고의 건축가 이로재 승효상의 손을 빌려 지은 집이다. 수졸당이라는 이름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경구 ‘대교약졸-大巧若拙 : 큰 재주는 별 볼일 없다.’에서 따온 것이다. ‘별 볼일 없는 남루한 집’ 정도로 이해해도 될 듯. ‘욕심 없이 큰 재주를 부리지 않은’.
○ 백범(白凡) 김구
백범 선생의 처음 호는 연하(蓮下)였는데 1912년 37세 때 서대문 형무소에서 백범(白凡)으로 고쳤다.
백은 백정(白丁)에서 따온 말로 가장 천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범(凡)은 범부(凡夫). 즉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가 교육사업에 열중하던 중 한 번은 인근 아낙네들에게 이르기를 “아주머니들도 따지고 보면 모두 白丁이 아니겠오? 무, 배추를 짤라 먹으니 무백정이요, 닭을 잡아먹으니 닭백정이요, 소돼지를 잡아먹으니 역시 소백정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그런 신분계급을 따질 시대는 지났습니다. 누구나 다 하늘아래 똑같은 이 나라 백성으로 계급을 얘기할 것이 아니다”고 타일렀던 것이다.
3) 분기탱천형 호
○사암(俟庵) 정약용
정약용의 20세 전후로 사용한 호.
정약용을 얘기하는데 정조를 빼놓을 수 없다. 정약용의 최대 후원자는 바로 정조다. 뒤주에 갇혀 8일 동안 울부짖으며 죽어간 생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며 왕위에 등극한 정조. 왕위에 등극하는 과정도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이었다.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가 내정된 세손의 신분이었지만 18차례의 자객침입을 당했을 정도였다. 잠을 청할 수도, 잠을 이룰 수도 없는 것이 정조의 세손 시절이었던 것이다.
매일 잠자리 처소를 비밀리에 옮겨야 했던 정조는 밤 동안 무섭게 공부를 했다. 왕의 신분이었지만 정조는 그 시대 최고의 학자였다. 사후에 정조의 호인 홍재를 붙여 엮은 그의 저서집 [弘齋全書 184권 100책)을 포함해 그의 총 저서가 5천권에 이른다 하니 세계 어느 나라의 왕이 이만할까? 학자군주인 정조는 스스로 군사(君師)를 자처했다.
군주이자 신하와 만백성의 스승으로서의 君師. 규장각을 설치하고 젊은 인재들을 길렀다. 신하들과 무릎을 맞댄 자리에서 스스로 강학하고 시험을 치렀다. 이 강학과 시험에서 늘 우등을 차지한 이가 바로 약관의 정약용이다. 스무살 남짓한 나이에 임금의 머리쓰다듬음을 받는 다는 것은 그를 매우 의기양양하게 만들었다.
사암은 그가 23세때 정조의 중용강의 80여조의 질문에 답술하여 1등평정을 받은 뒤 젊은 혈기에 득의만면하여 지었다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 1표2서를 완성한 50대 이후에 지은 호라는 이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중요에 나오는 ‘百世以俟聖人而不惑’에서 따왔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즉 ‘훗날성인이 나오더라도 내 학설을 바꾸지 못하니 의심할 바 없다.’는 뜻이니 기고만장 분기탱천도 이만하면 국보 양주동, 우주보 김용옥에 비견할만하다.
○도올 김용옥
도올은 무슨 뜻일까? 도올은 맹자에 나오는 역사 책 이름이다. 노나라에는 춘추가 있듯이 초나라 역사책에는 도올이 있었다. 도올은 다듬어지지 않은, 가능성이 남아 있는 통나무를 뜻한다. 또 전설 속에서는 사나운 맹수 이름으로도 쓰이고 옛날 황제의 고집 불통 아들 이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김 용옥은 어려서부터 「돌대가리」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도올=돌」의 음을 취하여 호를 삼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엣날에 도올 김용옥의 책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출판사의 이름이 ‘통나무출판사’였다.
學人의 경계를 넘나드는 ‘노력하는 돌머리 天才’ 도올 김용옥. 서태지 못지않은 인기 구가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에듀테이너(Edutainer). 중고교 시절 술, 담배, 여자, 당구 등에 빠져 지낸 그가 마지막 빠진 곳은 바로 학문이었다는. 氣철학 원리 완성해 인류의 보편적 자산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인생의 설계를 가진 이이자 우리나라 최고의 학술분야 베스트셀러 작가. 그의 끊임없는 호기심은 어린애 같은 순수함이 아닐까? 도올!
*국보 양주동 VS 우주보 김용옥
한평생 자기가 "인간 국보 1호" "걸어다니는 국보" 라고 자칭하며 살았던 학자가 한 명 있다. 바로 국어학자 양주동(梁柱東)선생이다.
양주동 선생은 다 알다시피 향가연구에 가장 뛰어났던 권위자다. 중고등학교에 실려 있는 향가 <제망매가><찬기파랑가><안민가> 같은 작품들은 아마 양주동 선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배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양주동 선생 이전에는 향가를 표시하는 향찰과 이두의 뜻을 정확히 몰랐기 때문이다.
양주동 선생에 대한 몇 가지 일화.
재기와 천재성, 박람강기(博覽强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애 양주동(无涯 梁柱東·1903∼1977) 선생은 생시에 인간국보를 자처했다. 선생의 자화자찬에 대해서는 물론 찬반논란이 있지만 그가 남긴 ‘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와 ‘여요전주(麗謠箋注)'에 대해서는 누구나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한다.
양주동 선생은 택시운전사에게 “국보가 탑승했으니 각별히 운전을 조심하라”고 했고, 노상방뇨를 단속하는 경찰관에게는 “국보를 몰라보느냐”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국보가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신문도 무료구독을 고집할 정도였으니 참 재미난 사람임에 틀림없다.
선생이 자신을 처음으로 국보라고 말할 때는 한국전쟁 때다.
1.4후퇴 당시 서울의 한 신문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6.25 때 피난을 못한 바람에 수복 후 부역자(附逆者)딱지가 붙어 곤욕을 치렀던 양주동(梁柱東)선생은 피난을 서둘렀다. 열차 편을 알아보기 위해 신문사에 들렀다가 복도에서 서성대고 있던 같은 처지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孫基禎)과 동양화가 이용우 (李用雨) 를 만났다. 양주동은 "우리나라 국보들이 다 모였군. 국보를 이렇게 푸대접해서야 쓰나" 하면서 툴툴거렸다. 그 후 양주동은 자칭 '국보' 로 행세했다.
1903년 개성에서 태어난 양주동은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평양 숭실(崇實)전문학교 영문학교수로 부임했다. 이 때부터 양주동은 시인이자 문학이론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양주동은 돌연 국문학자로 변신했다.
1937년 학술지 '청구학총(靑丘學叢)' 에 논문 '향가(鄕歌)의 해독(解讀)'을 발표하면서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에 도전했다. 경성(京城)대학 교수 오구라는 29년 발표한 '향가 및 이두(吏讀)연구'를 통해 신라 향가를 최초로 해독한 조선어연구의 권위 있는 학자였다.
양주동이 향가연구에 뜻을 둔 것은 1935년 무렵이다. 평소 향가가 일본인에 의해 비로소 해독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다가 스스로 향가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주동의 향가연구는 정확성과 문학적 감성에서 오구라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었다. 1942년 단행본으로 발간된 '조선고가(古歌)연구' 는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으로부터 "1백년 뒤 남을 한권의 책" 이란 극찬을 받았으며, 오랫동안 향가연구의 정본(定本)으로서 위치를 유지해왔다.
게다가 양주동은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술과 재치가 철철 넘치는 입담으로 유명했다. "내 이름이 양주동이니 양주(洋酒)동이, 입이 걸쭉해서 양(兩)주둥이오"라며 희희낙락했다.
돈에 대해선 지독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주례를 부탁받으면 주례 값을 흥정하고, 원고청탁이나 방송국 출연요청이 오면 으레 선금을 요구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신문은 국보가 읽어주는 것만도 영광이라며 언제나 무료구독이었고, 집에 도둑맞을 물건이 없다는 이유로 방범비조차 내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 어느 날 양주동 선생이 도로를 무단 횡단하고 있었다. 달리던 택시가 급정지를 했다. "끼-익, 끼기끼기 끼-익"하는 소리와 동시에 택시 안에서 기사의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양주동선생이 "어허, 이 사람아, 큰일 날 뻔했잖은가! 조심하지 않고 국보 1호 다칠 뻔 했네, 다음부터 조심하게!" 라고 말하며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또 이런 얘기도 있다.
어느 날 선생이 술을 거나하게 걸치고 비틀비틀 거리를 걷다가 그만 시궁창에 빠졌다. 그러자 선생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시궁창에 국보가 빠졌다"라면서 소리치자 길 가던 행인들이 놀라 시궁창으로 모여 들었다. 하지만, 국보라는 물건이 있을 리가 없으니 행인들은 양주동 선생보고 국보가 어딨냐고 물었다. 이에 선생 왈 "내가 바로 국보일세, 걸어 다니는 국보, 양주동!!"
선생의 연애편지사건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시인으로서의 문재도 뛰어났던 선생은 일본 와세다 대학 유학시절, 서울에서 짝사랑했던 여대생을 잊지 못해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구구절절한 미문의 연애편지는 흠모하는 여대생의 손에 닿기도 전 사감의 검열로 번번이 차단되곤 했다. 미션 스쿨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사정을 알게 된 선생은 성경 가운데서 "사랑"과 관련된 대목들을 뽑아 연서를 보냈고, 정성에 감복한 여학생으로부터 마침내 승낙을 얻어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희대(稀代)의 천재이자 기인(奇人), 그리고 괴짜 양주동 선생, 그의 호가 국보는 아니다. ‘무애’다. 역시 우주보를 자처한 김용옥 또한 그의 호가 우주보는 아니다. ‘도올’이다. 스스로 최고라는 자부심이 그들을 키웠고 호언에 마땅한 능력을 스스로 갖췄다. 그것만으로도 국보이며 우주보이다.
여기에 내가 아는 이 한명을 덧붙이자면 젊은 민속학자 주강현을 꼽을 수 있다. 이 셋을 삼보(三寶)로 삼으면 되겠다.
4) 은자, 빈자의 호
화쟁에 자의, 타의 몸담았다가 환멸을 느끼고 몸과 마음을 숨긴 이들이 선택한 호다.
○ 조은(釣隱) 최치운 :
태조, 세종 때의 청백리로 어려운 정치현실에서 몸을 숨기고자하는 뜻과 함께 신유학(주자학) 추종자들의 학문적 지향점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낚시(釣)는 은자의 최대 소일거리였다.
○ 망천(忘川) 이고(李皐)
여말 이성계의 창국에 반대하여 수원의 팔달산으로 은둔한 학자로 忘川은 수원천에서 낚시를 하며 망국의 시름을 잊겠다는 뜻으로 쓰임. 수원천의 옛 이름이 망천으로 불렸음. 한편 팔달산의 팔달도, 권선동의 권선도, 인계동의 인계도 이고 선생과 관련한 지명이다.
○ 무위자(無爲子) 강희맹(姜希孟)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자연’ 즉 자연의 상태대로 맡겨놓고 아무런 인공적인 작위를 가하지 않는다는 뜻.
○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매화와 달을 벗 삼아 현실에서 초연하여 은둔하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자신이 거처하는 서재의 이름으로 지은 당호. 어려서부터 시문에 재주가 뛰어나 五歲神童으로 불려 金五歲가 별명이 되었으나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분개하여 오세의 음을 빌려 汚世(더러운 세상!)로 호를 짓고 승려가 되어 산수를 방황하며 일생을 마침. 설악산에 그가 거쳐하던 오세암(五洗菴)이 있다.
한편 김시습의 시습은 논어의 학이편 첫 구절에서 따온 것임을 알 수 있다.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라! 그 이름 참 명쾌하다!
○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
세속의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걱정 없이 한가로이 지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호. 세조의 왕위 찬탈 후 벼슬을 물러나 고향 태인에서 은거하며 후진을 양성. 賞春曲 불우헌곡, 불우헌가 등 시가문학사상 중요 자료가 그의 작품들이다.
○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정치현실에 환멸을 느낀 시인이 강가에 살며 낚시와 술과 시작으로 소일하며 지내겠다는 뜻의 호. 가을 강은 고독과 은둔의 이미지를 표현할 때 많이 쓰였다. 생육신의 한 사람.
5) 존경하는 인물을 기려 짓는 호
○ 청련거사 이후백
명종대의 이조판서. 이백(이태백)의 뒤를 잇는다하여 이름도 이후백. 호도 이백의 호인 청련거사의 ‘청련’을 그대로 썼다
○ 보담재(寶覃齋) 김정희, 보소재(寶蘇齋) 옹방강
위에서 언급
○ 사임당(사임당) 신씨-신인선
흔히 신사임당이라 불리는 이 율곡의 어머니 신씨. 본명은 인선이다. 신사임당이 스스로 자신이 거처하는 곳의 이름(당호)을 지은 것이다.
師任에서 師는 스승 '사'자로 ‘흠모하여 존경하다’란 뜻을 갖는다. 사임의任은 옛날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뜻한다.
신사임당이 태임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태임을 스승으로 본받고 싶다는 의미에서 師任이라고 지은 것이다. 특히 태임의 태교를 본받고 싶었다고 전해진다.
태임의 성품은 단정하고 성실하며 오직 덕(德)을 실행하였다고 한다. 그가 문왕을 임신해서는 눈으로 사악(邪惡)한 빛을 보지 않고, 귀로는 음란(淫亂)한 소리를 듣지 않으며, 입으로는 오만(傲慢) 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문왕을 낳으니 총명하고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여 하나를 가르치면 백을 알더니, 마침내 주(周)나라의 으뜸 임금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태임의 태교와 교육을 본받고 싶어서 당호를 사임이라 지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堂은 본채나 별채 등 안주인이 기거하는 집안의 한 건물을 말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사임당은 사람의 호가 아니라 집안 건물의 이름이다.
6) 즐겨하는 취미와 일, 그리고 완물을 이용한 호
○ 노가재(老歌齋) 김수장(金壽長)
늙은 시조가인들이 모여 시와 시조를 읊는 서재라는 뜻. 자신의 화개동(삼청동) 집에서 가객들과 교류하며 제자를 가르치고 시를 지으며 살았다. 아전 출신으로 조선후기의 대표적 시조작가.
○ 삼혹호(三酷好) 이규보(李奎報)
세 가지를 지독히 좋아한다는 뜻. 시와 술과 거문고를 지독히 좋아하여 스스로 지은 호.
○육일거사(六一居士) 구양수(區陽修)
장서 일만 권, 금석문 일천 권, 거문고 한 개, 바둑판 한 개, 술 한 병,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늙은 자신을 가리켜 육일이라 했다.
○ 주선옹(酒仙邕) 이백(李白)
이태백이다. 태백은 그의 字다. 술을 즐겨 주선옹이라 자호했다. 詩仙이자 酒仙을 자처한 셈. 행동거지가 초연하여 이 세상으로 귀양 온 신선이라 불렸다. 靑蓮居士는 그의 또 다른 호다. 맑은 물에 씻기운 연꽃이란 뜻으로 군자가 좋아하는 꽃의 상징이다.
○ 취묵헌(醉墨軒) 인영선
먹 향기에 취하는 방. 서예가 인영선의 호다.
○ 석치(石痴) 정철조
조선후기의 벼슬아치다. 벼루에 미친 사람이다. 돌만 보면 벼루를 깎아 나눠줬다. 무엇엔가 미친 사람을 일러 벽(癖) 또는 치(癡)라고 한다. 돌에 미친 사람 석치!
○ 석당(石堂) 이유신(李維新)
신위(申緯)라는 이가 있다. 괴석에 미쳐 괴석 모으길 좋아하는데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며 수레에 괴석만 잔뜩 실어왔다고 한다. 동행한 화가를 시켜 그 그림을 그리게 하며.
이유신이란 화가가 있다. 그 또한 돌에 미친 사람이다. 어느 해 정초에 돌을 좋아하는 신위에게 세배하러 갔다가 그만 돌에 마음을 빼앗겨 세배하는 것도 잊고 돌만 어루만지고 있더란다. 신위가 그 돌을 선물로 내주자 역시 세배하는 일도 잊고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횡하니 내빼더란다. 그의 호가 석당(石堂)이다.
○ 억만재(億萬齋) 김득신(金得臣)
자못 엽기적인 노력가다. 절대로 IQ가 두 자릿수를 넘지 않았을 것 같은 위인이다. 그의 아버지가 태몽으로 노자를 보았다하여 노자의 이름인 담(?)을 따서 ‘몽담(夢?)’이란 아명을 주었다. 신통한 꿈을 꾸고 낳은 아이라 한 문장 하겠구나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머리가 지독히 나빴다. 10살에 이르러 글공부를 겨우 시작했는데 스무 살이 되어서야 겨우 글 한편을 지어 아버지께 올렸다고 한다.
머리가 나쁜 대신 지독한 노력을 하였는데 그 아버지는 “저 아이가 저리도 미욱하나 포기하지 않으니 대기만성 할 걸세”하며 그의 아들을 두둔했다고 한다.
그의 독수기(讀數記)가 전해지고 있다. 독수기란 책을 읽은 수를 기록한 문서다. 백이전이란 책은 1억1만3천 번. 모두 36종의 책을 1만 번 이상 읽었다. 1만 번 이하로 읽은 책은 아예 여기에 적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횟수를 빠짐없이 기록해 두었다. 김득신의 미련이 아니고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의 엽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 1억 번 이상 읽었다는 책. 때는 단옷날이라 그와 관련한 좋은 시제를 하나 얻었는데 그 댓구가 영 떠올려지지 않아 끙끙거리자 그의 말고삐 시종이 왜 그런지를 물었다. 이유를 말하자 그의 말 시종이 대뜸 그 다음 시제를 읊더란다. 그러면서 말하길 “마님이 노상 읽은 아닙니까?”라고 한다. 하도 읽어 주어들은 종도 다 외울 지경인 글을 그는 또 잊고 만 것이다. 이에 김득신은 말에서 내려 “네가 내 재주보다 나으니 내가 네 말구종을 들겠다”며 하인을 말안장에 앉혔다고 한다. 이런 그가 자신의 호를 억만재(億萬齋)로 삼았다. 억 만 번을 읽고, 읽고 또 읽고.
6) 이름으로 세상을 조롱하다.
○ 필재(疋齋) 이단전(李亶佃)
천한 신분의 조선 후기 시인이다. 그의 이름 亶佃은 ‘진실로 단’에 ‘밭갈 전’자로 소작인 또는 종놈을 뜻한다. 이를테면 ‘진실로 종놈’인 셈이다. 여기에 스스로 붙인 그의 호가 또 걸작이다. 필재(疋齋)! ‘필(疋)’자를 파자하면 하인(下人)이 되는 것이다. 나는 진짜 종놈에 불과하다며 신분사회에 대한 조롱을 퍼 부운 것이다. 천한 신분에 시인이라면 필시 筆才임에 틀림없겠으나 疋齋라!
○ 송산(松山) 조견(趙?)
여말선초.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도와 일등공신이 된 조준(趙浚)이 있다. 그러나 그의 아우 조견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불사이군(不事二君). 어찌 두 왕조 두 임금을 섬기겠는가? 해서 개성을 버리고 수원의 인근 청계산에 은둔했다. 원래 이름이 윤(胤)을 버리고 아예 견(?)으로 고쳤다. 견(?)은 지조와 절의를 지킨다는 뜻이다. 그리그 그의 자(字) 또한 종견(從犬)으로 고쳤다. ‘옛 주인을 잊지 못하는 것이 개와 같고, 나라를 잃고도 죽지 못하는 것이 개와 같다’는 얘기다.
○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영화 [취화선]의 주인공이기도 한 오원 장승업. 세속의 일은 안전에도 없이 예술 혼을 불사른 조선의 3대가 또는 4대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19세기의 화가. 금전도, 권력도, 가정도 심지어 임금의 명도 거부한 채 살아가는 호기방탕한 사나이. 단원(檀園) 김홍도, 혜원(蕙園) 신윤복 등 가장 뛰어난 화가에게 붙여 준 원(園)에 빗대어 “나도(吾) 원(園)이다!”라고 자호 했다.
○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나와 시詩와 담배는 이음異音 동곡同曲의 삼위일체三位一體. 나와 내 시혼詩魂은 곤곤滾滾히 샘솟는 연기. 끝없는 곡선曲線의 선율旋律을 타고 영원永遠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刻刻 물들어 스며든다....
담배와 함께 평생을 살다간 6.25를 전후한 시인 공초 오상순. 잠에서 깨어 담배를 피워 물면 다시 잠 잘 때까지 담뱃불을 꺼뜨리지 않았다던 그다. 세수할 때도, 밥 먹을 때도. 그래서 그의 별명은 ‘꼴초’다. 허나 어쩌랴! 그 전쟁 통에 시가 밥이 되었으랴! 담배 한 갑이 되었으랴! 꼴초인 그는 늘 남이 피우다 버린 꽁초나 탐내는 위인이었던 것을!
그의 별명을 빌려 공초(空超)라는 호가 만들어졌다. 시가 밥 한 줄이 되지 못하거늘! 늘 남의 꽁초에나 눈독 들이는 처지인들 가진 것을 탐할 소냐? 집 한 채! 시집 한 권! 소유하지 않은 무소유의 자유인 空超! 다.
북한산자락 그의 무덤 앞에 재떨이가 있다. 자연석 재떨이. 죽어서도 담배 공양을 받는다. 담배 굴뚝인지 구멍 뚫린 석비도 하나 서 있다.
○ 봉이 김선달
조선 후기의 풍자적인 인물 봉이 김선달 (본명 김인홍. 자호로는 낭사. 평양출신의 재사 김선달이 자신의 경륜을 펼치기 위하여 서울에 왔다가 서북인 차별정책과 낮은 문벌 때문에 뜻을 얻지 못하여 울분하던 중 세상을 휘젓고 다니며 권세 있는 양반, 부유한 상인, 위선적인 종교인들을 기지로 골탕 먹이는 여러 일화들이 있다.
김선달이 봉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내력이 있다. 김선달이 하루는 장 구경을 하러 갔다가 닭전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닭장 안에는 유달리 크고 모양이 좋은 닭 한마리가 있어서 주인을 불러 그 닭이 '봉'이 아니냐고 물었다. 김선달이 짐짓 모자라는 체하고 계속 묻자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정하던 닭장수가 봉이라고 대답하였다.
비싼 값을 주고 그 닭을 산 김선달은 원님에게로 달려가 그것을 봉이라고 바치자, 화가 난 원님이 김선달의 볼기를 쳤다. 김선달이 원님에게 자기는 닭 장수에게 속았을 뿐이라고 하자, 닭장수를 대령시키라는 호령이 떨어졌다. 그 결과 김선달은 닭 장수에게 닭 값과 볼기맞은 값으로 많은 배상을 받았다. 닭 장수에게 닭을 '봉'이라 속여 이득을 보았다 하여 그 뒤 봉이 김선달이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유명한 일화로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재밌는 얘기가 있다.
김선달이 대동강가 나루터에서 사대부집에 물을 길어다 주는 물장수를 만났을 때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물장수를 데리고 주막에 가서 얼큰하게 한잔을 사면서 내일부터 물을 지고 갈 때마다 내게 한 닢씩 던져주게나 하면서 동전 몇 닢씩을 물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이튿날 의관을 정제하고 평양성 동문을 지나는 길목에서 의젓하게 앉아서 물장수들이 던져주는 엽전을 헛기침을 하면서 점잖게 받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모든 사람들이 수군대며 살피고 있었다. 이때 엽전을 내지 못한 물장수가 선달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었다. 이를 본 한양인들은 대동강물이 선달 것인데 물장수들이 물 값을 내지 못하게 되자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여 내일부터는 밀린 물 값까지 다 지불하여야 한다고 엽전준비에 야단이 났다.
이를 참다 못한 한양상인들은 어수룩한 노인네 하나 다루지 못할 것인가 하면서 장수꾼들이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꼬득여 주막으로 모시게 된다. 술잔이 오가고 물의 흥정이 시작되었다. 선달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것이므로 조상님께 면목이 없어 못 팔겠다고 버티면서 이를 물려줄 자식이 없음을 한탄까지 하였다.
한양상인들은 집요하게 흥정을 했다. 거래금액은 처음에는 1천 냥이었다. 2천 냥, 4천 냥으로 올라가 결국 4천 냥에 낙찰되었다. 당시 황소 60마리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당시의 매매계약서는 다음과 같다.
품 명: 대동강(대동강)
소유자 봉이 김선달
상기한 대동강을 소유자와의 정식 합의하에 금년 5월 16일자를 기해 인수함을 증명함과 동시에 천하에게 밝히는 바이다.
인수자- 한양 허풍선
인수금액-일금 4천 냥
인도자 김선달
선달은 못내 도장 찍기를 서운한 듯 도장 찍기를 주저한다. 그러자 상인들은 졸라대기 시작하여 결국 계약이 체결된다.
재산은 모으지 못했다고 한다. 워낙 풍류와 시를 좋아하고 어려운 서민을 보면 양반들을 골탕 먹이고 뺏은 돈을 서민에게 다고 한다.
7) 한글로 지어진 호
한글학자인 주시경 선생의 '한흰샘', 이병기 선생의 '가람', 최현배 선생의 '외솔' 등은 널리 알려진 한글 호다. 서예가 가운데도 '꽃뜰 이미경 선생, 갈물 이철경 선생께서 한글호를 사용한다.
앞서 설명한 쇠귀 신영복 선생도 마찬가지.
가람 이병기 선생은 자신의 호를 짓게 된 경위를 그의 일기장에서 술회한 바가 있다. 그의 일기장에는 "가람은 강이란 우리말이니 온갖 샘물이 모여 가람이 되고 가람물이 나아가 바다물이 된다. 샘과 바다 사이에 있는 것이니 근원도 무궁하고 끝도 무궁하다. ...중략...우리말로는 가람이라하고 한자로는 임당(任堂)이라 하겠다"라고 호를 지은 연유를 밝히고 있다.
또 문익환 선생님은 ‘늦봄’을 사용한다. 고희에도 만년 청춘이었던 그다.
이외에도 오리 전택부(전 YMCA 명예회장), 한솔 이효상(전 국회의장), 눈뫼 허웅(한글학회 이사장), 한결 김윤경, 한벗 김계곤, 구름재 박병순, 높세율 남영신 (이상 한글학자), 얄라 이봉원(영화감독), 늘봄 전영택(소설가) 등이 있다.
한글호를 짓는 또 하나의 경향이 있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고한어(古韓語)를 살려 호로 사용하는 예가 그렇습니다. 주로 한배달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분들인데 봄수레 노재춘, 사라아리 권희영, 해머슴, 아라가비, 수바마니, 나난도리, 다라사니, 마루달, 나랑아루, 무파랑 등이 그 예다.
호를 지으매 같은 자수로 한글도 되고 한자도 되면 더욱 좋겠다. 쇠집 鐵齋, 쇠귀 耳牛, 늦봄 晩春, 눈뫼 雪山 등.
8) 그룹 짓기 호
흔히 스님들의 법명을 지을 때 사승관계에 따라 돌림자를 넣거나 한 동아리에서 인연이 있는 한 글자와 각자의 특징에서 찾은 한 글자를 따서 짓는 경우다.
정조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미스테리를 엮은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에 보면 죽란사(竹欄舍)란 비밀조직의 동아리들이 주자를 붙여 호 하나씩을 지어갖는 장면이 나온다. ‘얼굴이 검은 이유수는 오죽(烏竹), 담배를 많이 피워 공방대 장죽을 물고 사는 윤지눌은 장죽(長竹), 홍시제는 청승맞게 생겼다고 상제 지팡이를 뜻하는 상장죽(喪杖竹), 깡마르고 키가 큰 유치명은 수죽(脩竹)....’하는 식이다.
9) 선조의 대를 이은 호
호의 대종을 이루는 것 중 자신이 사는 곳이나 마을 · 산이름 · 강이름 등에서 한 글자를 따서 거기에 동 · 서 · 남 · 북 방향을 가리키는 글자를 넣거나 은거한다는 뜻으로 '은○' 자를 붙인 것이 많다. 자기를 겸손하게 표시하여 한낱 나무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초○' 자를 넣어 자호하기도 하였고, 선향의 땅이름을 담은 글자에 ○암 · ○당 · ○재 · ○헌· ○와 등의 글자를 붙여 짓기도 하였다. 그리고 선조의 호에서 한 글자를 따고 그 후손이라는 뜻으로 '후○' 자를 앞에 붙이든가, '운○' 자를 뒤에 붙여 짓기도 하였습니다. 또는 어느 부분에서 일가를 이룬 집안의 경우 그 후손이 선조의 호를 그대로 쓰고 ‘○○二代’ 식으로 대를 잇는다는 뜻을 표하기도 한다.
○ 철재(鐵齋) 오옥진 그리고 철재이대(鐵齋二代) 오윤영.
서각의 원류인 각자(刻字)에서 독보적 위치를 갖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기능보유자 오옥진의 호는 쇠집 철재(鐵齋)다. 4대를 이어온 목수집안의 손이다. 각자에서 일가를 이룬 그를 이어 장남 윤영의 호는 鐵齋二代다. 철재를 통해 사사받은 이들을 鐵齋刻緣이라 한다.
○ 이향(里香), 호호득(呼好得) 민학기
명성왕후 민비의 조카로 19세에 조선조 최연소 이조정랑이 된 민영익(閔泳翊. 1860-1914). 이향 민학기에게는 증조부 뻘이 된다.
선비화가로 자는 자상(子湘), 호는 운미(芸楣), 원정(園丁) 또는 천심죽재주인(千尋竹齋主人)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정치적 혼란기에 미국전권대신,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등의 요직을 지냈다. 개화기 외교업무를 통괄하는 자리에 있은 이유로 한국인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일물로 기록되고 있다.
1905년 러일 전쟁 후 명성황후의 시해와 친일 정권이 수립되자 홍콩, 상해로 망명하여 오창석(吳昌碩) 등과 교유하였으며, 그곳에서 죽었다. 묵란(墨蘭), 묵죽(墨竹)을 특히 잘 그려 흥선대원군인 석파 이하응과 쌍벽을 이뤘다. 상해 망명 시 칠리향장(七里香蔣)이란 당호를 사용했다.
칠리향이란 ‘한눈에도 다 뵈는 아주 작은 마을에 맑은 향기를 전하는 집’이란 뜻이다. 이향은 선대의 당호에 장난기를 더해 지은 호다. ‘우리 할아버지가 7리를 풍기니 난 그 두 배 쯤 풍겨보지. 뭐! 십사리(十四里)는 그렇고 시오리향(十五里香) 정도!’ 그래서 사용한 것이 ‘시오리향’이고 그 중 두 자를 취해 ‘里香’이란 호를 사용하고 있다.
내 머무는 자리에서 한 시오리쯤 풍기는 맑은 향이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지었습니다. 주변에서 향기는 무슨? 발구린 내에 입구린내만 풍기고 다닌다는 조롱도 참아내며 사용하고 있지요. 담배도 하루 두 갑 정도 피워대는 왕골초니 그런갑다 이해하기를 빌며.
또 다른 호로는 호호득(呼好得)을 사용하고 있다. 전각을 새길 때 칼로 새겨낸 돌가루를 입으로 호호 불며 새기는데 이때 입부는 소리인 호호(呼呼)와 칼로 돌 새기는 소리인 득득 소리를 합치면 ‘호호득득’이 되는데 이 소릿말을 약간 바꿔 ‘득득[得] 새겨 호호 불면[呼] 좋은 한 세상을[好得 : 篆刻 一顆] 얻는다[득]’란 뜻으로 전각의 일과를 얻는 과정을 호로 표현 했다.
10) 특이한 호
○ 상백(想白) 이상백(李相佰)
국호도 없었던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를 가능케 만든 체육인 이상백(李相佰). 그의 호는 상백(想白)이다. 그의 4형제 모두가 독출한 지사들인데 그의 맏형은 이상정 장군이며 둘째형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항일 시인 이상화다. 농구를 올림픽 종목에 올려놓았으며 국제심판 1호도 그의 몫이다.
체육인 뿐 아니라 그는 사학자이기도 하다. 진단학회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서울대사회학과를 만든 장본인이기 하고 몽양 여운형과 건준과 근로인민당 등의 활동을 했다. 체육을 통한 민족운동을 한 선각자다.
그의 형 이상화(李相和)의 호도 음이 같은 상화(尙火)다.
○ 이호우(爾豪愚) 이호우(李鎬雨)
시조시인 이호우(李鎬雨)의 호 이호우(爾豪愚)도 이름과 호의 음을 같게 한 경우이다. 이호우의 당호는 청우헌(聽雨軒)이다. 빗소리 들리는 집. 가람 이병기의 [청우헌에서 빗소리 듣다]라는 시조가 있다.
10) 호기(號記)를 적는다.
옛사람들은 자신이 호를 지으면 호를 짓게 된 변(辨)이나 기(記)를 짓기도 하고, 남에게 호를 지어 줄때도 그 글자의 출전이나 뜻을 밝힌 글을 주기도 하였지요. 이런 종류의 글을 호변(號辨) 혹은 호기(號記)라고 합니다. 다음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 김지하의 호기다. 그의 홈페이지에서 참고로 옮겨본다.
○ 노겸(勞謙) 김영일( 일명 김지하)-그의 홈페이지에서 옮겨온 글이다.
5. 16 군사 쿠데타 뒤니까, 아마도 스물두 살 때였나 보다. 그때 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학교 앞에 ‘학림’이라는 음악다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다방에서 곧 나의 시화전(詩畵展)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가 여름이었다. 그때 내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인데 문단에 이미 같은 이름의 문사들이 여럿 있었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 개인 시화전을 여는 것은 마치 시집을 한 권 내는 것만큼 ‘준문단적’, 혹은 ‘준준문단적’ 사건이었는지라 아무래도 필명(筆名)이 하나 필요했던 것이다. 그랬다.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동아일보사에서 일하던 한 선배가 점심때 소주를 사줘서 실컷 먹고 잔뜩 취해가지고 거기서 나와 동숭동 대학가의 아지트였던 바로 그 음악다방으로 가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니 돈도 버스표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여름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술은 오를 대로 올라 비틀거리며 종로길을 갈지 자로 걸어오던 때다. 그 무렵 막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있었는데, 요즘에도 흔한 것이지만 길가에 자그마한 입간판이 주욱 늘어선 것이다. 다방, 이발소, 이용실, 뭐 그런 것들의 입간판인데 술김에도 괴상하게 여긴 것은 그 간판 위쪽에 다 똑같은 자그마한 검은 가로 글씨로 모두 한글로 ‘지하’라고 하나같이 써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하실에 다방, 이발소, 이용실이 있다는 얘긴데 왜 하필 그 글자만은 유독 똑같은 한글, 똑같은 검은 글씨로 맨 위쪽에 가로로 조그맣게 써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똑같은 것들이 여기도 ‘지하’ 저기도 ‘지하’ 저기만큼 가서도 또 ‘지하’, ‘지하’, ‘지하’! 그야말로 도처에 유(有) ‘지하’였다.
‘옳다! 저것이다! 저것이 내 필명이다!’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러해서 김지하의 지하 시대(地下時代)가 열리기 시작한다. 그 뒤로 내내 정보부 지하실과 경찰서, 유치장, 감옥, 지하 술집, 뒷골목과 허름한 싸구려 여관, 남의 집 문간방을 전전하거나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일쑤인 스산하고 을씨년스런 지하시대 삼십여 년이 펼쳐진다.
작명가(作名家) 김봉수 왈, “이것도 이름이야? 감옥에 서너 번은 족히 가겠구먼!” 그랬다.
심지어 한창 지하시대에는 ≪워싱턴 포스트≫의 한 특파원이 내게 처음 악수하며 던진 말이,
“헬로! 미스터 언더그라운드 킴!” 이었으니까 뒷말은 할 필요가 없다.
‘언더그라운드’라면 혁명가를 뜻하는데, 모자라게도 그걸 은근히 즐길 때까지 있었으니 고생해도 싸다고 하겠다. 이름을 고치라고 충고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고집도 부렸지만 또 고쳐서 신문에 발표까지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결국엔 그것이 그것, 마찬가지로 나는 언제나 그대로 ‘지하’였다. 왜일까? 때가 차지 않아서였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과시 나의 필명 지하의 유행과 삶에서의 지하시대는 필연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름은 ‘위(位)’요 ‘궁(宮)’이라 ‘중(中)’ 즉 ‘마음’이 놓이는 ‘자리’를 말함이다. 일종의 ‘닻’의 뜻이다. 큰 바람이 불기 전에 벌레들이 자리를 옮기는 것은 그 때문이니 내게 큰 변화가 올 것이 틀림없다.
연초에 역(易)에 물으니 왈,
‘견군용(見群龍)’이라 했다.
천지가 요동하는 대개벽이다. 짐작대로다.
처신을 물으니 왈,
‘무수길(無首吉)’이라 했다.
‘목이 없으면 길하다’는 뜻이다.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목을 숙이지 않으면 가차없이 잘려나간다는 뜻이니 그러매 크게 깊이 겸손해야 겨우겨우 길하다는 말로도 된다. 그만큼 내게 다가올 변화는 심각하고 그에 대한 대응은 어렵다는 것이리라.
또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연초 한낮 내 방에 그냥 홀로 무료하게 앉아 있을 때다. 문득 ‘노겸(勞謙)’이란 두 글자가 뇌리에 떠올라와 그 의미가 깊이 각인된다. ‘근로’와 ‘겸손’이니 언뜻 알아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앞으로 내 호(號)로 삼기로 작정하였다.
‘열심히 일하는 겸손’이요 ‘활동하는 무(無)’요 ‘아상(我相) 없는 노동자’, ‘노예 노동자’의 옛 뜻이기도 하다. 도대체 내가 그 동안 얼마나 게을렀으면 ‘근로’가 나오고 또 얼마나 오만방자했으면 ‘겸손’이 나오랴 싶었으니 앞날이 더욱 걱정되었다. ‘근로’와 ‘겸손’ 아니면 갈가리 찢겨나가 살 수조차 없는 운명이라는 내 맏아들 놈의 연초 카드점괘가 이미 나와 있었으니까.
물론 나도 안다. 『주역(周易)』의 겸괘(謙卦)는 노겸군자(勞謙君子)가 곧 타고난 천자(天子)이면서도 남의 밑에서 고개 숙여 근신하며 온갖 선행을 다 베푸는 그 아름다운 법(法)으로 결국 하늘을 차지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뜻에는 일말의 흥미도 없다. 나 같은 뼛속까지의 쌍놈, 민중에게는 도무지 안 맞는 뜻풀이기 때문이다. 그저 윤리적 패러다임으로서는 ‘근로’와 ‘겸손’일 뿐이니 내게 지금 결핍되어 있고 앞으로 그렇게 일관하여 고개 숙이고 살다 가지 않으면 큰 실수를 범할 것이 빈번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굳세게 견지할 따름이고, 미적 패러다임으로서는 곧 ‘활동하는 무(無)’의 뜻이리라!
언어작업에서 훨씬 더 여백(餘白)과 틈과 침묵을 살리고 설명을 없애며 말을 줄이는 대담한 소통성(疏通性)으로 ‘흰 그늘’과 ‘한’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고 삶의 내면에서 무궁무궁 저절로 살아 생성하게 하는 그런 텅 빈 창조력의 언어구조를 갖추고 닦으라는 가르침으로 일단 받아들일 따름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이제 작년 개천절에 공언(公言)한 대로, 아버님이 지어주신 이름, 꽃 한 송이 ‘영일(英一)’로 돌아가고자 한다. 내 인생과 민족 역사에 작고 소담하고 예쁜 삶의 꽃 한 송이만 피우고 가겠다는 조촐한 서원과 함께…….
그렇게 하여 결정된 것이 바로, 노겸(勞謙) 김영일(金英一)이다.
그런데 여러 친구들이 말한다. 영일은 너무 애 이름 같으니, 그냥 한글로 ‘김노겸’이라 부르면 어떠냐는 것이다. 그 편이 무던하고 친밀감이 있어 좋다는 것이니 원컨대 부디 앞으로는 이 이름을 즐겨 불러주길 바란다.
○ 공재(空齋) 진영근의 호기(號記)
다음은 전각가 ‘아주 특별한 선물 심인당 도장가게’의 주인 진영근이 ‘내 별명에 대한 사족’이란 이름으로 간략히 적은 호기다.
아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도 없이 텅 빈 놈이라는 뜻으로‘空齋’라 ‘빈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木口’, 부평초 같이 살아온 지난날들을 되돌아 본다는‘顧萍軒’,
향기롭고 거창스런 理想은 엄두도 못낸다고 ‘察地人’, 허허로이 길을 걸어 간다는 ‘空步’,
수리산을 소요하면서 ‘수리산지기’, 마음을 새기고 마음에 새긴다는 ‘心印房’,
月·木房을 주재하면서 ‘月木舍主’, 분분한 세상사 능히 볼 수 있으나 굳이 말하지 않으리라
‘수리산 벙어리’, 虛名을 쫓다가 문득 깨달은 빛 좋은 ‘개살구’, 천둥에 개 뛰듯 살아온 부질없는 人生流轉을 되돌릴 수 없음을 지각하였는 바 이제부터는 ‘달팽이 걸음’, 사과나무도 시궁창도 다 보고 여기까지 왔다.
아호는 흔히 스승이나, 어른이 지어주는 경우와 스스로 자작 (自作)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대에는 주로 자작의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아호는 겸손을 미덕으로 하여 높고 고귀한 문자보다 소박하고 정감있는 문자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겸손에 있는 것이다. 간단히 아호의 작법(作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 뜻이 있는 문자를 사용하여야 한다. (인생관이나 좌우명을 알수 있다.) 둘째 : 직업이나 성격에 알맞은 문자를 선택하여야 한다. 셋째 : 이름과 마찬가지로 부르기 쉽고 듣기 좋아야 한다. 넷째 : 음양오행이나 수리오행에 서로 상극되는 경우를 피하는 것이 좋다. 다섯째 : 아호 두 글자의 획수를 합하여 길한 수리(數理)로 사용해야 한다. 여섯째 : 겸손한 문자를 사용해야 한다.
아호 (雅號)의 소재 (素材)
아호를 지을 때 가장 기초가 소재의 선택이다. 비(雨)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도 봄비가 내리는 날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춘우(春雨) 라는 아호를 가지고 싶지 않을까? 즉, 개인의 성격과 직업에 따라 소재를 변화 시킬수 있는 것이다. 소재를 분류시키면, 다음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첫째 : 이상 (理想)과 신념 (信念)의 소재 (素材)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좌우명(座右銘) 또는 목표 (目標)나 생각 등을 형이상학 (形而上學)적인 표현이나 의지 (意志) 의 표현으로 승화(昇華) 시키는 문자로 아호를 만드는데, 대표적으로 백 범 (白 凡) 김 구 선생이나 무애 (无涯) 양 주동 박사 그리고 허주 (虛舟) 김 윤환 의원등으로 백범의 경우는 白 + 凡 즉, 모든이가 평등함을 추구한 뜻 이 있고, 무애 (无涯)는 끝이 없는 일을 하려는 의지로 볼 수 있고, 허주 (虛舟)는 빈배이니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아호가 아닐까?
둘째 : 지명(地名)의 소재 (오행분류 土) 평소 그리워하는 고향의 지명이나, 가고 싶은 곳의 지명 사랑하는 사람의 고향등을 사용하는 경우다. 율곡 (栗谷) 이 이, 우남 (雩南) 이 승만, 화담 (花潭) 서 경덕 등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다. 율곡은 경기도 파주의 율곡촌을 뜻하고 우남은 서울의 중구도동 우수현 (雩守峴) 남족, 화담은 개성의 화담을 지칭한다.
셋째 : 산 (山)과 바위 고개 등 자연의 소재 (오행분류 土) 가장 많이 소재로 삼는데, 산의 고고함과 바위의 불변 등 지조(志操)나 의리(義理)의 대표적인 비유다. 다산 (茶山) 정 약용, 가산 (可山) 이 효석 , 거산 (巨山) 김 영삼 등의 인물을 대표적으로 볼 수 있다.
넷째 : 강 (江) 호수(湖水) 바다 (海)의 소재 (오행분류 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바로, 순리(順理)와 복종(服從) 그리고 자연의 칭송(稱訟) 등의 뜻으로 사용하며 대표적으로, 단계 (丹溪) 하 위지(사육신의 일인), 퇴계 (退溪) 이 황, 해풍 (海風) 심 훈, 해공 (海公) 신 익희, 만해 (萬海) 한 용운 등이 있다.
다섯째 : 해(日) 와 달(月) 그리고 별(星)의 소재(오행분류 火) 인간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하늘에 있다고 판단하여, 기원(祈願)과 소망(所望) 그리고 희망(希望)의 소재로 월남(月南) 이 상재, 몽양(夢陽) 여 운형 등이 사용하였으며, 해(日)와 별(星)은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여섯째 : 초목(草木)과 꽃의 소재(오행분류 木) 사군자(四君子)인 송 (松), 죽 (竹), 매 (梅), 국(菊)을 비롯하여, 낙엽(葉), 숲(林) 등을 소재로 하여, 의지(意志)와 불변(不變)을 또한 아름다움과 힘을 나타내는데 적합하며, 대표적으로 다산(茶山) 정 약용, 중수(中樹) 박 정희, 도원(道圓) 김 홍집 , 송제(松齊) 서 재필 등이 있다.
일곱째 : 기후(氣候)와 계절(季節)의 소재와 기타 한난(寒暖)과 조습(燥濕) 그리고 사계(四季)를 뜻하는 문자의 사용으로, 개성(個性) 과 의지(意志)를 표현하고, 그 외 모든 분야에서도 소재를 찾을 수 있다. 운(雲) 우(雨) 설(雪) 상(霜) 한(寒) 서(暑) 춘(春) 하(夏) 추(秋) 동(冬) 등의 글자 이외에 호(虎) 견(犬) 용(龍) 구(龜) 학(鶴) 조(鳥) 돈(豚) 계(鷄) 등의 동물이름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아호를 짓는 시기
아호는 성인이 되면서, 누구나 가질 수 있으나, 직업이나 집안내력 주변환경에 의하여 가지게 되는데, 대부분 어떠한 분야에 입문하는 시기에 가지는 경우가 많다. 즉, 작가(作家)가 첫 작품을 내면서, 화가(畵家)가 첫 전시를 가지면서, 이런 시기에 부랴부랴 아호를 짓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어린시절이 지나면서, 아호를 짓는 경우가 많다.
역사 속 인물들의 아호 이제 유명인사들의 아호를 하나 하나 감정하면서 그 깊이를 알아보기로 하자. 각 인사 개인의 성격과 삶 그리고 인생관을 읽을 수 있다.
포은 (圃隱) 정 몽주(鄭 夢周 1337~1392) 성리학의 시조이며, 고려의 마지막 충신(단심가)
매죽헌(梅竹軒) 성 삼문(成 三問 1418~1456) 단종복위를 꿈꾸던 사육신의 대표적 인물
매월당(梅月堂) 김 시습(金 時習 1435~1493) 절개의 기인 학자.
퇴계 (退溪) 이 황(李 滉 1501~1570) 성학십도(聖學十圖)의 작가이며, 성리학의 달인.
율곡(栗谷) 이 이(李 珥 1536~1584) 조선시대 최고의 석학으로 신사임당의 아들.
토정(土亭) 이 지함(李 之函 1517~1578) 토정비결의 저자로 주역(周易)에 능통한 정치가.
우암(尤庵) 송 시열(宋 時烈 1607~1689) 성리학자이며 임금의 스승
다산(茶山) 정 약용(丁 若鏞 1762~1836) 실학자이며, 흠흠신서의 저자.
수운(水雲) 최 제우(崔 濟愚 1824~1864) 동학의 선각자.
녹두(祿斗) 전 봉준(全 琫準 1855~1895) 녹두장군으로 기억하는 동학군의 영수.
송제(松濟) 서 재필(徐 載弼 1864~1951) 의지의 독립신문과 충신.
일성(一醒) 이 준(李 雋 1859~1907) 이역만리(異域萬里) 헤이그에서 분사한 열사(烈士)
때문에 숙명은 그 누구의 힘으로도 바꿀 수 없는 불가항력의 명(命)이며, 운명은 자신의 각고어린 노력이나 밝은 성격· 고운 마음으로 운세의 흐름을 다소 호전되게 할 수 있는
유동적인 명(命)이다.
흔히 운명학의 주된 단어인 易(역)자는 日과 月이 합쳐서 된 것으로
그 뜻 또한 바뀔 역자로 영어의 Change와도 같은 것이다.
사주가 이미 하늘에서 지정해 준 숙명이라면 이름은 우리 스스로가 지을
수 있는 후천운(後天運)이요 운명이 될 수 있다.
사주팔자(四柱八字)라는 선천적 숙명과 태어난 이후 붙여지는 후천적
운명(이름)이 어우러져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창출하니 이름자의 운력(運力)은
참으로 크다 하겠다.
이름의 음양(陰陽) 오행(五行)
성명학에 있어서 한문의 수리(획수)가 음양(陰陽)의 배합(配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 음양관계는 다음과 같이 구분하게 된다.
음격 획수(陰格劃數)는 0. 2. 4. 6. 8. 10이며, 양격 획수(陽格劃數)는
1. 3. 5. 7. 9로서 자획(字劃)의 수(數)가 10획(十劃)이상인 경우에는
10(十)을 버리고(除) 나머지 수(數)로 계산(計算)하게 된다.
성명학에서도 사주팔자의 원리와 같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변화가
있어 음양(陰陽)의 획수(劃數)가 조화(調和)를 이루어야 좋은 이름으로써
좋은 운을 받아 좋은 운명으로 유도하게 된다.
음양(陰陽)의 배합(配合)이 불교(不交)하면, 모든 일이 파패(破敗)되고, 일생(一生)동안 파란이 많고 처자(妻子)관계에 풍파가 많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어렵게 된다.
1)음양(陰陽)의 상교(相交)
▶3자 성명(三字 姓名) : 음 양 양. 음 음 양. 양 음 양. 양 양 음. 양 음 음.
음 음 양.
▶2자 성명(二字 姓名) : 음 양. 양 음
2)음양(陰陽)의 불교(不交)
▶3자 성명(三字 姓名) : 양 양 양...3자 순양(三字 純陽)
음 음 음...3자 순음(三字 純陰)
▶2자 성명(二字 姓名) : 양 양...2자 순양(二字 純陽)
음 음...2자 순음(二字 純陰)
이와 같은 배치(配置)는 음양(陰陽)의 불교(不交)함이니 통계학상
(統計學上)으로 보아도 사고가 많고 형액(形厄). 불구. 병고(病苦). 단명(短命).
처자이별(妻子離別). 자식난양(子息難養)하고, 파패(破敗)가 많게 된다.
삼원오행(三元五行)이란?
삼원(三元)이라는 것은 성(姓)이 일원이요. 성(姓)과 상명(上名)과 합수하여 이원(二元)이요, 상명(上名)과 하명(下名)을 합수로 하여 삼원(三元)이라 한다. 이 삼원 오행도 상생을 요(要)하고 상극(相剋)을 싫어 하는 것이다.
오행이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다섯 가지로 구분(區分)하여 자연계의 동정(動靜)과 변화를 오행(五行)으로 고찰하였으며, 그 상생(相生), 상극(相剋) 관계에 의하여 풀이하게 되는바, 오행에서는 서로 돕고 생하여 주는 상생의 원리와 해를 주며 극(剋)하는 상극(相剋)의 원리로 나눈다.
▶오행상생(五行相生)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 水生木.
▶오행상극(五行相剋) 木剋土. 火剋金. 土剋水. 金剋木. 水剋火.
▶오행상비(五行相比) 木比木. 火比火. 土比土. 金比金. 水比水.
★ 삼원오행표(三元五行表)
숫자(數字) 1, 2. 3, 4. 5, 6. 7, 8. 9, 10.
천간(天干) 甲,乙. 丙,丁. 戊,己. 庚,辛. 壬,癸.
오행(五行)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보기 (예시)
한글: 이 승 만
한문: 李 承 晩
수리: 7. 8. 11.
삼원오행: 金. 土. 水.
삼원오행이란? 즉, 성자(姓字) 이(李)가 7획이니, 7은 금(金)이요. 상명자(上名字) 승(承)이 8획이니, 성(姓) 7획과 합하면 15가 된다. 10을 버리고 5만 보니 토(土)가 되며, 하명자(下名字) 만(晩)이 11획이니 상명자 승(8)과 합하면 19가 된다. 10을 버리고 9만 보니, 수(水)가 되는 것이다.
즉, 삼원오행(三元五行)이 금토수(金土水)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삼원오행을 보는 것이나 정통성명학에서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가급적이면 상생(相生), 상합(相合)이 된다면, 길함이 있을 것이다.
음령오행(音靈五行)이란?
▶목(木) 가 카 ㄱ ㅋ 아음(牙音)
▶화(火) 나, 다, 라, 타 ㄴ, ㄷ, ㄹ, ㅌ 설음(舌音)
▶토(土) 아 하 ㅇ, ㅎ 후음(喉音)
▶금(金) 사, 자, 차 ㅅ, ㅈ, ㅊ 치음(齒音)
▶수(水) 마, 바, 파 ㅁ, ㅂ, ㅍ 순음(脣音)
즉, 박만수(朴萬洙) 하면 박(朴)은 [ㅂ]이 첫 음(初音)이니 수(水)에 해당하고 만(萬)은 [ㅁ]이 첫 음(初音)이니, 수(水)에 해당(該當)하고 수(洙)는 [ㅅ]이 첫 음(初音)이니, 금(金)에 해당하여 수 수 금(水 水 金)이 되니, 서로 상생(相生)을 이루고 있어 음 오행(音五行)이 대길(大吉)하다.
이와 같이 음령오행을 보는 것이나 정통성명학에서는 크게 따지지 않는다.
자원오행(字源五行)이란?
자원오행(字源五行)은 글자 자체가 갖고 있는 뜻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오행에 적용한 것입니다. 성명학(姓名學)에서 자원오행은 성명자에 필요하거나 부족한 기운(五行)을 오행의 본질적 의미를 갖고 있는 글자자체를 보완보충(補完補充)하는 것입니다.
즉. 사주(四柱)에 오행(五行)중에 물(水)이 부족하다면 글자의 본질적 의미가 물(水)에 해당하는, 나무(木)가 부족하다면 글자의 본질적 의미가 나무(木)에 해당하는 자원(字源)을 보완보충(補完補充)하여 조화 및 상생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자원오행(字源五行)을 정하기 위해서는
1)첫째는 글자의 부수(변)에 따라 정하게 됩니다.
▶木氣 : 木, 杏, 杞, 林, 松...
▶火氣 : 火, 炫, 炯, 煇, 煥...
▶土氣 : 土, 圭, 均, 地, 戊, 己...
▶金氣 : 金, 銅, 銘, 錫, 鐘...
▶水氣 : 水, 江, 永, 沃, 流, 浩, 洙, 河, 海...
2)둘째는 부수(邊)가 木. 火. 土. 金. 水의 오행이 아닌 글자는 글자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여 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밭(田)전자 하면 밭은 곡식을 가꾸는 터전을 의미하므로, 삶의 터전은 흙이요. 흙은 土의 본성을 가장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흙 속에는 금맥(金)도 있고, 나무뿌리(木)도 있고, 수맥(水)도 있고 불(火)도 있지만, 가장 비중이 크고 가장 주체가 되는 영동력(靈動力)은 土에 해당하므로 흙은 土라 하는 것입니다.
*감상주의(感傷主義) : 어떤 원칙을 주장하는 뜻에서 주의가 아니고 감정 과정의 의미에서 주의이다. 슬픔이나 기쁨 등의 정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러한 정서 자체를 인위적으로 조장하는 데서 생긴다.
*감정이입(感情移入) :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을 다른 대상에 집어넣어 대신 나타내는 표현 기법 상의 하나. 시에서 많이 쓰인다.
*객관적 상관물(客觀的 相關物) : 어떤 특별한 정서를 나타낼 공식이 되는 한 떼의 사물 정황 일련의 사건으로서 바로 그 정서를 곧장 환기시키도록 제시된 외부적 사실들을 이르는 말. 엘리어트가 처음 말함.
*계몽주의(啓蒙主義) : 서양에서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왕성했던 사조로서 인간의 이성을 중시했다. 계몽주의 문학은 작가가 교사 선각자의 입장에서 민중을 합리성에 호소하여 가르치려 하는 일종의 교훈주의 문학이다.
*고전주의(古典主義) :그리스 로마의 고전적 미를 전범으로 하여 17.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문예 경향 개성적이기 보다는 보편적이면 일반 미를 지향한다.
*구조(構造) : 내부 요소들이 짜임 또는 그러한 짜임에 의하여 이루어진 문학 작품의 전체
*구조주의(構造主義) :문학 작품을 작품 속의 여러 요소들의 상호 관계로서 조직된 구조로 보는 연구 방법론 이 사상은 프랑스의 언어 학 이론에서 나왔다.
*기지(機智) : 지적인 것이며 언어적 표현에 의존한다 서로 다른 사물에서 유사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경구나 압축된 말로 표현하는 지적 능력
*기호학(記號學) : 문학 작품을 하나의 기호 체계로 보고 이를 분석하는 문학 연구의 한 방법 작품의 언어 분석을 통한 문화 요서의 분석 문체론적 접근 의미론에 따른 분석 등을 행한다.
*낭만주의(浪漫主義) :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에 걸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 유행한 문예사조의 하나 고전주의에 반발하여 생겨난 것으로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고 현실보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풍만해 감정 표출을 특징으로 한다.
*내재율(內在律) : 자유시나 산문시에서처럼 문장 안에 미묘한 음악적 요소로 잠재되어 있는 운율 외형률과 대조가 된다.
*내적 독백(內的獨白) : 20세기 심리 소설의 한 서술 방법으로 인물의 심리 적 독백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외적 사건을 그리는 기교
*내포(內包):사전적 의미가 작품구조 내에서 새롭게이루어내는의미함축적 의미
*다다이즘 :1차 세계대전 중 나타난 전위적 예술 운동에 대해 시인 트리스탄 짜라가 붙인 이름 전쟁의 잔인성을 증오하고 합리적 기술 문명을 부정하여 일체의 제약을 거부하고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과격한 실험주의적 경향 뒤에 초현실주의에 흡수되었다.
*다의성(多義性) : 단일한 의미가 아니라 암시적으로 여러 갈래의 의미를 드러내는 문학 언어의 한 특성.
*데카당스 : 퇴폐주의 19세기말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에서 유럽 각 국에 퍼져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예술 경향으로 뒤에 상징주의로 발전하였다.
*매너리즘 : 예술 창작에서 독창성을 잃고 평범한 경향으로 흘러가 생기와 신선미를 잃는 일
*모더니즘 : 철학 미술 문학 등에서 전통주의에 대립하여 주로 현대의 도시 생활을 바였나 주관적이 예술 경향의 총칭 시에 있어서는 1910년이래 영미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미지즘과 주지주의를 함께 말한다.
*모티프 : 일정한 소재가 예술적 관점에서 해석되어 작품의 주제를 구성하고 통일감을 주는 중요 단위를 말한다. 이것은 한 작가 한 시대 나아가 한 갈래에 반복되어 나타날 수 도 있다.
*몽타주: 따로따로 촬영된 화면을 효과적으로 떼어 붙여서 화면 전체를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영화나 사진 편집의 한 수법
*묘사(描寫) : 어떤 대상을 객관적 구체적 감각적으로 표현하여 나타내는 일
*민요(民謠):민중 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민중의 생활 감정을 소박하게 반영시킨 노래 반어 의미를 강조하거나 특정한 효과를 유발하기 위해서 자기가 생각하고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말을 하여그 이면에숨겨진 의도를 나타내는
수사학의 일종
*보조 관념(補助觀念) : 어떤 다른 생각을 나타내는 매개로 쓰이는 사물이나 생각 비둘기 가 평화를 나타낼 때 비둘기는 보조 관념 평화는 원관념
*부조리(不條理) : 문학: 베케트나 카뮈의 작품이 그것으로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 인간 사이의 의사 소통의 불가능함 인간 의지의 전적인 무력함 인간의 근본적인 야수성, 비생명성, 요컨대 인간의 부조리를 아이러니컬하게 나타내는
문학을 말한다 특히 부조리극은 내용만이 아니라 극 구성 자체가 부조리하다.
*비유(比喩) : 하나의 사상이나 사건을 설명할 때 다른 사물을 빌려 표현하는 것 직유 함유 은유 인유 등이 있음
*사실주의(寫實主義) : 19세기 후반에 낭만주의에 대립하여 자연이나 인생 등의 소재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예술의 경향 또는 인간의 본질을 역사적 사회적 존재로 보는 세계관
*산문시(散文詩):일정한 운율 없이 자유롭게쓰는 시로이야기형식으로쓰는시
*산문 정신:운문의 외형적 규범 및 낭만주의적인 시적 감각을 배제하고 사회적 현실주의에 의하여 파악된현실을순전한사문으로써표현해야한다고하는 태도
*상징(象徵) : 한 사물 자체로서 다른 관념을 나타내는 일 즉 보조 관념만으로 원관념을 나타내는 일
*상징주의(象徵主義) :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자연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문예 상의 경향 내면적이고 신비적인 세계를 상징으로써 암시하려고했다.
*서사시(敍事詩) : 민족적이거나 역사적인 사건이나 신화 또는 전설과 영웅의 사적 등을 이야기 중심으로 꾸며 놓은 시
*서사체(敍事體) : 어떤 사건이나 사실 전달을 위주로 서술해 나가는 문체
*서술자(敍述者) : 소설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 시에서 시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은 '시적 자아'라고 하며 주로 '나'라는 1인칭 서술자가 된다.
*서정시(敍情詩) : 서사시 극시와 달리 주관적이며 관조적인 수법으로 자기 감정을 운율로서 나타내는 시의 한 갈래
*서정적 자아(抒情的自我) :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으로 보통 시인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시인이 시적 표현 효과를 위해 허구적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부름 시적 자아라고도 한다,
*서정주의(抒情主義) : 시 소설 등에서 작자의 주관적 체험을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한 경향 주로 사람 죽음 자연 등을 제재로 내적 감동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리리시즘
*소재(素材) : 예술 창작 상의 요소가 되는 재료 곧 자연물 환경 인물의 행동 감정 같은 것
*수사학(修辭學) : 역사 전설 도덕 철학 등의 산문적인 요소를 내포하지 아니하고 순수하게 정서를 자극하는 표현적 기능만을 활용하여 짓는 시
*시튜에이션 : 상황 어떤 인물이 처한 정세를 가리킨 것으로 연극 소설 영화 등에서 결정적 장면을 말함
*시학(詩學) : 시에 대한 조직적 체계적 이론으로 시의 본질과 분류, 형식과 기교, 효용,그 밖에 다른 예술과의 관계, 시의 기원 등을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17세기 중엽에서 18세기 말엽까지의 유럽 문학 사조를 가리킨다 신고전주의는 사람의 불완전성을 강조하고 고전 문학에서 발견한 자연의 보편서조화 균형 합리성을 더욱철저히 방법적으로 따르기를주장하였다.
*실존주의(實存主義) : 실제로 존재하는 체험적 개인의 상황 자체가 중요하며 개인의 실존은 비합리적이라는 입장 실존주의 문학은 인간 존재를 그 근원적 부조리성에서 추구하는 것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앙가주망도 여기에서 나왔다.
*심볼 : 상징 인간이나 사물 추상적인 사고를 그 연상에 의해 표현하는 것
심상(心像) : 이미지
*아이러니 : 반어법, 수사학에서 의미를 강조하거나 특정한 효과를 유발하기 위해서 말의 표면상 의미 뒤에 숨어 그와의 반대의 뜻을 대조적으로 비치는 표현 형식
*알레고리:흔히 풍유 또는 우유라고도 함 표면적으로 인물과 행위와 배경 등 통항적인 이야기의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 이야기 배후에 정신적 도덕적 또는 역사적 의미가 전개되는 뚜렷한 이중 구조를 가진작품
*앙가주망: 사회 참여 현실 참여라는 뜻으로 프랑스의 사르트르가 주창하였다.
*애매성(曖昧性) : 신비평의 용어 함축적 의미의 언어가 사용되는 시에서 상식적인 의미 이외에 풍부한 암시성을 수반하거나 동시에 둘 이상의 의미를 드러낼 수있는 융통성 복합적 의미 풍부한 의미라는 뜻으로서 난해서과는구별된다.
*어조(語調) :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사물과 독자에 대한 작가의 태도에 의하여 결정되는 말의 가락
*역설(逆說) : 겉으로 보기에는 진리에 어긋나는 것 같은 표현이나 사실은 그 속에 진리를 품은 말 패러독스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 :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은 오직 미를 추구하는 독자적인 존재라는 주장으로 유미주의자들이 내세운 구호에서 비롯되었으며 미의 절대적 가치를 의미함
*오버랩 : 영화에서 어떤 화면 위에 다른 화면이 겹쳐지는 것으로 시간 경과에 대한 생략의 의미로 쓰인다. 약화
*외연(外延) : 한 낱말이 본래 가지고 있는 사전적 의미 지시적 의미라고도 하며 내포와 대립된다
*우화(寓話) : 인간의 정화를 인간 이외의 동물, 신 또는 사물들 사이에 생기는 일로 꾸며서 말하는 짧은 이야기로서 도덕적 교훈이 담겨 있다.
*운율(韻律) : 시의 음악적 요서 같은 소리의 반복에 의한 음악적 성과를 운이라 하고 말의 고저 장단에 의한 음악적 성과를 율이라고 한다.
*원관념(元觀念) : 어떤 말을 통하여 달리 나타내고자 하는 근본 생각 보조 관념과 대립
*원형(原形):근본적인 형식으로 그것으로 부터 많은 실제적 개체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프레이저의 인류학과 융의 심리학의 영향을 받아 문학 비평에 이 방법이 원용되어졌다.인간의 원초적 경험들이 인간정신의 구조적 요소로 되어 집단적 무의식을 통해 유전되며 그것이 문학에서 상징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는 입장
*위트 : 기지 사물을 신속하고 지적인 예지로 인식하여 다른 사람이 기쁘게 즐길 수 있도록 교묘하고 기발하게 표현하는 능력
*유미주의(唯美主義) : 탐미주의라고도 함 미를 최고의 것으로 보고 여기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로서 문학 예술의 목적을 도덕이나 실용성에서 분리시켜 미 자체를 추구하는 것
*율격(律格) : 율, 즉 말의 고저 장단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음악적 격식은유처럼 같이 등 연결어가 없이 원관념과 보조 관념을 결합시켜 나타내는 비유법의 하나 A는 B이다 A의B와 같은 형태를 취한다.
*음보(音步) : 시의 전체적인 리듬을 형성하는 어절로서의 최소 단위
*음성 상징(音聲象徵) : 시적 표현에서 음성 자체가 감각적으로 떠올리는 표현 가치를 이른다. 의미 작용 의미 작용 문학 작품의 내적 구조 관계를 통해 자율적으로 의미를 산출해 내는 일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의미
*의식(意識)의 흐름 : 인간의 잠재 의식의 흐름을 충실히 표현하려고 하는 문학상의 수법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는 이 기법으로 쓰여진 유명한 작품이며 이상의 날개도 이런 유의 작품에 속한다.
*이미지 : 오관을 통한 육체적 지각 작용에 의해 마음속에 재생된 여러 감각적 현상. 심상, 영상이라고도 한다.
* 이미지즘 : 일차 대전 말기 영미의 시인들이 사물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로써 명확한 심상을 제시하고자 창도한 문학 운동으로 이미지의 색채와 율동을 중시하고 적확한 용어로 새로운 운율을 창조하려고 했음
*인본주의(人本主義) : 인간성의 해방과 옹호를 이상으로 하는 사상 인간성을 구속 억압하는 대상이 시대에 따라 다름으로 휴머니즘의 내포적 의미를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인상주의(印象主義):회화나 조각에 있어 자연에 대한 순간적인 시각적 인상을 중시하고 여러 가지 기교로 인상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하는 주의와 그 작가들
*자기화(自己化) : 문학 작품 통해 얻어지는 여러 가치를 자기 변화의 동기로 삼는 일
*자연주의(自然主義) : 사실주의의 뒤를 이어 나타난 문예사조로 진화론 물질의 기계적 결정론 실증주의 등의 사상을 배경으로 일어났으며 생물학적 사회환경적 지배하에 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자연 과학자와 같은 눈으로 분석 관찰하고 검토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유시(自由詩) : 전통적인 정형적 리듬을 벗어나 자유로운 리듬의 가락으로 이루어진 모든 형태의 현대시
*자율성(自律性) : 문학 작품이 그 자체의 내적 구조를 통해 스스로 하나의 완결된 전체를 이루는 특성
*정화 작용(淨化作用) :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으로 울적한 공포에 질린 감정을 해소하여 쾌감을 일으키게 하는일 카타르시스
*주지주의(主知主義) : 종래의 주정주의에 대립하여 감각과 정서보다 지성을 중시하는 창작 태도와 경향 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와 영국 미국에서 성했다.
+지시적 의미(指示的意味) : 사전에 나타나는 그대로의 의미
*직관(直觀) : 판단 추리 등의 사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정신 작용 직유처럼 같이 등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직접 연결해 주는 말에 의해 나타내는 비유법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 쉬르리얼리즘 프랑스에서 일어난 예술 운동으로 1920년대에 다다이즘에 이어 프로이트의 심층 심리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기성의 미학 도덕과는 관계없이 내적 생활의 충동적인 표현을 목적으로 한다.
*초점(焦點) : 주의에 상상적인 작품의 제재가 집중된 중심 초점은 한 작품 속에서 순간 순간 이동 될 수 도 있고 지속적으로 고정 될 수도 있음
*추체험(追體驗) : 작품을 읽으며 자신을 작품 속의 인물과 같은 입장에서 그 작품 세계를 행동하고 경험하는 것
*카타르시스 :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으로 공포와 연민을 통해 감정을 해방하여 쾌감을 일으키게 하는 일
*테마: 작품 속에 나타난 중심 사상이며 작품 속에 구현되어진 의미여 제재에 대한 해석이다. 창작 과정으로 보아서는 동기의 구체화라고 할 수 있음 주제
*텍스트 : 주석 번역 서문 및 부록에 대한 본문 원문 원전을 말한다.
*패러디 : 어느 작가나 시인의 내용 문체 운율 등을 모방하여 풍자적으로 꾸민 작품
*폭풍노도(暴風怒濤) : 1770-1780년 무럽에 괴테와 실러를 중심으로 독일에서 일어난 혁명적 문학 운동 합리적인 계몽주의에 반대하고 격력한 감정과 개성을 존중했다.
*표현주의(表現主義) :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특히 연극 분야에서 성행했다 작가 개인의 강력한 주관적 표현을 내세운다.
*풍유법(諷諭法) : 본래의 뜻을 감추고 표현되어 있는 것이 이상의 깊은 내용이나 뜻을 짐작하게 하며 흔히 교훈적인 수사법 알레고리
*풍자(諷刺) : 인간의 약점 사회의 부조리 비논리 같은 것을 조소적으로 표현하는 수법
*함축적 의미(含蓄的意味) : 문학 작품에 있어서 내부 구조를 통해 드러내는 의미 지시적 의미의 반대되는 뜻으로 쓰인다.
*해학(諧謔) : 성격적 기질적인 것이며 태도 동작 표정 말씨 등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인간에 대해 선의를 가지고 그 약점이나 실수를 부드럽게 감싸며 극복하게 하는 공감적인 태도이다.
*형식주의(形式主義) : 작품 자체의 형식적 요건들 작품 각 부분들의 배열 관계 및 전체와의 관계를 분석 평가하는 문학론 구체적으로는 러시아 형식주의를 지칭하며 신비평은 여기서 나왔다.
*휴머니즘 : 인간성의 해방과 옹호를 이상으로 하는 사상 또는 심적 태도 인간성을 구속 억압하는 대상이 시대마다 다른 양상을 띤다. 인도주의
이미지의 종류랄까 아니면 이미지의 분류랄까 무어라 확 단정지울 수 없지만 이미지의 성격에 대하여 나름의 고찰을 진술해 보고자 '시의 이미지 고찰'이라는 주제로 강의(안)을 작성해 본다.
2. 이미지(image) 란?
흔히 심상이라고 불리며, 사물로 그린 그림, 언어의 회화란 말로 해석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감각적 체험에 의해 마음속에 그려진 사물의 영상으로서 상상력에 의해 결합된다. 현대시의 중심을 이미지라고 할 정도로 절대적인 표출방법이 되고 있다. 이러한 표출방법의 이미지 주의를 이미지즘(imagism)이라 한다.
이 이미지즘은 1912년경에 H. E. 흄, 에즈라 파운드 등을 중심으로 영 미 시인들이 일으켰던 시운동이다. 이들은 시에서 무엇보다도 이미지를 중요한 것으로 여겼으며 선명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들을 많이 썼다. 이미지즘의 근본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일상이 언어를 사용할 것, 그러나 반드시 정확한 말을 쓸 것, 너무 정확한 말을 피할 것
2) 모든 습관화된 표현을 피할 것
3) 새로운 기분을 표현하는 새로운 리듬을 창조할 것, 옛 기분을 반향 할 뿐인 옛 리듬을 흉내 내지 말 것
4) 주제의 선택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로울 것
5)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할 것, 구체적인 사실을 정확히 보여주어야 하며 아무리 웅장하고 귀에 좋게 들리더라도 막연한 일반론, 추상론을 배제할 것
6) 견고하고 투명한 시를 쓸 것, 윤곽이 흐리든가 불명확한 시를 피할 것
7) 집약, 집중을 위해 노력할 것, 그것이 시의 정수임을 알 것
8) 완전한 진술이나 설명보다는 간략히 암시할 것.
3. 이미지에서 상상되는 형상의 종류
시문에 등장하는 이미지의 형상은 상상력의 확장에 의하여 그 형상을 그려낸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그려낸 이미지를 유추적 이미지와 연상적 이미지로 구분한다(이미지의 종류라고도 한다. 또는 이미지의 분류, 또는 이미지의 성격이라고도 한다.)
임보 시인은 그의 문학 이론에서 유추적 이미지와 연상적 이미지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 이론을 소개한다.
4. 유추적 이미지와 연상적 이미지
1) 유추적 이미지
어떤 사물의 형태를 보고 유사한 특징을 지닌 다른 사물을 그려낼 때, 즉 동일성이나 유사성에 근거해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상상해 낼 때 시론에서는 유추적(類推的) 이미지라고 한다.
예를들면 안경을 보고 안경의 두 테가 마치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이미지를 그려냈다거나 긴 허리띠를 보고 뱀으로 상상을 했다면 면 두 사물이 지닌 유사한 특징 안경의 '두 테'의 형싱과 '길다란' 형상이 바로 유추적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2) 연상적(聯想的) 이미지
두 사물의 인접성이나 친근성에 근거하여 떠오르는 이미지로, 꽃을 보자 벌이 생각나고,
벌을 생각하자 꿀이 떠올랐다면 이것이 곧 연상적 이미지인 것이다.
이렇듯 두 사물의 인접성이나 친근성에 근거하다 보면 '바다'를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물고기'를 끌어들이고 '숲'을 말하면서 지저귀는 '새'를 등장시키는 것 등이다.
그런데 모던이즘이 주류를 이루는 오늘의 현대시는 사물과 이미지 사이에 동일성이나 인접성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는바, 이는 유추적 이미지나 연상적 이미지보다는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내고자 함이다.
이 상상적 이미지에 관하여 임보 시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을 통해 그 개념을 정의 하고 있다.
5. 상상적 이미지(창조적 이미지)
시인의 상상력에 의하여 그려놓은 낯선 이미지를 상상적(想像的) 이미지 혹은 창조적 이미지라고 하는데 이 상상적 이미지는 바로 현대시를 난해하게 하는 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미지들은 과거의 누구에게서도 제기되지 않았던, 처음으로 들춰진 낯선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란 쉽지 않지만 우선 신선하고 신기하게 와 닿는다.
뿐만 아니라 유추적 이미지와 연상적 이미지는 동일성과 인접성에 근거하기 때문에
대상과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의미망은 비교적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상적 이미지인 경우는 대상과 이미지가 동일성이나 인접성으로 고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두 관계는 무한히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독자들은 자기들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인이 제시한 이미지에 끝없는 의미망을 구축할 수 있다.
소위 수용론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창조적 독서가 능률적으로 실현될 수 있게 된다.
현대시에서 상상적 이미지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 상상적 이미지는 대상이 시인에게 스스로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대상 속에 파고들어 발굴해 내야 하는 것임을 기억 해야 한다.
광부가 하나의 광맥을 찾기 위해서 수백 미터의 지하를 뚫고 들어가듯이, 창조적 이미지를 찾는다는 것은 예지와 인내와 노역을 동반하는 고행의 길이다. 그것은 사물과의 피나는 투쟁이며, 세계를 처단하는 폭력이며,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독재다. 시인이 그러한 고뇌를 감수하면서도 시의 길을 가는 것은 바로 이 독재적인 창조를 통해 맛보는 환희로 보상받기 때문이리라.
한시를 짓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나. 2, 4, 6 분명과 1, 3, 5 불론을 지킨다. 둘. 일운도저를 한다. 3. 점과 대를 지킨다. 4. 하삼련과 고평 고측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조금 상세히 풀어 보자.
2.4,6 분명이란 2째 글자와 4째 글자 그리고 6째 글자는 서로 평측이 달라야 한다는 말이다. 2째 글자가 평성이었으면 4째 글자는 측성이어야 하고 6째 글자는 평성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2째 글자가 측성이었으면 4째 글자는 평성, 6째 글자는 측성이어야 한다.
1, 3, 5불론이란 2, 4, 6분명과 같이 평측이 꼭 서로 상반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일운도저란 동일한 운에 속하는 글자로 운을 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운을 다는 곳은 짝수구이다. 2째구에 東운에 속하는 글자로 운을 달았다면 4, 6, 8째 구에도 東운에 속하는 글자로 운을 달아야 한다.
점이란 첫구와 마지막 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구들은 2 구씩 상하간의 평측이 동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2구에서 2,4,6자에 각기 평성 측성 평성의 글자를 놓았다면 3구의 2, 4, 6자에도 똑같이 평성 측성 평성의 글자를 놓아야 한다. 그리고 4구에서는 2, 4, 6자에 각기 측성 평성 측성의 글자를 놓아야 하고 5구에서는 2, 4, 6자에 4구와 똑같이 측성 평성 측성을 글자를 놓아야 한다.
대란 3,4,5,6구에 사용하는 기법으로 상하 구간의 내용을 서로 대비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상구에서 남자를 말했다면 하구에서는 여자를, 상구에서 하늘을 말했다면 하구에서는 땅을 말하는 방식이다.
하삼련이란 한 구의 마지막에 측성이 세 개 쪼란히 있거나 평성이 쪼란히 있게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고평이란 평성의 글자가 양 측성 글자 사이에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고측이란 측성의 글자가 양 평성 글자 사이에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처음에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친구를 사귀듯이 자꾸 접하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위 한시를 짓는 방법도, 소개는 쉽다고 했지만, 사실 초심자에게는 어려운 내용일 수 있다. 그러나 몇 번 하다보면 익숙해져서 만만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후의 고민은 이제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이 책은 내용을 채우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형식만을 말하고 있다. 이 점이 좀 아쉽다).
한시작법
한시는 철저한 정형시이다. 율시(律詩)의 경우 7언(七言)이란 하나의 연(聯)이 일곱글자이며 5언(五言)이란 하나의 연이 다섯글자의 형식이다. 그리고 제1연과 제2연을 합해 기련(起聯)이라하며, 제3연과 제4연은 승련(承聯) 제5연과 제6연은 전련(轉聯) 제7연과 제8연은 결연(結聯)이라한다.
기련(起聯)이라함은 그 법칙이 우뚝솟아 높고 멀어야 한다. 예를 들면 대문을 열고 산의 가파르고 높다란 것을 보는 것과 같고, 또한 미친 듯한 바람이 파도를 삼켜 세력이 마치 하늘에 넘치는 듯해야 하며, 또한 한가로운 구름이 산 마루에 나와 유유자적하듯 해야 한다.
1. 흥이기(興而起)
흥(興)이라함은 먼저 시제와 다른 사물을 말하여 읊고자 하는 말을 끌어 일으켜야 한다.
예를들면 두공부(杜工部)의 '곡강대주(曲江對酒)'시에
一片花飛減却春(일편화비감각춘) 한조각 꽃은 날려 봄을 보내는데
風飄萬點正愁人(풍표만점정수인) 바람마저 많이 불어 정히 사람을 슬프게 하네
2. 부이기(賦而起)
부(賦)란 그 일들을 서술하기를 비유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함이니, 두공부(杜工部)의 '곡강대주(曲江對酒)'제2시에
* 미르 : 용 의 순수 우리말 * 푸르미르 : 청룡의 순수 우리말 * 미리내 : 은하수 의 우리말 * 온새미로 :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 * 한울 : 우주 * 아라 : 바다의 우리말 * 마루 : 하늘의 우리말 * 가람 : 강의 우리말
꽃가람 : 꽃이 있는 강 가온길 : 정직하고 바른 가운데 (가온대: 옛말) 길로 살아가라고 지은 이름. 가온누리 : 무슨 일이든 세상(누리: 옛말)의 중심(가온대: 옛말)이 되어라. 가시버시 : 아내와 남편의 우리말 그린나래 : 그린 듯이 아름다운 날개 그린비 : 그리운 남자라는뜻의 우리말 그린내 : 연인의 우리말 예그리나 : 사랑하는 우리사이 비나리 : '축복의 말'의 우리말 늘솔길 : 언제나 솔바람이 부는 길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물비늘 : 잔잔한 물결이 햇살 따위에 비치는 모양 해류뭄해리 : 가뭄후에 오는 시원한빗줄기 헤윰 : 생각을 뜻하는 우리말 나린 : 하늘이 내린 아리아 : 요정의 우리말 수피아: 숲의 요정 푸실 : 풀이 우거진 마을 달보드레하다 : 연하고 달콤하다 단미 : 달콤한 여자, 사랑스러운 여자 아토 : 선물 타니 : 귀걸이 까미 : 얼굴이나 털빛이 까만 사람이나 동물을 일컫는 말 꼬두람이 : 맨 꼬리 또는 막내 희나리 : 마른장작 의 우리말 물마 : 비가 많이 와서 땅 위에 넘치는 물 휘들램 : 이리저리 마구 휘두르는 짓 라온 : '즐거운' 이라는 순 우리말 라온하제 : 즐거운 내일를 뜻하는 우리말 라온제나 : 즐거운 나, 즐거운 자신 라온힐조 : 즐거운 이른 아침 (힐조 : '이른 아침'의 순 우리말) 안다미로 : [부사] 담은 것이 그릇에 넘치도록 많이 에멜무지로 : 단단하게 묶지 아니한 모양. 결과를 바라지 아니하고, 헛일하는 셈 치고 시험 삼아 하는 모양 꽃잠 : 신혼부부의 첫날밤을 이르는 우리말 사나래 : 천사의 날개를 뜻하는 우리말 나르샤 : 날아 오르다를 뜻하는 우리말 베리, 벼리 : 벼루 흐노니 : 누군가를 굉장히 그리워 하는것 노고지리 : 종달새 아미 : 눈썹과 눈썹사이(=미간) 이든 : 착한, 어진 이내 : 저녁나절에 어르스름한 기운 너울 : 바다의 사나운 큰 물결 너비 : 널리 온누리 : 온세상 아사 : 아침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말이어서 현재일본어(아사=일어로아침) 와 뜻이같습니다 흥미롭네요 ^^;...) 하제 : 내일 아스라이 : 아득히, 흐릿한 슈룹 : 지금은 사라져버린 우산의 옛말 가라사니 :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지각이나 실마리 초아 : 초처럼 자신을 태워 세상을 비추는 사람 하나린 : 하늘에서 어질게 살기를 바람. 하야로비 : 해오라기. 꼬리별 : 혜성 별찌 : 유성 그루잠 : 깨었다가 다시 든 잠 바오 : 보기 좋게. 옛살비 : 고향 다흰 : 흰 눈꽃같이, 세상을 다 희게 하는 사람 다원 : 모두 다 원하는, 모두 다 사랑하는 사람 은가람 : 은은히 흐르는 강(가람)을 줄여 만듦. 은가비 : 은은한 가운데 빛을 발하라. 파니 : 아무 하는 일 없이 노는 모양. 퍼르퍼르 : 가벼운 물체가 가볍게 날리는 모양. 포롱거리다 : 작은 새가 가볍게 날아오르는 소리. 늘해랑 : 늘 해와 함께 살아가는 밝고 강한 사람 나릿물 : 냇물 타래 : 실이나 노끈 등을 사려 뭉친 것 서리서리 : 국수나 새끼 등을 헝클어지지 않게 빙빙 둘러서 포개 감는다는 것 도담도담 : (어린아이 등이) 별탈없이 잘 자라는 모습 올리사랑 :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 또는 아랫사람의 윗사람에 대한 사랑 벗 : 친구의 순수 우리말 도래솔 : 무덤가에 죽 늘어선 소나무 한울 : 한은 바른, 진실한, 가득하다는 뜻이고 울은 울타리 우리 터전의 의미 여우비 : 해가 난 날 잠깐 내리는 비 하람 : 꿈의 뜻, 하늘이 내리신 소중한 사람에서 특정 음절을 따서 지은 이름 가론 : 말하기를, 이른 바(所謂). 맛조이 : 마중하는 사람. 영접하는 사람. 아름드리 : 한 아람이 넘는 큰 나무나 물건 또는 둘레가 한 아름이 넘는 것 아련하다 : 보기에 부드러우며 가냘프고 약하다 도투락 : 어린아이 머리댕기 우수리 : 물건 값을 치르고 거슬러 받는 잔돈 가우리 : 고구려(중앙) 구다라 : 백제(큰 나라) 아띠 : 친구 새라 : 새롭다 다솜 : 애틋한 사랑 다소다 : 애틋하게 사랑하다 다소니 : 사랑하는 사람 난이 : 공주의 순수한 우리말 는개 : 안개비와 이슬비 사이의 가는 비 늦마 : 늦은 장마 비 샘바리 : 어떠한 일에 샘이 많아 안달하는 마음이 강한 사람 '바리'는 어떤 한 분야에 집중적인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우리말.예)악바리, 군바리 마소두래기 : 말(言)을 이곳저곳 옮겨 퍼뜨리는 것 산돌림 : 옮겨 다니면서 내리는 비(소나기) 호드기 : 버들피리. 사투리로 호들기(소설'동백꽃') 볼우물 : 보조개를 뜻함 여우별 : 궂은 날 잠깐 났다가 숨는 별 매지구름 : 비를 머금은 검은 조각구름 아람 : 탐스러운 가을 햇살을 받아서 저절로 충분히 익어 벌어 진 그 과실 아람치 : 자기의 차지가 된 것 느루 : 한번에 몰아치지 않고 시간을 길게 늦추어 잡아서 꼬꼬지 : 아주 오랜 옛날. 겨르로이 : [옛] 한가로이, 겨를 있게. 눈바래기 : 멀리 가지 않고 눈으로 마중한다는 애오라지 : 마음에 부족하나마, 그저 그런 대로 넉넉히,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미쁘다 : 진실하다 그미 : 그 여자. 숯 : 신선한 힘 즈믄 : 천(1000) 온 : 백(100) 소담하다 : 생김새가 탐스럽다 마닐마닐 : 음식이 씹어먹기 알맞도록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산다라 : 굳세고 꿋꿋하다 (신라 김유신 장군의 순 우리말 아명) 하슬라 : 강릉의 순 우리말 고타야 : 안동의 순 우리말 아라가야 : 함안의 순 우리말 새, 하, 마, 노 : 순서대로 동,서,남,북의 우리말 부라퀴 :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비는 사람 핫어미 : 유부녀의 우리말 핫아비 : 유부남의 우리말 아리수 : 한강의 우리말 한 별 : 크고 밝은 별 샛 별 :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빛나는 금성을 이르는 말 닻 별 : 별자리 중에서 '카시오페아'를 달리 이르는 말 꽃샘바람 : 봄철 꽃이 필 무렵에 부는 찬 바람 소소리바람 : 이른 봄에 살 속으로 기어드는 차고 음산한 바람 돌개바람 : 회오리 바람 산돌림 : 옮겨다니며 한줄기씩 내리는 소나기 사시랑이 : 가늘고 힘없는 사람 사부랑사부랑 : 물건을 느슨하게 묶거나 쌓아놓은 모양 앙짜 : 앳되게 점잔을 빼는 짓 옴니암니 : 아주 자질구레한 것 (예 : 그렇게 옴니암니 따지지 말게) 모꼬지 : 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 오비다 : 좁은 틈이나 구멍속을 갉아내거나 도려내다 나비잠 : 갓난 아이가 두팔을 머리위로 벌리고 편히 자는 잠 집알이 : 새 집 또는 이사한 집을 인사차 찾아보는 일 건잠머리 : 일을 시킬 때에 방법을 일러주고 도구를 챙겨주는 일 (예 : 그는 건잠머리가 있으니 잘 가르쳐 줄게다) 하늬바람 : 서풍 북새바람, 됫바람, 된 바람 : 북풍 마파람, 앞바람 : 남풍 자귀 : 짐승의 발자국 다님길 : 사람이 다니는 길 도닐다 : 가장자리를 빙빙 돌아다니다 소마 : 오줌을 점잖게 이르는 말 고수머리 : 곱슬머리 하마하마 : 어떤 기회가 계속 닥쳐오는 모양, 어떤 기회를 마음조이며 기다리는 모양 하르르하다 : 종이나 옷감 따위가 얇고 매우 보드레하다 에움길 : 굽은길 에우다 : 둘레를 삥 둘러싸다, 딴길로 돌리다 희치희치 : 드문드문 벗어진 모양, 군데군데 치이거나 미어진 모양 소마소마 : 조마조마 셈나다 : 사물을 잘 분별하는 슬기가 생겨나다 셈차리다 : 앞 뒷일을 잘 생각하여 점잖게 행동하다 아이서다 : 임신
시나브로 :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그린내 : 연인의 우리말 그린비 : 그리운 남자라는 뜻의 우리말 해류뭄해리 : 가뭄후에 오는 시원한 빗줄기 가람 : 강의 우리말 가온길 : 정직하고 바른 가운데 길로 살아가라고 지은 이름 어라연히프제 : 치마를 입고 화살 쏘는 여성들 가온누리 : 무슨 일이든 세상의 중심이 되어라 한울 : 우주 길가온 : 길 가운데 꽃가람 : 꽃이 있는 강 늘솔길 : 언제나 솔바람이 부는 길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듀룃체리 : 늦게 얻은 사랑스러운 딸자식 물비늘 : 잔잔한 물결이 햇살 따위에 비치는 모양 타니 : 귀걸이 한글 우리말을 담는
예그리나 : 서로 애뜻하게 사랑하는 연인 사이 온새미로 :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 마루 : 하늘의 우리말 푸르미르 : 청룡의 순우리말 미르 : 용의 순우리말 베론쥬빌 : 배신을 당한 여성 미리내 : 은하수의 우리말 커리쉴하프 : 마을수장의 전쟁도구장비들
아라 : 바다의 우리말
비나리 : 축복의 말
타니 : 귀걸이
아리아 : 요정의 우리말
푸실 : 풀이 우거진 마을
달보드레하다 : 연하고 달콤하다.
아토 : 선물
꼬두람이 : 맨 꼬리 또는 막내
희나리 : 마른 장작의 우리말
하늬바람 : 서풍
북새바람:됫바람,된바람,북풍
마파람 : 앞바람, 남풍
자귀 : 짐승의 발자국
다님길 : 사람이 다니는길
건잠머리 : 일을 시킬 때에 방법을 일러주고 도구를 챙겨주는일
나비잠 : 갓난 아기가 두 팔을 머리위로 벌리고 편히 자는 잠
모꼬지 : 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일
산돌림 : 옮겨 다리면서 내리는 비
볼우물 : 보조개
여우별 굿은 날 잠깐 났다가 숨는 별
매지구름 : 비를 머금는 검은 조각구름
꼬꼬지 : 아주 오랜 엤날
겨르로이 : 한가로이
눈바래기 : 멀리 가지 않고 눈으로 마중한다는
애오라지 :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에 부족하나마
미쁘다 : 진실하다
그미 : 그 여자
즈믄 : 천
온 : 백
소담하다 : 생김새가 탐스럽다.
하슬라 : 강릉의 순 우리말
새, 하, 마, 노 : 순서대로 동, 서, 남, 북
샛 별 :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빛나는 금성을 이르는 말
닻 별 : 별자리 중에서 카시오페아 를 달리 이르는 말
소소리바람 : 이른 봄에 살 속으로 기어드는 차고 음산한 바람
돌개바람 : 회오리 바람
섬서하다 : 지내는 사이가 서먹서먹하다.
사부랑사부랑 : 물건을 느슨하게 묶거나 쌓아놓은 모양
바오 : 보기 좋게
은가람 : 은은히 흐르는 강
포롱거리다 : 작은 새가 가볍게 날아오르는 소리
늘해랑 : 늘 해와 함께 살아가는 밝고 강한 사람
나릿물 : 냇물
도담도담 : 별탈 없이 잘 자라는 모습
올리사랑 :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
여우비 : 해가 난 날 잠깐 내리는 비
다솜 : 애틋한 사랑
다소니 : 사랑하는 사람
해윰 : 생각을 뜻하는 우리말
라온제나 : 기쁜 우리
라온힐조 : 즐거운 이른 아침
나르샤 : 날아 오리다를 뜻하는 우리말
흐노니 : 누군가를 굉장히 그리워 하는 것
노고지리 : 종달새
너울 : 바다의 사나운 큰 물결
너비 : 널리
온누리 : 온세상
하제 : 내일
옛살비 : 고향
다흰 : 흰 눈꽃같이, 세상을 다 희게 하는 사람
그루잠 : 깨었다가 다시 든 잠
하야로비 : 해오라기
초아 : 초처럼 자신을 태워 세상을 비추는 사람
별찌:유성
하야로비:해오라기
아스라이:아득히,흐릿한
꽂잠:신혼부부의 첫날밤을 이르는 우리말
휘들램:이리저리 마구 휘두르는 짓
도닐다:가장자리를 빙빙 돌아다니다.
오비다:좁은 틈이나 구멍 속을 갉아내거나 도려낸다.
아퀴 : 일의 갈피를 잡아 마무르는 끝매듭 사달 : 대단찮은 사고나 탈 사그랑이 : 다 삭아서 못쓰게 된 물건 자리끼 숭늉 : 밤에 마시기 위해 머리맡에 둔 물그릇 먼산바라기 : 그저 먼산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음을 뜻하는 말, 비슷한 말로는 '별바라기'가 있다 지망지망히 : 조심성없이 임 : '으뜸'이라는 뜻의 고대 한국어 드레 : 인격적으로 점잖은 무게 (예 : 어려도 드레가 있어 보이는구나) 모람모람 : 이따금씩 한데몰아서 둔치 : 물있는 곳의 가장자리